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alogue Nostalgia II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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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FEATURE

ANALOGUE NOSTALG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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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노스탤지어 N극 없이는 S극도 없다. 반대 상황 역시 마찬가지다. 디지털 코드가 우리 피부에 체화된 요즘, 그 반대편에는 아날로그에 대한 가치가 부 각되고 있다. 현재 아날로그는 더 이상 디지털 이전의 기술로만 읽히지 않는다. 디지털 환경 속에서 아날로그는 본래 알려진 자연적 체험 의 툴로써 인간 본연의 가치를 끌어내는 향수가 되어, 물리적 기술뿐만 아니라 감성의 아우라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그리고 마침내 새로 워진 아날로그를 경험하고 탐구하고 싶은 욕구까지 꿈틀대고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이 둘의 서로에 대한 참조와 재매개로 인한 혼종의 세상을 사는 우리는 변화의 소용돌이를 경험하는 중이다. 이에 큐레이터 여경환이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새로운 관계를 맺고 있는 현재 현상을 사례 중심으로 서술한다. 미술비평가 유원준은 디지 털과 아날로그의 근본적 차이에 대해 밝히며 아날로그가 각광 받는 이유를 짚어보는 동시에 개론 중심으로 전망한다. 두 전문가의 글에 이어 마지막으로「퍼블릭아트」 가 소용돌이의 근원지인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적 감성과 방식을 소개한다. 현 시대 속 아날로그와 디지 털, 두 관계의 그물망을 살펴보며 미래를 예견하는 자리가 되길 기대한다.

기획・진행 최형우 수습기자

앤 해밀턴(Ann Hamilton) <The Event of Thread> 2012 파크 애비뉴 아모리 커미션 설치전경 사진: 제임스 어윙(James Ew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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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앤 해밀턴 <The Event of Thread> 2012 파크 애비뉴 아모리 설치전경 사진: 제임스 어윙 2. 허견 <Spring Hiatus> 2011 잘려 진 조화 꽃잎 16×40inches (설치 모습) 3. 오마키 신지(Ohmaki Shinji) <리미널 에어-디센드-> 2006-15 나일론 실, 형광등, 유리, 나무 가변설치

special featureⅢ-Ⅰ 감성의 아날로그, 잃어버린 아날로그시계의 시침 ● 최형우

수습기자

디지털 기술은 시각적, 청각적인 각종 콘텐츠를 0

력을 실행할 수 있는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게 했

는 도구적 기능을 언급하지 않는다. 구두는 농부

과 1로 바꾸어 놓으면서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다. 이처럼 디지털을 만난 아날로그는 감성적 의

의 찌든 삶 냄새가 나는 또 하나의 사람이 되었다.

준다. 시간의 흔적이 없는 이 디지털 파일들은 사

미를 내포한 언어로 탈바꿈한다. 아날로그가 가

오늘날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변곡점이라는 구

람 손때가 묻을 리 없고 철저하고 완벽하다. 하지

지고 있는 실체성은 사람들의 정신적 교감을 불

축된 상황, 시대적 특수성과 사회적 담론과 앞서

만 역설적으로 모든 것이 죽지 않고 디지털 코드

러일으키는 메타포로 작동하고 살이 부딪히는 신

서 언급한 예술작업을 통해 사물의 숨어 있는 가치

화되어 가고 있는 오늘날의 환경은 흠집이 나고

체적 상호작용이 가능한 체험의 장을 만든다. 디

들을 끄집어내려는 작가 습성과의 만남은 현재 아

흔적이 묻는 아날로그가 발견되기 최적화된 시간

지털이 주는 효율, 편리, 빠름의 기계화에 상대적

날로그 사물의 숨어있던 의미들을 드러내고 있다.

과 장소가 되기도 한다.

으로 아날로그는 더욱 섬세하고 따뜻한 인간 중

마이클 스코긴스(Michael Scoggins)는 캔버

가령‘느린 우체통’ 을 아는가? 2013년도에 첫

심적인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의미가 된다.

스 대신 스프링 제본 흔적과 파란 줄들이 새겨진

선을 보인 이 우체통은 1-2초의 배송시간을 자랑

아날로그의 감성을 파고들기 위해 특정한 사물

노트 메모지를 사용한다. 스코긴스의 그림은 정

하는 이메일이 세상을 점령하고 있는 오늘날, 반

을 가지고 작업함과 동시에 그 사물과의 감성적

말 친숙하다. 그의 작품 속 캔버스 대용 메모지와

기라도 들듯‘느림’ 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출사표

교감을 만들어내는 작가들을 언급하고자 한다.

