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없는세상 소식지 11호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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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OUTWAR Newsletter No.11 CONTENTS World

Editorial

에디토리얼 1

워크홀릭은 위험하다..

CO letters

병역거부자 편지글 2

좌충우돌 우왕좌왕 소심한 병역거부자의..

CO note

병역거부자 활동수기 4

좌우살피고 앞으로 한걸음..

Focus

평화주의자의 책읽기

행되었던 것이다. 주민들은 단식은 기본이고, 각종 집회와 행진, 병역기록 반납, 입법부 선 거 거부, 세금 납부 거부(세금고지서의 3%를 공제해 대신 103인에게 보내기) 등...

오키나와, 설움의 역사 저항의 땅, 라르작 평화권 모임에서 바라본 평택 미군기지 이전.. 7월 10일 평화대행진을 다녀와서..

9 12 15 19 25

편집팀 참가후기

숲 속에서 나눈 열망, 평화를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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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호 소식지팀장 표지디자인 & 소식지편집

평화에세이

에디토리얼 & 기획기사 1

30 34

양심적 사교육 거부.. 네모난 모니터, 그 안에 ‘나는 ’ 없다.

평화에세이 1 섭외 & 활동재정보고

가람 편지글 섭외 & 영화평 섭외

Review

평화에세이 2 & 번역정리

영화평 36

칸다하르를 보길 권하는 나의 이유..

Trans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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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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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처 : 전쟁없는세상 발행일 : 2005년 7월 15일 제 호 :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11호 연락처 : 02-3147-1201 주소 : 서울시 서대문구 충정로 2가 190-10 아랫집 2층 (우) 120-012 http://withoutwar.org | peace@withoutwar.org

기획기사 2 & 참가후기 섭외

영은 기획기사 4 섭외

용석 활동수기 섭외 & 기획기사 3 평화에세이 섭외

활동재정보고

전쟁없는세상 이렇게 살았어요~!

시선집중 1 & 기획연재

시선집중 2 & 기획기사 2

기획연재

소설로 읽는 전쟁, 첫 번째, ‘슬픈 나막신’

까만★ 명진

번역

자본주의 vs 비폭력주의

Series

6 8

기획기사

평택풀뿌리가 움직인다

Essay

라르작의 투쟁은 매우 다양한 상상력들이 행 모든 가능한 행동들이 제안되었고, 실제로 수

수감자 이감에 대해 서울구치소에 묻다..

Experience

군대를 저지하라.. 15 동으로 직접 이어진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시선집중

Special

▶▶Spe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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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기획 | 한울타리 130-062 서울동대문구 제기2동 137-69 TEL : 924-9641,2 FAX : 927-5104


Editorial

진지함을 활용하세요 뎅 | 전쟁없는세상 책임활동가 + sehwle@na te.com 사랑스러운 소식지 11호에 엮인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5월에 발행된 소식지 10호의 이야기부터 잠깐 꺼내고 가자. 얼마 되지 않은 과거를 돌이켜 보건데, 10호의 제작과정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5월은 아름다운 날씨를 자랑했지만, 매체편집팀원들은 잔인할 정도로 바쁜 일정에 쫓겼다. 물론 이 바쁜 일정은 소식지 제작과는 거리가 있는 바쁨이었기 때문에, 10호는 약간 소외될 수 밖에 없 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호의 내용은, 한마디로 말해, 유쾌상쾌했다고 고백할 수 있다. 약간의 ‘소외덕 ’ 분에 10호는 자유로운 에세 이로 자신을 꾸밀 수 있었고, 그 자유로움 안에 은근한 철학을 심어 넣고서는, 그 결과 자전거에 대한 주위 사람들의 관심을 한층 높 여주었다. 약간 건방진 생각일진 모르지만, 지하철 가판대를 지나가다 한겨레21 565호(‘자전거의 행복한 반란’)을 봤을 땐, 우리 소 식지를 베낀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하하 민망하다.. 사랑스러운 11호의 이야기로 넘어가자면, 일단 11호는 10호에 비해 사뭇 진지해지고 심각해졌다. 편집 디자인을 통해서 그 무 거움을 조금이나마 덜어보려 했지만, 디자인만으로는 역부족.. 미군기지 하나만으로도 부족해, 양심적 사교육 거부에다가 사이버 폭 력, 그리고 영화평까지 진지한 분위기에 힘을 실어주니 이를 어찌할꼬.. 그래서 독자 여러분에게 제안하길, 부디 이 소식지를 비오는 장마철, 집에서 혼자 뒹굴거릴 때 읽어달라.. 뒹굴거릴 때 심심하다면, 소식지 한 페이지를 펼치고 사색에 잠겨보라. 당신의 하루를 한껏 진지하게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11호 작업에서는 혜성처럼 등장한 뉴페이스 두 명이 함께 해 주었다. 처음 참여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이 두 명 은 너무나 잘해주어서(어떤 면에서는 기존 멤버들보다 더욱 열심히 해주어서), 앞으로의 활약에도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덕분에 나머 지 멤버들에게도 자극과 긴장감을 심어주었으니, 이들의 역할은 기사 작성 외에도 참으로 대단했다고 말할 수 있다. 언제나 그렇지 만, 뉴페이스의 출현만이 우리 매체편집팀을 활력 있게 만들 수 있다. ^ ^ 은근히 끼워넣기를 잘하는 필자의 특성을 살려, (이 자리를 빌어)잠시 본인의 이야기를 하자면, ‘감옥가기 전 5개월 병에 ’ 걸린 기분이다. 아니 걸렸다. 이 병에 걸리면 로맨스를 싫어하던 사람도 로맨스를 찾게 되고, 사랑을 찾게 되고, 그것이 아니면 어떤 일에 굉장히 집착하게 된다. 따라서 이 병은 두 가지의 경우를 낳게 되는데, 첫 번째는 일에서 손을 떼는 인간과, 두 번째는 일에서 손을 떼지 않는 워크홀릭이다. 아마도 감옥에 가기 전 무언가를 이루고 싶다거나, 추억을 만들고 싶어서 그런건 아닐까.. 아무튼 이 병에 걸린 필자는 이번 주 주말 어디론가로 훌쩍 떠날 생각이다. 소식지만 나와 봐라~! 당장 서울을 벗어나 줄테다. 필자의 이야기는 몇 줄로 그만두기로 하고, 11호에 글을 실어주신 외부 필자 분들께 진심어린 감사를 드린다. 사실 외부 필자들 의 글이 없었다면 전쟁없는세상의 소식지는 상당히 앙상해졌을 것이다. 이 분들에게 문화상품권 한 장 보내주지 못하는 현실이 약간 의 아쉬움으로 다가오긴 하지만, 조금만 기다리시라.. 저희를 도와주시는 분들께 광명이 있을지니.. 광명을 기다리지 못해 즉시구매를 원하신다면 저희 사무실의 문을 두들겨주시라. 달콤한 떡볶이가 있을지니...

