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문자료집(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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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라마존자님 법문 자료집

2015



차 례

1. 수행의 순서[修習次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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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입보리행론(入菩提行論) 회향품(廻向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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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보살행삼십칠송(菩薩行三十七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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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보만론(寶蔓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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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의 순서[수차중편] 까마라실라 저 양지애 역

인도어로 봐와나끄라마, 티베트어로 곰뻬 림빠(수행의 순서).

문수동자께 귀의합니다.

대승 경전의 체계에 따라 입문하는 이들을 위해 수행의 순서를 간략하게 설명하고 자 한다. 여기서 일체종지를 매우 신속히 성취하기를 바라는 지혜로운 이는 일체 종지의 원인과 조건을 갖추기 위해 반드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일체종지가 원인 없이 발생하는 것은 불가능한데 그렇다면 모든 것이 일체종지여 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것도 의존하지 않고 발생한다면, 그것이 존재하는 데 장애가 있을 수 없으므로 따라서 모든 것이 일체종지가 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모든 것이 일체종지가 되지 않는가? 모든 사물은 반드시 원인 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간혹 생겨나는 일체종지조차 모든 시간에도 아니며, 모든 장소에서도 아니며, 모든 것으로부터도 아니다. 그러므로 원인과 조건에 의존한다 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

원인과 조건들 중에서도 오류가 없고 결핍 없는 것들을 의지해야 한다. 옳지 않은 원인을 되풀이하면 오랜 세월이 지난다 해도 바라는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비 유하자면, 뿔에서 우유를 짜는 것과 같다. 원인을 짓지 않으면 결과가 발생하지 않 는다. 씨앗이나 다른 조건이 전혀 없다면, 결과물인 새싹은 싹틀 수 없다. 그러므 로 결과를 원한다면 오류 없는 원인과 조건 둘 모두에 의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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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종지라는 궁극의 결과를 얻기 위한 원인과 조건은 무엇인가? 이를 나에게 묻 는다면 나는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과 같은 격이라 설명 할 수는 없지만 부처님께 서 깨달은 이후 제자들에게 설법하신 말씀을 있는 그대로 인용해 보리라. 부처님 께서 󰡔비로자나현증보리경󰡕에서 “비밀의 주인이시여! 일체종지의 지혜는 자비를 바탕으로 생깁니다. 보리심을 원인으로 생깁니다. 방편으로 완성됩니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일체종지를 성취하고자 한다면 자비심, 보리심, 방편 이 세 가지를 닦아 야 한다.

1. 자비심

자비심으로 넘어가서, 보살들이 모든 중생을 실질적으로 구제하기 위해 반드시 서 원을 해야 한다. 그리고

‘나’라는 견해를 소멸하여 실행하기 매우 어렵고, 지속적

으로 긴 시간 동안 갈고 닦아야 하는 복덕과 지혜의 선근 공덕[자량]을 공경으로 일으킨다. 이 수행을 통해 복덕과 지혜의 자량을 온전히 완성할 것이다. 선근 공덕 이 온전히 완성되면, 일체종지를 손에 넣은 것과 다름이 없다. 그러므로 일체종지 의 뿌리는 오직 자비심이니, 처음부터 이 수행을 익혀야 한다. 󰡔법집경󰡕에서 “부처님이시여! 보살은 매우 많은 수행법을 익히지 않습니다. 부처님이시여! 보살은 하나의 법을 잘 지니고 완벽하게 익힌다면 그는 부처님의 모든 법을 손에 넣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의 법이 무엇인가? 묻는다면 그것은 바로 대자비입니다.” 라고 말씀하셨다.

부처님께서는 자리(自利)를 모두 원만하게 구족하시어 대자비를 이미 완성하셨으나 중생을 위해 여전히 중생계에 머물고 계신다. 성문처럼 열반의 마을에 머물며 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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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적멸에 들지도 않으신다. 중생을 돌보기 위해 부처님께서는 열반 마을의 적멸 을 마치 달아오른 쇠 집으로 여기시어 멀리하신다. 부처님께서 무여열반1)에 드시 는 까닭은 오로지 대자비 때문이다. 그래서 먼저 자비를 익히도록 한다.

① 평등심

먼저 평등심을 명상하는 것으로 수행을 시작한다. 모든 중생에 대한 집착이나 분 노를 버리는 것을 통해 평등심을 갖추도록 한다.

모든 중생은 행복을 원하고 불

행을 원하지 않는다. ‘무시이래의 윤회에서 수백 번 더 내 친지가 아니었던 중생이 있는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라. 누군가에게는 집착을 하고, 누군가에게는 화를 낼 근거가 없기 때문에 ‘나는 모든 중생을 평등하게 대하리라’는 생각을 내라. 평등 수행은 아무런 감정이 없는 사람을 대상으로 시작하여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또 미워하는 적을 대상으로 평등심을 수행하라.

모든 중생을 대상으로 평등심을 수행한 다음에 자애에 대해 수행을 한다. 자애의 물로 내면을 적시어 황금 가득한 대지처럼 가꾸고 자비의 씨앗을 심으면 아주 쉽 게 그리고 온전하게도 풍요롭게 자랄 것이다. 그러므로 내면을 자애로써 관조하여 자비를 수행하도록 한다.

② 세 가지 고통 – 고고(苦苦), 괴고(壞苦), 행고(行苦)

자비심은 불행한 모든 중생이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것이다. 삼계의 모든 중생이 세 가지 괴로움을 다양한 모습으로 겪고 있기 때문에 모든 중생의 괴 로움에 대해 자비를 수행해야 한다.

고고(苦苦) - “지옥 중생들은 오랜 세월 동안 끊임없이 다양한 뜨거운 고통의 강 물 속에 빠져 있다.”라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와 같이 “대부분의 아귀들도 매우 극심한 배고픔과 갈증의 고통의 불길에 휩싸여 참으로 다양한 육체의 고통을 겪는다.”라는 말씀도 하셨다. 축생들은 서로 잡아먹고, 성내고, 죽이고, 해치는 등 1) 생사와 열반에 머물지 않는 부처의 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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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많은 괴로움을 겪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사람들 역시 욕망에 대한 갈망으로 서로를 원망하며 해를 입히고, 아름다움을 잃어버리고, 추하게 되고, 누추해지는 등 셀 수 없는 고통을 당한다. 탐욕 같은 번뇌로 마음이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갖가지 나쁜 생각 때문에 혼란에 빠져 있다. 무엇이든지 고통 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마치 절벽에 서 있는 것처럼 고통스러울 뿐이다. 천신도 모두 변질되는 고통[괴고壞苦]을 겪는다. 죽음과 낮은 세계[하계]로의 추락에 대한 두려움이 욕계에 있는 모든 천신들의 마음을 괴롭힌다면 어떻게 편안할 수 있겠는 가? 행고(行苦)는 업과 번뇌가 본질적인 원인이다. 이것은 찰나마다 소멸하는 본질 을 갖추고 있으며 모든 중생에게 일반적으로 적용된다.

그러므로 윤회하는 모든 중생이 이글거리고 있는 고통 속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내가 고통을 원하지 않듯이 다른 모든 중생도 고통을 원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아! 가엾구나! 내가 사랑하는 중생들이 어떻게 하면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하고 중생의 괴로움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어라. 삼매에 머물 때에도 일상생활을 영위할 때에도 항상 중생의 괴로움을 가까 이 하여 그들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수행하도록 하라.

③ 자애관

그 다음 ‘중생은 평등하기에 차별이 없음을 보고 나서 모든 중생은 내 친구다’라고 온전하게 생각하고 상대들을 통해 수행하도록 하라. 친한 사람에 대한 자비의 마 음과 무관한 사람에 대한 자비의 마음이 평등할 때 시방의 모든 중생을 대상으로 수행을 한다.

사랑하는 어린 아이가 몹시 힘들어 할 때 함께 고통스러워 하는 어머니의 마음처 럼 모든 중생이 괴로움에서 구제되기를 원하는 마음이 저절로 일어날 때 자비심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를 대자비라 한다.

자애 수행은 친한 사람부터 먼저 시작하는데 그들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런 다음, 자신과 무관한 사람, 나아가 적에게도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와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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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비 수행을 하고 나면 모든 중생을 실제적으로 돕고자 하는 바람이 저절로 생 길 것이다. 뿌리인 자비 수행을 완성했다면 보리심을 수행하도록 한다.

2. 보리심

보리심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세속과 승의이다. 세속은 자비로써 모든 중생을 실 제적으로 구제하기를 서원을 한 뒤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 부처가 되겠다’라는 발원으로 ‘무상정등각을 원하는 첫 번째 마음[원보리심]을 일으키는 것이다. 또한 󰡔지계품󰡕에서 설명한 의궤처럼 보살의 계율에 머무는 청정한 [피안을 이룬] 현자 로부터 발심하도록 한다.

그와 같이 세속의 보리심을 일으키고 난 후 승의의 보리심을 일으키기 위하여 노 력하도록 한다. 승의의 보리심은 세간에서 벗어나[출세간] 모든 희론을 제거한다. 가장 명확하며, 승의의 경계 대상이며, 흠이 없으며[무구], 흔들림 없고[부동] 바람 에 꺼지지 않는 등불처럼 동요가 없는 것이다.

보리심을 성취하는 것은 사마타와 위빠사나 수행을 오랫동안 공경하는 마음으로 수행을 한 다음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해심밀경󰡕에서 “미륵이여, 성문 혹은 보살 혹은 여래의 세간과 출세간의 모든 선 법은 사마타와 위빠사나의 결과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모든 선정은 이 그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수행자들은 언제나 항 상 사마타와 위빠사나에 의지해야 한다.

󰡔해심밀경󰡕에서 “성문, 보살, 여래의 다양한 삼매 그것은 모두 사마타와 위빠사나 에 포함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사마타만 수행하는 것은 수행자의 업장을 끊지 못할뿐더러 일시적으로 번뇌를 억 누르는 것일 뿐이다. 지혜의 빛이 생기지 않으면 잠재되어 있는 번뇌를 완전히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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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므로 잠재되어 있는 번뇌를 온전히 소멸하는 것이 불가 능하다. 그래서 󰡔해심밀경󰡕에서 “선정으로 번뇌들을 억누른다. 지혜로써 잠재되어 있는 번뇌를 소멸하게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성현삼매왕경󰡕에서 “삼매를 수습하더라도 그것은 언제나 지각[관념]을 없애지 못 한다. 그것은 번뇌인 까닭에 매우 혼잡하여 마치 [외도의] 우드라까2)가 삼매를 명 상하는 것과 같다. 만일 법무아를 분별 간택하는 것으로서 각각을 관찰하여 수행 한다면 그것은 열반 과위의 인이 되며 다른 원인은 어떤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적정이 될 수 없다.”라고 말씀하셨다.

󰡔보살장경󰡕에서 “누구라 할지라도 보살장경의 법수(法數)를 듣지 않고 성스런 율장 를 듣지 않고서 오직 삼매에 만족하는 자는 아만 때문에 과도한 교만심[증상만(增 上慢)]에 빠질 것이다. 생노병사와 슬픔과 불행과 괴로움과 근심(팔고)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육도윤회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며 고통의 더미에서 완전 히 벗어날 수 없으니 부처님께서는 그것을 아시고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가르 침을 듣는 것은 늙고 죽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이다.”라고 설하셨다.

그러므로 모든 업장을 끊고 완전히 청정한 지혜가 생기기 바란다면 사마타에 머물 고 지혜를 익히도록 해야 한다.

󰡔보적경󰡕에서 “율 안에 머물러 삼매를 얻는다. 삼매를 얻고 나서 지혜를 수행한다. 반야로써 청정한 지혜를 성취하고 청정한 지혜로 계율을 완성하는 것이다.” 라고 설하셨다.

󰡔수신대승경󰡕에서도 “선남자들이여, 반야에 온전히 머물지 않는다면 보살들이 대승 에 믿음을 내고 대승으로 어떻게 나아갈 지 나는 말할 수 없다. 선남자들이여, 이 같은 법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보살의 대승을 향한 믿음과 대승으로 2) 사마타만을 닦았던 외도의 수행자. 오랜 세월 선정에 들어있는 동안 그의 머리카락이 길게 자 랐다고 한다. 그 사이 쥐가 그의 머리카락을 갉아 먹었고 후에 선정에서 깨어난 그는 이것을 발견하고 큰 분노를 일으켰다고 한다. 선정에 들어있던 동안 번뇌가 사라진 듯 보였지만 선정 에서 깨어나 보니 그의 번뇌는 결코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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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간 무엇이라 할지라도 전부 산란하지 않은 마음이 법을 바르게 사유한 것으로 부터 생긴 것임을 알아야 한다.”라고 설명하셨다.”

