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판 공방
우리나라 단 한 곳
파주 출판도시
납활자인쇄공정
活版工房
출 판 사
주조 문선
인쇄
편집주간
정흥택
김찬중
박건한
식자
제책
대표
권용국
이청일
박한수
01 02
머리 말
글을 쓰고 말을 하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정보를 전달한다거나 권유를 한다거나 강요를 한다거나 등이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떼쓰지 않는 강요 아닌 강요를 요청한다. 인쇄술, 즉 금속활자인쇄술의 발달은 폭발적인 정보시대를 열었다. 지금 그 누군가 하지 않았더라면 잊혀지고 없어졌을 과거의 한켠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여기 있다.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최초로 발명한 금속활자가 그 어느나라보다 빨리 없어지는 이 시점에서 말이다. 그 중 몇몇은 구텐베르크가 최초 아니냐 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그보다 78년이 앞선 고려시대에 이은 조선시대까지 금속활자인쇄의 사용 및 발전이 이뤄졌다. 그 이후 사진식자 및 평판인쇄 등의 발달로 그 자리는 점점 잃어만 갔다. 2010년 현재 여러 사건, 사고를 돌이켜보면 꼭 새로운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물론 현재 인쇄술의 발달은 금속활자인쇄술에 비해 여러모로 효율적이다. 하지만 역사가 사라질 뿐만 아니라 금속활자만의 향기를 잃어간다는 입장에서는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닌 듯하다. 한옥이 좋은 예일 것이다. 불과 반세기도 안돼 서울을 비롯한 여러 도시는 한옥을 무너뜨리고 그 자리에 아파트를 세웠다.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의 진정한 모습들은 점점 사라지고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활판공방’은 그런 옛것이 꺼져버리는 불씨를 살리고 있는 현재 국내 유일한 금속활자의 하나인 납활자 인쇄소 겸 출판사인 것이다. 경제적 이득을 바랐다면 결코 결심하지 못했을 일이다. 이제 남은 것은 보존하는 일일 것이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관 심 과 애 정 만 이 필 요 할 뿐
활판공방을
직지심경
지금으로부터 670년 전인 1337년 청주 흥덕사라는 절에서 인쇄한 현존 세계
열 며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 불경인 <직지심경>을 가진 민족으로서 우리가 문화 민족임을 자긍하면서도 요즈음 우리 주변에서는 납 활자 인쇄본을 찾아보기 어려운 현실이 되어버렸습니다. 그것은 컴퓨터 인쇄로 말미암아 편리하고 효 율적인 인쇄 방식으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활판인쇄는 1960년대 후반이 전성기. 그 후, 대량고속인쇄가 가능한 오프 셋 인쇄나 전산조판 시스템 따위의 기술혁신의 진전, 숙련을 요하는 활판인쇄 기술자의 고령화, 젊은 근로자의 구인난 등에 따라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한 활 판인쇄. 그리하여 오늘날 활자는 대부분 고물상을 거쳐 쇳덩이가 되어버렸으 며, 활판인쇄기는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급속히 하나 둘씩 자취를 감추기 시 작하다가 지금은 거의 찾아보기조차 어렵게 되었습니다. 설령 활판인쇄기가 있다 하더라도 누구 한 사람 거들떠 보지 않는 시절이며, 따라서 전혀 가동되 지 않은 채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워 뜻 맞는 몇몇 인쇄출판 계 인사와 문인, 그리고 북 디자이너들이 금속활자 발명국의 후손으로서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활자문화의 전통을 계승하여야 한다는 소박한 꿈을 이루기 위하여 활판인쇄를 살려나가기 위한 작업을 하기로 손을 잡았습니다.
기성복이 아닌 맞춤복의 품위
오늘날과 같은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디지털 시대에 굳이 아날로그 시대로 거 슬러 올라가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편리하면서도 공허 한 면이 없지 않는 디지털 시대와는 달리 아날로그 시대는 인간의 피가 흐르 고 따뜻한 숨결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자책이 아닌 활판인쇄에 의 한 종이 책으로서의 구실을 다하려는 이 행위야말로 어쩌면 시대에서 퇴보하 는 것이아니라 서로 공존해 가면서 아니, 앞서가는 행보일지도 모릅니다. 지 난날 납 활자로 인쇄된 종이 책을 읽으면서 꿈을 이루고자 수많은 밤을 뒤척 였던 그 젊은 날의 추억에 다시 한번 흠뻑 젖어보기 위한 하나의 몸부림이어 도 좋을 것입니다.
