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china_14

Page 1

2013.10

VOL.14

중국을 이해하는 첫걸음

Travel to Xinjiang • 행복한 행복주의자 • 중국어 공부, 이것만은 NO!

이 잡지는 모바일 매거진 앱 “Tapzin” 에서 무료로 다운받아 볼 수 있습니다. 모바일 매거진 앱 “Tapzin”에서 “Go China”를 검색해 보시기 바랍니다.



1


2


3


Contents

8

Special

Culture

8 / The City

32 / Marketing 한국 기업, 중국 시장에서 날개를 펼치다

Travel to Xinjiang

34 / New Culture 주택담보양로대출로 바라본 中, 노인문화

Interview 18 / My story in China ‘남조선’으로 불리던 시절, 중국에 첫 발을 내디딘 상해한국상회 이평세 고문

43 / Movie 바람의 소리

22 / Review 상하이 유학 4년차, 유학생활을 돌아보다

44 / China Issue

25 / Review 바다와 물고기

30 / Sketchbook 유학생들의 특별한 추석나기

4

38 / Entertainment 씽탸오수이리팡(星跳水立方), 두려움을 극복하는 법

42 / Music 想你的夜

Education

28 / Study 중국학교와 한국학교는 어떻게 다를까

36 / Fun in China 이보다 편리할 수 없다, 중국 편의점

40 / Book 베이징 80后의 자유롭고 불안한 성장이야기, 베이징와와

20 / Interview 행복한 행복주의자

26 / Study 중국어 공부, 이것만은 NO!

44

28


5


2013년 10월호 발행 통권 제14호 발행일 2013년 10월 15일

발행처 ㈜ 좋은샘/(중국)오주전파출판사 발행인 김구정 한국지역 발행 이권술 마케팅 김정훈 총괄 이문걸 등록 2002년 5월 16일 제300-2002-254호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문로1가 163번지 광화문 오피시아빌딩 826호 전화 +82-2-722-8805 인쇄 대신인쇄

편집

편집장 편집기자 칼럼니스트 리포터 디자인 촬영

마케팅 부장 마케팅 중국지역 발행 관리 중국사무소 베이징 상하이 사이트 공식 이메일

신디 김희원, 이서현, 이준성, 김경애, 주소안

조려나, 조승범 임선영, 김성숙, 이주하 김나영, 김윤희, 이세원 전철빈

마케팅/관리

이월 이혜, 우디, 이인걸, 원즈이 유경화 김금실 +86-10-8471-1741 +86-21-5109-9118 www.go-china.co.kr gochina999@gmail.com

© 본 매거진은 중국 오주전파출판사에서 발간한 것이므로 본사 의 서면허락이 없이는 어떠한 형식이나 수단으로도 내용 전재가 금지되어 있습니다.

6


7


Travel to Xinjiang 촬영기간: 2013년 6월 24일 ~ 7월 2일 촬영장소: 중국 우루무치 & 카슈가르 촬영&글: 정은희

8

중국 신강 여행은 고 차이나와 함께 !!! 여행문의 02-722-8805 010-6610-3344


Travel to Xinjiang

우 루 무 치

2013년 6월 24일 월요일- 오늘은 드디어 우루무치에 가는 날이다. 나는 오늘 아주 오래전부터 무수히 가보고 싶었던 땅, 사막과 실크로드를 연상시키는 우루무치로 향하고 있다. 비행기 아래로 보이는 우루 무치의 설산은 태고의 비밀을 간직한 듯 신비롭게 자태를 드러내고 나의 가슴은 기대와 흥분으로 들떠 있다. 실크로드의 무수한 옛이야기를 간 직하고 있는 우루무치는 우리를 설레게 하고 미지의 세계를 향해서 도전하고 싶은 욕망을 부추기는 땅임에는 틀림없다.

1

우 루 놀라운

치 의 경 제 발 전

우루무치에서 첫날은 경제개발구역을 참관 하는 날이다. 아침에 찬란하게 떠오르는 태양을 보았다. 눈부시고 찬란한 햇살이 바람에 흔들리 는 나뭇잎을 반짝이게 하며 환하게 비추는 모습 은 우루무치의 미래를 예견하는 듯하다. 대부분 의 한국인에게 “우루무치” 하면 떠오르는 단어 는 아마도 사막과 실크로드가 전부라고 해도 과 언이 아니다. 하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우루무치 는 상해나 심천과도 같은 번영을 누리는 도시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경제특구란 외국인 소유의 합작기업 설립을 통한 외국투자•공업기술•전문경영기술과 중 앙 정부의 사전 승인이 필요없는 다른 사업 등이 개방된 곳으로, 중국 연안의 여러 도시들이 경제 특구로 지정되었다. 현재 우루무치는 경제특구 로써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 주택, 학교, 발전소, 교통시설 등이 한창 건설 중이다. 2013년 현재 우루무치는 놀랄 정도로 성장했고, 초고속 인터

가진 신장은 인구가 21,813,334명(2010년 기준)으

루무치는 이미 중국 서부 지역의 중심지가 되었

넷을 통해 세상 곳곳이 바로바로 연결된다. 2015

로 중국과 중앙아시아를 연결하는 물류 유통의

고, 또한 중국인의 영향력은 국경을 넘어 중앙아

년 북경까지의 고속철도가 개통되면 우루무치

중심지로 눈부신 발전 가능성을 가진 매력적인

시아로 가고 있다. 2013년 현재 신장은 중국 각

에서 북경까지 11시간 58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도시이다. 우루무치가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도

성과 지역에서 해외 무역 면에서 가장 놀라운 성

중국 총 면적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넓은 면적을

시라는 것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고 있다. 우

장 기록을 보여주고 있다.

9


Travel to Xinjiang

우 루 무 치

2

우 루 실크로드

무 치 박 물 관

선조들의 살아온 모습을 돌아보는 박물관 견 학은 언제나 무한한 상상의 세계로 나를 인도한 다. 실크로드의 무구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우 루무치 박물관은 전시할 유물들을 준비하는 데 만 꼬박 20년이 걸렸다고 한다. 신장 위구르자 치주에 살고 있는 여러 소수민족들의 생활풍습 과 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다. 누구에게나 유독 자신만의 눈길을 끄는 것 이 있으리라. 나에게는 소수민족의 다양한 복식 이 신비롭기도 하고 자꾸 알고 싶어진다. 그들이 좋아하는 색채와 문양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왜 그토록 오랜 시간 전통을 유지하려 하는 것일 까? 짧은 시간, 짧은 관찰이지만 긴 여운으로 나 에 가슴에 남는다.

3

우 루 한 밤 의

무 치 먹 자골목

여행의 즐거움 중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 은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야시장이 아닐 까? 매캐한 연기속에서 환한 전구등을 밝히며 각양각색의 음식들이 행인을 유혹한다. 때로는 화려한 색상이 유혹하기도 하고 때로는 특이한 모양이 발걸음을 멈추게 하기도 한다. 보는 즐거 움, 먹는 즐거움이 없다면 아마도 여행이 오아시 스 없는 사막이 되리라.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 듯 나의 미각을 황홀하게 해줄 음식을 찾아서 열 심히 이곳 저곳을 돌아본다. 우루무치에도 한류의 영향이 있나보다, 김순 떡볶이와 김밥집을 발견했다. 나의 시선을 유혹 하는 많은 음식점을 뒤로하고 반가운 마음에 가 게에 다가갔다. 김밥의 종류도 다양하고 가격도 10원에서 15원 정도이다. 김밥 한 줄 시키고 주인 장과 이야기를 시작했다. 왜 김순 김밥으로 이름 을 지었는지 물어보니, “내 이름은 김삼순”이라 는 한국 연속극을 재미있게 보아서 삼자를 빼고 김순이라 이름을 붙였단다. 멀고 먼 이국의 땅에 도 우리의 연속극을 즐겨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10


Travel to Xinjiang

우 루 무 치

4

공 원 에 서 우루무치

만난 밤 문 화

밤이 되면 사람들은 공원으로 모여든다. 남녀 노소 무리를 지어 자신들이 좋아하는 춤을 추거 나, 악기를 연주하거나, 운동을 하면서 밤시간을 즐긴다. 중국에 와서 하고 싶은 일 중에 하나가 사람들과 더불어 춤을 추고 싶었다. 우루무치에 서 만난 사람들을 보면서 일할 때는 일하고 여가 시간에는 즐겁게 흥에 겨워 즐기는 것이 인생의 참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즐겁게 춤을 추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을 알고 싶고 그들을 따라 서 춤이 추고 싶어진다. 누군가는 말했었지, 사랑 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인다고. 나도 그들의 문 화를 사랑하고 알고 싶다. 그러면 나에게도 그들 의 즐거운 흥이 느껴질까?

5

홍산공원 & 우국지사 임 칙 서

습까지 보이니 신비롭기까지 하다. 산 중앙에는 청나라 대신 임칙서의 하얀 석고상이 위풍당당 하게 우루무치를 내려다 보고 있다. 역사 속에서 임칙서는 아편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아편전

우루무치는 홍산공원을 가운데 두고 남으로

쟁이 끝나고 영국정부는 아편에 불지르라고 명

는 옛 정취의 구가지가 자리해 있고 북으로는 신

령한 그를 대신의 자리에서 물러나도록 강요했

시가지가 놀라운 속도로 발전해 빌딩 숲을 이루

고, 결국 그는 우루무치로 좌천되었다. 우국충정

고 있다. 떠오르는 태양을 닮아 붉은 산이라 명

애국자의 하얀 석고상과 홍산의 붉은 탑이 대조

명된 홍산은 사막의 도시에 있는 산이라는 이유

되어 그의 나라를 걱정하는 뜨거운 마음이 붉은

하나만으로도 존재가치가 대단하다. 우루무치의

노을처럼 아련한 역사 속으로 우린를 인도한다.

시내를 환히 내려다 볼 수 있고, 멀리 설산의 모 11


Travel to Xinjiang

우 루 무 치

6

우 루 무 치 따 빠 제 ( 시 장 )

우루무치 따빠제는 입구에서부터 정신없이 나의 시선을 유혹한다. 태어나서 처음보는 견과 류 시장에 오고 보니 보이는 것마다 먹어 보고 싶어진다. 생김새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지만 친 절한 미소 만으로 부담없이 그들에게 다가가게 만드는 묘한 재주를 가진 그들이 주는대로 주섬 주섬 받아 먹으며 견과류의 크기에 놀라고, 맛에 놀란다. 열심히 주는대로 받아 먹으며 그들이 권 하는 대로 자꾸자꾸 사게 된다. 대추, 호두, 무화 과, 건포도, 홍화차, 설국차 등등 양손 가득 사고 나니 저절로 부자가 된 느낌이다. 아마도 몇 달 동안은 이곳의 추억을 먹으며 행복해 하리라.

12


Travel to Xinjiang

카 슈 가 르

1

카슈가르의 타이 민족

까 오 거 주 지

까오타이는 카슈가르의 구시가지에 위치한 흙으로 만들어진 전통가옥들은 오래된 과거로 여행을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300여 년 전에 지어졌다는 이곳은 아직도 사람들이 거주 하며 가내 수공업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밖 에서 보면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삭막한 느낌이 지만 대문 앞에 서면 대문의 장식이 먼저 우리의 시선을 끌고, 왠지 알라딘의 요술램프처럼 마법 의 세계가 열릴 것 같은 호기심을 느끼게 한다. 문을 열고 들여다본 그들의 세상은 ‘이들이 진정 으로 삶을 사랑하며 살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준 다. 사막의 마을에서 정성 들여 가꾼 화분들과 집안의 장식을 보면 그들은 비록 사막에 살고 있 지만 모두의 마음 속에는 오아시스를 가꾸며 살 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대를 이어서 3대째 하고 있다는 가내 수공업도 돈을 번다는 목적보다는 장인 정신을 가지고 누군가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한 생필품을 만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2013년 6월 27일 목요일-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고 오늘은 인종, 풍습, 종교, 언어가 중동에 가까운 곳이라는 카슈가르에 왔다. 신장 위그르자치주의 서 쪽 끝으로 중앙아시아와 국경선이 인접해 있는 카슈 가르는 동서문물의 교역로 였던 실크로드가 천산북 로와 천산남로로 갈리다가 결국은 다시 만나게 되는 서역의 교차로이다. 13 2013 June

13


Travel to Xinjiang

카 슈 가 르

2

카 슈 가 르 농민화가 그 림 전 시 회

카슈가르 농민화가들이 바쁜 농사철을 제외 는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림을 정식으 로 배운 적이 없는 그들은 그리고 싶은 것을 느 낌에 따라 그린다고 했다. 자신의 영감을 쫓아서 밝고 낙천적인 일상 생활의 모습을 그림으로 표 현하는 그들은 진정한 예술을 즐길 줄 아는 화가 들이 아닐까? 누군가는 신앙심을 그림으로 승화 시키고, 누군가는 태양과 자연의 찬란한 빛의 조 화를 그림으로 표현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일상 의 흥미로운 모습을 사진을 찍듯이 화폭에 담아 보는 이를 즐겁게 한다.

3

소 수 민 족 들 의 다 양 한 민 속 춤

카슈가르에는 여러 소수민족들이 모여 살고 있으며 각각의 민족 모두 가무를 즐기며 현실의 고난을 극복한다고 한다. 음악과 춤 모두가 빠르 고 경쾌하고 정열적이다. 춤은 인간의 감정을 표 현하는 매개체로 온몸과 팔다리를 통해 감정과 정서와 사상을 표현하는 몸짓이다. 이런 몸놀림 은 마음 속에 고여 있는 환희와 고뇌의 희로애 락을 전신으로 표출하여 예술로 승화시킨 것이 다. 각각 민족마다 고유의 복식과 고유의 스토 리를 가지고 표현하는 춤들은 위대한 문화 종 합예술이다.

14


Travel to Xinjiang

카 슈 가 르

4

악기를 만들고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

위구르족 사람들은 아주 어려서부터 자연스 럽게 악기를 접하고 음악을 즐기며 산다고 한다. 그들의 음악은 길들여지지 않고 몽환적인 최면 을 일으키는 듯한 발라드풍의 리듬에 한이 서린 듯하다. 음악소리에 맞춰 움직이는 신들린 듯 빙 빙 돌며 추는 춤은 사람을 취하게 한다. 음악을 사랑하고 춤을 사랑하는 위구르족 사람들은 할 아버지, 아버지, 손자가 함께 모여 악기를 연주 하며 만드는 법을 전수한다고 한다. 일상의 희로 애락을 음악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도심에서 자 란 우리들은 감히 상상해 볼 수도 없는 일이다. 산다는 것이 때때로 고통스러울 수도 있지만 그 것을 자연스럽게 승화시킬 수 있다는 것도 삶을 행복하게 영위하는 하나의 방법이리라.

