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깊은 주름 … 퇴색하는 전쟁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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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섹션은 <로시스카야 가제타(Rossiyskaya Gazeta), 러시아>와 중앙일보가 협력해 제작발간합니다.

제작 담당 ● 러시아: 엘레나 김 에디터 ● 한국: 안성규 게스트서브 에디터 ● editor@russiafocus.co.kr

▶R4

푸틴 가족이 겪은 제2차 세계대전

독일군 미워마라

2015년 5월 29일 금요일

1945 2015 ★

추억과의 전쟁, 그것은 결코 지 울 수 없다. 처절했던 추억은 눈 가에 주름으로 짙게 각인된다. 전쟁의 기억은 참상을 목격한 사람들, 미국에서 유럽, 러시아 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들을 하 나로 묶는다. 마르틴 로에머스 는 빛의 끝자락에서 있는 사람 들의 표정을 사진으로 모았다. 대부분 전쟁 중에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이다. 너무나 처절한 것은, 그들이 겪었던 그 참혹한 고통의 시간을 잊은 듯 인간은 또다시 새로운 전쟁에 제물을 바친다.

[마르틴 로에머스]

70년 깊은 주름  퇴색하는 전쟁의 교훈 엘레나 김

깊은 주름, 슬픔 어린 눈과 눈동자, 세월의 더께가 깊이 얹혀진 얼굴은 전쟁의 상흔이 결코 지워지지 않을 것이며 그 고통으로부 터 구원될 수도 없다고 호소하는 듯하다. 앞 으로도 오래 우리는 전쟁을 더 견뎌내야 한 다고 체념의 메시지를 던진다.   그 지독한 20세기의 비극도 히틀러에게

거둔 승리, 파시즘으로부터 해방이 가져다 주는 기쁨에 자리를 내줬다. 2차대전은 승 리자든 패배자든 모두로부터 수 백만 생명 을 앗아갔다. 쓰라린 가슴을 부여잡고 남 은 자들은 그래도 새 세상을 건설하는 데 나서야 했다.   진주만 기습과 레닌그라드 방어전. 두 단 어는 전쟁 뒤 사람들이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체제로 서로 다른 길을 가는 여정에서 나침

반이 됐다. 신세계의 과제는 인간을 홀로코 스트에서 히로시마, 나가사키와 같은 죽음의 향연에서 멀리 떨어져 있게 하는 것이었다.   올해는 2차대전 종전 70주년이 되는 해. 그러나 인간은 그 오래지도 않은 비극의 역 사를 벌써 잊었다. 우리는 전쟁에서 죽은 자를 기억하고 남은 자를 위로해야 한다. Russia포커스는 독자들이 우리와 함께 70 년 전은 어땠는지 회상할 수 있기를 바란다.

[솔트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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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

2015년 5월 29일 금요일

블라디보스토크 극동 자유항 프로젝트, 실효성 있나

┃ 경제

section sponsored by Rossiyskaya Gazeta, Rus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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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사들이는 러시아 중앙은행

어설픈 개입은 루블화 강세 못 막아  시장 자율에 맡겨야 알렉세이 롯산

러시아 중앙은행이 줄어든 외환 보유액을 다시 늘리기 위해 달러를 사들이기 시작했 다. 아직은 하루 최대 매입액이 1억~2억 달 러 수준으로 비교적 적은 규모인 것으로 알 려졌다.   알렉세이 롯산 러시아 중앙은행 공보실 장은 외환 보유액을 확대하기 위해 달러를 매입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중앙은행은 지난 13일 1억8100만 달러, 14일 2억 달러를 매입했다. 이는 지난해 루블화 가치의 폭락 을 방어하기 위해 외환시장에 달러를 투입 하기 시작한 후 처음이다.   한편 국민경제국가행정 아카데미(РАН ХиГС)의 알라 드보레츠카야 사회경제학 부 교수는 “러시아의 외환 보유액이 국제 기 준으로 안전한 수준이며 주요 물자의 수입 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대외채무 상환 능 력도 보장하는 견고한 ‘외환 안전판’을 보유 한 10개국 안에 든다”며 “달러 매입을 주목 하는 더 중요한 이유는 루블화의 과도한 강 세가 러시아 경제에 미치는 위험성 때문”이 라고 말했다.

줄어든 외환 보유액 늘리자 하루 1억~2억 달러씩 매입 수출기업 위한 것 주장도 환율 자유변동제 이행에 발목 되레 루블화 상승 부추길 수도 구두개입 등 다른 대안 찾아야

달러 매입과 파장

블라디보스토크의 극동통상항. 러시아 정부는 지난해 블라디보스토크의 자유항에 관한 법률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블라디보스토크는 좁은 땅에 해군기지까지 있어 무역항으로 성장하기에 한계가 있다.

[타스]

땅 좁고, 해군 주둔, 주변국 멀고  자유무역지대 입지 경쟁력 떨어져 블라디슬라프 이노젬체프 (경제학 박사, 후기산업사회연구센터장)

“러시아가 동쪽 대문을 열어야 한다”는 말 은 오래됐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 고 있다. 이유는 무엇인가?   러시아 연방 내 극동과 시베리아 지역의 총생산은 2650억~2800억 달러 규모다. 이는 북한과 라오스캄보디아브루나이를 제외 한 동남아시아 어느 국가의 GDP보다도 적 다. 러시아 동부의 경제가 이처럼 허약하다 면 ‘진입점’으로 어떤 매력이 있을 수 있겠 는가? 게다가 기민하지도 않고 사업에 의심 스러운 태도를 갖고 있는 러시아 관료들은 투자 결정을 할 사람마저 훼방 놓는다. 관세 청, 규제기관과 허가기관, ‘실로비키(정보기 관군검찰 출신의 힘 있는 정치인)’, 국세청 은 한국과 중국 또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외국 투자자를 끌어들이는 환경은커녕 그보 다 훨씬 못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바로 이 때문에 중국에선 경제성장의 주 요 동력이 됐던 자유경제구역 경험이 러시 아에서는 전혀 정착되지 못했다.   20세기 초 블라디보스토크는 극동지역 최대 항구이자 러시아의 진정한 관문이었으 나 현재 그 의미는 거의 사라진 지경이 됐다. 2014년 블라디보스토크의 화물 처리량은 고작 1530만t에 그친 반면 중국 다롄은 3억 9000만t, 한국 부산은 3억3000만t, 그리고 일본 나고야는 약 2억3000만t이다. 대외교역 이 급속히 감소한 2015년에는 격차가 더욱 커질 전망이다.   국제 화물 수송에서 해상 운송의 비율이

산업단지 조성할 큰 부지 없고 군, 필요 따라 수시로 항만 통제 중국 국경까지 거리 100 넘어 주변국과 근접한 위치 조건에 치외법권 도로철도 연결 필요

세르게이 카차예프 극동개발부 차관이 지난 21일 도 쿄 러일포럼에서 연설하고 있다. [세르게이 미혜예프]

67~68%이고, 세계 총생산의 60% 이상이 해안 100마일 내에서 생산되는 해양경제 시 대에서 이렇게 뒤처진 상황은 확실히 뭔가 조치를 요구한다.   모든 점을 고려할 때 러시아 지도층이 문제 를 인식하기는 한다. 지난해 12월 연방의회에 보낸 교서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블 라디보스토크가 1862~1900년과 1904~1909년 에 누렸던 자유항 지위를 이 도시가 되찾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정부는 ‘블라디보스 토크의 자유항에 관한 법률’ 초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만으로 정부가 기대하는 결과가 생길 것인가.   블라디보스토크는 오늘날 극동 자유항 을 조성하는 데 최적의 장소는 아니다. 이곳 엔 해군기지가 있는 데다 군인들이 항만의 대부분 구역을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동원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블라디보스토크에는 산업단지를 조성할 만큼 큰 부지가 없으며 중국 국경까지의 거리도 100가 넘는다. 이 모든 것은 러시아 관리들이 ‘자유항의 경쟁 자는 러시아 다른 지역이 아니라 인접 아시 아 국가의 자유지대’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자유항은 러시아 다른 곳보다 더 자유로워야 한다’는 수준의 인식 에 사로잡혀 있음을 드러낸다.   필자가 보기에 ‘자유항’ 프로젝트는 지 역경제의 요구를 충족시켜야 존재 의미가 있다. 지도를 펼치면 연해주의 전략적 의미 는 중국 북부의 커다란 영토 즉 인구 9000만 명, 지역총생산이 7500억 달러에 달하는 동 북 3성(헤이룽장, 지린, 내몽고 자치구)을 바 다로부터 고립시킨다는 점에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여기서 생산되는 상품은 다롄항 이나 잉커우항으로 운송되는데 제조된 곳 에서 1100~2300 떨어진 항구에서 선적된 다는 의미다. 수출뿐 아니라 중국 남부 항으 로 수송하기 위해서도 그렇게 해야 한다.   따라서 러시아의 자유항은 중국 국경에 서 최소 거리(20~25)에 자리잡아야 한다. 예를 들어 트로이차 만에 있는 소항구 자루 비노를 기반으로(북위 42도 38분, 동경 131 도 06분) 치외법권 지위도 갖는 현대적 도 로와 철도로 중국 영토와 연결됐어야 했다.   항구 주변 200~250㎢ 넓이의 땅에 벽을 치고 세관과 출입국관리소를 설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중국 선전이 그렇게 했다. 그러 면 일본미국필리핀은 물론 중국으로 들어 가는 중국 상품, 중국 북부 지방으로 가기 위해 외국 상품들이 이 항구를 통과했을 것 이다.   중국 북부의 경제 규모를 고려할 때 신항 만이 건설되면 5~6년 만에 연간 화물 8000 만~1억t을 거뜬히 운송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극동연방대학교 전문가들의 추산에 따르면 이런 규모의 시설은 연해주 지역총생산을 현재보다 30~35% 성장시켰을 것이다. 이러 한 정책이 어떻게 지역 경제를 도약시키는지 는 두바이 제벨 알리 항의 산업복합단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중 국의 급 속 한 산 업발전 경험은 낡 은 생산시설을 현대화하 는 것이 아니라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소위 ‘그린필드 (greenfield) 프로젝트’가 예전이나 지금 도 가장 성공적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최근 의 예는 선전 근교 치안하이의 ‘정보 메가

폴리스’ 프로젝트 개발을 들 수 있다.   러시아는 오래전부터 아시아와 유럽의 화물운송을 도맡는 통과국이 되길 바라왔 다. 그러나 아직 수에즈 운하가 있을 뿐 아니 라 기업들도 러시아 철도 운송의 가격과 질 을 걱정하고 있다. 러시아가 좀 더 거리가 짧 고 훨씬 납득이 되는 아시아 내 화물운송으 로 수익을 얻으려 시도해 보는 것은 어떨까?

러, 일본에 블라디보스토크항 참여 제안   러시아는 일본 기업들이 블라디보스토 크 자유항 프로젝트 추진에 참여할 것을 제안한다고 세르게이 카차예프 극동개발 부 차관이 5월 21일 도쿄 러일포럼 ‘접촉 점: 비즈니스, 투자, 스포츠’에서 밝혔다. 카차예프 차관은 자유항 구역이 연해주 남 부 자루비노 항에서 보스토치니 항 사이에 있는 13개 지자체를 아우를 것이라고 말했 다. 이 구역에서는 “기업활동 및 투자활동 을 위한 특별한 법적 체제가 적용되고, 관 세자유지역 체제가 제공되며, 하나의 통합 세가 도입되고, 무비자 방문이 보장되고 자 유항 등록과 운영에서 특별히 간소화된 절 차가 보장될 것이다.”   카차예프 차관의 말에 따르면 자유항 체 제는 아태지역 기업과 국가의 운송비용을 감소시키고 ‘프리모리예-1’과 ‘프리모리 예-2’ 국제운송축(중국 북부에서 러시아 연 해주의 태평양 항만들까지)의 실현을 시작 할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다. 또한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통한 아시아~유럽 최단 육로운 송로 및 북극항로를 통한 유럽으로 가는 최 단 항로의 조성을 촉진할 것이다.

‘IC Russ Invest’의 드미트리 베덴코프 분석부장은 “일일 외환 거래량이 50억 달러 에 이르는 상황에서 1억~2억 달러 매입은 외 환 시장 동향에 결정적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지금 상황에서는 오히려 외환 규제기관이 구두 개입과 같은 계획을 검토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드보 레츠카야 교수는 “외환 규제기관이 루블화 의 지나친 강세를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이 미 시장에 밝혔다”면서 “현재 서방에 대한 대외정책의 일정 부분과 국제유가 동향이 비교적 안정적인 상황에서 외환시장에 개입 하면 또다시 재정수입이 크게 늘어나는 만 큼 루블화가 강세를 띠게 된다. 그렇게 되면 수입대체 산업 육성과 자원 수출을 통한 경 제성장에 제동이 걸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루블화 강세는 수출업체, 그중에 서도 특히 원료 수출업체에 타격을 줘 국가 재정이 영향을 받게 된다. 연방 예산에서 석 유와 가스 수출에 따른 수입이 차지하는 비 율이 50%를 넘기 때문이다.

러시아 중앙은행의 달러 매입은 변동환율제로 전환한 정책과 모순된다.

투자회사 UFS IC의 일리야 발라키레프 수석 애널리스트는 “루블화 강세는 국가 경 제에 여러 부정적 결과를 초래한다. 수출업 체에는 루블화 약세일 때가 유리하다. 원료 가 아닌 고부가가치 상품을 수출하는 업체 는 특히 더 그렇다”고 평가했다. 또 그는 철 강 분야를 포함한 세계시장에서 상품가격이 오랜 기간 최저 수준에 머물러 있는데 루블 화 강세까지 겹치면 가격경쟁력이 떨어져 철 강 제품 수출업체들이 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환율 자유변동제로 이행 정책과 엇박자 모스크바 시내 러시아 중앙은행 건물.

[로리]

중앙은행의 새로운 조치는 나아가 루 블화 환율을 자유변동제로 이행하기로 한

외환정책에 어긋난다고 드보레츠카야 교 수는 경계한다. 그는 “국내시장에서 정기 적인 외환 매입을 공식적으로 부활시킨 것은 얼핏 보기에는 러시아은행이 발표한 루블화 변동환율제로의 이행을 실현하는 길에서 뒷걸음한 것과 같다”고 말했다. 드 보레츠카야 교수에 따르면 2014년 초 중 앙은행의 의도적인 외환시장 개입이 중단 됐고 지난해 말쯤 중앙은행이 외환시장 에서 손을 떼려고 했다. 이는 거시경제 및 지정학적 요인에 의해 힘을 잃은 루블화 의 가치 폭락을 부채질하는 원인이 됐다. 그는 “그래서 러시아 중앙은행은 재정 안 정이 위협받는 상황에 한해 예고없이 비 정기적으로 개입해 상황을 조율할 수 있

물가 잡고, 경제난 극복 기대  의약품 포함 일부 품목 병행수입 허가 알렉세이 롯산

러시아 정부가 병행 수입을 허가했다. 지적 재산권이 있는 해외 제품도 소유권자의 허 가 없이 러시아에 수입해 팔 수 있게 된다 는 의미다. 정부는 이런 조치로 물가가 떨 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위조품이 늘어날 위험성을 경고한다. 게다 가 병행수입은 포스트 소비에트 지역의 주 요 연합체인 유라시아경제연합(EEU)의

러, 해외 제품 수입 판매 허용 차량부품 최대 80% 낮아질듯

모스크바의 약국. 병행수입 합법화로 필수 의약품 가격의 안정이 기대된다.

