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원의 행복 신일고 1회 산우회

Page 1

신일고 1회 졸업 50주년‧산우회 15주년

기념 문집


신일고 1회 동기회 1967년 3월 350여 명이 입학하여 1970년 1월 331명이 졸업했다.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설립된 신일고등학교는 ‘믿음으로 일하는 자유인’을 교훈으로, 바른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데 그 교육 목표를 두고 있다. 당 시 현대적인 시설을 갖춘 교사(校舍)에서 훌륭한 선생님들의 지도를 받은 학생들은 1969년 실시된 대학입학 예비고사에서 전국 5위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졸업 후 사회 각계각층에서 빛과 소금이 되었 다. 1회 동기회(회장 이도선)에는 산우회를 비롯해 신당회, 신일회, 사 모회 등이 결성되어 있어 동기들 우의 증진에 큰 몫을 하고 있다.

표지 제자(題字) 표지 사진

표지 디자인

윤진평 (1회)

박영배 (서울대농대 산악회 OB)

인챈트리


만 원의 幸福 Ⅱ

이 책을 일찍 우리 곁을 떠난 권영삼 김의섭 김종욱 산우 영전에 바칩니다.


신일고 1회 졸업 50주년‧산우회 15주년

기념 문집

신일고 1회

졸업 50주년‧산우회 15주년

기념 문집

발행 2020년 6월 5일 발행처 신일고등학교 1회 동기회·산우회 발행인 허정회 기록 허정회 표지 제자(題字) 윤진평(1회) 표지 사진 박영배(서울대농대 산악회 OB) 사진 최병학(1회) 디자인 인챈트리

※ 비매품


발간사

“幸福의 秘密은 自然이다”

우리는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많은 걸 배웠습니다. 그러기에 여행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인 것입니다.

3장 ‘힐링캠프’에서는 우리가 잠시 일상을 떠나 자연에서 몸과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여러 친구들과 함께한 힐링캠프는 우리의 안식처였습니다. 불교에서는 하루 동안 길을 동행하면 2000겁, 하룻 올해는 모교 졸업 50주년과 산우회 발족 15돌을

밤을 한 집에서 자면 3000겁의 인연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단지 하루가 아닌

맞는 뜻 깊은 해입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그간 기

그 수많은 날을 같이 보냈으니 보통 인연이 아닌 것입니다. 이런 소중한 인연

록해두었던 86편의 산행후기를 모아 『만 원의 행

은 훗날 아름다운 추억으로 되살아날 것입니다.

복』 제2권을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제1권 발행 이후 7년 만입니다. 지난 15년간 우리는 200여 회의 만

4장 ‘정기산행’은 우리가 이제까지 한 번도 거르지 않은 월례산행 후 소

남을 통해 건강과 우정을 다졌습니다. 『만 원의 행복 Ⅱ』에는 월 산우회비 1만

회를 모은 글입니다. 등산이 어느 취미활동보다 매력적인 건 대자연에서 친구

원으로 우리가 누렸던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오롯이 담겨있습니다.

들과 함께 경제적으로 즐기면서 건강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비밀은 자연이다. 다른 사람이 병원으로 갈 때, 우리는 숲속으로 향한다.” 세

이 책은 모두 4장으로 꾸며졌습니다. 1장 ‘해파랑길’은 2012년 5월부터

계 행복1위 국가 핀란드 국민이 행복하게 살고 있는 비결입니다.

2019년 6월까지 연인원 124명이 13회에 걸쳐 걸었던 동해안 해파랑길 770㎞ 완주에 얽힌 얘기입니다. 지금부터 8년 전 우리는 도전했고 계획을 세워 이를

그간 산우회 발전을 위해 협력하신 회원들께 감사합니다. 특히, 월 회비 1

실행에 옮겼습니다. 그때는 몰랐는데 이제 와 생각하니 우리가 엄청난 일을

만 원으로 살림을 용케도 흑자로 끌어가는 진영주 재무의 노고가 큽니다. 또

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서두르지도 멈추지도 않으면 큰일을 이룰 수

이도선 동기회장을 비롯한 역대 회장단과 장무철 졸업50주년기념사업 공동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습니다.

추진위원장의 성원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 책이 세상의 빛을 볼 수 있도록 애쓰신 눈록출판사 정철욱 대표의 정성에 감사합니다.

2장은 그간 우리가 매년 한 번씩 해왔던 ‘해외산행’ 후기입니다. 우리는 해외산행에서 우리와 다른 사람, 자연, 역사, 언어, 음식, 문화를 만났습니다. 2020년 6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푸르스트는 말합니다.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게 아니라 새로운 시각을 갖는 데 있다.”

4

산우회 회장

허정회

5


축사

신중년의 길벗, 산우회를 응원합니다

엇보다 건강이 제일입니다. 산우회에 더 열심히 참가해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만 원의 행복』을 7년 만에 또다시 내놓는 산우회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 냅니다. 모일 때마다 만 원의 회비로 우정을 쌓으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딘 추 억의 기록이기에 더욱 뜻 깊고 자랑스럽습니다. 산우회 출범 이래 국보급 지도 꿈 많고 철없던 시절, 신일 동산에서 3년을 보내고

력으로 동무들의 찬탄을 번번이 자아냈고, 이번에도 까다로운 출간 과정을

교문을 나선 지 어언 반백년이 흘렀습니다. 그 사

도맡아 수고한 허정회 회장과 임원들 그리고 한 가족 같은 회원들에게 마음

이 우리는 어느덧 70줄에 들어섰습니다. 세월이 화

속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을 바칩니다.

살 같다는 표현이 참으로 마음에 와닿는 요즈음입 니다.

최근 등산길보다 둘레길을 선호하는 경향이 부쩍 두드러지면서 산우회 (山迂會)라는 산뜻한 자조도 등장했습니다만 모쪼록 산우회가 우아한 노년

하지만 당나라 시성 두보가 읊조린 ‘인생 칠십 고래희’는 옛말이 된 지

의 길벗으로 늘 우리 곁에 있어 주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시절이 하 수상하

오래입니다. ‘백세 인생’이 희망이 아닌 현실로 닥친 지금은 ‘신(新)중년 시대’

여 외출이나 모임도 쉽지 않은 이 시기에 동기 여러분께서 부디 건강하시고

라고들 합니다. 우리의 전성기는 그 끝이 아직 멀었다는 얘기입니다. 산우회

댁내 두루 평안하시기를 빕니다.

가 15개 성상을 묵묵히 걸어왔고 다음 15년, 그리고 그 다음 15년도 꿋꿋하게 나아갈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건강이 안 좋은 동무들 2020년 6월

도 머잖아 힘차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함께 어울릴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 합니다.

신일고 1회 동기회장

이도선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최초로 정복한 뉴질랜드 산악인 에드먼드 힐 러리 경은 “왜 에베레스트에 오르느냐?”는 질문에 “그것이 거기 있어서”라고 재치 있게 답변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누군가 우리에게 “왜 사느냐?”고 묻거든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니까”라고 대답해야 할까요? 어차피 도망갈 수도, 피할 수도 없는 게 우리네 삶이라면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야겠습니다. 그러려면 무

6

7


축사

산우회는 우리 동기회의 자랑

역병으로 인해 기념행사가 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머지않아 이 또한 지나갈 것 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산우회 회원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그날이 하루 속히 오기를 고대합니다.

끝으로, 앞으로 10년 후 우리가 80이 되는 ‘졸업 60주년기념 행사’에 즈 음하여, 『만 원의 행복』 제3권의 발간을 기대합니다. 산우회 앞날에 무궁한 발 먼저 신일고 1회 졸업 50주년기념사업의 일환으

전과 행운이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로 추진한 『만 원의 행복 Ⅱ』의 발간을 축하합니다. 2013년 5월 『만 원의 행복』 제1권 출간 이래 벌써 2020년 6월

두 번째라 더욱 뜻깊습니다. 1회 동기회 소모임 중 등산을 통한 건강과 우정을 기치로 활동하고 있는

신일고 1회 졸업 50주년기념사업 공동추진위원장

장무철

산우회가 날로 발전하고 있는 모습이 자랑스럽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산우회원의 한 사람으로서 지난 15년간 정기산행, 동 해안 해파랑길과 제주도 올레길 걷기, 백두산, 일본 후지산, 다이센(大山) 등 산, 대마도 여행 등을 함께했던 추억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칩니다. 이러한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동아리의 힘이고, 이를 이끌고 있는 허정회 회 장의 희생적이고 책임감 있는 리더십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자발적 이고 협동적이고, 헌신적으로 참여하는 많은 회원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 능했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 나이 어느덧 고희(古稀)라 불리는 70입니다. 또한 금년은 우리 가 모교를 졸업한 지 5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의미 있는 2020 년을 맞아 졸업 50주년기념사업 추진위원회는 우리 동기 모두 참여하여 즐기 는 잔치를 열과 성을 다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코로나19’라는 희귀한

8

9


머리말

4장 정기산행

“幸福의 秘密은 自然이다” 산우회 회장

허정회

“비에 젖은 우동, 먹어 봤어!” 239 축사

사랑하는 마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다 가자 250

신중년의 길벗, 산우회를 응원합니다 신일고 1회 동기회장

어른인지 아이인지 구분이 안 된다 259

이도선

막걸리와 소주, 이리저리 뒹굴다 265

산우회는 우리 동기회의 자랑 신일고 1회 졸업 50주년기념사업 공동추진위원장

1장 해파랑길

길에서 배운다 19

8㎏짜리 부시리, 거저 줍다 36

해파랑길 1/4을 마치다 31

“와 차 놔두고 걸어가나? 참 이상도 하지!” 47 오늘 놀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 60

자연은 최고의 명약(名藥)이다 55

여유 있는 시간은 없다 시간 내면 여유 있게 된다 67

대한민국 공장, 울산을 걷다 79

신 인생삼락(人生三樂) 85

인생은 소풍이다 99

둘레길이 아니라 올레길이네 279

그래서 산에 오나 보다 282

사랑하세, 용서하세, 베푸세! 284

목표 초과 달성하다 287

泰山鳴動 信一氣槪 103

‘세상이 학교다, 여행이 공부다’ 119

“400㎞는 거리도 아니며, 40도는 술도 아니며, 40도는 추위도 아니다” 126 달빛에 취해 오른 후지산 143

영봉(靈峰), 후지산에 오르다 160

행복은 재력순이 아니다 171

비 흠뻑 맞고 우면산을 걷다 297

걷기는 건강을 저축하는 것이다 310

조선 최초의 왕비가 잠든 정릉을 찾다 306 선생님의 산상기도 313

지도 한 장이 이렇게 소중할 줄이야 316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 320

주명갑 선생님의 빈자리 318

걸으면서 많은 걸 보고 배운다 323

선인봉은 늠름했다 340

전무후무할 무알코올 산행 344

암사동 선사유적지 350

의성(醫聖) 허준(許浚)을 뵙다 354

남한산성 일주 360

산우회 열두 돌 364

걸으며 배운다 369

서울둘레길을 다 걷다 372

기다림, 그리고 세상을 보는 창 191

“벌써 가는 날이야! 1박 더 해야 하는 것 아냐?” 197

3000겁(劫)이라는 하룻밤 인연을 쌓다 206

역사를 걷다 375

물을 보며 마음을 씻고, 꽃을 보며 마음을 아름답게 하라 381

논어를 읽으며 마음을 닦다 228

‘운수 좋은 날’ 406

수원 화성 성곽을 걷다 388

뜻밖의 대어를 낚다 394

철 지난 해변을 걷다 226

노는 연습을 하자, 더 늦기 전에 230

부록

산행일지

산은 늘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404

서울 한복판에 이런 데도 있었나? 409

기록하면 추억을 넘어 역사가 된다 414

“친구여! 고마웠다. 잘 가시게!” 208

새로운 세상을 보았다 217

산우회, 오래간만에 이름값 357

물놀이하며 동심으로 돌아가다 367

“성공해서 행복한 게 아니라, 행복하니까 성공한 거다” 399 산우회 인기상품, 보양산행 185

도심 속 생태공원, 청계천 346

산우회는 건강 - 우정 - 행복의 원천 378

몇 번이고 다시 걷고 싶은 길 392

하늘의 축복 속, 짧지만 여운 있었던! 179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328

단출했지만 내실 있었던 은평 둘레길 336

공부, 운동, 사은회(謝恩會), 의미 있고 즐거웠다 384

3장 힐링캠프

인생은 놀이다. 즐겨라 210

즐겁고 행복했다 139

천 원의 행복 291

“한국의 아웃도어 시장이 이렇게 커질 줄 상상도 못했다” 300

“집 떠나 산에 오길 잘 했네!” 332

해파랑길 770㎞ 대장정을 마치며 90

2장 해외산행

“산에서 떡국 먹어 봤어?” 276

성북동 최순우 옛집 툇마루에 앉아 302

잘 먹고, 잘 걷고, 잘 놀자 39

많은 대화로 배부른 진천 나들이 254

바로 지금 여기에 있는 게 행복이더라 268

“다음엔 집사람과 함께 와야겠다” 272

장무철

“산에 와서 영양보충 한다” 245

행복의 세 가지 척도는 ‘관절, 관계, 일’ 262

친구, 계곡, 콩국수가 잘 어울린 피서 삼합(三合) 294

도전하는 삶은 아름답다 15

신의 한 수 72

상전벽해(桑田碧海) 241

사패산 주봉(柱峰)에 오르다 417


1장

해파랑길 걷기는 내가 내 삶의 주인임을 확인하는 행위이다. 또 걷는다는 것은 자신을 만나고 자신과 대화하는 귀한 일이다. 속도를 줄이면 보이는 게 많아진다. 눈에 보이는 경관은 물론 평소 잘 안 보이던 내 마음속 까지도 잘 보이게 된다. 조금만 천천히 가면 인생이 지금보다 더 즐거 워진다. 앞만 보고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토끼 같은 삶보다는 때론 옆 도 뒤도 살펴보고 걷는 거북이 같은 삶이 더 소중한 이유다. 우리는 해파랑길 770㎞ 걷기를 ‘함께’ 해냈다. 이렇게 함께하는 건 만만치 않 다. 생각과 사정이 서로 다른 사람과 일정도 맞춰야 하고 역할도 분담 하면서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한 팀(one team)이 아니고서는 이룰 수 없는 큰일을 우리는 해냈다.


87次

해파랑길 전 구간 일정표 회차

일정

구간

거리(㎞)

인원(명)

1

2012.5.25(금) ~ 27(일)

고성 마차진해변 ~ 삼포해변

40

11

2

2013.6.6(목) ~ 9(일)

삼포해변 ~ 주문진수산시장

72

9

3

2014.5.19(월) ~ 22(목)

주문진수산시장 ~ 도직항

57

8

4

2014.9.29(월) ~ 10.3(금)

도직항 ~ 대진항

55

7

5

2015.6.19(금) ~ 23(화)

대진항 ~ 죽변항

56

7

6

2015.10.15(금) ~ 18(일)

죽변항 ~ 후포항

58

9

7

2016.5.19(목) ~ 22(일)

후포항 ~ 고불봉 입구

52

9

8

2016.9.22(목) ~ 25(일)

고불봉 입구 ~ 포항영일신항만

48

8

9

2017.4.29(토) ~ 5.3(수)

포항영일신항만 ~ 모포2리마을회관

76

11

10

2017.10.5(목) ~ 9(월)

모포2리마을회관 ~ 정자항

54

10

11

2018.5.3(목) ~ 7(월)

정자항 ~ 울산대공원

54

11

12

2018.10.3(수) ~ 7(일)

울산대공원 ~ 일광해변

56

11

13

2019.6.6(목) ~ 9(일)

일광해변 ~ 오륙도 해맞이공원

45

13

* 해파랑길 전 구간 723㎞를 연인원 124명이 참가하였다.

|

2012. 5. 25 ~ 27

제1차 해파랑길 고성 마차진해변 ~ 삼포해변 40㎞

도전하는 삶은 아름답다

1회 산우회 아니, 동기회 평생 프로젝트의 첫 삽을 떴다. 산우회 친구들과 야 심차게 기획한 국토순례도보 여행을 시작했다. 대한민국 동해안 - 남해안 서해안을 걸어서 일주할 예정이다. 그 첫 번째로 5월 26~27일 강원도 고성 속초 구간 약 40㎞를 걸었다. 권영삼, 김중곤, 김동준, 신필호, 안은섭, 이현기, 조근호, 진영주, 추명길, 함동일, 허정회가 함께했다.

5월 25일(금) 잠실종합운동장 2번 출구, 약속시간인 4시가 넘었는데 동일이가 안 보인 다. 6시로 착각하고 집에서 점잖게 TV 시청 중이란다. 잠실4거리에서 만나기 로 하고 오형이의 배웅을 받으며 출발. 올림픽대교 - 경춘고속도로를 거쳐 불 과 한 시간 만에 동홍천 팜파스휴게소 도착. 8시, 고성군 죽왕면에 있는 삼포 코레스코 콘도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다. 11명이 콘도 두 채를 빌리니 널찍해 서 좋다.

15


오늘 새벽 서울을 출발하여 설악산 한계령 - 중청 - 비선대를 종주한 영

동해안 길은 조성사업 시행 주체에 따라 이름도 다양하다. 고성군은

삼이 저녁 늦게 합류. 안은섭표 김치찌개를 메인 디시로 반주와 저녁 식사를

2009년 군 관내 약 54㎞의 보행로를 만들어 ‘관동별곡 8백리길’이라 불렀다.

하다.

그 후 국토해양부는 고성 마차진 해변부터 경북 울진 월송정까지 약 300㎞를 조성해 ‘관동팔경녹색경관길’로 명명했다. ‘해파랑길’은 고성 통일전망대부터

5월 26일(토)

부산 오륙도까지 약 770㎞에 달하는 국내 최장 트레일 코스로 문화관광부가 조성했다.

오전 7시 45분 콘도를 출발하여 8시 20분 시발지점인 명파초등학교에

앞으로 고성군은 명칭을 ‘해파랑길’로 통일할 예정이라 한다. 해파랑길은

도착. 걷기에 적당한 길다운 길이 안 보여 마침 인근을 지나는 사이클 선수에

동해의 상징인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색인 ‘파랑’과 ‘~와 함께’라는 조사

게 물어보니 금강산 콘도가 있는 마차진 해변에서 시작하는 게 좋을 거라는

의 ‘랑’이 합쳐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바닷소리를 벗 삼아 함

조언에 금강산 콘도로 직행.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요즘, 금강산콘도는 한산

께 걷는 길’이라는 뜻이다.

하기만 하다.

이번 여행의 콘셉트는 ‘비움’이어라. 일상의 번잡함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콘도 시설도 A급이고 콘도에서 보이는 앞바다는 천혜의 절경이다. 금강

세속의 것들을 비우고 또 내려놓고자 한다. 자그마한 대진항에서 이리저리 얽

산 콘도에서 간단한 기념촬영 후 8시 40분 보무도 당당하게 관동별곡 8백리

힌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어구를 매만지고 있는 할머니의 욕심 없는 마음을 배

길 첫걸음을 내딛다.

우고 싶어라. 초도항은 동해안에서 손꼽히는 미항으로 성게가 특산물이다. 항구 가까이에 거북이 형상을 한 금구도가 보인다. 금구도는 광개토대왕릉이라는 사료가 발견되어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섬이다. 고구려 연대기에 따르면 광개토대왕 3년(서기 394년) 이 거북섬에 왕릉 축조를 시작했으며, 15년 후 대왕이 직접 수릉 축조현장을 방 문했다. 대왕 서거 이듬해인 서기 414년 대왕의 시신을 안장했다.

5월 27일(일) 둘째 날이다. 첫째 날 끝냈던 북천철교부터 시작이다. 이 철교는 1930년 경 일제가 한반도의 자원수탈을 목적으로 원산~양양 간 설치했던 동해북부 선 철교로서, 한국전쟁 시 북한군이 이를 통해 군수물자를 운반하자 아군이 폭파해야만 했던 비극의 역사현장이다. 2011년 행안부가 걷기, 자전거 마니아 들을 위한 전용교량으로 리모델링했다. 초도항은 동해안에서 손꼽히는 미항으로 성게가 특산물이다. 뒤편으로 성게 모양의 조형물이 보인다.

16

남천교에서 우연히 고성군청 김창인 계장을 만났다. 관동별곡 8백리길을

17


남천교에서 우연히 만난 김창인 고성군청 계장이 관 동별곡 8백리길을 만들게 된 계기, 관리상 애로사항 을 우리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101次

|

2013. 6. 6 ~ 9

제2차 해파랑길 삼포해변 ~ 주문진수산시장 72㎞

조성한 담당자다. 이 길을 만들게 된 계기, 관리상 애로사항을 우리들에 게 설명했고, 우리들로부터는 불편 사항을 청취했다. 자기 업무에 열정 이 있는 공무원이다. 설명을 들은 후

길에서 배운다

그와 기념촬영을 했다. 가을 걷기축 제에 우리들을 초청하겠다고 한다. 공현진항을 막 지나왔다. 모래사장이 길고 깨끗한 해변이다. 어제부터 이제까지 33㎞를 걸었다. 5㎞만 가면 송지호 철새관망타워가 나온단다. 공현 진항 탐방길가에 나무로 된 나부상(裸婦像)이 있다. 그녀 젖꼭지를 만지고 나서 만세를 부르는 김동준과 진영주, 두 친구의 기고만장한 모습이 눈에 선 하다.

지난해 5월 해파랑길 고성구간 통일전망대에서 삼포해변까지 40㎞를 걸은 이

12시 30분 우리 숙소가 있는 삼포해변 코레스코콘도까지 왔다. 걷기를

후 이번 현충일 연휴를 이용해 두 번째 트레킹에 나섰다. 지난 6월 6일부터 9

마치고 자축하고 있는 친구들이 모두 만족한 표정을 짓고 있다. 어제 약 22

일까지 신필호, 안은섭, 양상진, 장무철, 조항복, 진영주, 추명길과 허정회가 함

㎞, 오늘 약 18㎞, 도합 40㎞를 걸었다. 풍광이 멋진 길도 있었고, 위험한 차도

께했다. 당초 계획했던 대로 삼포해변부터 주문진해변까지 72㎞를 걸었다. 서

갓길도 걸었다. 험한 길도 있었고 평탄한 길도 있었다. 길을 잘못 들어 헤매기

울은 때 이른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다는데 동해안은 적당히 구름 낀 날씨에

도 했다.

바람도 있어 비교적 서늘했다. 많이 걷고, 잘 먹고, 실컷 웃었던 4일 동안의 족

많이 웃고 또 사소한 일로 친구 간 다툼도 있었다. 비록 이틀간의 짧은

적을 복기해본다.

여행이었지만 우리네 인생길과 어찌 이렇게 똑같은지 모르겠다. 첫 걷기여행 에 참가한 11명의 친구들이 자랑스럽다. 도전하는 삶은 아름답다고 하지 않던 가. 우리 ‘믿음으로 일하는 자유인‘의 도전정신을 높이 사고 싶다.

6월 6일(목) 현충일인지라 조기(弔旗)를 달고 7시 집결시각에 맞춰 집을 나섰다. 10 분 전에 잠실종합운동장역에 도착했는데 벌써 여러 친구들이 나와서 기다리

참가자

고 있다. 요즘 몸 컨디션이 안 좋다는 함동일의 얼굴도 보인다. 동일이는 가려

권영삼 김중곤 김동준 신필호 안은섭 이현기 조근호 진영주 추명길 함동일 허정회

고 모든 준비를 다해 왔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다고 챙겨온 오렌지만 우리에

18

19


게 주고는 막판에 포기한다. 작년에는 김밥을 가지고 오형이가 우리를 배웅하 더니 올해는 동일이가 그런 꼴이 되었다. 7시 정각, 잠실운동장을 출발했다. 비교적 이른 시간대라 그런지 일부 구간에서만 약간 정체가 있었을 뿐 고속도로 사정은 좋았다. 당초 9시 출발 예정이었으나 영주의 건의로 7시로 당긴 게 잘한 결정이었다. 작년에도 잠시 쉬었던 동홍천 팜파스휴게소에서 어 묵과 커피 한잔을 하면서 휴식을 취했다. 여장을 풀려고 숙소인 영랑호리조 트에 도착했으나 오후 2시부터 입실할 수 있다고 해, 삼포해변으로 직행, ‘고 성명태’ 집에서 이른 점심으로 지리전골과 명태찜을 먹는다. 계산은 영주가 했 는데 며느리 덕에 잘 먹었다. 친구들과 여행 떠난다고 하니까 시아버지께 용 돈을 쥐어 주더란다. 뭇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샀다. 12시. 작년에 마쳤던 삼포해변에서 제2차 해파랑길 트레킹을 힘차게 출 발한다. 모두 같은 길을 걷겠지만 저마다 다른 생각이 있어 이 고행(苦行)에 나선 것이리라. 백도해변을 지난다. 망망대해와 함께 해안선이 끝없이 펼쳐져 도시생활을 하며 꽉 막힌 가슴이 확 트이는 느낌이다. 갈매기 떼의 배설물로 인해 하얗게 보인다 하여 백도라고 한다.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능파대(凌波 臺)는 갯바위 낚시꾼들과 스킨스쿠버들로 한창 북적이고 있다. 고성 8경 중의 하나인 천학정(天鶴亭)을 지난다. 1931년 건립된 것으로

목을 축인다. 간판을 찍어 수복이한테 보내니 이내 답장이 온다. 내 가게니까

동해를 마주보며 깎아지른 듯한 해안 절벽위에 세워져 있어 절경이다. 천학정

맘껏 마시고 그냥 가면 나중에 자기가 처리하겠다 한다. 허튼 소리인 줄 알지

관리인이 우리 발아래 솟아 있는 바위에 대해 설명한다. 왼쪽 위로 고래 형상

만 모든 게 다 웃음거리다. ‘약’ 기운인지 발걸음에 힘이 붙는다.

이, 가운데 위로는 왼쪽을 보는 코끼리가, 오른쪽 밑으로는 사람의 오른손 모

곧 이어 청간정(淸澗亭)이 나타난다. 1560년 수리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

양을 하고 있다. 바로 위 동산에 올라가면 1400년 된 소나무가 있다는 얘기

으로 보아 그 이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1881년 소실(燒失)된 것을 1928

도 덧붙인다. 올라가 확인해 보니 이제까지 본 것 중 가장 크고 멋진 자태를

년 재건하였으며, 6・25때 전화를 입은 것을 보수한 것이라 한다. 지금 남아 있

취하고 있다.

는 현판은 1953년 이승만 대통령이 친필로 쓴 것이다. 관광 명승지인 만큼 많

출발한 지 두 시간 만에 아야진항에 도착했다. 해파랑길에 멋진 길안내

은 사람들이 둘러보고 주변 풍광에 대해 탄성을 자아낸다. 경신년(庚申年) 한

표지판이 세워져 있는 게 작년과 다른 점이다. 그러나 표지판이 짙은 갈색으

여름 최규하 대통령이 이곳을 찾아 쓴 현판도 눈에 띈다. ‘설악과 동해가 서로

로 되어 있어 간판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식별성이 떨어진다. 이보다 채도가

멋진 조화를 이룬 오래된 누각 위는 과연 관동의 제일 빼어난 경치이다.’

높은 원색 계통 - 예를 들면, 해파랑길의 명칭과 어울리는 밝은 하늘색(sky

청간정에서 남쪽으로 3㎞ 정도 내려오니 봉포해변이다. 필호가 물회 전

blue) - 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인근에 있는 ‘수복상회’에서 맥주로

문이라고 되어 있는 ‘어부횟집’을 보더니 작년 거진항에서 맛있게 먹던 생각

20

21


이 나는지 발길을 옮긴다. 일행이 참을 하는 사이 영주와 나는 ‘애마’ 스타렉

같은 중학교 출신이라 한데 묶어 놀리기에는 그 이상이 없었다. 새벽부터 움

스를 오늘 목적지인 영랑호 부근까지 옮겨 놓기 위해 버스로 삼포해변까지 갔

직여 피곤한 몸을 이끌고 ‘우리 집’ 영랑호리조트에 들어왔다. 방 세 개, 화장

다. 애마를 속초 시내 국민은행 연수원 근처 ‘이마트에브리데이’ 앞 주차장에

실 두 개, 거실과 주방이 있는 복층형 단독주택이다. 시설은 낡았지만 우리들

잘 모셔다놓고 택시로 친구들이 있는 봉포해변까지 왔다. 택시기사 연세가 지

이 며칠 쓰기에는 넓어서 제 격이다. 은섭이가 준비해 온 제주도 흑돼지 보쌈

긋하기에 여쭤보니 7학년 7반이란다. 내가 앞으로는 6학년 17반으로 하시라

수육에 영주 텃밭의 싱싱한 채소와 무철이네 집에서 챙겨준 반찬으로 진수성

고 하니 좋은 말이라고 맞장구친다. 어부횟집에 들어가 우리 몫으로 남겨둔

찬이 따로 없다. 오늘 15㎞를 걸었으니 시장이라는 반찬 한 가지를 더해 일곱

물회를 깨끗이 비우고 다시 길을 나섰다.

명 대식구가 오늘 걸은 얘기를 안주로 저녁을 즐겼다.

해변을 따라 걷는데 길옆에 웬 멋진 설비가 있다. 자세히 보니 음식물쓰 레기 수거시스템이다. 생김새가 한두 푼짜리는 아닌 것 같다. 한여름 성수기 휴가철에 많은 사람이 다녀가면서 생기는 음식물쓰레기를 처리하는 장치다.

6월 7일(금)

사용법도 간단하지 않은 것 같다. 과연 몇 사람이나 정성들여 이 기구를 사용

아침 점호를 하는데 명길이가 안 보인다. 어제 운동량이 부족했던지 새

할지, 활용도 면에서는 의문이 간다. 공무원들의 탁상행정이자 전시행정의 전

벽 일찍 일어나 7㎞나 되는 영랑호 주변을 한 바퀴 돌고 왔다. 영랑호는 해류,

형을 보는 듯해 뒷맛이 씁쓸하다.

조류의 작용으로 바다의 일부가 호수가 된 석호(潟湖)다. 당뇨가 있어 많이

해변을 벗어나 시내 길을 걷는다. 시간상으로 보아 오늘 목적지인 영랑 호 입구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차 둔 곳까지 가야 하는데 영 길이 낯설다. 사 람들에게 이마트에브리데이가 어디에 있냐고 물어보니 여기서 아주 멀리 있 다고 한다. 분명히 뭔가 잘못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는 길 건너편에 영랑동 주민자치센터가 있기에 들어가 보았다. 오늘 마침 현충일이라 자치센 터는 휴무이고, 1층에 ‘작은 도서관’이 열려 있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직 원인 듯한 사람이 자기가 어딘지 알 것 같다며 영주와 나를 자기 차에 태우고 직접 나섰다. 차로도 한참 만에 이마트 에브리데이 앞에 주차해 있는 우리 차 를 발견했다. 우리가 전혀 엉뚱한 곳에서 차를 찾고 있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정중히 하고 헤어졌다. 이렇게 친절한 사람은 참 보기 드물 것 같다. 나중에 알아보니 이 사람은 ‘작은 도서관’에 근무하는 직원의 남편으로 김정현이라 는 분이다. 이 고마움을 잊을 수 없어 속초시 홈페이지에 ‘작은 도서관 직원 의 선행’이라는 글을 올렸다. 한 사람의 친절이 도시 전체의 인상마저 좋게 할 수 있음을 새삼 느꼈다. 이 일로 영주와 나는 ‘길치’로 완전히 낙인이 찍혔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22

23


걷는 운동을 해야만 하는 그다. 어제 좋은 연을 맺었던 영랑동 주민자치센터

을 느낀다. 이보다 더 좋은 치유와 힐링이 따로 없을 듯하다.

에 애마를 주차하고 영랑해안 길부터 걷기 시작한다. 속초에서 생선찜으로 유

대포항(大浦港)이 옛날과 딴판으로 변했다. 활어집, 횟집, 튀김집 등 업종

명한 ‘이모네 식당’을 지나 작년 우리가 해파랑길을 마치면서 점심을 했던 ‘황

에 따라 구획해서 영업을 하고 있다. 새로운 상가 건설공사도 활발한 것으로

가네 찜’ 앞에서 속초등대전망대를 배경으로 둘째 날 출발 인증 샷을 한다.

보아 시장이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친구들이 또 잠깐 쉬어 가자고 할까

대원 모두 컨디션이 좋아 보인다. 다행이다. 속초등대전망대에 오르니 동

봐 내가 선두에 나서 잰걸음으로 시장통을 빠져나왔다. 하루 소화해야 할 거

해 먼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호연지기(浩然之氣)가 절로 인다. 고래 꼬리 형

리가 있는데 시도 때도 없이 앉았다 가면 계획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다. 당

상의 조형물을 배경으로 다녀간 흔적을 남긴다. 영금정을 먼발치에서 바라보

초 오늘 봉포해변에서 낙산사까지 21㎞를 걷기로 되어 있었는데, 어제 봉포해

고 속초항 국제여객선터미널 앞을 지나는데 뒤에서 누가 빵빵거린다. 윤세진

변을 지나왔기에 오늘 아침 회의에서 낙산사 지나 수산항까지 가기로 했다.

회장과 양상진이다. 오늘 아침 도착할 거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속초에서

해변을 따라 20여 분 걸으니 설악산으로 진입하는 설악동입구 삼거리가

전화연락도 안 하고 이렇게 깜짝 쇼를 벌인 것이다. 그러니 더 반갑다. 오늘 새

나온다. 바로 인근에 있는 설악항 활어횟집에서 점심을 하기로 했다. 회 전문

벽 수원에 사는 양구라 선생을 픽업해 이 시간에 온 것이다. 아홉 명쯤 되니

가 양 선생과 은섭이가 간택한 ‘미영이네 집’에서 싱싱한 회와 함께 푸짐하게

한 팀으로 그럴 듯해졌다.

오찬을 즐겼다. 다른 일정이 있어 상경해야 하는 윤 회장, 영주와 나는 버스로

아바이순대마을을 지난다. 6・25 때 함경도 일대의 피난민들이 휴전선에

윤 회장 차가 주차해 있는 동명항까지 돌아왔다. 거기서 윤 회장과는 헤어지

서 가까운 이곳 속초에 내려와 집단촌락을 형성한 마을이다. 먹을 것이 귀하

고, 영주와 나는 영랑동 주민자치센터에 주차해 있는 우리 애마를 끌고 오늘

던 시절 고향에서 먹던 고기순대 대신 이곳에서 흔한 오징어로 순대를 만들

목적지인 수산항 근처로 향했다. 수산항 채 못미처 오산리 선사유적박물관

어 끼니를 잇고 사람들이 많이 찾자 이를 상품화한 것이다. 참새가 방앗간을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았다. 인근에 쏠비치리조트가 있어 어제처럼 차를 잃

그냥 안 지나듯, 우리 일행이 누군가.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황금 아

어버리는 불상사가 되풀이될 것 같지는 않았다. 한참만에야 지나가는 택시를

바이집’에 둥지를 튼다. 순대도 순대지만 주인아주머니가 너무 친절하다. 이곳

타고 우리 일행이 지나올 낙산사 정문 주차장에 내렸다. 친구들은 때마침 낙

속초 사람들은 다 이렇게 친절할까 싶을 정도다. 양구라 선생의 입이 근질근

산사 경내를 돌고 내려오는 중이었다. 곧 이어 일행과 만나 제비집이 있던 매

질해 가만히 있질 않는다. 아는 것도 많고 그 많은 것을 다 기억하고 이를 말

점에서 간단히 목을 축인다.

로 푸는 솜씨까지 갖춘 ‘스토리텔링의 천재’라 아니할 수 없다. 윤 회장이 이 번 ‘만 원의 행복’ 출판비에 보태 쓰라고 금일봉을 주신다.

여기서 6㎞만 가면 오산리 선사유적박물관 주차장이다. 낙산해변을 지 나 연어 회귀로 유명한 남대천을 가로지르는 낙산대교를 지난다. 낙산대교부

아바이순대를 안주로 한잔 걸쳤으니 한동안 잠자코 잘 걸으리라 생각된

터 선사유적박물관까지 현재 해파랑길 조성공사가 한창이다. 조심스레 차도

다. 새로 지은 아치형의 멋진 금강대교를 지나니 청호해안부터 속초해변을 지

한쪽을 따라 일렬로 걷는다. 해파랑길 도중 아무 보호시설이 되어 있지 않은

나 외옹치해변까지 약 2.5㎞의 백사장이 한눈에 펼쳐진다. 해변을 따라 굽이

구간이 아직 여러 군데 있다. 하루 빨리 안전시설을 하거나 노선을 변경해 미

굽이 돌다보면 온몸과 마음은 쪽빛으로 물든다. 마음을 비우러 온 해파랑길

연에 사고를 예방할 필요가 있다. 이번 트레킹에 처음으로 참가한 ‘조항복 선

트레킹은 되레 멋진 풍광과 맑은 공기와 친구들의 재기발랄한 얘기와 웃음으

수’는 힘이 넘치는지 가볍게 달리기까지 한다. 매일 한 시간 정도 트레드밀에

로 한껏 채워진다. 해안 길에 나를 맡기고 온몸으로 일상으로부터의 해방감

서 걷는다고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장거리를 이렇게 잘 걸을 수 없다. 이번 트

24

25


레킹을 시작하면서 은근히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장무철 마라토너 역시 아무

하다. 정자 앞에는 숙종 때 참판을 지낸 이세근(李世瑾)이 썼다는 ‘河趙臺’

문제없이 잘 걷는다. 오후 4시 30분, 은섭이를 끝으로 8명의 대원 모두 다 모

석 자가 음각(陰刻)된 바위가 사람들의 시선을 모은다. 주말 연휴를 맞아 찾

였다. 오늘 23㎞라는 짧지 않은 거리를 안전하게 잘 걸었다. 넓은 주차장에서

아온 많은 관광객들이 서로 멋진 사진을 찍으려고 자리다툼을 한다. 우리도

스트레칭으로 정리운동을 하면서 마쳤다.

그들 틈에 끼어 힘들게 한 컷 한다.

하루 종일 걸은 길은 차로도 40분이나 걸렸다. 저녁은 숙소에서 수입쇠

일제의 질곡과 폭압에 의연하게 맞서 일어난 양양 기미만세운동의 현장

고기 등심구이로 영양보충을 했다. 속초에 사는 최원근 동기와 상진이 대학동

인 만세고개를 지난다. 만세운동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그 숭고한 정신과 민

창 김봉중도 자리를 함께했다. 양 선생의 입담으로 웃느라고 밥이 입으로 들

족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해 유적비가 세워져 있다. 이곳은 인도가 없어 국

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다. 식사 후에는 한잔을 더 하거나, 피곤

교 갓길을 이용해 조심스레 걷는다. 질주하는 차량 운전사들도 국도를 걷고

해서 자거나, 바둑을 두거나 자유 시간을 즐겼다.

있는 우리 일행을 보고 깜짝 놀라는 기색이다. 하루빨리 인도가 만들어져야 할 구간이다.

6월 8일(토)

점심 식사를 할 기사문항 ‘곤드레밥집’이다. 은섭이가 섭외했다. 오늘 특 별히 도루묵조림을 주문해 놓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우리 양 선생이 도루묵

오전 9시 30분, 오산리 선사유적지박물관 주차장에 도착했다. 신필호 대

의 유래에 대해 장황하게 설을 푼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가 북쪽으로

장을 비롯, 양상진, 장무철, 조항복, 추명길 대원은 수산항을 향해 출발했고

피난길을 떠났다. 배가 고팠던 선조가 상에 올라온 생선을 맛있게 먹은 후 그

영주, 은섭이와 나는 오늘 점심 식사를 하게 될 이곳에서부터 약 13㎞ 떨어진

이름을 물었다. ‘묵’이라는 생선이라고 하자 맛있는 생선에 어울리는 이름이

기사문항을 향해 떠났다. 은섭이는 기사문항에 남고 영주와 나는 택시로 친

아니라며 즉석에서 은어(銀魚)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전쟁이 끝난 후 환궁한

구들이 걸어올 동호해변으로 갔다. 동호해변에서 조항복 선수를 단독 선두로

선조가 피난지에서 맛보았던 은어가 생각나 다시 먹어보았더니 옛날 그 맛이

한 일행을 만났다. 수산항부터 동호해변을 거쳐 하조대해변으로 이어지는 길

아니었다. 형편없는 맛에 실망한 선조가 역정을 내면서 “도로 묵이라고 불러

은 아득히 멀어 끝이 안 보이는 일망무제(一望無際)의 경관을 연출한다. 아직

라”해서 그 이름이 생겼다 한다. 그의 입심이 있어 이번 트레킹은 웃음이 떠날

해수욕철이 아니라 인적마저 드물어 해변은 더 넓고 길어 보인다. 동호리 버스

날이 없다. 이런 유래를 들으며 도루묵 조림을 먹으니 밥도둑이 따로 없다.

정류장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가지고 온 음료로 목을 축인다. 발의 피로

오전 공부를 열심히 해 오후에는 광진해변까지 6㎞만 하기로 한다. 오늘

를 풀기 위해 신발을 벗고 있는 친구들의 모습에서 도심에서는 볼 수 없는 여

20㎞를 걷는 셈인데 앞으로는 하루 15㎞ 정도로 줄이고 대신 자유 시간을 많

유가 흠씬 묻어난다.

이 갖도록 하자는 게 중론이다. 기사문항을 출발하자마자 38선 휴게소가 나

아득하게만 보이던 하조대 해변으로 들어섰다. 하조대(河趙臺)는 조선의

온다. 표지석을 배경으로 대원 모두 구릿빛의 건강한 얼굴로 기념촬영을 한

개국공신인 하륜(河崙)과 조준(趙浚)이 이곳에 잠시 은거하였던 데서 붙여진

다. 7번국도 갓길을 따라 열심히 걷고 있다. 오늘 목적지 3㎞ 정도를 남겨두고

이름이다. 조선 정종 때 건립하여, 수차례 증수(增修)를 거쳐 1940년 팔각정

나 혼자 기사문항에 있는 차를 가져오려고 일행과 헤어졌다. 지나가는 버스

으로 지었으나 6・25 전쟁 때 소실된 것을 1955년과 1968년 재건하였다. 또한,

도, 택시도 없다. 유일한 방법은 히치하이킹(hitch-hiking)뿐이다. 10분 정도

돌출된 만의 정상부에 위치하여 동해의 절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기도

열심히 공 들인 결과 2.5톤 화물차 한 대가 선다. 고맙다고 인사한 후 탑승한

26

27


리를 초청했다. 교동에 있는 원근이 단골집으로 멸치회와 오징어회를 안주로 하루의 피로를 푼다. 주인아주머니의 넉넉한 인심 때문에도 속초에 다시 올 때 꼭 들르고 싶은 집이다. 우리 양 선생이 속초의 유래를 들려준다. “설악산 에 구경 온 울산 원님이 신흥사 주지에게 울산바위를 차지하고 있는 대가로 세금을 내라하여 해마다 냈는데 어느 해 신흥사 동자승이 이제 세금을 못 주 겠으니 이 바위를 도로 울산으로 가져가라고 했다. 이 말을 듣고 울산 고을 원님이 이 바위를 재로 꼰 새끼로 묶어주면 가져가겠다고 했더니 동자승이 청 초호와 영랑호 사이 곧 지금의 속초 시가지에 자라고 있는 풀로 새끼를 꼬아 울산바위를 동여 맨 후 불에 태워 재로 꼰 새끼를 만들었다 한다. 그 일 이후 한자로 묶을 속(束)자와 풀 초(草)자를 써 속초라 불리게 되었다 한다.” 참 아 는 것도 많은 양 선생이다. 이런 맛집에서 우리를 대접해 준 원근이가 고맙다.

6월 9일(일) 카레라이스로 아침을 든든히 먹고 길을 나섰다. 오늘은 어제 마쳤던 광 진해변에서 주문진항까지 14㎞만 걸으면 된다. 광진해변에 도착해서 걷기 시 다. 잠시 후 영주 전화가 온다. 내가 성공했다고 하니 옆의 기사도 웃는다. 맘

작하려는데 양 선생이 머뭇거린다. 오늘은 걷지 않고 주문진에서 바다낚시를

씨 좋게 생긴 젊은이다. 호의에 대한 보답으로 가지고 있던 캔 맥주를 주고 내

하고 싶은 거다. 여기 올 때 낚시도구를 모두 챙겨온 그다. 양 선생, 영주, 은섭

렸다. 생전 처음 성공한 히치하이킹,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됐다. 앞으로 나에

이는 차로, 신 대장을 비롯해 무철, 항복, 명길이와 나는 도보로 각각 주문진

게 이런 기회가 생긴다면 흔쾌히 차를 세워 태워줄 생각이다.

을 향해 떠났다.

광진해변이 한눈에 보이는 고급식당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일행을 만

휴휴암(休休庵)이다. 절경에 입지하지 않은 절이 있을까만, 이 절도 바로

나러 나갔다. 불과 5분 만에 인구해변을 지나 광진해변으로 오는 친구들을

해변에서 동해를 마주보고 향해 있어 아름답기가 그지없다. 절 한가운데에

만났다. 잠시 동안이었지만 이렇게 헤어졌다 만나면 그 기분이 색다르다. 나의

있는 사유지를 두고 동부그룹 측과 다툼이 있는 듯 군데군데 걸려있는 플래

히치하이킹 무용담을 화제로 해변 정자에서 잠시 쉬었다 간다. 목적지에 차가

카드로 조용한 절답지 않게 어수선하다. 동쪽 끝자락에 있는 높이 15m에 달

있으니 시간절약이 많이 된다. 부지런히 차를 몰고 우리 숙소로 향한다. 잠시

하는 지혜관세음보살 앞에서 기념촬영을 한다. 이 보살은 손에 항상 책을 지

후 동준이가 가족들과 속초로 놀러 온 김에 속초명물 닭 강정 두 상자를 들

니고 있어, 학문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모든 학문을 통달하게 하고, 어리석은

고 찾아왔다.

사람에게는 지혜를 갖추게 해준다고 한다.

오늘 저녁은 이곳 속초가 고향인 최원근 동기가 시내에 있는 포차로 우

28

오전 11시, 영주와 연락해보니 다른 사람들과 함께 승선하다 보니 늦게

29


떠나 이제야 겨우 한 마리 낚았다 한다. 오늘 점심 횟감은 책임진다고 큰소리 쳤으나 그걸 액면 그대로 믿었던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1시 반 쯤 돼야 돌아

120次

|

2014. 5. 19 ~ 22

제3차 해파랑길 주문진수산시장 ~ 도직항 57㎞

온다고 하기에 우리도 모처럼 느긋하게 동해의 가경(佳境)을 완상(玩賞)하며 걷는다. 소돌 아들바위공원에서 발길을 멈춘다. 지금으로부터 일억 오천만 년 전 주라기시대에 바다 속에 있다가 지각변동으로 지상에 솟은 바위로 먼 옛날 노부부가 백 일 기도 후 득남한 이후 자식이 없는 부부가 기도를 하면 소원을 성취한다는 전설이 있어 신혼부부들이 즐겨 찾는 동해안 명소이다. 오늘도 어

해파랑길 1/4을 마치다

김없이 많은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우리 일행은 동해가 한눈에 펼쳐지는 아들 바위 등대 데크에 자리를 잡고 시원하게 맥주 한잔을 즐겼다. 1시 40분, 영주와 양 선생이 큰 아이스박스에 달랑 횟대 열 마리를 잡아 들고 돌아왔다. 주문진항 ‘파도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서울에서는 좀처럼 먹 기 힘든 싱싱한 꽁치회를 안주로 한잔하고, 잡아온 횟대와 대구로 매운탕을 끓여 점식식사를 하니 일미다. 이번 나흘간의 해파랑길 트레킹에서도 많은 것을 배웠다. 여행이 곧 공부

산우회는 5월 19일부터 22일까지 해파랑길 세 번째 트레킹에 나섰다. 주문진

인 것이다. 우리는 길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수산시장에서 어려운 가운데서

에서 강릉 도직항까지 57㎞를 걸었다. 변수복, 신필호, 안은섭, 양상진, 장무

도 치열하게 사는 상인들의 삶의 의지를 배웠다. 잃어버렸던 차를 찾아준 김

철, 진영주, 함동일, 허정회가 함께했다.

정현 씨로부터 친절을 배웠다. 그리고 생면부지의 낯선 남자를 자기 화물차에 태워준 고마운 운전기사로부터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돕는 착한 마음씨를 배웠

두 발로만 걷는 여행은 탈것에 의존할 때와는 전혀 다르다. 천천히 갈수

다. 다음 해파랑길에서는 무엇을 배우게 될까? 다녀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았는

록 자연은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보여준다. 자동차로 여행하면 지나칠 만한

데 또 몸이 근질근질한 이유다.

것도 걷게 되면 눈에 띄게 되고 새로운 것을 발견한 데 대한 쾌락을 느끼게 된 다. 그것이 천혜의 자연경관과 역사를 지니고 있는 동해안 해변을 걷는 것이 라면 더 말할 나위 없다. 해무(海霧)가 잔뜩 낀 드넓은 바다와 시원한 바람, 찰랑거리는 파도와 그 부서지는 소리, 길게 뻗은 백사장과 나란히 나 있는 솔 향기 물씬 풍기는 해송 오솔길, 괘방산 능선에서 본 끝없이 넓은 푸른 바다, 때마침 모내기철을 맞아 이앙기로 모를 심는 부지런한 농민들, 방파제에서 한

참가자

가히 낚시를 하고 있는 강태공들, 해안과 나란히 뻗어 있는 철길을 따라 달리

신필호 안은섭 양상진 장무철 조항복 진영주 추명길 허정회

는 관광열차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싱싱한 생선회와 친구들의 끊임없는 웃

30

31


솔바람다리 위에서. 여기를 지나면서 강릉공항 때문에 내륙으로 크게 우회하게 된다.

아침 숙소를 나설 때에는 화창하게 갰다. 셋째 날에는 트레킹 팀과 낚시팀으로 나누어 진행하였다. 변수복, 양상 진, 진영주로 구성된 동기회 ‘드림 낚시팀’은 ‘서울에서는 돈 주고도 못 먹는 다’는 감성돔 새끼 여러 마리를 낚아 저녁 횟감으로 우리들의 입을 즐겁게 해 주었다. 아침 트레킹을 시작할 때 잡지 못하면 사서라도 횟감을 대겠다고 호 언했던 낚시팀의 체면이 선 하루였다. 여행을 하게 되면 이래저래 도움 받는 일이 생긴다. 첫째 둘째 날 묵은 경 주문진수산시장 내 월성식당 앞에서. 이 집에서 먹은 장치찜은 일품이었다.

포해변의 ‘어린왕자 게스트 하우스’는 최세양 동문(5회)이 운영하고 있다. 차 한 대로 트레킹을 할 때 제일 난감한 것은 출발했던 원점으로 회귀할 때 마땅

음이 이번 우리 여행의 동반자다. 기간 중 하늘도 우리 편이 돼주었다. 작년에 약간 더웠던 기억이 있어 올 해는 작년보다 약 2주 앞당긴 게 주효했다. 그동안 서울은 초여름 더위였다는

치 않은 대중교통편이다. 이번에는 최 동문의 도움으로 그 고민을 말끔히 해 결할 수 있었다. 3년째 강릉 생활을 하고 있다는 그의 호의가 없었다면 트레 킹 후 자유시간이 적잖이 줄어들었을 것 같다.

데 여기는 시원하다 못해 서늘할 정도였다. 구름까지 적당히 하늘을 가려줘

셋째 날에는 최병학 동기 처남인 김병덕 사장의 도움을 받았다. 안인해

걷기에 이만큼 좋은 날씨가 없을 정도였다. 마지막 날 새벽 비가 흩뿌리더니

변 영동화력발전소 근처에서 광어 양식장을 크게 운영하고 있다. 작년 4월 강

32

33


셋째 날 목적지인 심곡항에서 낚시팀과 재회의 기쁨을 나눴다.

풍납동 ‘족발 속으로’에서 가진 해단식. 제3차 해파랑길을 무사히 완주한 데 대해 축배를 들고 있다.

된 자형 대신 즐거운 저녁시간을 보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진영주 재무가 각자 주머니에 배춧잎 석 장씩을 찔 러준다. 15만 원 회비 중 20%나 되는 큰 액수다. 아침과 저녁은 숙소에서 해결 하는 등 열심히 일한 데 대한 배당금이다. 식탁은 풍성했고 여럿이 함께한 식 사는 하나같이 꿀맛이었다. 집에 돌아와 체중을 재보니 출발할 때보다 1㎏ 줄 어들었다. 매일 하루 평균 15㎞씩 걸은 운동의 효과다. 2012년 5월 40㎞, 작년 6월 72㎞에 이어 이번까지 총 169㎞를 걸었다. 해 파랑길 전장 770㎞의 1/4을 한 셈이다. 지금처럼 일 년에 한 번 3박 4일 일정 원도 인제군 삼봉자연휴양림에 다녀오는 길에 들러 쫄깃쫄깃한 광어회를 대

으로 진행한다면 앞으로 9년 후에나 부산에 도착하게 된다. 아무래도 우리들

접받은 적이 있다. 이번에는 우리를 위해 강릉임해자연휴양림 숙소를 예약해

의 나이에 따른 체력을 감안할 때 하루라도 더 젊을 때 많이 해두는 방안을

줬다. 임해자연휴양림은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바다와 산을 동시에 아우

마련해야 할 것 같다.

르는 숲속 쉼터라 한다. 동해안의 아름다운 해안 절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뒤 로는 괘방산을 병풍 삼아 입지해 있다. 문을 연 지 2년밖에 안 돼선지 모든 시 설이 깔끔해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사업에 바쁜 시간을 쪼개 우리

참가자

숙소까지 횟감을 싸들고 찾아 와 이번에 우리와 함께하기로 했다가 못 오게

변수복 신필호 안은섭 양상진 장무철 진영주 함동일 허정회

34

35


126次

|

2014. 9. 29 ~ 10. 3

제4차 해파랑길 도직항 ~ 대진항 55㎞

8㎏짜리 부시리, 거저 줍다

산우회는 9월 29일부터 10월 3일까지 제4차 해파랑길 트레킹에 나섰다. 지난

수기를 막론하고 예약이 어려울 정도로 인기가 있다.

5월에 이어 올해 들어 두 번째다. 이제까지 연 1회 해오던 것을 최종 목적지인

이번 트레킹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실컷 먹은 부시리회(膾)다. 부시

부산 도착 일정을 한 해라도 더 앞당기기 위해 2회로 늘린 것이다. 이번에는

리는 몸길이 1m 가 넘게 나가는 전갱이과로 방어와 비슷하나 몸이 가는 생선

망상해변부터 삼척 아래에 있는 자그마한 포구인 대진항까지 약 55㎞를 걸었

이다. 묵호활어센터에서 그 놈을 주웠다. 수족관에서 막 죽은 약 8㎏짜리 부

다. 하루 18㎞ 정도를 한 셈으로 해파랑길 총 연장 770㎞ 중 224㎞를 소화했

시리를 3만 원에 산 것이다. 그 놈을 회로 뜨니 도시락 상자로 아홉 개나 나왔

다. 신필호, 안은섭, 양상진, 진영주, 함동일, 허정회가 참가했다. 첫날밤에는

다. 둘째 날 밤 합류한 양상진 동기까지 6명이 먹기에는 너무 많았다. 그걸 푹

강릉에 일 보러 왔던 최병학 동기가 광어회를 사들고 휴양림까지 찾아왔다.

고아 지리를 만드니 그 또한 별미였다.

그걸로 해파랑길 트레킹 전야제를 멋있게 할 수 있었다.

트레킹 하기로 했던 첫날 오전은 내내 비가 왔다. 산우회 행사가 있을 때

첫날 묵은 강릉 임해자연휴양림은 지난봄에도 신세졌던 곳이다. 높은

에는 대개 날이 좋았는데 이번에는 예외다. 첫날 운행은 못해도, 그래도 좋았

산에 위치하고 있어 동해가 한눈에 들어오는 멋진 휴양림이다. 산우회 행사

다. 오래간만에 여유 있는 시간을 가지고 푹 쉴 수 있었다. 청가우기(晴佳雨奇)

를 할 때는 가능하면 자연휴양림을 애용하고 있다. 입지가 쾌적하고 시설이

라, 맑은 날은 아름답지만 비오는 날은 기묘하다. 뭐든지 마음먹기 나름이다.

좋으며 경제적이다. 산림청에서 운영하는 국립자연휴양림이 있고, 임해자연휴

주변에서 1년에 한두 번 동해안을 걷는다고 하면 왜 하냐고 묻는다. 경

양림처럼 각 지자체가 관리하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어느 것이나 모두 만

험 없는 이들에게 설명을 하려고 하니 막상 이럴 때 대답이 난감하다. 며칠에

족도가 높은 편이다. 모든 예약은 인터넷으로만 해야 한다. 주말은 성수기, 비

걸쳐 친구들과 걷고, 먹고, 낚시하고, 바둑 두고, 쉬고, 얘기하고 지내는 게 다

36

37


138次

|

2015. 6. 19 ~ 23

제5차 해파랑길 대진항 ~ 죽변항 56㎞

잘 먹고, 잘 걷고, 잘 놀자

지난 6월 19일부터 닷새 간 다섯 번째 해파랑길 트레킹을 마쳤다. 강원도 삼 척시 근덕면 대진항부터 경북 울진군 죽변항까지 56㎞를 걸었다. 산우회 극 인데. 마음을 비우고 대자연과 며칠 함께 호흡하다 보면 돌아갈 때는 많은 것

동러시아역사문화기행으로 예년보다 한 달 늦게 출발하게 돼 더위와 장마 걱

을 채우고 가게 된다. 하여간 한번 같이 걸어보면 참맛을 알게 된다. 제주도에

정을 한 건 기우였다. 기간 중 적당히 낀 구름은 한 여름 강한 햇볕을 막아 줘

서 신필호 동기가, 전라도 순천에서 양상진 동기가 먼 길 마다않고 매번 오는

시원했고, 비는 우리를 비켜 갔다. 김수곤, 남상화, 신필호, 안은섭, 양상진, 진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2012년 봄, 얼떨결에 저지른 해파랑길

영주, 허정회가 함께했다.

트레킹도 벌써 1/3을 마쳤다. 혼자라면 어렵겠지만 친구들과 함께하기에 그 끝이 멀리 있어 보이지 않는다.

삼척 하나로마트에서 먹거리를 준비하고 이틀간 머물 국립 검봉산 (劍奉山)자연휴양림에 들어서니 산 속 찬 공기가 폐부까지 시원하게 해 준다. 자연휴양림은 해발 681m 검 봉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으며 임원

참가자

항까지는 차로 10분 거리에 있었다.

신필호 안은섭 양상진 진영주 함동일 허정회

우리가 예약한 통나무 숲속의 집(10

38

39


초곡항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금 메달의 주인공 황영조 선수의 고향이다. 마을에 는 그의 위업을 기리는 기념관과 기념공원이 조 성되어 있다.

6월 20일(토) 오전 8시 30분, 대진항부터 걷기 시작해 오후 2시 30분 갈남항까지 15㎞ 를 걸었다. 도보 여행을 하다보면 별 희한한 일이 다 생긴다. 작년 가을 해파랑 길에서는 묵호항에서 갓 죽은 8㎏짜리 부시리를 3만 원(시가 16만 원 상당)에 건져 도시락 9개 분량의 횟감을 떠 며칠 동안 입이 즐거웠다. 이번에는 궁촌항 양식멍게 분리・선별작업장에서 불합격된 멍게 약 100여 개를 만 원에 사 - 시 원치 않은 칼로 그 놈들을 손질한 영주만 빼고 - 하루 종일 즐기는 행운을 누 렸다. 용화해변 방파제에서 점심 먹을 때 열무비빔밥에 멍게를 듬뿍 넣으니 그 상큼한 향이 오랫동안 입가에 맴돌았다. 궁촌항에서 한 시간가량 걸으니 초곡항에 닿았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 림픽 마라톤 금메달의 주인공 황영조 선수의 고향이다. 이 작은 마을에서 우 리나라 마라톤 역사의 한 획을 근 인물이 배출됐다는데 마라톤을 즐기는 사 람으로서 감회가 새로웠다. 마을에는 그의 위업을 기리는 기념관과 기념공원 이 조성되어 있었다. 오후 2시 30분, 예정대로 갈남항까지 오늘 일정을 마치고 자연휴양림으 로 귀가 후 자유시간을 가졌다. 비 올 것 같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낚시팀(양 상진, 진영주, 김수곤)은 오늘 저녁 횟감을 구한다고 임원항으로 갔다. 임원항 은 한류와 난류가 만나 어족이 풍부한 어장으로 강성돔, 대구 낚시터로 유명 하다. 낚시팀은 직접 낚은 새끼 우럭 몇 마리와 2만 원짜리를 물고 나온 가자 미 세꼬시 두 접시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6월 21일(일) 오전 8시 20분, 어제 발걸음을 멈췄던 갈남항부터 걷기 시작했다. 오늘 인실)은 복층으로 되어 있어 우리 일곱 명이 쓰기에 아주 쾌적했다. 밤늦게 합

은 계획했던 일정을 3㎞ 단축하여 노곡항까지 약 14㎞를 가기로 했다. 걸은

류한 순천・사천팀(양상진, 김수곤)과 자정 넘어서까지 불고기를 안주로 회포

지 20분 만에 해신당공원에 도착했다. 해신당(海神堂)은 총각 덕배와 처녀

를 풀었다.

애랑의 못 이룬 사랑을 남근(男根)으로 치성을 올려 그들의 원혼을 달래고

40

41


동해안을 따라 조성한 해파랑길이 몇 개의 도・군 경계를 지나게 되자 국토해 양부와 각 지자체가 공동으로 나서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조성된 해파랑길이 었지만 그 후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지금은 표지기 하나 제대로 없다. 임원 항을 떠나 임원해변 옆 2차선 도로를 따라 걷고 있는데 갑자기 앞에서 길이 끊어진다. 이럴 때가 제일 난감하다. 왔던 길을 되돌아 나갈 수밖에 없다. 왕 복 2㎞는 족히 되었다.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은 동해안고속도로를 만들기 전에 있었던 구도로다. 그러다 보니 노선버스와 마을 간 통행을 하는 차량 몇 대만 주로 이용한다. 국 토를 종단하는 자전거도로이기도 하다. 십 수대의 자전거부대가 안간힘을 쓰 며 오르막길을 오르더니 종주인증센터에서 회차한다. 천안에 산다는 초등학 교 3학년 사내아이가 아버지와 함께 국토를 종주하고 있었다. 멋진 부자다. 12시 40분, 오늘의 종점 노곡항에 닿았다. 땡볕에 낚시용 파라솔을 펴고 은섭이가 정성껏 준비한 냉우동으로 점심을 한다. 얼마나 고명이 많고 좋은지 우동 한 그릇 먹으니 시장기가 싹 가셨다. 낚시팀은 그 자리에서 낚싯대를 드 리우고 나머지 일행은 오늘부터 이틀간 머물 구수곡자연휴양림으로 향했다. 휴양림 가다가 물이 좋기로 유명한 덕구온천에 몸을 담갔다. 덕구온천은 휴양림과 지척에 있었다. 어제오늘 30㎞를 걷느라 쌓인 피로가 스르르 풀린 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여파로 일요일인데도 불구하고 대온천탕에 몇 사람 안 보인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는 메르스 덕을 톡톡히 봤다.

풍어를 기원하던 사당이다. 11시, 임원항에 도착하니 배가 출출하였다. 좌판에서 광어와 우럭을 사

6월 22일(월)

그 자리에서 회로 떠 소맥으로 목을 축인다. 바로 이 맛에 땀 흘리며 걷는 것

구수곡(九水谷)자연휴양림은 울진군에서 운영하고 있고, 물이 많이 흐

이다. 양상진의 입담으로 회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지

른다하여 구수곡이라 부르는 계곡에 자리 잡고 있다. 우리 집은 통나무로 된

경이다.

독채다. 방 두 개에 거실도 따로 있어 우리 일곱 명이 쓰기에 넉넉하다. 어제

이번 해파랑길을 걸으며 가장 큰 애로는 표지기가 제대로 달려 있지 않

오후 온천욕을 하고 모처럼 일찍 잠자리에 든 때문인지 모두 새벽같이 일어

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해파랑길을 걷기 시작한 게 2012년이었으니 벌써 4년

났다. 날도 덥고 해서 일찍 출발해 일찍 끝내기로 했다. 새벽 4시 40분 아침을

째다. 당시 제주 올레길이 인기를 얻자 지자체별로 둘레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먹고 어제 마쳤던 노곡항에 도착하니 6시 25분이었다.

42

43


오늘은 노곡항부터 울진원자력발전소 홍보관까지 약 17㎞ 코스다. 노곡 항은 가리비가 유명하며 낚시터로도 인기가 있는 곳이다. 노곡항 전망대까지

다. 그래도 그들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보면 어느새 그들과 친구 되어 있음을 느낀다. 도보여행의 매력이다.

올라가는 산길이 제법 급해 숨이 턱에 걸린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노곡항

10시 30분, 나곡 어촌체험마을에 도착했다. 말이 어촌체험마을이지 횟

일대는 장관이었다. 파랑 하나 없이 고요한 바다에는 몇 척의 어선만이 둥둥

집 하나 덩그러니 있다. 낚시로 건져 올린 자연산 광어가 한 맛 한다. 운동 후

떠 있다. 원덕중고교 앞 버스정류소에서 맥주로 마른 목을 축인다.

공기 좋은 바닷가에서 한잔하니 이보다 더한 즐거움이 어디 있겠는가. “삶이

열심히 걸어 미역 산지로 유명한 고포해변까지 왔다. 고포해변은 강원도

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각자 살아내야 할 신비다.” 성지순례로 유명한

와 경상북도 경계에 있다. 드디어 강원도를 졸업하게 되는 순간이다. 주민들의

스페인의 ‘산티아고 길(Camino de Santiago)’ 어느 성당에 있는 글귀라 한다.

말씨부터 이제까지와는 벌써 차이가 있다. 나곡항으로 이어지는 새로 포장된

그렇다.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건 신비스러운 일이다. 우리 인간 뜻대로

2차선 도로에는 차 한 대도 지나지 않고 우리만 그 길을 메우고 있다.

되는 건 별로 없다. 삶을 신비로 생각할 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대부분을

경북으로 넘어오면서 달라진 게 하나 있다. 그동안 안 보이던 해파랑길

내려놓을 때 우리는 비로소 행복해 질 수 있는 것이다. 베스트셀러 ’꾸뻬씨의

표지기가 군데군데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강원도와 경북의 도세를 가늠케

행복여행‘의 저자 프랑수아 를로르도 행복은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에 달려

하는 지표라 할 수 있다. 각 지자체

있다고 했다. 삶을 문제로 보느냐 신비로 보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는

별로 해파랑길을 대한민국 제일의

얘기다.

둘레길로 만들고자 하는 열정을 가

오늘 종착역 울진원자력발전소 홍보관에 도착하니 정오도 채 안 됐다.

진 공무원 한 사람만 있다면 될 일

새벽녘부터 부지런 떨어 움직이니 오전 수업으로 하루 정규일과가 끝났다. 휴

같은데 그게 안 되고 있는 것이다.

양림 귀갓길에 큰길에서 저수지를 따라 3.8㎞나 떨어져 있는 ‘황금소나무’를

애만 덜렁 낳아 놓고 제대로 기르지

알현했다. 수령은 60년밖에 안 됐으나 나뭇잎이 황금색을 띠기 때문에 황금

않는 격이다. 그러니 이렇게 멋진 해

소나무로 불린다. 이는 엽록소가 부족하거나 없기 때문에 생기는 일종의 변이

파랑길을 찾는 사람이 우리 말고 없

종으로 세계적으로 희귀하여 소나무 연구 자료로 쓰이고 있다. 오후는 원하

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는 대로 덕구온천 목욕팀, 바둑팀, 낚시팀으로 나뉘어 느긋한 시간을 보냈다.

없다. 나곡항에서 회(膾) 먹을 희망 으로 모두들 땀 흘리며 걷고 있다.

6월 23일(화)

직접 내 두 발로 걸어 여행하는 건

벌써 마지막 날이다. 오늘은 죽변항까지 10㎞만 걷고, 오후는 각자 ‘고향

동력 여행과는 차원이 다르다. 길섶

앞으로’이다. 오전 7시 20분 울진원전홍보관에서 한 30분 걸으니 옥계(玉溪)

에서 마주치는 모든 잡초, 꽃, 새가

서원 유허비(遺墟碑)가 초라한 모습으로 서 있다. 옥계서원은 우암 송시열, 석

내게 말을 거는 것 같다. 내가 그들

당 김상정, 만은 전선 세 분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한 비각(碑閣)이다.

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쉽

유허비 앞에는 텃밭인 듯 검은 비닐로 덮여 있어 제대로 관리를 하고 있지 못

44

45


한 인상을 받았다. 홍보관 출발 후 한 시간 동안 제법 교통량이 많아 위험한 7번국도 갓길

143次

|

2015. 10. 15 ~ 18

제6차 해파랑길 죽변항 ~ 후포항 58㎞

을 따라 부지런히 걸어 경북해양바이오산업연구원까지 왔다. 후정해수욕장 못 미쳐 공지에 있는 참나무 땔감 사이에 둘러 앉아 맥주로 갈증을 달랜다. 싱그러운 바닷바람에 흘렸던 땀이 금세 날아간다. 다 왔다 생각하니 모두들 꿈같은 시간이 간 것에 대해 아쉬워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죽변면도서관 주차장에 세워 둔 차에 몸을 싣고 죽변항으로 향했다. 아 침 일찍 문을 연 횟집에 들어가 계획대로 무사히 목표를 달성한 데 대한 축배 의 잔을 들었다. 이번까지 해파랑길 770㎞ 중 280㎞를 마쳤다. 전체의 약 36%를 한 셈이

“와 차 놔두고 걸어가나? 참 이상도 하지!”

다. 시작할 때는 꿈만 같더니 이제 서서히 그 끝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 우리 해파랑길 트레커들의 모토는 ‘잘 먹고, 잘 걷고, 잘 놀자’이다. 이 중 어느 하나 그냥 되는 것은 없다. 잘 먹는 게 어느 약보다 나은 법이다. 또 누우면 죽 고 걸으면 사는 법이다. 잘 노는 것만 해도 그렇다. 노는 것도 부단한 연습이 필요하다. 연습 없이 갑자기 놀라고 하면 못 한다. 이제 나이 들어감에 따라

속도를 줄이면 보이는 게 많아진다. 눈에 보이는 주위 경관은 물론 평소 잘 안

잘 노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죽을 때 ‘좀 더 일할 걸’ 하며 후회하는 사람은

보이던 내 마음속까지도 잘 보이게 된다. 조금만 천천히 가면 인생이 지금보다

없다고 한다. 대신 좀 더 제대로 놀지 못한 것에 대한 후한은 많이 한다고 한

더 즐거워진다. 앞만 보고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토끼 같은 삶보다는 때론 옆

다. 이런 불행한 일이 없도록 지금부터 더 열심히 여생을 즐기도록 하자.

도 뒤도 살펴보고 걷는 거북이 삶이 더 소중한 이유다. 이번 여섯 번째 해파랑길 트레킹이 그랬다. 나흘 동안 경북 죽변항부터 후포항까지 해안도로를 따라 58㎞를 걸었다. 이 길에 김수곤, 남상화, 변수복, 신필호, 안은섭, 양상진, 진영주, 함동일, 허정회가 함께 나섰다. 청명한 초가 을 날씨와 해안을 따라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광은 걷는 발걸음에 힘을 보탰 다. 오전에만 걷고 오후에는 각자 하고 싶은 걸 했다. 먹고 걷고 마시고 떠들고 웃고 온천욕하고 세월 낚고 수담(手談) 나눈 게 전부였지만 하루가 그렇게 빨 리 지나갈 수 없었고 친구들 모두 최고조의 기분이었다. 그만큼 행복한 나날 을 보냈다.

참가자

김수곤 남상화 신필호 안은섭 양상진 진영주 허정회

46

이번 해파랑길의 가장 큰 수확은 동일이의 건강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수술 전보다 훨씬 컨디션이 좋아 보였다. 평소 매일 만 보정도 걷는데

47


이번에 2만 5000보를 걸어도 괜찮았다. 심리적인 요소도 크게 작용하는 건강

다. 굴구지 마을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펜션으로 시설이 자연휴양림 못지

에 자신감을 되찾은 것은 큰 선물인 셈이다.

않았다. 우리가 예약했던 방이 난방이 안 돼 마침 비어 있는 옆방까지 두 개 쓸 수 있어 한결 여유가 있었다. 개인이 아닌 마을이 운영해선지 시설은 좋은

10월 15일(목)

데 관리를 제대로 못하는 것 같았다. 늦게 도착한 김수곤, 변수복, 양상진과 오래간만에 회포를 풀었다.

첫날 울진엑스포공원까지 15㎞를 걸었다. 아침 7시 서울을 떠나 죽변항 까지 차로 4시간 반 걸렸고, 점심 식사 후 서너 시간 더 걸었으니 제법 강행군 을 한 셈이다.

10월 16일(금)

봉평해변을 걷다 한 아주머니를 만났다. 베를린에서 휴가차 고향 울진에

오늘 목표인 기성・망양해변에 앞으로 이틀 밤 신세를 질 민박집을 구했

왔는데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해변을 걷고 있다고 했다. 나에게 사진을 찍어

다. 철이 지나선지 숙소는 여유가 있었지만 우리가 사용하기에 만만한 건 별

달라고 부탁할 때는 하늘을 향해 두 팔을 힘껏 내뻗는 포즈를 취했다. 서울은

로 없었다. 괜찮아 보이는 건 터무니없이 비쌌다. 우리가 든 집은 양옥으로 2

이것저것 거추장스러워 싫다 했다. 칠십 넘은 나이에도 바다수영을 즐기기 때

층 방 두 개를 빌렸다.

문인지 피부가 온통 구릿빛이다. 45년 전 독일로 갔고 그곳에서 성악을 전공

울진엑스포공원부터 기성・망양해변까지 18㎞를 걸었다. 우리 체력으로

했다. 지금은 독일에서 한국과 관련한 각종 이벤트를 기획하고 있다. 독일에

는 하루 15㎞ 정도가 적당한 데 일정을 맞추려고 한 3㎞ 더하니 그만큼 힘들

오래 살아선지 그 나이 또래 한국 할머니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었다. 2~3년 전만 해도 하루 22㎞를 걷기도 했는데 세월 따라 기력도 그만큼

울진엑스포공원에서 여정을 마치고 차를 주차해 놓은 죽변항으로 되돌

떨어지는 것이다.

아왔다. 영주 단골인 송이네 횟집에 들렀다. 시장했던 김에 서울에서는 도저

왕피천 하구에 있는 망양정(望洋亭). 조선 숙종은 관동팔경 중 으뜸이

히 맛볼 수 없는 오징어회로 배를 채웠다. 저녁 오삼불고기용 생오징어와 횟

라 하여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라는 친필편액을 하사했다는 곳이다. ‘망

감을 싸들고 왕피천에 있는 굴구지 산촌마을로 향했다. 굴구지는 아홉 고개

양’에는 바다를 바라본다는 본뜻 외에 망양지탄(望洋之嘆)이라 하여 위대한

넘어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울진군에서도 최고 오지에 속한

것을 보고 감탄하여 자신의 좁은 소견을 부끄러워한다는 속뜻도 있다. 망양

다. 왕피천 계곡은 낙동정맥의 중심

정에서 동해를 굽어보고 느끼는 바로 그 심정을 표현한 것 같기도 하다.

축으로 멸종위기종과 희귀야생식물

매해 신년 타종식 행사장이자 일출명소인 해맞이 광장을 지나자 해안

이 서식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계

길이 한도 끝도 없이 펼쳐진다. 해변 길섶 쉼터에서 잠시 목을 축인다. 다시 힘

곡이 크고 깊은 데다 경관마저 빼어

을 얻은 발길은 장엄하게 솟은 기암절벽을 만나지만 코끝을 뒤흔드는 해향

나 하룻밤 잠깐 머물다 가기에는 아

(海香)에 취해 점점 해안 길 절경에 감각이 무뎌진다.

까울 정도였다.

덕신해변의 한적한 뒷골목을 지나 7번 국도를 따라 잠시 오르니 망양휴

우리 숙소는 그 마을에서는 가

게소가 나타난다. 이곳에 있는 망양전망대에 다다르니 깎아지른 바위 아래로

장 현대식으로 멋지게 지은 집이었

부서지는 파도와 환상적인 풍광이 나그네의 넋을 쏙 빼놓는다. 구미에서 왔

48

49


10월 17일(토) 총동문회 체육행사 참가차 서울로 간 안 셰프 대신 신임 양 셰프가 엊저 녁 만든 김치찌개와 라면으로 아침을 든든히 먹고 길을 나섰다. 배웅하던 민 박집 아주머니가 우리를 향해 혼잣말을 한다. “와 차 놔두고 걸어가나? 참 이 상도 하지!” 아주머니 눈에는 우리가 정상적인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 머나먼 길이 가르쳐주는 의미를 알 리 없는 것이다. 오늘은 월송정(越松亭)까지 15㎞만 걸으면 된다. 어제에 비하면 많이 가 벼운 편이다. 이곳 기성・망양해변은 오징어 풍물거리로도 유명하다. 햇볕과 해풍으로 반건 오징어를 만든다. 질 좋은 건 10마리에 2만 2000원 한다. 자동 차로 지나가는 손님의 발길을 멈추기 위해 가게 앞에 허수아비로 여인 인형을 세워 놓은 게 이채롭다. 우리 민박집 아주머니도 하고 있어 오늘 간식용으로 신 대장이 두 마리를 샀다. 다는 설악산행 교회 신도팀이 우리에게 묵사발 두 접시를 건넨다. 고맙다고

해안도로를 따르던 길은 기성항을 지나 척산천을 역으로 거슬러 올라간

하니 이어 방울토마토와 가래떡이 2~3탄으로 날아온다. 그 정성에 우리 양구

다. 척산천은 동해를 향해 흘러가다 이곳 하구에서 아름다운 길을 만들어냈

라 선생이 덕담으로 보답 하니 이번에는 김밥 두 줄을 더 준다. 마침 때가 좀

다. 무심코 길 따라가던 선두 동일이와 필호가 제 코스를 놓쳤다. 표지기가 제

지났는데 먹다 보니 시장기가 싹 가셨다. 길을 걷다 보면 차타고 다니면서는

대로 눈에 안 띄어 지나친 것이다. 제일 뒤에서 따라 가던 상진이가 선두가 됐

만날 수 없는 참 희한한 인연이 많이 생긴다. 작년 이맘 때 묵호항에서 3만 원

다. 선두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선두가 돼버렸다. 새옹지마(塞翁之馬) 격이다.

