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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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라운지 가이드북

ECCO LOUNGE GUIDE BOOK

후에 H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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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 (HUE)

응오몬(午門) 후에 황궁의 정문인 응오몬(午門). 정오가 되면 태양이 문 위로 떠오른다고해서 응오몬이라고 칭했다고 전해진다. 출입문은 모두 5개로 가운데는 황제, 양쪽은 각 각 왼쪽은 무관 오른쪽은 문관이 출입했으며, 나머지 좌우의 작은 출입문은 동물 들이나 일반인이 출입했다고 한다. 민망황제 시절인 1833년 건설되었다. 베트남 중부지방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 미썬, 호이안, 후에 이렇게 3곳이 있다. 비교적 가까운 호이안은 개인적으로 좋아하 는 장소여서 자주 방문했고, 미썬은 예전에 투어를 따라다니며 한 번 방문한 적이 있었지만 후에는 아직까지 가볼 기회가 없었다. 다낭 생활을 마무 리하며 꼭 들러야겠다고 다짐하고 당일치기 기차여행을 계획하던 도중, 후에에 대해 공부해보니 거리도 멀고 볼 것도 너무나 많아 당일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어 2박 3일로 일정을 변경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지인의 차편을 함께 이용할 수 있는 행운을 얻어 편안히 갈 수 있게 되었다. 다낭에서 북쪽으로 약 100km정도 떨어져있는 후에는 17-19세기에 걸쳐 약 150여년간 응우옌왕조의 도읍지였다. 응우옌왕조는 베트남의 남부 전 역을 통치했던 봉건왕조로, 1802년 초대황제인 자롱 황제에 의해 통일이 되었고, 1945년 바오다이 황제가 호치민의 혁명정부에 의해 권력이 이양 된 시기까지 13명의 황제를 배출했다. 한 왕조의 수도였던 후에는 지역적인 요인으로 전쟁의 격전지가 되어 많은 시련을 겪기도 했는데, 자유진영 (남베트남)이었던 후에는 최전방의 방어지로 베트콩의 공격을 많이 받았고 결국 점령당했지만, 미군의 폭격에 또 한번 시달려야 했다. 따라서 베트 남의 경주라고 할 수 있는 후에 방문의 목적은 왕궁과 왕릉 등 베트남 최후의 왕조였던 응우옌왕조의 문화를 돌아보는 것이다. 다낭에서 후에로 차를 타고 넘어가는 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세계 8대 비경 중 하나라는 하이반고개(Deo Hai Van)를 넘어가면 약 2시간 반, 착공된지 얼마 안 된 하이반 터널을 지나가면 약 2시간정도가 걸린다. 나는 하이반고개를 넘어가는 길을 택했다. 구불구불한 도로를 쭉 따라 올라가다 보면 오토바이를 타고 고개를 넘는 현지인들과 외국인 관광객들을 많이 만날 수 있지만, 길이 좋지 않아 약간 위 험할 수 있어서 추천하지는 않는다. 날이 맑았으면 다낭 시내가 한눈에 보였을 텐데 날씨가 흐려서 바다와 하늘의 경 계가 흐릿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중간에 위치한 휴게소에 들렀다. 여기엔 오래된 망루가 있는데, 이 망루들은 옛 프랑스 식민시절에 만들어져 남북 베트남 전쟁 때 남베트남군과 미군이 사용했다고 한다. 당시 이곳에서 전쟁 막바지에 치 열한 전투가 벌어졌다는 사실을 입증하듯 망루 곳곳에는 총탄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내려가는데 아름다운 랑꼬마을 이 보였다. 길 중간중간에 산양들도 보였다. 베트남 길거리에서 닭이나 소, 물소 그리고 원숭이는 참 많이도 봤지만 산양떼는 처음 봐서 정말 신기했다.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는 운전기사 아저씨는 어눌한 한국어로 이 지역에 유난히 산양이 많 다고 말해주었다.

