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없는세상 소식지 02호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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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 팀장의 말

전쟁없는세상 2월호 소식지를 다시내며 오영 은 (전쟁없는세상 자원활동가, slow-steady@hanmail.net)

‘양심을 나누는 사람들’이란 이름으로 시작된 병역 거부자들의 작은 모임이 작년 5월 15일, 전쟁없는세상 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발기인 카드가 나왔을 때만 해도 500장이나 되는 카드가 과연 필요할까 생각했었 습니다. 그러나, 막상 후원의 밤을 꽉 채운 사람들을 보면서 괜한 걱정을 했구나 싶었습니다. 고난과 기쁨 의 덩어리들이 응축된 세월의 무게를 느끼며, 전쟁없 는세상의 활동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부족한 것도 많았지만 병역거부 운동이 시작된 이 래로 함께해왔던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한걸음 씩 나 가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평화가 무엇일까 아무리 생 각해봐도 답은 없었지만 한걸음 씩 가다 보면 좀 더 평화로운 세상이 오리라는 소박한 마음으로 시작했습

지난 1월 17일에는 전쟁없는세상 사무실 개소식 겸

니다. 그렇게 어느새 9개월이 지났습니다. 욕심만 지나

신년모임이 진행었습니다. 이 자리에는 후원회장인 홍

치게 앞섰던 것은 아닌가 반성해 봅니다. 300명 가까

세화 선생님을 비롯해서 여러 병역거부자들과 지지자

이 되는 발기인들의 도움에 미흡했던 점들이 너무나

들, 방문객들이 함께했습니다. 사무실 개소식과 함께

많아 부끄러운 마음입니다.

전쟁없는세상은 다시 기나 긴 마라톤을 준비하는 선수

작년 오프라인 소식지 1호를 낸 뒤에 얼마 만에 다

처럼 설레임을 간직한 채 경쾌하게 긴장된 몸을 풀고

시 나오는 소식지인지 모르겠습니다. 매달 발행하겠다

있습니다.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던 약속이 무색하게, 9개월 만에 오프라인 소식지 2호

캠페인에 함께하는 사람들이 늘어갑니다. 월회비 후원

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 만큼 더 알찬 소식지가 되

인을 모으기 위한 노력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5월 15

어야 할텐데 여전히 부족한 것 투성입니다. 그러나, 실

일 전쟁없는세상 결성 1주기를 맞아, 후원인의 밤을

망하지 않고 길게 멀리 보며 천천히 가려고 합니다.

알차게 치루기 위한 준비도 곧 시작됩니다.

한 술 밥에 배부를 수 없다고 조금씩 조금씩 배워가려

다시 한 번, 지키지 못했던 약속을 이제는 꼭 실행

고 합니다. 세상이 그리 녹녹치 않음을 깨달아 가는

에 옮기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매달 한 번 씩 오프

어린 아이처럼 힘들던 시간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라인 소식지를 통해 여러분을 만나뵙겠습니다. 병역거

평화를 향한 열망과 걸음을 멈추지 않을 용기가 있기

부자들 소식과 따끈하고 알찬 평화 소식들로 가득채워

에 저희는 다시 또 한걸음을 내딛습니다.

서 말입니다. 가슴 따뜻한 소식지를 만들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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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없는세상(World Without War)


발기인, 후원인에게 5월15일 후원인의 밤을 준비하며,

전쟁없는 세상 후원인이 되십시오 안녕하세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지지하고, 평 화를 사랑하시는 후원인 여러분! 얼마 전에 입춘 지나 더니 날로 따사로워지는 햇살 받으며 이 글을 씁니다. 오래된 편견과 무관심 속에서 겨울잠을 자던 한국 의 병역거부 문제가 봄 햇살에 깨어 사회적으로 주목 받기 시작한지 꼬박 3년이 되어갑니다. 그동안 병역거 부를 둘러싸고 많은 변화가 있었고 병역거부자들의 모 임인 ‘전쟁없는 세상’도 둥지를 틀고 병역거부자의 인 권 개선과 평화운동의 확산을 위한 작은 발걸음을 한 발 한발 내딛고 있습니다. 많은 병역거부자들이 헌법재판소의 판결 이후로 재 판이 중단된 상황이지만 여전히 500여명 가까운 병역 거부자들은 창살아래 메어있고 스스로의 양심과 신념 상의 결정에 따르는 병역거부의 행렬은 오늘도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군사훈련 대신 생태적 농사 짓기를 원하던 최준호님은 홍성교도소에서, 이라크파 병을 반대하는 군인으로서 농성을 했던 강철민님은 OO교도소에서, 출국금지의 처지로서 이라크현지의 반 전평화활동을 헌신적으로 지원했던 염창근님은 성동구 치소에서 작은 평화를 일구어가고 있다는 편지들을 주 고받는 요즘입니다. 그동안 병역거부자들과 함께하는 마음으로 지지와 후원을 보내주신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병역거부자들이 하나의 물꼬로서 그치지 않고 새로운

들의 지지와 후원은 병역거부자들을 향한 소리없는 박 수이자 이 땅의 평화와 인권의 일보전진을 위한 소박 한 연대임을 확신합니다. 저희들 또한 전쟁없는 세상 으로 함께 하면서 각자 자신의 생활공간과 활동현장에 서 병역거부의 신념과 이상을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임을 약속드립니다. 5월 15일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을 맞이하여, ‘전쟁없는세상 2주년 기념행사’를 후원인들과 함께 하고자 100명의 후원인을 모집하고자 하오니 여러분들 의 소중한 참여와 지원을 부탁드립니다.

세상을 열어가는 당찬 물줄기로 연대하고자 ‘전쟁없는 세상이라는 ‘ 한국최초의 병역거부 모임을 결성하였고 보다 본격적인 활동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제 병역거부자 개개인에게 보여주셨던 지지와 후 원을 ‘전쟁없는 세상으로 ’ 모아내고자 합니다. 여러분

2004년 2월 10일 병역거부자 오태양, 유호근, 나동혁, 임치윤, 임성환, 김도형, 임태훈, 영민 (염창근, 최준호, 강철민 씨는 지 금 병역거부로 수감 중입니다.)☮

☮ 소식지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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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거부자 활동수기

병역거부자 활동수기 1 영 민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mean16@hanmail.net)

영민 씨는 2004년 1월 26일 병역거부를 선언했습니다. 한국에서 꾸준히 병역거부를 실천하고 있는 전통적인 기독교 평화주의와는 조금 다르게 반전평화와 사회변혁의 신념을 가지고 병역을 거부한 것 으로는 11번째입니다. 영민 씨는 노동문화방송 'Joy삶.net(www.joy3.net)‘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금 달라졌다는 것이다. 병역거부자 아무개씨 후원회에 서 활동하는 A씨의 B라는 친구가 있는데 B씨는 나와 친분이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B씨가 나의 병역거부 이야기를 듣고 자신도 병역거부를 해볼까라는 말을 A 씨한테 했다가 안좋은 소리를 들었다(내가 병역거부를 권유하기도 했다ㅡ,.ㅡ;). 그 이유인 즉슨 B씨는 이제까 지 어떠한 활동도 하지 않았으며 하는 것은 쉬우나 그 만큼의 책임을 지어야 하는데 B씨가 그것을 제대로 견뎌 낼 수 없다는 것이다. 병역거부? 주변의 많은 사람들(혈연관계 제외)은 나 의 상태 때문에 걱정하며 말리는 사람은 있었어도 특 별히 놀라는 사람은 없었다. 저지른 후에 몇몇 사람들 에게 알려주었을 때 역시 대부분의 반응은 여러 가지 였지만 그 중에 재밌는 말 한 가지가 있었다. "왜, 안 하나 했다." 그 말 한마디에는 정말 많은 것들이 들어 가 있었다.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 글을 보는 사 람들은 다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한 달이 지났다. 삶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실은

지금도 여전하지만 난 특별한 인간이 아니다. 그래 서 오태양씨와 같은 병역거부자들을 보면서 참 대단하 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병역거부 이전에는 나름의 조 직에서 운동을 했었고 세미나를 통해 많은 학습을 하 고 그 조직 내에서 어느 정도의 자리매김을 했던 사람 들이 대부분으로 알고 있다. 아닌 사람도 몇명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대표적으로 보여지는 사람들의 모 습은 그렇다는 것이다. 자격지심이겠지만 그런 병역거 부자들 사이에서 이런 글 하나 쓰는 것에도 어려워하 는 나 자신이 한심해 보이기도 한다. 병역거부를 하면

특별히 변한건 없다. 소견서에도 있다시피 병역거부

서 내가 우려했었던 것은 함께 활동했던 사람들의 시

발표 이전에도 그렇게 자부 할 수는 없지만 이런 저런

선과 내가 변하는 것이었다. 병역거부와 같은 것을 발

활동을 해왔었고 앞으로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 뿐

표하고 난 후 속세를 떠난 수도자의 모습으로 돌변을

만 아니라 오태양씨를 비롯한 대부분의 병역거부자들

했다던지, 주변 사람들이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도 마찬가지겠지만 병역거부 자체는 그런 활동의 연장

이 싫었다. 병역거부 이전에도 나였고 병역거부 이후

선상이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하나의 수단일 뿐이 었다고 간단하게 말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가지고 있 는 상징적인 의미 때문인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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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없는세상(World Without War)

에도 나인 것은 변함이 없는 것이다. 며칠 전에 Joy삶(http://joy3.net) 전체모임이 있었다.