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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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우왕좌왕 소심한 병역거부자의 첫 번째 편지 의민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 현재 성동구치소에 수감되어 있습니다.

뎅의 이름으로(여전히 김태훈이라는 이름은 낯설지만 ^ ^) 들어온 가람의 전자서신을 보고.. 안 그래도 전쟁없 는세상에 편지 한 통 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이 기회에 쓰자 하고 펜을 들었어요. 근데 막 상 쓰려니 뭐라고 써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소식지를 통해 접한 병역거부자들의 편지는 보통 이런저런 고민을 들게 하는 내용 혹은 ‘병역거부자들의 편지는 재미 없더라’ 하는 인식을 드러내면서 자신도 별반 다르지 않 던 ^ ^ 모습들이었는데.. 그나마 소식지도 꼼꼼히 안 읽던 불성실한 독자로서 어떤 이야길 할까 고민이 많이 들 더라구요. 처음 편지이니만큼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로 시작되는 글을 쓸까도 해봤지만 1심 선고가 끝난 지금도 여전히 좌충우돌 우왕좌왕거리며 가끔 이런 저런 생각에 눈물도 흘리고 조급해하고 사람들 기대성 / 원에 부담스러워 하고 미안해하는 것과 동시에 조금 더 신경 써주지..하는 아쉬움도 가지는, 그리고 생각보다 큰 단절감에 외로워하 는 지금 모습이 잘 지낸다고만 하기엔 쫌 그렇고. 하지만 그런 것과 동시에 생활에서의 비폭력, 평화주의는 어떤 모 습으로 발현되고 실현시킬 수 있을까,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또 병역거부가 가지는 의미, 병역거부자를 모두 감옥에 보내는 이 몰상식에 대해. 일상 속에 깊이 자리 잡힌 (어디에서나) 군사문화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고 고 민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주어진 것이기도 하고. 또 우왕좌왕 하면서도 적극적으로 책도 보려하고. 공부도 하려 하고, 운동도 신경 쓰면서도 살아가고 있으니 그렇게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니에요. 저는 어제 1심 선고를 받았어요. 다소 허무하기도 한 재판과정이었지만 모두 소중한 기회로 여기고 이제 다음 단계를 준비중이예요. 어제 돌아오자마자 항소장을 접수했고, 이런저런 고민을 하면서 이유서 작성을 준비 중이죠. 그리고 아마도 지금 생활하고 있는 방에서 조만간 항소방으로 옮길 것 같아서 약간 긴장하고 있어요. 언제나 새로 운 공간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기대와 더불어 불안감을 불러일으키니까요. 무에 그리 다르겠냐마는, 스 스로의 규칙이 강하게 적용되는 이 공간에서는 그 조그만 변화도 크게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죠. 뭐 내가 할 수 있 는건 시간이 해결해 주려니.. 하는 태도를 취하는 수밖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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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감 40여일이 지나서 한 가지 확실히 드는 생각은 ‘역지사지’. 내가 밖에 있을 때는 병역거부자 접견도 한 번 밖에 안가고, 편지도 안 썼는데 막상 들어오니 접견 한번, 편지 한 통이 얼마나 소중하던지.^^ 다른 병역거부자 들의 경우는 어땠을까? ㅋㅋ 요새는 전엔 그냥저냥 생각하던 대체복무제가 ‘여러 가지 방면에서 큰 의미가 ’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 면서, 그와 함께 대체복무의 딜레마, 전쟁세, 전쟁 상황에서의 행동 등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하고 있어요. 또한 사 회적 ‘의무와 ’ ‘징집제등 ’ 에 대해서도 한 번 더 생각하고 있구요. 그러한 고민과 함께 우리 사회의 군사문화, 그것을 벗어나기 위한 반군사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을 어떻게 같이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하구요. 운동 에서의 이상과 현실 그 사이에서 근본적이면서도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활동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두 요.. 고민을 조금 더 많이 일찍 했어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요새 드는 이런저런 생각을 조금 더 정리하며 사람들과 길게 나누고, 듣고 싶은데 그러지 못한다는 아쉬움도 느끼네요. 하지만 역시 너무 조급하게 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 각도 들고.. 전에 서울구치소에 접견 갔다 오면서, 가람이 안에 들어가도 밖에서랑 다 똑같이 생활한다고 그랬는데 그 말이 정말 맞는 것 같아요. 밖에서도 어리버리 좌충우돌, 감정기복 심하게 생활했으니,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그러는 것 같고.. 그런 의미에서는 그럭저럭 잘 살아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네요. ^ ^ 수감 이후 첫 편지에 우왕좌왕 정리되지 않은 고민만 늘어놓은 것 같아서 부끄러운데. 다음엔 더 재미있고 (글 쓸 때마다 유머를 목표로 쓰는데, 역시 무리인가 ^ ^) 알찬 이야기를 건네길 바라며. 장마에 더위에 체력 떨어지고, 짜증나기 쉬운 요즘.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즐거이 생활하길 바라며. 이만 총총.

