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yeong taek peacecenter 11th report

Page 1

여는 글

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배

2

보고

2011년 3분기 활동보고(7-9월) 2011년 3분기 살림보고

4 10

저, 일본 출장다녀왔습니다.

12

배낭여행, 그 자유로움의 세계

19

강정은 대추리다

26

나는 생협활동가다

33

4차 희망버스가 넘어야할 담장은

35

2011년 3분기 회비와 후원금

43

추천도서

체르노빌의 아이들

46

회원인터뷰1

김득중, 고동민회원

50

함께읽는 시 회원인터뷰2 새식구소개 퀴즈 광고

직선이 없다 양미란, 노완호회원 김영옥, 노완호, 김성경 회원 도전, 평화의 종을 울려라

53 54 59 61 62

특별보고 회원마당 함께읽는글 보고

[표지사진] 2011년 회원들과의 여름야유 회. 평화센터가 회원들의 발 길과 웃음소리로 가득차기를 기대해본다.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여는 글 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배 새벽 2시 28분.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정문앞 1인시위 농성장에 앉아 글을 씁니다. (15 시간 농성이니 아직 9시간 32분 남았습니다.^^: 벌써부터 배가 고파옵니 다.) 부산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에 맞서 85호 크레인위에서 농성을 하고 있 는 김진숙님과 4인의 해고노동자들, 주민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된 해 군기지건설에 맞서 투쟁하고 있는 제주 강정마을주민들, 그리고 구속된지 2년이 넘어버린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한상균지부장과 공장밖에 쫓겨난 해 고노동자들. 구속수감 되어있는 곽노현 서울교육감, 고엽제매립으로 촉발 된 미군기지환경문제, 통합진보정당 추진 연기......... 돌아보면 어둡고 무거운 소식뿐이지만 희망버스, 희망비행기, 희망자전 거의 아름다운 행렬속에서 희망을 확인합니다. 2007년 11월 20일. (이 날은 평택평화센터가 평택청소년문화센터에서 창립 총회를 한 날입니다)

미군기지확장계획에 맞섰던 605명의 평화지주들이 한푼두푼 모아보내 주신 평화기금으로 사무실을 얻고 충혼산자락에 사무실을 꾸미던 날, 그날 의 설레임을 잊지 못합니다. 4년차로 접어든 지금.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2 -


평화센터의 여러 사업들은 안정화되었고 활동의 영역은 점차 넓어졌습 니다. 그러나 바쁘다는 핑계로 중요한 것에 소홀해지고, 잊고 살아온 건 없는지 꼼꼼히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평화센터에는 매달 한가지씩 중요한 행사와 사업이 있습니다. 회원들에게 이메일도 보내고, 문자메시지도 보내보지만 회원들의 참여 는 저조합니다. 홈페이지도 만들고, 페이스북에 방도 만들어봤지만 소통엔 한계에 부닥칩니다. ‘난 그냥 주위의 부탁도 있고 해서 후원을 한 것이지 사업과 행사에 참여하기는 어려워’ ‘내가 속해있는 단체의 일도 바쁘기 때문에..........’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하반기에는 평화센터의 조 직적 힘을 강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겠습니다. 회원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과 꺼리들을 많이 만들어보겠습니다. 모 임들도 다양화시켜보겠습니다. 그러나 상근자와 운영위원들만의 노력으론 불가능하겠지요. 손바닥이 서로 부딪혀야 소리가 나듯, 저희들이 내미는 손을 마주잡아 주시기 바랍 니다. 밤늦게 웃음소리, 노래소리가 끊이지 않는 평화센터, 회원들의 발걸음에 문턱이 닳아지는 평화센터, 전화통에 불이나고, 보내는 이메일과 메시지에 끊임없는 답장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게 될 그날을 만들고 싶습니다. 평화센터의 문은 활짝 열려있습니다. 처음이 어렵지 일단 시작하면 이미 반은 걸어온 것 이겠지요? 늘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날씨가 추워집니다. 건강에 유의하세요.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3 -


2011년 3분기 주요활동

[7월] 1-2일

미군기지 활동가 수련회 (전북 진안)

물 좋고 산 좋은 전라북도 진안에서 미군기지 활동가 수련회를 가졌습 니다. 천렵도 하고 오는 9월에 예정된 <제4회 동아시아 미군기지 환경문 제해결을 위한 국제심포지움>을 점검하였습니다. 2일

태광중학교 평화인권교육

지난 4월부터 평택흥사단과 함께 태광중학교 3학년 학생들과 평화인권 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리엔테이션, 식량위기와 기후변화, 텃밭상자 만들기, 장애인과 다문화에 이어 7월에는 영화 <호텔르완다>를 보며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쟁과 그 원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10월엔 청소년인권과 민주시민교육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5일

평택미군기지환경문제해결을 위한 2차 평택지역연석회의

미군기지 고엽제 매립 증언으로 촉발된 미군기지 환경문제의 대응을 위 해 평택평화센터등 17개 시민사회,종교단체가 연석회의를 구성하고 향후 대책과 방향을 논의하였습니다. 6일

평택미군기지인근지역 8개지점 지하수채취 평택시청 상하수도사업소 공무원들 과 함께 평택미군기지인근지역 8개지 점에 대한 지하수를 채취하였습니다. (채취지점은

Camp

Humphreys인근

3곳,

Osan Air Base인근 3곳, 고덕면 2곳입니다.)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4 -


7일

평택미군기지환경문제해결을 위한 1차 민관합동회의

미군기지 환경문제해결을 위해 민과 관의 공동대책을 마련하자는 제안 에 따라 평택시(한미협력과, 하수운영과, 자원환경위생과)와 평택미군기지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연석회의 간의 1차 민관합동회의가 열렸습니다. 7-9일

소금꽃 찾아 천리행진

2차 희망버스행사를 앞두고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평택에서부터 부산한진중공업까지 천리행진(400km)을 떠났습니다. 3일간 천리행진 일부 구간을 함께 걸었습니다. 23일

평택에서 한국을 걷다 7월 역사기행 (강화도)

강화도에서 평화운동을 하고 계신 이시우선생님의 안내로 강화도역사박 물관과 민통선안 평화전망대를 돌아 보았습니다. 날씨가 좋지않아 북녘땅 을 볼순 없었지만 평화와 통일의 소 중함을 느낄 수 있었던 기행이었습니 다. 인근 강화갯벌로 옮겨 온몸이 진 흙투성이가 되도록 신나게 놀고 돌아 왔습니다.

[8월] 1일

녹색평론 평택지역 독자모임

녹색평론 독자모임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녹색의 삶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하는 모임으로 회원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8일

평택미군기지주변 토양,하수,지하수 측정결과 발표

경기도 보건환경연구원이 평택미군기지주변에 대한 토양, 하수, 지하수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5 -


측정결과를 발표하였습니다. 채취한 지하수 8곳중 7곳에서 세균과 질산성질소가 평균 이상 검출되어 음용불가 통보를 내려졌으며 토양 6곳중 5곳에선 다이옥신이 검출되었습 니다. 하수에서는 특별한 오염정황이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11일

평택미군기지주변 다이옥신검출 긴급기자회견 (평택시청)

연석회의는 평택시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경기도보건환경연구원의 검 사결과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였습니다. 맹독성물질인 다이옥신이 검출된 만큼 오염원인과 경 로를 조사할것을 요구하며 미군기지주변에 대한 전반적 인 환경조사를 촉구하였습니 다. 12일

평택미군기지환경문제해결을위한연석회의, 경기지역노동자

통일선봉대 공동집회 (평택서부역) 14-15일

8.15통일대회 (서울 여의도공원)

8.15 통일대회가 용산미군기지, 여의도 문화공원에서 열렸습니다. 20일

회원,가족 여름야유회

회원,가족 여름야유회가 천안 북면계곡에서 40여명의 회원,가 족이 참여한 가운데 성황리에 진행되었습니다. 운영위원들이 준비한 게임과 노래를 부르며 흥겨운 하루를 보냈습니다.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6 -


22-24일

제주 강정마을 방문

김훈태회원과 함께 해군기지건설에 맞서 투쟁하고 있는 제주 강정마을 을 다녀왔습니다. 24일

서울대학교 환경,보건대학원 교수단과 평택미군기지환경문제

간담회 27-28일 제4차 희망버스 (서울 청계광장) 6명의 회원들과 함께 희망버스행사에 참여하였습니다. 29일

민주노총 협진여객분회 노동조합 창립보고대회

[9월] 3일

1차 제주 평화비행기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을 응원하기 위한 제주 평화비행기 행사가 1박 2 일간 열렸습니다. 해군기지건설 공사가 임박해지고 마을회장등 주요간부들 이 구속된 가운데 전국 각지에서 많은 참가자들이 모였습니다. 올레7코스의 일부인 법환포구에서 강정마을까지 평화올레 걷기행사를 갖고 강정천 공원에서 문 화행사를 가졌습니다. 오 는 10월 1일 2차행사를 갖기로 하고 기자회견을 끝으로 행사를 마무리 하 였습니다. 19일

녹색평론평택지역독자모임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7 -


20-25일

제4회 미군기지 환경 국제심포지움 (일본 야무구치현) 지난 2008년부터 시작되어 올해 로 4회를 맞는 <동아시아미군기지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심포지 움>행사가 일본 야마구치현 이와쿠 니시민회관에서 열렸습니다. 한국측에서는 평화센터, 녹색연합 등 4명의 활동가가 참여하였으며 이

▲ 왼쪽부터 강상원소장, 평화바람딸기, 녹색연

와쿠니기지,쿠레기지,히로시마평화공

합 김혜진,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박정경

원 현장방문과 연대집회, 심포지움

수, 아타고산주민대책위원장

으로 진행되었습니다.

24일

평택에서 한국을 걷다 9월 역사기행 (전북 군산)

전북 군산으로 한국근현대사 역사기행을 다녀왔습니다. 군산시는 일제시대의 유적들이 잘 보존되어있는 도시로 뜬다리(부잔교), 구 세관, 히로쓰가옥, 동국사, 해망굴을 관람하였습니다. 군 산에서 아주 유명한 중국집에 서 점심을 먹고는 새만금 간 척사업으로 죽어가고 있는 갯 벌과 군산미군기지를 둘러보 았습니다. 28일

쌍용자동차비정규직지회 1인시위 돌입 기자회견

2009년 8월 6일 쌍용자동차 노사 대타협의 중재단이었던 원유철, 정장 선 국회의원들에게 자기책임을 다할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1인시 위에 돌입하였습니다.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8 -


29일

제6회 시민평화포럼 <사진으로 보는 평화이야기>

이시우선생님은 강화도와 비무장지대, 민통선등지를 돌아다니며 오랜기 간 사진을 찍어왔습니다. 대인지뢰의 문제를 무관심한 사회에 알려내기도 했습니다. 결국 무죄판결을 받기는 했지만 선생님이 찍어온 사진이 북한을 이롭게 한다면서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는등 숱한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 습니다. 우리 몸의 중심은 머리도, 배 꼽도 아닌 아픈곳이라는 이야기, 자유의 반대말은 구속과 억압이 아닌 관성이라는 말, 그 관성을 극복하는 것은 끊임없는 자기성 찰이라는 말들이 가슴에 와닿았 습니다. 20여분 참석하셨는데요. 날씨 가 좋지 않았지만 준비한 만큼 회원들이 참석하지 않아 속이 많이 상했습 니다. 회원사업에 더욱 집중해야겠다는 마음을 다잡는 계기였습니다. ^^

"세상이 어둡다고 한탄하지 말고 당신의 작은 촛불을 하나 켜라." - 마더 데레사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9 -


2011년 2분기 살림살이

(3∼5월)

[6월] 관 이월금 회비 후원금 사업수익금 기타수입

수입부 항목 이월금 회비 후원금 판화판매사업 기타 쌍용후원금 은행이자 평택연대주점

금액 1,529,753 1,455,000 930,000 2,100,000 150,000 150,000 496 50,000

6,365,249

관 인건비 연대사업비 행정비 자료발간비 대중사업비 복지비 계 6월잔액

지출부 항목 5월상근비 연대사업비 통신비 사무실유지비 사무비 자료구입비 차량유지비 소식지발송비 시민평화포럼 판화사업 평화인권영화제 4대보험료

금액 950,000 102,930 60,990 86,850 197,310 77,120 200,000 56,260 359,000 1,000,000 889,280 142,380 4,122,120 2,243,129

