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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백두대간을 오른다 뉴질랜드인 로저, 북 허가 받아 10월~내년 연말까지 7차례 방북 글·박정원 부장대우 | 사진·허재성 기자 이후 북한의 산하는 어떻게 변했을까? 분단들리는 소문으로는 북한 주민들이 먹을 것이 없어 산에서 나무를 마구 잘라 땔감으로 팔면서 전 국토가 황폐화됐다고 한다. 외신을 통해서 간간이 보도되는 화면을 보면 실제로 그 런 듯이 보인다. 이러한 북한 백두대간 산하의 실제 모습을 눈으로 확인할 날이 멀지 않았다. 그것도 백두산에서 금강산까지 이어지는 북한 측 백두대간의 모습을 사진과 영상에 담아 생생 히 볼 수 있을 것 같다. 뉴질랜드인 로저 셰퍼드(Roger Shepherd ·46)가 북한 측 백두대간을 답사하겠다고 나 섰다. 연속적 종주는 아니지만 도시를 거점으 로 주변 백두대간을 1년여에 걸쳐 일제히 탐방 할 작정이다. 지난 5월 21일 북한을 방문, 일주 일간 평양에 머물면서 방북허가를 받고 다시 한 국으로 왔다. 정치와 스포츠 교류의 목적이 아 닌 순수 민간인이 ‘포토 에세이집’ 발간을 목적 으로 북한 땅을 밟는 것은 아마 분단 이후 처음 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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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김일성대학 지리 교수와 협의한 뒤 출 입허가를 받은 구간은 다음과 같다. 강원도는 금강산·북대봉·문필봉·깃대봉·철령·항 령산·백암산·백봉·두류산 등이고, 이들 산 을 등산하고 촬영하기 위한 거점 지역으로 고 산·새포·원산 등에 베이스캠프를 마련할 계 획이다. 평안남도는 맹산시를 거점으로 주변 백두대간을 답사하기로 했다. 함경남도 지역은 백두산과 백두고원·만수고원·개마고원 등 이고, 옥령산·히사봉·천산대봉·철불산 등 에 올라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영상에 담을 예 정이다. 삼지연·부천·장진·함흥 등을 거점 으로 삼기로 했다. 북한 측 백두대간을 답사하기 위해 북측 관 련 인사를 만났을 때 다들 “산에 올라서 뭐 하느 냐”며 신기하고 이상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듯했다고 한다. 로저가 남한 백두대간을 이미 완주했고 책도 발간했다는 얘기를 하자 북한 측 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당신은 새(bird)같이 훨 훨 나는 사람”이라며 믿지 못하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는 일단 오는 10월에 북한을 방문해서 20 일가량 머물 예정이다. 금강산의 아름다운 모 습을 카메라와 영상에 담기 위해 원산으로 향

한다. 원산에서 금강산과 황룡산·깃대봉 등을 오르고, 이어 새포로 옮겨 백봉의 자연을 카메 라에 담을 예정이다. 다시 고산으로 나와 백암 산과 두류산에 오른다. 한-뉴질랜드 프렌드십 소사이어티가 나서 북한에 머무는 동안 그는 도시 생활을 제외하고 산이나 산 주변에서는 주로 캠핑을 하거나 비박 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좋은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선 날씨가 필수 요건입니다. 순간순간의 기후조건에 따라 장면 이 달라지기 때문에 그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 해서라도 항상 산에서 지낼 계획입니다.” 사뭇 그의 각오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는 10월 말이나 11월쯤 한국으로 돌아와 서 내년 2월쯤 다시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다. 내년엔 여섯 번쯤 방북해서 김일성대학 지리 교 수와 논의했던 구간을 전부 끝낼 계획으로 있 다. 한 번 갈 때마다 최소 2~3주가량 머물면서 북측 백두대간의 모습을 빠짐없이 카메라에 담 을 생각이다. 북한에 머무는 기간만 따진다면 4 개월이 훨씬 넘는다. 남한 백두대간을 연속 종 주할 때 소요된 시간인 70일보다 더 긴 셈이다. “금강산 같은 경우는 단풍이 아름답기 때문

