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스러지는 누리
다슬누리마을 다스러지는 누ㄹㅣ
이동원 허훈 김지호 지음
03980
9 791186 188040
ISBN 979-11-86188-04-0
이동원 허훈 김지호 지음
10,000원
여기 저기
여기저기출판사
다스러지는 누리
다슬누리마을 다스러지는 누ㄹㅣ
이동원 허훈 김지호 지음
03980
9 791186 188040
ISBN 979-11-86188-04-0
이동원 허훈 김지호 지음
10,000원
여기 저기
여기저기출판사
다스러지는 누ㄹㅣ
이동원 허훈 김지호 ㅣ 이동원 허훈 김지호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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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글 슬픈 역사 속의 해학과 삶!
외세의 도움을 선택할것인가, 자주성을
남과 북으로 분단된 미시 한반도같은
선택할 것인가. 여행과 더불어 긴 생각
마을
을 하게되는 마을.
허가렌
옥달
작은 마을이라는 공간에도 단절의 아픔 이 있었음을 기억하자. 아픔이 있는 만
분단의 아픔과 그 역사를 함께 해온 다
큼 감동을 찾을 수 있는 마을
슬누리와 다슬누리를 사랑하는 사람들. 윤평화
당신도 곧 사랑하게 될 것이다. 맥아더
민족간 이별의 안타까움을 바탕으로 도 주제가 새롭고 흥미를 유발시킨다. 갈
시와 인물을 잘 탐구한 책 예.D
등요소에서 이끌어낼 이야기가 많을 것 같다. 실제 과거에서 주제를 이끌어냈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엔 서양열강의
다는 점에서 추천한다
대사관들이 드러선 그 시절, 수많은 사
이토 히로부미
건들에 맞선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 김진욱
확실한 것이 재미있는 법이다. 위아래 로 나뉜 경계는 진부할 뻔했지만 그안
일제시대의 우리나라 민족의 슬픔이 배
의 이야기가 그 경계를 지탱하고 있어
어있는 마을. 이 책을 읽다보면 왜 한민
재미있었다
족이 둘로 나뉘어 다투어야 하는지 새
도박군
삼 비통함을 느낄 수 있다. 옴바니
우리의 혼과 얼이 깃들어 진심으로 국 가를 지키고 싶은 사람들이 모였지만,
분단 국가 속 작은 분단 마을, 마치 작
방법이 다른 두 집단, 섞이지 않는 물과
은 한국을 보는 것 같다.
기름. 합의가 가능할까 무달
들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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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 가 소 개 박희건
칼럼니스트. 1972년 출생이며 다슬누리의 아랫마을 출생이다. 새터민 부모 아래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한 그는 전형적인 자수성가 스토리 를 써내려가며 연세대학교 전기공학과에 입학하지만 대학 3학년 재학 도중 군입대를 앞두고 "이 나라에 나의 젊음은 단 1초조차 바칠 수 없다"라는 명 언를 남기고 모스크바대학교 사회학과로 돌연 유학길에 떠난다. 러시아에 서의 경험과 레온 트로츠키의 '러시아 혁명사'에 깊이 감명받은 그는 대한 민국에도 변혁의 물결이 일기를 간절히 희망하고 있다. 2009년 한국으로 돌아와 2년의 옥중생활동안 '북한,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 '아픔을 잊은 국가,대한민국' 등 2권의 칼럼을 써낸 박희건은 현재 한국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작가 중 하나이다. 현재 다슬누리의 윗마을에 거주하며 노블 리스 오블리제의 실현을 주창하는 그의 모습은, 다슬누리와 한국의 변화를 기대하게 만드는 하나의 요소임이 틀림없다. 요즈음 '이 돈이면 시리아 아 이들 100명이...'를 말버릇으로 달고다니는 그는 희망을 지으라는 그의 이 름답게 오늘도 갈곳없는 사람들의 희망을 짖기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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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세상에 이런 말이 있다. '막상 멍석을 깔아줘도 못한다.' 라고. 무엇인가를 간절히 바랬거나 염원했던 사람은 그 소원이 이루 어질 수 있는 상황과 기회가 주어져도 그 소원을 이루지 않고 엉뚱한 짓을 한다는 말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그렇게 그토록 원하던 것을 못 이루고 시간이 지나면 그 때서야 자신 의 무지함과 멍청함을 깨닫고, 때늦은 후회와 자책을 하게 된 다. 얼마나 멍청한 일인가. 소원을 이룰 상황이 와도 그것을 못 이룬다는 것은. 그러한 사람들은 그 당시에는 그러한 상 황인지 몰랐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경솔함이다. 조금만 이 성적으로 생각하고, 멈추어 되돌아 보아도 자신이 주어진 상 황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지 금 '멍석 '위에 있는가? 답은 '아니오'일 것이다. 그것이 경솔 함인지 아닌지는 스스로 잘 생각해 보길 바란다. 여기 한 때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뜨겁게 무엇인가를 염원했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소원과 염원은 순수했으며 하늘에 우러러 부끄 럼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멍석 위의 경솔함'으로 인해 역사는 굴곡진 방향으로 흘러갔고, 그 골짜기는 무엇보다도 깊어졌 다. 그러한 굴곡의 역사를 여기 이제 내가 증명하려 한다. 증 명이라기 보다는 그러한 역사의 증인이자, 과거 경솔함의 후 회와 한풀이로서 나는 세상에 고해성사할 것이고, 현재 순수 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해학적으로 또 이중적으로 변해갔는지 또한 말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다시 스스로에게 묻길 바란다. '나는 멍석위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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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나스누리마이트 다이나마이트(Dynamite)+다슬누리(DaseulNuri) Dyna+seulNuri+mite
샴(Siamese twin) 샴 쌍둥이는 일란성 쌍태아의 특이한 형태로, 수정란이 둘로 나뉘어지는 것이 불완전하여 몸의 일부가 붙은 상태로 나오게 된다.
