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w
小
[비로소]
비.로.소. : copyright (c) You Na 2009 Seoul, Korea : 만든이 _ 변인숙 baram4u@gmail.com : 디자인 _ 홍지영 real_peach@naver.com
ㄱ)
“첫 마디 - 우리 함께 행복해질까요? ”
‘비.로.소.’는 행복을 위한 잡지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함께> 그러나 <스스로> 행복해지길 바라는 독립잡지입니다. 매호 긍정적으로 살 수 있을 만한 100가지 방법들을 찾으려고 합니다.
ㄱ. 어릴 적 학습지에 길들여진 경험이 있 나요? 어느 순간 누구도 이젠 어른이 되어 가는 당신에게 문제지를 건네지는 않아요. 하지만 지금 많은 생각이 머릿속에서 가 슴속에서 복잡하게 소용돌이 치고 있다면, ‘비로소’를 펴세요. 문제집 삼아 푼다는 생 각으로, 속으로 질문하고 답을 떠올려보고, 일기장에 낙서도 해보세요. 비로소 모범답 안이 나올 지도 모르죠. 사실 인생에 정답 은 없잖아요?
첫 마디는 저의 얘기이지만, 두 마디, 세 마디, 네 마디… 계속 발간될 잡지에는, 독자들의 얘기를 함께 싣고 싶습니다. 사람은 살면서 단 한 편의 감동적인 공연으로 용기를 얻기도 하고, 타인의 인생 조언 한 마디를 평생 간직하기도 합니다. 소중한 추억이 된 순간들을, 미래의 에너지로 조금씩 꺼내 쓴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짐 크로스(Jim Croce)의 노랫말처럼 시간을 병 속에 담을 수 있다면 (time in a bottle), 가슴이 충만했던 설레는 순간들을 저장해두고 싶습니다. 삶이 고단할 때 다시 느낄 수 있게 말이에요. 활자로라도 잡아둔 채, 타인과 공유하고픈 열망에 ‘비.로.소.’를 만들었습니다.
‘비.로.소.’ 창간호인 ‘우리 함께 행복해질까요?’는 행복을 찾을 만한 공연, 산책길, 사람, 취미 등을 엮었습니다. 단 1초, 찰나의 순간이라도 제가 설레발을 떨며 흠모한 흔적들입니다. 삶의 에너지를 얻었으니 얻은 만큼 퍼뜨리고 다녀야, 새롭게 채울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당신은 지루하게 반복되는 권태로운 일상을 살고 있나요? 아님 1분 1초 쫓기며 달리고만 있나요? 그 어떤 삶을 살고 있더라도, 사소한 시선으로 세상을 둘러보면 흠모할 것들이 무한대로 많습니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은 곧 나에 대한 발견, 그리고 다양한 로맨스로 확산되지 않을까 꿈꿔봅니다. 조금 덜 쓸쓸하며 덜 외로울 수 있는 방법, ‘비.로.소.’와의 대화를 통해 비로소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B (비)
A급 하나만을 추앙하기보다 여러 B급도 함께 칭찬하는 여유를 동경합니다.
Low (로)
높은 곳만을 홀로 바라기보다, 낮은 곳이라도 타인과 함께 바라보는 배려를 존중합니다.
小 (소)
꼭 크게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좋아요. 아기자기하고 소소한 삶의 아름다움을 사랑합니다.
ㄴ)
from. 변인숙 백
ㄴ. 비로소는 꾸준히 100개 시리즈를 발간 하려고 합니다.
[공연편]
01. 뮤지컬 나인 - ‘나’를 만든 사람은 도대체 누구일까요? 02. 뮤지컬 빨래 - 객지 생활이 힘드신가요? 낯선 환경이 두려우신가요? 03. 비언어극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 브레이크 댄스의 매력에 빠져보실까요? 04. 뮤지컬 총각네 야채 가게 - 취업 준비생인가요? 세상은 넓고 직업도 많습니다. 열정만 키워보세요. 05.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 - 소재를 확장하는 재미, 당신의 삶의 소재들은 무엇이 있나요? 넓혀보세요. 06. 뮤지컬 김종욱 찾기 - 당신의 첫사랑을 만나고픈 날이 있나요? 07. 창극 로미오와 줄리엣 - 맛깔스러운 언어의 ‘해학’에 녹아들어가 보세요. 08.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 - 우리 모두가 인생의 주연, 주인공이랍니다. 09. 댄스컬 사랑하면 춤을 춰라 - 생활이 무료한가요? 열정적인 댄서들에게서 에너지를 얻으세요. 10. 연극 클로져 - 영원히 알 수 없어요.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나면 좀 더 사랑이 수월해질 지도 몰라요. 11. 뮤지컬 헤드윅 - 사랑은 권력 관계라고요? 뭐 그러면 좀 어떻습니까? 약자라도 행복해요. 12. 비언어극 브레이크 아웃 - 어딘가에서 탈출하고 싶다면, 브레이크 아웃을 보고 크게 웃으세요. 13. 뮤지컬 대장금 - 이상적인 사랑이란 만남을 통해 성숙해가는 거겠죠? 14. 무용 라디오와 줄리엣 - 슬픔으로 시작한 로미오와 줄리엣, 그래도 아름답죠. 15. 무용 아Q 1.5 - 문학과 함께 느끼는 무용 공연, 한 번 보실래요? 16. 무용 햄릿 에피소드 -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여러 감정, 말없이 느끼고 싶으신가요? 17. 무용 인아이 - 사랑에 빠진 순간은, 자신의 내면에 솔직해지는 시간이랍니다. 18. 연극 휴먼코미디 - 많이 웃고 힘차게 박수를 치면 기분도 따라서 좋아집니다. 19. 뮤지컬 맨오브라만차(돈키호테) - 무모함도 결국 용기예요. 언젠가는 이루어집니다. 도전하세요. 20. 연극 리타길들이기 - 당신은 살면서 단 한 번도 좋아하지 않을 것 같던 것을 좋아해본 적이 있나요?
[산책편]
21. 국립극장 ~ 동대문 운동장 - 동대문 시장에서 활기찬 삶을 느껴보세요. 22. 건대입구 호숫가 - 머릿속이 복잡하다면 호숫가를 몇 바퀴 돌아보세요. 23. 한양대 살곶이 다리 - 예스러운 분위기에서 자신을 멀리서 바라보세요. 24. 몽촌토성 ~ 올림픽공원역 (소마미술관) - 낯선 이국 땅이라는 상상으로 색다른 기분을 느껴보세요. 25. 남산 계단 - 서울에서 가장 로맨틱한 장소에서 분위기를 내보세요. 26. 화양리 (건대입구역) - 군것질 거리가 가득한 순박한 산책 27. 광화문 ~ 서울역 - 미래와 현재, 과거의 공존 지역에서 대범함을 키우세요. 28. 강남역 ~ 삼성역 - 돈 많이 벌어 잘 먹고 잘 살면 무조건 행복할까요? 29. 홍익대 ~ 이화여대 - 한때 누구나 젊었고, 젊음을 유지하길 바라는… 30. 올림픽 대교 - 마음 수련에 좋은 다리 31. 강변역 ~ 성내역 - 야경이 아름다워 찬란한 삶을 꿈꾸는 곳 32. 대학로 - 순수한 시절에 대한 추억 33. 제기동 ~ 청량리 - 황량함과 소박함이 공존 34. 예술의 전당 ~ 교대역 - 꿈의 공간을 만드세요. 35. 세종대학교 ~ 어린이대공원 후문 - 오래된 공원에서 여유를… 36. 삼청공원 ~ 성균관대 (마을버스길) - 꽃길 따라서 37. 여의도 KBS ~ MBC - 조각공원 38. 정동 길 - 골목에서 골목으로 39. 인사동 길 - 구석구석 숨은 맛집이 많아요. 40. 독자님 산책길
[팬심-사람편]
41. 나를 들여다보기 - 에곤 실레 42. 일상다반사 예술 - 세르쥬 43. 남들과 다른 표현 방식 - 강태을 44. 광기 아닌 성실도 예술 - 권지예 45. 무엇이 잘 안 풀리면 이미 풀렸다고 세뇌하라. 이미지 트레이닝 추천 -남경주 46. 어른이 되려면 소중한 사람이라도 보내줄 줄 알아야 해요 - 이상은 47. 자존심만은 지키세요. 그건 욕심이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는 거예요 - 홍승엽 48. 끊임없는 경계의 발견 - 오르한 파무크 49. 클래식도 과거의 대중문화 - 정주영
50. 미래에서 나를 바라보세요. - 조진웅 51. 첫사랑의 로맨스를 간직하세요 - 이윤택 52. 자신만의 ‘판타지’를 만드세요. - ㅂ양 53. 매너리즘 없는 삶 - 이미도 54. 정신과 스타일이 일치해야 - 강산에 55. 하루 종일 생각하는 몰입하는 일이 있나요? - 이재국 56. 인간적인 인간 - 김제동 57. 예술을 세계시민과 함께 ~ 실제 상황팀 - 강공지, 백호울, 욕고 58. 한 번 굿바이는 영원한 굿바이? - 다니엘 핀지 파스카 59. 자신만의 독특한 말투 찾기 - 양동근 60. 꼬리에 꼬리를 무슨 문제 탐구 스토리텔러 - 이청준 61. 순정 상기 - 백석 62. 추억은 힘이 있다 - 김민종 63. 변화로 거듭나기 - 남궁연 64. 슈퍼 스타 - 정석원 65. 세계관 갈구 - 김규항 66. 좋아하는 것을 할 때 당신의 표정을 아나요? 발견해보세요. - 보드카레인 키보디스트 이요한 67. 성실하고 예민한 남자 - 베르나르 베르베르 68. 사회적 시선 견지 - 이정은 69. 우윳빛 꽃미남, 골수팬 보유 음악인 - 유희열 70. 현실 망각 판타지를 위한 나의 스타 - 언승욱 71. 행복한 난청 - 조연호 72. 매일의 꿈, 매일의 발견, 매일의 성장 - 싱클레어 73. 원기 충천 - 이소연 74. 감정의 신비 발견 - 줄리엣 비노시&아크람 칸 75. 노.이즘 - 안무가 가나모리 조 76. 자아를 향한 움직임 - 벨기에 안무가 시디 라르비 셰르카우위(Sidi Larbi Cherkaoui) 77. 자연을 따르는 삶 - 정영두 78. 돌탑을 쌓는 예술활동 - 신지승 79. 힙합의 꿈을 밀어붙이는 열정 - 김영원 80. 들어주세요 - 모씨
[취미편]
81. 울적한 기분도 물 안에서 녹아버리는 - 수영 82. 만남의 발견 - 소개팅 주선 83. 성실하고 작은 투자 큰 기쁨 - 이벤트 응모 84. 살과 덩달아 출렁이는 설렘 - 댄스 85. 붕 뜬 의자 - 자전거 86. 삶은 돌발적 여행 - 버스로 낯선 곳 가기 87. 추억의 숫자 놀이 - 복권 사기 88. 쓴 맛도 달콤하게 - 사진 에세이 89. 어색한 순간의 용기 - 옛날 친구 전화하기 90. 충동 충만 감정 충천 - 무박 2일 무작정 여행 91. 몸도 마음도 튼튼 - 마라톤 92. 엉뚱 재미쇼 - 퀴즈쇼, 전화찬스 93. 맛으로 위안 - 미식탐험 94. 나쁜 기운 뽑아내기 - 필라테스 95. 쉬엄쉬엄 자연 즐기기 - 등산 96. 타인의 감성으로 나의 고통 무마 - 밤새도록 이불 뒤집어쓰고 영화보기 97. 그림에 홀린 마음 - 타로 카드 보기 98. 사과 한 쪽도 나눠먹어요 - 과일 선물 99. 탱탱한 허리, 탄탄한 마음 - 압박 훌라우프 돌리기 100. ?
공연편
여러분은 공연을 좋아하세요? 무용이나 뮤지컬, 연극 등 여러 스태프와 무용수,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하나의 완결된 무대는 매번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 조금씩 다릅니다. 같은 공연이란 있을 수가 없죠. 똑같은 대사, 동일한 몸짓 같아도 어제와 다르고 내일은 또 달라질 거예요. 그게 바로 라이브 공연의 매력이죠. 공연은 언제 보아도 새롭고 100% 똑같은 감상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취향에 따라 1분이 지루하게 더디 흐르기도 하고, 1시간이 후딱 지나가기도 합니다. 내 인생 최고의 작품이 누군가에게는 최악의 작품이 되기도 하고, 다른 이들은 형편없다고 욕하는 작품이 내 인생을 바꿀 만한 감동을 주기도 하죠. 바로 우리의 하루하루와 참 닮아 있지 않나요? 자신도 주변 환경도… 매일이 반복되는 것 같지만 세심하게 들여다보면 조금씩 변화하고 있답니다. 사람들은 각기 다른 가치관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일상을 대하는 태도도 천차만별이죠. 이렇게 다양한 얼굴과 심장이 한데 모인 세상, 사람들은 의도하지 않은 순간조차 타인을 할퀴고 상처내면서 약하게 살고 있죠. 일상이 괜스레 고달프고 에너지가 부족해졌다고 느낄 때는 공연 한 편으로 삶을 위로하세요. 읽기만 하셔도 좋지만 (글자만으로 오롯이 공연의 매력을 전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직접 보시면 더 힘을 얻을 텐데요. 인간에 대한 애정과 위로를 얻을 만한 공연들을 스무 개 모았습니다.
01
세상 모든 곳에 다 있고 싶지만 몸이 하나니 그건 불가능해 멈출 수 없는 나의 욕망 더 큰 문제는 이제 곧 마흔이 되지만 맘은 아니라는 것
뮤지컬
귀도의 노래 中 , 작사.곡 | 모리 예스톤 (Maury Yeston)
나인 어머니에게 핀잔을 들을 때 혹시 그런 말 들어보셨나요? “너는 네가 너 혼자 된 줄
_ ‘나’를 만든 사람은 도대체 누구일까요?
알지? 부모 고생시킨 것도 모르고…” 여느 드라마 대사에도 자주 나오고, 실생활에 서도 듣고… 아주 흔하게 들으면서 자주 잊어버리는 사실이죠. 인생의 정답인데 말 입니다. 우리는 모두 혼자 큰 것이 아니잖아요? 단짝 친구, 과거 언젠가의 애인, 국어 선생님, 첫사랑의 그 사람, 여행에서 만난 누군가… 스치듯이 지나쳐 버린 많은 사 람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습니다. 바로 지금 ‘당신’에 스며있는 여러 사람을 떠올 려보세요. 그때 그 시기에 ‘그’ 혹은 ‘그녀’를 만나지 않았다면, 당신의 성격은 적어도
01)
얼굴은 길고 마른 형이며, 목소리가 좋은 배우예요. 뮤지컬 ‘쓰릴미’, ‘김종욱찾기’, ‘지저스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씨왓아이 워너씨’ 등에 출연했어요. 샤프한 스타일 을 좋아하는 여성분들이라면 팬을 자처하 셔도 좋을 거예요.
40%는 다른 모습일 거예요. 타인과의 교류에 심하게 영향 받는 사람이라면 99%까지 도 다를 수 있겠죠. 강도 차이는 있을 지라도, 만났던 사람과 함께 존재했던 공간은 당신의 어딘가에 꼭꼭 틀어박혀 있지 않을까요? 심장, 뇌, 손가락 포즈, 언어 습관, 의 식주 취향 등, 주변을 서성이며 떠 있을 거랍니다. 뮤지컬 ‘나인’은 ‘귀도’라는 영화감독을 통해, 바로 그러한 각자의 내면에 물음을 던 지는 작품입니다. 제 인생 최고의 뮤지컬 ‘나인’(nine)을 소개합니다. 페데리코 펠리
02)
허진호 감독, 임수정,황정민 주연의 영화 ‘행복’…사랑의 처음과 끝, 통속적인 로맨 스의 감정을 구체화시켜 보여주었죠. 남자 가 선과 악의 경계를 오가며 연인을 대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니의 영화 ‘8과 2분의 1’을 뮤지컬로 옮긴 작품이죠. 저는 2008년 LG 아트센터에서 뮤지컬을 보고 반해서 대본을 구하고자 오디뮤지컬컴퍼니를 찾아갔습니다. 봄이 채 오지 않은 겨울이었고, 대본을 손에 쥔 채, 얼마나 감격했는지 모릅니다. ‘나인의 여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배우들이 이런 심정이었을까?’ 상상하기도 했지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1순위 노래는 빼고, 2, 3위의 노래 가사 일부를 위, 아래에 적었답니다. 바로 어른이 되어 가는 귀도의 심정을 담은 가사들입니다. ‘나인’은 작품을 어떤 관 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감상할 수 있는 폭이 꽤 넓은 뮤지컬이었습니다. ‘로맨스를 초 점으로 보느냐, 직업관으로 보느냐, 그냥 배우의 팬으로서 보느냐’ 선택하기 나름입 니다. 저는 ‘성장 스토리’로 볼 때가 가장 감동적이었죠. 영화감독인 귀도가 창작력도 고갈되고 일상의 매너리즘에 빠져 헐떡이고 있을 때,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되죠. 그때 수없이 많은 환영, 그가 만났던 여 자들을 떠올리고 실제로 만나기도 합니다. 그러다 결국 그에게 상처가 됐던 경험과 맞닥뜨리게 되면서 어린 시절의 자아를 받아들이게 되죠. 칭얼거리기만 하던 영화 감독 귀도는 그가 받았던 많은 사랑을 되새기고 홀로서기를 인정하면서, 드디어 ‘어 른’이 되는 것입니다. 당신은 어른이 되기 싫은가요? ‘어른’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 다르겠죠. 조선시대 박지원의 ‘양반전’을 보면, 양반 문서를 사려던 평민이 양반의 탐욕 조건 을 접한 순간, ‘싫다’며 두말 않고 달아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저는 양반전을 가끔 ‘어 른전’으로 바꿔 읽고는 한답니다. 남의 것 먼저 빠르게 갈취하기, 자기가 가진 것 내 어주지 않기, 이용가치로 사람을 판단하기 등 권위주의적이고 심술궂은 양반이 하 는 짓은 못된 어른이 하는 짓과 똑같죠. 그런데 또 한편으로 책임지기, 의젓해지기, 아픔을 수용하기 등 나이와 함께 성숙해지는 존재가 어른이라고 보았을 때는 그 어 른이 빨리 되고 싶기도 해요. 다시 말하자면 ‘어른아이’, ‘아이어른’의 공존 단계에 들 어선 분들이 뮤지컬 ’나인‘을 보신다면 폭발적인 감동을 얻을 거예요. 전 황정민 씨 주연할 때 세 번을 연거푸 보았습니다. 영화 ‘행복’의 황정민 씨 모습에 반했던 터라
그랬죠. 황정민 씨와 뮤지컬 배우 강필석01) 씨가 주연을 맡았는데, 황정민 씨 주연 으로만 세 번을 보게 됐습니다. 늦가을에 영화 ‘행복’02)을 보고 반해있던 차라 늦겨 울 ‘나인’까지 꾸준히 그 기분을 이어갔습니다. 대기실에 들어가 일부러 황정민 씨 의 사인도 받았어요. 제 열렬한 응원과 달리 이 뮤지컬은 흥행은 하지 못했습니다. 영화감독이 자신의 창 작욕을 되찾기 위한 여정이, 대중에게는 일상과 동떨어져있고 지루했던 모양입니 다. 감독의 ‘자아 찾기’ 여행이 너무 진지하게 그려진 탓인지 밝고 화려한 분위기의 뮤지컬을 원했던 대중과는 결별하게 됐어요. 저의 걱정은 이제 좀 진지한 내용의 뮤 지컬은 아무도 투자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것입니다. 저는 1층 맨 앞자리에서도 보고, 2층에서도 보고, 보고 또 보았습니다. 혼자도 보고, 친구들을 데리고 가서 보기 도 하고… 할인권을 동원해 작품 홍보에 열을 올렸지만 갈 때마다 객석은 텅텅 비어 있기 일쑤였습니다. 제 인생 최고의 작품을 언젠가 다시 꼭 보고 싶은데 이제는 더 이상 하지 않을 것 같아 걱정입니다. 니콜 키드먼, 페넬로페 크루즈 (제가 좋아하는 두 여배우)가 나오는 영화로도 제작됐다고 하니 영화 개봉을 간절히 기다릴 뿐입니 다. 2008년부터 해외 연예 통신을 뒤지며, 롭 마샬 감독이 ‘나인’을 영화화한다는 소 식을 보고 얼마나 기뻤는지… 특히 주인공을 발견하고 “와우!” 감탄을 거듭했죠. 다 니엘 데이루이스, 페넬로페 크루즈, 니콜 키드만, 케이트 허드슨, 마리온 꼬띨라르, 소피아 로렌… (이 중에 좋아하는 배우가 있으신가요? 저는 모두 좋아해요.) 이 글을 쓰는 동안에는 한국에는 아직 나인이 개봉되지 않았습니다. 2010년 1월 개봉 예정이 라니 … 저도 기다리는 중입니다. 뮤지컬 ‘나인’ 이 궁금하신 분들은 대신 뮤지컬 영 화 ‘나인’을 봐도 괜찮을 거예요. 뮤지컬 ‘나인’, 자신의 자아를 찾고 싶은데 그 방법이 무엇인지 헤매고 계신 분들에 게는 좋은 작품입니다. 그 작품에서 건네주는 대답은 바로 ‘만남’입니다. 과거에 나 와 스친 무수한 사람들, 그들을 한 번 떠올려보세요. 내게 어떤 아픈 기억과 좋은 기 억을 새기고 떠났는지 말이죠. 그렇게 가끔씩이라도 삶을 돌아보고 정리한다면, 지 금 이 순간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잘 할 수 있을 거예요. 만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되니까요. 뮤지컬 ‘나인’은 스치듯 인연을 맺은 무수한 타인들을 향한 고마움, 인간이 은연중에 당연시하면서 잊고 살았던 인연과 자신의 솔직한 자아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입니다. 신발 끈 준비물 무릎의 상처들 공놀이 하며 평생을 보낼 순 없는 일 어른이 되기 배워도 모르지 단순한 진리들 어른이 되기 겁먹을 거 없어 괜찮아 전부 가질 수는 없잖아 모든 사람들은 곁에 사랑이 필요하니 혼자 신발을 매고 학교를 가고 넘어져도 털고 일어나 어른이 되기
02 뮤지컬
빨래 _
‘빨래’는 서울 대학로에서 꾸준히 공연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하고 있어요. “서울 살 이 몇 핸가요?” 아마, 공연을 보고 나오면서 계속 이 노랫말이 입 안에서 맴돌 겁니다. 당신의 서울 살이는 몇 해가 되셨나요?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면서 혹시 상처투성 이가 되지는 않았나요? 그렇다면 얼른 방 안에 쌓인 묵은 빨랫감을 욕실로 가져가서 꾹꾹 누르며 손빨래를 해보세요. 어느 정도 곪은 상처가 날아갈 수 있어요. 뭐든 가 만히 있는 것보다 몸의 일부분, 어느 곳이라도 써주면 기분이 조금은 전환되니까요. 뮤지컬 ‘빨래’에서는 유난히 ‘빨래’하는 인물들을 많이 볼 수 있죠. 단칸방에 각기 힘
객지 생활이 힘드신가요? 낯선 환경이 두려우신가요?
든 사연을 갖고 사는 이들이, 빨래를 하면서 훌훌 뭔가를 털어버리는 거예요. 젊은 남녀는 옥상에서 빨래를 널다가 사랑에 빠지기도 하죠. 빨래를 통해 쿵짝쿵짝! 즐거 운 일들이 많이 벌어진답니다. 특히 극 중에서 몽골 이주 노동자가 등장하는데, 능 숙한 외국인 억양과 수줍은 모습으로 매번 관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어요. 주인공
03)
http://club.cyworld.com/jungmoonsung ‘‘믿음 가는 배우 정문성을 응원해요’ 팬 페이지입니다. 저는 뮤지컬 ‘지하철 1호 선’에서 대학생을 사칭한 외로운 ‘안경’ 역 을 맡았던 이 분을 처음 뵈었고 감동 받 았어요. ‘오! 당신이 잠든 사이에서’ 세속 적이면서 코믹한 신부로 나올 때 또 감탄 한 바람에 꾸준히 1인 홍보 중입니다. 팬들 이 팬클럽도 만들었더군요. 저도 가입했습 니다. 우울할 때는 정문성 씨의 연기를 보 러 가세요. 금세 기분이 좋아집니다. 익살 맞은 표정과 시원스러운 목소리가 매력적 인 배우입니다.
03 비언어극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_ ‘나’를 만든 사람은 도대체 누구일까요?
이 ‘참 예뻐요!’라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객석에서 훌쩍이는 사람도 발견됩니 다. 현재는 정문성03) 씨가 주인공을 맡고 있어요. 대개의 작품이 그렇지만, 빨래도 배우가 바뀔 때마다 분위기가 많이 달라집니다. 각기 다른 멋이 있어, 보고 또 보아 도 괜찮은 작품입니다. 특히 아버지와 딸, 어머니와 아들, 그렇게 공연장에 가셔도 좋아요. 인물 구성이 다양 해서, 어떤 세대에 딱 국한해서 불 작품은 아니랍니다. 도심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찬찬히 위로하는 작품이니, 스트레스가 심한 분들은 꼭 보세요. 극 중 캐릭 터들의 사연 하나하나를 쫓아가다보면, 마음이 따뜻해져서 용기를 얻게 될 거예요.
제 주변에서 공연을 보지 않는 사람도 막연히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라는 이름 은 알고 있는 경우를 꽤 보았습니다. 그만큼 몇 해 동안 유명해진 작품이죠. 작품 원 안을 두고 법정 싸움도 길었고, 이와 유사한 형태의 비보이 공연도 많았으니까요. 제 목 그대로 비보이를 사랑하게 된 발레리나가 등장해서, 비보잉과 발레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넌버벌(nonverbal), 비언어극이라고도 하죠. 그저 춤과 추임새 로 흥을 돋우니, 한국의 마당놀이 같은 어깨 들썩거림을 느낄 수 있어요. 지금은 서 울 홍대 전용관에서 계속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공연보기 입문작이라고 해야 할까 요? ‘공연을 취미로 삼아 볼까?’라고 막연하게 생각하실 때 보면 괜찮을 거예요. 아 니면 친한 동생에게 뭔가 선물해 줘야하는 누나, 오빠, 언니, 형의 입장이시라면 ‘한 턱 쏠 때’ 골라보세요. 공연 중에 사진 찍고, 웃고 떠들고 모두 가능하니 소중한 이 벤트가 될 거예요. 제가 과거에 이 작품을 볼 즈음에는 여러 비보잉 공연을 쫓아다니면서 봤던 시기예 요. 공연을 본 그 날 친구와 서로 설레발을 떨며 프로그램 북을 들쳤던 순간을 잊을
04)
저는 ‘이지댄스’에서 힙합 댄스를 배웠어 요. 특히 여성분들은 걸스 힙합을 배우시 면 되는데요. 마치 득도를 하는 양 , 갑자 기 내 몸이 잘 튕겨진다고 생각될 때가 있 어요. 그것이 설령 착각일지라도 ... ^^ 그 때의 기분은 정말 상큼하답니다.
수 없습니다. 그리고 힙합 댄스04)를 배워보았죠. 보는 것보다 하는 게 더 재미있더 군요. 관절이 자유자재로 꺾이는 비보이, 비걸을 보면서 삶을 리드미컬하게 사는 용 기를 얻게 됩니다. 게다가 자신이 직접 배워보면, 용기를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력을 갖게 되죠. 한 번 시도해보는 건 어떠세요?
04
이 작품은 위에서 언급한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의 작가 이재국 씨가 기획하고 쓴 작품입니다.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의 관객을 보면 청소년이나 20대 초중반 만 있는 게 아니라 일본 관광객, 중년 관객층도 눈에 많이 보입니다. 뮤지컬 총각네
뮤지컬
야채 가게도 마찬가지예요. 어느 세대로 딱 국한할 수 없는 가족 극이죠. 혹시 길가
총각네 야채 가게
에서 ‘총각네 야채 가게’라는 상점 간판을 본 적 있으세요? 바로 그 가게 얘기예요. 젊 은 남자들이 야채 가게를 열어서 성공한 사연이죠. 그렇다면 총각네 야채가게의 ‘홍 보용 뮤지컬’이 아닐까 오해할 수도 있는데, 그렇지는 않아요. 단지 공연 중에 야채 를 많이 나눠주는데, 그 야채들을 협찬해줬다고 해요. 계절별로 싱싱한 야채들을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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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중에 배우들이 객석에 뿌리거든요.
취업 준비생인가요? 세상은 넓고 직업도 많습니다. 열정만 키워보세요.
이 뮤지컬은 이 작가가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새벽 야채 도매상(가락시장)에 다녀오 05)
는 총각들의 사연 을 듣고, 직접 대치동 야채가게에 가서 직원들을 만나면서 시작 됐어요. 활기 있게 일하는 청년들에게 감동받으신 거죠. 그렇게 작품은 탄생됐어요. 가게 이야기를 뮤지컬로 만들어보자고 아이디어를 낸 거였어요. 뮤지컬 내적인 내 용 못잖게, 이 작품을 만들기까지의 스토리가 역동적이에요. ‘유기농 뮤지컬’이라는 부제 하에, 이곳저곳 뛰어다니며 스태프들이 협찬을 받기 위해 움직인 거죠. 지역 농 산물 행사나, 유기농 관련 책, 화장품 등과 연계해서 이벤트를 많이 했어요. 배우들도
05)
대학로 무대뿐만이 아니라 각종 행사에 참여해 짧은 콘서트를 선보였고, 발품 팔아
이재국 작가는 지금 ‘총각네 야채 가게’에 올인하며, 작년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또 다듬어 작품을 올릴 예정입니다. ‘청춘 스 토리’라는 기획사와 극단 ‘청국장’이 함께 하고 있고요. 라디오로 잠시 스쳐지나갈 뻔한 사연이, 그 분에게는 열정을 쏟아 붓 는 작품이 된 거죠. 우연이지만 운명이 된 사건들~ 당신에게는 어떤 게 있나요?
가며 고생하며 작품을 알렸어요. 이제는 아예 행사 전담팀도 생겼답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곳에서, 스스로 흥이 나서 뛰어다닌 적이 있나요? 혹시 이건 ‘내 일이 아니야’라든가, ‘남의 일을 해주고 있다’는 느낌으로 괴로웠던 적은 없나요? ‘내 게 딱 맞는 옷은 무얼까?’ 고민하는 분들이라면, 이 작품을 한 번 보세요. 작품 내외 적으로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청년들, 야채 가게 프린스들을 볼 수 있죠. 바로 에너 지를 얻으실 거예요. 전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생각해요. ‘있다’고 가르치는 사람 들과 타협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세상을 대하는 열정적인 태도는 마음먹기 나름이 지 직업의 종류에 있지 않아요!
05 오! 당신이 잠든 사이
이 작품 역시 대학로에서 수시로 하고 있으니, 언제든 가서 볼 수 있습니다. 관객 의 사랑을 받아 꾸준히 스태프06)가 교체되면서, 작품을 업그레이드하고 있죠. 저 는 21개월 전 겨울비와 봄비가 섞여 내리던 계절에 대학로를 거닐다 무심코 공연 장에 들어섰습니다. 시간이 저녁 7시 55분 정도를 가리키고 있었는데, 문득 8시07)에 작품을 한 편 더 보 아야 한다는 강박이 생긴 거죠. 일에 대한 즐거운 강박이었습니다. 제게는 일08)이 라는 생각은 안 들었답니다. 작품을 보는 순간에도 계속, ‘이건 누가 보아야 감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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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을까?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 뭐 그런 생각을 했어요. ‘오! 당신이 잠든 사이’는 작
소재를 확장하는 재미, 당신의 삶의 소재들은 무엇이 있나요? 넓혀보세요.
가가 충북 음성 꽃동네 이야기에 착안해서, 병원 안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은 것 인데, 각기 다른 환자들과 자원 봉사자, 의사의 사연을 통해 관객에게 눈물과 웃음 을 동시에 주는 휴먼드라마입니다. 코믹적인 대사나 행동이 많이 나오지만, 완전히 웃기기 위한 극이 아니라 극 중 인물들에게 연민을 불러일으키도록 했어요. 저는 혼
06)
자 봤지만, 가족끼리, 친구끼리…누구와 보아도 괜찮은 작품이었습니다.
http://club.cyworld.com/iloveyeonwoo 오!당신이 잠든사이 홈페이지
제가 그 공연을 통해 얻은 것은 ‘정문성’이라는 연기 잘 하는 배우와 ‘장유정’이라는
07)
대사를 맛깔스럽게 쓰는 연출가의 발견이었죠. 정문성 씨는 지금 ‘빨래’를 보러 가
대부분의 작품은 평일 오후 8시, 공연이 시 작됩니다.. 예외적으로 7시 30분에 시작하 는 공연이 있기도 하고요.
시면 만날 수 있어요. 저는 김정훈09)씨가 주인공일 때 봤는데, 지금은 뮤지컬 ‘총각
08)
했다’, ‘금발이 너무해’, 연극 ‘멜로드라마’ 등을 만든 분인데요. 저는 그분이 만든 멜
공연담당기자를 잠시 했어요. 공연 담당 기 자는 공연 많이 보고, 스태프들에게 계속 문의하고 배우를 많이 만날수록 그게 다 일 이죠. 공연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그게 천 직이에요. 저는 ‘정말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한다’ 고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짜 증나는 일이 생겨도 1차 텍스트는 절 배반 하지 않으니까요.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일이 되면 혹시 싫어질 까 두려운 것? 그게 바로 좋아하는 대상이 랍니다. 한 번 생각해보셔요. 일로 하고 싶 지 않은 그 ‘무엇’ 말이죠. 09)
측근에 따르면, 이 분 역시 좋아하는 연극 에 미쳐 있는 분이라고 합니다. 사실 좋아 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게 연극일 수도 있 겠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불평, 불 만 일색인 사람도 많습니다. 좋아한다면 서 변명만 늘어놓는 것은 비겁하지요. 김 정훈 씨는 ‘일은 사람이 이루는 거라 합니 다’ 라고 말한 바 있어요. (‘총각네 야채가 게’ 프로그램 북) 일의 노예가 되지 마시 고, 우리가 일의 주인이 됩시다! 적극적으 로 즐깁시다. 10)
이 분의 작품을 라이브 공연으로 보기에 는 비용적으로 부담이 되신다 하는 분들 은 작품집을 권해드릴게요. 랜덤하우스에 서 2007년 12월에 ‘장유정의 뮤지컬 대본 집-오! 당신이 잠든 사이’를 발간했어요. 서점에서 만 원에 구입하실 수 있고, 국공 립 도서관에서 대여도 가능해요. ‘오 당신 이 잠든 사이’와 ‘김종욱 찾기’, ‘멜로 드라 마’, ‘형제는 용감했다’가 수록돼있는데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은 ‘형제는 용감했 다’입니다. 부모가 돌아가신 이후에야 사랑 을 깨닫는 철부지 형제를 보면서 눈물을 펑 펑 흘리고 말았어요. 코믹과 진지함이 뒤섞 인 작품입니다.
네 야채 가게’의 주인공입니다. 장유정 연출가는 뮤지컬 ‘김종욱 찾기’, ‘형제는 용감 로보다 가족극을 더 좋아합니다. 대학로 극장의 공연 소재를 연애에 국한하지 않고 넓혀가는 게 관객으로서 고맙거든요. 어린 시절 설이나 추억이 되면, 가족끼리 모 여앉아 특집드라마를 봤던 기억이 나요. 장유정 연출10)의 작품을 보면 그때 그 느 낌이 되살아납니다. ‘형제는 용감했다’나 ‘오! 당신이 잠든 사이’는 부모님 효도 선 물로도 좋답니다.
06
첫사랑이 어찌 사나 한 번 찾아보고 싶은데, 만나면 왠지 ‘찌질’ 해질 것 같다고 걱정 하는 분이라면, 뮤지컬 ‘김종욱 찾기’를 보세요. 첫사랑을 찾아나서는 여자와 찾아 주는 남자의 얘기랍니다. 매우 로맨틱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갔다가, 저는 조금 실망
김종욱 찾기
했는데요. 보는 사람마다 감상의 폭이 다르니, 일단 무난한 선택이 될 작품입니다. 과거부터 주르륵 ‘김종욱 찾기’에 나왔던 남자배우들11)은 대부분 여자 관객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어요. ‘어떤 배우가 멋있을까?’ 이상형의 배우를 찾고 있는 여자 관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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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면, ‘김종욱 찾기’로 뮤지컬 입문을 하셔도 좋아요. 정작 이렇게 말한 저는 김종 욱에게 반하지 않았으니, 어이쿠. 죄송합니다.
당신의 첫사랑을 만나고픈 날이 있나요?
제가 이 작품에 반하지 않은 이유는, 저는 ‘직접 인생을 살자’ 주의라서 그래요. 극 중 캐릭터에서 별반 매력을 못 느낀 거죠. 첫사랑을 찾을까 말까 고민할 시간이라면 이 미 만나서 말이라도 해보고, 실망이든 희열이든 ‘직접 겪자’는 행동주의랍니다. 작 품 내적으로는 그렇고요. 작품 외적으로는 이제 극단이 아닌 기업이 맡아 진행하기 때문에 상업주의적인 냄새가 풍겨서 안 좋아해요. 그래도 1000회 공연을 넘겼고 창 작뮤지컬의 흥행 사례라 박수를 칩니다! 무엇보다 저는 OST를 좋아합니다. ‘김종욱 찾기’ 노래를 들으면 기분이 괜스레 유쾌해지거든요. 11)
‘사막에 오아시스가 없다면 어떻게 걷겠어? 환상도 에너지가 된다면 나쁜 거는 없죠. 나쁠 건.’(女) ‘인간은 원래 복잡해서 재밌는 거잖아. 그 안에서 새로운 매력 찾으면 되죠.’ (男)
강필석, 고세원, 김무열, 김재범, 김태한, 박 동하, 성두섭, 신성록, 엄기준, 원기준, 오만 석, 이율, 전병욱…
07 창극
로미오와 줄리엣 _
창극이라고 하면, 왠지 지루할 거란 편견이 있다면, 국립극장에서 하는 ‘젊은 창극’ 시리즈를 보세요. 저는 창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본 이후로, 전통적인 판소리를 좋 아하게 됐는데요. 어릴 때는 TV나 라디오에서 누군가 ‘창’(唱)을 들려주면 지루하다 며 바로 채널을 바꾸곤 했지만, 지금은 귀를 열게 되었죠. 같이 보았던 친구도 마찬 가지였답니다. ‘의외로 재미있네?!’ 동시에 느낀 반응이었죠. ‘젊은 창극’은 국립창 극단에서 고전작품을 새롭게 재해석하면서 젊은 사람들까지 관객층을 넓히기 위 해 만들고 있는 시리즈물이에요. 청, 적벽, 춘향, 로미오와 줄리엣 등을 꾸준히 번 갈아 하고 있어요.
맛깔스러운 언어의 ‘해학’에 녹아들어가 보세요.
저는 그 중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았는데요. ‘우리말이 이렇게 예쁘구나!’ 계속 감탄 했답니다. 살짝 간지러우실 수 있는데요. “생각사록(생각할수록) 생각사록 사무치 는 그대 얼굴, 우연히 사랑의 거미줄에 꽁꽁 묶여버린 나는 한 마리 흰 나비” 뭐 이 런 리듬감 사는 단어의 흐름들도 판소리 굴곡에 맞춰 들으니 어찌나 재미있던지 말 입니다. 주인공이름도 ‘로묘’와 ‘주리’로 살짝 바꿔놓았는데, 그 어감도 익살맞았습 니다. 캐플렛 집안과 몬테규 집안도 ‘최불립’ 집안과 ‘문태규’ 집안, 경상도 대(vs) 전 라도로 나눠 해학적인 풍자극으로 재탄생시켰죠. 배우들이 전라도, 경상도 사투리 를 번갈아 쓰면서, 말의 재미도 한껏 살렸습니다. 판소리에 귀를 열기 시작한 것이 어떤 이들은 ‘늙어서 그래’라고 하는데, 전 달리 생 각해요. 나이가 들면 도리어 귀를 닫게 되는 경우가 많죠. 남들의 취향에 그다지 관 심을 갖지 않게 되거든요. 자기가 기존에 좋아했던 것들을 고수하는 것도 역시 필요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예전에 익숙하지 않았던 어떤 것에 다시 귀를 열어보는 것도 좋은 경험입니다 저는 ‘김광석-장필순-한영애-박학기’ 씨의 목소리를 10대 때는 멀리 했는데 20대 중반 이후 좋아했고, 판소리나 해금, 가야금, 피리 소리를 서 른에 갑자기 즐겨듣게 됐어요. ‘싫다’고 외쳤던 어떤 것들이 어느 순간 불쑥 좋아지 고, ‘좋다’고 고수했던 것들과 구태여 결별하게 될 때, 한 편으로는 서글프고 한 편으 로는 설레기도 합니다. 과거에 싫었는데, 지금은 좋아하는 어떤 것이 있으신가요? 우리 같이 開眼, 開耳 ~ 눈과 귀를 열어 보아요!
08
이번에 말씀드리는 작품은 프랑스 뮤지컬12) ‘로미오와 줄리엣’입니다. 한국에서도 해외 라이선스 뮤지컬로 사와서 그대로 하고 있습니다. 2009년 1월, 2월 프랑스 배우 들이 내한했을 때 보고, 심하게 충격을 받았던 터라 아직 한국판은 보지 않았습니다.
뮤지컬
그때의 감동을 잃기 싫어서요. 그저 ‘그때 그대로’ 간직하고픈 작품이네요.
로미오와 줄리엣
일단 뮤지컬에서는 로미오와 줄리엣만 주인공이 아닙니다. 그들의 부모도, 친구도, 줄리엣의 유모도… 모두 모두 주인공(13)입니다. 각각의 장면 별로, 자신의 심정을 노래하죠. 커다란 줄기는 둘의 사랑 이야기지만, 여러 인간의 보편적인 상처,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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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용서, 화해 정서를 모든 인물에 투영했죠. 저는 금세 ‘로미오와 줄리엣’에 빠져버
우리 모두가 인생의 주연, 주인공이랍니다.
렸습니다. 유모는 유모대로 멋지고,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신부님은 신부님대로 멋 졌던 까닭입니다. 고민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인생이 힘들 때는 마치 ‘나만’ 힘든 거 같죠? 그리고 ‘나만’ 혼자인 것 같죠? 아닐 거예요. 모두 다 상처 하나 씩은 갖 고 있고, 그것을 극복하려고 혹은 인정하려고 발버둥치며 살고 있습니다. 고통의 정 도는 객관이란 게 없어요. 좀 더 커다란 물로 헤엄쳐 나아가세요. 우물에 비친 자기 의 얼굴만 너무 연민으로 바라보지 마세요. ‘로미오와 줄리엣’은 제게 좀 더 넓은 아 량을 가진 사람이 되도록 권해준 작품입니다. 단지 10대 남녀의 목숨 건 사랑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물론 러브스토리 또한 중요하지만요.
12)
http://cafe.naver.com/romeoejuliette 뮤지컬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특히 배 우들의 개인 홈페이지가 링크돼있습니다.
제가 이 작품을 볼 당시, 한국의 김수환 추기경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사람들이 명동 을 가득 메우고 그를 추모했지요. 그 분위기 탓이었을까요? 한 시대의 지성인이 사라 진 공간에서, 극을 보는 내내 화해와 용서, 사랑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원수인 두 집 안의 아들, 딸이 바로 윗세대인 부모세대와는 달리 저돌적인 사랑에 빠진 거죠. 10대 의 무모한 사랑은 결국 죽음으로 끝났지만, 그들의 죽음은 결국 역설적으로 새로운 시간을 여는 희망이 됩니다. 극 중 내용에 심취해서 저는 누가 뭐라 해도 기존의 사 고를 거스르며 새로운 삶을 능동적으로 펼쳐나가야 한다는 설렘과 의무감을 느낀 뮤지컬이었습니다. 현실의 추기경님은 돌아가셨고, 허구의 두 주인공은 죽어도, 결 국 그들의 죽음은 남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퍼뜨리고 살자는 메시지를 전달한 거예 요. 그리고 저는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적극적인 사랑을 하며 생명성이 넘치는 생활 을 하자는 다짐도 했어요. ^^ 극 중의 신부님과 죽은 커플, 그리고 ‘죽음’이라는 댄서 에게 심하게 매료당했기 때문입니다. 한 명의 댄서가 계속 로미오 주변에서 죽음의 전조를 춤으로 보여주는데, 그게 음울하지만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죽음을 고려한 다는 것은 결국 생명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소중하게 돌아본다는 반대말이기도 하지요. 여러분도 이 작품을 보실 기회가 생기시면, 각자 어떤 인물에 매료되는지 작 품을 보실 땐 생각해보세요. 아마 꼭 로미오만! 줄리엣만! 은 아닐 거예요. 저는 유모 와 신부님, 로미오 언더13), 그리고 ‘죽음’이었답니다. 게다가 이 작품은 안무가인 연출가 레다(Redha)가 만든 작품이라 춤이 화려한 뮤지 컬이기도 합니다. 많은 댄서들이 무대 위에서 쉴 새 없이 뛰어다니며 역동적인 에너 지를 쏟아내죠. 극이 끝나면 관객들은 무대 앞으로 뛰어나가 환호를 보내거나 사진 을 찍으셔도 됩니다. 프랑스 배우가 다시 내한한다면 놓치지 마시고, 한국 공연도 계 속될 테니, 주연 중심의 극을 싫어하시는 분들은 챙겨보세요.
