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로 보는 한국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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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로 보는 한국전쟁

KOREAN WAR IN COLOR

“...혼자 지프차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아름다운 시골마을의 풍경을 많이 봤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끔찍한 전쟁이 벌어지고

저자소개

바디상 수상 기자 존 리치는 1차 세계대전 이후 20세 기에 미국이 참전한 모든 전쟁에 군인으로 참가하거

나 기자로 종군했다. 1939년 미국 메인주 어거스타시의 일 간지 「케네벡 저널」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한 그는 1942년 해군에 입대한 후 해병대로 배속되어 2차 대전 동안 태평 양 마샬제도의 콰잘란 해초, 사이판과 티니안 섬, 일본의 이오지마 섬 등 네 차례의 상륙작전에 참가한다. 전쟁이

존 리치

끝난 뒤에는 미국 통신사 인터내셔널 뉴스 서비스(INS)에

지음

입사하여, 도쿄 특파원으로 발령 받는다. 거기서 그는 일 본 점령군 사령관 맥아더 장군을 인터뷰하고, 인간선언을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어요.

한 히로히토 일왕이 일본 지방 순회를 할 때 동행취재를 하

그 나무와 언덕, 강물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기도 한다.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도쿄에 있었던 그는 발발 첫주

- 작가 인터뷰 중에서

한국에 도착, 이후 3년 동안 전쟁을 보도한다. 1950년 12월 INS에서 NBC 뉴스로 소속을 옮긴 그는 미국 기자 중 가장 오랜 기간 동안 한국전쟁을 취재한 종군기자다. 한국전쟁이 휴전으로 종결된 후, 존 리치는 미 외교협회 연구원으로 1년간 있다가, 1954년 유럽으로 발령 받아 4년

존 리치

동안 NBC 베를린 지국장을 역임하고, 모스크바와 파리를 거친 뒤 아내 및 네 자녀와 함께 도쿄로 다시 돌아간다. 미 국이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게 되자 도쿄를 근거지로 베트 남을 왕래하며 10년 동안 전쟁을 보도한다. 그후 도쿄 주재 아시아 담당 선임기자로 활동하다가 NBC

지음

정가

뉴스의 모기업인 RCA의 부회장을 역임한 뒤 은퇴하여 현재 는 메인주 해변가 집에서 부인과 함께 살고 있다.

6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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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DESIGN 정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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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로 보는 한국전쟁 Korean War In Color 존 리치 사진집 초판 1쇄 발행 2010년 5월 10일 발행인 김형근 기획 편집 이진혁 디자인 정현영 영업마케팅 이민경, 최운영 인쇄처 이펙P&P 발행처 서울셀렉션(주) 등록 2003년 1월 28일 (제1-3169호) 주소 서울시 종로구 사간동 105-2 출판문화회관 지하1층 (우 110-190) 전화 (02) 734-9567 팩스 (02) 734-9562 전자우편 publisher@seoulselection.com 홈페이지 www.seoulselection.com Copyright © 2010 by John Rich 정가 60,000원 ISBN 978-89-91913-65-3 06910 ※ 이 책은 서울셀렉션(주)가 저작권자와의 계약에 따라 발행한 것이므로 본사의 서면 허락 없이는 어떠한 형태나 수단으로도 이 책의 내용을 이용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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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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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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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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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의 얼굴들

