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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과 역동에 대한 질문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선 인간은 달라진다. 미셸은 정신에서 육체로, 합리에서 충동으로, 언어에서 행동으로, 추상에서 현실로 초점을 바꾼다. 역동으로 간 부동의 다음 행선지는 어디인가? 인간의 선택, 자유다.

앙드레 지드는 진리에 대한 두려움 없는 사랑과날카로운 심리적 통찰로 인간의 문제와 조건을 묘사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인텔리겐치아 2267호, 2014년 10월 17일 발행

노벨문학상 5. 김정숙이 옮긴 앙드레 지드의 ≪부도덕한 사람≫

자신을 어떻게 자유롭게 만들 것인가를 아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어려운 것은 어떻게 자유로운 상태로 자신을 유지할 것인가를 아 는 것이다. -«부도덕한 사람(L’Immoraliste)», 앙드레 지드(André Gide) 지음, 김정숙 옮김, 15쪽


누가 부도덕한 사람인가? 소설의 주인공은 미셸이다. 서재에 파묻혀 학문에 몰두하는 젊은 학자다. 이야기는 어디서 시작되는가? 미셸은 갓 결혼한 아내 마르슬린과 스페인, 튀니지로 신혼여행을 떠난다. 여행 도중 병 에 걸려 죽음의 공포를 맛본다. 하지만 가까 스로 회복한다. 자신의 삶에 대한 끈질긴 애 착과 아내의 헌신적 간호 덕분이었다.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난 미셸은 이제 어디로 가는가? 일련의 깨달음을 얻고 제2의 탄생을 겪는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일대 전환이 생겼


다. 관심의 축이 정신에서 육체로, 지적 활동 에서 감각적 충동으로 바뀐다. 과거의 부동 성에서 현재의 역동성으로 이동한다. 언어 가 아닌 행동, 추상적 사고가 아닌 현실에 초 점을 맞추게 된다. 두 번째의 삶이란 어떤 모습인가? 노르망디와 파리에서 언뜻 보기에 안정된 생 활을 한다. 하지만 감정의 균형은 무너지고 미셸은 점점 더 냉혹하고 비정한 이기주의자 로 변한다. 어떤 계기가 찾아오는가? 메날크가 나타난다. 주인공 미셸이 막연하 게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철학을 명쾌하게 요


약하고 확신을 주는 인물이다. 그는 강자의 법칙을 상징한다. 강자의 법칙이 뭔가? 휴식, 안정, 소유, 모방을 비웃고, 불안한 위 험 속에서 사는 것이다. 즉, 과거도 미래도 없 이 순간에 최대한 에너지를 집중하는 강한 개 인을 만드는 것이다. 미셸은 강해지는가? 그의 논리는 점차 궤변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악을 건강한 활력이라고 강변하기 시작한다. 그때 아내 마르슬린도 중한 병에 걸린다.


병든 아내를 살려 내는가? 극진하게 간호하기는커녕 병든 아내의 죽음 을 기다리고 재촉한다. 이로써 소설은 아내 의 죽음이라는 파국을 향해 빠르게 진행된 다. 미셸은 인격적 파탄에 이른다. 여기서 독자는 무엇을 보게 되는가? 작가가 길 끝에서 갑자기 사라진 것처럼 당혹 스럽다. 삶의 열정을 되찾고 죄의식 없는 행 복에 도달하려는 미셸의 노력에 공감했던 독 자는 급박하게 전개되는 파괴적 행동과 그 결 과 앞에 당황하게 된다. 당황의 갈등 구조는 뭔가? 미셸이 가졌던 의지가 점차 비정한 이기주의


로 바뀌면서, 그가 추구하는 자아실현이 과 연 절대 선인가, 그가 주장하는 개인의 자유 가 과연 정당한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진다. 이렇게 되면 독자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작품에 몰입했던 상태에서 벗어나 비판적 거 리를 갖게 된다. 그러나 결말이 만들어 내는 이 효과는 작가의 의도 안에 있다. 앙드레 지 드는 자신의 책 속에 독과 해독제가 함께 들 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주장과 동시에 비판 을 담고 있다는 말이다. 지드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도덕과 윤리에서 인간을 해방해 삶에 대한 열 정을 되찾게 하고 거짓된 선악 구분이나 편


