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농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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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고창농악 1) 고창의 땅과 문화 고창은 전북의 서남단에 위치하여 동북 방향으로는 정읍시, 서쪽 방향으로는 황해, 남쪽 방향으로는 전남 영광군과 장성군, 북쪽 방향으로는 부안군과 접하고 있다. 땅의 형세는 대개 동남 방향이 높고 서북 방향이 낮은 경향을 하고 있다. 해안과 넓은 평야지대가 공존 하는 비옥한 땅을 바탕으로 옛 선비들과 서민들은 여유롭고 멋스러운 소리와 춤을 발달시 켜왔다. 현재의 고창군은 예전에는 고창현, 흥덕현, 무장현의 세 고을로 나뉘어 있었는데 전통 음 악 또한 세 고을을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흥덕현은 풍류, 판소리, 삼현육각, 시조가 성하였 으며, 고창현은 판소리 여섯마당을 집대성한 동리 신재효 선생과 최초의 여류명창 진채선 등 여러 명창들과 광대들을 길러냈으며, 무장현은 농악이 성하였다. 무장현은 현재 무장, 해리, 상하, 공음, 대산, 성송, 아산, 고수면이 속해 있었으며 이 지역 의 농악명인들이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는 영광군, 장성군의 명인들과 같이 활동한 데에서 영․무․장 농악이란 말이 유래되었다. 고창에는 전문 예인들의 활동에서 완성된 전문적 농악 형태인 판굿과 문굿 이외에도 각 마 을에서 행해졌던 매굿, 당산굿, 풍장굿 등이 전체적으로 크게 성행하였으며 현재까지도 그 맥을 잇고 있는 마을들이 많아 가히 농악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2) 고창농악의 역사 고창농악의 역사는 약 30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고창의 각 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당산굿, 샘굿, 줄굿 그리고 집집 마다 매굿을 치면서부터 고창농악은 시작되었다. 1890년대에는 박귀바위를 중심으로 독립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당골들 중심으로 전문 걸 립패를 꾸려 활동하던 것이 전문적인 연예 형태의 농악으로 발달하였다. 또한 예전 무장현을 중심으로 한 이 지역의 명인들이 영광, 장성지역의 명인들과 같이 활 동하며 서로의 지역에 발달한 굿을 교류하고 발전시킴으로써 영․무․장 농악을 정립하였고 지금까지 고창농악을 통해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해방 전후엔 가장 활발한 활동을 벌였던 쇠 명인 박성근(1902), 장구 명인 김만식(1915), 소고명인 이모질에 의해 오늘날의 고창농악이 완성되었다. 새마을운동이 활발하던 70년대 전후 미신타파라는 이유로 단절의 시기를 거치다가 1989년 황규언을 중심으로 고창농악단이 창설되면서 고창농악은 각종 전국대회 우승과 고창농악보 존회 설립, 그리고 개인(고 황규언, 정창환, 정기환)과 단체(고창농악보존회)문화재 지정, 14개 읍․면농악단의 창단, 고창농악전수관 설립 등의 과정을 통해 다시 옛 명성에 버금가는 부흥기를 맞고 있다.


고창농악 계보

3) 고창농악의 특징 가) 호남 우도농악의 전통성 고창농악은 예로부터 호남우도농악 중 간이 가장 맞다는 영․무․장 농악에 전통적 계보를 이어오고 있다. 호남 우도의 아랫녘(목포지방) 농악은 좀 느리고 웃녘(이리지방)으로 갈수 록 점점 빨라져 상당한 차이가 나는데 그 중간지역인 영광, 무장(고창)지방은 느리지도 빠 르지도 않아, 간이 제일 맞다는 정평을 얻고 있어서 일컬어진 말이다. 나) 전문예인들의 예능이 집약된 예술성 고창농악은 마을농악과 전문예인들의 농악이 조화되어 수준 높은 예술성을 지니고 있다. 고창농악은 1900년대 초․중반에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박성근과 김만식, 최화집 등의 예능을 이어받아 현재의 판제를 형성하였다. 다) 해안과 내륙의 특징을 공유한 다양성 고창은 해안에 인접해 있으면서도 넓은 평야를 가지고 있어 지리적으로 해안과 내륙의 특 징을 공유하고 있다. 이로 인해 농악도 바다를 대상으로 하는 풍어제(해리 구동호의 영신 당제)와 농사와 관련된 풍장굿, 꽃대림굿 등이 같이 전승되어 현장에서 전승되는 농악의 다양성을 담고 있다. 라) 마을 속에서 활발히 전승되는 현장성 고창에는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고창농악’뿐만 아니라 각 마을마다 농악이 전승되고 있다. 대부분의 지역이 도시화와 산업화 속에서 마을굿이 매우 열악하지만, 고창에는 아직도 많 은 마을에서 마을굿이 연행되고 전승된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또한 마을굿이 전 승력을 유지하고,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고창농악’이 현장성을 확보하기 위해 정초에 공동 으로 진행하는 당산제와 농악은 현 시대 농악 전승의 방향을 제시하는 지침이 될 것으로 주목되는 일이다. 4) 고창농악의 종류


