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조종의 산 백두산에서 뻗어내린 하나의 지맥으로 이어져있는 하나의 강토 《민주조선》1 9 9 6 년 8 월 1 3 일부 새로 확정한 백두대산줄기에 대하여 1 . 우리 나라 산줄기체계에 대한 력사적고찰 1 ) 《산경표》와 《대동여지도》 먼 옛날부터 우리 선조들은 산줄기를 조사하고 그것을 지도로 만들려고 시도해왔다. 력사자료와 발굴된 유물유적들에 의하면 고조선시기에 벌써 산수풍경을 지도화하기 위한 맹아적인 시도가 있었다. 삼국시기에 와서는 이름있는 산들과 봉, 령, 고개등을 표시한 지도들이 만들어졌다. 고려시기에 만들어진 고려도에는 백두산에서부터 남해에 이르기까지 금강산과 계룡산, 철령과 죽령 등 높고 이름난 산악들과 산악중의 대지, 고원들, 산줄기와 그의 험준성들이 표시되였다. 1 8 세기전반기에는 《동국여지도》가 만들어졌다. 이 지도에서는 조감도수법으로 주맥과 지맥을 표시하고 주맥을 선차적으로 묘사한 다음 제 1 지맥, 제 2 지맥의 순차를 밟아 묘사하였으며 지역별 선택의 원칙에 따라 지방적인 명산들을 눈에 띄게 전형화하였다. 또한 산줄기나 산체가 비록 준평원이거나 험준하지 않은 대상이라 하더라도 그 대상들이 차지하는 중요성으로 보아 필요한 대상은 상세히 묘사하였다. 1 8 세기전반기까지 우리 나라의 산줄기는 하나의 체계성을 이루지 못하고 부분적이거나 지방적인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으며 전국 8 도의 산줄기에 대한 유일적구분이 해결되지 못하였다. 1 7 6 9 년에 지금까지의 이러한 부족점을 보충수정하여 우리 나라 산줄기와 그 이름을 체계화한 《산경표》가 만들어졌다. 《산은 강을 가르고 물은 산을 건느지 않는다》는 《산자분수령》의 기본원리에 기초하여 작성된 《산경표》에서는 우리 나라의 산줄기들을 1 대간, 1 정간, 1 3 정맥으로 체계화하였으며 백두산에서부터 시작하여 남해가의 지리산까지를 하나의 산줄기로 규정하고 이것을 백두대간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오늘의 함경산줄기를 장백정간이라고 하고 청북정맥, 청남정맥, 해서정맥, 림진북례성정맥, 금북정맥, 금남정맥, 금남호남정맥, 호남정맥, 락동정맥, 락남정맥과 같은 1 3 개의 정맥으로 산줄기를 구분하고 그 이름을 달았다. 《 산 경 표 》 에 서 는 백두대간을 우리 나라의 기본산줄기로 규정하고 모든 정맥들은 이 백두대간에서 뻗어내린 지맥으로 하였다. 그 당시에 과학기술이 발전하지 못하고 계측기구도 없었던것으로 하여 《산경표》는 많은 제한성을 가지고있었다. 《 산 경 표 》 는 2 0 0 여개의 큰 산줄기와 가지산줄기를 과학적인 산줄기분류원리에 따라 구분하지 못하고 산줄기들의 지역적모임을 놓고 이름을 붙이였다. 《 산 경 표 》 에 표시된 1 3 정맥을 보면 청북정맥은 청천강의 북쪽에 있는 산줄기를 총칭한것이며 청천강남쪽에서 대동강북쪽 구간까지의 산줄기들은 청남정맥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우리 나라의 주요 강과 벌의 북쪽과 남쪽의 지역을 갈라놓는 방법으로 산줄기를 구분하고 강과 고장의 이름을 따서 산줄기의 이름을 붙이였다. 1 8 6 1 년에 《대동여지도》가 만들어짐으로써 우리 민족사에서 처음으로 조선의 지형륜곽이 지도화되였으며 우리 나라 산줄기들의 상세한 배치를 직관적으로 볼수 있게 되였다. 《대동여지도》에는 산줄기명칭은 없다. 그러나 《산경표》에서 내놓은 《산자분수령》의 원리에 기초하여 산줄기들을 상세히 표시하였다. 《 대 동 여 지 도 》 에 서 는 백두산에서부터 지리산까지 백두대간을 굵은 선으로 표시하고 그로부터 뻗어내린 가지산줄기들은 가지의 순번에 따라 선의 굵기로 구별하였다. 지도에는 유명한 산체, 산봉들에 대한 묘사는 고유명칭에 따라 산, 악, 봉, 망 등으로 구분하였는바 가장 상세히 표시된 지역은 경상도(5 7 3 개)이며 적게 기록된 지역은 함경도(2 6 1 개)이다. 령과 고개는 4 8 0 개가 기록되였는데 평안도는 2 5 3 개, 함경도는