병역거부자 활동수기 뒤풀이에서 함께 방송하는 무화과 누님과 병역거부 이

했다'라는 말을 보자. 그 친구와 나는 서로의 관심사

야기를 하면서 조카가 조금 있으면 입대를 한다고 들

가 너무 다양해서 한 때는 커피숍에 앉아서 몇 갑의

었다. 그런 자신의 입장에서 병역거부를 받아들이는

담배를 피워가며 차가 끊길 때 까지 수다를 떨었었다

데에 나의 소견은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무화

(학생운동부터 시작해서 정치, 경제, 문화를 포괄하며

과 누님이 그런 의미로 말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개인적인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나눈다. 심지어 속궁

조직운동의 언어로 그것을 '전략이라고 ' 표현하던가?

합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는 여성이다. ㅋㅋㅋ). 그런

병역거부 운동이 국가권위주의와 전체주의, 관리주의

과정을 거쳤기에 그런 이야기가 나왔을 것 같지만 그

를 타파하려는 운동이라고 자식을 군대에 보내는 어머

건 아니었다.

니에게 설명을 해봤자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살기 좋은 세상을 꿈꾸며 이런 저런 활동을 하고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그 당연한 것도 제대로 하지

있었던 나에게 병역거부는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이었

못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 그 활동이 다른 활동가들이 보기에 약하고 보잘것

조직 운동을 해왔던 사람들 내에서 물론 일부라고

없이 보인다하더라도 그런 나의 꿈을 존중해 주었던

믿고 싶지만 어느 정도 활동했었던 사람들에 대한 신

것이다. A씨와 B씨의 예를 들었다 시피 병역거부는

뢰가 너무 커져서 그것이 권위까지가는 경우도 있다.

아니 어떤 활동이든 간에 뭔가 특별한 준비가 된 사

그것을 권위라고 하지 않고 존중이라 할지 모른다. 아

람, 오랫동안 활동했었던 사람만이 할수 있는 것은 아

니면 아예 대놓고 권위를 세워줘야 한다는 말을 한다.

닐 것이다.

여기까지 듣노라면 그것이 어디가 어때서라고 할지 모

병역거부.... 한달이 지났다. 이제까지 보아오지 못했

르겠지만 조직에 새로 들어온 사람들에게는 그 반대의

던 방식의 활동을 펼쳐나가는 사람들도 만나고 이제까

경우가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새로 온 사람을 탐색

지 머리 속에서 책속에서만 보아 왔던 활동을 실제로

하며 운동권 용어로 수위를 점치는 것이다.

보면서 한 달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이 한 달이라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은 욕구는 오래 활동한

시간동안 많은 것을 배우는 듯하다. 정말 값진 시간을

사람이건 갓 활동을 시작한 사람이건 마찬가지이다.

보내는 것이다. 어쩌면 앞으로 더 값진 시간이 될지도

존중 받아야 할 것은 활동했었던 이력이 아니라 활동

모를 일이다. 벨소리로 다운 받은 '처음처럼', 서준식

하는 그 사람 자체인 것이다. 그런 권위적인 활동가들

선생님이 써준 글 '현실에 뿌리박고 현실을 넘어서는

눈에는 활동하지 않는 일반 대중들은 어떤 모습으로

곳에 시선을 박고', 체게바라가 말했던 '불가능한 꿈을

비춰질 것인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왜, 안하나

가져라는 ' 말은 요즘 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 다. 언제나 처음의 마음을 잊지 않고 현실을 직시하며 사람들과 함께하는 곳에서 불가능한 꿈을 이루고 싶음 마음으로 활동을 해야 한다는 것을 오랫동안 잊지 않 고 살아가련다. ☮

◀ 전쟁없는세상 사무실에서 병역거부를 발표하던 날 영민 씨

☮ 소식지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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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거부자 활동수기

병역거부자 활동수기 2 오태 양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sun@jungto.org)

운동을 하기도 하고, 보다 발전된 사회활동을 위해 영 어학습에 매진하기도 합니다. 요즘 ‘아침형 인간’이라 는 책이 세간에 화제인데 이 곳에서의 생활이 바로 그 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좋은벗들은 1997년 북한동포돕기 운동으로부터 시 작된 단체입니다. 제가 대학시절 사회운동과 인생의 방향을 전환하는 시기에 인연을 맺어 지금은 실무 간 사가 되어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저는 주로 일반시민 과 자원활동가와 함께하는 통일운동, 평화운동을 일구 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한국사회에 입 국하는 북한동포들의 생활정착을 지원하고, 북한동포 와 좋은벗들의 후원인들이 함께 할 수 있는 통일운동, 평화운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국사회에 이미 4천 새 봄이 젊음을 깨우칩니다.

여명에 달하는 북한동포들이 살아가고 있고, 매일 3명

그 동안 살아가는 소식이 좀 뜸했었습니다. 새 봄

꼴로 입국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저는 한달에 100여명

을 맞아 소식 전하고파 몇 자 적습니다. 저는 현재 정

에 달하는 북한동포들을 만나고 있는데, 그 과정이 매

토회 공동체에서 생활을 하며, 국제 평화인권난민 ․ ․

우 즐겁고 보람이 있습니다.

지원활동을 하는 ‘좋은벗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

제가 대학 3학년 때 북한의 식량난과 그로인한 300

곳에서의 수행생활과 사회활동은 매우 만족스럽고 즐

만명의 대량아사 라는 우리 민족사에서 뿐만 아니라

겁습니다.

인류사에 있어서도 가장 비극적인 재앙으로 기록될 역

새벽 4시를 전후로 하여 일어나 자신의 삶을 돌아

사적 사건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중국에 직접 가서 식

보고 세상을 살피는 기도와 명상의 시간을 갖습니다.

량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은 북한난민

하루를 살아가며 가장 맑고 단단해지는 시간이기도 합

과 꽃제비들을 만나보고 그 대재앙의 실상을 온 몸과

니다. 생활공간을 청소하고 밥을 짓고 수천년을 이어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20대는 온

내려 온 불교의 전통 식사법인 ‘발우공양’을 함께 합니

통 북한과 중국에서 고통받는 북한동포들을 돕기 위한

다. 더불어 각자의 일정을 공유하고 생활상의 어려움

일들로 채워졌지요. 그 일을 하는 가운데 제 삶과 가

이나 개선점들을 드러내어 함께 나누는 ‘대중공사’를

치관에 있어서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고, 불교와 만나

진행합니다. 본격적인 업무가 시작되는 9시까지는 개

게 되었고, 병역거부를 결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굳

인시간입니다. 짜투리 시간을 잘 이용하여 가까운 우

이 불교의 가르침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반전평화라는

면산을 가볍게 산행하기도 하고, 심신의 건강을 위해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라 할지라도 저에게 북한의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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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없는세상(World Without War)


병역거부자 활동수기 받고 있는 친구들을 향해 총을 겨누는 일은 차마 못할

는 식량과 약품과 연필을 들고 가자고 제안하고 싶습

일이었습니다. 한 때는 제 온 삶을 다해 그들을 살리

니다. 우리의 친구들이 부당한 이라크 점령을 연장하

겠다고 몸부림치다가 이제는 그들을 향해 총구를 겨누

는 미군의 막사를 짓는 일에 동원될 때, 우리는 포탄

는 일을 어떻게 할 수있겠습니까?

과 지뢰를 제거하고 그 자리에 이라크 아이들을 위한

어떤 이들은 ‘그들은 적군이 아니냐?’ 고 하고, ‘식

병원과 학교를 짓기를 희망합니다. 저를 비롯해서 많

량을 지원해 주면 군인이 먹지 않느냐?‘며 식량지원을

은 병역거부자들이 아프카니스탄에서, 이라크에서 부

반대하고 비판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적군이

도덕하고 명분없는 전쟁이 발발했을 때, 현장으로 갈

기 이전에 꽃다운 젊은이로서의 한 인간이며, 설령 적

수 있기를 희망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병역거부자

군이라 할지라도 굶주려 죽는다면 식량을 보내어 살리

이기 때문에 갈 수 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병역거부

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흘렀

자가 갈 곳은 진정 감옥밖에 없는 것일까요? 저는 보

고, 제가 먼 발치에서나마 작은 도움이라도 보태고 싶

여주고 싶습니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이라크 민중에게

었던 북한동포들이 이제는 제 곁에 이미 이렇게 와 있

점령군으로서가 아니라 아픔을 함께 하는 친구로서,

었습니다. 그들과의 새로운 만남은 또 다른 세계로의

전쟁의 협력자로서가 아니라 평화의 메신저로서 함께

여행임이 분명합니다. 지난 반세기간 처벌받은 1만여

하고자 함을 말입니다.

