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mple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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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ganic Church

House Church

Getting Started


옮긴이의 말

1. 성경은 ‘교회’의 개념, 본질, 속성 등등의 소위 ‘교회론’에 관해서 비교적 많은 것들을 알려주는데 비해, ‘교회 하는 방식’이나 ‘예배 드리는 방법’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단지 교회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짧게 묘사하거나(행2:42-47, 4:32-35), 예배 때 어떤 행위들을 했는지, 그 일부를 나열하고 있을 뿐입니다(고전11-14장, 14:26, 엡5:19-20, 골3:16). 아쉽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이에 대한 명확한 지침이나 구체적인 명령을 주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약성경 안에서조차 ‘교회 하는 방식’은 계속 변화하고 있습니다(행2:46, 롬16:5, 골4:15, 약2:2, 14). 지금 우리가 따르고 있는 ‘교회 하는 방식’이나 ‘예배 드리는 방법’은 거의 대부분 성경의 직접적인 명령에 의한 것은 아닙니다. 교회의 역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리잡아 가던 방식들 중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드리거나 교회의 대표들이 협의하여 선택하고 인정한 것들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성령님의 인도가 있었음을 결코 부인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각 교회(교파)에 속한 사람들은 자신이 그 교회에 속하기로 한 이상, 그 교회의 전통적인 방식들을 잘 따라야 합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방식이 절대적인 권위를 갖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역사를 정직하게 살펴보면,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요소들이 기존 전통에 조금이라도 첨가되지 않은 경우는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현재 각 교회(교파)들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교회를 운영하고 예배를 드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일부 가정교회 주창자들이 주장하듯이, 로마황제 콘스탄틴의


기독교 공인 이후 교회는 다 변질된 교회이고, 가정교회만이 신약성경이 말하는 원형교회를 복원한 것도 아닙니다. 콘스탄틴 이전부터, 이미 교회가 모이는 단독 건물이 생겨나서 점점 커져갔고, 목회자들은 지나친 권위를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흐름이 계속되는 것은 인간이 타고난 ‘본성’ 때문이지, 특정한 시기, 특정한 인물의 탓이 아닙니다. 또한 신약성경만 보아서는 당시 가정교회의 모습이 정확히 어떠했는지를 알 수 없고, 성경에 가정교회만 하라는 직접적인 명령도 없습니다. 따라서 현대 가정교회가 신약교회를 그대로 복원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렇게 하는 것만이 하나님의 뜻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다양성입니다. ‘교회 하는 방식’이나 ‘예배 드리는 방법’에 대한 정확한 지침을 주시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다양한 교회 형태와 예배 방식의 가능성을 열어놓으셨습니다. 교회가 이런 다양성 속에서 공존하고 연합하는 통일성을 원하셨습니다. 그럴 때 교회가 다양한 문화, 다양한 상황, 다양한 사람들에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진정, 교회가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통교회의 방식 자체가 성경에 위배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가정교회 방식은 유일한 것이 아니라, 그 중에 한 형태일 뿐입니다. 이런 열린 태도를 가지지 않는다면 가정교회를 하더라도 경직될 수 있습니다. 2. 표지에 나오는 세가지 용어들, 즉 가정교회(House Church), 단순한 교회(Simple Church), 유기적 교회(Organic Church)는 모두 ‘가정교회’를 일컫는 말들입니다. 이 용어들을 사용하는 이유들을 알게 되면, 가정교회가 지닌


기본적인 특징들을 이해하게 됩니다. 먼저, ‘가정교회’는 말 그대로 교회건물이 아니라 집에서 모이는 교회를 말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정교회라는 용어는 주로 미국 휴스톤의 한 한인 목회자가 주창한 목회방식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그 방식은 셀교회입니다. 중앙통제적인 특징이 여전히 강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자신의 교회하는 방식을 무엇이라고 부르든지, 그것은 개인의 자유입니다. 그리고 셀교회가 나쁘거나 잘못된 방식도 아닙니다. 하지만 원래 ‘가정교회’는 가정에서 모이는 작은 교회 하나, 하나를 완전한 독립 교회로 봅니다. 함께 모여서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럴 때도 모든 교회가 동등한 지위와 권한을 가집니다. 두 번째로, ‘단순한 교회’는 요즘 가정교회라는 말 대신 자주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가정교회들이 ‘가정교회’라는 명칭 때문인지, 가정에서만 모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정에서 모이는 것이 점점 도그마가 되어갑니다. 당연히, 모이는 장소뿐만 아니라 다른 방식들도 점점 경직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가정교회를 집 말고도, 사무실, 카페, 공원, 심지어는 수영장에서도 모입니다. 어디서든 자유롭게 모일 수 있고, 교회하는 방식도 쉽고 소박하다는 의미에서 단순한 교회라고 부릅니다. 마지막으로, ‘유기적 교회’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이유가 두 가지입니다. 먼저, 교회는 유기적이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그리고 스스로 성장합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이끌어 보려고 노력하거나, 억지로 조작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또 하나는 교회는 한 사람의 지도자가 이끄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교인들이 참여하여 자신의 은사와 재능을 가지고 서로서로 섬겨야 합니다. 그래서 유기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가지는 교회라는 뜻입니다. 3.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시고, 휠씬 더 다양한 속성들을 가지고 계십니다. 예를 들면, 지적인 면, 도덕적인 면, 초자연적인 면 등의 다양한 모습들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이 하나님의 한 가지 면만을 강조하거나, 한가지 면을 다른 면들보다 더 우월하다고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특히 성령사역, 영적 은사나 성령 체험과 관련해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집니다. 성령사역이나 그 경험만을 강조하거나, 아니면 이것들을 다른 면들보다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가진 사람이나 그룹이 있습니다. 반면에, 이런 현상에 거부감을 가지고 기독교가 가진 초자연적인 면을 완전히


부인하거나 지나치게 축소하려는 노력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한 쪽으로든 치우치면 건전할 수 없습니다. 소위 말하는 ‘성령사역’은 하나님이 가지신 유일한 면이나 우월한 면이 아니라 일부분일 뿐입니다. 그것만으로는 온전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없이 온전할 수도 없습니다. 일부분이지만 꼭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면들이 다 필요합니다. 어느 한 면을 강조하거나 무시하면, 결국 혼란에 빠지거나 무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물론 우리의 이런 부족함이나 편향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역사하실 수 있고 또한 역사해 오셨다는 점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바는 아닙니다. 4. 역자는 이 책자의 내용에 다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 미국에 존재하는 가정교회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알 수 있도록 가감 없이 번역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여기 소개된 내용이 미국의 가정교회들이 모이는 유일한 방식도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 나오는 방식대로만 가정교회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하나님의 음성과 예언(2주차), 열린 시간(3주차)이 가정교회 모임에서 필수적인 요소이거나 순서는 아닙니다. 이런 요소나 순서 없이 모이는 가정교회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그 부분을 단순히 읽고만 지나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이 가정교회를 좀 더 생동감 있게 만드는데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시도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가정교회에 대한 이론보다는 주로 가정교회를 실제 해볼 수 있도록 가정교회를 시작하는 과정을 중심으로 소개했습니다. 부록에 첨부한 글들 중에는 논란이 될 소지가 있는 글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내용들을 숙고해 봄으로서, 그 내용에 동의하든지 동의하지 않든지 간에, 스스로 자신의 답변을 가질 수 있게 되거나, 혹은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되시길 바랍니다.

구주대망 2013. 9. 3

염 종열(dorcas2002@hanmail.net, 019-552-6469)


목차

옮긴이의 말

02

시작하기

09

부록 1 / 자신을 위한 발견

55

부록 2 / 해일

62

부록 3 / 성경발견학습과정

83

부록 4 / 어떻게 1년도 안 되어서, 29명의 신자들이 5개의 새로운 가정교회들을 시작하는 110명의 신자들이 되었는가?

94

부록 5 / 당신의 집에 있는 교회

97

부록 6 / 나는 눈이 아니다.

100

부록 7 / 성령이 이끄시는 모임들

105

부록 8 / 친밀한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

108

부록 9 / 함께 모일 때

112

부록 10 / 2번 테이블에 있는 교회

127

부록 11 / 로마서의 길

132

부록 12 / 제자 삼기는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다.

136


부록 13 / 삶을 변혁하는 소그룹

144

부록 14 / 교회개척운동

152

부록 15 / 리더십이란 무엇인가?

159

부록 16 / 거꾸로 뒤집힌 리더십

165

부록 17 / 어린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181

부록 18 / 가정교회에서 어린이들의 필요 채우기

186

부록 19 / 재정에 관한 빅뱅 이론

195

부록 20 / 교회는 어디에 지출해야 하는가?

201

부록 21 / 사역자의 수입문제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205

부록 22 / 유기적 교회운동 안에서 이단의 위협

209

부록 23 / 배가하기

221

부록 24 / 세례에 관한 교회의 이상한 태도

228

부록 25 / 맥주와 세례

231

부록 26 / 최후의 간식

233



Getting Started

시작하기1

하나님이 당신에게 ‘단순한 교회(Simple Church)’를 시작하라고 부르신다고 느끼는가? 그렇다면 이 가이드북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분들에게 나아가 제자를 삼고, 성령님이 이끄시는 교회를 시작해서 배가하는 것을 배우도록 도울 것이다. ‘토끼와 코끼리’라는 책에 기초한 이 과정에 참여한 것을 환영한다. 1 이 내용은 ‘토끼와 코끼리(The Rabbit and the Elephant, Tony & Felicity Dale and George Barna: 이 책의 제목은 재판에서 ‘Small is Big’이라고 바뀌었다.)’라는 책에서 논의된 개념들을 숙고해보기 위한 자료이다. 원래 두 가지 자료가 제공되었다. 하나는, ‘혼자서’ 추가적인 연구를 해 보도록 돕는 ‘자신을 위한 발견’이라는 자료이다(부록1 참조). 또 하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소그룹으로’ 모여서,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분들에게 나아가는 것을 강조하는 ‘단순한 교회’를 실제 해보는 ‘6주 과정’이라는 자료이다. 이 책자는 ‘6주 과정’의 내용과 그와 관련된 아티클들로 구성되어 있다.

시작하기 09


친구들과 그룹을 만들어서 함께 이 자료를 살펴본다면, 이 자료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매주 한번 모이고 (각자 음식을 가져와서) 식사를 나누는 ‘단순한 교회’를 함께 시작하라. 이 과정의 목적은 다음과 같이 구비시키는 것이다. ●

당신 주변 세상의 비신자에게 다가가도록

그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되도록 돕기 위해

가정에서 만나는 단순한 교회로 새로운 제자들을 모으도록

이 교회들이 배가하도록 가르치기 위해

매주, 이를 실행하도록 돕기 위해 새로운 방법들을 배울 것이다. 각 방법은 단지 이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해 봄으로 경험하게 될 것이다. 소그룹으로 함께 하는 시간을 즐기길 바란다. 예수님의 임재가 없다면, 이 과정은 단지 또 하나의 프로그램이 될 뿐이다. 성령님이 인도하시기 보다, 사람이 이끄는 모든 것은 생명 없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예수님이 여러분 가운데 임재하실 것이고 진리로 인도하실 것을 확신한다.

10


과정 요약

1주 첫 주에는 ‘해일’이라는 비디오를 보고 하나님이 전세계에서 하고 계신 일을 배운다. 모든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매력적인 방식으로 하나님 말씀을 배우기 위해, 단순하고 재생산할 수 있는 성경공부방법을 배우고 사용한다. 누가복음 10:2b을 가지고 파트너와 함께 기도하고 하나님께 인도하심을 구한다.

2주 둘째 주는 교회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사도행전 2:41-47을 연구한다. 당신이 제자를 삼으려고 할 때에,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차릴 수 있는지를 배운다. 기도와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통해서, 예언이 무엇인지와 서로의 덕을 세우기 위해 예언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배운다. 이 주간 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나눌 때 비신자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자신의 영적 여정을 말하는 법을 배운다.

3주 셋째 주는 가정교회에 모인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서로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초점을 둔다. 고린도전서 14:26에 제시된 것처럼, 당신의 모임이 어떻게 성령님의 인도를 받을 것인지 연구하고 토론한다. ‘함께 모일 때’라는 비디오를 보며, 함께 모일 때 일어날 일들에 관한 아이디어를 얻는다.

시작하기 11


과정 요약

4주 이 주는 대위임령과 제자들이 ‘민족’들에게 어떻게 나아갈 수 있을지를 다룬다. 우리가 다가가야 할 도시의 지역들이나 문화적 계층들(groups)을 보여주시도록 주님께 구하는 시간을 갖는다. 다가가야 할 ‘민족’을 알려주셨을 때, 이번 주에 그 지역들에서 걷기 기도를 할 계획을 세운다. 누군가를 제자가 되도록 이끄는 역할극을 하거나 토론을 함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되도록 돕는 방법에 대해 토의한다.

5주 다섯 번째 주에는 생활방식으로서의 제자도에 관해 배우고 논의한다. 닐 콜에 의해 시작된 ‘삶을 변혁시키는 소그룹’ 모델 사용을 고려해본다. 제자도의 성경적 원리를 배우기 위해 누가복음 10:3-9을 연구한다.

6주 여섯 번째 주에는 전통교회 리더십과 단순한 교회 리더십의 차이점을 생각해 본다. 마태복음 20:20-28을 읽고 논의한다. 리더십에 대해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것에 관한 생각을 발전시키기 위해, 요한복음 13:3-17과 에베소서 4:11-13과 연관된 질문들에 대답한다. 6주 과정을 하는 동안 경험하게 된 자신의 패러다임 변화에 관해 논의함으로 마친다. 자신의 지역사회에 나아가 접촉하도록 서로 위임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진다.

12


실행 지침 ●

소그룹에서 실행해야 할 활동들에 대해서는 앞에 [활동] 이라고 표시했다. 지시사항을 따르라.

모임을 촉진하는 사람을 위한 특별한 지침은 앞에 [안내] 라고 표기했다. 촉진자는 모임이 시작하기 전에 이 자료와 익숙해지는 것이 좋다. 그래야 어떤 준비(예를 들면, 비디오 다운로드)든 모이기 전에 마칠 수 있다.

나머지 자료들은 소그룹에서 소리 내어 읽으면 된다.

시작하기 13


1주

전 세계적으로, 하나님은 단순한 교회를 시작하도록 평범한 사람들을 사용하고 계신다. 그것은 건물이나 사례 받는 사역자들을 가진 전통적인 교회가 아니다. 주로 가정에서 모이는 작고 단순한 모임이다. 그들은 성령님을 따르길 바라고, 주변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을 추구한다. 이런 좀 더 단순한 형태의 교회가 배가됨으로 인해 수 백 만의 사람들이 매년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되고 있다. ●

나이가 많이 든 한 남자가 신자가 된 첫 해에 42개의 교회를 개척했다(인도).

4년 동안, 한 도시에서 2만 명 이상이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고, 그 결과로 5백 개 이상의 새로운 교회가 생겼다(중국).

국 오스틴에 있는 텍사스 대학교에서, 200개가 넘는 여러 미 종족들 가운데 학생들에 의해 시작된 선교적 공동체(단순한 교회)를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이런 교회를 시작하시기 위해서 모든 부류의 사람들을 다 사용하고 계시다. 이것은 성경 대학이나 신학교 학위를 요구하지 않는다. 전임 사역자이거나 교회개척자가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14


하나님은 주부와 공장 노동자, 사업가와 상인,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과 문맹인 사람 등 각계각층의 신자들을 세상 사람들에게 나아가도록 사용하고 계신다. 그들은 흔히 ‘단순한 교회’라고 불리는 작은 그룹으로 모이는 제자들을 만든다. 하나님은 전 세계에서 무엇을 하고 계신가?

[활동] ‘해일(Tidal Wave)’이라는 비디오를 보고, 다른 민족들 가운데서처럼 서구사회인 여기서 하나님이 하시고 계신 일들을 증언하자. [안내]

이 비디오는 http://vimeo.com/4521963에서 볼 수 있다(30분 정도 소요)2.

함께 성경 공부하기 단순한 것은 재생산하기 쉽지만, 복잡한 것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단순한 교회에서는, 앞에 서서 가르치지 않는다. 대신에 함께 성경을 공부함으로 모두가 배운다. 이 방법으로 교회는 스스로를 먹이고 하나님의 온전한 조언을 얻는다. 여기에 우리가 성경공부를 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식3이 있다. 우리는 본문에서 세 가지 기호에 해당하는 것을 찾는다. 2 이 비디오의 내용을 녹취한 내용이 ‘부록2 해일’에 있다. 3 이 방식은 스웨덴식 방법(Swedish Method)이라고 알려진 성경공부방법이다.

시작하기 15


: 이해하지 못한 것이 있는가? 이 본문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나, 본문의 저자나 하나님께 묻고 싶은 것이 있는가?

: 이 본문에서 빛나는 부분이 있는가? 가장 인상에 남거나 관심을 끄는 것이 있는가? 이 본문이 당신의 인생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빛을 비추는가? :하 나님이 직접 당신의 마음에 말씀하고 계시는가? 당신의 삶에서 개인적으로 순종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이 본문 때문에 당신의 삶에서 반드시 변화시켜야 할 점이 있는가?

[활동] ‘물음표, 전구모양, 화살표’ 질문을 사용하여 누가복음 10:1-2을 공부하기 위해 15분쯤 사용하라.

3~5사람 정도로 소그룹을 나누라. 그룹이 더 크다면, 누군가에게 촉진자 역할을 맡기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한 구절이나 한 가지 주제에 대한 논의가 다 끝나기 전까지 성경을 더 읽거나 다른 생각을 다루지 말라.

‘이 구절에서 물음표, 전구모양, 화살표 질문에 대해 대답할 사람이 있는가?’ 서로 물으라. 사람들이 대답한 것을 가지고 토의하라.

그런 다음 아래의 질문들에 답하라.

이 방법을 통해 배운 것은 무엇인가?

16

성경연구 시간 동안에 모든 사람이 상체를 앞으로 구부리는 것을 봤는가? 이런 몸짓도 배우는 과정에 사람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성경연구는 사람들이 그냥 앉아서 들을 때보다 자신이 무엇인가를 이야기할 수 있을 때, 좀 더 많은 것을 배우고 기억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촉진자의 역할은 모든 사람, 특히 좀 더 조용한 사람들이 꼭 참여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누군가 본문에 대한 질문이 있다면, 촉진자는 자신이 대답하지 말고 그룹원들에게 그들의 생각을 물어야 한다. 항상 성경에서 답을 찾으려고 노력하라. 이런 식으로 인도자 보다 성경 자체가 권위를 얻게 된다.

토의를 지배하려는 사람이 있는가? 촉진자는 아무도(자신을 포함해서) 모든 것을 다 말하도록 내버려두지 말아야 한다.

번에 한 구절이나 한 가지 주제만을 다루는 것의 유익을 알고 한 있는가? 이런 방식은 본문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게 한다. (이보다 더 많은 분량을 읽을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예를 들면 비유처럼 본문 전체를 한 번에 읽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사건이나 이야기를 공부할 때이다.)

이 본문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가? 성경 연구할 때 아래의 요점을 파악했는가?

1절

예수님은 그 지역을 위한 전략을 가지고 계셨다. 그는 당신이 사는 지역을 위해서도 전략이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가야할 곳을 말씀하셨다. 그는 당신에게도 말씀하실 것이다. 그는 제자들을 둘씩 짝 지워 보내셨다.

예수님이 사람들을 어떤 곳으로 보내실 때, 자신도 갈 작정이시다. 예수님이 당신을 어디든지 보내신다면, 자신도 당신과 함께 가실 것이다.

2절 ●

예수님에 따르면, 문제는 추수할 것에 있지 않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사역하는 지역은 너무 강퍅해서 예수님에게 관심이 없다고 불평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추수할 것은 이미 준비되었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적어도 35개 교회개척팀(70명의 제자를 둘씩 짝 지워서)을 내보낼 수 있음에도 일꾼이 충분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하신다. 시작하기 17


예수님의 해결방법은 단순하다. 추수하는 주인에게 더 많은 일군을 보내달라고 구하라.

[활동] 여러분 각자가 이번 주 내에, 이 소그룹 이외에서, 이런 나눔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발견한다면 이 아이디어들은 더 강화될 것이다. 이런 방식의 성경공부를 함께 해볼 수 있는 사람을 생각해보라.

귀납적 성경공부를 위한 다양한 방법들: • 데이비드 왓슨의 ‘성경발견학습’4

1. 당신이 본문을 이해하고 자신의 말로 바꾸어 이야기할 수 있을 때까지 읽거나 들으라. 2. 본문을 자신의 말로 바꾸어 기록하거나 말하라. 본문을 자신의 말로 적거나 말할 수 있고 본문의 핵심내용을 정확하게 포함하고 있을 때만이 제대로 이해한 것이다. 3. 본문을 따라 어떻게 순종할지 자신의 말로 적거나 말하라.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분들의 경우, 이 순서를 본문에서 하나님이나 인간에 관해 무엇을 배웠는지를 묻는 것으로 변경할 수 있다. ‘나는~할 것이다.’라는 식의 문장으로 만들어 소그룹에서 큰 소리로 나누라. 말씀에 순종해야 할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라.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가 서로를 바라보며 결혼생활이나 가정에서 말씀에 순종하기로 헌신하게 하라. • 펠리서티 데일의 ‘시작하기’에서 방법1: 두 구절 정도 읽고 나서, 소그룹에서 아래의 3가지 질문에 대답한다.

4 이 방법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설명이 ‘부록3 성경발견학습과정’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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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이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2.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3. 그것은 내 삶에서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는가? 질문 1과 2는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요한복음 1장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고 말한다. 질문 2을 묻지 않는다면, 엄청난 의미를 놓치게 될 것이다. • 로버트 피츠의 또 다른 방법

‘성경공부 토의시간에, 우리는 성경을 단순하게 읽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는지에 따라 구절들을 나눠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읽는다. 읽고 있는 동안, 누구든 질문을 하거나 의견을 제시하기 위해서 언제든지 읽는 것을 중단시켜도 된다.’ - 알파 오메가 성경학교 너무 많이 읽었다고 생각되면, 촉진자는 읽는 것을 멈추게 하고 ‘누구라도 의견을 제시할 사람은 없나요?’라고 물을 수 있다. 토의하기 전에 너무 많은 구절을 읽지 말아야 한다.

10:2b 기도로 기도하기5 기도는 하나님이 역사하시는데 있어서 필수적이다. 2002년에, 케니와 존이라는 두 친구는 그들이 사는 주(state) 전역에서 어떻게 하면 교회개척운동이 시작되는 것을 볼 수 있을지 논의하고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이 누가복음 10:2에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두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실험해보기로 결심했다. 매일 그들은 전화로 몇 분 동안 이 기도를 함께 했다. 그들이 기도를 계속했을 때, 어떻게 매일매일 기도해야 하는지 5 이 와 관련된 아티클이 ‘부록4 어떻게 1년도 안되어서 29명의 신자들이 5개의 새로운 가정교회들을 시작하는 110명의 신자들이 되었는가?’에 있다.

시작하기 19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에게 가르쳐달라고 간구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기도가 끈질겨야 하고, 구하는 것이 아주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셨다. 무슨 일인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케니는 교단에서 자신의 주에 교회개척을 하는 책임을 맡았다. 케니와 존이 기도하기 전에는, 한 달에 한 명 정도 그에게 교회개척에 관해 물어왔다. 하지만 그들이 함께 기도하기 시작하자마자, 이런 일은 매일 일어났다. 단 8개월 만에 케니는 이 기도의 직접적인 결과로 120개 이상의 교회가 시작하는 것을 보았다. 케니와 존은 이 기도를 ‘10:2b 바이러스(누가복음 10장 2절 하반절 참조)’라고 부르고, 그것을 가지고 만나는 사람들 모두를 감염시키려고 노력한다. 세계 전역에서, 사람들은 매일 10:2b 기도를 하기 위해 둘씩 짝을 짓고 있고, 어디서든 기도에 대한 놀라운 응답을 보고 있다.

[활동] 한 쌍이 되어 누가복음 10:2b 기도를 하라. 일어서서 적극적이고 크게 기도하라. 이 활동을 위해 약 5분 정도 사용하라.

[활동] 이 과정 동안 전화로 기도짝과 10:2b 바이러스를 기도하기로 약속하라. [안내] 기도는 일반적으로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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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예수님의 가르침의 핵심주제는 하나님 나라였다(마4:23). 그의 많은 비유는 하나님 나라를 예시했다(마13).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들을 치유하고 ‘하나님 나라가 너희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라고 말씀하셨다(눅10:9). 그분의 부활과 승천 사이에,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관해 말씀하셨다(행1:3). 매일매일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았던 3년이 지난 후, 제자들은 함께 삶을 나누기 위해 매일 서로의 가정에서 모여, 그들이 하나님 나라에 관해 예수님에게 배운 것들을 실천했다. 그들은 그런 삶의 방식을 ‘교회’라고 불렀다. 아마도 교회의 가장 단순한 정의나 기초는 예수님이 마태복음 18:20에 제시하신 말씀일 것이다. ‘둘이나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함께 모이는 곳에 내가 그들 가운데 있다.’ 교회는 예수님이 자기 사람들과 함께 모이신 곳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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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어떤 모습인가?6 [활동] 3~5 사람이 모인 더 작은 모임에서, ‘물음표, 전구모양, 화살표’ 질문을 사용해서 사도행전 2:41-47을 연구하라. 이 연구를 위해 20분 정도 허락하라. 이 본문을 통해 초기 신자들의 삶의 방식에 관해 배운 것은 무엇인가? 이번 주에 이 원리들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하나님의 음성 듣기 예수님은 자신만이 아버지가 하신 일을 본대로 행하고 아버지에게 들은 대로 말한다(요5:19-20, 8:26-28)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동일하게 우리에게도 진리일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활동을 알아차리고 그분의 목소리를 듣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이 점은 예수님이, 우리가 제자 삼기 위해서 관심을 집중하길 원하시는 곳을 알고자 할 때, 특히 중요하다. 이것은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는 능력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배울 수 있는 기술이다. 만일 당신이 결혼했다고 하자, 당신은 15명이 있는 방에 있을지라도 자기 배우자의 목소리를 즉시 구별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당신은 그(그녀)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그의 목소리를 알아차린다. 요한복음 10:4에서, 예수님은 ‘양은 (목자를) 따른다. 왜냐면 양이 그의 목소리를 알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배우는 방법은 그분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6 이와 관련된 아티클이 ‘부록5 당신의 집에 있는 교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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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다음의 성경구절을 읽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다양한 방법들을 적으라. 소그룹에서 누구든지 이러한 방식으로 하나님이 자신에게 말씀하신 개인적인 예(경험)들이 있는지 물어보라.

요한복음 10:3-5, 27

시편 119:105

빌립보서 4:7

사도행전 2:17, 18

잠언 15:22

예언 다음 활동으로, 우리는 성경이 예언이라고 부르는 것을 살펴보게 될 것이다.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께 말하는 것이다. 예언은 하나님이 - 다른 사람을 통해서 -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4:1에서, 우리에게 사랑을 추구하고, 진지하게 영적인 은사들을 구해서 특히 예언하려고 하라고 한다. 고린도전서 14:3은 예언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해서 가이드라인을 준다. 즉 덕을 세우고 격려하고 위로하기 위한 것이다. 예언은 거룩한 목소리로 바꾸고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로 시작하는 시간이 아니다. 미래를 예측하거나 누군가의 죄를 폭로하는 시간도 아니다.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는 동안 하나님이 당신에게 주신 인상(느낌)을 평범한 목소리로 나누는 아주 소박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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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둘씩 짝을 나누라. 당신이 잘 알지 못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 더 낫다. 잠시 조용하게 서로를 위해 기도하라. 그런 후 상대를 위해 기도했을 때 마음에 떠오른 것을 자기 짝과 이야기하라. 성경구절, 그림, 기도, 인상 등등의 형식이 떠오를 수 있다. [안내]

하나님이 자기 짝을 통해서 특별히 자신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물으라. (우리의 통상적인 경험상, 하나님이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말씀하셨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은 50%가 훨씬 넘는다.)

[활동] 아직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분들에게 위협적이지 않고 종교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어떻게 이 은사를 사용할 수 있을지 짧게 토의하라. 이번 주에 그렇게 해볼 기회를 찾아보라.

자신의 이야기하기 사람들은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무척 좋아하고, 또한 우리 이야기를 듣는 것도 즐거워한다. 이야기는 누군가가 자신의 삶을 그리스도께 헌신하도록 돕는 역할을 자주 한다. 우리는 아직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이 받아드릴 수 있는 방식으로, 우리의 영적 여정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배워야 한다. 예를 들면, 사도행전 22장에서 바울이 자신의 이야기를 했을 때, 그것은 세 부분으로 되어 있었다. 우리가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동일한 방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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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할 수 있다. 신자가 되기 전에(혹 어릴 때부터 신자였다면, 당신의 신앙이 자신에게 진짜가 되기 전에) 당신의 삶을 적으라.

어떻게 예수님을 만났는가?

예수님이 당신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 오셨는가?

이것은 당신이 아직 예수님을 모르는 분들과 대화하는 가운데 반복해서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다. 당신은 주변 사람들의 여러 가지 상황에 맞게 자신의 이야기에 몇 가지 내용들을 추가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이 당신을 치유하셨거나 당신에게 공급하신 때에 관해 나누라. 마치 어제 일어난 일처럼 생생하게 들리도록 자기 이야기를 하려고 애쓰라.

[활동] 둘씩 짝을 지어 서로에게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라. 각각 3분 정도 사용하라. 기독교화 된 용어(‘구원’이나 ‘구속’이라는 단어처럼 교계에서만 상용되는 단어)는 사용하지 말라. 상대방이 기독교화 된 용어를 사용하면, 당장 그를 멈추게 하고 일상용어로 그 문장을 바꾸라고 하라.

[활동] 이번 주 내에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라. 주님께 그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누군가에게 당신을 이끌어달라고 간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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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

이번 주에는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의 공동체로서 함께 관계 맺는 방법과 우리가 함께 모일 때 일어날 일들에 관해 성경이 무엇이라고 하는지 좀 더 살펴보려고 한다.

그리스도의 몸7 고린도전서 12장에서, 바울은 교회를 묘사하기 위해 몸의 비유를 사용한다(12-27절). 마치 몸처럼 많은 지체를 가졌고 각 지체가 모두 소중하기 때문에,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설명한다. 각 사람은 모임 안에서 중요하고, 각자 자신의 고유 기능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모두가 똑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이 하나님이 주신 서로 다른 은사를 사용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하나의 몸을 이루기 위해 동역하길 원한다. 아무도 귀나 눈으로만 이루어진 몸을 원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중요하고, 우리는 다양성을 환영하기 때문에, 다양성은 공동체의 7 이와 관련된 아티클이 ‘부록6 나는 눈이 아니다.’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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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함을 위해 더해진다. 바울은 그 이상을 원한다. 그는 더 약한 지체가 필요하고 더 큰 존경을 받는다고 말했다. 말하는 것을 더 부끄러워하고 더 말수가 적은 자들(특히 아이들)의 공헌은 더 큰 만족과 감사를 가져다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함께 모일 때8

[활동] ‘물음표, 전구모양, 화살표’ 질문을 사용해서 고린도전서 14:26을 연구하라. 이 구절이 당신의 모임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염두에 두고, 본문을 함께 살펴보기 위해 15분 정도 사용하라.

주님은 우리 모임에서 말뿐인 친절보다 더 많은 것들을 주길 원하신다-사실 그분은 모임의 시작과 끝을 다스리시기를 원한다. 조심하지 않으면 단순한 교회 모임은 전통교회 모임처럼 될 수도 있다. 누군가는 찬송을 인도하고 또 다른 사람은 설교를 하도록 선정된다. 이것은 단순한 교회의 주된 역동성(즉, 하나님이 우리가 함께 하는 시간에 관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을 잃게 만든다. 하나님은 우리 삶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시고, 우리가 하나님께 맡기면 우리를 만지시고 변화시키시고 주변 세상으로 나아가도록 우리를 도전하신다.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모임 시간은 절대로 지루할 수 없다. 그리스도의 몸으로 기능하는 것은 성령님이 지휘자가 되신 8 이 와 관련된 아티클이 ‘부록7 성령이 이끄시는 모임’과 ‘부록8 친밀한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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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스트라와 같다. 각자 자기 고유의 소리를 가진 악기들이 정해진 멜로디를 연주할 때, 그 결과는 영감 있는 교향곡이 된다. 우리 모두가 똑같은 곡조로 연주한다면, 그리스도의 신부가 가진 엄청난 창조성을 놓치게 된다. 고린도전서 14:26에 설명된 것처럼 ‘열린 시간’(open time)에,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들의 삶에서 무엇을 행하시고 계신지, 혹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가르치신 것이 무엇인지를 나누고, 영적 은사들이 나타나고, 사람들이 서로를 위해 기도한다. 주님이 하시려는 일을 제한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당신이 어떻게 성령님을 따를 수 있는가? 당신이 모임에 앉아 있는데, 누군가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놀라운 선포 기도를 했다고 하자.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야 하는가? 어떻게 성령님이 원하시는 것을 알 수 있을까? 우리의 경험상, 성령님과 협력하는 최선의 방법은 당신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표현으로써 그 사람의 기도를 사용하는 것이다. 당신이 그렇게 했을 때 어떤 성경구절이나 노래가 마음에 떠오른다면, 그 일은 성령님이 하신 것이다. 달리 말하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 당신이 몰입되었을 때, 마음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들은 성령님께로부터 온 것일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이 때 다양성 - 예언, 환상, 서로를 위한 기도, 성경으로부터 온 통찰력 등등과 같은 성령의 은사들 - 을 기대할 수 있다. 이렇게 모이면서, 이런 일들을 아주 단순하게 진행하여 누구든지 참여할 수 있게 하라. 단순한 것은 재생산하기 쉽다. 이 원리는 당신이 하는 모든 일에 적용된다. 예를 들면, 당신이 5분이나 기도한다면, 새신자는 감히 입을 열고 기도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면 새신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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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그런 기준에 맞게 기도할 수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든지 한 두 문장은 기도할 수 있고, 그럴 때 모두가 함께 난처한 느낌 없이 조화롭게 기도할 수 있다. 당신이 나눈 계시의 말씀이 10분짜리 설교 정도 된다면, 누구도 더 이상 나누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당신에게 보여주신 것을 몇 문장으로 나눈다면, 다른 사람들도 모임에 기여하도록 만들 것이다. 단순하다는 것은 피상적인 것과는 다르다. 제자들이 함께 모인 곳에서 성령님이 자기 의지대로 자유롭게 역사하실 때, 그 결과는 심오할 수 있다. 단순함은 복제하기 쉽다. 처음부터 따라 하기가 좀 더 쉬운 형태로 시작한다면, 그 다음은 누구라도 함께 모이는 시간을 촉진할 수 있다. 하나님은 매우 창조적이시다. 실수할까 봐 걱정하지 말라. 아무도 당신이 한 일에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니까 계속 진행하라.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하려고 시도하라.

[활동] 고린도전서 14:26을 기초로 하나님을 기다리는 시간을 경험하기 위해 15분 정도 사용하라.

이처럼 열린 시간을 시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한 주 동안 주님이 각자의 삶에서 무엇을 하셨는지 짧게 나누자고 질문하는 것이다. 아니면 누군가에게 예배 시간으로 이끄는 노래나 성경구절 하나가 마음에 떠오를지도 모른다. 성령님이 행하시는 일을 주시하고 주목하라. 예를 들면, 누구든 필요한 것을 이야기해보라고 하라. 그 순간, 주님이 그 필요에 대해 사역하실 가능성이 높다. 사람들에게 그 사람 주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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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여 그를 위해 기도하자고 제안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상황의 흐름을 거스르는 일이 생기지 않는 한, 지금 벌어지는 일을 성령님이 하시는 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당신은 사람들을 적절한 방법으로 참여하도록 격려할 수 있다. 흔히 한 가지 주제가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되는데, 주님이 그 점에 대해 명확하게 말씀하고 계신 것이 분명하다.

[활동] ‘함께 모일 때(When You Come Together)’라는 비디오를 보라. [안내]

이 비디오는 http://vimeo.com/4678782에서 볼 수 있다.9

9 이 비디오의 내용을 녹취한 내용이 ‘부록9 함께 모일 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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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주

대위임령10 대위임령은 신자들에게 선택적 사항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은 기독교 공동체들에서만 살아간다 - 친구들은 모두 신자들이고 아직 주님을 모르는 다른 사람들과 의미 있는 상호작용을 거의 하지 않는다. 우리는 ‘오염’될지 모른다는 염려로 인해 이웃들로부터 자신을 떼어 놓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죄인들의 친구로 알려지셨고, 로마서 10:14 말씀처럼 아무도 그들에게 말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어떻게 듣겠느냐고 물으신다. 당연히 우리 모두가 복음전도자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예수님이 우리의 삶에서 하신 일들에 대한 증인은 될 수 있다(행1:8). 예수님의 영은 우리 안에 거하신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주님의 생명을 나눌 기회를 달라고 구한다면, 주님은 그 기도에 응답하시길 기뻐하실 것이다.

[활동] 아래의 질문들을 토의하기 위해 성경구절들을 읽음으로, 마태복음 28:18-20에서 대위임령을 공부하라. 이 활동을 위해 25분 정도 사용하라.

10 이와 관련된 아티클이 ‘부록10 2번 테이블에 있는 교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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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가지신 ‘모든 권세’는 무엇과 관련이 있는가?

제자와 회심자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이 점은 우리가 아직 예수님을 모르는 분들에게 나아가는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우리가 사람들을 교회로 오라고 하기보다 가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한다면, 그 결과는 무엇이겠는가? 이 점은 우리 자신의 삶, 우리 교회의 활동(lives), 우리가 나아가려는 사람들의 삶에 어떤 차이를 만들 수 있는가?

여기서 민족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민족이 제자화 된 때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세례의 중요성은 무엇인가? 세례는 누가 주는가?

우리가 가르칠 것은 무엇인가?

‘ 제자를 만드는 제자’ - ‘제자도 사이클’에 관해 생각해보라. ●

우리 주변의 ‘민족’에게 나아가기 대위임령은 우리에게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고 말한다. 민족에 해당하는 그리스 단어는 ethne이다. 여기서 영어 ethnic(인종)이 왔다. 그래서 국적이라는 뜻과는 거리가 좀 멀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말은 마치 스케이트보드 타던 젊은이들, 노인들, 빠나 클럽 종사자들, 학생들 등등처럼 문화적 계층(group)을 의미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스케이트보드 타던 젊은이들은 자신들만의 옷 스타일, 자신들만의 언어, 자신들만의 이야기와 서로 관계 맺는 방식이 있다.

[활동] 여러분이 사는 지역에 사는 ‘민족’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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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을 만들어내기 위해 브레인스토밍 할 시간을 몇 분 가지라. 이 과정을 함께 연구하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라도 그 목록의 그룹들 중에 하나와 접촉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을 가지고 있는가? 이 활동을 위해 15분 정도 사용하라.

[활동]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초점을 맞추길 바라시는 특정한 그룹 사람들이나 도시의 지역이 있는지를 추수하시는 주님에게 묻는데 몇 분 사용하라.

걷기 기도 기도는 교회를 시작하기 위한 기초를 준비하는 필수적인 요소다. 여호수아 1:3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 발이 밟을 곳을 주실 것이라고 한다. 시편 2:8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 유산으로 열방을 주시겠다고 하신다. 주님이 우리에게 집중시키시고자 하는 특정 그룹을 보여 주신다면, 걷기 기도는 그들을 위해 기도를 시작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그 사람들이 살고 있거나 자주 찾는 곳 근처로 가라. 거기서 기도를 시작하라. 우리가 기도하며 걸을 때, 성령님이 그 지역을 지배하는 악한 권세에 대한 통찰력을 주시는 것을 포함해서,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를 계시하시길 기대할 수 있다. 기도하며 걸을 때, 그 지역을 위해 기도하기 위한 핵심 요소 4가지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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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도시(지역)를 축복하라.

거기 사는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기도하라.

견고한 진을 허물어라.

그 지역의 문제들을 회개하라.

[활동] 예수님이 당신에게 지시하신 장소에서 다음 주에 걷기 기도를 할 계획을 세우라.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되도록 돕기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되는 것은 일반적으로 ‘과정’이다. 흔히 그 과정 중에, 한 개인은 결단의 순간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자신의 삶을 헌신하도록 돕는 방법을 알아두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활동] 10분 정도, 한 사람이 예수님에게 자신의 삶을 드리기 위해, 알아야 할 최소한의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소그룹에서 함께 토의하라. [안내] 예수님은 우리가 잘못해 온 것을 대신해서 징벌 받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우리가 이런 죄악에서 돌이켜 예수님에게 우리 삶의 통제권을 드리면,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시고 성령님이 오셔서 우리 안에서 사실 것이다.

다음은 그리스도에게 자신의 삶을 헌신하는 사람들을 도우려고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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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로마서의 길11’이라고 알려진) 유용한 몇 가지 구절들이다 로마서 3:23(New Living Translation판을 이용한다면, 24-25절이 여기에 더 추가된다.)

로마서 6:23

로마서 5:8(NLT에서, 6-11절까지 전체 단락이 구원에 대한 놀라운 설명이다.)

로마서 10:9-10

계시록 3:20

[활동] 둘씩 짝을 나누라. 이 구절들을 사용하여 개인적으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도록 이끄는 역할극을 해보라. 당신이 그것을 간단하게 해내는지 확인하라. 서로 역할을 바꾸어라.

