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와의 전쟁과 미국의 민주주의 이태호(2009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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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와의 전쟁과 미국의 민주주의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미국 NGO들의 활동사례 연구

2009. 7. 31

이태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뉴욕 콜롬비아 대학 웨더헤드 동아시아연구소 포스코 펠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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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와의 전쟁과 미국의 민주주의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미국 NGO들의 활동사례 연구

이태호 뉴욕 콜롬비아 대학 웨더헤드 동아시아연구소 포스코 펠로우

Ⅰ. 서문 이 글은 테러와의 전쟁에 대해 민주적 통제를 시도한 시민운동들이 제기해온 이슈와 그것이 미친 영향들을 검토하고 있다.

9/11 사건 이후 미국에서는 민주주의와 안보, 전쟁과 평화에 관한 다양한 논쟁들이 있어 왔다. 이 글의 의도는 미국의 시민사회단체들이나 개인들이 테러와의 전쟁이나 이라크 침공에 대해 비판적으로 개입하는 과정에서 과연 어떤 법적인, 혹은 기타 제도적인 수단들을 사용할 수 있 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 글은 몇몇의 특징적인 단체들, 주로 부시 행정부의 전쟁권한 남용을 민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노력해왔거나 행정부가 벌인 전쟁의 잘잘못을 따지려 했던 단체들의 활동에 초점을 맞춘 다.

시민단체들은 일반적으로 정부의 정책집행에 개입하기 위해서 사용가능한 모든 제도적 수단을 찾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그들의 노력을 추적함으로써 미국의 다양한 제도와 법 조문들 속에 존재하는 혹은 존재하지 않는 정부 행위에 대한 시민의 민주적 통제수단들의 실제를 보다 효 과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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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개괄: 테러와의 전쟁과 민주주의를 둘러싼 논쟁들

부시 행정부는, 테러와의 전쟁 선포 이래 법치--국제법뿐 아니라 종종 국내법에 대해서도--에 대한 예외, 정부정책에 대한 민주적 통제로부터의 예외를 상대적으로 강조해왔다.

예를 들어, 제네바 협정과 유엔헌장 같은 국제법과 조약들로부터의 예외를 강조한다거나 대통 령 전쟁권한이나 국가기밀을 매우 넓게 해석 적용한다거나 하는 따위가 그것이다. 이는 미국 의 안과 밖에서 인권과 시민권리에 대한, 국제법 및 국내법에 관한 해석과 적용에 관한 다양 한 논쟁을 촉발했다. 여기에는 국가기밀특권(State Secrets Privilege) 혹은 대통령군사력사용권한 (Authorization for Use of Military Force)의 해석과 적용을 둘러싼 논란도 매우 중요한 일부분으로 포함된다.

1. 이른바 ‘적전투원’에 대한 무기한 구금과 고문

2001년 11월 13일 부시 미 대통령은 군사명령을 발표하여 테러와의 전쟁과정에서 체포된 수감 자들에 대해 미 국내법은 물론 국제법도 적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표했다. 미 행정부는 그들 을 다룰 전혀 새로운 구금, 심문, 재판 체계를 고안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 표와 같다.

1) 수감자 정책

수감자 정책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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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들 정책들은 최소한 다음과 같은 비밀 자문과 조치들에 의해 형성되었다. : - ‘럼즈펠드 메모 2002’: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지시, 2002년 1월 - ‘곤잘레스 메모 2002’: 알베르토 곤잘레스가 백악관 최고법률자문으로서 작성한 자문보고서, 2002년 2월 - ‘바이비/유 메모들 2001-2002: 법무부 법률자문 변호사 Jat Bybee와 John Yoo가 작성한 일련의 법률보고서. 2001년 9월- 200년 8월. 이들 보고서는 또한 체니 부통령의 David Addington에 의해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곤잘레스 메모 2005’ : 검찰총장으로서 곤잘레스가 작성한 보고서,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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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감자에

대한

- 포로가 아닌 적 전투원(혹은 불법 적 전투원)

규정/구분 법리 적용

- 미국내법, 국제법, 제네바 협정 적용배제 가능 - 적 전투원 규정에 관해 당사자의 사실확인 요청 권한 배제 2

- 인신구속영장 제시요청 권리 배제(구속적부심 접근권 배제) 심문 방식

- 이른바 ‘강화된 심문기법’ 허용 - 고문을 금지하고 있는 미국 국내법이나 제네바협정의 조항들을 엄 격하고 협소하게 해석하고 적용 - 고문을 행하는 국가로 송치: 이른바 특별이송(extraordinary 3

rendition ) 구금

- 관타나모 수용소 혹은 해외 비밀감옥

소송과 재판

- 특별군사법정 - 미국 일반법정에 대한 접근 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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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논쟁점들

테러와의 전쟁 수감자 처우를 둘러싼 논쟁점들5 관타나모 수용소

수감자 자살, 쿠란 모독 논란, 특별군사법정 거부, 석방된 수감자의 저항 세력 합류 여부…

아프간 내 수용시설

바그람 기지에서의 고문과 수감자 학대, 캐나다 국적 아프간 수감자 학대 사건… -

수감 중 사망사례들: Dilawar, Jamal Nasser, Abdul ahid, Habibullah, Jamal Nasser 등

이라크 내 아부 그라이부

아부 그라이부 수용소 내 고문 및 수감자 학대 -

수용소

수감 중 사망사례들: Abed Hamed Mowhoush, Manadel al-Jamadi, Nagem Hatab, Baha Mousa, Fashad Mohamed, Muhammad Zaidan

CIA 비밀시설: CIA 강화된 심문기법, 유령수감자, 물고문, 심문기록 테이프의 파손… 비밀구금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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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감기록에 없는(공개되지 않는) 수감자: Ibn al-Shaykh al-Libi, Abdul Aziz, Abdul Rahim al-Sharqawi, Muhammed al-Darbi, Mohammed Omar Abdel-Rahman, Yassir al-Jazeeri, Adil al-Jazeeri, Tariq Mahmood, Hassan Ghul, Musaad Aruchi, Hiwa Abdul Rahman Rash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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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이름도, 증거도 공개되지 않았고, 그들의 법률적 권리를 판단할 재판정에 대한 접근 자체가 인정되지 않았다.” Witness Against Torture, “Witness Against Torture”, Yellow Bike Press, 2008 고문을 목적으로 수감자를 특정지역으로 이송하는 것. 이것 자체가 미국법 위반. 특수 군사법정이 설치된 것은, 제네바 협정이 체결되기 이전인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초. http://en.wikipedia.org/wiki/Torturing_Democra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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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dul Quddoos Khan

2. 시민자유의 제한

1) 애국자법6의 남용

2001년 9/11 사건 직후 제정된 애국자법은 이주민에 대한 무기한 구금을 허용하고,정부 당국에 게 집주인이나 거주자의 허락이나 인지 없이 주택이나 사무실을 사찰--이른바 sneak-and-peak-하는 권한을 부여했으며, FBI가 국가안보레터--National Security Letters--를 발행하여 인터넷 서비 스 제공자, 도서관, 은행, 신용카드업체 등에게 고객의 민감한 정보를 건네주도록 요청할 수 있도록 그 권한을 확대하였다7.

2) 영장에 의하지 않은 도청

뉴욕 타임즈 2005년 12월 16일자는 미 연방 국가안보국(National Security Agency)은 미국국민의 전화통화를 영장없이 도청해왔다는 사실을 폭로하였다. 테러와의 전쟁 이전까지 이런 행위는 연방법은 물론 헌법에 위배되는 것으로 간주되어 왔었다8.

3) 국가기밀지정의 남용

부시 행정부는 연방정부가 기존 서류를 비밀로 재분류하거나 비밀지정 대상을 늘리도록 하는 정책을 취함으로써 정보공개법을 약화시켰다. 또한 “민감하나 아직 분류되지 않았다”는 논리 를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함으로써 정보공개를 유보하곤 했다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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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A PATRIOT Act of 2001(Uniting and Strengthening America by Providing Appropriate Tools Required to Intercept and Obstruct Terrorism Act of 2001) “2003년부터 2006년까지, FBI는 약200,000건의 국가안보지시를 발행하였는데, 오직 단 한 건만 테러용의자 유죄입증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 ACLU, “America’s Surveillance Society”,11/18/2008 http://www.aclu.org/safefree/spying/37802res20081118.html James Risen and Eric Lichtblau, “Bush Lets U.S. Spy on Callers Without Courts.”, The New York Times, Dec. 16, 2005, http://www.nytimes.com/2005/12/16/politics/16program.html American Civil Liberty Union (ACLU), 9/11 이후 권력남용 10대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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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대통령 군사력 사용권한의 남용

1) 이라크 전쟁 결의안10 논쟁

미국 헌법에 따르면 전쟁선포 권한은 대통령이 아닌 의회의 권한이다. 그런데 아프간이나 이 라크 개전의 경우, 미국 의회가 부시 대통령에게 선전포고 권한을 위임하였다. 2002년 10월에 통과된 하원합동결의 114는 “대통령이 필요하고 적절하다고 판단했을 때”, “이라크로부터의 지 속적 위협으로부터 미국의 국가안보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이라크와 관련된 유엔안보리의 모 든 결의를 완수하기 위해” 이라크에 군사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위임하고 있다.

이 결의는 두고두고 논쟁거리가 되어 왔다. 부시 대통령과 그의 지지자들은 의회의 위임에 따 라서 적법하게 전쟁을 선포했다고 주장하는 한편, 전쟁에 반대하는 시민들과 의원 일부는 거 짓정보와 행정부의 권한남용에 의해 의회의 권한이 도용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라 크 개전이 의회의 위임범위를 충족하는 적절하고도 불가피한 것인지 즉, 지속되는 위협의 실 재 여부, 그리고 유엔안보리의 결의가 군사력 사용을 요구하고 있는지 여부가 논란의 핵심이 되어온 것이다.

2) 유엔결의에 의하지 않은 예방전쟁

이라크에 대한 유엔사찰단장인 한스 브릭스는 이라크 전쟁 개전 직전인 2003년 2월 14일 유엔 안보리에 사찰결과를 보고하면서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 혹은 그와 연관된 아이템이나 프로 그램들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유엔사찰단은 그러한 무기를 전 혀 찾아내지 못했다.”고 밝혔다11. 완곡하지만 아주 강하게 미국의 주장을 부인한 것이다. 그러 나 미국은 유엔안보리로부터 침공을 뒷받침할만한 아무런 결의를 얻지 못한 채로 3월 20일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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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aclu.org/safefree/general/26684res20060906.html 이라크에 대한 무력사용 승인 결의 2002, the Authorization for Use of Military Force Against Iraq Resolution of 2002 한스 블릭스(Hans Blix)의 유엔안보리 보고서, 2003년 2월 14일. 한스 블릭스 박사는 유엔안보리 결의1284호에 따라 1999년 12월 구성된 유엔감시검증사찰위원회(the United Nations Monitoring, Verification and Inspection Commission, UNMOVIC)단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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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크를 침공12했다. 코피 아난 당시 유엔사무총장은 “이라크 전쟁은 유엔헌장에 저촉되는 불법 행위13”라고 규정한 바 있다.