명의 병역거부자, 그것은 1만이라는 숫자만으로는 다

병역거부를 마음먹은 지 꼬박 3년, 헌재 판결 이후

이해할 수 없는 인간과 역사의 이면을 간직하고 있음

로 중단되었던 1심 재판이 3월 17일부터 재개될 것이

을 그동안 많은 병역거부자들을 만나며 느낄 수 있었

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것도 봄소식인지라 반갑기

습니다. 마찬가지로 300만명이 굶주림으로 죽어갔고

도 합니다. 다시 재판을 준비하며 새롭게 마음 가져보

현재도 빈곤과 질병과 억압으로 고통받는 북한동포들

는 아침, 새로운 봄 소식이 젊음을 깨우칩니다. ☮

의 살아있는 역사를 그분들과 직접 만나며 접하노라면 만감이 교차하기도 합니다. 만나는 북한분들 중 상당 수가 군인출신이고, 여성군인도 적지 않습니다. 그분들 은 스스럼없이 강력한 군사대국으로서의 우리 민족의 장래를 이야기하고, 군사문화의 우월성과 효율성에 대 해 확신을 가지기도 합니다. 어쩌면 저와 정반대의 입 장에 서 있는 이들과 함께 하기에 이런저런 생각할 기 회가 생기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친구가 되지 못할 이 유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더욱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 노력해 보고 있는 요즘입니다. 바로 오늘이지요. 이라크 평화재건사단 창설식이 있었다고 합니다. 사상 유례없는 경쟁지원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이라크에 파병되기를 희망했다고 합니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그들을 탓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 하고 있습니다. 다만 병역거부자로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가 더욱 중요하며 발전적인 화두라고 생각

전쟁없는세상을 후원해주세요!! ☮ 전쟁없는세상을 만나려면... 서울시 관악구 봉천 10동 893-5번지 2층 전쟁없는세상 (우 : 151-060) TEL : 02) 876-6896 E-mail : admin@withoutwar.org

☮ 후원인이 되시려면... 1. 다음 사항을 적어서 위 메일로 보내주세요. 이름 / E-mail / 핸드폰 / 우편물 받을 주소 / 월회비 금액(5000원부터) 2. 그 다음에 다음 계좌로 자동이체 신청!! 조흥은행(이용석) 342-04-914427

합니다. 우리의 친구들이 총을 들고 갈 때, 대신 우리

☮ 소식지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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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거부자 활동수기

병역거부자 활동수기 3 - 육군교도소에서 온 편지 강철 민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강철민 씨는 2003년 11월 21일 휴가를 나온 뒤 복귀를 거부하고 파병반대 농성을 진행하다 11월 28 일 연행되었습니다. 1심에서 실형 2년을 선고받고 항소하여 경기도 이천 육군교도소에 수감 중입니 다. 파병반대 신문광고를 내려다 '부당한 모의라는 ' 말도 안 되는 이유로 1개월 징계를 받고 현재는 징벌방에 수감 중입니다. 이 편지는 함께 농성을 진행했었던 평화인권연대 '아침' 씨 앞으로 온 답장 인데 본인의 양해를 구해서 소식지에 싣습니다. 날아가듯 뛰면 금새 산 꼭대기가 나왔습니다. 양말도

누님. 오늘 누님의 편지와 대학교 후배의 편지를 받았습 니다. 하얀 편지지에 쭉쭉 뻗은 필체가 누님의 아기자 기한 필체와 대조적이었지만 필체가 중요합니까, 중요 한 건 마음이지요. 편지를 받으면 무척 떨립니다. 지금 도 방금 읽은 편지 때문에 심장이 첫눈 맞은 개마냥 이리저리 뛰고 있습니다. 사람의 냄새가 나기에 따뜻 한 입김이 느껴지기에 편지는 .. 그냥 멋집니다. 편지 를 받는 사람은 누구나 저처럼 떨리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리저리 뛰는 심장을 다독거리고 편지를 씁

신지 않은 검정고뭘신 속에는 눈이 녹아서 온천처럼 뜨거운 김을 모락모락 내었습니다. 마당에도 눈이 많 이 쌓여있었는데 심심했던지 별다른 일이 없었는지 그 냥 고삐 풀린 개를 데리고 산으로 뛰어 올라갔습니다. 올라가면 시원했고 산이 좋았습니다. (사실 3가구뿐인 부락이니 놀 친구도 없었습니다.) 멀리서 누나가 봤다 면 누런 짐승 두마리가 서로 장난치며 뛰어가는 모습 처럼 보였을겁니다. 사냥총에 맞지 않은 것이 다행입 니다. 하누님은 서울 사람이라 이런 경험이 없지요. 아니,

니다. 설이 언제 지나갔는지 모르게 평범한 이곳 생활은 모두를 하루하루 웃고 있지만 속으로 조마조마 울고

서울 토박이 없는 요즘 서울이니 경험이 있을 수도 있 겠군요.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주위 모든 분들이 항소를 신

오늘 한겨레 신문을 보니 산적같은 분들이 많이 나

청해 기다리고 있으니 어떻게 결과가 나올까 떨리는

오시더군요. 청와대를 청와산으로 고쳐야겠습니다.전부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산적같은 도둑이니, 육군교도소로 다 와야겠습니다. 이

오늘 여기 계신 분 중 몇몇 분들이 선고를 받으러 떠났습니다. 밖에서 보면 우스울 수도 있는 '선고응원' 이 여기서는 의연하기까지 합니다. 모든 분들이 정확 한 판단을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창밖을 살펴보니 아직 눈이 많이 쌓여있습니다. 지 금도 어리지만 조금더 어렸을 때 지금처럼 눈이 쌓여 있으면 까끌까끌 밤털같은 누랭이를 데리고 이산 저산 뛰며 걷던 생각이 납니다. 한참을 나무들을 밀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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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없는세상(World Without War)

번 선거에서는 아주 물갈이가 되어서 진보정당이 100 석 이상 국회를 점령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세상이 조금은 이뻐지지 않을까요. 한겨레 신문 저 뒷장을 보니 두 미국인이 나왔더군 요. 한명은 이라크(WMD)무기수색팀장이고 한명은 전 미국방부 장관이더군요. 그들이 이야기하길 WMD는 허구이고 이라크전을 비판하더군요. 이 더러운 침략전 쟁이 언제 끝날런지, 참. 이 침략전쟁이 전쟁의 '원죄'


병역거부자 활동수기 뿐만 아니라 한국의 자주성과도 아주 깊은 관련이 있 다고 생각됩니다. 한국이라는 나라 곳곳에 외국군대 (미국)가 있으니 지원의 성격보다 압력의 성격 아닙니 까? 또한 여차하면 이라크처럼, 북한도 미국이 공격할 상황이니, 그러한 또다른 전쟁에서 고통받고 피해받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우리 민족 아닙니까? 한반도 평화에도 심각한 위협이 확실합니다. 빨리 전쟁이 끝나고 중동에도, 한반도에도 평화와 통일이 찾아왔으면 좋겠습니다. 누님 제가 오늘 말이 많죠? 저 원래 말많고 재밌는 놈인데.. 나중에 만나면 즐겁게 웃고 이야기합시다. 이쯤되서 펜을 줄이려다 조금더 주절주절 늘입니다.

강철민이 걸어온 길

얼마전에 저같은 군인이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었 다고 (그것도 4명이나) 전해들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

2003년

는(전해들은) 대구에 위치한 헌병대에 계시는 그 한분

07/07

강철민 군입대

인 것 같습니다.

11/17

백일 휴가

11/18

신문 기사를 보고 염창근 씨(최근 이라크 전 파병 반대를 이유로 병역거부)와 연락

11/19

염창근 씨를 통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운동을 해오던 사람들과 만남

11/21

휴가 마지막 날, 파병반대 병역거부 기자 회견. KNCC 인권위원회에서 파병반대 농성시작

11/22

스물두번째 생일축하 잔치

11/28

11시 기자회견 이후 청와대로 평화행진 도중 연행

12/12

광주 31사단, 강철민 씨 첫 공판 “파병 철회 때까지 병역거부할 것”, 군검사 징 역 3년 구형

12/27

강철민 씨 선고공판, 실형 2년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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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소, 육군교도소로 이감

그리고 또 한분의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나오셨다구 요! 그 양심을 끝까지 잘 지켜나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응원하고 있다고 전해주십시오. 사상, 양심의 자유, 인간의 궈리가 보장되는 민주주 의 한국을 그려보며 그리고 전쟁이 없는 한반도에 외 국군대가 없는 그러한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평화적인 한국을 그려보며 이만 진짜로 마칩니다. 아! 아나뱁티스트 분들께서 전해주신 책 받았습니 다. 아직 다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보긴엔 워낙 어려운 종교전문 서적처럼(?) 보여서... 제가 좀 모자랍 니다. 헤육군교도소 수의 등짝에 씌여있는 '희망' 글자처럼 2004年 희망으로 가득차길.. ☮ 육군교도소에서 철민-

2004년 02/17

용산 고등군사법원에서 2심 첫재판 현재 2심 진행 중이며, 1개월 징계를 받 고 징벌방에 있음. 이와 관련하여, 국가 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접수한 상태이며, 매주 화/토 오후 4시에 인사동에서 강철 민 무죄 석방을 위한 캠페인이 진행 중. 자세한 내용은 peace.gg.gg를 참고!!

☮ 소식지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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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거부자 활동수기

병역거부자 활동수기 4 - 구치소에서 온 편지 염창 근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염창근 씨는 2003년 11월 13일 입영일이었으나, 반전평화의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했습니다. 현재 성동구치소에 수감 중인 상태에서 1심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2002년 9월 12일 나동혁 씨와 함께 예비 병역거부를 선언했으며, 2003년 이라크 전쟁 이후 한국 이라크 반전평화팀(Korea Iraq Peace Team) 사무국장으로 일하며 평화운동의 현장에서 땀흘렸습니다. 이 편지는 지난 2월 19일 목요집회 에 맞춰 민가협 어머님들께 보낸 편지입니다.

민가협 어머님들께.