가) 판 굿 판굿은 당산굿이나 샘굿, 매굿, 풍장굿, 문굿 등이 끝나고 판을 벌여놓고 치는 굿을 말하며 치배와 잡색들의 기량을 집약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굿이다. 가락의 흐름에 따라 독자적인 구성을 갖추어 구경꾼의 신명을 이끌어내는 판굿은 단순히 굿패의 기량을 보여주는 연희적 목적을 가질 뿐만 아니라 판굿 전에 치러지던 일련의 의식 에서 시작된 사람들의 풀이에 대한 염원을 공동체적 신명으로 이끌어내는 장이 되었다. 특정한 시기 특정한 장소에서 쳤던 굿이 아니라 마 을에서 이뤄지는 모든 굿판에서 그 마지막 을 장식하던 놀이판이 판굿이다. 현재 연행되고 있는 고창농악판굿은 쇠 명인

박성근(1902),

장구명인

김만식

(1915)에 의해 완성되었으며 박성근패, 김만식패를 형성해 활동하면서 고창군의 각 마을굿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판굿의 구성>

2000

신림면 세곡

• 들어가는 굿 일채-이채-인사굿-벙어리일채-이채덩더쿵-인사굿 일채-이채-질굿-삼채굿-인사굿 • 오채굿 마당 오채질굿-된오채질굿-풍류굿-느린벙어리삼채-된벙어리삼채-음매갱-이채 • 오방진 마당 오방진-진오방진-느린삼채-일광놀이(도독잽이굿)-홑맺이-응매개갱-빠른삼채-겹맺이 • 호호굿 마당 인사굿-벙어리일채-열두마치-호허굿본가락-콩심기-콩짐지기-콩꺽자-삼채-가세치기-미지기 -이채덩더쿵-이채 • 구정놀이(개인놀이) 잡색놀이-법구놀이(고깔소고춤)-통북놀이(북춤)-쇠놀이(부포놀이)-장구놀이(설장구)-열두발 상모 나) 문 굿 문굿은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어느 집 문앞에서 ‘주인 주인 문여소’을 외치며 굿을 치는 것과 걸립패가 한 마을에 들어가 굿을 칠 때 마을 입구에서 문을 잡아놓고 굿패의 실력을 보여주기 위해 치는 굿판을 말한다. 고창에서는 전문적인 연희걸립패가 생겨나면서 각 마 을에 문굿이 성행하였다. 문굿은 문세우기-한마당-문달래는 굿- 문 인사굿-아궁잽이-상쇠․대포수 기싸움-개인놀이-지와 밟이-콩등지기-옆치기-투전치기-강강술래-문 여는 굿의 순서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에서 상쇠와 대포수가 아군, 적군으로 나누어 개인놀이를 하는 부분은 문굿의 백미라 할 수 있 다. 문굿은 굿패의 모든 기교를 볼 수 있기 때문에 굿패가 마을로 들어가기 위한 가장 엄격하