1 9 2 개이다. 《대동여지도》는 조선 8 도의 모든 산이 다 백두대간에서 뻗어내렸으니 백두산은 우리 나라 산악의 조종이라는것을 뚜렷이 보여주고있다. 우리 선조들은 예로부터 슬기롭고 용감하고 깨끗한 민족의 넋이 백두산에서 태여났다고, 여기에 뿌리를 두고 이 나라 강산에 줄기가 뻗어내렸다고 하면서 백두산을 민족의 존엄으로, 조선의 기상으로 여겨왔으며 백두산은 모든 산줄기가 뿌리를 둔 우리 나라 조종의 산이라는것을 대를 두고 전하여왔다. 우리 선조들은 리조말기인 1 9 0 2 년까지 《 산 경 표 》 의 산줄기와 이름을 그대로 써왔다. 2 ) 일제가 조작한 《조선의 산계론》 우리 나라를 식민지로 만들기 위하여 일제는 조선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를 말살해버리며 자연지리까지도 저들의 불순한 목적에 복종시키려는 기도에서 어용학자들을 내세워 1 9 0 3 년에 《조선의 산계론》을 서둘러 발표하였다. 일제는 1 9 0 0 부터 1 9 0 2 년까지의 사이에 1 4 개월동안 기마려행을 하고 우리 나라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연구도 없이 이러한 비과학적인 산줄기체계를 조작하여 세상에 공포했다. 일제는 허황한 《 조 선 의 산계론》에서 우리 선조들의 《 산 경 표 》 를 근본적으로 뒤집어엎었다. 일제는 《조선의 산계론》에서 조선은 세 방면의 지질구조선이 특별히 뛰여나게 산줄기의 방향을 지배하고있다고 하면서 우리 나라에는 료동방향, 지나방향, 조선방향 등 3 개의 방향을 가진 산줄기가 있다고 제멋대로 구분하였다. 그리고 우리 선조들이 대대로 내려오면서 써오던 백두대간과 1 3 정맥대신 우리 나라 산줄기를 마천령산줄기, 강남산줄기, 적유산산줄기, 묘향산줄기, 두개산줄기, 마두산줄기, 언진산줄기, 차령산줄기, 로령산줄기, 태백산계, 소백산계로 나누어놓았다. 이렇게 한것은 우리 나라 산줄기이름에서 《백두》라는 말을 없애버리려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일제가 만들어낸 《조선의 산계론》은 우리 나라 산줄기들의 형성원인의 견지에서 보아도 비과학적이며 반동적인것이다. 일제는 지질구조방향과 신줄기방향을 인위적으로 일치시킴으로써 하천에 의하여 산줄기가 여러토막이 나거나 산줄기로서의 형태조차 갖추지 못한 그런 산줄기를 내오기까지 하였다. 강남산줄기가 바로 그런 산줄기이다. 차령산줄기도 마찬가지이다. 차령산줄기는 북한강에 의하여 산줄기가 끊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일제는 이것을 하나의 산줄기로 규정하였다. 일제는 산줄기방향을 지체구조선과 일치시킴으로써 기본산줄기와 가지산줄기를 동일시하여 현실을 외곡하였다. 이것은 부전령산줄기의 가지산줄기인 랑림산줄기를 독립적인 산줄기로 보고 등마루산줄기로 규정해놓은데서도 찾아볼수 있다. 또한 태백산과 소백산은 산줄기로서가 아니라 산지, 산계로서 표시하였다. 언전산줄기와 정방산줄기는 습곡운동(주름운동)의 원인으로 하여 생겨난 산줄기들로서 만곡된 륜곽을 가지고있으나 직선적인 산줄기로 외곡하여 표시하였다. 일제가 만들어낸 《 조 선 의 산계론》은 산줄기형성의 형태구조적특성으로 보아도 현실을 외고한 비과학적인것이다. 일제는 하나의 지맥으로 이어진 하나의 국토를 인위적으로 중부동서구조대를 경계로 력사, 주민, 기후 및 지형에 있어서 북남이 다른것으로 구별하였다. 그리고 중부동서구조대를 경계로 북쪽을 고조선, 남쪽을 삼한땅이라고 이름을 짓고 여기서 북남의 산줄기를 끊어놓았다. 일제는 현실을 무시하고 북과 남의 산줄기가 련결되지 않은것으로 고안하였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 지역에는 1 5 2 8 메터의 높이를 가진 추애산, 1 1 1 0 메터의 높이를 가진 백암산, 1 1 5 8 메터의 높이를 가진 식개산, 6 7 7 메터의 철령, 1 0 5 6 메터의 기대봉이 줄지어 하나의 산줄기를 이루고있다. 더우기 일제가 중부동서지구대를 경계로 력사와 주민, 기후 등을 론의한것은 우리 민족의