[타스]

규정에 어긋난다는 문제가 있다.   경제 전문지 베도모스티는 최근 “러시아 정부가 2015년 5월 초 열린 회의에서 의약 품을 비롯해 일부 제품군의 병행수입을 허 가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드미트리 메 드베데프 총리에 따르면 병행수입 합법화 는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수단이 될 수 있 으며 물가도 떨어뜨릴 수 있다. 투자홀딩컴 퍼니인 ‘피남’의 티무르 니그마툴린 애널 리스트도 “병행수입 합법화로 의약품과 새 로 유입될 다른 제품의 가격이 말 그대로 급락할 것”이라고 내다보면서 “의약품은 특수해서 가격이 30~50%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정부의 병행수입 허 가 조치에 따라 해당 제품의 목록이 작성 될 예정이다. 특히 현재 공식 유통업체를 통 해서만 수입되고 있는 의약품과 향수류, 가 전제품에 대한 병행수입이 논의되고 있다. EEU의 추산에 따르면 병행수입 허가에 따 라 브랜드 차량 부품은 60~80%, 향수는 20~60%, 차량 보조 좌석은 최대 50%까지 가격이 떨어진다.   안드레이 슬레프네프 유라시아경제위

원회 통상장관이 Russia포커스에 밝힌 바 에 따르면, EEU는 외국인 투자가 많은 현 지 생산 분야에서는 병행수입을 도입할 계 획이 없다. 안드레이 장관은 또 “오래 전부 터 EEU 차원에서 병행수입 허용을 놓고 논 의해 왔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러시아 측은 의약품, 카자흐스탄 측은 차량부품의 병행 수입을 허용하자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안드레이 장관은 “특정 상품군에만 병 행수입이 허용될 수 있다. 대상 제품군을 어떻게 선정할지에 대해 다양한 기준들이 논의되고 있다. 공식 유통업체의 가격정책 과 EEU 참가국 내 해당 제품 생산에 대한 외국인 투자, 특정 제품 시장의 특징과 같 은 기준들이 논의 중이다”라고 말했다. 그 는 “어쨌든 병행수입을 허가하려면 EEU 규약을 대대적으로 수정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제는 부정적 측면이다. 우선 러시아 내 병행수입은 2002년부터 금지돼 왔다. 게다가 브랜드 제품의 경우 해당 브랜드의 소유권자 가 판매를 관리하며 이들의 허락 없이 수입해 판매한 제품은 위조품으로 간주된다.   유럽경제인연합회(AEB)의 쇼프 프란크

[보스토크 포토]

는 권한을 남겨뒀다”고 덧붙였다.   드보레츠카야 교수는 루블화 가치 ‘하 락 게임’이 전략적 ‘한 수’여야 한다고 했 다. 루블화의 권위와 경쟁력, 구매력을 높 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일리야 발라 키레프 수석 애널리스트는 “지난해 하반기 중앙은행은 루블화 급락세에 대처하기 위 해 하루 수십억 달러씩 지출했는데 이 조 치는 별 효과가 없었다”며 “그래서 외환 투 기자들을 진정시키는 (외환 규제기관의 구 두개입과 같은) 신호가 중요하다”고 말했 다. 그는 이 신호들은 제도화되고 명료해질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런 조치가 외환 (달러) 매입보다 시장에 더 긍정적인 영향 을 미친다는 의견이다.

(Schauff Frank) 회장은 Russia포커스에 “병행수입을 금지한 덕분에 외국인투자자 들이 러시아 시장에 진출해 현지에서 창업 할 수 있었다”면서 “따라서 1990년대 방식 으로의 회귀하게 되면 새로운 기업의 설립 을 위한 시장으로서 러시아의 투자 매력도 는 상당히 낮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러시아 산업통상부 장관도 병행수입 허 가에 반대하고 있다. 데니스 만투로프 산업 통상부 장관은 타스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병행수입은 포스트 소비에트 지역의 주요 연합체인 EEU의 규범에도 어긋난다”고 지 적했다. EEU는 참가국 간 국경에서 통관검 사 폐지를 제안하고 있다. 5월 초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아르메니아가 이 연 합에 가입했고 곧 키르기스스탄도 합류할 예정이다. 그뿐만 아니라 EEU는 2015년 5 월 8일부터는 중국과 경제통상 협력에 대한 협의도 시작했다. 그러나 관련 법이 이미 통 과돼 만투로프 장관의 반대에 큰 의미를 둘 것은 없다. 그의 반대는 품목 선정에 영향을 주는 정도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애널리스트 티무르 니그마툴린은 “병행 수입 허가로 인해 위조 수입품이 늘어날 것” 이라며 “다만 러시아에서 생산되는 위조품 은 줄어들면서 전체적으로는 큰 변화가 없 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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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29일 금요일

블라디보스토크 극동 자유항 프로젝트, 실효성 있나

┃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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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사들이는 러시아 중앙은행

어설픈 개입은 루블화 강세 못 막아  시장 자율에 맡겨야 알렉세이 롯산

러시아 중앙은행이 줄어든 외환 보유액을 다시 늘리기 위해 달러를 사들이기 시작했 다. 아직은 하루 최대 매입액이 1억~2억 달 러 수준으로 비교적 적은 규모인 것으로 알 려졌다.   알렉세이 롯산 러시아 중앙은행 공보실 장은 외환 보유액을 확대하기 위해 달러를 매입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중앙은행은 지난 13일 1억8100만 달러, 14일 2억 달러를 매입했다. 이는 지난해 루블화 가치의 폭락 을 방어하기 위해 외환시장에 달러를 투입 하기 시작한 후 처음이다.   한편 국민경제국가행정 아카데미(РАН ХиГС)의 알라 드보레츠카야 사회경제학 부 교수는 “러시아의 외환 보유액이 국제 기 준으로 안전한 수준이며 주요 물자의 수입 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대외채무 상환 능 력도 보장하는 견고한 ‘외환 안전판’을 보유 한 10개국 안에 든다”며 “달러 매입을 주목 하는 더 중요한 이유는 루블화의 과도한 강 세가 러시아 경제에 미치는 위험성 때문”이 라고 말했다.

줄어든 외환 보유액 늘리자 하루 1억~2억 달러씩 매입 수출기업 위한 것 주장도 환율 자유변동제 이행에 발목 되레 루블화 상승 부추길 수도 구두개입 등 다른 대안 찾아야

달러 매입과 파장

블라디보스토크의 극동통상항. 러시아 정부는 지난해 블라디보스토크의 자유항에 관한 법률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블라디보스토크는 좁은 땅에 해군기지까지 있어 무역항으로 성장하기에 한계가 있다.

[타스]

땅 좁고, 해군 주둔, 주변국 멀고  자유무역지대 입지 경쟁력 떨어져 블라디슬라프 이노젬체프 (경제학 박사, 후기산업사회연구센터장)

“러시아가 동쪽 대문을 열어야 한다”는 말 은 오래됐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 고 있다. 이유는 무엇인가?   러시아 연방 내 극동과 시베리아 지역의 총생산은 2650억~2800억 달러 규모다. 이는 북한과 라오스캄보디아브루나이를 제외 한 동남아시아 어느 국가의 GDP보다도 적 다. 러시아 동부의 경제가 이처럼 허약하다 면 ‘진입점’으로 어떤 매력이 있을 수 있겠 는가? 게다가 기민하지도 않고 사업에 의심 스러운 태도를 갖고 있는 러시아 관료들은 투자 결정을 할 사람마저 훼방 놓는다. 관세 청, 규제기관과 허가기관, ‘실로비키(정보기 관군검찰 출신의 힘 있는 정치인)’, 국세청 은 한국과 중국 또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외국 투자자를 끌어들이는 환경은커녕 그보 다 훨씬 못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바로 이 때문에 중국에선 경제성장의 주 요 동력이 됐던 자유경제구역 경험이 러시 아에서는 전혀 정착되지 못했다.   20세기 초 블라디보스토크는 극동지역 최대 항구이자 러시아의 진정한 관문이었으 나 현재 그 의미는 거의 사라진 지경이 됐다. 2014년 블라디보스토크의 화물 처리량은 고작 1530만t에 그친 반면 중국 다롄은 3억 9000만t, 한국 부산은 3억3000만t, 그리고 일본 나고야는 약 2억3000만t이다. 대외교역 이 급속히 감소한 2015년에는 격차가 더욱 커질 전망이다.   국제 화물 수송에서 해상 운송의 비율이

산업단지 조성할 큰 부지 없고 군, 필요 따라 수시로 항만 통제 중국 국경까지 거리 100 넘어 주변국과 근접한 위치 조건에 치외법권 도로철도 연결 필요

세르게이 카차예프 극동개발부 차관이 지난 21일 도 쿄 러일포럼에서 연설하고 있다. [세르게이 미혜예프]

67~68%이고, 세계 총생산의 60% 이상이 해안 100마일 내에서 생산되는 해양경제 시 대에서 이렇게 뒤처진 상황은 확실히 뭔가 조치를 요구한다.   모든 점을 고려할 때 러시아 지도층이 문제 를 인식하기는 한다. 지난해 12월 연방의회에 보낸 교서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블 라디보스토크가 1862~1900년과 1904~1909년 에 누렸던 자유항 지위를 이 도시가 되찾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정부는 ‘블라디보스 토크의 자유항에 관한 법률’ 초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만으로 정부가 기대하는 결과가 생길 것인가.   블라디보스토크는 오늘날 극동 자유항 을 조성하는 데 최적의 장소는 아니다. 이곳 엔 해군기지가 있는 데다 군인들이 항만의 대부분 구역을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동원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블라디보스토크에는 산업단지를 조성할 만큼 큰 부지가 없으며 중국 국경까지의 거리도 100가 넘는다. 이 모든 것은 러시아 관리들이 ‘자유항의 경쟁 자는 러시아 다른 지역이 아니라 인접 아시 아 국가의 자유지대’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자유항은 러시아 다른 곳보다 더 자유로워야 한다’는 수준의 인식 에 사로잡혀 있음을 드러낸다.   필자가 보기에 ‘자유항’ 프로젝트는 지 역경제의 요구를 충족시켜야 존재 의미가 있다. 지도를 펼치면 연해주의 전략적 의미 는 중국 북부의 커다란 영토 즉 인구 9000만 명, 지역총생산이 7500억 달러에 달하는 동 북 3성(헤이룽장, 지린, 내몽고 자치구)을 바 다로부터 고립시킨다는 점에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여기서 생산되는 상품은 다롄항 이나 잉커우항으로 운송되는데 제조된 곳 에서 1100~2300 떨어진 항구에서 선적된 다는 의미다. 수출뿐 아니라 중국 남부 항으 로 수송하기 위해서도 그렇게 해야 한다.   따라서 러시아의 자유항은 중국 국경에 서 최소 거리(20~25)에 자리잡아야 한다. 예를 들어 트로이차 만에 있는 소항구 자루 비노를 기반으로(북위 42도 38분, 동경 131 도 06분) 치외법권 지위도 갖는 현대적 도 로와 철도로 중국 영토와 연결됐어야 했다.   항구 주변 200~250㎢ 넓이의 땅에 벽을 치고 세관과 출입국관리소를 설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중국 선전이 그렇게 했다. 그러 면 일본미국필리핀은 물론 중국으로 들어 가는 중국 상품, 중국 북부 지방으로 가기 위해 외국 상품들이 이 항구를 통과했을 것 이다.   중국 북부의 경제 규모를 고려할 때 신항 만이 건설되면 5~6년 만에 연간 화물 8000 만~1억t을 거뜬히 운송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극동연방대학교 전문가들의 추산에 따르면 이런 규모의 시설은 연해주 지역총생산을 현재보다 30~35% 성장시켰을 것이다. 이러 한 정책이 어떻게 지역 경제를 도약시키는지 는 두바이 제벨 알리 항의 산업복합단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중 국의 급 속 한 산 업발전 경험은 낡 은 생산시설을 현대화하 는 것이 아니라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소위 ‘그린필드 (greenfield) 프로젝트’가 예전이나 지금 도 가장 성공적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최근 의 예는 선전 근교 치안하이의 ‘정보 메가

폴리스’ 프로젝트 개발을 들 수 있다.   러시아는 오래전부터 아시아와 유럽의 화물운송을 도맡는 통과국이 되길 바라왔 다. 그러나 아직 수에즈 운하가 있을 뿐 아니 라 기업들도 러시아 철도 운송의 가격과 질 을 걱정하고 있다. 러시아가 좀 더 거리가 짧 고 훨씬 납득이 되는 아시아 내 화물운송으 로 수익을 얻으려 시도해 보는 것은 어떨까?

러, 일본에 블라디보스토크항 참여 제안   러시아는 일본 기업들이 블라디보스토 크 자유항 프로젝트 추진에 참여할 것을 제안한다고 세르게이 카차예프 극동개발 부 차관이 5월 21일 도쿄 러일포럼 ‘접촉 점: 비즈니스, 투자, 스포츠’에서 밝혔다. 카차예프 차관은 자유항 구역이 연해주 남 부 자루비노 항에서 보스토치니 항 사이에 있는 13개 지자체를 아우를 것이라고 말했 다. 이 구역에서는 “기업활동 및 투자활동 을 위한 특별한 법적 체제가 적용되고, 관 세자유지역 체제가 제공되며, 하나의 통합 세가 도입되고, 무비자 방문이 보장되고 자 유항 등록과 운영에서 특별히 간소화된 절 차가 보장될 것이다.”   카차예프 차관의 말에 따르면 자유항 체 제는 아태지역 기업과 국가의 운송비용을 감소시키고 ‘프리모리예-1’과 ‘프리모리 예-2’ 국제운송축(중국 북부에서 러시아 연 해주의 태평양 항만들까지)의 실현을 시작 할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다. 또한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통한 아시아~유럽 최단 육로운 송로 및 북극항로를 통한 유럽으로 가는 최 단 항로의 조성을 촉진할 것이다.

‘IC Russ Invest’의 드미트리 베덴코프 분석부장은 “일일 외환 거래량이 50억 달러 에 이르는 상황에서 1억~2억 달러 매입은 외 환 시장 동향에 결정적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지금 상황에서는 오히려 외환 규제기관이 구두 개입과 같은 계획을 검토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드보 레츠카야 교수는 “외환 규제기관이 루블화 의 지나친 강세를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이 미 시장에 밝혔다”면서 “현재 서방에 대한 대외정책의 일정 부분과 국제유가 동향이 비교적 안정적인 상황에서 외환시장에 개입 하면 또다시 재정수입이 크게 늘어나는 만 큼 루블화가 강세를 띠게 된다. 그렇게 되면 수입대체 산업 육성과 자원 수출을 통한 경 제성장에 제동이 걸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루블화 강세는 수출업체, 그중에 서도 특히 원료 수출업체에 타격을 줘 국가 재정이 영향을 받게 된다. 연방 예산에서 석 유와 가스 수출에 따른 수입이 차지하는 비 율이 50%를 넘기 때문이다.

러시아 중앙은행의 달러 매입은 변동환율제로 전환한 정책과 모순된다.

투자회사 UFS IC의 일리야 발라키레프 수석 애널리스트는 “루블화 강세는 국가 경 제에 여러 부정적 결과를 초래한다. 수출업 체에는 루블화 약세일 때가 유리하다. 원료 가 아닌 고부가가치 상품을 수출하는 업체 는 특히 더 그렇다”고 평가했다. 또 그는 철 강 분야를 포함한 세계시장에서 상품가격이 오랜 기간 최저 수준에 머물러 있는데 루블 화 강세까지 겹치면 가격경쟁력이 떨어져 철 강 제품 수출업체들이 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환율 자유변동제로 이행 정책과 엇박자 모스크바 시내 러시아 중앙은행 건물.

