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Issue_ Salone di Aschau Einzelsei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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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디자인 페어에 가면 눈이 쉴

틈이 없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행사는

더욱 그렇다 멋진 것 옆에 멋진 것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장소를

옮겨가며 이 과정을 몇 차례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앞서 본 멋진 것이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정말 그 많은 디자인을 흡수할 수

있을까? 시간과 자원을 막대하게

쏟아붓는 디자인 페어에 대한 대안은

무엇일까? 올해 첫선을 보인 살로네

디 아샤우Salone di Aschau는

이런 의문에서 시작한 새로운 형식의

디자인 행사다 시류를 좇지 않고

뚝심 있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가구

기업 ‘닐스 홀거 무어만’과 독일의

디자인 실험 그룹 ‘하우스 오토’가

함께 기획했다 방향성은 뚜렷하다

소수의 사람과 천천히, 무엇보다

가볍고 유쾌하게 독일 남부 지방의

작은 마을 아샤우에 위치한 닐스

홀거 무어만 본사와 게스트하우스

베르그에서 그 결과물을 보고 왔다.

대안, 유머, 협업을 위한 디자인 행사, 살로네 디 아샤우

기획 닐스 홀거 무어만 nilsholgermoormann, 하우스 오토 haus.otto

참여 작가 보토네 bottone_objects, 단테굿즈앤배즈 dantegoodsandbads,

팜 그룹 farm.group(올리버 부알람 oliverboualam & 루카스 마르슈탈러 lukasmarstaller, 하우스 오토 haus.otto, 요한나 실레만 johannaseelemann, 한나 쿨만 studiokuhlmann,

스튜디오 OE studio__oe), HFBK 함부르크 hfbkhamburg produktdesign.hfb open_design_class, 저지 시모어 jerszyseymourdesignworkshop,

로어 loehrfurniture,

모노 monogermany,

닐스 홀거 무어만 nilsholgermoormann, 시안자 sianza, 텍타 tecta_kg

사진 줄리아 상 응우옌 Julia Sang Nguyen 웹사이트 salonediaschau.com

전시를 관람하는 방식이다 1

1 구멍에 머리를 넣고 소리를 내면 물체가

공명하며 온몸에 진동을 일으키는

허밍 오브제 ‘Summloch’ 음조에 따라

기분 좋게 느껴지기도 하고 자극적인

따끔거림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디자인 BNAG

2 공간 활용도가 높은 ‘트랙터 체어’ 창고

지붕에 의자를 걸면 훨씬 수월하게 청소할

수 있다 1800년대 초 셰이커 가구의

기능에서 영감을 얻었다

디자인 하우스 오토

3 살로네 디 아샤우 전시가 열린 닐스 홀거

무어만 본사 앞마당 가구에 대한 어떤

선입견도 없도록 디자이너와 브랜드명을

명시하지 않고 전시대에 번호표만 부착했다

번호별 작업 설명 글이 있는 지도에서

궁금한 가구의 스토리를 직접 찾아보며

해발 고도 615m의 디자인 발신지

시작은 밀라노 디자인 위크였다

이런 식의 행사는 이제 지루하고

피로하지 않냐며 디자인 관계자들이

열을 띠며 얘기하는 자리였다 닐스

홀거 무어만을 이끌고 있는 디렉터

크리스티안 크노르스트Christian Knorst도 꽤나 완강했다 “더 많은

제품을 만들고 더 많은 제품을

판매하는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야 ” 독일에서 괴짜 가구

회사로 통하는 닐스 홀거 무어만은

실제로 15년째 살로네 델 모빌레에

참여하지 않았다 토론은 길어졌고

누군가 그에게 물었다 “좋아, 그래서?

당신들의 남다른 접근법이 뭐지?”