오늘도 차가운 바람이 부는 종로거리에 나오셨겠지 요? 바깥 날씨가 어떤지 여기선 잘 모르겠습니다. 여 기에는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부쩍 많아졌어 요. 날이 조금씩 풀리는지 찬물에 씻는 일도 이제 괜 찮답니다. 처음 들어왔을 땐 찬물로 씻는 게 좀 힘들 었는데, 다행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병역을 거부한 이유로 1월 29일에 구속되었습 니다. 청량리 경찰서 유치장에서 5일을 보낸 후, 이곳 성동구치소에 왔습니다. 이곳 성동구치소에도 수많은 양심수들이 거쳐갔을테죠, 여기 있는 날이 거듭될수록 수많은 양심수들이 상상되어 나타납니다. 이런 곳에서 목욕을 하고, 책을 읽고, 하늘을 바라봤구나. 이런 숟 가락으로 이런 밥을 먹고 이런 일상을 살아갔구나 하 구요. 양심하나 올곧게 가진 것도 죄라서, 모두의 일을 내 일처럼 여긴 것도 잘못이라서 무수히 찍혀왔던 지 난 날. 아직 끝나지 않고 있네요. 자신의 신념을 지키 기 위해 얼마나 긴 시간을 이 좁은 공간에 갇혀 있을 수 있을까. 3년, 5년, 10년, 20년, 30년, 40년,...... 생각만 해도 어질어질해집니다. 절망하지 않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쳤을테죠. 몸이 상하고 마음까지 상처 나 기를 반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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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없는세상(World Without War)

이곳도 역시 많은 병역거부자들이 있었습니다. 꼬박 1년 6개월 이상을 총 드는 것 대신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선 우리같은 병역거부자들은 양심수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고생 안 하려는 파렴치한으로 몰 리거나 감옥은 당연한 댓가라고 이야기합니다. 전쟁에 대해, 안보에 대해, 그리고 평화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 자는 고민은 아직 충분히 던져주지 못합니다. 자신의 양심을 증명하는 길은 이렇게 수감되는 것 밖에 없는 지요? '빨갱이'의 허울처럼, 우리에게 덧씌워진 '병역 기피자의 ' 허울은 마음을 매우 졸이게 합니다. 조국의 안보를 외면하는 이기적 인간이라는 비난을 매번 감내 하는 것도 힘이 듭니다.


병역거부자 활동수기 어머님. 세간의 처세술을 조금만 따랐더라도, 이처럼 곤혹을 치루진 않았을테지만, 사상전향을 거부하며 추가징역 을 감내해야 했듯,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가야겠지요. 가 끔 알 수 없는 절망감도 엄습해옵니다. 하지만 몸과 마음은 가두어 놓아도, 생각과 신념까지는 구속시키지 못할 것입니다. 전쟁과 살상의 고통을 알고 난 후 전쟁만큼은 남의 일로 여길수가 없게 된 이 마음을 전달하고 싶습니다. 도대체 왜 전쟁이 일어나야 하는 건지요? 왜 이런 고 통을 받아야 하는지요? 인간과 자연을 대규모로 파괴 하는 무기를 갖고서 우리 사회를, 평화를 지킬 수 있

병역거부 양심수에게 편지를!!

다는 것은 모순일 뿐입니다. 누군가는 먼저 무기를 버

2004. 1. 15 현재

려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나라가 먼저 시작해야

5 7 0명

합니다. 요즘은 저의 어머니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명단을 보실 분은 peace.jinbo.net 으로!!)

끝까지 저의 병역거부를 만류하시던 어머니는 주루룩 눈물을 흘리시며 결국은 이해해 주셨습니다. 못난 자 식을 이렇게 받아주셔서 정말 감사하고 정말 죄송합니 다. 이 불효를 어찌 다 갚겠습니까. 오랜 시간이 지나 면 조금은 넉넉해지겠지요. 자꾸 땅을 봅니다. 일하고 자식을 가르치는 일이 전

☮최준호 (우 : 350-800) 충남 홍성 홍성우체국 사서함 9호 홍성교도소 수감번호 840 전자서신 보내기 : 홍성 교도소 홈페이지 http://hscorr.go.kr

부였던 평범하고 착한 사람들이 어떻게 이 땅을 일구 어왔는지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새로운 세상을 일구어갔음을 온 몸으로 느껴봅니다.

☮강철민 (우 : 467-909)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 이황3 리 사서함 900-10 강철민 지원단 홈페이지 : peace.gg.gg

늘 건강과 평화가 깃들길 기원합니다.☮

성동구치소에서 (2월 16일) 염창근 올림

☮염창근 (우 : 138-709) 서울시 송파구 가락2동 162번 지 성동구치소 수감번호 593 전자서신 보내기 : 성동 구치소 홈페이지 http://sdc.go.kr 후원회 카페 : cafe.daum.net/yomsupport

☮ 소식지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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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 역거부자 들이본태 '극 기휘 날리며

병역거부자들이 본 <태극기 휘날리며> 정 리 :오영 은 (전쟁없는세상 자원활동가, slow-steady@hanmail.net)

◀ 이들이 ... 이걸 봤답니다^^ ▶

같은 공간, 같은 시간, 같은 장면을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기억으로 간직하며 살아가게 마 련이다. 자신의 가치관대로,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을 기억하며....

는 사람들이 반전이라면 반전영화라 볼 수 있지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가 흥행 행진을 이어 가고 있다. 사람들은 영화 속에서 어떤 이야 기들을 읽어낼까?

이 영화 속에서 그러한 메시지를 읽어낸다면 감

어떤 이들은 자신이 경험한 전쟁을 기억할 것이고, 어떤 이들은 멋진 남자배우들을 기억 할 수도 있겠지. 어떤 이는 실감나는 전쟁 장 면의 스펙터클함을 기억하고, 어떤 이는 전쟁 의 참상에 고민하고 우울해 할 수도 있을 것 이다. 병역거부자들은 영화 속에서 무엇을 느 꼈을까?

않을까요? 영화 속에서 전쟁의 황폐함을 잘 그려 내고, 현실감 있게 그려져서 관객들은 그 속에서 반전 메시지를 볼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관객들 독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반전영화라고 볼 수 있 지 않을까요? 동혁 : 정치적 이념이 배제된 상태에서 당시 상황을 현실감 있게 그려진 것이 아닐까요? 용석 : 한국전쟁 자체에 대해 정치적 판단을 아직 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죠. 여전히 한국전쟁 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니까요. 동혁 : 병역거부를 하게 되며 군대나 전쟁에

<태극기 휘날리며>가 반전영화일까? 동혁 : <태극기 휘날리며>는 반전의 메시지를 전하려는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졌고, 한국전쟁에 대한 생 각이도 많이 달라졌어요. 한국전쟁이 6월 25일에 발발하긴 했지만 그 이전부터 갈등과 내전은 계

전쟁의 스펙터클이 나왔을 뿐이죠. 감독도 밝혔

속된 것이고 그것이 확대된 것뿐이죠. 남침이냐

듯이 정치적 색을 가진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해

북침이냐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에 회의적

요.

이예요.

영민 : 감독의 의도가 그렇지 않더라도 바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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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없는세상(World Without War)


병역거 부자들 이본태 ' 극기휘날리 며 영화속에서 동혁 : 영화를 보며 많이 울었지만 친구와는 우는 장면이 달랐어요. 친구는 잔인한 장면에서 많이 울더군요. 사람이 아프고 다치는 그런 장면 들이요. 하지만 장면은 감독이 원했다면 얼마든지 더 끔찍하게 그려낼 수도 있었다고 생각해요. 전 그보다는 전쟁이 일어날 수박에 없는 매커니즘 같은 것들을 보고 싶었어요. 용석 : 사실 그런 끔찍한 장면들은 지금도 텔 레비전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죠. 전 어머니와 헤어지는 장면에서 많이 울었어요.

낄 수는 있겠지만 파병문제까지 연결시켜 생각 하기 힘들 것 같아요. 용석 : 전쟁이 정말 끔찍한 이유는 전쟁을 경 험하면서부터 전쟁에 무뎌지는 것 때문일 거예요. 내일에 대한 희망이 사라지고, 폭력에 무뎌지는 인간성의 파괴같은 거. 동혁 : 다양성이 파괴되는 거죠...근본적으로 군 대와 전쟁은 인권과 양립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 라고 생각해요. 군대란 조직이 전쟁을 위해 조직 된 곳인 만큼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힘든 일이지 않을까요?

내가 병역거부를 생각하게 되면서부터 난 내 자 신의 신념을 지키는 것이지만 그러한 행동이 부 모님의 마음엔 대못을 박을 수 있다는 것이 슬픈 것 같아요. 동혁 : 전 포로들을 죽이는 장면에서 저항하지 않는 포로를 죽이는 것과 민간인 학살을 하는 것 이 뭐가 다르냐는 원빈(극중 '진석')의 대사를 보 며 많이 울었어요. 그리고 거대한 힘 앞에서 무기 력한 인간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자기 나름대로의 생각을 지키려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자신의 삶의 가치들을 지키기 위한)들이 많이 와닿더군 요. 용석 : 지금 이라크에서도 끔찍한 일들이 많이 일어남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많은 눈물을 흘리고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하는 것 같 아요.

전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보여지는 인물이 가지는 생각의 변화. 군대가 가지는 조직논리에 젖어들고, 폭력에 무뎌지는 모습.