2005년 6월 마지막 날. 여전히 어리버리한 조정의민. (위에서 간단히 언급한 고민들. 재성하고 편지로 한 번 이야기 한 적이 있는데, 요새 고민하는 지점이기도. 편 지를 거둬가기 전 빨리 써서 내야한다는 생각에 급히 대강 정리했는데 다음에 조금 더 다듬어서 한번 이야기할게요. 같이 이야기 해 봐요 ^ ^) 그럼.

조정의민 2005.04.04 병역거부 선언 | 2005.05.06 경찰조사 진행 2005.05.17 청량리 경찰서에서 영장실질심사 진행 | 2005.05.18 구속수사 확정 2005.05.19 성동구치소 이감 | 2005.05.20 구속적부심사 신청, 기각 현재 성동구치소에 수감되어 있습니다

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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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살피고 앞으로 한걸음 문상현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 6월 7일 병역거부 선언

얼마 전 후원카페에 '잘 지내고 있냐?'는 어느 선배의 질문에 '천지비(天地否)' 천지비는 주역에서 하늘의 기운은 올 라가고 땅의 기운은 내려가기 때문에 천지가 서로 만나지 못하는 폐색의 괘를 말합니다. 하게 지낸다고 답했던 기억이 납니다. 머릿속의 생각이 현실을 떠나 있고, 몸은 머릿속의 생각들을 구체적 현실로 만들어 내거나 자극하지 못하니 현실에서 동떨어져 있는 듯 느끼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저를 지켜봐주시고, 응원해주시 는 주변 분들에게 죄송스럽지만 최근의 근황은 간단하게 ‘천지비’ 했습니다. ^^;; 한겨레21의 박성화 감독 인터뷰를 읽는데 '집중력이 떨어지면 슬럼프가 온다라는 ' 말귀가 눈에 띄었습니다. 집중력 을 잃는 다는 것은 자신이 살아가는 목적을 잃어버리는 것이고, 목적을 상실하게 되면 무엇을 해야 할지 우왕좌왕 하 게 되니 꼭 들어 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의 제게도 해당 되는 말이기에 더 와 닿았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요 며칠은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위해 지금 이 자리에 서있는지를 다시 한 번 곰곰이 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내 삶의 목표와 그 과정들, 그리고 지금 내게 필요한 것들과 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도 차근히 정돈을 했습니다. 물론 그 끝은 없겠지만 말입니다. 산란해진 머릿속을 정돈하고 생활의 활력을 되찾기 위해 규칙적인 수면과 가벼운 운동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지역의 후배들이 수감생활을 하기 전에 열심히 운동하라고 멋진 러닝화를 선물 해줘서 더 열심히, 기분 좋게 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집중력을 잃지 않고 한 결 같이 생활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한번 잃은 집중력과 슬럼프의 상태를 벗어나 다시 안정적인 생활로 돌아온다는 것도 어렵기는 마찬가 지 입니다. 또 한 가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상태에 대해 객관적으로 바라 볼 수 있는 관 찰력이 아닐까 합니다. 모든 일에는 적절한 휴식이 필요한 법이고, 자신의 상태에 따라 적절한 휴식과 여유를 줄 수 있 는 것은 자신뿐이니까요. 하지만 이것 역시 자신과 삶에 대한 집중을 요구한 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삶과 운동은 줄타기와 같다는 ' 누군가의 말처럼 균형을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앞으로 전진 하는 것만이 목적이고, 나아감이 모두인 것으로 보여 지겠지만 사실은 늘 좌우앞뒤를 모두를 신 경 써야만 앞으로 균형 있게 전진 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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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저처럼 슬럼프에 빠지지 않기 위해선 목표를 향한 시선과 좌우를 돌아 볼수 있는 자신감, 균형을 잡기 위한 양팔과 다리로 천천히 한발한발 앞으로 내딛어야 한다는 건 다들 알고 계시죠? 만약 아니라면, 저와 똑같이 슬럼프를 겪고 계시다면 저처럼 천천히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더운 여름 모두 건강하고 즐겁게 보내시길 바랍 니다. p.s 비가 흠뻑 내리고난 지난 월요일은 하늘이 무척이나 맑고 파랬습니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듯 한 것 이 꼭 황순원의 소나기가 떠오르더군요. 어제는 움직이는 만큼 흐르는 땀을 또 움직이는 만큼 시원하게 식혀주는 저 녁바람이 참 시원했습니다.

