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시인이라는데 그 아이들이 있어야 할 곳에 있지 못하는 슬픈 현실은 무엇 때문에 누구 때문에 생겨나는가. 아이들이 시인인 것은 틀림없지만 그 아이들을 시인이 되게 한 것은 아름다운 자연이다. 어머니의 젖을 먹으면서 새소리를 듣고 흰 구름을 보고 별을 바라보며, 그리고 짐승들과 벌레들과 어울려 땀 흘리는 고통을 배우고 따뜻한 생명들과 살을 비비는 삶이 있어야 한다. 봄날의 비릿한 풋내와 작은 꽃들도 알아야 하고, 여름날의 소낙비와 무지개와 지루한 장맛비도 알아야 한다. 비지땀을 흘리며 들판에서 일하는 삶의 현장도 배우고, 고통의 대가로 얻어지는 가을의 풍성함, 겨울의 추위와 그 추위를 이겨 내는 생명들의 힘찬 인내도 체험해야 한다. 시인은 절대 공짜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권정생 글 <시를 잃어버린 아이들>,《빌뱅이 언덕》 , 160 쪽, 창비
2014년 겨울 호 111호
우리 아이 함께 키우기, 더불어 사는 세상 만들기
차례
여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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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과 선 그리고 나에 대하여 | 이기범
지금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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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누리과정과 평가인증 어떻게 대응할까? | 장혜경
18 공동육아와 공동체성 회복 | 장기성
생태와 공동육아 교육 나눔
26 나와 공동육아 그리고 생태 | 허인영 32 그래, 연못만으로도 충분한 거였어! | 김윤선
내가 만난 아이
46 우리 그냥 같이 학교에 다니자 | 조봉호
아이와 손잡고
58 그리움을 담는 그림 외 | 서진숙
날적이
62 자꾸 회피만 하네요. 일탈의 호기심을 보이는 걸까요? | 양명희, 정영화
표지의 ‘공동육아’ 글씨는 신영복 선생님이 1996년에 썼습니다. 표지 사진 안성일 (돌고래. 세발까마귀어린이집 교사) 이 회보에 실린 글을 옮겨 실으려면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오늘의 교육
66 행복하게 늙을 수 있는 나라가 되면 좋겠다 | 이주영
세상을 보는 눈
70 우리의 ‘안녕’을 위해 | 하승수
지역공동체학교
74 스스로 말하게 하라 | 김미아
마을 공동체
86 아이들의 희망 세상을 꿈꾼 사람들 이야기 | 류부영
함께 가는 길
96 우리 식구, 든든한 울타리 안에 있다 | 이지인
인문학 읽기
104 여성주의와 하나 될 수 있는 경제학의 태동을 기뻐하며 | 김정희
아이와 함께 보는 책 열린 창문
109 농촌에서 새롭게 만나는 권태응 동시 | 이송희 118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된 농사와 음악의 가치 | 이시원 124 피노이, 피노이 | 임도희
사진으로 보는 겨울교사대회 129 | 터전 주소록 134 2014년 겨울 호, 111호 | 펴낸날 2014년 1월 27일 | 등록번호 마포 바00111호 | 펴낸곳 (사)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펴낸이 박혜란 | 편집위원 이송지, 윤우경, 정영화, 조현제 | 편집 이송희 | 디자인 봄밤에별은 | 인쇄 금호씨앤디피 주소 서울시 마포구 동교로 114 태복빌딩 201호 | 전화 02-323 - 0520 | 전송 02-323 -1695 전자우편 gongdong @ gongdong .or.kr | 누리집 gongdong .or.kr | 독자 커뮤니티 journal .gongdong .or.kr
여는 글
새해 첫 글을 어렵다는 말로 시작하게 되어 민망합니다. 공동육아에 실릴 글 을 쓰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글쓰기가 제 직업의 중요한 부분 가운데 하나 인지라 이런저런 글을 쓰게 됩니다. 글쓰기가 모름지기 쉽지 않은 일이기는 하 지만, 공동육아에 실릴 글을 쓰기는 각별히 난처하다는 말씀입니다. 글 청탁 을 받고 글을 시작하기까지 글 생각만 한 것은 아니지만, 여러 생각을 만지작 거리느라 한 달이 훌쩍 가 버렸습니다. 왜 그럴까 자문해 보니 아마 이런 이유에서 난처함이 비롯된 것 같습니다. 제가 공동육아에 대하여 아주 잘 알고 있으니, 구성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훌륭한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 따져 보니 과연 제가 공 동육아를 잘 알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잘 알지 못하면서 잘 알고 있다 고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다른 지식과 달리 공동육아를 잘 안다는 것 은 어떠한 뜻인지 되묻게 됩니다. 공동육아의 설립에 참여하였고 지금까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해서 공 동육아를 잘 알고 있다는 등식이 성립하지는 않을 것이고, 그렇다면 도움이 될 만한 글을 쓰기도 가당치 않은 일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장에 너무 가까 워도 혹은 너무 멀어도 현장을 제대로 보기 어렵습니다. 공동육아를 안다는 일은 너무 가깝지도 않고 너무 멀지도 않은 적절한 지점에서 자신에게 적합한
점과 선 그리고 나에 대하여 이기범 (사)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상임이사, 숙명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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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111호
역할을 하며 알아 가게 되는 일인 것 같습니다. 공동육아는 하나의 생명체로 서 늘 움직이고 있으니, 그 지점과 그 역할을 찾는 일은 지속해서 확인과 수정 이 필요할 것입니다. 제가 그러한 확인과 수정을 지속하고 있는지 확신이 부족 합니다. 우리는 관계의 중요성을 자주 이야기합니다.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나’가 있어야 합니다. 내가 ‘존재’해야 관계를 맺을 수 있으며, 관계 속에서 ‘나’의 ‘존 재’는 변화합니다. 두 점을 연결하는 선을 관계라고 한다면, 선을 잇기 위하여 점이 존재해야 하고, 점은 점으로 존재하지만 선으로 이어진 점은 홀로 존재 할 때의 점과는 다른 점이 됩니다.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나’ 그리고 관계를 통 하여 변화하는 ‘나’. 그러한 나는 누구인지 스스로 이해하고 격려하며, 성찰하 고 분발하는 과정이 살아가는 과정 특히 함께 살아가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그동안 야간학교, 해송보육학교와 해송유아원, 해송아기둥지, 어린이걱 정모임, 공동육아, 어린이어깨동무에 참여한 바를 짚어 보니, 늘 도전이 되었 고 지금도 도전이 되는 물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답게 존재하고 관계하는 것입니다. 내가 좋아 시작한 일이니 ‘나다워야’ 하지만, 함께하는 일이니 ‘내’ 가 변하게 되고, ‘내’가 변화하지만 ‘나’는 ‘나다움’을 잃지 는 말아야 했습니다. 내가 내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 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나’ 그리고 관계를 통하여 변화하는 ‘나’. 그러한 나는 누구인지 스스로 이해하고 격려하며, 성찰하고 분발하는 과정이 살아가는 과정 특히 함께 살아가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점과 선 그리고 나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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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소리가 지나치지는 않는지 혹은 모자라지는 않는지. 내가 이 건을 해내야 하 는지 아니면 지나 보내야 하는지. 내가 구성원들을 휘두르고 있는 건 아닌지 혹은 내가 구성원들에게 휘둘리고 있는 건 아닌지. 내가 ‘나’를 고수해야 하는 지 아니면 구성원들의 요구에 맞추어 변해야 하는지. 내가 스스로에게 신랄 해야 하는지 아니면 너그러워야 하는지. 사람과 함께 무엇인가 도모하는 일은 자기 이해와 자기 변화의 과정이며, 이 과정은 나와 늘 함께하는 동반자인데 그 동반자라는 놈이 쉽지 않은 존재입니다. 좀 싱거운 소리를 하겠습니다. 동네에 혼인도 못 하고 죽은 청년이 있었답 니다. 그 소식을 들은 부부가 나누는 이야기. 남편, “혼인도 못 해 보고 죽었으 니 그 청년 참 안되었네.” 부인, “그렇게 일찍 죽을 것이니 혼인 못 한 게 다행이 오. 처자식이 얼마나 고생할 뻔 했소.” 남편은 이 사건을 인륜지사 위주로 보 는 반면 부인은 희로애락 위주로 보는 것 같지요? 여성 월간지의 심리검사 같 은 분류를 잠깐 양해한다면, 남편 같은 사람은 사건에 거리두기를 하는 ‘문제 해결형 인간’이라 할 수 있을 것이고, 부인 같은 사람은 사람에 동일시하는 ‘공 감형 인간’이라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예상하지 못한 사고가 닥쳤을 때, 그러한 사고가 일어난 원인이 무엇이고 책 임은 자신을 포함하여 누구에게 있는가를 꼭꼭 따져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원인과 책임을 따지는 일이 부질없으니 자신과 둘레 사람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일으켜 세우며 해결해 나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앞에 사람을 ‘비판형 인간’이라 한다면, 뒤에 사람은 ‘격려형 인간’이라 할 수 있겠지요. 유치한 분류이지만 단순함에서 배움을 찾아보자면, 저는 ‘문제 해결형 인 간’이자 ‘비판형 인간’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물론 누구에게나 각각의 두 측면 이 공존하지만, 더 우세한 측면을 종합하면 저는 ‘비판적 문제 해결형 인간’이 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성향으로 보자면 저는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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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111호
진지하게 사안에 접근하고, 책임감이 강하며, 자신에게 엄격하고, 객관적으 로 말하고 행동하려는 편입니다. 동시에 계획 수정을 달가워하지 않으며, 일 을 즐기지 못하고, 자기 정의가 지나칠 수 있으며, 둘레 사람들과 공감이 부족 하고, 자기 목소리를 은폐하는 면이 있다고 돌아봅니다. 저는 다양한 역할로 다양한 일을 하면서 부족한 점들을 보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다 큰 사람이 자신의 습성을 바꾼다는 일이 쉽지는 않습니다. 저의 부족함과 지나 침으로 인하여 폐해가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으나, 늘 소지를 안고 있을 것입니다. 다행인 것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 중 ‘격려적 공감형 인간’이 있어서 저의 한 계를 보완해 주고 제가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공동육아의 예를 들자면 ‘괜찮아’와 ‘물길’이 그 화신이라 하겠습니다(별명을 쓴 것, 사례로 든 것을 부디 용 서하여 주시기를!). 물론 둘레에서 저를 보완해 주는 것을 흔쾌히 받아들이지는
못하여 심통을 부릴 때도 있지만, 기꺼이 도움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고 있습 니다. 저와 다른 성향의 동료가 있어 저와 상호 보완할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마 운 일입니까? 어린이집에도 법인에도 나와 다른 성향의 사람이 있음으로 그 관계가 상보적으로 될 수 있겠습니다. 다시 제 이야기로 돌아가면 제가 공동육아의 글을 쓰기 어려워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도 제 성향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고백을 합니다. 제 고백을 글 로 옮기니 제 마음은 가벼워진 느낌이 있지만 여러분도 공감하시는지 모르겠 습니다. 고백하는 방식 역시 제 성향에서 자유롭지 못한가요? 점이 있어야 관 계의 선이 그어질 수 있고, 관계의 선으로 말미암아 그 점들은 변화합니다. 오 늘은 결국 관계에 선행하는 자기 형성, 자기 이해, 자기 성찰, 그리고 자기 갱신 에 대하여 말씀드리게 되었는데, 요즈음 제가 가장 큰 관심을 두는 물음들입 니다. 여러분은 요즘 무엇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점과 선 그리고 나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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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누리과정 실시를 통해 살펴본 공동육아 교육과정, 그 세 번째 이야기
공동육아, 누리과정과 평가인증 어떻게 대응할까?
Ⅰ. 들어가며 공동육아가 보육의 공공성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2004년 부모 협동 보육 시설이라는 새로운 유형으로 제도권에 진입할 즈음 정부는 평가인증제 도의 도입을 계획하고 있었다. 이어 2011년 5월 2일, 정부는 만 5세 공통 교육 과정 시행 계획을 발표했고, 2011년 9월 5일, 만 5세 공통 과정인 누리과정을 전격 고시했다. (사)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다음부터 법인)에서는 2011년 하반기 현장교육
지원전문가회의(페다회)와 몇몇 경력 교사들로 구성된 누리과정 대책 모임(누 리과정연구모임)을 꾸리고 발 빠르게 이에 대응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법인의 지원 아래 페다회에서 몇 년 동안에 걸쳐 공동육아 교육과정에 대한 논의와 연구를 진행해 왔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이루어진 공동육아 교육과정에 대한 논의 결과를 바탕으로 장혜경 무지개꽃. (사)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현장교육지원전문가, 우리어린이집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공동육 아 인증지침서, 교사성장체계 연구에 참여했고, 현장 교사들과 함께 일하면서 공동육아 교육 연구에 천착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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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111호
아이들이야말로 공동육아의 나무들이다. 아이들이 있는 곳에 부모도 있고, 교사도 있다. ‘생태적 관계망 속에서 자율적이고 주체적으로 성장하는 아이들’, 국가의 개입이 밀려들어 올수록 교사들은 바로 이런 아이들의 모습을 세상에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
누리과정연구모임에서는 만 5세 누리과정 고시 내용을 분석한 뒤, 공동육아 에서 누리과정을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그 방향성에 대한 교사회의 입장을 정 리하고, 그 내용을 2012년 1월 겨울교사대회를 통해 전국 단위의 공동육아 현장 교사들과 공유한 바 있다. 그리고 그 바로 뒤인 2월 신임이사진교육을 통 해 개별 조합의 이사진들과 이를 공유했다. 누리과정연구모임에서 예견한 대로 누리과정이 실시된 뒤에도 현장에서 는 실제적 변화를 크게 느끼지 못했고, 2012년 5세 누리과정을 도입한 정부 는 연령을 확대해 2012년 6월 3~5세 누리과정을 고시하고 2013년 3월부터 3~5세 누리과정을 시행하고 있다. 공동육아 현장에서는 이를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2년 동안에 걸쳐 공유한 바 있으나 누리과정과의 연속선상에서 평 가인증에 대한 더욱 구체적인 대응책을 제시해 달라는 현장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 가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법인에서는 페다회에 평가인증과 관련된 문제를 다시 논의해 줄 것을 요청해 왔고, 두 번에 걸친 논의를 바탕으로 해서 다시 또 글쓴이가 이에 대한 정리를 맡으면서 이 글은 시작되었다.
공동육아, 누리과정과 평가인증 어떻게 대응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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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이 글에서는 현장에서 왜 누리과정에 대해 이 같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지, 그 원인을 종합해서 분석・정리해 보고, 앞으로 법인 차원에서, 지역 차원 에서, 그리고 개별 조합 차원에서 실천해 나가야 할 다양한 대안들을 찾아보 고자 한다.
Ⅱ. 누리과정과 평가인증 2011년 처음 누리과정이 고시되었을 때 공동육아의 누리과정 대책 모임에서
는 대응의 방향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 바 있다.
첫째, 누리과정을 ‘선언적 의미’로 해석하기로 한다. 둘째, 공동육아 현장은 오히려 누리과정의 기본 방향과 목적 및 목표를 제대 로 실천할 수 있는 ‘실천의 장’이 될 우리 사회의 공간이다. 셋째, 누리과정의 구체적인 방법론까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공동육아 현장에서 실천해 온 총체적 삶을 좀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밖으로 드러내어 적극 소통함으로써 공동육아 교육의 독자성과 타당성을 안 팎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한다.(2012년 공동육아 겨울교사대회)
위와 같이 누리과정 시행과 함께 생긴 공동육아 내부의 위기의식은 당장 큰 문제는 아니라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그러나 현장에서 피부로 느끼는 어려움 은 결국 평가인증과 관련하여 일어나고 있다. 서울형 같은 공공형 인증도 평 가인증의 결과를 반영하고 있기에 결국 같은 문제라고 볼 수 있다. 1차 평가인증 시행(2006~2009년) 때는 사실 큰 어려움이 없었다. 주된 목적
은 회계의 투명성과 건강 및 안전, 위생 같은 환경의 확보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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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111호
그러나 2010년부터 이루어진 2차 평가인증은 많이 달라졌다. 재인증 어린 이집의 재참여 과정이 폐지되고, 필수 항목이 4항목에서 9항목으로 확대되었 으며, 현장 관찰 보고서의 비율이 50퍼센트에서 55퍼센트로 올라가고, 평정 기준 또한 상향 조정되면서 공동육아 현장을 더욱 긴장하게 만들고 있다. 그 리고 이와 같은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공동육아 현장은 이러한 상황에 얼마나 대응력을 갖고 있는가가 누리 과정과 관련한 문제의 핵심이다. 평가인증 통과 여부에 따라 정부 지원금이 달라지는 것이 현실이다. 더군다나 공동육아의 예산 가운데 많은 부분이 인 건비로 지출되고 있는 상황에서 인건비 지원이 큰 공공형(서울형 포함) 인증을 목표로 삼고 있는 조합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공공형(서울형 포함) 인 증 시, 평가인증 결과가 차지하는 비율은 낮지만 먼저 통과가 요구되는 조건이 기도 하고, 교사들에게는 평가인증 점수를 교사회의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 으로 여기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정부 지원금을 포기하지 않는 한 현재로서는 평가인증에서 어느 교사회도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교사들 스스로 평가인증을 공동육 아에 맞춰 다시 해석할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한다. 사실 이 부분이 현장의 개별 교사회에게는 가장 힘든 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점점 밀려들어 오는 국가 개입 속에서 길게는 3~4년, 짧게는 1~2년 만에 한 번씩, 게다가 점점 증가하는 점 검단들까지
이를 고려할 때 언제까지나 평가인증 문제를 임시변통으로
만 해결할 수는 없다. 따라서 결국 공동육아 교육과정과 누리과정 및 평가인 증에서 요구하는 부분 사이에 어떻게 접점을 찾아갈 것인가, 그리고 공동육 아의 독자성, 우리의 정체성에 맞는 교육 실제를 어떻게 정리해서 안팎으로 알 려 우리 현장을 있는 그대로 인정받을 것인가가 문제의 핵심이 된다. 이와 같은 생각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평가인증대책회의에서는 다음과 같 은 논의를 했다.
공동육아, 누리과정과 평가인증 어떻게 대응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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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첫째, 누리과정과 마찬가지로 평가인증 또한 지금 현재로서는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
평가인증에 대한 교육을 받아 보면 강사들마다 평가인증 자체가 프로그램이나 교육 계획이 없는 곳이 문제지, 있는 곳은 너희 걸 잘 살려서 하면 된다고 얘기한 다……. 교육 활동 그대로 잘 기록하고, 누리과정이 추구하는 발달 영역과 어떻 게 연계되는지만 잘 보육일지에 담으면 된다고 한다.
(1차 평가인증대책회의록)
실사할 때도 공동육아 하루 흐름으로 사는 거 아무 문제없었다. 보통 조력에서 교사들이 좌절감을 많이 느끼고 우왕좌왕한다.
(1차 평가인증대책회의록)
둘째, 평가인증을 받아들이는 교사들의 인식과 태도가 중요하다.
평가인증(공공형 인증부터 각종 지도 점검까지) 1년에 두 번도 하게 된다. 이걸로 진 다 빼지 말고, 적당히 욕먹을 건 욕먹을 각오로…….
(1차 평가인증대책회의록)
평가인증 할 때 나부터 ‘우리가 평가인증, 누리과정을 공동육아에 맞게 해석할 힘이 있는가’를 고민하게 된다. 그 힘 없이 하다 보니 현장에서 교사들은 알아서 지표, 조력 내용대로 맞춰서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듯하다. (1차 평가인증대책회의록)
셋째, 평가인증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현장에서 당장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 인 보육일지 문제는 해결하고 가야할 필요가 있다.
현장에서 보육일지 문서화 하는 거 힘들어하는데, 일지 안 써서 실제로 평가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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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111호
에 떨어진 사례도 있다. 현장에서 보육일지를 우리 교육과정을 의식하지 않고 쓴 다. 그게 문제다. 우리가 하고 있는 걸 문서로 보여 줘야 한다. (1차 평가인증대책회의록)
보육일지, 교사들이 왜 그리 힘들어하는가 봤더니 아이들을 제대로 관찰할 줄 모른다. 그 관찰을 우리 활동이랑 연결시킬 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보육일지 쓰는 법 집중적으로 연구해야 한다……. 공동육아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해석 하는 힘이 제일 취약한 거 같다.
(2차 평가인증대책회의록)
마지막으로 드러난 문제는 평가인증 조력 때 문제가 오히려 더 심각해진다는 것이다.
조력 한 번 받으면 휘둘리고 해석도 다른 데 문제가 있다. 지표는 매번 바뀌고 있 고…… 그 속에서 교사들이 족집게 과외 해 주는 사람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우리 안에서 조력 가능한지 따져 봐야 한다.
(2차 평가인증대책회의록)
Ⅲ. 대정부 활동을 통해 시정 요구가 필요한 지점들 평가인증대책회의에서는 앞으로 대정부 활동을 통해 시정을 요구해 나가야 할 사안들도 논의했는데 이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다른 모든 문제의 출발점으로 시설 유형과 원의 운영 철학에 따른 방법 론의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
관찰자가 39인 이하는 공동육아에 대한 이해 있는 사람이 온다. 40인 이상 어린
공동육아, 누리과정과 평가인증 어떻게 대응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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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이집 관찰자로 오는 사람은 공동육아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다……. (1차 평가인증대책회의록)
우리랑 사는 게 너무 안 맞아서 평가인증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차 평가인증대책회의록)
둘째, 실내 영역 구성을 강요하면 안 된다.
영역 구성이 현장에서 제일 어렵다. 실제 삶은 그렇지 않은데 방에 5개 영역 구성 을 했다가 평가인증 끝나면 다시 원상 복구한다. 그런데 평가인증 하면서 실제로 조력을 그렇게 받는다. 그런데 (소규모를 지향하는) 우리는 그렇게 못 산다. 좁은 방 에다 5개, 6개 영역 집어넣고 아이들을 어떻게 뛰어놀라고 하나. 평가인증의 기 준 자체를 바꿔야 하는 거 아닌가. 평가인증 자체에서도 실외 활동 중요성을 강조 하면서 한 방에 집어넣는 구조의 불합리한 점이 분명히 있다. 이러한 불합리함을 알면서도 따라가는 형태가 되고 있다.
(2차 평가인증대책회의록)
셋째, 보육과정 실행의 확인 방식에 문제가 있다.
보육과정을 횟수로 체크한다. 계획 있는지 여부, 예를 들어 언어 활동은 매일 몇 회 실행하는지 체크하는 형식이더라……. 언어 활동도 보육일지 보며 하나하나 체크하는 상황이다.
(1차 평가인증대책회의록)
넷째, 운영 철학을 담아내는 조력이 필요하다. 지자체별로 조력 내용에 따라 편차가 다양하다. 평가인증이 당면한 경우에 온 조력자가 한 이야기를 무조건 믿게 되면서 많은 부분 우리의 일상이 흔들 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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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111호
평가인증 받기 전에 잘 몰라서 조력을 불렀는데 일반 어린이집 원장이 와서 자 기 어린이집 기준으로 봐 주는 것이었다……(가운데 줄임)……조력 오는 사람 들은 조력 가면 통과 안 되는 곳 없다 얘기하는데 평가인증 통과해야 한다는 강 박 있어서 굉장히 과도하게, 필요 이상으로 얘기하는 측면이 있다……(가운데 줄 임)……우리 내용, 일상을 많이 안 건드리고, 환경 구성을 좀 많이 바꾸었다. 조
력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많이 흔들린다. 실사할 때도 공동육아 하루 흐름으로 사는 거 아무 문제없었다. 보통 조력에서 교사들이 좌절감을 많이 느끼고 우왕 좌왕한다.
(1차 평가인증대책회의록)
Ⅳ.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대안들 정부가 지원금을 늘리면서 보육 현장에 개입해 들어오는 과정에서 먼저 목표 로 삼은 것이 최소한의 질 관리였고, 1, 2차 평가인증 시행을 통해 기대한 목 적을 달성했다고 생각하는 정부는 계속 표준화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외형 적인 면에서 표준화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표준화된 인간을 길러 내는 일은 국가가 학교교육을 통해 지금까지 계속해 온 일이다. 평가인증이 정부 지원금과 관련되어 포기하기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그 러나 표준화된 질을 목표로 하는 정부의 정책에 계속 이끌려 간다면 공동육 아 어린이집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생태적 관계망 속에서 자율적이고 주체적으로 성장하는 아이, 부모, 교사’ 라는 생태 보육관을 바로 세우는 내용을 만들어 내고 공유하지 못할 때 공동 육아 어린이집은 부모 협동 보육 시설이라는 형식만이 남을 것이다. 수동적인 대응에 멈추어서는 점점 더 정부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편에서는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이에 각 단위에서 해 볼 수 있는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공동육아, 누리과정과 평가인증 어떻게 대응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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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법인 차원에서는 개별 현장이 공동육아 교육의 방향성을 놓치지 않도록 하 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 이를 위해 법인에서는 전문 인력을 배치해서라도 20년 동안 살아 온 삶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공통의 교육과정을 정리하고, 공동육아의 방식으로 살 면서 평가인증도 통과하는 사례를 발굴, 알려 주어야 한다. 또한 최소한 교사 성장체계틀 안에 교육과정을 분석할 수 있는 눈을 기르기 위한 과정을 포함 시켜야 한다. 공동육아 아이들의 삶이 누리과정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세심 하게 살펴볼 수 있는 능력을 제고할 수 있는 장치를 지원해야 한다. 시행 시기 마다 달라지는 평가인증 지표의 변화와 같은 민감한 부분에 대해서는 법인 차 원에서 발 빠르게 파악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두고, 동시에 법인 안에서 조 력 인력을 양성해서 외부 조력 지원이 아닌 내부 조력 지원을 하는 방안도 필 요하다. 조합과 교사회는 단위 교사회의 자율적 교육 운영 능력을 제고하기 위한 장 치를 마련할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해야 한다. 공동육아의 교육을 ‘비형식적 생활형 학습’, ‘만들면서 만들어 가는 교육과 정’이라고도 하고, ‘발현적 교육과정’이라고도 한다. 발현적 교육과정 속에서 는 교사의 교육과정에 대한 의사 결정이 자율적 판단을 넘어서 자의적으로 흘 러가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가 꼭 필요하다. 이를 위해 개별 교사회 안에서 교 육 논의를 지속하면서 삶의 내용과 의미를 함께 공유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이와 함께 어린이집 안팎을 오가며 더욱 폭넓은 시각에서 교사회의 성장을 지 원해 줄 수 있는 지속적 현장 교육 지원 장치가 꼭 필요하다. 교사회가 실천하고 있는 교육이 방향성에 맞게 가고 있는지 함께 논의해 줄 전문적 도움이 있을 때 공동육아가 추구하는 가치를 향해 더욱 응집력 있게 나아갈 수 있고, 그 과정 에서 현장 교사들 역시 성장할 것이다. 먼저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시범적으로 지역 페다제를 실시해 보고 그 실효성을 확인해 보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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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사무총장이던 물길이 2013년 여름교사대회에서 던져 준 화두, “공동육 아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지켜 나가야 할 ‘나무’는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급 격히 돌아가는 사회 흐름의 변화 속에서 이에 대한 답을 이제는 교사회가 찾 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교사가 주체로 서는 공동육아’의 핵심이다. 아이들이야말로 공동육아의 나무들이다. 아이들이 있는 곳에 부모도 있 고, 교사도 있다. ‘생태적 관계망 속에서 자율적이고 주체적으로 성장하는 아 이들’, 국가의 개입이 밀려들어 올수록 교사들은 바로 이런 아이들의 모습을 세상에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도, 하루아침에 되는 일 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풍부한 인적 자원과 선배들이 걸어온 발자취, 그리고 부모 조합원들을 뒷배로 두고 못할 일도 아니다. 이제는 그동안 혼란스러웠던 공동육아 교육과정을 정비하고 드러내 보여 줘야 할 때다. 오늘 당장의 현실은 평가인증의 지표를 의식하고 살 수밖에 없지만, 앞에서 제안한 장치들이 자리 잡힌다면 공동육아의 교사들은 비로소 국가의 필요 없 는 개입에서 벗어나 더욱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교사회로 성장할 것이다. 그리 고 이렇게 성장하는 교사들을 지원하고 지지해 주는 또 하나의 주체인 부모 들을 보면서 ‘자율적이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가는 아이들’을 우 리 사회에서 계속 더 많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현장교육지원전문가들이 모여 평가인증대책회의를 한 내용을 중심으로 장혜경이 정리했다. 2014년 1월 17일 겨울교사대회에서 발표한 글을 조금 간추려서 실었다. 함께 논의한 이들은 다음과 같다. 김경태(둘리엄마), 김기나 (진달래), 김미애(스콜라), 김미영(도라지), 박정화 (달팽이), 백승미(미리내), 성미루(포도나무), 신 현주(콩쥐), 윤일순(개구리), 이말순(코뿔소), 윤우경(코알라. 법인 활동가), 조현제(아라치. 법인 활동가).
공동육아, 누리과정과 평가인증 어떻게 대응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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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공동육아와 공동체성 회복
‘우리노리’를 통해 만난 공동육아 늦은 밤 퇴근을 하고 무심코 돌린 텔레비전에서 아빠 육아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다. 아내 없이 어린 아이들과 동동거리며 일상을 지내는 텔레비전 속 남자 가 내 모습과 겹쳐 살짝 웃음이 새 나왔다. 나 또한 아내 없이 두 딸과 세 끼니 를 해결하며 온 종일 지낸 날은 소주 열 병을 마신 다음 날보다 더 힘들다. 사 흘 내리 하라고 하면 나는 가출할지도 모른다. 어린이집에 머리 숙여 감사해야 할 지경이다. 예전에는 어린이집을 대신하는 곳이 마을이고, 마을 골목이었다. 부모가 혼자서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외로운 고민도 그다지 필요 없었다. 먹고살기 바쁜 부모를 대신해서 마을 전체가 육아를 함께할 수밖에 없던 현실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 마을에서 나와 우리 식구를 아는 사람은 없다. 마을에서
장기성 성공회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외래교수 , (사)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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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를 고민하기 위해서는 근본부터 서로 다름을 인정해야 하고, 여럿이 함께하는 것에 익숙해져야 하며, 그런 과정에서 공동의 목표와 가치를 찾아 나가야 할 것이다.