유구성으로 보나 자연환경의 변화과정으로 보아도 그릇된 해석인것이다. 우리 조선민족은 조선땅에서 생겨나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를 창조한 민족이다. 일제는 고조선과 삼한을 대치시키고있는데 일제가 말하는 삼한은 기원전 6 세기부터 례성강이남지역에 있던 마한, 진한, 변한 국가였다. 고조선이나 마한, 진한, 변한에 살고있던 민족도 다 같은 조선민족이지 다른 민족은 살지 않았다. 따라서 민족도 하나이고 풍습도 하나인 단일민족으로 살아온 우리 민족을 중부동서지구대를 경계로 갈라놓은것은 황당한 궤변이며 반동적인 설교이다. 또한 이 지대를 경계로 북남의 기후가 차이나는것은 아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위도와 지형의 특성에 맞게 기후대가 형성되고 그것이 규칙적으로 놓여있다. 일제가 조작한 우리 나라 산줄기 체계와 이름은 민족지리말살정책의 산물일뿐아니라 지국상에 지각이 생겨 4 0 억년의 긴긴 세월 지각운동의 동란속에서 하나의 지맥으로 이어진 이 땅에서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를 창조한 조선의 국토를 제멋대로 갈라놓고 민족의 기상이며 상징인 백두산의 정기를 우리 인민들의 마음속에서 지워버리려는 범죄적인 산물이다. 2 . 백두대산줄기 유구한 세월 우리 민족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며 력사의 증견자인양 흰눈을 머리에 이고 장엄하게 솟아있는 조종의 산 백두산, 백두산에 뿌리를 두고 남해의 한끝까지 련련히 뻗어내린 수려한 산발들, 웅장하고 아름답고 기기묘묘한 금강산이며 묘향산 등 절승경개를 자랑하는 명산들과 험산준령들은 과연 언제 생겨났고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현실과는 달리 지도에서는 왜 림진강계선에서 산줄기가 끊기였는가 하는것은 탐승의 길에 올라 조국의 자연지도를 펼쳐든 사람들은 물론 수십년동안 학계의 관심사로 되여온 중요한 문제였다. 이 문제를 밝혀내기 위하여 많은 지리학자들이 현지를 직접 답사하고 조사사업을 진행하였으며 인공위성정보자료를 해석하는 등 고심어린 탐구활동을 벌리였다. 이 과정을 통하여 조국의 산줄기체계에 대한 문제가 비로소 새롭게 과학적으로 밝혀지게 되였다. 1 ) 인공위성으로 본 산줄기 산줄기로 규정하자면 우선 형태적으로 련결되여있어야 하며 산줄기형성 원인과 시가가 같아야 한다. 이런 두가지 조건이 갖추어지면 하나의 산줄기로 볼수 있다. 그러나 종래에는 형태적요인을 고려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산줄기구분에서 형태적요인을 무시하고 형성 원인과 시기만을 보고 산줄기를 설정했다. 우리 지리학자들은 종전의 이런 부족점을 극복하고 형태적으로 보나 형성 원인과 시기로 보나 그것들이 일치할 때 하나의 산줄기로 보아야 한다는 과학적인 원칙을 세우고 지상지형지물을 정확히 해석할수 있는 인공위성정보자료를 리용했다. 우리가 이번 연구사업에 리용한 인공지구위성정보자료들은 자원위성이 지구에 보내온 우리 나라 지상정보자료들이다. 자원위성은 지구상에 있는 지표대상물과 일정한 깊이에 묻혀있는 대상물을 장악하여 지구에 제공해주고있다. 특히 자원위성정보자료에는 산체와 산줄기, 강하천, 호수, 단렬대(땅틈)와 구조선 등을 비롯하여 지상자원과 대상물들의 형태가 종합적으로 반영되여있다. 자원위성정도자료에는 지형의 형태와 류형들이 구분되고 그것들의 지역적분포와 호상 결합상태가 객관적으로, 종합적으로 반영되여있기때문에 이 정보자료를 리용하면 평지와 구릉, 산지, 산지안에서도 기본산체와 산줄기들의 형태를 정확히 파악할수 있다. 이번에 우리 지리학자들이 리용한 인공지구위성정보자료는 자원위성이 우리 나라를 촬영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자료였다. 지리학자들은 자원위성정보자료를 놓고 수계망과 지질구조선을 구분했으며 그에 기초하여