사마타가 없는 위빠사나만으로 수행을 한다면 수행자의 마음은 경계에 흔들릴 뿐 만 아니라 바람 속에 있는 등불처럼 흔들린다. 그렇게 되면 지혜의 빛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두 가지 모두에 균등하게 의지해야 한다.

그런 연유로 󰡔대열반경󰡕에서 “성문들이 여래의 경계를 가히 보지 못하는 것은 삼 매에 치우쳐 반야가 약하기 때문이다. 보살들은 여래의 경계를 보지만 명확하게 보지 못한다. 지혜에 치우쳐 삼매가 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래께서 일체를 보 시는 것은 사마타와 위빠사나 둘 다 균등하게 수행했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 다.

사마타의 힘은 등불이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분별의 바람에 마음이 흔들리 지 않는 것이다. 위빠사나는 삿된 견해의 모든 악취를 끊을 수 있다. 그리하여 다 른 견해에 휘둘리지 않는다.

󰡔월등경󰡕에서 “사마타의 힘으로 [마음은] 흔들리지 않고, 위빠사나의 힘으로 [마음은] 산과 같다.” 라고 설하셨다. 그러므로 두 가지 모두 수행해야 할 것이다.

·수행의 적절한 환경

먼저 수행자는 신속하고 안전하게 사마타와 위빠사나 수행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사마타 행의 조건이란 무엇인가? 수행하기에 적합한 장소에 머물며, 소욕하고, 자 족할 줄 알아야 한다. 불필요한 일들을 하지 않고, 계율을 청정하게 지키고, 탐욕 같은 분별을 완전히 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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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다섯 가지 공덕을 갖춘 곳이란 옷과 음식 등을 구하는데 불편함이 없고, 훼방꾼[귀신]이나 적이 살지 않는 안전한 곳, 질병이 없는 깨끗한 곳, 계율을 지키 고 선한 도반이 함께하는 곳, 낮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비지 않으며 밤에는 조용한 곳이다.

두 번째, 소욕이란 가사나 값비싼 것에 특별히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세 번째, 자족이란 작은 것에도 항상 만족하는 것이다.

네 번째, 불필요한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장사 등 생업에 매이는 것을 포기하 고, 재가자, 출가자 모두와 너무 가까운 관계를 맺지 않으며 치료나 점성술을 봐 주는 행위를 완전히 끊은 것을 의미한다.

다섯 번째, 계율을 청정하게 지킨다는 것은 무엇인가?

두 가지 계율을 지키는 것

으로서 그 자체로 죄악인 성죄(性罪)3)와 차죄(遮罪)4)를 짓지 않는 학처에서 멀어지 거나 부주의하게 죄를 범했다면 곧바로 참회하고 다시 죄를 짓지 않겠다고 참회하 여 여법하게 하는 것, 성문의 계율에서 중죄를 범해서는 안 된다며 말씀하신 것들 을 행했을 때 후회하고 이후에 다시는 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내어야 한다. 게다가 죄를 지은 그 마음은 무자성임을 관찰하여 일체법이 무자성임을 안다면 이런 사람 은 계율을 청정하게 지킨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은 󰡔미생원멸회경󰡕을 통해서 이해 하도록 한다. 참회를 하고 나서 수행에 더 매진해야 한다.

여섯 번째, 이생과 내생에 해악을 끼치는 다양한 유형의 것들에 대해 사유하고 이 를 분별하는 것을 끊도록 한다. 한편, 윤회하는 존재의 특징이 아름답건 아름답지 않건 모두 소멸하는 것이며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필연코 만물은 물론 나 조차도 오래지 않아 결별할 것인데 이런 것에 집착하는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아 모든 분별을 끊도록 한다. 3) 성죄(性罪) - 부처님께서 계율로써 금하지 않으셨다 하더라도, 행위 자체가 도덕상에 위반되 어 자연히 죄악이 되는 것. 예) 살생, 도둑질 4) 차죄(遮罪) - 부처님께서 또 다른 죄악을 짓지 않도록 사전에 계율로써 금하신 것. 예) 술을 마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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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빠사나의 조건은 무엇인가? 선지식에 의지하는 것과 많이 들음, 그리고 여법한 마음이다.

첫 번째, 어떤 선지식에 의지할 것인가? 많이 배우고, 표현이 분명하며 자비심이 있고, 참을성이 있는 이다.

두 번째, 많이 들음이 무엇인가? 부처님의 12분교의 요의5)와 불요의6)의 가르침을 공경하고 열심히 경청하는 것이다.

󰡔해심밀경󰡕에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성인의 말씀을 갈망하면서 듣지 않는 것 은 위빠사나의 장애이다.”

󰡔본경󰡕에서는 이와 같이 설명하고 있으시다. “위빠사나는 가르침을 듣고 사유를 통해 생긴 청정한 견해에서 생기는 것이다.”

󰡔나라연청문경󰡕에서 이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들음을 통해 반야가 생기는 것이 다. 반야를 지니는 것으로 번뇌를 적멸하게 된다.”

세 번째, 여법한 마음이란 무엇인가? 요의의 경전과 불요의의 경전 등에 대한 정 확한 이해를 바르게 확립하는 것이다. 보살은 의심이 없을 때 수행에 집중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의심으로 우왕좌왕한다면 사거리 가운데 서서 어느 곳으로 갈 지 결정을 못하는 것과 같다.

수행자는 항시 생선과 육류 등을 피하고 편식하지 않고 적당량만 먹도록 한다. 이 와 같이 보살은 수행을 할 때 사마타와 위빠사나의 예비 단계 수행을 모두 쌓고

5)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어서 다른 해석이 필요하지 않는 가르침. 6)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어서 말씀과 달리 다른 해석이 필요한 가르 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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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후에 수행에 들어가도록 한다. 또한 수행자가 수행을 시작할 때, 하던 일을 모 두 마무리하고, 대소변도 보고, 조용하고 마음에 드는 곳에 앉는다.

‘제가 모든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겠습니다’라는 생각을 하고 모든 중생을 직접 구제하는 마음가짐으로 대자비심을 실현하며 시방에 머무시는 모든 부처님과 보살 님께 오체투지를 한다. 그 다음 불보살님의 모습을 담은 탱화나 사진을 앞에 모신 고 그 외의 것도 무방하다. 그리고 힘닿는 만큼 공양과 찬탄을 하고 그리고 자신 의 잘못을 참회하고 나서 모든 중생의 복덕을 수희찬탄한다.

매우 부드럽고 편안한 자리에 비로자나불의 결가부좌나 반가부좌로도 앉는다. 은 크게 뜨지 않고 감지도 않으며 코끝을 응시한다.

몸은 앞으로 숙이지도 뒤로

젖히지도 말고 곧게 펴고, 의식을 내면에 두고 앉는다. 그 다음, 어깨에 힘을 빼고 턱은 당기고 머리는 앞을 향한다. 코는 배꼽과 일직선이 되게 한다. 입술은 붙이고 혀는 윗니 뒤에 살짝 갖다 댄다. 안팎으로 들이쉬고 내쉼을 거친 소리를 내거나 뱃속에서부터 큰 소리를 내거나 고르지 못한 숨을 쉬지 않는다. 호흡은 인위적으 로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천천히 들이마시고 내쉰다.

·본수행

처음에는 사마타 상태가 되어야 한다. 바깥의 경계, 외부로 향하는 산람함을 가라 앉히고 대상에 집중하는데 희열과 경안 상태에 머무는 것을 “사마타”라고 한다. 이 사마타 단계에서 진여를 올바르게 관찰하는 것이 위빠사나다.

󰡔보운경󰡕에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사마타는 일심으로 집중하는 것이다. 위파사 나는 바르게 관찰 하는 것이다.”

󰡔해심밀경󰡕에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부처님이시여, 어떻게 사마타를 온전히 구해야 하며 위빠사나에 정통할 수 있습니까?”하고 여쭙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 를 “미륵이여, 나는 이와 같은 가르침을 주었다. 계경, 중송, 수기, 풍송, 자설, 인 연, 비유, 본사, 본생, 방광, 희유법, 논의

– 12분교7) – 가 그것이다. 내가 보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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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 이에 대해 설한 것들을 보살이 잘 가르침을 듣고, 그 내용을 잘 기억하고, 잘 암송하고, 마음에서 바르게 잘 관찰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깊이 이해를 한 다음에 는 홀로 한적한 곳에 앉아 가르침을 마음에 바르게 두고서 가르침에 대해 깊이 사 유하고, 사유한 생각에 다시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집중 상태를 유지한다. 내면에 서 지속적으로 사유해 온 그 가르침에 집중해야 한다. 보살은 이와 같이 안주하고, 이 집중 상태에 자주 머물면 심신이 편안하고 가볍다. 이것을 바로 “사마타”라고 한다. 이와 같이 되면 보살은 사마타를 온전히 구한 것이다. 보살이 심신에 경안을 얻고 나서 그 상태에 머물면 마음의 산란함은 끊어진다. 그 다음 그대가 집중 대 상으로 삼았던 그 현상을 사유의 대상으로 삼아 깊이 관찰한다. 사마타의 대상인 영상을 지각 대상으로 본질을 분석한다. 이것을 철저히 분석하여 완전히 알고 완 전히 고찰해야 한다. 인내를 실천하고 대상을 기쁘게 받아들이라. 정확하게 분석하 고 관찰하여 이해하라. 이 일체를 “위빠사나”라고 한다. 이와 같이 하면 위빠사나 에 정통한 보살이 될 것이다.

그래서 사마타를 실제 이루고자 하는 수행자는 먼저 계경과 응송 등 일체 말씀은 진여에 이른 것이며, 진여에 이르렀던 것이며, 진여에 이를 것이라는 그것에[12분 교] 마음을 온전히 머무르게 해야 한다.”

이 수행을 위한 한 가지 방법은 모든 법을 요약한 오온(五蘊)같은 것에 마음을 집 중하는 것이다.

다른 한 가지 방법은 보고 들은 부처님의 모습을 마음에 떠오르

게 하는 것이다.

󰡔삼마지왕경󰡕에서 7) (1) 계경(契經): 산문체의 경전. (2) 중송(重頌),응송(應頌).산문체 경문의 뒤에, 그 내용을 운문 (韻文)으로 노래한 것. (3) 수기(授記): 경 중에 말한 뜻을 문답 해석, 또는 제자의 다음 세상 에 날 곳을 예언한 것. (4) 풍송(諷頌),고기송(孤起頌). 4언(言)ㆍ5언, 또는 7언의 운문(韻文). (5) 무문자설(無問自說) 남이 묻지 않는데 부처님이 스스로 말씀한 경. (6) 연기(緣起), 인연. 부처님을 만나 법을 들은 인연 등을 말한 것. (7) 비유(譬喩) 비유로써 은밀(隱密)한 교리를 명 백하게 한 것. (8) 본사(本事) 부처님이나 제자들의 지난 세상 인연을 말한 것. (9) 본생(本生) 부처님 자신의 지난 세상을 행하던 보살행을 말한 것. (10) 방광(方廣)ㆍ방등(方等) 방정(方正), 광대한 진리를 말한 것. (11) 미증유법ㆍ희유법. 부처님의 신통력부사의를 나타내는 것을 말한 것. (12) 논의(論議) 교법의 의취를 논의 문답한 경문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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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색 몸을 가지신 세간 보호자[부처님]께서는 매우 아름다우시네. 그 모습을 마음에 두니 보살은 그것을 선정이라고 하네.” 라고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무엇이든 원하는 대상에 마음을 집중하라. 대상에 마음을 집중하는 것 을 반복하여 항상 마음이 그곳에 머물게 하라. 그리고 그 대상에 마음을 집중하면 서 집중한 대상에 마음이 제대로 머물고 있는지를 관찰해야 한다. 더불어 혼침 상 태가 아닌지도 살펴야 한다. 마음이 외부 환경에 휘둘려 산만해지고 있는 것은 아 닌지 세밀히 살펴야 한다. 만약 혼침과 졸음이 몰려와 마음이 무기력해짐의 의심이 든다면 환희심을 불러 일 으키는 부처님의 모습 또는 밝은 빛을 떠올려 본다. 이런 과정을 통해 혼침 상태 에서 벗어나 수행의 대상인 마음을 아주 명확하게 볼 수 있다. 마치 장님 같은, 암 흑 속에 있는 것 같은 또는 눈을 감아 보이지 않는 것처럼 마음의 상념을 아주 명 확하게 보지 못하는 것이 혼침임을 알아야 한다. 마음이 바깥에 있는 사물을 쫓아 가거나 다른 현상에 마음을 빼앗기거나 혹은 과거에 경험한 상대에 대한 갈망으로 마음이 혼란스러워지거나 마음이 들뜬다는 의심이 들 때는 모든 유위법은 무상하 다는 사실[제행무상(諸行無常)]과 모든 것은 고통이다[일체개고(一切皆苦)]라는 사실 을 알아차린다. 이것은 마음을 고요하게 해 줄 것이다. 그 다음 산란함을 없애고 나서 정념(正念)과 정지(正智)의 밧줄로 날뛰는 마음의 코끼리를 소연대상의 기둥 에 잘 붙들어 매도록 한다. 혼침과 도거가 아닌 상태, 집중 대상에 마음이 자연스 럽게 집중이 되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평온한 상태가 되면 그때 할 수 있는 만큼 앉도록 한다. 이와 같이 사마타에 익숙해져 몸과 마음이 경안이 되고, 원하는 대로 마음이 대상에 집중할 수 있을 때 사마타를 완성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사마타를 완성한 다음 위빠사나 수행을 한다. 이와 같이 생각하도록 하 자. 부처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은 훌륭한 설법으로 직접 또는 간접으로 진여를 분 명하게 보여 주셨다. 그리고 진여, 즉 여여함에 들어가게 한다. 여여함을 알면, 빛 이 어둠을 없애듯 모든 견해의 그물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마타만으로는 청정한 지혜의 상태에 이를 수 없으며 탁한 악업도 소멸할 수 없다. 지혜로 진여를 잘 수 행할 때 올바른 지혜를 지닐 수 있다. 또 지혜만으로 악업을 소멸할 수 있다.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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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로 ‘내가 사마타에 머물며 지혜로 진여를 오롯이 추구하되 사마타에만 만족하지 는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라. 진여란 무엇인가? 승의적으로 모든 사물, 즉 사람과 존재하는 것의 실체가 공하다 고 보는 것이다. 이 또한 반야바라밀을 통해 깨닫게 되는 것이다. 다른 것으로는 불가능하다. 󰡔해심밀경󰡕에서 “부처님이시여! 보살이 법의 무자성을 어떤 바라밀을 통해 이르러 야 합니까? 관자재여, 반야바라밀을 통해 이르러야 한다. 그러므로 사마타에 머물 면서 지혜[반야]를 수행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인무아