13)
미국 드라마 ‘프렌즈’, 한국 드라마 ‘모래시 계’, ‘여명의 눈동자’, ‘네 멋대로 해라’, ‘아 일랜드’, ‘비밀남녀’, ‘우리들의 천국’, ‘내일 은 사랑’… 주인공이 많아서 심취했던 극 들입니다. 지금 내가 숨쉬고 있는 공간 과 시간에서 우리 모두는 들러리가 아닙 니다. 모두가 자신의 인생을 일궈가는 주 인공이에요. 프랑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는 로미오를 맡은 다미엥 사르그가 프랑스 내외로 톱스 타가 되었는데요. 저는 이상하게도 로미오 언더 (주연 배우 대신 예비로 무대에 서는 배우)로 캐스팅 된 다른 배우에게 반했는 데, 그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습니다. 그의 프랑스 홈페이지도 노트북에 링크해두었으 나, 애석하게도 불어를 몰라서 더더욱 그에 대한 정보를 못 찾고 있답니다. 불어를 배 우는 날, 그의 홈페이지에 있는 소개글 들 을 읽어볼까 합니다.
09 사랑하면 춤을 춰라
종로 인사동의 낙원상가에 가면 ‘사랑하면 춤을 춰라’(이하 사춤)를 언제든 볼 수 있 습니다. 이제 낙원상가가 헐리면 사춤의 공연도 다른 곳으로 이전하겠지요. 건물이 사라지기 전에 추억 하나를 만들러 방문해보세요. 예술영화관과 뮤지컬공연장, 악기 상이 공존하는 오래된 건물 안에서, 그 건물만의 독특한 정서를 느낄 수 있으니까요. 현재와 과거가 함께 하는 시멘트 건물 안에서, 미래의 꿈을 설계할 수 있을 거예요. ‘사춤’은 댄스컬이라는 이름으로 공연되는 쇼입니다. ‘사’팀과 ‘춤’팀으로 나뉜 캐스팅 으로 번갈아 공연되고 있죠. 일본 관광 상품으로도 인기를 끌어서 댄서들 중에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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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팬의 지지를 받는 분도 계십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학교에 가고, 사랑하는 사람을
생활이 무료한가요? 열정적인 댄서들에게서 에너지를 얻으세요.
만나고, 결혼하고…그렇게 하나의 직선처럼 주르륵 살아나가는 과정을 춤으로 보여 줍니다. 브레이크 댄스, 재즈 댄스, 방송 댄스 등 온갖 춤으로 극을 엮었죠.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처럼 언제든 사진을 찍어도 되고, 그냥 일어나서 춤을 춰도 괜찮습 니다. 어떤 제약도 없습니다. 제가 공연을 본 날은 장국영과 주윤발의 ‘영웅본색’을 옆 상영관에서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공연을 보면서 제 자신이 80년대 후반에서 90년 대 초반으로 돌아간 느낌이었죠. 토요일 주말 오후, 이덕화 아저씨가 TV에서 ‘토토 즐(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을 진행하시고, 완선 언니가 ‘토요일 오후 그렇게 망설 이던 시간을 그냥 보낼 순 없잖아요.... 춤을 춰 봐요.’라는 노래를 부르고, ‘토요일은 밤이 좋아’라고 열창하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이후에 안 일이지만, ‘사춤’의 기획 사 대표가 과거 015B 콘서트를 프로듀싱했다는 말을 듣고는, 과거의 여운이 잊혀지 지 않았습니다. 저는 015B 팬이었으니까요. ‘사춤’은 그렇게 제겐 80~90년대 추억을 불러일으킨 쇼였습니다.
10
선화 공주님은 남몰래 정을 통하고 서동을 밤에 몰래 안고 가시다? 백제 무왕이 된 서동요와 선화 공주의 관계를 노래한 ‘서동요’는 ‘얼레리꼴레리’ 격의 연애 스캔들이 다. 남녀의 연애를 궁금해 하기는 신라시대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김모 씨가 이모
연극
씨를 ‘어떻게’ 만나 ‘왜’ 헤어졌는지, 그들은 정말 사랑했을까… 사람들이 울고 웃는
클로져
자리에 연애담은 빠지지 않는다. 제가 아니면 제 친구, 그도 아니면 연예인의 사랑 작대기는 수다의 단골메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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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클로져’14)는 이런 연애를 비틀고 비틀어서 남녀의 힘든 감정이 나락에 치닫는
영원히 알 수 없어요.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나면 좀 더 사랑이 수월해질 지도 몰라요.
것까지 보여준다. ‘다미엔 라이스’의 음악 ‘The blower’s daughter’로 한국 관객에게 더 익숙한 ‘클로져’는 2004년 동명의 영화로도 큰 인기를 얻었다. 태희, 운학, 지현, 대현 등 20∼30대 젊은 연인의 얽히고설킨 애증 관계를 보여준다. 이들은 첫 눈에 반했다 고 믿지만, 또 다른 사랑이 나타나 흔들리고… 이로 인한 배신감에 증오하다 결국 다 시 사랑이라 믿고 집착한다. 히스테리를 보이는 전형적인 이별 풍경과 ‘뒤 끝 많은’ 쿨하지 못한 연인의 대화를 여과 없이 들려준다.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황지우 시인의 ‘뼈아픈 후회’처럼 클로져의 모든 장면은 결국 사랑의 폐허다. 이들은 너덜너 덜해진 사랑을 봉인하려다 이내 다시 터트리면서 끊임없이 서로를 할퀴고 만다. 14)
지현 : 다시 생각해봐. 제발. 계속 볼 수 있는 거지? 대답해. 대현 : 안 돼. 다시 보면 못 떠날 테니까. 지현 : 내가 딴 남자를 만나면? 대현 : 질투하겠지. 지현 : 아직도 나 사랑해? 대현 : 사랑해. 지현 : 거짓말! 나한테 이러지마. 이러면 안 돼. 나 잘한 것도 많잖아. 왜, 싫증났어? 내가 그 렇게 질리게 했어? 대현 : 그런 거 아냐. 지현 : 그래도 사랑은 했던 거지? 대현 : 언제나 그럴 거야. 넌 내 인생을 바꿔놨어. 널 아프게 해서 나도 괴로워. 지현 : 그런데… 나한테 왜 이래? 대현 : 왜냐면, 난 이기적이고… 태희랑 있으면 더 행복할 거 같으니까. 지현 : 나 없이? 나 보다 더 널 사랑하는 사람은 없어. 절대. 대현 : 알아.
지현과 대현의 이별 장면 중
애초부터 ‘낯선 사람들’이었는데, 조금 더 ‘가까워’지려다가 역설적으로 생채기를 남 기고 있는 사람들, ‘클로져’ 하지 못한 불우한 ‘스트레인저’를 그린 작품이 클로저다. 체념조로 던지는 많은 욕조차 관객들은 메스꺼움보다 웃음으로 반응한다. 남녀가 다툴 때 던지는 말은 아무리 새롭게 쏟아내려 해도 별반 신선할 게 없다. 여자가 내 뱉은 말은 어디선가 그이가 들은 말이며, 남자가 들은 말은 또 어디선가 그가 쏟아낸 말이다. 미셸 푸코는 ‘성의 역사’에서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의 사랑’에서 구해야 한다고 했다. 무대 안에서도 밖에서도 아무도 ‘있는 그대로의 사 랑’을 찾지 못했는지 클로져는 벌써 일곱 번째15) 공연을 준비 중이다.
2008년 4월에 썼던 글을 그대로 첨부했습 니다. 제 스스로 그 글을 썼던 날의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였습니다. 영화 ‘클로져’를 인 상 깊게 본 까닭인지, 연극 ‘클로져’에는 그 다지 감동을 하진 못했습니다. 이미 경험해 버린 감정을 다시 느끼기란 힘든 것 같습 니다. 예술의 전당 공연을 보고 3호선 ‘남 부터미널’ 역에서 5호선 ‘시청역’까지 오면 서 공책에 적었던 글입니다. 사무실에 들 어가 다시 노트북에 옮겨 적었죠.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예이츠의 시구처럼 우울 한 날이었습니다. 사랑에 냉소적인 기분으 로 글을 적었고, 그렇게 다음 날 매체에 실 었고, 그 날 밤은 바람이 많이 불었고, 광화 문 교보문고에서 인사동까지 옛 친구와 길 을 걸었습니다. 15)
제가 글을 쓴 이후로도 또 클로져는 다른 배우 캐스팅으로 공연을 했답니다. 아마 계 속 되겠지요. 사랑의 정답은 없으니까요. 미국 드라마 ‘섹스앤더시티’를 보면 캐리가 이런 말을 합니다. ‘사랑의 감정은 대체 어 디로 간 거지?’ 그러면 친구가, ‘다른 이에 게 갔다’고 대응하죠. 캐리는 ‘그건 또 다른 감정’이라고 합니다. 그래요. 정말 ㄱ씨와 ㄴ씨 사이에 발생했던 사랑이, 그들이 이별 할 때는 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요? 감정이 란 진실로 휘발성일까요?
11 뮤지컬
헤드윅 _
뮤지컬 헤드윅은 우리나라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죠. ‘김종욱 찾기’ 못 잖게 헤드윅에 출연한 남자들16)도 모두 인기를 한 몸에 얻었습니다. 헤드윅은 이 작품만 수십 번 본 사람들이 속출할 정도로, 마니아 팬을 양성한 뮤지컬입니다. ‘어 떻게 한 작품을 수십 번 볼 수가 있지?’ 대체 이해가 안 간다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 다. 하지만 옛날 유행가 수백 번 몇 년 째 듣고, 좋아하는 음식 매번 또 사먹지 않습 니까? 다른 곳에 쓰는 돈을 아껴서라도 이 공연을 수십 번 보는 팬들의 마음을 이해 합니다. 뮤지컬 배우 강태을, 가수 윤도현…제가 현재 보고 싶은 ‘헤드윅’ 주연들입
사랑은 권력 관계라고요? 뭐 그러면 좀 어떻습니까? 약자라도 행복해요.
니다. 저는 그룹 ‘야다’의 보컬이자 뮤지컬 배우 ‘김다현’ 주연으로 딱 한 번 보았지 만, 그 한 번에도 몹시 감동한 나머지 그 순간을 좀 간직하고 싶은 바람으로 아직 다 시 보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 그때 느꼈던 깊숙이 아린 감정은 이 제 희미해졌지만요. 그냥 ‘헤드윅’이라는 단어만 떠올리면, 저절로 ‘권력 관계’의 아 픔이 떠오릅니다. 사람의 감정이란 게 의도치 않게 시소놀이를 하게 되죠. 그러면서
16)
더 외로워지게 마련입니다.
강태을, 김다현, 송용진, 송창의, 오만석, 윤 도현, 윤희석, 엄기준, 이석준, 이주광, 조 승우, 조정석…
헤드윅은 성전환 수술에 실패한 트랜스젠더 동독 가수의 사연을 다룬 뮤지컬입니 다. ‘스타일리시 락’이라는 부제로 공연되고 있는데, 주인공이 삶의 얘기를 사연과 락 으로 들려주죠. 처음부터 끝까지 무대 위에서 거의 떠나지 않고, 노래와 독백 대사를 읊어요. 저는 헤드윅을 보며 제가 겪은 모든 사랑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 하는 자와 사랑받는 자 그 사이의 ‘우월감’과 ‘열패감’, 온갖 감정의 덩어리들이 ‘헤드 윅’에서는 구체화돼서 나타나고 있었어요. 사랑의 깊이, 변화, 추이, 그리고 집착…용 서까지 질척거리는 감정의 실체가 다 있었죠. 감정의 종합선물세트라고 할 만 했어 요. 사람의 연민이란 선천적으로 획득되는 거라고도 하지만, 상처를 겪은 사람만이 상처 입은 사람을 어루만질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고통이란 세상을 더 넓게, 부드럽 게…바라보게 되는 삶의 선물입니다. 욕하고 울고 발버둥쳐봤자 인생의 답은 나오 지 않아요. 아픔은 받아들이고 그 아팠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면, 세상에는 함께 아 파해야 할 사람도 많고 이타적으로 희생하는 이들도 많다는 걸 알 수 있을 거예요. 성적소수자인 헤드윅은 남과 다른 성별 문제로 고민하는 한 인간인 동시에 아픔을 겪은 모든 사람들의 대변자였습니다. 실연을 겪은 남녀, 까닭 없이 마음이 약해진 분 들이 보고 위로를 받으실 수 있는 작품입니다. 그저 여장 남자 로커의 섹시한 무대 매너에 이끌리고 싶은 분도 관람하시면 괜찮습니다. 각기 다른 개인적 사연을 대입 해서 작품을 즐길 수 있을 거예요. 과거에 제 주변 지인들도 “헤드윅!”,“헤드윅!” 열 광하는 이들이 하도 많아서, 언젠가는 봐야 할 ‘무엇’으로 간주하면서도 계속 피해왔 는데, 결국 보고 나서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할 만큼 푹 빠져버렸습니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헤드윅이 사랑한 남자 ‘토미’의 마지막 대사가 가슴을 찌르죠. 대사를 밝히진 않을게요. 헤드윅을 보고 나서 생각했어요. ‘타인들이 규정한 약자는 결코 약자가 아니다.’, ‘감정의 권력 관계라는 것도 결국 진정한 사랑 앞에서는 그 언 어가 무색해져버린다.’ ‘사랑하는 사람의 행동에 있어서, 선과 악은 무 자르듯 잘라 판단할 수 없다.’ 이러한 여러 철학적 문제의식을 제게 던진 ‘헤드윅’, 참 소중한 작품 입니다. 2008년 소나기가 내리던 여름 날 보았는데, 공연의 여운이 오랜 시간 마음 에 빗줄기로 내리더랍니다. 2009년 겨울이나 2010년 봄, 영화 ‘정글스토리’의 윤도현 을 기억하며, 한 번 가보고 싶습니다. 윤도현이 연기하는 ‘헤드윅’은 과연 어떤 모습 일지… 특히 헤드윅에서 연주를 맡고 있고 함께 간간이 연기도 하는 ‘앵그리인치 밴 드’와 어떻게 호흡할지 궁금합니다. ‘헤드윅’의 음악감독이자 ‘앵그리인치밴드’의 기 타리스트인 이준(기타리스트)이 ‘윤도현의 러브 레터’ 의 음악감독이기도 했기 때문 에,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 보고 싶어집니다.
12
‘향단아 그넷줄을 밀어라. 머언 바다로 배를 내어 밀듯이, 향단아.’ 서정주 시인의 시, ‘추천사(鞦韆詞, 추천은 그네라는 뜻)’가 시작되는 시구입니다. 춘향이는 자신을 저 멀 리 하늘로 밀어 올려달라고 향단이에게 간곡히 부탁합니다. ‘이 울렁이는 가슴을 밀
브레이크 아웃
어 올려 다오!’라며 호소하죠. 그러나 어디로도 자유롭게 갈 수 없다는 것을 춘향이 도 압니다. 결국 ‘서(西)으로 가는 달같이는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고 체념합니 다. 시를 읽다 깨달았죠. 내 삶에서 중요한 건, 부자유를 알지만 자유를 위해 계속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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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를 밀어달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자유란 그런 게 아닐까요? 완전히 소유할 수 없지만, 계속 그네를 밀어 올리듯, 꾸준
어딘가에서 탈출하고 싶다면, 브레이크 아웃을 보고 크게 웃으세요.
히 그 가까이로 다가가는 거죠. 시도하는 그 과정 자체가 중요하고 그 여정에서 행 복해지지 않을까요? 그렇다보면 완전한 자유는 아니더라도, 완전에 ‘가까운’ 자유는 얻을 테고, 그 자유란 것도 행복을 위한 시도였을 테니까요. 어딘가에서 탈출하고 싶 을 때가 있으세요? ‘브레이크 아웃’(탈출이라는 뜻)은 탈옥수들의 이야기랍니다. 비 보잉과 비트박스 등으로 보여주죠. 옥의 티라면, 저는 비트박스가 너무 잦아서 ‘아! 좀 심하다’ 그랬어요. 이건 취향의 문제일 뿐, 코믹한 장면이 많아요. 작품을 볼 때 중요하게 영향을 미치는 게 있죠. ‘누구와’ 보는가 하는 것이에요. 공연 보는 날의 날씨도 중요하고, 공연 볼 때 어떤 고민을 하던 시기였는가도 모두 작품관 람에 영향을 끼칩니다. 혼자 보고 싶은 공연이 있고, 같이 봐야 좋은 공연도 있죠. 브 레이크 아웃은 혼자 보기보다, 여럿이 함께 봐야 좋은 작품입니다. 저는 ‘혼자 볼 때 웃긴 게 정녕 웃긴 것이다’17)라는 이상한 지론을 갖고 있는데요. 그 말은 ‘혼자 봐도 웃기면 진짜 웃긴 거다’라는 거죠. 과거에 제가 ‘무한도전’을 그렇게 봤습니다. 특히 명절 특집 편이었는데요. 지하철 1호선과 무한도전 멤버들이 달리기 경주를 한 거 예요. 그건 볼 때마다 제가 정신을 못 차리고 웃은 기억이 나요. ‘무한 도전’ 말고, 혼 자 봐서 정녕 제가 많이 웃었던 건, 아! ‘주성치 영화’18)가 있고, 그다지 없습니다. 아 마 ‘브레이크 아웃’도 혼자 봤다면 전 그냥 무덤덤하게 보았을 텐데, 친구와 같이 본 바람에 즐거웠어요. 게다가 춤을 전문적으로 추는 사람과 보아서, 공연이 끝나고 줄 줄이 무대 위 댄서들에 대한 평가를 들었죠. 누가 잘 추는 것이고, 열심히 안 춘 것이 고 등… 제 눈에는 보이지 않는 어떤 것들을 작품 관람 후 주르륵 듣고는 신기했어 요. 그냥 ‘탈옥수들의 코믹한 무언극’ 정도로 머릿속에 남을 뻔한 작품이었는데, 함 께 본 바람에 같이 본 사람의 흥분과 감상 평까지 오롯이 제 것이 되기도 했으니까 요. 그래서 함께 보는 사람이 중요해요. 자신이 좀 별로였어도, 타인은 최고라고 느 낄 수도 있고, 또 함께 최고라고 느끼며 박수를 칠 수도 있고… 느낌을 섞어가면서 추억도 배가 되죠. 저는 브레이크 아웃이 비보잉 공연 관람으로는 첫 작품이었습니 다. 테이프를 어떻게 끊느냐가 중요한데, 이후로는 재미가 들려 비슷한 형식의 무언 극을 자주 보러 다녔습니다.
17)
본의 아니게 웃음에 다소 인색한 바람에, ‘제가 웃으면 진짜 웃긴 것이다’라는 근거 없는 저 자신만의 기준이 있습니다. 지난 5월, KBS ‘개그 콘서트’를 녹화장에서 혼자 본 적이 있는데요. 옆 사람들이 아무리 박 장대소를 해도 제게 그 웃음이 전염되지 않 더군요. 그 정도로 심각하게 웃음 결핍증에 걸려있습니다. 그런 제가 ‘행복 지침서’라 니, 사실 이 책은 저를 위함도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 18)
주성치(1962.6.22) 영화는 우습지만 슬픈, 묘한 이중적 감정을 느끼게 합니다. 어떤 이들은 ‘페이소스’라는 용어를 쓰기도 하 죠. 웃고 있지만, 사실상 주인공의 더 깊 은 감정은 슬픔이고 보고 있는 사람도 왠 지 ‘이게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라는 상 황이 되는 거죠. 그렇다고 마냥 슬픈 것도 아니고, 일정량의 희망까지 느껴지고요. 아 주 복잡하지요? ^^ 주성치 영화를 좋아하 는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가 있겠지 만 공통적으로는 슬픔과 기쁨이 동전의 양 면처럼 공존한다는 것을 받아들인 사람일 지도 몰라요. 여러분은 주성치 코미디 영화를 좋아하나 요? 저는 모든 작품을 좋아하는데, 특히 ‘쿵 푸허슬’과 ‘희극지왕’을 아낍니다. ‘쿵푸허 슬’은 무술 내공을 품고 있는 주인공을 통 해, ‘누구나 잠재적인 재능을 갖고 있다’는 제 인생관을 응원해주었고, ‘희극지왕’은 영 원히 꿈을 꾸는 사람의 사소한 용기가 마 음에 든 까닭입니다. ‘희극지왕’에서는 배 우를 꿈꾸는 주성치가 장백지에게 대하는 태도를 보시면, 사랑과 삶의 희망을 얻으 실 수 있습니다.
13 대장금 _ 이상적인 사랑이란 만남을 통해 성숙해가는 거겠죠?
뮤지컬 대장금은 해마다 봄이 되면 경희궁에서 야외 공연으로 볼 수 있습니다. PMC19)가 제작, 홍보를 맡아 했는데 아마 꾸준히 공연되지 않을까 싶네요. 워낙 ‘대 장금’이 드라마로 인기를 얻었기 때문에 후광 효과를 이어가고 있죠. 지금까지 뮤지 컬 대장금을 세 번 공연했는데, 저는 한 번은 비슷한 취향의 친구와 보았고, 한 번은 소개팅 나간 가을날, 소개팅 남과 함께 보았습니다. 둘 다 작품에 굉장히 만족하더 라고요. 저도 고궁 분위기를 느끼며, 드라마 ‘뮤지컬’이 오버랩 된 바람에 꽤 흥미 있 었죠. 경희궁 야외 고궁에서 했기 때문에, 아마도 고궁 분위기에 더 심취한 것 같습 니다. 배우들의 음정이 불안해도, 자연 야경과 인공 조명이 어우러져서 작은 흠들은 그냥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대장금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는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 했는데…’입니다. 아 무래도 이 대사만큼 마음을 울리는 게 없어요. 본질에 대한 갈구, 순수에 대한 견
19)
http://www.i-pmc.co.kr, 탤런트 송승환 이 대표이사를 맡고 있고, 난타로 유명하 죠. 뮤지컬 ‘뮤직인마이하트’, ‘달고나’ 등을 수시로 올려요. PMC에서 올린 작품 중에 서는 ‘형제는 용감했다’도 좋았고, 현재는 삼성동에 있는 코엑스아티움에서 ‘금발이 너무해’를 공연 중인데 배우 김동욱을 보러 갈까 해요. 김동욱은 이윤정 PD가 연출한 ‘커피 프린스’에서 ‘마이찬~’을 외치던 배 우죠. 연기를 잘 해서 좋아요. 얼굴이 필자 의 이상형이기도 해서 좋아합니다. ^^ 공 연장에서 관객으로도 자주 볼 수 있는 배우 예요. 저는 미국 리브루어 연출가의 ‘인형 의 집’을 볼 때 객석에서 얼굴을 처음 봤는 데, 분위기 있더군요.
해? 뭐 이런 식으로 이 대사가 제겐 읽혀서 대장금을 참 좋아합니다. 특히 고미숙 교수가 ‘나비와 전사’라는 책에서 장금이의 이성애를 ‘함께 걷는 사랑’으로 해석한 바람에 더 좋아졌지요. 남녀의 사랑이란 게, 욕망의 대상이라기보다 자아를 발견 하고 성숙시켜주는 멘토로서 존재할 때, 가장 아름답다고 느꼈던 거예요. 제 견해 와 맞아떨어진 바람에, 대장금은 제게 가장 멋진 러브스토리입니다. 장금이는 민 정호와 함께 자아를 찾는 성숙한 존재였거든요. 마치 싱클레어가 데미안을 만나 고, 영화 ‘타이타닉’의 극 중 케이트 윈슬렛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만나 그 만 남을 계기로 끝없이 자아를 찾아나가듯, 인연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한 작품이 ‘대장 금’이었습니다.
에드워드 클루그, 최근에 제가 좋아하게 된 연출가입니다. 슬로베니아 국립 발레단 인 마리보르 발레단의 단장을 맡고 있어요. 저는 그가 2005년에 만든 ‘라디오와 줄리 엣’을 2009년 가을 제12회 서울세계무용축제에서 보게 됐습니다. 당분간 매년 우리 나라를 방한한다고 하니, 이름을 기억하셨다가 이 분의 무용 공연을 챙겨 보시면 새 로운 감정을 경험할 수 있을 거예요. 제가 본 공연은 록그룹 ‘라디오 헤드’의 음악을
14 라디오와 줄리엣
배경으로 ‘로미오와 줄리엣’을 각색한 작품입니다. 저는 이 작품의 시작부터 슬픔이 밀려왔는데, 그 이유는 줄리엣의 죽음부터 극을 시작한 까닭이었어요. 연인의 죽음 이후로 풀어가는 방식이 색다르고 좋았죠. 흑백의 영상도 슬픔을 극대화시켰어요. 영상 내용은 실연을 다루는 보통의 뮤직비디오 같았지만, 영상을 배경으로 한 무용 이 마음에 들었어요. 깔끔한 동작과 단조로운 조명이 감정을 절제하려고 애쓰는 것 같았죠. 선율과 영상으로 쓸쓸함을 확장시키고, 몸동작과 무대 빛깔은 외로운 감정 을 억누르는 것으로 보여 공연에 심취되게 했어요. 원래 어떤 작품을 보든 서서히 감정이 집중됐다가 확 꺼지는 롤러코스터를 타게 하 는데, 이 작품은 달랐어요. 새로운 것을 보고 싶던 제게 깊은 감동으로 다가온 작품 이었습니다. 외로움의 극한으로 치닫는 듯한 라디오 헤드의 음악으로 어쩜 이렇게 절제된 감정의 몸짓을 연결할 수 있을까. 경이로웠죠. 로미오와 줄리엣. 그들은 첫 눈에 반해 사랑의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로 치달은 커 플이 아니었던가요? 그 인물들의 감정을, 음악과 몸으로 조화를 이룬 게 신기할 따 름이었습니다. 클루그의 다음 창작물을 어떨지 굉장히 기대가 돼요. 내년에 방한하 면 공연장에서 감각적인 연출의 클루그를 꼭 만나보아요. 저도 어딘가 객석에 앉 아있겠죠.
_ 슬픔으로 시작한 로미오와 줄리엣, 그래도 아름답죠.
15 아Q 1.5 _
이 작품은 개인적으로 아끼는 작품이라서 이름을 밝히지 않고 감추고 싶은 작품입 니다. ‘아Q 1.5’, 여러분이 보실 때쯤엔 혹시 ’아큐2.0‘이나 ’아큐2.5‘로 진화되어 있지 않을까 궁금하기도 해요. 홍승엽 안무가의 연출작으로 중국 소설가 루쉰의 ’아큐정 전‘ 문학 작품을 무용으로 표현했어요. 무용 공연을 평생 안 보고 살 수도 있는데, 한 번 발을 들이면 빠져나올 수 없는 ‘뭔가’가 있답니다. 이때 처음 관람하는 작품이 굉 장히 중요하죠. 제가 한국 안무가의 공연으로 최초로 만난 작품은 홍승엽 안무가의 ‘뿔’입니다. 뭐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죠. 그런데 뭐라 말로 설명할 수 없
문학과 함께 느끼는 무용 공연, 한 번 보실래요?
는 게 당연하기도 해요. 원래 무용 창작물은 감성으로 느끼라고 만들어놓은 것인데, 제가 너무 조리 있게 공연을 설명한다면 도리어 사기가 될 지도 몰라요. 제가 무용 공연을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 다발적인 이미지들이 머릿속에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무대 디자인을 보고 있으면 그림이나 사진을 보는 것 같고, 무용수들의 몸짓은 시로 읽히고 설치미술로 보이기도 합니다. 회화와 조각, 시, 영상매체 등 많
20)
도쿄는 한국의 봉준호 감독과 프랑스의 레 오 까락스, 미셸 공드리 감독이 함께 옴니 버스 식으로 만든 영화예요. 이 영화를 보 고 나면, 마치 이승철의 ‘마지막 콘서트’ 노 래 가사처럼 ‘밖으로 나가버리고’ 싶을 거 예요 ^^
은 것을 한꺼번에 접하는 느낌이 좋아서였습니다. 아큐 1.5를 보면서, ‘아름다운 것도 독이 될 수 있다’는 미(美)의 경계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무용수들의 마 치 칼을 꽂듯이 인물들이 등에 ‘꽃을 꽂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장면은 영 화 ‘도쿄’20)에서 레오까락스의 영화를 연상시켰습니다. 하수구에 살면서 꽃을 씹어 먹는 남자이자 극 중 주인공 ‘메르드’가 등장하는데, 소외된 사람의 전형을 그린 무 용 속 광인 ‘아큐’의 이미지와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아큐는 노예근성과 자존심을 동 시에 갖춘 중국의 하층 민족이었어요. 결국 누명으로 총살형을 당하는 비극적 인생 을 살지만, 당시 청조 말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보여줍니다. 레오까락스의 ‘도쿄’도 현 대를 도피하려들지만 세상을 냉소하는 캐릭터를 코믹하지만 의미심장하게 그리거 든요. 무용 아큐정전 1.5에 그려진 꽃과 도쿄의 꽃이 겹치며, 저는 이 작품을 매우 슬 프게 봤어요. 개인적인 경험과 연결해 보기도 했죠. 무용을 재미있게 보는 방법이 따 로 있을까요? 일단 떠오르는 이미지들이나 개인 사연이 있으면 공연 보는 내내 ‘딴 생각’을 해보세요. 어차피 공연이란 게 자신의 위안을 위해 보는 것이라면, 너무 작품 해석에 치중하다가 즐겁게 볼 수 있는 작품을 따분하게 보면 아깝잖아요? 공연을 통 해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저의 제안입니다.
살다보면 딜레마에 빠질 때가 있는데, 바로 말은 쉬운데 행동은 어려울 때입니다. ‘~ 해야지’, ‘~해야지’ 수없이 말해놓고도 지키는 게 별로 없을 때가 많고, 그러면 괜한 열등감이나 자기연민에 빠지죠. 사실 부정적 감정에 괴로워하지 않아도 되는데, 괜 히 ‘말을 만들어놓은 바람에’ 그 말을 책임지지 못했다고 자신을 학대하죠. 그게 사 랑하는 대상과의 대화든, 시험을 앞두고 자신에게 건넨 약속이든, 머릿속에서 빠져
16 햄릿 에피소드
나온 ‘말’ 로 자신을 얽어매는 일은 아주 흔합니다. 저는 ‘햄릿 에피소드’를 보며 언어에 구속되지 않은 역동적인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햄릿 에피소드는 대구시립무용단이 자주 선보이는 무용 공연입니다. 영 국의 실험적 공연 축제인 에딘버러 축제에 가서 좋은 반응을 얻고 왔고, 그들이 에딘 버러에 다녀온 직후인 2008년 늦가을 저는 대구에서 이 공연을 보았습니다. 인간의 감정, 특히 햄릿에서 보여줬던 관계들의 감정 선을 매우 빠르고 쉴 새 없는 동작들로 보여줍니다. 숨 가쁘게 한 시간 가량이 훌쩍 지나갑니다. 공연을 보면서, 이후의 1분 1분이 정지해버렸으면 느낄 정도로, 공연이 끝나간다는 게 너무나 아까웠습니다. 그 정도로 짧은 순간 심하게 몰입했던 공연이 ‘햄릿 에피소드’입니다. 대구시립무용단 의 고정 레퍼토리이기 때문에, 아마 계속 하게 될 겁니다. 이 공연을 보시면, 이후에 도 계속 무용 공연이 보고 싶어질 거예요. ‘햄릿을 읽지 않아서’라든가 ‘무용 공연은 어려울 텐데…’ 이렇게 걱정 안 하셔도 괜찮습니다. 무대 위를 멍하니 바라보면, 신 기하게도 증오와 용서, 사랑, 고독, 절망 등의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지실 테니까요. 극을 본 이후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다시 읽든, 햄릿을 보기 위해 ‘햄릿 에피소드’를 보든 관계없을 거예요. ‘햄릿 에피소드’는 오필리어의 ‘사랑’을 시작으로 햄릿의 ‘선 택’까지, 프롤로그를 포함해 일곱 가지의 에피소드로 구성했습니다. 거트루드(햄릿 엄마)의 고독, 클로디어스(햄릿 숙부)의 욕망, 햄릿 아버지 선왕의 분노, 레이티스(오 필리어 오빠)의 절망 등 몇 가지의 감정 빛깔을 매우 역동적인 무용으로 보시게 됩니 다. 속에 꿈틀거리는 많은 감정들, 후회…사랑… 말이 옥죄고 있던 내부의 감정들을 확실히 발산할 수 있는 기회일 겁니다. 밖으로 털어내세요. 이외수 소설가는 ‘위를 비울수록 마음도 비울 수 있다’고 했어요. 몸이 자유로워질수록 정신도 자유로워집니다. 너무 많은 말, 그 말로 인해 생긴 부정 적인 감정들로 너무 오래 자신을 묶고 있지 마세요. 햄릿 에피소드의 인물들처럼 감 정을 발산시켜버리세요. 저는 이 작품을 본 이후에 대구시립무용단의 작품들을 계 속 살피게 됐고, 당시 예술감독인 최두혁 예술감독의 연출작은 어떻게든 보려고 하 는 편입니다. 대구라는 지역이 멀긴 하지만, 공연 티켓 값이 서울보다 저렴한 편이고 차비 대비 볼거리가 많아서 추천합니다. ‘햄릿 에피소드’는 제게는 굉장히 충격적이 고 희망적인 작품이었습니다.
_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여러 감정, 말없이 느끼고 싶으신가요?
17 뮤지컬
인아이 _
‘인아이’는 영국 안무가 ‘아크람 칸’과 프랑스 배우 ‘줄리엣 비노시’가 함께 만든 무용 공연입니다. 2009년 봄에 내한해서 LG 아트센터에서 공연을 했죠. 첫 공연은 영국에 서 2008년 가을에 했고, 한국에 올 때쯤에는 일본과 중국, 미국 등을 돌면서 세계투어 를 하는 시기였어요. 지금 당장 공연을 못 보더라도, 독자들에게 ‘인 아이’ 만큼은 꼭 알려드리고 싶은 제 욕심 때문에 행복 지침서에 담았답니다. 일단 제가 줄리엣 비노 시 팬21)이라서요. 영화 속 캐릭터도 좋지만, 항상 뭔가 새로운 것을 찾아 즐기는 배 우의 성격이 마음에 들어요. 영화배우이지만 무용 공연에도 도전하고, 그 안에서 자
사랑에 빠진 순간은, 내면에 솔직해지는 시간이랍니다.
기의 색깔을 표현하는 것도 멋져 보였죠. 평소 그림도 그리고, 시도 쓰고, 혼자 이것 저것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모습이 팬으로서는 반가웠어요. ‘인아이’(in-i)는 대체 그 럼 어떤 내용이었을까요? 무용이지만, 사실 극의 줄거리가 눈에 확연히 보이는 공연 이에요. 아크람 칸이라는 남자 안무가와 함께 사랑의 감정을 몸동작으로 보여준 거 죠. 대사도 있었어요. 남녀가 사랑에 빠지고 이별하고 그 흔한 과정을, 둘의 시각으
21)
그가 내한했을 때 기자회견장에서 보았는 데요. 줄리엣 비노시는 매우 ‘한국 아줌마’ 스럽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몹시 능청스러 우면서도 건강하다는 느낌을 받았지요. 과 거 ‘퐁네프의 연인들’이나 ‘블루’에서 보던 우울한 느낌보다 도리어 더 강렬하게 밝은 인상이었는데, 그를 바라보며 제 자신이 음 울함과 유쾌함이 동시에 느껴져 기분이 좋 았답니다. 설렌 나머지, 기자회견장인 역삼 동 르네상스 호텔 부근을 ‘좋아라! 좋아라!’ 열심히 중얼거리며 친구와 ‘특별하게’ 맛있 는 것을 사먹은 생각이 납니다.
로 다시 보여준 거죠. 허진호의 영화들처럼 일단 여성 캐릭터가 더 적극적이었어요. 여자가 ‘뭔가 내 주위를 끌만한 것이 없나’ 두리번거리다 한 남자를 발견하고 이야기 를 진행시키는 구성입니다. 여자는 말해요. ‘나는 카사노바, 그를 가져야했어요’ 그리고 슬금슬금 그에게 다가가 죠. ‘You’re my life’ 여자는 남자를 잡아요. 사실 여자는 남자의 마음을 훔쳤다기보다 는 자기를 찾은 거죠. 여자가 하는 대사가 인상적이었어요. ‘내가 스스로에게 진실해 질 용기가 필요했다’는 말이 ‘사랑 고백’의 문장으로 표현됐죠.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이 그 대상을 사랑하는 것 같지만 사실 깊숙이 들여다보면, 내 스스로의 감정에 솔 직해져서 그 감정을 마음껏 즐기는 순간 아니던가요? 사랑에 빠지면 자존감도 더불 어 높아지고, 자신을 알 수 있는 기회도 더 많아지게 되는 건 당연하죠. 줄리엣 비노 시는 그런 사랑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를 무용 안에서 직설적으로 대사로 계속 표현 해줬어요. 여자는 빨간 원피스를 입은 채 검정 타이즈와 검정 벨트로 코디를 했고, 남자는 진한 코발트 블루 상의에 쥐색 정장바지를 걸치고 춤을 췄는데, 정말 남녀 가 잘 어울렸어요. ‘나는 스파이, 당신은 내 목표물’ 이런 짧고 명쾌한 대사들이 유쾌 하기도 했구요. 특히 극 중간에 계속 무대 벽면을 비추고 있는 조명이 바뀌는데요. 인물 심리를 조명 색깔로 표현해줘서, 미술관에 간 느낌이기도 했죠. ‘보라색->자주 색->오렌지색->노란색’ 여자가 남자에게 신비감을 느껴서 쫓아가고 솔직하게 ‘함께 하고 싶다(I want to be with you)’고 말하고, 환희를 느끼는 순간이 색으로 표현되죠. 무대 위의 남녀가 달 리기 시작하고, 여자가 쫓고 남자가 뒤로 한 발짝씩 물러서는 모습들이 굉장히 인상 적이었어요. 동작 하나하나가 섬세하게 느껴지진 않았고 몸짓은 투박했지만, 오히 려 그래서 더 멋지기도 했죠. 줄리엣 비노시는 전문 무용수는 아니잖아요. 마흔이 넘어서 무용을 시작했다고 하 니 몸짓이 완전히 자유롭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거죠. 그래도 근력과 지구력이 놀랍더 군요. 줄리엣 비노시는 물구나무를 서기도 했고, 홀로 고양이처럼 몸을 휘었다 펴기 도 했어요. 남자와 뒤엉켜서 벽에 발을 대고 공중에 떠서 반원을 그린다든지 하는… 꽤 힘들어 보이는 동작도 자연스럽게 보여줬어요. ‘분홍색->보라색->파란색->빨간 색’ 역동적인 몸짓의 두 남녀의 사랑이 진전되고 다시 잠잠해지는 순간에는 꾸준히 조명 색깔이 바뀌며, 관객의 눈을 끌었어요. 극이 매우 어렵다거나 지루하지 않아요. 오히려 직설적인 공연이었죠. 남녀의 미묘한 감정 차이를 마임이나 짧은 단편 영화
처럼 뚝뚝 끊어서 보여줬거든요. 예를 들어, 여자가 남자를 이해 못하는 장면은 화장 실 변기 뚜껑을 계속 올려둔다든가 여자가 열어놓은 창문을 계속 닫는 등 사소한 행 동으로 보여줬어요. 창문이 닫힐 땐 남녀의 그림자가 중앙으로 모이고 보랏빛 조명 이 벽에 번지면서, 사랑의 분위기가 막혀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죠. 남자와 여자가 더 이상 대화가 통하지 않을 때 남자는 술에 취한 듯 소리 질렀고, 여자는 부르르 떨기 도 했죠. 그리고 다시 도돌이표를 그리듯, 남자가 여자를 뒤에서 안아주고 둘은 천장 을 쳐다보다가 함께 돌고, 벽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리기도 하죠. 사랑의 시작과 진행, 이별, 화해… 이 모든 게 크고 작은 움직임과 춤이라고 생각해보세요. 왠지 근사하지 않나요? 아름다운 극을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좋은 공연이었어요. 사실 너무 직설적이라서 좀더 상징적인 공연을 상상했다면, 도리어 실망할 수도 있 을 거예요. 저는 좀 아쉬웠어요. 뭔가 더 감추고 절제하길 바랐던 까닭인지, 확연히 드러내는 사랑의 감정들이 불편했죠. 아크람 칸과 줄리엣 비노시가 경험했다던 수 많은 감정 빛깔이 아주 새롭게 표현된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예상 가능한 스토리로 흘러가는 게 다소 아쉬웠어요. 그래도 일단 연기파 배우와 목소리가 진중한 철학적 안무가가 만나 새로운 예술작품을 탄생시켰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는 작품이지 요. 저는 ‘인아이’를 관람한 후 이 극의 연출자이자 무용수인 아크람 칸을 동경하게 됐는데요. 사실 기대감이 컸던 만큼 실망도 했지만, 그의 궤적을 밟아가는 건 제 인 생에 깨달음을 줄 것 같아 팬이 되기로 결심했답니다. ‘인아이’(in-i)는 ‘내면에?’ 정도 로 해석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은 사랑에 빠진 순간, 내면에 일어난 심리적 변화에 대해서 어떻게 표현했나요? 지금부터라도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감정이 날아가 기 전에 잡아두세요. 아크람 칸과 줄리엣 비노시처럼 움직임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요? 문학가들처럼 언어로 표현할까요? 화가가 되어 그림을 그려볼까요? 사랑에 빠 진 사람은 모두 예술가입니다.
18 휴먼코미디 _
휴먼코미디는 대학로를 비롯해서 지방 투어 공연으로도 여러 번 한 공연인데요. 저 는 지금까지 연극이나 뮤지컬, 무용 공연을 한 번도 안 본 사람일 경우 종종 이 작 품을 추천했어요. 이 극을 보고 나면 보는 것에 재미가 들려서 ‘보기’ 시작하거든요. 연극 속에 세 가지 에피소드를 담아, 각각의 배우들이 1인 다역을 소화하며 분주하 게 연기를 합니다. 지금은 ‘멀티맨’(극 중에서 1인 다역을 소화하며 웃음을 불러일으 키는 사람)들의 활약이 다른 극에서도 눈에 띄지만, 제가 6년 전 이 공연을 봤을 때 는 ‘멀티맨’이 매우 낯설 때였어요. 1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휙휙 사람이 옷을 바꿔
많이 웃고 힘차게 박수를 치면 기분도 따라서 좋아집니다.
입고 다른 목소리와 행동을 보일 때, 어찌나 웃기던지…저는 휴먼코미디를 처음 본 날, 쉴 새 없이 웃어서 목이 쉬어버렸어요. 박수를 심하게 쳐서 손바닥이 다음 날까 지 얼얼했고요. 그 정도로 과하게 좀 제가 이상할 만큼 웃었던 연극입니다. 5년 후 에 다시 이 극을 보았을 때는, 그만큼 심하게 웃지 못해 도리어 서글픈 정도였으니 까요. 짤막한 가족 간의 에피소드, KBS ‘추척 60분’을 패러디한 범인 찾기 에피소드 등이 펼쳐집니다. 극이 끝나면 “맛 좋은 냉면이 여기 있소”라는 노래가 입 안에서 계 속 맴돌 거예요.
19
하루라도 지체하는 건 세상에 대한 손실이라는 생각이 그를 괴롭혔으므로, 자신의 의지를 실천에 옮기는 데 더 이상 머뭇거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무더운 7월의 어느 날 동도 트기 전에 로시난테에 올라탔다. 자기 생각을 어느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그는 조잡한 투구를 쓰고, 방패를 들고, 창을 거머쥔 채 마당 뒷문을 통해 들판으로 나갔다.
맨오브라만차 (돈키호테) _ 무모함도 결국 용기예요. 언젠가는 이루어집니다. 도전하세요.
재치 넘치는 돈키호테가 드디어 고향을 떠나는 이야기 中, 미겔 데 세르반테스
무언가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돈이 없어서, 시간이 없어서, 나이가 많아서…’ 여러 가지 이유로 단념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라만차의 기사’를 만나고 나면, 여러 이유 를 열거하던 그 시간조차 아깝다는 생각이 들 거예요. 소설 돈키호테를 각색한 뮤지 컬 ‘맨오브라만차’는 캐릭터의 우직함과 저돌성을 통해,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뮤 지컬입니다. 자신의 베스트 작품으로 ‘맨오브라만차’를 꼽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로, 뮤지컬을 처음 보는 분들에게도 시작하기 좋은 작품입니다. 저는 정성화, 윤공주 주 연의 ‘맨오브라만차’를 본 적이 있습니다. 두 분 다 연기를 정말 잘 했어요. 함께 본 친 구가 바닥이 울리는 듯한 ‘진동’을 느꼈다면서 흥분했을 정도로, 함께 본 사람의 만 족도가 대단히 컸던 작품입니다. 저는 작품을 본 이후, 소설이 더 보고 싶어서 ‘돈키 호테’(시공사) 책을 다시 보기 시작했습니다. 책 속에 밑줄을 수없이 그어가며 삶을 대하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핑계대지 않는 삶, 무모한 도전… 삶을 즐겁게 사는 비결이겠죠.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이라면,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많은 시간 고민하기보다, 일단 저지른 뒤 후 회를 하든 보람을 느끼든 그 다음 상태의 감정 소비를 경험하는 것도 나쁘진 않습니 다. 인생은 BCD라고 하죠. birth와 death 사이에 choice가 있다고 말이죠. 초이스(선 택)은 누구에게나 중요한 문제입니다. 선택의 시간에 충분히 시간을 쓸 것이냐, 행 동하는 데에 전력을 기울인 것인가…전자, 후자 중 어떤 것을 중시하느냐에 따라 성 격이 달리 형성됩니다. 저는 돈키호테인 편입니다. 햄릿의 우유부단함과 돈키호테 의 저돌성을 섞어서 반 딱 나누어 가지면 참 좋겠지만, 그게 쉽지 않으니 일단 자신 의 성향을 믿는 수밖에요. ‘맨오브라만차’는 성격이 우유부단하다고 고민하는 순간 에 선택하시면, 미지근한 성격을 조금은 보완할 수 있는 좋은 에너지를 주는 작품입 니다. 오디뮤지컬컴퍼니22)라는 제작사에서 해외 라이선스 뮤지컬(연출,안무 -데이 비드 스완)로 주기적으로 무대에 올리고 있습니다. 어떤 고민을 질질 끌고 오래 하는 분이라면, 행복의 방법을 일러줄 수 있는 작품입니다.