디지털 시대에서 아날로그 시대로
활판인쇄는, 살아남기 위하여 결코 대량 생산, 대량 판매의 출판시장을 겨냥하 지는 않을 것입니다. 마구 쏟아져 나오는 기성화 대신 수제화, 기성복이 아닌 맞춤복의 멋과 품위를 고집스레 살리고자 하는 것이 소박한 꿈입니다. 03 04
아스팔트 길이 아닌 시골의 자갈길
을방공판활
활판인쇄는 밋밋하고 끝없이 지루한 아스팔트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마치 발 바닥 감촉이 유별난 시골의 자갈길을 걷는 것처럼, 종이책만이 갖는 특징을 살 려, 눈의 건강에도 좋을 뿐더러, 사색의 날개를 펴고 천천히 걸으면서 주변의 시골 풍광을 즐기는 느낌이 나게 할 것입니다.
그림 없는 그림책
활판인쇄는 시각적 효과를 거두기 위한 치밀하게 계산된 면적의 행간과 여백을 살리는 작업을 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끝없는 상상력의 세계로 파고들게 될 것 이므로 마치 그림 없는 그림책의 구실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우둘투둘한 엠보싱의 감촉
활판인쇄는 전통한지 등 수명이 긴 특수 종이를 개발하고 거기에 독특한 장정, 그리고 고풍스런 제책과 함께 적절한 폰트의 활자가 어우러져 매우 탄력적이 고 다이내믹한 요철(凹凸)감에 의한 우둘투둘한 엠보싱의 감촉을 느끼게함으 로써 한껏 가독성 높은 점자의 기능도 갖추게 될 것입니다.
문학성 짙은 대표작만을 엄선 수록
작고 문인의 대표작을 비롯하여 현재 활동중인 문학인의 작품 중에서 작가가 스스로 뽑은 작품만을 단행본으로 엮음으로써 모름지기 대표작 모음의 구실 을 하게 될 것입니다. 대량 생산과 판매보다는 오직 독자에게는 오래도록 사랑 받는 애장본으로서, 저자에게는 후손에게 물려줄 보관본으로서 손색이 없도록 소량의 책만을 발행할 것입니다.
2008. 7.
활판공방 사람들
박건한 (시인, 활판공방 편집주간) 이근배 (시인,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정병규 (북디자이너, 정디자인 대표) 이기웅 (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 박한수 (북디자이너, 시월출판사 대표)
열 며
활판 공방
자모
주조 조판 인쇄 제책
납활자
만들기
주조
문선
과정 조판
교정
인쇄
지형 만들기
제책
05 06
최정순 崔貞淳
최정순(崔貞淳)은 최정호와 함께 한글 글꼴에 있어 양대 산맥을 이루는 서 체 디자이너이다. 활자로 된 표준 글씨체를 국내 최초로 개발한 바 있으며 가장 많은 서체를 개발하여 보급한 장본인임과 동시에 우리나라 최초의 자모 조각가 이자 자모 원도 제작자이다.
파주 활판공방의 활자는 최정순 선생님의
글자의 형태에 있어 최정순의 서체는 교과서 및 신문서체가 그의 전문분야
원도로 만든 것이다.
였던 것에서 볼 수 있듯 조형성 뿐 아니라 가독성에 큰 비중을 두었다. 무엇보다
박한수 대표가 공방을
도 그는 본문용 서체로서 일반인들이 읽고 이해하기 쉬운 서체 개발에 힘썼다.
세울 당시 전국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활자와 활판인쇄 기계를 찾다가 운 좋게 손에 넣은 활자가 바로 최정순 선생님의 활자였다.
글자체 개발방식을 보자면 최정순은 종이에 그려서 만드는 원도에 의한 방법으 로 제작하였는데, 활자를 조각해 글꼴을 만든 최정호와는 다른 방식이었다. 주력 분야에 있어서도 최정호가 출판활자에 힘쓴 데 반해 최정순은 주로 신문활자를 다뤘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한국일보>, <경향신문>, <중앙일보>, <서울신문>, <동아일보>, <부산일보>를 비롯하여 그가 제작한 신문서체는 다수에 이른다. 그 가 개발한 서체는 국내 대부분의 신문사에서 변형, 혹은 원문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최정순이 현재까지 50년 동안 개발한 서체가 31만여 자, 신문사 서체를 수 정, 감수한 자수가 90만여 자, 신문사 디스플레이용 비트 맵 폰트를 수정, 감수 한 자수가 380만 자에 이르러 양적으로 가장 많은 일을 해냈다. 최정순의 서체 개발의 여정은 우리나라 한글 서체계의 그것과 맥을 같이 해왔다. 그는 6.25전쟁 이후 국내 최초로 일본제 벤톤 자모 조각기와 사진식자기를 도입 하여 국정교과서를 제작하였고, 1980년에 이르러서 전산사진식자기가 등장한 후에는 컴퓨터를 이용한 글꼴 개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등 시대에 따른 기술 의 변화에 부응하면서 오직 한글 서체개발에만 전념해왔다.