뛰노는 아이들도 없고, 집 둘레에는 엄마도 아이도 친구가 없다. 옆집 사람들 이 어떤 사람인지도 잘 모른다. 엄마와 아이가 친구도 없이 날마다 함께 보내 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혼자서 아이를 키운다고? 마을이 무너지고, 공 동체가 무너진 상황에서 혼자서 아이를 잘 키울 수는 없다. 나와 아내는 아이 에게 마을을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에서 공동육아를 선택했다. 큰아이 세 살 때 집 가까이에 있는 우리노리조합을 만났고, 공동생활에 대한 기대와 설렘 으로 조합 생활을 시작한 지 올해로 6년째 접어든다. 아이들 중심으로 시작한 마실이 점점 부모 중심으로 변질(?)되어 가면서 형 님 아우 사이가 되어 버린 짜릿함, 조합의 모든 식구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어 린이집 잔칫날의 들뜬 모습, 내 집 청소는 나 몰라라 하면서 터전 청소는 빼먹 지 않고 꼼꼼히 챙기는 아빠들과 새벽까지 달렸던 술자리, 아침에 둘이서 치 른 부부 싸움이 저녁이면 남편들과 아내들의 싸움이 되어 버린 일들
.처
음에는 낯설던 이런 풍경이 점점 익숙해지면서 함께 산다는 것에서 오는 즐거 움과 기쁨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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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 기쁨의 크기만큼 조합 생활이 녹녹치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 이들을 한가운데 두고서 함께 가는 공동체임에도 육아나 교육에 대한 서로 다른 시선 때문에 겪는 자잘한 싸움, 공동체 생활의 이론과 실제 사이에서 오 는 갈등, 아무리 맞추려 애써 봐도 공통분모를 찾아낼 수 없는 사람과 관계 맺 는 일, 서로 다른 소통의 방식, ‘공동’이란 낱말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으로 좁 아지지 않는 너와 나 사이에서 몸과 마음이 힘들 때도, 분노가 생길 때도 있었 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조합원 사이에 같은 무엇을 찾아내는 것보다 서로 다른 것을 어떻게 인정하느냐가 공동생활에 더 중요하다는 것을 몸으로 익혔 다.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은 머리에서 마음, 다리까지라더니 딱 맞는 말이다. 조합 생활을 하는 동안 여러 일이 있었지만, 나는 무엇보다 아이들이 전혀 일반적이지 않게, 이반적(?)으로 커 가는 것이 너무 좋다. 이런 여러 까닭으로 공동육아를 내가 선택한 게 참 마음에 든다.
공동육아를 통해 아이를 함께 ‘잘’ 키운다는 것 몇 년 전 우리노리에서 조합원 교육으로 공동육아란 무엇인지, 공동육아의 역사와 철학에 대한 강의를 마련한 적이 있다. 강사는 공동육아를 졸업한 아 이들이 어떻게 자라났는지 몇 아이들 예를 들어 이야기해 주었다. 졸업생 가 운데는 공부를 잘해서
대학교에 다니는 아이도 있고, 좋은 직장에 좋은
연봉을 받고 일하는 아이도 있다고
. 이 이야기를 두고 조합원끼리 갑론
을박한 기억이 있다. 아마도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이라는 결과를 얻기 위한 것이 공동육아의 목표냐, 공동육아의 장점을 좋은 대학 몇 명 합격과 같은 통 계로 논할 수 있는가, 그런 것도 중요하지 않냐’ 하는 이야기였던 듯하다. 사실 강사는 ‘이렇게 성장한 아이도 있고, 저렇게 성장한 아이도 있다’는 것을 소개 한 것이고, 성장 과정의 중요성과 그 과정의 즐거움을 강조한 것인데, ‘공동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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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를 했더니 이런 결과가 나오더라’ 하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던 우리 자신의 불안한 마음이 표현되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모든 부모는 아이를 ‘잘’ 키우고 싶어 한다. 도대체 그 ‘잘’ 이 무엇일까? 물론 잘 키운다는 것은 개인의 철학에 따라 다르게 표현될 것이다. 그런데 도 내 맘대로 추정해 보자면 부모들 대부분은 잘 키운 아이의 이상적인 표본 을 ‘착한 서울대생’으로 삼는 듯하다. 이는 인격의 훌륭한 내용은 ‘착한’에, 학 문의 훌륭한 성과는 ‘서울대생’에 비유하여 표현한 말이다. 예컨대, 둘레에서 공동육아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진로를 고민할 때, 인격에 점을 찍어 대안 교 육을 선택할 것인지, 학문에 점을 찍어 공교육을 선택할 것인지 갈등하는 부 모들도 적잖이 보기도 했다. 물론 학교를 선택할 때 갈등하는 까닭이 이것만 아니라 개인의 상황과 여건에 따라 다양하겠지만, 어쨌든 ‘잘’ 키우는 것에 목 표를 두고 저마다 나름대로 고민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습관 탓인지, 사회 문화 탓인지 우리는 많은 것에서 결과에 따라 과정의 옳 고 그름이나 중요성을 논하고는 한다. 그 많은 것 가운데 ‘육아’도 예외는 아니 다.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것도 늘 결과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 되어 버리니 알 수 없는 결과에 불안해하고, 현재의 육아 과정 또한 불안의 연속일 수밖에 없 다. ‘아이를 잘 키웠다’의 결과로 나타나는 모습은 아주 다양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공동육아로 아이를 함께 잘 키운다’는 것은 중요한 가치가 결과나 목표 에 있지 않고 과정에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아이들이 마을에서 다양한 가치와 철학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또래 친구들과 자연 속에서 계산 없이 뛰놀면서 자연스럽게 세계관을 고민하고 학습하던 지난날처럼 말이다. 내가 아이들의 성장에서 기대하는 것은 아이의 속도에 나를 맞추는 것이 다. 아이들 성장을 한결같은 기준과 가치 또는 내 가치에 따라 판단하고 재단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연습을 해야 할 것 같다. 즉 아이의 성장에 대해 내가 바라는 것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나 스스로, 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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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아닌 마음으로 깨닫기를 희망한다. 우리 아이들이 지금처럼 행복하면 좋겠다. 우리 아이들은 흙을 밟으며, 더 위와 추위 속에서도 뛰놀고, 자연의 흐름에 따라 생활하면서 생명과 나눔을 자연스레 배울 수 있도록 많은 경험을 한다. 정형화되지 않은 놀이를 하면서 창의성을 배우고, 놀이와 친구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내려놓아야 할 것과 지켜 야 할 것을 스스로 발견하고 있다.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것도 없고, 절대 안 되 는 것도 없는 환경과 문화에서 스스로 사유할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있다. 그런 과정에서 공존의 철학을 애비처럼 책으로 먼저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경험과 자신의 생각으로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
공동육아와 협동조합…… 이전 사회와는 달리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가치는 경쟁, 효율, 자본축적, 소비 확대, 세계화, 기술 같은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협동, 공생, 자연(생태), 행복, 지 역사회, 창의성 같은 데 있다고 한다. 우리는 새로운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공 동육아를 선택하는 것 같다. 그런데 실제로 조합 일을 하다 보면 ‘협동’이 기계 처럼 ‘분업적 협동’이 되어 가는 것 같아 답답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공동육아를 한다는 것이 ‘우리 아이’를 같이 잘 키우자는 것인데도, 아이만 공동육아에 밀어 넣고 부모는 뒷짐만 진 채 공동육아를 내 생활의 일부로 받 아들이지 않는 모습을 보면 서운한 마음까지 든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늘 양 보, 협동, 조화, 이해, 경청, 공생 같은 온갖 좋은 개념을 다 요구하면서, 정작 내 이기적인 모습을 볼 때면 한 없이 부끄러워진다. 이런 이기적인 내가 모여 공동육아를 잘하기란 점점 더 어려워진다. 공동육아(共同育兒)는 우리 아이들을 혼자서 또는 한 집안에서만 올바로 양 육할 수 없는 현실을 꿰뚫어보며, 성장과 효율 중심의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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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개인의 공동체성 회복을 위한 활동이라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 의 아이들을 모두가 함께 자연 속에서 돌보고 기르면서 아이들은 물론 어른도 현재와는 다른 새로운 세계관을 갖도록 하는 실천이며, 그 결과 사회제도와 문화, 경제체제의 변화를 꾀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공동육아는 현실 사회 의 대안을 제시하는 운동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생협 먹을거리를 이용하는 것도 마찬가지 까닭인 것 같다. 단순히 내 아이에게, 내 식구에게 몸에 좋은 음식을 먹이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먹을 거리를 바꾸는 것은 우리 농업을 바꾸는 것이고, 우리 농업을 바꾸는 것은 우 리 환경과 생태, 자연을 바꾸는 것이며, 이 모든 과정이 우리 사회 구성원들 사 이에 공명(共鳴)을 이루어야 우리 사회의 가치와 인식을 바꿀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생협을 이용하는 것이 아닌가. 안전한 먹을거리는 공동육아의 자연 친화 교육과 맞닿아 있다. 자연 파괴를 막고, 건강한 삶의 환경을 지키는 일, 즉 물과 공기와 먹을거리의 안정성을 지 키는 일이며, 나아가 나이・계층・학력・성・장애 정도・민족과 지역에 따른 차별을 없애는, 사회 구성원 모두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 환경을 만드는 일의 시작이다. 그렇게 협동하는 우리가 되기를 희망한다. 말로만 하는 공동육아 가 아닌, 말로만 하는 협동조합이 아닌, 우리 삶에서 협동하고, 공생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우리가 되기를 희망한다.
따로 또 같이 예전에는 정치만 좀 달라지면, 국가 경제만 좀 좋아지면 모두가 같이 잘 살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지금은 정치가 달라져도, 국가 경제가 좋아져도 함께 잘 살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세상을 뒤집을 수 없는 이상 그것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공동체의 복원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공동체에 참여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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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내가 발붙여 살고 있는 현실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 리고 무엇보다 내 삶에서, 우리 식구의 삶에서 경쟁심과 이기심을 몰아내려면 여럿이 함께 모인 곳에서 고민해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공동체는 똑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단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로봇이 아닌 이상 사람들은 다 다르고, 다양하다. 따라서 공동체를 고민하기 위해서는 근본부터 서로 다름을 인정해야 하고, 여럿이 함께하는 것에 익숙 해져야 하며, 그런 과정에서 공동의 목표와 가치를 찾아 나가야 한다.
새로운 준비, 새로운 도전 올 3월에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올라간다. 지금의 초등학교는 우리가 경험한 초등학교가 아닌 것 같다. 1학년 아이들에게 ‘가나다라’를 가르치지 않는다고 한다.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학원에 간다고 한다. 사는 지역과 아파트 평수에 따라 친구 모임이 나뉜다고 한다. 모든 것이 빠르게, 정확하게 진행되기를 바 라는 사회의 가치가 겨우 여덟 살인 초등학교 1학년에게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세상 모든 것이 경쟁과 효율로만 설명되고, 점수로만 평 가되고, 돈으로만 귀결되는 일반 초등학교 교육과정에 아이를 밀어 넣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래서 큰아이를 대안 초등학교에 보내기로 했다. 그랬더니, “학교마다 설 치되어 있는 운영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공교육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니냐?” 하는 타박이 돌아온다. 운영위원회를 통해 공교육을 변화 시키는 노력은 필요하고, 아주 중요하다. 그렇지만, 현재의 사회 문화와 교육 문화를 바꾸어 내는 방법이 그것밖에 없는 것은 아니다. 그의 선택이 있고, 나 의 선택이 있다. 또한 그의 역할이 있고, 나의 역할이 있다. 그 선택과 역할은 존중되어야 한다. 다만, 나는 대안(對案)이 아닌 대안(代案)으로서 대안 초등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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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를 선택했을 뿐이다. 단순히 지적 능력만 키워 대는 학교가 아니라 산 나들이, 꽃밭과 텃밭 가꾸 기, 들살이 같은 경험을 하면서 생명을 배우고, 원 없이 놀아 보면서 관계와 소 통을 배우고, 정형화되지 않은 수업에서 창의력을 발산할 수 있는 학교가 아 이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는 공교 육에 자극이 되기도 하고 변화를 요구할 수 있는 의미 있는 대안 학교가 끊임 없이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대안 학교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늘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대안 초등학교를 선택했다. 그리고 나는 이제, 나름 지역공동체가 시작되는 지역에 있는 대안 초등학교 와 그 마을에서 새로운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그 생 활에 막연한 기대와 두려움도 있다. 그리고 내 생각과 삶이 어떻게 변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이렇게 나는 좌충우돌하며 새로운 공동육아와 공동체 회 복을 위한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요즘은 자주 밝은 꿈을 꾼다. 동네마다 제일 넓은 마당 있는 집이 공동육아의 터 전으로 되어 있고, 그 옆에는 아이들이 웃고 우는 소리를 시끄러워하지 않는 어 른들이 살며, 남자 선생님과 일일 참여를 온 아빠가 아이들과 부엌일하는 사이에 여자 선생님 손 붙잡고 바깥나들이 나온 아이들이 뛰노는 골목길엔 차가 다니지 않고, 근처 야산 밑 빈터엔 아이들이 가꾸는 야채밭이 있고, 맨발에 흙투성이 아 이들을 미소로 반기는 노인들이 사는 곳. 일주일에 두세 번은 생활협동조합의 트 럭이 무농약 쌀과 우리 밀, 싱싱한 무공해 야채를 날라 오고, 마지막 남은 선생님 과 늦게 퇴근한 엄마가 아이 손을 붙잡고 웃음을 터뜨리며 이야기하고 있고, 검 게 그을린 아이들이 굵어진 팔다리를 마구 휘저으며 맨발로 뛰어다니다가, 장애 가 있는 친구를 부축하여 함께 걷기도 하는……. (정병호, 1994, ‘야학에서 공동육아까지’, 《내가 살고 싶은 세상》 , <또하나의문화> 제10호, 또하나의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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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가 뭐예요?” 우리는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나 오는 고유한 나 자신이 있다. 이것은 바 꾸려 해도 바뀌지 않는 그냥 ‘나’이다. 지 금 우리가 몸담고 있는 교육 공동체 공 동육아와공동체교육 역시 그러할 것이 다. 여러 마음이 모여 만든 공동육아가
나와 공동육아 그리고 생태 허인영 초록비. 관악동작 해와달 어린이집 교사. 가르치는 일이 자신과 아이들에게 즐거움과 깨달음을 얻는 기쁨을 줄 수 있기 바라며 생태연구모임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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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태어나던 날, 공동육아는 이 미 공동육아라 할 수 있는 본바탕을 갖 고 태어났을 것이다.
자라는 동안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변화를 겪지만 어떠한 상황에서도 쉽게 변하지 않는 나 자신이 있음을 알게 되는 것처럼, 시대의 흐름에 따라 공 동육아도 처음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하고 있지만 그 안에서 결코 쉽게 변하지 않을 무언가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하루하루 살기에만 바빴던 내가 공동육아의 본질에 궁금증을 갖기 시작한 것은 내가 모자라다는 것을 알아차리면서부터였다. 2007년 처음으로 공동 육아에서 아이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처음 2년은 이곳이 어떤 곳인지를 알아 가는 재미를 느끼며 적응하기에 바빴다. 개인 사정으로 잠시 떠나게 되었다가 2011년에 다시 돌아온 공동육아. 그때 나는 3년차 교사가 되어 익숙함과 새
로운 변화 속에서 다시 적응을 해야 했다. 누구나 성장해야 할 때가 온다. 나도 그러한 시기였으리라. 저마다 힘들거나, 부족함을 느끼는 지점은 다를 것이 다. 나는 나 자신이 교사로서 교육관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지난한 과정이 있 었다. 아이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즐거운 하루를 보내는 것만이 다인 줄 알았 는데, 함께하는 동료 교사와 아마들과 서로를 알아 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서로 균형과 신뢰를 만들어 가는 중요한 일임을, 균형과 신뢰를 만들어 갈 때는 내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 목소리 안에 는 내 생각과 소신이 담겨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 가는 그런 과정이었다. 교사와 부모는 아이에게 아주 중요한 환경이다. 교사, 부모, 아이 모두 서로 에게 영향을 주고받는다. 교사와 교사는 서로 교육관을 맞춰 가며(여기서 교육 관을 맞춘다는 뜻은 한 방향으로만 맞춰 나간다기보다는 조절하며 맞춰 나간다는 뜻에 가깝 다) 균형을 만들어 내야 하는 자리에 있고, 부모와 교사는 서로 교육관과 상황
을 이해하며 신뢰를 만들어 가야 하는 자리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교육관을 중요하게 여기게 된 까닭은 그것이 없어서 상황이 더 어려워 진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교사로서 교육관을 가진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 한 일이겠지만, 나처럼 잘 모르면 그냥 잘 모르는 상태로도 살 수 있는 것이 우
나와 공동육아 그리고 생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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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와 공동육아
리 현실이다. 그때 느끼는 혼란은 고스란히 본인 몫이다. 내 교육관이 공동육 아와는 맞는지, 함께하는 동료 교사와는 맞는지를 찾는 것은 중요한 일인 것 같다. 이미 지나간 시간이지만 아쉬움이 남는 그때를 되돌아보면, 이런 문제 들이 있었다. 생각이 다른 동료 교사를 이해할 수 있는 눈이 없어서 서로 “함 께 살자” 하지 못해 상처를 주고받았고, 아마들에게는 불안을 느끼는 순간에 위로해 줄 수는 있었지만 믿음을 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 만약 좀 더 일찍 내 삶과 교육에 대한, 철학에 대한 고민을 하고 공부했더라 면 생각이 다른 교사를 볼 때 생각이 다를 뿐이지 틀린 게 아니라는 것,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맞춰 가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빨리 알아차릴 수 있지 않았을까? 공동육아의 삶과 교육이 나중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싶어 하고, 이것이 결코 잘못된 선택이 아니었음을 확인받고 싶어 하지만 여러 가지 까닭 때문에 불안해하며 흔들리는 아마들에게는 우리가 가는 길에 이런 일도 생기고, 저런 일도 생길 수 있지만 방향마저 틀린 것은 아니라는 믿음을 줄 수 는 있지 않았을까? 3년차 교사로 지내던 어느 날 안전 문제로 크게 실망과 불안을 느낀 어느 아
마가 나에게 “공동육아가 대체 뭐예요? 이걸 왜 꼭 해야 하는지 알고 싶어요” 하며 애증 섞인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전 공동육아를 좋아해요” 하는 말밖에 해 줄 수 없는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그러고 나서 내가 공동육아 에서 살아 본 경험은 있지만 그것 밖에는 정말 아는 것이 없구나, 공동육아가 뭔지 모르고 있구나 하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가 원래 그런 것이라며 하고 있던 것들이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지, 공 동육아에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가치들이 무엇인지, 공동육아의 역사는 어 떻게 되는지 알고 싶어졌다. 그전엔 관심도 안 기울이던 부분들이 중요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알아야만 했다. 그래야 생각의 방향을 정할 수 있을 것이 고, 그것이 바탕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공동육아의 본질을 알아가는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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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111호
내 교육관을 만들어 가는 일 가운데 가장 기초가 되는 작업이라 생각했다. 그때부터 닥치는 대로 들을 수 있는 교육을 들으러 다녔고, 생태 강의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데 생태 강의는 기대 이상으로 내 안의 무언가를 일깨 웠고, 나는 더 많은 궁금증과 알고 싶은 욕구에 설 다. 그래서 심상옥 선생님 이 생태 모임을 제안했을 때 손을 번쩍 들며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렇게 해서 공동육아 역사 속에서 세 번째 생태 모임이 생겨나게 되었다.
“생태 교육이 뭐예요?” 누군가 “생태 교육이 뭐예요?” 하고 나에게 묻는다면 아직 확신에 찬 답을 해 주기는 어렵다. 나는 아직 한참을 더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생태 모임 을 하면서 아직 모자라기는 하지만 생태 가치와 교육이라는 것에 내 관점이 아 주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언젠가는 내 말로도 쉽게 풀어낼 수 있는 날이 오기 를 기대해 본다. 공동육아와 생태 교육은 아주 가까운 사이라고 할 수 있다. 생태 모임에서 공동육아의 나들이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는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처음에 공동육아를 만들 때부터 생태 가치와 교육은 공동육아의 여러 줄기 가운데 한 줄기로 이루어져 왔다. 모두 우리 선배들이 공부하고 실천하며 만 들어 놓았고, 나들이・텃밭・세시 절기에 따른 활동 같은 생태와 연결된 생활 들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공동육아에서 시도한 것들이 사회로 퍼져 나가면서 언제부턴가 일반 유아 보・교육 기관에서도 나들이, 텃밭, 세시 절기 들을 챙기는 곳이 많아졌다. 물론, 공동육아 안에서도 마찬가지지만 다들 정 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다. 우리가 여태까지 해 온 것을 보면 ‘생태’라는 말을 자연의 겉모습으로 느끼 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부터도 그랬지만 생태라는 말을 들으면 자연의 풍
나와 공동육아 그리고 생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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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와 공동육아
경을 떠올리고, 생태 교육이라는 말을 들으면 자연을 알아 가고 자연에서 체 험하는 활동 정도만 떠올린다. 그래서 자연 관찰과 생태 교육의 차이를 설명 해 주는 선생님의 말 가운데서 “생태 교육은 자연 관찰을 넘어서서 아이들에 게 삶의 연결 고리, 이야기를 엮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이해하기가 참 어 려웠다. 하다 보면 언젠가는 이해되리라 하며 넘어갔다. 책을 읽기도 하고, 선 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다 보니 어느 시점부터 ‘생태’라는 것에 대한 인 식이 바뀌어 갔다. 그동안 자연의 겉모습 정도로만 느끼고 있던 생태의 범위가 생각보다 훨씬 넓고 크다는 것, 생태란 단순한 자연환경만을 말하는 게 아니 라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공존하고 순환하고 있는 세계라는 뜻을 담고 있는 자연이라는 것을 조금이나마 깨닫게 되었다. 숲의 생태, 도시의 생태, 공동육 아의 생태, 각 터전의 생태, 자주 가는 나들이 장소의 생태, 텃밭의 생태 이 모든 것에 공존과 순환이 있다. 더 넓게 보면 이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나는 우리가 생태 교육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알려 주려고 하는 것은 함께 사는 법이라 생각한다. 그 대상이 이웃이 될 수도, 친구가 될 수도, 마당의 나 무 한 그루가 될 수도, 날마다 나들이 가는 숲의 꽃과 벌레가 될 수도 있다. 우 리가 모두 지구에서 함께 사는 존재임을 알게 되는 것은 설명이나 책이 아닌 함께 사는 삶에서다. 함께 살기 위해서는 서로를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공부를 해야 한다. 나는 생명의 생태뿐만 아니라 다른 지식과 정보도 잘 알지 못해 그 부분을 공부해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부끄럽지만 기본 지식이 정말 모자라는 편이다. 그런데 많은 교사들이 그러하듯 나도 공부한 것을 늘 현장에서 풀고 싶은 욕구가 있 는데, 그럴 때 늘 경계하려는 부분이 있다. 하나는 내가 아이들에게 생태 교육 을 한다는 이름으로 습자지 같은 얇은 지식을 말로 풀고, 그것을 그대로 말로 표현하는 아이들을 보며 생태 교육이 잘되고 있다고 느끼지 않는 것. 또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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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한 번 눈으로 보고, 만져 보고, 느껴 보는 짧은 경험이 생태 교육인 양 생각 하지 않는 것이다. 자연과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있는 요즘 아이들에게 자연과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은 여전히 생태 교육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때 중요한 건 아이들의 태도가 아니라 교사의 태도인 것 같다. 아이들은 자연 에서 뛰놀고, 온몸으로, 감각으로 느끼며 놀아야 비로소 함께 산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아이에겐 자연이 아직 두려운 존재고, 어떤 아이에겐 맘 껏 뛰놀 수 있는 공간이자 놀잇감이 될 수 있다. 여기서 모두에게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함께 사는 것인지를 알아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두려움이 있는 아이는 자연을 좀 더 친근하게 느낄 수 있는 관계의 경험이 필요할 것이고, 두려움 없 이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아이는 자연이 받아들여 줄 수 있는 범위가 있음을 이해하고 관계를 맺어 보는 경험이 필요할 것 같다. 물론 쉽지 않은 과정이다. 어느 순간 내가 교사라는 까닭으로 판단자가 되 어 아이들의 경험을 조정하거나 통제하려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자연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고, 내가 자연과 관계를 맺어 본 경 험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경험이 없는 부분을 아이들에게 겪어 보게 해야 하는 상황은 참으로 어렵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늦은 것은 아 니라고 생각한다. 나부터 새로운 경험을 쌓아 갈 수 있다. 자연과 새로이 관계 를 맺어 보며 아이들처럼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살아 가는 동안 이 세상의 순환 질서를 알고, 함께 사는 삶을 실천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그것을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그런 어른이자 교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나와 공동육아 그리고 생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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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나눔
깨끔발어린이집 일곱 살 방 연못 활동
김윤선 노루귀. 깨끔발어린이집 아이들과 살면서 좀 더 교사다운 교사로, 사람다운 사람으로 성장하는 꿈을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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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살 방 교사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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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일곱 살, 꽃이 핀다!? 꽃이 핀다고? 아동학자들이 ‘발현’이라는 말 을 쓴 것도 모자라서 아이가 활짝 피도록 발현한다는 이 말은 그 자체만으로 도 일곱 살 교사로서 압박감이 든다. 그런 내가 일곱 살들과 한 해를 살게 되면 서 이 아이들을 어떻게 꽃피게 할 것인가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일곱 살에 게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일곱 살은 대체 뭐가 다르지? 지속성 있는 활동으 로 성취감을 갖고 싶어 하는 일곱 살에게 어떤 활동을 열어 줄 수 있을까를 고 민하게 되었다. 해마다, 달마다, 날마다 일곱 살이 집중해서 할 수 있는 주제 활동을 펼치라 는 요구를 받는다. 그러나 어떤 주제를 택해야만 지속성도 있고 집중과 몰입 하는 경험을 하면서 자신감을 갖게 할 수 있는 것인지를 찾아내기란 여간 힘 든 일이 아니다. 이것이 내게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곱 살 아이 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교사로서 전문성을 키우고, 한 사람으로도 올바로 성 장하고 싶어 그 한계에 도전하게 되었다. 때마침 ‘공동육아 일곱 살 교육 연구 모임(2013년 3월부터 공동육아 교육과정 연구 모임으로 확대됨)’이 구성되었고, 내게 이 모임은 놓을 수 없는 한 가닥 생명줄 같았다. 교육 논의를 하면서 교사로서 내 려놓아야 하는 단단한 껍질을 깨고 보니 아이의 흥미 앞에서 교사가 자기 의 도와 계획을 과감히 버릴 때 공동육아 교육과정이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을 몸과 마음으로 알게 되었다. 연못을 주제로 활동하게 되었던 이유는 연못 만드는 과정은 시일이 필요하 니 지속성 있는 활동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또한 일곱 살이 된 아이들에 대한 정보가 많이 없어서 아이들을 살펴야 했지만, 욕구가 흐름과 달라서 받아들 여지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할 때 다듬어지지 않은 행동을 하고, 때로는 표현
그래, 연못만으로도 충분한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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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나눔
방법이 거세다는 정도를 알고 있어서 연못이 아이들의 감성을 깨워 주기를 바 라는 마음이 앞섰다.
연못 활동을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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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살 방 교사를 맡으면서부터 느낀 고민과 부담을 해결해 줄 실마리로 다가 온 것은 깨끔발어린이집의 환경 변화였다. 2012년, 깨끔발은 이사를 하면서 새로운 터전 환경을 만들어야 했는데 교사회에서 이사를 하면 터전 건물 옆 작은 공간에 연못을 만들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게 웬 횡재야! 연못 만들기라면 일곱 살의 지속성 있는 주제 활동으로 금상첨화지, 싶었다. 깨끔발 일곱 살 방은 여자아이 둘에 남자아이 넷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아 이들의 기운을 적절히 풀어내는 것이 필요하겠다 싶어 학기 초 아이들의 분위 기를 살피고 있을 때였다. 그즈음 네 살짜리 여자아이가 멋모르고 한 행동에 분노한 일곱 살 남자아이 하나가 그 아이를 발로 차는 일이 일어났고 이 일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연못 활동을 시작했다. 내가 처음 연못 활동을 계획한 의도는 연못 활동으로 힘을 모아 보는 경험 을 하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물을 소재로 한 생태 환경을 관찰하고, 또 연못 의 아름다움을 경험하게 해 보자는 것이었다. 사실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일곱 살이 되면 터전 리듬에 빠삭해져 자칫 싫증내기 쉬운 부분이 있어 새로 운 활력을 주는 것이 필요하기에 일곱 살 활동이라는 조금은 특별한 시간에 연못 활동을 꾸준하게 하고 싶었다. 여러 면에서 유능해진 일곱 살들에게 나 도 넓은 울타리가 되어 그 안에서 아이들이 자율성과 자발성을 키워 가도록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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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을 만들기까지
처음 만들어 보는 연못,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 아이들한테 모둠을 하자고 하 니 일곱 살 활동을 기다리던 참이어서 이야기를 듣기 무섭게 한 자리에 모여앉 아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냈다.
노루귀
우리 올해는 일곱 살 활동으로 연못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아이들 (신나고 들뜬 목소리로) 그래! 좋아! 우리 연못 만든대. 노루귀
연못 만드는 차례를 좀 정해 보자. 먼저 터전 옆 마당 작은 웅덩이 있 지? 그걸 좀 더 파내는 거야.