면서도 최고 실력을 뽐낼 수 있는 굿이라 할 수 있다. 고창농악보존회에서는 그동안 단절되었던 문굿을 황규언 선생님과 여러 어르신들의 구술을 바탕으로 1996년 성남 문굿, 1999년 성송 양사동 문굿을 통해 완벽하게 재현하였으며 매 년 고창굿 한마당과 문화재 발표회 등을 통해 전승하고 있다. 다) 풍장굿 논에 모를 심어놓고 김매기를 총 세 번 하는데 초벌매기는 모 심은 지 20일 만에, 두벌매 기는 초벌 맨 지 15일 만에, 세벌매기(만두레)는 두벌 맨 10일 만에 한다. 마지막 만두레 때 풍장굿을 치기 때문에 만두레 풍장굿이라 한다. 풍장굿은 주로 큰농사를 짓는 부잣집에서 친다. 부잣집의 상머슴(일을 제일 잘하는 사람)이 일꾼들을 모아 농악대와 농기․영기를 앞세우고 논으로 나가 김을 매는데, 논둑에서 굿을 쳐주는 풍장패의 가락에 맞추어 선소리꾼이 진소리, 잘룬소리를 메기면 일꾼들은 후렴으로 받는소리를 하며 일을 한다. 논 양옆에서는 장화(어사화)를 꽂고 너울너울 춤을 춘다. 김을 다 매면 상머슴은 소를 타고, 주인은 지게를 타고, 칠채굿가락에 풍년노래를 부르면 서 주인집으로 돌아온다. 주인집에서는 고된 일을 하느라 애쓴 일꾼들에게 술과 음식을 내 놓고, 저녁 내내 한바탕 판굿을 치고 놀며 풍년농사를 기원한다. 고창농악보존회에서는 만두레 풍장굿을 2000년과 2001년에 신림면 세곡과 해리면 하련에 서 재현해내었다. 라) 당산굿 마을의 가장 큰 수호신인 당산에 가서 치는 굿을 당산굿이라 한다.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는 의미가 강한 굿이다. 마을에서 굿을 칠 때 가장 먼저 치는 굿이 당산굿인데, 이는 당산에게 먼저 굿으로써 인사 를 드리는 의미가 크다. 당산에 들어갈 때를 들당산굿이라 하는데 당산이 놀라지 않도록 벙어리일채를 치면서 들어 가고, 당산을 즐겁게 놀리는 굿을 친 다음 날당산굿을 치면서 나온다. 이때는 귀신이 따라 오지 못하게 벙어리삼채를 치면서 나온다. 고창에는 아직도 많은 마을에서 당산굿이 행해지고 있다. 마) 샘 굿 마을 공동우물에 가서 치는 굿이다. 정월대보름이 되면, 마을사람들은 공동우물 의 물을 퍼내고 새 물이 나오게 하여, 새로 운 물로 한 해를 깨끗하게 시작하고자 하였 는데, 이러한 공동우물에서 치는 굿이 샘굿 이다. 샘굿을 칠 때는 ‘솟아라 솟아라 푹푹 솟아라’ ‘솟

1999

성송면 양사동

아라 솟아라 하늘같이 솟아라’라고 외치며 굿을 친다. 바) 매 굿 매굿은 정월 열나흗날(음력 1. 14)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지난해 묵은 액을 몰아내고 새


복을 불러들이기 위하여 치는 굿을 말한다. 매굿은 마당에서 치는 마당굿, 부엌에서 치는 조왕굿, 장독대에서 치는 철륭굿, 샘에서 치 는 샘굿, 마루에서 치는 성주굿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창의 모든 마을에서 이루어졌으며 당산제나 천제를 지내기 위한 걸립의 의미도 가지고 있다. 사) 당산제 당산은 마을 사람들의 공동체 신앙이 담겨져 있으며 마을의 수호신이다. 이러한 마을신에 게 모셔졌던 당산제를 사람들은 경건하고 엄숙하게 지내왔다. 당산제는 열나흗날에서 보름날로 넘어가는 밤12시에 지낸다. 당산제를 지내는 제관은 생년월일에 의해 깨끗하고, 생기복덕한 사람으로 선정한다. 고창의 각 마을에서 대부분 당산제를 지내며, 천제나 철륭제를 지내는 곳도 있다. 아) 줄 굿 줄은 용을 상징한다. 용은 물을 관장하는 상징적인 동물인데, 당산나무에 용을 바침으로써 풍년농사를 기원하는 의미가 크다. 줄은 집집마다 볏짚을 걷어서 주로 스물일곱 가닥으로 꼬거나, 쉰네 가닥으로 꼬아서 만든 다. 줄을 완성한 후에는 줄굿을 치고, 남․녀로 나뉘어서 줄다리기를 한다. 그런 후 마을 사람들 모두가 줄을 들고 오방을 돈 다음 당산나무에 감는다. 5) 고창농악의 편성 가) 영 기 ‘令’자가 쓰여 있는 깃발로 두 개로 구성되어 있다. 모든 굿의 제일 선두에 서는 깃발이다. 나) 농 기 ‘農者天下之大本’이라 쓰여 있는 깃발로 농사가 천하의 가장 큰 근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다) 단 기 ‘高敞農樂保存會’와 같이 단체의 이름을 표시하는 깃발이다. 라) 나 발 긴 나발로서 일초․이초․삼초를 불어 굿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역할을 한다.