수행자는 이와 같이 관찰해야 한다. 보특가라는 ‘온’과 ‘계’와 ‘처’ 이외 다른 어떤 것을 대상으로 할 수 없다. 보특가라는 ‘온’을 비롯한 자성도 아니다. 게다가 ‘오온 같은 것은 무상하며 여러 가지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보특가라를 항상 존재 하며 하나의 본질’이라고 다른 사람들은 말한다. 보특가라가 실재한다고 하는 것은 여여함이나 다른 것으로 설명할 수 없을뿐더러 불가능하다. 실체가 존재하는 다른 모습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와 ‘나의 것’이라고 하는 생각은 착각일 뿐이 다 고 살펴본다. ·법무아

법무아에 대한 수행도 이와 같이 해야 한다. 법은 간추리면 5온, 12처, 18계이다. ‘온’과 ‘처’그리고 ‘계’의 물질적인 모든 것은 승의적 차원에서 마음의 상(想)8)과 달 리 있지 않다. 그것들을 미립자로 분리할 수 있는데, 그 미립자 각각을 분석해 보 면 어떠한 성품[자성]도 결코 얻지 못한다. 그런데도 무시이래로 물질[色]을 포함해 진실이 아닌 것을 [실제 한다고] 집착한다. 이로 인해 꿈속에서 집착하는 대상의 환영을 보는 것처럼 어리석은 이들은 마음조차 물질과 같이 바깥에 분리된 것처럼 보이지만 승의적 차원에서 ‘이 형체들이 마음에서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것을 분석하도록 한다. 이렇게 인식을 해서 ‘이 삼계는 오로지 마음뿐이다’라며 법[존재

8) 온, 계, 처의 물질적인 모든 것이 진실로 마음과 따로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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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것들]을 분별한 모두 오직 마음뿐임을 깨닫고 나서 마음의 본성을 각각 분석 해 본다. ‘마음을 낱낱이 분석하면 일체법의 본성을 각각 분석한 것이다’ 마음을 각각 이처럼 살펴보라. 승의적 차원에서 본다면 마음조차도 진실이 아니다. 한 순간 거짓 본성인 형체를 비롯한 것들의 모습들을 인식한 마음이 다양한 형상들을 드러낼 때 마음의 진실성 은 어디에 있겠는가? 마치 물질이 거짓 속임인 것처럼 마음 역시 다르지 않기 때 문에 거짓인 것이다. 이와 같이 물질은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으므로 하나의 자 성도 다수의 본질도 아닌 것처럼 마음 역시 물질의 형상과 분리되지 않기 때문에 하나의 자성도 다수의 자성도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은 오로지 환영이다. 마 음이 그렇듯이 모든 현상(법)도 오로지 환영이다’ 마음의 본성이 그러하듯 모든 현상도 지혜[반야]에서 환영 같은 본성일 뿐이라고 분석한다. 승의에서 마음은 안에서도 얻지 못하며 밖에서도 얻지 못하며 안팎이 아닌 곳에서도 얻지 못하며 과거의 마음에서도 얻지 못하며 미래에서도 얻지 못하 며 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일에서도 얻지 못하는 것이다. 마음이 일어나는 모든 순 간 어디서부터 오는 것이 아니며 사라지는 모든 순간에도 어디로 가는 것이 아니 다. 마음은 잡을 수 없고, 의지할 수 없으며 물질도 아니다. “물질도 아니고 잡지도 못하고 증명할 수도 없는 모든 것의 본성이 무엇인가?” 하 고 묻는다면 󰡔보적경󰡕에서 아래와 같이 말씀하셨다. “가섭이여, 마음을 샅샅이 찾 는다 해도 찾을 수 없다. 찾을 수 없는 것 그것은 대상이 될 수 없다.

대상이 될

수 없는 그것은 과거도 아니며 미래도 아니며 현재 발생한 것도 아니다. 이와 같 이 분석한다면 따라서 마음의 시작은 진실로 직접 볼 수 없으며 마지막도 진실로 직접 볼 수 없으며, 중간도 진실로 직접 볼 수 없다. 마치 마음에 가장자리와 중심 이 없는 것처럼 모든 현상법도 경계와 중심이 없다고 마음에 새긴다. 이렇게 마음 에 가장자리와 중심이 없음을 마음에 새기고 나면 마음의 실체[본성]는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 마음을 전부 분석하여도 역시 공空임을 깨닫는다. 이것을 알면 마음 이 만들어낸 본성인 ‘형체[色]’의 본성 역시 진실로 따라서 볼 수 없는 것이다. 이 와 같이 지혜[반야]로 모든 현상법의 본성을 진실되게 따라 볼 수 없으므로 ‘형체 가 영원하다거나 영원하지 않다거나 공하다거나 공하지 않다거나 유루이거나 무류 이거나 생한다거나 멸한다거나 존재한다거나 존재하지 않는다’고 분별할 수 없다. 이처럼 형체[색]에 대해 분별을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수[느낌], 상[지각], 행 [반응], 식[마음]들도 분별을 하지 않으니 논제[전제]가 성립되지 않는다면 그것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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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를 비롯한 각 부분들이 역시 성립되지 않는 것인데 그것에 무슨 분별이 있겠 는가? 이처럼 지혜[반야]로 깊이 관찰 분석하여 수행자가 모든 물질의 본성이 진실로 확 신[찾을]할 바가 없다는 것을 인식할 때 무분별의 삼매에 들어가는 것이다. 제법의 무자성도 깨닫는다. 반야로 사물의 본질을 각각 분석하는 수행을 하지 않고 오직 사유만을 끊는 수행은 분별을 결코 제거할 수 없어 무자성을 깨닫지 못한다. 이는 지혜의 빛이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진실되게 각각 분석하는 것에서만 진실로 있 는 그대로[실상]를 아는 지혜의 불이 발생하니 비비고 비벼 불이 일어나듯 분별의 나무는 타버릴 것이라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보운경󰡕에서도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결점[과오]을 발견하는데 뛰어난 그는 모 든 희론과 멀어지기 위해서 공성 수행을 닦는다. 공성을 끊임없이 수행하면 그 무 엇에 마음이 빼앗기거나 마음이 들뜰 때 그것의 자성을 샅샅이 점검하여 공하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바로 그 마음을 살펴서 공성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 마음에 의해 알아차린 모든 것의 자성 하나하나가 역시 공하다는 것을 안다. 그 마음 역 시 공하다는 것을 안다. 이를 알면 무상 요가 수행에 들어갈 수 있다.”라고 했다.

이것을 완전하게 분석할 수 있는 사람만이 무상 요가 수행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 을 설명한 것이다. 비록 마음의 활동을 전부 끊는다고 해도 반야로 사물의 본성을 관찰하지 않으면서 무분별로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매우 명확하게 설 명한 것이다. 지혜로써 형체[색] 등의 사물의 본질을 진실로 있는 그대로 분석해서 선정에 들며 형체 등에 머물러 선정에 들지 않는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의 사이에 머물러 선정에 들지 않는데 형체 같은 것을 대상으로 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주처 선정자’라고 한다. 반야로 모든 사물의 본성을 살펴 관찰하고 나서 소연대 상 없이 선정을 행하는 까닭에 ‘뛰어난 지혜 수행자’라고 한다. 이것은 󰡔허공장경󰡕 과 󰡔보정경󰡕에서 설하신 내용이다. 이와 같이 보특가라와 법이 무아인, 오직 그 상태에 머물러 이것을 분석한 것 외 의 다른 바라봄이 없으므로 분별9)과 분석10)을 여의었고 말로 표현할 수 없으며, [대상과 인식한 의식이] 하나가 된 의식이 [자력으로써 대상에] 들어가 자연히 선 9) 분별(Tib: rtog pa) -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분별을 의미하지 않는다. 심소 중 하나. 작용- 인 식하는 대상을 거칠게 살피며 몰입해 들어간다. 10) 분석(Tib: dpyod pa) -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분별을 의미하지 않는다. 심소 중 하나. 작용 - 인식하는 대상을 세세하게 분석하며 몰입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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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에 들었고 다른 분별상(想)이 끼어들지 않으므로 진여를 매우 명확하게 수행하며 안주하도록 한다. 거기에 머물러 마음의 흐름[내면]이 흔들리지 않도록 한다. 한 순간 탐욕 같은 것으로 마음이 외부 대상으로 인해 흔들릴 때 산란함을 살펴, 재빨리 부정관을 통해 산란함을 가라앉히고 다시 마음이 여여한 상태로 돌아가도 록 해야 한다. 반대로 마음이 불쾌해짐을 느낀다면 삼매의 공덕을 살펴 즐겁게 수 행하도록 한다. 산란심의 허물을 잘 살펴 불쾌함을 완전히 멸할 수 있다. 만일 의식이 명료하지 않거나[혼미] 잠이 몰려와 자세가 흐트러지고 의식이 몽롱할 때 앞에서 말한 것처럼 가장 좋아하는 사물 – 부처님과 빛 – 등을 떠올려 속히 혼 침을 제거해야 하며, 또한 대상인 진여에 의식을 정확하게 집중해야 한다.

