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05 EPV_Painting Matters [m fi 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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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PAINTING

MATTERS 어떤 인생은 성공이나 가능의 여부와는 무관하게 과정 자체가 우주인 경우가 있다. 어떤 예술도 그렇다. 필립 반덴버그의 예술은 그의 삶, 그 자체다. WRITER YOO BYUNG SEO

필립 반덴버그 Philippe Vandenberg의 작품 대다수는 그림 위에 그림을 그리는, 이미 존재하는 레이어 위에 새로운 레이어를 더하는 이른바 ‘리페인팅 Repainting’ 기법으로 완성된다. 리페인팅으로 작업한 평면은 서로 다른 두 개의 의미를 갖는데 하나는 선형적 시간 흐름 에 있어 앞서 등장한 사건을 덮어버리는 은폐의 의미 와, 이미 벌어진 일에 개입하는 이른바 수정과 보완의 의미다. 본래 페인팅이라는 것은 연속적 층위의 구축 과 증축으로, 이미 그 자체가 리페인팅의 요소를 포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법이 형식적으로 드러날 때 우리는 여기서 작가의 고뇌랄지, 고통이라고 할지, 혹은 그와 비슷한 여러 상념을 읽어내게 된다. 즉 중첩 된 연속한 그림의 지층은 우리를 불편하게 하고 경우 에 따라서 이러한 불편은 우리가 그림을 바라보는 것 이 아닌, 그림이 우리를 바라보는 듯한, 그래서 마치 작 가가 똑바로 우리 앞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은 착시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반덴버그의 세계에 서 리페인팅의 전개는 몇 가지 다른 패턴으로 진행되 는데, 때론 그림의 최종 평면이 이전의 사건을 모두 지 워버리거나, 이전 사건을 순수한 의미의 배경으로 쓰 거나 하는 식으로 차이를 둔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하나의 세계를 창조한다는 의미이기도 한데, 회화에서 의 창조는 궁극적으로 파괴를 동반한다. 즉 눈앞에 펼 쳐진 순수한 의미의 스크린, 백색 창을 상으로 파괴함 으로써 페인팅이 전개되기 때문에 작가의 삶은 창조와 파괴라는 상반된 이중 책무로 둘러싸인 괴롭고 두렵고 더러는 고통스러운 일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회화가 전개에 전개를 거듭함에 따라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올 수 없는 비가역적 전환의 계속적인 국면이기 때문이 작품을 바닥에 깔아놓고 멀리서 넌지시 바라보고 있는 필립 반덴버그. 그는 사람들이 그것을 밟고 지나가길 원했을까? 아니면 그것들을 발견하고 당황해 움츠러들길 원했을까? 사진은 반덴버그 사후에 발견된 아카이브에서 인용.

다. 즉 그림은 원래의 자기 모습을 완전히 투명하게 감 춰야만 완성되는 양가적인 속성 위의 현상이다. 반덴버그의 평면에서도 그림은 세상의 일부로, 세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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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울리케 마인호프의 초상화 연구’ 연작 시리즈 중 하나. 아래 ‘모두를 제거하라’는 반덴버그 말년의 양식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한 문장이다.

일부는 그림 속으로 서로 반대의 방향으로 양쪽을 비 추다 마침내 녹아 들러붙게 된다. 여기서 반덴버그는 둘을 분리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그려서 안 되는 것 들은 글씨로 기입하며, 글씨로도 안 되는 것들은 완전 히 덮어버린다. 그래도 해결되지 않는 것들은 계속 그 려나간다. 예를 들어 자화상이 그렇다. 상, 이미지는 그

위 바닥에 놓인 ‘울리케 마인호프의 초상화 연구 Studie Voor Een Portret Van Ulrike Meinhof’ 연작 시리즈. 반덴버그는 1998년부터 2000년까지 1970년대 독일(서독) 사회를 뒤흔든 ‘바더 마인호프 그룹 Baader-Meinhof Gang’의 리더 중 한 사람이었던 울리케 마인호프를 다 룬 연작 시리즈를 제작한다. 마인호프는 1972년에 검거되어 수감 생활을 하던 중 1976년 돌 연 숨진 채 발견되었으며 당시 자살로 발표되었으나 죽음의 배후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사진은 반덴버그 사후에 발견된 아카이브에서 인용. 아래 반덴버그는 종종 사진 위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마치 물감이 튄 듯한 얼룩과 두꺼운 질감의 마티에르는 반덴버그 말년 의 양식에서 교차적으로 나타나는 형식적 특성 중 하나다.

리면 그릴수록 해체 분해되고 그럴수록 본질에 가까워 진다는 믿음과 만나게 된다. 실제로도 그럴 수 있다. 하 지만 이는 무서운 체험이다. 현대 문화에서 본다는 것 은 권력, 힘과 연관되어 있고 힘은 즉 폭력이다. 신표현 주의라는 시기적, 지리적, 양식적 유사성 말고도 반덴 버그를 안젤름 키퍼와 비교하게 되는 것은 키퍼와 반 덴버그가 모두 유사한 주제, 그림- 폭력- 죽음의 문제 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키퍼의 그림이 증거, 선언, 강력한 주장처럼 읽혀질 때 반덴버그의 그림은 평면이 아닌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사연이 응축된 사물, 물질처 럼 다가온다. 어쩌면 이는 두 사람이 완전히 다른 방식 을 택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반덴버그는 2009년 에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국내에 최초로 소개되는 반덴버그의 작품은 20대에 화이트큐브의 전속이 되어 첫 번째 개인전을 완판해 전설이 된 벨기에의 화가 쿤 반덴 브룩이 큐레 이팅한 반덴버그의 모노크롬으로 채워진다. 때론 은유 나 상징보다 직유나 제유가 훨씬 더 명쾌한 진실, 넓은 바다를 보여줄 때가 있다. 반덴버그의 회화가 그러한 예 중 하나다. 전시는 4월 27일부터 5월 28일까지 갤 러리 바톤에서. EDITOR 정세영 자료 제공 갤러리 바톤 DESIGN 신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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