물모임구역을 경계짓는 분수령을 찾은 다음 산과 봉, 령들을 련결하여 산줄기를 결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강과 하천에 의하여 산줄기가 끊어진것은 하나의 산줄기로 보지 않으며 구릉이나 주민지대로 변하여 산줄기의 형태적모양을 갖추지 못한것은 산줄기로 정하지 않는 원칙을 가지고 연구사업에 착수하였다. 인공지구위성정보자료를 해석한데 의하면 백두산 (장군봉, 2 7 5 0 메터)에서 시작하여 2000 메터이상인 북포태산(2 2 8 8 메터), 두류산(2 3 0 9 메터)과 부전령산줄기의 천화령(1 6 8 3 메터), 명당봉(1 8 0 7 메터), 소마대령, 사수산(1 7 5 2 메터), 북대봉산줄기의 민봉산(1 1 3 3 메터), 북대봉(1 3 2 6 메터), 마식령산줄기의 마식령(7 6 8 메터), 추애산 (1 5 2 8 메터) 그리고 백암산 (1 1 1 0 메터), 식개산(1 1 5 8 메터), 철령 (6 7 7 메터), 태백산줄기의 기대봉(1 0 5 6 메터), 향로봉(1 2 9 3 메터), 설악산(1 ,7 0 8 메터), 두로봉(1 4 2 2 메터), 매봉산 (1 2 6 7 메터), 태백산 (1 5 6 1 메터), 소백산줄기의 소백산 (1 4 2 1 메터), 문경고개(5 4 8 메터), 속리산 (1 0 5 7 메터), 대덕산(1 2 9 0 메터), 덕유산 (1 5 0 8 메터), 백운산, 지리산줄기의 지리산(1 9 1 5 메터), 구재봉 (7 6 8 메터)까지 산줄기들이 형태적으로 련결되여있었는데 이것은 우리 지리학자들에게 새로운 문제점을 제기했다. 지리학자들은 지금까지 북과 남의 산줄기가 끊어진 고산- 세포- 평강일대에도 6 0 0 - 1 0 0 0 메터가 넘는 산과 봉, 령들이 줄지어 하나의 산줄기를 이루고있으며 이 산줄기에 의해 마식령산줄기와 태백산줄기가 형태적으로 련결되여있다는것을 처음으로 발견하였던것이다. 이번에 우리는 인공지구위성정도자료를 통하여 기본산줄기와 가지산줄기를 명백히 갈라내였다. 지리학자들은 인공지구위성저보자료를 해석하는 과정에 또한 지금껏 지도에 표시된것처럼 산줄기 지리산까지만 형태적으로 련결된것이 아니라 남해가의 구재봉까지 뻗어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이 지역은 구체적으로 촬영한 자원위성자료를 해석한데 의하면 지리산에서 얼마쯤 떨어진 구재봉까지 산들이 솟아 형태적으로 지리산줄기와 이어져있었다. 이렇게 놓고보면 결국 우리 나라 산줄기는 백두산에서부터 뻗어내려 남해가의 구재봉까지 형태적으로 하나로 이어져있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2 ) 우리 나라 산줄기들의 형성 우리 조국의 자랑인 명산들과 산줄기들이 언제 생겨났고 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되였는가 하는 문제를 알자면 먼저 지구의 력사를 알아야 한다. 우주가 생긴것은 지금으로부터 아득히 먼 옛날의 일이다. 이 장구한 기간 태양계가 생기고 지구가 형성되였으며 지구우에 생명체가 나타났다. 지구가 생긴이래 기나긴 세월을 거쳐 대륙은 바다로 되고 바다는 다시 대륙으로 되면서 강이 생겨 산과 들을 깍아내렸고 공기나 비물은 바위를 풍화시켰으며 생명체가 나타나서 번성하였다. 사람들은 화석(땅속에 묻힌 고생물의 유해나 그 흔적)을 직접 보았거나 특히는 1 억 5 천만년전에 생존했던 《 조 선 시 조 새 》 의 화석이 발견되여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일을 기억할것이다. 화석을 통하여 먼 지질시대뿐아니라 과거의 륙지나 바다의 모습, 기후조건 등도 알아낼수 있다. 그러므로 지구의 력사는 과거지질시대의 생물 즉 화석을 근거로 삼아 시생대, 원생대,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로 나눈다. (여기서 시생대란 가장 시초의 생물이 살던 시대란 뜻이며 원생대는 원시적생물이 그리고 신생대에는 새로운 생명 다시말하여 오늘날의 생명체들에 가까운 생물들이 산 시대라고 하여 지구의 력사적시대를 구분한것이다.) 하다면 지구의 시초모습은 어떠하였으며 어떤 변화과정을 거쳐 발전해왔는가. 우리가 살고있는 지구는 선 지질시대와 지질시대라고 부르는 두 단계의 발전과정을 거쳐왔다. 선 지질시대는 운성으로 지구가 발생발전하기 시작한 때로부터 지각발생 이전시기를 포괄하는데 그 지속기간은 3 0 억- 3 5 억년 정도이다. 지질시대는 지각이 발생발전한 시기로서 지속기간은 3 5 억년 정도이다. 그러므로 지구가 발생발전한 전체 기간은 6 5 억- 7 0 억년으로 된다. 원시적인 지각이 형성된후 여러차례의 구조운동의 영향으로 무르고 약한 지각은 점차
