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육아회보 (2014년 11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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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4호

우리 아이 함께 키우기, 더불어 사는 세상 만들기


차례

여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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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의 한 해를 돌아보며 공동육아의 철학을 되새겨 본다 | 양용준

지금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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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협동조합 설립 20주년 기념행사를 돌아보며 | 이기범

14 토크 콘서트 - 공동육아, 마을과 공동체를 말하다

생각과 제언

46 보육의 공공성 강화와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위하여 | 장미순

세월호를 기억한다 페다의 창

50 안산이 품고 있는 세월호 | 하은희 54 공동육아 교사와 보육일지 쓰기 | 김경태

내가 만난 아이

57 그 아이가 가끔은 그립다 | 조봉호

아이와 손잡고

68 내 세상, 엄마 외 | 서진숙

제호 공동육아 신영복, 1996 표지 사진 ⓒ 안성일 (돌고래. 세발까마귀어린이집 교사) 한 해를 보내면서 우리가 진정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이 회보에 실린 글을 옮겨 실으려면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함께 가는 길 날적이 오늘의 교육 지역공동체학교 방과 후 마을 공동체 생태와 공동육아 세상을 보는 눈

71 산들 큰바위, 세인이 이야기 | 최지혜 76 날적이에 썼어? | 양명희, 정영화 82 세월호 교육감 시대가 나갈 길 | 이주영 86 끊임없이 질문하고 새롭게 발명하자! | 김미아 92 자유로움과 몰입의 역사로 떠나는 여행 | 방극조 110 함께 만들어 가는 마을 이야기, ‘놀자’! | 이영선 118 인간의 본능과 생태적인 삶 그리고 기술 | 김성원 126 인터스텔라와 나 | 하승수

인문학 읽기

130 인문학과 자연과학, 두 날개로 나는 아이들 | 황서현

아이와 함께 보는 책

135 다섯 살 로타의 이유 있는 반항 그리고 가출 | 신민경

졸업생 이야기 열린 창문

140 스무 살, 길을 찾아갈 때 | 강한결 144 공동육아 20돌, 우리어린이집 스무 번째 생일을 보내며 | 박미형

노래 한마당 80 사진으로 보는 공동육아 한마당 149 터전 주소록 154 2014년, 114 호 | 펴낸날 2014년 12월 8일 | 등록번호 마포 바00111호 | 펴낸곳 (사)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펴낸이 박혜란 | 편집위원 김기언, 이송희, 장희숙, 조현제, 황서현 | 편집 이송희 | 디자인 봄밤 | 인쇄 마이컴프린팅 주소 서울시 마포구 동교로 114 태복빌딩 201호 | 전화 02-323 - 0520 | 전송 02-323 -1695 전자우편 gongdong @ gongdong .or.kr | 누리집 gongdong .or.kr | 독자 커뮤니티 journal .gongdong .or.kr


여는 글

2014년도 어느덧 한 달 남짓 남았다. 보통 이때쯤 한 해를 돌아보면 많은 일들

이 기억나겠지만, 올해는 딱 한 가지 일만이 또렷이 떠오르는 특별난 해인 것 같다. 그만큼 세월호 참사의 충격은 엄청난 것이었다. 아마도 이 일은 한 해를 돌이켜 보는 정도가 아니라 최근 20년 남짓한 기간을 돌아보더라도 가장 충 격적인 기억이 되지 않을까 싶다. 무엇이 이런 참극을 불러왔을까? 안전 문제를 소홀히 하는 선박 회사와 승 무원들의 잘못 탓만이 아니라는 사실은 누구나 공감하고 있다. 소위 규제 개 혁을 한답시고 자본들의 편의만을 배려하는 정책 문제를 비롯하여 관리 감 독을 소홀히 한 관료, 그 틈을 이용하여 돈벌이에 혈안이 된 자본 따위 오늘 날 이 사회가 안고 있는 권력과 자본의 결탁이 한 눈에 간파되는 추악한 사고 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희생자의 대부분이 학생이었다는 점, 그리고 그 사 고가 수학여행이라는 교육과정 중에 일어났다는 점에서 교육적 관점에서도 이 일을 되새기게 한다.

충격의 한 해를 돌아보며 공동육아의 철학을 되새겨 본다 양용준 (사)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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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114호


공동육아 운동 초기의 씨랜드 화재 사고, 15년 뒤의 세월호 참사 1994년에 공동육아협동조합이 처음 생기고 10곳 남짓한 조합이 외롭게 공

동육아 운동을 시작하던 1999년, 이른 바 씨랜드 화재 사고가 발생하여 유치 원생 19명이 생명을 잃는 참사가 일어났다. 그 당시, 공동육아조합협의회가 결성되었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이 사건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담은 성명서 발표였다. “아이들의 교육이 돈벌이에 의해 훼손되어서는 안 될 뿐 아니라 더 구나 그것이 아이들의 생명까지 잃게 하는 행태는 결코 용납되어서 안 된다” 는 뜻을 신문광고로 밝힌 바 있다. 공동육아 운동이 처음으로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낸 순간이기도 했고,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그 뒤부터 전국에 많은 공동육아협동조합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공동육아 운동이 큰 원칙으로 견지하고 있는 ‘영리를 배제한다’는 것은 육 아에서 어쩌면 상식적인 일이지만, 그것이 상식인지 아닌지를 헷갈리게 하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다. 영리를 추구하는 민간 보육 시설의 속성은 말할 것도 없고, 아이들의 교육을 이용해서 돈벌이를 하려는 온갖 상술, 나아가 대기업 들의 교육 상품 따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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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우리가 선택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공동육아의 철학을 평소에 잘 실천하고 이 힘을 사회에 확산시켜 나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충격의 한 해를 돌아보며 공동육아의 철학을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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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문제의 심각성은 이런 영리 추구가 단순히 교육의 본질을 흐린다는 것뿐 아 니라 아이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데 있다. 온갖 캠프나 수학 여행처럼 야외 시설을 이용한 교육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이 일을 대행하는 업체가 생겨나고, 이 업체들은 어떻게 하든 비용을 줄여서 한 푼이라도 더 남 기려고 한다. 꼭 대행업체를 이용하지 않더라도 숙박 시설, 교통편 들을 이용 할 때는 이와 같은 영리의 속성이 아이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돈벌이의 교육철학을 제시하고 교육 현장에서 돈벌이를 실현하는 신자유주의

신자유주의 질서가 교육이라는 영역을 집어삼킨 행태는 이제 새삼스러운 일 이 아닌 것 같다. ‘경쟁이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믿는 철학을 바탕으로 무한 입 시 경쟁을 부추길 뿐 아니라, 그것에 편승하여 생겨나는 거대한 사교육들이 대표적으로 이를 대변하고 있다. 굳이 민간 시설이 아니더라도 공공 보육 시설 이나 학교 같은 곳을 건축하는 데서부터 이를 개・보수하는 데도 많은 이권이 개입하고 있으며, 급식 식자재의 공급과 교복 선정, 심지어 졸업 앨범 같은 일 상 분야에도 영리의 탐욕이 그 틈새를 노리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논리는 ‘경 쟁적으로 공부하여 더욱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교육철학을 제시할 뿐 아 니라 스스로 교육 현장에서 경쟁적으로 돈벌이를 실현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자본주의라는 체제에서 살고 있다. 따라서 사적 소유와 시장 질서 를 거부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다 시장에 의존하여야 하는가? 사 회 구성원 전체의 이익이 보장되어야 하는 공적인 영역까지 시장의 논리에 내 맡길 수는 없다. 그중에서도 한 세대를 건강하게 키워 내고자 하는 교육이라 는 영역은 더더욱 그렇다. 공동육아 어린이집과 방과 후의 운영 원칙은 이와 같은 철학을 굳건히 견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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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114호


공동육아 철학의 일상적 실천, 검은 자본과 권력의 유착에 맞서는 힘으로

공동육아의 철학을 다시 언급하자면 생태와 공동체를 가장 큰 가치로 여기고 있다. 우리가 친환경 먹을거리를 고집하는 것도 단지 아이들에게 좋은 것을 먹이자고 하는 것만이 아니다. 시장 질서에 내던져진 농업이 자기 생존을 위 해 무분별하게 농약과 비료를 쓰고, 또 외국의 값싼 농산물을 수입하는 상황 에서 이것만은 막아 보자는 운동의 일환이다. 시장의 논리에 파괴되어 가는 환경을 지키자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경쟁과 이윤으로 상처받고 있는 인간관 계를 회복하여 서로가 서로에게 힘을 주고 함께 살자는 것이 공동체의 철학 이다. 공동육아의 철학은 현대사회에서 이윤과 경쟁에 의해 파괴되어 가는 자연과 인간관계를 회복하는 방식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또 그와 함께 어른 들도 성장하자는 것이다. 엄청난 참사를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자괴감이 든다. 도 무지 깨질 것 같지 않은 자본과 권력의 강력한 유착 앞에서 힘없이 이를 지켜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는가? 나는 공동육아의 부모가 되고 그 인연으로 대안 학교 학부모로 살아온 지 17년이 되었다. 대부분 그렇듯 자식 잘 키워 보자고 시작한 이 길이 어느덧 삶의 이정표가 되고, 또 둘레 사람들과 함께 어떻게 살 아야 하는가를 알게 되었다. 올해 내가 속한 학부모 모임에서도 참으로 많은 세월호 관련 집회와 행사에 참여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이번 일을 계 기로 우리가 선택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공동육아의 철학을 평소에 잘 실천하 고 이 힘을 사회에 확산시켜 나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돈벌이를 위해서는 아 이들을 안전하게 키우는 것도 외면할 수 있는 거대한 힘과 맞서는 일은 반짝 하는 집회와 행사만이 아니라 일상의 실천 그것이어야 한다. 공동육아가 제 시하고 있는 삶의 방향이 이번 일을 계기로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충격의 한 해를 돌아보며 공동육아의 철학을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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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공동육아협동조합 설립 20주년 기념행사를 돌아보며

공동육아협동조합 설립 20주년 기념 학술대회가 ‘위기의 사회, 공동체와 성 장’이라는 주제로 지난 11월 22일(토)에 서울여성플라자 아트 홀에서 오전 10 시부터 오후 7시까지 열렸다. 많은 회원들이 여러 달 동안 공들여 준비한 행 사는 이제 지난 일이 되었지만 그 열기와 의미를 함께 기억하고자 하는 뜻에 서 기획의 의도, 진행 과정 그리고 당일 행사에 대한 몇 가지 소감을 정리한다. 2004년 학술대회는 공동육아의 실천과 이론을 체계화하여 사회에 알

리는 것을 주요 목표로 삼았다. 그 후 공동육아는 계속 변화하여 현재 전국 에 68개의 어린이집 협동조합과 16개의 방과 후 협동조합이 운영되고 있다. 2005년 영유아보육법에 부모협동어린이집 유형을 만들어 내는 등 부모 참여

의 필요성을 사회적으로 정립하였고, 투명한 운영이 가능한 어린이집의 운영 모델로서 인정받았다. 또한 학교 방과 후의 아동 돌봄과 대안적 교육의 요구 에 따라 방과 후 교실, 대안 학교, 지역공동체학교를 설립하였다. 공동육아로 연을 맺은 가족들은 삶의 뿌리를 마을에서 찾으며 서울 마포구 성미산마을,

이기범 (사)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상임이사이며, 공동육아협동조합 설립 20 주년 기념 학술대회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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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114호


생활 공동체 운동으로서의 공동육아를 통해 위기 사회의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 그리고 개인, 가족과 이웃의 인간성과 존엄성을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고 제안하자는 뜻을 학술대회에 담고자 하였다.

과천 무지개교육마을, 삼각산 재미난마을 같은 곳에서 마을 만들기의 중심 에 자리 잡고 있다. 이번 학술대회는 공동육아의 보육과 교육에 기반을 둔 우리의 삶이 한국 사회에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를 모색하고 제안하는 것 을 목적으로 하였다. 즉 생활 공동체 운동으로서의 공동육아를 통해 위기 사 회의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 그리고 개인, 가족과 이웃의 인간성과 존엄성을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고 제안하자는 뜻을 학술대회에 담 고자 하였다. 이러한 취지는 우선 2004년 학술대회 당시의 사회 정서가 다소 낙관과 희망으로 들떠 있었다면, 그로부터 급격하게 퇴보하고 있는 사회 구 조와 문화가 큰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는 진단에서 비롯되었다. 사회적 위기는 우리가 겪고 있는 세월호 참사, ‘군대 살인’, 해마다 증가하는 성인과 청소년 자살률, 어린이 사고 사망률 같은 참담한 현실 속에서 절감한다. 많은 사람들 이 정부도, 직장도,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으며, 다른 누구에게도 내 삶을, 우리 아이들의 삶을 믿고 맡길 수 없고, 개인과 가족이 스스로 자기를 보존해야 한 다는 우울한 결론에 도달하고 있는 것 자체가 가장 심각한 사회적 위기라는

공동육아 협동조합 설립 20주년 기념행사를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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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데 학술대회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공감하였다. 그래서 불신과 절망이 커져 가는 위기의 사회라는 문제의식을 갖고 공동육아협동조합 20년의 활동을 성 찰하면서 희망을 찾고, 그 작은 희망을 더 큰 희망으로 확산하기 위해서 무엇 을 어떻게 해야 할까를 모색하는 공론의 장을 열게 된 것이다. 이번 학술대회는 3부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1부는 ‘함께 살기–위기의 삶 과 공동체의 삶’이라는 주제로 위기의 삶을 극복하기 위한 공동육아의 시도 와 과제를 살펴보았다. 2부는 ‘함께 성장하기 - 공동체와 개인의 성장’으로 공 동육아 현장에서 공동육아가 지향하는 가치가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가를 검 토하였다. 3부 ‘토크콘서트 - 공동육아, 마을과 공동체를 말하다’는 공동육 아에 기반을 둔 마을 만들기의 과정에서 어른과 아이들이 어떻게 성장해 왔 는가를 자기 경험을 통해서 이야기하는 장이었다. 발표된 글과 논평 그리고 토크콘서트에서 공유된 경험들은 하나하나 소중 한 내용들로서 여기서 충실하게 요약을 시도하기에도 한계를 느낀다. 그러므 로 꼭 자료집을 읽기를 권한다. 여기서는 발표하신 분들의 양해를 구하면서 특별한 관심을 가져야 할 내용을 나름대로 몇 가지로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인간 성장의 시간과 공간의 변화에 주목하여 공동육아의 교육과 제도를 점검해야 한다. 시간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생애 주기가 연장되고 있기 때문에 아동의 성장 에 대한 계획은 제도 교육에 한정할 것이 아니라 전 생애를 산다는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 전 생애에 걸쳐 필요한 태도와 자질, 예를 들면 체력, 유연한 적응력 그리고 다문화적 감수성 들을 새롭게 발굴하고 개발해야 한다(정병호, 위기의 시대, 공동육아와 ‘함께 살기’). 공간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공동육아의 돌

봄은 국가와 시장이라는 공간에 돌봄을 의존하던 방식의 한계를 벗어나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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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114호


봄의 당사자들 스스로가 돌봄의 공간을 만든 의의가 크다. 그러나 공동육아 의 내부 공간에 제한될 것이 아니라 사회적 돌봄으로 확산시키려는 노력을 해 야 하며, 이를 위하여 돌봄 노동자의 노동권 보장, 가족 내 협업적 돌봄의 정 착 그리고 돌봄 담당자들의 신뢰와 소통을 증진하는 일 들에 주력해야 한다 (정성훈, 공동육아협동조합과 사회적 돌봄). 또한 특별한 돌봄이 필요한 장애아 통

합 교육에 대한 필요성에는 구성원들이 동의하고 있으나, 실천은 대단히 미흡 하다는 지적(박정화, 공동육아 장애아 통합 교육에게 말 걸기 - 공동육아 교사 인식 조사 를 중심으로)에서 돌봄의 공간을 사회적으로 확장하기 위하여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둘째, 공동육아가 지향하는 ‘공동체성’에 대한 지속적인 소통과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 모든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공동체와 관계를 맺고 의존하는 동시에 자율성 을 추구하며, 이러한 관계성(의존성)과 자율성이 만나는 최적점을 찾는 시도 를 지속해야 한다. 공동육아협동조합 부모와 교사들을 대상으로 주기적으 로 실시한 설문조사와 비교할 때 현재 공동육아 구성원들의 만족도와 공동 체 의식은 여전히 높으나, 교육관의 차이와 소통의 어려움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장기성, 공동육아에 대한 인식과 공동체 의식 변화). 이 두 가지 현상 은 서로 상충되는 측면이 있는데, 공동체성이 무엇인지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 한 시도가 더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터전 안정과 근무 부담 같은 구조적 문제 도 있지만 이 또한 소통을 통하여 해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교육 프로그램 도 관계성과 자율성을 동시에 지향해야 하는데, 이 두 가지 지향에 대한 이해 의 차이가 설문조사에 나타난 바와 같이 부모와 교사들에게 공동체성을 공 유하고 소통하는 데 혼선을 초래하기도 한다. 공동체성의 두 가지 지향을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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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호 모순으로 인식할 것이 아니라 각기 독립적이지만 상호 보완 할 수 있도록 그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이부미, 평등한 공동체의 첫 경험 만들기-공동육 아의 평등 문화를 중심으로).

이러한 모색의 가능성을 아이들의 활동에서 찾을 수도 있겠다. 일시적 자 유가 아니라 일상적 자유를 체화한 아이들은 자신의 자유를 누릴 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의 자유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함께 사는 방법을 깨닫게 된다는 관찰(김기나, 교사・아이가 함께 만드는 자유)은 소중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어른들 의 사례는 ‘방모임’에서 찾을 수 있는데, 방모임은 부모와 교사가 다소 심리적 으로 시간적으로 여유 있게 공동체의 일상에 관하여 소통하는 계기를 제공 하고 있다(이태경, 공동육아 ‘방모임’ 문화의 사회적 의미와 교육적 소통). 이 과정에서 공적인 주제인 ‘교육’과 사적 주제인 ‘내 아이’에 대한 대화가 충돌하기도 한 다. 그러나 공동체는 공사의 이분법에 의해 구분되는 영역이 아니라 공사가 중첩되고 공사를 연결하는 영역으로 의미가 있는 것이므로, 그 안에서 관계 성과 자율성의 최적점이 공동육아의 원리로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공동육아의 각 프로그램은 그 대상과 성격에 따라 특별히 중점을 두어야 하는 교육적 주제를 모색해야 한다. 초등 프로그램은 방과 후 교실, 지역아동센터, 대안 학교로 구분되고, 프로그 램의 차이는 있지만 발달의 관점으로 볼 때 공통적으로 ‘관계’와 ‘몰입’을 중 심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시도가 유용할 수 있다(김미영, 초등 아이들과 공동 육아). 이러한 시도를 통하여 유아기와 초등 학령기를 연계할 수 있고 또한 초

등교육과 중등교육을 연계하려는 시도도 필요하다. 초등교육도 유아교육과 공통의 가치를 추구하지만 활동 방식을 비구조적 활동에서 구조적 활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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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하면서 연령과 활동의 형식에 적합한 문화, 생태, 생활 관련 교육을 지속 할 수 있을 것이다(이화전, 공동육아 생애적 관점 갖기-초등 과정 사례를 중심으로). 교 사들의 교육과 연구 역량 성장을 교사 스스로가 지원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어 가는 과정은 공동육아가 자랑할 만한 프로그램으로 운영되고 있다. 현장 지원과 연구로 나타난 그동안의 성과는 물론 대단하지만, 상시적 지원자로서 의 현장교육지원전문가의 역할과 위상 그리고 그 이후의 성장 전망에 대한 모 색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된다(이말순, 현장교육지원전문가회의와 교사 성장). 1부 논평(조한혜정), 2부 논평(이주영, 이기범) 그리고 3부 토크콘서트(정유성, 박흥섭, 권미영, 박혜수, 김미아)의 소중하고 생생한 이야기를 정리조차 하지 못하

여 참으로 죄송함을 느낀다. 추억의 사진들, 아이들의 창작품들 그리고 공동 육아의 역사를 담은 멋진 작품으로 이루어진 전시회(김영아, 김경진. ‘삶을 담다 놀다, 어울리다, 꿈꾸다’)의 뜨거운 감동을 전할 방법을 모르는 무능력도 안타까

울 뿐이다. 사진과 작품은 순회 전시와 인터넷을 통하여 그리고 공동육아 역 사 작품은 걸개와 같은 방식으로 우리 모두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꼭 마련 되기를 기대한다. 또한 2014년 제9회 부산국제어린이영화제 3개 부문 수상 에 빛나는 두근두근방과후 씨네키즈팀의 작품인 ‘투탐정의 친구 찾기’와 해 송지역아동센터 어린이들의 공연은 길이 기억에 남을 것이다. 사무국과 연구 기획위원회 그리고 참여하신 모든 분들에게 뜨거운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이 글에서 발표하신 분들의 뜻과 달리 전달된 것이 있다면 다시 양해를 구한다. 이 글은 행사를 기획하고 참여한 한 개인으로서 그날의 이야 기들을 나름대로 재구성한 것으로 이해하여 주실 것을 부탁드린다. 해송아기 둥지로부터 36년, 첫 번째 공동육아협동조합으로부터 20년의 삶이 ‘공동육 아답게’ 단 하루에 그러나 무려 9시간의 대장정으로 그날 울려 퍼졌다. 이 짧 은 글의 부족함이 모든 이야기들을 직접 만나야 하는 필연적 이유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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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토크 콘서트

공동육아, 마을과 공동체를 말하다 때 : 2014년 11월 22일 | 곳 : 서울여성플라자 아트 홀

참석

사회

권미영

김미아

박혜수

박흥섭

정유성

솜사탕. 평택 느티나무 어린이집 졸업생

이야기. 해송지역아동 센터장

동글이. 부산 징검다리 놓는아이들 방과후 교사

신촌 우리어린이집 졸업 부모, ‘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 대표

서강대학교 교육문화학과 교수

녹취 정리 : 이송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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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공동육아협동조합 설립 20 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진행한 토크 콘서트 내용을 녹취,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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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리가 하는 일은 인간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하는 거고요, 그 믿음이 없어지면 아무것도 못하는 거지요. 20년 돌아봤으니 이제 앞으로 20년 아니 2백 년을 내다볼, 우리 아이들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우리 부모들도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그런 자리 이제부터 나가서 다시 마련합시다.

정유성

안녕하십니까? 공동육아를 아주 다채롭게, 입체적으로 이끌어 오

고 그 안에 몸과 마음을 푹 담가 온 사람들과 함께 공동육아의 지난날과 오늘 그리고 앞날에 대한 전망을 나눠 보는 그런 자리입니다. 함께하실 분들 먼저 소개할게요. 교통 사정 때문에 한 분이 아직 오지 못했습니다. ‘육아 공동체에서 만나 마을 노년 공동체를 준비하다’라는 엄청난 주제를 가지고 성미산에서 오기 로 한 박흥섭 선생님입니다. 김미아 선생님, 해송지역아동센터장이지요. 해송은 올해로 36년이 되었던 가요? 10년 전부터 그 현장을 맡고 계신 분이지요. 원래 별명은 이야기보따리 인데 길다고 해서 보따리는 생략한다고 합니다. 이야기 선생님. 그리고 두 번째는 박혜수 선생님, 부산 징검다리놓는아이들방과후 교사이 고요, 원래 별명은 동그라미인데 그것도 길다고 동글이. 마지막 손님이 호적상 이름은 권미영,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지어 주신 한자 이름. 진짜 이름은 권누리. 그리고 최근 어린이들에게 봉사 활동 갔다가 아이 들에게 받은 별명은 솜사탕. 1994년 신촌 우리어린이집에 생후 4개월 때부터

토크 콘서트 - 공동육아, 마을과 공동체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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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들어가 끊임없이 공동육아로 성장하여 지금은 대학 유아교육과에 다니고 있 습니다. 이렇게 세 분 이야기 듣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저와 함께 가운데 앉아서 이야기를 두런두 런 나누고, 여러분은 언제라도 끼어드실 권리가 있습니다. 자, 그러면 이야기 보따리부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달라고 부탁해 볼까요?

행동하라, 접속하라, 창조하라 김미아

저는 제 이야기를 간단하게 할 건데요. ‘행동하라, 접속하라, 창조하

라’는 제목은 제가 공동육아와 접속하면서 제 삶을 변화시킨 세 가지 추억이 라 뽑았고요. 저는 성남 두껍아두껍아어린이집(‘두껍아’) 조합원이었습니다. 조합을 만들었고요, 조합원으로 활동했어요. 제가 이 조합을 만들었던 이유는 현실의 어려움 때문이었어요. 우리 아이 가 네 살 때 일반 어린이집에 보냈는데, 제가 그때 저녁 9시쯤 퇴근하는 일을 했거든요. 제가 아이를 찾으러 갈 때는 거의 만화 영화 같은 텔레비전 프로그 램이 돌아가고, 우리 아이 딱 하나만 남아 있더라고요, 거기에. 몇 번 그 경험 을 하면서 아이가 너무 불쌍해 보이고 내가 좋은 엄마는 못 되더라도 이건 아 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한겨레신문에 우리어린이집이 나왔어요. 그래 서 이거다, 하고 생각하면서 그때 성남에서 살았기 때문에 분당에서 조합원 들 모집하려고 일간신문에 조합원 모집 공고를 냈어요. 그때까지 ‘교육’이란 게 제 삶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는 않았거든요. 그런데 공동육아와 접속 되면서 제 삶이 완전히 바뀐 경우예요. 우리 아이가 일반 어린이집을 다닐 때는 잘 안 웃고 예민한 친구였는데,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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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아에 다니면서 엄청 잘 노는 아이로 되었고, 지금은 스물두 살인데 지금까 지도 잘 놀아요. 제가 공동육아를 둘레 사람에게 강력하게 추천하는 이유 가 운데 하나가 아이들이 너무 재미있게 잘 노는 거예요. 그래서 별로 걱정이 안 돼요, 어디 가서라도 잘 놀 것이기 때문에. 최근에 우리 아들이 대학교에 들어 가자마자 여자 친구가 생겼어요. 그 여자 친구가 그러는 거예요, 민석이가 술 만 마시면 그렇게 엄마, 아빠 자랑을 한다고. 그래서 제가 역시 공동육아 잘했 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공동육아 과정에서 느낀 것은 아이들이 너무 행복한 거예요. 물론 저 는 공동육아 조합원이었을 때 조금 힘들었습니다. 분당에서 할 때 조합원들 가운데 잘난 사람들이 너무 많고, ‘사’ 자 들어가는 사람들이 엄청 많았어요. 그분들이 자신들의 교육철학을 양보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주 힘들었는데, 어쨌든 그런 과정에서 저도 훈련이 되었지만요. 저는 우리 아이들이 완전히 신나게 놀 수 있다, 아이들의 삶이 바로 그 순간 너무 행복하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아이가 이렇게 노는 것을 보면서 죄책감을 느꼈어요. 우리 아이만 이렇게 재미있게 놀아도 되는가, 하는 문제의식을 느 꼈고요. 그러면서 지역에 있는 몇몇 사람들과 함께 우리 사회의 소외 계층 아 이들에게 이것이 더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고, 그래서 무식하게 5백만 원 모아가지고 성남 꿈나무를, 꿈나무학교라는 공부방이었 지요, 그때는, 만들게 됩니다. 만들고 난 다음에 활동하다 보니까 아이들한테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5년 정도 성남 꿈나무에서 활동하다가 공동육아 에서 해송이 어렵다면서 파견 시설장을, 그때는 둥지장이었는데, 해 달라고 해서 해송으로 오게 되었고요. 제가 일정하게 뭔가 무식하게 실천했더니 공부방이라고 하는 것에 많은 것 이 접속되었어요. 그러면서 아주 다양한 것이 창조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저 는 많이 바뀌었습니다. 특히 성남 꿈나무학교에 온 여러 아이들과 그들의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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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우리는 튼튼한 관계망을 만드는 게 목적입니다. 그래서 행동하는 게 중요해요. 무엇인가를 창조하려고 하면 먼저 행동해야 새로운 것들이 접속되고, 접속되는 과정에서 서로를 변화시키기 때문이에요. 그러면서 제 삶은 훨씬 더 풍요로워졌습니다.

김미아

모를 제가 바꿨다기보다는 그들이 저를 완전히 바꿨지요. 저는 아주 어렵게 산 편은 아니었거든요. 제가 노동운동을 하기는 했지만 어릴 때 삶이 힘들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성남 꿈나무에서 만난 아이들이나 부모들 같은 경우에는 너무 너무 어려운 상황이나 내가 상상하기 힘든, 어른 이 힘들다고 하면 극복해야지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아이들이 아이들의 잘 못과는 상관없이 힘든 여건에 처한 것을 보면서

.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아

이들이 그런 현실에 굴하지 않고 그것을 뚫고 자기 자신의 삶을 펼친다는 것 이고, 그들의 부모도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그래서 예를 들면 이런 상상을 많 이 해 봤어요. 내가 만일 저런 상황이었다면 완전히 망가지지 않았을까? 그 러면서 제 삶도 많이 달라졌고요. 그런 문제의식을 가지면서 해송으로 2004 년에 오게 되고요. 해송은 저의 삶을 역동적으로 바꾸면서 더 많이 변신하도 록 하는 과정이었는데, 20대 초반에 이런 실천을 하는 선배 활동가들이 있었 던 거지요. 현재는 교수님이라고 불리는 분들이지만 그때는 새내기였던 것 같 고, 해송이 공동육아의 출발점인데 가장 소외받는 사람들에게 가장 의미 있 는 교육 실천을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전통 은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의미 있게 남아 있는 것 같고요. 그때가 1994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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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많은 주민들을 모아서 마을 잔치를 하면서 마을 속에서 아이들을 건강하 게 키우겠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행동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전의 해송은,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알 수 없어요, 불이 났습니다. 왜 불 행인지 다행인지 알 수 없다고 이야기했냐면 지역아동센터 선생님들이 우스 갯소리로 우리를 엄청 부러워해요. 우리가 불이 나고 난 다음에 지역아동센 터 평가가 도입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모든 자료가 타 버린 거예요. 전혀 준비 하지 않아도 되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이 정말 해송이 부럽다, 이렇게 이야 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너무 다행인 게 이때가 토요일 밤이었어요. 누 전으로 사고가 났는데, 바로 옆에 집이 붙어 있었거든요. 그런데 우리 공간만 다 탔습니다. 여기에 아주 안타까운 거 하나는 있지요. 우리 역사가 36년이 다 되어 가는데, 그 많은 자료와 사진 같은 게 다 타 버린 안타까움이요. 이렇 게 위기가 되니까 또 새로운 해송을 짓게 되는 거름이 되었고, 여기에서 해송 부모들이 적극 활약했습니다. 공동육아도 적극 지원했고요. 현재는 이런 상 태입니다. 우리는 튼튼한 관계망을 만드는 게 목적입니다. 이런 튼튼한 관계망을 만 드는 데 필요한 것이 교육이면 교육을 하면 되는 것이고, 술 먹는 게 필요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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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술을 먹으면 되는 것이고, 이렇게 배치를 해 나가면 된다고 생각하고요. 제가 2004년 처음 갔을 때는 부모 모임을 하니까 세 명 오시더라고요. 그래서 행

동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우리가 무엇인가를 창조하려고 하면 먼저 행동 해야 새로운 것들이 접속되고, 접속되는 과정에서 서로를 변화시키기 때문 에

. 자기가 권력을 가지면서 다른 사람을 지시해서 변화시키려고 하는

태도를 안 갖는다면 서로에게 긍정적인 흔적을 남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긍 정적인 흔적을 만들면서 부모도 변하고 마을도 지금 천천히 변하고

.

공부방이 지역아동센터로 되면서 1998년 이후에 지역아동센터 6곳 같은 경우에는 전국의 4천 곳 지역아동센터에도 일정한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 노 력하는 과정에 있고요, 저도 거기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해 송뿐만 아니라 지역에 확장 활동을 하면서 작은 도서관을 만듭니다. 이것도 가능하면 부모와 아이들이 힘을 모아 활동하고요. 6학년 아이들이 훈련된 솜씨로 바닥도 깔았습니다. 훌륭합니다. 창신동에 ‘뭐든지’라고 하는 도서관이 생기니까 더 다양한 접속을 해 갔고 요. 그러면서 나도 변하고 접속된 예술가도 변하고 주민들도 변하고 이런 과 정이 있었습니다. 책 한 줄 안 읽던 엄마들이 책을 읽기 시작했고요, 여러 부 모님들이 이런 활동을 했고요. 우리 센터에 미술 선생님으로 왔던 키다리콩 이 있는데, 이 친구들이 해송과 접속되면서 마을로 들어왔어요. 물론 제가 꼬 셨지요. 어쨌든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의미가 있었기 때문에

. 우리하고

접속되면서 우리는 이 친구들에게 그런 흔적을 남겼고, 이 친구들은 우리에 게 예술의 흔적을 남기면서 모두를 풍요롭게 했습니다. 제가 센터에 처음 갔 을 때 작가라고 하는 교사가 있었어요. 지금은 창신라디오 ‘덤’의 국장입니다. 이 국장 밑에 팀장이 있는데, 그 팀장이 제가 처음에 왔을 때 4학년이었던 정 빈이입니다. 월급 90만 원 받고, 지금 19살이에요. 이렇게 가쁘게 달려 온 전체 제 이야기 가운데서 가장 핵심은 실천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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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식을 느낀다면 어떤 스텝이라도 밟아라, 행동해라 하는 것이고, 그런 행동하는 과정에서 내가 생각하는 대로 되느냐, 현실은 내가 생각하는 대로 된 적이 한 10퍼센트 이하였던 것 같아요. 언제나 생각하는 대로 되지 않았지 만, 새롭게 접속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길이 열리고 새로운 창조물이 나왔던, 그래서 이렇게 사람들을 만났던 것이 결국은 내 삶을 훨씬 더 풍요롭게 만들 고, 나이가 들면 들수록 훨씬 더 멋있는 이야기가 되는 이런 과정이었다고 저 는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현재 또 이런 고민이 있습니다. 이렇게 접속해서 바뀌었다고 해서 이것이 지 속 가능한가, 하는 것이지요. 우리 무의식까지 점령한 경쟁이라든가 습관 이 런 것까지 바꿀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것이 지속 가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부분이 현재 제 고민으로 남아 있습니다. 정유성

들으셨다시피 해송아기둥지, 우리 모태 가운데 하나지요. 오랫동안

고생하면서 성장해 온 이야기, 특히 접속과 마을 공동체에 녹아든 그런 이야 기들, 귀한 이야기 많습니다. 이번에는 동글이가 방과 후 학교 이야기, 자신의 10년이 넘은 공동육아 이 야기를 들려주겠습니다.

