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서 입니다. 호조머니 - 만동 마늘빵, 아게모찌 나베 / 그림. 오조한민 체니 사이드 - 테트라포드의 인어 / 글. 사진. 장수양 의미 없는 이야기 - 그림. 글. 사진. 철민 남들이 추천하지 않는 영화 / 마약왕 Ping Pong - 13. 출신(出身) / 글. 황정운 이훈보
98호지만 기껏해야 스무쪽이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각각의 내용은 여전히 나쁘지 않 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두께가 과연 월간지의 무게에 적절한가 하는 의문이 있습니다. 제가 게으르기도 게으르고 또 잡지의 탄생이유가 마냥 두껍게 유명하게를 지향하지 않는 것도 한 몫 하는 것이겠죠. 한편으로는 독립 잡지라는 것이 시대적 수명을 다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곤 합니다. 98호라.. 하하. 잡지를 오래 만들어서 일까요. 마감을 기다리다 보면 불길한 진동이 다가오는 것을 느 낄 때가 있습니다. 원고가 아무리 기다려도 도착하지 않을 것 같은 날이 있어요. 그럴 때는 달력의 숫자가 뺨에 착 달라붙어 고개를 돌리지도 못합니다. 커피는 두 배 빨리 증발하고 노을의 붉은색은 어느때보다 파국을 상징하는 듯해 밤이 되면 이불을 둘둘 두르고 앉았습니다. 주말이 되어도 발을 뻗고 잘 수도 없고 매케한 희망에 들이켜 입 이 바짝 마릅니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잡지라 하더라도 월요일에는 내놓아야 덜 부 끄럽기 때문입니다.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일상입니다. 그럴일은 없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98호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다면 오늘 은 너무 미안한 하루였답니다. 늘 느긋한 척을 했지만 당연히 이렇죠. 어느날 갑자기 울며 도망친다고 해도 너무 뭐 라 하지 말아주세요. 월간이리 EXXX 드림
체니 사이드
글. 장수양
6. 테트라포드의 인어
나는 리와 노크에 관해서 말하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싫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자주 리와 노 크의 얘기를 하거나 떠올리게 된다. 싫은 일들이 벌어질 때, 근처에 있는 익숙한 싫은 것이 나를 유난히 자극할 때, 내가 태어나길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리와 노크가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하 고 상상하게 되기 때문이다. 유디와 유만과 함께 있어도 나는 자주 리와 노크를 떠올린다. 하지만 리와 노크 이야기를 하 게 되어도 평소처럼 절망적인 기분은 들지 않는다. 유디와 유만은 리와 노크와 아무런 상관이 없 다. 그것만은 분명하다.
유만
유만은 내가 자는 동안 옆에서 나를 보고 있는 파랗고 큰 눈이다. 나는 잠이 오지 않을 때면 고 개를 돌려 유만을 본다. 창문 만한 눈동자 안에 물이 찰랑거린다. 유만은 닫거나 여는 두 가지 상 태를 갖고 있다. 나는 말이 없는 유만이 유디만큼 다정하다고 생각한다. 거대한 눈을 닫고 있을 때 유만은 보이지 않아서 나는 항상 유만과 함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유만과 유디는 번갈아 나타나며 서로에 관해 이야기하지도 않지만 나는 그들이 서로 관계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만의 큰 눈은 어쩌면 유디를 찾기 위해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용기를 내어 유만의 앞에서 유디의 이야기를 하거나, 유디의 앞에서 유만의 이야기를 해볼까 고민도 했지만 끝내 그러지 못했다. 둘이 만나면 더 이상 나를 찾지 않을까봐서다. 이 집에는 이상할 만큼 좁고 습기진 방이 두 개 있다. 그리고 손바닥만 한 거실과 낮고 그늘진 천장, 두 사람이 서기엔 협소한 부엌이 있다. 나는 리와 노크와 함께 이곳에서 이십 년이 넘도록 살아왔다. 내가 어렸을 때도 이곳은 작았고 지금도 작다. 나는 항상 이곳에서 나가고 싶었다. 그 러기 위해 내가 준비한 것은 리와 노크가 가져갔다. 가져가지 않을 때에는 상황이 나빠서 잃어 버렸다. 어느 순간 알았다. 나는 이 집을 나가지 못할 것이며 아마도 나보다는 리와 노크가 먼저 나가게 될 것이다. 정말 그렇게 되었다. 리와 노크는 함께 집을 나가버린 후 돌아오지 않고 있다. 이 집의 벽지와 커튼, 낡은 소파, 지금은 아무도 켜지 않는 텔레비전까지 모두 리와 노크가 마 련한 것이다. 나도 그렇다. 어딜 가든지 나는 계속 그들과 연관될 것이다. 다시는 연락하지 않는 다고 해도, 마주치지 않는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들이 마련한 것이기 때문이다. 유만이 닫히기 전에 나는 그의 찰랑거리는 물에 비친 나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유디의 바다는 유디만의 것이며 나를 비추지 않지만 유만의 바다는 그 속에 나를 재워준다.