22)
2001년에 생긴 뮤지컬회사로 현재 작품 홍 보 대행도 하며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변 하고 있습니다. ‘뽕나무 열매’를 ‘오디‘라고 해서 그 뜻인가 했는데, 이 회사의 오디는 그게 아니라 ‘오픈도어’의 줄임말이라고 해 요. 이 회사에서 제작된 작품은, ‘무대 디 자인을 믿고 볼 수 있다’는 믿음이 있습니 다. ‘나인’, ‘맨오브라만차’, ‘지킬앤하이드’, ‘드림걸즈’ 등…
20 리타 길들이기
당신이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관심 없는 것은 무엇인가요? 제게는 게임? 스포츠? 그 정도를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저도 스포츠와 게임을 잠시나마 좋아했던 적 도 있어요. 살면서 전혀 쳐다보지 않을 것 같던 것에 타의든 자의든 눈길을 돌렸을 때, 삶은 변화하더군요. 제가 가장 애증을 느끼는 분야는 ‘문학’입니다. ‘내가 인생에 서 문학을 좋아하지 않았다면?’이라는 가정을 많이 해보죠. 그랬다면 ‘난 더 발랄한 사람이 될 수 있었을 텐데…’하는 부질없는 미련을 품을 때가 많습니다. 문학을 좋
_ 당신은 살면서 단 한 번도 좋아하지 않을 것 같던 것을 좋아해본 적이 있나요?
아한 바람에 많은 것의 이면을 보는 버릇이 생긴 것 같습니다. 표면적인 것을 보기 보다, 지독하게 뭔가를 파헤치려고만 하죠. 그게 인생에서 장점이 되기도 하고 단점 이 되기도 합니다. 연극 ‘리타 길들이기’를 보면서, 문학을 사랑하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 중 어떤 게 더 아름다운지 생각해봤습니다. 답은 나오지 않았어요. 문학을 사랑하자고 주구장창 부르짖던 사람이었음에도, 회의적이었습니다. 글자로 사고한다는 것은 어쩌면 저 자신을 계속 절제하고 가두는 과정이었던 것도 같아요. 글자가 아닌 춤이었다면, 그 림이었다면, 음악이었다면? 그런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러면서도 글을 가장 사랑 하는 걸 보면, 제게는 너무 애증의 대상이 ‘글자’이지요. 그 때문인지, 아래 글은 저의 애증이 담긴 ‘리타 길들이기’의 소개 글입니다. 연극 ‘리타길들이기’의 비슷한 주제를 보고 싶으시면, 오드리 햅번 주연의 영화 ‘마이페어레이디’를 선택하셔도 괜찮아요. 추신 > ‘리타 길들이기’ 소개 글 ‘나 이대 나온 여자야!’ 영화 ‘타짜’에서 김혜수가 경찰의 제지를 뿌리치며 불쑥 이 문장을 던진다. 이 때 격앙된 음성의 한국어가 묘한 매력을 풍긴다. 연극 ‘리타 길 들이기’의 ‘리타’는 연극 밖에서 고상한 어투로 이렇게 외칠 것이다. ‘나 교양 있는 여자야!’ ‘리타 길들이기’는 왈가닥이었던 미용사 리타가 영문학 교수 프랭크에게서 문학 수 업을 받으며 변해가는 얘기다. ‘교육 받은 여자’가 되길 원했던 리타는 드레스 새로 사는 걸 참고, 대학 문학 강좌를 신청한다. “그런 거 있잖아요. 방에 앉아서 텔레비전으로 발레나 오페라 같은 거 보면서 그걸 쓰레기라 그러잖아요. 왜냐하면 그게 그렇게 보이니까. 이해를 못하니깐. 어떻게 봐야 될지를 모르니까요. 그냥 채널을 돌려버리거나 스위치를 꺼버리고는 ‘저런 찢어죽일 쓰레기’라고 그래버리잖아요. 그런데 그러고 싶지 않아요. 전 그걸 볼 수 있게 되고 싶거든요. 이해할 수 있게요. 제가 욕하는 거 거슬리세요?”
리타와 프랭크 교수의 첫 만남 장면 中에서
뼛속까지 변화를 원했던 리타는 살아오면서 쓰레기로만 보였던 어려운 예술작품 을 공부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매너리즘에 빠져있던 프랭크 교수는 새로운 활 력을 느끼고 리타의 변화에 동참한다. 이 연극은 처음부터 끝까지 리타와 프랭크의 대화로 가득하다. 리타는 프랭크의 질문에 답하고 답하다 결국 대답을 스스로 찾 아간다. 자기가 쓴 보고서를 프랭크가 어떻게 평가할까 노심초사하고 처음 본 셰 익스피어 연극에 감동 받아 넋을 잃기도 한다. 문학은 계몽이 아니라 깨달음이었
다. 하지만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것은 필수! 리타는 프랭크에게 애증의 감정을 느 끼고 힘들어한다. “제가 싫어지신 거예요? 전 이제 교육받은 여자예요. 선생님이 갖고 있는 거 저도 갖고 있어요. 근데 선생님은 그게 싫은 거예요. 왜냐면 그냥 제가 옛날처럼 촌뜨기 무식쟁이로 있으면 좋겠으니까. 선생님도 남들하고 똑같아요. 자기 옆에 있는 사람이 계속 둔탱이였으면 좋은 거죠. 그러면 계속 매력적이고 흥겨운 인간으로 남아있을 테니까. 저 선생님 필요 없어요. 난 어떤 옷을 입어야 될지도 알고, 어떤 연극을 보고, 어떤 페이퍼하고 어떤 책을 일어야 될지 알아요. 나 선생님 없이도 해 나갈 수 있어요. 리타? 리타? 아무도 나 리타라고 안 불러요. 선생님 말고는. 나 그 허세나 부리는 똥 같은 이름 버렸어요. 그 책이 어떤 건지 제대로 알게 되자마자. 이 바보같은… 아무도 나 리타라고 안 불러요”
리타와 프랭크 교수의 갈등 장면 中에서
리타가 성숙한 리타로 거듭나면서 주목할 것은 그의 신발과 원피스, 바로 의상이다. 리타는 점점 검정 구두와 파스텔톤의 코트로 의상을 바꿔간다. 일부러 교양 있는 말 투를 쓰겠다고 목소리를 고쳐보기도 하고, 하이톤의 음색도 자제한다. 생활에서 자 신을 절제하는 법을 익히는 게 행복일까? 마음속에 있는 것을 거침없이 앳된 말투로 쏟아냈던 리타가 결국 문학을 통해 성숙한 리타로 변해갈 때 내면의 변화란 무엇인 지 생각해 보게 된다. 리타는 문학이라는 다른 삶의 재미를 찾지만 날 것의 발랄함을 잃는다. 깔깔거리며 자기를 표현하던 리타와 고전을 음미하게 된 충만한 리타 중 누 가 더 아름다운지는 관객의 몫이다. 이 작품을 보면 관객은 어떤 방식으로든 일상의 변신을 꿈꿀 수 있게 된다. 그것이 문학이든, 연극이든, 리타처럼 활발히 찾아볼 일이 다. ‘리타 길들이기’를 보면 리타의 얼굴이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My Fare Lady)’의 오드리 햅번과 겹친다. 거리에서 꽃을 팔던 오드리 햅번은 언어학자 히긴스 교수를 만나 교육을 받고 완전히 다른 여성으로 탄생한다.
산책편
자동차 족은 잠시 이 편은 접으셔도 괜찮아요. 그저 걷기 위한 사람들만을 위한 거리 코스를 소개합니다. 마음이 답답할 때, 혼자 울고 싶을 때, 무작정 거리로 나서긴 했는데 도통 어디를 가야 할지 망설이는 분들을 위해 마음의 여유를 느낄 길들을 소개할게요.
21 국립극장 에서 동대문 운동장 _ 동대문 시장에서 활기찬 삶을 느껴보세요.
남산 자락에서 동대문 운동장까지는 국립 극장, 장충 체육관 등에서 공연을 본 뒤 제가 자주 걷던 길입니다. 국립 극장 주변의 남산 길과 장충단23) 공원을 지나 동대 문 밀레오레, 두산타워, 평화시장까지는 한 시간 정도의 산책 코스예요. 산길을 내려 와 시장에 당도하고 나면, 한적한 유토피아와 세속적인 인간 세상 즉, 상계(上界)와 하계(下界)를 한꺼번에 경험한 느낌입니다. 인천의 여학생들을 주인공으로 한 성 장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정재은 감독)를 보면, 동대문 영상이 나와요. 성장의 아 픔을 겪는 여학생들의 고민이 번잡스러운 동대문 시장과 야시장의 조명을 통해 드 러나죠. 황량한 인천의 공기와 밤새 불이 켜진 동대문의 야경을 적절히 대조해 가 슴을 아리게 합니다. 힘이 빠질 때는 북적이는 시장에 가라고 많은 사람들이 권합니다. 이유가 있죠. 불경 기라서 시장이 썰렁할 수도 있지만, 사람들이 열심히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기운을 얻게 될 거예요. 특히 도매 시장이 영업을 시작하는 새벽이나 한 밤 중에 동대문에 가보세요. 새벽을 여는 사람들의 생기를 얻게 됩니다. 이제는 동대문이 관광지가 돼 서 외국 여행객들이 많죠. 청계천과 이어진 바람에, 더더욱 사람도 많아졌어요. 까닭 없이 외롭다고 느껴질 땐, 시장에 가세요. 의류 매장과 각종 잡화상, 포장마차의 음식 들을 보면서 힘차게 살고 싶은 욕구를 갖게 될 거예요. 참고로, 많은 잡화들을 신평화
23)
장충단 공원(奬忠壇公園)- 서울시 중구 장 충동 2가 196번지, 조선 고종 때 나라를 위 해 죽은 장병들의 넋을 기리며 제사 지냈 던 공간이에요. 그래서 이름이 장충단이지 요. 충성을 장려하는 제단이 있던 곳이에요 일제 시대에는 일제에 저항하는 항일의 상 징적 의미를 띠기도 했고요. 1919년 일제 가 제사를 금지하면서 동시에 공원으로 만 들어버렸고, 주변에 유곽이 많았다고 해요. 한국 전쟁 이후에는 정부에서 남산과 장충 단 근처를 모두 묶어서 대형 공원을 설립 하려는 재개발 계획을 발표했지만, 무산되 기도 했고요. 현재 서울유형문화재 제18호 인 수표교가 이 곳에 옮겨와 있어요. 원래 청계천 자리에서 물 높이를 측정하던 다리 였죠. ‘장춘단’하면 가수 배호의 ‘안개긴 장 충단 공원’ 노래가 유명하죠. 저는 딱 ‘안 개 낀 장충단 공원’ 그 부분 노랫말만 기 억이 나네요. 제 부모님의 데이트 코스였 다고 들어서인지, 오래되면서도 애틋한 느 낌이 들어요.
시장이나 동평화 시장에 가면 싸게 살 수 있어요. 동대문 평화시장에 맛을 들이고 나 면, 헤어나기 힘들답니다. 마치 월례행사나 연례행사처럼 방문하게 되죠.
22. 건대입구 호숫가 - 머릿속이 복잡하다면 호숫가를 몇 바퀴 돌아보세요. 호숫가 주변 산책은 생각을 정리하기에 가장 탁월한 장소입니다. 호수 안이 세상인 지 호수 밖이 세상인지, 호수 안에 거꾸로 박힌 건물들을 보면서 자신의 고민을 조 금은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게 됩니다. 건대 호수 안에는 오리들이 특히 많은데, 줄 지어 헤엄쳐가는 오리들을 쳐다보면, 마음이 편안해지죠. 그냥 그렇게 꽥꽥거리며 앞으로 가면 되는 거예요. 누가 뭐라 하든, 내 정신 상태가 어떠하든 오리발길질 하 며 열심히 ‘살’ 일이죠. 벤치에 앉아서 자판기 커피나 코카스(cocas, 박카스와 비슷한 맛, 동아 오츠카 제품, 대학 캠퍼스 자판기에 많은 자양강장제)한 병 뽑아 마시면 기 분도 한 결 나아질 거예요. 저는 건대호숫가에 갈 때마다 이육사 시인의 ‘교목’이 떠올랐어요. ‘마침내 호수 속 깊이 거꾸러져 차마 바람도 흔들진 못해라’ 이 구절이 입 속에 맴돌아요. 특히 건대 호수의 야경이 좋은데, 호수 안에 비치는 밤 그림자들을 보면 삶의 에너지를 얻게 되 죠. 호수 저편으로 건대역에서 구의역으로 지하철 2호선의 열차가 지나갈 때, 호수 안에 비치는 길다란 전철 그림자가 예뻐요. 흔들리는 그림자를 보면서, 내가 흔들리 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이제부터 어떤 것도 나를 더 이상 흔들진 못할 것이라며 ‘교목’을 떠올리고 의연해진 채 돌아오죠. 건대호수 주변의 벤치는 워낙 인기가 좋아 서, 자리를 차지하기는 쉽지 않답니다. 호숫가도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호숫가 뒤로 건대부속중학교로 가는 뒷길을 더 좋아합니다.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세월에 불타고 우뚝 남아서서 차라리 봄도 꽃피진 말아라 낡은 거미집 휘두르고 끝없는 꿈길에 혼자 설레이는 마음은 아예 뉘우침 아니라 검은 그림자 쓸쓸하면 마침내 호수 속 깊이 거꾸러져 차마 바람도 흔들진 못해라
22 브레이크 아웃 _ 어딘가에서 탈출하고 싶다면, 브레이크 아웃을 보고 크게 웃으세요.
23 한양대 살곶이 다리 _ 예스러운 분위기에서 자신을 멀리 바라보세요.
24)
미트패킹은 ‘지금 뉴욕에서 가장 힙한(인기 있는)’ 곳이라고 해요. 박준의 ‘네 멋대로 행 복하라’라는 뉴욕 사진 에세이 집을 보면, 창고 같은 건물과 예술이 공존하고 있는 사진을 볼 수 있어요. 첼시의 미트패킹 지 역에 대한 설명을 읽으면서, 저는 서울 뚝 섬이 생각났답니다. 가까운 한강과 중랑천, 서울숲, 살곶이 다리, 아차산 등 문화재와 자연경관이 뛰어나면서 동시에 공장도 빽 빽합니다. 문화와 산업이 극명하게 대조되 는 그 도시만의 매력이 있죠. 제가 좋아하 는 동네입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한양대 역에 내리셔서 조금만 걸어가면, 옛 모습이 많이 남아있 는 살곶이 다리를 보실 수 있습니다. 중랑천과 청계천이 만나는 곳에 있는데, 이 다 리가 조선 전기 때 가장 큰 다리라고 해요. 지금은 매우 소박하게 보이지만요. 이 부 근은 뚝섬 서울 숲이 가깝기 때문에, 도심 안에서 자연 경관을 즐기기에 좋아요. 매 우 아이러니하게도, 서울 숲 부근은 공장도 많습니다. 공장 단지였거든요. 지금도 물 론 공장이 많지요. 공장과 자연이 함께 숨쉬는 특별한 경험을 하실 수 있을 거예요. 저는 가끔 이곳에서 뉴욕 첼시의 미트패킹24)을 상상합니다. 가보지 못했지만, 도살 장과 디자이너 숍, 와인 바 등이 공존하고 쓰레기 더미와 고급 레스토랑이 함께 있 다는 미트패킹이 이런 정서가 아닐까 싶죠. 묘하게 옛것과 지금의 것이 조화를 이 루는 도시. 공장 단지와 숲을 함께 걸어보는 것도 마음을 정화하는 데에 독특한 경 험이 될 수 있을 거예요.
서울 지하철 8호선 몽촌토성 역에 내리시면 바로 올림픽 공원(서울시 송파구 올림 픽로 426) 평화의 문이 보입니다. 지하철 5호선 올림픽 공원 역에 내리셔도 되지만, 출발의 느낌은 몽촌 토성역이 더 강하니 웬만하면 몽촌토성 입구인 ‘남문’에서 시작 해서 ‘동2문’ 올림픽공원입구 역으로 빠지시는 게 공연 분위기를 만끽하기 더 좋아 요. 이래놓고 원래 저는 반대로 동2문에서 시작해 남문으로 나와서 잠실까지 걸은 뒤 거기서 다시 잠실대교 쪽으로 빠지는 산책 코스를 즐겼지요. 아니면 거기서 더 나 가서 청담대교까지 걷기도 했어요. 전 올림픽 공원 안 직장을 다닌 경험이 있기 때 문에, 그 부근 산책 코스는 다양하게 뚫었어요. 퇴근 시간이 일정하지 않은 직업이 라 새벽녘이나 야간, 아니면 한 낮에도 올림픽 공원 일대를 샅샅이 뒤져서 산책하 기 좋은 길을 발견해놓았답니다. 그 부근은 석촌 호수나 잠실 운동장 등 걷기에 좋 은 장소가 은근히 많답니다. 올림픽 공원은 올림픽 홀과 체조경기장, 역도경기장, 펜싱경기장, 테니스 경기장이 모두 공연장입니다. 체육관인 동시에 공연장이죠. 가수 콘서트를 좋아하는 사람들 에게 올림픽 공원은 매우 익숙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어요. 1986년 4월에 생긴 올림
24 몽촌토성역 에서 올림픽공원역 (소마미술관) _ 낯선 이국 땅이라는 상상으로 색다른 기분을 느껴보세요.
픽 공원은 이름이 주는 전형적인 어감 때문에 딱딱하게 느낄 수 있는데 전혀 그렇 지 않아요. 도심 속에 이런 공간이 있나 놀랄 정도로, 조각 작품도 많고 확 트인 초 원도 있습니다. 갈대숲도 아름답고, 노을이 질 무렵, 얕은 산등성이에서 산책의 재 미를 느낄 수 있어요. 봄날에는 말의 행진을 볼 수 있는데, 말이 걷는 모습이 어찌 나 도도한지 올림픽 공원의 세련미와 더불어 묘한 조화를 이룹니다. 잔재미가 많은 공간이라고 할 수 있죠. 낮이든 밤이든 사진을 찍는 사람들에게도 찍을 게 많은 조 각 공원이이에요.
제가 고등학교 시절에 가장 좋아하던 길이에요. 남산 계단 부근은 워낙 좋아하는 사 람이 많아서 제가 추천하는 게 쑥스러울 지경이지만, 행복은 나눠가질 수록 더 부 푸는 법이니 또 추천해요. 여러분도 친구들에게 많이 알려주세요. 남산 계단은 드라 마 때문에 더 유명해졌어요. ‘삼순이’ 김선아 씨와 현빈 씨의 드라마 엔딩 키스신 때 문이에요. 필수 데이트 코스로 각종 인터넷 포털 블로그에 소개되었습니다. 남산계
25 남산 계단
단 옆으로 용산 도서관 길도 석양 무렵에 꼭 가보세요. 전 고등학생 때 그 길을 자 주 다니면서 프러포즈는 꼭 이곳에서 받아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을 정도예요. 그 만큼 분위기가 로맨틱한 곳이죠. 남산 계단 앞으로는 돈까스 집이 많고, 특히 ‘촛불 1978’이라는 레스토랑은 프러포즈 장소로도 유명합니다. 키스타임이 있어, 중간에 조명을 끄고 그윽하게 촛불만을 밝히기도 해요. 평범한 친구랑 가면 도리어 민망한 커플용 레스토랑입니다.
_ 서울에서 가장 로맨틱한 장소에서 분위기를 느껴 보세요.
26 화양리 (건대입구역) _
화양리에서 노유동은 지하철 2호선, 7호선 건대입구 역에 내리셔서 걸으시면 됩니 다. 아니면 좀 더 멀리서부터 걷고 싶다면 지하철 2호선 삼성역이나 지하철 7호선 청담역에서 내린 뒤 영동대교를 건너고, 큰 길 따라 직진하셔도 됩니다. 다리를 건 너는 수고를 하기 싫은데, 조금 더 걷고 싶다면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 내리거나, 지하철 7호선 뚝섬유원지 역에 내리셔서 큰 길 따라 걸으셔도 되고요. 화양리는 건 대 입구 맞은 편 유흥가 주변 골목골목이 모두 해당되고요. 노유동은 건대입구 역 롯데백화점 맞은 편 로데오 거리가 있는데, 그 주변을 모두 포괄합니다. 이 부근과 비슷한 분위기리를 풍기는 곳은 서울의 노원역 부근, 미아삼거리 역 부근 등이 있
군것질 거리가 가득한 순박한 산책
습니다. 일단 의류, 화장품, 분식, 액세서리, 커피 등 각종 가게가 즐비해있기도 하지 만 무엇보다 ‘군것질’ 거리가 많아서, 여학생들의 발길을 끄는 곳이기도 합니다. 특 히 건대 입구에 내릴 때 1번 출구로 나간 뒤 골목으로 쭉 들어가시면 ‘화양 시장’ 으 로 갈 수 있어요. 화양시장은 재래시장이 제법 잘 보존된 곳이에요. 시장 사거리에 서 꼭 꼬치 떡볶이를 사드세요. 그 맛에 기분이 좋아질 거예요. 꼬치 떡볶이 집에서 조금 직진하면 저렴한 족발집이 있는데, 그곳도 대학 자취생들이나 인근 주민들에 게 인기 폭발이에요. 거기서 좀 더 직진하면 닭강정, 치킨 집들이 많이 나오는데 맛 이 좋아요. 더 직진하면 볼링장이 나오니 적은 돈으로 스포츠를 즐길 수 있을 거예 요. 그 부근 물가가 다른 동네와 대비할 때, 매우 저렴한 편입니다. 거기서 군데군데 보이는 골목으로 더 직진하면 놀이터들이 눈에 띕니다. 어떤 골목 으로 들어가도 놀이터가 나와요. 장담합니다. 놀이터가 유난히 많은 동네예요. 원래 건대 유흥가가 예전에는 너무 조용한 주택가였거든요. 골목마다 놀이터가 있었어 요. 과거에는 ‘그 골목 지나면 삥 뜯긴다’고 할 정도로, 사람이 거의 없던 길이기도 했 어요. 놀이터조차 어른들이 못 가게 하기도 했어요. ‘불량 청소년들이 많다’면서…누 구나 말렸죠.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웃겨요. ‘불량 청소년’이라는 불량과 청소년의 단 어 조합도 재밌고요. 실제로 저도 몇 백 원 ‘뜯긴’(?) 경험이 있는데요. 어릴 때 그런 경험들 있지 않나요? “백 원 줘” -_-+ 그러면 주머니에 있는 돈 주고 얼른 도망가죠. 돈 달라는 사람들은 주로 깻잎 머리 언니들. 저는 친구들과 초등학교 때 막다른 골 목 길에 몰려 깻잎머리에 서울 요구르트 한 줄 다 마시는 언니들한테 돈 뺏긴 적 있 어요. (90년대에는 요구르트 다섯 개, 주르륵 빨대 꽂고 마시는 게 유행했죠.) 저는 그 언니들 지나가고 나서, 괜히 신나하다가 친구한테 핀잔을 받은 적이 있었어요. 재미 난 경험이라고 생각했는데, 친구가 무섭다고 울었거든요. ㅜㅜ 건대 입구 유흥가를 지날 때면 어릴 적 ‘삥 뜯긴’ 기억이 떠올라서 웃음이 나곤 해요.
광화문-서울역은 제 단골 산책 코스입니다. 예전에 그 부근에서 근무를 할 때도 그 랬고, 지금도 그렇고요. 광화문에서 서울역까지 걷다보면 가장 자주 마주치는 사람 들은 바로 노숙자들입니다. 서울역은 신경숙의 ‘외딴방’에서도 묘사된 바 있는데, 현 재와 과거가 묘하게 공존하는 분위기예요. 대표적으로 옛 서울 역사의 흔적이 남아 그럴 수도 있죠. 과거에는 서울역 맞은편으로 대일학원이라는 재수학원이 있었고, 떡볶이 가게들이 있었어요. 지금은 재개발로 다 사라졌지만요.
27 광화문 에서 서울역
탐 크루즈가 주연한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극장에서 볼 당시, 전 영화 배경을 서울역 부근으로 상상하고 봤어요. 탐 크루즈는 미래를 예견하며 범죄인들을 잡아들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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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는 자신의 눈동자를 빈민가에서 구할 만큼 그로테스크한 광경을 선보입니
미래와 현재, 과거의 공존 지역에서 대범함을 키우세요.
다. 미래와 과거가 묘하게 어울리는 영화 공간을 보면서 계속 서울역이 떠올랐습니 다. 높은 빌딩 숲 사이로 단정하게 차려입은 직장인들과 각종 화려한 LED 전광판이 서울역 앞을 수놓을 때, 그 주변으로는 노숙자들의 일상과 오래된 가게들이 눈에 띄 죠. 기차 경적 소리를 뒤로, 삼삼오오 모여 있는 노숙자들의 웅성거림이 겹치고 그 주변으로 구두 방의 옛 간판과 대기업들의 전광판이 함께 보이는 곳입니다. 서울역 에서는 지금 세상을 좀 더 넓은 시야로 보게 합니다. 나의 지금 행복도 누군가의 불 행과 공존하고 있습니다. 지금 나의 불행이 타인의 행복과도 뒤섞여 있기 마련이고 요. 함께 사는 세상인데, 같은 공간이 너무나 다르죠. 아프지만 세상이 변해야 할 이 유입니다. 서울역에 가면 동일한 공간이 얼마나 다른 사회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는 지 둘러볼 수 있습니다. 삶을 대하는 깊이를 통해 대범함을 키우게 될지 몰라요. 마 이너리티와 메이저, 루저와 위너… 이런 구분이 철없어 지기도 하죠. 당신이 그리는 세상,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어떤 내용인가요?
28 강남역 에서 삼성역 _ 돈 많이 벌어 잘 먹고 잘 살면 무조건 행복할까요?
저는 굉장히 화가 날 때 이 길을 걷습니다. 저희 집 가운은 ‘정직’과 ‘성실’인데요, 어 린 시절 저 글자를 너무 공책에 쓴 까닭인지, 정직과 성실이 은연중에 저를 구속하 는 게 되어버렸습니다. 일적으로 거짓말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거짓말 하는 도중 얼 굴표정이 너무 변한다거나…뭔가를 성실하게 하지 않았다고 느끼면 자책감이 너무 심해서 저를 괴롭게 합니다. 제게는 ‘성실한 아이 콤플렉스’와 ‘정직한 아이 콤플렉스’가 있다고 제 스스로 진단을 내렸습니다. 저는 자가 진단의 달인(믿을 수는 없는…), 자기 치유 방법 모색의 달인 (검증 안 된…)입니다. 성실, 정직 콤플렉스에 걸린 아이는 나이가 드니 ‘정의 지상주 의’에 걸려서 이젠 부러질지언정 휘고 싶지는 않다고 느낍니다. 강한 자에게 강하고 약한 자에게 약하고 싶고, 현실과 타협하고 싶지도 않아요. 세일러문도 아닌데, 남이 부여하지도 않은 사회적 책임감 같은 것들을 달고 삽니다. 그런 제가 열 받을 때 자 주 걷는 길이 ‘강남’에서 ‘삼성’까지의 길입니다. 이곳을 걷다보면 대한민국의 단면이 보입니다. 밤 늦게 이 길을 걸으면 대리운전을 기다리는 기사들과 취객들, 룸살롱 앞 에서 대기하고 있는 손님들, 마이크를 착용한 업소 직원들을 많이 볼 수 있어요. 특 히 삼사오오 술에 취한 양복쟁이들이 ‘~님’, ‘~님’하며 위계질서를 지켜가며, 술집으 로 들어가는 모습이 꽤 흥미롭죠. 취기에 오른 순간조차, 상하 관계를 챙기고 돈독히 하는 그들. 왠지 제게는 가장 재미없는 풍경이기도 해요. 낮에는 매우 깔끔하게 자신 을 포장한 양복 입은 직원들이 가득하고, 밤에는 바로 넥타이를 풀어 헤친 흐트러진 사람들이 가득한 공간… 테헤란로는 낮과 밤이 매우 극명하게 바뀌는 곳이에요. 주 야가 확연히 다른 이곳에서 과연 삶에서 중요한 가치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됩니다. 돈, 섹스, 권력 … 그 어떤 가시적인 욕망과 비가시적인 가치 중, 당신은 무엇이 좋은 가요? 주철환 씨는 방송에서 ‘1억을 모으기보다 추억을 만들라’고 강의를 하더군요. 인생에서 ‘주민번호’와 ‘통장계좌번호’와 ‘통장잔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몇 명 의 사람을 ‘행복하게 해줬느냐’라고… 저는 그 말에 동의해요. 특히 테헤란로의 밤거 리를 보면, 제 삶의 가치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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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대에서 이화여대까지는 젊은 대학생들의 색깔 있는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거리 예요. 아무리 늙어도, 이 곳에 가면 덩달아 젊어지는 기분을 느낄 거예요. 어릴 때는 호기심을 충족하러 가고, 나이 들어서는 젊은 피를 수혈25) 받으러 가는 공간이죠. 저
홍익대 에서 이화여대 까지
에게는 현재 진행형의 길이기도 하구요. 특히 이 주변에서는 특이한 옷차림을 하고 있어도 하나도 특이할 게 없고, 조금도 어색할 게 없어요. 매우 역동적이면서도, 구 석구석 조용한 카페들이 숨어있죠. 저는 보세 옷을 사거나 콘서트를 보러 홍대에 자 주 가요. 홍대 정문 앞 맞은 편 네스카페나 스타벅스, 투섬 플레이스 등 흔한 테이크 아웃 커피숍에서 커피 한 잔 사놓고서, 무수한 행인들을 보고 있으면 시간이 너무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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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가버려요. 저처럼 전형적인 커피숍보다는 본인이 발견한 비밀 장소 하나쯤은 만 들어도 좋겠죠? 아지트라고 할 만한, 익숙한 공간을 만들고 싶다면 산울림 소극장
한때 누구나 젊었고, 젊음을 유지하길 바라는…
옆 골목 커피숍이나 홍대 주차장 근처 골목 구석구석으로 가세요. 조용한 공간을 좋 아한다면 지하철 2호선 합정역 7번 출구로 나가서 ‘당인리 발전소’를 물어 가세요. 이 부근의 황량하면서 고즈넉한 분위기에 금세 반하실 거예요. 이대 정문 부근의 스타벅스는 10년 전만 해도 남자 동료 몇 명이 ‘미스코리아 커피 숍’이라 부르며 꼭 가야 할 장소라고 추천해준 곳입니다. 그 단어가 참 웃겨요. 미스 코리아라는 단어가 주는 올드한 느낌도 그렇고, 이제는 너무 흔한 스타벅스26)가 그 때는 찾아서 가야 할 곳이었다니. 재미있지 않나요? 워낙 유명해서 저도 얼리 어댑 터가 되겠다고 한 번 가보았는데, 신기하긴 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이런 깔끔하고 모 던한 장소에서 커피를 마시는 게 새로웠으니까요. 90년대에 커피숍에 대한 환상이 라면, 레이스 장식 많이 달린 탁자와 푹신한 소파에서 비엔나커피를 마시는 것쯤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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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ffinement(정제된 세련미), everyone can do everything (누구나 뭐든 할 수 있어), Kein Mensche ist illegal(인간이 아닌 것이 불법이야) 대학가를 걷다보면 기성세대의 가치에 도전하던 68혁명의 여러 구호들이 머리를 스쳐요. 젊음의 특권을 젊기에 소 중하게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공간이 홍대 부근이죠.
로 생각했거든요 90년대 중후반, 친구들끼리 20대가 되면 가장 하고 싶은 일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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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커피숍 죽치고 있기’였으니까요. 이제는 커피숍 거리는 신사동 가로수 길로 옮겨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스타벅스 위치 는 서울 역삼역 2번 출구 앞 스타타워 로 비에 있는 커피숍입니다. 이 곳의 야외석을 좋아해요. 왜냐하면? 이 곳에 앉아서 일을 했던 적이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주변에서 들려오는 대화 소재들이 재미있거든요. 한 번 들어보세요. 사업하는 사람부터 밤에 일 하는 사람, 연예인 지망생 등 강남권의 주 요 대화들을 듣게 되곤 하죠. 저는 제 일 하 면서, 다른 사람 얘기 듣는 것을 좋아해요. 그게 아는 사람이 아니라도 주변 소음(?)이 다 들리거든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이가 굉 장히 산만한 성격이라서 그래요.
갔죠. 이미 이곳도 유행했으니 별달리 새로울 건 없고, 이제 다음 해에 인기를 한 몸 에 받을 거리는 어디일까 찾아봐야겠죠. 유행을 먼저 예감하고 싶다거나, 색다른 아이템을 보고 싶을 때면 홍대 앞으로 가세 요. 홍대의 특징은 자유와 무모한 시도, 색다른 발견이니까요. 그런 홍대도 옷가게와 술집이 워낙 많이 생겨서 상가 인테리어 안에으로 홍대 분위기가 묻혀가는 게 아닌 가 싶기도 합니다. 예술이 일상이 되고, 예술로 돈을 벌어야 하는 것도 당연하지만, 기업 주도의 문화 공간이나 축제를 보고 있으면 굉장히 씁쓸하죠. 더 독립적으로 움 직이는 아티스트들이 홍대에 많아졌으면 하는 게 제 욕심입니다. 여하튼 어떻게 도 시 모습이 흘러갈지 서울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젊음의 거리입니다. 꾸준히 새로운 스타일로 변신하면서, 자유의 정신은 변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30 올림픽 대교 _
“그대 안에 다 있는데, 왜 바깥 풍경만 기웃거리느냐?” 고진하의 ‘신들의 나라, 인간 의 땅’27)이라는 책을 읽으며, 저는 이 구절이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제 안에 다 있 는데, 왜 항상 바깥으로만 그 답을 찾으려고 분주히 돌아다니는 걸까요? 최근에는 자기 내면의 울림에 귀를 기울이라는 선지자들의 말이 유행하고 있죠. 관련 책도 굉 장히 많아요. ‘내 속의 아이’를 찾도록 도와주는 책도 많고, 정신과 진료도 각광을 받 고 있습니다. 현재의 스트레스에 대해서 근원적인 문제점을 어린 시절의 상처에서 찾는 것이죠. 소설을 많이 읽다보면, 항상 인물들의 ‘상흔’ 연구에 몰두하게 됩니다. 원형적 체험, 그가 어린 시절에 겪었던 충격적인 경험과 이로 인한 상처의 흔적이 어
마음 수련에 좋은 다리
떤 식으로 외부로 드러나게 되는지 찾는 것이죠. 이런 책 읽기 습관인지, 저는 제 스 스로 상처를 찾고, 이를 어떻게 없애야 하나 많이 몰두하는 편입니다. 물론 저뿐 아 니라, 저와 가장 가까운 사람의 삶도 이런 식으로 분석하죠. 이때 모범답안은 항상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고, 자신의 과거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저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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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살다보니 ‘앞’만 바라보게 됐습니다. 뒤를 바라보는 것
인도 이야기. 책을 통해 참자아를 찾아 떠 나는 여행에 동참할 수 있다. 인도에 가서 사람을 보았고 자신의 내면을 본 작가의 에 세이다. (www.kojinha.net) ‘자비보다는 무 심이 낫다’, ‘왜 죽음을 두려워하는가’, ‘울 면서 살아온 생애, 웃으면서 떠나라’, ‘땅에 날개가 닿지 않는 새와도 같은 존재의 가벼 움’ 등 사색하기 좋은 주제들과 인도를 묘 사한 풍경이 신비롭다.
은 쓸데없다는 것이죠. 찬란한 미래만을 그리는 게, 긍정적인 자아를 찾는 데에 도움 이 된다고 여러 자기 계발서들이 권유하고 있는데요. 저는 반대 입장입니다. 긍정적 인 사람이 되려면, 과거의 자신과 꼭 만나야 해요. 계속 눌러버리고 없애고 싶던 부 끄러움의 시간이라든가 고통의 시간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해요. 언젠가 강원래 씨 의 인터뷰를 읽는데, 그가 이런 말을 했더군요. 고통에 관해서는 ‘극복이 아니라 인 정’이라고 말이죠. 우리는 어릴 때부터 ‘극기’라는 것에 길들여져 있어요. 하물며 학 창 시절에 ‘극기 훈련’이라는 것도 해마다 연례행사처럼 다녀오잖아요. 입시를 치를 때면 일기장이나 문제집 곳곳에 ‘극기’라는 말을 써놓곤 합니다. 물론 그 또한 중요 하지만, 이제 자신을 제어할 수 있는 정도의 나이가 되었다면, 극기보다는 ‘어루만지 는’ 일이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타인이 나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필요한 존재는 자기입니 다. 자신이 자신을 끌어안지 않으면, 스트레스와 상처는 계속 될 테니까요.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 느껴질 땐, 혹시 더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는지 과거의 순간을 기억하 시고, 그 당시 덜 어루만져주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보세요. 고통조차 추억이 되는 경 우가 많습니다. 나를 오롯이 인정할 때, 삶은 행복해지지 않을까요? ‘자기 안’에 모두 다 있습니다. 단지 나와 대화할 시간이 필요할 뿐이죠. 올림픽 대교는 다소 청승맞을 지라도, 자신과 대화하기 참 좋은 곳입니다. 다리를 건 너는 동안 많은 낙서를 볼 수도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다리를 건너며 시험, 실연, 생계 등으로 고민을 했고, 그 흔적을 다리 위에 적어놓았습니다. 심지어 ‘죽고 싶다’는 낙서에는 다른 이가 응원해주는 문구까지 적혀있을 정도입니다. 누구나 많 이 힘들고, 각기 정답을 찾기 위해 애쓴 흔적들을 보면서 자신을 추스를 수 있을 거예 요. 올림픽 대교는 지하철 광나루 역이나 몽촌토성 역과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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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싶은데 남 눈이 부끄러운 분들이라면, 이 길을 소개할게요. 야경이 너무 예쁜 ‘잠실철교’입니다. 깊은 우울증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해주세요. 일본의 어떤 다리는 풍경에 매료돼서 사람들이 자주 뛰어내리는 바람에 자살률이 높은 다리라는
강변역 에서 성내역
오명을 얻었다고 합니다. 잠실철교는 아마 ‘살고 싶어지는 다리’로 기록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이 길을 걸으면 양 옆으로 한강이 흐르고 지하철이 지나는 것을 보게 됩니 다. 사람이 의연해질 수 있어요. 계속 무언가가 길게 흐르고 있으니까요. 어떤 고통 도 결국 흘러간다는 진실을 알게 되죠. 지하철 안의 피곤한 도시인들과 한강의 고요 함이 대조돼서 은근히 멜랑콜리한 분위기에도 잠기게 합니다. 생각을 정리하고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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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을 가다듬기에 참 좋은 길이에요. 옆으로 벗어날 공간이 아예 없기 때문에, 너무
야경이 아름다워 찬란한 삶을 꿈꾸는 곳 .
밤늦게는 지나가지 마세요. 저는 잠실철교가 예쁘다고 밤늦게 걷다가 무서운 취객 을 발견하고 부리나케 뛰었는데요. 그만 아끼던 샌들을 잃어버리고 말았어요. 이후 로는 아주 늦게는 안 가고, 사람들이 야간 운동할 정도의 시간에만 지나갔어요. 성내 역에서 잠실 철교로 들어서기 전, 굴방다리도 예뻐요. 잠실 철교는 강변역과 한강과 이어지기 때문에 놀 수 있는 곳도 많아요. 강변역 테크 노마트 CGV28)에서 영화도 볼 수 있고, 강변터미널이 있어서 여행객의 정취도 느낄 수 있죠. 바로 근교로 떠날 수도 있고요. 한편으론 강원도로 복귀하는 군인들이 많 은 터미널이라 괜스레 슬퍼지는 공간이기도 해요. 떠나보내는 사람과 떠나는 사람 이 공존하는 곳이죠. 왠지 저는 강변터미널만 가면 쓸쓸해지더라고요. 김영하 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내 마음의 신파’일 거예요. 김영하 씨가 영화 에세이 집 ‘굴비 낚시’ 산문집에서 자신은 어떤 경우에든 ‘시네마 천국’의 영화 음악만 들으면 눈물이 난다 고 했어요. 자동으로 감성을 건드리는 어떤 것들이 있잖아요. 저에게는 공간으로 따 지면 강변역 터미널과 용산역이고, 노래로는 드렁큰 타이거의 ‘난 널 원해’와 유승준 의 ‘니가 뭘 알아’ 정도가 떠오르네요. 스무 살 즈음의 그때로 돌아가거든요. 트로트 노래 가사마냥, ‘아주 그냥’ 슬퍼져요. 대학 시절 친구들끼리 자주 가던 ‘창고’라는 맥 주집이 있었어요. 이 곳은 이유 불문, 날씨불문, 들어가면 무조건 ‘센치해진다’고 해 서, 친구들끼리 ‘센티미터’라는 사조직을 만들어서 수다를 떨던 곳이에요. ‘센치한 사 람들의 모임-센티미터’ 이름 참 웃기지 않나요? 원래 기분이 좋아지는 공간을 소개 한다는 게 저도 모르게 우수에 잠기는 공간으로 넘어가 버렸네요. 그만큼 아련하게 아프면서 아름다운 장소이니, 야간에 한 번 꼭 가보세요. 잠실 철교, 혹시 성내역에서 시작한다면 아파트 사이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동네 주민들에게 길을 물어보면 돼요. 저도 그렇게 찾아갔답니다. 성내역에서 아파트 단지 사이를 지나면 한강 입구 가 나타나요. 지하도 굴방다리를 지나면 확 트인 한강이 보이는데, 그 터널 사이의 기 분이 끝내줍니다. 어둠 뒤에 밝음이 나타나는, 희망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에요.
28)
CGV는 1998년 생겼는데, 제가 최초로 간 ‘멀티플렉스 영화관’이었어요. 테크노 마트 위에서는 한강을 내려다볼 수 있는 야외 전 망대가 있는데요. 올림픽 대교와 송파, 하 남 근처를 볼 수 있답니다. 야경 보기 좋은 장소예요. 제가 거기서 최초로 봤던 영화는 ‘화이트 발렌타인’이에요. 박신양과 전지현 이 주연이었죠. 한 겨울, 영화 분위기에 취 하고 멀티플렉스라는 사이보그틱한 영화관 에 마냥 신기해했던 기억이 나요. 이후로는 작은 영화관들이 사라져버려서 멀티플렉스 가 비호감이 되어버렸지만, 언제나 그렇듯 첫 느낌이란 소중하니까요. ‘화이트 발렌타 인‘ 영화 OST를 좋아했고, 그 안에 들어있 는 ’Once upon a dream’ (지킬앤하이드 뮤지컬 음악)을 귀 아플 정도로 들었어요. 1998년 2월의 영화. 박신양의 청승맞은 모 습과 전지현의 앳된 모습을 볼 수 있답니 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와 비슷한 분위 기일까 기대하며 봤는데, 그보다는 못했지 만 나름 즐거웠던 영화로 기억돼요. 좋았으 니 OST를 샀겠죠. 10년도 더 전에 본 영화 라서 확실히 기억나지 않지만, 영화 소품들 이 예뻤던 건 확실해요.
32 대학로 _
대학로29), 뭔가 매너리즘에 빠져 허우적대는 분이라면 이곳을 추천합니다. 새롭게 약동하는 분위기에서, 삶의 사소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곳이죠. 다른 대학가와 는 또 다른 풋풋한 기운이 있습니다. 저는 아무리 슬픈 날이라도 대학로에 가면 기 분을 가다듬게 됩니다. 야간 업무를 많이 하던 일을 할 때도, 하루에 5분이나 10분 은 꼭 대학로에 가서 걷다가 집으로 들어가곤 했을 정도였습니다. 대학로는 제게 ‘순 수’의 공간입니다. 오랜 세월, 같은 장소에서 다른 에피소드를 쌓아가다 보면 저절 로 그 곳에 대한 나름의 이미지가 생기게 되죠. 저는 대학로를 10대 이전부터, 사랑
순수한 시절에 대한 추억
했습니다.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이 그곳에 있기 때문에, 초등학교 때는 거기에서 신부님이 되기 전의 젊은 수사님들을 만났던 곳이에요. 성당 주일학교를 열심히 다 녔는데, 주일학교 선생님들과 친구들과 가톨릭 신학대학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곤 했습니다. 서정윤의 ‘홀로서기’ 시를 초등학교 시절에 그곳에서 처음 읽었는데, 어떤 수녀님이 건네주신 까닭이에요. 중학교 때는 연말마다 학교 교지를 만들러 찾
16)
아갔고, 대학로에서 문화생활을 하는 고등학생, 대학생 언니들을 취재하고 글을 쓰
대학로 1번 출구 앞, 돌에 새겨진 시
곤 했습니다. 동경의 장소였죠. 친구들끼리 교지를 만들면서 대학로 KFC나 맥도날
함석헌, 그대는 그 사람을 가졌는가?