다슬뱅이 1.다슬(다슬누리)+뱅이(그것을 특성으로 가지는 사람이나 사물) 2.뱅이(인간의 안정된 삶을 위협하는 어떤 상황을 미연에 방지 하거나 이미 발생한 불행한 사건을 자신의 뜻대로 환원시키거 나 정상화하고자 할 때 사용되는 주술적 방법. 인간이 소망하거 나 목적하는 바를 비공식적으로 은밀하게 성취하고자 할 경우)
요물 The Weird Thing
꾼 1.'어떤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 또는 '어떤 일을 잘하는 사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2.'어떤 일을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 또는 '어떤 일을 즐겨 하는 사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3.'어떤 일 때문에 모인 사람' 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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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세력도 다이나스누리마이트 샴(Siamese) 다슬뱅이들 요물 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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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슬누리의 아이들-윤평화
Dynamite 다이너마이트는 주로 건축, 채광, 파괴, 그리고 전쟁 터에서 쓰였다. 그러나 더 새로운 폭발물과 기술은 다이너마이트를 여러 방면으로 응용하여 바꾸어 놓 았다. 다이너마이트는 수면 안이나 아래 쪽에서 폭파 하는데 주로 쓰인다. 다이너마이트는 무장 전투, 다 리 파괴, 적군이나 식품 배급을 느리게 하는 데도 쓰 였다. 금고를 터는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막대 를 끓이고 니트로 글리세린을 걷어냄으로써 일부러 니트로 글리세린을 다이너마이트에서 추출하기도 한 다. 다이너마이트는 또한 스키 휴양지에도 자주 쓰인 다. 안전 요원들은 다이너마이트 막대들을 사용하여 고의로 눈사태를 만듦으로써 스키타는 사람들이 도 착할 때 안전하게 만든다. 주요 장치는 다이너마이 트를 시동하는 데 쓰인다.다이너마이트는 주로 건축, 채광, 파괴, 그리고 전쟁터에서 쓰였다. 그러나 더 새 로운 폭발물과 기술은 다이너마이트를 여러 방면으 로 응용하여 바꾸어 놓았다. 다이너마이트는 수면 안 이나 아래 쪽에서 폭파하는데 주로 쓰인다. 다이너 마이트는 무장 전투, 다리 파괴, 적군이나 식품 배급 을 느리게 하는 데도 쓰였다. 금고를 터는 것에 관심 이 있는 사람들은 막대를 끓이고 니트로 글리세린을 걷어냄으로써 일부러 니트로 글리세린을 다이너마이 트에서 추출하기도 한다. 다이너마이트는 또한 스키 휴양지에도 자주 쓰인다. 안전 요원들은 다이너마이 트 막대들을 사용하여 고의로 눈사태를 만듦으로써 스키타는 사람들이 도착할 때 안전하게 만든다. 주요 장치는 다이너마이트를 시동하는 데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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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나스누리마이트 다슬누리의 역사는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올라가 시작된다. 본래 이 름없는 작은 부락이었던 다슬누리는 일제에 의해 서양열강의 대사관들 과 서양인주거지역이 집중적으로 위치하게 되면서 성장하게 된다. 일 제는 서양열강 견제를 위해 이 지역을 경성(지금의 서울)에서 배제, 방 치시키지만 이러한 상황은 오히려 독립운동가들과 수탈민들이 일제의 감시를 피해 모여살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러한 결과는 자연스 럽게 이 지역을 독립운동의 은밀하면서도 공공연한 중심지로 부상하게 만들었다. 이와같이 점점 마을이 성장하게 됨에 따라 이 지역 사람들은 일제에서 벗어난 평화로운 세상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마을 이름을 '평 화로운 세상'의 순우리말인 '다슬 누리'라고 칭하다 발음의 편의를 위해 오늘날 불리는 '다슬누리'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렇듯 모두가 한마음으로 일제에서 벗어난 평화로운 세상을 원하던 다슬누리는 서양국가들의 개입으로 인해 점점 분화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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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국가들과 같은 외세의 도움을 받아 독
독립은 자주적으로 이룩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다슬
립을 이루고자 했던 다슬누리의 독립운동가
누리의 독립운동가들
당시 국가로서의 주권을 상실한 조선의 힘으로는 광복을 이뤄낼 수 없다고 생 각한 온건파 독립운동가들은 서양열강의 힘을 빌리는데 있어서 주저하지 않았 다. 특히 미국의 장군 리오넬 로날도(Lionel Ronaldo)가 조선의 독립을 위한 아낌없는 지원을 약속하자 그를 영웅이라 칭송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강경파 독립운동가들은 '외세의 도움을 받은 독립은 또 다른 식민지배의 시작'이라며 외세의 간섭을 강하게 거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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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을 저지른 미군 사병이 군사 재판을 받고 있다.
이러한 논쟁이 점점 과열되어 갈때, 갈등의 도화선에 불을 붙이는 사 건이 발생하였다. 바로 로날도 장군의 사병중 하나가 마을 아이하나 를 총격으로 사살하는 사건이 발생한것이다. 당국은 즉시 조사에 착 수했고, 사병은 미군의 군사재판을 받아야 했다. 미군은 그 사병에 대해 고의성을 입증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고, 강경파 독립운 동가들은 미군세력을 일제와 동일시 여기며 강력히 반발하였다. 하 지만 온건파 세력은 미군에 대한 반발은 그들의 독립 수단에 큰 방해 물이 되었으므로 이러한 상황을 묵인하고 쉬쉬하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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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엄마와 미군사병에게 살해당한 아이의 사진
군사 재판 당시 아이를 죽인 사병은 태연하게 뉘우침의 기색 없이 재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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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곧 강경파 세력의 분노를 더욱더 증폭시키고 그 두 세력 의 갈등이 극대화되었다. 두 세력은 대화조차 하지 않았다. 온 건파의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강경파를 가까이 하지 말라 일렀 고, 강경파 역시 아이들에게 강경파의 아이들은 소신조차 없는 친일파같은 사람들이라며 가까이 하지 말라 일렀다. 아이들은 길에서 다른 세력의 아이들을 마주치면 서로를 손가락질하였 다. 아이들이 이러하니 어른들은 두말할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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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전자전이라 했던가.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자신의 정치적 성 향을 물려준다.