[로리]

중앙은행의 새로운 조치는 나아가 루 블화 환율을 자유변동제로 이행하기로 한

외환정책에 어긋난다고 드보레츠카야 교 수는 경계한다. 그는 “국내시장에서 정기 적인 외환 매입을 공식적으로 부활시킨 것은 얼핏 보기에는 러시아은행이 발표한 루블화 변동환율제로의 이행을 실현하는 길에서 뒷걸음한 것과 같다”고 말했다. 드 보레츠카야 교수에 따르면 2014년 초 중 앙은행의 의도적인 외환시장 개입이 중단 됐고 지난해 말쯤 중앙은행이 외환시장 에서 손을 떼려고 했다. 이는 거시경제 및 지정학적 요인에 의해 힘을 잃은 루블화 의 가치 폭락을 부채질하는 원인이 됐다. 그는 “그래서 러시아 중앙은행은 재정 안 정이 위협받는 상황에 한해 예고없이 비 정기적으로 개입해 상황을 조율할 수 있

물가 잡고, 경제난 극복 기대  의약품 포함 일부 품목 병행수입 허가 알렉세이 롯산

러시아 정부가 병행 수입을 허가했다. 지적 재산권이 있는 해외 제품도 소유권자의 허 가 없이 러시아에 수입해 팔 수 있게 된다 는 의미다. 정부는 이런 조치로 물가가 떨 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위조품이 늘어날 위험성을 경고한다. 게다 가 병행수입은 포스트 소비에트 지역의 주 요 연합체인 유라시아경제연합(EEU)의

러, 해외 제품 수입 판매 허용 차량부품 최대 80% 낮아질듯

모스크바의 약국. 병행수입 합법화로 필수 의약품 가격의 안정이 기대된다.

[타스]

규정에 어긋난다는 문제가 있다.   경제 전문지 베도모스티는 최근 “러시아 정부가 2015년 5월 초 열린 회의에서 의약 품을 비롯해 일부 제품군의 병행수입을 허 가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드미트리 메 드베데프 총리에 따르면 병행수입 합법화 는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수단이 될 수 있 으며 물가도 떨어뜨릴 수 있다. 투자홀딩컴 퍼니인 ‘피남’의 티무르 니그마툴린 애널 리스트도 “병행수입 합법화로 의약품과 새 로 유입될 다른 제품의 가격이 말 그대로 급락할 것”이라고 내다보면서 “의약품은 특수해서 가격이 30~50%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정부의 병행수입 허 가 조치에 따라 해당 제품의 목록이 작성 될 예정이다. 특히 현재 공식 유통업체를 통 해서만 수입되고 있는 의약품과 향수류, 가 전제품에 대한 병행수입이 논의되고 있다. EEU의 추산에 따르면 병행수입 허가에 따 라 브랜드 차량 부품은 60~80%, 향수는 20~60%, 차량 보조 좌석은 최대 50%까지 가격이 떨어진다.   안드레이 슬레프네프 유라시아경제위

원회 통상장관이 Russia포커스에 밝힌 바 에 따르면, EEU는 외국인 투자가 많은 현 지 생산 분야에서는 병행수입을 도입할 계 획이 없다. 안드레이 장관은 또 “오래 전부 터 EEU 차원에서 병행수입 허용을 놓고 논 의해 왔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러시아 측은 의약품, 카자흐스탄 측은 차량부품의 병행 수입을 허용하자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안드레이 장관은 “특정 상품군에만 병 행수입이 허용될 수 있다. 대상 제품군을 어떻게 선정할지에 대해 다양한 기준들이 논의되고 있다. 공식 유통업체의 가격정책 과 EEU 참가국 내 해당 제품 생산에 대한 외국인 투자, 특정 제품 시장의 특징과 같 은 기준들이 논의 중이다”라고 말했다. 그 는 “어쨌든 병행수입을 허가하려면 EEU 규약을 대대적으로 수정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제는 부정적 측면이다. 우선 러시아 내 병행수입은 2002년부터 금지돼 왔다. 게다가 브랜드 제품의 경우 해당 브랜드의 소유권자 가 판매를 관리하며 이들의 허락 없이 수입해 판매한 제품은 위조품으로 간주된다.   유럽경제인연합회(AEB)의 쇼프 프란크

[보스토크 포토]

는 권한을 남겨뒀다”고 덧붙였다.   드보레츠카야 교수는 루블화 가치 ‘하 락 게임’이 전략적 ‘한 수’여야 한다고 했 다. 루블화의 권위와 경쟁력, 구매력을 높 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일리야 발라 키레프 수석 애널리스트는 “지난해 하반기 중앙은행은 루블화 급락세에 대처하기 위 해 하루 수십억 달러씩 지출했는데 이 조 치는 별 효과가 없었다”며 “그래서 외환 투 기자들을 진정시키는 (외환 규제기관의 구 두개입과 같은) 신호가 중요하다”고 말했 다. 그는 이 신호들은 제도화되고 명료해질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런 조치가 외환 (달러) 매입보다 시장에 더 긍정적인 영향 을 미친다는 의견이다.

(Schauff Frank) 회장은 Russia포커스에 “병행수입을 금지한 덕분에 외국인투자자 들이 러시아 시장에 진출해 현지에서 창업 할 수 있었다”면서 “따라서 1990년대 방식 으로의 회귀하게 되면 새로운 기업의 설립 을 위한 시장으로서 러시아의 투자 매력도 는 상당히 낮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러시아 산업통상부 장관도 병행수입 허 가에 반대하고 있다. 데니스 만투로프 산업 통상부 장관은 타스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병행수입은 포스트 소비에트 지역의 주요 연합체인 EEU의 규범에도 어긋난다”고 지 적했다. EEU는 참가국 간 국경에서 통관검 사 폐지를 제안하고 있다. 5월 초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아르메니아가 이 연 합에 가입했고 곧 키르기스스탄도 합류할 예정이다. 그뿐만 아니라 EEU는 2015년 5 월 8일부터는 중국과 경제통상 협력에 대한 협의도 시작했다. 그러나 관련 법이 이미 통 과돼 만투로프 장관의 반대에 큰 의미를 둘 것은 없다. 그의 반대는 품목 선정에 영향을 주는 정도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애널리스트 티무르 니그마툴린은 “병행 수입 허가로 인해 위조 수입품이 늘어날 것” 이라며 “다만 러시아에서 생산되는 위조품 은 줄어들면서 전체적으로는 큰 변화가 없 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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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

2015년 5월 29일 금요일

푸틴 칼럼(러시아 피오네르 발췌)-우리 가족이 겪은 제2차 세계대전

┃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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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중국 도원결의 뜻은

시체 더미서 목숨 건진 푸틴 어머니 독일군도 사람인데 미워할 수 있겠니

정상회담 이어 연합훈련  서방 압박에 국익 수호 동맹 시위 러시아와 중국의 대규모 해상 군사훈련 ‘해상 협력-2015’가 지난 5월 21일 지중 해에서 막을 내렸다. 이번 훈련에는 러중 해군 군함 9척이 참가했다. 러중 해군 대

알렉세이 티모페이체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제2차 세 계대전 당시 부모님이 겪었던 일, 동생의 운 명, 가족의 삶을 있게 한 놀라운 우연과 독 일군을 미워할 줄 모르고 그러고 싶지도 않 았던 부모님의 이야기를 담은 칼럼을 썼다. 칼럼은 2015년 5월 ‘러시아 피오네르’ 55호 에 실렸다. 이를 발췌해 소개한다.   푸틴 대통령의 부친 블라디미르 스피리 도노비치 푸틴은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 서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 는 군수공장에서 일하게 됐다. 군수공장 근 로자에겐 전방에 나갈 의무가 없었지만 부 친은 스스로 입당 신청서를 쓰고 군에 지원 해 내무인민위원회 공작부대에 배치되었다.   작전 중 누군가의 배신으로 부대원 28명 중 24명이 독일군에 희생되는 일이 벌어졌 지만 그는 매복을 뚫고 탈출했다.   푸틴 대통령은 칼럼에서 이렇게 회상했 다. “아버지는 몇 시간 동안 연못 속에 숨어 갈대 줄기로 호흡했다. 겨우 몇 발짝 떨어진 곳에서 독일군이 지나가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그 후 그는 네바 강변에 있는 작은 전투기 지 넵스키 퍄타촉에 배치되었다. 소련이 수만 병사의 목숨을 희생하면서도 끈질기 게 지켜온 곳이었다. 이곳에서 그는 중상을 입는데, 그의 아파트 이웃이 총탄이 쏟아지 는 가운데 아버지를 얼어붙은 네바 강을 건 너 반대편 기슭으로 끌고 가 병원에 데려다 주었다.   푸틴 대통령은 칼럼에 이렇게 썼다. “그 분은 병원에서 기다렸다가 아버지의 수술이 끝난 걸 확인하고는 ‘됐어, 이제 자넨 살 거 야. 그럼 난 죽으러 가겠네’라고 했다. 나는

전쟁 자원 아버지, 전투 중 중상 이웃사촌의 도움으로 목숨 건져 위생병이 가망 없다던 어머니 아버지 지극 정성 간호로 살아나

푸틴 대통령의 아버지 블라디미르 스피리도노비치 푸틴.

[kremlin.ru]

아버지께 ‘그래서 그분은 정말 돌아가셨나 요?’라고 물었다. 두 분은 연락이 끊겼고, 아 버지는 그분이 세상을 떠났을 거라고 생각 했다. 그런데 1960년대 초 아버지가 갑자기 집에 들어오더니 의자에 앉아 눈물을 흘리 시는 것이 아닌가. 생명의 은인을 만나서였 다. 우연히 레닌그라드에 있는 가게에 식료 품을 사러 들어갔다가 조우하게 된 것이다. 두 분이 어떻게 같은 시간에 같은 가게에 갈 수 있었을까. 수백만 분의 일이나 될 법한 확률이다….”   푸틴 대통령의 아버지는 입원해 있는 동 안 자기 몫의 배급 식량을 어머니에게 주었 고, 어머니는 그걸 (푸틴의) 어린 동생에게 줬다. 의료진은 환자가 굶주려 실신하자 무 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고 어머니의 면회를 금지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의 동생이 굶 어 죽은 것은 아니다. 레닌그라드 공방전 때 디프테리아에 걸린 것이 원인이었다. 부모님 은 동생이 어디에 묻혔는지도 몰랐다가 나 중에 피스카룝스코예 기념묘지에 매장되었 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기념 묘지에는 1941년부터 1944년까지 150만 명가량이 묻 혔다. 방어전에서 전사한 군인들과 굶주림 과 병으로 죽어간 사람들이었다.   푸틴 대통령은 공방전 당시 어머니가 어 떻게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는지도 회상했 다. 부친이 병원에서 돌아와 아파트 현관으 로 다가서는데 위생병들이 시체들을 내 가 고 있었다. 그런데 그 시체들 사이에서 모친 의 모습을 알아본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이 렇게 썼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숨이 붙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위생병들에게 ‘아 직 살아 있잖아요!’”라고 소리쳤다. 위생병 들은 아버지에게 ‘길가까지만 나가도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겁니다’라고 했다. 아 버지는 목발을 휘두르며 ‘도로 집에 데려다

표들의 견해에 따르면 이 군사훈련은 먼 해상에서 발생하는 위협에 대한 공동 대 응 준비태세를 보여주는 것이다. 훈련 본 부는 세바스토폴 소속의 러시아 미사일 순양함 ‘모스크바호’에 설치된 것으로 알 려졌다. 러시아는 러시아연방에 자진 편입 된 세바스토폴을 흑해와 지중해를 담당 하는 군사기지로 사용할 계획임을 밝혔다.

어머니외활머니와 같이 있는 어릴적 푸틴 대통령.

[kremlin.ru, 리아 노보스티]

놓으라’고 했다. 위생병들은 ‘당신 말대로 하겠지만, 앞으로 2~4주 동안 여기 오지 않 을 거란 걸 알아 두세요. 당신 손으로 시체 를 처리해야 할 겁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정성어린 간호로 어머니는 건강을 되찾으셨다. 어머니는 1999년까지 사셨고 아버지는 1998년 말에 돌아가셨다.”   푸틴 대통령의 부친은 여섯 형제인데 그 중 다섯이 전쟁으로 목숨을 잃었다고 밝혔 다. 외가 쪽에도 전쟁에서 희생된 친척들이 있다. “식구를 잃지 않은 가족은 하나도 없 었다. 이는 물론 슬픔이자 재앙, 비극이다. 하지만 그렇게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적군 을 증오하지 않았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솔직히 말해 나는 아직까지도 그 점이 완전 히 이해되지 않는다. 부드럽고 온화한 분이 셨던 어머니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어떻 게 그 군인들을 미워할 수 있겠니? 그들도 평범한 사람이고 똑같이 전쟁에서 죽어갔 는데….’”   “나는 어릴 적부터 이 말을 기억하고 있 다.” 푸틴 대통령은 이렇게 칼럼을 끝맺었다. 러시아 피오네르=2008년 발행되기 시작했으며, 러시아 지도자들과 관계 가 돈독하다고 알려진 ‘코메르산트’ 지의 평론가 안드레이 콜레스니코프가 편집 장을 맡고 있다.

빗발치는 포화도 사랑은 못말려  전쟁 통서 혼인신고 마치고 아들 낳아 마리야 페도리시나

1941~45년 전쟁은 소련에서 남성 1950만 명, 여성 600만 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남 녀의 균형이 무너지고 전쟁의 파괴적 영향 때문에 결혼도 줄고 출산율도 뚝 떨어졌다. 하지만 그 끔찍한 시절에도 사랑은 멈추지 않았다.   “1941년 6월 22일 고등학교를 졸업했어 요. 그때 다 그러듯이 우리는 모스크바 시내 를 밤새 돌아다녔지요. 88세로 사망한 모 스크바 시민 라리사 주보바가 회상록에 남 긴 그때 모스크바는 평화로웠다.

88세로 세상 떠난 라리사 주보바 2차대전 중 남편 만나 70년 해로 우리는 평범한 행복 원했을 뿐

1967년 영화 ‘조샤’의 한 장면. 이 전쟁에서 해방된 폴란드의 시골 마을에서 소녀 조샤가 러시아 군인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리아 노보스티]

그러나 평화는 그날 밤 끝났다. 라리사는 아침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 버스 정류장에 서 전쟁이 시작됐다는 말을 들었다.   1941년 6월 23일 23~36세 남성에게 동원 령이 내려졌다. 두 달 뒤 8월에는 18~51세 남 성이 소집됐다. 소집 연령은 곧 17세까지 내 려갔다. 남성들은 군에 자원했고 거기서 국 민 의용군이 조직됐다. 전국의 여성과 아동, 노인들을 소개하는 작업이 개시됐다.   정확하게 한 달 뒤 모스크바에 폭격이 시작됐다. 라리사는 어머니와 함께 타슈켄 트로 소개됐고 모스크바는 폐쇄됐다. 라리 사는 연구소 일자리를 얻었다. 그렇게 두 해를 살다 1943년 그녀와 어머니는 모스크 바로 돌아가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모 스크바에서는 현관 경비가 그들을 맞았다. 라리사는 공장에 나가 일하기 시작했다. 먼 친척이 라리사에게 부모 잃은 아이를 돌봐 달라고 부탁했다. 운명은 그렇게 되나 보 다. 라리사는 그 아이가 사는 공동주택에 서 사랑을 만났다.   “어느 날 부엌에 나갔다가(공동주택은 대 개 아파트인데 층마다 부엌이 하나 있다) 여 기서 미래의 남편 눈에 들었던 거예요. 남편 도 이 공동주택에서 어머니, 누이와 함께 방 두 개에서 살고 있었거든요. 그이는 나를 쳐 다 보더니 곧바로 이러는 거예요. ‘지금 쿠 이비셰프로 떠나지만 돌아온다. 그때 결혼 하자’.”