공동육아 방과 후 교사로 마을 살기 박혜수

안녕하세요, 저는 부산의 징검다리놓는아이들방과후에 교사로 있

는 동글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마을은 대천 마을인데요, 마을 한가운데 대천천이 흘러서 대천 마을이라고 하고요.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이전하면서 조합원들이 단체 이주를 해 왔고요, 그 과정에서 생긴 여러 연대체랑 지역주민회가 같이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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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하고 교류하면서 마을을 꾸려 가고 있습니다. 해마다 공동육아가 주최하고 다른 연대체들이 함께해 단오제를 엽니다. 그 단오제에서 우리 방과 후 아이 들도 마을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거든요. 단순하게 공연을 하거나 참가를 하 거나 하는 것은 물론이고요, 할 수 있는 일을 의뢰받습니다. 홍보를 의뢰받아 서 홍보하거나 아니면 코너를 기획해서 운영하는데요,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코너니까 놀이판을 엽니다. 비석치기를 한 때도 있었어요. 아이들이 이렇게 마을의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을 지켜보면서 제가 변화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저는 교사란 삶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공동육 아 교사는 그중에서도 같이 살아가는 법, 그 즐거움을 가르쳐 주는 일을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마을이라는 것은 아이들에게 들려주 고 싶은 것들이 손에 잡히는 반경 안에 있는 그런 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 다. 저는 부산의 신도시에서 태어났고요, 아파트에서 생활했고, 마을 경험이 없이 자란 세대입니다. 그러다 보니 저한테 마을이라고 하는 것은 이념으로 생각하는 어떤 곳이고, 어른이 되면 언젠가 가지고 싶은 이상향 같은 그런 곳 이었거든요. 그런 마을이 좋아서 이 일을 시작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처음 시작했을 때는 마을 바깥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집이 이 마을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일을 시작하면서 이 마을을 만났으니까 어쩌면 당연히 마을 바깥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마을 바깥에 있으니까 아이들도 마을 바깥으로 떼어내서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제가 아이들에게 마을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 고, 아이들과 마을이 만나는 장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 다. 마을의 연대체에 가서 공연을 하거나, 마을의 무언가를 해 주거나 하는 것 들이 제가 아이들한테 마을을 만나게 하는 장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있는 데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아이들과 마을을 배우는 과정은 아니었고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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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를 사업처럼 아이들의 교육 활동으로 생각하지 않았나 싶어요. 그것 또 한 중요한 지점은 있는데요, 하지만 제가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삶으로 서의 마을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올해로 10년째 근무하고 있는데요, 날마다 같은 길을 걸어서 출근하 고 같은 마을에서 아이들하고 놀고 나들이를 다니고, 거기서 물건을 사니까 아줌마들하고 열심히 이야기도 하고, 밥 먹으면서 식당 아줌마랑 수다도 떨 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제가 그 긴 세월 안에서 마을 사람이 조금씩 되어 가 고 있었거든요. 제가 마을 사람이 되고 보니까 아이들이 마을 안에 이미 있었 고, 마을을 만나야 하는 사람은 아이들이 아니고 나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은 이미 학교가 마을 안에 있고 친구들도 마을 안에 있고 집도 그 안에 있고 노는 공간과 시간이 다 마을 안에 있었는데, 마을 밖에서 들어온 제가 아이들을 마을과 만나게 해 주려고 애쓰고 있었구나, 하고 조금 씩 생각이 전환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생각이 조금씩 바뀌니까 제가 애 쓰지 않아도 방과 후에서 하는 모든 것들이 마을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게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눈이 오면 방과 후 앞길을 치우는 일이나 낙 엽이 쌓이면 청소를 하는 일이나 그런 것들이 다 마을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 었구나, 그게 아이들과 마을을 이야기할 수 있는 좋은 거리구나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기 시작했습니다. 요즘 교사들하고 마을을 배움의 대상으로 삼 거나 목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인프라로 좀 활용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이 야기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마을에서 맛있기로 유명한 찐빵집 아주머니가 있는데요. 그분한테 찐빵을 어떤 마음으로 만드는지 강의를 들었는데, 아주머니가 우리 아이들에게 아 주 관심이 많아서 여러 가지 조언을 해 주었습니다. 아이들이랑 마을 안에서 배우고 이야기하고 마을 사람들과 소통하다 보니까 아이들이 마을에 대해서 배우거나 마을에 무언가를 해 주는 것보다 마을 사람들과 호흡하고 마을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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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에서 무언가를 느껴 가야 오히려 마음 깊이 마을이 자리 잡게 되지 않을까, 하 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다른 데서 찐빵을 사 먹을 수가 없습니다. 꼭 이 아줌마한테 찐빵을 사 먹으러 가거든요. 예전에 방과 후 아이들이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마을에서. 전단지를 붙여 서 부탁받은 일이 강아지 산책시키기나 집 청소였지요. 조합원들과 마을 아주 머니들께 인기를 많이 끌었던 청소 대행 서비스였거든요. 청소 대행 서비스나 강아지 산책, 마늘 빻기 이런 일을 부탁받아서 돈을 좀 벌었습니다. 그 돈으로 반은 영화 보는 데 썼고요, 반은 책을 사서 마을 도서관에 기부하기로 아이들 이 결정했습니다. 도서관에 가서 아이들이 책을 기부하겠다고 말씀드리니까 다른 좋은 일도 많은데 왜 마을 도서관에 책을 기부하기로 했느냐고 물으시 더라고요. 3학년 남자아이가 여기 마을 도서관은 우리 마을 사람들이 제일 많이 이용하는 곳이잖아요, 하고 이야기하는데, 그 아이 입에서 우리 마을이 라는 말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그 순간이 저한테는 아, 내가 계속해 서 마을을 고민하고 생각해야겠구나, 하는 감동의 순간으로 남아 있습니다.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아파트나 행정구역이 아니라 마을이라는 말을 쓸 때 저 같은 교사 입장에서 아이들과 마을을 이야기하기가 아주 즐거운 일이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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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마을 사람들과 호흡하고 마을 안에서 무언가를 느껴 가야 오히려 마음 깊이 마을이 자리 잡게 되지 않을까, 또 마을을 만나야 하는 사람은 마을에 사는 아이들이 아니고 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혜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이미 마을 안에서 자기 마을을 느끼면서 살고 있고 마 을의 한 사람으로서 몫을 하려고 하는데, 저는 교사로서 약간의 가치와 재미 를 부여해 주는 그런 몫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른들의 절대적인 지지가 아주 필요합니다. 아이들이 자기들이 쓴 시를 엮어서 시집을 펴낸 적이 있었는데, 도서관에 기증하겠다고 했습니다. 그건 우리 책이고 마을 도서관은 책을 놔두는 곳이니까. 마을 도서관 어른들 은 아주 정중히 저자 사인을 받고 신간 도서 칸에 꽂아 주었거든요. 그런 과정 을 겪으면서 책을 기증하기로 결정한 아이들의 마음에 우리가 마을 사람으로 서 존중받고 있구나, 하는 믿음이 생겼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거기서 어 른들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좀 더 쉽게 전달하고, 아이들 이야기를 좀 더 논리 적으로 어른들에게 전달해 주는 중간 다리 노릇을 하고 싶고요. 그와 함께 우 리 마을에서 아이들을 좀 더 잘 아는 사람으로서 어른들하고 아이들 이야기 를 많이 나누고 싶다는 바람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마을 어른들에게 놀이 강좌를 했는데요, 저도 이 강좌를 하면서 즐거웠고, 우리 언젠가 꼭 다시 만나서 놀자고 했는데 제가 너무 바빠서 다시 놀지는 못 했습니다. 아이들과 마을에서 마을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마을에서 배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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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하는 것들이 저한테 느껴지기 시작하니까 마을에서 놀고, 마을에서 배우고, 마을에서 그렇게 함께 살아가는 일들이 제가 교사로서 어떠한 삶을 아이들에 게 보여 주고 싶은지를 정리하는 시간이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떤 일을 이 마을에서 즐기면서 조금 더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시간이 되었고 요. 제가 고민을 하는 만큼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거리도 더 늘어날 것 같고, 그 런 시간들이 즐거운 걸 보면 덜 부담스럽게 재미있게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유성

저 현장을 제가 가 봤습니다. 참 좋은 곳입니다. 정말 마을살이가 보

였어요. 공동육아 처음 시작하면서도 그랬고, 한동안 대안 교육 현장을 쭉 다 녔습니다만, 가장 아쉬웠던 것 가운데 하나가 마을과 학교・교육 현장과의 관 계, 마을로서의 학교, 학교로서의 마을 이런 것들이었는데, 어떤 상징이 아닐 까 싶네요. 뿌듯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 이제 ‘공동육아와 평생을 함께하다’ 이야기를 솜사탕에게 듣겠습니다.

어린 시절 공동육아로 자라며 교사를 꿈꾸기까지 권미영

안녕하세요. 권미영, 권누리, 솜사탕입니다. 제가 말씀 드릴 게 제가

어떻게 커 왔는지, 어떻게 자라 왔는지 이런 얘기밖에 없어서 지금부터 그 얘 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저는 신촌 우리어린이집과 평택 느티나무어린이집에 다녔습니다. 제 성격 이 조금 활발하고 주도적이지만 고집도 세고 욕심도 많아서 친구들과도 많이 싸우고, 울기도 많이 울고, 선생님한테도 화 많이 내고 그랬던 게 어릴 때 모 습으로 기억에 많이 남는데요, 그렇게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초등학생이 되었 습니다. 초등학교에 저는 권미영 이름 석 자만 쓰고 들어갔어요, 한글을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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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않고 들어갔기 때문에. 그래서 다른 친구들보다 공부가 뒤처지고, 그로 인 해서 받는 스트레스와 친구들과 마찰로 인해 생긴 스트레스로 엄청 힘든 시 기였는데, 그때 그것을 부모님하고 같이 풀었어요. 그 기억과 경험 때문인지 지금도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부모님도 그런 걸 많이 노력 해 줘서 지금도 엄마 아빠랑 남자 친구 얘기도 하고 사소한 얘기까지 많이 하 고 있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년은 일반 중학교에 다니다가 2학년 때부터 지평선 중학교라고 하는 대안 학교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지평선중학교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학업이나 생활을 스스로 조절하고 결정하는 힘을 중요시했기 때 문에 자기 주도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고등학교도 지평선고등학교로 갔는데, 신설 학교여서 더 많은 소통을 필요로 했고, 선생님과 학생이 모두 함 께 모여서 학교를 만들어 갔어요. 학교에 무슨 일이 생기면 모든 사람이 다 같 이 모여 전체모임이라는 회의를 했고, 그러다 보니 사람과 소통하는 것이 자 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님들도 올 정도로 작은 학교에서 다 같이 소통하는 그런 분위기였습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중학교 때보다 활동도 더 많이 했는데요, 9박 10일로 해마다 동해안, 남해안, 서해안으로 도보 여행도 했고요. 진로를 찾는 활동도 많이 했는데요, 전 어릴 적부터 선생님이 되고 싶었어요. 고등학생이 되면서 유아교육에 관심을 갖게 되어서 유아교육과를 가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고등 학교 2학년 때 방과 후 활동으로 연극부로 들어갔어요. 연극을 하면서 연극 의 매력에 푹 빠져서 연극 쪽으로 진로를 바꿔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던 적 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문학 큰잔치라고 해서 저희 학교에서 하는 건데, 친구와 함께 얕 지만 ‘공동육아 어린이집과 미술’이라는 주제로 세미나 발표를 하기도 하고, 진로 테마 체험 학습이라는 것을 가서 교육에 관해서 많은 선생님들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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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공동육아를 나와 초등학교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부모님과 소통하며 풀었고, 중・고등 학교는 신설 대안 학교여서 더 많은 소통을 필요로 하다 보니 사람과 소통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소통하는 친구 같은 교사가 되고 싶었어요.

권미영

가서 물어보고 그러면서 진로 활동을 했는데요, 이 활동들이 제가 다시 유아 교육 쪽으로 가서 선생이 돼야겠다고 생각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2 학년 때까지 그렇게 활동하다가 3학년 때부터는 대입 준비를 했습니다. 이런 활동을 토대로 해서 입학사정관제로 들어갔는데요, 중앙대학교 유아교육과 에 합격했습니다. 대학생이 되니까 사실 오고 싶었던 과였기 때문에 공부를 열심히 할 줄 알 았는데, 막상 들어가니까 드디어 대학생이라는 생각으로 1학년 때는 좀 놀았 던 것 같아요. 학점도 잘 안 나오고 그랬는데, 1학년이 끝나고 2학년이 되니까 내가 원했던 대학 생활은 이게 아닌데, 꿈꿔 왔던 생활은 이게 아닌데 하는 생 각을 하면서 전공 수업에도 열심히 참여하고, 교양 수업으로 연기하는 것도 배우면서 하고 싶은 것을 열심히 하고 1학기를 마무리한 다음에 여름방학에 는 친구와 같이 그리스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리스로 여행을 떠났는데, 우리나라와는 다른 분위기나 문화나 이런 것 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감명을 받고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그래서 아쉬움도 많이 남고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거예요. 내가 알고 있던 세상보다 실제 세 상이 넓고 다양하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면서 내가 너무 내 진로를 유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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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에만 묶어 놨던 것은 아닌가, 너무 단정 지은 것이 아닐까, 나에게는 가능성 과 기회가 이렇게 많은데,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물론 유아교육도 누구 등 떠밀어 온 거 아니거든요. 제가 원해서 왔고, 그렇 기 때문에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열심히 하되 내가 하고 싶은 것들 에 도전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여행을 통해서 다짐하게 되었고요. 지 금은 수업도 열심히 듣고 있고, 방학 때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 세세 하게 계획을 짜고 있습니다. 정유성

정말 흐뭇하지요? 여러 가지로 정말 흐뭇합니다. 이제 여러분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토크 콘서트 2악장 시작합니다. 우리 ‘이야기’는 1980년대 학번이시죠? 앞으로 전망을 ‘예술가들의 상상 력, 봉제인들의 기술, 인문 철학의 내러티브가 접속되어 서로에게 침투되고 서로를 변형하게 하자’ 라고 하셨는데요. 아시지요? 해송 근처가 봉제 쪽 현장이 많은 곳입니다. 미싱사 같은 예술가, 미싱 하는 예술가, 예술가 같은 미싱사, 예술 하는 미싱사, 미싱사 같은 철학 자, 미싱 하는 철학자, 철학자 같은 미싱사, 철학 하는 미싱사. 이 이야기를 잠 깐좀

. 예상 질문 밖이죠?

토크 콘서트 - 공동육아, 마을과 공동체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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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예술가의 상상력, 봉제인의 기술, 인문 철학의 내러티브가 접속되는 삶 김미아

제가 상상하는 부분인데요, 지금도 제 실생활 속에 녹아들었으면 하

는 생각을 하고 있는 부분인데, 제가 실천을 하다 보면 자꾸 가르치려고 행동 하는 경우를 섬뜩섬뜩하게 아주 자주 발견합니다. 그런데 제가 가르치려는 순간 아무것도 안 들어가더라는 거예요. 아무것도 안 들어가서 접속이라는 어떤 표현을 쓰는 건데, 예를 들면 예술가랑 접속되고 엄마들하고 접속될 때 도 마찬가지인데, 서로가 가르치겠다는 생각을 버리는 상태일 때는 엄청 많은 변화가 일어났던 것을 느꼈어요. 최근에 주민 사서로 일하는 엄마 얘기를 들었는데, 이 엄마가 정상적인 가 정에서 자라지 못하셨어요. 이 엄마가 중학교에 들어가서 택시를 친구랑 탔 는데, 벨트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모른 거예요. 가정에서 자라고, 보육원에 서 자라서. 그것 때문에 택시 타는 내내 엄청나게 땀을 흘리셨대요. 그런 얘기 를 들으면서, 제가 그 어머님과 접속되면서 그날 제 삶의 어떤 한 페이지가 달 라진 느낌 있잖아요. 아, 내가 경험하지 못한 다른 영역에서 사람들은 안간힘 을 다해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구나! 그런데 내가 그런 사람들에게 뭘 가르치 는가, 하는 생각.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서로가 서로에게 흔적을 더 많이 남기는 것 같고, 그 흔적이 내 삶을 더 풍요롭게 하는 것 같아요. 지금 창 신동에서 예술가하고 접속하고, 엄마들하고 접속하고, 또 엄마들이 단지 미 싱사로만 살지 않고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변화하는 것을 보면서 제가 풍요 로워졌다는 얘기예요. 이건 공동육아에서 이야기하는 수평적 네트워크라는 것하고 깊이 관련 이 있는데, 저희가 무의식까지 전혀 수평적이지 않거든요. 오늘도 여러 가지 가 나왔는데, 우리 사회 자체가 우리의 무의식까지는 수평적으로 안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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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저희가 안간힘을 써서 이렇게 수평적으로 접속하려고 노력하고, 접 속하면서 서로를 긍정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이런 말을 썼 어요.

마을은 대상이 아닌 삶의 터이다 정유성

지금 이야기 말에 이어서 동글이 쪽 마을로 가 볼까요. 아까 그 말이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10년 동안 쭉 아이들과 마을에서 지내면서 자신은 마 을 밖에서 늘 출퇴근하고, 아이들은 마을에 살고 있었는데 굳이 마을을 가 르치고 마을을 가까이 전달해 주려고 한 것을 깨달았다. 그때 어떤 느낌이던 가요. 박혜수

헛짓을 했구나! 그냥 내가 배워야 했던 처지였지요. 아이들이 마을

안에 있었기 때문에 어떤 공간에서 노는지 내가 아이들한테 배워야 했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그 다음에 마을을 삶의 터가 아니라 그것 또한 어떤 연대체 인 것처럼 대상으로 삼았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정유성

이를 테면 마을이 이념으로 다가오기 시작하면 머리 아파지는 거지

요. 1995년인가, 96년인가 제가 현장으로 다니면서 교육을 많이 했습니다. 강의하러 갔는데, 마침 부모회의하면서 간식을 되도록 유기농으로 해 보자, 비싼데 어떡하나, 유기농 간식을 성사시키도록 가열차게 투쟁하자, 그런 이야 기를 하고 있었어요. 어찌 보면 공동육아라는 것을 처음 시작하면서 내세운 목표이기도 하고 지 향이기도 한데, 저희는 좀 낭만적인 시대인 1970년대 대학 출신이어서 그런 데, 공동육아는 1980년대 사람들이 주축이 되지 않았습니까? 무척 그런 것 들이 이념화되고 딱딱하게 다가왔던 느낌이 있었습니다.

토크 콘서트 - 공동육아, 마을과 공동체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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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육아 공동체에서 만나 마을 노년 공동체를 준비하다 정유성

박흥섭 선생님이 오셨는데, 이제 박흥섭 선생님 이야기를 들어보겠

습니다. 박흥섭

저는 공동육아를 만나서 인생 전체가 행복했기 때문에 꼭 감사의

말씀을 전하려고 참석했습니다. 저는 1994년 신촌 우리어린이집 초창기 멤버인데요, 아이를 계획하지 않고 덜컹 낳았고, 당연히 부모님이 봐 주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부모님이 서울에 와서 백 일 정도 있다가 서울 이곳은 사람 살 곳이 못 돼, 하고 아이를 데리고 부모님 집으로 내려갔어요. 우리는 주말마다 부모님이 사시는 청주에 왔다 갔다 했어요. 그때 헤어질 때마다 엄마하고 아이가 너무 힘든 거예요. 그 래서 서울로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공동육아 한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저희 부부는 열심히 뭐든지 시키는 대로 하겠다면서 공동육아를 시작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아이 하나만 낳으려고 했는데 공동육아를 믿고 둘째를 낳았어 요. 그래서 잘 키웠는데, 아이만 잘 키운 게 아니라 좋은 어른들을 많이 만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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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114호


아이 하나를 잘 키우기 위해서는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잖아요. 공동육아 졸업했다고 되는 것은 아니고, 그 지역에 남아서 후배들하고 같이 조금이나마 노력할 때 그 지역사회가 밝아질 수 있고, 우리 아이들이 그 안에서 잘 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박흥섭

것 같습니다. 저는 협동조합을 했는데, 공동육아처럼 조합원의 참여라든가 권리를 잘 지키는 곳이 없습니다. 그렇게 좋은 부모들 만나서 재미있게 지내 던 차에 성미산 지키기 싸움이 있었어요. 성미산은 아이들하고 어른들이, 나 이 드신 분들이 즐겨 찾던 곳인데, 싸움을 하면서 지역의 여러 이웃을 만났 고, 그런 이웃들하고 이 지역에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20년 정도 살고 있 습니다. 공동육아를 통해서 만난 부모들은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아주 첨 예하기도 한 아이 교육 문제를 서로 친근감 있게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다양한 것을 많이 만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방과 후도 만들었고, 생 협도 만들었고

. 그리고 철마다 같이 모여서 축제도 하고, 가을에는 운동

회도 하고 그렇게 행복하게 지냈던 것 같습니다. 저는 협동조합을 했는데, 그 런 이웃들이 없었으면 가능했을까 싶고, 누군가 뭔가 한다고 했을 때 고운 눈 으로 바라보고 같이 돈을 모아 주고 해서 그 지역에서 다양한 조직을 만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아이 하나를 잘 키우기 위해서는 마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잖아요. 저는 정말 마을 덕을 많이 봤던 것 같아요. 더구나 남자아이들 자랄 때는 사

토크 콘서트 - 공동육아, 마을과 공동체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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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건 사고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서 전혀 얼굴을 모르는 곳 같으면 극단으로 말 해 범죄자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을 지역에서 어른들이 있고 봐줘서 엇나가지 않고 잘 컸던 것 같아요. 지금 저희 아이가 스물세 살입니다. 어디 가면 사람들이 물어봐요. 그렇게 키워서 너의 아이가 잘 컸냐? 잘 컸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아이가 축구를 좋 아해서 축구 선수가 되었는데요, 감독님한테 우리 민수 축구 잘합니까, 그렇 게 물어보면 감독님이 민수 참 인간성이 좋아요, 이렇게 말해요. 사실 애가 축 구를 잘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 그런데 정말 어른들하고 소통 잘

하고, 친구들하고 잘 지내요. 이번 가을에는 친구들하고 넷이서 서울에서 땅끝까지 자전거 여행을 갔습 니다. 자기네들끼리 프로그램 짜고 모자란 장비, 자전거부터 헬멧 이런 것들 을 이웃 어른들한테 빌려서 갔다 왔거든요. 제가 봤을 때는 스스로 어떤 것 을 만들 수 있고 스스로 뭔가를 해 나갈 수 있는 그런 힘을 공동육아에서 배 운 것 같습니다. 다른 지역에서도 마을 만들기 이런 일을 다시 시작하려고 하는 곳들이 있 습니다. 우리 경우를 보면 공동육아 졸업했다고 되는 것은 아니고, 그 지역에 남아서 후배들하고 같이 조금이나마 노력할 때 그 지역사회가 밝아질 수 있 고, 우리 아이들이 그 안에서 잘 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동육아 끝났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니라 지역에서 후배들하고 선배들이 다양한 시도 를 함께한다면 우리 아이들이 잘 클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 각합니다. 정유성

그 생각이 들어요. 저희가 맨 처음 만들었던 책 제목이 ‘함께 크는

우리 아이’죠? 그때는 ‘아이’에 방점이 있었습니다. 아이들 제대로 자랄 환경 안 되지, 교육은 거의 범죄 수준이지, 사회는 말할 것도 없고. 그래서 아이에 방점을 찍고 아이들에게 집중했다면, 저는 부모 교육 가서 그런 얘기를 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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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예전에는 아이들을 키우고 기를 수 있었다, 왜냐하면 안정적인 농경사회 나 산업사회는 전망을 할 수 있으니까, 이래라 저래라 할 수도 있었고, 요즘 애 들이 강아지예요? 화초도 아니고, 키우고 기를 수 없다, 함께 성장해 간다, 하 는 말을 하는데요, 이제는 ‘함께 크는 우리 아이’에서 ‘우리’에 방점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박 선생님 이야기는 그 결과라 할 수 있지요, 그렇지요? 그만큼 어른들도 끊임없이 성장해야 하고, 그 어른들이 성장하는 터전이 다름 아닌 마을이라는 얘기를 한 거지요. 이제 궁금한 점, 알고 싶은 점, 옛날이야기 같이 나누고 싶은 분 있으면 마 이크 돌리겠습니다.

교사의 삶과 터전을 분리해야 유권근 삼동. 파란하늘어린이집 교사 저는 교사고요, 동글이에게 질문이 있는데요.

마을에 지금 들어가 사는 건 아니지요? 박혜수

네. 저는 내년쯤 아마 들어가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유권근

그동안 왜 마을에 못 들어갔는지 궁금해서

. 저도 먼 곳에서 출

퇴근하다가 바로 터전 앞으로 이사해서 살고 있는데, 많은 교사들이 마을로 못 들어오는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교사가 같은 지역에서 같은 생활을 아마 들하고 아이들하고 같이 느끼는 것과 출퇴근하는 것은 좀 차이가 있는 것 같 은데, 동글이는 어떻게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 박혜수

아주 절실한 개인 문제가 있어서 마을에 못 들어갔는데요. 제가 독

립을 했거든요. 아직 결혼은 안 했고 내년쯤 예정인데, 제가 독립한 이후에 부모님께서 우리 마을로 이사를 오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독립생활을 유지 하든가, 엄마 집으로 다시 들어가든가 하는 문제가 되어서 마을로 들어갈

토크 콘서트 - 공동육아, 마을과 공동체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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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수 없었습니다. 결혼을 해서 독립을 보장받은 다음에 마을로 들어가려고 아 직 마을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만 아니면 아마 벌써 들어갔을 겁 니다. 저는 어느 정도 거리가 필요한 부분도 분명히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왜냐 면 교사는 자기 삶이랑 터전이 분리되지 않았을 때 노동이 계속 이어지는 듯 해서 힘든 지점도 있거든요. 그것을 스스로 분리할 수 있을 때는 마을로 들어 가는 것이 훨씬 행복한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대와 주최의 변화에 맞서 기본을 지켜야 진선경 소나무. 성미어린이집 원장 저도 교사고요, 박 선생님께 여쭤 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초창기 때부터 공동육아를 시작하고 계속 그 마을에 남아서 협동 조합을 만들어 가면서 이런저런 일을 함께하고 있는데, 공동육아를 처음 같 이 시작했던 사람들은 어쨌든 공동체라는 의식, 운동성이 있어서 같이 만들 어 가고 협력해 가는 데 크게 어려움이 없었다면, 지금은 그냥 이용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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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114호


시대도 많이 달라졌고, 주최들도 많이 달라졌고 하니까 끊임없는 변형인데, 그 변형 속에 어떤 것들을 잘 챙겨서 기본으로 끌고 가느냐가 핵심일 것 같아요.

정유성

하는 사람들을 포함해 다양한 사람들이 들어오잖아요. 그런 사람들을 만나 서 같이 협력해 가는데 힘든 부분이 많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그런 부 분에서 고민이 될 때도 많고

. 선배로서 그런 부분을 어떻게 정리해 나가

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박흥섭

별로 신경 못 쓰고 제 앞만 보고 왔던 것 같아요. 좀 후회되는 것 가

운데 하나는 우리 지역에 공동육아가 여러 곳 있는데, 한 조합원은 졸업해서 도 공동육아 행사 같은 데를 열심히 쫓아다니고 있어요. 그런 모습을 보면 새 로 들어온 조합원들이 중심이 되어 마을에서 일을 하면 내가 잘못했구나, 하 는 생각이 들어요. 이 자리를 빌어서 사실 반성합니다. 정유성

저도 그런 질문을 자주 받았고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2, 3년 전까지

도 현장 가면 오래된 노장들이 늦둥이를 낳아서 다시 데리고 들어오면서 어, 공동육아 변했다, 옛날 같지 않다, 이런 말들을 했는데, 한편 아쉽기도 하겠 지요. 그때 세운 여러 가지 목표들, 꿈들, 이상들 그대로 가겠습니까? 시대도 많이 달라졌고, 주최들도 많이 달라졌고 하니까 끊임없는 변형인데, 그 변형 속에 어떤 것들을 잘 챙겨서 기본으로 끌고 가느냐가 핵심일 것 같아요.

토크 콘서트 - 공동육아, 마을과 공동체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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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사회로 나가는 다리 노릇을 하는 공동육아 박찬훈 산타. 우리어린이집 부모 우리어린이집 산타고요, 누리한테 물어볼게요. 마

지막에 그리스를 갔다 와서 뭔가 내가 여태까지 알던 세상과는 다른 세상이 있다, 이런 얘기를 했어요. 제가 성미산마을에 2010년에 들어왔는데, 그 전에는 이런 마을이 존재한 다는 것을 전혀 몰랐고, 듣고는 깜짝 놀랐고, 즉흥적으로 그냥 왔고, 지금도 굉장히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한테 소개해 준 분에게 성미산학교 에 다니는 자녀가 있었는데, 그 딸아이에게 네가 아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야, 그 이야기를 계속 하더라고요. 공동육아에서 어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 면서 존중받고 의미 있는 것들을 해 보는 충족감이 굉장히 큰데 세상에 나가 면

. 우리가 20주년 행사를 얼마 전에 했거든요. 그런데 두 가지 이야기가 있더

라고요. 중학교 2학년 친구가 일반 학교에 가니까 선생님하고 관계 맺는 게 너무 힘들었다, 공동육아 안에서 통용되던 문화가 세상 밖에서 충돌한다는 거지요. 그런데 스무 살 넘은 친구는 자기는 오히려 그게 더 좋았다고 해요. 누리 학생은 공동육아형 인간으로 자란 것 같은데, 세상에 나가 보니까 내 가 이 알을 깨야 더욱 더 본질적으로 공동육아가 추구하는 데 도달할 수 있 지 않을까, 하는 감을 잡은 게 아닌가 싶어요. 그 이야기를 해 주면 고맙겠습 니다. 권미영

세상이 넓구나, 다양하구나, 하고 말한 것은 정말 그냥 다양해 . 제가 서울에 대학생이 돼서 왔어요. 김제에서 살고 있었는데 서울을

많이 돌아다녀 본 적이 없어요. 제가 이렇게 도전하는 정신이 약간 부족해요, 그냥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적응해서 잘 살아야지 하는 것도 있고

. 이런

마음가짐으로 살다가 그리스를 가니까 내 환경, 학교에서 보던 것과는 완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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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랐어요, 우리나라는 안 그런데 지나다니면 다 유적지고

. 또 다양하구

나, 하고 느낀 건 친구 아버지가 그리스 신화 이야기를 많이 해 주었는데 그 이 야기를 들으니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내가 유아 교사를 안 하고 이런 것을 배 워서 가이드를 해도 되는구나, 이런 생각도 들고

. 그래서 다양하다고 말

했던 거예요. 공동육아에서 자란 학생이 일반 학교에서 선생님이랑 상호작용하는 데 어 려움을 느꼈다는데, 저도 느꼈어요. 제가 일반 학교를 1년 다녔다고 했잖아 요. 그때 많이 느꼈어요. 선생님은 공부 잘하고 그러는 애들만 이뻐하고, 제 가 괜한 욕심에 치근덕대기도 했는데 선생님들은 별 반응도 없고 당황하거나 했어요. 그런데 대안 학교에 가 보니까 공동육아에서 그렇게 상호작용했던 거랑 똑 같은 거예요. 내가 이렇게 해도 선생님이 다 받아 주니까 아, 다 원래 그러는 구나, 모든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다 이렇게 하는구나, 생각했는데, 말씀을 들어보니까 저도 일반 학교 때 그런 기억이 있기 때문에 더 대안 학교로 전학 을 가고 싶어 했고, 대안학교를 가서 상호작용을 해서 나도 그런 교사가 되어 야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정유성

지금까지 늘 해 온 고민이지요. 처음에는 우리끼리 그런 생각을 했

어요. 그때는 공동육아밖에 없었으니까, 제대로 된 대안 교육 현장이 생기기 전까지는. 예방주사라고 생각하자, 예방주사의 힘으로 언제라도 그런 자율, 평등의 힘이 나올 수 있도록 하자. 험한 세상에 내보내는 마음이 아주 안타까 웠지요. 하지만 대안 학교 운동을 쭉 하면서 조금 안심은 되었는데, 그러나 사회에 나가면 이렇게 되겠지요. 그거는 우리의 영원한 과제고 숙제면서 동시에 그런 프로그램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사회로 가는 다리 노릇을 하는 준비 과 정, 이런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만

.