굳은 지각으로 발전하였다. 구조운동은 지각에서 일어나느 여러 형태의 운동인데 이 운동에 의하여 지각의 겉면에 이미 있던 지형이 파괴되기도 하고 또 새로운 지형을 형성하기도 하면서 지형형성발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우리 나라의 대륙지각은 지금으로부터 3 5 억년전(시생대)에 형성되기 시작하여 5 억 6 천만년전까지 바다와 륙지로 교체되여왔다. 이 시기에는 아직 지각이 굳어지지 못하였기때문에 곳곳에서 땅이 갈라지고 쪼개지기도 하면서 깊은 땅속의 돌물이 솟아오르기도 하고 불기둥을 세차게 내뿜기도 하였다. 이 과정에 우리 나라의 지각은 점차 안정화되면서 새로운 발전단계에 들었고 그후 5 억 7 천만년- 2 억 4 천만년에 이르는 고생대시기에는 서서히 솟아오르기도 하고 또 내려앉기도 하였다. 수천만년동안 물밑에 잠겨있던 일부 지역이 그후 점차 바다가 밀려나가면서 륙지로 혹은 호수로 변화되였다. 이렇게 수억년동안 비교적 평온하던 우리 나라의 지각은 중생대(2 억 4 천 2 백만년1 억년)에 들어와서 다시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우리 나라의 땅덩어리를 불쑥 솟아오르게도 하고 또 푹 꺼져내려앉게도 하면서 심히 변동시킨 습곡(주름)운동이 일어났다. 이 과정에 중생대 이전시기의 받조건에서 퇴적된 두꺼운 지층이 습곡되여 덕천북창일대의 산줄기들과 북대봉산줄기 그리고 멸악산줄기와 불타산줄기 등을 형성하였다. 그 다음에 땅이 갈라지고 쪼개진 땅끊임운동이 일어나면서 깊은 땅틈(단렬대)을 통하여 곳곳에서 뜨거운 돌물이 솟구쳐올라와 여러곳에 산지들을 만들었다. 우리 나라 지형이 오늘과 같은 형태를 가지게 된것은 1 0 0 0 만년전에 일어난 알프스히말라야조산운동시기이다. 이 운동에 의하여 중생대기간 광대한 바다조건에서 퇴적된 수십키로메터의 지층을 가진 테지스해가 높이 륭기하여 알프스- 깝까즈- 히말라야- 천산줄기가 솟아나 대산줄기를 형성하였다. 우리 나라에서도 이 시기에 산지들이 계속 깎이고 씻겨 넓은 준평원을 이루고있던 오늘의 개마고원과 령서고원 지역이 높이 륭기하여 고원을 이루었고 동시에 련화산줄기, 북수백산줄기, 랑림산줄기, 묘향산줄기, 소백산줄기, 아호비령산줄기, 마식령산줄기가 형성되였다. 제 4 기에 태평양의 현무암지괴판이 아시아의 화강암지괴판밑으로 기여들어감으로써 아시아대륙이 서서히 솟아오른 결과 함경산줄기, 부전령산줄기, 태백산줄기가 형성되였다. 그리고 이 시기에 우리 나라와 태평양변두리에서는 화산활동이 활발하였는데 백두화산에서 막대한 용암이 흘러나와 화산추를 형성하였다. 용암분출은 북서- 남동방향의 단렬대를 따라 진행된 결과 화산분출이 하나의 렬을 형성하여 백두산줄기를 이루어놓았다. 백두산지역에서뿐아니라 함경산지, 칠보산일대, 동조선만연안, 세포- 평강지방, 신계- 곡산, 장연- 룡연지방에서도 화산활동이 강하게 일어나 용암지대, 화산언덕, 용암절벽들을 이루었으며 골짜기들을 메웠다. 지금으로부터 7 3 만년전에 있은 구조운동에 의하여 전반적지역에서 오르내리는 운동이 있었는데 이 영향을 받아 우리 나라의 골격을 이루는 백두산줄기, 부전령산줄기, 마식령산줄기, 북대봉산줄기, 태백산줄기, 소백산줄기, 지리산줄기들이 완성되였다. 이와 동시에 내륙지대가 솟아오를 때 조선동해와 조선서해는 내려앉아 깊은 바다분지로 되였다. 그이후시기 우리 나라의 동서해와 남해에서는 침강운동이 일어났고 4 기에 와서 남해에서는 그전에 륙지로 이어졋던곳이 침강하여 바다로, 제주도는 울릉도와 함께 화산이 분출하여 화산섬으로 솟아올랐다. 이렇듯 우리 나라는 지구의 력사와 함께 발생하여 3 5 억- 4 0 억년의 장구한 지질시대를 거쳐 륙지와 바다가 형성되였다. 이번에 우리 지리학자들은 지질시대별 지체구조운동이 산줄기형성에 미친 영향을 해석하기 위하여 관입암체(땅속깊은곳에서 솟구쳐오른 돌물이 식어서 굳어진 바위)들의 절대년령과 물리화학적성분들을 전면적으로 분석하였다. 이 과정에 종래의 산줄기구분에서
