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도스 기획_정진아'바람걸음'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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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걸음 바람걸음 정진아

정진아


바람걸음 정진아 개인전 2015. 9.24 -10.6


작가언어

작업은 작품을 만드는 일에서 떠나 관계의 위치를 달리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여정(旅程)의 장소, 위치, 관계가 변화하고 모든 주어, 개체, 배경도 바뀐다. 변화 속에서 소생하는 그들의 상응(相應)이 펼쳐진다. 자연 속 요소에서 비롯한 형상은 화면 위에 덮이고 가려져서 생경한 광경을 만든다.

형상을 지닌 모든 개체들은 순서와 위치를 바꾸면서 자연으로 돌아간다. 위치를 바꾼다는 것은 매 순간 다른 상황과 삶 속에서 유동적으로 변화하는 지점을 말한다. 그들의 만남과 헤어짐은 만나기 전에도 만남 이후에도 살아있는 접점으로 연결된다. 한 표현자의 인식을 바탕으로 이들의 접점은 일순간에 연결된다. 자연물도 변화하고 그를 바라보는 자연물도 동시에 변화한다. 자연을 움직이는 힘과 그 양면은 보이는 것 이 일부가 되고 인식하는 순간으로 가득할 때 그 자체만의 다각적 측면으로 드러나게 된다. 이는 실안(實眼) 그 이상의 부분을 보고 심안(心眼)으로 조응(照應)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응축된 자연물의 관계는 여백으로 긴밀하게 연결된다. 여백과 함께 작품에 주로 등장하는 물결, 바람, 연기 는 사물을 변화시키는 매개물로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변화의 시간과 변화가능성을 함축한 등장물이다. 허상으로 보이는 실체와 물질, 그 관계를 둘러싼 바람의 층 이 길게 이어지는 두루마리형식의 작품 속에서 사라지고 나타나면서 이어진다. 끊임없는 변화의 풍경은 처음과 끝이 본래 하나였던 것처럼 흐름의 연속선 상에서 처음과 끝이 맞물린다. 단편으로 보이는 풍경은 드로잉의 여러 층이 겹치면서 연차적 순서와 달리 변화가 쌓인 정경을 펼친다.

긴 영겁의 변화와 우리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찰나의 시간 사이에서 변화를 일으키는 무형(無形)과 여정을 같이한다. 우리가 딛고 있는 이 지점과 형(形)이 없는 것 사이에 충만한 관계를 찾는 것에서 작품을 맞는 관찰자에게 심안으로 본 자연형상들이 들어오길 기대한다.


언덕에서 들은 것은 저 편 어디쯤. 적나라하게 보이는 정경(情景)은 분명하게 받아들여야할 것처럼 유유히 다가온다. 다른 이의 눈(目)을 빌려 볼 필요 없이 오롯이 실재(實在)를 찾아가는 중이다.

<정경情景>, 캔버스에 아크릴, 91cm × 117cm, 2015



<바람의 윤곽>(부분), 순지에 연필, 먹, 금분, 63cm × 870cm, 2014


눈(目)의 직관이 사라진 후 변화무쌍한 백(白)만 남았다.

눈(雪)이 덮인 바람은 어제 있었다고 하지만 흰 눈에 덮여서 바람을 만나지 못했다. 어제 만난 이가 누구였냐고 돌 위에 앉은 눈이 돌에게 물었고 허공에 산자락은 허심하게 걸터앉았다. 흰 눈(雪)이 바람을 안았다. 눈 위에 앉은 바람은 하얀 돌이 있는 곳으로 넘어 갔다. 가볍고 찬 기운에 깔려 하얀 돌은 그림자를 밀어내고 앉았다. 돌고 돌아 간 그늘 그늘이 돌이고 돌이 그늘이라 걷고 보니 제자리 형(形)은 잡히지 않는다.


한 가락의 물결 위에 다섯 가락의 숲은 서로 얽혔다. 수평의 숲과 마주한 눈보라가 선명하게 스쳐가던 비취색 산을 안고 돌았다. 눈보라는 자신의 껍질이 언제 저렇게 쌓일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 사이 바람이 앉았던 자리는 웅덩이가 메웠고 물이 건너갔다.

어인 까닭에 되살아난 한 장 바람이 잠깐 돌아서면 돌아왔다. 모두가 자리를 넘어왔다. 언젠가 이 자리에 있었던 저 자리는 다른 이가 아무렇지 않게 바라봤던 자리를 내놓고 바닥을 위로 두고 걷는다. 기준을 중심으로 흩어질 때 기준은 어디인가 여기 딛고 있는 지점에서 수평 수직을 지운다. 산자락은 수평을 가늠한다. 산등성이를 기준삼아 안개가 층을 잡았다. 네가 딛는 점을 기준으로 삼기에는 지평이 좁다.


너 와 나의 영역이 없는 지금이 없는 지금 썰물이 밀물이 되고 밀물이 썰물이 될 때 바람이 쌓인 언덕이 길을 열었다. 바람 안으로 들어온 먼지 같이 고동색 마른 가지 주위를 돈다. 주름진 고동색 가지는 그 속에 단단한 공상(空想)을 품었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 갈 수 없어서 응어리는 뭉쳤다가 평지가 되기까지 어둠을 깎았다. 끝없이 강 밑에 숨죽이고 있다가 지평에서 수평을 가늠할 즈음 그 떨리는 접점과 걷는다.

<바람걸음 - 층>, 순지에 흑연, 아크릴, 분채, 백토, 금분, 은분, 65.5cm × 96cm, 2015



<바람걸음 - 춤>, 순지에 흑연, 아크릴, 분채, 백토, 금분, 은분, 65.5cm × 96cm, 2015 <바람걸음 - 산>, 순지에 흑연, 아크릴, 분채, 백토, 금분, 은분, 65.5cm × 96cm, 2015 <바람걸음 - 빛>, 순지에 흑연, 아크릴, 분채, 백토, 금분, 은분, 65.5cm × 96cm, 2015



<바람걸음 - 반영>, 순지에 흑연, 아크릴, 분채, 백토, 금분, 은분, 65.5cm × 96cm, 2015 <바람걸음 - 휘이>, 순지에 흑연, 아크릴, 분채, 백토, 금분, 은분, 65.5cm × 96cm, 2015 <바람걸음 - 절벽>, 순지에 흑연, 아크릴, 분채, 석채, 백토, 은분, 65.5cm × 96cm, 2015


<수평 산>, 캔버스에 아크릴, 35.5cm × 35.5cm, 2015


정진아 鄭眞亞 jina1078@naver.com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 일반대학원 동양화전공 수료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 동양화전공 졸업

개인전 2015 바람걸음, 갤러리 도스 2014 Unseen Movement, 갤러리 이즈

단체전 2015 Portfolio for Future展,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2014 화양연화展, 성북예술창작터 2013 이화소동展, 조선화랑 채연展, 이화아트센터 문전성시展, 공평아트센터 2012 Harmonia展, 모란미술관 청춘진경展, 겸재정선기념관 제 5회 전국 미술대학 우수졸업 작품展, 갤러리 각 2009 꿈을 꾸다展, 화봉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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