[7월] 관 이월금 회비 후원금 기타수입

수입부 항목 이월금 회비 후원금 평택연대주점 카드할인

금액 2,243,129 1,545,000 500,000 100,000 2,800

4,390,929

관 인건비 연대사업비 행정비 자료발간비 복지비 계 7월잔액

지출부 항목 6월상근비 연대사업비 통신비 사무실유지비 사무비 자료구입비 차량유지비 소식지발송비 4대보험료

금액 950,000 327,000 70,370 40,665 139,955 17,000 100,000 357,540 210,550 2,213,080 2,177,849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10 -


[8월] 관 이월금 회비 후원금 기타수입

수입부 항목 이월금 회비 후원금 행사수입

금액 2,177,849 1,570,000 150,000 205,000

관 인건비 연대사업비 행정비 복지비 회원사업비

4,102,849 8월잔액

지출부 항목 7월상근비 연대사업비 통신비 사무실유지비 사무비 자료구입비 차량유지비 4대보험료 회원야유회

금액 950,000 160,700 10,000 80,910 151,506 17,000 370,000 164,770 612,420 2,517,306 1,585,543

회원들이 보내주시는 정성, 소중하게 사용하겠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11 -


보고드립니다 저, 일본 출장 다녀왔습니다. 강상원(소장) 일본 히로시마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2008년부터 진행해온 <한국-일본-오키나와 미군기지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심포지움> 참석을 위해서다. 후쿠시마 핵 발전소 사고 이후 일본 전역에 방사능피해가 심각하다는 이야기를 들어온 터라 망설였지만 이미 약속된 일정을 미룰 수는 없었다. 심포지움 장소는 미군기지확 장으로 몸살을 앓고있는 야마구 치현(‘현’은 우리의 행정명칭으로 따진 다면 ‘도’와 같은 의미로 보면된다)

와쿠니시. 이와쿠니에는 주일 미 해병대기지가 있다. ▲ 이와쿠니기지 정문

첫날.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한지 1시간 남짓, 히로시마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태풍의 영향으로 일본 전역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번 심포지움의 실무 총괄 책임을 맡고 있는 <히로시마-쿠레-이와쿠니 피스링크(Peace-Link)> 의 오오츠키(大月純子)목사가 준비한 차량으로 숙소인 히로시마28호텔에 도착했다. 4년전에도 묵었던 호텔인지라 어색하진 않다. 2인실에 6000円 (약10만원.저렴한 비즈니스호텔인데도 한국보다 비싼편이다)을

지불하고 짐을 풀고는

저녁식사를 하러갔다. 히로시마의 대표적 음식인 튀김야채국수?(정확한 이름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12 -


을 기억하지 못한다)에

맥주도 한잔 걸친다. 일본 맥주는 하이트나 카스와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맛이 풍부하다. 히로시마의 공기는 좋지 않았고, 눈은 따갑고, 비행도 험난했던지라 그 날 밤은 그냥 골아떨어지고 말았다. 둘째날. 하늘도 무심하지, 일본을 강타 한 태풍으로 일본 중북부지역의 피해가 크다는 뉴스가 나온다. 히 로시마는 태풍의 간접영향권에 들 어 하늘만 흐릴뿐 비는 내리지 않 았다. ▲ 히로시마를 달리는 친환경 전차

이른 아침부터 거리에는 출근하 는 행렬들이 꼬리를 문다. 일본은

대중교통값이 비싸기 때문에 왠만한 거리는 자전거나, 걸어서 이동한다. 자동차와 함께 거리를 달리는 전차도 히로시마의 관광명물중 하나이다. 아침은 편의점 도시락으로 간단히 때웠다. 오오츠키 목사와 함께 이와쿠니시 아타고산 주민들이 미군주택건설에 맞서 싸우고 있는 집회현장엘 갔 다. 처음엔 체육,문화,의료시설을 만든다고 해서 부지를 내주었는 데 이제와서 미군주택부지로 사 용한다고 해서 주민들이 단단히 화가 나있었다. 어딜가든 정부관 계자들은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 고 있었다. 이와쿠니기지가 훤히

▲ 아타고산 주민집회 현장

내려다보이는 아타고산 주변에는 족히 3-400백가구의 주택들이 밀집해있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13 -


었고 집집마다 ‘아타고산에 미군주택건설 안돼’란 노란색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현장에는 2-30여명의 노인분들이 집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평일이었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은 만날 수 없었다)

집회는 매월 1일, 11일, 21일, 31일 진행

하고 있었고 집회는 그 동안의 변화된 상황을 공유하고 함께 노래도 부르 고 구호도 외치며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다. 한국참가단들에게도 발언이 주어져 주민들에게 연대의 메시지도 전하였다. 인상 깊었던 장면은 집회를 마친 주민들이 들고온 주머니에서 야채 며 과일이며 꽃들을 내놓기 시작하 자 서로 약속이나 한듯이 주민들은 자기가 필요한 물품들을 필요한 만 큼 가지고 가는 장면이었다. 텃밭에 서 생산한 물품들을 물물교환하는

▲ 집회장 한켠에 물물장터가 마련되었다.

것이라고 설명해주면서 이런 모습 은 일본에서 자주볼 수 있다고 했다. 후쿠시마 사태이후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힘도 일본의 공동체의식이 었다는 보도를 직접 목격해보는 아 름다운 모습이었다. 수십년간 미군기지를 상대로 싸우고 있는 타무라준껜(田村順玄) 이와쿠니시의원의 안내 로 이와쿠니 기지의 상황과 아타고야마산을 돌아본 후 히로시마-쿠레-이와쿠니 피스링크 의 회원들과의 간담회를 위해 쿠레YWCA로 향했다. 쿠레YWCA건물은 일본군 군수물자 창고로 사용하던 건물을 인수하여 사용하고 있었다. ▲자위대깃발이 펄럭이는 잠수함

간담회장소로 가기전 쿠레에 위치하고 있는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14 -


자위대기지와 주일미해군기지를 돌아보았다. 엄청난 규모의 구축함과 정박 해있는 잠수함의 무리를 보며 평화헌법을 개정하려고 하는 일본의 군사적 야욕과 자위대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 셋째날. 오늘은 히로시마평화공원을 오후엔 미야 지마섬을 들릴예정이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상공에 핵폭탄 이 투하된후 폐허로 변해버린 히로시마 일 대에 평화공원을 조성하고 다시는 이런 비 극을 되풀이 하지 말자는 마음으로 여러 조 형물과 기념관을 마련해놓았다고 한다. 히로시마 평화박물관에는 당시의 처참했 던 상황을 알 수 있는 많은 사진과 자료들

▲ 원폭투하된지 24153일이 지났음

이 전시되어있었다. 지금까지 희생당한 사

을 알려주는 시계.

람이 14만명에 달한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히로시마 평화공원에 있는 원폭 돔의 상공이 폭심지(爆 心地/Hypocenter)로 알고 있지만 원폭 돔에서 200m정도 떨어진 병원의 상공이 폭심지이며 지상 700m지점에서 폭발하여 고열과 바람등으로 인해 엄청난 많은 사람들이 현장에서 사망하고 지금까지도 피폭자들의 2,3세들 이 고통받고 있다. 미야지마섬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곳으로 오래된 사찰과 신사가 보존되어있는 곳이다. 히로시마에서 미야지마섬까지 전차로 1시간정도 이 동한후 배를 타고 10분 정도면 미야지마섬에 도착한다. 선착장에 내리자 마자 사슴이 우리를 반긴다. 2시간의 자유시간. 자전거로 섬을 둘러보기로 하고 자전거를 대여한다. 5000원으로 2시간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15 -


을 빌려준다. 미야지마섬은 비교적 일본의 옛모습이 잘 보존되어있었 다. 정상에 올라 일본의 섬들을 바 라보고 싶었지만 정상까지 설치된 케이블카도 마음에 걸리고 비용도 ▲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사슴.

만만치 않아 포기했다.

넷째날. 어제 밤늦게 오키나와와 일본 참가단들이 이와쿠니시에 속속 도착하였다. 오키나와참가 자들과 함께 이와쿠니 교회에 숙박하였다. 다 행히 오늘이 입춘(立春)이라 일본에서는 휴일 이었고, 다음날도 토요일인지라 어린이집으로 사용하는 강당을 숙소로 허락해주신 것이다. 일본, 오키나와 참가자들과 함께 이와쿠니 기지를 둘러보고 이와쿠니 폭음소송단(우리는 소음이라고 하지만 일본에서는 폭음으로 사용되고 있었 다)에서

▲ 이와쿠니교회 정경

한국-오키나와-일본 활동가전략회의 를 가졌다. 주일미군기지와 주한미군기지의 상황을 각 국이 발표하고 질의응답을 가졌다. 한국측 참 가자들은 최근 한국-미국-일본의 공동군사훈 련이 빈번히 벌어지는 만큼 공동대응이 필요하 다고 제안하면서 한국과 일본, 오키나와의 상 황을 일상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 련할 것과 전투기소음문제해결을 요구하는 공 동행동도 제안하였다. 이 제안은 각국에서 논

▲ 활동가 전략회의

의하여 다음 회의에서 재 논의키로 하였다.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16 -


마지막날. 오늘은 심포지움이 있는 날이다. 이번 일본방문의 주요행사이다. 어 제 저녁 늦은 시간까지 뒤풀이를 했 지만 일찍 일어나 자전거를 빌려타 고는 (빌려탄 자전거가 타고보니 고가의 자전거였다. 축전지가 달려있어 버튼 누르 는 순간 오토바이처럼 내달리는 자전거였 다. 약80만원의 고가 자전거다.)

이와쿠니

시를 둘러보았다. 이와쿠니시의 유명한 겐타이교(목조다리)로 시작하여 이 와쿠니시 전체를 둘러보니 옛 모습이 잘 보존된 동네였다. 7시정도였는데 도 초등학생아이들이 등교를 서두르고 있었다. 우리처럼 자가용통학으로 학교앞이 북적대거나 요란떠는 일이 없이 족히 4-5km정도 되는 거리를 삼삼오오 걸으며 재잘재잘 수다도 떨고, 가다가는 길에 앉아 공기놀이를 하는 모습에서 오래전 학창시절이 떠올랐다. 마냥 이쁘기만 했다. 일본에서의 심포지움은 보통 6-7시간은 기본이다. 한국에서 심포지움을 이렇게 했 다가는 끝까지 남아있을 사람은 얼마나 될 까? 여하튼 이와쿠니시민회관 2층 대강당에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다. 200석 규모의 대강당은 일본 각지에서 모인 활동 가들과 함께 마을주민들로 가득찼다. 오전엔 이와쿠니시민의 모임 오까와(大 川淸)목사님의 개회사로 1부에서는 이와쿠 니, 헤노코, 아츠기, 사가미하라, 자마, 요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17 -


코스카기지의 주요보고에 이어, 한국지역상황에 대한 보고를 듣고 점심을 먹었다. 오후에는 후텐마,사세보, 한국군소음문제를 보고한후 2부에서는 일본, 오키나와참가자들이 주일미군재편에 대한 공동대응방안을 놓고 열띤 토론을 진행하였다. 한국군, 주한미군, 자위대, 주일미군의 군사력이 날로 비대해지고 있는 가운데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국경을 넘어선 연대의 중요함을 다시금 느끼고온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고마운 사람들] 통역 때문에 진땀을 흘리셨던 AWC의 나가야 유키고, 사코다 히데후미 씨와 우리의 영원한 친구 오오츠키 준꼬목사와 오까와 목사께도 감사를 드린다.

▲ 히로시마-쿠레-이와쿠니 피스링크의 오오츠 키 준꼬 목사. 체류기간 내내 우리들의 전 일정 을 챙겨주었다.