토크 콘서트 - 공동육아, 마을과 공동체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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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평등을 중요시하는 공동육아 강성혜 그네. 개똥이네어린이집 교사 솜사탕한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요. 공동

육아에서 이만큼 성장했잖아요. 저는 교사인데 또 어른이잖아요. 혹시 공동 육아에서 어른들과 교사와 함께 생활하면서 어떤 교사 어떤 어른이 가장 생 각에 남는지, 그게 좋은 경험일 수도 있고 나쁜 경험일 수도 있지만 그건 우리 가 판단할 부분은 아닌 것 같고 들 가운데 그런 분이 계신지

. 본인이 성장하면서 만난 어른들, 교사 . 아니면 솜사탕도 이제 어른이 되고 교사가

되었잖아요. 그러면 어떤 어른이 되고 교사가 되고 싶은지 물어보고 싶어요. 권미영

사실 어린이집에서 기억나는 선생님은 별로 없어요. 기억나는 분은

‘깨몽’? 그리고 저랑 상호작용한 것이 기억난다기보다는 별칭, 그 별칭이 친근 해서

. ‘그대로’, ‘괜찮아’처럼 그 별칭을 부르거나 들을 때 포근하다는 느

낌을 받았던 선생님들이 조금 생각나고, 중・고등학교 선생님들은 대안 학교 다니면서 정말 제2의 부모님이라고 할 정도로 상호작용도 잘 되고 소통도 너 무 잘되었기 때문에 다 생각나요. 선생님들과 소통하면서 제가 되고 싶은 교 사도 ‘소통하면서 친구 같은 교사’ 이렇게 생각했는데

. 저는 고등학교 때

소통을 많이 해서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발표를 듣고 보니까 공동육아 에서도 평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게 어릴 때부터 계속 쌓여 온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이런 교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변화를 위해서 몸을 다 던져라 이경아 금잔디. 참나무어린이집 교사 이야기보따리 선생님께 질문하겠습니다. 공

동육아는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것 같아요. 부모도 그렇고 교사도 그렇고.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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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교사인데, 교사는 해마다 맞이하는 부모들이 바뀌잖아요. 그래서 해마다 같은 내용을 하면서 갈등하기도 하고, 내가 더 다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 하기도 해요. 그런데 이야기는 어쩜 저렇게 큰 에너지를 가지고 저렇게 일을 할 수 있을 까, 저런 원동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싶었어요. 공동육아 교사 일을 하면 서 지역 일도 해야 하고, 교사 일도 해야 하고, 부모님도 상대해야 하고, 특히 아이들도 잘 봐야 하고,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데 그것을 아주 오랜 시간 해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는지 솔직하게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김미아

그런 이야기를 같이 활동하는 사람들한테 가끔 들어요. 그래서 생

각해 봤어요, 왜 그럴까? 그런 것 같아요, 예를 들면, 관계에서 에너지를 빼앗 는 관계가 있고, 보태지는 관계가 있는 것 같아요. 보통 관계를 맺을 때 에너지 를 안 빼앗기려면 내가 능동적인 상태여야 안 빼앗겨요. 그래서 제가 엄청 당 위로 일할 것같이 느끼시겠지만 저는 제가 좋지 않은 일은 안 합니다, 일체. 그 리고 늙기도 했기 때문에

. 제가 마흔 살 이후에 결정한 거예요. 마흔 살

이후의 삶에서 내가 하고 싶지 않은데 당위로 해야 하는 일은 안 하겠다, 이렇 게 생각했고요. 그 다음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어요. 그러면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은 어떻 게 구분할 거냐? 저는 마흔 살에 그런 결정을 하면서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을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저한테 했어요. 해송의 일이 공적 인 일이고 내 생활은 따로 있고 이런 생각은 안 하게 되었어요. 내가 의미를 갖고 뭔가 접속을 통해서 나를 확장할 수 있는 느낌이 드는 것, 당기는 것 이 런 거 중심으로 일을 했고요. 그러다 보니까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엄청 에너 지를 받는 거지요. 공동육아 부모 시절에는 그렇게 못 했어요. 제 에너지를 빼앗아 가는 경우 도 있었던 것 같아요. 공부방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아이들이든 부모들이든

토크 콘서트 - 공동육아, 마을과 공동체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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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새로 들어오는 분들이 생각이 다르지 않다면 오히려 우리가 고립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변화를 고민해 가는 과정이 또 우리를 깨어나게 하는 과정이 될 거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들의 삶 자체가 나에게는 어쨌든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투덜대며 일하는 것이에요. 투덜 대면서 일하려면 안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우리는 안 할 용기는 없는데 그냥 하면서 더 에너지를 빼앗기는 이런

. 그래서 교사들한테 하

기 싫은 일은 하지 마라, 투덜대면서 하지 말고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 몸을 다 던져라, 이렇게 얘기하는데 그 맛을 알면 어떤 때 나에게 에너지가 들어오는 지 알기 때문에 좀 더 현명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유성

우리 모두 새겨들을 말을 해 주어서 고맙습니다.

변화를 고민하는 과정이 깨어나는 과정이다 박순모 울타리. 파란하늘방과후 교사 저는 공동육아 교사 울타리이고요, 제가 공

동육아 20주년에 되돌아보니까 근무한 지 9년째 되어 가는 교사인데 가장 큰 특혜를 받은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공동육아를 하면 비용이 많이 들잖아요. 그런데 저는 우리 아이들을 지역아동센터에 보내면서,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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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114호


공동육아 교사를 하면서 효율적으로 살아왔습니다. 세 아이가 다 송파 꿈나 무를 6년씩, 5년씩 잘 채워서 다녔기 때문에 알뜰하게 공동육아의 진수를 맛 본 사람이에요. 저는 공동육아를 안 지 얼마 안 되었지만 그 속에서 혜택받고 사는 재미를 알게 되어 너무 고맙고요. 제가 궁금한 것은 공동육아의 처음 시작은 필요에 의한 여러 사람들 생각 을 모아서 출발했지만, 지금 현재에 보면 단순히 내 아이를 맡기거나, 아니면 내 필요한 것을 채우기 위해 공동육아의 처음 시작과는 다른 의도에서 접근 하는 교사와 부모가 많거든요. 그런 분들에게 안타까움이 있고요. 그것을 이 끌어야 할 교사와 조합원들도 마찬가지로 비슷하다고 봐요. 그분들의 생각을 공감할 수밖에 없는데요, 시대 상황이 있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 어떻게 조언 해 줄 수 있는지

, 이야기 선생님이나 동글이 선생님이 대답해 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박혜수

같은 편한테 공격받은 기분인데

. 저는 지금 생각이 달라지는

건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요, 만약에 들어오는 분들이 생각이 다르 지 않다면 오히려 우리가 고립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들어오는 분들이 생각 이 바뀌어 가기 때문에 우리가 변화에 대해서 고민할 수밖에 없고, 그 변화를

토크 콘서트 - 공동육아, 마을과 공동체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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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고민해 가는 과정이 또 우리를 깨어나게 하는 과정이 될 거라는 생각이 좀 있 고요. 그래서 생각이 좀 다른 사람들과 끈질기게 이야기하는 것이 제 방법이 거든요. 저는 주로 그렇게 하는 편인데, 다들 교사들마다 노하우가 있지 않 을까요? 김미아

저 같은 경우는 경험이 하나 있는데, 특히 해송에 가면서 아주 제가

목적의식을 갖고 그런 주장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는데요. 우리 센터 아빠 한 분이 편부예요. 재단하고 아이롱 하는 분인데, 학교 선생님에게 전화를 받 아 본 적이 평생에 한 번도 없는 분이에요. 그런데 아이를 해송에 보낸 다음에 전화를 받게 된 거지요. 그것도 일주일에 한 번 이런 게 아니라 거의 날마다. 그 친구가 컴퓨터 중독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거의 날마다 전화를 했어요. 전 화를 하면 “안녕하세요, 아버님” 이렇게 하잖아요? 그 아빠가 2, 3년 지나서 감동해서 이야기하는 거예요. 정말 그때는 스토커인 줄 알았다, 내 평생에 우 리 아이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사람 처음 봤다. 제가 해송에서 활동하면서 확신 있게 말씀드리는 것 가운데 하나는 이 세 상에 안 변하는 건 단 하나도 없다는 거예요. 모든 것들이 다 변한다, 우리가 그런 확신이 없을 뿐이지 나에게 어떠한 사람이 접속되더라도 모두가 다 변 한다. 예를 들면 지금 공동육아 같은 경우에 이기적인 부모들이 접속해서 싫다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그런 일이 대체로 많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난관 에 두려워하지 말고 그 사람도 충분히 변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도전 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 우리가 출발할

때 이 사람은 이래서 안 돼, 저 사람은 저래서 안 돼, 하고 시작하면 그분들은 끝까지 안 변하더라고요. 어떤 관점으로 관계를 대하느냐가 대단히 중요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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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114호


10년 뒤의

공동육아와 나 정유성

저도 교육을 업으로 삼고 있습니다마는, 결국 우리가 하는 일은 인

간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하는 거고요, 그 믿음이 없어지면 아 무것도 못하는 거지요. 물론 결론을 말하면 잘 안 변합니다만, 그러나 ‘그럼 에도’이지요. 이제 한 사람씩 ‘10년 뒤에 공동육아와 나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하는 질 문에 단답형으로 대답해 주시길 바랍니다. 박 선생님께 먼저 물어볼게요. 10 년 뒤에는 박 선생님과 공동육아의 관계는 어떨까요? 박흥섭

거의 단절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귀촌을 준비하고

있어서. 거기는 굉장히 좋거든요. 아이들 좀 많이 보내 주시면 잘 보겠습니다. 정유성

공동육아는 장소일 뿐 아니고 정신이고, 우리의 꿈이니까요.

김미아

저는 좋은 할머니가 되어 있으면 좋겠습니다.

정유성

공동육아의?

박혜수

저는 공동육아를 믿고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부모가 되어 있을 것

같습니다. 정유성

그래서 이 저출산 시대에 공동육아의 합계 출산율이 굉장히 높은

거 아시지요? 여러분, 부담되시겠습니다. 우리 누리, 어제고 오늘이고 미래인 누리의 이야기를 끝으로 마치겠습니다. 권미영

10년 뒤 30주년 학술대회에서도 다시 또 여러분 만나지 않을까

정유성

우리끼리 이야기지만 이렇게 재미있는 자리는 없습니다. 그렇지요,

.

여러분? 20년 돌아봤으니 이제 앞으로 20년 아니 2백 년을 내다볼, 우리 아 이들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우리 부모들도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그런 자리 이 제부터 나가서 다시 마련합시다. 고맙습니다.

토크 콘서트 - 공동육아, 마을과 공동체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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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 제언

보육의 공공성 강화와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위하여

장미순 ‘참보육을 위한 부모연대’ 운영위원장. ‘참보육을 위한 부모연대’는 2012년부터 운영되고 있는 영・유아 학부모들의 단체다. 영・유아 부모들이 조직화되어 있 지 않아 보육 정책에서 부모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것에 공감한 부모들이 만든 단체로 참된 인권 보육, 공 공 보육, 진정한 무상 보육 실현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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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114호


정부는 저출산・고령화라는 국가적 위기의식 속에 2012년부터 무상 보육을 시행했다. 그러나 보육의 공적 기반을 확충하지 않고 개별 가정에 보육료를 지원하는 방식의 보육 정책은 보육 현장의 그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고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재정 마련도 제대로 못한 채 불안하게 유지되고 있다.

한국은 그동안 경제 규모에 비해 보육과 양육에 대한 지원과 투자가 아주 부 족했다. 무상 보육 시행 전까지는 보육 예산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권 고안인 국내총생산(GDP)의 1퍼센트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0.4퍼센트에 지 나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 들어 무상 보육이 확대되면서 보육 예산이 늘어나 기는 했으나 여전히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그동안 아이 낳고 기르 는 것을 개별 가정과 여성에게 떠넘기며 국가의 책무를 회피했던 정부가 저출 산・고령화에 대한 국가적 위기의식 속에 2012년부터 무상 보육을 시행했다. 그러나 보육의 공적 기반을 확충하지 않고 개별 가정에 보육료를 지원하는 방 식의 보육 정책은 보육 현장의 그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고 3년이 지난 지금 까지 재정 마련도 제대로 못한 채 불안하게 유지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말기부터 시행한 무상 보육은 정책적 부실함 때문에 선거를 앞두고 급조된 정책이라는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이 같은 비판과 제대로 된 보육 지원에 대한 대중적 열망을 의식한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때 ‘0~5세 국 가 책임 보육’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뿐만 아니라 당선 직후 시장과 도지사가 모인 자리에서 ‘국가 책임 보육’을 약속했다. 그러나 약속과 달리 박근혜 대통 령은 지난해 보육 예산을 지방자치단체에 떠넘기며 정부에 대한 불신을 키우 더니 올해는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각 시・도 교육청에 떠넘기면서 교육 재정 파탄과 무상 보육 위기를 동시에 가중시키고 있다. 여당은 한술 더 떠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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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 제언

상 급식은 박근혜 대통령 공약이 아니라고 하면서 각 시・도 교육감에게 무상 급식 비용을 줄여서 누리과정을 지원하라고 여론을 호도하며 무상 급식과 무상 보육을 대립시키고 있다.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각 시・도 교육청에 떠넘기며 교육 재정을 파탄 내고 무상 보육을 흔들고 있는 정부 정책에 맞서 교육계와 보육계가 함께 대 응하고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 총)을 포함한 조직 노동자와 참교육학부모회, 급식 운동 단체가 함께하고, 전

국공공운수노동조합(공공운수노조) 보육협의회와 참보육을 위한 부모연대,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같은 시민단체가 모여서 ‘교육 재정 파탄 위기 극복 과 교육・보육 재정 확대를 위한 국민운동본부’로 공동 대응하고 있다. 공대 위는 정부를 규탄하는 기자 회견과 토론회를 여러 번 했고, 국회 앞에서 농성 과 1인 시위, 선전전 같은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보육 쪽은 ‘보육 재정 파 탄 대응 공동대책위'를 꾸려 무상 보육을 지켜내기 위한 또 다른 보육 활동까 지 병행하고 있다. 발달 과정상 보육과 교육은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정책적으로도 서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보육과 교육이 연대해서 공동 대응하는 것은 아 주 고무적이다. 이런 경험을 밑바탕으로 박근혜 정부의 유보 통합을 앞두고 보육과 교육이 연대해서 싸우는 것은 아주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교육과 보육 현장의 항의 행동과 여론의 뭇매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누리과 정 예산을 책임지지 않고 시간을 끌면서 여론 몰이만 하고 있다. 정부는 이 기 회를 이용해 보편적 복지를 선별적 복지로 전환하여 국가 재정 지출을 줄이려 고 한다. 뿐만 아니라 각종 민영화 정책과 공공 기관 정상화를 통한 구조 조정 과 발맞춰 재정 적자의 책임을 평범한 대중들에게 떠넘기려고 하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재정이 부족할까? 먼저 박근혜 정부는 한국의 경제성 장률을 너무 높게 잡았다. 점점 악화되는 세계경제의 영향으로 수출 중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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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의 성장률이 크게 떨어져 세수가 줄어들었고, 이명박 정부에 이어 법인세 인하 같은 부자 감세 정책을 계속 추진한 결과 세수는 더욱 줄어들었 다. 이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때 내세운 복지 공약을 대폭 축소하거나 폐기했고, 담배세 인상 같은 증세까지 이야기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증 세 없는 복지’는 ‘복지 없는 증세’가 된 것이다. 이처럼 재정이 부족한 이유가 박근혜 정부 정책 방향성의 문제인데도 일부 사람들은 정부의 재정 논리를 받아들이며 선별 복지 전환이나 복지세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우리는 이명 박 정부가 4대강 사업과 자원 외교로 엄청난 재원을 낭비하고 그 피해를 국민 들에게 전가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더 이상 이와 같은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 서 대중들이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 법인세를 정상화하고 기업들이 적립하 고 있는 사내 유보금에 세금을 부과해서 무상 급식, 무상 보육, 무상 교육, 무 상 의료를 모두 시행하라고 말이다. 이 운동에 동참한 많은 사람들이 두 달 동안 정신없이 보내고 있다. 우리가 열심히 투쟁한 만큼 정부가 누리과정 예산을 지원하여 교육과 보육이 정상화 되기를 바란다. 누리과정 예산이 편성됐다고 해서 보육 운동이 여기서 멈추 는 것은 아니다. 지금 정부의 무상 보육 정책은 민간 시장 중심으로 공급이 이 루어지고 있어서 보육 서비스의 질이 낮고, 보육 교사들의 처우가 아주 열악 하다. 정부는 보육 수요자들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기보다 재정 지출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국가의 장래는 걱정하지만 정작 미래의 자산인 아이들에게 투자하는 것은 아주 인색하다. 그러고도 출 산율이 오르기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아이들이 행복하고 부모가 아이 키우는 걱정이 없는 세상을 만들려면 부 모, 교사, 시민단체가 힘을 모아 보육의 공공성 강화와 아이들의 인권이 존 중되는 보육 정책을 추진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이 같은 운동에 부모 단체인 ‘참보육을 위한 부모연대’도 함께할 것이다.

보육의 공공성 강화와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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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를 기억한다

촛불 집회에 나온 중학생 아이가 말했습니다. “나에게 이런 무서운 일이 생기면 그때 우리 동네 사람들이 이렇게 모여 진실을 밝혀 주겠지요? 그렇게 믿으려면 제가 여기 나와야 할 것 같았어요.”

안산이 품고 있는 세월호 2014년 4월 16일은 내가 살아온 많은 날 가운데 한 날이지만 나에게, 안산

사람들에게, 부모라는 이름을 가진 어른들에게,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그리 고 세상 사람들에게 아프고, 슬프고, 분노스럽고, 의아하고,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날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편집부에서 안산의 세월호 관련 이야기를 듣고 싶 다고 글을 부탁했습니다. 생각이 짧은 저는 많은 고민을 하지도 않고 써 보마,

하은희 새싹. 안산 영차어린이집 졸업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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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응하였지만 세월호 이야기를 쉽게 꺼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글을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자마자 알게 되었습니다. 쉽게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깊고 아픈 슬픔이 있고, 아무 생각 없이 이야기하기에는 알 수 없고 밝혀지지 않는 비밀스럽고 더러운 정치적인 일들이 깔려 있으며, 편하게 이야기하기에 는 너무나 다양하고 개성적인 사람들의 여러 말들이 엉켜서 가시넝쿨처럼 나 를 찌르며 잘 헤쳐지지도 않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이 오류와 의문투성이인 가시넝쿨을 그대로 두면 진실은 아무렇 지도 않게 영영 보이지 않게 될 것 같아 두렵습니다. 그래서 우리 마을에서 슬 픔을 나누고, 진실에 대하여 이야기 나누고, 서로를 북돋우기 위하여 시작한 마을 촛불 집회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관심과, 마음과, 작은 시간으로 세 월호에 대해 찾아보셨다면 어디서나 들었을 법하고 누군가는 말했을 법한 이 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안산은 71만 명이 살고 있는 곳으로 경기도에서는 꽤나 큰 도시에 들어갑 니다. 단원고등학교는 고잔동에 있으며, 천 명 안팎의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 입니다. 네, 많은 숫자는 아닙니다. 하지만, 많은 숫자가 아닌데도 관심 있게 이웃들 안부를 묻다 보면 한두 다리 건너 단원고등학교 학생들 이야기를 바 로 듣게 되는 곳이 안산입니다. 그리고 등 돌리고 안부를 묻지도 않고 찾아보 지도 않는다면 다른 지역과 다를 바 없이 흘러가는 곳이 안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뒤로 ‘누구나 그렇듯이’ 초기에는 굳이 사람들에게 누가 그렇게 되었는지 물어보지 않고 다들 아파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갑작스런 아이들의 죽음에 망연자실했고, 그 사실이 믿기지 않 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텔레비전 속에서, 인터넷에서 들려오는 말들이 꿈이 아니라는 것이 너무 이상하게 느껴지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뼛속까지 두렵고 아프고 슬픈 시간들이 있었지요. 그리고 점점 슬픔과 분노가 일어나는 것이 내 잘못은 아니며, 내 아이 일은

안산이 품고 있는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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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를 기억한다

아니므로 많이 아파했으니 이제 마음을 쉬었으면 하는 생각이 다가오는 시간 이 왔습니다. 당연하다는 듯이 잊혀야 맞는 것이 아닌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왜 아직까지 노란 리본을 달고 촛불 집회를 하고 텔레비전에서 이야기하는지, 노란 리본을 달면 고집스러운 사람이라는 듯이 한 번 더 눈길을 받아야 하는 시간이 온 것입니다. 가로수에 걸어 놓은 개인 현수막은 누군가 파손하기도 하며, 잊으라고 강요받는 시간이 들이닥쳤습니다. 날마다 아파하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고, 날마다 울자고 달고 다니는 리 본이 아니고, 일상생활을 못 할 만큼 더 아파하자고 촛불 집회를 하는 것이 아 닙니다. 우리의 작은 촛불 집회는 그저 사람들이 잊지 않아야 안전한 대한민 국을 생각할 수 있겠다고 이야기하는 자리고, 아픈 마음들과 슬프고 죄책감 느끼는 그 마음을 보듬기 위한 자리라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촛불 집회가 필요한 이야기를 조금 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5월부터 시작한 촛불 집회에 중학교 아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 니다. 몇몇 아는 중학교 아이들이 나와 자리를 채우더니, 친구들을 데리고 오 기 시작해 많이 올 때는 열 명 남짓한 아이들이 와서 앉습니다. 중간 중간 수 다를 떨기도 하고, 시간에 딱딱 맞추어서 움직이지는 않습니다. 그런 걸 요구 하지도 않았지요. 그 자리에 나온 한 아이에게 어떻게 올 마음이 들었는지 아주 우연히 물었 습니다. 아이는 “나에게 이런 무서운 일이 생기면 그때 우리 동네 사람들이 이 렇게 모여 진실을 밝혀 주겠지요? 그렇게 믿으려면 제가 여기 나와야 할 것 같 았어요” 합니다. 아이들이 그렇게 믿기 위해 나온다고 했습니다. 지역아동센 터에서 처음 얼굴을 익힌 뒤 오며 가며 인사를 할 만큼 친분이 있는 여자아이 입니다. 그 아이가 우리 동네 사람들이 세월호의 진실을 밝혀 주는 것은 자신 에게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에 마음을 모아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믿기 위 해 볼품없이 작은 촛불 집회에 나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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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가 클 테고, 지금 이 글을 읽는 부모님들의 아이가 크겠죠. 바깥에 서 마음의 상처 하나만 입고 와도 아깝고 아픈 아이들입니다. 어느 누구 하나 소중하지 않은 아이들이 없겠지요. 말썽 피우는 아이건, 말을 징글하게 안 듣 는 아이건, 남을 미워하게 만드는 아이건 어느 아이건 자기의 빛이 있고, 자기 의 꽃을 피울 권리가 있겠지요. 이제 꽃을 피우고 행복에 겨워야 할 아이에게 무서운 일이 생겼을 때 아이가 믿을 사람과 진실을 밝혀 줄 사람은 바로 우리 아이들의 부모님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뚜렷하게 행동하기 어려운 세상이지만 잊고 등 돌리고 귀 막기에는 너무 편 한 세상이며, 세상은 귀를 막아 주고 입을 막아 주기까지 합니다. 우리가 일부 러 의식하지 않는다면, 어쩌면 입 막아 주고 귀 막아 주는 친절함에 익숙해져 서 우리 아이들이 바라는 진실과 멀어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부탁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저는 안산 사람으로서 세월호 참사는 영원히 기억되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 합니다. 영원이라는 것은 불편한 말이라는 걸 압니다. 하지만, 그 아이들 하나 하나가 너무나 소중합니다. 그 아이들은 좋은 봄날 꽃을 피우지도 못하고 공 포에 갇혀 죽음을 맞았습니다. 그리고 무슨 사고였는지, 왜 구출을 하지 않았 는지 남은 이들은 아직까지도 원인을 알지 못합니다. 영원히 기억하자는 말을 안 할 수 없습니다. 다시는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여 결국 모든 진실이 밝혀진다면, 우리는 국민들이 얼마나 진실을 바랐으며, 얼마나 많이 모이고 목소리를 내고 행동했는지 역사에 남겨야 합니다. 우리 국민들의 힘이 빛을 낼 수 있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기에 또다시 굳이 ‘영원히’라 는 말을 쓰면서 기억해 주기를 바랍니다. 기억을 위한 행동은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아주 작게 시작하는 것으로 충 분합니다. 그저 아이들을 위한 최선만 생각해 주기를 부탁합니다.

안산이 품고 있는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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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다의 창

공동육아 교사와 보육일지 쓰기

공동육아에 평가인증이나 누리과정 같은 제도권의 바람이 불어오면서 부작 용도 있고 힘든 점도 많지만, 이로 인해 우리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다시 생각 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 점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그중에 하나가 보육일 지 쓰기다. 평가인증에서는 겨우 하루 반나절 안에 어린이집의 거의 모든 사항을 평가 하므로 기록이 무엇보다 중요한 평가 자료가 되고, 교육 내용의 전반을 보육 일지라는 기록으로 살펴보기 때문에 보육일지 쓰기는 교사들에게 큰 부담이 자 필수 과제나 다름없다. 더구나 평가인증에서 요구하는 보육일지는 평가인 증의 지표에 따라 영역별 활동 시간을 하루 몇 시간, 주당 몇 시간씩 배정하여 나누어 써야 하기 때문에 일과의 대부분을 통합으로 사는 공동육아 교사들

김경태 둘리엄마. 개구리어린이집 원장이며 (사)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현장교육지원전문가로 활동한다.

*

‘페다’는 (사)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에서 현장교육지원전문가를 일컫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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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보육일지 쓰기가 갑자기 가면을 쓰고 살아야 하는 것인 양 불편하고 어색 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지만 평가인증을 거듭할수록 공동육아는 국가 수준에서 요구하는 교육과정 또는 그 이상을 살고 있다는 자부심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정말 우리는 국가 수준에서 요구하는 교육과정 또는 그 이상을 산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는 날이 가면 갈수록 국가 경쟁력이니 개인의 경쟁력이니 뭐니 하 면서 함께 살기보다는 경쟁을 내세우며 부모와 아이들을 불안으로 몰고 가 고 있다. 공동육아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많은 이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을 덜 어 내지 못한다. 이 시대에 공동육아가 불안이 아닌 대안을 보여 주고 있는 것 일까? 공동육아는 말 그대로 아이들을 함께 키우자 하면서 더불어 사는 교 육을 해 온 것일까? 아이들에게 더불어 살기 위한 교육이란 무엇일까? 아이 들과 나들이를 하고 놀이를 하고 밥을 먹고 이야기하고 울고 웃으면서 하루하 루 짜고 있는 씨실과 날실은 지금 어떤 무늬를 그리고 있는 것일까? 공동육아 의 교육은 뭐가 다르고 무엇을 지향하는 것일까? 교사들이 이런 물음과 답을 찾아가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보육일지 쓰기라 생각한다. 보육 평가인증에서 요구하는 보육일지 쓰기가 지표에 따라 사는지 안 사는지 점검하고, 지표를 따라 가는 수준이라면 이른바 세세한 지침이 없는 공동육아의 보육일지 쓰 기는 공동육아의 지향을 묻고 찾아가는 지도나 다름없다. 다시 말해서 공동 육아의 보육일지는 교사의 자기 성찰을 통해서 교사 정체성을 확고히 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아침이면 왜 창문부터 활짝 열고 공기를 바꿔야 하는지, 왜 아이들의 얼굴 표정부터 살피고 인사를 나누어야 하는지, 모둠은 왜 하고 어떤 아이들은 왜 모둠을 지겨워하는지, 그런데도 왜 해야 하는지, 아이들이 모두 밥을 잘 먹었 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 그냥 음식이 맛있어서인지, 남긴 음식이 없다는 의미 인지, 조용히 제시간 안에 먹었다는 의미인지

, 교사인 나는 무슨 의도로

공동육아 교사와 보육일지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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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다의 창

아이들과 하루를 함께하며 교사의 의도와 계획은 아이들과 어떻게 만나지는 지, 아이들의 말과 행동을 보며 교사는 어떤 계획과 의도를 가져가야 하는지 그런 것들을 차곡차곡 챙겨 가는 것이 보육일지고 교사의 기록이다. 그리고 그런 교사의 계획과 실천이 모여 공동육아의 교육을 만들어 간다. 공동육아의 많은 교사들은 보육일지 쓰기를 힘들어한다. 힘들어하는 이 유는 많다. 버릇이 안 돼서, 무엇을 써야 할지 몰라서

. 가장 많은 이유

는 쓸 시간이 없어서다. 아이들하고 살기도 바쁜데, 아이들하고 잘 살면 됐 지

. 그러다 보니 하고 있는 내용은 많은데도 말로 하지 못한다. 다른 이

들을 설득하지 못한다. 또는 하루하루가 그저 그날 같기도 하다. 교사가 성장하는 길은 여러 가지다. 동료들과 함께 일하고 협력하면서, 이 야기하면서, 책을 읽으면서, 둘레 사람들의 격려와 칭찬 그리고 진정어린 비 판을 받으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표현해 보면서 교사는 성장한다. 공동육아 의 교사들은 하루 평균 아홉 시간은 기본이고 열 시간을 넘겨 일하는 경우도 많다. 날마다 자신의 궤적을 뒤돌아볼 시간도 없어 보육일지를 못 쓰거나 밀 려 쓰는 경우가 허다하다. 날적이를 쓰면서 아이 하나하나를 쫓아간 시간 못 지않게 교사 자신을 쫓아갈 시간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가르칠 수 있는 용기》라는 책을 쓴 파커 J. 파머는 진정한 가르침은 교사의 정체성과 성실성에서 온다고 했다. 교사가 스스로를 되돌아볼 시간,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시간, 그 시간이 공동육아의 교육을 키운다. 그 시간을 어 떻게 만들어 가고 어떻게 써내려 갈지 교사들의 노력은 물론 공동육아에 몸 과 마음을 담고 있는 많은 이들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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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아이

그 아이가 가끔은 그립다

까꿍방의 예쁜 아이 민우는 까꿍방에서 처음 만난 아이다. 1998년 2월, 첫돌 무렵 튼튼어린이집 (튼튼)에 들어왔다. 민우는 참으로 예쁜 아이였다. 생글생글 웃는 모습 때문

에 모든 선생님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낯을 가리지 않아 더 그랬다. 다른 아 이들이 선생님들에게 붙어 떨어지지 않으려 하던 그때 민우는 누구에게나 잘 안겨 인기가 최고였다. 그런 민우가 서너 살이 되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어른들이 조금만 주의 를 기울이지 않으면 사고가 나고는 했다. 거실 구석에 있는 홈통과 유리창 사

조봉호 아침햇살. 젊은 시절 공교육에서 고등학교 교사를 했다. 결혼하고는 아이들을 키우며 참교육학부모회에서 일 했고, 마흔 살에 과천 튼튼어린이집에서 공동육아와 만났다. 2005년에는 공동육아형 대안 초등학교인 산어린이학교 와 교장으로 인연을 맺었고, 지금은 건강 때문에 충남 아산으로 귀촌해 살고 있다.

*

아이들 이름은 인격을 보호하기 위해 가명으로 썼다.

그 아이가 가끔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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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아이

이에 머리를 집어넣는가 하면, 세제를 변기에 쏟아붓기도 하고, 오르기도 힘 든 옷장 위에 발가벗고 올라가 앉아 있기도 했다. 또 높이가 3미터쯤 되는 놀 이터 미끄럼틀에서 떨어진 단 한 아이가 민우였다. 민우는 조금도 가만히 있 지를 않았다. 기이하고도 산만하게 행동하는 민우를 어떻게 해야 할지 교사 회의 때마다 논의했지만 특별한 방법이 없었다. 치료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잠깐 나왔지만 민우 엄마는 교사들이 하는 말을 믿지 않았던 것 같다. 부모들 은 우리 교사들을 전문가로 보지 않았다. 상담이나 치료가 보편화되어 있지 않던 시절이어서 부모들은 아이들 행동에 문제가 있으면 교사 탓으로 돌리는 모습도 일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민우는 책 읽는 것은 무척 좋아했다. 책 을 읽을 때 집중력이 대단했다. 책을 많이 읽어서인지 또래 아이들보다 말도 빠른 편이었고, 어휘력도 앞섰다. 해가 바뀌어 아이들 방을 구성할 때 선생님들은 민우가 들어가는 소근방 을 맡고 싶어 하지 않았다. 결국 내가 다섯 살 되는 민우와 함께 소근방 식구가 되었다.

거칠고 산만해진 대여섯 살 무렵 다섯 살 민우의 행동반경은 이전보다 더 넓어졌다. 다른 사람 말에는 별로 신 경 쓰지 않고 하고 싶은 것만 하는 편이었다. 팔을 휘둘러 아이들을 치거나, 장난감을 던져 친구들을 다치게 했다. 모래밭에서는 모래를 던져 친구들 머 리에 뒤집어씌우거나 입에 들어가게 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마음이 여린 민우는 늘 “미안해, 다시는 안 그럴게” 하고 사과했다. 소근방 아이들은 그런 민우에게 “안 그런다더니 또 그랬어” 하며 화를 내고는 했다. 까꿍방부터 계 속 함께 지낸 유찬이는 드러내놓고 민우를 싫어해 거칠게 소리를 질렀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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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대부분 목소리가 크고 놀이를 끌어 나가는 유찬이 편에 섰고, 유찬이 가 소리를 지르면 따라서 민우에게 소리를 질렀다. 민우는 유찬이가 소리를 지를 때마다 많이 움츠러들고는 했다. 출근할 때마다 나는 민우와 어떻게 하루를 보내야 할까 하는 생각으로 머리 가 꽉 찼다. 민우가 어느 시간에 어떤 행동 유형을 보이는지 알아내고자 애를 썼다. 그러나 민우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산만하게 행동했다. 그런 거친 행동에 야단을 치거나 약속을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스 스로 행동 조절이 되지 않아 그렇지 악의가 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다른 아이 들을 일부러 공격하는 것도 아니었다. 자기도 모르게 돌발 행동이 튀어나왔다. 반면 또 다른 모습도 있었다. 새로 들어온 여자 친구의 머리를 때려서 자주 울리고는 했는데, 어른이 없는 곳에서만 그랬다. 내가 화장실에라도 가려면 다른 선생님에게 부탁을 하고 가야 할 정도였다. 자기보다 강한 남자아이들에 게 핀잔을 받던 민우가 가장 약해 보인다고 생각하는 새로운 친구에게 화풀 이를 하는 거였다. 민우 엄마와도 상담했지만 이 상황을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했다. 집에서 는 너무나 예쁘고 착한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집에서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외동이 부모님들이 많이 하는 이야기다. 혼자 있는 아이들은 집에서는 갈등 상황이 생기지 않는다. 민우 엄마는 힘센 아이들 틈에서 자기 아이가 피 해를 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속상한 심정을 글로 써서 어린이집 인터 넷 사이트에 올렸다. 선생님들, 더구나 담임을 맡은 내가 아이의 문제를 해결 하려 하기보다 기다리라고만 한다고 했다. 다른 부모들 반응도 아주 뜨거웠 고, 교사들은 마음이 많이 불편했다. 하지만 나는 성장하는 아이들의 옳고 그름의 문제를 글로 설명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입을 다 물고 있어서 얼마 동안 부모들과 불편해지기도 했다. 그 뒤부터 나는 조금 더 적극 나서서 아이들의 문제에 부딪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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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아이

그림과 노래로 관계 회복하기 소근방 아이들의 부모는 모두 맞벌이부부였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대체로 편하지 않았다. 나는 종일 어린이집에 있는 아이들이 안쓰러웠다. 아이들의 거친 심성에 도움이 될까 싶어 낮잠 자기 전에 발도로프 교육에서 배운 ‘젖은 종이에 그림 그리기’를 해 보았다. 아침에 일찍 오는 아이들이 그리던 ‘만다라 그리기’도 함께했다. 그리고 틈만 나면 노랫말이 예쁜 동요를 불러 주었다. 그림그리기는 거칠기만 한 아이들에게 아주 효과가 있었다. 그림을 그리면 서 아이들은 불편했던 마음을 풀어내는 것 같았다. 놀라울 만큼 그림에 몰입 했고, 점점 색감이 아름다워지면서 만족해했고, 스스로를 대단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민우는 활동을 하지 못했다. 이 시간에 거실에서 놀거나, 점 심시간에는 모래밭에 나가지 않는다는 규칙이 있었음에도 어느새 마당에 나 가 모래놀이를 했다. 그나마 민우가 좋아한 것은 노래였다. 나는 내가 어릴 적에 부르던 서정성 짙은 노래들을 자주 들려주었다. ‘겨울나무’, ‘별이 삼형제’, ‘찔레꽃‘ 같은 옛 날 노래들, 또 내 딸에게서 배운 동요도 불러 주었다. 아이들은 뜻밖에 이런 노래를 좋아했다. 민우가 가장 좋아한 노래는 “동산 위에 올라서서 파란 하 늘 바라보며”로 시작하는 노래였다. 노래를 불러 주면 입을 헤 벌리고 웃었다. 그리고는 어느 새 노래를 외워 아이들 앞에 서서 불렀다. 그러면 아이들도 모 두 일어나 민우를 따라 노래를 부르는 진풍경이 펼쳐지는가 하면, 집에서도 이 노래를 불러 엄마 아빠를 감동시켰다고도 한다. 유찬이도 민우에게 조금씩 화를 내지 않았다. 늘 화난 것 같은 유찬이의 얼 굴도 그 무렵 많이 편안해졌다. 다른 아이들도 민우를 놀이에 끼워 주려고 애 쓰는 모습이 보였고, 자주 다투지도 않았다. 부드러워진 아이들이 민우를 봐 주었기 때문에 갈등은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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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114호


민우는 여전히 남자아이들이 좋아하는 공놀이나 자전거타기 같은 놀이에 함께하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인 건 민우가 가끔은 대체로 순한 아이들과 어 울리는 거였다. 함께 인형이나 나무 블록을 가지고 놀았는데 아주 평화로웠 다. 모래밭에서도 함께 잘 어울려 놀았다.