한 순간 과거에 즐거웠던 일이나 행복했던 기억 같은 것으로 마음이 들뜨거나 산 만해지는 의심이 들 때면 그때는 앞에서와 같이 모든 것은 변한다는 무상함을 떠 올려 산만을 가라앉히고 그런 다음 진여에 힘들지 않게 머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혼침이나 도거가 사라져 마음이 선정 상태에 머문다면 그때는 마음 상태를 그대로 두고 일부러 노력을 하지 않는다. 만일 마음이 선정 상태에 머물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면 그것은 마음이 산만하기 때문이다. 만일 마음이 혼침인 상태에서 얼른 알아차리지 않고 방치한다면 마음은 장님처럼 되어 위빠사나[관조]를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혼침 상태가 되기 않 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평정을 이루고 있다면 애쓰지 말아야 한다. 어느 순간 위빠사나를 수행하여 지혜[반야]가 과다하게 커지면 사마타가 약해지므 로 바람 앞에 등잔불처럼 마음이 흔들린다. 그러면 진여를 명료하게 보지 못하니 그때는 사마타 수행을 한다. 사마타가 비중이 커지면 반대로 위빠사나[반야] 수행 을 해야 한다. 두 가지[사마타와 위빠사나] 모두 균형을 이룰 때 심신에 무리가 가지 않게 하며 애쓰지 않고 머무르게 한다. 몸에 불편함이 느끼지는 곳이 있다면 그때마다 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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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환영이며 오아시스이며 꿈이며 물 위에 비친 달이며 신기루 같은 것이라 여기고 대상에 집중한다. 그리고 이와 같이 생각한다. “이 중생들은 이 같은 심오 한 법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므로 윤회할 때 언제나 번뇌로 시달린다. 그래서 나 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그들이 그 법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생각하 고 대자비와 보리심을 일으키도록 하라. 휴식을 취한 다음 다시 위와 같은 방식으로 일체 법을 현현하지 않는 삼매11) 에 들어가도록 한다. 마음이 반복적으로 힘들어지면 휴식을 취하도록 한다. 이와 같은 방법은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함께 병행하여 들어가는 것인데 분별과 무분별의 영 상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수행자는 이 순서대로 한 시간이나, 야밤 수행 시간의 절반12), 한 번의 수행시간13), 원하는 만큼 진여를 수행하며 앉도록 한다. 이는 의 리(義理)를 분석하는 삼매로 󰡔능가경󰡕에서 설명하고 있다. 그런 다음 원한다면 삼매로부터 벗어나 가부좌를 풀기 전에 “이러한 모든 법은 진 실한 도리[승의]에서 무자성일지라도 세속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행 위와 행위의 결과[업과(業果)] 사이에 관계가 존재하겠는가? 부처님께서는 “사물은 세간의 통속적인 진리에 의해[세속적으로] 발생하지만 승의적 차원에서는 자성이 없다.”라고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중생은 자성이 없는 사물들이 존재한다고 전도된 인식을 갖고 있다. 그래서 오랫동안 ‘윤회’를 떠돌고 있으니 나는 중생을 깨닫게 하기 위해 복덕과 지혜의 선근공덕 자량을 쌓아 일체종지를 완성하리라. 그리고 나서 중생들이 일체종지의 경지를 성취하도록 하여 그들이 법성을 통달하게 하리 라.”라고 생각한다.

11) 보여지는 일체 존재현상이 진실로 있지 않다고 보는 삼매 12) 수행 시간의 절반 약 2시간 정도 13) 약 4시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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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방편 그리고 편안하게 가부좌를 풀고 나서 시방에 머무시는 모든 부처님과 보살님께 절 을 드리고, 그분들께 공양과 찬탄을 한 다음 󰡔보현보살행원품󰡕 같은 광대한 기도 를 한다. 그 다음 공성과 대자비의 정수인 보시를 비롯한 복덕과 지혜의 선근 공 덕자량을 모두를 성취하도록 정진한다. 그렇게 되면 그 선정으로 모든 것 가운데 최상인 공성을 확실하게 성취할 것이다. 󰡔보정경󰡕에서는 이와 같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자애의 갑옷을 입고 대비심의 대지에 머물면서 모든 것 가운데 최상인 공성을 확실하게 성취하도록 하는 삼매를 행한다. 여기에 모든 것 가운데 최상이 되는 공성이란 무엇인가? 보시와 멀어지지 않는 것, 지계를 여의지 않는 것, 인욕과 떨어지지 않는 것, 정진과 멀어지지 않는 것, 선정을 여의지 않는 것, 반야와 멀어지지 않는 것, 방편을 여의지 않는 것이 다.”

보살은 모든 중생을 성숙하게 하고, 국토와 육신과 많은 주위 권속 등을 원만구족 하게 하는 방편인 보시 같은 선업에 반드시 의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처님 께서 정토를 비롯하여 원만구족이라고 말씀하신 그 모든 것의 결과가 어찌 되겠는 가? 그러므로 모든 것 가운데 최상인 일체종지는 보시를 비롯한 방편으로 이루어 진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그 일체종지는 방편에 의해 완성된 다.” 그러므로 보살이 보시를 비롯하여 방편도 수행해야 한다. 공성만을 수행해서 는 안 된다. 그것을 󰡔섭연경󰡕에서도 이와 같이 말씀하시고 있다. “‘미륵이여, 보살이 육바라밀 을 올바르게 수행하는 것이 일체의 법을 이루기 위함인데 어리석은 이들은 보살은 오직 반야바라밀만을 닦으면 되지, 나머지 바라밀이 왜 필요인가?

하며 다른 바

라밀을 부정한다. 미륵이여, 내가 까시국 왕이었을 적에 비둘기를 위해서 내 살과 피를 베풀었는데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것은 반야를 구한 것인가?’ 이에 미 륵보살이 대답했다. “부처님이시여, 그건 그렇지 않사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 다. “미륵이여, 내가 보살행을 행하는 것이 육바라밀이 온갖 선근을 쌓은 데에 방 해가 되는가?” 미륵보살이 대답하기를 “부처님이시여, 그건 그렇지 않사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미륵이여, 그대 또한 60겁 동안 보시바라밀을 청정하게 수행했으며, 60겁 동안 지계바라밀을, 60겁 동안 인욕바라밀을, 60겁 동안 정진바 라밀을, 60겁 동안 선정바라밀을, 60겁 동안 반야바라밀을 청정하게 수행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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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데 어리석은 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오직 하나의 도리로 깨달았으니 이와 같이 공성만으로 깨달음을 이룰 수 있다>라고 하지만 그들의 수행은 올바르게 한 것이 아니다.” 보살이 방편을 제쳐 두고 반야만을 수행한다면 성문들과 다를 것이 없다. 그는 부 처님의 행을 이룰 수 없다. 그렇지만 방편을 닦으면 비로소 가능해 질 것이다. 󰡔보적경󰡕에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가섭이여, 이와 같다. 예를 들면 신하가 있는 국왕은 일체의 국정을 처리할 수 있듯이, 보살의 뛰어난 반야가 방편으로 완 벽하게 뒷받침이 된다면 보살 역시 부처의 모든 행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보살도의 견해는 외도나 성문의 견해와 다르다. 외도의 견해는 ‘자아’에 대해 전도 된 견해를 가지고 있기에 반야와 멀어진 도이다. 그래서 그들은 해탈을 얻지 못한 다. 성문들은 대자비가 없고 방편이 없기에 오로지 열반에만 집중한다. 보살들은 반야와 방편을 함께 수행해야 한다는 걸 인정하기에 그들은 무주처열반에 들어서 게 된다. 보살도는 반야와 방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무주처열반에 도달한 것이다. 반야의 힘은 윤회에 떨어지지 않게 하고 방편의 힘은 열반에 떨어지지 않 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야산정경󰡕에서 “보살들의 도道는 요약하면 두 가지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방편과 반야이다.”라고 말씀하셨다 󰡔화엄경의 상승초품󰡕에서도 “반야바라밀은 어머니요, 뛰어난 방편은 아버지이다.” 라고 설하셨다. 󰡔유마힐경󰡕에서도 “보살에게 결박이란 무엇인가? 해탈이란 무엇인 가? 방편이 없이 윤회에 묶여 있는 것이 보살에게는 결박이다. 방편으로 윤회 속 에 영위하는 것이 해탈이다. 반야 없이 윤회 속에 사는 것은 보살에게는 결박이다. 반야로 윤회 속에 사는 것이 해탈이다. 방편이 갖추어지지 않은 반야는 결박이다. 방편을 갖춘 반야는 해탈이다. 반야가 갖추어지지 않은 방편은 결박이다. 반야를 갖춘 방편은 해탈이다.”라고 설하셨다.

보살이 단지 반야만을 의지한다면 성문이 지향하는 열반에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결박을 당한 상태처럼 되어 무주처열반에 이르지는 못한다. 그래서 ‘방편을 갖추지 않은 반야는 보살들의 결박’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바람이 불어 추울 때 따듯한 불에 의지하여 바람을 피하듯 보살은 방편이 함께 하는 반야로 공성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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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해야 한다. 성문들처럼 하지 말아야 한다. 󰡔십법경󰡕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비유하자면 이와 같으니라. 어 떤 사람이 불을 몹시 숭상한다고 하자. 그 불을 공경하고 스승으로 모실지라도 ‘나 는 불을 공경하고 스승으로 섬기고 그림으로 그리더라도 불을 내 두 손으로 붙잡 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자신에게 육체적인 고통과 마음 이 불편할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보살 또한 열반에 생각이 있 을지라도 열반을 실현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깨달음에서 돌아서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직 방편만을 의지하면 또한 범부 보살14)의 지위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결 박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반야와 함께 방편을 의지해야 한다. 이와 같이 주술로 빚은 독약 같은 번뇌 역시 보살들이 반야를 수행하게 되면 감로로 변하기 때문에 선취의 과보를 지닌 자성에 의해 드러나는 수승한 결과로서 보시의 이익은 더 말 할 필요가 있겠는가? 󰡔보적경󰡕에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가섭이여, 이와 같으니, 비유하자면 주술과 약으로 빚은 독약은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보살들의 번뇌는 지혜 를 섭수하므로 전도로 떨어지게 하지 못한다.”

그런 까닭에 보살은 방편의 힘으로 윤회를 하지만 열반에 떨어지지 않는다. 반야 의 힘으로 모든 대상을 끊어 버리기 때문에 윤회에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무 주처열반 혹은 부처를 성취하는 것이다. 󰡔허공장경󰡕에서도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반야의 지각으로 일체 번뇌를 제거한다. 방편의 지각으로 일체 유정을 저버리지 않는다.”

󰡔해심밀경󰡕에서도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유정을 유익하게 하는 것에 전혀 관심 이 없으며 행[心行]을 이룰 수 있는 모든 것을 외면하는 것을 나는 ‘무상정등각’이 라고 하지 않았다.”

14) 자량도와 가행도의 지위의 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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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부처를 얻고자 한다면 반야와 방편 두 가지 모두에 의지해야 한다. 출세 간의 반야를 수행하고 있을 때나 선정에 든 상태에서 보시를 비롯한 방편에 의지 하는 것은 이미 불가능하다. 그러나 수행 예비 단계와 그 이후 반야지가 일어날 때마다 방편에 의존할 기회가 생기니 이런 까닭에 지혜와 방편 두 가지를 동시에 닦이는 것이다. 더불어 보살들의 반야와 방편을 병행하여 실천하는 도(道)가 바로 이것이라 했다. 모든 중생을 돌보는 대자비를 이루어 출세간의 도를 수행하고 [자 리에서] 일어나 방편을 행할 때 마술사처럼 전도되지 않은 보시 등에 의지해야 한 다. 󰡔무진혜경󰡕에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보살의 방편은 무엇인가? 반야를 직접적 으로 성취하는 것은 무엇인가? 선정에 들어서 유정을 살필 적에 대자비의 마음을 대상에게 뚜렷이 두는 것, 바로 이것이 방편이다. 적정과 대적정에 입정하는 것 바 로 이것이 반야이다.”

󰡔항마품󰡕에서는 “보살들의 올바른 가행(加行)이란 반야의 지각으로[만] 특별히 정 진하지 않고, 방편의 지각으로 일체 선법을 모은 것을 가행하고, 반야의 지각으로 무아(無我), 무유정(無有情), 무생물(無生物), 무양(無養), 무인(無人)을 가행하고, 방 편의 지각으로 일체 유정을 성숙하게 하는 것 또한 수행이다.”라고 상세히 말씀하 셨다.

또한 󰡔법집경󰡕에서도

“예를 들어 어떤 마법사가 환영에서 벗어나고자 노력을 했다. 그러하여 이미 그 환영을 알고 있기에 더 이상 환영에 집착을 하지 않는다.

삼계가 환영과 같음을 정등각자께서는 아시고 중생을 위해 갑옷[대자비]을 입으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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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이 그와 같음을 이미 알았다.”라고 설하셨다.