용석 : 장동건(극중 '진태')이란 인물뿐만 아니 라 그 당시 전쟁이란 것을 경험한 사람들은 대부 분 전쟁과 폭력에 무뎌졌을 거예요. 진태란 인물 은 그런 여러 사람들의 모습중 좀 더 극단적인 모습일뿐이죠. 영민 : 사람들이 영화와 현실을 너무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 같아요. 현실에 쫓기는 와중에 문화 생활을 현실과 연관시켜 고민하기는 힘든게 현실 이죠. 동혁 : 지금까지의 전쟁영화들을 보면 처음은 강한 이데올로기적인 색을 가진 영화들에서 이제

영화를 보고 사람들이 파병문제에 대해서 고 민할 수 있을까? 동혁, 용석 : 전쟁의 끔찍함에 대해서는 좀 느

전쟁의 비참함을 고발할 수 있는 영화들이 나오 고 있죠. 이제 전쟁이라는 것에 대해서 다각도로 분석할 수 있는 영화들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 요. ☮

☮ 소식지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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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 미슈퍼스타즈의마지막팬클럽 을 ' 읽고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읽고 부르뎅 (예비 병역거부자, sehwle@hanmail.net)

◀ 이 사람이 ... 이걸 읽어다고^^ ▶

옛날 옛적, 시간은 20년을 훌쩍 거슬러 올라가 전설

않고, 적당히 할 만큼 하는 인간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의 야구팀이 하나 있었으니 슈퍼스타라곤 한 명도 찾

주지 않게 된 것이다. 바야흐로 세상은 프로의 세계가

아볼 수 없었던 삼미 슈퍼스타즈라는 프로 야구팀이

되었다. 프로축구, 프로농구, 프로바둑기사, 프로게이머,

있었다. 이 소설은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유래를 찾기

심지어 프로혁명가까지..

힘든 진기록들을(물론 훌륭하게 졌기 때문에 생겨난

소속의 중요함을 누구보다 깊게 깨달아 공부에 전

기록들) 남긴 삼미 슈퍼스타즈의 희귀한 꼬마 팬들 중

념했던 주인공은 별 탈 없이 명문대에 입학했지만, 주

에서도 유난히 고민이 많고 똑똑한 한 남자 아이를 주

인공의 머리 속을 빌려서 말하는 이 소설의 필자는 이

인공으로 삼는다. 암울했던 80년대 초, 인천 서민들의

세상에 대해 ‘별 탈 없이’ 넘어가지 않는다. 프로야구

희망이었던 삼미 슈퍼스타즈는 (주인공의 표현을 빌리

와 이 사회를 집요하게(약간은 오버한다고 느낄 만큼,

자면) 정말 용의주도하게 패배했다. 자기업의 순위(자

신문선보다는 약하게) 비교하면서, 끊임없는 통쾌함으

기업의 매출신장을 위해!)를 위해, 고액연봉을 위해 이

로 독자를 즐겁게 해주는 필자의 능력은 과히 칭찬할

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프로야구판에서 삼미 슈퍼

만한데, 지하철에서 낄낄거리며 웃다가 괜히 미친 사

스타즈는 왕따에 가까운 존재였다.(해설자들에게 동네

람 취급받을지도 모르니 감정을 절제하면서 읽는 것이

야구라고 놀림을 받는 프로야구팀을 상상해 본 적이

좋다.

있는가?) 주인공의 영원한 슈퍼스타즈일 것 같았던 이

이쯤 되면 주인공이 학생운동에 참가하는 내용이

전설의 야구팀은 오히려 패배의 무서움과 소속의 무서

나오지 않을 까 기대도 하시겠지만, 그런 내용은 책의

움(두산 베어즈 소속 서포터들과 삼미 슈퍼스타즈 소

전반적인 줄거리와도 별로 어울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속 서포터들이 나란히 서 있을 때 느꼈을 고통, 특히

필자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서 과감히 삭제해

감수성 예민한 아이들이 느꼈을 그 고통), 생존경쟁이

버린 느낌이 든다. 소속의 위대함과 무서움을 어릴 때

라는 단어를 주인공의 머리 속에 새겨버렸다. 한편, 80

부터 깨달은 이 주인공은 혁명을 바라는 사람들 사이

년대 초 프로야구의 효과는 실로 대단했다. 직장에서

에서도 소속과 계층이 있다는 사실을 너무 빨리 알아

는 철저한 자기 관리를 모토로 하는 ‘프로’라는 말이

버렸다. 그러니 이 책에 나오는 다양한 학생 혁명가(?)

탄생했고, 세상 곳곳에 생존경쟁과 프로의식이 주입되

들은 생각만큼 그렇게 멋진 인물로 나오지는 않는다.

었다. 이제 세상은, ‘죽도록 자기 몸을 다 바쳐 일하지

주인공은 시위의 현장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방황(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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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없는세상(World Without War)


삼 ' 미슈퍼스타즈의마지막팬클럽 을 ' 읽고 간은 긴 분량을 차지하는 사랑과 방황)하지만 곧 정리

즐거움을 유지하면서 할 만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하고 무난한 코스를 밟게 된다.

결국 이 팀을 이루는 구성원들은 흩어지지만, 이미 독

유난히 고민이 많은 사람은 대기업의 숨막힐 듯한 계층 구조 속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주인공은 자신의

자들에게 전해야 할 이야기를 모두 전해주었으니 깔끔 하게 해체되어도 좋다.

소속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발버둥치지만 결국 회사

이 책은 복잡한 사상보다는, 단순하면서도 사람을

구조조정과 인력감축의 대상이 된다. 노력할 만큼 했

끌어들이는, 그러한 삶의 방식을 은연중에 중독시킨다.

다고 생각하던 회사에서 쫓겨나고, 아내도 떠나가버린

그래서 그 효과는 금방 나타날 것이다. 삼미의 정신을

주인공에게 복음을 전파하듯이 나타나는 이는 예수가

들먹이며 전쟁없는 세상의 피켓을 너무 예쁘게 만들기

아니라, 삼미 슈퍼스타즈의 광적인 팬이라고 할 수 있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처럼..(나와 용

는 주인공의 절친한 친구 한 명이다. 괴로워하는 친구

석이처럼..) 그렇게 효과는 나타날 것이고, 그래서 이

에게 축하의 메시지를 날리는 이 친구는 진짜 인생의

책은 다소 찝찝한 부분이 있다하더라도 달콤함을 던져

비밀을 삼미 슈퍼스타즈에서 찾는다. 승리보단 패배에

준다.

익숙했던 이 팀이 왜 이 책의 중심 화두가 되는지는, 이 친구의 화려한 말솜씨에 녹아들어가 있으니 꼭 책 을 읽어보시라. 진짜 인생은 삼천포에 있다. 찬란한 미래를 위해 오 늘을 버리면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삼천포로 빠지 는 즐거움을 알지 못한다. 삼천포에서의 시간은 흘러 넘치는 것이고, 시간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친구 따라 삼천포로 빠져버린 주인공은 인생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생존하기 위해, 자신의 소속을 결정하 기 위해, 끊임없이 순위를 높여야만 하는 오늘날의 삶 이 오히려 가짜 인생이 아닐까. 프로야구의 첫 시즌, 합숙 훈련을 떠나는 삼미의 선수들은 합숙의 목표가 우승이 아니라고 말했다. 한심한 웃음이 나올 법한 그

그 . 저달리기만하기에는우리의삶도너무나아름다운것이다라 . 는

들의 목표는 ‘자기수양’. 상식적인 얘기 한 마디를 하

생각을했 , 다인 . 생의숙제는따로있었다나 . 는비로소그숙제가어떤

자면, 진정 야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억대 연봉 선수 가 아니라, 시합에 지더라도 웃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것인지를어렴풋이느낄수있었고남 , 아있는내삶이어떤방향으로

그래서 아마추어는 즐거울 수 있고, 그래서 더욱 아름

흘러가야할지를희미하게나마짐작할수있었다그 . 것은어떤공을치고

다운 것이다.

던질것인가와도같은문제였고어 , 떤야구를할것인가와도같은문

주인공과 친구의 떨거지(?)들, 그리고 몇 몇과 몇

제였다필 . 요이상으로바쁘고필 , 요이상으로일하고필 , 요이상으로크고,

몇이 모여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창단식이

필요이상으로빠르고,필요이상으로모으고필 , 요이상으로몰려있는세

열린다. ‘치기 좋은 공은 치고, 치지 어려운 공은 치지

계에인생은존재하지않는다진 . 짜인생은삼천포에있다..<삼미슈퍼

않는다라는 ’ 대원칙을 세운 그들은, 대충대충(정말 대 충대충) 훈련하고, 대충대충 경기한다. ‘대충대충’이 삼

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p279-

미의 정신에서 핵심을 이루는 말은 아니지만, 어쨌든

☮ 소식지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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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료 번역글) History about Conscientious Objection 파병반대를 이유로 군복귀를 거부하고 농성을 하다가 수감된 강철민 씨. 그의 행동은 우리 들에게 ‘부당한 군사명령, 부당한 군사적 행동에 대한 저항’ 이라는 화두를 던졌습니다. 국 내 병역거부 관련한 자료가 부족한 관계로 오래 전부터 외국자료를 번역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는데 강철민 재판으로 그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졌습니다. 이제부터 내놓는 자료들은 그 필요성을 충족시키기 위한 작은 노력의 산물입니다. 병역거부는 물론 다양한 형태의 양심에 따른 거부행위(Conscientious Objection), 특히 부당한 군사명령과 군사적 행동에 저항한 역사적 사례들을 매달 소식지를 통해 소개시켜 드립니다. 군사명령을 거부할 권리(The Right to Refuse Military Orders) / 국제평화국(International Peace Bureau, IPB)

베트남 전쟁에서 개인책임에 관한 논점 한스 괴란 프랑크(Hans Göran Franck)

미국은 베트남 민중들이 그들의 대내외업무를

왔던 전쟁의 방법에 대해 변명할 수 없게 되었다.

