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래당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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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예술공유지문래당1063

월간

문래당 2017. 12. 00호

문래당에 찾아온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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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문래당은 버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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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문래당은 서울 문래동

개인이 들 수 있을 만큼 작품 을 싣고 자신의 호흡대로 버 스를 이용합니다. 손님이 누가 탈지는 알 수 없으며 아무도 타지 않더라도 만원이 되더라 도 버스는 규칙대로 운행됩니 다. 그러므로 기다리는 분의 소 식을 만날 수 없기도 해요.

에 있는 인문예술공유지 문래 당1063의 소식을 비롯해 문래 당 내의 사람들이 한 달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어떤 작품을 만들어가고 어떤 것을 인상 깊 게 보았는지를 공유하는 열린 잡지입니다.

월간 문래당은 버스시스템처 꼭 만나야 한다면 미리 럼 운영되고 있어요. 정해진 그 버스를 타라고 시간을 두고 원고를 마감하고 말씀해주세요. 시간이 되면 함께 다음 달로 떠납니다.

moonraeda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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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래당에 찾아온 겨울

6-7

그냥 찾아온 그냥이

8-15

소소한 한자 그림 연구회

16-17

일곱詩모임

18-19

시 - 나, 그것, 너

20-21

이소의 소소한 아포리즘

22-27

마라도 아저씨外2

28-29

고드름의 HERESCOPE

30-31

용신선의 여라일기

32-37

꿈길

38-45

인어공주의 편지

46-47

류재인 자서전 中

48-49

一月一書

5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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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차하신 분들을 소개합니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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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래당에 찾아온 겨울 문래당에도 겨울이 찾아왔습니다. 바람이 새지 않게 방풍막 작업을 마치고 난로들을 꺼냈죠. 그리고 인터넷 쇼핑몰로부터 코타츠라는 문물이 보급되었습니다. 문래당에 방문할 분이 있다면 코타츠를 사이에 놓고 따뜻한 담소 나누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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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찾아온 그냥이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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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래당에 그냥 찾아온 그냥이를 생각합니다. 근처의 길고양이들이 식사 한끼를 해결할 수 있도록 문래당에서는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고 있는데 건물 3층에 있는 문래당까지 찾아온 고양이는 처음이었어요. 이름을 무얼로 지을까. 어슬렁 왔다 해서 슬렁이, 다른 이름은 무엇이 있을까 하다 고 양이 전문가인 이소 님께서 그냥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처음엔 밥만 먹고 가서 문래당 이름을 문래식당이라고 붙여도 된다는 말이 나왔고 글은 오지 않고 고양이만 온다고 해서 묘래당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된다는 말이 나 왔죠. 알고 보니 그냥이는 근처 다른 곳에서 정성스럽게 밥을 주던 길고양이였는데 다른 큰 고양이가 그곳에 나타나서 그 뒤로 소식을 알 수 없게 됐다고 해요. 다행히 별 탈 없이 문래당에 출몰해서 차츰 더 건강해지고 있습니다. 겁이 많은 고양이라 아직 누구도 만질 수 없어요. 길고양이는 사람에 대한 경계가 어 느 정도 있어야 생존 확률이 올라갑니다. 그러니 그냥이 옆에 너무 다가가지 마시고 멀리서 응원해주세요. 이 계절 또 다른 고양이들이 무사히 겨울을 지나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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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소 | 중세문학 연구자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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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밥을 주시던 분들은 그냥이를 예쁜이라고 불렀대요. 예쁜이는 문래당에 와서 그냥이가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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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리 | 생활속의 일상과 비일상을 캐치하여 감정이 흐르는 그림을 그립니다. instagram @sardineee sardine88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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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소 | 중세문학 연구자

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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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한자 그림 연구회 한자가 지닌 회화적인 속성에 주목해 한자와 디자인을 배우고 새로운 창작 방법을 모색하는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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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詩모임 격주 금요일 7시마다 각자가 소개하고 싶은 시를 낭송하는 모임이에요. 꼭 시가 아닌 시적인 것을 나누어도 되 는데, 산문, 노래 가사를 가져와도 되고 춤을 춰도 됩니다. 시간을 정해 삶에 대 한 이야기도 나누고 맛있는 것도 먹으 면서 어떻게 하면 좀 더 의미 있게 살 아갈 수 있느냐를 이야기하는 자리이 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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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 - 김시습과 ‘자기 앞의 생’

나 그것 너 , ,

我生旣爲人 나 태어나 사람이 되어서도 胡不盡人道 어찌하여 사람 도리 다하지 못했나? 少歲事名利 어릴 때엔 명리 일삼았고​ 壯年行顚倒 나이 들어선 행동이 갈팡질팡했지 靜思縱大恧 고요히 생각하노라니 너무나 부끄러운 것은 不能悟於早 일찌감치 깨닫지 못했다는 것 後悔難可追 후회한들 돌이키기 어려워 寤擗甚如擣 잠만 깨면 방아질 하듯 심하게 가슴 쳤지 況未盡忠孝 더욱이 충효의 도리 다하지 못했으니 此外何求討 이 밖에 또 무엇 따지랴? 生爲一罪人 살았을 땐 한 명의 죄인이요 死作窮鬼了 죽어서는 궁한 귀신 되겠구나 更復騰虛名 다시금 이름에 대한 헛된 마음 솟아오르니 反顧增憂惱 돌이켜보면 근심과 번뇌만 더할 뿐 百歲標余壙​ 나 죽은 뒤 무덤에 푯말을 세운다면 當書夢死老 마땅히 ‘꿈꾸다 죽은 늙은이’라 써야 하리 庶幾得我心 그렇다면 내 마음을 거의 이해한 것이니 1) 千載知懷抱 천년 뒤에도 이내 회포 알아주는 이 있으리라