“보살들의 지혜와 방편의 도리만을 닦은 가정하에 그들의 가행[실천]이 윤회에 머 무는 것이기도 하지만 생각은 열반에 머무는 것이기도 하다.”고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공성과 대자비의 핵심인 무상정등각에 온전히 회향하는 보시 같은 방편 을 닦고 나서 승의의 보리심을 일으키기 위해서 앞에서 말한 것처럼 언제나 사마 타와 위빠사나 수행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정소행경󰡕에서 “언제나 중생이 원하는 것을 행하는 보살의 공덕을 마음에 지니고 정념으로 잘 기억해 방편의 수승함을 수습하도록 하라.”라고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자비와 방편과 보리심을 이생에 틀림없이 잘 닦으면 꿈속에서 항상 부 처님과 보살을 친견하게 되고, 그 외에 상서로운 꿈도 꾸게 되며 천신들도 기뻐하 면서 수호할 것이다. 찰나마다 복덕과 지혜의 선근과 공덕이 광대하게 쌓이며 번 뇌의 장애와 번뇌 습기도 정화된다. 늘 행복하고 평온할 것이며 뭇사람들에게 사 랑을 받을 것이며 질병이 몸에 침범하지 않을 것이며 마음 작용 역시 최적한 상태 가 될 것이다. 그리하여 신통과 같은 수승한 공덕 또한 얻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신 통력으로 시방의 무량한 세계에 가서 여러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법문도 듣는 다. 숨을 거두는 순간에도 반드시 부처님과 보살님을 친견할 것이다. 다음 생에도 어디에서나 불보살님과 함께할 것이며 훌륭한 가문에 태어나게 될 것이다. 그러면 큰 노력 없이 복덕과 지혜의 선근공덕 자량을 완성하게 될 것이다. 많은 재산과 권속들을 거느릴 것이다. 예리한 지혜로 많은 범부들을 제대로 성숙하게 만들 것 이다. 세세생생 전생의 삶들을 다 기억하게 될 것이다. 다른 경전에서 이와 같은 무량한 공덕을 밝히고 있으니 그 이익을 잘 이해하도록 하라. 이와 같이 자비와 방편과 보리심을 항상 공경하면서 오랫동안 수행하면 점차 마음 의 내면이 지극히 청정한 순간이 생기고, 그리고 완전히 성숙하게 될 것이다. 찬목 (鑽木)을 비벼서 불을 일으키듯이 진실된 뜻을 수행하여 구경에 도달하게 되어 출 세간의 지혜로 모든 분별의 그물을 여의고 법계를 완전 명백하게 깨달아 허물이 없고 흔들림이 없을 것이다. 마치 등불을 바람이 없는 곳에 둔 것처럼 흔들림이 없는 [착각하지 않는] 지각을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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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법이 자성이 없다는 것[무아의 본


질]을 지각[있는 그대로 보는]하며 견도(見道)15)에 속한 승의 보리심이라는 본성을 얻는 것이다. 그것을 얻고 나서 존재의 구경을 목표대상으로 삼아 여래의 종성으 로 태어나게 된다. 허물이 없는 보살의 단계에 머문다. 세간의 모든 중생들보다 뛰 어나며 보살의 법성과 법계를 깨달아 머물면 보살의 초지를 얻은 것이다.”라고 󰡔 십지경󰡕에서 더 자세하게 설명하시고 있다. 이는 진여를 소연대상으로 하는 선정 으로 󰡔능가경󰡕에서 설명하고 있다. 보살들이 희론 없는 무분별에 들어선다. 승해행 지(勝解行地)16)에서는 승해17)의 영향으로 들어섰음을 보인 것으로 직접 지각한 것 은 아니다. 그 지혜[초지의 무분별지]가 생기면 비로소 [진여에] 머물게 되니 그와 같이 초지(初地)18)에 들어간 이후 수행하는 도에는 출세간과 후득지인 두 가지의 반야와 방편을 수행한다. 차례로 수도(修道)에서 끊어야 하는 축적된 미세 허물 중 에서도 극히 미세한 허물을 정화19)하기 위함이다. 뛰어난 상위 공덕들을 얻기 위 해서 하위의 지(地)들을 전부 정화하므로 여래의 지혜에 이르기 위해 일체종지의 바다에 들어가고 목적을 전부 이루는 목표대상 또한 이루는 것이다. 이와 같이 “단계에 의해서만이 마음의 내면이 완전히 청정해진다”는 것을 󰡔능가경󰡕에서도 설 하셨다. 󰡔해심밀경󰡕에서는 “단계에 의해, 높은 경지로 황금처럼 마음을 말끔히 정화하여 무상정등각에 도달하기까지 원만하게 갖추어 성불한다.”라고 설하셨다. 일체종지의 바다에 머무른다면, 마치 여의주와 같이 모든 유정을 구제하는 공덕을 쌓고 과거 서원이 이루어지며, 대자비의 자성을 갖추어 다양한 방편이 저절로 성 취되며, 무량한 화신으로 중생들의 서원을 남김없이 이루어 원만한 공덕을 남김없 이 통달하며, 습기와 더불어 모든 죄과의 허물을 소멸하여 중생계가 다할 때까지 머물러 깨닫는 것과 함께 모든 공덕의 근원이신 부처님께 믿음을 일으키고 그 공 덕을 완성하기 위해 스스로 전력을 다해 노력하도록 한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일체종지는 자비를 근원으로 해서 생 기며, 보리심을 바탕으로 해서 생기며, 방편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다.”

15) 16) 17) 18)

오도(五道) - 자량도(資糧道), 가행도(加行道), 견도(見道), 견도(見道), 무학도(無學道) 승해행지-자량도와 가행도 대상을 향하여 수승한 해(解)로써 시(是)ㆍ비(非), 사(邪)ㆍ정(正)을 살펴 결정하는 정신 작용. 보살 십지(十地) 중 첫 단계- 환희지(歡喜地). 이구지(離垢地). 발광지(發光地). 염혜지(焰慧地).

난승지(難勝地) 현전지(現前智). 원행지(遠行智). 부동지(不動地). 선혜지(善慧地) 법운지(法雲地). 19) 정화(Tib: yongs sbyong)- 지(地)의 허물을 끊는다. 예) 초지의 허물을 끊고 초지의 공덕을 원만히 갖추는 것을 ‘초지 정화’라고 한다. 공덕을 전부 원만히 갖추는 순간 2지로 올라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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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이는 질투 같은 결점을 멀리 떠나 보내며 충족되지 않은 공덕에 대한 갈증은 바다와 같으니 잘 가려 들어 훌륭한 말씀을 간직하네. 백조가 기쁨의 호수에서 우유를 취하는 것처럼. 그러므로 지혜로운 이들은 편견과 혼란스러운 마음은 멀리 버리고 설령 아이일지라도 좋은 말은 모두 받아들이네. 이같이 중도의 길 설명하여 내 얻은 모든 복덕을 모든 중생을 위해 베푸나니 중관의 도를 얻게 하소서. 󰡔수행의 순서󰡕는 스승[아사리]이신 까말라실라께서 중편을 지으셨다. 인도 학자 쁘라즈냐와르마와 역경사인 비구 예세데가 번역하고 교정하여 확인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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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보리행론 회향품 적천 저

제가 보살의 행에 들어감을 자세히 지은 모든 선업으로 인해 모든 중생이 보살행에 들어가게 하소서. (1) 시방의 모든 중생이 몸과 마음에 고통의 병으로 시달리는 이들을 저의 복덕으로 행복과 기쁨의 바다에 이르게 하소서. (2) 이들이 윤회가 끝날 때까지 결코 행복에서 물러나지 않고 중생이 보살의 안락을 끊임없이 받게 하소서. (3) 세상이나 지옥들 모든 곳에 있는 이들 이런 곳에 몸 가진 이들 극락의 행복으로 기뻐하게 하소서. (4) 추위에 떠는 이는 따뜻함을 얻게 하소서. 보살의 커다란 [공덕의] 구름에서 생긴 한량없는 비로 더위에 시달리는 이는 시원하게 하소서. (5) 칼 잎의 숲 또한 그곳을 아름다운 낙원이 되게 하소서. 철자림의 나무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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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수로 변하게 하소서. (6) 백조 홍조들과 기러기와 철새 등의 아름다운 노래 소리 청아하게 하소서. 향 그윽한 연꽃으로 덮인 호수로 지옥의 모든 땅에서 이 즐거움을 함께 누리게 하소서. (7) 불타는 석탄은 보석 더미로 변하고 불타는 대지는 수정 바닥으로 장식하게 하소서. 중합지옥의 철위산들도 공양의 무량궁이 되어 여래들께서 충만하게 하소서. (8) 타오르는 돌과 칼날의 비도 지금부터는 꽃비가 되고 서로 무기로 싸우는 것도 이제는 놀이 삼아 꽃을 던지게 하소서. (9) 불이 타오르는 지옥의 강에 빠진 이들 살이 모두 사라진 백골은 하얀 연꽃의 색깔이니 저의 선업의 힘으로 천상의 몸을 받아서 천녀들과 함께 유유히 노닐게 하소서. (10) 어찌하여 여기는 염라대왕의 옥졸과 매와 독수리 참기 어려운 두려움뿐인가? 모든 곳에서 어둠을 몰아내고 안락과 기쁨을 주는 거룩한 힘 이것은 누구의 힘인 가 생각하고 위를 올려다보면 허공 중에 빛나는 금강수보살이 계심을 보고 최고로 환희의 힘으로 죄업에서 벗어나 그분과 함께 가게 하소서! (11) 꽃비와 향수가 섞여 내리니 타오르는 지옥불이 조용히 꺼져가는 것을 보고 순간 희열이 충만해지니‘이것이 무슨 일인가’ 생각하며 지옥 중생들이 관세음보살을 보게 하소서! (12) “친구들이여, 두려움을 버리고 빨리 오라”나의 앞에 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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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의 위신력으로 모든 고뇌는 사라지고, 기쁨의 힘으로 변함에 중생을 모든 곳에서 원만히 보호하고자 보리심과 자비를 일으키시어 문수동자께서 불타는 두려움을 없애주시는데 어찌 도망치는가? (13) 당신의 보관을 쓴 수 백의 신들은 연화의 발에 공양을 올리고 자비로 젖은 눈과 머리에 많은 꽃송이 비를 내리며 장엄한 누각에는 수천의 아름다운 천녀가 찬탄가를 부르며 이와 같이 말하네. 문수보살님을 이와 같이 친견하고 나서 이제 지옥중생에게 웃음소리 흘러나오게 하소서! (14) 이와 같이 저의 선근으로 보현보살 등과 보살의 장애 없는 안락의 구름과 시원하고 미묘한 향이 있는 비가 내리는 것을 보면서 지옥 유정들이 진실로 기뻐하게 하소서. (15) 축생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먹히는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북로구주의 사람처럼 아귀들은 안락하게 하소서. (16) 성 관세음보살의 관정의 손에서 흘러내리는 젖줄기로 아귀들은 만족하며 몸을 씻고 항상 시원하게 하소서. (17) 장님들은 눈으로 직접 보고 청각장애자는 항상 소리를 듣게 하소서. 마야부인 같은 임산부도 고통 없이 분만하게 하소서. (18) 벌거벗은 이들은 옷들과 배고픈 이는 음식과 목마른 이는 물들과 감미로운 음료를 얻게 하소서.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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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들은 재물을 얻게 하소서. 슬픔으로 불행한 사람은 기쁨을 얻게 하소서. 절망한 이들도 마음을 치유하고 의지처가 원만하게 하소서. (20) 아픈 유정 그 누구라도 속히 병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중생의 병은 남김없이 항상 생겨나지 않게 하소서. (21) 겁먹은 이들은 두려움이 사라지게 하소서. 포박된 이들은 자유로워지고 힘없는 이들은 힘센 이가 되며 마음은 서로서로 친애하게 하소서. (22) 길 떠난 이들 모두에게 모든 방향에서 안락하게 하소서. 무슨 이유로 가든지 노력 없이 필요한 것을 성취하게 하소서. (23) 조각배와 큰 배를 타고 항해하는 이들은 마음에 생각한 것을 이루게 하시니 물의 언덕에 안전하게 도착해서 친척과 함께 기쁨을 나눌 수 있게 하소서. (24) 광야의 잘못된 길에 방랑하는 이들 여행자 친구를 만나게 되어 도둑이나 호랑이 등에 두려움이 없이 고생 하지 않고 쉽게 가게 하소서. (25) 보호자 등의 길 없는 두려운 곳에 어린이와 노인과 의지할 곳 없는 이, 잠에 빠진 이, 의식을 잃은 이, 미친 이들에게 신들의 보호가 있게 하소서.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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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함이 없는 모든་ 곳에서 벗어나고 믿음과 지혜 자비를 갖추고 음식과 풍족한 생활을 하면서 항상 세세생생을 기억하게 하소서. (27) 모두가 허공의 보물창고처럼 재물이 부족하지 않게 하소서. 다툼이 없고 해침이 없으며 자유로움을 누리게 하소서. (28) 위엄이 작은 유정 모두가 이런 큰 위엄을 갖춘 이가 되게 하소서 어떤 고행으로 몸이 상한 이는 아름답고 원만한 몸이 되게 하소서. (29) 세상의 모든 여인은 남자로 태어나게 하소서. 비천한 이들은 고귀한 이가 되며 아만 마저도 정복하게 하소서. (30) 저의 이 복덕으로 모든 유정이 남김없이 모든 악을 버리고서 항상 선을 행하게 하소서. (31) 보리심과 멀어지지 않고 보리행에 전념하며 부처님들께서는 섭수하시고 마군의 일들을 버리게 하소서. (32) 유정들 모두는 수명 또한 무량하게 늘어나게 하소서. 항상 행복한 삶이 되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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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라는 소리 조차도 듣지 않게 하소서. (33) 여의수의 화원에서 부처님과 보살의 법음이 울려 퍼져서 모든 시방에 가득 하게 하소서. (34) 모든 곳에 또한 대지에 자갈 등이 없고 손바닥 같이 평평하며 유리의 성품처럼 부드럽게 되게 하소서. (35) 제자의 만달라 모든 곳에도 많은 보살들 당신의 선량으로 대지 위를 장엄으로 머물러 주소서. (36) 몸 가진 모든 이들에게 새와 나무와 모든 햇빛과 허공까지도 법의 소리가 끊임없이 들리게 하소서. (37) 이들은 항상 부처님과 보살을 만나게 하소서. 무량한 공양의 구름으로 중생의 스승들께 공양 올리게 하소서. (38) 천신도 때에 맞춰 비를 내리시고 곡식은 풍성하게 여물게 하소서. 왕은 법에 맞게 다스리게 하소서. 세상들도 번창하게 하소서. (39) 약초들은 영험이 있고 진언을 염송하여 성취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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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행모와 나찰 등은 자비심을 지니게 하소서. (40) 중생 누구든지 고통이 없고 두려움과 멸시를 당하지 않으며 누구도 마음이 불안하지 않게 하소서. (41) 사원들에서는 독경과 기도 소리가 장엄하게 울러 퍼지게 하소서. 항상 승가는 화합하고 승가의 뜻 또한 이루어지게 하소서. (42) 공부하기를 원하는 비구들은 고요한 곳들을 얻게 하소서 산란함을 모두 여의고 마음은 뜻대로 되어 수행하게 하소서. (43) 비구니들은 풍족하고 말다툼과 해로움이 없게 하소서. 이와 같이 출가한 모든 이는 계율을 어기지 않게 하소서. (44) 계율을 어긴 이는 마음을 내어 항상 죄를 참회하게 하소서. 선취들도 얻고 난 후에 그곳에서도 계행이 기울지 않게 하소서. (45) 지혜로운 이들은 존경과 탁발들도 또한 얻게 하소서. 마음의 흐름을 완전히 맑히고 시방 모두에 알려지게 하소서. (46) 악취의 고통을 받지 않으며 힘든 고생은 사라지고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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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보다 더 뛰어난 몸으로 이들이 부처를 속히 이루게 하소서. (47) 모든 중생은 몇 번이고 모든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며 부처님의 안락을 헤아려서 항상 행복하게 하소서. (48) 보살들은 중생을 위한 마음에 뜻한 바를 이루게 하소서. 보호자께서 생각하신 모든 것 중생들이 또한 받들게 하소서. (49) 이와 같이 연각들과 성문들도 안락하게 하소서. (50) 저 또한 문수보살의 은혜로 환희지에 오를 때까지 항상 세세생생을 기억하고 출가를 얻게 하소서. (51) 제가 먹는 음식마저도 소박하게 생활 하게 하소서. 모든 생을 고요한 곳에 머물며 원만성취를 이룰 수 있게 하소서. (52) 어느 때든 친견하고 싶거나 조그만 질문이 있을 때에도 보호주 문수보살을 직접 장애 없이 또한 친견하게 하소서. (53) 시방의 허공 끝에 이르는 모든 유정의 이익을 이루기 위해 이렇게 문수보살이 행하신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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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행도 이와 같게 하소서. (54) 허공계가 존재하는 한 중생계가 존재하는 한 끝까지 제가 따라 머물면서 중생의 고통을 없애게 하소서. (55) 중생의 고통 무엇이든 모두 저한테서 성숙하게 하소서. 보살 승가의 힘으로 중생이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56) 중생의 고통을 치료하는 유일한 약이며 모든 안락의 근원인 부처님의 가르침, 재보와 공경과 함께 오래오래 머물게 하소서. (57) 당신의 은혜로 선한 마음을 일깨워 주시는 문수보살님께 예경합니다. 당신의 은혜로 저를 성장케 하시는 선지식께도 제가 예경합니다.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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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행삼십칠송(菩薩行三十七頌) 톡메상보 지음 양승규 옮김

