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육아 회보 v110 (2013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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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가 비폭력의 노선으로 나아가기로 한다면 많은 것을 탈중심화 해야 할 것이다. 중앙 집중은 적절한 무력 없이는 유지 방어 될 수 없다. 가져갈 것이 아무것도 없는 소박한 집은 단속할 필요가 없다. 부자들의 궁전에는 강도를 막기 위해 힘센 경비원들이 있어야 한다. 거대한 공장들도 마찬가지다. …가운데 줄임…

공장문명 위에 비폭력을 이룰 수는 없지만 자족적인 마을에서는 가능하다. 내가 생각한 농촌 경제는 착취를 전적으로 피한다. 그리고 착취는 폭력의 핵심이다.


2013년 가을 호 110호

우리 아이 함께 키우기, 더불어 사는 세상 만들기


차례

여는 글

기획

004 힐러리에게 암소를, 아이들에게 터전을 | 황윤옥

공동육아와 협동조합 제도화

010 ‘공동육아협동조합 제도화’ 어떻게 볼 것인가? | 이송지 026 협동조합기본법은 공동육아와 도시 공동체를 위한 약인가, 독인가? | 정성훈

032 협동조합 운동의 정체성과 방향 | 하승우

아이와 손잡고 세상 이야기

056 자유롭게 하기 | 서진숙 060 교사로 살아가는 길 | 이주영

표지의 ‘공동육아’ 글씨는 신영복 선생님이 1996년에 썼습니다. 표지 그림 지난해 10월 21일 제7회 공동육아 한마당, ‘함께 크는 아이들!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아이, 부모, 교사가 함께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독서 일기

063 자기 삶은 모든 사람의 삶에 이어져야 | 이혜숙

열린 창문

072 우리를 찾아온 개 | 신순화

보육 정책

076 ‘유보 통합’ 로드맵을 묻는다 | 이부미, 이송지

교육 나눔

082 아이들과 꽃이 함께 자란다 | 변영숙

날적이

102 이건 돌이에요, 여기 놓고 가세요 신촌 우리어린이집

지역공동체 학교 이야기

106 선생님! 오늘 맛있는 거 나왔다요! | 성태숙

마을 공동체 이야기

115 와글와글 우리 마을 사랑방 | 김희정

함께 가는 길

132 내 삶으로 받아들인 태훈이 | 오희정

새 회원 조합 소개

146 너른마당어린이집 외

함께 읽는 책

150 친정아버지의 붉은 말 | 김미자

그림책 이야기

156 나, 화가가 되고 싶어 외 | 김미자

사진으로 보는 교사 대회 143 | 터전 주소록 158

2013년 가을 호, 110호 | 펴낸날 2013년 10월 15일 | 펴낸곳 (사)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 펴낸이 박혜란 편집위원 이송지, 윤우경, 정영화, 조현제 | 편집 이송희 | 디자인 봄밤에별은 | 인쇄 금호씨앤디피 | 주소 서울시 마포구 동교로 114 201호(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481-2 태복빌딩 201호) | 전화 02-323-0520 | 전송 02-323-1695 전자우편 gongdong @ gongdong .or.kr | 누리집 gongdong .or.kr | 독자 커뮤니티 journal .gongdong .or.kr


004

부와 가난에 대한 유쾌한 셈법 하나. 1995년, 당시 미국 대통령 부인이던 힐러리 클린턴은 방글라데시의 농촌

마을 마이샤하티를 방문했다. 힐러리는 방글라데시 그라민은행의 소액 대출 사업이 가난한 농촌 여성들에게 힘이 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흐뭇해했다. 마을 여성들은 힐러리에게 우리는 스스로 벌고 있으며, 이제는 소나 양 같은 자산 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힐러리에게 물었다. “힐러리, 암소를 가지고 있나요?” “아니요.” “그럼 소득이 있나요?” “예전에는 있었지만 남편이 대통령이 되고부터는 없어요.” “애들은 몇인가요?” “딸 하나예요.” 그러자 마을 여성들이 술렁거렸다. “불쌍한 힐러리, 소도 못 가지고, 소득도 없고, 딸도 하나밖에 없다네.” 마이샤하티 여성들은 미국 대통령의 부인 힐러리 클린턴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았고, 그날 모임은 불쌍한 힐러리에게 암소 한 마리를 선물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여는 글

힐러리에게 암소를, 아이들에게 터전을 황윤옥 물길. (사)공동체와공동체교육 이사와 하자센터 부센터장을 맡고 있다.


여는 글

이샤하티 여성들은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로 부와 가난을 나누는 서양의 셈법 에 수긍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셈법을 당당히 보여 주었다. 자기 삶을 긍정하 며 스스로 살아가는 모습이다. “스스로 자신에게 필요한 만큼 벌 수 있느냐” 고 물을 때 마이샤하티 여성들은 필요한 만큼 스스로 벌고 있기 때문에 부자

힐러리에게 암소를, 아이들에게 터전을

나 갖고 있는지 몰랐겠는가. 또 세상에서 말하는 가난을 모르겠는가. 다만 마

005

마이샤하티 여성들이 세계 최고 강대국의 대통령 부인이 부와 권력을 얼마

다. 그러나 힐러리는 도대체 얼마를 가져야 하는지조차 모르고 가져야 할 것 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오히려 가난하다. 힐러리의 셈법과 마이샤하티 여성들의 셈법이 왜 다를까. 그 여인들은 어떻 게 힐러리에게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들의 눈으로 힐러리를 바라볼 수 있었을까. 공간과 관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방글라데시의 가난한 농촌 마을 에는 암소와 양, 닭을 함께 키우며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돕지 않으면 모두 살기 힘들어지기 때문에 우정과 협력이 중요하다. 그러나 미국의 백악관은 자 원과 힘을 많이 가진 자가 이기는 공간이다. 경쟁과 비교로 자신이 가진 것이 확인되는 공간이다. 그곳에서는 돕는다는 것은 곧 게임에 진다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보다 이익이 앞선다. 사실 마이샤하티 마을 여성들의 셈법은 공동육아

서로 돕고 사는 관계, 필요한 만큼 가지는 지혜와 생활을 일구는 자급 능력이 필요하다. 관계와 돌봄의 공유 지대에서 성장하는 아이들만이 그러한 셈법을 몸에 익힐 수 있을 것이다. 공동육아 통권 110호


006

를 하는 우리에게는 낯설지 않다. 공동육아는 어린이집 공간을 “터전”이라고 한다. 공동육아 터전은 돈을 주고 ‘사는 것’이 아니라, 부모와 교사, 아이들까 지 모두 모여 ‘사는 곳’으로 꾸려 가면서 만들어진다. 함께 발품을 팔고 생각을 맞추며 터전을 구하는 과정은 서로 관계를 맺는 과정이기도 하다. 집은 꼭 남 향이어야 하는 사람, 물이 잘 나와야 하는 사람, 둘레에 위험한 곳이 없어야 하는 사람

. 공간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생각을 맞추어 가면서 공동육아

의 부모와 교사, 아이들은 ‘식구’가 된다. 돌이켜보면 우리 식구도 공동육아의 터전에서 알뜰히 수혜를 누린 것 같 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자라 올해 성년을 맞은 딸은 공동육아 터전에서 늘 풍족했다. 위아래 고무줄을 넣어 쏘시지 바지라고 하는 바지를 입고 온 마 을을 누비며 크는 아이에게는 친구와 선생님과 이웃 어른들이 늘 넘쳐 났다. 그때 맺은 인연은 지금도 긴밀하다. 가진 게 많았고, 지금도 가진 게 참 많을 수 있는 것은 공동육아의 터전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아마 공동육아 식구들도 힐러리를 만난들 부럽지 않을 것이다. 공동육아는 1991년에 《우리 아이들의 육아 현실과 미래》를 펴내면서 육아 의 사회적 책임을 말했다. 그런데 2013년 지금 우리 아이들을 둘러싼 육아 현 실은 오히려 더 난감하다. 흔히 백 세 시대라고들 한다. 우리 아이들은 백이십


여는 글

세를 거뜬히 살아 낼 것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누구도 어떻게 살 것

007

인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미래를 꿈꾸지 않는다. 대학을 가

힐러리에게 암소를, 아이들에게 터전을

면 어른 대접을 받던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 아이들은 대학을 가기도 힘들지 만 대학을 가도 별 볼 일 없다는 것을 이미 간파하고 있다. ‘어차피 뭘 해도 망 하니까 하고 싶은 걸 해 버리려 해도’ 벌써 ‘내가 잉여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 아 버린다. 이제 힐러리 세상의 셈법은 끝자락을 보이고 있다. 다른 셈법이 필요하다. 마이샤하티 마을 여성들의 암소와 공동육아의 터전이 이미 답을 주었다. 바 로 서로 돕고 사는 관계, 더 많이 가지기 위해 뛰어다니기보다 필요한 만큼 가 지는 지혜와 스스로 생활을 일구는 자급 능력 같은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셈법의 특징은 혼자서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관계와 돌봄의 공유 지대에서 성장하는 아이들만이 그러한 셈법을 몸에 익힐 수 있을 것이다. 마침 공동육 아의 터전이 바로 그런 곳이다. 공동육아의 터전은 함께 모여 어른들을 보고, 친구들과 놀고, 뒹굴고, 관계와 돌봄을 익히는 곳이다. 그런 공동육아의 터전 에서 서로 협력하는 법을 알면서 자라는 아이들이 미래를 살아 낼 것이다. 우 리가 공동육아 터전에서 익히고 있는 것들을 우리 사회에도 널리 퍼뜨리자. 힐러리에게 암소를, 아이들에게 터전을 선물하자.

공동육아 통권 110호


기획

008

공동육아와 협동조합 제도화


공동육아와

009

내부에서는 협동조합 제도화를 둘러싸고 논의가 한창입니다. 지금 우리의 논의는 제도화 여부를 판단하기보다는

협동조합 제도화

2012년 12월에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되고 난 뒤 공동육아협동조합

‘제도화된 국면을 적극 활용해서 공동육아 운동의 영역을 이 사회 안에서 넓혀 나갈 수 있는 방향은 무엇인가’ 로 진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역사회의 필요에 답하는 협동조합, ‘사회적 육아의 실현’이라는 사회적 목적을 지향하는 협동조합, 지역사회의 구성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열려 있는 조합. ‘공동육아 사회적협동조합’의 전환으로 달라질 수 있는 조합의 모습입니다. 협동조합 논의가 상황에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또 한 번 공동육아의 앞날을 꿈꾸는 자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공동육아 통권 110호


기획

010

공동육아와 협동조합 제도화

‘공동육아협동조합 제도화’ 어떻게 볼 것인가?

2012년 12월에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되고 난 뒤 공동육아

협동조합 내부에서는 협동조합 제도화를 둘러싸고 논의가 한창이다. 협동조합기본법은 알다시피 협동조합 설립을 더욱 자유롭 게 하고자 제정되었다. 5인 이상이면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도록 법이 제정되어 2013년 8월 말 현재 2,388곳의 설립 신고(인가)가 수리되었다. 실제 사업 진행 여부는 생각하지 않 더라도 설립 속도는 놀랄 만하다. 일자리를 찾지 못하거나 새 로운 삶의 방식을 고민하던 청년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협동조합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역마다 관 주도로 또는 민 관 협력으로 협동조합 설립 상담 센터를 만들고 있으며, 협동 이송지 송이. (사)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 사무총장으로 일한다.

이 글은 글쓴이 개인의 생각으로 법인의 공식 견해가 아님을 밝혀 둔다. 법인의 공식 견해는 현장과 함께 논의하면서 정리해 나갈 것이다. 협동조합기본법 시행으로 달라지고 논의되어야 할 자세한 내용들은 (사)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2013년, 협동조합기본법 대응을 위한 TFT 자료 ‘공동육아협동조합과 협동조합기본법’을 참고하기 바란다.


공동육아와

011 협동조합 제도화

지금 우리의 논의는 제도화 여부를 판단하기 보다는 ‘제도화된 국면을 적극 활용해서 공동육아 운동의 영역을 이 사회 안에서 넓혀 나갈 수 있는 방향은 무엇인가’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조합 기초・심화 교육을 잇달아 개설해 진행하고 있다. 기본법이 발효된 지 겨 우 9개월 동안 이렇게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공동육아협동조합에 대한 관심도 높다. 공동육아협동조합은 협동조합의 주 사업인 어린이집 설립을 위해서는 준비할 것들이 많아 설립 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공동육아협동조합의 특성상 아직 기본법에 따라 공동 육아협동조합을 설립한 사례는 없지만 곳곳에서 협동조합을 설립하려는 모 임을 만들고 있다. 공동육아협동조합을 설립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설립 과 운영에 관한 관련법이 있고, 지원을 하려는 지자체들이 있는 지금의 상황

협동조합의 법인화로 일부 지자체에서는 국공립어린이집 위탁도 검토하고 있다. 이 점은 아주 눈여겨볼 만하다. 국가의 복지 전달 체계. 국가가 주도하 는 복지시설(어린이집)을 협동조합에 위탁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어린이집 운 영 방식뿐만 아니라 길게는 운영 철학에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문제기 때 문이다.

‘공동육아협동조합 제도화’ 어떻게 볼 것인가?

이 기회일 수 있다.

공동육아 통권 110호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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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동육아협동조합은 무엇을 고민해야 하나? 공동육아협동조합은 기본법이 제정되기 이전 관련법이 없는 상태에서도 ‘사 회적 육아’의 중요성을 인식했던 부모와 교사들이 스스로 설립, 운영해 오던 협동조합이다. 협동조합기본법에 따르면 앞으로 협동조합을 설립하려면 이 법에 따라 신고(인가)를 하게 되어 있다. 2014년 12월부터 이 법에 따른 협동 조합이 아니면 협동조합과 비슷한 이름도 쓰지 못하게 되어 있다. 그 대신 협 동조합과 같은 사업을 해 왔다는 것이 확인되면 신규 설립이 아닌 같은 사업을 하는 조직의 전환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미 설립되어 있는 공동육아협동조합들이 고민해야 할 문제는 무엇인가? 법이 만들어졌으니 법에 따르지 않는 것들은 불법이 된다? 공동육아협동 조합들이 기본법에 근거해 조합 설립 신고를 하지 않으면 조합으로서 정당한 활동을 할 수 없다? 그래서 공동육아협동조합들은 기본법에 따라 조직을 전 환하고 신고를 해야 한다? 그러나 공동육아협동조합의 제도화 논의는 적어 도 ‘기본법이 생겼으니까 법적으로 신고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논의해야 한다’ 는 소극적 대응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 협동조합기본법은 제정 논의가 시작된 지 1년 남짓 만에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로 제정되었다. 때문에 정부가 주도해서 법이 제정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 나 민간 협동조합 진영에서 끊임없이 협동조합기본법의 필요성을 제안해 왔 으며 법 제정 논의가 시작되고부터는 ‘협동조합기본법 제정을 위한 연대 회의’ 를 만들어 법 제정 운동을 해 왔다. 때문에 운동이 법제화를 온전히 주도했다 고는 볼 수 없지만 관이 주도하여 법제화가 이루어졌다고도 보기는 어렵다. 이 점은 아주 중요하다. 기본법 제정은 협동조합 진영의 내적 요구가 있었기 때문


공동육아와

에 제도 공간을 활용하고 적극적으로 조율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기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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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제정할 때 민간 협동조합 진영에서 요구한 것들이 충분히 수렴되지는 않았

협동조합 제도화

다. 이 부분은 이후 기본법 전면 개정 논의를 통해 반영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 야 한다. ‘협동조합기본법 대응을 위한 공동육아 순회 워크숍’에서 오고 간 논의들 을 보면 ‘협동조합이 제도화되면 우리에게 실제 이익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많다. 재정 지원이 없어 실제 도움은 되지 않고, 제도화가 되어서 갖추어야 할 규정만 많아진다면 협동조합으로 인가받을 필요가 있겠는가 하 는 것이다. 또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지금도 협동조합을 꾸려 나가려면 힘이 많 이 드는데, 협동조합 제도화로 일은 더 많아지고 실제 이득이 없다면 의미를 찾기 힘들다는 생각도 많다. 공감이 가는 말이다. 공동육아협동조합이 운영하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2004년 영유아보육 법 개정 당시 부모 협동 어린이집으로 제도화되었다. 이후 보육료 지원 같은 갖가지 지원을 받아들이면서 그에 따르는 규제들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이런 상황은 협동조합 제도화도 실제 이익-지원의 측면에서 바라보게 만든다. 그러나 협동조합은 자치, 자조, 자립의 철학이 중요한 자율 조직이다. 육아 를 위한 공적 기관이라는 의미가 강한 어린이집과는 다른 측면에서 바라보아 야 한다. 재정 자립은 협동조합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받기 위한 협동조합

에 재정 지원을 하도록 하는 게 아니라 협동조합의 자유로운 설립과 운영을 보 장하고 활성화되도록 관을 움직여야 한다. 협동조합 관련 법률 정비, 홍보, 교 육 지원, 인력의 양성, 협동조합 생태계 조성 같은 제도적 인프라를 구축하게 만들어야 한다.

‘공동육아협동조합 제도화’ 어떻게 볼 것인가?

운영의 기본이다. 협동조합에 실제 이익이 되도록 하려면 어린이집처럼 현장

공동육아 통권 110호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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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협동조합 제도화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협동조합 제도화가 정말 ‘우리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고 판단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부정적인 면이 많아서 우리가 제도권 밖의 협동조합으로 남아 있을 이유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협동조합기본법은 ‘규 제법’이 아니라 협동조합을 활성화시키려는 목적이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때 문에 지금 우리의 논의는 실익이 될 것과 아닌 것을 꼼꼼히 따져서 제도화 여 부를 판단하기보다는 ‘제도화된 국면을 적극 활용해서 공동육아 운동의 영 역을 이 사회 안에서 넓혀 나갈 수 있는 방향은 무엇인가’로 진행되어야 할 것 이다. 설립과 전환에 따르는 절차나 기본법이 제시하는 법적 기준에 따라 정관 따 위를 수정하고 공동육아협동조합 운영 체계들을 재정비하는 것은 어려운 문 제가 아니다. 품은 조금 더 들겠지만 공동육아협동조합들은 이미 20년 남짓 스스로 조합을 설립하고 운영한 경험이 있다. 그 경험으로 앞으로 다가올 변 화에 대응하면 된다. 단, 개별 조합이 혼자 이 문제를 푸는 것은 쉽지 않다. 공 동육아는 다행히 (사)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이하 법인)이라는 ‘공동육아협 동조합들의 연대체’가 존재한다. 법인과 함께 내용을 준비하고 대처해 나가면 된다. 공동육아협동조합의 운영 방향이나 내용은 국제협동조합연맹이 제시 하는 협동조합 기본 원칙이나 가치에 비추어 보더라도 부족함이 없다. 오히려 ‘사회적 육아’와 ‘공동체’의 지향을 가지고 부모, 교사 들이 자발적으로 결성 하고 운영해 온 공동육아협동조합의 다양한 사례들은 한국 협동조합 운동의 발전에 큰 밑거름이 되었다고 자부할 수 있다. 협동조합 제도화를 앞두고 공동육아 운동이 협동조합 운동으로서 이룬 성 과를 적극 해석하여 사회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공동육


공동육아와

아 어린이집이 ‘부모 협동 어린이집’으로 제도화된 이후 ‘부모 참여와 협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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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의 큰 화두가 될 수 있었다(공동육아협동조합이 이룬 성과에 대해서는 ‘서울연구

협동조합 제도화

원, 2013년, ‘공동육아협동조합의 성과와 영향’, <서울시 공동육아협동조합 활성화를 위한 민관 협력 방안>을 참고하기 바란다).

‘제도화’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공동육아협동조합을 알고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제도화의 강점은 관과 민이 협력해서 대중이 함께하는 판 을 벌일 수 있다는 것이다. ‘협동조합 생태계 조성’ ‘협동조합 간 내부 거래 활 성화’ 같은 협동조합들의 연대도 더욱 활발해져서 공동육아협동조합이 가지 고 있는 여러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 현재 공동육아협동조합 설립이 늘어나지 않고 정체되어 있는 원인을 “부동산 가격 상승과 어린이집 인가 과정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법적 제약, 관의 공동육아협동조합 공공성 저평가, 관의 공동육아협동조합에 대한 이 해 부족, 민간 차원에서 공동육아협동조합을 설립하려는 능동적 주체의 부 족, 공동육아협동조합 어린이집 장점들이 다른 어린이집으로 확산되면서 예 전보다 차별성이 약화된 것(서울연구원, 2013년, <서울시 공동육아협동조합 활성화를 위한 민관 협력 방안>)”으로 본다면 제도 영역을 적극 활용할 수 있는 현재의 상황

은 공동육아협동조합 설립을 확산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이 상황을 적 극 활용하여 공동육아협동조합 설립이 정체되는 원인들을 일부나마 극복하 고 ‘공동육아 제도화’의 다양한 경로를 찾는 것이 협동조합 제도화에 주체적

공동육아를 실천하고 있는 부모와 교사 활동가들에게 공동육아의 제도화는 기 존 제도의 전면적 변혁이거나 대안적 제도의 발굴이다. 공동육아의 자율성이 보 장되는 그대로 제도 영역의 공간을 확보하는 길이다. (가운데 줄임) 또한 대안 모델 이 당신들의 천국이 되면 사회적 육아의 모델이 될 수 없다. 제도화를 전략적으

‘공동육아협동조합 제도화’ 어떻게 볼 것인가?

으로 대응하는 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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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활용한다는 것은 제도화의 다양한 경로를 발굴한다는 것을 포함한다. 그런 의미에서 제도 영역을 적극 활용한 공동육아 모델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황윤옥, 2008년, ‘공동육아협동조합 어린이집의 제도화’, (사)공동체와공동체교육 회보 <공동육아> 103호)

제도 영역을 활용한 공동육아 모델의 적극적 발굴! 제도화에 따르는 안정에 빠지지 말고 이 상황을 공동육아협동조합들이 안 고 있는 운영, 공동체, 관계 들에서 오는 문제를 극복하고 공동육아를 사회적 으로 확장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랬을 때만이 공동육아가 ‘그들만 의 천국’이 되지 않고 ‘누구나 누리는 즐거운 공동육아’라는 공동육아의 목적 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육아의 모델과 내용을 만드는 데 공동육아 는 주된 구실을 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단, 이 모든 것은 협동조합으로 법인격을 획득한다고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 는다. 실익이 될 것과 아닌 것을 따지는 것이 허망할 수도 있는 것은 이 모두가 ‘협동조합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달린 것이기 때문이다. 사라져 간 많은 협동조합과 관제라고 비판받는 협동조합의 사례들이 좋은 본보기가 된 다. 제도의 영역을 활용한 공동육아의 모델이 어떤 모습이 될지는 공동육아 조합원들 모두의 과제다. 이를 위해서 공동육아는 사람을 길러 내는 일, 조합 원・교사 교육을 비롯해 공동육아협동조합의 경험과 전문성을 가진 활동가 를 길러 내는 데 더욱 힘써야 할 것이다.

3. 공동육아 운동의 자율성이 살아 있는 협동조합 제도화는 어떤 것인가? 공동육아 운동은 육아를 개별적 부모, 특히 어머니 개인만의 문제로 보는 고정 관념을 극복하고 육아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확산시켜 지역사회와 국가가 구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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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으로 그 책임을 나누어지도록 하는 사회운동이다. (가운데 줄임) 매일의 삶의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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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에서 공동육아의 터전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모든 자구적, 자생적 노력 들은

협동조합 제도화

공동육아 운동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들은 육아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일깨우고 지역사회와 국가의 참여를 유도하여 하나의 사회제도 로서 공동육아를 정착시키는 일과 모든 차원에서 결합되어야 한다. (가운데 줄임) 공동육아 운동은 유아기 때부터 공동체적 삶의 방식을 익힐 수 있는 아이들의 사회화의 터전을 사회 곳곳에서 만들어 나가며 아이들을 통해 결합되고 육아를 통해 정치화된 어른들이 매일의 삶의 현장에서 사회 문화 변화를 가져올 수 있도 록 제도적 틀을 함께 짜는 작업이어야 한다. 이 새로운 제도를 어떤 것으로 만드는가, 또 어떤 목표를 가지고 활용하는가 는 우리 기성세대들의 지금 내려야 할 선택과 결단에 달려 있다. (정병호, 1994년, ‘공동육아 운동론’《함께 크는 우리 아이》 , 또하나의문화) ,

정병호의 글에서 볼 수 있듯이 공동육아는 ‘사회적 육아를 사회제도로 정 착시키고자 했던’ 사회운동으로 출발했다. 육아는 사회 전체의 일이다. 개별 적 실험으로 끝나서는 안 될 일이다. 공동육아가 실험으로 끝나지 않고 보편 적인 사회제도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공동육아를 원하는 사람들이면 누구 나 참여할 수 있는 보편적인 틀이 필요했다. 그것이 ‘협동조합’이다. 1994년 신촌 지역에 공동육아협동조합이 처음으로 만들어진 뒤로 2013

속이 아닌 곳까지 합하면 100곳 남짓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공동육아협동조합이 설립

되었다. 많지는 않지만 대다수 조합들이 해산하지 않고 10∼20년 운영하고

있고, 꾸준히 설립되고 있는 것은 공동육아협동조합이 ‘사회적 육아의 모델’ 로서 의미가 있다는 뜻이다. 협동조합기본법의 제정은 법적, 제도적으로 안정되게 협동조합을 운영할

‘공동육아협동조합 제도화’ 어떻게 볼 것인가?

년 현재 70곳 남짓(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소속 협동조합을 기준으로 보면 70곳 남짓.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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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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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부모 협동 어린이집으로 제도 화되면서 일정 정도 안정화를 가져 왔듯이 말이다. 그러나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현재 평가 인증, 누리과정, 서울형, 공공형 따 위 지원과 연결된 제도권의 어린이집으로 갖추어야 할 것이 너무 많아졌다. 공 동육아 교육철학을 어떻게 계속 확장하고 발전시킬 수 있을까 하는 학습과 논 의보다, 어떻게 하면 이 기준을 맞출 수 있을까에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제도화가 되면서 예상되었던 일이기도 하다. 이 고민은 공동육아가 정부의 재정 지원을 포기하지 않는 한 계속될 것이다. 협동조합도 법적 혜택 외에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압박이 올 수도 있다. 그 나마 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의 자율 조직이므로 공적 기관인 어린이집보다는 덜하겠지만 말이다. 법이 요구하는 것들을 맞추다 보면 조합 본래의 정체성은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실종되고 만다. 규정을 맞추기에 급급하기보다 조합 이 상황을 주도해 가야 한다. 내용을 우리가 만들고 법이 거기에 맞추어 변하 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공동육아는 ‘어떻게 하면 원래의 목적과 운동 성을 잃지 않고 공동육아 운동을 지속시켜 나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협동조합의 제도화는 공동육아 운영의 틀인 협동조합의 제도화이지 ‘공동 육아 - 사회적 육아의 제도화’는 아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사회적 육아’가 제도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공보육의 비율은 아직도 5% 정도이며, 사회적 육아를 실현하려고 하는 하나의 모델인 부모 협동 어린이집의 비율은 전체 어 린이집의 0.1% 안팎이다. 아직도 대다수 부모들에게 아이 키우는 문제는 가 장 큰 어려움이다. 지금 많은 협동조합들이 협동조합이 가지는 ‘결사체’라는 성격보다 더욱 쉽 게 기업을 만들고 쉽게 잉여를 남길 수 있는 방법으로 ‘선택되어’ 설립되고 있 다. 공동육아협동조합도 ‘사회적 육아’라는 목적보다 어린이집이 가지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는 하나의 방안으로, 설립 인가를 쉽게 따 내는 방안


공동육아와

으로 설립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법 규정을 어떻게 맞추어 특혜를 볼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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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까 하는 고민이 협동조합이 가지는 연대와 호혜의 철학을 어떻게 실현할 것

협동조합 제도화

인가 하는 고민보다 앞서고 있는 모습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와 협동조합과 어린이집이 모두 제도화되는 상황에서 공동육아의 운동성을 지켜 나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의미에서 황윤옥의 다음 글은 뜻 깊다.

공동육아 운동 제도화는 공동육아 운동이 그동안 실천 과정에서 쌓아 온 경계 를 전환하고 새로운 운동성을 발굴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운동의 자율성이 살 아 있는 제도화란 결국 새로운 운동성으로의 전환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그 러나 새로운 운동성은 공동육아 운동 밖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이라 공동육아 운동 성과의 재구성이 될 것이다. 운동의 제도화가 정체성의 약화나 급진성의 상 실, 자율성의 후퇴로 나타나지 않고 제도적 공간을 활용하여 운동의 새로운 영 역과 진보성을 획득하는 길은 무엇인가? 공동육아 운동이 지향하는 대안성에 대한 우려 때문에 제도화 자체를 거부하거나 방어적이기보다는 제도화를 전략 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가운데 줄임) 공동육아 운동에는 분명 제도화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 이 영역은 공동육아 운동이 제도화를 전략적으로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좀 더 선명해질 것이다. (황윤옥, 2008년, ‘공동육아협동조합 어린이집의 제도화’, <공동육아> 103호)

공동육아 운동은 점진적이고 장기적이다. 공동육아 운동을 시작한 지 30년 남짓 지나는 동안 사회가 달라지고 참여하는 사람들의 특성도 달라지고 있다. 시기마다 공동육아의 성과와 한계도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시기마다 공 동육아가 실천하는 방식과 공동육아가 ‘가지고 갈 것’이 달라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공동육아 운동 제도화는 새로운 운동성을 발굴할 것을 요구하고 있

‘공동육아협동조합 제도화’ 어떻게 볼 것인가?

‘사회적 육아의 실현’이라는 공동육아의 목적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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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는 황윤옥의 말은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된다. 결국은 제도화된 상황을 적극 활용하다 보면 우리가 잡고 가야 할 것과 아 닌 것을 구분할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이 바로 새로운 운동성을 발굴하는 일이 될 것이다. 예를 들면, ‘참여와 협동의 문화’는 공동육아가 초기부터 집중해 온 운동성 이다. 이 운동성은 초기에는 구성원들의 자발성으로 이루어졌지만 이제는 많 은 조합에서 ‘강제를 동반하는 자발성’이 되고 있다. ‘규정에 의한 문화’가 되 기도 하고, 어린이집 운영 기준에 위반된다(참여의 대표적 방식인 아마 활동을 법에 위배된다고 지적하는 예)고 민원이 들어가는 내용이 되기도 한다. 공동육아 설립

초기에는 ‘참여와 협동의 문화를 들여 오고 문화로 정착시키는 것’이 운동성 이었다면, 지금 시기에는 ‘어떻게 다시 참여와 협동을 자발적인 문화로 끌어 낼 수 있을까, 법에 의해 좁아질 가능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운동성이 될 수 있다.

4. 공동육아협동조합은 어떻게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환해야 하나? 사회적협동조합은 참 낯선 이름이다. 공동육아협동조합이 사회적협동조합 을 고민하게 된 이유는 협동조합기본법이 조합을 협동조합과 사회적협동조합 으로 분리하고 신고(인가) 절차를 다르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을 두 가지 종류로 구분하고 설립을 선택하게 만드는 협동조합기본법의 문제는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겠다. 여기에서는 ‘사회적협동조합이 무엇이고 공동육아 협동조합은 어떤 점들 때문에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환을 하는 것이 적절한 선택인지’만 다루도록 하겠다.


공동육아와

2012년 여름 호에 쓴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협동조합 - 사회적협동조합’의 일

부다.

협동조합 제도화

역사적인 배경을 보자. 다음 글은 성공회대학교의 김신양 교수가 <생협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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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협동조합이란 무엇인가? 간략하게 사회적협동조합이 나타나게 된

이탈리아에서 사회연대협동조합에 기원을 두고 1991년 법제화된 사회적협동조 합은 1970년대 초의 경제 위기에서 시작된 사회교육과 직업 편입 욕구에 부응하 지 못하는 복지국가의 위기라는 상황에서 탄생되었다. 공공 부문이 이러한 서비 스를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자 민간의 시도가 발전하기 시작하였고, 처음에는 비 영리 민간단체 형태로 운영되었으나 점차 협동조합 형태로 전환하면서 경제 활동 이 주축이 되었다. 1970년대 들어 사회적협동조합은 스스로를 “복지국가가 책 임지지 못하는 공익(collective interest) 서비스를 생산하기 위하여 자율적으로 조직된 사람들의 집단”으로 규정하며 협동조합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해 갔다. 이탈리아 사회적협동조합의 성공은 이웃 나라에도 많은 영향을 미쳐 새로운 협동조합이 만들어지는 계기를 제공했다. 그리하여 사회적협동조합은 다양한 사회적 기업의 한 유형인 이탈리아의 사회적협동조합의 명칭이지만 ‘공익 목적 을 가지는 복합 이해 당사자 구조’의 협동조합을 아울러 사회적협동조합의 유형 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한국의 경우에도 협동조합의 폐쇄성을 극복하고 사회적 지향성을 분명히 하기 위한 새로운 협동조합 운동의 관점에서 사회적협동조합

사회의 필요에 대응하기 위하여 구성원 중심의 운영과 구성원에게만 혜택을 제 공하는 기존 협동조합 방식의 한계를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사 회적협동조합 또한 사회적 경제의 전통에서 발전되어 온 결사체의 한 형태이다. 그러기에 협동조합 일반의 특성을 담고 있으면서도 더욱 사회적인 성격을 강화함 으로써 폐쇄적인 공동체를 지양하고 보다 개방적인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다.

‘공동육아협동조합 제도화’ 어떻게 볼 것인가?

을 접근하고 있다. (가운데 줄임) 사회적협동조합이라는 형태의 등장은 변화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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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 부문이 서비스를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자 민간의 시도가 발전하기 시 작하였고, 그것이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정체성을 확립해 간 이탈리아 사회적 협동조합의 역사는 공동육아협동조합의 출발과 다르지 않다. 공동육아협동 조합 또한 1990년대 ‘육아의 공공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지 않을 때 ‘육 아’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민간에서 노력하여 시작했다. 또한 “한국의 경우에도 협동조합의 폐쇄성을 극복하고 사회적 지향성을 분명히 하기 위한 새로운 협동조합 운동의 관점에서 사회적협동조합을 접근 하고 있다”는 김신양 교수의 글은 공동육아협동조합 초기의 문제 의식과 닿 아 있다.

공동육아가 좁은 의미의 ‘우리끼리 우리들의 아이만 돌보는 움직임이 될 때에는 계층적으로 분할된 소집단 운동이 되고 말 위험이 있다. (가운데 줄임) 먼저 필요한 것은 거시적 사회운동으로서의 자기 인식과 공공성의 확보이다. (가운데 줄임) 처 음부터 지금 아이들뿐만 아니라 다음 아이들을 위한 경험을 축적하는 노력과 함 께 주변의 아이들에게 문호를 개방하고, 다른 지역, 다른 계층의 자구적 노력과 연대하여 서로 지원하는 일이 필요하다. (정병호, 1994년, ‘공동육아 운동론’《함께 크는 우리 아이》 , 또하나의문화) ,

공동육아협동조합이 오랫동안 고민했던 것이 ‘우리들만의 리그’ ‘그들만의 섬’이라는 사회의 시선이었다. 출자금, 보육 비용 들로 공동육아의 문턱이 높 아지면서 중산층 운동으로 오해받기도 했다. 공동육아의 경제적 문턱이 높아 져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여러 방안을 찾아보았으나 현실적인 방안이 없는 상태 에서는 이런 시선을 받아 낼 마땅한 근거도 없었다.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공 동육아’는 공동육아의 원죄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지역에 따라 공동육아협동 조합에서 출발하여 마을 공동체로 발전해 간 사례가 많아지면서 사회적 육아


공동육아와

는 지역을 기반으로 한 운동이 될 수밖에 없다는 문제 의식, 그래서 조합에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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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우리 아이들만 잘 키우면 된다’는 조합원 중심의 운영과, 조합원에게만 혜

협동조합 제도화

택이 가는 협동조합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문제 의식은 많은 조합원들이 공감 하고 있다.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다.