3) 위협의 과장 혹은 기만

이라크 전쟁 이후 밝혀진 여러 증거들은 이라크 침공이 당시의 정황 아래서 위협의 해석을 잘 못한 까닭에 발생한 단순한 혹은 이해할만한 실수(reasonable mistake)가 아닐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미국에 대한 테러공격에 관한 국가위원회, 약칭 9/11위원회의 2004년 최종보고서14 는 “알카에 다와 사담 후세인과의 협조관계가 드러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미 상원 정보위의 ‘이라크 전전 정보평가보고서(2004)15’ 역시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대부분의 핵심판단 은 과장되었거나 정보보고서들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은 것”이었고, 알카에다와 사담 후세인과 의 어떤 작전상의 연계도 없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라크 침공이 정보실패 수준의 과오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혐의는 이른바 ‘다우닝 스트릿 메 모(2002) 16 ’의 공개에 의해 더욱 개연성을 얻어 왔다. 다우닝 스트릿 메모에 서 영국관료들은 미국의 입장에 대해, “군사행동은 불가피한 것으로 보였다. 부시 대통령은 군사행동을 통해 사 담을 제거하고 싶어했는데, 테러와의 연계 그리고 대량살상무기를 근거로 내걸고 싶어했다. 정 보와 사실관계는 정책에 꿰어 맞추어지고 있었다. 국가안보위원회는 유엔의 절차를 기다리거 나 이라크 체제 관련 증거의 공시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고 정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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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이라크 침공에 대해 일종의 정당방위 논리를 폈지만, 이라크 침공은 정당방위의 요건이라고 할 수 있는 불가피성, 긴급성, 그리고 비례성 등의 요건 어떤 것도 충족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게다가 유엔 결의조차 없어, 전형적인 공격적 침략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13 “아난 총장, 이라크 전쟁은 불법”, BBC News, 2004, 9.16 14 미국에 대한 테러리스트 공격에 대한 국가위원회 최종보고서 (NCTAUU, 7/11, 2004) 15 미상원정보위원회, “미국정보기관들의 전쟁 전 이라크 관련 정보평가에 대한 리포트”, 2004, 9.10 16 영국 노동부,국방부, 정보관계자들들의 2002년 7월 23일 비밀회의록. 이 회의에서 이들은 전쟁명분을 어떻게 축적할 지에 대해 논의하면서 당시 미국의 비밀정책도 직접 언급하고 있다. 다우닝스트릿 메모라는 닉네임은 영국 수상관저가 있는 다우닝 스트릿 10번가에서 따온 것이다. 이 회의록은 2005년 5월 1일 더 선데이 타임즈에 폭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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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2006년 6월경 뉴욕타임스에 공개된 부시-블레어 이라크 메모 200317(이른바 매닝 메모)는, 부시 대통령과 블레어 영국 수상은 이라크 내부에서 재래식 무기 외의 어떤 것도 발견되지 않 았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심지어 이 메모는 거짓으로 전쟁명분을 꾸 며낼 계획을 구체적으로 논의했음을 보여주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메모에 따르면, 계획된 침공에 앞 서 아무 증거도 발견하지 못할 가능성에 직면한 부시 미 대통령은 이라크 측의 적 대행위를 촉발할 몇 가지 방안을 블레어 총리에게 제시했는데, 거기에는 미국 정찰기를 유엔 의 비행기로 페인트칠하여 이라크측의 공격을 유도하거나 후세인을 암살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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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미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국 수상의 2003년 1월 31일 비밀회의록. http://www.nytimes.com/2006/03/27/international/europe/27memo.html?_r=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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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미국 시민운동의 대응

1. 테러와의 전쟁에 맞선 미국 시민운동들

테러와의 전쟁 개시 전후 발생한 여러 이슈들에 대해 미국 안팎의 시민사회단체들은 다양한 동기와 방식으로 대응해왔다. 반전 평화, 정의와 인권, 헌법과 시민권의 옹호 등 활동의 동기 도 다양할 뿐 아니라, 그 방식도 다양하여 이를 여기서 모두 소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몇 가지 눈에 띄는 사례들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전국적인 반전운동 연대체들: A.S.W.E.R (Act Now to Stop War & End Racism) coalition19, Not In Our Name20, Win Without War21, UFPJ (United Peace and Jus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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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혹은 피해자 가족과 예비역 운동: 평화로운 내일을 위한 9/11 희생자가족회(September Eleven families for Peaceful Tomorrows23), 군인가족의 소리(Military Families Speak Out24), 반전이라 크예비역협회(Iraq Veterans against the War25 ), 평화를 위한 공훈가족모임(Gold Star Families for Peace26) 등.

인권 및 시민권을 위한 변론 및 소송 운동: 미국시민자유연맹(ACLU,American Civil Liberty Union), 헌법권리센터(CCR,Center for Constitutional Rights), 전국법률가길드(National Lawyers Guild27), 휴먼라이츠퍼스트(Human Rights First28) 등

국제반전운동: 2003년 2월 15일 지구적 행동의 날29 “전세계가 전쟁에 반대한다”, 자카르타 세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http://answer.pephost.org/site/PageServer?pagename=ANS_about_us www.nion.us http://winwithoutwarus.org/html/coalition.html http://www.unitedforpeace.org/article.php?list=type&type=16 http://www.peacefultomorrows.org/ http://www.mfso.org/article.php?list=type&type=61 http://ivaw.org/ http://gsfp.live.radicaldesigns.org/ http://www.nlg.org/ http://www.humanrightsfirst.org/ 전세계 800여개 도시에서 약 3600만명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이 시위는 기네스북에 의해 역사이래 가장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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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반전회의(이른바 자카르타 피스 컨센서스30 ), 2004 이스탄불 국제민중전범재판, 2004 뭄바이 세계사회포럼(WSF)-반전운동 글로벌총회, 2004 베이루트 반전반세계화대회, 2005 세계사회포럼 (WSF)-글로벌 반전 등

이들 단체들 중에서 이하에서는 관타나모 수감자 인권 운동, 부시 대통령과 고위 공직자들에 대한 탄핵운동, 그리고 이라크 철군과 전비삭감운동 등 시민권 침해에 저항하고 잘못된 전쟁 에 대한 책임을 물음으로써 국가안보를 내세운 권력의 남용에 맞서 시민의 민주적 통제권을 복구 혹은 확장하고자 했던 시도들을 중심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 법률적 수단 사용사례 1: 관타나모 수감자 권리운동 및 전쟁범죄 고발운동 먼저 소개할 사례는 관타나모 수용소와 수감자 처우에 대한 법률적 대응사례이다. 관타나모 수용소와 수감자 고문에 대해 법률수단을 통해 이의를 제기한 여러 소송사례들이 있 는데 상당수의 중요한 소송이 주로 헌법권리센터(Center for Constitutional Rights, CCR)에 의해 시도되었다.

헌법권리센터는 관타나모와 관련하여 몇 가지 역사적인 기록을 가진 단체인데, 예를 들면, 헌 법권리센터는 관타나모 수용소 수감자를 위해 최초의 구속적부심 변호사를 파견했고, 수감자 들 방문하기 위해 최초로 관타나모 수용소 안으로 들어가도록 최초로 허락되었으며, 관타나모 수감자를 대리한 소송에서 최초로 승소한 바 있다. 또한 200여명의 관타나모 수감자를 대리 하기 위해 약 500여명의 자원활동 변호사단을 조직하여 활동해오고 있다.

이하에서는 헌법권리센터가 진행한 주요 소송 사례들을 통해 관타나모와 관련된 법률적 쟁점, 그리고 정부, 의회 및 사법부의 대응을 추적해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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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로 기록되었다. 이라크 전쟁 직후인 2003년 5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26개 국가에서 모인 60여명의 활동가들이 모여, 이라크 점령정책 모니터, 국제민중전범재판, 기타 주요 지구적 반전행동의 날 일정 등을 합의하였다. http://www.fpif.org/papers/peace200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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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헌법권리 센터31 개요

활동목표와 배경

헌법권리센터는 미국헌법과 보편적인 국제인권선언에 의해 보장된 권리를 보호하고신장하기 위한 시민단체로서, 1966년 미국 남부에서의 시민권운동을 대변하던 변호사들에 의해 설립되 었다. 60년대 흑인인권운동의 직접적인 산물인 셈이다.

활동방향

헌법권리센터는 비영리 법률단체이자 사회교육단체로서, “사회변화를 위해 법률을 창조적으로 사용”하고, “진보적인 전망 속에서 효과적인 법률적 수단을 제공”한다. 특히 소송이나 활동과 제를 승소가능성보다 투쟁 그 자체의 가치와 원칙에 기초하여 수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진보적인 지향을 갖는 법률전문단체라고 할 수 있다.

이슈

다루는 이슈 혹은 활동의 범주는 주로 시민의 자유와 사회경제적 권리를 망라하는것으로, 주 로 불법구금과 관타나모 문제, 이의제기에 대한 사찰과 공격, 형사사건의 공정성과 수감자 처 우, 기업의 인권침해, 국가권력 남용, 인종과 성 그리고 경제적 권리, 국제법과 (전쟁)책임 등이 다

이들 활동과제를 수행하는 상근스태프는 약 40명, 이들 중 상당수가 변호사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무실은 뉴욕에 두고 있다.

2) 관타나모 수용소에 대한 헌법권리센터의 법률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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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ccrjustic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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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설 대 부시 (Rasul v. Bush)

2002년 2월 헌법권리센터는 샤리프 라설을 비롯한 영국 출신 수감자 2명, 그리고 오스트레일 리아 출신 수감자 2명을 대리하여, 이들의 인신구속영장 제출요구 권한을 확인하는 일종의 구 속적부심을 콜롬비아 지역(D.C.) 연방지방법원에 제출하였다. 이 청구의 요지는 2001년 11월에 발표된 대통령령에 따라 수감자들을 정당한 법적 절차 없이 미군 군사수용시설에 무기한 구금하는 것이 미국 헌법과 국제법에 반한다는 것이었다. 이 청 구는 지방법원과 항소법원을 거쳐 결국 대법원의 판단을 구하게 되었다. 2004년 6월 28일 미 대법원은 6:3으로 라설 등이 자신들의 구금에 항의하여 인신구속영장의 발행을 요구할 권리를 갖는다고 판결하였다.

라설 대 부시 사례는 헌법권리센터의 최소의 승소사례이자 관타나모 수감자 중 최초의 승소사 례였다. 다만, 이 소송은 수감자의 석방이나 미국 법에 따른 유무죄 판결을 구하는 소송이 아 니라 수감자가 그의 피감이 적법한 지를 다툴 수 있도록 인신구속영장을 요구할 권한이 있는 지, 다시 말해 이들에게 미국법과 헌법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적법절차가 적용될 수 있는지를 다루는 소송이었다.

대법원 판결에 대한 부시 행정부와 의회의 대응

관타나모 수감자들에게 구속적부심 청구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미국 법을 적용하도록 한 대법 원 판결과 관타나모 수용자 및 이라크 아프간 구금자들에 대한 고문과 이에 따른 사망사건이 국제적 논란거리로 대두되는 가운데, 미 행정부와 의회는 몇가지 개선책을 강구하게 된다. 그 러나 이들 대책은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주로 근본 문제에 대한 국내법적 국제법적 자구책 을 제약하기 위한 것에 맞추어졌다.

대법원 판결에 대해 국방부는 형식적으로 ‘전투원 신분에 관한 재심 위원회(Combatant Status Review Tribunals)’를 만들어 수감자들이 미국안보에 위협이 되는지, 이들을 적 전투원으로 규 정할 것인지의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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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미 의회는 2005년 12월 이른바 수감자처우법(the Detainee Treatment Act 2005)을 입법화하 였다. 이 법은 수감자들을 학대로부터 보호하는 일부 조항을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더불어 수 감자들의 인신구속영장 요구권한 제한을 연장하고, 수감자들이 특수군사법정과 ‘전투원 신분 에 관한 재심위원회’의 결정에 불복할 수단을 제한하는 구체적인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2001 년의 대통령령의 일부가 대법원의 위법판결에도 불구하고 입법부에 의해 다시 합법화된 셈이 다. 게다가 수감자처우법은 수감자들에 대한 학대를 방지한다는 취지로 수감자에 대한 심문은 미육군현장매뉴얼에 따르도록 위임하고 있는데, 정작 미육군현장매뉴얼은 공개되지 않고, 그 구체적 지침도 법 조항으로 특정되지 않아 사실상 행정부에 어떤 심문수단을 사용할 지를 백 지위임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함단 대 럼즈펠드(Hamdan v. Rumsfeld)

이 사례는 헌법권리센터가 직접 수행한 것은 아니고 다만, 의견서를 제출함으로써 기여한 소 송사례이다. 이 소송의 중요성은 이 판결이 부시 행정부가 테러와의 전쟁의 한 부분으로서 이 른바 적전투원들을 수사하고 처벌할 목적으로 신설한 특수군사위원회 자체의 위헌여부를 다투 었다는데 있다. 2006년 6월 29일 미 대법원은 국방부가 관타나모 기지에 세운 특수군사위원회 가 미 의회에 의해 승인되지 않았으므로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또한 수감자들에게 제네바 협 정이 부여하는 권리가 적용되어야 한다고 판결했다. 제네바 협정은 미 정부가 테러와의 전쟁 과정에서 잡힌 수감자들에게 적용하기를 거부해왔던 일종의 국제법이자 전쟁법규였다. 이들을 ‘포로’가 아닌 이른바 ‘적전투원’으로 명명한 것도 국제법상 포로의 지위를 보장하지 않기 위 한 고심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이 같은 근본적인 설계가 커다란 도전에 직면한 것이다.