문사 디스플레이용 비트맵에 이르러 규모와 수적인 면에서 그를 따라갈 자가 없다.
최정순의 업적은 그가 개발한 광대한 서체의 수가 지니는 양적 중요성 외에 현대 우리나라의 한글꼴의 기본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이같은 공로로 대한인쇄공업협동조합연합회 표창을 비롯해(1969년) 일본 료비사 주최 ‘제1회 아시아 올림피아드 80’에서 외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은상을 수상하
였다. 이외에 1983년 한국신문협회의 한국신문상수상, 1991년 대한인쇄문화협 회의 인쇄문화상 기술부문상 수상과 함께 대한민국 헌법규정에 의거 활자서체 가로는 최초로 1995년에 옥관문화훈장을 받았다. 07 08
최정순 원도
최정순 약력
1917년 강원도 이천군 안협면 출생 1954년 일본에서 활자 서체 설계법과 자모 조각기계 조작법 연수. 국정교과서(주)에서 한글교과서 서체 개발, 전국 주요 신문사와 인쇄소 서체의 자모 원도, 전산 사식 원도 개발 1962년 한국일보 자모조각 활자 개발. 이후 65년 중앙일보, 89년 내외경제신문 등 다수의 신문활자 개발. 1980년 일본 료비사 주최 ‘제1회 아시아 올림피아드 80’은상 수상 1983년 한국신문협회 한국신문상 수상 1988년 서울시스템(주) 한국서체개발연구원 명예원장 1991년 문화체육부 본문 바탕체와 본문 돋음체 개발, 대한인쇄문화협회의 인쇄문화상(기술부문) 수상 1992년 제목돋움체 개발 1993년 제목바탕체 개발 1994년 옛 한글바탕체 개발, 한국 최초로 신문 본문용부터 제목용까지 개발 1995년 대한민국 헌법규정에 의거 활자서체가로서는 최초로 옥관문화훈장 받음
인터뷰
요즘은 데이터를 출력해 바로 확인하는 이른바 ‘필름리스’시대다. 이렇게 간편한 시스템을 갖춘 현재에 더디고 손이 많이 가는 활판 인쇄를 고집하는 이유는?
09 10
인터뷰
박한수
도구성에 대한 문제다.
디자인은 여태 도구를 소홀히 대했다. 남들이 모두 쓰는 컴퓨터로 작업하면 결국 결과물도 비슷하다. 어떤 도구로 작업하느냐가 중요하다. 활판 뿐만아니라 실크 스크린, 핸드페인팅, 컴퓨터 프로그램 등 도구마다 고유한 느낌과 아웃풋이 있다. 내겐 디지털에서 나올 수 없는 활판 인쇄만의 맛이 중요했다. 조형 감각을 뽐내는 게 아닌 활자와 종이, 그 자체의 담백한 맛을 살리는 것이 활판 인쇄의 매력이다. 이는 하이터치의 개념이다. 손의 개입은 기성품에서 나올 수 없는 결과물을 가능케 한다. 책은 원본을 복제하는 제품이다. 그 원본의 중요성을 인식한 시대가 온 것 같다.
인터뷰
박한수
활판공방대표
포토샵의 도입으로 디자이너의 일이 간소화 되었다. 활판 인쇄에서 디자이너는 어떤 역할을 했는지?
11 12
인터뷰
박한수
활판공방대표
시월출판사대표
초기 활판 인쇄 시대에 디자이너는 서체 디자인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지금 서체 디자이너보다 본질적인 부분에서 더 치밀하게 연구했다. 외부 요소나 소스를 이용해 디자인할 수 없으니 활자 그 자체에 집중한 것이다. 활자, 행간, 자간, 여백만 가지고 디자인을 하면 엄격하고 금욕적인 디자인이 나올 수밖에 없다. 현재 백지 상태에서 명조나 고딕체를 디자인하라고 했을 때 전체적인 균형을 맞추는 디자이너는 아쉽게도 없을 듯 하다. 컴퓨터로 서체 굵기에 변화를 주고 세리프나 추가하면서 디자인을 바꾸는데,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구조와 기초가 탄탄해야 새로운 것이 나올 가능성도 크다. 현대 디자이너는 이 기초가 부족하다.