견에서 인간을 해방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 지만 그 모든 억압에서 벗어난다 해도 마지막 남은 과제가 있다. 바로 자신으로부터의 해 방이다. 늘 깨어 자신을 성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유를 잃게 된다. 앙드레 지드는 어떤 작가인가? 20세기 초반 프랑스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 다. 정신과 육체, 이성과 본능으로 세계를 나 누는 기독교 이원론적 세계관과 관련한 도덕 문제를 다뤘다. 육체와 본능을 가진 인간의 욕망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50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당신은 누구인가? 김정숙이다. 배재대학교 프랑스어문화학과 교수다.


부동과 역동에 대한 질문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선 인간은 달라진다. 미셸은 정신에서 육체로, 합리에서 충동으로, 언어에서 행동으로, 추상에서 현실로 초점을 바꾼다. 역동으로 간 부동의 다음 행선지는 어디인가? 인간의 선택, 자유다.

앙드레 지드는 진리에 대한 두려움 없는 사랑과날카로운 심리적 통찰로 인간의 문제와 조건을 묘사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부도덕한 사람 앙드레 지드 지음 김정숙 옮김 프랑스 소설 2011년 12월 30일 출간 사륙판(128*188) 무선 제본, 210쪽 15,000원


작품 속으로

L'Immoraliste 부도덕한 사람


차례

서문 ······················ 5 1부 ······················ 13 2부 ······················ 83 3부 ······················ 159

해설 ······················193 지은이에 대해··················200 옮긴이에 대해··················203


I

내 친구들아. 너희들의 변함없는 우정을 알고 있었다. 내 부 름에 달려와 주었군. 너희들이 불렀다면 나도 마찬가지였겠 지. 서로 보지 못한 지 3년. 서로 만나지 못했던 세월을 견디 었던 너희들의 우정이 이제 내가 하려고 하는 이야기도 견 딜 수 있기를 바란다. 갑자기 너희들을 부르고 먼 내 거처까 지 여행을 하게 한 것은 단지 너희들을 보기 위해서, 너희들 로 하여금 내 이야기를 듣게 하기 위해서다. 너희들에게 말 하는 것 외에 다른 도움은 필요 없다.−나는 내 삶에서 이제 는 더 지나갈 수 없는 지점에 와 있다. 무기력은 아니지만,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태다. 나는… 털어놓고 싶다. 자 신을 어떻게 자유롭게 만들 것인가를 아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어려운 것은 어떻게 자유로운 상태로 자신을 유지

할 것인가를 아는 것이다. −내 인생 이야기를 들어주기 힘 들겠지만, 내 지난 과거를 이야기하겠다. 겸손도 자만도 없 이 담담하게. 나 자신에게 하는 것보다 더 담담하게. 내 이 야기를 들어주기 바란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났던 것은 내 결혼식이 있었던 앙제 15


근처 작은 시골 교회로 기억하고 있다. 하객들이 많지는 않 았지만, 평범했을 예식이 친구들의 배려로 감동적인 예식이 되었지. 내 느낌으로는 모두 감동하고 있는 것 같았고, 그것 때문에 나 자신도 감동했었다. 예식이 끝나고 내 아내가 된 사람 집에 모여 웃지도 떠들지도 않고 조용히 조촐한 식사를 나누고, 미리 예약한 자동차로 우리 부부는 떠났다. 우리 머 릿속에 결혼과 출발역을 이어주는 그 풍습에 따라 말이지. 나는 내 아내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었지만, 아내 역 시도 나를 더 잘 알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크게 괘념치 않았다. 곧 임종을 앞두고 혼자 남게 될 나를 걱정하시는 아 버지를 안심시켜 드리는 데 급급한 나머지 아내에 대한 애 정 없이 결혼한 것이지. 아버지에게 깊은 애정을 갖고 있었 던 나는, 임종의 고통을 신경 쓰느라 그 힘든 마지막 순간을 더 편안하게 해드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니까 인생 이 어떤 것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없이 내 인생을 얽어맨 거 였지. 죽어가는 분의 머리맡에서 약혼을 했을 때 즐거운 마 음은 아니었지만 엄숙한 기쁨이 없지는 않았다. 그만큼 내 약혼으로 아버지가 느끼셨던 평온은 큰 것이었다. 약혼자를 사랑한 것은 아니었지만, 다른 여자를 사랑했던 적도 없었 기 때문에 내 눈에는 그것으로 우리의 행복은 보장된 것으 로 보였다. 내 스스로가 어떤 인간인지 아직 알지 못한 상태 16