이렇게 연못 활동을 시작했다. 먼저 흙을 좀 더 파내기 시작했다. 여섯 아이들 한테 작은 삽 세 개와, 모래 놀잇감 가운데서 돌 고르는 채 세 개를 주고는 “자, 땅 파자” 했다. 처음에는 서로 삽을 쓰고 싶어서 불이 붙었다가 땅을 파는 일 이 점점 힘에 부치자 “헉헉, 언제까지 파야 돼?!” 하며 그만 파고 싶어 했다. 지 금 생각해 보면 그때 아이들은 연못이 어떻게 될지 잘 몰라서 더욱 힘들게 느 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두어 번 더 땅을 파고 돌을 고르니까 어느 정도 깊이가 생기고 연못 터가 정리되었다. 비닐과 방수포를 깔고 물을 채웠다. 처음 만든 연못은 물이 줄줄 새는 연못이었다. 물을 채우고 나서 집에 갈 준 비를 하던 아이들은 연못이 보이는 층계를 오르내리며 “어? 이상해. 물이 줄 어드는 것 같아” 하는데 나는 아니야, 아닐 거야, 하는 마음으로 애써 외면하 고 보니 이튿날 연못은 바닥을 드러냈다. 아이들은 ‘우리가 연못을 만들어 내 지 못했어’ 하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이들이 느낀 실패감과 좌절감 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았다. “에구, 방수포에 구멍이 있었나 보다” 하니
그래, 연못만으로도 충분한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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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나눔
“다른 아이들이 돌을 너무 많이 던져 넣어서 그럴 거야” 하며 은근히 원망이 깔린 듯한 이야기를 하는 아이도 있어서 얼른 수습하고 싶은 마음에 “어떻게 해야 물이 새지 않는 연못을 만들 수 있는지 다시 알아볼게” 했다. 우리 연못에 무엇이 필요한지 인터넷을 찾아보니 부직포였다. 아이들과 부 직포를 사러 철물점에 들러 튼튼한 새 방수포까지 사 왔다. 비닐과 방수포를 걷어 내고는 부직포를 여러 겹으로 포개서 깔기 시작하는데, 아이들이 하나 둘씩 모여 부직포 위에 벌러덩 드러누워 데굴데굴 구르며 포근해했다. 따사로 운 봄볕을 받으며 하얀 솜털 같은 부직포 위에 아이들이 누워 있는 한가로운 장면은 지금도 흐뭇함으로 간직되어 있다. 그렇게 부직포와 비닐, 새 방수포 를 깔고 흙과 돌을 적당히 채우고 물을 채웠다. 드디어 물과 흙을 채워도 새지 않는 연못이 만들어졌다. 연못을 만들고 나서는 뿌연 흙물이 얼른 가라앉지 않자 아이들은 “노루귀, 왜 연못에 흙을 넣었어?” 하며 따지듯 이야기했다. 맑은 연못을 만들고 싶어 하는 것 같아 “그렇게 하려면 물을 맑게 하는 수질 정화 식물들이 필요해” 하 고는 아이들과 같이 부레옥잠을 사다가 연못에 넣어 주자 연못에서 살 수 있 는 식구들이 늘어나면서 훨씬 더 풍성해졌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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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한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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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 짠, 짠 하고 연못을 만들었으니 후유, 이제 다 되었다 하고 한숨을 돌렸을 때는 연못에 흥미가 있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흥미가 없는 아이들도 있었다. 이 아이들을 위해서 또 어떤 활동을 이어 가면 좋을까 고민하다 만들거나 그 리는 활동을 좋아하는 아이들과 연못을 그리고, 연못에 살고 있는 식구들을 그리거나 이름을 써 주며 연못 그림을 꾸미는 활동을 이어 가게 되었다. 이 활 동을 하던 날 아이들은 연못을 그리고 꾸미며 즐거워하면서도 “우리가 만든 연못에서 물놀이 하고 싶다”, “나두
”, “또 그때 만들던 자동차 놀잇감도
더 만들고 싶다” 는 얘기를 주고 받았다. 다시 고민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아이들의 욕구를 따라갈 것인가, 아니면 교사가 처음 뜻한 대로 연못 주제 활동을 밀어붙일 것인가 하는 갈등이기도 했다. 나는 만들기 활동에 대한 계획안을 하나 더 짜서 만들기 활동과 연못 활동 에서 하나를 선택하기로 했다. 그러다 활동의 마무리 단계에서 완성도를 갖 춰 내기 어려워했던 지난 경험들이 떠올라 고스란히 만들기 활동을 내려놓고 결국 연못 활동을 선택했다. 때마침 현장학교 2단계 과정에서 알게 된 나무배 를 만드는 활동을 연못에 적용하며 새로운 연못 활동을 시작했다. 연못에 나 무배를 띄우던 날은 아이들이 재미있게 이야기를 만들어 내며 뱃놀이를 해서 ‘역시 계획을 잘 짰네. 내 계획대로 아이들은 연못에 관심을 갖게 됐어. 후유, 다행이야’ 하며 마음을 놓았다. 뱃놀이를 즐겁게 했으니 다음 활동을 또 꺼내 왔다. 이제는 자나 깨나 연못 생각만 하는 아이들이 될 거라 믿으며
. 물레방아놀이를 하는데 연못 물
이 손에 닿자 한 아이가 유난히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연못 반대쪽에 있는 미
그래, 연못만으로도 충분한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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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나눔
끄럼틀로 가 버렸다. 다른 아이들도 슬금슬금 내 눈치를 살피다가 미끄럼틀로 따라가 노는 걸 “얘들아, 이리 와야지” 해서 데려오고, 데려오기를 힘들게 되 풀이했다. 연못 활동으로 나는 아이들에게 기대한 게 있었다. 아이들 얼굴에는 뿌듯 함에서 우러난 기쁨이 담긴 웃음이 번지고, 아이들 사이에서는 “그래! 여기 도 좀 와 줘”, “나도 같이 하자”, “다음엔 우리 더 멋있게 해 보자” 같은 이야기 들이 쉼 없이 오가면서 “우와, 우리가 했어. 우리가!” 하는 반응이었다. 그런데 기대했던 반응은커녕 ‘새롭긴 하네’, ‘두 번은 못 하겠다’ 같은 반응만 나왔다. 나는 연못 앞에서 ‘내가 주고 싶어 하는 걸 너희가 아직 안 가져가서 그럴 거야.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너희에게 주고 싶은 그것들을 가져가야 할 것 아니야!’ 하 며 속으로 외쳤다. ‘아이고, 힘 빠져. 도대체 어디가 어떻게 잘못된 걸까?’ 고 민하면서도 아이들을 연못으로 계속 데리고 가서 연못을 관찰하자고도 하고, 연못 물을 떠서 관찰 통에 담아 다른 물과 무엇이 다른지 들여다보자고도 해 봤다. 하지만 연못 활동을 하면 할수록 아이들은 더 거세게 저항할 뿐이었다. 교사회에서 슬쩍 물어보니 “아이들 모습을 들여다봐” 하는 대답이 돌아왔 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이 모두 연못에 흥미가 생긴 단계에서만 아이들을 볼 수 있다고 굳게 믿었기에 아직 아이들 여섯 명의 관심이 연못으로 가지 않았으 니 연못에서 아이들을 관찰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 생각했고, 또 왜 그리 바 빴는지 지금으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지만 ‘온 종일 1층과 2층을 오가 며 동동거리는데 도대체 언제 아이들을 보라는 거야’ 하는 생각이 앞섰다. ‘할 수 없지 도움을 받을 수 없다면 혼자 해결할 수밖에’ 하며 다시 생각해 보자 싶었다. ‘분명 아이들이 뱃놀이까지는 연못에 흥미가 있었는데
.’ 차근차
근 기억을 더듬다 보니 연못 물이 손에 닿는 것을 싫어하리라는 아이의 반응 을 예상하지 못한 계획을 갖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 ‘그래! 완벽한 계획! 아 이들의 반응을 예상해 둔 계획을 다시 세워야겠군’ 하며 해답을 찾았다.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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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많이 지나가고 있었지만 촘촘히 다시 계획을 세웠다. 그러고는 또 아이 들을 끌어당겼고, 또다시 아이들은 “또 연못이야?! 노루귀, 나랑 곤충 만들 기 하기로 했잖아” 하며 잉잉거렸다. ‘에그머니. 이게 뭐야? 그럼 완벽한 계획 도 아니었던 거네?! 도대체 뭘까? 여기가 내 한계란 말인가?’ 나는 마지막으 로 ‘공동육아 일곱 살 교육과정 연구 모임’에서 논의해 보기로 했다.
교육 논의로 다시 만난 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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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를 내서 연구 모임에서 논의해 보기로 마음먹었을 때는 잘한 부분은 인 정받고, 내 한계는 지적을 받아 오자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면 더 잘될 수 있 을 거야 하면서도 좀 더 시간을 끌다가 논의 과정에서 열어 놓았다. 그런데 예 상했던 것과는 달리 질책처럼 다가오는 이야기들을 가만히 듣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회의가 끝나고 돌아오던 발걸음을 아직도 기억한다. 뻥 뚫린 가슴을
그래, 연못만으로도 충분한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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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나눔
끌어안을 힘도 없어 터덜터덜 어두운 밤길을 걸어 돌아오던 그 길은 또 왜 그 리도 멀던지. 많이 아프고, 속상하고, 교사의 긍지나 자신감이 바닥으로 곤 두박질치는 것 같았다. “아이들을 봐야지요. 그리고 거기서 다시 출발해야지 요. 저렇게 아이들을 끌고 가려니 교사는 힘이 들 수밖에요” 이런 말들은 그 때 나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들이었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이기도 했지만 아 직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이제는 인정해야 하는 이야기를 들은 것뿐 인데 그렇게 아플 수가 없었다.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그 노력이 그럼 다 헛 일이었다는 말인가? 그 노력에서 뭐가 빠졌다고? 아, 아이들이 빠졌다구? 그 때 아이들의 상태가 어땠는지 알고는 있는 걸까? 내가 그런 배려를 전혀 못 한 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고 나는 자신하는데. 분명 아이들과 함께 열심히 살 았는데도 내가 왜 이런 얘기들을 들어야 하는 거지? 받아들이기 힘들다. 물론 부족하지만 그런데도 난 노력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 이런 생각들
이 머릿속에 꽉 차서 가슴속을 후벼 파고 있었다. 그 뒤로 몇 달 동안 소심해져서 살게 되었는데 또 마음 한편에는 ‘아직 풀리 지 않는 그 얘기들은 도대체 뭐였을까? 우리 교사회에서도, 교육 논의에서도 들었다면 분명 내가 놓치고 가는 부분인데 그걸 좀 더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싶 었다. 하지만 또다시 용기를 내기는 쉽지 않아서 그저 묻혀서 속으로만 곱씹고 있었는데, 교육 논의 방향이 일화(에피소드) 모으기로 바뀌고, 일화 모으는 뜻 을 여러 번 듣게 되었다. 하지만 어떤 것을 일화라고 하는지 감을 잡기 어려워 서 이해한 만큼 일화를 풀어내고 있을 때, 아이들의 흥미를 따라가는 교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와 같은 동료가 모아 온 일화여서인지 이전의 얘 기들보다는 더 잘 와 닿았다. 그래도 아직은 확실하게 감을 잡지 못해서 이건 가, 저건가 하며 여러 가지로 시도해 본 일화를 써냈다. 이때는 모두가 일화에 대한 감을 잡아 가는 시기이다 보니 서툰 것에도 많이 열려 있어서 이런저런 시도를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나 또한 시도를 해 보며 다른 교사들과 서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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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는 과정에서 일화에 대한 감을 익혀 갈 수 있었다. 이렇게 감을 익히다 보니 어떤 때는 ‘어, 이것 봐라! 지금이 이 아이들을 보고 기록으로 남겨야 할 때구 나’ 싶기도 하고, 어떤 때는 감이 왔는데도 기록을 하지 못하기도 했다. 일화를 모으고 감을 잡아 가며 비로소 ‘아이들과 만나는 지점’이 연못에 있고, 그 지 점에서 연못 활동을 새롭게 시작해야 했다는 말이 한꺼번에 이해되는 것 같았 다. ‘아, 그거였어! 내가 짜 둔 계획에 갇혀서 억지로 아이들의 흥미를 끌어내 려다 보니 자꾸 미리 준비해 온 새로운 활동을 제시하고, 내 계획과 의도만을 밀어붙이다 보니 새로운 계획을 짜느라 바빠서 아이들이 더 눈에 들어오지 않 았어. 기대한 만큼 억지로 흥미를 돋울 수 없으니 아이들은 점점 흥미가 떨어 졌고, 그나마 있는 흥미조차도 자연스럽게 키워 내질 못했던 거야! 그래, 연구 모임에서 자꾸 나온 이야기가 바로 이 이야기였구나!’ 교사 주도 계획에 충실하려는 고집스런 교사의 마음! 쫓기는 마음에 아이들을 세심하게 들여다보지 못한 교사! 공동육아 교육과정은 교사의 의도와 아이들의 욕구가 다를 때 교사의 의 도를 과감히 내려놓고 아이들이 정말 바라는 것을 따라가는 데서 출발한다는 사실도 되새겼다.
연못만으로도 충분한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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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연못은 뭐였을까? 연못에서 얻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연 못으로 스스로를 발현시키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봐라! 나처럼 유능한 교사가 어디 있나?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교사가 바로 나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연못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보지 못했다는 것이 그렇다.
그래, 연못만으로도 충분한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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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나눔
“애들이 만들었어요” 하는 말 뒤 에는 ‘나 같은 교사만이 아이들 과 이런 것을 할 수 있는 거예요’ 하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얄팍 한 마음이 숨어 있었던 것 같다. 또 연못 활동을 한 해 동안 아이 들과 끝까지 가져가 보리라는 사 명감을 불태우기도 했고, 연못이 번듯하게 만들어질 때는 뿌듯함 도 있었다. 그러면 아이들에게 연못은 무 엇이었을까? 돌아보면, 아이들 은 친구들과 신나게 한바탕 놀고 나서 연못을 찾아와 가만가만 연못을 보며 마음을 가라앉히기도 하고, 욕심껏 연못을 만들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연못 을 더 크게 만들걸 그랬어” 하거나, 부레옥잠 꽃이 필 때 “꽃이 있어” 하거나, 벌들이 물을 먹으러 부레옥잠 이파리를 딛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있기도 했다. 곤충들이 빠졌다며 구해 주고 싶어서 연못에 장대를 넣어 휘젓기도 했 다. 내가 쉬는 날 새 한 마리가 죽어 있는 걸 보고 연못가에 묻어 주고, 그 일을 뒤에 연못 사전(아이들이 만들어 보고 싶다고 해서 마무리 활동으로 했다)에 그려 넣기 도 했다. 또 비가 많이 내려 터전 뒤 수로에서 쏟아지는 물에서 다 같이 신나게 놀기도 했다. 아이들은 흐르는 물에 꽃잎을 띄우고 “내 배 간다!” 하면서 꽃잎 배와 같이 폭포까지 뛰어가면서 깔깔깔 배를 잡고 웃었다. 그렇게 아이들 속 으로 연못이 들어와 즐거워할 때 나는 ‘뭐가 저렇게 재밌지? 내가 의도한 것과 다른 행동을 하는 아이들을 어찌 이해해야 하지? 우리가 같이 만든 연못에서 는 안 놀면서 말이야’ 했구나, 이번 발표를 준비하면서 비로소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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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기
2012년 한 해를 그렇게 살고도 2013년에 또다시 일곱 살과 더 살아 보고 싶다
고 교사회에 떼를 쓰다시피 해 한 해를 더 일곱 살 교사로 살게 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이제는 아이들과 좀 더 쉽게 교감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느낌이 조금 더 살아나 지난해에 헤맨 것을 딛고 일어나서 일곱 살과 즐겁게 사는 교 사로 거듭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이제는 일곱 살들과 살며 순간순간 내가 아이들 속에 있는지를 스스로 가 늠하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아직도 겨우 아이의 욕구보다 교사의 의도를 앞 세우지 않는 정도로만 살고 있는 것 같다. 여전히 그때그때 다른 뭔가를 아이 들과 풀어내려 하고 있는 모습이 남아 있지만, 스스로 찾은 의도만을 앞세우 는 꽉 막힌 교사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자연스럽게 아이들과 함께 숨 쉬 고 즐거움을 나누며 나도 즐겁게 지내고 싶다. 의도를 앞세우지 않으려면 ‘아이들이 좋아하고 관심 있어 하는 것을 풀어낼 수 있도록 어떻게 도울 것인가를 고민하고 들여다봐야 한다’ 는 것을 바로 ‘공 동육아 교육연구모임’에서 몸으로 마음으로 겨우 알아듣게 된 것이다. 이만큼 알아듣고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는 내가 대견하기도 하다. 아직은 완연하게 내 것으로 소화되지는 않아서 더 노력할 부분들이 남아 있음에도 말이다.
풀어 나가야 할 과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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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나는 얼마나 공감대가 있는 관계인지를 다시 스스로 점검해 봐야 할
그래, 연못만으로도 충분한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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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나눔
때인 것 같다. 아이들의 흥미가 있는 지점에서 만나, 그 지점에서 아이가 흥미 로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바라봐 주고, 어떻게 확장시켜 갈지를 고민해야 방 향을 제시할 수 있을 것 같다. 한 아이 한 아이의 욕구를 존중하고 받아들이 면서도 그 욕구를 좀 더 확장된 단위인 전체에서 풀어낼 수 있도록 시야를 조 절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전문성을 키우려 노력하고, 아이들과 편안하고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는 교사로 자꾸자꾸 성장하고 싶다. 그러려면 날마다 성찰하고 기록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일이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 같다.
나에게 교육연구모임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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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두 번, 수요일 오후가 되면 마음은 벌써 버스를 타고 달리고 있었다. 헉헉거리며 두 시간 가까이 걸려 모임 장소에 닿으면 겨우 한숨을 돌리고 회의 에 참여했다. 돌아오는 길도 만만찮아서 이사를 하고 나서는 서울 시내에서 버스 도착 알림 표지판을 보고 또 보며 막차가 끊어졌으면 어떻게 하나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일곱 살 교사로서 부담감과 찜찜함을 해소하고 싶어서 참여하는 교육연구 모임에서는 또 다른 부담이 생기기도 했는데, 그건 일화 모으기였다. 일화는 아이들과 지내는 순간의 이야기다. 일화를 모으려면 아이들이 눈에 들어와 있어야 했던 것 같다. 그러지 못한 나에게는 일화 모으기가 부담스러울 수밖 에.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일화를 모으면서 아이들 속으로 들어가는 연습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막상 정리를 하다 보니 연속성 있는 일화를 모으 지 못한 부분이 아쉽기도 하다. 더욱이 일화를 풀어내면 긍정의 피드백을 해 주기보다는 허술한 부분을 어떻게 그렇게들 잘 짚어 내는지 아프고, 부끄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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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좌절감과 상실감이 커서 애써 마음을 다잡고 참석하는 일도 있었다. 일화 를 모으고 싶지 않을 정도였지만, 그래도 다시 잘해 보고 싶어 용기를 또다시 내었다. 그렇게 어려운 시간을 보내며 이번 정리 작업을 거쳐 교육연구모임에서 얻 은 것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혼자 되돌아보면 감 잡기 힘든 부분을 다른 사람 들과 나누고 여러 사람들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논의하면서 천천히 놓치는 부 분들이 보이고 감을 잡아가게 되어 버리기 힘든 두꺼운 껍데기를 조금씩 벗어 던질 수 있었다. 일화를 나누면서 서로가 서로를 잘 봐 주고, 이야기를 나눠 줄 수 있고, 방 향을 잡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 내가 열어 주는 교육 환경의 약점 과 강점이 여러 사람들의 시각에서 정리되고, 그 정리된 부분들이 내 안에 차 곡차곡 쌓여 가고, 아이들과 살면서 다시 여럿이 함께 정리한 부분들과 비슷 한 상황을 만나면 적용하기 쉽고, 무엇을 중요하게 봐야 하는지 잘 놓치지 않 는 것 같다. 그럴 때면 아, 바로 이거였군, 하는 기쁨을 누린다.
공 동 육 아 교육연구모임 공동육아 교육연구모임은 공동육아 현장 교사들의 모임이다.
2012년 5 세 누리과정 실시에 따른 법인의 대응책을 논의하고자 모인 일곱 살 방 교사 모임에서 공동육아 교육 관련 논제를 좀 더 깊이 있게 고민해 보고자 ‘일곱 살 교육 연구 모임’을 만들었다. 2013년 5 세 누리과정을 3~5 세 누리과 정으로 확대 시행하는 데 따라 ‘공동육아 교육연구모임’으로 정체성을 정비해 새롭게 시작했다. ‘생태적 관계망 속에 서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아이’를 키우기 위해 교사가 할 일을 집중 연구하며, 관찰과 기록을 중심으로 논의한다. 둘째, 넷째 주 수요일 저녁 7시 법인 교육관에서 모이며, 앞으로도 공동육아의 교육에 대한 논의를 이어 가려 한다. 2014년 1월 현재 구성원들은 다음과 같다. 김기나 (진달래. 해와달어린이집, 현장교육지원전문가), 김윤선(노루귀. 깨끔발어린이집), 김윤정(작은별. 우리노리어린이집), 박은주 (나팔꽃. 참나무어린이집), 서진숙 (소금꽃. 해와달어린이집), 석복순 (호호. 참나무어린이집), 이경아 (금잔디. 참나무어 린이집), 장혜경(무지개꽃. 우리어린이집, 현장교육지원전문가), 차미경(꽃마리. 덩더쿵어린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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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어느 주말. 처음 만난 산어린이학교는 느티나무 단풍이 아름다
웠다. 그 아름다움에 취해 나는 아이들 여덟 명과 그 부모들을 만나 한 식구가 되었다. 그 뒤로 함께 교사로 일하게 된 달님도 산학교 부모 가운데 한 분이었 다. 다음 해 3월에 나는 교장이 되었고, 아이들 열여덟 명과 새 학기를 시작했 다. 달님은 1, 2학년 통합 담임, 나는 3, 4, 5학년 통합 담임도 맡았다. 그때 산어린이학교는 문을 닫을 것인가, 계속할 것인가를 고민하다 공동 육 아형 대안 학교로 다시 문을 열고자 했다. 나는 함께하는 구성원들과 교육과 정을 만들어 가고 산어린이학교만의 규칙을 만들어 가며 학교생활을 시작했 다. 교육과정은 교사들이 중심을 잡고 만들었지만. 규칙은 어린이 회의에서 아이들이 중심이 되어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를 말없이 지켜보고 지원해 주는
조봉호 아침햇살. 젊은 시절 공교육에서 고등학교 교사를 했다. 결혼하고는 아이들을 키우며 참교육학부모회에서 일 했고, 마흔 살에 과천 튼튼어린이집에서 공동육아와 만났다. 2005년에는 공동육아형 대안초등학교인 산어린이학교 와 교장으로 인연을 맺었고, 지금은 건강 때문에 충남 아산으로 귀촌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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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들도 있었다. 초기 산학교에는 유아기가 유난히 힘들었던 아이들이 많았 다. 우리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초기 산어린이학교를 치유의 학교라고 했다. 1 학년부터 들어온 친구도 있었지만, 공교육에서 전학 온 친구들은 여러 어려움 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업’이라는 배움이 먼저가 아니었다.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약속’을 배 우고 실천하는 게 먼저였다. 아이들은 무척 자유로웠지만 자유로움에 따른 책 임은 지지 않았다. 약속을 어기면 본인들이 얼마나 불편하고 모두에게 피해가 생기는지를 인식시켜 주는 것이 첫 번째였다. 더구나 고학년이 더 많아 유사 사춘기에 접어든 5학년들의 거친 말과 행동은 고스란히 동생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산어린이학교의 맏형 태우* 는 그 중심에 있었다.
첫 만남 태우는 첫 만남에서부터 날 거부하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과 달 리 태우는 나와 한 번도 눈을 맞추지 않았고, 내가 친근하게 다가가 말을 걸어 도 마치 화난 것처럼 “몰라” 아니면 “됐어” 하고 이야기 나누는 걸 피했다. 또 눈빛은 누구에겐가 화가 난 듯 늘 원망이 가득했다. 산어린이학교로 전학 올 때 태우는 4학년이었지만 최고 학년이 3학년이어서 그냥 3학년 동생들과 함 께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태우를 형이라 부르고 있었다. 태우는 덩치 도 가장 크고 다른 아이들보다 살집이 많았는데, 동생들이 장난으로도 돼지 라 부르는 걸 가장 싫어했다. 반대로 태우는 동생들을 아무 때나 늘 놀리거나
*
아이의 인격을 보호하기 위해 이름은 가명으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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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게 했다. 형으로서 도대체 체면이 서지 않는 행동인데도 그것이 얼마나 유 치한 일인지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태우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냥 지켜보고 있었다. 대신 태우가 왜 그런 모습을 갖게 되었는지 부모 이야 기를 듣기로 했다. 태우는 부모와 애착을 가져야 할 시기에 할머니와 지냈다고 했다. 동생이 아파서였다. 할머니는 태우에게 그리 다정한 분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태우가 다시 부모님과 함께 지내게 되었을 때에는 이미 부모와 애착 관계를 형성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고, 그 어려움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고스란히 적응을 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남았다. 태우 부모님은 태우와 동생을 위해 산어린이학교를 찾았고, 산학교는 초기 대안 학교라서 분위기가 안정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 곳이 두 아이가 자랄 곳이라 생각했다. 태우 부모님은 솔직하게 가정에서 보 는 태우 모습을 이야기해 주었고 학교에서 일어난 일 가운데 부모로서 듣기 어 려운 이야기도 진지하게 들어주었다. 나는 당분간 어렵겠지만 태우가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 함께 지켜보자고 했다. 5학년에는 태우를 포함해 네 아이가 있었고 새로 두 명이 더 들어와 여섯 명
이 되었다. 인원이 가장 많은 학년이었다. 아이들은 태우를 형이라 불렀지만 태우는 별로 형 노릇을 해내지 못했다. 가리지 않고 남녀 동생들에게 막말을 하거나 큰 소리를 질렀고, 더구나 약해 보이는 동생들에게는 자꾸 트집을 잡 거나 약을 올려 울리고는 했다. 태우 말고도 힘든 아이들은 몇이 더 있었다. 당 시 산학교의 수업은 아주 헐렁한 편이었는데, 이미 산학교에서 자유롭게 지내 던 아이들과 공교육을 받다가 전학 온 아이들이 한데 섞이는 데는 시간이 걸 렸다. 따라서 수업보다는 아이들이 같은 공간에서 지킬 약속이 더 필요했고, 주마다 어린이 회의 시간에 학교 규칙을 아이들 스스로 만들어 가도록 했다. 교사의 잔소리를 귓등으로 듣던 아이들은 자기들이 정한 규칙은 지키려고 노 력했고, 아주 조금씩 바뀌어 갔다. 그런데도 태우는 모든 동생들보다 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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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필요했다. 나는 태우가 거친 말을 쓰고 남을 놀려 대는 건 마음에서 풀어낼 것이 더 많기 때문이라고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서두르지 않았다.
강해 보이고 싶었던 속마음 1학년에서 5학년까지 남자아이는 열두 명이었다. 그 가운데 5학년 남자아이
가 다섯 명이었다. 아이들은 시간만 나면 1학년부터 5학년까지 한데 뭉쳐서 놀고는 했다. 우리가 어릴 때 겪은 골목 문화, 딱 그 모습이었다. 어른들은 그 묘한 놀이 문화를 지켜보며 신기해했고 더러 흐뭇해하기도 했다. 3월이 되면서 아이들의 집단 놀이로 발전한 것은 하필이면 나뭇가지놀이였
다. 부드럽게 말해 나뭇가지놀이지 까놓고 말하면 칼싸움, 아니 편을 갈라 하 는 전쟁놀이였다. 아이들은 마당 구석구석까지 뒤져 칼싸움 도구를 만들었 다. 그리고 자기 것을 숨겨 놓고 틈만 나면 칼싸움을 즐겼다. 태우가 가장 좋아했던 학교생활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놀이다. 태우는 상 대를 가리지 않고 나뭇가지를 휘둘렀다. 아주 신이 나서 “야, 덤벼, 덤벼!” 하 며 크게 소리를 지르거나, 긴 팔로 동생들을 공격하고는 했다. 이 놀이를 염려 하는 부모들이 많았지만 달님과 나는 아이들의 놀이가 어떻게 자리 잡아 가 는지 먼저 지켜보는 쪽을 택했다. 그리고 우리가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고 지켜 보기로 한 건 아주 잘한 선택이었다. 아이들은 믿는 만큼 성장한다. 아이들은 어린이 회의 시간 때도 열심히 칼싸움을 주제로 토론을 했고, 대부분 아이들 은 그 위험성을 스스로 느꼈고 교사도 의견을 충분히 밝혔다. 칼싸움은 어느 날부터인가 축구로 자연스럽게 옮겨 갔다. 하지만 태우는 다른 아이들보다 훨 씬 더 오랫동안 칼싸움을 포기하지 못했다. 태우의 이 나뭇가지 칼에 대한 애착은 5학년 2학기 역사 수업에서 백제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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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본 왕에게 내려 주었다는 ‘칠지도’에 대한 애착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졸 업식 때, 타임캡슐에 ‘부러진 나뭇가지’를 넣는 것으로 칼싸움에 대한 추억을 마감했다. 태우는 졸업식에서 산학교에서 가장 즐겁고 소중했던 추억을 칼싸 움이라고 말했다. 나는 태우가 그렇게 말한 게 진정으로 이해됐다. 강한 모습 을 나타낼 수 있는 도구가 태우에게는 칼이었다. 태우는 칼싸움을 하면서 막 힌 감정을 쏟아 냈고 자신을 조절하는 힘을 키우기도 했던 것이다.
몸으로 농사를 지으며 산어린이학교에서는 첫해부터 지금까지 고학년이 농사를 짓는다. 아이들은 거름을 내고 삽으로 땅을 뒤집는다. 씨앗 뿌리고 풀 뽑고 거둬들이는 과정 모 두 아이들의 수업이다. 첫해 농사 수업도 그렇게 시작했다. 하지만 태우는 덩치에 견주어 일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다. 농사를 짓기 위해 우리는 학교 바로 앞에 있는 화원에서 거름을 사서는 수레로 날랐다. 일하기 싫어하는 태우가 그날은 어쩐 일인지 20킬로그램짜리 거름 두 포대 를 싣고도 경사진 길을 거뜬히 올라왔다. 한편 마당에는 지난해 떨어진 느티 나무 잎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어 우리는 그것도 거름으로 쓰기로 했고, 마당 에서 놀던 동생들까지 거들어 아이들은 신나게 밭으로 나뭇잎을 날랐다. 그 때 참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태우는 수레에 가득 담은 나뭇잎을 텃밭에 내리 고 나서 1학년 동생들에게 말했다. “태워 줄까?” 태우를 어려워하던 동생들은 신이 나서 냉큼 수레에 올랐고 신 나서 소리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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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더 빨리 더 빨리!” 태우도 신이 나서 몇 번이나 빈 수레에 동생들을 태우고 달렸다. 덩치만 컸 지 늘 자신 안에 갇혀 있던 태우가 처음으로 맏이 노릇을 한 날이다.