▲ 이와쿠니교회 오까와 목사. 교회 에서 운영하고 있는 어린이집의 공간 을 숙소로 제공해주었다.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18 -


회원마당 배낭여행, 그 자유로움의 세계

이철형(운영위원)

담배를 피워 물었다. 골이 난 듯 잔뜩 흐려있던 하늘은 간간히 비를 뿌려댔다. 하늘의 심술 에도 바다는 넉살좋게 조용했다. 그 위를 페리는 가만히 흘러갔다. 2월 회사를 나온 뒤, 낯선 환경에서 지낸 4개월을 떠올려 보았다. 미래 가 보이지 않던 내일은, 어디 숨어 있다 나왔는지 모를 인연으로 생애 최 고의 시간을 선물했다. 마치 내 것이 아닌 듯 때로 어색하고 불안한 기간 이기도 했다. 지난 몇 년간 그저 내가 좋아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던 신문활용교육 (NIE)은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NIE 전문강사로 일할 수 있게 해 주었 다. 또 대학과 서울 한 평생학습관에서 시민기자교실 강사도 하고 있다. 상반기 내내 평택에서 지낸 시간은 대폭 줄었다. 대신 집에서 신문을 정 독하거나 스케치 연필을 잡거나 강의준비를 하는 시간이 늘었고, 서울로 용인,화성으로 보따리를 메고 다녔다. 40대 중반에 시도한(또는 떠밀린) 삶의 변화는 스스로 놀랄 만큼 새로 운 세상을 보여주었다. 6월말 평생학습관의 시민기자교실 종강이 있었고,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19 -


7월12일 중학교 2곳의 1학기 수업이 끝났다. 며칠 후 나는 배낭을 쌌다. 7월16일 저녁 나는 중국 청도를 향하는 배 위에 있었다. 인천에는 보름 후에 비행기로 돌아올 것이다. 더 평온한 상태로 하반기를 맞이할 수 있 기를 기대하면서. 몇 년 사이 배낭을 싸는 일 이 종종 있었지만, 늘 떠남은 마음을 설레게 한다. 이번 여 행에서는 어떤 사람들을 만나 고, 무엇을 보고 느끼게 될지. ▲쿤밍에서 리장가는 야간열차 침대칸 모습

거기서 나는 또 무엇을 얻고 배울게 될지...

담배를 끄고, 양팔을 들어 크게 기지개를 폈다. 서해 바람은 시원했다.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오늘밤 묵을 다인실에 돌아오니 이번 여행을 함께 할 일행들이 모여 있었다. 돌아가며 자기소개 를 했다. 초면에 어색한 분위기는 오고가는 술잔에 이내 사라졌다. 이번 윈난성 일주 ‘배낭팩’(자유배낭여행과 패키지여행의 특징을 따 모은 여행의 한 형태)은 평균 연령이 꽤 높아 보인다. 60대 1명, 50대 8명, 40대

7명, 30대 2명이 일행이라고 길잡이가 설명했다. 사실 열흘이 넘는 여행길에 나서는 사람들은 대개 정년 퇴직자나 자영 업자, 교사, 대학생 또는 나처럼 반백수다. 지난해 한 달간 인도여행 할 때는 대부분 대학생이어서 나는 ‘큰 형님’으로 불렸었다.

다음날 오전 9시 청도에 도착했다. 일행들은 4,5명씩 택시나 빵차(식빵 같이 생겨서)를 타고 길잡이가 일러준 빈관(주점·반점은 4,5성급 호텔, 빈관· 객잔은 2,3성급 호텔. 배낭여행자들은 주로 저렴한 객잔이나 국제청년 빈관을 이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20 -


용한다)으로 이동했다.

다음날 오후 국내선 항공을 이 용해 윈난성의 성도인 쿤밍으로 가기 전까지는 자유시간이다. 이번 여행은 차마고도의 한 갈 래인 차마대도를 따라 윈난성을 종주하는 일정이다.

▲쿤밍행 국내선 비행기를 기다리며 청도공항 에서

본격적인 여행은 청도에서 비행 기로 4시간을 날아가야 만나는 인구 800만 명의 대도시 쿤밍에서 시작했 다. 쿤밍은 윈난성의 관문이지만 기이한 돌로 가득한 ‘석림’과 ‘윈난 (소수민족)민족촌’ 외에는 내 관심을 끄는 볼거리가 없고 우리나라의 대 도시와 별반 다르지 않아 숙소에서 게으름을 피는 시간이 많았다. 숙소 험프 게스트하우스는 번화가에 있었지만 배낭 여행자에게는 매력적인 장 소였다. 친절한 스텝과 전망 좋은 2층 테라스-이곳에서는 여러 나라에서 온 여 행자들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거나, 맥주 한 병을 시켜 놓고 느긋하게 앉아서 책을 읽고, 포켓볼을 치거나 인터넷을 즐긴다. 앞으로는 금문벽계 광장이 있다. 아침에는 몇 개의 집단으로 모여 수련 을 하는 노인들을, 저녁에는 광장 대문 단청을 비추는 조명 아래 사랑을 속삭이는 젊은이들을 내려다 볼 수 있다. 또 숙소 주변에는 5~10위엔(한화 850~1700원)이면 훌륭한 쌀국수, 볶음밥 을 맛볼 수 있는 식당이 하루 종일 문을 열고, 그 옆 골목에는 어둠이 짙 어지면 판을 시작하는 꼬치구이 거리음식점들이 장을 선다. 코를 킁킁거 리며 골목을 빠져나오면 장신구와 기념품을 파는 조그만 점포들이 모인 또 다른 골목이 시선을 잡아끈다.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21 -


아침에 숙소를 나선 일부는 저녁식사 때가 되어서야 돌아와 여행 무용 담을 쏟아내기 바쁘다. 배낭팩은 정해진 것이 별로 없다. 다음 도시로의 이동수단과 출발시간, 숙소 외에는 그야말로 자유다. 관심사에 따라 혼자 다니거나 팀이 꾸려지는 것이 변화무쌍하다. 2인1실이 기본인 잠자리 상 대도 자주 바뀐다. 나는 청도에서의 첫날밤은 상 지대 관광학과 이아무개 교수 와, 쿤밍 3인실은 30년 지기인 50대 후반 부산사나이들과 함께 했다. 리장부터는 ‘아프리카의 눈물’을 찍은 MBC영상팀의 김 ▲호도협 트레킹 중

아무개 부장과 같이 자는 경우 가 많았다.

한가로운 이틀을 보낸 후, 밤 9시께 리장행 기차를 타기 위해 배낭을 들쳐 메고 택시를 잡기 위해 거리에 나섰다. 대도시에서 택시 잡기란 서 울이나 쿤밍이나 마찬가지라며 투덜거리던 중 낯익은 평택 사람을 발견하 고는 깜짝 놀랐다. 강순원 선생님이었다. 강 선생님은 남편 김용한 선배는 버려두고 어머 니와 두 분이서만 윈난성 여행을 하러 왔다고 했다. 기차 출발 시간이 다 가와 짧은 인사를 나누고는 아쉽게 돌아섰지만 배낭여행이 주는 뜻밖의 선물은 이렇게 곳곳에 있다. -------------------------------호도협 1박2일 트레킹 도시 전체가 세계자연유산인 리장, 호랑이가 이리저리 뛰어다녔다는 호 도협, 중국이 관광객 유치를 위해 도시 이름마저‘샹그릴라’로 바꾼 중 띠엔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22 -


이름난 리장 꾸청(고성固城) 대신 빵차를 타고 간 수허 꾸청의 정겨운 풍경에 감탄하다, 대낮에 4명이 바이주(白酒 고량주) 7병을 마시고는, 노 천카페 앰프에서 흘러나오는 김추자의 ‘빗속의 여인’에 젖어들었던 일. 5396m 합파설산과 5596m 높이의 옥룡설산 사이로 3700m까지 오르내리며 마방이 다니던 그 길을 따라간 1박2일 호도협 트래킹. 티베트의 분위기가 물씬한 중띠엔. 그리고 정감있는 상형문자를 간직한 나시족의 조상 우물이 있는 백수대, 4000~5000미터 고산으로 둘러싸인 속 에서 달뱅이 논을 일구며 살아가는 마을, 합파촌. 협곡 사이로 거센 흙탕물이 흐르는 금사강을 경운기 모터를 단 통통배 로 아슬아슬하게 건너서 만난 따쥐마을. 배낭 여행자의 천국 따리. 혼자 찾아간 바이족 전통마을에서 발견한 고 향의 느낌. 무엇보다 곳곳에서 환한 얼굴로 친절하게 대해 준 한족과 소 수 민족 사람들. 한 호수에서 ‘아저 씨’라 부르며 까르르 웃던 여대생 들, 바이족 마을에서 만난 또 다른 여대생들과 신혼부부 등이 새롭게 내 안으로 들어와 기억의 한 자리를 차 지했다. 보름간 처음 만난 동행자들과 즐 겁고 유익한 여행을 했다. 나누고 싶 은 이야기는 많지만 지면을 빌린 이 유는 사실, 해외 자유배낭여행에 대 한 자주 들었던 질문과 오해에 답하 기 위해서다.

▲벽탑해를 걷는 여행자

여행기 일부는 설명을 위한 것이다.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23 -


<질문1> 배낭보다 트렁크가 편하고 좋지 않아? 배낭은 자유여행을, 트렁크는 여행사의 패키지 여행 상품을 상징한다. 가족 단위로 가거나 부모님을 모시고 효도관광을 하는 것이라면 패키지도 괜찮다. 하지만 혼자, 또는 2-3명일 때라면 배낭을 싸는 것이 백번 좋다. 일본 사람들이야 가이드가 시키는 대로 잘 따르지만, 어디 대한민국 사람이 그런가? 기질적으로도 내 마음이 가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 아닌가. 내가 일정을 잡고, 먹고 싶은 거 실컷 먹고, 보고 싶은 것만 골라볼 수 있는 여행이 배낭여행이다. 내가 주인인 배낭여행은 상상하고 계획 짜면서 한 번, 여행하면서 한 번, 다녀와 서 사진 정리하고 자랑질 하면서 또 한 번, 이렇게 세 번 즐겁다. 한 달 동안 여행하 면 준비하는데 세 달, 여행 한 달, 다녀와서 한 달, 이렇게 다섯 달, 반년이 행복하 다. <질문2> 말은 어떻게해? 당근 잘 안통하지, 특히 중국은. 그럼 어떻게 먹고 자고, 구경해? 언어소통 문제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다. 잘하면 좋겠지만, 못해도 약간의 불편만 감수하면 오케이. 노 프라블럼이다!! ㉠ 여행준비를 시작하면서 여행용 포켓 회화책을 사라. ㉡ 간단한 인사말과 숙소, 식당, 유적지 등 각 상황에서 필수적으로 필요한 부분을 공 부하고, 메모장을 만들어라. ㉢ 말이 안통할 땐 회화책에 있는 글을 손가락으로 꾹 눌러 의사를 전달하면 통한다. 보디랭귀지는? 당근. 총동원! 나도 외국인이 뭐라고 하면 ‘으흠’하며 어깨 들썩이는 게 특기다. 그래도 혼자서 중국이며, 라오스, 태국, 네팔, 홍콩 등을 다녔다. 설마 죽기야 하겠어!!! 이 마음이면 된 다. 배낭여행이 처음인 사람들을 주저앉게 만드는 것은 ‘.. 때문에’라는 핑계이고, 자신 의 두려움일 뿐이다. 여행은 발길을 붙잡는 여러 가지 걱정에 ‘그럼에도 불구하고’라 고 외치며 시작된다.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24 -


<질문3> 돈이 많이 들텐데! 각설하고, ▲2011년 7월16일~30일(15일) 중국 윈난성 일주. 총 비용 180만원. 배낭팩 149만원(비자비 포함), 현지 사용 36만원(관람료, 식사, 군 것질, 교통비, 기념품 구입, 기타) *원:위엔=170:1 ▲2010년 1월25일~2월23일(30일) 인도 전역. 총 비용 200만원. 배낭팩 140만원. 현지 사용 60만원(관람료, 식사, 군것질, 교통비, 기념품 구입, 기타) 생각보다 비싸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5~6개월의 행복 비용이다. 또는 두고두 고 꺼내들 수 있는 추억의 앨범을 포함한 비용이다. <질문4> 위험하지는 않아? 무뚝뚝하고 눈이 마주치면 ‘뭘 꼬라봐’라며 인상을 쓰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외국인 이 도움을 청하면 당황스럽지만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고 애쓴다. 얼른 그 자리를 피해 도 망치는 사람이 아니라면. 외국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사람들은 선량하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다가와 말을 나누 려고 한다. 특히 이번 중국에서도 여러 번 경험했지만, 최근 아시아에서는 한류 덕분에 한국사람 하면 좀 먹힌다. 그 나라에 인기 있는 연예인이 담긴 소품을 준비하는 센스가 있다면 VIP 대접을 받을 수도 있다. 몇 년 전 배용준이 일본에서 인기짱일 때 ‘배용 준 얼굴이 그려져 있는 양말’ 몇 켤레면 선물 준비 끝이라고 했다. 배낭여행은 자신이 준비한 만큼,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즐거움만 얻으려 한 다면 위험하지 않다. 사람들을 과거를 사는 사람, 오늘을 사는 사람, 미래를 사는 사람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여행은 오늘을 사는 사람이 선택한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25 -


