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수 : 해방촌 게릴라가든
김현식 : 셰익스피어 그대에게 박수를!
100
100
해방촌 게릴라가든 해방촌 게릴라가든
박 정 박 수 정 수
박정수
R_view #100
해방촌 게릴라가든
수유너머 R 입구
“어머, 멋지다. 담쟁이인가? 여주잖아. 많이도 열었네. 근데, 여긴 뭐하는 곳이야? 수유너머?” 연구실 간판이 여주와 나팔꽃 넝쿨로 뒤덮였습니다. “수유너머”란 글자는 보이지도 않고, 대신 도깨비 방망이 같은 여주가 동네 아주머니들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당뇨병에 좋대요. 필요하면 따가세요.” 노랗게 익어가는 여주 세 개를 따서 나눠 줬습니다. “근데, 여긴 뭐하는 곳이에요?” 작년 7월 이곳 해방촌으로 이사 와서 시작한 동네 ‘가드닝’은 마을 사람들에게 ‘수유너머’란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생뚱맞은(?) 간판을 살짝 가리려고 현관입구에 ‘아이비’ 화분을 둔 것이 발단이 되었습니다. 교통통제용 고깔을 뒤집어 만든 화분에 2년 기른 ‘아이비’를 심고 간판 위로 넝쿨을 올리는 모습을 보고 옆집 ‘봉우리’ 분식집 아주머니가 자기 가게 앞도 꾸며달라고 했습니다. 낯선 이웃의 관심이 반가워서 주방 조리대로 쓰려고 만들어 둔 테이블을 분식집 앞에 놓고 봉우리 모양의 전등갓을 뒤집어 만든 화분에 미니장미를 심어 진열했습니다. 이 특색 있는 화단에 주변 가게 주인들도 흥미를 보였습니다. 이틀 만에 네 가게 앞에 생활 폐기물을 활용해서 만든 화분과 선반으로 예쁜 화단을 꾸몄습니다. 해방촌은 정말 ‘촌’ 스럽습니다. 금방 소문이 퍼져 ‘주문’이 쇄도했고, 어떤 할머니는 용감하게 2층 연구실로 와서 다짜고짜
박정수
컵닭집 앞
R_view #100
해방촌 게릴라가든
“목공 하는 사람”(?)을 찾으며 30년 된 화분 선반 좀 고쳐달라고 했습니다. 나름 원칙도 생겼습니다. 첫째, 절대 사례비를 받지 않는다.(의아해 하면서도, 좋아합니다) 둘째, 화분은 생활 폐기물을 재활용해서 독창적으로 만든다.(이런 것도 화분이 될 수 있구나, 하며 놀랍니다) 셋째, 꽃은 기를 사람이 직접 꽃가게에 가서 고른다.(덕분에 꽃가게 아저씨랑 ‘절친’이 되었고, 저한테는 도매가격으로 파십니다. 꽃씨는 무료!) 연구실 주변이 내가 만든 화단으로 꾸며지자 욕심이 생겼습니다. ‘주문’을 기다리지 않고, 화단이 있으면 좋을 가게를 찾아가 화단을 제안했습니다. 이상하게 쳐다보면서 거절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완성된 ‘작품’을 들고 가서 “이거 좀 가게 앞에 놓으면 안 돼요? 제가 돌볼게요” 하면서 거절하기 힘든 전략을 짜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동네 가게 주인들과 많이 친해졌습니다. 공부하다 심심하면 한 바퀴 돌면서 꽃도 돌보고, 커피도 얻어먹고, 수다도 떱니다. 그렇게 물어온
박정수
R_view #100
해방촌 게릴라가든
동네 소식은 연구실 밥상머리에 풀어놓습니다. 가게 앞 화단이 확장되면서 더 과감하게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닌 공유 공간에 화단을 만들고픈 욕심이 생겼습니다. 길거리 전체가 정원으로 보이기 시작한 거죠. 가장 먼저 공략한 곳은 연구실 옆 골목입니다. 좁고 비탈진 골목 양편에 조롱박을 심어 넝쿨로 지붕을 만들면 멋질 것 꽃집 아저씨와 함께
같았습니다. 허락 없이 공유지를 정원화 하는 ‘게릴라 가드닝’이 시작된 것입니다. 2010년에 G20포스터에 ‘쥐그림’을 그렸다고 벌금형을 받은 경험, 2011년에 동네 아이들과 놀이터를 ‘갤러리 텃밭’으로 만들다 구청 녹지과와 충돌했던 경험이 떠올라 조심스러웠습니다. 다행히 아무런 방해 없이 작업을 마쳤습니다. 잎이 무성해지고 박꽃이 피고, 오가는 사람들의 눈길로 조롱박이 여물 무렵, 어느 날 넝쿨지붕이 처참히 해쳐지고 박나무가 뿌리 채 뽑히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골목 넝쿨