마) 새 납(태평소) 농악 악기 중 유일한 선율악기로, 고창농악 가락에 맞는 선율을 불어준다. 바) 대포수 총쟁이라고도 불리우며 굿을 칠 때 앞에서 진두지휘하는 역할을 한다. 사) 쇠 쇠꾼이라고 부르며 상쇠와 3~4명의 쇠꾼으로 이루어진다. 아) 징 징쟁이라고 부르며 수징과 1~2명의 징쟁이로 이루어진다. 자) 장 구 장구잽이라고 부르며 설장구와 4~6명의 장구잽이로 이루어진다. 차) 북(통북) 통북쟁이라고도 하며, 2~3명의 북잽이로 이루어진다. 카) 법 구(소고) 고깔소고춤을 추는 법구는 수법구와 9~10명의 소고잽이로 이루어진다. 타) 양 반(양반광대) 잡색 중 제일 어른으로 양반을 해학적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도둑잽이굿에서는 상쇠 의 꽹과리를 찾는 중개자 역할을 한다. 파) 망 구(할미광대) 양반과 짝을 이루고 자유분방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도둑잽이굿에서 대포수와 바람을 피우는 역할을 한다. 하) 참 봉 참봉벼슬을 한 사람으로 공짜를 너무 좋아해 얼굴이 한쪽은 희고, 한쪽은 붉은 탈을 쓴다. 각시와 짝을 이룬다. 거) 각 시(각시광대) 양반과 망구의 딸이기도 하며 참봉과 짝을 이룬다. 교태를 많이 부리며 다른 잡색들과도 잘 어울린다. 너) 중광대 중의 신분인데 광대인 사람으로 승무 복장을 하고, 한삼을 들고 춤을 춘다. 각시를 꼬시는 역할을 한 다. 더) 홍적삼 술을 너무 좋아해 항상 술에 취해 있는 사람으로, 붉은 옷과 붉은 고깔을 쓴다. 러) 비리쇠 말뚝이와 같은 역할이며 코에 방울을 단 탈을 쓴다. 머) 조리중 땡중을 말하며 도둑잽이굿에서 점을 쳐서 도둑을 찾아낸다. 버) 좌 창 창부로서 검은 두루마기를 입고 꿩털을 꽂은 패랭이를 쓴다. 코가 좌측으로 비뚤어진 탈을 쓴다. 서) 우 창


창부로서 검은 두루마기를 입고 꿩털을 꽂은 패랭이를 쓴다. 코가 우측으로 비뚤어진 탈을 쓴다. 어) 동방치마 아가씨 처녀의 역할이다. 6) 무형문화재 고창농악 보유단체 및 기능보유자 가) (사)고창농악보존회 1989년 고창농악단이 창설되면서 전국농악경연대회 대상과 전주대사습놀이 농악 부문 장 원을 차지함으로써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7-6호 고창농악보유단체로 2000년에 지정되었 으며, 2006년 사단법인으로 등록되었다. 전수교육을 통한 후진양성과 문화재 공연, 지역과 세대를 아우르는 고창굿 한마당, 고창농 악경연대회, 초청공연, 고창농악정리사업 등을 통해 고창만의 맛과 멋, 색깔을 간직한 고창 농악을 올곧게 계승발전 시키고자 오늘도 70명의 회원들이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故 황규언(성송, 1920~2001) 장구명인 김만식과 쇠 명인 박성근에게 사사받았으며 박성근패, 김만식패를 따라 다니면서 활동하였다. 장구가락과 몸짓이 좋고 쇠가락이 매우 구성지다. 장구잽이로 활동하다가 60세가 넘어서부터 상쇠를 하였다. 1989년 고창농악단 창설 이후 상쇠를 맡으면서 현재 전승되는 고창농악의 모든 것을 재현 해내고 전수하였다. 1999년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고창농악 상쇠 보유자로 지정되었으며 1993년~2001년까지 1,000여 명이 넘는 제자를 길러냈다.