그가 방북 허가를 받는 데는 한-뉴질랜드 프렌드십 소사이어티(Korea-New Zealand Friend Society)가 큰 역할을 했다. 이 단체는 외교부 문화위원회 산하 NGO 기관으로, 40여 년간 북한과 교류를 계속해 왔다. 로저는 “북한의 평판이 국제 사회에서 매우 나쁘다는 걸 잘 알고 있다”며 “아마 이번 기회에 산을 통해 뭔가 좋은 일을 할 계기를 만들려고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 는 북한 측이 이 프로젝트가 한반도 통일에 도 움이 된다고 보는 듯했다고 덧붙였다. 오는 10월부터 본격 북한 측 백두대간을 탐 사할 예정이다. 평양을 거쳐 원산으로 가서 금 강산과 강원도 일대의 백두대간을 둘러보기로 했다. 그가 사전 협의를 위해 북한을 일주일 동 안 방문했을 당시, 김일성대학 지리 교수와 전 체 구간과 일정에 대해 의견을 구하고 합의를 했다. 한반도 전체가 그려진 ‘산경표’ 지도를 보 며 구체적 위치를 서로 확인했다. 핵 실험이나 정 치·군사적으로 민감한 지역은 물론 배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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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북한 백두대간을 답사하기로 한 뉴질랜드인 로저 셰퍼드가 경복궁 주변에서 포즈를 취했다. 2 로저가 답사할 북한 백두대간 지도를 들어 보이고 있다. 3 묘향산에는 등산보다는 관광차원의 산책코스를 몇 군데 조성해 놓았다. 사진 로저 셰퍼드 제공. 4 묘향산에도 우거진 숲속에 인공 새집을 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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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가을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10월에 갈 계획이고, 백두산은 그 웅장함을 담기 위해 선 겨울이 적기라고 봅니다. 내년 2월 백두산에 올라 화려한 모습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을 것입 니다. 뿐만 아니라 백두대간의 사계를 처음으 로 렌즈에 담아 선보일 것입니다.”

1 묘향산에서 흘러내리는 폭포 앞에서 몇몇 관광객이 구경하고 있다. 2 묘향산의 암벽에 ‘묘향산은 천하제일 명산’이라는 김일성의 친필이 새겨져 있다. 사진 로저 셰퍼드 제공. 3 지난 5월 의견 타진을 위해 방북했을 때 묘향산 등지를 안내한 한-뉴질랜드 소속의 북측 회원들과 함께 자리를 했다. 사진 로저 셰퍼드 제공. 4 묘향산에 있는 정자인 솔봉정.