11 이 것은 ‘사영리’나 ‘다리예화’ 같은 복음제시 방법이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이 ‘부록11 로마서의 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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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주

제자도12 예수님은 우리에게 교회를 개척하라고 명령하지 않으셨다. 제자를 삼으라고 말씀하셨다(마28:19). 그는 자신이 자기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하셨다(마16:18). 하나님 나라를 위한 대사로서 예수님께 받은 우리의 임무는 제자를 삼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이 교회를 세우신다.

[활동] 다음의 질문들에 관해 토의하기 위해 20분 정도 사용하라.

어떻게 하면, 한 사람이 (우리보다) 예수님을 더 닮도록 만들 수 있겠는가?

제자도가 지적으로 배운 지식의 정도가 아니라 예수님께 순종하는 삶의 방식이라면, 이 점을 알릴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

12 이와 관련된 아티클이 ‘부록12 제자 삼기는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다.’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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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닐 콜이 시작한 제자도 방식인 ‘삶을 변혁하는 소그룹(Life Transformation Group)’을 강력히 추천한다. 2-4명으로 구성된 동성의 소그룹은 매주 많은 양(약 30장정도)의 성경을 읽기 위해 함께 헌신한다. 이어서 점검 질문에 대답하고 예수님을 아직 모르는 자기 친구들을 위해 기도하기 위해 함께 모인다. 이와 관련된 자료들은 www.cmaresources.org/ltg에서 얻을 수 있다.13

누가복음 10장의 원리들 몇 년 전에, 남침례교 해외선교부의 리더십은 무언가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다. 전 세계 도처에서 수만 명의 새로운 신자들과 함께, 토착화 된 교회들이 이끄는 (즉, 지역의 평신도들이 이끄는) 빠르고 자발적인 배가(multiplication)에 관한 보고를 받았다. 그들은 이러한 현상을 ‘교회개척운동’이라고 이름 붙었다.

[활동] ‘교회개척운동(Church Planting Movements)’이라는 비디오를 보라. [안내] 이 비디오는 http://vimeo.com/29377426에서 볼 수 있다.14

우리는 교회개척운동의 리더십에 속하는 몇몇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현장에서 직접 볼 수 있는 13 L TG모임에서 사용하는 카드(팜플렛)의 내용을 번역해 놓은 것이 ‘부록13 삶을 변혁하는 소그룹’에 있다. 14 이 비디오의 내용을 녹취한 내용이 ‘부록14 교회개척운동’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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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권을 누린 적이 있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을 이루게 한 원리를 어디에서 찾았는가?’라고 그들에게 물을 때면 언제든지, 그들은 항상 ‘누가복음 10장’이라고 대답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변의 지역사회 속으로 나아가길 원하셨을 때 직접 가르치셨던 원리들을 오늘날 가르치기 위해서, 전 세계적으로 주님은 누가복음 10장을 사용하고 계신다. 우리가 접근하려고 하는 계층이나 하위문화로부터 사람들을 ‘불러내’ 교회로 데려오기보다, 그 계층과 문화 ‘안에서’ 제자 삼고 교회를 시작하는 것의 중요성에 관해서, 이 구절들로부터 배우게 된다. 그들의 문화에 적합한 교회를 세우는 방법도 알게 된다. 관계를 새로 만들어가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이 초자연적으로 역사하시는 것을 보게 된다. 누가복음 10장에서 배우게 된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이것이다. ‘모든 자원은 추수 현장에 있다.’ 우리는 추수 현장에서 - 자신들의 문화 안에서 그 곳 사람들이 주도하여 - 교회를 시작한다. 누군가가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되거나 영적인 것에 관심을 보인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교회로 데려오기 위해 불러내지 않는다. 그 대신에 그 사람의 영향권과 문화권 안에서, 그리고 그의 가정에서 교회를 시작하려고 노력한다. 다른 모든 자원들과 마찬가지로 지도자들도 추수 현장에서 나올 것이다.

[활동] 소그룹에서 ‘물음표, 전구모양, 화살표’ 질문을 사용하여 누가복음10:3-9를 연구하라. 첫 주에 다루었던 1절과 2절을 간단하게 복습하라. 나머지 구절들을 살펴보기 위해 30분 정도 사용하라. 그런 다음, 아래의 질문들을 토의하라.

다른 사람들을 교회로 데려오기 위해 초대하는 것보다, 우리가 그들에게 나아가는 것의 중요성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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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들 가운데로 보낸 어린 양처럼 우리를 보내신 예수님에게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누가복음 11:21-22와 10:17-20을 보라.

예수님이 자기 제자들에게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고 하신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왜 길에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는가?

누가 추수 현장을 위한 일꾼인가?

평화의 사람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평화의 사람에 관한 신약의 예들로 어떤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누구의 집에서 신자들의 새로운 공동체를 시작하는 것이 가장 쉬운가?

왜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아야 하는가?

먹고 마시는 것의 중요성은 무엇인가?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에 관해 말할 수 있는 권위를 주기 위해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교회 자체를 성장시키기보다 추수 현장에서 교회를 개척하는 것의 이점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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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주

리더십15 단순한 교회 안에서 리더십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세상에서 경험하거나 좀 더 전통적인 교회 상황에서 보아 온 리더십과는 완전히 다르다.

[활동] 마태복음 20:20-28 전체를 읽으라. 그런 후 ‘물음표, 전구모양, 화살표’ 질문을 사용하여 25-28절을 연구하라. 이 구절들을 연구하기 위해 20분 정도 사용하라.

[활동] 요한복음 13:3-17과 에베소서 4:11-13을 읽어라. 그런 후 다음의 질문에 대답하라.

이 세상에서는 리더십이 흔히 어떤 모습인가? 정부, 군대 등등을 생각해 보라.

15 이와 관련된 아티클이 ‘부록15 리더십이란 무엇인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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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서구) 교회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리더십과 다른가?

예수님은 리더십에 관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 그는 자신의 리더십을 실제로 어떻게 보여주셨는가?

섬기는 자나 종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오늘날 교회 상황에서 어떤 모습으로 보일 수 있는가? 실제적인 예들을 생각해 보라.

에베소서 본문에 따르면, 교회 안에서 리더십의 역할은 무엇인가? 이 점을 당신의 상황에서 어떻게 실행할 수 있는가?

[활동] ‘거꾸로 뒤집힌 리더십(Upside-Down Leadership)’이라는 비디오를 보라. [안내] 이 비디오는 http://vimeo.com/16525058에서 볼 수 있다.16

패러다임의 변화 [활동] 이 과정을 통해서 당신의 사고에 어떤 패러다임의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토의하는데 시간을 잠시 사용하라. 결과적으로 당신의 교회 하는 방식이 어떻게 달라질 것 같은가? 이 활동을 위해 20분정도 사용하라.

16 이 비디오의 내용을 녹취한 내용이 ‘부록16 거꾸로 뒤집힌 리더십’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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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들이 단순하고 유기적인 가정교회라는 오솔길을 따라 여행할 때, 어떤 개념들은 당신의 생활방식과 사고방식, 교회하는 방법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당신은 이미 약간의 패러다임 변화를 경험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아래에는 주요한 개념들 중 일부가 목록화되어 있다. 1. 교회는 ‘두 세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함께 모인 곳’에 정말로 존재한다. 교회는 건물이나 모임이 아니라, 예수님과의 관계이고, 그의 백성들 간의 관계이다. 교회는 우리가 함께 할 때 그 날 그 날 존재한다.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함께 한다면 언제든지 우리는 교회이다. 우리가 특수한 지도자들과 함께 특정한 시간에 특별한 건물에 있기 때문에 교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만일 함께 하는 몇 명의 친구들만 있다면 누구든지 교회를 시작할 수 있다. 2. 예수님은 자신의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 이것은 이론이 아니고 매일매일의 삶에서 실천해야 할 것이다. 3. 단순한 것은 재생산이 가능하지만, 복잡한 것은 그렇지 않다. 많은 교회들은 예배, 가르침, 리더십에 있어서 더 높은 기준을 만들거나 장벽을 높이려고 한다. 단순한 교회는 장벽을 낮추려고 하고, 모든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든다. 4. 교회들은 배가되어야만 한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그 종류를 따라 재생산한다. 하나님은 생산하지 못하는 것을 싫어하신다. 교회들은 재생산하지 못하면 안 된다. 신약성경에는 ‘서로’라는 단어를 포함하는 50개 이상의 명령이 있다. 이 명령들은 소그룹 상황에서만 순종할 수 있는 것들이다. 우리는 더 커지는 것이 아니라, 작은 규모로 배가되어야 한다. 우리가 이런 명령들을 순종할 수 없는 크기가 된다면, 배가해야 할 때이다. 5. 모든 자원은 추수하는 현장에 있다. ‘평화의 사람’ 원리는 사회의 특정 계층을 위한 사역자들은 하부 문화의 그 계층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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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서 나온다는 의미이다.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해서, 우리는 그들을 무조건 교회로 초대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들의 영향력 안에 있는 사람들과 그들의 집에서 교회를 시작하길 바란다. 필요한 자원이 추수하는 현장에 있다면, 우리의 다음세대 지도자들은 아직 그리스도인이 아닐 수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한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고, 자신의 친구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고, 좀 더 성숙한 신자의 멘토링을 받으면서 결국 한 교회를 이끌어 가는 모습을 보길 사모한다. 6. 기독교는 종교적이지 않다. 기독교는 법규집, 즉 우리가 위반할 때 징벌 받아야 하는 율법의 목록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율법이 쓰여진 부드럽고 새로운 마음을 주신다. 우리가 자발적으로 우리 마음을 따라 산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하나님은 천국에서 큰 몽둥이를 들고 일어나서 우리가 죄에 사로잡히길 기다리는 분이 아니다. 새로운 마음을 따라 사는 삶은 비신자들에게 매력적이다. 7. 모든 신자는 제사장이다. 우리는 왕국의 제사장들이다 (벧전2:9).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는 모두가 다 중요하다. 우리 각자는 머리이신 예수님께 직접 연결될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보좌로 나아가기 위해 더 이상 중보자가 필요하지 않다. 성직자와 평신도를 구분하던 시대는 끝났다. 이것은 단지 신학적 진리가 아니라, 우리 삶에서 정말로 구체적인 현실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함께 모일 때, 각자 반드시 한 부분씩을 담당해야만 한다(고전14:26). 8. 리더십은 섬기는 종이다. 예수님이 자기 왕국에서의 리더십을 말하셨을 때, 그것은 세상에서의 리더십과 달랐다. 예수님은 자기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면서, 리더십이 어떻게 드러나야 하는지에 대한 실제적인 예를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예수님은 말 그대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려놓으셨다. 우리의 삶은 섬기는 종으로서 예수님이 보여주신 태도를 반영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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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임하기 우리는 지금 유기적이고 단순한 교회를 위한 ‘6주 과정’의 끝에 와 있다. 여러분이 즐거웠기를 바란다. 물론 어린이들과 함께 하는 문제나 재정 문제 등, 우리가 다루어야 할 다른 주제들이 많이 남아있다. 바라건대, 여러분이 단순한 교회의 기본원리를 배웠을 뿐만 아니라, 성경을 가이드라인으로 사용함으로써, 남은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스스로 발견할 수 있는 수단(tools)도 얻게 되었기를 바란다.17

[활동]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가지고 지역사회로 나아가 그들과 접촉하기 위해서, 서로 기도하고 위임하는데 나머지 시간을 사용하라. [안내]

소그룹에서 각 사람을 한 사람씩 기도해 주라. 그 사람 주위에 모여 손을 얹으라. 주님이 그를 이끌고 계신 곳이 어디인지 찾아보라. 하나님께 들으라. 주님이 그를 위해 당신에게 주신다고 느껴지는 격려의 말, 성경구절, 어떤 그림이 있다면 말해주라. 하나님이 각 사람을 격려하시고 말씀하시기를 기대하라.

17 이런 질문들 중 일부는 바로 뒤에 나오는 ‘자주 묻는 질문’에서 다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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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단순한 교회의 실제적인 문제들에 관한 대부분의 질문이나 대답은 교회마다 다양하다. 하지만 아래에 사람들이 가장 자주 묻는 주제들에 관해 조사한 내용들과 더 읽을 아티클들, 그리고 제안들이 주어져 있다.

어린이는 어떻게 할까?18 그룹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그 핵심은 가능한 한 아이들을 모임에 포함시키려고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아이들은 찬송을 골라서 예배를 ‘이끌고’, 간증이나 나눔에 참여하고, 당신이 누군가와 기도할 때 도움을 주는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 말씀을 연구하게 될 때, 어떤 그룹들은 활동자료를 제공하여, 어린이들이 성경연구 하는 성인들 옆에서 그냥 조용히 놀 수 있게 한다. 다른 그룹들은 아이들을 위해 계획된 특별한 활동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또 다른 그룹들은 아이들을 좀 더 나이든 아이의 지도 18 이 와 관련된 아티클이 ‘부록17 어린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와 ‘부록18 가정교회에서 어린이들의 필요 채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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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에 다른 곳에서 놀게 할 것이다. 가능성은 끝이 없다. 아이들은 결코 미래의 교회일원이 아니라, 바로 지금 그들도 교회라는 것을 기억하라. 물론 그들은 아직 어린아이들이다. 하지만 그들 속에도 성인들과 동일하게 성령님이 내주하신다. 그들 속에 계신 분까지 더 어린 버전(version)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재정은 어떻게 할까?19 여기에 우리가 텍사스 주, 킬린 시에 있는 가정교회 네트워크의 리더로부터 받은, 도움이 될만한 이 메일을 소개한다. ‘제 이름은 짐 멜론입니다. 우리는 텍사스 중부에서 ‘가정교회 연합(Association of Home Churches)’이라고 불리는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연합되어 있기 때문에, 한 교회이름 아래 은행계좌를 여는 유일한 방법은 납세번호를 갖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장기 비전 때문에, 우리는 연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우리가 드린 것들 중에 80-90%는 지역과 해외를 위한 선교와 구제로 사용됩니다. 예를 들면, 극빈층을 위해 음식을 나누어주는 센터나 무료 급식시설, 미혼모를 위한 희망임신센터 등의 지역 선교를 위해 보냅니다. 우리 교회의 목표 중에 하나는 가정교회 네트워크가 어떻게 경제적으로 알뜰하게 운영되는지, 그 모델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당신이 납세번호를 갖길 원하지 않는다면, 교회 교인들에게 주님이 이끄시는 사람에게 직접 주라고 할 수도 있다. 또 다른 대안은 기꺼이 당신 교회의 헌금기록을 별도로 보존하겠다고 하는 비영리단체와 제휴하는 것이다. 19 이 와 관련된 아티클이 ‘부록19 재정에 관한 빅뱅이론’과 ‘부록20 교회는 어디에 지출해야 하는가?’과 ‘부록21 사역자의 수입문제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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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와 이단은 어떻게 할까?20 아래 내용은 스포캔에 있는 파루시아 네트워크와 모리스 스미스의 뉴스레터에서 발췌한 것이다. 대부분의 가정교회가 교리적 신념을 자세히 기록한 ‘신앙 고백문’을 가지지 않는 이유를 잘 설명하고 있다. ‘저는 최근 파루시아 네트워크의 ‘교리적 진술’에 관해 묻는 몇 개의 이 메일들을 받았습니다. 이때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교리와 가정교회에 관해 더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해든 로빈슨 박사가 나에게 교리적 진술은 ‘갈등을 일으키는 자료’가 되곤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그것은 자기 그룹이 믿는 바를 다른 그룹들의 것과 완전히 구별하려는 투쟁의 결과로 쓰여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사사기 12:1-6에 나오는) ‘쉽볼렛’ 자료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모두 ‘쉽볼렛’이라고 발음하지만, 그들은 모두 ‘시볼렛’이라고 발음합니다.’ 교리적 진술을 찾는 사람들은 흔히 ‘쉽볼렛(혹은 시볼렛)’을 찾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당신이 만일 신학적으로 내가 믿는 바를 알고 싶다면, 웨인 그루뎀의 ‘조직신학’ 한 권을 구해서 읽어보십시오. 그 책을 다 읽었는데도 남아 있는 질문이 있다면, 내게 알려주십시오. 그것들에 관해 함께 이야기 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신학(‘교리’나 ‘교의’)은 집의 기초와 같습니다. 좋은 기초가 당신이 그 위에 세운 것을 좋게 만들거나 유지하도록 보장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나쁜 기초는 틀림없이 당신이 그 위에 지은 것 때문에 장차 문제를 야기할 것입니다. 좋은 신학이, 좋은 기초가 잘 지어진 집을 보장하는 것보다 더 성공적인 가정교회를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가정교회의 성공은 당신과 내가 기반을 두었던 좋은 기초 위에 과연 우리가 무엇을 세웠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입니다. 우리가 세운 것들 대부분은 약간 전문적인 의미에서 ’비신학적’일 것입니다. 당신은, 서로가 날카롭게 대립할 때조차, 서로 사랑하십니까? 당신은 판단하지 않고 서로의 짐을 지십니까? 당신은 서로를 위해, 서로 함께 기도하십니까? 당신은 하나님이 주신 모든 은사들을 적절하게 사용하고 상호 사역함을 통해서, 서로를 구비시키고 세워주십니까? 당신은 서로의 필요를 철저하게, 그리고 재정적으로도 채워주십니까? 당신은 20 이와 관련된 아티클이 ‘부록22 유기적 교회운동 안에서 이단의 위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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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린 자들을 먹이고 낯선 사람들을 돌봐주고 수감자들을 방문하고, 서로 먼저 존중하고, 성경에 나오는 30가지 이상의 ‘서로서로’ 명령을 실행하고 있습니까? 이것들이 우리가 올바른 교리라는 타당한 기초 위에 세운 유기체적인 교회의 건물벽돌입니다. 이것들이 없다면, 우리는 성경공부모임, 예언모임, 방언모임, 치유모임 등등에 불과합니다. 이런 모습들이 존재할 때, 우리는 바로 하나님이,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에클레시아’라고 부르는 영적인 집을 세우기 위해 사용하고 계신 살아있는 돌들이 됩니다.’

함께 모일 때 무엇을 해야 할까? 이것 역시 교회 마다 다양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가정교회에서 볼 수 있는 기본적인 요소들이 몇 가지 있다: 식사 - 함께 모였을 때, 먹으라! 음식은 사람들이 서로 정직하게 열린 대화를 하도록 탁월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열린 참여시간 - 고린도전서 14:26은 우리가 함께 모였을 때 할 일을 말해주는 본문이다. 핵심은 ‘각각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성경공부 - 단순하고 대화식으로 성경공부를 하라. 짧은 몇 구절들을 함께 살펴본 다음 각자가 그 구절들에서 얻은 것을 서로 나누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기도 - 서로의 삶에서 일어난 일들을 알려고 하라. 그리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라. 함께 기도할 때 하나님이 강력하게 역사하셔서 소그룹에 말씀하시기를 기대하라.

단순화하기 - 모임에서 한 일이 무엇이든지 똑같이 재현될 수 있는지를 확인하라. 교회가 빠르게 배가되려고 한다면, 반드시 단순함이 유지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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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배가하기 전까지 얼마나 커질 수 있을까?21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15명에서 20명의 성인이 가정교회의 최대인원이라고 한다. 우리가 인원을 40명 이상으로 늘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룹이 커지면 친밀감을 잃게 되고 모든 사람들의 참여가 거의 불가능해진다. 다시 한번, 당신의 특별한 상황에 대한 응답을 받기 위해 주님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인원이 너무 커져서, 사람들 일부가 참여하지 못할 때가 배가할 시점이다.22

교회를 어떻게 배가시킬까? 우리가 시작한 첫 교회가 50명 이상으로 성장했을 때 두 그룹으로 반반씩 나누었다. 그 후 1년 동안, 교인들이 우리에게 그런 식으로 나누는 것은 이혼처럼 느껴진다고 이야기했다. 이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한 교회를 둘로 나누는 식으로 배가하지 않는다. 우리는 전도하기 위해 ‘평화의 사람’을 찾는 자들에게, 그 일을 시작할 때부터 ‘평화의 사람’의 영향력 안에 있는 사람들과 새로운 교회나 그룹을 시작하려는 생각을 가지라고 권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인 수가 최고치에 도달한다면, 기존교회에 합류하길 원하는 새로운 가정을 데려오기보다 그들이 있는 곳에서 새로운 교회를 시작하려고 애쓰라. 그들을 돕기 위해 기존교회의 가정들 중 하나를 끌어들여라. 그러면 그 일은 기존그룹이 주도하고 지원하는 신나는 교회개척이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일한다면, 당신은 그 일에 참여하려고 하는 새로운 사람들과

21 이와 관련된 아티클이 ‘부록23 배가하기’에 있다. 22 Tony & Felicity Dale and George Barna, ‘토끼와 거북이’, 214-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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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새로운 이웃에게 다가가는 유익을 쉽게 얻을 수 있다.23

가정교회에 지도자나 목사가 필요한가? 가정교회들마다 다르고, 가정교회가 개별적으로 어떻게 하길 원하는지를 결정해야 하지만, 일반적으로 ‘목사’는 없다. 아니, 적어도 없어야 한다. 우리는 성령님이 어떤 신자든지 사용하셔서 그룹을 가르치고 격려할 수 있다고 본다. 가정교회에서는 모든 사람이 참여해서 성령님이 자신에게 주신 은사를 사용하는 방법을 발견하기를 바란다(고전14:26). (동일한 사람이 항상 모든 모임을 촉진하지 말아야 하지만) 일반적으로 그룹의 촉진자는 분명히 있어야 한다. 우리는 심지어 새로운 신자도 자기 집에서 교회를 시작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가서 가정교회를 이끌기 위해 전문적인 신학훈련을 받거나, 그런 사람의 도움을 얻으려고 비용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담당목사가 없을 때, 그룹의 모든 사람들이 목사의 해석에 의존하기 보다 성경을 살펴보고 성령님께 시선을 돌리는 것으로 해답을 찾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가정교회에서 모든 사람이 동등하기 때문에 권위가 필요하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 우리가 발견한 것은, 권위는 영적으로 태어나도록 도운 사람이 누군지를 아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바울이 고린도교인들에게 언급한 것처럼, ‘왜냐면 너희에게 그리스도에 관해 가르쳐준 다른 사람들이 일만 명이 있을지라도, 너희에게 영적인 아버지는 오직 하나이다. 왜냐면 내가 너희에게 복음을 23 ibid,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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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파했을 때, 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의 아버지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너희에게 나의 모범을 따르고 내가 한 것처럼 하라고 요구한다.’(고전4:15-16) 분명히 바울은 부모처럼 자신의 자녀들이 자신이 가진 어떤 직함 때문이 아니라 그 동안 지속되어 온 관계 때문에 자신을 알기를 바랬다. 권위는 관계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게 되어있다. 하지만 권위가 관계에 기초하지 않고 지위에 근거한다면, 그때부터 우리는 예수님이 금지하셨던 것(마20:24-27)을 행하기 시작하게 된다.

가정교회들을 연결하는 리더십구조가 있는가? 가정교회그룹들은 매우 자율적이다. 이 세상의 모든 가정교회들을 연결하는 리더십구조는 없다. 그렇지만, 흔히 어떤 한 지역에 있는 가정교회들이 특정한 인물이나 사람들과 느슨하게 연합하곤 한다. 예를 들면, 남캘리포니아에 있는 닐 콜의 깨어난 교회(Awakening Churches)들, 텍사스 킬린에 있는 짐 멜론의 가정교회연합 등이다. 하지만 이런 협의체는 ‘네트워크의 리더’가 가정교회들을 지배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 대신에 한 지역에 있는 가정교회들이 그 지역에서 교회개척경험이 꽤 오래된 사람에게 도움과 격려를 받을 수 있는 유익이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 한 지역에 있는 모든 교회들이 전부 모이는 모임을 정기적으로 해야 하는가? 각각의 가정교회 네트워크들은 다양한 방법들을 사용한다. 몇 가지 선택사항들이 아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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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모이는 모임을 매달 함께 가진다. 이렇게 모이는 이유에 대해 심사숙고하고 토론해 보라.

사도적 혹은 예언적 은사를 가진 사람이 그 지역에 왔을 때 모이고, 나머지는 가정교회에서 모인다.

함께 하는 교회그룹들과 그 도시 여기저기에서 연속적인 작은 집회를 가지다가, 때때로, 아마도 분기별로, 모두가 참여하는 대규모 집회를 가진다.

네트워크를 만들고, 컨퍼런스를 열고, 해외선교의 진전을 가져오는 일들의 중요성과 관련된 질문들은 아주 다양하다. 새롭게 떠오르는 가정교회 네트워크들이 스스로 이런 분야들을 탐구해보기를 권하는 바이다.

결혼, 세례, 성찬 등 예식은 어떻게 할까? 결혼 우리는 대개 커플이 법적인 수속을 밟도록 금요일에 치안판사 앞에서 혼인신고를 한 후, 그 주에 두 사람과 그들의 가정교회가 원하는 진짜 결혼식을 하라고 추천한다. 우리는 정원에서 치러지는 소박한 형태로부터 교회건물을 대여한 장엄한 예식까지 모든 종류의 멋진 결혼식들을 보아왔다. 우리는 가정에 있는 교회 안에서, 하나님 앞에서 치러지는 결혼이 커플에게 결혼에 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법적인 부분은 국가에 대한 존경에서 우러난 것이 아닐지라도,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이미 완료되어 있어야 한다. 종이 한 장일지라도 두 사람을 하나로 묶어주는데 분명히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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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24 창조적이 되라. 우리는 거품목욕탕, 욕조, 수영장, 호수에서 세례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주의 만찬25 다양한 가정교회에 속한 사람들이 주의 만찬을 진행하는 방법은 너무나 다양하다. 24 이와 관련된 아티클이 ‘부록24 세례에 관한 교회의 이상한 태도’과 ‘부록25 맥주와 세례’에 있다. 25 이와 관련된 아티클이 ‘부록26 최후의 간식’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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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1

자신을 위한 발견

성경에 기초한 첫 원리로부터 나온 아이디어와 가치에 대한 당신의 이해가 발전되길 바란다. 그래서 ‘토끼와 코끼리’라는 책에서 설명한 개념들을 꼼꼼히 생각해 보도록 돕기 위해 실제적인 제안들을 하겠다. 당신이 처한 상황에서 배운 것을 실행할 수 있는 방안들을 생각해보라. 그럴 때, 대답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처음의 5가지 질문은, ‘토끼와 코끼리’에서 설명한 아이디어를 살펴보기 시작했을 때, 우리가 가게 된 발견의 여정으로 당신을 이끌 것이다. 나머지 질문들은 믿음의 공동체를 빠르게 배가하기 위해서,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는 원리들 중 일부를 다룬다.

부록1 55


1. 사도행전 2:39-42을 읽으라.

오순절 날이 되자 교회는 어떤 모습인가?

새 로운 신자들 사이의 관계는 어떠한가? 그들은 사도들과 나머지 구성원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가?

교회의 주된 활동은 무엇이었는가?

이 구절들을 오늘날 어떻게 가장 잘 적용할 수 있는가?

2. 사 도 행 전 8 장 에 나 오 는 스 데 반 순 교 의 결 과 로 찾 아 온 박 해 이 래 , 그리스도인들은 흩어져 대부분 예루살렘을 떠났다. 그들은 그 지방 전역으로 퍼져나가,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했다(행8:4). 이때부터, 그들은 정기적으로 큰 규모의 교회로는 다시 모인 것 같지 않다(예외적인 경우로는 행19:9, 행20:20이 가능할 수 있겠다.). 교회들이 어디서 발견되는지 그 일부를 살펴 보기 위해서 아래의 구절들을 살펴라.

사도행전 8:3

사도행전 10:24-27

사도행전 12:12

로마서 16:5

고린도전서 16:19

골로새서 4:15

빌레몬서 1:2

3. 콘코던스는 책에서 사용된 단어들을 알파벳 순서로 목록화한 참고자료이다. 좋은 성경 콘코던스(예를 들면 스트롱 콘코던스)는 그리스어로 사용된 원래 단어들을 구분해 놓았다. 찾을 수 있는 온라인 콘코던스들이 많다. 콘코던스를 사용해 누가복음에서 집(house)과 가정(home)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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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가정에서 하신 다양한 일들을 목록화하라.1

4. 콘코던스를 사용하여, 신약성경에 나오는 서로(each other)와 서로서로(one another)라는 구절들을 찾아보라. 특히 신자들의 공동체와 관련해서 50번 이상 나온다.2

이 구절들은 초기에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 사이의 관계에 관해 무엇을 말해 주는가?

이 구절들을 어떻게 오늘날 가장 잘 실행할 수 있을까?

1 역자주 • 집(house) 1:33, 69, 2:4, 49, 5:29, 6:4, 48, 49, 7:6, 10, 36, 37, 44, 8:27, 41, 49, 51, 9:4, 10:5, 7, 11:17, 21, 24, 25, 12:39, 13:25, 35, 14:1, 21, 23, 15:8, 25, 16:27, 17:31, 19:5, 9, 46, 22:10, 11, 54 1.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과 함께 식사하셨다(5:29, 레위의 집). 2. 예수님은 사람들을 가르치셨다(7:36, 37, 44, 바리새인 시몬의 집). 3.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리셨다(8:41, 49, 51, 회당장 야이로의 집). 4. 예수님은 병을 고치시고 가르치셨다(14:1,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 5. 예수님은 함께 식사하시고 구원을 선언하셨다(19:5, 9, 삭개오의 집). • 가정(home) 1:23, 40, 56, 4:38, 5:24, 25, 8:39, 10:38, 15:6, 30, 18:14, 29, 23:56 1. 예수님은 온갖 병자를 고치시고 악령을 좇으셨다(4:38, 시몬 베드로의 집). 2. 예수님은 사람들을 가르치셨다(10:38, 마르다의 집). 2 역자주 •서 로(each other) 마21:38, 24:10, 막1:27, 4:41, 9:50, 10:26, 16:3, 눅4:36, 7:32, 24:14, 15, 32, 요4:33, 15:12, 17, 행7:26, 21:6, 28:4, 롬1:12, 고전7:5, 11:33, 12:25, 갈5:15, 17, 26, 6:2, 엡4:32, 골3:9, 13, 살전3:12, 4:9, 18, 5:11, 13, 15, 살후1:3, 약5:9, 16, 벧전4:8, 계6:4, 11:10 •서 로서로(one another) 막8:16, 12:7, 14:4, 눅2:5, 6:11, 8:25, 12:1, 요5:44, 7:35, 11:56, 12:19, 13:14, 22, 34, 35, 16:17, 19, 19:24, 행2:12, 26:31, 롬1:24, 27, 12:10, 16, 13:8, 14:13, 15:7, 14, 고전16:20, 고후13:11, 갈5:13, 엡4:2, 32, 5:19, 21, 골3:13, 16, 살전5:11, 딛3:3, 히3:13, 10:24, 약4:11, 벧전1:22, 4:9, 5:5, 14, 요일1:7, 3:11, 23, 4:7, 11, 12, 요이1:5

부록1 57


5. 고린도전서 7장에서, 바울은 고린도교회에서 보내온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고린도전서 11-14장을 모두 읽으라. 이 본문은 고린도인들이 바울에게 질문한 문제들에 관한 대답들 중의 일부이다.

11장은 주의 만찬과 식사에 관해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1 2장에서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에 비유하는 것을 통해서 배운 것은 무엇인가?

어 떤 역할들과 은사들이 기록되어 있는가?

한 신생(young) 교회가 성령님의 다양한 은사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배우도록 돕는 상황에서, 왜 ‘사랑장(13장)’이 쓰였다고 생각하는가?

이 본문 전체, 특히 14장을 통해 교회가 공식모임에서 한 일들에 관해서 무엇을 배웠는가?

고 전 14:26을 묵상할 시간을 가지라.

6. 요한복음4:35-36을 읽으라.

일 반적으로 사람들은 추수에 관해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이 와 대조적으로,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이 런 모순을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7. 마가복음 1:17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도록 가르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복음서들에 관한 당신의 지식을 가지고 곰곰이 생각해 보라.

예 수님은 그들을 어떻게 가르치셨는가?

예 수님은 그들이 무엇을 하도록 훈련하셨는가?

8. 마 태복음 28:18-20과 고린도전서 9:19-23을 연구하고, 다음의 질문들에 대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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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수님이 가지신 ‘모든 권세’는 제자화와 어떤 연관성을 가지는가?

이 권세(권위)의 결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제 자란 무엇인가?

민 족을 제자화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한 민족이 제자화 된 때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세 례는 얼마나 중요한가?

예 수님이 제자들에게 순종하기를 원하셨던 구체적인 명령들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제자도는 배워서 알게 된 지식의 양인가, 아니면 예수님의 명령에 대해 순종하는 태도인가?

자 신의 상황에서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아 직 예수님을 모르는 친구가 있는가? 만일 없다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 위한 활동에 당신은 어떻게 참여할 수 있겠는가? 아직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모이는 그룹에도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당신의 관심사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새로운 친구들을 갖게 되고, 다른 사람들과 어깨를 비빌 수 있는 환경(동네 커피숍, http://www.meetup.com등)으로 의도적으로 나아가게 되기를 기도하기 시작하라.

9. 누가복음 10:1-9 전체를 읽어라. 이것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어떻게 더 많은 제자를 삼을지에 대해 가르치신 것이다. 이 구절들로부터 몇 가지 원리를 배우기 위해 질문에 대답하라.

1절 이 구절은 왜 ‘다른3’ 제자들을 언급하는가?

왜 둘씩인가?

예 수님은 그 지역을 위한 전략을 가지고 계셨는가?

3

역자주 - 개역개정판은 ‘따로’라고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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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수님은 당신이 속한 지역에도 전략이 있으신가?

제 자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이었는가?

2절 예 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문제는 무엇이었는가?

얼 마나 많은 일꾼이 나갔는가? 그것은 ‘그래도 조금은 있다(a few).’는 의미인가?4

예 수님은 해결방법이 무엇이라고 하셨는가?

‘ 추수하는 주인’이신 하나님의 중요성은 무엇인가?

다 른 일꾼들은 어디에서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3절과 4절 우 리가 가야 하는가, 아니면 다른 사람을 와보라고 해야 하는가?(마28:18-20도 숙고하라.)

예 수님은 왜 우리를 ‘이리 가운데로 보내는 어린 양처럼’ 보내셨는가? 어린 양이 되는 것이 유익한 점이 있는가?

영 적 전쟁은 이 구절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 (눅11:20-22도 보라. 강한 자의 재물은 무엇인가?)

우리는 왜 아무 것도 가지지 말아야 하는가?

길에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 것이 왜 더 좋다고 할 수 있는가?

5절과 6절 우 리는 누구를 찾아야 하는가?

우 리는 어떻게 그들을 알 수 있는가?

평 안을 말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21세기 서구 상황에서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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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주 - 영어성경에는 ‘few’로 되어 있음.


7절과 8절 우 리는 왜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아야 하는가?

우 리 앞에 차려 놓은 것을 먹고 마시는 것의 중요성은 무엇인가?

우 리가 사람들의 환대를 거절한다면, 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 같은가?

9절 우 리에게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권리나 기회를 주는 것은 무엇인가?

하 나님 나라를 가르치는데 무엇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10. 평화의 사람(man of peace)은 신약성경에서 중요한 개념이다. 그들은 자신의 영향력 안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 나라 메시지에 노출시킬 수 있는 영향력 있는 사람이다. 그들은 누가복음 10장이 말하는 ‘일꾼’이고, 새로운 사역이 그들의 가정에서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 또 다른 예들을 다음의 본문에서 읽어보라.

마 태복음 9:9-12

마 가복음 5:1-20

요 한복음 4:4-30

사 도행전 10

사 도행전 16:13-34

이 성경구절들을 다 살펴본 것이 즐겁고, 주님이 이 개념들을 좀 더 연구하길 바라신다고 느낀다면, ‘6주 과정(본 책자)’을 살펴보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그룹을 만들어 모이기를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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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2006년 사이: 전통교회 출석수는 계속 감소했다. 같은 기간에 가정교회 출석률은 1000배로 증가했다.’ - 바나 리서치 그룹 ‘놀라고 또 놀랄지어다. 왜냐면 내가 너희가 사는 동안 너희가 들을지라도 믿지 못할 일을 행할 것이기 때문이다.’ - 하박국 1:5

해일(Tidal Wave)

닐 콜(오가닉 처치 저자): 교회사를 보면, 하나님이 자기 왕국을 위해 빛을 비추시는 때가 있는데, 그때 특정 지역이나 국가에서 어떤 운동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역사를 통틀어, 문화, 언어, 생활방식이 다른 지구상의 모든 종족에게 하나님이 지금처럼 말씀하시고 빛을 비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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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메시지는 동일합니다. 그것은 전세계적으로 일어날 부흥의 서곡이라고 생각합니다. 1세기 이래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현상입니다. 나레이션: 미국 교회, 사실은 전세계적으로 교회는 지금 전례 없는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교회는 급격히 줄고 있는 반면 하나님 나라는 어느 때 보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새로운 여정으로 이끌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항상 여정 중에 있습니다. 이 여정은 회복을 위한 것입니다. 단순함으로의 회복 말입니다. 중국에서, 1949~1980년대 중반까지 기독교인들은 정부의 박해를 심하게 받았습니다. 강제로 교회건물에서 쫓겨났고 지도자들은 순교하거나 옥에 갇혔습니다. 흩어진 교회들은 거의 교육받지 못하거나 지도자 경험이 없는 여성들에 의해 운영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 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 고린도전서 1:27 이 시기에 약 6000만 명이 예수님을 영접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엄청난 핍박으로 인해 교회는 가정으로 숨어들었고 목회자들은 대부분 옥에 갇혔습니다. 전적으로 성령님께 의존하는 평신도 지도자들이 부상했습니다. 중국 교회는 사람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었고, 하나님은 바로 그것을 원하셨습니다. 이와 유사한 폭발적 증가와 단순한 교회의 성장이 인도, 인도네시아, 아프리카,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미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월마트와 SUV자동차의 나라, 모든 것이 더 크고 더 나은 곳입니다. 랄프 윈터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가정교회 현상은 혁명적일 수 있다. 선교가 미국 교회에 돌려준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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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선물은 아마도 하나님이 원래 의도하셨던 가족 의식으로의 회복이다.’ 실제로 하나님은 미국에서도 그런 일을 하고 계십니다. 미국 전역에서 대형교회들이 놀랍게 성장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은 전통 교회를 떠나고, 신앙에서 떠나고, 전통을 떠나고, 종교생활에서 떠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세미한 음성을 따르고 있는데, 그 음성이 많은 이들을 가정교회로 이끌고 있습니다. 존 화이트(Dawn Ministries): 저는 Dawn선교회와 함께 미국 전역을 다닐 수 있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우리는 개별적이거나 네크워크를 이룬 가정교회들이 서로 의존하면서 갑작스럽게 생겨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어요. ‘이런 식으로 모이는 사람들이 또 있는 줄 몰랐어요. 미국 전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니 충격적이에요.’ 도리스 펀크(Houses of Glory): 1984년에, 하나님이 남편과 저에게 우리가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가정교회에 대해 처음 말씀하셨어요. 성경에서도 본적이 없었어요. 놀랍지 않나요? 성경을 수도 없이 읽었지만 그 말이 눈에 들어온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1984년에 우리가 앉아서 기도를 하고 있는데 하나님이 말씀하셨어요. ‘내 교회를 내 백성이 사는 가정으로 되돌려 놓아라.’ 이것이 시작이었습니다. 리차드 포우크스(The Diversity Team): 우리는 주일준비를 위해 토요일에도 건물에서 모이곤 했는데, 재정지출이 증가했어요. 약 20명 정도의 멤버들이 감당하기에는 어려운 수준이었어요. 그래서 그 주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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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에서 모이기로 했어요. 그날 정말 놀라운 경험을 했어요. 그 다음 주일에도 다시 그렇게 했고 그러다 깨달았어요. ‘이봐, 이게 교회하는 방법이네.’ 빌 무니-멕코이(The Diversity Team): 우리는 지난 첫해를 다시 이해하게 되었고 이것이 신앙적인 경험이었다는 것을 알았어요. 하나님은 자신이 정말로 원하시지만 이전에 행하신 적이 없는 일을 우리에게 말씀하시기 전에, 우리가 얼마나 멀리 가야 할지를 먼저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이렇게 말했어요. ‘와, 바로 이 일인 것 같은데.’ 나레이션: 이러한 현상은 한정된 지역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 통계학자인 조지 바나는 미국 전역에 10만개 이상의 가정교회가 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미국 전역에서 사람들은 거실, 커피숍, 주차장, 사무실에서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모임장소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두 세 사람이 모인 곳에 교회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거대한 조정 작업을 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과거 1700년 동안의 전통에서 벗어나, 초기 제자들이 경험했던 그리스도인의 삶을 회복하는 작업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대부분의 시간을 12명과 보내셨습니다. 그분의 가르침은 삶에서 삶으로 이어졌습니다. 예수님은 땅 끝까지 이르라는 사명을 그들에게 위임하셨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유기적인 기독교가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동안 무엇이 잘못된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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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데일(House2House): 문제는 바로 인간의 본성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지배력과 영향력을 더 많이 가지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바울은 남들보다 더 우월하길 원했던 자신의 동역자에 관해서 한 서신서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의 한 제자가 아주 유명하고 대표적인 첫 주교들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는 모든 지도력, 모든 결정, 하나님으로부터 온 모든 것은 성직자를 거쳐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만약 이런 일이 한 세대 만에 일어났다면, 수 백 년 만에 그들이 건물로 옮겨가고 하나님의 백성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통제하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닙니다. 나레이션: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은 인간을 자신에게로 이끄시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증인 없이 내버려 두시지 않았습니다. 교회를 통해서, 세상에 자기 아들을 드러내는 일이 최우선순위이십니다. 토니 데일(House2House): 위클리프는 사람들이 자신의 언어로 번역된 성경으로 예수님을 알 수 있도록 문을 열었습니다. 루터는 사람들이 행위가 아닌 믿음을 통해 예수님을 알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도록 돕는 문을 열었습니다. 이런 흐름은 대부분의 교회가 ‘모든 개인이 예수님을 알 수 있고, 자신의 언어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읽어야 한다.’는 진실을 회복하기 시작했던 종교개혁에서 그 의미가 일부 완성되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단순한 교회’에서 목격하는 것은, 함께 모여 진정한 예수님을 찾고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을 알길 원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토니 피츠제랄드(Church of All Nations): 예수님은 자신의 교회를 회복시키려고 애쓰고 계십니다. 인간의 통제 아래 있다가 50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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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성경을 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최근 누군가가 말했듯이, 500년이 지난 지금 두 번째 개혁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교회를 되돌려주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나레이션: 그러면 왜 교회가 단순해져야 합니까? 신약성경에 나오는 교회 하는 방법은 어떤 유익이 있었습니까? 지난 수십 년에 걸쳐, 하나님은 성경에 새로운 빛을 비추어 주시고 자기 백성에게 새로운 계시를 주고 계십니다. 볼프강 짐존(교회성장전문가): 성경적으로 이런 현상은 내가 교회건물에서 보지 못했던 생활방식, 즉 ‘행동으로 모범을 보여주신 예수님의 생활방식’을 보여줍니다. 사도행전 2:42-47에 나오는 가정교회를 살펴보면, 교회 기능의 두 가지 차원을 보게 됩니다. 먼저, 대규모일 때,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아오고 함께 모이는 도시수준의 모임을 가졌습니다. 예루살렘을 예로 들면, 사도적 가르침이 있었고 연합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왔고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 다음은 좀 더 작은 형태입니다. 가정에서 모이는 모임인데, 이런 가정에서는 큰 건물에서 결코 할 수 없는 것들을 했습니다. 나레이션: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교회에 가는 대신에, 매일 그리고 매 순간 교회가 되기 위해서, 처음부터 교회가 단순해지기를 원하셨던 이유 몇 가지를 매우 강조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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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정한 공동체 마이크 스틸(Dawn Ministries): 단순한 교회는 삶을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단순한 교회의 실체는 사람들 속에서 그리스도의 삶을 끊임없이 살아내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단순한 교회는 두 사람 이상이 모일 때 예수님이 그 가운데 거하신다는 개념에서 시작하고, 삶의 모든 영역에 실제로 침투합니다. 줄리 로스(Life Palace): 인간의 마음은 관계를 위해 창조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마음은 신뢰를 원합니다. 인정 받는데 목말라 있습니다. 그런데 가정교회는 그것을 제공해줍니다. 리차드 포우크스(The Diversity Team): 서로 가까워질 때 무엇보다 좋은 점은 내가 당신의 삶을 알기 위해서 충분히 당신과 가까워지고, 내가 당신의 삶을 알기 때문에 당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내가 당신의 삶에 일부가 되었기 때문에 나 역시 당신에게 영향을 받게 됩니다. 이런 관계의 아름다움은 성경이 말하는 것처럼, 내가 내 형제를 지키는 사람이 되게 합니다. 우리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랑하게 됩니다. 내가 즉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게 됩니다. 나레이션: 교회는 우리가 가는 장소가 아닙니다. ‘우리가 누구이냐?’는 정체성입니다. 또한 ‘우리가 함께 할 때 누구이냐?’는 것입니다. 교회는 사람들이 서로 존중하며 친밀하게 알아가는 곳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하나의 가정이고, 이 세상이 진정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 속에 진정한 관계를 향한 깊은 갈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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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셨습니다. 이 세상은 이런 갈망을 채워줄 수 없습니다. 교회가 해야 합니다. 참된 관계란 오직 함께 삶을 나누는 소그룹의 사람들 가운데 생길 수 있습니다.

