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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나팔 24호

천주교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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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행인 상지종 • 편집 천주교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 주소 경기도 의정부시 신흥로 261 천주교 의정부교구청 4 층 • 전화 010 8599 8412 • 이메일 upeace@uca.or.kr
드라마 ' 체르노빌 ' 을 통해 본 진실과 거짓
김명식 요한 신부 / 전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많은 사람들이 1986 년에 있었던 체르노빌 원전 사고에 대 해 들어본 적은 있지만 ,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알고 있는 사 람은 매우 드물다 . 나 역시 그랬다 . 그런데 지난 해 5월 ~6월 에 ‘ 체르노빌 ’(Chernobyl, 2019 년 미국 HBO 제작 ) 이라는 드 라마가 미국에서 반영되었고 , 이 드라마는 미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다룬 ‘ 체르노빌 ’ 은 HBO 에서 만든 드라마 중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다 . 그리고 미국 텔레비전계의 최고의 상이라고 하는 에미상 (EMMYS) 에서 10 개 부문에 걸쳐 수상하면서 전 세계인들에게 ‘ 체르노 빌 ’ 이라는 드라마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
나 역시 그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 체르노빌 ’ 이 한국에서 블루레이 디스크로 발매되자마자 구입하여 감상하였다 . 역 시 소문은 그대로였다 . 드라마를 감상하는 내내 한탄과 슬 픔 , 괴로움과 안타까움 , 분노와 희열의 연속이었다 . 내가 느 낀 모든 것을 이 지면에 담을 수는 없지만 한 개인으로서 드 라마 ‘ 체르노빌 ’ 을 보고 내가 느낀 것을 이 지면에 담고자 한 다 .
1986 년 4월 26 일 밤 1시 23분 , 소련 연방의 체르노빌 원자 력 발전소의 4번 원자로가 폭발한다 . 화재 경보를 듣고 출동 했던 소방관들은 엄청난 방사능에 자신들이 노출되고 있다 는 사실도 모른 채 화재 진압에 열중한다 . 주민들은 원자로 의 폭발로 원자로에서 생겨나 뻗어 나오는 파란 불빛의 아름 다움을 넋을 잃고 감상한다 . 또한 어떤 주민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방사능 재를 하얀 눈을 맞듯이 낭만적으로 만끽한 다 . 주민들은 원자로가 폭발한 다음 날에도 직장과 학교로 향하며 일상을 맞는다 .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했음에도 그들 이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 문이었을까 ? 그것은 인간의 거짓말 때문이었다 .
사고를 수습하는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사고 현장에 투입할 수 있었던 것 , 주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정확한 정보와 진실을 공개하지 않고 은폐한 관계자들과 정부 당국의 거짓말 때문이다 . 그들은 원 전 폭발 36시간이 지나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사람들
을 대피시키기 시작한다 . 그런데 이때도 정부는 “ 잠깐 대피 하는 것이니 조용하게 질서를 지키기 바랍니다 .” 라고 방송했 고 사람들은 2-3 일 있으면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 이라고 믿었다 . 정부 당국은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면서 사고 사실을 외부에 숨겼다 . 그러나 바람을 타고 퍼진 방사선 물 질까지 막을 수는 없었기에 정부는 어쩔 수 없이 체르노빌 원 전 사고의 사실을 국제 사회에 인정한다 .
언뜻 보면 드라마 ‘ 체르노빌 ’ 은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 고에 대한 내용만을 다룬 것처럼 보인다 . 왜냐하면 이 드라 마는 참사 당시의 상황뿐만 아니라 사고 당시의 패닉 상태 그 리고 사고를 수습하는 그 과정까지 실시간으로 재현했기 때 문이다 . 그러나 드라마 ‘ 체르노빌 ’ 이 다루는 더 깊은 주제는 진실을 둘러싼 사람들의 갈등 , 즉 거짓말로 진실을 덮으려 는 사람들과 용기를 가지고 진실을 대면하려는 사람들의 싸 움이다 . 드라마 ‘ 체르노빌 ’ 은 초반에 시청자들에게 묻는다 . “ 거짓의 대가는 무엇인가 ? 거짓을 진실로 착각하는 것 ? 거 짓의 대가는 거짓을 끝없이 듣다가 진실을 인지하는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는 것이다 .” 그리고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거짓 대가는 무고한 사람들의 희생이고 자연의 파괴였다 .
