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오만, 여자의 편견 남자는 너그럽고 여자는 발랄했다. 첫눈에 여자는 그저 그랬고 남자는 무례했다. 젊음의 순수함과 사랑의 열정이 없었다면 둘은 영원히 오만과 편견을 벗어날 수 없었다.
찰스 에드먼드 브록이 그린 ≪오만과 편견≫의 본문 삽화, 1895
인텔리겐치아 2607, 2015년 5월 27일 발행
이미애가 뽑아 옮긴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가문도, 인척도, 재산도 없는 젊은 아가씨의 건방진 요구일 뿐이야. 이건 참을 수 없는 일 이야! 당신이 당신 자신의 가치를 알고 있다 면, 당신이 자라난 영역을 벗어나고 싶어 하 지 않을 거야.” “당신의 조카와 결혼한다고 해도 제가 그 영 역을 벗어난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그 는 신사고, 저는 신사의 딸이니까요. 그 점에 서는 동등합니다.”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 제인 오스틴(Jane Austen) 지음, 이미애 옮김, 212쪽
가문도, 인척도, 재산도 없는 이 젊은 아가씨가 누구인가? 엘리자베스 베넷이다. 발랄하고 자존심 강 하다. 그녀를 비난하는 또 한 사람은? 베넷이 사모하는 남자 다시의 이모, 레이디 캐서린이다. 왜 다투는 것인가? 캐서린은 자기 딸을 다시와 결혼시키려 한 다. 그러다 다시가 엘리자베스와 결혼한다 는 소문을 듣는다. 그녀를 ‘fortune hunter’, 그러니까 재산을 노리는 구혼자라고 생각한 다.
다시가 노릴 만한 재산을 가진 남자인가? 그는 귀족 바로 아래 계층인 ‘신사’다. 신사 는 파크라고 부르는 넓은 사유지나 사원(私 園)의 수익으로 유유자적 생활한다. 그는 신 사 가운데서도 부유한 편이다. 연 수입이 사 오천 파운드나 된다. 엘리자베스는 어떤가? 그녀의 부친도 토지가 있다. 하지만 빅토리 아시대엔 장남상속법이 있었다. 딸은 유산 을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결혼 적령기 여자 들은 재산과 계층을 결혼의 기준으로 삼았 다.
그녀의 결혼관은 무엇인가? 계층과 재산이 아니라 사랑을 결혼의 조건 으로 생각한다. 둘은 어떻게 만났나? 엘리자베스가 사는 시골 마을의 네더필드 파크에 다시의 친구 빙리가 이사 온다. 연회 에 마을 사람을 초대한다. 그곳에서 만남이 시작되었다. 첫눈에 반했나? 정반대다. 다시는 무례할 정도로 오만했고 엘리자베스는 그에 대해 편견을 갖는다.
오만과 편견이 어떻게 발생되는가? 다들 춤추며 흥겨운 분위기를 만끽하지만 둘은 그러지 못했다. 남자가 모자라 그녀는 앉아만 있었고 그는 연회가 지루했다. 빙리 가 그녀와 춤추라고 권했지만 단칼에 거절 한다. 왜 거절하는가? 이렇게 말한다. “괜찮은 편이군. 하지만 유 혹적일 정도로 예쁘지는 않네. 그리고 다른 남자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아가씨의 자존 심을 세워 줄 기분이 아닐세.” 어디서 변화가 시작되는가? 둘의 관계는 순탄치 않았다. 그러다 인습에
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엘리자베스를 다시 가 사랑하게 되고 청혼한다. 처음에 그녀는 거절하지만 곧 편견을 버리고 그를 사랑한 다. 변화의 계기가 뭔가? 다시가 너그럽고 사려 깊다는 얘기를 여기저 기서 듣게 된다. 네 살 때부터 다시를 지켜본 가정부는 그를 존경했고 이렇게 말한다. “그 분은 최고의 지주이시고 최고의 주인님이세 요. 자기밖에 모르는 요즘 젊은이들과는 다 르시지요. 소작인들이나 하인들 가운데 그 분에 대해서 좋게 말하지 않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거예요. 어떤 사람들은 그분이 오 만하다고 하지만, 저는 그런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어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주인님 이 다른 젊은이들처럼 떠들썩하게 말씀을 많이 하지 않으시기 때문일 거예요.” 편견은 어떻게 사라지는가? 엘리자베스는 자존심과 편견의 나쁜 산물, 곧 잘못된 관념을 스스로 깨뜨려 나간다. 불 교식으로 말하자면 잘못된 ‘아상(我相)’이 깨 져 나가는 과정이다. 아상의 극복은 어떤 결과를 얻는가? 다시와 엘리자베스가 오만과 편견을 극복해 결혼하게 되었다.