‘대호슈퍼’ 아줌마가 전해준 목격담에 의하면, 새벽 2시 쯤 어떤 술 취한 아저씨가 미친 듯이 박나무를 뜯어버렸다는 겁니다. 수소문 끝에 골목 안쪽 2층 집에 사는 아저씨가 그랬다는 걸 확인하고, 직접 찾아 갔습니다. 이유가 궁금했거든요. 그 아저씨 왈 “공공장소에 그런 걸 해 놓으면 어쩌냐? 구청에 신고하려다 직접 철거했다”는 겁니다. ‘쥐 포스터’ 사건 때 나를 신고한 행인, 갤러리 텃밭을 구청에 신고한 청소부 아저씨가 생각났습니다. 그러고 보면 게릴라 가드닝은 락카 대신 꽃으로 하는 그래피티 같습니다. 공중도덕과 준법정신으로 무장한
박정수
콩밭 커피숍
R_view #100
해방촌 게릴라가든
‘건전한 시민’의 눈에는 똑같은 ‘위법’이고 ‘오지랖’이죠. 길거리는 정부 소유이기 때문에 개인은 허락 없이 허튼 짓을 해서는 안 된다는 사고방식이 벽처럼 다가왔습니다. 어떻게 망치가 아니라 꽃으로 그 벽에 균열을 낼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작년에 실패한 넝쿨지붕 작업은 올해 장소를 옮겨 해방교회 앞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연구실 맞은 편 해방교회 정문 옆에는 벤치 두 개가 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동네 할머니들이 담소를 나누는 길거리 노인정 같은 곳입니다. 벤치 앞에는 구청에서 설치해 놓고 방치한 시멘트 화단도 하나 있습니다. 올해 게릴라 가드닝은 거기에 ‘로즈메리’를 심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바로 옆 전봇대 주변에는 작년에 연구실 앞에 있던 아이비 화분과 새로 만든 대형 화분들을 배치했습니다. 내친 김에 해방교회 담장을 따라 스무 개 남짓 화분들을 늘어놓고 여러 종류의 화초를 심었습니다. 전봇대와 담장은 넝쿨작물을 유혹하는 지형지물입니다. 나팔꽃, 풍선넝쿨 씨를 뿌리고, 조롱박, 수세미 모종을 심었습니다. 넝쿨이 뻗어가는 여름이 되자 벤치 위에 지붕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저기서 주워 모은 각목과 폐자재를 활용하여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만들었습니다. 넝쿨이 지붕위로 올라가 시원한 그늘과 정겨운 풍경을 연출하도록. 이 설치물은 뜨거운 논란을 불러왔습니다. 특히 해방교회 교인들의 의견이 둘로 나눠졌습니다. 지저분하다는 의견과 정겹고 좋다는 반응이 시시각각 들려 왔습니다. 급기야 교회에서 비용을 댈 테니 튼튼하고 보기 좋은 지붕을 설치하면 어떻겠냐는 목사님의 전언이 들려왔습니다. 다분히 ‘보수적’인 해방교회는 구청의 허락을 구했고, 조사 나온 구청직원은 불법 설치물이라며 지붕은 물론 벤치까지 문제 삼았습니다. 내가 동네 노인들의 쉼터라고 하니까, “노인정이 있지 않느냐?”는
박정수
해방교회 앞
R_view #100
해방촌 게릴라가든
겁니다. 내가 “노인정이 있는데도 여기 모여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고픈 어르신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라”고 따졌더니, “답답하면 남산에 올라가면 되지 않냐”고 합니다. “세상에! 지금도 무릎이 아파서 앉아서 쉬는 거 안 보이냐고?” 화를 버럭 냈더니, 슬금슬금 “동장과 상의해보겠다”고 가더니 꿩을 꿔 먹었는지 지금까지 아무 얘기가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유야무야 내가 만든 지붕은 찬사와 비난, 합법과 불법의 경계지대에서 어울렁더울렁 넝쿨을 두르고 있습니다. 이처럼, 게릴라 가드닝은 ‘관’과 ‘민’ 사이에 새로운 공통지대를 창출합니다. 해방교회를 공략하면서, 오거리 버스정류장이 새삼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구청에서 설치한 원통형 화분이 2년째 재떨이로 전락한 게 아까워서 국화, 해바라기, 한련화 씨앗을 심었습니다. 그리고 다리 하나가 부러진 채 버려진 나무벤치를 주어다 새로 다리를 붙이고 페인트칠도 다시 해서 ‘미니스탑’ 앞에 설치했습니다. 그런 나를