수업에서 길 찾기 태우는 수업을 대부분 힘들어했다. 어떤 때는 태우가 방해하지 않고 그냥 교 실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그런 태우가 그림 그릴 때에는 아주 진 지해 보였다. 미술 수업은 1년 프로젝트 수업으로 진행했다. 씀바귀 선생님은 학교 터전에 있는 나무 가운데 ‘내 나무’를 정해 한 해 동안 관찰하고 여러 가지 미술 활동으로 표현해 내는 활동을 했다. 태우는 나무 스케치를 하면서 대단 한 집중력을 보였다. 또 실력에서도 남다른 모습을 보였다. 교사들은 태우의 이 모습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드디어 태우를 도와줄 뚜렷한 방법을 찾은 것이다. 교사들은 부모님과 의논해 태우가 잘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자신감을 회 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로 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전시회였고, 씀바귀 선생님은 자신감이 필요한 아이 세 명을 더 넣어 그림을 지도해 주었다. 이른 바 방과 후 과외 수업이었다. 우리는 작은 미술관을 빌려 전시회를 열었고, 산 학교의 부모들은 모두 진정으로 축하해 주었다. 아이들은 어려워하면서도 무 사히 그림 전시회를 해냈고, 태우도 전시회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칭찬받 고 자신에 대한 존중감을 키워 낼 수 있었다. 이 미술 전시회를 위한 그림그리 기가 특별 지도였는데도 다른 부모들이 질투하지 않고 이를 지지해 준 것은 초 기 산학교의 아름다운 모습 가운데 하나다. 교사도 부모도 다른 동생들도 모 두 한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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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뿐 아니라 태우가 피터팬 선생님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피터팬은 미디 어 수업 교사였다. 성격이 활달하고 아이들 마음을 아주 잘 이해하고 살필 줄 아는 청년이었다. 피터팬은 수업이 끝나도 오후까지 남아 여교사들이 해 줄 수 없는 공백을 메우기 위해 운동장으로 아이들을 데려가 축구도 함께 했다. 아이들이 모두 그랬지만 피터팬은 태우가 가장 좋아하는 선생님이었다. 태우 는 다른 수업 시간에 답답한 표정을 짓던 것과 달리 밝은 얼굴과 큰 목소리로 마음껏 자기 의견을 이야기했다. 수업에 대부분 흥미를 느끼지 못하던 태우에 게 미디어 수업은 예외였다. 이론과 실기를 함께 하는 수업인데도 아주 열심히 참여했다. 그리고 피터팬은 태우가 카메라를 다루는 데 끼가 보인다고 했다. 이 수업은 그 뒤 중등 과정에서 태우가 자신의 꿈을 뚜렷하게 이루어 가는 데 실제로 많은 몫을 해 주었다. 만화가 선생님을 만난 것 또한 태우에게는 행운이었다. 산학교가 대안 학교 라는 소문을 듣고 지역에서 활동하는 만화가 두 분이 학교를 찾아왔다. 그분 들은 방과 후에 고학년들에게 만화그리기를 지도해 주었다. 태우는 이 수업에 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그리고 그 뒤로 얼마 동안 틈만 나면 만화를 그렸다. 하 지만 그리는 주제는 전쟁이나 싸움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나는 그런 만화를 그리는 태우를 보면서 울퉁불퉁한 자신의 모습을 부드럽게 다듬어 가고 있는 과정이라고 여겼다. 이러한 수업으로 태우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위축 되어 있던 자존감을 회복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산에 오르며 금요일에는 늘 바깥나들이를 했다. 도서관 수업이나 관찰 수업도 있었지만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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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초기에는 자주 산에 올랐다. 아이들은 늘 기운이 넘쳐흘러서 힘을 주체 하기 힘들어 보였다. 등산은 아이들이 힘을 조절하고 자신감을 갖기에 아주 좋은 활동이었다. 처음에는 학교에서 20분 정도만 걸어가면 닿는 소래산에 올랐다. 해발 300 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는 산이다. 그래서 1학년 아이들도 힘들지 않게 산에 올 랐다. 하지만 태우는 달랐다. 덩치가 커서인지 산에 오르는 걸 유난히 힘들어 하고 싫어했다. 태우는 산에만 오르면 더 화를 냈다. 얼굴 표정은 불만으로 가 득했고, 소리를 지르거나 욕을 하기도 했다. 태우의 불만 중심에는 교장인 내 가 있었다. “* *, 산에 가자고 결정한 게 누구야. 아침햇살이지? 힘들게 왜 산에 오구 야 단이야.” 늘 욕으로 말을 시작했고, 돌을 걷어차기도 하고 돌멩이를 집어던지기도 했 다. 동생들은 그런 태우를 피해 재빨리 산에 올랐다. 나는 한 마디도 대꾸하지 않고 조금 떨어져 태우의 뒤를 따르고는 했다. 한 번은 전철을 타고 안양에 있는 삼성산에 올랐다. 목표는 국기봉이었다. 국기봉은 해발 500미터가 채 안 되지만 바위가 많아 초등학생이 오르기 만만 한 산은 아니다. 그날도 태우는 얼굴에 불만이 가득했다. 이미 전철에서 내려 산 밑까지 걸 어온 거리도 만만치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태우는 산에 오르면서부터 그 특 유의 목소리로 투덜대기 시작했다. 걸을 때마다 한 마디씩 나를 원망했고, 쳐 다보는 동생들에게는 “뭘 보냐”며 눈을 부라렸다. 하지만 바위산 오르는 게 어려웠던지 말수가 점점 적어지기 시작했다. 정상이 가까워 올 무렵이었다. 시 원한 바람이 이마의 땀을 기분 좋게 닦아 주었다.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앞에 오르던 태우가 뒤로 돌아서며 나에게 말하는 거였다. “아침햇살, 미안해. 내가 아까 욕해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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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바라보는 태우의 눈에는 예전부터 들어 있던 번득거림이 없었다. 아주 순진무구한 아기의 눈이었다. 나는 그때의 눈빛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때 의 가슴 벅참 또한 마찬가지다. 많은 아이들에게 감동받았고 그 힘으로 교사 생활을 해 왔지만 태우에게 받은 그때의 감동은 최고였다. 그리고 이어서 태 우는 “아침햇살, 산꼭대기에 올라오니까 정말 기분이 좋아. 올라오길 잘한 것 같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어서 내 가방에 들어 있던 얼음 식혜를 꺼내 얼른 태우에게 주며 말했다. “태우야, 이거 너 혼자 먹어.” 태우는 산에서 내내 기분이 밝았다. 그리고 산에 오르는 걸 더는 힘들어하 지 않았다. 그때부터 태우의 눈빛이 순해지기 시작했다. 그 뒤로 훨씬 힘든 여 러 일을 겪었지만 전처럼 동생들이나 나에게 화를 잘 내지 않았다.
우리 그냥 같이 학교에 다니자 하지만 그러한 감동은 태우와 나 사이의 은밀한 감정이었고, 태우의 모든 면 이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줄어들기는 했어도 태우는 여전히 동생들을 놀렸 다. 그렇게 해서 여전히 스스로 힘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싶어 했다. 태우는 그날도 연이를 놀리기 시작했다. 언제나처럼 연이도 크게 소리를 지 르며 울었다. 나는 멀찍이 떨어져 그 모습을 보고 있다가 안 되겠다 싶어 태우 를 불러 세웠다. “태우야, 오늘은 안 되겠다. 아침햇살이랑 이야기 좀 하자. 책사랑방으로 들어와.” 태우는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혼자 내가 뭘 잘못했냐며 따졌고 마지못해 들어왔다. 둘레에 있던 동생들은 모두 하던 행동을 멈추고 우릴 지켜보았다. 나는 더군다나 그때 실습 와 있던 모모 선생님의 시선을 따갑게 느끼며 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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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마주 앉았다. 내가 말도 꺼내기 전에 태우는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차분 한 내 목소리는 태우의 목소리에 묻혔고, 태우는 앞에 있는 책상을 손바닥으 로 두드리다가 결국은 집어들어 탕탕 내리치며 날 때릴 기세였다. 밖에서는 동 생들과 모모 선생님이 있었지만 그 순간에는 태우와 내 문제에 마주해야만 했 다. 순간 나도 이 상황을 재빠르게 판단해야 했다. 나는 함께 소리를 지르기 시 작했다. 나도 태우에게 질세라 손바닥으로 책상을 내리치고 상을 들었다 놨다 하며 소리쳤다.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었다. 함께 소리 높이기를 몇 분, 갑자기 태우가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뱉은 말은 이랬다. “내가 뭘 잘못했다구! 내가 뭘 잘못했는데
. 그럼 날더러 어떡하란 말
이야. 내가 어떻게 해야 하냐고.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러냐고
.”
순간 난 머리를 망치로 맞는 기분이었다. 절망스런 표정으로 넋두리하듯 태 우가 뱉어 내는 말에 나도 눈물이 핑 돌았다. 힘이 세 보이고 싶고 맏형노릇을 하고 싶은데 잘 안 되는 그 심정이 오죽했을까 안타까웠다. 그리고 잠깐 망설 였다. ‘어떻게 위로해 줘야 하나. 내가 선생인데
.’
하지만 나는 태우를 안아 주지 않았다.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 그러면 할 수 없지 해결할 방법이 없으면 학교를 그만둬야지. 태우 야, 너 학교 그만둬라! 동생들이 너 땜에 얼마나 힘드니? 아침햇살도 그만둘 게. 나도 지쳤어. 둘 다 그만두는 수밖에 없겠다!” 우는 태우를 보며 가슴이 먹먹해 말을 더 할 수도 없었다. 눈물을 철철 흘리 며 우는 태우를 두고 나는 밖으로 나와 바라보는 식구들을 뒤로 하고 학교 뒤 에 있는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마침 점심시간이었다. 한 30분 걸었을까? 내가 운동장에 다시 들어서자 모모 선생님이 급히 다가 왔다. “아침햇살, 큰일 났어요. 태우가 이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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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아이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왜?” “태우가요, 아침햇살 나가신 뒤에 미친 듯이 학교를 뒤지며 아침햇살 어디 갔냐고 찾았어요.” 그때 마침 저쪽에서 나를 본 태우가 다가왔다. 그리고는 내 팔을 꼭 잡으며 급하게 말했다. “아침햇살, 우리 학교 그만두지 말자. 내가 잘못했어. 인제 안 그럴게. 아침 햇살도 그냥 다니고 나도 산학교에 그냥 다니면 안 될까? 아침햇살, 제발 학교 그만두지 말자. 우리 그냥 같이 학교에 다니자.” ‘아! 태우야!’ 나는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옆에서 모모 선생님이 웃었다. 다른 설명이 필 요 없었다. 나는 속으로 외쳤다. ‘이제 됐다. 태우 이제 됐다.’ 진심으로 그렇게 느껴졌다. 우리는 사이좋게 늦은 점심을 먹었다. 그 뒤로 태우는 정말 눈빛이 아주 순한 어린애가 되었다. 그리고 더러 동생 들을 놀리거나 욕설이 튀어나올 때면 자기 입을 가로막고는 했다. 말투가 부 드러워지고 그 큰 덩치로 나에게는 어리광을 부렸다. 자신이 절박하게 말했던 약속을 지켰다. 산학교에서는 초창기부터 연극놀이 수업이 있었다. 연극은 아이들의 마음 과 행동을 치유해 주고 재미를 좇을 수 있는 좋은 수업이었다. 이 연극 수업에 서 태우는 아기노릇 하는 걸 아주 좋아했다고 한다. 몇 해 동안 연극 수업을 하 던 마녀 선생님은 그렇게 덩치가 큰 태우가 젖병을 물고 누워서 아기처럼 노는 흉내를 너무 실감 있게 해서 놀랐다고 한다. 태우는 6학년이었다. 이 이야기는 나에게 아주 중요한 교육의 의미를 부여해 주었다. 그리고 참 고마웠다. 연극 수업 시간에 태우는 현실에서 하지 못한 것을 자연스럽게 마 음껏 풀어냈다. 그 무렵 태우는 정말 부드러운 아이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56
공동육아 111호
태우는 그렇게 학교를 마쳤다. 산어린이학교에서 내가 많은 감동을 받은 첫 번째 아이다. 그 감동은 내가 좋은 교사가 되려고 애쓴 원동력이 되었다. 지금 은 나도 학교를 떠나 있지만 태우의 어려움을 이해해 주고 함께 어루만져 주었 던 그때의 산어린이학교 식구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다. 그 식구들은 동생들, 선생님들, 부모님들이다. 나는 젊은 교사들에게 말하고는 한다. “교육은 감동이다. 아이들에게 감동을 먹고 교사가 성장한다.”
글을 마치며 올해 산어린이학교 잔치 마당에 태우가 중학교 친구 둘을 데리고 나타났다. “저, 군대 가요. 인사드리러 왔어요.” 우리는 어릴 적 얘기를 하며 재미있게 웃었다. 태우는 친구들에게 “내가 어 렸을 때는 좀 그랬어” 하고 말했다. 태우는 훨씬 더 부드럽고 웃음이 많은 청년 이 되어 있었다. 며칠 뒤에 조촐한 송별회도 해 주었다. 그때 태우는 저녁마다 부모님 이불 을 깔아 드린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 동생이 부모님 이불을 깔아 드려야 하는 데 걱정이라고 했다. 태우는 앞으로 영화 만드는 일을 하고 싶어 한다. 중등부터 꾸준히 카메라 만지는 일을 해 왔고 산학교 중등 과정에서 후배들에게 한 학기 동안 수업을 해 주기도 했다. 미디어 수업과 여러 수업이 앞으로 태우의 삶에서 큰 몫을 하 리라 믿는다. 추억으로 남은 어릴 적 많은 이야깃거리들이 태우에게 좋은 소 재가 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 되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든 나는 태우가 아 주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살아가게 될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우리 그냥 같이 학교에 다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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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손잡고
그리움을담는 그림
태수가 혼자서 마당 칠판에 로봇 그림을 그리고 있다. 어떤 로봇인지 궁금해서 물었다. 서진숙 소금꽃. 해와달 어린이집에서 일한다. 공동육아 교사로 산 지 2년이 조금 넘었다. 아직은 ‘아이들 곁에 가장 가까운 생태로서 어른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반성하며 길을 찾아 헤매고 있다.
58
공동육아 111호
태수
옵티머스프라임 제트프라임이야.
소금꽃
그래? 제트프라임?
태수
음. 멋지지!
소금꽃
그래. 멋지다.
태수
옵티머스프라임 사고 싶은데, 엄 마가 비싸서 안 된대.
그림 임태수. 일곱 살.
소금꽃
태수
그래? 옵티머스프라임이 없는데
이렇게 이야기가 끝나는 줄 알았다.
그렇게 똑같이 그렸어?
그런데
옵티머스프라임 있어. 근데 더 멋
태수는 그 다음 날 아침에도, 그 오후에
진거
.
.
도 자꾸만 칠판에 옵티머스프라임 제트
소금꽃
그래? 그건 달라?
태수
어. 여기 날개도 있고
를 그린다.(2013. 5. 24.) (자신이
그린 그림 속 로봇의 날개를 가리킨다).
소금꽃
아
태수
멋지지
그렇구나. .
그리움을 담는 그림
59
아이와 손잡고
생명에는 주인이 없는거야
오후 바깥놀이를 나갔다. 숲으로 나가 는 대문 앞에서 백윤이와 진선이가 무언 가를 빼앗으려고 하는 듯이 서로 손을 엉켜 잡고 힘을 쓰고 있다. 둘 다 눈에 힘 이 잔뜩 들어간 것이 조금 있으면 크게 다툼이 일어날 판이다. 가까이 가서 무 슨 일인지를 물었다.
백윤
진선이가 내 달팽이 가지고 갔어.
진선
아니야!
오전에 백윤이는 달팽이를 한 마리 발 견해서 관찰 통에 넣고 다니다가 신발장 안에 넣어 두고 들어갔다. 그것이 기억 나서 물어보았다.
소금꽃
아까 오전에 백윤이가 발견한 달 팽이?
백윤
어.
소금꽃
그건 백윤이가 발견한 달팽이잖아.
백윤
어.
소금꽃
근데 그걸 진선이가 백윤이한테 말도 안 하고 먼저 꺼내서 나온 거야?
백윤
어.
진선
아니야!
소금꽃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안 돼서) 왜 아니
야? 진선이가 꺼낸 거 아니야?
60
공동육아 111호
진선
내가 꺼낸 거야.
팽이를 백윤이가 가져가면 안 괜찮다’는
소금꽃
그럼 백윤이 거를 꺼내 간 거 아
생각을 하고 있었으리라.
니야?
진선이는 이런 상황과 이야기가 인정
진선
(눈에 힘을 잔뜩 주고는) 아니야!
되지 않는지 손에서 달팽이를 놓지 않으
소금꽃
진선아 그러지 말고 백윤이한테
려고 힘을 주고 있다. 그리고 결국에는
줘. 백윤이가 발견한 거잖아. 그
내 손에 이끌려서 억지로 손에 쥐고 있
래서 관찰 통에 넣어서 신발장 안
던 달팽이를 백윤이에게 넘긴다. 그리고
에 넣어 둔 거잖아.
는 툇마루로 가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기만 한다. 아이는 그렇게 한참
진선이는 자꾸 화가 나 있다.
을 시무룩하니 기운 하나 없이 앉아 있 다가 일찍 온 엄마와 함께 집으로 갔다.
소금꽃
왜 그래 해봐
진선
마음 풀고 잘 생각 .
아이 생각에 비추어 나는 스스로 생 각하기에도 참 궁색한 이야기를 늘어놓
아니야! 생명에는 주인이 없는
은 거 같다. 진선이 말대로 생명에는 주
거야!!
인이 없는 건데 우리는 아이들과 생명을 발견해서 그걸 가지고 놀고, 또 먼저 발
나는 잠깐 동안 말문이 막혔다. 그리
견하면 임자가 되기도 하고, 좋아하는
고는 “맞아. 생명에는 주인이 없는 거
친구에게 선물로 주기도 한다. ‘생명에
. 근데 백윤이가 먼저 발견한 거
는 주인이 없다’는 것과 ‘발견하면 임자
” 하며 궁색한 이야기를 시작
가 된다’는 이 이상한 상황・관계를 아이
야 잖아
했다. “만약에 진선이가 먼저 발견해서
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둔 걸 백윤이가 가져가면 너는 괜찮겠
18. 화. 오전에 흐리다가 맑고 더워짐)
.(2013. 6.
어?” 하고 물었다. 진선이는 대답은 하지 않고 자꾸 눈 에 힘을 주고 있다. 진선이는 ‘내가 달팽 이를 꺼내간 거는 맞지만, 백윤이 것은 아니다’고 굳게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내가 발견한 달
생명에는 주인이 없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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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적이
자꾸 회피만 하네요. 일탈의 호기심을 보이는 걸까요? 재현이의 날적이입니다. 재현이는 19개월부터 일곱 살까지인 2005년 3월부터 2010년 2월까지 신촌 우리어린이집에서 자랐습니다.
담임 양명희(자두) | 어머니 정영화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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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111호
터전에서
2007년 2월 22일 (생후 3년 6개월)
화요일 날 낮잠을 자고 나서 재현이가 바닥에 놔둔 자두 공책 위에 낙서를 했어요. 조 금 시작하다가 자두가 보고는 “어, 재현이 너 라구요. “이리 와라, 재현
” 하니 펜을 확 놓고 도망을 가더
” 해도 모른 척. 결국 자두가 일어나서 데리고 와 문을
닫고 이야기를 합니다. 재현이도 저번에 낙서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걸 기억하고 있는 데, 그래서 아마 도망가려고 그런 거겠지요. 낙서도 낙서지만 이런 일이 생겼을 때 재현이는 도망을 가거나, 다른 말로 돌리려 고 해요. 예를 들면 왜 그랬냐는 말에 “아, 공책이 없었어. 그래서 그랬어” 라든지, “아, 나 여기 아파” 하며 안기려고 든다든지요. 사실 아이들이 어른 펜으로 어른들 공책에 무언가 써 보고 싶어 하는 욕구는 당 연한 건데, 그것보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자꾸 회피만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 다. 눈도 안 보구요. 저번에 벽이랑 바닥에 낙서한 거는 약속한 뒤부터 하지 않고 있어서 낙서 문제 자 체는 자연스러운 일인데, 문제 상황에서 일단 회피하는 모습이 좀 걸리네요. 저도 재 현이를 본 지 얼마 되지 않아 섣불리 판단할 수도 없고
.
일단 저는 재현이가 문제를 좋게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어른이 상황을 이야기하고, 문제를 회피하지 않도록 분명히 말해 줘야 할 것 같습니다. 실수 를 이야기하고 용서받을 수 있는 과정을 겪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경험을 자꾸 하 고 익숙해졌으면, 하고 생각합니다.
집에서
2007년 2월 26일
집에서도 그런 모습을 보여요. 처음 그랬을 때는 이 녀석이 왜 그러지 싶었는데, 두 번째 그런 상황이 닥치니 ‘재현이를 대하는 내 태도가 어떻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 요.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 하고 도망가고 회피하고
. 이런 모습은 정답을 알고
있기 때문에 보이는 모습이라 전제하고, 변명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태도가 나한테
자꾸 회피만 하네요. 일탈의 호기심을 보이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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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적이
있는 건 아닐까 돌아보았지요. 저는 대체로 원칙을 따지는 편이에요. 어릴 적 습관이 중요하기에 ‘이렇게 하는 거 야’ 같은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자연 이렇게 해 보고도 싶고 저 렇게 해 보고도 싶고 다양하게 시도해 보고 싶어 하는 재현이로서는 알고 있지만 알 고 있는 것 말고 다르게 해 보고 싶은 유혹을 많이 느끼게 되는 건 아닐까요. 3년 반 을 살아 보았으니 제 둘레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하고 나서 일탈의 호기심을 보일 때 인지도 모르겠어요. 엄마가 안 된다고 하는 일, 어른들이 말리는 일을 해 보고 싶고, 실제로 하기도 하고
, 그렇지만 어른과 관계도 나빠지면 안 되니까 이렇게 저렇
, 그런 건 아닐까 생각해 보았어요.
게 변명하고
아이를 키워 본 분들은 “재현이도 이제 시작이야!” 하시더군요. 그래서 저는 좀 더 여유 있게 대응해야겠구나 생각했어요. 회피하고 변명하는 모습을 보이면 그 모 습 그대로 받아들여 주고 ‘바른 길은 알고 있다’는 믿음을 지켜 내자, 이렇게 말이에 요. 재현이도 얼마나 쑥스러울까요.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을 해 버렸는데 라고 인정한다 해도 나중에 또 해 버리고 싶을지 모르는데
, 실수
. 저는 그런 반항기를
심하게 겪어서인지 재현이 심정이 어떤 것일지 약간은 이해가 돼요.
터전에서
2007년 3월 2일 (생후 3년 7개월)
정리 시간에 또 석주와 다툰다. 며칠 사이 정리나 놀이 할 때 석주와 주로 다툰다. 오 늘은 재현이가 블록 정리하느라 쌓아 놓은 것을 석주가 옮기려고 하니 재현이는 “내 거야!” 하고, 석주는 “옮기잖아. 내가 옮길 거야” 하고. 그러다가 손으로 얼굴 때리 고 울고. 이야기를 하다 보면 서로 잘못 안 했는데 얘가 그랬다고
. 자꾸 되묻다
보면 석주가 “내가 그렇게 했어.” “석주야, 재현인 자기가 옮기고 싶어 한 거 같아. 그 래서 속상했나 봐.” 그럼 몇 번 고집부리다가 “알았어. 재현아, 니가 옮기려는 거 내 가 이렇게 해서 미안
” 하는데 재현이는 계속 고집. “나는 하나도 잘못 안 했는
데 석주가 그랬거든.” “그럼 둘이 이야기가 다르네? 안 되겠다. 둘은 길게 이야기하고 서로 화해할 때까지 여기서 이야기해.” 그럼 석주는 얘가 거짓말한다고 방방 뛰고.
64
공동육아 111호
저번에는 그래서 윤하(목격자)까지 불러와 이야기하고 재현이랑 이야기했다. 석주 가 잘못했다고 이야기할 때 재현이도 같이 잘못한 거 이야기하는 거라고. 오늘은 계속 대치만 하다가 재현이가 지치는지 대충 사과하고 가 버린다. 이야기가 길어지면 아이들도 산만해지고, 나도 아이들 이야기보다 내가 주도를 하게 되어 끝마치고도 맺은 것이 아니라 덮은 느낌이 싫다. 내 이런 고민이랑 다르게 다섯 살 재현이는 어느 새 잠 오는 바람(이불로 만드는 바람) 해 달라며 잠 오는 바람에게 배꼽을 보여 준다. 자두는 달님에게 지혜를 달라고 빌어 본다.
집에서
2007년 3월 5일
그렇지요? 아이들 다투는 데 어른이 어 떻게 해야 할지 늘 고민이 되고는 하지 요. 아이들이 잘못이라 생각하는 것과 어른이 잘못이라 생각하는 게 다를 수도 있고, 아이들이 잘못이라 생각한다 할지라 도 쉽게 인정하려 들지 않을 때가 많으니 말 이지요. 어른이 하는 말이 쉽게 먹히지 않는다 해도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어린아이를 키울 때는 어른이 마음의 여유를 가지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마음속으로 수 긍하지 않는 상태에서 어른 잔소리가 싫어서 “잘못 했어” 하는 모습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아요. 가끔 석주한테서 그런 모습을 보기도 하고, 재현이 도 가끔 그러는데 이 녀석들은 터전 생활을 오래 해 서 눈치가 빠삭해요. 오래 이야기한다고 해서 갑자기 바뀌는 건 아닐 테니 서로 뜻하는 바와 마음을 이야기해 주는 선에서 가볍게 정리해도 될 듯해요.
오늘의 교육
행복하게 늙을 수 있는 나라가 되면 좋겠다
사람이 태어나서 살아가는 시간을 몇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태어나는 시간, 자라나는 시간, 일하며 사는 시간, 늙어 서 쉬는 시간, 죽는 시간. 이 다섯 가지 시간을 모두 누리지 못하고 죽는 사람 이 많아서 안타깝다. 20세기 말에만 해 도 태어나기도 전에 죽는 사람이 태어나 는 사람보다 많았다. 요즘이라고 별로 다를 게 없다. 자라서 어른이 되기 전에 죽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도 21세기가 되면서 100세 시대가 열렸다고 한다. 어 찌 되었든 20세기보다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늙어서 쉬다가 죽을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났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백 살까지 산다고 해서 행복 하다고 할 수 있을까? 자라나는 시간보 다 훨씬 긴 시간 동안 늙은이로 살면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죽는 순간 에 내 한 삶을 온전하게 잘 살았다고 빙 긋이 웃으며 갈 수 있을까? 내가 살 수 있는 시간이 갑자기 줄었다가 갑자기 늘 어났다가 하는 시간을 보내면서 다시 늙 어서 살아가야 하는 시간을 생각하게
이주영 (사)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이사와 어린이문화연대 대표를 맡고 있다. 교사와 학부모를 위한 《어린이 책을 읽는 어른》 《 , 이오덕 삶과 교육 사상》 같은 책을 펴냈다.
66
공동육아 111호
되었다. 그런데 요즘 몇 년 동안 세상 돌 아가는 꼬락서니를 보면서, 이러다가는 행복하게 늙을 수 있는 나라가 되기 어
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불안하다는 것을 시민들이 몸으로 느
행복을 느끼게 하는 건 그 순간 상황
끼기 때문이다. 수천 명이나 되는 철도
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미래에 대한 기대
노동자들을 파업한다고 직위 해제하는
와 희망이 더 중요하게 영향을 미친다.
철도공사를 보면서, 체포 영장과 수색영
지금 형편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내
장도 구분하지 못하는 경찰 폭력을 보면
일은 나아질 수 있다고 느낄 수 있다면
서, 원칙을 무시하면서 원칙대로 하는
행복할 수 있는 게 사람이다. 그런데 우
거라고 우기는 통수권자의 언어 왜곡을
리 세대가 국가 모든 분야의 권력을 거의
보면서 거꾸로 돌아가는 세상에 대한 불
모두 관리하고 있는 지금, 그런 희망을
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품기가 점점 더 어렵게 돌아가고 있다.
‘안녕들 하십니까?’에서 ‘네가 왜 죽어야
연말이 되면서 ‘안녕들 하십니까?’라
하느냐!’는 울부짖음으로 가득한 세상
는 대자보가 여러 계층과 세대로 퍼져
이 올까 두렵다. 이러한 불안감과 두려
나가고 있다. 요즘처럼 손전화를 포함한
움을 넘어서려면 이제 안녕하냐는 물음
표현 매체가 발달한 시기에 사반세기 전
만으로는 모자라는 세상이 되고 있다.
민주화 불씨를 당겨 준 표현 방식이 다
강정 마을은 군대와 연관된 국가권력
시 출현했다. 대자보를 붙인 다음에 사
이, 쌍용자동차는 경제와 관련된 국가
진으로 찍어서 사회관계망서비스로 사
권력이, 밀양은 핵 마피아 집단과 국가
방으로 보내니 시대에 맞게 진화된 대자
권력이 아주 가깝게 연결되어 움직이면
보다. 수서발 고속철도를 자회사로 분리
서 높고 높은 절벽처럼 사람답게 사는
해서 면허를 내주는 것이 철도 민영화,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가로막고
말이 철도 민영화지 재벌들한테 팔기 위
있다. 칠순이 넘은 유한숙 할아버지가
한 단계다. 이에 반대하는 철도노조를
밀양 초고압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다 자
정부가 탄압하는 것을 본 시민들이 시
살하고, 반대 활동을 하다 다친 사람이
작한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가 이렇
80명이 넘는다. 그런데도 정부는 무조
듯 전국 곳곳에 붙는 까닭은 지난 정부
건 송전탑을 세우겠다고 강제로 밀어붙
에 이어서 현 정부 1년을 겪으면서 앞날
인다. 핵 발전소가 가져올 재앙이 불을
행복하게 늙을 수 있는 나라가 되면 좋겠다
67
오늘의 교육
보듯 뻔한데도, 어떤 안전장치로도 피해
이 써야 할 것을 빼앗고 있다.
갈 수 없는 ‘인간의 욕심과 방심’이 불러
이러한 불통과 억압과 왜곡은 현실
올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데도 한 걸음도
정치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게 아니다.
늦추려고 하지 않으면서 반대하는 할머
더 무섭고 심각한 일은 미래 사회를 이
니 할아버지 들을 나락으로 밀어붙이고
끌어 갈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 현실이
있다. 우리 사회는 밀양 할머니 할아버
다. 우리 교육이 이대로 가다가는 결국
지 들만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게 아니
우리 아이들을 잡고, 겨레를 죽이고, 나
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최고인 기록이
라도 망하게 할 수밖에 없다. 역사 교과
자꾸 늘어나고 있는데, 늙은이 자살 비
서 문제로 논란이 많은데, 그 내용을 보
율 또한 세계 최고다. 1년에 만 2천 명이
면 역사 인식이 1960년대, 1950년대,
넘는 늙은이들이 자살을 하고 있다. 아
아니 1940년대로 후퇴하는 것 같다. 박
니 사회적 타살을 당하고 있다. 참으로
정희 독재 정권, 이승만 독재 정권, 일제
불행한 사회다. 그 불행한 모습이 하루
침략자들이 백성들한테 강요하던 논리
가 다르게 더욱 거칠고 험악한 파도처럼
를 그대로 되살리려고 한다. 역사 교과
몰려오고 있다.