2. 모두의 참여 제임스 러츠(Megashift 저자):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지금껏 해본 적 없는 것들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주고 계십니다. 그 중 실제적인 부분이 교회하는 방법입니다. 교회는 사람들이 줄지어 앉아서 수동적으로 듣고 있는 곳이 아니라, 신자들의 완전히 새로운 세대를 훈련하고 재생산하는 곳이 됩니다. 나레이션: 단순한 교회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곳입니다. 사실은 반드시 참여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많은 전통교회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한 사람에게 배우기 위해 일주일에 한번 나타나지만,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몸 된 교회의 나머지 다른 부분들은 놓치고 맙니다. 빌 테니-브리튼(단순한교회 개척자): 당신이 신자들과 모일 때 필요한 것은 의사소통이지, 남을 가르칠 수 있는 권위자가 아닙니다. 내가 당신에게 ‘이렇게 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여기서 찾은 것은 이것이다.’라고 해야 합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맞아요, 그런데’라는 말로 시작해서 합의에 이르게 됩니다. 저는 ‘너희는 너희를 가르칠 사람이 전혀 필요 없고, 성령님이 너희를 가르치실 것이다.’라고 말씀하는 요한일서를 통해서 이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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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레이션: 신약성서에서 교회는 모든 사람이 다 필요한 곳이라고 묘사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다른 은사를 가지고 있고, 교회모임은 각자가 다 기여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함께 모일 때, 모든 사람이 찬송, 교훈의 말씀, 계시, 방언, 통변 등을 합니다. 이 모든 것이 교회를 강건하게 하는데 사용되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참여할 때, 사람들은 교회모임으로부터 휠씬 많은 유익을 얻습니다. 하지만 단순한 교회는 단지 모임만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신자의 제사장 직분에 관해 기록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은 전문적인 엘리트 그룹에게만 맡겨진 것이 아닙니다. 로만(단순한교회 개척자): 위대한 인물들이 나타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빌리 그래함, 라인하르트 본케와 같은 거장들의 시절에, 우리는 항상 이들을 바라보며 그들이 사역을 잘 감당하도록 기도했습니다. 그러면 결국 언젠가 그들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가 빌리 그래함 같은 군대, 라인하르트 본케 같은 군대가 될 시기가 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지금이 그 때라고 봅니다. 바로 가정교회 운동이 이런 사람들을 사역 속으로 흘러 들어가게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사람들의 군대를 가질 때, 비로소 우리는 땅 끝까지 이르게 될 것입니다. 데이비드 왓슨(Church Planting Journal): 평신도들이 교회를 시작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물론 목사도 필요하고 평신도를 구비시키는 사람들도 필요합니다. 교회가 되는 방법, 교회를 하는 방법, 교회를 재생산하는 방법을 사람들에게 훈련하기 위해 사도적 역할도 필요하고 복음전도자의 역할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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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시작할 책임을 가진 ‘한 몸으로서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나레이션: 하나님나라 사역이 신학교 학위를 가진 선택된 소수에게 주어지지 않고, 모든 사람이 그 사역에 참여한다면 교회는 급속도로 빠르게 배가할 수 있습니다.

3. 신속한 재생산 나레이션: 볼프강 짐존은 교회성장전문가입니다. 그는 교회 성장을 성공적으로 촉진하는 방법을 수년 간 연구해 왔습니다. 볼프강 짐존(교회성장전문가): 저는 통계자료를 보는 방법을 압니다. 무엇 때문에 조용기목사를 칭찬하는지를 압니다. 빌 하이벨즈나 릭 워렌목사를 칭찬하는 이유도 압니다. 훌륭한 사역들을 한 다른 사람들의 업적도 압니다. 이들은 성장하는 교회의 모델들이고, 1년에 만 명에서 만 천명 가까이 성장했고 또 다른 해에 만 이천 명이 늘어나 놀랍게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9명 정도의 가정교회를 보면, 보통 그들의 생활방식을 통해 1년에 단지 한번씩 배가해서 18명, 36명, 이런 식으로 계속 성장합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가정교회는 잡지에서 칭찬하거나 TV방송에서 소개한, 가장 빠르게 성장한 교회운동보다 10배나 더 빠르게 성장합니다. 우리는 10배 이상의 폭발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케롤 데이비스(Global Spectrum): 복음은 땅 끝까지 이른 적이 없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외에, 하나님이 교회에 맡기신 임무를 아직 완수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일들을 진전시킬 수 있는 재생산하는 부록2 71


방법과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레이션: 단순한 교회는 교회배가를 일반적으로 더디게 하는 몇 가지 장애물들을 우회하기 때문에 급속도로 빠른 성장을 할 수 있습니다.

교회성장의 장애물 빌 테니-브리튼(단순한교회 개척자): 보통 건물을 기반으로 하는 교회와 대부분의 주류 교단에서는 땅과 이것저것을 포함하는 교회 하나를 개척하는데, 어디서든 100~200만 불이 필요합니다. 이런 평균적인 수준의 교회가 새로운 교회를 시작할 때, 당연히 평균적인 수준의 교회를 개척합니다. 어째든 이 교회가 배가한다면 2-5년에 한 번 배가하는 것이 최선일 것입니다. 하지만 새롭게 개척한 교회들은 대부분 그 기간에 배가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오직 사람들을 그 안으로 데려오고, 교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계속 사람들을 끌어드리는 데만 전념하기 때문입니다. 유지한다는 의미는 사역자의 급여를 지불할 수 있고 건물을 감당할 수 있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남은 것을 사역에 쓸 수 있습니다. 토니 피츠제랄드(Church of All Nations): 하지만 지난 수 년 동안, 우리는 실제로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하나님이 우리를 배가시키기 원하시는 곳에서 배가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사람들이 지도자가 되기 위해 훈련 받거나 신학교에서 4-5년을 보내고 4중 사역을 증가시키는 것’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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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단순해져야만 합니다. 우리는 이런 유기적이고 자발적인 배가성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당신이 이런 꿈을 꾸기 시작할 때, 이미 살펴본 것처럼 보다 단순한 방법으로 돌아가게 되고, 그것이 당연히 옛 신약교회를 운영하던 방식과 훨씬 더 잘 어울린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나레이션: 전문적인 훈련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배가를 위한 필수조건이 될 때, 위험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교회가 배가하기 위해서 전문적인 지도자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훌륭한 음악가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교회배가를 잠재적으로 더디게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성경에 비추어 면밀히 평가되어야 합니다. 닐 콜(오가닉 처치 저자): 단순한 것은 재생산됩니다. 복잡한 것은 사라집니다. 더 복잡할수록 전수되거나 재생산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단순해 질수록 더 좋습니다. 여기서 단순함은 부실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깊이가 없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인생에서 가장 심오한 것들 중에 일부는 단순합니다. 나레이션: 이런 전통들은 장애물로 변하지만 좋은 의도로 형성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이든 잘 해내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뿌려진 씨 비유에서 강조하셨듯이, 하나님나라는 저절로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나라는 유기적입니다. 자연스러운 과정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볼프강 짐존(교회성장전문가): 작은 실험을 해보겠는데, 집에서는 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코끼리 2마리를 가지고 있는데, 방에 가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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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을 기다리면 3마리 코끼리가 됩니다. 당신이 2마리 토끼를 방에 가두고 3년을 기다리면, 통계학자가 말하길, 4억7천6백만 마리가 된다고 합니다. 둘 중에 어떤 방식이 세계선교를 위해 사용되어야 할까요? 무슨 말인가 하면, 토끼의 배가운동을 상상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전염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거룩한 곳이나 지성소의 모임이 아니라 저 바깥에서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임하시는 곳을 거룩하게 만드십니다. 그분은 일반 대중들 속에 임하십니다. 내 삶 속에, 당신의 삶 속에 들어오십니다. 가정들 속에 임하시고 사창가, 수영장, 버스와 택시,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오십니다. 바로 이런 곳에서 예수님을 발견하고 교회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나레이션: 유연한 교회처럼 최근 떠오르고 있는 운동이 일어나는 곳에는 흘러 넘치는 능력이 있습니다.

4. 유연한 교회(liquid church) 토마스 윈(The Diversity Team): 저는 가정교회는 하나님나라를 전세계로 확산시키는 가장 좋은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흘러 넘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가정교회가 전세계에 충격적인 영향을 주는 것을 보고자 하는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지역적으로 한 곳에 묶여 있지 않습니다. 당신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존재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교회입니다. 바로 이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주제입니다. 당신이 교회입니다. 당신이 펜실베니아에 있다면, 그 교회는 펜실베니아로 이동한 것입니다. 당신이 일터에 갔다면 교회는 일터에 있는 것입니다. 당신이 플로리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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갔다면 교회는 플로리다에 있는 것입니다. 당신이 어디 있든지, 그 곳이 교회입니다. 하나님나라는 당신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있습니다. 당신이 바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나레이션: 가정교회는 유연한 교회라고 묘사되고 있습니다. 사회의 모든 상황 속으로 스며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죄인을 그들의 안전지대에서 구원해 예배당 좌석에 앉히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도록 잃어버린 자들이 있는 곳으로 가게 합니다. 빌 테니-브리튼(단순한교회 개척자):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고자 할 때, 당신은 새로운 지역 사람들, 새로운 영역, 새로운 지역사회, 영향력이 미치는 새로운 그룹에게 나아갑니다.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나아가고 나아가다 보면, 결국 여섯 단계만 거치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연결된다는 6단계 분리이론이 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린 레딕 박사(Covenant Bible Institute): 가정교회는 아직 전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나아갑니다. 우리 교인들은 술집으로 찾아가려고 합니다. 우리는 일터로 들어가려고 합니다. 비엔베뉴(부룬디의 교회개척자): 저는 사람들에게 ‘내 교회로 오세요. 우리 모임에 오세요.’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하나님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교회 안으로 데리고 오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이 사람들을 교회 안으로 데리고 오라고 나를 부르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들의 사역을 하도록 보내라고 부르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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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테니-브리튼(단순한교회 개척자): 모든 사람들은 영향력을 미치는 그룹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지 사람들을 내 가정교회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그들을 데려오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나는 전통적인 지역교회도 훌륭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사람들을 가정교회에 데리고 오려는 목적은 우리의 신앙을 세상으로 가지고 나가기 위해서입니다.

5. 리더십 나레이션: 단순한 교회는 다양한 종류의 리더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공식적인 훈련이나 개인적인 카리스마는 리더십의 핵심이 아닙니다. 펠리서티 데일(house2house): 이것은 슈퍼스타를 칭송하기 위한 운동이 아닙니다. 슈퍼스타는 오직 한 분뿐입니다. 바로 예수님이시고 그분은 우리가 모든 영광을 돌리길 원하는 유일한 분입니다. 우리는 꽤 자주 이렇게 기도합니다. ‘오 주님, 우리가 당신께 속한 영광을 손대지 않게 하소서.’ 볼프강 짐존(교회성장전문가): 우리는 리더인 자기 자신이 없을지라도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것을 믿는 리더들이 필요합니다. 이처럼 손쓸 수 없는 상황을 기대하게 됩니다. 내가 믿기로, 교회는 우리가 손쓸 수 없어야만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예언적인 말씀입니다. ‘내 교회를 나에게 돌려다오. 그러면 내가 교회를 세상으로 돌려줄 수 있다.’ 저는 이것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돈 콜먼(The Diversity Team): 우리는 그 군대 속에서 리더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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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는 보통사람들의 군대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 리더들은 장군들 같지만, 낮아집니다. 아래로부터 올라옵니다. 그들은 보통사람들의 군대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신 안에 잠재적인 리더십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그들은 이런 리더십이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압니다. 나레이터: 미국에서 전통적인 교회는 리더십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목사직분이 가지고 있던 명성이 예전과 같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는 일은 여전합니다. 많은 목사들이 과도한 업무로 지쳐있고 정신적으로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문사역자가 되는 사람들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습니다. 리차드 포우크스(The Diversity Team): 전통교회 시스템에서 저는 설교하고 성경공부를 가르치기 위해서 일주일을 다 사용해야 했습니다. 그 일들이 누군가의 마음을 자극하고 어루만졌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효과적이지 못한 일에 내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톰 스나이더(Communities of Care): 기쁨이 사라지고 평안이 사라지고 중압감만 남았다면, 우리는 그분의 방법대로 사역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 짐은 가볍고 쉽다.’고 하셨습니다. 리차드 포우크스(The Diversity Team): 단순한 교회의 장점은 이제 설교를 위해 연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는 계시를 위해 연구합니다. 내가 아는 것을 가르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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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피츠제랄드(Church of All Nations): 리더십을 제거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리더십은 삶의 일부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들을 억압하는 권위주의적인 위계구조를 제거하고 계십니다. 교회는 전세계에서 ‘가장 큰 실내 관람경기’에서 모든 사람들이 진짜 지체임을 발견하는 ‘가장 큰 참여운동’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볼프강 짐존(교회성장전문가): 저는 4~8년 안에 전체 가정교회들, 또는 가정교회 네트워크들이 단지 독자적인 그룹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사도적이고 예언적인 환경에서 누구보다 서로 협력해야 할 때가 올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미국에서 주류가 될 것이고, 가정에서 식탁 주변에 모여 먹고 찬양하고 울고 웃는, 안정적인 교회의 전형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의 두 가지 기둥으로서, 다음 두 가지가 다 필요합니다. 하나는, 우리가 최근 생겨나고 있는 것을 이미 보고 있는 리더십 유형입니다. 이것이 변화를 이끌어갈 것입니다. 또 하나는, 교회의 모든 일을 해왔던 매우 유익한 목사들입니다. 이 두 가지가 종교적인 결박에서 풀려나 아주 큰 그림 속에서 결합하게 될 것입니다. 펠리서티 데일(house2house): 사람들을 훈련하는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야망의 깊이, 즉 세상에 이목을 받고 싶어하는 욕망과 자기 제국을 건설하고 싶어하는 욕망의 깊이를 깨닫고 그것들을 극복하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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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돈 나레이터: 신약교회 신자들 중에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존재했습니다. 사람들의 필요가 생겼을 때, 재정이 나누어졌고 세상은 그들이 어떻게 서로를 돌보는지를 보았습니다. 수년이 지난 후 사람들과 선교를 위해 조성된 자금은 건물과 급여를 위해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야고보서에 따르면 참된 종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거대한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것입니다. 교회는 결핍되고 상처받은 세상에 예수님의 손이 되어야 합니다. 빌 무니-멕코이(The Diversity Team): 저는 정말로 그리스도의 몸이 되려고 합니다. 우리는 서로를 돌보는 곳이 되고 싶습니다.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려고 합니다. 우리가 약간의 비용과 강한 헌신을 나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입니다. 우리에게는 매우 적극적으로 나눠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필요를 채울 수 있습니다. 인간의 필요를 놀랍게 채워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축복입니다. 짐 멜론(단순한교회 개척자): 저는 지금까지 약 13년 동안 텍사스 중부에서 가정교회, 즉 단순한 교회들을 개척해왔습니다. 제가 이 지역에서 시작한 것은 사실 경제적인 교회입니다. 나레이터: 짐 멜론은 돈 때문에 단순한 교회 네트워크를 시작 했습니다. 짐 멜론(단순한교회 개척자): 저는 천명이상의 교인과 백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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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이상의 예산을 가진 교회의 리더십에 속해있었습니다. 예산은 대부분 건물과 급여에 들어가고, 교회 땅에 세워진 건물을 유지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사람들, 선교, 교회개척을 돕기 위해 남은 돈은 없었습니다. 저는 주님께 ‘지금의 상황이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아시지요.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주님은 제게 신약성경, 특히 사도행전을 읽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들이 자기 집에서 만났다는 것 등의 여러 가지 사실들을 알게 되었고, 교회하는 색다른 방법을 발견했습니다. 당시 교회는 하나님나라에 경제적인 유익을 가져왔고 도시에도 경제적으로 유익했습니다. 나레이터: 그런데 십 년이 약간 못 되는 기간 동안, 텍사스 중부의 그리스도인 소그룹들은 선교와 구제를 위한 용도로 백만 달러이상을 보냈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매년 백만 달러를 만드는 것입니다. 교회가 사람들을 돕고 전도하기 위해 하나님나라 자원들을 사용하기 시작할 때, 이 세상은 결코 이전과 같지 않을 것입니다. 빌 무니-멕코이(The Diversity Team): 문제는 재정운영에 주의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전문 직원을 고용해서 급여를 지불합니다. 윗사람들은 아주 많은 돈을 주면서도, 매우 의미 있는 일들을 해달라고 말할 뿐입니다. 저는 정확한 수치까지는 모르지만 교회가 재정적인 커다란 능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7. 다양성 속의 연합 나레이터: 연합은 성경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주제입니다. 하나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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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항상 자기 백성을 하나되게 하는데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는 분열입니다. 각자의 모든 주장을 내려놓고 ‘우리는 나누어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외치려면 단순한 교회 운동의 시작에서 기회를 찾아야 합니다. 물론 지금껏 단순한 교회들도 나누어져 왔습니다. 그러나 단순한 침례교인, 단순한 장로교인으로 나누어진 것은 아닙니다. 단순한 교회들은 다양성을 가지면서도 하나가 됩니다. 마이크 스틸(Dawn Ministries): 단순한 교회 운동이 특별히 공헌한 것은 다양한 서로 다른 계층 사람들을 함께 모이게 했고,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들을 내려놓고 많은 경우 하나님나라의 진전을 보기 위해서 함께 주님의 음성에 정말로 귀를 기울였다는 것입니다. 나레이션: 단순한 교회는 영적인 원수가 일으키려고 할 것이 뻔한 분열을 반드시 막아야 합니다. 빌 무니-멕코이(The Diversity Team):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완전하게 드러내고 ‘서로가 누구인지’를 충만하게 즐기게 됩니다. 나레이션: 신약은 오직 그리스도의 한 몸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많은 지체를 가졌지만 한 몸입니다. 도리스 펀크(Houses of Glory): 그것은 그들이 아니라 우리입니다. 바로 ‘우리’가 그분의 몸입니다. 나레이션: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들을 이런 단순성의 여정으로 이끄실 때, 당신이 어디로부터 나왔는지를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전통교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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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방식으로 사용해 오셨고, 지금도 사용하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하지만 거대한 해일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교회 지형의 변화는 심히 흥분되는 일입니다. 당신은 그 일부가 되는 특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세계의 평범한 남녀들의 군대는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영광을 받게 되실 것입니다. 슈퍼스타 그리스도인의 시대는 왔다가 다시 사라집니다. 하나님은 평범한 사람들의 무리를 좋아하십니다. 이제, 여러분의 차례입니다. ‘…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 에스겔 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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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발견학습 과정 Discovery Bible Study Process David Watson(전 IMB 인도 선교사)

지난 15년 만에, 4만개이상의 교회들이 ‘선교와 선교사들의 무덤’으로 알려졌던 북인도 지역에 세워졌다. 이 교회들 가운데 일부는 열 번째 세대에 걸쳐 교회 개척을 했다. 조사에 따르면 열 번째 세대는 처음만큼이나 성숙되고 성경적으로 건전하다. 이 지역이 박해가 심한 만큼, 교회의 믿음도 특심하다. 그들은 걸으면서 하나님과 대화한다. 그들은 매일매일 기적을 본다. 그들은 자신의 신앙을 나눈다. 그들은 더 많은 교회들을 개척한다. 그들은 병든 자를 위해 기도한다. 그들은 과부와 고아를 돌본다. 많은 사람들이 문맹이지만 그들은 성경을 귀납적으로 공부한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을 읽을 것인지 아니면 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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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인지, 하나님을 믿고 순종할 것인지 아니면 믿지도 순종하지도 않을 것인지를 우리가 선택한다고 본다. 회색지대란 있을 수 없다. 사람들은 말한다. ‘왜 우리는 북미에서 이런 교회개척운동을 볼 수 없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읽지만, 순종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쌓지만, 그 지식을 가지고 아무 것도 행하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귀납적으로 읽다가, 항상 힘든 단계, 즉 순종에 이르기 전에 멈추어버린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읽고 순종할 때까지 미국에서 교회개척운동을 볼 수 없을 것이다. 읽기, 순종, 나눔 - 발견 과정을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우리는 (만일 우리가 소그룹으로 모인다면) 하나님 말씀을 소리 내어 읽거나, (만일 혼자 공부한다면) 한 자 한 자 베낀다. 그 다음, 우리가 읽은 것을 또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듯이 하나님 말씀을 자신의 말로 적는다. 이것은 우리가 성경이 말하는 것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두 가지를 요구한다. 즉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우리 삶을 바꾸고, 하나님이 가르치신 것을 적어도 한 사람에게 나누는 것이다. 순종과 나눔은 24시간에서 48시간 내에 반드시 이루어져야만 한다. 하나님 말씀을 읽는 것과 그것을 순종하는 것 사이에 너무 많은 시간이 흐른다면, 사람들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게 되고 결국 삶에서 태만하게 불순종하는 습관을 갖게 된다. 성경에 따르면, 만일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읽고 순종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거나(요14:15-21) 어리석은 것이다(약1:22-25, 잠10:8, 14:9, 14:16).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나누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요14, 마22, 요일3:13).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알지만 행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불순종하는 것이다(약4:17). 우리는 흔히 순종이 요구되지 않은 종교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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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을 따른다(그것은 불순종하는 종교를 만든다.). 우리는 아는 것을 순종하는지 보다, 단지 아는 것만으로 영적인 성숙을 평가한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으로 영적 성숙을 평가했기에, 이전에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선택한 많은 사람들보다 더 영적으로 성숙된 북인도의 새로운 그리스도인들이 생겨 난 것이다.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길 바란다면, 영적 성장으로 이끄는 행동을 격려하는 시스템을 채택해야만 한다. 성경발견학습은 그런 행동을 북돋는 한 과정이다. 당신이 나와 같다면, 아마 당장 내가 본론으로 들어가 그 방법을 정확하게 말해 주길 원할 것이다. 자, 성경발견학습을 개인적으로, 또한 소그룹으로 어떻게 하는지 훑어보자.

Ⅰ. Personal Discovery Bible Study 개인적인 성경발견학습 성경을 공부할 때, 나는 세 개의 칸을 이용하는 방법을 쓴다. 종이를 접어서 가로로 세 칸을 나눈다. 첫 칸은 ‘성경’, 두 번째 칸은 ‘나의 말로 바꾸기’, 세 번째 칸은 ‘내가 할 일’이라고 이름을 붙인다. 1. Scripture 성경 나는 야고보서를 가지고 성경발견학습을 시작했다. 야고보서는 짧은 단락들로 이루어진 짧은 책이다. 자신이 선택한 본문의 길이가 연구 시간이 얼마나 될지를 결정한다. 긴 본문은 더 많은 시간이 요구된다. 이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유의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나는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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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5절 정도를 택한다. 더 긴 본문은 몇 단락으로 나누어서 며칠에 걸쳐 살펴본다. ‘성경’ 칸에 본문을 한 자 한 자 적는다. 시간이 걸리지만 앞에서 말한 것처럼, 작은 분량의 성경 본문을 택함으로 시간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 어째든 가장 중요한 것은 본문을 한 자 한 자 적으면서, 여러 번(거의 다섯 번에서 일곱 번) 읽게 된다는 점이다. 가만히 앉아서 집중력을 잃지 않고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억지로라도 본문을 묵상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또한 이 과정은 익숙한 본문이라고 대충 읽고 넘어가지 못하도록 만든다. 나는 본문을 써내려 갈 때 반드시 단어 한 자 한 자를 숙고한다. 2. My Own Words 나의 말로 바꾸기 본문을 베끼는 일을 마쳤을 때, 본문을 자신의 말로 바꾸어 쓰기 위해 두 번째 칸을 사용한다. 나는 마치 커피 한 잔을 들고 친구에게 이야기 하듯이 적는다. 내 말로 본문을 쓸 수 있을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는다. 우리가 알듯이, 누군가에게 자기 말로 바꾸어서 말해 줄 수 없다면 본문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 아니다. 이해하지 못했다면 순종할 수도 없다. 정말 간단하다. 때때로 어떤 구절에서는 멈추고, 다시 읽고, 내 말로 적을 수 있기 전까지 꽤 많은 생각을 해야 한다. 이 과정을 시작했을 때, 내 말로 바꿀 수 없을 만큼 익숙한 몇몇 구절을 발견했다! 믿을 수 없게도, 나는 많이 ‘알고’ 있었지만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3. I Will 내가 할 일 세 번째 칸에서,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으로 전환한다. 본문의 각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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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에서 추가하거나 피해야 할 일을 보여주시고, 이 말씀에 순종할 수 있도록 내 삶을 변화시켜 달라고 기도하라. 구체적이 되라. 성경 본문이 '하나님이 온 세상을 창조하셨다. 하지만 이것이 내 삶에 어떤 의미인지는 당신이 결정해야 한다.'고 말할지 모른다. 하나님이 온 세상을 창조하신 것을 믿기 때문에, 나는 무엇을 다르게 행해야 하는가? 24시간에서 48시간 내에 이 말씀을 순종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믿기로 언제나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열면 하나님은 우리를 자신과의 관계 속으로 초대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초대를 ‘은혜’라고 부른다. 왜냐면 초대를 받을 만한 어떤 일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순종은 우리가 하나님의 초대를 받아드리는 방법이다.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들과 함께 사신다(요14:23-24).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연구할 때, 선택하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하기로 선택하든지, 아니면 불순종을 택한다. 정말 간단하다. 세 번째 칸은 하나님의 초대에 대한 나의 응답이다.

Share 나누기 성경공부를 마쳤을 때, 두 가지 책임을 갖는다. 첫째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다른 사람을 만나 내가 배운 것을 나누어야 한다. 그들에게 ‘내가 할 일’ 칸의 내용을 말해야 한다. 그들은 내가 책임을 다 하게 지지해주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도록 도움이 되는 방법을 알려준다. 둘째는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신 것을 나눌 기회를 찾는 것이다. 나는 대화 중에 ‘하나님이 오늘 나에게 가르치신 것이 있어.’라고 하거나, 그와 비슷한 문장을 이용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는 그들의 반응을 기다린다. 이런 말들은 토론의 기회를 만든다. 사람들이 흥미로우면,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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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정보를 묻게 될 것이다. 그들에게 적절한 때가 아니라면, 당신을 무시할 것이고, 그러면 더 이상 나누지 마라. 준비되고 흥미를 가진 사람들과 당신의 신앙을 나누어야지,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과 나누지 말라. 그들이 물을 때에는, 하나님이 내게 가르치신 것을 나누고 마친다. 만일 그들이 흥미를 갖는다면, 그리고 적절한 때라면, 더 많은 정보를 물을 것이다. 그들의 질문은 그들이 영적인 여정에서 어디쯤 있는지를 알게 해 준다. 나는 성령님이 원하시는 것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기를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위험을 감수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한다.

Summary 요약 과정 요약하기 1. 첫 번째 칸에 본문을 한 자 한 자 쓰라. 2. 두 번째 칸에 본문을 자신의 말로 적으라. 3. 세 번째 칸에 본문을 순종하기 위해 취해야 할 행동들의 목록을 적으라. 4. 책임감 있게 다른 신자들과 배운 것을 나누라. 5. 아 직 신자가 아닌 사람들과 토론할 기회를 만들라. 흥미로워하는 사람과 나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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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Group Discovery Bible Study 소그룹 성경발견학습 1. Prayer 기도 성경발견학습을 위해서 소그룹으로 모일 때, 방 안에 모인 사람들이 다 돌아가면서 감사한 일 하나와 스트레스 받는 일 하나를 나누게 하라. 마지막에, 가장 단순한 형태의 기도는 하나님께 감사한 것들을 말하고 스트레스 받는 문제에 대해 하나님과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언급하라. 이런 상호작용이 소그룹 나눔 시간에서 자유로운 대화식 기도 시간으로 이어지게 하라. 이 기도의 형태는 대화식이기 때문에, 가장 조용한 사람도 소그룹기도에 참여할 수 있게 한다. 2. The Holy Spirit 성령 기도한 직후, 지난 모임 이래로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시간에 말씀하신 것을 나누어 보자고 제안하라. 매번 모임을 시작하면서 이 질문을 하는 것은 그룹원들이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시간을 갖도록 격려한다. 또한 모두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능력을 반복해서 사용하도록 만든다. 그룹원들에게 이렇게 나눌 기회를 주는 것은, 내가 아니라 성령님이 소그룹을 인도하실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것이다. 소그룹에서 민감하게 반응하라. 그리고 그들이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다고 확신하라. 3. Scripture 성경 모두 나누고 나서, 누군가 성경을 소리 내어 읽게 하라. 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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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는 성경을 눈으로 읽는다. 읽기를 마쳤을 때, 또 다른 사람이 같은 본문을 다시 한 번 소리 내어 읽게 하라. 이번에는 나머지 사람들은 읽는 것을 듣는다. 끝나면, 원하는 사람이 그 본문을 자기 말로 바꾸어서 말하게 하라. 마쳤을 때, 그룹원들이 느낀 바를 빠짐없이 나누게 하라. 읽기, 듣기, 자기 말로 바꾸기는 생각보다 더 중요하다. 이 방식은 색다른 학습 방법들을 사용해서 성경에 흥미를 갖게 만든다. 모두가 본문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갖게 하고 성령님이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말씀하시게 한다. 본문을 자기 말로 바꾸는 것은 소그룹 밖의 사람과 이 본문을 나누는 것에 대해 충분히 생각하게 한다. 성경을 자기 말로 바꾸는 순서는, 모두가 본문의 핵심 내용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만든다. 본문을 여러 번 살펴보는 것이 지루한 반복이나 시간 낭비로 보일지 모르지만, 이 과정은 재생산하는 제자로 성장시키는 것을 돕는다. 4. Discovery Study 발견 학습 소그룹에서 성경을 자기 말로 바꾸기를 마친 후에, 본문을 연구할 수 있다. 토론은 반드시 질문을 통해 이끌어져야 한다. 질문들은 발견하는 과정을 촉진한다. 질문들은 소그룹이 성경과 씨름하면서 영적으로 성장해 가게 만든다. 아래에 성경과의 대화(interaction)를 자극하는 몇 가지 간단한 질문들이 있다. Did anything in this passage capture your attention?

이 본문에서 어떤 점이 당신의 주의를 끄는가? What did you like about this passage?

이 본문에서 당신에게 좋은 것은 무엇인가? Did anything bother you? Why?

어떤 것이 당신에게 부담이 되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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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does this passage tell us about God?

이 본문은 우리에게 하나님에 관해 무엇을 말해주는가? What does this passage tell us about Man?

이 본문은 우리에게 사람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가? What does this passage tell us about living to please God?

이 본문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에 대해서 무엇을 말해주는가? 계속 성경에 집중해서 토론하라. 소그룹에서 당신이나 다른 사람이 성경 지식이 많다면, 성경공부 시간에 다른 자료들을 소개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촉진자일 뿐이다. 성경 외의 자료나 다른 성경관련 자료를 가지고 토론하는 것을 제한해야 한다. 이런 자료들은 나쁘지 않지만 성경과의 대화를 막는다. 대부분의 경우, 성경 외의 자료들은 성경을 중심에 두기보다 자료들을 소개하는 사람의 지식을 드러낸다. 항상은 아니지만 가끔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 성경 연구의 핵심인 성경을 가지고 토론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라. 5. Commitment 책임 하나님 말씀을 아는 지식은 반드시 순종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헛된 것이다. 다음 단계는 하나의 진술과 하나의 질문으로 시작한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진리로 믿는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삶에서 무엇을 반드시 변화시켜야만 하는가?’ 모든 그룹원들은 떠나기 전에 이 질문에 반드시 대답해야 한다. 그들이 이미 이 말씀에 순종했다면, 어떻게 순종했는지 나누게 하라. 자신의 삶 가운데 이 부분에 있어서 하나님 말씀에 더 순종하기 위해서 해야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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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은 또 없는지 물으라. 구체적인 적용을 하는데 시간을 사용하라. 예를 들면, 놀랍게도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라는 사실을 안다면, 그 앎은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 이 경우에, 당신은 다음의 질문으로 사람들을 동기부여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유일하시다는 것을 믿는다면, 당신의 삶에서 변화되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다르게 행동할 것인가?’ 소그룹이 본문에 순종하기 위해 구체적인 사항을 살펴보도록 격려하라. 모두가 성경에 어떻게 순종하려고 하는지를 나눈 후에, 하나님이 이 소그룹에게 말씀하신 것을 들어야만 하는 사람은 없는지 찾아보게 하라. 그룹원들이 배운 것을 그 사람과 나누도록 격려하라. 끝내기 전에, 그룹원이 아는 사람들 중에 필요한 것이 있는 사람은 없는지를 물으라. 다음 주까지 그 필요들을 채워줄 방법을 찾아보게 하라. 마지막으로, 기도하고 끝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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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요약

소그룹 성경발견학습 요약 1. 소그룹 기도를 진행하면서, 감사한 것 한 가지와 스트레스 받는 문제 한 가지를 나누라. 2. 지난 모임 이래로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말씀하신 것을 나누라고 하라. 지난 주 성경에 어떻게 순종했는지 나누라고 하라. 3. 성경을 소리 내어 읽을 때 나머지는 성경을 눈으로 읽어라. 4. 다른 사람이 동일한 본문을 소리 내어 읽을 때 나머지는 들으라. 5. 소그룹 안에 한 사람이 본문을 자기 말로 바꾸어 말하게 하라. 필요하다면, 자기 말로 바꾸는 이 순서를 추가하라. 6. 소그룹이 본문에 흥미를 갖도록 발견을 위한 질문을 사용하라. 7. 소그룹이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도록 도전하라. 다음 주간에 본문에 순종하기 위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한 사람 한 사람 나누게 하라. 8. 다음 주 내에 이 본문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을 찾아보게 하라. 9. 필요한 것이 있는 사람을 알아보고 그 필요를 채우도록 맡기라. 10. 기도로 마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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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4

어떻게 1년도 안 되어서, 29명의 신자들이 5개의 새로운 가정교회들을 시작하는 110명의 신자들이 되었는가? J. Guy Muse(IBM 에콰도르 선교사)

그들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가? 1. 대충 살펴볼 사람들을 위한 ‘짧은 설명’:

4 개월간의 집중 기도

4 개월간의 풍성한 복음 전파(sowing): 의도적인 전도

2. 잠시 살펴볼 사람들을 위한 ‘상세한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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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일 전, 게오반니와 나는 여기 과야킬 시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의 다양한 면에 관한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 가운데 내가 말했다. ‘내가 이미 자네에게 말했었지. 우리는 더 이상 ‘후안카빌카에서 11시에’ 모이는 단일 교회가 아니네. 이제 6개의 가정교회 네트워크야.’ 나의 분명한 관심사를 알게 되자, 그는 지난 몇 달 동안 일어난 일들을 나누기 시작했다. ‘2008년 4월에 우리 교회에서 함께 모인 사람들은 29명 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올해 말까지 70명의 새로운 신자를 달라고 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4월부터 8월까지 우리는 기도 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주간에는 금식하며 기도했고, 어떤 날에는 밤새 기도하기 위해 깨어있었습니다. 우리의 초점, 즉 일꾼을 보내달라고 추수하는 주인에게 기도하고 ‘70명’을 위해 기도하는데 초점이 두었습니다. 우리는 4개월 동안 개인적으로, 그리고 함께 연합해서 기도했습니다. 8월 중순경 언젠가부터 우리는 기도하는 것을 줄이기 시작했고, 반면에 매달 복음전도를 강조하며 실천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우리는 한 달간의 노력이 충분하지 못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집중적인 기도를 했던 이전 달들을 통해 영적 준비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런 복음전도의 노력이 영적인 열매를 맺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놀랐습니다. 2008년 그 해 말에, 우리는 기도했던 목표인 70명을 넘어섰고, 매달 매달 복음전도의 노력을 통해 주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열매인 110명의 새신자들을 제자화하는데 바빴습니다. 올해 2월~3월 까지 이 새로운 제자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가까운 가정 5곳에서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넬슨은 지금 ‘빌라 에스파냐’ 교회를 이끌고 있고, 호세는 ‘수크레 이 14’ 그룹을, 마르코스와 타니아는 ‘발레리오’ 교회를, 후앙은 ‘페브레스 코르데로 이 14’ 그룹을, 윌리엄은 ’35 이 엘 오로’ 가정교회를 이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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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2010년까지 우리는 기도-전도 전략을 지속할 계획이고 지금은 다음 해 말까지 새신자 300명과 새로운 교회 30개를 달라고 주님께 구하고 있습니다.’ 주목할 사항

초기 29명에서 새신자 110명으로의 성장은 380%의 경이로운 성장률이다. 당신은 1년도 안되어서 이런 성장을 한 교회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당신은 1년도 안되어서 5개의 교회를 개척한 교회에 관해서 최근에 들은 적이 있는가? 내가 게오바니에게 물었던 것처럼 유일한 ‘전략’은 기도하고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가 잃어버린 자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너무 환상적이라서 문제다. 설문조사를 실시하는 것, ‘방법’을 배우는 150달러짜리 컨퍼런스(항공료와 호텔료 800달러 포함), 엄청난 돈이 드는 미디어캠페인, 스타디움을 빌리는 것, 무료 콘서트나 핫도그로는 안 된다. 기도와 선포면 충분하다. 때때로 나는 우리가 책, 컨퍼런스, 블로그, 인터넷을 금식하는 해를 가져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 대신에 잃어버린 가족, 친구, 이웃, 동료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지고 다가가기 위해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행하라고 하신 것을 하도록 성령님이 우리를 인도하시게 허락하고, 기도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말아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당신 자신이 주목한 것은 무엇인가? 위의 내용에서 배울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인가? 게오바니의 간증 중에 기도, 복음전도, 교회개척에 관해서 당신에 마음에 무엇인가 말해주는 것이 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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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집에 있는 교회 J. Guy Muse(IBM 에콰도르 선교사)