강정은 대추리다 김훈태 (회원/청계자유발도르프학교 담임교사)

1. 구럼비 해안은 평화로웠다. 흐린 하늘에 바람이 몹시 불고 이따금 빗낱 이 떨어졌지만 그 자체로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저 멀리서 넘실대며 밀려 온 파도는 바위에 부딪혀 하얗게 치솟았고, 낮게 내려앉은 구름은 세찬 바 람을 불어댔다. 바다 가까운 곳에 멈춰서면 그대로 검은 바위가 되어도 좋 을 서정적인 곳이다. 탁 트인 바다와 외롭게 떠있는 범섬은 인간의 말을 잃게 한다. 구럼비는 용암이 굳어져 만들어진 1km 가량의 통바위 해안이다. 검고 거대한 바위가 그대로 해안이 되었다.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잠기면 금세 의식 깊은 곳에 빠질 만큼 영적인 느낌이 강했다. 종교인들이 좋아할 만한 곳이다. 성령이 충만하다고 해야 할까? 아침 일찍 바닷가에서는 생명평화 결사의 백배 명상이 시작되었다. 조금 늦게 도착 한 나는 작은 깔개를 받아들고 자리를 잡았다.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생성·소멸하는 우주의 질서가 영원한 진리임을 가슴에 새기며 스물여 덟 번째 절을 올립니다.” ... “뭇 생명은 자연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공동체의 존재임을 마음에 새기며, 서른한 번째 절을 올립니다.” ... “생명 의 뿌리인 자연을 함부로 취급해 온, 인간 중심 ▲ 김훈태회원

의 이기적 삶을 참회하며, 마흔 번째 절을 올립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26 -


니다.” ... “모든 생명에게 저지른, 언어 육체 성 심리 경제 사회적인 모든 폭력을 참회하며 예순여덟 번째 절을 올립니다.” ... “먼저 자신을 정화하 고 치유하는 일이 세상의 평화를 이루는 길임을 마음에 새기며 아흔다섯 번째 절을 올립니다.” 아무 예상 없이 찾아간 구럼비 해안이었는데 백배의 절을 올리며 순간 가슴이 울컥했다. 뜨거운 것이 가슴을 타고 올라가 눈가에 머물렀다. 흐느 끼지 않을 수 없었다. 대추리 행정대집행의 그날이 떠올랐고, 그날 느꼈던 혼란, 절대적 평화의 길을 추구했던 병역거부자로서 몰살의 충동을 느끼게 한 그날의 야만, 그 기억이 가슴을 쥐어짰다. 그 기억은 큰일이 생길 때마 다 온몸을 짓눌렀다. 천안함 사건이 터졌을 때, 쌍용차노조가 비참하게 진 압될 때 마음은 널을 뛰었다. 감옥에서 겨우 진정시키고 나왔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런 마음이 두려워 강정에 오기가 조심스러웠다. 그랬는데, 그 모 든 게 참회의 절에 녹아나오는 듯했다. 눈물은 하염없었다. 그대로 자리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명상에 잠겼다. 2. “다음 주 22일(월)부터 2박3일간 강정마을 평화방문단을 모집합니다. 항공료 50%를 평화센터에서 지원합니다. 18일(목) 오후 1시까지 신청해주 세요.” 8월 17일 오후였다. 학교일을 마치고 집에서 쉬던 중 문자 한 통을 받 았다. 평택평화센터의 강상원 소장님이었다. 광복절 즈음 육지의 대규모 공권력이 제주도에 투입돼 물의가 빚어졌다는 뉴스를 보고 마음이 불안해 진 상태였는데 가슴을 콕 찌르는 문자가 온 것이다. 두말않고 바로 신청했 다. 50% 지원은 평화센터 후원자로서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었고, 워낙 저가항공이라 큰 부담도 없었다. 날짜가 개학식 코앞이라 약간 부담은 되 었지만 더 미룰 수 없는 일이었다. 시간은 금세 지나갔다. 비행기는 김포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27 -


공항에서 저녁에 출발하였다. 참가자가 나 혼자뿐이라는 사실에 다소 당황 했지만 평소 존경하던 소장님과 오붓하게 떠나는 여행이어서 마음이 편안 했다. 연착 때문에 제주에는 늦게 도착했다. 리무진버스를 타고 강정마을에 도착했을 때 이미 사위가 캄캄했다. 비가 흩뿌렸고 가게들은 일찍 문을 닫 은 듯했다. 늦은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식당을 찾았다. 가까운 곳에 들어 갔지만 장사가 끝났다고 하여 비를 맞으며 조금 걸었다. 주인아주머니의 표정이 석연치 않았다. 지은 지 얼마 안 된 깔끔한 느낌의 식당에 들어가 소장님과 전복해물뚝배기를 시켰다. 소장님이 바깥주인에게 해군기지 찬반 으로 인한 강정마을의 혼란을 듣는 동안 나는 딴지라디오의 ‘나는 꼼수다’ 를 듣고 있었다. 유치 찬성 쪽인 가게주인의 이야기를 어깨 너머로 들으면 서 속이 갑갑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하는 일이고, 지역개발이 되려면 해군 기지가 들어와야 한다는 그의 말에 ‘결국 여기도 대추리처럼 행정대집행이 벌어지고 맥없이 끝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택시 기사를 겸하는 바깥분이 나가고 식사를 하는 중에는 요리를 해오 신 안주인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듣기로는 이곳 강정이 제주에서도 유명한 감귤 생산지라고 한다. 당도가 워낙 높아 제주 사람들도 강정 감귤 을 많이 먹는다고. 농장이 있고 자기 집이 있는 사람들은 넉넉하게 보상을 받기 때문에 거의 다 찬성이란다. 물질하는 해녀도 다 보상은 받았지만 집 없고 날품팔이 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주로 반대한다는 주인네의 이야기를 들으며 속이 상했다. 가난하니까 쫓겨나도 괜찮은 건가... 지역개발이라는 선전에 놀아나는 건 언제나 더 가진 자들이었다.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은 단지 지금처럼 살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그게 더 평화에 가깝다. 더 얘기를 나누니 인간적으로는 좋은 분이었다. 자제가 모두 서울에 나 가 번듯한 직장을 갖고 있고, 제법 큰 감귤 농장도 소유해서 먹고 살기는 어렵지 않은 그런 집이었다. 열심히 일해서 아이들 키우고 재산 늘려서 이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28 -


제는 소일삼아 자그마한 식당도 하고 절에도 자주 다니는 그런. 하지만 그 뿐이었다. 중산층을 꿈꾸는 평범한 서민답게 경제와 가족 문제 외에는 마 음이 식어 있다. 지역개발로 돈만 더 벌린다면 구럼비 해안 따위는 시멘트 로 메꾸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 기가 막히게 맛있는 전복해물뚝배기였지만 식당을 나서는 입맛은 씁쓸할 수밖에 없었다. 3. 숙소는 문정현 신부님이 기거하 시는 곳이었다. 마을주민들의 도움 으로 전셋집을 얻은 신부님은 아 예 여기로 내려오셨다. 늦은 밤에 들어선 집에서 신부님은 담배를 태우며 쉬고 계셨다. 강정마을을 지키는 일도 일이지만 나와 같이

▲ 묵묵히 구럼비해안을 지키는 사람들

하루이틀 머물다 가는 육지 손님 들 치르느라 많이 지쳐 보이셨다. 신부님은 대추리 때 뵙고 그 이후로는 처음이었다. 병역거부했던 초등학교 선생이라고 소장님이 소개해 주시자 신부님은 알아보셨다. “으응, 그래. 그때 같이 있었지. 그래, 감옥에선 몇 년 살았어?” “1년 3개월 살았구요, 지금은 대안학교에 있습니다.” 그간 아무것도 한 게 없는 나는 신부님을 뵙는 게 사실 부끄러웠다. 대 추리에 있을 때도 신부님을 뵙기가 부끄러워서 잘 찾아뵙질 못했다. 소장 님이 반갑게 신부님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나는 조금 떨어져 김중미 선생 이 쓴 <길 위의 신부 문정현 다시 길을 떠나다>를 집어들어 훑어보았다. 올해 일흔둘의 연세로 세상 가장 낮은 곳만을 찾아다니며 아픈 이웃의 벗 이 되어 오신 신부님의 일대기가 살아있는 문체로 쓰여 있었다. “상원아, 거기 발가락 좀 뽑아라. 나 너무 아프다.”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29 -


소장님은 신부님을 눕히고 발을 주물러 드렸다. 얼마나 힘드실까. 신부 님은 여기도 대추리와 똑같다고 하신다. 일방적으로 보상을 다 끝내고 행 정대집행만 남긴 강정마을도 풍전등화의 신세인 것이다. 다른 게 있다면 공사가 벌어지는 해안가는 주거지역이 아니기 때문에 대추리처럼 가옥을 부수는 일은 없다는 것 정도. “신부님, 대추리는 지금 성토작업이 거의 다 끝나서 옛날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어요.” “그러면 그 많은 흙이 다 어디서 오는 거여?” “평택엔 그 정도 흙이 없고요, 아마 충남 쪽에서 가져올 거예요. 천안이 나 아산, 예산 같은 데서요.” 소장님을 대신해 신부님의 발과 손, 등을 주물러 드렸다. 풀리지 않는 피로가 손발에 뭉쳐있는 듯 단단하고 부어 있었다. 그리고 다치신 무릎은 돌멩이처럼 딱딱했다. 흰 수염이 성성한 이 할아버지께서 우리를 대신해 일하느라 쉬지를 못하시는 것이다. 다음 날 오전 구럼비 해안에서 다시 만 난 신부님은 하얀 사제복을 입고 계셨다. 미사를 보는 신부님은 처음 보았는데 평소 생활한복 차림의 소탈하신 모습과 달랐다. 함세웅 신부님이 집전한 미사를 함께하며 예전 구치소에서 천주교 집회에 갔을 때가 떠올랐다. 불교신자지만 천주교 집회가 가 장 수준이 높아 자주 가서 어색한 대로 “주 예수를 찬양합니다.” “평화를 드립니 다” 등의 말을 따라 하곤 했다. 문정현 신 부님은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꼭 감고 계셨 다. 순교자 신앙을 갖고 계신 신부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예수처럼 가장 낮은 데의 사람들을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다면 그는 하느님의 뜻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30 -


을 따르는 사람일 것이다. 문득 하느님께 서울을 봉헌하신 각하가 떠올랐 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각하와 그 무리들은 대체 누구일까?’ 하 는 물음이 따라왔다. 유사 기독교... 유사 치즈, 유사 석유 같은 존재들. 그날 저녁, 올레길을 따라 법환포구까지 다녀온 우리는 촛불 없는 촛불 집회에 참석 했다. 바람이 너무 심해 촛불을 들 수는 없 지만 우리들 마음의 촛불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신부님은 예의 그 빨간 택트를 타고 오셨다. 그날의 문화공연과 발언은 흥겨움에 도 불구하고 가슴에 남지 않는다. 다만 어둠 속에 머물던 신부님의 빨간 오토바이, 바람 에 휘날리는 노란 ‘해군기지 반대’ 깃발, 검 게 탄 신부님의 얼굴과 하얀 수염이 선명하 게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몸뻬바지 차림의 강정마을 아주머니들. 이우정평화상을 받은 바 있는 오두희님(신부님을 도 우며 같이 강정마을 일을 하신다)은 이미 보상이 끝났으니 해군기지 말고 구럼비 해안에 평화공원을 만들면 좋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 정도는 제주 도에서 떠안을 수 있는 금액이라신다. 관광지이니 해군기지보다 전국적, 세계적인 이슈로 떠오른 이곳을 평화공원으로 만든다면 주민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답답했던 나는 겨우 숨통이 트였다. 그래, 제주도가 받 을 수 없다면 우리라도 모금운동을 해서 만들 수 있을 것이야. 해군기지 건설계획만 철회된다면 말이다. 4. 이른 아침의 비행기를 타야해서 촛불집회가 끝나고 소장님과 나는 제주 시로 들어가야 했다. 마침 평택 근무시절부터 사귀어온 친구가 제주도에 내려와 있어 같이 촛불집회에 참석했다가 그 친구 숙소로 가기로 했다. 신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31 -


