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읍성 공북루(拱北樓)는 한국건축미의 극치 고창읍성의 지세(地勢) 갑작스럽게 고창읍성의 공북루를 한국건축미의 극치라 말하니 웃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필자는 고창읍성의 정문인 공북루(拱北樓)를 볼 때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한국에 는 공북루로 유명한 성은 공주의 공산성과 고창읍성 등이 있다. 고창읍성에는 남문이 없고, 동문과 서문 및 북문이 있다. 남문이 없는 이유는 호남정맥(노령산 맥)에서 갈라져 나온 영산기맥의 주령이 검곡치 부근에서 갈라져 나와 남쪽에서 북쪽으로 뻗 어 발달하다가 고창읍성의 장태봉(將台蜂, 108m)에서 두 갈래로 갈라져 멈추었기 때문이다. 즉 고창읍성은 남쪽에서 내려오는 주령이 장태봉을 이루고, 그 봉우리에서 분기되어 적을 소 (小)자 모양의 산세를 이루었다. 장태봉에서 갈라진 산줄기는 좌청룡과 우백호가 뚜렷하게 발 달했다. 이 좌청룡과 우백호 상에 고창읍성을 축성한 것이다. 풍수적으로 주령이 뻗어 발달하 여 치고 들어오는 방향을 향해서는 공간을 열어 놓지 않는다. 고창읍성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발달한 산줄기가 있기 때문에 남문에 해당하는 남쪽에는 문을 만들 수 없다. 이러한 풍수적 요인으로 고창읍성은 남문이 없는 성이 되었다. 한편 고창의 도시발달은 북문 앞의 동산물과 수북동 중심의 상거리와 성남동과 성북동 및 중앙동 일대의 중리와 중거리였기 때문에 남문의 통행이 거의 없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고창읍성에 굳이 남문을 설치 할 필요가 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북쪽의 임금을 향해 공손히 배알 공북루는 한자로 拱北樓(공북루)라 쓴다. 북쪽은 일 년 중 가장 추운 11월부터 1월까지이며, 오행으로는 해자축(亥子丑)이며, 수국(水局)으로 모든 만물이 쉬거나 잠드는 동절기이다. 또한 북쪽은 생명탄생의 의미가 있으며, 가장 높은 곳의 향(向)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향이기 때 문에 북쪽은 임금님이 계시는 방향인 것이다. 따라서 고창읍성의 북쪽에 주 출입로인 누각을 세울 때, 공(拱)자를 쓴 것은 두 손을 공손히 맞잡고 북쪽의 임금님을 바라본다는 의미가 있 다. 즉 공북루는 북쪽의 임금님을 공손하게 배알 한다는 의미가 있다. 공북루는 한국 건축미의 정수 건축미는 자연의 미와 곡선의 미로 대표되는데, 고창읍성의 정문인 공북루의 옹성을 들어 서면 제일 먼저 보게 되는 것이 팔작지붕의 처마다. 한국의 팔작지붕은 평면상으로는 안쪽으 로 휘우듬하게 꺾인 처마의 선을 두고, 용마루선과 처마선의 중앙부를 약간 처져 보이게 한 다. 반면에 추녀 위에 거는 휘어 오른 평고대를 두어 치솟게 한다. 이러한 건물은 경쾌감과 선적인 아름다움을 준다. 즉, 공북루의 처마를 밑에서 올려다보면 활모양의 곡선을 볼 수 있다. 또 한 조금 멀리 떨어져 지붕을 보아도 곡선을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한국건축의 미인 처마의 이중 곡선의 미이다. 처마 아래에서도 곡선이요, 저 멀리 밖에서도 곡선인 이중의 곡선의 처마를 볼 수 있 다. 지붕의 기와는 현자(賢者)의 상(狀)인 동시에 예지(叡智)의 모습을 상징한다. 즉, 기와는 밑으로 숙인 대나무의 잎을 상징하고 있으며, 굽은 기와는 대나무의 속으로 겸손에 비유되어 덕을 겸비한 선비로 상징한다. 목조건축물에 단청을 하는 이유는 목재의 단점인 썩음을 보강하여 건물의 수명을 늘려주 고, 건물의 기능과 위계성에 맞추어 아름답게 장식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우리나라 건축에서 주재료 인 소나무는 목질이 강하나 표면이 거칠어 건조할 때 상처가 잘나며, 해충과 부식의 피해가 있기 때
이를 보강해주는 작업이 단청이다. 한편, 단청은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의 자연을 상징하기도 한 다. 기둥을 중심으로 칠해진 황색은 우리 주변의 땅인 황토를 상징한다. 또한 황토에는 철분ㆍ마그네슘ㆍ 나트륨 등이 다량 함유되어 있다. 《본초강목》에는 ‘황토는 흙의 대표성을 띠는 것으로, 맛이 달고 약 성이 뛰어나 다양하게 활용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기둥에 황토를 칠하는 이유도 소나무의 단점을 보강해주기 위해서이며, 심미적으로도 안정감을 주는 건축 재료이다. 고창읍성 공북루의 기둥들을 보면, 그 크기나 재료의 사용 등이 제각각임을 알 수 있다. 공북루의 기둥은 소나무로 만든 나무기둥 아래로 크기와 모양이 전혀 다른 돌기둥들로 세워졌다. 이들 기둥들 은 제각각 다르지만, 공북루라는 하나의 큰 누각을 받들고 있다. 서로 다르지만 통일성을 갖추어 하 나의 건축물을 만들어 가는, 다르지만 다름이 아닌 것이 바로 한국건축의 미다. 이러한 건축의 미는 백제시대의 석탑인 부여의 정림사지 5층 석탑의 돌들에도 잘 나타나 있다. 같은 것이 하나도 없는, 완전히 서로 다른 크기의 돌들이 정림사지 오층석탑의 작품으로 완성된다. 이러한 건축문화는 우리의 비빔밥문화와도 일맥상통한다. 다르지만 하나의 완전한 건축으로 탄생한 공북루는 한국전통 미의 극 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