5

카 음

슈 식

카 문

르 화

카슈가르 음식의 대표적 특징은 화덕에 구운 둥글납작 빵과 구운 양고기와 향신료이다. 그곳 에서의 식사는 먼저 과일로 시작된다. 아주 달 고 맛있는 과일들을 먹고 나면 양고기가 나온다. 그리고 쌀과 야채와 양고기를 넣고 밥을 한 고 소한 밥과 야채를 넣어 많든 국수가 나온다. 위 구르족은 남에게 무척 친절하고 찾아오는 손님 에게는 푸짐한 음식으로 극진히 대접하는 풍습 이 있다고 한다. 15


Travel to Xinjiang

카 슈 가 르

6

카 바

가 자

르 르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시장이 열리는 것이 당 연하지만 이곳 카슈가르의 바자르는 온갖 물건 들이 다 모여 있다. 이곳에서는 팔지 않는 물건 이 없는 둣이 보였다. 이국적이고 재미난 물건들 이 세상의 축소판처럼 모여들어 실크로드를 건 너가던 대상들의 기상을 보여주는 듯하다. 마법 의 양탄자 같은 페르시안 카펫은 우리들의 쇼핑 을 즐겁게 해준다. 이국적인 물건을 보면 때로는 사고 싶은 충동이 들 때도 있지만 가격이 만만 치가 않다. 수공예품이라서 비싸다고는 하나 진 정으로 가치 있는 것을 알아보는 눈이 없으니 자 꾸자꾸 비싸게만 느껴져 가격을 아주 많이 깎 고 싶어진다.

16


Travel to Xinjiang

카 슈 가 르

8

카 슈 만난

에 서 사람들

여자들의 대부분은 알록달록한 의상을 입고 머리에는 스카프를 썼으며, 나이 든 여인들은 어 둡고 칙칙한 차도르를 머리에 푹 뒤집어쓴 채 잘도 걸어 다닌다. 처음 봤을때는 답답하고 더 울 것 같더니 자주 보니 얼굴을 보호해 주는 가 리개 같은 느낌이 든다. 아이들은 동양인이라고 보기 힘들 만큼 큰 눈에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 다. 남자들의 특색은 대부분 머리에 색색의 위 그르 모자를 쓰고 있다. 그들은 이슬람교를 믿 으며 하루에 세번 메카를 향해 절을 한다. 오랜 역사를 통해 무슬림들은 훌륭한 에술품과 건축 을 남겼다.

7

카 슈 가 르 무화과와 포 도 농 장

꽃이 피지 않고 열매가 열리는 무화과 농장 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방문했다. 물론 한국에서 도 가끔 무화과를 본 적은 있다. 그러나 끝이 보 이지 않을 것 같은 넓은 농장은 구경한 적이 없 다. 조금 이른 시기에 방문을 해서 성질 급한 몇 몇 무화과의 설익은 맛을 경험했다. 잘 익은 무 화과의 맛은 생각만 해도 황홀하다. 카슈가르에는 포도 농장이 참 많다. 알알이 익 어가는 포도 송이의 탐스런 모습을 보니, 농부 들의 피땀 어린 정성과 수고가 느껴진다. 아마 도 풍성하게 익어가는 포도를 보면서 농부들은 행복하리라. 농사는 참으로 많은 손길이 가야 하 지만 들인 정성만큼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믿 음이 무더운 더위에도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동 력이 되리라. 농장에서 100세의 할아버지와 85세의 할머니 를 만났다. 다정하게 두분이서 곱게 늙어가는 모 습이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워보인다. 이곳에 서 만난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는 평화가 깃들 어있다. 누군들 삶이 즐겁기만 하랴, 힘들고 고 통스러워도 지나고 나면 순간인 것을, 묵묵하게 자신들의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삶이 그들의 미소에 평화를 주 었으리라.

17


나의 중국이야기

‘남조선’으로 불리던 시절, 중국에 첫 발을 내디딘 상해한국상회 이평세 고문 “앞으로 우리 후손들이 중국인들과 계속 협력하려면, 교민사회의 단합이 최우선이야. 그리고 말이야. 중국사회를 위해 봉사활동도 열심히 해서, 우리나라의 위상도 높이고 그래야지. 지금은 우리가 그러한 시점에 이르렀는데, 나 는 그저 잘 됐으면 좋겠다.” 앞으로 우리 후손들이 중국인들과 계속 협 력하려면, 교민사회의 단합이 최우선이야. 그리고 말이야. 중국사회를 위해 봉사활동 도 열심히 해서, 우리나라의 위상도 높이고 그래야지. 지금은 우리가 그러한 시점에 이 르렀는데, 나는 그저 잘 됐으면 좋겠다. 재중한인사회 20년 역사를 이끌어 온 이 평세 상해한국상회 고문이 <Go China>와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1993년 상해에 최초 의 한식당인 ‘아리랑’을 개설한 것을 시작으 로, 현재까지 옥타(OKTA)상해지회와 민주 평통자문위원회 등에서 그의 표현대로 ‘먼저 온 이의 역할’을 자청해 왔다. 지난 2011년 10월 21일에는 정부가 재중한인사회 역사상 최초로 그에게 국민훈장-목련장을 수여하 기도 했다. 이처럼 화려했던 이평세 고문의 중국생활이 어느덧 26년 차에 접어들고 있 다. <Go China>는 한중양국 20여년 역사가 재정립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한중관계의 산증인인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중국에 첫 발을 내딛다 무역업에 종사하던 이평세 고문은 1987년 4월에 중국에 처음 왔다. 당시 홍콩에서 열 리던 캔튼쇼(Canton Fair)라는 무역전시회 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전시회에서 대학후배를 만났는데, 후배가 이평세 고문 에게 중국여행을 제안하는 것이 아닌가. 그 는 후배의 요청을 승락하고 며칠 후 중국 심 양에 도착했다. 이평세 일행이 비행기에서 내렸더니, 중국정부에서 나온 인원들이 한 국 기업인 환영회를 준비 중이었다. 중국인 들은 ‘남조선 기업인 동무 환영합니다!’라고 쓰여진 플랜카드를 흔들며, 이평세 고문을 환영했다. 당시 ‘니하오’도 모르던 이평세 고 18


문에게 공산국가였던 중국은 신기함 그 자체 였다. 2박 3일간 심천과 대련 등지에서 벌어 진 그의 중국일정은 정신없이 지나갔다. 하 지만 그의 첫 번째 중국여행은 앞으로 펼쳐 질 그의 중국인생의 전주곡에 불과했다. 그 렇게 이평세 고문과 중국과의 인연이 시작 되고 있었다.

중국에서 새로운 도전 중국에서 돌아온 직후 이평세 고문은 대중 무역을 시작했다. 중국을 방문했을 때 만난

는 재중한국인들과 조선족 동포들이 함께 가

떤 조선족에게는 ‘조선족’이라는 명칭 자체

중국 무역부 차관이 그에게 외상으로 섬유

는 단체이기 때문이다. 한국인과 조선족 동

가 그들의 아픈 역사를 환기시킨다는 것이

무역을 제안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포들이 함께 간다는 점이 이평세 고문에게는

다. 이평세 고문은 “조선족이라는 단어는 지

하지만 한국 섬유물가가 떨어지면서, 그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1999년에 문을 연 상해

난 날 독립운동이나 생존의 이유로 중국으로

눈물을 머금고 사업을 접어야 했다. 대신 그

한국학교 또한 이평세 고문과 많은 교민들

떠난 조선족 후예들이, 한국에서 차별을 당

는 중국 본토에서 사업을 해야겠다고 결심

이 노력한 결과물이다. 당시 상해교민사회

하며 들었던 단어”라며 “그들을 ‘조선족’ 대

했다. 이평세 고문은 1988년도에 상해 푸동(

는 중국정부로부터 학교설립허가를 받거나,

신 ‘재미동포’나 ‘재일교포’처럼 ‘동포’나 ‘교

으로 건너가 중국삼베를 한국에 수출하기 시

교민들의 의견을 모으는 데 상당한 노력을

포’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작한다. 그의 두 번째 사업은 어이없이 또 실

기울였다고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이평세

재외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정부 부처

패한다. 이번에는 품질이 문제였다. 그는 낙

고문은 지병인 심장병이 악화돼 수술을 받기

간 엇갈리는 재외국민의 법적지위도 통일시

담했지만 다시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도 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상해한국학

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법무부와 외교

때 떠오른 아이디어가 상해지역 최초의 한식

교 개교식을 지켜본 후 한국에서 입원치료를

부는 외국에 장기체류하는 한국인들에 대한

당인 ‘아리랑’이었다. 중국에 도착해 한식당

받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법적지위를 다르게 해석하고 있는데, 이평

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던 그는 1993년도

이처럼 이평세 고문은 재중한인사회에서 차

세 고문은 이러한 상황이 재중한국인들의 기

에 아리랑 식당을 열었고, 식당은 15여 년간

세대를 위한 교육의 터전을 닦아왔다. 그는

본권 중 하나인 무상교육권을 침해한다고 설

상해에서 한국음식 홍보사절단 역할을 톡톡

인터뷰에서 현재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교

명했다. 현재 법무부는 재중한국인들을 한

히 해냈다. 특히 한중수교 이후 늘어나던 상

과서 논쟁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중고등

국국민으로, 외교부는 재중한국인들을 재외

사원들과 중국인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다

학생들에게 통일된 국론을 가르쳐야 하는

국민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평세 고문은 “재

른 사업도 서서히 정상궤도에 진입하기 시작

데, 우리사회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중한국인들의 자녀들이 외교부가 규정한 재

해, 이평세 고문은 현재에도 중국에서 무역

다. “국어랑 역사는 국정 교과서로 통일해야

외국민 지위에 구속되어, 공립학교 무상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 그는 건설업에 종

해요. 지금 중고등학교 애들이 (성인이 아닌

육의 혜택을 보장받지 못하는 실정이다”고

사하며, 1995년부터 시작한 연변대우호텔의

데) 그러한 원칙을 가르치지 않으면, 어떻게

말했다. 그는 이러한 상황을 정부가 하루빨

인테리어 공사를 맡기도 하는 등 다양한 비

하겠다는 거야. 특히 역사(교육)는 국정교과

리 바로잡아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즈니스에서 고루 성공을 거두어 왔다.

서로 해야 돼요. 그래야 국론이 분열이 안되

재중한인1세대 이평세 이평세 고문은 세계한인무역협회인 옥타

죠. 맨날 싸움하는 거 아니에요. 내부갈등하

중국인들과의 진정한 우정을 위해

고 말이야.” 지난 20여년간 한인사회의 단합

이평세 고문은 앞으로 상해한국사회가 중

을 강조해 온 백전노장의 바램이다.

(OKTA)상해지회가 상해에 정착하는 과정

국에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자신의 바 램을 털어놓았다. “앞으로 우리 후손들이 중

2013년 재중한인사회를 바라보며

국인들과 계속 협력하려면, 교민사회의 단

67개국 125개의 지회에서 한인들의 무역활

한중관계의 재도약을 위해 현재 가장 시

합이 최우선이야. 그리고 말이야. 중국사회

동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 그는 옥타에서 학

급한 과제가 무엇인지 이평세 고문에게 물

를 위해 봉사활동도 열심히 해서, 우리나라

생들에게 World OKTA-Identity라는 강의

었다. 그는 조선족 동포와 재중한국인들을

의 위상도 높이고 그래야지. 지금은 우리가

를 펼치며, 한인 차세대에게 한민족 아이덴

위한 ‘용어정리’라고 대답했다. 평소에도 그

그러한 시점에 이르렀는데, 나는 그저 잘 됐

티티를 함양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평소에

는 한인사회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가 바로 ‘

으면 좋겠다.“ 그의 말에서 가슴이 뭉클함을

한국사회의 단합을 부르짖는 그에게 옥타는

조선족’이라는 단어를 ‘교포’나 ‘동포’로 바꿔

느꼈다.

단순히 무역단체이상의 의미가 있다. 옥타

부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어

취재, 글_ 조승범(jsbkorea822@naver.com)

에 많은 기여를 했다. 옥타는 1981년 출범해

19


나의 중국이야기

행복한 행복주의자 그랜드밀레니엄베이징호텔, Jan Büttgen 총지배인

장기하와 얼굴들의 불후의 명작, ‘별일 없이 산다’가 문득 떠오른다. 니가 깜짝 놀랄 만한 얘기를 들려주마… 나는 별 일 없이 산다… 오늘 밤 절대로 두 다리 쭉 뻗고 잠들진 못할 거다… 니가 절대로 믿고 싶지가 않을 거다… 그게 뭐 냐면, 나는 사는 게 재밌다. 하루하루 즐거웁다. 나는 사는 게 재밌다. 매일매일 신난다.

20


이상스러운 이 노래를 들으면서도 쉽게 부

이지요?”

행복뿐만 아니라 갈등의 해답도 모두 다 내

정할 수 없는 것은 불편한 진실이다. 사실 누

기자가 사람마다 느끼는 시간이 다르지 않

안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내

군가에게 잘 지내냐는 안부를 물으면 보통 “

겠냐는 대답을 하자 그가 무릎을 탁 치며 말

가 입고 있는 옷도 나의 취향에 대한 내 생각

그저 그렇지 뭐”,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심

을 이었다. “정확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5초

의 일부분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지요. 결국

지어는 “죽지 못해 살지 뭐”라는 대답이 돌

라는 시간을 순간이라고 가정했다고 해봅시

모든 세상은 당신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

아온다. 그런데 어쩌면 이 축축 늘어지는 반

다. 그 5초라는 순간에 발생한 일이 몇 가지

고 그 선택의 몫은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기

응들로부터 그네들의 노곤한 삶도 나와 별반

있을 테지요. 그럼 그 순간을 줌 인(zoom-

억해야 합니다.”

다르지 않구나 하는 마음에 안도감을 느끼게

in)하여 들여다 봅시다. 그리고 그것을 더 확

될지도 모르겠다.

장시킵니다. 더, 더, 조금 더… 그렇게 보면

행복의 꿈을 현실로

인생을 논할 때 필수 불가결한 항목, 하지

그 순간은 영원이 될 수 있습니다. 첫키스 했

호텔매니저로서의 삶이 궁금해 그의 하루

만 결코 쉽지만은 않은 화두, 바로 행복이다.

을 때의 그 행복한 순간은 영원히 우리 마음

일과를 묻자 그는 모든 행복한 순간을 수집

복잡다단한 이 현대사회를 살아가면서 행복

속에 남아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모든 순간

해 타인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라 대답한

이라는 개념은 어쩌면 사치라고 느껴질지도

을 하나의 행복한 기억으로 변화시킬 수 있

다. 그렇다면 그의 꿈은 무엇일까. 그는 자

모르겠다. 또는 지금을 희생하고 견뎌내야

습니다. 슬픈 날이 없을 수는 없지만, 마음

신의 꿈 또한 모든 사람들이 더욱 행복해질

훗날 궁극적인 행복을 느끼게 될 거라 기대

속 행복한 순간을 찾아내어 그것을 깊이 들

수 있도록, 소위 ‘행복전도사’가 되는 것이라

하고 있는 건 아닌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내

여다본다면 모든 순간순간에 행복함을 느낄

고 말한다.