2. 나와 그것 - 산다는 것, 부모를 먹거나 죽이거나 くらし

산다는 것

안 먹고는 살 수가 없다. 食わずには生きてゆけない。 밥을 メシを 푸성귀를 野菜を 고기를 肉を 공기를 空気を 빛을 光を 물을 水を 부모를 親を 형제를 きようだいを 스승을 師を 돈도 마음도 金もこころも 안 먹고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 食わずには生きてこれなかった。 부풀어 오른 배를 안고 ふくれた腹をかかえ 입을 닦으면 口をぬぐえば 주방에 널려 있는 台所に散らばっている 당근 꼬리 にんじんのしっぽ 닭 뼈다귀 鳥の骨 아버지의 창자 父のはらわた 마흔 살 해질녘 四十の日暮れ 2) 私の目にはじめてあふれるの獸の涙。내 눈에 처음으로 넘치는 짐승의 눈물.

1) 김시습(金時習), <나의 생(我生)>, 《梅月堂集》卷14, 한국문집총간 13, 318면. 2) 이시가키 린(石垣りん), 〈산다는 것(くらし)〉, 서경식, 《시의 힘》, 현암사, 2015, 270~27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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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예술공유지문래당1063 당나라 때 선승(禪僧)인 임제선사(臨濟禪師, ?∼867)는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祖師)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아라한(阿羅漢)을 만나면 아라한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친척 을 만나면 친척을 죽여라”(임제록(臨濟錄))라 하였다. 예수 또한 많은 군중이 자기를 따라오자 그들에 게 돌아서서 이른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라 하였다.(루카복음 14장)

3. 나와 너 - ‘한 마리의 개’에게서 ‘스승이자 친구’에게 3.1. “나는 어릴 때부터 ‘성인의 가르침’이 담긴 책을 읽었지만 ‘성인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몰랐고, 공자를 존숭했지만 공자에게 무슨 존숭할 만한 것이 있는지 몰랐다. 속담에 이른바 난장이가 키 큰 사람들 틈에 끼어 굿거리를 구경하는 것과 같아, 남들이 좋다고 소리치면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덩달아 그저 좋다고 따라 소리치는 격이었다. 나이 오십 이전까지 나 는 정말 한 마리의 개와 같았다. 앞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어대자 나도 따라 짖어댄 것일 뿐, 왜 그렇게 짖어댔는지 까닭 을 묻는다면, 그저 벙어리처럼 아무 말 없이 웃을 뿐이었다.”3) 3.2. “나는 스승과 친구는 원래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둘이 다르단 말인가?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친구가 곧 스승임을 모 르고, 사배(四拜)를 올리고 학업을 전수받은 사람만이 스승이라 여긴다. 또한 스승이 곧 친구임을 모르고, 그저 함께 사귀 어 친밀한 관계를 맺은 사람만이 친구라고 여긴다. 만약 친구라서 사배를 올리고 학업을 전수받을 수 없다면, 필시 그와 함 께 친구가 될 수 없고, 만약 스승이라서 마음속에 있는 말을 털어놓지 못한다면, 또한 그를 스승으로 섬길 수 없다. 옛날 사 람들은 친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으니, 그러므로 ‘우(友)’ 앞에 ‘사(師)’를 붙여서, 사귀는 친구를 스승으로 모시지 못 할 것이 없으며 만약 스승으로 모실 수 없다면 친구도 될 수 없음을 보여 주었다. 대체로 말해서, ‘사우(師友)’라고 일컫기 는 하지만, 결국 그 의미는 ‘우(友)’라는 한 글자뿐이다. 그러므로 친구라고 하면 스승의 의미가 그 안에 있다.”4) 3.3. 연암의 벗, 오륜의 최후방 友居倫季 오륜 끝에 벗이 놓인 것은 匪厥疎卑 보다 덜 중시해서가 아니라 如土於行 마치 오행 중의 흙이 寄王四時 네 철에 다 왕성한 것과 같다네 親義別敍 친(親)과 의(義)와 별(別)과 서(序)에 非信奚爲 신(信) 아니면 어찌하리 常若不常 상도(常道)가 정상적이지 못하면 友迺正之 벗이 이를 시정하나니 所以居後 그러기에 맨 뒤에 있어 迺殿統斯 이들을 후방에서 통제하네 三狂相友 세 광인이 서로 벗하며 遯世流離 세상 피해 떠돌면서 論厥讒諂 참소하고 아첨하는 무리를 논하는데 若見鬚眉 그들의 얼굴이 비치어 보이는 듯하네 이에 마장전(馬駔傳)을 짓는다.5)