부님은 강하게 붙잡지는 않았지만, “야, 이걸 보고 어떻게 가냐? 같이 막 아야지.” 하셨다. 그 말씀과 얼굴이 지금은 무겁게 남아 있다. 왜냐하면 그 다음 날은 신부님의 영명축일(영세·견진성사 때에 받은 세례명을 기념하는 날로서 그 이름을 가진 성인의 축일이다)인데, 올라와 집에 돌아왔을 때 신부님이 경찰에 연행되셨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하루 더 남아 같 이 연행되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사실 나에게 이번 여행은 커다란 위로이기도 하였다. 대추리 일로 가슴 에 큰 병이 생겼다고 조심스레 털어놓았을 때 신부님과 오두희님이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당신들도 마찬가지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가슴에 고인 서러움이 흘러내렸다. 나 만 아픈 게 아니라 같이 아프다는 것, 이게 사람에겐 커다란 위로인 모양 이다. 그래서 참 감사했다. 그런데 그 어려운 현장에서 나만 빠져나온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어떻게 해야 하나?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이제부 터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질문을 자꾸 던지며 살아야 할 것 같다. 질문 을 던지며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들만 아프게 할 게 아니라 나도, 우리도 같이 아파야 하지 않겠는가. 농성장에 걸린 한 플랜카드의 문구가 잊혀지지 않는다. “평화(平和),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32 -


나는 생협활동가다 이경옥(회원/icoop평택화성생협 이사) 생협에서 자원활동가로 활동한지도 벌써 오년 째이다. 가족의 건강한 먹을 거리에 대한 관심으로 가입한 생협이 지금은 생활 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주변에서는 직장을 다니는 것도 아닌데 왜그리 바쁘냐고 질문을 받곤 한다. 그 사람들에게 생협에서 내가 하는 활동을 설 명하기란 참 쉽지 않다. 우리 사회에서 협동조합운동이 생소하기도 하고 활동가는 더더욱 낯설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제도 후배활동가가 생협활 동이 의미 있어 열정적으로 하고 싶은데 궁금해 하는 주변사람들에게 어 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이라며 상담을 요청해왔다. 그 고민은 나 역시 늘 하고 있는 부분이라 내 생각을 그대로 이야기해 주었다. 생협은 생활에서 느끼는 문제점에 대한 대안을 협동의 힘을 통해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내는 조직이다. 현재는 안전한 식품에 대한 요구를 가진 사 람들이 중심이 되어 전국 13만 여명의 조합원이 조직되어 있지만 식품뿐 아니라 교육, 의료, 주택 등 생활에서 필요한 모든 부분에까지 확장되리라 예상하고 있다. 누구나 우리 사회의 식품, 교육, 의료, 유통 등 여러 분야에 문제의식은 있지만 개인이 그 문제를 해결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협 동을 통해 힘을 모은다면 변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생협활동을 통해 경험하고 있다.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33 -


생협은 윤리적소비를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내가 하는 소비행위 가 나와 내 이웃과 지구를 살릴 수 있다면 비용을 조금 더 지불하는 것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의지가 들어있다. 생협의 윤리적소비운동의 의미는 단순히 가족의 건강 때문에 가입한 나를 활동가로 만들었다. 개인의 삶이 행복한가 그렇지 아니한가는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살고 있는가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 사회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생협활 동은 내게 사회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해 주었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키우게 해 주었다. 또한 사회적 존재로서의 내 역할에 대해 늘 고민하게 한다. 생협에서의 교육을 통해 성장해 가는 내 모습을 느끼고 사회의 변화를 위해 내가 무 엇인가를 할 수 있고, 하고 있다는 느낌은 그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 는 보람이자 기쁨이다. 개인의 삶으로부터 확장하여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삶을 산다는 것 그것이 생협활동이 아닐까한다. 얼마 전 인문학공부를 하면서 들었던 말 중에 가슴에 깊이 새겨진 말이 있다. ‘행복은 부조리한 삶을 견디는 과정에서 찾아오는 부산물이다’ 생협활동 역시 부조리한 삶을 견디는 한 방식이 아닐까? 끊임없이 경쟁 을 부추기는 현대사회에서 조금 늦더라도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고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 그래서 난 생협활동이 참 즐겁다. 우리 모두 함께 행복할 때 진정 나도 행복한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누군가 내게 무슨일을 하냐고 묻는다면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다. “저는 생협활동가에요.”라고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34 -


함께 읽는 글 4차 희망의 버스가 넘어야 할 담장은.... 송경동(시인)

4차 희망의 버스 준비도 거의 다 마쳐졌다. 수고하는 사람들의 핼쓱한 얼굴들을 보며 마음이 짠하다. 대부분 십 수 일씩 잠을 설친 사람들이다. 지난 5월, 처음 희망의 버스를 제안하고 부터니 벌써 근 넉 달이 되어간 다. 집 나온 지도 두 달 반. 근 하루도 그냥 쉬어본 적이 없다. 함께 하는 벗들 대부분이 그러했다. 우리는 마치 무엇엔가 홀린 듯 했다. 그곳에 원래부터 살던 사람 하나가 있었다는 듯이 나도 이렇게 한참의 세월이 흐른 듯 아득한데, 김진숙 선 배는 얼마나 됐을까. 230일까 지인가는 가끔 세 봤는데, 언 제부터인가 무감해진다. 마치 그곳에 원래부터 살던 사람 하 나가 있었다는 듯이. 크레인 위에서도 사는 어떤 종적이 있었다는 듯이. 마치 무슨 저 하늘의 별을 보 듯, 달을 보듯, 그래 저 외계에 어떤 토끼가 한 마리 살고 있었다는 듯이, 원래 그랬다는 듯이.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는 그렇게 이 세계에서 지워져 있는 사람이다.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35 -


우리 곁에 있는 듯하지만 정작 이미 없는 사람이다. 이미 생과 사의 경계 도 지워져 버린 사람이다. 정리해고는 어쩔 수 없다는 현실의 벽 아래에서 존재의 가치를 잃어버린 어떤 난쟁이다. 자본의 가치 외에 어떤 것도 현실 에서는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는 사람들의 체념 속에서 소멸되어가는 꿈의 종족이다. 노동자, 끊임없이 저항해보지만 생 자체가 도태되어가야 하는 슬픈 종족들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조용할 수가. 사람들은 알고 있다. 그렇게 잊혀 져가고, 소외되어가는 것이 자신이라는 것을. 자신 역시 그렇게 소외되어 있다는 것을. 그것이 무슨 대수로운 일이냐고. 모두 자기 안에 김진숙을 두고 있다. 굳이 부산 영도의 85호 크레인까지 쫓아가지 않아도 내 안에 서, 내 가족들 안에서, 내 벗들과 친지들 안에서 더 처참한 고립과 극단을 보고 있다.

사실 그렇다. 그만 외로운가. 그만이 고독한가. 지금 그만이 어떤 생의 백척간두에 서 있는가. 그만이, 그의 동료들만이 결사적인가. 쌍용차는, 발 레오는, 콜트-콜텍은, 재능은, 현대차비정규직은, 너는, 나는 어떤 생의 벼 랑 위에 서 있지 않은가. 우리는 모두 안녕한가? 한국의 재벌들과 자본들이 보유하고 있는 부동자산의 규모가 800조 원 이라고 한다. 3만 원 때문에, 5만 원 때문에, 100만 원 때문에 우는 사람 들과 가족들이 있는 세상에서 묵혀둔 사회적 잉여가 800조 원이라고 한 다. 수탈당한 모든 이들의 피눈물이 800조 원이라고 한다. 주택보급율은 이미 100%를 넘었지만 이 땅에 태어나 집 한 채 같지 못한 부평초 인생 들이 수천만 명이다. 그들 모두가 이 세상에서는 외부세력들이다. 쓰레기 인생들이고, 일회용품 인생들이다. 자신의 모든 열망과 꿈과 노동을 빼앗 기기 위해 자신의 삶으로부터 소외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울고, 불고,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36 -


사정하고, 읍소하고, 힘 모으고, 기대하고, 좌절하며 생을 모색하지만, 딱 그만큼일 수밖에 없는 불행한 인간가족들의 시대. 우리 서로가 누구를 어 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고개 숙인 조남호 회장, 그리고 희망버스 우리는 이기기도 했지만, 지기도 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저 먼 부산 영도의 작은 크레인 하나를 세계적 인 노동자민중들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폭력과 착취의 세계화인 신자유주 의 구조조정의 쓰나미에 작은 저항을 만들어냈다. 오늘은 독일대통령이 김 진숙을 지지하는 성명을 냈다하고, 브라질 교포이며 국제인권운동가로 세 계 25개국의 분쟁지역을 돌아다니며 영화를 만들어서 제8회 EBS 국제다 큐영화제(EIDF 2011)에 초청되어 온 이아라 씨 얘기에 따르면 전세계 언 론이 주목하고 있다고도 한다. 재벌총수는 절대 국회청문회에는 나가면 안된다고 전경련과 경총이 나서서 국회의 원 전원에 대한 로비에 들어갔지만, 결국 조남호는 14시간 동안 국민들 앞에서 고개 를 숙여야 했다. 말도 못하고, 제 스스로는 생각지도 못하는지 커닝페이퍼를 훔쳐보며 진땀을 흘렸다. 한나라당 의원들까지 자신 들에게 불똥이 튈 것을 두려워해, '납득할 만한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요건은 단 하 나도 없다'는 것을 확인해 주었다. 쥐새끼 처럼 국내에 숨어 있었다는 것도 밝혀졌다. 그 숨어있던 시간동안 누구를 만났을까. 어떤 전략회의와 전술회의를 누구와 했을까? 어떤 민중의 곳간 을 갉아먹는 쥐들이 모여서 모의를 했을까?(미안하다. 나는 쥐라는 생명들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37 -


까지도 그들에게 대입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6월 27일, 합법적인 채길용 집행부가 노사합의서에 도장을 찍어주면서 모든 대한민국 언론방송이 한진중공업 노사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떠들어 댔지만, 우리는 단 한 번의 흔들림도, 망설임도 없이 희망의 버스를 출발 시켰다. 법적 주체인 노사합의라는 법적 테두리를 넘어, 15만 금속노조, 80만 민주노총이라는 한계를 넘어, 1700만 노동자들과 그 가족이라는 이 름으로 반사회적 노사담합을 깨고, 사회적 무효선언까지 나아갔다. 1차에 실물의 담을 넘었다면, 2차에서는 합법을 가장한 죽음의 합의틀을 넘었고, 3차엔 보수·수구들의 이데올로기 공세라는 담장을 훌쩍 넘었다. 휴가철을 이겼고, 폭우를 이겼고, 이 여름의 폭염을 이겼고, 97개 중대, 84개 중대와 10톤의 파란 최루액을 이겼고, 19년만의 소환장을 받은 백기 완 선생과 우리 시대의 가장 아름다운 영혼인 문정현 신부님을 비롯한 240명의 소환장을 이겼고, 몇 번의 체포영장을 이겼고, 전방위적인 보수언 론들의 구시대적 색깔 입히기 포화도 이겼고, 본질을 벗어난 희망버스 대 부산시민이라는 지역감정 조장도 이겼고, 평창동계올림픽이라는 이슈도, 수해라는 아픈 시간도 이겼다. 문화운동을 비롯한 모든 부문들이 지지 않 았다.