가 행복할 겨를도 없는데 남의 행복이야 어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모든 사람은 각기 빛을 지니고 있습니다.

찌되든 ‘나나 잘하고 보자’고 생각할지도 모

기자가 멋진 말씀이지만 약간 추상적이라

그 빛은 매우 아름답게 빛날 수 있지요. 세

른다. 이 모든 행복에 대한 오해는 거창한 곁

는 소감을 전하자 그가 또 손뼉을 치며 문제

상에 빛이 없다면 우리는 이 아름다운 자연

가지들을 잘라내고서야 서서히 그 단순한 형

를 제시했다. “아주 좋습니다. 그렇다면 구

을 포함해 모든 것들을 볼 수 없습니다. 사람

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체와 추상은 무엇일까요? 사과라는 단어를

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빛이 환

오늘 자신의 넘치는 행복을 공유해줄 인터

듣고 연상되는 것을 말하자면 사과의 빨갛

희 발할수록 더욱 많은 아름다운 순간들을

뷰의 주인공은 그랜드밀레니엄베이징호텔

고 동그란 모양, 그리고 달콤한 향과 맛을 떠

만날 수 있습니다. 내 안의 빛이 더욱 커질

의 Jan Büttgen 총지배인이다. 세번의 볼키

올릴 것입니다. 하지만 웃음이라는 단어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가능한

스와 진한 허그로 맞아주는 그는 말 한마디

들었을 때는 어떻습니까? 이 때는 바로 당

일이지만 많은 이들이 아직 그 과정 중에 있

나누어 보기도 전에 이미 기자의 마음을 말

신의 마음이 말하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

습니다. 어두움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

랑말랑 무장해제 시켰고, 인터뷰 내내 모든

입니다. 당신의 마음이 웃음에 대해 정의를

들이 그의 마음을 열 수 있도록 행복을 나누

이야기를 행복으로 풀어내며 귀중한 인생의

내립니다. 그런데 다시, 담배 한 개비를 생

어 주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오랜 수련

지혜를 마음에 담아주었다.

각해봅시다. 이것은 방금 말한 사과와 마찬

끝에 마음의 평화를 깨닫지만 그것을 그 누

가지로 실재하는 하나의 형상으로 존재합니

구와도 나누지 않고 자신만의 행복으로 만족

다. 하지만 라이터로 불을 붙이면 조금씩 타

해 합니다. 저는 이것은 진정한 행복이라고

호텔지배인이라는 직위가 무색하리만큼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이제 ‘타고 있는 담배

보지 않습니다. 황금색으로 도배된 방이 눈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수트와

한 개비’가 된 것이지요. ‘짧아진 담배 한 개

부시게 아름다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

타이, 구두를 걸친 Büttgen 씨는 호텔지배인

비’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결국 이 세상이

은 그 빛이 서로를 비추고 반사하며 더욱 많

이라는 권위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시종일

모든 것은 추상적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

은 빛의 굴절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우

관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이 끊이지 않

는 것이죠. 사물을 보는 눈의 대답은 모두 내

리도 서로의 빛을 나누며 더욱 아름다운 세

는 그가 그토록 행복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

안에 있습니다.

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행복의 재정의

이고 특별히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많은 사람들이 인생에는 모두 적절한 시기

다소 광범위한 이 질문이 그에게만큼은 어

가 있다고 생각하지요. 남자친구를 만나고

그의 대화는 행복으로 시작해 행복으로 이

렵지 않을 것 같았다.

결혼을 하고 큰 집과 멋진 차를 삽니다. 하지

어졌고 그 행복은 앞으로도 끝없이 이어질

“저는 매일 행복합니다. 매 순간이 행복하

만 다 이루고 나면 ‘이제 그 다음은?’이라는

것이다. 손 끝에 닿지 않아도 매 순간마다 마

지요. 아침에 눈을 뜰 수 있다는 것과 직장

질문을 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행복

음으로 느낄 수 있는 행복을 섬세하게 찾는

동료와 고객, 친구들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의 조건을 다 갖추었지만 그 의미는 이제 희

일, 내 마음이 말하는 행복에 집중하며 그 행

행복합니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미해져 갈 뿐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내 안에

복을 영원으로 만드는 일, 그리고 그 행복을

는 것도 행복하고 이렇게 인터뷰를 할 수 있

집중을 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돌아갑니다.

나누며 새로운 행복으로 가득 채우는 일, 생

어 행복합니다. 그런데 행복했던 순간이라

순간이 영원이 되고 구체가 추상이 되는 것

각만으로도 행복하지 아니한가.

하면, 그 ‘순간’이라는 시간은 얼마나 긴 것

처럼 모든 것은 무한하게 증가합니다. 모든

취재, 글_ 김희원(heewonsophie@gmail.com)

21


Review

상하이 유학 4년차, 유학생활을 돌아보다

2006년 그렇게 수능을 말아먹고(?), 대구에서 일명 지잡대라 불리

칭다오에 도착하고 무려 4번이나 중국어 과외교사를 바꾼 끝에, 서

는 크지 않은 사립대에 진학 후 1학년 여름방학이 끝나가던 어느 날,

로 공통언어도 없는 리 라오스(老师)와 함께 평일 7시간씩 중국어 공

문득 내 머릿속에 경보음이 울렸다. ‘이렇게 세월이 흐르는 대로 살다

부를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 나는 대학 생활 1년을 포기하며

가 이 대학을 졸업하고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렇게 2학기 개강

시작한 유학 생활이었기에, 내 또래들 보다 1년 늦다는 스스로에 대한

을 일주일 남짓 남겨둔 시점에 나는 사춘기 시절 이미 지나갔던 ‘자아

압박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때문’인지 아니면 이 ‘덕분’인지 고등학

혼란’을 다시 한번 겪고 있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일본어에 관심이 있

교 3년간 소홀했던 학업에 대한 열정을 중국어를 공부하는 그 8개월

었는데, 하루 반나절을 꼬박 고민한 끝에 결국 엄마한테 조심스레 운

이란 시간 동안 모두 쏟아 부을 수 있었다.

을 떼었다. “엄마 내 지금 대학 관두고 일본 유학 보내주면 안되나?”

주말이 지나가고 돌아오는 월요일 아침 과외 수업이 시작되기 전

내 기억으로 당시 엄마와 나는 동네 대형마트에서 함께 장을 보던

리 라오스가 일종의 절차처럼 나한테 묻는 게 있었는데, “你这周末出

중이었는데, 나의 그 한마디를 시작으로 장을 보는 약 30분 동안 엄

去玩儿了没有? (지난 주말에는 좀 나가 놀았니?)”였다. 평일은 둘째

마는 내가 하는 진지한 얘기들을 또한 진지하게 들어주며 혹시나 내

치고 과외수업이 없는 주말에도 외출도 않고 방에서 단어만 주구장창

가 간과한 부분은 없었는지 의문을 제시해 주기도 했다. 그렇게 집으

외우고 있는 건 아닌지 나름 제자에 대한 걱정에서 우러나온 말이었을

로 돌아와서까지 유학 문제에 대한 대화는 계속 되었고 결국 엄마가

거다. 남들보다 뒤쳐진다는 자괴감과 생소한 언어에 대한 답답함 그리

새로운 제안을 제시했다.

고 사랑하는 이들과 떨어져 생활한다는 소외감 등 이런 저런 안 좋은

“일본에는 아는 사람도 없어서 좀 그렇고, 니 엄마친구 루다 이모 알제? 그 이모 지금 중국 상해에 있어서, 중국 유학은 보내줄 수 있을 거 같은데 어떻노?”

생각들이 뒤엉켜서 생활하다 보니 결국은 선생님이 학생에게 나가서 좀 놀아야 하지 않겠냐고 우려하는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다. 지금 회상해보면 당시에 리 라오스와 한국어나 영어로 말도 안 통 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함께 중국어를 공부했는지 도통 신기한 일이지

你这周末出去玩儿了没有? 그렇게 중국 유학을 허락 받고부터 중국 칭다오에서 홈스테이를 하

고, 당최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 드라마를 보면서 생활한 지 6개월 만

기까지 눈코 뜰 새 없이 시간이 지나갔다. 10년지기 친구들, 그 외에

에 구(旧)HSK 6급을 따는 성취감을 맛보게 되었다. 그리고 당시 대

지인들 그리고 무엇보다 평생을 의지해온 부모님과 함께할 시간이 얼

학들의 입학전형에 따라서 내 고등학교 성적과 HSK성적 등을 고려

마 남지 않은 아쉬움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급하게 결정한 탓에

한 끝에 나는 2008년 9월 상하이 교통대학교 신문전파학(新闻传播

중국 유학에 대해 매일같이 인터넷과 현지 지인에게 연락을 통해 정

学)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보를 알아보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22

만 나는 매일 7시간씩 과외를 받고, 200여 개의 단어를 받아쓰기 하


할아범! 안녕~ 어디가? 또 보자!

은 이미 졸업하고 각자의 나라로 귀국 했을 거란 생각에 공허함이 절

교통대학교에서의 처음 1년 동안 대구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중국

로 사무쳤다. 휴학 신청을 낸 후 귀국 전 마지막으로 다 함께 몇몇 동

및 외국학생들과의 교류, 난해한 전문용어로 나를 궁지에 몰았던 과

남아시아 국가를 여행했는데 그때 찍었던 사진들을 보며 추억을 회상

목들 그리고 한국에서 자퇴 후에 새롭게 시작하는 두 번째 대학생활

하고, 졸업 후에도 여전히 상하이에서 취직한 몇몇 친구들과는 가끔

이란 점 등, 이런 여러 가지 요소들이 나의 신입생활을 설렘과 긴장

만나 그 때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여행을 마무리 짓고 자카르타 공

감으로 채웠다.

항에서 헤어지던 순간에도 어김없이 한국말로 이별을 고하며 우리의

1학년 대부분 수업들의 첫 시간에는 교수들의 지시로 학생들 서로 가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이 때문에 그 당시 내가 가장 자 주 썼던 말들 중 하나가 “你好,我是来自韩国的李世原(안녕, 나는 한국에서 온 이세원이라고 해)”였다. 그리고 나름대로 인상을 남기고

특별했던 인연을 확인했다, “할아범 잘 가, 또 보자!”.

2년간의 군복무 후 감회가 새로웠던 3학년으로의 복학

싶어서 취미나 장래희망 등도 덧붙여 소개했는데, 중국친구들을 많이

복학 전, 아니 휴학을 준비하면서부터 이미 조금 걱정했던 대로 다

사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입학 전부터 중국의 주요 도시, 특히 상하

시 돌아온 3학년 복학은 다소 외롭게 시작되었다. 같은 학번이었던 외

이에 한국인들이 특히 많다는 사실을 알고는 고의적으로 한국인과는

국 친구들은 대부분 자신의 나라들로 돌아가 취업하고, 신입생시절 나

거리를 두고 중국인 친구들을 많이 사귈 생각이었다. 이유인 즉슨, 한

름 고집했던 한국인들과의 교류 절제 탓에 2년 후 돌아온 캠퍼스 생활

국에서 나름 중대한 마음가짐으로 시작한 중국 유학인데 여기까지 와서 한국인들과 만 어울린다면 중국어 실력과 중국현지적 응에 진전이 없을뿐더러, 유학하면서 중국 친구 하나 못 사귀고 수박 겉핥기 식으로 유학생활을 끝내지 않겠다는 내 나름대로 의 철학이 있었던 거 같다. 그렇게 내 나름대로의 신념을 가지고 군 휴학 전까지 2년 동안 학교생활을 하며 나 름 괜찮은 외국친구들을 사귀었는데, 인도 네시아나 말레이시아에서 온 화교 친구들 이 주를 이뤘다. 또래들에 비해 비디오 게 임이나 운동신경에 둔하고, 특유의 행동이 나 말투가 노인네 같다는 이유로 국적을 불문하고 친구들은 나를 “할아범”이라 불 렀다. (외국 친구들은 문자를 보낼 때도 수 시로 Halabum을 붙이고는 했다.) 1, 2학 년 동안 그들과 어울리며 직, 간접적으로 참 많은 도움을 받았고 무

은 외로움과 낯섦의 연속이었다. 만료된 학생비자를 재신청하고, 새

엇보다 중국 유학을 한 이래로 소중한 추억들을 많이 쌓을 수 있었다.

롭게 바뀐 커리큘럼에 맞춰 여러 필수과목들을 후배들과 재이수하는

한번은 내가 한국어 교사로 활동한 동아리 수업에서 몇 명의 친구들

등 더 이상 08학번이 아닌 10학번 유학생으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된

이 학생으로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그 수업 이후로 캠퍼스에서 우연

거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유달리 유학생들에게 무관심한 교통대학교

히 만나기라도 하면 우리는 습관처럼 “할아범 안녕~”, “Wenda(웬다)

에 화가 나고 유학생으로서 서글픔도 느꼈지만, 상하이교통대학교의

너 어디가?” 같은 말을 서로 주고 받았다. 주말이면 함께 상하이 관광

수 만 명의 학생들 중 나는 그저 일개의 유학생에 불과했다. 혼자 툴

을 다니고, 매달 전례행사처럼 서로의 생일을 챙겨주고, 방학 때면 서

툴거려도 결국 내 밥은 스스로 챙겨야 한다는 생각에 매일같이 학과

로의 나라에 여행을 가고 가이드를 해주면서, 학업으로 따분함만 가

사무실이며 교무처에 발품을 팔며 최대한 교내 정보를 얻으려 했다.

득할 뻔한 유학생활에서 우린 깨알 같은 추억들을 쌓아갔다. 입학하

돌아온 캠퍼스엔 친구도 거의 안 남았는데, 정보력마저 달리면 남는

고 2년 동안은 말이다.

건 결국 학사경고, 자퇴 혹은 퇴학 말고는 나의 남은 유학생활에 남는

그 당시에는 ‘이것’ 때문에 정말 화가 나고 조국이 야속하게만 느껴 지기도 했었는데, 바로 군입대였다. 어르신들이 들으면 “에라이 괘씸

게 뭐가 있을까 하는 일종의 경보음이 울렸던 거다. 대구 지방대학 시 절 느꼈던 그것과 비슷한 적색 경보.