파괴 본능을 드러내며 반응을 살피는 아이 아이들과는 조금 편안해졌지만 민우는 여전히 산만했다. 민우에게는 무언가 를 파괴하려는 본능이 숨어 있는 것 같았다. 내가 테이블 동화를 들려줄 때에 는 잘 듣다가도 끝나기가 무섭게 소품들을 집어던졌다. 낮잠 자기 전에 장난 감을 정리해 두면 그걸 모두 쓸어 버리거나 장난감 바구니를 뒤집어 버렸다. 약속을 해도 규칙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아이들은 마구 소리를 질렀고, 나도 처음에는 야단을 쳤다. 민우는 우리의 반응을 즐기는 듯했다. 다시 정리해 놓 으면 또다시 똑같이 행동했다. 그러면 나는 아무 말도 안 하고 또다시 정리했 다. 그런 행동을 세 번이나 되풀이하는 날도 있었다. 아이들은 점점 그런 민우 의 행동에 무관심해졌다. 나도 일부러 외면했다. 그러자 재미가 없어졌는지 민우는 슬그머니 그 행동을 접었다 그러다 정말 큰 사고가 일어났다. 오후 간식을 먹고 아이들은 대부분 마당 에 있었고, 나는 방에서 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쨍그랑’ 유리창 깨 지는 소리가 났다. 방에 있던 민우가 던진 나무 블록이 마당으로 나 있는 커다 란 방 유리창에 부딪치며 나는 소리였다. 소리를 들은 교사들이 놀라서 달려 왔고 깨진 유리 조각을 정리해 주었다. 나는 순간 놀라서 엉거주춤 서 있는 민 우를 얼른 안았다. 민우는 그렇게 한참 동안 내 품에 안겨 있었다. 민우가 진 정되자 나는 부드럽고 작은 소리로 물었다. “이제 괜찮아? 그런데 왜 블록을

그 아이가 가끔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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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아이

던진 거야?” 민우가 대답했다. “음, 나는 유리창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했어.”

이야기에 빨려 들다 민우는 식당에 밥만 차려 놓으면 거실로 도망쳤다. 거실에는 이 층 놀이집이 있었는데 그 속으로 숨어들었다. 식당에 데려다놓으면 한 숟가락 겨우 먹고 다시 나가고는 했다. 아이들이 대부분 밥을 먹고 나면 민우를 데려다 옆에 앉 히고 밥을 먹여야 했다. 어느 날, 반찬으로 멸치가 나왔다. “아, 오늘은 고래가 좋아하는 멸치가 나왔네. 나도 멸치 좋아하는데

.”

내가 무심히 던진 이 말에 민우가 방을 나가다가 되돌아보며 말했다. “고래가 멸치를 좋아해?” “그럼 아주 좋아하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민우가 자리에 앉았다. 나는 민우의 반응이 신기해 한술 더 떠 말했다. “멸치는 아주 작아. 그래서 적군이 쳐들어와 잡아먹을까 봐 겁이 나서 떼로 몰려다닌대.” 다른 아이들도 밥을 먹다 말고 내 말에 끼어들었다. 우연히 던진 적군이라 는 말이 남자아이들의 묘한 호기심을 자극했던 것 같다. 아이들도 덩달아 물 었다. “그런데 고래가 그 작은 멸치를 어떻게 먹어?” “그래, 먹어 봤자 배도 안 부르잖아?” 다시 민우를 겨냥해 내가 말했다. “아, 난 배고파서 안 되겠어. 밥 한 숟가락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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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기심에 빠진 민우도 얼른 밥을 한 숟가락 먹었다. “음, 고래는 입이 아주 크잖아. 입을 ‘아’ 벌리면 멸치 떼가 고래 입인 줄 모 르고 헤엄쳐 들어온대. 아이고, 배고파. 밥 한 숟가락 먹고, 고래가 좋아하는 멸치도 먹고. 너희들도 밥 한 숟가락 먹고.” 아이들은 모두 내 이야기에 빠져 있었고, 민우도 싱글싱글 웃으며 밥을 먹 었다. 나는 민우가 밥을 거의 다 먹을 때까지 천천히 이야기를 이어 갔다. “고래는 멸치 떼랑 바닷물도 함께 먹었잖아. 밥 한 숟가락 먹고 “너희들, 책에서 고래가 물 뿜는 것 봤지? 밥 한 숟가락 먹고

.” .”

“그건 고래가 멸치랑 함께 먹은 바닷물을 배가 너무 불러서 내보내는 거래, 하하하

.”

아이들도 모두 따라 웃었다. 민우는 그날 처음으로 중간에 일어나지 않고 밥을 먹었다. 나는 돌아다니 지 않은 민우를 아이들 앞에서 칭찬해 줬다. 이 일은 그때 공동육아 어린이집의 이야기 문화에 많은 공을 쏟고 있던 나 에게 커다란 교훈이 됐다. ‘이야기’가 민우를 조금은 바꿔 볼 수 있겠다는 확 신이 들었다. 나는 밥 먹는 시간마다 음식이나 옛날 생활 이야기를 만들어 갔 고, 밥 먹을 때마다 열 번도 넘게 돌아다니던 민우도 조금씩 돌아다니지 않게 되었다.

연극 놀이로 한 고비를 넘다 낮잠 자기 전에는 늘 그림책을 읽어 주었다. 아이들도 이 시간을 무척 좋아했 다. 나도 마음에 드는 그림책을 만나면 함께 읽을 생각에 무척 흥분됐다. 책 방에서 《배꼽이 없어요》를 찾아낸 것은 아이들에게 굉장한 사건이 되었다.

그 아이가 가끔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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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아이

어느 날 자고 일어난 꼬마의 배꼽이 없어졌다. 꼬마는 기린, 고릴라, 사자, 코끼리, 생쥐, 멧돼지를 찾아다니며 자기 배꼽을 본 적이 없냐고 묻는다. 마지 막으로 악어에게 물었고, 꼬마의 배꼽을 가져간 악어는 작고 둥근 분홍빛 배 꼽을 돌려주며 “물로 깨끗이 닦아서 돌려주려고 했지” 한다. 아이들은 악어가 배꼽이 없다는 걸 알게 되고, 독수리도 뱀도 배꼽이 없다 는 사실에 큰 흥미를 보였다. 우리는 다른 그림책을 찾아보며 포유류나 파충 류, 조류의 몸 상태를 덩달아 배울 수 있었다. 이 내용으로 연극을 해 보고 싶었다. 아이들도 무척 좋아했다. 민우가 가장 흥미로워했다. 민우는 “내가, 내가 악어 할래” 하며 흥분했다. 민우가 아이들 과 함께하는 활동에 이렇게 흥미를 보이는 건 아주 드문 일이었기 때문에 나 도 이 연극에 공을 들였다. 책 속에는 없지만 배꼽이 없는 독수리와 공룡을 하고 싶다고 해서 내용을 각색했다. 우리는 날마다 한 번씩 연극놀이를 했다. 마침내 공연 날, 소근방 부모들과 어린이집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민우는 보자기로 만든 강물 속에서 마음껏 허우적거리며 천진난만하게 악어 역을 해 냈다. 아이들 모두 많은 박수를 받았지만, 민우는 더 큰 박수와 격려를 받았 다. 부모들은 민우가 어린이집 생활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대부 분 알고 있었다. 연극이 끝난 뒤에도 민우는 보자기 속에 파묻혀 노는 걸 좋아 했다. 연습 시간은 민우가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나는 민우가 또 한 고비를 넘는다고 생각했다.

둘 만의 비밀을 간직하다 왜 그랬는지 민우는 여름이 지나면서 그렇게 좋아하던 나들이 가는 걸 거부 했다. 아이들이 모두 대문 밖으로 나간 뒤에도 모래밭에서 혼자 열심히 놀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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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래서 한동안 소근방은 나들이 가기가 힘들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민우는 모래밭에서 조그만 항아리에 모래를 담았다 쏟았다 하며 놀고 있었다. “나는 나들이 안 가. 혼자 놀고 있을게, 아침햇살 다 녀와” 했다. 나는 함께 가는 선생님들에게 다른 아이들을 부탁하고 민우 곁에 앉으며 말했다. “와! 민우야, 이런 보물단지를 어디서 구했어? 이거 굉장한 거 같은데

.”

민우의 반응이 뜻밖이었다. “이게 보물이란 말이야?” “그래, 내가 보기엔 그래. 혹시 알라딘의 요술 램프 같은 요술 항아리 아니 야?” 민우의 눈이 반짝였고, 나는 얼른 그 모습을 붙잡았다. “야, 아이들이 보면 어쩌지? 이건 우리 둘만의 비밀이야. 이 보물단지 몰래 감춰 두고 나들이 갔다 와서 다시 꺼내 보자.” 민우는 요술 단지라는 말에 흥분해 항아리 감출 장소를 찾았다. 그리고는 다른 아이들한테는 절대 이야기하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 나는 다음 날 도 또 다음 날도 나들이 갈 때마다 민우와 함께할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내야 했다. 아주 다행스럽게도 민우는 나들이 가서 신나게 놀고 오면 요술 단지도, 나와 약속한 그 어떤 것도 다 잊어버렸다. 민우는 좀 오랫동안 나들이 가는 것 을 싫어했다.

튼튼을 떠나다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어느 날 민우 엄마가 “아침햇살, 민우가 어린이집을 그만둬야 할 것 같아요” 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민우와

그 아이가 가끔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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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아이

아이들은 관계가 조금씩 회복되어 가고 있는데 집에서는 민우가 어린이집에 가기 싫어한다는 거였다. 그리고 민우 엄마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는데 새 직장에 들어가기 전에 얼마 동안이라도 민우와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래도 마무리를 하고 가는 게 어떻겠냐고 했으나 민우 아빠와도 이미 의논을 했다며 그동안 너무 죄송하고 고마웠다고 했다. 나는 민우가 소근방 을 마치지 못하는 게 내 책임인 것 같아 조금 힘들었지만 엄마가 직장 때문에 다른 곳으로 간다는 말에 그나마 위안을 받았다. 민우는 날이 추워지기 전에 튼튼을 떠났다. 민우가 떠나자 소근방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나도 훨씬 덜 힘들었다. 하지 만 가끔은 교사로서 그 평화를 즐기고 있는 내가 부끄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조금 더 전문성이 있었다면 민우는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오랫동안 머 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민우는 이듬해 봄에 인천에 있는 공동육아 어린이집 에 들어갔다. 그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민우를 담당한 선생 님은 다행히 내가 잘 아는 분이어서 여러 가지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민 우는 거기서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다시 찾아온 아이 “아침햇살, 저 민우 엄마예요. 한 번 뵙고 싶어요.” 민우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민우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민우네 세 식구가 찾아왔다. “민우가 튼튼을 기억하기는 하는데 아침햇살만 생각난대요. 아침햇살이 이야기를 해 준 것도 어렴풋이 기억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선생님 만나 기 전에 튼튼어린이집을 한 바퀴 돌고 왔어요. 민우에게 그 시절이 얼마나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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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했는지 기억으로 남겨 주고 싶어서요. 아침햇살이라는 이름도 기억하게 해 주고 싶어 민우 기억에서 사라지기 전에 선생님 만나자고 했어요.” 민우는 튼튼에서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낸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눈 물이 핑 돌았다. 민우도 내가 그리 낯설지 않은 모양이었다. 민우와 함께 지내던 때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도 민우의 어른스러우면서 도 여린 목소리가 생각난다. “아침햇살, 오늘은 날 좀 업어서 재워 주면 안 될까?” “내가 까꿍방일 때도 아침햇살이 선생님이었다며. 나 어릴 적 이야기 좀 들 려줘 봐. 그러면 내가 잠이 올 것 같아.” 나는 그날 왠지 다섯 살 민우가 안쓰러워 업어 재웠다. 민우는 내 등에서 어릴 적 이야기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지금은 스무 살쯤 되어 있을 민우. 하 지만 내 기억 속의 민우는 여전히 다섯 살 예쁜 아이다. 그 아이가 가끔은 그 립다.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만들어 들려준 날, 민우는 처음으로 중간에 일어나지 않고 밥을 먹었다. 이 일은 그때 공동육아 어린이집의 이야기 문화에 많은 공을 쏟고 있던 나에게 커다란 교훈이 됐다. ‘이야기’가 민우를 조금은 바꿔 볼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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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손잡고

내세상,엄마

아이들 세상에 엄마는 떨어져 있어도 떨어져 있지 않은, 엄마의 마음이 내 마음 같고 엄마의 세상이 내 세상 같은 존재인가 보다.

오전 9시 반,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체 조를 시작했다. 비가 와 잔뜩 흐려 무겁 고 어두운 월요일 아침, 하늘도 아이들 도 교사들도 무겁다. 아이들은 “누워서 하는 체조하자!” 한다. 명상 음악을 들으며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아이들과 하루를 시작할 준 비를 한다. 체조를 하고 있는 동안 방 앞에 있는 계단 끝에서 한참을 들어오지 못하고 엄마와 앉아 있던 다섯 살 정원이가 “안 녕” 하고는 방으로 쑥 들어왔다. 그러고 는 다섯 살 아이들이 있는 옆자리에 눕 는다. 그렇게 명상 음악을 들으며 조용 히 누워 있는데 정원이가 칭얼거리기 시

서진숙 소금꽃. 해와달어린이집에서 일한다. 공동육아 교사로 산 지 2년이 조금 넘었다. 아직은 ‘아이들 곁에 가장 가까운 생태로서 어른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반성하며 길을 찾아 헤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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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114호

작한다. “흥흥 .”

, 엄마 보고 싶어. 흥흥


정원이를 일으켜 안고 같이 앉아 있

닥에 내던졌구나.”

어 본다. 아이는 계속 “흥흥, 흥흥, 엄

“어.”

마 보고 싶어” 한다. 체조를 하는 아이

“그래

들이 있으니 정원이를 안고 밖으로 나와 교사방으로 들어갔다. 정원이를 안고 앉아 달래다가 울음이 잦아질 즈음 무 슨 일인가 싶어 이야기를 했다. 얼마 전 똥을 못 눠 배가 아파 칭얼거 렸던 게 생각나 “오늘은 똥 눴어?” 하고

. 그래서 정원이가 속상했

겠다.” “어. 엄마랑 나랑 쳐다보면서 울었 어.” “그래

. 엄마랑 같이 울었어?”

“어.” 아이는 “엄마

” 하면서 또 운다.

물어본다. 아이는 “아니” 한다. “그래?

조그마한 아이를 안고, 아이를 위로해

저번에는 똥 못 눠서 식은땀 흘리고 그

주고 싶은 마음에 더 꼭 안아 본다. “어

랬잖아. 근데 오늘은 괜찮아?” 하고 물

쿠, 정원이가 속상해서 어쩌냐

으니 아이는 “어” 하고 대답한다. 배가

래서 그렇게 엄마가 보고 싶었구나” 하

아파서 칭얼거리는 건 아닌 거 같다.

는데 목이 메더니 눈물이 툭 떨어진다.

“주말에는 뭐 했어? 엄마랑 아빠랑 잘 놀았어?”

.그

“어쿠” 하는 말밖에는 더 할 말이 없다. 다섯 살 아이가 그렇게 힘든 마음을 고

“근데 엄마랑 아빠랑 싸웠어.”

스란히 몸에 담고 와 터전에서 하루를 시

“그래? 엄마랑 아빠랑 싸웠어?”

작하려 했던 것이다. 그 힘든 마음에 자

“어. 아빠가 차 키 달라고 막 소리 지

꾸 엄마가 보고 싶고 울음이 났던 게다.

르고. (손으로 물건을 바닥으로 던지는 흉내를 내

아이들 세상에 엄마(그리고 아빠)는 그

며) 막 이렇게 했어.”

“그래

런 존재인가 보다. 떨어져 있어도 마음

. 차 키를 막 바닥에 던졌

구나.”

이 떨어져 있지 않은 그런 존재. 엄마의 마음(그리고 아빠의 마음)이 내 마음과 같

“어. 그리고 책상에 있는 걸 막 (손으로

고, 엄마의 세상(그리고 아빠의 세상)이 내

이렇게 해서

세상과 같은 그런 떼려야 뗄 수 없는 사

책상 위를 쓰는 듯이 흉내를 내며)

바닥에 떨어트렸어.” “어, 책상에 있는 걸 손으로 해서 바

이, 떨어질 수 없는 사이인가 보다. (2014 년 9월 29일. 월. 비. 오전 체조 시간에)

내 세상,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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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손잡고

가장무서운말, “너랑안놀아!”

한참 산딸기가 익어 가는 때. 다섯・여

정이

야아, 아니 식물이 아니고 생명이지.

섯 살 아이들과 함께 산딸기를 따러 나

혁이

그래. 생명이라고!

선다. 가장 먼저 가는 곳은 공터 가는 길

정훈

야, 죽이지 마. 너랑 안! 놀아!

이다. 그 길가에서 한동안 산딸기를 따

성원

난 안 죽였으니까 나랑은 놀 거지?

다가 또 공터를 지나쳐 산책로 윗길로

정훈

어.

올라가 본다. 윗길로 올라가는 계단에

승환

(엉거주춤해지면서) 또 누가 죽였는

데?

서 아이들이 개미 떼를 발견했다. 계단 을 타고 와글거리고 있는 개미를 보더니

정훈

도영이.

아이들이 쭈그리고 앉는다. 한참 개미들을 보다가 갑자기 다섯

개미들을 밟고 있던 승환이와 도영이

살 승환이가 일어나 개미를 밟기 시작

는 갑자기 머쓱해졌다. 두 아이는 개

한다. 그러자 다섯 살 도영이도 덩달아

미를 더 밟지 못하고 엉거주춤 서 있다

일어나 개미를 밟기 시작한다. “야, 죽

가 어느새 다른 친구들 옆에 나란히 자

이지 마

리를 잡고 앉는다. 역시 아이들에게 가

.” 아이들이 너나 할 거 없

이 말려 본다.

장 무서운 말은 “너랑 안 놀아”인가 보 다.(2014년 6월 25일. 수. 맑음)

혁이

야아, 식물이야.

정훈

야아, 그래 식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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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114호

*

아이들 이름은 인격을 보호하기 위해 가명으로 썼다.


함께 가는 길

산들 큰바위,

세인이 이야기

흔히 일곱 살은 공동육아의 꽃이 핀다고 말하는 나이다. 꽃을 피워야 하는 그 부담이 많은 일곱 살, 큰바위방. 나도 그 무게로 첫 출 근부터 긴장되고 떨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게 걱정되고 떨렸던 첫 날, 세인이가 산들어린이집에 나왔다. 세인이는 1년 전에 고도난청(지금은 중고 도난청이라고 한다)이 발견돼 지금은 보청기의 도움을 받고 있는 조금 특별한 아

이다. 유난히 걱정을 많이 하는 내 마음을 안 것일까? 세인이는 할머니 등 뒤 에서 빼꼼히 얼굴을 내밀며 나를 바라봤다. 그때 나를 바라보던 세인이가 어 찌나 환하게 웃던지 내 걱정은 눈 녹듯 사라지고 어느새 든든한 동무를 얻는 것 같았다. 세인이는 유치원을 다녀 보았지만, 처음 해 보는 공동육아 생활에서는 모 든 것이 어색하고 이상하고 궁금한 것이 많았다. 최지혜 물감. 2007년에 처음 공동육아와 인연을 맺었다. 산들어린이집이 세 번째 터전이며, 일곱 살 큰바위방 아이들 과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산들 큰바위, 세인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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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가는 길

첫 번째 과제는 별명과 반말쓰기였다. 유치원 생활로 ‘선생님’이라는 호칭 이 더 익숙한 세인이에게 별명을 부르고 반말을 해도 된다고 설명해 주었다. 세인이는 “선생님, 이건 뭐예요?”, “선생님, 아, 아니, 물감 도와주세요” 하면 서 내 별명인 ‘물감’과 ‘선생님’을 번갈아 쓰면서 별명을 부르는 데 조금씩 익 숙해져 갔다. 예쁜 얼굴에, 아기 같은 목소리를 가진 세인이. 세인이는 또래 여자아이들 이 그러하듯 예쁜 옷과 신발을 유달리 좋아했다. 그래서 나들이를 나가 친구 들이 노는 모습에 처음에는 좀 놀라기도 했지만, 어느새 친구들 놀이 속에 끼 여 있었다. 물론 이렇게 된 데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호기심 많은 성격도 한몫했을 것이다. 세인이는 예쁜 옷과 신발이 놀이를 할 때 망가지는 것을 무 척 속상해하기도 했지만, 이내 불편함을 느끼면서 두 번째 과제인 편한 옷 입 기와 신발바꿔신기에도 성공했다. 큰바위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놀이가 세인이에게는 모두 새로운 놀이 였다. 큰바위들은 새 친구 세인이를 무척 반가워했다. 보청기를 끼고 있는 세 인이에게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자세히, 그리고 세인이의 눈을 마주치며 놀 이 규칙을 설명해 주기도 했고, ‘깍두기’ 역할은 세인이가 놀이에 자연스럽게 들어오고 즐기는 데 결정적 구실을 해 주었다. “세인아 우리 얼음땡 할 거야. 같이 할래?” “얼음땡? 몰라.” “응, 잡기놀이랑 비슷해. ‘얼음’ 하면 술래가 못 잡는 거야. 그리고 ‘얼음’ 하 면 움직이지 못하니까 얼음이 아닌 사람이 ‘땡’ 해 주면 움직일 수 있어. 할래?” “응.” 세인이는 얼음땡, 다방구, 숨바꼭질, 매미잡기, 달팽이진놀이, 8자놀이, 사방치기 같은 놀이 규칙을 친구들 사이에서 천천히 익히고 함께하면서 친구 관계도 점점 확장되어 갔고, 이제는 깍두기가 아니라 당당히 놀이에 한몫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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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114호


고, 친구들처럼 놀이의 달인이 되어 있다. 아차산에는 다양한 꽃과 열매 그리고 벌레가 많은 편이다. 예쁜 것을 좋아 하는 세인이가 꽃, 나무, 열매와 친해지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벌 레만큼은 친해지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친구들이 벌레를 보고 있으면 “무서 워” 하며 도망을 가거나 밟기도 했다. 이런 세인이에게 친구들은 벌레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세인아, 벌레도 살아 있는 거야. 그렇게 하면 아파.” “무서워.” 그렇게 겁이 많던 세인이가 어느 새 친구들과 함께 개미굴을 찾아 땅을 파 기도 하고, 그릇에 개미와 벌레를 찾아 모아 관찰하기도 했다. 또, 새로운 벌 레를 찾을 때마다 친구들과 함께 옹기종기 모여 관찰하며 어떤 벌레인지 알아 보는 모습으로 변했다(물론 아직도 무서워하는 벌레가 있기는 하다). 세인이는 친구들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관심이 많다. 그래서 궁금한 점 도 많고, 좋다는 표현도 자연스럽게 잘한다. “물감은 누구랑 살아?” “물감은 엄마랑 아빠랑 동생이랑 살지.” “말똥풀은 누구랑 살아?” “말똥풀은 말똥풀 신랑이랑 말똥풀 아들이랑 살지.” “그럼 달팽이는?” “달팽이는 달팽이 신랑이랑 달팽이 아들이랑 살지.” “물감은 왜 엄마랑 아빠랑 살아?” “물감은 아직 결혼을 안 해서 그래.” “왜 결혼을 안 했어? 남자가 없어?” “어, 맞아. 아직 남자가 없어.” “그럼 왜 말똥풀은 말똥풀 신랑이랑 살아?”

산들 큰바위, 세인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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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가는 길

세인이가 처음 어린이집에 나왔을 때는 뭉개지는 소리와 작은 목소리, 아기 같은 말투가 겹쳐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때마다 세인이는 화 한 번 내지 않고 되풀이해서 이야기해 주었고, 처음에는 힘들어하던 아이들도 세인이가 말을 할 때는 좀 더 집중해 들어주었다. 이제 세인이는 듣는 것도 언어 능력도 많이 좋아졌다.

“음, 그건 말똥풀이랑 말똥풀 신랑이랑 좋아해서 같이 살지.” “아, 그래서 결혼한 거야?” “응. 세인이 엄마랑 아빠도 그래서 결혼했지. 그래서 세인이랑 오빠랑 같이 살잖아.” “아니야, 우리 엄마가 아빠를 더 많이 좋아해서 결혼한 거야.”

세인이가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소통하고 관계를 맺기까지 여러 시행착오도 있었다. 세인이는 작은 목소리와 조금은 아기 같은 말투로 이야기한다. 처음 어린이 집에 나왔을 때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뭉개지는 소리와 작은 목소 리, 아기 같은 말투가 겹쳐 세인이의 말을 듣고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아이들과 오해가 생기거나 다투기도 했다. 나 또한 세인이에게 여러 번 질문하 기도 했고, 잘못 이해해서 세인이가 다시 설명해 주기도 하는 상황이 되풀이 되었다. 그래서 세인이에게 조금 더 천천히 말해 달라고 부탁했고, 이 부탁을 들어주느라 세인이도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세인이는 화 한 번 내지 않고 되풀이해서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는 사이 아이들도 변했 다. 처음에는 힘들어하던 아이들도 세인이가 말을 할 때는 좀 더 집중해 들 어주었다. 그 뒤부터 세인이도 좀 더 뚜렷한 발음으로 목소리를 높여서 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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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114호


기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세인이 모습에서 자신감이 붙어 적극적으로 변 하는 모습을 발견해 반갑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다. 또 세인이에게 이야기할 때 어떤 낱말을 새로운 말로 인식하는 것 같아 보 이면 이에 대한 설명도 빠지지 않고 해 주었더니 표현력도 늘어나는 것 같았 다. 그리고 세인이에게 말을 할 때는 좀 더 천천히 정확한 발음으로 말을 해 주 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세인이의 모든 것을 세인이 엄마와도 함께 소통하며 집 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렇게 해서 세인이는 듣는 것도, 언어 능력도 많 이 좋아졌다. 모두가 함께 노력하며, 특히 세인이와 세인이 엄마가 많은 노력 을 한 덕분에 세인이도 천천히 적응했고, 지금은 큰바위방에서 누구보다 더 적극적이고 밝고 활발하게 자기 목소리를 높이며 즐겁게 지내고 있다. 지금도 함께 노력하고 있는 세인이와 큰바위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보며 나는 처음 한 걱정이 기우였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산들 큰바위, 세인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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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적이

날적이에 썼어? 재현이의 날적이 6

담임 양명희(자두) 어머니 정영화 (마법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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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재현이의 날적이 연재를 마친다. 소중한 이야기를 기록해 재현이가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있 게 해 준 선생님과 어머님께 감사드린다. 날적이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교사와 부모 사이에 오가는 보육일지다.

공동육아 114호


집에서

2009년 1월 20일 (화요일) |

여섯 살, 당실방

오늘 터전 청소를 하고 왔어요.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는데 재현이가 다급한 목소리 로 “엄마, 엄마!” 부릅니다. “나 세게 던지지도 않았는데 이게 깨졌어. 어떡해

.”

내려다보니 나무 그릇이 두 조각으로 동강 나 있더군요. 울먹울먹한 목소리로 눈 물까지 찔끔 흘리며 “나 어떡해

. 나 맞기 싫어, 혼나기 싫어.” 연신 노심초사합

니다. 이 녀석이 또 시작이구나 싶네요. 왜인지 모르겠는데 혼나는 것을 너무나 두려워 하는 모습이었어요. 먼저 청소 끝낸 물방울이 도와주러 올라오니 재현이 얼굴이 굳 어지더니 두 손 안에 안 보이도록 그릇 조각을 숨기고서는 당황한 표정으로 슬그머 니 사라집니다. 물방울과 비교되어 자두의 위상이 무서운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어 속상하다는 얘기를 들은 터라 혹 재현이가 자두가 무서워 그런가 싶기도 했지만, 찬찬히 생각해 보니 특정 사람을 무서워한 건 아닌 듯해요. 혼나는 게 싫다고 얘기하는 것으로 보 아 잘못에 대한 어른의 대응을 두려워하는 듯해요. 사무국 사람들끼리 가끔 얘기 하는데, 아이들 처지에서는 차라리 몸으로 떼우는 게 낫지 “이리와 봐, 잠깐 얘기 좀 하자” 하면서 차근히 따져 보는 건 고문(?)이라는

. 커 갈수록 그렇다는군요.

생각해 보면 지금 나이의 아이들은 이미 기본 도덕관념이 형성되어 있는 것 같고, 잘못은 몰라서 그러는 것보다는 실수로, 아니면 재미로 그러는 것이기 때문에 단호 하게 대처할 필요는 있겠지만 긴 시간 따로 불러 얘기할 필요는 거의 없을 듯합니다. 요즘 터전에서는 어떻게 대응하는지 궁금하네요. 저도 재현이를 대하는 제 태도를 생각해 봅니다. 지나치게 야단치지 않으려고 노 력하는데 통 먹히지 않을 때 속상해집니다. 당실이 되면서 말이 잘 통할 때도 있지 만, 장난기가 심해져서 도통 안 통할 때도 많지요. 자기 고집이 점점 세지는데 자연 스러운 것이겠지요? 장난도 어릴 때 많이 해 보는 게 좋을 테고

. 에휴, 엄마도

나이가 들수록 인내심도 많아지고 여유도 생기면 좋겠지만 늘 인생은 쉬운 게 아니 로군요.

날적이에 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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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적이

터전에서

1월 22일 (목요일)

글쎄, 저번에도 잠깐 이야기 나누다 말았지만 아이들이랑 그렇게 길게 이야기를 나 눌 경우도 분명 있지요. 더구나 이어지는 문제일 경우에는 사소한 것일지라도 그렇 게 되는 것 같아요. 아이들이 많이 사는 속에서 유독 한 아이가 같은 문제로 다른 아 이들 원성을 사고, 자꾸 이런저런 방법을 이야기하는데도 통하지 않을 때는 더욱 그 렇지요. 그렇게 되면 사실 아이는 이미 문제가 시작한 시점에서 시・공간이 너무 동 떨어져 함께 이야기 나누는 어른도 힘들고요. 이 층 교사(다섯 살부터 일곱 살 담당 교사)들도 서로 이런 힘든 부분을 이야기했는데, 적 어도 그냥 “응, 응” 이런 게 아니라 스스로 자기가 만든 정황을 이야기하고, 자기감 정을 관습적이지 않게 나누고, “안 그럴게”가 아니라 어른들이 정도껏 “네가 이래 서 그럴 땐 그러지 않으면 좋겠지만 그래도 그걸 자꾸 잊으면 어른들에게 ‘피곤해’나 ‘나 조용히 있고 싶어’ 하면서 도움을 받으면 좋겠다” 같은 이야기를 하는 정도로 하 고 있지요. 물론 길어지기도 하지만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도 하지요. 어쩌면 잠깐 잠깐 넘어가는 것이 교사로서는 편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만큼 깊이 그 아이와 문제를 나눌 수는 없을 거예요. 집에서는 또 다를 수도 있겠 지만 단체의 일상 속에서는 피할 수 없기도 하지요. 그 속에서 더 지혜롭게 성장하 려고 노력할게요.

집에서

10월 26일 (월요일)

목요일에 집에 오다가 슈퍼 옆을 지나치던 참이었어요. 아이스크림이 생각났는데 마 침 돈이 없었지요. 집에 들어가서 다시 나오는 게 귀찮아서 재현이더러 심부름 혼자 해 보겠느냐고 물었어요. “어, 할래.”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나서더군요. 커다란 잠바에 머리만 큰 재현이의 뒷모습

. 집에서 마트까지는 3백에서 4백

미터쯤. 긴장하기는 했지만 신나서 나서는 재현이가 기특하면서도 아직 어리기만 한 재현이의 뒷모습을 보며 이래도 될까, 좀 망설였어요.


아무튼 목적했던 대로 아이스크림을 사 왔습니다. 어찌나 뿌듯해하던지

.자

꾸 칭찬해 주었어요. 저도 기특하고 뿌듯한 느낌을 같이 나누었지요. “가까운 데는 할 수 있어.” 자신감이 하늘을 찌릅니다. “날적이에 써야겠네” 해 놓고 이튿날까지 안 쓰고 있으니 확인까지 합니다. “날적이에 썼어?” 터전에 데리러 갈 때도 묻습니 다. “별님한테 얘기했어?” 부끄러워하면서도 자랑하고 싶어 근질근질하나 봅니다. 대단한 사건이기는 하지요? 토요일에도 또 한 번 해 봤어요. 이번에는 환한 낮. 아빠더러 빵 좀 사 오라 했건만 꿈쩍도 안 하는 새 재현이가 아이스크림을 사 오겠다 했어요. 한 번 해 봤던 터라 자 신감 만 배! 5천 원짜리 지폐와 가방을 들려 보냈어요. 텔레비전에서는 “아이를 혼자 두지 마

세요” 하는 광고가 흘러나오는 세상인데, 내가 이래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빠도 걱정스러워하며 올 때가 됐는데, 하고

.

