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끼재 국도23호선 영광선
장두마을 입구에서 학천 방향 넘어 가는 낮은 재
로서(초내 방면 일명 각골)) 월계마을에서 낮에 바라보면 남쪽으로 멀 리 보이는데50~ 60년대 전기가 안 들어와 차량 통행은 물론 인적이 거의 없고 깜깜한 지역으로 칠흑 같은 밤에 비가 올려고 하면 도깨비 가 자주 나타난다고 하였다. 도깨비는 희미한 불빛으로 깜빡이며 크게 작게 보이는 등 움직이는 실체도 보았다는 주민들도 있었다 ■부곡잔등 위치는 월계 한마음 주유소에서 장암방면 국도23호선 구 도로이며 부 곡마을 가는 낮은 재로서 주위에 소나무 아카시아 등 나무가 많아 인 적이 없어 음침하여
6.25 사변시 인민군들이 정읍을 거쳐 고창관내에
진입 한다는 소식을 듣고 영광결찰서에서 자익사상을 가진 영광군민 두 대분 트럭 40~50명 정도 민간인들이 대량으로 학살된 지역으로 70년대 초까지도 인골이 다량으로 널 부러져 있었고 옹기항아리로 된 일반 초분이 많이 있었던 곳이다 . 그 후 부곡 잔등을 저녁 늦게 지나 올 때는 귀신이 나올 것 같아 무서워 뒤도 안 돌아보고 다녔던 곳이다 ■월계재(앙골 방죽) 월계 북쪽 뒷 골 안에 있는 월계제는 1943년경 일제말기 일본인들이 쌀을 공출하기 위하여
월계 사람들이 남녀노소 모두 강제노역으로 지
게와 괭이 삽 소쿠리 등으로 울력을 통해서 축조한 큰 방죽이다 방죽안에는 여러개의 샘물이 솟아나는 속샘이 있었고 방죽위 논 모서 리에 부근에 샘물이 나와 일년 내내 마르지 않아 여름철에는 포장을 치고 남자는 물론 부녀자들까지 목욕하고 약수를 가져온 사실이 있어 서 물통거리(약수터)라 불렀다.
축조 후 매년 농사철에 모심기가 끝나
면 방죽물이 바닥을 들어내 온 동네 사람들이 쪽대 가래(물고기잡는 기구) 등으로 붕어 가물치 등을 잡는 풍경이 장사진을 이루었고 1973 년대 새마을 사업 소득 사업 일환으로 방죽안에 자생되고 있는 순채 (수련과)을 채취하여 일본에 수출하는 마당바우 한일 식품에 납품하여 새마을 기금으로 조성하였다
월계지명 추가 ■ 용오철 : 안골 서씨제실 좌측 골 ■ 읍내절 : 터골 뒷산으로 고창읍 김해김씨으로 소유로 영광댁이 경작하는 밭 ■ 산영굴 : 초내에 있는 논으로 월계마을에서 부르는 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