오스틴은 당대 어떤 평을 얻었나? 생전 평은 나쁘지 않았다. 사후에는 디킨스 와 엘리엇에 가려져 큰 인정은 받지 못했다. 역사의식과 사회 인식이 결핍되었다는 비판 을 받기도 했다. 누가 뭐라고 비판했나? 마크 트웨인은 거의 본능적 반감을 나타냈 다. 데이비드 로렌스는 “형편없고 비열하고 속물스러운 의미에서 영국인답다”고 말했 다. 누가 언제부터 오스틴을 알아보았나? 미국의 비평가 라이오넬 트릴링이 마크 트웨 인의 비난에 대해 반론했다. “여성이 관심과
권력의 중심에 선 듯 보이는 사회에 대해 남 자들이 느끼는 극도의 불쾌감”이 트웨인의 비난의 핵심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19세기 후반부터 조지 헨리 루이스와 헨리 제임스 가 그녀를 높이 평가했다. 문학 정전의 반열 에 들게 되었고 대중의 인기도 높아졌다. 호평의 근거는 무엇인가? 세밀한 관찰력과 날카로운 비판의 시선으로 당대의 물질 지향적인 세태와 허위의식을 풍 자했다는 것이다. 당대에 유행하던 고딕소 설과 감상소설 등 대중적인 문학 장르의 관 습적인 기법들을 다양하게 실험하면서 사실 주의에 입각해서 정교한 작품 세계를 창조 했다는 평을 받는다.
이 책은 원전을 어떻게 뽑아 옮겼나? 핵심 내용을 중심으로 원문의 3분의 1 정도 를 뽑아 옮겼다. 당신은 누구인가? 이미애다. 서울대학교에서 현대 영국 소설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남자의 오만, 여자의 편견 남자는 너그럽고 여자는 발랄했다. 첫눈에 여자는 그저 그랬고 남자는 무례했다. 젊음의 순수함과 사랑의 열정이 없었다면 둘은 영원히 오만과 편견을 벗어날 수 없었다.
찰스 에드먼드 브록이 그린 ≪오만과 편견≫의 본문 삽화, 1895
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지음 이미애 옮김 2009년 6월 15일 출간 사륙판(128 *188) 하드커버, 236쪽, 12,000원
작품 속으로
Pride and Prejudice 오만과 편견
제1부
재산이 많은 독신 남자에게 아내가 필요하리라는 것은 누구 나 인정하는 진리다. 그런 남자가 주위에 이사 오면 그의 감정이나 생각을 알 지 못하더라도 이웃 사람들은 이 진리를 확고히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그가 당연히 자기네 딸들 중 하나와 결혼하리 라고 생각한다. “여보, 베넷 씨,” 어느 날 그의 부인이 말했다. “드디어 네 더필드 파크를 세놓았다는 소식을 들으셨어요?” 베넷 씨는 듣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그렇대요. 아, 글쎄, 북부 출신의 부유한 젊은이가 네더 필드에 세를 들기로 했대요. 미가엘 축일 이전에 이사 오기 로 했고요.” “그의 이름이 뭐요?” “빙리예요.” “결혼한 사람이요, 미혼이요?” “아, 당연히 미혼이지요! 재산이 많은 미혼 남자라고요! 연 수입이 사오천 파운드나 된대요. 우리 딸들에게 얼마나 멋진 일이에요?” “어째서 그렇소? 우리 딸들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이 오?”