김이소 | 중세문학 연구자 선함과 아름다움, 현실과 윤리의 사이에서 구름이 떠가고 물이 흐르듯, 기뻐하지도 두려워하지도 말고, 담담히. 3) 탁오(卓吾) 이지(李贄),〈성인의 가르침에 대한 짧은 머리말(聖敎小引)〉, 《분서(焚書)》 권2, “余自幼讀《聖教》不知聖教,尊孔子不知孔夫子何自可 尊,所謂矮子觀場,隨人說研,和聲而已。是余五十以前真一犬也,因前犬吠形,亦隨而吠之,若問以吠聲之故,正好啞然自笑也已。” 4) 이지(李贄), 〈황안의 두 스님을 위해 쓴 글 세 편(爲黃安二上人三首) 중 ‘참된 스승(眞師)’〉, 《분서(焚書)》 권2, “余謂師友原是一樣,有兩樣耶?但 世人不知友之即師,乃以四拜受業者謂之師;又不知師之即友,徒以結交親密者謂之友。夫使友而不可以四拜受業也,則必不可以與之友矣。師 而不可以心腹告語也,則亦不可以事之爲師矣。古人知朋友所系之重,故特加師字於友之上,以見所友無不可師者,若不可師,即不可友。大概言 之,總不過友之一字而已,故言友則師在其中矣。” 5) 박지원(朴趾源), 〈방경각외전(放璚閣外傳) 자서(自序)〉, 《연암집(燕巖集)》 권8, 한국문집총간 252, 1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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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의 소소한 아포리즘 1회 : 비워야 채운다 - 주먹과 도넛의 구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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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렬한 분노 속에서, 우리는 상대를 향해 주먹을 굳게 쥔다. 주먹은 강하다. 공격적이다. 그러나, 가장 강해보이는 주먹(바위)을 이기는 건, 결국 가장 약해보이는 ‘손바닥’(보자기)이다. 자신을 수비하는 약한 보자기는, 상대를 공격하는 강한 주먹을 이긴다. 주먹이 원초적이고 동물적인 본능이라면, 보자기는 문명적이고 성찰적인 윤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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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 감독의 <와호장룡(臥虎藏龍)>에서 리무바이(이목백, 주윤발)는 사매 수련(양자 경)에게 이렇게 말했다. “주먹을 꽉 쥐면 그 안에 아무것도 없지만, 주먹을 펼치면 그 안에 모든 것이 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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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의 소소한 아포리즘

인생도 ‘도넛의 구멍’과 같아서, 모자라기에 비로소 완성된다. 모자람에는 어떤 자유로움이 함께 한다. 나의 결핍이 오히려 나를 성숙시킨다. 나를 낮추고 비워야 당신 또한 내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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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의 소소한 아포리즘

펼친 주먹과 도넛 구멍의 역설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 45장을 참조한다. 大成若缺,其用不弊。 대성약결, 기용불폐 大盈若沖,其用不窮。 대영약충, 기용불궁 大直若屈,大巧若拙,大辯若訥。 대직약굴, 대교약졸, 대변약눌

크게 이룸은 부족한 것 같아야 그 쓰임에 병폐가 없고, 크게 채움은 텅 빈 것 같아야 그 쓰임이 곤궁하지 않다. 크게 곧은 것은 굽어보이고 크게 공교한 것은 졸렬해 보이며 크게 달변인 것은 어눌해 보인다.

김이소 | 중세문학 연구자 꼭 당신이 아니어도 되지만 꼭 당신이어야 하는 순간, 살아남은 자신을 자책하지 않고, 고양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거에요. 정성껏. 27


마라도 아저씨 인문예술공유지문래당1063

공항 공황

표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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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연두?

꿈 같은 연두 평화 연두 통일도 연두

억울해도 연두 2

아파도 연두 너의 발로 걷는 가파도 나의 파도 소리도 마라도 등대 홀로 지킨 난바다 너의 눈길로 점점 보는 나의 별 하나도 인사한다 반갑다

마라도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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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 아름 산길 너의 바깥 길도 산 길일까?

표광소

밤샘 마라 밤참 마라

호수 깊이 젖으며 저무는 산 너의 그림자는 나의 발목에 물든다

과식 마라 너무 울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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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아픈 너한테 얕지 마라 마라 마라 걱정 마라 나는 마라도 아저씨 마라도야 나를 삼촌이라 불러다오

담박한 너의 입맛으로 먹고 너의 말로 걷는 담 밖

공항 공황 너의 목소리 닫힌 공항은 적적 공황 돌아갈까 단박 너에게 갈까? 5

오도 가도 못하고 우두커니 나는 내가 아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너의 그림자 6

비행 기계는 인제, 서러워라, 너의 메아리를 싣고 이륙한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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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웨이 표광소 1

나무는 떠나고 싶어서 바람 불 때 흔들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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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듬지를 넘어

바람은 머물고 싶어서 나무 곁에 머뭇거릴까?

우듬지에서 우듬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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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하늘에 길을 낸다

뾰족뾰족 팽창하는

연두 새 움 가까스로 돋은 그 때부터 연두빛 길 나서는

쓸쓸한 저, 충만

스카이 웨이

나무는 살아 숨 쉬는 한 그루의 먼길 3

나무는 언제 길 떠날까? 4

내버려 둬라

북악산 떨기나무도 큰키나무도 바늘잎나무도 넓은잎나무도 샘 솟는 너처럼 자꾸 떠오른다 타오르는 불꽃처럼

나무는 벌써 산 길을 나섰거니와

한 뼘 또 한 뼘, 빛나는 북극성 길 느릿느릿 가고 있다 5

물은 계곡의 길을 가고 바람은 공기의 길을 가고 나무는 하늘의 길을

높거니 낮거니 달아오르며 간다 새 움 빛나는 연두 세움 그 순간부터 표광소 | 《월간 노동해방문학》(1991년. 신년호)에 시 <지리산의 달빛> 등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 시집《지리산의 달빛》등을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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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현달 삶이 저물 때만 보이는 빛들이 있다

같은 달을 보더라도 시간에 따라 모양 이 다르게 보이는 것처럼 어떤 시간이 되어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할 머니나 어머니가 본 것을 저도 볼 수 있는 때가 있을까요. 그분들이 저를 본 것처럼 저 또한 같은 눈으로 누군가를 볼 수 있는 때가 있을까요. 저에겐 보 이지 않는 것들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제가 만일 누군가를 이해 할 수 없다면 그 사람이 지나간 시간을 아직 지나가지 못했기 때문일 거에요.