정말 10분쯤 지났는데도 올 생각을 안 하더군요. 바깥을 내다보니 빵집 방향 신 호등 앞에 재현이의 하얀 바지가 보였어요. 후후, 녀석은 아이스크림과 빵도 같이 사러 간 거였어요. 짠한 마음, 안타까움, 기특함, 후회, 불안

. 눈 깜짝할 사이에

이런 생각들이 스쳐 갔어요. 신호등이 파란 불로 바뀌자마자 바로 내달려서 아파트 안으로 들어오더군요. 저 조그만 녀석을 혼자

, 아직 이른 거 아닌가

, 5천

원밖에 안 줬는데 아이스크림 사고 나면 2천 원밖에 안 남았을 텐데 빵을 집어서 계 산대에 갔다가 돈이 모자라서 부끄러워하며 빵을 제자리에 놓고 온 게 아닐까

.

얼굴이 빨개진 재현이 모습을 상상했어요. 벨소리가 울렸어요. 문을 열어 주니 씨익 웃는 녀석. 마주 웃어 주었습니다. 다행 히 죠스바 두 개만 샀던지라 식빵을 사고도 돈이 남았나 봐요. 휴, 다행이다 하는 생 각과 함께 당분간 더 심부름시키지 말아야겠다, 결정했어요. 재현이는 할 수 있을지 라도 내가 불안해서 안 되겠네요. 이쁜 재현이를 보고 나쁜 사람이 나쁜 일을 하려 하면 전혀 방어 능력이 없을 터이니, 세상을 선의로만 보는 재현이에게 이 도시의 험 악함은 만만한 게 못 되니까요. 슬픕니다. 이렇게 개개인이 아이를 과보호할 수밖에 없는 서울의 무자비함이 슬 프고 안타깝습니다.

날적이에 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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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한마당

옥수수 노래 같이 불러 봐요 이인선 나무. 통통어린이집 교사

서울 북부 지역 어린이집 아이들이 부른 노래 ‘옥수수’는 아이들과 일상에서 만나 는 가운데 생겨난 노래지요. 어느 날 여름 오후 간식 시간, 일곱 살이 된 지 얼마 안 되는 통통어린이집 백두 방 아이들이 옥수수를 보더니 우리 이빨 같다며 이 빠진 빈자리에 옥수수 한 알을 떼어 넣어 보고 배꼽 빠지게 웃어도 보고 하면서 즐겁게 보냈어요. 그날 시원하게 웃으며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도 즐거워하는 아이들 모습은 오래도록 남아 있을 추억거리가 되었지요. 아이들 이야기를 그대로 적어 놓은 뒤 2014년 여름교사대회 워크숍에서 교사들 과 함께 이 노래를 만들었답니다. 이 노래를 북부 지역 아이들에게 소개하고, 공동 육아 한마당 노래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연합 나들이 때마다 연습했답니다. 함께 입을 맞춰 보고 춤도 추던 아이들이 모두 다 한마당 무대에 올라가지는 못했지만 함께한 추억은 가슴속에 잘 남아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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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114호


옥수수 C

G7

1. 옥 수 수 는 2. 옥 수 수 는

우리

C

이빨같아

뿌 리만 없는 거

-

할아버지 수염같아

색 깔만 다른 거

-

Dm

Dm

C

넣으면 -

진한노란 이 빨이

생- 겼네 -

2. 너도나도 턱 에다 붙 이 면 -

할아버지 얼 굴이

되- 었네 -

1. 이 빠진 자 리에

F

C

C

Am

F

G7

C

1. 우하하하봐봐

새이가났 - 네

우하하하

봐봐 앗

먹어버렸 - 네

2. 우하하하봐봐

수염이났 - 네

우하하하

봐봐 앗

늙어버렸 - 네

함께한 아이와 교사 아이 : 강슬아, 남궁윤서, 심고운, 이현승, 정은혁, 조재윤(꿈꾸는), 도윤하, 신하린, 이채현, 장형선(꿈틀꿈틀), 김수민, 남지송, 박건욱, 배건호, 백종원, 이은혁, 이한결, 전해든, 정이준, 최정윤(통통), 김태훈, 이은수(행복한우리) 교사 : 백혜준 - 진주, 이은아 - 쭉쭉이(꿈꾸는), 이명숙 - 새봄(꿈틀꿈틀), 황은지 - 옥수수, 이인선 - 나무, 권나연 - 버들(통통), 오민수 - 장미(행복한우리)

옥수수 노래 같이 불러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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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

세월호 교육감 시대가 나갈 길

여덟 살의 꿈 부산 부전초등학교 1년 박차연

나는

초등학교를 나와서 / 국제중학

교를 나와서 / 민사고를 나와서 / 하버드 대를 갈 거다. / 그래 그래서 나는 / 내가 하고 싶은 / 정말 하고 싶은 / 미용사가 될 거다.

2013년 10월 6일 제1회 이오덕 동요 잔

치 때 나온 어린이 시다. 이 시에 부산에 서 오랫동안 어린이 노래 운동을 펼쳐 온 우창수가 곡을 붙여서 발표했는데, 많은 사람들 관심을 끌었다. 사실 여덟 살이 아니라 열 살이나 스 무 살이 되어도 어떻게 해서 무엇이 되 고 싶다는 꿈은 얼마든지 꿀 수 있고,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그런데도 많은 어른들은 아이들이 꿀 수 있는 꿈을 억 압하고 통제하고 자기 마음대로 만들 려고 한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수 용소 같은 학교, 지역사회와 동떨어진 이주영 (사)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이사와 어린이문화연대 대표를 맡고 있다. 교사와 학부모를 위한 《어린이 책을 읽는 어른》, 《이오덕 삶과 교육 사상》 같은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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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114호

섬이 된 학교교육에 갇혀서 주는 대로 잘 받아먹고 알 잘 낳는 양계장 닭처럼 사육당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학교와


우리나라 교육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기

이 늘어났고, 나아가 다른 지역 주민들

회가 생겼다. 경제 양극화와 민주 정치

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퇴행으로 답답하던 차에 한 줄기 시원

그 다음 요인으로는 1990년대 전후

한 솔바람이 전국 13개 시도를 휘감아

부터 학교 안팎에서 꾸준히 실천해 온

돌고 있는 것이다.

교육 운동을 제도 교육으로도 실현해

2014년 6・4 지방선거와 그 뒤를 이

야 한다는 공감대가 넓어지기 때문이

은 7・30 재・보궐 선거 결과는 보수 여

다. 혁신학교 씨앗이 되는 경기도 광주

당 쪽 승리였다. 그런데 모순되게도 교

의 남한산초등학교나 충남 아산의 거산

육감 선거에서는 17명 가운데 13명이

초등학교는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전

진보로 분류된 사람들이 당선되었다.

국교직원노동조합 교사와 어린이도서

보수로 분류하는 4명 가운데 2명은 중

연구회 동화읽는어른모임 회원과 공동

도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시・군・구 지

육아협동조합 어린이집 학부모들이 연

방자치단체장이나 의원은 다수 국민이

대해서 만들어 냈다. 1990년대가 공동

보수를 선택했으면서도 교육 자치 단체

육아와 같은 학교 밖 대안 교육이 자라

장은 절대 다수 국민이 진보를 선택하

나는 시기였다면, 2000년대는 그 기운

는 모순을 보여 주었다.

이 공립학교를 변화시키는 기간이었고,

6・4 지방선거에서 대다수 국민이 정

치는 보수 쪽을 택했으면서 교육은 진보 쪽을 선택한 까닭은 세 가지로 짚어 볼 수 있다.

2010년대는 제도 교육 전반에 걸친 변

혁을 추구하는 시대가 되었다. 마지막 요인은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이다. 침몰하는 배 안에 고스란히 갇혀

첫째는 4년 전 당선했던 진보 교육감

서 죽어 가야 했던 아이들과, 바다 속으

들이 모두 재선했다는 것은 진보 교육

로 가라앉은 배에 갇힌 아이들을 단 한

감들이 추진한 교육을 지지하는 지역

명도 구해 내지 못한 현실, 사고 후 원인

주민 층이 넓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분석과 대책에서 보여 주는 부정과 비

경기도 혁신교육이나 강원도 행복교육

리와 무능함을 보았기 때문이다. 교육

이 나가는 방향에 공감하는 지역 주민

을 바꾸지 않으면 세월호와 같은 참사가

세월호 교육감 시대가 나갈 길

83


오늘의 교육

확대 재생산 될 수밖에 없을 거라는 분

주민 대표를 선출해야 한다. 나아가 학

노와 불안 때문이다. 앞에서 든 두 가지

생 대표들이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그

요소가 바탕이 되었지만 마지막 세월호

리고 실제 심의와 의결이 이뤄지도록 해

참사가 결정타가 되었다.

야 한다.

그래서 나는 진보 교육감이라는 말보

또 학부모나 지역 주민, 학생, 교직원

다는 세월호 교육감이라는 말을 쓰고

들이 학교운영위원회에 참관해서 안건

싶다.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말아야 하고,

심의와 의결 과정을 지켜보고 의견을

그 때문에 죽은 아이들을 기억해야 하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처음부터 그런

고,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과 미래를 살

문화가 이뤄지기 어렵다면 최소한 몇

려 달라는 국민들 기대를 명심해야 하기

명 이상이 참관할 수 있도록 교육청 조

때문이다.

례나 교육감 시행령으로 규정할 필요

세월호 교육감 시대에는 첫째, 아이 들을 살리는 교육을 해야 한다. 그 길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아

가 있다. 셋째로는 교육 평준화 정책을 다시 강화해야 한다.

이들이 표현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모든 아이들은 부모의 경제력이나 사

지켜 주고, 표현할 수 있는 방법과 기회

회 지위에 관계없이 평등하게 교육받을

를 마련해 주고, 표현하는 내용을 귀담

권리가 있다. 평준화 정책 가운데 하나

아 들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가 고등학교 평준화다. 고교 평준화는

자기표현에 따른 성과에 만족할 수 있는

근거리 배정을 원칙으로 고등학교 입학

학교와 사회로 만들어 가야 한다. 그 시

조건을 동일하게 만든 제도다. 고교 평

작이 학생자치회 부활이다. 초・중・고

준화 이후 보수 쪽에서는 선택과 선발

학급 학생회, 학년 학생회, 전교 학생회

과 교육과정 자율을 근거로 평준화를

가 참된 자치권을 회복해야 한다.

변질시키려는 시도를 계속해 왔고, 진보

둘째로는 학교운영위원회가 민주 절 차에 따라 구성되어야 한다. 실제 교직원 대표, 학부모 대표, 지역

84

공동육아 114호

쪽에서는 평준화 정책을 지키려고 노력 해 왔다. 겉으로만 보면 자유와 자율을 주장하는 보수 쪽이 진보고, 강제 배정


과 교육과정 획일화를 고수하려는 진보

다. 그 아이들한테 국가에서 공・사립학

쪽이 보수다.

교 아이들에게 지원하는 교육비, 교육

그러나 문제는 특수 목적 고등학교 (특목고)나

기자재와 교사 인건비를 포함한 교육비

자율형 사립 고등학교(자사

를 개별 교육비로 계산해서 지원해야 한

문제에서 볼 수 있듯이 이 학교들이

다. 아이들 1인당 직접 교육비는 교육청

진짜 자유와 자율보다는 대학 입시 경

에서 지원해야 하고, 교사 인건비도 사

쟁 교육에 유리한 교육만 추구하는 특

립학교 교사들한테 지원하는 금액만큼

수 집단을 양성하는 학교로 전락하고,

이라도 지급해야 한다. 예를 들면 사립

그 속에 부모의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

학교에 법정 학생 수에 따른 교직원 정

가 작용하고, 아이들에 대한 억압이 내

원을 배정하고 그에 따른 교직원 인건비

면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 고등학

를 교육청에서 지원하는데, 그 교직원

교와 특목고와 자사고를 고교 평준화

인건비 대 평균 학생 수를 계산해서 교

정책의 기본 정신에 어긋나지 않으면서

육청에 등록되어 있는 공・사립 학교가

참된 자유와 자율이 살아날 수 있도록

아닌 집이나 대안 학교 같은 곳에서 공

해야 한다.

부하는 아이들 수에 따른 교직원 인건

고)

넷째는 제도 교육 밖에 있는 아이들 교육권을 지켜 주어야 한다.

비를 지원해야 한다. 2014년 4월 16일, 우리 사회와 나라

대안 학교로 분류되는 학교나 가정,

는 이날을 기점으로 거듭나야 하고, 그

스스로 작은 모임을 만들어서 공부하

거듭남은 교육에서부터 시작해야 한

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아이들은

다. 6・4 지방선거에서 보듯 다수 학부

누구나 교육받을 권리가 있고, 국가는

모와 국민들은 교육이 바로 서야 하고,

그 권리를 지켜 줄 의무가 있다. 학교란

그 방향은 보수가 아닌 진보 쪽이라고

개념도 지금처럼 시설과 학생 수를 크

기대하고 있다.

게 규정할 필요가 없다. 아이들이 어디

겉모습만 아니라 속내까지 모두 바

에서 누구한테 배우든 가르침과 배움

로잡아야 거듭남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일어나는 곳은 모두 학교로 봐야 한

(2014.11.20.)

세월호 교육감 시대가 나갈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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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공동체학교

끊임없이 질문하고 새롭게 발명하자! 지역아동센터의 구조 변화 를 위한 길찾기

지역아동센터가 제도화되기 이전에는 관계 중심이었다면, 현재는 프로그램을 하기 위해 아이들이 대상화되고, 교사는 아이들의 삶을 관리하는 생활복지사가 되었다. 센터는 이제 굳건해 보이는 사회 가치 체계의 틈새에서 유쾌하고 발랄한 실천으로 작은 균열을 내야 한다. 김미아 이야기보따리. (사)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의 지역공동체학교인 성남꿈나무와 해송지역아동센터에서 14년째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삶에 이로운 교육은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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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114호


1. 지역공동체학교 활동가들은 1999년 지역공동체학교 네트워크를 시작하여 2003년까지 지역공동체 현장에서 치열한 실천을 했다. 공동육아가 지향하

는 가치를 일상에 실현시키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했고, 실천 과정에서 교육 내용의 긍정적인 의미를 확신하는 시기를 보냈다 1. 2004년부터는 지역아동 센터의 좀 더 확장된 연대 활동에 참여하면서 지역공동체학교의 실천을 사회 적으로 확산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시기였다. 서울지역아동센터협의회 회 장,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정책위원장,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이사, 성 남지역아동센터협의회 회장, 지역아동센터 교육지원센터장, 지역아동센터 서울시 지원단장을 맡으며 지역공동체 활동 10년을 이어 온 김미아 2, 박영선 3, 한연정 4, 정경미 5, 유은진 6 은 지역아동센터 연대 활동에 핵심 역할을 담

당하게 된다. 2009년, 10년의 지역공동체 활동 의미를 함께 논의하고 정리해서 책을 내

었다. 시간을 따로 낼 수 없어 새벽에 만나고, 밤새 토론을 하면서 10년 동안 우리가 해 온 활동의 의미를 해석하고,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에 대해 묻고 대 답하는 토론을 이어 갔다. 석 달 남짓한 기간 동안 집중 토론을 통해 지역아동 센터의 가치와 철학, 교육 내용, 교사론에 대한 글을 완성했다. 이 글은 2010 년에는 보건복지부가 지역아동센터에 파견한 아동복지 교사의 매뉴얼로 나 왔고, 10년차 교사 5명은 집단으로 전국을 다니며 2천7백 명 남짓한 아동복

1. 해송지역아동센터의 역사, 지역공동체학교의 2004년 이전 활동 내용이 궁금한 분은 (사)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에서 펴낸 《함께 크는 삶의 시작》 가운데 김미아가 쓴 ‘절망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을 참고하면 된다. 2. 이야기. 해송지역아동센터 센터장, 서울지역아동센터협의회 회장,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정책위원장・이사, 지역아 동센터 교육지원센터 센터장, 종로구지역아동센터협의회 회장을 맡으며 지역아동센터 연대 활동의 중심에서 실천. 3. 항아리. 강동꿈나무학교 교사, 서울지역아동센터협의회 회장, 지역아동센터 서울시 지원단 단장으로 활동. 4. 하늘. 송파꿈나무학교 교사로 활동, 현재 (사)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간사. 5. 오이. 성남꿈나무학교 센터장, 성남지역아동센터협의회 회장, 성남시립지역아동센터 도담센터장으로 활동. 6. 바다. 송파꿈나무학교 센터장, 서울지역아동센터협의회 교육위원장, 송파지역아동센터협의회 회장으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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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공동체학교

지 교사를 이 내용으로 교육했다. 이 과정에서 10년차 교사 5명의 역량은 눈 부신 변화를 겪게 되고, 지역아동센터 맥락에서는 내용과 실력을 갖춘 활동 가로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후 지역공동체학교 네트워크 안에서 ‘10년차 교사 모임’을 구성하게 되 었고, 지역아동센터 정책, 프로그램 연구, 공동 실천 7 등을 조직하게 된다. 지 역공동체학교를 기반으로 시범이 되는 연구와 실천을 공동으로 진행하고, 그 과정에서 의미 있는 내용이 생산되면 지역아동센터 전반에 확산시키는 역할 을 해 왔다. 10년차 교사 대부분이 지역아동센터의 전국 조직이나 시도 조직 의 중요한 역할을 맡아 활동한 것이 지역공동체의 사회적 실천에 중요한 여건 중에 하나가 된 것이었다. 물론 사회적 돌봄이 필요한 아동이 밀집되어 있는 지역아동센터에 의미 있는 흔적을 남기는 것이 지역공동체학교의 사회적인 역할, 사회적인 실천, 사회적인 운동이라고 생각해 왔던 10년차 교사들의 가 치 지향이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 모임은 2012년부터는 지역공동체 학교 현장교육지원전문가로 이름을 바꾸어 활동해 오고 있다.

2. 우리 사회의 공부방들은 국가의 관심이 거의 없다가 아동복지시설로 법제화 되고 제도화의 틀에 들어간 2004년 이후에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수로 보 면 2004년 895곳에서 2014년 4,036곳으로 450퍼센트의 증가를 보이고, 지 원금 규모로 봤을 때도 센터당 월 67만 원에서 433만 원으로 64퍼센트의 증 가를 보였다. 7. 지역공동체학교 10년 활동을 정리한 아동복지교사 교육 매뉴얼 <아동 지도> 발간, 전국지역아동센터 협회에서 진행한 지역아동센터 적합형 수학 프로그램 ‘신나는 책가방’ 연구 개발에 참여, 지역아동센터에 적합한 통합 예술 교육 프로그 램 ‘나와 너를 표현하고 삶을 연주하라’ 공동 연구・공동 실천, 지역아동센터 적합형 독서 프로그램 ‘스스로 말하게 하 라’ 공동 연구・공동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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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지역아동센터의 양적 확대는 우리 사회가 신자유주의의 깃발 아래 경쟁 위주의 승자 독식 사회로 진입하면서 제기된 절대적인 사회적 요청이 원 인이었다. 언제 추락할지 모르는 불안정하고 위험한 사회로 진입하면서 가족 해체가 급격히 진행되었고, 그로 인해 방임되어 사회적으로 특별한 보호와 교육을 받아야 하는 아이들을 급격하게 양산하게 되었다. 국가가 방임되고 있는 아동・청소년을 책임져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민간 중심의 지역아동센터가 국가의 보조금 지원 확대와 맞물리면서 급격한 양적 확대를 하게 된 것이다. 이제 ‘센터의 교사는 어떤 사람이 해야 하는가?’,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 어 떤 내용을 담을 것인가?’를 국가가 정하는 상황이 되었다. 더욱이 2009년부 터는 지역아동센터에 평가가 도입되면서 평가지표에 현장을 끼워 맞추는 상 황이 벌어지고 있고, 센터 교사들은 아이들과 함께 웃고 울고 이야기 나눌 시 간을 갖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은 이제 프로그램 선생님들에 맡겨져 영혼 없 는 뺑뺑이를 돌고 있다. 제도적인 평가가 작동하면서 대부분의 지역아동센터 들이 어린이자치회의(모둠)를 비롯해 지역공동체학교가 제안한 많은 활동들 을 진행하고 있다. 분명 지역공동체학교가 적극 활동한 결과이기도 하다. 하 지만 활동이 얼마나 내용을 포함해 진행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제도화되기 이전에는 센터 활동이 관계 중심이었다면, 현재는 프로그램을 하기 위해 아 이들이 몸을 대줘야 하는 상황, 아이들이 주체가 되기보다는 대상화되는 경 우가 많다. 교사들도 아이들의 삶을 사랑하고 공감하고 함께 섞이기보다 아 이들의 삶을 관리하는 교사, 관리하는 생활복지사가 되었다. 너무 빡빡해진 센터의 일상, 수많은 행정 서류, 회계 업무 때문에 교사들은 아이와 여백의 공 간에서 이야기할 시간이 사라져 간다. 2004년 이후 법제화되고 평가가 도입되면서 지역아동센터를 둘러싼 환경

은 민간에서 진행되었던 소박하지만 찐한 삶의 의미를 만들었던 공부방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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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공동체학교

과는 다른 근본적인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지역공동체학교는 우리 스스로에게, 지역아동센터에, 우리 사 회에 다시 질문을 던지고 고민해 보려 한다.

지역아동센터를 둘러싼 우리 사회 구조를 어떻게 파악하고 해석할 것인 가? 지역아동센터는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창조할 수 있는가? 지역아동센터의 구성원인 아이들, 부모들, 교사들의 삶의 문제는 어디에서 오는가? 센터 아이들이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라는가? 삶에 유용한 능력은 어떤 것들이며 센터에서 이런 능력을 키우기 위해 어떤 활동을 해야 하는가? 지역아동센터에 참여하는 모든 구성원은 자율적이고 능동적인 주체로 성 장하고 있는가? 지역아동센터의 활동 과정에서 배타적 권력을 가진 수직적 관계가 만들어 지는가, 다중 중심의 수평적 관계가 만들어지는가? 지역아동센터에서 관계를 맺는 방식 즉 모든 활동 과정에서 경쟁적인 관계 의 습관이 변화하고 있는가? 지역아동센터에서 우리의 감각을 바꾸는 새로운 상상력, 새로운 실천이 진 행되고 있는가? 새로운 상상력과 실천(행동)을 통해 우리 몸을 지배하고 있는 습관과 기억, 감각이 바뀌고 있는가? 우리들의 삶의 맥락, 삶을 대처하는 방식과 내용이 달라지고 있는가? 지역아동센터에서 더 다양하고 이질적인 접속을 통한 새로운 실험들이 이 어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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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차이의 생성을 통해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배치와 전망을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

2014년부터 지역공동체 현장교육지원전문가모임에서 위와 같은 현재진행

형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고, 연대 활동의 비중을 줄이고 센터 현장에서 새로운 실험이 진행되어야 함을 문제의식으로 갖게 되었다. 좀 더 의식적이고 실험적인 공동 실천과 공동 학습이 요구됨을 느끼게 되었다. 센 터 아이들의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위한 공동 실천으로 아이들의 주체적 참 여가 구조화되어 있는 ‘독서 세미나’를 실험하고 있고, 우리가 처한 현실과 실 천을 해석하고 조망하기 위해 엄훈의 《학교 속의 문맹자들》, 자크 랑시에르의 《무지한 스승》, 조지프 페인의 《스스로 깨치는 아이들》,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로 강독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3. 다시 지역공동체학교가 우리 사회에서 기존의 지배 질서에 순응하도록 구조 화되고 있는 지역아동센터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사유를 강요하는 실천적인 활동을 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굳건해 보이는 사회 가치 체계의 틈새에서 유쾌하고 발랄한 전복적인 실천 을 통해 작은 균열을 내야 한다. 척박한 시멘트 블록 틈새에서 피어나는 민들 레꽃은 시멘트 블록 속에 생성의 잠재력이 꿈틀거리고 있음을 증언하는 것이 다. 지역공동체학교가 화석화되어 가는 지역아동센터들의 구조를 흔들고 변 형시키는 유쾌한 꽃이 되고자 한다. 지역아동센터 교사들의 잠재력을 촉발시 킬 수 있도록, 그들이 꿈틀거릴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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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 후

두근두근방과후 교육의 역사

자유로움과 몰입의 역사로 떠나는 여행

들어가는 말

- 두근두근방과후의 도전과 실험 2014년, 두근두근방과후(두근두근)는 또 한 번 교육에 대한 도전과 실험을 하

고 있다. 이 도전과 실험에 실패한다 하더라도 우리 교사들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 이미 교육 활동을 담아 낼 시・공간의 틀을 벗어던진 터라 돌아가려야 돌아갈 곳이 없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교육 활동이 교육의 본질에 얼마나 다가갔는지를 고민해서 얻어 낸 것이 아니라, 교육 이전에 인 간이 어떠한 환경에 놓여 있을 때 스스로 동기 부여와 자발성과 책임성이 극 대화되는지를 고민하고, 이렇게 해서 회복되고 늘어난 성취감과 자존감이 제 2의 성장 동력에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의 토대 위에서 방향을 세

워 두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금 두근두근에서 지향하고 있는 교육 활동 방극조 바가지. 과천 두근두근방과후 교사로 12년째 일하고 있다. 30대를 온통 아이들과 날것으로 만났다. 쉽지만은 않았다. 40대에는 평화롭게 모든 것들을 만나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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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내용과 형태가 완전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두근두근은 실험 과 도전으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또다시 다른 모습으로 쉽게 변할 수 있도록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젖어 있던 관성의 틀을 부수어 냈다는 점이 더 중 요하다고 할 수 있다. 돌이켜 보면 2014년 두근두근의 교육 모델은 2003년에 미약한 모습으로 시작한 뒤부터 천천히 진화해서 오늘에 이르렀다기보다는 방과 후 태동 때부 터 꿈꿔 온 모델이 아닌가 싶다. 다만 해마다 달라지는 교사 구성으로 인해 처 음 교육 모델은 그 의미나 실천 방식이 전수되지 못한 채 외부 여건과 현실 조 건에 맞게 변화해 간 게 아닌가 싶다. 그렇게 본다면 지금에서야 처음의 교육 내용을 실행할 수 있는 여건이 두근두근에 마련됐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두근두근 교육 활동의 역사를 한 주 흐름 속에 녹아 있는 활동을 토대로 살 펴보겠다.

2002~2006년 두근두근방과후는 2002년에 문을 열었다. 2003년에는 이미 그 규모나 교사 구성원 면에서 보았을 때 다른 방과 후와 견주어 나무랄 데가 없었다. 다만 이 시기는 초등 대안 학교가 태동되던 터라, 교사나 조합원 들은 방과 후의 정체 성에 혼란을 겪고 무기력해져 있었다는 느낌이다. 이 시기 활동의 틀은 방 활동, 통합 활동, 선택 활동 세 요소가 바탕을 이루 고 있다.

방 활동 방 활동은 담임선생이 방 아이들과 활동하는 시간이다. 아이들이 바라는 옛 날이야기 듣기, 세시절기에 맞는 활동하기, 나들이 가기 같은 활동을 담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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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 후

생과 아이들이 함께 협의하고 협력해서 진행해 나갔다. 한 주 흐름 속에서 연 계성을 갖기 위해 이틀에 걸쳐 진행하기도 했다.

통합 활동 통합 활동은 방을 넘어서 전체 학년 모두가 참여하는 활동으로 정해진 요일 에 어린이회의, 긴 나들이, 마당놀이, 산행, 시장놀이로 자리를 채웠다. 어린이회의는 보통 한 달에 한 번씩 전체 아이들이 거실에 빙 둘러앉아 지난 달을 돌아보며 다음 달 계획을 세우는 자리다. 이곳에서 터전 안에서 벌어지 는 갈등의 해결 방안을 찾기도 한다. 어린이회의 진행자는 선거로 뽑았다. 긴 나들이는 어린이집 아이들처럼 일상으로 나들이를 할 수 없기 때문에 한 달에 한 번 먼 곳으로 나들이를 가거나, 산행도 긴 나들이의 하나로 이루어졌다. 시장놀이는 한 달에 한 번 하는데, 이 진행도 아이들이 뽑은 시장위원장이 한다. 어린이회의에서 그 달에 시장이 열리는 날을 결정하면 시장위원장은 가 게 운영자를 모집한다.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가게 이름과 팔 물건을 결 정한 다음 물건을 만든다. 시장이 열리면 가게 주인들은 그동안 준비한 물건과 음식을 진열해 놓는다. 아이들은 은행에 가서 시장에서 유통되는 화폐를 찾 아 소비 활동을 한다. 시장이 닫히면 쓰고 남은 화폐를 다시 은행에 저축한다.

선택 활동 선택 활동은 방과 통합 활동을 해체한 뒤 몇 가지 정해진 활동 가운데서 하나 를 선택하여 담당 선생과 활동하는 방식이다. 선택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아 이들에게 하고 싶은 활동 설문조사를 한 뒤에 교사 수만큼 활동을 간추리고, 그 안에서 아이들이 한 가지를 선택하게 해 모둠을 꾸렸다. 모둠 활동은 일주 일에 한 번씩 약 서너 달 동안 정해진 요일에 모둠 아이들과 담당 선생이 모여 협의, 협력하여 진행한다. 동물 탐구 모둠, 천연 염색 모둠, 운동 모둠, 미술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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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둠, 연극놀이 모둠, 수놀이 모둠 들이 있었다. 몇 달 동안 활동한 뒤에 발 표회 형식으로 다듬어서 다른 모둠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삶은 없고 조각만 남다 이러한 한 주의 흐름은 공동육아 방과 후를 처음 시작한 도토리방과후의 모 델을 뒤이어 다른 방과 후들이 계속해서 벤치마킹(bench-marking)하여 두 근두근방과후에도 계승되었다. 그 활동의 틀과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전통으 로 지향하는 가치와 삶의 방식을 초등 시기 아동들에게 맞게 재구성해서 확 대・심화시켜 보고자 했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세시절기・나들이・통합 활 동・마당놀이 같은 활동으로 공동육아와 연계성을 놓지 않으려 했으며, 어린 이회의・시장놀이・선택 활동 같은 활동으로 소통과 자발성에 바탕을 둔 자치 문화를 꿈꿨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전통으로 지향해 나가던 가치를 이어 나가고, 한편으로는 공교육으로 무기력해질 아이들을 걱정하는 모습이 고스 란히 한 주 흐름에 녹아들어 있다. 하루가, 한 주가, 한 달이, 일 년이 숨 쉴 틈 없이 지나가고 말았다. 교사를 기준으로 한 주 흐름을 보자면 방 활동과 선택 활동을 혼자 진행해야 하는 부 담감과 교사회의에서 교사 개인에게 분담된 어린이회의, 시장놀이, 긴 나들 이, 산행 같은 통합 활동의 부분을 진행해야 하는 부담감이 이중으로 작용했 다. 더욱이 한 주의 흐름을 요일별로 종으로 나누어서 그 안에 활동을 배치하 다 보니 한 가지 활동의 지속성과, 활동과 활동 사이의 연계성이 부족하여 활 동이 활동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이러한 한 주 흐름의 종 방향 구분 은 하루 흐름의 횡 방향 시간 구분과 교차되면서 다시 한 번 잘게 부수어졌다. 아이들과 교사의 삶이 잘게 부셔져 틀에 갇힌 퍼즐 조각과도 같은 모습이었 다. 삶은 없고 조각만 남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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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 후

교사의 삶이 이러한 모습이고, 활동이 주가 되기는 하나 조각으로 자리하 다 보니 아이들과 일상으로 놀 시간이 없었다. 아니 어쩌면 활동을 하고 나면 아이들과 놀 힘과 의지가 고갈된 상태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맞을 것 같다. 바 쁘게 많은 것을 하면서 의미를 담아 보려고 살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의미를 담아서 진지하게 실행하거나, 그렇게 해서 아이와 교사가 교감하고 있다는 느 낌을 갖기가 힘들었다. 교사가 몰입하지 못하고 배움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이어지고, 우리는 이러한 모습으로 2006년까지 5년을 살아왔던 것 같다. 새 로운 것을 꿈꾸고 시도해 보기에는 교사들 서로가 서로의 한계를, 우리의 한 계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이대로는 숨을 쉴 수조차 없을 것 같았다. 조금 덜어 내야 할 것 같았다. 아 이들과 교사의 삶을 담아 내지 못하면서 공동육아이기에 당연히 해야 할 것 같은 활동,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유지하고 있는 활동, 아이들의 자발성과 주 체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활동임에도 실제 현실에서는 교사가 주관 해야 할 수 있고 그 형식만 남아 있는 활동을 덜어 내 보았다. 세시절기 활동, 일상 나들이, 산행, 반말 문화, 시장놀이, 선택 모둠 활동, 자치 문화, 어린이회 의 문화, 사회 문제 참여 활동 들이 두근두근의 역사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형 태가 사라진 것이지 그 안에 담고자 하는 가치들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2007~2009년 상반기 요일별 활동과 자유의 날 2007년도 한 주 흐름의 바탕은 교사와 아이들이 나누고 싶은 가치를 담을 수

있는 활동을 최소로 배치하고, 나머지 모든 시간은 아이들이 놀고 자신의 삶 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돌려주고 싶었다. 또한 한 주 5일 가운데서 모든 요일에 활동을 배치하고 그것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것은 힘들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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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했다. 그래서 하루는 외부 강사가 진행하는 교육 활동의 날로, 하루는 아 무 활동도 하지 않는 자유의 날로 두었다. 월요일 방 활동은 학년 담임선생과 아이들이 모여서 한 주의 활동 계획을 공유하거나, 아이들의 일상생활을 점검하기 위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으로 구성했다. 화요일 글쓰기 시간에는 이오덕의 ‘삶을 가꾸는 살아 있는 글쓰기’ 정신에 바탕을 둔 글쓰기를 했다. 수요일 외부 강사 시간에는 미술놀이, 연극놀이 같은 특별 활동 한 가지를 선택하여 전문 선생님과 반 학기 정도를 이어서 했다. 목요일 빛 그림 동화 시간에는 교사들이 좋은 동화책을 골라 삽화를 피피 엠(PPM)으로 제작하여 벽에 빔으로 비춘 다음 효과음을 넣어 읽어 주었다. 금요일 자유의 날은 활동을 위하여 교사들이 아이들을 불러 모으지 않는 날이다. 간식도 원하는 시간대에 자유롭게 먹을 수 있으며, 집에서 만화책과 장난감을 가지고 와서 터전에서 놀 수 있게 했다.