드에서 생애 최초로 패스트푸드를 먹으며 환호했습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제가
만 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 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 울 때에도 ‘저 마음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 아다오’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 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 을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라’ 일러줄 그 사 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 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 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 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 대는 가졌는가
중학교 시절에 친구들끼리 ‘웬디스’나 ‘털보네’ 패스트푸드점에 가는 게 유행이었어 요.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보면 감우성과 엄정화가 처음 만나는 곳이 바로 대 학로 4호선 혜화역 2번 출구 옆 KFC입니다. ‘아니 무슨 소개팅을 패스트푸드점에서 하지?’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패스트푸드점’, ‘24시간 편의점’ 등은 과거 젊은 세대들 의 아이콘이기도 했죠. 그것이 이젠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과 ‘패밀리레스토랑’으 로 바뀌긴 했지만요. 대학로에도 현재 테이크 아웃 커피 전문점과 각종 체인 음식 점이 많이 생겼습니다. 그래도 대학로하면 무조건 소극장이 먼저 떠오르죠. 관객층이 강남권으로 이탈해서 주말에도 분위기가 한산한 편이에요. 괜스레 쓸쓸한 기분도 들지만, 그래서 더 나름 의 매력도 있답니다. 어차피 이렇게 사람이 많지 않을 양이라면, 현재 대학로를 사랑 하는 사람이라도 지켜야 하지 않나 싶어요. 소극장의 공연들은 뻔한 로맨스를 올리 기보다 각종 실험 공연을 더 많이 올리고, 대학로를 중심으로 소규모 공연 축제들도 더 많이 생겨야겠죠. 대학로는 새롭고 젊은 문화가 탄생하는 곳이지, 상업적인 문화 가 재탄생하는 곳은 아니었으면 합니다. 몇 달 전 대학로에서 축제가 열린다는 말에 가봤는데, 모든 팸플릿이나 현수막은 TV 매체의 유행어를 쫓아 썼고, 공연의 형식도 다른 축제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에 실망한 적이 있습니다. 대학로에 연예인들이 나 오는 공연에만 관객들이 몰리는 것도 씁쓸했어요. 그럼에도 자주 대학로에 가는 건 실험적인 시도 자체가 멈추지 않았고, 대학로를 사 랑하는 사람은 계속 의리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저는 대학로라는 공간 을 정말이지 사랑하는데, 어떤 식으로 보탬이 되어야 할지는 아직 방법을 찾지 못했 어요. 대학로를 저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함께 얘기해보고 싶은 주제이기도 해요. 대학로의 갖가지 정보를 ‘비로소’에서도 모아볼 테니, 기대해주세요.
청량리는 청량리 역 근처 제기동 시장부터 롯데 백화점까지 구경거리가 많아요. 특 히 강촌, 대성리, 춘천 등 경춘선을 타고 모꼬지를 떠나는 곳이 청량리(혹은 성북 역)역이라서, 봄, 가을이면 대학생들이 모꼬지 가러 많이 모여들죠. 청량리 역 시계 탑을 보자면, 기분이 20대 초반으로 돌아가기도 해요. 그곳에서 조금만 더 가면 외대, 경희대, 한국예술종합학교 등의 대학이 있죠. 80~90년대의 소박한 정서가 골목골목 남아있어, 아날로그적으로 기분이 포근해질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33 제기동 에서 청량리
한편으로 청량리 역 옆은 과거 588이라 이름 붙은 업소들이 있던 자리라서, 황량한 분위기도 풍겨요. 청량리, 화양리, 종암동, 영등포, 용산 등… 갇힌 공간 속에 마네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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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럼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면, 삶이 너무나 쓸쓸해지죠. 과거 정육점에서 볼 수 있
황량함과 소박함이 공존
는 핑크톤 불빛도 너무 싫어요. 돈을 벌기 위한 직업이, 애초에 가진 돈에 비례해서 결정되는 예로 보이기 때문이에요. 굳이 문학 작품의 정서로 비유하자면 오정희 소 설가의 ‘중국인 거리’에서 보이는 분위기와 비슷합니다. ‘중국인 거리’는 미군기지 가 있는 근처 사창가 주택가, 차이나타운을 배경으로 조숙한 여자 아이들이 등장하 는 소설이에요. 전쟁 후 인간성 상실의 시대를 ‘난 양갈보가 될 테야’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소녀와 그 곳에서 풍기는 나른한 냄새와 노란 색깔로 표현하죠. 꼭 한 번 읽어볼 만한 단편 소설이에요. 가슴이 허하면서 무언가 채우고 싶을 때 읽기 좋 은 성장 소설입니다.
34 예술의 전당 에서 교대역 _ 꿈의 공간을 만드세요.
예술의 전당에서 연극이나 무용, 미술 전시를 보고 나서 감동이 벅찰 때 제가 걷는 곳이에요. 남부터미널에서 교대 역까지이니 전철로 하면 두 정거장밖에 안 돼요. 법 률사무소가 많고, 교대 근처 법원이 있다보니, 굉장히 사무적이고 딱딱하게 느껴지 는 곳이에요. 그래서 더 재미있어요. 저는 작품을 보고 기분이 들떠있는데, ‘00 변호 사’ 등의 간판을 보고 있으면 조금 누그러들거든요. 왠지 감성과 이성이 한데 공존하 는 듯, 묘한 기분을 느끼게 돼요. 교대 역 앞에는 곱창 집도 많아서, 맛집 탐방에도 좋 죠. 저는 교대 역에서 멈추지 않고, 고속터미널 역이나 강남 역까지 걷기도 해요. 그 만큼 별로 먼 거리는 아니에요. 어쩌면 제가 무지막지하게 많이 걷는 것일 수도 있 는데, 제 체감도로는 짧은 거리라서요. ^^ 작품을 관람한 뒤, 생각을 정리하기 좋더 라고요. 어릴 적 한때 인권변호사, 무료변론변호사를 꿈꿨던 적이 있어서, 더 애착 이 갔던 공간이기도 해요.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 공부가 안 되면 혼자 가서 무작 정 걸었던 곳이거든요. 왠지 미래 꿈을 생각하면서 그곳을 걸었어요. 노무현 전 대통 령 책이나 배금자 변호사의 책에 반했던 때였어요. 저는 어떤 희망사항이 생기게 되 면, 그 희망사항과 관련된 공간에 먼저 길들여지려고 해요. 우선 ‘김칫국 먹기’ 전략 인데요, 그 공간에 가 있는 내 모습을 그리다보면 꿈이 현실이 되기도 하죠. 저는 워 낙 꿈이 자주 바뀌고, 다량의 꿈을 갖고 사는 ‘꿈쟁이’라서, 좋아하는 공간이 한두 군 데가 아닌 게 문제이긴 합니다. 어릴 적부터 서울 곳곳을 헤집고 다 돌아다녔답니다. 독서실 책상을 덮은 두꺼운 유리 아래로 서울 지하철 노선도와 서울 지도를 깔아놓 았어요. 그때 세계지도를 깔아놓았어야 했는데…^^ 제 10대 때 꿈은 소박해서(?) 서 울 곳곳을 돌아다니는 거였어요. 그래서인지, 20대 때는 서울 구석구석을 돌아다녔 고 요새는 나이가 들다보니 전국 곳곳으로 뻗어가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세계 전역 으로 확장하려고 해요. 그러자면 갈 곳이 심하게 많아서 ^^;; 제 책장에는 여행서들 만 세로로 책장 끝부터 아래까지 채우고 있어요. 모두 미래에 가볼 도시들이에요. 머 릿속에 그리면 다 이뤄진다잖아요. 저는 신문이나 방송 등 매체의 내용은 그대로 받 아들이지 못하는 편인데, ‘꿈꾸는 대로 이뤄진다’는 평범한 진리는 100% 믿어요. 지 극히 개인적인 얘기만 늘어놓았지만, 이 글을 읽는 분들도 그런 꿈의 공간이 있을 거예요. 꿈의 장소를 벌써 다녀온 사람도 많을 거예요.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해요. 꿈의 장소를 실제로 안 가면 좀 어떻습니까? ‘상상’이라는 거창하면서 유치한, 그런 즐거운 놀이가 있는데 말이죠. 저는 현실이 아닌 꿈과 상상 속으로는 이미 여러 곳 을 여행했어요. 꿈속에서는 이미 만화 ‘시간탐험대’ 돈데크만이나 ‘모래요정 바람돌 이’ 못잖게 돌아다녔어요.
세종대학교 정문 앞은 어린이 대공원 정문이고, 어린이 대공원 후문은 구의동 근처 예요. 대공원이 워낙 대규모라서 동네를 몇 개를 끼고 있는지 모릅니다. 어린이 대 공원은 놀이동산치고는 너무나 어른스러워서,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잘 안 들어요. 어릴 적에 이곳에서 놀던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도로 찾아가는 공원이라 는 느낌이 더 세죠. 실제로도 공원에 들어가면 중장년층, 노년층이 참 많아요. 세대 를 아우르는 공원이라는 장점이 있죠. 놀이시설이 워낙 오래돼서 어쩌면 아이들은 더 싫어할 수도 있어요. 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 생들에게 추억의 공간이죠. 저는 어릴 때 어린이날만 되면 어린이대공원에 가는 게 연례 행사였거든요. 롤러스케이 트도 그곳에서 탔고, 대관람차도 그곳에서 처음 타봤고, 코끼리, 사슴, 호랑이, 사자, 노루, 원숭이 등도 거기서 처음 봤어요. 경사진 잔디밭에서 떼굴떼굴 구르면서 노 는 것도 그곳에서 해봤고, ‘말뚝박기’ 놀이도 거기서 했죠. 요새는 가끔 가수 콘서트 갈 때 방문하는데, 옛날 분위기가 그대로 살아있어 괜히 정겹고 그래요. 대공원 안에 대형 공연장이 있거든요. 예전에는 공원 입장료를 받았지만 이제는 무료예요. 제가 10대 때는 아침 7시 이전에 들어가면 공짜라서, 자주 7시 이전에 들어가서 동네 주민 으로서 동네친구 만나듯 동물 구경하고 그랬어요. 새벽 6시부터 야외음악당에서 에 어로빅이나 체조 등 무료 체육 강습도 있어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제 10대 이전과 10대 시절의 추억이 오롯이 박힌 곳이 어린이 대공원입니다. 맞은 편 세종대학교도 산책하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아요. 학교가 큰 편이 아닌데, 들 어가자마자 운동장이 있고 운동장 오른편으로 밴드 연습실이 있어요. 대학교의 낭 만을 느낄 수 있어요. 아무리 달라졌다고 하지만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사라지 지 않으니까요. 종종 밤에 가서 밴드 연주를 들으면서 운동장에서 산책을 하곤 했는 데, 정신건강에 좋았어요. 동네 주민이 아니라도 가볼만한 곳입니다.
35 세종대학교 에서 어린이대공원 후문 _ 오래된 공원에서 여유를…
36 삼청공원 에서 성균관대 (마을버스길) _ 꽃길 따라서
봄에 벚꽃 필 무렵이면 꼭 가셔야 할 곳입니다. 서울 여의도가 벚꽃 길로 유명하지 만, 다소 한적한 곳을 원하신다면 이 곳을 추천합니다. 걷기 싫으실 땐 그저 마을버 스를 타시고 가셔도 좋습니다. 서울 종로의 YMCA앞이나 낙원상가 근처 연희궁 앞, 안국동 사거리 덩킨도너츠 앞에서 마을버스를 타시면 갈 수 있습니다. 종점은 성균 관대 후문입니다. 마을버스 중에는 중앙고 방향도 있는데, 그 버스를 타게 되면 ‘겨 울연가’의 촬영지인 ‘중앙고’에 도착하게 됩니다. 이곳은 낙엽 떨어지는 가을 무렵이 나 겨울에 가면 좋습니다. 인사동에서 걷기 시작해서 운현궁을 지나 삼청동으로 건 너갈 수도 있어요. 최지우, 배용준이 된 듯, 사랑에 빠진 고등학생 커플의 기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예요. 일본인들의 필수 관광 코스가 됐죠. 제가 개인적으로 ‘아끼는’ 곳은 종로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성균관대 후문에서 내리 면, 버스 내린 곳 앞으로 옥류정이라는 정자를 보게 됩니다. 왠지 허름하게 느껴지지 만, 친구들끼리 크게 노래 부르고 놀기 좋은 공간이에요. 야외에서 소규모로 놀아야 하는 분이 있다면 적극 추천합니다. 성대 후문에서 내리면, 다시 오르막길을 타고 올 라가서 오른쪽으로 빠지면 성북동으로 이어지는 성곽길이 나옵니다. 다이어트 운동 하기에도 좋고, 한적한 곳에서 친구와 대화를 나누기에도 탁월한 장소예요. 벚꽃 흐 드러질 때 가보세요. 일본 영화 ‘4월 이야기’나 애니메이션 ‘초속 5cm’를 보면서 저는 우리나라의 그 길을 연상했어요. 벚꽃 길로는 서울의 여의도나 잠실 아파트 단지가 유명하지만, 이 길을 전 더 좋아해요. 봄과 가을에는 꼭 가보세요. 가을에는 성균관 대 정문 앞에 600년 넘은 은행나무가 있어서, 장이모 감독의 영화 장면 못잖은 붉고 노란 색채감을 느낄 수 있어요. 영화 ‘영웅’에서 장만옥과 장쯔이가 은행나무 숲에서 싸우던 장면 아시나요? 우리나라에서 그런 장면을 찍으려면 성대 정문으로 가야 해 요. ^^ 은행잎이 비로 내리는 곳입니다.
여의도 KBS 신관부터 MBC 본사 건물 사이에는 은근히 볼 게 많답니다. 무엇인고 하니 바로 ‘조각물’, 원래 건물마다 조각물을 설치해야 하는 규정이 있잖아요. 그래서 높은 빌딩숲인 여의도는 조각숲이기도 합니다. 전철타고 서울을 지날 때 가끔 ‘교회 십자가만 봐야지’라든가 ‘노란 물탱크만 봐야지’하고 마음 먹고 보면, 굉장히 웃음이 날 때가 있거든요. 여러 무리 속에서 ‘월리’ 친구를 찾는 그림책인 ‘월리를 찾아라’(마 틴 핸드포드)를 볼 때처럼 재미난 놀이로 즐길 수 있어요. 여의도의 조각들이 그렇 죠. 5호선 여의도 역 부근에 있는 HP 건물 앞에 있는 ‘형형색색 물고기 분수대’는 이 미 유명하기도 해요. 그 앞에서 저도 쑥스러움을 감수하며 열심히 사진을 찍기도 했 는데요. 그만큼 조각 공원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곳이 여의도랍니다. 여의도에서 항 상 스트레스 받는 일을 하고 있다면, 그곳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의식 못하게 될 수도 있는데요. 마음 비우고 산책코스로 받아들이면 그곳만큼 아름다운 빌딩숲도 국내에 선 드물죠. 저는 한때 여의도 빌딩의 조각물을 모조리 사진 찍어서 사진과 관련한 글 을 쓰겠다고 사진과 글을 모은 적이 있었어요. 여의도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인데, 그 게 제가 일적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었죠. 모든 건물의 조각을 다 찾지는 못했지만, 지금도 가끔 도전하고 싶은 ‘놀이’이기도 해요. 전지현, 장혁 주연의 영화 ‘여친소’를 보면, 전지현이 죽은 애인의 영혼 때문에 죽음을 모면하는 순간이 나오는데요. 바로 여의도 증권가예요.(광화문 세종로 부근도 나옴) 조형물도 눈에 띄죠. 전지현이 하늘 에서 떨어지는 곳, 바로 여의도 앞 한화증권 로비 커피빈 옆 골목이에요. 그곳은 서 울에서 바람이 역력히 세게 부는 곳이라고도 해요. 건물과 건물 사이에 공기 흐름이 막혀서 다른 장소보다 더 차게 느껴진다고 하네요. 실제로 겨울에 그 길을 걸으면 얼 마나 추운지 말도 못해요. 회오리 바람이 분다니까요. 찬바람 쐬고 정신 차리고 싶으 면 그 골목에 들어가세요. 확~ 정신이 돌아올 거예요. ^^
37 여의도 KBS 에서 MBC _ 조각공원
38 정동 길 _
시청역 대한문 옆 정동 길은 데이트 필수 코스죠. 그 곳을 지나가면 헤어진다는 속 설이 있지만, (이혼서류를 떼는 공 기관으로 인해) 뭐 속설이란 것도 깨져야 재미있 잖아요. 자주 가셔도 무방할 듯해요. 계절 분위기를 확연히 드러내는 고궁 돌담길을 놓칠 순 없죠. 시청 방향의 정동 길 초입에는 ‘유림’이라는 국수집이 있는데요. 이 집 의 메밀과 돌냄비가 정말 맛있어요. 이젠 워낙 자주 먹어서 저는 좀 둔감해지긴 했는 데, 안 가보신 분들은 꼭 가보세요. 점심 때 가면 줄이 길어서 기다리기 힘들어요. 정 동 길을 따라 이화여고 부근으로 가면 프로방스 스파게티 집이 있는데, 이 집은 친 구끼리 오래도록 수다 떨기 좋고, 정동극장 안에 있는 레스토랑 길들여지기는 우아
골목에서 골목으로
하게 데이트하기 좋아요. 저는 정동 길에 가면, 경향신문사 건물까지 걸어가서 왼편으로 꺾은 뒤 서대문 문화 일보 건물 즈음까지 또 걸어요. 오른 쪽으로 틀어서 다시 중앙일보까지 걷고, 거기 서 서울역까지 가죠. 기분이 내키면 숙대까지 가도 괜찮아요. 숙대 정문 앞으로 가 서 좀 더 오르막길로 걸어 올라가면 백범 김구 선생님의 기념관이 있는 ‘효창공원’이 나오죠. 효창공원도 야경이 예쁜 곳이에요. 정동 길을 시작으로 한 산책코스는 정말 이지 셀 수가 없네요. 정동 초입에서 프라자 호텔 옆으로 걸어가서 롯데 백화점 명 품관 쪽으로 빠지면 명동이고, 정동 초입에서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걸어가면 경복 궁까지 걸을 수 있고, 청계천을 따라 가면 동대문까지 가니까요. 서울의 중심이라서, 어디로든 뻗어갈 수 있죠.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 세종로이기도 해서, 저는 이 구 석구석을 잘 알아요. 영풍문고가 부근에 처음 개업했을 때 유덕화가 내한해서 그곳 에서 팬 사인회를 했어요. 달려갔는데 글쎄 줄이 너무 길고 사고 위험이 있다고 중 간에 팬 사인회가 취소된 추억도 있고, 광화문 근처를 쏘다니며 공부하고 일하고 여 러 추억을 쏟은 탓에 지금도 틈만 나면 가는 곳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청계천 은 아주 좋은지 모르겠어요. 거대한 인공 호수 같은 느낌이 들어서, 저는 인공적인 구조물보다 구석구석 박힌 좁은 골목길들을 찾아 나서면서 재미를 찾아요. 정동길 주변은 길이 끊임없이 이어져서 좋아요. 삶과도 연결짓곤 하죠. 어떤 어려움이 닥쳐 도, 직진하든 꼬불꼬불 돌아가든 희망은 이어진다는 저의 유치찬란한 다짐을 투영 할 수 있는 골목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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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들이 우리 문화를 유일하게 느낄 수 있는 서울 거리, 인사동… 자주 가시나 요? 전 한정식을 먹고 싶을 때 자주 가요. 골목 구석구석에 저렴한 한식집이 많거든 요. 삼청동도 비싼 한식집만 있을 것 같지만 구석으로 들어가면 대로변에 있는 음식
인사동 길
값의 반도 안 되는 식당이 숨어있어요. 저는 안 가본 곳을 좋아해서, 무턱대고 모르 는 곳에 들어가는 통에 그렇게 발견한 식당이 많아요. 인사동에 가시면 큰 길을 따 라 있는 상가들만 구경하지 마시고, 일부러 골목 구석, 건물 지하 등으로 들어가 보
_
세요. 새로운 맛집을 찾을 수 있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가게는 익히 유명한 곳이 긴 한데, ‘툇마루’라는 된장집이에요. 인사동 사거리 골목에서 위쪽으로 몇 걸음 안
구석구석 숨은 맛집이 많아요.
올라가서 오른쪽 좁은 골목으로 꺾으면 바로 보여요. 제가 좋아하는 필자인 ‘남재일’ 수필집(추천 책 제목 - 그러나 개인은 진화한다, 나는 편애할 때 가장 자유롭다)을 보면, 뭘 먹을까 고민할 때는 그냥 ‘비빔밥’을 먹는다는 글이 있어요. 저자의 아버지 가 저자에게 추천한 음식이라는데요. 글쓴이는 비빔밥과 한국사회를 빗대어 글을 썼죠. 제 아버지도 ‘뭘 먹을까 고민될 때 먹으라’고 추천해준 메뉴가 있는데, 바로 ‘된 장찌개’예요. 아버지는 저보고 항상 ‘밥은 꼭 챙겨먹으라’고 하시면서 무조건 ‘된장 찌개’를 먹으라고 하셨어요. 이유는 좀 쑥스러운데, 된장을 많이 먹으면 얼굴이 어려 진대요. ^^ 된장이 항암효과도 뛰어나지만, 몸속의 노폐물을 제거해서 노화를 막아 준다고 해요. 그래서 메뉴 선택으로 고민할 때는 무작정 ‘된장’을 먹어요. 인사동과 된장, 뭔가 푹 삭힌 느낌이네요. 인사동 길 초입에는 돌 의자 위로 김삿갓의 시30)가 적혀있는데, 심금을 울려요. 사람 간의 일로 힘들 때는 자연으로 위로받을 수 있다
30)
해질 무렵 남의 집 문을 두드리니 주인놈은 손을 휘저으며 나를 쫓는구나 두견새도 야박한 인심을 알았음인지 돌아가라고 숲에서 울며 나를 달래네
- 김삿갓
는 해법을 제시하는 시죠.
이 글을 읽는 독자가 가장 좋아하는 길은 어디인가요? 혹시 알려지지 않은 길이라 면, 제게도 살짝 알려주세요. 저도 직접 가볼게요. 정보는 공유하라고 존재하는 것! 독점하지 말고 나눠보아요. ^^ baram4u@gmail.com 저는 꾸준히 추천할 만한 좋은 산책길을 수집(?)할 생각이에요.
40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길은 ?
팬심편
41번부터 80번까지는 흠모할 만한 사람과 그와 관계된 것들을 추천하는 항목이에요. 이미 팬이라면 그냥 살짝 넘어가시면 되고, 모르는 이라면 인터넷 기사를 검색하든 그의 작품을 감상하든, 삶의 궤적을 따라가 보세요. 자신이 존경할 사람, 좋아할 사람을 만드는 것도 삶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비결이에요. 저는 삶이 도통 재미없다고 느껴질 때는, 제가 흠모할 사람을 찾아 나서요. 그리고 과거에 스쳤던 사람들에게서 한 가지씩이라도 제가 본받을 점을 다시 생각해보곤 하죠. 그러면 금세 용기가 생겨요. 당신의 가슴을 뛰게 할 만한 사람이 있나요? 가까운 친구이든 공인이든 자신만의 스타를 찾아보세요. 결국 자신이 행복해지는 게 가장 필요한데, 31)
스타들의 장점 을 흠모하다보면 자연스레 자신도 그런 장점을 갖게 되고, 어느 순간에는 스스로가 스스로의 스타가 되는 거죠. 가수 이한철의 ‘슈퍼스타’ 노래 가사처럼 말이에요. “인생의 슈퍼스타”는 바로 자신이에요. 저는 어린 시절 우디 앨런의 ‘카이로의 붉은 장미’라는 영화에 반했는데요. 그 영화 속 주인공은 어두운 영화관에 앉아 주인공에게 환상을 품어요. 그러다 결국 화면 바깥으로 빠져나온 남자 주인공의 사랑을 듬뿍 받아요. 말이 안 되는데, 말이 안 되니 더 즐거운 ‘카이로의 붉은 장미’처럼, 환상의 기운을 간직하게 할 자신만의 스타를 좋아해보세요. 여러분도 영화 속에서, TV 쇼 프로그램에서, 책에서, 거리에서… ‘스치듯’ 지나치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좋은 점을 받아 챙기다 보면, 결국 자신도 좋은 사람이 되어 있을 거예요.
31) ‘삼인행 필유아사언’이라고 하잖아요. 3명이 걸어갈 때 그 중에서 꼭 나의 스승은 있기 마련이에요.
41 나를 들여다보기 _
화가 에곤 실레는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거쳐 가는 사람인 것 같습니 다. 그의 자화상에 쉽게 빨려들거든요. 마치 우울할 때 뭉크의 그림 ‘절규’를 보며 똑 같은 표정으로 절규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죠. 어떤 그림을 그냥 스칠 수 없을 때가 있 잖아요. ‘나는 어떤 사람일까?’ 깊이 고민하는 분이라면, 에곤 실레의 그림을 찬찬히 보세요. 지금 현실의 삶보다 현실 이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될 거예요. 에곤 실레는 화가 클림트가 아꼈던 젊은이였는데요. 그는 클림트가 죽은 그 해이자, 부인 에디트 가 죽은 지 사흘 후에 스페인 독감에 걸려 죽어요. 스물여덟 살이라는 매우 젊은 나이 에 세상을 떠났는데요.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했던 사람들이 죽고 나자 바로 죽
에곤 실레
었다는 게 굉장히 의아했어요. 독감이라는 병명은 있지만, ‘사람이 사람을 상실하는 것만큼 그보다 더 큰 상실감이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죠. 운명이란 게 있다면, 에곤 실레가 화가 클림트나 부인 에디트를 만난 게 그런 것인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들더 군요. 인간의 만남이 얼마나 중요한지, 에곤 실레를 좋아하면서 생각해볼 수 있었어 요. 인생에서 아버지, 어머니, 동반자 등 가족에 대해서도 떠올려 봤고요. 그는 에디트라는 여자와 결혼한 이후로, 오랜 세월 부정했던 어머니를 긍정화 했고, 그의 그림 안에서 편안한 가족의 형태가 보이기 시작해요. 내적 성향이라는 게 ‘관 계’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증거였죠. 특히 제일 슬펐던 건 그가 4년이나 동거했던 ‘발 리’라는 여자를 버리고 ‘에디트’와 결혼한 거예요. 발리에 대한 이별선고는 매우 갑작 스러웠는데, 카페에서 편지를 건넸는데, 편지 내용이 글쎄~1년에 한번씩 에디트와 함께 셋이서 유람 여행을 다니자는 거였대요. 발리는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까요? 발 리는 그 이후로 바로 그의 곁을 떠나고 적십자에 들어갔다는데요. 이후에 질병에 걸 려 죽었대요. 죽을 때까지 에곤 실레는 만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마로니에 북스 ‘에곤 실레’ 책에서 읽은 얘기예요. 나쁜 남자이자 강심장 에곤 실레는 이후에 발리와 자신 의 관계가 끝났다는 것을 그림으로 남겼는데요. 그 그림이 정말 끔찍해요. 여자가 기 형적으로 가느다란 긴 팔로 남자를 끌어안고 있는 모습이에요. 부인인 에디트를 그 린 그림은 매우 경쾌하고 밝은 느낌인데,(약간 꼭두각시 같으면서 묘하게 행복한 표 정을 짓고 있죠. 체크 치마가 예뻐보이는 그림) 발리는 해골처럼 그려놓았어요. 매우 섬뜩해요. 남자의 손가락이 한 손으로 여자의 머리를 쓰다듬 는 것처럼 손을 얹고 있 지만, 분명히 오른손은 포옹하는 것이 아니라 밀쳐내는 포즈거든요. 남녀의 미묘하 고 복합적인 감정이 다 보이는 그림(Death and the Maiden (1915/16))이에요. 발리는 에곤 실레 그림의 전문 모델이었고, 열일곱 살에 클림트의 소개로 그와 동거를 시작 했거든요. 동거하는 동안 그를 극진히 대했다고 해요. 그림 배달까지 했대요. 당시에 직업적 그림 모델에 대해서는 성적 폄하가 심했다는데…발리는 에곤 실레를 정말 사랑했나 봐요. 클림트가 에곤 실레에게 발리가 아닌 다른 여성을 모델로 소개해줬 다면, 어땠을까? 다른 이의 삶을 상상해보기도 해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유혹 하는 사람이 유혹 받는 사람의 ‘미래를 투사할 정도로’ 모든 것들을 갖추고 있어야 한대요. 그래야 유혹이 통한다나? -_-; 그 대단 한 ~ 모든 것들이 되기에는 ‘가면을 끊임없이 바꿔 써야 한다’고 합니다. ‘유혹의 심 리학’이라는 책의 요지였어요. 그러니까 사랑받기 위해서는 계속적으로 상대의 이 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참 피곤하지 않을까요? 에곤 실레는 결국 안정된 가정 을 갈구하는 남자로 돌아서요. 부인이 임신 중에 죽고, 그 역시 세상을 떠났지만, 그 가 아이와 부인을 생각하며 그린 가족 그림은, 에곤 실레 그림이라고 믿겨지지 않을 만큼 평화롭죠. 심리적으로 지극히 안정되어 보입니다. 에곤 실레는 왜 발리에게 에
디트와 셋이서 유람여행을 하자고 했을까요? 진심이었을까요? 여자를 떠나보내기 위한 ‘에둘러 말하기’였을까요? 알 수 없죠. 에곤 실레는 화가이면서 동시에 시인이기도 했어요. 저는 그의 시보다는 그림이 더 좋더라구요. 비틀리고 기형적인 모습을 통해서, 내적 자아가 얼마나 침랑을 겪었는 지 알 수 있게 하죠. 사춘기 혹은 사추기? ^^ 인생의 방황기에 그의 그림을 보면 좋아 요. 에곤 실레 그림을 시간 별로 쭉 보다보면, 그가 어떤 고민을 했고 어떻게 풀어나 갔는지 느끼게 돼요. 결국 타인과의 ‘관계맺기’ 가 중요했죠. 영향을 주고받으며 작 품 세계를 형성했습니다. 선택할 수 없던 가족, 선택할 수 있던 연인… 그는 그 속에 서 성장했어요. 그는 항상 예술가를 예지적인 능력과 자존심의 화신으로 보았기 때 문에, 그의 예술을 방해하는 사람들은 그 누구도 이해하지 않았어요. 어머니가 자신 을 예술가로 받아들여주지 않자 원망도 컸다고 해요. 아버지를 극진히 따랐는데, 아 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는 그게 공포와 결핍의 요소가 된 거예요. 그 자리를 메우는 작업이 그림에 계속 나타나죠. 그는 예술가란 모름지기 항상 새로워야 하고, 자신만의 견고한 세계를 지켜야 한다 는 확신이 강했던 남자였어요. 아카데미즘에 대해 계속 반발하기도 했죠. 한편으로 음란죄와 어린아이들 추행혐의로 감방 신세를 지기도 하죠. (이 부분에서는 마이클 잭슨이 떠오르기도 해요. 자신만의 원더랜드를 짓고 살려고 하지만 온갖 추문에 고 생했죠.) 그래도 당대의 연예인이라고 해도 될 만큼 말끔한 얼굴과 스타일에 신경 쓰 던 남자였어요. 아버지가 역장인 덕분인지 미세한 기차 소리부터 기차와 관련한 모 든 것들을 자신의 음성으로 만들어낼 정도로, 예능 끼가 다분했다고 해요. 에곤 실레 를 알고 나면 관계와 교류의 중요성애 대해 생각하고 새삼 자신을 돌아보게 된답니 다. 이미 좋아하는 분들 못잖게 지금부터 좋아하게 되는 분들도 많을 거예요.
42 일상다반사 예술 _
프랑스 초식남 ‘세르쥬’를 소개할게요. 전 세계를 돌며 ‘세르쥬의 효과’라는 연극을 하 고 다니는 비바리엄 스튜디오( http://www.vivariumstudio.net/ )가 탄생시킨 캐릭터 예요. 거칠고 우악스럽기보다, 자신과 주변을 섬세한 감성으로 보듬는 젊은 남자죠. 2009년 11월 11일부터 13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선보였던 연극인데요. 극 중 세르 쥬는 어눌한 말투와 뚱한 표정으로 한국 관객들을 매료시켰어요. 은근히 중독성을 풍기는 방 쇼를 보이면서, 예술의 잔재미를 알려줬죠. 연극 ‘세르쥬의 효과’는 주인 공 세르쥬가 일요일마다 친구를 초대해 쇼를 보여주는 극중극이에요. 소설 안에 소 설이 들어있는 액자조설처럼, 이 공연 안에는 또 공연이 들어있죠. 세르쥬가 친구들
세르쥬
에게 공연을 보여주는 게 주요 내용이거든요. 이 작품의 재미는 무엇보다 쓸쓸해 보이지만 소통을 갈구하는 캐릭터에 있어요. 커 다란 키. 깡마른 몸이 특징인 주인공 세르쥬는 좀처럼 말이 없어요. 집 안에서 소란 스럽지 않게 일상의 이벤트를 준비하죠. 걷는 것도 느릿느릿하고, 매사 급할 게 없어 요. 쇼를 구상하면서, 집 안의 모든 장비를 이용하지만 소란을 피우지도 않아요. 주 말마다 친구들을 자신의 집에 초대해 극을 보여주고, 타인이 떠난 후에도 친구가 앉 았던 방석을 치우지 않을 만큼 무심한 남자이기도 해요.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에 있 는 것을 좋아하나 칩거형의 내성적인 성격만은 아니에요. 오히려 뻔뻔스럽죠. 자신 이 구상한 새로운 방식의 엉뚱한 쇼를 천연덕스럽게 선보이고, 친구들의 평가를 기 다립니다. 누구나 쉽게 떠올리지 못할 엉뚱한 쇼를 선보이고도, 진지하게 쇼에 대한 평가를 원해요. 혹시라도 친구들이 부정적인 평가는 하지 않을까 걱정하며, 친구를 멍하니 바라보고 좋은 소리를 듣기만을 바라죠. 친구에게 잘 해주고 싶은 마음 역시 강해요. 쇼를 보는 친구들을 위해 음료와 피자를 제공하거든요. 집에 찾아오는 친구 들에게 항상 오렌지 주스, 물, 포도주…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는 음료를 고르게 하 지만, 대접 인사를 빠뜨리는 법은 없어요. 쇼는 마치 허무개그처럼 알맹이는 없어요. ‘존 케이지 음악에 맞춘 레이저 쇼’라든가 ‘바흐의 음악에 맞춘 루미나리에 쇼’ 등은 오디오에서 들려오는 진중한 클래식 음악 과 달리 매우 쉽고 가벼운 놀이 들뿐이에요. 세르쥬가 마당에 나가 자동차 헤드라이 트를 깜박거린다든가, 모형 상자를 리모콘으로 움직이는 식이죠. 세르쥬는 어릴 적 누구나 하던 장난을 1~3분가량의 쇼로 완성시켜요. 대가들의 작품과 일상생활 용품 을 아무렇지 않게 결합시켰어요. 그의 예술은 격식이 없고, 단지 아이디어로 무장했 죠. 전선이나 레이저, 리모컨 등 문명의 이기를 이용해요. 서로 결합시킨 두 세 개의 것들, 조명, 음악, 몸짓 등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었느냐, 새로운 공연을 탄생했느 냐가 관건이에요. 계속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싶은 창작 욕구가 강한 세르쥬, 그 는 소심하게 꿍꿍이를 벌이는 남자였어요. 겉으로는 조용한 듯 하나 속으로는 온갖 아이디어가 요동을 치고 있죠. 혼자 놀기보다 조용히 있더라도 친구와 어울리는 것 을 더 좋아하는 인간이에요. 지극히 인간적이죠. 어딘지 이 시대 어른들과 닮아있어 다소 서글픈 캐릭터이기도 했어요. 현대인들은 소통의 창구가 많아졌고, 온갖 멀티미디어 기기에 의존해 살면서도 공허하고 외롭 잖아요. 사람만이 우울함의 출구인 것을 알지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는 서툴죠. 세르쥬의 방법을 따라보는 건 어떨까 싶었어요. 일상의 예술 놀이, 어린 시절에 했 을 법도 한데 잊고 살았던 온갖 방 놀이로 깜짝 쇼를 보이는 거예요. 일상의 사소한 소재를 예술적 제재로 활용하는 것이야 말로, 주변 지인들과 함께 행복해지는 길임 을 알려줬어요.
43
강태을 씨는 뮤지컬 배우입니다. 제가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뮤지컬 ‘어쌔신’을 끝내 고 락뮤지컬 ‘헤드윅’을 하는 시점이에요. 이 분은 2009년 초봄에 만났어요. 성남아트 센터에서 뮤지컬 ‘돈주앙’이 공연될 때였죠. 돈주앙은 동시에 3명의 남자 배우가 캐
남들과 다른 표현 방식
스팅됐어요. 주지훈, 김다현, 강태을… 상대적으로 사람들이 들었을 때 ‘누구지?’라 고 할 만한 분이 강태을 씨였지만, 어릴 적부터 꾸준히 기본기를 다져온 실력파라서 ‘돈주앙’에서 큰 인기를 얻었죠. 서울예전은 국내에서 뮤지컬 ‘라이온 킹’ 공연으로 유명했던 극단 ‘시키’와 교류가 잘 되어 있어서 그 학교 출신 배우들이 일본에서 많이 활동하고 오는데요. 이 분도 서울예전 출신으로 일본에서 수학하고 온 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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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은 국내 복귀 후 ‘돈주앙’, ‘록키호러픽쳐쇼’ 등을 열심히 하고 계실 무렵 만났어 요. 일본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있는 제 친구와 말투와 얼굴이 많이 닮은 바람에, 질
강태을
문을 건넬 때 별로 낯설지가 않았어요. 제 친구는 감수성이 예민하고 음악과 문학을 고수한 남자애였는데, 강태을 씨 첫인상이 친구32)와 비슷했으니까요. 제 친구와 나 이가 똑같았고 취향도 비슷해 더 그랬죠. 친구는 가수가 꿈이었는데, 지금은 문학을 하고 있지만 ‘친구가 가수가 됐다면 이런 모습이겠지’ 상상할 수 있었어요. 강태을 씨 어릴 적 꿈도 바로 가수였어요. 어릴 적 선생님이 ‘너는 왜 애국가를 그렇 게 부르냐?’고 놀랄 정도로, 애국가를 멋스럽게 바이브레이션을 넣어서 불렀나 봐요. ‘동해물과 백두산이~’를 목소리에 기교를 한껏 담아 불러주신 거죠. 그 어린 시절의 사소한 행동이 결국 꿈으로 연결됐고, 그 꿈을 이루고 있었어요. 그를 보며 느낀 건, 남과 똑같은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낼 필요는 없다는 거였죠. 성당 청년미사에 가면 기도문 노래를 ‘가요스럽게’ 부를 때가 있어요. 어떤 사람은 매우 품의 없고 낯설다 고 생각하지만, 저는 어릴 때 ‘가요스러운’ 기도문 노래를 들은 이후 굉장히 충격을 받았고 그 기도문이 더 좋아졌거든요. 애국가를 떨리는 음성과 미성으로 소화한 어 린 아이가 배우로 성장한 스토리에서, 저는 ‘다른 방식’에 대한 감동을 얻었답니다. 강태을 씨는 배우가 가수를 하는 것과, 가수가 배우를 하는 것 중에서 선후 관계를 따졌을 때 ‘전자가 낫다’는 아버지의 조언으로 연기를 먼저 시작했다고 해요. 관객의 입장에서 보자면 쇼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둘 간의 차이가 많이 느껴지진 않지만 말 이에요. 저는 10대 때 홍콩배우들에게 심취했는데, 그들은 가수와 배우의 경계33) 가 거의 없었어요. 장국영, 유덕화, 왕비, 막문위, 양채니, 곽부성, 진혜림 등 그러고 보 면 그들이 다 뮤지컬 배우스럽긴 해요. 노래, 춤, 연기… 삼박을 모두 갖추고 있으니 까요. 뮤지컬 배우 강태을 씨는 일본 유학 중인 가수가 꿈이었던 친구를 만난 기분으 로 이 분의 배우지론을 이래저래 주워들었습니다. 꿈을 간직하고 그것을 하나둘 실 행해가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언제나 기분이 유쾌해지고 감동 한 개씩은 꼭 갖고 돌 아가게 되죠. 그의 인터뷰를 끝내고 성남 아트센터 미술관에서 ‘후안 미로’ 판화 전 시를 봤어요.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사는 방법’에 대해 혼자 골똘히 생각해봤어 요. 예술의 언저리에 있든, 중심에 있든, ‘예술을 좋아한다’는 말을 한다는 것은 ‘다른 표현 방식을 이해한다’, ‘다른 표현 방식에 거부감을 갖지 않는다’의 다른 말 같았어 요. 일상에 예술의 양념을 치면, 그래서 삶의 용기를 얻는 거겠죠. 자신이 현재 어떤 처지이든, 기분이 어떻든지 간에 변화할 수 있고, 변화하는 것이 전혀 이상한 게 아 니라는 거예요. 지금 사는 게 힘드시면 ‘감동’을 찾아 떠나세요. 자신의 마음 한 구석 을 뒤흔들만한 그림을 찾아도 좋고, 시 한 편을 찾아도 좋고… 마음을 울려보시고 자 기 안의 다른 모습을 들여다보세요.
32)
저는 모르는 사람을 만날 때, 제 친한 친구 들 중에서 누군가를 떠올려 대입시키는 버 릇이 있어요. 말투라든가 생김새, 목소리를 통해 또 한 명의 제가 알았던 누군가를 생 각하죠. 언제 왜 그런 버릇이 생겼는지 모 르겠지만, 그렇게 하고 나면 아무리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긴장한다거나 떨리지 않아 요. 제가 편하면 또 같이 있는 사람도 편하 고 얘기를 쉽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 가 불편하면 상대도 불편한 게 눈에 확연 히 보이죠. 여러분은 처음 만난 사람과 어 색할 때 편해지기 위해 어떤 방법을 쓰시 나요? 저는 밑도 끝도 없이 ‘떠드는’ 수다 로 풀 때도 있고, 차라리 ‘더 불편해지자’라 고 마음먹고 그냥 침묵으로 일관하기도 하 고, 뭐 그래요. 상황에 따라 기분에 따라 다 른 것이겠죠. 33)
제가 만난 한 10대는 제게 “김원준은 배 우예요?”라고 물어보았습니다. 격세지감! 김원준은 류시원과 드라마에도 출연하고, ‘드라마 시티’에도 출연했으나 그래도 역시 ‘가수’였죠. 뮤지컬 ‘라디오 스타’가 인기를 얻으면서 요새 학생들은 김원준을 배우로 먼저 인식했어요. 두 가지 재능을 모두 갖 고 있다면, 복이겠죠? 제가 좋아하는 배우 이자 가수는 ‘김민종’과 홍콩스타들입니다. 여러분은 여러 재능을 동시에 지닌 연예인, 누구를 좋아하시나요?