김진숙은 다시 가을과 겨울을 이야기하고… 그런데 우리는 반대로 이기지 못했다. 김진숙은 다시 가을과 겨울을 이 야기하고 있고, 조남호는 어디에선가 잠깐의 쪽팔림도 별 거 아니네 하며, 어디에선가 깔깔깔거리며 양주를 마시고 있을 것이며, 국회는 다시 무력감 에 빠졌으며, 20일 희망시국대회는 초라해졌으며, 우리는 지난 몇 달, 잃 어버렸던 일상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10만을 못 만들었으며, 차벽을 넘어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38 -


서지 못했으며, 정리해고 철회를 관철시키지 못했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총체적(이런 꿈도 꾸지 않았지만)인 전망도 제 시하지 못했다. 강정해군기지 반대운동, 반값등록금, 4대강, 한미FTA, 언 론노조 총파업, 명동 마리, 롯데손보, 그 무엇 하나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 다. 정리해고 반대의 물결이 공동투쟁에 나선 쌍용차와 콜트-콜텍과 발레 오와 재능으로 충분히 연결되게 만들지 못했다. 사람인지라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화를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지지 않았 다. 아직도 만 하루가 남아 있다. 나는 믿는다. 나의 동지들을. 모든 이들의 모든 삶을, 애환을, 눈물을, 미안함을, 잠깐 눈을 들어 하늘을 보는 사람들을, 나도 그곳에 가고 싶지만 지나온 모든 세월이 마음에 밟혀 광장으로 나오지 못하고 외로운 거리를 헤매일 사람들을, 오늘 다 같이 못해도 내일 다시 함께 할 사람들 을. 깃발이 없어 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그 자리에서 그를, 그녀를, 그 사 람을, 그 친구를, 만나게 될까봐, 그 자리에서 애써 내가 외면해 온, 잊고 자 노력했던 어떤 나를 다시 만나게 될까봐 어디에선가 혼자 소주 한 잔 기울릴 사람들의 그 뼈아픔을 믿는다. 그리고 미안하다. 나의 아내에게. 내가 사랑한다고 했던 사람들에게, 이 기적인 남성들 때문에, 욕망덩어리들 때문에, 영혼의 상처를 입고, 짓밟히 며 살아가는 여성분들에게, 내가 본의 아니게 짓밟았던 사람들에게. 여린 생각들에게, 다른 상상력들에게, 서울역에서 노숙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에게, 다시 외로워진 철거민들에게, 하루도 노점을 쉴 수 없는 사람들에게, 하루도 운전대를 놓을 수 없는 운짱들에게, 누군가 먹고 간 삼겹살 판을 씻으며 오늘은 얼마를 벌었나를 생각하며 가물거리는 눈으로 잠든 아이의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39 -


뽀얀 얼굴을 보고 있을 사람들에게, 파고다의 늙은 비둘기 할아버지들에게 까지도 미안하다. 우리는 그 모든 분들을 다 초대하지 못했다. 그 모든 사랑을 다 모으지 못했다. 그 모든 해방감을 다 모으지 못했다. '다른 세상을 향한' 한날 한 시의 웃음들을 모으지 못했다. 하지만 최선을 다했다. 또 한번의 아름다운 여행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4차 희망버스 행사는 광화문과 청와대 뒷산에서 그리곤 27일, 전국에서 희망의 버스들이 서울로, 서울로 올라온다. 모든 일상으로부터 나온 사람들이 상기된 얼굴로 광화문 네거리를 향해 나올 것이다. 나와서 김진숙과 같은, 나와 같은, 우리와 같은 슬픈 종족들의 미 래가 어떠해야 하는 가를 사람들은 이야기 할 것이다. 1%도 안되는 이들 의 너무도 배부른 오늘을 위해 언제까지 모든 이들이 아파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해방의 춤과 노래를 부를 것이다. 28일날 아침엔 '세상을 여는 아침산행'이다. 청와대 뒷산에 올라 귀 막 힌 대통령을 향해 국민의 소리, 노동자들의 소리를 전하는 날이다. 무슨 시위가 아니라 지역 희망의 버스 탑승객들에게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 중의 하나인 인왕산 산행을 소개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이곳이 수도 서 울이고, 저 아래가 우리의 종복인 대통령이 일하는 곳이라고, 보여주고 싶 은 마음이다. 이 땅의 주인은 대통령 개인이 아니라 우리 모두라는 것을 보여주는 날이다. 당신은 무슨 과거의 왕조가 아니라, 현대 민주주의 사회 의 마름일 뿐임을 확인시켜주는 날이다. 재벌 한두 명을 지켜주기 위해 국 민들을 향해 차벽을 세우고, 최루액을 쏘아대는 게 무슨 국민들의 정부냐 고, 그렇게 할 거면 그만 내려와 무슨 재벌기업 사장이나 하라고 할 참이 다. 치졸하게 평화로운 산행조차 막지는 않으리라고 본다. 산행할 국민의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40 -


권리마저 막지는 않으리라고 본다. 준비물은 간단하다. 우리 시대 모든 억압받는 이들의 상징이 된, 김진숙 을 살리자는 마음 하나, 사회적 죽음에 다름아닌 정리해고는 철회되어야 한다는 마음 하나, 온 사회가 나서서 다른 세상에 대해 이제는 이야기해 나가야 한다는 마음 하나, 함께 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 들고 오시면 된다. 광화문에서 뛰어놀 건강한 몸 준비, 비가 오더라도 240여일째 눈비를 맞으며 싸워 온 김진숙과 그의 85호크레인 농성자들을 생각하며 나도 하 루쯤 감기 걸릴 생각하고, 평화의 거리, 해방의 거리에서 가난한 몸 하나 뉘여주겠다는 연대의 마음 하나, 피곤하겠지만 지역에서 올라온 소중한 사 람들 외롭지 않게, 중간에 빠지지 않고 마치는 시간까지 함께 있어주겠다 는 따뜻한 마음 하나면 된다. 양초와 우비를 챙겨주시면 좋고, 산에 올라 가 우리의 소리를 신나게 전할 모든 소리나는 물품 한 가지씩이면 그만이 다. 좋은 산행코스들을 알아 오시면 더욱 좋다. 희망의 버스가 빵구가 나 덜컥거리지 않게 행사 준비를 위한 참가비라 생각하시고 한 분도 빠짐없 이 운영기금 모금에 참여해주시면 오케이다. 4차 희망버스에서 넘어야할 담장은… 산행을 마치고는 한진중공업 서울 본사 앞에 모여 조남호 회장을 규탄 하고 작별의 시간을 갖는다. 어쩌면 기운이 빠질 수도 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대답없는 정부 여당과, 보수언론들, 조남호 회장을 생각하며 무 력감과 분노가 치밀 수도 있다. 어쩌면 저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우리가 냄비처럼 식는 것일 수도 있다. 4차에서 우리가 넘어야 되는 담장은 이것 이지 않을까.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41 -


부탁컨대 더 많은 분들이 광화문 광장으로, 희망의 산행으로 나와주시 면 좋겠다. 더 큰 힘으로 5차 희망의 버스를 결의하고, 민주노총과 금속은 총파업을 결의하고, 그렇게 그렇게 모아진 힘으로 그때까지는 정말 저 잊 혀져가는 사람, 김진숙을 우리 곁으로 내려올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김진숙을 우리 힘으로 못 내려오게 한다면, 차라리 중남미의 어떤 독재자 들 마냥 이명박 대통령을 임기 안에 끌어내린다는 마음으로, 박근혜든 정 부·여당이든 가리지 않고 사회적 심판의 장으로 끌어내리겠다는 마음으로, 이 추악한 정리해고, 비정규직화 세상을 허물어버리겠다는 마음으로 나아 갔으면 좋겠다. 그런 용기를 세워가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4차 때 최대한의 힘이 모아져야 한다. 저들의 무시와 탄압을 넘어 마지막 싸움으로 힘차게 달려 갈 수 있게, 부탁드린다. 이렇게 어렵 게 만들어가는 이 민주주의의 광장을 들녘처럼 넓혀주시기를, 광야처럼 펼 쳐 주시기를, 산맥처럼 세워주시기를 모든 분들게 간곡하게 부탁드린다. 물론 우리는 그 수에 연연하지 않고 즐겁게, 신나게, 내일을 믿고 그 길 로 달려 갈 것이지만 말이다.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42 -


2011년 3분기 회비와 후원금 회비를 납입하고도 이름이 빠져있는 회원들이 계시면 사무국으로 연락 을 주세요. 정정토록 하겠습니다. 회비는 매월 25일 자동출금됩니다.

[농협] 평택평화센터 205018-51-150146

■ 6월 강 미 강상원 고동민 고용수 고이지선 공병식 구중서 권기순 길 윤형 김기성 김동수 김득중 김래현 김미희 김상용 김승민 김양현 김영기 김영제 김옥순 김용기 김용한 김일주 김정혁 김정호 김주성 김철희 김태연 김택균 김학수 김한수 김해규 김현화 김형주 김형철 김효순 김훈 김훈태 남기정 류연섭 문두식 문병희 문종식 문진호 박대균 박대림 박래군 박미연 박민주 박상환 박은주 박정경수 박정 용 박진 박호림 서윤하 서정호 성영순 송영민 송치용 신동기 신미 정 신성목 신용조 심재환 양동규 양요순 양용동 양정희 양혜정 엄 두화 오경아 오두희 오지총 원금란 원성재 원치은 유오가현 유승현 유재승 이경옥 이경화 이근랑 이나영 이봉녀 이상규 이상훈 이성호 이원규 이연수 이은우 이자영 이정석 이종규 이종수 이종필 이종호 이창근 이철형 이하연 이한철 이현주 이호성 이효순 이희경 이희숙 임대산 임상길 임상수 임은주 임창호 정기천 정선영 정순신 정영신 정윤빈 정진태 조명자 조정묵 조종훈 천정아 최광수 최민준(아키오) 최원준 하은이 한기원 한보석 한희숙 홍순기 황순식 _6월회비 납 부인원 총138명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43 -


■ 7월 강 미 강상원 고동민 고용수 고이지선 공병식 곽윤정 곽지숙 구 중서 권경숙 권기순 길윤형 김기성 김기홍 김동수 김득중 김래현 김미희 김상완 김상용 김선희 김승민 김양현 김영기 김영옥 김영제 김옥순 김용기 김용한 김일주 김정권 김정혁 김정호 김주성 김철희 김태연 김택균 김학수 김한수 김해규 김현화 김형주 김형철 김효순 김훈 김훈태 남기정 남상경 류연섭 문두식 문병희 문종식 문진호 박대권 박대균 박대림 박래군 박미연 박민주 박상환 박은주 박정경 수 박정용 박진 박호림 서윤하 석권호 성영순 송영민 송치용 신동 기 신미정 신성목 신용조 심재환 양동규 양미란 양요순 양용동 양 정희 양혜정 엄두화 오경아 오두희 오지총 원금란 원성재 원치은 유오가현 유승현 유재승 이경옥 이경화 이근랑 이나영 이봉녀 이상 규 이상훈 이선화 이성호 이원규 이연수 이유빈 이은우 이자영 이 정석 이종규 이종수 이종진 이종필 이종호 이창근 이철형 이하연 이한철 이현주 이호성 이효순 이희경 이희숙 임대산 임상길 임상수 임은주 임창호 정기천 정선영 정순신 정영신 정윤빈 정진태 조명자 조정묵 조종훈 지재호 채한석 천정아 최광수 최민준(아키오) 최원준 하은이 한기원 한도숙 한보석 한희숙 허은좌 홍순기 황순식 _7월 회비 납부인원 총148명

■ 8월 강 미 강상원 고동민 고용수 고이지선 공병식 곽윤정 곽지숙 구 중서 권경숙 권기순 길윤형 김기성 김기홍 김동수 김득중 김래현 김미희 김상완 김상용 김선희 김성경 김승민 김양현 김영기 김영옥 김영제 김옥순 김용기 김용한 김일주 김정혁 김정호 김주성 김철희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44 -


김태연 김택균 김학수 김한수 김해규 김현화 김형철 김효순 김훈 김훈태 남기정 류연섭 문두식 문병희 문종식 문진호 박대균 박대림 박래군 박미연 박상환 박은주 박정용 박진 박호림 서윤하 성영순 송영민 송치용 신미정 신성목 신용조 심재환 양동규 양미란 양요순 양용동 양정희 양혜정 엄두화 오경아 오두희 오지총 원금란 원성재 원치은 유오가현 유승현 유재승 이경옥 이경화 이근랑 이나영 이봉 녀 이상규 이상훈 이성호 이원규 이연수 이유빈 이은우 이자영 이 정석 이종수 이종진 이종호 이창근 이철형 이하연 이한철 이호성 이효순 이희경 이희숙 임대산 임상길 임상수 임은주 임창호 정기천 정선영 정순신 정영신 정윤빈 정진태 조명자 조정묵 조종훈 지재호 채한석 천정아 최광수 최민준(아키오) 최원준 하은이 한기원 한도숙 한보석 한희숙 허은좌 홍순기 황순식 _8월회비 납부인원 총138명

■ 12+1운동에 참여해주신 회원 이종진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45 -


이 달의 추천도서 원자력발전소, 10년마다 폭발한다면? 또래 죽음 보면서 죽음 기다리던 <체르노빌의 아이들> 히로세 다카시가 쓴 <체르노빌의 아이들> 은 바로 1986년 4월 26일 새벽 1시 30분부 터 17일째가 되는 5월 13일까지 세로프 가 족에게 일어난 일을 소설형식으로 쓴 책입니 다. 세로프가족은 원자력 발전소에 간부로 근 무하는 안드레이와 아내 타냐, 그리고 아들 이반과 딸 이네사인데, 작가인 히로세 다카시 는 마치 이들의 일기장을 들춰보듯이 <체르 노빌의 아이들>을 쓴 듯 합니다. ▲프로메테우스(8000원)