에 건진 8㎏짜리 부시리가 그렇고, 지난 봄 궁촌항에서 멍게 한 바구니를 만

표지기를 따라가니 숲이 나온다. 숲 입구에서 챙겨온 간식으로 요기를 했다.

원에 주운 것도 바로 그런 경우다.

삶은 달걀, 사과, 반건 오징어, 황태포 등 푸짐하게 한 상이 차려졌다.

숙소에 돌아오니 안 셰프가 먹음직스런 짬뽕을 잘 차려 놓았다. 한 그릇

다시 힘을 내 산길을 오른다. 길은 끊어진 채 표지기도 제대로 없다. 간신

하니 방금 전까지 많이 걸어 힘들어 하던 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이어 목

히 길을 찾아 올라가니 울진공항이 나온다. 당초 2003년 개항 예정이었으나

욕팀(김수곤, 남상화, 신필호, 함동일)은 백암온천으로, 낚시팀(양상진, 진영

수요가 없어 현재 경비행기 교육훈련용으로 쓰인다. 국가 예산 낭비의 전형이

주)은 바로 앞 방파제로 나가 자유시간을 보냈다. 수복이가 포항에 사는 용범

다. 쉴 새 없이 경비행기가 뜨고 내린다.

이에게 연락을 하니 불과 한 시간여 만에 고래 고기 한 상자 싸들고 찾아왔

해파랑길은 국내 최장 트레일이자 유일한 해안 종단길이다. 경관 좋은 동

다. 멀리서 친구가 찾아왔으니 이보다 더 즐거운 낙이 어디 있겠는가. 굳이 논

해안 전 구간을 따라 난 길이다. 제주 올레길로 전국에 걷기여행 열풍이 불기

어를 인용하지 않아도 식구가 늘어난다는 건 좋은 일이다. 고맙다, 용범아! 내

시작한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사업을 시작했고, 하나둘 코스를 개장해

년 이맘때는 포항을 지나간다. 그때 또 만나자!

최근 비로소 전 구간이 개통됐다. 하지만 그 관리는 한 마디로 엉망이다. 간단

50

51


한 지도 하나에 의지해 걷고 있는 트레커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적재적소에

꿈같은 산행을/ 잘 있거라 설악아 내 다시 오리니.’

부착되어 있는 길 안내용 스티커나 표지기다. 오늘처럼 갈림길에서 표지기가

구산해수욕장 지나 월송정으로 이어지는 해안송림길이 운치 있다. 솔향

눈에 잘 안 띄거나 없으면 길을 헤매게 되고 그로 인해 즐거워야 할 트레킹이

을 맡으면서 걸으니 오늘 하루의 피로가 싹 풀어지는 듯하다. 월송정을 향한

짜증나게 된다. 관리 책임을 맡고 있는 각 지자체는 해당 구간의 보수・유지

발걸음은 오늘 여정의 헤어짐을 준비하고 있다. 월송정(越松亭)은 관동팔경

및 표지기 부착에 만전을 기해야 많은 국민들로부터 사랑받고 즐겨 찾는 둘

의 하나인 고려시대의 누각이다. 많은 시인 묵객들이 이곳 경치에 감동해 시

레길이 될 것이고, 이는 결국 지역경제 활성화로 이어질 것이다.

문을 남겼다. 신라시대 화랑들이 달밤에 송림 속에서 놀았다 하여 월송정(月

봉산2리 버스정류장 쉼터에서 잠시 쉬었다 간다. 거기서 만난 83세 노

松亭)이다. 무려 만 그루의 소나무가 식재되어 있다.

인의 노익장이 부러웠다. 우리보고 건강하려면 많이 움직여야 한다고 조언한

점심은 상진이가 추천한 울진시장 안에 있는 칼국숫집에서 했다. 과연

다. 꽁치 젓갈을 만들어 판다는 그 어르신은 술 한 잔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소문난 맛집이었다. 점심 때가 지났건만 손님은 계속 들어오고 있었다. 회와

이 얘기 저 얘기 들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린다 했다. 스트레스가

물회 그리고 면발이 비교적 가는 칼국수로 거한 점심을 했다. 오늘 비록 15㎞

만병의 근원이라는 얘기였다. 포터를 몰고 나가는 순발력이 젊은이 뺨칠 것

밖에 안 걸었지만 서너 군데의 오르막과 막힌 길을 뚫고 나가는 코스도 있어

같았다.

나름대로 힘든 하루였다. 이 피로를 풀고자 어제처럼 온천팀은 백암으로, 낚

구산항과 구산해변으로 이어지는 해안 길을 따라 걷는다. 함께 걷던 동 일이가 휴대폰에 담긴 ‘설악가’를 들려준다. 학창 시절 산에 다니면서 즐겨 부

시팀은 방파제로 나갔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저녁에 짜장밥과 함께 먹은 미역 국은 일미였다.

르던 곡이다. 동일이는 이 노래에 얽혀있는 사연까지 모두 꿰고 있다. ‘굽이져 흰 띠 두른 능선 길 따라/ 달빛에 걸어가는 계곡의 여운을/ 내 어이 잊으리오

마지막 날, 10월 18일(일) 상진이가 새벽같이 나가 낚은 삼치 한 마리를 민박집 아주머니께 건네니 벌어진 입이 닫힐 줄 모른다. 건강하시라는 덕담을 하고 출발한다. 오늘은 후 포항까지 10㎞만 걸으면 된다. 주말이고 행락철이라 서울 가는 길이 막힐 것 같아 가급적 일찍 오늘 일정을 시작하도록 새벽부터 서둘렀다. 어제 마쳤던 월송정에 도착하니 8시밖에 안 되었다. 해안 길을 따라 걷는데 바다 한가운데 다리 같은 시설물이 보였다. 바다 목장 유료낚시터였다. 울진군이 국비 55억 원을 들여 설치했는데 태풍에 휩쓸 렸는지 중간중간 떨어져 나갔다. 그래선지 출입구는 굳게 닫혀 있었다. 설치 만 해놓고 유지보수비는 예산에 안 잡혀 있어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예산 낭비성・선심성 사업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후포항에 도착했다. 죽변항만큼 규모가 컸다. 이번 여정의 종착역이다.

52

53


155次

|

2016. 5. 19 ~ 22

제7차 해파랑길 후포항 ~ 고불봉 입구 52㎞

자연은 최고의 명약(名藥)이다

지난 5월 19일부터 22일까지 나흘 동안 일곱 번째 해파랑길에 나서 52㎞를 한 발 한 발 떼다 보니 무려 58㎞를 걸었다. 경북 제1의 짬뽕 맛집이라는 금성

걸었다. 김수곤, 남상화, 변수복, 신필호, 양상진, 윤진평, 진영주, 함동일, 허정

식당에 들렀다. 소문대로 맛있었다. 어제 아침 친척 결혼식 참석차 서울로 갔

회가 함께했다. 기간 중 내내 쾌청했고 5월답지 않게 더웠다. 하루 목표한 트

던 수복이가 협찬했다. 간단히 뒷마무리하고 각자 고향 앞으로 길을 떠났다.

레킹은 시원한 오전 중에 마치고, 오후에는 각자 취향에 맞춰 낚시, 온천욕,

해파랑길 총 770㎞ 중 이제까지 딱 절반인 385㎞를 마쳤다. 나흘에 55

바둑을 즐겼다.

㎞ 정도를 걷는 지금 속도라면 앞으로 일곱 번이 더 남았다. 일 년에 두 번 한

베이스캠프는 국립칠보산자연휴양림에 쳤다. 전국에 39개밖에 없는 국

다면 2019년 봄이나 되어야 모두 마치게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2012년에 첫

립자연휴양림은 한결같이 경치가 빼어난 곳에 입지하고 있다. 예약하기 어려

발을 디뎠으니 무려 8년이 걸리게 되는 셈이다. 시작할 때는 언제 마치나 했는

워 그렇지 할 수만 있다면 시설이나 이용요금으로 볼 때 이보다 더 좋은 곳을

데 벌써 터널의 끝이 희미하나마 보이는 듯하다.

찾기는 쉽지 않다. 울창한 소나무 숲 한 가운데 위치한 칠보산휴양림도 그랬 다. 동해안 7번 국도에서 휴양림까지 가려면 꼬불꼬불 산길을 무려 8㎞나 들 어가야 하는 첩첩산중에 있다. 열한 명이 사용할 수 있는 단독 통나무집 ‘숲속의 집’이라 한다 - 이었다. 방 두 개, 거실, 주방과 화장실로 되어 있었는

참가자

김수곤 남상화 변수복 신필호 안은섭 양상진 진영주 함동일 허정회

54

데 특히 화장실과 냉장고가 두 개씩 있어 모두들 맘에 들어 했다. 칠보산의 유래는 고려 중기 중국 사람이 이 산에서 나는 샘물을 마셔보

55


후포항부터 12㎞를 걸어 첫날 목적지인 병곡리 고래불 해변에 도착했다. 고래를 소재로 한 대형조형물 이 눈에 띈다.

고 “샘물 맛이 보통 물과는 다르니 이 산에 일곱 가지 귀한 물건이 있다”하여

벽산 김도현 선생 유시(遺詩)를 배경으로 섰다. 김도현 선생은 을미사변 때 동해안과 안동, 영양 일대에 서 의병을 일으켜 무장투쟁을 하다 1910년 국권을 상실하게 되자 1914년 동포들에게 고하는 유서와 영 결시를 남기고 영해면 대진리 앞바다에 몸을 던져 순국하여 우국충정의 뜻을 후세에 남긴 분이다.

주민들이 찾아보니 돌옻, 더덕, 산삼, 황기, 멧돼지, 구리, 철이 나와 그 후 칠보 산(해발 810m)으로 불리게 됐다 한다. 서울에서 무려 여섯 시간이나 걸려 어 렵사리 왔는데 칠보산을 등산하지 못한 게 진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궁하면 통한다 했던가. 영덕해맞이공원에서 고불봉까지 가던 마지막 날, 풍력발전단지로 오르는 등산로를 찾지 못해 헤매게 되었다. 궁리 끝에 스마트

이번 해파랑길 트레킹을 앞두고 걱정거리 하나가 있었다. 강원도 구간 내

폰 앱에서 해파랑길 코스가 표시되어 있는 지도를 찾아 현재 위치를 확인해

내 우리들에게 나침반이 되어 주었던 상세한 가이드북이 경상북도로 넘어오

가며 제대로 마칠 수 있었던 건 이번 해파랑길에서 얻은 큰 수확이다. 앞으로

면서 그 소임을 다했기 때문이었다. 해파랑길은 자원에 비해 코스 인근에 트

남은 여정도 GPS가 장착된 이 앱을 사용하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레킹에 걸맞은 숙소가 부족하고 길 안내표시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게 큰

지난해 1월 간암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인 동일이가 어느 한 군데도 빼놓

흠이다. 특히 갈림길과 같은 중요한 곳에 표지기가 제대로 붙어 있지 않아 자

지 않고 전 구간을 다 걸은 것도 대단한 일이다. 평소 꾸준한 운동과 적절한

칫 한눈을 팔면 엉뚱한 길로 가게 되어 있다. 또 부산에서 강원도로 북진(北

섭생으로 수술 전보다 훨씬 건강해지고 체력이 좋아졌음을 확인할 수 있는

進) 위주로 안내가 되어 있어 우리처럼 남진(南進)하는 팀은 가던 길을 되돌

기회였을 것이다. 이번 해파랑길을 통해 본인 건강에 대해 이전보다 더 자신

아오기 일쑤다. 이를 위해 자세한 길 안내책자가 필수인데 해파랑길 홈페이지

감을 갖게 됐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에서도 제대로 찾을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개략적인 해파랑길 안내지도와 동일이가 구해온 지도만 들고 갔다.

56

시쳇말로 가성비(價性比)가 높은 것도 우리 해파랑 트레킹의 자랑이다. 현지 도착 당일 점심만 매식을 하고 나머지 아홉 끼를 양상진 셰프가 진두지

57


죽도산전망대에 올랐다. 축산항을 비롯한 바다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비록 5층이지만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게 마치 시애틀에 있는 스페이스 니들(space needle) 타워에 오르는 듯한 기분이었다.

휘해 자체적으로 해결했다. 김치찌개, 북어국, 된장찌개, 감자탕, 일본식 라멘,

해변을 바라보며 잠시 쉬고 있다. 쉴 때는 잠시라도 신발과 양말을 벗은 채 쉬면 피로가 싹 가신다는 게 ‘걷기의 달인’ 신필호의 지론이다.

토종닭백숙, 배추된장국, 닭죽, 김밥과 같이 메뉴도 다양했다. 양 셰프는 있는 재료를 활용해 끼니에 어울리는 조리 창의력이 탁월하다. 안은섭 셰프에 이어

갈 길은 멀다. 해파랑길 770㎞ 중 이제 갓 절반을 넘긴 435㎞를 걸었다. 이 페

장차 우리 산우회 메인 셰프 재목이다. 우리끼리 푸짐하게 잘 해먹고, 소맥(燒

이스로 가면 2019년 봄에야 부산 오륙도에 닿는다. 2012년에 시작했으니 8년

麥) 사서 마시고, 국립호텔에서 머물고, 자가 운전을 하니 돈 들어갈 일이 없

이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인 것이다.

다. 이번 경비를 정산해 보니 3박 4일 동안 교통비 포함 1인당 9만 원 들었다. 갑자기 통풍이 찾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농림부장관 외 교통부장관, 해

최근 한 친구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마치 우리가 걷고 있는 해파랑길에 대한 감상 같다.

양수산부장관직까지 깔끔하게 치러 낸 상진에게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이렇 게 큰 덕을 쌓았기에 해파랑길을 다녀온 후 통풍은 깨끗하게 낳았다고 한다.

“인생길은 경주가 아니라 가는 걸음걸음 음미하는 여행입니다.

가기 전부터 잔기침을 하던 나도 며칠 동안 친구들과 함께 맑은 공기 마시며

그대를 만나고 그대와 우정을 나눔은 나에겐 축복이고 행운입니다.”

좋은 구경하고 많이 웃었던 바람에 어느 새 사라져 버렸다. 자연은 최고의 명 약(名藥)이다. 다녀온 후에도 해파랑팀 카톡은 시도 때도 없이 요란하게 울려댄다. 며 칠 동안 한 지붕 밑에서 한 솥밥 먹고 지낸 여운이 이토록 길다. 상화가 문자

참가자

를 보내왔다. “함께 멀리 그리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갑시다.” 아직도 우리

김수곤 남상화 변수복 신필호 양상진 윤진평 진영주 함동일 허정회

58

59


161次

|

2016. 9. 22 ~ 25

개를 단돈 2만 원에 샀다. 영덕 읍내

제8차 해파랑길 고불봉 입구 ~ 포항영일신항만 48㎞

에서 가장 크고 잘한다는 ‘임대경 식당’에 들렀다. 송이 불고기와 된장 찌개로 점심을 했다. 이번 걷기 여행 중 유일한 매식이었다. 지난 5월 22일 영덕해맞이공원 에서 풍력발전단지를 지나 야성폐차

오늘 놀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

장에서 마쳤으니 정확하게 4개월 만 에 해파랑길을 다시 걷는다. 오늘은 여기서 출발해 고불봉 - 금진구름 다리 - 강구항으로 이어지는 약 9㎞ 를 걸어야 한다. 해파랑길에서는 좀 처럼 만나기 쉽지 않은 산길이다. 영 덕해맞이공원에서 하저해변을 지나

여덟 번째 해파랑길 걷기다. 2012년 시작해 그 다음해까지 연 1회, 2014년부

강구항으로 직접 가는 해안 길도 있다. 영덕군에서 풍력발전소를 홍보하기 위

터는 매년 봄가을로 걷고 있다. 이번 나들이에도 경향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

해 내륙으로 돌린 듯하다. 능선을 오르내리는 고불봉 코스는 생각보다 멋있

는 8명이 함께했다. 제주 신필호, 남부 양상진(순천) 김수곤(사천), 중부 남상

었다. 길은 마치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 푹신했다. 나무가 울창해 공기도 좋

화(진천)와 수도권 윤진평, 진영주, 함동일, 허정회가 그들이다. 우리들은 9월

았다. 가끔 구름 사이로 힐끗 나타나는 동해 전경을 볼 때면 왜 이리로 해파

22일부터 나흘 간 포항 ‘착한 펜션’을 베이스 캠프로 영덕 고불봉 입구에서

랑길을 돌려놓았는지 그 이유를 알 만했다.

포항영일신항만까지 약 50㎞를 걸었다.

4시 30분 강구항에서 남부팀 김수곤, 양상진을 만났다. 일행 여덟 명이 다 모였다. 양 셰프와 내가 고불봉 입구에 주차해둔 스타렉스를 찾아오는 동

9월 22일(목)

안 나머지 일행은 영덕대게로 유명한 강구항 횟집에서 물회를 즐겼다. 6시 숙소인 ‘착한 펜션’에 여장을 풀었다. 화진해변에서 포항 방향으로

아침 7시 정시에 잠실종합운동장을 출발했다. 수도권 4명과 제주 신필호

1.5㎞ 정도 떨어져 있는 한 작은 포구에 있었다. 우리는 2층 6인용 방 2개를 하

대장까지 5명이 영주가 운전하는 스타렉스에 몸을 실었다. 남상화와 합류하

루 8만 원에 빌렸다. 자연휴양림만큼 시설이 좋지는 않았지만 생활하기에 전

기로 한 금왕휴게소(충북 음성)까지 거침없이 내달렸다. 오늘 출발지인 영덕

혀 불편함이 없었다. 자연휴양림이 해파랑길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양 셰

고불봉 입구까지 가는 길은 멀었다. 안동, 청송을 거쳐 출발한 지 5시간 20분

프가 밤새 인터넷을 검색해 구한 집이다. 2층 방에서 낚싯대를 드리우면 바로

만에 영덕읍에 도착했다. 도중 사과로 유명한 청송 길가 과수원에서 사과 50

물에 닿을 정도로 바닷가에 있었다.

60

61


첫날 여장을 푼 ‘착한 펜션.’ 2층 6인용 방 2개를 하루 8만 원에 빌렸다.

7시 양 셰프 주특기인 감자탕 으로 저녁 식사를 했다. 안주거리로 는 돼지고기 목살구이가 상에 올랐 다. 양 셰프 요리 솜씨가 갈수록 진 화한다. 있는 식자재를 활용해 응용 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9월 23일(금) 6시 30분 영주네 농장에서 따

기암괴석이 많고 탁 트인 하늘과 맑고 깨끗한 바다가 어우러진 이가리해변.

온 아욱으로 끓인 된장국으로 아침 식사를 했다. 점심과 간식으로는 영주가 싼 김밥과 어제 산 청송사과, 삶은 계

1.5㎞는 더 걸었다. 평소 6시간이나 운동하기 쉽지 않으니 어찌 보면 당연하

란을 챙겼다. 강구항 회센터에서 신 대장이 뜬 횟감까지 오늘 장거리 걷기에

다 하겠다. 하지만 이러한 단련 과정을 거치면 우리 몸은 그만큼 강해진다. 피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했다.

곤한 몸을 풀러 김수곤 남상화 신필호 윤진평 함동일은 온천탕으로, 양상진

8시 50분 강구항 하나로마트를 출발했다. 오늘 일정은 여기부터 삼사해

진영주는 숙소 바로 앞 방파제로 향했다.

상공원 - 구계항 - 장사해변 - 화진해변 - 숙소까지 이어지는 약 17㎞다. 이 번 걷기 중 가장 많이 걸어야 하는 날이다. 걷기가 건강에 좋다는 건 다 알지 만 막상 실천하려면 쉽지 않다. 하지만 해파랑길과 같은 둘레길을 걷게 되면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뀐다.

9월 24일(토) 6시 30분 시래기 된장국으로 아침 식사를 했다. 아침 시간은 늘 바쁘다.

해파랑길 노정 곳곳에는 쉼터로 만들어 놓은 정자가 많다. 관리가 잘 되

여덟 식구 꾸려 나가는 게 간단치 않다. 밥 하랴, 국 끓이랴, 김밥 싸랴, 간식

어 있는 곳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많다. 무엇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챙기랴, 설거지하랴 할 일이 많다. 지금처럼 생활이 편리하지 않았던 옛날, 우

더 중요한 것은 그 관리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유지 관리에 약한 편이다. 예산

리 어머니들은 어떻게 그 많은 살림을 다 해나갔을까. 이제 와 새삼 부모님 은

을 탓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공시설물을 아끼려는 시민의식이다.

덕에 대해 감사드린다.

걷기 시작한 지 여섯 시간 만에 숙소에 도착했다. 걷는 도중 여러 번 쉬었

8시 숙소를 출발했다. 오늘은 이제까지 걷던 방향과는 반대인 남에서 북

어도 모두 힘들어 했다. 도중 군부대에 잘못 들어가 되돌아 나오는 바람에 한

으로 걷기로 했다. 영주가 울산에서 있었던 지인 결혼식 참석차 차를 가지고

62

63


가야 했기에 생긴 아이디어다. 해파

원들이 한 목표를 향해 가야 한다고 가르친다. 바로 갈매기들이 같은 방향으

랑길 걷기에서 처음 시도하는 것이

로 앉아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다. 막상 그렇게 해보니 두 가지 장

오후 2시 숙소에 도착했다. 온천팀은 새로운 온천탕을 찾아 목욕하러 갔

점이 있었다. 첫째는 해를 등지고 걷

다. 6시 닭볶음탕으로 저녁 식사를 할 무렵 포항에 사는 용범이가 한 손에 데

게 돼 강한 햇살로 인한 더위를 피할

킬라를, 다른 한 손에 족발과 수육을 들고 숙소로 찾아와 함께 즐거운 저녁시

수 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해파

간을 보냈다.

랑길은 부산에서 강원도 고성으로 향하도록 설계되었기에 길안내 표지 가 북에서 남으로 향할 때보다 눈에 더 잘 띄었다.

9월 25일(일) 벌써 3박 4일 이번 해파랑길 일정을 마무리 짓는 날이다. 아침 6시 30분

8시 40분 당초 오늘 목적지였

떡라면으로 식사를 하고 7시 40분 숙소에서 체크아웃 했다. 오늘도 어제와

던 오도리해변 마을회관을 출발했

마찬가지로 남에서 북으로 향해 걷기로 했다. 8시 30분 포항영일신항만 경북

다. 오늘 여정은 여기부터 우리 숙소까지 약 13㎞다. 어제에 비하면 많이 가볍

어업기술센터를 출발했다. 오늘 일정은 여기서 오도리해변까지 약 8㎞다. 양

다. 영주도 1시간가량 동행하다 오도리해변으로 돌아갔다. 가는 길에 하루 평

셰프와 영주는 오도리해변에서 세월을 낚기로 했다.

균 35㎞를 걸어 고성에서 여기까지 2주 만에 왔다는 한 아가씨를 만났다고 한다. 앞으로 일주일 더 걸어 부산에 도착할 예정이란다. 참 대단한 젊은이다.

칠포해변까지 부지런히 걸었다. 땀 흘린 후 마시는 맥주 한잔은 정

영주와 헤어진 후 이가리해변으로 가는 길이 없어 한참을 헤맸다. 갑자

말 맛있다. 칠포해변을 지나면서 백

기 표지 리본이 사라졌다. 없는 길을 만들어 가느라 윤 교장은 무릎을 다쳤

사장에서 허우적대고 있던 승용차

다. 둘레길 걷기에 이런 일은 없어야 한다. 둘레길을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지

를 우리 모두가 달라붙어 구출했다.

만 이보다 중요한 건 사후 관리다. 지자체별로 맡은 구간은 담당자를 확실하

어려움에 처했던 젊은 사람들이 우

게 지정해 지속적으로 돌봐야 한다.

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할 때 그들

이가리해변에는 기암괴석이 많았다. 이가리해변 지나 오토캠핑장에는

의 진정성이 느껴졌다.

며칠 전 있었던 지진을 피해 이곳으로 캠핑 온 사람들도 있었다. 그만큼 최근

오도리해변 방파제 위에 점심

경주에서 발생한 지진 여파가 크다. 지진에 관한 한 이제 우리나라도 결코 안

식사상을 차렸다. 양 셰프가 김치찌

전지대가 아님이 이번 지진으로 확인됐다. 지진 대피 방법에 관한 국민교육이

개를 맛있게 끓여 놓았다. 이번 해파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되었다.

랑길 걷기 목표를 무사히 이룬 축배

갈매기들이 해변 바위 위에서 일광욕을 하고 있다. 이놈들은 몇 마리가

를 들었다. 12시 30분 남부팀과 아

있든지 항상 한 방향을 향하고 있다. 경영학에서 팀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팀

쉬운 작별을 했다. 길이 막혀 6시 30

64

65


170次

|

2017. 4. 29 ~ 5. 3

제9차 해파랑길 포항영일신항만 ~ 모포2리마을회관 76㎞

여유 있는 시간은 없다 시간 내면 여유 있게 된다

분이 되어서야 서울에 도착했다.

산우회는 하늘이 내려준 계절, 봄 황금연휴를 맞아 아홉 번째 해파랑길에 나

이번 걷기로 해파랑길 770㎞ 중 477㎞를 걸었다. 전체 일정의 62%를 소

섰다. 닷새 동안 포항 영일신항만부터 장기면 모포리까지 76㎞를 걸었다. 남

화했다. 이제 부산 오륙도까지 293㎞ 남았다. 지금 속도로 간다면 앞으로 여

상화, 변수복, 신필호, 양상진, 진영주, 함동일, 허정회가 전 일정을 소화했고,

섯 번 남았다. 2019년 가을이 되어야 마칠 수 있다는 얘기다.

곽인수 김홍빈 안은섭 윤진평이 개인 사정에 따라 부분적으로 참가했다.

“지금 당장 행복해야 합니다. 나중에 행복하려고 지금을 희생하면 지금

졸업 후 처음 곽인수를 만나 1박 2일을 함께 보내게 된 것도 큰 수확이었

도, 나중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강원도 평창에서 생태마을을 운영하고 있다

다. 다음에는 우리와 전 구간을 함께 걷겠다고 약속했다. 포항 사는 용범이는

는 황창연 신부의 말이다. 한마디로 하면, “오늘 놀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

위문품을 싸들고 벌써 세 번째 우리 숙소를 찾았다. 이번에는 양손 가득 홍게

가 될 것이다. 영주 작은 형의 지론이기도 하다.

찜, 고래 고기, 홍주, 김치찌개를 들고 왔다. 기간 중 숙소로는 구룡포 해변에 있는 ‘아지매집’에서 묵었다.

그간 아홉 차례 걷기 여행을 통해 체득한 경험을 바탕으로 나름대로 해 파랑길을 정의해 본다. 참가자

김수곤 남상화 신필호 양상진 윤진평 진영주 함동일 허정회

66

해파랑길은 명의(名醫)다. 장시간 장거리를 걷는 동안 나의 본질과 정체 성에 대한 문답을 통해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만나면서 정신적으로 한층 성

67


번밖에 안 했다. 하지만 안줏감 회는 수시로 즐겼다. 고비용 여행은 편하지만 지나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다. 반면 저비용형은 많은 얘깃거리를 남기고, 건 강만 하다면 언제까지나 여행을 지속가능하게 한다. 해파랑길은 선물(膳物)이다. 그간 삼척시 궁촌항에서 멍게 한 바구니를 1만 원에 건지기도 했고, 묵호활어시장에서는 8㎏짜리 부시리를 3만 원에 줍 기도 했다. 이번 선물은 좀 특이했다. 셋째 날 흥환리 마을 정자에서 만난 백 구(白狗)가 그 주인공이다. 이놈은 우리와 호미곶해맞이광장까지 무려 15㎞, 4시간 동안 동행했다. 처음에는 그냥 따라오다 말겠거니 했다. 하지만 막무가 내인 이놈은 결국 해맞이광장에서 우리 품에 안겨 기념촬영을 한 후에야 헤 어졌다. 어떻게 그 먼 산길을 찾아 집으로 돌아갔는지 모르겠다. 평생 잊히지

장하게 된다.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 바다를 벗하며 호연지기(浩然之氣) 를 기르고 그로부터 마음의 위안을 받게 된다. 또 친구들과 많은 대화를 나 누면서 터지는 웃음은 보약 그 자체다. 걷기를 통한 육체적 신체단련은 덤일 뿐이다. 해파랑길은 반면교사(反面敎師)다. 친구들 간 장기간 단체생활을 하면 서 상대방의 부족한 점으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얻기 때문이다. 그간 짧지 않 은 인생을 한 집안의 가장으로 살 때와는 사정이 다르다. 제때 상황 파악을

흥환리 마을 정자에서 만난 백구(白狗). 우리와 호 미곶해맞이광장까지 무려 15㎞, 4시간 동안 동행했 다. 해맞이광장에서 우리 품에 안겨 기념촬영을 한 후에야 헤어졌다. 어떻게 그 먼 산길을 찾아 집으 로 돌아갔는지 모르겠다.

해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솔선수범하는 걸 익히게 된다. 해파랑길은 ‘아침형 인간’을 만든다. 이번 기간 중 매일 아침 6시면 어김 없이 숙소를 출발해 걷기 시작했고 늦어도 정오에는 일정을 마쳤다. 숙소에 돌아와 점심 식사 후에는 각자 취미에 따라 낚시와 온천욕을 즐겼다. 그러다 보니 하루가 이틀이 될 정도로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해파랑길은 DIY(Do It Yourself)다. 삼시 세끼 집에서 해먹는다. 남자들 끼리 밥 해먹는 재미는 안 해본 사람은 모른다. 셰프, 보조 셰프, 상차림, 설거 지 등 팀원들 각자 저마다 맡은 역할이 있다. 이번에도 매식은 첫날 점심 한

68

69


않을 추억거리가 생겼다. 해파랑길은 학교다. 동네 구석구석을 직접 발로 걸으면서 너무 많은 걸 배우게 된다. 우리나라 역사와 지리 공부 자료가 도처에 널려 있다. 이번 여행 에서도 그랬다. 구룡포항이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면서 어 업을 하던 중요한 항구였다는 걸 이제까지 몰랐다. 1908년 경 가가와현과 오 카야마현의 가난한 어부들이 황금어장을 찾아 구룡포로 이주했다. 구룡포의 풍부한 어족자원은 이들 일본 어부들의 꿈을 이루어 주었다. 구룡포는 가난 한 일본 어부들에게 새 삶을 안겼다. 아직도 구룡포항에는 약 800m에 달하 는 일본인 거리가 그대로 재현돼 있다. 해파랑길은 자신감이다. 하루 15~20㎞에 달하는 일정 거리를 며칠간 걸 어 목표를 달성했을 때의 성취감은 곧 자신감으로 이어진다. 해파랑길을 혼자 걷는 사람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함께하면 더 멀리 갈 수 있다. 자칫 육체적・ 정신적으로 나약해지기 쉬운 우리 나이이기에 이런 목표 달성은 자신에 대한 크고 귀한 상(賞)이다. 해파랑길 총 770㎞ 중 이번까지 모두 553㎞를 걸었다. 전체의 72%, 약 3/4을 마쳤다. 이제 남은 거리는 200여 ㎞다. 앞으로 서너 번 하면 끝난다. 강 산은 천년 동안 주인 노릇 하지만, 인간은 백년도 채우지 못하고 잠시 스쳐가 는 손님(江山千年主, 人生百年客)이라 했다. 틈틈이 짬 내 세상 돌며 인생 공 부 하면서 여생을 즐겁게 보내자. 이번 여행 중 한 편의점에서 만난 점원은 친구들끼리 걷는 우리를 매우 부러워하면서, 자기도 시간 있으면 하고 싶다고 했다. 내가 그 말에 답했다. “여유 있는 시간은 없다. 시간 내면 여유 있게 된다”고. 내 말에 공감하면서 큰 가르침을 얻었다고 기뻐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참가자

곽인수 김홍빈 남상화 변수복 신필호 안은섭 양상진 윤진평 진영주 함동일 허정회

70

71


179次

|

2017. 10. 5 ~ 9

제10차 해파랑길 모포2리마을회관 ~ 정자항 54㎞

한 획을 긋는 프로젝트로 회원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이를 계기로 서울 대농대산악회는 대한민국 9정맥 종주라는 쾌거를 이뤘다. 이번에는 지난 5월에 이어 4박 5일 간 포항시 장기면에서 울산시 정자항 까지 54㎞를 걸었다. 처음 나온 김종욱, 박종헌을 비롯해 10명이 함께했다. 새 로운 친구 한두 명만 들어와도 분위기가 확 바뀌는 게 해파랑길 걷기의 특징 이다. 둘째 날에는 비가 내려 예정에 없던 경주 관광을 했다. 불국사 - 국립경

신의 한 수

주박물관 - 양동마을을 돌아봤다. 우리 친구들끼리 불국사를 간 건 1968년 고2 수학여행 이후 만 50년 만이다. 그때 그 기분을 살려 다보탑 석가탑 앞에 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세월이 흘러 얼굴에 주름살은 늘었지만 마음만은 여전 히 추억 어린 그 시절에 머물러 있었다. 그래서 명함 없을 때 만났던 고등학교 동기들이 가장 잘 모이는 거 같다. 반대로 명함 있을 때 만난 사람은 명함에 따라 만났다 헤어진다는 걸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곽인수의 초청으로 양동마을 연밥정식을 처음 맛봤다. 조그마한 접시에 차려나온 각종 반찬은 마치 절밥처럼 정갈했다. 그는 현직 은퇴 후 양동마을

아무리 생각해봐도 해파랑길 걷기 프로젝트는 ‘신의 한 수’였다. 산우회 발족 7년차를 맞은 2011년 어느 날, 안은섭 총무가 아이디어를 냈다. 친구들과 함 께 강원도 고성부터 부산까지 연결된 동해안 길을 걸으면 멋지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그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땐 좀 황당했다. 환갑 넘은 친구들이 2000리 나 되는 먼 길을 걷는다는 게 꿈만 같았다. 그러나 그 꿈은 계획을 세워 결국 실천에 옮겨졌다. 2012년 5월 첫걸음을 뗐고, 이번에 그 열 번째를 마쳤다. 별 일 없다면 이제 세 번밖에 안 남았다. 8부 능선을 넘었다. 이렇게 용단을 내릴 수 있었던 건 2000년 내가 서울대농대산악회 회장 을 맡으면서 추진했던 백두대간 종주 프로젝트 경험 덕이다. 그 당시 창립 40 주년을 맞아 무언가 의미 있는 기념사업으로 백두대간 종주를 택했다. 2000 년 9월 지리산 자락 중산리에서 시작해 2001년 10월 진부령에서 그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연 참가회원 287명이 13개월 만에 마쳤다. 무려 1240㎞의 장도 를 31개 구간으로 나눠 종주했다. 그 과정에서 위험한 순간도 많았지만 큰 사 고 없이 잘 마쳤다. 아직도 백두대간 종주는 서울대농대산악회 55년 역사에

72

73


내 대성헌(對聖軒)을 관리하면서 유유자적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양동마을 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 대표적인 양반 집 성촌이다. 여강(驪江) 이 씨와 경주 손 씨가 서로 협동하고 경쟁하며 600여 년간 마을을 지켜왔다. 대성헌은 18세기 중엽 안채 사랑채 행랑채 등 3개동 으로 지어진 목조 가옥으로 현재 여강 이 씨 후손이 소유하고 있다. 친구들과 대성헌 고택 대청마루에 자리를 펴고 차 한잔하니 이런 풍류가 없다. 경주 양북면 해변을 지나면서 수중 문무대왕릉을 만났다. 대왕암은 해 변에서 200m 남짓 떨어진 가까운 바다에 있다. 삼국통일을 완수한 문무왕 은 죽은 뒤에도 바다의 용이 돼 나라를 지키고자 했다. 이를 위해 시신을 화 장해 유골을 대왕암 일대에 뿌렸다. 문무왕 아들 신문왕은 바다에서 1.5㎞ 떨 어진 해변에 부왕을 기리는 감은사(感恩寺)를 지었다. 그는 감은사 동쪽 언덕 에 이견대(利見臺)를 짓고 이곳에 수시로 와 대왕암을 망배(望拜)했다. 문무대왕릉을 지나니 해파랑길 표지기가 갑자기 내륙 쪽으로 안내한다. 이런 데는 험한 지형, 군부대, 주요 산업단지 또는 국가 기간시설이 있기 때문

74

75


에 우회시키는 곳이다. 이곳 경주 양북면 해변을 따라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가 자리 잡고 있어 해변 길을 폐쇄한 것이다. 표지기를 따라 한참 가다보니 갑 자기 미개통구간으로 길이 없다는 표지판과 함께 터널이 나타났다. 우리는 길 이나 제대로 있을지 모르는 산으로 가느냐, 아니면 자동차 매연을 마시면서 터널로 가느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서 후자를 택했다. 장장 2.5㎞의 터널을 빠 져나오는 데 족히 30분은 걸렸다. 이제까지 해파랑길을 걸으면서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아니 앞으로도 이렇게 긴 터널을 걸을 일은 없을, 귀한 경험을 했 다. 이 구간에서 다른 팀은 어떻게 했을까 매우 궁금하다. 나아해변부터 정자항까지 이어지는 약 15㎞ 해안 길은 양남주상절리, 강 동화암주상절리가 해안경관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신비한 자연미를 뽐내 고 있었다. 주상절리는 화산이 폭발할 때 1000°C 이상의 뜨거운 용암이 공기 와 접촉하면서 냉각과 수축 과정에서 생긴 기둥모양의 바위다. 이곳에는 수직 형, 수평형, 부채꼴형 등 다양한 주상절리가 무리를 이루고 있는 게 더욱 장관 이었다.

76

77


186次

|

2018. 5. 3 ~ 7

제11차 해파랑길 정자항 ~ 울산대공원 54㎞

대한민국 공장, 울산을 걷다

산우회는 5월 초 연휴를 이용해 4박 5일 간 해파랑길 걷기에 나섰다. 이번은 걷기는 내가 내 삶의 주인임을 확인하는 행위이다. 또 걷는다는 것은 자

그 11번째로 울산 정자항부터 울산대공원까지 약 54㎞를 걸었다. 이제까지

신을 만나고 자신과 대화하는 귀한 일이다. 우리 일상에서도 잠시나마 걷기

모두 670㎞를 걸었으니 부산 종착역까지 불과 100㎞밖에 안 남았다. 이번 가

를 통해 자신을 다잡고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어떨까. 우리는 행복

을과 내년 봄 두 번만 더 하면 대장정의 막도 내리게 된다. 전국에서 모인 친구

한 동안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그때가 참 행복했다는

곽인수(대구), 김수곤(진주), 김왕중(울산), 남상화(진천), 신필호(제주), 양상진

것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번 해파랑길도 참 행복했다는 걸 아마도 세월

(순천), 오영, 조항복, 진영주, 함동일, 허정회(이상 서울)가 함께했다.

이 한참 흐른 뒤에야 깨달을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해파랑길은 우리 산우 회가 선택한 수 중 가장 기묘한 ‘신의 한 수’가 될 거 같다.

걸으면서 가까이에서 본 울산은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는 공장 그 자체였 다. 세계 최대 조선소 현대중공업 공장지대를 통과하는 데만 무려 한 시간이 나 걸렸다. 울산대교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전경은 가관이었다. 조선(造船), 자 동차, 석유화학과 같이 우리나라 경제발전을 이끄는 주요 동력은 다 모여 있 었다. 울산의 젖줄 태화강을 둘러싼 아름다운 자연과 산업시설이 절묘한 조 화를 이루면서 멋진 도시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높은 개인소득으로 경제

참가자

곽인수 김수곤 김종욱 남상화 박종헌 신필호 양상진 진영주 함동일 허정회

78

적 여유가 있어선지 만나는 사람마다 다 친절했고 활기찼다. 해파랑길이 주는 행복은 다양하다. 지방에 살고 있어 평소 좀처럼 만나

79


우리는 해파랑길을 걸으면서 거의 모든 끼니를 스스로 해결한다. 아침 6 시 경 숙소를 나서 대여섯 시간 동안 천천히 15㎞ 남짓 걸은 후 집에 돌아와 점심을 해먹는다. 오후에는 각자 자유롭게 목욕을 가기도 하고, 낚시를 하기 도 하고, 바둑을 두면서 무언의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우리끼리 해먹는 식사 가 그렇게 맛있을 수 없다. 이러면서 우리는 머지않아 다가올 ‘혼자 살게 될 때’를 대비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배운다. 부담 없는 경비는 그저 절로 따라오 는 덤일 뿐이다. 우리 삶은 일과 휴식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중 일은 존재의 수단과 가치 와 관련 있어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휴식을 말할 때는 많은 사람들 이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행을 가장 하고 싶은 것으로 꼽는다. 여행지를 선택할 때 대개 풍광, 역사, 음식, 쇼핑, 치안, 기간, 비용을 고려하게 된다. 이 기 어려운 친구들과의 만남은 그 으뜸이다. 멀리 떨어져있는 친구 만나는 것

기준으로 볼 때 해파랑길 걷기는 최상의 여행 후보지라고 할 수 있다. 위에 꼽

을 즐거운 일이라 했던 공자 말씀 ‘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그대로다. 속초에

은 여행의 모든 요소를 만족스럽게 충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파랑길을

서 최원근 친구를, 포항에서 박용범 친구를, 경주에서 곽인수 친구를 그렇게

걷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번에도 부산에서 출발했다는 50대 중후반의 두 여

만났다. 이번에도 울산에 살고 있는 김왕중 친구를 고등학교 졸업 후 처음으

인 한 팀만을 만났을 뿐이다.

로 해후했다. 근 50년 만이지만 만나자마자 어렸을 때 얘기로 웃음꽃이 만발 했다.

80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은 한국 사람들로 북적인다는데 왜 해파랑길은 파리를 날릴까? 이제까지 해파랑길을 걸어오면서 품어온 궁금증이다. 여러

81


가지 원인이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걷기에 알맞은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파랑길이 열린 지 10년이 다 되어감에도 아직도 길이 온 전치 않다. 어떤 때에는 갈림길에 안내 표지 리본도 없어 우리처럼 해파랑길 ‘졸업’을 앞둔 선수들도 길을 잃어 헤매기도 한다. 각 지자체가 좀 더 책임감 을 갖고 관리해야 할 대목이다.

82

83


191次

|

2018. 10. 3 ~ 7

제12차 해파랑길 울산대공원 ~ 일광해변 56㎞

신 인생삼락(人生三樂)

산우회는 10월 초 4박 5일 간 동해안 해파랑길 트레킹에 나섰다. 울산 대공원 부터 부산시 기장군 일광해변까지 약 57㎞를 걸었다. 때마침 상륙한 태풍 ‘콩 레이’로 인해 하루 일정을 소화하지 못한 것 치고는 선전한 셈이다. 2012년 5 월 강원도 고성에서 첫걸음을 뗀 지 7년 만에 마지막 구간인 부산시에 발을 경제적이고 걷는 사람들이 사용하기 편리한 구조를 갖춘 숙소가 제대로 없는 것도 문제이다. 국공립자연휴양림 같은 시설이면 최상이겠으나 해파랑

디뎠다. 해파랑길 총 770㎞중 725㎞를 마쳤으니 이제 불과 45㎞만 걸으면 대 장정도 막이 내린다.

길 코스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예약하기도 하늘에 별 따기이니 언감생심이다.

요즘 자주 회자되는 말 중에 소확행(小確幸)이라는 게 있다. 문자 그대

산티아고 순례길의 알베르게처럼 값싸고 - 1인당 1만 5000원꼴 - 편리한 숙

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뜻한다. 해파랑길 걷기가 바로 소확행이라 할 수 있

소가 곳곳에 있다면 해파랑길은 많은 사람들이 찾는 세계적인 트레킹 코스

다. 동해안 따라 즐비한 펜션 중 한 곳에 숙소를 정하고 우리끼리 장 봐서 밥

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역경제가 살아나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이다.

해 먹는다. 오전 중 하루 정해진 일정을 소화한 후 오후에는 낚시, 바둑, 온천 욕 등 각자 취향대로 휴식을 취한다. 저녁에는 술잔을 기울이면서 친구들과 살아온 얘기, 살아갈 얘기를 나눈다. 그러면서 하루하루 ‘소확행’을 맛보는 게

참가자

곽인수 김수곤 김왕중 남상화 신필호 양상진 오영 조항복 진영주 함동일 허정회

84

여간 즐겁지 않다. 많은 사람이 이러한 우리를 부러워하면서도 자기는 그럴 형편이 못 된다

85


고 한다. 하지만 방식은 다를지라도 꼭 한번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중요 한 것은 어떻게 하는가가 아니라 무 엇을 하는가이다. 임종을 맞은 대부 분은 한 일보다는 하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한다고 한다. 무엇을 잘했 느냐 못했느냐보다 했느냐 안 했느 냐에 더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여행은 좋은 인생 공부이다. 우 리는 길에서 많은 걸 배운다. 책을 통해 얻는 지식은 한계가 있고 오래 가지 못한다. 발품 팔아 몸으로 체득 한 지혜는 생생하고 평생을 함께한 다. 특히, 해파랑길처럼 바다와 해변 과 산이 고루 어우러져 있는 자연은 훌륭한 지식의 보고(寶庫)이다.

공원에서 삼삼오오 휴식을 취하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은 무척 행복해 보였다.

이번 여행에서는 운 좋게도(?) 태풍 ‘콩레이’와 마주쳤다. 그간 해파랑길

충북 보은이 고향이라는 한 택시기사는 울산의 장점으로 텃세가 없다는 것

을 걸으면서 비가 와 한두 번 거른 적은 있어도 태풍은 처음이다. 하기야 10월

을 제일 먼저 꼽았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만든 산업공동체

초순 태풍은 아주 드문 일 아닌가. 서울에서는 좀처럼 맛볼 수 없는 경험을

이기에 더더욱 그럴 것이다.

했다. 울산은 이번 태풍이 지나는 길목이었다. 지붕에서 기왓장이 떨어졌고,

진영주의 소개로 울산공단 내 동서석유화학을 방문해 회사를 견학하고

간판이 날아갔다. 비닐하우스는 형해화되었고, 나뭇가지가 부러져나갔다. 현

점심 대접을 받았다. 1969년 57만평 부지 위에 건립한 동서석유화학은 합성

지인들이 태풍이라는 자연 현상에 대처하는 지혜를 현장에서 두 눈으로 지켜

수지와 합성섬유 등의 원료와 산업용 기초화학물을 생산하여 연매출 약 1조

볼 수 있었다. 마을을 지나면서 그 지역의 역사라든지, 출신 인물이 누가 있는

원을 일으키는 대기업이다. 태풍 ‘콩레이’ 덕분에 언양에 있는 천년 고찰 가지

지, 그러한 인물과 지세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등 인문학적 공부를 하는 재

산(迦智山) 석남사(石南寺)도 가보게 되었다. 장생포 고래박물관을 찾아 해

미도 쏠쏠하다.

박한 해설사로부터 고래 전반에 대해 많이 공부하게 된 것도 뜻밖의 소득이

이제까지 강원도 - 경상북도 - 경상남도 지역을 걸으면서 많은 사람을

었다.

만났다. 지역마다 특색이 있었지만 대부분 소박했고 친절했다. 특히, 이번 울

공자는 행복한 인생을 세 가지로 요약했다. 배우고 실천하기(學而時習之

산 여행 중 상대한 사람들은 한결 여유가 있고 부드러웠다. ‘곳간에서 인심 난

不亦說乎), 친구 사귀기(有朋自遠方來 不亦說乎),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서

다’고 경제적 풍요로움에서 나온 여유일 것이다. 마침 개천절을 맞아 울산 대

86

운해하지 않는 마음의 여유(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가 그것이다. 즉 평생

87


학습, 인간관계와 자기수양이 인생 을 행복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면 오늘을 사는 우리는 인생의 즐거 움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젊어 서는 열심히 일만하고 은퇴한 후에 행복을 구가하겠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젊어서부터 노후의 경제적 여 유를 갖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동시 에 다양하고 건전한 취미생활을 하 는 것이다. 이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건강이다. 매일매일 운동하여 건강 을 저축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무 엇보다 중요하다. 일, 취미, 건강, 새로운 인생삼락(人生三樂)이다. 항상 그랬듯 이번에도 많은 친구들이 도와줬다. 직접 재배한 쌀 한 포대 와 양주 한 병을 보내준 변수복 동기회 부회장, 붕장어(아나고) 회 한 상자를 싸가지고 온 김왕중, 삶은 문어와 생아귀로 우리 입을 즐겁게 해준 곽인수, 전 복회와 전복죽을 직접 끓여준 김홍빈, 진천 집에서 딴 산사로 담근 산사주와 붕장어회를 산 남상화와 사과 한 상자를 안겨 준 신필호에게 특히 고마운 마 음을 전한다.

참가자

곽인수 김수곤 김왕중 김홍빈 남상화 신필호 양상진 오영 진영주 함동일 허정회

88

89


200次

|

2019. 6. 6 ~ 9

제13차 해파랑길 일광해변 ~ 오륙도해맞이공원 45㎞

해파랑길 770㎞ 대장정을 마치며

드디어 다 왔다. 종착역 오륙도 해맞이 공원이 바로 눈앞에 내려다보인다.

차당 평균 59㎞를 걸었다. 우리가 함께 해먹고 걷고 잔 날은 57일로 한 번 갈

2012년 5월 강원도 고성 명파초등학교에서 첫발을 내디딘 지 8년 만에 770㎞

때마다 평균 4.4일 걸렸다. 이 중 오갈 때 이동일은 0.5일로 치고 일기불순으로

걷기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다. 그간 우리 친구들에게 너무나 많은 느낌표

못 걸은 날을 제외한 순수하게 걸은 날은 41일로 하루 평균 18㎞를 걸었다.

를 주던 해파랑길 아니었던가. 감개무량하다. 출발할 땐 과연 이 꿈을 이룰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지만 끝내 우리는 해냈다. 우리 친구들이 자랑스럽다.

큰 과제를 마치고 나니 맨 감사할 일뿐이다. 무엇보다 별 사고 없이 안전 하게 마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700여 ㎞를 걷는 동안 어찌 아

일광해변에서 오륙도까지 45㎞ 마지막 구간에는 김동준, 김수곤, 김중곤,

찔했던 일이 없었겠는가. 보도가 따로 없어 대형트럭과 마주보며 걷기도 했다.

남상화, 신필호, 양상진, 오영, 유재두, 임금재, 정봉교, 진영주, 함동일, 허정회

길을 잃어 숲이 우거진 산길을 헤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친구

가 함께했다. 고맙게도 인근에 사는 전광남과 윤장한이 우리를 찾아와 즐거

들 모두는 이를 슬기롭게 넘겼다. 기간 중 걷기 좋은 날씨를 주신 하느님께도

운 시간을 보냈다. 마침 이번이 산우회 200차 산행이어서 더욱 의미 있었다.

감사드린다. 비가 와 걷지 못한 날은 사흘 정도로 전 일정 중 5%에 불과했다.

13회에 걸친 이 대장정에 한 번 이상 참가한 친구들은 모두 28명이다. 이 중 신필호, 진영주, 허정회가 개근상을 탔고, 양상진(12회), 함동일(11회), 남상

그런 날에는 주변 유적지나 관광을 하면서 나름 의미 있게 보냈다. 인간의 능 력으로 95% 확률로 일정을 짠다는 건 가능하지 않다. 감사할 일이다.

화(9회), 김수곤(8회), 안은섭(7회)이 그 뒤를 이었다. 연인원 124명이 참가해

함께한 모든 친구들이 고맙다. 특히 우리를 먹여주고 재워줬을 뿐만 아

1회 차당 평균 9~10명이 함께했다. 묵호항과 죽변항을 지날 때 7명으로 제일

니라 온종일 귀를 즐겁게 해준 양상진이 MVP라는 데 이견이 없을 듯하다. 그

적었으며, 최종 부산구간에서 13명으로 가장 많았다. 총 거리는 770㎞로 회

덕분에 한 번 갈 때마다 불과 10여만 원의 비용으로 잘 먹고 잘 잤다. 이동 차

90

91


량과 운전 서비스를 제공하고 복잡한 비용을 깔끔하게 처리한 진영주도 큰 몫을 했다. 신필호는 우리에게 ‘자유 여행’이라는 큰 가치를 일깨워줬다. 함동 일은 복잡한 길 안내를 잘해 ‘함내비’라는 별명을 얻었고 건강을 되찾았다. 교수 은퇴 후 5회 차부터 끝까지 함께 걸은 남상화는 우리들 얘깃거리와 먹거 리를 풍부하게 했다. 호주가 김수곤은 말없이 매사에 솔선수범했다. 안은섭이 없었다면 ‘신일고 1회 산우회 해파랑길 프로젝트’는 세상에 태어나지 못했다. 이 아이디어를 낸 당사자이다. 고마운 일이 또 있다. 동해안을 따라 우리가 지나는 코스 인근에 사는 친구들이다. 최원근(속초), 박용범(포항), 곽인수(대구), 정봉교(대구), 김왕중 (울산), 전광남(부산), 윤장한(창원)이 그들이다.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 격이다. 멀리서 친구들이 왔다고 바리바리 싸들고 우리 를 찾아왔다. 이들 중에는 학교 졸업 후 처음 만난 친구도 있었다. 이 얼마나 대단한 신일고 1회 힘인가. 모두에게 고마웠다는 인사를 다시 전한다. 긴 도보여행으로 얻은 건 우정, 건강과 자연의 위대함이다. 우리는 그 수 많은 날을 함께 살면서 우정을 도탑게 쌓았다. 많은 얘기를 나누면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 부족한 점은 서로 감쌌고 잘한 점은 함께 나눴다. 자연에서 걸으니 건강도 많이 좋아졌다. 일부는 늦은 밤까지 야근(?)하고 6시 새벽밥 먹고 나서도 끄떡없이 걸을 정도가 되었다. “우리 친구들 건강이 많이 좋아졌 다.” 처음과 마지막 구간을 함께해 친구들 체력의 차이점을 느낀 김중곤 얘기 다. 자연은 위대했고 아름다웠다. 걷다가 만난 여러 사람들로부터 또 평소 거 리를 두었던 산과 바다와 길에서 많은 걸 배웠다. 우리가 걸은 길은 살아 있는 교과서였다. 책에서 문자로만 익히던 우리 문화와 역사를 현장에서 생생하게 공부했다. 해파랑길이 우리에게 남긴 큰 가르침이다.

한 관심과 예산지원을 바란다. 이런 소문이 나다 보니 띄엄띄엄은 걸어도 전

이처럼 멋진 해파랑길이지만 걷기 명소가 되기엔 아쉬운 점도 없지 않다.

구간을 걷는 사람이 많지 않다. 가뭄에 콩 나듯 해파랑길 걷는 동지를 만나면

길을 좀 더 철저하게 정비하고 관리해야겠다. 걷는 사람에게 표지기는 항해하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이건 아니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는 한국 사람

는 사람에게 등대만큼 중요하다. 우리가 북쪽에서 남쪽으로 반대 방향으로

이 넘쳐난다는데 그 절반만이라도 해파랑길을 걸으면 지역경제 발전에도 크

걸어선지 표지기 찾기에 너무 애먹었다. 정부와 각 지자체는 아이를 낳기만

게 도움이 될 거 같다.

할 뿐 건사하지 않고 있다. 국민 건강이라는 대의명분이 있는 만큼 좀 더 세심

92

우리는 위대한 일을 ‘함께’ 해냈다. 혼자서 하는 건 어렵지 않다. 자기 일

93


정에 맞춰 갈 수 있을 때 가서 걷고, 쉬고 싶을 때 쉬면서 마치면 된다. 하지만

이 아프리카 강호 세네갈을 승부차기 끝에 물리쳐 4강에 올랐다. 그들도 한

함께하는 건 만만치 않다. 생각과 사정이 서로 다른 사람과 더불어 일정도 맞

팀을 외쳤다. 팀의 힘, 그룹의 힘을 강조했다. 그들 덕분에 기분 좋게 최종구간

춰야 하고 역할도 분담하면서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한 팀(one team)이 아

을 걸을 수 있었다.

니고선 이룰 수 없다. ‘협력의 힘(collective impact)’을 이끌어내야 한다. 주변

우리는 앞으로 평생 우려먹을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게 됐다. 개인적으

많은 사람이 우리를 부러워한다. 자기들도 하고는 싶은데 잘 안되기 때문이다.

로는 마라톤 완주 101회와 함께 이루기 쉽지 않은 버킷리스트 중 하나를 완

해파랑길을 마지막으로 걷던 날, 2019년 6월 9일 새벽 국가대표청소년축구팀

수했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 왠지 허전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과거만 먹고 살 수는 없다. 이 아름다운 팀과 함께 미래 ‘놀거리’를 찾아 나서야 한다. 여행이 인생의 목표는 될 수 없겠지만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 방편으로 그

드디어 무사히 대장정을 마쳤다. 기쁨과 아쉬움이 묻어나는 표정이다.

만한 것도 없다. 영국 작가 해즐릿(W. Hazlitt)은 “여행의 진수는 자유”라고 했 다. 믿음으로 일하는 자유인, 신일인에게 딱 들어맞는다. 우리 팀 모두의 지혜 를 모아 남은 인생 사탕처럼 달게 녹여 먹을 새로운 신일고 1회 산우회 5개년 계획을 함께 짜보자. “내가 이 세상에 올 때는 어느 곳으로부터 왔으며, 죽어서는 어느 곳으로 가는고! 재산도 벼슬도 모두 놓아두고 오직 지은 업을 따라 갈 뿐이네.” 이번 부산 기장을 지나다 들른 해동용궁사 바위에 새겨진 법구경 말씀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참가자

김동준 김수곤 김중곤 남상화 신필호 양상진 오영 유재두 임금재 정봉교 진영주 함동일 허정회

94

95


2장

해외산행 『세상이 학교다. 여행이 공부다』 한 교사부부가 교사직을 내던지고 세 자녀와 함께 1년 반 동안 전 세계 33개국을 배낭여행하고 돌아와 낸 책의 제목이다.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 쉽지 않은 일을 했다. 세상은 넓 고 돌아볼 곳은 많다. 우리는 여행하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 우리 산 우회도 지난 10년간 아홉 차례 바깥나들이를 했다. 친구들과 함께했 기에 더 많은 추억을 쌓을 수 있었다. 인생에 삼여(三餘)라는 게 있다. 사람은 평생을 살면서 하루는 저녁이 여유로워야 하고, 일 년은 겨울 이 여유로워야 하며, 일생은 노년이 여유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나이 들어도 늘 변함없는 우정과 사랑으로 감싸주는 친구들과 함께 여행 할 수 있어 더없이 행복하다.


106次

|

2013. 10. 2 ~ 6

대마도 여행기

인생은 소풍이다

이른 아침, 백 살 안팎의 편백(扁柏)나무 삼(杉)나무가 빼곡하게 들어선 원시 림을 오른다. 침엽수림이 뿜어내는 피톤치드가 우리 폐부를 맑게 씻어주는 듯 하다. 우리 일행 외에는 아무도 없다. 제법 경사가 있는 등산로 초입 분위기가 1년 전 울릉도 성산봉 오를 때와 비슷하다. 단지 새들의 웃음소리가 없는 게 그때와 다르다. 그 웃음을 우리 친구 들이 대신한다. 등산하느라 힘든 가 운데서도 연신 웃음꽃이 만발한다. 마치 아이들 소풍 온 것 같은 느낌이 다. 천상병 시인이 인생은 소풍이라 한 말이 생각난다. 잠시 이 세상에 놀러 온 게 우리들의 삶이라는 말일 게다. 10월 초 연휴를 맞아 산우회 회원 19명이 대마도 여행을 다녀왔

99


아리아케 정상에서.

바다의 신을 모신다는 와타즈미 신사에서.

다. 비록 2박 3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울릉도의 10배,

만 109개의 섬이 있다. 이 중 5개만 유인도이고, 나머지는 무인도란다. 정상 표

제주도 2/3의 면적, 인구 3만 5000명, 남북 길이 82㎞이고, 섬의 89%는 산이

지판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한 후 준비해 간 소주로 정상주를 하고 하산 길에

다. 부산까지 약 50㎞인 반면, 일본 본토 후쿠오카까지는 150㎞가 떨어져 있

나선다. 왕복 6㎞ 남짓의 오전 수업을 즐거운 마음으로 마친다.

다. 대한민국의 원조 물개 조오련 선수가 수영으로 횡단한 대한해협을 건너야 한다.

오후 수업은 등산, 낚시, 온천욕의 세 반으로 나눠서 했다. 네 시간 수업 후 만난 친구들의 얼굴에는 행복(幸福)이라는 글자가 아로새겨져 있었다. 정

이제까지 살면서 대마도(對馬島, 쓰시마)에 대해서 많이 들었지만 역시

상부가 암봉(岩峰)으로 되어 있는 시라타케(白嶽, 해발 519m)를 오른 등산반

한번 가서 직접 보니 그간의 단편적인 지식을 하나의 온전한 구슬로 잘 꿸 수

은 오전에 올랐던 육산(肉山) 아리아케와는 또 다른 등산의 맛을 볼 수 있었

있었다. 역시 백문이불여일견(百聞而不如一見)이다. 부산에서 배로 두 시간

다. 사위(四圍)가 절벽인 한 평 남짓한 정상에서 내려다 본 대마도 일대는 가

남짓 걸려 도착한 이즈하라항 시내 옛길에는 조선과 일본국 간 교린(交隣) 역

히 절경이었다. 낚시반은 낚시의 천국 대마도에서 조어(釣魚)하는 것 자체가

사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열심히 설명하는 가이드의 말 하나라도 놓

행복이었으리라. 온천욕을 즐긴 친구들 역시 오전 등산의 피로를 느긋하게 풀

칠세라 귀를 쫑긋이 모으는 우리 친구들의 모습이 대단히 진지하다.

었다.

두 시간이 채 안 걸려 아리아케(有明山, 해발 558m)에 올랐다. 우리 일

지난 5월 산우회 100회 산행 이후 우리 산우회가 부쩍 성장한 느낌이 든

행을 환영하는 듯 정상에 만발한 갈대가 넘실넘실 춤을 춘다. 대마도 주변 섬

다. 이제까지 9년 가까이 손발을 맞추는 동안 나름대로 팀워크가 자리를 잘

들이 우거진 나무로 에메랄드빛을 띤 채 바다에 둥둥 떠 있다. 대마도 주변에

잡아가고 있다. 어떤 행사를 해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척척 이루어진다.

100

101


121次 대마도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에보시타케 전망대에서.

|

2014. 6. 4 ~ 9

산둥성 태산‧곡부 문화기행기01 - 정락용

泰山鳴動 信一氣槪 태산이 떠나갈 듯, 신일의 기개를 떨치다

신일고 1회 산우회의 연례행사로 금년에는 6월 초 연휴기간에 산둥성 태안의 태산과 청도의 노산을 탐방하는 기획안을 전해 듣고 나는 명산만을 탐방하 는 대신 동양문화의 진수를 찾아가는 문화기행을 제안하였다. 이를 전해들은 회장단은 기꺼이 나의 제안을 받아들여 태산, 곡부, 적산을 방문하기로 확정 하였다. 경비도 절약하고, 친구들과 함께 그 옛날 선조들이 하였듯이 서해를 물 이번 대마도 여행은 조규진 추진단장이 대역을 맡아 성공적으로 잘 마쳤다.

길로 건너는 것도 의미가 있어 비행기 대신 선편을 이용하는 여행으로 결정하

그 노고에 깊이 감사드린다. 내년 중국 여행은 박종헌 동기가 앞장서기로 했

였다. 대강 인원은 25명 정도로 예상하여 준비에 들어갔다. 막상 준비에 들어

다. 나이 들어가면서 친구들과 함께 여행하는 것만큼 행복한 게 있을까?

가니 걱정이 앞선다. 산우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안전하게 이끌어야하고, 즐겁 고 무언가 마음에 남는 보람된 여행이 되게 해야 하고, 중국문화도 제대로 보 여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여간 쓰이는 게 아니었다. 여행사 입장에서 는 잘해야 본전인데(금전 얘기가 아니라 여행내용이 전 과정 탈 없이 잘 진행

참가자

김동준 김의섭 김종욱 김중곤 김철호 박종헌 변수복 서명택 신필호 심재동 안은섭 양상진 임금재 장무철 정자룡 조규진 진영주 함동일 허정회

102

되어야 본전이고,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큰 불만이 따른다는 의미이다) 여행 을 마치고 나서 산우들이 만족해할지 미리 걱정이 된다. 그러나 걱정은 뒤로

103


하고 철저히 준비나 하자고 다짐을 한다. 우선 중요한 선편 좌석확보를 위한 예약과 동시에 현지 여행일정 전부를

비를 감안하면서도, 그래도 모처럼 중국에 왔으니 제대로 중국식문화를 경험 하며 최대한 맛과 영양을 보장하는 메뉴선정에 최선을 다하였다.

책임질 협력사 수배에 들어갔다. 최소한의 경비로 최대한의 효과를 가져올 협

이렇게 오랜 검토와 현지 확인 끝에 일정표를 확정하고 많은 산우들이

력사를 찾기 위해 그 동안의 경험과 인적 네트워크를 총동원하여 두세 업체

동참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전 국민의 억장이 무너지는 참담한 세월호

를 검토한 결과 최종으로 가장 나아보이는 업체를 선정하였다. 여행의 질을

사고가 발생하여 여행계획에 차질이 우려되었다.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겼다.

올리기 위하여 노쇼핑, 노옵션 조건을 기본으로 하였다. 현지에서 쇼핑으로

그러나 박종헌 준비위원장의 많은 노력과 산우들의 이성적인 판단으로 최종

인한 시간낭비와 쇼핑 결과에 따른 신경 쓰임을 방지하고, 현지 추가옵션에

18명이 참여하여 드디어 대망의 5박 6일 대장정을 떠나게 되었다.

따른 금전적 부담을 차단하자는 생각에서다. 이래야 여행의 품격이 올라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출발 이틀 전에 확인한 현지의 맑은 날씨, 높은 온도를 감안하여 여름복

다음은 여행 일정 짜기. 현지 주요 방문지를 연결하는 동선과 이동 소요

장을 기본으로 행장을 꾸렸다. 먼 길을 떠남과, 오래 전부터 마음속으로 갈망

시간, 중간에 추가할 적당한 방문지 선정 등을 고려하여 인천 출발 - 석도 -

하던 명산인 태산을 오르고, 우리의 영원한 사표인 공자님을 알현하러 간다

치박의 고차박물관 - 태안의 태산 - 곡부의 공묘・공부・공림 - 위방의 양가

는 생각으로 이른 아침부터 마음이 들뜬다. 셀 수 없이 중국엘 다녀왔지만 이

부민속촌 - 적산의 법화원, 장보고기념관 탐방 - 인천 귀환으로 최종일정을

번에는 전과 달리 흥분과 기대로 마음이 설렜다.

확정하였다. 이 정도면 문화기행 이름에 걸맞다는 생각이 든다. 큰 틀의 일정

출발 당일, 아내의 배웅을 받고 떠난 발길이 가볍다. 집결장소를 찾아 약

을 만들고 나서는 중국 현지 3박 4일의 일정에 맞게 세부적으로 지역 간 이동

속시간에 대어 가니 이미 여러 명의 산우들이 모여 즐거운 술판을 벌이고 있

시간, 탐방지별 탐방 소요시간을 점검한 후 긴 여정의 중간 중간 들러야 하는

다. 일산팀원들이 정성껏 준비해온 맛난 안주와 술을 권한다. 상추쌈과 족발,

휴게소와 때에 맞춰 먹어야 하는 중식(中食) 지역 선정도 면밀한 계산 끝에 결

머릿고기, 삶은 문어가 먹음직하다. 먼저 온 산우들이 뒤이어 오는 산우들을

정하였다.

반가이 맞는다. 손을 잡고 몸을 감싸며 진한 우정을 나눈다. 이내 예정된 시

일정 중 태산 탐방 코스와 등정 방법 선정이 난제였다. 태산은 큰 산이라

간에 전원 참석이다.

등정코스가 여러 개 있으며, 걷거나 케이블카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이에

출발 전 허정회 회장이 즐겁고 보람되고 안전한 여행을 기원하는 인사말

대한 검토에 상당시간이 소요되었다. 우리 산우들의 나이를 고려하면 왕복으

을 건넨다. 박종헌 준비위원장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모두 탑승수속을 하

로 케이블카 이용이 편하나 명산 태산을 몸으로 걸어보지 않는 것은 너무 아

였다. 탑승장이 중국 여행객들로 왁자하다. 한국인은 세월호 여파로 역시 몇

쉬움이 커서 고심을 하였다. 코스별 조망 풍광과 구간별 소요시간, 중식 장소

안 된다. 오후 5시, 출국수속을 마치고 배에 오른다. 미리 배정된 8인승과 4인

등을 고려하여 최종적으로 전망 좋은 앞산으로 등정하고, 뒷산으로 하산하

승 방으로 자리를 잡는다. 짐을 풀고 바람도 쏘일 겸 갑판에 오르니 많은 여행

기로 결정하였다.

객들로 북적인다.

다음으로는 식사할 식당과 메뉴 선정이다. 산둥성 내륙 특성상 한국인

여섯 시경, 이윽고 큰 몸체의 배가 움직인다. 바람 없는 여름바다가 잔잔

식당이 별로 없어 부득이 점심 한 번만 한식으로 하고, 나머지는 모두 중식

하여 호수 같다. 석양으로 물든 서해 바닷길을 천천히 나아간다. 낮게 깔린 구

(中食)으로 정하였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매끼 식사는 중요하다. 빠듯한 경

름과 석양의 조화가 아름답다. 인천항의 모습과 이어 마천루로 변한 송도신도

104

105


시가 눈에 들어온다. 곧 송도와 영종도를 잇는 인천대교가 위용을 뽐내며 우

예정된 석도항 도착시간, 8시가 지나니 선수(船首) 넘어 아담한 산자락

리를 맞는다. 짧은 기간 참 많이 변했다. 우리 국민의 열정과 근면으로 큰 발

이 바다 위에 그림처럼 떠 있다. 점점 다가가니 산세가 제법 아름답다. 우리네

전을 이루어낸 것이 그대로 보인다. 우리 산우들도 조국발전에 기여한 세대임

인왕산도 닮아 보여 정감이 간다.

을 생각하니 마음이 뿌듯하다.

드디어 9시경 석도항에 도착. 행장을 챙겨 단체로 열을 지어 비자 순서대

인천 연안의 작고 아름다운 섬을 지나 배가 넓은 바다에 이른다. 망망대

로 입국수속을 한다. 하선을 하니 현지 가이드가 반갑게 맞는다. 출발 전 유

해다. 갑판에서 맞는 여름 저녁의 바닷바람으로 몸과 마음이 시원해진다. 그

능하고 성실한 가이드를 특별히 부탁하였는데 약속대로 인상 좋은 젊은이다.

옛날 선조들이 작은 목선을 타고 목숨을 걸고 건너던 바닷길을 우린 육중한

가이드는 여행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좋은 가이드를

철선을 타고 안전하게 건너고 있다. 언제나 이 바닷길은 한국과 중국을 이어

만나는 것은 그대로 성공적인 여행을 보장하는 거다. 마음이 놓인다.

주는 최단거리 해상로로 물자와 문화의 교역로였다. 우리는 그런 의미 있는 바닷길을 건너고 있는 거다.

준비해온 버스에 오르니 가이드가 차분하게 인사를 건넨다. 반가움을 표하고 안전여행을 당부한다. 이어 현지 3박 4일 긴 여정의 시작이다. 중국은

이른 선상 석식을 끝내고 산우들은 객실에서 갑판에서 삼삼오오 주흥

워낙 땅이 넓어 움직이면 몇 시간은 기본이다. 산둥성은 중국에서도 이름난

과 담소를 즐긴다. 여행을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데는 술만 한 게 없다. 지루

평야지대로 정말 끝없는 대지의 연속이다. 산 하나 안 보이는 평야를 몇 시간

할 만한 바닷길은 술기운 덕에 즐거운 추억으로 물든다. 또한 갑판은 한중교

이고 달려간다. 차창 밖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누런 밀밭이 장관이다. 산둥성

류의 장이기도 하다. 많은 중국인 틈에서 한국인들이 열심히 몸짓손짓 섞어

은 강우량이 연간 600~700㎜에 불과하여 논농사는 어렵고 대신 밀농사가

대화를 나눈다. 두 나라 사람들의 우정의 교류장이다. 우리의 호프 변수복 산

주종이다. 밀 수확 후에는 채소를 심으며, 중국에서 중요한 채소 공급지라 한

우가 중국 여인네들이 단체로 하는 중국식 건강체조를 열심히 따라 한다. 한

다. 남한의 1.4배 정도 면적에 인구는 9700여만 명이나 되는 큰 성으로, 지리

시간여를 땀을 내며 해댄다. 변 산우에 대한 중국 여인네들의 인기가 하늘을

적으로 한국과 가까워 예로부터 양국 간에 교류가 활발한 지역이다.

찌른다. 늦은 밤, 다시 나가본 갑판 한편에서 젊은 중국 남녀 무리와 함께 술

산둥성 서쪽 끝자락에는 태항산맥이 길게 뻗어 있고, 이 산맥을 경계로

잔을 나누며 한중우호를 다지고 있는 그를 발견하였다. 대단한 슈퍼맨이다.

동쪽은 산둥성이고 서쪽은 산시성이며, 중국 중원을 가로지르는 황하강을

말은 분명 안 통하는 거 같은데 말귀는 통하는 모양새다. 서로들 박장대소하

중심으로 북부는 허베이성이고 남쪽은 허난성이다. 태항산맥에는 네 개의 성

며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니 몸짓언어가 말보다 한 수 위임이 증명된다. 양국

이 맞닿아 있으며 웅장하고 아름다운 산세로 최근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유

간의 우호증진에 기여하는 그는 바로 민간외교관이다.

명관광지이다. 서쪽 내륙으로 갈수록 기온은 올라가서 석도, 청도 지역이 최

정담으로 밤이 기울어서야 잠을 청한 산우들은 이내 곤한 잠에 빠져든 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꿈속에서도 즐거운 여행을 하였으리.

고 32도 정도일 때 내륙은 37~38도라 한다. 최근 높은 기온으로 달구어진 대 지는 뿌연 연무현상으로 무더위를 실감할 수 있다.

다음날 새벽, 피곤함도 잊은 채 이른 새벽부터 기침(起寢) 소리가 난다. 하나

여정 중에 한국식당이 유일하게 있는 중간 기착지인 유산에 11시경 도착

둘 여명으로 밝아오는 바다를 맞으러 선실 밖으로 나간다. 하늘과 바다가 맞

하여 특식 한식으로 중국 땅에서 첫 점심을 먹었다. 고량주를 곁들여 잡채요

닿아 구분이 안 된다. 생명의 근원이요 미지의 세계로 이어주는 바다의 의미

리와 낙지볶음, 김치찌개 등으로 배를 채우고는 다시 태안을 향해 달려간다.

를 떠올리며 아침 바람을 맞는다. 배는 점점 중국 연안으로 다가간다.

중간 기착지인 치박의 고차(固車)박물관에 3시 40분경 도착하여 유물을 관

106

107


의 노신사들이 각자 젊은 여인들의 수발을 받으며 맥주와 과일안주를 곁들여 가며 노래와 춤으로 세 시간여 즐겼다. 말은 서로 안 통하지만 몸짓과 표정으 로 양국 남녀 간의 우애를 질펀하게 나누었다. 이규옥 산우의 협찬 호의로 즐 긴 문화탐방이었다. 늦은 시간, 아련한 꿈속에서도 아리따운 아가씨들의 미소 를 떠올리며 곤한 잠으로 피곤을 달랬다.