유디가 말했다. 그는 머리카락을 치우고 목걸이를 보여주었다. 작고 동그란 팬던트는 빛에 따 라 다른 식으로 반짝거렸다. 빛무리를 갖고 있었다. ―우리가 살던 행성이야. 인어의 행성은 갈수록 작아져서 목에 걸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인어의 행성은 그렇게 작아졌는데도 여전히 치어가 탄생한다. 우주 곳곳에서 인어들은 자신들의 행성을 모르는 채 각 각의 바다를 가능한 오래 유지할 방법을 찾아 돌아다니고 있다. 유디도 그중 하나다.
―사람의 바다는 모두 이어져 있지만 인어의 바다는 분리되어 있어. 너무 작은 행성에서 태어 난 우리는 태생적으로 다른 누군가와 함께 살 수가 없기 때문이야. 나는 유디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디와 같은 인어가 모여 사는 장면을 상상할 수 없 다. 누구든지 다른 무엇과 함께 살아야만 한다면, 그런 원리가 있다면 하루라도 강제되지 않고 서는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다른 인어를 만난 적은 없지만 이 행성을 찾아낸 후 다른 인어들의 소식을 알게 되었어. 목에 걸고 있으면 자연히 그렇게 돼. 내가 이 행성의 궤도에 따라 움직이게 되거든. 하지만 이걸 차고 있는 이유는 이게 내가 태어난 행성이어서가 아니야. 그저 마음에 들기 때문이야. 과거에는 몇억의 인어들이 살 만큼 컸던 행성이 지금은 이렇게 작아져 내 목에 걸려 있다니. 짜릿하잖아. 나는 낡은 소파에 기대어 텔레비전 앞에 떠오른 유디의 바다를 응시했다. 정확히는 그 바다 속 의 유디, 유디가 목에 건 인어의 행성을. 단 한 명의 인어도 살지 못할 만큼 작은 행성의 모습은 슬프지도 우습지도 않았다. 그저 사물 같았다. 내가 역 앞을 지날 때에 돈을 주고 살 수 있을 법한
장식구처럼 들여다보아도 깊은 인상을 받을 수 없었다. 나는 작은 브로치가 되어 내 가슴에 붙어 있는 리와 노크를 떠올려 보았다. 슬프지도 우습지도 않았다. 끔찍하고 재미없었다. 하지만 유디 와 달리, 아무렇지도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나는 리와 노크를 머리에 붙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유디는 행성을 목에 걸고 다니지만 사실은 멀리 두고 있는 것과 똑같다.