이반과 이네사의 아버지인 안드레이는 기술간부로서 체르노빌 사고 직 후 결사대의 일원으로 뽑혀 발전소 뒤처리 작업 중에 사망해 '영웅' 칭호 를 받습니다. 폭발사고가 일어난 발전소로 돌아가는 안드레이는 이미 자신 의 죽음을 예측하고서도 사고 수습을 위해 목숨을 걸고 떠나게 됩니다. 한편, 사고를 축소 은폐하기에만 급급한 당국에 의하여 아무런 보호조 치도 받지 못한 채 그의 아들 이반과 딸 이네사는 격리 수용된 채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아이들을 찾아 헤매는 타냐에게도 사방으로부터 죽 음의 그림자가 옥죄어 다가옵니다. 핵폭발로 시력을 잃고 핵방사능에 오염된 아이들은 옆 침대의 또래 아 이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는 공포의 시간 을 보내야 합니다. 아무리 잊으려고 해도 자꾸만 떠오르는 발전소가 폭발 하던 모습과 동물들과 사람들에게 일어난 무서운 장면이 쉽게 사라지지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46 -


않습니다. "사실상, 의사나 간호사보다 아이들의 공포심이 백배는 더 컸다. 이 병 원으로 오기 전에 어떤 아이는 동물의 시체를 밟았고, 어떤 아이는 눈앞에 서 부모가 피를 토하는 모습을 보았다. 또 농민들이 강제로 피난하는 모습 도 보았고, 검문소에서는 잔인하게도 부모와 생이별을 해야 했다. 한꺼번 에 이런 끔찍한 일들을 겪게 된 아이들은 이제 마지막으로 감옥 같은 병 원 안에서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본문 중에서) 아이들 주검은 더욱 참혹합니다. "그녀가 내민 팔에는 이네사보다 어린 일곱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사내 아이가 안겨 있었다. 드문 드문 남아 있는 머리카락, 얼굴 전체에 뒤덮여 부풀어 오른 검붉은 반점 무늬들이 그 아이의 고통스러운 최루를 말해주 고 있었다. 목덜미에서부터 가슴까지 제 손으로 쥐어뜯은 손톱자국이 무수 하게 남아 있었다."(본문 중에서) 햇빛·공기·물·바람 모두 오염... 죽음의 땅이 된 체르노빌 그러나 정말 이것뿐이었을까요? 실제로 체르노빌에서는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작가인 히로세 다카시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더 큰 피해 와 공포로 가득하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100㎞가 떨어진 키예프시에 사는 사람들 은 큰 사고가 아니다, 안전하다는 당국 발표를 믿었지만, 사고 후 보름이 지나고 나자 당국의 태도가 바뀌기 시작합니다. 키예프로 흘러 들어오는 드네프르 강물이 방사능에 오염되었으며, 매일 머리를 감고, 건물의 먼지 를 털어내고, 세척하고, 도로에는 물을 뿌리는 등 필사적으로 거리를 씻어 냈습니다. 여자와 아이들은 건물 밖으로 나와서도 안 되고 일광욕을 할 수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47 -


도 없다는 경고가 이어집니다. 체르노빌 발전소의 폭발이후 결국 햇빛, 공기, 물, 바람 중에서 어느 것 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 습니다. 죽음의 땅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외출에서 돌아오면 신발 바 닥을 닦고, 코를 풀고, 온몸의 먼지를 털어내고 나서 집으로 들어가는 '법' 이 생겼지만, 사람들을 안전하게 보호해주는 방법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체르노빌에서 폭발이 일어나던 날, 핵구름은 기세 좋게 성층권까지 올 라가 그곳에서 천장에 부딪힌 수증기처럼 사방으로 퍼져 나갔으며, 핵구름 은 성층권을 둘러싼 하나의 막을 형성하였으며, 지구는 이미 '죽음의 재'로 완전히 포위당하였습니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의 희생자는 이반 과 이네사 그리고 프리프야 트의 아이들만이 아니었습 니다. 우리 모두는 죽음의 재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로 울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 후쿠시마 원전 항공사진

주변 사람들 대부분은 그

위험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그 이유는 작가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방사능 낙진의 위험성은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니 인간 의 상상력이 도저히 밀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인간이 신에 의해 창조된 생물이라면, 마땅히 신이 창조한 세계의 현상에 대해서 자연적으로 인식하 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이 사고는 신이 창조한 세계의 현상이 아니었다. 바 로 가장 신비한 신의 창조물인 원자를 파괴하는, 즉 신이 창조한 세계를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48 -


파괴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원자력 발전소가 꼭 있어야 한다고요? 신이 창조한 세계를 파괴하는 방사능의 위험을 제대로 알지 못한 어른 들은 지금부터 30년쯤 전, 내가 이 책에 나오는 이반 또래였을 무렵 민방 공훈련이 있던 날이면 낡은 교실 책상 아래로 들어가서 눈을 가리고 비닐 봉지를 뒤집어쓰고 원자폭탄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도록 가르쳤답 니다. 원자력 발전소의 폭발사고 가능성에 대하여 작가는 이런 위험한 예측으 로 우리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세계에 건설될 원자력 발전소는 수천 기로, 1기당 사고의 위험 성은 2만년에 한 번이라고 나와 있다. 얼핏 읽어보면 2만년에 한 번이 극 히 적은 것 같지만, 만약 2천기의 원자력 발전소가 있다고 계산한다면 10 년에 한 번 사고가 일어나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는 의미가 된다."(작가 의 말 중에서) 원자력이 가장 안전하고 깨끗하다고 믿고 선전하는 어른들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는 책일 듯 합니다. 그러나 작가의 바람처럼 원자력발전소가 꼭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속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인류의 희망과 미래를 위 하여 그들이 다시 한 번 생각하고 토론할 수 있도록 돕는 좋은 책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49 -


회원 인터뷰-1 회원이자 복직싸움을 하고 있는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을 만나보기로 했 다. 추석을 바로 앞둔 9월 9일 쌍용정문 앞에서 김득중, 고동민 두 사람을 만났다. ●강미 : 지금 밖이 분주한데 오늘 무슨 일 있어요? ◯김득중 : 쌍용자동차 무급 자(월급없이 기약없이 쉬고있는 노동자 들)들이

오늘 처음으로 결의대회

를 해요. 결의대회 후 면담한다 ▲ 고동민회원(왼쪽)과 김득중회원(오른 는 소식도 들었는데 날씨가 좋 쪽)

지 않아 걱정입니다.

●강미 : 눈이 많이 충혈되셨는데? ◯김득중 : 안과를 다녀왔는데, 다락지를 떼어내느라 아침부터 고생 했 습니다. 쉬어야 낫는다고 하네요. ◯고동민 : 술을 안마셔야 해요. 몸 아프고 나서 술을 안먹는다고 되나? 아프기 전에 술을 안먹어야지! ◯김득중: 요즘 같은 세상에 어찌 술 안먹고 살수 있나? 하하-●강미 : 추석은 어떻게 보낼 계획인가요? ◯김득중 : 추석 당일만 집이랑 처갓집 다녀올 생각입니다. 성환이랑 청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50 -


북이거든요. 계속 일인시위를 하니까 추석이라고 안 나올 수가 없어요. ◯고동민 : 추석당일날 일인시위를 할 생각이었는데 다른 연대동지들이 한다고 해서 집에서 쉴 생각입니다. 어머님 토요일 부산에서 올라오시죠. 제가 차례를 모시거든요. 그리고 공장앞으로 나와야죠. 일인시위를 계속 하니까 비워둘 수가 없어요. ●강미 : 심리치유 이후에 어떤가요? 시간이 좀 지났는데.. ◯김득중 : 아주 많이 좋아졌어요. 심리치유 최대의 수혜자가 접니다. 아내랑 많이 좋아졌어요. ◯고동민 : 8주받고 변하진 않아요. 왜냐하면 조건이 변하지 않았기 때 문에. 변해야 한다는 마음이 생겨요. 이해를 해야겠구나, 이해를 할 수 있 는 폭이 생기는구나. 서로 속마음을 들어보니까 변해야 겠구나 심리치유 이후에 이상하게 경찰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어요. 또하나는 대기업노동자에게 ‘우리’가 없었어요. 파업과정 속에서 우리가 되었어요. 하지만 파업이 끝나고 나서 개별 흩어졌고. 나가 되고, 내가 살 려고 하다보니 겪는 갈등이 고통과 아픔이 되었죠. 그것이 상처로 돌아왔 고, 심리치유 통해 다시 우리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강미 : 평화센타 회원들이 여러 부류의 회원들이 많은데 마음이 있는 것만큼 무얼 해야 할 지 모르고,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무얼 하면 좋을까 요? ◯고동민 : CMS 해주세요. 독립운동 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이 독립자금 이었대요. 딴거 없고 재정사업, 지원 필요합니다. 그리고 페이스북이나 트 위터 하시는 분이 계시면 응원글 남겨주기. 힘이 많이 됩니다. ●강미 : 어려운 과정을 겪고 있는데 최근 3개월 가장 좋았을 때. 기뻤 을 때. 감동받았을때는? (이 질문이 얼마나 어리석은 질문이었는지 후회했다.아직도 공장으로 돌아가지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51 -


고 울부짖고 있는 이들에게 기쁨은 너무 먼 곳에 있었다.)

◯김득중 : 어제 일도 잘 기억이 안나는데.... 좋았던 것은.. 아내가 간부한다니까 이왕 할거면 제대로 잘해라. 욕먹지 말고. 정말 고맙더라구요. ◯고동민 : 요 근래에 좋았던 적은 없었던것 같아요. 서울에서 13일동 안 4차 희망버스 투쟁했을 때 근래에 가장 같이 싸움을 했던 재능이나 콜 트콜텍 동지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싸움을 하고 있다. 어떻게 그렇게 하냐고 물으니 뭐있냐 그냥 하는거지. 애초에 마음을 간직하는 것이 중요 하다고 얘기하더라구요. 감동받았어요. ●강미 : 마지막으로 한마디 만 해주세요. ◯고동민 : 파업 당시 공장앞 에서 아비규환의 상태였습니다. 외로움과 고립감을 같이 느낀 과정있었고, 불만과 자괴감도 생겼을 겁니다. 이후 그 싸움에 졌습니다. 그 싸움에서는 졌으나 아직 싸움이 끝난 건 아닙니다. 힘들어 하는 대부분은 죽도록 싸웠는데 이게 뭐야 하는 실망감, 좌절때문이죠. 하 지만 아직도 실망하지 않고 희망을 만들어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습니 다. 그렇기 때문에 공장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우리를 지지해주고 함께 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김득중 : 이래서 내가 동민이랑 같이 인터뷰 안해. 얘기를 너무 잘해 서.. ◯고동민 : 그래도 형은 잘생겼잖아. 난 화면에 안나와. ㅋㅋ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52 -


함께 읽는 시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53 -


회원 인터뷰-2 지난 8월 운영위원회에서 소식지 내용을 논의하던 중 새로운 제안이 있 었다. 평화센터를 튼튼히 받치고 있는 조용한(?) 회원들을 만나 그들이 생 각하는 평화로운 세상, 그들이 평화센터에 바라는 것을 들어보고 함께 나 누자는 의견이었다. 이번 호에는 양미란, 노완호 두 회원을 만났다.