“정말이지, 베넷 씨,” 그의 아내가 대답했다. “어쩌면 이 렇게 당연한 걸 물어볼 수 있어요! 그 사람과 우리 딸의 결 혼을 생각하는 걸 뻔히 알면서.” “그가 그런 목적으로 여기 정착하려는 거요?” “목적이라뇨!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 사람이 우리 딸과 사랑에 빠질지도 모른다고요. 그러니 그 가 오면 당신은 곧 그를 방문해야 해요.”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소. 당신과 애들이야 방문해도 괜찮겠지. 애들만 보내도 되겠고. 그편이 더 낫겠소. 당신 이 애들 못지않게 예쁘니 빙리 씨가 당신을 제일 좋아할지 도 모르잖소.” “그렇게 추켜세우지 마세요. 물론 예전에야 예뻤지만, 지금은 그리 특별히 예쁜 건 아니니까요. 다 자란 딸이 다섯 이나 있는 여자라면 자기 미모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말아야 지요.” “그런 여자에겐 봐줄 만한 미모가 있는 경우도 흔치 않 지.” “어떻든 빙리 씨가 이사 오면 당신은 그를 찾아가서 인사 해야 해요.” “그건 약속할 수 없소.” “하지만 당신 딸들을 생각해 보세요. 애들에게 안정된 생활이 보장된다는 걸 생각해 보라고요. 바로 그 때문에 윌 리엄 경 내외도 방문하려고 마음먹고 있어요. 정말이지, 당
신은 가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그를 방문할 수 없으 니까요.” “당신은 너무 예의를 따지는군. 장담컨대 빙리 씨는 당 신을 만나면 무척 기뻐할 거요. 그리고 그가 우리 딸들 가운 데 누구를 선택하든 진심으로 허락한다는 내용을 몇 줄 써 서 당신 편에 보내겠소. 리지에 대해서는 좋은 말을 몇 마디 덧붙여야지.” “그러지 마세요. 리지는 다른 애들보다 나은 점이 전혀 없어요. 제인의 절반만큼도 예쁘지 않고, 리디아의 절반만 큼도 쾌활하지 않아요. 그런데도 당신은 늘 리지만 편애하 더라고요.” “그 애들은 내세울 게 별로 없소.” 그가 말했다. “다른 여 자애들처럼 다 어리석고 무식하지. 하지만 리지는 훨씬 영 리한 데가 있거든.” “베넷 씨, 당신은 어떻게 자기 친자식들을 그렇게 헐뜯을 수 있어요? 나를 골리면서 즐거워하고. 내 신경증을 조금도 동정하지 않아요.” “당신은 잘못 알고 있소. 나는 당신의 신경과민 증세를 무척 존중해요. 옛 친구나 다름없지. 적어도 20년간 그 이야 기에 경의를 품고 들어왔소.” “아, 당신은 내가 얼마나 극심한 고통을 겪는지 몰라요.” “나는 당신이 고통을 이겨내고 오래 살아서 연 4천 파운 드의 수입이 있는 젊은이들이 이웃에 많이 이사 오는 걸 보
게 되기 바라오.” “그런 젊은이가 스무 명이 오더라도 우리에겐 전혀 소용 없을 거예요. 당신이 그들을 방문하지 않을 테니까요.” “스무 명이 온다면 맹세코 그들을 모두 방문하겠소.” 베넷 씨는 기민한 재치와 냉소적 유머, 과묵함, 변덕스러 움이 기묘하게 뒤섞여 있는 사람이어서, 23년을 겪었어도 그의 아내는 그의 성격을 이해하지 못했다. 반면 그녀의 마 음은 확연히 드러났다. 그녀는 이해력이 모자라고, 아는 것 이 거의 없으며, 기분이 들쑥날쑥했다. 뭔가 불만스러운 일 이 있으면 신경과민 증세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인생에서 제일 큰 과업은 딸들을 결혼시키는 것이었고, 가장 즐거운 일은 다른 사람들을 방문해서 잡담을 나누는 것이었다.