함단 케이스에 대한 부시 행정부와 의회의 대응

대법원 판결에 대한 의회의 응답은 대테러 전쟁을 위해 특수군사법정 관련 법을 제정해줌으로 써 부시 행정부의 행위를 정당화 합법화해 주는 것이었다. 새로 제정된 군사위원회법(the Milit ary Commission Act 2006)은 수감자들을 재판할 군사위원회를 합법화하고 수감자들이 인신구 속영장 절차를 이용하여 자신의 수감에 대해 연방법원에 이의를 신청할 길을 막는 것이었다. 13


이 법에 따르면 이미 적전투원으로 결정된 수감자는 물론 그/그녀의 신분이 규정되기를 기다 리는 대기 상태의 수감자조차 인신구속영장 제시를 요구할 권한이 없게 된다. 대법원의 판결 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이 법은 법 제정 이전의 고문과 학대에 대 해서는 면책하는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게다가 설사 고문에 의해 얻어진 진술이나 정보도 유 죄입증에 유효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부메딘 대 부시(Boumediene v. Bush)

이 소송은 의회가 제정한 군사위원회법의 위헌 여부를 다툴 목적으로 헌법권리센터가 시도한 소송이다. 2008년 6월 12일 대법원은 군사위원회법이 수감자들의 사법적 수단에 대한 접근권 을 제한하고 있어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결하였다. 그리고 관타나모 수용소에 적전투원으로 규 정되어 수감되어 있는 외국인들도 미국 법정에서 그들의 수감의 적법성 여부를 다툴 헌법적 권리를 갖는다고 판결하였다. 이로써 행정부의 관타나모 정책에 합법성을 부여하려 했던 의회 의 입법행위 역시 헌법에 위배된다는 판결을 받게 되었다.

부메딘 판결 이후

부메딘 판결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유사한 사건들은 정부 정책 변경을 기다리며 각급 하급 법원에 계류되어 있는 상태이다. 2009년 5월 현재, 부메딘 사례의 청구인인 부메딘 포함 5인 외에 인신구속영장을 요구할 권리를 획득한 수감자는 사실상 없다. 2008년 11월 20일 법원은 부메딘 대 부시 사건의 청구인인 6명의 보스니아계 알제리인 중 5명을 석방하라고 명령하였다. 판결에 따르면 정부가 그들을 계속 구금하는 것이 정당하다며 제출한 비밀 자료들이 정부의 조치들을 정당화하기에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관타나모 수감자들이 미국 법정의 중립 적인 판결에 의해 석방된 유일한 케이스이다.

3) 부시 행정부 고위관료들을 전범으로 처벌하기 위한 소송

대테러 전쟁 과정의 고문과 불법구금 등에 대항하는 헌법권리센터의 또 다른 법률적 노력의 14


하나는 고문에 책임이 있는 부시 행정부의 고위 공직자들을 전범으로 처벌하려는 일련의 국외 소송 노력이다

도널드 럼즈펠드 장관 등을 고문, 수감자 학대 혐의로 해외에 고발

이 소송은 과거 칠레의 피노체트 대통령을 스페인의 한 판사가 처벌하려 했던 선례에서 힌트 를 얻은 것이다. 중대한 국제범죄에 관해서는 범죄자나 피해자의 국적, 범죄가 행해진 장소에 상관없이 처벌하도록 하는 보편적 법리를 국내법으로 채택하고 있는 나라의 사법부에 럼즈펠 드 미 국방장관을 비롯한 수감자 학대 정책의 입안자들을 고발하고자 하는 소송이다.

헌법권리센터는 2004년과 2006년 독일에, 2005년 아르헨티나에, 2007년 프랑스에, 그리고 2007 년 스웨덴에 각각 소장을 접수시켰다. 하지만 대체로 기각되었다. 그러던 중 2009년 3월 스페 인의 한 판사가 부시 행정부의 법률 자문가들에 대한 조사에 착수할 의사가 있음을 공표하기 에 이르렀다. 게다가 이 판사는 스페인 법무부가 자제를 요청한 이후에도 조사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어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3. 법률적 수단 사용 사례2: 불법 사찰과 국가기밀 지정 남용에 대한 도전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시민의 대응을 잘 보여주는 또 다른 대표적 사례는 미국시민자유연맹(A merican Civil Liberty Union)의 활동사례이다.

9/11 직후 부시 행정부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자 ACLU는 성명서를 통해 “테러리즘이 우리 헌법을 다시 쓰게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면서 부시 행정부의 정책이 가져올 폐해를 경고하 였다. 성명은 “ACLU는 안보와 시민의 자유가 상충되지 않으며 우리(미국 시민)이 안전하면서 동시에 자유로울 수 있다고 믿는다”고 주장했다.

테러와의 전쟁에 대응하는 ACLU과 CCR의 활동은 많은 부분에서 겹치는 것이 사실이지만 굳 15


이 구별하자면 ACLU는 고문과 관련된 소송이나 법률대응 외에 당국의 불법도청과 시민에 대 한 사찰, 정보공개의 거부와 기밀권한의 남용과 관련된 기념비적인 사례들을 만들어오고 있다.

이하에서는 ACLU가 진행한 주요 법률적 활동사례들을 통해 테러와의 전쟁에 맞서 시민사회 가 제기해온 또 다른 이슈들과 이에 대한 제도권의 대응을 살펴보고자 한다.

1) 미국시민자유연맹의 활동 개요

활동목표와 배경

ACLU는 “헌법과 미국 법이 나라안의 모든 이들에게 보장하는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지키고 보존하기 위해 법정과 입법기구 그리고 공동체에서 일상적으로 활동”하는 “자유의 수호자”가 될 것을 표방하면서 1920년에 발족하였고 지금까지 활동해오고 있는 미국 최대의 시민권 법률 단체이다.

주요 이슈

형사사건 정의/ 사형/ 장애인 권리/ 마약정책/ 표현의 자유/ 에이즈HIV/ 국제인권/ 레즈비언 및 게이권리/ 국가안보/ 경찰행태/ 수감자권리/ 사생활과 테크놀로지/ 인종 정의/ 종교자유/ 임신의 자유/ 빈민권리/ 안전과 자유/ 청소년 권리/ 대법원/ 투표권/ 여성권리 등 ACLU가 일상적으로 다루는 이슈는 매우 방대하다.

ACLU는 약 200여명의 상근변호사와 수 천명의 자원활동 변호사로 운영되며, 50개 주와 워싱 턴 D.C. 그리고 푸에르토리코에 각각 사무실을 두고 있다. 회원은 약 50만, 이중 활동네트워크 에 속한 회원은 40만에 이른다.

2) 시민에 대한 사찰에 맞선 법률적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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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뉴욕타임스는 국가안보국(NSA)가 미국시민들의 전화를 영장 없이 도청하고 있고, 몇몇 미국 최대 통신회사들이 전화통신 인프라에 대한 직접적인 접근을 제공하고 있다고 보 도하였다. NSA가 영장 없는 도청뿐만 아니라 통신을 분석하기 위한 광범위한 데이터 조사 시 스템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부시 대통령에 의해 승인되었는데, 이에 대해 그는 9/11 직후인 2001년 9월 18일 의회가 의결한 ‘대통령의 군사력 사용에 관한 승인(the Auth orization for Use of Military Force of 200132)’이 그러한 권한을 부여하였으므로 합법적이라고 주장하였다

ACLU 대 국가안보국(ACLU v. NSA)

이에 대해 ACLU는 2006년 8월 이 조치의 적법 및 합헌 여부를 묻는 소송을 디트로이트 지방 연방법원에 제기하였다. 지방법원은 “해당 프로그램이 위법이며 위헌”이라고 판단함으로써 A CLU의 손을 들어주었으나, 항소법원에서는 판결이 뒤집히고 말았다. 연방 6차 순회 항소법원 은 “원고들이 자신들이 도청되었다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으므로 그 프로그램의 적법성 여부 를 따질 수 없다.”고 판결했다.

ACLU가 상고 여부를 검토하고 있는 와중에 의회에서는 사회적으로 중대한 문제가 되었던 이 도청 스캔들에 대한 의사결정이 있었다. 결론은 이제까지의 정부 조치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해당 프로그램을 합법화 시키는 것이었다.

이른바 미국보호법 (Protect America Act of 2007)

의회는 외국정보사찰법(FISA, the Foreign Intelligence Surveillance Act of 1978)을 개정하여 이른 바 미국보호법(PAA, the Protect America Act of 2007)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미국 바깥에 있다 고 믿어질 만한(reasonably believed) 해외정보대상에 대한 정부의 사찰에 대해서는 영장을 신청 할 필요가 없게 하였다. 따라서 해외와 통화하는 미국시민의 통화도 당연히 영장 없이 감청하 거나 조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법은 또한 미국 시민의 국제전화나 이 메일 통신에 대한 32

부시 행정부는 이 결의가 아프간 전쟁 개전은 물론, 테러활동과 혐의자에 대한 조사와 수사, 그와 관련된 적전투원 구금 심문 처벌을 위한 특수군사위원회의 설치 등 광범위한 권한을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에게 위임한 것으로 넓게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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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인망 방식의 정보수집 역시 영장 없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과거 부시 행정부의 영장없는 도청에 참여한 통신회사들을 면책한 것은 물론이다. 이 법은 2008년 2월에 종료되도록 설계된 한시법이었지만 2008년 의회는 이 법을 큰 수정 없이 4년 한시법(FAA, the FISA Amendment Act of 2008)으로 재통과시켰다. ACLU의 비판 성명에 따르면 “의회가 비밀사찰 프로그램을 재 차 입법화함으로써 정부가 4년간 통제되지 않는 권력을 보유하도록 백지수표를 주고 말았다.”

앰네스티 대 맥코넬(Amnesty v. McConell)

이에 ACLU는 2008년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USA, 휴먼라이츠워치, 국제형사사건변호사협회 등 8개 국내외 단체, 그리고 ‘더 네이션’지와 관련 저널리스트 나오미 클라인 등 대규모 원고인 단을 구성하여 개정FISA가 위헌 위법하다는 판결을 구하는 소송을 시작하였다. 이 소송은 현 재 진행 중이다.

3) 국가기밀특권에 대한 도전: 고문과 불법구금에 대한 정보공개운동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한 이래 부시 행정부는 이른바 국가기밀특권(State secret privilege)를 주장해왔다. 특히 관타나모나 기타 미국 특수비밀감옥에서 이루어지는 이른바 적 전투원의 조 사과정과 결과에 대해서는 매사에 국가기밀특권을 이유로 정보공개를 거부해왔다.

2003년 7월 ACLU는 CCR, 인권을 위한 의사회, 평화를 위한 예비역모임 등 인권단체들과 함께 수감자 신문과 학대와 관련된 자료들의 공개를 요구하는 정보공개청구를 접수시켰으나 정부는 국가기밀을 이유로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2004년 4월 28일 CBS는 ‘60분’이라 는 프로그램에서 아부 그라이부에서의 수감자 학대와 관련된 사진자료들을 폭로하였고 이 문 제는 국가 전체 나아가 전세계적 논쟁거리로 떠올랐다.

ACLU 등. 대 국방부(ACLU et al. v. Department of Defense)

이에 이들은 2004년 6월 미 정보공개법에 의거하여 관련 자료의 공개를 요구하는 소송을 시작 18


하였다. 미 법원은 ACLU의 손을 들어주었다. 지방법원은 2004년 9월 “만약 자료들이 비밀이 라기보다 공개하기 난처한 것들이라면, 시민들은 자신들의 정부가 해외에서 체포한 이들에게 행하고 있는 바를 알 권리가 있다.”고 판결하였다.

이 최초의 판결 이래 구체적인 정보공개의 범위를 둘러싼 밀고 당기기는 지금까지 지속되어 오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논쟁은 고문으로 간주되는 특수심문기법 허용 메모의 공개여부—이 른바 고문메모--, CIA에 의한 고문 비디오 테잎과 보고서의 고의적 파기여부, CIA 비밀감옥 의 존재여부로 까지 확대되어오고 있다. ACLU 등은 이 과정에서 주요 ‘고문메모’ 공개라는 성 과를 얻어냈고 고문 사진과 기타 정보의 공개를 위한 법적 논쟁을 계속하고 있다.