에서 내 모든 것을 그녀에게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 역시 고아였고, 남자 형제 둘과 살고 있었는데, 이름은 마르슬린이고, 갓 스무 살이었으니까 나보다 네 살 아래였다. 말했지만 나는 그녀를 전혀 사랑하지 않았다. −적어도

사람들이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 다. 사랑이 애정이나 일종의 연민, 그리고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을 뜻한다면 나는 그녀를 사랑한 것이지만. 그녀는 가 톨릭교도였고, 나는 신교도였다… 나 스스로는 거의 의식 이 없었지! 신부가 나를 받아들였고 나 역시 신부를 받아들 였고, 별 문제 없이 결혼이 진행되었다.

아버지는 말하자면 ‘무신론자’였다고 할 수 있겠지. −아

버지 역시 마찬가지였으리라고 생각되는데, 어쩔 수 없는 일종의 조심스러움 때문에 한 번도 직접적으로 아버지의 신 앙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믿 고 있다. 어머니의 엄격한 청교도 교육은 어머니에 대한 좋 은 추억과 함께 내 마음속에서 서서히 지워졌다. 너희도 알 다시피 나는 일찍 어머니를 여의었으니까. 어린 시절 처음 으로 받은 정신 교육이 얼마나 우리는 지배하는지, 우리 머 릿속에 어떤 깊은 자국을 남기는지 상상도 못했었다. 어머 니가 자신에 대해서 엄격하라는 원칙을 가르치면서 내게 물 려주신 자제심으로 나는 학업에 전념했다. 아버지는 열다섯 17


살에 어머니를 잃은 나를 정성스럽게 보살피시면서 교육하 는 데 열정을 쏟으셨다.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이미 배웠던 나는 아버지와 헤브라이어, 산스크리트어, 그리고 페르시아 어와 아랍어를 배웠다. 스무 살 때는 내가 얼마나 열심이었 는지 아버지는 당신의 연구 작업에 나를 넣어주시기까지 했 다. 아버지는 나를 동료로 취급하면서 즐거워하셨고 그 증 거를 내게 보여주고 싶어 하셨다. 아버지 이름으로 출판된 ≪프리지아 지방 제식들에 관한 소고≫는 아버지가 약간 감수하는 정도였고 순전히 내 작품이었지. 그처럼 많은 찬 사를 들었던 아버지의 저서가 없었는데, 매우 기뻐하셨다. 나로서는 그런 엉터리가 성공적이라는 것을 보며 혼란스러 웠지만, 어쨌든 그때부터 나는 학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 고 대단한 학자들이 나를 동료로 취급하게 됐다. 사람들이 내게 베풀었던 모든 영예를 생각하면 지금 미소를 짓게 된 다… 책이나 유적들만 바라보며, 인생에 대해서는 아무것 도 모른 채 그렇게 스물다섯 살이 된 나는 일에 이상할 정도 로 열정을 쏟았다. 친구들을 사랑했지만(그중 몇이 너희들 이지), 친구들보다 우정 자체를 사랑했다고 해야 할 것 같 다. 친구들에 대해서 아주 성실했지만, 그것은 품위를 갖추 고 싶은 욕구 때문이었으니까. 내 안에서 고결한 감정들을 키우고 싶었던 거지. 한마디로 나는 나 자신도, 친구들도 모 18


르고 있었다. 한번도 내가 다른 인생을 살 수도 있으며, 달 리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든 적이 없었으니까.