정창환(대산,1923~현재) 대산면 성남에서 어렸을 때부터 동네 당골 선기산에게 소고 를 배웠으며 이모질의 소고를 어깨너머로 보고 자력으로 습득하였다. 동네에서는 상쇠를 하였으며, 고창농악단에서 강대륙이 영광으로 이사 간 후 수법구를 하였다. 1998년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 7-6호 고창농악 고깔소고춤 보유자로 지정되었으며, 2005년 그간의 활동을 인정받아 고깔소고춤 명예보유자로 재지정되었다.

정기환(공음,1933~현재) 공음면 건동리에서 출생하여 마을에서 굿을 배웠으며 어렸을 때부터 장구에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김만식이 성송면 양사동에 살았을 때 가서 장구를 본격적으로 배웠으며, 2006년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7-6호 고창농악 설장구 보유자로 지 정되었다.


회원들

나) 고창농악보존회가 하는 일들 • 고창농악 문화재발표회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고창농악 발표회는 고창농악의 여러 종류 중 해마다 새롭게 발굴하 고 연구하여 발표회를 갖는다. • 고창농악경연대회 고창농악을 하는 고창군 14개 읍․면 농악단, 고창관내 초․중․고풍물패, 그리고 기타 대학․사회풍 물패가 참가하여 고창농악경연대회를 연다. 매년 모양성제 때 개최한다. • 고창굿 한마당 세대와 지역을 아우르는 고창굿 한마당은 매년 서울에서 개최한다. 고창농악을 통해 하나 되는 화합의 장이다. • 고창굿 사랑의 날 고창농악의 뿌리와 역사를 존중하고 고창농악의 전통성에 대해 고창농악보존회 모든 회원 과 회원가족, 고인이 된 회원 분들의 가족이 모여 서로 간의 화합과 친목을 다진다. • 초청공연 고창농악을 알리기 위한 각종 초정공연에 참가한다. • 고창소리 학술․연구사업 고창농악의 역사, 굿 내용, 계보, 명인들, 마을굿, 가락보, 굿 이야기, 굿 사진 등을 단행 본으로 만드는 책자발간사업과 고창의 소리에 대해 연구하여 교육프로그램을 개발, 우리나 라 국악교육의 핵심적 역할을 하고자 하는 사업이다. 다) 고창농악전수관 고창농악전수관은 무형문화재 제7-6호 고창농악을 전수하는 전문 교육기관이다.


여름․겨울 전수를 통해 고창농악 판굿, 설장구, 상쇠춤, 북춤, 고깔소고춤, 잡색놀이, 고깔 만들기, 도둑잽이굿 등을 전수하고 있다. 고창관내 초․중․고 특기적성 교육을 통해 고창농악을 전파하고 있으며, 전국의 대학 풍물패 와 고창군 14개 읍․면농악단 교육, 그리고 도민사회교육의 일환으로 고창 군민들에게 고창 농악을 가르치고 있다. 고창농악전수관에는 관장 이명훈을 중심으로 젊은 강사 8명이 문화재 선생님들을 모시고 전통문화예술 교육활동에 매진하고 있으며, 다양한 전문적 공연활동을 통해 고창농악을 전 국적으로 알려내는 데 노력하고 있다. 라) (사)고창농악보존회와 함께 고창농악을 이어가는 사람들