서 문제가 워낙 심각해서 논란이 되고
이 모든 문제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있는데, 사실 다른 교과 교과서 역시 논
어른 세대들이 오직 자신들이 조금 더
란에서 비켜 갈 수 없다. 우리말과 글을
편하게 살자는 욕심, 그 욕심을 채우기
바르게 가르쳐야 할 국어 교과서가 그
위해 어른이라는 권력을 무조건 휘두르
임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고, 민주주의
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 살아가야
지식과 태도를 가르쳐야 할 사회 교과서
할 어린이들한테 물려주어야 할 것들을
가 민주 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를 억
마구잡이로 써 없애고, 후손들이 살아
압하거나 왜곡하고 있다. 일하는 사람
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싹쓸이하듯
을 업신여기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깎
이 훑어 먹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
아 내리고, 오직 경제 부흥만이 행복이
시대 권력을 손에 쥔 사람들이 마음에
라는 내용을 강화하고 있다.
죄의식 하나 느끼지 않으면서 어린이들
68
공동육아 111호
이런 험한 파도를 막아 내고 늙어서
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로 방향을
이다. 늙어 죽을 때까지 돈과 권력을 틀
틀기 위해서는 공동체 교육 공동 육아
어쥔 채 젊은이들 삶을 짓밟고, 어린이
정신이 어린 세대와 젊은 세대를 넘어 늙
들이 살아갈 미래 자원까지 샅샅이 훑어
은 세대까지 확대되어야 하겠다 싶다. 다
빨아먹는 늙은이들이 나오지 않을 것이
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체험
다. 절망에 빠져 죽어 가는 불행한 늙은
한 사람들, 함께 살아가는 행복을 경험
이들이 더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한 사람들,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고 존
젊은이를 믿는 늙은이, 어린이를 사
중하면서 무엇을 함께 공유하려면 얼마
랑하는 늙은이, 다음 세대가 살아갈 자
나 많은 인내와 자기 성찰이 필요한가를
연과 자원을 지켜 줄 수 있는 늙은이, 권
몸으로 배우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서
력과 돈에 노예가 되지 않는 늙은이들
다수가 되어야만 이렇듯 어처구니없는
이 늘어나야 한다. 그래서 행복한 늙은
세상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이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
리고 공동체 교육 공동 양로 정신을 만
해서 어린이와 젊은이와 늙은이가 함께
들어 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앞으로 점
사는 세상을 만드는 세대 간 공동체 교
점 늘어나는 늙은이들이 예전처럼 고무
육과 공동양로협동조합을 어떻게 만들
신짝이나 막걸리 몇 잔이나 용돈 20만
어 나갈 것인지 걱정하고 연구하고 실천
원 받겠다는 욕심에 민주주의를 팔아먹
하는 길을 찾아야 할 것 같다. 더 늦기 전
는 얼빠진 짓을 조금이라도 하지 않을 것
에.(2013. 12. 31.)
늙어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로 방향을 틀기 위해서는 공동체 교육 공동 육아 정신이 어린 세대와 젊은 세대를 넘어 늙은 세대까지 확대되어야 하겠다 싶다.
행복하게 늙을 수 있는 나라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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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눈
우리의 ‘안녕’을 위해
우리나라에는 한국방정환재단이라 는 곳이 있다. 어린이날을 만든 소파 방 정환 선생의 뜻을 살리려는 곳이다. 여 기에서 해마다 어린이・청소년 행복 지 수를 국제 비교해서 발표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이 조사 가운데 ‘주관적 행 복’ 항목에서 해마다 경제협력개발기 구(OECD) 국가 중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2011년 조사에서 대한민국의 어 린이・청소년 가운데 자신의 삶을 ‘만 족’ 또는 ‘매우 만족한다’고 답한 비율은 55.4퍼센트로, 오이시디(OECD) 국가 평
균 (85.35퍼센트)보다 크게 낮았다. 또한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변호사
외롭다고 느끼는 학생의 비율은 16.2퍼 센트로, 오이시디(OECD) 평균 (7.4퍼센트) 보다 두 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자신의
2013년을 장식한 말 가운데 하나가 ‘안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외롭다고 느끼는
녕들 하십니까’일 것이다. 한 대학생이
상황에서 행복하기는 어렵다. 행복감은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를 붙인
학년이 올라갈수록 떨어진다. 특히 초
뒤에, 수많은 사람들이 대자보를 붙이
등학교 6학년부터 확 떨어진다. 왜 이때
며 아주 빠르게 퍼져 나갔다. 이 일은 우
부터 행복감이 눈에 띄게 떨어질까? 경
리 사회가 그만큼 안녕하지 못한 사회라
쟁이 본격으로 시작되는 시기이기 때문
는 것을 보여 준다. 안녕하지 못하다는
이다. 안정된 일자리는 적고, 그 일자리
것은 ‘행복하지 못하다’란 뜻으로 받아
를 얻기 위해 좋은 대학을 가야 하고, 좋
들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행복
은 대학을 가기 위해 일찍부터 사교육
하지 못하게 됐을까? 이제는 이런 질문
을 받아야 한다. 학업 스트레스, 긴 학
을 던져 볼 때가 되었다.
습 시간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행복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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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111호
한 대학생이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를 붙인 뒤에, 수많은 사람들이 대자보를 붙이며 아주 빠르게 퍼져 나갔다.
거리가 먼 삶을 산다. 참 슬픈 현실이다.
고 했고, 개인은 ‘물질과 소비가 늘어나
어릴 때부터 행복하지 못하면 커서도 행
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복해지기 어렵다. 조사 결과의 세부 내
과거보다는 물질 면에서 아주 풍요로
용을 보면 더 슬퍼진다. 우리나라의 어
워졌다. 대한민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린이・청소년 들은 ‘좋아하는 일을 실
2013년에 2만 4천 달러를 넘어섰다. 그
컷 할 수 있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낼
런데 우리는 안녕하지 못하다. 행복하
때’ 행복하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 현실
지 못하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상대적
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
불평등이 심해지고 있는 것이 원인 가운
이것이 2014년을 맞는 우리의 현실
데 하나일 것이다. 불평등이 심해지면서
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국가는 “경제
‘각자 생존’의 사회가 되었다. 내가 살기
성장이 되면 우리는 행복해질 것”이라
위해 경쟁에서 남을 이겨야 하는 사회가
우리의 ‘안녕’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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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눈
된 것이 어린 시절부터 과도한 경쟁에 시
수준에 머물고 있다. 벽돌공과 의사의
달리게 되는 근본 원인이다. 그러나 불
소득 격차가 적고,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평등만 심하지 않다면, 대한민국은 이
먹고살 수 있다. 덴마크만이 아니라 많
미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물질 조건을
은 유럽 국가들이 그렇다. 우리와 다른
갖췄다고 볼 수 있다. 빈부 격차, 소득 격
점이다. 그래서 이제는 국가나 개인이
차가 큰 것이 문제지 사회 전체로 볼 때
선택을 해야 한다.
물질의 풍요는 모자라지 않다.
국가로 볼 때는 좀 더 평등한 사회가
오히려 대한민국보다 1인당 국민소
될 것인지, 아니면 점점 더 정글 같은 사
득이 낮은 나라들 가운데 대한민국보다
회가 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낮은
행복한 나라들이 꽤 있는 상황이다. 중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 아르바이트로
남미의 스위스라 하는 코스타리카가 대
살아가는 청년들, 소농들, 사회적 약자
표되는 예다. 대한민국에 견주어 국민
들이 기본 소득을 보장받을 수 있다면
소득이 절반 정도밖에 안 되지만 행복
불평등은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불안
에 관한 여러 조사에서 대한민국보다 행
도 줄어들 것이다. 스위스는 우리보다
복한 나라로 꼽히고 있다. 2012년에 발
행복한 나라지만, 최근 국민당 기본 소
표한 유엔세계행복보고서에서 대한민
득을 월 3백만 원씩 지급하자는 안을
국은 행복도 순위가 56위에 그쳤지만
국민투표에 붙이기로 했다. 이런 제안
코스타리카는 12위였다. 코스타리카는
을 황당하다고만 볼 것이 아니다. 스위
중남미 국가 가운데서 일찍부터 복지,
스 같은 나라에서도 안정된 소득을 보
의료 제도를 정비한 나라다. 그런 대로
장받기 쉽지 않아지면서 이런 제안이 나
불평등이 덜하다. 그리고 인권과 평화를
왔다. 경제성장이 된다고 해서 이런 문
국가의 핵심 가치로 내세우고 있는 나라
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경제성장에 매
이기도 하다. 이런 것이 코스타리카 사
달릴수록 불평등만 심해지기 때문이다.
람들의 행복에 이바지하고 있을 것이다.
미래를 생각해도 그렇다. 우리는 눈앞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꼽히는
의 이익을 들어 기후변화에도 대책이 없
곳은 덴마크다. 덴마크는 직업 간 소득
고, 원전도 분별없이 확대하고 있다. 그
격차가 적고, 대학 진학률이 50퍼센트
러나 덴마크나 코스타리카는 원전을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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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도 하지 않은 나라들이고, 온실가스
은 쪽으로 변하지 않는데 나만 행복하게
배출을 줄이고 생태 환경을 보존하기 위
살기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세상 탓만
해 노력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 차이
하고 있을 수는 없기에 내 선택도 중요한
는 무엇일까? 당장의 이익에만 매달리
것이다.
는 사회냐, 아니면 행복의 지속 가능성
정말 중요한 것은 정치다. 정치는 사
도 고려할 줄 아는 사회냐 하는 차이일
회가 잘못 돌아갈 때 그것을 바꿀 수 있
것이다.
는 중요한 통로라고 할 수 있다. 정치가
개인의 문제도 있다. 아무리 사회가
잘돼야 나도 행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엉망이지만 개인은 다른 선택을 할 수도
높아진다. 덴마크의 행복 비결도 정치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사회의 흐
에 있다. 덴마크는 우리와는 달리 국회
름에 따라 물질과 소비가 행복을 가져
의원 선거의 투표율이 80퍼센트 이하로
다줄 것으로 믿고 살아왔다. 그래서 ‘더
떨어진 적이 없을 만큼 정치에 관심이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매달렸다. 내 자식
높다. 여덟 개가 넘는 다양한 정당이 국
을 좀 더 안정된 직장, 좀 더 좋은 대학에
회 안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비례대표제
넣기 위해 경쟁으로 내몰았다. 그렇게
를 채택하고 있다. 이런 점이 덴마크 사
사는 사이에 이웃은 사라지고, 가족 관
회를 건강하게 하고, 사람들의 행복도
계도 깨지고, 공동체는 책에서나 나오
를 높이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많
는 말이 되었다. 그러나 나부터 다른 선
은 사람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거나 적처
택을 할 수 있다. 나부터 욕망을 줄이고,
럼 대한다. 먹고살기도 힘든데 무슨 정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으며 살아갈 수
치냐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그것이 바
있다. 내 자식부터 사교육 안 시키고, 스
로 변화를 가로막는 원인이다. 먹고살기
트레스 안 받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힘들어서 정치에 관심이 없으면 없을수
하도록 할 수 있다. 소비보다는 사람 사
록 정치는 우리를 더욱 먹고살기 힘들게
이의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며, 작게라
만들 것이다.
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할
2014년을 맞는 지금, 안녕한 사회가
수 있다. 물론 개인의 선택만으로는 근
되려면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점들이
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사회가 좋
다.
우리의 ‘안녕’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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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공동체학교
아이들의 삶에 힘이 되는 교육은 어떤 것일까? 이 질문은 지역아동센터(다음 부터 센터) 교사들의 가장 큰 물음 가운데 하나다. 우리 사회에서 불리한 자리
에 있는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당당하고 즐겁게 펼쳐 나가려면 어떤 능력이 필 요할까? 삶에 이로운 다양한 경험과 능력이 필요하겠지만 이 글에서는 아이 들의 언어 능력을 중요하게 다루려고 한다.
*
김미아 이야기보따리. (사)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의 지역공동체학교인 성남꿈나무와 해송 지역아동센터에서 14년째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삶에 이로운 교육은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해송지역아동센터 해송은 사회에서 돌보아야 하는 아이들과 함께 30년 넘게 생활해 온 생활 교육 문화 공동체다. 우리 아이들이 남에게 의지하지 않는 사람, 따뜻한 사람으로 자라도록 하기 위해 애써 왔으며, 이런 경험과 실천은 공 동육아 운동의 바탕이 되고 추진력이 되고 있다.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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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 아이들 대부분은 열악한 집안의 문해(文解)** 환경 때문에 자신의 다 양한 욕망을 언어로 꼭 알맞게 표현하지 못한다. 이야기와 토론이 일상화되기 보다 몸싸움과 거친 말로 자신을 표현하고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현실 때문에 센터에서는 독서 프로그램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전문 선생님을 두어 몇 년 동안 독서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 몇 년 동안 책 읽는 아이로,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하는 아이로 성장하지 못하 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전문 선생님이 주마다 한 번 이상 독서 지도를 하 는데 아이들은 왜 책만 읽으려고 하면 졸고, 글을 쓰라고 할 때는 거의 신경질 증상을 보이는 것일까? 이 글에서는 센터 아이들을 둘러싼 문해 환경을 돌아보면서 그동안 해 온 독서 프로그램의 한계를 짚고, 지역아동센터 적합형 언어 프로그램을 새롭게 제안하고자 한다. 또 서른 명 남짓한 센터 아이들에게 적게는 8~9회, 많게는 25회 정도 새롭게 적용한 언어 프로그램을 실천한 과정과 그 과정에서 달라진
아이들 모습을 함께하려고 한다.
1.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의 문해 능력 지역아동센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非)문해 아이들 초등학교 3학년 민수*** 는 센터에서 책 읽는 시간에 동화책을 한 권 읽었 다. 담당 교사가 민수에게 책 내용을 말해 보라고 했지만 민수는 자신이 읽
*
이 글은 서울연구원에서 주관한 ‘작은 연구 좋은 서울’의 연구 모임으로 지원을 받아 ‘지역아동센터 적합형 언어 프 로그램 개발’이란 주제로 지역공동체학교 페다 모임에서 진행한 실천 프로그램을 정리한 것이다.
**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은 글을 읽고, 쓰고, 이해하고, 표현하는 것 모두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책읽기보다는 문해(文解. 글을 읽고 이해함)란 말이 아동의 현실에 맞을 것 같다.
*** 아이의 인격을 보호하기 위해 이름은 가명으로 썼다.
스스로 말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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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공동체학교
은 책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교사는 평소 민수의 학교 성적이 60~70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민수가 책 내용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민수는 센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이들 가운데 하나다. 아이들은 문자에 익숙하지 않다. 이것은 글을 소리 내서 읽을 때 잘 나타난다. 아이들은 글자를 소리로 나타내는 것부터 어려움을 느낀다. 그러니 그 내용을 이해하면서 읽을 수 있는 아이들이 별로 많지 않다. 이러한 아이들의 문해 능력은 인간관계, 학 습, 이야기 나누기 같은 현실 삶에서 그대로 드러나 아이들을 힘들게 하고 있 다. 센터에서 숙제를 할 때도 교과서에 나오는 어휘와 문장을 이해하지 못해 거의 전과나 인터넷 검색 사이트 네이버에서 알려 주는 것을 베끼는 경우가 많 다. 수학 공부를 할 때조차 문제의 뜻을 이해하지 못해 그대로 포기하는 경우 도 많다. 더구나 사회관계에서 자신의 요구를 말로 알맞게 표현하지 못해 폭 력으로 충돌하는 경우도 많다.
집안의 문해 교육 환경 민수 어머니는 옷 만드는 일을 하는 미싱사다. 어머니는 글을 읽을 수는 있지 만 문자로 정보를 얻는 일에는 익숙하지 않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재봉 틀 일을 하면서 책을 읽을 기회가 거의 없었고, 기회가 있더라도 장시간 노동 으로 힘이 남아 있지 않다. 민수가 어렸을 때 민수에게 책 읽는 법을 가르치거 나 함께 이야기를 나눈 경험이 거의 없다. 민수 엄마가 거의 밤 10시가 넘어서 야 퇴근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민수에게 어떻게 읽기, 쓰기, 이야기 나누기 를 가르쳐야 하는지도 잘 모른다. 민수는 어린아이 때부터 집안에서 어른과 이야기를 하면서 마음을 나누 는 데 심각하게 결핍되어 있었고, 현재도 그런 환경이 이어지고 있다. 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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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는 사랑받는 아이지만 집안의 문해 환경은 너무나 열악하다. 신문을 읽 는 본보기가 되는 어른도 없고, 텔레비전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눈 경험도 많지 않다. 책을 함께 읽고 어른과 일상에서 이야기를 나눠 본 경험도 없다. 민수의 예를 볼 때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은 인생의 초기부터 개인차가 심하게 드러 나며 시간이 지날수록 이 차이는 깊어 간다.
학교의 문해 교육 환경 민수는 학교에서 존재감이 없다. 공부하는 것을 싫어한다. 공부하려고 노력 한 적도 있지만 선생님이 하는 말을 거의 알아듣지 못한다. 하지만 선생님에게 혼나지 않을 만큼 눈치껏 행동한다. 민수는 책만 생각하면 두려움을 느낀다. 민수는 2학년 국어 시간에 선생님이 책을 읽어 보라 했을 때 제대로 읽지 못해 서 무척 창피했던 경험이 있다. 그때 몇몇 아이들이 무시하던 표정과 키득거리 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민수에게 책과 책읽기는 실패와 무시, 자신의 무능력 을 확인하는 경험이었다. 하지만 3학년이 되고부터 학교에서 나름대로 생존 전략을 터득하며 잘 지내고 있다. 대부분의 수업 시간에 선생님의 특성에 따 라 읽는 척하기, 이해하는 척하면서 대충 넘어가기, 선생님에게 자신이 모른 다는 것을 숨기기 같은 다양한 방법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민수는 글을 읽을 수 있지만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한다. 영어를 읽을 수는 있어도 영어 문장의 뜻을 이해하지는 못하는 것과 같다. 대한민국 국민 이라면 누구나 교육받을 권리가 있고, 보통은 교육받을 권리가 실현되는 학교 에서 글을 읽고 쓰고 이해하는 능력을 갖추지만, 민수는 그러지 못하고 ‘척’하 면서 살고 있다. 하지만 이 태도가 학교생활을 하는 데는 전혀 걸림돌이 안 된 다. 학교에 들어가서 2년 정도 되는 기간 동안 시험을 보면서 요령을 알게 되 고, 남아서 지겨운 공부를 다시 하지 않으려면 적당히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스스로 말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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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를 생존 전략으로서 터득했기 때문이다. 글을 읽고 이해 못하는 아이들이 고학년에서도 많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 문해 능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이 학교 에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알맞은 교육 환경을 제공받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지역아동센터 독서 프로그램의 문제 많은 지역아동센터들이 독서 전문 강사를 두고 주마다 한 번 정도 독서 프로 그램을 한다. 하지만 3년 이상 독서 프로그램을 해 온 지역아동센터들에서도 아이들의 문해 능력이 높아진 경험을 거의 못하고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 면 아이들 대부분이 학교에서 숙제로 내주는 책을 읽고 의무로 독후감 쓰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이런 상황에서 센터에서 하는 독서 프로그램은 그냥 프 로그램의 하나일 뿐 이 과정에서 아이들이 글읽기 능력, 이해 능력, 언어 소통 능력, 어휘력, 책을 대하는 태도 같은 문해 교육에서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중요 한 능력들이 나아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이들의 삶을 잘 알지 못하는 강사가 일주일에 한두 시간 미리 준비해 와 서 하는 독서 활동 ****은 아이들 삶에서 뜻있는 책읽기로 연결되지 못하고 삶과 단절된 프로그램으로 작용할 뿐이다. 단절된 프로그램으로 작용하는 까닭은 아이들 삶과 뚜렷하게 연결되지 못한 채 강사의 머릿속에서 나온 질문 들로 아이들에게 활동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교육으로는 아이들이 스스
독서 활동의 예 : 책을 읽고, 쓰고, 어휘 공부를 하거나 강사가 미리 준비해 온 글을 읽고 토론하는 **** 지역아동센터 경우도 있다. 아이들은 대부분 책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독서 강사는 독서 활동과 관계 있는 북 아트나 점토놀이, 종이접기 같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손 활동을 함께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센터에서 독 서 프로그램을 여러 해 진행해도 아이들은 대부분 책을 읽고 어휘가 확장되지도 않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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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참여하는 활동을 이끌어 내지 못한다. 또한 아이들이 책을 읽고 생각하면 서 나오는 질문이 아니라 교사의 머릿속에서 나온 질문으로 진행하는 독서 활 동으로는 아이들이 그것을 꼭 해야 할 필요도 느끼지 못하고, 생생하게 참여 할 수도 없기 때문에 깊은 인상을 받지 못한다.
3. 새롭게 시도하는 문해 교육 프로그램의 문제 의식 일상에서 책 읽는 문화가 필요하다 센터 상근 교사가 일상에서 ‘책 읽고 이야기 나누기’를 이어 갈 수 있다면 책 읽 는 문화를 만들 수 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센터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어린 시절 동안 문해 환경이 결핍되어 그 능력이 심각하게 떨어지는 경우가 많 다. 아이들에게 독서는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가 안 되어 있다. 센터 아이들에 게 독서는 대체로 학습을 연상하게 만들고 학습은 아이들에게 공포와 수치 심, 상처로 기억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신과 일상을 나누고 자신을 잘 이 해해 주고 받아 주는 교사가 책을 읽어 주는 것을 일상으로 경험하는 것이 중 요하다. 책읽기 환경에서 ‘일상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책읽기와 관련한 아이들의 안 좋은 경험이 교사가 ‘대가를 전제하지 않고 읽어 주는 행위’를 통해 해소되고 책 자체와 아이들이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어 주는 초기에는 좋은 그 림책을 읽어 주고, 아이들은 부담 없이 듣고 자신의 이야기를 함께 할 수 있으 면 좋다. 책을 읽어 주면서 아이들의 의견을 무조건 긍정하고 이야기를 나누 는 게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아이들이 책읽기를 싫어하는 이유는 누군가가 맞는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의견을 강요받았던 경험이 많기 때문이 다. 일상으로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눌 때 어떤 정답도 전제하지 않는다면,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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떤 도덕적인 기준도 제시하지 않는다면, 또 잘 읽어야 한다는 부담을 주지 않 는다면 교사가 들려주거나 돌아가면서 읽는 경험은 아이들의 책에 대한 감각 과 기억을 바꿀 수 있다. 책읽기가 아이들을 평가하는 또 다른 도구가 되지 않 는다면 센터에서 책과 친할 수 있는 환경과 문화를 창조할 수 있다.
3학년부터는 독서 교육이 아니라 세미나 형식을 빌린 책읽기가 필요하다 독서 토론이나, 독서 프로그램이란 말을 쓰지 않고 세미나란 말을 쓰려고 한 다. 이때껏 해 온 독서 프로그램과 다른 형식과 내용을 만든다는 것을 강조하 기 위해서다. 센터에서 아이들은 보통 독서 전문 강사와 함께 책을 읽고, 강사 가 정해 주는 주제로 글을 쓰거나 토론을 한다. 아이들은 대부분 책읽기와 글 쓰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독서 강사들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들기 작업을 함께 준비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이 책의 교훈은 무엇인가?”, “이 책에서 배워야 할 내용은 무엇인가?” 같은 질문을 아이들에게 일방적으 로 던지는 경우가 많다. 무언가 정답이 있고, 또 정답에 따라 아이들의 읽고, 쓰고, 말하는 능력은 서열화된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 독서 강사와 아이들 사이, 아이들과 아이들 사이에서 수직 관계가 구조화된다. 이러한 독서 교육 으로는 책읽기의 능동성, 자발성,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더구나 책을 읽으면서 성장해야 할 아이들의 자발성을 일깨우지 못한다. 책읽기 세미나는 세미나 구성원들의 수평 관계를 바탕에 두고 있다. 구성원 가운데 어른이 있든, 교사가 있든,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 있든 책으로 관계 를 맺을 때는 모두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가져야 한다. 책읽기 세미나(이야기 나 누기, 토론)는 ‘공부는 스스로 해야 한다’는 원칙에서 출발한다. 세미나의 출발
부터 이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센터에서 대부분의 독서 프로그램은 아이들이 선택하기보다 교사나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부분으로 규정하고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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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학년 아이들이 책읽기 세미나를 하고 있다.
연히 해야 하는 프로그램으로 배치하는 경우가 많다. 세미나가 자신에게 꼭 필요한지 아닌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교사가 충분히 안내하고, 스스 로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본 프로그램에서는 부모 모임, 어린이 자치회의에서 “세미나는 책을 통해 성장하고 싶은 아이들이 선택하면 좋겠다”는 안내를 했고, 세미나를 선택하 면 권리와 의무가 생긴다는 이야기를 함께 했다. 권리는 아이들에게 세미나를 할 수 있는 독립 공간과 간식을 마련해 주고, 책을 읽고 아이들이 자신의 의견 을 아무런 제한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고, 의무는 책을 읽고 글을 써야 하 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함께 성장하기 위해서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잘 들 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권리와 의무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스스로 선 택하는 것으로 세미나를 시작했다. 세미나는 아이들이 원전(텍스트)에서 얻어야 하는 정보를 부차적인 자리에 놓는다. 아이들을 구성적 존재, 능동적 존재로 받아들이고 아이들이 원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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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하면서 자신의 내면에서 꿈틀거리는 느낌과 생각을 표현하는 것, 구성원 들의 다양한 차이를 함께 나누면서 자신의 삶에 이로운 내용을 스스로 건져 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진행했다. 기존 독서 프로그램은 아이 들을 ‘아직은 무언가 내용이 부족하니 내용을 익히고 배워야 하는 아이들, 특 히 사회의 주류 가치가 요구하는 내용을 익혀야 하는 아이들’로 보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아이에 대한 다른 관점은 책을 읽고 토론할 때 필요한 질문을 만 들어 내는 과정을 달리 하게 만든다. 세미나는 아이들이 원전과 접속해서 구 성해 낸 표현(쓰기)에서 질문을 구성한다면, 기존 독서 프로그램은 이미 누군 가 만들어 놓은 질문(책에서 제시하는 질문이나 교사가 미리 준비한 질문)을 가지고 와 서 그 질문에 아이들이 표현하도록 요구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세미나 형식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그림책으로 세미나 하는 과정을 살펴 보자. 세미나 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독립 공간으로 옮겨 간다. 그리고 나서 먼저 교사가 그림책을 읽어 준다.***** 교사가 책을 읽어 주고 나면 아이들은 모 두 자기 공책에 글을 쓴다. 자유 글쓰기이다. 그림책을 듣고 자신에게 떠오르 는 어떤 생각이나 느낌 아이디어, 질문 따위 무엇이든 좋다. 이렇게 글을 쓰고 나면 돌아가면서 자신이 쓴 글을 읽는다. 한 사람이 읽고 나면 다른 사람들이 궁금한 것을 물어봐도 된다. 이렇게 모두 글을 읽고 나면 함께 이야기하고 싶 은 것을 뽑아서 토론한다. 질문과 토론을 할 때는 교사도 구성원으로 참여할 수 있다. 교사가 의도한 질문이나 방향은 철저하게 제한해야 한다. 길잡이 교사는 책읽기 경험이 많은 구성원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아이들 의견을 존중하고 소중하게 여겨야 한
고학년인데도 책을 읽어 주는 까닭은 센터에는 책읽기를 불쾌한 경험으로 기억하는 아이들이 많기 때 ***** 초등학교 문이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수업 시간에 교과서를 읽는 데 실패한 경험(책을 거침없이 잘 읽지 못해 교사에게 꾸지람을 듣고, 아이들에게 무시당한 경험) 때문에 아이들은 책읽기를 두려워하고, 이는 책 내용을 파악하고 이 야기를 즐기는 데 가장 커다란 장애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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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세미나에서 한심한 생각이나 낮은 수준과 높은 수준의 생각이란 없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의견은 모두 똑같은 의미와 가치가 있다는 것이 아주 중요하 다. 더구나 길잡이 교사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세미나의 성패를 좌우할 만 큼 중요하다. 교사가 책을 읽어 주는 것을 듣고 자신의 몸에서 올라오는 다양 한 느낌과 생각을 표현하도록 하는 것, 스스로 말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 한 아이 한 아이의 표현은 교사나 그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로 평가할 수 없다 는 것을 길잡이는 치열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평소 해 온 독 서 프로그램에서 느낀 것처럼 세미나를 누군가 더 잘난 사람이 끌고 간다는 느낌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하고, 실제로 어떤 목적을 가지고 끌고 가는 것에 철 저하게 반대한다. 아이들이 책과 만나는 순간 생겨나는 다양한 표현 그 자체가 목적이 된다. 어떤 방향이 필요한 순간에도 다양한 표현의 차이들이 서로에게 섞이고 침투 되면서 생성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기존 독서 프로그램과 세미나의 가장 커 다란 차이다. 세미나를 하면서 듣고, 읽고, 쓰고, 말하고, 느끼고, 생각하고 실 천하는 능력을 키우고, 말과 글로 자신을 표현하면서 생성과 창조를 경험해야 한다. 세미나를 경험한 아이들이 자신의 삶에 세미나가 얼마나, 어떻게 이로 운지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만이 세미나는 흥분되고 재미있는 삶의 중요한 일부분이 될 수 있다.
책읽기 세미나는 센터를 넘어서서 퍼져 나가야 한다 사업 진행 초기에는 센터마다 책읽기 세미나가 익숙해지는 과정을 거쳐야 한 다. 이 과정을 거치고 나면 다양한 연합 세미나로 넓혀 가야 한다. 세미나에 참 여하는 모든 구성원의 사유 능력을 확장하는 게 목적이라면 다양한 아이들, 다양한 차이를 만나 보면서 능력을 키워 나갈 수 있다.
스스로 말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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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공동체학교
책읽기 세미나를 통해 느낀 것을 연극으로 표현한다.