한 녀석” 소리가 날아올지 모르지만, 당시 나는 가뜩이나 남들보다 1 년 늦게 진학한 대학 졸업에 또 2년간 제동이 걸렸다는 철없는 생각 도 들었고, 무엇보다 2년 뒤 상하이로 돌아왔을 때, 나의 외국 친구들

나의 홍콩 친구 Kelly 낯을 가려 주동적으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조금 서툰 나에서, 인 23


Review

맥이 많다는 말보다는, 인생에 이로운 영향을 준 굵직굵직한 인맥이

데에만 전념해 오다 보니, 정작 중국 안에서 중국인들과 부대끼며 살

몇몇 있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스무살 동생들과 같이 수

면서도 이들에 대해 내가 아는 게 별로 없었던 거다. 졸업하고 나서

업 들으며 25살 복학생 선배로 처량한 3학년 생활을 보낼 뻔했지만,

비록 ‘中国通’은 되지 못하더라도 그 반타작, 아니 그 반에 반은 되어

상하이에서 동남아 친구들과 사귄 이래로, 나의 인생에서 기억될 또

있고 싶었는데 말이다.

다른 인연을 만나게 되었다.

이런 자괴감 때문이었을까, 대부분의 한국 유학생들은 졸업 후 한국

내가 복학한 그 해에는 교내에 본과 신입생도 넘쳐났지만, 홍콩, 마

으로 돌아가서 중국대학 학력과 중국어 실력을 바탕으로 취직을 계획

카오, 대만 등 주변 중화권 지역에서 온 교환학생들도 많이 볼 수 있

하지만(물론 졸업 후에도 현지에 남아 취직한 이들도 몇몇 있다), 나는

었다. 개중 Kelly는 홍콩 교환학생이었는데 홍콩시립대에서 내 전공

이대로 취직을 위해 한국으로 떠나기는 뭔가 많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

인 신문전파학과로 교환학습을 온 유일한 학생이었다. 3학년 복학 후

어서, 최근 들어 졸업 후 홍콩으로 워킹홀리데이를 갈 계획을 하고 있

과에서 외톨이 생활을 하던 내 처지와 비슷해서였을까. Kelly와 나는

다. 우선 다른 나라들에 비해 홍콩은 언어적으로 불편함을 훨씬 덜 느

몇몇 필수과목을 함께 들으며 우정을 쌓아갔다.

낄 곳이고, 또 상하이보다 더 국제화 된 곳이니 나 같은 외국인 취업자

하루는 같이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중 Kelly가 “휴대전화가 안보여!”

에게 적합한 일자리도 더 많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라며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공부 시작한 지 5분도 안 되어서, 그날 2 시간 동안 우린 교실이며 파출소며 우리가 들렀던 곳곳을 돌아다니

6년이 흘렀지만

며 사라진 Kelly의 휴대전화를 찾았지만 “교실에 비싼 물건 흘리고 가

오랜 기간 세계 경제 2위를 달리던 일본을 꺾고 현재는 맹렬히 미

면 거의 못 찾는다고 봐야지~”라는 교실 청소부 아주머니의 야속한

국을 추격 중인 중국, 50년 만에 경제 부흥을 이룬 한국보다 2배 빠른

한마디를 들은 후, 떠나간 Kelly의 갤럭시노트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

속도로 경제 성장 중인 중국. 근 몇 년간 중국의 독보적인 경제 발전

다. 비싼 전화기를 잃어버려 엄마한테 말도 못하겠다며 땅이 꺼져라

을 시사하는 보도를 수없이 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중국에 살고

한숨을 푹푹 쉬어대던 Kelly가 영 안쓰러워서 달달한 거라도 마시자

있으면서도 이들의 하드웨어적인 발전은 뒤로 한 채, 이곳의 문화, 법

며 교내 카페에서 잃어버린 휴대전화 얘기를 시작으로 3시간 동안 수

규, 사람들의 사상 등이 한국과는 너무나 다르고 그것이 불편해서 중

다를 떨었던 적이 있다. 그렇게 3학년 1학기 동안 Kelly와 어울려 다

국과 중국인을 떠올리면 주로 안 좋은 이미지만 연상하며 유학생활을

니며 그녀 덕에 다른 교환생 친구들도 사귀게 되었고 상하이 유학 후

보내 왔다. 사실 한국도 중국보다 이른 발전을 이룬 탓에 경제적으로

처음으로 12월 31일 와이탄(外滩)에서 카운트 다운을 세며 2013년 새

나 생활적인 면에서는 편할지 모르지만 그 외의 소프트웨어적인 면에

해를 맞이하기도 했다.

서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뒤쳐지고 있는데 말이다.

2014년 9월, 졸업반

다 내가 하기 나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6년이란 세월이 흘러도 여

단지 상대적으로 좋은 것을 생각하다 보면 결국은 어느 나라에 가든 한국에서 공부하는 대학생들이 그러하듯 얼마 전 4학년이 된 나도

전히 정 붙이기 힘든 중국이란 나라와 중국사람들에 대해서 뭔가 모

여느 시기 보다 ‘스펙, 취업, 영어, 자격증, 인턴’ 등 이런 단어들에 익

를 오기와 호기심이 들기 시작했다. 쉽게 말해 작정하고 정을 붙이려

숙해져만 갔다. 하루는 ‘군생활 2년을 포함해서 내가 중국이란 나라

고 노력해 보자는 거다. 이 나라가 어떻게 발전해 가는지, 이곳 사람

와 연을 맺은 지 6년. 그리 길지도 않지만 결코 짧지 않은 이 시간 동

들의 생활방식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예전에는 무감각했다면 이제는

안 나는 유학생으로서 ‘중국’과 ‘중국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이들과 부대끼며 몸소 체감해 보고 정말로 ‘中国通’이 되어 보자는 마

라고 자문해 보니 적잖은 회의감이 몰려왔다. 대학 입학 전에는 중국

음가짐으로 남은 1년을 마무리 짓고 싶다.

어에만 집중하느라 8개월을 보냈고, 대학 입학 후에는 친구들과 어울 려 상하이 관광을 다니며 놀았던 시간 외에는 거의 오로지 학점 따는 24

글_ 이세원 상해교통대학교 신문전파학 4학년 (virgin1002@naver.com)


바다와 물고기 어느 날, 나는 베이징 행 비행기를 타고 있었다. 처음 비행기를 타

한마디로 나는 중국이라는 바다에 와서, 한국 사회라는 안락한 배

본 건 아니었지만, 생에 첫 유학, 그것도 장거리가 될 여정에 한 걸음

위에 올라타 손을 표면 위로 살짝 담근 수준에 있었던 거다. 그 손 끝

을 내딛는다고 생각하니 떨릴 수밖에 없었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비

에서 느껴지는 차가움으로, ‘아, 이 곳은 이런 곳이구나’라고 어리석기

행기 창 밖까지 들릴 것 같았고, 한국 땅이 멀어질수록 그 두근거림

짝이 없는 판단을 내리고, 그렇게 그 큰 바다 속에 있는 생물들과 따

은 더욱 빨라졌다. 매번 이 땅을 다시 밟게 될 때마다 더 발전하게 될

뜻한 것들을 나는 느끼지 못한 것이다. 더욱 무서운 것은, 그렇게 안

내 모습을 상상함과 동시에 성공의 소망을 품고 비행기와 같이 세차

을 들여다 보지도 않았으면서 나는 중국이란 사회의 새로운 일원이 되

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었다고 생각했다는 거다.

그 후로 7년이 흘렀다. 가끔 생각하면 벌써 그만큼이나 지났나 싶을

중국인과 한국인의 차이는 무엇인가? 한국인은 당연시 여기고 중

정도로 빠르게 느껴지지만, 돌이켜서 생각해보면 과연 그 정도 밖에

국인은 절대로 부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옷을 입는 게 다르다던가 하

안 지났나 의심이 갈 정도로 수많은 사람을 만났고 수많은 일들이 일

는 표면상의 차이는 처음 중국땅을 밟은 이도 다 알아낼 수 있다. 하

어났다. 그 7년이란 시간을 나의 주관적인 기준에 빗댄 한마디로 표현

지만 중국에 적지 않은 시간을 있었던 나는 과연 내면에만 존재하는

하자면, ‘한국사회로부터의 중국사회로의 탈변’이다.

다른 점을 말해낼 수 있을까?

따통大同

베이징 올림픽

진정한 중국문화 느끼기

만리장성

한국인과의 생활에 익숙해져 있던 내가 중국인에게 다가가는 것

대개 유학을 하고 있다고 하면,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 “유학하

은 쉽지 않았다. 다가가는 데 성공해도 관계를 유지하는 데 많은 신

면서 가장 힘들었던 게 뭐예요?” 나에게 가장 힘들었던 것은 통하지

경을 써야 했고,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나 거리감을 느끼는 일들이

않는 말이나 문화차이가 아니었다.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진정한 중

종종 있었다.

국 문화에 다가가는 게 제일 힘들었다.

중국 사회에 발을 내디딘 시간은 정말 말하기에 부끄러울 정도로 짧

북경이란 낯선 땅에 발을 내디뎠을 때, 그 도시 곳곳엔 이미 내가

아, 아직까진 감히 중국인의 특징이라던가 한국인과의 차이점 같은 것

바로 적응할 수 있고 바로 한국어로 소통할 수 있는 한국 사회가 우

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수준까진 안 된다. 말해도 별 무리가 없는

뚝 서 있었다. 나는 바로 자국어 피드백을 얻을 수 있었고, 한국 음식

사실은, 중국인은 한국인이나 일본인에 비해 타민족에 대한 배척심리

을 사 먹으며 가끔 중국음식에 도전을 했고, 한국사람들과 어울려 다

가 적다는 것이고, 심각한 빈부격차로 인해 부에 대한 동경이 한국인

니며 길거리에 다니는 중국인들을 보았다. 한국인에게 있어서 중국은

보다 더 깊으며, 자급자족 하던 조상의 생활이 민족성에 남아 흘러가

정말로 특별한 경험인 동시에, 자칫하면 한국에서 생활하는 것과 별

듯 사는 생활 태도를 가져 덜 극단적이라는 것이다.

반 다를 게 없을 수도 있다는 리스크를 가진 장소라는 걸, 몇 년이 지 나서야 깨달았다.

나의 진정한 타지에서의 생활은 얼마 전에서야 겨우 발걸음을 시작

사실 그것이 모든 이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돈을 벌기 위해

한 셈이다. 아직도 너무 서툴고, 자주 넘어진다. 그러한 의미에서 나

온 사람이라면 돈만 벌면 되는 것이고, 자녀를 돌보러 온 부모라면 자

의 유학생활은 아직도 어리고, 아직도 먼 셈이다. 하지만 그 모든 과

녀의 안위만 잘 보살피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중국의 문화와 언

정에 작고 큰 깨달음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오늘도 중국이라는

어를 배우고 시야를 넓히겠다는 마음을 품었기에, 그러한 생활은 나

바다를 온 몸을 다해 안는다.

의 소신과 상반된 것이었다.

글_ 김윤희(북경대 중문학과 3학년)

25


Study

중국어 공부, 이것만은 NO! 중국어를 장기간 공부했다. 혹은 중국에서 유학한 세월이 짧지 않

말 끝마다 길게 늘어뜨린다.

다. 하지만 중국인과 얘기를 하면 힘이 들고, 맞게 말한 것 같은데 상

이건 아마 거의 모든 한국인들이 초반에 중국어를 배울 때 범하는

대방이 못 알아듣고, 말할 때마다 스스로가 듣기에도 너무 외국인스

실수일 거라 생각한다. 물론 자각하기 쉽지 않다. 혹은 뒤에 문장을

러워서 창피할 때가 많다. 그렇다면 발음의 문제일까? 그것도 한 몫

이어주기 위해 또는 시간을 끌기 위해 말을 끄는 데, 사실 이는 “나

하겠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중국어의 길을 걷는 사람이라면, 잠

외국인이에요! 중국어가 서툴러요!”라고 외치는 것과 큰 차이가 없

시 펜을 내려놓고 자신의 공부방법에 무엇이 부족한지 돌아보자.

다. “我刚出来的时候他已经不在了(내가 막 나왔을 때 그 사람은 이 미 없었다)”라는 문장을 말할 때, 어떤 사람들은 “我刚出来的时候~

처음에 성조를 배울 때 2,3성을 제대로 분간하지 않는다.

他已经不在了~”라고 한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중국인이 한국

이는 중국어를 배우며 가장 범해선 안 되는, 너무나도 치명적인,

하는 경우와 똑같다. 이런 경우엔 발음이나 문법이 정확하더라도 ‘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범하는 실수에 해당된다. 사실 한국인의 귀엔

말을 할 때 “제가 막~ 나왔을 때는요~ 이미 없더라고요~~...”라고 딘가 모자란 말투’나 ‘외국인 말투’가 되는 것이다.

2성이나 3성이나 별 다르지 않게 들리는 것도 또한 하나하나 외우기

중국 드라마나 영화를 보라. 주저하거나 당황해서 말을 끄는 경우

힘든 것도 사실이다. 1성이나 4성은 높게 유지하거나 확 떨어뜨려서

가 아닌 이상 그렇게 꼬리를 길게 빼는 경우는 없다. 한 음절 한 음절

말을 하면 되는데, 2성과 3성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조

확실하게 발음하고, 발음이 끝나면 바로 입을 다문다. 어쩔 땐 어찌

하나에 따라서 뜻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중국에 온

나 따발총처럼 빠르게 말하는지 숨은 쉴 수나 있는 건지 궁금한데,

지 얼마 안되었을 때 필자가 “나 그 감독 보러 갔어”라고 표현하기

그러면서도 발음은 확실하다. 뭐, 중국인이니까.

위해 “我去看那个导演(2성, 3성)”라고 표현했는데, 발음할 때 3성, 2성으로 발음을 해버렸다. 헷갈리는 걸 어떡하나! 그랬더니 중국인

26

“문화 속의 언어”를 배우지 않는다.

친구들은 “?”, 즉 导言(3성, 2성)으로 이해한 것이다. 발음을 교정해

문화와 언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이다. 몇 천 년의 문화 속에

준 다음에 서로가 ‘외국인이니까 뭐’하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뭔가

서 중국어가 탄생했고, 그 문화의 변화에 끊임없이 영향을 받으며 형

개운치 않았다. 하지만 2, 3성의 중요성을 현장에서 깨달은 경험이

태가 바뀌는 것 또한 중국어이다. 단어를 많이 외웠다고, 문법을 마

었다. 외국인이 2, 3성을 제대로 발음하긴 어려울지 몰라도, 이를 잘

스터했다고 그 언어를 잘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문화 속의 언어”

못 발음하는 중국인은 한 명도 없다는 것.

를 모른다면 아무리 “교재의 언어”를 붙잡고 매달려도 그 언어를 정


말로 잡았다고 할 수 없다.

이 너무나도 많으니까.

“문화 속의 언어”를 접하는 법은 매우 많다. 중국 작가가 쓴 중국 어소설 읽기, 중국 TV나 라디오 시청하기, 중국 신문이나 잡지 구독

사자성어의 중요성을 간과한다.