여기 과야킬 시에서 우리가 개척하는 ‘단순한’ 교회는 ‘라 이글레시아 엔 투 카사(LIETC, 당신의 집에 있는 교회)’라고 알려졌다. 우리는 적어도 13가지 지침들이 표면적이라도 주님을 기쁘시게 해왔고, 이 가치 있는 지침들이 교회개척을 하던 지난 6년 동안 우리에게 축복이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1. LIETC는 우리가 하는 사역 중에 가장 중요한 ‘기도라는 기초’ 위에 세워진다(눅10:2). 2. L IETC는 ‘평신도 동원’이라는 아이디어를 따라 세워 진다. 평신도는 전통적으로 훈련된 전문적인 성직자에게만 주어지던 역할을 대신 가서 할 수 있도록 능력을 부여 받는다(엡4:11-12, 벧전2: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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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L IETC는 교회에 사람들을 데려가는 것이기보다 ‘사람들이 있는 곳에 교회를 가져간다’는 개념에 따라 세워진다(마28:18-20, 눅10:3). 4. LIETC는 ‘교파의 경계선을 뛰어넘어’, 새로운 신약적 교회들을 개척하기 위해 대위임령을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사역한다(엡4:4-6). 5. L IETC는 ‘일꾼을 보내주시고’ 그 모집이나 동기 부여를 직접 하시는 ‘하나님께 의존’한다. 기도가 열쇠 이다(눅10:2). 6. L IETC는 ‘여성도 교회를 개척하라고 부르셨다’는 동의 아래 모인다(마28:18-20). 7. L IETC는 ‘자신의 교회를 세우기 위한 책임이’ 우리가 아니라 ‘예수님께 있다’는 동의 하에 모인다(마16:18). 우리의 과업은 대위임령, 즉 제자를 삼는 것이다; 교회를 세우시는 것은 그 분이다. 8. LIETC는 ‘선교적 사명’이란 기도하고, 본을 보이고, 가르치고, 훈련하고, 격려하고, 멘토링 하는 일이라는 동의 하에 모인다(엡4:11-12). 9. L IETC는 ‘자기 지역에서 사용 가능하고 재현할 수 있는 의사소통 수단’을 전략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세워진다. 우리는 함께 사역하는 사람들이 자기 지역에서 사용할 수 없거나 재현할 수 없는 방법을 모델로 삼거나 사용하지 않는다. 10. LIETC는 ‘전통적인 교회예배’ 보다는, 집이라는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좀 더 ‘가족적인 모임’이 교회라는 생각을 따라 세워진다(고전12-14, 14:26, 사도행전 참조). 11. LIETC는 ‘기도와 라이프스타일 전도’라는 쌍둥이 기둥 위에 세워졌다. 이 두 부분에 대해 끊임없이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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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LIETC는 ‘제자배가’가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핵심이라는 동의 하에 모인다. 기존에 하고 있는 사역에 그것을 단순히 추가하면 그 일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다(공관복음서의 ‘하나님나라 비유’ 참조). 13. LIETC는 하나님께 속해있고 하나님은 기꺼이 그렇게 하실 수 있다. ‘지금까지 살아오던 삶의 방식을 바꾸는 변화’는, 하나님이 자신의 나라를 이루어 가시는 방식에 우리가 계속적으로 눈을 뜨게 하심으로써, 지속되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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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눈이 아니다. Robert Fitts (가정교회개척가, ‘The Church in the House’의 저자)

고린도전서 12장에서 바울은 성령의 은사들을 설명하면서 그리스도의 몸을 인간의 몸에 비유했다. “몸은 지체가 하나가 아니라 많다. 만일 발이 ‘나는 손이 아니다. 그러니 나는 몸에 있지 않다.’라고 말한다고, 발이 몸에 붙어있지 않은 것인가? 또한 만일 귀가 ‘나는 눈이 아니다. 그러니 나는 몸에 있지 않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귀가 몸에 붙어있지 않은 것인가?”(14-16) 내가 될 수 없는 것들을 인정하고 내가 그리스도의 몸에서 정말 무엇인지를 발견해 나가기 위해서, 내가 눈이 아닌 것을 드러내놓고 자유롭게 말할 수 있을 때, 그 날은 인생에서 너무나 기쁜 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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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나님과 동행해 왔던 오랜 기간 동안, 나는 열정적으로 어디든 가고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 어떤 선교사가 우리 교회에 온다고 하면, 나는 즉시 해외의 미전도 종족들에게 가라는 소명을 느꼈다. 유창한 설교자가 와서 사역한다고 하면, 흥분해서 이렇게 소리쳤다. ‘나도 할 수 있어.’ 어떤 전도자의 역동적인 사역을 목격하고 나서, 나는 하나님을 위해 거리로 나가 잃어버린 자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서 빈 공터에 텐트를 치려고 했다. 그 다음에는 라디오 설교자, 비행사, 작가, 교사가 되길 바랬다. 나는 위에 열거된 모든 일들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만 한 것이 아니라, 깊이 숨을 들이쉬고 실제로 그 일들에 뛰어들었다. 말할 필요도 없이, 나는 수년 동안 많은 좌절과 혼란을 겪었다. 하지만 나의 ‘지식 없는 열정’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모든 것을 낭비한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만일 내가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일에 착수하지만 않았다면, 얼마나 많은 것을 달성할 수 있었을는지 누가 알겠는가? 수년 동안 불필요하게 수없이 깨지고 부서진 후, 하나님은 ‘은혜와 계시’의 방법으로 내 안에서 일하신 덕분에 나는 이제 이렇게 말할 수 있을 만큼 편해졌다. ‘나는 눈이 아니다.’ ‘나는 손이나 발이 아니다.’ 하지만 이 고백은 또한 내게 ‘나는 눈이거나, 손이거나, 발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담대함도 가져왔다. 왜냐면 내가 될 수 없는 것을 알려주었던 깨달음이, 또한 내가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무엇인지를 말할 수 있는 자유를 내게 주었기 때문이다. 내가 무엇이든지 간에, 내가 아니라 하나님나라 안에서 나와 가깝게 관계 맺는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당신의 정체성을 발견했는가? 주 안에서 당신과 동행하고 동역하고 있는 사람이 그 점에 대해서 분명히 확증할 수 있는가? 하나님이 당신에게 눈이 되라고 은사를 주시거나 부르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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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았는데도, 눈으로 기능하려고 애쓰진 않는가? 귀라고 생각하면서 눈의 역할을 하려고 애쓰거나 손이 발의 역할을 하려고 애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우리가 스스로에게나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이처럼 어리석게 행동하지 않도록, 하나님의 소명과 우리의 은사를 발견하려고 추구하면서 고려해야 할 몇 가지 사항이 여기 있다: 1. 눈에 띄거나 영향력 있는 자리를 추구하지 말라. 혹시 그렇게 되더라도, 그것을 사용하지 말라. 하나님이 당신을 정말로 눈으로 만드셨다면 그냥 그 역할을 해라. 2. 사 역을 추구하지 말라; 사역자(종)가 되기를 추구하라. 세상은 도움과 격려를 필요로 하는 절박하고 상처받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참된 종의 정신은 남의 인정을 요구하지 않는다. 종은 자기 일을 하기 위해 무대나 조명이 필요하지 않다. 그는 단지 하나님과 자신의 동료를 사랑해야 하고,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해 기꺼이 인생을 사용해야 하고 사용되어야 한다. 3. 그 리스도의 몸 안에서 중요하지 않은 지체는 없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라. 보다 크거나 작은 은사는 있어도, 보다 크거나 작은 지체는 결코 있을 수 없다. 몸 안에서 당신의 지위나 역할은 눈 만큼 필요하고 중요하다. 하나님이 이미 당신을 어떤 존재로 만드셨든지 간에, 그런 사람이 되어 편안해 할 수 있다면, 그 때부터는 더 이상 눈이 되려고 할 필요가 없다. 4. 당신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 전혀 모르면서 만족해하지 말라. 당신은 이것에 대해서 알아야 하고 이것을 아는 것이 당신의 책임이고 의무이다. 하나님이 이 점을 당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알려주시기를 기도하라. 당신이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위치를 찾았을 때 당신은 엄청난 자유와 해방을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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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일반적으로 우리의 욕구와 성향에 따라서 우리와 함께 일하실 것이다. 당신은 무엇이 되기를 원하는가? 당신은 무엇을 하고 싶은가? 당신은 어디에서 가장 성공적인가? 다른 사람들은 습득하기 어렵지만 당신은 쉽게 하는 일은 무엇인가? 한 여인이 예수님의 발 위에 값비싼 향유를 부어드리자 소란이 일어났을 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하라. 누군가 말했다. ‘이것을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을 텐데. 왜 낭비하느냐?’ 예수님이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셨다. ‘여자를 그냥 두어라.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했을 뿐이다.’ 이것이 시작하는 열쇠다. 당신만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라. 그리고 그 결과는 주님의 손에 맡기라. 사도 바울은 말했다. ‘하나님은 자신의 선한 즐거움을 당신이 원하고 행하도록 당신 안에서 일하신다(빌2:13b).’ 완전히 항복하고 의존하는 하나님의 자녀에게 특별한 약속이 있다. 하나님은 당신이 하길 원하시는 일을 당신 스스로가 하고 싶어지도록, 당신 안에서 역사하신다. 얼마나 자유로운가! 우리가 하나님께 완전히 의존할 때, 하나님은 ‘자신의 선한 즐거움을 당신이 원하고 행하고’ 싶은 열망이 끓어오르도록 우리 안에서 초자연적으로 역사하기 시작하신다.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우리의 위치와 역할을 발견하는 첫 걸음은 자기 의지와 자기 결정을 모두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능하려는 거룩한 동기를 우리 안에 불러일으키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과 함께 선택하는 사람들에게 항상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 내가 드릴 것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예수님의 발 앞에 놓을 수 있는 무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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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로 주셨다. 하나님이 나에게 할 수 있게 하신 일을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예수님에게 자신의 사랑을 부어드렸던 여인을 기념하는 것처럼, 당신과 내가 하는 일도 기념할 것이다. 오고 오는 세대에 하나님의 은혜를 기념하자. 그리고 기억하라.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의 당신의 역할은 대학 학위를 요구하지 않는다. 걱정하지 말라. 예수님도 어느 것 하나 가지지 못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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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 이끄시는 모임들 Roger Thoman(가정교회개척가, Simple Church Journal)

성령이 이끄시는 모임에 관한 한 친구의 언급: ‘우리가 하나님의 지시와 격려를 듣고 따른다면, 우리는 결코 지루한 모임을 갖지 않을 것이다(펠리서티 데일)’ 내가 믿기로, 우리 모두는 성령님이 이끄시고 능력을 부여하심으로 써, 연료를 공급받는 모임을 보길 원한다. 그렇다면 모임을 촉진하도록 도울 수 있는 몇몇 방법들을 기억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1. 긴장을 풀고 평안하라. 이것은 퍼포먼스를 지향하는 이벤트가 아니다. 우리의 과거 교회생활에서 우리는 교회의 이벤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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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좋았는지’로 우리 모임의 가치를 측정했다. 우리는 그것을 넘어서 성숙했다. 우리 교회 생활은 이제 매일 교회가 되는 것, 즉 24/7 라이프스타일로 사는 것이고, 우리가 사랑하고 삶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의 공동체에 참여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 부족을 대신하여 만든 ‘빅 이벤트’를 위해 모이는 모임을 찾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긴장을 풀고 평안하게 우리 가운데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을 무엇이든 즐길 수 있다. 2. 받 을뿐만 아니라 주기 위해서 모이라. 이것은 누군가에게 압력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모일 때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을 가져다 주거나 우리의 하나님-경험을 중개해주는 다른 사람들을 찾는 ‘소비자들’이 되지 말라는 조언일 뿐이다. 대신 우리는 상호 반응하는 공동체에 참여한다. 우리는 가능한 한 언제든지 자신의 최근 이야기를 나누고, 다른 사람을 격려하고 축복하기 위해 영적 은사를 사용하도록 준비되어간다. 3. 멈 추라. 모임에서 성령님을 기다리고 가만히 앉아있는 시간을 가져라. 이것은 그룹 전체가 성령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도록 훈련한다: ‘ 신약교회는 하나님의 임재가 머무는 곳일 뿐 아니라, 성령님의 언어를 배우는 곳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교회에서 하나님을 예배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귀 기울이도록 준비되었고, 하나님께 들을 후에는, 그들도 자신들을 세워준 사람들에게 뭔가를 줄 수 있었다(잭 디어).’

임은 계발되는 시간이다. 멈추고, 듣고, 사람들이 성령님이 모 말씀하신다고 믿는 것을 표현하도록 허락할 때, 우리 모임은 점점 더 성령님의 지시와 격려를 받게 된다.

4. 흐 름에 주목하라. ‘하나님은 순서를 따라 평안하게 모든 것이 이루어지기를 원하신다…(고전14:33).’ 이 구절은 함께 모이는 신자들에게 말씀하고 있고, 하나님의 이끄심을 따르는 자연스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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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 있는 흐름을 가리킨다. 즉, 성령님이 어떤 방향으로 이끄시면, 그 방향에 주목하고, 적절하지 않은 행동으로 방해하지 않는다. 혹시 모임 이후에나 그런 행동을 할 것이다. 5. 먼 저 준비하라. 자주 성령님은 참여자들 전부나 일부를 다음 시간을 준비하도록 이끄실 것이다. 다음은 모임 마지막에 이야기할 수 있는 내용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다음 번에 모일 때 무엇을 하길 원하실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져오도록 준비시키시는 것들이 있는가?’ 성령님은 자연스러움 뿐만 아니라 체계적인 준비를 통해서도 일하신다. 우리는 둘 다를 위한 여유를 가져야 한다. 6. 모 험적이 되라. 우리는 창조적이고 모험적이신 하나님과 춤추는 법을 배우고 있다. 우리는 발걸음을 내디뎌서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다. 우리는 안전한 곳에서 실수하고 실험하고 배우고 다시 시도 한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할 때, 즉 우리가 성령이 이끄시는 그룹에서 모이는 법을 배울 때, 우리는 집, 지역, 일터, 마을, 그리고 언제 어디서든 하나님의 능력 있는 임재를 얻고 단순한 교회를 하기 위해 준비된 사람들의 대추수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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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밀한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 Roger Thoman(가정교회개척가, Simple Church Journal)

작고 친밀하고 단순한 교회 모임 상황에서 드리는 예배는 내가 좋아하는 주제 중 하나다. 나는 내가 단순한 교회에서 경험해오고 있는 이런 유형의 예배를 사랑한다. 오해하지는 말라. 나는 좀 더 퍼포먼스를 지향하는 대예배 이벤트에 때때로 동반되는 멋진 라이브 음악도 사랑한다. 나는 대예배 상황이 동반하는 조직적인 예배의, 다소 드문, 흥분과 그 깊이까지도 여전히 즐긴다. 그러나 가까운 동료, 친구, 절친 약간과 함께 예배드릴 때 내가 경험하는 충만함과 비교하면, 이런 유형의 예배 경험에 대한 내 욕구는 거의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 이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을 열고 예배를 표현할 때면, 나는 그들의 가장 깊은 호소와 정직한 마음에 연결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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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마치 내가 영혼과 영혼을 잇는 예배를 드리는 듯하다. 우리는 함께 하나님을 만지고 하나님은 내가 잘 아는 사람들의 살과 피, 경외감과 갈망을 통해, 우리 가운데, 성육신하신다. 내가 믿기로, 가정교회 예배의 ‘예술’은 여전히 발전해 가는 중이다. 우리는 예배자로서 지나치게 음악에 의존적이 되어가고 있다. 내 말은 음악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내가 이미 지적한 것처럼, 나는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음악 자체가 예배는 아니고 더욱이 예배가 무조건적으로 음악으로만 표현되지는 않는다. 매트 레드맨이 요즘 우리에게 친숙한 찬양에 이런 가사를 썼을 때, 대부분은 그의 이야기를 이미 경험했었을 것이다.

‘나는 당신께 노래 이상의 것을 드릴 것입니다. 왜냐면 당신이 요구하시는 것은 노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겉으로 나타나는 것보다 더 깊은 내면을 찾으십니다; 당신은 나의 마음을 보십니다.’ 매트의 교회는 그들이 겉모습(특히 화려한 음악)에 의존하게 되고 예배의 불, 즉 하나님을 향한 단순하고 순수한 갈망을 가진 마음으로부터만 나올 수 있는 무언가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때때로, 어쩌면 자주, 우리는 모든 겉모습을 벗어 던져야 하고, 있는 그대로 외부적인 도움이 없는 예배의 과정에 우리 마음이 다시 사로잡혀야 한다. 분명히, 가정교회의 친밀감과 결합될 때, 이것은 엄청난 경험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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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참여하고 있는 교회들은, 사실, 자주 음악을 사용하곤 한다: 기타, 다른 악기들, 찬양 CD 등등. 하지만 곧 우리는 ‘대교회’ 예배경험을 단순한 교회모임 속으로 가져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 교회들 대부분은 아주 개인적이고 현실적이고 믿을만하고 의미 있고, 외부적 도움이 없는 예배의 다른 표현방식들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아래에 내가 ‘외부적 도움이 없는 예배 표현’이라고 부르는 것들의 짧은 리스트가 있다. 이것은 완전하거나 최종적인 방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혹시 사용하면 그룹을 좀 더 개인적이고 친밀한 예배시간으로 이끌지도 모르는 몇 가지 아이디어일 뿐이다. 단 순하게, 말로서 찬양하거나 경배하라. 수평적인 기도(중보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누구신지에 관한 수직적인 경배, 감탄, 감사, 인정을 말한다.

시 편이나 성경구절을 천천히, 생각하면서 읽으라. 묵상할 시간을 주고 그 후, 가능하면, 말로서 좀더 경배하라.

음 악이 없이 자발적으로 자연스럽게 노래하라.

시 편이나 성경구절을 읽고 글 쓰는 시간을 주라. 그런 후 글 쓴 것을 나누거나 다시 경배하라.

각 자 하나님의 이름들 중 하나를 선포하고 나서 그 이름을 기초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말을 하라고 제안하라.

하 나님께 당신 자신의 경배하는 말을 하기 위해 가이드라인으로서 시편을 사용하라.

성 경이나 하나님의 성품을 묵상하는 시간 동안 좀 더 명상적인 음악을 사용하라.

침 묵하고 하나님의 임재와 음성을 기다리라.

경 배하거나 묵상하는 시간 동안 사람들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큰 종이를 붙어놓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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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좀 더 외향적으로 표현하는 예배형식을 사용하는 그룹이 더 단순하고 친밀한 상황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의 중요성을 받아드리기 위해서 얼마간 인내해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런 방식의 개인적인 면에 익숙해지고 자신들의 마음을 담을 수 있을 때, 그들은 반드시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이런 스타일의 예배는, 정말, 나의 주식(主食)이 되었고, 나의 영적인 삶을 지탱해주는 강력한 수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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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모일 때 ‘전환’ - 미국 교회의 지형에 대전환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평범함’ - 우 리는 사역자의 시대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시대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그분의 일을 하도록 평범한 사람들을 세우고 계십니다. 그것으로 인해 더 큰 영광을 받으십니다. ‘자유’ - 저는 하나님이 곧 우리를 많은 전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회복’ - 그분이 결국 말씀하시는 것은 이것입니다. ‘나에게 돌아오라. 원래 신앙으로 돌아오라.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라. 진정한 기독교로 돌아오라. 그러면 너희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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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교회 모임들 나레이션: 전세계적으로, 사람들이 좀 더 단순한 기독교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그들은 많은 전통을 버리고, ‘종교를 뺀 교회란 어떤 모습일까?’를 묻고 있습니다. 서구의 문제는 교회 하는 방법에 있어서 전통 교회가 가르쳐준 것 밖에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약성경의 교회로 돌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교회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전통적인 교회를 놀랍게 사용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그분은 새로운 방법도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새 부대가 필요한 새 포도주를 붓고 계십니다. 이것은 전에 하던 일들을 단지 축소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완전히 새로운 삶의 방식입니다. 그러면 함께 모일 때 과연 무엇을 하게 될까요? 만나는 장소가 작아진 것 외에 무엇이 다를까요? 더 좋은 시스템의 문제가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방해하지 않고 성령님이 일하시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일하실 수 있는 환경을 창조하고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함께 모일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중요한 몇 가지 일들이 있습니다.

교회란 무엇인가?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 존 화이트(전 장로교회 목회자): 단순히 ‘교회 크기를 줄이자.’는 것이 아닙니다. 엄밀히 말해서 가족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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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러츠(Megashift 저자): 진짜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필요에 따라서 어떤 때는 가족이 아니라 병원으로 바뀝니다. 누군가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다면 모든 것을 멈추고, 그 문제부터 도와줍니다. 때때로 가르침이 필요하면 학교 역할을 합니다. 때로는 우리가 바라건대, 군대로 변해야 합니다. 존 화이트(전 장로교회 목회자): 가끔 우리가 ‘단순한 교회’라고도 부르는 가정교회는 단지 가정에서 모인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보다 심오하고 진지한 혁명입니다. 그것은 당신이 교회에 대해 생각해오던 방식을 바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 역시 전통교회에서 자라났고 전통교회 목회자였습니다. 당시 교회에서 본 것은 모임시간에 도입한 프로그램의 결과들뿐이었습니다. 가정교회는 그 이상입니다. 먼저, 그것은 진정한 가족입니다. 가족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24시간, 일주일 내내 지속되는 관계입니다. 물론 함께 모이지만, 단지 모임으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둘째, 그것은 프로그램 이상입니다. 프로그램은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줄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고 우리끼리 농담을 합니다. 가정 교회의 핵심은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모든 믿는 사람들이 이렇게 믿고,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되,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다.’ 이것이 정말 무슨 의미일까요? 저는 예수님이 그분의 교회의 머리가 되고 싶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이클 스틸(DAWN Ministries): 단순한 교회는 삶의 방식입니다. 이것은 함께 모여서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과는 다른 면입니다. 사람들이 함께 모이고 정기적으로 모임이 있을지라도, 단순한 교회의 핵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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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가운데 매일매일 그리스도의 삶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단순한 교회는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는 개념을 가지고 시작해서, 삶의 모든 영역으로 실제 침투합니다. 데이비드 왓슨(City Team Ministries): 사람들은 교회하면, 십자가를 가진 건물을 생각하는데, 그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교회는 사람들을 둘러싸고 있는 형식, 조직, 건물과는 무관합니다 린다(가정교회 멤버): 하나님은 먼저 그분과 친밀한 관계를 갖은 후, 사람들끼리 서로 친밀해지라고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정말 교회는 관계이고, 공동체를 가집니다. 존 화이트(전 장로교회 목회자): 신약의 교회는 사실 서로 친밀하게 연결된 사람들의 소그룹이었습니다. 아마 집에서 모였을 것이고, 단지 작아진 모임이 아니라 진정한 라이프스타일이었습니다. 모리스 스미스(Parausia Network): 단순한 교회는 친구들 가운데서 하나님을 좇고 있는 신자들의 모임입니다. 모이는 이유는 ‘주여, 우리가 여기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기 원하십니까?’라고 묻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모든 교회모임, 즉 모든 ‘에클레시아’모임은 매번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어떤 날은 기도만 합니다. 또 어떤 날은 설교하면,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누군가는 배워야 하고, 누군가는 변화되어야 하고, 누군가는 가르칩니다. 어떤 때는 그냥 하나님을 찬양하고 즐거워하기만 합니다. 모든 모임은 매번 똑같을 필요 없고, 아주 실제적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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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 사도행전 2:42 볼프강 짐존(가정교회 저자): 가정교회에서는 일반적으로 10~15명이 만나서 4가지 일을 합니다. 첫째, 식사를 합니다. 그들은 먹습니다. 1. 함께 식사하기 린다(가정교회 멤버): 왜인지는 모르는데, 함께 식사하면 벽이 허물어집니다. 식사를 같이할 때 성찬식을 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진짜 핵심입니다. 커티스(가정교회 멤버): 저에게 식사는 교제의 가장 멋진 부분이예요.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입니다. 폴(가정교회 멤버): 이런 농담이 있습니다. ‘교제(Fellowship)라는 단어를 어떻게 쓰나요? 음식(F-o-o-d)이라고 하지요.’ 우리는 함께 식사하는 것을 너무 좋아합니다. 볼프강 짐존(가정교회 저자): 먹는 일이야말로 예수님의 사역에서 너무 중요했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의 집에서 밥 먹는 데는 완전 전문가셨습니다. 그분은 식사초대를 받지 못하면, 거리로 나가서 ‘삭개오, 나무에서 내려와라. 내가 너희 집에서 밥을 좀 먹어야겠다.’고 말씀하실 수 있을 정도로 대담하셨다. 그래서 자신을 스스로 초대하셨습니다. 재미있는 분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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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삶 나누기 볼프강 짐존(가정교회 저자): 둘째, 그들은 삶을 나눕니다. 달러 한 장이 아닙니다. 삶을 나눈다는 것은 물질적인 축복을 나누고 영적인 축복도 나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매번 그렇게 합니다. 당신을 대신해서 그 일을 할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가 서로에게 그렇게 합니다. 제임스 러츠(Megashift 저자): 당신이 문제를 안고 와서는 해결 받지 못한 채 몇 시간 후 나간다면, 그 모임은 실패한 겁니다. 레이(가정교회 멤버): 제 일이 잘 안될 때도 있습니다. 저는 건축현장에서 일합니다. 호황기도 있지만 불경기도 있습니다. 교회는 그 때마다 필요를 공급해 주었습니다. 제 필요가 무엇이든, 교회 사람들이 채워주었습니다. 페넬로피(가정교회 멤버): 저는 머리가 어지러워서 운전할 수가 없었고, 게다가 하루 이틀 동안 구역질이 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가정교회 식구들이 나를 도와줄 것을 알아요. 그래서 교회 식구 중에 한 명이 주일 저녁에 나를 차에 태워 모임에 데리고 왔습니다. 거기서 제 문제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멤버들이 즉시, 혹은 며칠이나 몇 주 동안 다양한 방법으로 저를 실제로 돕겠다고 말한 것을 정말 그렇게 하리라 믿습니다. 마이클 스틸(DAWN Ministries): 한 여성의 집이 엉망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이혼해서 집을 돌볼 형편이 못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성경을 던져두고, 청소도구를 집어 들고 가서 하루 종일 그녀의 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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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보았습니다. 청소하고, 페인트 칠을 하고, 빨래하고, 잔디를 깎는 등의 많은 일을 했습니다. 끝나고 나서 우리는 성찬의 식탁에 함께 둘러앉아 찬양했습니다. 밥을 같이 먹으면서 그날 섬길 수 있는 특권을 주신 것에 대해 주님께 감사하고 영광을 돌렸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반응해서, 그 소그룹은 가서 그날 그리스도의 말씀을 살아냈습니다. 폴(가정교회 멤버): 세금신고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발견되었는데, 우리는 그것을 감당할 돈이 없었습니다. 교회에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몇몇 형제들과 점심을 하면서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국세청이 우리가 돈을 빚졌고 어떻게든 해결하라고 하는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3일이 지나지 않아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 형제들 중에 한 명이 말했습니다. ‘당신에게 줄 것이 있는데 와줄 수 있나요?’ 제가 ‘혹시 무엇 때문에 그러시죠?’라고 물었습니다. ‘사실, 당신에게 줄 수표가 있어요.’ 그것은 우리가 필요한 금액과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3. 말씀에서 배우기 볼프강 짐존(가정교회 저자): 셋째, 성경을 세가지 요점으로 설명하는 사람에게 31분 동안 귀만 기울이고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95%를 잊어버리는 일을 이제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됩니다. 모두가 참여하고 동참합니다. 함께 성경을 먹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주된 방식은 토론하고 함께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신약에서도 가르침은 사실 대화였습니다. 제임스 러츠(Megashift 저자): 저는 실제로 사람들에게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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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합니다. ‘당신의 가정교회 모임이 죽어 있다면 누구 탓이라고 생각합니까? 당신 탓입니다. 당신이 다른 성도들을 영적으로 먹이기 위해서 어떤 기여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커티스(가정교회 멤버):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 서로에게 중요한 것들을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관해 우리에게 단 한 사람이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들과 주님에 관해 모두가 함께 나눕니다. 톰 와이메어(미들랜드 포스퀘어교회):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가르쳐주거나 말해준 것보다 자기 스스로가 발견한 것들에 대해 더 큰 열정과 애착을 가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임스 러츠(Megashift 저자): 수년 동안 예배시간에 줄 맞추어 앉아 있을 때, 누구도 내게 일어나서 설교를 해달라거나 강대상에서 뭔가를 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없었습니다. 제게 찬양을 딱 한번 부탁했었는데 다시 그런 실수를 하지 않더군요. 그래서 저는 신약을 자세히 보기 시작했고 이렇게 말하게 되었습니다. ‘와, 우리가 지금 잘못하고 있네. 사람들은 단지 관람하기보다 참여해야만 해.’ 4. 함께 기도하기 볼프강 짐존(가정교회 저자): 넷째, 사람들은 기도하고 예언합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께 말하는 것이고 예언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이 이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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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제가 이 형제가 비전을 갖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또 정확한 계시를 위해 기도합니다.’ ‘산과 바다 소리쳐 주의 이름을 높이리 주 행한 일 기뻐 노래하며’ ‘성령님의 권능을 간구합니다. 그래서 그 힘으로 능히 감당하기 원합니다.’ 존 화이트(전 장로교회 목회자): 이것은 가정모임에서 일어나는 일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이웃에게로 퍼져나가느냐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이 이웃들의 각종 필요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레이크웨이(텍사스 가정교회): 그 외의 필요들도 있습니다. 물질적인 것, 감정적인 것, 관계적인 것, 직업과 관련된 것 등등. 우리는 이런 일상생활의 다양한 활동들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협력하고 도울 수 있지 않을까를 생각합니다. 존 화이트(전 장로교회 목회자):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된 사람들이 핵심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지역사회에서든 수많은 필요들을 봅니다. 깨어진 가정들, 인종간의 화합, 빈곤의 문제 등등. 당신이 그 지역사회의 상황 가운데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때, 이런 다양한 문제들이 다루어지기 시작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린도전서 14:26 린 레딕 박사(Covenant Bible Institute): 고린도전서 14장 2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꼬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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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예수님의 몸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나레이션: 고린도전서 14장 26절이 이루어지려면 교회는 단순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참여할 수 없는 방식으로 모인다면, 우리는 주님이 사람들을 위해 하시려는 일을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제임스 러츠(Megashift 저자): 이것은 정말 새로운 삶의 방식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한 주 내내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음 일요일이든, 화요일이든, 내가 교회 식구들을 만나면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완전히 새로운 삶의 방식입니다. 책임감이 필요합니다. 거기서 당신은 앉아서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적이 되어서 도움을 주고 은사를 사용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은사가 무엇이든, 노래든, 기도든, 가르침이든, 무엇이든 그것을 사용할 기회가 주어집니다. 하늘에서 어떤 말씀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신비주의 집회처럼 거실에 둘러 앉아만 있지 않을 것입니다. 정말 잘되는 가정교회 모임에서는 모임을 하는 2~3시간 동안 말할 기회가 없을 정도입니다. 다들 함께 참여해서 하나가 되고 서로의 삶의 일부가 되려고 무척 애쓰기 때문입니다. 토니 피츠제랄드(Church of All Nations): 우리가 모임을 위해 함께 모일 때, 꼭 모든 사람이 다 참여할 수 있어야지, 앞에서 한 사람이 인도하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하십시오. 모임이 더 큰 것의 축소판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고린도전서 말씀처럼, 하나님이 모임 전체에 성령의 기름을 강하게 부어주시고 모든 지체가 기능하는 모임을 만드십시오. 그래서 그 모임을 위해 어떤 이는 지식의 은사를 사용하고,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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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지혜의 은사를, 또 어떤 이는 믿음의 은사를, 어떤 이는 권면의 은사를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단 한 사람이 아니라 몸 전체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충만하심을 발견하게 됩니다. 커티스(가정교회 멤버): 그러니까 작은 모임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말할 수 있는 시간이 있습니다. 항상 우리는 돌아가며 서로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이번 한 주 당신의 삶은 어땠어요? 당신의 삶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어요? 이번 주에 당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셨나요?’ 린다 레딕(Covenant Bible Institute): 사람들은 교회생활에서 너무 오랫동안 관객으로 지내온 나머지, 자신이 감당할 사역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릅니다. 토니 피츠제랄드(Church of All Nations): 하지만 교회는 이제 전세계에서 ‘가장 큰 실내 관람경기’에서 모든 사람이 진짜 가족과 지체임을 발견하는 ‘가장 큰 참여운동’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닐 콜(Greenhouse): 사실, 서구에서 우리가 해왔던 일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좋은 의도로 시도했던 것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교회하는 방법을 전문가들만 가능한 수준까지 올려놓았고, 그 일을 잘 해내려면 전문가로 구성된 팀이 필요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비참합니다. 우리는 교회하는 방법을, 극소수만이 잘해낼 수 있고 나머지 사람들은 구경꾼으로 남게 되는 수준으로 높여놓았습니다. 사실 우리가 해왔던 일은 군대를 일으키는 것이기보다 관객을 끌어들이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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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제 해야 할 일은 이런 상황을 뒤집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동안 교회하는 방법의 기준은 높인 반면, 제자도의 기준은 결과적으로 낮추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번 1~2시간을 낼 수 있다면 좋은 제자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방식이 아닙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만 하는 일은 제자도의 기준을 높이고 교회하는 방법의 기준을 낮추는 것입니다. 단순한 교회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제자도의 기준을 높임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할 수 있게 합니다. 그들에게 확장되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의 일부가 되라고 도전합니다. 존 화이트(전 장로교회 목회자): 단순한 교회에 관해 가르치거나 배울 때 가장 중요한 기술은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방법입니다. 그분은 단지 교회의 귀한 손님이 되길 원치 않습니다. 진행자가 되려고 하십니다. 그분이 그날의 일정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모일 때마다 그분의 음성을 듣고 그분이 원하시는 것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고 할 때, 때로는 혼란스럽고 때로는 분별하기 힘들지만, 항상 매우 도전적이고 항상 변화를 가져오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닐 갬블(Father’s Hand Ministries):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들의 도시와 이웃과 가정을 바꿀 수 있는 예수님의 능력을 그들 안에 가지고 있습니다. 니나 스나이더(Communities of Care): 제가 볼 때,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그들의 은사와 소명을 주시고 공동체를 통해서 일하고 싶어하시는 것 같습니다. 펠리서티 데일(An Army of Ordinary People 저자): 그것은 자발적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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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모일 때, 마치 오케스트라를 운영하는 것 같습니다. 성령님은 뭔가를 이끌어내시는 분입니다. 우리를 함께 모이게 하시고, 모임을 아주 색다르게 만드십니다. 성령님은 오늘 주님이 당신에게 주시는 메시지 같은 것을 내놓으십니다. 토니 피츠제랄드(Church of All Nations): 저는 하나님이 미국에서 진짜 하시는 일은 예수님이 교회를 정말로 회복시키셔서, 에베소서가 말하는 것처럼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예수님의 충만함’을 가지고 다시금 하나님의 열정이 되게 하시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의 모든 지체가 자신의 목적을 알고 그것에 따라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한 사람도 자신 안에 있던 불러보지 못한 노래를 지닌 채 죽지 않고, 자신의 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목적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레이션: 우리가 모일 때, 성령님은 모임의 리더이십니다. 때때로 가정교회는 단지 전통교회에서 보았던 것을 모방합니다. 어떤 사람은 찬양시간을 인도하고 또 다른 사람은 가르치도록 임명합니다. 하지만 가정교회는 전통교회의 모습을 단지 줄여놓은 것이 아닙니다. 각자가 자신의 역할을 해야만 하는 곳입니다.