해방촌 오거리 버스정류장
본 한 초로의 남성이 “왜 거기다 그런 걸 버리냐?”고 야단쳤습니다. “버린 게 아니라, 버스 기다리는 동안 앉아서 쉬라고 둔 것”이라니까, “필요 없다”고, “필요하다면 동사무소에서 설치하지 않았겠냐?”고 하십니다. 나이 든 분들 중에는 ‘관’에 대한 근거 없는 신뢰를 가진 ‘민’이 참 많습니다. 지금까지 그 벤치는 마치 원래 거기 있었던 것처럼, 마을버스를 기다리는 이들의 곤한 다리를 잠시 쉬게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곳은 해방촌 성당 벽면입니다. 아침에 산책할
박정수
해방촌 성당 앞길
R_view #100
해방촌 게릴라가든
때마다 화단을 꾸미면 참 좋을 곳인데 쓰레기 집하장이 된 게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긴 테이블을 벽에 붙이고 화분을 올려놓았습니다. 딱히 청구할 사람이 없어서 꽃은 내 돈으로 샀습니다. 며칠 후 화분 두 개가 없어졌습니다. 견물생심을 일으킨 잘못을 반성하며, 옆에는 들고 가기 힘든(버려진 대형 어항과 플라스틱 개집으로 만든) 대형화분을 설치하고 뽑아가기도 힙든 사계장미와 무궁화를 심었습니다. 며칠 후 이번엔 누군가 집에 있던 화분과 시든 화초를 두고 갔습니다. 응원에 힘입어 화분 몇 개를 더 설치했습니다. 그런데, 이 골목에 사는 좀 ‘거친’ 아저씨의 저항에 부딪혔습니다. 꽃집 아저씨와도 친분이 있어서 몇 차례 공용 주차장 구석에서 술추렴도 하고 지내던 분입니다. 어느날 술이 취해서는 “난, 너희들 정체를 안다. 박원순 하부조직이지? 선거 끝나면 사라질 거 안다. 그만 설쳐라. 안 그럼, 내가 화분 다 부셔 버린다.”며 윽박질렀습니다. 그분 말마따나 내가 ‘ 설치고 다니는’ 동안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 나와 연구실의
박정수
R_view #100
해방촌 게릴라가든
정체에 대해 온갖 소문이 떠돌았습니다. 구청에서 돈 받았거나 포상금 노리고 저런다는 얘기, 연구실은 ‘이단’ 집단이거나 ‘빨갱이’ 모임일 거라는 얘기…. “수유너머가 뭐하는 곳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적당한 말을 찾기가 무척 힘듭니다. 철학 공부 한다고 하면, 점치는 곳이냐 하고, 인문학 가르친다고 하면, 학원이냐고 묻고, 모여서 이런 저런 공부한다고 하면, 뭐해 먹고 사느냐, 월세는 어떻게 내냐고 걱정해 줍니다. 덕분에 연구실과 나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금 성찰해 보게 됐습니다. 해방촌 성당길은 게릴라 가드닝의 ‘한계’를 실감케 합니다. 일단, 본부(연구실)에서 멀기 때문에 물 공급에 한계가 있습니다. 작년에는 연구실에서 물을 길렀는데, 다행히 올해는 성당의 허락을 받아 성당 수도에서 물을 길러 줬습니다. 둘째, 꽃을 감상하는 욕구와 주민들의 다른 욕구가 충돌할 때 생기는 한계입니다. 그곳 말고는 쓰레기를 버릴 마땅한 ( 청소부가 가져갈 만한) 장소가 없기 때문에, 또 ‘ 아름다운’ 꽃으로 ‘지저분한’ 삶의 찌꺼기를 추방하는 게 게릴라 가드닝의 취지는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쓰레기 버릴 공간을 남겨놓고 화단을 조성했습니다. 셋째, 공중도덕에 투철해서든, 술김에 장난삼아서든, ‘꽃’에 대한 알레르기 때문이든, 화단을 파괴하는 사람들의 ‘손’을 탄다는 겁니다. 