그 위에 그려지거나 쓰인 낙서들은 문서와 그림

를 던졌다. 참고로 이 우체통의 배달 시간은 1년

물론 촉이 곤두서 있는 예술가들은 이전부터 사

을 컴퓨터 파일화해 기록하는 현대인들에게 단순

이다. 이 1년이라는 시간은 신속한 정보 대신 그

물에 대한 깊은 성찰을 예술작품에서 일구어 내었

한 종이가 아닌 어린 시절 향수를 전달한다. 작가

날을 기억하는 추억의 감성을 전달해주는 느림의

다. 일찍이 하이데거는 반 고흐(Van Gogh)의 구두

는“왜 우리는 어른이 되어서도 서로를 비난하고

미학이 된다. 예전 편지와 이메일의 만남은 편지

작업이‘구두’ 라는 존재자(entity)의 존재(Being)

있는지, 어른이 되어서도 아이와 별반 달라진 게

를 몰살시키는가 싶더니 어느 샌가 느림의 잠재

를 드러낸다고 하지 않았던가. 고흐의 구두는 더

없다” 고 말하며‘성숙(Maturity)’ 에 대한 질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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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됨을 안 작가는 그 작업을 매개로 관람객과 자신의 연결고리 를 찾는 유대관계를 만들어 간다. 이에 대한 결과물은 <People>(2014)과 <Girl>(2013)로 나타나며 작가와 관람객은 서 로를 위로 해주는 동반자가 된다. 사물을 중요 매개로 사용하는 박혜원은 붉은 실을 통해 유대감 을 드러낸다. 본래 실은 이어주고 붙여주고 서로 간의 만남을 주선 하는 사물이다. 특히 붉은 실은 인연을 알려주는 장치로 전통설화 에 등장했고 작가 역시 이를 이용해 자신의 작업을 진행한다. 박혜 원의 작업은 여러 단계에 걸쳐 유대감을 두텁게 만드는데, 우선 전 통설화라는 민족적 공유물을 끌어 들임으로써 민족적 유대관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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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흰 옷, 참숯 30분 가변크기 ⓒ Melati Suryodarmo

<I'm a Ghost in My Own House> 2012 퍼포먼스, 비디오 설치, 돌, 철 연마

무, 의자, 돌에 감아 설치 설치전경 4. 멜라티 수료다모(Melati Suryodarmo)

×15inches 3. 박혜원 <Red Blossom> 2013 붉은색과 검은색의 털실을 나

Landscape Anew> 2012 손으로 찢긴 꽃잎, 돌, 거울, 잔디, 프로젝션 50×16

1. 마이클 스코긴스(Michael Scoggins) <The Flash> 2012 종이에 작업(드로

잉, 수채화 등), 종이에 마커, 프리즈마 색연필 170.2×129.5cm 2. 허견 <In A

맺는다. 이후 작가는 빨간색은 인연, 검은색은 단절이라는 대치를 품은 채 관람객의 어린 시절을 호출한다. 메모지의 크기를 확대해

암시하고 빨간 실로 맺어진 가까운 인연의 부재라는 개인의 경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효과는 배가 되고, 꾸겨지고 찢어지고 접힌

을 관람자와 공유한다. 붉은 실은 서로 간의 공감대를 형성하며 아

흔적들은 과거 어린 시절과 현재의 나를 연결해 주는 시간성을 드

픈 기억을 애도하고 다 같이 추억하는 것을 가능케 하며 서로를 다

러낸다. 평범했던 종이와 낙서들은 과거와 현재의 내 존재를 느끼

시 잇는다. 이러한 관계는 실이 만드는 중요한 가치가 된다.

게 해주면서 이 둘을 비교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성숙의 시간을 갖

아날로그 사물로부터 나오는 감성들은 대상에 대한 경험을 넘

게 한다. 이러한 종이와 낙서, 스케치라는 소재들은 나의 과거 시

어 행동, 공간으로의 경험에서도 공유될 수 있다. 행동경험을 통

간을 기록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낡고 수명을 다한다는 점

한 아날로그 감성은 버튼과 클릭으로 만병통치약이 되는 것과는

에서 기억과 닮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향수, 추억, 회상을 매개시

다른 정성과 노동이 묻어나오는 아날로그적 행위들로부터 나온

켜주는 것은 아닐까. 연필 스케치를 활용한 윤민섭의 설치

다. 허견은 조화를 잘게 조각내어 패턴 모양의 설치 작업을 만들어

<Portrait>(2012)를 보면 그 역시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을

낸다. 수많은 조화를 마치 화산재처럼 곱게 만든 다음, 바닥에 색

등장시키며 자아를 확인해 가는 과정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이

깔별로 가지런히 배열한다. <Spring Hiatus>(2011)는 조화를 자

작가의 인물 설치는 얼굴이 없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르는데 약 4개월, 설치에만 2주가 걸린 장기 프로젝트로 가로, 세

점은 관람객이 작품의 인물에게 자신의 모습을 투영시키게 한다.