문상현씨 병역거부 이유서 中 발췌..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나와 이 세상의 평화를 바라는 모든 이들을 위 한 선택입니다. 국익을 이유로 한반도의 평화가 아니라 살인 위한 도구로 전락한 한국군.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군의문사와 일상적 인권유린에 대해 감추고 함구하는 국방부. 여성과 장애인을 비롯한 노약자들에게 또 하나의 구조화된 폭력으로 존 재하는 정상성과 비정상성에 대한 신체적, 정신적 기준. 군대의 억압적 질서와 비합리적 구조는 너그러이 받아들이면서 이에 대한 근본적 문제를 제기하는 용 기 있는 자들에게는 비난을 쏟아 놓는 예비역들의 피해의식과 우리 사회의 편협 함. 정당한 것을 힘으로 누르려는 권위적 질서. 신성한 국방의 의무에 대해 강변 하던 보수 세력과 군부의 권력자들조차 자녀들의 병역기피를 도왔다는 어처구니 없는 뉴스보도와 이를 통해 그들 스스로 고백해버린 군대의 비합리성. 전쟁과 군대, 그리고 우리 사회의 현실을 바라보며 제가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 대체복무제 도입을 요구합니다. 우리가 이루고 있는 공동체는 우리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으로 우 리의 의지에 따라 만들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모두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각자가 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으로 이 사회에 공헌하길 바 랍니다. 권력자들의 일방적인 강요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토론하고, 고민해서 각자의 신념과 양심, 개성에 따라 사회적 공헌을 할 것을 원합니다. 총과 칼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안전과 복지를 확충 할 수 있는 대체 복무제 도입 으로 우리의 공동체를 건강하고 아름답게 지키고 싶습니다. 이미 우리와 비슷하 거나 더 어려운 조건의 나라에서도 대체복무제가 이루어졌습니다. 이는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복지를, 병역 거부자들에게는 인권을, 사회에는 다름을 인정하는 관용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대체 복무제 도입은 우리 사회를 강요된 공동체가 아 니라 서로의 다름을 포용하는 가운데 더없이 풍요롭고, 관용적이고, 유연하며, 생명과 자연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자발적 공동체가 되도록 도와 줄 것이라 확신합니다.

이러한 것들이었습니다. 한국사회에 만연해 있는 생명과 자연에 대한 경시도 그 이면에는 전쟁의 승리를 위해 효율성과 경제성을 최고의 가치로 치는 힘과 경쟁 의 논리가 숨어있을 뿐입니다. 이제 저는 인간이 인간을 파괴하는 전쟁행위와 이를 수행하기 위한 무기, 그리고 군대를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습니다. 아니 용납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것 은 야트막한 집 한간과 땀 흘려 일 할 수 있는 일터만 있다면 별일 없이 평화롭 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우리 내들이 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에게는 대적해야 할 적도, 지켜야할 재산도 없습니다. 함께 행복하고 함께 즐겁 고 싶을 뿐, 서로 적대시 하고 서로를 위협하며 끊임없는 불안과 긴장 속에 살 고 싶지는 않습니다.

:: 평화 군축과 한반도 비핵화 선언으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준비해야 합니다. 부시행정부의 대북 강경책과 북의 핵개발로 인해 한반도 전쟁위기가 고조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전쟁위기가 세계패권에 눈먼 부시행정부의 의도된 행 위이며, 인민을 볼모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는 김정일 정권의 정당하지 못한 대응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총칼로 평화를 지킨다는 것이 모순입니다. 우리는 한반도와 전 세계의 민중들의 진정한 평화를 위해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야 합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가져 올 수 있는 이는 바로 우리 자신뿐임을 믿고 미 국의 패권적이고 일방적 정책에 반대하며 전쟁 대비를 위한 군비증강이 아니라 평화군축을 제안하고,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통해 한반도 항구적 평화를 준비해 야 합니다.

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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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감자 이감에 대해, 서울구치소에 묻다. 까만★ | 매체편집팀 + ebonystar82 @ hanmail.net

지난 5월과 6월에 걸쳐, 오태양씨와 염창근씨가 서

그러나 그 재량권이 구치소 재량껏 차별을 해도 되는

울 구치소에서 충주 구치소로 이감되었다. 오태양씨와

권리는 아니다. 만약 구치소에서 정당한 사유 없이 ‘병

염창근씨는 서울 구치소에서 출역1)신청을 했지만, 받아

역거부자라는 ’ 이유 하나만으로 차별적인 대우를 하는

들여지지 않았고, 그 이유도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았다.

것이라면, 이는 분명히 불공정한 법 집행이며 병역거부 자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관행상, 병역법 관련 수감자들은 서울구 치소에서 거의 100% 출역이 되었다. 이는 다른 교정시

전쟁없는 세상에서는 우선 이 문제에 대한 사실 확

설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알고 있다. 여호와의 증인이 아

인을 하기로 했다. 오태양씨와 염창근씨의 출역을 거부

닌 병역거부자가 드러나기 시작한 이후에도, 구치소에서

한 ‘정당한 사유가 ’ 있는지, 있다면 어떤 것인지 알아보

는 병역거부자에게 “니가 어찌하냐가 이후 들어오는 사

기로 한 것이다. 아래 내용은 서울 구치소와의 전화 통

람에게 영향을 준다”라고까지 이야기하며 병역거부자들

화 내용을 재구성한 것이다.