과학성이 불충분하다는것을 발견하였다. 종래에는 여러 단계의 지체구조운동이 산줄기형성에 미친 영향을 력사적으로 고찰하지 않고 초기산줄기형성원인에 의해 산줄기들을 구분했다. 이런 결과 북대봉산줄기와 같이 고생대에는 습곡산줄기였지만 그후에 지괴산줄기로 변한것을 보지 못하고 습곡산줄기로 규정함으로써 우리 나라 산줄기들의 형성원인을 그릇되게 해석하였다. 이와 같은 결함은 백두산줄기를 규정하는데서도 나타났다. 신생대 제 3 기, 제 4 기에 태평양지괴가 대륙지괴밑으로 들어오면서 우리 나라의 전반적지역이 솟아올랐다. 이때 솟아오른 크기를 보면 백두산줄기에서 1 0 0 0 - 2 0 0 0 메터, 부전과 장진일대에서 1 9 0 0 메터, 풍산과 풍서일대에서 1 7 0 0 메터, 북대봉산줄기에서 2 0 0 0 메터, 평강, 세포구역에서 5 0 0 - 1 0 0 0 메터, 태백산줄기에서 1 5 0 0 메터이다. 특히 백두산지구에서는 1 0 0 0 메터이상이 솟아오르면서 동시에 화산이 폭발적으로 분출하였다. 하여 수많은 산들과 봉우리들이 생겨났다. 우리들은 이 지구의 륭기운동과 화산활동에 대하여 전면적으로 연구함으로써 백두산줄기는 륭기(지괴)- 화산산줄기라는것을 새롭게 밝혀냈다. 지체구조운동이 산줄기형성에 미친 원인을 그릇되게 해석한것은 세포- 평강철원일대에서도 반영되였는데 이 지역은 푹 내려앉은 지대로 규정되여 산줄기가 없는것으로 알려져있었다. 우리가 이 일대에서 채취한 현무암을 카리- 아르곤(K- Ar )법으로 절대년대를 측정한데 의하면 9 8 만- 1 6 4 만년에 해당되는것이였다. 그러므로 제 4 기의 화산분출이라는것이 명백해졌다. 이 지대는 신생대에 들어와서 륭기운동과 화산분출작용에 의하여 1 0 0 0 메터가 넘는 추애산, 백암산, 식개산, 기대봉을 비롯하여 6 0 0 0 메터가 넘는 령과 고개들이 줄지어 생겨나 철령산줄기를 형성하였다. 이와 같이 우리는 지체구조운동이 산줄기형성에 미친 영향관계를 전면적으로 분석하여 백두산줄기, 부전령산줄기, 북대봉산줄기, 마식령산줄기, 철령산줄기, 태백산줄기, 소백산줄기, 지리산줄기는 초기에 생긴 지질시대와 형성원인은 달랐지만 오랜지질시대를 거쳐오면서 산줄기형성원인도 달라져 오늘에 와서는 하나의 원인인 지괴산줄기라는것을 새롭게 밝히였다. 3 ) 새로 이름을 정한 산줄기와 없어진 《산줄기》 이번에 지리학자들은 인공지구위성정보자료해석과 암석들의 절대나이와 물리화학적성분들을 새롭게 밝힘으로써 백두산에서 시작되여 남해가의 구재봉까지 뻗어내린 산줄기들이 형태적으로 하나로 이어져있고 형성 원인과 시기도 일치하다는 결론을 얻었으며 이에 기초하여 산줄기들을 새롭게 체계화하였다. 조종의 산 백두산에서부터 남해가의 구재봉까지 하나로 련결되여있는 이 산줄기를 백두대산줄기로 이름지었다. 새로 확정한 백두대산줄기의 길이는 1 4 7 0 키로메터(3 천 6 백 7 0 여리)이다. 백두산줄기에 속해있는 산줄기 백두산줄기 (백두산- 두류산:단천시) 부전령산줄기 (두류산- 사수산: 정평군, 요덕군, 대흥군) 북대봉산줄기 (사수산- 두류산: 양덕군) 마식령산줄기 (두류산- 6 2 3 봉우리:세포군) 태백산줄기 (기대봉:회양군, 안변군- 태백산: 태백시) 소백산줄기 (태백산- 백운산: 장수군, 함양군) 지리산줄기 (백운산- 구재봉:하동군) 백두대산줄기에 속해있는 이 산줄기들의 이름은 종전대로 부르도록 하였다. 백두대산줄기가 새로 확정됨으로써 일련의 산줄기가 새로 생기고 또 일부 산줄기들의 시작점이 달라지거나 이름을 고치였다. 새로 정한 산줄기
철령산줄기(6 2 3 봉우리:세포군 – 기대봉: 회양군, 안변군) 새로 이름지은 산줄기 마천령산줄기 (두류산:단천시 – 원산덕산: 단천시) 만풍산줄기 (사수산:정평군, 요덕군, 대흥군 - 덕화봉: 정평군, 금야군) 새덕산줄기 (6 2 3 봉우리: 세포군 - 기대봉: 철원군, 이천군) 례봉산줄기 (식개산:세포군 – 례봉산:남양주군) 계방산줄기 (두로봉: 명주군, 홍천군, 평창군 - 황학산:원성군) 남원산줄기 (백운산: 장수군, 함양군 – 고리봉:남원군) 무등산줄기 (내장산: 정읍군, 순창군 – 달마산:해남군) 산줄기의 구간을 고쳐 정한것 랑림산줄기 (소마대령:대흥군 - 중지봉:중강군) 차령산줄기 (오갑산:려주군, 중원군 – 장태봉:보령군, 서천군) 없애는 《산줄기》들 현실과 맞지 않는 강남산줄기와 광주산줄기는 없애도록 하였다. - 강남산줄기 일제가 만들어낸 강남산줄기는 강하천에 의해 산줄기가 여러개로 끊기고 산줄기형태를 갖추지 못하였기때문에 없애도록 하였다. 