사회적협동조합이 다양한 이해 당사자(multi-stakeholder) 구조로 만들어지고 운영되는 특성을 가진 것은 사회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노동자나 소비자(이 용자)뿐 아니라 공급자, 자원 활동가, 지자체 등 지역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집

단을 조직하고 그들과의 일상적인 운영 구조를 가지기 위함이다. 그런데 지금의 기본법은 이러한 특성을 간과한 채 “지역 주민들의 권익・복리 증진과 관련된 사 업을 수행하거나, 취약 계층에게 사회 서비스 또는 일자리를 제공하는” 비영리 기업을 사회적협동조합으로 규정함으로써 사회적기업육성법에 따른 사회적 기 업의 정의와 차별성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사회적협동조합의 정체 성이 모호하고 추상적인 차원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김신양,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협동조합-사회적협동조합’《생협평론》 , 2012년 여름 호)

“지역 주민들의 권익・복리 증진과 관련된 사업을 수행하거나, 취약 계층에 게 사회 서비스 또는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기본법의 정의는 사회적협동조합 으로 전환하는 것을 주저하게 만든다. 사회적 기업처럼 “공익 사업 40% 이상”

이 하고 있는 ‘사회적 육아’를 계량화해서 보여 줄 수는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할 까? 협동조합기본법에 규정되어 있는 사회적협동조합의 규정에만 빠지지 말고 사회적협동조합의 정체성, 한국적 모델을 만들어 나가면 어떨까? 지금까지 공 동육아가 해 온 역할은 알려지고 있는 외국의 사회적협동조합 사례에 가깝다.

‘공동육아협동조합 제도화’ 어떻게 볼 것인가?

이라고 수치로 표현하게 한다면 더욱 쉽지 않은 일이 된다. 공동육아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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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환하게 되면 공동육아협동조합의 역할과 지향을 좀 더 분명하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앞으로 생겨 날 가능성이 큰 사회적협 동조합에 대한 지원을 잘 활용하면 공동육아의 문턱을 낮출 수 있는 방안이 나올 수도 있다. 지역사회의 필요에 답하는 협동조합, ‘사회적 육아의 실현’이 라는 사회적 목적을 지향하는 협동조합, 지역사회의 구성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열려 있는 조합. ‘공동육아 사회적협동조합’의 전환으로 달라질 수 있는 조합의 모습이다.

5. 공동육아협동조합, 조합의 운명은 조합원들의 손에 달려 있다. 지금까지 “1. 협동조합 제도화, 적극 활용하자. 활용해서 공동육아 운동이 확 장될 수 있도록 ‘사회적 육아의 모델, 공동육아의 모델’을 적극 발굴해 나가자. 2. 공동육아의 자율성이 살아 있는 제도화가 되도록 공동육아의 새로운 운

동성을 발굴하자. 3. 공동육아, 사회적협동조합으로의 전망을 갖고 사회적협 동조합의 새로운 내용을 만들어 나가자”는 방향으로 공동육아협동조합의 대 응 방향을 적어 보았다. 협동조합기본법은 제정되고 수많은 협동조합이 이 시간에도 만들어지고 있다. 이 순간에도 법과는 상관없이 조합의 회의는 열리고 있고, 아이들은 생 활하고 있다. 공동육아협동조합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조합 하나 운영하는 데도 힘이 많이 들어 생각할 여력이 없다, 법인에서 방향을 제 시해 주었으면 한다, 조합이 선택하라고 하면 어떻게 하느냐, 판단할 근거를 법인이 달라, 다른 조합이 하는 것을 보고 따라 하겠다, 상근자도 없이 조합원 들이 참여하여 조합을 운영하고 있는데 할 일이 너무 많아지는 건 아니냐, 조


공동육아와

합을 통합해서 운영하는 건 어떨까? 그러면 일이 더 많아지는 건 아니냐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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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반응들이 있다.

협동조합 제도화

그러나 조합의 운명은 조합원에게 달려 있음을 변함없이 강조하고 싶다. 조 합에서 먼저 생각하고 논의하고 결정하지 않으면 공동육아의 미래는 없다. 개 별 현장에서, 지역에서, 교사들끼리, 부모들끼리 많은 논의를 하면 좋겠다. 개 별 현장에서 먼저 논의하고 판단해서 합의를 모아 나가자. 누군가는 내게 현장의 현실을 모르고 너무 이상적인 생각만 한다고 말한 다. 그러나 나는 아직 공동육아는 누군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 야 한다고 믿는다. 꿈을 꾸지 않으면 노력해야 할 것도 없다. 공동육아를 하면 서 누군가 꿈꾸어 온, 누군가 상상으로 말한 것들이 이루어지는 경우를 많이 보아 왔다. 조합원들의 힘을 너무 크게 믿는다고도 한다. 하지만 아무런 힘도 없어 보이던 조합원들이 힘 있게, 멋지게 변하는 모습을 오랜 시간 동안 보아 왔다. 이것이 공동육아의 매력이다. 협동조합 논의. 상황에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또 한 번 공동육아의 앞날 을 꿈꾸는 자리가 되면 좋겠다.

‘공동육아협동조합 제도화’ 어떻게 볼 것인가? 공동육아 통권 1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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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와 협동조합 제도화

협동조합기본법은 공동육아와 도시 공동체를 위한

약인가, 독인가?

1. 친밀성과 공공성 협동조합기본법의 시행은 지금까지 사적 영역에서 자발적으 로 형성되어 온 여러 호혜적 협동 단체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것일 뿐 아니라 여러 지방자치단체들의 지원 사업과 맞물려 자발적인 사적 단체의 공공성 인정 및 고양에 기여할 수 있 다. 그래서 이러한 사적 단체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이자 처음 부터 공공 보육에 대한 지향점을 갖고 있었으며 이미 오래전 부터 협동조합이라는 이름을 사용해 온 공동육아협동조합 에 협동조합기본법은 도약을 위한 기회로 보일 수 있다. 예를 정성훈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HK 연구 교수이며, 과천 열리는 어린이집 및 두근두근방과후 조합원이다.

들어, 개인 명의로 받은 대출을 법인 명의로 전환할 수 있으 며, 법인으로서 여러 지자체의 지원 사업에 응모할 수 있게 된 다. 공동육아가 주요 동력의 하나였던 한국 대도시의 새로운 마을 공동체들도 마찬가지다. 개인 사업 또는 유한회사의 형


공동육아와

027 협동조합 제도화

도시 공동체의 공공성에 주목하는 정책과 사업의 방향은 친밀성과 공공성을 동시에 고려하는 것, 그 긴장 관계를 충분히 주목하는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

태를 갖고 있던 마을 카페, 마을 공방, 마을 도서관 같은 공동체 기반 사업들 이 조합원 모두가 동등한 주인인 협동조합의 법형식에 따라 거듭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협동조합기본법은 이렇게 공동육아와 도시 공동체를 활성화하는 약이 되기만 하는 걸까? 나는 얼마 전 한 학술 논문인 ‘도시 공동체의 친밀성 과 공공성’(정성훈,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철학사상》 제49호, 2013년)에서 도시

화될 수 있다는 점을 주장한 바 있다. 그 논문에서 나는 협동조합기본법, 서울 시 마을 공동체 지원 사업, 여러 지자체의 마을 기업 지원 사업 들이 한국에서 공공성 개념의 변화, 즉 관공성(the official)으로 환원되지 않는 공공성(the public) 개념의 확장을 뜻한다는 점, 그리고 여러 자발적 도시 공동체가 관공

영역과 사적 영역을 매개하는 공공 영역으로 인정받는 계기라는 점 들을 지적 한 바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는 도시 공동체가 사적 개인의 자율성을 육 성하는 공론장이 되기 위해서는 친밀 관계들로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했다. 익

협동조합기본법은 공동육아와 도시 공동체를 위한 약인가, 독인가?

공동체가 친밀성과 공공성이라는 두 가지 지향 가치의 긴장 관계를 통해 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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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적 관계에서 공식 역할로 환원되지 않는 순수한 사인(私人)들의 친밀 관계 를 기초로 해서만 자발적 협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시 공동체에 대한 관의 지원은 그 공공성을 강조하다가 그 친밀성을 파괴하는 실수를 해서 는 안 된다. 이 글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논문 가운데 협동조합기본법이 공동육아와 도 시 공동체의 친밀성을 약화시키는 지점을 지적한 부분을 옮긴 뒤에 약간 보충 설명하고, 그에 이어 공동육아와 도시 공동체의 활성화를 위한 관의 지원 중 다른 지점들 몇몇에 관한 서술 부분을 옮겨 쓰겠다. 이 글의 이론적 배경이 궁 금한 독자들은 앞서 언급한 논문과 함께 ‘현대 도시의 삶에서 친밀 공동체의 의의’(정성훈,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철학사상》, 제45호, 2013년)도 참조하기 바 란다.

2. 협동조합기본법의 양자택일 강요에 대한 비판 현재 시행되고 있는 협동조합기본법은 ‘(일반)협동조합’을 법인으로, ‘사회적협 동조합’을 비영리법인으로 규정해 구별하고 있다(제4조). 그래서 조합원들에게 배당을 할 수 있는 전자는 해산과 청산을 상법을 준용하여 하며(제60조), 배당 을 할 수 없는 후자는 민법을 준용하여 한다(제105조). 그리고 후자는 더 철저 한 운영 공개 의무를 지는 대신(제96조) 소액 대출 및 상호부조 사업을 할 수 있 고(제94조) 지정 기부금 단체 지정 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즉 공공성이 강한 사회적협동조합을 지원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이 기본법에 담겨 있다. 조합 원들 자신의 수익을 추구하지 않고 소외 계층을 위한 고용과 서비스를 창출 하는 사회적협동조합들이 더 공공적이며 관이 이들을 더 지원하겠다는 의지


공동육아와

사회적협동조합이냐를 양자택일해야 한다는 점, 다른 유형으로 전환하려면 해산하고 다시 설립 신고를 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일반)협동조합들은 자기

협동조합 제도화

문제는 현행 기본법에서는 조합의 설립 신고 단계부터 (일반)협동조합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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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다.

들끼리만 연합회를 구성할 수 있고 사회적협동조합들 역시 자기들끼리만 연 합체를 구성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럴 경우 하나의 작은 모임이 협동조합을 결성하려 할 때 처음부터 자신들의 공공성 지향을 선택해야 한다. 작은 친밀 관계들이 성장 과정에서 더 넓게 열리고자 하는 지향을 갖기 어렵게 만드는 것 이다. 그리고 공익 지향성 수준이 다른 여러 협동조합들이 함께 연합회를 구 성해 활동하면서 더 큰 공공 영역을 형성해 나갈 가능성을 차단한다. 나는 설 립 신고 단계에서 두 유형 중 하나를 택일하는 것이 아니라 법이 규정하는 기 본 유형은 협동조합으로 하고, 협동조합들 중에서 배당 금지를 준수하고 공 공적 활동 성과를 보이는 조합들에 대해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인증해 주는 제 도로 바꾸는 것이 도시 공동체 활성화에 기여하리라 본다. 이 문제는 현재 (사)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소속의 여러 공동육아협동조 합들의 전환 논의에서도 상당히 피곤한 쟁점으로 논의되어 왔다. 비영리법인 이며 처음부터 공공 보육의 지향을 가졌던 공동육아 어린이집들은 당연히 사

정이 까다롭고 공시 의무도 부담스러우므로 (일반)협동조합으로 가야 한다는 견해가 양립할 수 없었던 것은 바로 협동조합기본법이 공공적 협동조합들의 연합체와 비공공적 협동조합들의 연합체를 이분법적으로 선택하게 만들었 기 때문이다. 따라서 협동조합이 조직 유형보다는 ‘공동육아’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연대 해야 하는 공동육아 진영은 기본법의 문제 조항들을 개정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협동조합기본법은 공동육아와 도시 공동체를 위한 약인가, 독인가?

회적협동조합으로 가야 한다는 견해와 함께 사회적협동조합의 설립 신고 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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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공모 사업 방식의 문제와 관의 지원 방향 다음으로 검토할 것은 서울시 마을 기업 지원 사업, 부모 커뮤니티 지원 사업, 그리고 몇몇 수도권 지자체들에서 시행 중인 마을 공동체 지원 사업 들에서 채택하고 있는 공모 사업 방식이다. 공동육아가 협동조합기본법 상의 협동조 합으로 전환한다 할 때 이런 지원 사업들에 응모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이 부 분도 주목해야 할 지점이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이런 공모 사업들은 계획서에 입각해 선정 단 체를 가려 낸다. 이 방식은 공정한 경쟁의 규칙을 지키려는 듯 보인다. 하지만 실제 그 모임이 얼마나 친밀한 관계로 이루어져 있는지, 관의 재정 지원 없이 도 과연 지속될 수 있는 관계인지를 가려 낼 수 없다. 계획서만 그럴 듯하게 잘 써 낸 곳이 재정 지원을 받아 요식적인 사업을 하는 사태를 막을 수 없다. 더구 나 규모가 작은 공동체들은 이런 계획서를 그럴 듯하게 써 낼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공모 방식을 통하지 않는 더 나은 지원 방식을 쉽게 제시하기는 어렵다. 공 동체들의 친밀성, 지속성, 공공성 지향 들을 관에서 알아서 판단하고 가려 내 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공모 사업을 통해 도시 공동체에 재정을 지원하 는 방식보다 도시 공동체 형성을 위한 인프라 구축 사업에 더 많은 투자를 하 는 것이 적합하다는 견해를 제시하고자 한다. 돈을 관계 형성 동력으로 만드 는 것은 그 관계의 친밀성을 파괴하거나 왜곡하기 쉽기 때문이다. 성미산마을이나 재미난마을은 초기 10년 남짓한 기간 동안 관의 재정 지원 을 거의 받지 않았고 오히려 때로는 관과 충돌하기도 했지만, 친밀 관계를 동 력으로 더 넓은 도시 공동체를 만들어 왔다. 이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지역 사 업을 위한 재정보다는 그런 사업을 모의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었다. 공무원


공동육아와

들의 퇴근시간 이후와 주말에는 문을 닫아 버리는 관공서 회의실, 도서관 들

031

을 열어 놓는다면 마을 사업을 모의하기 쉬워질 것이다. 이런 공간을 주민자

협동조합 제도화

치로 관리할 수 있게 해 주는 방안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공동육아 어린이집 이나 마을 카페 운영 공간의 임대 비용을 간접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마 련한다면 오랫동안 이어 가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공공 기관의 유휴 공간, 야간과 주말에 이용할 수 있는 공간 들을 저리 임대해 준다든지, 관의 연대보 증으로 은행 대출 금리를 낮출 수 있도록 도와준다든지 하는 방안들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도시 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거시적이고 간접적인 관의 지원을 제안 하자면, 세입자들이 자주 이주하지 않아도 되는 부동산 정책을 도입하는 것 이다. 한국에서, 특히 서울에서, 친밀한 도시 공동체 형성에 가장 큰 장애는 한 지역에서 거주 기간이 짧은 것이다. 직장을 옮기거나 다른 요인들도 있겠지 만 집주인의 요구에 따라 2년마다 어디로 옮겨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빠지는 주택 임대 제도는 육성되어 가는 친밀 공동체를 허무하게 위축시키곤 한다. 그래서 서울시가 한편으로 너무 관의 프레임에 맞춘 마을 공동체 만들기를 진 행하는 것은 비판받아야 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노후 주택 개량 사업과 장 기 임대주택 사업을 확장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자발적 도시 공동체 만들기

도시 공동체는 그 자체로 공공적이지는 않지만, 친밀 영역과 관공 영역을 매개하는 초보적 공론장들을 유력하게 활성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공공성 이라는 지향만이 그런 공동체를 형성하고 활성화시키지는 않는다. 도시 공 동체의 공공성에 주목하는 정책과 사업의 방향은 친밀성과 공공성을 동시 에 고려하는 것, 그 긴장 관계를 충분히 주목하는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

협동조합기본법은 공동육아와 도시 공동체를 위한 약인가, 독인가?

를 위한 인프라 구축이라는 면에서 높이 평가할 필요가 있다.

공동육아 통권 110호


기획

032

공동육아와 협동조합 제도화

협동조합 운동의 정체성과 방향

교육과 협동조합이 큰 상관이 없을 듯하지만 역사를 따져 보 면 그 관계는 아주 밀접했다. 식민지 시기 학교를 세웠던 사 람들은 언제나 협동조합을 고려했다. “오산학교를 발전시키 는 한편, 이승훈은 지역공동체를 굳건한 기반 위에 세우기 위 하여 지속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용동을 비롯한 오산 의 일곱 마을에 저마다 동회를 조직하게 하고, 그 전체를 하 나로 묶어서 소비조합을 설치했다. 조합은 일곱 마을의 연합 체이기도 한 동시에 동회의 상위 조직이기도 했던 셈이다. 소 비조합은 본래 학생과 주민들에게 생필품과 학용품을 값싸 게 공급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찬갑은 소비조합 일에 특히 열 심이었다. 1933년 3월부터 1935년 3월까지 그는 오산소비 조합의 전무이사를 지냈을 정도이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하승우

지난 뒤에도 이찬갑은 조합 운동의 필요성을 잊지 않았다.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이다.

1958년 4월, 그는 주옥로와 함께 충남 홍성에 풀무학교를 창


공동육아와

033 협동조합 제도화

지금 벗어나면, 지금 저항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 그 행복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고 싶게 하는 틀, 중앙이 아니라 변방을 강화시키는 틀, 협동조합은 그런 틀이다.

설했는데, 개교 직후 학교 내에 소비조합을 설치했던 것이다. 오산의 경우에 도 소비조합의 사무실은 오산학교 구내에 있었다. 이 점만 보더라도 학교와 조 합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왜 그랬을까? 식민지 시기 한국의 모스크바라 일컬어지던 전라남도 완도군 소안도에서 는 협동의 실험이 한창이었다. “1919년 3・1 운동이 지난 뒤인 1920년 4월에 송내호, 정남국 등은 마을 주민 100명을 회원으로 모아 배달청년회를 만들었 다. 이 배달청년회는 마을 자치 단위였던 리(里)를 중심으로 노동 단체를 조직 하는 데 힘썼다. 그리고 1924년에는 소안 노동대성회(所安勞動大成會)가 결성 되어 공동 경작계와 공동 어장계를 만들어 공동 노동에 힘썼다. 동네마다 하 나씩 있었다는 계모임이 공동체의 기반이 되었다. 이 모임은 함께 노동하는 것 는 당시의 사회주의 노선과 달리 천도교 노선의 조선농민사(社)가 추진하던

. 나라의 역사와 말: 일제 시기 한 평민 지식인의 세계관》 . 서울: 궁리출판, 132쪽 * 백승종. 2002《그

협동조합 운동의 정체성과 방향

외에도 독서회와 강연회를 열어 농민들의 세계관을 확장시켰다. 노동대성회

공동육아 통권 110호


기획

034

공동 경작계를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특별했다. 이처럼 소안도에서는 공동체 를 기반으로 다양한 이념이 서로 부딪치고 어울리며 새로운 삶의 양식을 만들 어 갔다.”** 협동하는 생활은 주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1. 협동조합은 낡은 브랜드인가? 한국에서 협동조합에 대한 인식은 아주 낮은 수준이다. 소비자생활협동조합 의 조합원 수가 40만을 이미 넘어섰지만 협동조합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고, 아는 사람들의 인식도 농업협동조합이나 수산업협동조합 정도이다. 하지만 농협이나 수협이 협동조합의 정체성과 무관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 하면, 소비자생협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협동조합을 유기농이나 친환경 먹을 거리를 사들이는 매장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협동조합에 대 한 사회 전체의 인식도는 아주 낮다. 그리고 현재 한국의 협동조합들은 저마다 독립된 법률에 따라 운영되고 있 다. 농업협동조합은 농업협동조합법(1957), 수산업협동조합은 수산업협동조 합법(1962), 중소기업협동조합은 중소기업협동조합법(1961), 신용협동조합은 신용협동조합법(1972),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은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2010) 을 따르고 있다.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되었지만 아직은 개별 법률에 따라 서 로 다른 지원과 규제를 받고 있고, 자율적이고 다양한 협동조합의 설립은 가 로막혀 있다. 김기태는 협동조합들에 대한 지원과 규제 현황을 다음의 그림***처럼 정 리한다.

** ***

하승우. 2012《민주주의에 . . 서울: 낮은산. 42~43쪽 反하다》 김기태. 2011. ‘지역사회 연대 전략’. 의료생협 기획 정책 토론회 자료집


공동육아와

035

1 유형

협동조합 제도화

규제

농협, 수협, 산림조합 등

2 유형

시민권 획득

신협, 생협 지원

3 유형 노협, 기타

지원 - 규제의 관계로 본 협동조합 유형

그런데 협동조합에 대한 낮은 사회적 인식과 달리 협동조합에 소속된 조합 원의 수는 결코 적지 않다. 농협의 조합원 수가 2백만 명을 훌쩍 넘어섰고, 수 협도 16만 명, 신용협동조합도 5백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이런 수를 바탕으로 국 제협동조합연맹(ICA)에 농협, 산림조합, 새마을금고, 수협, 신협, 아이쿱생협 들

이 가입되어 있다). 현재 연합회가 구성된 국내 소비자생협의 조합원 수와 공 급액은 아래 표와 같이 추정된다.**** 구분

공급액

2011

증가율

2010

2011

증가율

한살림

30

247,072

293,442

18.8

186,686

222,581

19.2

아이쿱생협

75

118,824

155,705

31.0

219,647

290,132

32.1

두레생협

23

85,022

103,874

22.2

66,674

75,072

12.6

민우회생협

5

22,792

26,763

16.4

16,962

17,015

0.3

합계

123

473,890

579,757

22.3

489,996

604,800

23.4

, 2012년 9월 15일자 **** 신중일, ‘생협 필요성 커지는 데 불교계는 제자리’《현대불교》

협동조합 운동의 정체성과 방향

지역 조합원 수 조합 수 2010

공동육아 통권 1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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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

이 자료를 보면 소비자생협연합회에 소속된 조합원 수는 2011년을 기준 으로 약 58만 명이고, 조합원이 이용하는 물품 거래 비용도 6,000억 원을 넘 는다. 더 놀라운 건 불황과 경기 침체 속에서도 조합원 수의 평균 증가율이 22.3%이고, 공급액 증가율도 23.4%에 달한다는 점이다. 증가율을 고려하면

이 수는 훨씬 더 늘어난다. 그리고 소비자생협 외에 2009년을 기준으로 한국의료생협연대에 소속된 의료생협의 조합원 가구 수를 합치면 1만 5,280가구나 된다.***** 비교 기준

안성의료생협

인천평화의료생협

안산의료생협

원주의료생협

설립 동기

농촌지역 의료봉사

산재 및 직업병 해결

지역환경보호운동

생협간의 협동

설립 연도

1994년 4월

1996년 11월

2000년 4월

2002년 5월

조합원 수

3,426가구

1,749가구

2,414 가구

1,570가구

대전의료생협

서울의료생협

전주의료생협

함께걸음의료생협

설립 동기

지역화폐운동

신협운동의 확장

보건의료운동과 공동체운동

장애우 평등세상

설립 연도

2002년 8월

2002년 6월

2004년 4월

2005년 6월

조합원 수

1,361가구

1,650가구

408가구

526가구

청주의료생협

용인해바라기

성남의료생협

수원

설립 동기

복지네트워크

장애아동부모모임

장애인무료치과 진료 복지네트워크

설립 연도

2007년 5월

2007년 3월

2008년 2월

2009 3월

조합원 수

365가구

480가구

671가구

340가구

시흥의료생협

마포(준)

살림의료생협

설립 동기

복지네트워크

지역사회 돌봄

여성주의 돌봄공동체

설립 연도

2009년 9월

2012년 2월 창립총회

조합원 수

500가구

2010년 5월 발기인 대회

1,000가구 (2013년 1월)

***** 박봉희. 2010. ‘한국의료생협의 사회적 가치와 역할’, 광주지역사회 협동조합학교


공동육아와

더 늘어난다. 숫자로 그 가능성을 점칠 수는 없지만 조합원의 수로 판단한다 면, 한국 사회에서 협동조합은 낡은 브랜드가 아니라 외려 뜨는 브랜드라고 볼

협동조합 제도화

모두 조합원의 구성이 가구를 기본으로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수는 훨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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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을 합하면 조합원 가구가 약 73만 가구나 되고, 소비자생협과 의료생협

수 있다. 특히 소비자생협의 조합원 수와 공급액 증가 속도는 다른 산업보다 월등하게 빠르고, 먹을거리와 건강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 는 점에서 생협의 성장 가능성은 무시할 수 없다(그래서인지 ‘비슷한 소비자생협’과 ‘비슷한 의료생협’이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소비자생협의 활동은 단순히 농산물의 직거래와 안전한 먹을거리 를 나누는 데 그치지 않는다. 소비자생협은 조합원과 조합원 가족, 지역사회 를 건강하게 만들고 활성화시키는 다양한 활동들, 먹을거리 교육이나 학교 급 식 조례 운동, 농업 살림 운동, 협동하는 생활문화 정착, 지역 살림 운동, 지역 사회 식품 안전 생활 시스템 구축 같은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의료생협 또한 질병의 치료보다 건강한 삶을, 그리고 주민 참여와 협동으로 건강한 지 역공동체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따라서 협동조합 운동은 지역 운동 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조합원들이 사회적 주체로 등장하고 성장하는 과 정을 지원한다. 협동조합은 사업체이자 결사체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런 협동조합의 수는 2012년 12월에 발효된 협동조합기본법에 따라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법이 발효된 지 겨우 한 달 만에 전국에서 일반 협동조 합이 119건, 사회적협동조합이 17건 신청되었다.****** 과거 소비자생협의 설립 기준이 조합원 300명 이상, 출자금 3,000만 원 이상이었다면, 협동조합

문턱을 낮췄다. 그런 점에서 협동조합을 설립하려는 움직임은 늘어날 것으로

, 2013년 1월 15일자 (제 1009호) ****** 최영진, ‘협동조합 설립 붐, 자본주의 대안으로 뜬다’《주간경향》

협동조합 운동의 정체성과 방향

기본법은 출자금 규모에 상관없이 5인 이상이면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도록

공동육아 통권 110호


기획

038

보이고, 사업 대상도 먹을거리나 의료에서 대리운전, 도시 농업, 재생에너지 사업 들로 늘어날 것이다. 심지어 주식회사 해피브릿지는 2012년 연말에 주식 회사 해산 총회를 열고 노동자협동조합으로 전환을 결의하기도 했다. 이런 추 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중 앙정부나 지방정부가 협동조합 설립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들만 따지면 한국 사회에서 협동조합은 분명히 좋은 기회를 맞고 있다.

2. 지역 운동이자 협동 운동 일제 식민지 시기 여러 개혁가들이 전국 곳곳에 학교를 세웠다. 도산 안창호 선생과 남강 이승훈 선생도 그런 개혁가였다. 흥미로운 건 이들이 학교만 세운 게 아니라 협동조합을 근거로 한 이상촌을 만들려 했다는 점이다. 이들에게 학교와 협동조합은 이상촌의 기둥이었다. 지역을 공부하고 일하고 생활하는 장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안창호 선생, 모범촌 안에 부락의 금융과 공공 매매의 협동 기관 설치

안병욱 같은 이들이 쓴 《안창호 평전》(청포도, 2007년)을 보자. 도산 안창호 선 생은 “산과 강이 있고 지미가 비옥한 지점을 택하여서 200호 정도의 집단 부 락”을 세우려 했다. 이 이상촌에는 “공회당(公會堂), 여관, 학교, 욕장, 운동장, 우편국, 금융과 협동조합의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이 설치될 것”으로 “집단 적인 회식과 오락”을 안창호 선생은 강조했다. 이 부락에는 금융기관과 협동 조합이 있는데, “금융기관에서는 저금과 융자의 일을”, 협동조합은 “생산품


공동육아와

의 공동판매와 일상생활용품의 공동 구매 배급 기관”을 담당한다. 안창호 선

039

생은 이 부락에 “일반교육의 학교 이외에 직업학교”를 세우려 했고 “직업학교

협동조합 제도화

는 농(農)・잠(蠶)・임(林)・원예・목축(牧畜)・공(工) 등의 여러 과목을 두되, 공 에는 농가 건축, 농촌 토목, 요업, 식료품 가공, 농구 제조의 목・철공, 농촌 상 업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학교를 졸업하면 소자본과 약간의 연장으로 직업 을 갖고 이상촌의 한 몫을 담당하도록 하는 것이 학교교육의 목표였다. 안창 호 선생은 이러한 모범촌과 직업학교를 도마다 하나씩 설립해서 적어도 면마 다 한 사람씩 선발하여 교육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 모범촌은 “첫째, 각 사람이 교육받고 훈련받은 직업 기능을 가질 것. 둘째, 그리하여서 농・어・ 임・공 기타 모든 생산 방법을 과학화하고 합리화할 것. 셋째, 부락 사업의 계 획과 경영과 노력을 집단화할 것. 이것을 도산은 분공합작(分工合作)이라 하였 다. 넷째, 부락의 금융과 공공 매매의 협동 기관을 세울 것. 다섯째, 각 사람의 덕, 즉 신용을 향상하고 부락의 일상생활을 도덕적・위생적・심미적으로 개선 하여 생활이 안전하고 유쾌하게 할 것”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안창호 선생의 이상촌을 오산학교로 세운 이승훈 선생

안창호 선생에게 협동조합은 어떤 의미였을까? 안창호 선생은 이를 무실역행 (務實力行)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아무리 옳은 것을 알더라도 행함이 없으면

아니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봤고, 무실역행하는 중요한 기관이 학교와 협

대성학원의 뜻을 이어받은 것이 1954년 장일순 선생이 원주에 세운 대성학원 이라는 점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안창호 선생의 이상촌을 실제 계획에 옮겼던 건 이승훈 선생이다. 이승훈

협동조합 운동의 정체성과 방향

동조합이었다. 이 둘은 분리된 기관이 아니었다. 안창호 선생이 평양에 세운

공동육아 통권 1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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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충남 홍성군에 풀무학교를 세운 이찬갑 선생의 종증조부이다. 이찬갑 선생에 관한 백승종의 《그 나라의 역사와 말: 일제 시기 한 평민 지식인의 세계 관》(궁리출판, 2002년)에서 이승훈 선생이 세운 오산학교 이야기를 들을 수 있 다. “오산학교는 용동 마을에서 북쪽으로 일 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전국 각지에서 온 학생들이 학교 주변에 하숙집을 정해 두고 있 었다. 이찬갑의 집에서도 대문의 서편에 있는 사랑방 두 개를 학생들의 숙소 로 제공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숙비를 지불함으로써, 이 집의 살림에 도움을 주고 있었다. 1940년경까지는 그러했다.” 이승훈 선생은 마을에 교회를 세우 고 자신의 사유지 일부를 마을의 공유 농지로 기증하는 한편 마을 조직인 용 동회를 조직했다. 용동회는 “자치적으로 마을의 위생, 교양, 풍기는 물론이고 마을의 모든 일을 처리”했고, 당시로서는 드물게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 가운 데서도 한 명씩 간사를 선출하여 마을 일을 함께 의논”했다. 용동회와 별도로 이승훈 선생의 측근과 친척들이 자면회를 조직해서 근면, 청결, 책임을 주장 하며 “농지 개량, 연료 개량, 협동생산, 협동 노동 및 소득 증대”를 추구했다.

오산학교와 지역공동체 기반 위한 오산소비조합 운동

이렇게 “오산학교를 발전시키는 한편, 이승훈은 지역공동체를 굳건한 기반 위 에 세우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용동을 비롯한 오산의 일곱 마을에 저마다 동회를 조직하게 하고, 그 전체를 하나로 묶어서 소비조 합을 설치했다. 조합은 일곱 마을의 연합체이기도 한 동시에 동회의 상위 조 직이기도 했던 셈이다. 소비조합은 본래 학생과 주민들에게 생필품과 학용품 을 값싸게 공급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찬갑은 소비조합 일에 특히 열심이었다. 1933년 3월부터 1935년 3월까지 그는 오산소비조합의 전무이사를 지냈을 정


공동육아와

왼쪽 모범촌과 직업학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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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도에 하나씩 설립해서 교육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던 도산 안창호

협동조합 제도화

오른쪽 안창호 선생의 이상촌을 실제 계획에 옮긴 남강 이승훈

도이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도 이찬갑은 조합 운동의 필요성을 잊 지 않았다. 1958년 4월, 그는 주옥로와 함께 충남 홍성에 풀무학교를 창설했 는데, 개교 직후 학교 내에 소비조합을 설치했던 것이다. 오산의 경우에도 소 비조합의 사무실은 오산학교 구내에 있었다. 이 점만 보더라도 학교와 조합 사 이의 긴밀한 관계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 설명을 들어보자. “오산의 조합은 일종의 은행이었다. 오산학교 학생들 의 학비는 학부형이 학교로 송금하게 되어 있었는데, 그 돈을 조합이 보관했 다. 학생들은 담임선생님의 허가를 얻어 금전출납부에 돈을 사용할 용도를 기 입했다. 그런 뒤에야 지출이 가능했다. 학생들은 소비조합에 가서 물품을 구 입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이 물품 구입에 사용한 금액은 매월 말 학교 와 조합 및 조합원인 학생들 사이에서 정확하게 계산되었다. 조합 회원은 오산 의 주민, 교사 및 학생들이었다. 그들의 대표가 상임위원으로서 조합 회의에 참여했다. 오산 일곱 마을의 동회는 각 마을의 이익을 조합에 파견된 대표를

러 문제뿐만 아니라, 정치적 문제와 사회적인 지위에 관한 문제까지 논의되는 경향이 있었다. 이에 관한 연구에서 서굉일은 주장하기를, 오산학교와 일곱 마을의 공동체 활동은 “학교와 교회, 농촌으로 나누어진 현장을 교육과 산

협동조합 운동의 정체성과 방향

통하여 조합 회의에서 대변할 수 있었다. 회의에서는 주민들의 생활에 관한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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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으로 구조화시키고 정신과 물질이라는 양면으로 구체화하는 작업”(서굉일, 1988, 275)이었다고 했다.

그러한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사실, 오산학교의 시설물 가운데서도 주민 들의 복지에 특히 기여하는 바가 많을 것으로 생각되던 학교 병원과 목욕탕은 모두 개방되었다. 학교에서 개최하는 강연회와 음악회에도 주민들을 초대했 다. 그 밖에도 교회, 동회 및 야학을 통하여 오산의 뜻있는 인사들은 주민들의 정신생활을 지도했다. 그 결과, 1920년대 식민지 조선을 휩쓸던 사회주의의 격랑 속에서도 오산 일대는 계층 갈등이 노골화되지 않았다고 한다. 오산학교 의 교사였던 함석헌 선생이 1968년에 부산에서 청십자의료협동조합을 세우 고 조합원 1호로 가입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두레와 품앗이 권장하고 협동조합 통해 지역 운동 펼친 윤봉길 선생

독립운동가로만 알려진 윤봉길 선생도 사실은 지역을 바꾸는 혁명가였다. 매 헌 윤봉길의사 기념사업회(www.yunbonggil.or.kr)에 가면 그 자료들을 찾을 수 있다. 겨우 2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윤봉길 의사는 농업에 바탕을 둔 사회 변화를 추구했다. “우리 조선은 농민의 나라입니다.” 그런데 “조선에 서 주인공인 농민은 이때까지 주인 대접을 못 받고 살아왔습니다.” 그럼에도 “농사는 천하(天下)의 대본(大本)이라는 말은 결단코 묵은 문자가 아닙니다. 이것은 억만년을 가고 또 가도 변할 수 없는 대진리입니다” 하고 강조하는 《농 민독본》을 써서 야학에서 교재로 썼다. “지식이란 혼자 힘으로 터득되는 것 이 아닙니다. 알고 있는 사실도 발표하여 남에게 가르쳐 보기도 하고, 실제로 적용해 보아야 비로소 산지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월례 강연회 때에는 열 심히 연사의 말을 듣기도 하고, 토론회 때에는 여러분도 한 번씩 연단에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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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 협동조합 제도화

“농사는 천하 (天下)의 대본 (大本)이라는 말은 결단코 묵은 문자가 아닙니다.”라고 강조하는 <농민독본>

가서 아는 바를 발표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고 하며 독서회를 조직했다. 이 독서회는 “1. 낮에 일하다가 쉬는 사이, 밤에 야학이 파한 뒤에도 시간을 내어 독서한다. 2. 누구나 독서한 뒤 그 소감을 적어 두었다가 토론회 때 의견을 발 표한다. 3. 제한된 책을 여러 사람이 읽어야 하는 관계로 가급적이면 빨리 읽 고 다음 사람에게 넘긴다”는 규정을 두기도 했다. 이와 함께 윤봉길 선생이 힘쓴 것은 협동 정신을 강화시키는 것이었다. 달 마다, 철마다 돈과 곡식을 모아 상을 당하거나 경사가 생겼을 때 서로 도우며 친목을 도모하는 위친계(爲親契), 달마다 자신이 번 돈 10전씩을 모아 돼지와 닭을 기르고 유실수를 재배하는 월진회(月進會),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며 만든 수암체육회, “뭉쳐야 한다. 그리고 혁신해야 한다. 살 길은 단 결과 혁신뿐”이라며 마을 회관인 부흥원(復興院)을 세우고 이 건물에 야학당 펴야 한다. 둘째, 마을 공동의 구매조합을 만든다. 셋째, 일본 물건을 배척하 고 우리 손으로 만든 토산품(土産品)을 애용한다. 넷째, 부업(副業)을 장려해야 한다. 다섯째, 생활개선이다”는 실천 목표를 제시했다.