아이들은 어떻게 하는가? 린 레딕 박사(Covenant Bible Institute): 아마 제가 경험했던 가장 능력 있는 모임들 중 하나였을 것 같습니다. 모임 가운데 5살 된 여자아이가 몸을 앞으로 굽히더니 엄마의 귀에 속삭였습니다. 구석에서 약간 소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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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었고 엄마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다음 순서로 ‘누구든지 더 나누고 싶은 것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5살 된 캐롤라인이 손을 들고 일어서더니,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 있네.’라고 찬양을 했습니다. 그때의 감동을 말로 형용할 수가 없습니다. 그 여자아이가 찬양할 때, 하나님의 권능이 모임에 부어지는 것 같았고, 우리 모두는 회중 앞에 일어서서 ‘예수 사랑하심’을 찬양하는 5살 된 아이 앞에서 흐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존 화이트(전 장로교회 목회자): 사람들은 흔히 ‘가정교회에서 아이들과 무엇을 하느냐?’고 질문합니다. 모든 사람이 꼭 이 질문을 합니다. 제 대답은 프로그램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습니다. ‘과연 예수님이 아이들과 함께 무엇을 하길 원하시겠느냐?’고 교회에 되물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교회인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발견하기 위해서 그분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짐 밀러(단순한교회 개척자): 일반적으로 유아나 갓난아기는 뒤편 침실에서 엄마들이나 청소년들 중 한 명이 돌보게 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예배에 참석시켜서 참여하게 하려고 애씁니다. 그들이 읽을 수 있으면, 성경을 읽도록 합니다. 아이들은 자신들도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웁니다. 예배 중에 아이들이 받은 계시와 나눈 간증을 보면 무척 놀랍고 보람됩니다. 린다(가정교회 멤버): 25살 된 막내딸은 가정교회에서 자라났습니다. 내 생각엔, 딸 아이가 자기 또래의 다른 아이들과 꼬마들이 모임에 참여해서 무언가를 나누고, 공헌하는 법을 배워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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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 같습니다. 그것은 정말 딸에게 긍정적인 경험이었을 것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법과 하나님은 어른들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말씀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짐 밀러(단순한교회 개척자): 제가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들 중 하나는 이런 것입니다. 저희 부부는 아이가 여섯이고 13년 동안 가정교회를 해왔습니다. 자녀들이 가정교회 환경에서 자라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모두 자신이 관객이 아니라 사역자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나레이션: 아이들이라고 해서 그 안에 계신 성령님도 어리지는 않습니다. 주님은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을 통해서도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는 각 지체가 자기 역할을 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열쇠입니다. 각 사람이 자기 역할을 해낼 때, 교회는 원래 의도했던 것처럼 기능하게 됩니다. 다음 번 교회모임에는 하나님께 쓰임 받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가세요. 세부적인 것들은 그분에게 맡기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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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 테이블에 있는 교회 Bill Hoffman(가정교회개척가)

‘우리가 당신을 위해서 무엇을 기도하면 좋겠습니까?’ 내가 물었다. 즉시 웨이트리스의 눈이 크게 떠졌고, 그녀는 흥분해서 적극적으로 대답하기 시작했다. 화요일 저녁이었고, 우리의 남성 책임그룹은 동네 커피숍에서 정기적인 모임을 가지고 있었다. 지난 몇 달 동안, 우리는 우리를 시중드는 종업원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기도해 왔다. 우리가 받은 요청들은 대부분 아주 피상적인 것들이었다. ‘우리 할머니가 아파요.’ ‘내일 시험을 봐야 해요.’ ‘남자 친구가 직업이 필요해요.’ 그러나 ‘프랜’이 자신의 필요를 나누었을 때, 그것은 마치 누군가 쓰레기차를 우리 자리 앞에 정지시켜 놓고 그 안에 든 것을 우리 테이블에 쏟아놓는 것과 같았다. 그녀의 딸은 암으로 고통 당하고 있었다. 한 손자는 심각한 의학적 문제를 가지고 태어났다. 심지어 성인이 된 아들은 세 살 된 부록10 127


딸과 함께 집에서 쫓겨났다. 프랜은 근처 아파트에서 그들이 지내도록 재정적으로 희생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가구도 없었고 아들은 직업도 없었다. 그녀는 그들을 부양하기 위해서 두 가지의 풀 타임 일을 하고 있었고 더욱 빠르게 빚더미에 빠져들고 있었다. ‘우리는 이 모든 요청들을 위해 정말 기도할게요.’ 내가 약속했다. ‘그리고 우리가 돕기 위해 그밖에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볼게요.’ 며칠이 지난 후, 우리는 그녀의 아들이 일자리를 마련하도록 돌봐주고 있었고 그들이 사용할 약간의 가구들을 찾아냈다. 그 다음 화요일에, 결국 그 식당에서 저녁타임 매니저가 된 프랜은 다시 우리 웨이트리스였고 우리는 다시 한 번 그녀를 위해 기도했다. 3주 후쯤에는 프랜이 우리 자리에 함께 앉았고 우리의 기도에 동참했다. 이날 저녁, 그녀는 우리가 교회하는 방식에 혁명을 가져올 만큼 큰 충격을 주었다. ‘여러분의 기도와 도움에 진심으로 감사해요.’ 그녀는 커다란 미소를 지으며 거침없이 말했다. ‘여러분은 내게 너무나 큰 의미가 있어요! 나는 일주일 내내 화요일 저녁을 기대해요. 다른 사람들은 나를 자기 교회로 초대하곤 했지만, 정작 그들이 일요일 아침에 모일 때 나는 항상 일해야만 했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여러분 같은 친구들을 화요일 저녁마다 제게 보내주셨네요.’ 테이블에 앉아있는 나머지 사람들을 향해 자신의 두 손을 펼친 후에 그녀는 기쁘게 선언했다. ‘이것이 내 교회에요.’ 내 마음에 가장 먼저 떠올랐던 생각 때문에 두려웠다.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이것은 남자들의 책임그룹이에요.’ 하지만 주님은 갑자기 이것이 정확히 우리가 기도해 오던 것이라고 계시하셨다. 몇 달 동안, 우리는 주님께 ‘평화의 사람’에게 우리를 구체적으로 연결해 달라고 구하면서 ‘추수를 위한 일꾼’을 위해 열렬하게 기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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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도의 지침은 누가복음 10:1-7을 연구하면서 얻었다. 평화의 ‘사람(man)’이 비록 여성이었고 그녀의 집은 집이 아니고 식당이었지만, 우리는 ‘평화의 사람’을 결국 찾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에 우리는 주일 저녁에 매주 우리 집에서 모이는 가정교회모임에 그녀를 초대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그녀의 스케줄은 그것이 불가능했고 그녀의 아파트는 약 20마일이나 떨어져 있는 지역에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노력을 포기하고, 추수하는 주님이 우리 남성들의 책임그룹을 다소 특이한 교회로 변형시키고 계신다는 사실을 받아드리기로 했다. 프랜이 우리에게 최근 동료와 나눈 대화에 관해 이야기했을 때, 처음으로 이 특별한 모임의 이름이 붙여졌다. ‘너 마약하고 있지 않니?’ 프랜이 비난이 아니라 동정하는 어투로 동료 중 한 사람에게 말했다. ‘부인하려고 하지마. 난 네 주변에 있고 그 징후를 잘 알아.’ 젊은 웨이트리스는 커다래지고 충혈된 눈으로 그녀를 즉시 돌아보면서 예상되는 해고통보를 기다렸다. ‘걱정하지 마.’ 프랜이 계속 말했다. ‘나는 널 해고하거나 경찰에 넘기지 않을 거야. 나는 단지 네가 걱정스러운 것이란다. 네 문제가 무엇이든지, 그건 해답이 아니야. 예수님이 해답이지! 우리는 네 업무일정을 변경해서 널 화요일 밤에 이 곳에 있게 할 수 있어. 그러면 너는 나랑 교회에 갈 수 있지.’ 다소 안심이 되었는지, 마약에 중독된 웨이트리스는 다음과 같이 묻는 것으로 대답했다. ‘당신의 교회가 어디 있는데요?’ 프랜의 얼굴은 커다란 미소가 번졌고, 그녀는 그 식당 구석에 있는 자리를 가리키며 큰 소리로 말했다. ‘2번 테이블’ 우리 모임은 이 때부터 ‘2번 테이블에 있는 교회’로 불렸다. 프랜이 우리에게 우리 모임이 사실상 교회였다는 것을 밝힌 후 부록10 129


오래지 않아, 그녀는 우리가 놀랄 만한 일이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우리에게 양해를 구한 다음, 주방으로 들어가서 주방장과 조수를 데리고 왔다. 우리 자신을 먼저 소개한 후, 두 사람에게 우리가 그들을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냐고 물었다. ‘우리는 여러분이 프랜을 돕기 위해 한 일을 모두 들었어요.’ 두 히스패닉 남자 중 한 명이 정중한 영어 악센트로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 두 사람은 아주 작은 아파트에 함께 살고 있고, 아주 큰 대가족들입니다. 여러분이 혹시 우리에게 가구를 약간 구해주실 수 있나요? 우리는 특별히 애들을 위한 침대가 필요해요.’ ‘우리가 두 사람을 도울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내가 대답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있는 분을 알아요. 예수님은 프랜을 위해 도움을 주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두 사람을 도와달라고 예수님께 부탁해도 괜찮을까요?’ 몇 주안에 우리는 이 남자들을 위한 중고가구들을 발견했고 매주 화요일 저녁에 이 주방장과 연결되기 시작했다. 그는 도움이 긴박하게 필요하고 가까운 지역에 사는 또 다른 가족, 즉 젊지만 최근에 미망인이 되었고 세 자녀를 부양할 방법이 거의 없는 히스패닉 여성에게 우리를 이끌어주었다. 우리는 곧 이 여성의 집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우리가 도울 수 있는 일을 하는 정기적인 모임을 시작했다. 오래지 않아 우리는 주방장의 집에 정기적으로 방문해서 그와 그의 가족과 함께 ‘교회를 했다.’ 주방장, 그의 아내, 그녀의 어머니는 예수님을 온전히 믿었고 하나님은 계속적으로 그들을 통해 히스패닉 사회에 문을 여시고 계신다. 아내나 나는 스페인어를 전혀 못하고 새로운 지인들은 대부분 영어를 거의 못하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정말 놀라운 일이다. 나는 멕시코 음식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너희 앞에 둔 것을 먹으라(눅10:8).’고 말씀한다. 그래서 나는 사랑의 130


복음이 너무나 필요한 우리 지역의 민족들에게 나아가는 가장 탁월한 방법이기 때문에 혀와 위장을 희생하는 법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예수님의 사랑이 인종적인 장벽을 돌파할 수 있다는 것도 배우고 있다. 나는 이 사람들 중에 한 사람도 우리 가정모임에 참여한 적이 없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데도 이런 진전을 이루었다는데 매우 만족한다. 우리가 그들을 초대하고 싶지 않은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들은 우리의 음식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가 행동하는 방식에 적응하는데도 힘든 시간을 보낼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님은 우리가 초점을 두고 있던 방향을 바꾸시기 위해 가르치고 계셨다. 몇 년 동안, 우리의 목표는 우리 가정모임을 분리해서 또 다른 그룹을 시작해야 한다는 분명한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멤버들 중 몇 명에게 이 일을 위임하고, 다른 집에서 다음 교회를 개척하도록 그들을 파송했다. 이 개념 자체가 지독하게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단지 지독하게 느렸다. 그러는 사이에, 추수할 것들은 익어서 기다리고 있었다. 요즈음, 우리는 우리 집에서 만나는 모임에 참여하라고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평화의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거나, 단순한 교회를 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을 발견하거나, 주님께 누군가를 이끌게 되었을 때, 우리가 가장 먼저 시도하는 것은 그들의 집에서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그들의 가족과 친구들, 특히 아직 그리스도인이 아니거나 다른 어떤 곳에서도 교회에 참석하지 않았던 사람들과 함께 모이자고 부탁하고, 집이나 일터처럼 그들이 가장 잘 알고 예수님이 가장 큰 차이를 만드실 수 있는 환경에서 그들이 교회를 개척하도록 돕는 일을 진행한다. 그 결과는 정말 놀랄 만 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놀라야 하는가? 이것은 정확히 예수님이 우리에게 하라고 가르치신 방법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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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의 길(The Romans Road)1 ‘로마서의 길’은 일련의 로마서 구절들을 가지고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제시한다. 순서대로 제시될 때, 이 구절들은 구원의 메시지를 설명하는 ‘쉽고 조직적인’ 방법이 된다. ‘로마서의 길’은 성경구절을 조금 바꾼 다양한 버전들이 있지만, 기본적인 메시지와 체계는 비슷하다. 많은 복음적인 선교사들, 복음전도자들, 평신도들이 복음을 전할 때 이것을 암송해서 사용하고 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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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로마로 가는 길’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1세기 로마제국 시기에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었다. 이 격언에 빗대어, 아마도 ‘구원으로 가는 왕도’라는 의미로 이 말을 사용한 것 같다. 또한 이 길을 제시하기 위해서 로마서의 구절들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로마서에 제시된 길’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된 것 같다. 영어 특유의 말장난(Word Play)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 말에 대한 오해를 막고, 추가 설명을 하지 않기 위해 ‘로마서의 길’로 번역했다,


‘로마서의 길’의 내용 7가지 ‘로마서의 길’은 하나님과의 관계로 나아가는 지름길이다. 이 길은 당신도 갈 수 있는 길이다. 이것은 신약성경의 로마서에 나오는 성경구절들로 되어있다. 당신이 이 길을 살펴본다면, 구원받는 방법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1. 하나님은 누구신가? (하나님의 정체성과 역할)

로 마서 1:20-21(참고 1:18-20, 28-32)

질 문: 하나님은 누구신가?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분노하시는가? 무엇이 죄인가?

요 약: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만드신 창조주라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만 하고,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초라한 우리의 위치를 받아드려야 한다.

2. 누구에게 구원이 필요한가? (인간의 구원 필요) 여기서부터 시작할 수도 있다.

로 마서 3:23 (참고 3:24-26, 3:10-12)

질 문: 인간의 영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누가 죄를 지었는가? 죄란 무엇인가?

요 약: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구원이 필요하다.

3. 왜 구원이 필요한가? (죄의 결과)

로 마서 6:23 (참고 5:12)

질 문: 죄의 삯 혹은 형벌은 무엇인가? 누가 이 삯과 형벌을 받게 되는가? 인간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인가?

요 약: 모든 죄에는 형벌이 따르는데, 죄의 형벌은 죽음(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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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어떻게 하나님은 구원을 주실 수 있는가? (그리스도의 사역)

로 마서 5:8 (참고 5:6-11)

질 문: 하나님은 언제 우리를 사랑하셨는가? 하나님은 우리 죄를 어떻게 갚으셨는가? 하나님은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새로운 삶을 주셨는가?

요 약: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우리 죄의 형벌을 대신 담당하셨다.

5. 어떻게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구원의 길)

로 마서 10:9-10, 13

질 문: 인간이 구원 받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할 두 가지는 무엇인가? 믿는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른다는 말의 뜻은 무엇인가? 이 구절(13절)이 약속하는 것은 무엇인가? 당신은 단지 무엇을 하면 되는가? 하나님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하시는가?

요 약: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6. 어떻게 예수님을 영접하는가? (‘로마서의 길’에 대한 응답)

요 한계시록 3:20

질 문: 그 사람에게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되기를 원하는지 물으라. 생명의 선물을 받아드리고 자신의 새로운 삶을 하나님께 헌신하도록 그 사람과 기도하라.

요 약: 당신이 진리의 길로 인도하는 ‘로마서의 길’을 믿는다면 지금 당장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거저 받을 수 있다.

7. 구원의 결과는 무엇인가? (하나님과의 평화)

로 마서 5:1 (참고 8:1, 8:3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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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 문: 인간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얻는 것 두 가지는 무엇인가? 구원 받은 후 버려야 할 감정은 무엇인가? 구원 받은 후 가질 수 있는 확신은 무엇인가?

요 약: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은 우리에게 하나님과의 평화 로운 관계를 가져다 준다.

‘로마서의 길’을 받아드리기 위해 알아야 할 7가지 죄와 죽음과 십자가 ① 당신이 죄인인 것을 인정하라. ② 죄인인 당신은 죽을 수 밖에 없음을 알라. ③ 예수님이 당신을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믿으라. 은혜와 믿음 ④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의 은혜를 거저 받아드리라. ⑤ 믿음으로 예수님을 당신의 마음 안에 모셔드리라. 회개와 순종 ⑥ 당 신의 죄악 된 이전 삶에서 예수님 안에 있는 새로운 삶으로 돌아섬으로 회개하라. ⑦ 이제부터 예수님께 삶의 모든 주도권을 드리고 순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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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12

제자 삼기는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다. Roger Thoman(가정교회개척자, Simple Church Journal)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은 평범한 그리스도인의 손에서 개인적인 제자도를 빼앗았다.’ (데니스 맥칼럼)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가장 큰 기쁨은 다른 사람의 삶 전반에 영적 변혁을 가져오기 위해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이다. 우리는 진정한 ‘제자 삼기’가 매일 매일의 삶과 매일 매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고, 이것이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기쁨을 많이 빼앗기고 있다. 제자 삼기를 교회 프로그램의 일부나 사람들이 특별하게 훈련 받는 과정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진짜 운명과 강렬한 목적의식을 따라 발걸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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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기지 못하게 해왔다. 제자화를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일로 소개하여, 하나님이 하고 계신(우리는 사람들을 그 가운데로 초대할 뿐인) 일을 방해했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관심을 갖도록 자연스럽게 영향을 미치는 전염성을 갖기보다 조작적이고 퍼포먼스 지향적이 되어버렸다. 제자 삼기는 사람들에게 나아가 사랑함을 통해서, 우리가 세워나가고 있는 관계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몇 가지 고려해야 할 원리 1. 제자 삼기는 우리가 관련된 모든 관계에서 일어난다. 왜냐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의 친밀하고 개인적인 관계와, 그 분의 목적들과, 우리가 영향을 미치는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 가운데서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우리가 인식하든 말든, 의도적이든 아니든 발생한다. 우리가 관계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일어난다. 심지어 그들에게 관심이 있든 없든 발생한다. 단지 우리의 정체성 때문에 일어난다. 그래서 제자 삼기는 아래의 모든 관계 가운데 일어난다: 동 네 식료품점에서 일하고 있고, 얼마 전 나와 친절하게 대화를 나눈 이웃, 젊은 남자.

기 도에 관한 책을 읽기 위해 나와 만나고 있는 친구. 그는 이 점과 관련해서 성경이나 예수님에게는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자신의 영적인 삶이 깊이 있어지는 것에 관심이 있다.

가 정교회 모임에 모이고 있고 성경을 읽고 토론하는데 시간을 사용하는 것을 특별히 즐기는 아직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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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나님과 자신의 관계와, 자신의 영적 은사와 영향력 사용에 있어서 성장하길 원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의도적인 멘토링 관계로 초대한 그리스도인.

제자 삼기는 사람들과 함께 먹고 나누고 놀고 또한 무엇을 하든지, 함께 하기 위해 시간을 보내면서 자연스럽게, 언제든지 시작된다. 우리를 부르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사랑하는 것에서 흘러나온다. 2. 제자 삼기는, 적절한 시점에, 다른 사람에 대한 우리의 사랑 때문에 의도적이 된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과 그 분의 목적들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그들이 우리 곁에서 하나님을 더 의도적으로 추구하도록 자연스럽게 초대하게 만든다. 그들이 어떻게 반응하든지 상관없이 여전히 우리의 친구일 것이다. 혹시 실패하더라도, 이런 의도적인 초대는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는 중요한 방법이다. 3. 우리는 하나님이 일하고 계신 곳에서만 일할 수 있다. 누군가로 하나님께 관심을 두게 하는 것은 우리의 일이 아니다. 성령님만이 그 일을 하실 수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누군가의 삶에서 일하고 계신 때를 깨닫고, 하나님을 더 깊이 추구하기 위해 우리와 함께 하도록 의도적으로 초대함으로 그들을 사랑할 기회를 잡는 것이다. 4.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제자 삼기 위해 전문가가 되거나 모든 것을 알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와 함께 하나님을 추구하자고 좀 더 의도적으로 사람들을 초대할 때, 정답들을 가지고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들이 우리가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자, 제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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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길 바란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가 사용하는 동일한 수단에 주목하게 한다: (하나님에게 말하는) 기도와 (그들이 온전히 믿기 전에도 그것을 통해 배울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 우리는 이 두 가지 도구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모델이 되고, 그들이 우리 옆에 와서 하나님에 관해 배우고 하나님께 배우고 하나님을 통해 배우도록 초대한다. 우리가 이 과정을 완전히 파악하고 신뢰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자연스러운 제자 삼기가 쉽고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정말로 발견할 것이다. 아래에는 제자 삼는 과정에서 도움이 될 만한 약간의 지침이 있다.

제자 삼기 과정 1. 사랑으로 다가가라. 제자 삼기는 앞의 5장에서 논의한 ‘밖으로 나아가기’ 방식으로 시작한다. 1 우리가 다른 사람과 관계를 가지고 사랑하는 순간, 그들에게 우리의 삶과 라이프스타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2. 기도하라. 우리가 마음을 쓰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최선이 되길 바라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 우리가 하나님과 친밀해지고 그 분의 목적과 열정에 연결될 때, 다른 사람 중심의 기도와 중보기도는 숨쉬는 것만큼 자연스럽다. 그들은 하나님의 변혁시키시는 활동이 다른 사람들의 삶 속으로 풀어지게 하는 촉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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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티클은 이것을 쓴 Roger Thoman의 책 ‘Simple/ House Church Revolution’ 7장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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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예수님의 사명을 위해 기꺼이 그 분과 함께 할 때, 예수님의 권위(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는 우리에게 주어진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두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이 일하시기를 기대함으로 그 권위 속으로 발을 내딛는다. 3. 초대하라. 언급했듯이, 우리의 많은 관계들 중에서 어떤 식으로든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보고, 우리와 함께 하나님을 좀 더 의도적으로 추구하자고 그들을 초대하도록 우리를 이끄시는 손길을 느끼는 때가 온다. 이런 일은 여러 가지 다양한 방식으로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핵심은, 적절한 때에,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고 이 결정적인 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이것은 사랑의 발걸음이다. 다른 사람들을 돌보려는 발걸음이다. 그들의 반응에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그들에게 우리의 사랑과 우정을 다 쏟으려는 발걸음이다. 4. 하나님의 말씀이 일하게 하라.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를 따르도록 제자 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따르기 위해서 말씀을 사용할 수 있다. 내 경험은 사람들이 성경을 통해 배우거나 그 진리를 받아드리기 위해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완전히 받아드려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때때로 우리는 사람들이 성경 때문에 불쾌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경험은 그렇지 않다. 우리가 그들 앞에서 본문을 ‘설교’하지 않고, 그들이 스스로 찾고 배우도록 초대한다면, 성경에서 자신들에게 필요할지도 모를 것을 스스로 발견하는데 일반적으로 열려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성경은, 정말,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능력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성령이 능력주심을 통해서, 그 자체만으로, 삶과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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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시키는 능력이 있다. 단지 우리는 사람들이 성경과 만나도록 초대하고 하나님이 일하시게 하기만 하면 된다. 결국 우리의 목표는 ‘사람들이 스스로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을 보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이 우리나 다른 교사들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의존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이 스스로 읽고 발견하고 진리를 적용하는 (귀납적인 형식의) 자기주도발견 학습을 사용하고 싶다(부록A를 보라.)2. 5. 그들이 즉시 다른 사람들에게 나아가도록 초대하라.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배우고 있는 초기 단계의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과 함께 동일한 것을 하자고 초대하는 일은 가능하다. 누군가가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그들을 사랑하는 것의 유익을 깨닫게 될 때까지 기다릴 필요없다. 아직 ‘회심’하지 않았거나 ‘세례’ 받지 않은 사람이, 귀납적인 형식의 성경 연구를 하면서 하나님을 더 깊이 추구하도록 다른 사람들을 인도하는 것조차 가능하다. 앨런 허쉬는 이것을 ‘행동으로 배우는 제자도’라고 부른다. 그는 이것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들이 부르심을 받자마자, 그분(예수님)는 그 제자들을 사명, 사역, 배움을 위한 모험적인 여행을 데리고 가신다. 곧바로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가난한 자들을 섬기고 치유하고 악령들을 쫓아내는 일에 참여한다. 그것은 선교 상황에서의 활동적이고 직접적인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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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House Church Revolution’의 부록에는 David Watson의 ‘성경발견학습(부록3)’을 추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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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기이다. 그것은 모든 위대한 ‘종족 운동(people movement)’3들과 마찬가지다. 가장 최근에 회심한 사람조차 시작부터 사명을 품는다; 그 사람조차 영적 영웅이 될 수 있다.’ 6. 때가 되면 공개적으로 세례를 주라. 우리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하나님이 하신 일을 축하하도록 자기 가족과 친구들을 초대하는 탁월한 기회가 세례라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가 새로운 그리스도인에게 이것을 제안할 때, 그들은 쉽게 받아드리고 그렇게 했다. 우리는 ‘세례식 파티’를 열고, 음식을 차려놓고 축하했고, 그리스도인들이 참석한 것보다 더 많은 비그리스도인이 모인 것을 보고 흥분했다. 7. 더 깊은 관계를 가지라. 제자도는 그 무엇보다도 관계가 지속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점차 스스로 말씀을 먹을 수 있게 되면, 우리의 그 다음 역할은 그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자로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을 배우도록 단순하게 지원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우리의 삶을 약점까지 내 보임으로서, 우리는 그들도 자신이 겪고 있고 느끼고 있는 모든 것에서 정직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낸다. 이런 관계는 우리가 그들 옆에서 걸어가면서 좀 더 돕고 돌보는 자가 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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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용어는 도날드 맥가브란이 자신의 책 ‘하나님의 다리(The Bridges of God)’에서 사용한 것이다. 이 말은 ‘한 집단 속에서 수많은 개개인이 상호 의존하는 가운데 연속적으로 예수를 믿기로 결심하는 것’을 말한다. 이 용어는 ‘종족운동, 종족집단운동, 집단개종운동, 동일집단회심운동, 대중회심운동’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되는데, 여기서는 ‘종족운동’으로 번역했다.


8. (꼭 해야만 한다면,) 조금만 가르치고, 더 많이 모범을 보이고 능력 을 부여하라. 당신이 가르치는 방식을 지향한다면, 기본적인 기독교 원리들에 관해서 약간 가르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필수적이지는 않다. 하나님의 말씀이 직접 그것을 해낼 것이다. 만일 당신이 어떤 기초 원리들을 반드시 가르쳐야만 한다면, 그것이 유익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목적은 사람들을 자신의 영적인 삶을 위해 스스로 책임지는 자리로 진전시키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스스로 어떻게 배우는지 모범을 보이고, 그들이 가능한 한 빨리 다른 사람들을 제자 삼는 자로서의 능력을 얻게 되길 바란다. 9. 재생산에 집중하라. 우리의 제자 삼는 과정 전체는 다른 사람들이 스스로, 그리고 가능한 한 빨리 전도하고(reaching), 제자 삼는 과정을 시작하도록 돕기 위해 고안되었다. 이것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대로 하나님 나라가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고 자연적으로 증식되는 것을 촉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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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13

삶을 변혁하는 소그룹(Life Transformation Group)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듯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빛나게 한다(잠27:17).’

삶을 변혁하는 소그룹이란 무엇인가? 삶을 변혁하는 소그룹(LTG)은 단순한 방법이다. 삶이 안팎으로 철저하게 변화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생명력 있는 영적 여정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들을 제공한다. 이것은 외부의 압력이나 경쟁적인 책략을 사용하기보다 내면의 자발성을 불타오르게 함으로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도록 격려하고 지원하는 ‘성장을 위한 기초 도구’이다. 이 도구는 또 다른 제자를 재생산할 수 있는 영적인 제자로 재생산하는 ‘비범한’ 사역을 완수하기 위해서 ‘평범한’ 그리스도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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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을 부여한다. LTG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간단한 개요 L TG는 일주일에 한 번, 대개 한 시간 정도 만난다.

L TG는 둘이나 세 명이 한 그룹을 이룬다(네 번째 사람이 추가되면 두 번째 그룹을 시작하고 즉시 배가해야 한다.).

그 룹들은 남녀가 함께 모이지 않고 동성끼리 모인다.

이 와 관련된 커리큘럼도, 워크북도, 훈련도 없다.

그 룹 안에 리더도 필요 없다.

L TG 안에서 완수해야 할 과업은 단 3가지이다.

① 상호책임을 바탕으로, 죄를 고백한다. ② 공동체적으로, 문맥을 따라, 반복해서 성경을 읽는다. ③ 전략적으로, 구체적으로, 지속적으로 영혼들을 위해 기도한다. LTG는 단순하지만 능력이 있다. 공동체의 가치, 삶의 내면적인 변혁, 제자의 재생산을 함께 이루도록 만든다. 누가 LTG에 있어야 하는가? LTG를 시작하거나 참여하기 위해 필요한 자질은 단지 2가지이다. ① 예수님을 향한 절박한 갈망(눅5:29-32) ② 과정 자체에서의 신실성(딤후2:2) 모임이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한 치유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건강성을 가지고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이 두 가지 기준이 서로 균형을 유지한다. 또한 이런 원칙들을 타협하면 모임의 효율성은 감소되거나 사라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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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하는 제자를 삼고 배가시키기’ 삶을 변혁하는 소그룹 소개 LTG는 자신의 영적 성장과 개발을 위해 개인적인 책임을 다하려고 매주 만나고, 동성을 가진 둘이나 세 명으로 이루어진다. 네 번째 참여자가 이 과정에 신실성을 보인다면, 한 그룹이 세 명 이상이 되기보다는 두 명으로 된 두 그룹으로 배가하는 방식을 추천한다. 둘이나 셋이 가지는 힘 제자를 삼고 배가하려고 할 때, 왜 두 세 명으로 된 더 작은 단위가 더 큰 그룹보다 나은지에 관한 몇 가지 성경적 이유가 있다. 1. 공동체성(전4:9-12): 삶의 변화는 진공 상태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발생한다. 태초부터 하나님은 홀로 있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서로 힘이 되고 지지하기 위해 필요하다(잠27:17). 2. 상호책임(딤전5:19): 삶에서 어떤 일들은 상호책임 없이도 해낼 수 있다. 하지만 신약성경에서 ‘서로’와 관련된 명령이 적어도 28개 정도 기록되어 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계획하신 삶을 살기 위해서 서로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3. 비밀보장(마18:15-17): 단지 둘이나 세 명으로 된 그룹이 열이나 열두 명으로 된 더 큰 그룹보다 비밀을 유지하기가 더 쉽다. 주님은 두 세 명이 죄를 고백하기에 최적이 되도록 특별히 준비하셨다. 4. 유연성(마18:20): 15명 정도의 일반적인 소그룹 보다는 오히려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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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나 세 명의 일정을 조정하는 것이 더 쉽다. LTG는 어디서든 만날 수 있다. 5. 재생산(딤후2:2): 더 크고 더 복잡한 것보다는 더 작고 더 단순한 그룹을 재생산하는 것이 더 쉽다. 이것이 아마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셀 그룹이나 교회가 아니라 더 많은 제자를 삼으라고 명령하신 이유일 것이다(마28:18-20). 공동체 안에서 변혁된 제자들은 하나님나라의 기초단위이다. LTG 안에서 완수해야 할 과업은 단 3가지이다. 그들은... 1. 상호책임을 위해 죄를 고백한다. 그리스도인은 서로가 필요하다(히10:24-25). 서로를 지지함으로써 세워지는 관계가 우리에게 힘을 준다. LTG가 가장 먼저 함께 해야 할 일은 첨부된 카드에 목록화 되어 있는 ‘성품대화 질문들’을 서로 묻는 것이다. 다른 이야기하다가 시간을 낭비하기가 쉽기 때문에, 모임은 여기서 출발한다. 나머지 모임시간을 신성시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는 죄 고백으로 시작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 질문들은 직선적이다.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질문에 대답할 차례가 온다. 그룹 안에서 정직할 수 있도록 그룹은 안전한 장소가 되어야 한다. 죄의 고백은 매주 읽고 있는 하나님 말씀을 위해 사람들의 마음 밭을 준비시킨다. 2. 공동체적으로, 문맥을 따라, 반복해서 성경을 읽는다. 이 시스템의 강력함은 사람들의 삶에 하나님 말씀을 풀어놓는데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 말씀이 새로운 삶의 씨앗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셨다(눅8:11,15). 먼저 이 씨앗을 뿌리지 않고 열매 맺기 원하거나 변화된 삶을 기대한다면, 어리석은 짓이고 결국 실망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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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그룹은 그 주간에 읽을 성경 중에 한 권을 결정한다. 이렇게 하는 목적은 하나님 말씀이 풍성하길 바라는 내적인 열망이 생겨서, 성경 중에 더 긴 책을 원하게 되길 바라서이다. 한 사람이 매주 20-30장(chapter)을 읽는 것을 목표로 노력하는 것을 추천한다. 읽기훈련의 예는 다음과 같다. 즉, 한 그룹이 에베소서나 요나서 같이 좀 작은 책을 선택했다면, 한 주에 다섯 번 정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로마서나 고린도전서 같은 중간 크기의 책은 한 주에 두 번 정도 읽을 수 있다. 사도행전이나 잠언 같이 긴 책은 한 주에 그 책 전체를 한 번 읽을 수 있다. 그룹이 다음 주에 함께 모일 때, 성경읽기를 완수했는지를 서로 묻는다. 한 사람이라도 그 주 성경읽기를 마치지 못했다면, 그룹 전체가 다음 주에 다시 그 부분을 읽는다. 이 방법은 나쁘지 않다. 책 전체를 반복해서, 문맥을 따라, 공동체적으로 읽는 것은 반드시 풍성한 보상이 따를 것이다. 이 방법은 참여자들에게 매주 마다 완수될 것 같지 않은 더 긴 책을 읽으라고 권유하기 위한 충분한 근거가 된다. 30장을 동일한 시간에 일반적인 그룹에서 함께 모여서 읽는다면, 읽기를 마치고 또 다른 부분으로 넘어가는데 4주 정도 걸리곤 한다. 모두가 같은 주간에 읽기를 마쳤을 때, 함께 읽을 다음 책을 선택한다. 그룹이 다음 책을 함께 결정할 수도 있고, 혹은 책을 고를 사람을 매번 바꿀 수도 있다. 3. 전략적으로, 구체적으로, 지속적으로 영혼들을 위해 기도한다. 성경 책갈피 기능을 하는 LTG 카드는 한쪽(오른쪽)에 ‘성품대화 질문들’이 나와있고 반대쪽에 ‘전략적 기도의 초점’이 실려있다. 이 카드는 한 주 내내 성경을 읽을 때마다 카드에 이름을 적어둔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구체적으로 기도하는 것을 잊지 않도록 그룹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한 것이다. 148


LTG의 구성원 각자는 주님이 예수님이 필요하다고 그들 마음에 부어주신 두 세 사람을 찾는다. 그런 후 이 사람들의 이름을 모든 그룹 구성원들의 카드에 적는다. 그룹 안에 각 사람은 적어 둔 사람들을 위해 한 주 내내 기도한다. 적어둔 사람들 중에서 매일 한 사람씩 선택하여 기도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 과정을 돕기 위해 포함된 것이 전략적 기도 가이드이다. 그리스도를 추구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다음 LTG를 위한 완벽한 후보들이고, 그룹의 배가는 그룹 전체가 함께 즐거워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자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 성품대화 질문들 이 질문들은 매주 상호책임 그룹에서 서로 질문되어야 한다 (잠27:17). 그들은 정직함, 약함, 비밀보장, 은혜를 가치 있게 보는 안전한 환경에서 성품 대화와 죄의 고백을 하도록 서로 격려해야 한다. 1. 이번 주에 당신은 말과 행동, 둘 다 사용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함을 증거한 적이 있는가? 2. 한 주 동안 당신은 성적으로 유혹하는 것들에 노출되거나, 부적절한 성적인 생각을 마음에 품도록 허락한 적은 없는가? 3. 당신은 돈 거래에서 정직하지 못하거나,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몹시 탐낸 적은 없는가? 4. 이번 주에 당신에게 중요한 관계들 가운데서 당신이 존중하거나 이해하거나 용납한 적이 있는가? 5. 당신은 다른 사람들과 얼굴을 대면했든지, 아니면 그들의 뒤에서든지 말로 그들을 손상 입힌 적이 있는가? 6. 지난 한 주간 당신은 중독적인 행동에 빠진 적이 있는가? 구체적으로 설명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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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당신은 다른 사람을 향한 분노를 계속 가지고 있었던 적이 있는가? 8. 당신은 남몰래 다른 사람의 불행을 바랬던 적이 있는가? 9. (자신의 개인적인 책임 질문) 10. 당신은 성경읽기를 하고나서 하나님에게 들은 것이 있는가? 그것을 위해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11. 당신은 지금 나와 함께 나누는 동안 정말로 정직했는가? ‘그래서 서로 죄를 고백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치유를 받을 것이다.’(약5:16) 전략적 기도의 초점 그룹 안에서 각자는 구원을 위해 기도하라고 이끄시는 것처럼 느끼지는 두 세 사람을 찾는다. 그룹에서 알아낸 사람들의 이름을 모두 아래(각자 카드)에 적으라. 매주 잃어버린 영혼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 우리는 성경을 펼 때마다 이 영혼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것이 기억나도록, 이 카드를 매일 읽는 자신의 성경에 책갈피처럼 끼워 두는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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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님, 당신께서 당신 자신에게로 를 이끄시기를 기도합니다(요6:44). 2. 가 당신을 알기 위해 추구하기를 기도합니다 (행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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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가 하나님 말씀이 진실이라는 것을 믿고 귀 기울이기를 기도 합니다(살전2:13). 4. 주 하나님, 가 진리에 눈감아 버리게 만드는 사단을 제압해주시길 원합니다(고후4:4, 딤전2:25-26). 5. 성령님, 당신이 가 자신의 죄와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의 필요성을 깨닫게 하여 주시길 원합니다(요16:7-14). 6. 당신이 와 함께 복음을 나누게 될 누군가를 보내주시길 원합니다(마9:37-38). 7. 당신이 와 나눌 기회, 용기, 적절한 말들을 저나 에게 주시기를 또한 원합니다(골4:3-6). 8. 주님, 가 죄에서 돌이키고 그리스도를 따르게 되기를 기도합니다(행17:30-31, 살전1:9-10). 9. 주님, 가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신뢰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요1:12, 5:24). 10. 주님, 가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고 신앙이 성장하고 당신의 영광을 위한 열매를 맺게 되기를 기도합니다(롬10:9, 골2:6-7, 눅8:15). ‘형제들이여, 그들을 향한 내 마음의 열망과 내 기도하는 것은 그들이 구원받는 것이다(롬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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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개척운동 ‘열방을 보고 또 보라. 그리고 놀라고 또 놀랄지어다. 왜냐면 내가 너희가 사는 동안 너희가 들을지라도 믿지 않을 일을 행할 것이기 때문이다.’ - 하박국1:5

나레이션: 거대한 파도처럼 하나님은 역사하고 계시고, 은혜를 쏟아 부어주셔서 믿을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정부, 무신론자, 적대적인 종교의 방해와 심지어 지리적인 장애도 뛰어넘습니다. 자신의 세상을 끌어안으시려는 하나님의 강렬한 열정은 부인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아시아에서, 한 전략조정가는 단지 3개 교회와 85명의 신자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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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오늘날1 3,400개의 교회들과 340,000명의 신자들로 불어났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북아프리카에서, 한 아랍무슬림성직자는 최근에 주변지역에서 10,000 명 이상의 무슬림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되어 이슬람을 떠났다고 불평했습니다. 중국의 한 도시에서, 지난 4년 동안 20,000명 이상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고 그 결과 500개 이상의 새로운 교회가 생겼습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심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두 개의 침례교단은 1990년에 단지 235개의 교회밖에 없었지만 1,500개 이상의 침례교회와 33,000명 이상의 신자들로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북인도 종족들 가운데서는, 11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29개 교회가 4,300개 이상의 교회와 300,000 명 이상의 신자들로 성장했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전에 없이 역사하고 계시며, 전세계를 휩쓸고 수백만 명의 삶과 마음 속에 부어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기적적이고 다이나믹한 운동에 관한 보고서들이 미국 남침례교 해외선교부(IMB; International Mission Board)에 쏟아지고 있기 때문에, 선교학자들은 전세계적인 규모로 일어나고 있는 이 현상을 규정하고 설명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이 특별하고 독특한 운동, 다이나믹하게 쏟아져 나오는 은혜, 새로운 신자들과 새로운 교회들의 폭발적 증가를 가리켜 ‘교회개척운동’이라고 부릅니다. 데이비드 게리슨(IMB 전략조정가): IMB는 교회개척운동을 하나님의 것이라고 받아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선교사를 파송할 때, 우리는 선교사 개개인이 교회를 세우기 위한 전도를 하도록 촉진했습니다. 1

이 영 상 은 2 0 0 1 년 에 제 작 되 었 다 . 이 에 앞 서 , 데 이 비 드 게 리 슨 은 1 9 9 9 년 에 ‘교회개척운동’이라는 소책자를 발간했고, 2004년에 그 내용을 증보하여 ‘하나님의 교회개척 배가운동(요단, 2005)’이라는 이름으로 정식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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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발견한 것은 교회개척을 위해 우리가 최선의 노력을 다 해도 전세계 인구성장률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서 이 교회개척운동을 살펴보았을 때, 이 운동은 도시 전역에서, 혹은 한 종족 전체에서 빠르게 성장할 뿐만 아니라, 한 종족이나 도시, 국가의 인구성장률을 정말 앞지르고 있었습니다. 나레이션: ‘교회개척운동’이란 한 종족이나 한 계층사람들 안에서 교회들을 개척하는 토착교회들의 빠른 배가를 말합니다. (1) 이 운동은 빠릅니다. 교회 시작 때부터 급격하게 증가합니다. (2) 또한 이 운동은 증가가 아니라 배가 성장합니다. 교회 2개는 4개가 되고, 다시 8개가 되고, 16개가 되고, 이런 식으로 계속 배가합니다. 이런 성장은 선교사나 성직자보다는 교회멤버들이 새로운 교회 개척을 이끌 때만 가능합니다. (3) 그리고 이 운동은 토착적입니다. 선교사나 성직자가 처음 시작하게 만들 수는 있지만, 이 운동의 원동력과 가속도는 바로 그 종족 안에서부터 나옵니다. 빌 스미스(IMB 훈련촉진자): 우리는 다른 마을로 가기 위해 둘씩 짝을 지어 고향을 떠나는 사람들, 청년들, 젊은 부부들을 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문자 그대로 마음 속에 성령님과 손 안에 성경밖에 가지지 않고 새로운 소그룹을 시작하고 사람들을 믿음으로 이끌고 새로운 교회들을 시작합니다. 그들은 가정에서 모이고 훈련프로그램들을 조직하면 다시 떠납니다. 신나는 일입니다. 선교사가 되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나레이션: 오늘날 교회개척운동은 전세계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남미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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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는 교회개척운동의 현장입니다. 한때 자랑스럽고 강력한 왕조를 가지고 있던 캄보디아의 최근 역사는 대량학살과 전례 없는 고통을 인간에게 안겨 준 비극이었습니다. 베트남 전쟁의 희생자였던 캄보디아는 그 전쟁과 캄보디아를 완전한 파멸로 몰고 간 마오주의 독재자, 폴 포트를 경험했습니다. 1975년에서 1979년까지, 330만 명 이상의 캄보디아인들이 사라졌는데, 많은 사람들이 처형당하거나 질병과 굶주림에 희생되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선교사들은 추방당하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박해 받고 살해당했습니다. 1990년경 그리스도인 수는 660명 이하로 줄어든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캄보디아의 크메르인들 가운데 성령님을 부어주시기로 정하신 때가 찼습니다. 브루스 칼톤이라는 한 젊은 남침례교 전략조정가는 1991년에 언어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와 그의 아내 글로리아는 크메르 종족 가운데 사역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교회개척을 하는 대신에, 6명의 캄보디아 신자들을 함께 모아 멘토링하고 교육하고 그리스도께 자기 나라를 이끌고 싶은 비전이 스며들도록 만들었습니다. 1992년에 그들은 6개의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 교회들은 1993년에 10개로 성장했고, 1994년에 20개로 두 배가 되었습니다. 1995년에 43개가 되었고, 1996년에 78개, 1997년에 123개가 되었습니다. 첫 교회들을 개척한 후 9년이 지난 2000년이 되자, 침례교에 속한 220개 이상의 교회와 28,000명 이상의 신자가 생겨났습니다. 브루스 칼톤(IMB 전략조정가): 나는 사도행전 가운데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가서, 복음을 전파하고, 가정교회를 개척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박해에 직면하지만 표적들과 기적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교회는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곳들로 퍼져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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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습니다. ‘2001년이 되자, 캄보디아의 모든 신자 수는 100,000명이 되었다.’ 나레이션: 교회개척운동의 상황들과 세부사항들은 종족들마다 다양하지만, 전략가들은 모든 경우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10가지 특징을 발견했습니다. (1) 첫째, 기도입니다. (2) 둘째, 빈번한 복음 전하기입니다. (3) 또 하나의 중요 특징은 의도적인 교회개척입니다. (4) 또 하나는 교리, 교회정치, 삶을 위한 권위 있는 원리로서 성경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5) 교회개척운동에서, 외부인들보다 그 지역 신자들이 리더십과 책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6) 더욱이, 이런 리더들은 전문 성직자나 선교 전문가가 아니라 주로 평신도 리더들입니다. (7) 일곱 번째 특징은 이런 교회들은 흔히 10명에서 30명 사이의 회중을 가진 셀이나 가정교회 형태로 모인다는 것입니다. (8) 또 하나의 중요 특징은 교회들이 교회들을 개척하고 있는다는 점입니다. 선교사들과 다른 사람들이 처음 몇몇 교회들을 개척할 수 있지만, 곧 교회 멤버들 스스로가 이 역할을 담당하게 되고, 성장과정이 시작됩니다. (9) 교회개척운동에서, 성장은 항상 빠르고 거의 통제할 수 없습니다. 선교사들과 교회 리더들은 항상 교회개척운동의 빠른 성장과 변화가 유지되도록 하기 위해 애를 씁니다. (10) 마지막으로, 이 교회들은 예배, 전도와 외부봉사, 교육과 제자훈련, 사역과 교제라는 특징들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교회개척운동은 특별히 외부의 영향에 취약합니다. 선교사들은 인간에 의해 재현될 수 없는 운동에 아무것도 주입하지 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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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해서 무엇이든지 해야 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특히 새로운 교회건물과 재정적 지원 같은 것이 주어질 때, 이 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데이비드 게리슨(IMB 전략조정가): 그들이 자신들의 교회건물을 짓겠다고 결정한다면, 잘된 일이고 좋은 일입니다. 그들이 건물을 짓도록 내버려두어야 합니다. 놀라운 목적을 위해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이 그렇게 하기로 스스로 결정한 것이고, 선교사들이나 외부인들이 들어가서 ‘여러분은 건물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을 위한 건물을 우리가 지어주겠습니다.’라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잔 스미스(IMB 아시아 담당 훈련가): 우리는 교회를 시작하도록 그 지역 사람들을 촉진하고, 외부자원이 아니라 오로지 그 지역의 자원에만 의존해서 배가될 수 있는 방식으로 교회를 시작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나레이션: 하나님은 전세계에서 놀랍고 신기한 방식으로 일하고 계십니다. 교회개척운동은 마지막 때, 하나님의 엄청난 부어주심을 가장 극적이고 훌륭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IMB의 리더십은 이런 전세계적인 운동을 지원하고 촉진하기 위해서 모든 전략과 자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종족들 가운데 교회개척운동을 시작하고 육성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하는 믿음으로 잃어버린 영혼들이 나오도록 촉진할 것이다.’ 해외선교부(IMB), 남침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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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적인 교회개척운동에 대한 이런 관심은 선교사의 사역을 전통적인 형태에서 좀 더 직접적으로 이 운동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어떻게든 전환하게 만들었습니다. 선교사들은 보통 자신들의 역할이 한 운동을 촉진시키고 난 후에, 또 다른 곳에서 사역을 시작하기 위해 떠나는 것처럼 좀더 일시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하나님의 위대한 운동이 승승장구하는 현장에 참여할 수 있다는 기쁨이 있습니다. 데이비드 게리슨(IMB 전략조정가):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선교하는 것에 관해서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미사어구가 아니라, 그분의 사명이고, 온 세상으로 나아가라는 그분의 명령이라는 겸손한 인정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단순히 기뻐하고 감사하는 참여자들일뿐입니다. 브루스 칼톤(IMB 전략조정가): 다 아시다시피,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하나님의 영이 한 종족 전체에서 역사하시는 것을 보는 것과 빠르게 교회가 성장하는 것을 보는 것은 다르지 않습니다. 수잔 스미스(IMB 아시아 담당 훈련가): 이런 새로운 역할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 즉 그분을 알기 위해 나아오고 있거나 성장하고 있는 사람들의 수를 배가시키시는 것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됩니다. 빌 스미스(IMB 훈련촉진자): 하나님나라는 확장되고 있고, 우리는 단지 그것을 보고 어떻게든 그 일에 참여하고 그 일이 실현되도록 도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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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이란 무엇인가? Roger Thoman(가정교회개척자, Simple Church Journal)

