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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걱정 속에 책장을 덮었네 캐나다 한국문협 기고
무거운 책 한 권 손
심부름 꾼이다. 좋은 일, 궂은 일 가리지 않고
충직하게 소임을 다하는 심복이다. 어떤 주인
을 만나는가에 따라 그 손의 사명이 달라지듯
이 병고를 치유하는 인술(仁術)의 손이 있는가
하면 파괴와 살생을 일삼는 저주 받은 손도 있
다. 기왕이면 좋은 손을 갖고 싶었다. 아름답고
우아하고 겸손한 그런 손을.
어느 가정이거나, 주부는 그 집의 손이어서
모든 것을 알아서 관리한다. 겨울 채비를 하느
라고 이불에서 커튼까지 있는 대로 빨아 널고, 화초 분 갈이 하고, 김장을 담그고 나면 내 손
은 엉망이 되고 만다. 조심성이 없어서 인지, 아
니면 일이 서투른 탓인지 손이 성할 날이 없으
니 민망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손등은 생채기 투성이고 손가락은 군데군데
칼 자국이 스쳐 가관이다. 낮에는 바빠서 별로
모르다가 밤에 잠자리에 들면 그제야 얼얼하
고 화끈거린다. 한때는 길쭉하니 메마르고 거
기다가 머큐로크롬을 훈장처럼 바르고 지내는
내 손이 남 부끄러웠다. 어쩌다가 동창 모임에
간다든가 외출했을 때 손 마디가 굵어져서 반
지 조차 들어가지 않는 손이 초라해 보여 적잖
이 신경이 쓰였다. 그러던 것이 차츰 생각이 달
라져 갔다. 아마 가끔씩 받는 누시아의 편지 때
문이 아닌가 싶다. 누시아, 그 이름은 빛이라 했는데, 그녀는 그
반대편에서 살고 있다. 중학교 다닐 때 관절염
을 앓기 시작하여 사십 고개를 넘어선 여태까 지 투병 생활을 하고 있다. 이십 년 넘게 누워만 살고 있어 무릎 아래쪽부터 발가락까지 성장 이 멈춘 아이 같고, 양팔은 어깨 밑에서 굽어져
내려 가느랗게 야위어 다섯 손가락이 거의 다 오므러 붙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 다. 파리가 얼굴에 새까맣게 앉아도 그것들을 쫓아버릴 아무 방도가 없다. 얼굴과 머리에 비
듬이 덕지덕지 앉은 그녀를 씻기고 오는 날에 는 목숨이 꼭 축제 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알 수 없는 일은, 열 일곱 소녀의 얼
굴로 살고 있는 그녀는 오히려 평화롭다. 배설
물이 두려워 몇 수저의 곡기로 연명만 하고 사
는 터에 천진 무구한 동안의 평화는 어디서 오 는 것일까. 모로 누워서 막대기 같은 손가락 사 이에 수저를 꼽고 엎지르며 한 두 술 밥을 넣던
손에 어느 날 볼펜을 쥐어 주었다. 무엇이라도 써보면 큰 위안이 될거라고. 그녀는 천신만고 끝에 겨우 글씨를 쓰게 되 었다. 글 몇 자 쓰는데 몇 시간이 걸리는 고행 을 거쳐서다. 그리고는 자신과 같은 이웃을 위 하여 그 손으로 사랑의 체온을 나누고 있다. 교 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수인에게, 마음을 앓고 사는 어느 주부에게, 양로원에 있는 불구노인
에게 오그라든 손의 봉헌은 끝없이 펼쳐지고
있다. 나는 누시아의 편지를 받을 때마다 나의 고
통은 하찮은 것이라는 내송(內訟)의 아픔을 겪
는다. 그러던 어느 날, 부 자유한 육신으로부터
자유로와 질 귀한 선물을 받았다. 가나 화랑으
로부터 발송된 화 집이 그것이다. 조심스레 봉
함을 열어보니, 거기 낯익은 조각가 C교수님의
친필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C교수님의 작품을 좋아 한다. 까막눈인
내 눈에 무슨 안목이 있을까마는, 반듯하게 참
으로 인간 답게 살아온 그분 삶의 열정을 익히
알고 존경한 까닭에 그분의 작품에 더 크게 공 감하는 모양이다. 어느 분야의 예술이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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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규 남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여보게
글을 읽었네
그토록 바른 시간을 꽃처럼 살려는데
무슨 일이 벌어 지는지도 모르는 하루 끝 저녁 시간은 낙엽 같다고
찌르는 글귀가 채찍 같더군
억울해서 눈 자위 붉어지는 저녁
옵티머스 시험지에 물드는
걱정스런 붉은 색깔처럼
충혈된 걱정들이 여기 또 저기
틈틈이 써 놓고 잊어버리는
매일매일의 하소연 이랄까
여보게
읽다가 말았네
내가 글귀의 언저리에서 헤매고
그 깊이를 짚을 수 없다면
식은 열정처럼 남는 게 없더군
그러나 무엇보다
누가 더 허기 져 힘들어 했을까 책 속의 글들이 나를 넘어 뜨리더군
큰 손이 되어 썩어가는 나병환자의 환 부를 어루만지고 고통 속에서도 아픔을 나누
는 누시아의 목각 같은 손으로 변신하기도 한
다. 세계적인 작가가 된 C교수님은 육체를 넘
어서는 그곳에 비로소 열리는 창조의 영안을 얻음일까.
이제야 조금씩 누시아의 평화를 알 것 같다.
두 손을 가지런히 책상 위에 얹어본다. 이제야 말로 좋은 손을 가져야 한다는 다짐을 하며, 사
랑과 정성으로 저녁 식탁 차려 놓고 거기 둘러
앉아 즐겁게 식사하는 식구들 틈에서 행복을
느끼는 어머니의 따뜻한 손이다.
정말로 아름다운 손은 누군가를 위하여 끝
없이 봉사하는 그런 손이다. 비밀한 기쁨을 간
직하고 고뇌의 정으로 창조의 촛불을 켜는 그 런 손이다.
여보게
책장을 덮었네
쓴 이와 읽는 이의 엇갈린 깊이가
발각될까 ... 발각 되면...
되지 않기를 숨어서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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