협동조합 운동의 정체성과 방향

과 구매조합, 회의 공간을 만들었다. 부흥원은 “첫째, 증산 운동(增産運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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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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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과 협동조합, 학교는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유기적 기관

또 두레와 품앗이를 권장했고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의 출자금으로 농산품을 사고팔아 그 이윤을 부원에게 배당했다. 농민공생조합 을 만들어 공동구입 배급 및 판매를 담당하는 소비부, 창고 및 공장 경영, 위 탁판매를 담당하는 생산부, 농자금을 융통하고 예금 활동을 하는 신용부, 주 요 농기구들을 관리하는 이용부, 병원과 이발소, 목욕탕을 운영하는 위생부 를 뒀다. 만주로 떠나기 전에 4년 동안 충남 예산군에서 지역 운동을 펼쳤다. 앞선 선배들의 사상과 삶에서 지역과 협동조합, 학교는 분리된 기관이 아니 었다. 이런 기관들이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지역사회를 변화시켰다. 그리고 그 변화는 자치와 자급을 지향했다. 풀무학교가 내건 ‘위대한 평민’은 헛된 구호 가 아니고, 다만 그런 위대함은 구호가 아니라 생활로 증명되어야 했다. 협동 조합은 위대한 평민들이 자신의 삶을 살고 협동하는 방편이었다.

1929년에 만든 재만한족총연합회도 이상촌 추구 이상촌은 한반도 안에서만 생기지 않았다. 무장 항일 조직인 신민부(新民府) 를 이끌던 김좌진 선생이 김종진, 유자명, 이을규 선생들에게 도움을 받아 1929년에 만든 재만한족총연합회(在滿韓族總聯合會)도 이상촌을 추구했다. 유

자명, 이을규 선생 같은 이들은 북만주에서 재만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을 결 성하고 크로포트킨의 농업론을 바탕으로 이상적인 농촌을 건설하려 했다. 재 만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은 “우리는 한 개의 농민으로서 농민대중과 같이 공 동 노작(共同勞作) 하여 자력으로 자기 생활을 영위하는 동시에 농민들의 생활 개선과 영농 방법의 개선 및 사상의 계몽에 주력한다”는 당면 강령을 세우고


공동육아와

향상 발전을 도모하며 동시에 항일 구국의 완수를 위하여 재만 동포의 총력 을 집결한 교포들의 자주 자치적 협동 조직체”라고 밝혔다. 그리고 한족총연

협동조합 제도화

한족총연합회는 자신이 만주에 사는 한국 교민의 “정치적, 문화적, 경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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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뜻을 실현할 공동체를 찾았다.

합회는 다음과 같은 사업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1. 교포들의 집단 정착 사업, 교포의 유랑 방지 및 집단부락 촉성, 2. 영농 지도와 개량・공동판매・공동 구입・경제적 상호 금고 설치 등을 목적하는 협 동조합 사업, 3. 교육・문화 사업, 즉 소학・중학의 설립 운영, 각지 조직의 연 락 및 교포들의 소식・교포들의 생활개선・농업기술 지도 등을 위한 정기간행 물 발행, 순회 강좌・순회문고 설치, 성인교육과 장학제도, 4. 청장년에 대한 농한기의 단기 군사훈련, 5. 중학 출신자로서 군사간부 양성을 위한 군사교육 기관의 설립 운영, 6. 항일 게릴라 부대의 교육 훈련・계획 지도를 맡으며, 지방 치안을 위한 지방 조직체의 치안대의 편성 지도 등을 위한 통솔부 설치.” 실제 로 한족총연합회는 농민들이 생산한 쌀을 도정하기 위해 정미소를 차리고 위 탁판매까지 담당했다.

협동조합은 삶을 변화시키고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발판

이런 운동들에서 주목할 점은 어느 한 부분이 아니라 이상촌이라는 구상 속 에 각각의 기능이 배치되었다는 점이다. 사람을 기르는 일과 지역사회를 성장

성찰하는 일과 필요를 조직하는 일이 분리되지 않았다. 안창호 선생의 이상촌 은 같이 일하고 생활하며 공생공락하는 자치와 자급 공동체였다. 아내에게 보 내는 편지에서 “필영이를 제한 외에 네 아이는 무엇을 하든지 거리에 나가 신

협동조합 운동의 정체성과 방향

시키는 일이 분리되지 않았고, 학교와 협동조합이 분리되지 않았고, 필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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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를 팔더라도 죄다 일 전씩의 벌이라도 버는 일을 실행케 하고 이 불경기 시 기를 이용하여 절용을 공부하게 하소서” 하고 말하는 안창호 선생의 협동조 합은 정의돈수(情誼敦修), 서로의 사랑을 도탑게 닦는 것, 사랑하기를 날마다 힘써 그것이 되도록 하는 과정이었다. 오산학교의 경우, 조합 사무실이 학교 안에 있었다. 이런 학교가 협동조합 을 교육 내용에 반영하지 않았을까? 윤봉길 선생은 마을 회관 부흥원을 세우 고 그곳에 야학당과 구매조합, 회의 공간을 만들었다. 한족총연합회는 농민 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정미소를 세우고 협동의 그물망을 짬으로써 미래 의 공산주의 사회를 지금 현실에서 살아가려 했다. 협동조합은 그렇게 축적한 힘으로 서로의 삶을 변화시키고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발판이었다.

3. 협동조합은 어려운 것인가? 물론 사회 상황은 바뀌었다. 한국은 이제 농사가 기본이지도 않고 지역 안의 관계망도 거의 파괴되었다. 마을은 의식해서 관계를 맺지 않으면 찾을 수 없는 것이 되었고, 이미 자본주의 소비주의가 일상 속으로 깊이 침투했다. 국가의 일방적인 정책 결정과 강력한 중앙 집중화는 대부분의 지방민을 소외시키고 있다. 농민과 노동자가 자식을 농민이나 노동자로 기르지 않으려 하는 상황은 윤봉길 선생이 비판했던 그 상황을 지속시키고 있고, 교육은 이런 경향을 강 화시키고 있다. 사회 어디에서도 협동을 경험할 곳이 없고, 우리의 마음과 습 관은 무한 경쟁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상촌을 만들 수 있는 토대가 거의 사라졌다고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다. 특히 국가 차원의 독점을 상쇄시켰던 마을 내의 재분배, 이렇게 할 수 있게 한 공유지들이 거의 사라졌고, 최소한의 생계 기준도 바뀌었다. 제임스 스콧


공동육아와

의 《농민의 도덕경제》(아카넷, 2004년)를 보면, “농민에게 있어서의 기준은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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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 가져가는가’보다 ‘얼마가 남는가’일 가능성이 더 크다. 생존 기준은 착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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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한 잉여가치라는 기준에 의존하는 이론과는 상당히 다른 착취에 대한 관점 을 제공한다.” 그런데 이런 기준들은 자본주의적인 착취와 무한 경쟁, 승자 독 식의 논리로 대체되었다.

협동조합운동사를 조직하고 활성화시킨 전진한의 자유협동주의

하지만 전 세계 어느 곳의 협동조합 운동을 봐도 우호적인 사회 환경에서 성장 한 사례를 찾기 어렵다. 초기에는 모두 어려운 시기를 겪었고, 그 시련이 협동 조합을 강화시키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협동의 근본은 같다고 본다. 내 것을 우리 것으로 전환시키고 서로의 얼굴을 대면하려는 노력, 서로 를 우리 삶의 주체로 만드는 과정, 서로의 필요를 공동의 필요로 만들어 우리 의 몫을 키우는 과정이 협동조합과 지역사회를 살리는 지름길이다. 일본 유학생으로 협동조합운동사를 조직하고 활성화시킨 전진한은 자전 적 기록인 《이렇게 싸웠다》(무역연구원, 1996년)에서 자신의 이념을 ‘자유협동

주의’라 했다. “개인주의에서 독점성과 배타성이 止(폐기되고), 개성 자유 즉 개

성 존엄성, 평등성, 창의성이 揚(보존되면서), 전체주의에서 강권주의와 기계주 의가 止(폐기되고), 사회 협동 즉 사회연대성, 공존성이 揚(보존)”되는 이념인 자 유협동주의는 농어촌의 협동조합 체계와 도시의 소비자・생산자 협동조합 체

았다. 해방 이후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며 협동조합조성법, 협동조합법의 초안 을 작성하기도 한 전진한은 국가의 협동조합이 아니라 민중의 자조적인 생활 을 통해 협동조합 공화국을 만들려 했다. 그는 “국민경제가 일부 독점재벌이

협동조합 운동의 정체성과 방향

계를 결합할 뿐 아니라 임금제도를 철폐하고 이익을 균점하는 것을 목표로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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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간상 모리배 심지어는 탐관오리에게 농단됨이 없”도록 협동조합 운동을 활 성화시키려 했다. 전진한이 협동조합을 만들고자 한 방식은 간단했다. 자조미(自助米) - 날마 다 한 사람이 한 숟가락씩 쌀을 저축하고, 애향미(愛鄕米) - 달마다 5, 10, 15, 20, 25, 30일 저녁을 죽으로 먹고, 구국미(救國米) - 달마다 7, 14, 21, 28일에

점심을 먹지 않고 그 쌀을 모은다. 농가나 공장도 수확을 할 때나 상품을 팔 때 조금씩 판매량을 저축한다. 이것이 모이면 협동조합을 만들고 운영하는 데 필 요한 기본 자산이 된다. 그 결과 겨우 2년 만에 협동조합이 22곳이나 만들어 지고, 조합원은 약 5천 명, 자본금도 4만 5천여 원에 이르렀다.

1978년 4월 부산양서판매이용협동조합 창립 협동조합의 틀이 정형화될 필요도 없다. 차성환은 ‘양서협동조합 운동의 재 조명’(2009년)에서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까지 부산을 비롯한 전국의 주요 도시에서 활동한 양서협동조합 운동을 설명한다. 부산의 청년 활동가들 이 공개적이고 합법적이며 도덕적인 개혁 운동으로 구상한 양서협동조합 운 동은 말 그대로 좋은 책을 널리 권하고 함께 읽으며 민주주의를 확산시키려는 운동이었다. 1978년 4월에 창립총회를 한 부산양서판매협동조합은 조합원 107명으로

시작했고, “본 조합은 양서를 적정한 가격으로 구입・보급하고 지역사회 개발 사업을 통해 부산 지방의 문화 향상을 도모하며, 조합원 상호간의 협동과 신 뢰에 기초한 민주적 경영 방식을 익히고 나아가 경제적 민주주의와 협동주의 에 입각한 참다운 자주, 자립적 경제 질서의 전 사회적 확산을 그 목적으로 한 다”고 밝혔다. 이 목적을 위해 양서를 구입하고 판매하는 시설을 설치, 운영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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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조합원은 의무적으로 달마다 1천 원 이상 출자하고 책 두 권 이상을 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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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했다. 세미나와 강연회, 학습 모임 같은 다양한 활동을 조직했고, 도시문

협동조합 제도화

제연구모임, 농촌문제연구모임 같은 사회 문제 학습 모임과 사진반, 연극반, 꽃꽃이반 같은 취미 모임도 만들었다. 이런 활동으로 부산의 양서협동조합은 겨우 1년 만에 조합원 수가 세 배로 늘었고 흑자로 운영되었다. 이 글에 따르면 양서협동조합의 빠른 성장은 기독교 교회의 전도 방식과 비슷했다고 한다. 즉 “조합원이 조합원 신입 교육을 받고 취지에 흔쾌히 찬동하고 자기가 제일 친 한 친구들을 데려와 소개해 주고, 순수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과 사귈 수 있다 는 매력”을 줬다고 한다. 양서협동조합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정부의 감시와 압력을 받게 되었고 1979년 10월 부마항쟁의 불씨를 일구기도 했는데, 결국 정부가 양서협동조합

을 부마항쟁의 배후 조직으로 지목하면서 강제로 폐쇄되었다. 1년 남짓한 짧 은 기간 동안에 마산, 대구, 울산, 서울, 수원, 광주로 퍼져 나간 양서협동조합 운동은 협동조합이 민주주의를 불태우는 횃불임을 증명했다.

양서판매이용협동조합 창립 홍보 리플렛과 ⓒ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책갈피

협동조합 운동의 정체성과 방향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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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시대에 협동조합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할 수 있는 좋은 틀이었다. 시대가 어두울수록 사람들은 따스한 온기를 갈망하기 마련이 다. 소비자가 생산자를, 생산자가 소비자를 만나고, 노동자가 농민을, 농민이 노동자를 만나고, 학생이 선생을, 선생이 학생을 만나고, 그렇게 서로를 동등 한 시각에서 만나다 보면 자연스레 협동의 힘이 생긴다. 협동조합 운동을 어렵게 만드는 건 부족한 자원이 아니다. 협동조합에 출 자하기 위해 한 사람이 담배 한 갑, 소주 한 병, 쌀 한 숟갈 모으면 순식간에 큰 자원이 된다. 협동의 힘은 내 자원을 기꺼이 내놓으려는 마음이다. 나중에 돌 려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지금 좋은 삶을 살기 위해 가진 것을 공유하려 는 마음, 그런 마음들의 의미를 밝혀 주고 더욱 단단하게 다져 주는 사상, 사 상을 실현시키는 다양한 조직들이 협동 운동을 할 수 있게 한다. 반면에 서로 가 자신의 영역이 아니라고 여기는 순간 협동의 힘은 순식간에 사라지기도 한 다. 조그만 지원금이나 매장을 놓고 지역에 있는 작은 단체, 협동조합 들이 서 로 경쟁하는 상황, 사람의 성장을 기다리고 지원하지 않는 조직, 스스로 나서 지 않고 뒤를 봐주길 기대하는 문화는 협동 운동의 힘을 위축시킨다.

4. 위태롭고 불안정한 삶에서 벗어나는 법 운동은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고 거기서 시작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운 동의 목표는 현실을 빌미로 삼아선 안 된다고 믿는다. 한 사람이 현실을 ‘총체 적으로’ 인식할 수는 없다. 자기 눈에 보이는 사실만을 현실로 받아들일 경우, 우리 속에 학습된 기성 사회의 논리로만 바라볼 경우, 우리는 사실을 넘어설 수 없다. 제임스 스콧은 《국가처럼 보기》(에코리브르, 2010년)에서 체계화되고 표준화된 가독성의 시각에서 벗어나 지역적인 경험과 체험으로 구성된 경험


공동육아와

는 독점재벌이나 일반 기업보다 훨씬 나은 조건을 노동자에게 제공한다. 허나 협동조합이 있다고 해서 그 사회가 좋은 삶을 보장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단

협동조합 제도화

우리에게도 그런 시각이 필요하다. 분명 경제조직으로서 ‘협동조합’의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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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의 시각을 가져야 그동안 보이지 않던 현실을 인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순히 협동조합의 수가 늘어나고 그것이 차지하는 몫이 커진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협동의 그물망으로 엮이지는 않을 것 같다. 공산당이나 사회당, 녹색당 이 대안 정치 세력으로 자리 잡은 나라의 협동조합과, 대안 정치 세력이 거의 없고 생협의 정치 참여를 법으로 금지당한 한국의 협동조합은 다를 수밖에 없 다. 그리고 분권화된 국가의 협동조합과 강력한 중앙집권형 국가의 협동조합 은 아주 다른 경제적, 사회적 조건에서 활동해야 한다. 이런 조건들을 세심하 게 검토하지 않고 기계처럼 외국의 모델을 한국에 옮겨 올 수는 없다.

경제적 필요가 정치적인 자유의 절박성을 증가시킨다

아울러 단순히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하거나 사회 서비스를 전달하는 것만으 로는 평민의 삶을 근본적으로 향상시킬 수 없다. 사회적으로 배제된 사람들 이 소외를 극복하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 때에만 근본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 경제학자 아마티아 센은 《자유로서의 발전》(세 종연구원, 2001년)에서 경제적 필요가 정치적인 자유의 절박성을 증가시킨다고

주장하면서 세 가지 근거를 제시한다.

서 그것들의 직접적 중요성, 2. 경제적 필요의 주장을 포함하여 사람들이 정치 적 관심사에 대해 자신의 주장을 표출하고 지지하는 발언의 기회를 강화시키 는 그것들의 도구적 역할, 3. 사회적 맥락에서 ‘경제적 필요’에 대한 이해를 포

협동조합 운동의 정체성과 방향

“1. 정치적・사회적 참여를 포함하는 기본적인 능력과 관련된 인간의 삶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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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하여 ‘필요’의 개념화에 있어서 그것들이 지니는 구성적 역할”이 바로 그것 이다. 센은 경제적인 발전이 개인을 능동적인 행위 주체로 변화시키는 전략과 연계되어야만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런 점에서 정치와 경제를 분리하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중요한 자원 들을 중앙정부와 재벌이 독점하고 있는 상황을 변화시켜야만 한다. 그러기 위 해 지역의 다양한 주체들은 서로 긴밀한 관계를 맺어야 하고, 촘촘히 서로 연 결되어야 한다. 나는 이를 지역들의 연합, 연방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처럼 중 앙정부가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곳에서는 지역이 홀로 고립되어서는 결코 생존할 수 없다. 정치를 변화시키고 분권을 이루려는 노력이 결합되어야만 한 다. YMCA운동을 이끈 황주석 선생은 《마을이 보인다, 사람이 보인다》(그물 코, 2007년)에서 이미 ‘시민생활나라’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시민생활나라는

참여와 자치, 자결과 협동을 중히 여기고 이로써 운영됩니다. 또한 시민생활 나라는 연대를 중히 여깁니다. 나라 안의 연대, 나라 간의 연방을 형성하며 나 라가 뻗어 갑니다.” 중요한 과제들이 이 속에 모두 담겨 있다.

중앙이 아니라 변방을 강화시키는 틀, 협동조합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정치학자 데이비드 맥낼리는 《글로벌 슬럼프》 (그린비, 2011년)에서 세계경제 전체를 보면서 새로운 형태로 변이되는 경제 위

기의 속성을 파악하지 않으면 현재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위 기를 주도하는 탈정치화의 경향에 맞서 정치를 되살리고 희망의 기운을 만들 다양한 고리들을 조직하는 것, 그것이 대안이라고 맥낼리는 얘기한다. 그러니 협동조합은 지역의 관점에서 세계경제의 변화를 읽고 지역적인 행동으로 변 화에 개입하고 그 사건들을 조직해야 한다.


공동육아와

은행을 강화시켰다. 중앙에서 조직되어 지방으로 퍼지는 방식이 아니었다. 자 급이 기본이고, 불가피할 경우에만 중앙이 개입했다. 중앙이 가서 판 깔아 주

협동조합 제도화

조였다. 그리고 그런 역할을 위해 협동조합은 분권화를 추구했고 지역과 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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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협동조합의 기본은 농민과 소상공인, 도시 노동자 들을 지원하는 구

고 컨설팅 해 주고 하는 구조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유럽연합(EU)으로 통합된 이후에도 협동조합들은 자급의 원칙을 지키고 있고, 분권화되어 있어 유연하고 조합원이나 외부의 변화에 민감하다. 그리고 중소기업들이 협동조 합과 긴밀하게 연계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사회나 협동조합이 조직되 는 방식은 어떤가? 수도권과 중앙 중심이고 그 구조가 집중화되어 있다. 이런 구조를 비판하고 바로잡지 않고서는 협동 운동의 성공을 점칠 수 없다. 아울러 협동조합은 공론장(公論場)이어야 한다. 다양한 의견과 행동 들이 이 장에서 갈등하고 충돌하고 조절되고 합의되어야 한다. 분리된 삶터와 일터 의 얘기들이 협동조합을 통해 순환되어야 한다. 공장과 사무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삶터에서 얘기되고, 반대로 삶터의 일들이 공장과 사무실에서 얘 기되어야 한다. 아울러 지역사회에서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 청소 노동자, 식 당 노동자, 배달 노동자 같은 다양한 직종의 비정규직・일용직 노동자 들이 겪 고 있는 고통들이 그들이 생산한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들 사이에 서 얘기되어야 한다. 또 재벌들이 만드는 열악한 노동시장의 조건에 소비자들 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예를 들어, 삼성 그룹의 제품을 쓰고 보험을 들고 주식 투자를 하는 게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조합원들이 고민해야 하고 그 대안을 구체적으로 보여 줘야 한다.

있게 하는 틀, 그 행복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고 싶게 하는 틀, 중앙이 아니 라 변방을 강화시키는 틀, 협동조합은 그런 틀이다.

협동조합 운동의 정체성과 방향

지금 벗어나면, 지금 저항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 그 행복을 만지고 느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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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협동조합 7원칙으로 본 공동육아협동조합의 과제 1995년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은 100주년 기념 대회에서 협동조합의 일곱

가지 원칙을 공식적으로 채택했다. 이 7원칙에 빗대어 공동육아협동조합의 과제를 살펴보자.

1 자발적이고 개방적인 조합원 제도 협동조합의 성격을 갖추려면 교사와 부모가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구조를 만들 지 고민해야 한다. 이와 함께 지역사회의 다양한 이해 당사자들이 협동조합에 참 여할 수 있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2 민주적 관리의 원칙 공동육아협동조합과 관련된 논의를 보면, 스스로를 민주주의 구조를 갖추고 있 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그런데 민주적인 의사 결정 구조란 무엇일까? 구성원과 지역성을 무시하고 동일하게 적용되는 의사 결정 구조는 결코 민주적일 수 없다. 협동조합이라서 민주적이라는 얘기도 마찬가지로 성립할 수 없다. 그 나름의 고 유한 민주적인 관리 원칙을 만들어야 하는데, 과연 한국의 공동육아협동조합 들은 그런 준비를 하고 있나?

3 조합원의 경제적 참여 협동조합이 협동조합일 수 있는 이유는 조합원들이 조합에 필요한 자원을 공급 하기 때문이다. 최근의 논의를 보면 공동육아협동조합에 지방정부나 중앙정부 가 자원을 공급해야 한다는 주장이 심심찮게 제기된다. 물론 보육이나 교육은 공적인 사안이기 때문에 그런 자원이 필요하다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어떤


공동육아와

과정을 거쳐 어느 정도의 규모로 투입되어야 하는지는 스스로 판단해야 할 몫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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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터전의 비용이나 교육과정에 필요한 비용을 정부가 제공하면 좋겠지만 그만

협동조합 제도화

큼 그 입김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것은 네 번째 원칙과 연관된다.

4 자율과 독립의 원칙 정부나 기업에서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사회를 그런 영향력에서 자유롭게 만들 의무가 협동조합에 있다. 자율성이 없는 협동조합은 협동조합이 아니다.

5 교육, 훈련, 정보 제공의 원칙 조합원들에게 어떤 정보와 교육을 제공해야 할까. 협동조합이 다른 조직보다 조 합원들에게 엄청나게 많은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그 정보나 교육의 폭과 관심도는 여전히 과제다. 나와 맞는 옷만 입을 건지 아니면 다양한 패션 경향을 따를 건지…….

6 협동조합 간의 협동의 원칙 한국의 협동조합들이 가장 지키지 못하는 원칙이다. 내 욕구가 채워지고 나면 다른 사람들의 욕구에 관심이 없다. 무조건 문제라고 비난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 고 감싸 줄 수만 없는 문제다. 공동육아협동조합은 어떤 협동조합과 연대해야 할 까, 그런 고민이 필요하다.

7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

잘 키우는 것도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것이지만, 남의 아이를 잘 지켜보는 것도 기 여다. 내 아이에서 우리 아이로, 우리 아이에서 마을 아이로 의식을 확장시키는 과정이 있어야 서로 필요한 것을 제대로 충족할 수 있다.

협동조합 운동의 정체성과 방향

기여는 단순히 시혜를 베푸는 것이 아니다. 서로 주고받는 과정이다. 우리 아이

공동육아 통권 110호


손잡고

아이와

056

한 달 남짓 터전 생활 적응 과정을 거치고 있는 다섯 살 창이가 동생이 아파 덩 달아 일주일 동안 나오지 못했다. 그러다가 다시 나온 월요일 아침이다. 나들 이 가는 창이에게 들국화(창이 엄마)가 언제나처럼 “터전에서 기다릴게

하고 이야기해 보지만, 창이는 굳이 들국화랑 같이 가야 한다며 눈물까지 글 썽인다. 창이는 들국화와 떨어져 나들이를 갈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는 모 양이다. 결국 창이는 들국화랑 손을 잡고 맨 끝에서 뒤따라 걸어온다. 나들이 장소인 싸리동산에 다다랐다. 앞서 도착한 아이들은 커다란 놀이 기구(줄 타고 올라가는 구조물) 중간 중간에 서서 신발던지기를 하고 있다. 창이는 들국화와 구조물 맨 위에 자리 잡고 앉 았다. 오늘 창이는 들국화와 안 떨어져 있으려 한다. 조금 지나 드디어 창이와 들국화가 떨어져 앉게 되었다. 창이는 혼자 구조물 맨 꼭대기에 앉아 있고, 들 국화는 조금 떨어진 긴 의자에 앉아 있다.

서진숙

자유롭게 하기

소금꽃. 해와달어린이집 에서 일한다. 공동육아 교사로 산 지 2년이 조금 넘었다. 아직은 ‘아이들 곁에 가장 가까운 생태로서 어른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반성하며 길을 찾아 헤매고 있다.


아이와 손잡고

습을 본다. 그 아이들 모습을 슬쩍슬쩍 보기도 하고, 또 한참 보기도 하면서

자유롭게 하기

다. 창이는 손으로 땅을 만지며 놀면서도 가끔 아이들이 신발던지기 하는 모

057

창이는 땅을 만지고 있고, 둘레에서 아이들은 계속 신발던지기를 하고 있

창이의 눈이 자꾸만 웃고 있다. 창이 옆으로 가서 앉았다. “창이야, 신발던지기 할래?” “싫어.” 아주 단호하게 대답한다. “하자~. 나 하고 싶단 말이야~.” 창이는 잠깐 신발을 벗으려는 듯이 몸을 살짝 숙이며 손이 내려갔다가는 다 시 “싫어!” 한다. 그래서 또 “하자~” 했지만, 이번에는 고개를 돌려 버린다. 왠 지 창이는 신발던지기 놀이를 하고는 싶지만 신발 벗는 것이 쉽지 않은 듯이 느껴졌다. “그래? 알았어. 나는 신발던지기 할 거다~” 하고 왼쪽 신발을 벗어 휙 던졌다. “와, 저기 중간만큼 갔다.” 조금 떨어져 놀고 있던 승이가 “내가 주워 줄게” 한다. “아니야. 오른쪽도 던 진 다음에 내가 주울 거야” 했지만 승이는 어느새 주워 가지고 온다. “또 던져 야지. 근데 혼자 하니까 심심하다~” 하고는 왼쪽을 휙 던졌다. 그리고 나머지 오른쪽도 휙 던졌다. 그러자 이번에는 창이가 “내가 주워 줄게” 한다. “괜찮 아. 넌 하기 싫다면서

. 내가 주워 올게” 했다. 어느새 창이는 신발 두 짝을

다 주워 온다. ‘옳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도 같이 할래? 혼자 하니까 심심하다. 같이 놀아 주라.” “그래.” 둘이 양쪽 신발을 벗고 한 짝씩 휙 던졌다. 이렇게 두 짝을 다 던졌다. 조금 전처럼 구조물 중간 턱에 신발 네 짝이 떨어졌다. 에쿠! 조금 미끄럽긴 하지만 갈 만 했다. 이렇게 신발을 줍고 올라와 다시 신발던지기를 한다. 공동육아 통권 110호


손잡고

아이와

058

두 번째 신발던지기! 근데 이번에는 신발 네 짝이 모두 구조물 맨 아래 끝까지 날아갔다. 아이와 나는 저 아래로 신발을 주우러 간다. 아이들은 맨발로 이 경사면을 참 잘도 오 르내리는데 나는 위태하니 자꾸 미끄러진다. 중간까지는 그래도 어찌어찌 가 다가, “어~, 아~~, 미끄러진다~~, 넘어지겠다. 어어어~” 하는데 “어~, 옆 에 줄을 잡아~” 하며 창이도 같이 다급하다. 줄을 잡으려다가 오히려 엉덩방 아를 찧으며 쿵 주저앉고 말았다. 창이는 “이렇게 가면 돼” 하며 엉덩이로 미 끄럼을 타면서 내려가는 모습을 보여 준다. “와! 그러네

. 근데 엉덩이에

서 불나는 거 같아” 하며 창이를 따라 엉덩이로 미끄럼을 타고 내려간다. “어? 불나?” “아니, 불나는 거처럼 엉덩이가 뜨겁다고

. 따갑다고

.”

맨 아래에 먼저 다다른 창이는 신발을 줍고는 신지 않는다. 그냥 철퍼덕 흙 위에 발을 얹어 놓는다. 구조물에 있는 모래를 밟는 것과 흙을 밟는 건 또 다르 다. 내가 신은 하얀 양말, 주말에 해야 할 빨래가 잠깐 생각났다. 그래도 그냥 나도 창이를 따라서 흙 위에 발을 얹어 놓는다. 그리고 뒤축에 힘을 주고 와이 퍼처럼 앞발을 왼쪽 오른쪽으로 부빈다. 발을 떼니 부채 모양이 생기고, 나는 “와! 내 발이다!” 했다. 창이도 같이 따라하며 “나도

내 발이다!” 한다.

그러고 나서 창이도 나도 신발을 두 손에 한 짝씩 들고 흙을 발로 밟으며 이쪽 으로 저쪽으로 왔다 갔다 해 본다. 이때쯤 나는 ‘에라 모르겠다

’ 하는 생

각이 든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신발던지기를 하기 위해 두 손에 신을 한 짝씩 들고 계단으로 올라간다. 터전으로 돌아오는 길. 우리는 양말 없이 신을 신고 돌아왔다. 이렇게 우리 는 같이 신발을 던지고, 발을 버리면서 공감대를 만들어 간 것 같다. 터전으로 돌아오는 길에 창이는 조금 더 가벼운 모습이었다. 들국화와 손도 놓고 가고, 다른 아이들한테 말도 걸고, 또 같이 뭔가를 줍기도 하고 말이다.


아이와 손잡고

애잔함을 더하기도 한다. 이렇게 적응 과정을 거치고 있는 아이가 다른 친구

자유롭게 하기

이다. 아이는 “엄마가 나를 두고 가잖아” 하며 엄마와 헤어지기 힘들어해서

059

어린이집에 나온 지 한 달이 조금 넘은 창이에게 아직은 모든 것이 낯설 것

들이 노는 모습을 부러운 듯 눈으로 따라가고는 있지만, 그 아이들 속에 아직 은 쉽게 폭 끼지 못하는 상황에서 아이와 관계를 맺으며 나는 공감대를 또 하 나 느꼈다. 신을 쉽게 벗지 못하던 아이나 나나 우리는 그 상황에서 똑같았던 것 같다. 아이 때문에 아이보다 먼저 신을 벗기는 했지만 흙을 밟는 것이 고비 고비 부담스럽고 쉽지 않았다. 그때를 넘기고 나면 부담스러움이 자유로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때는 미처 몰랐기 때문일 것이다. 어른이나 아이에게나 ‘익숙하지 않음’에 대한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 ‘익숙하지 않음’이라는 자기의 틀을 탁 넘고 나면 내 몸과 마음이 더욱 더 자유로워진다는 것을 아이와 내가 오늘 느낀 것 같다. 창이가 터전이라는 공간에, 생활에, 문화에 잘 적응하고 고스란히 몸으로 익히면서 자기 스스로를 자유롭게 해 나가기를 바라 본다.(2013. 4. 8. 월)

어른이나 아이에게나 ‘익숙하지 않음’에 대한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 ‘익숙하지 않음’이라는 자기의 틀을 탁 넘고 나면 내 몸과 마음이 더욱 더 자유로워진다는 것을 아이와 내가 느낀 것 같다. 공동육아 통권 110호


이야기

세상

060

교사로 살아가는 길

충주에 있는 이오덕학교 자료관에 갖 다 둘 자료가 많이 쌓였다. 1톤 용달 차를 불러서 갖고 가는데, 운전기사 가 이오덕학교가 대안학교인가 묻는 다. 그렇다고 했더니 요즘은 학교 교 사들이 보통 아이들도 힘들다고 하는 데, 문제아들 지도하기가 얼마나 힘 들겠냐고 한다. 자기 형제들 가운데 교사가 둘 있는데, 요즘 아이들은 너 무 힘들게 해서 선생질 못 해 먹겠다 고 한다면서 차라리 운전하는 게 속 편하겠다고 부러워한단다. 요즘 아이들을 문제아로 말하는 게 듣기 싫은데, 그렇다고 두 시간 가 까이 옆자리에 앉아 가면서 듣기만 할 수도 없어서 한 마디 했다. “그럼, 이번 추석 때 만나면 교사 사표 내고 차 한 대 사서 운전하라고 하세요. 인생 뭐 별거 있나요? 마음 편하게 사는 게 최고지. 그렇게 아이 들 싫어하는 마음으로 아이들 가르치 면 아이들이 얼마나 큰 상처를 받는 지 몰라요. 남의 귀중한 아이들 마음

이주영 (사)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 이사와 어린이문화연대 대표를 맡고 있다. 교사와 학부모를 위한 《어린이 책을 읽는 어른》 《 , 이오덕 삶과 교육 사상》 같은 책을 펴냈다.

에 상처 주지 말고 교사 그만두라고 하세요.” 가끔 식당이나 전철 안에서 요즘


세상 이야기

061

을 만나면 진짜 화가 난다. 나는 어떤 경우라도 교사들이 아이들을 뒷말거 리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술자리 같은 데서 술 안주거리 로 씹어서는 안 된다. 그건 아이들을 모욕하고 무시하고 짓밟는 짓이기 때 문이다. 나아가 교사 자신의 심성마 저 황폐하게 만든다. 교사들을 대상 으로 연수할 때마다 강조한다.

교사로 살아가는 길을 잃지 않으려면 20년이 되건 40년이 되건 끊임없이 자기를 성찰하는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그 끈을 놓는 순간 교사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아이들은 더 깊은 나락으로 빠진다.

교사로 살아가는 길

아이들을 비난하고 욕하는 교사들

그러면 교사들은 아이들이 어떻게 하든, 아이들한테 어떤 상처를 받거 나 말거나 아무 말 하지 말라는 것인 가? 그렇지 않다. 그런 경우가 있으면 글을 써야 한다. 글로 그 앞뒤 사정과 내 마음을 솔직하고 자세하게 쓰고, 그 글을 동료 교사들과 함께 읽고 이 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그런 과정에 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고, 문제가 일어난 상황을 성찰할 수 있다. 화풀 이나 조롱거리나 다른 사람과 재미로 아이들 잘못을 들춰 내고 비난하는 말은 교사의 마음을 황폐하게 하지만 이렇게 말과 글로 자기 성찰을 하는 비판은 교사를 성숙하게 한다. 우리 시대 아이들과 가장 가까운

공동육아 통권 110호


이야기

세상

062

자리에서 교사로 살아간 사람을 꼽으

할 수 있었다.

라면 단연 이오덕 선생님이다. 이오덕

교사로 살아가는 길을 잃지 않으

선생님이 쓴 글을 읽고, 이오덕 선생

려면 이처럼 20년이 되건 40년이 되

님이 가르친 제자들을 만나서 이야기

건 끊임없이 자기를 성찰하는 끈을

를 듣다 보면 아이들에 대한 말과 글

놓지 말아야 한다. 그 끈을 놓는 순간

과 삶이 참으로 한결같았음을 알 수

교사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아이들

있다. 또 이오덕 추모 10주기에 맞춰

은 더 깊은 나락으로 빠진다. 평생 그

나온 이오덕 일기 선집 다섯 권을 읽

끈을 놓지 않았던 이오덕. 이 시대 교

다 보면 그 끊임없이 되뇌이는 자기

사들이 꼭 이오덕을 만나야만 하는

성찰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까닭이다.