1

폐허의 그늘

32

사선射線에서

60

전쟁과 무기

120

전쟁 속의 일상

150

지난했던 휴전협상

184

저자 소개

221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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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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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기억되는 존재가 되기 위해 살아간다.” - 안토니오 포르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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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ries & Faces 기억 속의 얼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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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시작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북한이 38선 전역에 걸쳐 기습적인 공격을 감행함으로써 참혹한 민족상잔의 전쟁이 시작된다. 소련제 탱크와 전투기를 앞세운 북한군은 사흘 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이에 남쪽으로 퇴각해야만 했던 국군과 미군은 지연전을 펼치며 전열을 재편하려 하지만 결국 8월에는 낙동강전선까지 밀려나게 된다. *한 소년이 추락한 북한 전투기의 잔해 위에 올라 손을 흔들고 있다. 이 소련제 야크기는 전쟁 초기 잠깐 맹위를 떨치나, 유엔군은 곧 압도적인 공군력으로 한반도 상공의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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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의 활약 미 군사고문단으로부터 국내치안유지와 38선 경계를 주목적으로 훈련 받았던 국군은 소련의 지원을 받은 북한의 침공을 막아낼 전투 경험이나 화력이 부족했고, 결과적으로 전쟁 초반 뼈아픈 패배를 경험한다. 그러나 계속되는 교전 경험을 통 해 국군의 전투력은 현격히 향상되어 갔고 곧 유엔군의 주력군으로 자리매김 한다. 한국전에 참전한 국군 병사는 60만 명 에 달하는데, 이들 중 137,899명이 전사했고, 450,742명이 부상을 당했다. *국군 부대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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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갑전투 한국은 산이 많고 전쟁 당시 포장된 도로가 거의 없어 기갑전투에 부적합한 지형이었지만, 탱크는 한국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2차 세계대전시 독일군 을 상대로 맹위를 떨쳤던 소련제 T-34 탱크는 한국전쟁 초기 전장을 압도한다. 탱크가 없던 국군과 미군은 남쪽으로 진격해 내려오는 북한군 전차부대에 대항할 화력이 부족했다. 그러나 곧 신형 대전차 무기와 함께 M4 샤먼, M26 퍼싱, M46 패튼, 크롬웰, 센츄리온 등 강력한 전차들이 전장에 배치된다. 지형 적 특성상, 한국에서 2차 세계대전 때처럼 전차부대의 대규모 전면전은 없었다. 대신 탱크는 보병부대의 지원 화력으로 크나큰 활약을 한다. *M46 패튼 전 차 위에서 미군 병사들이 손을 흔들고 있다. 이를 구경하고 있는 아이들. 회전포탑 뒷부분의 밝은 색 천은 공중에서의 아군 식별을 위한 대공포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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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수복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으로 교두보를 확보한 유엔군은 서울을 향한 진격을 시작한다. 미 제1해병사단(국군 제1해병연대 배속)과 미 제 7보병사단(국군 독립 제17연대 배속)은 각각 서울의 서쪽과 남쪽에서 공격해 들어가 2만여 명의 북한군 병력과 격렬한 전투를 벌인다. 결국 9 월 28일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인천상륙 후 2주일, 북한군에게 피탈 당한 지 3개월 만에 수복된다. 그러나 중공군의 참전으로 서울은 다음 해 1월 다시 공산군 측으로 넘어갔다가 3월 15일 재탈환 된다. *1951년 봄, 재탈환 된 서울 시청 앞에 어린이들이 서 있다. 사진으로는 피해 상태가 경미한 듯 보이지만, 연희고지 등 북한군의 저항이 극렬했던 일부 지역은 유엔군의 집중포격으로 폐허가 되었다.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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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Country in Ruins 폐허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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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서울을 탈환하는 과정에서 폭격으로 파괴된 기차들. 철로 끝으로 서울역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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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가나가와(神奈川) 현 소재의 아름다운 구게누마(鵠沼) 해변에서 수영을 마치고 돌아온 어느 일요일 아침이었다. 미군 점령기의 일본에 주재하던 몇몇 미국 특파원들은 폭격의 피해 를 입지 않았던 구게누마 해변 근처의 휴양용 별장을 얻어 함께 쓰고 있었는데, 그날은 「시카 고 데일리 뉴스」의 케이즈 비치Keyes Beech 기자와 나, 이렇게 둘이 별장에 묵고 있었다. 수영을 하고 돌아와서 케이즈가 먼저 일본식 나무 욕조의 뜨뜻한 물에 몸을 담갔을 때, 벽에 걸려있 던 전화기의 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들고 ‘모시모시’라고 답하자, 내 목소리를 알아들은 상대 편이 다급히 외쳤다. INS의 상관인 하워드 핸들만Howard Handelman이었다. “리치, 당장 도쿄로 돌 아오게! 북한이 남한을 침공했어!” 케이즈에게 이 소식을 전하자, 그는 곧바로 욕조에서 뛰쳐 나왔고, 나는 뜨끈한 물에 몸을 녹일 기회를 포기해야 했다. 우리는 곧장 지프차에 올라 도쿄 로 출발했다. 당시 미국 언론사들은 점령군이 마련해 준 라디오도쿄 빌딩에 사무실을 두고 있었다. 평상 시 밤이 되면 문을 닫던 INS 사무실에 그날 밤 간이침대가 놓여졌고, 그 간이침대는 한국전쟁 이 끝날 때까지 그 자리를 계속 지키게 된다. 그리고 그날부터 라디오도쿄 빌딩에 있던 모든 언론사 사무실들이 24시간 체제로 운영되었다. 해리 투르먼 미 대통령은 더글라스 맥아더 장 군에게 대응 조치를 취할 것을 지시했고, 맥아더 장군은 우선 한국에 거주 중이던 미국인들의 대피 작전을 직접 시찰하기 위해 한국으로 떠나는데, 이때 미국 3대 통신사의 책임자 세 명— AP의 러셀 브라인즈Russel Brines, UPI의 어네스트 호버레트Earnest Hoberecht, INS의 하워드 핸들만 Howard Handleman