아니나 다를까 어제(9월 5일) 아침에 보니, 누군가 화단을 ‘아작’ 내 버렸습니다. ‘도대체 왜?’ 하며 분개하거나 온몸에 힘이 쭉 빠지는 건 딱 10분이면 족합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고, 그게 게릴라 가드닝의 숙명이라 여기고, 차분히 수습해야 합니다. 화난다고, 보란 듯이 방치해버리면 지는 겁니다. 재밌는 건 그렇게 부서진 화단을 정리할 때마다 새로운 공간, 새로운 사건, 새로운 사람과 만나게 됩니다. 성당 맞은편에 새로 카페를 꾸미고 있는 사장님이 화단을 만들고 싶은데 좀 맡아달라고 합니다. 부서진 화분의 흙과 뜯겨진 화초들을 그곳으로 옮기고, 이참에 성당길 화단도 새로 단장해야겠습니다.
김현식
R_view #100
셰익스피어 그대에게박수를!
누군가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라 했다는데 참으로 맞는 말입니다. 어떤 음식을 먹느냐에 따라 몸이 달라지듯 어떤 책을 읽느냐에 따라 마음도 달라집니다. 귤을 좋아하는 저는 어릴 적 귤 한 박스를 며칠 사이에 먹어치우곤 했습니다. 그렇게 밥보다 귤을 많이 먹으면 손바닥과 발바닥이 귤색깔로 노랗게 물듭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책을 줄창 읽으면 자신도 모르게 그 책의 색깔에 물들어버립니다. 저는 고전을, 그것도 동양 고전을 주로 읽습니다. 《논어》나 《맹자》 따위를 읽다 보니 생각이나 말에도 그렇게 낡은 냄새가 나는가 봅니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고, 그 낡은 것 속에 뭐라도 새로운 것이 있을 테니 크게 상관은 않습니다. 그러나 '성정性情'을 다루는 글 때문에 감정이 밍밍하게 되는 건 참 아쉬운 일입니다. 희로애락에서 멀어지는 것인지, 무뎌지는 것인지. 그래서 올여름은 적잖이 특별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읽었기 때문이지요. 《베니스의 상인》, 《한여름 밤의 꿈》 , 《 로미오와 줄리엣》, 《햄릿》, 《오셀로》, 《맥베스》, 《리어왕》, 《폭풍우》 까지. 총 8편의 작품을 청소년들과 함께 읽었습니다. 오래전부터 한 번쯤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강좌를 시작하고서야 그게 3년 전에 품은 생각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저는 책을 읽을 때면 읽기 시작한 날짜와 동기를 메모해 두곤 합니다. 책을 열어보니 이미 2011년 겨울에 읽었더군요. 솔직히 고백하면 강좌를 준비하면서도 교재를 이전에 다 읽어놓았다는 윌리엄 셰익스피어 (William Shakespeare 1564~1616)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3년 전, 아쉬움에 언젠가 꼭 다시 읽겠노라고 다짐했던 것을. 그때 걸어놓은 주술로 강좌를 기획하고 진행한 것이지요.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다시 읽으면서 3년 전 읽어 놓은 글이 새롭게 깨어나는 경험을 했습니다. 마치 세포 속 어딘가 잠자고 있다 일어난 것처럼.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전보다 작품 속으로 더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베니스와 베로나를 거닐어 보기도 하고 요정들이 가득한 깊은 숲을 헤매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잊을 수 없는 경험은 네 명의 광인, 4대 비극의 주인공을 만났다는 점입니다. 햄릿이 독주를 마신 피비린내 나는 궁정, 오셀로가 아내를 죽인 침실, 맥베스가 운명과 싸움을 벌인 전쟁터, 리어왕이
김현식
R_view #100
셰익스피어 그대에게박수를!