항공기 공장 설계사 빅토르 주보프는 약 속을 지켰다. 1944년 4월 18일 두 사람은 공 식 부부로 등록했다. “전쟁 중이어서 신고서 를 미리 낼 필요도 없었기 때문에 그냥 가서 등록했어요. 혼인 등록소는 지저분한 지하실 에 있었는데, 증명서 종이도 엉망으로 나빴 어요. 그래서 1년 뒤엔 바꿔야 했던 기억이 나 요. 하지만 그건 사소한 일이에요. 중요한 건 우리가 행복했다는 사실이었어요.”   1941년 소련 인구는 1억9540만 명이었 다. 러시아연방 통계청에 따르면 전쟁이 일 어나지 않았을 경우 1946년 소련 인구는 2 억990만 명이었다. 하지만 역사에서 가정 은 무의미하다. 1946년까지 소련 인구는 1 억7050만 명으로 줄었다. 2550만 명이 생 명을 잃은 것이다. 노동 가능한 연령대의 남자들이 최대 피해자였는데 남성 사망자 가 1950만 명이다.   “성비 불균형이 너무 심해 전쟁 초기에 사 람들은 가정을 꾸릴 생각조차 못했다. 게다 가 끔찍한 폭격과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 소 개, 기근 속에서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심리학자 옐레 나 갈리츠카야는 말한다.   모스크바 혼인 등록소 관리국 자료에 따 르면 1941년 모스크바의 혼인 등록은 약 4 만4000건이었지만 전쟁 1년 뒤인 42년 등록 건수는 1만2500건으로 급락한다. 그러다 43 년 1만7500건, 44년 3만3000건이 됐다. 전후

첫 해인 45년 혼인 건수는 8만5000건으로 치솟았다.   “이런 변화를 설명하는 게 어렵지는 않 다. 전쟁 초기에 사람들은 전쟁이 오래가지 않길 바라면서 견뎠지만 1~2년 뒤에는 전쟁 이 빨리 끝날 것 같지 않으니 어떻게든 살아 야 한다는 생각으로 바뀐 것이다. 인간은 고 통 속에서 살 수만은 없으며 그래서 심지어 전쟁 중이라도 사랑에 빠지고 싶어 한다”고 갈리츠카야는 말했다.   그 고통스러운 굶주림과 어려움에도 불구 하고 1945년 1월 라리사와 주보프 부부 사이 에 아들이 태어났다. 5월에는 전쟁도 끝났다.   “우린 아이를 굉장히 갖고 싶어 했어요. 무서웠지만 전쟁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아기 갖는 걸 미루고 싶지 않았던 거예요. 우리는 젊었고 사랑에 빠져 있었죠. 요즘 젊은이들 은 우리 세대가 어떻게 그런 난리 통에 아기 낳을 생각을 다 했을까 이해하지 못하겠지 만 당시 그건 자연스러운 생각이었어요. 우 리는 그저 평범한 인간적 행복을 간절히 원 했을 뿐이예요.”   전쟁 1년 전 모스크바의 신생아는 11만 명 이었다가 전쟁이 절정에 달했을 때 신생아 수는 70% 이상 감소했다. 물론 1946년 신생 아 수는 급증했다. 남자들이 전쟁에서 돌아 오고 평화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해 태어 난 10만2000명의 신생아는 삶이 정상을 찾 아간다는 것을 보여준다.

러시아중국의 지중해 합동 군사훈련 해상 협력-2015에서 긴급 전술회의를 하고 있는 양국 해군 지휘부.

안드레이 구빈 (극동국립대학 국제관계학 교수)

이번 군사훈련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 싼 러시아와 서방의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 서 시행됐다. 공식적으로 이번 훈련은 제3 자를 겨냥한 것이 아니었다. 핵심 목적은 전 세계 해양의 안정과 새로운 도전 및 위 협에 대응할 목적으로 양국 해군의 협력을 점검하는 데 있었다.   서방 분석가들은 우크라이나 상황과 더 불어 미국 및 미국의 유럽 동맹국들과의 관 계가 상당히 악화된 2014년부터 러시아가 훈련과 전투 준비태세 점검을 더 빈번하게 시행하기 시작한 점을 주목한다. 러시아 측 은 “국경 코 앞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나 토)의 활동이 크게 늘었기 때문에 국익을 수 호할 필요가 있다”고 밝혀 왔다. 그러므로 합동 군사훈련은 러시아가 영토 밖에서 자 신의 이익을 수호할 수 있고, 동맹국의 지원 도 받을 수 있음을 서방에 드러내놓고 과시 하는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 언론이 군사훈련에 특별 히 주목하지 않은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이번 훈련이 두 우방국의 통상적인 활 동이라는 인상을 심어준다. 역내 국가들도 비교적 잠잠했다. 러중 군사훈련에 대해 격 렬히 반대하고 나선 국가는 없었다. 예를 들 면 터키(나토 회원국임에도 불구하고)나 시 리아 같은 일부 국가에는 지중해 해역 내 비 서방 세력의 존재가 세력 균형에 꽤 도움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러 국경 해상서 나토 활동 급증 미일, 남중국해서 중국 견제 아태지역 바다 화약고 변신 우려 푸틴시진핑 양국 오가며 회동 해양 주권 찾기 위해 전략적 동맹 8월엔 동해서 2차 합동 훈련키로

러시아중국의 지중해 합동 군사훈련 해상 협 력-2015에 참가한 러시아의 미사일 공기부양정 사뭄.

[리아 노보스티]

실제로 중국은 자국의 방위력 발전에 지 속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 석 취임과 함께 특히 동중국해와 남중국해 분쟁 지역들에서의 해상 장악력과 병참선 수호가 점점 더 강조되고 있다. 물론 과거 중국 군함들도 지중해에서 작전을 펼친 바 있다. 가장 중요한 작전으로는 2011년 리비 아에서 자국 근로자 3만 명을 소개한 작전 을 들 수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중국이 소 말리아 부근 해상에서 해적 퇴치 임무를 수 행한 함정들을 흑해와 지중해 지역으로 파 견했다는 사실이다. 이번에 파견된 프리깃 함 두 척과 보급선 한 척은 예멘에서 중국인 들을 소개하는 데 동원됐다. 중국 국방부 대 변인은 러시아와 중국 함정들이 지중해 훈 련 과정에서 항해 안보 강화와 공해상 보급, 상선 호위 임무를 점검했다고 말했다. 중국 분석가들은 지중해에서 러시아와 합동 군 사훈련을 한 경험이 중국의 대양함대 발전 에 매우 유익하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이러 한 협력은 군사 분야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 도 대폭 강화해 준다.   횟수도 너무 많지 않고 비밀도 아닌 없 는 군사훈련은 ‘유럽이 나토만의 세력권이 아니다’라고 서방에 그냥 메시지를 전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해 보인다. 또 다른 강 력한 메시지는 시 주석이 대조국전쟁(제2 차 세계대전) 승리 70주년 기념 행사에 참 석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화 기애애한 대화를 나눴다는 점이었다. 그런 가 하면 푸틴 대통령도 오는 9월 3일 베이

[리아 노보스티]

징에서 열리는 2차대전 승리 기념 군사행 진에 참석할 예정이다. 여기에도 꽤 상징적 인 의미가 담겨 있다. 위대한 양국 국민이 승리와 쓰라린 역사적 경험을 서로 공유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사실상 ‘억지로 부풀려 놓은’ 러시아와의 대립때문에 세계 의 지정학적 상황에는 돌이킬 수 없는 변화 가 발생했다. 러시아 전문가들은 미국이 이 제 누구나 인정하는 세계의 지도국이자 절 대적 권위자가 더 이상 아니라고 본다. 훨 씬 더 매력적인 다른 협력 방향이 등장했 기 때문이다. 이들은 브릭스(BRICS)와 아 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활동 경험만 아니라 유라시아 내 협력 발전을 위한 대규 모 다자 이니셔티브가 이런 가능성을 보여 준다고 지적한다.   한편 모든 국가가 러중 밀착을 환영하 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최근 아베 일본 총리의 방미 과정에서 미일 군사정치 동 맹 강화가 발표됐다. 러시아와 중국은 이 러한 행보에 탐탁지 않은 평가를 내놓았 다. 일본이 많은 경제통상투자 협력 계획 에서 이탈하고 정치적 미숙성하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반응 은 훨씬 더 신중해 보인다. 한 국은 대러 제재에 적극 참여하지 않았을뿐더러 러시 아와의 협력 규모도 확대하고 ‘유라시아’ 공동 프로젝트들에도 참여할 계획이기 때 문이다. 이와 함께 한국은 러시아만 아니 라 중국과도 심각한 정치적, 경제적 이견

이 없다. 더욱이 러시아와 중국은 한반도 평화통일 구상에 대해서도 확실한 지지 를 보내고 있다. 통상 중국의 경쟁자로 간 주돼 왔던 인도도 러중 협력 심화에 상당 히 합리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모디 인도 총리의 새로운 대중국 정책은 견제와 경 쟁보다는 오히려 포괄적 협력을 지향하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은 군사 분야 협력을 더 강화할 계획이다. 러중 해군의 2차 군사 훈련은 오는 8월 동해에서 시행된다. 이 밖에 모스크바 근교에서 열리는 ‘2015 무 기 박람회’ ‘전차 바이애슬론 대회’ ‘공 중사격대회’에는 중국 대표단도 참가한 다. 탄두를 포함해 공중 목표물 요격 분야 에서 ‘상대가 없는’ 러시아산 최신 지대 공미사일시스템 ‘S-400’을 중국이 구매 할 가능성도 전문가 그룹에서 폭넓게 거 론되고 있다. 또 과거 중국에 제공되지 않 았던 다른 첨단 무기 공급 협상도 진행되 고 있다. 이런 협력은 위협이 아님에도 오 히려 미국과 그 동맹국은 위협이라고 상 상한다. 이들은 모종의 외부 적이 존재한 다고 말하며 자신의 팽창주의적 ‘인도주 의 개입’ 정책과 관행을 곧잘 정당화한다. 러시아도 중국도 미국과 그 동맹국들을 대한 공격할 계획이 없다. 러시아와 중국 이 방위력을 강화하는 핵심 목적 가운데 하나는 자국 국경 부근에서 노골적 도발 에 가까울 정도로 벌이는 부적절한 군사 활동을 방지하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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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

2015년 5월 29일 금요일

푸틴 칼럼(러시아 피오네르 발췌)-우리 가족이 겪은 제2차 세계대전

┃ 정치

section sponsored by Rossiyskaya Gazeta, Rus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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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중국 도원결의 뜻은

시체 더미서 목숨 건진 푸틴 어머니 독일군도 사람인데 미워할 수 있겠니

정상회담 이어 연합훈련  서방 압박에 국익 수호 동맹 시위 러시아와 중국의 대규모 해상 군사훈련 ‘해상 협력-2015’가 지난 5월 21일 지중 해에서 막을 내렸다. 이번 훈련에는 러중 해군 군함 9척이 참가했다. 러중 해군 대

알렉세이 티모페이체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제2차 세 계대전 당시 부모님이 겪었던 일, 동생의 운 명, 가족의 삶을 있게 한 놀라운 우연과 독 일군을 미워할 줄 모르고 그러고 싶지도 않 았던 부모님의 이야기를 담은 칼럼을 썼다. 칼럼은 2015년 5월 ‘러시아 피오네르’ 55호 에 실렸다. 이를 발췌해 소개한다.   푸틴 대통령의 부친 블라디미르 스피리 도노비치 푸틴은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 서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 는 군수공장에서 일하게 됐다. 군수공장 근 로자에겐 전방에 나갈 의무가 없었지만 부 친은 스스로 입당 신청서를 쓰고 군에 지원 해 내무인민위원회 공작부대에 배치되었다.   작전 중 누군가의 배신으로 부대원 28명 중 24명이 독일군에 희생되는 일이 벌어졌 지만 그는 매복을 뚫고 탈출했다.   푸틴 대통령은 칼럼에서 이렇게 회상했 다. “아버지는 몇 시간 동안 연못 속에 숨어 갈대 줄기로 호흡했다. 겨우 몇 발짝 떨어진 곳에서 독일군이 지나가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그 후 그는 네바 강변에 있는 작은 전투기 지 넵스키 퍄타촉에 배치되었다. 소련이 수만 병사의 목숨을 희생하면서도 끈질기 게 지켜온 곳이었다. 이곳에서 그는 중상을 입는데, 그의 아파트 이웃이 총탄이 쏟아지 는 가운데 아버지를 얼어붙은 네바 강을 건 너 반대편 기슭으로 끌고 가 병원에 데려다 주었다.   푸틴 대통령은 칼럼에 이렇게 썼다. “그 분은 병원에서 기다렸다가 아버지의 수술이 끝난 걸 확인하고는 ‘됐어, 이제 자넨 살 거 야. 그럼 난 죽으러 가겠네’라고 했다. 나는

전쟁 자원 아버지, 전투 중 중상 이웃사촌의 도움으로 목숨 건져 위생병이 가망 없다던 어머니 아버지 지극 정성 간호로 살아나

푸틴 대통령의 아버지 블라디미르 스피리도노비치 푸틴.

[kremlin.ru]

아버지께 ‘그래서 그분은 정말 돌아가셨나 요?’라고 물었다. 두 분은 연락이 끊겼고, 아 버지는 그분이 세상을 떠났을 거라고 생각 했다. 그런데 1960년대 초 아버지가 갑자기 집에 들어오더니 의자에 앉아 눈물을 흘리 시는 것이 아닌가. 생명의 은인을 만나서였 다. 우연히 레닌그라드에 있는 가게에 식료 품을 사러 들어갔다가 조우하게 된 것이다. 두 분이 어떻게 같은 시간에 같은 가게에 갈 수 있었을까. 수백만 분의 일이나 될 법한 확률이다….”   푸틴 대통령의 아버지는 입원해 있는 동 안 자기 몫의 배급 식량을 어머니에게 주었 고, 어머니는 그걸 (푸틴의) 어린 동생에게 줬다. 의료진은 환자가 굶주려 실신하자 무 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고 어머니의 면회를 금지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의 동생이 굶 어 죽은 것은 아니다. 레닌그라드 공방전 때 디프테리아에 걸린 것이 원인이었다. 부모님 은 동생이 어디에 묻혔는지도 몰랐다가 나 중에 피스카룝스코예 기념묘지에 매장되었 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기념 묘지에는 1941년부터 1944년까지 150만 명가량이 묻 혔다. 방어전에서 전사한 군인들과 굶주림 과 병으로 죽어간 사람들이었다.   푸틴 대통령은 공방전 당시 어머니가 어 떻게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는지도 회상했 다. 부친이 병원에서 돌아와 아파트 현관으 로 다가서는데 위생병들이 시체들을 내 가 고 있었다. 그런데 그 시체들 사이에서 모친 의 모습을 알아본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이 렇게 썼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숨이 붙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위생병들에게 ‘아 직 살아 있잖아요!’”라고 소리쳤다. 위생병 들은 아버지에게 ‘길가까지만 나가도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겁니다’라고 했다. 아 버지는 목발을 휘두르며 ‘도로 집에 데려다

표들의 견해에 따르면 이 군사훈련은 먼 해상에서 발생하는 위협에 대한 공동 대 응 준비태세를 보여주는 것이다. 훈련 본 부는 세바스토폴 소속의 러시아 미사일 순양함 ‘모스크바호’에 설치된 것으로 알 려졌다. 러시아는 러시아연방에 자진 편입 된 세바스토폴을 흑해와 지중해를 담당 하는 군사기지로 사용할 계획임을 밝혔다.