휴게소에 위치한 망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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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반고개에서 내려가다 보이는 랑꼬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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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길을 따라 얼마나 달렸을까, 슬슬 주변에 후에 명물 쌀국수, Bun Bo Hue를 파는 식당 간판들이 보이기 시작할 때 후에에 가까워짐을 알 수 있 다. 아침 9시에 출발해 후에에 도착하니 거의 12시가 다 되간다. 점심을 간단하게 챙겨먹고 흐엉강을 가로질러 첫 번째 목적지인 황궁이 있는 구시 가로 향한다. 후에의 구시가(京城, Kinh Thanh, Citadel)는 후에를 수도로 삼았던 응우옌 왕조들의 황제들이 건설한 도시이다. 자롱황제가 1804년부터 건설하기 시작해 민망황제 때인 1832년에 완공되었다. 도시를 감싼 성벽의 총 길이는 10km, 높이 7m, 두께 20m로 쌓았으며 10개의 출입문을 만들었다. 구시 가로 들어가려면 해자를 건너 작은 다리와 옛 성문들을 통과해야 하는데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구시가 내부의 황궁은 후에의 가 장 큰 볼거리로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후에 시내를 가로지르는 흐엉 강변에 서있는 큰 깃발 탑은 자롱황제 때인 1807년 처음 만들어졌다. 초기엔 나무를 이용해 18m높이로 만들고 황제 를 의미하는 노란색 깃발을 게양했다고 한다. 하지만 후대의 황제들에 의 해 지속적으로 증축하며 규모가 커졌고, 1968년 콘크리트를 이용해 37m 의 높이로 재건축 후 후에를 점령한 베트콩의 깃발이 게양되며 베트남전쟁 의 전세가 역전됨을 알리기도 했던 상징적인 곳이다. 현재는 베트남 국기 가 게양되어 있다. 황궁에서는 이렇게 귀여운 꼬마전동차를 타고 이동한다. 독특하게도 운전 기사가 대부분 여성이다. 그를 통해 모계중심의 베트남 문화를 엿볼 수 있 다. 하지만 가이드 아저씨는 운전기사로 여자가 많은 이유가 단지 손님들 이 여자를 더 좋아해서 황궁에서 여자 운전자들을 많이 뽑았기 때문이라 고 말해주었다. 응오몬을 지나 왕궁 내부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두 개의 패방과 태화전(太 和殿, Dien Thai Hoa)이 보인다. 패방은 문과 지붕이 없고 망대만 걸쳐진 대 문모양의 건물을 말하는데 첫 번째 패방에는 군주의 통치 이념이자 베트남 과 중국은 동등하다는 의미를 내포했던 정직탕평(正直蕩平), 두 번째 패방 에는 높고 밝은 것은 영원하다는 뜻의 고명유구(高明悠久)가 적혀있다. 무 언가 굉장히 중국식이다. 1000년동안 중국의 지배를 받은 베트남은 유적지 곳곳에서 중국의 향기가 난다.

패방에 적힌 고명유구

1805년 자롱황제에 의해 건설된 태화전

태화전은 황제를 상징하는 노란색 기와지붕에 용이 조각되어있는데, 황제가 조정 대신을 접견하거나 궁중 행사를 참관했던 알현실로 쓰였으며 황 제의 즉위식도 거행되던 곳이다. 앞마당의 비석들은 신하들의 품계가 적힌 석비이다. 실제로 신하들이 자신의 품계가 적혀진 비석 옆에 서서 황제 를 알현했다고 한다. 뒤로 더 들어가보니 터만 남은 자금성이 보인다. 잠깐, 자금성? 그렇다. 후에황궁은 중국의 자금성을 본따 만들어 양식이나 배치는 물론 명칭도 굉장 히 유사하다. 자금성은 황제의 집무실과 침전, 왕비의 침전이 있던 왕궁의 핵심구역으로 외부출입이 철저하게 통제되던 곳이지만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다 파손된 탓이다. 좌우에 온전한 건물들은 문관과 무관이 머물던 곳이라고 한다. 현재는 기념품을 팔고 왕과 왕비 복장을 대여해 주어 기념사진을 찍는 곳으로 꾸며놓았는데 옷이 상태가 별로 좋지 않고 직원도 없어서 구경만 하고 나왔다.

전동차를 타고 응우옌왕조의 역대 황제들과 선조들의 위패를 모신 종묘로 향했다. 종묘를 출입하는 문이라는 뜻인 미에우몬(廟門)을 들어서니 1824 년에 건설된 3층짜리 누각, 현임각(顯臨閣, Hien Lam Cac)이 나온다. 누각의 높이는 13m로 후대 황제들이 왕궁 내부에 더 높은 건물의 신축을 금해 현재까지도 왕궁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남아있다고 한다. 현임각 좌우에는 종을 쳐서 성문을 여는 시간을 알려주는 종루와 북을 쳐서 성문을 닫는 시간을 알려주는 고루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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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임각

세조묘(The To Mieu)

현임각 응우옌왕조 건설을 위해 헌신한 이들의 공덕을 기리는 일종의 왕실 사원으로 민망황제가 만든 이후로 황제들이 이 곳을 찾아 선조들의 명복을 빌었다고 한다.