고문 정보 공개 일지33 03/10/07

ACLU 와 기타 인권단체(CCR, Physicians for Human rights, Veterans for Common Sense, Veterans for Peace)가 수감자 심문수단과 학대와 관련된 정부문서의 공개를 요구하는 정보공개청구서 접수

04/04/28

CBS “60 Minutes” 아부 그라이부 학대 사진 방영

04/06/02

ACLU et al. 대 국방부: ACLU 등 정보공개소송 착수

04/09/15

지방법원, 정부가 정보공개 요청에 답하여야 한다고 판결

05/03/29

ACLU, 이라크에 근무하는 조사요원들에게 피감자의 감각을 마비시키는 것을 포함한 학대적 수단 사용을 지시한 문서 획득

05/08/16

지방법원, 국방부에게 고문사진을 비밀로 지정하도록 한 법률검토보고서를 공개하라 고 지시

06/04/11

국방부 폭로된 아부 그라이부 수감자학대 사진이 실제 관련사진 임을 인정

06/09/06

부시 대통령, CIA 가 해외비밀감옥을 운영해 왔고, 수감자들에게 ‘대체 심문수단’을 적 용해왔음을 인정.

06/11/14

CIA , 비밀감옥과 ‘강화된 신문기법’을 승인하는 메모의 존재를 인정

07/12/06

New York Times CIA 가 수감자를 물고문하였음을 보여주는 2 개의 비디오 테이프를 파손하였다고 보도

07/12/12

ACLU, CIA 가 심문테이프를 파손하려는 시도를 중단할 것을 서면으로 요구

08/04/01

ACLU, 특수심문기법이 합법적이라고 주장한 2003 년 3 월의 이른바 ‘John Yoo 법률 자문메모’를 입수

33

ACLU, “the Truth about Torture” http://www.aclu.org/images/torture/asset_upload_file694_39252.pdf

19


08/07/24

ACLU, CIA 의 특수심문수단 사용을 허용한 Jay Bybee 의 법률자문메모를 심하게 편 집된 형태로 입수

09/03/02

CIA, 92 개의 심문기록테이프가 파손되었고, 그 중 12 개는 강화된 심문수단의 사용과 관련된 것이었음을 인정

09/03/20

CIA, 파괴된 테이프와 관련된 3,000 여 문서를 보관하고 있다고 확인

09/04/16

오바마 대통령, Jat Bybee 가 작성하여 CIA 의 고문수단 사용을 허용한 4 개의 법률메 모를 공개

모하메드 등 대 제페슨 데이터플랜 주식회사(Mohamed et al. v. Jeppeson Dataplan, Inc.)

ACLU는 2007년 3월 보잉 계열사인 제페슨 데이터플랜 주식회사(Jeppesen Dataplan, Inc.)가 CIA의 특별이송(extraordinary rendition) 프로그램의 반인도적 실체를 알고도 이를 돕는 조달서 비스를 제공하였다고 해당 업체를 연방지방법원에 고발하였다. 정부는 이에 “이 프로그램에 관한 소송이 국가안보를 저해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기각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1심에서 패한 후 ACLU는 항소를 제기하였고, 이 사건은 현재 미 연방 제9차 순회 항소법원에 계류되 어 있다.

4. 대의제 수단에 호소한 사례: 대통령 탄핵운동

미국 수정헌법 2조 4항에 따르면, 대통령과 부통령은 국가반역죄와 뇌물, 혹은 다른 중범죄와 악행들(misdemeanors)로 인한 탄핵에 의해 그 직을 박탈당할 수 있다34.

이라크 전쟁 근거로 제시되었던 각종 논리들이 구체적 증거 없이, 사실상 전쟁을 일으키기 위 해 고의적으로 조작되어 제시되었다는 의구심이 커져가는 과정에서 다우닝 스트릿 메모 같은 구체적인 근거자료들이 폭로되자, 불법침략의 길로 시민과 의회를 이끌어 간 행정부의 책임자

34

Section 4 of Article II of the U.S. Constitution: “The President, the Vice President shall be removed from office on impeachment for and conviction of treason, bribery or other high crimes and misdemean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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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을 문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고조되기 시작했다. 시민에 대한 영장 없는 도청과 고문 을 둘러싼 논란은 탄핵 논란에 가속도를 붙였다.

여론이 압도적으로 탄핵의 편이었던 것은 아니다. 부시 대통령 집권기간 동안 대부분의 여론 조사에서 탄핵여론은 과반수를 밑돌았다. 하지만 2006년 이후 과반수에 육박하기 시작하여, 2007년 한 여론조사에서는 부시 행정부가 탄핵되어야 한다는 질문에 과반수가 동의를 표하기 도 했다.

이하에서는 탄핵 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한 ‘애프터다우닝스트(Afterdowningstreet. org)’의 활동 과 탄핵안이 의회에서 다루어지는 과정을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1) Afterdowningstreet.org

창립배경과 구성

이 네트워크는 약 200 여 예비역 및 평화운동단체, 그리고 정치적 활동가 그룹들의 비당파적 연대체로서, 2005년 5월 발족한 이래 부시 행정부의 고위 공직자들에 대한 탄핵과 처벌을 목 표로 활동해오고 있다. 이 연대기구는 사실 신디 시헨이나 World won’t wait 같은 급진적인 반전운동가/단체들과 진보적인 민주당 그룹들간의 협력체계라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실제로 이 네트워크의 창립을 주도한 멤버들은 미국진보민주당원협회의 주요 간부들35 이다. 연대체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연대체의 명칭을 미국 정부의 전쟁범죄를 드러냄으로써 탄핵 의 구체적 증거가 되는 것으로 간주된 다우닝스트릿 메모로부터 따왔다.

주요활동

35

창립자들 JOHN C. BONIFAZ: 변호사, 미국진보민주당원협회(Progressive Democrats of America) 자문위원회 멤버 STEVE COBBLE: 미국진보민주당원협회 정책자문역 BOB FERTIK: 진보적인 민주당 활동가 TIM CARPENTER: 미국진보민주당원협회 내셔널 디렉터 DAVID SWANSON: 미국진보민주당원협회 집행위원, UFPJ 내 책임추궁 및 형사소추 소위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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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미 행정부의 전쟁범죄나 시민권 침해와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여, 이를 각종 논쟁의 근 거 혹은 소송의 증거로 제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관련 온라인 자료실을 운영하고 있다. 창립 1 년여 만에 이들은 12000여건의 논문과 기사, 그리고 사진자료들을 수집하였다. 한편 이들은 전국 탄핵 서명운동을 온라인 오프라인에서 전개하면서 전국 전화로비의 날, 국회방문의 날 등의 탄핵운동을 제안 실천해왔다. CCR등 법률전문단체와 함께 전국 탄핵운동 학습의 날도 시도하기도 했다. 애프터다우닝스트릿은 Dennis Kucinich 하원의원이 2007년 2008년 각각 체니 부통령과 부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발의하는 것을 도와 이를 함께 추진하였다. 이를 위해 이들은 100만명 이상의 서명을 의회에 제출하였다.

2) 의회에서의 탄핵 시도

2006년: 민주당이 소수의석일 때

2005년 6월 존 코니어즈John Conyers 하원 의원은 120명의 의원과 500,000만명의 서명을 받아 다우닝 스트릿 메모에 대한 청문회를 시도했으나 공식적으로 채택되지는 않았고 다만 비공식 청문회만 개최되는데 그쳤다.

2006 년 5 월 10 일, 민주당의 중역인 낸시 펠로시 Nancy Pelosi 하원 의원은 “탄핵은 고려대상 이 아니다.”라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2006 년 11 월, Afterdowningstreet. org 를 비롯한 여러 연 대체들이 전국탄핵네트워크를 구성하여 압박을 가하는 가운데 12 월 8 일 신시아 맥키니 Cynthia Mckinney 하원의원이 부시 체니 라이스에 대한 탄핵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109 대 의 회 회기가 끝나 해당 의안은 의회검토 없이 각하되고 말았다.

2007 이후: 민주당이 다수의석이 된 이후

2006년 말의 중간선거로 민주당이 상하원에서 다수당이 되자, 2007년 1월 민주당낸시 펠로 시 의원이 하원의장으로 취임하였다. 탄핵논의를 주도하던 존 코니어즈 의원은 하원 사법위원 회의 의장이 되었다. 이에 고무된 신디 시헨 및 탄핵운동 활동가들은 탄핵안의 처리를 압박하 기 시작했고 급기야 2007년 7월 23일 존 코니어즈 의원의 사무실을 점거하고 탄핵안의 발의 22


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들은 존 코니어즈 의원의 요청에 의해 경찰에 의해 사무실 에서 끌려 나왔다. 2007년 8월 초 존 코니어즈 의원은 “시간도 표도 부족하다. 나는 한 손에 는 헌법을 들고 있지만 다른 한 손에는 계산기를 들고 있다.”며 탄핵안 발의시도를 중단할 것 임을 시사했다.

탄핵운동은 의회 내에서 다른 지지자를 찾아야 했다. 2007년 11월, 데니스 쿠치니치Dennis Kucinich 민주당 하원의원이 체니 부통령 탄핵안(하원 결의안 333 및 799)을 발의하였으나 투 표로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사실상 방치되었다. 체니 부통령만을 탄핵의 대상으로 했던 이유는 전쟁 중인 대통령 탄핵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의회는 냉담했다. 2008 년 6월 10일 그는 다시 35개 항의 부시 대통령 탄핵안(하원 결의 1258)을 발의하여 6월 11일 사실상 최초이자 최종의 탄핵안 표결을 시도하였으나 251대 166으로 패했고 결의안은 사법위 원회로 반려되고 말았다. 2008년 7월에 쿠치니치 의원은 “대통령이 의회를 속였다는 점”에 한 해서 탄핵의결을 시도했지만 이 역시 호응을 얻지 못했다.

3) 탄핵논쟁

탄핵안이 의회에서 변변히 논의되지 못한 까닭은 공화당 의원들은 물론 민주당 지도부가 이에 대한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2008년 7월말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부시 대통령 이 형법 상의 범죄를 저질렀다는 증거는 찾을 수 없으며, 탄핵시도는 나라를 분열시킬 것”이 라며 쿠치니치 의원의 마지막 탄핵시도에 쐐기를 박았다. 2008년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예측은 이들을 탄핵에 더욱 소극적이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진보적인 인터넷 방송매체인 데모크라시 나우(Democracynow.org)에 2007년 7월 말 방영 된 탄핵운동에 대한 논쟁36 이다. 민주당 전략가이자 정치평론가인 댄 거스타인이 탄핵불가론 을, 반전평화운동가인 신디시헨과 전직 CIA관료출신 평화운동가인 레이 맥거번이 탄핵추진론 을 펴고 있다.

36

Democracy NOW, “Should impeachment be off the table?” July 27, 2007 http://www.democracynow.org/2007/7/27/should_impeachment_be_off_the_table

23


Dan Gerstein

“부시 대통령이 저지른 잘못을 바로 잡기 위해서 민주당원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백악관을 탈환하는 것이다.” “탄핵추진이 가져올 정치적인 효과는 공화당 진영을 강화시키고 자극하는 것, 그리고 나라를 분열시키고 민주당을 쪼개는 것 이상이 아니다.”

Cindy

“역사적으로 탄핵이 추진되었을 때, 그것이 비록 실패했을지라도 이를

Sheehan,

추진했던 정당 진영이 더욱 강화되었다.”

Ray McGovern

“탄핵은 이 나라의 법치를 재건하기 위해 필수적이며, 미래에 행정권력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불가피하다.”

신디 시헨은 그의 아들 케이시 시헨이 이라크에서 사망한 2004년 봄 크로포드목장에서 부시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는 무기한 1인 촛불 시위를 시작한 이래 미국 반전운동의 중심인물로 인 식되어 왔다. 그는 이 논쟁 전후 민주당에 크게 실망하였고, “낸시 펠로시가 탄핵을 현안으로 고려하지 않겠다면 무소속으로 낸시 펠로시 의원의 지역구인 캘리포니아 제8지역구에 출마하 여 그의 재선을 위협하겠다”며 캘리포니아로 행했다. 신디시헨은 낸시 펠로시 의원 지역구가 진보적인 성향의 유권자들이 밀집된 곳이고 그 곳 유권자의 과반수가 탄핵을 지지하고 있는 반면, 펠로시 의원은 자신을 지지해준 유권자의 뜻에 반하여 행동하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2008년 선거에서 지역구 유권자들은 다시 낸시 펠로시 의원을 선출했다. 신디 시헨은 약 55,000표를 득표하여 2위의 득표를 얻었지만 낸시 펠로시를 낙선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5. 대의제 수단에 호소한 사례 2: 국방예산 삭감 및 이라크 철군운동 대테러 전쟁에 대한 폭넓은 비판적 여론에도 불구하고 탄핵이 여론의 압도적 호응을 얻지는 못한 이유는 이 같은 방식이 다소 과격한 수단이라고 인식되었기 때문이지만, 이와 더불어 탄 핵과 같은 사후적 책임추궁보다 전쟁을 종식시키고 군대를 철수시키는 것 자체가 보다 우선적 인 과제로 인식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24


반전 여론이 과반수를 넘어서게 된 2005년 이후, 보다 대중적 영향력을 갖는 운동단체들은 전 쟁예산 삭감과 미군의 철수에 활동을 집중하는 경향을 보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평화와 정의 를 위한 연합 (UFPJ, United for Peace and Justice)의 사례이다.