미군은 온건파 세력의 강력한 독립수단이었으므로 그들에 대해 반 항심을 가지지 조차 않았다. 온건파의 아이들은 미군을 대접하는 법을 배웠으며 그들의 인사법,, 예절, 문화에 따라 행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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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마을 그들은 서로를 멀리하고 배척하기 시작했고 곧 그들은 끼리끼리 모여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고 서양인 거주지역을 가운데로 두고 윗마을 지역은 온건파가, 아랫마을지 역은 강경파가 모여살게 되는 이상한 광경이 펼쳐졌다. 중간지역 에는 외국인들이 거주하였으므로 외국인을 싫어하는 아랫마을 사 람들은 중간지역에는 접근조차 하지 않았고, 윗마을은 두말할 것 도 없었다. 외국인세력들과 결탁한 윗마을사람들은 더 이상 그들 의 독립수단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이 없어졌으므로 더욱 더 외국 인들과 그 친목을 돈독히 하였다. 윗마을사람들은 외국인들의 호 의를 샀고, 그들의 문화와 자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그들의 생 활은 여유로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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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마을
윗마을 사람들은 넘쳐나는 자본으로 높은 벽을 쌓기 시작했다. 아랫마을 사람들이 그 들을 넘보지 못하도록. 그리고 그들을 우 러러 보도록. 마침내 그들은 높은 벽이라는 물리적인 조건에 의 해서 완전하게 단절되고 말았다. 그러던 도중, 대한민국은 광복 을 맞이하였고, 자연스레 윗마을 사람들은 미군정의 비호를 등 에 업고 독립투사라는 명예와 부를 동시에 차지하게 된 반면, 아랫마을 사람들은 그 어떤 보상과 대우도 없이 광복전과 다름 없는 삶을 살게 되었다. 이러한 차이는 남쪽과 북쪽의 지역적 특징을 완전히 상반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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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탐탁지 않게 여긴 아랫마을 사람들은 윗마을 사람들에 대 해 더욱더 공격적인 성향을 띄게 되었고, 외국인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날이 저물면 윗마을에 서성이며 그들을 대상으로 갖가지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했다. 밤이면 윗마을 사 람들과 아이들을 인적이 드문 곳으로 데려가 폭행을 하였고, 호 화로운 윗마을 사람들의 저택에 최루액이나 염산같은 화학물도 투척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에 윗마을 사람들은 더욱 보란듯 이 그들의 호화로운 삶에 대한 상징물이나 기념비나 기념물을 만들어 도발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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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못한 외국인 기구는 중재를 나섰다. 윗마을 사람들은 아랫마 을에 인접한 집들에 위협적이고 공격적인 철창을 설치하여 아랫마 을 사람이 접근조차 하지 못하게 하였고, 외국인 기구는 아랫마을 에서 윗마을로 통할 수 있는 길목에 철조망을 설치하고 철저한 검 문하에 통행을 가능케 하였다. 이렇듯 옛날 이들이 평화로운 세상 을 만들자며 애국심이라는 공통된 목표하에 하나되어 모여 '평화 로운 세상'을 뜻하는 '다슬누리'라는 마을은 그 이름과는 달리 역설 적으로 갈등과 분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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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Siamese twins)
샴 쌍둥이, 하나인가 둘인가 샴 쌍둥이는 '신체의 일부가 붙어있는 쌍둥이'라는 정의를 가진 기형의 일종 이다. '샴'이라는 이름의 기원은 샴 쌍둥이의 원조격인 창과 엥 쌍둥이가 태어 났던 태국의 샴이라는 지명에서 따온것이다. 이들 쌍둥이는 태국에서 태어나 영국인의 손에 이끌려 서커스단등에서 일하다가 미국의 한 자매와 결혼해 슬 하에 20명의 자식을 남기고, 한명이죽자, 연이어 쇼크로 다른한명도 같은 날 사망하였다. 이렇듯 창과 엥 쌍둥이처럼 팔이나 등 만 결합되고 나머지는 각 자의 기관을 갖고있는 쌍둥이도 있지만, 하나의 기관을 둘이 공유하고 머리 만 둘인 경우, 심지어는 하나의 몸에 하나가 흡수되어 내부에 존재하는 경우 도 있다. 샴쌍둥이는 분리 수술이 가능하지만, 대개의 경우 쌍둥이중 한쪽을 선택해야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수술이후에도 기형의 잔재가 남기 때문에 수 술을 하지 않는 비율도 어느정도 높다. 이런 선택을 한 경우 쌍둥이는 신체 를 공유하며, 개인의 판단과 행동을 서로 합의해서 몸으로 행하는 과정이 필 요하다. 쌍둥이간에 성격과 취향은 매우 다를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쌍둥이 간 다툼이나 대립이 일어나면 여간 곤란한 것이 아니다. 다툰 뒤에도 함께 몸 을 공유해야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일생을 서로를 배려하고 인내하며 산다 고 하여도 인생의 마지막인, 죽음 앞에서는 그들에게 합의는 있을 수 없다. 한 쪽이 사망한다면, 다른 한쪽도 쇼크로 사망할 수 밖에 없기때문이다. 감동적이든 비극적이든, 한몸에 두 사람이 존재하는 샴 쌍둥이를 어떤 관점 에서 바라보아야할지는 여전히 논란거리이다. 이런 관점의 딜레마는 일상의 사소한 고민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이들이 버스에 탄다면, 2인 승차요금을 내야할까? 이들이 뷔페에 간다면 입이 2개니 2인요금을 내야하는건가? 이 들이 결혼한다면 상대방은 한번에 두사람과 결혼하는 것인가? 개인의 가치 와 존재에 집중해야 하는지, 물리적인 신체에 집중해야 하는지, 매번 관점이 바뀔 수 있는지는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모두에게, 심지어 샴 쌍 둥이 본인들에게도 쉽게 그들 스스로를 정의하는 것마저 어려울거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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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슬누리는 '샴 쌍둥이'라는 키워드로 표현할 수 있다. 한 몸으로 태 어나 많은 부분을 함께 공유하지만 점점 다른 객체로 나뉘어지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흡사 샴쌍둥이의 그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아 프고 복잡한 역사에서 시작된 샴의 모습들은 어느새 다슬누리 전반의 여러모습들에서 목격되기도 한다. 아직 다슬누리와 샴의 연관성이 와 닿지 않는 독자들에게 위의 샴 쌍둥이에 대한 짧은 칼럼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위의 샴 쌍둥이의 특이점들은 여러사람의 이목을 끌기도 하고, 논란을 낳기도 한다. 심지어 일부 작가들은 비극성이나 이면성을 나타내는 오 브제로 샴을 사용하기도 하며, 이 책에서도 다슬누리가 가진 특징들을 강조하기 위해 샴이라는 주제를 사용하고 있다. 아까 소개한 다슬누리 의 역사에 관한 부분들을 읽는다면, 좀 더 명확히 다슬누리와 '샴'과의 연관성을 알 수 있을것이다. 다슬누리의 역사에서 알 수 있듯이 다슬누리는 처음 그들이 꿈꾸었던 모습과 다르게 하나에서 둘로 나뉘어지고 있다. 다슬누리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문화도 이런 그들의 상황과 더불어 기형적인 형태로 변화하 고 있다. 위의 역사에서 언급되었듯이, 수많은 장벽과 공간들이 다슬누 리의 '샴'화 를 잘 나타내고 있으며, 특이한 이력과 특징을 가진 인물과 사물들도 점점 나타나고 있다. 이중에서 가장 먼저 살펴 볼 부분들은 바로 윗동네에 존재하는 두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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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 특이한 공간들