이 구분 분류 고려 대상임을 나타냈다. 그러나 오태양씨부터 출역 신청을 거부했고 이는 염 창근씨도 마찬가지였다. 오태양씨는 외부의 노력이 있었 음에도 불구하고 이감되었다. 심지어 한 병역거부자에게 는 “앞으로도 출역시켜 줄 계획 없다. 너희는 전쟁없는

일시 : 2005. 6 24(금) 오전 10시 문의 대상 : 서울구치소 분류과 (031-423-6100, 분류과로 교환) 통화시간 : 약 7분

세상이란 조직에서 온 공범으로 볼 수도 있다라고까지 ” 이야기했다고 한다. 물론 출역이나 독방 배정 모두 구치소의 ‘재량이다 ’ .

1) 원래 기결수는 구치소에서 교도소로 이감된다. 그런데 기결수라도 구치소의 업무를 맡게 되면 구치소에 그대로 있을 수 있는데, 이 ‘업무를 맡는 것을 ’ 출역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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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없는세상이 ( 하 전) : 분류과로 연결시켜 주시겠어요? 저희는 전쟁없는

서 : 전체적으로 기관 운영 차원에 해가지고 다 논의를 해 놓은 거거든요.

세상이라는 단체인데요, 저희가 후원하고 있는 수감자들이 구치소에서 출역

전 : 그게 공개가 안 되는 논의인가요?

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해서, 그 이유가 궁금해서 문의드립니다. 어떤

서 : 수용 정보라서… 본인이 아니면 좀. 염창근씨한테 다시 얘기할테니까

이유로 출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는지요?

그쪽 분한테 얘기 들으세요.

서울구치소이하 ( 서) : 어… 누구한테 알게 되었죠?

전 : 저희한테는 얘기 못해주시나요?

전 : 수감자 분들께서 편지를 보내셨어요. 알 수 있을지 하고요.

서 : 이 사람에 대한 수용 정보기 때문에…….

서 : 거 지금 전화 주시는 분은요?

전 : 저희가 수감자분들 편지 받고 문의드리는 건데요? 안될까요?

전 : 전쟁없는 세상이라는 단체에 있는 사람이에요.

서 : 지금 전화하시는 분도 인적사항 안밝히잖아요. 이 사람의 정보를 이

서 :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사람이 원치 않는 다른 사람이 알아보려고 그러는 수도 있거든요.

전 : 성함은…^ ^;; 굳이 말해야 되요?

전 : (드디어 열이 확 오른 까만★. 갈 데까지 가보자는 심정으로) 아 그럼,

서 : 언제 편지를 받았죠?

제가 신원이 확인되면 알려 주실 수 있나요?

전 : 5월쯤 알았어요.

서 : 아 그게 여기로 할 게 아니구요, 제가 염창근씨한테 설명 다시 할게요.

서 : (침묵)

거기 연락해 주라고 할게요.

전 : 말씀 못해 주시나요? ^ ^;;

전 : 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서 : 아뇨. 그 사람들이 그 내용을 다 알고 있거든요. 전 : 그래요? 저희한테는 알아봐 달라고 편지가 와서 저희가 여쭤보는 건데

.............................................................

요. 서 : 언제 편지를 받았죠? 전 : 5월달에요. 서 : 어……. 전 : 혹시 말씀 못해 주시는 이유가 있나요? 서 : 그게 아니고, 본인들이 이미 알거든요. 전 : 다시 한번 확인만 해주시겠어요? 본인만 알아야 하는 일은 아니죠? 서 : 아니죠. 전 : 그럼 확인차라도 말씀해 주세요. 서 : 편지 내용은 뭐예요? 전 : 저도 잘은 모르고, 알아봐 달라고만 들었어요. 서 : 본인들한테 설명을 했고…….

전화 인터뷰에서 서울 구치소는 병역거부자들의 출 역을 거부한 사유를 말해주지 않았다. 자꾸 다른 말만 하면서 회피하고, 앞에는 된다고 했다가 갑자기 말을 바 꾸기도 했다. 물론 전화 인터뷰를 통해 서울 구치소가 정당하지 못한 법 집행을 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은 아니다. 그 러나 사유를 밝히기를 꺼리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전 : 그니까 확인만 해주시면 돼요. 안되나요? 서 : 본인들이 다 그거 해가지고… 이미 본인들이 다… 다른 데로 갔잖아요. 전 : 예. 서 : 그게 다 이해하고 간 거거든요. 전 : 저희가 그걸 이해 못했다는 게 아니구요, 한번 확인을 부탁드린 건데

감옥 밖에 있는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구치 소는 계속해서 ‘재량껏’ 출역을 거부할 것이다. 그러나 구치소의 재량권은 결코 남용되어서는 안된다. 앞으로

그걸 말 못 해 주시나요? 말씀 못해주실 이유가 있나요? 그걸 말씀 해주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전쟁없는 세상과 병역거부 연대회

시면...

의에서 공식적으로 대응해 나가면서, 감옥에 있는 병역

서 : 아니요. 그거 얘기 못할 이유는 없어요.

거부자들이 차별받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전 : 그럼 말씀 해주시면 되잖아요. 서 : 지금 전화해 주신 분이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전 : 전쟁없는 세상 일하고 있는 사람이에요. 성함을 굳이 밝혀야 하나요?