닐스 홀거 무어만 본사가 있는

아샤우에서 그 답을 찾았다 알프스

산자락이 360도로 펼쳐져 마치

그림 속을 걷는 듯한 이곳은 인구

5000명을 겨우 웃도는 작은 시골

마을이다 꽤 고립되어 있지만 닐스 홀거 무어만은 영감을 얻기 위해

다른 도시를 찾지 않는다. 오히려

도시 사람들을 이곳으로 초대한다

기념일마다 파티를 열고 다 함께

요리를 한다 본사 옆으로는 동네에서

가장 큰 랜드마크인 호헤나샤우

성Hohenaschau Castle이 보이는데

닐스 홀거 무어만은 이 성주의

마구간을 매입했다 당시 80년 동안

건물이 방치된 상태였지만 건물을

수선하지 않았다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수리만 했다 군데군데 흠이

있고 고장 난 건물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무어만식

디자인이기 때문이다 크리스티안

크노르스트는 살로네 디 아샤우를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곳에 방문하는

것보다 빠른 방법이 없다 ” 그도 그럴 것이 닐스 홀거 무어만의 모든 제품은 아샤우에서 직접 만든다 작은 마을이지만 나무, 금속, 종이, 유리

등 다양한 재료를 다루는 전문가가

많고, 생산 과정 또한 투명하고

1 방문객의 휴식을 위해 마련한 가구는

모두 건초 더미로 만들었다 닐스 홀거

무어만에서 직접 말을 키우니 지출도 낭비도 거의 없는 셈이다

2 건초 더미는 엉덩이 받침이, 갈퀴는

등받이가 된다 농장 생활의 휴식은 이토록

쿨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구

디자인 스튜디오 OE

3 악셀 쿠푸스가 디자인한 닐스 홀거 무어만의

대표 제품 ‘FNP 선반 시스템’을 ‘FNP

사운드 시스템’으로 재탄생시겼다 ‘최소한의

디자인, 최대 활용’이라는 지향점을 담았다

디자인 닐스 홀거 무어만

4 1970년대 초 피터 라케가 디자인한 모노

클립의 한정판 스푼 카라비너가 달려 있어

휴대하기 편하며, 장난스럽고 패셔너블한

액세서리로 활용할 수 있다 디자인 모노

5 나만의 하이킹 스틱 만들기 워크숍

참가비는 병뚜껑 1개 지팡이를 만들기 위한

모든 도구도 직접 디자인했다

디자인 HFBK 함부르크, 오픈 디자인 클래스

6 결합과 확장이 가능한 모듈형 빵 ‘엔드리스

브레드’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음식

중 하나인 빵으로 끝없이 이어진 하나의

사슬처럼 만들었다 디자인 하우스 오토

7 양모, 건초, 짚을 활용해 만든 사운드 시스템 ‘허니’ 꿀벌 소리, 소 울음소리, 트랙터 소리

등 다양한 사운드를 채집한 디자이너는

소리, 재료, 형상의 결합으로 풀이 한가득한

초원을 연상시키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디자인 루카스 마르슈탈러

공정하다. 살로네 디 아샤우는 마치

대량생산품 같은 박람회에서 벗어나

각자에게 어울리는 전시 형식을

만들어가자는 취지에서 기획한

행사다 큰 시나리오는 없었다 전시에 필요한 몇 가지 가구는 건초 더미로

만들었다 닐스 홀거 무어만에서 직접

키우는 말이 있으니 지출도 낭비도

거의 없는 셈이다 마케팅과 디자인

책임자 로버트 크리스토프Robert Christof는 “물론 스릴도 없고

럭셔리도 없다. 사람들은 이곳에

오기 위해 몇 시간 동안 운전을

하거나 열차를 갈아타야 하고, 야외

캠핑장에서 자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방문객들은 살로네 디 아샤우와 닐스

홀거 무어만의 팬이 될 것이다”라고

자부했다 1969년 우드스탁이 얼마나

작은 농장 마을에서 시작했는지

생각해보면 딱히 놀랄 일도 아니다 행사를 즐기러 온 사람들은 행사가

즐거우면 그걸로 충분하다

유머가 없으면 디자인도 없다

전시를 둘러보다 피식 웃음이 났다

이토록 단순하고 기발하고 터무니없고 결함이 있는 아이디어를 포용하는

디자인 행사가 또 있을까? 닐스 홀거

무어만 앞마당에는 건초 더미가 한가득이었다 곳곳에 삽쇠나 갈퀴가 꽂혀 있기도 했다 건초와 짚은 엉덩이

받침대, 삽쇠는 등받이인 스튜디오

OE의 가구였다 금속공예를 공부한

디자이너 한나 쿨만은 자신이 만든

아름다운 오브제로 ‘건초 더미 속에서

못 찾기 이벤트’를 선보여 관람객에게

기대감과 좌절감을 함께 안겨주었다.