첫번째로 소개할 공간은 바로 이런 장벽들이다. 이런 장벽들은 윗동네와 아랫동 네 사이에 위치하여 두 지역 사이를 경계짓고 분할하고 있다. 다슬누리 전체를 따 라 마치 성벽처럼 길게 늘어서 있는 장벽들은, 그들의 갈등이 가장 첨예하던 시절 의 감정의 골을 보여주며, 아직도 다슬누리 사람들 마음속에 남아있는 적대감을 여 실히 보여주고 있다. 장벽의 유래는 광복 이후 외국의 도움으로 경제적인 안정을 찾은 윗동네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던 아랫동네 사람들이 ' 월북'하는 것을 막기위해 지어진것으로 보여진다. 이런 배경탓에 아랫사람들은 이 를 두고 '윗마을 사람들의 아랫마을에 대한 경멸의 상징'이라고 평가하지만, 윗사람 들은 '아랫마을사람들의 윗마을에 대한 경멸, 혐오, 공격성에 의해 불가피하게 생긴 방어수단'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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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벽
장벽에 대한 이런 상반된 의식 속에 최근에는 장벽 철거 운동이 시도되기도 하 였다. 실제로 인권운동가 기재성씨의 주도속에 추진된 '장벽을 허물고, 갈등도 허물자'라는 운동은 많은 공감을 사는데 성공하며 진행되는 듯 했지만, 기재성 씨의 투옥으로 무산되기도 하였다. 장벽속에 숨어있는 이러한 이야기들은 다슬 누리가 가지고 있는 갈등을 말하기도 하지만, 이제는 다슬누리가 화합을 외치게 되는 구심점 역할 또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슬누리를 샴 쌍둥이와 같은 모양으로 만들어버린 이 장벽이 앞으로 얼마나 긴 시간동안 자신의 자리를 지 킬것인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지만, 장벽을 둘러싼 많은 논의들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서둘러야 이 다슬누리의 대표적인 공간을 방문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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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의 문
두번째로 소개할 공간은 개방의 문 이라고 불리는 공간이다. 윗마을 사람들이 아랫마을 사람들에 대한 개방의지를 표출한다며 지은 이 개방의 문은 아랫마을 을 향해 활짝 열려있는 형상의 건물이다. 하지만 이 공간에 대한 아랫마을 사람 들의 평가는 윗마을 사람들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게 보인다. 그들은 이 문을 두 고 개방을 가장한 '감시의 문'이라고 칭한다. 그들이 어쩌면 각박해 보인은 이런 평가를 내린 이유는 아랫마을 사람들은 이 문에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이 가파른 절벽위에 있는 윗마을 지역에 위치한 탓에 개방의 문이라는 이름이 무 색할 만큼 윗마을 사람들이 가득한 공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윗마을 사 람들 사이에서도 개방의 문이 야경이 아름답다고 소문날 정도로, 개방의 문은 마치 전망대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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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윗마을 사람들은, 개방의 문 건립 당시 부지확보가 여의치 않았다는 점, 아랫마을 사람들도 개방의 문 건 립에 참여했단은 점을 들어 그들의 진정성을 의심받는 것을 상당 히 억울하게 여기고 있다. 이 개방의 문은 장벽에 바로 붙어 건설 되어, 장벽과 큰 대비를 이루고 있는데, 실제로 장벽과 이 문을 보 면 폐쇄성과 개방성(비록 아랫마을 사람들에게는 아닐 수 있지만) 이 한 눈에 들어와 아이러니함을 느끼게 한다. 대부분의 방문객들 은 야경이 좋다는 이유로 개방의 문을 윗마을 지역에서 방문해 아 랫마을을 조망하지만, 나는 이러한 아이러니함, 샴쌍둥이와 같은 어색하면서도 슬픈 모습에 더 큰 감명을 받아 아랫마을에서 바라 보는 것을 추천하는 바이다. 다슬누리의 역사는 위에서 알 수 있듯 이 다슬누리의 여러 공간, 여러 지역 곳곳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할 수 있다. 당연하게도 이런 유형적인 공간 말고도, 문화, 생활 전반 에 걸쳐 많은 것들이 영향을 받았는데, 그 중 우리가 쉽고 명확하 게 그런 점들을 확인 할 수 있는 부분들은 다슬누리 유명인사들의 삶이다. 다음 보여주는 사람들은 다슬누리의 윗마을, 아랫마을에 서 입체적으로 살고있는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는데, 각 지역 의 특색이 이들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유념하고 읽는다면, 더 욱 흥미롭게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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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샴 사람 기재성
가장 먼저 소개할 사람은 위에서도 언급한 인권운동가 기재성씨이다. 그는 윗 마을 부잣집 명문가 태생으로 그 누구보다 남 부러울것 없는 환경에서 자라났 다. 하지만, 그의 이런 성장환경은 오히려 그가 사회의 약자, 갈등, 문제점들 에 관심을 갖게 하는 촉진제가 되었다.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그는 윗동네에 서의 윤택한 삶은 포기한 채, 아랫마을로 건너가 살기를 택한다. 아랫마을에서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와 삶을 들으며 한동안 생활은 그는, 본격적으로 인권운 동가로 변신, 윗마을 사람들에게 아랫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말하려 노력한 다. 허나,자신이 가진 윗마을에의 기반탓에 사람들이 어느정도 긍정적으로 자 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것이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배신자로 낙인찍혀 윗마을 사람들의 공공의 적이 되어버린 자신의 처지를 알게 된다.이에 그는 일방적인 주장보다는 사람들의 공감을 살 수 있는 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장벽 을 허물고, 갈등도 허물자'캠페인을 시작하고, 그 당시 장벽철거의 필요성이 대 두되고 있던 상황과 맞물려 많은 공감을 사는데 성공, 본격 추진단계에 까지 이르게 된다. 하지만, 그의 화려한 언변과 지지세력에 위협감을 느낀 윗마을 사람들의 방해덕에 검찰에 의해 구속되어 버리고 만다. 현재는 윗마을에 소재 한 경찰서에서 옥살이를 하고 있지만, 체포 당시 그가 당했던 고문과정이 공개 되면서 최근엔 석방청원 움직임도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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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씨 집안의 안경