활동의 틀이 삶과 놀이를 구속하다 자유놀이가 많아져서 아이들은 즐거워했다. 그러나 자유놀이가 많아졌음에 도 아이들은 여전히 놀이에 배고파했다. 교사들은 글쓰기와 동화 시간에 공 동육아에서 지향하는 가치를 담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며, 아이들 삶을 가꿀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놀이는 활동의 대가로 치 러지는 듯해 보였고, 아이와 교사 사이에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처럼 느껴 졌다. “안 하면 안 돼요?”, “꼭 해야 해요?”, “못 놀았어요” 같은 말은 두근두 근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이제는 누구와 타협하기 위해 교육 활동을 구성하 는 것이 아니라 더욱 더 자유롭게 원론에서부터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 았다. 아이들은 짜인 활동으로 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고, 재미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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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 후

보이는 활동도 틀을 가져다 들이밀면 자발성을 이어 가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알았다. 활동의 틀이 아이들과 교사의 삶과 놀이를 오히려 스스로 움직이지 않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고민되기 시작했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결단이 필요했다. 2009년도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여름교사대회 방과 후 교육 사례 발표 시간에 그동안 해 온 고민을 정리해서 발표할 기회가 생겼다. ‘공동육아 방과 후, 아이들과 무엇을 하며 지낼까?’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지금도 교사대회 전날 새벽까지 흥분된 가슴을 주체하 지 못하고 밤새 글을 써서 다음 날 피곤한 눈으로 대회에 참여했던 기억이 오 롯이 생각난다. 지금도 발제문의 서문을 읽어 보면 눈시울이 다시 뜨거워지려 고 한다.

공동육아 방과 후, 아이들과 무엇을 하며 지낼까? 아래 글은 제가 6년 동안 두근두근방과후에서 아이와 부모와 동료 교사들과 지 내면서 경험한 내용을 토대로 작성한 글입니다. 날마다 마음속에서 모래바람처 럼 이는 상심을 애써 외면하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고, 위로 하기도 하고, 스스로를 격려하면서 지내 온 시간이었던 같습니다. 지금 와서 생 각해 보면 가장 힘들었던 순간들이 생각을 정리하기에는 가장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2009년 여름교사대회 즈음에 이런 고민을 했노라고, 이렇게 라도 적어 놓지 않으면 또 다시 바쁜 일상생활에 치여 지금의 고민들이 어디론가 모두 날아가 버릴 것 같은 조바심이 듭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 이 순간, 이렇 게 정리된 생각마저도 또다시 언제 어떻게 바뀌어 변해 버릴지 모릅니다. 그래서 글로 뭔가를 남긴다는 것이 썩 내키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언제까지나 무 엇이 됐든, 본질에 대해서 고민하려는 노력을 계속해 간다면, 어제의 생각이 오 늘과 다르고, 오늘의 생각이 내일과 달라져 변해 간다고 하는 것은 참 반가운 일 입니다. 지금 두근두근방과후에서 고민하고 실험하려는 교육 내용과 방식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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른 방과 후의 그것과는 어떤 연속선상에 있는지, 도대체 무엇이 교육적 실험을 지 속해 나가는 데 필요한 상상력을 가로막고 있었던 건지 같이 고민하는 자리가 되 기를 바랍니다. 발제한 내용 중에 다소 객관성을 잃은 부분도 있으리라 봅니다. 그것은 경험의 한계이고, 저의 한계이기도 합니다. 널리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서문을 시작으로 작성한 발제문에서 2009년 현재 두근두근의 문제의 식을 몇 가지로 요약한다면 다음과 같다.

아이들은 방과 후에서 충분히 놀고 있으며, 쉬고 있는가? 교육 활동이 오히려 이를 방해하고 있지는 않은가? 정말로 아이들이 놀이에서 세상을 배워 나가는 힘을 기르고 있다고 믿고 있으며, 그렇다면 방과 후에서 아이들을 더 놀게 해 줄 자신이 있는가? 교사가 만들어 놓은 활동을 하면서 아이들은 자발성을 발휘하며 삶의 주 인으로 성장하고 있는가? 터전의 물리적 안정화, 운영의 효율성과 수월성을 위해 교육 활동을 구성 할 때 부모들의 영향 때문에 적당히 합의한 상태로 방어하며 대처하고 있 지 않은가? 아이들은 교사를 믿고 의지하고 있으며 교사들은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고 있다고 믿으면서 행복감을 느끼는가? 우리가 공동체 안에서 성장할 거라 믿고 이를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그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 우리의 상상력을 가 로막는 막연한 두려움을 벗어던진다, 아이들이 놀이만이라도 실컷 할 수 있 도록 방과 후 하루 흐름에 놀이를 가장 중심으로 구성한다, 정해진 시간에 정 해진 아이들과 정해진 활동을 안 한다, 활동이 필요하다면 그 활동의 교육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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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 후

용과 형식을 잘게 부수어 일상생활 속에서 구현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발제문은 두근두근방과후에서 해 오던 교육 활동의 의미와 그 활동이 생겨난 안팎의 역학관계를 들여다보고, 새로운 틀거리를 만들기 위해 스스로를 비우려는 노력이었다. 무언가 채우려고만 했을 때 보이 지 않던 것들을 일단 비워 놓고 무엇이 채워지려고 하는 관성을 들여다보자 는 것이었다. 이러한 고민 끝에 2009년 하반기에 새로운 교육의 틀을 세웠다. 그 틀은 틀이 없는 틀이다.

2009년 하반기 날마다 자유의 날 하루와 일주와 한 달, 일 년을 비워 놓고 일상에서 일어나는 아이들의 지적 호 기심과 활동 욕구를 활동으로 구성해 아이들의 선택을 통한 자발성과 책임성 을 바탕으로 확장, 심화시켜 나가고 싶었다.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터전에 와서 숙제를 하고 나면 하루가 그대로 통으 로 떨어졌다. 날마다 자유의 날이었기에 집에서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 일주일 내내 터전에 넘쳐 났으며, 아이들은 대부분 몇 달 동안 야구만 하거나 장난감 을 가지고 놀았다. 마치 신들린 사람들처럼 놀아 대기 시작했다. 교사는 아이 들과 실컷 놀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쉼 없이 쏟아 내는 말과 행동에서 의미를 발견하여 활동으로 구성할 것을 마련하기 위해 촉수를 곤두세웠다. 이 시기에 그러한 방향에 걸맞은 활동의 성과는 없었으며, 사실 그러한 방 향에 대한 어렴풋한 생각만 있을 뿐 어떤 것을 확실히 활동으로 펼쳐 나갈 자 신감은 없었다. 다만 성과라고 한다면 아이들과 한 주를 통으로 제대로 노는 것만으로도 아이들도 교사들도 바빴다는 점이다. 굳이 활동이 아니더라도 많은 놀이로 한 주를 잠잠히 채워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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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년 통합으로 틀을 만들려는 욕구가 생기다 이러한 텅 비어 있는 시간을 충분히 누렸지만 그 안에서 어떠한 활동도 제대 로 실험해 보지 못했으며, 이러한 실험을 하면서 처음 생각을 수정・보완해서 다시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 낼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여섯 달이 지난 뒤 학년 통 합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운영과 재정의 통합은 이루어졌으나 공간 통합은 이루지지지 않은 채 저학년, 고학년이 나뉘어 자리를 잡았다. 저학년 교사와 고학년 교사가 1 대 1로 교환 배치되었으며, 신입 교사와 경 력 교사를 뽑아 저학년・고학년 교사회를 따로 구성했다. 저학년교사회는 저 학년교사회대로, 고학년교사회는 고학년교사회대로 한 번도 공감대를 형성 해 본 적 없는 구성원들이 모여 서로 다른 생각과 실천 방식을 어떻게든 조율 해서 저마다 틀을 만들어 내야 하는 목표가 가장 앞서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통합을 바라보는 부정의 생각과 불안감을 가장 짧은 시간에 해소해야 하는 압 박감도 있었다. 한시라도 빨리 뭔가를 보여 줘야 했다. 또 다시 틀이 필요했다. 그러면서 2009년까지 해 오던 고민은 두근두근의 역사에 묻히는 듯 보였다.

2010~2011년 빈 날과 자유의 날 월요일은 두 공간으로 나뉘어 생활하고 있는 아이들과 교사들이 마당에 모두 모여서 노는 날이다. 이렇게 해서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관계의 폭을 넓혀 보자는 마음이 절실했다. 저학년은 저학년대로, 고학년은 고학년대로 모둠별 로 나뉘어 간식을 만들어 먹는 모둠별 요리 활동 시간이 들어가 있다. 요리 활 동을 한 데는 교육 활동이라는 의미도 있으나, 둘로 나뉘어 있는 공간의 급식 을 잘 해결하여 영양 교사와 교사의 부담감을 덜어 내고 자연스럽게 활동으 로 연결하려는 뜻이 들어 있었다. 저학년은 특별 활동으로 외부 전문가를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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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생태 나들이를 했다. 또 고학년은 금요일에 6학년을 중심으로 어린이회의 를 했다. 나머지 활동이 없는 날은 하루를 통째로 비워서 ‘빈 날’로 만들고, 또 다른 한 요일은 자유의 날로 저학년은 장난감을 가지고 올 수 있게 하고, 고학 년은 마음대로 방과 후에 나올 수 있도록 했다. 이 시기 활동은 두 조합의 통합과 신규 교사 채용으로 교사 구성원 사이의 공감대 형성과 실행력 부족으로 내용과 형식이 다시 그 앞으로 돌아가는 면 이 있었으나 그것이 최선이었다. 그동안 두근두근에서 고민하고 시도하려던 교육 방향의 일부가 흡수되어서 필수 참여 활동과 선택 참여 활동이 조화를 이룰 수 있게 노력했으며, 아이들이 일상으로 쉬고 노는 시간을 되도록 많이 배치했고, 어떤 활동이든 아이들과 함께 교사가 구조화시켜 나갈 수 있도록 시간 틀을 부수어 여유롭게 했으며, 아예 빈 날을 두기도 했다.

형식의 틀을 향한 관성이 작용하다 연간 교육계획 회의에서 마련한 월별 교육계획은 계획한 대로 진행되지 않았 다. 계획한 내용이 너무 많았고, 실행 교사 주체가 뚜렷하게 설정되지 않은 채 활동 내용만 놓여 있었으며, 월별로 연계성과 지속성 없이 분절되어 있는 듯 보였다. 어쩌면 계획을 세우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가장 큰 무게감은 아이들의 다양한 욕구를 제때에 제대로 펼치고 실행하기에는 교 사의 전문성과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2011년 10월에 저학년, 고학년 두 공간으로 나뉜 공간을 합쳤다. 1학년부

터 6학년까지 한 터전에서 버글버글하게 생활하게 되었으며, 교사 또한 얼굴 을 한 주 내내 맞대고 살게 되었다. 저학년 부모는 아이들이 고학년에게 치이 지 않을지, 고학년 부모는 고학년이 그동안 해 오던 활동이 위축되지 않을지 서로 긴장하고 있었다. 또다시 뭔가를 보여 주어야 할 때가 왔다. 뭔가 보여 줄 것이 없으니 형식의 틀만이라도 견고히 하고 싶은 관성이 작용하는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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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2013년 상반기 선택 참여 활동 교사 5명이 힘을 모두 모아 필수 참여 활동보다는 선택 참여 활동을 주로 하 여 아이들이 선택의 폭을 넓히도록 했으며, 공간 통합의 효과를 극대화시키 고자 했다. 활동마다 진행 주체가 뚜렷해졌으며, 교사가 시간에 구속받지 않 도록 하루와 한 주 가운데서 활동 시간대를 유기적으로 선택하여 쓸 수 있도 록 하고, 저마다 전문성이 있는 것으로 활동 내용을 구성하게 했다. 하지만 여 전히 교사 한 사람이 진행해야 할 주제가 여러 개이다 보니 전문성을 갖기 위 한 연구 시간이 부족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스스로 참여하고 함께 만들 어 가는 활동을 구조화시켜 나가는 데 한계를 보였고, 교사는 마련하고 아이 들은 선택하는 손쉬운 교육 활동 방식을 벗어던질 수 없었다. 그보다 더 본질 적인 고민은 숙제 시간과 활동 시간의 관계가 변화하면서 시작하게 되었다.

숙제 시간과 책 읽기 시간의 결합 하루의 흐름 속에서 숙제할 시간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저학년 같은 경우에 는 터전에서 실컷 놀다가 집에 가서 씻고 밥 먹고 하다 보면 숙제할 체력이 남 아 있지 않다. 하루의 흐름을 어떻게 구성하든 간에 간식 시간을 뺄 수 없듯 이, 숙제 시간도 하루 흐름 속에서 어떤 형태로든 자리를 잡아 왔다. 숙제가 있는 아이들과 없는 아이들의 형평성 문제와, 날마다 짧게 책 읽는 습관, 공 부가 아니더라도 앉아 있는 습관은 아주 중요할 것 같은 막연한 안도감을 충 족시키고자 숙제 시간과 책 읽기 시간을 자연스럽게 결합했다. 숙제를 하거나 책을 읽거나 어차피 어느 누구도 이 시간을 거부하고 밖에 나가서 놀 수 없으니 아주 공정한 형평성으로 강한 구속력을 갖게 되었다. 30 분 동안 조용하게 시간을 보내고 나면 아이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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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밖으로 뛰쳐나가 놀았다. 숙제 시간의 지루함을 조금이나마 풀어 주기 위 해서 숙제도 없고 책도 읽기 싫은 아이들은 잠을 잘 수 있는 방을 만들어 보기 도 했다. 그럼에도 지루한 30분이 지나가고 활동을 펼칠라치면 아이들은 오 늘도 활동 때문에 놀이를 뺏겼다고 원망을 쏟아 냈다. 아이들의 이러한 무력 해진 눈빛에 교사도 동기를 상실하고는 했다. 그래서 오후 4시가 지나야 펼칠 활동을 조금씩 숙제 시간 안으로 들여오게 되었다. 어차피 숙제를 하거나 책을 읽거나 하나를 선택해서 그 시간을 보내 야 할 것 같으면, 활동 시간에 펼칠 활동을 숙제 시간에 하는 것은 아이들에 게는 잘된 일이다. 교사와 아이 사이에 최소한 지켜야 할 예의를 지키면서 타 협점을 찾았다. 교사는 아이들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미약한 활동 참여 의지 를 붙들고 숙제 시간 안에 활동을 마쳐 주어야 했다. 한편으로는 아이들의 놀 이를 조금이나마 보장해 주고 싶은 마음이 있기도 했다. 두근두근의 ‘들숨’ 시간은 그렇게 탄생되고 변질되어 갔다.

활동의 틀이 동기 부여를 가로막다 2013년도 상반기 교육 평가를 하기 위해 교사들은 여느 때처럼 일과가 끝나

고 저녁 시간에 빙 둘러 모여 앉았다. 일과가 끝나고 집에 가서 쉬어도 시원찮 을 텐데 그러고 앉아 있으니 긴 한숨이 나왔다. 침묵이 흘렀다. 언제까지 이러 고 살 수 있을까? 두근두근이 이름처럼 날마다 아이들과 교사에게 ‘두근두 근’할 수는 없는 것일까? 무엇이 문제일까? 아이들은 활동을 두근거려 하지 도 않고, 교사 또한 활동에 빨려드는 아이들의 눈빛을 보면서 두근두근거리 는 일이 없다. 활동이 아이들에게나 교사들에게나 치러야 하는 일로만 다가 오는 느낌이었다. 무엇이 문제일까? 틀이 문제일까? 교육의 틀이 아이와 교 사에게 동기 부여를 가로막는 요소로 작용하는 것은 아닐까? 다시 한 번 결 단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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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하반기 시・공간의 틀을 벗다 2013년 하반기에는 상반기 내용을 아무런 시・공간의 틀 없이 진행해 보기로

했다. 터전에 남은 것이라고는 자유롭게 시간대를 선택해서 하기만 하면 되는 숙제 시간(오후 2시~4시 30분)과 간식 시간(오후 3시~4시)뿐이었다. 하루가 일주일이, 교사와 아이가 덩그러니 남은 느낌이었다. 그나마 아이 들과 교사 사이에 미약하게 구속력을 갖고 있던 시간대가 사라진 것이다. 이 제는 터전에 밀물처럼 밀려왔다가 저녁이 되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아이들 의 흐름 속에서 교사가 펼쳐 온 활동을 보따리에 담아 둘러메고 저잣거리에서 아이들에게 흥정을 해야 할 판이었다. 아이들에게 동기를 불어넣어 참여를 이끌어 내고, 아이들과 함께 활동을 구조화시키면서도 그 활동을 이어 가야 한다. 누구와 언제 무엇을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마무리하라는 시간과 공간 의 구속력은 강을 건너 버렸다. 아이들의 강한 놀이 욕구와 본능을 무마시킬 정도로 자신 있게 활동을 펼쳐 나갈 교사는 없어 보였다. 그것을 잘 알기에 섣 불리 교육 활동이라고 펼칠 자신이 없었다. 우리 교사들은 무엇인가 혼자 열 중하고 있는 교사를 힐끗 보고서는 운동장으로 가고 마는 아이들의 뒷모습 을 보면서 하반기를 보냈다. 교사들은 서로 말은 안 했지만 상당한 무력감에 시달렸다. 하지만 한편으 로는 그동안 아이들과 나름대로 가치를 내세우고 진행해 온 활동이 붙들고 있는 역학관계와, 그것을 유지해 오려 했던 관성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교사 스스로 안에서 새롭게 일어나는 욕구가 있어도 아이들의 욕구와 어느 지점에서 어떻게 만날 수 있을지, 만난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지 확언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이는 교사 역 량의 한계를 괴롭게 곱씹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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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욕구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방법으로 활동을 구조화시켜 나가야 하는지 다른 교사들도 모르듯이 나도 몰랐다. 운동장에 나가서 하릴없이 아 이들이 노는 것만 바라보다가 혼자서 들어오기 일쑤였다. 아이들에게 교사는 불필요한 존재로 느껴졌으며, 그렇게 천천히 내가 스스로 만들어 놓은 정체 성에 하루하루를 공허하게 보냈다.

불 피우기로 찾은 몰입의 경험 겨울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웃에서 민원이 들어왔다. 두근두근에서는 겨 울이 다가오면 벽난로에 불을 땐다. 벽난로는 난방뿐 아니라 다른 활동과 자 연스럽게 연결시켜 주는 구실도 해 왔다. 해가 저물어 오면 아이들과 벽난로 앞에 모여서 은행・밤・고구마도 구워 먹고, 흙으로 뭔가 주물러 만들어서 불 에 구워 내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흙 작업과도 연결되었다. 그런데 그 벽난로 에서 나오는 연기와 먼지 때문에 민원이 들어와 불을 땔 수 없게 되었다. 교육 의 틀거리도 다 벗어던진 마당에 불 없이 겨울을 날 생각을 하니 가슴이 싸늘 해졌다. 불을 피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과 구석기 방식으로 나무를 비벼 서 불 피우는 데 성공만 한다면 벽난로에 불을 때지 못하는 상실감을 위로받 을 것 같았다. 그리고 뭐라도 나만이라도 혼자 서툴게나마 시작해서 다른 교 사들에게 실낱같은 방향을 제시해 주고 싶었다. 더 무기력해졌다가는 영영 헤 어 나올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구석기 방식으로 불을 피우는 것은 텔레 비전에서나 봤지 실제로 해 본 적은 없었다.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아이들 앞에서 권위를 자연스럽게 내려놓을 수 있었으며, 방향이 언제 어디 서 어떤 동기로 뻗어 나갈지 아무도 몰랐다. 한편으로는 불안했지만, 한편으 로는 날마다 가슴 뛰는 일이었다. 구석기 방식으로 불을 피우겠다고 지하실에 아이들과 ‘불연구소’를 차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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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 10월 말, 아이들 20명이 불을 피우는 데 모두 성공하고 지하실에서 올라 왔을 때는 계절이 바뀌어 있었다. 벌써 3월이 되었다. 넉 달 동안 머릿속에는 온통 불을 피워야겠다는 생각으로 잡념이 없었다. 한 번 활동을 시작하니 그 내용과 방향은 스스로 채워 나가게 되었다. 그렇다고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 었던 것 같다. 처음에 아이들 누구에게나 가볍게 일어나는 동기를 붙들고 그 것을 어떤 새로운 동기로 밀어 올려 탄력성을 유지할 것인가는 늘 고민이었다. 그러기에 교사는 더욱더 몰입하게 되었고, 그 몰입으로 얻어 낸 경험과 성취 감을 아이들과 어떻게든 나누려는 교사의 눈빛을 아이들은 온몸으로 빨아들 였고, 그것은 몰입에 이르는 데 충분히 밑바탕이 되는 교감의 순간들이었다. 2013년 하반기 교육 평가 회의 시간이 돌아왔다. 우리는 틀 안에서 나름대

로 잘 진행되었던 상반기 교육 활동이 왜 하반기에는 진행되지 않았는지 서로 되묻기 시작했다. 진행을 안 했던 것이 아니라 진행할 자신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며, 그렇다면 왜 진행할 자신이 없었는지를 다시 묻기 시작했다. 어렵지 않게 우리는 그 이유를 찾고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교육 활동이 교사의 삶에 의미 부여가 되지 않아서 교사 스스로 몰입과 배움과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교육의 효과는 한계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2014년 상반기 교사가 자신 있는 활동 한 가지만 2014년에는 교사 스스로 가장 잘할 수 있고, 재미있어하는 활동을 딱 단 한

가지만 선택해서 깊이 있게 이어 나가 보기로 했다. 당장 그런 활동을 찾을 수 없다고 해도 활동을 만들어 내야 하는 압박감으로 급급해하지 않고 차라리 아이들과 실컷 마당에 나가서 뛰놀기로 했다. 시・공간의 틀도 없으며, 특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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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학년도 없다. 흰개미 선생은 앞으로 아이들과 축구만 하겠다 하고, 다정 선생은 춤만 추겠다고 했다. 모아 선생은 아이들과 미술 활동을 한다 하고, 나는 공작만 하겠다고 했다. 다람쥐 선생은 아이들과 마당에서 열심히 뛰놀 겠다고 했다. 이만큼이 두근두근교사회가 2014년 교육계획으로 내놓은 전 부다. 월별 계획도 없고, 연간 교육계획은 더욱이 있을 수 없다. 2014년 교육 계획 회의 끝! 흰개미 선생은 2014년 상반기에 두근두근 축구 팀을 창단했다. 이름은 ‘두 근 히어로즈’. 곧 유니폼도 맞추고, 팀원들이 디자인한 엠블럼을 가슴에 달고 다른 팀과 리그전을 준비하기 위해서 저학년, 고학년으로 나누어 풋살 구장 에서 축구 훈련을 열심히 하고 있다. 다정 선생은 ‘노을 클럽’을 만들었다. 이 층 해가 잘 드는 방에서 노을이 질 때쯤이면 그 빛을 조명 삼아 아이들과 춤을 춘다. 얼마 전 케이팝(K-pop) 댄 스 대회를 치렀으며, 조합 행사인 명랑운동회 때 그동안 갈고 닦은 춤 실력을 발휘할 계획이다. 또 춤추는 것 이외에 아이들과 몇 주 동안 실 팔찌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모아 선생은 상반기에 아이들과 영화 두 편을 만들어 ‘부산국제어린이영화 제’에 출품하여 3관왕의 영예를 안았다. 지금은 아이들과 북 아트로 자기만 의 동화책을 만들기 위해 샘플을 열심히 만들고 있다. 나는 아이들과 구석기 시대 방식으로 불을 피우는 데 성공했다. 지금은 여 름 들살이로 제주도 자전거 일주를 하기 위해 아이들과 자전거를 완전 분해 해서 다시 조립하는 데 성공했다. 지금은 아이들이 다시 심심해할 때까지 기 다리고 있다. 다람쥐 선생은 안식 월을 맞고 있는데, 안식 월이 되기 전날까지 관악산 물 놀이터에서 어찌나 아이들과 열심히 놀았는지 손에 주부 습진이 생겼다. 이렇게 2014년 상반기가 끝나고 하반기로 접어든 10월 현재, 두근두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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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은 어떤 고민을 또다시 하고 있을까? 우리가 1년 전부터 고민했듯이 교사는 활동하면서 스스로 몰입하고 배웠으며, 그렇게 해서 아이들도 몰입하 고 배울 수 있게 이끌었을까? 아이들과 교사들은 행복했으며 날마다 두근두 근거렸을까? 잘 모르겠다. 아이들한테 물어봐도 시원한 대답을 해 줄 것 같지 는 않다.

글을 마무리하며

- 아이와 교사의 몰입을 위해 그동안 10년 남짓한 기간에 걸쳐 두근두근방과후가 변화해 온 교육의 방향 과 틀은 고정되었거나, 안정된 교사 구성원을 바탕으로 한 가지 방향이 계획 과 실험을 거쳐 다른 방향을 찾아나간 통합적・객관적 통찰의 연속은 아니었 던 것을 고백한다. 무엇으론가 새롭게 변화하고 싶어도 변화할 수 없는 교사 한 사람 한 사람의 한계, 교사회 전체의 한계를 인정해야 할 때가 더 많았다. 어떤 방향을 갖고 활동을 한 뒤에 그 방향이 온전하게 맞았는지 함께 검토해 줄 동료가 없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틀과 공식을 더욱 견고히 만들어 내 고는 그 틀 때문에 스스로 지쳐 힘이 다 빠질 때까지 시간을 허비해야 할 때도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두근두근교사회의 교육 내용과 틀거리가 교사 개인의 잠재되어 있는 능력을 끌어내 아이들과 함께 배워 나간다고 하는 교감을 이 끌어 낼지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좋은 활동을 수도 없이 만 들어 내기보다는 한 가지 활동을 하더라도 아이와 교사 모두 몰입의 경험을 갖고자 한다. 몰입만 일어난다면 가치와 성과는 자연스레 얻어진다는 작은 경 험을 맛보기 시작한 단계이며, 그 몰입을 위해 장애가 되는 요소는 과감히 제 거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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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공동체

나는 ‘놀자’가 책만 보는 도서관이 되거나, 새로운 모임 장소가 되거나,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공간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놀자’는 그저 모두가 함께 나누고 성장하고 꿈꾸고 만들어 가는 마을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공간이 되면 좋겠다.

함께 만들어 가는

마을 이야기,‘

’!

이영선 토닥이. 마법방과후와 함께한 지 5년, 육아로 잠깐 멈춘 건축 공부를 다시 시작해서 마을을 포함한 또 다른 공 간들로 삶의 이야기를 확대하고 있다. 초등학교 3학년과 5학년 두 아들은 여전히 마을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재미나 게 살고 있으며, 짝지 버럭이는 아빠들과 밤 마실에 자전거 타는 재미로 마을에서 즐겁게 사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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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 도대체 마을은 무엇일까? 골목은 왜 사람들이 만나고 이야기 나누는 정서가 만들어지는 공간이었을까? 마을에서 공유 공간은 가능할 것인가? 한 공간 은 어떻게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을까? 건축이라는 것을 공부했지만, 공간 과 공간 사이는 아이들을 키우며 도시 속에서 살고 있는 나에게 늘 어려운 질 문이자 숙제였다. 끊임없이 공간들 사이를 헤매듯 떠돌면서도, ‘그 공간이 과 연 내 삶을 오롯이 담고 있는가’는 의문이자 답을 모르는 질문이었다. 큰아이 를 초등학교를 보내며 이사 온 마을에서 만난 마법방과후는 처음에는 다시 공부를 시작하면서 바빠진 엄마를 대신하여 아이를 여전히 즐겁게 놀게 해 줄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마법방과후에서 만난 사람들과 맺은 관계로 단 순한 공간이던 마을이 공간과 공간의 관계, 공간과 사람의 관계, 사람과 사람 의 관계, 즉 ‘모든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를 이어 주는 매개체로 조금씩 확장 되기 시작했다.

우리 마을 이야기 아차산을 끼고 있는 우리 마을은 즐거운어린이집, 산들어린이집, 마법방과 후 같은 공동육아 조합 세 곳이 있지만, 학교에 들어가기 전 아이를 키우는 새 로운 사람들이 들어왔다가 어린이집을 졸업하거나 마법방과후를 졸업하면 다른 동네로 떠나는, 지나쳐 가는 마을이었다. 왜 마을에 정착하지 않는가, 10년이 넘는 긴 역사에도 왜 마을이 형성되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5년을 살아온 지금, 이러한 마을의 특징은 아주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의 결

과이며,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하려면 많은 사람들이 함께 움직여야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마을 안에서 세 공동육아 조합끼리도 서로 잘 모르고 지내 왔다. 아

함께 만들어 가는 마을 이야기,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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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공동체

이들은 아주 빠른 속도로 서로 삶을 공유해 가지만, 여전히 어른들은 먹은 나 이만큼 함께 사는 삶이 참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천천히 변하기 시 작했다. 먼저 서로 다른 조합들이 서로가 서로를 궁금해하기 시작했고, 마을 에서 우리의 존재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2011년에 시작한 연합단오제에서부 터 2012년, 2013년 마을과 함께 판을 벌린 단오제 아단통(아차산 단오로 통하 다)을 거치면서 우리 조합 사람만이 아니라 이웃한 조합 그리고 함께 마을에

서 살고 있는 사람들과도 조금씩 만나기 시작한 것이다.

도서관 ‘놀자’를 만들어 간 과정 박원순 서울시장의 등장과 함께 서울시에서는 다양한 마을 공동체 사업이 이 루어졌다. 우리도 이러한 사업을 하면서 조합을 넘어 마을을 고민하고, 내가 사는 마을의 이웃을 만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저마다 마을 사업을 하는 작은 공동체였던 우리는 마을넷이라는 마을 사업을 하는 주체들이 모이는 회의를 거치면서 자기 공동체를 뛰어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작은 단위 공동 체에서는 할 수 없지만 마을에서 함께 잘 살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 무엇일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모임을 여러 번 하면서 광진구에는 문화 시설, 더구나 도 서관이 아주 부족하다는 고민을 공유했다. 그리하여 광진구에서 마을에 가 장 필요한 공동체들 사이의 공간은 ‘마을살이 도서관’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추진위원회를 꾸렸고, 준비 과정을 위해 다른 마을살이 도서관 이야기를 듣고 찾아가 보았다. 강좌와 답사, 길고 긴 모임과 회의를 하면서 우리 마을에 어떤 도서관이 필요한지 조금씩 이야기를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광진 구에서 초등학교에서도 멀지 않고 공동육아 조합들(마법방과후, 산들어린이집, 즐거운어린이집)이 있는 구의 2동과 중곡 4동 일대의 단독주택지를 후보지로

선정하고, 도서관 공간을 찾기 시작했다. 공간을 구하고 계약하고 만들어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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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과정은 추진위원회에서 실제로 일을 할 수 있는 여섯 명으로 구성된 추진 단을 꾸리며 이루어졌다. 추진단 여섯 명은 공동육아 조합에서 세 사람과, 마 을생태계사업단과 마을에서 다양하게 활동하던 시민단체 활동가 세 사람으 로 꾸렸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인원이 적절하게 배분되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마을 속에서 잘 자리 잡게 될 수 있으리라고 여겨졌다. 너무 빨리 간다는 지적이 있을 만큼 추진단은 열성을 다해 움직였고, 동의초등학교와 광진초등 학교를 중심으로 많은 아이들이 쉽게 올 수 있고, 산동네에서 비교적 평지에 있는 지금의 공간을 계약했다. 위치를 정하면서 ‘아차산 아래 작은 도서관’이 라는 가칭을 정하고, 공간 보증금과 공사비를 벽돌회원이라는 이름으로 모으 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세 조합의 절대적인 지원을 받아 한 달 만에 공간 보 증금과 공사비를 포함한 꽤 많은 벽돌 후원금을 모았다. 기본적인 공간 조성 공사를 시작으로 마을에서 존재를 드러내게 된 ‘아차 산 아래 작은 도서관 놀자(놀자)’는 벽돌회원의 밤이라는 자리를 마련하여 작 은 도서관을 함께 만들어 낸 것을 축하하고, 그동안 후원해 준 사람들에게 고 마운 마음을 전하며 공식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에 마을 설명회에서 우리가 만들어 가고 있는 도서관을 설명하고, 마을학교라는 이름으로 강좌를 개최 하면서 마을에서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도서관이 되도록 하고 있다. 마을넷에서 처음 만나 아주 느린 걸음이지만 한 발씩 앞으로 내딛어 온 1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드디어 2014년 10월 25일에 ‘아차산 아래 작은 도서 관 놀자’라는 이름으로 도서관을 열었다. 앉을 자리가 없을 만큼 폭발적인 사 랑과 관심을 받은 개관식이었다. 많은 지지를 받으며 ‘놀자’는 회원이 아니더 라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곳으로 열려 있다. 공동체들 사이의 마을 공간은 공공성을 담보해야 받은 마음들에 보답하는 마을의 연결 고리가 될 수 있으 리라고 생각해서 운영 같은 어려움보다는 공공성을 확보하고자 노력하고 있 다. ‘놀자’는 함께 꿈꾸고 함께 배우고 함께 만들어 가며, 이름처럼 마을에서

함께 만들어 가는 마을 이야기,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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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공동체

즐겁게 놀 수 있는 마을살이 도서관으로 자리 잡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씩씩 하게 마을 안에 존재감을 남기며 걸어가고 있다.

‘놀자’와 조합들의 관계와 의미 실제로 공간을 마련하고 도서관을 개관하기까지 지나온 과정은 생각보다 쉽 지 않았다. 온 마을을 뒤져 공간을 구하고 나면 계약금이 필요하고, 계약금 을 구하면 보증금이 필요하며, 보증금을 치르고 공사를 하려니 생각보다 많 은 예산이 필요했다. 공간을 꾸리면서 책장 하나를 만들고 시계 하나를 다는 데에도 손길이 필요했다. 처음으로 마을 공간을 만드는 데 보탠다는 의미로 선뜻 모인 꽤 많은 벽돌 후원금으로 시작한 조합의 절대적 지지와 후원은 사실 지금의 도서관을 이 뤄 낸 모든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미 조합을 꾸려 본 사람들은 공간 하나를 꾸리고 운영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있었고, 이러한 어려움을 최대한 도와주려고 했다. 이런 마음들로 공간을 디자인하고 공사하는 일을 맡은 나는 아주 커다란 책임감을 느꼈다. 조합이라는 틀을 벗어나는 출발점 으로 작은 도서관 ‘놀자’를 시작했으나, ‘놀자’는 조합 본연의 힘과, 마을에서 조합의 의미를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함께 가는 사람들의 기대와 벅찬 부담감을 느끼면서, 마을 안에 필요한 기능들을 궁리하면서 계획을 세우고 공간을 만들어 갔다. 어느 때보다도 공들여 많은 고민을 담은 공간을 만들었 던 것 같다. 공간이 만들어지자 세 조합의 아빠들이 마음을 모아 ‘도서관에 책장 한 칸 을 선물하세요’라는 이름으로 함께 모여 책장을 만들어 주었다. 조합에서 필 요한 가구를 만들고 크고 작은 공사를 해내는 아빠들의 솜씨는 아주 훌륭했 고, 처음으로 함께 마을 공간을 만드는 아주 의미 있는 공동 작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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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조합의 아빠들이 마음을 모아 ‘도서관에 책장 한 칸을 선물하세요’라는 이름으로 함께 모여 책장을 만들어 주었다.