이 산줄기구역은 여러개의 땅끊임선이 서로 사귀여 바둑판처럼 땅이 끊기였으므로 산줄기의 지속성이 확연하지 못하고 산줄기가 뻗은 구간이 장자강과 위원강에 의해 끊기우고 남서방향으로 계속 되다가 우시계선에서는 충만강에 의해 다시 끊기였다. 또한 위원강의 중류인 위원군 량강로동자구와 화창리 일대에는 땅덩어리가 함몰된곳이 있다. 고풍군일대에서는 산줄기로서의 면모를 잃고 침식당하여 변형된 고리형의 형태를 띠고있다. 이렇게 강남산줄기는 현실적으로 산줄기로서의 형태를 갖추지 못하였으므로 없애도록 하였다. - 광주산줄기 광주산줄기는 그 북쪽부분이 철령산줄기로 되였기때문에 없애도록 하였다. 그리고 광주산줄기의 남쪽부분을 례봉산줄기로 부르도록 하였다. 4 ) 백두대산줄기는 우리 나라의 등마루산줄기 등마루산줄기라는 의미는 해당 나라 지세의 척추로 되는 산줄기 즉 기본산줄기를 말한다. 따라서 모든 나라에서는 지리적기둥인 등마루산줄기를 선정하고 있으며 여기에 기초하여 나라의 산줄기체계를 작성하고있다. 지금까지 등마루산줄기는 산줄기의 배치상태를 규정하기에 앞서 선정하였다. 그리고 이에 기초하여 매개 산줄기들이 등마루산줄기와 어떤 관계를 가지는가를 구분하면서 산줄기체계를 만들었다. 그러므로 산줄기체계를 세우는데서 등마루산줄기를 바로 선정하는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등마루산줄기가 되자면 우선 산줄기들가운데서 가장 높고 범위가 큰 산줄기가 되여야 하며 다음으로 모든 산줄기들이 등마루산줄기에서 뻗어내린 가지산줄기로 되여야 한다. 이런 두가지 조건을 갖출 때 그런 산줄기를 등마루산줄기(척량)라고 한다. 최근에 우리 주변나라들에서는 조선의 등마루산줄기를 그릇되게 해석한 도서들이 종종 나타나고있다. 우리가 알고있듯이 랑림산줄기와 태백산줄기는 서로 다른 산줄기이다. 등마루산줄기로서 랑림산줄기와 태백산줄기를 규정한것은 우리 나라의 북남구조선방향과 일치하는 산줄기가 되여야 한다는 일반적인 해석에서 그리고 구분원칙과 지표도 똑똑히 세우지 못한 상태에서 도출한 주관적이며 비현실적인 결론이다.
또한 랑림산줄기와 태백산줄기가 우리 나라의 산줄기가운데서 가장 높은 산줄기가 되는지 안되는지도 알지 못하고 등마루산줄기로 규정한것 자체가 엉터리없는것이다. 이번에 우리들이 랑림산줄기를 답사하고 문헌자료들을 다시 검토분석한데 의하면 우리 나라 주요산줄기들가운데서 랑림산줄기는 높이에서 세번째, 태백산줄기는 여섯번째였다. 그리고 이 두 산줄기에서 우리 나라의 모든 산줄기가 뻗어나가지 않고있었다. 지리학자들이 현지를 직접 밟아 보고 종합해본데 의하면 랑림산줄기에서 뻗어내린 가지산줄기는 묘향산줄기, 신원산줄기를 비롯하여 작은 산줄기 몇개밖에 없었다. 이와 함께 련화산줄기, 북수백산줄기는 랑림산줄기와 아무런 련관이 없다는것을 찾아보게 되였다. 태백산줄기도 마찬가지였다. 인공지구위성정보자료를 비롯하여 최신자료들과 문헌자료, 지도들을 종합분석하고 검토해본데 의하면 추가령지구대를 경계로 북남의 산줄기가 끊기였기때문에 마식령산줄기, 아호비령산줄기, 북대봉산줄기, 부전령산줄기, 백두산줄기, 함경산줄기와 그밖의 산줄기와는 아무런 련관도 없다. 따라서 태백산줄기를 등마루산줄기라고 말할수 없다. 현지를 답사하면서 우리는 랑림산줄기와 부전령산줄기의 높이와 규모를 전면적으로 종합분석하였다. 이 과정에 랑림산줄기에서 부전령산줄기가 뻗어나간것이 아니라 반대로 부전령산줄기에서 랑림산줄기가 뻗어나가있다는것을 새롭게 확정하였다. 우리 지리학자들을 등마루산줄기선정을 과학적으로 하기 위해 산줄기배렬상태, 산줄기의 높이와 규모, 산줄기들의 호상 련관성에 대한 연구사업을 심화시켰다. 이 과정에 등마루산줄기 선정원칙과 구분 지표, 방법을 새롭게 확립하고 주체적립장에서 등마루산줄기를 과학적으로 밝혀냈다. 등마루산줄기는 우리 나라 모든 산줄기들이 뻗어내리는 기본산줄기인 동시에 다른 산줄기보다 높아야 한다는 원칙에 기초하여 산줄기들을 구분하고 평균높이를 비교해보았다. 우리의 연구사업은 백두산줄기로부터 시작되였다. 이것은 백두산줄기가 우리 나라 산줄기가운데서 평균높이가 가장 높기때문이다. 우선 연구집단앞에는 백두산줄기가 함경산줄기와 련결되였는가 아니면 부전령산줄기와 련결되였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였다. 