이오덕 선생님이 교단에 선 지 18 년이나 된 어느 날 일기에도 “교사라 는 내 위치가 두려워진다. (가운데 줄임) 두고두고 생각해 보자. 어떻게 하면 이 아이들을 키워 갈 것인가? 어떻게 하면 아이들 세계에 파고들어 가 그 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하고 썼다. 그 일기를 읽으면서 ‘나는 교사 18년이 될 무렵에 어떤 생각을 했나?’ 돌아보았다. 낯 뜨거워 할 말 이 없다. 다만 나는 어떤 문제가 일어 났을 때 그 문제가 일어난 원인을 아 이들한테 미루지 않고, 아이들을 핑 계로 삼지 않고, 아이들을 욕하지 않 았다는 것만도 다행이다. 그나마 이 오덕 선생님을 만났기 때문에 그렇게


일기

독서

부터 돌아가신 2003년까지 쓰신 일기장이 모 두 아흔여덟 권, 원고지로 3만 7,986장, A4로 4,500장입니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2년

반 동안 읽고 또 읽으며 6,126장으로 가려냈습 니다. 2013년 6월, 《이오덕 일기》 다섯 권이 세 상에 나왔습니다.

이혜숙 교정, 교열을 하거나 책 만드는 일을 하며 지낸다.《우리는 맨손으로 학교 간다》 《우리 반 일용이》 《달려라, 탁샘》 같은 책을 만들었다. 《규장각에서 찾은 조선의 명품들》을 어린이들이 읽을 수 있게《왕실 도서관 규장각에서 조선의 보물찾기》로 바꿔 쓰기도 했다.

자기 삶은 모든 사람의 삶에 이어져야

함께했습니다. 선생님이 서른일곱이던 1962년

063

저 혼자 한 것이 아니라 다른 편집자 두 사람과

자모 기든 삶사 은람 의 삶 에 이 어 져 야

독서 일기

를 《이오덕 일기》로 엮은 일을 했습니다. 물론

마흔두 해의 기록을 들여다보며

저는 이오덕 선생님이 쓰신 일기를 읽고 그 일기

이오덕 일기 (1~5) 이오덕 씀 | 양철북

공동육아 통권 110호


일기

독서

064

1. 삶에서 붙잡은 ‘글쓰기 교육’ 버림받은 아 이들 1962년부터 선생님이 퇴직하던 1986년까지 일기는 1, 2권에서 볼 수 있는데,

학교에서 지낸 이야기가 중심입니다. 그 시절 학교가 어땠는지, 아이들이 어떻 게 살았는지 환하게 알 수 있습니다. 이때 쓴 일기가 귀한 까닭은 그 시절 학교 와 우리 나라 교육 현실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는 데 60분, 오는 데 60분, 학교서 한 시간, 이래서 돌아오니 오후 2시가 됐다. 신체검사고 구강 검사라면 당연히 의사가 학교까지 와야 하는데, 분교장이라고 아이들을 10리도 더 되는 본교까지 부르다니, 어디 이럴 수 있는가? 오늘은 첫 시간에도 공부 못한다고 아이들 꾸짖기만 했다. 또 작업을 한다고 그 한 시간도 공부를 제대로 못 했지. 다 해진 바짓가랑이를 꿰매지도 않고 펄럭 펄럭하며 돌아오는 아이의 어머니는 게을러서 그런 것도 아니고 참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그런 것이다. 그래도 아이들만은 공부를 시켜야 한다고 10리, 20 리를 찢어진 고무신으로 보내고 있는데, 오늘은 다시 또 20리도 넘는 배고픈 길 을 걷게 하면서 무엇을 했는가? 구강 검사? 말이 좋다. 이 불쌍한 아이들을 이대로 돌려보낸다는 것은 죄악이다. 무엇이라도 단 한 가지, 아주 간단한 지식이라도 가르쳐서 보내야지.

(1969년 10월 29일)

나는 태순이 어머니 말을 듣고 분한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서 기성회비 받기 위해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게 한 적은 없다. 기성회비를 내는 것도 학반 재적 학 생 수의 7할 정도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런데 모조리 받아서 제 이익으로 하려 고 한 것이겠지. 젊은 교사들이 왜 이렇게 돈만 생각할까? 앞으로 기성회를 새로 조직해서 3백 원을 받게 될 것 같은데, 그렇게 되면 가난한 집 부모들과 아이들의


독서 일기

065 자기 삶은 모든 사람의 삶에 이어져야

고통은 한층 심할 것이다. 태순이 집 사립문을 나오면서 나는 굳이 학교에 보내 달라는 잔인한 말을 하지 않았다. 학교에 못 보내더라도 너무 실망하지 말라고 위 로할 수밖에 없었다.

(1964년 5월 28일)

시늉만 하는 구강 검사를 받기 위해 아이들이 20리도 넘는 길을 걷습니다. 기성회비 못 냈다고 학교에서 쫓겨나기도 하고요. 이뿐만이 아닙니다. 학교에 서 아이가 다쳤는데도 교사들은 나 몰라라 합니다. 아이 하나 불러서 다친 아 이 집에 가서 알리라고만 해요. 가는 길도 10리가 넘는 산길이고, 가 봐야 부 모들은 산골짝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형편인데도 말입니다. 아이들에게 나눠 주라는 우윳가루도 선생들이 자루째 가져가 버립니다. 아이들을 부려서 집안 일을 시키는 선생도 있고요. 아이가 전학을 가려고 하는데, 교장이 온갖 핑계 를 대며 전학 서류에 도장을 찍어 주지 않습니다. 아이 하나가 전학 가면 그만 큼 학교에 들어오는 기성회비가 줄어든다고 말입니다. 버림받은 아이들입니다. 버림받았다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이 아이들을 보 공동육아 통권 110호


일기

독서

066

면서 선생님은 마음 아파했고, 분노하셨습니다.

한밤중에 일어나 이 일기를 쓴다. 지금은 한 시 반이다. 쓰지 않고는 잠이 안 올 것 같다…… 데모에 참가하지 못하더라도 목숨을 걸고 나랏일을 바로잡기 위해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비난하다니! ……모두 다 집에 재산이 넉넉하고 월급까지 받아 걱정 없이 살아간다고 그런 태도가 되었겠지. 그러나 교육자로서, 인간으로 서 양심을 가졌다면, 날마다 점심시간에 운동장 한쪽에서 힘없이 쭈그리고 앉아 배고픔을 참고 있는 아이들을 조금은 생각해 봐야 할 것 아닌가? 선생님들은 4.19 때도 이런 태도였을 것이 분명하다. 양심과 도덕심을 잃어버 린 교육자들한테 배우는 아이들이 너무너무 가엾고 억울하다.

(1964년 6월 3일)

아이들이 너무너무 가엾고 억울하다 하셨습니다. 선생님의 절실함이 느 껴졌습니다. 1964년이면 4・19혁명이 5・16쿠데타로 무너져 내린 뒤입니다. 1963년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었고, 1964년에는 베트남에 군대를 보냈습니

다. 선생님의 ‘교육’은 교실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살고 있 는 세상, 앞으로 살아갈 세상을 늘 염려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깥소식 이 어두울 수밖에 없는 산골짜기 학교에서도 늘 세상을 살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버림받고 배고픔을 참고 있는 아이들에게 무엇 하나라도 가르치려고 아이들 곁에서 그 길을 찾으려고 하셨습니다.

교사라는 내 위치가 새삼 두려워진다. 이렇게 괴로운 시대에 내가 참 어처구니없 는 기계가 되어 어린 생명들을 짓밟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할 때 견딜 수 없는 심정이 된다. 두고두고 생각해 보자. 어떻게 이 아이들을 키워 갈 것인가? 어떻게 하면 아이 들의 세계에 파고들어 가 그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1962년 9월 21일)


독서 일기

067

아이들한테서, 삶 에서 길을 찾다

급생 서너 아이의 일기는 난잡한 글씨가 겨우 논의거리가 될 정도였지만, 담임선 생이 한번 읽어 보라고 권해서 내가 집에 가져가 밤늦도록 읽은 두 아이의 일기는 참 좋았다. 거기서 나는 많은 것을 느끼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 새로 운 발견이란, 시를 모르고 있는 아이들에게 일기 쓰기를 통해 시를 알게 하는 방

자기 삶은 모든 사람의 삶에 이어져야

그날 저녁때, 일기 지도를 위해 직원들이 잠시 모여 이야기를 했다. 그때 읽은 상

법이다. 내가 읽은 일기를 쓴 두 아이는 모두 시를 쓴 일이 없다. 한 아이는 우스 운 동요를 가끔 일기에다 적어 놓았지만, 두 아이가 다 산문이라고 쓴 것이, 절실 한 정감을 호소하여 글줄도 감정의 파동을 그대로 자연스럽게 끊어 썼기에 훌륭 한 생활 시, 또는 생활 서사시로 되어 있었다. 나는 귀한 발견을 한 것이 기뻤고, 앞으로 이런 아이들을 더 찾아내어 특별 지도를 해 보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1963년 5월 13일)

그 아이가 알고 있는 소는 머리로 생각해 낸 소가 아니라 오늘 아침에도 여물을 먹고 있었던 살아 있는 자기 집 소였던 것이다. …… 어른들은 그림을 그리든지 글을 쓰든지 관념적으로 개념적인 것을 그리고 쓰고 한다. 그런데 아이들은 구체 적인 것, 현재 살아 있는 것을 보여 준다. 시의 문제도 이와 같다. 동시란 것은 어 른들의 관념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아이들의 시는 어디까지나 구체적인 생활 의 표현이어야 하고, 소박하고 현실적인 감동으로 쓰여야 하는 것이다. (1963년 6월 8일)

흙을 뭉쳐 소를 만드는 시간이었어요. 선생님은 서 있는 소를 만드는 게 어 렵다고 생각해서 아이에게 누워 있는 소를 만들어 보라고 했는데, 나중에 아 이가 만든 소를 보고 크게 배웠다고 하셨습니다. 아이들이 하는 말, 글 한 줄, 그림 한 장 허투루 보지 않으셨어요. 일기장 곳곳에서 선생님이 얼마나 애쓰 공동육아 통권 110호


일기

독서

068

셨는지 볼 수 있었습니다. 일주일마다 한 장짜리 문집을 펴내기도 하고 아이 들 시를 모아 손수 시집을 엮기도 해요. 대곡분교에서는 전교생 모두가 쓴 시 를 모아 시집을 엮었습니다. 일기를 보면서 선생님의 ‘글쓰기 교육’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알 수 있었습 니다. 선생님의 ‘글쓰기 교육’은 하나하나 자세하게 짚어 줍니다. 아이들 글을, 아이들 마음을 어떻게 이렇게 놓치지 않고 살필 수 있을까 늘 궁금했습니다. 답은 아이들이고, 하루하루 일상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살아가는 현실에 가 슴 아파하고 분노하면서 아이들 곁에 있었기 때문에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살 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글쓰기 교육’은 글쓰기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아이 들이 스스로 주인으로 살아가길 바랐습니다. 길들지 않고 자기 목소리로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 글을 쓰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자기 삶을 살아가는 것. 그렇기 때문에 ‘글쓰기 교육’은 글쓰기에서 어린이 문학 운동으로, 그리고 우리 말 살리는 운동으로 우리 삶 전체로 범위를 넓혀 갑니다. 아이들부터 일 하는 사람까지를 아우르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학교를 떠난 뒤 과천에서 지내며 세상 속에서 ‘글쓰기 교육’을 실 천하셨습니다.

우리 시인들의 시를 아이들에게 읽힐 수 없을까. 어떻게 해서라도 우리 아이들에 게 우리 말과 우리 삶의 정서를 이어 주어야 한다.

(1993년 1월 1일)

말과 글, 그리고 의식, 삶 이것들의 관계를 생각할 때,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은 삶 이다. 그다음이 의식이고, 다음이 말이고 글이다. 삶 →의식→말→ 글 이렇게 된다. 이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이것이 거꾸로 역행하는 수가 있다. 삶 ← 의식 ← 말 ← 글 이렇게 말이다. …… 이런 문화의 역행 속에서 사회와 역사를 바로 잡으


독서 일기

려면 역시 이 역행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 즉 말과 글을 바로잡음으로써 우리

069

의 의식을 바로잡고 삶을 바로잡는 것이고,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기 삶은 모든 사람의 삶에 이어져야

(1988년 2월 7일)

내 생각의 바탕과 뿌리는 민중의 삶이고 민중의 말입니다.

(1990년 5월 4일)

선생님의 민중은 아이들입니다. 선생님이 하는 모든 일의 중심은 아이들이 었고, 일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일하는 사람들이 제 목소리로 당 당하게 이야기하려면 쉬운 우리 말을 써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길 만이 아이들을 살리고 겨레를 살리는 길이라고 하셨어요. 선생님은 남은 평생 “어린애같이 가슴이 부풀어” 우리 말 살리는 일에 앞장서셨습니다.

2. 시 쓰는 선생님 일기를 읽으면서 ‘시를 쓰는 선생님’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예전에도 선생님 이 쓴 시를 봤지만 선생님이 시를 쓰는 사람, 시인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일기를 읽다가 어느 순간 멈춰서 잠시 머무를 때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마음이 머물렀던 글에서 시인 이오덕을 만났습니다.

자기가 온몸과 마음을 바쳐 일하는 삶을 얘기하는 것이 ‘신변잡기’가 되는 것일 까? 그렇게는 생각되지 않는다. 자기 삶은 모든 사람의 삶에 이어지는 것이어야 한다.

(1979년 12월 29일)

자기 삶은 모든 사람의 삶에 이어져야 한다, 시인의 마음입니다. 시는 온몸 공동육아 통권 110호


일기

독서

070

의 감각과 마음이 열리지 않으면 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열려 있기 때문에 시를 쓸 수 있고, 아이들 마음을 일깨우는 ‘글쓰기 교육’을 이야기할 수 있었구나, 이제야 겨우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산벚꽃 쳐다보니 눈물이 난다. 새잎들 쳐다보니 눈물이 난다. 아, 너희들, 너희들 여기 이 땅이 조국이라고 또다시 피어났구나.

(1997년 4월 25일)

긴 세월 저편에서 들려오는 소리, 잊었던 내 지난날, …… 내 모든 슬픔, 내 모든 그리움이 다시 살아나 가슴에 안겨 오는 소리…… 저 소쩍새 소리를 꼭 시로 쓰 고 싶다.

(2000년 5월 12일)

혼자 노래를 부르는 것은 또 얼마나 좋은가! 외로운 것, 이보다 더 소중한 것이 없구나!

(1999년 10월 7일)

바느질을 하니까 좀 재미가 나기도 했다. 글 쓰는 것과는 또 다른 재미다. 된장찌 개 보글보글 끓이고, 바느질하는 이런 재미를 남자들이 여자들한테 빼앗긴 것은 참 섭섭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2002년 12월 8일)

산벚꽃 보면 눈물 나고, 소쩍새 소리에 그리움이 살아나고, 된장찌개 보글 보글 끓이고, 손수 기저귀 꿰매고. 그 순간들이 시가 되었습니다. 순간순간 깨 어 사셨고, 놓치지 않고 일기를 쓰고 시를 쓰셨습니다. 몸이 늙어 가고 병이 찾아오고 등뼈, 꼬리뼈가 아파 견딜 수 없는데도 시 를 쓰셨어요. 일기에 그 아픈 이야기를 쓰셨고, 그 고통의 순간도 시가 되었 습니다.


독서 일기

안아서 / 잠시라도 앉아 있지만 / 밤에는 누워서 꼼짝 못 한다. / 수건을 등뼈 양 쪽 깔아 달라 해서 / 겨우 견디는데 / 이번에는 발뒤꿈치조차 아프다. / 그래도 꼼짝 못한다. / 이건 아주 관 속에 들어가 있는 / 산송장이다. / 정말 밤마다 나는

자기 삶은 모든 사람의 삶에 이어져야

밤낮 침대에 누워 있자니 / 등뼈가 아파서 견딜 수 없다. / 그래도 낮에는 정우가

071

몇 평생 다시 살아나네

관 속에 들어가 / 생매장되어 있다가 / 아침이면 살아난다. / 죽었다가 살아나고 / 또 죽었다가 살아나고 / 고것 참 재미있구나. / 하루가 새 세상 새 한평생 / 앞으 로 내가 몇 평생 살는지 / 고것 참 오래 살게 되었네. (2003년 8월-이 시는 일기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하루가 새 세상 새 한평생, 하루를 온전하게 산다는 게 무엇인지 아직은 모 릅니다. 저는 어제도 오늘 같고, 오늘도 어제 같은 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살아 온 습관대로 살고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선생님 일기를 보면서 때때로 마음이 출렁거렸고, 설 습니다. 잠깐씩 멈춰 서서 제가 살고 있는 모양새를 보기도 했습니다. 하루하루가 모여 마흔두 해가 된 선생님의 기록이 선생님 가신 지 10년이 지난 지금, 오늘에도 제게는 새로웠습니다.

선생님이 제게 귀한 씨앗을 나눠 주셨습니다. 선생님 일기를 마무리할 즈음 다시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글을 쓰면서 저 자신을 들여다보는 힘을 조 금씩 기르려고 합니다. 글쓰기는 자신을 보는 힘을 길러 준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주인으로 살 수 있는 힘. 주눅 들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저를 볼 수 있 기를 바랍니다. 아이들도, 일하는 노동자들도 모두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선 생님이 남긴 씨앗이 세상에 널리 전해지기를 바랍니다.(2013년 9월 30일)

공동육아 통권 110호


창문

열린

072

우리를 찾아온 개

그 개는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집에 나타났다. 담이 없는 집이라 풀어 놓고 기르는 마을 개들이 자주 드 나들곤 해서 그 개도 그 가운데 한 마리라고 생각했다. 그런 신순화 열한 살 필규, 일곱 살 윤정 그리고 네 살 된 이룸이를 키우며 아이와 함께 세상을 배우는 이야기를 네이버 블로그 ‘평온한 강가에서’와 한겨레신문사 육아 누리집 ‘새로 쓰는 육아 이야기-베이비 트리(Baby Tree)’에 올리고 있다. 《두려움 없이 엄마 되기》를 펴냈다.

데 그 개는 하루가 지나고 그 다음 날에도, 또 그 다음 날에 도 가지 않았다. 우리 개들에게 주는 사료를 뺏어 먹고, 심지 어 폭우가 쏟아지는 날엔 우리 개를 내쫓고 제가 개집에 들어 가 있기도 했다. 자그마했지만 암컷인 데다 앙칼진 데가 있었 다. 덩치가 훨씬 더 큰 우리 집 수캐들이 꼼짝을 못 했다. 당연 히 우리 부부는 이 개가 싫었다. 내쫓으려고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다. 이미 다 큰 대형견 두 마리가 있고, 열 마리가 넘는 닭을 키우고 있는 데다 여전히 손이 많이 가는 아이 셋을 기 르며 넓은 텃밭도 관리하고 있는 나는 개가 더 늘어나는 일을 절대 원하지 않았다. 지금 기르고 있는 집짐승들만 해도 사료


열린 창문

073 우리를 찾아온 개

이곳에서의 일상은 어느 날 새로운 생명이 다가와 친구가 되기도 하고, 느닷없이 떠나거나 사라져서 마음의 상처를 입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오는 어떤 생명도 귀하게 여기고 기꺼이 마음을 여는 그런 자세를 갖게 한다.

그 개는 가지 않았다. 어느새 아이들은 ‘복실이’라고 이름도 지어 주었다.

며 물이며 이것저것 챙겨야 하는 일이 보통 많은 것이 아니다. 명절에 집이라도 며칠 비울라치면 이웃들에게 먹이를 부탁해야 하는 일도 늘 맘에 걸리는데 원 하지도 않은 개가 집에 들어와 제집처럼 눌러앉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소리를 지르며 몰아내면 산으로 도망쳤다가 집안으로 들어오면 다시 마당 으로 들어섰다. 빗자루 같은 것을 휘두르며 엄포를 놓아도 그때만 달아났다 가 다시 다가오곤 했다. 그러면서도 눈만 마주치면 꼬리를 흔들며 살랑거렸다. 등 한쪽이 살이 푹 패일 만큼 커다란 상처가 있는 것으로 보아 주인에게 학대 를 받다가 탈출한 듯했다. 안쓰럽긴 했지만 그래도 받아 줄 순 없었다. 그저 어 서 제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 개는 가지 않았다. 어느새 아이들 은 ‘복실이’라고 이름도 지어 주었다. 아이들은 부모의 성화와는 상관없이 처 음부터 복실이를 반기고 좋아했다. 늘 줄에 묶여 있는 우리 집 큰 개들은 덩치 가 커서 마음 놓고 쓰다듬어 주는 것도 어려운데 복실이는 아이들만 다가가면 주저앉아 꼬리를 흔들며 순하게 저를 낮추었다. 아이들이 마당에만 나오면 그 공동육아 통권 110호


창문

열린

074

뒤를 따라다니며 꼬리를 흔들어 댔다. 그러나 나는 아이들이 복실이를 좋아 하는 것도 싫었다. 어디서 온 개인지 어떻게 살아 온 개인지도 모르는데 그런 개를 아이들이 쓰다듬고 만지는 것이 맘에 걸렸다. 먹이도 주지 않고 우리 집 에 얼씬거리지 못하게 쫓아낼 궁리만 했다. 그렇게 험하게 굴어도 복실이는 가 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여름이 지났다. 종주먹을 해 대며 쫓아내고 몇 번은 작은 돌멩이를 던진 적도 있는데 그래 도 복실이는 나만 보면 꼬리를 흔들며 내 주위를 돌아다녔다. 짖지도 않고 그 저 순한 눈만 껌벅이며 꼬리만 흔들어 댔다. 우리 개들 먹이를 줄 땐 한층 간절 한 표정으로 내 손끝만 보면서 몸이 다 흔들릴 정도로 열심히 꼬리를 흔들었 다. 계속 우리 집에서 지내는데 복실이만 굶길 수는 없어서 조금씩 사료를 주 기 시작했다. 그래도 미운 마음은 여전했다. 복실이는 우리 집 마당을 벗어나 지 않았다. 우리 집 식구들이 나갔다 돌아오면 제일 먼저 마당 끝에 달려 나와 열렬히 꼬리를 흔들며 반겼다. 낯선 사람이 지나가면 제일 먼저 짖었다. 마치 처음부터 우리 집에서 살던 것처럼 식구들을 챙기고 집을 지켰다. 그리고 늘 현관 가까이 앉아 우리들만 바라보곤 했다. 아파트를 떠나 마당이 있는 집으로 오고 나서 우리는 많은 생명들을 새롭게 만났다. 개도 기르고 닭도 기르게 되었지만 길냥이들이며 이웃집 개들이 아무 렇지 않게 우리 집 마당을 드나들었다. 그런 동물들에게 늘 따스하게 마음을 열고 손을 내미는 것은 아이들이었다. 내겐 귀찮고 손이 가는 일거리들이었지 만 아이들에게는 모든 생명이 다 친구였다. 아이들은 복실이를 우리가 키우자 고 몇 번이고 부탁했다. 그래도 나는 마음을 안 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보니 복 실이 배가 조금씩 불러 오고 있었다. 새끼를 가진 것이다. 가슴이 철렁했다. 곧 해산이라도 하면 내 일만 늘어날 것이었다. 그런데 나날이 무거워지는 몸을 하 고 다니며 늘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복실이가 맘에 걸리기 시작했다. 아이를 셋이나 낳아 본 내 모습이 복실이에게서 보였기 때문이다. 새끼를 배고 있으니


열린 창문

얼마나 배가 고플까, 몸도 무거운데 힘도 들 것이다. 나는 복실이에게 주는 사

075

료 양을 늘렸다. 어쩌다 남는 잔반도 따로 챙겨 주었다. 어디서 온 개인지, 어떻

우리를 찾아온 개

게 살던 개인지 모르지만 우리 집에 와서 새끼를 가졌으니 적어도 안전하고 건 강하게 새끼들을 낳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오랫동안 복실 이를 미워하던 남편도 마침내 곧 해산을 할 복실이를 위해 마당 한 켠에 나무 로 집을 지어 주었다. 필규가 신이 나서 아빠를 도왔다. 나는 아이들이 어릴 때 쓰던 아기 이불을 깔아 주었다. 아이들은 날마다 복실이를 바라보며 새끼를 낳을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이곳에서의 일상은 어느 날 새로운 생명이 다가와 친구가 되기도 하고, 느닷 없이 떠나거나 사라져서 마음의 상처를 입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오는 어떤 생 명도 귀하게 여기고 기꺼이 마음을 여는 그런 자세를 갖게 한다. 이런저런 계 산으로 쉽게 마음을 못 여는 어른에 비해 아이들은 늘 그런 생명들에게 너그 럽고 따스하다. 어쩌면 그런 아이들이 있는 곳이어서 복실이는 우리 집으로 온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복실이를 받아 준 것이 아니라, 복실이가 우리를 선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머지않아 어미가 될 복실이. 우리 아이들에게 생명 의 신비와 경이로움을 알려 주러 우리를 찾아와 준 복실이가 건강하게 새끼들 을 낳으면 좋겠다. 깊어 가는 가을엔 이 집에 새로운 생명들이 더 많이 늘어나겠다. 이런 인연 들이 어쩌면 이 집에 와서 우리가 누리는 가장 귀한 선물인지도 모르겠다.

공동육아 통권 110호


정책

보육

‘유보 통합’ 현장이 원하는 통합 방향은?

로드맵을 묻는다

유아교육과 보육계의 뜨거운 쟁점인 ‘유보 통합’ 논의를 둘러싸고 통합 과 정과 추진 계획에 대한 정부 차원의 구체적 내용 및 정보가 거의 알려지 지 않은 상황이다. 다만 유보 통합을 하겠다는 강력한 정부 의지의 신호만 을 받는 상황에서 유아교육・보육 관 련자들이 공유하는 정보는 최소한의 내용만을 담고 있다. 즉, 국무총리실 의 ‘유보통합추진위원회’*에서 5, 6 월 중에 수요자인 학부모 들을 대상 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2013년 8월 말까지 ‘통합모델개발팀’을 중심

이 글은 류지영, 김세연 국회의원이 주최한 유보 통합 제1차 정책 토론회

으로 2, 3개의 통합 모델 안을 개발

‘유보 통합, 현장에서 길을 묻는다’

하여** 내년 3월 새 학기에 맞춰 시범

(2013. 6. 28)에서 발표한 이일주 (공주대

사업 실시를 목표로 추진한다는 계

유아교육과) 교수의 발제문 ‘유보 통합,

어떻게 논의되고 있는가?’에 대한

획만을 전달받은 상황이다.

토론 글이다. 이부미, 이송지가 함께

이와 같은 최소한의 공식 정보를

작성하고, 이송지 사무총장이 발표했다. 발제문에 대한 토론문이지만

둘러싸고 유아교육과 보육 관련 일을

‘유보 통합’에 대한 (사)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의 견해를 밝힌 글이라 의견을 공유하고자 한다. 류지영 의원실은 2013년 3월 8일 ‘유보 통합의 올바른 방향성 설정을 위한 포럼’을 구성하여 6회에 걸쳐 내부 토론회를 개최하였고, 그 결과물을 이 토론회에서 발표했다.

*

유보통합추진위원회 : 정부위원(5) 기획재정부, 교육 부, 보건복지부, 안전행정부, 여성가족부 차관. 민간 위원(6) 정대표 (한국소비자원장), 김은주 (연합뉴스 논 설위원), 김명순 (연세대 교수), 지성애(중앙대 교수), 박 혜란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이사장), 이경자 (공교육살 리기학부모연합 상임대표).

** 그러나 9월 말 현재 아무런 발표 사항이 없는 상황이다.


보육 정책

077

다. 이런 상황에서 관련 현장 및 전문가들의 견해를 집중적이고 지속적으로 모으고 공유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유보 통합’ 로드맵이 갑작스럽게 제시된 만큼 ‘공동육아’ 내부에서도 이 문 제를 어떻게 해석하고 대처해야 할지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오늘의 토론은 그동안 진행되어 온 과정에 대해 ‘공동육아’ 내부의 생각을 덧붙이고 공동육 아 어린이집 입장에서 바라는 점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토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대개 보육 및 유아교육 정책 관

‘유보 통합’ 로드맵을 묻는다 - 현장이 원하는 통합 방향은?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수많은 추측과 불안한 예측의 언어들이 오가고 있

련 포럼이나 토론에 ‘공동육아’를 초청할 경우, 부모를 대변하는 단체라는 이 미지로 초청하는 경향이 크다. 그러나 ‘공동육아’는 부모를 대변하는 집단이 라기보다는 ‘부모와 교사가 함께 참여하여 어린이를 보육하는 집단’으로, 사 회적 차원에서 보자면 ‘보육 공공성 모델’의 가능성을 갖고 있는 실천 집단이 라는 특성이 크다. 따라서 오늘의 토론도 이 시각에서 전개하고자 한다.

01 발제문에서 제시한 유보 통합 5단계 과제 중, 1단계에 해당하는 ‘통합 유보 관장 부처 선정 기준’과 ‘관장 부처 선정 방법’에 대해서는 대체로 동의할 수 있다.

교육부와 보건복지부 두 부처의 우월성을 각 자 주장하는 행정 부처 선정 논리를 보면, 같은 준거를 중심으로 서로 우위를 주장하는 동어 반복의 논리가 보인다. 즉 교육부의 강점은 복 지부의 약점이고 복지부의 강점은 교육부의 약 점일 뿐이다. 유보 통합은 크게 볼 때 기존의 보육 시스템

에 유아교육이 덧붙여지거나 유아교육 시스템에 보육이 덧붙여지는 통합이 공동육아 통권 110호


정책

보육

078

아니다. 새로운 비전이 제시되는 통합이어야 한다. 때문에 유보 통합을 담당 할 부처는 교육부와 복지부의 시스템에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감당할 수 있는 부처가 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일주 교수의 정리에 따른 선정 기준 다섯 가지 ‘1)수요자 측 면 : 영유아의 권리 보장 및 학부모의 기대, 2)보육 및 유아교육 여건의 확보, 3)보육 및 유아교육의 질적 수준 제고, 4)보육 및 유아교육 재정의 효율적 지

원 및 관리 감독, 5)사회적 기여 및 국제 관계’ 와 관장 부처 선정 방법 10가지 ‘1)국책 연구 기관 등의 연구 결과 분석, 2)유아교육 및 보육 전문가 의견 분 석, 3)학부모를 포함한 보호자 및 일반 국민의 요구 분석, 4)어린이집과 유치 원 교직원의 만족도 및 요구 분석, 5)청와대를 포함한 정부의 정책 의지 분석, 6)관장 희망 정부 부처의 정책 의지 분석, 7)행・재정 지원 체제(한국보육진흥 원, 광역 및 기초 지방자치단체, 시・도 교육청, 중앙 및 지방의 보육 정보 센터, 유아교육진흥 원, 유아체험교육원, 교원연수원 등)의 요구 분석, 8)주요 정당의 정책 방향 분석,

9)국회 관련 상임위원회의 정책 방향 분석, 10)주요 언론기관의 평가 및 요구

분석’은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채 어느 한 부처로 치닫는 정책 결정이 가져 올 유보 통합의 문제점들을 미리 지적하고 동시에 대안을 제시해 준다고 본다. 이 15가지의 행정 부처 선정 기준과 방법은 꽤 긴 시간이 필요한 중요한 전 제 조건이다. 그래서 육아정책연구소를 비롯하여 이 포럼의 주체들도 누누이 시간을 충분히 갖자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점에 대해서 ‘공 동육아’도 전적으로 동의할 뿐만 아니라, 강력하게 요구한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가 경험한 국가 중심의 강력한 정책 드라이브는 이러한 시민 사회의 조언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 예상컨대, 정부가 15가지의 선정 방법과 기준을 받아들일 것이라는 신뢰가 없다. 이럴 경우, 시민 사회는 어떻 게 대응하고 대안을 강구할지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보육 정책

079

의체 구성도 적절한 방안 중의 하나라고 본다. 이 밖에 관장 부처 선정 기준 ‘1)수요자 측면 : 영유아의 권리 보장 및 학부 모의 기대, 2)보육 및 유아교육 여건의 확보, 3)보육 및 유아교육의 질적 수준 제고, 4)보육 및 유아교육 재정의 효율적 지원 및 관리 감독’까지의 구체적 상 황에 대해 각 부처 담당자들의 구체적인 계획을 확인할 수 있는 공청회를 계획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또한 제시된 10가지의 관장 부처 선정 방법인 ‘다양한 연구 및 요구 분석’

‘유보 통합’ 로드맵을 묻는다 - 현장이 원하는 통합 방향은?

고 본다. 통합 방안을 논의할 수 있는 학부모, 유관 단체, 정부가 참여하는 협

중에 반드시 요구할 것에 대해 합의를 이끌어 내는 작업을 내부에서 준비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합의한 것에 대한 시각표(time-line)를 제시하는 것도 효과적이라고 본다. 관장 부처 선정 기준의 ‘5)사회적 기여 및 국제 관계’에 해당되는 OECD 주 요국의 ‘유아교육 및 보육 관장 부처 현황과 추세’를 그들의 사회 문화적 맥락 을 반영하여 더욱 깊이 있게 파악하는 것과 함께 우리의 사회 문화적 맥락을 고려한 연구도 아주 급하다고 본다.

02 보육과 유아교육의 공공성은 국가가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행·재정적 지원, 교육과정 제공’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결국 이 모든 것에 대한 시민 사회와 국가의 협력 과 신뢰 시스템이 가동되지 않는 한, 자칫하면 ‘국 가주의적’인 문제점을 드러낼 가능성도 있다. 교육인류학자 조용환(2008년)은 우리나라 교육 이 좋은 교육으로 나가는 데 반드시 청산해야 할 문 제로 국가주의, 학교 중심(학교형 인간 양성), 교수 중 공동육아 통권 110호


정책

보육

080

심(teaching), 선발 중심, 실존적 삶을 상실한 생존 중심의 문제라고 하였다. 사실 유보 통합의 전조로 시작된 ‘누리과정’과 현재의 유보 통합 논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국가주의의 강도를 시민 사회는 감지하고 있다. 지난 20년 남짓한 기간 동안 보육과 유아교육이 통합되어야 한다는 논의가 여러 차원에서 시도 되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를 국가 주도하에 ‘무상 보육’과 ‘누리과정 담 임 수당’을 도입하여 교육 형태와 내용을 꼴 짓는 교육과정인 누리과정으로 또 는 누리과정을 시작으로 통합을 시도하고 있다. 특히, 교육부 중심의 유보 통합을 이끌어 낸 국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학교 화’에 따른 획일화의 문제에 대해 ‘공동육아’는 민감하게 우려한다. 이 문제는 누리과정 실시에 따른 교육과정의 문제점으로 일부 드러나기 시 작하고 있다. 누리과정은 전형적인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이다.

“정부는 5세 누리과정 제정 및 적용을 통해 지난 15년 간 미루어 왔던 취학 직전 1년 간의 유아교육・보육 선진화를 실현하게 되었으며, 정부가 부담하는 의무교

육 기간을 사실상 10년으로 확대하고, 공정한 출발선을 보장하는 계기를 마련 하게 되었다(2012년, 누리과정 해설서, 7쪽).” 이 글의 핵심은 유아교육・보육 선진화, 의무교육, 교육의 평등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의무교육과 평등의 본질이 무엇 이냐에 따라 유아교육・보육의 선진화는 달라진다고 본다. 즉 의무교육이 국가가 교육을 책임지고 지원하기 때문에 교육과정도 통제한다는 논리를 의미한다거나 교육의 평등을 위해 동일하고 표준적인 교육과정만을 인정하는 것이라면 탈근 대적인 시대적 상황에서 과연 선진화된 유아교육이 달성될 수 있을까? (이부미, 2013년, ‘누리과정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회보 <공동육아> 108호)

이를 보완하기 위한 ‘부모와 유아의 요구를 수렴하는 다양한 유아교육・보


보육 정책

081

개발과 적용’을 유보 통합에서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지도 아주 중요한 문제다. 또한 유아 학교가 학교의 이미지를 반영한 체제가 안 되려면, 유아 학교의 크기를 대형화하는 것은 심사숙고할 일이라고 본다. 적어도 어린이의 행복한 삶과 권리 그리고 건강한 성장과 교육권을 보장하는 유보 통합은 ‘작은 학교 의 아름다움’을 죽이지 않고 살릴 수 있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영유아의 권리 및 학부모의 기대’와 관련해서 볼 때, ‘영유아 기 교육 복지 기능인 건강, 안전, 위생, 특기 교육, 학습지, 사교육 및 선행 학습

‘유보 통합’ 로드맵을 묻는다 - 현장이 원하는 통합 방향은?