7) 고창군 14개 읍·면 농악단 가) 고수면 마당바우농악단 93년 고수면 농가주부모임 농악단의 창단을 시작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고수면 농악단은 매년 보름굿과 각종 행사 참여 등을 통해 지역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특히 지난 2005년도에는 고창농악경연대회와 전북 시군농악경연대회에서 연달아 대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나) 고창읍 고인돌농악단 2000년 6월에 창단된 고창읍 고인돌 농악단은 제1회 고창농악경연대회 대상팀으로, 각종 경연대회에서 여러 차례 입상한 경력을 갖고 있는 팀이다. 현재 고창읍을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다) 공음면 참나무정농악단 1998년 공음농민회를 중심으로 창단된 공음면 농악단은 지역축제 및 각종 행사를 통해 활 동하고 있다. 전북 무형문화재이신 정기환(설장구) 선생님께서 활동하고 계시는 농악단이 며, 2005년 고창농악경연대회에서는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라) 대산면 태봉농악단 대산면 농악단은 2000년 1월에 창 단되었으며 대산면민 행사와 재경 행사 등에 꾸준히 참여하여 활동 하고 있다. 지난 2004년에는 전국민속예술축 제에 전라북도 대표로 고창농악보 존회와 함께 참가하여 금상을 수 상하였다. 마) 무장면 무장읍성 놀이마당농악단 1998년에 창단되어 40여 명이 활동 중이다. 정월대보름 때 마을을 돌며 매굿을 치고, 선 운사나 구시포해수욕장에서 몇 차례의 단합대회 겸 연습을 하기도 한다. 또한 면민체육대 회 등 면행사에 축하공연 등 활발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바) 부안면 수강농악단 잊혀져가는 우리 가락을 보전하고 특색 있는 부안면민의 자랑거리를 후대에서 기억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로 창단된 부안면 농악단은 각종 지역행사에 참여하여 흥을 북돋우는 데 일조하고 있으며 각종 대회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사) 상하면 장사농악단 2001년 3월에 창단된 상하면 농악단은 고창농악보존회 창단 원로들이 가장 많이 활동하고 있는 농악단이다. 2002년에 고창농악경연대회 대상을 수상하였으며 그 외 다수의 수상 경력이 있다. 아) 성내면농악단 성내면 농악단은 1997년 성내면내 시기청년회 회원들의 자발적인 창단 의지에 따라 풍물 을 시작하게 되었고, 현재는 성내면을 대표하는 농악단으로서 활동을 톡톡히 하고 있다. 고창농악경연대회에서도 여러 차례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자) 성송면 구황산농악단 성송면 농악단은 2002년 3월 창단되었다. 성송은 무형문화재 황규언 상쇠와 여러 명인을 배출한 지역이며, 고창농악전수관이 자리잡고 있는 것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 다. 각종 체육행사 및 마을행사 시 자발적인 참여로 행사의 흥을 돋우는 촉매 역할을 하고 있 음은 물론 지역 사회를 이끌어가는 단체로 우뚝 서고 있다. 차) 신림면 수산봉농악단 2001년 3월 가평 농악단으로 시작하였으며 중추절, 정월 대보름 행사 시 농악을 실시하여 지역민에게 흥겨움을 선사하고 있다. 고창농악경연대회에서 여러 차례 우수한 성적을 거두 었으며, 2004년 명칭을 신림 수산봉농악단으로 개정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카) 심원면농악단 2001년 창단하였으나 적은 인원수로 인하여 활동이 미비하였다. 2006년 새롭게 농악단을 구성하여 열심히 배우고 있으며 앞으로의 활동이 주목되는 농악단이다. 타) 아산면 성틀봉농악단 2000년 7월 창단되었다. 고창농악 최고 상쇠로 일컬어지는 고 박성근 상쇠를 배출한 지역 으로 예로부터 굿이 세었다고 한다. 고창농악경연대회와 전국대회에서 여러 차례 입상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파) 해리면 해풍농악단 2001년 4월 해리면 농악단을 창단하였다. 창단 이후 정기적인 연습을 통하여 꾸준한 정진을 하고 있으며, 2001년에는 영광군 법성 포에서 열린 제2회 전국 국악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였다. 매년 음력 정월 마을 순회 공연을 갖는 등 농악의 활성화와 계승발전을 위하여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하) 흥덕면 배풍농악단 2000년 9월 창단되었다. 2001년부터 매년 정월대보름날 풍년과 면민의 모든 소망이 이루 어지기를 기원하며 관내를 순회, 풍년농악 한마당 놀이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관내 의 크고 작은 행사에 봉사의 마음으로 농악한마당을 펼치고 있다. 정기적으로 자체모임 행 사를 갖고 농악연습을 통하여 단합을 도모하고 있다. 8) 고창농악 전수생들 가) 전국 대학생 풍물패 1993년 성송면 양사동에서 연세대 ‘떼’의 첫 전수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15년 동안 꾸준히 고창농악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 1998년 ~ 2002년까지는 전수생들이 서울에 모여 전수생 발표회를 개최하였으며, 고 창굿한마당 등 고창농악이 있는 곳이라면 어느 곳에서나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현재까지 감신대, 건국대, 단국대, 동덕여대, 명지대, 상명대, 서울시립대, 서울예술대, 성 공회대, 세종대, 아주대, 연세대, 이화여대, 한국외국어대, 한국기술대, 한성대, 홍익대 등이 전