1) United for Peace and Justice (UFPJ)

설립배경

UFPJ는 2002년 10월 대테러 전쟁 이래 반전평화운동에 참여해온 1400여 풀뿌리 단체들이 임 박한 이라크 전쟁을 저지하고 나아가 정부의 영구전쟁 및 제국주의 정책에 반대하기 위해 결 성한 연대체로서 미국에서 가장 크고 폭넓은 반전운동체로 알려져 있다.

활동전략

UFPJ는 발족 이래 주로 이라크 전쟁과 점령에 활동을 집중해왔다. 긴급한 대중행동의 목표는 이라크로부터 군대를 철수시키는 것이며 이것이 “대중적 에너지를 부시 행정부 전쟁 정책의 취약한 고리에 집중하기 위한 행동전략37”이라는 것이다.

UFPJ는 대중여론을 바꾸는 것이 의회와 정부의 정책을 변경하기 위한 기본 전제라고 보고 이 를 위해 주로 전쟁에 따른 경제적 비용과 인도적 비용을 드러내는 것38이 가장 대중적인 접근 이라고 판단하였다. UFPJ의 대의회 활동 목표 역시 주로 이라크 철군결의 혹은 국방예산 삭감 을 압박하여 이라크 철군일정을 구체화하는 것으로 집중되었다.

37

다만, UFPJ는 공개된 전략문서에서 “이라크 이슈를 중심으로 하되 관련 이슈들, 예컨대 아프가니스탄 전쟁, 그리고 이란과 북한에 대한 전쟁 방지,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원조 등의 이슈들에도 적절한 균형감각을 가지고 대응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http://www.unitedforpeace.org/article.php?id=1872 38 필리스 베니스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전쟁비용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 과거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불행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다른 어떤 것보다도 자신의 이해관계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전쟁비용 통계는 당신의 지역구에서 작년에 얼마나 많은 세금이 이라크 전투를 위해 지불되었는지, 그것으로 얼마나 많은 소방차를 사고, 교사를 고용하고, 학생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지를 보여줄 것”이라고 UFPJ의 입장을 설명했다. 25


이 같은 인식에 따라 UFPJ는 탄핵운동에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으로 대응하였다. UFPJ의 운영위 원의 한 사람인 필리스 베니스39에 따르면, “우리 역시 (부시 행정부)에 대한 탄핵이나 형사소 추를 목적으로 하는 소위를 두고 활동해 왔지만, UFPJ의 다수에게 이것은 부차적인 이슈였다. 전쟁이 진행 중이고, 이것을 중지시키고 이라크와 아프간으로부터 군대를 철수시키는 것이 대 다수의 시민들에게는 더 시급한 일이다.”

2) 미 의회의 이라크 철수 관련 주요 표결: 2006년 중간선거 이전(109대 회기)

2005년은 여러모로 전환의 해였다. 9/11 및 이라크 전쟁에 대해 2004년의 의회조사 결과와 아 부 그라이부 사건 등은 2005년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방향 수정 혹은 적어도 이와 관련된 의 회논의를 불가피한 것으로 만들고 있었다.

국방예산과 이라크 철군 일정을 연계시키려는 시도는 2005년 봄 하원에서의 2006 회계 년도 국방예산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본격화되었다. 2006 회계연도 국방예산으로 4410억 달러를 책 정하려 했던 여당안(하원 결의안 1815, 공화당 소속 국방위원장 던컨 헌터 Duncan Hunter 의원 발의)에 대해 민주당 소속 린 울시 Lynn Woolsey 하원 의원이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철군 계 획을 제출해야 한다는 의회의 입장을 삽입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는 조건부 국방예산안(하원 수정안 214)를 발의한 것이다. 그러나 이 수정안은 찬성 128: 반대 300이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부결된다. 이 표결에서 민주당 의원 79명이 반대에 투표하였다.

2006년 상원에서도 유사한 시도가 있었으나 역시 실패하였다. 2006년 말 이전에 철군을 시작 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는 2007년 예산안 상원 수정안 4320 (민주당, 칼 레빈Carl Levin 상원의원 발의)는 찬성 39표: 반대 60표로 부결되었다. 이 표결에서 민주당 6명이 반대에 표를 던졌다.

이 시기 논의의 유일한 가시적 성과는 2005년 추가경정예산안(하원 결의안 1268)에 대한 상원 수정안 464호(민주당 소속 로버트 버드 Robert Byrd 상원의원)를 통해 부시 행정부가 해외 군사 작전에 소요될 예산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분기별 보고를 하도록 한 것이었다.

39

Phillis Bennis, Institute of Policy Studies 수석연구원, UFPJ운영위원, 2009년 4월 9일 이태호 인터뷰.

26


법안

이슈

표결

결과

하원 수정안 214: 2006 국방예산에 관한 하원결의안 1815의 수정 (2005,5.25표결) H.R.1815: 2006회계연도 국방예산안 (2005, 5.25표결) 상원 수정안 4320: 2007 국방예산에 관한 상원 결의안 2766의 수정 (2006, 6. 표결)

대통령이 이라크에서의 철군에 관한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는 의회의 입장을 예산안에 삽입 조건 없는 국방예산

128(민122/공5/무소속1) 300(민79/공221)

부결

390(민164/공225/무1) 39(민37/공2) 39(민37/공1/무1) 60(민6/공54)

의결

61(민39/공21/무1) 31(공31)

의결

상원 수정안 464: 2005년 추가경정예산에 관한 하원 결의안 1268의 수정 (2005, 4.18 표결):

2006년 12월말 이전에 이라크 주둔 미군의 철수를 시작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는 수정안. 단, 철군최종시한은 불특정 해외군사작전에 소용될 예산을 구체적으로 평가하여 제출하도록 요구하는 수정안

부결

3) 미 의회의 이라크 철수 관련 주요 표결: 2007년-2008년(110대 회기)

2007년 3월 이래 이라크 전쟁을 둘러싼 의회 논의의 주된 쟁점은 의회의 다수의석을 차지한 민주당과 이라크 추가파병을 고려하는 부시 행정부와의 갈등이었다. 의회는 이라크에서 가능 한 빨리 철군을 하려는 의원들과 이에 반대하여 가급적 오래 군대를 주둔시키려는 의원들로 갈라졌다. 철군을 위해 국방예산과 연계시키려는 몇 가지 시도가 있었지만 모두 실패하였다40.

이 중 가장 주목할만한 것은 2007년에 발의된 이라크책임법(Iraq Accountability Act of 2007) 제정 노력이다.

40

이라크책임법 2007-1

이슈

표결

결과

하원결의안1591: 미군전 투력과 예비역 건강, 그 리고 이라크 책임에 관한 법 2007 (2007, 4.25 표 결)

2007년 추가경정예산안.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1240억달러의 추 가예산을 지원하되, 2007년안에 반 드시 이라크로부터의 철군을 시작 하고, 2008년 3월까지 완료를 권고 하는 수정안

218(민216/공2)

의결

208(민13/공195)

이라크 전쟁을 끝내기 위한 110대 의회에서의 움직임, SourceWatch, Center for Media and Democracy, http://www.sourcewatch.org/index.php?title=Congressional_actions_to_end_the_Iraq_War_in_the_110th_Congress

27


하원결의안1591의 상원 표결 (2007, 4.26. 표결)

2008년 철군완료는 권고사항으로 처리.

51(민48/공2/무1)

의결

46(공45/무1)

이라크 군을 훈련시키거나 알카에 다와 싸우는 병력은 철군에서 제외. 부시 대통령 비토권 행사 (2007, 5.1) 하원결의안 1591 재표결 (May 2, 2007)

대통령 비토를 철회시키기 위한 정 족수는 2/3(66%)

222(민220/공7)

부결

203(민7/공196)

하지만 이라크책임법은 하원과 상원을 각각 통과한 뒤, 부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부딪혔 다. 예산 발의권을 가진 하원의 민주당 의원들은 다른 안--하원결의안 2206--을 성안했는데, 이 법안에 따르면 7월까지 이라크에서 진행될 작전을 유지하기 위한 ‘긴급한 재원 428억 달 러’를 승인하되, 8월 이전에 9월까지 사용할 나머지 528억달러에 관해서 다시 결정한다는 것 이었다. 그러나 이 2단계 분리안마저 상원과의 협의과정에서 철회되었다. 결국 7월 재표결 조 건이 삭제된 수정안이 하원과 상원을 통과하였고 2007년 5월 25일 부시 대통령이 재가하였 다.

한편,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은 반전 민주당원들의 불만을 진정시키기 위해 강력한철군 조건 부 예산안인 하원 수정안 2237(제임스 맥거번 James McGovern의원 발의)을 표결에 부쳤다. 하지만 이 안은 큰 표차로 부결되었다.

이라크책임법 2007-2

이슈

표결

결과

하원결의안2206: 미군 전투 력, 예비역 처우, 카트리나 복구 및 이라크 책임에 관한 특별세출법 2007 (2007, 5.10표결)

추가경정예산. 7월까지 예산을 승 인하되 9월까지 예산을 승인할 지 여부를 7월에 재표결하는 조건부 조항 포함

221(민219/공2)

의결

하원결의안2206 재표결 : 상원 과의 협의결과에 대한, (2007, 5.24 표결)

이라크 철군 일정과의 연계를 권 고사항으로 처리, 7월 재표결 조 건 철회

280(민86/공94)

하원결의안2206의 상원표결 (2007, 5.24 표결)

이라크 철군 일정과의 연계를 권 고사항으로 처리

80(민37/공42/무1)

205(민10/공95)

의결

142(민140/공2) 의결

14(민10/공3/무1)

부시 대통령 재가 (2007, 5. 25발효) 하원 수정안2237: 하원결의 안 2206에 대한, (2007, 5.10 표결)

의결 후 3개월 이내에 미국 전투 병을 이라크로부터 철군시키기 시 작하여 6개월 이내에 철군을 종료 하지 않을 경우, 더 이상 군사작 28

175(민169/공2) 255(민59/공196)

부결


전에 의회에서 승인된 예산이 사 용될 수 없도록 하는 조항 포함 특수군사작전 병력은 철군에서 제 외.

29


Ⅳ. 약평: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시민의 자구적 대응수단과 제 도권의 반응

부시 행정부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래 7년간 미국의 시민사회운동들은 그들이 사용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수단을 동원하여 행정부의 안보권력남용과 민주주의 후퇴를 저지하기 위 해 노력해 왔다. 이에 대한 의회와 사법부 등, 헌법 상 행정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을 위해 설계된 제도권의 반응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이 장에서는 시민운동단체들이 사용했던 자구적 수단들을 재정리하고 그 효과를 진단해보고자 한다.

1. 시민의 사법적 자구수단들과 그 효과

1) 시민사회운동의 사법적 대응

9/11 직후 부시 대통령이 대 테러 전쟁을 선포하고 의회가 부시 행정부에게 이를 위한 군사 력 사용을 위임하기까지, 시민사회단체들의 대응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아프간 전쟁 개전을 앞두고 일부 시민사회단체들, 예컨대 ‘A.N.S.W.E.R’, ‘Not in our name’ 같은 선구적인 반전 연대체가 크지 않은 규모의 집회를 벌였고, ACLU같은 법률전문 시민권 단체가 “테러리스트 들이 우리의 헌법을 바꾸게 해서는 안된다”며 비판적 입장을 조심스럽게 표현하고 있었지만 당시 미국 내 여론은 대체로 패닉 상태로 일컬을 만했다.