육 프로그램에 대한 개방성, 지역 및 기관의 특성을 반영한 다양한 프로그램

의 문제’는 유보 통합이 풀어야 할 과제다.

보육과 유아교육을 위한 국가와 시민 사회의 협력 관계에서 이윤을 추구하는 사교육 시장(market)은 파트너가 아님을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 ‘유보 통합’ 에서 국가가 시장의 개입에 대해 타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 이다. 유보 통합 논의에서 우리 모두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통합 자체가 아니 라, 분명하게 포괄적인 영유아의 발달과 성장, 교육과 보호의 진전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공동육아 통권 110호


나눔

교육

082 산 어린이학교 꽃밭 가 꾸기 수업

이 글은 산어린이학교 꽃밭 수업을 1년 흐름 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꽃밭 수업은 해마다 흐름이 거의 같기 때문에 그동안 해 온 수업 가운데 기억에 남는 장면을 골라 엮었다. 수업을 한 해는 글마다 밝혀 놓았다. 아이들 글과 그림은 수업을 한 해와 관계없이 그 수업에 어울리는 것을 실었다. 산학교에서는 2005년 부터 지금까지 꽃밭 수업을 하고 있다. 터전이 대야동에 있던 2006년에는 꽃밭을 만들 곳이 없어서 하지 못했다.

변영숙 채송화. 산어린이학교에서 생활 교사를 맡고 있다. 산어린이학교 공동육아의 자연 체험이나 체험 학습 그리고 생활 중심 교육을 경험하면서 그 믿음으로 시작한 시민 설립형 초등 대안학교다. 생태와 생활 문화, 관계와 통합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삶과 하나 되는 교육을 실현하는 데 작은 토대를 만들고자 2001년에 문을 열었다.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에 있다.


교육 나눔

햇살 따뜻한 봄날, 아버지는 꽃밭에 있는 묵은 꽃대들을 치웠다. 그리고 삽으로

아이들과 꽃이 함께 자란다

01

083

교사의 경험담에서 시작한 꽃밭 가꾸기

꽃밭의 흙을 푹푹 파서 뒤집어 놓았다. 엄마는 호미로 흙덩이를 부수기도 하고 쓰러진 꽃밭 울타리를 고쳤다. 나와 동생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흙 속에서 유리 조각도 찾아내고 엄마가 꺼내 놓은 여러 가지 씨앗을 들고 꽃밭이 다 만들어지기 를 기다렸다. 그리고 꽃밭에 씨앗을 뿌렸다. 봉숭아, 채송화, 백일홍, 과꽃……. 아름다운 꽃밭은 두고두고 내 마음에 들어앉았다. 꽃밭에서 씨앗을 뿌리던 그 아이는 자라서 엄마가 되었다. 엄마가 되어서 꼭 해 보고 싶은 일 가운데 하나가 꽃밭을 만드는 일이었다. 마치 꿈속의 이야기처럼 마음 한 켠에 따뜻하게 남아 있는 꽃밭을 아이들에게도 만들어 주고 싶다.

산학교의 꽃밭 수업과 텃밭 수업은 2005년, 아침햇살 선생님의 경험담에 서 시작했다. 아침햇살은 교과서가 없는 산학교에서 교육과정을 어떻게 구성 할 것인가를 고민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교사들의 앞선 경험이라 생각했다. 부 모들은 경험 때문에 대안학교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을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자연과 함께한 경험이 어떠한 가치보다 중요하다고 생각 했기 때문에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그 경험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자연 속에서 뛰놀고, 예쁜 꽃 한 송이를 키워 보고, 농사를 지어 보며 아이 와 교사 들은 무엇보다 중요한 걸 배운다. 1년이라는 긴 흐름 속에서 자연의 변 화를 몸으로 받아들이게 하면서 교사와 부모 들이 소중하게 지켜 내고 싶어 한 마음을 아이들에게도 전해 주고 싶다. 꽃을 키우면서 기다리고 참는 마음 을 배우고, 관찰을 하면서 사물을 자세히 보는 힘을 키워 주고 싶다. 공동육아 통권 110호


나눔

교육

084

2013년, 산학교는 2, 3학년 교사 두 명과 지원 교사 채송화가 같이 힘을 모

아 꽃밭 가꾸기 수업을 했다. 두 교사가 수업 계획을 세우고 평가하고, 아이들 과 이야기 나누고, 경험 있는 교사가 지원하며, 아이들의 글과 그림에 감동하 며 즐겁게 수업해 나가고 있다. 산학교 꽃밭 수업은 3월에 알뿌리 식물을 관찰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4월 부터 10월까지 꽃밭 만들기, 화분에 씨 뿌리기, 새싹 관찰하기, 꽃모종하기, 풀 뽑기, 놀기, 씨앗 받기까지 이어진다. 봄에 꽃이 피는 것부터 가을에 씨앗 맺는 것까지 관찰하고 그림 그리고 글을 쓴다. 꼬박 1년 흐름이다.

02

꽃밭 가꾸기 실제

내 화분은 수선화야

2013년

학기가 시작하는 3월은 꽃샘추위로 땅은 단단히 얼어 있고 바람은 차갑다. 드 물게 제비꽃과 냉이꽃을 볼 수 있을 정도다. 이때 아이들을 데리고 화원 나들 이를 갔다. 화원에는 대부분 비닐하우스에서 키운 꽃 화분이 많지만 그래도 아이들과 구경하면 재미있는 것들이 많다. 화려한 꽃과 나무도 본다. 아이들 은 특히 파리지옥이나 끈끈이주걱을 좋아하여 한참 들여다보며 사고 싶다고 도 하고, 하트선인장 앞에 오랫동안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했다. 화원을 빙 둘러 구경을 다한 다음 돌아오기 전에 아이들에게 원하는 알뿌리 식물을 골라 보도록 했다. 아이들은 알뿌리 가게 앞에서 분홍색 히아신스, 보라색 히 아신스, 무스카리, 크로커스, 노란 수선화를 자기 화분으로 갖겠다고 하나씩 집어 들었다. 학교로 돌아와 꽃 이름을 쓰고 햇볕이 드는 창가에 놓아두었다.


교육 나눔

주말을 보내고 온 2, 3학년 아이들과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085

“지난 주 금요일, 화원 나들이 갔는데 어땠어?”

아이들과 꽃이 함께 자란다

“나는 파리지옥 사고 싶었어. 그래서 아빠랑 일요일에 파리지옥 샀어.” “나도 엄마랑 토요일에 우리가 갔던 화원에 가서 수선화 화분 샀어. 학교에 서는 히야신스 기르고, 집에서는 수선화 키울 거야.” “나는 꿈에 내 화분에 수선화가 죽어서 슬펐어, 학교 오자마자 화분부터 봤어.” “얘들아, 아침에 친구들이 돌아가면서 분무기로 물을 줘서 잘 키우면 좋겠 어. 내 것만 주지 말고 옆 친구 것도 같이 주자.” 아이들은 아침에 오면 햇볕이 드는 따뜻한 곳에 화분을 내놓고, 물도 주고, 바람도 쐬어 주었다. 5주쯤 꽃이 피고 지는 것까지 돋보기로 들여다보며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

다. 꽃은 지더라도 알뿌리는 계속 살아서 6, 7월이 되면 새끼 알뿌리를 볼 수 있고, 가을에 새끼 알뿌리를 땅에 묻으면 다음 해에 꽃이 핀다. 봄이 오면 학교 마당 한쪽에 수선화 히아신스 무스카리 꽃대가 올라와 꽃을 피우는 알뿌리 꽃밭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해마다 알뿌리 꽃밭에 제일 예쁘게 피는 꽃이 크로커스다. 교사랑 하루 열기를 할 때쯤은 꽃잎을 오므리고 있다가 1교시, 2 교시, 3교시 끝나고 가서 볼 때마다 꽃잎을 예쁘게 벌린 모습에 아이들은 감 탄한다. “신기하다. 아까는 꽃잎을 오므리고 있었는데 여기 앉아서 꽃잎 벌어지는 거 보고 싶다.” “오늘은 추운데 꽃이 춥겠어. 해님이 구름에 가려서.” “꽃잎이 공주 옷 같아.” 아이들이 꽃이 예쁘다고 하니, 여기저기서 다른 아이들도 “나도 볼 거야” 하며 꽃밭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공동육아 통권 110호


나눔

교육

086

관찰 일기 1

이새나 | 3학년

2013년

히야신스 잎은 얇은 줄이 여러 개가 그어져

3월 12일

있고 끝이 뾰족하다. 알뿌리는 양파같이 생겼다. 색은 밑에서 올라갈수록 연해진다. 잎 안에 조그마게 올라오는 꽃봉오리가 있다. 그런데 위에만 보여 그릴 때는 안 보였다. 꽃봉오리는 작은 꽃봉오리가 따닥따닥 붙어 있다.

2

2013년

히야신스 잎이 전보다 더 많이 컸다.

3월 19일

봉오리도 더 오므라들었고, 꽃이 피려면 아직 먼 거 같다. 예쁜 꽃을 빨리 보고 싶다.

3

2013년

히야신스 잎이 전보다 더 티 나게 컸다.

3월 27일

잎이 하나 더 났다. 봉오리에 꽃 색깔(연보라)이 나왔다. 알뿌리 껍질이 버껴졌다.

4

2013년

히야신스 꽃이 폈다. 살 때는 꽃 색이 연보라라고

4월 2일

했는데 보라색 같다. 다른 사람들은 꽃이 안에서 폈다고 신기해하는데 나는 안에서 팔게 별로 안 신기했다. 꽃이 펴서 좋다.

5

2013년

히야신스 잎 끝이 누렇게 시들었다.

4월 9일

히야신스 꽃대가 많이 올라왔다. 암술 수술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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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리디아가 꽃밭 만들 계획을 세운 것이 대단해.” “옥상에 꽃밭이 완성되었을 때 나도 너무 좋았어." “책에 꽃 그림이 많아서 기분이 좋았어.”

아이들과 꽃이 함께 자란다

3월 말에는 말과글 시간에 아이들과 그림책 《리디아의 정원》을 보았다.

087

꽃밭은 이렇게 만 들고 싶어

“리디아가 외삼촌 집에 가 있을 때는 걱정도 되었지만, 외삼촌을 웃게 만들 었고, 다시 할머니에게 돌아와서 행복했을 거야. 리디아는 밝고 예뻐. 꽃을 좋 아하고 의지도 강해.” “채송화도 옛날에는 이 책을 보고 꿈을 꾸었어. 아파트 베란다가 꽃으로 가 득 차 있으면 좋겠어, 하고 말이야.” “산학교가 처음 이곳으로 이사 왔을 때는 사막 같고 텅텅 빈 것 같았어. 지 난해 꽃밭 사진은 색이 달라. 꽉 차 있고, 평화롭고, 꽃이 있어. 곤충들이 많아 서 좋아.”

아이들이 만들고 싶은 꽃밭 모양을 그림으로 그려 보았다.

공동육아 통권 110호


나눔

교육

088

《리디아의 정원》에 나오는 삼촌이 꽃밭을 보며 활짝 웃듯이 내가 사는 곳, 아이들이 있는 산학교에도 이렇게 꽃밭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산학교 꽃밭을 보고 모두 행복해하면 좋겠다고 상상하면 꽃밭 수업 시간이 즐거웠다. 어디에 꽃밭을 만들까? 마당 한 켠을 아이들과 둘러보다 학교 담벼락 밑으 로 정했다. “얘들아, 어떻게 꽃밭을 만들까? “가운데는 연못이 있었으면 좋겠어." “연못에는 가시고기, 붕어, 물풀 들을 키우고 싶어.” “둘레에는 돌로 울타리를 만들어 줄 거야.” “분꽃, 봉숭아, 국화, 패랭이꽃, 넝쿨 들을 심고 싶어.” 아이들의 바람대로 아빠들이 일요일 학교에 와서 꽃밭 가운데 연못을 팠 다. 물길을 만들어 물을 채우고 놔두었다. 아이들은 이곳에 꽃밭 만들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새 싹 들 아, 빨 리 나오렴

2008년

4월, 따뜻한 날이 되어 버드나무 물오르고, 봄맞이 꽃다지 민들레 목련 개나

리 진달래가 필 때 아이들과 씨뿌리기를 준비했다. 가장 중요한 건 좋은 흙을 만드는 일이다. 꽃밭 수업을 도와줄 아침햇살 선생님은 화원에서 분갈이 흙 과 연탄재, 씨앗 그리고 화분을 아이들 수만큼 준비했다. “얘들아, 씨앗이 싹을 틔워 우리가 새싹을 보려면 무엇이 있어야 할까?” “흙이 있어야 하고, 햇볕이 있어야 해.” “흙은 어떤 흙이어야 할까?” “보들보들해야 해.” “맞아, 흙이 보들보들해야 한다는 건 딱딱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지. 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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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현 | 3학년

엄마가 된다는 거야. 너희가 잘 크려면 엄마 아빠가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잘 보살펴

새싹들아 빨리 나오렴. 꾸물대지 말고 바깥세상 구경하러 오렴. (2008. 4. 15.)

주어야 하듯이 꽃도 너희가 도와줘야 해.”

아이들과 꽃이 함께 자란다

한 좋은 흙을 만들어 준다는 건 너희가 꽃

089

딱하면 새싹이 나오기 힘들잖아. 보들보들

“알았어.” “아침햇살, 바람도 불고 비도 와야 해.” “맞아, 그리고 또 필요한 게 있어, 뭘까?” “기도야. 물주면서 ‘새싹아, 얼른 나오렴’ 하고 기도하면 새싹이 ‘종은아, 반 가워’ 하고 나올 거야.” “진짜? 그럼 기도해야겠네.” 정말 아이들은 간절하게 기도했다. 꽃씨를 뿌리고 나면 수업 시간이 아니어 도 날마다 학교에 오면 자기 화분부터 들여다보았다. 싹이 올라오는 옆 친구 화분을 보며 부러워하고, “내 화분에 싹은 언제 나와?” “내 것은 왜 안 나와? 혹시 죽은 거 아니야?”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싹이 나오면 “채송화, 내 것도 나왔어. 정말 좋아, 그리고 진짜 귀여워” 하며 좋아했다.

떡잎은 조금만 자라면 죽 는다

2010년

5월, 돋보기 들고 떡잎 관찰하는 시간이다. 아이들

은 자기 화분을 들고 평상 위로 올라가서 삼삼오 오 짝을 이뤄 돋보기로 들여다보았다. 떡잎이 몇 장인지, 무슨 색인지, 떡잎 말고 새롭게 나오는 잎은 없는지, 다른 친구들 것도 같이 보면서 그 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공동육아 통권 1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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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090

최연서 | 3학년

박서영 | 3학년

내 화분에 크고 동그란 싹과 길쭉한

싹이 열 개 났다.

싹과 아주 작고 동글동글한 싹이 있다.

떡잎은 조금만 자라면 죽는다.

내 화분에 서른 한 개의 싹이 있다.

본 잎이 나오고 있다.

이제 싹이 건강하게 자랐으니

(2010. 5. 4.)

꽃도 건강하게 자라길……. (2010. 5. 4.)

민들레 잎은 쪼족쪼족해

2008년

채송화

얘들아, 민들레 한번 자세히 봐

볼래? 어떻게 생겼니? 의림

잎이 수십 개가 넘는 것 같아. 민

들레를 잡고 돌리면 팽이 같아. 은석

민들레는 노란색이고 꽃받침이

있는데 연한 검정색이야. 수술 끝이 말 려 있고 잎 모양이 뾰족해. 가연

잎은 초록이나 연두색이고 모양

은 화살표가 여러 개 겹친 모양이야. 꽃 잎 하나하나마다 암술, 수술, 꽃잎, 꽃 받침을 갖고 있어. 모여앉아 꽃 그림을 그린다.

도혜

잎을 잘 보면 암술, 수술이 있고,

잎에 그물이 있고 쪼족쪼족해.

화분에서 본 잎이 네다섯 장 나올 때까지는 학교 둘레 들꽃을 관찰했다. 꽃 들이 수없이 많이 있다. 두루두루 돌아다니며 토끼풀을 뜯어 반지와 시계를


교육 나눔

만들고, 질경이에서 실을 뽑아내고, 돋보기로 가랑잎에 햇볕을 모으고, 꽃을

091

따서 꽃다발을 만들고, 달팽이를 잡아 통에 넣기도 했다. 아이들은 종이에 그

아이들과 꽃이 함께 자란다

림을 그리고 시를 썼다.

금낭화

김도혜 | 3학년

금낭화는 예쁜 방울 같고 바람결에 흔들리는 종이다. 꽃밭에 금낭화가 꽃들과 함께 꽃을 피웠다. 바람에 흔들리면 잎이 그네를 타고 꽃들이 줄타기를 한다. 정말 재밌어 보인다. (2008. 5. 21.)

민들레

박서영 | 3학년

민들레야, 민들레야 너는 참 아름답구나. 미안해.

2학년 때 내가 민들레꽃 따가지고 “미안해” 하는 거야. (2010. 4. 30.)

냉이꽃

김단 | 3학년

냉이를 텃밭에서 보았다. 냉이를 뽑고 또 뽑았다. 뿌리가 엄청 길었다. 냉이 냄새가 향긋하고 좋았다. 지후가 냉이꽃이 있다고 했다. 이파리들도 파랗게 되어 있었다. 예뻤다. 다 캔 다음에 손 냄새를 맡았는데 냉이 냄새가 났다. 좋았다. 옆에 있는 꽃밭을 봤다. 갑자기 완전한 봄으로 바뀐 것 같았다. (2010. 3. 5.)

공동육아 통권 1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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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092

채송화 는 보석을 뿌려 놓은 것 같 아

2008년

5월 초, 날씨가 갑자기 더워졌을 때 산학교 마당과 둘레에는 꽃들이 풍성했

다. 아침에 아침햇살 선생님과 꽃밭에 모였다. 아침햇살은 학교 문을 들어서 며 영산홍, 튤립나무, 사철나무, 잣나무, 수수꽃다리, 자목련, 단풍나무, 느티 나무, 벚나무, 개나리, 회양목, 주목나무를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이들에 얽힌 이야기를 해 줬다. 며느리주머니처럼 생겼다고 해서 며느리주머니꽃이라고도 하는 금낭화, 마디가 끈끈하고 대나무 마디처럼 생겼다고 해서 끈끈이대나물, 꽃대가 돌돌 말려 피는 꽃마리, 꽃이 지고 나면 할머니 머리처럼 하얗게 되는 할미꽃……. 꽃밭은 이야기가 풍성하다. 더구나 자기가 심은 꽃에 얽힌 이야기는 아이들이 가장 좋아한다. 봉숭아가 붉은색, 자주색, 분홍색, 흰색이 있고, 천일홍 꽃 속 에 금빛 보석이 들어 있고, 키 작은 채송화가 마치 보석을 뿌려 놓은 것 같다는 아이들 이야기에 아침햇살 선생님은 채송화에 얽힌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아이들은 이날 들은 모란과 작약 이야기를 오랫동안 기억했다. 학교에서 들 은 이야기를 집에 가서 엄마에게 들려주기도 했다. 동하 어머니는 이야기를 듣 고 “우리 동하가 시골에 갔는데, 할머니 집 마당에 있는 꽃과 나무를 잘 알고 설명해 주어서 너무 놀랐어요. 이렇게나 많이 알고 있었는지……” 했다.

꽃모종을 합시다

2010년

비가 촉촉 오네요. 꽃모종을 합시다. // 삿갓 쓰고 아기들 / 집집마다 다녀요. // 장독 옆에 뜰 앞에 / 알록달록 각색 꽃 // 곱게 곱게 피면은 / 온 집안이 환해요. //

5월, 교실에서 권태응의 시 ‘꽃모종’을 읊었다.

“채송화, 아기들이 삿갓 썼다는 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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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 아이들과 꽃이 함께 자란다

꽃모종을 하고 있다.

“글쎄, 아이들이 왜 삿갓을 썼지?” “어린잎을 삿갓이라고 한 거 아니야?” “비가 오니까, 우산을 말하는 거 아니야?” “아기들이 우산을 어떻게 쓰냐? 어린 떡잎들이야.” “채송화, 비 오는 소리를 왜 촉촉이라고 해?” “왜, 촉촉이라고 했을까? 그런데 ‘촉촉’ 하고 말하면 어때?" “마르지 않아서 좋은 것 같아. 비가 촉촉이 젖으니까 그렇게 표현한 거 아 니야?” “땅이 촉촉해야 구멍을 낼 수 있잖아.” “그래, 비 오는 소리보다는 마른 땅이 촉촉이 젖는 모습을 표현한 것 같아.” 아이들은 꽃삽과 호미, 물뿌리개를 들고 “꽃모종을 합시다! 꽃모종을 합시 다!” 합창하며 마당으로 모였다. 해바라기, 코스모스, 봉숭아, 과꽃, 분꽃, 채 송화 모종을 놓고 꽃밭에 어떻게 옮겨 심을까? 물으니, 아이들은 “키가 큰 해 바라기와 코스모스는 뒤에다 심어요, 맨 앞에는 키 작은 채송화 심어요, 가운 데는 분꽃과 봉숭아, 과꽃을 심어요” 했다. 그리고는 저마다 심고 싶은 모종 을 하나씩 골랐다. 물은 서로 떠 오겠다고 나서고, 호미로 자기가 심을 자리에 공동육아 통권 110호


나눔

교육

094

구멍을 팠다. “물 부어 주세요!” “물 당번 갑니다. 기다리세요” 하며 구멍마다 물을 흠뻑 부어 주었다. 물이 스며들 때쯤 아이들은 모종을 넣고 흙으로 덮어 주었다. “우리 모두 꽃에게 잘 자라라고 이야기 해 주자.” “봉숭아야, 잘 자라. 내가 날마다 보살펴 줄게.” “채송화야, 예쁜 꽃 피워.” 씨앗 뿌릴 때와 같은 마음으로, 아이들은 화분에서 땅으로 옮겨 간 꽃들이 뿌리를 잘 내리고 꽃을 피우기를 기도했다.

풀 뽑으며 놀며

2008년

하지가 다가올수록 낮은 길어지고, 장마가 시작되면 나뭇잎은 짙푸른 색으로 바뀌고,

주제 학습

꽃밭과 텃밭은 풀과 함께 자란다. 꽃모종한

이기현 | 3학년

봉숭아, 분꽃, 메리골드, 코스모스 들이 풀

오늘 주제 학습 시간에

속에 묻혀 보이지 않기도 한다. 뜨거운 햇볕 이 내리쬐는 날, 아이들과 풀 뽑는 건 쉽지 않다. 아이들에게 풀 50포기 뽑기, 100포기 뽑기 숙제를 내 주면 풀은 조금 뽑고 여기저 기 모여 이야기하고 논다. 풀을 많이 뽑으면

풀을 뽑았다. 영차 영차 내가 어떤 풀을 뽑았는데 뿌리가 7cm만 한 풀을 뽑았다. 재미있었다. 또 뽑았는데 달팽이를 잡았다. 시도 썼다. “달달 달팽이 집을 지고 가는 달팽이

꽃밭이 정리되는 것 같아서, 노는 건 게으름

풀잎으로 가는 달팽이

피우는 거라고 생각해서 아이들에게 놀지

(2008. 6. 18)

모라러 가니?”

말고 뽑으라고 닦달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몇 해를 겪어 보면서 아이들은 일하면서 노는 게 자연스럽다는 것을 알게 되었 다. 질경이를 뜯어 풀싸움도 하고, 토끼풀로 시계도 만들며 놀다가 끝날 때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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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말이 되면 이제 꽃밭에 나갈 수 없을 만큼 덥다. 비도 자주 오고. 1학기 수

아이들과 꽃이 함께 자란다

꽃 밭 을 보면 마 음 이 편 해 져

095

20포기씩만 뽑고 교실로 들어가자고 하면 잘 따라 주었다.

업은 꽃 그림 책을 완성하면서 마무리된다. “꽃을 키우는 게 재밌었어, 난 전에는 동물 키우는 걸 좋아했는데 식물도 키울 수 있다는 걸 알았어.” “꽃밭을 보면 뿌듯해.” “난 꽃밭을 보면 마음이 편해져.” 아이들은 둘러앉아 서로 느낌을 나누고, 자신의 시와 그림을 보고 낄낄거리 며 웃기도 하고, 내가 이렇게 잘 그렸어 하며 교사에게 보여 주기도 했다. 아이 들은 자신만의 그림책을 만들고 글도 썼다.

김세연 | 3학년 꽃 그림 공책을 만들었다.

꽃과 식물을 관찰하면서 난 처음에 꽃을 막 그냥 따고 놀았는데 꽃밭 수업 때 깨달은 게 하나 있어요. 바로 꽃도 나처럼 말할 수 있고, 들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꽃을 그린 관찰 일지를 책으로 만들어 내니 뿌듯하고 내가 그린 그림을 보니 정말 잘한 것 같다. 내가 만든 꽃 그림책을 대충대충 보지 말고 천천히 봐 줬으면 좋겠다. (2008. 7. 2.)

공동육아 통권 1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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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096

꽃밭 뒤에 숨은 아이들 이야기

2013년

7월, 한 학기가 끝나면서 아이들은 수업 발표회를 준비했다. 어떤 수업을 어떻

게 발표할지 함께 이야기하고 준비하면서 한 학기 수업을 마무리했다. 3학년 아이들은 꽃밭 가꾸기 수업에서 있었던 일화를 발표하기로 했다. 아이들은 저마다 꽃밭 수업 중에서 가장 기억나는 일을 이야기했다. 충일이 가 알뿌리 식물을 키우다가 실수로 흙이 쏟아져서 속상했던 일을 얘기하자 너 도 나도 흙이 쏟아진 경험을 소리 높여 이야기했다. 수영이는 꽃 싹을 키우면 서 옆에 난 풀을 뽑았는데 알고 보니 애지중지 키우던 게 풀이고 뽑아 버린 게 꽃 싹이었다는 웃지 못할 사연을 얘기했다. 새나는 채송화, 봉숭아, 해바라기 들을 꽃밭으로 모종할 때 새로운 흙에 적응하느라 축 늘어져 있던 모습이 기 억나는 모양이다. 남자아이들은 꽃밭 풀을 뽑으며 누가 더 많이 뽑나 경쟁한 일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듯 흥분해서 이야기했다. 꽃밭 수업을 도대체 어떻 게 발표한다는 건지 걱정이 앞서던 교사도 어느새 아이들의 생생한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아이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뉴스와 콩트로 꾸몄다. 아이들은 화분 흙을 누 가 쏟았는지 밝히기 위해 목격자 진술을 확보하기도 하고, 수영이가 꽃 싹을 뽑아 버리고 좌절하는 장면에서 텔레비전 프로그램 <인간극장> 배경 음악을 부르며 즐겁게 연습했다. 꽃 그림을 세밀하게 잘 그리던 지우는 <달인>에 나오 는 꽃 그림의 달인으로 분장하여 우리를 많이 웃겼다. 꽃씨를 심던 날 낭송한 시 ‘꽃씨’, 아이들과 자주 듣고 부르던 노래 ‘꽃은 참 예쁘다’도 함께 불렀다. 산 학교 식구들은 7월의 화려한 꽃밭 뒤에 숨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 었고 많은 박수를 보냈다. 수업 발표회가 끝나고 아이들은 저마다 느낌을 얘기했다. “연기할 때 조금 창피했어.” “준비할 때 연기하는 게 재미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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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할 때보다 못한 것 같아서 아쉬워.”

097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왔고 나만 쳐다보는 것 같아서 힘들었어.”

아이들과 꽃이 함께 자란다

“대사 외울 때 힘들었는데 애들이 도와줘서 고마웠어.” “다들 연습할 때보다 목소리 크게 잘한 것 같아.” “연습을 엄청 많이 했는데 한 번 만에 끝나 버려서 허무했어.” “준비는 힘들었지만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해서 뿌듯했어.” 많은 사람들 앞에서 큰 소리로 발표하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어렵고 긴장되 는 일이다. 아이들은 대본을 몇 번이나 읽어 보고 외우고 연습했다. 교사의 수 업 이야기가 아닌 아이들이 몸과 마음으로 경험한 꽃밭 이야기였기에 더 즐겁 고 열정을 담아 준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무당거미가 궁 금해 3~4년 전에는 산학교 꽃밭에 다양한 꽃들이 있었다. 가을엔 벌개미취, 과

꽃, 구절초, 천일홍, 해국 같은 꽃이 가득 피었다. 그래서 2학기에도 학교 곳곳 에 있는 꽃과 나무 들을 관찰하고,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면서 꽃밭과 텃밭 수 업을 갈무리했다. 그러나 이제는 쑥과 토끼풀처럼 땅으로 번식해 오는 풀 때문 에 이전에 하던 대로 수업을 이어 가기가 어려워 2013년부터는 2학기 꽃밭 수 업 구성을 달리 했다. 교사가 이끌지 않고 꽃밭과 텃밭에서 아이들의 관심이 나 흥미를 쫓아가는 수업을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오랜 기간 농약이나 제초제 따위를 쓰지 않은 덕분에 온갖 풀들이 무성해져 산학교 텃밭과 꽃밭은 지렁이 땅이 되었고, 메뚜기 방아깨비 무당거미 달팽이 잠자리 들의 좋은 서식처가 되 어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아이들은 삼삼오오 자연스럽게 짝을 이뤄 학교 둘레에 있는 곤충, 꽃, 나무, 흙 따위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물론, 어떤 것을 관 찰할지 결정하지 못한 아이들은 마당을 돌아다니기도 했지만 시간이 조금 지 공동육아 통권 1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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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098

나자 무당거미를 잡아 흥분한 친구들 둘레에서 함께 관찰하고 있기도 했다. 마당으로 나온 아이들과 교사들은 서로 묻고 답한다. 백과사전식의 정답 이 아니라 아이들이 경험한 것과 상상력으로 대답한다. 때로는 아이들이 교 사다. 교사들도 아이들에게 묻는다. 첫 수업을 마무리하는 시간, 아이들에 게 오늘 수업이 어땠냐고 물었다. 자신들이 관찰한 것에 할 말이 많은지 수다 가 끊이질 않았다. 9월 한 달은 이렇게 아이들이 관찰하고 알게 된 것, 궁금한 것, 나누고 싶은 것들을 따라가는 수업을 하며 아이들의 흐름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생활 교사 자연은 일기에 이렇게 썼다.

목요일 수업 시간, 마당으로 나온 아이들은 신이 났다. 돋보기 하나씩 목에 걸고 두세 명씩 모여 꽃밭과 텃밭 사이를 뛰어다닌다. 곧이어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려 가 보니 준이와 지우가 엄청 큰 거미를 잡아서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채집통을 미처 준비해 오지 못한 아이들은 재활용 통에서 페트병과 비닐을 집어 와 즉석으 로 만들어 거미 옮기기에 성공했다. 숨을 못 쉴까 구멍도 뻥뻥 뚫어 준다. 준이는 이내 나비를 잡겠노라고 뛰어가고 지우는 교실에 들어와 거미를 관찰한다. 아이 들은 노란색과 검정색 줄무늬가 있어 호랑거미라고 부르는데, 지우는 진짜 이름 이 뭔지 알아보겠다며 곤충 도감을 뒤져 본다. 잠시 후, 아이들이 준 해바라기 씨 를 까먹고 있는데, “무당거미다!” 멀리서 들려오는 지우 목소리에 절로 웃음이 난다. (2013. 9. 5.)

아이들마다 관찰한 대상이 무엇인지 나누기 위해 목요일에는 발표 시간을 마련했다. 무언가 열심히 그리고 쓴 아이들 공책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아침 부터 공책을 보여 주고 싶어 흥분해 있던 지우는 가장 먼저 손을 들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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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우 | 3학년

아이들과 꽃이 함께 자란다

무당거미

무당거미 다리의 털까지 자세히 그린 그림에 아이들 모두 감탄했다. “거미는 어떻게 집을 마음대로 다닐까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거미는 발에 기름 같은 게 나와서 거미줄에 안 걸린대.” 지우가 하는 말에 신기해하고 있을 때 시연이가 말했다. “그거 말고 또 있어. 거미줄에 세로로 있는 데는 거미만 알고 있어서 다른 곤충들은 왔다갔다 못 하는 거야.” “근데 거미는 곤충이야?” “아니야. 다리가 여덟 개잖아.” “맞아. 곤충은 다리가 여섯 개고 머리 가슴 배가 있는데 거미는 몸통밖에 없잖아.” “그럼 거미는 뭐야?” “절지동물.” “절지동물?” “응. 거미는 절지동물이야. 지네처럼 다리가 많은 거.” 공동육아 통권 110호


나눔

교육

100

아이들의 수다를 흥미진진하게 듣다가 “얘들아, 절지동물이 무슨 뜻이 야?” 하고 물었다. 다리가 많으면 절지동물인 건지, 절지가 무슨 뜻인지 궁금 해졌다. 다음 주까지 찾아보기로 했다. 아이들의 발표가 이어졌다. 해바라기 씨를 맛보고 관찰한 민정이, 학교에서 관찰한 곤충을 주인공으로 만화를 그 린 수영, 새나, 보윤이, 모래장에서 자동차 바퀴 밑에 자란 식물을 발견하고 정체가 뭘까 궁금했다는 창윤이, 아주 작은 달팽이를 관찰해서 그리다가 어 려워서 메리골드 꽃을 관찰했다는 은결이, 방아깨비를 잡았는데 숨을 못 쉬 고 힘들어해서 관찰을 못하고 풀어 주었다는 시연이, 아영이. 아이들 이야기 를 들으니 마냥 노는 것 같았던 아이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연을 만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꽃과 함께 자라는 아이들

03

꽃밭으로 1년의 흐름을 이어 가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좋은 흙을 만 들고, 작은 씨앗에서 싹이 트고, 떡잎이 자라고, 본 잎이 나오면서 꽃잎을 피우 는 시기까지 하나도 새롭지 않은 것은 없다. 이 과정은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 는 과정이다. 아이들은 자기 화분에서 그것들을 오롯이 다 볼 수 있었고, 날마 다 들여다보고 기다리며 신기해하고 기뻐했다. 또한 2학기에는 수업을 달리하 며 아이들의 호기심대로 따라가려고 하고 있다. 그 안에서 서로에게 묻고 대 답하면서 배워 가기를 바라고, 아주 자유로운 시간이지만 책임감을 갖고 탐구 하는 즐거움을 찾기 바란다. 교사들도 산학교에 들어오기 전에는 풀 한 포기에도 관심이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꽃을 들여다볼 때 같이 들여다보고, 아이들의 말과 글, 그림


교육 나눔

에 감탄하면서 산학교 꽃밭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느끼고, 그곳에서 아이들은

101

자라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침마다 꽃밭에 물을 주고, 싹이 잘 자라도록

아이들과 꽃이 함께 자란다

울타리를 만들어 주고, 돋보기를 들고 다니면서 여기저기 들여다보았다. “얘들아, 민들레 씨 들여다봐, 어때?” “투명 유리구슬 같아.” “고마리꽃은 보석 같아.” 우와! 소리를 잇달아 내며, 아이들에게 그런 신기한 것을 보여 준다는 게 나 름 뿌듯하고, 어린 시절에 못 한 것들을 아이들 삶 속에서 함께하며 살아가는 데 큰 기쁨을 느낀다. 꽃 화분 앞에 앉아 소꿉놀이하는 아이들, 물주는 아이들, 꽃 그림 그리는 아이들, 시를 쓰는 아이들 모습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다. 아이들 과 꽃이 함께 자란다. 그 옆에서 어른들도 덤으로 자란다.

꽃 화분 앞에 앉아 소꿉놀이하는 아이들, 물주는 아이들, 꽃 그림 그리는 아이들, 시를 쓰는 아이들 모습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다. 아이들과 꽃이 함께 자란다. 그 옆에서 어른들도 덤으로 자란다. 공동육아 통권 110호


날적이

102

이건 돌이에요, 여기 놓고 가세요

2005년 12월 6일 (28개월) 집에서

몸을 가지고 노는 재미를 발견했나 봐요

잠자리에 누운 재현이와 엄마 재현

거~억!

엄마

키키키

거억 했대요.

재현

깔깔깔

엄마, 또 해 볼까?

엄마

어.

재현

하나 둘 셋, !