하기, 중국인 친구와 만나 이야기하기 등등. 맨 마지막은 시간과 노

중국어를 공부할 때, 정말 중요한 성어(成语) 말고는 배우지 않는

력뿐만 아니라 환경이 다 따라줘야 하는 것이라 다들 실천하기 어려

경우가 많다. 책 혹은 논문을 쓸 때나 쓰는 거라고 생각하고 필요가

워하지만, 다른 것들은 인터넷만 키면 어디서 언제든지 접할 수 있

없다고 판단하거나, 혹은 외우기엔 너무 많고 어렵다고 생각해서 처

는 것들이다. 드라마가 너무 빠르고 어렵다면 화자체로 쓰인 소설도

음부터 일찌감치 포기하는 게 대다수이다. 하지만 이건 정말로 치명

많으니 길은 실로 많다.

적인 실수다. 놀랍게도, 중국인은 성어를 일상 생활의 수다 속에서

그렇다면 “문화 속의 언어”와 얼마나 차이가 큰가? 우선 “착하지

도 많이 쓴다는 사실!

않다, 못되다”라는 표현을 예로 들어보자. 이럴 경우 교재로만 배운

중국어는 한자의 특성상 한가지 단어만으로도 많은 뜻을 담아내

사람들은 “不善良,坏”라고 표현을 한다. 책을 좀 읽어본 사람들이

는데, 성어는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중국 사람들은 그런 복잡한 문

라면 “心地不善”이란 표현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짜로 중

장을 단 한가지의 성어만으로도 표현하는 게 가능하다. 이렇게 생

국인들이 자주 쓰고 그 역사 또한 깊은 단어는 바로 “不厚道”이다.

각해보면, 그렇게 편리한 단어를 평소 생활에 안 쓰는 게 이상하기

직역을 하면 “도리를 배운 바가 깊지 못하다”라는 뜻이지만, 중국인

도 하다.

들은 대부분 “착하지 않다. 심성이

예를 들어, “나 이제 더 이상은 못

고약한 면이 있다. 어딘가 불량하

참아”는 “我已经不能再忍了”라고

다” 등등을 조금 완화시켜 말할 때

해도 맞지만, 정말 많은 경우에는 “

쓴다. 정말 자주 쓰는 단어지만, 이

我忍无可忍了”라고 말한다. 이렇게

단어를 교재에서 찾긴 힘들다.

말하면 훨씬 더 본토적으로 느낌을

한국에서 자주 쓰는 표현인 “~

표현할 수 있다. 더 길고 복잡한 것

할 기세다”라는 말도 한번 보자. 한

도 많다. “남이 고통스러워 하는 걸

국인은 대부분 한국어에서 직역해

보고 자기는 좋아하다”라는 표현,

“~的趋势”이라고 한다. 물론 어법

예를 들면 “나 변비야”라는 말에 “잘

적으로 틀린 말도 아니고, 또한 엄

됐네”라고 비웃는 친구에게 하는 말 이다. 만약 “幸灾乐祸”라는 단어를

숙하게 표현할 때는 모두 이 표현 을 쓴다. 하지만 말로 가볍게 “나 살찔 기세야”라고 말하고 싶다면,

모른다면, “你幸灾乐祸啊”라고 간단히 끝날 말을 “看到别人的坏事

“要发胖的节奏”라고 쓰는 게 맞는 표현이다. “节奏”는 리듬, 박자라

还开心啊你”라고 말할 것이다. “(매일 열심히 해서) 좋은 방향으로

는 뜻이지만, “~的节奏”라고 붙여서 쓰면 “앞으로 이렇게 될 기세”

발전해나가는 것”은 “欣欣向荣”이라고 한다. “아~ 그렇구나, 이제

라는 뜻을 가지게 된다. 이 또한 매우 자주 쓰이는 표현이다.

야 알았어! 확 깨달은 느낌이야”라는 표현은 “恍然大悟”라고 척 끝내

이 밖에도, “하는 척만 한다”를 “他只是装的”라고 표현을 하는 것

버린다. 해당 사자성어를 모른다면 이 모든 말들을 표현할 때, 네 글

도 어색하다. “他只是做作”가 더 정확한 말이다. 반면,“귀여운 척 한

자가 아니라 하나의 긴 문장으로 말해야 한다. 어법으론 틀린 게 없

다”는 “装可爱”나 앞의 말을 응용한 “做作可爱”가 아니라 “卖萌”이

지만 어딘가 어색한 외국인식 문장이 되는 것이다.

다. 또한 “차에 태워주다”라는 표현은 대만 사람들이라면 “载”라고

웬만한 내공이 없다면, 특히 중국인이 상대방이 외국인인 걸 배려

해도 맞겠지만, 대개 “带”(车带我,带你去)라고 말한다. 그리고 “

하지 않고 내키는 대로 말한다면, 중국인과 얘기를 할 때 뭔가 따라

载”가 병음이 두개라는 걸 기억하고, 태워준다는 걸 표현하고 싶다

가지 못한다는 느낌이 든다. 발음이나 단어 선택 같은 변수가 많은

면 꼭 4성으로 말하자. 3성으로 말하면 “도살하다”라는 뜻의 “宰”로

것도 있지만, 성어도 만만치 않게 한 몫 한다는 사실.

잘못 듣는 경우가 대다수라, 태워준다는 말을 듣고 당신을 무섭게 쳐다볼지도 모른다.

이런 수많은 난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기 죽을 것 없다. 한자 문화권에 익숙해진 한국인이라면 한 두 번 보는 것만으로도 외

어떤 상황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는 법을 배웠다고, 그 표현 방법

울 수 있는 성어가 대다수인 데다가, 길고 긴 역사를 같이 보내온 까

이 절대적인 것이 절대 아니다. 앞뒤 상황이나 말하는 사람의 기분

닭에 표현하는 방식도 비슷한 게 너무나도 많다. 한국인 만세! 어렵

에 따라서 수십가지의 다른 표현 방법이 있다. 아쉽게도 이런 “문화

다고 포기하지 않길 바란다. 중국어를 제일 잘 배울 수 있는 게 한

속의 언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현상은 중국에 있는 수많은 한국인

국인이니까.

유학생들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다. 힘들더라도, 귀찮더라도 한 발만 더 앞으로 내딛자. 한번 알고 나면 계속해서 써먹을 수 있는 표현들

글_ 김윤희 본지 대학생기자(uniwood@126.com)

27


School

중국학교와 한국학교는 어떻게 다를까 중국과 한국, 다른 것 같으면서도 같은 점이 참 많은 나라다. 그리

하얀색 반팔, 트레이닝 외투 세 가지의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전

고 그러한 점은 우리 청춘 중에 큰 몫을 자리 잡고 있는 12년의 학교

에 밖에서 앳된 얼굴의 중국학생들이 모두 다 체육복을 입고 있는 걸

생활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3학년, 고등

보고 “교복이나 체육복이나 다 입어도 되는데, 편해서 체육복만 입나

학교 3학년, 그리고 그 모든 과정들이 대학교라는 한 골문을 향해 달

보다”라고 생각했었지만, 사실은 그게 바로 교복이었다는 사실! 더욱

려가고 있다는 것도, ‘좋은 대학교에 합격해라’라는 압력 속에서 친구

놀라운 것은 그걸 입고 매일 운동장 8바퀴 정도를 뛰고, 또 체육 수업

를 사귀고, 연애도 하고 서로 옹기종기 성장해나간다는 것은 중국과

도 따로 있다는 것이다. 중국인 친구 앞에선 최대한 예의를 차리는 필

한국 모두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징이다. 그렇다면 중국 학교와

자지만 “어떻게 같은 옷을 입고 체육과 수업을 다 해?”라고 물어볼 수

한국 학교는 정확히 어떤 다른 점들이 있을까?

밖에 없었다. 하지만 더 쇼크였던 중국인 친구의 답변, “너희들은 설 마 갈아입니? 그거 엄청 귀찮지 않아?” 그럼 냄새는! 땀은! 설마 옷에

체육복과 교복을 동시에

28

스며들게 다 내버려 둔단 말인가! 교복을 둘러싼 이상한 토론을 펼치

한눈에 제일 먼저 알아볼 수 있는 차이점은 바로 교복이다. 중국의

고 싶지 않았기에 이 말들은 고스란히 안에 모셔둘 수밖에 없었다. 허

교복은 놀랍게도 체육복이다. 일반적으로 트레이닝 바지, 깃이 있는

나, 분명한 건 중국인은 이것을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또한 지


나고 난 뒤에 웃으며 회상하게 되는 따뜻한 기억이라는 것이다. “역시 달리기는 교복입고 해야 느낌이 나지!”라고 웨이신의 모멘트에(한국 의 카카오스토리와 동일) 누군가 올린 걸 보고 나서야 이해했다. 정녕 교복을 입고 뛴다는 사실을. 그리고 항상은 아니지만 목에 빨간색 스카프 같은 걸 리본 모양으로 단정하게 묶은 풍경을 가끔 볼 수 있다. 학교가 교복과 함께 전교생에 게 나눠주는 일명 ‘넥타이’다. 일반 학교에서는 중요한 행사 때, 엄격 한 학교에서는 모든 학생이 모두 착용해야 하지만, 대개는 귀찮아서 혹은 안 예쁘다고 생각해서 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숙사에서만 나눌 수 있는 특별한 추억 그 다음은 기숙사 문화이다. 기숙사 제도는 대개 중학교부터 고등학

아침을 시작한다.

교 때까지 적용된다(대학교는 필수적으로 다 숙사가 있다). 베이징에

그리고 앞에도 잠깐 언급했듯, 매일 아침에 함께 뛴다. 대략 운동

있는 학교는 대다수가 기숙학교이고, 또한 숙사 문화가 상당히 발전

장 5바퀴에서 7바퀴까지 뛴다. 1바퀴 뛰는 것도 힘든 필자로선 상상

된 편이다. ‘관리, 체율’을 굉장히 중요하게 보는 중국 교육 제도는 해

도 못할 노릇이었다. 한국에서 중학교에 다녔을 때는 체육 시간마다

당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라면 질병 같은 특수한 이유를 제외하고 모두

3바퀴 뛴 게 고작이었던 것 같다. 학교마다 다르지만, 중학교 3학년

숙사에서 살게 한다. 한국에선 하교 하고 나서 떡볶이를 먹거나 PC방

이나 고등학교 3학년에겐 오후에 뛸 수 있는 ‘특혜’를 주기도 한다. 결

으로 같이 달려가는 나름의 ‘하교문화’가 중국에선 없는 셈이다. 하지

코 면제는 없는 것이다.

만 그들도 그들만의 ‘숙사문화’를 펼친다. 낙서가 금지 되어 있지만 사 감의 눈에 띄지 않는 곳곳엔 ‘누군 누구를 좋아한다’, ‘모모 선생님 입

느슨해지는 규제와 까다로워지는 명문학교

냄새 완전 심각’ 등등 앳된 낙서들을 볼 수 있다. 본의 아니게 자기 이

두발규제는 90년도까진 엄격하다 최근엔 느슨해지고 있는 추세다.

름이 적힌 아이가 낙서를 지은 흔적은 귀엽기 그지 없다. 야식을 먹고

“그때는 귀 밑으로 조금만 길어도 바로 잘리곤 했다”고 90년도에 고

싶지만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아이들은 담벼락 사이로 식당 배달부와

등학교를 다닌 어느 중국 회사원이 회상했다. 게다가 그 때는 연애는

은밀한 거래를 한다. 물론 들키면 죽음이지만, 나쁜 짓을 같이 할 때의

교칙에 어긋난 금기였고, 그것 때문에 서로 좋아하다가 끝나는 남녀,

스릴은 어른이 되고 나서는 갖기 힘든 추억임에 분명하다.

사귀다가 들켜서 선생님과 부모님들에게 왕창 깨지고 서로 헤어지게

보통 10평 가량의 방에 2층 침대 두 개를 마주보게 두고 4인실로 된

된 커플 등등 규제가 매우 심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대부분 귀

숙사가 많다. 필자의 남동생이 다니고 있는 학교에는 1층 침대들 사이

밑 5cm로 자르지만 머리 긴 여학생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연애는

에 커다란 책상이 하나 있어 거기서 숙제를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매

말할 것도 없이, 솔로의 맘에 불을 지르는 닭살 돋는 학생 커플들을

일 수업이 끝나면 숙사 밖으로 나갈 수 있게 개방해주는 학교도 있고,

더더욱 쉽게 볼 수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진 학교 밖으로 발끝도 못나가게 하는 학교도 있 다. 그리고 밤 11시가 되면 소등. 모든 전기, 콘센트 포함 사용 불가. 이는 놀랍게도 북경대학교에서도 계속 이어지는 숙사 규율이다.

중국은 너무나도 넓고 방언부터 생활습관까지 지역마다 천차만별 이기 때문에, 이렇게 짧은 기사로 ‘중국 학교는 이렇다’라고 단정 내리 긴 사실 무리한 감이 있다. 더불어 주로 베이징에 포커스를 맞춰 서술

아침은 우렁차게, 체력은 탄탄하게

했으니, 섣부른 판단은 더더욱 안 된다.

이 큰 두 가지 차이를 제외하고도 다른 크고 작은 차이점들을 보인

문화적으로나 많은 방면에서 참 많이 다른 학교생활일 테지만, 그

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어느 학교는 고등학교까지 아침에 ‘早读’를

때의 그 시절을 떠올릴 때의 마음 한 켠에 떠오르는 아련함만큼은 중

한다. ‘早读’는 직역하면 ‘아침에 읽다’란 뜻으로, 중국 대부분의 학교

국사람들도 한국사람들과 똑같은 것 같다. 공부에 지치기도 하지만

가 중요시 하는 학습 전 활동이다. 대부분 월요일부터 금요일, 아침 1

친구들과 한 편 한 편 아름다운 추억을 찍어내는, 다시는 없을 시절.

교시 시작 전에 책을 펼치고 다같이 크게 소리를 내어 읽는다. 주로

‘고등학교 친구가 평생 친구다’라는 말조차 똑같다. 유학하고 여기저

교과서, 필기, 신문 혹은 잡지를 읽으며, 아침에 기억력이 좋다는 것

기 옮겨 다니느라 그런 정을 마음 속에 품을 기회가 없었던 나는 그

에 근거해 시작된 공부방법이다. 물론, 귀찮아서 입모양만 움직이고

런 정서적인 공감과 유대를 가진 한국학교나 중국학교생활이 그저 부

안 읽는 친구들도 있긴 하다. 하지만 매일 잠이 덜 깼을 시간에 온 교

러울 따름이다.

실이 떠나갈 만큼 쩌렁쩌렁하게 힘찬 목소리로 낭독해, 다같이 힘찬

글_ 김윤희 본지 대학생기자(uniwood@126.com)

29


Sketchbook

유학생들의 특별한 추석나기 9월 19일(음력 8월 15일)은 중국의 추석인“中秋节(중추절)” 이다. 온 가족과 함께 맛있는 것도 먹으며 담소도 나누며 즐겁게 보내는 추석 이지만 유학생들에겐 그저 그림의 떡일 뿐. 중국에 있는 유학생들 은 추석을 어떻게 보냈을까? 혹, 혼자 외롭게 보내진 않았을까? 스케치북 속 답을 살펴보도록 하자. 취재, 글_ 김나영 본지 대학생기자(nayoung317@hotmail.com)

다이스케

일본에 있는 여자친구 너무 보고 싶어요.