자유롭게 관리하지 못하게 하려고 1954년에 제정

그것은 법적인 견지에서 “군사적 필요”가 아니라

된 제네바협약, 국제법의 일반 원칙, 유엔현장의

미국이 주도한 군사 전략 명령이었다. 미국의 지

정신 모두에 반하는 베트남에 대한 개입을 감행

도자들이 “군사적 필요”라 지칭하는 것은 인도차

하였다. 남부 베트남의 군사정권을 이용하여 미국

이나 반도 민중들의 저항의지를 억압하기 위해

은 무지막지하고 불법적인 압제로 베트남 민중들

불가피한 것이었다.

을 지배하였다. 이러한 압제가 대중적인 반란으로 귀결되자 미국은 유엔헌장의 제 20조 4항을 어겨

국제법에 반하는 전쟁에서의 개인책임

가며 무력개입을 하였고 이러한 무력개입은 유엔 회원국들이 국제적 관계에서 어떠한 국가의 영토

국제법에 반하는 범죄에서의 법적 책임은 두

보전이나 정치적 독립에 대해 무력을 사용하거나

가지 측면을 지닌다. 하나는 국가적 책임으로 귀

위협을 가하는 것을 자제하게 하는 계기를 제공

결되는 것, 그리고 개인적 책임이다. 국가적 책임

하였다.

은 근본적으로 시민적인 것이다. 예를 들어 국가

인도차이나 반도의 침략자로서 미국은 “군사적 필요”를 근거로 하여 그들의 지도자들이 선택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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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없는세상(World Without War)

자체는 처벌받을 수 없으나 경제적 보상 요구는 전쟁보상금 명목으로 청구될 수 있다.


번역자료 국제법에 반하는 범죄에서의 개인의 책임은 형

더하여 우리는 명령에 따른 정신적인 압력에도

사재판권에 속한다. 국제법에 반하는 범죄에 대해

불구하고 불법적인 명령과 충돌할 때 하급자라

법적으로 처벌할만한 책임은 국제적, 국내적 법

하더라도 아마도 좁은 어떤 한계 안에서 도덕적

관행과 국내외적인 법문화에 의해 공식화되어왔

으로 올바른 결정(just decision)에 도달할 수 있

다. 국제법의 테두리 내에서 가장 중요한 판례는

다는 전제로부터 더 나아가야만 한다. 그러나 광

2차 세계대전 후 전범재판에서의 판결이다. 뉘른

범위한 범죄와 잔인함으로 이루어진 주변 환경에

베르크 법정에서 제정된 원칙들은 훗날 소위 뉘

의해 발휘되는 압력은 왜곡된 명시적 목표와 협

른베르크 원칙으로 성문화되었다. 이 원칙은 1950

력하며 믿을만한 상관의 명령 하에 위치한다는

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되었다. 뉘른베르크 원칙은

현실이 하급자들로 하여금 우리가 도덕적 가치라

전쟁범죄, 평화와 인간성에 반하는 범죄들의 처벌

여기는 것을 간직하는 것을 매우 어렵게 만들 수

을 위해 확립되었다.

있다. 그러나 우리가 모든 수준에서 개인책임의

유엔 집단살해에 관한 협약(Convention on

원칙을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은 주요하게

Genocide)에 따르면 집단살해는 국제법 하의 범

는 이러한 모든 현상의 부정적인 요인들을 제거

죄이다. 협약에 따르면 집단살해, 집단살해 음모,

하는 것이고 개인들에게 그들이 국제법을 거스르

집단살해 공범 모두 처벌 가능한 범죄이다. 집단

는 명령에 대한 수행을 거부할 권리와 책임을 가

살해에 관한 협약은 협약 가입국이 집단살해에

지고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다.

관한 효과적인 처벌을 법적으로 확립해야 한다는 것을 명백히 규정하고 있다.

윌리엄 캘리(William Calley) 사건

뉘른베르크 원칙에 따르면 국내법은 국제법 위 반에 대한 법적 책임을 확립하는데 필수요소가

손미학살(Massacres in Son My)1) 후 미국에

아니다. 이러한 법률의 부재가 개인을 법적인 책

서 예외적인 법안들이 입안되고부터 개인책임에

임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는 것은 아니다.

대한 의문은 실제적으로 불붙기 시작했다. 전쟁

국제법 위반에 대해 명확히 규정된 개인책임의

전반에 대해 궁극적인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모

경계는 없다. 뉘른베르크 원칙과 뉘른베르크와 도 쿄 판례는 출발점을 제시해주고 있으나 전쟁범죄 라 분류할 수 있는 개인 범주를 위한 확립된 구 조는 정당한 권한을 가진 해당 국내 혹은 국제법 정에서만이 결정할 수 있다. 뉘른베르크 원칙은 상관의 명령이 국제법 하에 서의 개인의 책임을 덜어주는 것은 아니라는 사 실을 확립했으며 사실상 개인이 도덕적 선택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규정하였다.

1) 역자 주 : 베트남전쟁 중인 1968년 3월 16일 남베트남 쾅 남성 추라이 미군기지에서 서쪽으로 몇 마일 떨어져 있 는 손미 마을에서 미군이 일반주민 500명 이상을 학살한 사건. 사건은 한동안 불문에 부쳐져 있었으나, 69년 11월 갑자기 미국 내에서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충격적인 뉴스로 번져서, 책임자 W. 커리중위가 체포되고 71년 4 월 유죄판결이 내려졌으나 닉슨대통령이 사면했다. 이 사 건은 단독사건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유사한 사건 중 베 트남에서의 미군작전을 상징하는 한 사건으로서, 당시 베 트남전쟁을 반대하던 미국 내외의 여론을 더욱 악화시키 는 구실을 했다. 사실상 이 사건은 다른 큰 사건과 함께 미군기지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기지 주변을 <무인지 대> 로 만들기 위한 하나의 작전에 지나지 않았다.

☮ 소식지 2월호

16


번역자료 든 법적인 부분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대신에 몇

어떤 법을 적용시킬 것인가를 말해야 하는 ’직업

몇 낮은 계급의 군인들이 책임을 지게 되어 정의

‘을 가진 군판사는 상관의 탄원을 거절했다. 반복

감은 만족되지 못했다.

해서 말하지만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영감을 받은

캘리 사건은 두 개의 초강대국 중 한 국가가

것이다.

관계하고 있기 때문에 특히 중요하다. 이 사건은

이와 같은 개념이 캘리 중위가 유죄라는 군법

여론과 미 행정부의 일정한 부분에 관한한 뉘른

회의의 결정을 뒷받침했다. 캘리 중위는 종신형에

베르크 원칙은 죽거나 매장된 것이 아니라는 사

처해졌다. 그는 항소했다. 비록 첫 번째 항소심에

실을 증명하였다.

서 20년 형으로 감형되었지만 이 원칙은 연방군

사실관계는 잘 알려진 대로 다음과 같다. 1968

법항소법원(Court of Military Appeals)과 군재심

년 5월 16일, 윌리엄 캘리 중위는 군대를 이끌고

법원(Army Court of Military Review)에서 확정

베트남의 남부도시 밀라이(My Lai)를 급습하여

되었다. 두 번째 항소심은 특별히 관심을 가질만

100여명의 시민들을 학살했다. 이 대량학살은 비

한데, 캘리 중위의 변호인은 다음과 같이 이의를

밀에 부쳐졌으나 훗날 용감한 미군 로날드 리드

제기했다. 명령을 수행해야 할 군인의 책임이 막

나워(Ronald Ridenhour)가 우연히 '원정대의 ‘ 몇

중한 경우, “사리 분별할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

몇 대원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가를 알게

그 명령의 불법성을 판단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되면서 국방부에 알려야할 필요를 느꼈고 조사가

확인해야한다는 기준을 채택하지 말아야 한다는

진행될 수 있었다. 얼마 후 대량학살에 관한 소문

것이다. 캘리 중위의 변호인은 이 규범이 충분한

을 들은 세이무어 허쉬(Seymour M. Hersh)라는

지식이나 경험이 없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덜 지

미국 저널리스트가 진실을 찾아냈다. 밀라이 사건

적인 군인들도 곤란하게 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

은 신문을 타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미군은 캘

결과 그들은 다음과 같은 또 다른 기준을 제시하

리 중위, 캘리 중위의 상관 메디나(Medina) 대위

였다. “가장 평범한 이해력을 가진 사람”이 그렇

와 몇몇 하급자들을 군법회의에 회부할 것을 결

다고 보았을 때 그 명령은 불법이다. 그들은 또한

정했다. 재판에서는 그 중에서도 특히 캘리 중위

캘리 중위가 특별히 지적이지 않으므로 그는 베

는 자신은 단지 메디나 대위의 명령을 실행했을

트남 민중들을 죽이라는 명령이 현재의 법을 어

뿐이라고 말했다. 메디나 대위가 캘리 중위에게

기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덧붙였

마을에서 찾은 모든 것들은 적이라 생각하고 결

다. 법정의 대다수는 탄원을 기각했다. 판사는 대

국 “모두 죽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메디나 대

다수의 의견을 낭독하며 만약 탄원을 받아들이는

위는 그런 명령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여성

것이 가능하다할지라도 최종판결에는 영향을 미

이건 아니건 모두 죽이라고 명령할 때 그는 명백

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군법에 대해 완전히

히 상식적으로 행동하라고 말했고 덧붙여 만약

지식이 없는 최하의 지성을 가진 군인이라 하더

교전중이거나 미군부대를 공격하려 한다면 여성

라도 어린 아이와 비무장의 시민들을 죽인 것은

과 아이들에게 총격을 가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전쟁법의 가장 기초적인 원칙과 반대된다는 사실

말했다고 한다. 사실이 어떻든지 간에 군법회의에

을 무시할 순 없다.