옆의 물건은 기재성씨가 체포 당시 쓰고 있었던 안경이다. 본래 는 기씨 집안의 유물로, 언제나 맑은 정신과 함께 고개를 빳빳 이 세우고 다녀라 라는 의미에서 매우 무거운 재질로 만들어졌 다고 한다. 기재성씨는 집안 유물인 이 안경을 체포당시에도 상 당히 소중히 여겼지만, 과정중에 떨어져 망가지고 말았고, 경찰 은 끝까지 굴복하지 않던 그의 태도를 꺾기위해, 한쪽 유리알을 갈고, 코받이에는 바늘을 달아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견딜 수 없도록 만들어 쓰게 하였다. 이 안경이 얼마전에 대중에게 공개 되면서, 기재성씨에 대한 석방청원이 줄을 잇고 있으며, 경찰은 상당히 큰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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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환
두번째로 소개할 사람은 윗마을 이장의 아내이자 부녀회장인 이화환 여 사이다. 이화환 여사의 과거는 잘 알려져 있지않지만, 들려져오는 이력으 로는 그녀의 출생지는 아랫마을이다. 불우한 가정환경속에 자란 그녀는 중간마을에 위치해 있는 학교를 다니면서 윗마을 아이들의 생활을 간접 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었고, 이는 그녀에게 아랫마을에 대한 혐오와 원 망감을 안겨주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감정들은 그녀가 아랫마을을 탈출하 기 위해 애를 쓰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고, 그녀는 차근차근 성공을 위한 준비를 하게 된다. 결국 윗마을에 위치한 좋은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 던 그녀는 북부의 유력자 가문 자제와 결혼에 성공하고 그와 동시에 스스 로의 과거들을 모두 지운다. 그 시작은 개명이었다고 전해지는데, 이러한 추측이 만연한 이유는 그 누 구도 이화환이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아랫마을, 윗마을을 통틀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과거 이숙자가 본명이었다는 소문이 있지만, 아직 명확한 근거는 없다.)현재는 윗마을 부녀자들에게 존경의 대상이자 최고 의 어머니상으로 불리며 스스로의 목표를 어느정도 달성한 듯 보이지만, 점점 허물어져가는 윗마을과 아랫마을의 경계는 그녀에게 또다른 불안감 과 불만족감을 주는듯이 보이며, 기재성씨와는 천적이라 불릴정도로 반개 방 주의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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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이
뱅이는 인간을 항상 위협하는 사고 및 질병을 예방하거나, 어쩔 수 없 이 일어난 재액을 되도록이면 빨리 없애는 일종의 주술적 방법이다. 흔 히 마을에 침입하는 돌림병을 막기 위하여 디딜방아를 마을입구에 세 워놓고 베푸는 주술적 의례를 '디딜방아 뱅이'라 이르고 도깨비불에 시 달리는 마을에 세우는 오리 짐대(솟대)를 '화재뱅이 짐대'라 부르는 것 을 보면 '뱅이'는 분명히 '방지한다''막는다'등의 뜻을 지니는 것으로 보 인다. 곧 뱅이는 '예방하다', '없애다', '해결하다' 등의 뜻을 지닌다. 일상생활에서 나타나는 뱅이는 매우 다양한 내용과 형태를 지닌다. 이 를테면 질병을 퇴치하기 위한 심리적 치료에서부터 집 안에 부적을 붙 이는 일, 도둑을 잡고 잃은 물건을 되찾으려고 할 때 치를는 주술을 포 함하여 때로는 무당의 굿이나 마을 공동체의 종교의례까지도 일컫는다. 그리고 남을 해칠 목적으로 하는 주술의례 나 어떤 일이 잘되도록 하는 의례도 뱅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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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기원뱅이
다슬누리의 중립지역은 남과북 세력들이 유일하게 소통 하고 교류하는 곳이다. 하지만 반대로 마찰과 다툼이 일 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이에 중립지역에 거주하는 외국 인들은 두 세력간의 화해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미국의 한 조각가들에게 의뢰하여 화해를 기원하는 의미의 조 형물을 설치하였다. 이 조형물을 마치 복잡하고 엉켜버 린 현실에서 하늘을 보며 기도하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현재의 갈등상황에서도 화해와 화합을 기원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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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립뱅이
화해기원뱅이와 더불어 중립지역에 존재한다. 하지만 화해기원비에서는 그 간 절함과 능동적인 화해화 평화에 대한 기원이 느껴지는 반면, 위의 중립뱅이에서 는 강제적으로 갈등을 조정하고 중재하는 외국기관의 무거운 존재감으로써 그 중립의 무게감을 자아낸다. 만일 윗마을과 아랫마을의 갈등이 다시 한번 폭발할 경우, 이들에 의해 그 싸움이 멎을 것이지만 그 방법은 평화롭지는 못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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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산 중재지역에 만들어진 큰 계단이다. 온건파 지역에서 강경파와 화해하고자 만든 계단이다. 그렇지만 경사 가 많이 급하기 때문에 보통사람은 오르기 힘들다. 그래서 혹자는 이 계단이 화해하기 어려움을 의미하 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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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카크래커 이 음식은 다슬누리 사람들이 광복직후 먹던 생활음식이다. 당시 중간동네에 미군정이 들어서면서 미군이 보급해주었던 크래커, 초콜 릿,카라멜을 한대 섞어 한 음식처럼 먹는 음식이다. 열양이 매우높아 당 시 굶주리던 아이들이 한끼 식사로 이 크래커를 3개씩 먹곤 했다는 역사 가 있다. 조리법과 조리시간, 비용이 적어 당시 다슬누리아이들의 주식이 었던, 어찌보면 매우 슬픈 음식이다. 레시피 1.크래커를 준비한다. 2.그 위에 초콜릿을 올린다. 3.그위에 카라멜을 올린다. 4.짧은 시간동안 가열하여 초콜릿과 카라멜을살짝녹인다. 5.약 15초동안 식힌후 바로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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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뱅이 외국기관의 조력을 받아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발전하 고 융성하게 된 윗마을사람들은 마치 자신들이 전쟁에서 승리한 듯한 기념비를 세우고 그들의 호화롭고 부족함 없는 삶을 과시하였다. 지속되는 분쟁과 갈등의 역사 속 에서 이미 그들은 스스로 승리자가 되었고 그러한 그들 의 승전의식이 느껴진다. 어쩌면 이는 화해보다는 지속 적인 그들의 승리에 대한 뱅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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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뱅이 온건파 사람들이 승리뱅이와 함께 세운 뱅이들 중 하나이다. 그들은 거만할 정도로 크고 둥근 상징물 을 통해 이에 하늘을 담아내려고 하였고 그들의 삶 이야 말로 하늘과 맞닿아 있고 곧 하늘이라는 의식 을 표현했다. 티없이 맑은 하늘은 정말 깨끗하고 순 수하다. 하지만 순수하지 않은 피조물에 담긴 하늘 은 혼탁하기 그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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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를 보면 그들의 의지를 알 수 있다.