베넷 씨는 빙리 씨를 제일 먼저 방문한 사람들 중 하나였 다. 아내에게는 끝까지 방문하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찾아 갈 생각을 줄곧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은 다음과 같이 밝혀졌다. 둘째 딸이 모자를 장식하는 것을 보고는 그가 갑 자기 말을 걸었다. “그 모자가 빙리 씨 마음에 들면 좋겠구나, 리지.” “빙리 씨가 무얼 좋아할지 알 리가 없잖아요.” 그의 아내 가 화가 나서 말했다. “그 사람을 방문하지 못할 테니까요.” “하지만 엄마, 그 사람을 공중 무도회에서 만날 거고 롱 부인이 그를 소개해 주겠다고 약속하셨잖아요.” 엘리자베
스가 말했다. “그 부인은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을 거야. 자기도 조카 딸이 둘이나 있단 말이야. 게다가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여 자라서 난 그 부인을 탐탁지 않게 생각해.”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베넷 씨가 말했다. “당신이 그 부인의 도움을 기대하지 않는다니 다행이구려.” 베넷 부인은 대꾸하려 들지도 않았지만, 화를 참지 못하 고 다른 딸을 꾸짖기 시작했다. “제발 그렇게 기침을 해대지 마라, 키티. 엄마의 신경증 을 좀 배려할 수 없니? 내 신경을 마구 찢어놓고 있잖아.” “재미있으려고 기침하는 건 아니에요.” 키티가 성마르게 말했다. “다음 무도회가 언제냐, 리지?” “2주일 후예요.” “그래, 맞아요.” 그녀의 어머니가 큰 소리로 말했다. “그 리고 롱 부인은 바로 그 전날에나 돌아온다고요. 그러니 그 부인이 그 사람을 소개해 줄 수가 없죠. 자기도 그 사람을 알지 못할 테니까.” “그렇다면 당신이 더 유리할 테니 빙리 씨를 그 부인에게 소개해 주구려.” “말도 안 돼요, 베넷 씨. 나도 그 사람을 알지 못하는데. 당신은 어쩜 이렇게 날 놀릴 수 있어요?” “당신의 신중한 태도가 존경스럽구려. 이 주일간 친분을
쌓았다고 해도 사실 별거 아니지. 과연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으니 말이요. 하지만 우리가 애써주지 않으면 누군가 다 른 사람이 하겠지. 그러니 당신이 하지 않겠다면 내가 직접 떠맡겠소. 롱 부인이 그것을 고맙게 생각할 테니까.” 딸들은 놀라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베넷 부인은 그저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터무니없어요!”라고 말했다. “이렇게 계속 탄성을 지르는 의도가 뭐요?” 그가 목소리 를 높였다. “소개의 절차가 터무니없다고 생각하는 거요? 그 점에 대해서는 당신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소.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메리? 너는 생각이 깊고 훌륭한 책들 을 많이 읽고 옮겨 적기도 하는 아가씨니 말이야.” 메리는 아주 그럴듯한 말을 하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해 야 할지 몰랐다. “메리가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에,” 그가 말을 이었다. “빙리 씨 이야기로 돌아갑시다.” “빙리 씨라면 지긋지긋해요.” 그의 아내가 소리쳤다. “저런, 유감이구려. 왜 진작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았소? 오늘 아침에 그걸 알았더라면, 그 사람을 방문하지 않았을 텐데. 이미 방문했으니, 이제는 별도리 없이 알고 지내야겠 소.” 그가 바라던 바대로 아내와 딸들은 깜짝 놀랐다. 베넷 부 인은 누구보다도 더 큰 소리로 탄성을 질렀지만, 기쁨과 흥 분이 가라앉자 내내 그것을 예상했었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베넷 씨, 당신은 정말이지 좋은 분이에요. 결국에는 당 신을 설득할 줄 알았어요. 당신은 딸들을 너무나 사랑하니 까 그런 친분을 소홀히 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죠. 아, 정말 기뻐요.” “자, 키티, 마음껏 기침해도 되겠다.” 이렇게 말하면서 베넷 씨는 아내의 황홀경을 참을 수 없어하며 방을 나섰다. “너희들의 아버지는 정말로 훌륭하신 분이셔.” 문이 닫 히자 그녀가 말했다. “아버님의 자상한 배려에 대해서 너희 들이 과연 어떻게 보답을 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이 엄마 에 대해서도 말이야. 우리 나이에 매일 새로운 사람과 친분 을 맺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거든. 하지만 너희들을 위해서라면 우리는 무슨 일이든 할 거야. 귀여운 리디아, 네 가 가장 어리지만, 틀림없이 빙리 씨는 다음 무도회에서 너 와 춤을 추실 거야.” “아, 나는 겁나지 않아. 내가 제일 어리기는 하지만, 키가 제일 크니까.” 리디아가 당당하게 말했다. 그날 저녁 시간은 빙리 씨가 언제 답례 방문을 올 것인 지를 추측하고 언제 그를 만찬에 초대할지를 의논하면서 보냈다.