44 광기 아닌 성실도 예술 _ 권지예
저는 20대 초중반에 자주 작가들을 만나러 쫓아다녔어요. 그들이 강의를 하거나 팬 사인회를 하면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쫓아가는 방식이었죠. 마로니에 공원 앞 문예진흥원(현 아르코)에서는 매주 금요일마다 작가들이 독자를 만나는 이벤트를 준비했어요. 저는 그곳에서 제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얘기를 직접 듣고 질문도 할 수 있었어요. 질문을 하면 공짜로 책도 줬고, 대학생에게 그처럼 충만한 이벤트는 없었던 거죠. 그때는 무언가 책을 쏙쏙 받아들이고, 좋아하는 저자를 만나면 기분이 한껏 부풀어서 정신을 못 차리던 때였어요. 인생에서 판타지가 그 어느 때보다 충 만한 시기였어요. 시간이 흐르고 많은 일을 겪었고, 어느새 저는 많은 환상이 제거 된 지점에 와버렸어요. 당시의 설렘과 적극성은 시간에 희석되어버렸지만, 마로니 에 공원에 가면 제 20대의 흥분이 고스란히 느껴질 때가 있어요. 무엇이든 새롭고, 무엇이든 신기한 나이… 그렇기 때문에 상처를 감내하는 면역성도 많이 떨어져서, 항상 새롭지만 항상 넘어져서 피가 터지는 나이이기도 했죠. 권지예 작가의 첫인상은 바로 마로니에의 추억과 연결돼요. 인생의 호기심이 충만 하던 한 여대생에게, 프랑스 유학 얘기와 자신의 문학 얘기를 통해 삶이 얼마나 다 채롭게 펼쳐질 수 있는지 미래에 대한 희망과 막연한 기대감을 선물해주셨던 분이 거든요. 권지예 작가님을 일로 뵌 날, 저는 20대로 돌아가 있었어요. ‘어린 시절 작가 님의 팬이었다’고 공손히 말씀드렸죠. 결국 사람이란 꿈을 물들이는 존재라는 생각 이 들었어요. 권지예 작가는 30대 후반에 작품 활동을 시작해 꾸준히 창작물( 꿈꾸 는 마리오네뜨, 꽃게무덤, 아름다운 지옥, 붉은 비단보, 퍼즐 등)을 선보이고 계세요. 다른 길을 걷다가 결국 소설로 돌아오셨는데, 그 분의 말씀이 굉장히 위안이 됐어요. 그 분은 여성 예술가란 꼭 젊은 시절 자살하거나 고통과 광기에 휩싸여있거나, 흔히 들 생각하는 전형적인 이미지로 국한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어요. 한 아이의 엄마이 기도 하고, 부인이기도 하고, 또 한편 자신이기도 한 여러 가지 모습 속에서 성실하 게 살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고 말이죠.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뭔가 남과 다른 고 통의 존재로만 묘사되는 것에 대한 위험성을 지적하셨죠. 식당에서 쌀밥을 씹어 먹 으며 그 분의 말씀을 듣는데 공감이 많이 갔어요. 저는 제 주변 친구들에게 항상 글 을 쓰라고 권하는 사람인데요. 글은 작가만이 쓰는 게 아니라, 자신을 찾기 위해 누 구나 쓰는 것이란 생각 때문에 그래요. 학창 시절 독후감 숙제나 각종 글짓기 대회를 싫어했던 사람이라도, 글을 쓰는 것이 마음에 좋다는 것을 뒤늦은 나이에 깨달을 수 도 있어요. 문학도 어떤 특별한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죠. 여성예술가는 지금 이 땅에 서 매일 열심히, 그리고 힘겹게 살고 있는 모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에요. 직장에 서 매일 스트레스 받는 여성도 글을 쓰고, 구직자도 쓰고, 다른 예술 장르에 있는 사 람도 쓰고… 다 쓰는 거예요. 많은 사람이 자신을 표현하는 세상을 꿈꾸는 거죠. 글 이 너무 쓰기 싫으시면, 사진, 그림, 음악, 춤…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은 많죠. 그런데 제가 글을 좋아하는 까닭인지, 아무래도 펜과 종이만 있으면 되는 글을 추천하게 되 네요. 많은 사람들이 ‘나는 글을 못 써’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요. 저는 극단적으로 ‘못 썼다고 생각하는 글’조차 가치 있다고 생각해요. 진심을 담느냐 아니냐가 중요하지, 잘 쓰고 못 쓰고는 그 다음 문제예요. 사람이 행복해지는 것은 결국 나 자신에게 ‘솔 직’해지는 것이고, 어떻게든 자신과 대화를 진지하게 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때 ‘글 자’라는 수단이 매우 효과적일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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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주 씨는 제가 98년도에 뮤지컬 ‘갬블러’를 보고 반했던 배우예요. 그 분의 뮤지 컬 노래들을 녹음해서 삐삐음악으로 쓰곤 했죠. 특히 그가 TV 쇼에서 뮤지컬 갈라 콘서트를 선보이며 불러준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노래 한 구절을 삐삐음
무엇이 잘 안 풀리면 이미 풀렸다고 세뇌하라 이미지 트레이닝 추천
악에 넣고서는, 제가 제 삐삐번호를 누르고 그 노래를 자주 듣곤 했죠. “알 수 없어 요. 알 수 없어요”라고 소리치는 구절이었어요. 그 다음 구절은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 스타, 당신의 인생은 뭘 위해~” 그런 가사였죠. 1998년의 저는 항상 ‘알 수 없어 요’ 모드였거든요. 그리고 10년이 지난여름, 시카고 공연이 시작되기 직전 무대 분장 실에서 남경주 씨를 뵙게 됐어요. 제가 그 분에게 얻은 가장 소중한 에너지는 “암시”에 관한 것이었어요. 아무래도 오 래된 관록 있는 뮤지컬 배우라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잘 하시는 것 같았어요. 자신 은 담배를 안 끊었어도 ‘끊었다’, ‘끊었다’라고 생각하신다고 했거든요. 그러다보면 결국 끊게 된다고… 요새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자기 치유 흐름처럼, 자기 암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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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해서 강조하신 거죠. 그 분을 뵙고 돌아서면서, 내가 오늘 ‘암시해야 할 것’은 무엇 일까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남산 국립극장에서 동대문 운동장까지 걸으면서, 친구 에게 전화로 남경주 씨에 대한 인상을 전해주고 ‘암시법’에 대해 설명하자 친구가 그 랬죠. “인터뷰 쎄라피구나.” 맞아요. 저는 누구를 만나고 헤어지든, 제 자신에게 질문 을 많이 해요. 20대를 대부분 질문을 하는 입장으로 일하면서 얻은 것은, 그만큼 제게 도 많은 질문을 던졌고 그래서 저에 대해 많이 알게 됐어요. 그 폭발 지점은 서른이었 기 때문에 저는 서른이라는 나이를 참 사랑합니다. 누구를 만나든 같이 얘기 소재를 주고받으면 좋지만, 톱스타를 붙잡고 그럴 시간은 많이 없으니…제약이 따르죠. 일 단 질문34)만 하고, 제 속의 이야기는 혼자 따로 하곤 해요. 처음 만났는데도 쿵짝이 맞아서 주거니 받거니 마구 떠들 때도 종종 있었지만요. 그런 일은 그다지 자주 발생 하지 않습니다. ‘그런 척’은 할 수 있지만, 그런 일은 만분의 일의 행운이죠. 저는 남경주 씨를 통해 ‘암시’에 관한 행복의 방법을 얻게 되었답니다. 요새 전 세계 적으로 유행하는 것이기도 하죠. ‘시크릿’ 책도 많이 팔렸으니까요. 전 그 책을 읽지 않았지만요. 전 너무 유행한 책은 유행하기 전에 유행을 예감하며 먼저 읽거나, 혹은 아예 나중에 읽거나 (^^) 그러고 싶지, 막 많이 팔릴 때 편승(?)하기 싫거든요. 뭐~ 개 인 취향이겠죠. ‘내가 바라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는 말을, 사실 너무 희망적이기에 거부감 드는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제가 가끔 ‘이건 이뤄진 거야’라고 생각하면, 이뤄 지는 것을 자주 체험하다보니, ‘생각대로’가 절대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더 경 험을 많이 해봐야하겠지만, ‘이뤄질 거야’보다 ‘벌써 이뤄진 거나 다름없어’라는 행복 한 상상은 정신 건강에 크게 해가 될 건 없어요. 과대망상이 될까 너무 걱정하지마시 고, 웬만하면 ‘좋은’ 쪽으로 항상 생각해보세요.
남경주 34)
저는 어릴 때 SBS ‘자니윤 쇼’를 참 좋아했 는데요. 자니윤 아저씨는 제가 생각하기에 질문을 참 잘 던졌어요. 궁금하던 것이 예 민한 문제라도 최대한 예의 바르고 위트있 게 말했어요. 제 기억 속에서는 그래요. 진 지함과 재미가 공존하는 토크쇼였어요. 지 금 한국에서 가장 좋아하는 진행자는 손석 희 교수예요. 예능에서 사적 수다가 넘쳐날 때, 한쪽에선 제2, 제3의 손석희가 등장해 서 냉철함으로 반작용을 해줘야 하지 않을 까 생각합니다. 저는 손석희 전 아나운서 를 존경하여, 그의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 데요. 강의 때마다 거의 넋 놓고 교단을 바 라보며, ‘인간적으로 저렇게 멋있는 사람이 존재하다니 …’ 요샛말로 정신줄을 놓아버 렸던 추억이 있어요. 매우 날카롭고 비판적 인 인물의 전형이었어요. TV에서 보는 이 미지보다 훨씬 더 강인하고 센 분이었죠. 정말 추앙해마지 않을 수 없는 인물! 절대 정치판으로 나가지 않으셨으면 마음속으로 매일 빌고 있답니다. 그런데 제가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꾸준히 정치 반대편에 서 지적하고 살아주실 듯. ^^
46 어른이 소중한 보내줄 알아야 _ 이상은
가수 이상은 씨의 콘서트, 라디오, 인터뷰, 개인 책 등 여러 가지 계기로 그의 팬이 된 사람이 많을 거예요. 이상은 씨는 많은 피터 팬, 팅커벨들의 동경 대상이기도 하죠. 한국인이 생각하는 표준 나이를 거스르고, ‘하고 싶은 것’을 적극적으로 하고 사는 사
되려면 사람이라도 줄 해요
람들의 표준처럼 보이니까요. 특히 대중적으로 알려진 스타 중에서, 예술가로서의 강한 색깔을 위해 변신과 도전을 거듭 보여주니, 매료되지 않을 수 없죠. 저는 이상 은 씨의 팬 맞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들어왔고, 연애 시절, 학창 시절, 사회 초 년생 시절 등 많은 추억을 이상은 씨의 노래와 콘서트와 함께 했습니다. 스타의 장점 은, 그들의 활동 경력이 수많은 팬들의 개인사와 함께 흐른다는 거겠죠? 꾸준히 꺾이지 않고, 세계관을 확장해가는 스타들을 보면 저절로 내 자신의 삶도 응 원하게 됩니다. 이상은 씨는 자기 색을 찾아가는 여자들의 우상 같은 존재입니다. 그 역시 찾고 있을 테고, 그를 흠모하는 여성들도 찾고 있겠죠. 세계 여행을 하며 그곳 의 단상을 모아 글을 썼고, 사진을 찍었고, 본업인 노래도 꾸준히 부르고… 일과 취 미를 일치시키며 타인에게 삶의 용기를 주죠. ‘좋아하는 것을 하라’고 말입니다. 좋 아하는 것과 해야 하는 것 사이의 간극, 그 곳에서 느끼는 고민이 있다면, 이상은 씨 의 팬이 되어 지금부터라도 스타의 궤적을 쫓아보세요. 어느 순간에는 글을 쓰고 있 고, 노래를 부를 수도 있고, 라디오에서 음성이 들릴 수도 있겠죠. 가장 중요한 건 많 은 것들을 하면서, 절대 꺾이지 않는다는 거예요. 쉼 없이 흐르며, 정지하지 않습니 다. 인권과 관련한 행사에 동참하기도 하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도 하고, 용기와 다양성을 갖춘 여성 예술가로 거듭나며 흘러가고 있습니다. 가수 이상 은 씨를 좋아하게 된다면, 삶이 뿌옇다고 느끼시는 분들은, 사는 법에 대해 함께 고 민할 수 있을 거예요. 조금은 딴 얘기지만, 제가 이상은 씨의 말씀 중에 가장 공감이 갔던 말은, ‘어른이 되면 어! 어! 하면서 아프지만 보낸다’는 거였어요. 그 대상은 바로 친구인데, 친구 와 어쩔 수 없이 결별해야 할 때가 생겨야 한다는 뜻이었어요. 사람이 살다보면 삶 의 방향이나 모습이 변하게 마련이고, 소중한 친구와도 의도하지 않게 이별할 때 가 생기죠.
홍승엽 씨는 오랫동안 ‘혁신적인 안무가’, ‘철학적인 안무가’ 등 여러 수식어를 안고, 칭송을 받아왔던 현대무용 안무가입니다. 무용을 처음 보려고 한다면, 이 분 작품을 시작으로 해보세요. 매우 주관적인 권유이긴 한데, 제가 이 분 작품으로 시작했기 때 문입니다. ^^ 이 분의 ‘뿔’이라는 작품을 보면서, 저는 현대무용이라는 장르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그 이전에는 무용 공연을 본 적도 없고, 무용 공연을 보려고 표를 예 매해 본 적도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제가 무용을 보리라고 생각도 못 했을 만큼 그만큼 무용은 저와 괴리된 분야였습니다. 그런데, 홍승엽 씨 인터뷰를 통해 무용에 대해 굉장히 강한 호기심과 자극을 받게 됐 습니다. 그의 비권위주의적인 삶의 방식, 열린 사고에 감동한 까닭이죠. 이후에 해 외 안무가들이나 현대무용을 보면서, 그처럼 철학적인 안무가들이 많다는 것에 놀 랐어요. 그 때문에 저는 요새 안무가들의 사유를 추적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왜 사 는가’,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를 몸과 머리로 함께 고민하는 안 무가들을 동경하게 된 것이죠.
47 자존심만은 지키세요 그건 욕심이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는 거예요 _ 홍승엽 .
48 끊임없는 경계의 발견 _ 오르한 파무크리
저는 인생에서 ‘경계’라는 단어를 가장 좋아합니다. 이청준이나 카프카 소설가를 좋 아하면서 이쪽에서 저쪽을 생각하고, 이것과 저것의 경계선에서 언제나 고민하는 사람. 저의 정체성이었습니다. 쉽게는 어른과 아이라는 정체성도 그러할 것이고, PD와 기자라는 직업이 그러할 것이고, 여자와 남자라는 성적 정체성도 그렇고, 이성 과 감성이라는 판단 기준, 외향적,내성적이라는 성격 구분 또한 그렇습니다. 모두 경 계에 있지요. 저는 제가 굉장히 중성적인 성격으로 느껴지고, 이성과 감성 중 어떤 것 이 더 발달한지 모르겠고, 직업을 찾을 때도 이 문제로 너무 치열하게 고민해서, 경계 라는 단어를 들으면 왠지 제 이름 같습니다. 오르한 파무크는 내한 당시 바로 ‘경계’에 대해 시원하게 강의를 해준 작가였죠. 그를 흠모하면서, 내 자신도 언젠가는 좋은 사람이 될 거라는 희망을 얻었습니다. 그는 터 키에서 법적인 경계, 사회적으로 침묵해야 한다고 관습화된 것들에 대해 글을 쓴 사 람이었습니다. 테러 위협을 받기도 했을 정도니까요. 사회적으로 파장이 큰 것들이
35)
었죠. 그는 어떤 공동체에 속해있을 때 누구의 마음도 상하지 않도록 교육받는 금기
“문학의 가장 커다란 즐거움은 발견되지 않는 경계를 발견하여 깨는 것입니다. 작은 관찰을 하면서 새로운 우주를 발견하는 것. 인내하면서 바늘로 우물을 파듯 하나하나 관찰을 하면서 글을 쓰는 게 소설가의 역할 입니다. 모두들 작은 경계를 만들고 새로운 경계와 마주합니다. 작가란 직업을 즐겁게 하는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빈 종이, 연필, 책상… 우리 모두 무언가를 경험하죠. 많은 것을 경험하면 많은 것을 쓸 수 있을 거예 요.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혼돈에 빠질 수 있죠. 경험이 풍부한 것만으로 안 됩니다. 모든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것이 필 요하죠. 문학의 정신은 물론 인생의 경험이 겠지만, 경험을 다른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그러한 관점을 찾으려면 문 화나 소설적 규율로 필요하겠지만, 문학적 규칙은 시간이 흐르면 문학 자체를 볼 수 없게도 만듭니다. 숨겨진 미적 금기, 규칙 을 깼다고 해서 아무도 여러분을 교도소에 넣지는 않아요. 작가는 그러한 것을 깨야 합니다. 작가를 작가로 만드는 것은 그러한 것을 깨는 스타일과 분위기입니다.”
를 ‘경계’로 표현했습니다. 저의 짧은 소견과 삶의 경험에는 빗댈 수 없는 것이기도
2008년 봄, 오르한 파무크 내한 당시 강남 교보 문고 강연회 中에서
하죠. 정부가 판단하기에 잘못된 발언을 하면 그는 가족들의 화를 감당해야 했다고 합니다. 이런 것들을 그는 ‘눈에 보이는 경계’라고 했어요.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 실 그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라고 했어요. 바로 그가 작가로서 살고 있고, 작 가로서 책임감을 지닌 부분입니다. 그는 35년 넘게 글을 쓰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경 계’를 발견하고자 애썼다고 해요. 모든 선입견이나 사람들이 바라는 유토피아, 지식, 문학의 규칙 같은 것들이 실제적인 사실을 보는데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이때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를 고려하고, 문학을 통해 그것을 드러내려고 한 것이죠. 그는 국가의 금기, 정치적 금기 등 이런 것들을 깨는 것 못지않게 마음속에서 단어나 문장 을 만들 때 ‘영혼에서 보이지 않는 새로운 것을 발견’하려고 한답니다. 그게 바로 ‘경 계를 깨는 작업’이라고 이름 붙였어요. 그에게 문학은 바로 새로운 것을 할 수 있다는 증거였고, 경계를 깨면서 작가의 자존감을 유지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의 강연을 들으면서 얼마나 감동했는지 모릅니다. 지금은 세월이 흘러 그 강연을 잊고 살지만, 문득 ‘새로움에 대한 염원’으로 고민할 때, 오르한 파무크의 ‘새로운 인생’을 구입했던 날과 그 분의 강연에서 들은 감동적인 말들35)을 떠올립니다.
뮤지컬 배우 정주영 씨는 과거에 발레리노였습니다. 과거에 TV문화에 편중돼서 좋 아하다보니, 발레리노에게도 고정 팬이 있다는 걸 몰랐어요. 정주영 씨는 여성 고정 팬이 많은 국립발레단 발레리노였어요. 그 분이 나온 공연은 모두 보고 모니터도 해 주시고 팬심을 지키는 분들이 많죠. 정주영 씨는 캣츠를 첫 데뷔작으로, 뮤지컬 배우 에 도전하셨어요. 서른이 넘어서 시작하셨죠. ‘원래 무대에 섰고, 어차피 같은 공연 이잖아’ 하기에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클래식과 대중문화에 대한 ‘이분법’이 존재
49 클래식도 과거의 대중문화
하고, 그 경계를 넘나드는 게 쉽지 않죠. 발레는 워낙 클래식 인상이 강하고, 뮤지컬 은 춤, 노래, 무용을 아우르는 쇼의 성격이 강해서, 분야를 바꾸는 게 쉽지는 않으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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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겁니다. “클래식이란 것도 과거 어느 때 가장 사랑받은 대중문화잖아요. 나누는
정주영
건 중요하지 않죠.” 그는 매우 사고가 열린 분이었고, 노력파였어요. 뮤지컬 ‘캣츠’에 서 다음 뮤지컬 ‘기발한 자살 여행’으로 도전할 때 실력이 눈에 띠게 달라진 분이었 죠. 사람이 어느 한 분야에서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것은 결국 ‘성실’의 다른 말이란 걸 또 한 번 깨닫게 했어요. 정주영 씨의 팬이 되시면, 그의 과거 발레작을 찾아보고 최근의 뮤지컬까지 찾아볼 테니, 역시 발레와 뮤지컬을 두루두루 좋아하실 수 있게 됩니다. 제가 연출가라면, 이 분을 주인공으로 공연을 하고 싶었어요. 현 시대를 사는 젊은이, 밝은 웃음 뒤에 숨어있는 고독한 캐릭터를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30대 초반의 방황하는 젊 음, 불안한 영혼, 자유를 갈구하지만 어딘가 정착지를 바라는 이중적인 심정을 드러 내기에 좋은 배우로 보였답니다. 저의 팬심은 얇고 가늘지만, 이제부터 그가 나오게 될 뮤지컬은 모두 볼 생각입니다.
50 미래에서 나를 바라보세요 _ 조진웅
조진웅 씨는 배우입니다. 과거 KBS 드라마 ‘솔약국집 아들들’(저는 그 드라마를 보지 않았습니다만^^)에서 미국에서 한국으로 건너와 영어를 섞어 쓰는 싱글파파로 등장 했대요. 드라마를 본 측근들은 모두 그가 정말로 재미교포라고 생각할 정도로, 연기 를 잘 했다고 합니다. 그는 부산에서 연기를 전공하고 연극을 하다가 TV 매체에 등 장한 배우였어요. 그를 처음 보았을 때, 저는 매우 인상적인 교훈을 얻었어요. 그는 자신의 직업을 역사의 긴 강 위에서 보는 능력이 있었죠. “신기하지 않습니까? 먼 훗날, 저는 매니저가 스케줄을 관리하는 시대에 배우로 살 았다는 것 말이죠.” 그가 내뱉은 문장은 간결하면서도 독특하게 다가왔습니다. 자신이 발을 딛고 사는 시대의 특징을 간파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죠. 연기를 가장 사랑하면서, 사랑하 는 대상이 이 시대에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지, 그것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 며 자리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생각하는 사람인 거죠.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글… 동 시대에서 어떤 의미 있는 기록이 될까요? 저는 사람들이 획일화된 가치에 매몰되지 않고 행복의 길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이건 제 현재의 바람 이죠. 저는 그 배우와의 짧은 만남에서 또 한 번 인생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됐습니다. 배우는 연기력 외에도 세상을 넓고 깊게 바라보는 여유, 그러한 자질도 필요하지 않 나 하는 생각으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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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첫 눈에 반하는 것을 믿나요? 허황된 것이라 생각하나요? 아니면 현실적이 라고 느끼나요? 이윤택 연출가는 첫눈에 반하는 것을 믿는 분이었습니다. 저 역시 믿 기 때문에, 그를 뵙고서는 제 사랑 이론을 더 강하게 주장하게 됐죠. 저는 아직 철이
첫사랑의 로맨스를 간직하세요
덜 들었는지 첫 눈에 반한다는 것을 믿어요. 그런데 이윤택 연출가는 저보다 더 강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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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첫눈에 반한다는 건 결코 외모가 아닐 테니까요. 여러 복합적인 분위기가 있겠죠.
이윤택
어요. 어릴 적 경험을 말했는데, 한 여자에게 반해 쓰러져서 담장에 기대 앉아 학교 를 안 가셨다고 해요. 그런데 신기한 건, 그 여자가 쌍둥이였는데 글쎄 자신이 반한 여자의 쌍둥이를 보고는 그런 느낌이 없었다는 거죠. 참 오묘하지 않나요? 그렇게 보 저도 인생에서 첫 눈에 반한 적이 있어요. 10대, 20대… 마치 오래 전에 알았던 사람 마냥 말을 섞고 그와 헤어져 돌아가 잠자리에 누워도 잠이 오지 않았죠. 그런 경험을 자주 할 수 있다면? 속이 울렁거려 제대로 살 수가 없겠죠. 쉽게 오지 않아 오히려 더 소중한 것일 테니까요. 이윤택 연출가는 첫 눈에 반하는 것을 ‘해후’라고 표현하셨어 요. 다시 만난 거죠. 꿈속에 그리던 이상을 꿈 밖에서 ‘다시’ 만났다는 거예요. 처음 만 났지만 그건 처음 만난 것 같지 않다는 거였어요. 이 연출가의 얘기를 들은 후, 저는 더 ‘첫눈’을 단단히 믿게 되었답니다. 오류일 수도 있겠죠? 믿음은 있지만 오류는 인 정하고 있어요. 그래도 미래에 언젠가 발생하길, 기다리고 있답니다.
친구 ㅂ 양은 자신이 어릴 적 좋아하던 가수 ㅅ 씨의 기획사에서 일을 하고 있어요. 가끔 저는 제가 어릴 적 좋아하던 공일오비를 홍보하는 일을 정말 ‘일’로 한다면 어 떤 기분일까? 가정해서 상상해본 적이 있어요. 사실 답은 ‘절대 안 돼’였어요. 왜냐하 면 가까이에서 보면, 사람의 흠이란 게 안 보일 수가 없거든요. 그 흠까지 인정하고 좋아한다면, 영원한 ‘콩깍지’로 느낄 수도 있겠죠. 그래도 가끔 어릴 적 좋아하던 스 타 옆에서 일을 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아직도 궁금해요. 친구 ㅂ 양은 눈코 뜰 새 없
52 자신만의 ‘판타지’를 만드세요
이 바쁘지만, 언제나 에너지가 넘쳐요. 좋아하는 사람 곁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기 때 문이라고 생각해요. 가수 ㅅ 씨는 매우 완벽주의자로 알려져 있어서 매사 꼼꼼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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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 사람을 잘 챙기는 걸로 유명했어요. ㅂ 양이 과도한 업무량을 소화하는 것도 아
ㅂ양
마 스타에 대한 애정일 거라고 생각해요. 스타에 대한 애정이 삶에 대한 열정으로까 지 번지게 되죠. 그래서 ㅂ양은 제가 만나 본 사람 중에 정신이 건강한 사람 베스트 5위 안에 들어가요. 옆에서 보면 좋아하는 사람을 닮아서인지, 그 역시 완벽주의에 매사 꼼꼼하고 사람을 잘 챙기는 사람으로 보이니까요. 그러고 보면, 역시 사람은 사람을 잘 만나야 해요. 그게 연인이든, 선생님이든, 친구 이든… 사람과 섞이며 형성되는 성격은 무시할 수 없죠. 여러분에게 가장 소중한 사 람은 누구인가요? 지금 바로 ‘저 사람처럼 살면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아’ 기대감을 느 끼게 하는 측근이 있나요? 제게는 한 분이 있어요. 그 분을 존경할수록 어느 순간, 그 분과 비슷한 측면을 보면서 깜짝 놀랄 때가 있죠. 끝없이 존경할 만한 사람, 그러나 너무 가까이 가서 흠은 보고 싶지 않은 사람 ^^ 그런 측근을 꼭 만드세요. 지금 없다 면? 생길 때까지 사람을 많이 만나보세요. 어릴 적 붓글씨를 쓸 때, 먹물이 종이에 쉽 게 스며 들어 놀랄 때가 많았어요. 흡수력이 끝내주죠. 사람 간의 만남도 그래요. 서 로 적시기도 하고, 지우기도 하면서 교류와 교류를 통해 사람은 성장할 거예요.
53 매너리즘 없는 삶 _ 이미도
번역가 이미도 씨를 만나고 가장 놀랐던 점은 ‘살면서 단 한 번도 매너리즘이 없었 다’는 거였어요. 영화를 좋아하고 영어를 좋아하니, 영어권 영화를 번역하는 일이 그에게는 지루할 수가 없다는 얘기였죠. 사람이 정말 좋아하는 것을 일로 해야 하 느냐, 취미로 놓아둬야 하느냐는 사람마다 의견이 분분합니다. 정말 좋아하는 것을 일로 하면 좋아하는 게 사라지니 일로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람이 있고, 취미가 일이 되면 일하는 것 같지 않고 일하는 시간 내내 신나니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한다 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저는 후자입니다. 좋아하는 것을 해야죠. 인생이 여러 번 오는 것도 아니고, 단 한 번인데,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허비할 수는 없으니까요. 좋 아하는 것을 일로 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게 사실 좋아하는 것을 찾는 작업이죠. 그 게 가장 힘들지, 좋아하는 것을 일로 하는 것은 하나도 힘든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단지 책임감이 따를 뿐이죠. 취미라면 책임이 필요 없잖아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 만이니까요. 하지만 일이 되면 ‘꼭’ 해야죠. 성실하게 꾸준하게… 지금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나요? 혹시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 싫은 일을 하 고 있지는 않나요? 저는 무조건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한다’ 주의의지만, 그 어떤 좋 아하는 것을 위해 싫어하는 것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행복은 상대적 인 것이라서, 자기 만족도만 높으면 되는 거죠. 결국 일이란 것도 자기만족을 위해 서 하는 것이지 전적으로 남을 위한 게 아니니까요. 어릴 적에 ‘일’로 내 정체성을 찾 겠다고 말한 적이 있죠. 그 말을 어른들은 비웃었어요. 나이가 들면서 일로 성격이 ‘이상해져갈 때’ 어른들의 비웃음을 기억했죠. 일은 일정의 ‘깡’이나 ‘성격파탄’이 없 고서는 할 수가 없는 것이라고 사람들은 그랬어요. 하지만 또 더 깊게 바라보니, 제 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성격파탄’의 강도가 더 약하더란 말입니다. 경험해 본 바에 의하면, 가슴 뛰는 일을 하는 것이 제일 행복합니다. 행복이 사라질까 괜스 레 불안할 만큼 즐겁죠. 마치 연애 시작 단계의 기분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매일 매 일 새롭게 연애하는 기분입니다. ‘일과 결혼했다’, ‘일과 사랑한다’는 말이 그다지 억 지 비유는 아니에요.
강산에 씨는 홍대 술자리에서 ‘멀리서’ 뵌 적이 있습니다. 그 분 얘기를 그저 엿들은 것뿐이죠. 강산에 씨를 뵙고 돌아온 날, 무거운 생각이 머리를 짓눌렀던 기억이 납니 다. 굉장히 ‘좋은 인간형’이었던 거예요. 그 당시 제가 고민하고 있던 문제에 대해 속 시원한 답을 던져주었어요. “진화하자!” 바로 이것이었죠. 나의 정신도 진화할 수 있 다! 이런 자신감을 얻은 거예요. 강산에 씨는 그 자리에서 ‘정신과 스타일’에 대한 이 야기를 하셨어요. 본인은 소울은 찾았는데, 이제 그에 맞는 스타일만 찾으면 될 것
54 정신과 스타일이 일치해야
같다고… 좀 더 열심히 찾으면 보일 것 같다는 얘기를 하셨어요. 밥 말리나 존 레논 같은 가수의 정신을 지향하셨죠. 예술적인 자아가 인간이 부대끼는 사회 속에서 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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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할 때 어떤 스타일을 추구하며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는 듯 보였어요. 그에게는 음
강산에
악적 스타일이겠죠. 강산에 씨를 본 이후 며칠 동안 ‘진정한 예술가’란 어떤 사람인지 고민했어요. 제가 당시 내린 결론은, ‘소울과 스타일이 일치하는 사람이 진짜 예술인이다’ 뭐 그런 거 였어요. 가식적이지 않으며, 작품과 정신의 접합 지점이 통일성이 느껴지는 창작자 였답니다. 작품은 약한 자를 옹호하면서, 현실에서는 강한 자가 되기 위해 발버둥친 다거나… 작품은 인간에 대한 예의를 주구장창 부르짖으면서 현실에서는 기본적인 예의도 없는 사람이라면? 그는 사기꾼이다! 뭐 이런 결론이었죠. 정신과 육체가 일 치하기도 힘들겠지만, 정신과 작품 세계가 일치하기도 과연 흔치 않은 일입니다. 강 산에 씨는 치열한 내적 고민을 하면서 언제나 현재 진행형으로 스타일을 찾고 계신 가수로 보였습니다. 예술가의 기본적이면서 가장 어려운 자질을 지니고 있는 분이 라는 생각에 계속 존경하게 됐습니다.
55 하루 종일 몰입하는 일이 있나요 ? _ 이재국
꿈을 꾸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괜스레 덩달아 힘이 납니다. 어쩌면 백 마디 조언보 다, 누군가 옆에서 하나하나 행동으로 꿈을 이뤄가는 것을 보는 편이 정신 건강에 좋은 것 같기도 해요. 제가 존경하는 이재국 작가는 실제로 자신의 꿈을 조금씩 이 뤄가고 있는 분이었어요. 미래의 사진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흥에 겨워 설명하시는 분이셨죠. 현재 청춘스토리라는 기획사를 맡고 계시고, 라디오 프로그램 작가이자, 영화배우, 극작가이기도 합니다. 과거 극단 ‘목화’에서 배우로 연기도 하셨죠. 현재 는 대학로에서 ‘유기농 공연 페스티벌’을 하는 게 꿈인 분이세요. 이 분은 가족이 함 께 보는 극과 욕이 나오지 않는 공연을 좋아하세요. ‘목화’에 있을 때 오태석 연출가 는 대사에 욕을 좀처럼 쓰지 않았다고 해요. 그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지금도 친 환경이나 무공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있는 공연을 만들고 있으세요. ‘총각네 야채 가게’를 어린이용으로도 만들어서, 아이들이 채소를 먹도록 권유하는 등, 좋은 세상 을 꿈꾸는 것에 열심이시죠. 뜻하는 바가 있으면 부지런해지기 마련입니다. 이 분은 굉장히 부지런하세요. 변명 이나 핑계보다는,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하시느라 24시간 바쁜 분이죠. ‘좋아하 는 것에 미치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는 사실을 그냥 옆에서만 봐도 느낄 수 있어요. 언젠가 어느 선배에게 ‘꿈이 뭐냐?’고 물어보니, ‘어른이 무슨 꿈이냐? 이제 그냥 일 이지’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그 선배는 꿈이란 걸 잃어버렸어요. 그런데 어쩌면 그게 대부분 어른들의 모습이 아닐까 싶은데요. 꿈은 어린이나 꾸는 것이고, 이제는 그저 전투 같은 직업 현장만이 남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러면 삶이 참 재미 없지 않나요? 주철환 PD는 KBS ‘아침마당’에 출연해서 ‘동안 열풍이 한창이지만 동 심을 찾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렇게 말하는 그 분은 나이가 쉰다섯 이라는데, 제가 보기에는 열 살 이상은 더 젊어보였어요. ‘동심은 동안을 뛰어넘는 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려 보이려고 들이는 시간에, 좋아하는 게 무엇이고 다시 꿀 꿈은 무엇인지 생각하다보면 저절로 젊어지지 않을까요? 우리 모두 동안과 동심 으로 행복을 찾아보아요!
2008년 가을 대구에 내려가서 삼성 라이온즈의 사순이와 사돌이를 인터뷰한 적이 있 어요. 야구장에 온 많은 스포츠 인들을 위해 언제나 인형 탈과 옷을 입은 채 춤을 추 고 장기를 보여주는 분들이었죠. 힘든 환경이지만 언젠가 영국의 공연 축제인 에딘 버러 페스티벌에 참가한다는 꿈으로, 열심히 살고 있었어요. 인터뷰를 하면서 저도 많이 감동받았어요. 특히 사돌이 사순이 인터뷰 온라인 댓글에 ‘월급 많이 줘라’라는
56 인간적인 인간
걸 보고 그분들처럼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죠. 이때 제가 가장 놀랐던 게 또 있었어요. 김제동 씨가 삼성 라이온즈와 인연이 끊긴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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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되었을 텐데, 아직도 사돌이,사순이 직원들이 그를 존경하고 있던 거였어요. 항
김제동
상 자신들을 챙겨주고 응원해준다고 해요. 그가 과거를 잊지 않고 소중하게 생각하 는 사람이라는 걸 경험할 수 있었어요. 특히 삼성구단이 서울에 올라왔을 때, 김제동 씨가 응원단 식구들을 자신의 집에 묵게 하려고 구장에 찾아온 것을 보고도 놀랐죠. 야구가 모두 끝나고 관객이 모두 사라진 시간, 한적하게 불이 꺼진 구장 건물 뒤에서 김제동 씨를 발견하고 감동을 받곤 했죠. 대구 응원단 식구들이 칭찬한 이유가 있었 구나 싶었어요. 그는 가족 같은 사람들이 서울에 올라와서 고생하는데 자신의 집에 서 재워야한다며 데려갔어요. 아주 예전에 ‘윤도현의 러브레터’의 김제동 씨 코너를 참 좋아했는데요. 그때 그는 농담으로 ‘서울의 모텔을 전전하며 잠을 청할 때 크리스 마스 이브만 되면 주인이 쫓아냈다’며 웃으며 말했죠. 그것이 그저 웃음 유발용인지 진실인지 직접 여쭤본 적은 없지만, 그가 지금도 객지에서 고생하는 과거 후배를 챙 기는 모습이 인간적으로 느껴졌습니다.
57 예술을 세계시민과 함께 ~ 실제 상황팀 _ 강공지, 백호울, 욕고
이름도 특이한 이 세 분은 2009년 가을 광흥창 역 CJ 아지트36)에 가서 공연을 보고 반한 이들입니다. 욕고 씨는 사진작가고, 백호울 씨랑 강공지 씨가 무용수예요. 특히 강공지 씨는 이름이 공지라서 혹시 공인인가 싶었어요. 우리가 그냥을 요새 ‘걍’이라 고 인터넷에 쓰잖아요. ‘걍 공지하고 산다’ 계속 공공장소에서 자신을 인지시키는 퍼 포먼스를 하고 있는 게, 이름 따라 살기 때문이 아닌가 상상해봤어요. 백호울 씨 이 름도 그런 느낌이었는데요. 하얀 호수에서 물 수제비 뜨면 물소리 울림 퍼지듯이, 맑 은 기운을 전파하며 살고 계신 듯 보였습니다. 욕고씨는 ‘아…욕보고 계시네’ 그런 생 각을 했는데, (좋은 의미로요. ^^; ) 두 무용수의 사진을 순간순간 즉흥적으로 찍어서 공연 중에 보여주거든요. 이들이 구성한 팀 이름은 ‘실제상황’입니다. ‘즉흥 프로젝 트’를 하고 있어요. 관객과 공연자가 하나가 되는 체험을 해보는 것이죠. 콘셉트 회 의를 하고, 정해진 것 없이 무대나 길거리에서 관객을 만난 뒤 즉흥으로 몸동작과 사 진으로 이미지를 만들어 보여줍니다. 무용수가 포즈를 지은 뒤, 관객에게 다가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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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동작을 유도하고, 그런 과정을 욕고 씨가 사진으로 찍어서 공연장 벽면에 즉
http://www.cjazit.org/ 실험적인 공연을 많이 해요.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공연 예 약을 하면 무료로 볼 수 있어요.
석으로 띄웁니다. 즉흥 사진전시죠. 배경음악도 관객들의 목소리를 녹음해서 틀어 요. 음악 작업하는 분도 한 팀이어요. 머싸이어스 에리언이라는 분이었죠. 춘천마임 축제나 피지컬씨어터페스티벌, 프린지 페스티벌 등 실험적 행사에도 많이 참여하고 있고, 화천 평화의 댐이나 노원 문화의 거리, 대학로, 홍대 주변에서도 공연을 했어 요. 어느 날 느닷없이 길거리에서 이 분들의 공연을 만나게 되면, 박수를 쳐주세요! 세계 각지를 다니면서 자신들의 뜻을 펼쳐가고 있거든요. 이들의 공연도 꼭 한 번 찾 아보세요. 즉흥 공연을 처음 보신다면, 신선한 경험일 거예요.
“세계 여행을 다니는 사람도 많지만, 우리 할머니처럼 돌아다니지 않아도 한 곳에 머 물러 상상 속 여행을 하는 사람이 있다.” 네비아라는 캐나다 서커스를 만든 연출가의 말이에요. 저는 세종문화회관 로비에서 그의 작품 소개를 들으면서, ‘예술의 힘’에 대 해 생각했어요. ‘네비아’ 서커스는 태양의 서커스만큼 나를 감동시키지는 못했지만, 연출가의 말은 인상 깊었어요. 머물고 정지해있어도, 언제나 다른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힘이 바로 상상이죠. 특히 작품의 손수건 소품을 얘기하다가 나온 말이었는데, 자신의 동네에서는 상대방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하얀 손수건을 흔들어주는 게 인 사법이라고 설명했어요. “멀리 떠날 때만이 아니라 동네 우유 한 병 사러 갈 때도 손 을 마구 흔들어준다. 지금의 ‘굿바이’가 영원한 ‘굿바이’가 될 수도 있다.” 태연하게 ‘지금의 굿바이가 영원한 굿바이’라는 문장을 던지는 연출가를 쳐다보면서, 마음이 서늘해졌죠. 그 말이 참 슬펐어요. ‘잠시 안녕’이라고 했지만 그게 ‘평생의 안녕’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가면서… 사람은 어른이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우리는 살 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 얼마나 소중한 사람과 ‘영원한 굿바이’를 통해 성장할까요? 굿바이를 성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58 한번 굿바이는 영원한 굿바이 ? _ 다니엘 핀지 파스카
59 자신만의 독특한 말투 찾기 _ 양동근
배우이자 가수 양동근은 말투가 참 독특해요. 제가 좋아하는 탤런트이기도 해요. MBC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는 제 인생에서 손에 꼽는 상위권 감동 드라마거든 요. 양동근이 군복무 중일 때 군뮤지컬 ‘마인’에 출연한 바람에 그를 인터뷰하러 부 대로 직접 들어간 적이 있었어요. 매우 소중한 경험이었죠. 대학 시절 군대 간 친구 나 동생 면회 갔던 기억이 났어요. 양동근 씨를 실제로 보니, ‘네 멋대로 해라’ 드라 마가 문득 떠올랐어요. 극 중 고복수가 눈앞에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너무 떨린 거예 요. 저도 당시에 ‘고복수’ 캐릭터를 향해서는 광팬이었거든요. ‘고복수 때보다 살이 쪘다’고 하자, 그때는 어릴 때라고 얘기했어요. 대화의 시작은 어쨌든 ‘네 멋’이었죠. 이것저것 부대생활에 대한 질문과 뮤지컬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면회 시간 이 끝나서 나가야 했어요. 채 한 시간도 안 되는 시간에 스타를 만나면 그에 대해 얼마나 알 수 있겠어요. 그저 기존에 드라마나 매체에서 본 이미지에 새로운 것을 덧씌울 뿐이죠. 다른 모습에 실 망하기도 하고 더 좋아지기도 하고 그렇죠. 양동근 씨는 기존 이미지에서 더 좋아진 쪽이에요. 말투 때문이었어요. 말투가 굉장히 독특한데, 그 어법이 사람을 기분 좋게 하죠. 그와 헤어진 뒤, 내 주변에서 말로 나를 재밌게 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생각 해봤어요. 그리고 버스에서 그 친구의 연락을 기다렸죠. 대화만으로 즐거워지는 사 람이 주변에 있나요? 저는 사람들의 말투에 은근히 예민한 편인데요. 재미있는 말투 를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따라하게 돼요. 물이 빨리 드는 편이죠. 양동근 씨의 인 터뷰 뒤, 한동안 그의 껄렁거리는 말투를 따라해 보느라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나요. 우울할 때는 주변 재미난 말투의 친구 말을 따라해 보거나, 고전을 펴고서 ‘~하오’ 문 체를 써보세요. ‘같이 영화 좀 보게.’, ‘같이 산책이나 하오.’ 말투만 한 번 바꿔보아도 한결 기분이 유쾌해집니다.
이청준 작가는 제가 중학교 때 좋아했던 영어선생님의 추천으로 좋아하게 된 작가 예요. 선생님은 제게 이청준 작가의 문학상수상작품집을 선물하며, 속지에 편지를 써서 건네주셨어요. 선생님을 존경해서 그랬던 건지, 정말로 이청준이 좋았던 건지 순식간에 이청준 작가의 절실한 독자가 됐죠. 중학생 이후로 꾸준히 저는 이청준 작 가의 작품을 쫓아 읽으며 저를 만들어나갔죠. 어릴 적 선생님은 어떻게 지내는지 연 락이 끊기고 말았지만, 그 분이 추천해준 이청준 작가는 살면서 꾸준히 고민의 해답 을 줬어요. 영어 선생님을 대신해서, 작가는 저의 스승이 되었죠. 2008년 여름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마음이 참 아팠어요. 별이 또 하나 진 거였죠. 아래 글은 이청준 작 가의 죽음 뒤에 쓴 기사였어요. “그거 참 듣던 중 희한한 얘기로군요. 아닌게 아니라 나도 이 선학동 비상학 이야기는 오래 전에 한 번 들은 일이 있었소마는 …이따 저녁 요기나 끝내고 나시거든 심심풀이로나 들려드릴까”
‘선학동 나그네’ 중에서
‘희한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사회와 개인이 품고 있는 특별한 사건들을 세세 하게 들려주고 싶었다. 가슴 속 한을 삭여야 하는 소리꾼의 과거를 풀어헤치듯 (선학 동 나그네) 세계가 안고 있는 부조리와 과거를 밝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이청준은 ‘기자’를 열망하던 시절, 본인이 열정적으로 존경한 작가였다. 진로 고민으로 덜컥거 릴 때마다 이청준은 불쑥 레이저를 쏘는 양 빛을 보냈다. 그의 소설 ‘소문의 벽’에 등 장하는 ‘전짓불’처럼 그는 내게 ‘전짓불’을 들이댄다. 불안감으로 좌절하던 얼굴에 불 을 비추면서 “너 어떻게 살 거니?” 물음을 강요했다. 그러나 그 질문은 “좌익인가? 우인인가?” 단답형을 강요하던 반공 시대의 전짓불처 럼 폭력적이지 않았다. ‘소문의 벽’의 전짓불은 한국전쟁 중 극 중 인물이 어두컴컴한 방에서 질문을 받던 상황에 등장한다. 질문자가 좌익인지 우익인지에 따라, 대답을 하는 소년과 어머니의 목숨이 생사를 오갈 수 있다. 그런데 전짓불 때문에 질문자 얼 굴이 보이지 않고, 공포심에 몸서리치는 것이다. ‘소문의 벽’은 실체 없는 언어 때문 에 겪는 불안감과 표현 욕구, 사회적 부조리를 다룬 소설이다. 실제로 대학시절 가정 교사를 하며 안정된 삶을 살지 못했던 이청준은 서울대 문리대 강의실에서 잠을 청 할 때 수위가 들이대던 전짓불의 공포를 이 소설에 반영했다고 한다. ‘소문의 벽’ 외 에도 ‘축제’, ‘당신들의 천국’, ‘이어도’ 등 이청춘 소설에는 유난히 기자가 많이 등장한 다. 그들은 매우 악착스럽고 집요하며 심지어 남의 장례식장에서도 하나라도 더 비 밀을 밝히려고 혈안이다. (당신들의 천국) 작가는 기자를 통해 글을 쓰는 본인의 심 정을 반영했다. 왜 기자를 지망하던 시절 이청준에 매료될 수밖에 없는지, 왜 그가 대 중적으로 사랑받는 작가였는지 이청준 문학 세계의 매력을 꼽아보았다. - 진실에 목마른 작가, 부단히 진실을 탐구하다 이청준의 문체는 은근한 멋이 있다. 시끌벅적하게 소리를 지르기보다는 현실을 냉 혹하게 관찰한 뒤 뒤로 꼬집어주는 기술이 대단하다. 비밀스러운 속삭임과 허장성 세는 한 끝 차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말하고 싶은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 다. 그리고 그러한 개인의 행동을 막으려는 방해 요인 또한 어디든 존재한다. 개인과 세계, 소수와 다수라는 구도에서 진실을 밝히려는 ‘작용’과 막으려는 ‘반작용’의 싸움 에서 작가는 진실 편에 선다. 특히 그가 소설에서 자주 사용하는 이야깃 속 이야기 구성인 ‘액자소설’ 기법은 꼬리
60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문제 탐구 스토리텔러 _ 이청준
에 꼬리를 물고 독자의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사건의 전면에 등장하지는 못하지만, 묵묵히 독자들에게 사건을 놓아주는 기자들처럼 이청준은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 한다. 이청준은 결코 소설 속에서 만큼은 친절하지 않다. 이청준 소설은 대개 사건 을 일방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독자가 함께 추리할 수 있도록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 이다. 신적인 위치가 아니라 동일한 인간으로서 “이거 왜 이런 거야?” 라는 호기심을 끌어낸다. 독자들은 소설 속 화자를 따라 탐정이 된 양 사건을 밝혀 가면 되는 것이 다. 영화 서편제에서 마치 ‘오정해와 김명곤은 실제로 어떤 사이야?’, ‘오정해의 눈은 왜 멀게 된 걸까?’ 질문을 던지며 영화를 보는 것처럼 말이다. - 경계에 선 예술가, 절제된 아름다움을 선보이다 이청준은 ‘매잡이’, ‘서편제’, ‘줄’을 통해 장인의 매력을 보여줬다. 개인적인 아픔을 본 인이 믿는 예술 세계로 승화시킨 소리꾼이나 작가들이 등장한다. 이때 주목할 점은 예술가들은 영혼이 가장 강한 사람도 아니고, 나약한 사람도 아니다. 그들은 일상과 일탈 사이에서 교묘하게 줄타기를 하는 ‘경계인’이다. 평범한 일상의 편을 들지도 않고, 극단의 쾌락과 고통에도 손을 들어주진 않는다. 자유와 절제의 가운데에 냉철 하게 서 있다. ‘벌레 이야기’에서 보듯 아이를 잃은 여자는 극단적인 증오심조차 떨 치고자 애를 쓴다. 유괴한 남자를 용서하겠다고 찾아가기까지 한다. 행여 자신의 노 력이 물거품이 되더라도 ‘고민’의 끈을 놓지 않고 증오의 대상과 화해하기 위해 노력 한다. ‘병신과 머저리’에서 정신적 고통의 원인을 찾으려고 고민하던 주인공도 마찬 가지이다. 이청준이 그려낸 인물들은 감정이 철철 넘치지도 않고, 푸석푸석 건조하 지도 않다. 절제된 중용의 캐릭터가 독자들을 깊게 끌어들인다. - 사그라들지 않는 지적 호기심, 부단히 노력하는 작가 이청준에게는 예술혼만 있던 게 아니다. 예술은 게으른 방종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 는 실제로 소설 외에도 에세이집이나 동화도 썼고, 여러 지면 매체의 인터뷰나 TV 출연을 통해 독자들을 만나왔다. 독일 작가 카프카가 낮에는 행정적인 일을 하고, 밤 에는 글만 쓰는 절제된 생활을 유지했듯, 이청준 또한 흘러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 도 않은 작품 활동을 했다. 이청준은 그의 작품을 바라는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다가 선 부지런한 작가였다. 이청준은 ‘소문의 벽’ 작가 후기에서 한 시대의 작가로서 시 대를 정직하게 살기를 바란다면 ‘보편적인 자아’를 찾아야 한다는 뜻을 내비친 바 있 다. 작가는 개인의 특수성에 매몰되기보다 경험을 바탕으로 넓은 세계관을 가지려 고 부단히 노력했다. 그는 퇴보하지 않는 작가였다. 어린 시절 가족의 죽음과 가난 등 개인적인 상처를 구제하려는 몸부림에서 글쓰기가 출발했지만 결국 여럿 한국의 독자들도 함께 구원한 이 시대 최고의 작가다. -그럼에도! 슬픔은 세상을 낙관하는 힘이 된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고3, 주말이면 서울 남산 도서관 3층에 틀어박혀 이청준의 소 설에 심취한 적이 있다. 그 때 느닷없이 심금을 울린 소설은 ‘별을 보여드립니다’였 다. 우정과 의리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 믿던 사춘기 시절, 천문학을 전 공하는 주인공이 망원경을 통해 친구에게 별을 보여준다. 이 때 별은 단지 하늘에 떠 있는 물리적인 별만은 아니었다. 부단히 마음 속 별을 꿈꾸는 것이다. 다른 소설 인 ‘별을 기르는 아이’에서도 등장인물이 누나를 찾겠다고 항상 돌아다닌다. 이미 교 통사고로 죽고 없는 누나였지만, 누나를 찾는 행동은 역설적으로 살아가는 힘이 된 다. 자신이 소유할 수 없는 것, 동경하는 것은 그저 꿈꾸는 것만으로도 삶의 에너지 가 된다. 꿈을 꾸지 않는 자, 연민이 사라진 자는 매우 불행한 사람이다. 이청준의 소
설 속 인물들은 아픔이 있음에도 그 아픔을 누르고 삶을 능동적으로 산다. 영화로도 유명한 ‘축제’는 세상을 이미 떠난 사람들조차 살아남은 자손들에게 그 흔적을 남기 는 것을 보여준다. 떠난 사람도 떠난 게 아니라는 역설이다. 과거를 잃는 것은 자기 가 살아온 역사를 잃는 것이다. 죽은 자의 장례식이 결국 축제 한마당으로 변하듯, 남은 자는 열심히 살아야 한다. 고인이 된 이청준이 독자들에게 바라는 것도 아마 삶 을 대하는 긍정의 힘일 것이다.