수를 받고 있으며, 2005년 고창농악경연대회에서는 대학생 연합팀을 구성하여 최우수상을 수상 하기도 하였다. 나) 사회패·일반인 대학생 전수생과 같이 풍물을 직업으로 하는 각 지역의 사회패와 일반인 역시 고창농악을 해마다 전수받고 있으며, 각자의 지역에서 고창농악을 보급하고 있다. 지금까지 고창농악을 전수받은 사회패․일반인으로는 서울 살판, 수원 삶터, 안동 참넋, 제 주 신나락, 광주 굴림, 광주 풍물천지, 전취모 등이 있다. 전취모의 경우 고창농악경연대회에 참가 우수한 성적을 거두기도 하였다. 9) 고창군 초·중·고 풍물패 가) 고수초등학교농악단 학교 내 각종 행사 참여를 위해 구성되었다가 2004년 고창농악경연대회 참여를 계기로 활 성화를 도모하고 있다. 현재는 전교생이 국악에 대해 교육을 받고 있으며 농악단은 별도로 운영되어지고 있다. 나) 부안초등학교 우수골농악단 2000년 결성된 부안초등학교 농악단은 지역 노인행사 등 각종 행사에 참여 면내 문화행사 에 큰 보탬이 되는 활동을 하고 있다. 2006년부터는 전교생이 농악을 배우고 있으며 지금 까지 고창농악경연대회, 각종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등 우수한 활동을 하여 왔다. 다) 성송초등학교농악단 2000년 전교생으로 구성된 성송초등학교 농악단은 각종 면 행사와 경연대회 수상 등을 통 해 면을 대표하는 단체로 성장하였다. 어릴 적부터 배운 고창농악을 통해 전통을 이어간다 는 자부심이 대단한 성송초등학교농악단은 그동안 고창농악경연대회와 각종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등 우수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라) 영선중학교농악단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구성된 영선중학교농악단은 짧은 전통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속도 로 실력을 쌓아가고 있다. 매년 특기적성교육 이외에도 전수관에 직접 입소하여 여름․겨울 전수를 통해 실력을 쌓아가고 있는 기대되는 농악단이다. 마) 강호사이버고 농악단 ‘연’ 한 해의 희망과 소망을 담아 연을 날리듯이 농악을 치면서 한 해를 잘 보내려는 다짐과 한 해를 잘 보냈다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악기를 치고 싶어 농악단 이름을 ‘연’으로 지었다는 강호사이버고 농악단은 각종 지역행사와 축제에서 좋은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해마다 여 름․겨울이면 전수관을 찾아 전수를 받으며 실력을 쌓아가고 있다. 바) 고창여고 농악단 ‘얼쑤’ 2005년 고창농악경연대회와 시군농악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고창여고 농악단은 우리 문화는 우리가 지켜나가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각종 지역행사와 축제 등에서 바쁜 활동을 보이고


있다. 계속된 연습과 노력을 통해 더 좋은 소리로 고창농악을 표현하고자 힘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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