인권은 감옥 앞에서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신분 조사 해야 하나요? 서 : 아니요. 그런 건 없구요. 전 : 아 그럼 말씀 해주시면 되는데, 왜 자꾸 다른 이야기를 하시는지… 당 황스럽네요.(이 때부터 슬슬 약이 오르는 중이었다. -.-;;)

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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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주의자들의 책읽기.. 영은 | 전쟁없는세상 책임활동가 + slow-steady @ hanmail.net

처음 책읽기모임이 계획된 것은 한국사회에 부재한 평화

과 함께! 두 가지 원칙을 가지고 시작해보고자 한다. 책 선정

주의에 대한 인식이나 논리적 근거의 부족이었다. 감성적 호소

도 충분히 의견을 모아서 결정하고 책이 결정되면 책을 읽을

못지 않게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근거 또한 중요할 터인데 솔직

기간을 정하고 병역거부자들이 제기한 주제들과 밖에서 읽은

히 지금까지 병역거부운동을 포함한 많은 평화운동들이 이런

사람들이 제기한 주제들을 모아서 2~3번의 서신교환으로 부족

지식의 확대에는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하나마 의견교환을 하고 이를 바탕으로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 어내고자 한다. 밖에서 읽은 사람들은 세미나 형식으로 계속해

이에 전쟁이나 군사주의에 몸소 저항하고 거부한 병역거

서 토론하는 방법도 가능할 수도 있다. 결과물의 형식은 우선

부자들을 중심으로 한국사회에서 평화운동에 대한 고민점들을

기본적으로 인터넷 언론매체들을 통해 알리고 가능한 경우 오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책을 읽고 같이 토론할 수 있는 자

프라인 모임에서 저자와의 대화를 하거나 관련 주제로 토론회

리를 마련하는 것이 매우 뜻깊은 일이라 생각하며 시작을 하게

를 가질 수도 있다.

되었다. 정리하자면 책 한 권을 정하고 7~10일 정도의 독서기 하지만 책읽기 모임의 첫 시작부터 어쩌면 평화적이지 못

간을 가지고 40여 일의 기간 동안 수감 중인 병역거부자들과

했는지도 모르겠다. (지난 7월 5일 김동춘 교수의 ‘미국의 엔

2~3번의 서신교환을 한다. (각자 토론꺼리를 제기하면서) 이

진, 전쟁과 시장이 ’ 라는 책으로 첫 번째 책읽기모임을 진행하였

렇게 하면 넉넉잡아 50여 일의 시간이 걸리고 부족하면

다.) 일상에 쫓겨 본디 모임을 시작하려 했던 취지는 자꾸 잊

10~20일 더 소요하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결과를 정리하

은 채 목표 삼았던 날짜에 어떻게든 끼워 맞추려는 억지 노력

고 알리고 혹은 오프모임을 갖는 기간을 10일 정도 가지면 최

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내지도 못하고 아는 사람들만 조

대 3달 동안에 거쳐 책 한 권을 끝낼 수 있게 된다. 물론 위에

금 모인 자리로 시작을 해야만 했다. 또한 이 사무적 강박관념

풀어놓은 방식들은 함께 해나가는 사람들과 수정해나가며 진행

은 함께하고자 했던 책읽기모임의 또 다른 주체였던 수감중인

할 예정이다.

병역거부자들도 배제시키게 되었다. 감옥 안의 시계가 돌아가 는 속도는 이 곳과 다를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속 도에만 집중해 있었다. 정말 조촐하게 아니 어쩌면 너무 초라하게 시작되었던 책 읽기 첫모임에 함께 해주셨던 김동춘 교수님께 아주 죄송스러 운 마음과 감사의 마음을 가지면서 자책보단 좀 더 나은 발전 을 위한 뼈아픈 경험이었다 생각하며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새 로운 책읽기 모임을 시작해보고자 한다. 우선 가장 중요하게 아주 천천히! 그리고 많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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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평화를 고민하고 그 평화를 우리의 삶 속에서, 사 회 속에서 풀어낼 이들을 언제나 환영합니다!! http://withoutwar.org/happybook [책읽기 모임 홈페이지]


평택으로 집중되는 미군기지.. 미군기지확장저지에 나선 평택시민들, 풀뿌리 모임 조직과 사이버 행동에 나서.. 평택은 제2의 부안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뎅 | 전쟁없는세상 책임활동가 + sehwle @ hanmail.net

“저는 미군기지 추가 확장 예정지인 평택 대추리에

된 지 며칠도 되지 않아 약 700여명에 가까운 네티즌들

살고 있는 주민입니다. 오늘 6월 27일은 우리 마을 주

의 서명을 받아 냈는데, 서명한 네티즌들의 반응이 뜨겁

민들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같이 촛불을 든 지

다. 민감한 정치적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네티즌들

300일이 되는 날입니다. 네티즌 여러분들의 도움을 부

이 한 시민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대체 어떤 사정이길

탁드립니다. 저희들의 바램은 가족들과 함께 농사를 지

래, 네티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된 것일까?

으면서 조용히 사는 것이고, 우리나라가 전쟁 없이 평화 롭게 되는 겁니다. 끝까지 촛불을 들고 싸울 생각입니다 ” 지난 6월 26일, 미디어 다음에서는 한 평택 시민이 발의한 네티즌 청원 운동이 시작되었다. 이 청원은 발의

[미디어다음 네티즌 청원운동]

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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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을 뒤덮는 미군기지

을 항구, 비행장이 갖춰진 평택으로 집합시켜 육해공 통 합작전과 한반도 이외의 지역으로의 자유로운 출입을

평택시는 총면적 452.31㎢(약 1억 3700만평)에 인

용이하게 하려는 것이다.