어머니외활머니와 같이 있는 어릴적 푸틴 대통령.

[kremlin.ru, 리아 노보스티]

놓으라’고 했다. 위생병들은 ‘당신 말대로 하겠지만, 앞으로 2~4주 동안 여기 오지 않 을 거란 걸 알아 두세요. 당신 손으로 시체 를 처리해야 할 겁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정성어린 간호로 어머니는 건강을 되찾으셨다. 어머니는 1999년까지 사셨고 아버지는 1998년 말에 돌아가셨다.”   푸틴 대통령의 부친은 여섯 형제인데 그 중 다섯이 전쟁으로 목숨을 잃었다고 밝혔 다. 외가 쪽에도 전쟁에서 희생된 친척들이 있다. “식구를 잃지 않은 가족은 하나도 없 었다. 이는 물론 슬픔이자 재앙, 비극이다. 하지만 그렇게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적군 을 증오하지 않았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솔직히 말해 나는 아직까지도 그 점이 완전 히 이해되지 않는다. 부드럽고 온화한 분이 셨던 어머니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어떻 게 그 군인들을 미워할 수 있겠니? 그들도 평범한 사람이고 똑같이 전쟁에서 죽어갔 는데….’”   “나는 어릴 적부터 이 말을 기억하고 있 다.” 푸틴 대통령은 이렇게 칼럼을 끝맺었다. 러시아 피오네르=2008년 발행되기 시작했으며, 러시아 지도자들과 관계 가 돈독하다고 알려진 ‘코메르산트’ 지의 평론가 안드레이 콜레스니코프가 편집 장을 맡고 있다.

빗발치는 포화도 사랑은 못말려  전쟁 통서 혼인신고 마치고 아들 낳아 마리야 페도리시나

1941~45년 전쟁은 소련에서 남성 1950만 명, 여성 600만 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남 녀의 균형이 무너지고 전쟁의 파괴적 영향 때문에 결혼도 줄고 출산율도 뚝 떨어졌다. 하지만 그 끔찍한 시절에도 사랑은 멈추지 않았다.   “1941년 6월 22일 고등학교를 졸업했어 요. 그때 다 그러듯이 우리는 모스크바 시내 를 밤새 돌아다녔지요. 88세로 사망한 모 스크바 시민 라리사 주보바가 회상록에 남 긴 그때 모스크바는 평화로웠다.

88세로 세상 떠난 라리사 주보바 2차대전 중 남편 만나 70년 해로 우리는 평범한 행복 원했을 뿐

1967년 영화 ‘조샤’의 한 장면. 이 전쟁에서 해방된 폴란드의 시골 마을에서 소녀 조샤가 러시아 군인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리아 노보스티]

그러나 평화는 그날 밤 끝났다. 라리사는 아침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 버스 정류장에 서 전쟁이 시작됐다는 말을 들었다.   1941년 6월 23일 23~36세 남성에게 동원 령이 내려졌다. 두 달 뒤 8월에는 18~51세 남 성이 소집됐다. 소집 연령은 곧 17세까지 내 려갔다. 남성들은 군에 자원했고 거기서 국 민 의용군이 조직됐다. 전국의 여성과 아동, 노인들을 소개하는 작업이 개시됐다.   정확하게 한 달 뒤 모스크바에 폭격이 시작됐다. 라리사는 어머니와 함께 타슈켄 트로 소개됐고 모스크바는 폐쇄됐다. 라리 사는 연구소 일자리를 얻었다. 그렇게 두 해를 살다 1943년 그녀와 어머니는 모스크 바로 돌아가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모 스크바에서는 현관 경비가 그들을 맞았다. 라리사는 공장에 나가 일하기 시작했다. 먼 친척이 라리사에게 부모 잃은 아이를 돌봐 달라고 부탁했다. 운명은 그렇게 되나 보 다. 라리사는 그 아이가 사는 공동주택에 서 사랑을 만났다.   “어느 날 부엌에 나갔다가(공동주택은 대 개 아파트인데 층마다 부엌이 하나 있다) 여 기서 미래의 남편 눈에 들었던 거예요. 남편 도 이 공동주택에서 어머니, 누이와 함께 방 두 개에서 살고 있었거든요. 그이는 나를 쳐 다 보더니 곧바로 이러는 거예요. ‘지금 쿠 이비셰프로 떠나지만 돌아온다. 그때 결혼 하자’.”

항공기 공장 설계사 빅토르 주보프는 약 속을 지켰다. 1944년 4월 18일 두 사람은 공 식 부부로 등록했다. “전쟁 중이어서 신고서 를 미리 낼 필요도 없었기 때문에 그냥 가서 등록했어요. 혼인 등록소는 지저분한 지하실 에 있었는데, 증명서 종이도 엉망으로 나빴 어요. 그래서 1년 뒤엔 바꿔야 했던 기억이 나 요. 하지만 그건 사소한 일이에요. 중요한 건 우리가 행복했다는 사실이었어요.”   1941년 소련 인구는 1억9540만 명이었 다. 러시아연방 통계청에 따르면 전쟁이 일 어나지 않았을 경우 1946년 소련 인구는 2 억990만 명이었다. 하지만 역사에서 가정 은 무의미하다. 1946년까지 소련 인구는 1 억7050만 명으로 줄었다. 2550만 명이 생 명을 잃은 것이다. 노동 가능한 연령대의 남자들이 최대 피해자였는데 남성 사망자 가 1950만 명이다.   “성비 불균형이 너무 심해 전쟁 초기에 사 람들은 가정을 꾸릴 생각조차 못했다. 게다 가 끔찍한 폭격과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 소 개, 기근 속에서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심리학자 옐레 나 갈리츠카야는 말한다.   모스크바 혼인 등록소 관리국 자료에 따 르면 1941년 모스크바의 혼인 등록은 약 4 만4000건이었지만 전쟁 1년 뒤인 42년 등록 건수는 1만2500건으로 급락한다. 그러다 43 년 1만7500건, 44년 3만3000건이 됐다. 전후

첫 해인 45년 혼인 건수는 8만5000건으로 치솟았다.   “이런 변화를 설명하는 게 어렵지는 않 다. 전쟁 초기에 사람들은 전쟁이 오래가지 않길 바라면서 견뎠지만 1~2년 뒤에는 전쟁 이 빨리 끝날 것 같지 않으니 어떻게든 살아 야 한다는 생각으로 바뀐 것이다. 인간은 고 통 속에서 살 수만은 없으며 그래서 심지어 전쟁 중이라도 사랑에 빠지고 싶어 한다”고 갈리츠카야는 말했다.   그 고통스러운 굶주림과 어려움에도 불구 하고 1945년 1월 라리사와 주보프 부부 사이 에 아들이 태어났다. 5월에는 전쟁도 끝났다.   “우린 아이를 굉장히 갖고 싶어 했어요. 무서웠지만 전쟁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아기 갖는 걸 미루고 싶지 않았던 거예요. 우리는 젊었고 사랑에 빠져 있었죠. 요즘 젊은이들 은 우리 세대가 어떻게 그런 난리 통에 아기 낳을 생각을 다 했을까 이해하지 못하겠지 만 당시 그건 자연스러운 생각이었어요. 우 리는 그저 평범한 인간적 행복을 간절히 원 했을 뿐이예요.”   전쟁 1년 전 모스크바의 신생아는 11만 명 이었다가 전쟁이 절정에 달했을 때 신생아 수는 70% 이상 감소했다. 물론 1946년 신생 아 수는 급증했다. 남자들이 전쟁에서 돌아 오고 평화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해 태어 난 10만2000명의 신생아는 삶이 정상을 찾 아간다는 것을 보여준다.

러시아중국의 지중해 합동 군사훈련 해상 협력-2015에서 긴급 전술회의를 하고 있는 양국 해군 지휘부.

안드레이 구빈 (극동국립대학 국제관계학 교수)

이번 군사훈련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 싼 러시아와 서방의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 서 시행됐다. 공식적으로 이번 훈련은 제3 자를 겨냥한 것이 아니었다. 핵심 목적은 전 세계 해양의 안정과 새로운 도전 및 위 협에 대응할 목적으로 양국 해군의 협력을 점검하는 데 있었다.   서방 분석가들은 우크라이나 상황과 더 불어 미국 및 미국의 유럽 동맹국들과의 관 계가 상당히 악화된 2014년부터 러시아가 훈련과 전투 준비태세 점검을 더 빈번하게 시행하기 시작한 점을 주목한다. 러시아 측 은 “국경 코 앞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나 토)의 활동이 크게 늘었기 때문에 국익을 수 호할 필요가 있다”고 밝혀 왔다. 그러므로 합동 군사훈련은 러시아가 영토 밖에서 자 신의 이익을 수호할 수 있고, 동맹국의 지원 도 받을 수 있음을 서방에 드러내놓고 과시 하는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 언론이 군사훈련에 특별 히 주목하지 않은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이번 훈련이 두 우방국의 통상적인 활 동이라는 인상을 심어준다. 역내 국가들도 비교적 잠잠했다. 러중 군사훈련에 대해 격 렬히 반대하고 나선 국가는 없었다. 예를 들 면 터키(나토 회원국임에도 불구하고)나 시 리아 같은 일부 국가에는 지중해 해역 내 비 서방 세력의 존재가 세력 균형에 꽤 도움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러 국경 해상서 나토 활동 급증 미일, 남중국해서 중국 견제 아태지역 바다 화약고 변신 우려 푸틴시진핑 양국 오가며 회동 해양 주권 찾기 위해 전략적 동맹 8월엔 동해서 2차 합동 훈련키로

러시아중국의 지중해 합동 군사훈련 해상 협 력-2015에 참가한 러시아의 미사일 공기부양정 사뭄.

[리아 노보스티]

실제로 중국은 자국의 방위력 발전에 지 속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 석 취임과 함께 특히 동중국해와 남중국해 분쟁 지역들에서의 해상 장악력과 병참선 수호가 점점 더 강조되고 있다. 물론 과거 중국 군함들도 지중해에서 작전을 펼친 바 있다. 가장 중요한 작전으로는 2011년 리비 아에서 자국 근로자 3만 명을 소개한 작전 을 들 수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중국이 소 말리아 부근 해상에서 해적 퇴치 임무를 수 행한 함정들을 흑해와 지중해 지역으로 파 견했다는 사실이다. 이번에 파견된 프리깃 함 두 척과 보급선 한 척은 예멘에서 중국인 들을 소개하는 데 동원됐다. 중국 국방부 대 변인은 러시아와 중국 함정들이 지중해 훈 련 과정에서 항해 안보 강화와 공해상 보급, 상선 호위 임무를 점검했다고 말했다. 중국 분석가들은 지중해에서 러시아와 합동 군 사훈련을 한 경험이 중국의 대양함대 발전 에 매우 유익하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이러 한 협력은 군사 분야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 도 대폭 강화해 준다.   횟수도 너무 많지 않고 비밀도 아닌 없 는 군사훈련은 ‘유럽이 나토만의 세력권이 아니다’라고 서방에 그냥 메시지를 전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해 보인다. 또 다른 강 력한 메시지는 시 주석이 대조국전쟁(제2 차 세계대전) 승리 70주년 기념 행사에 참 석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화 기애애한 대화를 나눴다는 점이었다. 그런 가 하면 푸틴 대통령도 오는 9월 3일 베이

[리아 노보스티]

징에서 열리는 2차대전 승리 기념 군사행 진에 참석할 예정이다. 여기에도 꽤 상징적 인 의미가 담겨 있다. 위대한 양국 국민이 승리와 쓰라린 역사적 경험을 서로 공유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사실상 ‘억지로 부풀려 놓은’ 러시아와의 대립때문에 세계 의 지정학적 상황에는 돌이킬 수 없는 변화 가 발생했다. 러시아 전문가들은 미국이 이 제 누구나 인정하는 세계의 지도국이자 절 대적 권위자가 더 이상 아니라고 본다. 훨 씬 더 매력적인 다른 협력 방향이 등장했 기 때문이다. 이들은 브릭스(BRICS)와 아 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활동 경험만 아니라 유라시아 내 협력 발전을 위한 대규 모 다자 이니셔티브가 이런 가능성을 보여 준다고 지적한다.   한편 모든 국가가 러중 밀착을 환영하 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최근 아베 일본 총리의 방미 과정에서 미일 군사정치 동 맹 강화가 발표됐다. 러시아와 중국은 이 러한 행보에 탐탁지 않은 평가를 내놓았 다. 일본이 많은 경제통상투자 협력 계획 에서 이탈하고 정치적 미숙성하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반응 은 훨씬 더 신중해 보인다. 한 국은 대러 제재에 적극 참여하지 않았을뿐더러 러시 아와의 협력 규모도 확대하고 ‘유라시아’ 공동 프로젝트들에도 참여할 계획이기 때 문이다. 이와 함께 한국은 러시아만 아니 라 중국과도 심각한 정치적, 경제적 이견

이 없다. 더욱이 러시아와 중국은 한반도 평화통일 구상에 대해서도 확실한 지지 를 보내고 있다. 통상 중국의 경쟁자로 간 주돼 왔던 인도도 러중 협력 심화에 상당 히 합리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모디 인도 총리의 새로운 대중국 정책은 견제와 경 쟁보다는 오히려 포괄적 협력을 지향하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은 군사 분야 협력을 더 강화할 계획이다. 러중 해군의 2차 군사 훈련은 오는 8월 동해에서 시행된다. 이 밖에 모스크바 근교에서 열리는 ‘2015 무 기 박람회’ ‘전차 바이애슬론 대회’ ‘공 중사격대회’에는 중국 대표단도 참가한 다. 탄두를 포함해 공중 목표물 요격 분야 에서 ‘상대가 없는’ 러시아산 최신 지대 공미사일시스템 ‘S-400’을 중국이 구매 할 가능성도 전문가 그룹에서 폭넓게 거 론되고 있다. 또 과거 중국에 제공되지 않 았던 다른 첨단 무기 공급 협상도 진행되 고 있다. 이런 협력은 위협이 아님에도 오 히려 미국과 그 동맹국은 위협이라고 상 상한다. 이들은 모종의 외부 적이 존재한 다고 말하며 자신의 팽창주의적 ‘인도주 의 개입’ 정책과 관행을 곧잘 정당화한다. 러시아도 중국도 미국과 그 동맹국들을 대한 공격할 계획이 없다. 러시아와 중국 이 방위력을 강화하는 핵심 목적 가운데 하나는 자국 국경 부근에서 노골적 도발 에 가까울 정도로 벌이는 부적절한 군사 활동을 방지하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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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2015년 5월 29일 금요일

개통 80주년 맞는 지하궁전 모스크바 지하철

┃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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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인의 유별난 가라오케 사랑

테이블 돌아가며 한 곡씩 릴레이  사랑 고백도 이곳에서 한대요 옛 소련 붕괴 직후 등장해 인기 젊은이노인 함께 부르며 즐겨 러시아인의 대표적 친목장소로 가라오케 세계선수권대회 열기도

모스크바 지하철의 혁명광장역 안은 소련의 명예의 전당 같은 곳이다. 기둥에는 조각가 마트베이 미니제르가 조각한 사회주의 소련 일꾼의 동상이 새겨져 있다. 오른쪽 사진은 마야콥스카야역의 현재(위)와 2차 세계대전 때 방공호로 사용된 모습.