2002년

이후

CCR(헌법권리센터)과

같은

시민사회단체들은

최소한의

‘적법절차(Due

Process)’의 회복과 ‘테러리스트’로 규정된 수감자들의 인권보호를 위해 수감자에게 미국 법 이 부여하는 권리를 적용할 것을 요구하는 법률적 대응을 시도하였다. ‘라설 대 부시’, ‘부메딘 대 부시’ 등 수감자에게 인신구속영장을 제시할 것을 요구하는 소송, 다시 말해 일종의 구속적 부심 청구권을 보장 받기 위한 소송이 그것이다.

이와 더불어 이라크 전쟁을 막기 위한 사전노력의 일환으로 개전 직전인 2002년 말부터

30


2003년 초에 이르는 기간 동안 시민사회단체들은 일부 의원들과 함께 이라크 전쟁의 적법성 여부를 묻는 ‘도우 대 부시(Doe v. Bush)’ 헌법소송을 시도하기도 했다.

2004년 라설 대 부시 소송의 승소는 법률적 대응을 활성화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또한 아부 그라이부 사건은 수감자 인권, 고문 피해, 안보를 빌미로 한 문화적 차별과 인종주의에 대한 법률적 대응을 보다 공세적으로 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을 제공하였다. 2004년 이후 이른바 ‘유령 수감자’로 알려진 CIA 비밀수용시설의 수감자들의 고문 관계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형사 소송 그리고 이와 관련한 정보와 관련 문서를 공개하도록 하는 정보공개행정소송이 본격화 되 었다. ‘모하메드 등 대 제페슨 데이터플랜 주식회사’, ‘ACLU 등 대 국방부’ 등이 그것이다. 이 과정에서 시민사회단체들은 국가기밀특권을 주장하는 부시 행정부와 날카롭게 대립하였다.

2005년 뉴욕 타임스가 시민에 대한 영장 없는 도청에 대해 보도한 것을 계기로 ‘ACLU 대 NSA’, ‘앰네스티 대 맥코넬’ 등 일련의 소송이 이어졌고, 부시 행정부 관련자들을 고문과 불법 침공 등의 전쟁범죄 혐의로 국내외에서 형사 소추하기 위한 일련의 국내외에서의 고발도 이 시기 전후 추진되었다.

요컨대, 사실상 대 테러 전쟁의 사전과 사후,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시민사회단체들은 미국 법과 국제법이 허용하는 다양한 종류의 사법적 수단을 두루 사용하여 민주주의의 후퇴와 인권의 침 해를 막고, 불필요한 전쟁으로 나아가는 정부를 견제하며, 그 사후 책임을 추궁하기 위해 노력 하였다.

2) 사법부의 반응에 대한 약평

테러와의 전쟁 과정에서 붙잡힌 이들을 이른바 ‘적 전투원’으로 분류하여 미국 법을 적용하지 않고, 국제법도 적용하지 않기로 한 행정부의 결정은 법조계에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지금 도 이어지고 있다. 소송 사건 하나하나가 역사적이라 할만한 사법적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2004년 라설 판례를 시작으로 2008년 부메딘 판례로 마무리되는 기간 동안 대법원은 수감자 들이 적어도 미국 법에 따라 인신구속영장을 요구할 권리, 그리고 제네바 협정에 호소할 권리 는 있다고 판단하였다. 31


하지만 이 같은 판례에도 불구하고 테러와의 전쟁 이후 미국 사법체계의 트레이드 마크라고도 할 수 있는 ‘적법절차(Due process)’에 대한 평판이 크게 훼손된 것만은 사실로 보인다. 사실 비판자들은 부메딘 판례 등에 대해서도 그다지 높은 점수를 주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인신구속 영장에 따른 구속이라는 법규범은 16세기 영국의 명예혁명 전후로까지 그 역사가 거슬러 올 라가는 서구 사법의 대전제로서 미국 대법원이 6년에 걸친 논란 끝에 이를 보장하기로 결정하 였다는 사실 자체가 대단한 사법적 후퇴41 라는 것이다. 관타나모 수감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런 사법적 결정이나 공정한 이의제기 절차도 없이 6년간이나 온갖 종류의 학대가 포함된 조사를 받고 난 후에, 이제부터 미국 판사 앞에서 그들을 가둔 이유와 증거에 관해 따지는 것 이 가능--얼마나 오래 걸릴 지 역시 알 수 없지만—하게 된 셈인 것이다. 고문--이른바 강화 된 심문기법--에 대한 민사 혹은 형사상의 책임을 묻는 소송 사건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대법 원의 판결이 내려진 바 없다.

대테러 전쟁 중 행정부와 의회의 결정이 나은 사회적 갈등에 대한 사법부의 개입은 한편에서 는 사법부의 보수적인 분위기에 의해, 다른 한편에서는 정부의 정책을 사전 혹은 사후적으로 정당화하는 의회입법으로 인해 제약되곤 했다. 도우 대 부시’ 소송 판결에서 연방 제1차 순회 항소법원 3인의 재판부는 “대통령과 의회 간의 갈등이 충분히 발전된 이후에 비로소 사법부 가 개입할 수 있다”며 해당 사건을 기각하였다42. CCR의 린느 케이츠 간사는 “법조계는 보수 적이어서 대 테러 전쟁이 시작될 때 관련된 여러 사법적 쟁점에 대해 침묵했다. 대법원에서 라설 건이 승소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관타나모 수감자를 위한 자원변론에 나서려는 법조인도 거의 없었다.43”고 회고하고 있다. ‘애국자법(the USA PATRIOT Act)’, ‘수감자처우법(DTA)’, ‘미국보호법(PAA)’ 등의 제정 혹은 개정은 의회가 법원이 내린 상대적으로 진취적인 판결의 취지에 반하여 논란이 되는 행정부의 행위를 사후적으로 합법화주거나 잘못을 면책해 준 경우 에 해당한다.

41 42 43

C. Lynne Kates, 변호사, CCR간사, 2009년 4월 14일, 필자와의 인터뷰 Sandra Lea Lynch, 미연방 제1차 순회 항소법원 판사, Doe 대 Bush 판결문. Id.

32


2. 시민의 정치적(대의제적) 자구수단들과 그 효과

1) 시민사회운동의 정치적 정책적 활동

미국에서 시민사회의 정책적 활동의 상당 부분은 의회에 대한 로비로 연결되곤 하여 왔다. 미 국이 소송과 판례가 많은 나라임에 틀림없지만, 정치적 정책적 활동의 대상인 선거와 정치의 영역이 사법적 활동의 영역에 비해 훨씬 역동적인 시민사회운동의 공간인 것은 분명하다. 미 국 헌법에 따르면 의회는 입법기능 외에 예산안 발의와 감사, 전쟁선포권한 등을 가지고 있다. 반전평화 혹은 인권을 위한 많은 활동들이 의회의 이러한 기능을 염두에 두고, 혹은 그와 연 결되어 진행되었다.

2002년 들어 아프간 전쟁이 이라크로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수감자 학대와 애국자법 남용 사 례들이 부각되자, 시민사회단체들의 반전평화, 인권운동이 9/11의 악몽을 딛고 보다 활성화되 기 시작했다. 역시 가장 뜨거운 이슈는 역시 이라크 개전을 막는 것이었다. 2003년 2월 15일, 역사적인 세계 동시다발 반전시위가 있었고, 시민사회단체들은 물론, 허리우드 유명 배우에 서 참전군인과 현직군인, 노벨 수상자에 이르기까지 각계가 나서서 전쟁을 막고자 했고 이는 헌법에 따라 전쟁선포 권한을 가지고 있는 의회의 행정부 견제를 현실화하고자 하는 노력과 연결되었다.

이라크 개전과 부시 대통령의 이른 종전 선언으로 반전여론이 주춤해 진 2003년을 지나 200 4년에 이르러 반전여론과 부시 행정부의 대내외 정책에 대한 비판이 다시 고조되었지만 부시 대통령의 재선을 막는 수준에 이르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갈수록 고조된 비판적 여론을 수용 할 창구로서 의회에 대한 기대와 압박이 점점 늘어나게 되었고 관련한 의회의 활동도 많아졌 다. 아부 그라이부 고문 학대에 대한 진상조사, 9/11 전후 행정부의 대응에 대한 평가,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정보조작 여부에 대한 검증 요구, 이라크 철군일정과 전비 삭감 요구, 애국자법 개정과 고문방지 입법 등이 의제로 떠올랐고 관련한 시민청원과 의회 로비가 진행되었다. 이 라크에서 전사한 병사의 어머니인 신디 시헨이 대통령 면담을 요청하는 1인 촛불시위, 국회 방문 농성 등을 시작한 것도 이 때이다.

33


2006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다수당이 된 후 의회의 견제역할에 대한 시민사회운동의 기대 와 압박은 더욱 커졌다. 영장 없는 도청에 대한 의회 조사 요구, 이를 합법화하려는 미국보호 법 제정에 대한 반대와 그 후의 개정 요구, 국가기밀남용방지를 위한 입법44을 요구하는 시민 단체들의 의회 로비와 청원이 비판적 여론을 바탕으로 한층 강화되었다. 특히 2006년 이후에 시민단체들은 이라크 철군을 현실적인 일정으로 제시하는 것이 가능하고 또한 필요하다고 보 고 이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였다. 이른바 ‘고문메모’논란에 대한 조사요구, 각종 권력남용과 전쟁범죄의 책임을 묻는 부시 대통령과 고위공직자에 대한 탄핵 청원이 본격화 된 것도 이 때 이후이다.

2) 의회의 반응에 대한 약평

부시 행정부의 전쟁 권한의 확대해석과 이것이 야기한 문제들에 대해 의회의 대응이 효과적이 고 적절했는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라크 전쟁 권한의 조기 위임 이래 부시 행정부가 유엔 결의 없이 이라크 전쟁을 밀어 부치 도록 방조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 외에도 수감자에 대한 고문, 영장 없는 도청 등 의회 에 제기되었던 핵심적인 권력남용 사례들에 대해 의회는 대개 대통령의 전쟁권한과 행정권한 의 확장을 사후적으로 정당화하거나 면책하곤 했다. 의회가 이른바 고문메모의 작성자로 알려 진 제이 바이비 Jay Bybee를 미 연방 제9차 순회항소법원 판사로 인준한 것도 두고두고 냉소 의 대상이 되고 있다45.

2006년 민주당이 의회 당수당이 되었지만 이런 추세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9/11이후 안보와 연계된 대부분의 결정적인 투표에서 적지 않은 민주당 하원의원과 상원의원들이 부시 행정부 의 정책을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투표하였다. 영장 없는 도청을 정당화한 미국보호법 (PAA2007) 통과와 그 시한의 연장(FAA2008)도 민주당 다수 의회에서의 일이다.

44

ACLU, “111대 의회의 입법우선순위에 관한 ACLU보고서, 2009, 1. http://www.aclu.org/safefree/general/38303leg20090113.html

45

Robert M. Pallitto, “부시 팀에 대한 형사처벌?” Foreign Policy In Focus, 2009, 3.2

34


민주당 지도부는 대통령과 핵심 관료들을 탄핵하거나 조사할 것을 요구하는 청원에 대해서는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탄핵시도가 공화당을 자극하고 강화시키는 한편, 민주당과 여론을 분열시켜 임박한 선거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것이 표면적인 가장 주된 이유였다. 하 지만 탄핵같이 강력한 조치가 아니라 민주당 지도부가 주도하여 입장을 정한 정책, 예컨대 철 군 일정—철군이 아니라--제시를 요구하는 조건부 국방예산안 처리와 같이 보다 현실적인 표 결에서도 민주당의 표는 분산되었고 공화당 소속 의원들을 설득해 내는데도 거의 실패하였다.

2007년 시도된 이라크책임법(2007)의 경우는 민주당 의원들이 보기 드물게 단결된 태도를 취하고 공화당의 소수 의원까지 동의해 이라크 철군 일정의 확정에 합의한 경우이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부딪혔다. 거부권 행사를 넘어설 수 있는 의회 의결 정족수는 2/3 이상이다. 하지만 당시 민주당의 의회활동을 지켜본 시민단체들은 이 과정에 대해서도 비 판적이다. UFPJ의 운영위원 필리스 베니스는 “하지만 민주당이 모르는 체 하고 있는 것이 있 다. 민주당은 다수당이고 의회 각 상임위원회를 통제할 수 있다. 대통령이 거부권이 있다면 민 주당은 예산안 자체를 아예 상정하지 않음으로써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다. 그들이 겁낸 것은 거부권이 아니라 “전장의 우리 군대를 버렸다”는 공화당의 정치적 공격이었다46”고 비판한다.