—을 함께 데려간다. 시찰에서 돌아온 핸들만은 내게 한국으로 갈 것을 지시했고,

나는 일단 기차를 타고 후쿠오카로 가서 부산항을 향해 출발하는 미 해군상륙함에 올라 대한 해협을 건너게 되는데, 그 배에는 공산군을 저지하기 위해 첫 번째로 투입되는 미군 포병부대

가 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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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의 남하를 막기 위해 폭파된 한강철교의 1년 뒤 모습. 한국전쟁 초기 발생한 비극적 사건 중 하나로 최소한 5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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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Line of Fire 사선射線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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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소대가 숲을 지나고 있다. 전쟁터에서 숲은 좀처럼 보기 힘들었다. 한반도 대부분의 지역에서 삼림이 파괴되어 전장은 언제나 황폐한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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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1월 공산군은 서울을 다시 점령했고, 유엔군은 한강 남쪽으로 퇴각했다. 몹시 춥 던 어느 겨울 밤, 나는 서울에서 남쪽으로 40여 킬로미터 떨어진 수원 부근에서 미 25사 단에 합류했다. 사단 본부 근처의 한 빈집에서 잠자리를 준비하는데, 잘 때 군화를 벗지 말라는 이야기를 듣고 우리는 그날 밤 전투가 임박했음을 예상했다. 밤새 총성이 들렸고 미군 탱크가 육중한 기계음을 내며 집앞을 지나갔다. 사방에서 총소리가 따갑게 울렸고, 우리는 뜬 눈으로 밤을 지새야 했다. 다음날 아침, 우리가 묵었던 집 근처에 있던 교사 안 팎에 중공군 시체가 흩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전날 밤의 격렬했던 전투가 중공군의 패배로 끝났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도 그날 전투는 한국전쟁에서 중공군이 가장 남

쪽까지 진출한 경우였으리라 짐작된다.

수원 부근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사살된 중공군들. 미 25사단 관할 구역이었는데, 아마도 한국전 참전 이래 중공군이 가장 남쪽까지 진출한 공격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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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군 최고사령관 맥아더 장군이 지프차에 오르고 있고, 그 뒤로 월튼 워커 장군이 서 있다. 초대 주한미군 사령관이었던 워커 장군은 한국전쟁 초기 유엔군의 전면 철수가 제기되던 분 위기에서 홀로 한반도 고수를 주장하며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 인천상륙작전의 발판을 마련한다. 1950년 12월 23일 그가 탄 지프와 트럭이 충돌하는 교통사고를 당해 6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후에 한국정부는 미군을 위한 휴양시설로 호텔을 건립하는데, 워터 장군을 기리기 위하여 호텔명을 워커힐 호텔이라 이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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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지휘의 수뇌부였던 세 장군. 왼쪽부터 매튜 리지웨이 장군, 제임스 밴 플리트 장군, 마크 클라크 장군. 리지웨이 장군의 가슴에 매달린 수류탄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다.

밴 플리트 장군이 정전 협정 당 시 종군기자들의 숙소로 사용되 었던 기차 앞에 서 있다. 왼쪽은 린다 맨겔스로도프 비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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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apons of War 전쟁과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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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에서 콜세어 전투기는 대부분 근접지원 작전에 동원됐는데, 미군 최초로 MIG-15기를 격추하기도 했으며 1957년까지 미 해군과 해병대의 주력 공격기로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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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에서 미 항공모함의 주력기로 활약한 A-1 스카이레이더(Skyraider) 전투기가 출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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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51 무스탕 전투기 편대. 미 공군은 비포장의 거친 활주로에서 이착륙의 문제가 없고, 저고도 비행과 장시간 체공이 가능한 F-51 전투기를 신형 제트기 대신 전진배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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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군이 보유한 최초의 전투기 F-51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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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Resilient People 전쟁 속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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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 시장의 여인들.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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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여고 학생들을 비롯한 여고생들이 1952년 8월 15일에 열린 이승만 박사의 2대 대통령 취임 축하식에 참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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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박사의 2대 대통령 취임식과 광복절 기념행사가 중앙청에서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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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 Uneasy Truce 지난했던 휴전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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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 회담 초기 유엔군 측 희의장소로 쓰인 인삼관