[타스, 리아 노보스티]

돔 천장, 조각상 있는 지하 박물관  2차대전 땐 200여 명 출산도 다리야 쿠르듀코바

모스크바 지하철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 운 지하철로 꼽히며 지하 궁전이라고도 불 린다. 지하철 투어도 있고 스포르티브나야 역엔 자체 박물관도 있다. 현재 모스크바 지 하철은 12개 노선에 약 200개 역이 있고 계 속 확대 중이다. 올해엔 7개 역이 새로 개통 한다. 200개 역 중 44개는 문화유산으로 지 정돼 있다. 모든 역사는 1935년 5월 15일 ‘소 콜리니키’ ‘파르크 쿨투리’ 구간의 노선에 서 시작됐다.   도시 지하철 구상은 1875년부터 나왔지만 여러 이유 때문에 실행에 옮겨 지지 못했다. 예를 들면 전차 운영사들의 로비가 치열했다. 그러나 1930년대 초반 엔지니어들이 여전히 ‘자연 조건 때문에 실행에 옮길 수 없다’고 완강히 주장하는 가운데 지하철 구상은 다시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핵심 지하철 엔지니어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알렉세이 두시킨의 손 녀로 건축 사학자이자 교수인 나탈리야 두시 키나는 “자문을 위해 모스크바로 초청된 런 던과 파리, 베를린 출신 엔지니어들은 ‘모스 크바의 아주 복잡한 토질 때문에 지하철을 건설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러시아 엔지니어와 수문지질학자, 건축학자들 덕분 에 광장과 거리들로 이뤄진 거대한 지하 공간 이 창조됐다”고 말했다.   처음에 지하철 역은 두 종류였다. 지반을 깊이 판 파일론 형태의 역(이반 포민이 설계 한 크라스니에 보로타 역이 고전적인 사례 다)과 원주를 세울 수 있는 지반이 얕은 형 태의 역이 바로 그것이다.   바로 이점에서 알렉세이 두시킨은 혁명 적 건축가였다고 할 수 있다. 다른 많은 역 외에도 그는 지반이 깊으면서도 원주를 세 울 수 있었던 ‘마야콥스카야 역’을 세계 최 초로 건설했기 때문이다. 나탈리야 두시키 나는 “모스크바 지하철 개통 75주년에 맞춰 발표된 ‘두시킨이 건설한 최고의 지하철역 순위’에서 크로포트킨스야와 마야콥스카 야, 혁명광장 역이 최상위에 포함됐다”고 말 했다. 그녀에 따르면 모스크바 지하철 건설 학파의 창시자 가운데 한 사람인 두시킨은 지하 공사 원칙을 확립했다. 그런 원리 가운 데 하나는 명확한 지하철 역사 건설 기준과 지하 공간에서 빛의 중요성이었다. 크로포 트킨스카야 역에는 공간 전체를 은은하게 감싸면서 공중 궁전의 효과를 창출하게 빛 을 밝음의 숨은 원천으로 활용했다. 크로포

1912년 건설 계획, 1차대전으로 중단 스탈린 시대 재추진, 1935년 개통 현재 12호선, 200여 개 역으로 늘어 색유리 그림, 대리석 바닥 등 신기술 접목한 예술품들 즐비 44개 역은 문화유산으로 지정 전시 대피소 활용, 조산소도 설치

트킨스야 역에서 두시킨은 자신이 ‘잠망경’ 이라고 부르는 둥근 구멍을 역사 천창에 뚫 고 여기에 모자이크화를 그리게 했다. 두시킨은 지하 공간에 신기술을 접목하고 종합 예술을 사용한 선구자이기도 했다. 그 는 지하철 역에 조각(혁명광장 역)과 색유 리 모자이크화(마야콥스카야 역)를 처음 도 입했고 마감 재료(예를 들면, 마야콥스카야 역의 광택 철강)도 처음 사용했다. 전후에는 노보슬로봇스카야 역에 알루미늄을 사용했 고 그 역 지하에 처음으로 스테인드 글라스 를 사용했다. 1943년 마지막으로 그는 아브 토자봇카야 역에 처음으로 대리석 바닥을 깔았다. 바닥에 단단한 자재를 써야 한다고 강조한 것인데 그 전까지는 아스팔트나 세 라믹 타일을 썼다.   주요 ‘전시물들’=모스크바 지하철이 지 하 궁전과 비교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 다. 소련 지하철 역이 정권의 선전 구호로 장 식돼 있기는 해도 그 가운데는 앙상블을 이 루고 있는 곳도 많다. 그 점에서 모스크비치 들이 사랑하는 여러 지하철 역 가운데 마야 콥스카야 역을 빼놓을 수 없다. 이 역의 모 자이크화는 레닌그라드(현재의 상트페테르 부르크)의 한 공방 출신으로 소련의 주요 화 가 가운데 한 명인 알렉산드르 제이네카의 스케치를 바탕으로 혁명 전부터 보관돼 있 던 색유리를 사용해 제작됐다. “제이네카는 역 천장에 소련 최초의 어휘를 창조해 거대 한 공장들과 콤바인을 운전하는 아가씨들, 소년단원, 운동선수들, 휴양지, 행복한 어머 니상, 꽃피는 정원, 낙하산, 비행기 등 신생

활을 대표하는 인물과 주제들을 소개했다” 고 예술사가이자 국립예술사연구소 직원인 타티야나 윳케비치가 말했다. 1939년에는 마야콥스카야 역의 모형이 뉴욕 국제박람 회에 출품됐고 이를 위해 비행기들과 밤하 늘에 반짝이는 크렘린의 별로 장식된 천장 을 특별히 하나 더 제작했다. 이 프로젝트는 대상을 수상했다.   머리를 들고 위를 보지 않아도 또 다른 각 도에서 지하철 역을 볼 수 있다. 영광의 길을 따라 걷듯이 혁명광장역 플랫폼을 따라 걸 어보면 된다. 마트베이 마니제르가 이끈 조 각가들은 기둥 주변에 소련 시민들을 묘사 한 청동 조각상을 세웠다. 여기에도 부모와 소년단원, 운동선수들이 묘사돼 있다. 적군 (敵軍) 병사와 수병, 대학생, 농민, 심지어는 군견을 데리고 있는 국경수비대원도 있는 데 군견의 코와 발은 사람들이 하도 만져서 황금빛으로 반짝거린다. 모스크바박물관의 투어 가이드 안나 루지아는 “이 군견이 모 스크바 지하철의 주요 미신 가운데 하나와 관련돼 있다”며 “개의 코를 만지면 행운이 따른다고 한다. 또 여기서 가까운 곳에 수탉 을 데리고 있는 양계 처녀상도 있는데 이 조 각상은 만지면 안 된다. 불행을 가져온다는 미신 때문이다. 그래도 사람들이 수탉상을 너무 만져 반짝반짝 빛난다”고 말했다.   전시의 지하철=전시 모스크바 지하철 (1941년 10월 16일 ‘수도 소개령’으로 단 하 루만 폐쇄됐다)은 마치 ‘제2의 수도’처럼 됐 다. 지하철 내부에 폭격 대피소와 함께 심지 어 조산소도 설치됐는데 당시 지하철 내 조 산소에서는 217명의 신생아가 태어났다.   정부는 수도 함락 위험이 사라지자 역을 새로 건설하기 시작했다. 아브토자봇스카 야 역(두시킨이 자신이 건설한 최고의 지하 철 역 중 하나로 꼽은 화려한 원주로 장식 된 역)과 노보쿠즈네츠카야 역(이반 타라노 프와 나데즈다 비코바가 설계한 역) 등 7개 의 역이 전시에 건설됐다. 노보쿠즈네츠카 야 역에서 볼 만한 것으로 제이네카의 스케 치를 바탕으로 후방의 삶과 일을 묘사한 중 앙 홀의 모자이크화만 있는 게 아니다. 에스 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모스크바 지하 철 최초로 조성된 둥근 지붕의 원형 현관을 볼 수 있다(이 현관은 블라디미르 겔프레이 흐와 이고리 로진이 이끄는 건축가들이 건 설했다).   순환선 산책=모스크바 지하철 순환선 은 전후에 건설됐다. 순환선 열차를 타고 여

러 다양한 역을 구경해 볼 만하다.   모스크바 시내 고리키 공원을 연결하는 파르크 쿨드리 역에선 이삭 라비노비치가 대리석에 얕게 돋을새김한 햇살에 그을린 젊은이들의 조각상 앞에서 건강한 삶을 느 낄 수 있다.   바로 다음 역은 소련 공산당 서기장 니키 타 흐루시초프가 러시아-우크라이나 관계 에 헌정한 키옙스카야 역이다. 이 역은 우크 라이나 건축가 예브게니 카토닌의 감독 아 래 건설됐다. 알렉산드르 미진이 이끄는 화 가들이 그린 거대한 모자이크화에는 폴타 바 전투와 우크라이나에 간 푸시킨, 키예프 의 민속축제, 드네프르 수력발전소 개통식 이 묘사돼 있다.   노보슬로봇카야 역에 이르면 만화경 속 처럼 현란한 꽃무늬로 장식된 스테인드 글 라스 유리창과 음악가에서 지리학자까지 다 양한 직업을 묘사한 원형 돋을새김을 볼 수 있다. 이 작품들은 유명 화가 파펠 코린의 스케치에 따라 라트비아 거장들이 그렸다.   안나 루진나는 “노보슬로봇카야 역’은 소 련 역사의 몇 장면과 관련돼 있다고 말한 다. 거기엔 어머니 조국상이 묘사된 ‘전 세 계의 평화’라는 제목의 모자이크화가 있다. 지금 비둘기 한 마리가 보이는 자리엔 원래 스탈린의 초상화가 들어 있었는데 흐루시초 프 시대에 제거됐다. 흐루시초프는 노보슬

로봇카야 역을 둘러보면서 마음에 들어 하 지 않았는데 어머니 조국상이 맨발이었다 는 것이 그 이유였다고 전한다.   순환선의 콤스몰스카야 역은 모스크바 지하철에서 스탈린식 신고전주의를 가장 잘 표현했다고 말할 수 있다. 베니스 자르디니 공원의 러시아 관람관과 레닌 영묘 건축 책 임자 알렉세이 슈세프의 설계로 건설된 콤 스몰스크야 역은 파벨 코린의 모자이크화 로 풍부하게 장식돼 있다. 여기에는 알렉산 드르 넵스키에서 스탈린까지 다양한 시대 에 걸친 장군과 지도자들이 묘사돼 있다. 개 인숭배가 문제된 스탈린은 이후 레닌으로 대체됐다.   사실과 전설들=지하철에는 비밀스러운 얘기도 전하는데 벙커와 이른바 ‘메트로-2’ 가 관련돼 있다. ‘메트로-2’는 정부의 군용 지하철 지선들로 이름은 1990년대 초 주간 지 ‘오고뇨크’의 언론인들이 지었다. 그 중 하나는 브누코보 공항으로 이어졌고 다른 하나는 쿤체보의 스탈린 다차로 이어졌다. 안나 루지나는 “하지만 ‘메트로-2’를 둘러 싼 소문들 외에는 알고 있는 것은 거의 없 다”며 “스탈린은 몇 개의 벙커를 갖고 있었 지만 그에 관해 우리가 아는 것은 거의 없다. 모두 패쇄됐기 때문이다. 이즈마일로보에는 ‘스탈린 벙커’ 박물관으로 개조된 벙커 하 나가 개방돼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에서 가라오케가 아시아 만큼 인기 높지는 않다. 하지만 요즘엔 가라오케를 찾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한국처럼 방이 아닌 탁트인 홀 같은 곳이다.

소피야 라옙스카야

2016년 10월 모스크바에서 제1회 러시아아시아 가라오케 토너먼트 ‘아시아선수권 대회’가 열린다. 지난 10년 동안 러시아에서 가라오케라는 오락은 평범한 취미에서 진지 한 대회로 진화해갔다.   “내게 가라오케 가수들은 제2의 가족이 다.” 지난 2006년 세계 가라오케 선수권대회 에서 백명에 가까운 경쟁자들 사이에서 5위 를 차지한 가라오케의 ‘베테랑’ 미하일 할 데이는 이렇게 고백했다. 그는 지금까지 모 든 행사에 참가하고 있는데 이제는 심사위 원으로 초청받기도 한다. 그는 “무대에서 노 래하게 되면 다른 이들 앞에서 자신을 드러 내야 하는데 사람들과 친해지는 계기가 된 다. 그런 식으로 굳건한 가족 관계가 형성되 고 언제라도 도와주러 올 진정한 친구들이 서로를 알아보게 된다”고 말한다.   2006년 가라오케 세계선수권은 헬싱키와 에스토니아 사이 발트해를 오가는 해상 크 루즈 정기선 ‘갤럭시’호 선상에서 치러졌다. 여객들은 사우나에서 쉬면서 마이크를 잡 을 수 있었고 심지어 마이크를 들고 수영장 에 뛰어들 수도 있었다. 이 행운아들은 28개 국에서 온 참가자들이었다. 유럽(프랑스오 스트리아이탈리아핀란드스웨덴 등), 아 시아(중국태국 등)에서 왔고 호주와 아프 리카(남아공)에서도 왔다.

가라오케 선수권대회의 분위기는 따듯하 고 우호적이다. 행사는 보통 홀뿐 아니라 무 대가 딸린 카페에서도 열린다. 무대에 서는 사람들의 수준은 다양하다. 조금 틀리거나 못 끝내는 선수도 있지만, 화려하고 심지어 재즈 분위기가 물씬 나는 목소리를 가진 수 준급 아마추어 가수가 대부분이다. 연출도 잘해서 공연도 지루하지 않다. 상도 ‘어마어 마’할 수 있다. 가라오케 기계를 살 수 있는 5만 루블(1000달러)짜리 증서도 있고 터키 여행권도 있다.   2010년 모스크바 세계선수권은 특히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인기상 수상자에게 펠메니(러시아 고기만두) 100만 개를 상으로 안겼기 때문이다. 수상자는 미국 뉴멕시코주 앨버커키 출신의 에두아르도 피멘텔이었다. 심사위원들이 뽑은 우승자는 핀란드 대표였 다. 2위는 러시아가 차지했다. 상을 탄 위장병 전문의 표도르 리티코프는 푸치니 오페라의 아리아와 이탈리아 노래 ‘눈물 속에 피는 꽃 (L'Immensita)’을 원어로 불러 모두를 놀라 게 했다. 이 의사 겸 가수는 2006년부터 인기 몰이를 했다. ‘골로스(голос목소리)’ 쇼 에 출연했고, 음악대학 및 교회 합창단 수준 의 콘서트 무대에 초청받았으며, 특별히 그를 위한 노래도 작곡됐다.   “사람은 이렇게 큰 대회를 앞두고 목소리 와 예술적 기교를 다듬게 마련이다. 우리는 이 과정을 도와준다. 그렇게 도와주는 선생 도 있다.” 모스크바 남부에 있는 ‘카라멜’

클럽의 공동소유주인 발레리가 말한다. 이 클럽은 세계선수권대회가 치러지는 무대다.   가라오케 스포츠의 역사=갤러기호에서 열린 2006년 대회는 시작이었다. 당시 모스 크바에 모인 사람은 100여 명이었다. 2014년 선수권대회에는 10개가 넘는 지역에서 참가 했고 2015년엔 이미 20개 넘는 지역에서 수 천명이 참여했다.   러시아 가라오케 선수권대회 총괄 프로 듀서 미하일 베빙은 2016년 ‘아시아선수권 대회’를 계획하고 있다. 그는 “중국에서 러 시아어의 인기는 중국인들이 선수권대회에 서 러시아어로 노래를 부를 정도로 높다”며 “무대를 보지 않았더라면 노래 부르는 이가 중국인이라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라고 감 탄했다. 그는 “러시아 문화, 러시아 창작품 의 인기를 높이는 것이 우리에겐 중요하다. 나는 올해 우리 참가자들이 팝송에 집중하 는 것을 그만두고,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러시아어로 노래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미하일 베빙은 2006년 러시아의 전문 가 라오케 활동의 탄생 때부터 선수권대회의 프로듀싱을 맡으며 열심히 일을 해왔다. 그 는 “2016년에는 이 프로젝트가 사회적 의미 를 얻게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며 그 이유로 고아원과 장애인 시설을 위한 자선 대회가 열린다는 점을 꼽았다.   러시아의 가라오케 역사=러시아의 가라 오케 클럽은 소련 붕괴 직후 등장했다. 처음 에는 몇몇 곳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수없이

많다. 20여 년 동안 이 산업이 크게 성장한 것은 전혀 놀랍지 않다. 러시아는 축배 전통 으로 유명한, 노래하는 나라가 아닌가. 러시 아인들은 생일기념일을 축하하고 노래의 힘을 빌려 사랑을 고백하기 위해 가라오케 클럽에 온다.   러시아식 가라오케 클럽의 특징은 보통 마이크가 테이블에서 테이블로 넘어가는 커다란 개방형 홀 형태라는 점이다. 테이블 4~5개가 더 있는 게 마음에 안 든다면 돈을 더 내고 VIP-홀을 찾으면 된다.   보통 가라오케 바 파티엔 머피의 법칙이 적용돼 완전히 다른 취향을 가진 인물들의 모임이 되곤 한다. 한 테이블에는 감상에 취 해 가슴을 부여잡고 ‘교도소 낭만 가곡’ 즉

인기 TV 진행자인 마샤 말리노프스카야가 가라오 케 클럽 히스테리에서 생일 파티를 열고 있다.