페어라는 현대적 콘셉트를 표방할

뿐 일종의 해프닝이자 퍼포먼스 같은 장면이 곳곳에서 펼쳐졌다

게스트하우스 베르그 정원에 놓인

BNAG의 허밍 오브제는 사람들이

기꺼이 우스꽝스러운 자세를 취하도록

했다 구멍에 머리를 넣고 소리를

내면 물체가 공명하며 음조에 따라

각기 다른 진동을 일으켰다 행사

기획자이자 디자이너인 하우스

오토는 트랙터 창고 지붕에 의자를

1 디자인 플랫폼 보토네가 선보인 ‘줌 러그’ 커다란 직조 패턴이 특징으로 휴식과 낮잠에 적합하다 디자인 하우스 오토

2 물의 흐름과 순환을 표현한 작품

‘아쿠아 파크’ 모노의 티포트로 만들었다

디자인 올리버 부알람, 루카스 마르슈탈러

3 텍타의 트랙터 시트 초기 모델 최초의

캔틸레버 의자는 농업용 차량 좌석이었다

콤바인 같은 기계에 앉을 때 더 유연하고

견고하도록 1880년대부터 금속 프레임과

튜브형 구조를 사용했다 현재 이 모델은

독일 라우엔푀르데에 위치한 텍타의

캔틸레버 체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4 단테굿즈앤배즈의 전시 부스 팔걸이가

편안한 라운지체어 ‘AL13’ , 너도밤나무와

스트랩으로 콤팩트하게 제작한 ‘와이키키

암체어’, 그리고 지그재그 모양으로

배치할 수 있는 초경량 룸 디바이더 ‘미니마

모랄리아’의 퍼스트 에디션을 배치했다

디자인 단테굿즈앤배즈

5 닐스 홀거 무어만이 가구를 즐기는 방식 알루미늄 시트를 최대한 압착해서 제작한 단일 곡면 의자 ‘프레스트 체어’로 그네를 만들어서 탔다

6 게스트하우스 베르그의 정원을 거닐며 마치 보물찾기하듯 곳곳에서 가구와

오브제를 발견할 수 있었다

걸어 호기심을 자아냈는데 알고

보니 셰이커 가구에서 영감을 받은, 간편한 바닥 청소를 염두에 둔

의자였다. 먹고 마시는 시간도 빠질

수 없었다 마음껏 결합하고 확장해

여럿이 나눠 먹을 수 있는 하우스

오토의 모듈형 빵은 이름이 ‘엔드리스

브레드’임에도 순식간에 동이 났다

또 6대째 가업을 이어온 테이블웨어

전문 기업 모노는 달콤한 디저트를

제공해 오픈런 대란을 일으켰다

아이스크림과 함께 제공한 숟가락은 휴대성과 실용성을 인정받아 ‘모노

피크닉 커틀러리’라는 별칭까지 붙은

‘모노 클립’의 한정판 스푼으로 이번

행사의 필수품이 되었다 이렇듯

여유롭고 유머러스한 태도는 닐스 홀거 무어만이 추구하는 지향점과 같다 마니아들의 지지를 받았던

이동형 의자 ‘북키니스트Bookinist’도 우연한 계기로 탄생했다 20여 년 전, 지금의 닐스 홀거 무어만을 만든 전 CEO 닐스 홀거 무어만은 밀라노 가구

박람회 직전에 허리를 다쳐 서 있기가 힘들었다 책과 맥주를 좋아하는 그는

자신에게 딱 맞는 수납공간과 조명과 바퀴까지 갖춘 의자를 디자인했고

박람회 기간 내내 그 의자에 앉아 있었다 놀랍게도 사람들은 이 의자에만 관심을 보였다 앉고 싶어 했고, 판매를 요청했다 닐스 홀거

무어만은 유머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프레스트 체어Pressed Chair 출시

10주년 때는 의자로 전망대, 옷걸이, 테이블을 만들고 그네와 썰매처럼 변용해서 타기도 했다 “의자는

단순히 농담처럼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유머가 좋다

살로네 디 아샤우도 그렇다 일반적인

가구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고유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닐스 홀거 무어만의 의자는 머지않아

비행기가 될지도 모르겠다”라는 크리스티안 크노르스트의 농담 섞인 말을 들으며 전시장을 바라보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디자인 컬렉티브, 아이디어 퍼블리셔스

닐스 홀거 무어만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성장했다 사내에서

디자인을 맡지도 않는다. 외부

협력이 기본 원칙인데 그 과정이

조금 독특하다 닐스 홀거 무어만

웹사이트에는 ‘아이디어 제출하기’

카테고리가 있다 디자이너들이

스케치나 설명 글, 프로토타입을

보내며 1년에 평균 300개 정도의

아이디어가 접수된다 여기서

경력과 배경은 중요하지 않다.

아이디어와 가구 생산에 필요한 몇

가지 기준만 본다 예를 들면 ‘지역

장인과 협업할 수 있어야 한다’ 같은

조건 운이 좋으면 1년에 가구 1개

정도 출시된다 이런 방식을 두고

닐스 홀거 무어만은 가구 회사가

아니라 ‘가구 출판사’, ‘아이디어

퍼블리셔스’에 가깝다고 표현한다

살로네 디 아샤우 역시 이 맥락의

연장선에 있었다 디자이너들은

장난스럽고 느슨한 방식으로

연결을 시도했다 오픈 디자인

클래스는 나만의 지팡이 만들기

워크숍을 열었고 전시 다음 날 몇몇

디자이너들은 각자 만든 지팡이를

짚고 하이킹을 했다. 자연 속을

함께 걷는 시간은 서로를 알아가는

좋은 방법이라는 취지였다 루카스

마르슈탈러Lukas Marstaller는

농장에서 채집한 사운드로 퍼포먼스를

선보였는데 모노의 다도가 함께

어우러져 운치를 더했다

살로네 디 아샤우는 화려한 신제품을

소개하는 가구 박람회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고장 난 의자, 시중에 공개한

적 없는 독특한 모델, 일회성 작품과

퍼포먼스, 프로토타입과 한정판

가구를 선보였다 닐스 홀거 무어만과

하우스 오토의 기획 의도는 크게

두 가지, 대안 모색과 협업이었다 “지난 40년간 디자인 신에서

의미 있는 생태계가 무엇이었는지

떠올려보자 누군가와 무언가를

함께 만드는 협업 시스템만큼 근사하고 흥미로운 게 있을까?”

글 정인호 기자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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