‘우리가 알고 있는’ (틀에 갇힌) 교회에서 역동적이고 성령 충만한 운동으로 전환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또한 ‘우리가 알고 있는’ 리더십에서 뭔가 다른 리더십으로 전환해야만 할 것이다. 앨런 허쉬는 ‘모든’ 것은 재창조되어야만 한다고 말했다: ‘내가 보기에, 사례를 받는 전임 목사들은 매주일 마다 설교하고, 거의 모든 사역을 다 하며, 공동체 안에서 이러저러한 모든 사소한 일에서까지 어리석게도 지나치게 스트레스 받는 사람들이다. 내 생각에는,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그런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째든 우리의 새로운 교회 안에서 목사, 리더, 장로가 된다는 것이 어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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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인지를 마음에 다시 그려보았다. 내 생각에는, 우리가 더 이상 예전 목회패러다임을 유지할만한 여유가 없다. 우리는 그런 식으로 일할 수 없고, 우리가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길 바라는 일들이 발생하기를 기대할 수도 없다.’ 다행히도, 우리가 리더십을 재창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역동적인 사람들의 운동이었던 초대 교회는, 오늘날의 모델들과는 대조적이면서 신약성경에 분명히 제시된 역동적인 리더십으로부터 이미 도움 받았다. 늘 그렇듯이,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불행히도 우리가 리더십에 대해서 알고 있던 모든 것을 잊어야 한다. (내 생각에) 첫 번째 문제는 간단하게 이것이다: 신약적 리더십은 ‘통제(control)’와는 전혀 상관 없다. 이 점이 완전히 이해된 이후, 오직 그 때에만, 우리가 리더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파악해 나갈 수 있다. 오늘날 교회구조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리더십은 역할과 조직에 관련된 중앙집권적 의사결정과정, 건물, 재정을 담당해야 한다. 이것은 비즈니스 세계의 CEO역할과 같다. 이런 일들은 신약교회운동에서 했던 어떤 일들과도 거의 상관이 없다. 덧붙여서, 대개 ‘우리가 알고 있는’ 리더십은 한 계층(리더들)이 나머지 사람들(지체들이나 평신도)보다 더 위에 있는 상황을 전제한다. 고든 피는 교회 리더십의 역사적 발전과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역사적으로, 교회는 결국 일반 사람들(평신도)과 전문적인 사역자(성직자) 사이에 뚜렷한 구분을 발전시킨 모델로 전락한 것 같다. 로만 카톨릭교회에서는 그것을 더욱 뚜렷한 형태로 만들었고, 마찬가지로 거의 모든 개신교의 형태에서도 그 영향을 발견하게 된다. 그 결과, 흔히 모든 성직자는 사람들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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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 맞지 않는 규칙들과 기대를 가진 교회가 되었다. 또한 권력구조나 의사결정은 말할 것도 없이 ‘은사’와 ‘사역’까지 전문가들의 특별한 영역이 되어버린 교회가 되었다. 이 직업에 ‘임명’되는 것(나중에는 이 직업이 제공하는 아우라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과 이런 임명된 전문가가 되는 것은, 평신도가 그들에게 목회 사역을 하도록 사례를 지불하게 하고 결국 자신의 성경적 소명에서 스스로 발뺌하게 한다.’ 반면에, 신약 리더십은 종족 운동(people movement)이 시작되고, 증식되고, 급속도로 확장하고, 더 나아가 통제에서 벗어나 (성령님에 의해) 미친 듯이 속도를 내도록 지원하는 구조를 제공하는 종의 역할(예수님은 이에 관해 무엇인가를 말씀하지 않으셨는가?)이 분명했다. 신약의 리더들은 이사회에서 자리를 차지하지 않았다; 그들은 건물이나 교회전체의 재정을 통제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을 구타하려고 달려드는 사람들의 경우를 제외하면) 주목이나 감탄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그들의 역할은 촉진하고, 심고, 양육하고, 풀어놓아주고, 세우고, 섬기는 것이었지, 지배하고, 통제하고, 한 사람의 비전을 이루는 코스를 만들어내고, 모든 대답을 갖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위에 앉지 않고 오히려 아래 앉았다. 성령님은 아무튼 그리스도의 몸 전체를 통해 일하시고 이끄신다. 리더의 멘탈리티는 함께 여행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리더의 마음은 섬기는 것이 되어야 한다. 리더의 역할은 지원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수사법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정말로, 반드시 실행되어야만 한다. 나는 유진 피터슨이, ‘메시지 성경’에서, ‘가장 눈에 띠는 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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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광욕을 하면서 대중들의 아첨이라는 햇살에 우쭐대며,’ 상석에 앉으려고 했던 종교지도자에 관한 예수님의 메시지를 자세히 풀어 쓴 내용을 좋아한다: ‘여러분 모두는 단 한 분의 선생님을 모시고 있고, 여러분은 모두 급우들이다. 사람들을 여러분의 삶을 지배하는 전문가로 삼지 말라. 그래서 그들이 여러분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하도록 내버려 주지 말라. 하나님을 위해서 그런 권위를 남겨두라;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씀하시게 하라. 그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의 지위를 수행해서는 안 된다; 여러분은 오직 한 분 아버지를 모시고 있고, 그 분은 천국에 계신다. 그리고 사람들이 여러분을 자신들의 지배 아래 두고 조종하도록 두지 말라. 여러분과 그들을 위한 오직 한 분의 인생 인도자는 그리스도이시다. 여러분은 두드러지길 원하는가? 그렇다면 내려오라. 종이 되라. 여러분이 스스로를 부풀린다면, 결국 그 부풀린 바람이 여러분을 나가 떨어지게 만들 것이다.’ 우리 교회에서, 이런 방식이 실행되고 있는지를 우리가 확인하는 방법 중 하나는, 100% 모든 통제력이 100% 각 가정교회의 수중에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교회는 모든 지체들을 통해서 성령님의 의해 인도받는다. ‘목자들’은 촉진하고, 목양하고, 지원하고, 구비하고, 영적 지도를 한다. 이런 모든 활동들은 교회가 교회되도록 풀어놓아주고, 능력을 부여하기 위한 역할에 도움을 준다. 바로 이것이 영적이고 지원하는 사람의 역할이다. 더 이상의 역할은 필요 없다. 누구든지 어떤 도움을 베푼다면, 그 사람은, 그 상황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방식이 실행될 때, '교회의 종족운동'을 지원하는 구조로서 종된 리더십은 얼마나 중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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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교회 전체의 안녕(Well-being)과 전반적인 건강에 필수적이다. 또한 이 운동이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번성하고, 성장하는데, 가치 있는 지원구조를 제공한다. 크레이그 펠키-랜디스가 말한 것처럼: ‘리더십이 몇몇이나 혹은 수천의 헌신된 회중의 열광적인 관심을 받으려는 ‘단 한 사람의 에고 문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모델은 쓰레기통에 던져버려라. 하지만 리더십으로부터 달아나는 것도 마찬가지로 독이 될 수 있다.’ 리더십은 재정의되어야 하고, 다시 규정되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전부 내던져버려서는 안 된다. 우리는 목자, 심는 자, 정원사, 경작자, 풀어놓아주는 자, 주는 자, 구비시키는 자인 종된 리더들이 필요하다. 우리는 성경에서 주요한 종된 리더십 역할 2가지를 찾을 수 있다: 1. 장로나 목자는 목양하고, 제자 훈련하고, 전도와 재생산을 격려하고, 영적 지도를 하고, 더 깊은 필요에 조언한다. 예를 들면, 디모데와 디도는 목자들의 목자였다. 그들에게 썼던 편지들은 참된 목자들이 보강된 교회의 중요성을 반복해서 말한다. 2. 교 회개척가와 순회하는 4중사역자들(엡4:11)은 교회를 시작하고, 지원하고, 키운다. 그들은 교회를 운영하지 않았고, 교회를 지원했다. 그렇다, 정말로 영적인 지원팀은 교회가 고유한 성격대로 계속 모이고 진전되는 교회가 되도록 구비하고, 보강하고, 풀어놓아주고, 능력을 부여하고, 동기를 불러일으키고, 세우고, 불러내는 것을 돕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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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하다. 이런 지원하는 구조는 몸 속에 숨겨진 골격과 같다. 이것이 지탱하는 힘을 제공해줌으로써,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는 그 외의 모든 것들이 자리를 잡고 완전히 기능할 수 있다. 리더십은 하나님이 몸의 전반적인 건강을 위해서 그의 몸에 두신 것의 일부분이다. 숨겨두셨지만 매우 중요한 목적을 위해 섬긴다. 우리는 앞에서 언급한 ‘종으로서의 리더’ 역할을 위해, 재정적 지원을 하는 것은 (필수적인 것은 아니지만) 근거 있고 성경적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이런 결정은 전적으로 그 가정교회에서 해야 할 결정이다. 그들만으로도 교회이다. 그들은 진짜 교회가 되기 위해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다. 그들이 다른 선교사나 사역자를 지원하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그렇게 하라는 느낌을 받는다면, 종으로의 리더 역할을 하는 몇 사람을 지원할 수 있다. 하지만, ‘리더십의 지원하는 구조’는 열매를 소유하거나, 멤버를 조직하거나, 수확물 주변에 울타리를 치거나, 어떤 것의 주인 행세를 할 수 없다. 이런 형태의 지원은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비전, 그들의 부르심, 하나님이 주신 그들의 운명을 따라 달려가는 것을 보고 싶은 열망 외에는 모든 것을 내버리게 만든다. 이런 형태의 지원하는 구조는 하나의 왕국이나, 사업이나, 사역을 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단지 ‘다른 사람들의 사역들’과 ‘교회 자체’를 지원하는 종의 사역을 할 뿐이다. 리더십은 다루기 힘들지만, 필요하고, 반드시 제자리를 찾아야만 한다! 이 주제는 일반적으로 많은 대답들을 이끌어낸다. 당신의 대답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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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뒤집힌 리더십 닐 콜(Church Multiplication Assoc.): 세상의 리더십 모델방식과 예수님이 교회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씀하신 리더십 방식은 매우 대조적입니다. 그분은 ‘세상에서 너희가 다른 사람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지체 높은 사람들을 알고 있지만, 너희 가운데서는 그렇지 않다. 제일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모든 사람의 종이 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이크 왓슨(네트워크 리더): 우리가 세상적인 지위를 얻어야만, 다른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가진 지위는 섬기는 자유를 가져다 줍니다. 나레이션: 사람들은 그것을 ‘거꾸로 뒤집힌 하나님나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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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릅니다. 처음이 마지막이 될 것이고, 어리석음이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만듭니다. 시각장애인들이 보고, 보는 자들이 시각장애인이 됩니다. 예수님의 삶과 신약의 기록을 살펴보면, 거꾸로 뒤집힌 리더십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리더십을 완전히 뒤집어 생각하게 하셨고, 그 과정을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그분은 이 세상에서 본적 없는 가장 큰 혁명을 시작하셨습니다. 토니 데일(House2House): 우리는 자신의 지위에 기초한 위로부터의 리더십과 자신의 지위에서 나온 권위 개념에 너무 익숙합니다. 예수님의 특별한 점들 중 하나는 그분이 아무 지위도 갖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정말 어떤 신분이나 사회적 지위도 갖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도, 모든 사람들이 그런 권위를 가지고 말한 사람을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것처럼 그분을 찾았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보여주신 리더십은 완전히 다른 유형이었습니다. 나레이션: 지난 몇 십 년 동안, 교회의 지형에 대전환이 일어났습니다. 교회는 ‘모임과 건물’로부터 ‘삶의 모든 면에서 교회되기’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울타리 바깥 편에 있습니다. 토니 데일(House2House): 우리는 모임에서 예수님이 역사하시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솔직히 예수님의 삶이나 그분이 제자들과 함께 사셨던 방식을 전혀 볼 수 없고, 우리가 아주 일반적으로 교회라고 부르는 모습을 볼 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리더십의 본질’은 매일매일 부딪히게 되는 상황들 속에서 그분의 삶과 인격이 가지고 있던 영향력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더욱이 세상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이끌어줄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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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레이션: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의지해서, 다르게, 역설적으로 이끄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이 이끄신 방식을 배운다면, 우리가 주변 세상에 더 많은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까요? 신약의 리더십 원리에 관한 더 깊은 이해가 우리가 사역하는 사람들을 더 잘 섬기도록 도울 수 있을까요? 비록, 신학자들은 성경에 나오는 리더십과 관련된 가르침들과 용어들에 관한 토론을 격렬하게 진행했을지 모르지만, 성경은 매우 단순하게 접근합니다.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메시지의 핵심을 살펴본다면, 우리는 예수님이 이끄신 방식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지 모릅니다. 데이비드 언더우드(네트워크 리더): 나는 단순한 교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리더십에 대해 매도하고 거부한다는 것을 압니다. 아마 그들이 과거에 이기적인 리더십을 경험한 탓일 것입니다. 돈 다 비 스 (House2Harvest): 그 들 은 리 더 십 을 갖 는 것 을 회피해왔습니다. 그래서 단순한 교회라는 ‘그리스도의 몸’의 성숙과 성장이 방해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존 화이트(LK10.com): 나는 교회를 술 취한 마부로 비유한 마틴 루터의 인용문을 좋아합니다. 이 예언자는 한쪽으로 올라탔다가 반대편으로 떨어집니다. 내 생각엔, 처음에는 흔히 리더십이 불평하는 자들과 전통교회에서 불평하는 행동들을 억압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지금은 우리가 반대편 극단으로 가려고 합니다. 우리는 어떤 리더도 가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알다시피, 우리는 모두 함께 모여서 예수님께 귀 기울이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려고만 합니다. 내가 보기에,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하기를 애쓰면서, 다른 하나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부록16 167


데이비드 언더우드(네트워크 리더): 좋은 리더십은 그리스도의 몸에 정말 놀라운 은사(선물)입니다. 실제, 신약성경은 리더십을 은사로 묘사합니다. 토마스 윈(단순한교회 리더): 그래서 리더십이 정말 필요합니다. 사람들을 위에서 끌어당기는 대신에, 당신은 그들이 자신의 운명(부르심)을 향하도록 아래에서 밀어주어야 합니다. 토니 데일(House2House): 로마서 12장은 ‘각자 다른 은사들을 받았기 때문에 그것들을 사용하자.’(롬12:6)고 합니다. 거기 나오는 은사목록 중에 하나가 리더십입니다. 거기서 ‘당신이 이끌려면, 근면하게(부지런하게) 이끌라.’(롬12:8)고 말합니다. 나레이션: ‘근면하게 이끌라.’ 미국 전역과 전세계의 그리스도인 리더들이 근면하게 이끌려고 한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들은 탁월함을 가지고 잘 이끌고 싶어합니다. 닐 콜(Church Multiplication Assoc.): 여기서 우리가 부딪히게 되는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사실 수 세기 동안, 아니 천년 동안, 교회는 권위구조적이고, 직위의존적이고, 하향식의 리더십 개념을 따라 운영되어왔습니다. 스티브 모세스(단순한교회 리더): 이때 리더들은 전문가이고,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여겨졌습니다. 그들은 또한 공식적인 훈련을 마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마치 다른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한 방식으로 주님께 직접 듣는 것만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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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바이어리(House2House): 알다시피, 하향식 리더십은 내가 한 리더의 견해를 배우는 식입니다. 즉 나는 그에게 귀 기울이고 그는 나에게 모든 것을 교육하기로 되어있습니다. 닐 콜(Church Multiplication Assoc.): 그런데 그것이 우리가 아는 전부이기 때문에, 우리는 리더십을 그런 식으로 보는 관점을 가지고 신약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바울이 장로에 관해서 이야기하거나 그 자격요건을 나열하는 것을 볼 때, 그것들이 교회조직에서 통제와 관리하는 자리에 오를 사람을 결정하는 체크리스트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는 신약에 그런 것이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관점들을 가지고 신약성경을 읽고 있는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이런 관점을 벗어버릴 때, 신약성경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살아날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당신은 교회를 관리가 필요하거나, 심지어 당신이 받은 비전으로 이끌어야 할 조직이나 상황으로 보지 않게 됩니다. 드디어 당신은 교회를 영적인 가족으로 보게 됩니다.

종으로서의 리더십 나레이션: 정반대로 생각했던 수천 년의 시간에도 불구하고, 리더가 되는 것은 계급을 가진 직위를 얻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직위에 관한 것이 아니라면, 무엇을 말할까요? 신약성경이 장로와 집사에 관해 다루기 전에, 바울이 사도와 선지자에 관해 기록하기 전에, 이와 관련된 어떤 가르침도 있기 전에, 예수님이 그 원칙을 자신의 삶으로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모든 사람의 종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부록16 169


토마스 윈(단순한교회 리더): 주님은 나를 이렇게 이끄셨습니다. 나는 자신의 삶을 헌신한 사람들의 섬김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나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의 부르심을 이루기 위해 당신은 어떤 역할이든 감당할 수 있겠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섬기는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리더가 자신을 죽이고 모든 사람을 섬길 때, 그 일은 리더에게 휠씬 더 많은 유익을 가져왔습니다. 또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발 아래서 그런 식으로 자신들을 이끄는 리더를 가질 때, 그들에게도 너무나 많은 유익이 주어졌습니다. 로리 바이어리(House2House): 섬기고 구비시키고, 또한 내가 비전을 가지고 하향식으로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사람들에게 비전을 주실 때면 언제든지 그들을 내어놓는 것이 리더십입니다. 당신이 이런 식으로 섬기면, 당연히 이런 모습이 나타날 것입니다. 폴 바이어리(House2House): 종으로서의 리더십은 힘듭니다. 당신이 천 명이나 백 명 되는 사람들에게 종으로서의 리더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지나친 헌신이고 자신을 고갈시키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종으로서의 리더가 된다는 것은 마치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것과 같습니다. 당신은 단지 몇 명 정도에게만 그렇게 할 수 있고, 그렇게 해야 잘 할 수 있습니다. 나레이션: 종으로의 리더십은 다른 사람들의 필요, 꿈, 비전에 초점을 맞춘다는 의미입니다. 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당신의 개인적인 야망을 버리십시오. 대신에 당신이 섬기는 사람들에게 열정적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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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티 드라이버(지역 리더): 나는 자기 자신보다 서로서로를 더 좋아하고, 기꺼이 자신의 이름이나 얼굴을 내세우지 않으려고 하는 리더십 혁명을 보고 싶습니다. 부모의 예에서 보면, 부모는 자기 자녀들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기꺼이 많은 것을 희생해서 자녀들이 자신들보다 더 훌륭하고, 더 성공하고, 인생에서 더 많은 것을 성취하길 바랍니다. 조지 패터슨(교회개척자): 그리고 리더는 자신이 어떻게 이끌지에 관해 염려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에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려고 이끄는가?’ 이런 생각도 안 합니다. 그래요. 전혀 하지 않아요. 그들은 끊임없이 이런 질문을 합니다. ‘맞아, 하나님은 죠가 무엇을 하길 원하실까? 하나님은 메리가 무엇을 하길 원하실까? 그리고 이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새로운 리더들, 그들도 여러 가지 필요들 때문에 나를 찾고 있어. 하나님은 그들이 무엇을 하길 원하실까?’ 나레이션: 그래서 리더십은, 상황에 관계없이, 나 외에 다른 사람들에 관한 것입니다. 리더십은 영향력이라는 말입니다. 영향력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힘입니다. 예수님이 자기 제자들의 발을 씻으실 때, 그분의 영향력은 심오해졌습니다. 발을 씻어주는 리더십은 일반적인 리더십패턴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분은 일반적인 리더를 찾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너희는 이방인들의 통치자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이방인들 위에 군림하고, 그들의 고위관리들은 그들에게 권력을 행사한다는 것을 안다. 너희는 그렇게 하지 말라. 대신에 너희 중에 위대해지고 싶은 사람은 누구든지 반드시 너희 종이 되어야 하고, 서열 1위가 되고 싶은 사람은 누구든지 반드시 모든 사람들의 노예가 되어야 한다.’(막10:4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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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리더십 토니 데일(House2House): 신약성경은 분명히 사람들이 쉽게 리더십을 떠올릴 수 있는 용어들을 사용합니다. 나는 이 때문에 여러 가지 면에서 문제가 생긴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성경은 사도와 선지자, 장로와 집사라는 용어들을 사용합니다. 우리가 직분에 기초하여 리더십을 사용해왔기 때문에, 우리는 자동적으로 이런 용어들을 직분에 수반되는 ‘책임에 관한 묘사’라기보다, ‘직분’ 자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나는 신약의 리더십이 직분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지 않습니다. 이런 용어들은 누군가가 하고 있는 일을 설명할 뿐입니다. 나레이션: 오랜 전통과 세상 리더십의 영향이 직분에서 역할을 분리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무엇이든 확실히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우리는 무엇이든 정확하게 이해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리더십에 관한 성경적인 가르침은 흑백논리처럼 분명하지 않습니다. 토니 데일(House2House): 기독교계에서 때때로 성경이 분명히 언급하지 않은 부분을 명확히 하려고 애쓰고, 지나치게 교리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내가 볼 때, 그 전형적인 예가 ‘신약에서 사용된 용어들’과 ‘그것들이 기독교 리더십에 어떻게 적용되었는지’에 관한 내용들입니다. 비록 기독교계가 이런 말씀들 중 일부를 가지고 아주 거대한 신학을 만들어냈을지라도, 당신은 이것들을 살펴보고, 가장 먼저 성경이 이에 관해서 많은 것을 언급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관대 합시다. 이 용어들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관해 이해하는 ‘다른 방식들’에 열린 마음을 가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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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레이션: 성경이 모든 대답을 상세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히 여러 본문에서 기독교 리더십에 관해 묘사합니다. 우리는 교회가 모임, 그 이상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것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됩니다. 친구들이나 동료들의 모임, 혹은 수 만 명의 대학생들이 모인 대형집회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각각의 상황에 따라 리더십은 다르게 나타납니다. 단순한 교회 상황과 관련해서 눈에 띄는 비유가 하나 있습니다. 존 화이트(LK10.com): ‘교회는 가족이다.’ 우리가 이 말을 정말 진지하게 받아드린다면, 이 단순한 한마디가 모든 것을 다 설명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것은 두 번째 공식으로 이어집니다. ‘리더는 부모다.’ 우리는 최고의 비유가 영적 엄마와 아빠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리더십 관점에서 생각해야 할, 거의 모든 것은 이 비유에서 나올 수 있습니다. 펠리서티 데일(House2House): 그 역할은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삶을 형성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배역은 부모입니다. 그룹 안에서 부모역할을 하는 것은 세상에서 생각하는 것과 같은 형식적인 리더십 역할이기보다, 훨씬 더 촉진시키는 역할입니다. 나레이션: 부모역할을 하는 것은 계속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가족은 그들이 함께 있지 않을 때도 여전히 가족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는 신자들이 모임에 있지 않을 때도 여전히 교회입니다. 부모와 같이 리더의 역할은 자녀들이 성숙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존 화이트(LK10.com): 당신의 자녀들이 작고 어렸을 때, 그들은 더 많은 가르침, 더 많은 투자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하루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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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커가면서, 분명히 당신은 그들에게 점점 말하기를 줄이고, 묻기를 더 많이 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16-18세쯤 되었을 때, 스스로 무언가를 충분히 생각하는 존재가 됩니다. 이처럼 부모역할을 하는 리더십은 변화되어가야만 합니다. 가정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초기에 리더는 많은 것을 투자하고 인도해 주어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스스로 점점 더 많은 책임을 지기 때문에, 할 일이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케이티 드라이버(지역 리더): 당신은 이 과정을 통해서 배우게 됩니다. 결국 당신은 하나님께 휠씬 더 의지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모든 것을 알지 못합니다. 당신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원리들을 10가지도 가지고 있지도 못합니다. 나레이션: 단순한 교회가 함께 모일 때, 리더의 역할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교회 리더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다를지 모릅니다. 조지 패터슨(교회개척자): 단순한 교회에서 좋은 리더는 혼자 다 이야기하려는 사람이 아닙니다. 성경은 그것을 금하면서, ‘서로 서로’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서로 가르치라. 서로 권면하라.’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하지만 어째든 일반적인 전통교회의 관점에서는 말을 잘하고 표현력이 있고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더 좋은 교사를 원합니다. 이런 교사는 ‘서로 서로’의 역동성을 무력화시키기 때문에, 단순한 교회를 죽어가게 만들 것입니다. 당신은 이런 교사를 원하지 말고, 차라리 안 좋은 교사를 원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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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이스트번(The Well): 좋은 리더는 새로운 방식을 택합니다. 그는 앞으로 나와서 설교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모임을 지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성령님께 귀를 기울이고, 모임 내내 기도하면서, 섬기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모임을 마칠 때 끝나지 않습니다. 나레이션: 단순한 교회 안에서 리더는 한 가정의 부모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이 리더가 자신이 섬기는 교회 하나를 넘어선 시각을 가질 때,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조지 패터슨(교회개척자): 좋은 리더는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를 꼭 알아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단순한 교회 하나가 ‘신약성경이 요구하는 모든 사역을 하기 위한 은사들’을 전부 갖기에는 너무 작습니다. 나는 유일하게 좋은 교회 하나가 있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모든 사역을 하라는 명령에 순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다른 여러 교회들과 긴밀하게 네트워킹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도들의 교회가 사용했던 방식이기도 합니다. 단순한 교회들이 서로 긴밀하게 네트워킹 하지 않으면, 아주 빠르게 내향적으로, 율법주의적으로 무기력하게 바뀌고 재생산도 멈추게 됩니다. 토니 데일(House2House): 우리는 단순한 교회들이 서로 네트워킹 하고, 하나님이 더 큰 확대가족 안에 주신 서로 다른 은사들을 나누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나레이션: 신약성경은 분명히 교회를 더 넓은 지역으로 표현합니다. 당신은 교회를 한 도시, 때때로 한 지역 이름으로 부르는 것을 볼 것입니다. 이런 네트워크는 개인이 아니라 팀이 이끕니다. 하나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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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신자들이 사역하도록 구비시키는 역할을 하는 ‘서로 다른 은사를 가진 리더들’을 적절한 자리에 두십니다. 닐 콜(Church Multiplication Assoc.): 더 넓은 지역적 영향력을 가진 리더십의 형태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사도, 선지자, 전도자, 목자, 교사입니다. 그들은 각자 독특한 특성과 은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 전체의 목적은 다른 사람들에게 사역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사역할 수 있도록 구비시키는 것입니다. 이 의미를 깊이 생각해본다면, 나는 가르치는 은사가 교회에 병목현상을 일으킨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정말 똑똑하고 좋은 교사가 있다면 모든 사람이 감동을 받습니다. 모두가 그가 말하는 것을 듣길 원합니다. 그들은 참석해서, 단지 그 사람에게 듣기만 할 것입니다. 아무도 ‘이봐요. 나도 그런 일을 할 수 있어요.’라는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이 때문에 재생산이 멈춥니다. 내가 다섯 직분의 역할이 사역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까지 재생산이 멈추었습니다. 이 다섯 역할은 사도, 선지자, 전도자, 목자, 교사입니다. 그들은 사역을 위해 부르심 받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임무는 하나님의 백성이 그분의 일을 하도록 구비시키는 것이다.’ - 엡4:12 그들은 성도들이 사역하도록 구비시키기 위해 부르심 받았습니다. 전도자에 관해서 생각해 본다면, 그는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부르심 받은 것이 아닙니다. 전도자는 성도들이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나아가도록 구비시키기 위해 부르심 받았습니다. 또한 교사에 관해서 생각해 봅시다. 교사는 성도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아니라 성도들이 가르치도록 구비시키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 다섯 역할은 이 세상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그리스도의 한 부분을 재현합니다. 176


나레이션: 사도, 선지자, 전도자, 목자, 교사는 한 지역의 이곳 저곳을 자주 여행하면서 수 많은 단순한 교회의 신자들을 구비시키고 돕습니다. 상황에 따라, 그들의 영향력은 아주 지역적이거나, 아니면 굉장히 광범위 할 수 있습니다. 토니 데일(House2House): 아시다시피, 대학생선교회(CCC)같은 사역과 그것을 시작한 빌 브라이트 같은 사람은 가정교회 환경이 결코 담아낼 수 없는 전도자의 전형적인 예입니다. 하지만 그의 은사는 가정교회를 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나레이션: 주님은 놀라운 방식으로 이런 은사들을 사용하십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지위나 직분이 아닙니다. 닐 콜(Church Multiplication Assoc.): 5중 사역(사도, 선지자, 전도자, 목자, 교사)과 관련해서, 나는 사람들에게 그 명칭들을 사용하자고 말하는 것을 아주 꺼립니다. 마이크 왓슨(네트워크 리더): 우리의 권위는 직함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의 관계로부터 흘러나옵니다.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아들을 통해서, 권위가 주어진 모든 사람들에게, 권위가 흘러내려옵니다. 그리고 그분 안에서 우리는 그것을 나눕니다. 그래서 우리는 직함이 필요하지 않고, 필요하지 않아야 합니다. 닐 콜(Church Multiplication Assoc.): 우리가 이런 다양한 은사에 관한 성경구절을 읽을 때조차, 우리는 위계구조의 관점에서 그것을 봅니다. 그 위계구조가 괴물을 만들어냈습니다. 나는 우리가 교회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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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리더십의 위계구조를 제거할 때, 일어날 일들을 전혀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수 세기 동안 우리를 괴롭혀 왔던 문제들이 사라집니다. 갑자기 직분 상의 권위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남용하던 권력, 평범한 그리스도인들을 소외시키는 일, 직위가 보장하던 것들을 내려놓게 됩니다. 여성에게 남자들처럼 사역할 수 있는 동등한 권한이 주어집니다. 왜냐면 그것은 직분에 관한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누구인지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레이션: 그래서 리더십은 작은 가정교회에서부터 전국적인 사역에 이르기까지, 교회의 모든 활동에서 나타납니다. 당신이 교회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마십시오. 당신이 가는 곳에 교회가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리더십을 은사로 주셨다면, 당신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지 ‘근면하게’ 이끄십시오. 토니 데일(House2House):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열정적이 될 때, 그분께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리고 싶어집니다. 자기 자신과 자신의 영향력, 자신의 전부를 맡기는 길을 진심으로 찾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그것들을 쏟아 부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소위 말하는 ‘기독교 리더십이나 기독교 사역’이라고 느낀다면, 그런 생각이 실제로는 신앙을 약화시킵니다. 왜냐면 모든 사람의 열정이 기독교 사역이라는 전형적인 방식으로만 표현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어떤 사람은 간호사가 되려는 마음이 간절해지면서 예수님께 열정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사람들을 실제로 섬길 수 있는 곳에서 그 열정을 표현할 수 있는 길을 찾습니다. 왜냐면 간호사가 되고 싶은 사람은 ‘내가 예수님을 정말로 따르고 있다면, 내가 하는 일이 곧 목양적 리더십에 참여하는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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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점을 완전히 놓치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이런 은사들, 하나님이 주셨고 우리 안에 두신 것들을 가지고,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표현하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 일들 가운데 열정적이 되게 하십니다. 나레이션: 사람들이 이 점을 진지하게 받아드리고, 모두가 전문적인 훈련이나 공식적인 직분을 기대하지 않고 자신의 은사를 따라 리더십을 발휘할 때, 세상은 변혁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기꺼이 통제권을 내놓으려고 해야 합니다. 성령님은 믿을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사람들이 계속 바른 길을 가도록 만드십니다. 켄 이스트번(The Well): 내가 들은 많은 비판들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결국 모임이 침체되거나, 아니면 내용이 이단적이 되어갈 거야.’ 데이비드 게리슨(Church Planting Movements): 우리는 이런 교회개척운동에서 많은 이단들을 보아왔습니다. 이단들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흔히 이단들은 꾸며내기 위해서, 당신이 전임사역자로 다른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 교회할 때 사용한 시간보다, 휠씬 더 많은 노력을 합니다. 조지 패터슨(교회개척자): 리더는 단순한 교회를 위한 적절한 교육을 받되, 무언가에 열중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받아야 합니다. 40년 이상의 경험으로 볼 때, 나는 절대적인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멘토링’은 예수님과 사도 바울이 사용했던 방법입니다. 멘토링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이것은 폭발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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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산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입니다. 성경에서, 역사를 통해, 오늘날 전세계 곳곳에서, 수 없이 입증되고 입증되었습니다. 닐 콜(Church Multiplication Assoc.): 어째든 전세계적으로,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통제하고 경영할 수 있는 리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능력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만든다면, 예수님은 말씀하셔야만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알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나라가 실제로 이 땅을 변혁시키실 것입니다. 그 의미를 헤아리기가 무척 어렵지만, 이 말은 그리스도는 다스리고 계시고 우리는 모두 그분에게 듣고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이 세상이 어떻게 보이십니까? 결국 우리가 나아가야만 할 곳입니다. 이 곳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권위적이고 직위중심적인 하향식 리더십에서 탈피해야 합니다. 왜냐면 그런 리더십은 몸에서 머리를 잘라내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 수 있게 만들고, 그들이 용기 있게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도록 능력을 부여하는 리더들’이 필요합니다. 만일 우리가 그런 사람들을 만들고, 그런 사람들을 내놓는다면, 이 세상이 하나님나라에 의해 변혁되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면 예수님이 다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왕께서 담당하실 것입니다. ‘이제 너희 주님이요 선생인 내가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 또한 서로의 발을 씻어주라.’ - 요한복음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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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Roger Thoman(가정교회개척자, Simple Church Journal)

가정교회를 시작할 때, 처음으로 묻는 질문은 대개 이것이다: ‘어린이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물론 그 속뜻은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돌보는 공식적인 어린이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어린이들을 잃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 전제는 전통교회에서 제공하는 ‘주일학교’ 프로그램이 영적인 어린이를 만드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사실은, 이런 프로그램으로 세워진 어린이들 대부분이 (오래 남아있게 된다면) 고등학교 졸업 후 청년 그룹이 되겠지만, 정기적인 교회 참석자는 되지 못한다. 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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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전혀 가치 없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바라던 ‘결과들’을 얻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나는 가정교회 안에서 훨씬 더 좋은 결과를 얻을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다. 왜 그런가? 첫째, 어린이들은 예배 가운데 자신의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가지면서, 자신의 가족 구성원들이 영적인 활동에 관여하는 것을 볼 것이다. 댄 트로터는 이렇게 적었다: ‘예수님은 결코 이렇게 말하신 적이 없다: ‘어린 아이들이 탁아시설 안에 갇혀 괴로움을 겪게 하라.’ 당신은 예수님이 산상 설교를 하시는 동안 어린이들이 어린이 교회로 끌려가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가? 교회들은 가정에 있었고, 가족들도 가정에서 살았고, 아이들은 가족들과 살았다. 그래서 아이들은 가정에서 교회를 만났다. 그리고 성경이 어린이와 교회에 대해서 침묵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 가지는 장담할 수 있다: 그 곳에 주일학교나 어린이 교회라는 것은 없었다.’ 어린이들은 자신의 영적인 삶에 모델을 보여주는 가족들 안에 있어야 한다. 이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에 관한 1000가지 강의보다 더 중요하다. ‘셋째 날’ 네트워크1의 글들 중이 이런 것이 있다: ‘그들(어린이들)이 믿음을 가진 부모를 보았다면, 그들은 믿음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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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리 구델이 이끄는 가정교회 네트워크의 명칭이다.