엄마

히히히.

재현

깔깔깔

. 또 해 볼까?

재현이

재현이의 날적이입니다. 재현이는 19개월부터 일곱 살까지인 2005년 3월부터 2010년 2월까지 신촌 우리어린이집에서 자랐습니다.


날적이

엄마 재현

! 깔깔깔

. 또 해 볼까?(세 번 반복)

아니, 이제 그만! ! 또 해 볼까?(세 번 반복)

자기 몸을 가지고 노는 재미를 발견했나 봐요. 방귀 끼는 것으로

이건 돌이에요, 여기 놓고 가세요

재현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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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몇 번 장난을 치기도 했는데, 며칠 전에는 설거지하는 엄마 뒤로 와서는 엉덩이에 손을 대고 “똥침!” 그러더군요. 집에서 들은 적 은 없는 말이었는데 아마 터전에서 본 듯해요. 사람의 몸에 관심 을 가지는 걸 보면 이 녀석들도 슬슬 자기 몸의 소중함에 대해 알 려 줄 시기가 된 건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2006년 12월 12일 (40개월) 터전에서

이건 돌이에요, 여기 놓고 가세요

재현

이거 봐요. 발자국이에요.

동규맘

누구 발자국? 나도 발자국 만들 수 있다. 이거 봐, 꽝!

생각보다 진하게 안 됐다. 동규맘

이건 누구 발자국일까? 혹시 도둑?

재현

우리 엄마 발자국.

동규맘

재현이 엄마 무거운가 보다. 발자국이 이렇게 진하게 나 오다니

.

재현

아니야.

동규맘

재현이 엄마가 뚱뚱해서 발자국이 이렇게 크고 진하게 난 거 아니야?

재현

아니야.

동규맘

그럼 재현이 엄마 날씬해?

재현이는 “네” 하며 발자국을 없앤다. 재현이의 엄마 사랑 확인! 공동육아 통권 110호


날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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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놀이 하다가 조금 일찍 은정이와 먼저 실내로 들어왔다. 옷 을 벗으며, 재현

동규 엄마도 이런 거 있어요?

동규맘

뭐?

재현

스파이더맨 양말.

동규맘

없는데

재현

그럼 내가 하나 사 줄게요.

동규맘

정말?

재현

네, 이따 우리 엄마 오면 말해서 사 줄게요.

.

은정이와 블록으로 작은 아이스크림 가게를 차렸다. 은정, 재현

아이스크림 사세요!

동규맘

와! 이건 무슨 맛이에요?

재현

초코 맛이요.

은정

빼빼로 맛이요.

동규맘

맛있겠다. 두 개 다 주세요.

맛있게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재현

다 먹었으면 이제 주세요.

동규맘

왜요? 다 먹었는데 어떻게 줘요?

재현

이건 돌이에요. 딱딱한 돌(벽돌 블록). 여기 놓고 가세요.

아이들 앞에서 벽돌블록 을 맛있게 먹으려고 연 기한 내가 참

.

* 은정이는 네 살(38개월)로 재현이와 같은 방(옹글도글) 친구다.


날적이

방 안에서 찾은 걸 보면 재현이가 날적이를 다시 가방 안에 넣어 두었나 봐요. 일주일쯤 전에 식구 모두 가양동 홈플러스에 갔는데, 아빠랑 재현이가 작당해서 프라모델 로봇을 샀어요. 트럭도 되었다가 비 행기도 되었다가 이리저리 조립하면 새로운 모양이 되지요. 어릴

이건 돌이에요, 여기 놓고 가세요

한 가지에 집중하면 여간해선 손에서 놓으려 하지 않네요

동규 엄마가 아마 하셨나 보네요. 날적이를 분명 가져갔는데,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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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적 아빠가 프라모델 광팬이어서 무언가 조립하고 있으면 밥도 굶 으면서 집중했다는데, 재현이도 일단 조립 모드에 들어가면 여간 해선 손에서 놓으려 하지 않네요. 아이들이 다 그런 건지 원. 이리저리 조립하고 나서는 “멋지지?” 하면서 자랑하는데 로봇 에 대해 별로 감정이 안 좋은 엄마인지라 적극적으로 칭찬해 줘야 하는 건지 헷갈리네요. 남자아이들의 놀잇감에 대해서 어떻게 바 라볼 것인지, 얘기 나눌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2006년 12월 13일 터전에서

좋아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건 좋은 자산 이에요

아이들이 다 그런 건 아닐걸요?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건 좋은 자산인 것 같아요. 재현이는 조립뿐만 아니라 어떤 놀이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고도로 집중하지요. 자기 안 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갖고 있다는 게 어쩌면 당연한 것 같지만 사 실 안 그런 경우도 많아요. 오늘은 살금이들과 소근이들이랑 함께 성미산에 갔어요. 살 금이 형님들이 여우 굴 탐험을 간다고 해서 옹글도글은 안 가 본 새로운 성미산 길로 접어들어 돌 계곡이 나오고

미끄럼을 타

고 내려가야 하는 길이 나오자 재현이 주춤. 무서워하는 옹글이 들과 여우 굴 안 보러 가는 팀에 남더구먼요. 그리고 돌아오는 길, 별님과 손잡고 오면서 “별님 내가 지켜 줄게” 하네요. 공동육아 통권 110호


학교 이야기

지역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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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오늘 맛있는 거 나왔다요! “선생님 오늘 맛있는 거 나왔다요! 정말이에요. 얼른 내려가자요.” 1학년 꼬맹이가 흘린 특급 정보다.

“뭔데?” 반짝 눈을 빛내며 묻는다. “생선가스요, 진짜 맛있는 거예요.” 혹시 내가 안 믿으면 어떻게 하나, 내가 안 끌려오면 어떻게 하나 걱정스러 웠는지 제가 가진 마지막 특급 정보까지 다 흘린다. “진짜?”

성태숙 구로파랑새나눔터 지역아동센터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지역공동체

. 아무래도 흔치 않은

일이다. 순간 나는 아이 손을 잡고 펄쩍펄쩍 뛰기 시작했다.

학교 이야기

대박이다. 돈가스만 해도 좋은데 생선가스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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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예요. 진짜 생선가스예요.”

“와! 생선가스다! 앗싸, 생선가스!” 너무도 기쁘다는 표현으로 뱅글뱅글 맴까지 돌며 소리를 지른다. 그리고는 얼른 아이가 이끄는 대로 아래층 식당으로 내려간다. “그런데 생선가스 한 사람이 한 개씩밖에 못 먹는데요. 그러니까 선생님은 두 개 먹으라요.” “그래? 한 사람이 한 개씩밖에 못 먹는데 그럼 나도 한 개만 먹어야지.” “안 돼요. 선생님 거니까 선생님이 두 개 먹어요. 알았죠? 꼭 두 개 먹어야 돼요!” 처음에는 맛단지 샘에게 정말 아이들에게 그렇게 하나만 먹으라고 정해 주 셨느냐, 따져 물을 마음이었다. 아이들이 뻔히 좋아할 줄 알면 좀 넉넉히 준비 해서 먹고 싶은 아이들은 충분히 먹을 수 있도록 하면 좋지 않겠느냐, 하고 생 각이 모자란다고 타박을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아이들 하나하나 꼼 꼼하게 밥 먹는 것을 챙기지 못하는 바에야 뭐라 멋대로 이야기하는 것이 옳 지 않다는 생각에 금방 그만두어 버렸다. 그분도 생각이 있어서 그리 한 것일 텐데 아이들 앞에서 “선생님, 정말 생선가스 하나만 먹으라고 했어요?” 하고 체면 구기는 말로 궁지에 몰아세울 일이 아니다 싶었다. 일단 따르자. 따르는 게 옳다 싶었다. 실은 금방 밖에서 손님을 만나고 오면서 같이 조금 뭘 먹고 온 탓에 배가 넉

나는 “생선가스를 하나만 먹으라고 했어요?” 하고 따져 물을 것이 뻔하고, 선 생님은 두 개를 먹어도 된다는 아이 말에도 “그래? 그럼 나 두 개 먹어도 돼? 고마워!” 하고 날름 ‘나 좋으면 그만이다’란 식으로 받아먹었을지도 모르는 위

선생님! 오늘 맛있는 거 나왔다요!

넉했던 것이 더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진짜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지 않았으면

공동육아 통권 110호


학교 이야기

지역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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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이다. 제 배가 부르니 마치 인격이라도 있는 것처럼 나도 규칙을 지킨다 하지 만 다 그냥 배가 부른 탓에 나온 여유인 줄은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안다. 원래는 저녁을 먹지 말까 고민하던 참이었다. 어젯밤에는 진짜 채식을 해 볼까도 살짝 고민 중이었다. 그런데 1학년 꼬마가 제일 기쁜 일 가운데 하나를 알려 주는데 어찌 덤덤하게 “그래? 맛있겠구나, 선생님은 됐으니 가서 많이 먹 어. 아무튼 말해 줘서 고마워” 하고 돌려보낼 수 있으랴 싶었다. 그래도 기쁜 일, 좋은 일, 행복한 일이라고 이렇게 맨 먼저 달려와 알려 주는데 성의를 안다 면 그러면 안 된다 싶었다. 그래서 손을 잡고 펄쩍펄쩍 뛰기까지 했다. 제가 날 얼마나 기쁘게 만들었는지를 황홀하게 지켜본 아이는 그래 내친김 이다 싶었던지 큰맘 먹고 생선가스를 하나 더 먹으라고까지 해 버렸다. 원래는 하나밖에 못 먹는 건데 저리 좋아하니 특별히 두 개를 먹으라는 것이다. 가만 보면 교사들은 아이들한테처럼 뭐는 꼭 먹어야 되고, 뭐는 이만큼만 먹어야 되고 하는 엄격한 잣대가 적용되지도 않는 것처럼 보이니 그래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였는지도 모른다.

급식비는 한 끼에 기껏 4천 원이다 센터의 좀 큰 아이들은 우리가 급식을 어떻게 준비하는지 잘 이해하고 있다. 서울시와 구로구에서 절반씩 급식비를 지원해 한 끼마다 4천 원을 받고 있다 는 사실을 낱낱이 일러 준 탓이다. 한 끼에 4천 원이면 제대로 된 음식 한 그릇 사 먹기에도 좀 모자라는 돈이다. 하지만 여럿이 내는 돈을 모아 장을 보면 그 돈으로 친환경 식재료를 사서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그러니 이 급식 은 실은 이 아이들의 것이지, 절대 내 것이라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얻어먹는 사


지역공동체

곳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급식을 두고 탈도 많아서 급식 비리를 잡겠다고 식

학교 이야기

어쨌든 그래서 일부 지자체에서는 교사들이 급식 먹는 것을 엄격히 금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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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은 나니, 두 개를 먹어도 된다고 허락을 하는 것도 틀린 소리도 아니다.

당처럼 카드기를 센터 안에 설치해 놓고 아이들한테 밥 먹을 때마다 카드를 긁 게 만들고 싶어 하는 것도 대부분 지자체들의 오랜 소원이기도 하다. 그런 철 두철미함이 얼마나 지나치는지 구로구와 지자체 대부분은 밥을 먹은 아이들 의 밥값만 계산해 준다. 아이들이 밥을 먹고 서명을 하면 그 서명한 수만큼 돈 을 지불해 준다. 하지만 센터 처지에서는 누가 와서 얼마나 먹을지 가늠하기가 어려우니 늘 모든 아이들이 다 먹을 것이라 생각하고 장을 본다. 그렇게 일단 돈을 써 버렸는데 만약 많은 아이들이 먹지 않으면 그 식재료비는 고스란히 센 터가 부담해야 할 몫으로 남는다. 그래서 파랑새도 한 번씩 아이들의 급식비가 어떻게 지원되는지를 알려 주 고 여기서 꼭 밥을 먹어야 하는 친구들을 위해 다른 친구들이 가능한 센터 안 에서 함께 밥을 먹도록 부탁하고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급식을 감당하기가 힘들어지는 경우가 생긴다. 더구나 어떤 아이들은 센터 안에서 밥 먹기를 엄 청 싫어한다. 아이들이 가장 불만스럽게 여기는 것은 첫째, 라면 같은 음식은 없고 날마다 밥을 준다는 것이고, 둘째가 반찬이 골고루 나와서 채소나 나물 찬들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끝으로 친환경 판매장에서 파는 식재료들은 식 품 고유의 맛을 아주 잘 간직하고 있어서 인스턴트 입맛에 길든 아이들은 맛 이 없다고 느끼기도 한다는 것이 주요한 이유다. 그래서 집이 가까운 아이들 은 저 혼자 얼른 가서 라면 한 그릇 끓여 먹을 수 있는 것을 훨씬 더 좋아한다.

니 ‘건강을 위해 좋은 음식을 먹어야 되고 어쩌구저쩌구’ 하는 말은 아예 귀에 도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안 그래도 힘이 남아도는데 건강은 챙길 게 뭐 있어 싶은 것이다. 센터를 다니지 않겠다고 하는 아이들 가운데는 그렇게 개인에게

선생님! 오늘 맛있는 거 나왔다요!

아니면 과자 같은 것으로 끼니를 때워도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어리고 팔팔하

공동육아 통권 110호


학교 이야기

지역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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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급되는 급식비로 자기가 알아서 사 먹고, 나머지 시간에는 자기 멋대로 시 간을 보내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뭣하러 돌봄을 받는 다고 잔소리를 듣고 있는가 하면서 편의점 가서 먹을 만한 것 알아서 사 먹고, 피시방이나 마을에서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하는 자 유인들이다. 그래서 지역 아동 센터에 들어오면 그 급식 카드를 내놓아야 한 다는 것을 너무도 아쉽게 생각하고는 한다.

이상스런 복병은 꼭 숨어 있다 하지만 급식 교사의 인건비마저 아이들 급식비에서 20퍼센트를 떼어서 쓰도 록 해 놓았으니 그야말로 티끌을 모으지 않으면 밥 한 끼도 편히 못 먹게 해 놓 은 것이 지금의 지역 아동 센터 급식 제도다. 그러니 때로는 콩 한 쪽까지 세서 주어야 하는 일이 생긴다. 오늘처럼 어른이나 아이들이 모두 좋아하는 찬이 나오면 나 혼자 괜히 울그락붉으락 난리가 난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반찬이 얼마나 남았나와 아직 밥을 먹지 않은 아이들이 얼마나 남았나 사이의 상관 성에 따라 특히 그렇다. 맛있는 찬이 얼마 없는데 아직 내려오지 않은 아이들 이 많은 날에는 이상스런 복병들이 꼭 하나씩 숨어 있다. 대부분은 어쩌다 센 터에 오는 선생들이어서 거의 손님이나 다름없는 분들 가운데 그런 분들이 많 다. 늘 아이들과 함께 하는 선생들은 대부분 맛난 것을 못 먹는 아이들이 발을 동동 구를 것을 알고, 미리 먹는 아이들이 욕심내는 것까지 알아서 말리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 나는 또 혼자서 막 고마워하고 대견해하고 난리가 난 다. 그런데 전혀 그런 생각이 없어 보이고, 홀라당 제 입으로 남은 것을 다 넣고 마는 선생들도 있다. 위에는 밥을 안 먹은 아이들이 아직 여럿 남아 있는데, 맛있다고 한 번 더 먹고 “진짜 맛있는데요!” 하면서 듬뿍 퍼 가는 것을 보면 얄


지역공동체

미운 마음에 나는 어쩔 줄 모른다. ‘어이구, 맛있는 것은 잘도 아셔!’ 밉기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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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없다. 그래도 괜찮은 사이다 싶으면 대놓고 그러지 마시라 부탁도 하련만,

학교 이야기

모두가 친한 것은 아니어서 때로는 대놓고 그러기가 쉽지 않다. 아이들 간식은 아예 지원받지 않는 경우가 많아 대부분 센터에서 알아서 정 도껏 마련한다. 그러니 급식보다 양도 적어서 아이들도 딱 정해진 만큼만 먹 을 수 있다. 더욱이 간식은 밥보다 인기가 많아 늘 아쉬움의 대상이다. 그런 데 자원봉사 선생이 금방 주스를 마시고 또 나와서 다른 것을 하나 더 집어 먹 고 또 나와서 주스를 또 한 잔 더 따라 먹고 하는 것을 보는 날은 완전히 눈이 뒤집힌다. 아니 아이들이 다 먹고 남으면 모를까? 아니면 양이 넉넉한가 보든 지

, 아이들하고 똑같이 먹는 것도 뭐라 할 판에 마치 아이들 챙겨 주는 척

하면서 제가 더 먹고 있다니

, 하고 열이 치받아 오른다. 물론 내가 이런 낌

새를 잘 채는 것은 내가 다 그렇게 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센터에 있으면 서 눈치만 늘어서 아이들 먹이는 척하면서 내가 더 많이 먹고, 은근히 나중에 먹을 것까지 슬쩍 하나 더 꿍쳐 놓기도 하고, 안 먹은 척하면서 하나 더 먹기도 하는 것은 이미 나의 오랜 특기다. 다 그렇게 몸을 불려 온 것이다. 그런데 어디 서 나타난 초짜가 눈앞에서 그런 짓을 하고 있으면 머리가 팽 돌아 버리는 것 같다. 차마 말은 못하고 속으로만 ‘어머머머! 애들 꺼 지가 다 먹고 있네. 아예 마셔라, 마셔’ 하고 빨려 들어가는 포도주스를 보면서 혼자 끙끙 앓는다. 또 아이들 수에 간당간당하게 간식이 준비되어 있는 줄 뻔히 알 것 같은데도 척하 니 제 몫을 챙기고, 다, 너도 하나 먹어라 하듯이 “선생님도 하나 드세요” 하 고 갖다 주는 사람을 보면 할 말이 없어 입만 뻥긋거린다. 거기다 대 놓고 나는

데 이따 남으면 드시죠” 이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전 됐어요” 하고 내 몫만 양 보하자니 억울하고

. ‘아니 내가 안 먹고 있으면 눈치껏 자기도 안 먹어야

되는 것 아니야? 저 선생님은 아직도 우리 센터를 모르시나?’ 혼자 답답한 마

선생님! 오늘 맛있는 거 나왔다요!

뭐 간식 하나도 안 먹는 사람인 것처럼 “선생님, 아이들 몫이 모자랄지 모르는

공동육아 통권 110호


학교 이야기

지역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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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에 눈알만 뒤룩뒤룩 바빠진다. 그렇게 간식이 똑 떨어지고 나면 약속이라도 한 듯이 한 아이가 터덜터덜 센 터로 들어온다. 센터에서는 야무진 아이인데 어찌 된 셈인지 학교에서는 부 진아가 되어 여태 나머지 공부에 시달리다 온 것이다. 아이들은 모두가 학교 만 갔다 오면 일순 내장의 긴장이 다 풀리는지 모두 먹을 것을 찾고 난리다. 안 그래도 그럴 판에 나머지 공부까지 시달리다 온 아이가 다 먹고 널려 있는 간식 찌꺼기를 보면 죽을 사람이 마지막 구원의 손이라도 뻗치듯이 “간식은 요?” 하고 물어 온다. 그러면 나도 얼른 이르듯이 “없는데

” 하고 나머지

말을 웅얼거린다. ‘저 선생님이 다 먹었다. 내가 다 봤어. 자기가 막 먹었어. 네 몫도 하나 안 남기더라.’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차마 말은 못하고 속으 로만 ‘울어라! 울어라! 울어라!’ 응원한다. ‘네가 울기만 울면 저 선생님이 미 안한 줄 알겠지? 다시는 안 그러겠지? 그렇게 홀라당 먹은 걸 엄청 미안해하 겠지? 난 말리고 싶었어, 근데 너무 빨리 막 먹어 버려서 뭐라고 하지도 못했 어, 그러니 네가 울어 버려. 진짜 내가 울 수만 있으면 나라도 울겠다.’ 웅얼웅 얼, 쭝얼쭝얼, 궁시렁궁시렁 주문을 외우듯이 난리를 부린다. 그러나 아이는 “그래요?” 하고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아무 소리도 없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 고 ‘이노무 인정머리 없는 센터에 내가 뭘 바래? 그럴 줄 알았어. 그럼 그렇지. 누가 날 챙겨 주겠어!’ 처져 걷는 걸음마다 뚝뚝 절망이 떨어지는 것 같다. 나 는 뒤에 서서 하염없이 ‘그게 아닌데, 그게 아니야’ 말 못할 후회만 흘리고 있 다. ‘저 선생님이 얄밉게 했는데

. 저 선생님이 다 먹었는데

. 나는 좀

안 먹으려고 했는데 저 선생님이 자꾸 막 갖다 주면서 먹으라고 그러면서 자기 는 더 먹고 그래서 나도 먹었는데

.’ 발걸음은 떨어지지 않고 하염없이 후

회만 밀려온다. 그러면 ‘비겁한 변명이십니다’ 하고 마지막 선고가 떨어지듯이 꽝 문이 닫히고 만다. 그런데 정작 저는 그래 놓고 “안녕히 계세요” 하고 아무 렇지도 않게 표표히 사라져 버린다. 아, 허탈해!


지역공동체

113 학교 이야기

나는 때로 아이들한테 사랑받고 싶어 죽겠다 갑자기 원망할 대상이 눈앞에서 사라져 버리면 꺼내든 송곳은 겨눌 곳을 모른 다. 에라이! 할 수 없이 원망을 스스로에게 돌려 본다. ‘아니 이제 그 정도로 나 이를 먹었으면 너도 좀 철이 나야지?’ 자책 분위기로 들어간다. ‘도대체 몇 살 까지 먹는 것 갖고 이 난리를 부리고 그럴 거야? 남들 좀 봐라. 너처럼 그렇게 나이 먹고 과자나 좋아하고 그런 사람이 어디 있기나 한가?’ 늙은 친청어머니 가 홀로그램이 되어 마음속에 떠올라 경구처럼 외시던 말씀을 하신다. 간식이 랑 같이 그만큼 나이를 먹었는데 말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센터에서 내가 간 식도 제일 많이 먹고 나이도 가장 많이 먹었다. 그렇게 많이 먹고 이만큼 왔으 니 나야 말로 이제는 뭐든 덜 먹을 때가 온 사람이다. 덜 먹고, 덜 자고, 덜 욕 심내야 한다. 그에 반해 다른 사람들은 아직 왕성하게 먹고, 푹 자고, 한참 뻗 어 나가야 한다. 왕성한 것들은 때로 탐심이 지나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쇠 락하는 기운에서 보면 더욱 그럴 수 있다. 어찌 더 먹어야 하나 그런 생각이 쉽 게 들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또 그런 생각이 들도록 왕성한 기운들이 사방팔방으로 갈 데 안 가릴 데를 못 가리고 한때 뻗어 나가는 것에 만 집중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다 세상의 이치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세상의 이 치가 그렇다면 그건 마음 끓일 일이 못 된다. 어쩌면 나도 아직은 그렇게 왕성한 삶의 기운 끝자락에 있는지 모르겠다. 내 욕심껏 웃는 아이들 모습이 보고파서 교사들 입에 들어가는 것에 가자미

처럼 다른 교사들을 저쪽에 세워 놓고 아이들을 우우 내 품 안에만 가두어 두 려고 그러는 폼이 딱 그래 보여서 하는 말이다. 아직은 제 욕심을 부리는 나이 여서 편 가르고, 저 좋아하는 것 챙기고, 제 뜻대로만 하고 싶어 하는 나는 아

선생님! 오늘 맛있는 거 나왔다요!

눈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라고 안 하고 마치 나 혼자 아이들을 거두는 것

공동육아 통권 110호


학교 이야기

지역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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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 왕성한가 보다. 그래서 이리 좌충우돌하나 보다. 그러고 보면 나는 공부방에 와서 한참을 더 성장했다. 그렇게 진짜로 조금 씩 어른이 되어 갔고, 잘 되진 못했지만 그래도 지금에 이르렀다. 나는 어떤 의 미로는 참 좋은 곳에서 어른이 되어 가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어른들 틈바 구니보다는 아이들하고 있으면서 훨씬 더 여유롭게 어른이 되어 갈 수 있었다. 아이들이 “와! 그래도 돼요? 어른이라고 막 그래도 돼요?” 하는 말들이 갈 길 을 알려 주기도 했고, 아이들은 대부분 노느라 정신이 팔려서 나같이 흥미롭 지 않은 사람이 뭘 하든 가만 내버려두니 크게 눈치 볼 것 없이 살살 어른 연습 을 해 볼 수도 있었다. 난 사실 진짜로 그러는 건데 아이들은 내가 좋은 어른이 어서 저희들 하는 양에 맞추어 준다고도 생각한다. 아이들은 기운이 넘쳐 나 니 어른들이라면 “어우 쫌! 진짜 왜 그래?” 하고 신경질을 열두 번도 더 낼 내 변덕을 오히려 재밌다고, 잘한다고 깔깔거리며 받아 주는 여유까지 부린다. 치사하고 쪼짠하고 변덕스럽고 욕심꾸러기지만 ‘좀 봐주자. 어른이잖니? 어 른 몫 하겠지!’ 하고 기다려 준다. 하지만 나는 ‘몰라!’ 그래 버린다. 그래야 애 들이 또 우우 모여 들어서 “왜요? 왜 그러는데요?” 그래 주니까 로, 아주 가끔 애들한테 사랑받고 싶어 죽겠다.

공동육아 저소득 기금에 후원해 주세요! 저소득 기금은 우리 사회의 소외받는 어린이를 돕기 위해 공동육아의 지역공동체 학교와 교사 교육, 공동 캠프, 교육 활동을 지원하는 데 씁니다. 계좌이체와 네이버 해피로그 후원(happylog.naver.com/gongdong)으로 함께할 수 있습니다. 문의 | 02-323-0520 (사)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

. 나는 때


이야기 마을 공동체

마을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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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람쐬다 바 “ 체 동 다. 화 곡동 마을 공 람입니 바 는 살랑 스며드

와글와글 화 곡 동 마 을 공 동체 “바 람쐬다”

우리 마을 사랑방

소재로 작업하는 예술가였다. 아이 엄마가 되면서 마을에서 즐겁게 살아가기를 고민하며 둘레에서 모은 폐가구를 이 용한 생활 디자이너가 되어 가고 있다.

와글와글 우리 마을 사랑방

김희정 도도새. 바람쐬다의 목공 강사. 공동육아 1년차로 한때 대안학교 교사였고 또 한때는 재활용 재료나 나뭇잎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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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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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바람

아침은 달리기를 해서 옵니다. 꿀맛같이 단 아침잠을 아이가 채근하며 깨우면 겨우 일어나서 세 식구가 밥 을 차려 먹고 그릇은 대강 담가 놓은 채 아이는 어린이집으로, 나는 마을 공동 체 ‘바람쐬다’로 갈 준비를 서두릅니다. 조금 늦게 출근하는 남편을 집에 남겨 놓고 아이와 둘이서 어린이집으로 가면 이미 오고 있는 다른 식구들도 만납니 다. 한 아이가 현관에서 엄마를 붙들고 울고, 일찍 나와 이미 한참 놀고 있던 아이도 그 소리에 놀잇감을 손에 든 채로 다가와 바라보고 서 있습니다. 개구 리집(공동육아 개구리어린이집) 안은 이미 아이들 소리로 시끌벅적합니다. 뒤늦게 도착한 우리 아이도 우는 친구를 보자 내 다리를 부여잡고 매달립니다. 속으 로 ‘운이 좋아야 슬쩍 들여다 보낼 테고 어쩌면 한동안 붙잡혀 있겠구나’ 싶을 때, 아이가 “엄마, 이제 가도 돼. 안녕” 인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갑니다. 아침의 달리기는 여기가 결승점입니다. 조금 전과는 사뭇 다른 편안한 걸음으로 바람쐬다(바람)로 가면서 어린이집 으로 가는 길에 아이와 다정히 나눈 말이 떠오릅니다. 안도감과 아쉬움이 섞 인 평화로움이 밀려들 때쯤 바람에 도착하니 이미 정선 씨가 창문을 열고 커 피 물을 올리면서 인사를 건넵니다. 바람에서 상설로 여는 바느질 수업의 강 사이기도 한 정선 씨는 이 공간에서 안주인 노릇을 도맡아 하고 있습니다. 궂 은일은 거의가 그의 몫인데 바람 운영과 함께 지킴이 구실도 하고 있습니다. 나 또한 바람 목공 강사고 지킴이도 하는데 공간 입구에 만든 목공 공간이 하 도 작아서 ‘한평목공소’라 이름 지었습니다. 조금 전에 올린 커피 물 끓는 소리가 날 때쯤 어린 아이를 업은 엄마가 들어 서고 그를 이어 두 엄마가 또 들어옵니다. 아이를 업은 엄마는 지난 주말에 친 정에서 보낸 젓갈이 너무 많다고 나눠 먹자 하며 조그만 병에 담은 젓갈 통을


마을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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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개 꺼내고, 얼마 전에 근처로 이사한 다른 엄마는 지난날 입던 옷이 작아 서 가져왔다며 멀쩡한 옷들을 꺼내서 진열합니다. 바람 한 공간에는 기부받은 옷이나 신발 같은 것을 늘 진열해 놓는 벼룩시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젓 갈을 꺼내서 맛을 보고 칭찬이 이어지다가 젓갈을 맛있게 먹는 방법이며 젓갈 에 얽힌 추억까지 이야기가 늘어지고, 또 그러다가 방금 벼룩시장에 진열해 놓 은 옷을 돌아가며 입어 보고 서로 누구에게 어울리는지 알려 주면서 그야말 로 왁자지껄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바람쐬다 만들기

바람쐬다는 서울시 마을 공동체 지원 사업에 선정되면서 지난 2012년 11월에

바느질도 하고 책도 읽고 수다도 떨다가 그 일들이 재미있고 때마다 이루어지 자 마을에 조그마한 공간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 에는 카페를 떠돌아다니기도 하고 누군가의 집에서 모이거나 조합원이 운영

와글와글 우리 마을 사랑방

정식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원래는 개구리집의 엄마들이 오래전부터 모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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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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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미술 학원에서 모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만 즐겁게 놀지 말고 이 마을 많은 엄마들도 함께 재미있게 지내 볼까? 생각하고, 각박한 세상에 이웃 과 정을 나눌 수도 있겠구나, 희망을 꿈꿀 때쯤 마침 서울시에서 마을 공동체 지원 사업 공고가 났습니다. 지원 조건이 공간 마련을 제외한 마을 공동체를 운영하는 것이어서 먼저 보 증금을 마련하기 위해 출자자를 모집했습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개구리 조합원들이 삼삼오오 출자를 해 주어서 천만 원 남짓한 돈이 모였습니다. 지 금까지도 바람 운영을 맡고 있는 미화 씨가 사업 지원서를 내고 조금은 애타는 기다림 끝에 서울시 마을 공동체 사업의 육아 사랑방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지 원은 2012년 10월부터 3개월 동안 나오지만, 공간 만들기와 운영 사업의 성 과로 2013년 들어 1년 더 지원을 연장받아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습니다. 보증금 천만 원에 월세 60만 원으로 그런 대로 알맞은 공간을 구하기는 했 지만, 분양 사무실을 하던 곳으로 1년 넘게 비어 있던 터라 썰렁한 곳을 처음 에는 어떻게 꾸밀까 난감했습니다. 그때 개구리집 조합원들의 숨은 재주가 빛 을 발휘했습니다. 예전에 가게를 꾸리면서 이것저것 설비를 해 본 적이 있는 미 화 씨의 남편이 바닥에 난방이 들어오는 전기매트와 장판을 깔아 주었습니다. 또 나름대로 시설 정비팀이 출자자를 중심으로 모여서 벽지를 벗겨 내고 말끔 히 페인트칠도 하였고, 목공 일이며 바느질도 수준급인 현미 씨와 함께 책장 과 수납장을 하나하나 만들어 넣었습니다. 마을 골목에 버려진 책장과 의자 들을 가져와 수리해서 놓기도 했고, 냉장고와 오븐, 에어컨과 선풍기, 복합기 는 지원금으로 마련하고 컴퓨터와 밥솥, 여러 가지 그릇은 기증받기도 했습니 다. 지금 돌이켜보면 눈 깜짝할 사이에 많은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개소식하기 바로 전에는 큰비가 왔는데 입구 쪽 천장으로 빗물이 콸콸 쏟아 진 일이 있었습니다. 그곳 벽 상태가 좋지 않아서 집주인과 함께 방수 공사를 하고 난 뒤라 더욱 상황이 난감했으나 근처에 사는 미화 씨의 친정아버지께서


마을 공동체

꼼꼼히 천장을 뜯어서 정성으로 살펴 주고 긴 시간 동안 오가며 보수를 해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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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방수업체도 하지 못한 방수 공사를 마감했습니다. 또 얼마 전에 남편 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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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때문에 대전으로 이사 간 백경 씨와 큰언니처럼 바람 식구들을 챙기는 현 미 씨가 틈틈이 커튼이며 방석, 쿠션 같은 여러 가지 패브릭 소품을 열심히 만 들어 공간을 정겹고 따뜻하게 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작은 공간 하나를 만드 는 데 여러 사람의 정성과 노력, 또 고마움이 들어 있었음을 저 또한 글을 쓰면 서 새삼 깨닫습니다. 이곳 화곡동은 서울시에서도 드물게 지하철 까치산역과 봉제산, 까치산을 이웃한 큰 전통 시장과 제법 넓은 상권을 형성할 만큼 많은 빌라들이 언덕 아 래부터 위까지 밀집해 있어서 주머니는 가벼우나 식구가 있고 활기가 가득한 이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당연히 어린 아이를 키우는 젊은 엄마들이 많고, 그 래서 그런지 놀이터도 많고, 어린이집도 많이 있습니다. 저는 육아라는 과제 에 맞닥뜨린 시절, 가끔씩 또는 자주 쩔쩔매는 시간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다 가 세월이 흘러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낼 때쯤 되니 내가 거슬러 온 시간을 고 스란히 걸어갈 둘레 사람들이 예사롭지 않아졌습니다. 잠깐 스쳐 지나가는 아이도 남 같지 않았고, 하물며 같은 마을에 살면서 오다가다 마주칠 인연이 라면 더욱 그랬습니다. 어쩌면 저와 같은 이런 마음들이 실마리가 되어 공동 육아 어린이집을 찾게 되었고, 그곳의 부모들이 모여 마을 공동체를 만드는 일 에도 함께하게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마을 공동체와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함께 가는 이유는 개인주의를 벗어나 함 께 살아 보자는 공동체를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마을 공동체 바람쐬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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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와 마을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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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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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한 사람들이 바로 개구리집 조합원들이다보니 공동육아의 생각이나 내 용은 자연스레 스며 있습니다. 저는 지난해 7월부터 아들 시후가 개구리집에 다녔으니 공동육아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마을 공동체 만드는 일에 손을 보태고, 개구리집에서는 시설 이사를 하면서 속성으로 공동체를 경험한 듯합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영등포의 대안 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나름대로 는 공동체 삶을 꿈꾸면서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공동육아라는 테두리 안에서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것은 또 다른 도전임을 알았습니다. 함께 사는 공동체 를 만들어 가는 것은 어쩌면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마을에서 내 아이도 어울 려 자라기를 소망하는 작은 바람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이와 어른이 섞여서 살아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무런 목적 없이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이 아이들이라면, 순간순간 복잡한 계산에 갇혀 서 버릇대로 살아가는 어른들 사이에서는 작은 일도 긴 논의와 합의가 필요할 때가 많습니다. 사실 공동육아를 일군 초기 조합원들의 피땀, 눈물을 보지 못하고 지금은 눈앞의 문제만으로 모든 것을 부정하는 가슴 아픈 일들도 때때로 일어나고 있 습니다. 그리 말하기에는 작은 일이기는 하지만 최근 개구리집의 상반기 총회 에서도 날마다 아마들이 품을 내어 하는 소청소가 도마 위에 올라 용역을 주 느냐 마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가 아슬아슬하게 용역을 주지 않는 걸로 의결 되었습니다. 청소는 아이들에게 노동의 평범한 가치와 의무를 자연스레 알게 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집안이나 직장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우리 아빠지만 터전을 쓸고 닦는 것처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돈으로 쉽게 해결하지 않고 몸을 써서 실천하는 것을 보여 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소청소 용역 안건은 몇 해 전부터 총회 때마다 의결 안건으로 올랐고, 그때마다 한두 표 차이로 상정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굳이 아이들 교육을 들먹이지 않고, 소청소를 용역으로 해결하면 다음에는 대청소와 시설 정비가 돈으로 해결될


마을 공동체

지도 모른다는 공동체의 위기를 들먹이지 않아도 자연스레 합의가 이루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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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라는 작은 믿음이 있었는데 막상 논의를 하다 보니 이런저런 이유로 합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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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지점이 보여 안타까웠습니다. 한편, 바람이라는 공동체는 드나드는 사람이 모두 자기 의사가 있고 주체 가 아이를 기르는 부모들이라는 점에서는 공동육아 어린이집과 같지만 규모 가 작고, 불특정한 사람도 드나들 수 있으며, 아이들보다는 부모가 중심이라 는 점에서 어린이집과 큰 차이가 있습니다. 바람이 규모는 작지만 드나드는 사 람들이 모두 카페나 식당을 이용하듯 한다면 공간은 금방 엉망이 될 것입니 다. 가령 아이들이 놀다가 갈 때는 부모가 지도해서 말끔히 정리하고 나서 떠 나고, 밥을 해 먹거나 상설 장터에 내놓을 물건을 가져올 때도 가져온 사람이 뒷정리와 진열을 합니다. 재봉틀이나 공구를 썼을 때도 물론 말끔하게 뒷정리 를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회원이건 아니건 누구나가 그렇게 하는 것은 바람이 라는 곳이 그저 소유의 공간이 아니라 드나드는 모두가 주인이면서 나눔을 실 천하는 우정과 참여와 환대의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당연히 이 공간 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 예를 들면 위로하는 말을 듣거나, 청소를 하거나, 공 간만 지키거나, 찾아오는 손님을 환영하거나 하는 일을 누구나 할 수 있는 자 격과 의무가 있습니다. 그 일들을 딱히 합의와 규칙으로 정하고 어딘가에 밝 혀 놓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지켜 나가고 있습니다. 바람이라는 공동체는 앞으로 규모가 커질 수도 있고, 또 세월이 지나서 다 른 형태로 남아 있거나 아예 사라질 수도 있을 겁니다. 만약 규모가 커지고 사 람이 많아져서 더 많은 품이 필요할 때를 생각해 보더라도 모두가 주인일 수

만 규모가 큰 공동체인 개구리집과는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어 작은 것이라도 서로 교훈 삼으며 시간을 채워 가야 할 것 같습니다. 바람을 만들고 이끌어 가 는 이들이 대부분 개구리집 부모들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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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공간의 운영에 대한 고민을 할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조금 다른 형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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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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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들은 조합에 행사가 있을 때마다 함께 밥해 먹고 밤늦게까지 이사회 며 방 모임이나 소위 모임에서 조합 일을 의논하고, 그것도 모자라 주말마다 여러 식구가 짝을 지어 물놀이며 산 나들이를 다니고, 여름이면 멀리 캠핑도 몰려다니면서 하루하루 정을 쌓아 나갔습니다. 그러다가 바람을 만들고, 개 구리집이 아닌 다른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는 마을의 엄마들과도 소통을 하 고 관계를 맺다 보니 공동육아와 공동육아가 아닌 사람들의 관계에서 오는 차이를 극복하는 것이 운영자들이 풀어야 할 숙제가 되기도 합니다. 그 속에 서 우리가 ‘그들만의 리그’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만든 또 다른 성을 쌓지는 않 았나 하고 되돌아보게 됩니다.