산 그 사이에 특별함이 하나라도 있다면 그걸로 괜찮아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모든 순간이 특별하길 원해 요. 그러나 사람들은 언제나 특별할 수 없고 같은 높이로 지속적으로 사랑할 수도 없어요. 산 아래에 서 선처럼 고요히 누워있는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마음을 흔드는 것 하나만 있으면 돼요. 그 하나만 있다면 이미 만났거나 아직 만나지 못한 무엇도 모 두 괜찮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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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드름의 HereScope

나무그늘 떨어진 낙엽들이 나무그늘에 여전히 열려 있다.

어둠 나의 안의 불을 하나씩 끈다. 모두 꺼도 너의 어둠과 같아질 수 없다.

고드름 | 흘러가는 것들이 잠시 머문 순간들을 담아냅니다 jamdeun@gmail.com 31


인문예술공유지문래당1063 12월의 옛이야기

용신선의《여라일기》 글 + (약간의)그림 = 용신선

그러니까, 음… 예전에. 아니구나 ‘아주 먼 예전’ 언젠가 말입니다. 덩치 큰 사내가 훌쩍…은 아니고 어떤 무리와 함께. 어딘가 여행을 다녀왔다고 해요. (다시) 그러니까 이건 그… 무리에 속했던 목소리 큰 사내의 여행을 담은 글 그리고 그림… 정도가 되겠습니다. 각설(却說)하고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합 니다. ◆◆◆ ◆◆◆

(덜컹덜컹 덜컹덜컹.) 다음역은 “문래, 문래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아, 편의점에 들러 커피를 사야지. 아오 춥구나. 입김 뿝어나오는거 봐. 가만있자 내가 마실 만한 커피가… 이천원입니다. 멤버쉽카드 있으신가요? 아 됐습니다. 어, 잠시만요. 먼저 좀 지나가겠습니다. 목소리가 걸쭉하네…음? 덩치도 산만 한데? 양보해야지. (툭!) 어라? 이봐요. 뭔가 떨어졌어요. 이봐요! 아니, 무슨 급한일있나. 덩치도 큰 양반이 칠칠맞 게 이게 뭐야. 책같은데? 《열하일기(熱河日記)》? 이 뭐야? 일기장인가? 추우니까 문래당 가서 읽어야지. (딸랑딸랑.) 형님 저 왔습니다요. 어 왔는가 용신선. 난 좀 외출좀 하고 올게. 네 형님. 음… 종이가 너덜너덜한데… 어디,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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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일기장 〈도강록(渡江錄)〉 1780년 음력6월 24일 ~ 7월 9일의 페이지