Ⅴ. 오바마 행정부와 대테러 전쟁의 전망

2008년 말 대선을 통해서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자, 사회운동가 출신의 인권변호 사, 그리고 이라크 전쟁을 일관되게 반대하고 이를 대선공약으로 한 반전 상원의원인 버락 후 세인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오바마의 당선에 대테러 전쟁의 실패와 이에 대한 반대 여론이 주된 요인으로 작용했는지는 판단하기 힘들다. 도리어 경제위기가 더 큰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 다. 하지만 적어도 그 동안 논란이 되어온 바, 부시 행정부의 대테러 전쟁이 야기한 부작용과

46

Phillis Bennis, Institute of Policy Studies의 수석연구원, UFPJ운영위원, 2009년 4월 9일 필자와의 인터뷰

35


폐해를 시정할 좋은 여건이 형성된 것만은 사실이라 할 것이다.

오바마의 당선으로 “부시 대통령이 저지른 잘못을 바로 잡기 위해서 민주당원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백악관을 탈환하는 것”이라던 민주당 지도부의 주장이 현실의 검증을 받을 기회를 얻었다. 오바마 행정부와 민주당은 부시 행정부 아래서의 민주당의 처신이 큰 맥락에 서 대체로 현실적이고 전략적 선택이었고, 여러 오류에도 불구하고 명백히 민주주의와 평화로 점진적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있음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오바마 행정부와 민주당 주도의 의회라는 쌍두마차를 통해서도 오랜 냉전을 통해 형성되고 부시 행정부가 새롭게 강화 시킨 전쟁국가체제와 시민 사이의, 그리고 세계 여러 당사자들 사이의 불화를 유지 보수하는 데 그치게 될 것인가?

아래에서는 아직 오바마 정부와 민주당 주도 의회의 정책을 완벽하게 평가하고 전망하는 것이 이르다는 점을 감안하면서, 대 테러 전쟁의 유산과 관련하여 그의 집권 이후 6개월 여간 분출 된 사회적 쟁점들, 특히 시민사회운동이 제기한 이슈들과 이에 대한 오바마 행정부의 의회의 대응들을 요약해보고, 이에 대해 최소한의 평가와 전망을 시도해 보고자 한다.

1. 오바마 집권 이후 시민사회운동이 제기한 이슈들

1) 관타나모 수용소 및 기타 수감 정책

CCR과 ‘고문에 맞서는 목격자’(Witness Against Torture) 등 인권단체연합은 관타나모폐지와 고문 종식을 위한 100일 캠페인에 착수하였고 ACLU는 ‘Close GITMO’라는 독자 캠페인에 착수하였다.

이른바 ‘적전투원’ 수사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려는 시도들도 주목할 만하다. 법률전문 인권단 체인 ‘휴먼라이츠퍼스트’는 테러리즘 수사에 대한 백서47를 발행하여 국제테러에 연구된 혐의 47

Richard B. Zabel and James J. Benjamin, Jr. “정의를 찾아서: 연방법원에서 다루어진 테러리즘 형사소송 사례들”, Human Rights First,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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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들을 특수군사법정과 군수사관이 아니라 연방검사가 미국 법에 따라 형사범으로 수사하는 것이 가능하고 효과적임을 입증하고자 했다. 이들은 미국 연방법원에서 15년간 다루어진 100 건 이상의 국제테러사건을 분석하여 이 같은 결론을 도출했다.

2) 조사와 책임 추궁

오바마 집권과 더불어

헌법권리센터(CCR)와 미국시민자유연맹(ACLU)는 각각 ‘헌법회복

을 위한 100일 캠페인’, ‘누구도 법 위에 군림할 수 없다’ 캠페인에 착수, 권력남용과 고문, 불 법적 침략에 대한 책임추궁과 조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2009년 4월 ACLU, CCR, Afterdowningstreet.org, Moveon.org, Democrats.com을 비롯한 대변형 시민단체 그룹들은 독립검사(특별검사)의 임명을 요구하는 250,000여명의 서명을 오마바 행정부의 에릭 홀더 Eric Holder 검찰총장에게 전달하기도 하였다.

3) 전쟁권한 남용, 행정권력 남용 제한 입법 CCR은 부시 행정부가 의회의 군사력 사용 승인을 자의적으로 확대 해석하여 아프간 이외의 지역으로 확전하고, 이른바 ‘적전투원’에 대한 학대를 정당화한 것, 그리고 이라크 불법침공을 감행한 것에 주목하여, 전쟁권한법(The War Power Act of 1973)을 개정하여 강화하자는 제 안48을 내놓고 있다. 이 법은 베트남 전쟁과 캄보디아 비밀폭격 등을 계기로 닉슨대통령 재임 시 의결되었으나 사후보고 조항 등 많은 예외와 역대 대통령과 의회의 준수의지 부족에 의해 서 유명무실해져 왔다.

ACLU는 2009년 입법의제보고서를 별도로 발행하여 군사위원회법 폐지, 해외정보사찰법 2008(the FISA Amendments Act)의 재개정, 리얼ID법(the REAL ID Act of 2005) 폐지, 그리 고 국가기밀방지법 제정 등 전쟁권한과 행정권력 남용방지를 위한 패키지 입법안을 추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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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R의 제안은 크게 세가지로 요약된다. 1) 사전 의회승인 없는 전쟁행위는 명확하게 금지하고, 오직 본토와 군대 혹은 시민들이 당한 공격을 격퇴하기 위한 단기적인 경우에만 예외를 허용한다. 예방전쟁은 금한다. 2) 이를 어길 경우 탄핵사유에 해당함을 명시하고 사법부가 행정부 권한남용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측의 입장에서 판결할 수 있도록 할 조항들을 신설한다. 3) 새 법에 저촉되는 군사력 행동에 대해서는 예산이 지급되지 않을 것이라는 조항을 명시하여 정부가 군대를 보낸 후 의회에 예산통과를 압박하지 못하도록 하자 등이 그것이다. 이 안은 해외파병의 국회 사후 동의를 가능케 하는 한국의 PKO법안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 크다. http://www.ccrjustice.org/files/CCR_White_WarPowers.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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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4) 이라크 아프간 철군 오바마 대통령의 아프가니스탄 증파계획은 새로운 논쟁점으로 등장했다. UFPJ는 이에 반대하 는 캠페인 ‘아프간 철군 전국 행동’을 시작했고, 이와 더불어 “전쟁을 넘어서야 비로소 새 경 제가 가능하다(Beyond War, A New Economy is possible)”는 구호를 내걸고 군사예산 삭감 청원 운동도 병행하고 있다.

2. 오바마 행정부와 새 의회에서의 논의들 1) 관타나모 수용소 및 기타 수감 정책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식 이후 발표한 최초의 대통령령을 통해 관타나모 수용소의 철폐와 고문 의 중지를 선언했다. 2009년 1월 22일 오바마 대통령이 지시한 4개의 대통령령49은 각각 1) 관타나모 기지에 존재하는 수용시설과 군사위원회를 1년 이내에 폐쇄하고, 2)육군현장매뉴얼 을 준수함으로써 고문을 중단하고 CIA의 ‘강화된 심문수단’을 금하며, 3)관계부처간 태스크 포 스를 구성하여 CIA 비밀수용시설을 비롯한 구금정책과 절차, 그리고 개별 케이스에 대한 재검 토를 실시하며 4)미국 영주권자로서 형사범으로 구속되었다가 테러와의 전쟁 이후에 ‘적전투 원’으로 규정되어 유일하게 미국 영토 내 수용시설에 수감되어 있는 Ali al-Marri의 신분을 재 검토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본토 구금 시설에 대한 민주당 주도 의회의 반대

그런데 이 대통령에 따라 관타나모 수용소를 폐지하고 수감자들을 미국 본토 내로 이송하려 했던 계획은 뜻하지 않은 장애에 부딪혔다. 5월 21일 미 상원이, 오바마 행정부가 2010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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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타나모 수용소와 군사위원회 폐쇄에 관한 대통령령 13492; Executive Order -합법적인 심문절차 보장에 관한 대통령령 13491; 구금정책수단 재검토에 관한 대통령령 13493; 알리 살레 카흐라 알-마리의 구금에 관한 재검토 대통령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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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까지 관타나모 수용소를 폐쇄하고 미국 영토 내 대체시설 보완건설을 위해 요구한 800억 달러의 예산안을 90: 6이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부결한 것이다. 표결기록이 말해주듯이, 민주당 상원의원의 상당수도 부표를 던진 것이다. 표면적인 이유는 구체적인 계획과 안전확보 장치를 보완하라는 것이지만, 핵심은 상원의원이 속한 개별 주에서 수감시설을 유치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대통령령 이후 6개월 안에 제시하기 예정된 본토 내 대체 시설의 리스트도 순연되고 있다.

체니 전부통령의 공개반론 제기

체니 부통령은 5월 중순 기자회견을 자청 “여전히 미국의 강화된 심문 프로그램에 대한 강력 한 지지자”라고 밝히고 “오바마 대통령이 유럽의 박수를 받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정의와 미 국의 국가안보에 동시에 기여할 대안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오바마 대통령이 “최악의 테러리스트들을 관타나모로부터 미국영토로 들여오는 것은 커다란 위험과 후회를 낳을 것”이라며 오바마의 정책변경을 “정의로움의 가면을 쓴 경솔함”에 비유했다.

특수군사법정 재개 논란

한편 개별 수용자들의 분류과정에서도 논란이 발생하고 있다. 특수군사법정의 재개50 와 관련 된 것이다. 관계부처 TF가 229명의 관타나모 수감자를 비롯한 개별 수감자들을 분류한 후 일 부는 해외이송 및 석방, 일부는 미국 영토로 이송 후 미국 법원에서 재판, 다른 일부는 오바마 대통령 자신이 폐쇄하기로 한 특수군사법정에서 재판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 지자 이에 대해 ACLU등 시민사회단체들과 인권 전문가들이 반발하고 있다. 오마바 행정부는 6월부터 캐나다 국적 오마르 카드르를 시작으로 9/11 관련자 등 이미 군사법정에 기소된 11 명에 한해 군사법정 심리를 재개하였다. 법무부에서는 “고문이나 풍문에 의한 증거는 채택하 지 않는 등 새로운 세이프 가드를 적용할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이미 위헌적이라는 판결 을 받은 군사재판을 재개하는데다 일부 수감자들에게는 여전히 무기한 구금도 적용할 것이라 고 밝히고 있어 논쟁을 가중시키고 있다.

50

Al Jazeera English, “Obama to restart Guantanamo trials” 2009, 5.15. http://english.aljazeera.net/news/americas/2009/05/200951515343694779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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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이송 혹은 석방의 딜레마

관타나모 수감자의 해외이송 및 석방 문제도 쟁점이 되고 있다. 7월 20일 현재 약 20인 이내 의 수감자가 사우디아라비아, 캐나다, 영국령 버뮤다 등에 이송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중 사우디 아라비아로 이송된 수감자들은 당국에 의해 별도의 사법적 심사를 거칠 예정이고 그 후에도 일종의 보호감호제도를 통해 당국의 통제를 받게 된다. 다른 유럽의 나라들은 이송에 협조하는데 난색을 표하고 있는데, 현재까지는 이태리와 포르투갈 등이 수용의사를 전한 정도 다. 또 다른 문제는 이송되어 풀려난 수감자가 다시 군사적 활동에 가담할 가능성이다. 부시 전 대통령과 체니 전 부통령, 공화당 의원들이 문제제기 하고 있다. “신뢰할만한 증거를 가지 고 있지 않지만 위험한 인물로 의심되는 100여명”에 대한 분류작업이 난항이라고 일부 언론 이 전문가의 말을 인용 보도51하고 있다.

2) 조사와 책임 추궁, 정보공개

오바마 취임과 민주당의 선거 승리는 과거 정권 관계자, 특히 고문과 도청 등의 위법적 행위 에 대한 진상조사와 관련 공직자들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는 여론을 강화시켰다.