―만일 리와 노크가 작아진다면, 나는 말했다. ―목에 걸수도 없을 만큼 작아졌으면 좋겠어. ―먼지처럼? ―응. 현미경으로 봐도 보이지 않게. ―숨 쉬어도 느낄 수 없게? ―조금도. ―하나도? ―없는 것에 가깝게 있는 거야. ―그럴 바에는 없는 게 낫지 않을까? ―그들이 없어졌는지는 알고 싶지 않을 거야. 유디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글. 사진. 그림. 철민
남들이 추천하지 않는 영화 마약왕 (2018) 감독 우민호 조금은 부담스러운 포스터로 시작합니다... 이명박 정부가 한창이던 2010년. <이끼>와 <미 생>을 그렸던 윤태호 작가는 한겨레 온라인 페 이지에 <내부자들>이라는 웹툰을 연재하기 시 작했습니다. <내부자들>은 영화에도 드러나는 디테일한 인물들과 몰입도 높은 서사를 보여주 며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었고 완결되기 전부터 판권이 팔려 영화화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웹툰 의 팬이었던 사람들은 <내부자들>이 웹툰으로 도 완결되기를 바랐지만 2012년 웹툰 <내부자 들>은 잠정 중단되었고 영화는 2015년 개봉하 기에 이릅니다. <파괴된 사나이>와 <간첩>이라는 영화를 만들 었던 우민호 감독이 만든 <내부자들>은 기대 반 걱정 반인 상태에서 개봉해 일종의 팬덤을 형성 할 정도로 성공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마약왕>은 그 감독의 차기작이기 때문에 흥미를 불러오죠. <마약왕>은 넷플릭스에서 인기를 끌었던 <나르코스> 시리즈를 떠올리게 하는 마약이라는 소재에 다 몇 번의 히트를 거듭했는지 이제는 헤아리는 게 무의미한 ‘송강호’가 캐스팅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사람들은 환호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저조차도 ‘와 이건 정말 안 볼 재간이 없다.’는 생각 뿐이었으니까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감독의 전작 <내부자들>이 지나치게 탄탄한 원작자 ‘윤태호’에 게서 비롯한 작품이라는 것이 걱정거리이기도 했습니다. <내부자들>을 탄탄하게 만든 여러 요소가 이미 원작에서 짜인 틀이었으므로 <마약왕>은 감독 스스로가 증명해야 하는데, 가능할까? 하는 의 문이 있었죠. 그리고 모두가 알고 있듯 이것은 기우가 아니었습니다. 100억을 들인 영화의 최종 스 코어가 180만 대에서 멈춘것도 모자라 혹평이 이어졌습니다. <마약왕>을 보기 전 먼저 영화를 본 제 지인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영화를 보긴 봤는데 재미 가 없지도 있지도 않고 영화가 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송강호는 정말 계속 나오더라.” 영화를 보기 전에 저는 뭐 저런 평이 다 있나 싶었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는 정말 정확한 평이라는 생각뿐이 었습니다. 정말로 송강호씨가 끊임없이 등장합니다. 거의 한편의 모노드라마에 가깝다고 해도 좋을 만큼 여기서 나오고 저기서 나오면서 쉼없이 대사를 이어 갑니다.
<마약왕>과 관련해 또 흥미있는 평가는 이동진 평론가가 적어둔 것이 있습니다 ‘미처 다 쓰지도 못 하는 캐릭터와 설정들’이라는 한줄평을 쓰는데 이건 꽤 정확한 평가입니다. 매력적이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캐릭터들이 연이어 등장하는데 송강호가 나오고 또 나오다 보니 이들은 모두 바람처 럼 스쳐가고 맙니다. 이와 비슷한 평이 박평식 평론가 에게서도 나옵니다 ‘정신 사납네, 모두가 왕 의 들러리.’ 꽤 비슷한 평이지요. 저는 이 두 평이 아주 정확한 평가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보면서 눈 길을 끌던 조연들을 많이 보았는데 그들이 모두 대충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조금은 아쉽다는 생각 을 했으니까요. 그런데 영화가 끝이 나고 가만히 생각을 하다 보니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왜 이런 영화는 안 되는 것일까?”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서 성공해야만 하는 영화였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기는 아지만 영화라는 하나 의 장르 안에서 이런 영화도 있는 것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문득 든 것입니다. 이게 제가 보지 못했던 명작 <스카페이스>의 열화 판이 라거나 잠깐씩 등장했다 아쉽게 혹은 대충 사라지고 마는 조연들에 대한 아쉬움을 떠나 송강호의 송강호에 의한 원맨쇼는 왜 안 되는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된 것이죠. 송강호가 아니어도 이렇게 까지 주구장창 나오는 영화도 하나쯤은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만약 <마약왕>이 조금은 덜 상업적 성과를 내지 않아도 좋은 영화였다면 조금 더 박수를 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 겁니다. 