보호주이신 관세음보살께 귀의합니다.

제법이 오고 감이 없음을 보시지만 오로지 중생을 이롭게 하시는 수승한 스승과 보호주 관세음보살께 항상 세 문으로 절합니다. 이익과 행복의 근원을 구족하신 부처님도 정법을 수행하는 것에서 출현하고, 그 행을 아는 것에 달려 있기 때문에 보살의 수행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얻기 힘든 기회와 조건의 큰 배를 얻은 지금 자신과 타인을 윤회의 바다에서 구하기 위해 밤낮으로 게으르지 않고 듣고, 사유하고, 수습하는 것이 보살의 수행입니다. (1) 친한 이에 대해서는 집착이 물처럼 출렁이고 적에 대해서는 분노가 불처럼 타오르니, 취할 것과 버릴 것을 잊는 어리석음의 몽매한 고향을 버리는 것이 보살의 수행입니다. (2) 나쁜 경계를 버림으로써 번뇌가 점점 줄어들고 산란함이 없어 선업이 저절로 늘어나고, 청정하게 인지함으로써 법에 대한 확신이 생기니 적정처(寂靜處)에 의지하는 것이 보살의 수행입니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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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사귄 친구와 헤어져야 하고, 애써 모은 재물도 끝내 남겨두어야 하며, 의식(意識)이라는 손님도 몸의 숙소를 버리니 이 세속의 삶을 버리는 것이 보살의 수행입니다. (4) 사귀면 삼독(三毒)이 커지고, 듣고, 사유하고, 수습하는 삶이 허물어지며, 자비심을 없애 버리는 나쁜 친구를 버리는 것이 보살의 수행입니다. (5) 의지하면 허물이 점점 줄어들고, 공덕은 달이 차오르듯 늘어나는 훌륭한 선지식을 자신의 몸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보살이 수행입니다. (6) 자신 역시 윤회의 감옥에 묶여 있는 세속의 신(神)들이 누구를 보호할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귀의할 경우 속임이 없는 삼보에 귀의하는 것이 보살의 수행입니다. (7) 감당하기 힘든 악도의 고통은 악업의 결과라고 세존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목숨을 달려 있더라도 악업을 결코 절대로 짓지 않는 것이 보살의 수행입니다. (8) 삼계의 안락은 풀잎의 이슬과 같아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결코 변하지 않는 수승한 해탈을 추구하는 것이 보살의 수행입니다. (9) 시작이 없는 때부터 우리에게 자애를 베푼 어머니들이 고통스럽다면 자신의 행복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셀 수 없는 중생을 구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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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심을 일으키는 것이 보살의 수행입니다. (10) 모든 고통은 자기의 행복을 원하는 것에서 생기고 원만하신 부처님은 남을 이롭게 하려는 마음에서 출현하십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행복과 남의 고통을 바르게 바꾸는 것이 보살의 수행입니다.(11) 어떤 이가 탐욕에 이끌려 나의 모든 재물을 빼앗거나 혹은 빼앗게 하더라도 몸과 재물, 삼세의 선근 공덕을 그에게 회향하는 것이 보살의 수행입니다. (12) 자신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가 자신의 머리를 베더라도 자비의 힘으로 그 죄값을 자신이 대신 받는 것이 보살의 수행입니다. (13) 어떤 이가 나를 비방하는 말을 삼천 세계에 퍼뜨리더라도 오히려 자애로운 마음으로 그 사람의 장점을 말하는 것이 보살의 수행입니다. (14) 많은 이들이 모인 가운데서 어떤 이가 나의 은밀한 잘못을 들추어내어 욕할지라도 그를 선지식(善知識)으로 생각하여 공경하는 것이 보살의 수행입니다. (15) 자식처럼 사랑하며 돌보는 이가 나를 원수처럼 여기더라도 중병에 걸린 자식을 대하는 어머니처럼 더욱 큰 자애를 베푸는 것이 보살의 수행입니다. (16) 자신과 비슷하거나 부족한 사람이 아만(我慢)으로 인해 멸시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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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처럼 공경하여 자신의 정수리에 모시는 것이 보살의 수행입니다. (17) 생활이 빈곤하고, 항상 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받고, 혹독한 질병과 악마에 휩싸이더라도 모든 중생의 악업과 고통을 자신이 받아들이며 좌절하지 않는 것이 보살의 수행입니다. (18) 명성을 얻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다문천왕(多聞天王)과 같은 재물을 얻을지라도 세속의 명예와 부를 허망한 것으로 보고 자만하지 않는 것이 보살의 수행입니다. 자기 안의 분노의 적을 다스리지 못하면 외부의 적을 물리치더라도 다시 늘어만 갑니다. 사랑과 자비라는 군대의 힘으로 자신을 조복하는 것이 보살의 수행입니다. (20) 감각적인 즐거움은 소금물과 같아 누리면 누릴수록 갈망은 늘어갑니다. 탐착을 일으키는 모든 것들을 즉시 끊어 버리는 것이 보살의 수행입니다. (21) 모든 현현(顯現)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이고, 마음 그 자체는 본래 희론(戱論)을 여읜 것이니 이를 바르게 알아 주객(主客)의 구별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보살의 수행입니다. (22) 아름다운 대상을 만났을 때 여름날의 무지개처럼 아름답더라도 진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보고 집착을 끊어 버리는 것이 보살의 수행입니다. (23) 모든 고통은 꿈속에서 자식이 죽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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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을 진실한 것으로 여기니, 얼마나 힘듭니까. 그러므로 힘든 상황에 부딪쳤을 때 허망한 환상으로 보는 것이 보살의 수행입니다. (24) 깨달음을 구하기 때문에 자신의 몸까지도 버려야 한다면 외적인 사물들에 대해서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보답이나 과보마저도 바라지 않고 아낌없이 보시하는 것이 보살의 수행입니다. (25) 계행이 없어 자신의 이익조차 얻지 못한다면 다른 이를 이롭게 하는 것은 가당치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세속적인 즐거움을 버리지 않고 계율을 호지(護持)하는 것이 보살의 수행입니다.(26) 선한 업을 쌓으려는 보살에게 갖가지 해악은 오히려 고귀한 보물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이에게 분노나 악의를 품지 않는 인욕을 닦는 것이 보살의 수행입니다. (27)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성문과 연각도 머리에 불이 붙은 것처럼 정진한다면 일체 중생을 위해 공덕의 근원이 되는 정진에 힘쓰는 것이 보살의 수행입니다. (28) 지(止)를 체득한 관(觀)으로 일체 모든 번뇌를 끊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사무색정(四無色定)마저도 초월한 선정을 닦는 것이 보살의 수행입니다. (29) 지혜가 없다면 다섯 바라밀로는 완전한 깨달음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방편을 갖추어 삼륜(三輪)을 분별하지 않는 지혜를 닦는 것이 보살의 수행입니다. (30) 자신의 잘못을 세심하게 관찰하지 않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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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자의 모습을 하고도 올바르지 않은 것을 행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자신의 잘못을 살펴서 끊는 것이 보살의 수행입니다. (31) 번뇌에 사로잡혀 다른 보살의 허물을 말한다면 자신이 퇴보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대승의 수행자에 대해 허물을 말하지 않는 것이 보살의 수행입니다. (32) 이익과 명예 때문에 세간의 다툼을 일으키고, 듣고 사유하고 실천하는 수행이 쇠퇴합니다. 따라서 친구와 보시자에 대해 집착을 끊는 것이 보살의 수행입니다. 거칠고 나쁜 말은 다른 이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고, 보살의 행실을 퇴보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좋아하지 않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보살의 수행입니다. (34) 번뇌에 물들면 대치법으로도 없애기 어려우니 정념(正念)과 정지(正知)라는 대치의 칼을 들고 집착과 같은 번뇌가 생기자마자 잘라버리는 것이 보살의 수행입니다. (35) 요약하면 어떤 행을 하더라도 자신의 마음이 어떤 상태일지라도 항상 정념(正念)과 정지(正知)로 살피는 이타행을 닦는 것이 보살의 수행입니다. (36) 그와 같이 정진하여 증득한 모든 공덕을 가없는 모든 중생의 고통을 없애기 위해 삼륜청정(三輪淸淨)의 지혜로 깨달음에 회향하는 것이 보살의 수행입니다. (37) 현밀(顯密)의 경론에서 말씀하신 의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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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성현들의 말씀을 의지하여 보살도를 수행하고자 하는 이들을 이롭게 하고자 보살의 서른일곱 가지 수행법으로 제시했습니다. 지혜가 없고 배운 것이 적어 지자(智者)들을 기쁘게 할 문장은 아니지만, 경전과 성현들의 가르침을 근거로 했기 때문에 보살의 수행법에 잘못된 것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광대한 보살의 수행법은 저처럼 우둔한 지혜로는 헤아리기 어렵기 때문에 모순되거나 관련이 없는 등의 허물을 지혜로운 이들께서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여기서 생긴 공덕으로 모든 중생이 속제와 진제의 수승한 보리심으로 윤회와 열반의 이변(二變)에 머물지 않는 보호주 관세음보살처럼 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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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만론(寶鬘論) 용수보살 지음 양승규옮김

인도말로 rājaparikathāratnamālī 티벳말로 왕에게 들려주는 보배목걸이

부처님과 보살님께 절합니다.