한 번 방북하면 최소 2~3주 머물 계획 그의 북한 백두대간 트레일 답사 계획은 남한 백 두대간 종주를 마칠 때부터 잉태되고 있었다. 그 는 2007년에 이미 남한 백두대간 종주를 마쳤다. 그리고 2년여 간의 자료정리와 집필을 거친 뒤 2010년 첫 백두대간 영문 가이드북 <Baekdudaegan Trail : Hiking Korea’s Mountain Spine>을 발간했다. 외국인으로서 처음 썼고, 백두대간 영문 안내서로도 처음이었다. 직업이 경찰이었던 그는 책을 출판한 뒤 뉴 질랜드로 돌아가 아예 사표를 내고 다시 한국으 로 건너왔다. 그때부터 본격 북한 측 백두대간 답사 계획이 진행됐다. 한국에 와서 애초엔 한 국의 산에 대한 책 출판에 대해 여기저기 의견 을 나눴다. 그러다 진선출판사 허창성 회장을 만났다. 허 회장은 “한국의 산에 관한 책은 여기 저기서 출판이 많이 된 상태라, 거기에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북한에 갈 수 있다면 그곳의 산 사진을 찍어 보라”고 권했다. 로저는 이 말을 듣 고 바로 실행에 들어갔다. 한-뉴질랜드 프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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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소사이어티를 찾아 의견을 타진하고 북한의 초청을 받기에 이른 것이다. 그가 왜, 그것도 외국인이 남한 백두대간을 종주하고 북한 백두대간을 오르려고 하는지 물 어봤다. “먼저 명확히 짚고 넘어갈 건 내가 북한 백 두대간 종주를 하겠다는 건 아닙니다. 북한 백 두대간의 <사진 에세이집>을 만들기 위해서 갑 니다. 그래서 백두산에서 금강산을 거쳐 지리 산까지 한반도 전체의 백두대간 사진 에세이집 을 발간할 계획입니다. 그것은 남북이 둘이 아 니라 하나이고 똑 같은 사람이라는 상징적 의미 를 지니기도 합니다. 산을 통해서 남북이 동질 성을 회복하는 계기도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남 한의 산을 종주할 때 보았던 산에 관한 전설이 나 역사 등도 찾을 생각입니다.” 한-뉴질랜드 프렌드십 소사이어티 북한 측 회원 2명과 운전기사 1명 등이 그의 답사를 지 원해 주기로 북한과 합의한 상태다. 이들이 짐 을 나눠지면서 카메라 촬영을 돕거나 길을 안내 하고 답사에 필요한 자료도 제공하기로 했다. 거점 도시에 차로 접근해서 거기서부터는 역사 유적지나 경관이 좋은 지역을 찾기까지 걸어서 가기로 했다. 그는 또 북한의 불교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아, 산에 있는 사찰도 빠짐없이 방문 할 계획이다. 1년여 북측 백두대간 답사를 마친 뒤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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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대로 백두대간 사진 에세이집을 낼 예정이 다. 출판사는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몇몇 군데에 벌써 타진을 한 상태다. 때문에 한국에 오래 머무를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아졌다. 북 안내원 2명과 함께 답사키로 “사진 에세이집 발간 이후엔 무엇을 할지 아직 결정하지 않았어요. 뉴질랜드로 돌아갈 수도 있고, 한국에 더 머물 수도 있고…. 그러나 분명 한 건 상당 기간 한국에 머무르며 할 일이 많을 것 같아요. 만약 북한과 관계가 좋아져 백두대 간 전 구간 종주허가를 받을 수 있다면 백두산 에서 출발해서 광양 연대봉까지 걸어서 종주해 볼 각오도 있습니다. 만약 그것을 할 수 없다 하 더라도, 한국의 봉수대에 관심이 많아 직접 답 사해서 연구해 볼 생각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2012년 한국의 섬에 관한 영문 가이드북도 발간할 예정이다.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한국의 산하’를 찾기에 바쁜 외국인 이다. 그의 역마살 같은 방랑벽은 어떻게 보면 어 릴 때부터 가진 습성으로 보인다. 그는 20대가 채 되기도 전에 ‘차 도장(Car Painter)’ 사업을 시작하면서 여기저기 떠돌아 다녔다. 21세 때 는 뉴질랜드를 떠나 영국으로 향했다. 거기서 1 년 동안 일한 뒤 아프리카로 다시 떠났다. 9년 간 남아공·모잠비크·잠비아 등을 거치며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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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북한과 관계가 좋아져 백두대간 전 구간 종주허가를 받을 수 있다면 백두산에서 출발해서 광양 연대봉까지 걸어서 종주해 볼 각오도 있습니다. 만약 그것을 할 수 없다 하더라도, 한국의 봉수대에 관심이 많아 직접 답사해서 연구해 볼 생각입니다.

립공원 관리인, 사파리 가이드 등으로 활동했다. 1998년 다시 뉴질랜드로 돌아간 그는 여행 관련 일에 잠시 종사하다가 2002년부터 경찰 이 됐다. 2006년 6개월의 휴가를 받아 친구가 영어강사로 있는 ‘운명적인’ 한국을 찾았다. 백 두대간을 발견하고는 그해 절반쯤 남한 구간을 종주하고 다음을 기약한 뒤 뉴질랜드로 돌아갔 다. 이듬해 2007년 다시 한국으로 와서, 같은 영어강사로 있는 앤드루 더치(Andrew Douch) 와 함께 70일간에 걸쳐 남한 백두대간 종주를 마쳤다. 이어 2009년까지 첫 백두대간 영문가 이드북 발간 작업을 끝냈다. 2009년 겨울부터 9개월에 걸쳐 낙남정맥, 호남정맥, 금남정맥, 금남호남정맥 등을 종주 하고 뉴질랜드에 잠시 귀국한 뒤 2010년 아예 뉴질랜드 경찰직 사표를 내고 다시 한국을 찾아 왔다. 지금도 그는 정맥과 지맥, 한국의 섬을 찾 아 시도 때도 없이 다니고 있다. 벽안의 외국인 이 앞으로 과연 한국의 산하에 관한 몇 권의 책 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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