활판 공방
시인 100선
1
2
3
1 신달자 <바람멈추다> 2 이육사 <광야에서 부르리라> 3 오세영 <수직의 꿈> 내지. 4 한지 두 겹을 사용해 비치지 않으며, 올록볼록한 요철감을 느낄 수 있다. 왼쪽부터 허영자 <얼음과 불꽃>, 정진규 <우리나라엔 풀밭이 많다>, 김종해 <누구에게나 봄날은 온다>, 오세영 <수직의 꿈>, 100% 수작업으로 단 1000부만 찍어낸 시집은 인쇄 장인의 정성스러운 손길을 느낄 수 있다.
13 14
4
관련 용어
고딕체
바탕체
자모(字母)
돋보임의 효과가 큰 활자체로
붓의 필력이 다듬어진 한글
한 개의 음절을 자음과
네모틀에 맞춰 만들어졌으며
글자꼴의 대표적인 활자체로
모음으로 갈라서 적을 수 있는
줄기의 굵기 변화나 가로줄기
‘명조체’라 부르던 것을
낱낱의 글자. 자음자모와
대 세로줄기의 차이도
글자체 용어 순화안에서
모음자모와 쌍자모와 복자
거의 없다. 그리고 곡선을
‘바탕체’로 바꿔 사용할
따위가 있다.
제외한 글자의 줄기는 수직
것을 권장하였다.
수평으로 이루어져 있다.
자소(字素) 벤톤자모조각기
한 언어의 문자 체계에서
용어
공목
(Benton Matrix Cutting Machine)
음소를 표시하는 최소의
참고자료
글이 없는 공간에 쓰임.
활자 자모 또는 펀치(punch)
변별적 단위로서의 문자 혹은
자모를 직접 금속 재료에
문자 결합이다.
<한글+ 한글디자인+
글자체
조각하는 기계. 1954년
디자이너>
방법과 재료 등에 관계없이
국정교과서(주)에 국내 최초로
쪽자
이용제 저,
표현되어 있는 글자의 생김새를
일본제 벤톤 자모조각기
없는 글자를 만들기 위하여
2009년
가리킨다. 그리고 글자꼴은
네대가 도입되어 그해부터
둘 이상의 다른 활자에서
글자의 모양 그 자체에 대한 것을
국정교과서에 이른바
일부분씩 따서 한 글자로 만들어
말하며 한 벌의 글자들 사이의
벤톤포인트 활자가 사용.
쓰는 활자이다.
글자꼴의 유기적인 관계에 대한
서체(書體)
주조(鑄造)
의미는 없다.
글자체가 글자의 스타일을
납으로 자모를 일일이
말하는 반면 글씨체는 손으로
만드는 작업.
공통적인 연관성이나 전체
낱자
쓴 글자의 스타일을 말하는
하나의 닿소리 글자나 홀소리
것이라고 할 때 서체는 글자체
제책(製冊)
글자. 낱내를 나타내는 낱낱의
보다는 글씨체가 더 가깝다.
인쇄물을 철사로 매거나
글자. 낱낱의 일정한 닿소리
서체라는 말은 시대적으로
접착풀로 붙인 뒤 책으로
글자와 홀소리 글자가
옛 활자체나 글씨체를 의미할 때
만들어내는 과정.
모아지면 하나의 낱내글자를
쓰는 것이 적당하다.
이룬다.
조판(組版) 수동주조기
활자나 공목으로 활판을 짜는
돋움체
납으로 자음과 모음을 일일이
작업, 현대엔 편집디자인이란
광고 제목, 책 표제, 본문 제목
만드는 데 쓰임.
말로 좁은 의미를 나타냄.
글자체 용어 순화안에서
연판
지형
‘돋움체’로 바꿔 사용할 것을
활판의 복제판.
종이로 된 활자판 모형.
등에 사용되었던‘고딕체’를
권장하였다. 원도(原圖)
활자체
명조체(明朝體)
글자의 원형, 연필로 형태를
활자 한 벌 전체에 공통적으로
중국 명나라 시대에 서예체로
그림, 윤곽 정리, 잉크로 속을
나타난 형식(스타일)에 대한
유행하던 한자 해서체의 특징을
채워 넣음.
것을 전제로 활자 모양을
본떠 만든 활자체를 명조체라고 한다.
말할 때 사용한다. 인쇄(印刷) 납 활자로 만든 글자의 틀
활판인쇄(活版印刷)
문선(文選)
(지형)을 기계에 넣고 압력을
글자가 요철로 새겨진 납활자를
만들어진 글자와 문장을
가해 책을 찍어내는 과정.
종이에 눌러 찍어내는 인쇄기법.
맞추는 작업.
活版 工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