친구들과 즐거운 생일파티^^

이경하 30

가족 없는 추석, 그렇다고 우울하게 보낼 순 없죠~


이수진 중국의 대표적인 추석 음식! 맛있었어요~

윤지수 콘서트 가서 하루 종일 즐기다 왔어요~

박예원 이종률

보고 싶은 부모님께 전화 드렸어요

난 중추절에도 열공하는 모범생!

이채현 친구들과 맛있는 저녁 먹고 수다 삼매경!

리에 리사 하루 종일 쇼핑해서 기분 좋았던 하루^^

하루 종일 쉬면서 체력 회복하기! 31


Marketing

한국 기업, 중국 시장에서 날개를 펼치다 - “2013 서울화장용품특별판매전”에 다녀오다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중국 화장품시장은 무려 연

9월 25일부터 26일까지 이틀간 북경 호원건국호텔에서 열린 “2013

평균 13.3%이라는 성장률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중국이 세계 3대

년 서울화장용품특별판매전”은 중국 현지인들에게 한국 화장품 브랜

화장품시장으로 자리잡으면서 중국 진출을 희망하고 있는 한국 화장

드를 알리는 동시에 한국 화장용품 기업들의 중국 진출을 위하여 개

품 기업들이 점차 늘고 있는 추세이다. 서울산업통산진흥원(SBA) 북

최되었다. 검증된 기업들만 선발하여 개최된 이 행사는 중국 현지에

경서울무역관은 “한국 화장품들이 중국 시장에서 날개를 펼칠 기회를

서 정체불명의 한국 화장품기업들을 배제하고 오로지 증명된 우수 기

가질 수 있도록 특별한 행사를 개최했다”고 전했다.

업들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도 포함되었다. 행사장에서는 판매전에 참 가한 한국 브랜드 제품에 대한 상담과 중국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현장 판매도 진행되었다. 화장용품뿐만 아니라 미용미발용품기업들도 참 여하여 소비자들이 다양한 제품들을 접할 수 있었다.

한미그룹의 중국시장 개척, “What to do? How to do?” 행사 두번째 날인 9월 26일에는 한미그룹의 홍건택 총경리가 “중국 시장 개척 및 마케팅 성공전략”에 관한 주제로 현장 특강을 2시간에 걸쳐 진행했다. 한미그룹의 소개로 시작한 이 특강에서는 강연자의 한 미에 대한 자부심과 애사심을 느낄 수 있었다. 1994년 처음으로 중국 시장에 진입하여 20년 동안 한미약품은 꾸준히 발전하여 현 위치까지 오르게 되었다. 강연자는 그 과정에서 겪었던 실패사례와 성공사례를 동시에 공유하며 앞으로의 전략방향을 제시하였다. 의약품을 제조, 생산하는 한미그룹의 대표적인 제품은 소아정장제 “마미아이(妈咪爱)”이다. 이 마미아이라는 제품을 가지고 어떻게 중 32


국시장 개척에 성공하였는지 자세한 경험과 사례를 들어 설명해 주었

의 ‘빨리빨리’식의 비즈니스는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

다. 강연자는 앞서 대리(License In)브랜드의 실패 사례에 대해 언급

다. 한미그룹은 마미아이 브랜드 구축에 전력하기 위하여 전국 소아

하였는데 그 이유는 파트너와의 리스크 분담문제, 무한경쟁인 중국시

과 병원을 돌며 1천회 이상의 세미나를 하며 마미아이를 널리 알리려

장 안에서 제품의 경쟁력, 그리고 대리 브랜드로 인한 불명확해진 비

고 노력하였다. 그 결과, 2009년 마미아이가 중국 내 소아정장제 최

즈니스 목표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실패를 거듭하지 않기 위하

고 브랜드로 선정되었지만 그 이후 매출이 정체되어 한미그룹에게 풀

여 한미그룹의 License In 성공전략은 이러했다. 제품은 반드시 경쟁

어야 할 또 다른 숙제가 생기게 되었다. 마미아이는 약이기 때문에 소

력이 있어야 하며, 그 제품에 대한 투자의 성공에 대한 장기적인 비전

비자들에게 자주 먹으면 안 된다는 사고가 박혀 있어서 매출이 더 이

이 필요하다. 또한 한꺼번에 여러 도시를 공략하기 보다는 한 도시에

상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미아이는 약이기 이전에 몸에 좋

집중적으로 마케팅하여 브랜드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은 유익균이므로 장기복용이 가능하다. 이 점을 소비자들에게 전달하

중국은 땅덩어리가 크지만 지역마다 네트워크가 좋아 한 지역에서 성

기 위하여 마미아이 잡지 발행, 인터넷 영화 제작, TV광고를 제작하

공을 하면 다른 지역에서도 성공할 확률이 크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

는 등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으로 마케팅하기 시작하였다. 현재

지막으로 브랜드오너는 브랜드를 알리고 판매업자는 판매에 치중한

마미아이는 많은 소비자들에게 유익균으로 알려져 있어 장기복용의

다는 대리상과의 명확한 업무분담이 꼭 필요하다고 전했다.

거부감이 없어졌고, 심지어 복용연령대가 확대되어 2009년 이후 매 출액이 3배나 성장하며 몇 년 간의 꾸준한 노력에 성공적인 결과를 얻

강연자는 삼성이나 현대와 같은 대기업들은 대규모 투자로 단기간 내에 브랜드를 확산하여 안정적인 시장을 세울 수 있다고 하였다. 그

게 되었다. 한미그룹은 앞으로도 브랜드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와 개 발에 힘쓸 것이라고 강연자는 전했다.

렇다면 한미그룹은 어떻게 중국 내 소아정장제 No.1 브랜드로 인정받 을 수 있었을까? 강연자에 따르면 한미그룹의 시장개척 성공요인은

한미기업의 꾸준한 노력과 마케팅 전략으로 중국시장 진출에 성공

①시간과의 싸움, ②사고의 전환, ③적극적인 소비자 커뮤니케이션,

한 것처럼 중국에서 날개를 펼치고 싶어하는 다른 여러 한국 기업들

그리고 ④리포지셔닝을 통한 매출증대와 신규사업 기반 구축이었다.

도 꼭 성공하길 기대해본다.

그가 강연 내내 강조한 것은 “목표에 대한 일관성과 기다림의 미학”이 었으며 시간과의 싸움이 가장 중요하다고 전했다. 또한 한국인 특성

취재, 글_ 김나영 본지 대학생기자(nayoung137@hotmail.com)

33


New Culture

주택담보양로대출로 바라본 中, 노인문화 노인의 기준은 언제부터일까? 열심히 땀 흘리던 직장을 그만두고 머리엔 흰머리가, 얼굴엔 주름이 그득해 때, 그럴 때 “할머니, 할아버 지가 다 되었구나” 하고 생각하지 않을까? 하지만 요즘 TV 프로그램 이나 인터넷 등 매체를 통해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노인”에 대한 정의 가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의학기술이 발달하고 웰빙열풍이 불면서 70, 80대는 인생의 황혼 기라고 하기에 이른 시기가 되어버린 게 아닌가 싶다. 한가로운 오후 에 베이징 스차하이를 거닐다 보면 녹슬지 않은 탄탄한 몸매를 뽐내며 운동을 하고 있는 할아버지들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노인들의 모습이 나에게 점점 변화하는 노인문화에 흥미를 갖게 해주었다. 중국의 평범한 노후생활은 어떤 모습일까? 필자는 한달 동안 주말 마다 인근 아파트단지를 둘러보며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모습을 살펴 보았다. 단지 내 공터에 버려진 의자와 소파를 가져다 두고 둘러앉아 한가로이 담소를 나누는가 하면 오고가는 훈수 속에서 장기를 두거나 전통놀이 마장(麻将)을 하는 할아버지들의 모습도 많이 보인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손주들의 손을 잡고 산책을 하는 반면, 반려동물들과 산책을 하며 이웃들에게 안부를 묻는 모습은 한가로운 주말에 볼 수 있는 중국의 “흔한” 노인문화이다.

새로운 노인문화 잠시 눈을 돌려 최근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새로운 노인문화에 관 심 가져보자. 한국에서도 “꽃보다 할배”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70대 노인들이 문화시장의 새로운 소비자로 자리매김 하였다. 부족 한 체력 탓에 집에서 티비로만 여행을 다닐 것 같은 할아버지들이 유 럽으로 떠나 그 어느 젊은이들보다 재미있는 추억을 만든다. 여행은 물론 취미생활도 가지고 운동도 열심히 하며 이제 할아버지, 할머니 는 더 이상 훈수만 두는 노인이 아닌, 스스로 자신의 삶을 꾸밀 줄 아 는 독립적인 노인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새로운 노 인문화에 대해 알아보다가 중국에서도 비슷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

34

다는 것을 발견했다. 높아지는 생활수준과 개방적인 가치관의 이유도

이젠 완전히 4-2-1구조의 가정이 형성되어버렸다. 이제 사회에서 열

있지만 요즘 한창 뜨거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중국의 이팡양라오(以

심히 일하고 직장생활을 하는 젊은이들은 자신의 부모와 조부모까지

房养老, 이하 주택담보대출)제도를 통해 색다른 시각으로 새로운 변

부양을 해야 하니 고령화 사회의 전형적인 문제인 경제부담이 심각한

화를 이해해보고자 한다.

사회문제의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렇다고 자신의 부모를 모른 척 한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현대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갈수록 결혼

다는 것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될 일기도 하여 청년층과 장년층 모두

과 출산을 미루고 개인의 삶을 가꾸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에 따

가 노후에 대한 고민에 빠지기 시작할 무렵, 중국에서 주택담보대출

라 출산율이 떨어짐과 동시에 중국에서는 1자녀정책이 시행됨에 따라

제도가 시행되어 새로운 변화를 도모하고 있다.


노후걱정은 이제 그만

씨는 가지고 있는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 후 기존 주택을 타인에게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 이미 오랫동안 시행된 주택담보대출은 노

임대하여 마련한 자금으로 해외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미국, 호주 등

후생활을 대비해서 자신의 주택을 담보로 대출금을 받은 후 죽을 때

을 오가며 여행을 하다가 나이든 체력에 무리가 온다 싶으면 차이나

주택의 시가로 대출금을 상환하는 제도이다. 이는 주택을 담보로 대

타운을 찾아 식당주방이나 가정부일을 도와주며 숙식을 해결하고 여

출을 받아 노후에 자식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줄 뿐만이 아니라 스

유가 생기면 다시 여행을 떠나며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면서 노

스로 자금을 마련해 삶을 꾸며나갈 수 있도록 하는, 꼭 필요한 제도

후생활을 보내고 있다. 이처럼 주택담보대출제도는 노인문화에게 많

가 되었다.

은 영향을 주고 있다. 스스로 마련한 자금으로 노인이 되어서도 남에

한 가정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89세의 원씨는 이제 막 배우자를 여

게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새로운 노인문화의 발판

의고 자녀도 없이 여생을 홀로 보내게 되었는데 매달 3000위안의 보

이 되어주기도 하면서, 자녀들의 부담을 덜어줌과 함께 더욱더 화목

조금은 치솟는 물가 앞에서 빠듯하기 짝이 없었다. 결국 원모씨는 가

한 가정을 만들어 가는 사회분위기를 조성하는 데에도 좋은 영향을

족들과 상의한 후 친동생의 세 자녀들이 원모씨 집의 지분을 나누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가지게 되었다. 만약 자녀가 한 명이었다면 혼자서 집값을 부담하기

며칠 전 국경절 휴일을 맞아 필자의 오랜 중국친구들과 담소를 나누

어려웠겠지만 여럿이서 지분을 나누어 가지게 되니 서로의 부담도 덜

는데, 부모님들이 은퇴 후 직접 실버타운사업에 몸을 담거나 주택담

어주고 더 싼 값에 집을 팔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다음 자녀들은 가

보대출을 이용해 세계일주 혹은 중국여행을 계획하고 계신다고 한다.

장 큰 지분을 가지고 있는 자의 명의로 주택담보를 하였고 원모씨는

노인뿐만 아니라 현재 노후생활을 앞두고 있는 장년층도 땀흘려 고생

대출금 20만 위안 현금을 받아 남은 노후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한 자신을 위해 마련된 여건을 최대한 활용해 그동안 꿈꿔왔던 노후

게다가 자녀들이 매달 각각 200-500위안의 용돈을 모아다 준다고 하

생활을 보내려고 한다는 게 중국친구들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니 3000위안으로 한달 동안 모든 지출을 해결하던 원모씨에겐 더할

부모님들의 결정을 지지해주는 것과 동시에 부모님들 부양해야 한다

나위 없이 좋은 노후가 펼쳐진 것이다.

는 부담감도 줄어서 좀 더 여유 있게 개인의 생활에 집중할 수 있게 된

화목한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노후생활을 보내는 것을 중국어로 家

점이 좋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庭养老라고 부른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사람들이 갈수록 개인의

물론 이러한 새로운 노인문화와 주택담보대출은 빈부격차가 심한

삶을 살아가는 데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노인의 가치관도 젊은이

중국에서 상위계층들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우려의 말

들을 따라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실버타운(养老院)이 점점 많아지

도 나오고, 주택담보대출제도도 중국의 ‘부동산 70년 사용권’, ‘도시

는 이유도 이러한 변화를 수용하기 때문이었다. 평범한 실버타운도 있

와 농촌 이원화 호적제도’ 등 기존정책으로 인해 많은 걸림돌이 있는

지만 각종 여가시설이 갖추어지고 의료시설도 마련된 실버타운이 생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장애물이 있어도 어떠한가. 문제는 해

겨나기 시작하면서 주택담보대출을 이용해 자금을 마련한 뒤 조용하

결하라고 있는 것이고 문제의 발생은 곧 진전의 시작이다. 이러한 새

고 안전한 실버타운에서 여생을 꾸며나가는 모습도 점점 많이 볼 수

로운 노인문화의 탄생을 보면서 필자는 30대, 40대가 삶의 절정이라

있다. 물론 시내에서 비교적 먼 곳에 위치해 편의시설 이용이 불편하

고 생각했던 고정관념이 완전히 깨져버렸다. 어떠한 커리어를 경험

다거나, 실버타운의 높은 가격으로 인해 부자들만 이용하는 곳이 아

하고 60대가 넘어 어떤 노후생활을 하게 될지, 또 중국사회는 이러

니냐 하는 부정적인 의견도 나오긴 하지만 문제는 늘 새로운 변화를

한 고령화 시대 속에서 어떻게 변화해나갈지, 필자는 과감히 큰 기대

이끌어 가듯이 여러 이슈들이 점점 보완되면서 실버산업도 중국에서

를 안아본다.