아주 활발하게 연기를 보여주고 도 심심하다 못해 기이하게 대충 끝이 나는 <마약왕>이라는 영화가 조금은 사랑스럽게 느껴질 여지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죠. 그래서 저는 <마약왕>이 한번쯤 볼만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까지 큰돈을 들여서 원맨쇼에 가까운, 누군가에게는 몹시도 실패한 영화를 보는 것이 흔한 경험은 아니니까요. 중간중간 등장하는 양념 같은 잘 짜인 조연배우들을 보는 맛도 사실은 꽤 있습니다. 다만 아주 조금 만 더 작품 안에서 녹아들고 힘 있게 얽혀 들어갔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는 것이죠. 여기서 잠깐. 아주 많은 조연들이 나왔던 <1987>을 이야기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합니 다. <1987> 또한 많은 조연들이 등장하고 또 금세 사라지고 마는데 <마약왕>과 달리 <1987>의 조 연들은 스쳐 지나가면서도 크게 아쉽다는 느낌이 들거나 소모되었다는 평가를 듣지를 않으니까요. 어쩌면 저의 추측이지만 감독은 이런 방식으로 인물을 쓰는 방법에 대해 사람들이 수용하지 않을 까? 하는 추측을 했던 게 아닐까 합니다. 떡밥을 던지는 미드에서도 의미 없는 장면과 조연의 등장 으로 긴장과 흥미를 이어 기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또 그것을 크게 문제 삼지 않는 흐름이 있으니 어 쩌면 <마약왕>에서도 이와 같은 소모적 방식을 쓰는 게 괜찮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했던 것이 아 닐까 하는 것이죠. 저는 개인적으로 미드를 볼 때 낚시용 소모성 장면에 비난을 하는 편입니다. (그 래서 저는 곡성에 후한 점수를 주지 않습니다.) 비록 그런 작품들과는 다르게 마약왕의 조연들이 지
나치게 매력적이라는 문제가 있기는 합니다. 너무 짧고 강렬하게 눈길을 끌어서 계속 궁금하게 되 어버리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죠. 이런 측면을 보면 <1987>과 <마약왕>이 조연을 쓰는 방식이 다름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987> 이 시대의 흐름에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존재했고 이들이 역사적 흐름을 만드는데 아주 조금씩 영 향을 발휘해 시대가 흘러갔다는 생각을 하게끔 하는 것과 <마약왕>의 주연배우의 이런저런 면모를 보여주기 위해 잠깐잠깐 나왔다 들어가는 것은 지나치게 사소하고 별것 아닌 것들을 죽죽 늘어놓았 다는 인상을 가지게 되는 것이죠. 심지어 엔딩에서 그 악당 ‘이두삼’이 기운이 쭉 빠진 강아지처럼 보이는 것도 그런 허탈함에 한몫을 합니다. 겨우 이 사람의 알량한 흥망성쇠를 보기 위해 표를 끊 고 어둠속에서 두 시간을 넘게 앉아있었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고 해도 아쉬운 평가는 아닐 겁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이유로 <마약왕>이라는 영화를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은가 합니다. 아주 많은 공 을 들여서 찍었고 인물이 매력적이면서도 재미가 덜하고 뻔뻔하면서 별 것 없는 기이한 영화는 흔 치 않으니까요. 그리고 반대로 영화의 본질이 배우의 연기가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되는 장점도 있다고 생각 합니다. 송강호의 연기만큼은 정말 혀를 내두르게 하니까요. <푸른 소금>에서 속았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꼭 보시면 좋습니다.
누군가는 야너두가 자꾸 떠오른다던... 또 하나의 조연
PinG
13
PonG
‘출신’ 황정운
이훈보
보내는 공
선생님께,
새해가 밝았네요. 지난 1월 초 아내와 저는 아이를 일찍 재우고 둘이 거실에 앉아 9시 뉴스를 보 고 있었습니다. 뉴스에서는 새해 특집으로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한 차별과 혐오에 대해 보도하 고 있었는데 <우리 사회 가장 심각한 차별은 학력 및 학벌 차별> 에 대한 기사였습니다. 여론 조 사를 실시한 결과 학력 및 학벌 차별이 가장 심각하다고 답한 이가 전체의 33%로 1위라는 결과 도 소개되었습니다. 뉴스를 보며 저는 아내에게, 당신도 저 여론조사 결과에 동의하냐고 물어봤 습니다. 지난 10년 간 제가 경험한 직장 생활에서는 누가 어느 대학을 나왔다고 해서 편을 가르 거나 차별하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학력과 학벌이 삶의 고민이 된다는 것이 그리 와 닿지 않는다고 덧붙였습니다. 아내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건 우리 둘 모두 좋은 대학이라고 여 겨지는 곳을 졸업해서 평범한 직장에 다니고 있기 때문에, 그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거라 고 합니다.