애국뱅이 이 뱅이는 아랫마을에 쓰여있는 뱅이이다. 빈민에 남아 있는 갈 등 전 온건파와 강경파가 하나같이 그들의 애국심과 나라를 위 해 행하는 독립운동가들이 써놓은 이 뱅이에는 그 의지가 담겨 있다. 과거와 달리 갈등하고 분쟁중임에도 이 벽에 남아있는 그 들이 공통적으로 가졌던 이 하나의 의지는 분명히 숭고할 것이 다. 하지만 숭고했던 이 뱅이는 지금은 다이나마이트같은 윗마 을과 아랫마을의 대립에 빛이 바랜 낡은 낙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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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구멍은 그들의 삶을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숨구멍 아랫마을에서의, 빈민촌에서의 삶의 모습이다. 녹슨 창 살, 부서져 가는 벽에 난 자그마한 창을 통해 나와있는 굴뚝은 이 집에서 사는 강경파의 주민의 숨구멍처럼 보 여진다. 이는 뱅이는 아니지만 찢어지게 가난한 아랫마 을에서의 살기위한 몸부림, 즉 생존에 대한 기원이 담겨 있는 뱅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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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갈수없잖아 수퍼 앞의 박전도
박전도(아랫마을뱅이) <그냥갈수없잖아수퍼>를 운영한다. 예전에 세계여행을 많이 다녔기 때문에 수퍼에 들르는 사람들에게 자기 경험담을 많이 이야기해줘서 그냥 갈 수 없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어렸을 때는 윗동네에서 살았지 만, 아버지를 따라서 아랫동네에 이사오게 되었고, 남은 돈으로 수퍼 를 운영하고 있다. 윗마을에서 아랫마을로 오게 된 특수한 경우이기에 인터뷰를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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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안녕하세요, 우선 자기소개 먼저 부탁 드립니다. 박전도: 예, 안녕하세요, 저는 박전도 이고, 현재 ‘그냥갈수없잖아수퍼’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나: 자, 그럼 인터뷰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럼 박전도씨…… 박전도: 그냥 편하게 아저씨라고 불러. 나: 예? 박전도: 그냥 아저씨라고 부르라고. 난 어색하면 말이 잘 안 나와. 나: 아, 예…… 그럼 우선 질문드릴 것이, 이 수퍼 이름이 꽤나 특이한데요, 아 저씨께서 이름을 그렇게 지은 이유가 있나요? 박전도: 아 (웃음) 사실 무슨 그렇게 큰 이유는 아니고, 이 작은 동네에도 수퍼 가 하나가 아니잖아? 그러다 보니 뭔가 다른 게 있어야 될 듯싶어서 ‘그냥갈 수없잖아’라고 지은 거야. 나:그런데 사람들 말로는 실제로도 그냥 갈 수 없다는데, 아저씨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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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전도:엉? 그래? 내가 말을 하도 많이 해서 그런가? 내가 왕년에 세계여 행을 많이 해서 할 말은 많거든. 아, 내가 얘기 안 했었나? 하나만 얘기 하자 면…… 옛날에 러시아에 갔었는데, 아마 모스크바 였을 거야, 공원 벤치에서 쉬고 있었거든? 그런데 웬 덩치 큰 대머리 백인이, 그런 사람들을 스킨헤드라 고 하나? 막 내 쪽으로 뛰어와! 그런데 낌새가 심상치 않거든? 그래서 나도 뛰기 시작했지. 그랬더니 갑자기 똑같이 대머리인 백인 네다섯 명이 나를 막 쫓아와! 내가 뭐 잘 싸우는 것도 아닌데 솔직히 태권도 유단자라도 그건 못 막 을 것 같거든. 그러니까 뭐 별 수 있나, 죽어라 뛰어야지. 막 뛰다 보니까 슬슬 힘든데 멈추면 잡힐 것 같단 말이지? 그래서 뭐 미안하지만, 멈춘 다음에 가 장 가까운 놈 거기를 발로 있는 힘껏 찬 뒤에 또 죽어라 튀었지. 뒤에서 막 고 함치는 소리가 났던 것 같긴 한데 신경 안 쓰고 도망갔지. 어쩌겠어? 나 사는 게 먼전데. 어쨌든 간에 인종 때문에 아무 잘못 없이 죽어라 뛰다 보니까 같은 한국인끼리 싸우는 거 보면 한심하더라. 그리고 또 하나만 얘기하자면…… 나: 아저씨, 말씀은 잘 들었고요, 궁금한 게 있어서 질문 드리는데, 세계여행 다니시다가 지금은 수퍼를 차리신 이유가 있나요? 박전도: 간단해! 돈이 없어서. 나: 돈이 없는데 예전에는 어떻게 세계여행을 다니신 건가요? 박전도: 사실 내가 돈을 모아서 다닌 건 아니고, 예전에는 돈이 많았어. 태어 나기를 윗동네에서 태어나고, 윗동네에서 쭉 자랐으니까 당연히 돈은 많았지. 그래서 부모님한테 돈 타다가 여행 다니곤 했지. 나이 한참 먹고도 그랬으니까 어찌 보면 한심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 그러다가 아버지가 갑자기 양놈들한테 붙은 것이 후회된다면서 재산을 거의 다 처분하시고 아랫마을로 집을 옮기셨 어. 그러고서 얼마 안 가서 돌아가셨어. 원래 몸이 안 좋은 분이셨는데 가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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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테는 숨기셨나 봐. 나는 그런 것도 모르고 여행만 다녔지. 아버지 돌아가셨 다는 소식도 해외에서 들었어. 원래 딱히 일을 해서 돈을 번 것도 아니었으니 나도 귀국해서는 지금까지 아랫마을에 살고 있지. 먹고 살려면 뭐라도 해야 되 니까 지금 이 수퍼를 연 거고. 나:그럼, 아버지께서 내리신 결정 때문에, 아버지를 원망하신 적은 있나요? 박전도:으음, 물론 있긴 했지. 사실 지금도 약간 그런 게 남아있긴 해. 나로써 는 이해가 안가는 갈등 때문에 잘 살다가 갑자기 밑바닥으로 내쳐진 것 같았 거든. 그래도 이해를 해 보려고. ‘당신께서 당신만의 양심이 있었다’라고 생각해 보려고. 나: 지금은 아랫마을에서 사는 것에 만족하시나요? 박전도: 옛날에는 만족 하던 말던 그냥 살았는데, 지금은 여기도 뭐 나름 괜찮 더라고. 옛날에는 외국에 있는 크고 멋있는 것에만 눈길이 갔는데, 나이를 먹 고 보니까 내 주변에 작은 것들에 더 눈길이 가더라고. 윗마을에서는 크고 깨 끗한 게 다였는데, 여기서는 누더기처럼 엮여 있어도 그거 나름대로 괜찮더라 고. 뭔 소린지는 알겠지? 나: 예…… 알겠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전도: 그래 잘 가고, 갈 때 과자라도 하나 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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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b woodman(아랫마을뱅이) 미국출신으로 10년 전 쯤 한국에 왔다. 서울 여기저기를 다니 다가 한국사람과 결혼해 아랫동네에 정착하게 되었다. 초반에 는 동네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그러다가 같이 여행하던 외 국인 친구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기타를 치던 것이 동네 사람 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그 뒤로 종종 사람들과 노래를 부르 곤 한다. 지금은 동네의 분위기메이커이다. 그의 존재는 찢어 지게 가난하고 외국인에게 적대적인 아랫마을에서 그가 분위 기메이커를 맡고 있다는 것은 앞으로의 아랫마을에 새바람이 불고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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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Hi, please introduce yourself. 밥: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Bob woodman 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나:한국말 할 줄 아시네요? 밥:당연하죠. 제가 한국 온지 10년도 더 넘었는데요. 이제는 그냥 이 동네 사 람이라고 봐도 됩니다. 나:한국에 와서 하시는 일은 있나요? 밥:제가 요리솜씨는 조금 있어서, 대로변에 가게 하나를 내서 운영하고 있습니 다. 사람이 많이 몰리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맛있다는 소문 듣고 오는 사람 들은 있습니다. 그리고 친한 사람들 오면 좀 싸게도 해주고요. 나:어쩌다가 한국에 오실 생각을 하게 된 건가요? 