책읽기 세미나는 다양한 매체(음악, 미술, 극, 문학 따위)와 만나면서 범위를 넓혀 나가 한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 삶에 이롭게 하기 위해 세미나를 하는 것이라면 세미나 를 하면서 생각하고 느낀 것을 문학으로, 음악으로, 미술로, 극으로 다양하게 표현해 보는 실험을 해 보아야 한다. 이렇게 하면서 우리는 좀 더 풍요로운 경 험을 할 수 있다. 책읽기 활동을 하면서 마을 공동체 안에서 다양하게 활동하 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면 마을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풍요롭 게 성장할 수 있다.
책읽기 세미나를 위한 독립된 장소와 시간이 필요하다 세미나를 할 때는 방해받지 않고 할 수 있어야 한다. 책 읽고 글 쓰고 토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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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111호
고 싶은 욕망이 우러나올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독립된 공간에서 120분 정도 해야 의미 있게 세미나를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환경은 책을 읽고 토론 하고 싶은 모든 아이들이 바로 보장받아야 하는 환경이지만, 센터 아이들은 가정에서도 개인 공간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고, 민간의 힘으로 운영하고 있 는 지역아동센터에서도 책 읽고 토론할 수 있는 독립된 조용한 공간을 보장 받기는 힘들다. 해송에서는 독립된 공간을 마련하는 데 한계가 있어 주마다 토즈(모임 전문 공간으로 빌려 쓴다)라는 곳을 활용하여 세미나를 진행해 왔다. 세미나 중간에
20분 정도 쉬면서 간식을 먹는 것도 아이들에게는 중요한 것 같다. 이러한 경
험을 하면서 아이들은 자신이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책읽기 운동은 아이들에서 부모로, 마을로 확장되어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개인과 집단이 서로 활발하게 관계를 맺고 있다. 아 이들의 책읽기 습관이 바뀌는 것, 아이들의 사유 능력이 변화하는 것도 아주 중요하지만, 아이들과 깊이 관계 맺고 있는 식구와 마을 공동체의 집단 사유 능력이 변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아이들이 좀 더 자유롭게 사유 능력을 키우 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식구와 마을 공동체를 고려해서 책읽기 운동을 해야 한다. 이런 문제의식을 시작할 때부터 가져야 아이들의 책읽기 문화가 좀 더 잘 진행될 수 있다. 해송이 있는 창신동에서는 세미나 하는 아이들을 중심으로 ‘우리 동네 한 책 읽기’를 내걸고 부모들이 한 달에 한 번은 아이들과 그림책을 함께 읽을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해 보았다. 세미나에 참여한 아이들이 한 책 읽 기 세미나에서 사회를 보고 진행했는데 세미나의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별 어 려움 없이 잘해서 마을 분들에게 칭찬을 받았다.(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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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공동체
좋은 어린이집을 만 들기 위한 인천시민협동조합
아이들의 희망 세상을 꿈꾼 사람들 이야기
류부영 당근. 100일 째부터 어린이집에 나간 아이들이 초등 1학년, 2학년이 될 동안 부모로 많이 달라지고 성장했다. 조합에 고마움을 느끼며 인천시민협동조합에서 상임이사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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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어린이집을 위한 통 큰 출발, 평등의 철학!
희망세상어린이집의 출발은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인천에서 노동 운동, 시민 단체 운동 같은 사회운동을 하던 활동가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여성 활동가들의 발이 묶여 버렸어요. 그래서 노동단체 사무실 한 켠에 방을 만들어 그 아이들을 함께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예닐곱 되는 갓난 아이들을 돌아가면서 보다가, 한 후배가 “내가 제대로 공부해서 이 아이들을 키워 보겠다”고 마음먹었고, 자격증을 갖추고 어린이집 공간을 마련하여 희망 세상어린이집으로 정식 인가를 받은 것이 1998년입니다. 활동가의 자녀들은 자꾸 늘어 가고, 상가 건물 2층에 세 들어 운영하던 어 린이집은 교사 세 명에 아이들 열다섯 명으로 포화 상태가 되었지요. 그때 인 천교육연구소와 함께 교육철학과 방향을 세워 가던 교사들은 우리 아이들이 좀 더 자연과 가까운 터전에서 마음껏 뛰놀며 자랄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또한 부모들은 내 아이들만이 아니라, 우리 지역의 아이들도 함께 그런 환 경에서 잘 자랄 수 있도록 하자는 큰 뜻을 품고 일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좋 은 어린이집을 만들기 위한 인천시민협동조합’이라는 긴 이름으로 된 협동조 합을 구성하여 백운역 가까운 마을 얕은 산자락 밑에 땅을 구하고, 3층짜리 설계도를 손수 그려 가면서 발품을 들여 사람을 모으고, 출자금을 모으기 시 작했어요. 그때 필요한 자금은 5억쯤이었다고 합니다. 출자금 5백만 원을 낼 수 있는 백 가구만 모으지 않았고, 우리 미래를 맡을 지역 아이들을 잘 키워 보자는 뜻 에 동의하는 여러 사람의 마음을 모았습니다. 시민 단체 상근자, 노동운동가 들에게 5백만 원이란 목돈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기에 ‘내 아이는 집에서보 다 이 어린이집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도 있으니 어린이집을 만드는 데 힘 을 보태는 게 당연하다’며 전셋값을 줄여 출자금을 내는 부모도 있었고,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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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이 이미 자란 선배들도, 연애를 하고 있는 후배들도 기꺼이 출자금을 냈습 니다. 부모가 아닌데도 출자금을 낸 사람들은 장학회원이라 했습니다. 저도 그때 애인과 함께 출자하고 다행히 그 애인과 결혼하여 나중에 아이를 맡겼습니다. 이렇게 부모 3억, 장학회원 3억 해서 모두 6억을 모아 희망세상어린이집을 만 들었습니다. 희망세상어린이집이 초기부터 지금까지 지켜 오고 있는 것은 ‘차등 보육료’ 의 정신입니다. 부모 직업에 따라 보육료에 대한 부담감은 차이가 많았지요. 부부가 교사 공무원인 집안과 시민단체 상근자인 집안의 소득 차는 아주 컸 으니까요. 그래서 보육료를 소득 수준에 따라 달리 책정, 납부 하는 차등 보육 료를 실천했습니다. 많이 버는 사람은 좀 많이 내고, 적게 버는 사람은 좀 적게 내더라도 모두의 아이들은 똑같은 교육을 받는 것이지요. 이것이 진정한 평등 의 실현이 아닌가 싶습니다. 현재는 보육료는 정부 지침대로 나이에 따라 정해진 금액을 내고 있으며, 소득에 따라 달리 내는 보육료는 조합 운영비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해마다 집 안마다 소득 확인서를 내고 에이(A) 등급부터 이(E) 등급까지 조합 운영비를 달리 납부합니다.
교사의 헌신이 조합을 성장시키다!
한편, 저희 조합의 특징은 ‘교사 조합원’ 제도입니다. 초창기 교사들의 헌신과 결심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유지해 올 수 있었는데, 교육 기부만 하지 않 고 부모와 똑같이 출자금을 내는 정식 조합원 자격을 갖고 시작했습니다. 월 급을 받는 교사라는 처지 때문에 부모와 관계를 맺을 때 위축되지 않고, 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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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의 정신대로 1인 1표의 권한을 정확하게 누릴 수 있게 교사들도 출자금 을 내고 조합원으로 함께했지요. 이때 교사들의 의지로 지역 사업을 하기 위한 노력도 했습니다. 토요일에도 어린이집 문을 열어 우리 아이들만 돌보는 것이 아니라, 지역 아이들도 함께 놀며 어울릴 수 있는 시간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새로 들어오는 교사들이 처음부터 조합원이 되려고 결의하 는 게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몇 년 동안 일반 교사로 활동하다가 조합원 교사 양성 과정도 거치고, 어린이집이 단순한 직장이 아니라 진정으로 내가 책임질 어린이집, 협동조합이라는 결심이 설 때 조합원 교사가 되는 과정을 밟고 있 습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아무리 부모들이 발품 팔아 뛰어다니면서 어린이집을 만들고, 재정이나 운영 같은 여러 방면에서 활동을 많이 하더라도 아이들을 거두고 옳은 방향으로 키우기 위해 날마다 애쓰는 교사들의 노동은 귀히 여 겨야 합니다. 대부분 아이들은 아침 일찍 와서 저녁 7시에 돌아가지만, 아침 7 시 반부터 저녁 10시까지 있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아이들이 생활하는 공간, 하루 아홉 시간(점심시간도 실제로는 노동시간일 수밖에 없죠) 노동이 보육 활동으로 꽉 찰 수밖에 없는 교사들 처지를 보면서 주 세 시간 연구 시간을 운영하여 교 사들이 조금이라도 쉬고, 충전하며 채우는 시간이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교 사의 중요성을 반영한 것입니다. 우리 조합을 설립하던 초기부터 함께한 교사 동그라미를 중심으로 인천보육교사협회가 만들어지고, 보육 교사들의 처우 개선과 올바른 보육 여건을 만들기 위한 활동을 우리 조합이 적극 지지하는 것도 같은 마음이고요. 인천보육교사협회는 인천시의 보육 예산과 올바른 공・보육의 질 향상을 위 해 시민 단체와 보육 관련 단체, 기관, 개인이 활동하고 있는 ‘공・보육 실현을 위한 인천보육포럼’에 우리 조합과 함께 참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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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공동체
초등 보육에 대한 여러 시도들, 그리고 국공립어린이집 위탁
2000년에 지금의 터전에서 희망세상어린이집이 문을 연 지 13년이 흘렀습니
다. 지금 제 명함을 받는 많은 분들이 좀 놀랍니다. 우리 조합이 운영하는 기 관이 쭉 적혀 있거든요. 부모 협동 희망세상어린이집 / 하제누리초등방과후 / 마을 기업 둥그미초등돌봄센터 / 쑥덕쑥덕작은도서관 / 공립 푸른숲어린이 집 / 공립 서창다소니어린이집입니다. 좀 많은가요? 희망세상어린이집을 지금 이 공간에서 운영하면서 저희는 또 일을 벌였습 니다. 어린이집 옆에 희망빌라라는 이름으로 공동주택을 지었지요. 1층은 영 아 전담 어린이집으로 인가를 받아 조합원들에게 공모해서 작은세상어린이 집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고, 2층부터 4층까지는 층마다 세 집씩, 모두 아 홉 식구가 한 빌라에서 함께 살게 된 것이지요. 조합 설립 때부터 애를 쓴 장학회장님을 큰이모라 부르면서 3개월짜리 아 기부터 초등 3학년까지, 130명 남짓한 아이들이 두 건물에서 함께 어울리며 자랐습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초등 고학년들은 가까운 곳에 주택을 얻어 늘봄교실이라는 방과 후 공간을 따로 운영하였는데, 몇 년 지내다가 운영이 어 려워 문을 닫기도 했습니다. 하제누리초등방과후는 영아 전담이던 작은세상어린이집과 희망세상어린 이집이 통합되면서 영아들이 희망세상 건물로 들어오고, 초등 아이들이 희망 빌라 1층으로 독립해 나가면서 만든 이름입니다. 초등 3학년까지, 30명 남짓 한 아이들이 생활 교사 두 분과 함께 생활합니다. 부모들이 저녁 활동을 많이 해서 저녁을 먹이고 9시까지 운영하지만, 가장 큰 걱정거리는 교사를 모셔 오 는 문제입니다. 보육 교사 경력 인정도 안 되고, 지역아동센터도 아닌 비등록 아동 기관인 데다 우리의 교육철학과 가치관을 함께 만들어 가야 하기에 교 사를 구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방과 후 운영에 대한 부모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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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과 기대가 다양하기 때문에 그 뜻 을 모아 갈 길을 밝히는 것도 숙제입니 다. 올해 총회를 거쳐 (사)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에 가입하는 게 확정되면 이 부분에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 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마을 기업 둥그미초등돌봄센터는 초등 4~6학년 돌봄 프로그램 운영과 마을 부엌이라고 할 수 있는 반찬과 급 식, 주먹밥 주문 제작을 주 사업으로 지정받은 부평구 마을 기업입니다. 이 마을 기업도 조합원들의 필요와 요구 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대부분 맞벌이 부부인 조합원들이 저녁 7시에 아이들을 어린이집에서 데리고 집에 와서 저녁을 먹이는 건 만 만치 않은 일이었지요. 어린이집이나 하제누리에서 먹는 급식 반찬을 좀 만들어 팔면 안 될까, 안심하고 먹을 수 있 는 재료로 만드는 반찬을 집에서도 먹을 수 있게 만들어 보면 안 될까 하는 것 이었지요. 그래서 일주일에 네 가지 반찬을 받을 수 있는 회원 제도도 있습니 다. 방 모임이나 교육, 회의 때도 시중에서 파는 김밥이 아니라, 우리 쌀로 만 든 맛있고 영양가 있는 주먹밥을 마을 기업에서 사 먹고 있습니다. 고학년 프 로그램 운영에도 어느 정도 지원을 받았고요. 지금은 구청에서 보조금이 나오지 않는데, 우리 조합원뿐만 아니라 지역의 여러 기관, 단체에서도 주먹밥, 샌드위치 같은 것을 많이 주문해 매출액도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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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세금도 무척 많이 내고 형편이랍니다. 사회적 기업으로도 방향을 고민하 고 있는데, 아직 결론이 나지는 않았습니다. 쑥덕쑥덕작은도서관은 희망빌라 2층에 전세를 얻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조 합에서 지원하여 좋은 책을 갖추고, 아이들이 책을 잘 볼 수 있게 여건을 만들 고, 고학년 아이들이 모이는 곳으로 지원하고 있으나 지역 주민들을 위한 활 동을 활발히 하고 있지는 못합니다. 작은도서관 대부분이 겪는 어려움일 텐 데, 인력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더 활발하게 사업을 펼치기는 어려울 것 같 습니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작은도서관에 대한 정책을 찾아야 할 지점입니다. 저희 조합은 또 인천시 남동구에 국공립 어린이집을 두 곳 위탁 운영하고 있 습니다. 푸른숲어린이집은 올해 3년이 되어 재위탁 심사 중이고, 서창다소니 어린이집은 올해 8월에 문을 열었습니다. 조합원 교사 두 분이 두 곳을 책임지 고 운영하고 있지요. 부모 협동 시설은 아니기에 부모들이 조합원은 아니지만 조합의 교육철학을 실천하고, 방 모임이나 일일 교사로 부모 참여를 넓혀 가 고, 지역과 함께하는 어린이집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올해 서창다소니어린이집까지 문을 열면서 조합에서 운영하는 네 기관에 서 40명 남짓한 교사가 함께 여름 수련회를 다녀왔습니다. 새해에는 교사 교 육과 교류를 더욱 활발히 하여 두 국공립 어린이집에도 조합의 방향과 가치를 느끼고 함께할 수 있는 교사들이 늘어나기를 바랍니다.
조합이 마을을 만들자!
올해 우리 조합은 각 기관들이 잘 자리 잡은 것에 힘입어 지역 사업에 놀랄 만 한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우리 아이들이 좋은 환경에서 자라려면 내 가정, 내 어린이집만 잘 가꾼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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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 어린이집을 둘러싼 지역사회와 주변 환경에도 계속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지역의 소외된 아이들도 신나고 즐거운, 주인 대접 받는 어린이날을 보내게 해 주고 싶은 마음에 2000년부터 지금까지 지역 단체들과 함께 부평공원에서 해마다 3천 명이 넘는 인원이 모인 ‘어린이날 큰잔치, 어깨 동무 내 동무’를 진행해 왔고, 2001년에는 실직 가정 아이들을 위한 여름학교 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올해는 활발한 지역 사업을 펼치는 해가 되었습니다. 우리 터전이 있는 지역 은 도시재개발 사업이 추진되다가 주춤하면서 주거 환경이 무척 안 좋아졌습 니다. 빈집들도 많고, 불탄 집도 있고, 관리가 되지 않아 집들은 무너지고, 골 목에는 쓰레기가 쌓였습니다. 재개발 여부 때문에 도시가스도 설치되지 않아 지역 주민들은 석유와 가스보일러에 기대 해마다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습니 다. 우리 어린이집도 심야 전기로 난방을 합니다. 그래서 저희가 나서서 도시 가스 설치를 위한 서명운동과 조사, 주민 간담회를 추진하면서 우리가 터 잡 고 있는 지역에서 뚜렷한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하반기에 인천시 마을 공동체 만들기 공모 사업에 선정되어 ‘부평 3동, 아이들이 안전한 마을 만들 기’를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마을은 주거 환경이 안 좋으니 범죄 가능성도 많 고, 밤늦게 집에 돌아가는 청소년과 여성들도 위험에 드러나 있었습니다. 쓰레 기를 몰래 함부로 버려 이웃이 서로 얼굴을 붉히고, 골목에서 위험한 일이 닥 쳐도 마음 놓고 도와 달라고 할 수도 없는 서먹한 관계가 되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우리 어린이집이 처음 생길 때에는 아이들이 시끄럽고, 부모 들이 다들 부자여서 차를 끌고 다닌다고 오해하며 눈총을 주기도 했지만, 10 년이 넘어가면서 “그 어린이집은 애들한테 정말 잘해” 하고 믿어 주고, 조합 원이 되는 경우도 생기고 있습니다. “희망세상 부모들인데요” 하고 대문을 두 드리면 모두 문을 열어 주고 도시가스 문제며 마을 안전 문제를 함께 의논하 고 도움말도 해 주며 힘을 실어 줍니다. 저희 이사장인 파랑새가 주민자치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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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활동하면서 동장과 주민자치센터, 마을 유지들과 쌓은 믿음을 바탕으로 올해 진행한 ‘안전 마을 만들기’ 사업을 짧은 기간에 잘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우리 조합이 우리 마을의 구성원으로서 마을을 가꾸는 일에, 우리 아이들이 마을 아이들로 자라는 일에, 우리 아이들에게 마을과 이웃 어른을 만들어 주는 일에 첫 삽을 뜨는 해가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평생 조합원과 함께 살아갈 미래
이제 우리 조합은 창립 20년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노동단체 사무실 한 켠에 서 함께 키우기 시작한 희망세상 1세대 아이들은 대학에 들어가기도 하고, 사 회생활을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10년 동안 이사장을 맡았던 선배 조합원의 큰 자녀는 좋은 보육 교사가 되어 희망세상으로 돌아오기 위해 다른 어린이집 을 경험하고자 첫 취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이토록 성장한 만큼, 우리 부모들도, 조합도 성장했겠지요? 부모들이 온전히 책임지는 어린이집, 방과 후를 만들기 위해 아이들 나이마 다 방장, 교육위원, 재정위원 같은 간부들을 두어 확대 간부 연수를 하면 30 명 남짓한 간부가 모입니다. 10년 넘게 희망세상을 만들고 지켜 온 조합원 교 사들과 그 뒤를 따라 배우는 중간 교사들, 신입 교사들의 기운으로 아이들과 어린이집은 늘 들썩들썩합니다. 하지만, 초기 조합원에 견주어 공동체 경험도 없고, 그래서 내 아이만 바라 보고 들어오는 신입 조합원도 있어 정서 차이도 있습니다. 또, 예전에 견주어 부모 활동과 부담이 커졌기 때문에 불만이 있는 기존 조합원들도 있습니다. 또 아이의 나이별로는 친밀하게 지내고 있지만, 나이를 뛰어넘어 관계를 맺으 려면 시간과 노력이 더 필요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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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지지고 볶으며 자기의 의견을 표현하고, 또 바꾸기도 하고, 함께 살 아가고 배워 가며 성장하는 모습을 우리 아이들에게도 자랑스럽게, 있는 그 대로 보여 주며 사는 것도 꽤 괜찮은 것 같습니다. 완벽한 부모이기 때문에 너 희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부모도 너희처럼 같이 배우고, 같이 성장한다는 것을 자신 있고 솔직하게 얘기할 수 있다면 말입니다. 비전 팀을 중심으로 해서 먼저 준비하고 있는 협동조합 제도화와, 조합원들 과 함께 조합의 가치와 중장기 비전을 세워 갈 내년 그림이 어떠할지 무척 기대 되고 또 흥미진진하기만 합니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졸업하는 것과 상관없이 평생을 조합원으로 함께 어우러지며 살아가는 미래, 이런 꿈이 너무 터무니없 는 꿈은 아닐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이토록 성장한 만큼, 우리 부모들도, 조합도 성장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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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가는 길
아이의 성장만을 보며 시작했던 공동육아 생활도 10년이 넘었다. 그 사이 우리 식 구는 세 명에서 여섯 명으로 늘어났고, 이사도 몇 번 했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아이가 가진 어려움에 기적처럼 변화가 오지도 않을 것이고, 앞으로 우리 부 부가 감당해야 할 일들에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 우리 식구에게 달라진 점은 있다. 우리 부부가 모두 짊어졌던 짐을 마을과 이웃이 함께 나눠 가진다는 믿 음이 섰고, 공동육아 안에서 우리 식구가 모두 성장했다는 점이다.
우리 식구, 든든한 울타리 안에 있다
이지인 소금별. 네 아이의 엄마로 산들어린이집에서 9년째 공동육아를 하고 있다. 발달지연장애가 있던 첫째 아이의 경험을 바탕으로 통합 교육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어린이집의 통합 교육을 위한 모임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앞으 로 마을에 도서관을 만드는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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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에서 처음 보는 산을 올라가야만 하는 경험이 있나요? “한 번도 살아 보지 않은 낯선 곳에서,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산을 올라가야 만 하는 경험이 혹시 있으신가요?” 터전의 아마들에게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아이(공동육아에서는 장애 아동을 ‘특 별한 도움이 필요한 아이’라고 한다)를 키우는 부모들의 어려움을 설명할 때, 나는
가끔 이런 상황에 비유하고는 했다. 길도 모르는 채 가파른 언덕을 올라 겨우 산마루에 섰는데, 그 순간 이것이 끝이 아니라 수없는 등성이 가운데 하나임 을 확인하게 되는 당혹스러움. 그리고 때로는 다른 길을 택해 오른 누군가가 나보다 더 높은 저쪽 봉우리에서 ‘야호’를 외치고 있는 걸 발견하고는 힘이 쭉 빠지기도 하는 좌절감. 발달지연장애로 오랜 기간 치료를 받았던 큰 아이를 통해 내가 느꼈던 감정들이다. 아이에게 어려움이 있다는 것은 분명 힘든 짐이 된다. 하지만 누군가 내 짐 을 함께 들어 줄 사람이 있다는 믿음, 내가 기댈 곳이 있다는 든든함은 나와 우리 식구가 지금껏 세상을 힘차게 살아가는 힘이 되고 있다. 공동육아는 우 리 식구에게 그런 곳이다. 큰 아이가 발달지연장애 진단을 받은 날은 두 돌 생일을 한 달 앞둔 날이었 다. 그 전까지 나는 아이들은 저절로 클 줄 알았다. 신이 물을 주고 햇볕을 주 는 들판의 풀들처럼 그렇게 잘 자랄 줄 알았다. 아이는 20개월이 되도록 ‘엄 마’ 소리도 하지 못하고,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거나 안는 것을 싫어했다. 밖에 나갈 때는 늘 갔던 길로만 가기를 고집하고, 너무 산만하게 돌아다녀서 식당 에라도 갈라치면 아예 우리 부부 한 명은 밥 먹기를 포기하겠다는 결심을 하 고 갔던 그때도 크면 좋아질 거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말만 못할 뿐이라 고, 아니 늦는 것뿐이라고 굳게 믿었다. 20개월이 넘어서야 아이의 발달이 다
우리 식구, 든든한 울타리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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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가는 길
른 아이와 다르다는 생각으로 병원을 찾게 되었고, 발달지연장애 진단을 받았 다.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으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오는 길, 자리에 앉아 있 는 아이는 여전히 천진했다.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 아이를 위해, 또 우리 부 부의 삶을 위해 이 가정을 어떻게 꾸리고 우리는 어떤 자세로 이 세상을 살아 내야 할 것인가.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았고, 세상에 우리 부부만 홀로 떨어진 느낌이었다.
저희가 기다려 준다고 하면 꼭 오실 거죠? 그 무렵 대기자 신청을 해 놓았던 산들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다. 자리가 생 겨 나올 수 있다는 소식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언어 치료와 인지 치료, 감각 통 합 치료 같은 여러 가지 치료를 받고 있던 상태라 어린이집에 나가는 것은 어 려운 일이라 여겼다. 안 그래도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가 어려운 아이를 하루 에 단 몇 시간을 지내겠다고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이 나로서는 내키지 않는 일 이었다. 사정을 얘기하고 다섯 달쯤 지나서 가겠다고 얘기했다. 이쯤 얘기하면 당연히 다른 아이가 나가게 될 것이라 여겼다. 다섯 달 동안이나, 그것도 세 살 방 자리를 그냥 비워 놓는 어린이집은 아마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산들 어린이집의 이야기는 달랐다. “저희가 기다려 준다고 하면 꼭 오실 거죠?” 일단 자리를 채워 놓고, 우리가 오겠다고 하면 자리를 다시 마련할 테니, 다 른 어린이집에 가지 말고 꼭 오라고 했다. 왈칵 눈물이 나왔다. 처음으로 누군 가가 우리 부부에게, 우리 아이에게 내민 손이었다. 다섯 달이 지나 약속대로 우리는 산들어린이집에서 공동육아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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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을 경계하고 의사 표현이 제대로 되지 않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적응시 키는 것은 날마다 전쟁이었다. 어린이집에서 적응하는 것이야 어느 아이라고 수월하겠는가마는, 늘 역동적이고 변수가 많은 공동육아의 일과 때문에 우리 아이는 날마다 잠꼬대까지 할 만큼 많이 불안해했다. 도로로 뛰어들어서 사 고가 날 뻔한 경우도 있었고, 어린이집 대문 앞에서 들어가지 않겠다고 몇십 분 동안 울어 대는 일도 다반사였다. 먹는 것에 대한 거부도 심해서 선생님들 이 밥 먹는 시간마다 애를 쓰기도 했다. 이런 아이를 어린이집에 적응시키기 위해 가장 많이 애썼던 사람은 물론 선 생님들이었다. 아이가 떼를 쓰거나 발악하며 울 때도 따뜻하게 보듬어 주었 다. 지켜보는 나는 속이 타들어 갔다. 선생님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고, 내 자식이지만 창피하기까지 했다. 어느 날인가, 치료를 마치고 터전으로 와서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아이가 어린이집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악을 쓰며 울었다. 다른 아이들이 겁이 나서 가 까이 오지 못할 정도로 소리를 지르며 온몸으로 싫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달 래도 보고 안아 주려고도 했지만 ‘싫다’는 말을 되풀이하면서 울어 댔다. 그때 담임선생님이 오셨다. 선생님은 아이의 등을 느리게, 살며시 어루만지며 울음 이 잦아들 때까지 기다렸다. 바로 제재하거나 달래지 않고, 한 발 물러서서 아 이의 마음에 들어가기 위해 기다려 주었다. 그렇게 10분 남짓 지나니 아이는 울음을 멈추었다. 그러자 선생님이 천천히 아이를 안아 주었다. 울다 지친 아 이는 멍한 표정으로 선생님에게 안겼다. 그 과정을 지켜보던 나는 눈물이 나서 선생님 앞에서 펑펑 울고 말았다. 그날 선생님은 날적이에 이렇게 써 주셨다. “은서 보살피느라 많이 힘드시죠? 소금별을 볼 때마다 안쓰럽기도 하고 대 단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엄마라는 존재가 아이에게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 지, 생각해 봅니다. 그래도 은서는 날마다 자란답니다. 더뎌 보여도 늘 자라고 배우고 있어요. 입에 대지 않던 먹을거리도 먹어 보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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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은서. 아픈 만큼 성숙하는 듯 조금씩 감정 조절하는 방법을 터득해 나가는 은서. 엄마, 아빠의 사랑으로 잘 클 겁니다. 믿어 주세요.” 조합원들도 아이의 성장을 위해 많은 도움을 주려고 노력했다. 첫 번째 방 모임을 하던 날, 같은 방의 한 아마가 얘기했다. “은서네가 나오길 얼마나 기다렸나 몰라.” 그 한 마디가 나를 또 울렸다. 그 짧은 말이 얼마나 힘이 됐는지, 그 아마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좀 더 유연하게 그 순간의 현재를 바라보자! 조합은 아이에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주었고, 아이의 방에 보조 교사를 채용 하도록 결정했다. 또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아이의 아마와 교사, 그리고 통합 교육에 관심 있는 일반 아마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통합 방 모임 도 만들었다. 이 모임은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고, 우리 아이 이후 산들어린이집에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 들어올 수 있는 토대를 만들 어 주었다. 이 모든 것이 아마들의 의지 덕분이었다. 교사회도 통합 교육에 대 한 공부를 하고, 통합 교육 페다를 모셔 와 교육을 받기도 했다. 특별한 도움 이 필요한 아이를 위한 개별화 교육 프로그램(IEP)을 짜기도 했고, 도움이 필 요한 아이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세 살에서 네 살, 다섯 살을 거치면서 아이는 더디지만 나날이 성장해 갔다. 조금씩 말도 늘어났고, 사회적 기술이 부족하기는 해도 친구들과 어울려 노 는 것에 재미를 붙였다. 24개월이 되어서야 겨우 ‘엄마’를 말하던 수준에서 다 섯 살 무렵에는 낱말을 이어 말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어린이집에서 하는 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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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도 적극 나서서 참여하는 모습을 보였다. 저녁에 친구를 불러서 마실을 하고 싶다는 얘기도 하고, “
가 좋아” 하면서 친구를 좋아하는 아이를 보면
서 때때로 가슴이 벅차 울기도 했다. 물론 언어 능력이나 인지 능력은 언제나 또래보다 1년 정도 뒤처져 있었지만,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 안에서 편안하게 지내고 있는 것만으로도 큰 변화였다. 무엇보다도 가장 좋았던 것은 내가 편하게 이야기하고 고민을 말할 수 있는 아마들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아이의 치료를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나를 안쓰러워하며 챙겨 주던 선배 아마들과, 늘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주던 같은 방 아마들이 있었기에 우리 부부는 더 힘을 낼 수 있었다. “아이들은 부모의 당당한 모습을 보면서 힘을 얻는 것 같아. 어떤 경우에도 약해지지 않고 당당하게 사는 모습. 힘들다고 약해지지 말고 당당한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 주는 부모가 되어야지? 힘내, 소금별!” 지나가는 말로 위로를 건네는 아마들의 마음이 참 따뜻했다. 시간이 지나자 또 다른 깨달음도 왔다. 산들 식구들과 서툴게나마 호흡하고 부대끼며 내가 공동체와는 참 거리가 먼 사람이었구나, 먼저 내 이기심의 단단한 껍질을 깨부수어야겠구나 하는 생 각도 들었다. 누군가가 “넌 너무 이기적이야!”, “그러고도 공동육아 한다고 할 수 있어?” 하며 꾸짖은 것은 아니지만, 조합 생활을 하며 여러 가지 회의를 하 고, 의사 결정에 참여하며, 통합 방 활동을 하고, 이런저런 마실을 하며 참 인 정하기 싫은 내 한계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아이를 도움받는 사람이 아니라 남에게 도움도 주고 여러 사람과 잘 어울리는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는 깨달음이었다. 아이를 성장시키기 위해 들어온 공동육아에서, 나와 남편은 진정한 어른으로, 좋은 부모로, 넉넉한 이웃으로 성장해 나갔다. 스스로 이룬 성장이 아니라, 공동육아에서 만난 여러 이웃들 이 우리를 그렇게 성장하도록 도와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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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늘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잘 모르고 던지는 아마들의 말에 상 처를 입기도 했고, 아마들의 무관심에 분노하기도 했다. 중증의 자폐증을 가 진 친구가 터전으로 들어온 해에는 어느 때보다도 터전이 시끄러웠다. 산들 어린이집이 어려움이 많은 친구를 받을 준비가 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에서부 터 방 운영의 어려움, 같은 방에 속한 아이들의 욕구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의견들이 오고 갔고, 그 속에서 상처받는 사람들이 생겨났으며 통합 방 모임을 이끌고 있던 나 또한 사람들의 진정성을 의심했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하고 속으로 끙끙 앓으면서 내린 결론은 단순했다. ‘좀 더 유연하게 그 순간의 현재를 바라보자!’ 더디 자라는 아이를 기다려 주고 믿어 줘야 작은 발전에도 기뻐할 수 있듯 이, 상대의 사정을 앞서서 생각하고 속상해하지 말자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신발을 신어 봐야 한다는 인디언 속담 처럼, 나와 상대의 생각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내 좌표와 상대의 좌 표를 잇기 위한 가장 짧은 거리를 찾으려는 노력, 그 노력의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들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이전의 나라면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결론. 공동육아는 이렇게 아주 개인주의 성향을 가진 나를 변화시켰다. 내 아이와 남에게 보이는 내 모습만 생각하던 사람에서, 적어도 상대를 이해해 보려고 시도하는 사람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우리 식구, 이웃이라는 든든한 울타리 안에 있다 내가 바뀌는 것처럼 아이도 천천히 달라졌다. 열두 살이 된 지금, 아이는 어릴 때 어린이집에서 함께 자란 친구들, 아마들과 여전히 어울리고 함께 살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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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제는 말하는 어려움을 극복했지만 사회성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어 친 구들과 자주 싸우기도 하고, 감정을 추스르기 어려워 많이 울기도 한다. 하지 만 아이의 친구들은 그런 아이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받아 주고 위로하기도 하 며 때로는 모른 척 하기도 한다. 요즘은 마을에서 같은 또래 친구들과 함께 독 서 모임이며, 연극놀이를 한다. 지난 연말에는 친구들과 연극 공연을 함께 했 다. 연극을 준비하면서 친구들과 싸우기도 했고, 힘들다고 울기도 했지만 자 기가 맡은 몫을 성실하게 해내는 모습이 대견했다. 우리 부부도 어느 새 10년 넘게 지기가 된 이웃들과 함께 놀며 지낸다. 참으 로 편하기 그지없는 이웃집 아줌마, 아저씨 들이 되어 같이 놀러도 다니고, 재 미있는 일이 뭔가 없을까를 고민하며 이런저런 마을 일을 해 보려고도 한다. 아이의 성장만을 보며 시작했던 공동육아 생활도 10년이 넘었다. 그 사이 우리 식구는 세 명에서 여섯 명으로 늘어났고, 이사도 몇 번 했다. 그러나 변하 지 않은 것도 있다. 아이가 가진 어려움에 기적처럼 변화가 오지도 않을 것이 고, 앞으로 우리 부부가 감당해야 할 일들에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분 명 우리 식구에게 달라진 점은 있다. 우리 부부가 모두 짊어졌던 짐을 마을과 이웃이 함께 나눠 가진다는 믿음이 섰고, 공동육아 안에서 우리 식구가 모두 성장했다는 점이다. 우리 식구, 이제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 이웃이라는 든든한 울타리 안에 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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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읽기
여성주의와 하나 될 수 있는
경제학의 태동을 기뻐하며 《살림/살이 경제학을 위하여》 홍기빈 글 | 지식의날개(한국방송통신대학교 출판부)
김정희 (사)가배울 대표, (사)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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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쓴 홍기빈 씨는 재단법인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이다. 그는 신자 유주의적인 지구 금융자본주의의 근본 전환과 이를 대체할 대안 정치 경제 시 스템의 출현을 연구하는 학문인 지구정치경제학(Global Political Economy) 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하여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를 출범시켰다고 말 한다. 그는 미래에는 신자유주의의 ‘돈벌이 경제학’이 아니라 ‘살림살이 경제 학’이 개인, 가족, 지역, 나라, 나아가 세계의 경제를 조직하는 대안 원리가 될 것이라는 소원과 전망을 품고 있다. 그는 당연히 신자유주의 ‘돈벌이 경제’에 대한 비판적 논자들과 인식을 함께하며, 이것이 이 책을 쓴 까닭이다.