학력과 학벌에 대해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 아내의 말을 듣고 머쓱해졌지만, 그러나 여전히 지난 10년 간 어느 대학에 나왔는지 단 한 번도 고민해 본 적이 없었던 건 맞습니다. 제가 다니 는 직장이 특수했던 걸까요. 회사는 내가 어느 대학을 졸업했는지를 크게 궁금해 하지 않았습니 다. 대학생이었을 때는 이 학교에 자부심이 있었는지 나와 학교를 동일하게 여겼지만, 정작 대학 을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오자 대학이라는 카테고리는 크게 중요한 건 아니었습니다. 신입사원일 때 회사 근처 호텔 연회장을 빌려 대학 동문회를 크게 가진 것이 전부였죠. 회사에서 특정 대학 이라는 연결고리는 굉장히 느슨하고 허약했습니다. 같은 대학이라 끌어주고 혹은 배척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한 발 양보해서 말하더라도, 그런 일을 제가 직접 경험하지는 않았습 니다. 그러니까 저는 출신에 대해 묻지 않는 곳에서 성장한 셈입니다.
출신(出身).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출생 당시 가정이 속하여 있던 사회적 신분, 혹은 어떤 지방 이나 파벌, 학교, 직업 따위에서 규정되는 사회적인 신분이나 이력 관계를 출신의 뜻으로 정의합 니다. 출신의 정의를 생각한다면, 저는 오히려 대학 생활 내내 꽤나 출신에 어긋나는 사상으로 괴로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경영학을 전공하는 시간 내내, 주위의 경영학과 친구들이 고민하는 일반적인 것들에 전혀 공감할 수 없어서 외롭다고 느낀 적이 많았거든요. 스스로를 경영학에 잠 깐 발을 걸친, 경계에 서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했고 대학 생활 내내 비주류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언젠가 경영학과 동기들과 함께 연말 저녁식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요. 모 두 로스쿨, 공인회계사, 컨설턴트, 행정고시 …… 경영학과 출신 학생이 일반적으로 꿈꾸는 로드 맵의 대화가 꽃을 피웠습니다. 누군가 제게 꿈이 뭐냐고 물었는데, 저는 작은 목소리로 미학(美 學)을 공부하고 싶다는 답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의 어색했던 공기가 여전히 느껴집니다.
경영학과 출신이라면 당연하게 꿈꾸는 것들을 꿈꾸지 않았고, 때문에 자신 있게 경영학과 출신 이라고 이야기하기 어려웠던 경우도 많았습니다. 회사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일을 매 개로 저를 몇 년 동안 알고 지낸 회사 동료들이, 뒤늦게 제 전공이 경영학임을 알았을 때의 반응 은 대개 놀랍다는 것이었거든요. 국문학, 영문학, 심지어는 철학을 공부했다고 생각했다는 사람 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반응이 기뻤던 게 사실입니다. 특정한 출신에서 연상되는 일반적 인 개념들을 전복하는 것에서 희열을 느꼈습니다. “너는 지금 무엇을 잘 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혹시 너의 출신은 이런 것 아니니” 라는 질문이 주어졌을 때 “아니, 사실 나의 출신은 이런 것인 데 너희들에게는 그렇지 않게 보였나 보네” 라고 답할 때, 저는 그들 너머로 거대한 사회를 잠 깐 조롱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나의 출신은 너희들의 관념 속에서 비롯되지 않았다, 이런 것이 자랑스러웠어요..
출신에 대해 이야기를 드렸죠. 출신에 대해 물어보지 않는 회사에서, 가끔 누군가 나의 출신을 엉뚱하게 추측할 때 느껴지는 괴괴한 행복에 대해 이야기를 드렸죠. 그러나 사실 괴괴한 행복은 오래 이어질 수 없는 것이라 이내 슬퍼졌습니다. 저는 일종의 유희를 즐기고 있는 것 같았거든 요. 2019년에도 이런 단어가 통용될 수 있을 지 걱정스럽습니다만, 부르주아의 유희를 즐기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미 사회적으로 안락해질 수 있는 조건을 만족시켰기 때문에, 오히려 타인 이 나의 출신을 다른 방향으로 감지할 때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출신은 본질적으로 훼손되 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에 – 저는 끝까지 안심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요. 얼마나 가식과 기만 으로 가득한 생각이었나, 부끄러워집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학력과 학벌에 대해 차별로 가득한 사회 생활이라는 것은 없었던 것이 아니라 보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 선생님, 저는 지금 어 떤 표정을 하고 있습니까. ▨
황정운 . 10년 차 직장인입니다. http://blog.naver.com/marill00 에서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돌아온 공
정운님께
이달의 주제는 조금 무겁네요.