벽돌회원이라는 이름으로 큰돈을 모을 때 모두 어려운 형편에도 마음 내어 후원해 주고, 공사하는 동안 지나는 길이라며 들러서 음료수도 사다 주고, 아 이들과 필요할 것 같다며 색연필과 사인펜 꾸러미를 보내 주고, 후원의 밤이 나 개관식 같은 큰 행사가 있는 날이면 먼저 나서서 일해 주고, 종종 들러서 가장 하기 싫은 일이라며 화장실 청소를 해 주고, 시계를 달 때도 의자를 조립 할 때도 선뜻 나와서 도와주고, 퇴근길에 불이 켜져 있으면 쓱 들어와서 남은 일을 같이 정리해 준 아마들이 있어서 지금 ‘놀자’는 만들어졌고 존재하고 있 다. 함께 일하는 마음과 함께 나누는 삶은 조합이 가진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 리고 이렇게 함께 가고 있다는 믿음 때문에 나는 여전히 ‘놀자’에서 공간을 고 민하고 마을을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조합들의 절대적 지지와 관심은 사실 도서관에는 힘이 되기도 어려 움이 되기도 했다. 늘 이렇게 한 덩어리로 움직이는 조합은 조합 안의 사람에 게는 든든한 지지 기반이 되는 땅이 되었지만, 조합 밖의 사람에게는 깨기 힘 든 바위로 보였던 것이다. 또한 조합의 길고 긴 회의와 평등한 의사 결정 구조 에 대한 익숙함, 아이들 교육을 바라보는 가치관, 함께 나누고 함께 지지하고 함께 일하는 공동체 문화에 대해서도 서로가 차이를 확인하는 또 다른 어려

함께 만들어 가는 마을 이야기,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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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공동체

사람들을 만나고 공연도 하며, 다양한 활동과 배움이 있는 ‘놀자’

움의 과정이 있었다. 처음에는 서로 다른 기반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어 힘 이 될 거라 믿었던 도서관추진단조차도 개관을 한 지금도 여전히 서로 다른 차이를 확인하고 인정하고 조정하는 과정에 있다. 그러나 나는 ‘놀자’가 조합 의 것이 아니라 마을의 것이 되도록 노력하는 한 이러한 과정은 계속될 것으 로 생각한다.

공동육아 조합의 가치와 마을에서 갖는 의미 ‘과연 우리는 마을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 하는 질문에 나는 쉽게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했다. 공동육아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마을 안에서 남다른 시선 을 받고 있고, 먹을거리 하나에도 시비 거는 까다로운 부모들로 여겨진다고 생 각했다. 조합과 조합 밖은 서로가 서로에게 벽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놀 자’를 만들면서 그리고 앞으로의 ‘놀자’를 상상하면서 문제는 서로의 경계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차이는 공동육아 조합이 또는 내가 다르게 지키고 싶은 가치와 문화일 뿐이고, 우리가 그것을 더욱 잘 지키고 그걸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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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가치 있고 즐거운 삶을 살 수 있음을 보여 주지 못한 게 문제였던 것이 아 닐까. 그래서 우리가 마을로 확장하는 과정은 공동육아 조합이 가진 가치와 약속을 버리고 가는 과정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가치와 문화를 지키며 더 즐 겁게 살아가고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이러한 문화를 누리고 싶어 하 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쟁하거나 자본에 종속되지 않아도 우리 는 충분히 즐겁고 행복하게 함께 살아갈 수 있고, 모두가 함께 나누고 함께 일 하는 과정으로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믿음을 확인하고, 그것이 우리 의 삶이 되어야 조합이라는 울타리가 더는 벽이 아닌 문화로 마을 속에 존재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놀자’가 책만 보는 도서관이 되거나, 새로운 모임 장소가 되거나, 다 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공간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아이들은 누 구나 어떠한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으며, 모두가 함께 성장하며, 스스로 배우 고 언제나 즐겁게 놀 수 있는 권리와 재미가 있음을 알게 되는 공간이 되길 바 란다. 이렇게 해서 ‘놀자’는 그저 모두가 함께 나누고 성장하고 꿈꾸고 만들어 가는 마을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공간이 되면 좋겠다.

우리가 마을로 확장하는 과정은 공동육아 조합이 가진 가치와 약속을 버리고 가는 과정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가치와 문화를 지키며 더 즐겁게 살아가고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이러한 문화를 누리고 싶어 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함께 만들어 가는 마을 이야기,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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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와 공동육아

인간의 본능과 생태적인 삶 그리고 기술 1. 자립하는 삶과 집짓기 이 글은 3회에 걸쳐 나눠 싣는다. 1. 자립하는 삶과 집짓기 2. 다른 에너지 다른 일상, 적정 기술 3. 생활기술 - 목공, 직조

집을 짓는다는 것은 자립하는 삶의 능력을 증명하는 사건입니다. 집을 짓는 행위란 바로 자신이 될 수 있는 맥락인 장소를 만드는 본능입니다. 김성원 흙부대생활기술네트워크 매니저이며, 쓴 책으로 《화덕의 귀환》, 《이웃과 함께 짓는 흙부대집》이 있다. 귀농한 지 8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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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자주 쓰는 저를 편하게 해 주는 기계는 컴퓨터보다 타자기였던 것 같아 요. 벌써 노안이 와서 그런지 컴퓨터 모니터의 밝은 화면은 눈을 아프게 만듭 니다. 기계나 기술이 인간에게 편리만을 제공할 것 같지만 그 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저는 인간을 근원적으로 편하게 만들고 행복하게 해 주는 기 술 이야기를 해 보려 합니다. 최근에 저는 마루야마 겐지가 쓴 책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를 읽었습 니다. 마루야마 겐지는 30대 초반에 귀촌하여 지금까지 산촌에서 살면서 글 을 쓰고 있는 독특한 일본 작가입니다. 학생 때는 폭력성 있는 문제아였는데 생김새도 꽤 무섭고 날카롭습니다. 이 책은 환상을 여지없이 깨며 시골 생 활의 실상을 노골적으로 드러냅니다. 이 작가는 거침없이 이런 말을 쏟아 냅 니다.

풍경이 아름답다는 건 환경이 열악하다는 뜻이다. 경치만 보다 벼랑에서 떨어진 다. 시골은 고요해서 더 시끄럽다. 고독은 시골에도 따라온다. 텃밭 가꾸기도 벅 차다. 농부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엎질러진 시골 생활은 되돌릴 수 없다. 어떻게 든 되는 시골 생활은 없다. 어딜 가든 삶은 따라온다.

이런 말은 시골 생활의 구체적 실상을 겪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시골 생활이 그렇다면 생태적인 삶의 구체적 실상은 무엇일까요? 텃밭을 가 꾸고 유기농 음식을 먹으며 건강하게 취미 생활을 할 수 있는 전원생활, 광고 에서 표현되듯 나른한 여유와 안락을 느낄 수 있는 웰빙(well-being)일까요? 아무리 ‘생태적인 삶’이라도 마루야마 겐지가 한 말처럼 “어딜 가든 따라오는 피할 수 없는 난처한 삶”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구체적 실상은 무엇이라 생 각하세요? ‘생태적인 삶’을 구체적으로 채우는 것은 다양한 기술입니다. 저는 이러한 기술을 소개하려 합니다.

인간의 본능과 생태적인 삶 그리고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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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와 공동육아

근원적인 안도감과 인류의 경작 본능 그림 같은 언덕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살고 싶은 꿈을 꿔 본 적 있나요? 자, 그 꿈대로 상상하던 집을 지었다면 어떨까요? 새로 지은 집에 들어가 누운 첫날 밤, 우리 부부는 이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여보, 우리 이제 뭘 먹고 살까?” 가까이 지내던 한의원 원장이 “농사를 지으면 불안감이 사라진다”는 조언을 해 주었습니다. 집 근처 산등성에 밭을 구해 농사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밭을 일구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그 말 그대로 불안감이 사라지고 아주 근원적인 안도감이 느껴졌습니다. 지금까지도 밭일을 하다 보면 ‘아, 내 가 이렇게 농사를 지으면 굶어 죽지 않겠구나, 살아갈 수 있겠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이성적 판단이 아닌 아주 뿌리 깊은 확신 같은 것이 올라옵니다. 여태 껏 늘 수확이 변변찮은 얼치기 농사를 하고 있지만 여전히 아주 깊은 곳으로 부터 올라오는 생존의 확신 같은 것을 느낍니다. 이런 확신이 ‘경작 본능’과 관 련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류는 기원전 1만 년부터 농경을 시작했습니다. 이 오랜 경험과 기억이 대 대로 인류의 디엔에이(DNA)에 저장되어 ‘경작 본능’이 된 것입니다. 아마도 오늘 우리가 선택한 검증된 어떤 농법들은 미래 세대의 경작 본능이 될 것입 니다.

협동, 인간적 규모, 인간적 리듬을 복원하는 기술 귀농 초기 논농사를 조금 시작했습니다. 중고 4조식 콤바인을 귀농자들과 함 께 사서 아랫논의 벼를 수확할 때 이용했습니다. 윗논은 마을 귀농자들과 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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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 전통을 살리기 위해 낫으로 베고, 경운기에 연결해서 쓰는 반자동식 탈 망기를 썼습니다. 왕왕이라고도 하는 손발탈곡기도 써 보았는데 곡물이 너 무 많이 떨어지기도 하고 지나치게 노동력이 많이 들어가서 지금은 쓰지 않습 니다. 대부분 다른 농가들은 완전 자동식 콤바인을 씁니다. 수동에 가까울수 록 여러 사람의 노동력이 필요하지요. 반자동식으로 수확할 때는 귀농자 가 족들이 모두 나와서 함께 일합니다. 4조식 콤바인만 해도 최소 서너 사람이 필요합니다. 자연스럽게 협동하게 되고, 일하며 헛소리도 해 가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노래도 한 가락씩 뽑아 보고, 일이 끝나면 함께 밥을 먹으며 웃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마을 어르신들이 부러워합니다. 완전 자동식 콤바인으로 수확하면 운전자 혼자 일을 다 해낼 수 있습니다. 효율은 좋지만 협동이 사라 집니다. ‘협동’이 ‘자동’으로 대체된 것입니다. 생태적인 삶과 관련해서 어떤 기술이든 그 어떤 기계든 인간의 협동을 유 지할 수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어느 정도 효율을 높이면서 협동을 유지할 수 있는 농기계나 도구의 대안을 여러 차원에서 생각 해 보아야 합니다. 이른바 적정 기술 농기계라는 겁니다. ‘호스프로그레시브 데이즈(http://www.horseprogressdays.com)’라는 적정 기술 농기계 축제를 미국에서 18년째 개최하고 있는데, 말을 이용한 농기계 박람회입니다. 틸러 스인터내셔널(Tillers International)은 소를 이용한 농기계를 개발하고 보급 합니다. 옛날 쟁기보다는 효율적이면서 화석 에너지를 이용하지 않고 협동을 유지합니다. 또 한 가지, 인간적 규모라는 걸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농기계가 보급되면 서 경지 정리 작업이 대대적으로 이뤄졌습니다. 농기계에 맞게 전통적인 논 2백 평 한 마지기, 밭 1백 평 한 마지기로 구획되어 있던 농지들을 1천 평 정도

의 크기로 통합해서 그 규모를 확대해 놓았습니다. 이 규모는 사람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규모입니다. 한 마지기는 한 가족이 기계를 이용하지 않고 중

인간의 본능과 생태적인 삶 그리고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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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와 공동육아

간 참이나 밥 먹기 전까지 지치지 않고 마무리할 수 있는 일의 양을 전제로 삼 고 있는 듯합니다. 인간적 규모(Human scale)가 트랙터와 같은 농기계의 도입 과 함께 사라져 버린 겁니다. 인간의 육체적 조건과 리듬이란 게 있는데 여기 에 맞는 인간적 규모가 우리 삶의 곳곳에서 기계를 도입하면서 사라져 버리고 있습니다. 생태적인 삶을 구성하는 기술은 협동, 인간적 규모, 인간적 리듬을 복원하는 기술이어야 합니다.

자립하는 삶의 능력을 증명하는 사건, 집짓기 서울 강남에서 아파트 가격이 평당 얼마 정도 하나요? 평당 1천5백만 원? 2 천만 원? 시골에서 건축업자에게 주택 시공을 맡기면 평당 3백~4백만 원 정 도에 지어 줍니다. 가족과 친구, 이웃의 손을 빌려 최소 120~2백만 원 선에서 흙집을 손수 짓는 분들이 있습니다. 생태 건축 기술을 익히면 우리 삶을 억압 하는 높은 주택 가격의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생태적인 삶은 ‘부동산’ 으로 왜곡된 집을 삶의 맥락이 있는 장소로 바꿀 때 시작됩니다. 집은 전문가만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건축가 없는 건축》을 쓴 버나 드 루도프스키(Bernard Rudofsky)는 인류가 지은 건물 가운데 건축가가 지 은 건물은 5퍼센트도 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대다수는 일반 개인, 가족, 이 웃 들이 지은 건축물입니다. 인류에게는 수만 년 전부터 자신의 손으로 집을 지어 온 ‘건축 본능’이란 것이 있습니다. 손수 둘레에 있는 자연 자재를 이용해서 집을 짓고 나면 삶의 확신이 생 깁니다. 내가 무슨 일인들 못 하겠나, 하는 자신감, 삶의 근거가 마련되었다 는 충족감 이런 것을 느끼게 됩니다. 지질학자이자 캐나다의 상원의원이었 던 니콜라스 테일러(Nicholas Taylor)는 “독립적인 환경 안에서 사는 자립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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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사람들은 자기 삶의 질서를 실질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 다”는 말을 했습니다. 집을 짓는다는 것은 자립하는 삶의 능력을 증명하는 사건입니다. 케네디 대통령의 문화 예술 자문이었던 오거스트 헥셔(August heckscher)는 “개인이 필요로 하는 것은 땅덩이가 아니라 장소다. 그 안에서

자신을 확장시키고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 맥락이 필요한 것이다”고 말했습 니다. 집을 짓는 건축 행위란 바로 자신이 될 수 있는 맥락인 장소를 만드는 본 능적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저의 생태적인 삶은 흙부대집(earthbag house) 을 짓는 일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생태적 감수성과 기술의 역사성 생태적인 삶의 구성 요소로서 가장 중요한 기술은 생태 건축입니다. 인류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흙, 나무, 돌과 같은 자연 자재 를 이용하여 집을 지어 왔습니다. 흙 건축과 그 밖의 전통적인 건축 방식을 포 함한 다양한 생태 건축은 자연에 가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순환적인 건축 방식입니다. 반면 현대 건축은 자연을 막무가내로 파괴합니다. 에너지 소모도 큽니다. 건축 폐기물은 전 세계 쓰레기의 40퍼센트를 차지합니다. 현대적인 건축 자재 를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에너지는 에너지 소비의 40퍼센트를, 국제 물동량 의 40퍼센트를 건축 자재가 차지합니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유네스코 흙건 축위원회 의장 휴고 후벤(Hugo Houben)은 “선진국은 2050년까지 시멘트 소 비량의 80퍼센트, 알루미늄 85퍼센트만큼 줄이기로 합의했습니다. 흙이 아 니면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하고 묻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저는 쌀부대에 흙을 담아 흙부대집을 지었습니다. 이 밖

인간의 본능과 생태적인 삶 그리고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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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와 공동육아

에 국내에 소개되어 있는 흙집의 종류는 아주 다양합니다. 흙을 다져 짓는 담 틀집, 볏 짚단을 쌓고 흙을 발라 짓는 스트로베일하우스, 외대(욋가지)를 이중 으로 짜고 흙을 붙이는 이중심벽집, 볏짚 다다미에 흙 미장을 해서 짓는 다다 미 공법, 볏짚흙반죽 버무리를 다져 짓는 독일식 라이트 코브(light cob), 볏짚 거섶흙반죽을 척척 쌓아 짓는 영국식 코브하우스(Cob house), 종이 계란판 과 흙 반죽을 번갈아 쌓는 계란판공법, 황토벽돌집, 귀틀집 같은 집들이 있 습니다. 생태적인 삶을 희망하는 여러분은 얼마나 생태 건축 기술에 대해 알 거나 익히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사실 처음 집을 지을 때는 개집 짓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단지 배우고 익히지 않았기 때문입니 다. 여러분에게도 생태 건축 기술은 ‘건축 본능’으로 잠재되어 있다는 걸 신뢰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즘 아토피 때문에 고생하는 아이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아토피의 주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는 건축 자재에 포함된 휘발성유기화합물(VOC)을 포함하 는 접착제와 기타 화학물질입니다. 상업적으로 만든 페인트에는 방부제, 중 금속뿐 아니라 독성 화학물질과 화학수지 접착제가 꽤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 다. 저는 집을 지으면서 밀크 페인트, 아마인유 페인트를 제 손으로 만들어 집 의 벽과 목재를 칠했습니다. 사실 칠 작업이나 미장 작업은 다른 이에게 맡기 면 돈이 아주 많이 드는 작업입니다. 미장을 제외하고 칠 작업을 맡겼다면 최 소 5백만 원 이상 들었을 겁니다. 최근에는 토방을 확장하여 만들면서 석고 와 풀, 토성 안료를 섞어 천연 프라이머와 젯소, 페인트를 만들어서 칠했습니 다. 그 밖의 벽체는 모두 흙과 석회, 모래를 섞은 천연 미장재를 집에서 만들 어 발랐습니다. 천연 페인트와 미장재를 만들면서 저는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산업화 이 전 페인트들은 모두 집에서 만들거나 화가들이 만들었을 텐데 나도 만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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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지 않을까, 그 방법은 무엇일까? 인터넷을 뒤지고 책을 사서 공부하기 시작 했습니다. 지금도 미국의 아미시공동체 농부들은 페인트를 만들어 씁니다. 세계적인 천연 페인트인 ‘아우로’는 사실 독일의 시골 아주머니들이 만들어 쓰던 것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일본 히로시마에 가 보았더니 풋감을 삭혀 만 든 타닌 안료와 목초액을 혼합한 페인트를 만들어 나무 벽이나 주도가의 술 통에 바르는 사람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생태적 감수성은 기술의 역사성을 묻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과거 오랜 기간 동안 검증해서 썼으나 지금은 산업의 영역에서 변질되고 소멸된 과 거의 기술을 복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대에 와서 버려진 과거의 기술은 분 명 과거의 생활 이미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옛 기술은 생태적 삶을 구성하는 요소들이기도 합니다.

생태적 감수성은 기술의 역사성을 묻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현대에 와서 버려진 과거의 기술은 분명 과거의 생활 이미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본능과 생태적인 삶 그리고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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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눈

인터스텔라와 나

얼마 전 화제의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

류의 종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모습

았습니다. 이 영화에 대해서는 여러 평

들이었습니다. 사실 영화감독도 알고

가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만들었겠지만, 영화에 묘사된 모습은

저는 제 나름대로 영화에 대해 여러

‘공상’이 아닙니다. 이대로 가면 지구가

생각을 했습니다. 솔직히 저는 지구를

그렇게 될 것이라고 과학자들이 예측하

떠나 다른 행성을 찾는다는 줄거리에는

고 있습니다.

별로 공감하지 못했습니다. 과학적으

원인은 기후변화 때문입니다. 기후변

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중간 중간에

화로 인해 ‘인터스텔라’에 묘사된 것과

섞여 있기는 했지만 아주 집중하기는 어

같은 상황이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려웠습니다. 영화 전반부와 중간 중간

‘인터스텔라’에서는 인간이 살 수 있는

에 묘사되는 지구의 모습 때문이었습니

다른 행성을 찾아 나서지만, 그것이 현

다. 모래 태풍이 몰아치고, 농사짓기가

실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우리

어려워지고, 사람들은 아팠습니다. 인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하승수 공동육아로 딸을 키웠다. 시민운동, 풀뿌리운동에는 18년 전부터 참여했고, 후쿠시마 사고를 보면서 녹색당 창당 작업에 뛰어들었다. 지금은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요즘 주된 관심사는 탈핵, 덜 벌고 덜 쓰며 행복 하게 살기, 농촌・농업 살리기, 어린이・청소년이 행복한 사회 만들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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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114호


기후변화로 인해 ‘인터스텔라’에 묘사된 것과 같은 상황이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인터스텔라’에서는 인간이 살 수 있는 다른 행성을 찾아 나서지만, 그것이 현실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터스텔라’ 열풍을 보며 여

하게 바람을 가져 봅니다.

러 가지 생각이 듭니다. 이 영화를 통해

아시다시피 대한민국에서는 기후변

기후변화의 심각성에 대해 사람들이 조

화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아주 소수

금이라도 더 느끼지 않을까 하는 생각

입니다. 관련 기업에 근무하는 사람, 연

도 해 보다가, 과학을 통해 해결할 수 있

구자, 정부 관료 정도를 제외하면 기후

다는 과학만능주의가 더 기승을 부리

변화에 관한 세계적인 동향을 아는 사

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해 봅니다. 그냥

람도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공상 과학 영화에 나오는 재미있는 이야

사람들은 정말 둔감합니다.

기로 치부해 버리지 않을까 하는 안타 까움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는 지금 기후변화 에 대한 대책을 촉구하는 움직임이 들

어쨌든 이 영화를 계기로 우리가 살

끓고 있습니다. 지난 9월에는 미국 뉴욕

고 있는 지구의 변화, 그리고 그것이 우

에서 수십만 명이 참여하여 대규모 행

리의 삶에 미칠 영향에 대해 좀 더 진지

진을 했습니다.

하게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특히 ‘회

이 행진에는 유엔 반기문 사무총장

색 가운데서도 회색’이라고 표현할 수

도 참가했다고 합니다. 유엔 사무총장

밖에 없는 대한민국이기에 더더욱 절실

이 회의가 아니라 시위행진에 나서야

인터스텔라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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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눈

유일한 희망은 국가들이 실효성 있는 대책에 합의하는 것입니다. 2015년 12월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에서 기후변화협약 합의가 되지 않는다면 파국을 막기는 정말로 어렵습니다.

할 만큼 기후변화는 심각한 상황인 것

이고, 선진국들은 중국이 무분별하게

입니다.

온실가스 배출을 많이 한다고 비판하

기후변화에 대해 알아야 할 기초 사

는 형국이었습니다.

실 가운데 하나는 ‘어느 나라가 온실가

그런데 최근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

스를 많이 배출하느냐?’입니다. 많이

과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온실가스 감

배출하는 국가가 많이 줄여야 하는 것

축에 합의했다는 뉴스가 전해졌습니

은 당연한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다. 지난 11월 12일에 공동 발표를 한 것

현재 온실가스 배출 1위 국가는 중

입니다. 발표 내용을 보면, 그동안 보였

국입니다. 그리고 2위는 미국, 3위는 인

던 태도에서 조금은 진전된 부분들이

도입니다. 그래서 기후변화에 관해서는

보입니다.

이 세 나라가 어떻게 하는지가 중요합니

먼저 중국은 오는 2030년 이후에는

다. 특히 그동안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

온실가스 배출량을 늘리지 않기로 했습

에서 미국과 중국이 극심한 대립을 보

니다. 물론 2030년까지는 온실가스 배

여 왔습니다. 서로 책임을 떠넘긴 셈입

출량을 줄이지 않겠다는 이야기라서 아

니다. 중국은 “그동안 온실가스 배출을

주 불충분한 이야기입니다. 그나마 중

많이 한 선진국들이 책임져라”는 입장

국이 연도를 언급하면서 줄이겠다고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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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114호


게 처음이라서, 긍정적인 평가들이 나 오는 것입니다. 미국은 2025년까지 온실가스 배출

량을 2005년 수준에서 26∼28퍼센트

유일한 희망은 국가들이 실효성 있는 대책에 합의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 해 해마다 열리는 회의가 ‘기후변화 당 사국 총회’입니다. 기후변화에 관한 해

줄이겠다는 새로운 목표치를 제시했습

법을 찾기 위해 관계 국가들이 해마다

니다. 기존의 감축 목표보다는 강화된

모이는 것입니다. 올해에는 12월 1일부

목표치입니다.

터 페루 리마에서 시작합니다.

온실가스 배출 1,2위 국가가 이런 합

그리고 내년 12월에는 프랑스 파리

의를 했으니, 3위 국가인 인도의 태도가

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내년에 열릴 파

궁금해지는 건 당연합니다. 인도도 이

리 총회는 정말 중요합니다. 이때까지

런 시각을 의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기후변화협약에 합의해야 하기

인도는 중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인도

때문입니다. 이 합의가 제대로 되지 않

의 4배라면서, 인도는 아직 온실가스 배

으면 파국을 막기는 정말 어려워질 수

출량을 감축할 상황이 아니라고 이야기

있습니다.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어떤 상황일까

인도 환경부의 고위 관료는 <월스트

요? 대한민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세

리트저널>과 한 인터뷰에서 “미국이 중

계 7위에 이릅니다. 경제 규모가 세계 7

국에 2030년까지 시한을 줬다면, 인도

위가 안 되는 국가가 온실가스 배출량

에는 2050년 또는 그 이후까지 시한을

이 세계 7위가 된 것은 석탄 화력발전소

줘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인도는 아

를 엄청나게 지어 대고, 에너지를 많이

직 더 개발해야 하고, 경제성장을 추구

쓰는 산업구조에 빠져 있고, 자동차 중

해야 하며, 전기도 더 써야 한다는 것입

심의 교통 체계를 유지하기 때문입니다.

니다.

그래서 영화 ‘인터스텔라’는 대한민

이처럼 기후변화를 둘러싼 상황은

국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여전히 유동적입니다. 이렇게 하다가는

있습니다. 우주로 갈 수 없는 상황이라

‘인터스텔라’에 묘사된 상황을 피할 수

면, 그래서 이 지구에서 살겠다면 어떻

있을지 불확실합니다.

게 할 것이냐고

.

인터스텔라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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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읽기

인문학과 자연과학, 두 날개로 나는 아이들

2007년 첫 아이와 함께 공동육아에 발을 디뎌, 이제 둘째 아이의 졸업을 앞

두고 있으니 꽤 오랜 시간을 공동육아 언저리에서 지내고 있는 셈이다. 공동 육아를 하면서 가장 기대했던 것은 자연 속에서 자라는 아이의 모습이었다. 도시에서 자연의 흐름을 느끼기는 여간해서 쉽지 않다. 하지만 어릴 적 도시 골목에서나마 계절의 변화와 발에 닿는 흙의 느낌, 꽃나무의 냄새와 작은 벌 레의 움직임을 몸에 새겼던 나의 경험을 아이도 갖길 바랐다. 한 철학자는 밤 하늘의 쏟아지는 별을 고요 속에 홀로 마주한 경험이 있다면 누구라도 철학 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했는데, 이렇듯 자연은 경이로움도 선물한다. 우리 아이들을 시인이자 철학자로 만들었던 자연과 우주는 어느 순간 시인 의 감수성과 철학자의 사색이 필요 없는 박제된 공식과 이론으로 변신한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만 해도 자연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심이 가득했던 아이가 황서현 눈꽃. 마포 참나무어린이집에서 두 아이를 키웠다. 휴머니스트출판사에서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있으며, <공동 육아>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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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114호


《교육 빅뱅》은 ‘교육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두 날개로 날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두 문화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또 하나의 시도를 하고 있다. 《교육 빅뱅》 이철국 글 | 민들레

고학년이 되면서 어려운 과목으로 과학을 꼽게 되고, 그 뒤는 대략 예상 가능 한 대로다. 문과형 인간으로 낙인 찍혀 자연스레 수학, 과학과는 담을 쌓고 어 른이 된다. 나 또한 정확히 이런 경로로 자라, 애석하게도 자연과학을 가까이 할 엄두 조차 내지 못하고 어른이 되었다. 그러다 몇 해 전에 들은 우주의 역사 강의가 새로운 계기가 되었다. 빅뱅에서 시작된 강의가 생명의 탄생에까지 이르자 눈 이 번쩍 뜨이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비밀의 문을 연 것 같았다. 우주적 규모에 서 사고한다는 데서 오는 충격과 놀라움이 세포 하나하나에 새겨지는 것 같 았다. 그 뒤로 느리고 더디지만 자연과학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우연히 만난 책 《교육 빅뱅》에서 비슷한 경험을 고백하는 글을 읽게 되었다.

자연과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지 서너 달 뒤 그동안 내가 세상의 절반을 모르고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 년이 지나자 그동안 내가 세상의 9할을 모른

인문학과 자연과학, 두 날개로 나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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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읽기

채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면서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자연과학이라는 미지의 세계로 공부 모험을 떠난 것은 내 50대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 머릿속에서 인문학과 자연과학 공부의 빅뱅이 일어난 것이다.(132쪽)

불이학교 교장 선생님이기도 한 글쓴이는 자신의 경험이 확장되면서 대안 학교에 자연과학 공부가 부족하다는 게 보이게 되었고, 이 결핍을 자연스럽 게 받아들이는 부모들, 나아가 사회 전체의 분위기에 문제의식을 갖기에 이 른다. 물론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단절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서구에서는 근대가 시작된 이래 3백 년 이상 줄곧 진행된 문제였는데, 그 심각성은 영국 의 과학자이자 소설가인 찰스 스노가 1959년 연설에서 ‘두 문화’ 즉 인문 문 화(문학적 지식인)와 과학 문화(과학자) 사이의 단절을 통렬하게 지적하면서 널 리 알려졌다. 그는 이를 해결할 방법으로 교육을 들면서 인문학도에게는 과 학을, 과학도에게는 인문학을 시급히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 ‘두 문화’ 사이 의 거리를 좁히려는 시도는 1980년 칼 세이건의 과학 다큐멘터리이자 저술인 ‘코스모스’, 빌 게이츠의 전폭적인 후원으로 근래 더 주목받고 있지만 1989년 부터 데이비드 크리스천이 시작한 ‘빅 히스토리’, 국내에 통섭 바람을 일으킨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 스노가 제창한 ‘제3의 문화’를 21세기에 구현하고 있는 존 브록만의 엣지 재단 따위로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통섭, 융합, 인문 학과 자연과학의 만남은 꽤 오래전부터 전 세계적인 화두가 되었으나 일상의 변화, 교육의 변화로 구체적이고 실천적으로 등장하지 못한 게 현실이다. 이런 우리 현실에서 《교육 빅뱅》은 ‘교육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두 날개 로 날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두 문화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또 하나의 시도 를 하고 있다. 대안 교육이 생활교육, 가치 교육 같은 데서 공교육을 선도하고 사회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학습 영역에 있어서도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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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114호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공부를 더 적극적으로 내어놓자는 저자의 부추김이 반갑다. 그의 말대로 “지식과 가치는 두 마리의 토끼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균형 잡힌 공부 외에도 이 책에서 인상적인 것은 ‘자 연과학의 눈으로 교육을 본다’는 것이다. 자연과학과 교육의 결합은 ‘교육 빅 뱅’이라는 이 책의 제목만큼이나 낯설다. 그동안 인문학적 시선으로 교육의 방향, 원칙, 실천을 그리는 데 익숙했던 탓일 테다. 하지만 나날이 새로운 연 구 결과를 내놓으며 우리를 들썩이게 하는 인지과학 영역의 연구 성과를 보면 자연과학의 시선으로 교육의 밑그림을 수정할 수 있다는 데 일견 수긍이 간 다. 마음, 감각, 감정, 의지, 믿음, 본성 따위에 대한 신경 과학과 뇌 과학의 새 로운 해석과 빅뱅 우주론과 양자역학으로 달라진 우리의 세계관이 반영된 교 육 철학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몇 가지 사례를 저자의 목소리로 들어 보자.

양자역학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혹은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인생이 결정돼 버린다는 정신의 나태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준다.(105쪽)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로 인해) ‘이것이냐 저것이냐’에서 ‘이것도 저것도’로 사

고가 바뀌었다. 모범생과 일탈하는 아이라는 양극단을 포함해 그 사이의 모든 가능성을 두고 아이를 이해해야 한다. 교사에겐 이건 무척 신나는 일이며, 교육 에서 일어나는 빅뱅과도 같다.(110쪽)

캐나다 심리학자들이 최근 실험에서 사람과 동물이 다르다고 굳게 믿을수록 이 민자에 대한 편견도 깊다는 사실을 밝혀 냈다고 한다. 또 사람과 동물의 유사성 에 대한 자료를 읽고 난 뒤 이민자도 캐나다 사람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 사회에서 이주 노동자에 대한 심한 편견을 해소하

인문학과 자연과학, 두 날개로 나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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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읽기

기 위해 제대로 된 자연과학을 공부하는 방법도 훌륭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도살장을 바라보며 ‘그들은 동물일 뿐이야’ 하고 생각할 때마다 아우슈비츠는 시작된다는 서구 철학자의 말에 이제는 공감할 수 있다.(137쪽)

이해하기 힘든 청소년을 받아들이기 위한 방편으로 뇌 과학의 최신 성과를 공 부하는 것은, 무조건적으로 인내하고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현명한 일이다. 뇌 과학의 힘으로 청소년의 뇌를 뒤흔드는 카오스 같은 현상의 정체를 살필 수 있 다.(165쪽)

여러 제안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청소년의 주체성, 독립심, 자율 성도 중요하지만 도움을 주고받는 상호 의존하는 마음가짐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힘들 때 먼저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아이, 남의 도움을 잘 받을 수 있 는 아이로 키워야 한다”는 대목이다. 생태학적 세계관에서 ‘자율’에 대한 지나 친 강조는 인간의 환상일 뿐이라는 지적인데, 나 역시 아이를 키우면서 독립 적인 아이에 대한 낭만에 지나치게 사로잡혀 있었다는 반성이 일었다. 자립심 과 상호 의존감이 한 사람 안에서 조화를 이루는 교육이라니, 무척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공동육아 어린이집부터 초등학교, 중・고등학교까지 30년 이 상 풍부한 교사 경험이 있는 저자의 교육 특히 대안 교육에 대한 열의와 자부 심, 학생과 후배 교사에 대한 애정 어린 눈길을 책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는 건 이 책의 또 하나의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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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114호


아이와 함께 보는 책

다섯 살 로타의 이유 있는 반항 그리고 가출

《나, 이사 갈 거야》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 | 햇살과나무꾼 옮김 | 논장

인생에서 다섯 살은 어떤 나이일까요? 자아가 생기면서 자신의 의사를 강하 게 표현하기 시작하는 때가 아닐까 싶어요. 우리나라에도 ‘미운 일곱 살’이라 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만 다섯 살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려고 하고, 세 상의 중심에 자신이 있는 것 같아 보여요. 엄마들은 다섯 살 여자아이가 너무 나 예쁘고 사랑스러울 거예요. 그러나 때로는 힘에 부치기도 하겠지요. 아이 에게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엄하게 굴기도 할 테고요. 버릇없는 아이로 키우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가 발동하는 거지요. 신민경 동화가 좋아서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동화를 읽고 있다. (사)어린이도서연구회 이사이며, 재미있는 동화를 찾 아 아이들에게 읽어 주고 있다. 보석을 발견하듯 재미있고 좋은 동화를 만나면 소개해 주고 싶어 안달이 난다.