3일차 새벽. 매일 아침 공식이 된 6시 모닝콜, 7시 조식, 8시 출발에 맞게 시간도 잘 지키며 일정을 소화하였다. 호텔의 잠자리도 편하고, 뷔페식 조식 도 기대 이상으로 먹을 만하여 여행에 필요한 원기를 북돋아주었다. 이제 산우들의 로망인 태산으로 향한다. 중국 오악(五嶽) 중에서도 으뜸 인 명산으로 예로부터 중국인들이 가장 성스럽게 여기고, 역대 제왕들이 하 늘에 제사를 지내는 봉선의식을 거행하는 산이다. 또한 일반 백성들도 신성시 하여, 태산에 한 번 오를 때마다 십년씩 젊어진다는 속설로 누구나 이 산을 오르는 것이 평생소원이기도 하다. 태산 바로 앞의 태안 시내를 10시 40분경 지나 11시가 안 되어 태산의 앞 산 입구에 도착하였다. 바로 앞 태안 시내까지는 평야지대인데 곧바로 태산이 위용을 자랑하며 서 있으니 1532m보다 훨씬 더 높게 보이는 산으로, 그래서 태산(泰山)이라 이름지어졌으리라. 람하였다. 고속도로 공사 중 우연히 발견된 유물로, 춘추전국시대의 오래된

앞산에서 바라보이는 태산은 위용이 당당하다. 길게 뻗은 산자락이 유연

군사용 마차와 함께 순장한 말의 뼈가 선명하다. 제국 간에 목숨을 건 전투에

하면서도 힘이 있다. 진시황을 비롯하여 수많은 황제들이 봉선의식을 올렸던

사용되었던 군사용 마차는 정교하게 제작되어 당시의 높은 문물수준을 알

명산답게 우리를 압도하는 기운이 넘쳤다. 등산길 입구에는 커다란 태산 표

수가 있었다. 발견된 장소를 그대로 살려, 박물관의 위치는 고속도로 바로 아

지석이 서 있고, 황제의 권위를 뽐내듯 용으로 조각된 돌기둥이 줄지어 세워

래 지하에 자리 잡고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졌다.

고차박물관을 떠나 첫날 목적지인 치박시내의 제도호텔에 6시경 짐을

그러나 앞산 등정 계획은 처음부터 흔들렸다. 우리 산우 일행 중 일부가

풀었다. 치박도 아주 오래된 도시로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의 수도였으며, 그런

이용할 케이블카가 점검으로 운행이 중단되어 애초의 계획과는 달리 뒷산으

연유로 제나라 제와 수도 도를 써서 제도호텔로 이름이 지어졌다 한다. 중국

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이동시간 등으로 시간이 지연되어 일정상 전원 케

식 저녁 식사로 배를 채운 일행은 두 패로 갈려 한 패는 현지 음주가무문화

이블카로 올라가기로 하였다. 우리들이 타고 온 버스를 내려, 표를 사들고 태

탐방을, 다른 한 패는 현지 길거리 탐방을 하였다. 가라오케를 수배하여 9명

산 경내의 셔틀버스를 타고 30여 분 꼬불꼬불 산길을 올라 케이블카 탑승장

108

109


에 도착했다. 케이블카를 타고 15분 정도 지나니 정상 가까이에 도착이다. 태 산은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돌산으로 산세가 가파르다. 그런 험한 산자락에 케이블카를 설치하여 국내외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는 그들의 상술이 보통이 아니다. 짜릿함을 맛보며 뒷산 경사면을 순식간에 오른다. 하차하니 태산의 9 부능선쯤의 높은 곳이다. 좀 걸어가니 천가(天街)라는 식당과 상점 용도의 오 래된 전통 건물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이렇게 높은 산자락에 이런 건축물들 을 거대하게 지었다니 놀랍다. 곧장 식당으로 가서 미리 주문한 음식으로 산 상(山上) 점심을 들었다. 산위에서 갖는 오찬으로 특별한 기분이다. 식후 정상으로 걸어 올라갔다. 태산에는 일천문(一天門), 중천문(中天 門), 남천문(南天門)이 있으며, 중국 3대 전각의 하나인 천황전으로도 유명하 다. 3대 전각은 북경 자금성의 태화전, 곡부 공묘 안의 대성전, 태산의 천황전 이다. 산 정상 부근에는 벽하사, 공자사당, 옥황정 등이 있어 도교, 유교, 불교 라는 3대 종교의 문화를 볼 수 있으며, 산 곳곳의 암벽에 새겨진 경문과 시문 도 태산의 명물이다. 다양한 시대를 거쳐 오며 새겨진 글자들은 하나하나 명 필이며, 다채로운 의미로 색다른 재미를 준다. 산 정상의 사원에 들러 산우들은 마음을 정제하고 각자 소원을 빈다. 가 족의 안녕과 복을 기원했다. 신성한 기운이 감도는 명산에서의 기도는 뜻대 로 이루어지리라. 정상에서 준비해온 ‘산우회 태산・곡부 문화기행’ 플래카드 를 펼치고 중국인들의 호기심 가득한 시선 속에서 호기 있게 기념촬영을 한 후 하산을 재촉하다. 하산은 전원 도보로 앞산 주등산로를 내려가는 거로 하였다. 풍광이 좋은 앞산 길을 몸으로 걸으며 태산의 영험한 기운을 받는다. 처 음부터 끝까지 가파른 돌계단길이다. 무려 7412개의 돌계단이다. 내려가는 것

꼿한 소나무는 그 기상이 그대로 살아 있는 군자 풍모이다. 태산의 특이한 것 중 하나는 높고 깊은 계곡임에도 강수량이 적은 지역 특성상 계곡에 물이 적 다는 거다. 맑은 계곡물이 별로 없어 아쉬운 마음이다.

도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런데 그런 가파른 계단을 많은 중국인들이 힘겹게

긴 계단으로 다리가 아파올 무렵 경내 셔틀버스 탑승장에 도착했다. 정

올라오고 있다. 그들에겐 이 길은 순례길이다. 마음속 염원을 품고 경건하게

상에서부터 1시간 반이 걸렸다. 다시 버스로 30여 분 내려가니 우리 버스가

오르는 것이리라.

기다리고 있다. 긴 하산 길로 다리는 아프지만 마음은 영험한 명산에 다녀왔

태산은 모두 돌산인데 나무가 제법 빽빽하다. 산 중간 지점에 있는 거대 한 소나무 군락지가 장관이다. 암벽 위에서 오랜 풍상을 견뎌낸 밑동 굵은 꼿

110

다는 뿌듯함으로 차오른다. 오후 4시 반, 우리 버스로 환승하여 태산을 멀리하고 공자님 고향인 곡

111


부로 달려간다. 6시에 곡부 시내에 도착하여 곧바로 안마소로 향했다. 지친

경심이 얼마나 큰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장소이다. 공자는 황제 다음 서열의

다리를 풀어주려는 뜻이다. 젊은 여성 전문 안마사들이 약제가 가미된 따끈

대우를 받았으며, 직계 자손들도 그에 준하는 대우로 세습되는 벼슬을 유지

한 물통을 들고 와서 발을 담가준다. 발바닥 피로가 가신다. 이어 정성껏 발

하며 막강한 권위와 권력을 행사하였다. 가옥 구조에서는 남녀유별이 엄격한

바닥, 종아리, 허벅지를 거쳐 어깨, 허리 등 전신을 한 시간 이상 안마해주니

생활공간을 볼 수 있었다.

몸과 마음이 함께 거뜬해진다. 산행 후의 안마, 달콤한 휴식이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모택동의 공산당이 정권을 장악하며 공자사상(유교)

안마를 마치고 오늘 하룻밤을 맡길 궐리빈사로 가서 여장을 풀었다. 성

을 탄압하여, 이를 견디지 못한 공자후손들이 공부를 떠나 대만으로 피신하

내에 있는 중국전통 양식건물 호텔로 보기가 아담하고 포근하다. 운치가 있

여 지금껏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거다. 공 씨 후손들이 살고 있지 않은 공부

다. 북경의 유력 지도자급 정치인들도 와서 묵는 호텔이란다.

라니 뭔가 속이 빈 느낌이 든다.

오늘 저녁은 곡부에 왔으니 제대로 중국의 고급 식문화를 경험하기로 했

공부를 나와 경내 셔틀 차량으로 공림으로 향했다. 공자와 아들, 그리고

다. 공부가연(孔府家宴)이다. 말 그대로 품격 있는 공 씨 가문의 연회음식이

직계 가족들의 묘가 있는 공 씨 가족묘역이다. 넓은 묘역은 많은 나무들로 숲

다. 식탁에 차례차례 여러 요리가 나온다. 잉어찜에 오리고기, 석이(버섯) 요

을 이루었고, 그 사이사이에 다수의 묘들이 누워 있다. 묘원의 긴 입구 좌우

리, 계란볶음밥, 청경채, 계란토마토탕, 몸에 좋다는 전갈 튀김 등이 나온다. 맛

에는 오래된 거목 편백나무가 줄지어 서 있다. 기품이 있는 편백은 바로 공 씨

으로 먹고 눈으로 즐긴 중국요리였다. 석식 후 피곤한 몸으로 아늑하고 고풍

가문을 상징하는 나무이다.

스러운 호텔방에서 곤한 잠을 잤다.

한참을 걸어가니 바로 우리가 늘 생활 속에서 만나고 있는 공자님의 묘 소가 보인다. 왕릉과 같은 큰 규모의 묘이다. 돌로 된 커다란 묘비에는 대성지

여행 4일차, 곡부 일정이다. 곡부는 유교의 창시자인 공자의 고향으로, 노

성문선왕묘(大成至聖文宣王墓)라는 글자가 또렷하다. 재미있는 것은 아래의

나라의 수도로도 유명하다. 오늘은 동양뿐 아니라 전 세계인의 영원한 사표

‘왕(王)’ 자가 묘 아래에서 쳐다보면 ‘우(于)’ 자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아래 가

인 공자님을 만나러 가는 날이다. 지난밤의 달콤한 잠으로 몸이 거뜬하다. 성

로획이 안보이니 ‘왕(王)’ 자로 안 보인다. 이는 황제가 공자묘를 참배할 때 왕

현을 알현하러 가는 길에 몸과 마음을 단정히 하였다.

자로 보이는 것을 피하기 위해 세로획을 특별히 길게 하여 가로획이 묘 앞의

8시, 호텔을 출발하여 가까이에 있는 공묘를 방문하니 규모가 예상보다

상석에 가려 안 보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방대해서 놀랐고, 많은 건축물들이 크고 아름다워 또다시 놀랐다. 공묘는 공

공자 사후 지금까지도 동양인들의 정신세계에서 큰 비중으로 살아 있는

자를 모신 사당으로 공자 사후 1년인 기원전 480년경(약 2500년 전) 건물들

공자님을 생각하며 경건한 마음으로 공림을 둘러보고 밖으로 나오니 중국인

을 지었으며, 현재 중국에서 가장 큰 사당이다. 웅장하고 아름다운 대성전은

들의 상술을 엿볼 수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더운 날씨를 이용하여 부지

중국 3대 전각의 하나이다. 경내의 수많은 편백나무는 오랜 세월의 증표로 밑

런히 어린애까지 동원하며 빙과를 팔고 있는 아낙도 있고, 앙증맞은 인력거

동의 굵기가 아름드리이고 키도 대단하다. 다른 쪽으로는 공자님을 기리는 비

를 닮은 삼륜차로 걷지 말고 차를 타라고 호객을 해댄다. 돈벌이 수완이 보통

각들이 즐비하다.

이 아니다.

공묘 관람을 마치고 공부에 들렀다. 공부는 공자의 직계 가족들이 대대

11시 30분경 공림을 떠나 어제 만찬을 즐긴 호텔 앞 식당을 다시 찾았다.

로 집무를 보거나 거주하던 곳이다. 공자 사후에 공자에 대한 중국인들의 존

곡부에서의 중식을 맛있게 들고 12시 반경 위방을 향해 동쪽으로 먼 길을 재

112

113


촉하여 떠났다. 위방에 있는 양가부민속촌을 오후 5시 문 닫기 전에 방문하 려면 워낙 먼 길이라 길을 서둘러야 했다.

때와 같은 숫자이다. 반은 중국 밤문화 탐방, 반은 중국 야간거리 탐방이다. 가이드의 안내로 음주문화 탐방. 전면이 화려한 건물에 이르니 분위기가

산둥성을 동쪽 끝자락에서 시작하여 이곳 먼 서쪽의 곡부까지 왔으니

예사롭지 않다. 쭉 빠진 미녀들이 두 줄로 도열하여 환잉꽝린을 외친다. 실내

이제는 다시 돌아가는 길이 된다. 버스는 산둥성을 가로 지르며 끝없이 펼쳐

인테리어도 호화롭고 TV 화면과 음향시설도 최신시설이다. 1차 때보다 더 세

지는 평야지대를 쉬지 않고 달린다. 달리는 차창 밖 시선에 보이는 시골 풍경

련되고 활기찬 분위기다. 덩달아 산우들의 기분도 올라간다. 더구나 오늘밤은

이 낯설지 않다. 어릴 적 늘 봤던 농촌 모습이다. 누런 보리밭, 사이사이 채소

김순중 산우가 전체 비용의 반을 스폰하기로 하여 참석자들이 더욱 흥이 났

밭, 과수원이 보이고 간간이 나무들도 무리지어 보인다. 정겨운 풍경이다. 다

다. 알딸딸한 술기운으로 떼를 지어 남녀가 가무를 즐기는 모습이 여기가 천

만 들판의 규모가 너무도 광활하여 놀랍고, 한참 밀을 수확하고 있는데 사람

상세계요 극락이리라. 도우미들도 열심히 흥을 돋워주니 기분은 최고조, 늦

은 보이지 않고 커다란 콤바인들이 한가롭게 밀밭을 쓸어가고 있다. 이곳도

은 밤까지 중국에서의 마지막 밤을 아쉬움 없이 보냈다.

이미 농업기계화가 현실이 되어 있다.

야간거리 탐방조들도 끼리끼리 시원한 밤거리를 헤집고 다니며 다양한

긴 시간 버스를 달려 위방(웨이팡)에 이르니 5시가 다 됐다. 서둘러 양 씨

거리풍경과 현지문화를 체험하였다 한다. 말은 안 통해도 특유의 끼로 별 불

마을 민속촌을 찾아가 겨우 표를 끊고 입장하니 입구에 전통복장과 경극탈

편 없이 잘 돌아다녔다는 자랑들이다. 이렇게 우리들은 마지막 밤을 즐겁고

을 쓴 여인네 둘이서 환영춤을 선사한다. 경내에는 중간에 10여 층 높이의 전

의미 있게 보내고 부화호텔에서 부귀와 호화를 꿈꾸며 하룻밤을 잤다.

각이 세워져 있고, 주변에는 전통가옥들이 각양각색의 전통민속자료를 보여 주는 전시장 역할을 하고 있다. 중앙의 주건물에 들어가니 중국 연(鳶)의 발

5일차 새벽, 위해, 석도까지 돌아가야 하는 긴 여정으로 새벽부터 부산

상지답게 연박물관으로 꾸며져, 다양한 형상의 연을 보여준다. 놀라운 것은

하다. 6시 기상, 조식을 들고 8시 출발했다. 드넓은 평야를 한참 지나니 산줄

연 모양의 다채로움과 함께 그 오래 전 전국시대에 이미 대형연을 전쟁에 이용

기들이 길게 우리를 맞는다. 어제보다는 산세가 제법 있다. 평야와 산들이 교

하였다는 거다. 대형연에 사람이 올라타고 하늘 높이 올라 상대방 성내로 날

차한다. 잘 뻗은 고속도로가 사통팔달이고, 그 옆으론 고속열차가 잽싸게 달

아올라가서는 성내를 정탐하여 아군에게 공격 지점과 시점을 제공하여 승리

린다.

로 이끌었다 한다. 대형 연을 정교하게 제작하는 기술수준이 보통이 아니었

12시 먼 길 끝에 바다가 보이니 위해시 석도이다. 오늘의 중식은 중국에

다. 이런저런 생활민속품들을 관람하고 위방 시내의 식당을 찾아 허기진 배

서의 마지막 식사로 해물샤브샤브뷔페로 정했다. 석조로 잘 지어진 식당에 들

를 채웠다. 늘 하듯이 맥주와 약간의 고량주를 곁들여 여러 가지 중국음식을

어서니 규모가 장난이 아니다. 더구나 차려진 해산물이 여러 가지로 즐거운

즐겼다. 식사를 마치고 7시 반경 부화(富華)호텔에 짐을 풀었다.

볼거리가 된다. 특히 조개류가 정말 다양하다. 이렇게 많은 종류의 조개가 있

배를 채우고 나니 중국 땅에서의 마지막 밤을 어떻게 보낼까가 큰 관심

다니 믿기지 않을 정도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생선이며 닭고기, 돼지고기, 양

사였다. 산우들마다 개성이 다르니 여유시간을 보내는 방법도 제각기리라. 밤

고기 종류, 다양한 면과 채소 등 눈도 놀라고 입도 놀란다. 게다가 술도 무제

문화를 은근히 기대하는 산우 몇 명이 눈짓을 해대니 여러 명이 합세한다. 그

한 제공으로 여러 종류의 맥주와 고량주가 애주가들을 반긴다.

러나 역시 오늘도 시내거리 탐방을 하자는 산우들도 제법 많다. 나중에 패가

배를 질탕하게 채우곤 마지막 탐방지인 적산으로 향했다. 붉은 빛이 도

갈리니 절묘하게 반반, 아홉 명씩 갈린다. 일부 멤버는 바뀌었지만 엊그제 1차

는 화강암 산이어서 적산(赤山)이다. 신라의 해상왕 장보고가 당나라인 이곳

114

115


우리 일행인 장무철 산우는 장보고의 후예란다. 적산이 가까워질 무렵 부터 선조 자랑을 늘어놓는다. 그럴 만도 하겠지. 장보고는 해신(海神)으로 추앙된 걸출한 인물이었으니. 기념관 뜰 안의 장고보 동상 앞에서 향을 피우 고 복전을 넣고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절을 올리는 모습이 자못 진지하 다. 얼굴에 자부심이 그득하다. 적산 자락에서 바다를 바라보니 여기가 명당임을 알겠다. 명당에 자리 잡은 법화원과 해신(海神) 장보고기념관을 둘러보고 나오는 산우들 표정에 서 한국인임이 자랑스럽다는 마음을 읽어본다. 4시경, 서둘러 시간에 대어 부두에 도착하니 많은 중국 관광객들이 요란 스레 탑승수속을 한다. 우리도 출국과 탑승수속을 마치고 기다리고 있던 배 적산에 그의 위세를 당당히 내세웠던 유서 깊은 유적이 있는 곳이다. 무리를

에 오른다. 배정된 4인실 방에 짐을 풀고 나서 잠시 상념에 빠진다. 중국 땅에

이끌고 와서 신라방을 건설하였고, 불교사원인 법화원을 건축하였다. 바닷가

서의 3박 4일 먼 길을 쉬지 않고 휘돌아다녔다. 중국의 속살을 만나보았다. 낯

산자락에 자리 잡은 법화원과 장보고기념관의 전통건축물들이 웅장하면서

선 풍경들, 낯선 사람들과 음식들. 많은 것들을 보았고 온몸으로 느꼈다. 이번

도 주변 산세와 잘 조화를 이룬다. 매일 오후 2시에 보여주는 대웅전 앞의 분

여행을 통해 중국의 과거와 현실의 진면목을 보았고, 그를 통해 나의 조국을

수쇼도 장관이다.

돌아보게 되었다.

116

117


배는 출항 시간이 되어도 요지부동이다. 석식을 마치고 갑판에 올라 다 시 석도항을 둘러본다. 어둠이 깔린 항구에 불빛이 조용하다. 항구는 만남과

121次

|

2014. 6. 4 ~ 9

산둥성 태산‧곡부 문화기행기02 - 허정회

헤어짐이 있고, 도착과 출발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우리는 짧은 동안 정들었 던 중국(땅과 사람과 문화)과의 이별을 서운한 마음으로 맞는다. 그러면서 보 다 원숙해지는 내일의 나를 기다린다. 이렇듯 여행은 즐거움과 성찰을 주는 소중한 경험이다. 밤이 이슥하여 배는 고동을 울리며 천천히 움직인다. 즐겁 고 아름다운 추억을 가슴에 담고, 아쉬움은 배를 따라오는 물살에 던져놓고 나는 간다. 훗날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떠나간다. 중국, 산둥이여 안녕! 자

‘세상이 학교다, 여행이 공부다’

이지엔!! 늦은 잠을 자고 눈을 뜨니 그래도 이른 새벽이다. 배가 한국 영해에 들어 온 모양이다. 여명으로 바다가 연회색으로 차분하다. 하늘이 점점 더 밝아지 며 너른 바다가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다. 6월 9일 오전 9시, 인천항구가 눈앞 이다. 긴 여행을 마친 몸이지만 피곤하지가 않다. 시원한 바닷바람 덕인가? 하 선과 입국 수속 후 뭍에 오르니 헤어질 시간이다. 산우들 모두 둥그런 원을 만들어 5박 6일 긴 여정을 성공리에 마친 것을 자축한다. 수고했다, 고맙다는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덕담을 나누며 작별을 고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이번 열여덟 명의 산우들이 함께한 산둥성 문화기행, 전 일정 5박 6일을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별 탈 없이 마치게 해준 산우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빠듯한 일정에도 늘 협조 해주어 계획된 탐방일정을 빠짐없이 잘 마무리하였다. 산우들의 우정과 헌신

우리가 초등학교 시절 곧잘 되뇌던 시조다. 당시 태산을 생전에 오르게 될 줄

으로 고단할 수 있는 여행길이 즐거움이 되었고, 행사가 풍성하게 치러졌다.

이야 꿈에도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 산을 이번 산우회가 주관한 다섯 번째

다양한 방법으로 협찬을 해준 산우들, 고맙소.

해외여행(2014. 6. 4~9)을 하면서 등정하게 되었다. 실제 태산의 해발고도는

허 회장의 탁월한 기획력과 박 준비위원장의 철저한 준비로 훌륭한 여행

1545m이니 그리 큰 산은 아니다. 하지만 태산은 평야지대에서 갑자기 솟아

을 마쳤다. 감사하다. 산우들의 여행길이 안전 속에서 즐겁고 보람 있었던 추

난 대부분이 바위로 된 근육질의 산이기에 중국 사람들은 태산을 신성한 존

억이 되도록 나름대로 노력은 하였지만, 그래도 부족함이 적지 않았을 게다.

재로 여기고 있다. 이번 여행을 통해 태산은 단순한 등산을 위한 산이 아님을

산우들의 너그러움을 청한다.

알게 되었다. 예부터 중국의 제왕들은 이곳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봉선 (封禪) 의식을 거행했다. 중국 사람들에게 태산을 오른다는 것은 일종의 성지

신일고 1회 산우들, 즐거웠습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聖地) 순례와 같은 것이다. 태산을 한 번 오를 때마다 10년씩 젊어진다고 하 여 누구나 자기의 버킷 리스트에 올려놓고 있을 정도다.

118

119


우리가 묵었던 임치(臨淄) 제도(齊都)호텔에서 태산이 있는 태안(泰安) 까지 고속도로로 약 두 시간 걸렸다. 임치가 속해 있는 치박(淄博)시가 옛 제 나라의 수도였기에 여기서 호텔명을 따왔다. 왕복 4차선의 고속도로는 생각 보다 잘 닦여 있었다. 특이한 것은 향후 확장에 대비해 고속도로 양가를 넉넉 하게 확보해 놓고 그곳에 조림을 해놓았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이고 토지 는 국가로부터 차용한 것이지 소유권이 인정되지 않은 탓도 있지만 중국 사 람들의 장기적인 안목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한 가지 불편한 점은 약 두 시간 간격으로 휴게소 간격이 멀고 고속도로에서는 긴급 상황이 아니고서는 차를 세울 수 없기에 생리적인 문제 해결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기대와 설렘 속에 드디어 태산 입구에 도착했다. 우리 일행 18명을 등산 과 케이블카 중 선호도로 나눠보니 7:11이었다. 그런데 태산 입구에 도착해 매 표를 하려던 김광철 가이드가 갑자기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그는 중국에서 태어난 29세의 교민 2세 청년으로 기간 중 성심껏 우리 여행의 안내자가 되어 주었다. 태산에는 전면과 후면에 각각 케이블카를 운영하고 있다. 마침 전면 케이블카가 며칠 동안 점검에 들어가 운행 중지 상태란다. 우리는 일행 전원 이 후면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다가 전면 계단을 따라 걸어 내려오기로 계 획을 바꿨다. 15분여 만에 케이블카는 우리를 천가(天街)에 내려놓았다. 정상 인 옥황전(玉皇殿)까지는 그곳에서도 30분을 더 올라가야 했다. 산을 오르 는 중국 사람들 손에는 어김없이 무슨 폭죽 같은 게 들려 있었다. 나중에 알 고 보니 자기의 소원을 비는 향이었다. 이곳을 오르는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 이지 않아 산 정상까지 이어진 7000여 개의 돌계단은 그들의 발길에 닳고 닳 아 반질반질하였다. 우리는 옥황전에서 준비해 간 ‘信一高 1回 山友會 泰山・曲阜 文化紀行’ 플래카드를 앞세워 기념사진을 찍었다. 플래카드가 한자로 돼 있어 중국인들 의 시선도 일제히 우리에게 쏟아짐을 온몸으로 느꼈다. 갑작스러운 계획 변경 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잘된 것 같았다. 일행 전원이 함께할 수 있었고, 비록 일부지만 계단으로 올라갔다면 체력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진행에 차질이 많 을 뻔했다. 하산 계단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경사도 급하거니와 계단과 계

120

121


단 사이의 폭이 좁아 게걸음을 해야

지금은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전 세계 많은 관광객들이

할 정도였다. 그 수많은 계단을 내려

찾고 있지만 취푸도 문화혁명은 피할 수 없었다. 1960년대 중반 일어난 문화

온 것만으로 일부 회원들은 돌아오

혁명 당시 홍위병들은 공자의 흔적을 지우려고 공묘에 있는 수많은 비석을 부

는 날까지 엉거주춤 걸을 정도였다.

쉈고, 공림에 있는 후손들의 묘를 파헤쳐 그 안에 있던 많은 보물들을 도굴해

이 길고 험한 계단을 50㎏ 상 당의 음료수를 어깨에 걸치고 오르

갔다. 가이드에 의하면, 하루에도 수차례씩 빈 트럭이 들어와 불과 2시간 만 에 매장물을 가득 채워 성 밖으로 나갔다니 그 폐해가 가히 짐작이 간다.

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이 그 일

공부에는 노벽(魯壁)이 있다. 기원전 2세기경 당시 진(秦)나라 시황제는

을 하는 데에는 돈벌이 이상의 의미

분서갱유(焚書坑儒)를 하였다. 자신의 치세에 대해 비판하는 학자들을 죽이

가 있는 듯했다. 하산 후 취푸(曲阜)

고 그들의 비판 근거가 된 경전을 모두 불태운 사건이다. 이때 공자의 9대 직

에서의 발마사지는 태산등정의 피

계손인 공부(孔鮒)가 집안에서 보관 중이던 책을 차마 태울 수 없어서 집에

로를 푸는 데 그만이었다. 우리 일행

이중벽을 만들어 그곳에 책을 숨기고 틈새를 막은 후 벽 앞에 魯壁이라 써 붙

은 궐 안의 호텔이라는 뜻의 궐리빈

였다. 공자의 20세 손에 가서야 ‘벽(壁)’ 자 흙토에 점이 하나 더 찍혀져 있어

사(闕里賓舍)에 투숙했다. 이 호텔은

이를 미심쩍게 여긴 나머지 벽을 허무니 그 안에 공자사상을 적은 고서들이

장쩌민, 주룽지 등 역대 총리들이 투

쏟아져 나왔다. 그 안에는 ‘이 책을 발견한 후손들은 공자 사상을 널리 전파

숙하던 곳이다.

하라’는 당부의 글까지 있었다. 분서는 피해야겠는데 땅에 묻거나 너무 깊이

취푸는 노(魯)나라의 수도이자

감추면 훼손되거나 후손들이 찾지 못할 걸 우려한 공부의 지혜에 일행 모두

공자(孔子)의 고향이다. 이러한 연

감탄하였다. 공부에는 공자의 77세 손까지 살았으나 문화혁명 이후 그들은

유로 산둥성에 적을 두고 있는 모든

다시는 중국에 돌아오지 않겠다며 대만으로 이주했다.

차량은 魯로 시작된 번호판을 달고

일행은 취푸에서 점심 식사 후 버스로 약 4시간 30분 걸려 웨이방(濰坊)

있다. 현재 인구 40만 명 중 8만 명

에 있는 양가부(楊家府) 민속촌에 들렀다. 이곳은 세계에서 처음 연(鳶)을 발

이 공 씨일 정도로 아직도 공 씨 후손들이 많이 살고 있다. 그곳에는 공자를

명한 곳으로 연 위에 사람을 태워 전쟁까지 하였다. 양가는 손재주가 좋아 집

모신 사당인 공묘(孔廟), 공자 후손들이 기거하던 공부(孔府)와 공자를 비롯

창에 붙이는 부적류의 장식 등을 팔아 부를 축적했던 집안으로 민속촌에는

한 후손들의 묘소인 공림(孔林)이 있다. 도시 자체는 크지 않지만 곳곳에 공

그 당시 살던 모습들이 재현되어 있었다. 우리 일행이 입장하자 전통복장을

자의 발자취가 새겨져 있어 중국 문화의 깊이와 향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어

한 두 명의 꼭두각시가 환영하는 의미의 탈춤을 선보이는 이색적인 광경을 연

느 기념품 가게 주인은 자기 가게 앞길에 큰 붓으로 일필휘지하고 있었다. 때

출하기도 했다. 우리는 웨이방에 있는 부화(富華)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마침 주말을 맞아 공묘, 공부, 공림에는 공자사상의 편린을 엿보려는 중국인

우리가 배를 타고 오가며 들른 석도(石島)항에는 적산(赤山) 법화원(法

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우리는 운이 좋아 마침 공묘 개장을 알리는 예식을

華院)이라는 큰 사찰이 있다. 통일신라 흥덕왕 때인 824년 당시 당나라 무령

지켜볼 수 있었다.

군 소장(少將)이었던 장보고(張保皐)가 세운 절이다. 장보고는 적산에서 경

122

123


제적 터전을 마련했으며 이는 훗날 무역활동의 기반이 되었다. 또한 법화원은

계 33개국을 545일 동안 여행한 후 낸 책의 제목처럼 세상이 학교이고, 여행

당나라에 거주하는 신라인의 신앙 거점인 동시에 항해의 안전을 기원하는 예

이 공부인 것이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수학여행 폐지론까지 나오고 있지

배처이기도 하였다. 여기에는 단동(鍛銅)으로 만들어진 상고(像高) 58.8m에

만 이는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격이다. 세월호 사건은 돈에 눈이 멀어

달하는 적산 명신(明神)이 석도 앞바다를 응시하며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승객들의 안전을 무시한 회사와 이의 관리・감독과 책무를 게을리한 공무원

장보고 전기관(傳記館) 중앙에는 높이 8m에 달하는 장보고 장군의 동

들의 문제이지, 수학여행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상이 서 있고 그 주변에 그의 일대기를 보여주는 다섯 개의 전시실이 있다. 회

이번 여행에 준비위원장을 맡아 성공적으로 직을 수행한 박종헌 회원에

원 중 유일하게 장 씨 성을 지닌 장무철 회원이 시조(始祖)에게 정성껏 예를

게 감사드린다. 또 친구들이 즐겁고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갖추기도 했다. 20분간 진행된 청도관음보살상 주변의 음악분수 쇼도 장관이

아끼지 않은 정락용 사장에게도 심심한 사의를 표한다. 그는 여행의 삼락(三

었다.

樂)인 보는 즐거움, 사는 즐거움, 먹는 즐거움 모두에 대해 우리들을 충족시켜

우리는 여행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 이번 산우회 태산・곡부 문화기

주었다. 그리고 무탈하게 함께 즐겼던 김동준, 김순중, 김종욱, 김중곤, 남상화,

행을 통해서도 많은 것을 공부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생산적인 여행이었다.

변수복, 신필호, 유재두, 이규옥, 이현기, 임금재, 장무철, 진영주, 최종서, 함동

교사 부부가 세 자녀의 장래를 위해 교사직을 내던지고 자녀들과 함께 전 세

일 등 모든 회원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내년에는 어디로 어떻게 갈까. 벌써부터 기대되고 기다려진다. 삼여(三 餘)라는 게 있다. 사람은 평생을 살면서 하루는 저녁이 여유로워야 하고, 일 년은 겨울이 여유로워야 하며, 일생은 노년이 여유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나이 들어도 늘 변함없는 우정과 사랑으로 감싸주는 친구들과 함께 여행할 수 있 어 더없이 행복하다. 매일 여유로운 나날 되소서, 나의 벗님들!

참가자

김동준 김순중 김종욱 김중곤 남상화 변수복 신필호 유재두 이규옥 이현기 임금재 장무철 진영주 최종서 함동일 허정회

124

125


136次

|

2015. 5. 26 ~ 30

극동러시아 역사문화 기행

“400㎞는 거리도 아니며, 40도는 술도 아니며, 40도는 추위도 아니다”

지난 5월 26일부터 4박 5일간 23명의 산우회 회원이 극동러시아역사문화기행 을 다녀왔다. 마침 산우회 창립 10주년을 맞아 그 의미를 더했다. 2010년 6월 동기회(회장 김동준) 주관으로 30명이 백두산을 다녀온 후 매년 산우회 회원 중심으로 해외여행을 하고 있다. 2011년 10월 일본 다이센(19명), 2012년 9월 울릉도・독도(21명), 2013년 10월 대마도(19명), 작년 6월 중국 태산(18명)에 이어 여섯 번째다. 일상을 떠나는 모든 형태의 여행이 즐겁지만 그중 매년 고 등학교 동기 20명 정도가 하는 단체여행의 맛은 독특하다. 이번 여행 또한 예 외가 아니었다.

처음 밟은 러시아 땅, 하바롭스크

시간과 맞먹는다. 이렇게 지근에 있는 러시아 땅을 이제야 처음 밟았다. 하바롭스크는 1850년대 시베리아 초대 총독을 지냈던 무라비요프 아무

러시아는 중국, 일본과 함께 지리적으로 우리와 인접해 있지만 아직까지

르스키에 의해 개발된 도시다. 그는 당시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시베리아의 미

우리에겐 낯설고 먼 땅이다. 양양공항을 이륙한 러시아 전세기는 떠난 지 두

래가능성을 예견하고 황제에게 시베리아 횡단철도 건설을 제안하는 등 시베

시간 만에 우리를 하바롭스크공항에 내려놓았다. 서울에서 도쿄까지 가는

리아를 개척한 선봉자다. 이런 그를 기리기 위해 러시아는 최고액권인 5000루

126

127


블화(한화 약 12만 원)의 인물로 그를 선정했다. 시베리아 남동부에서 발원하

국심사증을 담당직원이 직접 작성하고 호텔에서 규정을 위반할 경우 고객에

여 만주를 거쳐 하바롭스크에서 북동류하여 오호츠크해로 흘러가는 세계 8

게도 싫은 말을 할 정도로 원칙을 중시했다.

대 장강(4350㎞)인 아무르강도 그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우리가 중국 지 리를 공부할 때 흑룡강으로 배웠던 바로 그 강이다. 아무르 강변에 있는 전망 대에는 아무르강을 내려다보고 있는 위풍당당한 그의 동상이 서 있다. 전망 대 한편에 이곳 하바롭스크에서 태어난 김정일이 2001년 8월 방문했다는 동 판이 우리의 눈길을 끌었다.

러시아정교회 러시아의 국교는 러시아정교회다. 러시아정교회는 로마교황청과는 독립 적이다. 교회 초기에는 로마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구 관할 아래 있었으나 16

하바롭스크는 하바롭스크주

세기 말 총대주교구를 설립하면서 독립교회가 되었다. 광장이 있는 곳엔 으레

의 주도다. 인구는 약 60만 명으로

외양이 화려한 정교회 성당이 있다. 현재 인구의 약 65%가 신자인 것으로 추

러시아 10대 도시에 든다. 9288㎞

정된다고 한다. 교회 내부는 정육면체 혹은 십자가 형태의 구조를 갖추고 있

에 달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운

다. 의자와 악기가 없는 것이 가톨릭이나 개신교 교회와 다른 점이다. 미사 보

영하는 러시아철도공사가 있는 곳

는 내내 서 있어야 하며 반주 없이 목소리로 성가가 진행된다. 성당 내부에 들

이기도 하다. 날씨는 서울보다 약간

어갈 때 탈모해야 했으며, 사진 촬영은 못하게 했다.

선선한 편이었다. 건물과 거리는 낡

우리는 러시아에서 세 번째로 큰 프레오브 라젠스크 대성당을 찾았다.

고 채 정비가 되어 있지 않았지만 사

성당 앞 광장에는 마침 러시아 승전 70주년을 맞아 국가 대항 군악경연대회

람들은 제법 큰 개를 데리고 산책을

리허설이 진행되고 있었다. 주로 지금은 독립한 옛 소비에트연방국의 군악대

하는 등 여유가 있어 보였다. 야경

가 모였다. 이 가운데 북한 군악대원 60여 명도 눈에 띄었다. 대부분 왜소한

산책 중 마주친 길거리 노악사(老樂

체구에 구릿빛 얼굴이었다. 우리는 임시로 설치된 관람석에서 북한 사람들을

士)의 기타 연주를 들을 때에는 과

만나 이 얘기 저 얘기 나눴다. 그들은 이곳에서 무역을 한다고 했으며, 북한

거 읽었던 톨스토이 소설의 한 장면

군악대 칭찬이 자자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개방적이고 부드러운 데 놀랐다.

과 오버랩 되었다. 차량은 우측통행 을 하지만 일본제 중고차량이 많은 탓인지 오른쪽 핸들 차량이 더 많아

시베리아 횡단 야간열차 탑승

보였다. 횡단보도에서 보행자가 우

모스크바 - 블라디보스토크를 달리는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길이는

선 건너도록 양보하는 선진국형 교

9288㎞이다. 쉬지 않고 가면 6박 7일 걸린다. 우리가 한생을 살면서 해 봐야

통문화를 지니고 있었다. 보행 시 금

할 100대 버킷리스트에 들어간다. 우리는 그 중에서 하바롭스크 - 블라디보

연, 호텔・식당 내 금연 등 흡연문화

스토크 구간 767㎞를 탑승했다. 총 길이의 1/10도 채 안 된다. 저녁 19시 17분

도 우리만큼이나 엄했다. 공항 출입

정시에 하바롭스크 역을 출발한 기차는 다음 날 오전 9시 36분 우리를 블라

128

129


디보스토크 역에 내려놓았다. 14시간 20분간 탄 셈이다. 우리가 탄 열차가 24

고 분실 시에는 그에 따른 배상을 해야 한다. 열차 내 난방시설은 잘 되어 있

호 칸이니 적어도 30개는 연결되어 있을 것 같았다. 열차 내 좌석 등급은 VIP

었다. 따뜻하다 못해 더웠다. 정화시설을 갖추지 않은 화장실은 배설물이 그

실, 2인실(밀폐형), 4인실(밀폐형), 6인실(개방형) 등 다양했다. 그 중 우리는 6

대로 밑으로 배출되기에 정거장 도착 전, 출발 후 30분간은 사용하지 못한다.

인실에 탔다. 6인실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2층 침대 세 개로 돼 있다. 1층 침대

원칙적으로 열차 내에서는 금주다. 심심치 않게 승무원이 돌아다니면서 이것

바닥을 열면 짐을 넣을 수 있는 수납공간이 있다. 2층 침대 이용자는 침대 위

저것 점검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몰래 보드카를 마신 우리 일행이 좀 시끄럽

에 선반이 따로 있어 거기에 자기 짐을 놓을 수 있다.

게 해도 그냥 눈감고 지나갔다. 러시아 사람들은 이런 기차 타는 데 이골이 났

침대에는 기본적으로 매트리스와 베개가 준비되어 있다. 원하면 추가로

는지 좀 떠들어도 개의치 않았다. 우리 같았으면 시비가 붙고 싸웠어도 여러

비용을 지불하고 시트, 덮개와 베갯잇을 구입하면 된다. 하차 시 반납해야 하

번 싸웠을 것이다. 장무철 단장이 엄마와 여행을 하는 열네 살 소년에게 효도 하고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명목으로 5000루블(12만 원)을 줬더니 너무 고 마워하더란다. 아마 그 소년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기차여행이 되었을 것이다. 러시아의 국토 면적은 1700만 ㎢로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이다. 우리나 라보다 170배 크고, 캐나다 998만㎢, 미국 983만㎢, 중국 960만㎢보다 두 배 정도 넓은 나라다. 야간 열차였지만 저녁 8시 반 넘어 해가 지고, 아침 일찍 해가 떠 드넓은 러시아 평원을 감상하기에 충분했다. 가도 가도 끝없이 펼쳐 지는 초원에는 소 한 마리, 말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그 넓은 땅을 경작할 사 람이 없어 그대로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두 시간 정도 지나 하나씩 있는 역 근처에 와야 비로소 집도 사람도 보였다. 블라디보스토크역 구내에는 9288 ㎞라고 쓰여 있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기념비가 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 블라디보스토크는 러시아어로 ‘동방을 점령하라’라는 뜻이다. 1860년 중국 청나라로부터 할양 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유명한 영화배우 율 브리 너의 고향이고 부산과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 인구 약 62만 명의 러시아 7대 도시로 2012년 APEC 정상회담이 열렸다. APEC 회담을 준비하기 위해 대대 적으로 도시정비를 해선지 하바롭스크보다 도시가 깨끗했다. 이때 많은 북한 노동자들이 들어와 공사를 했다. 유럽풍의 건물이 많아 러시아의 파리로 불 리며, 러시아 극동지역의 중요한 산업 교통 문화 교육의 중심도시이기도 하다.

130

131


날이 흐렸던 탓인지 하바롭스크보다 쌀쌀했다. 이곳은 흐리면 춥고 해 가 나면 금방 따뜻해진다. 도시 한복판에 중앙광장 또는 혁명광장으로 불리

우리 민족의 슬픈 역사

는 널따란 광장이 있다. 광장 중앙에 1961년 세운 극동군 용사를 위한 기념동

블라디보스토크는 우리 한인들의 슬픈 역사를 품고 있다. 조선시대 말

상에는 ‘1922년 10월 러시아의 주권을 침해하고 유린한 일본군을 몰아냈다’

기였던 1863년 조러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면서 러시아의 우호적 태도에 힘입

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각종 집회, 약속장소로 인기가 있으며 매주 금요일 토

어 한인의 연해주 이주 역사가 시작되었다. 마침 함경도 지역 대흉년을 기화로

요일에는 우리의 5일장 같은 재래시장이 열린다. 우리는 이 시장에서 아몬드,

먹고 살기 위해 13가구 60명이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하였다. 현재 시내 한

건포도 같은 견과류, 보리수로 만든 꿀 등을 쇼핑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태평양 진출을 위한 러시아의 전략적 항구도시로 러 시아 극동함대사령부가 있다. 근처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혁혁한 공을 세 우고 지금은 퇴역한 잠수함(C-56) 내부를 개조해 박물관으로 활용하고 있는 잠수함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번 여행에 함께했던 이선흥 동기의 설명으로 잠 수함에 대해 많은 공부를 했다. 그는 핵잠수함까지 승선해 보았다고 했다. 잠 수함 옆 광장에는 참전용사들의 이름이 새겨진 승전탑이 그들의 넋을 위로하 며 승리를 기념하고 있었다.

루스키섬과 국립극동연방대학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금각교(金角橋) - 루스키대교를 건너 30분 정도 가면 루스키섬이 있다. 2012년 APEC 정상회담이 열렸던 곳으로 소비에트연 방 시절에는 군사기지로 쓰였던 곳이라 한다. 거기에 러시아 명문대 국립극동 연방대학교가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던 6개 대학을 통합해 APEC 이후 이곳에 캠퍼스를 조성해 이전했다. APEC 당시 사용했던 주요 시설은 대학본 부가 되었고, 당시 정상들이 머물던 호텔은 지금 학생들의 기숙사가 되었다. 그러니 얼마나 시설이 좋을지는 불문가지다. 캠퍼스 전면에는 금각만(金角灣) 이 있어 캠퍼스의 풍치를 한껏 돋운다. 시설과 규모 면에서는 단연 세계 일류 급이다. 일반적으로 러시아 대학교는 입학은 쉽고 졸업은 어렵다. 캠퍼스에서 만난 학생들의 모습에서 일류대생의 풍모가 풍겼다. 외국인의 경우 학비는 연 간 400만 원, 기숙사비(식대 제외)는 월 10만 원꼴이라 한다.

132

133


복판에 이들이 정착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제1기 한인 이주사라 할 수 있다. 이주한 지 10년 만인 1874년 블라디보스토크에 콜레라가 창궐하자 러시아 정부는 시 외곽으로 이들을 강제 이주시켰다. 한인들은 꿈과 희망을 모아 새 로운 마을을 만들었으며 이를 신한촌(新韓村)으로 불렀다. 신한촌은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기 전까지 해외독립운동가들의 주요 활동 근거지 가 되었다. 현재 이 자리에는 신한촌 기념비만 남아 있어 우리 선조들의 슬픈 넋을 위로하고 있다. 제2기는 1884년부터 1893년까지로 일제의 조선침략이 본격화된 시기이 다. 이 당시 한인의 이주가 급증하자 러시아는 이주 제한정책을 쓰게 되었다. 제3기는 1893년부터 1910년까지로 1910년 조선강점 전후 독립운동을 위해 애국지사들의 망명 이주가 크게 늘어난 시기다. 제4기는 1910년 이후로 일제 에 토지를 빼앗긴 농민들이 대거 연해주로 이주한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한 맺인 역사의 현장, 라즈돌리노예역(驛)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우수리스크로 한 시간 가량 가면 허름한 창고 같 은 건물이 하나 나타난다. 라즈돌리노예역이다. 지금은 역사(驛舍)로 쓰이지 도 않는 듯 자물쇠가 굳게 채워져 있었다. 중일전쟁이 발발했던 1937년, 스탈 린 정권은 한인의 강제이주를 결정했다. 일본의 첩자가 될 수 있다는 빌미였 다. 목적지도 모른 채 빈손으로 쫓기듯 올라탄 기차. 그 강제이주 송출역이다.

련 전역에서 가장 모범적인 집단농장을 개척한 것이다. 척박한 땅을 옥토로

이 역에서 한 달간 무려 17만 1000명이 강제 이주되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바꾼 한인들은 소비에트 농업생산의 전진기지가 되었다.

안은 굶주림과 공포뿐이었다 한다. 간신히 살아남은 이들의 종착역은 무려 6800㎞나 떨어진 중앙아시아 지역이었다. 버려진 한인들의 삶은 비참했다. 거주 이전의 자유도, 배움의 길도 없었

우수리스크 고려인 문화센터와 최재형 선생

다. 주거 환경 또한 집단수용소나 다름없이 열악했다. 이주 다음해에 7000명,

우수리스크는 ‘늪지대’라는 뜻이다. 연해주 3대 도시로 18만 명 인구 중

그 다음해에 4800명이 사망했다. 악조건 속에서도 우리 선조들은 강인한 생

3만 명이 고려인이다. 주요 산업은 농업, 축산업이며 중국과 무역이 성행하고

명력으로 새 삶을 일궈나갔다. 농토를 개간하고 벼농사, 목화 농사를 지어 대

있다. 이곳에 2004년 한인들의 러시아 이주 1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문

풍작을 이뤄냈다. 한인들의 집념으로 중앙아시아의 농업은 크게 발전했다. 소

화센터가 있다. 센터 내 전시관에는 한인 이주사가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었다.

134

135


문화센터 바로 옆에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였던 최재형 선생이 말년

가와 함께 학살당했다.

에 살던 집이 있었다. 작년까지 러시아인이 살았던 집을 우리 정부가 매입했

최재형 선생 생가 옆에서 우리 일행은 우수리스크에 사는 고려인 3세를

다. 현재 시설 보수 중으로 내년 최재형 선생 기념관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한

운 좋게 만났다. 현재 35세이며 이곳에서 목수 일을 하고 있다. 유창한 한국

다. 최재형 선생은 함경도 천민 출신으로 태어났지만 이곳으로 이주해 20대

어는 아니지만 의사소통에는 지장이 없을 정도였다. 겉모습은 영락없는 한국

때 군수납품업, 부동산업, 건설업 등으로 많은 돈을 모아 이를 독립운동과 국

사람이었으며 똑똑하게 잘 생겼다. 우리는 이곳 생활에 대해 그와 얘기를 나

민 계몽운동에 바친 인물이다. 또 언어 능력이 뛰어나 초기 한인 정착시기에

눌 수 있었다.

러시아어 통역으로 한인들의 삶을 대변했다. 1906년 그는 의병을 조직해 독 립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이후 대동공보 사장(1909년), 권업회 회장(1913 년), 한인이주 50주년 기념사업회 회장(1914년)을 지내는 등 한인 사회의 리 더로 활동했다. 그는 1920년 4월 참변 당시 일본군에 체포되어 다른 독립운동

러시아의 상징, 마트료시카 인형 여행 3락(樂)은 볼거리, 먹거리, 살거리다. 러시아 살거리 중 빼놓을 수 없 는 게 보드카와 마트료시카다. 러시아에 이런 말이 있다. “400㎞는 거리도 아 니며, 40도는 술도 아니며, 40도는 추위도 아니다.” 날이 추운 만큼 보드카 같 은 독주를 마심으로써 추위를 이겨 나간다. 이번에 우리 친구들은 날도 춥지 않은데 어지간히 보드카를 마셨다. 독주라 그런지 뒤끝이 깨끗해 일정 소화 에 아무 지장이 없었다. 또 어딜 가도 다양한 문양의 마트료시카가 있다. 나무를 재료로 만든 수 공예 인형인데 가장 큰 바깥 인형을 열면 안으로 차례대로 여러 개의 똑같은 인형이 나온다. 인형수가 많게는 10개까지 있다. 러시아어로 어머니를 뜻하는 ‘마티’에서 유래된 것으로 다산과 풍요를 상징한다. 현지식, 한식, 북한식 등 다양한 먹거리도 여행의 즐거움을 배가시켰다. 러시아식 돼지고기구이 샤실릭은 우리 구미에 딱 맞았다. 마지막 날 저녁 북 한식당 ‘금강산’에서의 북한식 음식과 들쭉술, 이어 감상한 북한 무희들의 공 연은 여행의 피로를 가시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번 여행은 관광이라기보다는 ‘역사・문화현장 답사’라는 표현이 더 어 울린다. 대부분 학창 시절 책을 통해 배워 알고 있고, TV 다큐를 통해 본 것 이지만 이번 답사를 통해 그 역사의 현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것 은 커다란 수확이었다. 한참 버스 타고 가다 내려준 곳이 고구려 발해의 옛 성 터라는 데 그 흔적은 거의 없다. 아무것도 없는 데서 우리 선조들의 발자취를

136

137


유추해 자기 것으로 축적하는 과정이 매우 가치 있었다. 이번 여행 추진단장을 흔쾌히 수락해 봉사한 장무철 단장과 골치 아픈

153次

|

2016. 4. 5 ~ 8

규슈 올레 트레킹

회계를 맡아 주신 진영주 재무께 감사드린다. 또 세세한 데까지 신경을 기울 여 우리 친구들이 하나 불편함 없이 즐거운 여행이 되도록 준비한 정락용 사 장께도 감사의 예를 표한다. 그리고 버스 이동 중간 중간에 우리 친구들에게 교양강좌를 해 주신 김철호(치아 건강), 남상화(전원생활), 강인구(음악), 양상 진(사상 체질), 김학규(술) 동기께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기간 중 성심성의 껏 안내해 준 안드레이 송성훈 팀장에게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여행 후 대

즐겁고 행복했다

부분의 친구들이 즐거웠고 유익했다는 소감을 피력해 줘 벌써부터 내년 여행 걱정이 앞선다.

지난 주 산우회 회원 18명은 3박 4일 일정으로 규슈 올레를 걸었다. 친구들 과의 해외여행은 2010년 동기회 백두산 산행이 계기가 되었다. 그 후 2011년 일본 다이센, 2012년 울릉도・독도, 2013년 일본 대마도, 2014년 중국 태산, 2015년 극동 러시아 기행으로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규슈는 일본을 구성하고 있는 4개의 섬 가운데 세 번째로 큰 섬이다. 우 리나라와 가장 가까이 있고 크기는 남한 면적의 절반이며 인구는 약 1300만 명이다. 우리나라 도(道)에 해당하는 일본 43개 현(縣) 중 7개가 규슈에 있다. 규슈는 일본 최초로 서양문물을 받아들인 ‘문화의 창’으로 걸으면서 만난 사 람들은 대단히 개방적이었다. 연중 온화한 기후를 띠고 있어 내국인은 물론 많은 외국 관광객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 곳이라 한다. 규슈 올레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둘레길인 제주올레 브랜드를 해외로 수 출한 첫 사례이다. 2012년 4개 코스가 개장된 이래 현재 12개 코스, 146㎞의 참가자

강인구 김동준 김수곤 김순중 김종욱 김철호 김학규 남상화 박용범 박종헌 신필호 양상진 유재두 이규옥 이선흥 이현기 임금재 장무철 정락용 조규진 진영주 최종서 허정회

138

트레킹 코스가 개발되었다. 이번 규슈 올레 걷기에서 일본의 아름다운 산과 들과 바다는 물론 우리나라와 역사적으로 밀접한 관계가 있었던 점을 눈으

139


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기간 중 보고 느낀 규슈 올레의 특징이다. 먼저 제주올레는 코 스당 평균 17㎞인데 비해 규슈는 12㎞로 비교적 짧아 하루 운동량 으로 적당했다. 코스를 인도하는 표지기가 적재적소에 잘 설치되어 있어 지도가 따로 필요 없을 정도였다. 일본 사람들의 안전의식이 여 러 가지 방법으로 반영되었다. 빈 깡통을 두드려 멧돼지들로부터 공 격을 피하기 위한 장치는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었던 것이었다. 또 곳곳에 구조지점(rescue point)이 표시되어 있어 비상 시 자신의 위 치를 쉽게 알릴 수 있게 했다. 자연미를 최대한 살리도록 인공구조 물을 최소화한 것도 배울 점이었다. 그 조차도 대부분 재생품을 사 용했으며 향후 재활용할 수 있도록 도료 등 불필요한 치장을 하지 않아 비용도 절감하였다. 온천지역이라 가능한 것이긴 하지만 코스 종점에는 족욕탕이 있어 걸은 후 피로 회복에 효과 만점이었다. 나흘 동안 첫날 1만 6000보, 둘째 날 2만 4000보, 셋째 날 1만

140

141


174次

|

2017. 7. 8 ~ 11

후지산 등정기01 - 정락용

달빛에 취해 오른 후지산

차 밭이 보이는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6000보, 마지막 날 2만 4000보 등 모두 8만 보, 하루 평균 2만 보를 걸었다.

신일고 1회 산우회가 주관하는 제8회 해외원정 산행은 2017년 7월 8일부터

걷기만큼 좋은 운동이 없다. 심지어 『걸으면 살고, 누우면 죽는다』라는 책도

11일까지 일본 후지산 등정, 온천과 주변경관으로 유명한 휴양지 하코네, 그리

있다. 한 통계에 따르면 현재 67세인 사람이 80세까지 생존할 확률은 30%라

고 일본의 수도인 도쿄를 탐방하는 3박 4일 일정으로 진행되었다. 칠순을 얼

한다. 이대로라면 이생은 이제 한 15년 남은 셈이다. 남은 기간 동안 건강하게

마 앞둔 신일 산우 16명이 후지산 자락에서 무박 2일 동안 엮어낸 감동과 휴

살면서 좋은 일 많이 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여행도 많이 했으면 한다.

먼의 드라마 속으로 들어가 보자.

규슈의 때 묻지 않은 자연과 멋진 풍광을 벗하며 걸을 수 있는 것 자체 가 축복이었다. 여행 후 친구들은 하나같이 즐겁고 행복했다는 소감을 피력 했다. 친구들과 함께 하루 종일 걸은 후 온천욕을 즐기며 맛있는 음식과 함께 적당한 음주로 휴식을 취하는 것만큼 더한 행복이 어디 있겠는가.

인천에서 나리타로 7월 8일, 새벽부터 몸과 마음이 부산하다. 인천국제공항 집결지에 오전 8시까지 도착하기 위해서 모처럼 이른 새벽부터 부지런을 떤다. 간밤에 대강 챙긴 짐을 다시 점검하고 단단히 꾸린 후 아내의 따뜻한 눈빛 배웅을 받고 설 레는 마음으로 집을 나선다. 시간에 맞춰 집결지에 이르니 이미 도착한 적지

참가자

강인구 김동준 김수곤 김익희 김종욱 김학규 남상화 박종헌 변수복 신필호 양상진 유재두 이선흥 이현기 임금재 진영주 함동일 허정회

142

않은 산우들이 반갑게 맞아준다. 곧이어 나머지 산우들이 모두 모였다. 이번 원정 산행은 좀 특별한 데가 있다. 6회 후배 2명이 함께하기로 한 거다. 1회 동

143


기 산우가 14명, 후배 2명 그리고 여행사 인솔자 1명 등 총 17명의 원정대원이 밝은 얼굴로 수인사를 나눴다. 출국수속을 마치고 기내에 오르니 좌석은 만석이다. 늘 가깝고도 멀게 느껴지는 일본. 하지만 일본을 찾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은 걸 보니 한일교류 는 그 옛날부터 지금까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굉음을 내 고 이륙한 비행기는 2시간 만에 도쿄의 관문 나리타국제공항에 내려앉는다. 제3터미널에 내린 우리 일행은 일본인 특유의 친절한 공항직원들의 도움으로 입국수속을 마치고 입국장으로 들어섰다. 질서와 친절은 일본인들의 트레이 드마크다. 지리적으로는 이렇게 가까운 이웃이고 일본인 개개인은 친절하건 만 늘 한일관계는 온탕과 냉탕을 반복한다. 대체로 개인차원에서는 선린(善 隣)이지만 국가차원에서는 견원지간(犬猿之間)이다.

일본의 상징 후지산으로

합목에 가쁜 숨을 내려놓는다. 오후 6시 20분경 5합목에 도착하니 산장풍의 2~3층짜리 아담한 건물

오후 2시 다 돼 나리타공항에서 우리 일행은 중형버스에 몸을 싣고 후지

들이 눈에 들어온다. 주차장은 만원이고, 배낭을 멘 수많은 젊은이들로 왁자

산을 향해 떠났다. 오후 3시 경 후지산 가는 길 중간에 있는 고기 뷔페식당에

지껄하다. 후지산 등산을 앞두고 무척 상기된 표정들이다. 자세히 보니 세계

서 늦은 점심을 맛있게 먹고 후지산 등산의 시발점인 5합목으로 달려간다. 한

각국에서 모여든 젊은이들이다. 많은 일본인들 사이사이에 적지 않은 외국인

참을 달리니 홀연히 후지산의 위용이 멀리 차창 밖으로 나타난다. 엄청난 규

들이 보인다. 영어, 독어, 불어, 중국어 등이 들린다. 국제 교류장 같은 분위기

모의 위세에 모두 탄성이 절로 난다. 그간 사진으로만 보던, 벚꽃과 흰 눈 덮

다. 일본의 상징인 후지산을 찾은 세계인들이다.

인 원추형의 아담하고 잘 생긴 후지산이 아니라 거대한 괴물로 눈앞에 다가 왔다.

수많은 인파 속에 우리 일행이 돋보인다. 어쩌다 한두 명 우리와 동년배 이거나 좀 더 나이 들어 보이는 사람이 보일 뿐 우리 일행은 여기서 가장 나

버스는 가쁜 숨을 토하며 구불구불 산허리를 돌아 올라간다. 차창으로

이든 그룹이다. 아무나 범접할 수 없는 후지산을 겁도 없이 찾은 육십 후반의

보이는 길옆 숲은 잘 가꿔져 있고 나무들로 울창하다. 맨 아래 활엽수로 빼곡

우리 일행은 군계일학(群鷄一鶴)이다. 우리들의 용맹과 도전이 새삼 대단해

하던 숲은 고도에 따라 소나무 숲이 되었다가 삼나무 등의 침엽수로 이어진

보인다.

다. 일본의 상징답게 훌륭한 숲 생태계를 보여준다. 버스가 힘겹게 오를수록 귀가 먹먹해지기도 한다. 기압 차이 때문이리라. 그렇게 한참을 오르니 드디어 관목지대가 나타나고 시야는 한층 더 넓어진다. 후지산의 거대함에 놀라고 고도차에 따른 숲의 변화를 실감하는 사이 버스는 종착지인 해발 2305m 5

144

산악인들의 로망, 후지산에 오르다 후지산 정상은 해발 3776m다. 몇 개 등산 루트 중 우리 일행은 대중적인

145


요시다 루트로 오르기로 했다. 출발지인 해발 2305m 5합목에서 시작하여 6

산허리를 돌아 야트막한 언덕을 올라가니 이제까지 풍경과는 사뭇 차이

합목(2390m) - 7합목(2700m) - 8합목(3100m) - 본8합목(3360m) - 8.5합

가 난다. 시간이 이슥하니 이젠 어둠이 발아래까지 내려왔다. 헤드랜턴을 꺼

목(3450m) - 9합목(3580m)을 거쳐 정상(3776m)에 이르는 루트다.

내 이마에 매달고 불을 밝힌다. 평평하던 등산로가 곧 경사지와 계단의 반복

이제까지 국내산을 많이 오른 산우들이지만 후지산은 그리 만만한 산

으로 이어지고, 산이 워낙 가팔라서 등산로는 지그재그 산길의 반복이다. 서

이 아니다. 그래도 우리는 그 동안의 축적된 산행 내공을 믿기로 했다. 우선

서히 고도가 올라가니 반복되는 계단 길은 고역(苦役)이 되고 온 몸은 땀으

출발지인 5합목에서 산행기념 단체사진을 찍었다. 저마다 설렘과 걱정이 교

로 젖어든다. 숨은 턱까지 차올라 가쁜 숨을 헐떡인다. 그렇게 힘들게 고행(苦

차되었지만 그래도 산우들은 자신감으로 충만하여 활달한 표정으로 사진촬

行)하는데 갑자기 대반전(大反轉)이다. 숨이 목에 차 육신은 고통으로 비틀거

영을 하였다. 본격적인 산행을 위해 모두 새로 행장을 챙겼다. 등산복으로 갈

리는데 순간 머리가 맑아지고 몸이 가뿐해진다. 환희로 가슴이 벅차다.

아입고, 등산화를 신고, 배낭으로 무장하였다. 오후 7시, 드디어 등정 시작이다. 산우들의 체력을 감안하여 정상 등정 팀인 A조와 7합목 위 후지이치칸 산장까지 오르는 B조로 나누었다. 해발

월광에 물든 후지산의 아름다운 정경

2700m 7합목은 중요한 거점이다. B조는 7합목에서 늦은 석식 후 잠을 자고

가쁜 숨을 달래려 심호흡을 하며 눈을 들어보니 금빛 월광이 산허리에

새벽에 기상해 일출을 본 후, 체력이 여유 있는 산우는 8합목(3100m)까지 등

가득 쏟아진다. 후지산 산자락 5부 능선 왼편에 쟁반 같은 달덩이가 훤히 천

산을 더한 후 하산하기로 했다. 정상 등산조인 A조는 석식 후 약간의 휴식을

지를 밝혀주고 있다. 감동으로 다가온다. 오랜 도시생활로 잊힌 달밤의 감흥

취한 후 곧장 정상을 향해 떠나는 무박야등(無泊夜登)을 하여 정상에서 일

이 벼락처럼 다시 찾아오니 가슴은 희열로 충만해진다. 오래 전에 떠난 사랑

출을 보기로 했다. 빠듯한 일정이다. A조는 허정회 산우회장, 박종헌 대장, 김순중, 김종욱, 정락용, 6회 김광 섭, 박윤모, 인솔자 겐지 상 등 모두 8명이다. 겐지 상은 30대 후반으로 한국 인 부인 사이에 1남 2녀를 두고 서울에 살고 있는 일본인이다. B조는 진영주 재무, 김동준, 김익희, 김재수, 남상화, 신필호, 임금재, 장무철, 함동일 등 9명이 다. 총 17명의 후지산 등정대는 대열을 갖춰 오늘 저녁 목적지인 7합목 산장 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었다. 여름 해가 길어 첫 구간 등산로는 아직도 훤하다. 비교적 평평한 길을 따 라 완만한 오르막길을 걸으니 길 좌측 아래로는 침엽수와 관목들이 제법 숲 을 이루고 있다. 얼마를 더 걸으니 이마에 땀이 나고 어느새 산길 우측으로 급 경사 너덜지대가 보인다. 풀 한 포기 없는 급경사지에는 조그마한 화산 자갈 들로 가득하여 언제라도 산사태가 날 수 있는 환경이다. 검은색, 갈색, 회색 자 갈들이 섞여 삭막한 풍경을 보여준다. 이렇게 한참을 걸었다.

146

147


하는 사람을 홀연히 다시 만난 것 같은 이 기쁨이야 필설로 다 담을 수 없는

있는 광경으로 벌건 대낮에 인간들이 빚어낸 추했던 모습들은 어둠에 잠기고

감격이다.

단지 빨간 불빛만이 소년의 낭만처럼 다가온다.

정신을 차려 다시 달을 보니 오늘이 운 좋게 윤오월 보름달이었다. 구름

A조와 B조 총 17명이 함께 등정하다 보니 선두와 후미 간격이 벌어진다.

한 점 없는 하늘엔 덩그러니 보름달이 자애로운 눈빛으로 우리들의 고된 산

가급적 간격을 좁혀 올라가야 사고 예방도 되고 힘도 덜 들어 연신 박종헌 대

행 길을 밝혀주고 있다. 이곳도 예년보다 훨씬 높은 기온과 습기로 한낮에는

장이 간격 유지를 독려한다. 간격이 너무 벌어지면 선두에게 천천히 가라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밤에는 많은 습기로 달빛은 은빛이 아닌 금빛으로

이르면서 후미를 기다렸다 꼬리를 말아서 다시 선두와 합류하게 한다.

옅은 달무리를 두른 채 밝게 빛나고 있다.

기압은 고도 1000m를 오를 때마다 0.1기압(10%)씩 내려간다. 해발 약

산우들 누구라도 월광에 취한 젊은 날의 애틋한 추억이 있으리라. 가슴

2500m에서의 산행이니 기압이 산 아래보다 20~30% 낮아 초기 고산증세가

떨리는 대학 1학년 여름밤에 설악산 천불동 계곡 양폭산장에서 맞이한 그 보

나타날 수 있다. 약간의 어지러움, 두통, 구토 등이다. 박 대장은 선두에게 가

름날의 은빛 월광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내 청춘의 아름다운 추억이다. 깊은 계

급적 천천히 올라갈 것을 주문한다. 특히 B조 산우들의 안전에 최우선을 두

곡 위 중천(中天)에 두둥실 떠 있던 보름달의 자애(慈愛), 자비(慈悲). 산장 앞

고 서서히 고도에 적응해 가면서 올라가자는 얘기다. 선두가 기다렸다 후미가

계곡물에 일렁이며 비친 은빛 월광은 나를 무아지경(無我地境)으로 빠지게

올라오면 힘내라고 격려를 해주니 후미도 다시 힘을 얻는다. 이렇게 2390m 6

하였다.

합목도 무사히 넘기고, 2700m 7합목을 향해 올라간다.

후지산의 보름달은 각별한 게 하나 더 있다. 보름달의 이동 궤적이 묘하 게도 후지산 산자락 왼편의 경사를 따라 그대로 올라가고 있었다. 한 번도 산 자락에 겹쳐 묻히지 않고 산자락에 가까이 붙어 정상까지 고도를 따라 이어

정상을 향한 주요 거점, 7합목에 오르다

지는 행로였다. 우리는 구름 한 점 없는 밤하늘의 보름달과 정상까지 동행하

등산로 주요 거점인 각각의 합목(合目)에는 작은 산장들이 여러 채 있어

는 신기한 경험과 감동을 가질 수 있었다. 이건 우연히도 보름달밤에 산행하

지친 등산객들의 숙소와 휴식처로 이용되고 있고 음료나 약간의 간식용 음식

게 된 행운과 후지산의 산자락 경사가 보름달의 이동궤도와 일치하는 자연현

도 팔고 있다. 특이한 점은 각 산장마다 화장실이 있는데 관리가 어렵다 보니

상 덕이다. 그 힘든 야간 산행을 오히려 가슴 뭉클한 희열로 즐겁고 행복하게

이용료가 만만찮게 비싸다. 1회 이용에 200엔(약 2000원)씩이다. 양심껏 돈

마칠 수 있게 해주었다.

통에 넣고 이용하고 있다. 누가 돈을 받는 것도 아닌데도 모두들 돈 통에 동전

한편 등산로 주변 곳곳에는 급경사로 인해 자주 발생하는 산사태를 예

을 넣고 볼 일을 본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산을 닮아 정직한가 보다. 정

방하는 펜스가 길게 쳐 있어 이색적이다. 펜스가 없다면 산사태가 발생할 경

상에서는 300엔의 이용료를 받는다. 덕분에 화장실은 잘 관리되어 비교적 깨

우 인명 피해를 피할 수 없을 거다. 등산로에는 세계 각지에서 모인 수많은 젊

끗하다. 이 높은 곳의 화장실임을 감안해 볼 때 결코 비싼 게 아니라는 생각

은 남녀 등산객들이 긴 대열을 이루어 올라간다. 모두 헤드랜턴을 두르고 두

이 든다.

런두런 얘기꽃을 피워가며 힘든 등산로를 오르고 있다. 반짝이는 불빛 긴 대

길은 더욱 가팔라지고, 울퉁불퉁한 용암덩어리 바위들로 길이 거칠다.

열이 어릴 적 봤던 반딧불이 형상이다. 시선을 발아래 밑을 향해 내려 보니 까

편하게 제대로 난 길이 없다. 올라갈수록 길은 더욱 고약하다. 숨은 더욱 가빠

마득한 산 아래 시내 불빛이 정겹게 보인다. 야간 비행기를 타고 갈 때 볼 수

오고, 깊은 밤 고지대의 한기(寒氣)에도 불구하고 땀은 온몸을 적신다. 발은

148

149


천근만근이다. 이런 악조건의 등정이지만 넓은 산자락을 비춰주는 교교(皎 皎)한 달빛에 취해 나도 모르게 새로운 힘이 생겨 한 발 두 발 발걸음을 내딛 는다.

시간 30분을 걸어 올라온 셈이다. 한참을 기다리니 후미가 밤 10경에 나타난다. 일행들 모두 탈 없이 올라 왔음에 안도하며 서로에게 고마움과 격려를 보낸다. 산우들의 진한 우정이 달

그렇게 오르는 사이사이 어느 산우의 배낭에 매달린 종이 딸랑딸랑 소

빛 마냥 정겹다. 숨을 돌리고 안정을 취한 후 산장에서 단체로 준비해준 늦은

리를 낸다. 달빛 속에서 딸랑거리는 소리가 낭랑하다. 문득 이효석의 ‘메밀꽃

저녁밥을 먹는다. 10시 반에 나온 저녁 메뉴는 간단한 카레밥이다. 별 반찬도

필 무렵’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달빛에 소금을 뿌린 듯 흐드러진 메밀꽃이 만

없는 산장식 소박한 식사지만 시장이 반찬이라 맛이 혀끝에서 달달하다.

개한 메밀밭을 장돌뱅이 허 생원이 나귀를 몰고 가는데 나귀 목에 달린 워낭 소리가 낭랑하게 달밤의 고요를 깨우는 장면이 연상된다. 나는 이 밤 정겨운 달빛에 흠뻑 젖은 채 후지산을 오르며 나도 모르게 감상에 젖는 고독한 나그 네가 되어간다.

일출을 맞이하기 위한 고난의 행군 식사를 마치고 A조는 약간의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자정경 다시 정상

월광에 취하고 가쁜 숨에 아무 생각 없이 다리가 이끄는 대로 오르다 보

을 향해 떠나야 내일 새벽 일출을 정상에서 맞게 된다. B조는 이곳 산장에서

니 이윽고 우리의 쉼터인 해발 2800m 7합목 위에 있는 후지이치칸 산장이

잠을 자고 일출을 보는 일정이라 그래도 마음의 여유가 있어 보인다. 산장은

바로 눈앞이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지친 다리를 풀고 산장 앞 벤치에

옛날 우리들 군 복무시절의 내무반 침상과 같은 구조다. 2층으로 된 복층 구

몸을 맡기니 한기로 얼굴은 서늘한데도 나른함이 온 몸에 감긴다. 나는 선두

조이며, 한기를 막으라고 등산객에게는 슬리핑백을 제공한다. 1시간도 채 안

그룹으로 일찍 올라왔다. 시계를 보니 밤 9시 30분을 가리킨다. 5합목부터 2

되는 짧은 휴식을 취하기 위해 슬리핑백에 몸을 넣으니 습기로 냉랭하다. 잠 시 눈을 붙여볼까도 했지만 불편한 잠자리와 옆 사람이 벌써 큰소리로 코를 골며 자는 바람에 잠이 멀리 달아난다. 몸을 뒤척이다 보니 12시가 되어 서둘 러 침상에서 나와 행장을 다시 차린다. 지금부터는 초겨울 날씨에 대비한 복 장이다. 고산지대의 밤바람에도 대비를 해야 한다. 산장에서 나눠준 내일 아 침 식사용 도시락을 받았다. 빵과 소시지, 멸치와 견과류 팩이 들어 있는 간소 한 도시락이다. 깊게 잠든 B조 산우들을 남겨놓고 우리 일행 8명은 각오를 단단히 하고 길을 나섰다. 여독이 풀리지 않은 몸을 이끌고 8합목 3100m 지점을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다. 산길은 더욱 가팔라지고 한층 낮아진 기압으로 숨은 가빠 진다. 이럴수록 마음을 다부지게 먹고 조심해야 한다며 산우들은 격려와 당 부로 서로를 응원한다. 역시 한밤의 고산(高山)은 만만한 게 아니었다. 기온은 더 내려가고 바람은 세차진다. 한참을 걸었어도 등줄기가 한기로 서늘하다. 결국 배낭에서 조끼를 꺼내 껴입고, 겨울용 털모자와 장갑으로, 목에는 바람

150

151


가 얼음 딸기주스만큼 상큼하다. 게다가 정상까지 따라와서 훤히 비춰주는 달빛으로 힘들다는 생각은 멀리 달아나 버린다. 환한 보름달과 마음으로 교 감을 나누며 올라가는 산행이 고생길이 아니라 낭만에 젖은 길이 되니 이보 다 더 좋을 수 없다. 보름달과 동행하며 월광에 취해 꿈꾸듯 올라간 8.5합목 (3450m)이었다. 우리 일행 8명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로 의지하고 격려하며 모두 8.5합

막이로 무장을 했다. 이제야 추위가 가신다. 힘든 발길을 하나둘 옮기며 올라가는데 우리처럼 정상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 오르는 등산객들이 여전히 많이 보인다. 위 아래로 길게 이어진 불빛 행 렬은 야간 산행에서나 볼 수 있는 멋진 풍경이다. 반딧불이 대열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활화산에서 분출하는 용암 줄기 같기도 하다. 남성 못지않게 젊은 여성 등산객들도 많이 보인다. 몸은 무거워 보여도 하나같이 표정들은 밝다. 젊음의 특권이다. 힘들지만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는 젊은이들이 가상(嘉尙) 하다. 그들을 보니 새로운 힘이 솟는다. 8합목(3100m)과 본8합목(3360m)을 거쳐 8.5합목(3450m)으로 오르 는 길은 생각보다 길고 지루하다. 갈지자로 이어지는 험한 바위 길 등산은 약 간의 고산증세까지 곁들어 매우 힘들다. 직선거리는 별 거 아니지만 지그재 그로 오르니 제법 멀게 느껴진다. 하지만 산우들의 조언대로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고도적응을 하며 올라가니 마음도 편해지고 호흡도 순해진다. 힘든 산행으로 달구어진 몸에 알싸한 밤공기가 휘감아 도니 전신이 상쾌하다. 덥 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기분 좋은 상태를 만들어주니 뺨에 와 닿는 밤공기

152

153


목에 도착했다. 산장 앞 나무 의자에 몸을 맡기니 진한 감동이 다가온다. 모

든 등정이었지만 이 순간 오직 환희와 감동만이 남아 있다. 우리들은 어느새

두 탈 없이 잘 올라왔다는 안도감과 해냈다는 성취감이 나른하게 몰려온다.

순례자가 되어 있었다. 시간은 새벽 4시 50분을 가리키고, 우리가 좌정한 자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40분이다. 잠시 편히 휴식을 취한 뒤 다시 마음을 가다

리 옆에는 해발 3600m 표지판이 서 있다.

듬고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발걸음은 더욱 무거워지고 고도적응으로 시간이

완벽한 일출이다. 대단한 행운이다. 이런 장엄한 일출을 보았다니 새삼

지체된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정상에 도착하리란 희망으로 스스로를 채근

감격에 가슴이 뭉클하다. 밤새 구름 한 점 없는 거대한 산자락을 따라 둥근

하여 오르고 또 오른다. 몸은 지쳐오고 고요한 달빛에 마음은 차분해지니 일

보름달이 우리들 등산로를 처음부터 끝까지 환히 비춰 위험을 막아주었고,

행들은 각자 상념에 젖어 말 수도 줄어든다.

하늘이 열리는 이른 새벽 수평선은 하늘을 위와 아래 둘로 나누었다. 구름조

한동안 정상만을 바라보며 오르다가 고개를 돌려 뒤를 보니 동녘은 이

차 우리들에게 아름다운 일출을 선사하기 위해 어제부터 얌전히 사라졌다.