○“아침에 일어나 창을 열고 보니, 짙은 구름이 꽉 덮였고 빗기운이 산에 가득했다. 소쇄가 끝 나자 행장을 정돈하고, 가서와 모든 곳의 답장을 손수 봉하여 파발의 편에 부치고 나서, 아침 죽을 조금 마시고, 천천히 관에 이르렀다. 모든 비장들은 벌써 군복과 전립을 갖추었는데, 머 리에는 은화 · 운월을 달고 공작의 깃을 꽂았으며, 허리에는 남방사주 전대를 두르고 환도를 찻으며, 손에는 짧은 채찍을 잡았다. 그들은 서로 마주 보고웃으면서, 「모양이 어떻소.」 하며 떠든다. 그 중에 노참봉은 첩리를 입었을 때보다 훨씬 우람스러워 보 인다. 정진사가 웃음으로 맞으면서, 「오늘이야 정말 강을 건너게 되겠죠.」 하자, 노참봉은 옆에서, 「이제 곧 강을 건너게 되었답니다.」 한다. 나는 그 둘에게, 「옳지 옳아.」 했다. 거의 열흘 동안이나 관에 묵어서 모두들 지루한 생각을 품어 훌쩍 날고 싶은 기분이다. 가뜩이나 장마에 강이 불어서 더욱 조급하던 참에 떠날 날짜가 닥치고 보니, 이제는 비록 건너지 않으려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멀리 앞 길을 바라보니, 무더위가 사람 을 찌는 듯하다. 돌이켜 고향을 생각하매 운산이 아득할 뿐 인정으로서는 이에 이르러 서글픈 채 후퇴할 의사가 싹트지 않을 수 없었다. 이른바 평생의 장유라고 하여 툭하면 「꼭 한번 구경을 해야지.」 하고, 평소에 벼르던 것도 이제는 실로 둘째에 속할 것이고, 그네 들의, 「오늘이야 말로 강을 건너야지.」 하면서 떠드는 거도 결코 좋아서 하는 말이 아니고, 곧 무 가내의 뜻일 게다. 역관 김진하는 늙고 병이 더치어서 여기서 떨어져 되돌아가게 되자, 정중 하게 하직하니 서글픔을 금하지 못하였다. 조반을 먹은 뒤에, 나는 혼자서 먼저 말을 타고 떠 났다. 말은 자줏빛에 흰 정수리, 날씬한 정강이에 높은 발굽, 날카로운 머리에 짧은 허리, 더구 나 두 귀가 쫑긋한 품이 참으로 만 리를 달릴 듯싶다. 창대는 앞에서 경마를 잡고 장복은 뒤에 따른다. 안장에는 주머니 한 쌍을 달되 왼쪽에는 벼루를 넣고 오른쪽에는 거울, 붓 두 자루, 먹 한 장, 조그만 공책 네 권, 이정록 한 축을 넣었다. 행장이 이렇듯 단출하니 짐 수색이 비록 엄 하단들 근심할 것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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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조금 뒤에 장복이 길 옆 한 작은 일각문에 버티고 서서 위아래를 기웃기웃 바라보더니 이윽고 둘은 삿갓으로 비를 가리며 손에는 조그만 오지병을 들고 바람나게 걸어 온다. 알고 보니 둘이 서 저희들 주머니를 털어서 돈 스물여섯 푼이 나왔는데, 우리 돈을 갖고는 국경을 넘지 못하는 법이었으나 그렇다고 길에 버리자니 아깝고 해서 술을 샀다 한다. 나는, 「너희들 술을 얼마나 하느냐.」 하고 물었더니, 둘은, 「입에다 대지도 못하옵죠.」 하고 대답했다. 나는, 「에이, 옹졸한 녀석들이야, 어찌 술을 할 줄 알겠니.」 하고 한 바탕 꾸짖곤 했다. 그러나 나는 한 편으론 스스로 위안하는 말로, 「이도 먼 길 나그네엔 한 도움이 되겠구료.」 하고, 혼자서 잠자코 잔 부어 마실 제 동쪽으로 용만 · 철산의 모든 메를 바라보니 만첩의 구름 속에 들어 있었다. 이에 술 한 잔을 들이부어 문루 첫 기둥에 뿌려서 스스로이번 길에 아무런 탈 없기를 빌고, 다시금 한 잔을 쳐서 다음 기둥에 뿌려서 장복과 창대를 위하여 빌었다. 그러 고도 병을 흔들어 본즉, 오히려 몇 잔 더 남았기에 창대를 시켜 술을 땅에 뿌려서 말을 위하여 빌었다. ”(이가원譯·박지원原著, 국역 열하일기Ⅰ, 민족문화추진회, 1977, 19~21쪽)

朝起開牕。濃雲密布。雨意彌山。盥櫛已罷。整頓行李。手封家書及諸處答札。出付撥便。於是略啜早粥。徐 往舘所。諸裨已著軍服戰笠矣。頂起銀花雲月。懸孔雀羽。腰繫藍方紗紬纏帶。佩環刀。手握短鞭。相視而笑 曰。貌樣何如。盧參奉 以漸上房裨將 視帖裏時。更加豪健矣。帖裏方言天翼。裨將我境則著帖裏。渡江則換 着狹袖。 鄭進士 珏上房裨將 笑迎曰。今日眞得渡江矣。盧從傍曰。乃今將渡江矣。余皆應曰。唯唯。盖一旬 留館。擧懷支離之意。皆畜奮飛之氣。加以霖雨江漲。益生躁鬱。及此期日倐屆。則雖欲無渡。不可得也。遙 瞻前途。溽暑蒸人。回想家鄕。雲山渺漠。人情到此。安得無憮然退悔。所謂平生壯遊。恒言曰不可不一觀云 者。眞屬第二義。其曰今日渡江云者。非快暢得意之語。乃無可奈何之意耳。譯官金震夏。二上堂。 以年老病 重。落後而去。辭別鄭重。不覺悵然。朝飯後。余獨先一騎而出。馬紫騮而白題。脛瘦而蹄高。頭銳而腰短。 竦其雙耳。眞有萬里之想矣。昌大前控。張福後囑。鞍掛雙囊。左硯右鏡。筆二墨一。小空冊四卷。程里錄一 軸。行裝至輕。搜檢雖嚴。可以無虞矣。 (中略) 少焉。張福出立道傍小角門。望上望下。攲笠遮雨。手提烏瓷小壺。颯颯而來。盖兩人者。自檢其囊中得廿 六文。而東錢有禁。不可出境。棄之道則可惜。故沽酒云。問汝輩能飮幾何。皆對不能近口。余罵曰。竪子 惡能飮乎。又自慰曰。遠道一助。於是悄然獨酌。東望龍鐵諸山。皆入萬重雲矣。滿酌一盞。酹第一柱。自 祈利涉。又斟一杯。酹第二柱。爲張福昌大祈。搖壺則猶餘數杯。使昌大酹地禱馬。(原文: 한국고전종합 DB http://db.itk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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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조선시대라 칭하는 옛날, 정조대왕 때에 한양에는 한 사내가 있었다. 젊은날 우울증 환 자였다는 연암 박지원□. 그는 ‘해외여행’이라는 개념은 커녕 다른 국가로의 이동이 쉽지 않던 시절 청나라로 연행■을 다녀온 사람이다. 강건너(?) 큰 나라 황제의 생일파티를 위해 동원된 무리에 속해서 그는 험난한 여정을 시작한다. □“영조대왕 13년(1737) 서울 서소문 밖 야동(冶洞)에서 노론 명문가 박사유의 막내로 태어났다. 열여섯, 이팔청 춘에 전주 이씨와 결혼한 후, 장인어른(이보천)과 처삼촌(이양천)의 지도 하에 학업에 정진했다. 처가 역시 노론 학통을 계승한 명문가. 출신성분은 ‘빵빵한’ 편이다. 하지만, 양쪽 집안 모두 ‘청렴’을 가문의 영광으로 내거는 바 람에 평생 가난이 떠날 날이 없었다. 젊은 날의 특이한 사건이라면 우을증에 걸렸다는 것. ”(고미숙·길진숙·김풍 기編譯,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上, 그린비, 2011, 35쪽) ■일전에 중국이 청나라던 시절, 그 청나라가 수도를 성경〔심양〕에서 연경〔북경〕으로 옮긴 다음 해(1645)부터 연경으로 가는 조선사신들의 사행을 연행(燕行)이라 했다. 1780년, 당시 청나라 황제 건륭제의 칠순을 축하하고 자 정사 박명원(연암의 삼종형)은 (음력)5월 25일 한양을 떠나 청나라로 사은사행을 떠난다.