베넷 부인과 딸들이 어떻게 물어보아도 베넷 씨에게서 빙리 씨에 대한 만족스러운 묘사를 끌어낼 수 없었다. 그는 그들의 교묘한 질문을 모두 피해 넘겼다. 결국 그들은 이웃
에 사는 레이디 루커스에게서 전해들을 수밖에 없었다. 윌 리엄 경은 빙리 씨를 만나고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는 것이 다. 그는 꽤 젊고, 놀랍도록 잘생겼으며, 대단히 쾌활하고, 더욱이 다음 무도회에 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올 예정이라고 했다. 그보다 더 기쁜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춤추기를 좋아 한다면 그다음에는 반드시 사랑에 빠지게 되어 있으므로, 베넷 부인은 강렬한 희망을 마음에 품을 수 있었다. “우리 딸들 가운데 하나가 네더필드에 정착해서 행복하 게 사는 것을 볼 수만 있다면,” 베넷 부인이 남편에게 말했 다. “그리고 다른 애들도 잘 결혼하게 된다면, 나는 더 바랄 게 없을 거예요.” 며칠 지나자 빙리 씨가 답례 차 방문해서 베넷 씨와 서재 에서 10분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예쁘다고 소문난 이 집 아가씨들을 볼 수 있기를 바랐지만, 그녀들의 부친밖에 만날 수 없었다. 하지만 아가씨들은 더 운이 좋았다. 위층 창문에서 그가 푸른 코트를 입고 검은 말을 타고 온 것을 볼 수 있었으니까. 곧 만찬 초대장을 보냈지만, 빙리 씨는 다음 날 런던에 가야 했기에 초대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베넷 부인은 그가 하트퍼드셔에 정착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런던에 가야 할 일이 뭐가 있을지 상상할 수 없었고, 그가 늘 여기저기 돌아 다니기 좋아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 다. 그가 무도회에 많은 사람들을 데려오려고 런던에 갔다
는 레이디 루커스의 말에 불안한 마음을 약간 달랬다. 빙리 씨가 열두 명의 숙녀와 일곱 명의 신사를 데려올 거라는 소 문이 곧 들려왔다. 그러나 그 일행이 무도회장에 들어섰을 때 모두 다 해서 다섯 명뿐이었다. 빙리 씨와 두 누이, 큰 누 이의 남편, 그리고 다른 젊은 남자였다. 빙리 씨는 잘생겼고 신사다웠다. 그의 표정은 쾌활했고, 태도는 편안하고 가식이 없었다. 그의 누이들은 상류층의 분위기를 풍기는 세련된 여자들이었다. 그의 처남인 허스 트 씨는 그저 신사처럼 보였지만, 그의 친구 다시 씨는 키가 크고 훌륭한 체격과 잘생긴 얼굴, 기품 있는 풍채로 온 무도 회장의 관심을 끌었다. 그가 들어온 지 5분도 지나지 않아 그의 연간 수입이 1만 파운드라는 소문이 돌았다. 신사들은 그의 외모가 훌륭하다고 말했고, 숙녀들은 그가 빙리 씨보 다 훨씬 더 잘생겼다고 말했다. 저녁 시간이 절반쯤 지날 때 까지는 모두들 찬탄하며 그를 바라보았지만, 그 후에는 그 의 인기가 떨어졌다. 알고 보니 그는 거만했고, 주위 사람들 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면서 어울리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더비셔에 아무리 큰 사유지가 있다 해도 혐오감을 주는 그의 불쾌한 얼굴을 좋게 봐줄 수 없었다. 빙리 씨는 이내 방 안의 중요한 사람들 모두와 사귀었다. 그는 활기차고 솔직했으며,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춤을 추었 고 무도회가 너무 빨리 끝났다고 화를 냈으며, 네더필드에 서 자기가 무도회를 열어야겠다고 말했다. 그의 친구와 얼
마나 대조적이었는지! 다시 씨는 허스트 부인과 한 번, 빙리 양과 한 번 춤을 추었을 뿐이고 다른 여자들에게 소개받기 를 거절했으며 저녁 내내 방 안을 어슬렁거리다가 이따금 자기 일행에게만 말을 걸었을 뿐이었다. 그의 성격에 대해 서는 이견이 있을 수 없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교만하고 가장 불쾌한 사람인 것이다. 게다가 그가 자기 딸을 무시했 기에 베넷 부인은 특히 화가 나서 그를 몹시 혐오했다. 신사들이 부족했기에 엘리자베스 베넷은 춤이 두 번 진행 되는 동안 앉아 있어야 했다. 