17

☮ 전쟁없는세상(World Without War)


번역자료 이와 같이 미 판사들은 뉘른베르크에서 소개되

적인 지휘, 폭격 전술, 사람들을 이주시키는 정책,

었던 주요한 개념들을 적용하였다. 첫 번째 항소

그리고 “무차별 공격지대(free fire zone)"의 실용

전에 닉슨 대통령은 캘리 중위를 감옥이 아닌 가

성은 명백하게 특징을 부여할 수 없다. 이것은 고

택에 즉시 구금시키라는 명령을 내렸고 항소 이

위급 정치인과 군 지도자들에 의해 직접적으로

후에 그의 형량을 감해주었으며 후에 중위를 사

허가 되고 시작된 거대한 규모의 범죄이다. 뉘른

면하였다. 이러한 사실로 인해 당시 미행정부에는

베르크의 미 부장검사이자 사회적 저명인사인 로

비판적인 시선이 쏟아졌다. 그러나 그것이 법정

버트 잭슨(Robert H. Jackson)은 ”입안자, 설계자,

판결의 중요성을 감하지는 못했다. 캘리 사건의

선동자, 지도자“ 등 국제법에 반한 범죄로 우선적

판결은 앞서 지적했듯이 밀라이 학살이 ‘집단적인

으로 재판과 판결이 고려되는 사람들의 집단을

혹은 시스템 범죄의 ’ 하나의 사례가 된 이후 더욱

가리켜 ”자신의 손을 피로 더럽히지 않을 수 있

중요해졌다. 이것은 특히 미군이 그 학살을 ‘에피

는 지위나 계급의 사람“이라고 규정했다. 여기에

소드’ 쯤으로 얼버무리려 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우리의 복잡한 책임감이 있다. 이렇게 도덕적, 사

있다. 이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법적으로 자명한 근본 원칙을 굴욕적으로 양보하 지 않기 위해서 뉘른베르크 원칙에서는 다음을

‘시스템 범죄(System Criminality)'

확실히 제시하였다. 국제법상의 범죄를 구성하는 행위를 행한 자가 국가원수 또는 정부의 책임 있

밀라이 학살은 ‘시스템 범죄의 ’ 사례로서 무엇 보다 미국 군사법정에 의해 미군장교가 수감된

는 관리로서 행동했다 하더라도 그 자의 국제법 상 책임을 해제하지 않는다.

중요한 의미가 있다. 수많은 미군이 범죄행동에

정치군사적인 ․ 지도자의 법적 책임은 원칙적

동참하는 것을 회피하는 방법으로 군사작전의 일

으로 정부 관료들과 합동참모본부(Joint Chiefs of

부가 되기를 거부했다. 핵심이 되는 사건은 미 해

Staff)에서 공동으로 분담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군 도날드 도슨(Donald Dawson) 대령 사건이다.

부동의 자세는 책임회피를 위한 충분한 이유가

그는 1973년 6월 5일 B-52 폭격기로 캄보디아를

아니다. 잘해야 형벌과 관련된 경과를 감해줄 것

폭격하라는 명령을 거부해 체포되었다. 그는 베트

을 고려하는 정도일 것이다. 도쿄 전범재판소

남 전쟁 때 파리협정에 사인한 이후로 도덕적으

(War Crimes Tribunal)는 이러한 태도를 다음과

로 캄보디아에 폭격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말했다.

같이 구체적으로 예시하고 있다. 전쟁포로들의 처

1974년 병역거부자로서의 권리가 인정되고 도슨

우에 관한 책임의 문제와 관련하여 전쟁포로들에

대령이 풀려난 것은 눈여겨볼만 하다.

관한 집단적 책임을 지자고 말할 수 있는 정부

개인 폭력 혹은 대량 살상의 사례에서 책임의 구분이라는 이러한 패턴은 최고 계급 다음가는

관료들(아직 사직서를 내지 않은)은 포로들을 혹 사한 것에 대한 공동책임자로 간주해야 한다.

군사명령의 책임을 중요시하기 위해 충분한 것처

미국은 전쟁 중 국가원수들의 형사 관할권에

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중단되지 않거나

대한 대강의 구상을 발전시키는 작업에 직접적으

아니면 허용되는 폭력과 다르게 전쟁에서의 일반

로 관여했다. 의사결정 임원들을 이끈다는 것은

☮ 소식지 2월호

18


번역자료 국제법에 반하는 범죄를 예방할 구체적인 방법을

다른 나라 법정이나 자국의 군법회의에 의해 죽

만들거나 아니면 정부 관료에서 사임한다는 것을

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적어도 이 분야

의미한다. 만약 그가 둘 중 하나를 하지 않는다면

에서는(그러나 국가의 가장 중요한 심장부인) 수

그는 전범 국가인 미행정부에 남는 것으로 전쟁

많은 국제적 규칙들에 포함된 인간성과 진보적

범죄자가 된다.

가치들이 바깥세상의 요구에 대한 군 구조의 전

인간성에 반하는 범죄와 전쟁범죄의 책임은 매

통적인 ‘불침투성을 ’ 극복해왔다.“

우 높은 지위의 사람에서부터 아주 낮은 계급의 군인까지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상관의 명령에 관한 규정을 협약에 포함하자

나는 안토니오 카세스(Antonio Cassese)의 “근 대의 법과 폭력(Violence and Law in the

기회가 되는대로 국가들은 새로운 규정이 집단

Modern Age)"에서 다음과 같은 단락을 인용하겠

살해에 관한 협약의 사전 작업이라는 그들의 견

다.

해를 표명해야 했다. 집단살해에 관한 협약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승전국들이 잘 통제하고 있는 재판은 물론이고, 이러한 국가들에 의해 저 질러진 범죄로부터 느낀 뿌리 깊은 분노는 법적 인 측면에서 분명한 결과를 이끌었다. 국제법의 일반적인 규정은 모든 국가들에게 구속력이 있었 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것은 현재 하급자들이 명 백히 범죄적인 행위를 했을 때 그들의 상관만큼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국제법의 핵 심적인 규정들에 반하는 것이다. 이러한 규정들은 국제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방 향의 변화를 나타내 왔으며 어떤 범위에서는 군 기강을 전복시켜왔다. 국제법의 필요성은 국가의 군 구조 속에 서서히 침투해왔으며 만약 명령이 국내법에 추가된 규칙과 국제법에 반하는 것일 때 군인들이 그 명령에 불복하게 하였다. 이리 하 여 국가주권을 이루는 철갑옷의 가장 민감한 부 분 중의 하나가 찢겨졌다. 군 구조 내에서의 엄격 한 계급구조 말이다. 명백히 범죄적인 명령을 수행한 사람은 재판에 회부될 수 있다는 것, 처벌된다는 것, 심지어는

19

☮ 전쟁없는세상(World Without War)

1947년 유엔주도로 시작되었다. 유엔 경제사회이 사회가 협약의 초안을 작성하기 위해 설치한 특 별위원회에서 옛 소련 대표부는 규정의 도입을 제안했는데 그 규정은 유엔사무국에서 제출한 원 문을 반복하고 있었다. “상관이나 법에 의한 명령 은 이 협약에서 제시하고 있는 대로 범죄에 대한 어떠한 변명도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처벌에 대 한 경감은 고려할 수도 있다.” 특별위원회의 다른 6명의 위원들 중 단 한명만이 옛 소련의 제안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했다. 중국과 베네수엘라 대표 부는 격렬히 반대했다. 베네수엘라 대표부는 반대 의 가장 큰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그 원칙은 국가제도의 안정성에 위험요소가 된다. 뉘른베르크 군사재판 헌장은 그 원칙이 전 쟁범죄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 러나 평화 시기에 이러한 원칙을 인정한다는 것 은 군인들에게 그들이 비정치적인 무리이며 복종 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복종할 것 을 권하는 것이며 신중하지 못한 처사이다.” 그러나 옛 소련의 제안은 특별위원회에서, 그리 고 후에 유엔 총회에서 거부되었다. (미국이 중심


번역자료 이 된) 서구 몇몇 나라들이 원칙의 일반적인 문

것을 거부했다하여 처벌받지 아니한다. 만약 처벌

제점을 다루고 있는 라틴 아메리카의 유보조항에

했다면 현 의정서나 협약의 조항에 대한 심한 일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의를 제기한 것이 이유 중

탈이 될 것이다.

의 하나가 되었다. 예를 들어 제출된 규정이 너무

2. 상관이나 정부의 명령에 따라 행동했다는 사

‘엄격하다거나 ’ 상관의 명령에 관해 논쟁할 시간

실이 형사상의 책임으로부터 기소된 사람을 면죄

이 무르익지 않았다거나 규정의 내용이 몇몇 국

시킬 수 없다. 만약 그것이 그 당시 상황에서 입

가들로 하여금 협약의 비준을 어렵게 만들 것이

증되었다면 그는 이성적으로 현 의정서나 협약을

라는 것 등이다. 어쨌든 정치력이 부족한 대부분

심각하게 일탈한 행위를 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

의 국가들은, 특히 서구 몇몇 나라들과 라틴 아메

야 했다. 그리고 그는 명령에 대한 복종을 거부할

리카는 몇 년 전 같은 서구 나라들(그리고 옛 소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어야 했다.