미 맑은 오렌지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일출을 앞둔 우주 쇼가 눈 아래에서 장

수많은 공덕을 쌓아야 비로소 만날 수 있다는 완벽한 일출. 우리는 우리의 공

엄하게 시작된다. 우리는 직감적으로 곧 일출을 볼 거라는 생각에 얼마 안 남

덕이 아닌 천우신조(天佑神助)로 완벽한 일출을 보았다고 마음자세를 낮추

은 정상까지의 등정을 유보하고 편한 자리를 찾아 좌정하였다.

었다. 우주(宇宙)가 베푸는 하늘을 여는 장엄한 광경에 취해 한동안 넋을 잃

일출의 장관과 가슴 벅찬 감흥

고 앉아 있던 우리 일행들은 사위(四圍)가 밝게 빛나고 있음을 알고는 행장 을 수습하고 느긋한 발걸음으로 정상을 향했다. 오래지 않아 어렵지 않게

까마득한 발아래 야트막한 산자락은 아직 어둠의 정적 속에서 옅은 안

3776m 정상에 다다랐다. 드디어 해냈다. 중늙은이들이 마침내 후지산 정상

개에 가려 신비롭고, 바로 위 허공에 뜬 지평선은 좌우로 길게 선형(線形)으

에 발자국을 또렷이 남기게 되었다. 제법 너른 정상에는 많은 인파로 북적였

로 오렌지색으로 물들어 있다. 그 위 더 높은 하늘에는 옅은 구름막이 연노

다. 다들 화려한 일출을 본 흥분으로 들떠 있는 표정들이다. 우리도 젊은 인

랑 장막으로 치장을 마쳤다. 시시각각 동녘의 하늘색이 연노랑에서 오렌지색

파에 묻혀 정상에 오른 기쁨을 함께 즐겼다.

으로 짙어진다. 이내 구름 걷힌 수평선 위 광대한 하늘이 진한 오렌지색으로

정상 주변을 둘러보았다. 많은 등산객들이 저마다 다른 자세로 기념사진

변하는가 했더니 순식간에 수평선 위로는 검붉은 색을 토해내고 있다. 수평

을 찍어댄다. 8합목 근방부터 경사면을 따라 긴 얼음덩이가 만년설의 모습으

선 아래의 검은 장막에 대비되어 붉은 하늘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이윽고 검

로 여기저기 남아 있었는데 분화구 옆 경사면에도 어김없이 얼음덩어리가 남

은 장막을 헤치고 붉은 해가 고개를 내민다. 용광로에서 막 쏟아져 나오는 쇳

아 있다. 정상에는 산의 위용만큼 커다란 분화구가 긴 타원형으로 입을 벌리

물처럼 투명하고 빨간 해가 점점 크기를 더하며 떠오른다. 그러다가 어느새 해

고 있다. 분화구는 깎아지른 수직절벽이다. 가까이 가보니 밑바닥은 보이질 않

가 불쑥 수평선 위로 솟구친다. 순식간이다. 일행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본다.

고 깊이를 가늠할 수 없어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엄청난 용암을 토해내어 거

우리들의 얼굴도 갓 떠오른 햇살을 맞아 황홍색(黃紅色)으로 짙게 물들었다.

대한 산을 이룬 분화구답게 크고 위협적이다. 가게를 겸한 산장도 보이고, 나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손바닥을 맞추고 몸을 껴안는다. 대자연이 펼치

무로 만든 긴 의자들도 몇 군데 있고 공중화장실도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산

는 숭고하고 장엄한 광경에 일행 모두는 탄성을 지르고 감격해한다.

아래 까마득한 시내와 산, 호수를 새처럼 굽어보며 휴식도 취하고 여유롭게

이렇게 우리들은 구도자의 마음으로 경건히 일출을 맞이했다. 어렵고 힘

154

정상에 오른 기쁨을 만끽하였다.

155


하산 길의 고역과 우정 1시간 남짓 뿌듯한 마음으로 정상에 머무른 후 A조 일행은 아침 6시 반 경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B조 대원들을 만날 장소를 향해 하산로를 찾았다. 원래 등산로와 하산로는 겹치지 않게 따로 개설되어 있었다. 그러나 오늘 하 산 길 입구에 있는 안내판에는 하산 길이 미끄럽고 위험하여 관리소에서 폐 쇄하였다고 적혀 있었다. 할 수 없이 올라온 길로 내려가게 되니 문제가 생겼 다. 워낙 좁고 험한 등산로에 아직도 많은 인파가 쉴 새 없이 올라오니 하산하 는 사람과 서로 엉켜 오도 가도 못하는 체증이 발생해 내려가는 길이 여간 더 딘 게 아니다. 이런 식으로 내려가면 예정보다 몇 시간 이상 늦을 게 뻔하다. 5 합목에서 만나기로 한 B조 친구들에게 현 상황을 전화로 전하고 양해를 구했 다. 마음은 급하지만 도리 없이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답답한 하산을 계속하 였다. 8합목에 이르니 우측으로 별도의 하산 전용로가 나타났다. 제법 넓은 하산로는 올라오는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아 막히지는 않았으나, 경사진 길바 닥이 온통 화산석 자갈들로 수북하게 덮여 있어 걷기에 보통 고생이 아니다. 발을 내딛으면 체중으로 화산 자갈들은 부서지고 밀려나가 몸이 미끄러지고 자빠지기 일쑤다. 급경사를 피하기 위해 만든 갈지자형 경사로는 하산객을 녹 초로 만든다. 힘이 몇 배나 더 들고, 위험하기도 하고, 시간도 엄청 더 걸린다. 주변 어딜 봐도 풀 한 포기 없는 삭막한 자갈길은 앞 사람의 발걸음에 따라 먼지가 풀풀 날고, 뜨거운 햇살은 온몸을 태우는 듯하여 지옥 랠리를 하는 형국이다. 워낙 높은 산이다 보니 갈지자형 산길이 끝없이 이어지는데 이게 몸과 마음을 지치게 만든다. 다리는 풀려 후들거리고 입은 타서 쓴맛이 돈다. 이런 와중에도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을 B조 산우들 생각을 한다. 기다 리는 시간이 얼마나 지루하고 무료할까,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그렇다고 더 빨리 내려 갈 수도 없으니 답답할 뿐이다. 어젯밤 올라올 때 달빛에 물든 후지산은 정겨운 모습이었다. 밤의 어스 름으로 맨살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밝은 대낮에 보는 후지산은

156

157


그런 정겨운 산이 아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산자락에는 용암들이 제멋대로 널

만났다. 무박으로 산에서 보낸 시간이 16시간이었다. 금빛 월광에 취하며 오

브러져 있다. 삭막한 지표(地表)는 검은색, 회색, 붉은색의 지층으로 어우러져

른 등산길은 천국이었고, 땡볕에 속절없이 미끄러지며 내려온 하산 길은 지옥

지구가 아닌 먼 달나라 모습 같다.

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완벽한 일출의 장관은 행운이었고, 등하산 고생길에

우린 몸과 마음이 더욱 지쳐갔지만 서로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다치지 않도록 주의를 주고 힘을 내라고 응원을 보낸다. 뒤처진 산우가 생기면 기다렸

서 산우들은 우정을 꽃피웠다. 길고도 긴 산행에서 후배는 선배를, 선배는 후 배를 아끼고 배려했다. 선후배 간 사랑을 몸소 실천했다.

다가 물 한 모금 나누고 등을 다독이며 힘을 보탠다. 산우들의 진한 우정의 힘

이번 해외 원정산행은 허정회 산우회장, 박종헌 등반대장, 진영주 재무의

으로 힘들고 위험한 경사로를 거짓말처럼 별 탈 없이 내려갔다. 이렇게 몇 시

꼼꼼하고 사려 깊음으로 아무 사고나 불미스러운 일 없이 성공리에 마무리되

간을 더 걸어 5합목 주차장이 얼마 안 남은 평평한 길에 들어서니 비로소 안

었다. 고맙고, 또 고맙다. 순둥이 인솔자 겐지 상, 정상까지 올라 많은 도움을

도가 된다. 오전 11시가 다 된 시간이다. 흙먼지를 뒤집어 쓴 몸은 지칠 대로

주었다. 본인은 얼떨결에 생고생하였다. 미안하고 고맙다.

지쳐서 파김치가 되었고, 마음도 지쳐 멍한 상태가 되니 꼭 패잔병 몰골이다.

뭐라 해도, 험로(險路)에서 우정을 나누며 낙오자 한 명 없이 끝까지 산

완만한 평지로 접어드니 걸음이 한결 편해진다. 우측 산길 아래 싱그러

행을 탈 없이 마친 우리들 선후배 산우 16명이 오늘의 영웅이다. 우리들이 으

운 나무가 보이니 조금씩 생기도 든다. 그렇게 조금 더 내려가니 앞에서 낯익

뜸이고, 그래서 장하다. 험난한 산행을 안전하게 마치고 내려왔으니 산우들의

은 목소리가 들린다. 진영주 재무가 반갑게 맞아준다. 오래 기다리게 해 미안

체력은 확실하게 검증된 거다. 60대 후반 중늙은이들이 겁도 없이 일을 냈다.

하기도 하고 혹시 화라도 내지 않을까 순간 걱정을 했는데 기우였다. 환한 얼

젊은이들도 엄두조차 내기 어려운 일을 해냈다.

굴로 욕봤다고 오히려 위로해주니 피로가 단박에 날아간다. 시간이 많이 지

오래전 고인이 된 작가 이병주는 무릇 지나간 인간사(人間事)는 일광(日

나도 내려오질 않아 걱정이 되어 마중 나왔단다. 산우들의 진한 우정이 가슴

光)에 바래면 역사(歷史)가 되고, 월광(月光)에 물들면 신화(神話)가 된다고

에 와닿는다. 진영주 재무의 위로를 받으며 5합목 주차장에 이르니 기다리던

했다. 16명의 신일 산우들이 월광에 취하며, 우정을 나누며 오른 후지산 등정.

B조 산우들이 일제히 너무 늦어 걱정 많이 했다며, 아무 탈 없이 내려온 우릴

하나의 전설이 되어 오래오래 기억되고 회자(膾炙)되리라.

보고는 반갑고 대단하다고 이구동성(異口同聲)이다.

천국과 지옥을 거치며 꽃피운 우정 A조와 B조는 전날 저녁 7시부터 약 3시간에 걸쳐 7합목 위 산장까지 올 라갔고, A조는 늦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밤 12시 반부 터 걷고 걸어 새벽 4시 50분경 3600m 지점에서 완벽한 일출의 감동을 맛보 았다. B조 또한 7합목 산장에서 완벽한 일출을 맞았다. A조는 일출 후 곧장 3776m 정상에 올라 까마득한 산 아래를 굽어보았 다. 아침 6시 반 하산로로 접어들어 4시간 반을 걷고서야 11시 B조 산우들을

158

159


174次

|

2017. 7. 8 ~ 11

후지산 등정기02 - 허정회

영봉(靈峰), 후지산에 오르다

7월 초 산우회 친구들과 후지산 등정길에 나섰다. 매년 한 번씩 하는 해외산

융기해 생긴 활화산으로 지금까지 10여 차례 분화했다고 전해진다.

행의 일환으로 이번이 그 여덟 번째였다. 작년 규슈 올레 트레킹 후 올해 후지

우리 일행을 태운 중형버스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등산 출발지인 5합목

산 등산을 하자는 박종헌 회원의 제안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그 업보로 박종

(合目) 종합관리센터까지 단숨에 올랐다. 해발 2300m 지점이다. 마치 알프스

헌 회원은 이번 원정대의 대장을 맡아 성공적으로 그 역할을 수행했다. 이 자

에 온 것처럼 유럽풍의 낮은 건물이 고도에 약간 겁먹은 우리를 따뜻하게 맞

리를 빌려 산우회를 위한 헌신과 봉사에 감사드린다. 이번 원정대는 1회 동기

아주었다. 적당히 어둠이 깔린 오후 7시, 관광객에서 등산객으로 변신한 일행

열네 명 외에 6회 박윤모, 김광섭 후배가 참가한 선후배 합동산행이라 더욱

은 힘차게 5합목을 출발했다. 1차 목표는 7합목과 8합목 사이, 해발 2800m

의미 있었다. 또 기간 중 우리 일행을 성심성의를 다해 안내한 스카모토 겐지

에 있는 후지이치칸(富士一館) 산장이다.

상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그는 한국인 부인과의 사이에 두 자녀를 두고 있는 38세의 훈남이다. 후지산은 7월 1일 개산(開山) 해 9월말까지 석 달 동안만 일반에게 등

요시다(吉田) 루트를 택하다

산이 허용된다. 이 기간 중에만 산장을 열기 때문이다. 후지산은 야마나시(山

우리는 후지산을 오르는 다섯 개 등산로 중 가장 대표적인 요시다 루

梨)현과 시즈오카(靜岡)현에 걸쳐 있는 해발 3776m의 영봉(靈峰)이다. 별명

트를 택했다. 5합목(2300m) - 6합목(2390m) - 7합목(2700m) - 8합목

‘후지노타카네’(不二の高嶺)는 ‘비교할 수 없는 고봉’이라는 뜻이다. 약 1만

(3020m) - 본8합목(3400m) - 8.5합목(3450m) - 9합목(3600m)을 거쳐 정

년 전 섬이었던 이즈(伊豆)반도가 지각변동에 의해 혼슈(本州)와 부딪치면서

상(3776m)에 이르는 코스다. 5합목에서 정상까지 해발고도로는 약 1500m,

160

161


등산로로는 7㎞ 올라가야한다.

임의로 교환했다. 물론 화장실은 청결했다. 지정된 화장실을 이용하지 않고

출발해서 6합목까지는 약 1.7㎞다. 이 구간은 요시다 루트로 접근하기 위

용변을 본다거나 사용료를 내지 않으면 벌금이 있다는 안내문이 있었지만 이

해 후지산 허리를 가로질러 가는 것이기에 별로 힘들지 않았다. 때마침 두둥

를 지키지 않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정직을 최우선의 가치로 꼽는 일본다운

실 떠오른 보름달은 우리 앞길을 훤히 비추었다. 어쩌다보니 야간 등산하기에

장면이었다.

가장 좋은 날 오게 됐다. 문제는 6합목부터였다. 오늘 새벽 집을 나서 여기까 지 오느라 많이 피곤한 상태였다. 여느 여행 같으면 여장 풀고 여유 있게 저녁 식사하고 쉴 시간에 새 일정, 그것도 야간등산을 하게 된 것이다.

후지이치칸(富士一館) 산장에 유숙하다

기력은 점점 떨어지고 고도는 올라가고 등산로는 험했다. 경사가 심한

다섯 번째 산장이 우리가 예약한 후지이치칸(富士一館)이다. 5합목에서

등산로는 지그재그(zigzag)식으로 되어 있었다. 이렇게 왔다 갔다 하기에 많

출발한지 2시간 20분 만이었다. 10시가 되어서야 우리 일행 모두 무사히 합류

이 걸은 거 같은데 좀처럼 진전되지 않았다. 게다가 크고 작은 용암이 널브러

했다. 우리는 카레라이스로 늦은 저녁 식사를 했다. 일행 중 여기까지만 산행

져 있는 등산로는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딛지 않으면 자칫 발을 삘 정도였다.

할 친구들은 반주로 소주 한잔을 곁들이면서 오늘 등산에 대한 뒷얘기를 나

진행 속도가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사진으로만 보아오던 우아한 후지

눴다. 그러는 우리에게 산장 주인은 연신 침실에서 자는 사람들을 위해 정숙

산 - 만년설과 벚꽃이 함께 어우러진 전면에는 멋진 호수가 있으며, 정상 분화

해 줄 것을 당부했다. 숙박료는 1인당 1만 엔(약 10만 원)으로 제법 비싼 편이

구를 중심으로 원추형의 아름다운 곡선을 이룬 산 - 의 이미지는 산산조각

었다. 한 시간쯤 잤을까, 일행 중 누군가 출발해야 한다면서 선잠을 깨웠다.

깨져버렸다. 정작 후지산에 두 발을 딛고 선 현실은 고산답게 준엄하였다.

순간 40여 년 전 군 복무할 때 경계근무 서기 위해 억지로 눈을 떴던 일이 생

이 밤에도 후지산을 오르는 행렬은 앞뒤로 끝이 안 보인다. 그들 머리에 매단 헤드랜턴 조명은 마치 초파일을 맞아 산사(山寺)에 이르는 연등처럼 줄

각났다. 만약 나 혼자 왔다면 그냥 잠을 택했을 것 같았다. 잠을 안 재우는 게 제일 가혹한 고문이라 하지 않은가.

줄이 이어져 있다. 그사이 듬성듬성 유난히 환한 불빛을 내뿜고 있는 데는 산

새벽 0시 30분 후지이치칸을 출발했다. 8합목까지 오르는 길은 아예 용

장이었다. 등산객 중에는 일본인만큼 외국인도 눈에 많이 띄었다. 하기야 7・8

암이 흘러내리다 제멋대로 굳어버린 바윗길이라 더 힘들었다. 심리적일 수도

・9월 세 달 간 약 25만 명이 다녀간다니 하루 2500명꼴이다. 대단히 많은 인

있지만 해발 3000m가 되니 호흡이 좀 불편해지는 듯했다. 등산객들은 일렬

원이다. 이중 우리 일행보다 나이든 사람은 한 명도 안 보였다. 온통 이삼십 대

로 질서정연하게 올라갔다. 어느 누구도 추월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는 게

젊은 남녀들이었다. 이들 틈에 끼여 있는 우리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맞을는지 모르겠다. 숨이 차고 길이 좁아 앞사람을 추월하는 건 무리였다. 앞

등산문화가 발달되어 있는 일본임을 감안할 때 약간 의아했다.

사람이 쉬기 위해 잠시 등산로를 벗어났을 때야 비로소 추월했다. 이들은 질

고도에 적응하면서 앞 사람 따라 천천히 올라가다보니 7합목이 나타났

서를 지키는 게 가장 안전하고 빠른 길이라는 생각이 몸에 밴 듯했다.

다. 7합목부터는 크고 작은 산장들이 줄지어 있었다. 각 산장에는 2층 침실,

올라가는 도중 군데군데 전망대가 있었다. 주변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식당, 매점과 화장실이 있었다. 특이한 건 1회당 사용료가 200엔(약 2000원)

잠시 쉬면서 산 밑을 내려다보니 불 밝힌 요시다(吉田)시가 마치 비행기에서

이나 되는 화장실이었다. 따로 돈 받는 사람이 없었다. 각자 통에 100엔짜리

보는 것처럼 아득하게 보였다. 보름달은 정상 부근 능선과 거의 맞붙어 있었

동전 두 개를 넣고 사용했다. 동전이 없는 사람은 지폐와 통 안에 든 동전을

다. 이제까지 우리를 환하게 비추던 달님이 머지않아 그 역할을 해님에게 넘

162

163


기려고 하직 인사를 하는 듯했다. 아직도 까마득하게 멀리 남은 정상을 향해

늦출 수 없는 시간이다. 해발 3000m 정도면 산소량이 평지에 비해 약 30%가

손마다 지팡이나 스틱을 짚고 구슬땀을 흘리며 묵묵히 올라가는 등산객들의

적다고 한다.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간다’는 아프리카 속담

모습은 구도자의 그것과 흡사했다. 나는 헤드랜턴도 스틱도 없이 올라갔다.

이 떠올랐다. 지금은 혼자 갈 때가 아니라 함께 가야 할 때다. 타이시칸(太子

이제까지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아 왠지 불편할 거 같았고 한편으로는 자연등

館) 산장에서 전 대원이 만나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다행하게도 일행 모두 컨

산을 고집하기 때문이었다. 잠시 손전등 신세를 졌지만 거추장스러웠다. 월광

디션이 괜찮아 보였다. 산장 앞 벤치에서 고도 적응도 할 겸 간식과 함께 잠시

(月光)과 사방에서 비추는 헤드랜턴 불빛만으로도 오르기에 별 지장이 없었

휴식을 취했다.

다. 도중 이정표에 함께 붙어 있던 ‘불도저길 출입금지’ 안내표지가 무슨 뜻인

평소 무박(無泊) 산행은 하지 않는 편인데 이번 후지산은 정상에서 일출

지 궁금했다. 알고 보니 후지산에서는 부상자나 고산병 환자를 후송할 때 불

을 보기 위해 한밤중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지 않고 만약 아침부터 등산하기

도저를 사용한다고 했다.

시작했다면 어땠을까. 일출은 감상 하지 못했겠지만 주변 경관은 제대로 보았 을 것이다. 대신 한낮 약 다섯 시간 동안 아스라이 보이긴 해도 쉬이 눈앞에

헤드랜턴도 스틱도 없이 오르다 후지이치칸 출발 한 시간 만에

다가오지 않는 정상을 향해 오르느라 땀깨나 흘렸을 것이다. 한밤에 올랐으 니 약간 추웠지만 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마치 옆을 보지 못하게 눈가림을 한 경주마처럼 오로지 앞 사람 등산화 뒤축만 보고 올라갔다.

8합목에 올랐다. 안내표지판에 해발

‘천천히 그리고 꾸준하게(slow and steady)’의 힘은 컸다. 끝이 안 보이던

3020m, 정상까지 2.7㎞, 195분이라

정상부가 어슴푸레 보이기 시작했다. 본8합목(3400m)도 통과했고, 새벽 3시

고 쓰여 있었다. 현재 좌표를 알 수

50분 8.5합목 고라이코관(御來光館)에 다다랐다. 후지산 정상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이 표지판이 그렇게 고마울 수

있는 산장이었다. 정상까지 1.2㎞, 50분 남았다는 표지판을 보니 더욱 힘이

없었다. 망망대해에서 항로를 알려

났다. 해뜨기 전 가장 어둡다는 말을 실감했다. 앞으로 30분 후에는 해가 뜰

주는 등대를 만난 거 같았다. 그런데

텐데도 사위(四圍)는 아무것도 안 보였다. 가급적 정상부위에서 해 돋는 걸

이상한 일이다. 여느 때 같으면 저녁

보려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정상 가까이라 그런지 경사도 많이 완만해졌다.

열 시만 넘으면 졸려 만사 귀찮아지

함께 오르던 주변 사람들의 움직임이 갑자기 부산해졌다. 일출을 제대

는 내가 새벽 한 시 반인데도 끄떡없

로 감상하려고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였다. 이미 산 건너편 동녘 하늘

다. 엊저녁 일곱 시부터 이제까지 겨

은 지평선을 중심으로 위아래가 확연히 대비되었다. 위로 엷은 구름, 파란 하

우 한 시간 눈 붙인 게 전부인데 긴

늘, 연노란 오렌지색과 그 아래 흑색이 잘 조화돼 자연만이 자아낼 수 있는 신

장한 탓인지 정신이 또렷하다. 이제

묘한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있었다. 새벽 4시 20분, 우리 일행도 이 장관을 놓

까지 보이지 않던 눈 무더기도 보이

칠세라 서둘러 자리를 잡았다. 정상까지는 600m, 9합목을 200m 남겨둔 지

기 시작했다.

점이었다. 이웃한 일본 사람에게 일출 시간을 물어보니 4시 30분경이 될 거라

정상까지는 아직도 세 시간 이상 남았다. 해발고도를 감안할 때 긴장을

164

했다.

165


라하게 드러났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새 한 마리 없는 후지산은 황량했 다. 보이는 건 군데군데 흙먼지 잔뜩 머금은 만년설과 용암 잔재뿐이었다. 후 지산을 야간에 등산하는 또 다른 이유다. 밤새 등산했음에도 불구하고 친구 들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갓 올라온 태양의 기(氣)를 받은 얼굴에는 힘든 일 하나 치르고 난 다음의 자신감이 묻어났다. 해돋이 구 경하느라 충분히 휴식을 취한 우리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정상을 향해 힘차 게 발걸음을 내딛었다. 400m, 30분 남았다는 9합목 표지판을 지났다. 마라톤으로 치면 결승선 2.195㎞ 남긴 40㎞ 마지막 음수대를 통과한 것이다. 마지막 고비라 생각하니 마라톤 할 때처럼 이제까지보다 힘이 더 치솟았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옆 친 구를 포함한 모든 ‘후지산 구도자’들이 마찬가지였다. 이미 정상 등정을 마치 고 하산하는 사람들이 우리 일행을 보며 ‘엄지척’을 한다. 아마도 연만한 사람 들이 여기 정상까지 올라왔다는 것에 대한 축하 표시인 것 같았다. 나도 그들 일출, 장엄한 ‘우주 쇼’를 감상하다 해돋이 시간이 가까워오자 후지산 일원은 돌연 ‘정지 모드’가 되었다. 정 상을 향해 부지런히 오르던 사람들은 일제히 먼동이 터오는 동녘을 향해 앉

에게 조심해서 하산하라고 화답했다.

정상에 서다

았다. 하늘이 펼치는 장엄한 ‘우주 쇼’가 시작되었다. 하늘이 시시각각 붉게 타

신사(神社) 경내를 상징하는 두 개의 나무 기둥 문 ‘토리이’를 지나자마

오르더니 이윽고 태양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점점 원형 윤곽이 커지면

자 오늘 우리들이 목표로 한 정상부에 올랐다. 오전 5시 30분이었다. 후지이

서 붉은 기운이 온 하늘을 덮었다. 그러는 사이 두둥실 해님이 얼굴을 드러냈

치칸(富士一館) 산장을 출발한 지 다섯 시간 만이었다. 만감이 교차했다. 비

다. 불과 3~4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사람들 모두 가슴에 저마다 간직한 무

록 젊었을 때부터 꿈이었던 히말라야 고산 등정은 아직 못했지만 이제까지

언가를 비는 듯했다. 등산객에서 ‘순례자’가 되는 순간이었다. 주변 일본인 가

내 두 발로 가장 높은 곳에 올라온 것이다. 정상부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운데는 그들의 국가 ‘기미가요’를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없었다. 센겐대신(淺間大神)을 모시는 오구노미야(奧宮) 신사 앞에는 특히 더

후지산에서 일출을 보는 것은 행운이다. 고산이라 기상 변화가 심하기

많았다. 각자 소원을 빌며 ‘순례자’로서 마지막 의식을 행하고 있었다.

때문이다. 백두산 천지도 제대로 보기 힘들다는데 하물며 그보다 1000m나

우리 친구 일행은 근처 쉼터에 자리 잡고 물로 간단히 축배를 들었다. 시

더 높은 산이니 그럴 만하다. 귀한 일출을 완벽하게 감상했다. 그저 좋은 날씨

장이 반찬이라고 후지이치칸(富士一館)에서 싸준 도시락이 꿀맛이었다. 카스

를 주신 하늘에 감사할 따름이다.

텔라, 소시지, 견과류, 과자로 시장기를 달랜 후 정상 분화구로 향했다. 밑도

일출 전후 후지산은 전혀 딴 세상이었다. 어두울 때 보이지 않던 게 적나

166

끝도 안 보이는 엄청난 크기의 분화구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분화구 지름은

167


하산 또한 만만치 않았다. 등산로는 좁고 험한데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서로 엉켜 정상 부근에 심한 정체가 생겼다. 이 와중에도 날렵한 산악마라톤 선수들이 앞 다투어 올라오고 있었다. 우리에게도 ‘지리산 산악마라톤’이 있 지만 ‘후지산 산악마라톤’은 난도(難度) 면에서 그에 비할 바가 아니다. 마라 톤 강국, 일본다운 행사다. 서다가다를 반복하며 8합목까지 내려오는데 거의 두 시간 걸렸다. 8합목부터는 하산전용 등산로를 이용했지만 힘들기는 마찬 가지였다. 많은 사람들이 일시에 하산하느라 앞 사람이 날린 흙먼지를 그대로 뒤 집어쓸 수밖에 없었다. 이제야 후지이치칸(富士一館)에서 나눠준 도시락 안 에 생뚱맞게 ‘마스크’가 들어 있는 이유를 알아챘다. 일본 사람들의 세심한 배려에 다시 한 번 놀랐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내려오니 훨씬 편했다. 경사가 심한 내리막길은 한도 끝도 없이 이어졌다. 마치 프랑스 파리에서 출발해 세네 갈 다카에 이르는 자동차・오토바이 경주 ‘파리 - 다카랠리’ 같은 형국이었다. 그래도 시작이 있으면 언젠가는 끝이 있는 법. 길고 길었던 하산 길을 마치고 출발지 5합목에 도착하니 오전 11시 반이다. 하산 시작 다섯 시간 만이었다.

700m, 깊이는 240m다. 날이 너무 청명해 분화구 주변이 한눈에 다 들어왔다. 분화구 산록에는 만년설이 그대로 쌓여 있었다. 분화구 주변을 도는 사람들 도 눈에 띄었다. 우리는 한 시간여 정상 등정을 만끽했다. 바로 이 맛에 어제 오늘 이 고생을 사서 한 것이다. 우리 일행은 충분하게 휴식을 취한 후 하산하 기 시작했다.

168

169


188次

도전정신과 자신감, ‘두 마리 토끼’를 잡다

|

2018. 7. 3 ~ 7

코타키나발루 여행

일본 사람에게 후지산은 ‘바라보는 산이지, 오르지는 않는 산’이라고 한 다. 이에 동감이다. 등산하기에는 부적합하다. 나무가 없으니 그늘도 없다. 물 이 없으니 계곡도 없다. 모든 물은 구멍 숭숭 뚫린 바위 사이로 빠져나가 저 멀리 너른 늪과 호수를 이룬다. 이렇다 할 날것들도 안 보였다. 그저 사방천지 용암과 그 부스러기뿐이다. 후지산은 신앙의 산이다. 영봉(靈峯)이다. 중국 왕들이 봉선(封禪)의식

행복은 재력순이 아니다

을 지내던 태산(泰山)과 유사하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한 다. “평생 후지산에 한 번도 안 오르는 것은 바보다. 그리고 두 번 오르는 것도 바보다.” 일생 한 번 후지산에 오르는 게 모든 일본인의 꿈이지만, 그것도 단 한 번에 그치는 거다. 이제 왜 우리보다 나이든 사람이 없었나 하는 게 이해된 다. 꿈꿨던 사람은 이미 젊었을 때 다 다녀간 것이다. 이번 후지산 등정은 도전정신의 발로(發露)다. 도전정신은 새로운 것에 대한 설렘에서 나온다. 어느 시대 어느 세대를 막론하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산우회는 지난 7월 초 아홉 번째 해외여행으로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에

덕목이다. 나이 들어도 끝까지 버리지 말아야 할 게 ‘도전정신’이다. 이번 후지

다녀왔다. 말레이시아는 수도 쿠알라룸푸르가 소재하고 있는 말레이반도의

산 등정을 통해 우리는 ‘도전정신’과 함께 ‘자신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동(東)말레이시아와 보르네오섬의 약 1/5을 차지하고 있는 서(西)말레이시아

잡았다.

로 이루어져있다. 보르네오섬은 세계에서 세 번째 큰 섬으로 우리나라보다 약 8배 넓다. 이중 70%는 아직도 미개척지로 남아 있다. 팀버트리(timber tree) 와 같은 좋은 목재가 많은 보르네오섬은 브라질 아마존밀림 다음으로 ‘지구 의 허파’로 불린다. 말레이시아는 13개 주로 이루어진 연방국가로, 이 중 2개 주가 보르네오 섬 북서부에 있다. 국가를 상징하는 왕은 각 주 13명의 왕 중 9명이 5년씩 돌 아가면서 맡는다. 정부형태는 내각책임제로 다수당 대표가 수상이 된다. 말 레이시아의 1인당 국민소득은 약 1만 달러이고 인구는 약 3200만 명이다. 이 들은 말레이계 60%, 중국계 30%, 인도・파키스탄계 10% 정도로 구성되어 있

참가자

(A조) 박종헌(대장) 김광섭(6회) 김순중 김종욱 박윤모(6회) 정락용 허정회 스카모토 겐지 (B조) 김동준 김익희 김재수 남상화 임금재 신필호 장무철 진영주 함동일

170

다. 원시림 목재를 벌목하기 위해 중국인을 데려왔고, 고무 채취를 위해 많은 인도인이 유입되었다. 공용어는 말레이어이고 그 밖에 영어, 중국어 등도 널리

171


쓰인다. 영국의 지배를 오랫동안 받은 영향으로 영어가 통용된다. 복잡하고 어려운 영어철자를 단순화해서 사용하는 게 특징이다. 예를 들어 식당을 의 미하는 ‘restaurant’는 ‘restoran’으로 쓴다. 코타키나발루는 보루네오섬 북부에 위치한 사바주 주도(州都)이다. ‘코 타’는 도시, ‘키나발루’는 ‘영혼의 안식처’를 뜻한다. 우리나라 면적과 비슷한 사바주에는 약 350만 명이 살고 있다. 코타키나발루에는 동남아시아에서 가 장 높은 키나발루산이 있다. 해발 4095m로 대만 옥산(3952m), 일본 후지산 (3776m)보다 높다. 만년설은 없다. 해발 3000m 이상은 암벽으로 되어 있어 낮 동안 태양열로 데워진 바위에 눈이 내려도 금방 녹기 때문이다. 키나발루 산은 다양한 동식물 자연생태계의 보고(寶庫)로 일찍이 유네스코 세계자연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말레이시아 역사는 15세기 말레이반도 남부에 세워졌던 말라카왕국으 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끊임없이 세계열강의 식민지가 된다. 목재, 고무, 금, 주석, 향료 등 풍부한 천연자원이 많기 때문이다. 1511년 포르투갈이 점령한 이후 연이어 네덜란드가 지배를 하다가 1824년 영국보호령이 되었다. 제2차

172

173


세계대전 중 일본 군정 아래 있다가 종전 후 다시 영국보호령이 되었다. 그러 다가 1957년 말라야연방으로 독립하게 된다. 무려 약 450년간의 식민통치가 종식된 것이다. 코타키나발루 제셀턴포인트(Jesselton Point)항 입구에는 1963년 영국사

끝낸다. 코란에 해가 진 이후에는 일을 하지 말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령부가 최종 철수할 때 당시 최고 통치자였던 윌리엄 구드경(卿)과 시민이 작

비록 우리보다 경제력은 떨어지지만 그들 얼굴은 행복해 보였다. 천연자

별하는 대형사진이 걸려 있다. 그들의 표정에는 지배자 - 피지배자 간 있을 법

원이 많고 날이 춥지 않아 살기에 부족함이 없는 영향도 있겠지만 주어진 것

한 적개심보다는 서로가 헤어지기 아쉬워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들 말레이

에 만족하고 지나친 욕심을 갖지 말라는 종교의 가르침의 영향이다. 2017년

시아인은 지금도 영국을 종주국처럼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영국 식민지로 있

유엔 세계행복보고서에 의한 행복순위는 한국이 56위인데 비해 말레이시아

을 때 나라 발전의 기틀을 세웠고 영국인들로부터 서양문물을 배웠기 때문이

는 42위였다. 행복은 재력순이 아님을 눈으로 확인한 여행이었다.

다. 한국과 일본 간의 적대적인 민족감정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말레이시아 국교는 이슬람이지만 불교, 기독교 등 다른 종교도 자유롭게 신봉할 수 있다. 돼지고기는 먹지 않고 술은 맥주 정도만 허용된다. 다민족 국 가이기에 각 민족 고유의 종교는 존중된다. 3개 종교의 주요 경축일은 모두 쉰 다. 공휴일이 하도 많아 무슨 날인지도 모른 채 쉴 때도 있다고 한다. 이슬람

참가자

교도는 하루 5번 기도를 한다. 덥기 전에 아침 일찍 일과를 시작해 일몰 전에

김동준(단장) 김종욱 김학규 박용범 신필호 임금재 정자룡 진영주 함동일 허정회

174

175


3장

힐링캠프 여행에는 두 종류가 있다. 유전(有錢) 여행과 무전(無錢) 여행이 그것 이다. 전자는 육체적으로 편하지만 머리에 남는 게 별로 없다. 후자 가 좀 성가시기는 하지만 무언가 우리에게 적잖은 잔상(殘像)을 남긴 다. 우리는 후자를 택했다. 대자연에 파묻혀 숙식을 자체적으로 해결 했다. 밥도 짓고, 국도 만들고, 고기도 굽고, 마지막 설거지까지 모든 걸 우리 힘으로 했다. 그러면서 친구도 더 잘 알게 되고, 그만큼 정도 더 깊어지게 된다. 불가(佛家)에서는 하룻밤, 한 집에서 보내는 것을 3000겁(劫)의 인연이라 한다. 1겁은 사방 40리 가득 찬 겨자를 100년 에 한 알씩 꺼내 다 없어지는 시간이다. 우리들 힐링캠프의 의미가 각 별한 이유다.


102次

|

2013. 7. 6

관악산 야영과 산행

하늘의 축복 속, 짧지만 여운 있었던!

작년 8월 연인산에서 시작했던 캠핑은 이번으로 벌써 열두 번째다. 그렇게 1 년은 또 훌쩍 지나갔다. 오늘은 내일 관악산으로 잡힌 산우회 산행에 맞춰 문 원폭포 계곡에서 하기로 했다. 작년 9월 야영했던 바로 그곳이다. 이번 주 내 내 장맛비로 꾸물대던 날씨는 언제 그랬냐는 듯 화창하게 개었다. 산우회가 움직이는 날에는 뭔가 하늘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는 것 같다. 은섭, 영주, 동일이와 특별 손님으로 과천에 살고 있는 해성이가 뜻을 같이했다. 단 골인 영삼이와 현기는 비가 올 것 같아 다른 약속을 잡았다. 우리가 하느님 ‘빽’이 있는 걸 미처 몰랐나 보다. 사람이 행복을 느끼는 경우가 많지만 그 공통점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할 때라고 생각한다. 야영 그 자체도 그러하지만 준비과정 또한 즐겁고 행복하다. 배낭을 꾸리고 슈퍼에서 장을 볼 때가 그러하다. 이것저것 사면서 친구들과 함께할 시간을 그리고 있노라면 절로 흥이 난다. 쇼핑하느라고 친 구들하고의 약속시간을 20분 정도나 못 지켰다. 올림픽공원에서 동일이를, 방 배역에서 영주와 은섭이를 태우고 해성이를 만나러 과천소방서 앞으로 향했

179


리고 난 후 맥주 한 잔의 맛은 필설로 이루 표현하기 힘들다. 해성이가 배낭에 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낸다. 조니워커와 얼음, 안주로 오리지널 스팸과 견과 류 그리고 유리컵까지 챙겼다. 오늘 아침 내 전화를 받고 무엇을 가지고 올까 고민하다가 집에서 혼자 마시려던 걸 가지고 온 것이라 한다. 친구의 정성이 고맙다. 한때 등산을 좋아하던 친구는 요즘 무릎이 좋지 않아 접었다 한다. 나이 들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무리할 필요 는 없다. 다. 오래간만에 만나지만 멀리서도 알아보는 데 어렵지 않았다. 작은 배낭을

계곡 옆 시원한 나무그늘 아래서 새들과 계곡물이 지어내는 자연의 화

메고 등산화를 갖춰 신었다. 흰 상의는 그의 흰 머리, 흰 얼굴과 멋진 조화를

음을 들으며 친구들과 여유롭게 즐기는 위스키 한잔의 맛은 그야말로 천상의

이뤘다. 친구와 상봉의 기쁨을 나누고 관악으로 향했다. 다섯 사내를 태운 내

작품이다. 대화의 주제도 장르를 넘나든다. 위트와 기지가 넘치는 해성이의

작은 애마의 허리가 부러질 것 같았다.

합류로 더 다양해졌다. 우리의 존경하는 양 구라 선생과 매치플레이 해 보는

아직 금요일 오후라 그런지 문원폭포 계곡은 한산했다. 하룻밤 지낼 짐 은 왜 이리 많은지. 다섯 명 중 양손이 놀고 있는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산행

것도 재미있을 성싶다. 양구라 선생에게 전화해본다. 빗소리 들으며 공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단다.

30분 만에 우리가 점지해 놓았던 야영지에 도착하자 마치 환영회를 하듯 산

해성이가 오늘 일단 집에 갔다가 내일 다시 올라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

새들이 반갑게 지저귄다. 배낭을 내려놓자마자 우선 맥주부터 돌린다. 땀 흘

선다. 낯선 길을 혼자 보내기가 뭐해 내가 따라 나섰다. 종합청사까지 한 30

180

181


분 천천히 내려가면서 많은 얘기를 했다. 그는 요즈음 일본어 공부에 심취해 있다. 혼자 시작한 지 5년, 일본의 역사와 소설을 읽기 위해 공부한다. 일본 NHK 뉴스는 물론 드라마까지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니 대단한 실력이 다. 친구의 그 말을 듣고 나도 새삼 일본어 공부에 박차를 가해야겠다는 마 음을 다잡는다. 그와 헤어져 다시 야영지에 돌아오니 은섭이의 주황색 텐트가 쳐져 있 다. 우리도 어둡기 전에 서둘러 사이트를 정리하고 텐트를 쳤다. 영주는 단독 주택을, 동일이와 나는 둘이 함께 들어가는 공동주택을 쳤다. 산에서 캠핑한 다는 얘기를 하면 모두 부러워한다. 야영을 안 해본 사람은 모른다. 한번 해보 면 그 맛을 알게 된다. 첫발 떼기가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개인 사정상 뒤늦게 뛰어든 영주도 이제 슬슬 그 맛을 알아가는 것 같 다. 일생에 한번이라도 함께 하룻밤을 보내는 것은 전생에 대단한 인연이 있어 야 이뤄지는 것이다. 해성이가 가르쳐준 레시피를 따라 은섭이가 스팸밥을 지었다. 스팸을 깍 두기보다 작은 크기로 잘라 쌀과 함께 넣어 밥을 짓는다. 산에서 쉽게 해먹기

위기가 좋아 다시 찾아온 것이다.

좋은 메뉴다. 우리의 쿡, 은섭이가 한 수 배웠다고 좋아한다. 오늘 저녁 메인

종합청사가 세종시로 이전되는 바람에 인구 6만 명의 과천시는 예전보다

디시는 미국산 쇠고기등심구이다. 동일이가 숲속 야영분위기가 마음에 들었

더 조용해진 것 같다. 상인들은 장사가 안 된다고 난리다. 부동산도 더불어 시

던지 등심구이와 함께 소주를 잘 마신다. 그동안 자연휴양림 숲속의 집에서

세가 떨어지고 있다. 참 말도 안 되는 행정도시 이전 정책이다. 이로 인한 국력

하던 ‘사이비 야영’에는 빠지지 않았지만 오늘처럼 ‘진짜 야영‘에는 처음 온

과 행정력의 낭비와 손실의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이에 더하여, 핵심도시 개

그다. 어젯밤 과음했다는 은섭이는 먼저 자기 집으로 들어가고, 나머지 셋은

발이라는 미명하에 실시되고 있는 각종 공공기관의 지방이전 정책도 문제다.

열두 시 이슥한 밤이 다 돼서야 파했다.

그들이 지방에 내려간다고 과연 그 지역에 얼마나 도움이 되겠는가? 정치 지

늦게 잤건만 새벽 다섯 시, 평소대로 어김없이 눈이 떠졌다. 밤새 계곡 물

도자 한 사람이 한 나라의 운명을 가른다.

소리를 자장가로 아주 깊은 잠을 잤다. 어제 나름대로 술 한잔을 했다는 동

아홉 시 반, 과천종합청사역 10번 출구. 열세 명의 친구들이 모였다. 서

일이도 머리가 맑다 한다. 공기 좋은 산 속에서 친구들하고 함께하니 그런가

로들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지난 8년여 100회 넘게 산행을 하면서 산을 통

보다. 한쪽에서는 텐트 정리를 하고, 다른 쪽에서는 아침 식사 준비를 하고 이

해 맺어진 뿌리 깊은 우정이다. 오늘은 날이 더운 관계로 야영지 - 문원폭포

른 아침부터 부산하다. 아침 식사로 김치찌개, 계란 프라이와 예의 등심구이

- 일명사지(逸名寺址) - 능선을 왕복하고, 계곡에서 홍빈이가 준비해 온 보

가 나왔다. 훌륭한 아침메뉴다. 해성이가 초정약수 한 통을 들고 일부러 야영

신탕으로 피서를 즐길 예정이다. 야영지에서 막걸리로 목을 축인 후 문원폭포

장까지 왔다. 오늘 다른 일정이 있어 함께 산행을 하지 못하지만 야영하는 분

로 향했다. 때마침 지난 주 내내 내린 비로 폭포다운 물이 흐르고 있다. 일명

182

183


사지를 거쳐 능선까지 관악 최고의 절경, 육봉(六峰) 능선을 바라보며 오른다. 땀은 비 오듯 흐른다. 친구들이 녹음 우거진 관악의 깊은 속살을 감상하며 때

103次

|

2013. 8. 3

수락산

마침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함께 속세의 온갖 시끄러움에서 잠시 떠난다. 이런 대자연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느끼고, 다른 한편 으로는 인간의 한계 속에서 절로 겸허해지는 것 같다. 야영지에 내려오니 은섭이가 보신용 수육을 잘 조리해 놓았다. 자연스레 ‘혀 팀’과 ‘안 혀 팀’으로 갈렸다. 2:1의 비율이다. 오늘 홍빈이가 타이밍을 아 주 잘 맞췄다. 종욱이와 영주가 손수 가위를 들고 먹기 알맞게 자른다. 내달 3

산우회 인기상품, 보양산행

일 수락산 보양산행에 앞선 예행연습이다. 영주가 사진을 찍어 카톡으로 동 준이에게 날린다. 집안 사정으로 못 온 동준이가 못내 아쉬워한다. 나이 들면 서 해야 할 세븐업(seven-up) 중 쇼업(show up), 모임에 참석하기야 말로 장 년생활을 즐기는 방편의 하나는 틀림없는 것 같다.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면서 지난 5월 중국의 조류독감 창궐로 인해 연기 된 2013 해외산행 후보지로 오는 10월 초 대마도 트레킹에 대해 친구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대부분 긍정적이었다. 부산에서 배로 대마도로 가서 대마도

올 장마는 유난히 길다. 무려 49일이나 계속되고 있다. 사람이 하는 일에 날씨

전 지역의 역사기행과 시라타케(白岳)와 아리아케(有明山)를 종주하는 2박 3

가 아주 중요한 변수인데 요즘처럼 예상보다 장마가 길어지면 곤란한 경우가

일의 일정이다. 자세한 여행계획은 홈페이지를 통해 공지할 예정이다. 친구들

많다. 특히 야외 일정이 잡혀 있을 때는 더하다. 금주 말 야영이 있어 주초부

의 많은 참여를 바란다.

터 주말 날씨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근데 일기예보라는 게 매일이 다르다. 주

비록 만 24시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자연에서 친구들과 많은 얘기꽃을 피운 여운 있었던 야영과 산행이었다.

말에 비 소식이 있을 거라 하다가 그 다음 날은 주말에는 야외활동에 지장이 없을 거란다. 기상청이 예보를 하는 건지 중계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하여튼 날씨는 하늘의 뜻에 맡기고 예정대로 야영 길에 나선다. 오후 두 시, 잠실역에서 동일이와 은섭이를 태우고 수락산 청학리 계곡으 로 출발했다. 강북팀에 전화해보니 영삼, 홍빈, 현기, 영주, 병학이가 모여 점심 식사 중이란다. 내비양의 안내에 따라 우리는 외곽고속도로를 타고 별내 신도 시를 거쳐 남양주시 청학리까지 단숨에 왔다. 에어컨도 작동 안 되는 불편한 차로 이동하지만 야영 가는 우리들의 마음만큼은 새털처럼 가볍다.

참가자

고중희 권영삼 김수곤 김의섭 김종욱 김홍빈 박종헌 안은섭 이해성 이현기 진영주 최병학 함동일 허정회

184

청학리 유원지 입구에 도착하니 좁은 길에 마침 방학과 휴가철이 겹쳐 몰려온 피서객들과 차들이 엉켜 엉망진창이다. 동일이가 교통정리를 해 간신

185


히 길이 트였다. 오늘 야영 예정지 은류폭포까지 가는 계곡에는 식당마다 물 놀이장을 만들어 놓고 영업을 하고 있다. 어떻게 계곡이라는 공공재를 이처럼 사유재산처럼 사용하는 게 가능한지 모르겠다. 여기도 북한산 계곡처럼 하루 빨리 정리되어야 할 것 같다. 우리는 지고 갈 짐이 많아 거의 제일 마지막 주 차 공간에 차를 댔다. 강북팀 중 현기, 영주, 병학이도 우리와 거의 동시에 도 착했다. 은류폭포까지 가는 데는 채 10분도 안 걸렸다. 요즘 많이 내린 비로 폭 포는 힘찬 물줄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일행이 폭포에서 땀을 식히는 사이 은 섭이와 나는 오늘 야영지 물색에 나섰다. 한 5분 정도 올라가니 우리 텐트 몇 동 칠만한 작은 공간이 보였다. 잠정적으로 이곳을 야영지로 찜하고 폭포로 내려와 맥주로 목을 축인다. 영삼이와 홍빈이가 올라온다는 연락이 왔다. 영 삼이는 내일 보양산행 준비를 하느라 오늘 야영은 못하고 홍빈이와 잠시 물에 서 놀다 내려갈 예정이다. 우리는 폭포 옆 너럭바위에 자리를 잡고 병학이가 준비해 온 부대찌개와 은섭이표 고등어조림을 안주로 한잔 걸치니 이 세상 부

200㎜의 물폭탄 세례를 맞은 이후 매월 한 번씩 이제까지 거르지 않고 했으

러운 게 아무것도 없다.

니 오늘이 열세 번째다. 친구들과 많은 대화를 하면서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된

어둑할 무렵 폭포 아래쪽으로 5분 거리에 운동기구들이 있는 공터에 텐

게 야영하면서 얻게 된 큰 수확 중의 하나이다. 요즘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

트를 쳤다. 계곡이 옆에 있지만 계곡보다는 약간 높은 곳에 있어 밤에 비가 와

지만 넥타이 메고 점잖게 앉아 소통하는 게 쉽지 않다. 제대로 된 소통을 하

도 괜찮은 곳이다. 차도 가까이에 주차되어 있어 유사시엔 차로 대피하기에도

려면 거친 밥, 나물을 먹어 가며 험한 데에서 함께 구르며 해야 되는 것이다.

좋은 위치다. 병학, 영삼, 홍빈이는 내일 산행에 오기로 하고 나머지 다섯 명이

그래서 어떤 회사에서는 신입사원 채용할 때나 직원 간의 단합을 위해 함께

잘 텐트 네 동이 적당한 간격으로 보기 좋게 쳐졌다.

등산을 가기도 한다. 좋은 착상이다.

요즘 30~40대를 중심으로 캠핑 붐이 일고 있다. 삶에 여유가 있다 보니

아주 잘 잤다. 산 속의 맑은 공기 덕일 게다. 게다가 계곡 옆에서 자면 우

주말이나 휴가를 이용해 어린아이들과 함께 가족단위로 자연 속에서 생활하

리 몸에 이보다 더 좋은 보약이 없다는 거다. 몸과 마음이 절로 깨끗하게 정화

는 멋과 맛을 느끼는 사람들일 게다. 이렇게 갑자기 바람이 불다 보니 고가의

(淨化)됨을 느낀다. 우리 중 누구보다도 동일이가 야영 찬양론자다. 그는 최근

캠핑 장비가 그 물을 흐려놓고 있어 씁쓸하다. 100만 원이 넘는 고급 텐트를

몇 년간 심신이 피곤할 때 훌쩍 야영을 떠나 힐링을 한 경력이 있다. 그래선지

비롯, 캠핑 장비를 마련하는 데 몇 백에서 심지어 천만 원까지 든다고 하니 이

소위 야영하는 법에 대해 잘 안다. 어디 갈 때면 사전에 지도공부를 열심히 해

해가 안 된다. 여기에는 우리나라 사람 특유의 과시욕도 한몫하고 있다. 언제

그의 손에는 항상 집에서 직접 프린트한 지도가 들려져 있다. 등산용어로 인

나 실속 있게 여유를 즐기는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을 즐기게 될까.

도어클라이밍(indoor-climbing)이다. 암벽 등반하기 전에 올라갈 코스에 대

작년 8월 영삼, 현기, 은섭이와 함께 가평 연인산 잣골로 야영 갔다가

186

해 사전에 익혀 놓는 연습을 말한다. 이번에 나를 또 한 번 놀라게 했다. 텐트

187


마침 토요일이라 수락산 유원지 피서객이 어제의 배는 되는 것 같았다. 입구에서 오늘 보양거리를 잔뜩 지고 온 영삼이를 만났다. 오늘 목적지는 은 류폭포 바로 밑 너럭바위다. 야영팀이 자리 잡고 있다고 은섭이가 알려왔다. 입구부터 한 30분 올라가면 된다. 20명의 대부대가 이동하니 그렇지 않아도 좁은 길이 더 좁아 보인다. 오래간만에 재현이도 나왔다. 3년여 바레인에 나갔 다 최근 돌아왔다. 인중이도 오래간만에 얼굴을 비쳤다. 재춘이와 종상이가 나와 산우회 구성원이 한층 다양해졌다. 지난 6월 해파랑길을 함께 걸었던 명 길이가 바쁜 중에도 나왔다. 모두 언제 봐도 반가운 얼굴들이다. 너럭바위에 도착하니 11시도 채 안 됐다. 앉자마자 진평이가 아이스케이 크를 돌린다. 아까 이걸 사느라 그만 버스를 놓친 것이다. 폭포물가에 앉아 먹 는 아이스케이크의 맛, 어떻게 설명이 안 된다. 운동이 부족한 몇몇 친구들은 조금 더 산행을 한다고 올라갔다. 나머지는 ‘혀 팀’과 ‘안 혀 팀’으로 나뉘어 자리를 잡았다. 대략 4:3의 비율이다. ‘안 혀 팀’은 수입쇠고기 등심을 준비해 왔다. ‘혀 팀’의 칼은 영주가 잡았다. 영삼이 아는 사람이 멀리 충청도에서 올 려 보낸 것이라 한다. 그걸 도봉산 단골식당에서 요리해 오늘 아침 지고 온 것 플라이를 고정시킨 끈에 지나가는 사람이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끈 중간에

이다. 벌써 몇 년째 이어지고 있는 산우회 8월 보양산행이다. 한여름 휴가철이

나뭇가지를 매다는 것이다. 텐트 칠 때의 기본이지만 이를 제대로 지키는 등

건만 보양산행 할 때면 항상 스무 명을 넘긴다. 아주 인기 있는 상품이다. 영

산인은 별로 없다. 그는 그런 기본을 알 뿐만 아니라 그걸 지키는 사람이다. 내

삼이 덕에 한여름 더위는 아주 잘 넘길 것 같다.

가 뭘 물어 보면 항상 거침없이 정확한 용어로 정의를 내린다. 내가 그를 ‘박 사’라 부르는 이유다. 야영지에서 오늘 산행 집결지인 당고개역까지는 20분 정도밖에 안 걸리 지만 만일을 위해 한 시간 전에 영주와 함께 출발했다. 예상대로 유원지 입구

윤세진 회장이 올라오고 있다는 연락이 왔다. 현기가 마중 나갔다. 열과 성을 다해 동기회 발전을 위해 봉사를 하고 있는 그다. 오죽하면 동기들 간에 차기 회장에 나설만한 사람이 없을 거라는 얘기도 나온다. 산우회 발전을 위 해 쓰라고 금일봉도 주신다.

도로는 오르내리는 차로 서로 엉켜 옴짝달싹 안 한다. 이번에는 영주가 교통

9월 산행은 7일 일산 근처에 있는 심학산(尋鶴山) 둘레길을 걸을 예정이

정리에 나섰다. 30분 만에 간신히 빠져 내려왔다. 약속시간도 안 됐건만 벌써

다. 200m밖에 안 되는 야트막한 산이지만 주변이 평지라 그 근처에서는 왕

많은 친구들이 도착해 있다. 10분 정도 지나니 오늘 온다고 했던 산우들은 다

노릇을 하는 산이다. 야영팀은 하루 전날 심학산 일몰을 감상하며 야영할 계

왔다. 끌고 온 차를 역 인근 골목에 주차시켜 놓고 버스로 이동했다. 중간에

획이다. 많은 친구들과 야영의 참맛을 함께 나누고 싶다.

진평이로부터 전화가 왔다. 우리 차를 놓쳐 다음 버스로 오고 있다. 급히 서두 르는 바람에 인원 파악이 제대로 안 됐던 것이다.

188

10월에는 3일부터 5일까지의 연휴를 이용해 대마도를 다녀오기로 되어 있다. 부산에서 배로 대마도에 가 시라타케, 아리아케 종주 트레킹을 한다. 너

189


무 가까워서 가기 쉽지 않은 대마도, 이번 기회를 이용해 친구들과 기억에 남 는 추억거리 또 하나를 남기자.

104次

|

2013. 9. 7

심학산 둘레길

종상이가 환경부 장관이 되어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려는데, 날이 너무 좋다는 말을 하늘이 들었는지 간간이 비를 흩뿌리며 심술을 부리기 시작하 더니 갑자기 굵은 소나기가 쏟아진다. 우산이고 비옷이고 다 소용이 없다. 작 년 9월 울릉도 성인봉 등산 후 내려오다가 비를 흠뻑 맞고 추위에 벌벌 떨던 기억이 새롭다. 1박 2일의 짧은 산행이었지만 친구들과 많은 얘기를 나눴고 몸 보신도 잘 했다. 고맙다, 영삼아!

기다림, 그리고 세상을 보는 창

사람이 살다보면 가슴이 벅찰 정도로 멋진 경험을 하기도 하고, 다시는 떠올 리고 싶지 않은 일을 당하기도 한다. 또 그 날이 기다려지는 모임이 있는가 하 면, 마음에는 안 내켜도 할 수 없이 얼굴을 내밀어야 하는 자리도 있다. 나에 게 한 달에 한 번 있는 산우회 야영과 산행은 바로 이런 기다림 끝에 새로운 세상을 보는 창이다. 대자연에서 하룻밤을 지내다보면 마음이 절로 열려 40 여 년 전의 학창시절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우리가 야영을 시작한 지도 어언 1년이 넘었다. 그간 친구들과 어울려 산 좋고 물 좋은 여러 곳을 다 녔다. 많은 새로운 것을 보았고 또 그만큼 배웠다. 인간은 평생 배워도 모자라 는 모양이다. 오늘 야영에는 유재두라는 새 식구가 들어왔다. 식구(食口)라 함은 한 솥 밥을 먹는 사람을 이르기 때문에 이보다 적확한 표현은 없을 듯싶다. 그의 야 영팀 합류의 변을 들어보자. “그날이 그날인 일상에서 하루라도 벗어나 스트 참가자

강재현 고중희 권영삼 김인중 김의섭 김종욱 김홍빈 박종헌 손재춘 안은섭 윤세진 윤진평 이규옥 이종상 이현기 정락용 조규진 진영주 최병학 추명길 함동일 허정회

190

레스를 풀고 삶의 새로운 활력을 찾고자 한다.” 그렇다. 우린 너나없이 너무나 단조로운 삶을 살고 있다. 가끔이나마 이런 정해진 틀에서 일탈(逸脫)해 삶

191


을 재창조(recreation)하고 싶은 것 이다. 그는 이를 위해 야영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을 준비했다. 그러나 준비하는 것과 이를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그 는 마음을 먹고 준비했을 뿐만 아니 라 오늘 첫발자국을 뗀 것이다. 일산에 있는 영주네 아파트가 이번 야영의 베이스캠프가 됐다. 먼 저 하늘나라에 간 부인의 빈자리가 커 보이지만 이를 내색 않고 열심히 살고 있는 그다. 모두들 콘도에 온 것 같다고 해 한바탕 웃었다. 즉석에 서 그의 아파트 이름을 따 ‘푸르지 오 콘도’라 명명한다. 잠시 후 이웃에 살고 있는 동준이가 먹음직스러운 족발

상에는 잘 생긴 정자와 전망대용으로 널따란 데크가 멋지게 만들어져 있었

을 들고 왔다. 사정상 오늘 야영에는 함께하지 못하지만 마음만은 우리와 같

다. 우리가 하룻밤 신세질 곳이다. 정자에 올라가니 인천(42㎞)보다 개성(35

이 하고픈 심정에서다.

㎞)이 더 가깝게 보인다. 가까이 한강 하구를 따라 일산 신도시부터 서울까지

오늘 야영은 심학산(尋鶴山) 정상에 있는 데크에서 하기로 했다. 정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위성도시를 포함한 넓은 의미의 서울은 이제 외관상으로는

라야 해발 200m도 채 안 되는 야산이다. 하지만 일산 서북부와 파주 출판단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도시가 되었다. 앞으로 우리들이

지 일원에서는 우뚝 솟은 단일봉으로 이곳 주민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할 일은 하드웨어에 걸맞은 소프트웨어와 그 안에 들어갈 콘텐츠를 다듬는

있다. 그 주변에 약 7㎞에 달하는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다. 내일 산우회 친구

일이다. 이 모든 것이 잘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선진국이 되는 것이다.

들과 함께 가기로 한 코스다. 심학산이라는 이름은 영조 때 궁중에서 기르던

우리는 영주가 며칠 전 사전 답사를 통해 점지해 둔 데크 한쪽에 자리를

학이 도망갔는데 이 산에서 찾은 데서 유래되었다 한다. 심학산 기슭에 이르

잡았다. 넓을 뿐만 아니라 빼어난 경관으로 어느 자연휴양림 데크보다 더 훌

니 약천사(藥泉寺)가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다. 고려시대 절터로 전해지는 이

륭하다. 비가 한두 방울 내리는가 싶었는데 우리가 좌판을 펴자 이내 그쳤다.

곳에 1932년 중창한 유서 깊은 도량(道場)이다. 2008년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오늘 야영에서는 불을 피우지 않기로 해 우리 주방장 은섭이 손이 한결 여유

의미로 13m 높이의 남북통일약사여래대불을 조성하여 많은 불자들의 발길

가 있다. 하지만 재두 부인이 한데서 하룻저녁을 보낼 남편 걱정에 바리바리

을 모으는 사찰이기도 하다.

싸준 반찬들로 이내 멋진 상이 차려졌다. 새 식구가 들어오니 화제도 그만큼

정상으로 향하는 등산로는 잘 닦여 있었다. 불과 20여 분만에 도착한 정

192

다양해졌다. 이런 격의 없는 자리에서 하는 얘기에서도 각자 60여 년 살아온

193


삶의 지혜와 경륜이 묻어난다. 이곳 심학산 정상에서의 낙조는 아름답기로 이름났다. 다만 오늘 날이

끝에 공원법이 제정되었고 판자촌, 농장, 쓰레기하치장이 센트럴파크로 변모 하게 되었다. 한 사람의 선각자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흐려 석양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해 아쉽다. 대신 한밤이 되니 아까 낮에 보던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은 평화누리길의 한 구간이다. 뙤약볕에 심학산 둘

그런 밋밋한 정경이 아니다. 조명이 휘황찬란한 입체적인 서울 야경은 보는 이

레길 초입까지 무려 10여㎞를 걸었다. 도중 킨텍스 쉼터에서 막걸리와 함께한

들로 하여금 감상에 젖어 들기에 충분할 정도다. 이 야경을 보면서 멋지다고

의섭이네 서판교댁이 챙겨준 빈대떡은 일미였다. 드디어 심학산에 다다랐다.

하지 아니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것 하나만 해도 오늘 야영 온 보람은 충

평지와는 비교가 안 되게 시원하다. 당초 이 둘레길을 한 바퀴 다 돌 예정이었

분히 있을 것 같다.

으나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지체됐고 힘들어 하는 친구들이 있어 일부만 걷

내일 산행 일정을 감안해 초저녁에 잠자리에 든 때문인지 모두들 일찍

고 목적지인 동준이네 농장으로 가기로 계획을 변경했다. 농장에 도착하니 오

일어났다. 잠자리가 바뀐 탓에 제대로 못 잤는지 재두 얼굴이 푸석해 보인다.

후 2시 30분. 그럭저럭 오늘 4시간 반 동안 약 13㎞를 걸었다. 혼자라면 하기

새벽 공기가 상큼하다. 벌써 아침 운동하러 올라온 사람들이 많다. 아침 운동

힘든 일을 이렇게 여럿이 이뤄낸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 번에 10㎞

이 좋으니, 저녁 운동이 좋으니 설이 구구하지만 아침이건 저녁이건 간에 자기

이상을 걸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친구들이 갖게 된 것이다.

바이오리듬에 따라 편한 걸 택하면 된다. 다만 무엇이든지 간에 하루에 최소 한 시간은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텐트를 정리하고 아침 식사하러 베이스캠프인 푸르지오 콘도로 내려왔

오늘 행사를 위해 영주가 공을 많이 들였다. 천막으로 그늘막을 만드느 라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우리들의 입을 즐겁게 하기 위해 준비한 충남 홍성 유기농 쌀로 빚은 ‘내포 막걸리’는 맛이 달랐다. 의섭이가 구워낸 돼지고기 또

다. 정말 제멋대로 야영이다. 영주가 멸치국물을 내 만든 라면과 동준이네 집 에서 가져온 김치에 찬밥이 찰떡궁합이다. 다섯 명이 한 식탁에 옹기종기 모 여 식사하는 모습이 영락없이 한 가족이다. 오늘 호수공원 산책과 심학산 둘 레길 산행을 위해 친구들이 마두역에 올 시간까지 각자 휴식을 취한다. 10시 정각, 모두 12명의 친구들이 호수공원 산책에 나섰다. 1996년 약 30 만 평 규모로 조성되기 시작한 호수공원은 이제 제법 틀이 갖춰졌다. 휴일을 맞아 많은 시민들이 공원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동안 말로만 들었던 호수공원은 생각보다 멋있었다. 얼마 전 다녀온 밴쿠버의 스탠리공원은 시의 랜드마크이자 허파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약 150년 전 건립된 뉴욕 맨해튼의 센트럴파크는 이제 전 세계 도시인 들의 로망이 되었다. 하지만 당시 뉴욕이브닝포스트지의 편집장 윌리엄브라 이언트의 열정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센트럴파크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 는 “지금 이곳에 공원을 조성하지 않으면 100년 뒤 뉴욕은 이만한 크기의 정 신병원을 지어야 한다”며 공원건립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이러한 노력

194

195


한 전문가의 손맛을 타 입에 살살 녹아 들어갔다. 동준이네 집에서 담가온 열 무김치 또한 그 풋풋한 맛이 막걸리와 잘 어울린다. 막판에 재두가 끓인 라면

108次

|

2013. 11. 4 ~ 8

제주 힐링캠프

이 인기를 끈다. 우리 산우회는 한 달 만에 한 번 타임머신을 타고 옛 학창시절의 추억과 낭만으로 돌아간다. 그만큼 젊어지는 게 아닐까? 내달 초에는 연례행사인 해 외산행에 나선다. 올해는 일본 대마도에 간다. 이미 스무 명의 친구들이 참가 신청을 했다. 벌써부터 배 타고 다녀올 대마도 여행에 마음이 설렌다.

“벌써 가는 날이야! 1박 더 해야 하는 것 아냐?”

4박 5일 산우회 회원 10명과 함께 아주 특별한 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이름 하여 ‘제주 힐링캠프’다. 산우회는 매월 첫째 토요일 정기산행과 별도로 작 년 8월부터 월 1회 캠프를 운영하고 있다. 그간 하절기에는 산에서 야영을, 동절기에는 자연휴양림 등지의 통나무집을 빌려 운동과 휴식을 하면서 회 원들 간의 친목을 다지고 있다. 그 일환으로 이번에는 제주도 서귀포에 캠프 를 차린 것이다. 작년 12월 파주 유일레저 캠프 시 신필호, 윤진평, 이현기 회 원 등과 인근 고령산을 오르면서 다음해 4월경 한 3주간에 걸쳐 제주도 올 레길을 걷자던 구상이 다소 변경되었지만 현실이 되었다. 역시 꿈은 꾸어야 이루어진다.

이번 우리의 베이스캠프가 된 서귀포자연휴양림은 휴양림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의 심신이 치유되는 느낌을 받는 곳이다. 한라산 서쪽을 가로질러 참가자

강재현 권영삼 김동준 김수곤 김의섭 김종욱 박종헌 안은섭(야영) 유재두(야영) 조상래 진영주(야영) 함동일(야영) 허정회(야영)

196

제주시와 서귀포 중문관광단지를 잇는 1100도로 동쪽에 자리 잡고 있다. 나 무의 백화점이라 할 수목원을 연상시킬 정도의 다양한 수종이 울창한 산림

197


을 이루고 있고 빽빽하게 들어찬 편백나무 숲에는 산림욕장이 있다. 전문가 에 의하면, 암 등 현대의 난치병을 치료하는 데 가장 좋은 자연여건은 해발

돌오름길 걷기

700~800m에 있는 침엽수림이라고 한다. 해발 약 750m의 이곳이 바로 그곳

제주도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20개 구간 약 350㎞의 올레길 외에

인 것이다. 실제로 산림욕장에는 10여 개의 장기요양용 텐트가 설치되어 있었

한라산 둘레길이 있다. 해발 600~800m의 국유림 일대를 둘러싸고 있는 일

다. 휴양림을 일주하는 둘레길은 마침 만추를 맞아 울긋불긋 곱게 물든 단풍

제 강점기 병참로(일명 하치마키도로)와 임도, 표고버섯 재배지 운송로 등을

이 객들의 눈과 마음을 한없이 즐겁게 해주었다.

활용하여 조성하고 있는 약 80㎞의 환상숲길을 말한다. 제주의 역사・문화・ 생태・경관자원을 만날 수 있는 소중한 보물인 것이다. 둘째 날 오후 우리는

용머리해안 산책

이 중 제2구간인 돌오름을 올랐다. 거린사슴오름(해발 743m)에서 돌오름(해 발 1,270m)까지 왕복 약 12㎞ 구간이다. 1980년대까지 표고버섯 재배지로 유

캠프 둘째 날 새벽 6시, 양상진 회원을 팀장으로 변수복, 진영주로 구성

명했고, 졸참나무와 삼나무, 단풍나무 등 다양한 수종이 어우러져 있어 한 폭

된 ‘막강 낚시팀’과 함께 화순(和順)항 방파제로 향했다. 아직 일출 전이라 사

의 수채화를 연상케 하는 숲길이다. 돌오름에 오르니 한라산과 법정이오름,

위는 칠흑같이 어두웠고 바닷바람은 차가웠다. 방파제에서 내항 쪽으로 계단

볼레오름, 노로오름, 삼형제오름이 병풍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하산 길을 잘못

을 따라 내려가니 낚시하기 좋은 스탠드가 나왔다. 낚시팀의 손길이 갑자기

든 변수복, 진영주, 김의섭 회원은 1100도로에서 맘씨 좋은 택시기사를 만나

분주해졌다. 낚시할 채비가 돼있는 걸 보고 유재두, 윤진평 회원과 함께 인근 산방산(山房山)과 용머리해안 산책길에 나섰다. 용머리는 제주에서 가장 오래 된 화산체로 남해 대륙붕의 얕은 바다에서 마그마가 터져 나올 때 바닷물과 만나 격렬히 폭발하면서 뿜어낸 화산재가 분화구 주변에 쌓여 만들어진 것이 다. 오랜 기간에 걸쳐 바닷물과 바람에 의해 침식과 풍화작용을 걸치면서 현 재는 일부분만 남아 있다. 화순항 방파제에서 볼 때는 별 것처럼 보이지 않았 는데 가까이 와보니 대단히 멋진 태고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다. 또 이 해안은 1653년 8월 16일 네덜란드 선박 디스페르워르 호가 표류하 여 헨드릭 하멜이 머나먼 동방의 나라 조선에 발을 디딘 곳이기도 하다. 하멜 은 그 후 13년 동안 이 땅에 머물렀고 고국으로 돌아가 그 유명한 『하멜 표류 기』를 남겨 조선을 서방세계에 알린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용머리해안에 바 로 붙어 있는 산방산은 백록담 화산 폭발 시 분화구에서 통째로 날아와 이곳 에 떨어져 산이 되었다는 설이 있기도 하다. 이곳에 있는 산방굴사(山房屈寺) 는 많은 관광객의 발길이 닿는 곳으로 40년 전 윤진평 회원도 신혼여행 때 이 곳에 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한다.

198

199


휴양림까지 약 4㎞를 무료 탑승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한라산 등산 힐링캠프 3일째, 전날 돌오름 워밍업을 한 데 이어 오늘은 영실 - 윗세오 름 코스로 한라산을 오르기로 했다. 양 팀장을 위시하여 진영주, 변수복, 유 재두 회원으로 구성된 낚시팀은 어제에 이어 화순항에서 오늘 저녁 횟감 마 련을 위해 새벽 라면을 먹고 숙소를 나섰다. 영실에서 윗세오름까지 3.7㎞(1시 간 30분 소요), 윗세오름에서 백록담 남벽분기점까지 2.1㎞(1시간 소요)다. 이 코스로는 자연보호를 위해 백록담 접근이 불가하고 남벽분기점까지만 갈 수 있다. 30분 정도 오르니 영실기암(靈室奇岩)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장관이 나타난다. 신이 만든 작품 중에서도 가히 수작이라 할만하다. 중턱에 오르니 바람이 세차게 불기 시작한다. 땀이 나 벗었던 웃옷을 다시 꺼내 입는다. 역시 바람 많은 삼다도 제주의 본 모습이 드러난다. 윗세오름 대피소까지 가는 도 중 만나는 광활한 고원과 거기서 내려다보이는 제주 앞바다는 우리들의 마 음을 넓게 만든다. 바로 이 맛에 등산을 하는 것이리라. 대피소에 이르니 많은 사람들이 간식을 하고 있다. 우리도 막걸리 한잔에 은섭이가 싸준 삶은 계란 과 간식을 꺼내 먹는다. 신필호 대장과 윤진평 회원은 대피소에 남고, 이현기, 김의섭 회원과 함 께 남벽분기점으로 떠났다. 2010년 5월 졸업 40주년기념행사 제주 여행 때에 도 윗세오름까지만 갔기에 대학 다닐 때 한라산에 오른 이래 실로 오래간만 의 일이다. 백록담 남벽은 절경이었다. 병풍처럼 펼쳐진 수직 절벽과 그 능선의 아름다움이라니. 대자연의 위용에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우리 일행은 불과 40분 만에 목적지에 도착해 싸가지고 온 막걸리로 축하주를 건넸다. 생전 처 음 한라산 백록담을 가까이에서 접한다는 김의섭 회원은 기분이 좋아 연신

낚시팀 손맛을 보다

싱글벙글한다. 남벽을 배경으로 독사진을 찍어 서판교댁 ‘반쪽’에게 보내니

하산해 낚시팀을 만나기 위해 화순항 방파제 낚시터로 가니 마침 제주도

즉각 답이 날아온다. “어머! 너무 멋지네요!” 영실로 하산하는 길에 먹은 안은

여행길에 오른 권오형 회원이 부인과 함께 들렀다. 그때까지 컵라면으로 연명

섭표 참치주먹밥은 일미였다.

한 낚시팀은 우리가 주먹밥을 싸가지고 가니 무척이나 잘 먹는다. 오늘은 조

200

201


황(釣況)이 좋은 듯했다. 돌돔, 참돔, 범돔, 아찌 등이 고기 담는 통에 그득했

인터뷰 기사로 도배되어 있다. 1등중사 출신인 그는 1952년 1월 이승만 대통

다. 오늘 등산팀 한라산 등산에 이어 낚시팀도 단단히 손맛을 본 셈이다. 저녁

령으로부터 화랑무공훈장도 받았다. 올해 80세인데도 주방에서 직접 조리하

식사 전 오늘 잡은 돌돔, 참돔회를 안주로 밸런타인 한잔을 하니 하루 피로

고 있다. 운 좋게도 30분 만에 자리를 잡았다. 기본 반찬으로 나온 고등어조

가 싹 풀린다.

림이 별미다. 네 명이상이면 고등어구이는 서비스로 나온다. 그 바쁜 강 주방 장이 손님 테이블로 찾아와 인사를 건넨다. 더 달라고 하면 웃으면서 더 가져

산방산 둘레길 걷기

다준다. 전갱이(아지)로 만든 각재기국의 맛은 독특하다. 이렇게 푸짐하게 먹 고 1인분에 7천 원을 받는다. 종업원의 복지를 위해 오후 3시까지밖에 손님을

힐링캠프 4일 째, 용머리해안에서 갯바위 낚시를 하기로 한 낚시팀과 산

안 받는다. 은섭이는 이 집이 잘 되는 이유로 좋은 재료와 서비스 정신을 꼽는

방산 입구 주차장에서 헤어진 후 등산팀은 산방산 둘레길을 걷기로 했다. 인

다. 누구나 아는 얘기지만 쉽지 않은 것을 이 집은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30

근에 있는 제주조각공원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이정표를 따라 둘레길 초

분 기다려 그 복잡한 집에서 1시간 동안 점심을 해도 어느 누구도 싫어하는

입을 찾았으나 표시가 제대로 돼 있지 않았다. 또 추사김정희유배길과 중복

내색을 하지 않는다. 제주시에 가면 꼭 한번 들를 것을 강추한다. 제주시 일도

돼 있어 아직 제대로 조성되지 않은 듯한 인상을 받았다. 우리는 하는 수 없

2동에 있는 돌하르방식당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이 산방산을 끼고 도는 길을 따라 걸었다. 주변은 귤 농장 천지다. 이제 곧 귤 의 철이 온다. 먹음직스러운 귤이 나무마다 주렁주렁 달려 있다. 조금 걸으니 귤 집하장이 나타난다. 그곳에서 일하는 분에게 하나만 먹자고 하니 마음대

자연휴양림 둘레길 산책

로 가져가란다. 하나를 집어 먹으니 매우 싱싱하다. 귤 과즙이 철철 넘쳐난다.