■ “평화센터 하면 ‘민들레’가 떠올라요” -꽃집 사장님 양미란(40) 회원 양미란 회원은 지난해 6월 회원에 가입했다. 만 1년이 갓 넘은 새내기 회 원이다. 지난 9월 23일 양 회원을 만 난 곳은 고덕면 궁리 태평아파트를 조 금 지나 고속철길 옆에 있는 ‘양미란 가든 앤 플라워’에서였다. 그녀는 꽃집 안팎을 오가며 꽃에 물 을 주기도 하고 화분을 손보며 분주했 다. “꽃집도 잔일이 많죠?” “그렇죠. 사람들이 꽃집하면 ‘꽃집 아가씨’를 떠 올리고 향기로운 꽃과 늘 함께 하는 환상을 가지고 있지만 삶의 현장은 마찬가지죠.”라고 대꾸하며 차를 내온 다. “요즘에도 적지 않은 여성들이 꽃집 개업문의를 해요. 이분들에게 저는 ‘체력이 좋고, 젊고, 전문과정을 거치고, 소비자 흐름을 읽는 안목’이 필요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54 -


하다고 하죠. 무작정 덤벼들었다가는 실패하기 쉽습니다.”라고 덧붙인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꽃을 좋아했는데 결혼 후 천안연함대학에서 화훼디 자인을 전공한 뒤 2007년 아파트 상가에 꽃집을 열었다. 2년 뒤인 2009 년에 현 위치로 확장 이전했다. 회원 가입은 오빠 양용동 운영위원의 권유가 계기였지만, 사실 그녀가 사회의식에 눈을 뜬 것은 1999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20살이 되던 해 1991년. 그녀가 다니던 안중제일교회를 중심으로 오래 전 송탄의 진보적인 풍물단체인 ‘얼쑤’와 노조 등 여러 단체가 모여 연합 합창단을 만들어 활동을 하면서 세상의 부조리한 본 모습을 보게 됐다. 1994년에는 김용한, 윤현수, 채한석씨 등이 중심이 돼 활동한 ‘미군기지 평택이전을 결사반대하는 시민모임’에도 함께 했다. 양미란 회원은 오래 전 단체 명칭을 정확하게 기억했다. “(단체 활동은) 제가 사회적으로도 성인이 될 수 있었던 계기였어요. 지금도 가게가 아니 라면 평화센터 활동에도 열심히 할텐데 아쉽게 생각해요.” 그녀는 회원가입 후 센터 공식행사에 참여한 적이 없다. 혼자서 꽃집을 운영하다 보니 시간을 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늘 미안한 마음이라고 한 다. 하지만 기대하는 것은 적지 않다. 문화적인 인프라기 부족한 지역인 만 큼 시민들이 참여해 같이 즐길 수 있는 문화행사에 좀 더 관심을 가져주 었으면 하고, 센터가 더 커져 마을모임이나 주부들도 같이 할 수 있는 소 모임이 다양화 됐으면 한다. 평화센터 이미지와 잘 어울 리는 꽃을 하나 꼽아 달라 했 더니, ‘민들레’가 떠오른단다. ‘민들레꽃처럼 살아야 한 다~’라는 노랫말에서와 같이 “밟아도 다시 살아나는 끈질긴 민중처럼 평화를 위협하는 것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55 -


들을 상대로 끈질기게 싸움을 하는 희망센터가 되면 좋겠어요.” 마지막 질문. “꽃을 잘 사는 방법은?” “꽃을 받을 사람이나 이벤트, 좋 아하는 꽃, 색깔 등을 알려주고 나머지는 주인에게 맡겨주세요. 괜히 아는 척 하거나 꼬치꼬치 까다롭게 해서는 오히려 좋은 결과를 얻기 힘들죠. 우 리 인생도 그렇지 않나요? ▶ <양미란 가든 앤 플라워> 고덕면 궁리 85-8 전화 611-1475 블로그 http://blog.naver.com/mi47

■ “원전! 당장 가동 중단해야합니다” -의사 선생님 노완호 회원 사실 좀 무서웠습니다. 외모가. ‘인터뷰 잘 될까’ 우려도 했습니다.^^ 건조한 성격의 의사들을 적지 않게 보았기에. 그래서 인터뷰 장소를 신 중하게 골랐습니다. 조개터 에 있는 한 삼겹살집에서 노완호 회원을 만났습니다. 사실 밥 때라 출출하기도 했고요. “SNS 사용에 익숙하신가 봅니다.” 첫 대면이라 간단한 인사가 오간 후 에 물었다. 마흔 다섯 살 40대 중반인 그는 요즘 페이스북에 그의 얼굴을 올리는 일이 잦다. “올해 대한민국의 4대 담론은 원전, 4대강, 강정마을,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아닌가요? 그중 주로 원전 사용의 위험성을 알리려고 하는 것인데, 저처럼 개인이 SNS가 유용한 수단이 되고 있죠.” 그때부터였습니다. 이후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56 -


두 시간 동안 그에게서 원전에 관한 주입식 교육을 받은 것이. 그는 올해 회원가입을 했다. 강상원 소장이 제안한 ‘녹색평론’ 모임에 참석한 것이 계기가 됐다. 큰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내고, 거기서 한 학부모에게서 녹색평론을 소 개 받고는 바로 환경문제에 빠져들었다. “녹색평론 모임이 평택에서 만들어졌을 무렵, 일본에서 지진과 원전사 고가 발생했습니다. 이 무렵 페이스북을 개설해 원전의 위험성을 알리기 시작했고, 비슷한 시기에 센터를 통해 평화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 다.” “환경과 평화는 어느 지점에서 만나고 소통한다고 보나요?” “사실 같은 개념이 아닐까요? 오스트리아의 철학자이자 문화비평가인 이반일리치는 ‘평화’에 대해 권력자(중심부)는 ‘평화의 유지’를 위해 개발 을 주장하고, 민중(주변부)은 ‘평화로이 내버려두어져 있기’를 바란다고 말 했는데요, 이 ‘민중의 평화’가 바로 환경운동의 전부라고 봅니다.” “어제(22일) MB가 유엔 연설에서 ‘원전 확대 방침’을 천명했는데 열 좀 받았겠네요?” “정신 못차리는 거죠. 다들 재검토, 축소, 취소하고 있는 분위기에서 한 마디로 뻘짓 한거죠. 우리나라는 대통령 잘못 뽑은 수업료를 톡톡히 내야 할 것입니다..” 그후 그로부터 한참 원전이야기를 들었다. “원전은 석유를 대체할 미래 에너지원이 될 수 없다. 우라늄 사용량은 향후 70년 정도 밖에 안되면서, 현재 일본이 보유한 플루토늄만으로 인류 3000번 멸망시킬 수 있는 등 인류에게 가져올 재앙은 상상할 수 없을 정 도로 크기 때문이다. 전기에너지·태양열도 발전에 석유가 필요하다는 점에 서 대체에너지라 할 수 없다. 풍력은 비싸다. 새로운 에너지원을 찾을 동 안 400년 정도 사용 가능하고 생산원가가 저렴한 PNG(파이프 천연가스) 가 당장의 대안이 될 수 있다. 또...”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57 -


화제를 평화센터로 돌렸다. 그는 한 동안 조용하게 살았는데 세상으로 나오게 이끌어 준 것이 평화센터였다고 한다. “평화센터에 바라는 점이요? 음~ 원칙을 놓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정부 나 지자체의 보조금을 받기 위해 기웃거리지 않았으면 싶고요, 독일 녹색 당처럼 쉽게 흔들리지 않는 가치·신념을 가진 ‘핵(=사람)’을 키우는 그런 단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회원들의 역량이 충분한 만큼 외연을 넓히려는 노력도 더 적극적으로 하면 합니다. SNS 처럼 회원간 네트워크가 활성화 되면 가능할 것 같아요.”

대학을 13년 만에 졸업한 내공을 가졌지만 오래 기간 강호와 담을 쌓고 지냈다고 한다. 합정동에 있는 성세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과장인 그는 평택 생활 8년 만 에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대추리 사태 때 속은 많이 상했지만 보 탬이 되지 못한 ‘부채의식’을 센터를 통해서 풀고 싶은 그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가 말하는 ‘녹색과 평화이야기’를 회원강좌로 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지면상 못 담은 이야기가 많다. ◘ 취재·사진 이철형 운영위원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58 -


새식구를 소개합니다.

노완호회원은 성세병원에서 마취과 과장으로 근무하고 계 십니다. 녹색평론 독자모임을 통해 평화센터를 알게 되었고 최근 후쿠시마원전사고로 촉발 된 원자력(핵)문제에 대해 그 누구보다 깊은 관심을 갖고 문

평화센터의 가족이 되신 신

제점을 알리고 계십니다.

입회원여러분을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김성경회원은

오래전부터

회원을 가입하려했지만 기회가

김영옥회원은 죽백초등학교

닿지 않았다면서 직접 사무실

에서 특수학급 교사로 근무하

을 찾아오셔서 회원가입을 해

고 계십니다. 김영옥회원의 멘

주셨습니다. 송탄에서 근무하고

토는 같은 학교 교사이신 박미

계시며 일과후에는 저소득층

연 선생님입니다.

아이들을 위한 무료공부방을 운영하고 계신 따뜻한 선생님 이십니다.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59 -


이왕이면!!!! 회식을 하실 때, 축하 화환이나 조화가 필요하실 때, 신문과 우유를 신청할 때, 상조가입을 고민하실 때, 인쇄나 플랭카드등 각종 기획물을 제작하실 때 이왕이면 회원들이 운영하고 있는 업체를 이용해주세요~ 회원가게 강추합니다!!!

박가네해장국 (조개터 평택시민신문사 1층) 박대균 회원 ☎ 019-355-4203

한겨레신문 구독 및 파스퇴르우유

신청

김훈 회원 ☎ 010-9060-4421

각종 화환 및 조화

양미란 Gardon & Flower 양미란회원 ☎611-1475 / 010-5037-3488

부모사랑 상조 임창호 회원 ☎ 010-5321-8354

플랭카드 및 각종 기획물 호연지기 ☎ 611-4741

아! 그집 쭈꾸미볶음 (한국전력 뒤) 원치은 ☎ 658-0789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60 -


도전~ 평화의 종을 울려라! 지난 10호 ‘도전 평화의 종을 울려라’의 당첨자는 아쉽게도 없었습니다. 11호 특집 퀴즈를 냅니다. 정답을 010-4766-0961(강미 운영위원)로 보내 주신 정답자중 2명을 추첨하여 이시우선생님의 사진이 담겨있는 엽서(10 종)를 드립니다. 기대하세요~

[문제] 1. 2011년 3분기 (7월-9월) 동안 평화센터에 새식구가 된 신입회 원들은 몇 명일까요?

2. 일본 히로시마 상공에 핵폭탄이 투하된 날은 언제일까요?(년, 월,일)

3. 10월 8-9일 희망버스행사가 준비되고 있습니다. 이번이 몇 번 째 희망버스 행사일까요?

4. 해군기지 건설예정지인 강정포구에는 거대한 바위덩어리가 있 습니다. 이 바위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61 -


광고

+1

12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평택평화센터에서는 회원들이 내주시는 회비로 운영하고 있습 니다. 12개월 납부하는 회비에 1개월분의 회비를 더 내는 ‘12+1 운동’과 회비 증액운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참여하실 회원들 께서는 연락주세요~

녹색배달부를 모집합니다. 1년에 4번 발송되는 소식지와 평화센터에서 발송하는 각종 우편 물을 주변 회원들에게 직접 배달하는 (걸어서 또는 자전거를 타고, 그러나 자동차로는 안됩니다) 녹색배달부를 모집합니다.

지난7호 신입회원으로 소개되었던 류연섭선생님께서 지난 9호 소 식지부터 녹색배달부를 자원하고 비전동에 살고계신 회원집을 방문 하며 직접 소식지를 배포하고 계시고, 11호부터는 고덕에서 살고있 는 문두식회원도 새로운 녹색배달부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만나게 되면 반갑게 맞이해주세요.

농민약국 개국!!

‘건강한 사회, 건강한 농민’

농민약국의 수익금은 평택지역 농민들의 건강권을 위해 사용됩니다.

[위치] 안중오거리에서 읍사무소방향으로 50m 한양신경외과 옆 [문의] 684-0445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62 -


평화센터의 활동을 소개하는 리플렛을 제작하였습니다. 창립부터 지금까지의 주요활동을 담아 재생용지를 이용하여 제작하였습 니다. 필요하신 회원이 계시면 어디든 달려가 전해드리겠습니다. 가족,친구,직장동료에게 평화센터를 널리널리 알려주세요.

공장으로 돌아가기위한 투쟁을 벌이고 있는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를 후원합니다.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를 후원하는 방법은 아래의 후원계좌에 직 접 입금하거나 자동이체하는 방법과 매월 약속된 금액을 후원하는 CMS이체방법이 있습니다. [문의] 651-4471 후원계좌 (농협)351-0156-5171-53 / 김남오

[쌍용자동차 대리운전]

1600-9408

(지금 입력해주세요)

(*수익금은 쌍용자동차해고노동자들에게 지원됩니다)

평택평화센터소식지 11호

- 63 -


Turn static files into dynamic content formats.

Create a flipbook
Issuu converts static files into: digital portfolios, online yearbooks, online catalogs, digital photo albums and more. Sign up and create your flip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