바람쐬다의 행사, 강좌와 공간 운영

바람에는 첫 자본금을 출자한 출자자가 있고 달마다 1만 원씩 회비를 내는 회 원이 있습니다. 출자자는 지분은 있지만 특별한 혜택은 없고, 회원은 바람에 서 여는 특별 강좌 수강료를 일부 할인받기도 합니다. 회원들의 요구로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4월 중순부터 6월까지 일주일에 한 번 두 시간씩 우쿨렐레 강 좌를 한 번 열었는데. 초등 저학년 어린이 네 명과 엄마들 일곱 명이 참여했습 니다. 회원과 비회원이 섞이고 어른 아이가 함께 수업을 들으면서 엄마들은 아 이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고, 어른들은 뒤에 소모임을 이어 가서 일주 일에 한 번씩 함께 곡을 골라 연습하고 달마다 여는 장터에서 작은 연주회도 하고 있습니다. 그 밖에는 소모임이나 단체에 공간을 빌려 주기도 합니다. 한 달에 한 번 공간 앞에서 여는 정기 행사인 바람 장터는 회원이나 바람을 드나드는 마을 사람에게서 틈틈이 기부받은 물건을 바자회 형식으로 파는 장 터와, 작은 먹을거리 장터, 아직은 너무나 서툴지만 날로 발전하고 있는 연주


마을 공동체

회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쿨렐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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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를 계기로 시작한 장터 연주회는

이야기

그야말로 아무나 참여할 수 있으니 ‘아 무나 연주회’ 입니다. 아직은 회원들 몇 몇이 달마다 한두 곡을 연습하고 장터 옆에서 즐겁게 노는 수준이지만, 리듬 악기나 건반악기를 다루는 개구리집 부모들도 함께하고 있어서 개구리집이 나 바람에서 여는 작은 행사를 목표로 모둠을 꾸려 볼 예정입니다. 또 장터에 서 작게 홍보하여 마을에서 함께하고 픈 주민을 찾아 연주회를 함께할 수 있 다면 더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바람 공간은 화요일부터 금요일 오후 2 시에서 5시까지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 니다. 지난봄에 방송국과 지역신문사 에서 인터뷰 촬영을 해 간 뒤로는 방송 과 기사를 보고 찾아오는 분들도 있습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에 이런 공 간이 있어서 반가웠다는 아이 엄마도 있고, 부모가 맞벌이를 해서 아이를 맡 아 보는 할머니가 아이와 함께 와서 가끔 쉬다가 가기도 했습니다. 강좌를 열며 기대한 것은 마을 사람들이 문화센터나 상업적인 공간이 아닌

해결해 보고, 내가 사는 마을에서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거나 잠깐 쉴 수 있 는 곳, 마을 미용실 같은 곳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경로당에 갈 수도 없고 놀이터를 돌아다니거나 카페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아이 엄마들은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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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에서 스스로 옷을 짓거나 작은 가구를 만들어 보면서 자연스럽게 의식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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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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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좋지 않거나 비라도 오면 집안에서만 생활하게 됩니다. 내 아이가 몸도 마 음도 건강한 아이로 성장하기를 누구나 바라지만 고립된 상태에서 더욱이 자 신의 욕구와 외로움을 억누르면서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기란 여간 어려운 일 이 아닙니다. 그런 이유로 강좌를 들으면서 엄마들이 좀 더 편안하게 바람에 드나들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했습니다. 그래서 늘 여는 강좌는 주로 아이와 엄마 옷 만들기, 아이 의자와 작은 상 만들기 같은 것으로 꾸렸습니다. 그런데 강좌는 그런대로 진행이 되지만 그 뒤 로 다시 만나거나 모임을 꾸리는 게 어려웠습니다. 공간 운영자가 강사는 할 수 있지만, 누군가와 친구가 되는 것은 더 많은 품이 필요한 법입니다. 그러다 보 니 어쩌면 카페나 미용실처럼 비용을 알맞게 치르고 머무는 것이 더 편안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공간을 이용하는 비용이 분명하지 않은 바람 은 관계를 넘어서 곧바로 소통의 공간이자, 스스로 마음을 내어 들어선 주체 에게 그 자발성만큼 책임이 따르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이곳에 들어서 는 이들을 더욱 따뜻하게 맞이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바람으로 들어오는 길

3주 동안 바느질 수업을 하고 나서 조금 뒤에 회원이 되고자 한 아이 엄마 두

분이 있었습니다. 한 달 회비도 내고 회원이 되었기에 정기 회의에 참여하라고 연락했더니 그 뒤로 소식이 끊겼습니다. 바느질 강사인 정선 씨하고만 얼굴을 익힌 상태라 낯선 사람들과 한꺼번에 마주하고 회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 아무 래도 부담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회원은 스무 명 남짓하지만 정기 회의에 참 석하는 인원은 네다섯뿐인데도 그러했습니다. 반면에 아무렇지도 않게 회원 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바람 가까운 데 있는 어린이집에 아이가 다니게 되


마을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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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서 오가다가 들른 소향 씨는 강좌를 신청하지 않고도 자주 드나들며 어느 새 한두 사람씩 얼굴을 익히고 개구리집의 엄마들과도 아주 친해졌습니다. 나 중에 목공 강좌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소향 씨의 경우는 딱히 강좌로 서로 친 해진 것은 아닙니다. 이제 소향 씨의 다섯 살 아들 윤호는 개구리집의 아이들 과 마실도 자주 하고, 지난 여름방학에는 물놀이며 나들이를 함께 다닌, 그냥 집이 가까운 마을 친구가 되었습니다. 함께하는 것은 마음만 맞으면 너무나 쉽게도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쉽고 편안한 만남만이 좋은 만남이라고 하거나, 어려운 만남이라고 해서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지금은 광범위한 네트워크 시대고, 사 람들은 너무나도 쉽게 서로 접속할 수 있지만 거꾸로 스스로를 고립시키기도 합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 주고 내보여도 뒷담화를 하지 않는 안전한 믿 음의 공간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또 환대에 대해 생각해

들어오는 손님을 가장 최고로 대접합니다. 내가 못 먹는 좋은 음식을 내주고 가장 좋은 자리에서 쉬다가 갈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오지 여행을 하다가 그렇 게 따뜻하게 맞아 주는 것을 경험하게 된 이야기는 말할 것도 없고, 시골 아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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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았습니다. 지금처럼 각박함이 만연한 시대에도 어느 시골에 가면 내 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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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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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우리 친정엄마도 늘 손님에게 극진했 던 것을 떠올려 보면 사람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건 어쩌면 낮선 환경에서 두 려워하는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낯설어도 극진한 대 접을 받으면 마음이 편안하게 움직입니 다. 머나먼 여행지를 가끔 제2의 고향, 마음의 고향이라 하는 이유가 그 때문 입니다. 따뜻하게 서로를 돌보면서 마 음을 내려놓고 사람과 마주할 수 있는 ‘고향과 같은 공간’이 바로 바람이 추구 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낯선 이들에게 바람으로 들어올 수 있는 길을 상설 강좌들이 열어 주기를 기대했습니다. 한평목공소는 필통이나 트레이 선반처럼 나무로 만들 수 있는 소품을 비롯 해 아이가 편안하게 앉을 수 있는 예쁜 의자나 낮은 놀이 상을 만드는 수업을 해 왔습니다. 주마다 네 시간씩 네 번 수업을 하는데, 간단한 톱질과 사포질, 뚫기, 박기, 칠하기, 다듬기 같은 기초 작업을 먼저 익히고 나무를 고르고 사 러 목재소에도 함께 갑니다. 목공 수업을 하고 나서 혼자서도 작은 작업은 할 수 있도록 기획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네 번 수업을 했고, 한 번에 둘에서 넷까 지 수강생이 있었는데, 주로 개구리집의 부모들이나 소향 씨, 마을 할머니 한 분이 참여했습니다. 공간 앞에 작업대를 놓고 거의 모든 작업을 했기에 날씨의 영향도 많았고 바느질 수업과 달리 아이를 데리고 할 수 없어서 한계가 있었습 니다. 앞으로는 되살림 가구 작업도 강좌로 개발하려 하고, 그렇게 하면 마을 사람들 속으로 더 가깝게 들어갈 것 같은 기대가 됩니다. 그런가 하면 정선 씨가 재봉틀 석 대로 꾸려 가는 바느질 수업은 바람의 인


마을 공동체

기 강좌입니다. 한 번에 세 시간씩 세 번 하는데, 한 번에 네다섯 명이 참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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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모두 일곱 번 수업을 했습니다. 올여름에는 인견 이불과 아이와 엄마 잠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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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만들었는데 인기가 많았습니다. 초보자도 재봉틀 기술까지 배워 가며 하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뿌듯하게 결과물을 챙겨 갈 수 있습니다. 편안 하면서도 실용적이며 예쁘기까지 한 아이 옷을 중심 항목으로 정해 이어 가니 앞으로도 인기를 이어 갈 듯합니다. 이제는 바느질 수업의 참가자들을 중심으 로 소모임을 만들어 조금 더 수준이 높은 바느질도 서로 배워 가며 자주 마주 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새로운 고향이 될 공동체 그리고 봉제산방과후

누군가는 공동육아가 새로운 고향을 만드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고향이 무엇 일까? 하고 문득 사전을 찾아보니 눈에 띄는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은 사전에 나오는 고향의 뜻 가운데 세 번째 뜻입니다. 사전에 나오는 고향의 첫 번째 뜻은 “태어나서 자란 곳”, 두 번째는 “조상 대대로 살아 온 곳” 입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사도 잦고 사는 곳에서 태어나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을 뿐더러 부동산 개발로 옛 지형이 오간데 없이 바뀌었으니 대대로 살아 온 곳이 남아 있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고향은 이제 새로운 뜻으로 다시 태 어나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요즘에도 시끄러운 소리와 하얀 연기로 옛 기억을 불러일으키며 골목을 누

라가다가 길을 잃어버린 적이 있을 겁니다. 시골에서 자란 저는 그러다가 너무 멀리 떨어진 마을로 가 버려서 골목길을 헤매는데 모르는 아주머니가 집을 찾 아 준 기억이 있습니다. 마을 이름을 듣더니 좀 멀다며 오토바이가 있는 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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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모기약 차가 다닙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어린 시절에 모기약 연기를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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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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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데려가서 집에 계시던 아저씨에게 나를 맡겼습니다. 그날의 여정은 나 를 태운 오토바이가 갈림길에서 털털거리며 오는 경운기를 만나면서 다시 이 어져, 나는 경운기에 옮겨 탔고 익숙한 길이 나오자 내려서 무사히 집으로 돌 아갔습니다.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한 것은 따뜻한 사람들의 마음 때문이 기도 하겠거니와, 하얀 연기 자욱한 모기약 차를 뒤쫓느라 미처 못 본 예상치 못한 풍경과 소리 때문이기도 합니다. 오토바이가 지나는 길가에 하얗게 피 어 있던 찔레꽃과 논밭 사이 멀리서부터 날아와 머리 위를 지나가던 새들, 노 을이 시작되던 저녁 무렵의 공기에 섞인 오토바이 소리와 경운기 소리, 집으로 돌아왔을 때 모험담과 웃음과 걱정이 오고가던 그날 저녁 밥상의 기억이 나에 게는 언제나 기운을 북돋아 주는 ‘고향’의 풍경입니다. 도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는 아이들에게 고향이 자연에 듬뿍 취해 살았던 기억으로 남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좋은 사람들, 따뜻한 이웃들 로 둘러싸인 곳에 살았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면 살아가면서 외롭고 지칠 때 큰 위로와 힘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을 어디에서나 따뜻하게 대접받고, 아 옹다옹 함께 성장하고, 저녁마다 친구와 함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 다면 나이가 들어서도 그 고향을 그리워하며 기운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다시 떠올려보면, 바람 공간을 구할 때 작지만 마당이 있기를 희 망했습니다. 형편에 맞춰 구하다 보니 비록 마당은 없지만 화분도 가꾸고, 누 구든 편안하게 드나들며 포근하게 쉬거나 정보를 나누거나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라며 공간을 꾸몄습니다. 벽에 페인트칠을 하고 전기온돌과 장판 을 깔고, 아이들 놀이방, 책장과 수납장, 작지만 주방까지 어디 하나 손이 가지 않은 곳이 없는 공간이 되기까지 한 달쯤 걸렸습니다. 마을 공동체 지원 사업 이 있었기에 냉장고와 에어컨도 구해 제법 구색을 갖춰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뜨겁고 습했던 여름 동안 바람 입구를 다정하게 지켜 주었던 토마토와 고추


마을 공동체

를 정리하고 나무 상자 안에 작은 꽃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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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하늘거리는 사랑초를 심은 날이었습

이야기

니다. 골목을 지나가던 아이들이 뛰어 와 꽃을 만지작거리며 신기한 듯 잠깐 머물고 있자 뒤따라오던 아이들 엄마가 “그래 예쁘지? 어디 풀 한 포기 자랄 곳 이 없으니

” 하며 안타까운 듯 혀를

찼습니다. 그렇듯 도시 둘레는 사람이 꾸민 꽃밭이나 조경수가 자연으로 행 세하며 풍경을 만들고 있기에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식물을 찾아보는 것이 어렵 습니다. 시골 마을의 골목에서는 오래 앉아 있어도 시간이 그리 더디게 가지 않는 것은 질리지 않는 자연의 섭리 때문 인 것 같습니다. 오래 보아도 질리지 않는 조건은 그저 예쁜 것이 아니라 자연 스러움이니까 말입니다. 어쩌면 상쾌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듯 부드럽고 조용 하게 사람들의 곁에 머물기를 바라는 것이 ‘바람’의 마음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바람을 이끌어 가다 개구리집을 올해 졸업하는 아이의 부모들이 고심 끝에 ‘봉제산방과후’라는 이름으로 내년에 초등 방과후 교실을 열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부지런하게 서울시 방과후 지원 사업을 몇 달 동 안 준비하더니 전세자금 1억 원을 지원받게 되었습니다. 5년 뒤에 갚으면 되기 에 5년 계획도 미리 세우고, 협동조합 설립 등기를 받고, 여러 일을 척척 해내

렵게 나온 집을 계약하기로 한 날 집주인이 취소 통보를 해 왔기 때문입니다. 시작하는 그들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초기의 일꾼들이 불모지를 일구어 낸 에 너지와 땀, 그보다 함께 살고자 하는 고귀하고 따뜻한 마음을 깊이 배웁니다.

와글와글 우리 마을 사랑방

며 준비하고 있는데 터전을 구하는 일부터가 쉽지 않습니다. 학교 가까이에 어

공동육아 통권 110호


이야기

마을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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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편만 허락하면 더 좋은 환경을 찾아 떠나도 되는 다양함이 존중되는 세상 에서 자기 자리를 지키면서 어쩌면 더 어렵고 힘든 일을 시작하고 있는 그들을 응원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쉴 수 있고 여유롭게 지낼 수 있고, 아이들의 발 달과 생활 리듬을 신명나게 지켜 볼 수 있는 따뜻한 방과후 공간이 우리에게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람 문 여는 날

시작하던 마음이 머물던 그날로 기억을 되돌려봅니다. 바람 개소식은 가을 이 완연한 저녁 무렵 돼지머리를 대신한 돼지 저금통과, 김이 모락모락한 시루 떡 그리고 회원, 출자자, 그 밖에 여러 사람들의 진심어린 축하와 기원으로 소 박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출자자 가운데 어떤 식구는 출자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멀리 이사를 가는데도 출자금과 달마다 1만 원씩 내는 회비를 선뜻 내 놓는가 하면, 이미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먼 마을에 사는 이들도 기꺼이 출자 를 해 주었습니다. 그 마음들이 모였기에 문을 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개소 식을 하던 날은 시작의 날답게 가슴 뛰고 따뜻했습니다. 그날, 함께 읽은 축문 을 떠올리며 다시 새로운 날의 기운을 느껴 보고 싶습니다.

여기, 이웃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세상이 전과 하도 달라서 가족의 모양새가 작아지고 어린 아이를 키우는 일이 외롭고 어려워 평화롭고 다정한 봉제산의 품에 함께 나누고 배우고


마을 공동체

살아갈 터전을 마련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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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부디,

이야기

서로를 가르치고 동시에 서로 배울 수 있는 공간이 되게 하십시오. 개인의 성장이 바로 공동체의 꿈이 되게 하십시오. 고립하지 않고도 뜻을 이룰 수 있게 하십시오. 따뜻하게 서로를 돌보는 것으로 함께 행복하게 하십시오. ‘이런 내가?’라는 의문과 자괴감을 가지는 사람도 세상에 꼭 필요함을 증명케 하십시오. ‘버리고 떠나기’의 안정이 아닌 ‘나누고 도전하기’의 불안정을 기꺼이 환영케 하십시오. 이곳의 다양한 활동을 혼동과 무질서로 규정하고 섣불리 ‘실패’라 단정하지 않게 하십시오. 자기 방식으로 ‘훈수’를 두기보다 고정관념을 떨쳐 버리는 기회로 만들어 주십시오. 이곳이 부디,

공간이게 해 주십시오. 2012년 11월 10일 바람쐬다와 함께하는 이웃들 일동

와글와글 우리 마을 사랑방

평범함과 위대함을 구분하지 않는

공동육아 통권 110호


가는 길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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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받 삶아 으들 로인 태 훈 이 태훈아, 엄마랑 책 보자 “태훈아, 이리 와.” “

.”

“엄마랑 책 보자.” “

.”

태훈이는 내가 부르는데 아무런 반응도 없이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나한테 그저 바람이 있다면 또래 서너 살 아이들처럼 태훈이를 곁에 두고 차분히 앉아 책이라도 같이 보는 것이었다. 태훈이 누나가 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누나를 돌보느라 바빴던 나는 태훈이 오희정 이슬. 예쁜 딸 보민이와 사춘기 청소년 태훈이와 함께 생활하고 있으며, ‘매일 작은 기적을 만드는 사람들의 모

임(매사모)’ 1기 회원이다. 태훈이가 중등 과정에 들어간 뒤 무지개학교 중등과 초등 과정에 다니는 특별한 요구를 가진 아이들 부모와 교사, 그리고 공동체 삶을 고민하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또 하나의 꿈(또꿈)’ 모임을 만들었고, 지금은 은퇴한 부모와 장애 성인들이 함께 살 마을 공동체를 생각하는 무지개촌모임을 만들어 함께하고 있다.


함께 가는 길

를 할머니께 맡기고 대부분의 시간을 누나와 보냈다. 태훈이는 저절로 잘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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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 줄 알았다. 내가 태훈이가 가진 어려움을 발견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흘

내 삶으로 받아들인 태훈이

렀다. 태훈이는 늘 자기 맘대로 바쁘게 돌아다녔지만 누나와 달리 붙임성도 좋았기 때문에 별 다른 의심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태훈이가 다섯 살이 되어 마을에 있는 어린이집에 보내던 날, 태훈이는 엄 마와 헤어지지 못하고 계속해서 울고 있었다. 며칠이 지나도 태훈이는 나아지 지 않았고, 나는 아는 이에게 소개를 받아 발도로프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냈 다. 그런데 어느 날, 서울역지구대에서 전화가 왔다. 아이를 서울역에서 발견 했는데 엄마는 어디에 있냐고. 태훈이는 아무 말 없이 어린이집을 나왔고, 선 생님들은 아이가 없어진 걸 뒤늦게 알고는 찾아다녔다고 했다. 그 어린이집은 현관문만 열면 바로 밖으로 나갈 수 있어서 많이 불안했고, 그런 일이 두 번이 나 되풀이되면서 어린이집을 그만두었다. 좀 더 태훈이에게 맞는 어린이집에 보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때 예전에 큰아이를 위해 찾아갔던 튼튼어린이집이 생각났다. 마당이 있고 모래 가 있고 바깥놀이를 할 수 있는 어린이집, 날마다 나들이를 가는 어린이집이 라면 우리 아이가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상도동 가까이 있 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알아봤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길고 들어가기가 어려 웠다. 마침 대기자들이 모여서 만드는 어린이집이 있다고 해서 우리 식구는 그 모임에 함께하게 되었고, 한 달 뒤에 어린이집 문을 열면서 태훈이는 달리는어 린이집에 다니게 되었다.

김태훈, 손잡아야지! 태훈이는 자신이 하고픈 대로 되지 않으면 소리를 지르고 우는 일이 많았다. 공동육아 통권 110호


가는 길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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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이를 가면 자기가 가고 싶은 길로 혼자 달려가곤 하여 선생님이 아이들 과 함께 달려서 따라가는 일이 잦아 아이들은 불안해했다. 그래서 아싸 선생 님은 자기가 태훈이를 데리러 가면 친구들은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그 자리에 서 불안해하지 않고 기다리기로 아이들과 약속을 하고 태훈이를 데리러 다녔 다. 처음에는 불안하여 울기도 하던 친구들은 점점 적응하면서 “태훈아, 돌아 와” 하며 부르기도 하고, 저희들끼리 “아싸는 태훈이 데리러 간 거야” 하며 서 로 위로하고, “아싸! 태훈이 얼른 데려와” 하며 선생님에게도 힘을 실어 주었 다. 또 태훈이가 친구들 손을 잡지 않고 혼자 뛰면서 찻길 같은 데서 위험에 빠 질 수도 있어서 선생님은 태훈이가 함께 손잡고 나들이 갈 수 있을 때까지는 나들이를 끝까지 못 갈 수도 있다고 미리 아이들에게 이야기하고 중간에 어린 이집으로 돌아오기를 되풀이했다. 태훈이에게 전혀 관심이 없거나, 반응이 없 던 친구들도 “김태훈, 손잡아야지!” “아싸, 태훈이 오면 같이 먹자” “내가 태 훈이 데려올게” 하며 점점 태훈이를 머리가 아닌 몸과 마음으로 친구로 받아 들였다. 태훈이는 또 울고, 떼쓰고, 물고, 빼앗는 일이 잦아 처음에 아이들은 “태훈 이랑 안 놀아” 하며 힘들어했다. 낮잠 시간에도 태훈이는 자지 않았는데, 방 에서 친구들이 잘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면 소리 지르고 울며 나가려 하고, 거 실에서 놀게 하면 세 살 방에 들어가서 자는 아이를 물어 버리기도 하고, 마당 에서 놀게 하면 대문 밖으로 나가려 했다. 선생님은 태훈이가 울더라도 방에 서 기다리는 연습을 시켰는데, 태훈이는 한 달 반쯤 울면서 방에 있는 도구를 써서 방문을 열려고도 하고, 자는 친구들 몸을 넘어 다니기도 했다. 친구들은 우는 태훈이 때문에 잠들지를 못 했는데, 점점 태훈이가 울어도 잠드는 시간 이 짧아져서 태훈이가 많이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다. 태훈이는 친구들이 잠들 기를 기다리다 잠이 들기도 하고, 조용히 기다리는 시간도 점점 길어졌다. 시 간이 지나면서 태훈이는 그림을 그리면서 기다릴 줄 아는 아이로 자랐다.


함께 가는 길

이의 관계, 진행 상황을 함께하면서 충분히 이해해 주고, 집에서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아이들이 태훈이와 더욱 빨리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하지 만 태훈이 때문에 여전히 불안해하는 부모들이 있었고, 우리는 어린이집이 우

내 삶으로 받아들인 태훈이

태훈이는 다섯 살 뿡뿡이방에 속했는데, 뿡뿡이방 아마들은 아이들과 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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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여기서 푸세요

리 아이 때문에 힘들어지는 게 싫어서 나가려고 했다. “언니, 어디로 가든 이 문제는 또 시작됩니다. 여기서 푸세요.” “그래, 다른 곳에 가도 이 문제는 다시 되풀이되고 거기서도 또 부딪칠 거야.” 조합원들이 격려해 주고, 터전 안정을 위해 페다 선생님이 오면서 길이 열리 기 시작했다. 페다 선생님은 우리 조합에는 특별한 아이들을 위한 통합 지원 페다가 더 필요하다고 하면서 달님 선생님을 소개시켜 주었다. 달님 선생님이 와서 교사 교육 부모 교육을 하고, 문제 행동을 지도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면 서 터전은 안정되어 갔다. 공격을 잘하는 태훈이 때문에 회의 때 심각한 이야 기가 오가기도 했지만, 결국 공동육아에서 ‘통합 페다’ 제도를 시작한 앞선 조 합이 되었다. 통합 지원 페다의 도움을 받으면서 교사회는 참 열심히 공부했다. 달님 선 생님과 함께 공부하던 그 힘과 노력으로 태훈이는 조금씩 달라졌다. 울고, 떼 쓰고, 나들이 갔다가 벼랑에서 아싸 선생님과 안고 구르기도 몇 번. 그러던 아 이가 친구들 손을 꼭 잡고 나들이를 나갔고, 밖에 나간다며 아싸 선생님의 팔 을 깨물고는 퍼렇게 된 팔을 보며 “아싸, 아파?” 하며 “호” 하고 불어 주기도 했다. 어느 날, 여전히 밖에 나가고 싶어 울면서 책상을 옮겨 그 위에 올라가 도 구를 써서 문을 열려고 하는 아이를 아싸 선생님이 끌어안고 “태훈아, 아싸 봐” 하며 눈물을 흘렸는데, 태훈이는 아싸 선생님 눈물을 닦아 주었다고 한 다. 태훈이와 아싸 선생님은 그렇게 함께했다. 태훈이가 어린이집에 들어가고 나서 대여섯 달쯤 지난 뒤에 복지관에서 발 공동육아 통권 110호


가는 길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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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검사를 받았는데, 복지관에서는 아무래도 병원에 가보는 게 좋겠다며 병원 에 갈 것을 권했다. 너무 막막하고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수소문해서 여러 병 원을 알아보았고, 큰형님과 잘 아는 선생님이 있는 병원에 가게 되었다. 태훈 이는 병원에서 ‘주의력 결핍 및 과잉 행동 장애(ADHD)’라는 진단을 받았다. 갑갑함이 밀려왔다. 의사 선생님이 약을 권했는데 약을 먹으면 밥을 잘 못 먹 거나 잠을 못 자거나 몸무게가 줄어들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 상태로 그대 로 놔두면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자아 개념이 생겨 오히려 안 좋을 수 있으니 잘 선택하라고 했다. 나는 우리 태훈이가 그래도 나는 괜찮은 아이고, 세상은 살 만하다고 생각 하기를 바라면서 약을 먹이기로 결심했다. 약을 먹고 나면 식욕이 떨어졌다. 그래서 꼭 밥을 먹고 나서 아침 약을 주었다. 다행히 태훈이는 잠은 잘 잤다. 약을 먹으면서 태훈이는 하루하루가 다르게 달라졌다. 아무리 가르쳐 줘도 사 람들 이름도 외우지 못했는데 일주일, 닷새, 사흘, 하루로 외우는 속도가 빨라 지면서 사람들 이름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태훈이는 나들이와 산행, 절기별 활동을 하면서 속도를 사랑하는 컴퓨터 광이 아닌, 차를 좋아하고 무말랭이를 만들기 위해 실에 무를 꿰는 것을 좋아 하는 자연 친화적인 아이로 자라고 있었다. 선생님들의 헌신 어린 노력과 사랑 그리고 조합원의 따뜻한 관심 속에서 태훈이는 밝고 건강하게 자랐다.

이곳에 있는 것만도 태훈이에게는 수업이야 공동육아에서 함께 사는 즐거움을 맛본 나는 태훈이와 이런 삶을 이어 가고 싶어서 초등 대안학교에 문을 두드렸다. 성미산학교, 산어린이학교, 무지개학 교에 원서를 냈는데 고맙게도 무지개에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무지개에 와서도


함께 가는 길

내 앞에는 산이 놓여 있었다. 태훈이가 많이 좋아졌다는 기대와 실제 학교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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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수업 시간에도 수시로 밖으로 나가 놀고, 선생님

내 삶으로 받아들인 태훈이

의 지시도 따르지 않는 아이 태훈이를 맡은 진달래 선생님은 자신에게 되묻고 되물었다고 한다. ‘태훈이는 이 수업 시간에 무엇을 배우는 건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시간은 아닌가? 아니야, 이곳에 있는 것만도 태훈이에게는 수업이야.’ 진달래 선생님은 그렇게 말했지만 태훈이는 진달래를 만나고 나서 이전보 다 자신을 잘 표현하게 되었다. 말이 급격히 늘었다. 친구들과 관계도 좋아졌 다. 진달래 선생님은 태훈이가 관심을 보이는 친구에게 “태훈이는 진짜 멋진 아이를 알아보고 좋아한다”고 했고, 그 말에 반 친구인 찬순이는 아주 기뻐했 다고 한다. 진달래는 가만히 있는 게 힘들어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아이를 붙 잡고 한 시간이 넘도록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뒤로 태훈이는 같이 이야기하자고 하면 정색을 하면서 겁을 내기도 했다. 진달래는 태훈이가 수업에 잘 참여할 수 있도록 보조 교사를 모집했고, 일 주일에 보조 교사 두 분이 수업을 도왔다. 하지만 보조 교사만 함께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무지개학교는 태훈이와 함께 지내기 위해, 또 앞으로 들 어올 특별한 아이들을 위해 새로운 통합 교사를 뽑기로 결정했다. 통합 교사로 콩깍지 선생님이 들어오면서 개별 교육 시간도 생기고, 장애 친구들을 이해하고 함께하기 위한 시간이 교과에 편성되었다. 태훈이를 아이 들이 잘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 장애인의 날 장애 체험 때 맛있는 아이스크림 을 보고도 먹지 않고 참는 곳을 만들어 태훈이가 참고 견디는 게 얼마나 어려 운지 공감하도록 노력하기도 했다. 또 태훈이가 잘하는 것을 친구들이 기록해 주기도 했다. 태훈이가 가장 힘든 시간이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인데 친구들 이 돌아가며 놀이 짝꿍이 되어서 바둑도 하고 줄넘기도 하면서 친밀하게 지내 도록 노력했다. 콩깍지 선생님은 담임선생님이 프로젝트 수업을 준비할 때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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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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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이에게 맞게 교과를 조정할 수 있도록 도왔다. 태훈이는 프로젝트 수업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생기면서 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5학년이 되어 지리산을 종주했는데, 태훈이는 공동육아 때부터 단련된 산

다람쥐의 실력을 마음껏 펼쳤다고 한다. 태훈이는 이른 새벽 일출을 보러 가 는 마지막 날까지 팔팔하게 산에 올랐다. 몸이 약한 태훈이가 산을 잘 오르지 못하자 아이들은 짐을 나눠 졌고, 먼저 올라가 밥을 지었다, 그리고 태훈이가 올 때까지 아무런 불평 없이 기다리다 산에 오른 태훈이를 반겨 주었다. 이 아 이들이 바로 태훈이의 친구들이다.