그런데 어디 거짓의 대가로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된 것이 체르노빌만의 문제이겠는가 ? 세월호 참사 , 5.18 광주 민주 화 운동 , 제주 4.3 사건 , 한국 전쟁 당시 있었던 수많은 민간 인 학살들 , 개발이라는 명목 아래 이루어지는 자연 파괴 등 , 진실과 거짓의 싸움이 아직도 진행 중이다 . 그리고 진실을 은 폐하려는 세력들은 지금도 활동 중이다 . 진실을 은폐하려는 세력들은 진실을 덮기 위해서 수많은 가짜 뉴스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 그리고 그 수많은 가짜 뉴스들은 사람들이 진실 이 있다는 것마저 잊어버리게 만들며 진실을 인지하는 능력 까지 상실케 만든다 .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서 가장 애썼던 실제 인물 ,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던 소련 연방의 화학자 발레리 레가소프 (Valeri Legasov, 1936-1988) 는 극 중에서 진실과 거짓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
“ 우리는 진실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거짓말을 하고 또 하다 가 , 진실이 있다는 것마저 잊어버리고 만다 .”
“ 진실은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 선택하든 눈을 돌려 외 면하든 , 언제나 반드시 존재한다 . 진실은 우리의 필요와 바 람 체제와 이데올로기 종교에 관심이 없다 . 진실은 언제나 저 뒤에 버티고 우리를 기다릴 것이다 . 이 교훈은 체르노빌이 우 리에게 준 선물이다 . 나는 한때 진실의 대가가 두려웠으나 , 이제는 묻고 싶다 . 거짓의 대가는 무엇인가 ?”
“ 우리가 하는 거짓말 하나하나는 진실에게 빚을 지는 겁니 다 . 그리고 빚을 지면 그게 언제가 됐든 그 대가를 치러야 합 니다 .”
우리 신앙인들은 진실의 사람들인가 ? 거짓의 사람들인 가 ? 모두 진실의 사람들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 그러면 여러 분이 믿고 있는 진실은 무엇인가 ? 진리의 빛이신 예수 그리 스도의 가르침과 사랑에서 나오는 진실인가 ? 아니면 세상 이 여러분에게 알려준 진실인가 ?
‘ 체르노빌 ’ 극 중에서 체르노빌 주변 지역의 동물들을 살 상하는 임무를 맡은 한 군인이 후임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 “ 누군가에게 총알을 박아 . 그럼 넌 더 이상 네가 네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할거야 . 영원히 예전의 너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이지 .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깨어나 보면 넌 네가 그대로 라는 것을 알거든 . 그럼 넌 네가 항상 그런 인간이었다는 것 을 깨닫는 거야 . 그저 모르고 있었을 뿐이지 .” 처음에는 세 상의 거짓에 익숙해지는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고 괴로워할지 는 모르겠지만 , 그 거짓에 자꾸 노출되면 그 거짓에 익숙해 지게 될 것이다 . 그 거짓에 아주 익숙해져서 마치 원래 내가 그런 사람이었던 것처럼 행동하게 된다 . 그런데 그 거짓에 속 지 말기를 바란다 . 여러분을 거짓에게서 다시 사들이며 치른 대가는 그리스도의 고귀한 피라는 사실을 절대로 잊지 않기 를 바란다 .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참된 진실을 밝히는 이 ,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하는 존재임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2020 · 02 · 제 24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