이런 조건에서 우리는 세계의 산줄기들의 평균높이를 과학적으로 측정하고 비교하였다. 그 결과 백두산줄기의 평균높이는 1 8 6 0 메터였고 함경산줄기의 평균높이는 1 2 8 0 메터, 부전령산줄기의 평균높이는 1 1 5 8 메터였다. 이에 따라 우리 지리학자들은 백두산줄기가 명백하게 부전령산줄기와 련결되여있고 그전에 등마루산줄기에 포함시켰던 함경산줄기는 엄연하게 백두산줄기의 가지산줄기라는것을 밝혀냈다. 이런 방법으로 우리는 부전령산줄기와 랑림산줄기의 호상관계, 두 산줄기가 우리 나라 산계내에서 차지하는 위치도 해명했다. 종래에는 랑림산줄기를 자강도 중강군에 있는 중지봉에서 시작하여 함경남도 정평군과 금야군의 경계에 위치한 덕화봉까지 보았다. 다시말하여 부전령산줄기는 랑림산줄기의 가지산줄기로 되여있었고 랑림산줄기는 기본산줄기, 등마루산줄기로 규정되여있었다. 그러나 두 산줄기를 직접 답사하면서 연구사업을 심화시킨 결과 부전령산줄기가 랑림산줅보다 더 웅장하고 큰 산줄기라는것을 밝혀내게 되였다. 그러므로 랑림산줄기는 부전령산줄기에서 뻗은 가지산줄기라는것이 확증되였다. 따라서 랑림산줄기의 시작점은 중지봉이 아니라 부전령산줄기의 소마대령으로 그리고 산줄기의 끝점은 중지봉으로 하였다. 평균높이가 1 1 0 0 메터인 북대봉산줄기와 평균높이 6 5 0 메터에 달하는 아호비령산줄기를 밝히는데서도 이와 류사한 문제가 제기되였으나 우리는 북대봉산줄기가 마식령산줄기와 련결되였음을 과학적으로 확증했다. 우리 지리학자들이 이번 연구사업을 진행하며 제일 애를 먹은것은 지금까지 북남의 산줄기가 형태적으로 서로 련결되지 못하고 분리된곳으로 되여있던 세포- 평강- 철원지대였다. 하지만 우리는 집체적 지혜와 힘을 모아 이 지대가 안고있는 비밀을 과학적으로 밝혀냈다. 우리 학자들은 겨울의 엄혹한 조건에서도 험준한 이지대의 산발들을 톺아오르며
관입암체의 형성원인과 시기, 이 일대에서의 화산작용과 지형체의 형성, 지각의 륭기와 변화 등을 종합적으로 조사하고 해석했다. 이 과정에 호암산관입체, 고산- 금강산관입암체들의 절대나이를 밝혔다. 그리고 제 4 기에 들어와서 륭기작용을 받았으며 결과 마식령산줄기의 6 2 3 봉우리로부터 그전에 있던 광주산줄기의 식개산까지의 구간에도 산과 봉우리들이 련결되여 산줄기를 형성하고 있다는것을 새롭게 해명하였다. 이리하여 우리 나라의 산줄기는 북남으로 분리된것이 아니라 하나의 산줄기로 이어져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였다. 다시말하여 새로 설정한 철령산줄기에 의하여 백두산에서 시작된 백두대산줄기는 마식령산줄기의 북부와 태백산줄기가 련결되며 철령산줄기는 례봉산줄기, 새덕산줄기의 평균높이보다 높은 기본산줄기이고 새덕산줄기와 례봉산줄기는 가지산줄기라는것이 확증되였다. 우리들은 태백산줄기와 경상산줄기의 평균높이를 비교고찰해보고 경상산줄기가 태백산줄기의 가지산줄기라는 결론을 내렸으며 태백산줄기는 소백산줄기와 련결되며 가야산줄기, 덕유산줄기 등은 소백산줄기의 가지산줄기, 소백산줄기는 지리산줄기와 련결되였음을 확증하였다. 우리 지리학자들은 산줄기들의 평균높이값을 측정하여 우리 나라의 산줄기들에 대하여 서로 비교하고 1 지맥, 2 지맥, 3 지맥 등 산줄기들의 위치를 구분하고 나라의 지세를 바로 정하였다. 우리 나라 산줄기에 대한 전면적이며 종합적인 연구사업을 통하여 백두대산줄기가 우리 나라의 지리적기둥, 등마루산줄기라는 결론을 얻었다. 참으로 우리 나라의 등마루산줄기가 새롭게 확증됨으로써 우리는 지리학분야에 남아있던 일제의 낡은 유물을 청산하게 되였으며 근로자들과 청소년학생들에게 나라의 지세를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알려주게 되였다. ******************************************************** 수수억만년에 달하는 장구하고 복잡다단한 우주의 운동력사는 백두대산줄기라는 하나의 척추로 삼천리강산을 이루어놓았다. 단군이래 백두에서 뻗어내린 한 지맥우에서 배달민족은 반만년에 걸쳐 자기의 민족력사를 창조하며 살아왔다. 이번에 지리학자들이 백두대산줄기를 새로 확정한것이야말로 우리 지리학의 승리이며 조선민족의 큰 승리로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