캠프 5일 차, 낚시팀은 대포항에서 마지막 손맛을 보기로 하고 나머지 일

그 분의 허락을 득하고 몇 개 배낭에 집어넣는다. 가까이에서 접한 산방산은

행은 약 5㎞에 달하는 휴양림 둘레길을 산책하기로 했다. 어제 식전에 생태관

근육질이다. 등산로가 제대로 있을지 모를 정도로 산세가 험하다. 산방산을

찰로를 중심으로 가볍게 맛을 봤지만 차분하게 휴양림 전체를 한 바퀴 돌면

끼고 돌면서 5㎞ 정도 걸었다. 아까 만난 인심 좋은 귤 집하장 아저씨 생각을

서 숲의 진한 늦가을 내음을 맡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휴양림 순환로는 우

하니 하루 종일 기분이 좋다.

리의 바람을 저버리지 않았다. 당단풍의 눈부시도록 빨간 잎은 님의 마지막 정열을 불태우는 듯했다. 빨간 건 빨간 대로, 노란 건 노란 대로 또 철모르고

돌하르방식당 점심 사정이 있어 하루 먼저 출발키로 한 윤진평 회원을 배웅하기 위해 낚시 팀과 합류해 제주시로 향한다. 오늘은 제주도에서 각재기국으로 유명한 ‘돌

아직 파란 건 파란 대로 저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을 뽐내면서도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문자 그대로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삶을 살고 있었다. 숲은 치열한 삶의 경쟁을 접고 고요한 쉼을 준비하고 있는 게 마치 우리들의 삶을 연상케 했다.

하르방식당’에서 점심을 하기로 했다. 식당에 당도하니 대기 손님이 골목에 그

아침 산책을 마치고 낚시팀이 있는 대포항으로 향했다. 하늘은 더없이 높

득하다. 한 시간 정도는 기다려야 할 거란다. 허름한 식당인데도 손님은 바글

고, 바다는 끝없이 넓다. 중국 관광객을 태운 요트와 모터보트가 조용한 포구

바글하다. 테이블이 고작 아홉 개다. 식당 내부는 강영채(姜瑛采) 주인장의

를 어지럽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항구 등대 밑 그늘에서 소라 한 접시를 시켜

202

203


놓고 휴양림에서 마시다 남은 술로 술잔을 기울인다. 이처럼 여유 있 고 자유로운 여행이 있을 수 없다.

성산 일출봉 오르기 성산항에서 배를 타고 장흥까지 가야 하는 양상진 팀장을 배 웅하기 위해 성산으로 향했다. 성산(城山)에 가까이 오자 일출봉이 바로 눈앞에 우뚝 솟아 있다. 양 팀장과 일출봉을 배경으로 한 컷 찍 은 후 양 팀장을 떠나보내고 일출봉에 오른다. 등산로와 하산로가 구분되어 있는 것을 보니 꽤나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는 것 같다. 과 연 제주도가 최근 세계 7대 자연경관으로 선정된 데 한몫을 차지할 만한 풍치다. 등산로 대부분이 계단으로 되어 있다. 한 20분 오르니 정상이다. 발밑에는 널따란 분화구가 덩그러니 놓여 있고, 분화구 건 너편에는 어선 몇 척이 한가로이 고기를 낚고 있다. 분화구 리지는 훼손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출입을 금지시키고 있다. 5시 양 팀장 이 탄 배가 내항을 힘차게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 하산했다.

이번 여행의 메인 콘셉트는 ‘자유와 여유’였다. 큰 틀의 여행계 획은 있었으나 세세한 것은 그때그때 정했다. 또 친구들의 취향에 따 라 하고 싶은 것을 택하도록 했다. 그러다 보니 재미있고 날이 가는 줄 몰랐다. 오죽하면 우리의 분위기 메이커 변수복 회원이 “벌써 가 는 날이야! 1박 더해야 하는 것 아냐?”라고 말할 정도였을까. 한 마디 로 ‘저비용 고효율’ 여행이라고 할 수 있겠다. 벌써 내년 이맘때쯤으 로 예정된 제2차 ‘힐링캠프’가 기대된다.

참가자

김의섭 변수복 신필호 안은섭 양상진 유재두 윤진평 이현기 진영주 허정회

204

205


110次

|

2013. 12. 18 ~ 19

중미산 휴양림

3000겁(劫)이라는 하룻밤 인연을 쌓다

산에서의 캠프에 대해 별 기대를 하지 않았을 게다. 창 밖에 펼쳐진 설경(雪 景)에 연신 감탄사를 연발한다. 서울에서 불과 한 시간 거리에 이런 설국(雪 國)이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하늘에서 하얀 벚꽃이 사뿐사뿐 흩날린다. 이른 아침 그 예쁜 꽃을 온몸에

윤세진 회장이 조규진 대마도 여행추진단장에게 정성을 표한다. 대규모

맞으며 걷는다. 우리보다 부지런한 산중(山中) 원주민들의 발자국만 듬성듬

해외여행을 성공리에 무탈하게 다녀온 데 대한 감사의 정표(情表)다. 조규진

성 남아 있다. 환갑 넘은 우리 친구들, 얘들 마냥 좋아한다.

단장의 시라다케 정상 암봉 등정 무용담이 화제에 오른다. 공기 좋은 산에서

양평 중미산(仲美山) 힐링캠프 산행 얘기다. 눈 내린 산경(山景)은 한 폭

친구들과 맛난 것을 나누며 많이 웃는 것만큼 좋은 힐링은 없는 것 같다.

의 그림이었다. 눈이 세상을 바꿔 놓았다. 밋밋했을 산행이 그 눈으로 빛을 보

신년 첫 힐링캠프는 포천 운악산자연휴양림에서 열린다. 개성 송악산, 가

았다. 제철 생굴, 데친 오징어와 어묵탕이 술안주로 궁합이 잘 맞는다. 두텁게

평 화악산, 파주 감악산, 과천 관악산과 함께 경기 5악(五岳) 중 하나다. 이제

썬 쇠고기 등심스테이크와 돼지고기 김치찌개에 입이 즐겁다. 윤진평 과수원

한 달에 하루는 모든 걸 내려놓고 푹 쉴 만한 여유를 가질 때다. 이에 뜻을 같

배와 변수복 농장 찐 고구마가 입가심으로 제격이다. 방 하나, 거실 겸 주방

이 하는 친구는 누구든 환영한다.

하나, 다락방 하나 있는 산막(山幕)에서 하루 저녁 잘 보냈다. 새삼 인연에 대해 생각해본다. 불가(佛家)에서는 하룻밤, 한 집에서 보내 는 것을 3000겁(劫)의 인연이라 한다. 1겁은 사방 40리 가득 찬 겨자를 100년 에 한 알씩 꺼내 다 없어지는 시간이란다. 친구들끼리 하는 하룻밤 힐링캠프 의 의미가 각별한 이유다. 처음 캠프에 합류한 장무철, 조규진 회원의 낯빛이 밝다. 이름도 몰랐던

206

참가자

변수복 유재두 윤세진 윤진평 장무철 조규진 진영주 최병학 함동일 허정회

207


112次

|

2014. 1. 22 ~ 23

운악산 자연휴양림

“친구여! 고마웠다. 잘 가시게!” - 의섭이를 떠나 보내며 부부, 30년 동안 부부가 아닌 연인으로 살아 주변의 부러움을 많이 샀던 친 구, 모든 공은 아내에게 돌리고 항상 사랑한다 잘했다 존경한다고 되뇌었다 는 자상한 남편, 효심이 깊어 시간 날 때마다 부모님께 인사드리러 갔던 효자. 사랑하던 친구가 우리 곁을 먼저 떠

운악산자연휴양림 숲속의 집 꽃창포실 옆에 잠자리를 함께한 친구에게

났습니다. 그렇게 좋아하던 산에서

며칠 전 눈 많이 내리던 날 집 정원에서 아내가 찍어줬던 사진을 보여주며 행

여러 친구들 앞에서 마치 고목 넘어

복하게 잘 살고 있다고 기분 좋아했던 친구. 늦은 밤 즉석에서 아내에게 전화

가듯 쓰러졌습니다.

해 저녁에 무엇 무엇 먹었고, 먹을 게 넘쳐났다고, 당신이 만들어준 물김치 너

아직도 악몽을 꾸고 있는 것

무 맛있었다고 자상하게 얘기했던 친구. 우렁찬 목소리로 항상 좌중을 재밌

같습니다. 2014년 1월 23일 오전 9

게 이끌던 유머가 넘쳐났던 친구, 눈처럼 순수했고 막걸리처럼 소탈했고, 친구

시 10분경 운악산(雲岳山) 궁예성터

들에게 무엇이든 베풀기를 좋아했지만 자기에게는 검약했던 친구. 빈소 접견실에 걸린 한 장의 사진이 많은 조문객을 울립니다. 작년 5월

앞에서 행복한 모습으로 사진을 찍

31일 유명산 동기회 봄소풍 많은 친구들을 위해 목에 수건을 두른 채 직접 고

던 중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기를 굽던 친구. “친구여! 고마웠다. 잘 가시게!”

얼마나 말하고 싶었겠니. 그렇 게 사랑하던 아내, 예뻐하던 민영이 와 자랑스러워하던 창석이에게, 사 랑했노라고. 두 몸이었지만 한 생각이었던

208

참가자 고 김의섭 군.

권영삼 김순중 김의섭 안은섭 유재두 진영주 최병학 함동일 허정회

209


129次

|

2014. 11. 10 ~ 14

제주 힐링캠프

만큼 정도 더 깊어지게 된다. 제주에 거처를 마련한 지 1년 8개월이 된 신필호 초청으로 변수복, 안은 섭, 양상진, 유재두, 윤진평, 이현기, 장무철, 진영주, 함동일, 허정회가 함께했 다. 서귀포에서 아직 현역으로 뛰고 있는 이종상 동기 협찬 덕에 기간 중 돼지 고기가 밥상에 오르지 않은 끼니가 없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전 한다.

인생은 놀이다. 즐겨라

곶자왈 트레킹 오설록 차(茶)박물관 근처에 있는 곶자왈 도립공원을 찾았다. 곶자왈은 수풀을 뜻하는 곶과 자갈들이 모인 곳을 의미하는 자왈의 합성어다. 나무나 덩굴 따위가 마구 엉클어져 수풀같이 어수선하게 된 곳으로 관목과 야생초 가 자생하여 농・임업적으로 이용할 수 없는 지역을 이르는 제주방언이다. 높 이 10m 내외로 자란 종가시나무를 위시해 참가시나무, 동백나무, 육박나무

만 1년 만에 제주를 찾았다. 2013년이 2014년으로 숫자만 바뀌었을 뿐 다른

등으로 이루어진 자연 상태의 상록활엽수림이다. 공기는 더없이 청정하다. 간

것은 변한 게 없었다. 공항에서 차를 빌려 근처에서 쇼핑 하고 숙소인 서귀포 자연휴양림을 찾아가는 것 등 모든 게 작년에 해봤던 거라 거침이 없다. 다만 바뀐 게 있다면 작년에 함께했던 의섭이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함께 놀 친구 10명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했다. 이번 제주 힐링캠프에 11명이 참가했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한 놈들이다. 아무렇게나 놀기는 쉽지만 제대로 노는 것은 공부다. 공부는 힘들지만 남는 게 있다. 바로 배움이다. 이 번 여행을 통해서도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웠다. 여행에는 두 종류가 있다. 유전(有錢) 여행과 무전(無錢) 여행이 그것이 다. 전자는 육체적으로 편하지만 머리에 남는 게 별로 없다. 후자가 좀 성가시 기는 하지만 그래도 무언가 우리에게 적지 않은 잔상(殘像)을 남긴다. 우리는 후자를 택했다. 공기 맑고 시설 좋은 자연휴양림 ‘숲속의 집’에서 숙식을 자체 적으로 해결했다. 밥도 짓고, 국도 만들고, 고기도 굽고, 마지막 설거지까지 모 든 걸 우리들 힘으로 했다. 그러면서 친구들의 인간됨도 더 잘 알게 되고, 그

210

211


만에 사람을 만나 반가운 듯 새소리가 요란하다. 이런 곳에 살고 있다니 팔자 좋은 놈들이다. 이곳에는 노루 등 야생동물을 비롯해 도마뱀 등 파충류와 개 구리 등 양서류가 어울려 행복하게 살고 있다. 이런 곶자왈이 제주도 여러 곳 에 산재해 있어 제주의 허파 구실을 하고 있다.

거문오름 탐방 거문오름은 예부터 방하오름이라 불렸으며 방하악(防下岳)으로 표기하 였다. 오름의 분화구와 수직굴 일대의 형세가 방아와 같다는 데서 붙인 것이 다. 그러다가 검은오름 또는 거문이오름이라 하여 거문악(巨文岳, 巨門岳)으 로 쓰였다. 돌과 흙이 유난히 검어 음산한 기운을 띠는 데서 유래되었고, 어원 적으로는 신령스러운 산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작년에 가 보려다 예약이 안 돼 못가서 올해 재도전에 성공했다. 거문오름은 제주도에서 사전 예약을 해야만 가 볼 수 있는 유일무이한 관광지다. 한라산 등산 코스 출발지 중 하

탐방로에서는 물 이외에 간식도 먹지 못하게 한다. 거문오름을 원형 그대로

나인 성판악 근처에 있다. 거문오름은 제주도 북동지역에 산재한 수많은 용암

후세에 남겨줄 자연유산이 되도록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동굴의 모태로 깊게 파인 분화구는 아홉 개의 봉우리로 둘러싸였으며 북동 쪽 산사면이 터진 말굽형 화산체다.

분화구 내에 들어서니 온갖 종류의 새들이 우리 외지인들을 반기는 팡 파르를 울린다. 어쩌면 한결같이 그렇게 아름다운 목소리를 낼까. 이 가지 저

거문오름은 2007년 제주도 일부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

가지를 마음대로 활개 치며 노니는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였다. 여기서 자라

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곳이다. 제주도에서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곳은

는 식물도 마찬가지였다. 분화구 안이라 항상 적당한 습도를 유지한 채 저마

약 6000만 평으로 제주도 면적의 1/10에 해당된다. 그 공식 명칭은 ‘제주화산

다 해를 향해 제멋대로 자라고 있는 곶자왈을 이루고 있다. 용암협곡은 마치

섬과 용암동굴’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자연의 원형과 지질학・생물학적 보

사람이 축대를 쌓다 그만둔 것처럼 여기저기 자연 그대로 생성되어 있다. 화

전가치의 완전성을 갖춘 세 곳, 해발 800m 이상의 한라산 천연보호구역, 성

산이 폭발할 때 생겼던 크고 작은 화산탄(火山彈)도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

산 일출봉, 거문오름과 용암동굴계를 지칭한다.

용암동굴과 풍혈(風穴)이 곳곳에 있어 여름에는 서늘한 바람을, 겨울에는 따

우리는 약 2시간 30분이 소요되는 5.5㎞의 분화구 코스를 탐방하기로

뜻한 바람을 뿜어내 이곳 노루를 비롯한 야생동물들의 안식처가 되고 있다.

했다. 하루 400명 만 입장할 수 있으며 50명 단위로 30분마다 해설사가 동행

숯가마터에서는 이 깊은 곳에서도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던 선조들의 땀의 흔

하며 자세한 설명을 해준다. 생태계 보존을 위해 우천 시에도 비옷만 사용 가

적을 볼 수 있었으며, 일본군 갱도진지에서는 우리 근대사의 아픈 역사의 편

능하며, 등산용 스틱도 소지할 수 없다. 분화구 내에서는 서식동물에게 스트

린을 엿볼 수 있었다. 분화구를 빠져나오니 우리를 환송하는 듯 때마침 불어

레스를 주지 않기 위해 해설용 확성기도 사용하지 않고 육성으로 할 정도다.

온 바람에 억새가 하늘하늘 춤을 춘다.

212

213


사려니 숲길 산책 거문오름에서 북동방향으로 10㎞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해발고도 500~600m에 위치하고 있는 사려니 숲길은 완만한 평탄지형을 이루고 있으 며 약 15㎞의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숲에는 졸참나무, 때죽나무, 서어나무, 단풍나무 등이 자생하고 있으며, 산림녹화의 일환으로 삼나무, 편백나무 등 이 식재되어 있는 등 다양한 수종이 자라고 있는 수목원을 연상케 했다. 약 1 시간 30분 동안 새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숲속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산책하 면서 에코힐링(eco-healing)을 통한 ‘마음의 치유’를 마음껏 체험했다.

쇠소깍 관광 정방폭포 동쪽에 있는 이름도 생경한 쇠소깍은 제주에서 드물게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이다. 제주도 최남단 하천, 효돈천 끝에 자리 잡고 있는 쇠소깍은 마을이름 효돈 - 이곳은 제주도에서도 맛있는 감귤 산지이기도 하 다 - 의 옛 지명인 쇠돈(牛屯)의 쇠와 연못이라는 의미의 소, 그리고 끝을 나 타내는 접미사인 각의 고어인 깍이 합쳐진 제주방언이다. 효돈천은 한라산 백 록담 남벽과 서벽에서 발원하여 효돈해안에 이르는 대규모 하천이지만 계곡 을 제외한 대부분은 물을 볼 수 없는 건천(乾川)이다. 쇠소깍에 담긴 물이 짙 은 에메랄드 색깔을 띠는 것은 바위 틈새에서 솟아나는 용천수와 바닷물이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구멍이 숭숭 뚫린 바위절벽 - 지질학적 용어로는 타포 니(tafoni)라고 한다 - 과 오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쇠소깍에서 한가로이 보트를 타고 있는 모습이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연휴양림으로 입구에서부터 끝없이 펼쳐진 하늘을 찌를 듯한 50여 년 이상 된 삼나무숲이 장관이다. 우리는 약 12㎞에 달하는 ‘장생의 숲길’을 걷기로

절물자연휴양림 트레킹

했다. 이제까지 여러 곳의 자연휴양림 숲길을 걸었지만 그 중 절물자연휴양림 이 거리로나 주변 풍광 면에서 단연 백미(白眉)라 할 수 있을 정도다. 숲길은

절물이란 지명은 옛날 절 옆에 물이 있었다는 데서 붙여졌으나 현재 절

아름드리 편백나무, 삼나무 등 침엽수와 각종 활엽수로 울창한 숲 터널을 이

은 없고 약수암만 남아 있다. 제주시에서 남동 방향으로 20분 거리에 있는 자

루고 있었다. 절물오름 전망대에서는 아름다운 제주시 전역이 한눈에 들어왔

214

215


다. 3시간 남짓 땀이 나도록 열심히 걸었지만 그 분위기에 취해 더 걷고 싶을 정도였다. 앞으로 제주도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에게 꼭 권하고 싶은 코

144次

|

2015. 11. 12 ~ 16

제주 힐링캠프

스 중 하나다.

올레 제8코스 트레킹 월평포구에서 대평포구까지 이어지는 제8코스 중 대포항에서 중문 여미 지식물원까지 약 7㎞를 걸었다. 바다와 해변 길을 걷는 것은 동해안 해파랑길

새로운 세상을 보았다

과 유사하나 야자수, 주상절리(柱狀節理) 등 제주 특유의 풍광이 감칠맛을 더했다. 중문어촌계 해녀의 집에서 먹은 1만 원짜리 갓 물질한 소라회는 이루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싱싱했다. 때마침 해수욕 비수기를 맞아 약 1㎞에 달 하는 중문해수욕장 백사장을 여유롭게 거닐 수 있었다. 멀리로는 산방산, 용 머리해안, 송악산, 가파도, 마라도가 한눈에 펼쳐졌다. 마라도는 내년에 가기 로 기약하며 트레킹을 마감했다. 보통사람들의 소박한 로망이 무얼까? 아마도 별 걱정 없이, 공기 좋은 곳에서, 친구들과 걷고, 웃고, 떠들고, 먹고, 마시고 하다 보니 4박 5일이 훌쩍 지

하고 싶은 일을 즐기며 사는 게 아닐까. 지난 주 있었던 ‘제주 힐링캠프’에서

나갔다. 친구들 입 여기저기서 “벌써 갈 때가 된 거야!”라는 말이 나온다. “인

우리는 바로 이렇게 지내면서 몸과 마음을 치유했다. 4박 5일이라는 짧지 않

생은 놀이다. 즐겨라.”(Life is a game, play it.) 테레사 수녀의 ‘인생이 무엇인

은 시간이 번뜩 지나갔다. 캠프가 파할 무렵 친구들의 얼굴에는 아쉬워하는

가?’(What is life?)라는 글 중에 나오는 말이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은 『노는

표정이 역력히 묻어났다. 우리끼리 잘 해먹고, 많이 웃고, 좋은 구경을 했다. 이

만큼 성공한다』에서 잘 노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 노는 것을 계획하는 사람은

메일, 인터넷과 신문 없이도 아무 어려움이 없었다. 서울을 비롯해 경기도, 충

행복하다, 그들은 일하는 것도 행복하다고 주장한다. 2015 제주 힐링캠프가

청도, 전라도, 경상도, 제주도 등 전국 각 도에서 11명이 모였다. 김수곤, 남상

벌써 기다려지는 이유다.

화, 변수복, 신필호, 양상진, 유재두, 이현기, 장무철, 진영주, 함동일, 허정회가 함께했다.

11월 12일(목) 참가자

변수복 신필호 안은섭 양상진 유재두 윤진평 이현기 장무철 진영주 함동일 허정회

216

올해로 세 번째 맞는 캠프다. 해가 갈수록 캠프에 대한 노하우가 쌓여 진 행이 점점 매끄러워진다. 전남 고흥 녹동항에서 배로 먼저 도착한 선발대 양

217


상진과 김수곤이 제주시 동문시장에서 쇼핑 후 숙소에서 저녁 준비를 했기에

저녁으로 뼈다귀감자탕이 상에 올랐다. 밥은 백미에 현미 30%가 섞인

시간을 많이 벌었다. 김포공항을 출발한 후발대 서울・경기팀 7명과 진천에서

잡곡밥이다. 신임 양 셰프의 메뉴 선정이 예사롭지 않다. 모두 건강식이다. 변

온 남상화가 거의 같은 시간에 도착해 렌트카 스타렉스에 몸을 싣고 서귀포

수복이 오전에 낚은 전갱이를 손질해 프라이팬에 살짝 익혀 술안주로 올린다.

자연휴양림에 닿았다. 얼마 후 제주 원주민 신필호가 양손 가득 방어회를 든

둘째 날 밤은 깊어가는 데 적막한 산장의 술자리는 좀처럼 파할 생각을 하지

채 합류해 드디어 캠프의 막이 올랐다.

않는다.

신필호가 가져온 올드파와 싱싱한 방어회가 우리들의 입을 즐겁게 했다. 한잔하면서 캠프 일정에 대한 의견 조율을 했다. 내일은 마라도에 함께 가기 로 되어 있는데 비소식이 있어 불확실하다. 술자리는 저녁 식사로 이어졌다.

11월 14일(토)

갈칫국이 상에 올랐다. 이번 캠프에서 메인 셰프로 승격한 양상진의 작품이

마라도에 가는 날이다. 엊저녁까지 부슬부슬 내리던 비는 다행히 그쳤

다. 제주 아니고서는 비싸기도 하고 선도가 떨어져 맛보기 어려운 게 갈칫국

다. 새벽 6시, 시래기된장국으로 아침을 했다. 어제 늦은 시간까지 한잔하고

이다. 식구 모두 이구동성으로 맛있다고 입을 모은다. 성공적인 데뷔였다.

새벽 일찍 하는 식사라 여느 때 같으면 잘 안 넘어갈 텐데도 모두들 맛있게 먹 는다. 여럿이 함께하기 때문이리라. 9시 10분 출발하는 배이기에 8시가 되기

11월 13일(금) 기상예보대로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어제 저녁 먹었던 방어회 부산물로

도 전에 송악산 선착장으로 서둘러 떠났다. 오늘부터는 섭지코지에 있는 피닉 스 아일랜드에서 투숙하기로 되어 있어 여행 짐을 모두 꾸리느라 아침부터 땀 좀 흘렸다.

지리를 만들었다. 큰 놈의 뼈를 고은 거라 맛이 깊고 시원했다. 선착장에 연락

송악산 선착장에서 남쪽으로 약 11㎞ 떨어져 있는 마라도까지 가는 데

해보니 오늘 결항이란다. 내일 9시 10분 출발하는 배편으로 예약을 변경했다.

에는 30분밖에 안 걸렸다. 멀리서

변수복, 진영주, 양상진은 우중에도 서귀포항으로 나갔다. 불과 두어 시간 만

보면 고구마처럼 생긴 마라도의 면

에 손바닥만 한 전갱이 50여 마리를 잡아왔다. 대단한 실력이다. 오늘 저녁 술

적은 약 10만 평이다. 우리나라 남

안주감이 생겼다.

쪽 제일 끝에 있는 섬으로 가끔 태

떡국으로 점심을 했다. 오후 되니 비가 그치기 시작했다. 한 두어 시간 동

풍 예보할 때 배경으로 등장하는 섬

안 휴양림 근처 돌오름으로 이어지는 둘레길과 휴양림 주변 산책로를 걸었다.

이다. 100명 안팎이 살고 있다고 하

제주도는 집에서 한 발짝 나가기만 하면 어디든 멋진 수목원이다. 조락(凋落)

지만 젊은 사람은 거의 없다. 설립된

의 계절, 늦가을을 맞아 떨어진 낙엽과 오색 단풍의 조화가 신묘하다. 오전에

지 50년 가까이 된 가파초등학교 마

내린 비로 둘레길 군데군데 물이 고여 있었다. 자그마한 내를 지날 때에는 물

라분교에 현재 재학생은 한 명인데

에 빠지지 않으려고 징검다리를 찾아야 했다. 때로는 맨발도 불사했다. 자연

교사는 세 명이란다. 올해 한 학생마

의 품속에서 아이들처럼 마냥 지껄이고 웃었다. 이제는 우리 모두 다 안다. 행

저 졸업하게 되면 앞으로 2년 동안

복이란 게 저 멀리 있는 큰 게 아니라는 걸.

은 개점휴업 상태가 된다.

218

219


마라도에는 짜장면이 유명하다. 소문이 나다 보니 지금은 짜장면집이 열

짐을 풀자마자 몸이 근질근질

군데도 넘는 듯하다. 마라도에 체류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야 한 시간 반이니

하던 낚시팀은 섭지코지 해변으로

- 타고 왔던 배가 손님을 한 번 더 태우고 갔다 오면 그 배로 나가야 한다 -

손맛을 보러 나갔다. 양 셰프 대신

그 안에 요기할 수 있는 게 아마 그 정도일 것이라는 추측이다. 우리는 남들

장무철, 함동일 콤비가 정성 들여

다 먹는 짜장면 말고 소라・전복회를 안주로 마라도에 온 것을 자축했다.

식사를 준비했다. 저녁 메뉴는 카레

점심은 소라・전복 물회를 잘 한다는 강정마을 등대횟집에서 했다. 강정

라이스다. 장무철은 요리교실에서

마을은 최근까지 해군기지 건설 반대 시위로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던 곳이

제대로 배워선지 칼 다루는 솜씨가

다. 강정은 천혜의 군항이라고 한다. 2007년 첫 삽을 떴으나 주민들의 반대 시

남달랐다. 요리는 정성이라며 온갖

위가 이어지며 5년여를 끌다 2012년에야 재개할 수 있었다. 환경론자들이 시

성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맛

위에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국가안보 없는 환경보호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 없을 수가 없었다. 서귀포 매일올

연내 완공을 목표로 공사가 한창이었다. 아까운 시간과 예산만 축낸 셈이다.

레시장에서 사가지고 온 흑돼지고 기 수육과 옥돔구이 또한 일미였다.

등대횟집에서 이 집에 횟감을 대는 해녀를 만났다. 72세라는 나이가 믿 기지 않을 정도로 건장해 보였다. 해녀에 계급이 있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 다. 여행하다 보면 많은 걸 배운다. 해녀의 물질은 기량(技倆)에 따라 ‘하군’부 터 시작해 ‘중군’, ‘상군’, ‘대상군’으로 올라간다. 물질을 계속하다 보면 ‘상군’

11월 15일(일)

까지는 순조로우나 늙으면 힘들어서 ‘대상군’에 오르기 전에 그만두거나 ‘중

시원한 홍합 미역국으로 아침을 했다. 해장국으로 먹기에 딱 좋다. 날이

군’으로 물질을 한다고 한다. ‘대상군’ 해녀는 아주 드물어 해녀 세계에서는

갈수록 메뉴가 세련되고 맛있다. 설거지는 매끼 식사 후 자율적으로 한다. 일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라고 한다. 우리가 만난 해녀는 바로 ‘상군’이었다.

일이 당번을 정하지 않아도 서로가 기꺼이 알아서 나선다. 여러 형태의 여행

우리나라에 한때 2만 명이 넘던 해녀는 현재 4500명 정도 남아 있다고

을 해보지만 지난번 해파랑길이나 이번 힐링캠프와 같이 취사를 직접 하면 여

한다. 제주 올레길을 조성한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은 “해녀는 저승에서 벌

운이 길게 남는다. 매식하는 여행은 할 때는 편한데 하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어 이승에서 쓰는 고달픈 직업”이라고 했다. 그만큼 힘든 일이라는 것이다. 사

없다. ‘DIY’, Do It Yourself는 공작(工作)뿐만 아니라 여행에도 그대로 적용

람은 숨을 쉬어야 사는데 해녀는 숨을 쉬면 죽는다고 한다. 이 어려운 일을 어

된다.

떻게 여자들만 할까? 왜 해녀(海女)만 있고 해남(海男)은 없을까? 제주 해녀 의 강인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오늘 일정은 낚시팀과 트레킹팀이 별도로 진행하기로 했다. 변수복, 진영 주, 양상진 세 에이스만 낚시를 하고, 나머지는 전부 트레킹을 가기로 했다. 제

성산 일출봉이 바로 코앞에 보이는 섭지코지. 코지는 곶의 제주 방언이

일 먼저 트레킹팀이 향한 곳은 따라비오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에 있다.

다. 곶은 바다 쪽으로 불쑥 튀어나온 땅을 말한다. 섭지코지 주변 풍광이 일

화산이 폭발할 때 흘러내린 용암이 아름다운 선을 이뤄 가을이면 억새와 더

품이다. 이 일대 전부 삼성 보광그룹의 사유지라 한다. 거기에 지어진 현대식

불어 장관을 연출해 제주 368개 오름 중 여왕으로 불린다. 북쪽에 새끼오름,

콘도가 ‘피닉스 아일랜드’다. 우리가 이틀 밤 신세 질 곳이다.

동쪽에 모지오름과 장자오름이 위치하고 있어 가장격이라 하여 ‘따애비’라

220

221


불리던 것이 ‘따래비’로 변했다. 명성이 자자한 오름답게 주차

말을 일컫는 것으로 게으름뱅이라는 제주 방언 ‘간세다리’에서 따왔다. 천천 히 놀며, 쉬며, 걸으며 제주를 즐기라는 깊은 의미가 있다.

장이 차들로 가득하다. 밑에서 오름

숙소 가는 길에 섭지코지 해변에서 세월을 낚고 있는 낚시팀 응원을 갔

을 바라보니 좌우동형으로 아주 잘

다. 바로 옆 낚시꾼은 제법 큰 놈을 잡았는데 오늘따라 우리 팀의 조황(釣況)

생겼다. 표고 342m 정상까지 닿는

이 영 시원치 않다. 아침 낚시 갈 때 큰소리치더니 핑계만 들려온다. 골프 치는

데 30분이면 충분했다. 소문대로 억

사람만큼 낚시꾼도 할 얘기가 많다. 오늘 우리 낚시팀이 잡은 걸로 회 쳐 먹으

새가 장관을 이룬다. 억새밭 너머 멀

려 했던 꿈은 수포로 돌아갔다. 어제 서귀포 올레시장에서 산 고등어로 무조

리 머리 위에 작은 솜사탕을 얹혀놓

림을 하니 이 또한 별미다.

은 듯한 한라산 정상이 보인다. 사위 (四圍)가 확 트여 있다. 높고 낮은 오 름들이 서로 키재기를 하고 있는 듯 여기저기 널려있다. 제주 전경을 감

11월 16일(월) 벌써 마지막 날이다. 사다 놓은 식재료를 탈탈 털어 아침 식사를 거하게

상할 수 있어서 땀 흘려 올라온 보람을 느꼈다. 하산해 근처 가시식당에서 생

했다. 쌀 한 톨까지 알뜰하게 거의 다 소진시켰다. 피닉스 아일랜드와 그냥 헤

돼지 목살구이로 시장기를 달랬다.

어지기 아쉬운 듯 일부 친구들은 식후 경내 산책길에 나섰다.

제주시 구좌읍에 위치한 비자림(榧子林)으로 향했다. 약 15만 평 숲에

체크아웃 후 제주시 일도2동에 있는 ‘돌하르방식당’으로 향했다. 11시밖

500~800년 생 비자나무 2800여 그루가 빽빽하게 자라고 있다. 비자열매와

에 안 됐는데 가까스로 자리를 잡을 정도로 식당은 벌써 많은 손님들로 북적

나무는 예로부터 민간과 한방에서 귀중한 약재와 목재로 널리 쓰이고 있다.

였다. 주인 강영채 사장은 오늘도 주방과 홀을 오가며 분주하다. 82세임에도

특히, 비자나무로 만든 바둑판은 최고급으로 치며 질이 좋아 구하기 힘든 것

불구하고 활기 넘치는 현역이다. 그는 한국전쟁 참전용사다. 18세 어린 나이에

으로 알고 있다. 때마침 주말을 맞아 많은 사람들이 비자림을 찾았다. 화창한

참전해 일등 중사로 제대했다. 식당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만 한다. 일

날이건만 울창한 비자나무 숲에는 햇빛이 차단돼 어둑어둑했다. 한 시간여

안 하면 쉬 늙으니까 무리하지 않고 적당히 일하고 건강을 챙기기 위해서란

비자림숲 3㎞를 걸으며 삼림욕다운 삼림욕을 했다.

다. 주 메뉴는 각재기국(전갱이국)과 고등어회다. 가격은 물론 착하다. 내년에

제주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올레길이다. 이제까지 여러 군데를 해봤지

도 들리겠다는 인사와 함께 헤어졌다.

만 아직 제1코스는 가보지 못했다. 마침 숙소가 있는 섭지코지에서 그리 멀

동문시장에 들렀다. 재래시장은 언제나 활력이 넘친다. 사람 사는 냄새

리 떨어지지 않았다. 1코스 시작은 시흥초등학교다. 학교명이 시흥(始興)이라

나는 곳이 바로 시장이다. 유명 관광지라 그런지 상인들이 한결같이 친절하

여기를 시작점으로 정한 듯하다. 한 시간 채 안 걸려 말미오름에 오르니 성산

다. 집에 가져가라고 진영주가 옥돔 두 마리씩 손에 쥐어준다. 비행기 시간이

일출봉, 우도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제 1코스는 광치기해변까지 약 15㎞에

조금 남아 있어 들린 용두암은 과거에 비해 많이 번잡해졌다. 특히 중국 사람

달하지만 오늘은 맛만 보고 내려가기로 했다.

들이 많았다. 요즘 어디가나 중국 사람들이다. 앞으로 그들이 우리나라에서

올레길의 상징 ‘간세’가 올레꾼의 시선을 빼앗는다. ‘간세’는 제주 조랑

222

발을 돌리면 어떻게 될까. 사람 마음은 조변석개(朝變夕改)라 언제 이러한 상

223


상이 현실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를 찾아오는 외국인들에게 좀 더 친절하고 정직하고 잘 대해 주어야 하는 이유다. 이번 캠프를 통해 양상진이라는 새로운 셰프를 발굴한 게 무엇 보다 큰 성과다. 그는 맛있는 건강식을 위해 철저하게 준비했다. 수첩 에는 구입해야 할 물품의 목록과 수량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꼭 필요하나 구입하기에는 비싸고 양도 많은 양념류는 회원 희망에 따 라 할당해 비용을 절감했다. 날짜별, 끼니별 메뉴를 정해 그에 필요 한 식자재만을 사 낭비가 없도록 했다. 이용이 편리한 대형마트 대신 불편을 마다하고 저렴하고 질 좋은 동문시장에서 쇼핑을 했다. 이런 노력으로 이번 4박 5일 간의 캠프 비용은 1인당 20여 만 원이 들었다. 물론 2박의 섭지코지 콘도를 스폰서한 장무철, 몇 개월 전부터 저가항공 티켓을 예약한 유재두와 신필호, 김수곤, 변수복의 도움가 없었으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저비용 고효율’ 캠프가 되도록 협조한 모든 친구들이 고맙다. 올 연말 정년을 앞두고 처음 ‘제주 힐링캠프’에 참가한 남상화 는 이번 캠프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보았다”는 의미 있는 소회를 밝 혔다. “생을 유지할 적당한 부를 쌓았다면 그 이후 우리는 부와 무관 한 것을 추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인간관계, 아니면 예술, 또는 젊었 을 적부터의 꿈같은 것을 …. 사랑은 수천 마일을 갈 수 있다. 삶에는 한계가 없다. 가고 싶은 곳을 가라. 올라가고 싶은 곳에 올라가라. 이 모든 것이 당신의 마음과 손에 달려있다.” 최근 SNS에 떠돌고 있는 작자 미상의 글이다. 그렇게 살고 싶다.

참가자

김수곤 남상화 변수복 신필호 양상진 유재두 이현기 장무철 진영주 함동일 허정회

224

225


148次

|

2016. 1. 20 ~ 22

안면도자연휴양림

철 지난 해변을 걷다

서산 IC에서 상화를 만나 서산시청 앞 고목을 배경으로 나란히 섰다. 사진 찍어주던 아가씨가 어찌나 친절하던지 표정이 모두 밝다. 그 친절함에 서산에 대한 이미지가 오랫동안 좋게 남을 것 같다. 주차비 천 원을 아끼느라고 차를 시청 주차장에 두고 나오는 길이다.

산우회는 1월 20일부터 사흘간 안

워 쉴 수 있다는 데서 지명을 따왔다. 섬 어디를 가도 양질의 낙락장송(落落

면도자연휴양림에 베이스캠프를 두

長松)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고 섬 곳곳을 누볐다. 김수곤, 남상

기간 중 날씨 운도 따랐다. 우리가 있던 충남지역만 쏙 빼고 한반도 전역

화, 양상진, 윤진평, 진영주, 함동일,

에 한파주의보가 발령됐다. 전국이 꽁꽁 얼었고, 서해안엔 폭설이 내렸다. 칼

허정회가 함께했다. 양상진은 순천

바람 맞으며 철지난 겨울바닷가를 원 없이 걸었다. 서해안이 이렇게 아름다운

에서 기차와 배를 갈아타고 먼 길을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 들쭉날쭉한 해안 굴곡에 따라 풍광이 변화무쌍해 걷

단숨에 달려왔다.

기에 지루한 줄 몰랐다.

안면도(安眠島)는 우리나라에

상화네 진천 댁이 싸 보낸 사골 국물을 베이스로 양 셰프가 조리 실력을

서 여섯 번째 큰 섬이다. 숲으로 우

뽐냈다. 잘 먹고 많이 마시고 실컷 웃고 푹 잤다. 이보다 더 멋진 힐링이 어디

거져 있어 조수(鳥獸)가 편안히 누

있겠는가.

“똑딱선 기적소리 젊은 꿈을 싣고서, 갈매기 노래하 는 만리포라 내 사랑 ….” 반야성 작사, 박경원 노래의 ‘만리포 사랑’ 노래비 앞에 섰다. 동일이의 젊은 날 아 름다운 추억이 서린 곳이라 한다.

김수곤 남상화 양상진 윤진평 진영주 함동일 허정회

226

참가자

227


151次

|

2016. 3. 17 ~ 19

오서산자연휴양림

논어를 읽으며 마음을 닦다

오서산전망대에서 동일이가 주변 풍광을 여유롭게 감상하고 있다. 멀리 서해와 억새의 장관을 볼 수 있는 이 전망대 자 리에는 과거 오서정(烏棲亭)이 있어 등산객들의 좋은 쉼터였으나, 2010년 9월 태풍 곤파스에 의해 파손된 후 이곳에 전망 대를 조성했다.

산우회는 3월 17일부터 2박 3일간 충남보령에 있 는 오서산(烏棲山)자연휴양림에서 ‘몸・맘닦기 캠 프’를 했다. 이번 캠프의 특징은 적당한 운동으로 신체를 단련했고, 매일 한 시간가량 논어(論語) 강독을 통해 마음을 닦았다는 데 있다. 광천시장 투어 - 오서산 등산 - 웅천 돌 문화공원 탐방 마량포구 투어 - 아펜젤러기념관 방문 - 낚시 화암(花巖)서원 탐방 - 성주산(聖住山) 등산 등 을 했다. 김수곤, 변수복, 양상진, 윤진평, 진영주, 함동일, 허정회가 함께했다.

참가자

김수곤 변수복 양상진 윤진평 진영주 함동일 허정회

228

능선을 따라 조성된 데크를 걷고 있다. 이 곳의 가을 억새풀은 유명하다. 오서산 명 칭은 예부터 까마귀가 많이 서식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오서산 정상에는 표지석이 두 개 있다. 사진에 보이는 보 령시에서 만든 정상 표지석 말고도 홍성군 광천읍에서 세운 것이 있다.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 없고, 산에 두 개의 정상이 없을진대 오서산 정상을 놓고 두 개 지자체 가 서로 자기 것이라고 우기는 모습이 볼썽사납다.

1610년(광해2)에 건립된 화암서원이다. 처음에는 토정 이지 함과 명곡 이산보를 모셨고, 그후 이몽규, 이정암, 구계우 등 5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1998년 이지함 선생의 영정 을 봉안하였으며 지역 유림들이 매년 봄가을로 제향하고 있다. 수복이와 상진이가 금연(禁煙)해서 인물이 훤해졌다.

229


157次

|

2016. 6. 16 ~ 18

변산자연휴양림

다. 새만금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넓은 곡창인 만경(萬頃)・김제(金堤)평야 앞 글자에서 따온 신조어다. 이 이름에는 두 평야를 더 새롭게, 더 넓게 새로운 옥 토를 일궈내겠다는 의지가 담겨져 있다. 우리말로는 ‘아리울’이다. 물의 순우 리말인 ‘아리’와 울타리를 의미하는 ‘울’이 합친 말이다. 물을 가둬 논 울타리 라는 뜻이다. 길이 34㎞나 되는 방조제는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수년 전 한 번 지나

노는 연습을 하자, 더 늦기 전에

갔을 때는 날이 흐렸던 탓에 잘 안 보여 그 규모가 이렇듯 방대한지 몰랐다. 새만금 홍보관에 들렀다. 방조제 축조로 생긴 국토 면적은 409㎢라 했다. 이 중 토지는 291㎢로 서울 절반만 한 땅이다. 나머지 118㎢는 담수호로 남는 다. 흙을 실어 나르는 덤프트럭이 개미떼처럼 바삐 움직였다. 그래도 현재 매립 률은 20%도 채 안 된다. 돌을 붓는 게 아니라 돈을 붓고 있는 거 같았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최근 삼성은 7조 6000억 규모의 투자를 철회했다. 국내 태양광업계 대표주자인 OCI도 3조 4000억 투자계획을 백지화했다. 물 은 못 빼고 돈만 빠지고 있는 것이다. ‘단군 이래 최대 국책사업’이라는 말이

6월 16일부터 사흘 간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邊山) 일대에서 산우회 ‘몸맘 닦

점차 무색해지고 있다. 미력한 인간이 자연을 바꾸려는 시도는 애당초부터

기’ 캠프를 했다. 1월 안면도(安眠島), 3월 보령 오서산(烏棲山) 캠프에 이어 올 들어 세 번째였다. 출발 전날 하루 종일 비가 오락가락해 걱정했는데 기간 중 날씨는 더 없이 좋았다. 다음 주부터 장마가 시작된다고 하니 하늘로부터 축복받은 우리다. 김수곤, 양상진, 윤진평, 진영주, 함동일, 허정회와 객원으로 박경재가 함께했다. 박경재는 상진이와 영주 대학 같은 과 친구다. 이제까지 우리끼리 ‘동종(同種)’만 모였는데 ‘이종(異種)’과의 결합은 처음이었다. 나름 의미 있었고 서로 좋은 경험을 했다. 첫날 아침 9시 당산역을 출발해 서해안고속도로를 탔다. 12시 새만금 기 점인 비응(飛鷹)항에 도착했다. 비응항에는 ‘먹자 골목’이 아닌 ‘먹자 광장’이 있었다. 그중 mbc에 방영된 최고의 맛집이라는 식당에 들러 해물짬뽕으로 허기를 달랬다. 짬뽕치고는 8000원으로 비싼 편이었지만 대야만 한 그릇에 홍합이 가득 담겨져 나왔다. 박경재가 신고 겸 한턱을 냈다. 새만금방조제를 건너 부안댐을 들른 후 국립변산자연휴양림으로 향했

230

231


무리였던 거 같다. 지금이라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지 않기 위해 공사를 중단하고 때를 기다리는 게 좋을 거 같 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 선비들에게는 오우(五友)가 있 었다. 나이 들어감에 따라 나약해져가는 몸과 맘을 의지할 친구를 일컫는다. 퇴계 는 50세 때부터 송(松), 죽(竹), 매(梅), 국 (菊), 연(蓮)과 벗하였다. 고산(孤山)도 같 은 나이 대에 수(水), 석(石), 송(松), 죽 (竹), 월(月)을 친구로 삼았다. 일전 이메 일로 한 친구가 내게 취미가 뭐냐고 물어 왔다. 자기 벗은 산책, 독서, 글쓰기, 풍류, 인터넷이라 했다. 잠시 생각을 가다듬었 다. 책읽기, 글쓰기, 여행, 바둑, 달리기라 답했다. 모두 몰두할 수 있는 거라 좋다 는 변(辯)도 달았다. 점차 시간은 많아지 는데 그 여유를 채울 게 없다면 안타까 운 일이다. 내 벗 중 하나는 여행이다. 여행을 앞두고는 항상 마음이 설렌다. 뭔가 새 로운 것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기간이 길든 짧든, 행선지가 국내건 해외건 마 찬가지다. 이번 변산 ‘몸맘 닦기’ 캠프 때도 그랬다. 변산이 초행은 아니었다. 이제까지 두세 차례 다녀왔다. 하지만 모두 탈것에 의지했다. 이번엔 달랐다. 변산휴양림에 베이스캠프를 차려 놓고 주변 마실길을 걸었다. 걸으니 차 타고

호를 이유로 잠겨 있었다. 공무원들의 책임지지 않기 위한 보신주의가 물씬

다니면서 안 보이던 게 많이 보였다. 여러 번 이곳을 다녀간 진평이도 변산이

풍겼다. 상진이가 ‘금지 휴양림’이라는 별칭을 달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인 줄 예전에 미처 몰랐다고 했다.

내 몸을 닦기 위해 이틀간 많이 걸었다. 특히 둘째 날 휴양림에서 궁항

작년 2월 문을 연 변산휴양림은 시설은 훌륭했지만 금지행위가 많았다.

까지 걸은 부안 마실길 5코스와 4코스 풍광은 더 없이 아름다웠다. 어느 곳

심지어 바다 경관을 감상하기 적합한 건물 중앙 발코니도 안전과 사생활 보

은 여수 비렁길 같기도 했고, 또 어느 곳은 지난 달 걸은 해파랑길 영덕 코

232

233


스 같았다. 걷기처럼 좋은 운동은 없다는 게 내 지론이다. 비단 육체적으로

연습이 장인을 만든다 했다. 도산(島山) 안창호는 사랑도 연습해야 한

만 좋은 게 아니다. 정신 건강에도 유익하다. 산책하면서 깨달음을 얻은 현

다고 했다. 나는 잘 노는 것도 부단한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인(賢人)들이 많은 이유다. 우리네 보통사람들은 걸으면서 많은 아이디어를

갑자기 놀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다. 그때는 이미 힘도 없고 주변에 함께할

얻기도 한다.

친구도 없다. 놀아보지 않았으니 어떻게 노는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매사

아침 식사 전에는 논어를 읽으면서 맘을 닦았다. 휴양림은 바다와 맞닿

에 속도와 양을 줄여 나가 여유 있게 나머지 인생을 즐길 때다. 올 97세인 연

아 있었다. 방에서 팔 뻗으면 바닷물이 만져질 정도였다. 공기는 더없이 좋고,

세대 철학과 김형석 명예교수가 인생 황금기는 65세부터라고 한 인터뷰가

식전이라 정신은 맑았다. 논어 한 구절 한 구절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 1장 학

떠오른다.

이(學而)편부터 4장 이인(里仁)편까지 공부했다. “집에서는 효도하고 나와서

잘 놀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섯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계획적이고 경

는 차례를 지켜라. 행실을 조심스럽고 믿음이 가게 하라. 사람을 널리 사랑하

제적이어야 한다. 즐거워야 하고 뭔가 배울 게 있어야 한다. 그리고 중요한 건

되 인자한 사람과 사귀어라. 그리고 여력이 있거든 글을 배워라(入則孝 出則

거기서 느낀 점을 기록해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천재의 기억보다 둔재의 기록

弟 謹而信 汎愛衆 而親仁 行有餘力 則而學文).” “온화하고 착하고 공손하고

이 더 정확하기 때문이다. 나를 돌아보고 잘못된 점이 있으면 반성하고 그 전

검소하고 겸양하라(溫良恭儉讓).” 오늘을 지혜롭게 사는 데 더없이 훌륭한 가

철을 다시 밟지 않기 위해서다. 우리 산우회 캠프를 통해 노는 연습을 하자,

르침이다. 공부하는 내내 배우는 즐거움으로 배가 불렀다. 모두 자유행복학교

더 늦기 전에.

윤진평 교장선생님 덕이었다.

참가자 아침 식사 전에 논어를 읽고 있다.

234

김수곤 박경재(객원) 양상진 윤진평 진영주 함동일 허정회

235


4장

정기산행 웰빙시대 세 가지 키워드는 ‘보자’ ‘놀자’ ‘쉬자’라고 한다. 함께 얼굴 마 주보며 놀고 쉬는 것처럼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게 없다는 뜻일 게다.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산우회에 나오면 이 모든 게 한꺼번에 해결된 다. 아무리 기쁜 일이라도 그 유효기간은 3개월이라고 한다. 유효기간 내 자주 즐거운 일을 만들어 행복을 면면히 이어가자. ‘만 원의 행복’ 을 십분 누리고 있는 것도 자랑스럽다. 연회비 1만 원과 참가비 1만 원 으로 나름대로 잘 꾸려가고 있다. 이런 자생력을 갖췄기에 우리 건강 만 받쳐준다면 얼마든지 지속가능한 모임으로 ‘인생의 황금기’를 함 께 향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107次

|

2013. 11. 3

청계산

“비에 젖은 우동, 먹어 봤어?”

집을 나서는데 산우회 산행하는 날답지 않게 가는 비가 내린다. 다시 집에 들 어가 우산을 챙겼다. 비가 얼마 내리지 않을 거라는 일기예보만 굳게 믿고 별 준비 없이 배낭을 꾸렸다. 약속 장소인 청계산 옛골 종점에 왔는데도 비는 줄 기차게 내린다. 이렇게 비가 흩뿌리는데도 산우회 열성 회원들 대부분이 나왔다. 오늘 산우회에 처음 나오는 상화도 보인다. 멀리 충북 진천에서 왔다. 친구들과 등 산하기 위해 일부러 서울 나들이에 나섰는데 마침 비가 내린다. 옛골 종점에 는 우천에도 불구하고 많은 등산객들이 늦가을 단풍놀이에 나섰다. 지난달 대마도 여행을 다녀오느라 오늘 모처럼의 근교 산행인 만큼 혈읍 재를 거쳐 마왕굴까지 가기로 했다. 하지만 비로 계획을 대폭 단축해 혈읍재 가기 전 계곡에서 자리를 펼치기로 한다. 청계산(淸溪山)이라 하지만 이름과 달리 맑은 계곡이 별로 없어선지 우리가 가려는 계곡은 여름에 무척 인기가 많은 곳이다. 오늘 코스는 평소에도 인적이 드문 곳인데 오늘 비까지 내려 아 주 호젓하다. 때마침 절정에 이른 단풍은 온 산을 총천연색으로 물들여 놓았

239


다. 올 가을 이렇다 할 만한 등산을 하지 못했는데 오늘 겨우 가을의 끄트머 리를 붙잡았다.

109次

|

2013. 12. 7

북한산 둘레길

출발 한 시간여 만에 점심 예정 장소에 도착했다. 예상대로 아무도 없어 우리 일행이 물가 평평한 곳에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은섭이가 단단히 준비해 왔다. 오늘의 주 메뉴인 우동을 끓이기 전에 안주로 소시지를 내놓았다. 의섭 이네 서판교댁이 챙겨준 총각김치와 아주 궁합이 잘 맞는다. 두 번째 코스는 물만두죽이다. 원래 물만두인데 얼었던 것을 녹이니 죽이 돼버렸다. 그래도 엄 청 맛있다. 비를 맞고 있어 추운데 뜨거운 게 들어가니 몸이 확 풀린다. 옆에

상전벽해(桑田碧海)

있던 상화가 잘 준비해 왔다고 감탄한다. 연이어 우동 요리를 하느라 부산하다. 그칠 줄 알았던 비는 계속 내리고 있다. 우산 쓰고 옹기종기 앉아 있는 모습이 처량해 보인다. 누가 시켜서 하면 절대로 안 할 것이다. 우동에 고급 가마보코와 아부라기를 비롯해 안 들어간 고명이 없다. 여느 일식집 우동보다 낫다. 영주가 우스갯소리로 좌중을 즐겁 게 한다. “너희들 중에 비에 젖은 우동 먹어본 사람 있어?” 물론 아무도 없지. 먹으라 해도 안 먹겠지만 오늘 여기서는 그렇게 맛있을 수 없다.

지난밤 흩뿌린 비가 중국발 미세먼지를 확 날려버린 듯 오래간만에 시계(視

하산 길은 미군부대 후문 코스를 택했다. 이곳이 경사가 별로 없어 덜 미

界)가 넓어졌다. 새벽까지만 해도 하늘이 꾸물꾸물했는데 아침이 되니 초겨

끄럽다. 윤세진 회장이 옛골 종점으로 오겠다는 전화가 온다. 12월 북한산 우

울답지 않은 포근한 날씨다. 산우회 산행일에는 늘 날이 좋아 이제는 으레 당

이령 송년산행, 내년 5월 남상화 초청 두타산 산행, 6월 산우회 제5차 중국 태

연하게 여길 정도다. 항상 복 많이 받고 있는 산우회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산・노산 산행, 11월 영월 동강 테마여행 등 주요한 일정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식당을 나서니 종일 내리던 비는 어느덧 그쳤다.

길음역 3번 출구. 약속시간인 10시가 되니 한두 친구 빼고 거의 다 왔다. 주명갑 선생님을 비롯, 캐나다에서 온 이재활 동기, 진천 남상화 회원의 모습 도 보인다. 모두 열아홉 명이 모였다. 오늘 코스는 북한산 둘레길이다. 길음뉴타운 - 서경대 - 성북생태체험 관 - 흰구름길 - 수유시장을 거쳐 모교 후문까지의 코스다. 산행 후 은사 다 섯 분을 모시고 송년회를 하기로 되어 있는 뜻있는 날이다. 친구들의 발걸음 이 한결 가볍다.

참가자

권영삼 김수곤 김의섭 김제훈 김학규 남상화 박종헌 안은섭 유재두 윤세진 장무철 진영주 허정회

240

길음뉴타운을 지난다. 세상에 이런 상전벽해(桑田碧海)가 없다. 과거 무 질서하게 난립해 있던 삶의 흔적은 도통 눈에 띄지 않는다. 완전히 새로운 세 상이 되었다.

241


고 하시니 어언 80세. 옆에서 누군가 53학번이 아니라 53년생인 것 같다고 농을 던진다. 아직 도 목소리에 힘이 넘쳐나고, 우리 못지않게 잘 걸으신다. 매주 월요일 경기도 연천에 있는 대안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치신다. 또 주 1회 노인대학 강의와 틈 날 때마다 등산을 하는 게 건강의 비결이라고 한다. 북한산 흰구름길로 들어섰다. 올 1월 다녀갔던 길을 역방향으로 가는 것 이다. 구름전망대에 오르니 아차산 - 불암산 - 수락산 - 사패산 - 도봉산 북한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기처럼 서울 주변 명산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 는 곳이 없을 거라는 종헌이의 설명이다. 우리가 구름전망대에 간 사이 규옥이와 영주는 공초(空超) 오상순 시인 의 묘역을 찾았다. 그는 우리나라 현대시의 선구자이자 우리 시대 도인(道人) 으로 기억되고 있다. ‘흐름 위에 / 보금자리 친 / 오, 흐름 위에 / 보금자리 친 / 나의 魂 ….’ 시인이 지은 ‘방랑의 마음(1923)’의 한 구절이다.

길음초등학교 앞 가파른 언덕을 오르니 칼바위능선길이 나온다. 주말을 맞아 많은 동네 주민들이 산책에 나섰다. 옛 대일고등학교 터에는 서경대가 자 리 잡고 있다. 널찍한 공터에서 우리 산우회의 전통,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다. 능선에 올라서니 왼쪽으로 정릉, 오른쪽으로 삼양동이 펼쳐진다. 고등학 교 다닐 때 나의 주 통학로였는데 옛 자취는 온데간데없다. 당시 통학친구였 던 규옥이의 설명을 듣고도 잘 모르겠다. 그 정도로 이 동네가 변했다. 잠시 후 쉼터에서 은섭이가 바리바리 싸준 잡채와 콩나물국으로 막걸리 를 한잔한다. 주명갑 선생님께서 에너지바와 초콜릿을 한 개씩 돌리신다. 선생 님 연세가 궁금했던지 중곤이가 선생님께 몇 학번이신지 여쭌다. 53학번이라

242

산행 후 박가네 식당에서 이금산·한태근·박원상·주명갑·정오영 선생님을 모시고 송년회를 하였다.

243


선생님들과 약속시간을 지키기 위해 서둘러 하산한다. 박가네 식당 2층. 이금산, 한태근, 박원상, 주명갑, 정오영 선생님께 큰절부터 올렸다. 선생님들

111次

|

2014. 1. 4

서울둘레길

더 건강하세요! 벌써 몇 년째 이어지는 우리의 전통이다. 이어 올해 산우회를 빛낸 회원들에 대한 시상을 했다. 최우수상 박종헌, 모범상 김의섭, 이현기, 함동일, 공로상 권영삼, 봉사상 최병학 회원이 그들이 다. 비록 소찬(素餐)이었으나 선생님들과 정의(情誼)를 나누면서 한 해를 마 무리했다.

“산에 와서 영양보충 한다”

새해 첫 산행이다. 집을 나서면서 오늘 만날 산우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 린다. 당초 지하철로 가려했는데 마침 수서역행 버스가 지나가기에 집어탔다. 왠지 오늘 운이 좋아 보인다. 소한을 하루 앞둔 날 같지 않게 포근한 날씨다. 꾸어다가도 한다는 소한 추위가 온데간데없다. 요즘 자주 나타나는 짙은 미세먼지도 별로 없어 보인다. 참 이상하게도 이제까지 우리 산우회가 등산할 때는 궂은 날이 별로 없었다. 주말을 맞아 수서역 6번 출구는 서울둘레길 트레킹하려는 사람들로 북 새통이다. 매년 11월 초 중앙일보마라톤대회에서 여러 번 달리면서 지나치던 곳이라 눈에 익다. 36㎞ 지점이라 자신의 육체적・정신적 능력의 한계를 온몸 으로 느끼면서 달리는 곳이다. 작년에는 응원나온 은섭이가 건네준 시원한 콜라를 마신 덕에 결승선까지 힘 있게 달릴 수 있었다. 10시가 지나니 그 많던 사람들이 다 떠나버렸다. 그 빈 공간에서 아직 오 참가자

주명갑 강재현 고중희 권영삼 김의섭 김종욱 김중곤 남상화 박종헌 안은섭 유재두 윤세진 윤진평 이규옥 이현기 진영주 최병학 함동일 허정회

244

지 않은 친구들을 기다릴 겸 준비운동을 한다. 준비운동 하는 사이 스물한 명의 친구들 모두 다 왔다. 올해도 등산을 통해 건강과 우의(友誼)를 다지자

245


는 취지의 인사말을 하고 출발한다.

산길로 들어서는데 진입로에 웬 사람들이 줄 서 있다. 영주가 우리 친구

서울에는 안쪽에 내사산(內四山)과 바깥쪽에 외사산(外四山)이 있다.

들로부터 연회비 1만 원, 당일 회비 1만 원의 입장료를 받고 있는 것이다. 매번

전자는 남산 - 인왕산 - 북악산 - 낙산을, 후자는 관악산 - 덕양산 - 북한

하는 방법이 아니고 새롭게 하니 또 다른 재미를 느낀다. 이래저래 ‘만 원의

산 - 용마산을 일컫는다. 오늘은 외사산 157㎞ 중 수서역 - 대모산 - 구룡산

행복’이다.

- 양재IC까지 약 8㎞를 걸으려 한다. 이제까지 내사산 21㎞ 중 3/4을 마쳤고, 오늘 외사산 코스 중 그 첫 발을 내딛는 것이다.

나무계단으로 된 초입이 제법 가파르다. 이렇게 경사가 급한 곳을 갑작스 럽게 오르면 우리 몸에 여러 가지 부담을 준다. 그래서 준비운동을 해야 하는 데 등산하면서 준비운동 하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다. 준비운동은 우리 몸 에 이제부터 운동을 시작하니 운동 모드로 전환하라는 일종의 신호다.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들, 새해를 맞아 오순도순 이러저러한 덕담을 나누 며 걷는다. 한 인생 살면서 여러 사람들과 만나지만 소싯적 인연만큼 순수한 게 없는 것 같다. 이제 하나 둘 현직에서 손을 놓으면서 생기는 여유를 건전하 게 활용해야 하지 않을까. 최근 생긴 바둑모임도, 또 올해 만들 낚시모임도 다 그런 연유일 것이다. 약간 땀이 나려 하면 편평한 길이 나와 땀을 식혀준다. 오늘 코스는 오 르막내리막이 거의 없이 나지막한 자연 숲길을 걷는 자연생태탐방로다. 한겨 울인지라 바닥은 얼음이 살짝 얼어 있어 조심스럽긴 하지만 눈이 없어 걷기는 그만이다. 도심 한가운데 있는 훌륭한 삼림욕장이다. 한 시간 정도 걸어 불국사에 도착하니 먼저 와 있던 오영이가 특유의 미 소로 우리를 맞는다. 좀 늦을 것 같아 개포동에서 우리를 향해 올라왔다고 한다. 불국사는 고려 공민왕 때 창건한 유서 깊은 사찰로 약사(藥師)절로 불 렸다. 근처 양지바른 둔덕에서 간식을 먹기로 하고 자리를 편다. 오늘 대단한 성찬(盛饌)이다. 삶은 돼지고기와 문어, 보쌈김치, 배춧국, 찐고구마와 찐밤으로 한 상이 차려졌다. ‘진영주 공식’에 따라 준비한 막걸리 14병과 소주 7병이 잘 팔려나간다. 중곤이가 “산에 와서 영양보충 한다”는 농 을 던져 좌중을 웃긴다. 한잔씩 걸치니 발걸음이 더 경쾌하고 친구들 모두 행복한 얼굴이다. ‘지

고 권영삼 군(뒷줄 왼쪽 첫 번째), 고 김의섭 군(뒷줄 왼쪽 네 번째), 고 김종욱 군(앞줄 오른쪽 첫 번째) 과 함께.

246

금 이 순간’에 집중하라고 도인(道人)들은 말한다. 과거에 집착하거나 오지 않 은 미래로 괴로워하지 말고 순간순간에 몰두하라고 한다. 지금 친구들의 얼

247


굴에서 이런 모습들이 엿보인다.

왔다. ‘원주 추어탕’은 점심시간이 지났는데도 손님이 많다.

정성껏 준비한 모과차, 생강차와 커피로 입가심까지 하니 이런 ‘풀코스

공자, 맹자, 장자, 노자보다도 위대한 스승이 ‘웃자’라고 한다. 새해 우리친

새참’이 없다. 오늘도 영삼이가 솔선수범해 뒷정리를 깨끗이 한다. 함께 산에

구들 더 많이 웃는 한 해가 되기 바라는 인사를 한다. 윤 회장이 동기회 지원

다닌 지 10년이 다 돼가니 누가 뭐라 안 해도 자기 역할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금이라며 금일봉을 전한다.

우리 친구들이 새해 건승을 다짐하며 외친 ‘파이팅!’이 온 산에 울려 퍼진다. 강남 고층 아파트와 빌딩이 한눈에 펼쳐진다. 도심의 속살 전모를 조망 할 수 있다는 게 서울 둘레길의 특징이다. 또 산꼭대기까지 올라가지 않고 산 허리를 이리저리 돌아다녀 우리에게 제격이다. 오늘 코스에 친구들 모두 만족 해하는 것 같아 다행이다. 능인선원 삼거리까지 왔는데 윤세진 회장이 ‘원주 추어탕’에 있다고 연 락이 온다. 오늘 오전 다른 일정이 있어 산행은 함께하지 못했지만 뒤풀이에 시간을 내서 왔다. 마지막 남은 1㎞를 서둘러 마쳐 코트라 빌딩 쪽으로 내려

참가자

강재현 고중희 권영삼 김동준 김순중 김의섭 김제훈 김종욱 김중곤 김학규 남상화 박종헌 안은섭 윤세진 윤진평 오영 이규옥 이도선 이현기 진영주 최병학 함동일 허정회

248

249


113次

|

2014. 2. 8

관악산

사랑하는 마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다 가자 김의섭 회원 추모산행

육봉 능선이 한눈에 들어오는 관악(冠岳) 최고의 명당. 온 산에 흰 꽃이 펄펄

고인께서는 생전 산에 대한 남다른 열정과 봉사정신으로 산우회 발전에

날리고 있다. 하늘나라에 올라간 의섭이가 우리를 만나러 내려오는 것 같다.

크게 기여했지만, 너무나도 일찍 하늘나라로 올라가 우리의 마음을 서글프게

그의 집 정원에 핀 눈꽃을 보고 아이마냥 행복해하던 바로 그 눈이다.

합니다.

주명갑 선생님과 산 친구들이 의섭이의 넋을 기리기 위해 자리를 함께했

누구보다 건강했던 그가 우리 곁을 떠났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

다. 자그마한 탁자 위에 의섭이의 영정을 모셨다. 운악산 무지개폭포 정자 근

다. 집안에서는 부모님께 효심이 깊었던 아들이자 자상한 남편이었으며, 두 자

처에서 담은 등산복 차림의 생전 마지막 모습이다. 지금이라도 사진에서 뛰쳐

녀교육에 열과 성을 다했던 아버지였습니다. 유달리 부부간 금실이 좋아 주위

나와 “반갑다! 친구야!”라고 말을 붙일 것 같다.

의 부러움을 많이 샀던 게 이제와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합니다.

동기회를 대표해 김제훈 총무가 분향을 한 후, 평소 그가 즐기던 소주 한

밖에서는 매사에 적극적이고 긍정적이었던 우리들의 벗이었습니다. 친구

잔을 정성껏 따라 드렸다. 이어 고인을 추모하는 묵념을 올렸다. “그동안 고마

들과의 만남에서는 항상 재치 넘치는 유머와 밝은 낯으로 자리를 이끌었기에

웠습니다. 이제 이 세상일은 잊고, 편히 쉬시기 바랍니다.”

그를 잃은 아픔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내가 준비한 추모사를 읽었다. “신일고등학교 1회 산우회 회원 일동은 지난 달 23일 경기도 운악산에서 친구들과 등산 도중 유명을 달리한 고 김의섭 회원의 거룩한 뜻을 기리고 그 넋을 추모하기 위하여 이곳 관악산에 모였습니다.

250

어린아이처럼 순수했고, 막걸리처럼 소탈했으며, 친구들에게는 무엇이든 베풀기를 좋아했던 그였지만 자신에게는 옷 하나 사 입는 것도 망설일 정도 로 검약했던 고인이었기에 그 그리움은 우리들 가슴에 더 깊이 사무칩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하신 주명갑 선생님과 우리 산 벗들은 고인의 숭고

251


한 얼을 받드는 ‘믿음으로 일하는 자유인’이 될 것을 다짐하며, 간절하고 경

재물 부자이면 걱정이 한 짐이요,

건한 마음으로 고인의 명복을 다시 한 번 빕니다. 친구여! 고마웠다! 잘 쉬시

마음 부자이면 행복이 한 짐인 것을 …

게!” 죽을 때 가지고 가는 것은 주명갑 선생님의 기도가 이어졌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버지를 잃은 가족

마음 닦은 것과 복 지은 것뿐이라오.

의 아픔을 위로하고,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이를 잘 극복해 나가는 슬기로 움을 지니게 해 주시고, ‘믿음으로 일하는 자유인’으로 거듭 날 것을 갈구하

누군가를 사랑하며 살아갈 날도

는 내용이었다.

많지 않은데 …

친구 대표로 유재두 회원이 헌시(獻詩)를 낭독했다. 마치 의섭이가 하늘 나라에서 우리들에게 당부하는 듯한 메시지였다. 시를 읽는 친구가 슬픈 감정

남은 세월이 얼마나 된다고

에 북받친 나머지 흐느낀다. 듣는 우리들 모두 속으로 운다.

가슴 아파하며 살지 말자.

남은 세월이 얼마나 된다고

버리고 비우면

가슴 아파하지 말고 나누며 살다 가자.

또 채워지는 것이 있으니

버리고 비우면

사랑하는 마음으로 …

또 채워지는 것이 있으리니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다 가자.

나누며 살다 가자. 헌시 낭독에 이어 일동 묵념을 함으로써 추모식을 마쳤다. 눈은 계속 내 내 마음이 예수님, 부처님마음이면

리고 있다. 관악의 모든 산천초목이 소복(素服)으로 갈아입었다. 유난히 눈이

상대도 예수, 부처로 보이는 것을 …

적었던 올 겨울. 한데 오늘은 눈이 그치지 않는다. 의섭이가 온종일 내내 우리 와 함께했다.

누구를 미워도, 누구를 원망도 하지 말자.

많이 가진다고 행복한 것도, 적게 가졌다고 불행한 것도 아닌 세상살이.

252

참가자

주명갑 고중희 권영삼 김동준 김수곤 김순중 김제훈 김중곤 박종헌 안은섭 양상진 유재두 윤세진 이규옥 이현기 진영주 허정회

253


122次

|

2014. 7. 5

서운산 - 진천 엽돈재

많은 대화로 배부른 진천 나들이

충북 진천군 백곡저수지 근처에 있는 친구의 집은 잘 꾸며져 있었다. 14년 전 편리한 서울 삶을 뒤로하고 이곳에 내려와 두 부부가 함께 일군 작품이다. 집 은 여러 번에 걸쳐 증개축 했지만 그러한 설명을 듣기 전까지는 티가 전혀 안 날 만큼 자연스러웠다. 야생화가 주를 이룬 정원은 조경 잡지에 소개될 정도 로 개성이 돋보였다. 1200평 대지에는 밤나무, 감나무 등 기본적인 유실수는 물론이고, 좀처럼 보기 힘든 산사, 개복숭아를 비롯한 이름 모를 나무들이 자 리 잡고 있었다. 집을 지키고 있는 여섯 마리의 개는 너른 그들의 집에서 나름

앙 정원은 대여섯 그루의 느티나무가 햇살을 가려주었다. 그 밑으로 보이는

호사를 누리고 있었다. 7월 산우회 서운산 정기산행을 마치고 초대받아 들른

작은 연못에는 여러 종류의 수련이 그득했다. 약 100평 정도의 정남향 2층 본

남상화 회원 전원주택 얘기다.

채는 때마침 내리쬐는 한여름 햇빛으로 환히 빛나고 있었다.

우리 일행이 집에 들어서자 정원에는 이미 우리들을 위해 음료를 비롯한

나이 들수록 전원생활을 동경하는 게 보편적이다. 그러나 뜻대로 안 되

각종 먹을거리들이 한 상 차려져 있었다. 그 가운데 집 뜰에서 채취한 산사 열

는 게 세상사다. 현실에 얽힌 여러 가지 여건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그 모

매, 개복숭아, 솔잎으로 만든 주스는 각각에서 풍기는 독특한 향이 매력적이

든 장벽을 허물고 우리 친구는 해냈다. 그는 젊어서부터 나이 쉰이 되면 시골

었다. 이걸 마시면 고기를 먹어도 탈이 안 난다는 부인의 덧붙임에는 유명하

에서 살겠다는 마음을 먹고 그 터를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물색하다가 직장

다는 시중 찻집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자부심이 묻어났다. 우리들이 자리한 중

에서도 멀지 않고 풍광이 좋은 이곳을 택했다. 사람이 제일 먹기 힘든 게 ‘마

254

255


음먹기’라는데 그는 그걸 실천으로 옮겼다. 물론 거기에 필수적인 것은 부부 간의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난 세월에 걸쳐 벽돌 하나, 나무 한 그 루, 꽃 한 송이를 지성으로 쌓고 키웠다. 세상에 노력 없는 결실은 없는 법이다. 이렇게 만들기까지 우리 친구보다 더 힘들었을 부인에게 이제까지 무엇 이 가장 어려웠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녀는 1초의 지체도 없이 ‘텃세’라고 했 다. 이해가 잘 안 되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주변을 흘낏 훔쳐보았어도 근처에 는 그런 냄새가 날 이렇다 할 시골집이 보이지 않았다. 집도 몇 채 없었고, 그 나마 다들 번듯했다. 하지만 처음 몇 년간 이곳 이웃들은 서울에서 내려온 이 방인에게 싸늘한 시선으로 대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들에게 온갖 정성을 기울였고 이제는 거의 이곳 사람이 됐다. 텃세 이겨내기는 귀농・귀촌 교과서 첫 장에 나올 정도로 우리의 전원생활을 가로막고 있는 공통적인 장애물이 다. 우리 모두 생각해 볼 문제다.

256

257


이곳에 살면서 단체 손님을 많이 치러본 듯한 부인의 상차림 솜씨는 일 품이었다. 예의 천연주스로 시작해 집에서 가꾼 각종 산나물, 올갱이 된장국

123次

|

2014. 8. 2

청계산

과 돼지고기, 물오징어 바비큐는 아침 일찍 집을 떠나 출출했던 우리들의 오 감을 즐겁게 하기에 충분했다. 우리들은 주인이 준비한 것의 1/3도 소화시키 지 못하고 자리를 정리했다. 덜 먹고, 덜 마시고 하지만 서로 간의 많은 대화 로 배부른, 생거(生居) 진천 나들이였다.

어른인지 아이인지 구분이 안 된다

비다운 비 한 번 안 오고 장마가 끝이란다. 아무리 이상 기후라지만 해도 너 무 한다는 생각이 든다. 산우회 계곡산행을 하는 달인데 계곡에 물이 없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태산이다. 8월에 물 타령을 하는 세상이 됐다. 휴가철이라 손님이 없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은 기우였다. 집결 장소 인 청계산 옛골 버스종점, 약속시간인 10시가 되니 한두 명을 빼곤 다 왔다. 모두 15명이 모였다. 윤세진 동기회장이 일부러 나와, 몸보신하라고 봉투를 하 나 건넨다. 아침 시간인데도 그늘을 벗어나면 열기가 후끈거린다. 오늘 물놀이하기 로 한 계곡까지는 천천히 가도 한 시간이면 닿는다. 산허리 중간중간 개간을 해 만든 텃밭에서 난 채소를 아낙들이 팔고 있다. 한쪽 구석에는 주인 없을 때 돈 집어넣는 함(函)도 덩그러니 놓여 있다. 비지땀을 한 바가지 흘리고 나니 우리가 점지해 둔 계곡이 나타난다. 반 참가자

고중희 김동준 김종욱 남상화 박종헌 안은섭 유재두 윤명술 윤진평 이규옥 이현기 장무철 정락용 진영주 최병학 함동일 허정회

258

갑게도 사람 소리가 들린다. 물이 있다는 증표다. 사람도 뜸하고 물도 제법 많 이 흐르는 너른 곳에 자리를 잡는다.

259


은섭이가 바리바리 챙겨온 안주를 중심으로 두 팀으로 자연스레 나뉜 다. 술이 고픈 게 아니라 물이 고픈 듯 막걸리가 잘 팔려나간다. 하지만 우리 친구들 술 마시는 실력이 예전만 못하다. 영삼이마저도 최근 평소의 1/3로 마 시는 양을 줄였다. 소(沼)에서 평화롭게 노닐던 물고기들이 우리들이 오자 화들짝 놀란다. 큰 놈은 긴 손가락만 한 것도 있다. 발을 담그자 이놈들이 발을 깨무는 등 텃 세를 부린다. 손바닥을 오므려 잡아보려 하지만 요리조리 잘 빠져나간다.

르지만 서로 물장난을 하면서 파안대소한다. 이렇게 놀 때는 어른인지 아이인 지 구분이 안 간다. 고등학교 친구들이니까 가능한 얘기다. 금명간 태풍 소식이 있어선지 하늘엔 먹구름이 떠 있다. 한바탕 비가 쏟 아질 것 같다. 아직 무더위가 한창이라 내려가고 싶지는 않지만 마냥 있을 순 없다. 우리 산우회의 자랑인 뒷자리 정리를 깨끗이 하고 일어선다. 하산 길은 산속 숲길을 택했다. 두부집에서 뒤풀이를 가진다. 아침에 지 각한 장무철 회원이 한턱낸다.