출신이라는 주제는 참 복잡해서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고민이 됩니다. 역시 이럴 때는 기본적인 단어부터 다지고 들어가는 게 좋지 않을까 합니다.
출신이라고 하면 여러 이야기가 나올 수 있겠지만 가장 먼저 이야기해야 하는 것은 유전자의 대물림이 아닐까 합니다. 가문의 영광이나 금전적 이득과 상관없이 그냥 생명체로 물려받는 유전자입니다. 출신이라는 주제에 유전자를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 과하지만 이 부분을 풀어야 오해도 없고 또 서로 이해할 여지도 있지 않나 하여 이야기를 해 봅니다.
저는 이십 대 중반까지 유전자에 대한 생각을 깊이 하거나 인간의 삶에 큰 영향이 있으리라는 생각은 해본 일이 없었습니다. 기껏해야 성별을 이야기하거나 집안의 병력이 무엇인지 정도가 자라면서 떠올려 볼 수 있는 유전자와 관련된 상상이었습니다. 이것은 제가 아주 뛰어난 기억력이나 근력 등과 같은 신체능력을 물려받지 못해서 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나’의 존재 그 자체에 유전자 단계의 질문을 던지는 일은 드물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나’는 그냥 ‘나’ 이니까요.
출신으로 고통을 겪었던 사례를 한번 생각해 보려 합니다. 홍길동이 어떨까요?
홍길동은 ‘호부호형’이란 키워드를 붙잡고 자신의 사회적 신분을 문제 삼았지만 그 바탕에는 자신인 홍길동과 아버지 그리고 ‘호부호형’에서 언급되는 형들과 자신의 차이가 외견상 크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나 합니다. 유전자가 비슷한 것이죠.
딱 봐도 ‘형이랑 나랑 아버지랑 닮았고 큰 차이가 없는데 왜 신분은 다른가?’ 하는 문제가 홍길동에게 큰 벽으로 다가왔겠지요. 처절하게 닮은 형과 아버지를 보면서 사무치고 또 사무치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때 홍길동은 질문을 하게 됩니다. 나의 출신은?
홍길동은 승상 홍문과 몸종인 춘섬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승상인데 어머니가 몸종이라서 얼자 대접을 받는데, 유전자를 기준으로 보면 그냥 한 명의 사람인데 사회의 형태 때문에 차별을 받습니다. 몸종이라는 그 사회적 출신이 엄마인 춘섬을 따라서 (그 위에서도 따라왔겠죠.) 홍길동에게도 영향을 끼칩니다. 홍길동은 태어났을 뿐인데 너무 억울합니다. 하지만 홍길동은 어마어마한 능력이 있었습니다. 작품 속에서는 홍문이 청룡의 꿈을 꾸었다고 향후 홍길동의 무궁무진하고도 신출귀몰한 능력에 설화적 배경을 깔아주지만 사실 아버지인 홍문이 이미 승상이라는 지위에 오른 어마어마한 능력자입니다. 왕을 제외하면 서열 2위. 양반 출신을 감안하면 학문과 정치를 통해 사회적 지위의 정점에 오른 사람입니다. 홍길동은 억울하다고 하지만 꽤 괜찮은 유전자를 타고났죠. 유전자 덕이 없으면 학습능력이 그렇게 뛰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를일이죠. 그렇게 재상인 홍문의 유전자와 몸종 춘섬의 계급이 홍길동의 몸을 빌려 충돌합니다. 여기에 더해 홍문이 춘섬을 부르는 순간 위력을 행사했음을 감안하면 그 시작부터 홍길동전은 더욱 처절한 이야기로 볼 수도 있습니다.
소설 홍길동전에서는 춘섬의 능력에 대한 설명이 없기에 춘섬의 유전자에 대한 이야기는 할 수 없지만 향후 홍길동의 학습능력과 부친을 뛰어넘는 도술을 보았을 때 어쩌면 상당히 똑똑했거나 샤먼의 성향을 갖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이런 복잡한 집안 사정이 없는 저는 출신에 이렇다 할 질문을 던져 본 일이 없었습니다. 유전자는 뭐 특별하지 않고 사회적 제약은 많이 사라진 현대에 태어났으니 체감할 일도 드물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차이를 느낄 만한 어마어마한 재력을 가진 집안의 친구를 만난 일도 없었습니다. 출신에 대한 질문이란 것은 체감하기 어려운 먼 주제이죠. 그런 저에게 출신에 대한 질문이 던져지는 장면이 두 번 있었는데요. 그것은 모두 스포츠를 보던 순간의 일이었습니다.