갖는다. 그들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을 찬양하는 부모를 보았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창조를 찬양한다. 그들이 자신의 필요를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정말로 믿는 부모를 보았다면, 그들은 하나님이 공급하신다는 것을 믿는다.’ 가정교회는, 어린이들이 ‘진짜’ 교회 생활 속에 적응하게 될 때, 이런 경험들을 할 수 있는 휠씬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한다. 그들은 자신의 부모들이 예배, 교제, 성찬, 말씀연구에 구경꾼이 아니라 참여자로서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볼 것이다. 둘째, 가정교회에서, 어린이들은 가정이라는 환경에서 영적으로 양육된다는 것의 의미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 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신앙은 프로그램의 질이 아니라 관계의 질에 달렸다. 이 점을 깨닫는 것이 필수적이다. 웨인 제이콥슨이 이 점에 대해서 매우 잘 이야기했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교회활동이 필요하지 않을까? 내 추측엔,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다른 신자들과 긴밀한 교제를 통해서 하나님의 삶 속으로 융화되어가는 것이다. 주일학교에서 퍼펫 인형들과 수준 높은 엔터테인먼트와 함께 자란 아이들 중에 92%가 자신의 부모 집을 떠났을 때 ‘교회’도 떠났다. 우리 아이들을 윤리와 규칙으로 채우기 전에 우리는 하나님의 삶을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실제 보여주어야 한다. 사회학자들조차, 한 아이가 사회에서 잘 성장하게 될는지를 결정하는 첫 번째 요인이 아이가 가족이 아닌 어른들과 깊이 있고 개인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 없는지에 달렸다고 말한다. 주일학교로는 그런 역할을 할 수 없다. 나는 가족처럼 함께 하나님의 삶을 나누며 20년을 보낸 후 아이들이 성인으로 자랄 때까지, 한 아이도 신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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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지 않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호주의 한 공동체를 안다. 내가 여기서 지나치게 선을 긋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우리 아이들이 멋진 어린이 프로그램의 호각과 벨 소리보다 신자들 가운데서 참된 교제를 경험하는 것이 휠씬 더 낫다고 본다.’ 당신이 웨인이 쓴 것, 즉 ‘우리 아이들이 멋진 어린이 프로그램의 호각과 벨 소리보다 신자들 가운데서 참된 교제를 경험하는 것이 휠씬 더 낫다.’는 말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믿지 않는다면, 가정교회에서 결코 어린이들과 함께 생존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여기에다가 한 가지 강조점을 더 추가한다: ‘어린이들이 어린이 프로그램에 억지로 끌려 나오기 보다는 영적인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자신의 부모들 주변에 있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이제, 이런 특징들이 납득되었다면, ‘아이들과 함께 가정교회 하기’라는 실제적인 이슈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은 훨씬 쉽고 덜 두려운 일이 된다. 물론, 그 일이 단순하지는 않다. 사실, 때때로 혼란스럽다. 우리 경험상으로 볼 때, 교회 안에서 지속적인 논의가 필요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 우리 가정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모이는 것에 대해 부모들 사이에 지속적인 토의가 필요하다. 교회에서 이 점은 항상 진리이다. 우리가 성인들의 영적인 필요를 채우면서 동일하게 아이들의 필요도 채우려고 한다면 지속적이고 빈번한 토론이 필요하다. 우리는 가정교회 숫자만큼이나 어린이들과 함께 모이는 방법이 많고 다양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좀 더 안내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어린이들과 함께 모이기 위한 ‘7가지 실제적인 제안들’을 제공하는 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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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터의 글 전체를 읽어보라고 하고 싶다.2 또한 ‘www.home-church.org/threads/kids.txt’에는 어린이들과의 경험을 나누어 달라고 부탁 받은 가정교회들로부터 온 많은 답변들이 있다. 당신이 이 문제의 실제적인 면을 정말 알길 원한다면, 이 답변들을 반드시 읽어라. 무엇보다 아이들을 과소평가하지 말라. 그들도 교회의 일부다; 그들도 성인들과 동일한 성령님으로 충만하다. 그들도 가정교회 환경에 적응할 수 있고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참여할 수 있다. ‘셋째 날’ 네트워크의 글에 이런 말이 있다: ‘아이들이 가족의 일부, 그룹의 일부로 보이려면, 그들도 필연적으로 조정기간을 거쳐야 한다. 어린이들은 적응할 것이다. 성인들도 자신의 교회 생활에 아이들을 포함하는 관점을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 부모들은 자기 아이들이 적응하도록 도와야 하고, 전체 그룹도 아이들을 향한 자신들의 태도를 보여주어야 한다. 아이들로부터 너무나 놀라운 것들을 듣고 보기 위해 준비하라.’ 어린이들과 함께 일하는 것에 관한 마지막 부분은 쓰지 않았다. 그것은 기도해야 하고, 창의성을 가져야 하고, 실험해야 하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영역이다. 하지만 이 일을 하는데 두려워하지 말라. 가정교회는 그 본성상, 아마 다른 어떤 환경보다 더 많은 것들을 어린이들에게 제공할 것이다. 당신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아이디어들을 가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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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티클은‘부록18 가정교회에서 어린이들의 필요 채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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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18

가정교회에서 어린이들의 필요 채우기 Dan Trotter(가정교회개척가, NTRF)

초대교회는 어린이들을 어떻게 가르쳤는가? 그때 주일학교, 어린이 교회, 유아실을 가지고 있었는가? 버지니아의 가정교회 컨퍼런스에서, 나는 패널 토의가 막 시작하기 전에, 한 친구에게 첫 질문은 틀림없이 ‘어린이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나요?’가 될 것이라고 속삭였다. 실제로 그랬다. 내가 보기에, 그것이 가정교회를 고려하는 이들이 질문하는 넘버원 질문이다. 그것은 엄청난 장애물이 될 수 있지만 항상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이 글은 세가지 점을 검토할 것이다: 첫째, 어린이들과 교회에 관해 전통교회와 가정교회가 가지고 있는 서로 다른 철학이나 사고방식; 둘째, 일어나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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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적인 이슈; 셋째, 가정에서 하는 교회의 어린이들에게 주어지는 유익 등이다. 예전에 내가 쓴 글에서, 이런 질문을 했다: ‘당신은 어린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그 글 초안에 ‘당신은 어린이들을 데리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고 썼던 것을 말하기가 부끄러웠다. 나는 많은 전통교회의 철학과 사고방식에 무의식적으로 굴복해왔다: ‘아이들은 문젯거리다. 중요한 유급전문가들이 넥타이를 하고 가운이나 예복을 걸친 채 중요한 설교를 하고, 진지하고 조용하고 거룩한 청중들이 교회 장의자에 항상 죽은 듯이 앉아 있는 신성한 예배를 방해한다.’ 그래서 ‘그 예배에서 우리가 중요한 것들을 하고 있을 때, 아이들을 데리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그 질문이 나왔다. 예수님도, 사도들도 아이들과 함께 무엇을 해야 할지 염려한 적이 없다. 예수님은 결코 이렇게 말하신 적이 없다: ‘어린 아이들이 탁아시설 안에 갇혀 괴로움을 겪게 하라.’ 당신은 예수님이 산상 설교를 하시는 동안 어린이들이 어린이 교회로 끌려가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가? 성경은 신자들이 모일 때 아이들을 다루는 것에 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당시 신자들이 아이들이 없었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이 문제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았기 때문에 많은 것을 말하지 않은 것 같다. 교회들은 가정에 있었다; 가족들도 가정에서 살았다; 아이들은 가정에서 교회를 만났다. 성경이 아이들과 신자들의 모임에 관련해서 아무 것도 직접 언급하지 않을지라도, 잠시 살펴볼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어린이들이 5천명을 먹이시고, 4천명을 먹이실 때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이 명시적으로 기록되어있다(마14:21, 14:38). 바울의 선교여행에서 사도들이 떠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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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제자들이 다 그들의 아내들과 아이들’과 함께 해변에서 기도하기 위해 사도들과 동행했다(행21:5). 마지막으로, 에베소 교인들이 바울의 편지를 읽을 때, 직접 아이들을 언급했다: ‘아이들아, 너희 부모에게 주안에서 순종하라.’(엡6:1-2) 아이들이 교회모임에 없었다면 어린이들이 교회에서 읽힌 이런 권고들을 어떻게 들을 수 있었겠는가? 아이들과 교회에 관해 성경이 비교적 침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 가지를 장담할 수 있다: ‘그 곳에 주일학교나 어린이 교회라는 것은 없었다.’ 주일학교가 교회생활에서 핵심적인 부분이었다면, 왜 성경은 이 주제에 관해 침묵하는가? 성경에는 그분의 (몸에 대한) 건축계획이 세부적인 사항까지 전부 수립되어있다. 성경이 완전한 청사진이라는 것을 부인할 그리스도인이 있는가? 흥미롭게도, 하나님의 청사진에는 주일학교에 관한 힌트조차 없다. 주일학교는 성경이야기나 기독교윤리를 가르치기 위해 고안된 것이 아니라, 19세기 영국에서 가난한 공장 노동자들과 광산 노동자들의 아이들에게 읽고 쓸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시작되었다. 주일학교가 출현하기 전에 어린이들을 교육하는 주된 책임은 누구에게 있었는가? 가족이다. 내 생각에는, 가족이 그리스도인 어린이들의 양육과 교훈에 대한 주된 책임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는 것이 대부분의 가정교회의 주장이다. 이것이 (성경에 나오는 신약교회처럼) 대부분의 가정교회가 주일학교를 가지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전통교회를 떠나 가정교회로 가려고 심사 숙고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실제적인 장해물이 된다.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자녀들의 영적인 복지에 관해서 염려하는지, 놀랍기만 하다. 좋은 청소년 프로그램이 존재하는 한, 부모들은 일부 전통교회의 잘못된 맹신대로 너무 지나치게 염려할 것이다. 내가 확신컨대, 많은 전통교회가 이 사실을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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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 금액’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최고급의 ‘청소년 사역’을 제공함으로 이 점을 이용한다. (물론, 나는 이와 관련된 순수하고 다른 동기들도 많다는 것을 안다.) 주님 안에서 아이들을 세워가는 것이 가족의 주요한 의무라고 할지라도, 가정교회가 그들의 혜택에 무관심해야만 한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아이들이 자기 부모들의 교회를 지겨워 한다면, 그들은 예수님도 지겹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므로 가정교회가 아이들에게 교회가 부모들의 것일 뿐 아니라 자신들의 것이라는 점을 알도록 만드는 실제적인 방법들을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 1. 가정교회의 삶 속으로 어린이들을 적응시키는 실제적인 방식에 관해 논의할 때, 우리는 부모들이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없는 가정교회 안에 전통교회의 고정관념을 심어놓으려는 것은 아닌지를 반드시 먼저 생각해보아야 한다. 전통교회는 청소년은 분리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그들을 주일학교 건물로 밀어 넣으라. 그러면 모든 면에서 거룩하고 점잖아질 수 있다.’ 물론 이것은 비성경적이다. 예수님이 산상 설교를 하시는 동안 아이들이 얼마 동안이나 점잖았을 것 같은가? 전통교회는 ‘예배순서’을 따라 예식적으로 경직되어 있고, 아이들은 예측할 수 없고 프로그램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결코 그런 경직성에 적응을 할 수 없다. 그래서 가정 안에 있는 교회 안에서 행해야 하는 첫 번째 실제적인 방법은 ‘긴장을 푸는 것이다.’ – 가정교회에서는 더 많은 소란과 중단이 존재하곤 한다. 아이들과 함께 온 사람들은 그것으로 인해 죄책감을 느끼는 것을 멈춰야 한다. 아이들이 없는 사람들은 그들이 전통교회에서 보였던 것보다 더 많은 관용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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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리가 행해야 할 두 번째 실제적인 방법은 ‘모든 어린이들과 성인들 사이, 각 성인들 사이의 친밀한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런 계발은 조직화된 교회에서 불가능한 것으로 가정교회 안에서 가능하다.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어린 자니가 화장실에서 체리폭탄을 터뜨리고 있을 때, 자니의 부모가 아닌 한 성인이 어린 자니나 그의 엄마와 소원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없이 그 어린 불량배에게 장난을 멈추라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었다. 친밀한 관계는 너무나 중요하다. 3. 우리가 해야 할 세 번째 실제적인 방법은 ‘성인들과 함께 모일 때 아이들을 참여시킬 수 있는 창조적이고 사용 가능한 방법들을 찾는 것이다.’ 모임이나 교회를 성인들이 독점한다면 어디서 이런 생각이 나올 수 있겠는가? 나는 대부분의 어린이들이 음악적인 재능을 가진 가정교회를 하나 알고 있다. 어린 아이들이 기타, 바이올린, 플룻을 연주하고 노래와 음악을 자유롭게 인도한다. 다른 가정교회들은 아이들이 간증을 나누거나 성경을 암송하거나 기도부탁을 하도록 격려한다. 우리 가정교회에서는 모임 중에, 한 사람이 참석한 성인들과 함께 어린 아이들을 위한 ‘주일학교 수업’을 진행했다. 성인들은 어린 아이들의 눈높이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고(이것은 모든 성인들이 주기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어린이들은 ‘영적인 수업’에서 가르침 받고 배울 때 자기 부모들과 함께 즐거워할 수 있었다. 4. 내가 제안하는 네 번째 실제적인 방법은 ‘가정교회 신학으로 편협해지지 않는 것이다.’ 분명히 우리는 주일학교를 신뢰하지 않지만, 누군가가 아이들에게 특별한 것을 해주거나, 가끔 다른 방으로 데리고 간다고 해서, 세상이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우리는 아이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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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로부터 떼어놓기 위해 오락거리를 가지고 그들을 달래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잠시 비디오를 한번 보여주는 것까지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천국에서도 그 비디오가 신앙적이지 않은 ‘벅스 바니 만화’라고 금하지는 않을 것이다.) 5. 가정교회 교인 하나가 제안했던 다섯 번째 실제적인 제안은 ‘각각의 가정모임이 가정 규칙을 발표해서 아이들과 부모들이 무심코 피해를 주는 일이 없어야 한다.’ (예를 들면, 거실에서는 먹지 않기) 6. 여섯 번째 실제적인 제안은 ‘당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소란스런 유아들에게 참는 것이다.’ 하지만 유아들이 너무 시끄러우면, 아기가 진정할 때까지 모임장소에서 데리고 나가야 한다는 점을 부모들에게 이해시키라. 부모가 이렇게 하지 않으면, 반드시 그 부모와 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억하라. 관계가 중요하다.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 형제들과 자매들의 입장에 서 봐야 한다. 또한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우리 아이들도 우리의 형제들과 자매들이다. 사랑으로 그들을 참여시키자. 7. 나의 일곱 번째, 마지막 실제적 제안은 ‘모임이 어린이들에게나 성인들에게 결코 지루해서는 안 된다.’ 모임이 성인들에게도 너무 길거나 따분하다면, 아이들에게는 어떨는지 상상해보라. 아이들의 집중력은 아마 성인의 반 정도될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의 형제들과 자매들의 입장에 서 보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는 우리 아이들도 우리의 형제들과 자매들이다. 사랑으로 그들을 참여시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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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정교회가 어린 친구들을 위해 가진 명백한 유익들을 제시하는 것으로 어린이들과 가정교회에 관한 내 생각들을 마치고자 한다. 우리는 어린이들이 가정교회로 사람들을 데려오는데 방해물이 된다고 보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가정교회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이점들을 살펴보고, 가정교회로의 전환이 가능하도록 이런 이점들에 주목해야 한다. 가정교회가 어린이들에게 주는 커다란 유익 중 하나는 그들이 자기 부모들이 서로 사랑하고 돕는 관계를 갖는 모습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부모가 종교적이거나 위선적이지 않고 참되고 개인적인 열정을 가지고 하나님께 마음을 여는 것을 보게 된다. 또 하나의 놀라운 이점은 교회에서 아이들을 2등 시민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유아실, 주일학교, 청소년사역으로 분리되거나 감춰지거나 무시 받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가장 큰 이점들 중 하나는 성인들과 다른 성인들의 자녀들 사이에서 계발되는 친밀한 관계이다. 우리 가정교회에서, 나는 참석하는 아이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한다. 교회에는 단지 여섯 커플과 14명의 아이들이 있다. 그래서 아이들의 삶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발견하기 쉽고, 그들을 위해 매일 개개인의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하는 것도 쉽다. 내가 보건대, 이것은 대형교회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나는 교회 ‘청소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비전포럼의 더그 필립스가 언급한 훌륭한 비유를 이야기함으로 마치려고 한다. 거실 크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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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교회를 언급하지는 않았을지라도, 그의 요점은 그것과 아주 많은 관련이 있다: ‘나는 작고, 가족 통합적인 교회에서 예배 드리는 유익을 경험한다. 우리의 다양한 교회 프로그램에 관해 질문 받을 때면, 나는 소속회원들이 있는 30개 이상의 다양한 프로그램 조직들과 함께 우리가 축복받은 일들을 설명한다: 그들은 가족이라 불린다. 나는 더 나아가 우리에게 60명 이상의 청소년 디렉터들이 있다는 것도 설명한다: 그들은 부모라고 불린다. 우리는 이런 프로그램들의 일정이 적힌 전체 이벤트 스케줄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가족예배라고 불린다. 청소년 디렉터들은 수 많은 책임을 져야 하고, 참가자들과 함께 단체행동을 해야 한다. 그들은 이전에 했던 것보다 휠씬 많이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해야 한다. 그래서 자신의 프로그램 조직을 지혜롭게 이끌 수 있다. 그들은 창의적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자신이 맡은 독특한 관심그룹들의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 그들은 인내심을 배워야 한다. 사랑을 배워야 한다. 심지어 일정의 우선순위조차 재조정해야 한다. 이 마지막 부분이 결정적이다. 일정을 재조정하고 자신이 이끄는 조직을 적절하게 구성하는 것만으로도, 청소년 디렉터들은 성공할 수 있다. 그들은 그것을 안다. 또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도 안다. 그들 대부분은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이런 생활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행동은 청소년들의 목자가 되고 기독교 가정이라고 불리는 독특한 관심조직을 이끄는 것이라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발견한 것이 있다: 우리의 작은 회중을 신실하게 목양하기 위해 헌신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 큰 축복을 경험한다. 더욱이 우리가 이 작은 회중에 관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공부하면 할수록, 우리는 교회를 구비시키시고, 자주 잊혀지고 왜곡되고 심지어 비난 받는 – 기독교 가정이라고 불리는 – 이 조직을 통해서 문화전체를 변혁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의 탁월함과 불가사의함을 더 많이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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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질문 1. 예수님이 산상 설교를 하시는 동안, 오늘날 ‘어린이 교회’에 상응하는 곳으로 인도되는 아이들을 상상하기가 왜 불가능한가? 2. 종교적인 모임에 참석하는 아이들의 예들이 성경에 어디에 나오는가? 3. 주일학교는 어떤 기원을 가지고 있는가? 4. 주일학교가 출현하기 전에, 아이들을 훈련하는 주된 책임이 누구에게 있었는가? 5. 아이들의 종교적인 훈련을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교회인가, 그들의 부모인가? 6. 어떤 교회에서든 청소년 디렉터로 적합한 사람은 누구인가? 7. 왜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과 함께 교회나 성경공부를 하길 원하지 않는가? 8. 왜 많은 부모들이 주일학교나 청소년모임보다 교회나 성경공부에 자녀들과 함께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9. 어린이들이나 청소년들은 고린도전서 14장에 나오는 참여적 교회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 10. 고대 사회에서 유아사망률은 치명적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더 커진 가정들이 (아이들의 숫자가 더 많아졌기 때문에) 개인 집보다 더 많은 인원이 모일 수 있는 시설을 가지려고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당신도 이 말에 동의하는가? 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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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에 관한 빅뱅 이론 Jim Melon(가정교회개척자, Association of Home Churches)

1992년 나는 주님께 질문했다: ‘교회란 무엇입니까?’ 내가 그 질문을 한 것은 부분적으로 내 영이 감동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한 내가 일년 예산이 1백만 달러이고 1천명 이상의 교인이 다니는 교회의 리더십에 속해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 교회와 기독교학교가 일년 수입이 백만 달러 이상이라 할지라도, 돈은 빠듯했다. 나는 새로운 시각으로 신약성경, 특별히 사도행전을 다시 읽었다. 나는 다음과 같은 성경구절을 읽었다: 사도행전 4:34a – ‘그들 중에 가난한 사람들이 없었다.’

로 마서 16:5 – ‘그들(브리스가와 아굴라)의 집에서 만나는 교회에게도 문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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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레몬 2b – ‘너(빌레몬)의 집에서 만나는 교회에게’

데 살로니가후서 3:7-9 – ‘왜냐면 너희 자신이 우리의 모범을 어떻게 따라야 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너희와 함께 있을 때 게으르지 않았고, 값을 주지 않고 누구의 음식을 먹은 적도 없다. 그와는 반대로, 우리는 밤낮으로 일하고 노동하고 수고해서, 너희 중 누구에게 짐이 되지 않았다. 우리는 그런 도움을 받을 권리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너희가 따를 모델이 되고자 그렇게 했다.’

고 린도전서 9:18 – ‘그러면 내 상이 무엇인가? 바로 이것이다. 복음을 전파할 때, 내가 값없이 전했고 내 권리를 사용하지 않았다.’

사 도행전 20:33-34 – ‘나는 누군가의 은이나 금이나 옷을 탐낸 적 없다. 왜냐면 내 손으로 내 필요와 내 동역자들의 필요를 벌어왔다는 것을 너희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구절들과 다른 많은 구절들을 읽은 것이 우리로 리더 지위를 내려놓고 ‘가정교회’라는 여정을 시작하게 했다. ‘교회로 가는 것’대신에, 우리는 집에서 만나는 ‘교회가 되는 것’을 시작했다. 우리의 사명은 (지역과 해외에서) 구제하고 선교하는데 1백만 달러의 예산 중에 80%를 사용하며, 50-80개의 가정에서 모이는 1천명의 교인을 갖는 것이다. 지난 13년 동안, 우리는 거의 1백만 달러를 건물임대료나 급여가 아니라 구제와 선교를 위해 사용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인도에서 450개 이상의 교회를 개척하도록 도움을 주었는데, 그 일이 오히려 우리 공동체에 영향을 주었다. 또한 나누어주는 구제를 통해서 한 생명을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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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생명을 구함 구제 계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교회 안팎의 사람들을 돕기 위한 기금(헌금)을 빨리 전달할 수 있다. 최근 우리는 주택 임대료와 자동차 대금을 지불할 수 없는 미혼모를 알게 되었다. 그녀에게 쫓겨나야 할 날이 다가왔다. 수많은 기관들과 교회들(자신의 교회를 포함해서)을 다녀보았지만 도움을 받지 못했다. 그 후에, 우리는 그녀의 한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이야기를 들은 후, 우리는 주택 임대료를 수표로 보냈고, 그 친구는 그것을 피자와 함께 그녀에게 주었다. 함께 먹은 후 그 친구는 우리를 방문했고, 그녀가 침실로 들어가서 적어둔 유서를 꺼내오더라고 말해주었다.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했고 그분이 우리를 이렇게 사용하신 것을 경배했다.

댄의 자전거 가게 우리가 매달 후원하는 지역 사역들 중 하나가 ‘Mission Soup Kitchen’이다. 거기서 매달 규칙적으로 받고 있는 다른 후원은 댄의 자전거 가게가 유일하다는 것을 우리는 최근에 발견했다. 우리 ‘가정교회연합(Association of Home Churches)’과 댄의 자전거 가게는 가난한 사람들과 노숙인들을 먹이기 위해 함께 일하고 있다. 누가 생각인들 했겠는가! 1992년에 우리가 시작할 때, 우리를 아는 사람들 극히 일부는 우리가 성경적인지, 적법한지, 혹시 이교적인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 오늘날, ‘가정교회연합’은 주로 지속적인 구제 때문에 지역사회에서 알려졌고 존경 받는다. 예수님이 마태복음 5:16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들에게 너희의 선한 행실을 보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부록19 197


목사들에게 사례를 해야 하는가? 성경은 분명하게 ‘일꾼은 급여를 받을 만하다(딤5:18b).’고 가르친다. 또한 우리는 성경에서 사도 바울이 자비량 사역의 모델을 보인 것도 안다. 상상해보라. 기독교 운동의 지도자인 이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밤낮으로 일하고 노동하고 수고해서, 너희 중 누구에게 짐이 되지 않았다. 우리는 그런 도움을 받을 권리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너희가 따를 모델이 되고자 그렇게 했다.’(살전3:8-9) 우리 네트워크 안에서는 사례를 받지 않기로 결정했고 이런 유형의 사역 모델이 될 수 있었다. 우리는 많은 목사들에게 전임사역에서 벗어나라고 말해왔지만, 그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사역하도록 당신을 부르셨다면, 그분이 공급하실 것이다.

퍼센트(%)로 나타내는 방법 건물임대료나 급여를 지불하지 않는 가정교회인데도, 어떤 달에는 우리가 서약한 금액을 채울 수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는 다수의 다양한 사역들과 선교하는 일들에 헌신하고 있었지만, 느리게 헌금하는 달에는 정해놓은 금액을 채울 수 없었다. 우리 교회들 중 한 교회의 형제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지원하는 각 사역들에 들어가는 금액을, 액수 대신에, 퍼센트로 나타냅시다.’ 이제 항상 충분한 것으로 나타나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우리는 각 사역에 관련된 사람들에게 통보하고 금액 서약에서 퍼센트 서약으로 변경된 것을 알렸다. 이제 사역 관련자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점점 더 많이 주시기를 기도한다. 왜냐면 우리가 더 가지면 가질수록, 그들이 더 많이 얻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198


아래 차트는 최근 내역이다: 가정교회 연합 외부사역 Hope for India

15%

Home & Hope Shelter

5%

Killeen Hope Pregnancy Center

15%

John Vrooman-Haiti Mission

5%

Mission Soup Kitchen

5%

Cadence International-Soldier’s Hospitality House House2House

5% 5%

True Deliverance Ministries

5%

내부기금 Youth

Benevolence

5%

15%

Emergency Reserve

8%

Family Activities

5%

Operating Expenses

3%

Missions 총계

5%

100%

$350.00

지출비용 비서 급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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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청소년들을 캠프에 보내는 것을 돕는 기금(Youth), 어떤 가정들이 컨퍼런스에 가는 것을 돕는 기금(Family Activities), 단기선교여행을 위한 기금(Missions) 등을 퍼센트로 기록했다. 예비비(Emergency Reserve)는 교회 안에 누군가가 실직을 당하거나 그들에게 다른 긴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에 사용한다. 12월 1일쯤, 우리는 기금에서 남는 돈을 가지고, 아무 것도 할 것이 없는 교회 가정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렇게 해서 모두가 멋진 휴가기간을 가졌다.

재정적인 빅뱅 우리는 전례가 없는 교회의 대전환기에 살고 있다(조지 바나의 책 ‘교회혁명’을 읽으라.). 나는 하나님나라가 건물과 급여에서 더 멀어지도록 우리의 자원을 네트워크화하여 사용하는 것이 가정교회운동에서 중요하다고 본다. 초기에, 많은 가정교회들이 재정과 관련해서 목욕통과 함께 아기도 버렸던 것 같다. 그들은 재정을 남용했던 기독교계에서 돈과 관련된 소란을 보았고,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헌금을 거부하도록 바꾸어 놓았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선한 청지기가 되고, 주변 사회에 충격을 주는 기회로도 사용될 수 있지 않겠는가! 사도행전은 자신이 ‘빌린’ 집에서 사도 바울이 전파하고 가르치는 것으로 끝난다(행28:30-31). 이제 우리가 사도행전이 2천년 전 끝난 곳에서 어떻게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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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어디에 지출해야 하는가? : 목사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Neil Cole(가정교회개척가, CMA)

우리는 목사들이 교회를 목양하도록 사례를 해야 하는가? 우리가 이것을 멈춘다면, 수입이 없어진 ‘경건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질 것이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목사가 되기 위한 전문적인 준비를 하기 위해서 많은 돈을 쓰고 더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우리가 더 이상 목사들에게 사례를 하지 않는다면, 그 돈을 어디에 지출해야 하는가? 교회가 의도적으로 더 작아지고, 더 친밀해지고, 빠르게 배가하는 대부분의 유기적 교회 상황에서 목사에게 뭔가를 지불할 필요는 없다. 사역하는 수준이 충분히 낮아졌기 때문에, 사례를 받지 않아도 10명에서 20명의 사람들을 목양하는 것은 쉽다. 이런 상황에서는 몸 전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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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기기 위해서 더 쉽게 동원되기 때문에, 사역은 직업적인 리더 한 명에게 의존하지 않는다. 교회가 누군가를 고용하는 것이 죄는 아니지만 내 생각에, 하나님나라 자원을 가장 잘 투자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약점에 투자하는 것이고, 평신도와 성직자를 구분하도록 부채질하는 것이다. 기름부음 받았지만 제대로 평가 받지도, 쓰임 받지도 못한 종들의 거대한 무리가 매주 교회 장의자에 앉아 있다. 우리가 우리의 약점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자할수록, 아마도 그 약점이 훨씬 더 약해지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더 중요한 질문: 언제, 그리고 왜 사람들을 후원할 것인가? 사람들을 후원할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질문은 언제, 그리고 왜 후원할 것인가라는 질문보다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교회를 ‘비즈니스’처럼 생각하고 고용할 직원을 찾는다면, 내 생각엔, 우리가 이미 잘못된 길을 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업무분담, 근무시간, 실적평가, 급여인상, 상여금, 휴가, 병가 등은 모두 직업과 관련된 것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이 과연 교회를 운영하는 방식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예전에 나는 한 교회컨설턴트가 방 안에 가득한 저명한 목사들과 기독교지도자들에게 교회를 언급할 때 ‘가족’이라는 단어 대신에 ‘팀’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라고 가르치는 것을 들었다. 그는 그런 전환이 필요한 이유가 제대로 일하지 못하는 팀원은 해고할 수 있지만, 가족은 해고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교회라기보다는 오히려 ‘비즈니스’처럼 느껴졌다. 신약성경은 교회를 비유하는 아주 많은 단어들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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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단어가 다른 단어들보다 특히 많이 사용된다. ‘비즈니스’라는 단어가 사용된 적은 전혀 없고, 단지 구매와 투자의 가치를 강조할 목적으로 쓰인 것이 유일하다. 결코 서로간의 관계를 묘사한적 없다.

약함을 통한 복음전도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나님나라의 일을 하라고 보내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다. ‘가라! 내가 늑대들 가운데 양처럼 너희를 보낸다. 지갑, 가방, 신발을 가지지 말고; 길에서 누구와도 인사하지 말라.’(눅10:3-4) 쇼핑몰에서 아내가 옷을 입어보기 위해 나에게 지갑을 들어달라고 할 때마다, 항상 나는 이 구절을 인용해서 이렇게 말한다. ‘싫어, 예수님이 지갑을 가지지 말라고 말씀하셨어.’ ‘지갑’을 NASB판 성경에서는 ‘전대’라고 번역했다. 당신의 지갑도 마찬가지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보내실 때, 돈을 마련하거나 여분을 가지고 가지 말라고 지시하셨다. 단지 여분뿐만 아니라 돈은 조금도 가져가지 말라고 하셨다. 그들은 하나님과 낯선 사람들에게 완전히 의존하며 나아가야만 했다. 요즘 전도하는 다양한 방식들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책들이 있다. 섬김 전도, 기도 전도, 예언 전도, 심지어 능력 전도 등이 있다. 예수님의 방법은 내가 ‘약함을 통한 전도’라고 부르고 싶은 방식이었다. 이것은 사실 우리가 가진 대부분의 전략들과는 아주 상반된다. 제자들이 나아갈 때 강하지 않았고,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구제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철저하게 도움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들은 무기력한 부랑자가 되지 않았고, 정말 강해졌다. 그들은 ‘하나님나라 복음을 전했고, 병자를 고쳤고, 악령들을 쫓아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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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를 살렸다.’ 물론, 당신의 전도에도 능력이 임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다가간 사람들의 환대에 전적으로 의존했다는 점을 놓치지 말라. 우리는 흔히 일종의 영웅 콤플렉스에 빠져있다. 우리는 축구 경기장에서 전문적인 찬양단과 설교자들과 함께 거대한 전도대회를 개최한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병원, 학교, 노숙인 쉼터, 복지시설을 지었고, 교회가 가진 동정심으로 지역사회를 감동시키기 위해 우리의 강함을 표현했다. 그 결과로, 우리가 몇몇 사람을 감동시켜서 그들이 ‘이 그리스도인들은 정말 멋진데.’라는 말로 마칠 수 있다면, 그것이 최선의 시나리오다. 내 말을 오해하지 말라. 이런 일들은 다 좋은 일이고, 우리는 그 일들을 해야 한다. 내 생각에, 우리는 선한 행실로 세상에 소금이 되어서, 하늘 아버지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우리는 이런 일들을 다 해야 하고, 더 많이 해야 한다. 문제는 ‘우리가 그런 일들을 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언제 그렇게 해야 하는가?’이다. 나는 우리가 결코 약해지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그래서 우리가 왜 가장 먼저 보여주어야 할 모습이 약함인지에 관해 토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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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자의 수입문제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Tony Dale(가정교회개척자, House2House)

나는 재정에 관해서 믿음의 걸음을 걷고 있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 ‘풀 타임’ 직업을 가질 수 있지만, 최근에 하나님이 다른 방법 - 아마도 내가 전임사역을 하는 것을 제안하고 계신 것 같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사단은 재정적인 문제를 가지고 분명히 우리 가족 모두를 공격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너무나 많은 기독교사역자들이 재정적인 영역에서 느끼는 ‘공격’이라는 것이 실제로는 일을 해서 자기 삶과 재정을 정상화시키라는 ‘성령님의 압력’이라는 생각이 매우 강하게 든다. 성경적으로, ‘전임’ 사역이라는 부르심은 한 지역에서 일반적인 직업을 가지고 일하는 것이 불가능한 순회사역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어째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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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왕 되신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를 위해서 부르심을 따라 우리 각자에게 하라고 하신 일들을 풀 타임으로 하고 있지 않는가? 우리의 직업은 우리에게 큰 신뢰성을 가져다 줄 수 있다. 심지어 바울은 책임감을 가지고, 텐트를 만드는데 많은 시간을 사용했고, 그래서 아무도 자신을 비난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었다. 직업은 우리에게 강한 현실감을 유지시켜주고, 먹고 살게 해주며,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따라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게 한다. 나는 수입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전혀 모르겠다. 하지만 성경적으로, 우리는 자기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상적인 방법은 봉급 받는 직업을 갖는 것이다. 나는 풀 타임 직업을 가지고 정말 기꺼이 일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하나님나라 일들을 하고 있고 신학교를 가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풀 타임 직업까지 가진다는 것은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다. 이런 식의 생각이 가지고 있는 오해는 ‘우리’가 하나님나라에서 아주 많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우리 같은 사람, 우리 같이 사는 삶을 증식시키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우리가 제자 삼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처럼 되기를 원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우리가 ‘풀 타임’인 것을 보면, 그들도 기본적으로 풀 타임이 되길 원할 것이다. 나는 하나님이 무언가를 하시기 위해서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분은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다. 나는 정말 이 사실을 믿는다. 하지만 나는 다만 우리의 믿음의 성장을 위해서,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다. 우리 모두는 믿음으로 살아간다. 내 회사에 일감이 있어서 직원들 중에 아무도 일을 그만두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믿음이 필요하다. 나는 이것을 위해서 일하고 있다. 우리의 단순한 교회운동이 전통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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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에서 일어난 거의 모든 운동의 방식들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내게는 무척 중요하다. 당신이 이 운동의 역사를 연구해서 아는 것처럼, 이 운동은 평범한 사람들이 이끌고 단순함을 유지했을 때, 가장 빠르게 성장한다. 그러면 우리는 왜 간절히 바라던 바대로 신학교에 가려는 것을 막는가! 교회들과 교회개척운동은 그 가운데 ‘속도제한요소’를 만들어 놓지 않을 때, 가장 빠르게 성장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들이다. 1. 나는 후원요청 편지를 보내고 기도할 수 있다. 2. 나는 풀 타임 직업을 가질 수 있다. 3. 나는 파트 타임 직업을 위해 20시간을 만들려고 노력해서, ‘가까스로’ 그 시간을 얻어낼 수 있다. 4. 나는 복권당첨을 위해 기도하고 믿음으로 그것을 선포할 수 있다. 주님의 일과 나라를 위해 놀라운 열정을 가지고 일어선 당신과 많은 다른 사람들을 위한 나의 기도는 여러분이 스스로 자비량하기 위해 필요한 일을 하고, ‘동시에’ 여전히 자신의 삶을 하나님나라를 위해 헌신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의대를 졸업했을 때, ‘주당’ 약 100시간씩 일하는 것을 포함한 레지던트기간을 너무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이런 일이 의료계에서 일반적이라면,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모든 사람이 먹고 살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을 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두신 모든 것을 하기 위해 시간을 만들어보려는 것이 왜 그렇게 이상할까! 내가 너무 강하게 말하지 않았기를 바란다. 하지만 나는 이 점에 대해서 정말 강하게 느끼고 있다. 우리는 서구사회에서 보통 주당 40시간 근무가 우리의 ‘권리’라는 소리를 너무 자주 듣는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노예가 되기로 선택했다. 우리의 권리를 포기했다. 우리의 삶을 기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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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놓았다. 우리에게 균형이 필요한가? 그렇다! 우리에게 매우 만족스런 가족시간이 필요한가? 그렇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주인이 아니라 오히려 종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균형을 찾도록 도우신다. 나는 의료계에서뿐만 아니라 하나님나라 안에서도 불균형한 시간을 많이 가졌다. 이것은 디모데와 디도의 리더십유형의 특징인, 성숙해가는 과정의 일부이다. 이런 유형의 성장은 신학교나 ‘전임 사역’을 통해서가 아니라 전 생애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모든 상황에서 참된 대답은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그 다음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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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적 교회운동 안에서 이단의 위협 Neil Cole(가정교회개척가, CMA)

유기적 교회에 관해 가르칠 때, 내가 다른 무엇보다 더 많은 질문을 받는 것은 ‘우리가 이단의 위협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나는 이런 관심을 이해하고, 지적이고 명확한 방식으로 이 문제를 다루고 싶다. 이 문제가 무척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직면한 도전을 쉽게 무시한다면, 유기적 교회운동은 지속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우리 운동에 대한 반응으로 발생한 이슈가 만족스러운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또한 과거에 교회가 이런 이슈를 다루던 방식을 대체할 훨씬 더 나은 해답도 찾을 것이라고 본다. 유기적 교회운동이 더 건강하고 총체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전혀 추구할 가치가 없는 운동이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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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공통된 염려는 이런 것이다: 우리가 신학교육을 받지 않은 리더나 교사에게 의존한다면, 이단이 교회 안에서 날뛰도록 허용하는 것이 아닌가? 물론 그럴 위험성이 있지만, 나는 그런 전염성의 위험을 낮출 수 있는 단순한 방법들이 있다고 본다. 강한 면역체계를 가진 건강한 몸은 병든 몸보다 전염병을 더 잘 물리친다. 이것이 바로 몸의 본래 기능이다. 나는 이 글을 통해, 우리가 오랫동안 편안하게 생각해왔던 방식보다 더 나은 그리스도의 몸을 위한 면역체계가 있다는 것을 제시할 것이다.

진짜 위협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현실적으로, 교회에서 이단을 100%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늘 거짓 교사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24:4-5,11). 원수는 거짓말쟁이이고(요8:44), 우리 회중들 속으로 침투하기 위해서 은밀한 방식으로 일한다(유4,10-13). 그 거짓말쟁이가 우리 마음에 진리가 아닌 것을 넣을 수 있다면,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계획하셨던 모든 것을 우리가 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다. 불행히도, 나는 원수가 ‘거짓교리를 피하자.’는 기치 아래서, 모순되게도 바로 그런 일을 하는데 성공할까 봐 두렵다. 교회에서 이단을 해결하는 최상의 방법은 ‘설교단’에 있는 리더들이 더 잘 훈련 받는 것이 아니라, ‘신도석’에 앉아있는 보통사람들이 더 잘 훈련 받는 것이다. 보통사람들을 더 잘 훈련하기 위한 열쇠는 그들을 구비시키는 리더들이라고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말할지라도, 불행하지만 그것이 항상 실현 되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그리스도인들이 진리를 알고 그 말씀을 전파하고 사역을 할 수 있도록 구비시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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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을 갖게 하는 더 나은 리더들이 필요하다는 것은 사실이다(엡4:11). 그들은 신앙을 심사하고 하나님 말씀의 수호자 노릇을 하는 리더들과는 완전히 다른 부류다. 우리 리더들이 진리의 수호자로 간주되는 동안,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들 중 대다수를 무지 가운데 버려두고, 그들은 자신들을 위해 생각하는 일을 하는 리더들에게 쉽게 영향 받는다. 물론 그 리더들은 그렇게 하도록 훈련 받아왔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머리 속에서 생각한 것을 가지고, 실제 문제를 일으키는 이단을 막으려고 한다는 것은 모순일 뿐이다. 하나님 말씀의 수호자란 있을 수 없다. 사도 바울이 간수에 의해 옥중에 붙잡혀 있는 동안, 그는 이런 말을 했다: ‘하나님 말씀은 가두지 못한다(딤후2:9).’ 내가 하나님 말씀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이 나를 보호한다! 사람들은 모든 세대에 걸쳐 하나님 말씀을 공격해왔다. 모든 제국들이 하나님 말씀과 전면전을 시작했다가 사라졌지만, 진리인 하나님 말씀은 견뎌냈다. 하나님 말씀을 위해서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정말 어리석은 생각이다. 인간이 하나님 말씀을 순수하게 만들지 못한다; 인간을 순수하게 만드는 것이 하나님 말씀이다. 우리가 이런 사실에 대한 시각을 잃는다면, 슬프게도 우리 자신을 잃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이 우리를 필요로 하는 것보다 더 하나님 말씀이 필요하다. 하나님 백성의 손 안에 있는 그분의 말씀은 위험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위험하다는 생각이 사단에게서 온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왜 우리는 그런 일을 두려워하는가? 그들의 손에서 말씀을 빼앗는 것이 매우 위험한 짓이고, 우리가 즉시 회개해야 할 일이다! 역사 가운데 좋은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을 자유롭게 가질 수 있는 다른 이들의 권리를 위해서 자기 생명을 바쳤다. 그들의 희생을 우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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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지 말라. 인간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감히 하나님 말씀을 왜곡할 수 있는가? 물론 그렇게 할 수 있고, 사실 그렇게 하려고 할 것이다. 사단은 태초부터 그렇게 해왔고(창3:3), 불 못에 던져질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인간을 의지하지 않는다; 나는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의지한다. 인간의 오류로부터 교회를 보호하는 방법이 교인들을 위해 생각하지만 여전히 오류가 있는 다른 인간에게 의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더 많은 문젯거리들을 가지고 한 가지 문제를 풀려고 하는 것과 같지 않은가? 그것은 석유통을 가지고 불을 끄려고 하는 것과 같다. 서구 교회는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을 희생시켜왔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하나님의 기록된 계시의 순수성과 능력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에 우리는 성경을 해석하고 가르치고 조직화하는 사람들의 능력을 믿어왔다. 인간이나 그들의 조직 안에 내재된 능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 말씀은 혼자 유지되어왔고, 우리가 그것을 의지하는 법을 다시 배워야만 한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관한 인간의 가르침이 가진 무능력을 위해서 하나님 말씀의 능력을 희생시켜왔고, 하나님의 백성이 왜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데 무기력한지를 궁금히 여겨왔다. 이것은 모두 하나님 말씀에 대한 왜곡된 존경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이 슬픈 아이러니다. 많은 사람들은 신학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리더가 될 때, 수 많은 잘못된 가르침들에 무방비상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많은 이단들이 신학교에서 발생했다. 어떤 사람은 모든 근본주의운동이 20세기 초, 특별히 독일에 있는 많은 신학교에서 발생한 자유주의적이고 이교적인 가르침에 대한 반작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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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겨났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신학교의 도움 없이 이단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기도록 신학교에서 훈련 받아왔다. 그러나 더 수준 높은 교육기관으로써 신학교는 교회역사에서 상대적으로 새로운 현상이다. 나는 신학교의 발명 이후에도 이단이 줄어들지 않다는 위험스런 추측을 한다.