술 한잔 걸치니 우리 친구들 장난기가 동한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모

참가자

고중희 권영삼 김동준 김수곤 박종헌 안은섭 유재두 윤세진 윤진평 이현기 장무철 진영주 최병학 함동일 허정회

260

261


125次

|

2014. 9. 6

수락산

행복의 세 가지 척도는 ‘관절, 관계, 일’

아침저녁으로 제법 시원한 바람이 이는 요즈음이다. 등산하기 딱 좋은 때다. 아니, 등산뿐만 아니라 뭐든지 하기 좋은 계절이 왔다. 때론 가끔 변덕도 부리 지만 자연의 변화는 실로 신묘하다. 수락산역 1번 출구. 시간 계산을 잘못해 한 30분 일찍 도착했다. 역 구내 에서 항상 일찍 다니시는 주명갑 선생님을 만났다. 언제나 활력이 넘치시는 모 습이 보기에 좋다. 역사를 빠져나오니 재두가 우리를 반긴다. 그가 출구 앞에 서 열심히 떡을 팔고 있는 할머니로부터 송편을 사왔다. 그 할머니 장사 솜씨 가 보통이 아니더란다. 10시 3분이 되니 다 모였다. 시간 약속 잘 지키는 우리 산우회원들이 자 랑스럽다.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첫날임에도 불구하고 모두 17명이나 모였다. 오래간만에 손재춘, 윤명술 회원도 나왔다.

맞는 산행이 더없이 즐겁다. 나이 들어감에 따라 삶의 질을 가름하는 척도로 전문가들은 세 가지를

오늘 산행은 진달래능선으로 ‘매월당’ 정자까지 가는 코스다. 쉬엄쉬엄

꼽는다. 튼튼한 관절, 좋은 교우 관계와 적당한 할 일이 바로 그것이다. 한 달

가도 1시간 30분이면 올라간다. 인적도 뜸하고, 그늘이 많아 우리들이 오르기

에 한 번, 산우회 등산을 하면 최소 이 중 두 가지는 해결된다. 우리 산우회 존

에는 제격이다. 친구들과 함께 가는 여름을 아쉬워하며, 오는 가을을 반갑게

재의 이유가 되는 셈이다.

262

263


능선을 계속 오르다 보니 땀이 비 오듯 난다. 북한산 인수봉과 도봉산 선인봉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서 잠시 쉬었다 간다. 쉬면서 먹는 윤진평표

127次

|

2014. 10. 4

사패산

배와 진영주표 토마토가 인기다. 직접 농사 지은 것이기에 그만큼 더 귀한 것 이다. 17명 대부대이다 보니 선두와 후미가 제법 차이가 난다. ‘매월당’이 목표 였지만 그 못미처 길 옆 쉼터에 자리를 편다. 언제 그렇게 힘들었냐는 듯 이내 온몸에 화기가 돈다. 어디서나 마찬가지지만 특히 산에서 먹고 마시는 즐거움 은 다른 데 견줄 바가 아니다.

막걸리와 소주, 이리저리 뒹굴다

재춘이가 준비해 온 스카치위스키 ‘블루’가 분위기를 한결 돋운다. 그 때 문에 가져간 막걸리와 소주가 찬밥 신세다. 확실히 우리 친구들 주량이 옛날 보다 많이 줄었다. 그만큼 이제 자신의 건강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리라. 뒤풀이로 마련한 수락산 입구 노천 카페. 윤진평 회원이 ‘행복 논어’ 한 권씩을 돌린다. 그가 교장으로 있는 자유행복학교에서 최근 펴낸 소책자다. ‘행복을 만드는 세 가지 방법’이라는 부제가 눈에 띈다. “인생의 목표는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다. 논어는 그 길을 가르쳐 준다.

집을 나서는데 코끝에 찬바람이 인다. 며칠 후면 찬 이슬이 내린다는 한로(寒

진리와 행복의 길을 찾아 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 바로 실천에 옮겨야 할 일이

露)이니 그럴 만하다.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한 전형적인 가을날이다.

논어 읽기다.”

오래간만에 가는 사패산을 향한 발걸음이 어느 때보다 가볍다.

책 머리말에 있는 왜 우리가 지금 논어를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다.

회룡역 역사(驛舍)의 규모와 시설이 몰라보게 현대화되었다. 의정부 경

귀한 책을 펴낸 윤진평 교장에게 감사와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다음 달 산행

전철 개통과 더불어 민자 역사로 새로 태어난 것이다. 역 바로 앞 자전거 주차

은 사패산이다. 더 많은 친구들과 등산을 통해 건강을 다지고 살아가는 얘기

빌딩은 입지에 비해 과잉투자라는 생각이 든다. 10시 5분 주명갑 선생님을 비

를 나누고 싶다.

롯한 11명의 산우들,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다. 산세가 도봉산 못지않건만 사패산만 해도 등산객이 적은 편이다. 그러기 에 우리가 등산하기에는 더 쾌적하다. 등산로 입구 공터에서 맨손체조로 간 단하게 준비운동을 한다. 함께 오르던 다른 등산객들도 우리를 따라 한다. 회룡사를 지나 사패산 능선까지 계속 오르막이 이어진다. 아직 본격적인 단풍철은 아니지만 나뭇잎들은 엷은 우수를 띠고 물들어간다. 엊그제만 해

참가자

고중희 권영삼 김동준 김수곤 김중곤 박종헌 손재춘 안은섭 유재두 윤명술 윤진평 이현기 주명갑 진영주 최병학 함동일 허정회

264

도 뜨거웠던 햇살의 위용은 간 데 없다. 땀으로 흠뻑 젖은 채 능선에 오르니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온몸이 금방 식는다.

265


사패산 정상으로 가는 삼거리 근처 널따란 바위 위에 자리를 펴고 둘러앉았다.

사패산 정상(해발 552m) 가는 삼거리 근처 널따란 바위 위에 자리를 편다. 산 밑 전 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 좋은 곳이다. 김 밥과 은섭이가 준비해 온 돼지 등갈비찜으로 요기를 한다. 조금 준비해 간 막걸리와 소주 가 남아 이리저리 뒹굴며 푸대접을 받는다. 범골로 내려오는 길에 후식으로 맛 본 윤진평표 배가 일품이다. 올 한 해 땀 흘려 가 며 직접 농사지은 것이다. 의정부 예술의 전당 근처 노천카페에서 캔 맥주로 뒤풀이한다.

참가자

주명갑 김동준 김종욱 박종헌 안은섭 윤진평 이현기 진영주 최병학 함동일 허정회

266

267


130次

|

2014. 12. 6

북한산 우이령

별로 없다. 이 좋은 코스를 거의 우리가 독차지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 도다. 이정표에 우이동까지 4.5㎞라고 돼 있다. 천천히 가도 두 시간이면 충분 한 거리다. 우리 일행 열세 명은 삼삼오오 짝을 이뤄 그간 미뤄온 얘기를 도란 도란 나누며 걷는다. 살다 보니 행복이 별 거 아니더라, 앞으로 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 있는 게 행복이더라, 잠시라도 온갖 시름과 걱정 을 떨치고 자신이 즐겁다고 여기면 그게 바로 행복이 아닐까 생각한다. 오늘

바로 지금 여기에 있는 게 행복이더라

도 우리는 ‘만 원의 행복’을 맘껏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발걸음이 가볍다. 천 년 고찰 양주 오봉산 석굴암 입구에서 발을 멈췄다. 고흥산 생굴야채 무침, 찐 고구마, 삶은 달걀, 얼큰한 배추된장국 등 은섭이가 새참거리로 이것 저것 준비도 많이 해왔다. 사가지고 올라간 막걸리 여섯 병, 소주 한 병 중 막 걸리 네 병만 간신히 비웠다. 나이 들수록 우리 친구들의 술 실력이 점점 줄어 든다. 특히 산에서 지나친 음주는 사고와 직결되기에 조심해야 한다. 요즘 우 리나라 등산문화도 많이 개선돼 예전보다는 산행 중 음주를 덜 하는 경향이 있어 보인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산우회 제130차 산행이자 한 해를 마감하는 송년 산행이다. 오늘 산행은 북

오봉(五峰) 첫 전망대다. 오봉 중 제4봉과 제5봉이 수줍은 듯 얼굴을 보

한산 우이령을 택했다. 예전부터 한 번 걷고 싶었지만 인터넷을 통해 사전 예

이기 시작한다. 기묘한 자연 예술품을 무료로 감상하고 있다. 등산을 하면서

약해야 하는 번거로움에 번번이 뒤로 미루곤 했다. 우이령은 우이동과 송추

얻게 되는 부수입이다. 이뿐 아니다. 도시의 오염된 탁한 공기에 갇혀 있다가

쪽에서 각각 하루 400명만 제한적으로 입장할 수 있다. 우리는 산행 후 모교

산에 오면 가슴이 확 트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공짜지만 발품을 팔아야 얻

근처 식당에서 선생님들을 모시고 점심 식사를 하게 되어 있어 송추에서 출 발했다. 요즘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10도를 기록하는 등 12월 초겨울 치고는 추 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한데 오늘은 바람이 없어선지 산행하기에 딱 적합하 다. 교현탐방지원센터에서 예약자 신분 확인 후 우이령길 트레킹에 나섰다. 우 이령은 옛날 경기도 양주와 우이동을 가로지르는 소로(小路)였으나 6・25 전 쟁 시 미군 공병대가 차량 통행이 가능한 군사도로로 확장했다. 그 후 1969년 청와대 타격을 목적으로 남파된 김신조 일당의 1・21사태를 계기로 폐쇄되었 다가 2009년 일일 탐방객수를 제한하는 조건으로 40년 만에 재개방되었다. 단풍철도 지나고 겨울이라 그런지 여느 북한산 등산로답지 않게 사람이

268

269


을 수 있는 것들이다.

대문형무소 등 한 맺힌 근대역사의 현장을 체험할 수 있고 신라 진성여왕 때

오봉이 한눈에 꽉 찬다. 그 자태가 북한산 전면에서 봐 오던 것보다 더

창건한 봉원사와 세종 때 만든 봉수대 등이 있는 둘레길이다. 내년부터는 최

빼어나다. 이 오봉에 얽힌 전설이 재밌다. 한 마을의 다섯 총각이 원님의 어여

근 전 구간이 개통된 157㎞에 달하는 서울둘레길을 걸을 계획이다. 그 길을

쁜 외동딸에게 장가 들기 위해 건너편 상장능선의 바위를 던져 올리기 시합

걸으면 우리가 오랫동안 살아오고 있는 서울을 더 가까이에서 더 자세하게

을 해 현재의 기묘한 모습의 다섯 봉우리가 만들어졌다. 이런 전설을 통해 알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수 있듯 우리 선조들은 요즘 말하는 스토리텔링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우리 나라 절경이라는 데는 어디를 가도 이런 얘깃거리들이 없는 곳이 거의 없다. 식당에 선생님들을 모신 시간에 빠듯하게 닿을 것 같아 중곤이와 둘이 서둘러 하산했다. 우이동 입구 옛 그린파크 터에 짓다 만 고급 빌라가 흉물처 럼 남아 있다. 이럴 바에는 처음부터 건축허가를 내주지 말든가, 내줬다면 어 떻게든 빨리 준공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약속 시간 5분 전에 도착했는데 선생님들께서 벌써 자리를 잡고 계셨다. 이금산, 박원상, 주명갑, 정오영 선생님께서 오셨고, 한태근 선생님은 건강이 안 좋으셔서 참석하지 못했다. 이 중 이금산 선생님과의 인연은 중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가 1964년이었으니 정확하게 지금부터 50년 전이다. 반 세기란 세월이 이렇듯 빨리 흘러갔다. 1927년생이시니 내년이면 89세가 된다. 예전보다 건강이 좋아지신 것 같아 마음이 한결 가볍다. 이제까지 해오던 대로 아직 새해는 안됐지만 선생님들께 이른 세배를 올 렸다. 언제 봐도 참 아름다운 광경이다. 이어 한 해 동안 우리 산우회 발전에 기여한 회원들에 대한 시상이 이어졌다. 올해 회원상 MVP로 박종헌 회원이 선정되었다. 지난 6월 중국 태산・곡부 문화기행 추진단장을 맡아 성공적으로 행사를 마친 데다 올해 정기산행에 개근까지 했다. 올해 우수 회원으로 이현 기, 김동준, 권영삼 회원이, 공로상으로 최병학 회원이 그리고 특별상으로 올 해 정회원으로 입회에 열심히 활동한 주명갑 선생님께서 수상했다. 올해도 친구들과 여기저기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이 난을 빌려 올 한 해 도 무탈하게 산행을 마치도록 협조한 모든 회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특히, 산우회 발전을 위해 윤세진 동기회장께서 물심양면으로 많은 도움을 주셨다. 신년 산행은 1월 3일, 서울 서대문구 안산(鞍山)자락길을 걷는다. 서

270

참가자

고중희 김동준 김수곤 김중곤 박종헌 안은섭 윤명술 윤세진(뒤풀이) 이규옥 이현기 진영주 최병학 함동일 허정회

271


131次

|

2015. 1. 3

안산 자락길

“다음엔 집사람과 함께 와야겠다”

새해 첫 산행이다. 안산(鞍山)자락길을 택했다. 자락은 옷의 아래로 드리운 부 분을 뜻한다. 요즘 흔히 쓰이는 둘레길을 대신한 참신한 명명(命名)이다. 자락 길은 2013년 11월 서대문구가 관내 안산 일대에 조성한 약 7㎞의 순환로다. 보행약자들도 이용할 수 있도록 계단이 없고 대부분 목재 데크로 되어 있다. 곳곳에 쉼터와 전망대, 깨끗한 화장실이 있어 여유롭게 산책을 하기에 제격이 다. 잣나무, 메타세쿼이아, 아까시나무, 가문비나무로 둘러싸인 숲은 삼림욕하 기에 그만이다.

여 지나다니기도 어려울 정도라 한다. 보현봉, 승가봉, 사모바위, 비봉, 향로봉 등 북한산 서북주릉이 한눈에 들

출발은 독립문역 옛 형무소가 있던 서대문역사공원이다. 60여 년 서울

어온다. 전망대 겸 쉼터에 이런 곳에선 보기 드문 북카페가 있다. 사람들이 쉬

에 살면서 서대문형무소를 이처럼 가까이 접하기는 처음이다. 1907년 일제가

면서 자유롭게 책을 돌려 읽는 곳이다. 책장이 그리 크지는 않지만 기증 받은

우리 애국지사들을 투옥하기 위해 지은 것이다. 한성과학고까지의 급경사 언

책으로 가득 차 있다.

덕을 오르니 이내 안산자락길로 접어든다.

그 한쪽 옆에는 야생동물들의 먹이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먹이 구하기

제법 추운 겨울날이건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그만큼 안산자

힘든 겨울에 필요한 그들의 양식이다. 꼭 이런 게 필요한 지는 사람마다 생각

락길은 서울시민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도심 속 공원이다. 경치를 감상하기에

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생명을 귀히 여기는 어느 마음 착한 사람의 정성이 고

는 겨울보다는 봄, 여름, 가을이면 더 좋을 듯싶다. 하지만 그때는 사람에 치

맙다.

272

273


이구동성으로 오늘 트레킹 코스가 좋다고 한다. 신년 첫 산행인데 산엘 가야지 무슨 둘레길이냐고 심드렁하던 친구까지도 그랬다. 나중에 부인과 함 께 다시 오겠다는 친구도 여럿이다. 이렇게 친구들이 만족해할 때 새삼 ‘만 원 의 행복’을 느낀다. 올해 산우회는 산보다는 오늘과 같은 둘레길을 많이 다닐 계획이다. 두 번에 걸친 해파랑길 트레킹과 백악구간으로 한양도성길을 마무리할 것이다. 157㎞에 달하는 서울둘레길을 시작하기로 했다. 6월에는 러시아로 가 시베리 아 횡단열차도 타 볼 예정이다. 이렇게 산우회와 함께하면 즐겁고 행복하고 건강하게 될 것이다. 나이 들 수록 친구들과 함께 여행하는 것만큼 좋은 추억거리도 드물 것이다. 그러다보 면 2015년 한 해도 멋지게 갈 것이다. 뒤풀이에 참석한 김인중, 뒤풀이 자리를 마련해준 양상진 동기에게 감사드린다.

메타세쿼이아 숲길을 지나 대형 광장에서 막걸리로 목을 축일 겸 자리를 폈다.

메타세쿼이아 숲길을 지나니 대형 광장이 나온다. 식탁과 의자도 갖춰져 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간식을 즐기고 있다. 우리도 막걸리로 목을 축일 겸 자리를 편다. 연세대, 이화여대를 비롯한 신촌 일대가 눈 밑에 들어온다. 이곳은 조선 개국 후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 궁궐터 후보지 중 하나였다. 당시 정도전, 무 학대사, 하륜 등이 궁궐터를 물색할 때 하륜은 이곳을 점지했다 한다. 하지만 결국 정도전의 주장대로 지금의 경복궁 자리에 궁궐이 들어서게 되었다.

274

참가자

주명갑 김동준 김수곤 김인중 김중곤 박종헌 안은섭 양상진 유재두 윤명술 이현기 정락용 진영주 최병학 허정회

275


132次

|

2015. 2. 7

관악산

“산에서 떡국 먹어 봤어?”

오전 10시, 사당역 6번 출구 앞 공원. 2월 첫 토요일을 맞아 많은 등산객들이

(前菜)가 나온다. 여기에 은섭이가 정성 들여 준비해 온 떡국을 올리니 진수

삼삼오오 모여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 그 가운데 반가운 얼굴이 보인다. 올해

성찬이 따로 없다. 오 회장이 ‘오랫동안 징그럽게 어울리자’라며 ‘오징어’로 건

새로 선임된 동기회 오염진 회장이 처음 산우회 산행에 나왔다.

배를 한다. 산에서 처음 맛보는 떡국 맛에 오 회장이 감탄을 한다.

2월 초 치고는 포근한 날이다. 내일은 영하 13도까지 떨어진다고 한다.

나이 들어 갈수록 친구들이 건강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쓴다. 술도 줄이

정말 신묘할 정도로 우리 산우회 산행 택일에 많은 운이 따른다. 이래저래 감

고, 담배도 덜 피운다. 오늘 산행 나온 13명이 소주 1병에 막걸리 5병을 겨우

사할 일이다.

비웠고, 담배는 그중 1명만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제 남는 것은 건강밖에

시장통 지나 등산로 초입에서 오염진 회장의 인사말 후 스트레칭으로 적

없다.

당히 몸을 푼다. 올겨울 서울에는 예년에 비해 눈이 덜 내렸다. 이맘때는 아직

최근 간암으로 입원했던 산우회 함동일 회원의 수술경과가 좋아 다행이

음지에 잔설이 있는데 올해는 눈을 씻어도 안 보인다. 벌써 입춘도 지났으니

다. 수술 후 그의 얼굴에 묻어 있던 자신감으로 볼 때 머지않아 훌훌 털고 일

올 겨울은 다 간 셈이다.

어날 것이다. 30년간 9가지 암을 극복하고 10번째 간암 투병을 하고 있는 사

12시, 오늘 목적지에 닿았다. 관악산 주봉인 연주대가 정면으로 바라보이 고 앞이 훤히 틔어 시야가 넓다. 기(氣)가 세다는 관악산 중에서도 가장 센 곳 이라 한다. 산우회 친구들이 이곳에서 기를 많이 받아 더 건강해지기 바란다. 메인 요리에 앞서 바나나, 삶은 계란, 떡, 오향장육, 방울토마토 등 전채

276

람도 있다고 한다. 동일이의 쾌유를 빈다. 이제까지와는 달리 낙성대 방향으로 하산한다. 산은 천(千)의 얼굴을 지 녔다. 코스만 약간 달리 해도 전혀 다른 산으로 변모한다. 하지만 산은 겉모습 은 바뀌더라도 그 깊은 속은 늘 변함없다.

277


낙성대역 앞 호프집. 오는 6월 산우회 6번째 해외여행 추진단장으로 장 무철 회원을 만장일치로 추대했다. 블라디보스토크로 날아가 역사탐방도 하

133次

|

2015. 3. 7

제1차 서울둘레길

고 시베리아 횡단열차도 맛 볼 것이다. 추진단장직을 수락한 장무철 회원과 뒤풀이 자리를 마련해 준 오 회장께 감사드린다.

둘레길이 아니라 올레길이네

봄기운이 완연하다. 어제만 해도 쌀쌀했는데 하루 사이에 이렇게 달라졌다. 기승을 부리던 동장군도 자연의 섭리에는 어쩔 수 없나 보다. 이제 며칠 후면 여기저기서 반가운 꽃소식이 들리겠지. 산우회 제133차 산행이다. 올해 산우회 역점산행으로 작년에 조성이 끝 난 서울둘레길 157㎞를 걷기로 했다. 오늘 그 중 제1코스 14㎞를 걸을 계획이 다. 도봉산역에서 화랑대역까지다. 주말을 맞아 서울창포원에 우리처럼 서울둘레길을 걷기 위해 많은 사람 이 모여 있다. 창포원은 1만 6000평 규모로 꽃창포를 비롯한 붓꽃을 주제로 한 서울시 생태공원이다. 관리사무소에서 서울둘레길 안내지도를 구했다. 휴 대하기 편하게 수첩형으로 제작했고 디자인도 멋지다. 중랑천 초입에서 이제 산우회 전통이 돼버린 스트레칭 체조로 간단히 준 비운동을 했다. 과거 지저분했던 중랑천을 깨끗하게 정비하고 천변 산책로를 참가자

김동준 김수곤 김중곤 안은섭 오염진 유재두 윤명술 윤진평 이현기 장무철 진영주 최병학 허정회

278

조성해 너무 멋있어졌다. 양재천 정비를 계기로 청계천, 중랑천, 탄천, 안양천 등도 이제는 시민 품으로 돌아왔다. 지자체가 벌인 사업 중 가장 후한 평가를

279


받고 있다. 수락산으로 접어든다. 많이 다녀본 산이지만 둘레길은 기존 등산로와 달라 새로운 맛이 난다. 등산로 중 훼손된 곳은 보수(補修)하고, 걷기 편리하 도록 인공 구조물을 곳곳에 설치했다. 또 군데군데 휴게시설, 쉼터, 전망대를 만들어 시민들이 운동하면서 휴식하도록 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서울은 온통 아파트뿐이다. 가히 아파트 공화국이 라 할 만하다. 우리나라처럼 아파트가 많은 나라가 또 있을까. 여러 가지 편리 한 점도 있지만 문제 또한 많은 주택구조라 생각한다. 건너편 선인봉의 위용이 한눈에 들어온다. 언제 봐도 늠름한 모습이다. 숲에 들어가면 그 산의 모습을 보지 못하지만 밖에서는 잘 볼 수 있는 것이 다. 둘레길을 걷는 매력 포인트 중의 하나다. 어느덧 12시가 되었다. 노원골 지나 양지바른 쉼터에 자리를 편다. 은섭 이가 준비해 온 등갈비, 소시지, 동치미 국수로 시장기를 푼다. 주명갑 선생님 이 준비해 오신 초콜릿은 후식으로 제격이다. 자리를 정리하고 계속 걷는다. 오늘 제1코스는 서울둘레길 중에서도 난이도가 가장 높은 곳이다. 그래선지 오르막 내리막이 많다. 오죽하면 둘레길이 아니라 올레길이라는 말이 나올까. 채석장을 지난다. 화강암으로 된 거대한 치마바위다. 과거 개발시대에 엄 청나게 많은 양의 돌을 캔 곳이 분명하다. 지금 같으면 환경보호 차원에서 꿈 도 못 꿀 일이다. 채석장 전망대 발 아래로 당고개역이 보인다. 거기까지 가야 오늘 일정의 절반이 채워진다. 과연 우리 친구들 오늘의 미션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제법 경사가 심한 내리막길을 조심스레 내딛는다. 당고개역이다. 이제부터 오늘의 제2라운드 시작이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 상하게 흐른다. 이런저런 이유로 여기서 마치자는 의견이 과반이다. 당초 일정 을 짤 때 화랑대역까지 14㎞ 거리는 약간 무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둘레길 이기에 가능할 것도 같았다. 하지만 오늘 코스의 난이도가 상이라는 걸 간과 했다. 오는 5월 여기서 시작하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서 접기로 한다.

참가자

주명갑 고중희 김동준 김수곤 김종욱 김중곤 박종헌 안은섭 유재두 이규옥 이현기 진영주 최병학 허정회

280

281


134次

청계산

|

2015. 4. 4

그래서 산에 오나 보다.

우리들만의 보금자리를 찾았다. 양지바르고 아늑하다. 막걸리 한잔하니 피로가 싸악 풀린다. 열무김치 비빔밥이 제격이다.

그래서 산에 오나 보다

말의 성찬(盛饌)이다. 이 하고픈 말을 어찌 참고 살까. 그래서 산에 오나 보다.

2005년 5월, 작게 시작했던 청계산 산행. 더불어 산에 오르내린 지 10년이 됐다. 백두산, 다이센(大山), 울롱도・독도, 대마도, 태산, 해파랑길, 금오도 비렁길, 서울도성순례, 북한산 둘레길, 기다리던 봄이 왔다.

북한산, 도봉산, 관악산 그 외 수많은 국내산.

꽃과 함께 왔다.

함께하면서 켜켜이 쌓은 추억과 우정.

진달래, 개나리, 벚꽃, 산수유, 생강나무, 목련.

그래서 산에 오나 보다.

온 천지가 꽃으로 가득하다. 역시 꽃은 아름답다. 생명의 신비(神秘)를 느낀다. 그래서 산에 오나 보다.

그 꽃에 친구들의 얼굴도 환히 핀다. 꽃과 닮았다. 땀이 얼굴에 송송 맺혔다. 이슬처럼 순수하다. 올라갈수록 몸이 가뿐해진다. 나쁜 기운은 빠져나가고 좋은 게 들어온다.

282

참가자

고중희 김동준 김수곤 김종욱 김학규 김홍빈 안은섭 유재두 윤세진 이현기 장무철 주명갑 진영주 최병학 허정회

283


135次

|

2015. 5. 2

제2차 서울둘레길

몇 발자국 떼지 않았는데 오늘 코스에 대해 찬탄이 이어진다. 어떻게 도 심 한복판에 이런 청량하고 호젓한 길이 있는가. 때마침 신록으로 옷을 갈아 입은 키다리 갈참나무 군락이 트레커의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 그동안 몰랐 던 수락산의 아름다움이다. 세계적으로 서울 같은 대도시에 이런 멋진 산이 많은 곳이 드물다. 너무 가까이에 많이 있으니 그 가치를 잘 모르고 있다. 높은 산에 가서야 비로소

사랑하세, 용서하세, 베푸세!

공기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심호흡을 하니 머리까지 맑아 진다. 최근 각 지역마다 조성한 둘레길은 등산의 패러다임을 멋지게 바꿔 놓았 다. 정상을 지향하는 등산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적당히 심신단련을 하는 것 이다. 등산보다 덜 힘든 둘레길로 인해 예전보다 더 많은 사람이 산을 찾고 있 다. 등산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것이다. 둘레길에는 정자, 평상, 전망대, 벤치, 화장실과 같은 편의시설이 많다. 곳 에 따라 북카페도 있다. 많은 가족들이 북카페에서 자연과 벗하며 독서를 하

지난 3월에 이어 두 번째로 서울둘레길을 도는 날이다. 당고개역부터 화랑대

고 있다. 이보다 더 좋은 가족 간 레크리에이션이 있을까.

역까지 8㎞ 구간이다. 5월 초지만 벌써 여름을 연상케 하는 날이다. 더운 날 에 구름이 살짝 햇볕을 가려 둘레길을 산책하기에는 그만이다. 복잡한 당고개역 주택가를 빠져나가니 바로 수락산(水落山) 자락이다. 거대한 화강암 암벽에서 물이 떨어지는 모습에서 따온 이름이란다. 때마침 만 개한 철쭉이 우리를 환한 얼굴로 맞이한다. 오늘 둘레길 출발이 상큼하다. 본격적인 걷기에 앞서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다. 준비운동이 필요하다는 건 다 알지만 우리 말고는 좀체 하는 이들을 보기 힘들다. 평소 쓰지 않던 근 육을 풀어주고 혈관을 확장시켜 운동능력을 높이기 위함이다. 나이 들수록 유산소운동과 더불어 근력운동, 스트레칭을 생활화하는 게 중요하다. 봄 가뭄으로 바짝 말라버린 계곡에 흰 쥐 한 마리가 바위틈새를 분주히 움직인다. 실험실에서 탈출한 용감한 놈일까 … 저마다 상상의 나래를 편다. 하여튼 실험용 흰 쥐를 산에서 만나다니 기이한 일이다. 꿈에 흰 쥐가 나타나 면 바라던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거나 목적을 달성하는 길몽이란다.

284

285


근육질 바위 병풍을 뒤로한 잘생긴 소나무 그늘 밑에서 점심 자리를 깐 다. 오늘 메뉴는 냉면과 생선전이다. 주명갑 선생님께서 ‘사랑하세, 용서하세,

137次

|

2015. 6. 6

제3차 서울둘레길

베푸세!’로 건배를 제의하신다. 사랑할 걸, 용서할 걸, 베풀 걸의 후회형이 아 니라 ‘함께하자’라는 참여호소형이다. 육사(陸士)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다. 그 많던 배 밭은 눈을 씻 고 봐도 한 뙈기도 안 보인다. 그 자리를 아파트와 높은 빌딩이 차지하고 있다. 상전벽해(桑田碧海)는 이를 두고 이르는 말이다. 공릉산백세문(孔陵山百歲門) 옆 꽃밭에서 간단히 뒤풀이를 한다. 점심

목표 초과 달성하다

때 먹다 남긴 막걸리와 생선전이 다시 상에 오른다. 8명이 막걸리 다섯 병 중 세 병을 남겨 지고 내려왔다. 절음(節飮) 산행은 이제 우리 산우회의 자랑거리 가 되었다. 5월 말이면 산우회가 만 열 살이 된다. 2005년 5월 28일(토), 예닐곱 명 이 함께한 청계산 산행이 그 시작이다. 오는 5월 26일 23명이 ‘극동러시아 역 사・문화 기행’을 떠나기로 되어 있다. 산우회 창립 10주년 행사를 겸하게 될 그날이 기다려진다.

세 번째로 서울둘레길을 걷는 날이다. 어제 꾸물대던 날씨가 화창하게 개어 산행 나서는 발걸음이 가볍다. 오늘 코스는 화랑대역 - 중랑캠핑숲 - 망우묘 지공원 - 용마산 깔딱고개 - 사가정역까지 9㎞다. 광나루역까지 가면 다음번 에 접근하기도 좋은데 무리일 것 같아 중간에서 끊었다. 오늘 마침 현충일이라 출발에 앞서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을 했다. 기념일에 맞춰 국기를 게양하는 것은 국민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 소 양이다. 요즘 이러한 기본마저 등한시하는 풍토가 아쉽다. 최근 신문기사에서 재미난 걸 하나 봤다. 스트레스에 반대말은 스트레칭 이라는 거다. 스트레칭을 하면 스트레스가 날아가기 때문이란다. 트레킹 전 ‘산우회표 스트레칭’으로 우리 몸에 이제부터 운동시작이라는 신호를 보낸다. 오늘의 용마・아차산 코스는 묵동천변을 따라 걷는 것부터 시작한다. 지 방자치제가 되면서 가장 잘한 일이 버려졌던 하천을 정비해 환경을 미화한 일

참가자

이다. 묵동천변도 여느 하천 못지않게 훌륭하게 가꿔 많은 주민들이 애용하

주명갑 고중희 박종헌 안은섭 유재두 진영주 최병학 허정회

고 있었다. 피라미와 오리들이 맘껏 놀 정도로 물이 깨끗하다.

286

287


눈앞에 높다란 건물이 하나 나타난다. 서울시립의료원이다. 강남구 삼성 동에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었는데 이곳으로 이전해 멋지게 변모했다. 서울둘 레길을 걸으면서 이렇게 몰랐던 서울 구석구석을 알게 된다는 게 커다란 매력 이다. 이름도 생경(生硬)한 경의・중앙선 양원역을 지나니 곧 중랑캠핑숲이 나 타난다. 전부터 한번 와보고 싶던 곳이다. 도심 한복판에 이런 캠핑숲이 있어 동네 사람들의 안락한 쉼터가 되고 있다. 우리도 밤나무 밑 그늘에서 떡, 수박, 방울토마토, 막걸리, 커피 등으로 새참을 즐겼다. 캠핑숲을 나서니 이내 망우묘 지공원과 이어진다. 바로 옛날 망우 리 시내버스 종점이 있던 곳에서 5 ㎞의 망우묘지산책길이 시작된다. 콩나물버스에 실려 이곳까지 와 여 기서부터 외할아버지 산소까지 짐 지고 오르던 어릴 때 기억이 새롭다. 서울에서 가장 컸던 공동묘지가 이 제 공원으로 탈바꿈해 시민들의 휴 식처가 되었다. 망우리에 얽힌 유래가 재밌다. 태조와 동문수학하고 친하게 지내 던 정 씨가 있었다. 동구릉에 묏자리

넓은 길이 꽉 들어찬다. 멀리 북한산 도봉산까지 서울 시내 전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그중 상봉 동 버스터미널 근처에 있는 고층아파트가 이목을 끈다. 어림잡아 최소 50층 은 되어 보이는 고층이다. 녹색공간만 조금 더 있어도 지금보다 멋지고 쾌적한 대도시가 되었을 것 같다. 묘지공원 끝자락 여러 운동시설과 약수터까지 있는 훌륭한 쉼터에 점심

를 정한 후 태조가 정씨에게 이제 모든 시름을 잊었다고 말했다. 걱정을 잊었

자리를 잡았다. 고급 가마보코와 생선전이 머루주와 레드와인과 아주 잘 어

다는 의미로 오늘날의 망우리(忘憂里)가 되었다.

울린다. 최근 다녀온 극동러시아 역사문화기행 후일담을 안주로 얘기꽃을 피

기온은 제법 높은데 그늘 밑을 걸어 그리 더운 줄 모르겠다. 이곳은 이제

운다. 열무김치 비빔밥으로 개운하게 점심을 마무리 한다.

더 이상 새로 묘를 쓸 수 없어선지 여기저기 비어 있는 곳이 많다. 성묘할 때

망우묘지공원을 빠져나오니 이내 용마산 깔딱고개 쉼터다. 당초 계획은

항상 차로 다니던 길을 걸어가니 새로운 맛이 난다. 산책 나선 시민들로 제법

여기서 사가정역까지 2㎞를 걸어 마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친구들

288

289


대부분이 광나루역까지 4㎞를 더 가자고 한다. 첫날 도봉산역에서 시작해 당 고개역까지 7㎞밖에 걷지 못한 것과 크게 비교된다.

139次

|

2015. 7. 4

관악산

570개 계단으로 된 용마산 깔딱고개는 매웠다. 올라가는 중간중간 자그 마한 쉼터가 있었다. 청계산 계단처럼 570부터 1까지 카운트다운한 숫자가 계단에 있으면 덜 지루할 것 같았다. 흘린 땀방울은 계단 끝에 있던 성공 축 하와 함께 35분 수명이 늘었다는 팻말로 보상받았다. 아차산 능선으로 접어드니 한강이 한눈에 잡혔다. 서울을 남북으로 나 누고 동서로 가로지르는 한강은 서울의 젖줄이다. 서울에 북한산처럼 멋있는

천 원의 행복

산과 한강처럼 큰 강이 있다는 건 큰 복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소중히 아껴 애용하고 후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우리의 자랑스러운 자연유산이다. 아차산은 삼국시대 한수 이북에 있던 고구려가 이남에 있던 백제 신라 와 대치하던 곳이다. 고구려는 이곳에 20여 개의 보루를 만들어 남진정책의 전초기지로 활용했다. 475년 고구려가 한강 유역 진출 후 551년 신라 백제에 의해 퇴각될 때까지 사용되었다. 그 당시 성벽과 건물터를 복원하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에 있다.

7월 초 산행이라 비가 오면 계곡에서 물놀이라도 할 요량으로 관악산 문원폭

아차산 해맞이광장에 도착했다. 서울 해맞이 광장 가운데서는 몇 손가

포 코스를 택했다. 그러나 비는 오지 않았고 물놀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락 안에 드는 유명한 곳이다. 암사대교 강동대교 미사대교 팔당대교로 이어

관악이 워낙 물을 가두지 못하는 돌산이라 하지만한 여름 계곡에 물기 하나

지는 한강 대교들이 장관을 이룬다. 해맞이광장에 있는 아차산 제1, 2호 소나

없다는 게 믿어지기나 하나! 우리 마음대로 안 되는 이런 게 자연이고 이 대

무가 포토 존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자연 앞에서 우리 인간은 순응해야 하는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는 미미한

광나루역 가는 길 옆 편의점에 뒤풀이 자리를 만든다. 오늘 목표를 초과

존재인 것이다.

달성한 우리 모두를 자축하는 의미의 박수를 친다. 산우회를 통해 친구들이

생전 들어보지도 못하던 메르스라는 역병 여파에도 오늘 모두 15명이

더욱 건강해지는 데 큰 보람을 느낀다. 오늘 약간 힘들었지만 멋진 산우회 창

나왔다. 특히 그중 최근 간암 수술 후 회복 중에 있는 함동일이 건강한 모습

립 11년차 첫 산행이었다.

으로 나타났다. 과천 지역사령관인 이해성도 우리 산우회 산행에 처음 나왔 다. 사천 김수곤과 진천 남상화도 먼 길 마다않고 달려왔다. 의정부에 사시는 주명갑 선생님도 아침부터 긴 여행을 하셨다. 도대체 산우회에 무슨 자력(磁 力)이 있기에 이들을 잡아당길까.

참가자

주명갑 고중희 김동준 김수곤 김종욱 김중곤 박종헌 안은섭 윤진평 이현기 진영주 최병학 허정회

290

산행은 짧았다. 정부청사 테니스장 앞에서 스트레칭으로 산행 준비운동 하고 문원폭포까지 가는데 채 한 시간이 안 걸렸다. 관악에 꽉 들어찬 나무

291


는 더위를 잊게 할 정도로 우리를 시 원하게 해줬다. 문원폭포에 이르러 서야 폭포 체면치레로 물이 쫄쫄 흐 르고 있었다. 나무 그늘 밑에서 막걸 리 한잔하면서 흘린 땀을 식힌다. 오늘 점심은 우리 친구들끼리 여러 번 야영했던 캠프사이트에서 했다. 일행이 문원폭포에서 내려오 니 은섭이가 벌써 상을 다 차려 놓 았다. 안주감으로 연어 회, 소시지, 야채 샐러드, 돼지 껍질이 나오고 된 장국에 열무비빔밥과 떡을 후식으 로 근사한 점심을 했다. 산우회 점심 에 처음 나온 이해성이 감탄을 한다. 새로운 등장인물로 화제도 많이 다양해졌다. 특히, 해성이가 최근 베란

금해 인터넷을 통해 알아보니 5등에 당첨되었다. 당첨번호 10, 14, 19, 39, 40,

다에서 기르던 장미를 아파트 단지 내 꽃밭으로 시집보내 마음 편하고, 매일

43 여섯 개 숫자 중 3개나 맞춘 것이다. 1000원짜리가 5000원이 되었다. 무려

그 장미 앞을 지날 때 다정스레 인사를 건넨다는 얘기, 베란다 화분에 핀 꽃

다섯 배로 뛰었다. 이걸로는 산우회 기부금이 안 될 거 같아 로또 다섯 장으

을 보고 날아온 꿀벌이 방충망을 사이에 두고 윙윙 거릴 때의 안타까움을 말

로 바꿔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오늘 참가자는 이 글 댓글로 결과를 솔직하

할 때 그의 얼굴에는 마치 사춘기에 있는 소년티가 물씬 풍겼다.

게 알리세요!(그냥 혼자 꿀꺽하지 말고) 짧았지만 여운은 긴 산행이었다.

과천 내 명동이라는 그레이스 호텔 뒤 우물가 쉼터. 우물과 펌프 모형이 있고 그와 관련된 조각과 평상으로 쉼터를 조성해 놓았다. 평소에는 포석정처 럼 설계된 수로를 따라 물이 흐른다는데 가뭄으로 여기도 물이 말랐다. 토요 일을 맞아 많은 시민들이 왕래하고 있었지만 나무 그늘과 평상이 있어 우리 가 간단하게 뒤풀이하기에는 적격이었다. 뒤풀이가 파할 즈음, 이규옥이 바로 옆 편의점에서 구입한 로또를 친구 들에게 한 장씩 돌린다. 당첨되면 본인 1/3, 산우회 1/3, 이규옥 1/3씩 배당하 기로 약속한다. 천 원짜리 로또 한 장씩 받아 든 친구들 얼굴에 행복이 묻어 난다. ‘천 원의 행복’이다(이 글을 쓰기 전 어젯밤 있었던 로또 추첨 결과가 궁

292

참가자

주명갑 고중희 김수곤 김종욱 김중곤 김학규 남상화 박종헌 안은섭 유재두 이규옥 이해성 최병학 함동일 허정회

293


140次

|

2015. 8. 1

드디어 삼천사가 보이기 시작한다. 멀리

북한산

양상진인 듯한 모습이 보인다. 약속시간보다 30~40분 지각할 것 같아 사전 연락도 하지 않고 그냥 온 것이다. 목적지를 쉬이 바꾸지 않는 우리 산우회의 전통을 굳게 믿은 거다. 주명갑 선생님을 비롯해 모두 18명이 모였다. 올해 월례산행 중 가장 많이 나왔다.

친구, 계곡, 콩국수가 잘 어울린 피서 삼합(三合)

10여 년 전 동기회 등산모임을 만들 때 우리 는 통상의 ‘산악회’가 아닌 ‘산우회’라 했다. 등산도 등산이지만 그 못지않게 친구들과의 우정에 방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삼천사(三千寺)에서 잠시 숨을 돌린다. 신라 문무왕1년(서기 661년) 원효대사가 창 건한 사찰이다. 경내 마애석가여래입상에서 1500년 고찰과 함께한 긴 세월의 흔적이 읽

올 여름 유난히 가뭄이 심했다. 장마철에도 중부지방은 별로 비가 안 내렸다. 비가 와야 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가 불확실해졌다. 지난 주 다행히 비가 좀 내려 해갈이 되었는데 이제 장마 끝이란다. 8월의 첫날이다. 매년 8월 산행은 물놀이 겸 계곡엘 간다. 올해는 서울 근교 중 물 많고 깨끗한 북한산 삼천사 계곡을 택했다. 오래간만에 찾은 구파 발역은 주변 정비공사로 인해 어수선하다.

힌다. 자연석인 듯한 거북돌도 객의 눈을 잡는다. 삼천사 지나니 이내 계곡이 넓어지고 깊어진다. 단골인 듯한 어떤 사람 들은 아예 텐트까지 치고 피서하러 왔다. 계곡물이 맑고 차다. 탕에 몸 한 번 담그니 금세 땀이 쏙 들어간다. 오늘 메뉴는 콩국수다. 이규옥 회원이 정성스레 준비했다. 은섭이가 이끌

삼천사 입구까지 버스로 이동하려던 당초 계획을 바꿔 걸어가기로 했다.

고 규옥이가 보조하는 콤비 플레이가 인상적이다. 얼음까지 둥둥 띄운 콩국

근래 새로 조성된 은평뉴타운은 이제 점차 자리를 잡아가는 모양새다. 명산

수 열여덟 그릇이 금방 차려진다. 시원한 계곡에 발 담그고, 친구들과 함께 술

북한산을 배경으로 한 뉴타운은 점차 서울의 인기 있는 신도시로 변모 중이

한잔 걸치며 먹는 콩국수. 잘 어울리는 피서 삼합이라 할만하다. 기실 친구들

다. 하나고등학교 건너편에는 은평한옥마을 조성공사가 한창이다.

에게 산에서 이런 특식을 대접하겠다고 자청하는 게 쉬운 게 아니다. 친구들

한 30분 걸으니 삼천사 입구 안내판이 보인다. 산 초입임에도 벌써 공기

을 위하고 산우회를 아끼는 마음에서 나왔으리라.

가 시원하다. 계곡은 한여름 더위를 피해 물놀이 나온 사람들로 가득 차 있

오늘 막걸리 10개, 소주 2병, 페트 맥주 1개를 준비했다. 인원과 분위기에

다. 계곡을 끼고 영업을 하고 있는 가게가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크게 훼손하

비해 다소 부족한듯하지만 그런 게 낫다. 나이 들어가면서 친구들도 점점 건

고 있다.

강을 위해 술을 자제하고 있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294

295


141次

|

2015. 9. 5

제4차 서울둘레길

비 흠뻑 맞고 우면산을 걷다

지난달에 이어 오늘도 나온 해성이가 산우회의 이런 분위기에 아주 만 족해한다. 건강 회복중인 동일이도 함께 산행을 할 수 있어 다행스러운 일이 다. 상진이의 입담이 온 계곡에 울려 퍼진다. 친구들 모두 즐거워하는 모습에 서 함께 산행하는 보람을 맛본다. 이제는 고정 브랜드가 돼버린 주명갑 선생

네 번째 서울둘레길, 우면산 코스 트레킹이다. 양재시민의 숲을 출발해 사당

님의 초콜릿, 동준이가 직접 농사지어 가지고 온 방울토마토, 락용이가 챙겨

역까지 8㎞ 거리다. 주로 평지만 걷게 되는 고덕・일자산 코스와 이미 걸었던

온 자두와 오이, 병학이의 베트남산 커피로 입가심을 한다.

대모산 코스는 생략했다. 오늘 우면산 코스는 도심 한복판에 있는 울창한 숲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소나기 내릴 조짐이다. 서둘러 정리하고 자 리를 파한다. 하산하니 한여름의 폭염이 푹푹 찐다. 저 위 삼천사 계곡의 서늘 함이 그리워진다.

을 걷는다는 게 매력 포인트다. 출발하려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비 예보는 있었지만 소나기 정도 내 리다 말겠거니 생각했다. 이제까지 산우회 140회 산행 중 비 맞은 기억은 다 섯 손가락으로 꼽는다. 그만큼 하늘이 도와주셨는데 오늘은 예외였다. 양재시민의 숲에는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이 있다. 하지만 1987년 북 한 김현희에 의한 KAL기 격추 사건 희생자 위령탑과 1995년 삼풍아파트 붕 괴 사고 희생자 추모탑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드물 것 같다. 두 탑을 돌며 불의의 사고로 먼저 가신 이들의 넋을 위로했다. 우면산에 접어들었다. 우면산은 소가 잠자는 모습의 산이라 한다. 해발

참가자

주명갑 고중희 김동준 김수곤 김종욱 안은섭 양상진 유재두 윤명술 윤진평 이규옥 이해성 이현기 정락용 진영주 최병학 함동일 허정회

296

고도(313m)는 낮지만 산림이 울창해 인근 주민들의 산책로로 인기가 높다. 서 울둘레길 트레킹 덕으로 평소 좀처럼 가보기 쉽지 않은 곳을 많이 알게 된다.

297


우면산하면 상서롭지 않은 기억도 떠올리게 된다. 2011년 7월 산사태가

한 사람이 없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발생해 아까운 인명 7명이 희생됐다. 긴 장마로 인해 산 표토가 물을 잔뜩 먹

나중에 알고 보니 비를 맞아 추워 몸 컨디션이 안 좋아 그냥 혼자 내려

어 중량이 증가해 사면이 붕괴된 사고였다. 그 후 막대한 예산을 들여 수로를

가 버린 것이다. 여름 등산에도 바람막이 같은 가벼운 거라도 반드시 준비해

재정비했는데 그 효용성은 아직 검증되지 않고 있다.

야 하는 이유다. 작년 일본 북알프스 등산 중 저체온증으로 인해 한국 등산객

비는 계속 쏟아지고 있다. 우산은 산길에서는 위험하기도 하고 거추장스 럽다. 우산은 접고 하늘이 주시는 큰 선물을 그냥 온몸으로 맞고 간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이런 고마운 비와 스킨십을 할 수 있겠는가. 산행 두 시간이 되어 가는데 비 피할 마땅한 곳이 없어 막걸리 한잔도 못 하고 있다. 오늘은 우리의 ‘안 셰프’도 없어 간식용으로 김밥 한 줄씩 준비했

이 조난당한 사고도 있었다. 새삼 우리의 ‘저승사자’ 이현기의 빈자리가 커보 였다. 하늘은 어느덧 파란 얼굴을 보여준다. 12시경 갠다는 일기예보가 정확했 다. 산 공기는 더 상큼해졌다. 비는 많이 맞았지만 오랫동안 뇌리에 간직될 만 한 우면산 트레킹이었다.

다. 운 좋게 새로 단장 예정인 정자를 만나 요기를 할 수 있었다. 안 셰프 대신 진 재무가 구운 달걀, 치즈 김, 튀각 등 안주를 챙겨 왔다. 주명갑 선생님이 1957년 공군 화학교관 입대에 얽힌 얘기, 이봉수 이사 장 별세 후 이세웅 이사장의 신일학교 접수에 관한 비화를 들려주신다. 한참 말씀을 듣고 있는데 누가 윤진평이 안 보인다고 한다. 비 맞느라 정신이 없어

우중 산행 두 시간이 넘도록 비를 피할 곳이 없었다. 운 좋게 새로 단장한 정자를 만나 요기를 할 수 있 었다.

298

참가자

주명갑 고중희 김수곤 김종욱 김중곤 박종헌 유재두 윤진평 이규옥 진영주 최병학 허정회

299


142次

|

2015. 10. 3

도봉산

“한국의 아웃도어 시장이 이렇게 커질 줄 상상도 못했다”

좀 힘들더라도 그 한계를 이기려고 애써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천성이 게으른 인간인지라 편한 길로만 가게 돼 있다. 그러다보면 신체기능은 점점 퇴화되기 마련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운동을 택해 꾸준하게 밥 먹듯이 해야 건강을 유 지할 수 있다. 그간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산우회 등산에 참가치 못했던 수복이가 간만 에 나왔다. 그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온 도봉에 퍼진다. 나이 들수록 너무 점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날씨다. 오래간만에 도봉을 찾았다. 올 한 해 서울둘

잔 빼고 무게 잡지 말라는 게 선배들의 조언이다. 그런 면에서 수복이는 우리

레길을 걷느라 도봉은 초행이 됐다. 도봉에 면괴(面愧)하다.

의 영원한 엔터테이너다.

우이암까지 가기로 했다. 사정이 생겨 오지 못한다 하던 재두가 늦게나

우이암 턱밑에 자리를 편다. 먹고 마시는 건 항상 즐거운 일이지만 산에

마 온단다. 현기를 남겨 놓고 열 명이 우이암을 향해 발길을 옮긴다. 도봉산역

서 땀 흘린 후는 더 그렇다. 오늘도 은섭이가 챙겨 온 돼지등갈비찜, 된장국,

먹자거리 공터에서 간단하게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다.

호빵, 과일로 한 상 그득하게 차려졌다. 10년 넘게 산우회가 꾸준하게 성장해

날씨 덕에 도봉은 인산인해다. 도봉 같은 명산이 근교에 있기도 하지만

온 원동력이다.

워낙 산을 즐기는 민족 성향이 있는 듯하다. 1960년대 주한 미군이었던 아웃

계곡을 따라 하산했다. 원래 등산은 하산이 더 위험하다. 등산을 하게

도어 명품 ‘파타고니아’ 취나드 회장의 회고다. “한국의 아웃도어 시장이 이렇

되면 기분이 좋아져 여느 때보다 한잔 더 하게 되지만 조심해야 한다. 수복이

게 커질 줄 상상도 못했다.”

가 직업정신을 발휘해 친구들의 안전을 챙기는 게 고맙다. 도봉산 탐방지원센

우이암으로 향하는 보문능선으로 접어들자 좀 한적해졌다. 초장인데도

터 근처 ‘길 카페’에서 뒤풀이를 한다.

친구들 얼굴마다 땀이 비 오듯 흐른다. 이게 바로 등산의 장점이다. 땀 많이 흘려 노폐물 내보내고, 평소보다 강한 운동으로 심폐기능을 강화하게 한다. 세월이 흐를수록 우리 친구들 체력이 점차 떨어지는 걸 느낀다. 10년 전 산우회 초창기와 많이 다르다. 하지만 힘들다고 안 하면 그만큼 더 약화된다.

300

참가자

주명갑 고중희 김동준 김중곤 박종헌 변수복 안은섭 유재두 윤명술 이현기 진영주 허정회

301


145次

|

2015. 11. 21

한양도성길 백악구간

성북동 최순우 옛집 툇마루에 앉아

미술사학자 혜곡 최순우의 옛집을 찾았다.

가을비로 2주 순연되어 치러진 11월 산행, 한양도성 순례길 중 마지막 하나

우리 민족의 값진 문화유산을 돌 볼 겨를이 없었던 우리 근대사의 부끄러운

남은 백악구간을 찾았다. 삼선교 혜화문에서 성북동을 거쳐 북악산 숙정문

민낯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서울시장 공관은 서울성곽 복원 계획에 따라

으로 이어지는 코스다. 소설(小雪)을 이틀 앞 두고 있어 늦가을 단풍놀이에

곧 사라질 것이라 한다. 나머지 건축물도 시 재정이 허락하는 한 하루빨리 정

최적이라는 날이다.

비되기를 희망한다.

2012년 9월 낙산(駱山) 구간 탐방할 때도 혜화문(惠化門)에서 출발했

국립박물관장을 지냈던 미술사학자 혜곡(兮谷) 최순우(崔淳雨,

다. 이 문은 조선 건국 5년 뒤인 1396년 한양도성을 에워싸는 성곽을 축조하

1916~1984)의 옛집을 찾았다. 혜곡은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서서』로 우리

면서 세워졌다. 도성 내 4개 소문 중 동문과 북문 사이에 위치해 동소문(東小

에게 친숙한 이름이다. 이 집은 혜곡이 국립박물관장을 지내던 1976년부터 작

門)이라고도 한다. 당시 북대문(숙정문)의 일반인 통행금지로 양주・포천 방면

고할 때까지 거주하던 집이다. 그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그

으로 통하는 중요한 문이었다. 이 문은 1684년(숙종 10년) 문루를 새로 지어

아름다움을 찾고 보존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한말까지 보존되어 왔다. 1928년 문루가 퇴락하자 홍예(虹霓, 무지개 모양의

‘두문즉시심산(杜門卽是深山)’, 문을 닫으면 이곳이 바로 산속이라더니

문)만 남게 되었으나, 일제가 혜화동과 돈암동 사이에 전차 길을 내면서 이마

이 글이 걸린 옛집이 딱 그렇다. 곳곳에 놓인 목가구와 도자기가 혜곡의 안목

저 헐어버렸다. 1975년 시작해 5년 후 완공된 서울성곽의 일부로 1992년 현재

과 깊이를 짐작게 한다. 미음 자 구조의 단아한 한옥, 중정(中庭), 우물과 150

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년 된 향나무가 잘 어울린다. 이 한옥은 1930년대 지어진 것으로 혜곡은 이

서울성곽 위로 옛 서울시장 공관, 고급 빌라, 경신중학교가 지어져 있다.

302

집의 세 번째 주인이었다. 혜곡은 뒤뜰 한 가운데 하얀 달항아리를 놓고 그 뒤

303


둘레는 약 18㎞, 높이는 대략 12m 가량이다. 한양을 감싸고 있는 북악산, 인 왕산, 남산, 낙산의 능선을 이은 것이다. 성곽을 축조하느라 피땀 흘렸던 우리 선조들의 거친 숨결이 그대로 온몸에 와닿는다. 수도 한양을 지키기 위해 당 시 전국에서 20만 명이 동원되었다. 이 성곽은 일제가 우리나라를 침략하면 서 서서히 파괴되기 시작했다. 그 후 해방과 한국전쟁 혼란기에 더욱 많이 망 실된 것을 복원한 것이다. 성곽에서 남산을 보니 서울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서울에서 60여 년 넘게 살았어도 오늘에야 처음 유서 깊은 이곳을 거니니 감회가 새롭다. 가을 끝자락 단풍이 성곽과 어우러져 멋진 작품을 만든다. 성곽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성북동 부촌 언덕에 따스한 가을 햇볕이 내려앉는다. 북대문인 숙정문 안내소에서 앞길이 막힌다. 이곳부터는 보안상 신분증이 있는 사람만 통과할 수 있단다. 숙정문을 통해 하산하던 계획을 바꿔 말바위로 발을 돌린다. 말바 위 근처 너른 바위 위에 자리를 펴고 막걸리 한잔을 걸친다. 삼청공원을 지날 때에는 삼청국민학교 다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올 랐다. 옛날 조용하던 고급 주택가 가회동은 한옥마을을 구경하러 온 외국 관 광객들로 북적였다. 이제 이 일대 북촌(北村)은 서울시내 관광의 중심지가 되 었다. 오늘 서울 성곽 트레킹은 짧았지만 많은 것을 보고 배운 역사문화 탐방 이었다.

일제강점기인 1938년에 헐렸고, 1994년 복원을 마친 혜화문 앞에서.

에 청죽을 심어 감상했다고 한다. 혜곡이 작고한 후 성북동 빌라 건축 붐이 일 때 이 유산도 사라질 뻔했다. 다행히도 2002년 (사)내셔널트러스트가 시 민성금으로 매입・보수・복원해 개방하고 있다. 마음의 양식으로 배를 그득 채운 후 서울성곽을 따라 걸으니 한결 다리 가 가볍다. 이 성곽은 조선시대 수도인 한양을 둘러싼 도성(都城)이다. 성곽의

304

참가자

주명갑 김동준 김수곤 박종헌 백인형 윤진평 이현기 진영주 최병학 함동일 허정회

305


146次

|

2015. 12. 19

정릉 탐방

태종(이방원)이 가까이 있는 게 눈꼴 사나워 당시로서는 한양 문밖 변두리인 지금 자리로 옮겼다. 태종은 태조의 원비 신의왕후의 아들이다. 애초 쓰였던 석물은 지금의 청계천 광통교(廣通橋, 일명 광교) 돌다리 축조에 사용해 사 람들로 하여금 밟고 지나다니도록 했다.

태종실록[16년(1416년) 8월21일]에는 이런 얘기도 나온다.

조선 최초의 왕비가 잠든 정릉을 찾다

태종이 물었다. “계모란 무슨 뜻인가?” 유정현이 대답했다. “어머니가 돌 아가신 후 들어와 어머니가 된 사람이 계모입니다.” “그렇다면 강씨(인덕 왕후)가 내게 계모인가?” “그 당시 신의왕후(태종의 생모)께서 돌아가시 지 않았으니 어찌 계모라 하겠습니까?” “강씨는 내게 조금도 은의가 없 다. 나는 어머니(신의왕후) 집에서 자랐고, 장가를 들어서는 따로 살았으 니 어찌 은의가 있겠는가?”

금주 갑자기 추워졌던 날씨가 오늘 좀 풀렸다. 하늘이 산우회 송년산행 한다

1416년은 신덕왕후가 세상을 하직한 지 20년이 되는 해다. 권력은 이미

고 봐주시는 것 같다. 캐나다에 사는 이재활 군이 2년 만에 모처럼 얼굴을 비

태종이 쥐었고 신덕왕후의 계모 여부는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쳤다. 개인 사정으로 나오지 못한 남편 박종헌 군 대신 윤종란 여사가 산우회

태종은 자신과 신덕왕후의 관계에 분명한 선을 긋는다. 왜 그랬을까?

10여 년 사상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우리와 함께했다.

이쯤에서 조선조 개국 당시의 역사를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고려왕조는

정릉 탐방에 나섰다. 정릉은 태조 이성계의 두 번째 왕비 신덕왕후의 능 이다. 두 번째라 하지만 첫째 신의왕후는 태조 즉위 1년 전인 1391년 세상을 떴기 때문에 신덕왕후가 조선 최초의 왕비인 셈이다. 능은 왕과 왕비의 무덤만을 일컫는다. 조선왕족의 능은 모두 42기이다. 이 중 제릉(태조 원비 신의왕후)과 후릉(정종과 정안왕후)만 개성에 있고 나 머지는 대한민국에 있다. 500년이 넘는 한 왕조의 무덤이 이처럼 온전하게 보 존되어 있는 것은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기 힘들다고 한다. 2009년 6월 유 네스코는 인류 문화유산으로서의 탁월한 가치를 인정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당초 정릉은 한양 한복판 정동에 있었다. 그러던 걸 태조의 다섯째 아들

306

307


망하고 새 왕조가 시작되었다. 그 중

직한 소중한 문화역사 유산들이 부

심에 태조 이성계가 있었고 그의 곁

지기수다. 어디 멀리 외국에만 볼거

에는 조선의 첫 퍼스트레이디 신덕

리가 있는 게 아니라 우리 것도 자랑

왕후가 있었다. 바로 ‘급히 먹는 물

할 만한 게 너무 많다. 앞으로 우리

에 혹시 체할까 봐 물바가지에 버들

산우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기도

잎을 띄워 건넸다’는 낭만적인 이야

하다. 오전 역사공부도 하고 운동도

기의 여주인공이다. 지방 출신의 실권자 이성계에

적당히 해선지 선생님 모시고 하는

게 신덕왕후는 더없이 큰 힘이 되었

송년회 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약속

다. 신덕왕후 강 씨 가문은 고려 말

시간 1시 조금 안 돼 ‘박가네’에 닿

권문세가였기 때문이었다. 이성계는 처가 덕에 중앙무대에 영향력을 행사할

았다. 우리 일행이 박원상, 정오영 두 분보다 먼저 도착해 다행이었다. 그간 모

수 있었다. 게다가 신덕왕후는 슬기롭고 사리에 밝은 여인이었다. 그런 그녀에

두 다섯 분을 모시고 했는데 최근 2년 새 두 분이 하늘나라로 가셨다. 새삼

게 태조는 전적인 사랑과 신뢰를 보냈다. 태조에게 신덕왕후는 충실한 내조

덧없는 인생을 생각해 본다.

자를 넘어 정치적 동지였던 셈이다.

선생님들께 단배(團拜)하는 걸로 송년회를 시작했다. 올해 최우수회원에

신덕왕후가 위독할 때에는 내전에 승려 50명을 모아 불공을 드리기도 했

최병학 군, 특별상에 2년 전부터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명갑 선생님, 공로상에

다. 그녀가 세상을 떠나자 태조는 왕의 위엄도 생각지 않고 통곡했다. 상복을

러시아 해외여행 추진위원장을 맡았던 장무철 회원, 봉사상에 진영주 재무가

입은 채 안암동으로 행주로 직접 능 자리를 보러 다니기도 했다. 태조에게 이

수상했다. 박원상 선생님께서 모두의 건강과 산우회 발전을 기원하는 의미로

와 같은 극진한 사랑을 받았으니 아버지 태조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태종이

건배를 제의하셨다. 최근 청력이 떨어져 생활에 약간 불편을 겪는다고 하셨

신덕왕후를 좋게 볼 리 없었다. 이런 이유로 능도 외곽으로 옮기고 사후 20년

다. 정오영 선생님은 허리가 좀 안 좋으시다고 했다.

이 지났건만 실록에 신덕왕후와의 관계를 분명히 하는 글을 역사에 남겼던 것이다. 정릉은 정릉교회에서 아리랑고개로 올라가다 오른쪽에 있는 마을을 끼

최병학 사장이 협찬한 양말로 올 겨울 발 시릴 걱정은 없게 생겼다. 변수 복 회원이 이제까지 송년회 중 오늘이 제일이었다고 한마디 거든다. 비록 소찬 이었지만 대화는 많이, 술은 적게 한 의미 있는 자리였다.

고 한참을 올라가다 있다. 정릉 일원은 약 10만 평이다. 둘레길 한 바퀴 도는데 한 시간가량 걸렸다. 생각보다 넓었다. 산 정상은 북악스카이웨이와 맞닿았다. 초겨울을 맞아 나뭇잎은 다 떨어져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나무들만이 능을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아주 어렸을 때 한 번쯤 와 본 기억이 있지만 철 들고서 는 이제야 처음 찾은 내가 부끄러웠다. 일행 중 한둘 빼고는 모두 초행이다. 6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우리 수도 서울에는 이렇듯 많은 얘기를 간

308

참가자

박원상 주명갑 정오영 선생님 김동준 김수곤 김중곤 박종헌(윤종란) 백인형 변수복 안은섭 윤진평 이재활 장무철 진영주 최병학 허정회

309


147次

|

2016. 1. 9

제5차 서울둘레길

걷기는 건강을 저축하는 것이다

산우회 2016년 첫 나들이는 서울둘레길을 걷기로 했다. 오늘이 그 다섯 번째

놀이를 즐기고 있다. 짝 잃은 갈매기 한 마리도 여기까지 날아와 열심히 뭔가

로 벌써 157㎞ 서울둘레길도 종착역이 가까워진다. 오늘 코스는 안양시 석수

낚고 있다.

역부터 목동 오목교까지 약 11㎞ 구간이다. 안양천을 따라 한강까지 평탄하 게 이어지는 산책길이다.

한겨울이지만 겨우 빙점을 오르내리는 따뜻한 날씨 덕에 운동하러 나온 사람들이 많다. 지나치게 춥지만 않다면 겨울이라도 바깥에 나와 햇볕을 쬐

신년 산행이라 그런지 모두 17명이 나왔다. 인근 광명시에 사는 조상래

면서 걷는 게 좋다고 한다. 우리 몸은 걷지 못하게 되면서부터 탈나기 시작한

와 오래간만에 김순중의 얼굴이 보인다. 올 해파랑길 도전을 목표로 요즘 열

다. 사람이 걸을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얼마나 큰 복인지 모른다. 걷는 순간 죽

심히 걷고 있다는 백인형이도 나왔다. ‘개근생’ 주명갑 선생님이 집안일로 못

음의 4중주가 멈춘다고 한다. 4중주는 내장지방, 고지혈증, 당뇨 전단계인 내

나오셨다.

당능장애와 고혈압이다. 이들 4인방의 협주가 혈관을 막아 뇌졸중, 심근경색

석수역 앞 근린공원에서 체조로 몸을 풀었다. 달리기용 스트레칭 중 가 장 중요한 것만 모아 놓은 것이다. 한 10분간 목부터 시작해 발목까지 우리 몸 의 주요 부위를 예열시키는 것이다. 산행에 앞서 준비운동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안양천으로 내려섰다. 옛날 안양천은 인근 염색공장에서 버리는 오폐수 로 오염돼 죽은 하천이었다. 이제는 생태계가 복원되어 오리가 떼를 지어 물

310

증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걷기는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닌 건강을 꼬박꼬박 저축하는 것이다. 안양천변 코스는 마라토너들의 연습장이자 대회장이다. 걷는 사람들 사 이로 간혹 달리미가 눈에 띈다. 작년 5월 여의도 - 가양대교 - 광명을 왕복하 는 마라톤대회에서 더위로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더운 날 그늘이 없고 직선 으로 쭉 뻗은 길을 달리는 건 힘든 일이다.

311


또 자전거 타는 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여의도 - 한강 양재천 - 안양천을 잇는 약 60㎞의 ‘하트코스’는 초보들의 필수라 한다. 군데

149次

|

2016. 2. 6

관악산

군데 간이 야구장도 있어 아마추어 야구선수들이 몸을 풀고 있는 모습도 보 인다. 한창 야구에 미쳤던 젊은 시절 서울 교외에 있던 야구장을 찾아 전전하 던 추억이 떠오른다. 광명시로 넘어왔다. 하안교 건너 있는 쉼터에 자리 잡았다. 걷기 시작한 지 한 시간 반 정도 지났다. 안은섭 셰프가 준비해 온 오늘 메뉴는 오뎅과 우 동이다. 찬 날씨 탓에 기화(氣化)가 안 돼 버너가 말썽을 부린다. 요즘 간편한

선생님의 산상기도

맛에 가스버너를 많이 쓰고 있지만 역시 옛날식 석유버너가 제일이다. 휘발유 버너도 있지만 아무래도 석유보다 위험하다. 창고에 처박혀져 있는 석유버너 를 손질해 기회가 되면 써봐야 할 것 같다. 간신히 불을 댕겨 오뎅과 우동을 끓인다. 안 셰프가 온갖 정성을 들여 준비한 간식이 추운 날에 제격이다. 별 인기 없던 소주가 어묵과 궁합이 맞아 선지 불티나게 팔린다. 백인형이 제법 멀리 떨어져 있는 상가까지 가 부족한 ‘참이슬’을 조달해온다.

영하 15도를 밑도는 한파도 물러가고 입춘도 지났건만 아직 겨울은 겨울이다.

구일역 왼편으로 작년 가을 개장된 고척돔구장의 은빛 지붕이 햇볕에

이런 추위와 세밑에도 불구하고 열일곱 산우회 친구들이 관악(冠岳)을 오르

반사돼 번쩍인다. 당초 동대문야구장의 대체구장으로 지붕 없는 아마 야구장

기 위해 사당역에 모였다. 산 초입 너른 공터에서 10분에 걸쳐 스트레칭으로

을 지으려 했던 거다. 그간 몇 번의 설계변경을 거쳐 결국 ‘누더기’ 돔구장으

몸을 예열했다. 매일 이 정도 맨손체조만 하더라도 우리 몸이 굳어져가는 속

로 변신했다. 교통과 주차가 불편하고 관람석이 좁고 경사가 심해 최초의 돔

도를 늦출 수 있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실천이다. 그건 자기 몫이다. 우리가 여

구장을 두고 뒷말이 많다.

럿이 어울려 무얼 하는 건 상대방 거울에 비친 나를 보고 무언가 깨닫기 위함

오늘 트레킹은 계획대로 오목교에서 마침표를 찍었다. 영등포구청역 근

에도 있다. 산행을 통해 친구들의 건강한 모습을 대하는 것은 큰 낙이다.

처 동태찌개집에서 간단하게 뒤풀이를 했다. 건강을 회복한 동일이가 오늘 트

한겨울인데도 눈을 씻고 봐도 산에 눈이 없다. 겨울에 눈이 안 오면 봄

레킹이 기대했던 것보다 좋았다는 촌평을 한다. 고창에서 인삼농사 짓느라 바

농사에 큰 지장이 있다. 비는 하천으로 버려지는 수량(水量)이 많지만 눈은

빠 오래간만에 나온 순중이가 한턱을 냈다.

서서히 땅으로 스며들기 때문에 효율이 높은 것이다. 눈이 없어 겨울산의 묘 미가 좀 덜하다. 하지만 친구들과 함께하니 이보다 더한 즐거움이 어디 있겠 는가. 사람이 인생 마지막 순간에 후회하는 다섯 가지 중 하나가 생전에 친구

참가자

고중희 김동준 김수곤 김순중 김중곤 박종헌 백인형 안은섭 오염진 유재두 이규옥 이현기 정락용 조상래 진영주 함동일 허정회

312

들과 자주 연락하지 못했다는 것이라고 한다.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이렇게 얼 굴을 맞대고 50년 우정을 나누고 있는 우리는 행복한 놈들이다.

313


헬기장을 지나 연주대를 2.4㎞ 남겨둔 삼거리에 다다랐다. 오늘 우리가 목표로 한 곳이다. 식사에 앞서 주명갑 선생님께서 우리 산우회와 회원들을 위한 기도를 해주셨다. 올해 모교 졸업생들이 우수한 대학에 많이 진학했다 는 소식과 함께 훌륭하게 목회를 하는 후배 목사들의 활약상도 들려주셨다. 여러 가지 형태의 등산모임이 있지만 우리처럼 고등학교 은사님과 함께하는 경우는 이례적이다. 선생님 지인들이 대단한 제자들이라고 우리들 칭찬이 자 자하다고 하신다. 신일이 낳은 장남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준비해 온 떡, 족발,

과일, 커피와 차, 반건시(半乾柿)를 후식으로 요기를 했다. 열일곱 명이 막걸리 일곱 병과 소주 한 병을 비우는데 쩔쩔맨다. 우리 친구들 주량이 많이 줄었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사당동 시장통 한복판 진미순대국집, 우리 일행이 전세 냈다. 올라갈 때 예약하고, 중간에 확인하니 시간에 맞춰 손님을 받지 않고 준비해 놓았다. 머 리고기, 술국, 순대국, 육개장 등 취향에 따라 푸짐한 뒤풀이를 즐겼다. 최근 며느리를 본 학규가 한 턱을 냈다. 순중이는 고창에서 직접 농사지은 인삼을 선생님과 산우회에 각각 한 통씩 선사했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연회비 만 원, 참가비 만 원의 ‘만 원의 행복’은 10년 넘게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다.

하늘엔 구름 한 점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연중 이렇게 청명한 날은 15일 정도밖에 안 된다. 이런 날 이불을 걷어차고 등산길에 나선 건 현명한 선택이 었다. 등산이 좋은 건 전신운동이라는 점이다. 평소에 잘 안 쓰는 근육을 산 에 오르기 위해 자연스레 쓰게 되고 더불어 심폐기능도 강화시켜 준다. 평소 걷는 것과 함께, 할 수만 있다면 등산도 겸하라는 게 의사들의 공통된 조언 이다.

314

참가자

주명갑 김동준 김수곤 김순중 김종욱 김중곤 김학규 박종헌 안은섭(뒤풀이) 유재두 윤진평 이규옥 이현기 조상래 진영주 최병학 함동일 허정회

315


150次

|

2016. 3. 5

북한산 구름정원길

지도 한 장이 이렇게 소중할 줄이야

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산 정기가 흠뻑 몸에 배 활력이 치솟는 기분이다. 솔 향을 맡으며 잘 정비된 데크를 걷는다. 그야말로 하늘 길을 거니는 듯하다. 발치 밑으로는 아름다운 서울 도심 정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늘 산행에서 잠자던 개구리도 깨어난다는 경칩(驚蟄)이다. 산천초목에 봄기운이 완연하 다. 며칠 전부터 오늘 비 소식이 예고돼 있어 걱정을 많이 했다. 다행히 12시부 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단다. 오늘 코스는 북한산 둘레길 중에서도 백미(白眉)라는 ‘구름정원길’이다. 마치 구름 위에 있는 정원을 거니는 기분이 난다는 데서 부쳐진 이름이다. 몇 년 전 한 번 걸었을 때 좋았던 기억이 아스라이 떠오른다. 오늘 산행이 크게 기대되는 이유다. 집을 나서는데 뭔가 허전함을 느낀다. 북한산 둘레길 지도를 챙겨놓고 안 가져왔다. 결국 이게 오늘 사달의 뿌리가 되었다. 둘레길 시작점을 못 찾아

얻을 것은 다 얻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멋지다. 비 예보가 되어 있는 12시에 맞춰 코스 중간에 하산한다. 하산 길에 만 난 마을은 완전 시골 풍경이다. 정성스레 가꾼 텃밭에는 지난겨울 배추를 뽑 고 남은 흔적이 여전하다. 서울 한복판에 어떻게 아직 이렇게 때 묻지 않은 곳 이 있는지! 당초 불광역에서 뒤풀이를 하려 했는데 내려와 보니 연신내역이다. 오늘 처음부터 끝까지 헤매는 걸로 일관했다. 새삼 지도 한 장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낀 산행이었다. 목표한 대로 산행을 하지 못해 귀중한 시간을 낸 친구들에 게 미안할 따름이다.

우왕좌왕 헤맸다. 리더가 제 역할을 못하니 사공이 많아졌다. 이제부터는 목 소리 큰 사람이 대장이다. 친구들 간에 큰소리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럴 때 참 난감하다. 물어물어 간신히 구름정원길 중 선림사(禪林寺)에 닿았다. 선림은 ‘깨달 음의 숲’이라는 뜻이란다. 웅장한 북한산 숲속에 있다 보면 마음의 평화를 얻

316

참가자

고중희 김동준 김수곤 김종욱 김중곤 안은섭 유재두 윤진평 이현기 정락용 진영주 최병학 함동일 허정회

317


152次

|

2016. 4. 2

도봉산

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물다. 잠시 학창시절 수도 없이 오르내리던 코스를 일 별(一瞥)한다. 겨우내 바위에 목말라 있던 클라이머들이 개미처럼 붙어 있다. 주명갑 선생님의 빈자리가 커 보인다. 사모님께서 산에 가는 걸 적극 만 류하셔서 못 나오셨다. 지난 2년여 사제 간 함께 산행하면서 얼마나 자랑스러 워했는지 모른다. 어제 전화를 받고 그간 제대로 모시지 못한 점을 자책했다. 마당바위 바로 밑에 자리를 편다. 오늘 주식은 봉구스 주먹밥에 콩나물

주명갑 선생님의 빈자리

국이다. 11명이 막걸리 6병 가지고 쩔쩔맨다. 이곳 터줏대감으로 보이는 고양 이 한 마리가 자릿세를 받으러 왔다. ‘할머니가게’ 건너편에 있는 노천카페에서 맥주로 간단하게 하산주를 한다. 한 달에 한 번 산에서 만나 적당히 운동하면서 50년 우정을 나누는 우 리는 행복하다. 내주에는 산우회 회원 18명이 3박 4일 일정으로 일본 규슈 올 레 트레킹을 떠난다. 거기서는 또 어떤 재미나는 일이 있을지 벌써부터 가슴 설렌다.