특별검사안과 진실위원회안

오바마 취임 한 달 뒤인 2009년 2월 12일 유에스에이 투데이는 갤럽 여론조사결과, 미국인의 2/3이 고문과 영장 없는 도청 관련 부시 행정부 공무원들의 조사에 찬성하고, 40%는 처벌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4월 16일 오바마 대통령이 뉴욕연방법원의 판결을 존중하여 이른바 ‘고문메모’를 공개하기로 결정한 이후 이 문제는 정국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이 즈음 좀체로 이 문제에 반응하지 않던 상하원으로부터 두 가지 안이 제기되었다. 하원 사법위원장 존 코니어즈 주니어 John Conyers Jr. 민주당 의원은 특별검사 임명안을 제

51

The VANCOUVER SUN, “Obama’s military tribunal changes could affect Khadr”, May 13, 2009, 5.13 http://www.vancouversun.com/news/Obama+military+tribunal+changes+could+affect+Khadr/1593605/story.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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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했고, 상원 사법위원장 파트릭 제이 리히 Partrick J. Leahy 민주당 의원은 부시 행정부의 국가안보 및 행정권력 남용여부를 조사하는 초당적 독립위원회를 의회 내에 구성하되, 이 위 원회에서 진실을 증언하는 공직자에 한해서 면책을 약속하자는 안을 제안했다.

공화당의 반발과 민주당 지도부의 물고문 묵인 논란

그러나 이 두 안에 대한 논의는 4월 이후 사실상 힘을 잃게 되는데, 여기에는 몇 가지 계기가 작용했다. 우선 오바마 대통령이 이 두 안을 사실상 거부한 것이다. 4월 16일 이른바 고문메 모를 공개하면서 오바마 대통령은 “지금은 성찰이 필요한 시기이지 보복이 필요한 시기는 아 니52”라고 전제하고 이른바 ‘강화된 심문기법’을 집행한 CIA요원들은 형사소추 되지 않을 것 이라고 약속했다. 시민단체들의 특별검사 임명 청원에 대해서는 “검찰총장이 알아서 해야 할 문제”라면서 사실상 부정적인 의사를 피력했다. 진실위원회 안에 대해서도 "그 개념이 이 문 제에 그다지 효과적일 것 같지 않다53 "며 사실상 상원 정보위원회의 조사과정을 지켜보자는 취지의 입장을 피력했다.

한편, 과거 정권에 대한 수사에 반발하는 공화당의 역공도 이어졌다. 공화당 하원 원내총무인 John Boehner 의원은 “양원의 양당의원들은 이미 CIA가 대테러 전쟁에서 붙잡힌 수감자들에 게 물고문을 사용하고 있을 때, CIA로부터 그 사실을 보고받았다. 당시에는 아무런 반론도 없 었다.”고 주장했다. 공격의 화살은 곧 고문에 대한 조사를 강력하게 주장해 왔던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에게 맞추어졌다. 2002년 9월 당시 CIA가 물고문 등 심문수단에 대해 보고할 당시 낸시 펠로시 의원 역시 이 보고내용을 전달받은 것으로 알려54졌기 때문이다.

오마바 행정부의 고문 사진 공개약속 철회와 국가기밀 특권 주장후퇴

오바마 대통령은 4월 16일 기자회견에서 고문메모를 공개하면서 약속했던 고문 관련 사진의 공개를 5월 14일 철회했다. 사진의 공개는 연방법원의 명령에 따른 것으로, 예정일은 5월 28

52

오바마 대통령 성명, 2009, 4.16. AP, “백악관, 특별위원회에 반대”, David Espo, Ap 특별특파원, 2009, 4.23 54 Poltico, “낸시 펠로시 워터보딩 보고 논란 진화하기 어려워”, Glenn Thrush, 2009, 5.20. http://www.politico.com/news/stories/0509/22795.html#ixzz0MqMLIugs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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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사진 공개는 직접적으로 반미정서를 더 자극하고 우리 군대에게 더욱 큰 위험을 안겨주는 것을 귀결될 것”이라면서 공개를 거부하고 항소하겠다는 입장을 밝 혔다. 사진 공개 후 고문 행위에 대한 형사소추가 불가피해 질 것을 우려한 것도 방침변경의 이유 중 하나일 것으로 추측된다. 이에 대해 이 소송을 진행해왔던 ACLU, CCR 등은 성명을 발표하여 “ 대통령의 사진공개 거부는 투명성과 책임성에 대한 대통령의 약속을 조롱거리로 만들고 있다”고 강력히 비판하였다. ACLU는 또 “사진의 공개가 대중들로 하여금 지금까지 행 해져 왔던 수감자 학대의 실상과 규모를 가늠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라고 주장하고 법정대응 을 대법원까지 계속할 것을 밝혔다.

이 밖에도 오바마 행정부의 법무부는 2월 9일 ‘모하메드 등 대 제페슨 데이터플랜 주식회사’ 재판정에서 부시 행정부의 입장을 계승하여 관련 정보에 대해 기밀로 처리 공개하지 않을 입 장임을 밝혀 논란이 되기도 했었다.

3)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철군 일정 발표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2월 26일 노스 캐롤라이나 Camp Lejeune에서 행한 연설에서 “2010년 8월 31일까지 이라크에서 35,000 여명에서 50,000명에 이르는 이라크군 훈련요원 과 대테러임무에 한정된 특수병력을 제외한 나머지 병력을 철수시킬 것이며, 2011년말까지는 그 특수병력의 철군도 완료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계획에 따라 미군은 2009년 6월 31일 이 라크 주요 도시에서 군사작전을 중단하고 철수하여 지방 거점기지로 이동했다. 이라크 정부는 이 날을 이라크 국가주권의 날로 선포했다.

아프간 증파와 불확실성

한편 아프가니스탄과 관련해서는 2009년 3월 27일 행한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에 대한 새로 운 전략’발표 기자회견에서 20,000 이상의 군대를 아프가니스탄에 추가 파병할 것이라고 밝 혔다. 하지만 아프간 증파에도 불구하고 아프간 정부의 부패와 신뢰상실로 인해 밑 빠진 독이 42


라는 부정적 평가가 지속되고 이어지고 있다. 파키스탄에서의 군사작전 역시 역내에 새로운 갈등을 낳고 있다.

국방예산 증액

오바마 행정부는 또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위해 834 억 달러에 이르는 2009 년 추 가예산을 의회에 요구하는 한편, 2010 년 군사비로 1300 억 달러를 책정할 계획임을 밝혔다 55

.” UFPJ 는 성명을 통해 “오바마 대통령은 이 두 나라에서 직면한 문제를 군사적으로 해결

하는 대신, 임무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서 화해와 경제발전과 인도적 지원, 그리고 지역 내 외교 적 노력에 투자해야 한다.”오바마의 정책을 비판했다.

4) 전쟁권한과 행정권력남용 방지 입법

국가안보레터개혁법안(The National Security Letters Reform Act of 2009)

2009년 3월 애국자법 조항의 하나로 남용되었던 이른바 국가안보레터(National Security Letter, NSL)의 지나치게 넓은 발부범위를 제한하려는 대체입법이 여야 하원 의원 19명에 의 해 초당파적으로 발의되어 논의되고 있다. 제안자는 민주당의 Jerrold Nadler의원, 공화당의 Jeff Flake의원이다.

국가기밀방지법(The State Secrets Protection Act of 2009)안

행정부의 국가기밀 지정 타당성 여부를 검토할 사법부의 권한을 강화하고자 하는 국가기밀방 지법(The State Secrets Protection Act of 2009)안이 상원의 Patrick Leahy 민주당 사법위 원장, Arlen Specter 공화당 의원, Russ Feingold 민주당 의원, 그리고 Ted Kennedy 민주당 의원에 의해 2009년 2월 발의되어 논의 중이다.

55 UFPJ, Tell Congress to Provide Aid, Not Fund Wars, April, 2009, available at http://www.unitedforpeace.org/article.php?id=4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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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약평과 전망

지난 6개월간 오바마 행정부는 관타나모 수용소 폐지와 구금 정책의 전반적 재검토를 큰 방향 으로 내걸고 이를 추진하면서 고문 책임자 처벌이나 조사와 같은 정치적으로 민감해 질 수 있 는 이슈들에 대해서는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기조를 유지해 왔다. 관타나모 수감자의 상당수를 미국 영토내의 수감시설로 이송하여 미국 법정에서 재판 받을 수 있도록 하고, 고문 논란 소 지가 있는 심문정책을 손보는 것이 큰 줄기라 한다면 나머지 문제들에 대해서는 절충적 자세 를 취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오바마 행정부는 특수군사위원회와 무기한 구금정책의 중단 여부, 부시 행정부 고위공직자나 CIA요원들에 대한 형사처벌 여부, 이와 관련된 정보--고문사진이나 CIA 비밀 수용소와 관련된 정보--의 공개여부와 관해서 기존의 입장을 번복하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경우에 따라 오바마 정부의 접근이 상징적인 일부만 손보고 본질에서는 과거 정부의 그것과 점점 닮아가고 있다는 의구심과 비판도 함께 커져가고 있다.

이러한 정책양상은 이라크와 아프간에서의 전쟁 수행에서도 드러난다. 미국의 전쟁정책에서 가장 상징적인 문제로 인식되는 이라크에서의 철군 일정을 분명히 제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는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으로 군사력 투사를 집중--군사전략적 현실성과는 무관하게--하 고 국방비도 증액하는 정치적 균형주의를 취하고 있다.

한편, 오바마 행정부가 추구하는 최소한의 절충적 변화조차 두 부류의 장애물에 부딪히고 있 는데 그 중 하나가 체니 부통령으로 대변되는 안보 블럭의 압박이라면, 다른 하나는 지난 8년 간 부시 행정부의 전쟁권한과 통치권 남용을 용납하고 또 정당화해온 민주당 자신의 과거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적어도 지금 현재는 후자가 더 중대한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주도의 상원에서 관타나모 이전 시설 관련 예산을 부결시킨 것이나 낸시 펠로 시 등의 지도부가 고문을 묵인했다는 구설수에 휘말린 것 같은 일들이 향후에도 종종 발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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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점에서 오바마 행정부의 절충주의만을 손쉽게 비판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의회와 행정권력 내부의 민주적 개혁 동력들이 취약한 조건에서, 그리고 경제위기로 인해 모든 사회경제적 갈 등이 분출하는 한가운데, 오바마 행정부는 그나마 변화로 가는 큰 방향 아래서 절충과 균형점 을 찾고 있다고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같은 미시적 절충의 축적이 부시 행정부가 시작한--혹은 그 이전부터 설계된-- 가망없는 전쟁들과 전쟁비용, 전쟁권력 남용의 구조적 틀을 바꾸는 방향으로 가는 것인지 아니면 단지 합리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특히 위에서 언급한 대부분의 단체들은 매우 비판적인 시작으로 오바마 정부를 지켜보고 있다. 더구나 오바마 행정부가 취할 수 있는 절충의 여지마저 공화당과 구 정권의 반발로 점점 줄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는 취임 첫 기자회견에서 “과거를 보지 않고 미 래를 보자”고 얘기했지만 점차로 더 과거에 묶여가게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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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나오며 테러와의 전쟁은 미국 내부는 물론 국제사회에서 민주주의와 정의에 관한, 그리고 평화에 관 한 많은 논란과 저항을 야기해 왔다. 자신의 정부가 해외에서 테러리즘과의 전쟁, 그리고 민주 주의의 확산을 소리 높여 외치는 사이에, 정작 미국 시민들은 국가안보라는 이름으로 강요된 공포와 통제의 덫에 걸려 그들의 가치와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었다.

미국의 시민들은 그들이 믿어왔던 민주적 가치와 헌법정신에 따라, 그리고 국제법과 헌법, 그 리고 법률이 제공한 수단들을 이용하여 정부의 행위를 민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 을 기울였다. 그러나 그들이 도움을 얻고자 했던 헌법적이고 제도적인 자구수단들은 충분한 도움을 주지 못했다. 비대해진 전쟁권한과 안보권력에 눌려 3권의 분립도 잘 작동하지 못했다. 사법부와 의회의 제도들은 견제와 균형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테러와의 전쟁 7년은 어떤 나라도, 그것이 설사 발전한 민주주의 국가로 자임하는 나라라 할 지라도 국가안보의 이름 아래서 시민참여에 의한 견제와 균형, 투명성과 책임성을 묻는 시스 템이 제약당할 때, 매우 심각한 민주주의 위기를 겪게 될 수 있음을 역동적으로 보여준다. 그 리고 그 나라가 초강대국이라면 자기 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 민주주의 체제와 법질서를 상하 게 하고 그들이 실패국가나 악으로 규정한 나라들의 주민들--예컨대 이라크 주민들--에게 수 세대를 지나도 회복할 수 없는 재난을 가져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법과 헌법은 가장 가혹한 순간에도 사라지지 말고 힘을 발휘하도록 만들어지는 것이다56.”

56

미연방대법원, Boumediene v. Bush 판결문, 2008,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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