1951년 7월 개성에서 처음 시작된 휴전 협상에 참석한 유엔군 측 대표. 오른쪽부터 백선엽 국군 소장, 통역장교 이수영 중령, 알레이 버크 미 해군 소장, 헨리 호디스 미 육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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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에서 열린 휴전 협상에 공산군 수석 대표였던 북한군 남일 중장이 회담장으로 쓰였던 내봉장에 도착하고 있다. 그 뒤를 중공군 대표 덩화가 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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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John Rich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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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상Peabody Award 수상 기자 존 리치는 1차 세계대전 이후 20세기에 미국이 참전한 모든 전쟁에 군인 으로 참가하거나 기자로 종군했다. 1939년 미국 메인Maine주, 어거스타Augusta시의 일간지 「케네벡 저널

Kennebec Journal

」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한 그는 곧 「포틀랜드 프레스 헤럴드Portland Press Herald」로 옮겨, 독일 잠수함에

의해 침몰된 미 구축함 루벤 제임스Reuben James호의 생존자를 인터뷰함으로써 전쟁 관련 보도를 처음으로 시작 한다. 진주만 사건이 터지기 5주 전, 루벤 제임스호는 군수품을 실은 영국행 화물선을 호위하던 중 아이슬란 드 근해에서 독일 잠수함이 쏜 어뢰에 침몰되었고, 생존자는 포틀랜드로 송환되었다. 1942년 그는 해군에 입대, 콜로라도 주립대학(볼더 캠퍼스) 부설 해군학교에서 일본어를 1년간 공부하고, 졸업과 동시에 해병대에 지원, 2차 대전 동안 태평양 마샬제도의 콰잘란 해초, 사이판과 티니안 섬, 일본의 이오지마 섬 등 네 차례 상륙작전에 참가한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언론재벌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가 세운 통신사, 인터내셔널 뉴스 서비스International News Service에 입사하여, 도쿄 특파원으로 발령 받는다. 거기서 그는 일 본 점령군 사령관 맥아더 장군을 인터뷰하고, 점령군의 요구로 인간선언을 한 히로히토 일왕이 일본 지방 순회를 할 때 동행취재를 하기도 한다. 또 중국 국공내전 중에는 상하이로 파견되어 공산당이 상하이시를 점령할 때까지 전황을 보도한다. 미군 경 비함을 타고 황푸강을 통해 상하이를 탈출한 그는 양쯔강에 정박해 있던 미 구축함에서 며칠을 보내다가, 중 국 공산군이 포위하고 있는 칭다오로 다시 떠난다. 공산군은 미 해군함대가 정박해 있는 동안에는 칭다오시로 진군하지 않았고, 결국 그는 미 순양함을 타고 일본으로 돌아온다.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도쿄에 있었던 그는 발발 첫주 한국에 도착, 이후 3년 동안 전쟁을 취재한다. 1950 년 12월 INS에서 NBC 뉴스로 소속을 옮긴 그는 미국 기자 중 가장 오랜 기간 동안 한국전쟁을 취재한 종군기 자가 된다. 한국전쟁이 휴전으로 종결된 후, 존 리치는 미 외교협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 연구원으로 1년간 있다가, 1954 년 유럽으로 발령 받아 NBC 베를린 지국장으로 4년 동안 지낸다. 그 후 모스크바와 파리를 거친 뒤, 아내 및 네 자녀와 함께 도쿄로 다시 돌아간다.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게 되자, 그는 도쿄를 근거지로 베트 남을 왕래하며 10년 동안 전쟁을 취재한다. 그후 도쿄 주재 아시아 담당 선임기자로 활동하다가 NBC 뉴스의 모기업인 RCA의 부회장을 역임한 뒤 은퇴 하여 현재는 메인주 해변가 집에서 부인과 함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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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서울이 재탈환 된 뒤 찍은 사진. “프레스 빌딩” 옥상이었던 걸로 저자는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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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His Own Words Interview 인터뷰