비에트 연방)이 제안하고 찬성한 원칙을 받아들 이게 될 것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몇몇 지점에서 매우 중요하며 다른 지점들에서는 매우 취약하고 모호한 이 새로운 집단살해에 관한 협약은 중요 한 일부가 없이 탄생하였다. 보통 정부 책임자들 에 의해 저질러지거나 그들의 암묵적인 지원을 받거나 혹은 못 본체 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대량학살행위는 특별히 대리책임 원칙에 대한 상 상력이 가능한 분야이다. 정서(Additional Protocol)에 끼워 넣기 위한 회의 에서 만들어졌다. 그 회의는 국가간 혹은 국가와 민족해방운동간 국제무력분쟁을 다루는 오직 하 나뿐인 회의이다. 이 때의 제안은 국가에 의해 만 것이

아니라

그 규칙의 범위를 넓힐 것을 제안한 국가그룹은 호주, 핀란드, 미국, 벨기에, 노르웨이, 캐나다, 네 덜란드, 이스라엘, 스웨덴, 프랑스, 일본, 아일랜드 그리고 바티칸 등 서구 국가들을 포함하고 있으 며 폴란드, 우크라이나 유고슬라비아, 쿠바, 베트 남과 같은 다른 다양한 국가들, 그리고 튀니지, 필리핀, 멕시코 등 제3세계의 작은 국가들과 함께 하고 있었다.

제안은 상관의 명령에 관한 규정을 제1 부속의

들어진

그 규칙을 지지하는, 그리고 몇몇 사례에서는

국제적십자위원회

(International Committer of the Red Cross)에 의 해 만들어진 것으로 기본적인 내용의 밑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국가들은 그 위에 자신들의 견해 를 표명하였다. 그 규정(77조)은 상관의 명령에 관한 문제들을 군인의 권위에 대한 복종이라는 보다 포괄적인 문맥 속에 현명하게 말을 골라 삽 입하였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1. 어떤 사람도 정부나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는

이 그룹들 내에 진심으로 77조를 지지하는 미 국은 1976년 규정의 개선을 위한 수정안을 제안 했다. 특히 그 규정은 ‘심한 일탈뿐만 ’ 아니라 ‘일 반적인 범죄에도 ’ 적용 가능한 것이어야 했다. 이 러한 매우 중요한 제안은 가능한 허점 하나를 제 거한 것이며 심지어 77조를 더욱 일관되게 만들 었다. 1976년에는 베트남 전쟁이 명시적으로 끝이 났고 미국은 태도를 변환했으며 ‘지적 병력의 ’ 가 장 열렬한 후원자의 하나가 되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승전국들은 군인들이 로봇 처럼 명령에 반드시 복종할 필요가 없다는 원칙 을 도입하였다. 더욱이 군인은 모국의 불법적 명 령에 불복하는 것뿐만 아니라 국가 법률의 모든

☮ 소식지 2월호

20


번역자료 구조가 범죄에 관여되었을 때 국가바깥의 명령에

입되었으나 주요하게는 초기에 많이 유입되었다.

모순 되는 명령은 심지어 무시해야 한다는 ‘개념’

인도적 망명자로 인정된 근거는 탈영하지 않은

을 공표하였으며 이것은 인도적인 가치들이 국제

사람들 때문이었다. 전쟁에 참전하도록 보내질 수

법을 통해 구체화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도 있는 위험을 무릅쓴 사람은 망명이 인정되었

국제법은 민주주주의 국가들을 포함해서 국가들

다. 이러한 인과관계에서 흥미로운 점은 인도적

의 사회심리적 삶에 비유되어 거대한 진보를 만

망명자로 인정해온 사람이 심지어 전쟁이 종결된

들어왔다. 잠시 잠깐의 망설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이후에도 스웨덴에 계속 남을 수 있다는 것을 정

모든 서구와 동양의 국가들은 그러한 원칙들을

부가 선언했다는 것이다. 미국 난민들의 대다수는

공고히 하였다. 역으로 최근 독립한 국가들의 대

미국으로 돌아갔고 그리고 거기서 사면되었다.

부분은 반대편으로 돌아섰다. 그들은 군대의 필요

고유한 스웨덴 법률은 우리의 관례에 따른 조

성과 안전에 대해 고민하였고 군인이 상관의 명

항을 포함하고 있었다. 법에는 스웨덴은 모든 나

령에 도전할 수 있다는 개념을 부인하였다.

라에서 온 전쟁저항자들의 망명을 인정한다고 명

끝으로 이러한 국가들은 개인의 자주적인 판단

문화하고 있다. 최근엔 강력하게 보호해주기를 원

과 개인적 책임의 인식이라는 자유재량권의 필요

하는 사람들에게 만으로 법률의 내용이 제한되었

성에 만족하였다. 인간존엄성의 자각과 합법적 문

다. ☮

명사회를 향한 진보의 숭고한 핵심중의 하나이며 뉘른베르크에서 판명된 개념들은 더 이상 나아가 지 못할 위험에 처해졌다. 여론은 제3세계의 보다 문명화된 지역이 이러한 국가들에게 권위주의와

5월 15일은 ?? ☮ 전세계 병역거부자들이 연대하는 날

압제는 결국 항상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 닫게 할 수 있도록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 *** 수많은 미국의 젊은이들이 미국의 베트남 침공 을 강하게 반대하였다. 수백 수천의 젊은이들이 미국 전쟁정책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하였다. 그 저항은 징병반대, 군복무반대, 그리고 심지어 탈 영까지를 포함한다. 대략 800~1,000명의 미국 징 병반대자들과 탈영병들은 스웨덴에서 망명신청을 하였다. 그들은 정치적 망명자로 인정되지는 않았 으나 1968년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소위 인도적 망 령자로 불렸다. 망명신청자들은 전쟁기간 내내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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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없는세상(World Without War)

WRI(War Resister's International)에서 지정한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입니다. 전쟁없는세상이 결성 된 날이기도 합니다. 3월부터 기획팀을 만들어 여 러 가지 다채로운 행사를 준비하려 합니다. 1주년 행사를 함께하실 분들을 기다립니다. 언제라도 연 락주십시오.


활동보고

2004년 1/2월

전쟁없는세상의 활동 01/17(토)

전쟁없는세상 사무실 개소식 및 신년회

02/02(월) 상근자와 자원활동가들 주간회의 시작 02/03(화) 강철민 지원 캠페인 02/07(토) 1박 2일 석모도 여행 ~08(일)

01/20(화) 강철민 지원 캠페인 01/24(토) 강철민 지원 캠페인 01/26(월) 영민 병역거부, 전쟁없는세상 사무실에서

축하의 식탁 02/10(화) 강철민 지원 캠페인 02/11(수) 오전 10시 서울북부지원 101호에서 염창

근 씨 1심 첫 재판 진행

02/14(토) 강철민 지원 캠페인 02/17(화) 강철민 씨, 용산 고등군사법원에서 2심 첫

재판 강철민 지원 캠페인 02/19(목) 민가협과 함께하는 목요집회 01/27(화) 강철민 지원 캠페인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 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 모임 염창근 씨 구속영장실질심사, 오전 10시 30분에 북부지원, 오후 4시쯤 구속 확정 01/30(금) 1월 평화인권열린대화마당

"강철민의 농성이 남긴 것" 소식지팀 모임, 2월호부터 월간 발행 모의 01/31(토) 강철민 캠페인

강철민 지원 캠페인 연대회의 모임 02/20(금) 강철민 징계 관련,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02/21(토) 강철민 지원 캠페인 02/24(화) 강철민 지원 캠페인 02/26(목) 임태훈 씨, 구속영장실질심사 02/28(토) 2월 평화인권열린대화마당

노동문화정책정보센터, 언니네 후원주점에 서 강철민 지지서명과 모금운동

"반군사주의 운동의 방법" 소식지 2월호 발행 ☮ 소식지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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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및 광고

2월 회계 지 출 날짜

수 입

내 용

02/03

쓰레기봉지

3800

02/03

A4용지

2500

02/04

쓰레기봉지

1530

02/05

염창근후원금

50000

02/09

염창근광고비

33000

02/13

Mdplayer건전지

9600

02/17

열쇠복사

4000

02/17

후원인카드

90000

02/18

복사기대여료

02/19

날짜

1월 이월금

1337800 5000

01/28

이은심

01/29

익명

02/01

오태양

20000

02/02

나동혁

10000

02/04

이용석

20000

02/05

김태훈

10000

40000

02/09

임재성

10000

A4용지

10000

02/10

송소연

10000

02/20

부탄가스난방용 ( )

16000

02/10

한지연

10000

02/20

생수

10000

02/13

홍세화

30000

02/17

설동준

10000

270430

합계

1월 이월금 2월 수입

총합계

02/17

권경아

10000

1337800

02/18

김태훈

10000

314352

02/23

모금함후원금

-270430

2월 지출

154352

합계

5000 314352

1381722

We wait for Volunteer!! Action Together for World Without War

자원활동 가를 기다립 니다 ☮ 캠페인, 집회, 퍼포먼스, 상영회

☮ 온라인 행동

- 강철민 지원 캠페인(거리/대학) - 매달 민가협과 함께하는 병역거부 양심수 석방을 위 한 목요집회(3월 18일) - 3. 8 여성의 날 부스, 3. 20 국제반전행동 퍼포먼스 - 다큐멘터리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대학 상영회

- 홈페이지 공동 기획/관리/ 제작

☮ 평화인권열린대화마당 -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 주제를 정해서

☮ 영문자료번역 - 영어를 잘하고, 병역거부 운동에 애정이 많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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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없는세상(World Without War)

☮ 소식지 - 소식지 기획/취재/ 제작 전과정을 함께!

☮ 5월 15일 후원인의 밤 - 결성 1주기,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을 맞아 후원인의 밤 행사를 함께 준비

☮ 전쟁없는세상 '평화영화제' - 6월, 여주 여성생활사 박물관에서 펼쳐지는 야간 영 화제를 함께 준비/숙식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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