61 순정 상기 _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라는 시를 아시나요?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 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라고 시작하는 시예요.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고 하죠. 백석은 저를 한 번도 배신한 적 없는 제가 꾸준히 좋아하는 시인이에요. 백석의 이 시 때문에 저 는 ‘소주’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을 참 좋아해요. 실제 소주는 못 마시는데, 소주라는 이름만 좋아하죠. 소자는 한자어로 불사를 소(燒)이고 주는 술 주(酒)자예요. 도대체 누가 그 이름을 지었는지, 참 이름을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무엇을 불사르기 위해 사람들은 술을 마실까요? 소주만큼이나 이름이 아름다운 시인, 백석. 그의 실
백석
제 이름은 뭔지 아세요? 백기행이에요. 이름이 기행이라니, 정말 특이하지 않나요? 이름 따라 산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 이름은 제 또래에 없는 이름인데요. 제 윗세대 에서나 발견되는 이름이지요. 그 이름이 주는 순박한 이미지 때문에, 제가 매우 ‘아날 로그적’인 사람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서가 매우 ‘올드’하거든요. 백석의 “가 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는 구절은 정말 언제 읽어도 좋아요. 내가 사랑하면 눈이 온다는 거잖아요. 눈이 와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내가 사랑하면 그 장소에는 눈이 내린다고 하니, 얼마나 낭만적이에요? 삶 도 그러하다는 생각이죠. 판타지 영화처럼 내가 간절하게 바라고, 내가 그리워하고, 끊임없이 꿈꾸면 그곳엔 눈이 나릴 거예요. 자신만의 정서가 남들 눈에는 절대 보이 지 않죠. 시를 좋아하면 삶의 긍정적 에너지가 눈에 띄지 않게 저절로 생성돼요. 시 집 한 권 사면, 가난한 시인이 행복해질 수도 있어요. 스타벅스 테이크 아웃 커피 한 잔 아끼고 시집 좀 사 주세요. ㅜㅜ 커피도 좋지만 시집도 좋아요. ^^ 백석의 인생을 슬쩍(?) 아니, 장황하게 설명하자면 그는 평북 정주 갈산면 익성동에 서 장남으로 태어났어요. 오산소학교, 오산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고, 열여덟 살에 조선일보 단편소설이 당선되면서 등단을 해요. 영문학을 전공했고, 1934년 대학을 졸업하고는 조선일보에 입사해서 편집부 일을 하고 잡지도 만들죠. 당시에 모던보 이의 표상이기도 했어요. 영화 ‘모던보이’에서 박해일이 했던 머리스타일은 바로 백 석 스타일이에요. 백석은 입사 1년 뒤에 첫 시집을 발간했고, 1936년에는 조선일보를 그만두고 나와요. 영어교사로 재직하죠. 미술반을 맡기도 했대요. 이후에는 북만주 를 떠돌며 세관원 등 다른 직업을 갖게 되죠. 해방 후에는 평양에 정착해요. 어떻게 살았을지 궁금해요. 김일성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다고도 하고, 정치를 했 다고도 해요. (안 어울려요. ㅠㅠ) 부인이 백석을 너무 싫어해서 월남했다는 얘기도 있대요. 이렇게 저렇게 남은 이야기 중에서 진실과 거짓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그 래도 떠돌이 방랑꾼 백석 아저씨가 여러 편의 시를 남겨줘서 고마울 따름이죠. 특히 가난한 친구가 새 구두를 신은 것에 설레 하고, 고운 사람을 사랑하며, 생선 지짐이 맛있다는 말에 감사하는 정신을 가진 사람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기뻐요. “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잠풍(잔잔하 게 부는 바람) 날씨가 너무나 좋은 탓이고 / 가난한 동무가 새 구두를 신고 지나간 탓 이고 언제가 꼭 같은 넥타이를 매고 고운 사람을 사랑하는 탓이다/ 내가 이렇게 외 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또 내 많지 않은 월급이 고마운 탓이고 / 이렇게 젊은 나이로 코밑수염도 길러보는 탓이고 / 그리고 어느 가난한 집 부엌으로 달재 생선을 진장(간장)에 꼿꼿이 지진 것은 맛도 있다는 말이 자꾸 들려 오는 탓이다“ 참! 나타샤 이야기를 빠뜨리고 지나갈 뻔 했는데요. 백석에게 나타샤 시를 선물 받은 한 여자는 스물 둘에 네 살 많은 남자 백석에게 첫눈에 반한 분이에요. 오랜 세월 그
를 마음에 품었다고 해요. 백석이 정작 만주로 도망가서 함께 살자고 했을 때는 그를 거절했다고 하죠. 그의 인생에 걸림돌이 될까봐 걱정했다고 해요. 그런데 남북이 갈 리면서, 둘은 평생 못 만나는 인연이 된 거예요. 매년 백석의 생일이 되면 아무 음식 도 먹지 않았대요. 여든이 넘은 나이에 그 여성은 ‘내 사랑 백석’이라는 책을 출간해 요. 2억의 자비를 털어 ‘백석 문학상’도 만들었죠. 김진향, 김영한, 자야(子夜, 이태백 의 시에서 남자를 늘 그리워하는 여자의 이름, 백석이 지어준 이름이래요.) 라는 이 름을 가진 여성이에요. 서울 성북동의 ‘길상사’( http://www.kilsangsa.or.kr/) 절의 창 건주이기도 해요. 법명이 길상화예요. 법정 스님으로 유명한 길상사는 백석의 옛 연 인의 사연도 깃들어있죠. 그 여자 분의 말 중에 가장 인상 깊은 구절이 있어요. 누군 가 “언제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생각나느냐?”는 질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데 때가 있나?”라고 반문하셨대요. 자야는 살면서 얼마나 백석이 보고 싶었을까요? 감정의 정도가 상상 불가일 듯 합니다.
62 추억은 힘이 있다 _ 김민종
2009년 5월 20일 김민종의 사인을 받았어요. 그의 사인은 김민을 흘려쓴 뒤에 종에 서 ㅗ의 왼쪽을 삐침으로 흘려서 하트를 그린 뒤, 그 하트 안에 스마일 눈썹 표시를 하고, ‘행복’이라고 적어주는 거예요. 그는 사인 위에 “추억은 힘이 있다”라는 문장 을 적은 뒤 느낌표를 두 개나 쳐주었어요. 사인을 받으면서, 1992년 가을 친구들과 어린이 대공원으로 가을 소풍을 간 기억이 났어요. 저는 그때 김민종 발라드에 심취 해서 친구들에게 한 곡 한 곡 홍보하느라 바빴거든요. 잔디밭을 뛰어다니며 보는 친 구마다 앉으라고 해서 ‘또 다른 만남을 위해’와 ‘투유’를 불러줬어요. ‘또 다른 만남을 위해’는 김민종 1집의 타이틀 곡이었어요. 듣자마자 반해서, ‘이 노래 좀 들어보라’고 황급히 뛰어다녔죠. 노래도 잘하지도 못하고, 뭐 쇼맨십이 있는 사람도 아닌데…대 체 무슨 용기로 그 곡을 그렇게 부르고 뛰어다녔는지, 역시 팬의 정열은 폭발적이에 요. ^^ 그러다가 그 가을 소풍 날 저는 목이 쉬고 말았어요. 김민종 씨 발라드는 아무 나 따라할 수 없거든요. 음정이 꽤 높아요. 특히 뒷부분으로 가면, 이건 완전 고역이 죠. 아주 낮게 시작해서 저음으로 불러도 결국 뒷부분에서 음이 폭발적으로 높아지 거든요. “마음 울적해진 비가 오는 날엔 나를 그리며, 싫은 사연 속에 너를 만나겠지 예~ 낯선 너의 모습 보며 눈물 글썽이는 내 마음 아프겠지만 그리운 친구여 또 다 른 만남을 위해” 이게 그 노래의 마지막 부분인데요. 예~부터 부르기 진짜 힘들어 요. 숨이 가빠오거든요. ‘낯선’하고 좀 쉬고…불러야 해요. 저는 어릴 적에 ‘낯선’부터 그냥 아예 음정을 다시 내려서 불렀어요. 참 조잡하게 부르면서도 친구들을 붙들고 서는 저 노래를 홍보했죠. 김민종 씨를 TV에서 보면 어릴 적 열심히 발라드를 따라 부르던 기억이 떠올라 흐 뭇해져요. 팬의 기쁨이란 게 바로 이런 것이죠. 추억이잖아요. 추억을 먹고 살 수 있 죠. 과거 추억만 먹고 살면 재미없을까봐, 또 현재 진행형의 다른 추억거리를 던져 주 거든요. 김민종, 손지창의 ‘더 블루’는 활동을 재개했어요. 김민종 씨 사인을 받은 그 날… 저는 바로 1992년의 친구를 불러내 한참동안 스타 김민종이 정말 하나도 안 늙 었다며 17년 전 그대로라고 약간 과장해서 설레발을 떨었어요. 친구도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며 덩달아 그 시절의 추억을 얘기했죠. 당시에 그의 팬은 규모가 어마 어마했으니까요. 저희 반에도 엄청나게 많았죠. 과거 친구들의 얼굴이 어떤 때에는 그 친구가 좋아했던 스타와 겹쳐 떠오르기도 해요. 10대 시절의 스타를 30대에도 그 대로 볼 수 있다는 것은 팬의 영광입니다. 김민종 씨의 사인을 받던 날, 마치 피터팬 을 만난 것처럼 들떠서 떠들어댔죠. 오래 가는 배우, 오래 가는 가수들은 ‘추억의 힘’이 있죠. 당신의 오래된 스타는 누 구인가요?
저는 올해 초에 세종문화회관에서 점심시간에 진행되던 남궁연 씨의 재즈 강의를 들은 적이 있어요. 옛날에 꼭꼭 새벽 라디오에서 그분 방송을 챙겨듣던 기억이 있는 데, 매체가 아닌 실제의 강의를 접했기 때문에 더 색다른 감동이었죠. 그는 굉장히 말을 ‘맛있게’ 하는 분이세요. 그가 쓴 짧은 글이나 라디오에서 남긴 말들이 한때 ‘남 궁연 어록’이라고 해서 인터넷에서 유행한 적이 있었죠. 지금도 계속 많은 사람들이
63 변화로 거듭나기
읽고 있겠죠. 사실 그의 화법은 멋스러운 말을 골라 쓰기보다, 직설적이고 강한 뉘앙 스의 언어로 인상을 남겼어요. 그리고 그 말들에는 진심이 느껴졌죠. 저는 그 분 재
_
즈 강의를 몇 차례 들으면서 제가 고민하던 문제에 대해 답을 얻게 됐어요. 변하고
남궁연
싶은 열망이 극도로 강할 때, 재즈를 듣기 시작했는데, 그 분 역시 주저 없이 “나는 변 한다”고 얘기할 정도로 변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이셨어요. 그는 청소년들에게 ‘집을 나가라’, ‘부모에게 효도해라’ 등 어쩌면 반대될 것 같은 제안을 하기도 하는데, 그게 바로 ‘돌아온 탕자가 돼보라’는 권유라고 해요. 고생도 해봐야 깨닫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은 뭐든지 다 해봐야 후회도 없고, 그 안에서 더 맞는 색깔을 찾는다는 거죠. 그 과정이 바로 변화였어요.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되 수많은 경험과 타인에게 자신을 섞이게 하는 것 말이에요. 강의는 굉장히 쉽고 편안했고, 재즈로 심리치유를 하듯이 연상되는 이미지나 동물, 과거 추억들을 발표하도록 권했어요. 저는 기린의 모습이 종종 떠올랐어요. 옛날에 는 음악을 들으면서 딴 생각이 나면, 딴 생각 안 하고 음악에 집중하려고 저를 제어했 는데 꼭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재즈 강의를 통해 알게 됐죠. 남궁연 씨는 재즈 감상 으로 현재 심리를 파악할 수 있다고 했는데, 진짜로 그런 효과를 경험했어요. 그는 강한 비트의 헤비메탈부터 정교한 리듬의 재즈…어쩌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음악을 두루 거쳤는데요. (1987년 백두산 드러머로 연주를 하셨죠) 그게 바로 그를 매우 입체적인 캐릭터로 만들어낸 원천이 아닌지 혼자 상상해봤어요. ‘입체적으로 사고하고 공감각적인 사람’이 되고 싶을 때, 그의 재즈 강의를 들은 바람에 제게는 소중한 경험이 됐습니다.
64 슈퍼 스타 _
정석원은 제가 가장 오랫동안 좋아한 스타입니다. 015B라는 그룹을 몰랐을 때부터 좋아했어요. 어떻게 그룹도 모르고 그를 좋아할 수 있나 의아해할 수 있지만, 라디오 에서 음악 소개를 할 때 귀담아 들은 거죠. 정석원의 음악 여행이라는 코너로 음악 추천을 했어요. 중학교 1학년 여학생에게, 그의 음악 추천은 매우 넓은 세계였어요. 망망대해라 할 수 있죠. 음악과 관련한 여러 다양한 장르의 문화 얘기에도 귀를 기울 였어요. 그때 왜 그렇게 라디오에 빠졌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혼자 라디오를 들으 며 깔깔거리고 녹음하고, 별짓을 다했던 것 같아요. 이후에 밴드 멤버인 것을 알고, 015B와 무한궤도 등을 듣기 시작했고 윤종신, 김태우 등 공일오비의 가지치기를 통
정석원
해 좋아하는 가수들이 꾸준히 생겨났어요. 플라나리아 몸뚱이를 반 뚝 자르면 다시 두 마리가 되고, 또 자르면 네 마리가 되잖아요. 그렇게 자기 번식하듯이, 좋아하는 가수들이 늘어만 갔죠. 그 모태이자 뿌리가 정석원이라서, 저는 제 대중문화의 감수 성의 출발점은 ‘그’라고 규정해버렸답니다. 이제 또 다른 흠모할 사람을 찾아 여행하고 있지만, 추억은 버릴 수가 없죠. 015B의 모든 관련 기사를 스크랩하고, 라디오 방송을 녹음하고, 심지어 TV에 나오면 그것도 워크맨에 담아서 듣고 다니려고, 정석원 목소리만 따로 녹음했어요. 지금 돌이켜 생 각해보면, 이건 무슨 영화 ‘미저리’도 아니고, 좀 의아하기도 해요. 독한 팬이에요. ^^ 아주 가끔 그 옛날에 녹음해두었던, 정석원 음악 프로그램을 틀어보면 어쩜 노래는 뚝 자르고 목소리만 녹음했는지… 당시에는 녹음테이프 값을 너무 많이 쓰니까 아 끼려고 그런건데, 지금 생각하면 정말 코미디예요. 제 방에는 015B가 아몬드 빼빼로 광고를 할 때 광고 사진부터, 학교 앞에 팔던 엽서, 스티커, 당시 잡지의 기사 등 많은 것들이 보관돼 있어요.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면 015B 팬 사이트부터 만들어야지 했 는데, 시간이 흐르다보니 어느새 그 지독함도 사라져버렸네요. 그래도 콘서트를 하 면 소위 빛의 속도로 공연장 맨 앞자리를 끊고, 음반이 나오면 바로 구매합니다. 그 정도 충성심은 버리지 않았어요. 팬으로서의 성실성이 어쩌면 일상의 적극성으로도 연결되는 것 같기도 해요. 스타들에게 열광하는 청소년들을 볼 때면, ‘저런 열정이면 분명 세상 즐겁게 살 것이다’라고 생각하죠. 정석원을 왜 그렇게 좋아했는가 생각해 보면 그의 달변과 순정이 좋았어요. 015B 노래들을 들으며, 그 노래만큼의 사랑을 이 어갔죠. 정석원이 다음 앨범에서는 ‘그녀’에게 뭐라고 할까? 그녀를 위해 어떤 노래 를 발표할까? 굉장히 궁금했던 거죠. 015B 음악을 틀어놓고 밤새 소설책을 읽고, 영 화를 보고 놀다보니 지금의 제가 만들어져있었어요. 또 어떻게 흘러갈지는 살아봐야 알겠죠? 현재 좋아하고 동경하고 있는 게 뭔지 점 검해봐야겠어요. 그게 바로 제 미래일 수도 있으니까요. 여러분도 꾸준히 항상 ‘내 가 가장 좋아하는 게 뭐지?’라는 질문을 자주 해보세요. 질문도 ‘자주 하는 버릇해야’ 자신도 답을 잘 내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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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김규항 씨 글을 열심히 읽은 저로서는, 그가 제 젊은 날의 정치관을 형성했 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2005년 돌베개 출판사의 ‘B급 좌파’도 출판 당시 제가 좋아한 책입니다. 그 책을 읽으면서 그가 딸을 키우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어요. 의사
세계관 갈구
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남이 겪는 일상적인 일은 다 겪어보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나쁜 것도 보고 자랄 필요가 있고37) 불의를 보고 폭발하 는 것도 필요해요. 저는 만일 엄마가 된다면 제 아이를 정규 교육보다는 대안학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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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책을 보고 나서는 생각이 또 바뀌었지요. ^^;; 특히 진보와 개혁이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그는 끊임없이 주장하고 있는데, ‘~하는
김규항
척’과 시스템 자체를 바꾸는 것은 다르다는 얘기였습니다. 최근에 한겨레신문에도 칼럼을 쓸 때도 강조하는 사실이죠. 그 분의 견해를 쫓아가다보면, 남의 프리즘을 통 해 세상을 보는 건 굉장히 ‘유아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 견해를 갖고 싶다 는 열망이 생기게 되죠. 김규항 씨 궤적을 쫓으면서 저도 모르게 예술 활동만으로 모 든 정치의식을 소비해버리는 젊음에 대해 고민을 시작했을 거예요. 많은 젊은 피들 이 그저 영화 관람으로 수동적인 정치의식을 형성하고 있으니까요. 제 자신도 인정 하고 반성하고 극복하려는 부분입니다. 실제 현실에 대한 발언보다, 영화감독이나 소설가, 공연 연출가 등 다른 이의 정치의식에 기대어 세상을 보려고 하죠. 물론 이 또한 중요하지만, 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은, 이제 자신의 프리즘을 만드는 일 아닐까 요? 김규항 씨의 의견을 호응하고 반박하면서 그 분 글을 즐겨 읽다보니 저는 제 자 신을 많이 찾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 모르겠지만요. 현실과 타협하지 않을 양이라 면… 자신의 글이 얼마간의 지적 유희로만 소비되고 싶지 않다면, 차라리 ‘읽기 불편 한 글’을 쓰겠다는 그의 자세, 그것 때문에 제가 존경하는 필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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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발행하는 어린이 잡지 ‘고래가 그랬 어’는 예쁜 세상만을 그리지 않습니다. 동 화를 쓰시는 고정욱 소설가도 그의 동화에 서 장애인의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는 글쓰 기를 하고 계십니다. 아이의 꿈은 무조건 예쁜 것만 본다고 해서 형성되는 게 아니 라, 불의의 현실 속에서도 생길 수 있을 테 니까요. 천운영 소설가도 추의 영역을 아름 다움으로 끌어올리는 글을 보여주고 계십 니다. 세 분 모두 제가 존경하는 작가예요.
66 좋아하는 것을 할때 당신의 표정을 아나요? 발견해보세요 _ 보드카레인 키보디스트 이요한
그룹 보드카레인의 키보디스트 이요한 씨는 정규 멤버가 아니라 세션입니다. 본래 키보디스트이자 작편곡자로 활동하고 있다고 해요. 그런데 제가 그 밴드 콘서트에 가면 눈길 고정하고 열광하는 멤버입니다. 다른 분들도 그런 방법을 쓰시겠지만, 제 가 매너리즘을 극복하는 방법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거예요. 좋아 하는 일을 좋아하는 표정으로 하는 사람의 기운을 슬쩍 빌려오는 거죠. 좋아하는 일 을 한다면서 짜증내는 사람이 진짜 싫고, 차라리 싫은 일을 좋아하는 척 하는 사람 이 더 멋있긴 해요. 좋아하는 일을 좋아하는 표정으로 하면 그게 제일 금상첨화겠 죠. 사람들이 영화나 스포츠를 보는 것도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배우가 가상의 캐릭 터에 완전히 동화되어 연기인지 삶인지 모를 연기를 선보일 때, 사람들은 그 연기 에 반해 힘을 얻어요. 스포츠 선수들의 경기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어쩜 저렇게 열심 히 할 수가 있지?’ 게으름 피지 않는 선수들을 보면서 자신의 삶을 반성하기도 하고 요. 저는 축구를 볼 때 항상 걷지 않고 계속 뛰는 선수 한 두 명을 눈여겨 계속 추적 하는 편이에요. 일적으로 프랑스 축구나 네덜란드 축구를 봤을 때도, 한 명의 선수 에만 집중하다보면 경기가 지루하지 않았어요. 그의 에너지를 제가 간접적으로 느 끼면서 용기를 얻는 거예요. 보드카레인의 키보디스트가 바로 그런 분이죠. 무대 위에서 정말 신나고 즐거운 표 정으로 키보드를 치고 있어요. 자기만의 세계에 푹 빠져버린 사람 같기도 합니다. 뭐 가 그렇게 즐거운지, 표정에 설렘이 고스란히 묻어나죠. 그리고 그 세션은 글을 잘 써 요. 저는 그 분의 팬이다 보니, 연줄과 친분 없는 ‘1촌’입니다. 이게 무슨 유치한 싸이 1촌 자랑질인지 -_-+;;; 저는 그분 싸이 미니 홈피에 들어갔다가 그가 종교 음악을 하는 분인 걸 알았어요. 저는 가톨릭 신자이지만, CBS의 CCM을 즐겨듣는 편이에요. 이요한 씨는 CCM 음반을 발매했고 홈피 대문에 음악을 걸어놓았는데 듣기 참 좋아 요. add9라는 그룹인데, 9번째 음을 추가해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싶다는 의미 래요. 저는 CCM 중간에 대사(?)만 나오지 않으면 잘 듣는 편이에요. 그런데 중간에 사람들이 말하는 목소리가 들리면, 좀 무서워서 안 들어요. 종교에 대한 선입견은 없 는 편이지만 저도 제 종교가 있다보니, 독실 기독 신자에게 낯선 느낌을 받는 것은 어쩔 수가 없더라고요. 그럼에도 제 친구 중에는 독실 기독 신자들이 참 많아요. 저 는 라디오를 워낙 좋아해서, 천주교 방송 외에도 불교 방송, 원음 방송, 기독교 방송 등은 가리지 않고 듣는 편이에요. 종교 방송에서 들려주는 잠언 한 구절이 불쑥 사람 을 위로하기도 하죠. 멜로디가 착착 귀에 감기는, 마음이 편한 음악을 듣고 싶다면, 이요한 씨의 add9 음악도 강력 추천합니다.
우리나라에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팬들이 많죠. 심지어 어떤 사람은 ‘오르한 파무 크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한국이 먹여 살린다’는 우스갯소리까지 하더라고요. 그 만큼 그들은 그 나라 안에서 못잖게 우리나라에서 심하게 인기가 있는 작가들입니 다. 제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보고 가장 좋았던 점은 ‘불안증’을 대하는 자세였습 니다. 그는 지극히 평화로워 보이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인상은 정말 유쾌한 아저씨 처럼 보였지만, 내면의 평화를 얻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현재진행
67 성실하고 예민한 남자
형’이었죠. 그게 도리어 존경스러웠어요.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매일 몇 시간씩 꾸준 히 글을 쓰기로도 유명합니다. 성실이 그의 무기죠. ‘개미’도 어릴 적부터 꾸준히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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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책이라고 해요. 어느 한 순간에 영감을 받았다며 ‘쉬리릭’ 쓴 게 아니라, 오랜 세
베르나르 베르베르
월 갈고 닦은 것이 그의 작품들입니다. 그는 지금도 오전에 일어나면 성실하게 글을 쓸 정도로, 꾸준히 규칙적으로 일에 몰두하는 사람입니다. 성실만이 희망이죠. 지금 낙담하고 계신다면, 낙담하는 순간조차 뭔가 꾸준히 무언가를 시도하는 ‘성실성’으 로 바꿔보세요. 정말 내가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우직하게 무언가를 쫓았는데도 안 된다면, 그때는 과감하게 포기하셔도 괜찮아요. 그런데 계속 마음이 께름칙한 게 남 아 있다면, 아직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다는 증거일지도 몰라요. 베르베르 아저씨의 ‘개미’도 한 순간에 탄생한 건 아니니까요. 그도 매우 예민한 남자였고 성실하게 답 을 찾아 살았잖아요. 자신의 꿈을 ‘속 편하고 느긋하게’ 이루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을까요? 괴로움을 즐기세요. 제가 베르베르 아저씨를 만난 이후로 바뀐 습관이 있다면, (진실로 인터 뷰 쎄러피 ^^) 인공적인 것을 싫어하게 된 점이죠. 그는 한국 기자들과 인터뷰를 할 때, 불을 끄길 바라더군요. 형광등도 싫어했어요.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는 촛불만 켰죠. 기계음도 싫어했어요. 파주 출판 단지에서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는데, 어두컴 컴해지고 있는 사무실에서 베르베르의 말을 받아 적으면서, 저는 ‘예민함도 미덕’이 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요새는 주말에 집에 있을 때 해가 질 무렵에도 불을 켜 지 않고 있다보면, 베르베르 아저씨가 생각납니다. 저는 원래 혼자 있을 때 DMB 드 라마와 라디오, TV, 인터넷을 모두 켜 놓을 정도로 정신 산만하고 매체 중독인 여자 였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급속도로 성격이 변화해서 지금은 혼자 있을 때 지극 히 고요하게 있는 편인데요. 또 제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지만, 삶의 방식을 한번씩 바꿔보는 것도 자신의 내면에 귀 기울이는 데에 효율적인 방법이더군요. 과거 어느 가요 가사 중에 ‘담배를 끊읍시다. TV를 끄세요’ 뭐 이런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노 래가 있었어요. 저 가사가 맞는지도 확실하지 않지만, 주변에 작용하는 모든 것들을 잠시 내려놓고 고요 속으로 침잠하도록 권하는 게 아니었을까 싶네요. 당신은 하루 에 몇 분이나 고요 속에 있나요? 취침 시간을 제외하면 어쩌면 1분도 없을 지도 몰 라요. 하루에 10분은 꼭 명상을 하는 데에 자신의 정신을 집중해보세요. 베르나르 베 르베르도 요사이 도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 무예 같기도 하고 한 포즈를 취하며 정 신 집중을 하는 모습을 선보여 깜짝 놀라게 했어요. 그는 진실로 예민한 자아를 갈 고 닦으며 내면의 평화를 찾으려 노력하는 작가였던 거죠. 그 과정에서 재미난 소설 도 끝없이 탄생하고 있답니다.
68 사회적 시선 견지 _ 이정은
연극배우 이정은 씨는 제가 존경하는 배우입니다. 그와 얘기를 나누면, 정말 많은 것 을 배우게 되죠. 제 부모님도 이정은 씨의 할머니 연기를 보고 반해버렸습니다. ‘빨 래’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으니, 빨래에서 할머니 연기를 했던 분이라면 아시는 분 들도 있을 거예요. 최근에 봉준호 감독의 ‘마더’에도 출연하시기도 했죠. 그 분은 사 람들을 관찰하고 머릿속에 이미지를 그리는 것에 굉장히 열심이세요. 언젠가 제가 ‘말이 너무 빠르다’고 고민하니, 연습으로 충분히 고칠 수 있다고 하시면서 현란한 손 동작을 보여주셨어요. 이 또한 ‘훈련’으로 가능하다는 말씀이셨죠. 외국에는 배우와 연출자 외에도 ‘액팅 코치’가 있다는데, 이 분을 뵈면 짧은 순간이지만 액팅 교육을 받은 기분도 들었어요. 사회적인 문제에도 항상 촉수를 세우고 계시죠. 예술과 삶을 분리시키지 않는 분입니다. 전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보면서 굉장히 마음이 불편 했던 기억이 나요. 과거의 궁정 예술을 본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평일 낮에 공연장 을 가득 채운 사람들, 10만원을 호가하는 ‘이름 있는’ 작품을 보면서 ‘과연 진정한 예 술이란 무엇일까?’ 고민에 빠진 거죠. 이건 취향의 차이일 뿐이기도 하지만… 제 인 생관은 예술이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현실 수단이 되는 게 아니라, ‘일상 어디라도 누구에게나 스미길 바라는 입장’이다보니, 값비싼 유명 공연 앞에서 항상 마음이 불 편해집니다. 저의 이런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분이 바로 이정은 씨이기도 해서, 저는 이 분을 매우 고맙게 생각해요. 이정은 씨는 연극 배우 최광일 씨와도 지인인데요. 저는 최광일 씨 팬이기도 합니 다. 어떤 캐릭터이든 연출가의 손길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최광일 씨 연기를 보 면서 창작자가 만들어낸 뻔한 캐릭터라도 배우의 자질에 따라 ‘맛깔스럽게’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배우 역시 창작자였던 거예요. 어린 시절 대중 매체를 공부 할 때, ‘PD(한편으로는 작가)와 배우 중 어떤 이가 드라마의 재미를 더 이끌어 내는 가?’로 토론한 적이 있는데요. 항상 프로듀서 쪽의 자질을 더 중시하는 편이었다면, 연극을 보면서 배우들을 좀 더 경이롭게 지켜보게 된 것 같습니다. 아직 이 질문에 대 한 답은 내리지 못했지만, 작품을 관람하고 공부하면서 계속 찾아봐야겠죠. 연극배우들의 섬세한 감정 표현을 보고 나면, 연기의 신비로움이 고스란히 느껴진 답니다. 이정은 씨의 경우 배우가 잔재주 부리는 걸 가장 나쁜 것으로 여깁니다. 성 실한 훈련과 노력은 역시 대가에게는 필수였던 거죠. 특히 이정은 씨는 ‘형사 같은 눈’을 배우의 좋은 자질로 보았어요. 형사는 범인을 쫓을 때 세밀하게 동선을 추적하 잖아요. 디테일이 살아있는 연기를 최고로 말씀하셨던 그 분은 그런 예리한 눈과 연 기력을 위해 언제나 노력하고 계신 분입니다. 이정은 씨의 팬이 되면, 삶을 성실하고 세밀하게… 무엇보다 비판적으로 보는 눈을 배우게 됩니다. 그의 섬세한 연기를 보 게 되면, 자연스레 느끼게 될 거예요.
워낙에 골수팬이 많아서, 제가 팬이 되자고 권하기는 사실 민망할 정도이지요. 이 글 을 읽는 분 역시 유희열 씨 팬인 확률도 높을 것 같고요. 유희열 씨는 이제 아예 대 중적인 스타잖아요. 그래도 유희열 씨를 꼭 언급하고 싶었던 것은, ‘순수에 대한 열 망’이 아직 센 대중음악인이라고 느끼기 때문이죠. 사람들이 ‘뜨면 변한다’란 말을 많 이 하잖아요. ‘떴는데 안 변하면 그것도 이상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전적으로 개 인적 판단 기준입니다만, 유희열 씨는 지금보다 더 스타가 되도 안 변할 것 같은 사 람입니다. 매우 ‘독한’ 사람이에요. 실제로 유희열 씨는 어느 인터뷰에서 “제가 팬들 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독해요”라고 말했습니다. 예능,오락 프로그램 등의 쇼 PD들이 그를 그냥 가만두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많이 했죠. MC 제의를 당연히 많이 받았을 테니 “다른 프로그램에도 출연할 생각이냐?”고 물은 질문에 대해서 그는 ‘독 하다’는 답변을 했습니다. 바로 ‘안 하겠다’는 말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읽혔습니 다. 그룹 인터뷰에서 제가 던진 질문이었습니다. 저 또한 유희열을 좋아한 세대입니 다. 어릴 적 그의 그림 산문집 ‘익숙한 그 집 앞’을 보며 자란 세대죠. 음반뿐 아니라, 라디오 프로그램도 좋았죠. 고등학교 시절 윤종신 씨 개인 앨범에서 이름을 확인했 을 때는, 뭐랄까 배신감 때문에 유희열 씨를 배타적으로 대했어요. 원래 정석원 씨와 계속 작업을 했던 가수 윤종신이 다른 이와 작업을 한다는 것을 어린 나이에는 받아 들이지 못한 거예요. ^^ 팬의 환상이란 게 그래요. 이상한 의리가 있거든요. 그런데 음악을 들으면서 또 반하고 말았고, 그렇게 하다 토이도 좋아하고 김연우 씨도 좋아 하고 ‘가지 뻗기’로 많은 가수들의 음반을 사 모았죠. 저는 가요 광이에요. 학창 시절 에는 가요는 웬만하면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열심히 들었죠. 거의 그냥 틀어놓고 살았다고 보면 되고, 영어 공부하겠다고 산 ‘마이마이’에 가요 테이프만 늘어질 정도 로 들었죠. 가요 악보가 들어있는 가요집도 꼬박꼬박 사서 가사 외우고 좋아하는 부 분에 참고서 줄 치듯 형광펜 칠하고 놀았어요. 중학생 시절에는 제가 좋아하는 가수 를 친구들에게 줄곧 같이 좋아하자고 강요했고, 노래방이 처음 생기던 시절 제가 미 는 곡을 직접 부르며 소개했어요. 몇 년 전, 015B 정석원을 시작점으로 해서, 제가 좋아했던 가수들의 구조도를 점과 직선으로 수첩에 그려본 적이 있어요. 정석원, 이승환, 유희열, 윤종신, 이장우, 김태 우 (GOD 김태우 아님, 공일오비 객원가수, 그룹 ‘뮤턴트’), 조성민(야구 선수 조성민 아님, 공일오비 객원가수, 그룹 ‘벨벳 글로브’, ‘레드 플러스’) 등 주르륵 적다가 웃었 던 건, 그들이 지금 제 주변의 친한 친구나 사회적 동료들(male friend)과 정말 비슷한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중생 때 사모했던 가수들을 결국 10~15년 사이에 주변에서 익숙한 성격으로 측근으로 맞이한(?) 것이죠. 내 친구들이 분명 정석원은 아니고, 이장우도 아니고, 이승환도 아니지만… 지금 제 주변에는 이승환 씨처럼 동 안에다가 달변가인 친구가 있고, 정석원 씨처럼 문이과적인 통합적 사고, 고집 있게 창작력을 밀어붙이는 친구가 있어요. 발라드를 좋아하고 종종 눈물을 보이기도 하 는 감성 남들도 많다는 거죠. 가끔 이 친구들이 내 사춘기 동성 친구로 느껴질 만큼, 남녀라는 성별을 떠나 감수성의 세계를 공유하고 삶을 위로받곤 해요. 결국 제가 내 린 결론은, 좋아하는 대상을 계속 꿈속에서 그리면 만난다는 거예요. ‘이런 사람이 좋 아!’라고 끊임없이 떠들고 머릿속에서 정리하다보면, 그가 눈앞에 있기도 하죠. 저는 요새 한창 TV 진행자로 뜨고 있는 유희열 씨가 어릴 적 추억 그대로 음악인으 로 남아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그는 자신이 물질적인 것, 눈에 보이는 어 떤 것에 지배당하기 싫다는 의사를 인터뷰에서 표현했어요.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
69 우윳빛 꽃미남 골수팬 보유 음악인 _ 유희열 .
니까. 그래서 마지노선을 음악 프로그램 진행자 정도로 한정 지을 거라고 했어요. 저 는 그의 ‘올곧음’에 박수를 칩니다. 짝짝짝!!! 저와 친하지 않은 어떤 사람은 제가 유 희열 칭찬을 늘어놓자, 바로 “그런 사람이 뒤로 더 돈 밝히고 제일 먼저 썩는다”며 악 담을 했습니다. ‘이 사람과 더 친해지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죠. 유희열 씨가 절대 오락, 예능 프로그램에서 그의 재기를 발산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어차피 자신 의 재능이란, 한 쪽에서 새면 다른 한 쪽으로는 쓰기 힘들테니까요. 저는 지금도 윤 종신 씨의 팬이기는 하지만 그가 처음에 오락, 예능에 나올 때는 TV에서 자주 본다 고 좋았했만, 희소성이 사라지면서 요새는 그에 대한 팬심이 다소 시들었어요. 절대 죽지 않을 것 같은 팬심이었는데… 라디오 DJ로서의 윤종신의 매력을 익히 알기에 그의 달변은 줄어들지 않을 건 알지만, 그 쪽에 에너지를 쓰다가 음악적인 퇴보를 하 면 어쩌지 팬으로서 노심초사합니다. 오랜 팬이란 결국 장단점을 모두 보는 것이라 생각하며 위로하고 있지만요. 제가 좋아했던 과거 스타들과 이제는 결별할 때가 된 것 같긴 해요. 새로운 별을 찾으러 떠나고자 제 과거 행복 대상을 모두 풀어놓는 것 일 수도 있고요. 저는 이제 제가 좋아했던 별들을 지나쳐 다른 행성으로 가려고 합 니다. 무슨 은하철도 999 철이도 아닌데 말입니다. ^^; 삶의 순간순간. 놓아줄 대상과 다시 붙잡을 대상, 찾아야 할 대상을 ‘선택’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일 아닐까요? 미 래의 나를 결정하니 말이죠. 제가 마치 정석원, 유희열, 윤종신, 이승환…을 추앙하 면서 지금 현재 비슷한 캐릭터의 친구들이 많은 것처럼 말이에요. 미래의 제 친구들 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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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 현실 망각 판타지를 제공받는 최후의 보루는 바로 ‘꽃보다 남자’의 따오밍쓰 언 승욱입니다. 언승욱을 어찌나 좋아했는지, 저는 공항에 그가 왔을 때 친구와 달려가 서 코앞에서 얼굴을 보았지요. 제가 10때 꾸던 꿈 중 하나가, 장국영을 직접 인터뷰
현실 망각 판타지를 위한 나의 스타
하는 거였어요. 그런데 장국영은 제가 구직자로 찌들어 바닥을 긁고 있을 때 세상을 떠나버렸어요. 그때는 그와 함께 제 꿈도 몽땅 사라진 느낌이라 너무 허무했죠. 별 이 저버린 거였어요. 특히 그가 영화의 캐릭터와 일체가 된 듯 그렇게 떠났기 때문에 (아비정전의 고집 세고 고독한 아비의 모습) 저도 장국영 기일에는 아무 것도 안 하 고 장국영 추모제에 가서 장국영 영화만 봤어요. 영웅본색, 아비정전, 동사서독, 성 월동화… 장국영을 떠나보내고 제가 다시 극심하게 좋아하게 된 중화권 스타는 언 승욱이었어요. 제 친구들은 ‘아이스 승욱’이라고 놀렸어요. ‘썰렁 승욱’이라고 부르기 도 했지요. 영어 이름은 제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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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겨울 우리나라에 내한했는데, 그때 김포 공항에 가서 드디어 옆에서 얼굴을
언승욱
봤는데요. 사람들이 ‘제리’, ‘제리’하고 따라가는데, 제 귀에는 그 단어가 ‘테리’, ‘테 리’로 들리더랍니다. ^^ 테리는 테리우스를 말하는데요. ‘캔디캔디’ 만화를 보면 테 리우스가 결국 배우가 되거든요. ‘햄릿’ 연극을 마치고 공연장을 빠져나가는데, 여자 들이 뒤따라가며 ‘테리’라고 외쳐요. 캔디는 함께 ‘테리’를 외치지만 만나지는 못해 요. 옆에 수잔나라는 테리의 애인이 테리우스와 차에 함께 올라타죠, 테리우스는 잠 시 고개를 돌렸다가(마치 캔디의 목소리를 들은 듯^^) 얼른 마차를 타고 가버려요. 아! 아 ! 너무 슬픈 장면이에요! 저는 언승욱이 김포공항에 내려서 게이트를 빠져나 와 밴을 타고 사라지기까지, 만화 ‘캔디캔디’를 찍은 듯 환상에 빠졌어요. 그리고 그 다음 날에는 언승욱의 라이브 공연을 보면서, ‘이게 꿈이야? 생시야?’ 볼을 꼬집었답 니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무대 맨 앞에 가서 스태프인 양 언승욱의 라이브를 감 상했거든요. 저는 종종 어떤 대형 콘서트 장에서 어떻게든 스태프인 양 ^^ 연기(?)를 해요 -_-+ 그러면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요. ‘안녕이란 말 대신’을 부르던 비를 좋아 할 때나 ‘빅뱅’ 초기에 좋아할 때도 그랬어요. (지금은 비, 빅팽 팬 아님) 스타를 눈앞 에서 보고 싶으면, 비표라고 하는 것을 구하면 가장 편리하고 그냥 다소 뻔뻔스럽게 스태프인 척 하면 되는데… 추천하지는 않을게요. 너무 뻔뻔스럽고 민망해요. 요새 는 안 그래요. 저도 철이 든 거죠. 정말 좋아하면 가까이에서 보고 사인 받고 인사하고 짧은 대화하는 정도야(?) 열의 만 있으면 할 수 있어요. 그 정도 용기(?)가 난다면 정말 좋아하는 것이고, 용기 안 나 면 좋아하지 않는 거죠. 전 좀 단순 무식하게 좋아하는 척도를 생각해요. 스타가 아 니라 이성 간에도 정말 얼굴 보고 얘기하고 싶으면 사랑하는 거고, ‘봐도 그만 안 봐 도 그만’이면 사랑하지 않는 거죠. 언승욱은 제가 극심하게 열의를 발휘할 정도로, 좋아했습니다. 흔히 얼굴을 클로즈업한 ‘직찍’ 사진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무 대에서 장미꽃 선물을 못한 게 좀 아까울 뿐이에요. 지난 해 대만의 새해 방송을 우 리나라에 와서 녹화방송으로 촬영하고 갔거든요. 언승욱은 ‘꽃보다 남자’ 대만판의 주인공입니다. 저는 탤런트 이민호 씨를 처음 봤을 때, 대만판 배우와 비슷한 마스크라고 생각했죠. 저는 한국판 ‘꽃보다 남자’를 재미있 게 보지 못했습니다. 한두 번 보려고 시도해봤는데, 도무지 드라마에 빠져들지 못했 어요. 대만판 ‘꽃보다 남자’를 심하게 좋아해서, 일본판 ‘꽃남’까지 보지 않았을 정도 니까요. 제게는 그게 일종의 지독한 의리였어요. 변심할까봐 싫은 거죠. 요새도 아주 가끔 너무 우울할 때는 ‘꽃보다 남자’나 ‘캔디캔디’를 봐요. 현실 망각에는 최고의 수
38)
38) ‘꽃보다 남자’를 좋아하면, 대만판(제목 |유성화원) 속편 드라마까지 보시면 좋아 요. 그런데 흔히 요새 말하는 ‘막장’ 순정 멜로드라마의 요소가 모두 들어갑니다. 남 자가 기억상실증에 걸리고 부탄의 공주와 사랑에 빠지고, 원래 사랑했던 평민 여자 를 까맣게 잊어버리죠. 여자는 남자의 사 랑을 다시 얻으려고 하지만 힘들어하고 그 러다가 다시 남자가 기억을 되찾는… 이건 뭐 ‘겨울 연가’의 배용준, 최지우 커플 스토 리와도 비슷하죠.