* 이 인터뷰는 2010년 2월 21일 일요일 미국 플로리다주 베로 비치에 있는 존 리치 씨의 여름 별장에서 이뤄진 것임

특파원이라는 직업 때문에 역사의 주요 현장을 돌아다니셨습니다. 직접 눈으로 목격한 20세기 역사를 어떻 게 요약하시겠습니까? 거칠고 힘든 시기였죠. 나는 1차 세계대전 중에 태어났는데, 1차 대전 이후로 일어난 거의 모든 전쟁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군인으로 참전했거나 아니면 기자로 종군을 했죠. 2차 대전 때는 해병대로 참전을 했어요. 제대한 뒤에는 일본으로 갔는데, 곧바로 한국전쟁이 터졌어요. 그 후 베트남 전쟁이 일어났고, 인도와 파키 스탄의 분쟁이 있었고, 아프리카 콩고에도 갔었죠.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볼 때 나는 스스로 이렇게 묻습니 다. “그 일이 언제 일어났지? 아프리카에서 일어났던 일인가? 아, 아니지. 그건 한국전쟁이었지.” (웃음) 그 래서 어느 시기에 내가 어떤 일을 했는지를 기억해 내려면 “그때 내가 취재했던 전쟁이 무슨 전쟁이었나?” 라고 묻곤 합니다. 그래요, 전쟁, 전쟁, 전쟁, 모두 전쟁이었어요.

한국전쟁을 취재하는 동안 어느 곳들을 다니셨습니까? 해병대원으로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쟁이 끝난 뒤에는 인터내셔널 뉴스 서비스라는 통신사에 들어갔 습니다. 들어가자마자 도쿄로 발령을 받았어요. 그리고 도쿄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전쟁이 일 어났습니다. 일본에 있었던 나는 우리 통신사에서 가장 먼저 한국으로 투입되었습니다. 전쟁이 발발한 지 1 주일 만에 한국에 도착했고, 그 후로 3년을 한국에서 보냈습니다. 전쟁 기간 동안 나보다 오래 한국에 머무 른 미국 기자는 없었을 거에요. 그 3년 동안 두 달에 한 번 정도는 일주일간 일본을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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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 회담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나요? 매우 힘든 상황에서 휴전 회담이 시작됐습니다. 공산군이 한국군과 유엔연합군을 부산 부근까지 몰아부쳤 고, 우리는 거의 한반도에서 밀려나기 직전이었어요. 하지만 곧 반격을 시작해서 북으로 다시 올라갔죠. 1951년 1월쯤부터 강화 협상을 해야 된다, 휴전을 해야 한다는 얘기들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전쟁은 계속 되었죠. 전쟁 초반에, 그러니까 50년 9월인가에 중공군이 참전을 했어요. 북한 지역 깊숙이 진군했던 연합군은 중 공군에 밀려 남으로 후퇴를 해야 했고, 서울까지 다시 내주고 말았죠. 전쟁 동안 서울을 두 번 뺏겼던 것 같 아요. 중공군이 수원 남쪽까지 내려왔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날 밤 저도 거기에 있었어요. 저희가 밤을 보낸 교사 근처에서 전투가 있었습니다. 그때 사살된 중공군 시체를 찍은 사진이 있어요. 그렇게 중공군이 내려 왔었고, 우리는 반격을 했습니다. 그때 리지웨이 장군은 미군과 유엔군의 전열을 가다듬은 다음 반격을 시작해 북쪽으로 밀고 올라갔습니 다. 그는 대단한 장군이었어요. 아무튼 유엔군은 북쪽으로 진격하고, 공산군 측은 또 반격하고, 그래서 미군 들이 한국전쟁을 ‘요요전쟁’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웃음)

올해는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한국에서 많은 행사들이 개최됩니다. 전쟁 동안 한국인들에게 어떤 인상을 받으셨나요? 다른 동맹국들로부터도 한국에서 받았던 만큼의 지지만 받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한국인들은 전적으로 우리를 지원해 주었어요. 아시겠지만, 어떤 나라에서는 협조를 얻기 무척 힘들었고, 오히려 우리를 적대시 하며 싸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굳건한 지지를 보여주었습니다. 한국에 대해서 많이 배웠습니 다. 알면 알수록 한국인들에게 감명을 받습니다. 한국은 훌륭한 동맹국입니다.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서 싸 울 때, 한국은 군대를 보냈습니다. 그렇게 짧은 시간에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훌륭한 군대를 양성했습니다. 정말 대단한 일이죠.