[리아 노보스티]

[보스토크 포토]

러시아 샹송을 애창하는 나이 지긋한 중년 남성들이 앉아 있다. 건너 테이블 젊은이들은 이 가슴 미어지는 공연이 끝나길 참을성 있 게 기다렸다가 앨리샤 키스나 레이디 가가의 노래 같은 어려운 최신 히트팝송을 멋지게 부 르길 희망하며 기쁘게 마이크를 차지한다. 이 어 세 번째 테이블은 훌륭한 노래에 열심히 박수를 쳐 준 뒤 넷이서 슬픈 멜로디를 부르 기 시작한다. 그렇게 릴레이는 이어진다. 악보 에 맞추진 못해도 모두 마음을 실어 노래한 다. 운이 좋으면 러시아국립연극대학의 성악 과 학생의 수준 높은 미니콘서트를 즐길 수도 있다. 일에 치인 사업가 차림의 독신 가수가 나와 화면과 1대 1로 노래하기도 한다. 사람 들은 각양각색이고 취향과 노래 수준이 다르 지만 손님들은 박수로 응원하고 히트곡을 함 께 부르며 ‘안면’을 트고, 춤을 권하고, 옆 테 이블 사람들에게 노래를 바치기도 한다.   “러시아에서는 작은 룸식 가라오케가 정 착되지 못했다. 우리는 콘서트 형식이 필요 하다! 국민 가창의 시대는 가고, 쇼비즈니스 의 시대가 왔다. 가라오케는 멋지게 이 틈새 를 채웠다.”   비영리 클럽가라오케 발전 조합 ‘전국 가 라오케업자 동맹’의 회장 뱌체슬라프 로푸 노프가 말한다. 그에 따르면 러시아인들은 자신을 표현하길 꿈꾸는 매우 창조적인 사 람들이다. 그러니 어느샌가 가라오케가 단 순한 여가에서 벗어나 새로운 대회의 수준 으로 발전한 것도 그리 놀랍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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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29일 금요일

개통 80주년 맞는 지하궁전 모스크바 지하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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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인의 유별난 가라오케 사랑

테이블 돌아가며 한 곡씩 릴레이  사랑 고백도 이곳에서 한대요 옛 소련 붕괴 직후 등장해 인기 젊은이노인 함께 부르며 즐겨 러시아인의 대표적 친목장소로 가라오케 세계선수권대회 열기도

모스크바 지하철의 혁명광장역 안은 소련의 명예의 전당 같은 곳이다. 기둥에는 조각가 마트베이 미니제르가 조각한 사회주의 소련 일꾼의 동상이 새겨져 있다. 오른쪽 사진은 마야콥스카야역의 현재(위)와 2차 세계대전 때 방공호로 사용된 모습.

[타스, 리아 노보스티]

돔 천장, 조각상 있는 지하 박물관  2차대전 땐 200여 명 출산도 다리야 쿠르듀코바

모스크바 지하철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 운 지하철로 꼽히며 지하 궁전이라고도 불 린다. 지하철 투어도 있고 스포르티브나야 역엔 자체 박물관도 있다. 현재 모스크바 지 하철은 12개 노선에 약 200개 역이 있고 계 속 확대 중이다. 올해엔 7개 역이 새로 개통 한다. 200개 역 중 44개는 문화유산으로 지 정돼 있다. 모든 역사는 1935년 5월 15일 ‘소 콜리니키’ ‘파르크 쿨투리’ 구간의 노선에 서 시작됐다.   도시 지하철 구상은 1875년부터 나왔지만 여러 이유 때문에 실행에 옮겨 지지 못했다. 예를 들면 전차 운영사들의 로비가 치열했다. 그러나 1930년대 초반 엔지니어들이 여전히 ‘자연 조건 때문에 실행에 옮길 수 없다’고 완강히 주장하는 가운데 지하철 구상은 다시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핵심 지하철 엔지니어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알렉세이 두시킨의 손 녀로 건축 사학자이자 교수인 나탈리야 두시 키나는 “자문을 위해 모스크바로 초청된 런 던과 파리, 베를린 출신 엔지니어들은 ‘모스 크바의 아주 복잡한 토질 때문에 지하철을 건설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러시아 엔지니어와 수문지질학자, 건축학자들 덕분 에 광장과 거리들로 이뤄진 거대한 지하 공간 이 창조됐다”고 말했다.   처음에 지하철 역은 두 종류였다. 지반을 깊이 판 파일론 형태의 역(이반 포민이 설계 한 크라스니에 보로타 역이 고전적인 사례 다)과 원주를 세울 수 있는 지반이 얕은 형 태의 역이 바로 그것이다.   바로 이점에서 알렉세이 두시킨은 혁명 적 건축가였다고 할 수 있다. 다른 많은 역 외에도 그는 지반이 깊으면서도 원주를 세 울 수 있었던 ‘마야콥스카야 역’을 세계 최 초로 건설했기 때문이다. 나탈리야 두시키 나는 “모스크바 지하철 개통 75주년에 맞춰 발표된 ‘두시킨이 건설한 최고의 지하철역 순위’에서 크로포트킨스야와 마야콥스카 야, 혁명광장 역이 최상위에 포함됐다”고 말 했다. 그녀에 따르면 모스크바 지하철 건설 학파의 창시자 가운데 한 사람인 두시킨은 지하 공사 원칙을 확립했다. 그런 원리 가운 데 하나는 명확한 지하철 역사 건설 기준과 지하 공간에서 빛의 중요성이었다. 크로포 트킨스카야 역에는 공간 전체를 은은하게 감싸면서 공중 궁전의 효과를 창출하게 빛 을 밝음의 숨은 원천으로 활용했다. 크로포

1912년 건설 계획, 1차대전으로 중단 스탈린 시대 재추진, 1935년 개통 현재 12호선, 200여 개 역으로 늘어 색유리 그림, 대리석 바닥 등 신기술 접목한 예술품들 즐비 44개 역은 문화유산으로 지정 전시 대피소 활용, 조산소도 설치

트킨스야 역에서 두시킨은 자신이 ‘잠망경’ 이라고 부르는 둥근 구멍을 역사 천창에 뚫 고 여기에 모자이크화를 그리게 했다. 두시킨은 지하 공간에 신기술을 접목하고 종합 예술을 사용한 선구자이기도 했다. 그 는 지하철 역에 조각(혁명광장 역)과 색유 리 모자이크화(마야콥스카야 역)를 처음 도 입했고 마감 재료(예를 들면, 마야콥스카야 역의 광택 철강)도 처음 사용했다. 전후에는 노보슬로봇스카야 역에 알루미늄을 사용했 고 그 역 지하에 처음으로 스테인드 글라스 를 사용했다. 1943년 마지막으로 그는 아브 토자봇카야 역에 처음으로 대리석 바닥을 깔았다. 바닥에 단단한 자재를 써야 한다고 강조한 것인데 그 전까지는 아스팔트나 세 라믹 타일을 썼다.   주요 ‘전시물들’=모스크바 지하철이 지 하 궁전과 비교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 다. 소련 지하철 역이 정권의 선전 구호로 장 식돼 있기는 해도 그 가운데는 앙상블을 이 루고 있는 곳도 많다. 그 점에서 모스크비치 들이 사랑하는 여러 지하철 역 가운데 마야 콥스카야 역을 빼놓을 수 없다. 이 역의 모 자이크화는 레닌그라드(현재의 상트페테르 부르크)의 한 공방 출신으로 소련의 주요 화 가 가운데 한 명인 알렉산드르 제이네카의 스케치를 바탕으로 혁명 전부터 보관돼 있 던 색유리를 사용해 제작됐다. “제이네카는 역 천장에 소련 최초의 어휘를 창조해 거대 한 공장들과 콤바인을 운전하는 아가씨들, 소년단원, 운동선수들, 휴양지, 행복한 어머 니상, 꽃피는 정원, 낙하산, 비행기 등 신생

활을 대표하는 인물과 주제들을 소개했다” 고 예술사가이자 국립예술사연구소 직원인 타티야나 윳케비치가 말했다. 1939년에는 마야콥스카야 역의 모형이 뉴욕 국제박람 회에 출품됐고 이를 위해 비행기들과 밤하 늘에 반짝이는 크렘린의 별로 장식된 천장 을 특별히 하나 더 제작했다. 이 프로젝트는 대상을 수상했다.   머리를 들고 위를 보지 않아도 또 다른 각 도에서 지하철 역을 볼 수 있다. 영광의 길을 따라 걷듯이 혁명광장역 플랫폼을 따라 걸 어보면 된다. 마트베이 마니제르가 이끈 조 각가들은 기둥 주변에 소련 시민들을 묘사 한 청동 조각상을 세웠다. 여기에도 부모와 소년단원, 운동선수들이 묘사돼 있다. 적군 (敵軍) 병사와 수병, 대학생, 농민, 심지어는 군견을 데리고 있는 국경수비대원도 있는 데 군견의 코와 발은 사람들이 하도 만져서 황금빛으로 반짝거린다. 모스크바박물관의 투어 가이드 안나 루지아는 “이 군견이 모 스크바 지하철의 주요 미신 가운데 하나와 관련돼 있다”며 “개의 코를 만지면 행운이 따른다고 한다. 또 여기서 가까운 곳에 수탉 을 데리고 있는 양계 처녀상도 있는데 이 조 각상은 만지면 안 된다. 불행을 가져온다는 미신 때문이다. 그래도 사람들이 수탉상을 너무 만져 반짝반짝 빛난다”고 말했다.   전시의 지하철=전시 모스크바 지하철 (1941년 10월 16일 ‘수도 소개령’으로 단 하 루만 폐쇄됐다)은 마치 ‘제2의 수도’처럼 됐 다. 지하철 내부에 폭격 대피소와 함께 심지 어 조산소도 설치됐는데 당시 지하철 내 조 산소에서는 217명의 신생아가 태어났다.   정부는 수도 함락 위험이 사라지자 역을 새로 건설하기 시작했다. 아브토자봇스카 야 역(두시킨이 자신이 건설한 최고의 지하 철 역 중 하나로 꼽은 화려한 원주로 장식 된 역)과 노보쿠즈네츠카야 역(이반 타라노 프와 나데즈다 비코바가 설계한 역) 등 7개 의 역이 전시에 건설됐다. 노보쿠즈네츠카 야 역에서 볼 만한 것으로 제이네카의 스케 치를 바탕으로 후방의 삶과 일을 묘사한 중 앙 홀의 모자이크화만 있는 게 아니다. 에스 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모스크바 지하 철 최초로 조성된 둥근 지붕의 원형 현관을 볼 수 있다(이 현관은 블라디미르 겔프레이 흐와 이고리 로진이 이끄는 건축가들이 건 설했다).   순환선 산책=모스크바 지하철 순환선 은 전후에 건설됐다. 순환선 열차를 타고 여

러 다양한 역을 구경해 볼 만하다.   모스크바 시내 고리키 공원을 연결하는 파르크 쿨드리 역에선 이삭 라비노비치가 대리석에 얕게 돋을새김한 햇살에 그을린 젊은이들의 조각상 앞에서 건강한 삶을 느 낄 수 있다.   바로 다음 역은 소련 공산당 서기장 니키 타 흐루시초프가 러시아-우크라이나 관계 에 헌정한 키옙스카야 역이다. 이 역은 우크 라이나 건축가 예브게니 카토닌의 감독 아 래 건설됐다. 알렉산드르 미진이 이끄는 화 가들이 그린 거대한 모자이크화에는 폴타 바 전투와 우크라이나에 간 푸시킨, 키예프 의 민속축제, 드네프르 수력발전소 개통식 이 묘사돼 있다.   노보슬로봇카야 역에 이르면 만화경 속 처럼 현란한 꽃무늬로 장식된 스테인드 글 라스 유리창과 음악가에서 지리학자까지 다 양한 직업을 묘사한 원형 돋을새김을 볼 수 있다. 이 작품들은 유명 화가 파펠 코린의 스케치에 따라 라트비아 거장들이 그렸다.   안나 루진나는 “노보슬로봇카야 역’은 소 련 역사의 몇 장면과 관련돼 있다고 말한 다. 거기엔 어머니 조국상이 묘사된 ‘전 세 계의 평화’라는 제목의 모자이크화가 있다. 지금 비둘기 한 마리가 보이는 자리엔 원래 스탈린의 초상화가 들어 있었는데 흐루시초 프 시대에 제거됐다. 흐루시초프는 노보슬

로봇카야 역을 둘러보면서 마음에 들어 하 지 않았는데 어머니 조국상이 맨발이었다 는 것이 그 이유였다고 전한다.   순환선의 콤스몰스카야 역은 모스크바 지하철에서 스탈린식 신고전주의를 가장 잘 표현했다고 말할 수 있다. 베니스 자르디니 공원의 러시아 관람관과 레닌 영묘 건축 책 임자 알렉세이 슈세프의 설계로 건설된 콤 스몰스크야 역은 파벨 코린의 모자이크화 로 풍부하게 장식돼 있다. 여기에는 알렉산 드르 넵스키에서 스탈린까지 다양한 시대 에 걸친 장군과 지도자들이 묘사돼 있다. 개 인숭배가 문제된 스탈린은 이후 레닌으로 대체됐다.   사실과 전설들=지하철에는 비밀스러운 얘기도 전하는데 벙커와 이른바 ‘메트로-2’ 가 관련돼 있다. ‘메트로-2’는 정부의 군용 지하철 지선들로 이름은 1990년대 초 주간 지 ‘오고뇨크’의 언론인들이 지었다. 그 중 하나는 브누코보 공항으로 이어졌고 다른 하나는 쿤체보의 스탈린 다차로 이어졌다. 안나 루지나는 “하지만 ‘메트로-2’를 둘러 싼 소문들 외에는 알고 있는 것은 거의 없 다”며 “스탈린은 몇 개의 벙커를 갖고 있었 지만 그에 관해 우리가 아는 것은 거의 없다. 모두 패쇄됐기 때문이다. 이즈마일로보에는 ‘스탈린 벙커’ 박물관으로 개조된 벙커 하 나가 개방돼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에서 가라오케가 아시아 만큼 인기 높지는 않다. 하지만 요즘엔 가라오케를 찾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한국처럼 방이 아닌 탁트인 홀 같은 곳이다.