엄마, 태훈이가 다른 학교에서 잘 지낼 수 있을까? 무지개 5년을 보내고 6학년이 되던 날, 엄마들이 용막골에 모였다. 무지개에 서 보낸 삶이 어떠했는지, 아이의 앞날은 어떻게 할 것인지 이야기를 나누었 다. 엄마들은 대부분 무지개에서 함께한 시간이 너무 좋았고, 무지개의 교육 내용도 이어 가고 싶어 했다. 어디로 가든 결코 무지개를 잊을 수 없지만, 아이 를 위해 새로운 세상, 다른 학교로 보내고 싶다고 했다. 무지개에 남아서 이런 경험을 계속 이어 가고 싶다는 엄마는 한 사람뿐이었다. 우리에게는 아픈 추억이 있었다. 이미 한 번 중등학교 만들기에 도전했지만 좌초된 경험이 있다. 하지만 진학을 하든 안 하든 무지개의 교육 경험을 이어 나갈 수 있도록 돕는 일에는 함께하기로 마음을 냈다. 그리고 6학년 엄마 아 빠가 만나서 공부를 하며 앞날을 준비하는 모임을 만들기로 했다. 그 모임이 ‘부모가 달라졌어요’라는 ‘부달’ 모임이다. 무지개에서 가장 공부하기 싫어하 던 우리 학년 부모들이 일주일에 한 번, 두세 시간 머리를 맞대고 어느 때보다 뜨겁게 배웠다. 《부모와 십대 사이》를 시작으로 청소년기 특성에 대해 의견도


함께 가는 길

나누고, 교육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삶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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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바라는 중등의 모습은 무지개 교육 철학을 가진 학교인지, 사회적 요구에

내 삶으로 받아들인 태훈이

부응하는 학교인지에 대한 생각을 나누면서 서로 가까워졌다. “엄마, 나는 다른 대안학교에 가도 되는데 태훈이와

가 다른 학교에 가

면 거기 형들과 같이 잘 지낼 수 있을까?” 태훈이를 바라보며 걱정하던 동욱이의 고민은 동욱이 엄마의 고민으로 이 어져 마음을 움직였고, 우리 모두의 고민으로 확산되었다. 태훈이가 갈 수 있 는 중등 대안학교는 아주 적었고, 특별한 요구를 가진 아이들은 한 명 정도만 뽑기 때문에 두 친구가 같은 곳에 들어가기는 어려웠다. 또한 초등 대안학교 를 졸업하는 아이들에 견주어 모집 인원수가 절대 부족해서 자신의 뜻과 상 관없이 학교에 가지 못하는 친구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여기에 무지개의 교육이념이 초등을 거쳐 중등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모여 ‘부 달’ 모임의 힘은 중등설립추진위를 준비하는 데로 이어졌고, 6학년 부모 대다 수가 함께 활동하게 되었다. 교육 분과, 홍보 분과, 재정 분과로 나뉘어 교육이 념과 교육과정을 만들고, <레인보우>라는 소식지를 만들고, 기금 마련을 위 한 바자회도 열었다. 중등 과정을 만들면서 중등의 교육이념을 이끌 교사회 를 구성해야 하는데 고맙게도 초등에 있던 산마루, 은빛여우 선생님이 함께하 고, 별학교에서 일하던 나비 선생님도 같이하면서 교사회도 안정적으로 만들 어졌다. 무지개 초등 과정을 졸업한 아이들을 위한 중등 우선 전형을 하던 날, 초등 강당에 모인 우리들은 웃고 말았다. 졸업생 모두가 중등 무지개에 지원 했기 때문이다. 졸업식 날, 6학년 친구들이 프로젝트를 발표하는데, 태훈이는 세차 프로젝 트를 발표했다. 동전을 넣고 차에 물을 뿌리고 비누 거품을 묻히고 물로 씻고 천으로 닦고, 차 안까지 닦았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발표할 때 모두 가 기뻐하며 큰 박수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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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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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할 사람? 태훈이가 중등 과정에 올라가고 나서 새 학기에 대표를 뽑는 선거를 치렀다. “대표 할 사람?” 하고 선생님이 물어보니 태훈이가 손을 들었단다. 태훈이는 친구들과 삼겹살을 구워 먹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지만 적은 표 차이로 떨어졌 다. 친구들은 머리를 맞대기 시작했다. ‘다음 해에 동생들이 들어오면 태훈이 가 대표를 하기 힘들 텐데, 2학기에 부대표가 일을 잘 나누어 태훈이가 대표를 하면 어떨까?’ 2학기 선거에 태훈이는 다시 용감하게 출마했고 단독 후보로 대표에 당선되었다. 물론 태훈이는 꽃등심구이로 공약을 백 퍼센트 지켰다. 태훈이는 대표가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조금씩 책임이란 것을 배웠다. 주마 다 회의 시간 때 사회도 보고, 바깥에 나가 놀고 싶어도 회의 시간 내내 자리에 있어야 했다. 태훈이는 평소에는 목소리가 쩌렁쩌렁한데 무대 앞에만 서면 무 대 울렁증이 심해서 고개도 못 들고 두려워하며 짜증을 냈다. 하지만 1학년을 마치고 수업 발표회를 할 때 물론 눈도 들지 못했지만 개회 선언도 하고 마무 리도 했다. 전체 진행은 부대표 동욱이가 맡았다. 태훈이에게 발표회 때 할 일 을 수없이 되풀이하며 가르쳐 주던 선생님과, 태훈이와 함께 자라는 친구들 이 도와주고, 많은 이들이 기다려 주었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지금은 대표 할 거냐고 물으면 안 하고 그냥 쉰다고 한다. 대표가 만만하지 않았던 게 분명 하다. 무지개마을 친구들은 사람들이 태훈이나

에게 함부로 대하는 것을 참

지 못한다. 이 아이들에게 특별한 요구를 가진 친구는 베푸는 시혜의 대상이 아니다. 한 식구처럼 받아들이고, 마음을 내고 서로 존중하며 살아간다. 같이 기뻐하고 같이 아파한다. 한 번은 놀이터에서 한 친구가 실수를 했는데, 아이 들은 스스로 친구를 챙겨서 씻기고 옷을 갈아입혀 주었다. 어느 날은 학교에 서 태훈이가 동생과 다퉜는데, 태훈이가 일방으로 잘못한 게 아닌데도 자기변 호를 못 하니까 선생님은 태훈이만 혼냈다고 한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 본 한


함께 가는 길

친구가 많이 속상해하며 분노했고, 당시 상황을 교사에게 알려 주었다.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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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녀석 다 벌을 받았다고 한다.

내 삶으로 받아들인 태훈이

라면 끓여 먹어도 돼? 지금 태훈이는 중학교 3학년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밥을 찾는다. “엄마, 밥 줘. 라면 끓여 먹어도 돼?” “태훈아, 라면 먹으면 뚱뚱해지는데 반만 끓여.” “반만 끓여 먹을게.” 태훈이는 이제 스스로 아침도 잘 챙겨 먹는다. 어떨 때는 라면이 먹고 싶어 엄마 몰래 살짝 끓여 먹고는 한다. 라면에 떡국도 넣고 만두도 집어넣고 어떤 때는 계란까지 넣어서 밥과 같이 먹는다. 한 번은 전기밥통의 밥에서 쌀 냄새 가 나고 덜 익은 것 같아서 남편에게 밥을 했냐고 물으니 아니라고 했다. 알고 보니 우리 밥돌이 태훈이가 밥이 없어서 밥을 한 것이었다. 어디 가든 잘 먹고 잘살 녀석이라 걱정이 덜 된다. 칼국수가 먹고 싶으면 나한테 밀가루를 주면서 반죽해서 밀대로 밀어 칼국수를 만들라고 한다. 감자도 넣고 끓이라고 자세히 도 가르쳐 준다. 호박전이나 단호박찜이 먹고 싶다고 시장에 가서 사 오라고도 한다. 자기가 싫어하는 반찬을 넣었을까 싶어 도시락 반찬도 검열한다. 학교에 서 해 본 요리는 기억하고 스스로 만들어 보기도 한다. 옷매무새를 다듬거나, 몸을 깨끗하게 잘 관리하지도 못했는데, 올해부터는 아침에 일어나 스스로 머리도 감고 샤워도 하고 옷도 챙겨 입고 학교 갈 준비 를 한다. 덩치가 산만 한 아들 씻기는 일에서 벗어나니 한결 수월하다. 태훈이는 요즘 아이패드에 꽂혀서 ‘패트와 매트’를 열심히 본다. 검색하며 글도 익히고 배우라고 아이패드를 주었는데, 검색하다 보니 동영상을 찾아볼 수 있게 되었고, 어릴 때 즐겨 보던 ‘패트와 매트’가 생각이 났던 거다. 엄마에

공동육아 통권 110호


가는 길

함께

142

게 와이파이를 띄워 달라고 조르던 태훈이가 이제는 핸드폰에서 패블릿을 열 어 와이파이를 띄우고 궁금한 것을 검색해 보기도 한다. 자기만의 비밀이 있 는지 방문을 잠그기도 하고, 자기주장을 하며 부모 심부름도 하기 싫다고 거 절할 때가 많아졌다. 자기 의사도 분명히 표현한다. 이렇게까지 성장해 준 태 훈이가 고맙고 대견하다. 식구는 힘들고 어렵고 아프다고 해서 자기 식구를 저버리지 않는다. 그냥 잘 살든 못살든 품고 같이 가는 게 식구 아닌가. 나는 태훈이를 내게 주어진 아이 로 받아들이고 살아간다. 내가 내 삶의 일부로 이 아이를 받아들이듯이 무지 개교육마을의 부모들도, 공동육아에서 만난 부모들도 그랬다. 그런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태훈이를 기르고 키워 준 모든 분 들에게 감사드린다.

나는 태훈이를 내게 주어진 아이로 받아들이고 살아간다. 내가 내 삶의 일부로 이 아이를 받아들이듯이 무지개교육마을의 부모들도, 공동육아에서 만난 부모들도 그랬다.


교사 대회

사진으로 보는

한 송이 들꽃은 혼자서 피지 않는다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교사회는 ‘한 송이 들꽃은 혼자서 피지 않는다’를 주제로 지난 7월 25일(목)부터 27일(토)까지 경기도 화성 하내테마파크에서 공동육아 여름 교사 대회를 열었습니다. ‘이유 있는 소통과 치유하는 소통을 통해 변화의 소통으로 지금 이곳에 서자’를 부제로 한 교사 대회에는 전국에서 4백 명 남짓한 교사들이 참석했습니다.


교사 대회

사진으로 보는

144 첫째 날은 ‘이유 있는 소통’을 주제로 하여, 협동조합과 관련한 이탈리아 영화 ‘위 캔 두 댓’을 보고, ‘공동육아 운동과 교사의 역할’ 강연을 들었습니다. 둘째 날은 ‘치유하는 소통’을 주제로 하여, 협동조합 제도화와 관련해 공동육아 교사회의 방향성에 대한 발제와 모둠 토론을 했습니다. 또 교육 나눔과 지역 장터 그리고 마당 공연이 중심이 된 나눔 및 배움 마당, 강강술래로 하나 되는 대동놀이 마당에서 재미있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셋째 날은 ‘변화의 소통’을 주제로 ‘공정 여행 - 새로운 여행의 역사’ 강연을 들었습니다. 전국의 공동육아 교사들이 한 자리에 모인 날,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함께 “우리 아이 함께 키우기, 더불어 사는 세상 만들기”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145


소개

새 회원 조합

146

행복한 아이, 성장하는 부모, 함께하는 지역사회

부모협동조합 너른마당어린이집

부모협동조합 너른마당어린이집은 2011년 여

니다. 처음에는 내 아이만 쫓던 눈 속에 어느 순

름 생명 평화 공동체인 사회적 기업 이천YMCA

간부턴가 다른 아이들도 함께 들어와 있었으니

아가야에서 알게 된 여섯 가정의 부모들과 아가

까요.

야 교사들이 뜻을 함께하여 만들었습니다. 새

시작이 어려웠지만 함께 해 보니 한 아이를

회원도 받아들이면서 준비를 시작한 지 거의 1

혼자서 키우는 것보다 여러 아이를 여럿이서 함

년 반 만인 2013년 3월 1일부터 경기도 이천시

께 키우는 것이 훨씬 더 쉽습니다. 여러 부모들

발읍 신하리에 문을 열었습니다.

의 다양한 삶의 모습은 아이들에게 스스로 선택

너른마당의 모든 부모가 처음부터 같은 지향

할 수 있는 폭을 넓혀 주는 본보기입니다. 우리

점을 가지고 모인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인지 문

가 함께 아이를 키우는 이유입니다. 함께하니 외

을 열기까지 서로 부딪치고 깨지기를 되풀이하

롭지 않고 함께하니 덜 힘듭니다. 믿는 만큼 자

면서 크고 작은 상처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러

라는 아이들…….

한 긴 과정을 견뎌 내며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아이들은 우리의 희망입니다. 아이들과 부모

에 모난 부분들이 조금씩 둥글어지고 다름이 결

들의 행복한 현재와 미래를 여기에서 꿈꿉니다.

코 틀린 것이 아님을 깨달아 가면서 저마다 다른 치유되어 가는 값진 경험도 했습니다. 그런 귀한

“행복한 아이, 성장하는 부모, 함께하는 지역 사회” 부모협동조합 너른마당어린이집이 존재해야

경험을 하면서 아이들뿐만 아니라 부모들도 함

할 이유입니다.

이상이 서로 조율되어 가며 상처도 자연스럽게

께 성장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기도 했습

(박재정)


새 회원 조합 소개

147

오랫동안 지속가능한 어린이집을 꿈꾸며

용산 칙칙폭폭어린이집

칙칙폭폭어린이집은 여느 공동육아 어린이집처

의 자연이 가까이 있지 않습니다. 남산이 있고,

럼 아이를 위해, 부모를 위해, 동네를 위해 조합

한강이 있고, 큰 공원도 좀 있지만 자연 그대로

원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함께 운영해 가는 곳입

자연을 체험하기는 쉽지 않아요. 그래도 그 와

니다.

중에 틈새 자연을 찾아다니고, 나들이를 가며

칙칙폭폭어린이집은 2013년 여름, 6월에 문

걸으면서, 동네에서 놀면서, 길가에 피어 있는

을 열었습니다. 칙칙폭폭이란 이름은 조합원들

꽃을 보면서, 담벼락 틈새를 기어가는 벌레를 보

에게 공모를 해서 투표로 결정했습니다. 용산

면서 사실은 어디에나 있는 자연을 보고 느끼고

하면 기차역과 기찻길을 빼놓을 수 없고, 기차

있습니다.

는 여러 대가 연결돼서 다 같이 앞으로 (때론 뒤 로^^) 움직이니까요.

공동육아, 공동체……. 쉽지 않지만 하나씩 함께 알아 가고 나누려 합니다. 그런 것들이 모

지금은 선생님 다섯 명과 열다섯 아이가 함

이고, 조합원의 생각이 더해지고, 거기에 시간이

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부모 서른 명도 함께하

쌓이면서 칙칙폭폭이 만들어져 가겠지요. 오랫

고요.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조합원도 있지만,

동안 지속가능한 어린이집을 만들어 가야 하는

대부분 만난 지 오래되지 않은 사이입니다. 하지

과제가 저희들 앞에 놓여 있습니다.

만 칙칙폭폭을 여는 과정에서 생각과 마음을 서

(김빈)

로 나누어서인지 같이 힘내 보자는 분위기가 있 습니다. 용산이란 곳이 도시 한가운데 있어선지 민낯

조합 사정으로 동글동글어린이집이 칙칙폭폭으로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공동육아 통권 110호


소개

새 회원 조합

148

교사와 부모가 공동체가 되어 함께 키우는 아이들

용인・기흥 꿈나무놀이터어린이집

2013년 5월 1일, 용인 보정동에 둥지를 튼 꿈 나무놀이터어린이집의 첫 시작은 한살림 마을

수 있는 모임과, 머리가 지끈지끈한 회의를 하면 서 꿈터를 더 멋지게 키워 갈 것입니다.

모임입니다. 2012년 3월에 한살림 조합원 바다,

꿈터어린이집은 아침마다 나들이를 갑니다.

미소, 햇살 세 명이 한살림 보정동 마을 모임에

야산이나 마을로 나들이를 하며 나무와 물, 흙

서 만나 우리 아이들을 위한 부모협동조합 공동

과 바람과 함께 물장난, 모래장난을 하고 텃밭을

육아 어린이집을 만들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공

가꾸며 생명을 배웁니다. 특히 인지발달이라는

동육아를 함께 고민하고 공부하는 소모임으로

이름 아래 숫자나 글자를 외우라고 강요하지 않

한살림 동아리에 등록해 소식지를 만들고 조합

습니다. 계절에 맞는 바깥놀이가 생활화되어 있

원을 모집했습니다.

고, 생활용품과 자연물로 놀이를 합니다. 이를

터전 없이 조합원을 모으는 게 쉽지 않았지

위해 어른들의 틀에 맞춘 생활 습관과 감각, 고

만, 여덟 명의 아마들이 모였고, 그 아마들 중심

정관념을 강요하지 않고 선생님과 부모가 모든

으로 설명회도 하고, 터전 구하는 것에 힘쓰다

아이를 함께 키웁니다.

보니 1년 계약으로 멋진 터전 자리를 만났습니

앞으로도 꿈터어린이집은 우리 아이들을 자

다. 지금은 이 터전에서 다섯 살 아홉 명, 네 살

연 속에서 뛰놀게 하며, 부자연스러운 인지 교육

여섯 명 아이들과, 조합원이자 교사인 미소와

의 희생양으로 만들지 않고, 올바른 먹을거리를

자두 두 선생님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준비하며, 교사와 부모가 공동체가 되어 함께

앞으로 또 다른 멋진 터전이 나타나기를 기다 리면서, 꿈터어린이집은 조합원들과 용기를 낼

키워 갈 것입니다. (서나연)


새 회원 조합 소개

149

아이와 부모가 함께 성장해 가는 생활형 방과후

대전 계수나무방과후

계수나무방과후는 생활형 방과후로 공동육아

기, 틀에 박히지 않은 창의적인 활동 들을 더욱

의 교육 이념과 내용에 기반을 두고 세웠습니다.

체계 있게 적용하고 운영했습니다.

계수나무방과후의 조합원은 직장 보육의 한 형

많은 고민과 탐구, 노력과 활동 속에 2년이 된

태로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는 것으로 시작한

지금은 교사 두 명, 초등 1학년 열한 명, 2학년

가정이 많았고, 공동육아의 철학과 교육 내용을

여섯 명 규모의 열입곱 가족 조합원이 방과후의

많이 알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교육, 운용, 시설, 홍보, 재정에 참여하여 즐겁게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활동하면서 공동육

생활하고 있습니다.

아의 이념과 내용을 깨우치고, 부모도 함께 성

조합원들도 스스로 교육과 운영에 참여하고,

장하는 것이 진정으로 내 아이를 올바르게 키우

부모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

는 것이라는 걸 깨달아 유아기 관계 활동의 중심

고, 아이들이 어린이집과 관계를 이어 나가면서

인 뿌리와새싹어린이집 졸업을 앞두고 초등 저

심리도 안정되고 학교생활도 잘해 나가는 것을

학년 때도 공동육아의 활동을 이어 가며 아이들

보면서 아주 좋아합니다. 아이들도 친구 관계가

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하는 고민 속에

다양해지고, 자율성을 기르고 놀이를 이끌며 함

서 뜻을 모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께해 나가는 것을 아주 좋아합니다.

처음에는 어린이집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아직 많은 것이 경험으로 쌓이지 않았고, 해

2012년에 조합형의 독립 형태로 만들어 부모 참여 폭을 넓히고, 생활 속에서 관계 맺기, 공동

야 할 것이 많지만 육아와 보육, 교육철학을 함

체 의식, 놀이 속에서 우리 문화에 관심 기울이

수나무방과후가 되겠습니다.

께 나누어 아이와 부모가 같이 성장해 가는 계 (김옥구)

공동육아 통권 110호


읽는 책

함께

150

친정아버지의 붉은 말

나 어릴 적 친정아버지는 버스 운전을 하셨다. 아버지 버스 회사는 우리 마을 사람이 시내에 나가려면 꼭 타야 하는 유 명한 205번 버스 회사였다. 아직 어린 나는 큰길에 나갈 일이 없었고, 버스를 타고 시내에 나갈 일은 더 없던 때였다. 아버 김미자 서울 고척동 그림책카페 도서관 가는길 주인장으로 일하고 있다. 카페에서 그림책 인문학 모임 그림책꽃밭을 꾸려 새내기 엄마들이 그림책 읽고 마음 푸는 것을 도와 주면서 함께 좋은 기운을 나누고 있다. 그림책에 관심을 보이는 마을 사람들을 바라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는 우리가 잠들고 나서 밤늦게 기름 묻은 작업복을 입고 들 어오셨고, 이틀 일하고 나서 쉬는 하루 동안은 꼼짝없이 누 워 주무셨다. 초등 2학년 때 새로 전학 온 친구 집엘 가다 보니 버스가 다 니는 큰 도로를 건너갔다. 실컷 놀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도로까지 따라 나온 친구와 큰길 횡단보도 앞에 서 있었다. 그때 갑자기 커다란 205번 버스가 내 앞에 멈추더니 앞쪽 문 이 획! 하고 열리는 것이었다. “어이, 딸!”


함께 읽는 책

앞에 차를 세우신 거다. 나는 그때 태어나 아버지를 처음 본 것 같았다. 새벽에 나가 늦은 밤에 시커먼 얼굴로 돌아오시는

친정아버지의 붉은 말

출발하시던 아버지는 큰길가에 있는 나를 발견하시고는 내

151

버스 운전석에 아버지가 앉아 계셨다. 종점에서 빈 버스로

아버지, 쉬는 날이면 주무시고 또 주무시기만 하는 아버지였 다. 나와 동생들은 아버지 쉬는 날에는 무조건 밖에 나가 놀 아야 했다. 낯선 도로 한가운데서 나를 부르는 아버지 얼굴, 아버지 목소리가 낯설어 한여름 해가 지느라 온통 빨간 하늘 아래 서 나는 그만 현기증이 났다. 게다가 전학 온 친구에 게 우리 아버지는 운수업을 한다고 똑 떨어지게 말 해 놓은 지 몇 시간도 안 지났다. 아버지는 다행히 내 앞에 더 머물지 않고 버스 문을 닫고 가 버렸다. 열일곱 살에 운전을 시작한 친정아버지는 꼬박 60년을 채우고는 2011년 일흔일곱 살에

운전기사 생활을 접으셨다.

그림책 《행복한 청소부》에는 친정아버지 같은 노동자가 나온 다. 독일 청소부 아저씨가 입은 푸릇한 작업복이 예전에 아버지가 입던 운전 기사 작업복이랑 많이 닮아 있다. 그림책 속 청소부 아저씨는 거리 에서 표지판 닦는 일을 하다 어 느 날 지나가는 아이와 엄마가 공동육아 통권 110호


읽는 책

함께

152

나누는 이야기를 듣는다. 지금 아저씨 자신이 닦고 있는 표지 판 글자는 음악가 이름이고 아쉽게도 모음 하나가 지워져서 엉뚱한 낱말로 읽힌다는 내용이었다. 정작 청소부 아저씨는 그런 내용을 모른 채 표지판만 열심히 닦았던 것이다.

“그건 안 되지, 이대로는 안 돼.”

청소부아저씨의 인생이 바뀌는 순간이다. 그렇다면 무엇 부터 해야 할까? 청소부 아저씨는 마음이 급해졌다. 음악, 소 설가의 정확한 이름과 또 그들이 만들어 내는 세계가 궁금하 여 그날만큼은 퇴근 시간까지 참을 수 없었다. 청소부 일을 그만두지 않으면서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싶어졌다. 거기에 관계있는 공부를 하고 싶어졌다. 시립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 읽고, 돈을 모아 산 레코드판을 들으며 잤다. 청소 일을 하면서 그 음악 가의 음악을 휘파람으로 불었다.

“좀 더 일찍 책을 읽을걸 그랬어. 하지만 모든 것을 다 놓친 것은 아니야.” 글은 아저씨의 마음을 차분하게도 했고, 들뜨게도 했어. 또 아저씨를 곰곰 생각에 잠 기게도 했고, 우쭐한 기분이 들게도 했어. 기쁘게도 했고.

시간이 흘러 나이 들어서까지 아저씨는


함께 읽는 책

거리의 표지판 닦는 일을 했다. 음악과 문학을 알고 싶어 한

153

호기심으로 아저씨는 스스로를 즐겁게 하는 삶을 살았다.

친정아버지의 붉은 말

2011년에 친정아버지가 60년 동안 해 온 운전을 그만두던

날, 자식들이 퇴임식을 마련해 드렸다. 아버지 퇴임식에 맞 춰 딸 넷, 아들 둘이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를 써서 16쪽짜 리 책을 만들었다. 책 제목은 《나는 아버지다》로 했다. 나는 아버지 이야기를 쓰고 싶은 마음에 퇴임식 한 달 전 아버지를 찾아갔다. 아버지와 단둘이 앉아 아버지 태어난 곳, 학교 다 닌 얘기, 장가갈 때 상황을 차근차근 말할 수 있게 분위기를 끌어갔다. 나에게는 그 시간이 “행복한” 운전기사 아버지를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먼저 아버지가 겪은 전쟁 이야기가 놀라웠다. 할머니가 어 린 아버지와 삼촌들을 데리고 강원도에서 대구 어디까지 피 난을 가서 떡장사를 했다는 소리 도 처음 들었다. 피난지에서 다 시 돌아와 보니 다니던 학교 가 폭격으로 없어져 버렸단 다. 꼬마 신랑처럼 어린 나이 에 결혼하여 아이를 낳다 보 니 아버지라는 책임감이 무엇인지 모르고 그저 운전만 하고 살았다 고 하셨다. 아들이 귀하고 딸이 천하다는 생각에 딸들을 제대 로 공부시키지 못해 미안하다 공동육아 통권 110호


읽는 책

함께

154

고 하셨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30년 넘게 써 온 일기장을 꺼 내 놓으셨다. 한결같은 글씨로 하루도 빼놓지 않은 아버지의 일기를 잠깐 살펴보니 운전 일지 비슷한 내용이었다. 아버지 는 운전기사 중에서도 일기 쓰는 훌륭한 운전기사였다. 새벽 에 나가 고된 노동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서 마침표를 찍듯이 일기를 써 놓고 뿌듯하게 행복하게 주무신 것이다. “운전을 하면서 본의 아니게 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나보낸 목숨이 있습니다. 두고두고 자손들이 복 있는 일을 많이 했으 면 좋겠습니다.” 친정아버지는 퇴임식에서 이런 말을 하며 울먹하 셨다. 그림책 속에 나오는 행복한 청소부나 우리 친정아버지는 평생 한 가지 일을 하며 살았다. 지금 세상에서 “평생 한 가지 일을 성실하게” 라는 말이 인생의 목표가 될 수는 없지만 가끔 그런 삶을 살아온 분들을 보면 다 른 이에게 없는 신성한 경지가 분명히 존재한다.


함께 읽는 책

표현한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그 붉은 말이 청소부 맘속에 존재하는 열정이라고 본다. 청소부 아저씨는 청소를 하면서

친정아버지의 붉은 말

은 말이 나온다. 이는 그림책 작가가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를

155

그림책 속에는 행복한 청소부를 따라다니는 날개 달린 붉

도 한쪽 가슴에는 음악을 궁금해하는 열정, 시와 소설을 읽 고 싶어 하는 열정이 있었다. 음악, 책, 시, 소설은 우리와 가 까이 있으나 또 가장 멀리 있는 것들이다. 가슴 속에 날개 달 린 붉은 말이 있는 사람은 그것을 곁에 놓고 살면서 평생토록 삶을 가꾸어 가는 것이다. 운전만 하고, 쉬는 날에는 잠만 자 는 분인 줄 알았던 우리 친정아버지 가슴에도 날개 단 붉은 말이 있었던 거다. 나도 일기 쓰기를 좋아하고 글을 쓰면서 행복해하니 이게 모두 우리 친정아버지 덕분이다.

행복한 청소부 안토니 보라틴스 그림 | 모니카 페트 글 | 김경연 옮김 | 풀빛

공동육아 통권 110호


이야기

그림책

156 김미자

윤여림이 자신의 고모 화가 윤석남을 모델로

감자꽃. 똘배 어린이문학회에서 어린이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다룬 그림책입니다. 윤석남은 평범한 여자로 자라 결혼하여 주부로 살다가 뒤늦은 나이 마흔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집과 딸아이는 점점 커 가는데 정작 자신은 작아져서 결국에는 작은 점으로 사라질 것 같다고 느낍니다. 자기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욕망의 소리 ‘화가가 되고 싶어’에 귀 기울이고 행동으로 옮겨 결국 ‘어머니’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거듭나는 이야기입니다. 화가 윤석남의 실제 작품과 거기에 쓰이는 색깔들이 그림책 속에 많이 보입니다. 덕분에 좀 평범할 수 있는 인물 이야기가 쉽고 재미있고 특별하게 펼쳐집니다.


그림책 이야기

157

책 제목이 “비움”입니다. 아이들에게는

이번 여름에 유럽 미술관을 돌아보았습니다.

이 말이 참 어렵습니다. “비움”이라는 말은

프랑스 파리에 있는 오랑주리미술관은

추상 언어이기에 자칫 설명하려다가 엉망이

모네가 그린 수련 그림을 전시하기 위해

됩니다. 그러나 아이가 어릴 때부터

특별히 만든 곳입니다. 모네는 화판에 빛이

집안에서 학교에서 비움의 개념을 몸으로

변화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담으려고 언제나

자연스레 느끼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화실 밖으로 나가 그림을 그렸답니다.

소망해 봅니다. 그저 부모가 이런 그림책을

파리 오랑주리미술관에 있는 수련 그림들은

앞에 놓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너무 커서 ‘모네는 이 그림을 대체 어디서

읽기를 바랍니다. 혹시 그런 부모를 신기하게

어떻게 그렸을까?’ 궁금했습니다. 여행에서

바라보는 아이가 있걸랑 옆에 앉게 하고

돌아와 그림책《모네의 정원에 온 손님》을

“비어 있다는 것은 슬픈 걸까?” 하고 물음을 던져 봅시다. 답이 있지도 않고

보니 궁금함이 해결됩니다. 전쟁이 났을 때 폭격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림을 그렸다는

있어서도 안 됩니다. 아이들 속에서

모네는 정원을 좋아하고 햇살을 좋아한

자라나는 건강한 욕망을 채우고 키워 갈 수

화가였습니다. 오랑주리미술관 긴 의자에

있도록 응원해 주어야 하는 것도

앉아 모네의 그림을 하염없이 보고 또 보던

부모니까요. 잘 채우고, 잘 비우는 길이

여름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림책에 있어서 참 좋습니다.

공동육아 통권 110호


공동육아 어린이집 서울

부산

꿈꾸는

02)995 - 1802

개구리

02)2691 - 7338 서울시 강서구 화곡8동 393 - 9

산들

02)458 - 7122

서울시 광진구 구의동 34 - 13

즐거운

02)458 - 0659

서울시 광진구 중곡4동 68 - 2

궁더쿵

02)2625 - 9769 서울시 구로구 궁동 178 - 14

씩씩한

053)791 - 6879 대구시 수성구 시지동 64 - 6

통통

02)3391 - 2889 서울시 노원구 상계동 1011 - 52

노마

053)322 - 4719 대구시 북구 도남동 125

해와달

02)824 - 3753

서울시 동작구 상도4동 279 - 362

딱지와구슬

053)321 - 8477 대구시 북구 관음동 490

또바기

02)333 - 4421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 389 - 32

솔방울

053)588 - 0686 대구시 달성군 다사읍 죽곡리 597

성미산

02)6082 - 6060 서울시 마포구 성산1동 32 - 5

우리

02)324 - 0933

참나무

02)3141 - 4271 서울시 마포구 성산2동 200 - 320

함께크는

02)3462 - 7599 서울시 서초구 우면동 28 - 7

행복한우리

02)942 - 7032

서울시 성북구 정릉동 559 - 86

강원

칙칙폭폭

02)714 - 0262

서울시 용산구 원효로1가 51 - 15호

산,들,바람

소리나는

02)358 - 7725

서울시 은평구 갈현동 494 - 12

소꿉마당

033)766 - 0663 강원도 원주시 판부면 서곡리 1251 - 5

신나는

033)244 - 7885 강원도 춘천시 사농동 281 - 16

서울시 강북구 우이동 154 - 9

서울시 마포구 성산1동245 - 41

아이들세상

051)515 - 6832 부산시 금정구 남산동 955 - 24

쿵쿵

051)342 - 2595 부산시 북구 화명2동 269

대구

창원 숲에서놀자

055)605 - 7785 경남 창원시 의창구 우곡로 75 - 1

033)643 - 0679 강원도 강릉시 교동 559 - 4

하남 파란하늘

02)3401 - 7813 경기도 하남시 감일동 376 - 36

인천ㆍ부천

재미난

02)442 - 0065

해맑은

032)546 - 2889 인천시 계양구 계산동 971 - 4

너랑나랑

032)437 - 5516 인천시 남구 문학동 375 - 2

너나들이

070) 7550 - 4463

032)666 - 9213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송내동 457 - 1

우리노리

032)347 - 9252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소사본1동 145 - 12

경기도 하남시 초이동 279 - 14

광명 하늘

02)899 - 2329

경기도 광명시 하안1동 317 - 17

송내대우아파트 105동 105호

과천 어깨동무

02)504 - 4533

경기도 과천시 과천동 궁말길 650 - 10

우리튼튼

02)507 - 5862

경기도 과천시 부림동 21 - 1번지

열리는

02)507 - 1798

경기도 과천시 과천동 468 - 7

고양ㆍ파주 도토리

031)967 - 3480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도내동 592 - 3

도깨비

031)969 - 3412

야호!

031)977 - 4788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성석동 564

여럿이함께

031)977 - 2382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성석동 415 - 11 에이동

031)947 - 0726 경기도 파주시 맥금동 483 - 11

의정부ㆍ남양주 꿈틀꿈틀

031)873 - 5420 경기도 의정부시 산곡동 632 - 2

징검다리

031)555 - 0591 경기도 남양주시 가운동 690 가운마을 휴먼시아 APT 관리동

평택 느티나무

안양ㆍ군포ㆍ의왕 친구야놀자

070)4032- 7959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비산3동 285 - 2

감나무

070)4312 - 7676 경기도 군포시 수리동 계룡삼환아파트 843동 101호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흥동 410 - 6 단독1층 하늘땅

나무를키우는 031)967 - 5995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장동 240 - 1 햇살 반딧불이

인천시 서구 왕길동 대림e편한아파트 119동 101호

031)681 - 9650 경기도 평택시 오성면 양교리 598 - 1

개똥이네

031)422 - 4633 경기도 의왕시 내손동 696 - 18 031)422 - 3281 경기도 의왕시 내손동 656 - 11

용인ㆍ수원ㆍ화성 깨끔발

031)287 - 5174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지곡동 444 - 1

숲이랑우리랑 031)8005- 8118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중동 96 - 46 달팽이

031)251 - 3210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파장동 269 - 1

사이좋은

031)227 - 5925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금곡동 엘지빌리지 102동 101호

성남ㆍ광주ㆍ이천 세발까마귀

031)714 - 4245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금곡동 67 - 1

꾸러기

031)711 - 4858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분당동 51 - 8

굴렁쇠

031)754 - 0978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 109 - 14

덩더쿵

031)712 - 7972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227 - 8 1층

햇볕은 쨍쨍

031)419 - 0652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일동 551 - 5

두껍아두껍아 031)717 - 9954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능평리 284 - 9 뭐하니

영차

031)502 - 0104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일동 547 - 2번지 1층

너른마당

안산

031)633 - 5956 경기도 이천시 부발읍 신하리 537 - 2


아이들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공동체

충주ㆍ천안

대전

아이들세상

043)847 - 7934 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 362 - 23

모여라

041)564 - 5308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신방동 627 -14

친구랑

042)867 - 5565 대전시 유성구 하기동 131-1

공동육아 방과후 서울

인천ㆍ부천

재미난

02)428 - 0605

서울시 강동구 상일동 292 - 2

해맑은

070)7661 - 2888 인천시 계양구 계산동 971 - 4

마법

02)444 - 0657

서울시 광진구 구의동 34 -13

032)661 - 9213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송내 2동

파란하늘

02)409 - 8890

서울시 송파구 거여동 251-1 1층

행복한우리

02)942 - 7032

서울시 성북구 정릉동 559 - 86

친한친구

02)4176 - 5959 서울시 마포구 성산2동 165 -1 3층

대전 친구랑

042)861- 6007 대전시 유성구 신성동 118 -1 1층

계수나무

070)8826- 0767 대전시 유성구 관평동 1208

463 - 62 4층

과천ㆍ분당 두근두근

02)504 - 7643

경기도 과천시 중앙동 19 - 7

율동

031)719 - 1291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 율동복지회관 2층

수원ㆍ용인 부산 징검다리 놓는아이들

사이좋은

엘지빌리지 408동 104호

꿈나무놀이터 070)8815-0510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 1328 -10

대구 해바라기

031)292 - 5925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금곡동

070)4024-2595 부산시 북구 화명동 269 2층

평택

053)793 - 6879 대구시 수성구 시지동 146 -1

초등 대안학교 산어린이학교 02)2611 - 1186

031)682 - 9650 경기도 평택시 오성면 양교리 605 - 2

지역공동체 학교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765

국공립 어린이집 (구립)성미

02)3141 - 2833 서울시 마포구 성산1동 65 - 4

(구립)푸른숲

02)307 - 0862

서울시 서대문구 북가좌동 144 DMC래미안이편한세상 207동 옆

뿌리와새싹 커뮤니티센터 뿌리문화원 뿌리와새싹어린이집

아름다운

042)935 - 8237 대전시 유성구 관평동 1248

해송 02)762 - 9201 서울시 종로구 창신2동 626 - 36 지역아동센터 02)6013 - 9201 강동꿈나무 02)478 - 7220 지역아동센터

서울시 강동구 천호4동 312 - 20 1층

송파꿈나무 02)404 - 2159 지역아동센터

서울시 송파구 문정동 11 - 8 3층

구로파랑새 02)838 - 5679 지역아동센터

서울시 구로구 구로2동 390 -194 서울 남복지관 1층

한누리학교 02)2695 - 6507 서울시 양천구 신월7동 982 -1 경신빌딩 2층 지역아동센터 성남꿈나무 031)743 - 4416 지역아동센터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은행2동 1007번지 3층

기관 회원 남양주

070)4201 - 1214

보물섬교육공동체

070)7723 - 1655

도곡 개구리어린이집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 721 -1

굴렁쇠어린이문화학교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라2동 614 -2번지

보물섬교육공동체

064)749 - 0669

보물섬어린이집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라2동 3373 -1

서울시 마포구 동교로 114 201호 | 02-323 - 0520 | gongdong @ gongdong.or.kr | www.gongdong.or.kr



열린 창문

161 우리를 찾아온 개

공동육아 통권 110호


창문 열린

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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