홍기빈에 따르면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많은 이들이 시장을 절 대 맹신하는 데서 벗어나 ‘우리가 너무 심했다’는 심정을 공유하게 되었다. ‘돈 벌이 경제’가 지속될 경우 인간의 자유와 도덕과 같은 가치는 물론 인간의 행 복 나아가 자연 생태계와 인류의 생존마저도 근본부터 위험에 봉착할 것이라 고 보는 이들이 많아졌지만, 돈벌이 경제 시장을 대신할 새로운 경제 조직 원 리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는 바로 이러한 현 시점이야말로 우리의 의 식과 시야에서 사라지고 억눌러 왔던 살림/살이 경제(학)에 대한 천착이 다시 살아나야 할 때라고 말한다. 홍기빈은 고대 그리스부터 신고전파에 이르는 서구 주류 경제학의 흐름을 검토하면서 주류 경제학은 궁극적으로 “인간이 살아가면서 부닥치게 되는 여 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거둘 수 있도 록 알뜰하게 선택하는 행위”로 정의할 수 있고, 이는 사실상 ‘돈벌이 경제학’이 라고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당장, 여기 우리의 삶에 여전히 돈벌이로 해결되지 않는 살 림/살이의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는 데 있다. 자녀를 어떻게 키울지, 어떤 어린 이집에 보낼지 하는 문제는 어느 어린이집이 비용 대비 가장 경제적으로 싼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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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읽기
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가로 결정될 수 없음을 고민하고 공동육아를 선택한 부모들은 그가 드는 여러 예를 들지 않더라도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단박에 이 해가 된다. 홍기빈은 베블린과 폴라니에게서 살림/살이 경제학의 원조를 찾지만, 베 블린보다는 폴라니에게 훨씬 더 의존하고 있다. 그가 번역한 《거대한 전환》에 서 폴라니는 돈벌이 경제가 아닌 살림/살이 경제 - 폴라니의 표현으로는 ‘실 체적인 경제’ - 는 실제 역사에서 언제나 존재했으며 제도로 강제되어 있는 시 장경제 영역에서의 회계 체계와 항상 충돌과 모순을 벌였다고 말한다. 심지어 폴라니는 ‘실체적인 경제’는 시장경제의 자기 조정 기능을 무너뜨리고 말았다 는 결론에까지 도달한다. 즉 한편으로는 오로지 시장에서의 가격 산정과 그 자기 조정에 의해 이루어지는 체계가 존재하며 이는 국제적 금본위제의 준칙 으로 제도화된다. 하지만 사회 현실에서는 농촌의 보존을 요구하는 토지 세 력들과 농민들,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의 보장을 요구하는 노동자들, 생산 조 직의 파괴적인 연쇄 도산을 막아 달라고 요구하는 영리 기업가들이 저마다 시 장경제의 자기 조정에서 보호를 외치고 나서며, 사회 전체로서는 공동체의 살 림/살이 그리고 그 구성원들의 살림/살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엄연한 현실 앞 에서 시장경제의 자기 조정 원칙보다 앞선 위치에 두는 다양한 정치 경제 형태 들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파시즘, 뉴딜, 공산주의, 사회민주주의 같은 게 그 다양한 형태들이다. 결국 자본주의 이전의 여러 사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현대자본주의에서조차도 실제 공동체와 그 성원들의 살림/살이를 보 존한다는 원칙으로 엄연히 작동하는 경제가 존재하며, 이것으로 구성되고 또 이를 보호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 ‘사회’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이 폴라니 의 결론이었다. 홍기빈은 폴라니에 크게 의존하면서도 폴라니와 자신의 살림/살이 경제학 의 차이를 말한다. 폴라니는 욕구 충족을 ‘물질적’ 욕구에 국한해 이해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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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홍기빈은 인간의 욕구가 육체적 욕구에 국한된 것이 아 니라 정신적・육체적 욕구를 모두 포함하므로 자신은 살림/살이 경제의 개념 을 유형・무형의 수단 모두를 포함하여 인간 생활의 전 영역을 포괄하는 것으 로 보고자 한다며 폴라니와 차별점을 분명히 한다. 이러한 차이를 제시하면서 그는 살림/살이 경제를 “사람이 살아가면서 느끼게 되는 정신적・물질적 욕 구를 총족하기 위한 유형・무형의 수단을 조달하는 행위”로 정의한다(25쪽). 살림/살이의 문제는 돈벌이의 문제와 뚜렷이 구별되는 독자 가치와 조직 원리 를 가지고 있는데 그 첫 번째 원리는 바로 ‘좋은 삶’이다. 그는 ‘좋은 삶’을 아리 스토텔레스에 의거해 “물질적 풍족이나 감각의 만족뿐만 아니라 자신이 소중 히 할 수 있는 도덕적 가치까지 풍부하게 실현되는, 그래서 자신의 머리에 깃 든 신성(神性)이 극도로 활성화되는 삶”이라는 의미로 이해한다(147쪽). 이는 제대로 된 살림/살이 경제를 꾸린다는 것은 자신의 삶과 존재 자체를 변형시 켜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변형이란 자신의 존재에 내재하고 있는 육체 적・감정적・정신적 가능성을 극대로 발전시킨다는 것을 뜻한다(162 ~163). 살림/살이의 두 번째 핵심 원리는 “목적은 무한하며 수단의 양은 그 목적에 의해 정확하게 규정되는 유한한 것”이라는 원리다(155쪽). 이것은 목적과 이를 성취하기 위한 수단의 정확한 양을 명확히 함으로써 목적과 수단이 전도된 삶 을 살지 말자는 원리다. 돈벌이는 원래 수단인데 현대사회에서는 이것 자체가 목적이 됨으로써 인간 활동의 질은 한없이 추락했다는 경고를 담고 있다. 이런 논의를 전개하면서 그는 살림/살이의 문제는 ‘어떻게 수단을 확보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바꾸고 그 속에서 자신의 존재 를 어떻게 더 확장하고 발전시킬 것인가의 문제라는 것을 결론으로 책을 끝 맺는다.
이상에서 홍기빈이 폴라니에 의거하여 제시하고 있는 살림살이 경제학은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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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 관행처럼 굳어져 있는 국내총생산(GDP)과 같은 ‘부’의 측정 방식을 근본에 서 대체할 수 있는 포괄적인 지표의 개발, 욕구 충족을 위한 무형 혹은 정신적 수단에 대한 객관적 가치 측정을 포함해 현실에 적용 가능한 실용 경제학이 되기까지 많은 과제들이 놓여 있다. 홍기빈은 이러한 과제를 인식하면서 머지않은 시점에서 ‘살림/살이 경제학’ 을 더욱 심화, 발전시키는 글을 계속 써 낼 것을 서문에서 약속한다. 그러면서 먼저 3백 년 동안 지속되어 온 ‘돈벌이 경제’의 아성, 시장 만능주의가 최선이 아니라는 말을 토해 내기라도 해야 했기에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나는 홍기 빈이 아직 젊은 학자이기에 그가 건강만 하다면 틀림없이 자신의 약속을 지키 리라 믿는다. 무엇보다도 반가운 것은 그가 여성주의자들에게조차 아주 어쩌다 해야 재 미있는 일이지, 절대 일상으로 할 일은 못되는 것으로 경시되고 있는 ‘살림’을 학문의 개념으로 끌어올려 주고 있는 것이다. 여성주의자로서 ‘살림’을 갖고 할 말은 서평자의 위치에서 생략할 수밖에 없지만(졸고 《불교, 여성, 살림》의 4장 ‘여성의 불성인 살림에 대한 사유’ 참고), 살림주의/살림여성주의라는 언어가 한국
의 여성 생태 운동의 맥을 잇는 적확한 언어이며 이제는 이 용어를 써도 될 만 큼 - 개인적으로 ‘생명여성주의’로 나의 여성주의 정체성을 표현해 왔지만 최 근에는 ‘살림여성주의’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 한국의 살림 운동의 전통과 맥이 무르익었다고 보는 나로서는 홍기빈의 이 책이 반갑기 짝이 없다. 어느 학 문 분야보다도 남성 중심성이 강한 경제학 분야에서 여성주의와 하나가 될 수 있는 경제학이 태동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어서 기뻤다. 무엇보다도 공동육 아 부모들의 노고가 어느 시점에서 살림/살이 경제학으로도 설명될 수 있을 날이 오리라는 것을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글쓴이의 학문이 무궁하게 발전 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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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보는 책
농촌에서 새롭게 만나는
권태응 동시 《감자꽃》권태응 글 | 송진헌 그림 | 창비
이송희 달요대기. 농촌에서 텃밭 농사를 지으면서 책 만드는 일과 글 쓰는 일을 한다.
농촌에서 새롭게 만나는 권태응 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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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보는 책
1. 설날이 다가온다. 이제 정월 대보름날이 지나면 어김없이 띄워 놓은 메주를 잘 손질해서 장을 담가야 한다. 장을 담그면 나는 농촌에 사는 내 삶의 한 해 가 마무리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는 텃밭에 거름을 내면서 한 해 농사를 다시 준비할 때가 되어야 왠지 나는 한 해가 새로 시작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농촌에 산 지 올해로 8년째다. 농촌에 사는 건 새로운 발견이었다. 이 8년 동안 아침에 눈뜰 때마다 나는 설 다. 날마다 새롭고 신비로웠다. 그럴 때마 다 동시를 쓰고 싶은 마음이 출렁거렸다. 그러나 나는 단 한 줄도 쓰지 못했다. 그런 나한테 절망할 때마다 《감자꽃》에 실린 권태응 동시를 보았다. 농촌 아 이들의 삶, 농촌의 삶을 어린이 눈높이로 감각 있게 살려 낸 《감자꽃》에는 내 가 쓰고 싶은 이야기가 오롯이 들어 있었다.
2. 처음 농촌에 내려와서 나는 꽃밭 만드는 데 가장 공을 들였다. 풀만 무성하던 대문 앞마당에 꽃밭을 만들고 연못을 만들었다. 남편은 들꽃이 여기저기 피는 데 무슨 꽃밭을 만드느냐며 타박했지만 나는 꿋꿋했다. 나는 행복했던 내 어 린 시절의 상징처럼 남아 있는 어릴 적 우리 집 꽃밭을 그대로 옮겨 놓고 싶었 다. 황매화로 울타리를 삼고, 수국 꽃잎이 마당에 흩어져 있고, 연못가에는 개 나리가 흐드러지고, 봉숭아 채송화 맨드라미 족두리꽃 백일홍이 어울려 자라 고, 나팔꽃은 장대 따라 지붕을 훌쩍 넘어 올라가고, 해바라기가 뒷마당에 가 득한 그런 꽃밭, 그 꽃들 사이사이 달개비랑 제비꽃이랑 민들레랑 오종종한 작 은 들꽃들이 수줍은 듯 살그머니 고개를 내미는 그런 꽃밭을 만들고 싶었다.
비가 촉촉 오네요./꽃모종들 합시다.//삿갓 쓰고 아기들/집집마다 다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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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독 옆에 뜰 앞에/알록달록 각색 꽃//곱게 곱게 피면은/온 집안이 환해요. (‘꽃모종’ 전문)
한 해 동안 꽃밭 만드는 데만 마음을 쏟고 나니 첫해 가을은 텃밭에서 거둬 들일 게 없었다. 농사를 지어 먹고살지는 않지만 왠지 농촌에서 가을걷이를 많이 못한 건 쓸쓸했다. 그 설움을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다음 해부터 나는 텃 밭에 공을 들였다. 나락은 사람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옛말을 떠올리면서 눈만 뜨면 텃밭으로 달려가 남새들을 만지고 쓰다듬으면서 이야기 나누고 물 주고 김을 맸다. 씨 뿌리고 모종해서 싹이 올라오고 자라면 밭에서 처음 보는 그 아이들이 너무도 신기했다. 날마다 아이들이 자라니 날마다 새로운 발견이 었다. 구덩이에 똥을 한 바가지 퍼 넣고서는 호박씨를 묻어 놓으면 싹이 나고 자라 울타리를 타고, 땅바닥을 기어 퍼져 나가 큼지막하고 촌스러운 노란 꽃 이 쑥쑥 피고, 머잖아 호박이 주렁주렁 달렸다. 촌스러운 호박꽃은 시골집에 참 잘 어울렸다.
울타리엔 엉기엉기/호박 덩굴 퍼지고,/노랑 꽃이 만발./아기 호박 동글. (‘박 농사 호박 농사’ 부분)
텃밭 농사를 하면서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을 절실히 느꼈 다. 자연에는 거짓이 없었다. 오이씨 심은 데 오이 나 고, 고추씨 심은 데 고추가 나는 건 삶의 진실이고, 자연의 진리였다. 그런 이치를 깨달은 날 동시 ‘감자 꽃’은 새롭게 더 큰 뜻으로 다가왔다.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파 보나 마나 자주 감자.//하얀 꽃 핀 건
농촌에서 새롭게 만나는 권태응 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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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감자,/파 보나 마나 하얀 감자.
(‘감자꽃’ 전문)
뒷산에서 두릅 순, 엄나무 순, 오갈피 순을 꺾고, 텃밭에서 갖가지 남새를 뜯고, 들에서 달래며 냉이 쑥을 캐 상에 올렸다. 풋콩을 놓아 밥을 해서는 그 득한 채소 반찬과 함께 날마다 소풍 나온 아이처럼 맛나게 먹었다. 그 소풍 자 리는 늘 그리운 사람들과 함께했다. 두릅 순을 꺾으면서 친정아버지가 맛있게 드시는 소리를 들었고, 참외를 먹으면서 친정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눴다. 딸기 를 따면서 어릴 적 우리 집 딸기밭으로 훌쩍 가 있었고, 갖가지 장아찌며 김치 를 만들어서는 그리운 동무들, 언니 동생 들과 나눠먹는 꿈을 꿨다. 싱싱하고 건강한 밥상 앞에서 나는 늘 행복하고도 그리웠다.
강낭콩 따다가 보리밥에 놓고/감자를 후벼다가 지지고 볶고/오이 호박 따다가 맛나게 무치고/병원에 아파 누신 일갓집 할머니/한상 차려 이고서 찾아뵈러 가 자./모두 햇것 햇농사 달게 달게 잡숫게.
(‘햇보리밥’ 전문)
나무 열매가 익을 때는 부지런히 찾아다니며 따먹었다. 손가락이 찐득찐득 해지고 이빨이며 입술, 손가락이 검푸르게 물들 만큼 미친 듯이 따먹은 오디 맛을 잊을 수 없다. 산딸기 나는 골짜기를 찾아가고, 다래를 찾아 산을 헤맸 다. 엄지손가락만큼 굵은 산딸기가 나는 골짜기가 장마철에 휩쓸려 버리고, 인공 조경으로 그 모습을 잃었을 때는 눈물이 날 만큼 안타깝고 슬펐다. 가지 에 다닥다닥 붙어 햇살을 받아 빛나는 빠알간 앵두를 따서 한 움큼 입에 털어 넣고 요리조리 혀를 굴리며 살을 발라 먹고 나서 후두둑 씨를 뱉어 내면 어릴 적 골목에서 뛰놀던 소꿉동무들이 생각났다. 가끔은 하나둘 세어 입에 털어 넣고 하나둘 세면서 씨를 뱉어 내는 놀이를 즐기기도 했다. 그 순간만큼 나는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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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111호
빨강 빨강 앵두가/오볼조볼 온 가지.//아기들을 부른다./정다웁게 모여라.// 동글동글 앵두는,/예쁜 예쁜 열매는//아기들의 차질세./달궁달궁 먹어라. (‘앵두’ 전문)
안마당 바깥마당, 뒷산, 들판은 또 다른 새로운 세계였다. 이른 봄, 산은 진 달래 봉오리를 터뜨리며 다시 살아났다. 마른 산에 불을 지피듯 이른 봄에 불 쑥 불쑥 진분홍 고운 꽃이 피어나면 새로운 목숨을 품으려고 산이 달거리를 시작하는 듯 했다. 진달래가 피어나면 어느새 생강나무, 산수유도 노랗게 물 들고, 뒤이어 산벚꽃 살구꽃 복사꽃이 아롱거렸다. 조팝나무에 물이 오르고 꽃망울이 맺히면 애기 젖꼭지 같은 꽃몽오리가 발그레 예뻤다. 부드럽고 여린 연푸른 나뭇잎들은 하루가 다르게 짙푸르러 갔다. 제비꽃 별꽃 달개비 민들 레 각시붓꽃 할미꽃 솜방망이 조개나물 고마리 물봉선 양지꽃 꽃다지 냉이 꽃
들꽃은 구석진 곳에서 돌 밑에서 물가에서 무덤가에서 양지 바른 곳
에서 제 빛깔을 조용히 드러내며 너무도 앙증맞게 피고 졌다.
구석진 언덕에 한 폭 민들레/혼자서 노랑 꽃 피어났구나.//나비도 안 찾는 응달 진 곳에/혼자서 고요히 피어났구나.
(‘민들레’ 부분)
세상에 처음 보는 것들은 왜 또 그렇게 많은지.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훨훨 하늘로 날아오른 매미 허물, 쪽빛이며 가지색이 감도는 신비로운 날개를 살포 시 접고 나리꽃 꿀을 빨아먹는 제비나비, 맨들맨들하고 오종종한 땅강아지, 두루두룩 껍질을 쓰고 뒤뚱뒤뚱 기어가는 두꺼비, 이제 막 허물을 벗고 날개 를 말리느라 나뭇가지에 꼭 붙어 있는 어린 나비, 높은 나뭇가지에서 짝짓기 하는 잠자리, 밤에 밭에 다녀간 고라니 발자국, 멧돼지가 지나간 산등성이, 볕 바른 무덤가에서 올라오는 고사리, 바람에 흩날릴 듯 솜털을 달고 앉아 있는
농촌에서 새롭게 만나는 권태응 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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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보는 책
고비, 사람 소리에 풀숲에서 후다닥 날아가는 꿩의 날갯짓, 밑에서 두더지가 굴을 뚫어 불룩하게 갈라진 땅, 어느 샌가 잘 익은 딸기를 갉아먹어 치운 달팽 이, 나무와 산이 제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내는 저녁 어스름, 반짝이며 쏟아지는 수많은 새벽별빛, 지붕 끝에 살짝 걸린 초생달, 마당에 요를 깔아 놓은 듯 부드 럽고도 따사롭게 내리쬐는 한밤중 보름달빛 보름달
.
눈 위에 발자국/무슨 발자국./터벅터벅 짐승의/발자국인데/들을 건너 저 멀 리/찍혀졌구나.
(‘늑대 발자국’ 부분)
달 달 달팽이/뿔 넷 달린 달팽이/건드리면 옴추락/가만두면 내밀고.//달 달 달팽이/느림뱅이 달팽이/멀리 한 번 못 가고/밭에서만 놀고.
(‘달팽이’ 전문)
봄에는 새들이 짝을 찾는 노랫소리가 온 마당을 시끄럽도록 울렸고, 새끼를 낳은 박새 부부는 부지런히 모이를 물고 둥지를 들락거리면서 찌리링찌리링 기쁜 소리를 내고, 내가 새끼 구경 하느라 둥지 안을 들여다볼라치면 찍! 찍! 찍! 찌이익찍! 숨 가쁘게 울어 댔다. 뒷산에서는 호로롱거리는 어여쁜 꾀꼬리 소리가 들렸다. 봄나물을 뜯으려고 뒷산으로 오를 때면 꾀꼬리를 찾아 나는 늘 두리번거렸다. 가끔 뒷산에서 들려오는 꿩 소리, 아주 가끔 한밤중에 울려 오는 소쩍새 소리. 처연한 소쩍새 소리는 내 가슴 한구석을 뻥 뚫고 지나갔다. 그렇게 나는 또 하루를 살았다.
미루나무 파랑 잎 우거진 속에/살그머니 숨어 버린 까치 집 하나./까치 둘이 즐 거웁게 드나듭니다.//까치 아기 몇 남매나 나놓았을까./번갈아 들락날락 모이 를 물고/엄마 아빠 까치가 드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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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111호
(‘까치 집’ 전문)
뒷산으로 올라가 취나물을 뜯고, 고사리를 꺾어 오면 삶아서 햇빛 좋은 마 당에서 곱게 말렸다. 여기 와서 처음 먹어 본 세 잎 국화 순, 오갈피 순도 틈틈 이 데쳐 말렸다. 아주까리 이파리를 엮고, 애호박을 조각조각 썰고, 토란 줄기 껍질을 벗기고, 고구마 순을 삶아 말렸다. 가을에 빨간 고추를 다 따고 나면 고춧잎도 데쳐 말리고, 무말랭이를 만들고, 늙은 호박오가리를 만들었다. 무 청을 빨랫줄에 줄줄이 널어 무시래기를 만들고, 먹감 껍질을 까서 실에 꿰어 서까래 아래 달아 곶감을 만들었다. 풍성하게 거둬들이는 봄부터 가을까지 조금씩 묵나물을 만들어 놓으면 겨우내 채소는 장을 보지 않아도 되었다.
사다리를 타고서 한층 두층/언니 따라 지붕에 올라갑니다./박덩이 뒹굴대는 한옆에다/빨강 고추 흰 박고지 널어 놓아요.
(‘가을 지붕’ 부분)
가을걷이할 때는 하루해가 짧았다. 농사를 많이 짓지 않으니 대부분 갈무 리는 손으로 했다. 콩, 깨는 작대기를 들고 두들기면서 털었다. 감자, 고구마는 호미로 캤다. 이른 아침밥을 해 먹고 밖에 나가 종종거리며 텃밭을 돌아다니면 서 이것저것 거둬들이고, 갈무리하다 보면 어느 새 점심때, 저녁때가 되고 해 가 뚝 떨어졌다. 말 그대로 엉덩이를 붙일 수 있는 때는 밥 먹을 때뿐이었다. 눈 물도 비애도 타령할 시간이 없었다.
막대기 들고는/무엇 하나?/벼 멍석에 덤벼드는 닭을 쫓고.//막대기 들고는/ 무엇 하나?/양지쪽에 묶어 세운 참깰 털고.//막대기 들고는 무엇 하나?/뒤꼍 에 오볼 달린/대출 따고.
(‘막대기 들고는’ 전문)
우리 식구 모두 다/논밭으로./춥기 전에 곡식 걷기/논밭으로./날만 새면 바빠 요/논밭으로.
(‘논밭으로’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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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보는 책
가을걷이를 끝낸 늦가을에는 도토리를 주우러 다녔다. 도토리나무 한 그루 만 있어도 땅에는 도토리가 우루루 떨어져 있었다. 깍지가 벗겨진 놈, 깍지를 그대로 쓰고 있는 놈, 그놈들을 보노라면 꼭 아기들이 한마당 가득 모여 앉아 놀고 있는 것도 같았다. 도토리를 주우면서 나도 그놈들처럼 어린아이가 되어 함께 놀았다.
오롱종 매달린 도토리들,/바람에 우루루 떨어진다.//머리가 깨지면 어쩌려 고/모자를 벗고서 내려오나.//날마다 우루루 도토리들,/눈을 꼭 감고서 떨어 진다.//아기네 동무와 놀고 싶어/무섬도 안 타고 내려온다.
(‘도토리들’ 전문)
친정어머니는 설날이 다가오면 벽장에 늘 강정을 넣어 놓았다. 강정뿐만 아 니라 장에서 사 온 우리들 설빔이랑 갖가지 진귀한 것들을 넣어 두곤 했다. 벽 장문은 우리 아이들한테 ‘금기’의 문이었다. 그래서 늘 열어 보고 싶었다. 하지 만 진귀한 것으로 가득 차 있을 것만 같던 벽장이 사실은 날마다 일에 찌들고 도 잘살지 못했던 부모님들의 손때 묻은 낡은 물건들로만 가득 차 있었다는 걸 알아채던 날, 바로 그날 내 어린 시절은 저 멀리 강을 건너갔다. 나는 이제 어머 니가 되어 그 옛날 우리 어머니가 했던 것처럼, 벽장은 아니지만 구석방 한쪽 에 진귀한 것들을 챙겨 둔다. 그 진귀한 것들이란 바로 우리 부부가 텃밭에서 거둬들인 농작물이다. 종종거리며 뿌듯해하며 또 고마워하며 텃밭에서 보낸 일 년 삶이 거기 갈무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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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111호
먹을 것이 있으면은/넣어 두는 벽장.//발돋움을 놓고는/열어 보는 벽장.//나 가 놀고 들어오면/열어 보고 싶고,//버릇 되어 번번이/열어 보고 싶고. (‘벽장’ 전문)
3. 이제 설이 지나면 내 새로운 한 해가 시작할 날도 머지않았다. 대보름이 지나 면 장을 담그면서 한 해를 마무리하고 나는 또 새로운 한 해를 살아갈 것이다. 이제는 나도 농촌의 삶을 노래하는 동시 한 편을 쓸 수 있을까? 동시 한 편 쓰 는 걸 한 해의 작은 바람으로 삼고 대보름날 달님에게 빌어야겠다.
농촌 아이들의 삶, 농촌의 삶을 어린이 눈높이로 감각 있게 살려 낸 《감자꽃》에는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가 오롯이 들어 있었다.