구수 36만 2천여명(2003.7.31기준), 2읍 7면 13개동으 로 구성되어있는 경기도 최남단의 도농복합도시이자 군 사도시이다. 평택의 미군기지라 함은 신장동, 서정동, 고

미군기지확장을 반대하는 촛불들..

덕면, 서탄면, 진위면 일대에 위치하고 있는 210만평 규 모의 송탄기지, 그리고 팽성읍 일대에 위치한 150만평

“저희 마을을 포함해서 349만평이 확장예정입니다.

규모의 Camp Humpleys, 사격훈련장, 탄약고, 통신소를

미국과 정부는 저희들에게 한번도 동의를 구하거나 협

가리킨다. 현재 이 다섯 개의 미군기지는 457만 8천평

의를 하지 않았음에도 올해 8월까지 토지를 수용하겠다

의 공여지를 사용하고 있으며, 12,091명의 주한미군이

며 나가라고 합니다. 게다가 마을 분들 대부분이 반대하

주둔하고 있다.

자, 국방부는 주민들을 분열시키기 위해서 공문서를 허 위로 조작하면서 지금 합의 이전하면 보상금을 더 주겠 다고 회유, 협박, 이간질시키는 일을 노골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 지금이 일제시대도 아니고 미국의 해외침 략기지를 우리나라에 왜 둡니까? 그리고 군사정권도 아 닌데... 국민들 의견을 너무 무시하는 것 아닙니까?” 연합토지관리계획과 주한미군 재배치계획이 발표됨 에 따라 평택의 시민들은 뭉치기 시작했다. 국방부와 주 한미군의 계획대로라면 미군기지가 들어설 지역에 살고 [미군기지 확장예정지인 대추리]

있는 평택 주민들이 일방적으로 쫓겨날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지난 달 2일 미군기지 확장이전 지

50년이 넘도록 주한미군이 평택에 주둔하고 있었지

역의 토지취득을 위한 실시계획을 승인한데 이어 평택

만, 시민들의 반발이 거세지기 시작한 것은 2002년부터

시 서탄면 금각리 등 940㎡에 대한 협의매수를 시작했

였다. 지난 2002년 주한미군은 한미연합토지관리계획

다고 밝혔는데, 한 네티즌의 말처럼, 그 과정은 민주주

(LPP)을 발표하였는데, 이 계획은 경기북부지역의 훈련

의와 동떨어져서 진행되고 있다. 겉으로는 협의매수라고

장 4천여만평을 반환하고 평택을 중심으로 154만평을

발표되지만, 실제로는 강제매수에 가깝기 때문이다.

신설확장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평택시민들의 반발 에도 불구하고 지난 2002년 10월 정기국회를 통과한

주한미군과 국방부의 계획이 발표됨에 따라, 2002

이 협정으로 인해 평택지역에만 75만평에 달하는 토지

년부터 평택지역의 15개 시민사회단체가 미군기지확장

가 추가 공여될 위기에 놓인 것이다.

반대 평택대책위원회를 결성하였고, 2003년에는 확장예 정지역으로 알려진 팽성읍과 서탄면 일대에 주민대책위

그리고 2003년 4월, 주한미군은 전국의 미군기지를

원회가 결성되어 다양한 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그 중에

2개의 중심기지로 재편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결

서도 2004년 12월부터 시작된 평택 촛불집회가 인상적

과적으로 전국 모든 미군기지들이 평택과 대구부산지역

이다. 이를 계기로 팽성읍에서만 밝혀지던 촛불이 평택

으로 집중될 예정인데, 이는 휴전선에 붙들려 있던 미군

전체의 풀뿌리 시민들에게로 확대되었는데. 이 날부터 촛불은 미군기지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상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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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지난 6월 27일에는 광화문과 팽성읍 두 곳에

십시요.”평택지킴이가 되기 위해서는 일단 천 원 이상의

서 촛불문화제가 열렸는데, 이 날은 촛불을 든 지 300

후원금을 내야한다. 하지만 재정 후원이 평택지킴이의

일째가 된 날이었다. 평택시민들과 서울 시민들, 그리고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평택지킴이의 핵심은 ‘자

다양한 평화단체 활동가들이 참가한 가운데, 시민들은

발성과 ’ ‘다양성에 ’ 있다. 평택지킴이의 주요 활동은 지

󰡒평택 미군기지확장 막아내고 한반도 평화 지켜내자!󰡓

역별 풀뿌리 모임 조직과 해당지역의 지킴이 활동(예를

는 구호를 외치면서, 앞으로의 활동을 약속했다.

들면 촛불집회 등)이지만, 이미 존재하고 있는 활동 외 에도 다양한 가능성들을 품고 있다. 이미 사이버공간에서는 평택 소식을 알리는 평택지 킴이들의 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자신의 홈페 이지에 평택범대위 배너를 올리고, 자주 가는 홈페이지 의 게시판에 미군기지에 대한 비판적인 글들을 올리고

[촛불을 들고 있는 평택 시민]

있다. 한 평택시민에 의해 시작된 네티즌 청원운동 과정 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응원의 메시지를 올려주었다.