세조묘(The To Mieu) 세조(The To)는 자롱 황제의 묘호(왕이 승하한 뒤 그의 공덕을 칭송하여 종묘에 신위를 모실 때 올리는 칭호)로, 세조묘는 자롱 황제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었으나 현재는 역대 황제들의 위패도 함께 모시고 있다. 현임각을 지나면 세조묘가 나온다. 안뜰에는 청동으로 만든 커다란 정(세 개의 받침대와 귀가 두 개 달린 쇠솥) 9개가 놓여져 있는데, 무게는 각 각 2톤이 넘는다고 한다. (사진으로 남기진 못했다) 민망황제 때부터 만든 정은 1~9대 황제들의 통치권을 상징하는 것으로 각각의 청동 정이 바라보는 방향에 황제들의 위패를 모신 세조묘가 있다. 모두 크기와 조각의 내용이 다른데, 가장 큰 것은 가운데에 있는 1대 황제인 자롱 황제 를 위한 높이 2.5m, 무게 2.6톤짜리 Cao Dinh이다. 세조묘 내부에는 정 중앙에 자롱황제의 위패를 모시고 오른쪽으로 2, 4, 9, 8, 10대 황제, 왼쪽으로 2, 7, 12, 11대 황제의 위패를 모셨다. 10명의 황제만 모신 이유는 프랑스 통치에 반기를 들다가 폐위당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8, 10, 11대 황제의 위패는 프랑스 군대가 완전히 철수한 1959 년에 들어와서 종묘에 모실 수 있었으며, 마지막 황제인 바오다이 황제의 무덤은 프랑스 파리에 있어 위패를 모시지 못했다고 한다. 과거에는 황 제들을 위한 제례 행사가 열렸으며, 유교적 전통에 따라 황후를 포함한 여성들의 출입을 철저히 제한했다고 한다.

세조묘 앞의 큰 청동정

자롱황제의 위패

세조묘 앞의 큰 청동 정 앞에서 향을 피우며 기도하는 현지인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나도 앞서 만나보았던 9개의 청동 정 곳곳에 남아있는 총 탄자국들이 마음이 아파 베트남 전쟁 당시의 한국군의 만행을 사과하며 잠시 묵념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시 전동차를 타고 조금 돌아보다 자롱황제가 그의 어머니를 위해 건설한 궁전인 연수궁(延壽宮, Cung Dien Tho)에 들렀다. 집무실과 침전, 사 원을 포함해 10여개의 건물로 이루어졌다는 이 곳은 정자와 연못, 수족관도 만들어 편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정원이 정말 아름 답게 생겼다. 장수무강을 기원하는 의미로 장수궁(長壽宮, Cung Truong Tho)라고 칭했으나 1916년 카이딘 황제 때에 이르러 건물을 증축하며 영원한 생명을 뜻하는 연수궁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만난 유럽인 단체관광객들이 베트남 전통의상인 아오자이를 입고 있는 내 사진을 잔뜩 찍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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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궁

초대형 옥쇄

황궁을 다 돌아보고 나니 약 오후 3시경. 한국어를 잘하는 베트남 현지 가이드와 꼬마 전동차를 타고 2시간정도 돌아보니 주요 건물 관람이 끝 났다. 마음 같아서는 자전거를 타고 이 고즈넉한 풍광을 더 즐기고 싶었지만 날이 너무 더워 그러지 못했다. 폭격으로 망가진 곳들도 있어 너무 아쉬웠지만 확실히 미썬보다는 훨씬 볼거리가 많았고 보존도 잘되어 있었다. 하긴, 미썬은 터만 남아있는 곳이 대부분이니까.. 후에 황궁 방문 은 내게 생각보다 정말 뜻 깊은 경험이었다. 우스갯소리로 후에는 유명하지만 막상 볼 것이 많지 않아 가도 후회하고 안가도 후회한다는 이야기를 많이도 들었었기에 좀 걱정을 했었지만, 응 우옌 왕조의 빛났던 시절을 엿보고 나니 후에에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이드가 가르쳐준 후에 특산품 중 다산 왕이었던 민망황제 가 즐겨 마셨다던 민망주를 사기 위해 시장 근처 한약방으로 향했다. 원기보충에 좋다고 하니 선물용으로 하나 구입해보았다.