모든 과실에서 벗어나고, 모든 공덕으로 장엄하신 분이시며 모든 중생의 유일한 친구이신 일체지자(一切智者)께 절합니다. (1)

왕이시여, 법을 증득할 수 있도록 한결같이 설한 법을 그대에게 설하겠습니다. 정법(正法)의 그릇에 법을 담을 수 있을 것입니다. (2)

먼저 훌륭한 몸[增上生]의 법이, 나중에 완전한 깨달음[決定乘]이 생깁니다. 왜냐하면 훌륭한 몸을 성취하고서 차례로 완전한 깨달음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3)

여기서 훌륭한 몸을 안락, 완전한 깨달음을 해탈이라고 합니다. 그것을 증득하는 것을 요약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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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지혜입니다. (4)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법을 의지하고, 지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바르게 압니다. 이 둘 중에서 근본은 지혜이고, 믿음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5)

탐욕, 성냄, 두려움, 어리석음 때문에 법을 버리지 않는 이를 ‘믿음을 가진 이’라고 하고, 완전한 깨달음의 훌륭한 그릇입니다. (6)

신업 ‧ 구업 ‧ 의업을 모두 바르게 분별하여 자타의 이익을 알고서 항상 실천하는 이가 지자입니다. (7)

죽이지 않고, 훔치지 않고, 남의 아내를 멀리하고, 잘못된 말, 나누는 말, 거친 말, 무의미한 말을 완전히 조복하고, (8)

탐하는 마음, 성내는 마음,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견해를 완전히 없애는 것이 청정한 십업도(十業道)입니다. 반대는 검은 것입니다. (9) 술을 마시지 않음, 올바른 생활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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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치지 않음, 존경하여 베품, 공경할 수 있는 이를 공경함과 자비가 간단하게 법입니다. (10)

몸을 괴롭힐 따름인 것은 법이 아닙니다. 그것은 다른 이들을 해치는 것은 없지만 다른 이들을 돕는 것도 없습니다. (11)

보시, 지계, 인욕이 밝힌 큰 정법을 존경하지 않고 몸을 괴롭히며 단다까(daṇḑaka)숲의 악도(惡道)를 가는 이는 (12)

번뇌의 뱀에 감긴 몸으로 끝없는 중생의 나무가 있는 참을 수 없는 윤회의 정글에서 매우 오랫동안 머물게 됩니다. (13)

살생하면 수명이 짧아지고, 해치면 해악이 많고, 훔치면 재물을 잃고 사음하면 적이 생깁니다. (14)

거짓말을 하면 비방이 늘고, 두 말은 친구와 멀어지고, 나쁜 말은 듣기 싫은 말을 듣게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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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는 말은 불쾌한 말이 생깁니다. (15)

탐하는 마음은 희망을 없애고, 해치는 마음은 두려움을 일으키고, 악견은 잘못된 견해이고, 술을 먹는 것은 마음을 혼란스럽게 합니다. (16)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것은 곤궁함, 잘못된 삶은 속임, 거만함은 나쁜 종족, 질투는 추함, (17)

성냄은 나쁜 피부색, 지자에게 묻지 않는 것은 어리석음입니다. 사람의 경우에 이와 같은 과보이고, 모든 것에 앞서 악도입니다. (18)

불선(不善)이라고 하는 것의 이숙(異熟)은 모든 선(善)과 결과가 반대로 생깁니다. (19)

탐욕 ․ 성냄 ․ 어리석음과 그것에서 생긴 업은 불선업이고, 탐하지 않음, 성냄과 어리석음이 없음에서 생긴 업은 선업입니다. (20) 불선업에서 모든 고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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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악도가 생깁니다. 선업에서 모든 선도와 모든 생에서 안락이 생깁니다. (21)

마음 ․ 몸 ․ 말의 모든 선하지 않은 업을 없애고, 선한 것을 항상 실천하는 이것을 세 가지 법으로 설명합니다. (22)

이 법으로 지옥, 아귀, 축생에서 벗어나고, 천(天)과 사람[人] 속에서 훌륭한 안락과 왕국이 번성합니다. (23)

[사]정려, [사]무량, [사]무색으로 범천(梵天) 등의 안락을 누립니다. 이상은 훌륭한 몸의 법과 그 결과를 요약한 것입니다. (24)

완전한 깨달음의 법들은 미묘하고, 심오한 것을 [아는 사람에게] 현현하고, 듣지 못한 어리석은 사람들은 놀란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25)

‘나는 [현재] 존재하지 않고, [내생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나의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여 어리석은 사람은 놀라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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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는 놀라지 않습니다. (26)

이 일체중생은 나를 집착하는 것에서 생기고, 나의 것을 집착한다고 중생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한결같이 설하는 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27)

‘내가 존재하고, 나의 것이 존재한다’고 하는 것은 승의(勝義)에서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올바른 것을 그대로 아는 이들은 둘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28)

온(蘊)은 아집에서 생기고, 아집은 실제로 허망합니다. 씨앗이 허망한데 그것에서 생긴 것이 어떻게 진실할 수 있겠습니까? (29)

온이 그와 같이 진실하지 않다는 것을 보고서 아집을 없앱니다. 아집을 없앴기 때문에 다시 온이 생기지 않습니다. (30)

거울을 의지하여 자신의 영상(影像)이 떠오르지만 그것은 진실한 것으로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31) 마찬가지로 온을 의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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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집을 반연합니다. 자기 얼굴의 영상처럼 진실한 것으로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32)

거울을 의지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영상이 떠오르지 않는 것처럼 온을 의지하지 않고서는 아집도 마찬가지입니다. (33)

성아난존자는 이와 같은 의미를 듣고서 법안(法眼)을 얻어 스스로 비구들에게 반복해서 설했습니다. (34)

온을 고집하는 한 아집이 존재합니다. 아집이 존재한다면 업을 [쌓고,] 그것 때문에 또 태어납니다. (35)

세 가지 도의 처음, 중간, 끝이 없는 것이 윤회하는 바퀴입니다. 마치 쥐불놀이의 화륜(火輪)처럼 서로 원인이 되어 돌아갑니다. (36)

이 [연기]는 자체, 다른 것, 둘, 삼세(三世)에서도 [자성으로 성립하지 않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유신견(有身見)에 포함된] 아집을 없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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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서 업과 발생도 [없앱니다.] (37)

그와 같이 인과의 발생과 그것의 소멸을 보고서 [실사의 진여를 이해하면] 진실한 것에서 세간에 있다거나 없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38)

모든 고통을 없애는 [연생(緣生)의] 법을 듣고서 분별이 없는 [어리석은] 이는 두려워할 것이 없는 것을 두려워하고, 알지 못하기 때문에 무서워합니다. (39)

[무여(無餘)]열반에서 [유루(有漏)의 온이] 모두 없어지더라도 [성문인] 그대는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서 [유루의 온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설명하는 것에 대해 그대는 어째서 두려워합니까? (40)

해탈에는 [사람의 자아가 없고, [자성으로 성립하는] 온도 없습니다. 만약 해탈을 그와 같다고 주장한다면 자아와 온을 배제하는 것을 그대가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41)

열반이 무실사(無實事)도 아니라면 어떻게 [자성으로 성립하는] 실사일 수 있겠습니까? 실사와 무실사가 [자성으로 성립한다고] 고집하지 않는 것이 열반임을 알아야 합니다. (42) 요약하면 [사제, 삼보와 업보 등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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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고, 공덕이 아닌 것이고, 악도에 떨어지는 것이고, ‘잘못된 견해’라고 합니다. (43)

요약하면 존재한다고 보는 것은 ‘업보가 존재한다’고 하는 것이고, 공덕과 선도의 원인과 일치하는 ‘올바른 견해’라고 합니다. (44)

[본질을] 인식함으로써 있음과 없음을 적멸하기 때문에 악행과 공덕에서 벗어납니다. 그것으로 악도와 선도에서 그 사람은 해탈한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45)

[고통이] 발생하는 것을 [아집의] 원인을 가지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윤회하는 인과가] 없다고 [보는 것에서] 벗어납니다. [고통을] 없애는 것을 [도제의] 원인을 가지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자성으로] 있어도 인정하지 못합니다. (46)

이전에 발생한 것과 함께 발생하는 것은 [어느 것도] [승의에서는] 원인이 아니고, 실제로는 [자성이 성립하는] 원인이 없습니다. [자성으로 성립하는 결과인 발생도] 세속과 승의에서 발생하는 것도 성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47)

이 [무명]이 있으면 이 [행(行)]이 생깁니다. 예를 들면 긴 것이 있으면 짧은 것이 있는 것처럼. 이 [무명]이 생기면 이 [행]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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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등불이 있기 때문에 빛이 있는 것처럼. (48)

긴 것이 존재하면 짧은 것이 [생기]기 때문에 자체로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등불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빛도 생기지 않는 것처럼. (49)

그와 같이 인과가 발생하는 것을 보고서 이 세간에서 [인과를] [분별의] 희론에서 생기는 것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인과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50)

소멸이 [분별의] 희론에서 생기지 않는 것을 올바른 것으로 인정한다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두 [극단을] 의지하지 않으면 해탈합니다. (51)

멀리서 본 형색을 가까이 있는 사람은 분명하게 봅니다. 아지랑이가 물이라면 가까이 있는 사람이 어떻게 보지 못하겠습니까? (52)

[진여를 통달하는 것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중생]들은 이 세간을 여실하다고 봅니다. 그와 같이 그 [진여]에 가까이 있는 [성자(聖者]들은 [자성으로 성립하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형상이 없는 아지랑이처럼. (53) 물과 비슷한 아지랑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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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아니고, 진실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온은 [자성으로 성립하는] 나와 비슷하지만 그것은 나가 아니고, 진실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54)

‘아지랑이를 물이다’라고 생각하여 물로 간주하지만, 만약 ‘그 물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파악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55)

그와 같이 [자성이 없는] 아지랑이와 같은 세간이 [자성으로] 존재한다거나 존재하지 않는다고 파악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진여에 대한] 어리석음이 있다면 해탈하지 못합니다. (56)

[업보를 손감(損減)하는] 단멸론자는 악도에 가고, [업보를 신뢰하는 세간을 올바르게 보는] 실재론자는 선도로 갑니다. [본질을] 있는 그대로 [현량(現量)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두 [극단을] 의존하지 않는 [성자는] 해탈합니다. (57)

[본질을] 있는 그대로 인식함으로써 존재하지 않는 것과 존재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단멸론자가 된다면, [인과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어째서 실재론자가 되지 않는 것입니까? (58)

만약 [자성으로 존재하는 것을] 부정했기 때문에 의미상 단멸론자가 된다면, 그렇다면 [중관론자는] 없음을 부정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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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실재론자가 되지 않는 것입니까? (59)

[중관론자는] 실제로 [업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설명하지 않고, [모든 몸의 악행을 버렸기 때문에 단멸론자와 같이] 행동하지 않으 며, 깨달음을 의지하기 때문에 [업보가 없다고] 생각하지도 않기 때문에 어떻게 그 [중관학자]를 단멸론자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60)

사람을 [실질유(實質有)의] 온으로 말하는 세간의 수론파(數論派), 승론파(勝論派), [능소(能所) 둘이 빈 인식을 항상한 것과 실사로 인정하는] 옷을 입지 않는 [자이 나교]들이 [자성으로] 있음과 없음을 벗어나는 것을 설명한다면, 물으십시오. (61)

그렇기 때문에 모든 부처님의 감로의 가르침인 죽음이 없는 유무에서 심오한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독특한 불]법의 속성임을 [알아야] 합니다. (62)

소멸하는 것이 없고, 오는 것이 없고, 찰나도 머물지 못하고, 삼세를 벗어난 자체인 세간이 어떻게 실제로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63)