올 것 같지 않던 봄이 성큼 우리 곁에 왔다. 갑자기 기온이 올라가고 여기저기 봄꽃 축제 소식이 들린다. 이 아름다운 봄날, 산우회 친구 11명이 도봉에 올랐 다. 도봉산역 건너편 만남의 광장은 이 봄을 즐기려는 등산객으로 북적인다. 오늘 목적지는 마당바위다. 비교적 한산한 우이암 코스로 접어들었다. 배드민턴장이었던 너른 공터에서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었다. 이현기 동기회 총무가 총동문회 등반대회와 동기회 소풍 소식을 전했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은 역시 꽃의 계절이다. 봄의 전령인 개나리, 진달래, 산수유, 목련이 한창 아름다움을 뽐낸다. 1년 중 가장 기(氣)가 많이 생성되 는 시기다. 봄 산행이 우리 건강에 특히 좋은 이유다. 산 초입 다리 밑에서 잠시 막걸리로 목을 축인다. 땀 흘리며 부지런히 올 라가던 뭇 등산객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눈치다. 지난겨울 내렸던 눈 녹은 계 곡물이 눈 시리도록 깨끗하다. 은섭이가 4월 한 달간 금주하겠다며 폭탄선언 을 한다. 언제 보아도 늠름한 선인봉(仙人峰)이다. 대도시 근교에 이런 거암(巨巖)

318

참가자

김동준 김종욱 김중곤 박종헌 안은섭 유재두 윤명술 이현기 진영주 최병학 허정회

319


154次

|

2016. 5. 7

청계산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

어제까지만 해도 비 내리고 꾸물대던 날이 언제 그랬냐는 듯 화창하게 개었 다. 산우회 17명의 친구들이 청계산에 오르기 위해 원터골 느티나무 앞에 모 였다. 오늘은 마침 산우회 창립 11주년이 되는 날이다. 11년 전 5월 불과 대여 섯 명의 산 벗들이 바로 이 자리에서 만나 청계산 등산을 했다. 그러던 게 엊

스트레칭으로 준비운동을 했다. 정자룡 동기회 회장이 산우회 창립 11

그제 같은데 어언 11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월례 정기산행은 한 번도 거

주년 축하와 함께 친구들의 건강을 기원했다. 오래간만에 나온 이종상 동기

르지 않았다. 일곱 차례 해외산행도 했고, 동해안 770㎞ 해파랑길도 걷고 있

도 앞으로 좀 더 자주 함께하겠다고 인사했다. 나이 들면서 산을 통해 친구들

다. 또 수시로 자연휴양림에 캠프를 차리고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을 만끽하

과 함께 건강을 다지는 것처럼 즐거운 게 없는 것 같다.

고 있다. 이렇게 그간 150번 이상 만났다. 앞으로도 산우회 역사는 자연 속에 서 친구들과 함께 면면히 쓰여 갈 것이다. 사람들의 발길이 비교적 뜸한 천개사(天開寺) 코스를 택했다. 부처님 오 신 날을 앞두고 매단 형형색색의 연등이 중생의 마음을 밝게 해준다. 독경(讀 經)과 목탁소리가 산 전체에 은은하게 번진다. 덩달아 산을 오르는 발걸음도 가벼워진다.

320

산은 신록의 연두에서 녹음의 초록으로 옷을 바꿔 입는 중이다. 시시각 각 변하는 자연의 신비다. 우리 미약한 인간은 오래전부터 산을 외경(畏敬)의 대상으로 여겨왔다. 근래 인간의 허망한 욕심으로 자연이 점차 훼손되는 게 안타깝다. 길마재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간다. 친구들의 체력이 예전 같지 못한 것 같다. 자연스러운 노화현상이니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럴수록 몸에 안 좋다

321


는 건 삼가고 쉼 없이 체력을 길러나가야 한다. 매봉과 청계골로 갈라지는 삼거리 한적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한 시간

156次

|

2016. 6. 4

북한산

남짓 여기까지 올라오느라 땀 좀 흘렸다. 건강을 위한 보약이 따로 없다. 운동 을 해서 흘린 이 땀이 바로 보약이다. 오늘 메뉴는 연어회에 열무비빔밥이다. 역시 먹는 시간이 가장 즐겁다. 이제까지 힘들어 말도 하지 않던 친구들의 입 이 열렸다. ‘술은 적게, 대화는 많이’, 우리 산우회가 지향하는 목표 중 하나다. 영주가 알아맞히면 내려가 술 산다며 퀴즈 하나를 낸다. 사자성어로 ‘누 죽걸산’이 뭐냐고 묻는다. 처음 듣는 거다. 대답이 궁해 모두들 끙끙 앓는다.

걸으면서 많은 걸 보고 배운다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는 뜻이란다. 그 제목의 책을 몇 해 전 해파랑길을 걷다 필호가 추천해 사서 읽었다. 한의사인 저자 화타 선생이 시한부 인생을 사는 중환자를 치료하는 방법이 적혀 있다. 강원도 방태산 초막을 찾아온 환 자에게 배낭을 짊어진 채 산을 오르게 한다. 수많은 사례를 통해 산속에서 자 연친화적으로 살면서 병을 고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 이 책은 만병의 근원 은 자기 마음속에 있음을 강조한다. 욕심을 버리고 자기 분수에 맞게 생활할 것을 권한다.

어떤 둘레길이든지 걷다 보면 구석구석에 있는 많은 것을 보고 배우게 된다.

하산 길에 서울 시내를 보니 하늘이 온통 뿌옇다. 미세먼지가 심하다. 우

오늘 북한산 둘레길 왕실묘역길과 방학동길도 그랬다. 우이동 버스 종점에서

리는 청정한 자연의 품에 안겨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이수봉 산장’에

출발해 연산군묘, 정의(貞懿)공주묘, 무수(無愁)골을 거쳐 도봉역까지 약 6㎞

들러 간단하게 산행 뒤 마무리를 했다. 정자룡 회장이 친구들과 멋진 산행을

를 걸었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산책길답게 안내 표지들이 적재적소에 잘 설치

했다며 건배를 청한다. 회장 취임 후 처음 나와 신고한다며 계산대로 향한다.

되어 있었다. 딱히 지도가 필요 없을 정도였다.

친구들이 박수로 화답한다.

적당히 하늘에 낀 구름은 걷는 내내 시원한 양산이 돼 주었다. 산우회 핵심 회원들이 몽골 여행에 나서는 바람에 단출했지만 망외(望外)의 소득을 올린 트레킹이었다. 서울에 몇 십 년 사는 동안 처음 대하는 우리 역사문화 유산을 보며 어떤 때는 자괴감마저 들기도 한다. 하지만 산우회 친구들과 함 께 이런 걸 돌아보는 기회를 갖게 돼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왕실묘역길로 접어들었다. 성종 맏아들로 중종반정(中宗反正) 때 폐왕 된 연산군묘와, 정의공주묘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반정은 조선시대 왕이

참가자

고중희 김동준 김수곤 김종욱 김중곤 박종헌 손재춘 안은섭 유재두 윤명술 윤진평 이종상 이현기 정자룡 진영주 최병학 허정회

322

무능하거나 포악하여 백성이 곤경에 처했을 때 행하던 무력적인 정치변동이 다. 시쳇말로 쿠데타다.

323


연산군은 성종과 폐비 윤 씨 아들로 태어나 18세에 임금이 되었다. 젊어

샘물 한 바가지를 마시니 등에 흘렀던 땀이 금방 가신다.

서부터 시(詩)와 서(書)에 능했다. 그러나 난정(亂政)과 패륜으로 조정(朝廷)

얼마 안 가서 정의공주묘가 나온다. 정의공주는 세종의 둘째 딸이며 문

을 어지럽히자 1506년 중종을 추대한 반정으로 폐위되었다. 동시에 연산군으

종의 여동생이자 세조의 누이다. 훈민정음 창제에 왕세자였던 문종과 함께 많

로 강등되고 강화도로 유배되어 그해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때 나이 불과

은 기여를 했다. 세종대왕은 정의공주에 대한 총애가 남달라 당시 정의공주

31세였다. 그로부터 7년 후 부인 신(愼) 씨의 요청으로 묘소를 이곳으로 옮기

집에서 자주 기거했다. 이 정의공주묘는 정의공주와 그의 남편 양효공(良孝

게 되었다.

公) 안맹담(1415~1462)을 합장한 곳이다. 양효공은 14세 때 정의공주와 혼인

묘소와 인접해 단아하게 잘 지어진 연산군묘 재실(齋室)이 있다. 재실은

을 맺었다. 그는 초서는 물론 악(樂)과 의(醫)에도 조예가 깊었다.

무덤이나 사당 옆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집이다. 제사에 참석하는 사람

방학동길 구간에 접어들었다. 방학동이라는 지명은 방아가 있는 곳이라

들의 숙식을 해결하고 제사 음식 같은 걸 장만한다. 재실 툇마루와 댓돌이 많

는 데서 유래됐다. 그러나 한자로 기록하면서 음이 비슷한 방학리(放鶴里)가

은 사람들의 발길로 반질거린다.

되었다. 이런 유래를 모른 채 이제까지 그저 학이 많이 노닐던 곳으로 미루어

재실 인근에 서울시에서 가장 나이 많은 ‘방학동 은행나무’가 우람하게

짐작하고 있었다. 방학동은 필호의 고향이기도 하다. 우리가 고3 때인 1969년

서 있다. 수령 830년으로 2013년 서울시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 나무와 관련

7월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달 착륙하는 광경을 그의 집에서 TV로 시청했

해 재밌는 일화가 있다. 경복궁을 증축할 때 징목(徵木) 대상이었으나 마을

던 기억이 뇌리에 선하다. TV가 아주 귀하던 시절 얘기다.

주민들이 흥선대원군에게 간청해 제외되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아직도

유적지에서 해설사의 설명도 듣고, 사진도 찍으면서 여유 있게 오다 보

이 나무를 ‘대감나무’라 부른다. 600년 전부터 주민들이 식수로 사용한 원당

니 어느새 자리 펼 시간이 되었다. 산책로를 약간 벗어나 한적하고 비교적 너

324

325


른 곳에 터를 잡았다. 주변 우거진 녹음으로 생긴 그늘이라 식사 장소로는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곳이다. 생선전, 소시지양파초절임, 삶은 계란, 수박에 김밥, 커피까지 밥상이 화려하다. ‘A급’이 대거 빠진 탓인지 술이 제 대접을 못 받는 다. 8명이 막걸리 두 병도 못 마셔 다시 지고 내려갔다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소주파인 재두, 현기까지 합세한다. 산에서 우리처럼 술 많이 마시는 나라가 없다. 등산을 하면 땀도 많이 흘리고 기분도 좋아지면서 술맛이 좋지만 과음 은 금물이다. 내달부터 새로운 시도를 해보기로 했다. 이제까지는 은섭이가 주로 점심 거리를 장만해왔는데 이를 친구들끼리 분담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산행에 나설 때 밥, 김치, 과일을 포함해 각자 선호하는 밑반찬 한 가지씩 준 비해 오자는 것이다. 열 명이 참가하면 열 개의 반찬으로 상이 차려지는 것이

쌍둥이전망대에서. 뒤로 선인봉, 만장봉, 자운봉, 주봉과 같은 도봉산의 거벽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다. 싸 가지고 오는 데 약간 성가시긴 하겠지만 은섭이가 준비하는 부담도 덜 고, 산우회에 새로운 바람도 넣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피할 수 있었다. 북한산과 같은 세계적 명산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다행스러

쌍둥이전망대에 오르니 선인봉, 만장봉, 자운봉, 주봉과 같은 도봉산의

운 일인지 모르겠다. 무수골에 피라미들이 떼 지어 유영하고 있다. 무수골을

거벽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아파트로 숲을 이룬 서울 전역이 한눈에 들어

지키고 있는 왜가리 한 마리가 날렵한 동작으로 피라미 한 마리를 낚아 맛있

온다. 우리나라 주택 형태 중 아파트가 51%를 차지한다고 한다. 불과 40~50

게 먹는다.

년 사이에 우리나라는 아파트 공화국이 돼버렸다. 전망대 난간에 걸린 이백 (李白)의 산중문답(山中問答)이 눈길을 끈다.

오늘 트레킹의 종점, 도봉역에 닿았다. 약 72㎞에 달하는 북한산 둘레길 도 이제 몇 구간 안 남았다. 한 구간, 한 구간 걷다 보니 이제 끝이 보이기 시작 한다. 처음 마음먹고 시작하기가 어렵지 뭐든지 시작만 하면 그 끝을 보게 된

묻노니, 그대는 왜 푸른 산에 사는가.

다. 우리 인생살이가 모두 그렇지 않던가.

웃을 뿐, 답은 않고 마음이 한가롭네. 복사꽃 띄워 물은 아득히 흘러가나니, 별천지 따로 있어 인간 세상 아니네.

무수골로 향한다. 무수골이라는 마을 이름은 1477년(성종8년) 세종의 열일곱 번째 아들인 영해군묘가 조성되면서 유래되었다. 지명대로 ‘걱정 근심 없는 마을’이다. 조성된 지 500년이 넘는 동안 이곳의 역사와 문화를 오롯이

참가자

간직하고 있는 자연마을이다. 국립공원 안에 있어 기적적으로 개발 바람을

김중곤 안은섭 유재두 윤진평 이현기 최병학 함동일 허정회

326

327


158次

|

2016. 7. 2

제6차 서울둘레길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야외 행사를 할 때 가장 신경 쓰이는 게 날씨다. 날씨만 좋으면 일단 50점은 따고 들어간다. 산우회 7월 산행은 항상 장마 한복판에 놓인다. 그래서 여느 때보다 날씨 걱정을 많이 하게 된다. 어제 전국적으로 많은 비가 내렸다. 하지 만 오늘은 용케도 잘 피했다. 하늘에 깊이 감사드린다. 오늘 코스는 서울둘레길 중 관악산 구간이다. 서울대 입구에서 석수역까 지 약 7㎞ 거리다. 도중에 천주교 삼성산(三聖山) 성지, 삼림욕장, 호압사, 호 암산 폭포를 지난다. 관악산공원 입구는 생각보다 많은 등산객들로 북적였다. 어제 내린 비로 등산로 옆을 흐르는 개천에 물이 그득하다. 물은 보기만 해도 마음을 푸근하 게 하는 그 무엇이 있다. 등산로를 잠시 걷다 오른쪽 삼성산으로 접어든다. 갑자기 등산객이 1/10 로 줄었다. 우리처럼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은 몇 안 되는 것이다. 한적해서 더 좋다. 첫 고갯마루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습기가 많아선지 온 몸이 벌써 땀범 벅이 됐다. 멀리 연주대와 가까이 서울대 캠퍼스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328

329


그 반석 위에서 중년 부부가 준비해 온 먹을 걸 즐기면서 오순도순 얘기를 나

림, 오이, 당근, 방울토마토, 사과, 자두, 커피, 땅콩, 오징어포, 북어포 등 진수

누고 있다.

성찬이 따로 없다. 이제까지 안 해 본 걸 하니 다른 등산팀 같은 새로운 기분

솟대 터를 지난다. 솟대는 옛날에 마을을 지켜달라는 뜻에서 높은 나무 꼭대기에 나무로 만든 새를 달아 마을 어귀에 세우던 장대다. 이곳 솟대는 관 악산 둘레길을 걷는 트레커들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세웠다.

이었다. 삼성산 성지는 1839년 기해(己亥)박해 때 새남터에서 순교한 성 앵베르 주교, 성 모방 신부와 성 샤스탕 신부의 유해가 안장된 곳이다. 순교 당시 이

관악산은 돌산이기에 물이 귀하다. 비 올 때만 잠시 물이 흐를 뿐 물을

들의 나이는 각각 43세, 35세, 35세였다. 이들은 1836년부터 조선에 입국해 선

담아두지 못하는 곳이다. 그런 산에 어제 내린 비로 물이 제법 많이 흐르고

교활동을 했다. 밤낮으로 전국에 있는 천주교 신자를 찾아 복음을 전파했다.

있었다. 관악 일대에서는 보기 쉽지 않은 장면이다.

이국적인 외모를 감추기 위해 평소 상복을 입고 다녔다. 본래 삼성산은 고려

11시 반, 약간 이른 감이 있지만 침엽수림 삼림욕장 평상에 자리를 폈다. 비 그친 숲속의 공기는 더없이 상큼했다. 각자 싸가지고 온 걸 꺼내 놓으니 그

말 명승(名僧) 나옹・무악・지공이 수도한 곳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천주교 선교사 세 명의 유해가 이곳에 안장된 것이다.

넓은 평상이 좁아 보인다. 이제까지는 주로 은섭이 혼자 먹거리를 준비해 왔

1407년(태종7년) 왕명으로 창건된 호압사(虎壓寺)는 태조가 한양에 도

다. 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산우회 창립 11년 만에 처음으로 시도하는 거다.

읍을 정하고 궁궐을 짓는 과정에서 호랑이 머리 형상을 한 호암산(虎岩山)

각자 알아서 한 가지씩 가지고 오라고 했는데 절묘하게도 겹치는 게 없다. 떡,

의 기세를 눌러 우환을 없애고자 지은 절이다. 도량 내 500년 된 두 보호수가

김밥, 밥, 샌드위치, 오이김치, 삶은 계란, 메추리 알, 찐 감자, 골뱅이・꽁치 통조

600년 사찰 역사를 굽어보고 있는 듯 의연하게 서 있었다. 때죽나무 연리지(連理枝)가 등산객들의 눈길을 잡는다. 보기 쉽지 않은 만큼 그 형태도 다양하다. 이들은 가지 중간쯤에서 손을 맞잡았다. 전생에 무 슨 인연이 있었기에 이생에 태어나 둘이 하나가 되었을까. 오늘 걸었던 관악산 구간은 서울둘레길 중에서도 추천할 만하다. 경관 (景觀), 얘깃거리, 적당한 높낮이 등 둘레길 3대 요소를 두루 갖췄다. 땀을 많 이 흘려선지 석수역 근처 호프집 생맥주가 더없이 맛있었다.

참가자

고중희 김동준 김수곤 김중곤 박종헌 손재춘 유재두 이현기 진영주 최병학 허정회

330

331


159次

|

2016. 8. 6

관악산

까지 이르는 문원계곡이 관악산에서는 제일 크다고 할 수 있다. 산에 들어서 자마자 계곡물이 넘실댄다. 어린애들 물장난 치는 소리가 계곡에 울려 퍼진 다. 초입 그늘진 곳에서 스트레칭 체조로 준비운동을 했다. 이 체조 중에서 우 리 친구들이 몇 가지만이라도 매일 하게 되면 건강관리에 크게 도움될 거라 고 생각한다. 이 문원계곡은 아는 이가 드물다. 평소 인적이 뜸한 코스인데 때가 때인

“집 떠나 산에 오길 잘 했네!”

지라 등산객이 줄지어 올라간다. 이 중 대부분은 우리처럼 계곡 물놀이를 즐 기러 온 사람들일 게다. 자리만 잘 잡으면 서울 인근에 이만한 피서지도 드물 다. 수영장은 사람들로 번잡하고 바다는 멀어 귀찮다는 사람들한테 제격이다. 계곡도 좋지만 짙은 초록으로 물든 등산길 또한 멋지다. 경사도 그리 급하지 않다. 바깥은 덥지만 산에 들어서자 청량한 공기와 싱긋한 나무 향에 내 몸이 먼저 반응한다. 문원폭포까지 30분밖에 걸리지 않는데 그마저 오르기 귀찮은 듯 벌써 쉴 곳을 찾는다.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수량(水量)이 적어진다는 논리다. 일찍

8월 초순, 휴가철 한복판이다. 입추가 내일이라는데도 폭염은 여전하다. 최고

온 사람들이 이미 목 좋은 곳은 다 차지하고 있었다. 물도 있고 옆에 옹기종기

기온이 연일 35~36도를 오르내린다. 오늘 산우회 산행은 관악산 계곡 물놀이

모여 앉을 수 있는 데를 간신히 찾았다. 동준이와 현기는 앉자마자 계곡물에

다. 이맘때 딱 들어맞을 거 같았다. 과천 정부청사역 출구를 빠져나오는데 뜨

몸을 던진다. 옆에서 보는 사람도 절로 시원해진다.

거운 기운이 폐부 깊숙이 파고든다. 오늘 무더위를 예고하는 듯하다.

계곡물은 바닥이 훤히 보이도록 맑다. 발가락 사이를 휘돌아 나가는 물

약속장소에 제일 먼저 도착했다. 여유 있게 나온 데다 적시에 전철 연결

로 어느새 땀이 쏙 들어가 뼛속까지 시원하다. 이런 깨끗하고 찬 물에 물고기

이 잘된 덕이다. 일찍 닿아 기다리는 게 늦는 거보다 낫다. 지각하게 되면 마

한 마리 안 보인다. 이유를 영주한테 물으니 물이 쉬 끊어지는 데는 살지 않는

음이 급한 나머지 아니 날 일도 생기게 마련이다. 우리 산우회 친구들 모두 시

다고 한다. 이곳은 살 데가 아니라는 걸 본능적으로 아는 거다. 어느 동식물

간약속을 잘 지키는 편이다. 10시 10분이 되니 다 모였다.

이건 자기 생명을 존속시키기 위한 본능이 있다. 참 신기한 게 우리가 살고 있

음료를 장만해 놓고 산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는 영주와 동준이를 향해

는 지구 생태계라는 걸 새삼 느낀다.

출발했다. 영주가 신문지로 돌돌 만 막걸리, 맥주, 소주와 자기 농장에서 딴 삶

친구들 각자 알아서 식단을 준비한 두 번째 산행이다. 열세 명이 가지고

은 옥수수를 배급해 준다. 친구들이 시원하게 마실 수 있도록 세심한 데까지

온 게 스무 가지는 된다. 김밥, 토스트, 삼각 김밥, 가래떡, 삶은 계란, 오징어

신경 쓴 것이다. 바로 이런 게 우리 산우회를 지탱하는 힘이다.

포 무침, 편육, 김치, 우유, 빵, 삶은 옥수수, 자두, 방울토마토, 참외, 커피 등 이

관악산은 산이 깊지 않아선지 계곡이 별로 없다. 그 몇 안 되는 계곡도

루 셀 수 없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있는 듯 겹치는 거도 없다. 친구들과 시원한

돌산이라 물을 담아두지 못하고 다 흘려보낸다. 우리가 오늘 택한 문원폭포

계곡에서 술과 맛있는 안주로 한잔하니 이보다 더 좋은 피서가 없다. 이 더운

332

333


날 집 떠나 산에 오길 잘 했다고 이구동성이다. 청주고 출신 74학번이라는 친구가 넉살 좋게 막걸리 한잔 얻어 마시러 왔다. 그냥 줄 수 없으니 노래 한가락 하라고 하니 솜씨가 준프로급이다. 자기 네 청주고와 신일고가 야구 게임할 때 목동구장에서 만나자며 헤어졌다. 물에 발 담그고 세상 돌아가는 얘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건강, 교육, 문화 등 주제도 다양하다. 마냥 있을 수 없어 세 시 반, 하산 준비를 한다. 아 래 세상에 내려오니 숨이 턱턱 막힌다. 불과 30분 거리인데 산과 도시는 이렇 게 다르다. 과천 시내 2층 호프집 에어컨이 시원하긴 하지만 왠지 계곡풍만 못 한 거 같다. 호프 한잔으로 오늘 알찬 피서에 마침표를 찍는다.

참가자

고중희 김동준 김수곤 김학규 유재두 윤진평 이규옥 이현기 정락용 진영주 최병학 함동일 허정회

334

335


160次

|

2016. 9. 3

제7차 서울둘레길

구들이 결혼식 참석을 이유로 나오지 못했다. 모두 7명이 모였는데 그나마 고 중희가 발이 시원치 않다고 그냥 돌아갔다. 멀리 산본에서 구파발까지 나온 성의가 대단하다. 나이 들어감에 따라 점차 참가 회원 수도 줄어들 것이다. 하 지만 우리 모임 이름이 ‘산우회’니 최소 두 명만 모이면 성원이 된다. 그때가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 친구들이 평소 건강을 다지면 여든이 넘 어서까지도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단출했지만 내실 있었던 은평 둘레길

둘레길은 앵봉산(해발 230m) 오르는 걸로 시작됐다. 초입부터 잘 정비 된 길이 좋은 인상을 준다. 오늘 성공적인 걷기가 될 거 같은 예감이 든다. 급 하지 않은 오르막이지만 걷자마자 이마에 땀이 흐른다. 이곳은 꾀꼬리가 많 아 앵봉산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다양한 수종으로 구성돼 있어 수목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먹구름 한가운데 파란 하늘과 북한산 전경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앵봉산 정상 근처 길섶 식탁에서 잠시 목을 축였다. 흘린 땀을 벌충하기 위한 핑계다. 국순당 바나나 막걸리 한 병이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사라졌다.

자연의 이치는 거스를 수 없나보다. 바로 며칠 전까지 기승을 부리던 염천(炎

산 정상을 오르는 게 아닌 둘레길 걷기는 어차피 쉬엄쉬엄 가는 데 그 묘미가

天)과 열대야는 눈 녹듯 사라져버렸다. 몇 년 만의 폭염이라고 호들갑을 떨던

있다. 인생의 정점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는 우리와 잘 어울리는 거 같다. 친구

게 쑥스럽게 됐다. 구름 잔뜩 낀 하늘은 우리 양산이 돼주었다. 걷기에 그만인

들과 함께 삶의 여유와 건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길이다.

날이었다. 157㎞ 서울둘레길 걷기도 이제 종착역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오늘 구

오늘 코스 특징은 걷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으나 상대적으로 군데군

파발역부터 앵봉산 - 봉산(봉수대) - 증산(繒山)역까지 이어지는 약 9㎞ 구

데 쉼터가 많았다는 거다. 식탁을 비롯해 전망대, 정자, 평상, 벤치와 같은 시

간을 걸었다.

설을 잘 갖춰 놓았다. 각 지자체가 주민 건강 증진을 위해 서로 경쟁하듯 시설

구파발역 일대가 서울 북서부의 중심이 되고 있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확충에 나서고 있다. 둘레길을 돌면서 그걸 맘껏 활용하는 우리는 복 받은 사

하더라도 서울 외곽 변두리로 허름한 집들과 비닐하우스가 즐비한 곳이었다.

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통이 불편하던 학창시절 불광동에서 버스를 갈아

그러던 데가 은평뉴타운 건설로 단기간에 면모를 일신했다. 사람이 몰려 사

타고 이곳까지 소풍 왔던 기억이 새롭다.

는 곳에 변화가 있는 법이다. 역 근처는 현재 개발 몸살을 앓고 있다. 롯데타

경기도 고양시와 은평구 경계에 있는 벌고개 횡단보도를 지나 다시 둘레

운과 성모병원을 비롯해 각종 편의시설이 들어설 채비를 하고 있다. 뉴타운

길로 접어들었다. 벌고개는 옛날 이곳 서오릉을 왕릉 자리로 정한 유명한 지

지역난방을 위해 2007년 건립된 쓰레기소각시설(은평환경플랜트)을 지나니

관(地官)이 벌떼에 쏘여 죽었던 고개라는 데서 유래됐다. 시간은 어느덧 12시.

바로 둘레길이 시작된다.

봉산(烽山) 오르기 전에 있는 정자 식탁에 오붓하게 둘러 앉아 점심 식사를

오늘 식구는 단출했다. 바야흐로 결혼 시즌이 시작된 모양이다. 많은 친

336

했다. 오늘도 식단은 풍성했다. 고 여사표 샌드위치, 닭 강정, 떡, 김밥, 게맛살,

337


김치, 사과, 포도로 상이 차려졌다. 옆 자리 팀으로부터 얻은 모기향 덕분에 편안하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이곳 산에 버려진 듯한 검정털 강아지 한 마리가 등산객들의 이목

봉수대가 있는 봉산(烽山, 해발 209m)에 오르니 서울 전역으로 이어지

을 끌고 있다. 바로 옆에는 사람들이

는 조망이 아름답다. 왼편으로는 북한산, 북악산, 인왕산, 남산, 안산, 청계산

주고 간 삶은 감자가 비닐 위에 놓여

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른편으로는 하늘공원, 노을공원, 가양대교와 망월산,

있었다. 갈증이 심해 보여 손바닥에

개화산, 방화대교, 계양산, 행주산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봉산은 일명

물을 담아 주니 기다렸다는 듯 잘

봉령산(鳳嶺山)이라 한다. 이 산의 정상에서 좌우로 뻗은 산줄기가 마치 봉황

받아 마신다. 게맛살 한 토막을 주

이 날개를 편 형상이라는 데서 따온 이름이다. 3・1운동 당시 이곳 봉수대에서

니 별 생각이 없는 듯했다. 주인 잃

횃불을 밝히고 만세시위를 했다고 전해진다.

은 그놈을 산에 남겨 놓고 떠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데려가 달라고 애원하 는 듯한 눈망울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증산역 근처 노천카페에서 마무리를 했다. 오늘 산행은 당초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 잘 닦인 공기 좋은 산길을 제법 많이 걸었다. 서울 북서 부에서 본 서울은 이제까지 봐오던 것과 전혀 달랐다. 특히, 외곽에서 본 북한 산은 왜 북한산이 세계적인 명산인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올해는 둘레길을 많 이 걸었으니 내년에는 전철로 춘천, 온양, 소래 등지로 원족(遠足)을 가자는 제안도 있었다. 또 내년 해외여행으로 일본 후지산과 주변 도시 관광을 검토 하기로 했다. 우리 산우회는 모두에게 열려 있다. 산우회 발전을 위한 친구들 의 건설적인 의견을 환영한다.

참가자

고중희 김동준 김중곤 박종헌 윤진평 진영주 허정회

338

339


162次

|

2016. 10. 1

도봉산

선인봉은 늠름했다

초하루가 첫째 토요일이라 산행으로 10월을 시작하게 되었다. 지난 4월에 이 어 올 들어 두 번째로 도봉을 찾았다. 내일부터 개천절 연휴까지 중부지방에 200㎜ 폭우가 내릴 거라는 일기예보가 무색할 정도로 날이 맑다. 도봉산역 앞 만남의 광장은 이런 호시절을 놓칠세라 몰려든 등산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상의 끝에 용어천계곡 - 절터 - 마당바위에서 하산하는 코스를 택했다. 산 초입 도봉탐방지원센터 전광판에 단독산행을 자제하고 산행 전 준비 운동을 해 돌연사를 예방하자는 안내문구가 쉼 없이 돌아가고 있다. 그 앞에 서 우리라도 시범을 보이고자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었다. 10분간에 불과한 준비운동이지만 굳었던 우리 몸을 예열시키기에 충분하다. 도봉서원 터를 지난다. 복원한답시고 그곳에 있던 낡은 건물을 허문 지 몇 년이 지났건만 아직 공한지 상태다. 도봉서원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유학자 였던 조광조와 송시열의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했다. 지난 2014년 이곳에 서 국보급 고려 불교공양구가 대량 출토돼 언론에 크게 보도된 바 있다. 천축사와 성도원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우리는 왼쪽 성도원 길로 접

340

341


어들었다. 등산로는 한결 호젓해졌다. 우이암과 마당바위로 갈라지는 작은 마

는 모양이다. 대부분 나이든 사람들이다. 국민소득만 높다고 선진국이 되는

당바위에서 잠시 숨을 돌렸다. 용어천계곡으로 가기 위해서는 우이암 쪽으로

게 아니다. 맘껏 즐기되 남을 불편하게 하는 행동은 삼가야 한다. 그와 동행하

가는 길을 택해야 한다. 성도원을 지나 우이암과 용어천계곡 갈림길에서는 오

지 않기 위해 잠시 쉬었다 간다.

른쪽 주봉(柱峰)으로 향하는 길로 들어섰다.

영삼이가 버스 종점 근처 만남의 광장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연락이 왔

용어천(龍馭川)계곡은 계곡 입구 바위에 ‘龍馭川’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다. 그가 안내하는 도봉산 안골에 있는 ‘원두막’에 들렀다. 도봉산 산꾼 영삼

있었던 데서 유래한다. 임금이 왕림했던 내라는 뜻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이와 홍빈이의 단골집이다. 이제까지 몇 십 년 도봉산을 다니면서 이곳 안골

함흥에서 돌아올 때 이곳을 들렀다는 고사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

이라는 데는 처음 와 본다. 뒤로는 신선대, 자운봉, 만장봉, 선인봉이 병풍처럼

다. 계곡 오른쪽으로는 웅장한 바위가 있어 암벽등반 동호인들이 많이 찾고

펼쳐진 곳이다. 절대농지로 묶여 있지만 언젠가는 풀릴 거라는 희망으로 이곳

있다. 여름에는 계곡에 수량이 풍부해 등산객들이 즐겨 머무는 곳이다.

에서 소박한 음식점을 하고 있다. 가지고 온 막걸리와 소주를 마셔도 되냐고

용어천계곡을 한창 오르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오래간만에 듣는 권

양해를 구하니 시원한 걸로 바꿔주겠다 한다. 주인의 고운 심성을 엿볼 수 있

영삼 군의 목소리다. 우리가 오늘 도봉에 온 줄 알고 도봉산역에서 전화를 한

는 대목이다. 차려져 나온 보신탕과 파전도 일미다. 영삼이와 홍빈이 덕분에

것이다. 이따 다시 연락해 만나기로 했다.

분위기 있는 맛집을 알게 됐다.

벌써 12시가 좀 지났다. 마당바위 가다 중간에 있는 옛 절터에서 자리를 폈다. 이곳은 입석불상과 함께 돌로 된 상이 여러 개 있는 것으로 잘 알려져

다섯 시가 지나서야 원두막을 나섰다. 도봉산역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휴대폰 만보기에는 1만 5000보, 8㎞가 찍혀 있다.

있다. 우리 일행 열 명이 앉기에 안성맞춤인 데를 하나 골랐다. 오늘도 푸짐한 상이 차려졌다. 김밥, 각종 떡, 빵, 김치, 계란부침, 바나나, 배, 사과, 커피까지 다양하다. 이 많은 걸 어떻게 하나 걱정했는데 일어날 때는 빈 그릇만 남았다. 우리가 식사하는 동안 이곳 원주민 고양이 한 마리가 인사를 한다. 아주 잘생 긴 놈이다. 식사 후 마당바위로 향했다. 주봉과 선인봉이 한눈에 들어오는 등산로 에서 친구들에게 두 바위 암벽등반 코스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다. 선인봉에 는 여러 명의 클라이머들이 암벽등반을 즐기고 있었다. 거의 매주 그곳을 오 르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반 백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때는 암벽화가 없어 워커를 잘라 신고 군용자일과 카라비나만으로 암벽을 오르내렸다. 그 후 암 벽등반 기법도 많이 발전했고, 장비도 현대화되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 자리 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선인봉은 늠름했다. 옛날보다는 드물지만 아직도 산에서 음악을 크게 틀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하산 길에 바로 그런 사람을 만났다. 자기가 좋으면 남들도 그런 줄 아

342

참가자

고중희 권영삼(뒤풀이) 김수곤 김홍빈(뒤풀이) 박종헌 유재두 윤진평 정락용 진영주 최병학 함동일 허정회

343


163次

|

2016. 11. 5

제8차 서울둘레길

전무후무할 무알코올 산행

지난 주 있었던 깜짝 추위는 물러가고 11월 초답지 않은 포근한 날이다. 오늘

단은 줄을 서야 할 정도였다. 하늘공원은 명성답게 억새로 큰 숲을 이루고 있

은 서울둘레길 중 증산역부터 가양역까지 약 8㎞를 걷는 날이다. 증산역 출

었다. 너나없이 카메라에 모습을 담느라 정신이 없다. 하기야 서울에서 여기만

구 앞 정자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수곤이가 큰 박스를 메고 나타난다. 상진이

한 억새 숲을 만나기 쉽지 않다.

가 보내준 영양떡이다. 정성스레 포장된 떡 하나하나에는 ‘축, 허정회 마라톤

노을공원으로 건너가기 전 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둔덕에서 각자

100회 완주’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이름이 들어가 있는 떡은 처음 본다.

싸가지고 온 먹거리로 요기를 했다. 오늘은 어찌하다 보니 무알코올 산행이

열 명이 열 개씩 나눠 가졌다. 상진이의 기발한 아이디어와 배달책 수곤에게

돼버렸다. 하늘공원 매점에서는 고속도로 휴게소처럼 술 판매가 금지되어 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월드컵경기장 - 하늘공원

었다. 산우회 12년 산행 중 처음이고 아마 앞으로도 이런 일은 없을 거 같은 역사적인 날이 되었다. 술이 없다 보니 자리도 일찍 파했다.

- 노을공원 - 가양대교로 이어 지는 오늘 코스는 가을이면 억 새가 장관을 이뤄 많은 상추객 (賞秋客)들로 발 디딜 틈이 없

344

는 곳이다. 오늘 또한 예외가 아

참가자

니었다. 하늘공원을 오르는 계

김동준 김수곤 김종욱 안은섭 유재두 이현기 진영주 최병학 함동일 허정회

345


165次

|

2016. 12. 3

한양도성을 동서로 가로질러 흐르

청계천 둘레길

는 내의 물길이 막혀 물난리가 나곤 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태종은 물 길을 고쳐 이를 개천이라 했다. 세종 은 대수(大水), 평수(平水), 갈수(渴 水)를 나타내는 수표(水標)를 세워 수해를 방지했다. 이후 300여 년간

도심 속 생태공원, 청계천

방치해오다 영조 때인 1760년 20여 만 명을 동원해 준설작업을 하고 양 성동구 청계천문화관 맞은 편 판잣집 체험관. 구 멍가게, 다방, 교실 등 1960년대 추억의 장소들을 당시의 모습으로 재현했다.

쪽에 석축을 쌓아 개천을 보강했다. 청계천이라고 불리기 시작한 건 1900년대 들어서였다. 일제는 오

간수문과 같은 돌다리를 철거하고 콘크리트로 다리를 만들었다. 광통교 위 로는 전찻길도 생겼다. 한국전쟁 후 나라 질서가 문란한 틈을 타 청계천변에 한 해를 마무리하는 송년 산행으로 청계천을 걸었다. 이제까지 북한산 등산

는 판자집으로 가득 들어찼다. 이 도시흉물을 없애기 위해 1958년부터 1977

후 모교 근처 식당에서 선생님들을 모시고 송년회 하던 오랜 틀을 벗었다. 만

년까지 20년간 뚜껑을 덮었다. 그 위로는 길이 6㎞, 폭 12m의 3・1고가도로를

남의 장소인 용두역 4번 출구는 바로 용두공원과 맞닿아 있었다. 동대문구청

놓았다.

청사 건너편에 있는 공원은 시비(詩碑)와 조형물로 잘 정비되어 있었다. 연말

세월이 흐를수록 환경이 안 좋아져 시민의 건강과 안전이 문제되었다.

을 맞아 멀리 캐나다에 살면서 한국에 잠시 들른 이재활도 나왔다. 그는 벌써

2002년 이명박 대통령후보는 청계천 복원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당선 후 약 3

몇 년째 우리와 함께 송년 산행을 하고 있다.

년간의 공사를 거쳐 오늘날의 청계천으로 거듭 태어나 많은 시민들로부터 사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의 호를 딴 고산자(古山子)교부터 걷기 시작

랑받는 생태하천이 되었다. 청계천 복원은 그 후 각 지방자치단체에 있는 복

했다. 여기부터 광화문 청계광장까지는 약 5㎞에 걸쳐 22개의 다리가 놓여 있

개천을 원상태로 되돌리는 촉매가 되었고, 세계적으로도 대도시환경을 크게

다. 12월 초 치고는 포근한 영상의 날이었다. 바람마저 없어 걷기에는 그만이

개선한 역사(役事)로 기록되었다.

었다. 때마침 주말을 맞아 많은 사람들이 청계천을 걷고 있었다. 우리 17명도

청계천은 도심 속 자연 생태공원이었다. 잉어와 송사리와 오리가 공존하

그 대열에 합류했다. 청계천이 세상의 빛을 다시 본 지 무려 11년 만에 오늘

는 평화의 세계였다. 하지만 잠시 고개를 들어 바깥을 내다보면 마천루가 하

처음 발을 디뎠다.

늘을 찌르고 있는 살벌한 도시풍경이 펼쳐졌다.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대화하

청계천의 본명은 그냥 개천(開川)이었다. 태조 이성계는 사방에 높은 산 과 남쪽으로 큰 강을 품은 한양을 조선의 도읍으로 정했다. 하지만 여름이면

346

면서 천천히 걸었는데도 출발한 지 1시간 40분 만에 청계광장에 도착했다. 청계천을 걸을 때의 여유는 급기야 광화문에서 산산이 부서졌다. 오늘

347


은 마침 박근혜 대통령 즉각 퇴진과 하야를 외치는 여섯 번째 촛불집회가 이 곳 광화문을 중심으로 열리는 날이다. 12시밖에 안 되었는데도 태평로는 벌 써 많은 시민들로 가득 차 있었다. TV로만 보고 듣던 시위 현장 한복판을 지 나 오늘 뒤풀이가 예정돼 있던 ‘호이리거’에 도착했다. ‘호이리거’는 사직공원 옆 매동초등학교 앞에 있었다. 오스트리아에서 30년 살았던 모교 경근우(14회) 후배가 운영하는 오스트리아 식당이다. 크지 는 않지만 앞에는 정원도 있고 서울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경관 좋은 곳이다. 오늘 송년회에는 박원상 주명갑 박태남 이종신 정오영 선생님 다섯 분을 모셨다. 세월이 흐르다 보니 그간 모셨던 한태근 이금산 선생님은 벌써 고인이 되셨다. 선생님들께 인사로 예를 표하면서 모임을 시작했다. 선생님 한 분 한 분의 덕담을 듣고 주명갑 선생님의 기도로 식사가 시작됐다. 전식으로 야채샐러드, 화이트와인 소스로 만들었다는 홍합과 빵이 나 왔다. 처음 대하는 오스트리아식이라 모든 게 새로웠다. 본식사는 더 멋있었

치를 즐겼다.

다. 돼지고기구이, 돈가스 튀김, 두부같이 부드러운 소시지, 감자튀김이 큰 접

올해도 어김없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명품 레저용 양말을 안긴 최병학 동

시에 담겨 나왔다. 양도 무척 많았다. 이것도 모자라 맛있는 피자도 곁들었다.

기와 내년도 동기회 총무직을 맡았다고 막걸리와 빈대떡으로 신고한 이규옥

거기에 주인장의 서비스 맥주까지 두 시간 남짓 디너같이 푸짐하고 맛있는 런

동기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오늘로 2016년 산우회 행사는 모두 막을 내렸다. 올 한 해 12회의 정기산 행, 4회의 자연휴양림 캠프, 2회의 해파랑길 걷기와 한 번의 해외산행을 했다. 참가인원에 일수를 곱한 연인원으로는 정기산행 155명, 캠프 115명, 해파랑길 68명, 해외산행 72명 등 모두 410명이 참가했다. 아무 사고 없이 이렇게 많은 동기들과 함께할 수 있어 행복했다. 2017 정유년에도 자연과 벗하며 즐기는 산우회 행사에 많은 친구들이 뜻을 같이 하기 바란다. 아듀, 2016!

참가자

고중희 김수곤 김중곤 박종헌 변수복 안은섭 양상진 유재두 윤진평 이규옥 이도선 이재활 이현기 진영주 최병학 함동일 허정회

348

349


166次

|

2017. 1. 7

제9차 서울둘레길

암사동 선사유적지 광진교 건너 한강공원 너른 잔디밭에서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었다.

서 마주치는 게 다 다른 거다. 걸으면 느릴지는 몰라도 그만큼 자세히 보게 되 는 것이다. 여기에 걷기의 매력이 있다. 암사동 선사유적지를 들렀다. 신석기인들은 물과 식량자원이 풍부한 바 2017 정유년 신년산행이다. 오늘 코스는 광나루역 - 광진교 - 한강공원 광나

닷가나 강가, 혹은 언덕에 모여 살면서 사냥과 고기잡이, 채집, 농경생활을 했

루지구 - 암사나들목 - 암사동 선사유적지 - 고덕산 - 샘터공원 - 고덕역으

다. 이곳은 약 6000년 전 빗살무늬토기를 사용하던 신석기시대 조상들이 모

로 이어지는 약 10㎞ 둘레길이다. 모두 157㎞ 서울둘레길도 그 끝을 볼 날이

여 살던 집터 유적이다. 우리나라 중서부지역 신석기시대 생활상을 보여주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소한 이틀 후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날이 포근하

중요한 사적지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토기 조각이 발견된 게 유적 발굴

다. 신임 최용병 동기회장, 이규옥 총무와 김흥배 재무 등 동기회 회장단을 비

의 계기가 됐다. 1967년에야 비로소 발굴 조사가 시작됐다. 신석기시대 집터,

롯해 많은 친구들이 나왔다. 남상화 회원도 멀리 진천에서 귀한 걸음을 했다.

빗살무늬토기, 돌도끼, 돌화살촉, 갈돌과 갈판 등이 발견됐다. 발견된 집터는

광진교로 한강을 건넜다. 광진교는 1936년에 준공된 것으로 한강에서는

서로 겹쳐 있어서 이곳이 시차를 두고 여러 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곳으로 추

한강대교 다음으로 오래된 다리다. 한국전쟁 때 북한군의 남하를 막기 위해

정되고 있다. 말로만 많이 듣던 이곳 선사유적지를 직접 와보게 된 건 오늘 트

폭파됐다가 1952년 미군이 복구했다. 1994년 시설 노후로 철거됐다가 2003

레킹의 백미(白眉)였다.

년 새로 건설했다. 주변 경관과 전망이 좋고 녹지보행로가 있어 걷기에 쾌적했 다. 최 회장이 새해를 맞아 산우회 발전을 기원하는 신년인사를 했다.

벌써 12시, 새참시간이다. 암사대교 근처 한적한 서원마을 정자에 자리 를 깔았다. 정자를 이용하는 건 해파랑길 걸으면서 익힌 노하우다. 우리 18명

광진교 건너 한강공원 너른 잔디밭에서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었다. 여기

이 자리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각자 준비해 온 먹거리를 펼쳐 놓으니 전식부

는 평소 내 달리기 훈련장이다. 눈감고도 다닐 수 있는 곳인데도 이곳에 레일

터 후식까지 멋진 상이 차려졌다. 김순중 회원이 고창에서 가지고 온 복분자

바이크장이 있는 줄은 몰랐다. 그러기에 차타면서, 달리면서 보는 것과 걸으면

와 흑삼을 돌렸다. 인삼농사를 짓느라 농번기에는 산우회 산행에 나오지 못

350

351


하지만 지금처럼 농한기에는 빠지지 않는 그다. 간식을 하니 시장기가 가셨다. 앞으로 남은 절반의 오늘 일정을 위해 자리를 정리했다. 고덕산을 올랐다. 멀리 철마산, 남양주시, 천마산, 평내가 한눈에 들어왔 다. 원래 낮은 야산이라 이름 없는 산이었다. 고려 충신 이양중(李養中) 공이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되자 관직을 떠나 야인으로 이곳 산자락에서 은둔 하며 살았다. 후세 사람들이 공의 고매한 인격과 덕성을 보고 느끼고 기리자 는 의미에서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무엇이건 그 유래를 알면 작은 것도 크게 보인다. 밋밋했던 길이 산자락으로 이어지니 아기자기하고 제법 땀도 났다. 오늘 코스도 서울둘레길 중 추천할 만하다. 샘터공원에는 운동하러 나온 이 근처

한 건배를 했다. 사람은 자유로울 때, 무슨 일을 잘할 때 그리고 그로 인해 인 간관계가 강화될 때 행복을 느낀다 한다. 오늘 친구들과 함께하며 이 모든 걸 느꼈다. 행복한 하루였다.

주민들이 많았다. 지난 2010년 9월 태풍 곤파스로 망가졌던 걸 주민들이 마 을공동체를 살리기 위해 자발적으로 복구한 공원이다. 명일동에 사는 손재춘 회원과 연락돼 고덕역 이마트 정문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하남에 사는 임성호 회원까지 뒤풀이 자리에 합류해 모두 20명이 됐다. 즉석에서 강동지부장에 임명된 손재춘 회원이 우리 모두의 건강과 행복을 위

352

참가자

김동준 김수곤 김순중 김종욱 김중곤 김홍빈 김흥배 남상화 박종헌 손재춘(뒤풀이) 안은섭 유재두 이규옥 이현기 임성호(뒤풀이) 장무철 최병학 최용병 함동일 허정회

353


167次

|

2017. 2. 4

강서둘레길

크에 자리를 폈다. 떡, 빵, 군고구마, 곶감, 김밥, 약식, 유과, 사과, 배, 유자차, 커 피로 진수성찬이 차려졌다. 상화가 집에서 담근 산사주가 인기다. 막걸리와 소주는 찬밥 신세다. 어제부터 돌연 금주(禁酒)를 선언한 김수곤 탓이 크다. 하지만 비주류 합류를 축하해 마지않는다. 20여 년 전 친구가 금연하라는 충 고 한마디에 담배를 단칼에 끊었다고 한다. 금주도 성공하리라 믿는다. 막걸 리로 간단히 목만 축이고 가자는 게 그만 자리가 길어졌다.

의성(醫聖) 허준(許浚)을 뵙다

방향을 돌려 한강을 따라 동쪽으로 향한다. 가양역이 최종 목적지다. 방 화대교, 마곡철교를 지나야 한다. 여기부터 약 6㎞ 거리다. 중간에 잠깐 열려 있는 생태습지에 들어서니 이제까지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맹꽁이 서식 지이기에 통행이 가능한 모양이다. 한강공원 인도에는 때마침 날이 풀려선지 많은 시민들이 여유롭게 산책을 하고 있었다. 도중 가양동에 있는 의성 허준 박물관에 들렀다. 가양동은 허준 선생이

봄기운이 일어선다는 입춘(立春)이다. 집을 나서는데 폐부로 빨려 들어가는 공기가 한결 부드럽다. 친구들 만난다는 기대감 때문인지 1시간 30여 분의 여 행도 그리 지루하지 않았다. 방화역 1번 출구, 반가운 얼굴들과 마주한다. 오래간만에 산우회에 나오는 김재수와 멀리 진천에서 오고 있는 남상화 를 기다리면서 스트레칭을 한다. 한 10분간이지만 우리 몸을 예열하기에 충 분하다. 오늘은 강서한강공원을 걷기로 했다. 당초 개화산을 한 바퀴 도는 강 서둘레길을 계획했는데 결빙구간이 있어 코스를 변경했다. 안은섭 총무와 진 영주 재무가 지난주 사전 답사를 통해 내린 결론이다. 조류인플루엔자(AI)가 남의 얘기인줄 알았는데 우리에게도 영향을 줄지 예상치 못했다. 경관이 좋은 생태습지공원은 AI 확산을 방지키 위해 출입을 전면 금지하고 있었다. 산책로를 따라 걷는 게 밋밋하기는 했지만 아무도 볼 멘소리를 하지 않았다. 정부 시책에 군말 않고 협조하는 우리 친구들이 고맙 고 자랑스러웠다. 출발한 지 한 시간 정도 만에 행주대교에 다다랐다. 근처에 있는 너른 데

354

355


방화역을 출발한 지 한 시간 만에 행주대교에 다다랐 다. 근처에 있는 너른 데크에 자리를 폈다.

168次

|

2017. 3. 4

북한산

태어나 성장하고 동의보감을 집필하 고 돌아가신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곳에 2005년 서울시와 강서구가 공 동으로 박물관을 개관했다. 허준 선 생이 집필한 각종 서적, 자료, 옛 의

산우회, 오래간만에 이름값

약기와 연대기가 잘 정리돼 있었다. 사전 예약도 안 했는데 박물관 안내 사가 자세히 설명해줘 이해에 크게 도움이 됐다. 한의(韓醫) 분야에 위 대한 업적을 세운 선조를 기린 박물관이지만 오늘에야 초행인 게 부끄러웠다. 웰빙시대 세 가지 키워드는 ‘보자’ ‘놀자’ ‘쉬자’라고 한다. 같이 얼굴 마 주보며 놀고 쉬는 거처럼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게 없다는 뜻일 게다. 적어도 한

자연은 정직하다. 경칩을 하루 앞두고 날이 확 풀렸다. 산행하기 딱 좋은 날이

달에 한 번 산우회에 나오면 이 모든 게 한꺼번에 해결된다. 아무리 기쁜 일이

다. 북한산 원효봉을 오르기 위해 구파발역에 모였다. 이런 천지개벽이 없다.

라도 그 유효기간은 3개월이라고 한다. 유효기간 내 자주 즐거운 일을 만들어

은평뉴타운이 들어선 지 불과 10년 남짓 지났다.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최

행복을 면면히 이어가자.

근 생긴 ‘롯데몰’이 구파발 생태계를 바꿔놓았다. 북한산성행 버스에 몸을 실 었다. 요즘 이런 만원버스는 없다. 명산 근처에만 있는 풍속도다. 우리만큼 산 을 좋아하는 민족이 또 있을까 싶다. 태생적인 건 아닐 것이다. 인간은 환경에 따라 진화해왔다. 유독 등산하기 좋은 산이 많은 우리나라다. 살기 위해 산에 오르면서 유전자도 그리 변형됐을 거 같다. 북한산성 다음 효자파출소가 2차 집결지다. 거기서 종헌, 현기, 병학, 종 욱을 만나기로 돼 있다. 하마터면 정거장을 지나칠 뻔 했다. 모두 넋 놓고 있 었는데 빨간 신호등이 우리를 구해줬다. 스트레칭으로 가볍게 몸을 풀었다. 문화는 습관의 산물이다. 스트레칭은 우리 산우회 특유의 좋은 문화가 됐다.

참가자

김수곤 김재수 김종욱 김중곤 남상화 박종헌 변수복 안은섭 유재두 이현기 진영주 최병학 함동일 허정회

356

북한산성은 북한산 여러 봉우리를 연결하여 돌로 쌓은 성이다. 12㎞에 달하는 한양도성 배후 산성이다. 1711년 숙종 때 쌓기 시작해 축성 6개월 만

357


온 원효암에서 봉 이름을 따왔다. 영취봉, 백운대, 만경대, 노적봉, 의상봉이 파 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산기슭에 쌓여 있는 눈과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 를 대하는 듯하다.

원효봉 반상 위에 금세 진수성찬이 차려졌다. 진천산 산사(山楂)주, 수복

표 백수오(白首烏)주가 인기다. 따스한 햇볕에 바람 한 점 없어 식사하기에 그 만이다. 통통하게 살찐 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 곁을 어슬렁거린다. 박종헌 2017해외산행 대장이 그간 추진경과를 설명한다. 7월 초 3박 4 일 일정으로 20명이 후지산 등산과 도쿄 관광을 한다. 후지산은 등산팀과 체 험팀으로 나눠 진행할 예정이다. 산우회 여덟 번째 해외여행이 크게 기대된다. 나이 들어감에 따라 우리를 괴롭히는 건 고독(孤獨)과 무위(無爲)다. 함께 어 울려야 하고, 할 일이 있어야 한다. 일이라는 게 꼭 돈 버는 일만은 아니다. 여 행처럼 구체적인 목표가 있는 취미생활도 좋은 일거리다. 북문 - 보리사 - 북한산성 계곡을 따라 하산하기로 했다. 북한산성에는 원효봉에 오르니 영취봉, 백운대, 만경대, 노적봉, 의상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12개의 문이 있다. 이중 동서남에 각각 대동문, 대서문, 대남문이 있다. 북쪽 에 있는 북문에만 ‘대’자를 붙이지 않은 이유는 뭘까?

에 완공했다. 축성 이후 한 번도 전쟁을 겪지 않았던 성이다. 안내 표지에 ‘원효봉 1.6㎞’라고 돼 있다. 비교적 짧은 거리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계속 올라 가야하는 코스다. 서암문(시구문) - 원효암 - 원효봉으로

북한산성 계곡이 본연의 모습을 찾았다. 계곡 따라 즐비했던 음식점들 을 정비한 효과다. 계곡물은 맑아졌고, 환경은 자연친화적으로 복원되었다. 300년 역사 북한산성 마을이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이어진다. 새봄 기운을 받으려고 산을 찾은 등산객들과 마주친다. 등산회, 친

북한산성 입구 ‘두부집’에서 뒤풀이를 했다. 내가 ‘백두산’으로 건배 제

구 모임, 연인들 … 그 구성도 제각각이다. 그중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부부가

의를 했다. ‘백세까지 두발로 산에 가자’라는 의미다. 오늘 북한산 등산으로

아름다워 보인다. 가족 모두 행복해하는 마음이 나에게도 절로 이염(移染)

오래간만에 우리 산우회가 이름값을 했다.

된다. 서암문(西暗門)은 북한산성 내 8개 암문 중 하나다. 암문은 비상시 병기 (兵器)나 식량을 반입하는 통로로 쓰였다. 성내 시신을 내보내는 문이라 해 시구문(屍軀門)이라고도 했다. 땀 흘린 덕에 꾀 많이 올라왔다. 서울 북서부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날이 이렇게 좋을 수 없다. 친구들 얼굴에 건강미가 넘친다. 출발한 지 두 시간 만에 원효봉(元曉峰, 해발 505m)에 올랐다. 막 지나

358

참가자

김동준 김수곤 김종욱 김학규 남상화 박종헌 변수복 유재두 윤진평 이현기 진영주 최병학 허정회

359


169次

|

2017. 4. 1

남한산성

남한산성 일주

산우회 산행 12년 만에 처음으로 남한산성을 찾았다. 왜 그동안 남한산성을

있다. 고려시대에는 몽골의 침입을 격퇴한 곳이기도 하고, 일제 강점기에는 항

외면했는지 모르겠다. 남한산성은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 있었다. 지하철 덕분

일운동의 거점이기도 했다 한다.

이다. 8호선 산성역에서 산성으로 올라가는 버스에 몸을 싣고 아주 편하게 남 문에 닿았다.

이렇듯 남한산성은 우리 민족과 영욕을 함께한 세계 유산이다. 성의 외 부는 급경사라 적의 접근이 어렵다. 내부는 경사가 완만하여 물과 경작지가

날은 더없이 맑았다. 때마침 어제 봄비가 적당히 내려 미세먼지마저 없어

갖춰진 천혜의 요충지다. 성의 역사만큼 성곽의 형태도 단순하지 않다. 단일

시정(視程)이 좋았다. 산에는 겨우내 이제나저제나 봄을 기다리던 개나리와

폐곡선(閉曲線)으로 이뤄지지 않고, 본성, 봉암성, 한봉성, 신남성, 옹성(甕城)

진달래가 수줍은 듯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으로 된 복잡한 구조로 돼 있다.

남문 앞에서 간단하게 준비운동을 했다. 여기서 사람들은 대개 수어장

일반적으로 옹성은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 밖으로 둘러쌓은 이중성

대(守禦將臺)가 있는 시계방향으로 간다. 우리는 그 반대 방향인 동문(東門)

벽을 말한다. 그러나 남한산성 옹성은 좀 다르다. 성벽으로 접근하는 적을 3

을 향해 걸었다. 사람들이 많지 않아 한적해 더 좋았다.

면에서 입체적으로 공격하여 요충지를 확보하기 위해 성벽에 덧대어 쌓은 성

우리들 뇌리에 남한산성은 대개 병자호란과 연상되는 곳이다. 1636년 인

이다. 남한산성에는 모두 5개의 옹성이 있다.

조 때 청나라가 침략하자 왕은 이곳에서 피신하다 결국 항복한 굴욕의 역사

암문(暗門)은 적의 관측이 어려운 곳에 설치한 성문으로 일종의 비밀통

현장이다. 그러나 남한산성은 삼국시대부터 천연의 요새였다. 백제 시조인 온

로다. 따라서 크기도 작고 적이 쉽게 식별하지 못하도록 단순하게 축조했다.

조의 왕성이었고 통일신라 시대에는 주장성(晝長城)으로 불리었다는 기록이

남한산성에는 모두 16개의 암문이 있다. 동서남북 4대 문에는 계단이 있어 우

360

361


마차의 통행이 불가능했기에 이들은 주로 암문으로 통행했을 거로 추측된다.

남한산성의 수어장대(守禦將臺) 앞에서. 5개의 장대 중 유일하게 남아 있다.

조선말 천주교 박해 때 희생당한 시신이 이 문을 통해 버려져 천주교도에게 는 성지순례지이기도 하다.

본성 성벽이 만나는 곳에 암문이 있

여장(女墻)이란 성위에 낮게 쌓은 담으로 이곳에 몸을 숨겨 적에게 효과

었다.

적으로 총이나 활을 쏠 수 있게 만든 시설이다. 남한산성 여장은 여느 성곽에

출발했던 남문으로 가는 도중

서 보기 힘들게 주재료가 하부는 석재이고 상부는 전돌(塼乭)로 돼있다. 장대(將臺)란 지휘와 관측을 위해 군사적 목적으로 높은 지대에 지은

있는 수어장대(守禦將臺)에 들렀다.

누각이다. 남한산성에는 5개의 장대가 있었다. 18세기 초 무너졌던 이들 장대

남한산성에 있는 5개의 장대 중 유

가운데 18세기 중엽 남장대와 서장대는 중축했으나 북장대와 동장대는 다시

일하게 남아 있다. 성 내에 남아있

짓지 않았다. 군사적인 실효성이 없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는 건물 중 가장 화려하고 웅장하

동장대(東將臺) 터 밑 양지 바른 곳에 있는 식탁에서 간식을 했다. 벌써

다. 1624년 인조 2년 남한산성 축성

12시 30분이 되었다. 출발한 지 두 시간 됐으니 시장할만하기도 하다. 김밥,

때 단층으로 지어 서장대라 불리던

빵, 떡, 컵라면, 과일, 커피로 요기를 했다. 아홉 명이 소주 한 병, 막걸리 세 병

것을 1751년 영조 27년 2층으로 다

도 채 못 마셨다. 친구들 주량이 예전에 비하면 1/3 수준밖에 안 된다. 건강을

시 짓고 수어장대라는 편액을 달았

챙기느라 절주하는 친구들의 모습이 보기 좋다.

다. 1953년 이곳을 방문했던 이승만

북서쪽의 요충지인 연주봉을 확보하기 위한 연주봉 옹성이다. 이곳에서

대통령이 기념식수한 나무가 수어장대 오른쪽에서 잘 자라고 있다. 왼쪽에는

바라다본 아차산 북쪽과 남한강 일대가 장관이다. 연주봉 옹성에는 옹성과

정성 들여 가꾼 소나무 한 그루가 객들의 이목을 끈다. 부인과 함께 온 허명윤 군을 우연히 만났다. 출발했던 남문으로 원점 회귀했다. 10㎞남짓 걸었다. 적당히 오르내리막 이 있어 우리 친구들 걷기에 제격이었다. 3대째 운영하고 있다는 천주교성당 옆 손두부집에 들어서니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전골과 손두부로 간 단하게 뒤풀이하고 나오니 어느새 비는 그쳤다. 날씨에 관한 한 우리 산우회 는 참 복 많이 받은 모임이다. 오늘도 친구들과 자연을 벗 삼아 우리 역사를 되돌아본 의미 있는 하루였다.

참가자

고중희 김수곤 김종욱 손재춘 유재두 이현기 최병학 함동일 허명윤(중도 합류) 허정회

362

363


171次

|

2017. 5. 6

청계산

될 12년이 더욱 기대된다. 산 초입 정토사(淨土寺) 주차장에서 준비운동을 했다. 엊그제 ‘부처님 오신 날’을 기린 산사는 막 잔치를 마친 집 마냥 적적해 보였다. 불도(佛徒)는 안 보이고 합장한 채 홀로 대웅전으로 향하는 승려만 눈에 띄었다. 최근 준공 한 듯한 커다란 대웅전이 무색해 보였다. 과연 누구를 위해 누구에 의해 이런 호화 대웅전이 건립됐을까 잠시 체조하면서 생각해 봤다.

산우회 열두 돌

오늘 산행은 옛골 종점 - 정토사 - 혈읍재 전 우측 소로 - 매봉 - 매바 위 - 돌문바위 - 원터골로 이어지는 약 7㎞ 코스다. 12년 전 5월 산우회 첫 산 행도 이곳 청계산이었다. 오늘 청계산을 택한 것도 이를 기념하기 위함이다. 산에 들어서니 우선 청량감이 속세와 달랐다. 신록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氣) 가 우리들 발걸음을 가볍게 도와주었다. 혈읍재로 오르는 길은 쭉쭉 뻗은 소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솔향으로 그득했다. 이 고개를 조선시대 영남 사림(士林)의 거유(巨儒) 정여창(鄭汝昌, 1450~1504)은 성리학적 이상국가의 실현이 좌절되자 은거지인 금정수를 가

5월 초 황금연휴 끝자락에 청계산을 올랐다. 항상 많은 등산객들로 벅적거리

면서 통분하며 넘었다. 그 피울음 소리가 산 멀리까지 들렸다하여 후학인 정

던 옛골 버스 종점이지만 오늘은 한산한 편이었다. 다들 멀리 떠난 모양이다.

구(鄭逑)가 이 고개를 혈읍(血泣)재라 했다.

우리 친구들도 평소보다 적게 아홉 명이 모였다. 요즘 몸이 좀 편치 않은 안은

혈읍재 채 못미처 우측 소로(小路)로 접어들었다. 이제까지보다 더 고즈

섭 총무는 ‘궁중 떡볶이’를 우리 손에 쥐어준 후 되돌아갔다. 이래저래 호젓한

넉한 분위기 속에 약간 경사진 오르막이 이어졌다. 중간 갈림길 한가운데 덩

산행이 될 거라는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러니 놓인 커다란 바위 하나가 좋

5월은 산우회 생월이다. 올 5월은 우리 산우회 태동 열두 살이 되는 의미

은 이정표가 되어준다. 바위에 걸터

있는 달이다. 이제까지 월례산행, 해외산행, 해파랑길 걷기, 각종 캠프를 합쳐

앉아 잠시 숨을 고른다. 이제까지 말

171차례 만나 건강과 우정을 다졌다. 한 번 한 번 만나 온 게 산우회 역사가

도 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다가도

된 것이다. 역사는 기록을 뜻한다. 기록 없는 역사는 무의미하다. 우리는 지나

쉴 때면 언제 그랬냐는 듯 금방 생기

온 발자취 대부분을 기록으로 남겼다.

가 돈다.

‘만 원의 행복’을 십분 누리고 있는 것도 자랑스럽다. 연회비 1만 원과 참

전방 가까이 하늘이 보이더니

가비 1만 원으로 나름대로 풍족하게 잘 꾸려가고 있다. 이런 자생력을 갖췄기

곧 능선길이 나타났다. 좌측으로는

에 우리 건강만 받쳐준다면 얼마든지 지속가능한 모임으로 ‘인생의 황금기’

혈읍재로, 우측으로는 매봉(618m)

를 함께 향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기에 지나온 12년보다 우리 앞에 전개

이 바로 코앞이다. 어느덧 1시 가까

364

365


이 됐다. 바람이 심해 점심 자리를 잡는 데 한참 애먹었다. 가까스로 우리 8명 이 앉을 만한 아늑한 곳을 찾았다. 바로 앞에는 남녀 10여 명의 일행이 있었

175次

|

2017. 8. 5

도봉산

다. 나중에 알고 보니 ‘레인보우’라는 인터넷 산악회 회원들이었다. 한창 입을 즐기고 있는데 앞 일행 중 여성 한 명이 순대와 파김치를 들고 왔다. 그들의 슬러시 막걸리와 우리 쌀 막걸리를 맞교환해준 데 대한 보답이었 다. 내심 내키지 않던 ‘거래’였다. 그냥 보낼 수 없어, 안은섭표 궁중 떡볶이를 조금 나눠줬다. 언뜻 손해라고 생각하던 게 이익으로 돌아올 때가 더 많은 세 상 이치가 참 묘하다.

물놀이하며 동심으로 돌아가다

매바위(578m)에서 바라 본 시내는 온통 누런 황사투성이었다. 오늘 황 사가 심할 거라는 예보가 그대로 적중했다. 우리는 그래도 산에 있으니 덜할 거라고 위안해본다. 날이 갈수록 중국발 황사는 심해지고, 지구온난화로 인 한 이상기온은 예측불가다. 인간의 힘으로 자연을 제어할 수 없는 게 안타까 운 일이지만 그게 우리 인간의 한계가 아니겠는가. 모두 돌문바위를 돌면서 소원을 빌었다. 이 돌문을 세 바퀴 돌면 모든 소원이 이뤄진다는 얘기가 있다. 그래선지 이를 지나치는 사람은 거의 없다.

1년 산행 중 우리 산우회 친구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8월 물놀이 산행을 했

청계산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명물이다. 이를 배경으로 어느 부부에게 사진

다. 근래 들어 가장 많은 14명이 함께했다. 작년까지는 주로 관악산 문원폭포

촬영을 부탁했더니 부인이 우리와 함께 찍겠다고 한가운데 자리 잡는다. 자연

계곡에서 즐겼다. 올해는 도봉산 용어천계곡으로 옮겼다. 아무래도 큰 산에

에서는 이처럼 서로 허물없게 되는 모양이다.

물이 좀 더 많이 있을 거 같아서였다. 입추를 이틀 앞뒀지만 가만히 있어도 땀

원터골 소박한 길가 매점에서 뒤풀이를 했다. 사장 어머니는 친절했고 아들 종업원은 착했다. 깨끗한 화장실에 놓인 싱싱한 화초 두 그루로 주인장

이 줄줄 흘렀다. 올여름 들어 오늘이 가장 더웠다고 한다. 우리 산우회 산행 택일은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의 교양을 가늠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 하나라도 더 주려 했고 불편함이 없도

도봉산역 코앞에 사는 현기, 의정부 병학이와 별내 동일이가 물놀이하기

록 배려했다. 좀처럼 만나기 쉽지 않은 ‘장삿속’ 없는 집을 나오면서 입에서는

좋은 자리를 잡는다고 본대보다 약 한 시간 먼저 출발했다. 10시 좀 전에 자

절로 이 집의 번창을 비는 말이 나왔다.

리를 잡았다고 단톡에 알려왔다. 구봉사 - 성도원 지나 26-2번 팻말 바로 아 래 있다고 한다. 대충 도봉산역에서 한 시간 거리다. 좀 늦고 있다는 규옥이와 중희는 종헌에게 맡기고 푹푹 찌는 더위를 한시라도 빨리 피하기 위해 본대가 먼저 출발했다.

참가자

박종헌 안은섭 유재두 윤진평 이현기 정락용 최병학 함동일 허정회

366

매표소 지나 산으로 들어서니 살 만하다. 이른 시간이건만 벌써 계곡 요 소요소마다 피서객들로 만원이었다. 이렇게 더울 때는 산이 가장 시원하다는

367


걸 잘 아는 사람들이다. 맨발로 시원 한 계곡물에 발 담그고 있는 그들이

178次

|

2017. 9. 30

제10차 서울둘레길

너무 부러웠다. 우리도 그 대열에 합 류하기 위해 발길을 재촉한다. 현기 가 성도원 밑에까지 마중 나왔다. 선발대가 잡은 곳은 명당이었 다. 거기에 병학이가 한 시간에 걸쳐 토목공사를 해 번듯한 식탁을 만들

걸으며 배운다

어 놓았다. 주변 큰 나무는 우리의 양산이 되어 주었다. 자리를 잡자마 자 맥주 한 잔씩 들이켠다. 땀을 많 이 흘린 직후 마시는 맥주 맛은 기가 막혔다. 안주는 영주가 준비해 온 ‘버펄 로 윙스’ 닭날개 구이다. 맥주에도 소주에도 잘 어울리는 안주감이다. 규옥이 가 챙겨온 야채샐러드 빵, 재두의 짜장빵, 김밥, 멜론 등 먹거리도 다양했다. 물에서 도룡뇽을 발견한 동일이는 도망갈세라 얼른 휴대폰 카메라에 현

9월 마지막 날 산우회 10월 정기산행을 했다. 10월 첫 토요일이 추석연휴 중

장을 포착해 둔다. 차고 맑은 물에만 산다는 도룡뇽을 만난 건 네 잎 클로버

에 끼어 있기 때문에 일주일 앞당겼다. 서울둘레길 일자산코스를 걸었다. 강

보다 더 큰 행운이라고 흥분한다. 우리 산우회 사진작가 병학이가 연신 셔터

동구 고덕역부터 송파구 올림픽공원역까지 약 11㎞ 거리다. 도중에 명일공원,

를 눌러댄다. 개인별 맞춤 사진을 작품화해 선물한다. 그런 기록을 단톡방에

일자허브천문공원, 일자산 가족캠핑장, 둔굴(遁屈), 방이동 생태경관보전지

서 본 대구에 사는 인수는 우리와 함께하기 위해 서울 가고 싶은 마음이 굴

역, 성내천을 지났다. 단군 이래 처음이라는 장장 열흘간의 추석 연휴가 시작

뚝 같다고 소감을 남긴다. 자연과 함께 이런 소소한 즐거움을 만끽하면서 오

하는 날이기 때문인지 단출하게 모두 여덟 명이 함께했다.

랫동안 친구들과 산에 오르고 싶다. 우리 산우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걸으며 배운다. 도보여행은 운동이자 공부다. 자연은 온갖 공부거리로 가득 차 있다. 자동차나 그 밖의 탈것을 이용할 때 얻을 수 없는 걸 걸으며 배 우게 된다. 오늘도 그랬다. 처음 만난 명일공원은 주민들의 쉼터로 그만이었다. 강동 경희대병원 뒷동산과 연결되어 있었다. 공원에서 마주친 주민들의 표정 은 한결같이 밝고 기운이 넘쳤다.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공짜선물이다. 일자허브천문공원에 들어서자 온갖 허브향이 코끝을 즐겁게 했다. 넓은

참가자

고중희 권영삼 김수곤 김중곤 김홍빈 박종헌 유재두 이규옥 이현기 장무철 진영주 최병학 함동일 허정회

368

공원을 허브식물로만 조성했다. 인간이 만든 모든 향의 원천은 식물이라는 얘기가 실감 났다. 식물의 세계는 알면 알수록 신비스럽다. 그들은 그들의 신

369


위해 호를 둔촌으로 바꿨다. 현재 둔촌동의 동명(洞名)은 여기서 유래했다. 둔촌이 후손에게 이른 말이다. “독서는 어버이의 마음을 기쁘게 하느니, 시간을 아껴 부지런히 공부해라. 늙어서 무능하면 공연히 후회만 하게 되니, 머리맡의 세월은 괴롭도록 빠르기만 하느니라. 자손에게 금을 광주리로 준다 해도, 경서 한 권 가르치는 것만 못하느리라. 이 말은 비록 쉬우나 너희들을 위해서 간곡히 일러둔다.” 이름도 생경한 ‘방이동 생태경관보전지역’을 찾았다. 오늘 코스의 종점이 다. 2002년 약 1만 8000평 규모로 조성한 인공습지로 담수생태계와 육상생 태계가 공존하고 있었다. 갈대 버드나무 물억새 등 114종의 식물, 백로 왜가 리 원앙 등 45종의 조류, 참붕어 떡붕어 버들붕어 등 6종의 어류가 한 식구처 럼 살고 있었다. 이렇게 환경 좋은 곳에서 서식하고 있어선지 모두 행복해 보 였다. 성내천변은 주민들의 산책로로 잘 정비돼 있었다. 때마침 주말을 맞아 많은 주민들이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꼬마 아이가 던져 준 먹이를 받아먹는 잉어의 입이 그렇게 예쁠 수 없었다. 고결한 자태의 왜가리가 호시 탐탐 먹잇감을 노리며 부지런히 발길을 옮기는 모습에서는 생존을 위한 결기 가 묻어났다. 올림픽공원역 상가 호프집에서 시원한 맥주 한잔을 들이켜면서 오늘의 멋진 도보여행을 정리했다.

(神)인 태양을 마주하기 위해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인다. 그러는 가운데서도 그들 나름대로 질서를 지켜 아름다운 대자연을 이루어낸다. 식물이 ‘식물인 간’, ‘식물국회’처럼 종종 비하하는 의미로 쓰이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식물 만큼 생존을 위해 활발하게 움직이는 생물도 드물다. 오늘 산행에서 둔굴(遁屈)을 알게 된 것도 큰 수확이다. 둔굴은 고려 말 대학자 둔촌(遁村) 이집(李集, 1327~1387)이 공민왕 17년(1368년) 신돈의 박 해를 피해 일시 은거하였던 곳이다. 이집은 이색, 정몽주, 이숭인과 더불어 절

참가자

개(節槪)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은둔 동안의 고난을 후세까지 잊히지 않기

김종욱 박종헌 손재춘 정락용 진영주 최병학 함동일 허정회

370

371


180次

|

2017. 11. 4

제11차 서울둘레길

서울둘레길을 다 걷다

서울둘레길 마지막 구간을 걸었습니다. 수서역에서 올림픽공원역까지 9㎞를 2시간 30분만에 마쳤습니다. 수서역 - 탄천 - 장지천 - 문정근린공원 - 거여 공원 - 성내천 - 올림픽공원역으로 이어지는 길입니다. 박종헌 유재두 윤진 평 이현기 장무철 최병학 군이 함께했습니다. 탄천 구간은 여러 번 달렸던 데라 눈에 익숙했습니다. 하지만 달릴 때와 걸을 때는 맛이 다릅니다. 더 많은 걸 볼 수 있습니다. 천변(川邊)에 바람 따라 흔들리는 갈대는 일품이었습니다. 좌측에 거대 쇼핑몰 가든파이브를 끼고 도는 장지천 구간은 탄천에 비 해 아담해 동네 주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었습니다. 장지천이 끝나는 곳 의 너른 잔디밭에서 둥그렇게 둘러앉아 간식을 했습니다. 우리 모습이 보기 좋았는지 다른 걷기 팀이 우리 따라 멀찍이 자리 잡습니다. 송파글마루도서관은 외양으로만 보면 무슨 미술관 같았습니다. 언젠가 한번 다시 찾아보려 합니다. 문정근린공원과 거여공원은 도심 속 낙원이었습 니다. 우측으로는 판교 - 구리 고속도로와 주택가 사이에 있는 사각지대를 공

372

373


182次

|

2018. 1. 6

여주 시티투어

역사를 걷다

원으로 멋지게 꾸며놓았습니다. 깊어가는 가을에 멋진 단풍놀이를 했습니다. 설악산 내장산만큼은 아니어도 한 줌의 행복을 맛보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림 이 멋있어 애들처럼 폼 잡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백발과 주름살만 아니면 영

2018년 산우회 첫 모임이다. 날은 화창하고, 시절에 맞지 않게 수은주는 영상

락없는 수학여행 온 학생 모습이었습니다.