단이죠. 언승욱은 가수이기도 해서, 그의 발라드 곡들도 좋아합니다. ‘꽃남’이나 ‘캔 디캔디’ 모두, 얼토당토않게 멋진 남자들의 사랑을 한꺼번에 받으면서 그걸 은근히 거부하는 아주 뻔뻔한 여주인공이 등장하죠. 그 순진무구하게 능청스러운 캐릭터에 서 삶을 위로받곤 합니다. 어차피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다 갖는다고 행복이 결정되 진 않아요. 좋아하는 것을 밀쳐낼 순간이 와도, 그래도 행복은 찾아온다는 이상한 교 훈도 얻게 됐으니까요. 캔디가 안소니, 테리우스와 사랑이 이뤄졌다면, ‘캔디캔디’가 그렇게 재미있을까요? 꽃남의 산차이(여주인공)가 따오밍쓰(언승욱)와 사랑을 이뤘 다면 어땠을까요? 극 중에서는 이뤄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한 게 시청자를 빨아들이거 든요. 결국 대만에서는 속편38)까지 만들고, 헤피엔딩으로 마무리했지만 말이죠.
제가 최근 1-2년 사이 가장 많이 홍보한 책은 ‘행복한 난청’입니다. 조연호 시인이 쓴 산문집인데, 산문이라기보다는 문장이 시에 가깝고, 음악과 공간과 사적인 추억이 모두 어우러진 공감각적인 글입니다. 글을 읽다보면, 통각(사전적 의미 - <심리> 고 통스러운 감정이 따르는 감각. 피부의 자극이나 신체 내부의 자극에 의하여 일어난 다. 좁은 의미로는 피부의 통점의 자극에 의한 감각만을 이른다. )이 반응하는 것만
71 행복한 난청
같아요. 한 문장 한 문장을 공들여 쓴 작가의 장인정신에도 놀라고, 그가 그려놓은 감각들을 따라가면서 아픔을 없애는 제게도 매우 ‘긍정적인’ 책입니다. 표면적으로
_
는 음울한 분위기의 글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곱씹을수록 정신적 공간을 부추기
조연호
는 글이죠. 바닥을 치고 올라가는 듯한 기분 상승을 경험합니다. 실제로 타본 적은 없습니다만, 저는 자이로드롭을 타면 이런 기분일 것 같아요. 지극히 슬플 때, 울적 한 기분이 바닥에 닿을 때 저는 조연호 시인의 글을 읽습니다. 죽음을 말하지만 삶 을 살게 하는 희망을 부르는 문장들에 매료당하죠. 마치 알약 하나씩을 삼키듯, 아무 페이지나 열어서 읽다보면, 슬픔이 잠시 정화되곤 합니다. 어쩌면 매우 역설적인 게, 저는 ‘행복한 난청’이 필요 없는 삶이 행복에 다다른 삶인가 싶네요. 그 때문인지 제 목도 모순이죠. 난청이 행복이죠. 들리지 않아도 행복하고, 보이지 않아도 행복하고, 소유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행복을 명료한 어떤 것에서 찾으려고 하면 고 통만이 증가될 테니, 어느 순간엔 모든 일체의 구속에서 벗어나려고 해보세요. 예술 이든, 종교든, 자연이든, 자신에게 잘 맞는 위로의 방법 한 가지는 꼭 있을 테니까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불교용품점에서 산, 거의 무취에 가까운 ‘단화’라는 이름의 향에서는 옅은 색깔의 나비가 날아오른다. 긴 대를 하나 뽑아 불을 붙여두고 진녹 빛의 긴 막대가 불꽃으로, 연기로, 향으로 몸을 바꾸는 것을 천천히 바라본다. 공기의 결을 따라 향연은 방 안을 떠돈다. 빛이 공간의 만곡을 따라 진행하듯, 향의 결은 서서히 엷어지며 허공 속으로 스민다. 사라지는 것과는 약속을 하기도, 약속을 어기기도 좋은 날이다. 무채색의 길들이 내가 감각하지 못하는 어떤 곳에서 꼬리를 말고 고요해진다. 되도록, 조용히 계절을 건져 올리고 조용히 계절을 떨어뜨리자고 나를 다독인다. 내가 알고 있는 시간은 내가 침묵한 만큼 시계를 앞으로 돌려놓았고, 내가 걸었던 방향은 내가 진 짐의 무게만큼 뒤로 움직였다. 하나의 음계가 되어 향은 서서히 태엽처럼 풀린다. 소리는 변화하는 시간의 궤적을 기술하는 데 적절한 물리량이다. 단단히 압축된 향 한 자루가 서서히 연기로 풀리듯, 신생의 우주로부터 흘러나온 소리를 인간이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느리고 낮은 저주파 파동으로 우주를 가로지른다. 아마도 그것은 가장 오래된 소리일 것이고, 가장 오래된 시간을 알고 있을 것이다.
조연호, ‘행복한 난청’ 중
72 매일의 꿈, 매일의 발견, 매일의 성장 _ 싱클레어
제가 싱클레어라는 잡지를 알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어요. 벌써 10년이나 된 잡지 인데, 저는 너무 늦게 알았죠. 항상 적극적으로 정보를 찾기보다 수동적으로 받는 데 에 익숙해 있다보니 저지른 실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는 만큼 보인다잖아요. 싱 클레어는 헤르만헤세의 소설 ‘데미안’에 등장하는 인물 이름이죠. 저도 데미안과 아 브라삭스, 싱클레어 등의 명칭을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 중의 한 명인데요. 독일 문학 을 좋아하게 되는 거의 첫 단계가 데미안이라고 할 수 있죠. 혹시 어릴 적에 필독서 로 지겹게 읽은 분이라면, 이제 다시 한 번 읽어보세요. 삶에서 경험한 ‘만남’들에 대 해 진지하게 떠올려볼 시간을 선물해줄 거예요.a 싱클레어는 데미안이라는 친구를 통해 결국 내면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데, 이러한 ‘소리들’을 잡지에 담는 분들이 바로 싱클레어를 만드는 분들이세요. 주변의 소소한 사건들과 따뜻한 감성의 글들을 책자 안에 담고 있죠. 싱클레어라는 잡지를 알게 된 뒤로는, 또 어김없이 이 잡지를 홍보하고 돌아다녀요. 그리고 싱클레어를 만드는 피 터의 강좌도 추천하고 있죠. (문지 사이의 ‘진메이킹’) 이 잡지 역시 진메이킹 워크 숍을 통해 만들게 됐으니, 저는 또 한 번 눈을 뜨게 된 거죠. 세상을 살면서 얼마나 더 많이 눈 뜨고 더 귀를 열 수 있을까요? 많은 것에 매혹 당하고, 매혹 하면서 타인 과 장점을 주고 받으며 성장하고 싶어요. 싱클레어 잡지를 알게 된 후, 가장 놀라웠 던 것은 이아립 씨가 참여하는 잡지라는 거였어요. 저는 2000년 봄에 밴드 ‘스웨터’의 공연을 보고 감동해서 줄기차게 그 밴드의 음악을 홍보하고 돌아다녔는데요. ‘스웨 터’라는 이름만 들어도 저를 떠올리는 친구들이 있을 정도로, 스웨터 타령을 했어요. 스웨터 멤버인 이아립 씨 목소리와 그가 쓴 가사, 그리고 그가 가끔씩 인터뷰에 등 장해 건네주는 세계관에 심취했던 까닭이에요. 저는 가끔 제 옛날 낙서를 찾아보는 데요. ‘이아립 씨는 잡지도 만든다’며 적어놓았더라고요. 친구들에게 그 사항도 홍보 했으면서, 그 잡지가 무엇인지 찾아보지 않은 게으른 팬이었어요. 그런데 그게 바로 ‘싱클레어’예요. 교보에서도 살 수 있고, 홈페이지(싱클레어 http://www.sinclairpress. net/, 유어마인드. http://www.your-mind.com/)로도 구매할 수 있어요. 요새 느끼는 것은 조금 더 정확하게 조사해서 홍보해야겠다는 것과, 동경하면 언젠가는 살면서 스치듯 만나게 된다는 거였어요. 그때 낙서에는 “홍콩스타 왕정문의 노래를 처음 들 었을 때처럼 놀랐다”라고 써놓았더군요. 그리고 이아립 씨 공연을 본 그 해에 친구에 게 기타를 배웠고, 두 번의 소극장 공연(학교 아마츄어 공연)을 해보았다는 거예요. 역시 사람은 흠모하는 사람을 통해 타인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물들면서, 삶이 긍 정적으로 변하게 돼요. 싱클레어를 집어 들자 ‘멍든 새’와 ‘바람’에 반했던 20대 초반 의 설레는 날들이 떠올랐어요. 일본 소설 ‘발로 차고 싶은 등짝’의 한 장면처럼 공연 장을 향해 달려가던 저와 제 친구들 모습이 추억 속에 있거든요. 콘서트 간다며 설레 서 새로 샀던 청치마와 잿빛 남방, 분홍색 샌들 등 그때 입었던 옷들도 다 기억날 만 큼 소중하죠. 지금은 그때 20대 초반만큼 적극적으로 콘서트를 다니지는 못하지만, 가끔 홍대에서 20대 초반의 인디 밴드 여성 팬들을 보면 제 모습이 겹쳐서 떠올라요. 저도 20대 초반 코코어, 미스터펑키, 푸펑충, 허벅지 밴드, 3호선 버터플라이, 피아, 크 라잉넛, 허클베리핀… 등의 공연을 좋아했고 각종 락 페스티벌은 빠지지 않고 갔죠. 지금도 웬만하면 다 가고 싶지만, 모두 챙겨가지는 못해요. 무언가 하나를 좋아하게 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좋아하게 된답니다. 제가 추천하는 것들 중에 하나만 꼽아서 추적(?)해봐도, 추천한 이도 겪지 못한 여러 새로운 세계를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저도 즐겁게 또 다른 세상을 만나고 싶네요.
우주인 이소연은 제가 만난 여자들 중에서 가장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어요. 말 그대로 우주인이었어요. 우주에서 금방 내려와서 지구인에게 우주의 아름다움을 전 하는, 굉장히 멋진 여자였답니다. 긍정적이고 밝은 기운은 고스란히 타인에게 전해 지는 것 같아요. 우연히 함께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어찌나 우주 이야기를 재 미있게 하는지, 들으면서도 과학 용어를 까먹고 있는 제가 너무나 한심했어요. 과학 적 상식을 굉장히 쉽게 설명해주는데, 들은 만큼 저도 친구들에게 가서 얘기해주고 싶었지만, 잊어버리게 되더라고요. 저도 우주의 아름다움을 전해 주고 싶은데, 과학 적 상식이 부족해서 힘들었어요. 이소연 씨는 만화책에서 보듯이 지구가 또렷하게 보이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여러 수식어로 설명하고 싶지만 제가 지구를 실제로 본 적이 없어서 ^^) 지구의 매력에 감탄했고, 저 지구를 훼손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대요. 그리고 우주인 친구를 많이 사귀었다고 했어요. 이소연 씨는 우주에 가서 도 못할 것 같은 일은 빨리 다른 우주인들에게 부탁하고, 부탁 받은 것은 꼭 지키는 의리파로 행동했대요. 남는 건 사람이라고… 우주인이나 지구인이나 역시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는 사실은 잊을 수가 없대요. 이소연 씨는 직접 만나는 사람마다 감 탄을 했죠. 호탕하고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우주인. 그가 우리나라 여성 우주인이 라는 사실도 같은 여자로서 뿌듯해져요. 활발한 활동으로 계속 후배들에게 멘토가 되어주셨음 좋겠어요.
73 원기 충천 _ 이소연
74 감정의 신비 발견 _ 줄리엣 비노시 & 아크람 칸
2009년 봄 무용공연을 위해 내한한 줄리엣 비노시와 아크람 칸을 실제로 본 순간, 작품보다 ‘말’이 더 감동적이었어요. 원래 ‘말’보다 그들의 ‘공연’에 더 감탄해야 하는 데, 저는 좀 거꾸로 되어버렸답니다. 공연보다 말에 취해버렸죠. 줄리엣 비노시와 아 크람 칸은 작품 설명을 하면서 둘이 어떻게 무용 공연을 만들었는지 설명해줬어요. 2008년 2월, 줄리엣 비노시가 아크람 칸이 만든 무용 ‘0도’라는 작품을 보러 갔다가 감동을 받고는 공연이 끝나고 기다렸다고 해요. 무대 뒤에 가서 안무가를 만난 것이 죠. 아크람 칸은 줄리엣 비노시를 처음 보고는 ‘참 겸손한 사람 같다’고 느꼈대요. 마 치 나무가 숙여져 있는 모습이었다고 해요. 이후로 둘은 2주 정도 스튜디오에서 만 나 서로 궁금한 점을 물어보게 됐고, 작품을 창작했어요. 아크람 칸은 줄리엣 비노시에게 처음 던진 질문은 ‘어떻게 우는지’였어요. 줄리엣 비 노시는 그 질문이 ‘감정을 어떻게 표출하는지’에 대해 물은 것이라 여기고, ‘넋을 놓 고 운다’고 답했대요. 넋을 놓고 울게 되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주게 되고, 자 신을 곧 무너뜨리는 거라고 느낀 거죠. 줄리엣 비노시가 반대로 안무가에게 궁금한 것은 ‘어떻게 동작들을 외우는지’였어요. 그리고 몸과 감정이 함께 가는 것이 신기했 다고 해요. 둘은 더 서로를 알아보자는 판단 하에 대화를 지속했고, 결국 공연을 만 들었다고 해요. 감정의 흐름에 대해서 고민한 거였어요. 본질적으로는 인간이 사랑 이라는 감정을 어떻게 형성하고 진행시키는지 보여줬어요. 줄리엣 비노시는 그리스 신화에서 본 사랑을 표현하고 싶어 했고, 아크람 칸은 인도 신화에서 느낀 사랑을 표 현하려 했대요. 특히 줄리엣 비노시의 말이 인상적이었는데, ‘사랑은 둘 간의 관계라 기보다 세 가지가 결합된 것’이라고 했어요. 사람과 사람 외에 바로 ‘감정’이라는 것 이 개입된다는 거죠. 새롭게 발생된 감정이 사랑의 필수 요소니까요. 사람들 간의 경 계에서 일어나는 감정이 왜 생성되는지 궁금했다고 해요. 둘의 대화는 결국 언어에 서 몸짓으로 이동했고, 완결된 하나의 무용으로 탄생했어요. 그 과정이 극 자체보다 더 흥미로웠어요. 예술가들의 특권이겠죠. 고민의 요소를 다른 지점으로 이동시켜 발전시키고 표현하는 거요. 호감은 언어가 되고 다시 움직임이 되고, 그리고 다른 이 들에게 사랑의 기운을 퍼뜨리게 되죠. 서서히 일어나는 과정이지만 이러한 많은 과 정이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들 거라는 믿음은 있어요. 저는 영화 블루의 줄리엣 비노 시를 정말 좋아해서, 지금도 1년 넘게 네이트 대화명을 ‘줄리드 비몽’으로 쓰고 있어 요. 블루를 세심하게 본 사람만 알 수 있는(?) 것이기도 해요. ^^
마로니에 나무 아래서 (1997), 장콕도 - 타락한 천사의 사랑 (2001), 메/멘토, 포에 이엠 “네” 시악 (2001), 스트링(스) 피스 (2002), 집 없는 아이 (2003), 기억 속 일곱 가지 단편 (2003), 시카쿠 (2004), 블랙 아이스 (2005), 트리플 빌 (2005), 개 같은 생 활 (2005), 마지막 파이 (2005), 도어 인 도어, 페스티벌 (2005), 지금 열거한 작품들은 제가 좋아하게 된 일본 안무가 가나모리 조의 예전 작품 제목이에요. 저는 은근 공 연 제목 보는 것을 즐기는데요. 먼저 제목만 보고 어떤 주제를 담은 공연일까 상상 하는 게 재미있거든요. 제가 본 가나모리 조의 공연은 ‘노이즘 08’ 니나 였어요. 노이 즘? 이름부터가 신선하지 않나요? 노. 이즘. 어떤 이즘에 속하지 않고, 틀에 얽매이 지 않는다는 뜻이었어요. 가나모리 조는 일본에서 최초로 본격적인 레지던스 무용단(극장 부속 무용단)에 서 ‘노이즘04’를 만든 사람인데요. (뒤의 숫자는 그 해 연도를 일컫는 것) 제가 2008년 에 LG 아트센터에서 본 공연은 ‘노이즘08’이라고 불러요. 그의 레지던스 무용단은 특정 극장인 ‘니가타 유토피아’가 맡고 공적 기관이 돈을 지불하고 있어요. 그는 2004년이 되던 해, 한국나이로 따지면 스물아홉 살에 예술 감독에 취임했는데, 일본 에서는 원래 60세 정도에 예술 감독이 된다고 하니, 굉장히 파격적인 인사였다고 해 요. 무용수로서 가장 활발하게 몸을 쓰는 나이에 감독이 된 건데요. 일본의 노리코 시 타카오 평론가는 그를 “ 실로 완벽해서 얄미울 정도”라고 평가했어요. 계속 새 롭게 거듭나는 그의 성실성을 칭찬한 거였죠. 그의 노.이즘이라는 단체명도 마음에 들지만, 작품마다 번호를 붙이는 것도 멋져요. 공연을 더 나은 방향으로 진화시키 기 위한 그의 의도예요. 그는 가만히 있는 물체를 보고 감동을 받는다면, 그것 또한 무용이 될 수 있다고 생 각했대요. 신체가 움직이지 않고 있어도 관객이 감동 한다면, 그 신체는 춤추고 있 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그게 바로 생명성이죠. 저는 그의 첫 공연을 보고 언젠가 꼭 일본에 가서 그의 공연을 더 여러 차례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가 정적인 순간에도 ‘흐르고 있는 에너지’를 중시하는 것을 보면서, 베르메르의 그림이 겹쳐 떠올랐어요. 네덜란드 화가 베르메르는 흔히 ‘회화적 정적’을 표현했다고 가치 를 평가받고 있어요. 정지 동작에서도 언제나 뭔가 다음 장면이 예상되고 움직일 것 만 같은 느낌을 준다는 거죠. 예를 들어 ‘우유를 따르는 하녀’도 정지 동작을 그렸지 만, 계속 우유를 따르고 있을 것만 같다는 거예요. 고요한 것 같지만 고요하지 않고, 이렇게 역설적으로 성취되는 가치는 굉장히 아름답죠. 저는 사람도 사진도, 그림도, 공연도…다음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드는 진행형이 좋아요. 정지되었지만 정지된 것 같지 않은 장면들은 결국 팔딱팔딱 뛰는 생명성, 살고 싶어지게 하는 희망을 느끼 게 하니까요. 삶이 정지된 것 같지만 결국 흐르고 있다는…무료하지 않은 기분? 권 태에서 탈피하게 만들죠.
75 노.이즘 _ 가나모리 조
76 자아를 향한 움직임 _ 벨기에 안무가 시디 라르비 셰르카우위 (Sidi Larbi Cherkaoui)
제가 매달 챙겨보는 춤 잡지에서 이진아 (춤 큐레이터, http://blog.naver.com/wallbreaking) 씨의 인터뷰를 읽고 저는 벨기에 안무가 시디 라르비 셰르카우위를 존경 하게 됐는데요. 작년에 이진아 씨가 베를리너 페스트슈필레에서 이 안무가를 인터 뷰를 했는데, 그의 생각을 읽으며 힘이 됐습니다. 그는 춤을 출 때 몰랐던 자아를 발 견하게 되는 것에 초점을 맞춰요. 그래서 누구나 춤을 출 수 있다는 것이죠. 꼭 무용 학도만이 아니라도 자신에 대해 알고 싶고 표현하고 싶은 사람은 몸을 쓰라는 거예 요. 그리고 자신이 무언가를 하고 싶을 때 남에게 의견을 묻는 게 어떤 때는 도리어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말했어요. 남이 아니라고 해서 그게 아니라고 한다면 그건 진실이 아니라는 거죠. 나는 남이 아닌데 말이에요. 뭔가 새로운 일을 시도하고 싶 다거나, 변화에 대한 욕구가 강한 분이라면, 이 분의 몇 마디를 따라 적어보세요. 제 가 수첩에 적어놓았던 마음에 드는 구절 몇 개를 옮겼어요. - “나는 그저 사람들이 안 된다고 했던 것을 해도, 잘 해낼 수 있고 그러면 괜찮다는 것을 증명해보였다. 믿건대 개인성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 그 자신이 무엇 을 선택하느냐에 달려있다. 원하는 것을 감지하고, 그것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 고 춤은 이렇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중 하나다.” - “나는 내 몸을 믿는다. 두뇌는 긴밀하게 신경과 연계가 되어 몸은 전체적으로 반 응하며 모든 심리상태와 감정에 작용한다. 하지만 두뇌는 몸의 일부일 뿐이다. 경 략의 원리를 예로 들자면, 신체의 특정 부위가 심리상태에 작용한다는 것을 안다. 분노는 간, 슬픔은 위, 근심은 신장으로 연결되어 있어, 역으로 그 몸을 보면 마음의 상태 역시 알게 되고 그 부위의 몸을 자극하는 것이 치료의 원리다. 결국 몸은 전체 가 우리 스스로에 관한 지도인 셈이다. 그 안을 탐험하고, 표출하는 것은 끝이 없는 탐구이며 지극히 흥미로운 일이다.” - “ 나는 변화를 즐기고 그 변화에 잘 전이(transformation)한다. 대체로 사람들은 자 신이 생활해왔던 방식, 자기가 추구하고 생각했고 믿었던 것들을 버리기 어려워한 다. 하지만 그 어려움을 벗고 일정 기간 동안 익숙했던 것들을 잊어버리고 새 것을 시도해볼 수도 있지 않은가. 전혀 경험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삶을 살아보는 것이 내 게는 어렵지 않고, 그것이 작업 과정이 되곤 한다. 내가 믿는 것은 새로운 것들이 다. 내가 자란 환경의 것들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은 믿지 않는다. 신선하게, 긍 정적인 눈으로 내가 알고 있던 것과 새로 접하는 것의 차이를 인지한다. 그래서 모 르는 것이 있으면 배우고, 좋은 것이 있으면 언제든 받아들인다. 다양한 문화경험은 내 삶 그 자체가 그러하기 때문에 역시 자연스럽다. 경험하고, 그 경험을 재구성하 는 것은 창작의 한 방식이다.
2009년 가을, 겨울…글을 쓰는 이 순간, 제가 가장 존경하는 분이자, 현재 열심히 홍 보하고 있는 분이에요. 이 분의 예술작품을 쫓아가다보면, ‘치유’ 효과가 굉장히 커 요. 연극배우이자 안무가, 뮤지컬 연출자예요. 어떤 한 가지로 규정되는 것을 싫어하 실 것 같기도 해요. 뭐랄까, 세상의 편견과 싸우고 있는 분처럼 보였어요. 견고한 고 정관념의 틀을 깨면서 무용으로 타인을 위로하는 창작자로도 보이구요. 저는 이 분 의 ‘내려놓지 않기’라는 작품을 보면서 심하게 감동받았습니다. ‘내려오지 않기’는 남
77 자연을 따르는 삶
녀 무용수가 밀착돼서 보여주는 몸짓인데, 단 한 번도 서로가 떨어지지 않다가 마지 막에 여자가 먼 곳을 응시하면서 남자의 몸에서 내려와요. 공연의 시작부터 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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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죽이고 집중하게 되는데요. 여자의 몸짓을 보면서,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시선
정영두
을 얻고자 방황하는 인물을 상상하게 됩니다. 어떤 한 사람이 주변의 인간적 관계든 사회적 환경이든 모든 것에서 벗어나 주체적으로 거듭나는 자아 성장의 과정으로 읽혔거든요. 제가 무용을 좋아하는 이유는, 제 의식이 흐르는 대로 따라 갈 수 있기 때문이에요. 저에게 ‘내려오지 않기’는 매우 지독한 작품이었어요. 보는 내내 아프기 도 하면서, 끝나고는 엄청난 희망으로 다가왔거든요. 이 작품을 만든 안무가를 나만 알고 있는 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에요. 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보고 위로 받았으면 해요. 요새는 이 분 이름을 하루에 한 번 이상은 말하고 돌아다닐 거예요. 2009년 초가을에는 이 분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무용을 가르치는 워크숍에 참가한 적도 있어요. 서울 역삼동에 있는 LG아트센터라는 공연장에서 토요일마다 ‘몸으로 이해하는 무용’이라는 수업을 하셨어요. 정영두 씨는 2010년에 LG 아트센터에서 ‘제 7의 인간’이라는 무용 공연을 하는데, 그 전에 일반 관객을 대상으로 수업을 하신 거 죠. 무용 워크숍은 2만원으로 매우 저렴했어요. 그 수업에 간다는 것 자체가 몸을 움 직이는 것이라 두렵긴 했지만, 제 요새 인생 화두와 맞아떨어지다보니 용기를 냈어 요. ‘몸을 쓰면 사고가 더 유연해질까?’, ‘머리만 쓰던 과거가 몸을 함께 쓰는 현재와 결합되면 미래에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이상적인 인간이 될 수 있나?’ 뭐 이런 고 민이에요. 정영두 씨 워크숍에 참가하면서는 매주 충격의 연속이었어요. 삶에서 단 한 번도 안 해본 걸 하다보니 그럴 수도 있고, 정영두 씨 이미지가 신부님 같은 성직 자라서 그럴 수도 있어요. 매주 구도자의 자세로 깨달음을 얻는 듯한 독특한 경험이 었죠. 초가을 분위기와 맞물려, 그 수업을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참여했어 요. 막상 수업은 정말 힘들었지만 말이에요. (자연물을 몸으로 표현하기, 앞구르기, 뒤구르기, 감정을 포즈로 표현하기…글을 쓰면서도 민망하네요.) 저는 항상 몸을 쓰 는 것이 중력을 거스르는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걸 자유랑 연결했죠. 반항하는 것만 이 자유인 줄 착각한 거예요. 그런데 실제로 그 수업에서는 중력의 흐름에 자연스레 몸을 맡기는 연습을 했어요. 힘을 주는 게 아니라 힘을 빼는 거였죠. 자연의 이치를 생각하면서 내 자신을 정립해갈 수 있는 좋은 기회였어요. 언제나 고정관념에 쉽게 갇히던 것에 대해서 반성도 했죠. 수업에 참가하면서 무용 공연을 보는 눈만이 아니 라. 시를 읽는 눈, 그리고 사람을 만났을 때 타인의 입장을 생각해보는 것까지. 많은 것들이 조금씩 변했어요. 이해력이 발달하는 것 같았어요. 착각일 수도 있지만 자아 만족감은 커졌답니다. 수업 시간 내내 자연물을 표현한다거나, 남의 몸에서 가장 안 정된 뼈의 지점을 찾는다든가, 서로 밀고 당기면서 어떤 동작을 만든다든가 이런 게 쑥스럽지만 마냥 신기하고 즐거웠어요. 제일 놀랐던 건, 워크숍 참가자들 중에 발레 전공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지금까지 현대무용을 굉장히 싫어하고 알 수 없는 무언가로 치부했다가 그 수업을 통해서 이
해하게 됐다는 거였어요. ‘왜 저들은 손을 떨고 있지? 왜 저렇게 지루한 행동을 반복 하지? 발레는 예쁜데…’ 그런 식으로만 생각했대요. 어떤 틀에서 벗어나는 것도 두렵 다고 했어요. 그 수업을 듣고 나서 찾아보니, 현대무용수들은 발레무용수들을 뭔가 고지식하고 틀을 못 벗어난 식으로 폄하하고, 발레무용수들은 현대무용수들을 아름 답지 않고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일부의 그런 편견이 있었어요. 이런 건 사람들이 사 는 곳은 어디든 있잖아요? 예를 들면 일부 피디들은 기자를 무시해요. 구성력이 떨 어지고, 예술적 감각이나 위트가 없고 등등으로 낮춰보죠. 어떤 기자들은 피디들은 저널리즘 능력이 떨어지고 시간 다툼인 현장에서 너무 늘어진다며 평가절하 하죠. 그래서 옛날에 ‘피자의 아침’이라고 피디와 기자가 함께 만드는 프로가 있었는데, 조 기에 폐지됐잖아요. 다른 어떤 프로그램들도 피디와 기자가 섞이면 서로 잘 안 맞아 요. 축구 선수와 야구 선수도 그랬어요. 어떤 축구선수들은 야구 선수들이 몸이 비 대하고, 잘 뛰지도 않는다며 야구보다 축구가 우월하다고 생각하죠. 야구 선수들은 축구선수들을 보며 머리 쓰지 않고 몸만 쓴다고 폄하할 수도 있어요. 상대를 인정하 지 않는 사람이 쉽게 범하는 일부의 오류죠. 항상 삶의 지점에서 겪는 것들인데요. 마치 내가 하는 것이 최고이고 정석인 것처럼 생각하는 거요. 거기서 벗어나야 하는 데 쉽지 않죠. ‘뉴욕 타임즈’에 실린 글을 보면, 마크 모리스라는 안무가가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월간 ‘춤’ 번역 글에서 봤어요. “발레 대 현대 춤으로 나누는 발상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점은 과연 본인이 훌륭한 무용 안무가인가 이다. 물론 차이점은 존재한다. 그것이 바로 핵심인 셈이다.” 그러니까 이 분은 현대 춤과 발레를 한 번도 서로 경쟁 영역이라 생각해본 적 없고, 그리고 그 분 생각은 “나 는 발레를 흠모한다. 단지 흠모할 것이 더 많아지길 바라는 것뿐이다”였어요. 맞아 요. 그저 흠모하는 것들로 남겨두고, 자신의 영역에서 열심히 사는 게 모범답안 같네 요. 이 글을 읽는 분들도 2010년에 정영두 안무가의 ‘제7의 인간’을 보면서 세상에 흠 모할 것들을 더 많이 만드시길 바랍니다.
2009년 여름 신지승 감독과 그의 부인 이은경 PD를 만나고 나서, 저는 꼭 ‘행동’하고 살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게 됐답니다. 이들은 ‘돌탑 영화’를 만드는 분들이세요. 산 길에서 돌탑 쌓아본 적 있나요? 돌을 얹는 순간만큼은 충실하게 자신을 위한 소원 을 빌죠. 그리고 행여 무너질까 돌을 놓은 자리를 살피고 나면 묵묵히 가던 길을 가 는 거예요. 이 부부는 10년 넘게 ‘돌탑 영화’를 만들고 계세요. 부부 영화인이죠. 평범 한 사람들의 일상을 영화로 만드는 작업이에요. 특히 마을 할아버지,할머니,청소년
78 돌탑을 쌓는 예술활동
등 지역 주민 누구라도 얘깃거리만 있다면 모두 영화 스태프이자 배우로 참가해요. 99년부터 경기도 양평에 터를 잡고서는, ‘돌탑영화’를 전파하고 계세요. 이들의 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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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만드는 영화를 찍는 거예요. 돌의 최상은 보석일 테고, 누구나 탑(top)이 되려
신지승 영화감독
고 하지만, 어떤 돌이든 탑(塔)이 될 수 있다는 게 바로 ‘돌탑’ 영화의 의미였어요. 영 화를 만드는 주체는 누구든 될 수 있다는 거였죠. 할머니가 손녀에게 이야기를 들려 주는 것처럼, 지역 곳곳 마을에 숨은 이야기들을 발굴해 영화로 찍는 일을 하셨어요. ‘마을 영화’라고도 부르고 ‘돌탑 영화’라고도 불러요. 이 분들은 강원도 홍천이나 인 제 냇강마을, 경기 양평 연수리 등에서 이주 여성들과 영화를 만드셨어요. 국제결혼 해서 한국에 거주하는 여성들의 얘기를 담은 거죠. 이들 부부가 중요시하는 건 ‘실제 사람들의 개성과 지역성에 기반하고 있는 스토리텔링’이었어요. 두 분이 쓰신 책을 읽으면 예전 영화의 내용을 볼 수 있는데요. 떠돌이 감독의 돌로 영화 만들기 (아름다운 사람들) 라는 책이에요. ‘고추전쟁’이라는 영화에서는 농촌 의 다툼 현장을 다뤘고, ‘안녕! 나의 눈부신 비행기’에서는 소년원에 있는 소녀들의 얘기를 했어요. ‘엄마 예술이 뭐예요?’라는 영화는 아이들이 예술을 보는 눈을 소재 로 했고, ‘포도밭의 아이들’은 지체장애인들의 마음을 담았어요. 부부는 양평, 안양, 안산, 공주, 통영, 무주, 무안, 부산 등 딱 ‘그 장소’에서만 담을 수 있는 얘기를 영화화 하고 있답니다. 일상을 담지만 절대 다큐멘터리는 아니에요. 그대로 반영하는 게 아 니라, 얘기를 재미있게 가공하기 때문이죠. 이 분들은 연기를 시켜야 하는데 일반인 이라 연기가 안 되면, 1년을 기다려주기도 한다고 해요. 정이 많은 분들이셨어요. 애 들이 계속 커가니깐 10년 동안 영화를 찍은 마을도 있다고 하고, 고등학생이 영화에 참여했다가 대학생이 돼서 스태프로 계속 영화 작업에 참가하기도 한다고 해요. 여 름 장마가 심했던 날, 이분들을 만나서 비에 흠뻑 젖었는데요. 우산이 소용없을 정도 로, 비가 온 날이었거든요. 저는 몸이 젖은 게 아니라 마음이 젖은 느낌이었어요. 주 변 가치들을 소중하게 여기며 열심히 살자고 교훈을 얻게 됐답니다.
79 꿈을 밀어붙이는 열정 _ 김영원
김영원 씨는 적극적으로 힙합 문화를 가꾸는 문화인이세요. 이분을 만났을 때 얘기 를 한 개도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쫑긋 세웠어요. 그분이 1999년부터 2009년까지 힙 합을 알리기 위해 어떻게 노력했는지, 비보이를 더 알리기 위해 어떻게 사셨는지 주르륵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들은 거였죠. 이 분의 얘기를 접하면서, 사람이 꿈을 꾸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에 대해 생각했어요. 10년을 간접 경험하는 게 굉장히 신이 났어요. 힙합 문화에 대해서도 개괄적으로 교양 수업 받듯이 들었는 데, 쉽게 설명해주셔서 쏙쏙 귀에 박혔어요. 공연기획자의 도전은 정말이지 드라마 틱해요. 우리나라에서도 공연기획자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 ‘태양을 삼켜라’가 나 온 적이 있는데, 제게는 드라마보다 실제의 얘기를 듣는 게 더 흥미진진했죠. 김영원 씨는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초기 기획자입니다.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 리나’는 공연을 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그 공연명을 알 정도로, 비보이극으로 많이 알 려졌어요. 저작권 분쟁이 길었던 공연이기도 했어요. 원래는 원작이 ‘프리즈’였고, 김 영원 씨가 2005년에 이 공연을 기획하면서, 비보이들을 공연장 무대로 데뷔시키셨 습니다. 기존 공연의 제작 방식과 비보이들의 소통 방식이 다른데, 그 중간자 역할을 한 거예요. 이후에도 계속 비보이 공연에 전념하고 계세요. 최근에는 ‘발랄 하이’, ‘바 람의 나라’ 등의 공연을 만들었어요. 단지 단발성으로 생색내는 공연이 아니라, 업그 레이드된 형태의 비보이 극을 만드는 게 이 분의 꿈이었죠. 이 분을 만나면서 저는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들인 시간도 중요하지만 시간을 압도하는 열 정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분은 끊임없이 힙합문화를 홍보하고, 공연을 만 들고 있죠. 좋아하는 일을 10년 넘게 한다는 것 자체가 끈기와 열정이죠. 1999년에 엠 넷 음악 채널에서 ‘힙합 더 바이브’라는 음악 프로그램의 VJ로 활동하기도 해서, 당시 음악 채널을 열심히 보신 분은 익숙한 분일 수도 있어요. 이 분도 다른 창작자들처럼 스타일만 번지르르한 것보다, ‘애정을 갖자’는 것을 계속 강조하셨어요. 비보이 공연 을 살리려면 비보이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먼저이지, 스타일만 살리는 게 먼저가 아 니라는 거예요. 이런 분들이 창작 현장에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모씨는 제 친구예요. 사람의 얘기를 잘 들어주는 친구죠. 이렇게 순간으로 혹은 지속 적으로 흠모했던 사람들을 열거하면서, 그래도 가장 제가 의지하고 존경하는 친구 는 모씨였요. 모씨는 무슨 얘기를 해도 다 곰곰이 들어줘요. 이런 친구가 있다는 게 새삼 제게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어 감사하게 여기죠. 저의 요새 문제의식은 ‘사람들은 남의 얘기를 안 듣는다’는 거예요. 들어주지 않는다 고 봐도 되겠죠. 발언할 수 있는 창구가 있는 사람은, 그 자체로도 굉장한 특권이에 요. 저는 TV를 옛날만큼 잘 보지 않아요. 특정 정치인, 연예인 등 유명인사들의 사적 견해를 한 번 듣고 또 듣고, 또 듣고… 반복적으로 주입받는 게 짜증이 나거든요. 전 파가 왜 몇 명에게 독점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화가 나서, 제가 주체적으로 정보를 취 합하려고 노력해요. 다양한 방식으로 정보를 얻고 싶지만 한계는 있죠. 공적 매체에 서 발언을 쉽게 하는 사람 중에는 발언할 곳이 없는 사람들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 는 사람이 많아요. 듣지 않고 말만 하다보니, 말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사람의 심 정을 모를 거예요. 세상 사람들이 말하기보다 듣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면 사회가 좀 더 따뜻하게 변할 수 있겠죠.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친구가 ‘내 얘기를 끝없이 들어주는 친구’라는 게 문득 놀라웠어요.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친구란 누구지? 결 국 ‘들어주기’에 진심을 보이는 사람이었어요. 그렇다면 나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조 건 없이 ‘들어주는’ 사람인가 생각해봤을 때 부끄러워졌어요. 제 어머니는 저에게 항 상 ‘~구나’를 즐겨 쓰라고 하셨어요. 실생활에서 ‘구나’를 많이 사용하면 마음이 편 안해진다는 것인데, 저는 ‘솔직한 게 미덕’인 줄 알고, 매번 ‘싫다’, ‘좋다’ 표현을 극단 적으로 하는 편이죠. 그게 실은 상대의 마음을 불편하게 할 수 있는데 말이에요. 조 금씩 고쳐가다 보면 좋은 사람이 되어있겠죠. 저도 제가 가장 존경하는 친구의 ‘들 어주기’에 물들다보면, 어느새 귀가 열린 사람이 될 거라고 믿어요. 눈도 귀도 모두 열린 사람이 되고 싶어요.
80 들어주세요 _ 모씨 .
취미편
81번 이후로는 행복해질 수 있는 소소한 취미를 소개합니다. 한가지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어요.
81 수영 _
수영을 가장 저렴하게 배우는 방법은 가까운 동네 구민회관이나 시민회관 등 국공 립센터의 새벽 반에 들어가는 거예요. 아무리 다 찾아봐도, 그것만큼 싸게 배울 수 있 는 방법이 없어요. 횟수 대비 가장 싸요. 어느 정도 배웠다고 생각되면 쿠폰을 끊어서 자유 수영을 이용하면 편리하죠. 쿠폰도 한꺼번에 패키지로 사는 게 더 싸요. 저는 성 동구, 광진구, 종로구, 노원구 등의 센터 등을 돌아다니며 수영을 배웠어요. 개인적으 로 가장 좋았던 곳은 종로구시설관리공단의 끈적끈적한 ‘해수풀장’이에요. 물이 미 끌미끌해서 건강에도 좋다고 하니 기분도 좋고 신기해서 선호했어요. 서울과학고등
울적한 기분도 물 안에서 녹아버리는
학교 가는 길목에 있어요. 자양동에 있는 ‘나루아트센터’의 수영장도 좋아요. 가격 대 비 시설이 깨끗하고, 공연장 분위기도 둘러볼 수 있고 1석 2조예요. 수영 강습료는 대 략 한 달에 3만원~5만원 생각하시면 되고 (주2회, 주3회), 쿠폰은 4000, 5000원 해요. 동네별로 시설별로 다른데, 현재의 저렴한 적정가는 이렇답니다. 저는 물에 들어가는 것 그 자체에 공포심이 많았던 아이였는데요. 10대 때 수영장 가 서 ‘체육 선생님’의 ‘못한다’는 한 마디에 나는 그저 ‘수영은 못 하는 애’로 낙인찍어놓 고 물을 멀리했죠. 그런데 10년이 지나서야 ‘도전’해보자는 생각에 다시 시작해서, 지 금은 아무 때나 수영장에 갈 정도로 ‘제1의 취미가’ 됐어요. 20대 초반에 저는 요시모 토 바나나를 정말 좋아했는데, 무지개 색깔 표지 책의 ‘암리타’에서 수영에 대한 구절 을 읽고 바로 용기를 내서 수영장에 간 거였어요. 그 소설에서는 탈의실과 수영장 풀 장 사이의 통로를 매우 의미 있게 묘사해놓았거든요. 우울증이 치료되는 빛의 통로 처럼 말이죠. 소설을 읽다가 문득 수영장으로 달려가게 되었답니다. 기분 한 번 좋아 지자 하고 말이죠. 실제로 수영은 사람 기분을 매우 긍정적으로 만드는 효과가 있었 어요. 그리고 수영을 배우면서 제가 깨달은 건 선생님이 중요하다는 거예요. 제가 처 음 수영을 배운 곳은, 뚝섬의 수영장이었는데, 수영강사가 너무 불친절했어요. ‘일하 기 싫은데 하는 사람’의 전형적인 얼굴 표정을 짓고 ‘스파르타식’을 선호한다며 소리 를 꽥꽥 질렀죠. 물론 그런 스타일의 선생님을 좋아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는 아 니거든요. 그 강사 때문에 수영이 더 하기 싫어졌어요. ‘역시 수영은 내가 할 게 아니 야’ 그런 거죠. 그러다가 다시 ‘동부여성발전센터’라는 곳이 개관해서 거기에 가서 수 영을 배웠는데요. 좋은 수영 강사를 만났어요. 새벽인데도 마치 오래 전에 깨어있던 사람마냥 에너지가 넘치고, 사람들에게 재미난 별명을 붙여주면서 아침부터 엔돌핀 을 팍팍 쏴주었어요. 아주머니들에게 인기도 많았고, ‘칭찬’ 일색의 스마일맨이었죠. 마음이 편해져서 그 강사에게서 수영을 금방 배웠어요. 그 분이 그만두시고, 다음 분 까지 성격이 긍정적이라서, 수업 시간이 즐거웠어요. 계속 실수를 해도 ‘인어 아가 씨’라고 부추겨준다거나 ‘나날이 좋아지고 있다’고 칭찬을 한다든가… 사실 뻔한 칭 찬이라도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멘트처럼 결국 잘 하게 되죠. 운동은 의외로 배울 곳이 참 많아요. 한군데에서 안 맞는다고, 그냥 접어버리면 안 돼요.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또 배우세요. 좋은 스승을 만날 때까지 찾아다니시면 결 국 다 배울 수 있어요. 단골 미용실 찾기처럼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즐거운 경험 이죠. 또 하나 엉뚱한 팁이라면, 자기 자신의 영법도 만들어보세요. 자유형, 배영, 평 영, 접영만 갖고는 지루할 때가 올 거예요. 저는 일명 ‘연기자 영법’을 만들었어요. 영 화 ‘후아유’의 이나영처럼 얼굴을 오래 담그고 잠수하는 인어 놀이를 해본다든가 영 화 ‘실미도’의 요원들처럼 놀려고 했어요. 바닷가 안에서 잠수해서 가위바위보를 하 는 무시무시한 체력을 영화에서 보고는 저도 따라해 본 거죠. 저처럼 잘못 해서 숨이 막혀 죽을 뻔할 때까진 하지 마시고요.
괜히 일부러 물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영법도 만들어봤는데요. 물 안으로 꼬르륵 가 라앉는 시늉을 내면서 팔을 가운데에서 양 옆으로 동그랗게 저으면서 일명 ‘나 좀 살 려줘’ 포즈를 짓는 거예요. 발을 오리처럼 물 아래에서 마구 흔들면 돼요. 괜히 다리 에 쥐도 안 났으면 ‘내 발에 쥐났게’ 포즈도 재미있어요. 갑자기 호흡을 멈춘 듯, 꼬르 륵 가라앉으면 돼요. 저는 왜 ‘수영은 앞으로만 가야 하는 걸까?’ 늘 궁금했고, 모든 영법을 배운 이후로는 쓸데없는 영법들을 많이 만들어 놀았어요. 모든 영법을 배우 면 수영 트랙을 ‘빨리’ 돌고, ‘많이’ 도는 것에 관심을 지닐 법한데, 저는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놀까?’ 그 생각뿐이라서 물 안에서 공상을 많이 한답니다. (ex. 지느러미 달린 물고기, 좌우로 흔들리는 모빌, 발을 모은 뒤 좌우로 흔들어 본 다 → 앞으로 나간다.단, 속도가 너무 느리다. 팔을 요령 있게 아무렇게나 움직여 본 다. 이름하야, 모빌 물고기 영법! 수영의 영법은 자유형, 평형, 접영, 배영 외에도 계 속 창조되어야 한다.) 마음에 안 드는 영법 : 접영 = 어른이 하면 고래 한 마리 같다 ! 중앙선 최고 침범 영 법 / 제일 좋아하는 영법 : 배영 = 편안히 누워~~~~ 생각에 잠긴다!