우연히 다시 씨가 가까이 있었 을 때 그녀는 그와 빙리 씨의 대화를 귓결에 들을 수 있었다. “이봐, 다시,” 빙리 씨가 말했다. “이렇게 지루하게 혼자 서 있는 걸 보고 싶지 않네. 춤을 추는 것이 어떻겠나?” “그렇게 하지 않겠네. 잘 아는 파트너가 아니라면 춤추 기 싫어하는 것을 알잖아. 자네 누이들은 이미 상대가 있고, 같이 춤추기에 고역스럽지 않을 여자는 여기에 단 한 명도 없네.” “난 자네처럼 까다롭게 굴지 않겠어. 정말이지, 오늘 저 녁처럼 유쾌한 아가씨들을 많이 본 적이 없으니까. 그리고 특히 예쁜 아가씨들도 몇 명 있고 말이야.” “이 방에서 유일하게 예쁜 여자는 자네와 춤추고 있는 아 가씨야.” 다시 씨는 베넷 양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그녀보다 더한 미인은 본 적이 없어! 하지만 바로 자네 뒤에 그녀의 동생이 앉아 있네. 아주 예쁘고, 틀림없이
쾌활할 거야. 내 파트너에게 부탁해서 자네를 소개해 달라 고 하겠네.” “누구를 말하는 건가?” 그러고는 몸을 돌리고 잠시 엘리 자베스를 바라보았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그는 눈을 돌 리고 냉정하게 말했다. “괜찮은 편이군. 하지만 유혹적일 정도로 예쁘지는 않네. 그리고 다른 남자들이 거들떠보지 도 않는 아가씨의 자존심을 세워줄 기분이 아닐세. 자네는 파트너에게 돌아가서 그녀의 미소를 즐기는 게 좋겠어. 나 와 있어 봐야 시간 낭비니까.” 빙리 씨는 그 충고를 따랐고, 다시 씨는 다른 곳으로 걸 어갔다. 그에 대해서 그리 호의적이지 않은 마음이었던 엘 리자베스는 아주 신이 나서 그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들려주 었다. 그녀는 발랄하고 장난을 좋아하는 성격이어서 우스 운 일이라면 무엇이든 재미있어했다. 그 가족 모두에게 그날 저녁은 대체로 유쾌한 시간이었 다. 베넷 부인은 네더필드 일행이 자기 맏딸에게 호감을 가 지고 대하는 것을 보았다. 빙리 씨는 그녀와 춤을 두 번이나 췄고, 그의 자매들은 그녀를 각별히 대했다. 제인은 기뻐하 고 있었고, 엘리자베스는 언니의 기쁨에 공감할 수 있었다. 메리는 자신이 근방에서 가장 뛰어난 소양을 갖춘 아가씨라 고 누군가 빙리 양에게 말하는 것을 들었으며, 캐서린과 리 디아는 운 좋게도 파트너가 없었던 적이 없어서 더 바랄 게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아주 좋은 기분으로 그들이 살고
있는 마을 롱본으로 돌아왔다. 베넷 씨는 아직도 깨어 있었 다. 책을 보고 있으면 그는 시간 가는 줄 몰랐고, 이번처럼 큰 기대를 불러일으킨 사건에 대해서 무척 호기심을 느끼고 있었다. 새로운 이웃에 대해 아내가 실망하기를 바랐지만, 그가 들은 이야기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아, 베넷 씨, 오늘 저녁은 무척 즐거웠어요. 아주 훌륭한 무도회였고요. 제인은 찬사를 많이 받았어요. 모두들 제인 이 아주 예쁘다고 말했고요. 빙리 씨는 제인하고 두 번이나 춤을 췄어요. 생각해 보세요. 그가 두 번이나 요청한 사람은 제인밖에 없었다고요. 그는 아주 마음에 드는 젊은이예요. 너무나 잘생겼고요! 그 누이들은 아주 매력적이었어요. 그 들의 드레스보다 더 우아한 것은 평생 본 적이 없어요. 허스 트 부인의 옷에 달린 레이스는….” 여기서 부인의 말이 중단되었다. 베넷 씨가 화려한 옷에 대한 묘사를 듣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다른 이 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는 다시 씨의 무례한 언동에 대해 신랄하게 과장해서 이야기했다. “하지만 리지가 그 사람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해도 잃을 게 없어요. 불쾌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라서 기분을 맞춰줄 가치도 없다고요. 자기가 대단한 인물이라고 생각하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나 하고! 참 내, 같이 춤출 만큼 예쁘지 않다고! 당신이 그를 야단쳐 주었더라면 좋았을걸. 정말 혐 오스러운 남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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