성경해석법을 가르칠 최적기는 언제인가? 우리 운동에서 성경해석법을 가르치는가? 그렇다. 하지만 그것이 내가 하는 첫 번째 일은 아니다. 가장 먼저, 나는 설명해 주는 중개인 없이 성도들이 성경을 직접 읽게 한다. 양들이 선한 목자의 음성을 들을 때, 그들은 일생 동안 그분을 따를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삶의 시작부터 생겨야 하는 중요한 ‘각인현상’이다. 자연세계에도 새로운 탄생과 함께 발생하는 어머니에 대한 유대감이라는 것이 있다. 창조물의 모든 기억은, 자신이 본 첫 창조물과 관계를 맺으면서 지속적으로 형성되고 영향을 받는다. 이런 현상은 때때로 ‘각인’이라고 불린다. 어미 오리를 따르게 될 아기 오리처럼, 새로운 제자들은 반드시 자신의 새로운 삶 초기에 하나님의 음성과 연결되어야만 한다. 대신에, 미국 교회 안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 자체보다는 자신의 목사가 가르치는 요란한 목소리에 각인된다. 그들이 성숙했을 때, 성경을 읽으라는 이야기를 듣지만 성경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일은 드물다. ‘나는 성경을 읽으려고 하지만 결코 이해하지는 못한다. 목사가 설명하는 것을 들을 때 휠씬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라는 널리 알려진 ‘주문’을 나는 자주 듣는다. 이들은 예수님의 음성이 아니라 자기 목사의 음성을 아는 양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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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내게 이렇게 물을 것이다. ‘그러면 제자들은 성경을 잘못 이해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아니다. 그들도 오해한다. 내가 어린 제자였을 때, 나도 그랬다. 아마도 우리는 깊이가 끝이 없는 무한한 성경을 이해하는데 남은 인생을 사용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는 다소 실수하고, 의문의 여지를 남기고, 성숙해지는 만큼 알게 되는 자유를 사람들에게 허락해야 할지도 모른다. 내가 가르쳤던 첫 성경공부를 기억한다. – 그것은 이단적이었다! 더욱이 나는 그 때 외설적인 말을 내뱉고 말았다. 나는 내게 다음 시간에 더 잘 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사람에게 고마웠다. 나는 첫 설교를 생각하면 부끄럽기만 하다. 내가 목회초기에 믿고 있던 것들로 나를 평가한다면, 나는 배우지 못하고 진보가 없고 성장을 멈춘 제자였을 것이다. 이제 나는 처음보다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십 년 안에 훨씬 더 정확하게 알게 될 것을 기대한다. 내 생각엔, 당신이 교회역사를 주의 깊게 연구했다면, 교회역사의 영웅들이 믿었던 약간 이상한 생각들로 인해 놀랐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래도 그들을 축복하셨고 그들을 사용하셨고 여전히 그들을 사용하시지만, 그들은 하나님 말씀의 전체 그림을 완벽하게 가지고 있지 못했다. 아마 우리는 우리 자신의 교리적 오류에 대해선 약간의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오류들은 수십 년이나 수 세기 내에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왜 새로운 신자들이 영적 성숙 초기에 실수하지 못하게 하는가? 우리는 과연 어떻게 성장했는가?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삶을 시작한 첫날부터 이해하는데 있어 완벽해야 한다면, 우리 중 아무도 그리스도인이 될만한 자격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이 항상 모든 것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면, 단지 성경을 펼쳐서 읽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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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만도 상당히 위험한 시도이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펼치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은 놀랄 일이 아니다. 모든 신앙을 적당한 지적 ‘상자’ 안에 넣어두고 진리를 다 안다고 지나치게 확신하는 태도보다는 겸손하고, 자신의 부족을 아는 태도가 성경해석에 관해서 강조하기에 더 안전한 태도이다. 이런 잘못된 태도는 우리보다는 이단들에게서 더 많이 나타난다. 이런 태도는 성경에 상반되고, 지루하고 무지한 교회를 낳는다. 많은 질문들을 가진 교사가 ‘모든’ 대답들을 가진 교사보다 훨씬 더 호감을 준다. 모든 것에 대한 분명한 설명을 가지고 내 집 문안으로 들어온 여호와의 증인들은 그들의 신이 나에게 인상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내가 따르기 원하지 않은 너무 작은 신을 내게 보여 주었을 뿐이다. 예전에 제롬이라는 교부는 성경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성경은 아기들에겐 익사할 것(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없이 건너갈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얕지만, 신학자들에겐 결코 바닥에 닿을 수 없는 깊이로 떨어지는 것 같다고 할 만큼 충분히 깊다.’ 나는 기초적인 성경해석법을 반드시 가르치지만, 제자들이 리더로 떠오르고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린다. 그들이 다른 사람들이 배우는 것에 대한 책임이 생길 때, 비로소 그들에게 기초적인 해석법을 가르친다. 하지만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내가 새로운 리더들에게 처음 해석법을 가르칠 때, 그것은 보통 그들에게 재교육 코스가 된다. 왜냐면 그들은 처음부터 성경을 아주 많이 읽어왔고, 성경전체를 반복적으로 읽어왔기 때문이다. (또한 성경읽기가 우리가 사용하는 ‘삶을 변혁시키는 소그룹 시스템’의 일부로써 습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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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었기 때문에) 종합해보면, 그들은 이미 직관적으로 해석법의 많은 원리들을 발견해왔다. 나는 성령님이 뛰어난 교사이시고, 최고의 해석원리는 정말로 상식이라는 것을 발견하곤 한다. 내가 떠오르는 리더들에게 그런 원리들을 가르쳐줄 때쯤이면, 그들은 그 중에 많은 원리들을 이미 스스로 알아내서 알고 있었다.

도대체 진짜 이단이란 어떤 것인가? 교회는 또한 교회가 직면한 가장 큰 위협이 이단이라고 생각하도록 훈련되어왔다. 이것이 유기적 교회운동에 관해 묻는 가장 자주, 그리고 가장 먼저 하는 질문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이 점에 대해서 군중에게 말할 때, 나는 자주 자연스럽게 조사를 해보는데, 시종일관 동일한 결과를 얻곤 한다. 나는 청중들에게 타락해서 실제로 이단모임을 시작한 사람을 개인적으로 안다면 손을 들어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두세 명이 손을 들곤 한다. 그런 다음, 나는 그들에게 부도덕해진 기독교 리더를 안다면 손을 들어보라고 묻는다. 그때는 방에 있는 모든 사람이 손을 든다. 내 견해의 핵심은 ‘왜 우리는 이단을 두려워하는가?’이다. 우리 몸 안에 또 다른, 좀 더 위협적인 문제들이 있는 것 같다. 내가 묻고 싶은 또 하나의 질문은 ‘어떤 사람들에게 이단이라는 딱지를 붙이냐?’는 것이다. 하나님나라의 한쪽 편에서 이단인 것이 또 다른 편에서는 흔히 정통이 된다. 대부분은 자신의 교리적 확신이 역사적, 정통적 교회와 가장 가깝다고 주장한다. 늘 나를 화나게 하는 점 하나는 한 기독교지도자가 서로 아주 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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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적 요소에 대해서 일치하지 않을 따름인데도 자기 의견을 인정받기 위해 극단적인 예들을 사용해서 다른 기독교지도자를 공개적으로 공격한다는 것이다. 교리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자기 확신에 관해서 활기차게 토론하는 것은 좋지만, 한 형제를 중상모략하며 공격하는 것은 아마도 잘못된 해석보다 훨씬 더 나쁜 죄일 것이다.

어떻게 우리가 사람들을 교리적으로 가려낼 것인가? 이 문제는 ‘우리가 교리를 가지고 사람들을 가려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야기시킨다. 우리 운동에도 생명, 건강, 풍성함을 좌우하는 코드인 그리스도의 몸의 DNA로 생각되는 것들이 있다. DNA는 신적 진리, 양육관계, 사도적 사명이다. 우리는 그분의 몸의 모든 세포에서 분명한 DNA를 보기 원한다. 이것이 우리 운동을 지탱해 준다. 그 중에도 신적 진리가 교회 내부와 독특한 우리 운동 내부의 건강과 연합을 위해 아주 결정적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확고히 붙잡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최근에 우리 운동은 15개 이상의 교단(개혁파에서 빈야드까지)과 5개의 선교단체와 연합해서 교회개척을 한다. 이제 질문은 ‘어떤 믿음이 중요한가?’와 ‘어떤 것이 결정적이지 않는가?’이다. 우리가 교리 때문에 어떤 사람들과의 교제를 거부할 때 거기에 중요한 것이 있는가? 우리의 다양한 운동 가운데 연합을 유지하는 방법들 중 하나는 우리가 ‘총알 테스트’라고 부는 것을 사용해 사람들을 테스트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묻는다: 누군가가 당신의 머리에 총을 데고 ‘이 교리를 포기해라. 그렇지 않으면 쏘겠다.’고 할 때, 당신이 ‘방아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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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겨라.’라고 말한다면, 그것이 총알 교리이다. 우리는 총알 교리에 반드시 동의해야만 한다. 우리는 총알 교리가 아닌 교리를 붙잡고 확신을 가지고 가르칠 수도 있지만, 그것을 가지고 형제와 자매를 거부하거나 공격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우리에게 깨우침을 주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위해 내가 죽거나 누군가를 죽일 만큼 가치 있는 것은 아닌 이차적인 교리이다. 우리를 위한 총알 교리가 다음에 있다: 우리는 믿는다. 아 버지, 아들, 성령 세 분이시며 동시에 하나이신 참 하나님

예 수님의 신성과 성육신하신 인성, 그리고 그분의 죽음, 장례, 부활, 승천, 임박한 재림 가운데 분명하게 나타나는 그분의 구속적 사역

구 원은 우리 자신의 행위의 결과가 절대 아니고 은혜 때문에 믿음을 통해서 얻는다는 것

처 음에 오류 없이 기록되었고, 모두 계시를 통해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의 영감과 능력

모 든 신자는 하나님나라를 위해 중요한 존재이고, 그렇게 행하기 위해 필요한 권한을 부여 받기 위해서 구속 받았다는 것

물론 이것이 불변하고 유일한 심사기준이라는 것은 아니다. 규정된 신앙에 인지적으로 동의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필요하고 오랜 기간 성장해야 하는 관계의 출발점일 뿐이다. 우리도 이것이 이단을 가려내는데 있어서 어리석음을 막아주는 방법이 못 된다는 것을 안다. 1978년 가이아나에서 잘못된 교리에 따라 ‘(청산가리가 든) 쿨에이드’를 시음하고 거짓 가르침에 생명을 내어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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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있었다. 거짓말에 자신들의 생명을 내주었던 사람들은 역사상 많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든 총알 교리가 실수를 막아주는 방법은 못 된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령을 모시고, 그분의 음성을 들으며, 타협하지 않는 진리에 연결된 사람들을 위한 출발점일 뿐이다.

그러면 당신은 이단이 유기적 교회운동을 이용하는 것을 어떻게 막겠는가? 우리는 유기적 교회운동 안에 우수한 항체 같은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사실 내가 믿기로, 이것이 전통교회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해결방법보다 훨씬 더 낫다. 이단은 흔히 다음의 세가지 때문에 생긴다: 1.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가장 많은 추종자들을 모으기 원하고, 강하게 자기 주장만 고집하는 리더. 2. 그를 따르는 성경을 모르는 그리스도인 그룹. 3. 거짓 교리를 만들기 위해 성경을 문맥과 상관없이 사용함. 삶을 변혁시키는 소그룹(LTG) 전략을 가지고, 우리는 교회 생활의 세포수준(2-3명이 모이는 더 작은 모임, 즉 LTG)에서 이런 문제들을 다루어왔다. LTG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이단의 감염을 막기 위한 싸움을 하는 곳이다. 이 싸움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거기서 결정된다. LTG에서 남성이나 여성이 1명이나 최대 2명의 다른 사람을 만난다. LTG는 미래에 이단이 될 인물에게 결코 매력적인 추종자들이 아니다. LTG에서 모든 사람들은 많은 성경(일주일에 25장 이상)을 읽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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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동일한 본문을 읽고, 문맥을 따라서, 성경 중 한 책 전체를 한꺼번에, 반복해서 읽는다. 성경을 모르는 추종자들이 생길 수 없다. 또한 성경을 문맥에서 이탈시키기도 매우 어렵다. 왜냐면 성령님이 그 안에 계신 3명의 그룹원들이 동일한 책의 본문 전체를 반복적으로 읽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유기적 교회운동은 이단을 허용하지도, 이단과 싸우는 일에 직접 참여하지도 않는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내가 확신하건대, 사실상 우리가 엄격한 통제로의 회귀나 하나님의 진리 수호자 없이도, 교회 안에서 이단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더 좋은 방법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우리를 위협하기 위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졌던 바로 그 생각 - 평범한 그리스도인들의 손에 성경을 돌려놓은 것 - 이 이단의 위협을 약화시킬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다. 예전에 마틴 루터는 이렇게 말했다. ‘내 생애 두 가지 목표는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언어로 된 성경을 갖게 하는 것과 그들의 손에 찬송가를 쥐어주는 것이다. 그것들을 풀어놓으라. 그러면 불길이 저절로 번질 것이다.’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불길이 맹렬히 타오르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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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하기 Roger Thoman(가정교회개척자, Simple Church Journal)

유기적 시스템을 가진 조직들의 진정한 능력은 배가의 가능성이다. 이 원리는 자연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 씨앗 하나가 열매를 생산해서 더 많은 씨앗을 배가할 수 있는 식물 하나를 만들어낸다. 숲 전체는 인간의 힘이 전혀 필요 없고 하나님의 창조 속에 내제된 자연의 재생산하는 능력에 의해 유지된다. 유기적 교회개척 훈련가인, 내 친구 케빈 슈터는 훈련생들에게 쌀 낱알을 나누어 주길 좋아한다. 그는 매년 단지 두 번만 심을 수 있는 이 쌀 한 알로 인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설명한다. 1년 만에, 이 한 알이 만개의 식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또한 2년 만에, 백 만개이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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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을 생산할 수 있다. 이것이 자연의 유기적 배가이다. ‘우리가 전도하기 위해 다가가고, 제자삼고, 모으고, 다른 사람들도 동일한 것을 하도록 능력을 부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신적이고 유기적인 배가과정의 일부가 되어간다.’

예수님은 설명을 위해 유기적 비유들을 사용하셨다. 예수님은 하나님나라를 설명하기 위해 유기적 비유들을 사용하셨다. 왜냐면 지상에서 그의 사역은 살아있고 배가되는 운동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가복음 4장에 잘 알려진 씨앗의 비유가 나온다. ‘귀 기울여라!’ 예수님이 가르치셨다. ‘농부가 씨앗을 뿌리기 위해 나갔다(3절).’ 나중에 예수님이 이렇게 설명하신다: ‘이것은 하나님나라와 같다(26절).’ 예수님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자라지 못하는 다양한 씨앗들에 관해 묘사해 나가신다. 그런 후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을 묘사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치신다. ‘다른 사람들은 좋은 땅에 심긴 씨앗처럼, 말씀을 듣고 그것을 받아드려서, 뿌린 것의 (강조해서) 30배, 60배, 심지어 100배의 곡식을 생산한다.’ 이것은 예수님 나라의 방법, 즉 그분의 나라가 성장하고 퍼져나가는 방법이고, 하나님의 영광이 이 땅에 가득해지는 방법이다. 인간이 만든 조직이 아니라, 모든 신자 안에 존재하는 생명을 적절하게 돌보고 경작하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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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는 영적 출생 때부터 시작된다. 새롭게 태어난 모든 생물들이 그 안에 재생산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의 새 생명을 받아드린 새신자들은 그들 안에 재생산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모든 새로운 영적 탄생에서 항상 배가의 가능성이 발휘되는 것을 보길 원한다. ‘누군가가 새로운 생명을 경험하자마자, 우리는 그들에게 다른 사람들과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도록 격려한다.’ 하나님이 우리 속에 넣어주신 것을 배가하는 DNA는 한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받아드린 순간부터 작동을 시작할 수 있다. 즉시 다른 사람들과 자신의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그들은 빠르게 재생산하게 되고, 하나님이 사용하실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졌다는 것을 배운다. 새로운 제자는 전도하기 위해 다가가고, 자신이 받은 모든 것을 즉시 거저 줌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제자 삼기 시작할 수 있다. ‘우리는 공개적으로 사람들을 세례 주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는 세례가 그 사람의 친구들과 가족들을 축하행사에 초대할 수 있는 놀라운 기회라는 것을 발견했다. 이 시간은 새 생명을 경험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그 체험을 나누게 한다. ‘전도하기 위해 다가가고 다른 사람들을 제자 삼는 일은 첫날부터 시작할 수 있다.’ 한 사람이 하나님과 동행하고 제자가 되는 과정을 통해서 삶의 교훈들을 배우고 있다면, 그는 다른 사람들도 같은 방식을 따르고 성장하도록 도울 수 있다. 새로운 제자들은 자신의 삶에 성장을 가져온 동일한 도구들(성경, 기도)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자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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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을 나누어 줌으로써 제자 삼는 자가 될 수 있다. 모임이 자신이 이끌 수 있을 만큼 단순하다면, 새로운 신자는 즉시 다른 사람들을 모을 수 있다. 모임이 단순해져서 기본으로 돌아간다면, 예수님 안에서 새롭게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아직 배우고 있는 자들도 다른 새신자들이나 구도자들을 함께 모아서, 자신이 배우고 있는 방식대로 해볼 수 있다. 새로운 신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제자 삼고, 모으는 일을 즉시 시작할 수 있을 때, 하나님나라의 배가과정은 믿을 수 없을 만큼 강력한 방식으로 불붙을 수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능력을 부여하는 일은 새로운 신자들에게 자연스러운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새로운 신자가 ‘가장 건전한 의미의 리더’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은 다른 사람들을 돕고 강하게 하고 향상시켜주기 위해 거저 주셨다는 점을 배운다.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능력을 부여하는지를 아는 리더가 되는 방법을 처음부터 발견한다. 우리가 하나님나라의 단순한 원리들(다가가기, 제자삼기, 모으기, 능력부여하기, 배가하기)이 새로운 신자들의 삶 속에서 개발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때, 통제하고 수고하게 하는 인간이 만든 시스템이 없이도 하나님의 생명의 자연적인 능력은 스스로 재생산 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참된 유기적 배가의 경이로움이다.’

교회개척운동 스스로, 기하급수적으로 배가하는 하나님나라의 능력은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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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상이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교회 때부터 오늘날 전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운동들까지 무수히 많은 예들이 있다. ‘교회개척운동’이라는 용어는 제자들과 교회들이 유기적으로 빠르게 재생산하는 이런 상황을 묘사하기 위해서 흔히 사용된다. 교회개척운동에 관한 데이비드 게리슨의 책에서 그는 수많은 최근 사례들에 대해 언급한다: 인 도에서, 교회개척운동은 7년이 안되어서 4,000개의 교회를 재생산했다.

중 국의 한 북부지역에서, 5년이 안되어서 500개 이상의 교회와 20,000명 이상의 신자를 얻었다.

아 시아의 한 무슬림국가에서, 150,000 명 이상의 무슬림들이 예수님을 받아드렸고 3,000개 이상의 장소에서 이사 자마아트(예수 모임)을 하기 위해 모인다.

게리슨은 자신의 책에서, 우리가 방해물을 제거하고 이런 식의 재생산을 이끄는 원리들을 개발한다면 이 운동은 어쩌면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다고 결론을 맺는다.

배가를 촉진하는 원리들 게리슨은 모든 교회개척운동에 나타나는 몇 가지 요소들의 목록을 만들었다: 엄청난 기도

빈번한 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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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산하는 교회의 의도적 개척

하나님 말씀의 권위

평신도 리더십

가정교회

교회를 개척하는 교회

교회개척운동과 훈련에 참여해왔던 데이비드 왓슨은 건강한 재생산을 도울 수 있는 몇 가지 ‘반-직관적’ 원리들을 제안한다: 빨 리 가기 위해서 천천히 가라. 재생산의 DNA와 가능성을 가진 몇몇 사람들에게 기꺼이 투자하라.

설 교하거나 가르치지 말고 발견하게 하라. 성경공부를 위해 귀납적이고 참여적인 방법을 사용하라.

순종이 지식보다 더 중요하다.

구도자인 비신자들이 성경공부를 이끌게 하라.

교회가 교회를 개척하기 위한 최적기는 처음 시작할 때이다.

최대의 결과를 얻기 위해 최악의 장소를 기대하라.

우리는 씨앗의 능력을 믿을 수 있을까? 하나님이 모든 신자의 삶에 심으신 씨앗은 그분의 능력과 말씀이다. 성장, 생명, 능력, 재생산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을 그 속에 가지고 있다. 예수님은 우리가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능력을 부여하시지 않고 어떤 일을 하라고 우리에게 요구하시지 않는다. 우리가 믿기로, 마음 속에 잘 심겨진 씨앗은 적절하고 기본적인 돌봄이 주어진다면, 광범위한 계획, 조직, 노고가 없이도 열매 맺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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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 부분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배울 때, 우리가 심고 양육하는 동안, 하나님의 영이 다른 사람들 안에서, 그리고 그들을 통해서 그분의 생명을 성장시키고 배가시키는 힘든 일을 하시도록 맡길 수 있다. 내 선교사 친구들 중 하나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사역하려고 할 때 다음의 두 가지를 꼭 기억해야 한다고 자주 말한다: 1. 그 일은 우리가 하려고 하는 일보다 더 단순하다. 2. 우리가 하는 일보다 더 많이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다. 이 말들은 하나님이 이 땅에 자신의 말씀이 충만해지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는 엄청난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동시에 그분과 함께 하는 우리의 일은 단순하다는 것도 기억하게 해준다: 다가가기, 제자삼기, 모으기, 능력부여하기, 그런 다음 그것을 배가시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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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에 관한 교회의 이상한 태도 Neil Cole(가정교회개척가, CMA)

성직자가 아닌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제자들에게 세례주지 않음으로써 예수님께 불순종하도록 교회로부터 가르침을 받아왔다. 세례의 시행은 그리스도가 ‘성직자’나 교회조직이나 기관에 주신 것이 아니라, 모든 제자들에게 주신 것이다. 교회개척운동에서 언급된 것들 중 하나는 이렇다: ‘성경은 우리에게 세례를 받으라고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세례 주는 자가 되라고 명령한다(마28:19-20).’ 지역교회의 성직자만이 세례 줄 수 있다는 생각은 절대 성경적으로 지지 받지 못한다. 우리 전통과 경험이 이런 기준을 강화할지라도, 성경은 그렇지 않다. 실제로는 성경이 반대 편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신약에서는 흔히 리더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세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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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 것이 아니라 그들의 제자들이 대신 세례를 주었다. 특히 성경은 예수님이 세례 주실 때, 실제로 세례 준 것은 그분이 아니라 그분의 제자들이었다고 언급한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자신이 일부만 세례 준 것을 기쁘게 여긴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에게 세례 주는 단순한 문제가 교회역사에서 얼마나 많은 해악을 끼쳤는지 놀랍기만 하다. 사람들이 살해당했고, 사이비집단들이 생겼고, 교파들이 시작되고 분열했고, 이단들은 기둥에 묶여 화형 당했고, 선교단체들이 설립됐다. 우리가 이상하고 비성경적인 시각으로 세례를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단지 성경을 읽고 우리가 ‘신성시 하는’ 전통을 변호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고 있는 그대로 따른다면, 교회는 더 건강해질 것이다. 우리는 영적인 행위들을 감독하기 위해 영적인 경계선들을 만들었지만, 이런 경계선들이 성경에 있는 것은 아니다. 거짓된 경계선들이 성경적인 권위까지 가지게 되면, 휠씬 더 교묘해진다. 우리는 그것들을 진리라고 받아드리고, 심지어 성경에 있는 것도 아닌데 마치 있는 것처럼 변호하기 시작한다. 불행히도, 우리는 성경 자체보다 이런 거짓된 경계선들에 기꺼이 복종하곤 한다. 이 때문에 사단의 파괴적인 전략이 얼마나 많은 해악을 끼치는지 모른다. 우리가 기독교 그룹들이 이상한 일들을 하도록 분열시키는 인위적인 경계선들을 허락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한 선교단체의 구호 중에 이런 것이 있었다: ‘우리 세대에 대위임령을 완수하자.’ 이것은 훌륭한 구호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들이 이 대위임령을 어디서든 자유롭게 실행하는데 방해가 되는 규정을 여전히 가지고 있었다. 대위임령 구절들 가운데 제자들에게 세례 주라는 명령이 분명히 있다. 그것은 모든 제자들에게 주어진 권한이지만, 그들은 선교단체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들의 관점에서) 교회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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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를 줄 수 있기 때문에, 그 명령을 엄격하게 금지했다. 나는 우리가 교회 안에 만들어 놓은 이상하고 거의 정신분열증적인 규정들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길 바란다. 영적인 가족들을 투표권 있는 ‘회원들’과 침묵하는 ‘비회원들’로 나눈다든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 중 한 명령은 불순종하면서 대위임령을 수행하라고 한다든지, 항상 거짓되고 인위적인 경계선들은 이상한 관행들이 자리잡게 만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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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와 세례 Roger Thoman(가정교회개척가, Simple Church Journal)

우리는 새로운 신자들에게 세례 줄 때, ‘가능한 한 빨리, 그리고 가능한 한 공개적으로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라.’는 닐 콜의 조언을 따라왔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파티를 연다. 그것은 이미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아니라, 세례 받는 사람들의 가족들과 친구들을 위한 파티다. 실제로 최근에 세례를 줄 때, 우리가 이미 아는 사람들보다 휠씬 더 많은 손님들이 참석했다. 가장 최근의 세례식은 예상 밖의 변화를 가져온 대표적인 예이다. 존은 갱단, 교도소, 마약 가운데 살던 삶에서 구원받은 20대초반의 청년이다. 그는 세례 받기를 원했다. 우리는 그에게 우리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너무 잘 됐네요! 파티를 엽시다. 당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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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가족들을 모두 오라고 초대하세요. 당신은 하나님이 당신의 삶에 행하신 일을 나눌 수 있어요. 우리는 바비큐를 하고, 당신에게 세례를 주고 손님들을 즐겁게 해 줄 겁니다.’ ‘좋아요.’ 그는 그렇게 하겠다고 받아드리면서 말했다. ‘그런데 딱 한가지 문제가 있어요.’ ‘그게 뭔데요?’ 우리가 물었다. ‘맥주가 없으면, 내 가족들과 친구들이 올지 모르겠네요.’ ‘상관없어요.’ 우리가 그에게 말했다. ‘맥주를 가져오세요.’ 그는 그렇게 했다. 그의 가족들과 친구들이 왔다. 아마 그들은 2030명 정도 되었을 것이다. 아무도 취하거나 인사불성이 되지 않았다. 어째든 그것이 ‘세례식’이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멋진 시간을 가졌다. 존은 어떻게 하나님이 자신의 삶에서 역사하셨는지,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곳에 온 사람들 사이에 새로운 관계가 많이 맺어졌다. 이 이야기가 이것을 읽는 사람들 중 일부를 불안하게 만들지 모른다. 그렇다면 곰곰이 생각해보라. 세례가 정말 공개적인 것이 되어야 하고 그리스도인들이 밀실 뒤에서 행하는 행사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쉽게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일반인들이 초대받아 참석한다면, 그들이 보통 일반인들이 하는 모든 일들을 당연히 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앞의 이야기는 내가 참석했던 최고의 세례식 중 하나였음이 틀림없다! (덧붙여서, 그의 장인과 장모가 그를 세례 주었고, 그들은 현재 그의 영적인 부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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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간식 Steve Atkerson과 Eric Svendsen(가정교회개척가)

아내와 내가 저녁만찬을 위해 당신을 우리 집으로 초대했다고 상상해보라. 우리가 당신에게 대접한 것들이 고작 주스 한 잔과 크림소다 크래커 약간이었다면, 당신은 어떤 생각을 했을 것 같은가? 당신은 그런 저녁만찬을 소중히 여겼을 것 같은가? 그것은 간식이라고 밖에 볼 수 없지 않은가? 당신은 실망하거나 심지어 속았다고 느끼지 않겠는가? ‘저녁만찬’은 일반적으로 배불리 먹도록 충분한 음식을 주는 풀 코스 식사를 의미한다. 평범한 식사보다도 적은 양의 음식은 보통 ‘간식’으로 여겨진다. 대부분의 교회들이 (주스 한 모금과 크래커 한 조각으로) ‘주의 만찬’을 준행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왜 그것을 만찬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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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는 것일까? 그것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부르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많은 신자들에게 ‘주의 만찬’은 전혀 만찬이 아니다. 그것은 ‘주의 식전 간식’이다! 우리 주님이 진짜 의도하신 것이 기념 간식 정도였을까?

만찬의 형태 주의 만찬(Supper)은 원래 유월절 성찬(Feast)이었던 ‘최후의 만찬’(눅22:7-38)에서 유래되었다. ‘성찬’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본 적이 있는가? 성찬은 엄청나게 많은 음식을 가지고, 잘 차린 식사, 연회, 잔치를 말한다. 이런 유월절 성찬이 주의 만찬이 되었다. 누가는 최후의 ‘만찬’때, 예수님이 잔을 들고 이것은 ‘너희를 위해 쏟아 부어진 나의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다.’라고 말씀하셨다고 기록한다(22:20). 누가가 ‘만찬’이라는 단어로 사용한 그리스어는 ‘데이프논’이라는 어근명사에서 왔다. 당신이 추측할 수 있듯이, 이 단어는 ‘저녁 정찬, 만찬, 저녁 메인식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한 ‘공식 식사, 연회’를 의미할 수도 있다. 같은 단어가 누가복음 14:1524에도 사용되었다. NIV성경은 ‘커다란 연회’(14:16)라고 번역했다. 예수님이 잔을 돌리신 것은 만찬 후였지만(눅22:20), 빵을 들고 ‘이것은 내 몸이고, 내가 너희를 위해 포기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만찬이 진행되는 동안이었다(22:19, 마26:26, 막14:22)는 점을 주목하라. 우리가 주목할 것은 새롭게 시작하는 주의 만찬이 연회 중간에 시행되었다는 점이다. 유월절 식사는 새로운 것, 즉 ‘주의 식사’로 전환되었다. 사도들은 이것으로부터 ‘주의 만찬이 어째든 더 이상 진짜 식사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추론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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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스터디 성경에서, 고린도전서 11:17-34의 제목을 ‘주의 만찬’ 혹은 이와 비슷한 말로 붙었다. 고린도교인들이 주의 만찬을 준행하기 위해 공식적으로 함께 모였을지라도, 그들은 그것을 너무 안 좋게 남용했기 때문에 바울은 그것이 주의 만찬이 되지 못하고(11:20) 대신에 자기 자신의 만찬이 되었다(11:21 NASB)고 말한다. 그들은 이런 상황이 야기되도록 어떤 잘못들을 저질러왔을까? 첫째, 분열이 그들 가운데 존재했다(11:18, 이후에 더 심해졌다.). 둘째, 그들이 각자 오자마자 먼저 주의 만찬을 먹고 다른 사람들을 기다려주지 않았다(11:21). 그 결과, 늦게 도착한 사람들은 배가 고팠고 일찍 도착한 이들은 이미 술에 취했다(11:21)! 셋째, 그들은 만찬을 통해서 주의 몸을 알아가는데 실패했다(11:29). 고린도교인에게 보낸 편지는 예수님이 주의 만찬을 제정하신지 약 20년 후에 쓰여졌다. 그들이 그것을 형식적인 기념물(한 모금의 주스나 빵 부스러기)로 기념했는가? 완전한 식사로 기념했는가? 11:21을 보면 그들이 진짜 만찬으로 이해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으면 ‘배고픔’이 어떻게 문제가 될 수 있겠는가? 주의 만찬을 정말 완전한 식사로 받아드리지 않았다면, 아무도 교회로 가서 자신의 육체적인 배고픔을 채우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도대체 누가 포도주 한 잔에 취하겠는가? 그래서 고린도인들의 잘못에 대한 바울의 영감 받은 해결방법은 무엇인가? 그가 그들에게 식사를 그만 두라고 했는가? 그의 대답은 ‘너희가 먹으려고 함께 모일 때, 서로 기다리라.’였다(11:33). 너무 배가 고파서 먼저 음식을 모두 먹어 치우고 싶은 유혹을 받는 사람들에게 바울은 ‘누구든지 배가 고프면, 그는 집에서 먹어야 한다.’(11:34)고 적고 있다. 어디에도 바울이 주의 만찬을 그만 두라던가, 간식 형태의 기념물로 줄이라고 말한 곳은 없다. 반면에 우리가 지금 볼 수 있는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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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찬, 그 배후에 있는 신학은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가! 끝으로 한 가지 덧붙일 (중요한) 말은 주의 만찬의 형태에 관한 것이다. 완전한 식사와 함께 계속 떡과 잔도 있어야 한다. 고린도전서 10:16-17은 ‘한 떡 덩어리가 있기 때문에,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다. 우리 모두가 한 떡 덩어리에 참여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면서 ‘그’ 잔과 ‘그’ 떡 덩어리를 언급한다. 주의 만찬 시에 우리가 잔(혹은 그릇) 하나와 떡 덩어리 하나를 사용하는 것은 중요하다. 잔 하나와 떡 덩어리 하나는 한 몸과 같은 우리의 연합을 상징할 뿐 아니라, 실제 연합하게 만든다! 10:17에서 ‘때문이다(개역개정판에서는 ‘이는’으로 번역).’라는 단어를 발견했는가? 이것은 이유를 설명하겠다는 표시이다. ‘우리는 한 몸이다. 왜냐면 우리가 한 떡 덩어리에 참여하기 때문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이런 모범을 따르는 것은 고린도교인들을 괴롭혔던 ‘분열’(11:18)을 우리가 극복하도록 돕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어째든 고린도전서 10:16-17의 추론을 근거해서, 조각난 크래커 부스러기들과 주스가 담긴 작은 잔들을 나누는 일반적인 방식은 연합보다는 오히려 분열과 불화의 상징으로 보인다.

만찬의 초점 ‘주의 만찬’의 형태가 완전한 식사였기 때문에, 만찬의 초점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간식 형태의 기념물을 나누는 동안, 그리스도의 죽음에만 초점을 둔다. 모든 사람들은 머리를 숙인 채 조용하고 침울하다. 흔히 오르간이 배경음악으로 조용히 연주된다. 이것은 ‘나를 기념하여 이것을 행하라.’(눅22:19)고 하신 예수님의 명령에 부분적으로 근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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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 분위기가 적절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이상하게도, 사도행전은 이와는 다른 그림을 보여준다. 예수님이 ‘떡’을 들고 그것을 떼신 이래로(눅22:19),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사도행전에 나오는 ‘떡을 떼다.’는 구절이 주의 만찬을 가리킨다고 본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주의 만찬은 ‘교제’(2:42), ‘기쁨과 순전한 마음’(2:46), ‘하나님을 찬미하며’(2:47)라는 말들과 연결된다. 게다가 고린도전서 11:17-34의 장면도 전혀 암울하지 않다. 왜 그 당시와 지금은 다른가? 성경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식사는 교제와 용납의 상징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내가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계3:20) 이 때문에, 예수님은 천국을 ‘풍성한 음식이 차려진 아브라함의 식탁(아브라함의 ‘품’)에서 좋은 자리에 앉는 것(눅16:19-31)’으로 묘사하셨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렇게 말했다. ‘복이 있도다. 하나님 나라 잔치에서 먹을 자여.’(눅14:15, 또한 마8:11을 보라. 거기서 예수님은 하늘나라에서 아브라함과 함께하는 잔치를 언급하셨다.) 우리는 유다가 함께 먹었던 분을 배신할 만큼 뻔뻔했다는 사실에 격분하게 된다: ‘내 빵을 나눈 자가 나를 대항하여 자기 발꿈치를 들었다.’(요13:18) 이것은 초대교회가 주의 만찬을 즐거운 교제 시간으로 보았다는 증거이다. 하지만 ‘나를 기념하여 이것을 행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은 어떻게 되는가? 이것이 십자가의 참혹함을 생각나게 하는 장례식 분위기를 연출하게 만들지 않는가? 주의 만찬이 단순한 식사가 아니었다는 것(고전11:29)을 아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그것은 신성하고 언약적인 식사이다. 예수님이 자신의 몸을 주시지 않고 자신의 피를 붓지 않으셨다면, 새 언약이란 있을 수 없고 죄의 용서도 없고 기뻐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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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헬라어로 ‘나를 기념하여’(문자적으로 ‘내가 기억하도록’ 눅22:19)라는 구절은 두 가지 의미 중에 하나로 사용될 수 있다. 하나는 우리가 예수님에 관해서 기억하기 위해 주의 만찬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과거를 바라봄). 또 하나는 예수님이 무언가에 관해서 기억하시도록 우리가 주의 만찬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미래를 바라봄). 누가 기억해야 하는가? 성경본문은 예수님이 의미하셨던 것을 알아내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 누가복음 22:15에서 예수님은 자기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유월절 식사를 먹고 싶은 자신의 간절한 소원을 표현하셨다. 왜냐면 ‘유월절 식사가 하나님나라에서 완전히 이루어질 때까지’ 다시 먹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주의 만찬’의 미래적 측면을 예측할 수 있다. 예수님은 잔을 돌리시면서 22:18에 ‘하나님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의 열매를 다시 마시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이런 미래적 양상을 다시 한번 언급하셨다. 주의 만찬은 미래를 바라보게 하고, 하나님나라가 임할 때 일어날 잔치의 전형을 보여준다. ‘완전히 이루어질’(22:16) 예언이라는 말이다. 그런 다음 잔을 돌리신 직후에,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아버지가 나에게 주신 것처럼 나는 하나님나라를 너희에게 주어서, 너희가 내 나라에 있는 내 식탁에서 먹고 마시게 할 것이다.’(22:29-30) 풀 코스 식사로 주어진 주의 만찬은 미래에 하나님나라에서 먹고 마실 것을 생각나게 한다. 유대인들의 사고에서 다른 사람과의 식사는 교제와 용납의 완전한 그림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자연스럽게 다가올 메시아적 하나님나라를 중단되지 않는 잔치로 보았다(눅14:15, 16:19-31, 마8:11). 하나님나라에서 먹는 것에 관한 이런 이미지는 누가복음 22:15-16과 29-30장에서 예수님 자신에 의해 더 발전되었다. 요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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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에서 기록했던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영광을 돌리자. 왜냐면 어린양의 결혼식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복이 있도다. 어린양의 결혼 식사에 초대받은 자들이여!’(19:7-9) 재림의 미래적 사건과 주의 만찬의 이런 연관성은 ‘예수님이 기억해야 할 분’이라고 시사한다. 미래적 식사로서 주의 만찬은 돌아와서 메시아적 잔치를 열기로 한 자신의 약속을 예수님이 기억하시게 하자는 실물교육이자 기도이다! ‘나를 기념하여’라는 구절의 전후 문맥을 살펴보는 것보다 휠씬 더 많은 것을 말해주는 것은 ‘나를’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이다. ‘에모스(emos)’라는 헬라어 단어가 좀 더 일반적으로 쓰였던 ‘모우(mou)’ 대신 사용되었다. 만일 ‘모우’가 사용되었다면, 그 의미가 더 모호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이 구절은 ‘이것을 행하여 너희(교회)는 나를 기념할 수 있을 것이다.’로 번역될 수 있다. 하지만 ‘에모스’라는 단어는 항상 소유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이럴 경우, 교회의 기억이 아니라, 예수님의 기억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를 기념하여 이것을 행하라.’는 구절은 ‘내가 기억하도록 이것을 행하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낫다. 기억해야 할 분은 예수님이다. 정말 그분이 기억하시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11:26에서처럼, 우리가 떡을 먹고 잔을 마실 때면 언제든지 주님의 죽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우리가 누구에게 ‘선포’하는 것인가? 우리는 기억해야 할 분인 예수님에게 선포한다. 하지만 우리가 왜 ‘선포’해야 하는가? 선포의 목적이 무엇인가? 우리는 ‘그분이 오실 때까지’ 선포한다(고전11:26). ‘때까지’라고 번역된 헬라어 구절은 시간제한만이 아니라 목적을 의미한다. 우리의 먹고 마심은 예수님의 재림을 가져오도록 돕는 예언적 행동이 된다. 초기 신자들이 말했던 것처럼, ‘마라나타’ 주님 오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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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찬의 횟수 우리는 얼마나 자주 주의 식탁으로 가야 하는가? 고린도전서 11:18 상반절에 ‘너희가 교회로써 모일 때’라고 언급하고 주의 만찬과 관련된 가르침을 시작한다. 이것은 분명히 교회가 모일 때마다 주의 만찬을 축하하라는 뜻이다. 놀랍게도, 교회모임을 가지는 유일한 목적이 사도행전 20:7에 나온다. ‘그 주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기 위해서 함께 모였다’ ‘떡을 떼기 위해서’라는 구절은, 헬라어로는, 목적이나 목표를 의미하는 ‘목적’ 부정사이다. 왜 교회는 그 주의 첫날에 함께 모였는가? 주의 만찬을 축하하기 ‘위해서’이다(또한 고전11:33를 보라). 그러므로 매주 모이는 성도들의 모임의 주된 목적은 빵을 떼는 것이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교제를 즐기고, 서로 격려하고 권면하고, 기도제목을 나누고, 하나님이 자신의 삶에서 행하고 계신 것을 이야기하고, 서로 사랑과 선행을 하도록 권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기억나게 하고, 예수님이 다시 오시겠다는 자신의 약속을 기억하시게 하고, 떡 덩어리 하나를 사용함으로 한 몸이 되게 한다. 이 진리는 계속 되풀이되어야 한다. 교회가 주일모임에서 행해야 할 주된 활동은 풀 코스 식사로 된 주의 만찬을 먹는 것이다. 그 밖에 모든 것은 부차적인 것들이고 따라서 선택사항이다. 우리가 매주 모이는 것은 ‘예배’ 드리기 위해서나, ‘설교’ 듣기 위해서나, 찬양모임을 갖기 위해서나, 그밖에 다른 어떤 이유 때문이 아니다. 물론 이런 활동들은 해도 되지만, 주의 만찬을 대신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생각에 수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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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그리스도의 나라의 도래와 연관 있는 식사는 마태복음6:9-11에 나오는 기도의 모범에서도 볼 수 있다. 하나님나라를 언급하시면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신다.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게 하시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 그리고 바로 다음 문장이 ‘오늘 우리에게 매일매일 필요한 떡을 주십시오.’(6:11)이다. 하지만 6:11에 나오는 그리스어는 번역하기가 너무 어렵다. 문자 그대로 직역하면 ‘오고 있는 날(혹은 내일)에 속한 우리의 떡을 오늘 우리에게 주십시오.’ 정도로 번역된다. 6:11을 6:10과 연결시키면, 예수님은 메시아적 잔치의 떡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지도록 우리가 구하라고 가르치고 계신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하나님나라가 임할 때 일어날 일이다! 우리가 이 기도의 모범대로 기도하든지, 주의 만찬을 축하하든지, 예수님의 재림을 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날을 바라보고 그날이 앞당겨 오도록’(벧후3:12) 해야 한다. 아멘. 마라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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