미쳐 내달린 들판까지. 셰익스피어는 매번 새로운 인물과 장소를 무대 위에 펼쳐 보였습니다. 망설임, 질투, 죄책감, 절망이 뒤섞인 무대를 보며 오랜만에 들끓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작품에서, 특히 비극 속에서 주인공은 늘 어딘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지껄이기도 하며, 스스로 미친 체하거나, 환영을 보기도 합니다. 평범한 삶과는 동떨어진 강렬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각 인물과 사건의 고유함 때문에 매주 한 작품씩 읽어가는 것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동일한 광기의 반복이었다면 무더운 여름의 더위와 섞여 이내 지쳐버렸을 겁니다. 자신이 창조한 인물을 그렇게도 막다른 절벽까지 몰고 가는 셰익스피어는 잔혹합니다. 그러나 덕택에 짜릿함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저 밑바닥에 꿈틀거리는, 인간의 맨얼굴을 직시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무더운 여름 함께 셰익스피어를 읽은 청소년들에게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가 만든 인물은 전적으로 선하지도 아내 데스데모나를 죽이는 오셀로
전적으로 악하지도 않지만 인간을 이해하게 만들어 준다고.
여러 주인공 가운데 가장 인기 있었던 인물은 바로 오셀로였다.
입시에 허덕이며 책 읽을 여유는커녕 마음을 먹지도 못하는 청소년에게 셰익스피어는 작지 않은 충격이었을 겁니다. 어느 일간지에서 보도하듯, 오늘날 청소년에게 '독서'란 입시를 방해하는 사치일 뿐이기 때문이지요. 그나마 책을 들춰보는 경우에도 논술을 위한 준비에 그치곤 합니다. 그러니 '독서', 특히 문학이란 설 자리를 잃은 지 오래지요. 하긴 이젠 문학소녀 혹은 소년이라는 말도 사라져버렸습니다. 청소년과 셰익스피어를 읽으면서 매주 글을 쓰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매주 한 권씩 책을 읽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그것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셰익스피어였기 때문에 매주 흥미진진한 사건이었습니다. 강좌를 끝내고 어떤 친구는 셰익스피어가 자신에게
김현식
R_view #100
셰익스피어 그대에게박수를!
재료야, 우리네 삶은 / 잠으로 둘러싸여 있고 말야. 《폭풍우》, 아침이슬, 96쪽
이제 내 마법은 모두 폐지되었습니다, / 그리고 남은 힘은 제 자신의 그것뿐인데, / 미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렇죠, 이제 / 저는 여기 관객 분들한테 묶여 있거나 / 아니면 나폴리로 보내져야겠죠. … / 놓아주십시오, 제 족쇄로부터 / 여러분의 마음씨 착한 박수로. / 부드러운 여러분의 호평이 제 돛을 / 채워야겠지요, 아니면 제 계획은 실패죠, / 여러분을 즐겁게 하려던 계획은 이제 제게는 없습니다, / 일을 시킬 정령도, 마법을 부릴 예술도, /그리고 나의 마무리는 절망이죠. / 기도로 구원받지 못하는 한, / 기도는 참 아리죠, 그래서 공격하지요, / 자비 자체를, 그리고 온갖 잘못을 풀어 주지요. / 여러분이 지은 죄를 용서받듯, / 여러분의 관대함으로 저를 놓아주십시오.
같은 책, 121쪽 올여름 셰익스피어의 마술에 더위를 잊었습니다. 한편 그의 주술은 언젠가 다시 책을 펼치게 하겠지요. 그러나 가을바람은 여름을 잊게 하듯, 이 여름 읽었던 문장을 잊게 만들 겁니다. 그래도 이번 여름 셰익스피어의 글은 이전과는 다르게 나를 살찌웠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다음에 만날 때엔 더 깊이 진하게 만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멋진 무대를 선물한 셰익스피어에게 박수를. 그리고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