로 약 9m, 4m의 대규모 작업이다. 8개의 반복된 색깔 패턴은 그

그런 과정에서 자화상의 모습이 다른 누군가의 자화상으로도 변

의 어머니 결혼식 때 사들인 이불을 복제한 모양이기도 하고 어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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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민선 <Propeller#1> 2012 혼합재료 지름 200cm 2. 뮌 <Green Room(RGB)> 2014 나무, 백열전구, 사람미니어처 라이트 오브제 각 60cm, 80cm, 100cm 3. 윤민섭 <The room> 2014 플라스틱 가변크 기 4. 안규철 <1,000명의 책> 2015 철, 합판, 지향서 스피커, 카메라, 모 니터, 종이, 펜 1,500×480×42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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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할머니의 정원을 떠오르게도 한다. 과거 미국에 이민을 간 작

께 상호 연결된 퍼포먼스 이벤트였다. 해밀턴이 기획한 이 공간

가는 이 작업을 통해 당시 겪었던 자신의 정체성과 언어에 대한

은 그네를 타고 실의 움직임과 같이 흔들거리며 공간을 탐험하

혼란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데 이 작업이 도움을 주게 된다. 조

고 말하기, 노래하기, 읽기, 쓰기 등의 아날로그 인간 활동을 표

화를 수집하는 순간서부터 하나하나 잘게 자르고 이들을 한데

출할 수 있다. 특히 그네를 타는 개인적 행동 때문에 다수의 활

모아 반듯하게 한국의 전통적인 색동 패턴으로 나열하는 수행

동이 영향을 미치는 상호연결성이라는 사회적 조건을 드러내었

적인 과정은 오랜 시간의 작업 속에서 사유의 시간을 할당받고

고 모르는 사람과의 특별한 만남이 성사되기도 했다. 참가자들

그에게 있어 치유의 여정이 된다. 더욱이 그의 작업은 모든 제작

의 참여 퍼포먼스는 사운드, 속도, 시간과 같은 물리적 힘과 읽

과정을 가족과 함께한다는 특별한 점이 있는데 그 속에서 끈끈

고, 쓰고, 듣기 등의 문학적 잠재력이 맞물리며 현실의 공간에서

한 가족의 가치를 되새기게 된다. 작가는 1만 2,000개의 조화를

벗어난 몽상적 체화를 실현했다.

자르고 가족과의 친밀한 관계를 상징하는 색동 패턴을 배열하

필자는 사람들의 문학적이고 시적이고 예술적인 잠재력이 언

는 과정이 그의 가장 행복한 어렸을 적 기억의 풍경을 다시 한

제부턴가 직군이라는 영역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음을 느낀다.

번 만나게 되는 기회라고 한다. 단순히 자르고 나열하는 그의 행

누구에게나 잇 아이템(It item, 주요 아이템)은 있을 터. 그 아이

동은 수행적인 반복, 가족과의 연대, 예술 창조라는 행위를 거쳐

템이 사물이건 기억이건 어떤 장소이건 간에 소중한 경험이자

가슴 속 상처를 치유하는 중요한 가치를 생산해내고 자신을 넘

사물 이면의 중요한 가치를 내포하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것에

어 가족, 관람객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었다.

대한 향수가 벌써 사라졌다고 한들 우리는 언제든 창조해낼 수

마지막으로 앤 해밀턴(Ann Hamilton)의 <The Event of

있는 본래 뛰어난 예술가 아닌가. 사랑을 느끼고 희망을 부르고

Thread>(2012)를 보자. 뉴욕 파크 애비뉴 아모리(Park Avenue

열정을 내뿜는 것 또한 이제는 구시대 아날로그적으로 느껴지

Armory)에서 열린 인터랙티브 공공 공간 설치는 대형 커튼,

는 오늘날에 살고 있지만, 결국 그것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것

실, 42개의 그네, 라디오, 낭송, 쓰기, 비둘기 등이 관람객과 함

을 우리는 원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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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FEATURE

ANALOGUE NOSTALGIA special featureⅠ_ 여경환 로우테크놀로지,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함수관계를 넘어서

special featureⅡ_ 유원준 아날로그 노스탤지어, 포스트-디지털의 멋진 신세계

special featureⅢ-Ⅰ_ 최형우 감성의 아날로그, 잃어버린 아날로그시계의 시침 special featureⅢ-Ⅱ_ 최형우 방식의 아날로그, 다시 등장하는 아날로그시계의 태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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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소라 <보통날> 2015 혼합매체 8x24x8.5cm 한 쌍 P u b l i c a r t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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