을 가리킨다. 올해 산우회 컨셉은 ‘공짜 전철’을 활용한 원족(遠足)이다. 그 첫

성내천에 이르니 많은 사람들이 주말 오후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성내천

번째로 여주를 택했다. 2016년 9월 판교 - 여주 간 경강선 전철이 개통돼 여

에는 팔뚝만한 잉어가 무리를 지어 한가롭게 노닐었습니다. 그런 광경을 바라

주가 무척 가까워졌다. 역사문화투어가 확실히 인기가 있다. 모두 20명이 모

보고 있는 우리들의 마음도 덩달아 평안해집니다. 자연의 힘입니다.

였다.

서울둘레길 157㎞를 열한 차례에 걸쳐 다 걸었습니다. 2015년 3월 도봉

여주역에서 여주시티투어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관광순환버스를 탔다.

산역을 출발한 지 3년 만입니다. 서울 구석구석을 두 발로 걸으면서 많은 걸

45인승 대형버스에 우리 일행 외에는 한 모녀밖에 없다. 우리가 전세 낸 셈이

배웠습니다. 아름다운 서울을 두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산우회 친구들과 함

다. 정상요금은 5000원인데 경로는 3000원이다. 원하는 관광지에서 하차 -

께 걸어 더 행복했습니다.

관광 - 승차가 자유로운 버스다. 신륵사에서 하차했다. 중학교 때 소풍 온 거 같은 기억이 있으니 다녀온 지 50년도 넘었다. 보통 절은 산에 있는데 유독 신륵사만큼은 강변에 위치하 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세종대왕릉(英陵)의 원찰이었다. 경내에는 벽돌을 쌓

참가자

박종헌 유재두 윤진평 이현기 장무철 최병학 허정회

374

아올린 다층전탑이 남한강을 굽어보고 있었다. ‘유가네 곰탕집’에서 반주를 곁들인 점심을 하고 다음 목적지인 세종대

375


왕릉으로 향했다. 세종대왕릉은 작년 11월 이후 복원공사 중이라 관람이 제 한되어 있었다. 대신 효종대왕릉으로 발길을 옮겼다. 효종은 조선 제17대 왕 이다. 제16대 인조의 둘째 아들이다. 1649년 왕위에 오른 효종은 병자호란 이 후 민생의 안정과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백성들의 조세부담을 덜어주고, 화폐개혁을 단행하였다. 북벌정책을 펴기도 했다. 효종 영릉(寧陵)은 동원상하릉이다. 같은 산줄기에 상하로 봉분을 배치 하였다. 위쪽에는 효종릉이, 아래쪽에는 인선왕후릉이 자리 잡고 있었다. 왕 릉 하나 만드는데 약 3000명이 수개월간 노역을 하고 그 중 일고여덟 명이 죽 었다는 관리 직원의 설명이다. 역사를 전공했다는 그는 무척이나 해박했고, 그의 직업의식은 대단히 투철했다. 오늘 우리는 여주시에 있는 여러 사적(史蹟)을 둘러보았다. 많은 공부를 했다. 역사는 승자에 의해 기록된다고 한다. 그러기에 역사에는 오류가 많다. 잘못된 역사는 우리 후손들이 바루어야 할 의무가 있다. 역사를 모르는 민족 에게는 미래가 없는 법이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소이이다.

참가자

고중희 김동준 김수곤 김종욱 남상화 박용범 박종헌 백인형 변수복 손재춘 오영 유재두 윤세진 윤진평 이도선 정자룡 진영주 최용병 함동일 허정회

376

377


184次

|

2018. 3. 3

온양 시티투어

산우회는 건강 - 우정 - 행복의 원천

완연한 봄날이었다. 지난주까지 매섭던 추위는 눈 녹듯 사라졌다. 우리 친구 들 나들이 길에 오늘도 하늘이 함께하셨다. 경로우대 전철로 가장 먼 온양 아산을 다녀왔다. 공짜표로 하는 원행(遠行)을 마뜩지 않게 생각하던 나였 다. 어느새 그 대열에 끼여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온양온천역까지 여행 은 길었다. 몇 번을 갈아타야 했고 세 시간가량 걸렸다. 하지만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즐거웠다. 모두 13명이 함께했다. 미국에서 인범이가, 순천에서 상진이가, 진천에서 상화가 먼 길을 마다 않고 왔다. 점점 그리워지는 게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는 친구들의 모습이다. 온양온천역 광장에서 진천 누룽지 막걸리로 재회를 자축 했다. 언제 봐도 반가운 얼굴들이다. 이 세상에서 인연을 맺은 지 벌써 반세기 가 넘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한 20분 기다려 현충사행 시내버스에 몸을 실었다. 직선거리는 5㎞밖에 안 되는데 뱅글뱅글 돌아 어렵사리 현충사에 닿았다. 토요일인데도 현충사 앞 넓은 광장에는 별로 사람이 안 보였다.

378

현충사 하면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대학 다닐 때 친구랑 둘이 서 수원역에서 현충사까지 자전거로 다녀왔다. 그것도 대략 왕복 200㎞ 넘는 장거리를 당일치기로 했으니 얼마나 사연이 많았겠는가. 현충사 전시관을 둘러보았다. 이순신 장군의 전 생애를 공부하는 데 부 족함이 없었다. 외국인을 위해 영문 설명이 없는 게 한 가지 흠이라면 흠이었

379


187次

|

2018. 6. 2

두물머리 물래길

물을 보며 마음을 씻고, 꽃을 보며 마음을 아름답게 하라

다. 경내를 돌아보는 데 한 시간 남짓 걸렸다. 온양온천역 앞 아리랑 식당에서

양평 두물머리 물래길 7㎞를 걸었습니다. 이보다 날이 더 좋을 수 없었습니

쌈밥으로 점심을, 그 옆 청주온천탕에서 온천욕까지 하니 이 세상 모두 가진

다. 하늘엔 구름 한 점 없고, 공기는 맑았습니다. 물과 산이 잘 어우러진 물래

것 같았다. 산우회와 함께 건강 - 우정 - 행복으로 이어지는 멋진 여생을 꾸

길은 한 폭의 그림이었습니다. 정광일 동기회장, 김흥배 총무를 비롯해 모두

려나갈 것을 다짐한다.

14명이 함께했습니다. 딱 1년 전 양평에 둥지를 튼 허명윤의 건강한 모습을 확인했습니다. 멀 리 미국서 고인범이, 진천서 남상화도 왔습니다. 사람을 연결하는 자연의 인력 (引力)이 놀라울 뿐입니다. 회장님께서 산우회 활동 격려차 금일봉을 주셨습 니다. 세미원(洗美苑)을 찾았습니다. 관수세심(觀水洗心) 관화미심(觀花美心) 에서 따왔습니다. ‘물을 보며 마음을 닦고, 꽃을 보며 마음을 아름답게 하라.’ 연꽃정원에 수련은 그득했지만 꽃 피기에는 좀 이른가 봅니다. 나룻배를 엮어 만든 배다리에서 조상들의 지혜를 읽었습니다. 느티나무쉼터, 물안개쉼터를

참가자

고인범 김동준 김수곤 김종욱 김중곤 남상화 백인형 양상진 유대두 윤진평 이도선 함동일 허정회

380

지날 때는 드라마를 보는 듯했습니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경은 절경이었습니다. 다산 정약용은 이

381


강물을 오르내리며 시를 짓고, 거문고를 탔다고 합니다. 겸재 정선은 이 일대

후에야 봄이 온 줄 알았네.’ 망중한(忙中閑)을 가지라는 어느 시인의 노래가

풍경을 담은 독백탄도(獨栢灘圖)를 남겼습니다. 북한강변 따라 걷다 보니 운

큰 울림을 남깁니다.

길산이 바로 지척입니다. 운길산 수종사(水鐘寺)에서 두물머리를 감상하던 옛날이 생각났습니다. 조선 초 문인 서거정은 수종사를 일컬어 ‘동방사찰 중 제일의 전망’이라고 극찬했습니다. 양수시장 안에 있는 막국숫집 ‘한가람’에서 뒤풀이를 했습니다. 주인장 이 친절해 막국수 맛이 더 좋았습니다. 양수역에서 서울로 오는 경의중앙선 열차에는 ‘행복 가득한 얼굴’로 가득 찼습니다. ‘사는 일이 너무 바빠 봄이 간

382

참가자

고인범 고중희 김동준 김중곤 김흥배 남상화 박종헌 오영 이현기 정광일 진영주 최병학 허명윤 허정회

383


193次

|

2018. 12. 1

서대문형무소 - 인왕산

공부, 운동, 사은회(謝恩會), 의미 있고 즐거웠다

새 중에 가장 빠른 새는 ‘어느새’라고 한다. 2018년도 어느새 12월이 됐고, 이 제 저물어간다. 어김없이 송년회 계절이 찾아왔다. 산우회도 송년산행을 겸한 송년회를 가졌다.

했다. 내가 참석한 선생님, 건강을 되찾은 안은섭 군, 멀리 캐나다에서 온 이재 활 군에 대한 감사 인사와 함께, 지난 9월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김종

독립문역에서 만나 1시간에 걸쳐 서대문형무소를 견학했다. 1908년 경

욱 회원에 대한 명복을 빌었다. 2005년 산을 통한 우정을 다지기 위해 출범한

성감옥이 그 시작이다. 일본인이 설계한 최초의 근대식 감옥이다. 여기 지어진

산우회의 올 한 해를 뒤돌아보았다. 매월 정기산행, 두 번에 걸친 해파랑길 걷

이유는 당시 이곳이 사람의 왕래가 잦은 곳이라, 위협과 공포감을 조성해 복

기를 했고,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를 다녀왔다. 2020년 졸업 50주년을 맞

종을 강요하기 위함이었다. 근현대 우리 민족이 겪었던 핍박과 고난의 현장이

아 ‘만 원의 행복’ 제2권 출간계획도 밝혔다.

다. 일제 치하 제국주의에 맞서 싸운 독립운동가들의 피와 눈물이 서린 곳이

주명갑 선생님의 초청에 대한 감사, 신일 동산 사제 간 도타운 정, 자랑스

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1987년 서울구치소를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

러운 1회 졸업생에 대한 칭찬 인사가 이어졌다. 이종신 선생님의 식사기도, 박

함에 따라 과거를 잊지 않기 위해 이를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개조했다.

원상 선생님과 변수복 동기회 차기 회장의 건배 제의로 식사가 시작되었다.

무악재 하늘다리를 건너 인왕산 자락길을 통해 송년회장으로 발길을 옮

오스트리아식 호이리거서울은 여느 양식당에서 맛볼 수 없는 독특한 무

겼다. 신일 후배가 운영하는 운치 있는 양식당 ‘호이리거 서울’에서 선생님 다

엇이 있다. 12시 30분에 시작한 송년회는 맛있는 식사와 즐거운 대화로 끝날

섯 분과 18명 친구들이 모였다. 첫 순서로 박원상, 박태남, 이종신, 정오영, 주

줄 몰랐다. 2시간 후 식당 정원에서 단체사진 촬영을 끝으로 선생님들과 아쉬

명갑 선생님께 단배(團拜)하는 것으로 예를 갖췄다. 선생님들의 건강을 기원

운 작별인사를 했다.

384

385


헤어진 후 산우회 친구들에게 ‘의미 있고 즐거웠습니다. 행복한 하루였 습니다’라고 문자를 보냈다. 어두웠던 근현대사 현장을 공부하고, 서울 한복 판에 있는 인왕산 자락길을 걷고, 50년 사제 간의 정을 나누며 친구들 간 우 정을 확인했으니, 이게 바로 행복이 아니겠는가. “인간은 자신이 행복하려고 스스로 결심하는 만큼만 행복할 수 있다.” 온갖 역경을 딛고 위대한 대통령 반열에 오른 에이브러햄 링컨의 말을 되새겨본다.

참가자

박원상 박태남 이종신 정오영 주명갑 선생님 고중희 김동준 김수곤 김중곤 김학규 남상화 박종헌 백인형 변수복 안은섭 윤진평 이도선 이재활 이현기 정락용 진영주 최병학 허정회

386

387


194次

|

2019. 1. 5

수원 화성 성곽길

수원 화성 성곽을 걷다

산우회는 신년 첫 행사로 수원 화성행궁을 탐방하고 성곽을 걸었다. 행궁은 왕이 궁궐을 벗어나 머무는 곳이다. 화성행궁은 우리나라 행궁 중 가장 규모 가 크고 아름다운 곳이다. 1796년(조선 정조 20년) 화성을 축성한 후 팔달산 동쪽 기슭에 576칸 규모로 건립했다. 1789년(정조 13년)까지는 수원 읍치(邑 治) 관아(官衙)로 사용했던 건물이다. 효성이 지극한 정조가 부왕 장조(莊祖, 장헌세자)의 능침(陵寢)인 화산릉을 참배하고 돌아가는 길에 이 행궁에서 쉬 어갔다. 일제 강점기 때 화성행궁의 주 건물인 봉수당(奉壽堂)에 의료기관인 자 혜의원이 들어서면서 모든 건물이 훼손되고 낙남헌(洛南軒)만 남게 되었다. 봉수당의 원래 이름은 정남헌인데 정조가 모친 혜경궁 홍씨(경의왕후)의 회

설사의 낭랑한 목소리를 뒤로한 채 화성행궁을 빠져나왔다. 마침 화성행궁

갑연을 이곳에서 베푼 후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봉수당으로 불렀다. 낙남헌

정문인 신풍루(新豊樓) 앞마당에서 화성무예 24기 시범공연이 펼쳐지고 있

은 봉수당 북쪽에 있던 ㄱ자 건물인데 지금은 꺾인 부분이 없어져 일자형의

었다. 무예 24기란 정조의 명을 받은 실학자 이덕무, 박제가와 무예의 달인 백

건물로 바뀌었다.

동수가 1790년에 편찬한 『무예도보통지』의 24가지 무예를 일컫는다. 무예24

사전 예약도 하지 않고 불쑥 해설을 청했건만 기꺼이 응했던 어여쁜 해

388

기는 화성에 주둔했던 당대 조선의 최정예부대 장용영 외영군사들이 익혔던

389


지 연무대까지 이어지는 성곽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서포루 지나 쉼터에서 간식을 했다. 용범이가 포항에서 직송해 온 과메기가 일미였다. 상화 표 산사주와 궁합이 잘 맞았다. 화서문 - 장안문 - 화홍문 - 연무대로 이어지는 성곽 길에는 우리 같은 외지인 외에도 주말을 맞아 산책 나온 동네사람들도 많았다. 겨울 같지 않게 날은 화창하고 포근했다. 걷기에 이보다 더 좋은 날은 없을 것 같았다. 연무대 에서 인형이를 만나 예약해놓은 식당이 있는 화서문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수원에 사는 인형이가 이번 투어를 위해 사전답사를 해 코스를 정하고, 식당 예약 등 손님맞이에 만전을 기했다. ‘별난 순대국집’에서 뒤풀이를 했다. 윤세진 회장을 비롯해 은섭, 명택이 도 합류했다. 우리 일행 18명이 자리하니 식당이 꽉 찼다. 새해를 맞아 친구들 간에 덕담으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산우회 정기산행에 처음 나왔다고 한턱 을 낸 인구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은섭이가 건강을 되찾게 돼 무엇보다 반가웠다. 우리 친구들 모두 올 한 해 산우회와 함께 즐겁게 놀고 건강하기를 기원한다.

무예로서 역사적 가치는 물론 예술적・체육적 가치가 아주 높은 무형의 문화 유산이다. 박진감 넘치고 멋진 우리 전통무예를 운 좋게 감상할 수 있었다. 신풍루에서 서장대까지는 계단으로 된 오르막이었다. 10분 정도 걸려 서 장대에 오르니 수원시내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서울 위성도시 중 수원은 드넓고 평평한 지리적 이점을 잘 활용해 멋진 도시가 되어 있었다. 오늘 목적

390

참가자

강인구 고중희 김동준 김수곤 남상화 박용범 박종헌 백인형 서명택 안은섭 양상진 오영 유재두 윤세진 이도선 진영주 함동일 허정회

391


195次

|

2019. 2. 9

서울대공원 둘레길

몇 번이고 다시 걷고 싶은 길

올 들어 산우회 두 번째 산행이다. 지난주 설 명절 연휴로 한 주 늦췄다. 입춘 도 지났건만 꽃샘추위가 찾아왔다. 대공원역에 변수복 동기회장을 비롯해 모 두 14명이 모였다. 말로만 듣던 서울대공원 산림욕장을 처음 걸었다. 둘레길은 생각보다 멋 있었고 코스도 적당했다. 서울동물원을 크게 한 바퀴 도는 길로 10㎞는 족히 걸었다. 우리 친구들은 약간 힘든 기색도 있었지만 만면에는 희색으로 가득 했다. 나목(裸木)에도 이리 좋은데 초록이 무성할 때는 얼마나 좋을까. 춥다지 만 걸으니 추위도 가시고, 미세먼지도 없어 걷기에 제격이다. 잘 정비된 쉼터

걸쳐 마무리하게 되었다. 친구들과 얘기하면서 먹으면서 마시면서 걷다 보니 한 바퀴 다 돌았다. 오늘 몇 번이고 다시 걷고 싶은 길을 걸었다. 윤세진 회장이 약속장소인 봉덕 칼국수에 진작부터 와 기다리고 있었다. 산우회 살림에 도움 주신 변수복 회 장에게 감사드린다.

에서 막걸리 한잔하며 산행 중 여유로움을 만끽한다. 진천산 상화표 산사주 의 깊은 향기에 끌려 한잔 음미한다. 여러 친구들 의견을 모아 해파랑길 최종구간 일정을 6월 초로 정했다. 770㎞ 대장정의 마지막인 만큼 많은 친구들이 함께하기 위함이다. 부산 기장 부터 오륙도까지 불과 45㎞밖에 안 남았다. 2012년부터 시작해 7년간 13번에

392

참가자

김동준 김수곤 김순중 김중곤 남상화 변수복 오영 유재두 윤세진 이도선 이현기 진영주 최병학 함동일 허정회

393


196次

|

2019. 3. 2

강서구 투어

뜻밖의 대어를 낚다

산우회 3월 정기모임으로 ‘서울식물원’ 탐방을 주목표로 그 주변을 돌기로

교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운영되던 지방에 있는 국립교육기

했다. 이름도 생소한 양천향교역에 13명이 모였다. 오늘 안내를 맡은 오영 회원

관이었다. 향교에서는 시경, 서경, 주역, 예기, 춘추의 오경(五經)과 논어, 맹자,

이 간단하게 답사할 코스를 설명했다. 양천향교 - 궁산근린공원 - 궁산땅굴

중용, 대학의 사서(四書)를 가르쳤다. 향교에서 수학하여 1차 과거에 합격한

- 겸재정선미술관 - 서울식물원을 돌아보기로 했다. 우리 산우회(山友會)가

유생은 생원(生員), 진사(進士)의 칭호를 받았다. 향교는 서원(書院)의 발흥으

언제부턴가 산우회(山迂會)가 돼버린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로 점차 쇠미하였고 1894년 과거제도 폐지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

말로만 듣던 강서구 마곡지구에 처음으로 발을 디뎠다. 이런 상전벽해가

었다.

없었다. 과거 논밭이었던 데가 고층 빌딩과 아파트로 숲을 이루고 있었다. LG

궁산근린공원으로 들어섰다. 궁산(宮山)은 해발 74m의 야산이다. 궁산

연구소를 비롯해 대규모 연구단지를 유치한 게 주효한 거 같았다. 거기에 서

이라는 명칭은 산자락 양천향교에 공자의 위패를 모시기 때문에 궁(宮)으로

울식물원 같은 테마공원을 만든 것도 한몫 크게 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 했

여긴 데서 유래한다. 임진왜란 때는 궁산 산성에 관군과 의병이 진을 치고 한

던가. 가까이 와보니 강서구는 겸재정선미술관, 허준박물관, 양천향교 등 우

강 건너편 행주산성에 주둔하는 권율 장군과 함께 왜적을 물리쳤던 곳이다.

리 문화・역사의 보고(寶庫)였다.

궁산은 이처럼 조선의 도성을 방비하는 전략적 요충지였으며 한국전쟁 때도

제일 먼저 궁산 초입에 있는 양천향교(鄕校)에 들렀다. 마침 내부 수리중

군부대가 주둔했다. 산마루에 오르니 멋진 한강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

이라 경내를 돌아볼 순 없었지만 그 입지와 규모만으로도 우리의 자랑스러운

상에는 소악루(小岳樓)가 있었다. 중국 명승지 악양루(岳陽樓)에서 이름을

문화유산임을 알 수 있었다. 양천향교는 현존하는 서울의 유일한 향교다. 향

차용했다고 한다.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의 대가 겸재(謙齋) 정선

394

395


(鄭敾)이 소악루에 올라 뛰어난 산 수화 여러 점을 남긴 곳이다. 소악루 바로 밑에 멋진 쉼터가 있어 약간 이 른 감은 있었지만 오영이 가지고 온 내촌 생막걸리로 목을 축였다. 궁산에서 내려오면서 궁산땅 굴 전시관에 들렀다. 궁산땅굴은 일 제 강점기 당시 대륙 침략의 주요 기 지이던 김포비행장과 한강하구를 감시하던 군사시설이다. 일본 군부 대 본부 및 무기와 탄약과 같은 군 수물자를 저장하기 위해 사용할 목

6월 본격 개장을 앞두고 있는 ‘서울식물원’ 앞에서.

적으로 인근 주민을 강제동원해 굴 착한 가슴 아픈 우리 역사 현장이

고 화폭에 담은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 화풍을 계승・발전시켰다.

다. 이 땅굴은 태평양전쟁이 한창이

그는 서울 북악산 밑 유란동(현 청운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렸을 적부

던 1940년대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

터 집 주변에 있는 북악산, 인왕산을 사생하던 솜씨를 금강산과 그가 현감을

며, 폭 2m, 높이 2m, 길이 70m에 달

지내던 영남지방의 풍경으로 확대시켜 진경산수화풍을 정립했다. 그는 다작

한다. 2008년 우연히 발견된 궁산땅

화가였다. 얼마나 많이 그렸으면 그가 사용했던 붓이 무덤을 이룰 정도였다.

굴에 일본 강점기 만행을 청소년에

겸재미술관 옆에는 이를 기리는 붓 조형물이 서 있다. 그는 많이도 그렸을 뿐

알리기 위한 전시 및 체험관을 만들

만 아니라 천금물전(千金勿傳), 그림을 천금을 받더라도 팔지 말라고 해 아직

어 2018년 5월 개관했다. 굴 내부는 낙석으로 인해 통행을 할 수 없게 되어 있

도 400여 점의 원화(原畵)가 전해지고 있다. 이 중 두 점은 국보로 지정되어

다. 5대째 가양동에 거주하고 있다는 석 선생님의 자세한 해설에 감사드린다.

있다. 정선은 특히 금강산을 즐겨 그렸으며, 금강산 전체를 한 폭에 담은 금강

궁산땅굴 바로 건너편에 있는 겸재 정선미술관으로 발을 옮겼다. 겸재는

전도도 여러 번 그렸다.

1676년 태어나 1759년 84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한 행정가이자 화가이다. 벼

미술관을 나와 길 건너에 있는 서울식물원으로 향했다. 근처에 가니 많

슬로는 종6품 하양현감(현 경산시장), 종5품 청하현감(현 포항시장), 종5품 양

은 차들이 주차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었다. 미세먼지는

천현령(현 강서구청장)을 거쳐 사옹원 사도시첨정(종4품), 첨지중추부사(정3

있었지만 봄기운이 천지를 감도는 날씨 덕에 많은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

품), 동지중추부사(종2품)까지 지내 당시 화가로는 최고의 직위를 누렸다. 화

고 있었다. 6월 본격 개장을 앞두고 있어 아직 식물원 주변은 마무리 공사 중

가로는 화보나 다른 그림을 모방한 그림이 아니고 산하(山河)를 직접 답사하

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식물원 내부는 찜통이었다. 한겨울 평일에 오면 따뜻하

396

397


고 여유 있게 시간 보내기 좋은 곳일 거 같다. 세계 각국에서 가져온 식물들 이 저마다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앞으로 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온실과

201次

|

2019. 7. 6

백사실계곡 - 수성동계곡

식물을 유지・관리하는 데 엄청난 예산이 소요되겠지만 아이들 자연공부에는 유익한 시설이 될 것이다. 오늘 일정 중 겸재정선미술관에 들러 그의 예술세계를 가까이에서 이해 하게 된 것은 뜻밖의 수확이었다. 식물원보다 미술관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 냈고 그만큼 많은 공부가 되었다. 특히, 우리들에게 그림 하나하나 자세하게 설명해준 두 분 해설사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한 분은 한국화를 전공하고 오늘 해설사로 데뷔한다는 여성이었고, 또 다른 한 분은 공직에서 퇴직 후 허준박물관에 이어, 미술관으로 옮겨 자원봉사를 하고 있

“성공해서 행복한 게 아니라, 행복하니까 성공한 거다”

는 하 선생님이다. 이 분들의 열정적인 해설이 없었다면 아무리 좋은 그림이라 고 하더라도 그저 ‘수박 겉핥기식’ 감상이 되었을 것이다. 또 오늘 충실한 안 내를 위해 사전답사까지 한 오영 회원과 집 근처에 왔다고 뒤풀이 비용을 부 담한 이규옥 회원에게도 깊이 감사드린다. 서울 한복판에 있는 수성(水聲)계곡과 백사실(白沙室)계곡을 다녀왔다. 수성 계곡은 서촌(西村)에 있다. 서촌은 경복궁 서쪽에 있는 마을을 일컫는 별칭이 다. 조금 더 정확하게는 인왕산 동쪽과 경복궁 서쪽에 있는 청운동, 효자동, 사직동 일대를 말한다. 이 유서 깊은 마을은 골 목을 돌아서면 동명(洞名)이 바뀔 정도로 동(洞) 이 많다. 오늘 길 안내는 김중곤이 맡았다. 한 바 퀴 돈 후 그의 집에서 뒤풀이가 예정되어 있다. 수성계곡으로 가면서 군데군데 서촌 문화탐 방을 했다. 먼저 이상(李箱) 옛집에 들렀다. 이상 의 본명은 김해경이다. 그는 1910년 태어나 27세 에 요절했다. 우리에게 소설 ‘날개’, 시 ‘오감도’ 등 난해한 문학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천재다. 이 집 참가자

고중희 김동준 김수곤 김중곤 남상화 박종헌 오영 유재두 이규옥 이현기 최병학 함동일 허정회

398

은 이상이 세 살부터 20여 년간 살던 집이다. 철 거 위기에 있던 이 집을 ‘문화유산국민신탁’이 시

399


민 모금과 기업 후원으로 매입해 보

80년 만이라는 7월 초 폭염을

전 관리하고 있다. 옛집 마당에 있는

뚫고 수성계곡에 닿았다. 김중곤이

흉상에서 그의 비범함을 느낄 수 있

여기가 가장 가까이에서 인왕산을

었다. 조영남은 『이상(李霜)은 이상

감상할 수 있는 곳이라고 설명한다.

(理想/異常) 이상(以上)이었다』에서

그래선지 이곳이 고향인 진경산수

“나는 완벽한 아나키스트를 딱 한

화 대가 겸재 정선도 수성동계곡을

명 알고 있다. 그게 이상이다. 자신

그린 작품을 남겼다. 얼마 전까지 이

의 독립정부를 차려놓고 완전히 정

곳엔 1971년 지어진 옥인아파트가

치적으로 독립했다. 자질구레한 역

자리 잡고 있었다. 인왕산을 가리고

사로부터, 허접스러운 인습으로부터,

계곡 암반을 복개해 자연경관을 훼

우리한테 뭐라 말 한 번도 걸지 않

손한 대표적인 아파트였다. 그러던

은 자연으로부터도 멀리 떠나 있었

것을 2011년 서울시가 시비 1000억

다”라고 그의 이상성(理想性/異常

원을 들여 옥인아파트를 철거하고

性)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수성동계곡을 복원하게 되었다.

이어 들른 곳은 박노수(朴魯

백사실계곡을 가기 위해 무무

壽)미술관이다. 남정(藍丁) 박노수

대(無無臺)에 오르니 서울 시내가

(1927~ 2013)는 간결한 운필과 강렬

한눈에 들어온다. ‘아무 것도 없구

한 색감으로 독자적인 화풍을 구축

나. 오직 아름다운 것만 있을 뿐 …’

하여 전통을 살리면서 현대적 미감

이라고 적힌 표지석에 공감이 간다.

을 살린 작가로 평가되는 화가다. 약

너무 아름다운 서울 전경이다. 이곳

80년 전에 지었다는 그의 옛집은 한옥과 양옥을 절충한 2층집이었다. 2013년

인왕산(338m)과 북악산(342m)의

종로구립박노수미술관으로 개방된 이 집에는 그의 작품과 고미술품, 수석, 고

높이가 고만고만하다는 윤진평의

가구 등 유품이 전시돼 있었다.

설명이 이어졌다.

수성계곡까지 이르는 오르막길 왼쪽에 있는 윤동주 하숙집을 지났다.

백사실계곡은 청운동 최규식

1941년 연세대 재학 중이던 윤동주는 자신이 존경하던 소설가 김송(1909~

경무관 동상에서 올라간다. 그는

1988)이 살던 이 집에서 하숙생활을 했다. 현재 다세대주택으로 변해버려 옛

1968년 1월 21일 종로경찰서장 재직

집의 원형을 잃은 게 아쉬웠다. 그나마 청운동 윤동주문학관에서 그의 발자

중 청와대를 습격한 김신조 일당과

취를 감상할 수 있는 게 커다란 위안이었다.

전투하다 장렬하게 전사한 경찰관

400

401


이다. 그는 흉탄에 맞으면서도 “청와 대를 사수하라”는 마지막 명령과 함 께 숨을 거두었다. 백사실계곡은 창의문(彰義門) 을 지나 오른쪽 언덕으로 한참을 올 라가야 했다. 창의문은 인왕산과 백 악산이 맞닿은 곳에 있다. 이 문은 혜화문, 서소문, 광희문과 함께 사 소문(四小門)으로 불린다. 이 중 유 일하게 조선시대 지어진 문루가 그 대로 남아 있다. 이 문루는 임진왜 란 때 소실된 것을 영조 때 다시 세 운 것이다. 이 문 부근의 경치가 개 성(開城)의 명승지인 자하동과 비 슷하다고 해 자하문(紫霞門)이라는 별칭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문을 나서자마자 좌우에 있는 일반 주택 이 문화재의 품위를 떨어트리고 있 다. 언젠가는 공원으로 정비되어야

암동 언덕배기에 있는 3층짜리 단독주택이다. 아담한 정원을 지나 현관문을

겠다.

들어서니 부인이 일행을 반갑게 맞이한다. 김치찌개, 두루치기, 매운탕, 음료

백사실계곡으로 가기 위해서는 경사가 제법 심한 언덕을 한참 올라가야

등을 한 상 차려 놓았다. 빈손으로 온 게 민망했다. 부인은 우리끼리 편하게

만 했다. 도중 어느 건물 입구에 걸린 글이 눈에 확 들어온다. “성공해서 행복

놀라고 병원 간다며 자리를 비웠다. 북한산 비봉, 사모바위, 보현봉이 한눈에

한 게 아니야, 행복하니까 성공한 거라고 ….” 맞다, 맞는 말이다. 백사실계곡

보이는 식당에서 먹고 마시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맘껏 즐겼다.

은 조선 중기 재상이자 학자인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의 별장터가 있어 붙은 이름이다. 서울에 있는 몇 안 되는 청정계곡으로 도롱뇽이 산다고 해서 화제가 된 곳이다. 깊은 숲을 따라 이어지는 오솔길은 과연 이곳이 서울 한복 판인가 의심이 갈 정도다. 별장터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10분 거리에 있는 김중곤 집에 들렀다. 부

402

참가자

고중희 김동준 김수곤 김중곤 박종헌 오영 유재두 윤진평 이규옥 이도선 진영주 함동일 허정회

403


203次

|

2019. 10. 3

구룡산 - 대모산 둘레길

산은 늘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오늘 4352주년 개천절을 맞아 오래간만에 산우회다운 산행을 했다. 요즘 산

하면서 얼마 만에 흘리는 땀인지 모르겠다.

우회(山友會)는 등산은 하지 않고 산을 빙 돈다고 산우회(山迂會)라는 조롱

당초 구룡산 정상을 통해 코트라로 내려오려던 계획을 변경해 능인선원

을 받고 있다. 그러던 터에 지난 9월은 태풍 ‘링링’ 때문에 산행을 취소했고, 8

으로 내려왔다. 이 코스는 우리 산우회가 지난 2014년 1월 한 번 다녀간 곳이

월에는 변수복 회장이 개장한 수영장에 놀러갔다.

다. 햇수로 벌써 6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 6년 전과 오늘 우리 친구들의 체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수서역에서 출발해 대모산 능선을 통해 정상을 밟고 하산했다. 거리로는 약 8㎞에 달한다. 아침까지만 해도 부슬비가 내리던

력이 많이 달라 보인다. 하지만 앞으로 꾸준하게 등산하면 좋아지지는 않아 도 현상 유지는 하게 될 것이다.

날씨가 우리 산행을 축복하듯 화창하게 갰다. 김동준 김중곤 박종헌 유재두 이현기 정락용 진영주 최병학 함동일 허정회, 이렇게 10명이 함께 산행을 했 다. 남상화는 집에 휴대폰을 놓고 오는 바람에 산행 후 점심하는 식당에서 합 류했다. 멀리 진천에서 온 성의가 대단하다. 산은 늘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더구나 오늘처럼 꾸물거리던 날이 화창 하게 열리거나 하면 더욱 그렇다. 강남 한복판이건만 산 공기는 여느 산 못지 않게 상큼하다. 우리는 삼삼오오 짝을 지어 그간 못 다한 얘기를 나누면서 산

참가자

행을 한다. 능선을 몇 번 오르내리니 기분 좋을 정도로 등에 땀이 난다. 운동

김동준 김중곤 박종헌 유재두 이현기 정락용 진영주 최병학 함동일 허정회

404

405


204次

|

2019. 11. 2

박달산

‘운수 좋은 날’

파주 광탄면 마장리에 있는 변수복 회장이 운영하는 ‘청개구리농장’에 가는 날이다. 바로 뒤 야트막한 박달산(370m)을 오르고, 내려와 고구마 캐기 체험 을 하기로 했다. 구파발 지나 삼송역에서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다. 삼송역 일 대는 한창 개발붐이 일고 있었다. 옛 시골 정취는 찾을 수 없었다. 사방팔방으 로 뻗은 신작로를 중심으로 고층아파트와 대형건물이 들어서고 있었다. 버스

머리가 맑아진다. 능선까지 이르는 30여 분간 계속 오르막이 이어진다. 우리

정류장에는 도착 안내판은커녕 오가는 버스번호마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

외에는 인적이 없다. 박달산 전체를 접수한 셈이다. 출발 50분 만에 정상에 올

다. 대중교통으로 ‘청개구리농장’에 가는 길은 멀었다. 그러나 운이 좋았다. 배

랐다. 황금빛 파주평야 일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인증샷을 하고 내려온다.

차 간격 90분인 333번 버스를 불과 10분 정도 기다리고 탈 수 있었으니 말이 다. 버스 타고도 1시간 가까이 걸려 농장에 닿았다.

낙엽으로 뒤덮인 하산 길은 미끄러웠다. 조심조심 내려온다. 산이나 인 생이나 하산이 어려운 법이다. 농장에 당도하니 늦게 출발했던 장무철, 김홍

변수복 회장이 버스정류장에 마중 나왔다. 호텔 같은 개집에서 게으름

빈이 먼저 와 있다. 삼송역 버스정류장에 333번 버스와 함께 미끄러져 들어와

을 피우고 있는 개 한 마리, 고양이 두 마리, 토종닭 세 마리가 우리를 반갑게

탔다고 한다. 우리보다 더 운 좋은 친구들이다. 이래저래 ‘운수 좋은 날’이다.

맞이했다. 철 지난 농장에는 한 아름은 될 거 같은 김장배추와 보라색배추가

우리가 등산한 사이 변수복 회장이 준비해 놓은 목살구이가 맛있게 익고 있

속을 채우고 있었다. 잠시 이들을 뒤로하고 박달산에 오른다. 산에 들어서니

었다. 오늘 점심은 며칠 전 둘째 아들 혼례를 치른 고중희가 답례로 마련했다.

공기부터 다르다. 형형색색 단풍에 눈이 호강한다. 등에 땀이 촉촉이 나면서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한다. 시장했던지 구운 고기가 두꺼비 파리 잡아먹듯 사

406

407


205次

|

2019. 12. 7

정동옛길 탐방

서울 한복판에 이런 데도 있었나?

라진다. 유재두, 오영이 번갈아가며 열심히 구워댄다.

올해도 한 해를 마감하는 송년산행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오늘은 서울 시내

고구마 캐기에 나섰다. 우리 친구들을 위해 변수복 농장장이 한 고랑 남

정동옛길을 따라 광화문에 이르는 역사문화 탐방을 했다. 초겨울 치고는 제

겨 두었다. 대부분 처음 캐본다고 했다. 땅속 깊이 파묻혀 있던 튼실한 고구마

법 추운 영하 7도의 한파를 뚫고 덕수궁 대한문 앞에 많은 친구들이 모였다.

가 속속 모습을 드러낸다. 색깔이 좋다. 누구는 밭을 깊게 파고, 누구는 호미

캐나다에 살기에 매년 12월 모임에만 참가하는 이재활 군도 왔다. 서울에는

로 건져내고, 누구는 운반한다. 50m는 될 듯한 한 고랑을 1시간도 안 걸려 마

절기상으로 마침 대설을 맞은 오늘 첫눈이 내렸다.

무리했다. 자기가 땀 흘려 수확한 고구마를 앞에 놓고 모두들 만족스러운 표 정을 짓는다.

시청 건너편 성공회 서울성당에서 탐방을 시작했다. 영국 국교이기도 한 성공회는 싱가포르와 홍콩을 거쳐 1890년 인천에 상륙했다. 성공회 서울성당

헤어지기 전 오늘 생일을 맞은 고중희를 위해 축가를 합창한다. 최병학

은 1922년 착공돼 1926년 일단 미완성인 채로 준공되었다. 로마네스크 양식

사장은 우리 일행에게 양말 한 보따리를 선물로 안겼다. 오늘 농장에 우리를

이면서 지붕과 처마는 우리 전통 건축기법을 차용한 독특하고 아름다운 건

초대한 변수복 회장이 준비하느라 수고를 많이 했다. 모두에게 감사한다.

축물이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단아한 건물이다. 외벽의 기초부와 뒷면 일부 에 화강석을 쓰고 나머지는 잿빛 벽돌을 사용해 지었고 지붕은 붉은색 기와 를 이었다.

참가자

고중희 김재수 김홍빈 변수복 오영 유재두 이도선 이현기 장무철 최병학 함동일 허정회

408

골목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니 영국대사관이 있다. 서울에만 70년 가까 이 살면서 여기에 영국대사관이 있는 것조차 몰랐다. 왼쪽 쪽문을 통해 나가

409


경복궁을 떠나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했다. 아관파천은 명성왕후가 시해된 을미사변 이후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종과 왕세자가 1896년 2월부터 약 1년 간 왕궁을 떠나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우리의 수치스러운 역사다. 2016년 9월 착공해 2018년 10월 개통되었다. ‘고종의 길’은 잘 조경된 정동공원과 맞닿아 있다. 조선말기 부끄러운 우 리 역사를 다 알고 있는 러시아 공사관 건물 일부가 공원을 무심히 내려다보 고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공원이 시내 한복판에 있는 줄 몰랐다. 바로 건너편 니 바로 2017년 8월 새로 개통한 덕수궁 돌담길이 나온다. 비록 100m밖에 되

에 있는 이화여고 박물관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

지 않지만 이 길을 여는 데 58년이 걸렸다. 이 길은 고종이 선왕의 어진(御眞)

정동교회를 향해 내려가다 왼쪽 골목으로 접어드니 중명전(重明殿)이

이 모셔진 선원전과 경희궁으로 드나들던 길목이었다. 오늘 역사문화 탐방 안

나타난다. 중명전 일대는 서양 선교사 거주지였다가 1897년 경운궁(현 덕수

내는 오영 군이 맡았다. 그의 상세한 설명을 들으면서 그가 오늘 행사를 위해

궁)을 확장할 때 궁궐에 포함됐다. 중명전은 1899년 황실도서관 용도로 지어

준비를 많이 했음을 느꼈다.

졌다. 중명전은 고종이 1904년 경운궁 화재 이후 1907년 강제 퇴위될 때까지

덕수궁 돌담길은 ‘고종의 길(King’s Road)’로 연결돼 있다. ‘고종의 길’은

머물렀던 곳으로, 1905년 을사늑약을 체결한 비운의 장소이기도 하다.

덕수궁 돌담길에서 러시아 공사관이 있던 정동공원까지 이어지는 총 120m

옛 신아일보사 별관과 현 경향신문사를 지나 길을 건너니 서울시교육청

의 길이다. 1896년 아관파천 당시 고종은 이 길을 통해 일제의 감시를 피해

채 못 가 돈의문박물관마을이 나타난다. 돈의문은 우리에게 서대문이라는 이

410

411


름으로 더 친숙하다. 1396년 처음 세워졌으나 1413년 경복궁의 지맥을 해친 다는 이유로 폐쇄되었다가 1422년 현재 정동 4거리에 새롭게 세워졌다. 이때 부터 돈의문에는 새문〔新門〕이라는 별칭이 붙었고, 돈의문 안쪽 동네를 새문 안으로 불렀다. 1915년 일제는 도로확장을 이유로 돈의문을 철거해 돈의문은 서울 4대문 중 유일하게 실체가 없는 문이 되었다. 이 돈의문 근처에 ‘근현대 100년의 기억보관소’를 자처하는 돈의문박물관마을이 조성돼 있다. 서울시가 시비로 세운 도시재생마을이다. 여기에는 독립운동가 집, 극장, 사진관, 이발 소, 구락부, 만화방 등을 과거 모습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선생님들과 약속시간이 다가와 부랴부랴 경복궁역 근처 ‘강구 미주구 리’로 향했다. 미주구리는 경북 영덕군 강구항과 포항 사이 깊은 바다에서 서 식하는 물가자미를 일컫는 지역 방언이다. 올해는 기존에 모시던 박원상, 주명 갑, 이종신, 박태남, 정오영 선생님 외 임상순 선생님을 추가로 초청했다. 영어 를 가르쳤던 임 선생님은 불과 한 학기 만에 신일학원을 떠나셨다. 오늘 50년 도 넘은 사제 간 만남의 자리에 오기 전 3일간 밤잠을 설치셨다고 했다. 한 해

를 보내는 송년모임에 참석하신 선생님에 대한 감사와 건강을 화제로 덕담을 나눴다. 일어선 채로 선생님들께 세배를 올리고 약소한 봉투를 드렸다. 주명 갑 선생님의 식사기도와 박태남 선생님의 건배제의 후 동태탕과 물회로 식사 를 즐겼다. 오늘 송년회는 여러분의 도움을 받아 이루어졌다. 먼저 지리산 인근에 사는 김영호 후배(12회)는 선생님들께 드릴 건강식품인 지리산 도라지조청을 보내왔다. 최병학 동기는 올해도 빠지지 않고 회원들에게 스포츠용 고급양말 을 안겼다. 김재수 동기는 회식비에 보태라고 금일봉을 전달했다. 또 오늘 안 내를 맡은 오영 동기는 해박한 지식으로 우리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줬다. 모 두에게 감사드린다.

참가자

박원상 박태남 이종신 임상순 정오영 주명갑 선생님 김동준 김수곤 김재수 남상화 박종헌 변수복 안은섭 양상진 오영 유재두 윤세진 윤진평 이도선 이재활 진영주 최병학 허정회

412

413


206次

|

2020. 1. 4

양재천 - 양재시민의 숲

기록하면 추억을 넘어 역사가 된다

산우회 새해 첫 모임이다. 한겨울답지 않게 포근했다. 미세먼지 예보가 있었지 만 별로 느끼지 못할 정도로 시야도 확 틔었다. 산우회(山友會)가 산우회(山 迂會)가 된 지 오래다. 어찌 세월이 흐르다 보니 그리 됐다. 오늘도 산을 우회 했다. 학여울역에서 만나 양재천을 따라 양재시민의 숲까지 약 1만 보 걸었다. 주말을 맞아 많은 시민이 양재천변을 걷고 있었다. 여기는 내가 더울 때나 추 울 때나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달렸던 길이다. 집 밖을 나와 친구들과 어울 려 운동할 수 있는 게 바로 행복 아니겠는가. 멀리 포항에서 박용범, 진천에서 남상화, 의정부에서 최병학, 일산에서 김동준 등 모두 12명이 함께했다. 대한민국 제1부촌 강남 한복판에 이런 시민공원이 있는 게 얼마나 다행 인가. 양재천은 관악산과 청계산에서 발원해 과천시, 서초구를 거쳐 강남구

대 강남 개발 붐이 일 때 토지구획정리 사업을 하면서 강폭을 대폭 줄이고 양

에서 성남시에서 내려오는 탄천과 합류해 한강으로 흘러드는 길이 약 16㎞

옆에 시멘트 옹벽을 쳐 제방을 쌓고 둑에 바짝 붙여 아파트를 지었다. 그러자

의 자연하천이다. 이곳은 옛날 어질고 재능 있는 사람이 모여 살아 양재마을

강물은 썩어 악취를 풍기고 물고기가 폐사하는 등 생태계가 파괴되었다. 이를

로 불렸고, 그 마을을 뱀처럼 끼고 도는 하천을 양재천이라 했다. 양재천은 농

1990년대 중반 삼성이 자연생태하천으로 살렸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제일 명

업용수와 생활용수를 대는 젖줄이자 빨래터와 놀이터였다. 그러다가 1970년

품 아파트인 타워팰리스를 건설할 때 강남구가 양재천 복원을 건축허가 조건

414

415


으로 내세운 덕분이다. 양재천은 그 후 우리나라 자연 생태하천의 모델이 돼 자자체마다 하천을 복원하는 바람이 불게 되었다.

207次

|

2020. 1. 27

사패산 능선길

월 1회꼴로 산우회 친구들과 함께 어울린 지 어언 만 15년이 다 돼간다. 오늘이 벌써 206번째 행사다. 자랑스러운 것은 우리 모임 대부분의 기록이 있 다는 거다. 기록이 없으면 한낱 머릿속에만 있는 아름다운 추억에 지나지 않 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처럼 기록이 있으면 추억을 넘어 역사가 된다. 이번 그 기록을 또 한 권의 책자로 만들 계획이다. 지난 2013년 5월 『만 원의 행복』을 펴낸 바 있다. 올해 동기회와 여러 산우회원의 도움으로 졸업 50주년 기념식

사패산 주봉(柱峰)에 오르다

에 맞춰 두 번째 『만 원의 행복』을 발간한다. 친구들과 멋진 자연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걷다보니 어느덧 서초 구로 넘어왔다. 여기서 왼쪽에 있는 실내 테니스코트를 지나면 오늘 우리 목 적지인 양재시민의 숲이다. 양재시민공원에는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을 비 롯해 한국전쟁 당시 청년과 학생으로 조직된 유격백마부대 희생자 충혼탑과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로 502명이 매몰된 삼풍사고 희생자 위령탑이 있다. 기다리던 간식 시간이다. 용범이가 포항산 과메기를 푸짐하게 싸왔다. 작

설 연휴 마지막 날이다. 북한산 북쪽 끝에 있는 사패산 능선을 올랐다. 사패

년 1월 수원 화성성곽길 걸을 때도 즐겼던 그 과메기다. 우리 일행 12명에 술

산은 조선시대 선조의 여섯 째 딸인 정휘옹주가 유정량(柳廷亮)에게 시집갈

은 고작 작은 페트병 소주 1병. 여기에 영이

때 선조가 하사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며칠 전부터 오늘 비소식이 있었

가 가지고 온 인삼즙을 섞으니 양도 많아지

는데 미세먼지도 없고 날만 좋다. 회룡역에서 친구들을 만나 의정부경전철을

고 몸에도 좋은 인삼주가 됐다. 새해 인사

타고 두 번째 역인 의정부시청역에서 하차했다. 경제성 문제로 말이 많던 의

를 하면서 인삼주로 산우회원의 건강과 행

정부경전철을 처음 타봤다. 운전기사 없이 폭이 좁은 2개 차량을 연결해 운

복을 기원하는 건배를 했다. 이도선 동기회

행하고 있었다. 우이경전철과 달리 지상을 달려 마치 놀이공원 기차를 타는

장이 준 예년보다 두터운 금일봉을 고맙게

듯했다.

받았다.

역사(驛舍)를 빠져나오니 바로 사패산 등산길로 이어진다. 이현기 회원 이 오늘 오를 코스에 대해 대강을 일러준다. 쭉쭉 뻗은 침엽수가 두 팔 뻗어 우리 일행을 환영한다. 오래간만에 산에 오르니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상쾌 한 산 공기가 폐부 깊숙이 파고든다. 휴일인데도 불구하고 등산객이 생각보다

참가자

김동준 김중곤 남상화 박용범 오영 유재두 윤진평 이도선 이현기 장무철 최병학 허정회

416

적다. 그마저도 대부분이 이 동네 주민처럼 보인다. 우리처럼 객은 눈에 안 띈 다. 명산 도봉산의 그늘에 가린 탓이리라. 우리에게는 더 없이 좋다.

417


오늘 목적지는 사패산 중턱에 있는 너른바위다. 사패산은 바 위산이다. 중간중간 바위가 오르는 재미를 더한다. 역시 산에는 바 위가 있어야 제격이다. 1시간 정도 만에 너른바위에 닿았다. 쉼터로 딱이다. 서너 평은 족히 되는 넓이다. 마치 도봉산 주봉(柱峰) 정상 에 올라와 있는 느낌이다. 의정부 일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파트 공화국답게 이곳에도 쭉쭉 뻗은 아파트가 대세를 이룬다. 경기도 는 서울과 인구는 비슷하지만 면적으로는 17배 정도 넓다. 우리나 라 전 국토의 약 1/10이다. 효율적인 행정을 위해 남과 북 2개의 도 로 분할해야 하지만 경제력의 차이가 커 못하고 있다. 준비해 온 과일, 과자, 커피로 숨을 고른다. 마침 옆에 쉬고 있 던 아낙에게 사진 한 컷을 부탁한다. 이틀에 한 번 사패산에 오른 다는 마니아다. 오를 때는 몰랐는데 쉬고 있으니 제법 한기가 든다. 의정부부대찌개 골목에서 만나기로 한 병학이와 약속시간을 지키 기 위해 짐을 싸고 내려왔다. 의정부부대찌개 골목은 설 연휴도 가리지 않았다. 애초에 가 려던 집은 발 디딜 틈도 없었다. 부대찌개 맛이 다 거기가 거기 아니 겠는가라는 생각에 그중 한갓진 집을 찾아들어갔다. 손님이 없으 니 대접이 융숭했다. 우리가 첫 손님이었는데 금방 식당이 꽉 찼다. 우리가 손님을 몰고 온 것이다. 세숫대야만 한 그릇에 담긴 찌개를 어떻게 다 먹나 했는데 먹다 보니 금방 바닥이 드러났다. 과연 부대 찌개 골목이라고 이름을 붙일 만했다. 모처럼 등산하며 땀 흘린 하 루였다.

참가자

김수곤 오영 유재두 윤진평 이현기 최병학 함동일 허정회

418

419


신일고1회 산우회

산행일지


차수

일시

집결 장소

가는 곳

비고

2005년 1

5월 28일(토)

2

6월 25일(토)

3

7월 23일(토)

09:30

27

7월 7일(토)

구파발역 1번 출구

북한산

숨은벽

구파발역 1번 출구

북한산

28

8월 11일(토)

구파발역 1번 출구

북한산

냉면, 불고기

10월 22일(토)

7

11월 12일(토)

구파발역 1번 출구

고령산

8

12월 3일(토)

회룡역 1번 출구

사패산

숨은벽 송추 계곡

09:00

송년산행

2006년

13

4월 23일(토)

14

6월 3일(토)

15

7월 2일(토)

16

06:30

29

9월 1일(토)

양재역 환승주차장 앞

청계산

30

10월 6일(토)

구파발역 1번 출구

고려산

31

11월 3일(토)

구파발역 1번 출구

고령산

변수복 농장

32

12월 1일(토)

구파발역 1번 출구

북한산

은사 초청 송년산행

떡만둣국

2008년 33

1월 5일(토)

양재역 7번 출구

청계산

북한산

34

2월 2일(토)

구파발역 1번 출구

북한산

구파발역 1번 출구

고령산

35

3월 1일(토)

도봉산역 횡단보도 건너편

도봉산

구파발역 1번 출구

북한산

상장능선

36

4월 12일(토)

구파발역 1번 출구

북한산

서초구민회관 앞

내변산

전북 고창군

37

5월 10일(토)

사당역 5번 출구

관악산

구파발역 1번 출구

북한산

여성봉

38

6월 14일(토)

구파발역 1번 출구

불곡산

광교산

송정역 1번 출구

문수산

8월 5일(토)

구파발역 1번 출구

노고산

17

9월 2일(토)

구파발역 1번 출구

북한산

18

10월 14일(토)

청량리역 대합실

19

11월 4일(토)

09:45

09:00

구파발역 1번 출구

서초구민회관 앞 09:00

1회 동기회 합동산행

북한산

6

4월 1일(토)

집다리골

구파발역 1번 출구

북한산

12

종합운동장역 3번 출구

신필호 초청

구파발역 1번 출구

3월 4일(토)

5월 5일(토)

고령산

9월 24일(토)

11

25

구파발역 1번 출구

5

09:00

비고

6월 2일(토)

북한산

2월 4일(토)

가는 곳

26

구파발역 1번 출구

10

집결 장소

청계산

8월 27일(토)

1월 7일(토)

일시

청계산 원터골 입구

4

9

차수

화성노인요양원 방문(김익희 회원)

딱따구리수련원 회식

09:00 39

7월 5일(토)

도봉산역 횡단보도 건너편

도봉산

40

8월 2일(토)

청량리역 대합실

연인산

냉면

41

9월 6일(토)

구파발역 1번 출구

감악산

상장능선

42

10월 4일(토)

구파발역 1번 출구

북한산

연인산

43

11월 1일(토)

구파발역 1번 출구

박달산

변수복 농장

구파발역 1번 출구

고령산

44

12월 6일(토)

구파발역 1번 출구

북한산

은사 초청 송년산행

구파발역 1번 출구

북한산

양재역 7번 출구

청계산

떡만둣국

도봉산역 횡단보도 건너편

도봉산

왕복 기차 이용, 냉면

09:00 20

12월 2일(토)

2009년 45

2007년 21

1월 6일(토)

22

2월 3일(토)

1월 3일(토) 09:00

구파발역 1번 출구

북한산

상장능선, 떡만둣국

46

2월 7일(토)

양재역 7번 출구

청계산

정자룡 초청

47

3월 7일(토)

송정역 2번 출구

문수산

김동준 초청

48

4월 4일(토)

08:40 도봉산역(1호선 승강장)

고대산

연천

구파발역 1번 출구

북한산

원효봉

사당역 5번 출구

관악산

09:00 23

3월 3일(토)

09:00 24

4월 7일(토)

도봉산역(1호선)

도봉산

돼지수육, 배춧국

49

5월 9일(토)


차수

일시

50

6월 13일(토)

51

7월 4일(토)

집결 장소

가는 곳

비고

차수

일시

집결 장소

가는 곳

회룡역 2번 출구

사패산

딱따구리수련원 회식

75

7월 2일(토)

당고개역 1번 출구

수락산

76

8월 6일(토)

당고개역 1번 출구

수락산

장암역 1번 출구

수락산

보양 산행

77

9월 3일(토)

구파발역 1번 출구

북한산

송추

78

10월 8일(토)

10:00

송정역 1번 출구

평화누리길

10월 27일(목) ~ 09:00 30일(일)

잠실종합운동장

다이센(大山, 1710m)

옛골 종점

청계산

09:30

비고

09:00 52

8월 1일(토)

구파발역 1번 출구

북한산

53

9월 5일(토)

청량리역 대합실

연인산

54

10월 10일(토)

10:00

소요산역 1번 출구

마차산

55

11월 7일(토)

09:00

구파발역 2번 출구

박달산

변수복 농장

56

12월 4일(금)

18:30

종합운동장역 2번 출구

팔영산

전남 고흥, 호남 지부초청 송년산행

기차

79

2010년 57

1월 9일(토)

우이동 그린파크 입구

북한산

은사초청 신년하례 산행

58

2월 6일(토)

양재역 7번 출구

청계산

떡만둣국

59

3월 6일(토)

도봉산역 횡단보도 건너편

도봉산

신일산악회·5회산우회·신일합창단 합동

60

4월 3일(토)

사당역 5번 출구

관악산

61

5월 1일(토)

양주역

불곡산

62

6월 5일(토)

당고개역 출구

수락산

63

7월 3일(토)

구파발역 1번 출구

북한산

09:00

09:30

80

11월 5일(토)

10:00

81

12월 3일(토)

09:30 도봉산역 횡단보도 건너편

도봉산

송년산행

2012년 82

1월 7일(토)

09:30

구파발역 1번 출구

북한산

원효봉

83

2월 4일(토)

10:30

양주역

칠봉산

양주군 소재(506m)

84

3월 3일(토)

남대문 대한상의 앞

인왕산(서울도성순례)

숭례문~창의문, 배건욱(19회) 안내

도봉산역 횡단보도 쉼터

도봉산

용어천계곡

수리산역

수리산

슬기봉

종합운동장역 2번 출구

제1차 해파랑길

마차진해변~삼포해수욕장

옛골 종점

청계산

동기회 봄 소풍

사당역 5번 출구

관악산

장암역

수락산

물놀이 보양산행

한성대역 5번 출구

낙산(서울도성순례)

혜화문~흥인지문, 배건욱 안내

울릉도, 독도

제3차 해외산행

옛골 종점

청계산

김의섭 초청

도봉산역 길 건너 쉼터

도봉산

권영삼 초청

우이동 버스 종점

북한산

스승 초청 송년산행

수유역 1번 출구

북한산 둘레길

이준 열사 묘역~정릉주차장 6㎞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3번 출구

남산(서울도성순례)

광화문~숭례문, 배건욱 동문 안내

09:30 85

4월 7일(토)

86

5월 12일(토)

딱따구리수련원 회식

87

09:00

10:00

5월 25일(금) ~ 16:00 27일(일)

64

8월 7일(토)

청량리역 대합실

연인산

왕복 기차 이용, 냉면

88

65

9월 4일(토)

구파발역 1번 출구

북한산

산천사 계곡

89

7월 7일(토)

66

10월 2일(토)

소요산역 1번 출구

마차산

90

8월 4일(토)

10:00

제2차 해외산행

6월 2일(토) 09:30

10:00 67

11월 6일(토)

구파발역 1번 출구

북한산

둘레길

사당역 5번 출구

관악산

은사 초청 송년산행

둘레길(구파발역~구기터널)

91

9월 8일(토)

92

9월 22일(토) ~ 24일(월)

93

10월 6일(토)

94

11월 3일(토)

95

12월 1일(토)

09:00 68

12월 4일(금)

2011년 69

1월 8일(토)

구파발역 1번 출구

북한산

70

2월 12일(토)

양재역 7번 출구 스포타임 앞

청계산

71

3월 5일(토)

도봉산역 횡단보도 건너편

도봉산

09:30 72

4월 2일(토)

불광역 2번 출구

북한산

73

5월 7일(토)

구파발역 1번 출구

북한산

74

6월 11일(토)

양주역

불곡산

둘레길(불광역~국민대)

-

09:30

2013년 96

1월 5일(토)

97

2월 2일(토)

10:00 딱따구리수련원 회식


차수 98

일시 3월 9일(토)

집결 장소

가는 곳

비고

구파발역 1번 출구

북한산

원효봉

도봉산역 만남의 광장

도봉산

오봉

09:30

차수

강씨봉 자연휴양림

119

5월 10일(토)

09:30

구파발역 1번 출구

북한산

종합운동장역 2번 출구

제3차 해파랑길

주문진수산시장~도직항 57㎞, 변수복 외 7명

인천 여객터미널

중국 태산·곡부·장보고

제5차 해외산행, 박종헌 추진위원장 외 17명

서운산, 진천 엽돈재

남상화 회원 초청

옛골 종점

청계산

계곡 물놀이

종합운동장역 2번 출구

일산호수공원 꽃전시장 야영

김동준 백인형 변수복 안은섭 양상진 유재두 장무철 정락용 진영주 함동일 허정회

수락산역 1번 출구

수락산

종합운동장역 2번 출구

제4차 해파랑길

회룡역

사패산

사당역 6번 출구

관악산

김포공항

제주 힐링캠프

서귀포자연휴양림, 유재두 외 10명

불광역 7번 출구

북한산 우이령

은사 초청 송년회

독립문역 4번 출구

안산(鞍山) 자락길

7㎞ 순환둘레길

사당역 6번 출구

관악산

도봉산역 2번 출구

제1차 서울둘레길

도봉산역~당고개역 7㎞

양재역 10번 출구

청계산

원터골~옛골 종점

당고개역 3번 출구

제2차 서울둘레길

산우회 창립 10주년, 당고개역~화랑대역 7㎞

종합운동장역 2번 출구

하바롭스크, 우스리스크, 블라디보스토크

제6차 해외산행, 장무철 추진위원장 외 22명

화랑대역 4번 출구

제3차 서울둘레길

화랑대역~광나루역 13㎞

09:00

종합운동장역 2번 출구

유명산

1회 동기회 소풍

101

6월 6일(목) ~ 9일(일)

-

종합운동장역 2번 출구

제2차 해파랑길

삼포해변~주문진수산시장 72㎞, 9명

102

7월 6일(화)

과천종합청사역 10번 출구

관악산

103

8월 3일(토)

당고개역

수락산

2일 진영주 외 5명 청학동 은류폭포 야영

104

9월 7일(토)

10:00

마두역

심학산 둘레길

6일 안은섭 유재두 진영주 함동일 허정회 야영

105

9월 19일(목)

17:00

정부청사역 10번 출구

추석달맞이 관악산 야영

권영삼 김의섭 김인중 김홍빈 안은섭 윤진평 허정회

124

106

10월 2일(수) ~ 6일(일)

-

3일 부산항 출발, 5일 도착

대마도(일본)

제4차 해외산행 김동준 외 18명

107

11월 2일(토)

10:00

옛골 종점

청계산

108

11월 4일(월) ~ 8일(금)

15:00

김포공항

제주 힐링캠프

110

10:00

12월 18일(수) ~ 14:00 19일(목)

120

5월 19일(월) ~ 07:00 22일(목)

121

6월 4일(수) ~ 9일(월)

122

7월 5일(토)

08:00 양재역 서초구민회관 앞

123

8월 2일(토)

10:00

125 126 127

북한산 둘레길

은사 초청 송년회(박가네)

128

종합운동장역 2번 출구

중미산 휴양림

변수복 유재두 윤세진 윤진평 장무철 조규진 진영주 최병학 함동일 허정회

129 130

111

1월 4일(토)

10:00

수서역 6번 출구

서울둘레길

제4코스(대모산, 구룡산) 8㎞

112

1월 22일(수) ~ 23일(목)

13:30

종합운동장역 2번 출구

운악산 자연휴양림

권영삼 김순중 김의섭 안은섭 유재두 진영주 최병학 함동일 허정회

113

2월 8일(토)

10:00

사당역 6번 출구

관악산

김의섭 추모산행

114

2월 19일(수)

14:00

종합운동장역 2번 출구

용문산 자연휴양림

힐링캠프(권영삼 김순중 안은섭 진영주 함동일 허정회)

※김의섭, 궁예성터에서 ‘먼저 가다’

115

3월 8일(토)

10:00

도봉산역 만남의 광장

도봉산

용어천계곡

116

3월 26일(수) ~ 27일(목)

-

종합운동장역 2번 출구

칼봉산 자연휴양림

힐링캠프(진영주 함동일 허정회)

117

4월 5일(토)

09:30

상봉역

운길산

16:30

8월 20일(수) ~ 15:30 21일(목) 9월 6일(토)

10:00

9월 29일(월) ~ 14:00 10월 3일(금) 10월 4일(토)

도직항(강릉)~대진항(삼척) 55㎞, 최병학 외 6명 참가

10:00

길음역 3번 출구

2014년

힐링캠프

종합운동장역 2번 출구

5월 31일(금)

12월 7일(토)

비고

-

100

109

가는 곳

4월 17일(목) ~ 18일(금)

4월 6일(토)

서귀포자연휴양림, 신필호 외 9명

집결 장소

118

99

09:30

일시

11월 1일(토) 11월 10일(월) ~ 14:00 14일(금) 12월 6일(토)

09:30

2015년 131

1월 3일(토)

132

2월 7일(토)

133

3월 7일(토)

134

4월 4일(토)

135

5월 2일(토)

136 137

10:00

09:30

5월 26일(화) ~ 10:00 30일(토) 6월 6일(토)


차수

일시

집결 장소

가는 곳

비고

차수

138

6월 19일(금) ~ 14:00 23일(화)

종합운동장역 2번 출구

제5차 해파랑길

대진항(삼척)~죽변항 56㎞, 안은섭 외 6명

158

7월 2일(토)

정부청사역 10번 출구

관악산

계곡 물놀이

159

8월 6일(토)

구파발역 1번 출구

북한산

삼천사 계곡

160

9월 3일(토)

139

7월 4일(토)

140

8월 1일(토) 10:00

141

9월 5일(토)

양재시민의숲역 10번 출구

제4차 서울둘레길

양재 시민의숲~우면산~사당역

142

10월 3일(토)

도봉산역 만남의 광장

도봉산

우이암

종합운동장역 2번 출구

제6차 해파랑길

죽변항~후포항 58㎞, 윤진평 외 8명

143

144 145

10월 15일(목) ~ 07:00 18일(일) 11월 12일(목) ~ 14:00 16일(월) 11월 21일(토)

161

162

12월 19일(토)

김포공항

제주 힐링캠프

서귀포자연휴양림, 장무철 외 10명

163

한성대입구역 5번 출구

한양도성길 백악구간

혜화문~창의문 5㎞

164

길음역 3번 출구

정릉 탐방

은사 초청 송년회(박가네)

165

제5차 서울둘레길

석수역~금천구청~철산대교~광명대교~ 구일역~신정1교~오목교

2016년 147

148

1월 9일(토)

석수역 2번 출구

1월 20일(수) ~ 10:00 22일(금)

신목동역 2번 출구

안면도 일원

안면도자연휴양림 ‘신년 맞이’ 캠프

2월 6일(토)

사당역 6번 출구

관악산

150

3월 5일(토)

구파발역 1번 출구

북한산 둘레길

구름정원길

종합운동장역 2번 출구

오서산자연휴양림

제1차 ‘몸·맘 닦기 캠프’, 양상진 외 6명

3월 17일(목) ~ 09:00 19일(토)

152

4월 2일(토)

10:00

도봉산역 만남의 광장

도봉산

용어천계곡

153

4월 5일(화) ~ 8일(금)

09:30

인천국제공항

규슈 올레 트레킹

제7차 해외산행, 함동일 외 17명

154

5월 7일(토)

10:00

원터골

청계산

산우회 창립 11주년

제7차 해파랑길

후포항~고래불해변~축산항~ 영덕해맞이공원~고불봉(영덕군) 52㎞, 김수곤 외 8명

155

9월 22일(목) ~ 07:00 25일(일) 10월 1일(토)

가는 곳

비고

서울대 정문 앞

제6차 서울둘레길

서울대정문~천주교삼성산성지~ 석수역 7㎞, 3시간 20분

정부청사역 10번 출구

관악산

계곡 물놀이

구파발역 3번 출구

제7차 서울둘레길

구파발역~봉수대~증산체육공원~ 증산역 9㎞, 4시간 20분

종합운동장역 2번 출구

제8차 해파랑길

고불봉~강구항~화진해변~ 오도리해변~포항영일신항만 48㎞, 신필호 외 7명

도봉산역 만남의 광장

도봉산

용어천계곡

11월 5일(토)

증산역 2번 출구

제8차 서울둘레길

증산역~하늘공원~난지공원~가양역

11월 10일(목) ~ 12:00 13일(일)

김포공항

제4차 제주 힐링캠프

서귀포자연휴양림, 남상화 외 10명

12월 3일(토)

10:00

용두역 4번 출구

청계천 둘레길

8㎞, 은사 초청 송년회(호이리거)

광나루역 2번 출구

제9차 서울둘레길

광나루역~고덕역 10㎞

개화산역 1번 출구

강서둘레길

11㎞ 원효봉

2017년

149

151

10:00

집결 장소

10:00

10:00 146

일시

166

1월 7일(토)

167

2월 4일(토) 10:00

168

3월 4일(토)

구파발역 1번 출구

북한산

169

4월 1일(토)

산성역 2번 출구

남한산성

종합운동장역 2번 출구

제9차 해파랑길

포항영일신항만~모포2리마을회관 76㎞, 곽인수 외 10명

옛골 종점

청계산

산우회 창립 12주년, 정토사~혈읍재 전 우측~돌문바위~ 원터골

170

4월 29일(토) ~ 07:00 5월 3일(수)

171

5월 6일(토)

172

6월 3일(토)

도봉산역 만남의광장

도봉산

173

7월 1일(토)

연신내역 3번 출구

북한산

삼천사계곡

174

7월 8일(토) ~ 11일(화)

08:30

인천공항

후지산

제8차 해외산행, 박종헌 추진위원장 외 15명

175

8월 5일(토)

10:00

도봉산역 만남의광장

도봉산

용어천계곡

김포공항

제주도

제5차 제주 힐링캠프, 조항복 외 7명, 서귀포 양마단지 김남수 농장

사당역 6번 출구

관악산

10:00

5월 19일(목) ~ 07:00 22일(일)

종합운동장역 2번 출구

156

6월 4일(토)

10:00

우이동 버스종점

북한산

157

6월 16일(목)

09:00

당산역 11번 출구

변산 일원

176 제2차 ‘몸·맘 닦기 캠프’, 변산자연휴양림, 윤진평 외 5명

177

8월 10일(목) ~ 09:00 14일(월) 9월 2일(토)

10:00


차수

일시

178

9월 30일(토)

179

10:00

10월 5일(목) ~ 07:00 9일(월)

180

11월 4일(토)

181

12월 2일(토)

집결 장소

가는 곳

비고

차수

일시

고덕역 4번 출구

제10차 서울둘레길

고덕역~방이동 생태경관보전지역 8㎞, 3시간 15분

200

6월 6일(목) ~ 9일(일)

종합운동장역 2번 출구

제10차 해파랑길

모포2리마을회관~정자항(울산) 54㎞, 김종욱 외 9명

201

수서역 5번 출구

제11차 서울둘레길

수서역~올림픽공원역 9㎞, 2시간 30분

안국역 2번 출구

북촌, 경복궁, 서촌 탐방

은사 초청 송년회(호이리거)

이매역

여주 시티투어

원당역 3번 출구

행주누리길

수원역

온양 시티투어

10:00

2018년 182

1월 6일(토)

183

2월 3일(토)

184

3월 3일(토)

185

4월 7일(토)

09:00

김포공항역 환승

무의도 투어

186

5월 3일(목) ~ 7일(월)

07:00

종합운동장역 2번 출구

제11차 해파랑길

187

6월 2일(토)

10:00

양수역

두물머리 물래길

188

7월 3일(토) ~ 7일(토)

19:00

인천국제공항

코타키나발루(말레이시아)

189

8월 4일(토)

옛골 종점

청계산

경복궁역 1번 출구

인왕산

종합운동장역 2번 출구

제12차 해파랑길

사당역 6번 출구

관악산

독립문역 4번 출구

서대문형무소, 인왕산

수원역 4번 출구

수원 화성 성곽길

과천대공원역 2번 출구

서울대공원 둘레길

10:00

191 192

9월 1일(토) 10월 3일(수) ~ 07:00 7일(일) 11월 3일(토) 12월 1일(토)

1월 5(토)

195

2월 9(토)

07:00

종합운동장역 2번 출구

제13차(최종) 해파랑길

일광해변~오륙도해맞이공원 45㎞, 김중곤 외 12명

7월 6일(토)

10:00

경복궁역 2번 출구

백사실계곡, 수성동계곡

김중곤 회원 집 뒤풀이

202

8월 3일(토)

11:00

평내호평역 2번 출구

청개구리수영장

변수복 회장

203

10월 3일(목)

수서역 6번 출구

구룡산, 대모산 둘레길

9월 산행은 태풍 ‘링링’으로 취소

204

11월 2일(토)

삼송역 1번 출구

박달산

변수복 회장 농장 고구마 캐기

205

12월 7일(토)

대한문 앞

정동옛길 탐방

은사 초청 송년회(강구미주구리)

학여울역 1번 출구

양재천 - 양재시민의 숲

12명 참가

회룡역

사패산 능선길

8명 참가

10:00

1월 4(토) 10:00

207

정자항(울산)~울산대공원 76㎞, 김왕중 외 10명

제9차 해외산행, 정자룡 외 9명

울산대공원~일광해변 56㎞, 오영 외 10명

은사 초청 송년회(호이리거)

2019년 194

비고

206

10:00 193

가는 곳

2020년

10:00 190

집결 장소

10:00 196

3월 2(토)

양천향교역 8번 출구

강서구 투어

양천향교, 겸재미술관, 서울식물원

197

4월 6(토)

도봉산역 만남의광장

도봉산

용어천계곡

198

5월 1(수)

09:00

종합운동장역 2번 출구

마장호수(파주)

동기회 봄 소풍

199

6월 1(토)

10:00

강매역 2번 출구

고양누리길 4코스

1월 27(월)



만 원의 幸福 2005년 5월 창립한 신일고 1회 산우회가 2013년 5월 100회 산행을 기념 해 출간했다. 산과 들과 바다를 누빈 100회 모임의 발자취를 기록하고 한 권의 책으로 펴냈다는 데 의의가 있다. 표제 『만 원의 幸福』은 ‘산행 회비 1만 원으로 회원이 누리는 행복’이라는 뜻이다. 이 책은 모두 네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산으로 하나 되다’에 는 백두산 등 해외산행을 통해 친구들이 화합하고 단합하는 모습을 그렸다. 2장 ‘산이 있어 행복하다’에는 북한산 등 월례 정기산행에서 친 구들이 느끼는 행복한 모습을 담았다. 3장 ‘느림에서 배운다’에는 동해 안 해파랑길 등 둘레길 걷기를 통해 배우는 느림의 철학을 그렸다. 4장 ‘자연의 품에 안기다’에는 자연의 넉넉한 품에 안겨 야영하면서 친구 들과 지내는 진솔한 모습을 담았다. 이 책은 ‘기록은 기억보다 강하며, 기록하면 추억을 넘어 역사가 된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데 좋은 자료 가 될 것이다.


살다보면 가슴이 벅찬 경험도 하고,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을 겪기도 한 다. 기다려지는 모임이 있는가 하면, 마음에 안 내켜도 할 수 없이 얼굴을 내밀어야 하는 자리도 있다. 나에게 한 달에 한 번 있는 산우회 만남은 기다림 끝에 새로운 세 상을 보는 창이다. 그간 친구들과 어울려 산 좋고 물 좋은 여러 곳을 다녔다. 많은 새 로운 것을 보았고 또 그만큼 배웠다. 인간은 평생 배워도 모자라는 모양이다. 두 발로 걸어 여행하는 건 탈것에 의존하는 여행과는 차원이 다르다. 길섶에서 마주 치는 모든 꽃, 풀, 새가 내게 말을 거는 것 같다.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쉽다. 사랑스러운 눈으로 보면 어느새 그들과 친구가 되어 있음을 느낀다. 도보여 행의 매력이다. 우리 해파랑길 트레커들의 모토는 ‘잘 먹고, 잘 걷고, 잘 놀자’이다. 이 중 어느 하나 그냥 되는 것은 없다. 잘 먹는 게 어느 약보다 나은 법이다. 또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사 는 법이다. 잘 노는 것만 해도 그렇다. 노는 것도 부단한 연습이 필요하다. 연습 없이 갑자기 놀라고 하면 못 한다. 시나브로 나이가 들어가면서 잘 노는 게 무엇보다 중요 하다. 죽을 때 ‘좀 더 일할 걸’ 하며 후회하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대신 좀 더 제대로 놀지 못한 것에 대한 후한은 많다고 한다.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여생을 즐기자.

비매품


Turn static files into dynamic content formats.

Create a flipbook
Issuu converts static files into: digital portfolios, online yearbooks, online catalogs, digital photo albums and more. Sign up and create your flip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