밥:그 당시에는 그렇게 큰 뜻은 없었어요. 그냥 뭐 안 가본 곳에 가고 싶어서 세계지도 펴고서 아무데나 고른 것이 한국이었습니다. 서울 여기저기를 여행하 다 보니 한국이 좋아져서 한국에서 살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흥미롭습니다. 요즘에는 한국사람들이 한국에서 살기 어려워서 외국으로 이민 가려고 하는데 정작 woodman 씨는 한국으로 이민 오려고 하니 말입니 다.그건 그렇습니다만, 한국은 저 같은 미국 백인이 살기에는 괜찮은 곳입니다. 인종차별도 많이 안 당하고 말이죠. 바가지만 조심하면 말이죠(웃음). 하지만 여기서는 예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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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동네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요? 밥: 여기 아랫동네 사람들은 외국인을 별로 안 좋아하는데, 그것도 미국인은 매우 싫어하더군요. 왜 미국인을 싫어했는지는 이제 알아서 이해가 되기는 한데,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양키 고 홈” 이라는 소리는 늘 들었고, 장 보러 갈 때나 산책 다닐 때도 어디선가 째려보는 눈초리가 느껴져서 편하게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나: 잘못을 한 게 없는데도 그렇게 대접받았던 건가요? 4밥:네. 그래서 중간에는 가족들과 미국으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기 다슬누리가 미국인 때문에 갈라서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마을 사람들의 마음이 이해되었습니다. 미군이 어린 아이를 쐈다니…… 정말 끔찍한 사건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러한 일에 책임을 묻거나 처벌하는 일도 없이 별일 아니라는 듯이 넘긴 것 은, 제가 하지 않은 일이라도 부끄러울 따름이죠. 나: 그래도 본인이 하지도 않은 일에 그러는 것에 억울함을 느낄 만 한데요? 밥: 물론 억울할 일이기는 하지만,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동네 사람 들은 나쁜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다만 사람들이 오해했을 뿐인 거죠. 그러한 오해를 풀고 사람들과 친해지는 것은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나: 그렇다면 어떻게 사람들과 친해지게 된 건가요? 인터뷰 하기 전 에 보니까 마을 사람들과 꽤 친한 것 같아 보였는데요. 밥: 처음에는 어르신들 보다는 젊은이들과 말을 주고받을 정도는 되 었습니다. 젊은이들이 제 가게에 자주 들르기도 하고, 외국인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도 덜 하기 때문이죠. 그러던 중에 한 젊은 친구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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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 동네에 있는 자기 카페에 들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거기 가서 여 유롭게 커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 때 카페에 소품처럼 있는 기타 가 있길래 한 번 기타 연주를 해 봤습니다. 별 생각 없이 해 본 건데도 사람들이 무슨 공연이 있는 줄 알고 여럿 모여있었습니다. 그걸 보고 떠오른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냥 저 사람들과 흥겹게 놀아보자고 말입 니다. 그래서 매달 한번은 그 카페에서 사람들과 다 같이 노래를 하게 되었습니다. 노래를 멋지게 부르는 것이 아니라 아무거나 아는 노래를 다 같이 부르는 거죠. 다들 즐거우면 되는 겁니다. 그렇게 몇 달 지나 고 나니 어르신들도 오셔서 같이 노래를 부르게 되었습니다. 나: 네, 그렇군요. 차별에서 벗어나셨다니 참 다행이네요.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 없나요? 밥: 제가 착한 사람이라는 것을 마을사람들이 알지만, 그래도 앞으로 다른 외국인들을 차별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이 인터뷰를 통해 알 릴 수 있었으면 합니다. 좋고 나쁨은 국가나 인종이랑은 아무 상관이 없으니까요. 나: 네, 알겠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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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준(아랫마을뱅이) 카페 겸 디자인 스튜디오인<우주 평화 계획 (UPP)>을 운영한다. 원래 아랫동네 출신이다. 자 신이 사는 마을을 시작으로 나중에는 우주에 평화 를 가져오자는 목표가 있다. 같이 디자인 공부를 하던 친구들과 돈을 모아서 지금있는 이 카페를 1 년 전에 만들게 되었다. 지금도 디자인과 평화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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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안녕하세요, 우선 자기소개 부탁 드립니다. 최우준: 에,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최우준이고요, 29살이고요, 카페 겸 스튜디오 ‘우주 평화 기획’을 운영하는 사람들 중 한 명입니다. 나:알겠습니다. 우선 질문드릴 게, 카페이름이 상당이 특이한데요, 이런 이름을 붙인 이유가 있나요? 최우준: 우선 정정해드릴 것이, 카페가 메인 이기 보다 스튜디오가 메 인 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우주 평화 기획’이라고 이름을 지 은 이유는 그게 저희의 최종목표이기 때문입니다. 우주평화 말입니다. 나:우주평화요? 최우준: 예. 다른 사람들은 비웃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저의 어린 시 절 꿈입니다. 꿈을 실현해 나가는 사람을 보고 비웃을 사람은 없을 겁 니다. 나: 그렇긴 합니다만, 그런 꿈을 가지고, 실현시키게 된 계기가 있나 요? 최우준: 예. 제가 어렸을 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모두 윗동 네 애들이 많이 가는 학교로 갔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별 이유 같지도 않은 이유로 윗동네 애들과 싸우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학교에서 몇 안 되는 같은 동네 애들과 뭉쳐 다닐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때 윗동네 살던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 친구랑은 마 음이 잘 맞아서 같이 다니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친구가 이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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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말했습니다. 자기 부모님이 저랑 놀지 말라고 말입니다. 저는 그 당 시에 문제도 안 일으키고 학교생활에 충실했는데도 말입니다. 그 때 먼 저 든 생각이 있는 사람이 더 하다는 생각이었지만, 그 다음으로 내가 어른이 되면 좀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 을 가지고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고, 앞으로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 는 마음가짐으로 살 생각입니다. 아, 그 친구랑은 계속 만나고, 지금은 같이 일합니다. 나: 평화를 추구하는 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왜 디자인을 택하신 건가요? 최우준: 제 전공이 디자인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무조건 좋은 대학을 가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대학교라도 잘 나와야 세상을 바꿀 능력이 생긴다고 믿었기에, 장학금을 못 받으면 휴학하고 돈을 벌고서 다시 다니는 식으로라도 좋은 대학교에 갈 생각이었습니다. 