아버지나 나나 소박한 것으로 충분했다. 우리 둘은 아주 적은 돈을 쓰면서 살았기 때문에, 나는 스물다섯 살이 되도 록 우리가 부자라는 것도 몰랐다. 별로 신경도 쓰지 않고 우 리가 먹고살 것을 가지고 있는 정도라고만 생각하고 있었 다. 아버지와 함께 살며 절약하는 습관이 들었던 나로서는 내가 훨씬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거 의 난처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내가 그 방면에 얼마나 무심 했는지, 아버지가 돌아가신 때도 아니고, 결혼 계약서를 작 성하는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아버지의 유일한 상속자로서 내가 가지고 있는 재산이 어느 정도인지 좀 더 확실하게 알 게 되었다. 마르슬린이 지참한 것은 거의 아무것도 없다는 것도 그때 알게 되었지. 내가 모르고 있었지만, 아마도 더 중요한 사실은 내 건강 이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건강으로 곤경에 처한 적이 없었 던 내가 어떻게 알았겠나? 가끔 감기를 앓기는 했어도 소홀 히 지나쳤으니, 너무 조용한 일상생활이 나를 약하게 만들 기도 하고 보호하기도 했던 것이지. 마르슬린은 건강해 보 였고, 실제로 나보다 훨씬 건강했다는 것을 머지않아 알게 19


되었다.

결혼식 당일 밤 우리는 방 두 개가 준비되어 있는 파리 시 내 아파트에서 지냈다. 우리는 꼭 필요한 물건을 사는 시간 동안만 파리에서 머물렀다가 마르세유로 출발했고, 거기서 곧 튀니스로 가는 배에 올랐다. 다급한 일들, 멍해질 정도로 너무도 빨리 진행된 사건들, 초상을 치르면서 느낀 흥분과 곧 이은 결혼에 따른 피할 수 없었던 흥분, 이 모든 것들에 나는 지쳐 있었다. 배 위에서 피곤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때까지 벌어지는 일마다 피곤을 잊게 하면서 동시에 피곤을 키우고 있었던 셈이지. 배 위에서 어쩔 수 없이 갖게 된 여유로 나는 곰곰이 생각에 잠기게 되었는데, 처음 있었던 일 같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일에서 멀어져 있는 것도 처음이었 다. 그때까지 나는 짧은 휴가밖에 만들지 않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아버지와 한 달 이상 스페인을 여행하기도 하 고, 한 번은 6주 동안 독일 여행을 하기도 했다. 다른 여행도 있었지만, 모두가 답사 여행이었다. 아버지가 아주 뚜렷한 연구 목적에서 전혀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를 따라다니는 일을 그만두고 책 읽기에 몰두했었다. 우리 부 부가 마르세유를 떠나자마자 그라나다와 세비야에 대한 기 20


억들이 다시 떠올랐다. 맑은 하늘, 선명한 그늘, 축제, 웃음 소리, 노랫소리, 그것을 우리가 보게 되리라는 기대감이 생 겼다. 나는 갑판으로 올라가 마르세유 항이 멀어져가는 것 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내가 마르슬린을 혼자 버려두고 있다는 생각이 들 었다. 나는 뱃머리에 앉아 있는 그녀에게 다가가서 처음 진정으 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너희들도 보았으니 알고 있겠지만 마르슬린은 아름다운 여자였다. 진작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에 자책감이 들었다. 그녀를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마음으로 바라 보지 못했던 것이지. 우리 두 가족은 항상 가깝게 지냈고, 나는 그녀가 커가는 것을 보면서 그 우아한 모습에 익숙해 져 있었으니… 그녀가 얼마나 돋보이던지 놀라웠다. 수수한 검은 밀짚모자 위로 넓은 베일을 흩날리고 있는 아내는 금발이었지만 연약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같은 스타 일의 스커트와 블라우스는 우리가 함께 고른 체크무늬 천으 로 만든 것이었는데, 아버지의 초상으로 어두운 차림을 하 는 것을 내가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느낀 아내가 내 쪽을 바라보 았다… 그때까지 내가 그녀에게 보여준 것은 의무감에서 오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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