리치 씨의 이 컬러 사진들은 비교적 최근에 발견된 것인데요. 사진들을 차 담는 상자에 보관하셨던 걸로 알 고 있습니다. 사진을 다시 발견했을 때의 이야기를 조금 해주시겠습니까? 나는 컬러 필름을 썼는데, 전문 사진기자들은 컬러로 찍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컬러로 찍어 봤자, 본국에 있 는 회사에서 그것을 사용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들은 흑백으로 찍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처음 부터 컬러 필름을 썼습니다. 사진을 찍고, 필름을 코닥 본사에 보내면, 인화된 컬러 슬라이드를 작은 노란색 봉투에 담아 다시 보내줬습니다. 저는 필름을 확인만 하고, 주석으로 테두리를 한 차 상자에 보관했어요. 어 디를 가든 그 상자를 가지고 다녔는데, 그렇게 한참이 지났죠. 그러다가 몇 년 전 어느 날 그 상자를 다시 열 어보게 됐는데, 반세기가 지났는데도 사진들이 손상되지 않고 완벽하게 보관되어 있는 거에요. 전쟁의 시작 부터 그 전개 과정, 그리고 길고 지루했던 휴전 회담까지, 3년 동안 계속됐던 전쟁의 이모저모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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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s

사진·글

존 리치

사진 해설문

존 리치, 앤드류 새먼, 로버트 콜러

인터뷰

엘리자베스 심

인터뷰 촬영

마크 마츠모토

번역

이진혁, 정경아

감수

이왕우 (前 국방부 국사편찬연구소 전사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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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로 보는 한국전쟁

KOREAN WAR IN COLOR

“...혼자 지프차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아름다운 시골마을의 풍경을 많이 봤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끔찍한 전쟁이 벌어지고

저자소개

바디상 수상 기자 존 리치는 1차 세계대전 이후 20세 기에 미국이 참전한 모든 전쟁에 군인으로 참가하거

나 기자로 종군했다. 1939년 미국 메인주 어거스타시의 일 간지 「케네벡 저널」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한 그는 1942년 해군에 입대한 후 해병대로 배속되어 2차 대전 동안 태평 양 마샬제도의 콰잘란 해초, 사이판과 티니안 섬, 일본의 이오지마 섬 등 네 차례의 상륙작전에 참가한다. 전쟁이

존 리치

끝난 뒤에는 미국 통신사 인터내셔널 뉴스 서비스(INS)에

지음

입사하여, 도쿄 특파원으로 발령 받는다. 거기서 그는 일 본 점령군 사령관 맥아더 장군을 인터뷰하고, 인간선언을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어요.

한 히로히토 일왕이 일본 지방 순회를 할 때 동행취재를 하

그 나무와 언덕, 강물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기도 한다.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도쿄에 있었던 그는 발발 첫주

- 작가 인터뷰 중에서

한국에 도착, 이후 3년 동안 전쟁을 보도한다. 1950년 12월 INS에서 NBC 뉴스로 소속을 옮긴 그는 미국 기자 중 가장 오랜 기간 동안 한국전쟁을 취재한 종군기자다. 한국전쟁이 휴전으로 종결된 후, 존 리치는 미 외교협회 연구원으로 1년간 있다가, 1954년 유럽으로 발령 받아 4년

존 리치

동안 NBC 베를린 지국장을 역임하고, 모스크바와 파리를 거친 뒤 아내 및 네 자녀와 함께 도쿄로 다시 돌아간다. 미 국이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게 되자 도쿄를 근거지로 베트 남을 왕래하며 10년 동안 전쟁을 보도한다. 그후 도쿄 주재 아시아 담당 선임기자로 활동하다가 NBC

지음

정가

뉴스의 모기업인 RCA의 부회장을 역임한 뒤 은퇴하여 현재 는 메인주 해변가 집에서 부인과 함께 살고 있다.

60,000원

K O R E A N

W A R

I N

C O L O R

COVER DESIGN 정현영

한국전사진집국문커버FIN2.indd 1

2010-05-10 오전 10: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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