수능 점수 에 맞춰서 제가 선택한 전공이 디자인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배운 것 이 아까워서라도 전공을 살리기 위해 이런 길을 택했습니다. 나: 그래도 스튜디오를 차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경제적으 로나 아니면 다른 어려움은 없었나요? 최우준: 예, 있었습니다. 우선 말씀 드리자면, 경제적인 어려움은 적었 습니다. 대학교 같이 다니던 친구들을 모아서 계획을 실현시킬 때…… 나:잠깐 말을 끊어서 죄송하지만, 우주평화에 대해 이야기 했을 때 다 들 찬성했다는 말인가요? 최우준: 예, 그렇습니다만, 무슨 문제라도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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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말씀 계속 하세요. 그 중에 돈이 많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 친구한테만 의지하 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 돼서, 그 친구가 40%내고 나머지 친구들 과 제가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서 카페 겸 스튜디오를 차리게 되었습 니다. 그나마 돈이 크게 안 드는 이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생각보다 저희 스튜디오에 오는 사람이 적었습니다. 오는 사람이라고 해도 단순 호기심으로 오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습니 다. 그래서 지금도 겨우 적자를 면하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 그래도 잠깐 화제가 되었던 우주 안테나도 있었으면, 홍보가 되지 않았을까요? 최우준: 아, 음, 그건…… 저희가 그것 때문에 고생 꽤나 했습니다. 저 희가 노력해서 만들었지만, 그것 때문에 한동안 ‘이상한 것이나 만드 는 놈들’이라는 이미지를 지우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만 든 것들은 문자 그대로 휴지조각이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한동안 잠도 편히 자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나: 제가 안 좋은 이야기를 꺼낸 것 같군요, 죄송합니다. 최우준: 아, 아닙니다. 그래도 요즘에는 실용적인 것을 목표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인지는 말해드릴 수 없지만,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나: 네, 그렇군요……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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냅킨으로 사용되고 있는 특수 용지
특수 용지로 접어본 우주 안테나
우주 안테나 카페 겸 디자인 스튜디오인 <우주평화기획>의 초기 기획으로, 역작인 동시 에 망작인 우주 안테나이다. 일상속에서 우주와 소통하기 위해 만들어진 물 건이다. 단순한 냅킨 처럼 보이지만, 전도성 있는 특수 재질의 종이이다. 잘 접으면 안테나 처럼 우주에서 오는 신호를 잡을 수 있다. 접는 방법은 딱히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고 위는 뾰족하게, 아래는 넓적하게 접으면 된다고 알 려져 있다. 접는 방식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전파 범위가 달라지기 때문에 사 람마다 다른 신호를 받을 수 있다는게 이 물건의 또다른 재미이기도 하다. 이 물건은 약 1주일 동안만 큰 유행을 끌고 사라졌다. 그 이유는 우주에서 오는 신호를 받았지만, 아무도 그 신호를 해석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단순한 잡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큰 실패와 함께, 기획자는 앞으로 우주보다는 좀더 가까운, 동네의 평화를 위한 디자인에 대해 생각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유행이 지난 뒤에 특수용지가 꽤 많이 남았는데, 다행이 용지의 원가가 저렴 했기 때문에 지금은 냅킨 대용으로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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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물
The weird thing 요망스러운 것. 간사하고 간악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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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마을 두자매 두 자매가 어린 시절만 해도 그리 궁핍하지는 않았다 넉넉하진 않아도 부족함 없이 자란 그녀들은 한창일 나이에 역사적 사건을 겪고 원칙주 의적이고 보수적인 아랫마을 사람들 과 달리 교활할 정도로 발빠르게 현 실을 직시하고 외국인들을 위한 지 하경제, 화류계에 발을 담그게 된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아랫마을사 람들에게는 손가락질을 받지만 그녀 들은 여느 다른 아랫마을 사람들처 럼 어렵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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꾼
어떤 일, 특히 즐기는 방면의 일에 능숙한 사 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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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동네 아이들은 부유하게 자라난다. 사내아이들은 또래 친구들과 모이는 날이면 딱지치기를 한다. 그들 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은 빳빳한 지폐이다. 그들 은 지폐로 딱지를 접기 시작한다. 값어치있는 지폐 일수록 딱지의 완성도가 높다. 딱지치기를 시작하면 값어치가 비싼 딱지를 가진 상대가 선제공격의 기회 를 갖는다. 일반적인 딱지치기와 윗동네아이들의 딱 지치기가 다른점은 이들이 딱지의 값어치를 정확하 게 헤아린다는 것이다. 100달라 딱지는 50달라 짜 리 딱지에게 두번 뒤집혀야 패배로 간주한다. 따라서 아이들은 가급적 비싼 딱지들을 만들고 강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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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시키는 방법에는 돈딱지안에 새끼딱지들을 넣거나 납작하게 하는 방법 등이 있다. 하지만 이는 사전에 합 의가 되어야 하며 그렇지 않은 경우 돈딱지는 물론 손 모가지 조차 무사할 수 없다. 승자는 패자의 딱지를 몰 수해가며 이처럼 윗동네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도박의 개념과 독점 몰수의 개념을 배운다. 즉, 윗마을 아이들 은 일찍이 타인의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자신을 배불리고 이기는 법을 배우는 명백한 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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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도서관 출판예정도서목록(CIP) 다스러지는 누리 / 지은이: 이동원, 허훈, 김지호. -- 서울 : 여기저기, 2015 p. ; 88cm ISBN 979-11-86188-04-0 03980 : ₩10000 도시 디자인[都市--] 539.7-KDC6 711.4-DDC23 CIP2015032048
다스러지는 누리 출간일 2015년 12월 21일 지은이 이동원, 허훈, 김지호 출판사 여기저기 주 소 서울시 성동구 성덕정 3길 10-1 herethere.kr ⓒ 이동원 허훈 김지호 2015 본 책 내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저작권자의 동의를 받으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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