금수저같은 흙수저라고 해야하나. 그는 좋은 집안의 도련님임에는 틀림없었지만, 남들보다 공 부가 늦었다. 20대에는 우울증을 겪어 엉뚱한 단편소설을 지어 엮기도 했다. 제도권 인사가될 수 있는 과거제 수험생으로의 길은 이미 마음에서 접어버렸다. 노량진 고시촌을 박차고 나온 사나이라 할만하다. 높고 고귀한 신분처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가난 그리고 우울증. 타고난천 성. 풍채. 늦은 공부. 이런 여러 요소는 그로하여금 천재적인 작가기질이 마구마구 자라날 수 있는 텃밭이 되어주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열하일기 서〉와 더불어 전체작품의 인트로덕션에 해당되는 도강록에는 보통 여행기에서 보 기 힘든 대목들이 불쑥불쑥 눈을 때리며 들어온다. 그의 글을 읽을 때에는 조심해야 한다. 자 칫 눈에 시퍼런 멍이 들지도 모르니. 그의 문장은 ‘연암체’라고하여. 보통의 사대부 문장과는 차이점을 갖는다. 정조대왕이 바로 그 문체 때문에 연암으로 하여금 반성문을 쓰라했을 정도 로. 음, 이를 몸으로 느끼고 싶은 독자분께서는 다른 연행록과 비교해 읽어보시라. 그는 정식 사행단 멤버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비공식’ 멤버로 무리에 “꼽사리” 낀 존재에 불과하다. 제 도권의 사행멤버들이 복식으로 온갖 똥폼을 잡아대는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정진사와 노참봉 의 대화에 연암은 “옳지 옳아”할 뿐이다. 타고갈 말을 묘사하는 그의 모습은 마치 고급세단을 자랑하는 자동차마니아의 그것과도 같다. 휠베이스가 어쩌고, 엔진이 어쩌고, 그런. 여행을 떠 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짐꾸리기’ 아니던가. 연암의 ‘백팩’에는 무엇이 들었는 가 보자. 그는 걸어다니는 ‘구글어스’여야 했다. 스마트폰 대신 붓, 먹, 공책, 이정록이. 그리고 멋을 아는 사내로 ‘거울’을 빠뜨리지 않았다. 이 정도 짐이면 출국심사에서 걸릴 일은 없겠는 걸. 그의 작품에 서브캐릭터라 할 창대와 장복. 영원한 ‘을’의 신분을 가진 이 두 남자와 자신 이 타고갈 승용차를 위해 마음으로 기도하는 연암의 정신은 참으로 놀랍다. 당대 어떤 사대부 가 이같은 마음을 갖고 또 이를 글로, 문자로 남겨둔단 말인가. 이는 오늘날 고위관료들의 글 에서도 볼 수 없을 것이다. 자, 다시 다음 글로 돌아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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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살은 매우 빠른데 배따라기 소리도 일제히 불리어졌다. 사공의 노력한 보람으로 살별과 번갯빛처럼 배가 달린다. 생각이 잠시 아찔하여 하룻밤이 격한 듯싶었다. 저 통 군정의 기둥과 난간과 헌함이 팔면으로 빙빙 도는 것 같고, 전송 나온 이들이 오히려 모랫벌에 섰는데 마치 팥알같이 까마득하게 보인다. 내가 홍군 명복더러, 「자네, 길을 잘 아는가.」 하니, 홍은 팔장을 끼고, 「에에, 이게 무슨 말씀이셔요.」 하고, 공손히 반문한다. 나는 또, 「길이란 알기 어려운 것이 아닐세. 바로 저 강 언덕에 있는 것을.」 했다. 홍은, 「이른바, ‘먼저 저 언덕에 오른다’는 말을 지적한 말씀입니까.」 하고 묻는다. 나는, 「그런 말이 아니야. 이 강은 바로 저와 우리와의 경계로서 응당 언덕이 아니면 곧 물일 것이 다. 무릇 세상 사람의 윤리와 만물의 법칙이 마치 이 물 가나 언덕이 있음과 같으니 길이란 다 른 데 찾을 게 아니라, 곧 이 물과 언덕 가에 있는 것이란 말야.」 하고 답했다. 홍은 또, 「외람히 다시 여주옵니다. 이 말씀은 무엇을 이른 것입니까.」 하고 묻는다. 나는 또 답했다. 「옛 글에 인심은 오직 위태해지고 도심은 오직 가늘어질 뿐이라고 하였는데, 저 서양 사람 들은 일찌기 기하학에 있어서 한 획의 선들을 변증할 때도 선이라고만 해서는 오히려 그 세밀 한 부분을 표시하지 못하였은즉 곧 빛이 있고 없는 짬으로 표현하였고, 이에 불씨는 다만 붙지 도 않고 떨어지지도 않는다는 말로 설명하였으니, 그러므로 그 즈음에 선처함은 오직 길을 아 는이라야 능할 수 있을 테니 옛날 정의 자산 같은 이면 능히 그러 할 수 있겠지.“ 이렇게 수작하는 사이에 배는 벌써 언덕에 닿았다. 갈대가 마치 짜놓은 듯 빽빽이 들어서서 땅 바닥이 뵈지 않는다. 하인들이 다투어 언덕에 내려가서 갈대를 꺾고 빨리 배 위에 깔았던 자리 를 걷어서 펴고자 하나, 갈대 한 그루가 칼날 같고, 또 검은 진흙이 질어서 어찌할 수 없었다. 정사 이하 모두가 우두커니 갈밭에 서 있을 뿐이다. 「앞서 건너간 사람과 말은 어디 있느냐.」 하고 물어도, 다들, 「모릅니다.」 하고 대답한다. 또, 「방물은 어디 있어.」 해도 역시, 「모르옵니다.」 