소개팅 주선은 칭찬과 욕의 평가가 아슬아슬하게 줄다리기를 하는,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저는 10년 동안 소개팅 주선을 해왔는데, 성공률은… 결혼이 사랑의 완성 이라고 생각한다면 0%이고, 연애 정도로만 국한한다면 꽤 높은 편입니다. 저의 특징 은 ‘누가 누구와 어울릴까?’라는 게 아니라, 사실 제가 아는 사람을 또 제가 아는 사람 에게 소개하는 지극히 단순한 문어발식 소개팅 방법을 쓰고 있습니다. 저는 ‘연애지
82 소개팅 주선
상주의자’라서 ‘혼자보다는 둘이 낫지 않겠냐?’라는 사고관을 갖고 있고, 그래서 혼 자인 사람을 보면, 무조건 또 혼자인 사람을 찾아 소개팅을 주선하는 편입니다. 소개 팅을 해달라는 사람이 있으면 거의 하루를 넘기지 않고, 대상을 찾아서 연결해주죠. 그런데 요사이에 와서 난관에 부딪쳤습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하죠? 제가 애인이 없다보니, 주선하는 것에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그렇게 괜찮으면 네가 만나지?’ 원래 소개팅 주선을 하게 되면 상대에 대한 칭찬을 주르륵 늘어놓기 마련인데요. 동성친구에게는 이런 말을 듣는 순간에 이르게 된 것 입니다. 그렇다고 10년 동안 하던 일을 이제 와서 확 멈출 수는 없지 않나 싶어 그래 도 꿋꿋이 소개팅, 미팅 주선을 하고 있습니다. 소개팅 주선을 하다보면 별의별 일 이 다 일어납니다. 다발적인 사건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소개팅 주선은 하지 않 는 게 좋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좋아하고, 사건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소개팅을 통 해 여러 다면적인 감정을 경험하고 자신이 몰랐던 인간에 대한 예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커플까지 만든다면 그 또한 재미난 일이지요. 하지만 주선 뒤에는 절 대 애프터에 관계하지 않는 것도 소개팅한 사람의 예의입니다. 그저 너무 외롭다는 친구가 있다면, 외롭다는 다른 친구와 다리를 놓는 것뿐, 그 이상, 이하의 많은 의미 를 부여하진 맙시다. 남녀간의 일은 둘을 제외하고 아무도 모르니까요. 소개팅은 ‘연 애 지상주의’의 뜻을 퍼뜨리는 제 프로젝트의 하나이기에, 여러분에게 감히 용기 내 어 권할 뿐입니다.
_ 만남의 발견
83 이벤트 응모 _
어릴 적에 저는 이벤트 응모로 영화 시사회를 자주 보았습니다. 하루에 몇 분씩은 꼭 이벤트에 응모하는 것이 제 일과 중 하나였어요. 어느 순간 이런 취미 또한 시들해져 서 이제는 별로 하지 않는데요. 저처럼 심드렁해지기 전에, 하나의 취미로 삼아보시 면 재미가 쏠쏠합니다. 제가 말하는 이벤트는 그저 무작정 ‘뽑기’ 식의 응모가 아니 라, 시간을 조금 들여야 하는 응모를 말합니다. 요사이 보면, ‘개그 콘서트’, ‘웃찾사’, 각종 가요 콘서트 프로그램 등 인기 프로들은 표를 인터넷상에서 사고 팔 정도로, 경 쟁률이 치열합니다. 사실 응모할 때 글을 정성들여 쓰면 쉽게 당첨될 수 있어요. 아 마 예상하지 못하겠지만, 응모하는 분들 대부분은 그저 ‘표주세요’ 정도로 가볍게 쓰
성실하고 작은 투자 큰 기쁨
고 ‘보내기’를 누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사연을 뽑아주는 사람은 거의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란 말입니다. 우리가 쉽게 간과하는 것이지요. ^^ 사람은 사람을 알아 봅니다. 기계적인 냄새가 너무 나면, 아무래도 탈락하기 쉬어요. 개콘이나 웃찾사 등 의 TV 프로그램은 작가들이 뽑으니깐 글을 진심을 섞어서 쓰시고요. 절대 잘 쓰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또한 가고 싶은 뮤지컬이나 연극이 있는데 경제적 어려움이 있다 면, 이때도 라디오 프로그램을 공략해보세요. ‘티켓 교환’ 형식으로 각종 라디오 프로 그램에서 공연을 홍보하고, 홍보 대가로 초대장을 청취자에게 나눠주고 있습니다. ‘콘서트는 돈 내고 가자’, ‘시선집 돈 내고 사자’ 등 여러 캠페인을 주장하는 저로서는 다소 좋아하는 이벤트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렇게라도 공연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 아지는 게 제 꿈이기 때문에 이 방법도 추천합니다. 저 역시 대학시절에 많은 공연을 라디오의 초대권을 통해 보았습니다. 라디오 초대권을 구해서 콘서트장 앞에서 싼 값에 파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암표상이죠. -_-+ 공연을 많이 보다보면 경제적 부담 이 생기기 마련이고, 저는 그런 방식으로 많은 공연을 보기도 했습니다. 각종 예매 사이트에서 공연 바로 당일이나 전날, 표를 싸게 판다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구요. 직 접 연락하고 표를 현장에서 구매하는 일을 종종 하다보면, 이젠 그 다음부터 싼 표가 있다는 문자가 오기도 합니다. 이것 말고도 각종 자질구레한 방법이 많은데, 왠지 창 피해서 이만 글을 접습니다. 이벤트 당첨은 일상의 작은 기쁨이지요. 중독 정도로 깊 게 하시진 말고, 하루에 한 개 정도? ^^ 라디오 사연을 하루에 한 개씩 올린다든가 하 는 식으로 사소한 규칙을 세워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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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는 기분이 울적한 사람들에게 최고의 취미입니다. 사실 문턱까지 가기가 가장 어려운 것이 ‘댄스’이기도 해요. 왠지 ‘댄스교습소’라는 말 자체가 주는 어감도 우리 사회에서는 부정적인 경우도 많기 때문이죠. 요사이는 댄스 학원이 얼마나 많이 생
댄스
겼는지 모릅니다. 길을 지나다가 문득 간판을 올려다보세요. 여러 학원이 있습니다. 사설 학원이 가기 싫으신 분들은, 동네 지역 구민 센터에서 이용하는 댄스 강좌를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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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셔도 좋습니다. 저는 동네 구민 센터보다 00 댄스 아카데미 식의 동네 학원을 더 선호하는 편입니다. 구민 센터는 대부분 형광 불빛의 체육관에서 배우는 경우가 많
삶과 덩달아 출렁이는 설렘
고, 학원은 부분 조명만 돌아가는 어두운 곳이라 후자가 덜 창피했거든요. ^^ 취향에 따라 다르니 고르세요. 강사들은 대부분 무용 전공 대학생들, 졸업생, 혹은 프로 무 용수들입니다. 무대에도 서면서 동시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분들도 많고, 아예 가르 치기만 하며 사는 사람도 많습니다. 어떤 이에게 배우든 차근 차근 기초부터 배울 기 회가 많습니다. 사람들이 많은 곳을 싫어하시는 분이라면, DVD를 구입하셔도 좋습 니다. 한때 24시간 돈다며 ‘이사돈’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한 연예인의 댄스 강좌가 가 장 좋고, 그냥 외국판 벨리댄스 영상도 좋습니다. 더 좋은 방법은 DVD를 살 것 없이, 아예 인터넷에서 댄스 동영상을 검색하시는 게 가장 편합니다. 특히 ‘거울 영상’을 찾아보시는 게 도움이 많이 됩니다. 요새 학원에서는 거울을 동영상으로 촬영해서 편집 없이 그대로 통으로 인터넷에 올리고 있습니다. 거울을 보고 따라할 수 있으니, 왼쪽, 오른쪽이 헷갈리실 염려가 없어요. a ‘나는 몸치인데…’라고 생각하는 순간이 바로 배울 수 있는 시작입니다. 몸치가 아니 면 뭐하러 배우겠습니까? 타고난 댄스 감각이라면, 취미로 삼을 필요도 없겠죠. ‘부 끄럽다’는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댄스 학원에서도 강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함께 배우는 입장입니다. 누가 더 월등하고 못나고 하는 정도는 없습니다. 뮤지컬 배 우 지망생이라든가, 배우 수업을 받는 학생들, 무용 전공자들을 제외하고는 취미로 배우는 분들이면 모두 ‘깔깔깔깔’ 거리며 배웁니다. 창피할 것 없어요. 너도 나도 모 두 같이 창피하니깐 그냥 즐기시면 됩니다. 배운다는 것에 겁이 날 수 있는데, 절대 스파르타식의 혹독한 가르침을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하루에 한 시간 음악 감 상하러 가야지, 놀러 가야지라는 생각으로 가볍게 시작하시면 됩니다. 몸을 쓰면 마음도 건강해집니다. 당연한 이치이지요. 삶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쉽게 풀 수 있는 방법입니다. 만일 춤을 배우려고 시작했는데, 스트레스를 도리어 받는다? 그러시면 바로 중도에 그만두시면 되겠죠? ‘춤에 인생을 걸자!’ 그런 게 아니잖아요. 나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을 찾는 여정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그런데 직접 해 보시면39) 후회하는 일은 별로 없으실 거예요.
39)
춤 편은 잡지 4호 정도를 발행할 때쯤 ‘우 리 함께 춤출까요?’ 편으로 다시 자세하게 다룰 거예요. 기대 바랍니다. ^^ 2,3,4호 주 제를 이미 결정했거든요. 2호는 ‘우리 함 께 사랑할까요?’ 3호는 ‘우리 함께 이별할 까요?’ 4호는 ‘우리 함께 춤출까요?’ 예요. 비로소 행복해지시고, 비로소 사랑에도 빠 지시고, 비로소 이별도 감내하시고, 비로소 춤도 춰보세요. ^^
85 자전거 _
자전거를 타다보면 금세 ‘산뽕’에 걸린다고 합니다. 자전거 타고 산에 가고 싶은 거 죠. 저는 요새 ‘자전거뽕’40)에 걸려 버렸어요. 값비싼 자전거를 구입한다거나 자전거 용품을 모으는 등의 행동은 하지 못하고 있지만, 막연히 좋아요. 자전거를 타면 ‘붕 뜨는’ 기분이 들어요. 물리적으로도 몸이 붕 떠 있죠. 자전거를 좋아하시는 분에게 “자전거를 왜 타세요?”라고 여쭤보니 “자전거를 타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고 했어 요. 그 말을 믿고, 할인마트에 가서 가장 저렴한 10만원 내외의 알톤 자전거를 구입했 죠. 그 다음 날부터 정말 세상은 달라보였습니다. 어릴 적 세발자전거 이후 처음인데
붕 뜬 의자
요. 요새는 만나는 사람마다 자전거 타라고 조르고 있습니다. 특히 기분이 우울한 분 들은 자전거를 타세요. 자전거를 타게 되면, 길에 다니는 자전거가 눈에 더 많이 보이 게 돼요. 구두를 사려고 마음먹었을 때 세상의 구두만 유독 더 눈길이 많이 가는 것과 비슷하죠. 길가에 버려진 자전거를 보면 ‘주인 잘못 만나 저게 뭔 고생일까?’ 측은하 게 되고, 갖가지 장비로 포장된 자전거를 보면 ‘주인 잘 만나 호강이네’ 그런 생각도
40)
저는 과거 한겨레 신문 목요일 판 ‘18도’에 연재되던 홍은택의 ‘자전거 글’을 참 좋아 했어요.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한겨레 출 판사)으로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자 전거를 타면 괜스레 더 용감해질 것 같은 삶의 용기를 준 글이었죠. 김훈 작가도 자 전거 책으로 유명하죠. 자전거에 관심 있는 분은 읽어보세요.
해요. 자전거가 마치 애완동물이나 애인처럼 보이고, 혹시 잃어버릴까 노심초사하 게 되어 열쇠도 튼튼한 걸 구입하게 됩니다. 귀에 이어폰을 끼고 음악 들으며, 자전거 를 타고 개천을 달릴 때가 요새는 가장 행복합니다. 날씨가 추워졌지만 장갑과 마스 크, 모자가 있으면 걱정 없어요. 가급적 자전거 도로를 이용하시면 안전합니다. 그런 데 저는 자전거만 타면 괜히 더 모르는 길로 가고 싶어져서 너무 집에서 멀어져서 걱 정입니다. 따뜻한 봄이 되면 자전거를 타고 아주 먼 곳까지 가려고 합니다.
86
7년 전 겨울이었습니다. 친구와 버스마니아에 대한 짧은 영상물을 만든 적이 있었어 요. 저는 그때 2명의 버스마니아41) 분들을 만나 얘기를 들었어요. 그들은 버스 노선 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두꺼운 파일과 실제 버스 노선표를 갖고 나왔습니다. 저도
버스로 낯선 곳 가기
종종 모르는 버스를 잡아타고 그냥 발 닿는 대로 가는 버릇이 있습니다만, 그것을 단 체로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노선의 버스를 타 고 낯선 곳에 가는 것 자체가 ‘혼자’ 있고 싶어 하는 행동이라, 타인과 함께 해본 적은 없는데요. 모르는 이와 버스를 타고 간다면, 왠지 ‘플래시몹’ 같지 않을까 생각돼요. 한때 플래시몹이 유행한 적이 있죠. 온라인에서 누군가 일정한 시각과 장소만 공지
_
한 채, 낯선 사람들끼리 모여 같은 행동을 하고 뿔뿔이 흩어지는 것 말이에요. 제가 만난 버스 마니아 분들은 버스에 대해 애착이 많았습니다. 자신들의 독특한 취
삶은 돌발적 여행
미 활동이 얼마나 재미있는 것인지 설명하느라 여념이 없었죠. 그때 만난 분들 얘기 를 들으니 그들은 ‘시승 뛴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종점에서 종점까지, 정모를 열어 함께 버스를 타고 노선표를 따라 정거장을 확인했습니다. 여러 노선의 매력을 정리 하고 서로 공유하며 이벤트를 열곤 했지요. 함께 하든 혼자 해보든, 버스 뒷좌석에 앉아 가까운 근교로라도 훌쩍 떠나보세요. 머리도 식히고, 새로운 다짐도 하고 마음 건강에 좋습니다. 루시드 폴의 ‘그대 손으로’ 뮤직 비디오를 보면, 영화 ‘버스, 정류 장’에서 김민정과 김태우가 버스를 타고 떠나는데요. 울적한 기분에 보시면 괜찮습 니다. 영화 ‘시선 1318’도 고민에 빠진 고등학생 2명이 버스를 타고 갯벌에 가는 장면 이 나오는데, 슬픔을 위로받기 좋아요. 저는 영화를 보다가 버스가 나오면, 번호를 외는 이상한 버릇이 있는데요. 과거에 최진실의 ‘편지’도 그렇게 번호를 확인하고 청 량리에서 버스를 타고 수목원에 갔어요. ‘시선 1318’ (옴니버스 영화)에서 전계수 감 독이 만든 ‘유앤미’도 번호를 외웠는데요. 아직 타지는 않았어요. 서로 다른 방식으 로 외로웠지만, 서로 같은 방식으로 위로 받는 10대 남녀가 등장해요. 남과 다른 꿈 을 꾸느라 답답해도 언젠가 그 꿈은 실현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느끼게 하는 영화예 요. 단순하지만 어려운 진리죠. 귀엽고 코믹하면서도 애틋한 영화였습니다. 극 중에 서 역도 은메달 보유자인 여자는 조심스레 “피겨나 싱크로나이즈 할까요?”라고 말 하지만, “그런 건 어렸을 때부터 하는 거야. 넌 나이가 이미 많아”라며 잔소리를 듣습 니다. “역도를 안 하겠다”고 하자 “남는 힘은 어디에 쓰려고 하냐?”며 타인은 상처를 주죠. 그저 코믹하게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도 우리는 많은 사람들을 상처주고 삽니 다. “여기 상처 한 접시 추가요!” 자신의 옆에 얼마나 많은 접시를 쌓아놓으셨나요? 풀어야겠죠. 영화 ‘유앤미’의 아이들처럼 버스 한 번 타보시죠.
41)
http://cafe.daum.net/busmania , http:// www.busmania.com/ 타고 싶은 버스 만 들기 모임
87 복권 사기
로또복권 사세요? 복권 사는 것만큼 허황된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고, 복권을 너무 다량으로 구입해서 문제가 되는 이도 있죠. 하지만 주변에 보면 같은 번호를 한 장씩 매주 사면서 ‘재미’를 느끼는 사람들도 있더라고요. 저는 그보다는 ‘어떤 하루’의 추억을 만들고 싶어서, 특정하게 즐거운 날이라고 여길 때, 복권 하나 를 사요. 당첨이 되지 않더라도, 그게 그 날짜를 남기는 방법이거든요. 좀 독특한 흔 적이긴 하죠.
_ 추억의 숫자 놀이
88 사진 에세이 -
사람은 참 이상해요. 시간이 흐르면 어떤 나쁜 경험도 모두 좋게 기억나죠. 동의하 지 않는 분이라면, 그 나쁜 경험의 분노와 증오가 골이 굉장히 깊은 분이겠죠. 하지 만 나쁜 기억은 빨리 털어버리는 게 좋아요. 굳이 왜 부정적인 생각으로 자신의 소 중한 시간을 허비해요. 그런데 그게 쉽지는 않죠. 떨쳐버리고 싶은데 떨쳐지지 않아 사람들은 힘든 것이니까요. 누구나 그런 기억 한 가지씩은 갖고 있죠. 사진만큼 과 거를 예쁘게 포장하는 게 또 있을까요? 지나고 나면 모두 좋은 일이었다는 된다는 건 사진만이 알려주니 힘든 시기에도 사진만은 많이많이 찍어두세요. 모든 게 추억 으로 미화됩니다.
쓴 맛도 달콤하게
89 옛날 친구 전화하기 _ 어색한 순간의 용기
옛날 친구에게 불쑥 전화하는 것만큼 민망한 일도 없습니다. 친한 친구였다면 덜하 겠지만, 그다지 친하지 않은 친구라면 “얘 뭐지?”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죠. 저는 제 자신이 의기소침해지거나, 매사 용기가 안 날 때, 무작정 휴대폰을 뒤져 연락이 끊겼 던 아주 먼 옛날의 누군가에게 전화를 합니다. 여러분도 그런 경험 있지 않나요? 인 사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어중간하게 아는 사람들을 길에서 보면 왠지 민망하지 않나요? 상상만 해도 어색해지는데요. 저는 전화로 가끔 어색한 친구에게 전화를 한 답니다. 부끄러움을 무마하려고, 전화한 쪽이 무슨 말이라도 하게 되죠. ‘잘 지내?’라 는 뻔한 말부터 ‘나는 어떻게 지내는데 이유 없이 전화했다’는 뜬금없는 말도 늘어 놓고 어색하니 다시 전화를 끊어요. 그런 황당한 일을 왜 하냐고요? 그렇게 하고 나 면 ‘삶은 코미디’ 로 느껴지거든요. 어차피 사회생활이 힘든 것은 사람 간의 소통 문 제잖아요? 그 소통 문제가 어렵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고, 조금 더 적극성을 갖고 움직이게 되죠. 마치 스피치 학원을 다니는 사람들이 종로 한 복판에 나와 큰 소리로 연설을 하는 그 민망한 상황과 비슷한 것이기도 해요. 가끔 그런 간만의 전화도 굉장 히 반갑게 받아주는 사람이 있기도 해요. 그러면 의외의 에너지를 얻게 되죠. 당신은 용기를 얻기 위해 특정하게 하는 행동이 있나요? 저는 다른 방법을 찾고 있는 중인 데요. 노하우가 있다면 좀 알려주세요.
저는 ‘1박 2일’ TV를 보는 것보다 1박 2일 놀러가는 것을 좋아하고, ‘놀러와’를 보기보 다 친구 집에 놀러가 떠드는 것을 좋아하고, ‘무한 도전’을 볼 시간에 친구들끼리 이 상한 도전을 해보는 걸 좋아하는 성격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하루 안에도 지방 투어 가 가능하죠. 여행이란 외국이든 국내든 ‘돌발의 매력’이 있기 때문에, 그냥 무작정 떠나도 무계획으로도 신나게 여행할 수 있어요. 기차나 고속버스 타고 낯선 곳에 내 려서, 지역 주민에서 가장 맛있는 집이 어디인지 물어보면 누구나 친절하게 가르쳐 줍니다. 택시를 타서 이 도시에서 꼭 가야 할 곳이 어디냐고 물어보면 웬만한 택시 기사 분들은 정말 다량의 정보를 건네줍니다. 버스를 탄 뒤, 옆 자리의 아주머니에게 동네 사정에 대해 물으면 이 동네에서 연예인 누가 태어났는지부터 요새 동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까지 구구절절 얘기해주세요. 심지어 그 동네 대학 진학률까 지 알 수 있답니다. 결국 여행은 사람과 부딪치고 사건을 만들어가고, 이야기를 모아 가는 과정이죠. 곧 추억을 만드는 것이기도 해요. 매사 우울할 때 쉽게 할 수 있는 일 이, 그저 훌쩍 떠나는 일입니다. 떠나면 ‘용기’가 생겨요. 신문의 사건 사고 뉴스만 읽
90 무박 2일 무작정 여행 _ 충동 충만 감정 충전
으면서 세상이 험한 곳이라고 여기고 움직이지 않다보면, 내 정신도 움직이지 않습 니다. 떠나는 게 두려울 땐, 먼저 떠난 사람들의 체험담을 읽어도 좋아요. 하지만 무 엇보다 ‘내 삶의 이야기’를 만드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다른 방식, 다른 장소… 새 로움을 향해 무계획으로 떠나보세요. 자신의 삶을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보고 ‘새로 운 나’로 태어날 수 있을 거예요.
저는 아직 단축 마라톤밖에 참여해보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꼭 마라톤에 참가하고 싶어요. 대학 시절과 기자 시험을 준비하던 시절, 달리기라는 취미를 갖게 됐어요. 대 학 시절에는 당시 남자친구가 군대에 갔기 때문에, ‘군대 간 남자친구는 고생하는데 나는 고생을 안 할 수 없어’라며 그냥 뛰었고, 기자 시험을 준비할 때는 ‘사건을 파헤 치다 도망가야 할 일이 생길지 몰라’라며 뛰었어요. 지금은 안 뛰어요. 뛸 이유를 요 새는 찾지 못했어요. 저는 무슨 계기가 있어야 뛰는 나일롱 준 마라토너거든요. 마라 톤 동호회도 가입되어 있지만, 나간 적은 없어요. 저는 요새 자전거가 제일 좋아요. 제가 자전거를 타러 나간 길에, 제가 가입한 ‘다음’ 사이트 동호회 회원들이 깃발을 들고 달리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적도 있어요. 언젠가는 꼭 한 번 참여해보고 싶긴 해요. 달리기는 혼자와의 싸움이기도 하지만, 같이 달리면 덜 힘들긴 하거든요. 저는 제 남동생과 자주 함께 달렸는데, 누군가와 페이스를 맞춰 달리면 달리기가 지루하 지 않아요. 달리다보면 어느 순간에 숨이 차면서 기분이 좋아지면서 일정하게 달리 는 때가 오죠. ‘러너스 하이’라고 부르는 순간이요. 심장은 터질 것 같지만, 몸의 노폐 물이 다 빠져나가는 느낌이라 얼마나 상쾌한지 모릅니다. 기분이 울적할 땐 달리세 요. 체력이 금세 좋아지는 걸 느낄 거예요. 단기간 다이어트로는 달리기가 최고예요. 경험한 바로는 달리기와 수영, 줄넘기가 단기 체중 감량에는 특효약입니다.
91 마라톤 _ 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
92 퀴즈쇼 전화찬스 _
당신에게는 전화찬스를 쓸 만한 친구가 있나요? 호기심이 많다거나 잡학 정보가 많 은 친구라면 탁월하죠. 과거에 술자리 술마시기 게임 중에 이런 게 있었어요. 문자를 보내놓고 전화 가장 늦게 오는 사람이 술 마시기, 질문 보내서 답변 안 오는 사람 술 마시기… 뭐 꼭 술자리나 TV 퀴즈쇼 전화 찬스는 아니라도, 전화 찬스를 쓸 친구가 있는 것은 행운이죠. 제게는 저를 포함해 세 명의 전화찬스 멤버가 있답니다. 이 세 명은 누군가와 서로 대화를 나누다가 머릿속에 생각은 나는데, 단어가 입 밖으로 나 오지 않으면 곧장 전화 찬스를 씁니다. 전화 찬스 친구끼리의 암묵적인 동의 사항은 ‘시간 제약 없음’, ‘소재 제약 없음’입니다. 새벽에 일하다가, 자정에 술 마시다가… 뜬
엉뚱
금없는 물음표 문자를 건네도 놀라지 않기? 배우 이름, 드라마 제목, 영어 단어, 특정
재미쇼
사건 발생 연도 … 소재도 다양합니다. 궁금한 것을 참지 못하는 친구들끼리 ‘사조 직’을 형성해서, 퀴즈쇼를 즐겨보세요. 생활의 잔재미가 생긴답니다.
93 미식 탐험 _
맛있는 것을 찾아다니는 것만큼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도 없죠.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라고는 하지만, 배가 고프면 아무 것도 하기 싫어요. 저만 그 런지는 모르겠는데 ^^ 맛있는 집을 발견하고 나면 괜히 기분이 뿌듯해져요. 꼭 비싸 고 유명한 집을 찾아간다기보다, 자신만의 비밀 음식점과 비밀 음식을 지정해보세 요. 나는 기분이 나쁠 땐 ‘이 음식만은 꼭 먹는다’ 그런 음식이요. 괜한 고집일 수도 있는데, 저는 기분이 울적할 때 ‘어떤 가게’를 꼭 찾아요. 체인점이라서 길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의외로 ‘그 가게’가 없는 장소에서는 발끈하기도 하죠. 저는 ‘그 가 게’의 모든 메뉴를 먹는 것을 목표로 삼은 적이 있어요. 굉장히 무식한 짓이긴 하죠.
맛으로 위안
그런데 왠지 ‘그 가게’의 모든 맛을 섭렵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질 것 같은 기대감에 그랬어요. 왜냐하면 신제품은 계속 나오기 때문에, 제가 그 신제품이 나오는 속도를 따라갈 수 없거든요. 저의 울적함도 결국 신상품 등장에는 못 따라가는 거예요. 그러 면서 제 우울한 기분은 아무 것도 아닌 게 되죠. 그리고 ‘그 가게’를 찾고 있는 내 모 습이 웃겨서, 기분이 풀리기도 해요. 혹시 정말 싫은 사람과 일을 해서 짜증이 난다거나, 업무 중에 화나는 일이 생기면, 자신만의 규칙을 만들어보세요. 내가 이 사람 말이 다 끝나면, 오늘 밤은 ‘그 가게’로 가서 ‘그것’은 먹고 말겠다! 뭐 이런 암시 말예요. 스트레스 받을 때는 스트레스를 탈 출할 만한 ‘규칙적인 딴 생각’ 리스트를 작성해놓으세요. 좀 어처구니없는 제안이기 도 합니다. 너무 자주 하면 살만 찌죠. 그래서 스트레스를 덜 받아야 날씬해진다는 진실! ^^ 저의 ‘그 가게’는 베스킨라빈스 31입니다.
필라테스는 요가는 하고 싶은데 요가가 지루할 것 같다고 고민하는 분들이 시작하 기 좋은 운동이에요. 몸동작이 요가보다 크기 때문에 좀 더 역동적으로 느껴지죠. 저 는 파워필라테스를 딱 한 달 배운 경험이 있는데요. 다음 달부터 다시 배울 생각이에 요. 근력과 지구력에 효과적이죠. 살을 단 시간에 뺄 수 있는 운동은 아니고, 몸의 균 형을 서서히 잡아가는 운동이었습니다. 한 달 해보고 필라테스를 홍보하는 것은 자 격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 달 안에 흠뻑 매력에 심취됐기 때문에 빠뜨릴 수 없었 어요. 제가 운동을 매달 다른 것으로 바꿔 하는 스타일이라 이번 달은 필라테스를 멈 췄지만, 조만간 또 시작할 거예요. 고무밴드와 공에 의지해 스트레칭을 하기 때문에, 크게 지루하지 않고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어요. 초급자와 상급자에 따라 동작이 다르
94 필라테스 _ 나쁜 기운 뽑아내기
기 때문에 차근차근 따라가면 돼요. 처음에는 발을 천장을 향해 곧게 뻗는 것조차 어 렵습니다. 어쩜 내 몸인데, 남의 몸처럼 안 움직일까요? 저는 그게 신기하더라고요. 꾸준히 하면 아마 고무밴드처럼 몸이 유연해질 것 같았어요. 운동을 하는 순간에 가 장 기대감이 컸던 종목이에요. 필라테스를 처음 시작하고 가장 좋았던 것은 ‘호흡’이 었습니다. 들숨, 날숨을 교대로 쉬는데, 명상을 하는 기분이지요. 가만히 명상을 하 려고 하면 저는 ‘졸아버리는’ 스타일이라서, 필라테스를 하면서 생각을 정리하니 기 분이 좋더군요. 새벽에 필라테스를 하고 나면, 몸이 개운하고 좋은 호흡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어요. 기분이 울적하다는 친구들을 만나면 저는 요새 ‘필라테스’를 배우 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필라테스는 각종 케이블의 건강 프로그램에서도 자주 보여 주고, 집에서 인터넷으로 동영상을 찾아서 따라 해도 좋아요. 그런데 아무래도 혼자 하면 심심하니, 여러 사람이 어울려서 하는 곳으로 찾아가보세요.
저는 등산을 마니아적으로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주기적으로 산에 오를 만큼 산 의 공기는 좋아합니다. 등산화를 신을 때도 있고, 안 신을 때도 있고…도시락을 싸 갈 때도 있고 안 싸갈 때도 있고 그저 마음 내키는 대로 갑니다. 라디오를 들으면서 산을 오르다보면 지겹지도 않고 그간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 유익합니다. 특히 일 상에서 보이지 않던 것들, 다람쥐라든가 이름모를 풀꽃, 나무, 바위 들을 보면서 마 음을 위로하곤 합니다. 산은 올라가는 게 너무 피곤하다고 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꼭 저 봉우리를 넘고 말테야’라며 의지를 불끈 다지기보다는, 그저 ‘피곤하면 도로 내려 오면 되지’라는 편한 마음으로 걷다보면, 금세 정상에 도착해있습니다. 산책의 강도 를 매일 조금씩 높인다고 생각해보세요.
95 등산 _ 쉬엄쉬엄 자연 즐기기
96 밤새도록 이불 뒤집어쓰고 영화보기 _ 타인의 감성으로 나의 고통 무마
97 타로 카드 보기 _ 그림에 홀린 마음 28)
http://www.tarotcafe.net/ 무료로 타로 카 드를 볼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를 추천합니 다. 사이트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극 복 프로젝트’입니다. 자신이 극복하고자 하 는 사항을 구체적으로 적은 뒤 성공, 실패 를 알아보는 거죠. 아주 구체적이어야 해 요. 예를 들어 저처럼 ‘매끼 반씩 식사량 줄 이기’ 이런 식으로요. 제가 이 글을 쓰고 있 는 지금 다소 ‘폭식증’ 증세가 있거든요. 이 사이트에서는 과거에 본 점괘가 누적되어 있어서 내가 과거에 어떤 고민을 했는지를 볼 수 있어요. 고민을 구체적으로 적고 타 로 카드 점괘를 눌러야 하거든요. 저도 이 사이트 소개를 하기 위해 방금 구체적인 고 민을 적고 타로 점괘를 눌러봤는데, 매우 긍정적인 점괘가 나왔답니다. 카드 점괘는 매우 구체적으로 항목이 나뉘어져 있어요. 흥미 있는 게시판이 많아서 사이트를 방문 하면 잔재미가 많아요. 인터넷 서비스 관련 기업에 근무하시는 분이 운영하는 사이트 라고 해요. ‘2001년 12월 2학기 종강과 함 께 개발에 착수’해서 지금까지 사이트를 운 영하고 있다는 운영자의 끈기와 열의도 대 단해서 계절별로 제가 방문하는 사이트이 기도 해요. 잊고 살다가 가끔씩 계절 바뀔 때 들어가 보곤 하죠. 주로 연애운을 봐요. 주로가 아니라 항상 연애운만 봐요. ^^
이 방법은 제 친구가 소개해준 방식입니다. 흔히 이별하고 참을 수 없을 때 쓸 수 있 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기도 하지요. 영화관에 콕 쳐 박혀도 좋지만, 시간적, 물질적 여유가 덜 하다면, 차라리 집 안에서 이불을 덮고 밤새 영화를 보는 방법이 좋습니 다. 혼자 있는 시간이기에 더 좋고, 끊어볼 수도 있으니까요. 무념무상의 상태로 만 드는 자기만의 노하우는 꼭 발견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이제 밤새 영화보기의 취미는 잠시 접은 상태입니다. 과거에는 친구들과 심야 영화관에 가서 세 편을 연달 아 본다거나, DVD 네 편을 집에서 혼자 밤새 본다거나 하는 식으로 힘든 것을 잊기 도 했습니다. 그게 가장 최선이었지요. 그렇게 많이 본 작품들이 왕가위, 허진호, 주 성치, 우디 알렌, 홍상수, 미셸 공드리 감독 영화… 그저 한 작품으로만 꼽으라면 ‘비 포 선셋’이었어요. 요새는 취향의 폭이 더 넓어진 편이라 영화에 국한되지는 않지만, 학창 시절에는 더욱이 소설과 영화, 라디오 음악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어 그것만으 로 고민이나 슬픔을 무마시키곤 했습니다. 그래서 저절로 예술 지상주의가 되어버 렸습니다. 예술의 출발은 고통의 회피이지요.
타로 카드(42)는 점성술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그림이 주는 이미지 때문에 그 재미 에 빠져들게 됩니다. 한때 저도 타로 카드에 빠진 적이 있는데요. 3000원, 5000원 가량 을 타로 점괘를 보려고 심심찮게 썼어요. 타로를 보고 나서, 타로 카드를 휴대폰 사진 으로 찍기도 했죠. 그림이 내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다며, 위로받았어요. 사실상 사람 이 고민이 생겼을 때는, 이런 저런 방법을 다 써보는데요. 종교가 있는 분이라면 종교 의 믿음으로 극복하고, 사랑에 빠진 분이라면 애인에게 더 많이 기대보고, 이런저런 방법을 다 써보다가도 마음이 허하면, 점이라도 한 번 보세요. 요새는 저는 시들해졌 지만, 한때 강남역 지오다노 맞은 편 타로 카드집이 유명하다고 하여 거기에 가서 보 곤 했어요. 파란 천막이 있고 그 건물 뒤에는 타로 광장이라고 해서 여러 명이 따로 타로 카드를 봐주고 있죠. 그 골목의 카페는 거의 모두 사주카페나 타로 카페예요. 요 새는 타로나 사주를 보지 않아요. 또 관심 영역이 바뀌었거든요. 한때는 힘든 것을 이 성 친구에게 전적으로 의존해 풀었고, 또 한때는 심리학 책만 찾아 읽었고, 요새는 예 술치료 쪽으로 관심이 바뀌었습니다. 그때그때마다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풀죠. 타 로 카드 부스를 지날 때면, 하루에 두 번까지도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가 타로를 보던 때가 생각이 나서 웃음이 나곤 합니다. 심지어 타로 카드 책을 사기까지 했을 정도라, 책장에는 세 권의 타로카드와 책이 꽂혀 있습니다. 가끔 친구들이 고민 상담을 해오 면 대신 밤에 조용히 카드를 뽑고, 무슨 카드가 나왔다고 문자로 보내주기도 합니다. 타로의 매력은 카드 안의 그림이더군요. 신화 속 인물을 만나듯, 다채로운 그림들을 보면서 내 마음대로 상상할 수 있어요. 하트, 스페이스 등이 가득 그려진 포커 카드를 간직하는 어린 시절처럼, 지금은 타로 카드를 지니고만 있습니다.
아! 굉장히 뜬금없긴 한데요. 이게 한 번 해보면 굉장히 보람이 높답니다. 몸에 좋은 과일을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눠준다고 생각해보세요. 백설공주의 마녀가 아닌 이 상, 누구나 당신이 건네는 과일을 믿고 고맙게 받을 거예요. 언젠가 대학생 여학생들 의 대화를 엿듣다 얻게 된 취미인데요. 아이들이 얘기하길 “제 주변에는 정말 이상 한 애가 있어요. 걔는 만날 때마다 사람들한테 복숭아를 나눠줘요. 자기가 무슨 복숭
98 과일 선물
아 킬러라며… 복숭아를 씻어서 들고 다니다가 사람들을 만나면 줘요. 자주 박스 채 로 사서 집에 둔다고 했어요.” 저는 깜짝 놀랐어요. 그 이야기를 듣는데, 속으로 웃겨 서 웃음을 참느라 혼났죠. 그 대학생 모습이 상상이 되는 거예요. 복숭아를 내밀면 서, “내가 좋아하는 과일이야”라고 나눠주는 모습이라니! 이상하긴 하지만 뭐 나쁜 것 같진 않더라고요. 우리가 어릴 적에는 자주 먹는 것을 나눠먹었잖아요. 학창 시절 에는, 군것질 거리나 후식들을 친구끼리 먹으면서 수다 떠는 게 가장 재미난 일 중에 하나였죠. 매점 가는 것만큼 기다려지는 일도 없었고, 종이 울리면 후다닥 뛰어 나 가서 새우깡이나 삼립 빵을 사서 먹었어요. 게다가 어떤 때는 아주 유치하게 뺏기기 싫다고 친한 친구들끼리만 초콜릿이나 비스킷을 사서 운동장에서 재빠르게 나눠먹 은 뒤, 입술을 딱 닦고 교실로 올라가기도 했어요. 정말 어린 행동이죠. 만일 회사에 서 동료들끼리 그런다고 상상해보세요. 얼마나 유치합니까?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 들도 그런 군것질 로망이 있기 마련인데요. 요새는 웰빙이 대세라, 과자보다는 과일 이 좋을 것 같아요. 저는 한창 사과를 가지고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나눠줬는데, 반 응이 좋았어요. 그런데 복병을 만났어요. 어떤 분이 ‘사과를 너무나 싫어한다’는 거였 어요. ‘혹시 사과의 아삭아삭 씹는 소리를 싫어하나요?’ 물어보았더니 ‘맞다’는 거예 요. 어떻게 알았냐고? 사람들이 그런 소리를 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해서 잘 말씀 을 안 하신다고 했어요. 사람들은 식습관을 비롯해서 많은 취향이 제각기 다르죠. 세 상 사람들이 사과를 모두 다 좋아한다면 그게 더 웃길 거예요. 저는 그래서 이젠 사 과와 귤을 동시에 들고 다니기 시작했어요. 사과를 넣으면 사실 가방이 너무 무거워 요. 그런데 사과를 다 주고 나서 집에 오는 길에 가방이 가벼워지면 기분이 괜스레 좋기도 하죠. 이게 무슨 기이한 습관인가? 의아해하실 수 있는데… 직접 해보면 정 말 기분이 특이하니 특별할 거예요. 과일 무게가 걱정되신다면, 낑깡이나 방울토마 토, 파프리카 등으로 시작해보세요.
_ 사과 한쪽도 나눠먹어요
99 압박 훌라후프 돌리기 _ 탱탱한 허리 탄탄한 마음
훌라우프는 처음 시작이 어려울 뿐, 일단 시작하면 굉장히 편리한 운동이에요. 아무 곳에서나 할 수 있는 손쉬운 운동이기도 해요. (시선을 의식하지만 않는다면 ^^) 특 히 압박 훌라우프를 꼭 사셔야 합니다. 저는 ‘압박 훌라우프’라고 부르는데, 보통 ‘지 압 훌라우프’라고 지칭합니다. 돌출된 플라스틱이 허리를 꾹꾹 누르죠. 안 하던 사람 이 하면, 배가 굉장히 아파요. 처음 시작할 때는 그 통증이 상당하죠. 그런데 좀 하다 보면, 금세 그 통증은 사라져요. 웬만해서는 아무리 돌려도 돌린 것 같지 않는 단계 에 이르게 돼요. 하나 구입하시면 거의 평생 쓰실 거예요. 제가 행복을 찾을 때 쓰는 방법은, 안 하던 종목에 도전하는 거예요. 동대문 운동장 역 스포츠 매장에 가서, 아 령을 사본다거나 훌라우프를 산다거나 … 이런 게 굉장히 기분 전환에 도움이 됩니 다. 아이쇼핑이나 옷 쇼핑도 기분 전환에 최고이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값이 적게 들 면서 장기적으로 좋은 방법은 ‘운동기구를 자질구레하게 모으는 것’을 추천하고 싶 네요. 경제적 부담 별로 없이, 새로운 의지를 다질 수 있답니다. 저처럼 모으는 것에 만 집중하지는 마시구요. ^^ 남자들은 운동 열심히 하다보면 헬스 영양제까지 복용 하려고 하잖아요. 그런 심정을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열심히 하다보면 괜히 더 좋아 지죠. 그래서 삶에서는 ‘~척’ 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나 싶어요. ‘좋아하는 척’ 하다보 면 좋아지는 거 말이에요.
100 당신이 추천하는 행복의 방법 _
100번은 사람, 취미, 장소, 공연 모두 통틀어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이 추천하는 행복 의 방법을 적는 칸이에요. 행복의 ‘비법’이란 게 있을까요? 아직도 찾고 있죠. 행복은 평생 ‘찾는’ 그 무엇이겠죠. 그리고 어느 날 문득 갑자기 찾아오는 게 아니라, 순간이 모여서 몸에 배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여러분이 행복을 찾기 위해 하는 행동은 어떤 게 있나요? 타인에게 추천하고 싶은 방법을 꼽아보세요.
★ ‘비로소’ 예고입니다. ‘비로소’ 가 몇 번째 마디까지 당신에게 대화를 청할 수 있을 지는 아 직 모르겠어요. 독특한 고추장 비법을 지니고 있다는 ‘신당동 떡볶 이 집’ㄱ) 며느리도 모르고, ‘무릎팍’ 점쟁이 도사님ㄴ)들도… 모를 거 예요. 단지 비로소라는 사전적 의미ㄷ) 그대로 당신이 ‘무엇’하기 바 랄 때, ‘비로소’ 행복의 길을 써내려갈 수 있게 도와주는 잡지이고 싶 습니다. 이 잡지를 펼치는 지금 이 순간ㄹ), 어떤 고민을 짊어 맨 분 이라면 훌훌 털고 새롭게 자신을 그려보길 바랍니다. 저 역시 여러 마디의 언어가 섞여 아름다운 세상을 꾸미고픈… 꿍꿍이ㅁ) 꿈을 계 속 꾸겠습니다. 두 번째 발간될 두 마디 ‘비로소’는 ‘우리 함께 사랑할까요?’ 편입니 다. 사랑에 꼭 필요한 것이 어떤 것인지 알려주고 싶은 분들은 자유 롭게 메일을 보내주세요. 비로소 두 번째 마디 잡지를 구매하실 분도 메일로 신청 바랍니다. (baram4u@gmail.com) 자신의 취향까지 마 음 내키는 대로 적어 보내주셔도 좋아요. ‘타인의 취향을 고려한 내 맘대로 잡지’로 거듭나겠습니다. 2009년 가을의 끝자락. 겨울의 문턱에서 독자에게 드림.
ㄱ) 지하철 2호선과 6호선 신당역에 내려서 5분 정도 걸어가면 ‘충무아트홀’ 공연장 맞은편에 떡볶이 집 이 모여 있어요. 저는 90년대에 한 번 가고 가지는 않았어요. 신림동의 순대 타운과 신당동의 떡볶이 길 은 10대 시절의 로망이었던 터라, 딱 그때만 가고 안 갔습니다. 각 나이대의 로망은 달라지죠. 언제나 새로운 로망을 만들어보세요. ㄴ) MBC 예능프로그램의 ‘무릎팍 도사’의 장점은 ‘아무거나 질문’의 매력이 아닐까요? ‘혹시나 이 문을 하면 내가 이상하게 보이면 어쩌지?’ ‘그 소문을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봐도 될까?’ 일반 인터뷰 상자라면 꺼릴 질문을, 오히려 전면으로 부각시킨 뒤, 직설적으로 던진다는 거죠. 사실 우리는 직설 현을 원하지만 에둘러 말하기에 너무 익숙해있으니까요. 무릎팍 도사의 ‘저돌성’으로 세상에 당당히 부를 거세요.
질 대 표 승
ㄷ) ‘어느 한 시점을 기준으로 그 전까지 이루어지지 아니하였던 사건이나 사태가 이루어지거나 변화하 기 시작함’, 비로소 000 하기 바라는 게 있으신가요? 당신의 000은 무엇인가요? ㄹ)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노래 제목, 저는 조승우가 부른 곡을 가장 좋아해요. 최근에는 배우 홍광 호가 부른 게 더 인기 있죠. 홍광호는 뮤지컬 계의 아이돌 스타처럼 누나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습니 다. 현재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 출연하고 있어요. 뮤지컬 계의 아이돌이 궁금하다면 홍광호의 노래 를 들어보세요. 조승우와 홍광호는 같은 기획사 소속이고, 둘은 선후배 관계예요. 당신이 지금 좋아하는 아이돌, 혹은 과거의 젊은 스타는 누구였나요? ㅁ) 남에게 보이지 않고 속으로 무슨 일을 꾸미는 거죠. 저도 이 잡지를 만들면서 그 꿍꿍이가 뭔지 찾아 보려고요. 주로 ‘꿍꿍이수’, ‘꿍꿍이셈’, ‘꿍꿍이 수작’, ‘꿍꿍이짓’ 등으로 써요. 북한에서는 ‘꿍꿍이질’이라 고 한대요. 여러분들은 요사이 무슨 꿍꿍이 속셈을 품고 살고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