[세간과 열반] 둘은 진실한 것으로 가는 것, 오는 것, 머무는 것이 없기 때문에 [윤회하는] 세간과 열반의 [세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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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실제로 다를 수 있겠습니까? (64)

머뭄이 없기 때문에 생김과 소멸이 진실한 것이 아니라면 생김, 머뭄, 없어짐이 어떻게 [자성으로 성립]할 수 있겠습니까? (65)

만약 [극미(極微)가] 항상 변화한다면 어떻게 찰나성이 아닌 [항상한] 실사가 되겠습니까? 만약 [순간적으로] 변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실제로 다른 것이 되겠습니까? (66)

[극미는 항상하지만] 일부[의 순간]과 모든 순간에 없어지기 때문에 찰나로 변한다고 한다면, 다름을 반연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둘 모두 타당하지 않습니다. (67)

[비슈누(Vīshṇu)가 실사이고] 찰나성이라면 전체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어떻게 오래된 것이겠습니까? 견고하기 때문에 찰나가 아니라면 어떻게 오래된 것이겠습니까? (68)

그와 같이 세 찰나를 본질로 하기 때문에 세간은 찰나의 [자성으로]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과 중간, 마지막도 찰나처럼 생각해야 합니다. (69) 처음 ・ 중간 ・ 마지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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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처럼 생각해야 합니다. 처음 ・ 중간 ・ 마지막은 자성으로부터도 아닙니다. (70)

다른 방향[이 존재하기] 때문에 하나가 아니며 방향이 없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자성으로 존재하는] 하나가 없어 여럿도 없고, 존재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 것도 없습니다. (71)

소멸도 대치(對治)로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만든다면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떻게 소멸하는 것과 대치하는 것이 되겠습니까? (72)

따라서 열반에 의해 세간이 실제로 줄어들지 않습니다. “세상의 끝이 있습니까?”라고 묻자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73)

그렇기 때문에 심오한 법을 법기[法器]가 아닌 이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지혜로운 사람들은 부처님이 일체지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74)

‘그와 같이 심오한 완전한 깨달음의 법을 집착하지 않고, 머물지 않는다’고 하여 원만한 것을 보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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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등각자께서 말씀하셨습니다. (75)

주처[住處]가 아닌 법을 두려워하는 이는 [자성으로 성립하는] 주처를 아주 좋아하고, 있음과 없음의 [극단]을 넘지 못한 알지 못하는 이들은 파멸합니다. (76)

두려워할 것이 없는 주처를 두려워하는 이들은 파멸하고, 남도 파멸시킵니다. 왕이시여, 파멸하는 것으로 절대 파멸하지 않게 하십시오. (77)

왕이시여, 그대가 파멸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세간에서 벗어나는 이치로 둘을 의지하지 않는 진실한 것을 그대로 경설로 설명하겠습니다. (78)

죄와 복이 되는 행을 넘어서고, 심오한 것을 설명하는 의미를 가진 것이 다른 외도와 불교일지라도 주처가 아닌 것은 두려워하여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79)

사람은 땅이 아니고, 물이 아니고, 불이 아니고, 바람이 아니고, 허공이 아니고, 인식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아니라면 그 외에 사람은 무엇입니까? (80) 사람은 육계[六界]를 취합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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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것이 아닙니다. 그처럼 하나하나의 계도 취합한 것이기 때문에 올바른 것이 아닙니다. (81)

오온은 내가 아닙니다. 나를 오온이 [의지하지] 않고, 오온을 내가 [의지하지] 않습니다. 오온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내가] 아닙니다. 오온과 [나는] 불과 섶처럼 섞인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존재하겠습니까? (82)

세 원소는 땅이 아닙니다. [세 원소가] 이 땅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고, 땅이 세 원소를 [의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 원소가 없는 것에 [땅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각각에 대해서도 그와 같고, 그 원소도 나처럼 허망합니다. (83)

땅 ‧ 물 ‧ 불 ‧ 바람은 각각에서도 본성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셋이 없으면 각각이 없고, 하나가 없으면 셋이 없습니다. (84)

셋이 없는 것에 각각이 없고, 하나가 없는 것에 셋이 없다면 각각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취합된 것이 생기겠습니까? (85)

만약 각각이 존재한다면 섶이 없을 경우 어째서 불이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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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임 ‧ 장애함 ‧ 섭수함, 땅 ‧ 물 ‧ 바람도 마찬가지입니다. (86)

하지만 이 불은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이라면 그대의 셋이 어떻게 다를 수 있겠습니까? 셋은 연기하는 것과 상응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87)

각각 따로 존재하는 것이 어떻게 서로 [의존하여]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각각 따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어떻게 서로 [의존하여]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88)

만약 각각으로는 존재하지 않고, 하나가 [존재하는] 곳에 나머지가 [존재한다면] 나머지가 섞이지 않는 것은 하나가 존재하지 않고, 섞이는 것은 각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89)

각각 자성으로 존재하지 않는 요소들이 각각의 자상으로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각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은 큰 부분도 없고, 특징을 세속이라고 합니다. (90)

색깔 ․ 냄새 ․ 맛 ․ 느낌에도 이와 같은 이치가 [적용될 수] 있습니다. 눈, 인식, 형색, 무명, 업, 발생,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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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자, 업, 행위, 수(數), 인과(因果), 시간, 짧음과 김 등의 인식대상과 이름과 이름을 가진 것도 그와 같습니다. (92)

땅 ․ 물 ․ 불 ․ 바람, 김과 짧음, 가늠과 두꺼움,, 선함 등은 인식에서 소멸한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93)

[무분별의] 인식, [남에게] 설명하지 못함, 한량없는 [인식대상으로 전변하는] 한량없는 변주(變主)에게는 땅 ․ 물 ․ 불 바람이 머무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94)

여기서는 김과 짧음, 미세함과 거침, 선함과 선하지 않음, 여기서는 명색(名色)도 남김없이 없어집니다. (95)

[무명에 가려] 알지 못하기 때문에 [중생은 보지 못하지만. 성자의] 인식에서 이전에 발생한 [자성공(自性空)인 연기를] 모두 알기 때문에 인식에서 나중에 그와 같이 부정합니다. (96) [수소성(修所成)]의 인식인 불의 섶을 모든 행법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여실하게 구분하는 광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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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짐으로써 태워 없앱니다. (97)

[번뇌 때문에] 알지 못해 이전에 분별한 것을 나중에 결정합니다. 실사를 얻지 못할 때 무실사가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98)

형색의 실사는 이름 정도일 따름이기 때문에 허공도 이름 정도일 따름입니다. 원소가 없는 것에 형색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이름 정도인 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99)

감수, 표상, 의식작용, 인식이 생기는 것 등을, 나처럼 생각해야 합니다. 따라서 육계는 무아(無我)입니다. (100)

보만론에서 훌륭한 몸과 완전한 깨달음을 설명한 제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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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의 발심문 쌍게 장츕 닥기 도라

최당 발두 최냰 팬칠

촉기 닥니 기배 쌍게

촉남라 꼅쑤치 쏘남끼 둡발쇼

(부처님과 법과 승보에게) (보리를 얻을 때까지 제가 귀의하오니) (제가 법을 청문한 자량으로) (중생을 이롭게 하는 부처를 이루어지이다.)

보살계(원보리심을 발하는 의궤) 1. 도남 쌍게 장춥 딱발 2. 셰럽 쮠빼 쌍게 족빼 3. 지씨

돌되 최당 닝볼 닥니

쌈바이 게뒨라 치기발 꼅쑤치

(중생들을 해탈코자 하는 마음으로) (부처님과 법과 승보에 ) (깨달음의 정수를 이룰 때까지) (제가 항상 귀의합니다.)

닝째당 째바 쎔잰 된두닥 뒨두 내기떼 장춥 쎔께도

(지혜와 자비심을 가지고) (정진하며 중생을 위하여 제가) (부처님 전에 머물며) (원만한 보리심을 일으키겠습니다.)

남카 네바 당 (허공계가 있는 한)

도와 지씨 네귤 빠 (중생계가 있는 한) 데씨 닥니 네귤 네 (그 때까지 내가 머물러) 도외 둥앨 쎌왈 쇽 (중생의 고통을 없애기를) 금강승 보살계 도남 쌍게 장춥 딱발 셰럽 쮠빼 쌍게 족빼 꾄촉

돌되 쌈바이 최당 게뒨라 닝볼 치기발 닥니 꼅쑤치 닝째당 째바 쎔잰 된두닥 뒨두 내기떼 장춥 쎔께도 쑴라 닥꼅치

(중생들을 해탈코자 하는 마음으로) (부처님과 법과 승보에 ) (깨달음의 정수를 이룰 때까지) (제가 항상 귀의합니다.) (지혜와 자비심을 가지고) (정진으로 중생을 위하여 저는) (부처님 전에 머물며) (원만한 보리심을 일으키겠습니다.) (삼보에 제가 귀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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딕바 도외 쌍게 쌍게 장춥 랑샌 장춥 장춥 쎔짼 장춥 도라

탐째 게라 장춥 최당 발두 된니 쎔니 쵹기 탐째 쬐쵹 팬칠

쏘쏠샥 (모든 악업을 참회합니다) 제이랑 (중생의 선업에 수희 찬탄합니다) 이기숭 (부처님의 깨달음을 마음에 두고서) 촉쵹라 (부처님과 법과 성스러운 무리에게) 꼅쑤치 (깨달음을 이룰 때까지 귀의합니다) 럼둡칠 (자타의 뜻을 이루기 위해) 께발기 (보리심을 일으키겠습니다) 쎔니 께기내 (최상의 보리심을 발하여) 닥기 된두냴 (모든 중생을 나의 귀빈으로 여겨) 이옹 째말기 (누구나 좋아하는 최상의 보살행을 하겠습니다.) 쌍게 둡발쇽 (중생을 이익케 하기 위해 성불하기를)

발보리심과 수보살계 1. 발보리심 (원보리심과 행보리심을 함께 수함) 라마 겔와 쎄제 남 (스승님, 부처님, 보살님들이시여) 닥라 공바 젤두 쏠 (저를 당신들께서 아시옵기를 청합니다) 지딸 왼기 데섹 끼 (이와 같이 이전의 선서들께서) 장춥 툭니 께바 당 (보리심을 발하시고) 장춥 쎔배 롭바 라 (보살의 학처에) 데닥 림신 네바 딸 (그와 같은 차제에 머무셨듯이) 닥깡 돌라 펜된 두 (저 또한 중생들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 장춥 쎔니 께기 씽 (보리심을 발하고) 장춥 쎔배 롭바 라 (보살의 학처를) 림바 신두 럽발 기 (차제에 따라 배우겠습니다.) 2. 장춥 마께 께와 공네

쎔촉 빠남 남빠 공두

린포체 (최상의 보리심의 보석이여) 께귤찍 (일으키지 않은 이는 일으키고) 메바양 (일으킨 바는 또한 기욺 없이) 펠왈 쇽 (더욱 더 위로 증장되기를)

3. 지씨 남카 네바 당 (허공계가 있는 한) 도와 지씨 네귤 빠 (중생계가 있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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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씨 닥니 네귤 네 (그 때까지 내가 머물러) 도외 둥앨 쎌왈 쇽 (중생의 고통을 없애기를) 4-1 싸쏙 남카 쎔젠 남망

중와 신두 빡뚜 녤최

첸뽀 딱발 메빠 실양

4-2 싸당 멘당 딱뚜 랑갈

추당 괸뾔 쎔잰 각메

메당 룽 씽 신뚜 탐제 기 쬐발 쇽

(흙과 물과 불과 바람) (약과 외딴 곳의 나무와 같이) (늘 모든 중생들이) (원하는 대로 끊임없이 누리기를)

5. 뎅뒤 미이 데링 쌀게 다니 릭당 꾄메 뇩빨

닥체 씨바 쌀게 쌔수 닥기 튄빼 쮠빼 미귤

데부 요 렉발 톱 릭쑤 께 다 귤테 찌내 꺙 래짬 때 릭 디라 데딸 자

(현재 나의 생에 과보가 있어) (지고한 인간의 생을 성취하였고) (오늘 부처의 종성으로 태어나니) (이제 부처의 아들이 되었네) (이제 나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종성에 어울리는 일을 하며) (허물없는 고귀한 이 종성을) (더럽히지 않도록 그와 같이 하리라)

당 양 이 쇽

(지대를 (허공과 (무량한 (다양한

비롯한 사대와) 같이 늘) 중생의) 삶의 바탕이 되기를)

*이 게송들은 모두 스승을 따라 세 번씩 반복하고 한국어로 그 의미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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