농촌에서 새롭게 만나는 권태응 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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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창문
스물두 살 청년의 쿠바 여행기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된 농사와 음악의 가치
지난여름 나는 쿠바에 다녀왔다. 우연히 한국장학재단에서 주최하는 ‘지구별 꿈 도전단’을 알게 된 것이 계기였다. 나 같은 대학생들에게 여행 경비를 지원 해 주는 장학 프로그램으로, 가고 싶은 나라도 여행 일정도 모두 스스로 계획 해서 짜고 다녀오는 것이었다. 이십대로서 무언가 가슴 설레는 일에 늘 목말라 있던 내게 더없이 좋은 기회다 싶었다. 서너 명이 한 모둠을 꾸려야 했으므로 나는 고등학교 친구 셋과 함께 지원했다. 우리가 선택한 나라는 쿠바였다. 도 시 농업과 경제 자립을 함께 정착시킨 성공한 사회주의 국가, 체 게바라로 대 표되는 혁명의 나라, 무언가 ‘다른 삶’을 지향할 것만 같은 나라. 이런 갖가지 환상과 기대에 차 여러 날 밤을 새워 가며 친구들과 모여 앉아 여행 일정을 짜 고, 쿠바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사실 함께 여행을 계획한 고등학교 친구들은 내게 무척 특별하다. 나는 고 이시원 다섯 살 때 서울 서교동 날으는어린이집에 들어가 풀잎새방과후까지 다녔다. 공동육아 시절과 풀무학교에서 보낸 경험을 무척 사랑하며, 그때 배운 가치를 실현하며 살고 싶은 스물두 살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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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111호
등학교 3년을 충남 홍성에 있는 풀무학교에서 보냈다. 풀무학교는 농사를 배 우는 농업학교이며, 마치 한 식구처럼 공동체 생활을 한다. 전교생이 80명 남 짓한 작은 시골 학교에서 아침에 눈떠서 밤에 잠들 때까지 먹고 놀고 배우고 일하는 모든 생활을 함께했다. 그렇게 3년을 보낸 친구들이어서 각별하고 끈 끈한 유대가 있다. 그런 동기들과 함께했던 이번 여행은 그 내용에서도 마치 풀무학교 생활의 연장선처럼 그때 배운 가치들에 살을 붙이는 시간이 되었다. 여행에서 우리의 가장 큰 관심사는 쿠바의 농업이었다. 여행을 준비하며 공 부해 본 바로는 쿠바의 도시 농업은 선택이 아닌 먹고살기 위한 수단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사회주의 원조국이었던 소련이 무너진 뒤 미국의 경제봉쇄에 서 살아남기 위해, 즉 석유와 식량 수출입에 의존하지 않고 자급하여 경제를 살리기 위해 실시한 국가정책이었다. 따라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떠올리듯 옥 상과 베란다에서 키우는 작은 화분이나 텃밭의 개념이 아니라, 도시 안에 있 는 몇 개 농장들이 도시의 모든 농업을 담당하는 형태다. 그 전에 내가 상상한 쿠바는 도시 건물 틈새마다 작은 텃밭을 가꾸는, 도시와 농업이 조화를 이루 고 있는 모습이었으나 실제로 그런 곳은 거의 없었다.
아바나 도시 농장 알라마르에서 미겔 할아버지와 함께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된 농사와 음악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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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창문
쿠바에 도착한 이튿날, 수도 아바나에서 가장 큰 도시 농장인 알라마르 농 장을 찾았다. 커다란 농장 안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기계가 없다는 점이었 다. 건초더미 하나를 옮기는 데 트랙터가 아닌 소달구지를 쓰고 있었다. 농장 책임자인 미겔 할아버지 말에 따르면, 기계를 쓰지 않는 것은 대량생산을 멀리 하고 유기농을 정착시키려는 쿠바 농업의 원칙과 관련이 있었다. 여기서 생산 하는 모든 것은 가까운 가게에서 식당과 개인에게 돌아간다. 아직 쿠바 전체 식 단에 보급되는 채소의 양은 적지만, 적어도 아바나에서 먹는 농산물은 이 농 장들이 100퍼센트 책임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유기농으로. 어쩌면 이것이 쿠바 도시 농업의 전부라 말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에겐 정말 대단해 보였다. 우리는 탐방만 하지 않고 실습도 할 계획이었기에 간단한 일이라도 돕겠다 고 부탁드렸다. 채소 모종을 옮겨 심고 물건 나르는 일을 도왔다. 오랜만에 일 을 하니 풀무학교 농업 실습 시간이 떠올랐다. 밭을 갈고 채소를 길러 먹던 일, 모내기, 화훼와 조경, 농기계 다루기, 그리고 가장 귀찮았던 추운 겨울날 아침 마다 축사에 가서 닭 밥 주기, 허구한 날 풀매기. 그땐 그렇게 하기 싫었던 일 들. 그러나 그 덕에 손으로 몸으로 무언가를 한다는 것, 때론 힘들게 일하는 것 이 살면서 꼭 필요하다는 걸 조금은 알게 됐다. 2학년 때는 농가로 2주 동안 현 장 실습을 다녀왔는데, 어느 때보다도 농사에 대해 많이 생각했던 시간이다. 아침에 눈떠서 해질 때까지 몇천 평이나 되는 콩을 솎고, 삽질을 하고, 그렇게 지내다 보면 농사는 아무나 짓는 게 아니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앞으로 농사 만 짓고 살 엄두는 안 나지만, 이때 이렇게 힘들었던 경험과 뿌듯함만은 잊지 말아야겠다고 되뇌기도 했다. 그로부터 몇 년 뒤에 쿠바의 어느 농장에서 모 종을 심으며 그때를 떠올리고 있을 줄이야. 워낙 오랜만에 하는 실습이라 일 도 서툴고 허리도 아팠지만, 오랜만에 쭈그리고 일하며 흘리는 땀과 함께 옛날 생각이 나는 것이 또 좋았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다시 도시에 사니까 요새는 내가 먹는 밥이 어디에서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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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지, 자립해서 살아갈 능력은 얼마나 되는지 하는 꼭 필요한 고민은 점점 하 지 않게 된다. 미겔 할아버지 말처럼 진짜 먹고살기 위해 필요한 만큼 생산하 는 농사도 필요하고, 살면서 어느 정도 ‘미련한’ 노동도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적어도 내 입에 들어갈 음식은 조금이라도 내가 책임질 수 있을 만한 사람이 되어야겠다, 작은 텃밭이라도 가꾸며 살아야겠다, 이런 작은 꿈 을 꾸고 있다. 나아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살아도 지난 자유무역협정(FTA) 처럼 식량 주권 문제나 위협받는 농업의 현실과 마주했을 때 완전히 외면하고 살지는 않겠다, 다짐도 해 봤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내게 큰 울림이 된 것은 쿠바의 음악이었다. 사실 쿠바 를 여행하며 안 만날 수 없는 것이 바로 음악 소리다. 길거리에서, 광장 의자에 서, 골목길에서, 식당에서조차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언제나 있다. 한 번은 길 거리 할아버지들이 부르는 노랫소리가 좋아 그 옆에 앉아 한참을 들은 적이 있다. 술기운이 올라와 홀린 듯이 기타를 치며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는데, 그 자유로운 표현도, 느긋하게 감상하는 사람들도, 그리고 무엇보다 그 모든 풍 경이 이미 문화처럼 자리 잡은 그들의 환경이 부럽고 보기 좋았다. 마치 힘든 노동을 마친 뒤에 오는 휴식같이 음악을 즐기는 시간은 그들에게 늘 있어야 하는 일상의 한 부분 같았다. 대부분 듣고 있는 사람들도 행복해지지만, 사실 그들은 듣는 사람이 어떤가에 별로 관심이 없을 것이다. 자신이 즐겁기 때문 이다. 우리나라도 요즘에야 홍대나 대학로에서 길거리 공연을 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아졌지만, 여전히 보통 사람들 누구나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음악을 즐 기고 누릴 수 있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전문 능력자나 음악 전공자들이 아니면 남들 앞에 보이기조차 쑥스러워한다. 자기 안에 든 음악 흥과 발산하고 싶은 욕구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데 말이다. 노래방이 잘 되는 까닭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아직도 우리에겐 특정한 공간에서 돈이 들어가지 않고는 음악에 다가 가기 어렵다는 의식이 깔려 있다. 쿠바에서는 음악도 예술도 무언가에 갇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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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악단의 길거리 공연. 조그만 어린아이가 박자 감각이 대단했다. 우리에게 함께 들어와 춤추자고 손짓까지 했다.
지 않다. 온 종일 일을 하느라 쌓인 스트레스를 풀겠다며 기타를 메고 광장으 로 가는 쿠바 청년의 모습은 분명 신선한 자극이었다. 쿠바 음악에서 얻은 또 다른 깨달음은 ‘음악으로 함께 어울리는 즐거움’이 다. 이는 풍물을 사랑하는 내 관심과도 이어져 있다. 고등학교 때 처음 배운 풍물이 너무나 재미있어 한동안 푹 빠진 적이 있고, 대학에 와서도 풍물 동아 리를 한다. 꽹과리 치고 장구 치는 것만으로도 모든 힘든 일을 잊을 만큼 즐겁 다. 그리고 악기를 치며 느끼는 즐거움에서 더 나아가 이제는 판 한 번을 벌여 도 ‘어떻게 하면 함께 어울리며 더 즐겁게 흥을 낼까’를 고민하고 있다. 흥과 재 미를 표현하는 데 우리가 너무 서툴단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쿠바에서 어느 카니발 축제 때 보았던 아줌마 부대의 춤 공연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번 쩍거리는 옷과 가발로 치장한 통통한 아줌마들이 신나게 몸을 흔드는데, 그 자신 있는 몸짓이 그렇게 힘이 넘칠 수 없었다. 절로 열정이 생기고, 아마 그날 공연 가운데 반응도 가장 뜨거웠다. 쿠바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는 것도 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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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드는 것도 참으로 자유롭다. 식당에서도 음악이 나오거나 술기운에 기분이 좋다 하면, 갑자기 앞에 나와 살사 춤을 춘다. 옆 사람이 추면 또 따라 추고, 눈 깜짝할 사이에 무대 없는 춤판이 벌어진다. 언제 어디서도 음악으로 즐거워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사람들. 어떻게 그리도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만드는지. 지 나가는 사람의 흥을 그리도 잘 끌어낼 수 있는지. 이때 받은 느낌을 아직도 나 는 기억하고 있다. 좀 더 많은 사람과 즐겁게 어울리며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 해 풍물을 계속하고 싶은 내게 그 열정과 자유로움은 큰 도움이 되리라. 이제 내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다고 느끼는 ‘농사’와 ‘음악’이란 가치를, 쿠 바를 통해 또 새롭게 바라볼 수 있었다. 오래전부터 꿈꿔 온 것들이 아닌데도 그것들은 평생 가져가고 싶은 두 가지가 되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것을 바라보 는 관점이 변했다. 서른 살 정도에는 집 앞에 텃밭을 만들어 스스로 가꾼 채소 몇 가지라도 먹고사는 뿌듯함을 느끼며 살고 싶다. 농사로 먹고사는 농부는 못 돼도 내 먹을거리를 자급하는 소농으로 말이다. 그리고 음악도 예술도 직 업으로서가 아니라, 내가 즐겁기 위해 즐거울 수 있는 만큼 빠져 살 것이다. 멀 게는 더 많은 사람이 쿠바처럼 일상에서 자신의 예술 감각을 드러내고 살기를 바라지만, 일단 나부터! 쿠바 여행을 다녀오고 뭔가, 늘 갖고는 살았지만 흐릿 했던 가치들이 조금씩 더 뚜렷하고 소중해진 기분이 든다.
이제 내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다고 느끼는 ‘농사’와 ‘음악’이란 가치를, 쿠바를 통해 또 새롭게 바라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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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노이, 피노이*
지금 필리핀 세부는? 크리스마스가 가까와 온 동네가 들썩거린다. 크리스마스 철이 시작되는 9월 1일부터 사람들은 선물 이야기를 하고 마트에서는 캐럴이 흘러나온다. 이
들은 크리스마스 상여금을 기다렸다가 선물과 음식을 준비한다. 유치원과 학 교에서는 19일에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여 마니또・마니따 선물을 교환하고 2주 동안 크리스마스 방학에 들어간다. 24일 자정이 되면 여기저기 호텔과 쇼
핑몰, 부자들이 불꽃놀이를 해서 그게 하늘에 꽉 찰 만큼이란다. 그리고는 자 정부터 밤새도록 음식을 먹는다고 아이 선생님도, 집안일 도와주는 플로리도 아주 달아오른 얼굴로 자랑스럽게 말한다.
*
피노이는 필리핀 말로 ‘필리핀 남자’를 가리킨다. 여자는 피나이라고 한다.
임도희 2013년 5월 남편의 해외 파견 근무로 필리핀 세부에서 9개월째 살고 있다. 강서양천 공동육아 개구리어린이 집과 2009년부터 인연을 맺어 첫째는 다섯 살부터 다녀서 졸업하고, 필리핀에서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다. 둘째는 네 살부터 다니다가 여섯 살부터 세부에서 일반 유치원에 다닌다. 오는 오월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면 그리던 개구리에 돌아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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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식구가 세부에 온 지 일곱 달, 처음엔 피노이들이 순박하고, 잘 웃는 게 좋았다. 말하는 걸 너무 좋아해서 처음 보는 사람과도 오래된 친구처럼 이 야기하는 건 신기했다. 그러다가 점점, 교통 체증이나 집안일 때문에 번번이 출근 시간을 어기거나 수다 때문에 자기 할 일을 다 하지 않고도 ‘괜찮다’고 여 기는 것, 공무원이나 경찰도 돈을 주어야 일을 해결해 주는 풍토가 널리 퍼져 있는 데 염증을 느끼고 있던 차였다. 10월 15일 아침, 7.2도의 지진이 왔다. 빌라 8층인 우리 집에서는 모든 벽과
천장이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면서 흔들렸다. 다행히 밤 근무를 마치고 자고 있던 남편과 공휴일이어서 학교에 가지 않은 아이들이 함께 있었다. 숨을 만 한 곳이 없어 침대 옆에 바짝 붙어 앉아 서로 어깨를 감싸 안았다. 고개를 들고 벽과 천장을 보면서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텔레비전이 넘 어지고 정수기가 돌아갔다. 거실에서는 플로리가 생애 마지막 기도를 하면서 울었다. 다행히 본 지진이 그쳤을 때 아이들 손을 잡고 계단으로 밖에 내려왔 다. 집 밖에는 이미 나와 있던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죽음의 두려움에
피노이, 피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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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하이옌이 지나간 필리핀 피해 지역에 ‘HELP ! FOOD, WATER’ 라고 쓴 글자가 보인다.
ⓒ THE ASSOCIATED PRESS
창백한 얼굴, 피노이들도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그 뒤에도 5도 가까이 되는 여 진이 계속 왔기에 우리는 그날 하루,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단층 주택으로 피 신을 갔다. 한 달이 넘도록 여진이 계속되었다. 우리 모두는 침대에 누우면 여 진이 없는 때에도 가끔 침대가 흔들린다고 느꼈다. 거실 바닥을 디디면 지각 이 아기의 태동처럼 꿈틀거렸다. 그나마 세부는 대부분 건물이 흔들리다 말아 서 사람이 많이 다치지 않았지만 진앙지였던 보홀(세부에서 배로 두 시간 거리)에 서는 오래된 성당들이 무너지고 길이 갈라져서 희생당한 사람이 제법 많았다. 여기저기에 구호품과 기부금을 마련하는 부스가 생기고 사람들은 옷과 음식 을 모아 보냈다. 지진이 일어난 지 거의 한 달 만에 태풍 하이옌이 온다고 했다. 세부도 영향 권이므로 사람들은 라면과 통조림을 사재기하고 키 큰 나무를 미리 베어 냈 다. 태풍이 오던 날 플로리네 집은 지붕이 날아가고 종아리만큼 물이 찼다고 했다. 세부 시의 피해 정도는 그러했다. 많은 피노이들이 지붕을 잃었고 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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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111호
군데군데 부서졌다. 그런데도 다음 날, 플로리는 웃는 얼굴로 “우린 어젯밤에 아주 행복했다”고 했다. 태풍이 지나간 뒤에 시에서 마을 학교에 3백 명 남짓 한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시장이 보낸 죽과 라면을 나누어 주었다고,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들 재미나게 이야기했다고 말이다. 그런데 그날 오후부터 세부 동북쪽 섬 레이테의 타클로반 지역에서만도 만 명이 넘게 죽었다는 뉴스가 들렸다. 그곳에서도 주민들을 대피시켰으나 불행 히도 그 대피소는 바다 가까이 있었고 많은 이들이 해일에 목숨을 잃었다. 감 히 상상할 수도 없는 수였다. 인터넷에서 보는 사진들은 참혹했다. 죽은 아이 를 안고 망연자실 서 있는 남자, 그 얼굴, 그 살빛은 이곳에서 길을 지나가다 만나는 이웃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남편 회사에 다니는 한 직원은 식구 들과 플로리의 외가 친척들이 그곳에 사는데 며칠 동안 연락이 안 된다 했다. 할머니 세대는 자식을 열두 명 낳았고, 지금 부모들도 대여섯은 낳기에 레이테 섬 주민들은 세부 사람들에게 남이 아니라 친족, 적어도 ‘아는 사람’인 경우가 많았다. 사람들은 어디서나 만난 자리에서 그 이야기를 했다. 해외에서도 어 마어마한 원조가 왔지만 이곳 사람들이 기부하는 모습은 놀라웠다. 아이들 학교에서 구호 물품을 내라 했다. 나는 집에 있는 생수, 통조림, 라면 들을, 그 것도 다 보내지 않았다. ‘이게 정말 그들에게 전달될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 었다. 그런데 아이가 학교에 다녀와서 창피하다고 더 가져가야겠다고 했다. 다 른 친구들은 다 한 상자, 두 상자씩 가져왔다고. 그도 정말인 게 이때, 가장 큰 쇼핑몰도 식료품 창고가 텅텅 비도록 사람들은 그걸 사고, 학교에 냈다. 또 이 즈음엔 우리의 명절 못지않게 도로는 차로 꽉 막혔는데, 그 역시 피해가 심했 던 세부 섬 북쪽 지역에 사는 친족이나 그 누군가에게 구호 물품을 차에 싣고 가서 전해 주겠다고 나선 사람들 때문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불우 이웃 돕기 성금을 ‘이게 제대로 전달이 될까?’ 하면서 조금씩 내고 잊어버리는 우리 모습과 사뭇 달랐다.
피노이, 피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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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창문
상황은 절박한데 개인의 구호 물품보다도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정부의 구호 정책에 마음이 아팠다. 여기 사람들은 정부나 기관을 믿지 못한다. 학교 선생도, 대학생도 외국인에게 “우리 정부는 이미 무너졌다. 저항을 해도 대통 령은 듣지 않는다”고 말하는 나라. 20년 동안 군부독재 시대에 저항했던 니노 이 아키노, ‘그의 아들이어서’ 뽑은 지금 대통령은 무엇을 하는지 피노이들도 모른다. 정치 로열패밀리라고, 현직 시장의 딸이 부시장인 게 이상하지 않다 는 나라다. 정치인들은 피노이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식구들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 국민들은 “슬프다”고 하면서도 심각하게 마음에 담아 두지 않는다. 정부에 기대할 것 없다는 분위기다. 이 정 많은 피노이들의 냉혹한 정부는 해외에서 구호품으로 온 생수도 자기 나라에서 준 것처럼 다시 포장하느라 바빴던 것이다. 태풍은 예고된 자연재해 였지만 대비가 미흡했던 점, 피해가 많이 일어나자 대통령은 책임을 회피하고 그 지역 공무원을 비난하기에 급급했던 점, 구호를 재빨리 하지 않아 굶주린 이들이 식량 창고를 약탈하게 됐고 피해를 입은 사람이 더 늘어난 점 들을 생 각하면 이 일은 인재라는 말도 맞다. 자연재해를 두 번 겪고 나자 잠깐이나마 삶과 이웃이 달리 보였다. 살아 있다 는 건 기적 같았고 피노이들이 단지 외국인이 아니라 운명 공동체라 느껴졌다. 이들이 살면 나도 살고 이들이 죽으면 나도 죽으리라는
. 그러면서 어쩐지
이들이 애처로운 느낌마저 들었다. 자연재해에서 안전하지 못한 곳에서 자식 을 대여섯도 놀랍지 않게 낳고 사는 사람들, 국민은 안중에 없는 것 같은 정부 에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 그래도 행복하다고 하는 이 사람들이 말이다. 내일, 크리스마스를 맞아 남편 회사에 다니는 피노이들이 세부 섬 북쪽 지 역에 다시 한 번 구호 물품을 전하러 간다고 한다. 크리스마스 때문에 차가 꽉 막히는 도로 위에서 이들은 예닐곱 시간을 짜증스러워하지 않고 내리 수다를 떨 것이다. 소풍 가는 것처럼 가볍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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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겨울교사대회
한 송이 들꽃은 혼자서 피지 않는다 2014년 공 동 육 아 겨울교 사대회
한 송이 들꽃은 혼자서 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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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겨울교사대회
2014년 공동육아 겨울교사대회가 지난 1월 17일(금), 18일(토) 서울 불광동 팀비전센터에서 열렸습니다. ‘한 송이 들꽃은 혼자서 피지 않는다’는 주제 아래 ‘이유 있는 소통과, 치유하는 소통을 통해, 변화의 소통으로 지금 이곳에 서자’를 부제로 열린 이번 교사대회에는 370명 남짓한 교사들이 참여하여
2013년 한 해를 마감하며 2014년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배움과 소통의 장을 만들었습니다. 첫째 날 17일에는 2013년에 진행한 현장학교 기초과정, 교육실제과정 수료식과 전체 강연에 이어 ‘도시 속의 생태’, ‘달콤한 수’, ‘기록의 필요성’에 대한 교육 사례 발표가 있었습니다. 전체 강연으로는 ‘누리과정에 포섭되지 않고 당당하게 우리의 길을 가기’(이부미), ‘공동육아, 누리과정과 평가인증 어떻게 대응할까’(장혜경)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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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송이 들꽃은 혼자서 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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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겨울교사대회
둘째 날 18일에는 교사회 총회와 지역대표자 이·취임식, 법인 조직과 소모임을 소개하고, 10년 근속 교사 시상식을 포함한 축하 공연을 했습니다. 인천 부천 지역 교사들이 선보인 노래 공연에 이어 지역공동체학교 교사들의 리코더 연주와 멋진 춤 공연을 보고, 모두가 함께 춤을 배우며 신나게 하나 되었습니다. 전체 강연으로 ‘우리 시대의 교육, 아이를 살리는 일곱 가지 약속’(김규항)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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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111호
공동육아 어린이집 서울
부산ㆍ창원
꿈꾸는
02)995 - 1802
개구리
02)2691 - 7338 서울시 강서구 강서로18길 44 - 17
쿵쿵
051)342 - 2595 부산시 북구 대천천길 103
산들
02)458 - 7122
서울시 광진구 자양로50길 74
숲에서놀자
055)605 - 7785 경남 창원시 의창구 명서동 89 - 3
즐거운
02)458 - 0659
서울시 광진구 긴고랑로 149 - 7
궁더쿵
02)2625 - 9769 서울시 구로구 오리로20길 32
서울시 강북구 삼양로173가길 58
평화의교회 1층
아이들세상
051)515 - 6832 부산시 금정구 청룡로45번길 10 - 4
대구 씩씩한
053)791 - 6879 대구시 수성구 천을로 61 - 7
통통
02)3391 - 2889 서울시 노원구 동일로236길 60 - 4
노마
053)322 - 4719 대구시 북구 도남길 257 - 1
해와달
02)824 - 3753
서울시 동작구 성대로16길 67 - 6
딱지와구슬
053)321 - 8477 대구시 북구 관음동로13길 13 - 22
또바기
02)333 - 4421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로5길 33 - 18
솔방울
053)588 - 0686 대구시 달성군 다사읍 강정본길 38
성미산
02)6082 - 6060 서울시 마포구 성미산로7안길 44
우리
02)324 - 0933
참나무
02)3141 - 4271 서울시 마포구 새터산길 35
산,들,바람
033)643 - 0679 강원도 강릉시 성곡고양길 53
함께크는
02)3462 - 7599 서울시 서초구 바우뫼로11안길 12
소꿉마당
033)766 - 0663 강원도 원주시 판부면 백운정윗길 14 - 35
행복한우리
02)942 - 7032
서울시 성북구 아리랑로19다길 38 - 14
신나는
033)244 - 7885 강원도 춘천시 영서로 3043
칙칙폭폭
02)714 - 0262
서울시 용산구 원효로83길 5 - 8
소리나는
02)358 - 7725
서울시 은평구 갈현로 214 - 13
서울시 마포구 성미산로 25 - 6
하남 파란하늘
02)3401 - 7813 경기도 하남시 감일남로52번길 62
재미난
02)442 - 0065
02)899 - 2329
인천ㆍ부천 해맑은
032)546 - 2889 인천시 계양구 향교로18번길 6 - 1
너랑나랑
032)437 - 5516 인천시 소성로318번길 23 - 7
너나들이
070) 7550 - 4463
산
032)666 - 9213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성주로80번길 16
우리노리
032)347 - 9252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호현로439번길 32
경기도 하남시 초이로80번길 48
광명 하늘
강원
인천시 서구 왕길동 대림e편한아파트 119동 101호
경기도 광명시 안재로1번길 13 - 5
안양ㆍ군포ㆍ의왕 과천 어깨동무
02)504 - 4533
경기도 과천시 궁말로 20 - 19
우리튼튼
02)507 - 5862
경기도 과천시 부림3길 22
열리는
02)507 - 1798
경기도 과천시 양지마을2로 8
친구야놀자
031)385- 7959
감나무
031)395 - 5277 경기도 군포시 수리산로 33
하늘땅
031)422 - 4633 경기도 의왕시 약수터1길 57
개똥이네
031)422 - 3281 경기도 의왕시 동부시장3길 46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매곡로44번길 14 계룡삼환아파트 843 - 101
고양ㆍ파주 도토리
031)967 - 3480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흥도로178번길 103-14 용인ㆍ수원
도깨비
031)969 - 3412
야호!
031)977 - 4788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성현로138번길 81
여럿이함께
031)977 - 2382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마골길 21 - 6 A동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고양대로 1730번길 128 단독 1층
나무를키우는 031)967 - 5995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장동 240 - 1 햇살 반딧불이
꿈나무놀이터 070)8815-0510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신촌로 69 깨끔발
031)287 - 5174
54번길 25 - 14
달팽이
031)251 - 3210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파장천로 45 - 11
사이좋은
031)227 - 5925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금곡동 LG빌리지 408 - 104
031)949 - 0727 경기도 파주시 장터고개길 182 - 44
의정부ㆍ남양주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사은로 274 - 11
숲이랑우리랑 031)8005- 8118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동백중앙로
성남ㆍ광주ㆍ이천
꿈틀꿈틀
031)873 - 5420 경기도 의정부시 송산로985번길 59
세발까마귀
031)714 - 4245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쇳골북로32번길 3
징검다리
031)555 - 0591 경기도 남양주시 가운로2길 98 가운마을
꾸러기
031)711 - 4858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예원로 22
굴렁쇠
031)754 - 0978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발이봉남로
덩더쿵
031)712 - 7972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불곡남로14번길 12(1층)
휴먼시아A 관리동
안산ㆍ평택
43번길 3 - 1
햇볕은 쨍쨍
031)419 - 0652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호동로1길 18
영차
031)502 - 0104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호동로3길 13 - 1 1층
두껍아두껍아 031)717 - 9954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창뜰아랫길 37 - 17 뭐하니
느티나무
031)681 - 9650 경기도 평택시 오성면 양교4길 11
너른마당
031)633 - 5956 경기도 이천시 부발읍 신아로 13
아이들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공동체
충주ㆍ천안
대전
아이들세상
043)847 - 7934 충청북도 충주시 칠지6길 6
모여라
041)564 - 5308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통세골2길 28 - 4
친구랑
042)867 - 5565 대전시 유성구 하기로66번길 94
공동육아 방과후 서울
인천ㆍ부천
재미난
02)428 - 0605
서울시 강동구 천호대로219길 44
해맑은
070)7661 - 2888 인천시 계양구 계산동 971 - 4
마법
02)444 - 0657
서울시 광진구 자양로50길 74 (노란대문)
산
032)661 - 9213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성주로 100 - 6 4층
파란하늘
02)409 - 8890
서울시 송파구 양산로10길 14 1층
무지개
02)942 - 7032
서울시 성북구 정릉동 559 - 86
친한친구
070)4176 - 5959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 198 3층
대전
042)861- 6007 대전시 유성구 가정로89번길 28 -2 1층
계수나무
070)8826- 0767 대전시 유성구 관들5길 1208
부산
산어린이학교 02)2611 - 1186
율동
031)719 - 1291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 율동복지회관 2층
사이좋은
031)292 - 5925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금곡동 LG빌리지 408 -104
경기도 시흥시 금오로 273
02)3141 - 2833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 15안길 19
02)307 - 0862
서울시 서대문구 수색로 100
뿌리와새싹 커뮤니티센터 뿌리문화원 뿌리와새싹어린이집
아름다운
031)682 - 9650 경기도 평택시 오성면 양교리 605 - 2
지역공동체학교
국공립 어린이집
(구립)푸른숲
경기도 과천시 희망3길 41
평택
053)793 - 6879 대구시 수성구 시지동 146 -1
초등 대안학교
(구립)성미
02)504 - 7643
수원
070)4024-2595 부산시 북구 화명동 269 2층
대구 해바라기
두근두근 분당
친구랑
징검다리 놓는아이들
과천
042)935 - 8237 대전시 유성구 관들5길 14
해송 02)762 - 9201 지역아동센터
서울시 종로구 낙산성곽동길 59 - 10
강동꿈나무 02)478 - 7220 지역아동센터
서울시 강동구 천중로11길 30 1층
송파꿈나무 02)404 - 2159 지역아동센터
서울시 송파구 송이로32길 16 3층
구로파랑새 02)838 - 5679 지역아동센터
서울시 구로구 구로동로17길 56 - 1 서울남복지관 1층
한누리학교 02)2695 - 6507 서울시 양천구 신월로 117 경신빌딩 2층 지역아동센터 성남꿈나무 031)743 - 4416 지역아동센터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은이로7번길 7 3층
기관회원 남양주
070)4201 - 1214
보물섬교육공동체
070)7723 - 1655
도곡 개구리어린이집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궁촌로 95 - 22 2층
굴렁쇠어린이문화학교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정실2길 24 - 5
보물섬교육공동체
064)749 - 0669
보물섬어린이집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정실4길 63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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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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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된 농사와 음악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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