라고, 대답하면서 한편으로 멀리 구룡정 모래톱을 가리키면서, 「우리 일행의 인마가 아직도 거지반 건너지 못하고 저기 개미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이 곧 그들인 것 같습니다.」 한다. 멀리 용만쪽을 바라보매 한 조각으로는 성이 마치 한 필의 베를 펼쳐놓은 듯 성문은 흡사 바늘구멍처럼 빤히 뚫려서, 그리로 쬐는 햇살이 마치 한 점 샛별 같 아 뵌다. 이 때 커다란 뗏목이 거센 물살에 떠내려온다. 시대가 멀리서, 「웨이.」 하고, 고함친다. 이는 대체 남을 부르는 소리인데, 저들을 높이는 말이다. 한 사람이 뗏목 위에 일어서서, 「당신네는 어찌 철 아닌 때에 조공을 마치려 중국을 가시나요. 이 더위에 먼 길을 가시려면 오죽이나 고생되시겠소.」 한다.” (이가원譯·박지원原著, 같은 책, 25~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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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勢迅疾。棹歌齊唱。努力奏功。星奔電邁。怳若隔晨。統軍亭楹楯欄檻。八面爭轉辭別者。猶立沙 頭。而渺渺如荳。余謂洪君命福 首譯 曰。君知道乎。洪拱曰。惡。是何言也。余曰。道不難知。惟 在彼岸。洪曰。所謂誕先登岸耶。余曰。非此之謂也。此江乃彼我交界處也。非岸則水。凡天下民彛 物則。如水之際岸。道不他求。卽在其際。洪曰。敢問何謂也。余曰。人心惟危。道心惟微。泰西人 辨幾何一畫。以一線諭之。不足以盡其微。則曰有光無光之際。乃佛氏臨之曰。不卽不離。故善處 其際。惟知道者能之。鄭之子產。船已泊岸。蘆荻如織。下不見地。下隷輩爭下岸折蘆荻。忙掇船上 茵席。欲爲鋪設。而蘆根如戟。黑土泥濃。自正使以下。茫然露立於蘆荻中矣。問人馬先渡者何去。 左右對曰。不知。又問方物安在。又對曰。不知。遙指九龍亭沙岸曰。一行人馬太半未濟。彼蟻屯者 是也。遙望龍灣。一片孤城。如晒匹練。城門如針孔。漏出天光。如一點晨星。有大筏乘漲而下。時 大遙呼曰位。盖呼聲也。位者。尊稱也。有一人起立應聲曰。爾們的不時節。緣何朝貢入大國。暑天 裏長途辛苦。(原文: 한국고전종합DB http://db.itkc.or.kr/)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말. “도를 아십니까?” 뭐 이런. 그런데 연암의 질문은 질문의 ‘품질’ 이 남다르다. 어디로 끌고가서 세뇌를 시키고 무언가 물건을 팔게 만드는 그런 도와는 거리가 있다. 그는 ‘언저리’를 중시했던 것 같다. 우리는 도통 강을 건너겠다 큰 소리치지만 정말 강 앞에서는 우물쭈물 거리기 마련. 더구나 교인이라면 ‘요단강’은 절대로 건너고 싶지 않을 터. 우리의 영혼이 새로이 열리기 위해서는 서있어야 한다. 어디에? ‘언저리’에 말이다.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그 언저리에서 그대는 무엇을 보셨는지? 나는 무엇을 보았지? 연암의 질문에 나 역시 홍처럼 엉뚱한 답이나 하고 말 것 같다. 이 추운 계절 나는 어떤 길을 걷고 있는가. 여전 히 우리는 사행단과 다를 바 없다. 오늘날 연암과 같은 시선을 가진 이 누구던가. 묻고 싶다. ‘그대는 길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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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오늘은 이만큼만 읽어야지. 오늘은 오늘이(고양이)안오나? 용신선은 나머지 커피를 마시고는 그만 잠이 들었다. ※(다음 편에 ‘아마도’ 계속) □ 작가소개 서학을 배우고 믿는 그의 세례명은 아오스딩. 옛 한양 서대문 밖에서 태어나 이괄의 난이 있던 안산자락의 기운을 받고 연암이 단편소설의 소재를 듣던 봉원사에서 부처님과 약수를 마시곤 했다. 의소세손의 능이 있던 곳에서 뛰놀며 소학교를 마쳤다. 클래식 음악과 서양 미술을 공부하며 청소년기를 보낸 그는 청년이 되어 잠시 플래시 애니메이터로 모 인터넷 방송국에서 근무하였다가 지금은 설화와 고소설 사이를 누비는 사내가 되었다.■ 풍문에 의하면 문학박사를 코앞에 두고 있다 한다. 박사가 되면 신선이 되어 최고운의 후 예가 되고자 한단다. ■ 계간 《과정학》(e-book)에 고전칼럼 연재. 학위논문으로 〈『洪吉童傳』과 『張吉山』의 比較 硏究 ; 英雄主義에 대한 差異를 中心으로〉(학사), 〈林巨正 說話의 傳承樣相 硏究-‘逆賊-他者-이웃’의 立體的 樣相을 中心으로-〉(석사). 학 술논문으로는 〈분뇨서사에 굴절된 대도시 한양의 팽창〉(온지학회), 〈희랍과 한국의 여신 신격에 관한 비교 -설화의 전승 과 숭배 양상을 중심으로-〉(국제한인문학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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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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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길 김소월