각광받는 분야가 되었다. 또 다른 이야기를 들어보면, 성공적인 커리어를 뒤로하고 은퇴한 하

글_ 이준성 본지 대학생기자(mindal0115@naver.com)

35


Fun in China

이보다 편리할 수 없다

중국 편의점 중국에서 크지 않은 도시들 같은 경우 오후 5시면 가게들이 문을 닫는다. 그래 서 많은 사람들이 편의점을 많이 이용하는데, 초기는 일본의 세븐일레븐이 가장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현재는 국내업체들이 차례로 점포를 오픈하면 서 비교적 굳은 입지를 차지하고 있다. 매장 대부분이 건물을 임대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한국과 일본에 비해 담배 판매비중이 크다. 주부들의 취업으로 심야쇼핑 이 증가함에 따라 생겨난 24시간 영업 및 연중무휴는 편의점 시장의 성장을 촉진 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글_ 리나(liena0206@hotmail.com)

Seven Eleven 일본계 다국적 기업으로 20여 국가에서 편의점 체인을 운영하고 있다. 2007년, 세븐일레븐은 맥도날드를 제치고 전 세계적으로 점포 수가 가장 많은 체인점이 되었다. 세븐일레븐은 1927년 미국 텍사스 주 댈러스의 오크클리프 구역의 사우스랜드 제빙회사에 의해 설립되었다. 이 회 사는 큰 냉장고에 우유•빵•달걀 등 식료품을 담아두었는데 동네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저녁 과 일요일에 판매한 것이 편의점의 시작이었다. 미국의 세븐일레븐에서는 매년 7월 11일을 세 븐일레븐의 날로 정해 무료 상품 증정 행사도 열고 있다. 상대적으로 제품의 가격이 높지만 품 목이 많아 찾는 손님이 많다.

Family Mart 1973년 세이부 철도 계열사인 세이유 그룹의 소규모 점포로 출발했다. 그 후 편의점 체인인 패밀리마트로 개칭되었고, 그 후 도쿄 증권거래소에도 상장되었다. 2011년 10월 당시, 일본 전 역에 8천개가 넘는 점포가 있었다. 일본에서 현재 세븐일레븐•로손 다음가는 3위권의 편의점 체인이다. 해외진출 방면에는 중국, 타이, 타이완, 베트남, 미국에 현지 기업이나 합작 형태로 진출해 있다. 해외에서는 한국에 가장 점포가 많았으나, 2012년 CU로 개편되면서 현재는 타이 완에 가장 점포가 많다. 상하이에서는 거의 지하철역마다 배치된 편의점이다.

Alldays 1994년 설립된 농공상슈퍼총회사 소속으로 상하이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편의점이다. 현 재 천개가 넘는 점포를 가지고 있으며 중국 국내 편의점 브랜드에서 가장 실력을 가진 업체 로 거듭나고 있다. 편의점에서는 물건 구입은 물론 전기, 휴대폰요금 지불, 택배, 잡지 정기구 독, 교통카드 충전, 신용카드 결제 등 다양한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 Alldays 본사는 현재 상 하이에 위치해 있다. 36


Wu-mart Wu-mart(物美)는 한자 뜻 그대로 ‘물건이 아름답다’라는 뜻이다. 처음에는 외국 대형마트를 따라해 탄생되었지만 베이징 최초 규범화된 편의점으로 입지를 다졌다. 쇼핑카트 위에 작은 화 면이 달려있는데 당일 특가인 상품이나 세일 상품 앞을 지나가면 센서에 의해 소리가 나면서 화면에 제품 설명이 나온다. Wu-mart의 특징은 모든 상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다 는 점이다. 현재 화동지역 11개, 화북지구 92개의 점포를 가지고 있다.

Lawson 기존의 편의점과 다르게 차별화하여 화장품, 건강에 좋은 빵, 흑미를 사용한 삼각김밥, 웰빙 도시락 등을 판매하여 직장인 중에서도 여성 고객층이 주요 타켓이다. 일본 편의점 사이에서 도 1순위를 자랑하는 만큼 품질과 서비스가 뛰어나다. 중국에 위치한 점포도 편의점이라고 생 각되지 않을 정도로 규모가 큰 곳이 있다. 현재 애니메이션을 테마로 한 점포도 여러 개 오픈 을 앞두고 있어 기대를 모으고 있다.

Kedi Alldays와 마찬가지로 농공상슈퍼총회사 소속으로 상하이, 항저우, 쑤저우 등 상하이를 중심 으로 국내 21개 도시에 천개가 넘는 점포를 소유하고 있다. 설립된 지 13년이 안 되지만 엄청 난 속도로 화동지역에서 보폭을 넓히고 있으며 주요 서비스로는 게임카드 충전, 교통카드 충 전, 콘서트 티켓 판매, 유선TV요금 지불, 프린트, 복사 등이 있다. 또한 편의점 내에서 현금인 출도 가능하다.

快客 대형 마트 롄화(联华)마켓 산하의 편희점으로 현재 2천개의 체인점을 보유하고 있다. 그 중에 서 70% 점포가 상하이, 강소와 절강 지역에 위치해 있다. 수년간 판매망 구축을 통해 쾌객 편 의점은 현지에서의 규모 우위가 뚜렷하게 되었다. 2002년에는 광저우 시장에 진출해 5년 동안 110개 체인점을 신설했고 광저우 시장 랭킹 2위를 기록했다.

喜士多 대만업체인 윤태그룹(润泰集团)에서 운영 중인 喜士多 편의점은 영어 ‘C-store(편의점)’의 발 음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상하이에서만 150여개의 점포를 보유하고 있고 항저우, 쑤저우, 쿤산 등 지역에도 점포를 오픈하였다. 빨간 토마토가 그려진 브랜드 마크는 중국인들의 취향을 그대 로 반영했다. 현금인출, 신용카드 지불 등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으며 일본과 타이완의 경영기 술을 바탕으로 중국에서 보다 고급화된 편의점으로 거듭나고 있다. 37


Entertainment

씽탸오수이리팡(星跳水立方) 두려움을 극복하는 법 빙)이 말해주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이다.

한계를 시험하는 스포츠 우선 “스포츠” 하면 어떤 단어들이 떠오를까? 주위 중국친구들에게 스포츠(体育)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지 물어보자 많은 친구들이 공평( 公平), 경쟁(竞争), 도전(挑战), 한계(极限) 등을 떠올렸다. 중국사람 들에게 스포츠는 심신을 단련하는 것 이상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한계 를 뛰어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인식되어 있다. 프로운동선수가 아 니더라도 프로선수 같은 애정을 가지고 스포츠에 관심을 가지며, 중 국에선 보통 연예인보다 스포츠스타가 더 큰 인기를 얻는 경우도 많 다. 게다가 스포츠대국, 스포츠강국인 만큼 스포츠스타들도 다양한 종목에서 활약하고 있다. 이러한 스타들이 보여준 그들의 땀과 노력 그리고 성공과정은 항상 중국국민들의 핫이슈가 되고 대중들에게 꿈 과 희망을 안겨준다.

38

사람들은 언제 두려움을 느끼게 될까. 또 그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

이러한 스포츠정신과 예능프로를 접목시킨 <씽탸오수이리팡>은 당

할까? 우리들은 항상 두려움이 가득 쌓인 사회 속에서 생활을 하고 있

연 엄청난 호응을 얻었다. 중국의 효자종목 중 하나인 다이빙, 사람이

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제든지 뜻밖의 난관에 봉착하게 되고 성공

두려움을 느끼는 높이에서 안전장치 하나 없이 물속으로 뛰어내리는

앞에서 실패를 두려워하기도 한다. 몇 년 전 갑자기 불어 닥친 힐링열

이 스포츠는 자신의 한계와 두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을 가장 절실하고

풍은 우리들이 더 이상 혼자서 두려움을 맞서기 힘들 정도로 서로의

생생하게 보여주는 스포츠 중에 하나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

도움이 필요한 시기가 되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서로가 서로의

다. 중국 최고의 스포츠영웅이었던 궈징징(郭晶晶), 우민샤(吴敏霞),

마음을 치유해주고 서로에게 용기를 주고 자신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

티엔량(田亮)도 다이빙선수인 만큼 중국사람들에게 다이빙은 특히나

을 극복하며 더 나은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더 사랑 받는 종목이다.

타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또는 타인의 경험을 관찰하면서 우리들

이러한 스포츠에 중국의 연예인들이 도전을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은 마음의 용기를 얻기도 하고 더 긍정적으로 마주하게 된다. 라디오,

사람들은 폭발적인 관심을 가지기에 충분하였다. 중국판<나는 가수

책, 신문, TV프로그램, SNS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에 출현한 인기가수 샤바오량(沙宝亮), 인기 여배우 아야(阿雅) 등

공유하곤 하는데, 오늘 이야기해볼 주제는 중국의 예능프로그램 씽탸

중국에서 내로라하는 연예인들뿐만이 아니라 중국을 사랑한 외국가

오수이리팡(星跳水立方, 원 독일예능프로그램 스타인덴져: 하이다이

수 찐샤오위(金小鱼,Aventurina King), 그룹 TAKE 출신의 이승현


등 중국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해외연예인들도 출현해 말 그대로 대화합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정한 노력임을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이처럼 스포츠는 자신의 한계와 두려움을 극복함으로서 한단계 더 성장해 나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인지도와 명예를 가지고 남 부

그들이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

러울 것 없이 사는 것 같아 보였던 연예인들이 마음속 고충을 솔직히

이 프로그램의 출연진은 나이 들어 몸을 사리는 중년남성, 극심한

고백하고 또 당당히 극복하면서 다이빙종목이 가져다 주는 자아발전

고소공포증을 가진 여성, 자신을 시험하고 싶어하는 열혈청년 등 다

의 성취감은 배가 되었다. 이로서 중국의 스포츠열기는 식기는커녕 한

양한 두려움과 한계를 가지고 있는 연예인들이며, 자신의 노력으로

층 더 뜨거워졌고 다이빙뿐만 아니라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던

어려움을 극복하며 다이빙에 도전하는 모습을 대중들에게 생생하게

다른 종목의 스포츠도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추세이다.

보여준다. 한달 간의 준비과정으로 프로급의 고난이도 동작을 소화해

물론 이러한 스포츠종목과 어우러진 예능프로그램은 출연자들의

내는 것은 쉽지 않지만 다이빙대에 섰을 때의 그 두려움을 극복하는

노력이 돋보임과 동시에 안전의 문제를 동반하고 있어서 논란이 되

과정, 그 순간의 모습만으로도 대중들에게 뜨거운 감동을 선사하기

기도 한다. 실제로 출연자들의 부상소식은 끊이지 않고 심각한 부상

에 충분하다. 체력적으로 부족함이 있는 여성출연자들은 연습과정에 서 1미터부터 시작해 3미터 5미터 점점 높이를 높여가면서 자신의 그 릇을 시험하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솔직하게 보여준다. 다이빙대에 올라섰을 때 그 공포감을 이기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리기도, 후회를 하기도 하지만 더 강한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며 마침내 두려움을 이 겨내고 다이빙에 성공한다. 중국의 중견가수 샤바오량은 나이와 체력 을 탓하며 위험한 동작을 꺼려하고 쉬운 동작으로 다이빙을 하려 했 지만 이러한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이겨내고자 물구나무서기로 다이 빙을 도전하고 당일 가장 여유롭고 부드러운 퍼포먼스로 모든 이들의 박수 갈채를 받기도 하였다. 필자가 본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가장 큰 감동을 안겨주었던 출연 자는 두 명이 있었다. 중국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가수 한경은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고 극복한다는 점에 의미를 두며 시종일관 열정

으로 차후 연예계활동에 지장이 있는 경우도 발생해 더 높은 안전성

적이고 긍정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었다. 연습

과 전문성을 요구하지만 오락성과의 타협을 찾지 못해 사람들이 비난

과정 중 입수자세의 불안정으로 순간 혼수상태에 빠지기도 하였지만

을 사기도 하였다. <싱탸오수이리팡>은 독일에서 수입된 <스타인댄

그로 인한 심리적 부담감과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자신 있게 다이빙을

져: 하이다이빙>을 모태로 제작된 프로그램이고 그 외 폴란드 등 유

완성하는 모습은 필자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그 외 중국을 사랑하는

럽에서 방영된 <셀레브리티: 스플래시>라는 프로그램이 비슷한 포맷

미국인가수 찐샤오위(Aventurina King)는 이미 중국방송계에서 유

으로 방송되었다. 중국에선 두 방송사가 각각 두 프로그램의 포맷을

명한 연예인이지만 사람들이 자신을 외국인으로 바라보는 편견을 극

수입해 방송하였는데 <스플래시>에서는 한국가수 채연이 출연해 누

복하고 정말로 중국인들이 사랑하는 연예인이 되고자 누구보다 더 열

구보다 노력하는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어내었다. 하지만 한 국에서도 방영되었던 <스플래시>는 계속되는 도전자들의 부상에 조 기 종영될 만큼 스포츠예능에서 특히나 안전과 전문성이 보장되어야 하는 게 사실이다. 한편, 이러한 부상을 이겨내는 과정도 사람의 한 계를 이겨내는 과정이라는 의견도 분분하기 때문에 프로그램의 진정 성과 오락성 사이에서 그 선을 어떻게 잘 지켜나갈지 앞으로 그 행보 가 더 기대된다. <싱탸오수이리팡>의 영어이름인 <Stars in Danger>처럼, 이 프로 그램은 두려움 앞에 선 사람들이 어떻게 그 두려움을 극복해 나아가 는지 보여주며 시청자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오로지 발끝에 걸친 다이빙대에 자신을 의지하며 그 다음 순간 펼쳐 질 성공과 감동에 집중하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자신에게 닥친 난관을 이겨낼 용기를 심어준다. 그들은 어떻게 자신을 이겨내는지,

심히 연습을 하였다. 공연 당일 여성출연자 중 가장 고난이도의 동작

또 나는 어떻게 나 스스로를 이겨내야 할지 궁금하다면, <싱탸오수이

을 선보이면서 찐샤오위의 노력은 전 중국인들에게 그의 진심 어린

리팡>을 꼭 한번 시청해보길 추천한다.