공연을 했다던 극장. 내부가 정말 화려하다. 옆에는 당시 사용하던 의상과 탈 등이 전시되어 있다. 민망황제가 즐겨 마셨다던 민망주 후에의 볼거리는 크게 황궁이 있는 구 시가지와, 근교에 흩어져있는 역대 왕들의 묘인 황릉들로 나뉜다. 황궁나들이가 끝나고 시간이 좀 남아 해가 지기 전에 주변의 황릉을 좀 더 둘러보기로 한다. 나에겐 내일도 있기 때문에 내일 동선이 최대한 짧 을 수 있도록 오늘은 비교적 가장 멀리 떨어진, 카이딘 황릉과 민망릉을 방문하기로 했다. 구 시가지에서 흐엉강을 건너고 사람들이 사는 정겨운 동네를 지나서 10km정도 구불구불 가다 보면 어느덧 카이딘 황릉이 나온다. 중간에 푸 른 소나무가 울창한 어떤 매력적인 곳을 발견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거기가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던 남교더라. 거긴 그 다음날 방문했으니 나 중에 다시 이야기하도록 한다. 카이딘황제는 응우옌왕조 후기인 1916-1925시대 통치자였고, 13명의 황제 중 12번째 황제였으며, 안남왕조의 초대 황제이기도 했다. 평소 건강 이 좋지 않아 약물중독자가 되기도 했었으나 끝내 결핵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황릉은 1920년 건설을 시작해 황제 사후 6년, 착공 이후 11년만인 1931년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어느덧 도착, “우와-“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나온다. 고개를 들어 바라본 카이딘 황릉은 생각보다 더 위엄있었고 매력적이었다. 일단 웅장한 외 관을 한 번 사진으로 남기고 한 사람당 10만동, 한화로 약 5000원에 해당하는 입장권을 구매한다. 황궁은 물론 모든 황릉에 입장하려면 티켓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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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딘 황릉

카이딘황릉의 입장권

동양과 서양, 고전과 현대가 잘 혼합된 퓨전스타일의 근대 황제릉인 카이딘황릉은 시멘트로 만들어져서 예술성이나 역사물로서의 가치는 상대 적으로 굉장히 낮다고 하지만, 정말 위엄있다. 사실 카이딘왕은 베트남 역사상 그다지 좋은 왕은 아니었다. 대표적인 친불파로 평생 자신의 무덤 을 건설하는 일에 힘을 쏟아 백성들이 많이 원망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래서 그의 황릉은 굉장히 독특한 양상을 띤다. 프랑스 식민통치의 산물인 카이딘황제의 릉은 불교, 힌두교 양식을 추가하고 중국식 전통 황릉 배치방식을 두루 섞어 당시로서는 낯설고 약간 독창적인 양식으로 건축했다. 다른 황제들의 릉은 중국식이 대부분인 반면, 카이딘황제는 베트남과 유럽의 건축양식이 섞인 독특한 구조를 띈다. 이렇게 프랑스 양식을 본 딴 황릉을 건설하기 위해 직접 프랑스로 건너가 건축양식을 배워오기도 했다고 하니, 참 열심히도 만들었다는게 느껴진다. 외관에서 가장 독특한 풍경은 바로 계단을 올라가면 바로 보이는 안뜰일 것이다. 양쪽으로 세워진 첨탑은 오벨리스크라고 불리우는 고딕양식의 일부이며, 그 아래 왕릉을 수호하는 문, 무인들의 모습이 아시아의 성격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카이딘황릉의 입구 정면. 127개의 계단