물구슬의 봄새벽 아득한길 하늘이며 들 사이에 넓은 숲 젖은 향기 불긋한 잎 위의 길 실그물의 바람 비쳐 젖은 숲 나는 걸어가노라 이러한 길 밤 저녁의 그늘진 그대의 꿈 흔들리는 다리 위 무지개 길 바람조차 가을 봄 거츠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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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 공주 의 편지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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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연극성,허구로 제시하기도 어렵다. 왜냐하면 연극은 항상 실제적인 행동들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유제니오 바르바, 연극인류학p223

연극치료의 장점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말로는 거짓말을 하지만 몸으로는 잘 하지 못합니다. 주먹을 쥐고 손을 부르르 떨면서 “나 화 안났어” 라고 한다면 과연 화가 안난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손톱 을 쉴새없이 물어 뜯으면서 요즘 난 평화로워 라고 말한다면요? 혹은 ‘이미 다 용서해서 괜찮아’라고 생각하는데 어깨가 아파 잠을 못이루는 증상에 시달리는 사람도 있지요. 연극치료는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쉬운 예를 들어보자면 흥부역할에 익숙한 사람은 흥부 역할로 슬퍼 도 해보고 왜 참기만 하는지 이유도 찾아보고, 필요하다면 놀부역할도 연습해보는 것이죠. 반대로 놀부 역할에만 익숙한 사람은 욕심이 넘치게 된 이유를 찾기도 해보고 왜 그렇게 화가 많은지도 알아보고, 원한다면 흥부역할도 해보면서 어떤지 느껴보는 것이죠. ‘연극치료는 삶의 리허설’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답니다. 물론 내담자가 연기에 출중할 필요는 없습니다. 연극은 액션과 리액션의 조합이기에 치료사 가 전문적인 능력을 가지고 즉흥극이 구성되도록 내담자를 이끌어갑니다. 얼마 전에 내담자와 인어공주 이야기로 연극을 하는데 내담자가 목소리를 잃고 종종거리더니 곧 종이 와 펜을 가지고 와서 글로 왕자에게 호소를 하더라고요. 다른 때 같았으면 인어공주는 인간세상의 글을 모른다고 하면서 그러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을 막았을지도 모르지만 그 날은 장면의 뭔가가 저를 건드 린다고 느껴졌습니다. 목소리를 잃었으면 ‘쓰면’ 되는데 안 읽어주면 병에 넣어서 (바다가 아니라 성 으로) 던지기라도 하면 되는데. 그럼 내 얘기를 읽고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면서 왕자의 진면목을 알 수 있을 텐데. 환상과 사랑에 빠지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어쩌면 물거품이 아닌 왕자를 죽이는 선택을 했 을지도 몰라. 저도 아픈 곳이 많은 사람이라 이 일을 선택했는데 항상 보람에 가득 차 있지는 않거든요. 어쩔 때는 다 른 사람의 힘든 것만 챙겨주다 나를 잃는 것 같기도 하다가, 또 다른 날에는 타인의 아픔을 보듬어 주었 기에 그 힘으로 나도 살아간다고 느끼기도 한답니다. 그래서 우선 짧게나마 이 지면에 글을 적어보았습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이곳이 ‘연극치료’를 소개 하는 곳이 될지 아니면 ‘연극치료를 하는 저’를 소개하는 곳이 될지. 어쩌면 그 둘이 이제는 분리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하는 장이 될지. 혹은 분리 되어야 네가 살수 있다! 라고 말해주는 곳이 될지. 답은 모 르지만, 가보겠습니다. 1달에 한번, 연극심리상담사 가원과 만나보아요. 궁금한 것이 있다면 메일로 질 문주시면 그것에 답해보는 지면이 되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모두 가끔은 불행하고 또 가끔은 행 복하게 이 겨울을 보내보아요. 어지러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원 dabokism@naver.com 연극심리상담을 하는 사람. 가르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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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완 | 모든 삶은 특별하다는 생각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자서전을 만들고 있습니다. www.wanbae.com facebook.com/snailbook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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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단장 | 역마와 같이 유랑하는 역마살유랑단 단장 단원 그리고 혼자 chief@wcircle.studio 51


월간문래당 #0 2017년 12월호 moonraedang@gmail.com 디자인 l 치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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