소망을 받아들이게 하였다. 이렇듯 이들이 보여준 모습은 개인의 두 려움을 극복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모두의 화합으로 이루기 위한 진

글_ 이준성 본지 대학생기자(mindal0115@naver.com)

39


Book

베이징 80后의 자유롭고 불안한 성장이야기 베이징와와(北京娃娃) – 춘수(春樹) 『베이징 와와』는 린쟈푸가 겪는 열네살부터 열여덟살까지의 성장과 방황을 담은 장편소설이다. 주 인공 린쟈푸는 펑크를 좋아하고 밴드들과 어울리며 자신의 세계를 채워가는 소녀로 베이징대학을 항 상 동경하지만 베이징 대학의 입학과는 거리가 먼 자신의 직업 학교에서의 생활을 증오하고 벗어나려 한다. 린쟈푸는 중국의 급격한 경제 발전으로 혼란스러운 과도기적 중국 사회에서 성장한 80后(80년대 이 후 출생한 중국젊은이들을 일컫는말)를 대변하는 캐릭터이며 작가 춘수 자신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린쟈푸의 모습이 당시의 모든 중국청소년을 대표한다고는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이 10대 소녀가 보 여주는 말초적이고 자유로운 연애 방식은 조금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린쟈푸는 언제나 사랑받고 싶어하지만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주변 모든 것들은 마음대로 되지 않 는다. 하지만 그 시기에는 누구나 이러한 끝없는 외로움과 제도화된 학교에 대한 반항심, 외부 세계에 대한 경계, 어른세대와의 갈등을 한번쯤은 겪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갈등에 대한 린자푸의 대처방식이 조금 유난스럽기에 소설 속 그녀의 상황이 모두에게 공감을 받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작가 춘수는 “앞이 보이지 않는 삶에서 그답을 찾아가는 길에 서있다”고 자신의 청춘을 설명한다. 1980년대 이후에 출생한 중국 젊은이들은 나름의 청춘을 살아가고 있다. 가장 급격했던 중국의 사회변 화에 이어진 혼란과 모순의 시대에 자아를 찾아야만 하는 불행할 수도 행복할 수도 있는 이중적인 세 대이다. 작가는 이러한 모습을 소설 속에서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중국의 시인 션하오보는 “베이징와와는 중국 최초의 잔혹청춘소설이다. 어린 작가들이 쓴 다른 작 품들은 옹알이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평했다. 이 작품은 전세계 20여 개 국가에 판권이 수출되었고, 중국에서는 12만 위안이라는 거액으로 영화 판권까지 계약을 체결하였다. 만약 베이징에서 머문 경험이 있다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천안문’, ‘장안대가’, ‘왕징’ ,’오도구’, ‘서단’, ‘산리툰’, ‘베이징 대학’ 등 익숙한 베이징 여기저기에서의 린자푸 모습들을 쉽게 그려볼 수 있을 것이 다.

작가소개 『베이징 와와』의 저자 춘수(春樹)는 80后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대표적인 1983년생 작가로 현재 베이징에 거주하며 『바링 허우 시선』의 주간을 맡고 있다. 일명 춘수신드롬을 일으킨 『베이징 와와』는 데뷔작이며 그녀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 손꼽히며 이 외에도 『반나절이나 되는 즐거움』, 『붉은 아이』 등의 소설과 『격정만장』이라는 시집이 있다. 그녀의 작품에는 오늘날 중국인의 삶에 대 한 젊은이들의 사회적 질의와 사유가 응집되어 있다. 2004년 2월에는 제5회 인터넷 골드핑거 문화 선봉장을 수상했고, 『베이징 와와』 로 중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타임스』의 표지모델이 되었다. 미국인들은 그녀를 ‘신(新)급진주의자’라고 부른다.

글 이주하 (홍익대학교에서 예술학과 판화를 전공하고, 현재는 공연예술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으며 다수의 잡지에 문화ㆍ예술에 관련한 글을 싣고 있다.)

40


41


Music

想你的夜 노래: 关喆 nǐ zhī dào ma 你知 道 吗 méi yǒu nǐ de rì zi wǒ yǒu duō xiǎng nǐ 没 有你的日子我 有 多 想 你 fēn shǒu nà tiān wǒ kàn zhe nǐ zǒu yuǎn 分 手 那 天 我 看 着 你 走 远 suǒ yǒu chéng nuò huà chéng le jù diǎn 所 有 承 诺 化 成 了句 点 dú zì shǒu zài kōng dàng de fáng jiān 独自 守 在 空 荡 的 房 间 ài yǔ tòng zài wǒ xīn lǐ jiū chán 爱与 痛 在 我 心里纠 缠 wǒ men de ài zǒu dào le jīn tiān 我 们 的爱走 到 了今 天 shì bú shì wǒ tài zì sī le yì diǎn 是 不是 我 太自私了一点 rú guǒ ài kě yǐ chóng lái 如 果 爱可以 重 来 wǒ huì wèi nǐ fàng qì yī qiè 我 会 为 你 放 弃一切 xiǎng nǐ de yè 想 你的夜 duō xī wàng nǐ néng zài wǒ shēn biān 多 希 望 你 能 在 我 身 边 bù zhī dào nǐ xīn lǐ hái néng fǒu wèi wǒ gǎi biàn 不 知 道 你心里还 能 否 为 我 改 变 xiǎng nǐ de yè 想 你的夜 qiú nǐ ràng wǒ zài ài nǐ yí biàn 求 你 让 我 再爱你一遍 ràng ài zài huí dào yuán diǎn 让 爱再 回 到 原 点 huí lái ba wǒ děng nǐ 回 来吧 我 等 你 42

넌 알고 있니 네가 없는 시간동안 내가 널 얼마나 그렸는지 이별한 그날 네가 멀리 떠나가는 모습을 보고 우리가 이미 끝났다는 걸 알았지 홀로 텅빈 방을 지키면서 사랑과 아픔이 내 마음속에서 뒤엉켜 버렸어 우리의 사랑이 오늘까지 온 건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던 건 아닐까 다시 한번 더 사랑할 수 있다면 널 위해 모든 걸 포기할 수 있을 텐데 널 그리는 이 밤 네가 내 곁에 있어주길 바래 모르겠어 너의 마음이 날 위해 변할 수 있는지 널 그리는 이 밤 널 다시 사랑할 수 있게 해줘 우리의 사랑이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게 돌아와 기다릴게


Movie

감독: 고군서(高群书) |

주연: 리빙빙(李冰冰), 저우쉰(周迅)

바람의 소리 (風聲: The Message, 2009)

“중단하라.” 이 메시지를 밖으로 전달해야만 한다. 전하지 못하면 모두가 위험하다. 1942년 일제강점기의 중국, 일본이 허수아비로 내세웠던 인물들이 연이어 암살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를 주도한 것이 반일항거조직의

중단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하면 반일항거조직의 모두가 위험한 상황이 생기기에 이 메시지를 내보내야만 한다. 또 일본국은 ‘유령’을 찾기 위해 용의자들을 한명씩 잔인하게 고문하고 희생하지만 이 후 모든 걸 뒤집는 반전이 일어난다.

수장인 ‘권총’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일본국은 일본국 내 기밀을 전달하는

민족주의적인 감성을 강하게 담고 있는 중국 근대를 배경으로 한

첩보자가 있을 거라 판단한다. 일본의 유명 군부가문의 ‘카케오(황효명 분)’

영화이며 이러한 영화 소재 특유의 영웅주의를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는 겁쟁이 가문이라는 오욕을 벗기 위하여 ‘권총’을 잡겠다고 다짐하고,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 영화<바람의 소리>는 총칼을 들고 싸우는 전쟁의

정보부 내부 첩자를 찾기 위해 가짜 암호를 흘려보낸다.

모습이 그려지지 않지만, 일제치하 중국의 상황과 비밀스럽게 진행되는

가짜 암호에 걸려든 내부요원 암호해독부장 ‘리닝위(리빙빙 분)’, 암호

반일항거조직의 첩보활동, 고문으로 관련자를 색출해 내는 일본군의

전달원 ‘샤오멍(저우쉰 분)’, 반공산당 대대장 ‘우쯔궈(장한위 분)’, 군기처

잔인성이 어두운 화면과 치밀한 미장센을 통해 긴장감 있게 표현된다. 특히

처장 ‘진썽훠(영달 분)’, 사령대 총관 ‘바이샤오녠(소유붕 분)’ 5인이 ‘유령’

동시대 일제강점기를 겪었던 문화적 배경을 가진 한국 관객들에게는 영화의

의 용의자로 지목되고 이들은 외딴 별장에 감금된다.

내용이 더 마음에 와 닿고, 영화의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5인의 용의자 중 누가 ‘유령’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이들의 행적을 샅샅이 살피고, 감시하고, 도청하며 ‘유령’이 누구인지 찾아내려는 비밀스럽고 긴장감 넘치는 추격전이 시작된다.

영화<바람의 소리>에서는 당대 최고의 중국 배우들을 모두 만나볼 수 있다. 최근 할리우드에서도 주목받고 있는 여배우 리빙빙이나 영화<화피>로

누가 첩보자 ‘유령’이고 누가 일본의 편에 서 있는 사람인지 혼란이

국내 관객들에게도 익숙한 저우쉰, 영화 속에서 일본인 역할로 열연한

가중되는 가운데, 별장에 모인 이들 사이에 서로에 대한 의심과 팽팽한

황효명, 드라마 ‘황제의 딸’로 잘 알려진 소유붕 등 익숙한 중국 배우들이

긴장감이 흐른다. 이들은 모두 일본국을 위해 충성을 다하며 일본의

각각 개성 있는 캐릭터에 분하여 영화의 완성도를 높여주었다.

앞잡이로 살아가고 있지만 일본에 맞서지 못하는 자신들에 대한 콤플렉스를 내제한 듯 보이기도 하다. 별장에 갇혀버린 첩보자 ‘유령’이 계획을

글_ 이주하(ayoungarts@naver.com)

43


China Issue

인 물

王健林 부동산 재벌인 왕젠린(王健林)이 1999년부터 매년 중국의 부자 순위를 발표하는 후룬(胡 潤) 연구소 조사에서 중국 최고 부자로 뽑 혔다. 개인 자산이 전년보다 108%나 증가한 1350억위안을 보유하고 있는 왕 회장의 완다

중국인 6명 중 1명이 유동인구

그룹은 지난 1988년 설립돼 상업용 부동산

중국인 6명 중 1명은 자신의 호적(후커우•戶口)이

개발 사업을 중심으로 호텔과 영화관, 백화

있는 곳을 떠나 다른 지역에서 사는 ‘유동인구’인 것으로

점 등을 운영하고 있다.

나타났다. 국가위생계획생육위원회는 지난 10일 발표한 ‘중국 유동인구발전보고서 2013’에서 전국의 유동인구는 2억 3600 만명이라고 밝혔다. 전국 유동인구 중 취업자의 평균 수입은 3287위안이었다. 이들의 평균연령은 28세로 80년대생을 뜻하는

숫자

‘80허우(後)’가 전체 유동인구 중 노동가능인구(15∼59세)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4411

중국 1분당 5명 암으로 사망… “심각한 환경오염 때문” 중국에서 해마다 암 발병률이 높아져 환경오염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중국 종양등록센터가 최근 발간한 ‘2012년 중국 종양 연간 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 한해

지난 17일, 티베트의 해발 4411m 높은 곳에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지대의 민간

동안 암 사망자수가 270만 명에 이른다. 하루에 7300명, 1분당 5

공항인 다오청 야딩 공항이 개항했다. 이는 종전 최고이던 방다 공항(4334m)를

명의 사람들이 암으로 사망하고 있는 셈이다. 보고서는 중국의

밀어내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민간공항으로 기록됐다. 다오청 야딩

암 발병률은 해마다 3~5%가량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19~25

공항 개항으로 티베트의 라싸에서 쓰촨(四川)성 청두(成都)까지 기존 버스로

세 젊은 층에서 위암 발병률이 30년 전에 비해 두 배 가량

이틀이 걸리던 시간을 65분으로 단축할 수 있게 됐다. 23일 청두로 향하는

높아졌다고 밝혔다. 중국의 암 사망자는 10만 명당 180.54명이며,

비행기를 시작으로 여러 노선으로의 비행이 순차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는 전체 사망자의 13%에 달해 암이 중국 내 사망 원인 1위가 됐다. 이에 대해 중국 주간지 중국주간신문 등 현지 언론들은 점점 심각해지는 환경 오염이 암 발병률 증가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유행어

중국인 유학생 45만 명… 세계 최대 ‘유학생 수출국’ “세계 100여 개 국가와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중국 유학생의 연령은 갈수록 낮아지는 추세로 중국은 이미 세계 최대 유학생 수출국으로 부상하여 작년에 중국에서 해외로 유학을 떠난 학생이 40만 명에 달하였고 금년에는 45만 명을 넘을 전망이다.” 교육부 유학서비스센터 국제협력처의 처웨이민(車偉民) 처장의 말이다. 유학생이 빠르게 늘어나는 동시에 귀국하는 학생의 수도 급속하게 늘어나 작년에 귀국한 학생은 15만 명인데 금년 상반기에 귀국 학생의 수가 이미 15만 명을 넘었다. 24세에서 30세 사이의 학생이 가장 많아 전체의 80%를 차지하였고 그 중 석사가 가장 많으며 일년제 석사 졸업생이 대부분으로 여자가 남자보다 확연히 많았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후에는 주로 국유기업과 민영기업 그리고 외국기업에 취직하고 있다.

不约而同 不约而同은 “사전에 상의를 한 적은 없지만 서로의 견해나 행동이 약속이나 한 듯 일치한 것을 이르는 말”이나 요즘 젊은이들 가운데서는 “ 오랫동안 이성과의 교제가 없어 동성연애자가 됐다”로 풀이된 버전으로 사용되고 있다.

44


사진

중국 베이징의 한 호수공원의 거대한 오리 인형이 등장해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새로운 볼거리에 여기저기서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기념을 남겼다. 높이 18m에 너비도 15m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다. 이 오리는 지난 2007년부터 최근까지 10여 개국을 넘게 방문했다. 고무로 만들어진 이 오리 인형은 네덜란드 설치미술가가 3주에 걸쳐 완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 3일엔 호주 시드니 페스티벌을 위해 시드니 달링하버에 등장하기도 했다.

말말말

“上海拟立法禁止地铁车厢内进食, 一口韭 菜饺子最高罚款500元” “상하이 지하철에서 음식물섭취 금지법안 마 련, 부추만두 한입 떼면 최고로 500위안까지 벌 금 가능” 교통난과 높은 인구밀도로 지하철 이용객이 많은 상하이시는 지하철 내에서 음식물 및 음료수를 섭취하는 것을 금지하고, 아기가 용변을 보는 것도 금지하는 법안을 중국 최초로 제정할 것으로 보인다. 시 입법위원회의 한 위원은 쾌적한 지하철 환경을 위해 이 같은 법안 초안이 마련됐고, 초안이 통과된다면 지하철에서 음식을 먹은 사람이 관계자의 경고를 무시하고 해당 행위를 계속할 경우 50~500위안의 벌금 처벌을 받게 된다고 밝혔다. 45


46


47


48


49


50


51


52


53


54


55


56


57


58


Turn static files into dynamic content formats.

Create a flipbook
Issuu converts static files into: digital portfolios, online yearbooks, online catalogs, digital photo albums and more. Sign up and create your flip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