처음은 복싱이었습니다. 아마도 챔피언 결정전으로 기억합니다. 몇 번의 방어를 마친 매끈한 미국 챔피언에게 호피무늬 트렁크를 입은 아프리카 선수가 도전을 한 것이었죠. 둘 다 어지간히 승리를 하고 또 해서 만났을 겁니다. 그러니까 챔피언은 이미 증명을 했고 도전자도 챔피언을 제외하고는 모두 승리한 끝에 챔피언 결정전을 하는 날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날 그 멋진 근육질의 아프리카 도전자가 챔피언을 정말로 한 대를 제대로 때리지를 못했습니다. 우락부락하지도 않은 챔피언이 도전자의 주먹을 슥-슥- 피하면서 한 대 씩 반격하는데 그 모습이 저에게는 너무도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아 저 두 사람은 유전자 단계부터 다르구나.’ 하는 실감이 확 와버린 것이죠. ‘죽어도 저 도전자는 챔피언을 못 이기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서글퍼졌습니다. 챔피언도 많은 수련을 쌓았겠지만 도전자는 아니었겠습니까? 그 정도를 안
하면 도전도 못하는 걸요. 다른 유전자의 출신이라는 것만으로 난다 긴다 하는 두 사람의 차이가 극단적으로 벌어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 슬픔을 가눌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당시는 나이가 어려서 꽤 큰 충격이었습니다.
또 한 번은 2002년 월드컵 때의 일입니다. 축구를 보다가 차두리 선수가 사이드 라인을 한없이 달려가는 장면을 우연히 보게 된 것입니다. 차두리 선수는 얼마나 힘이 좋고 빠른지 다들 기운이 떨어진 와중에도 펄펄 날아다녔습니다. 다만 발재간이 아쉬웠죠. 그래도 저렇게 열심히 꾸준하게 놀라운 속도로 달릴 수 있는 선수라면 뭐라도 되겠다 싶었습니다. 저건 정말로 차범근 선수가 물려준 유전자의 힘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그리고 또 노력했을 축구선수들을 생각하면서 슬펐습니다.
저에게는 출신에 대한 이런 유전자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슬프지만 이 탄생의 간격을 무시하고 정말 그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습니다. 타고난 팔자(유전자)를 넘어서기는 꽤 어렵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집안의 병력이라는 건 아무리 관리를 해도 무섭게 따라다닙니다. 이런 걸 다 치우고도 비슷한 능력을 타고난 상대를 또 만나서 겨루려면 무척 노력해야 하죠. 역사상 무수했던 1위와 2위의 싸움들을 떠올려보는 건 어떨까요? 그야말로 뼈를 깎아야 할 것입니다. 정치나 법으로 이런 간격을 넘어서는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상대를 만나 겨루는 시험이나 싸움, 게임 그리고 가위바위보 등과 같은 인생의 한 지점에서는 이런 것들이 조금씩 중요하게 되어버리고 그로 인해 순서가 나뉘어 버리는 것을 보면 조금 쓸쓸하지요. 물론 그 순간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요. 그동안 아닌 줄 알았던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들어서는 공부도 꽤 유전자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이야기가 자주 들리곤 하는 것 같습니다. 최근의 이야기처럼 공부 또한 정말로 유전자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면 공부로 인해 가려지는 등수나 출신 학교를 바탕으로 한 차별도 출신과 조금은 연관이 있겠죠. <스카이 캐슬>에서 아버지가 전국 수석이었는데 딸이 전교 1등. 경쟁상대도 사실 같은 아버지의 유전자. 뭐 이런 이야기를 지나가며 떠올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슬슬 마무리를 지어야 할 것 같습니다. 충돌과 선택을 한다는 것. 출신을 이야기하고 순서를 나누는 것은 인간은 모두 그 처음부터 다르고 각자의 등수와 값이 있으니 ‘니 주제를 알고 살자’ 는 이야기를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인간을 등수로 나누지 않고 또 당장 써먹을 도구로 보지 않는다면 그 우열을 가를 필요가 없으니까요. 인간을 향한 착취의 시선을 조금은 거두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럼 조금 덜 슬플 수 있으니까요.
이달에도 좋은 주제 감사드립니다.
이훈보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