다섯 살 로타의 이유 있는 반항 그리고 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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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보는 책

주인공 로타는 다섯 살이에요. 평범한 목요일 아침, 엄마는 로타가 입기 싫 다는데도 “할머니가 손수 짜 주신 줄무늬 스웨터”를 입으라고 해요. 엄마는 로타가 이 줄무늬 스웨터를 왜 입기 싫어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게 분명해 요. 로타에게는 입기 싫은 이유가 있는데 말이지요. 이 스웨터가 자신을 콕콕 찌르거든요. 로타는 불편한 스웨터보다는 “옅은 하늘빛 우단 옷”을 입고 싶 어요. 그런데 우단 옷은 “일요일에 입는 나들이옷”이라며 엄마가 입지 못하게 해요. 로타 생각에는 우단 옷을 “아주 평범한 목요일”에 입어도 괜찮을 것 같 아요. 하지만 엄마는 로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오히려 로타의 고집을 꺾으려고 들어요. 로타는 화가 나서 가위로 스웨터에 구멍을 내요. 그러고는 쓰레기통에 버려요. 다섯 살 아이는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 어느 정도의 분별 력은 있어요. 로타는 화가 나서 스웨터를 잘라 버렸지만 걱정이 돼요. 그래서 일까요? 로타는 자기가 스웨터를 오린 것이 아니라고 주장해요. “못된 개”가 한 짓이기 때문에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생 각해도 로타의 마음은 무섭고 겁이 나요. 어른으로서는 적잖이 당황스러운 행동이지요. 아무리 엄마의 행동에 화가 났어도 이렇게 극단으로 행동할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으니까요. 하지만 어린이라면 어떨까요? 혼날 때 혼나더라도 자신 을 따갑게 하는 옷은 죽어도 입기 싫으니 로타의 행동에 손뼉을 칠지도 모르지요. 자신은 절대 할 수 없는 일을 로타가 해냈으니 대단하 다고 여길 수도 있겠어요. 혼자 남은 로타는 “스웨터 때문에 죽을 때까지” 자기 “방에서 나가지 못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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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114호


생각해요. 옷도 안 입고 밖에도 못 나가는 로타는 이제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되고 말지요.

‘다른 사람들은 다들 가게에서 물건도 사고, 학교랑 직장에도 다니면서 너무너무 즐겁게 지내겠지? 그런데 나 만 혼자 옷도 안 입고, 이렇게 방바닥에 앉아 있어야 하다니.’(34쪽)

하지만 로타는 오래 절망하지 않고 탈출구를 찾아내요. 바로 이사를 하는 거예요. 이 집에서 나가기로. 얼마나 멋진 생각인지 요! 로타는 자신의 결정에 아주 만족해하며 옆집 베르이 아주머니 집으로 가요. 베르이 아주머니는 옆집 사는 꼬마 아가씨가 자기 집에 이사를 와도 되겠냐고 묻자 흔쾌히 그러라고 해요. 아주머니는 자식을 다 키우고 홀로 사는 분이에요. 로타에게 이런저런 귀찮은 질 문도 하지 않고, 더구나 로타를 아기 취급하지도 않아요. 오히 려 자기 집은 좁으니 헛간 2층을 빌려 주겠다고 하지요. 이런 어 른이 이웃에 산다면 정말 좋겠어요. 헛간 2층은 로타에게, 아이들에게는 더없이 완벽한 놀이 장소예요. 오후 에 로타의 언니와 오빠가 와서 감탄하며 놀다 갈 정도니까요. 침대, 옷장, 화 장대, 거기다 소꿉놀잇감과 인형까지 필요한 것은 다 있어요.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로타는 청소하고 정리하고 닦고 또 닦으며 방을 꾸며요. 로타가 헛간 2층 창문에서 음식을 담은 바구니를 끌어올리는 모습은 새롭고 흥미로워요.

보물을 발견하듯이 오래된 물건들 속에서 장난감들을 하나하나 찾아낼 때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또 무엇이 나올까 기대하게 돼요.

다섯 살 로타의 이유 있는 반항 그리고 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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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보는 책

로타는 그곳에서 인형 옷도 잔뜩 찾아내는데, “자수가 놓인 새하얀 드레 스”를 보고 인형에게 입힐까 말까 고민하다가 “일요일에만 입어야” 한다고 해 요. 이사를 결정하고 행동하면서, 또 방의 주인이 되어 놀면서 스스로 올바른 판단을 내리게 되는 거지요. 어른이 무조건 가르치고 꾸중을 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해답을 찾으며 성장해요. 이런 성장은 건강한 자아와 인격을 형성하 는 데 밑거름이 되겠지요. 낮에는 언니와 오빠도 놀러오고 청소도 하고 인형들과 시간을 보내느라 바 빴지만 저녁이 되자 로타는 집이 그리워요. 베르이 아주머니가 준 음식이 낮 에는 엄청 맛있다고, 니만 씨(로타의 아버지)네와는 다르다고 하더니, 저녁에는 “니만 씨네랑 비슷비슷”하다고 느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어요. 그리고 어둠 이 몰려오는 시각, “베르이 어주머니네 헛간 다락방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 고 있었”는데, 방 안을 물들이는 검은 어둠 속에서 로타는 “미처 생각하지 못 했던” 외로움과 두려움에 빠지지요.

어둠은 방의 구석진 곳과 가구들 뒤쪽에 웅크리고 앉아, 그곳을 새까맣게 만들 어 놓았습니다. 그러더니 방을 점점 더 어둡게 물들이며 로타 쪽으로 한 발짝씩, 한 발짝씩 다가오고 있었지요.(84쪽)

외로움과 무서움을 견디기에는 다섯 살은 아직 어린 나이에요. 로타는 용 감하게 어둠과 맞서려 하지만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아요. 로타의 아빠는 이때를 놓치지 않아요. 아빠는 헛간 계단 밑에 있었나 봐요. 로타가 우는 소리 를 듣고 로타에게 오지요. 그리고 로타를 껴안으면서 “로타, 집에서 엄마가 굉 장히 슬퍼하고 있단다. 크리스마스가 되기 전에 다시 우리 집으로 이사하지 않겠니?” 하고 말해요. 로타의 자존심을 건드리지도 않고, 로타가 상처 입는 말도 하지 않아요. 부모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부모는 아이를 어떻게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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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114호


야 하는지를 확실하고 명쾌하게 보여 주고 있어요. 엄마도 그래요. 엄마는 집 으로 돌아온 로타를 안아 주고 기다려 줘요. 따뜻한 엄마의 품, 다정한 엄마 의 무릎 위보다 좋은 곳이 어디 있을까요? 또 그곳은 로타가 강한 믿음과 용 기로 잘못을 말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지요. 엄마도 이제 로타의 마음을 알아 요. 엄마도 로타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해요. 갈등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식구에게 가장 소중한 사랑이 로타네 집에 가 득해요. 이 사랑은 이해와 용서, 화해로 더욱 단단해졌어요. 로타의 이유 있 는 반항과 가출이 낳은 사랑스럽고 따뜻하고 유쾌한 이야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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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이야기

스무 살, 길을 찾아갈 때 학창 시절 동안 공부랑 친하게 지내는 학생은 아니었다. 공부가 그렇게 중요 하다고 생각하고 살지도 않았고(아마 이 부분에서는 부모님의 영향이 큰 것 같다) 마 냥 노는 것이 좋았으니까. 또 정말 바닥만 아니면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도 있 다. 그렇다고 학원, 과외, 공부방 뭐 안 다녀 본 것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정 말 딱 소수의 상위권과 하위권 사이의 뭣도 아닌 중위권의 성적으로 그냥 그 렇게 살았다. 강한결 신촌 우리어린이집을 5년 동안 다녔고, 커뮤니티매핑센터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앞으로는 사회복지나 사회학 같은 공부를 더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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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114호


나는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냈고, 먼 얘기인 것 같던 고등학교 3학년이 코앞 으로 다가왔다. 그제야 나는 불안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공부 조금만 해 놓 을 걸’ 하는 생각과 후회가 나를 덮쳤다. 늦은 걸 알지만 연필을 쥐고 공부를 했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이때까지 손 놓고 있던 공부가 쉽지는 않았다. 공동육아와 부모님의 영향인지 사회문제나 이슈에 관심이 많았고, 고등학 교 때부터 해 온 봉사 활동에 영향을 받아 사회복지학과를 가고 싶다는 생각 을 해 왔다. 번화가에서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음식점을 장애 인들과 함께 찾아보고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에 올려서 정보를 공유하는 커 뮤니티매핑이라는 봉사 활동이었다. 그러나 이 일은 장애인에게 바로 도움을 주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흔히 하듯 몸으로 돕는 일이 아니라 간접으로 돕 는 방법을 생각하게 되었다. 때문에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다기보다는 그 분야 를 공부해서 정책에 반영하는 일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입시를 준비했다. 어느덧 수시 지원을 하는 시기가 왔고 성적은 형편없는데도 눈만 높았던 나 는 보란 듯이 ‘수시 올 킬’을 당했다. 사실 당연한 것인데도 억울하고 부모님께 죄송했다. 수능도 시원하게 망쳐 놓고 무슨 자존심인지 정시 지원은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부모님은 내 뜻을 존중해 주셨다. 그렇게, 나는 대학에 가 지 않았다. 학교를 졸업하고 잠깐 아르바이트도 했고 친구들과 놀러 다니기도 했다. 그냥 수능 끝난 다른 친구들처럼 겨울방학을 보내고 있었다. 그저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고등학교 때 봉사를 하던 커뮤니티매핑센터와 연락이 닿았 다. 커뮤니티매핑센터 대표인 임완수 박사님이 일을 좀 도와줄 수 있냐고 하 셨다(내가 센터를 돕는다기보다는 센터가 나를 도와주는 느낌이지만). 커뮤니티매핑은 커뮤니티 구성원들이 함께 지역의 이슈나 특정 주제에 대 한 정보를 현장에서 수집하고 이를 지도로 만들어 공유하고 이용하는 과정 을 얘기한다. 학생들이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위험이나 유해 환경을 조사하

스무 살, 길을 찾아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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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이야기

는 청소년 유해 환경 커뮤니티매핑,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갈 수 있는 음식점 이나 극장 같은 편의 시설을 조사하는 장애인 접근성 커뮤니티매핑 들이 있 다. 커뮤니티매핑센터는 그것이 이루어지는 과정의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노 릇을 한다. 아무튼 나는 당연히 하겠다고 했고 그렇게 커뮤니티매핑센터에서 일을 하 게 되었다. 처음에는 녹취, 영수증 정리나 워크숍에 가서 부수적인 일을 도우 면서 배워 나갔다. 처음에 커뮤니티매핑센터가 생겼을 때는 잘 나서지 않고 낯가림이 심해 사람들 앞에서 얘기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많았는데, 많은 사 람들을 만나고 워크숍을 다니다 보니 큰 강의는 아니지만 몇몇 사람들 앞에 서 사례 발표도 했다. 성동구청에서 하는 장애인 산책로 조사 커뮤니티매핑을 하면서 장애인분 들과 만났는데, 그때 그분들에게 커뮤니티매핑이 무엇인지 간단하게 설명하 고 사례를 들려주었다. 10명 남짓이었는데 처음이라 많이 떨렸다. 센터로 돌 아가는 길에 같이 간 선생님이 “한결 씨 평소엔 되게 조용하고 그렇던데 오늘 되게 잘했어요! 대상 생각해서 설명도 쉽게 하는 것 같고

. 너무 잘해 줬

어요” 하시는데 뭔가 해낸 것 같아 뿌듯했고 나도 이제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생겼다. 그 밖에 회계 관리도 하고 커뮤니티매핑 사이트를 여는 것 도 배워 큰돈은 아니지만 월급도 받으면서 일하고 있다. 커뮤니티매핑센터에서 일을 하면서 내가 잘 모르던 사회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세상을 보는 시야가 많이 넓어진 것 같다. 녹색연합과 함께 가리왕산 지키기 커뮤니티매핑을 하면서 평창올림픽 경기장을 짓기 위해 사라져 가는 노거수들에 관심을 갖게 됐다. 단 사흘 동안 경기를 치르기 위해서 조선 시 대부터 국가가 보호해 온 가리왕산에 있는 수백 년 된 나무들이 잘려 나간 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깝고 화가 났다. 이렇게 했는데도 결국 베어지고 말았 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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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동육아 114호


또 한국근육장애인협회와 장애인 접근성 커뮤니티매핑을 전국적으로 하 면서 좋은 뜻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서울을 벗어나 강릉, 광주, 대구, 대전, 부산, 울산, 인천 이곳저곳 다니면서 그 지역에 적게나마 관 심도 갖게 되었다. 서울에서만 살아서 대략 어떤 곳이라는 것만 알고 있다가 그곳에 가서 장애인 접근성 매핑을 하다 보니 번화가임에도 휠체어가 다니기 어려운 곳이 많다는 것도 몸소 깨닫고, 아직은 사람들 의식이 많이 부족하다 는 생각도 들었다. 대부분 지역이 휠체어로 다니기 힘든 환경이었는데, 한 가 게에서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경사로를 꼭 설치하겠다”고 말하는 걸 들으면서 보람을 느끼고는 했다. 올림픽 경기를 텔레비전으로 보면서 그냥 웃고 즐기던 내가 그것이 이루어 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만행을 알게 되고, 비장애인으로서 그냥 넘어가면 됐던 문턱과 문 폭을 관심 있게 보게 되었다. 외부로 나가는 일이 잦아 몸이 많이 피로하지만 여러 면에서 나 스스로를 키우는 뜻깊은 경험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부모님은 늘 “너 하고 싶은 거 해” 하고 말씀하신다. 나는 가끔 일이 잘 안 풀릴 때 그 탓을 한다. 나를 너무 풀어놓으니 내가 이렇게 된 거라고. 그렇지만 사실 다 내 탓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또한 너 하고 싶은 거 하라는 말은 그 ‘하 고 싶은 것에(또는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라는 뜻이라는 것을. 일 단은 앞으로 공부를 더 하고 싶다. 커뮤니티매핑센터에서 일을 하다가 사회복 지학이나 사회학을 공부하러 미국에 유학을 가려고 생각하고 있는데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내 마음조차 모르겠다. 지금은 정말로 내가 하고 싶고 간절한 것이 없다. 그렇지만 지금부터 찾아 나갈 것이고, 그런 것이 생긴다면 정말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무겁 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스무 살에 내 인생을 다 결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 니까!

스무 살, 길을 찾아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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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창문

이제는 나와 아이들과 세상에 대해서, 같은 듯 새로운 갈등으로 힘들어하는 후배 조합원들을 보면서 조금은 다른 환상을 품는다. 그러면 또 어떤가, 그것 또한 괜찮지 않은가 생각하면서. 그래서 더디지만 조금씩 성장하다 보면 그것을 이겨 낼 용기도 점점 더 커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환상처럼 품는다.

공동육아 20돌,

우리어린이집 스무 번째 생일을 보내며

박미형 무지개. 1994년부터 2006년까지 신초 우리어린이집 조합원이자 교사로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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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114호


“엄마! 조정 경기장까지 어떻게 가야 해?” “거긴 왜?” “어린이집 졸업생들이 거기서 뭐 하는데, 난 페이스페인팅 하기로 했어!” “그래? 뭐 하는데 어린이집 졸업생들이 모여?” 그러면서 며칠 전에 받았던 문자가 생각났다. “우리어린이집 스무 살. 함께 모여 놀아요.” 초대장이었다. 그날은 아직 2주나 남았는데

. 그렇게 약속 시간에 늦

은 딸아이를 데려다주러 찾아간 조정 경기장 공원에서는 공동육아 한마당 이 열리고 있었고, 깊어 가는 가을 하늘을 수놓듯 세상의 모든 색을 가져다 펼쳐 놓은 아름다운 단풍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아이를 내려 주고 둘러보는데 마음 이곳저곳을 뒹굴다 언제부터인가 잊혀 있던 지나간 시간이 생각났다. 1994년 여름은 40년 만에 찾아오는 더위라며 요란스럽게 내 만삭의 몸을

괴롭히고 있었다. 세상에 준비된 부모가 존재할까? 나도 하루가 다르게 불러 오는 익숙하지 않은 내 배처럼 날마다 뒤뚱거리는 불안함으로 가득했다. 출 산 뒤 아이의 양육을 고민하고 있던 중에 아는 사람에게서 조합 형태의 어린 이집 준비 모임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끌리듯 무작정 찾아간 것이 신촌 지 역 공동육아협동조합 우리어린이집과 인연의 시작이었다. 첫아이 수연이는 한 살 까꿍방을 시작으로 7세 살금이가 되기까지 꼬박 7 년을 우리어린이집에서 자랐고,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는 도토리방과후에서 4학년이 될 때까지 지냈다. 1997년에 태어난 둘째 성준이는 3세 도글방을 시

작으로 2004년까지 우리어린이집과 방과 후에서 살았다. 1998년에 우연히 시작한 기간제 교사직이 정교사로 전환되면서 2007년까지 나는 아이들과 함 께 교사로 우리어린이집에서 살았다. 지금은 집도 이사를 해서 나에게 마을 은 연극을 하고 기타를 치는 순수한 놀이터다. 한 시간이 넘게 버스를 갈아타

공동육아 20돌, 우리어린이집 스무 번째 생일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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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창문

고 가면서 가끔은 생각한다. 나와 공동육아 우리어린이집과 성미산마을을. 교사를 하기 전 나는 그냥 철없는 엄마에 어정쩡한 조합원이었다. 아이들 은 마당이 있는 집에서 흙과 함께 뒹굴며 또 생명이 살아 있는 자연과 사람이 살고 있는 동네 이곳저곳으로 나들이를 가고, 어른들은 내 아이 네 아이 구별 없이 아이와 어른이 친구 같은 그리고 옆집에 숟가락 젓가락 몇 개 있는지 다 알고 사는, 그래서 모두가 행복한 우리어린이집이 공동육아라는 환상으로 가득했다. 그때는 모든 것이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다. 부모가 되는 일도, 회의 며 청소,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조합원 교육도 전부 처음이었다. 함께 모여 아 이들을 잘 키워 보겠다는 단순한 욕심으로 모인 부모들이 주말마다 쏟아지는 어린이집의 일을 마치 대학 새내기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해치웠다. 그래서 우 리 식구에게는 성미산마을이 고향 같다. 태어나서 자란 곳을 고향이라고 하 니까, 내 아이가 태어나서 자랐듯이 나와 남편도 부모로 다시 태어나서 성장 하며 추억이 쌓인 곳이니까 고향이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맞는 거겠지?” 조금은 신중한 한 엄마가 걱정 을 하면 그 옆에 낙천적인 누구 아빠가 “사는 건데 맞고 안 맞고가 어딨어!” 위 로를 하고, “괜찮아, 괜찮아” 하면서 정병호 샘은 ‘괜찮아’가 되었다. 지금은 너무 유명해져서 나조차도 어색한 성미산마을의 시작이었다. 처음부터 유명 한 마을을 만들려고 모인 사람들이 아닌, 그저 함께 모여서 흔히 하는 육아 방법과 조금 다르게 모두가 평범함을 거부하는 세상에서 평범한 아이로 키우 며 살아 보겠다고 살다 보니, 그래서 뜻 맞는 사람들이 모이고 살다가 불편함 을 느끼면 조금씩 고치고 만들면서 살아가다 보니 어느 날 성미산마을이 되 어 있었다. 그렇게 아이들과 살 비비며 수연・성준 엄마에서 무지개가 되었고, 조금씩 공동육아 어린이집과 그 속에 살고 있는 아이들과 어른들이 보이기 시작했 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다양하게 관계를 맺다 보니 그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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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114호


욕구와 파생되는 갈등이 한시도 멈추지 않고 일어나는 생생한 삶의 현장이 공동육아 터전이었다. 그러니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커지고 터지고를 되풀 이하는 곳이었다. 삶이 그러하듯. 물론 그 와중에는 아프게 상처받고 어린이 집과 마을을 떠나는 사람도 생기고, 상처를 치료하며 여전히 마음이 아픈 사 람들도 있다.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리고 내 환상도 깨졌다. 그러나 지금 까지 살면서 “사랑해” 라는 말을 가장 많이, 자주 들었다. 물론 아이들에게 서. 그거면 됐다. 지난 주말에 우리어린이집 스무 살 생일잔치에 다녀왔다. 교사직을 그만두고 터전을 처음으로 찾았다. 가슴이 뭉클하면서 마음이 아련해졌다. 오래된 얼굴들을 만나서 반가웠고, 처음 보는 후배 조합원들을 보니 마음이 설레면서도 미안했다. 등 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키듯 터전에서 살고 싶다던 때가 생각나서인가? “나에게 우리어린이집이란

이다.”

돌아가며 말하는데 후배 조합원이 그런다. “나에게 우리어린이집은 양면의 칼이다.” 또 다른 후배 교사는 이렇게도 말한다. “나에게 우리어린이집은 젊은 시절의 열정이다.” 지금 현장에서 겪고 있는 많은 문제들로 갈등을 경험하고 있는 후배 조합 원들의 고뇌가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지나간 시간에 내가 그랬듯이. “나에게 공동육아 우리어린이집은

으로 설명할 수 없어서

이다.”

인생을 생각하면 짧지만 깊은 배움의 시간이었고, 아이들과 함께 행복했 고 추억할 수 있는 그리운 사람들을 선물로 받았다. 물론 갈등도 고통도 경험 했고, 치유되는 시간을 통해서 갈등은 타인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자연 스러운 모습이고 갈등을 이해하고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나와 타인이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우고 조금 더 지혜롭게 삶의 여러 문제들에 대처할

공동육아 20돌, 우리어린이집 스무 번째 생일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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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창문

수 있게 되었다. 많은 사람이 모였으니까 더 세심한 이해와 더 긴 공유의 시간 과 더 많은 배려와 소통의 에너지가 필요하고, 그건 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비싼 값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남편과 가장 살벌한 갈등을 겪고 치 열하게 치유의 과정을 겪나 보다. 가장 오래 유지하고 싶은 관계니까. 아이들 관계에서도 그렇다. 어느 사이 훌쩍 커 버려 이제는 엄마의 쓴소리는 잔소리 쯤으로 치부하고 끝까지 자신의 의견을 당당히 요구하는, 참 다루기 힘들 만 큼 진짜 주체적으로 성장한 아이들과도 어떻게든 소통의 끈을 잡으려고 애쓰 고 있으니. 휴

.

어느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들은 대사가 자주자주 생각난다. “사랑은 언제나 행복과 기쁨과 설렘과 용기만 주는 것이 아닌 고통과 원망 과 아픔과 슬픔과 절망과 불행도 준다. 그리고 그것들을 이겨 낼 용기도 더불 어 준다.” 희망도 같다. 그래서 이제는 나와 아이들과 세상에 대해서 조금은 다른 환상을 여전히 품는다. 그러면 또 어떤가, 그것 또한 괜찮지 않은가 생각하면서. 같은 듯 새 로운 갈등으로 힘들어하는 후배 조합원들의 모습을 보면서도 그러면 또 어떤 가, 그것 또한 괜찮지 않은가, 그래서 더디지만 조금씩 성장하다 보면 그것들 을 이겨 낼 용기도 점점 더 커지게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환상처럼 품는다. 어디에도 정답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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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114호


사진으로 보는 공동육아 한마당

2014년 제8회 공동육아 한마당

함께 키우고 함께 즐기고 함께 나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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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공동육아 한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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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114호


제8회 공동육아 한마당이 지난 10월 26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 시 반까지 미사리 경정공원에서 ‘함께 키우고, 함께 즐기고, 함께 나누고’라는 주제 아래 열렸습니다. 이번 한마당은 지난 11월 22일에 열린 학술대회와 함께 공동육아협동조합 설립 20 주년을 기념하는 자리로 3천 명 남짓한 공동육아 부모・교사・아이가 모여 그동안 돌봄 공동체로 자리매김한 공동육아 회원 조합들의 역사와 돌봄 정신을 되돌아보고, 다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고 만들고자 하는 아름다운 연대의 장을 만들었습니다.

함께 키우고 함께 즐기고 함께 나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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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공동육아 한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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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114호


부모・교사・아이들이 함께한 길놀이로 시작한 한마당은 방과 후 아이들의 모둠 북 축하 공연에 이어 어른과 아이가 함께 즐기는 지역별 놀이마당, 천막 앞 돗자리 벼룩시장, OX 퀴즈, 가장행렬, 아빠들의 대합창, 교사들이 이끄는 강강술래로 흥겨운 대동놀이를 즐겼습니다. 전시마당에서는 공동육아 회원 조합들의 역사가 담긴 사진전과, 공동육아교사회의 교사대회 20년 기념 사진전을 열었고, 공동육아 졸업생들과 함께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함께 행동할 수 있는 행위극을 꾸며 보았습니다. 또한 이번 한마당에서는 노래 한마당도 열어 아이들의 꿈과 희망, 일상의 다양한 목소리로 작사・작곡한 노래를 함께 부르고 나누었습니다.

함께 키우고 함께 즐기고 함께 나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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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어린이집 서울

인천ㆍ부천

꿈꾸는

02)995 - 1802

개구리

02)2691 - 7338 서울시 강서구 강서로18길 44-17

너랑나랑

032)437 - 5516 인천시 남구 소성로318번길 23-7

산들

02)458 - 7122

서울시 광진구 자양로50길 74

너나들이

070)7550 - 4463 인천시 서구 왕길동

즐거운

02)458 - 0659

서울시 광진구 긴고랑로 149-7

궁더쿵

02)2625 - 9769 서울시 구로구 오리로20길 32

032)666 - 9213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성주로80번길 16

우리노리

032)347 - 9252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호현로439번길 32

통통

02)3391 - 2889 서울시 노원구 동일로236길 60-4

해와달

02)824 - 3753

서울시 동작구 성대로16길 67-6

안양ㆍ군포

콩세알

02)6243 - 2600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로33길 22

친구야놀자

031)385- 7959

또바기

02)333 - 4421

감나무

031)395 - 5277 경기도 군포시 수리산로 33

성미산

02)6082 - 6060 서울시 마포구 성미산로7안길 44

우리

02)324 - 0933

참나무

02)3141 - 4271 서울시 마포구 새터산길 35

용인ㆍ수원ㆍ평택

함께크는

02)3462 - 7599 서울시 서초구 바우뫼로11안길 12

꿈나무놀이터 070)8815-0510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호수로 39-9

행복한우리

02)942 - 7032

서울시 성북구 아리랑로19다길 38-14

깨끔발

칙칙폭폭

02)714 - 0262

서울시 용산구 원효로83길 5-8

숲이랑우리랑 031)8005- 8118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동백중앙로

소리나는

02)358 - 7725

서울시 은평구 갈현로 214-13

서울시 강북구 삼양로173가길 58

평화의교회 1층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로5길 33-18

해맑은

대림e편한아파트 119동 101호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매곡로44번길 14 계룡삼환아파트 843-101

서울시 마포구 성미산로 25-6

고양ㆍ파주

54번길 25-14

달팽이

031)251 - 3210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파장천로 45-11

도깨비

031)969 - 3412

야호!

031)977 - 4788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성현로138번길 81

여럿이함께

031)977 - 2382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마골길 21-6 A동

나무를키우는 031)967 - 5995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장동 240-1 햇살

031)949 - 0727 경기도 파주시 장터고개길 182-44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사은로 274-11

031)308 - 0400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신봉2로 114번길 5-17

031)967 - 3480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흥도로178번길 103-14 사이좋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고양대로 1730번길 128 단독 1층

031)287 - 5174

작은나무숲 도토리

반딧불이

032)546 - 2889 인천시 계양구 향교로18번길 6-1

031)227 - 5925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금곡로31번길 7 금곡엘지빌리지 102-101

함께놀자

070)8683 - 7546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영통로514번길 53,

느티나무

031)681 - 9650 경기도 평택시 오성면 양교4길 11

황골마을주공2단지 112동 102호

성남ㆍ광주ㆍ이천 세발까마귀

031)714 - 4245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쇳골북로32번길 3

꾸러기

031)711 - 4858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예원로 22

굴렁쇠

031)754 - 0978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발이봉남로 43번길 3-1

꿈틀꿈틀

031)873 - 5420 경기도 의정부시 송산로985번길 59

덩더쿵

031)712 - 7972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불곡남로14번길 12(1층)

징검다리

031)555 - 0591 경기도 남양주시 가운로2길 98 가운마을

두껍아두껍아 031)717 - 9954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창뜰아랫길 37-17 뭐하니

의정부ㆍ남양주

휴먼시아A 관리동

너른마당

031)633 - 5956 경기도 이천시 부발읍 신아로 13

하남 파란하늘

02)3401 - 7813 경기도 하남시 감일남로52번길 62

강원

재미난

02)442 - 0065

산,들,바람

033)643 - 0679 강원도 강릉시 성곡고양길 53

소꿉마당

033)766 - 0663 강원도 원주시 판부면 백운정윗길 14-35

신나는

033)244 - 7885 강원도 춘천시 영서로 3043

경기도 하남시 초이로80번길 48

광명 하늘

02)899 - 2329

경기도 광명시 안재로1번길 13-5

부산ㆍ창원 과천ㆍ의왕

아이들세상

051)515 - 6832 부산시 금정구 청룡로45번길 10-4

쿵쿵

051)342 - 2595 부산시 북구 대천천길 103

맨발

070)8885 - 2224 경기도 과천시 공원마을2길 41

열리는

02)507 - 1798

하늘땅

031)422 - 4633 경기도 의왕시 약수터1길 57

대구

개똥이네

031)422 - 3281 경기도 의왕시 동부시장3길 46

씩씩한

053)791 - 6879 대구시 수성구 천을로 61-7

노마

053)322 - 4719 대구시 북구 도남길 257-1

딱지와구슬

053)321 - 8477 대구시 북구 관음동로13길 13-22

솔방울

053)588 - 0686 대구시 달성군 다사읍 강정본길 38

경기도 과천시 양지마을2로 8

안산 영차

031)502 - 0104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호동로3길 13-1 1층


아이들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공동체

대전ㆍ천안ㆍ충주

광주

친구랑

042)867 - 5565 대전시 유성구 하기로66번길 94

어깨동무

모여라

041)564 - 5308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통세골2길 28-4

(광주)

아이들세상

043)847 - 7934 충청북도 충주시 칠지6길 6

햇살가득

062)953-0615

광주시 광산구 월곡반월로16번길 25-5

062)944-6150

광주시 광산구 송림길 32-21

공동육아 방과후 서울

인천ㆍ부천

재미난

02)428 - 0605

서울시 강동구 천호대로219길 44

해맑은

070)7661 - 2888 인천시 계양구 계산로 8, 덕수상가 4층

봉제산

02)2699 -1201

서울시 강서구 까치산로12길 50

하제누리

070)7515 - 3619 인천시 부평구 창휘로10번길 26 희망빌라 101호

마법

02)444 - 0657

서울시 광진구 자양로50길 74 (노란대문)

032)661 - 9213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성주로 100-6,

파란하늘

02)409 - 8890

서울시 송파구 오금로64길 3, 2층

무지개

070)7808 - 9974 서울시 성북구 정릉로24가길 3

친한친구

070)8638- 9779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 260, 성산시영아파트 2동 101호

이편한아파트상가 홈마트 3층

과천ㆍ분당 두근두근

02)504 - 7643

경기도 과천시 희망3길 41

율동

031)719 - 1291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문정로 150 율동복지회관 2층

대전ㆍ부산ㆍ대구 계수나무

070)8826- 0767 대전시 유성구 관들5길 15-27

징검다리 놓는아이들

070)4024-2595 부산시 북구 대천천길 103, 2층

사이좋은 해바라기

053)793 - 6879 대구시 수성구 천을로 36

초등 대안학교 산어린이학교 02)2611 - 1186

수원ㆍ평택 사이좋은

031)292 - 5925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금곡로73번길 71

아름다운

031)682 - 9650 경기도 평택시 오성면 대조두길 19-1

금곡엘지빌리지 408동 104호

지역공동체학교 경기도 시흥시 금오로 273

국공립 어린이집

해송 02)762 - 9201 지역아동센터

서울시 종로구 낙산성곽동길 59-10

강동꿈나무 02)478 - 7220 지역아동센터

서울시 강동구 천중로11길 30 1층

02)3141 - 2833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 15안길 19 02)307 - 0862 서울시 서대문구 수색로 100

송파꿈나무 02)404 - 2159 지역아동센터

서울시 송파구 송이로31길 32, 2층

(구립)푸른숲 (구립)산마루

02)364 - 6300

구로파랑새 02)838 - 5679 지역아동센터

서울시 구로구 구로동로38길 32, 3층 A호

(구립)성미

서울시 서대문구 북아현로 120

뿌리와새싹 커뮤니티센터 042)935 - 8237

한누리학교 02)2695 - 6507 서울시 양천구 신월로 117 경신빌딩 2층 지역아동센터 성남꿈나무 031)743 - 4416 지역아동센터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은이로7번길 7 3층

대전시 유성구 관들5길 14

남양주

070)4201 - 1214

보물섬교육공동체

070)7723 - 1655

도곡 개구리어린이집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궁촌로 95-22 2층

굴렁쇠어린이문화학교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연로 361

보물섬교육공동체

064)749 - 0669

보물섬어린이집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정실4길 63-3

뿌리문화원 뿌리와새싹어린이집

기관회원

서울시 마포구 동교로 114 201호 | 02-323 - 0520 | gongdong @ gongdong.or.kr | www.gongdong.or.kr


열린 창문

156

공동육아 1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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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1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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