천정궁에서 내려다본 입구쪽의 모습

현재 카이딘 황릉의 경우, 형태는 잘 보존이 되어있지만 관리상태는 굉장히 최악인데, 국민들이 싫어했기 때문에 관리를 잘 하지 않았기 때문이 라고 한다. 또 황제의 무덤인 황릉에는 늘 그 왕의 업적을 기리는 공덕비가 후대 황제에 의해 세워지는데, 카이딘황릉의 공덕비 뒤에는 현재는 모두 지웠지만 왕을 욕하는 낙서들로 가득했다고 한다. 프랑스의 꼭두각시 역할을 했다는 평을 듣고, 개인적인 사치와 자신의 무덤을 만드는데 국고를 모두 탕진하고 세금인상과 강제노역동원 등으로 당시 백성들의 원성이 정말 심했다고 하니 그럴만도 하다. 참고로 공덕비가 안치된 팔 각형 비각이 황릉구역에서 가장 처음 만나는 건물인데, 이는 중국식 전통 황릉의 배치구조라고 한다. 이는 아들인 13대 바오다이황제가 세웠다. 아이러니 한 사실은, 그렇게 원망스럽던 황제의 작품이 지금은 훌륭한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실제로 이 황릉을 건설한 것은 당시 응우옌왕조 국민들의 피땀과 눈물이었겠지만. 공덕비 비각 양 옆 계단을 오르면 황릉 본당에 이른다. 황제의 위패가 모셔진 계성전(Cung Thien Dinh, 啓聖殿)은 고딕양식의 유럽스타일 건물이 지만 벽체, 기둥, 처마에 장식된 부조나 섬세한 문양은 불교나 중국의 영향을 받은 전통방식을 따르고있다. 완전 처음의 입구부터 계성전까지의 계단의 개수는 총 127개로, 산기슭에 위치해 점점 층을 높여가는 구조인데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계성전 양쪽 출입구에는 불교사찰처럼 주련 글이 세로로 붙어있고 위에는 편액도 새겨져있다. 위인유기(爲仁由己)는 논어에 나오는 글로 위인 유기(爲仁由己) 이유인호재(而由人乎哉), 즉 인을 행함은 나로인한 것이지 남으로인한 것이 아니다, 라는 공자님 말씀이다. 이례제심(以禮制心) 은 서경에 나오는 글로 이의제사(以義制事) 이례제심(以禮制心) 수유후곤(垂裕後昆), 의로 일을 바로잡고 예로 마음을 바로잡으면 후세에 미치 는 덕이 넉넉할 것이다, 라는 내용이다. 후에 여행을 준비하며 어떤 블로거가 황제 자신이 이 나라를 통치했던 실제 모습과는 앞뒤가 맞지 않는 내용이라며 비판하던 글이 언뜻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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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뜰 한쪽에 서있는 신하들의 동상

카이딘왕의 공덕비

계성전

계성전에 들어서자 무채색에 차갑기만했던 외관과는 달리 화려함에 입이 또 벌어진다. 계성전은 3개의 홀로 구분되어있는데 벽과 천장은 서양 식 스테인드글라스처럼 금색 자기와 유리모자이크를 해놨다. 중앙에는 카이딘황제의 초상화가 보존되어있다.

카이딘황제의 초상화

카이딘 등신상

카이딘황제의 초상화, 가려서 보여지지 않았다. 앞에는 거북이 등에 올라탄 황새의 동상이 두 개 있었는데, 거북이는 베트남을, 황새는 중국을 상 징한다. 즉, 중국의 식민지였음을 표현하는 동상인 것인데, 독립 후에 치우지 않은 이유는 곳곳에 남아있는 이런 아픔을 끝까지 기억하자라는 뜻 이라고 한다. 내부의 옥좌에는 금색 동상이 있는데, 이 동상은 1920년 프랑스에서 청동으로 제작하고 위에 금박을 입힌 것으로 카이딘 황제의 실제 크기와 똑 같이 만든 등신상이다. 동상 17m아래에는 황제의 유골이 안치되어있다고 한다.

카이딘황릉 계성전 내부의 천장

계성전 왼쪽의 홀. 황제의 모습이 담긴 사진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니 한 폭의 수묵화 같은 용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용은 왕을 상징하기도 하고, 베트남에서 가장 신령스럽게 여 기는 동물이라 황릉 내 벽체, 기둥, 처마, 천장, 돌계당 등 곳곳에 다양한 형태로 자리잡고 있다. 카이딘황제릉의 내부는 정말 화려해서 연신 감 탄이 나왔다 계성전 왼쪽의 홀. 이 곳에는 황제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나 그림, 그리고 여러 나라에서 선물받았던 기념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화려한 황궁의 위엄에 놀랍기도 했지만 카이딘황제 때부터 점차 베트남이 기울었다고 생각하니 무언가 씁쓸해진다. 많은 황릉들 중 첫 번째로 방 문한 카이딘황릉은 굉장히 특별했다. 조국을 버리고 프랑스에 모든 것을 바친 왕, 하지만 그랬기에 그는 아름답고 독특한 유적을 남겼다. 슬픈 역 사지만, 지금 통일된 베트남에겐 오래 전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의 건축물을 관광지로 개발하고 추억할 수 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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