소피야 라옙스카야

2016년 10월 모스크바에서 제1회 러시아아시아 가라오케 토너먼트 ‘아시아선수권 대회’가 열린다. 지난 10년 동안 러시아에서 가라오케라는 오락은 평범한 취미에서 진지 한 대회로 진화해갔다.   “내게 가라오케 가수들은 제2의 가족이 다.” 지난 2006년 세계 가라오케 선수권대회 에서 백명에 가까운 경쟁자들 사이에서 5위 를 차지한 가라오케의 ‘베테랑’ 미하일 할 데이는 이렇게 고백했다. 그는 지금까지 모 든 행사에 참가하고 있는데 이제는 심사위 원으로 초청받기도 한다. 그는 “무대에서 노 래하게 되면 다른 이들 앞에서 자신을 드러 내야 하는데 사람들과 친해지는 계기가 된 다. 그런 식으로 굳건한 가족 관계가 형성되 고 언제라도 도와주러 올 진정한 친구들이 서로를 알아보게 된다”고 말한다.   2006년 가라오케 세계선수권은 헬싱키와 에스토니아 사이 발트해를 오가는 해상 크 루즈 정기선 ‘갤럭시’호 선상에서 치러졌다. 여객들은 사우나에서 쉬면서 마이크를 잡 을 수 있었고 심지어 마이크를 들고 수영장 에 뛰어들 수도 있었다. 이 행운아들은 28개 국에서 온 참가자들이었다. 유럽(프랑스오 스트리아이탈리아핀란드스웨덴 등), 아 시아(중국태국 등)에서 왔고 호주와 아프 리카(남아공)에서도 왔다.

가라오케 선수권대회의 분위기는 따듯하 고 우호적이다. 행사는 보통 홀뿐 아니라 무 대가 딸린 카페에서도 열린다. 무대에 서는 사람들의 수준은 다양하다. 조금 틀리거나 못 끝내는 선수도 있지만, 화려하고 심지어 재즈 분위기가 물씬 나는 목소리를 가진 수 준급 아마추어 가수가 대부분이다. 연출도 잘해서 공연도 지루하지 않다. 상도 ‘어마어 마’할 수 있다. 가라오케 기계를 살 수 있는 5만 루블(1000달러)짜리 증서도 있고 터키 여행권도 있다.   2010년 모스크바 세계선수권은 특히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인기상 수상자에게 펠메니(러시아 고기만두) 100만 개를 상으로 안겼기 때문이다. 수상자는 미국 뉴멕시코주 앨버커키 출신의 에두아르도 피멘텔이었다. 심사위원들이 뽑은 우승자는 핀란드 대표였 다. 2위는 러시아가 차지했다. 상을 탄 위장병 전문의 표도르 리티코프는 푸치니 오페라의 아리아와 이탈리아 노래 ‘눈물 속에 피는 꽃 (L'Immensita)’을 원어로 불러 모두를 놀라 게 했다. 이 의사 겸 가수는 2006년부터 인기 몰이를 했다. ‘골로스(голос목소리)’ 쇼 에 출연했고, 음악대학 및 교회 합창단 수준 의 콘서트 무대에 초청받았으며, 특별히 그를 위한 노래도 작곡됐다.   “사람은 이렇게 큰 대회를 앞두고 목소리 와 예술적 기교를 다듬게 마련이다. 우리는 이 과정을 도와준다. 그렇게 도와주는 선생 도 있다.” 모스크바 남부에 있는 ‘카라멜’

클럽의 공동소유주인 발레리가 말한다. 이 클럽은 세계선수권대회가 치러지는 무대다.   가라오케 스포츠의 역사=갤러기호에서 열린 2006년 대회는 시작이었다. 당시 모스 크바에 모인 사람은 100여 명이었다. 2014년 선수권대회에는 10개가 넘는 지역에서 참가 했고 2015년엔 이미 20개 넘는 지역에서 수 천명이 참여했다.   러시아 가라오케 선수권대회 총괄 프로 듀서 미하일 베빙은 2016년 ‘아시아선수권 대회’를 계획하고 있다. 그는 “중국에서 러 시아어의 인기는 중국인들이 선수권대회에 서 러시아어로 노래를 부를 정도로 높다”며 “무대를 보지 않았더라면 노래 부르는 이가 중국인이라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라고 감 탄했다. 그는 “러시아 문화, 러시아 창작품 의 인기를 높이는 것이 우리에겐 중요하다. 나는 올해 우리 참가자들이 팝송에 집중하 는 것을 그만두고,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러시아어로 노래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미하일 베빙은 2006년 러시아의 전문 가 라오케 활동의 탄생 때부터 선수권대회의 프로듀싱을 맡으며 열심히 일을 해왔다. 그 는 “2016년에는 이 프로젝트가 사회적 의미 를 얻게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며 그 이유로 고아원과 장애인 시설을 위한 자선 대회가 열린다는 점을 꼽았다.   러시아의 가라오케 역사=러시아의 가라 오케 클럽은 소련 붕괴 직후 등장했다. 처음 에는 몇몇 곳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수없이

많다. 20여 년 동안 이 산업이 크게 성장한 것은 전혀 놀랍지 않다. 러시아는 축배 전통 으로 유명한, 노래하는 나라가 아닌가. 러시 아인들은 생일기념일을 축하하고 노래의 힘을 빌려 사랑을 고백하기 위해 가라오케 클럽에 온다.   러시아식 가라오케 클럽의 특징은 보통 마이크가 테이블에서 테이블로 넘어가는 커다란 개방형 홀 형태라는 점이다. 테이블 4~5개가 더 있는 게 마음에 안 든다면 돈을 더 내고 VIP-홀을 찾으면 된다.   보통 가라오케 바 파티엔 머피의 법칙이 적용돼 완전히 다른 취향을 가진 인물들의 모임이 되곤 한다. 한 테이블에는 감상에 취 해 가슴을 부여잡고 ‘교도소 낭만 가곡’ 즉

인기 TV 진행자인 마샤 말리노프스카야가 가라오 케 클럽 히스테리에서 생일 파티를 열고 있다.

[리아 노보스티]

[보스토크 포토]

러시아 샹송을 애창하는 나이 지긋한 중년 남성들이 앉아 있다. 건너 테이블 젊은이들은 이 가슴 미어지는 공연이 끝나길 참을성 있 게 기다렸다가 앨리샤 키스나 레이디 가가의 노래 같은 어려운 최신 히트팝송을 멋지게 부 르길 희망하며 기쁘게 마이크를 차지한다. 이 어 세 번째 테이블은 훌륭한 노래에 열심히 박수를 쳐 준 뒤 넷이서 슬픈 멜로디를 부르 기 시작한다. 그렇게 릴레이는 이어진다. 악보 에 맞추진 못해도 모두 마음을 실어 노래한 다. 운이 좋으면 러시아국립연극대학의 성악 과 학생의 수준 높은 미니콘서트를 즐길 수도 있다. 일에 치인 사업가 차림의 독신 가수가 나와 화면과 1대 1로 노래하기도 한다. 사람 들은 각양각색이고 취향과 노래 수준이 다르 지만 손님들은 박수로 응원하고 히트곡을 함 께 부르며 ‘안면’을 트고, 춤을 권하고, 옆 테 이블 사람들에게 노래를 바치기도 한다.   “러시아에서는 작은 룸식 가라오케가 정 착되지 못했다. 우리는 콘서트 형식이 필요 하다! 국민 가창의 시대는 가고, 쇼비즈니스 의 시대가 왔다. 가라오케는 멋지게 이 틈새 를 채웠다.”   비영리 클럽가라오케 발전 조합 ‘전국 가 라오케업자 동맹’의 회장 뱌체슬라프 로푸 노프가 말한다. 그에 따르면 러시아인들은 자신을 표현하길 꿈꾸는 매우 창조적인 사 람들이다. 그러니 어느샌가 가라오케가 단 순한 여가에서 벗어나 새로운 대회의 수준 으로 발전한 것도 그리 놀랍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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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

2015년 5월 29일 금요일

section sponsored by Rossiyskaya Gazeta, Russia

가볼 만한 모스크바 산책로 ① 구원자 예수 성당~안드레옙스키 다리

크림강변로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산책을 하며 여유로를 즐기는 모스크비치들. 러시아의 역사적 명소를 잇는 이 길은 최근 정비돼 아직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 있진 않다.

[로리]

모스크바 중심에 올레길 7곳 조성  러시아 역사 따라 한바퀴 여행 안내서에는 아직 나와 있지 않지만, 벌써 모스크비치들의 사랑을 크게 받고 있는 모스크바의 역사적 중심지를 따라 가는 새로운 산책로 연재 코너를 Russia포커스가 마련했다. 먼 저 여행 안내서에 나와 있거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추천하는 모스크바의 모든 산책로가 아주 낡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 주의를 기울여 줄 것을 당부한다. 모스크바의 역사 적 중심지에 일곱 곳의 보행자 전용 지역이 등장한 것은 불과 3년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도 부대 시설인 대형 주차장 세 곳은 몰라보게 달라졌으며, 건물들에서는 도시 경치가 잘 내다보 이는 전망대가 들어섰고 모스크바 강변로의 화강암 제방에는 편리한 산책 지대가 조성됐다. 오늘날 여행자들의 눈앞에는 이전 여행자들이 봤던 모스크바와는 완전히 다른 도시가 펼쳐 진다. 다시 말해 지하철을 더 이상 찾을 필요 없이 도심을 걸어서 돌아다닐 수 있는 편리한 모스크바가 펼쳐진다는 말이다.

키라 예고로바

크로포트킨스카야 역=우리의 산책로는 지 하철 크로포트킨스카야 역 부근에서 시작 한다. 가까운 강변에는 1990년대에 국민 성 금으로 복원된 ‘구원자 예수 성당’이 자리 잡고 있다. 성당 전망대에서는 크렘린과 시 내 중심 지구, 모스크바 강의 멋진 경치가 내다보인다. 전망대 입장료는 200루블(4달 러 이하)이다.   파트리아르흐 다리=성당 앞에는 모스 크비치들이 가장 좋아하는 파트리아르흐 다리가 있다. 5년 전이었으면 모스크바 중심 부 산책로는 바로 여기서 끝났을 것이다. 그 때는 다리가 사유지와 근처 거리에서 내뿜 는 배출 가스에 가로 막혔기 때문이다. 이제 는 파트리아르흐 다리에서 ‘붉은 시월’ 초 콜릿 공장터가 세월을 얹고 있는 모습이 내 려다보인다. 현재 이 공장 건물들 내부에는 힙스터 바와 건축가, 디자이너, 미디어 분야 전문가들을 위한 사무실로 가득 찬 거대한 아트 클러스터가 활동하고 있다.   발추크 섬=파트리아르흐 다리는 발추 크 인공섬을 통과한다. 이 섬은 18세기에 홍 수 방지용 ‘보도오트보드니 운하’ 건설과 함

구원자 예수 성당 전망대 오르면 모스크바 강, 크렘린 전경 보여 반짝 분수 있는 크림스카야 강변 고리키 공원선 뗏목 체험도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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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포트킨스카야 역~파르크 쿨투리 역 길이: 5.5 시간: 약 1시간 30분

께 조성됐다. 흥미롭게도 발추크 섬의 나이가 200년이나 됐는데도 시 중심부에 섬이 있다 는 사실을 모든 모스크비치가 알고 있는 것 은 아니다. 그렇다고 놀랄 것은 없다. 이전에 는 다리가 없어 섬을 지날 수도 없었기 때문 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섬과 운하와 강을 갈로질러 건설된 파트리아 르흐 다리를 건너가면 성인의 보통 걸음으로 5분 후에 야키만스카야 강변로가 나온다.   야키만스카야와 크림스카야 강변로=야키 만스카야 강변로는 우리의 산책로에서 어려 운 부분이다. 인도가 좁은 반면 차도는 넓은 데다 지나가는 자동차들이 쌀쌀맞게 경적 을 울려대기 때문이다. 3년 전만 해도 모스 크바 중심부의 강변로들은 모두 이랬다. 그 래서 무시무시한 강변로를 걷는 사람이 아 무도 없었다고 해서 놀랄 게 없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시라. 이젠 5분만 걸어가면 야키 만스카야 강변로가 새로 단장한 크림스카 야 강변로로 이어진다. 이곳은 훌륭한 산책 로와 디자인 조경, 자전거 도로, 반짝반짝 빛나는 분수들이 조성돼 있다. 어쩌면 여러 분은 이곳이 마음에 쏙 들어 더 이상 아무 데도 가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무제온과 ‘트레티야콥카’=새로 단장된

크림스카야 강변로는 무제온 강변로라고도 불린다. 2013년부터 이렇게도 불리고 있는 크림스카야 강변로는 중앙화가회관 주변의 무제온 공원과 연결돼 있다. 이 건물 2층에 는 트레티야콥카로도 불리는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신관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는 말 레비치와 페트로프-봇킨, 칸딘스키 등 20세 기 주요 러시아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돼 있 다. 한마디로 날씨가 좋지 않을 경우 머물다 가기에 이상적인 장소다.   고리키 공원=크림스카야 강변로를 따라 계속 이동하면 크림 다리 아래를 지나 ‘새 로운 도시 전설’로 자리매김한 고리키 공원 의 서쪽 입구에 당도한다. 바로 2011년 고리 키 공원 개보수와 함께 모스크바 휴식지대 복원 역사에 새 장이 열렸다. 고리키 공원은 와이파이 접속이 가능한 갑판 의자와 백조 들이 가득한 연못에서 크로스핏과 요가 운 동장, 아동센터, 자전거와 뗏목배 대여장까 지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어쩌면 여러분은 벌써 이때쯤이면 돌아가는 항공권을 물리 고 여름 내내 모스크바에 남아 있고 싶어할 지도 모르겠다.   안드레옙스키 다리=고리키 공원 주변 강변로를 따라 계속 이동하면 공원 남쪽

경계선에 있는 안드레옙스키 다리 입구에 도착한다. 이 다리는 개방식 아치에 유리 지붕이 설치된 보행자용으로 굽이굽이 도 는 모스크바 강과 예스러운 공원 ‘네스쿠 치니 사드’(이곳은 너무 넓어 자전거를 타 고 가 보기를 권한다)의 녹지를 음미하기에 딱 좋은 장소다.   산책로 종료=산책로 종료 지점은 여러 분이 다음 두 가지 방법 중에서 독자적으로 선택하길 바란다. 첫 번째 방법은 고리키 공 원 중앙 입구까지 가서 크림스키 다리를 따 라 지하철 파르크 쿨투리 역(빨간색 노선과 순환선)이나 옥탸브리스카야 역(오렌지색 노선과 순환선) 쪽으로 걸어가는 것이다. 두 번째는 안드레옙스키 다리 끝까지 쭉 가다 보면 7분 후쯤 지하철 프룬젠스카야 역(빨 간색 노선) 입구에 당도한다. 지하철역 근 처에는 작은 공원을 끼 고 있는 두 개의 멋 진 19세기 저택 2채가 자리 잡고 있다. 하몹 니키에 있는 트루베츠키가(家) 저택과 레프 톨스토이의 저택-박물관이 바로 그것이다. 이 저택에 들르게 되면 땅거미가 짙게 내릴 때까지 산책이 더 계속될 수도 있다. 따라서 시간을 안배하고 신발도 더 편한 것으로 준 비하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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