평화의 땅을 지켜라! 평택지킴이 2004년 첫 촛불집회에서 한 발언자는 평택을 제2의 2005년 2월에는 평택대책위에 연대하는 활동들이

부안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그의 소망처럼 평택은

좀 더 확장되어, 전국적인 평택범대위(평택범국민대책위

제2의 부안이 될 수 있을까? 부안보다 아름다운 평택이

원회)가 결성되었다. 지금은 이 평택범대위가 미군기지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평택이 풀뿌리들로 꾸며지는 민

확장저지 운동에서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범대위

주주의의 실험장이 되길 기대한다.

에는 민주노총과 민노당 등의 굵직한 단체들이 많이 참 여하고 있는데, 이들 단체들의 참여는 평택의 상황을 전 국적으로 알리는데 긍정적인 효과를 주고 있다. 범대위는 언론홍보활동과 주민집회 등 다양한 활동 을 전개 중인데, 이 중에서도 평택지킴이 모집활동을 주 목할 만하다. 평택지킴이란, 평택미군기지에 반대하는 전국의 풀뿌리들을 의미한다. 큰 단체들의 참여가 평택 범대위의 활동에 이름을 걸어주는 것이라면, 실질적으로 미군기지에 반대하는 분위기와 여론을 만들어내는 것이

[7월10 일 평화대행진을 광고하는 지킴이]

평택 풀뿌리들의 역할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평택에 서의 운동이 ‘과정에서의 민주주의와 ’ ‘결과로서의 기지 확장저지라는 ’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실제 주 민들의 참여와 활동이 가장 중요하다.

<사진자료출처 / : www.antigizi.or.kr>

“대추리와 평택농민들의 아픔을 우리 자신의 아픔으 로 기꺼이 함께 나누고 연대하는 평택지킴이가 되어 주

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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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미국으로. 또 다시 일본으로 영은 | 전쟁없는세상 책임활동가 + slow-steady @ hanmail.net

오키나와는 이름만 들어도 일본 영토임을 떠올릴 수

편입된 "류쿠"는 결국 근대국가 일본의 팽창주의 역사의

있는 곳이다. 제주도에서 날씨가 맑은 날이면 맨 눈으로

첫 페이지를 채워주는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도 볼 수 있을만큼 한국과 가까운 곳에 자리잡은 이곳

한국인들이 일본에 가지는 식민지의 설움만큼이나 오키

은 사실 일본의 영토로 복귀된지는 올해로 33년이 된다.

나와의 사람들도 많은 설움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더욱 이 1945년 오키나와 전쟁3)의 결과로 1945~1972년 기

오키나와는 원래 류쿠왕국이라는 독립적인 왕국이었 다. 하지만 1879년에 이루어진 "류쿠처분"2)에 의해 일

간 동안 미군이 점령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현재 주일 미군의 약 75%가 오키나와에 집중되어 있다.

본의 일개 현으로 강제 편입된다. 일본의 일개 현으로 2) 한일합방과 같은 개념. 일본의 점령과도 같은 의미.

3) 오키나와전이란 , 아시아 태평양 전쟁의 최종반 , 1945년 3월말부터 6월말까지의 약 3개월간 , 일미 · 양군의 사이에 격렬한 전투가 행해져 최종적 으로 미군이 오키나와를 점령한 싸움이다. 또한 그 후도 산발적인 전투는 계속되어 , 오키나와의 일본군이 항복 조인식을 행한 것은 9월7일이었다. 약 오십만 명의 오키나와 주민이 말려 들어가 약 15만 명이 희생이 되었다. 그 밖에 군부나 일본군 위안부로서 연행되어 온 한국인1만 명 이상 , 본토 출신 의 일본병 6만 5천명 , 미국 병사 1만 4천명 등 아울러 20만 여명이 희생이 되었다. 일본 본토에서 다수의 주민을 말려들게 한 지상전으로서는 오키나 와전이 유일한 싸움이었다. 그것까지 조선 , 중국 , 동남아시아 , 태평양 제도 등 외지에서 침략전쟁을 싸워 온 일본군이 , 다수의 자국민을 거느려 싸워 , 민간인의 희생이 군인을 웃돈 전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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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년의 시간을 미군 점령 하에 생활하던 오키나

반대운동이다. 전체 길이2500미터 중활주로 2천 미터

와 사람들은 또 다시 자신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미국

정도의 어마어마한 규모로 계획된 비행장 이전 계획은

과 일본의 정치적 이득 계산에 따라 1972년 일본에 반

헤노코 바다의 생태계 파괴를 초래할 것은 자명한 사실

환된다. 그리고 2005년 올해로 ‘일본 복귀 33년, 오키나

이었다. 특히나 이 헤노코 바다에는 멸종위기에 놓여있

와전 60년을 ’ 맞이하게 되었다.

는 물개류의 ‘듀공의 ’ 이주통로이기도 하다.

범죄로 뒤범벅된 그대의 이름은 주일미 군!!

이에 반발한 어민들을 중심으로 한 주민들은 시설국 에서 나온 현지조사단을 해상에서 직접 저지하며 목숨 을 건 해상시위를 벌여왔다. 현지조사단이 조사를 진행

주한미군보다 더 큰 규모를 자랑(?)하는 주일미군의 75%가 집중되어 있는 오키나와 지역은 지난 60년 동안 수많은 미군범죄와 환경오염의 희생양이 되어야만 했다. 여성들에 대한 폭력, 강간, 임신, 매춘 등은 지난 1945 년 미군이 상륙한 직후부터 급격하게 늘어난 것이 사실 이다. 또한 토지의 대부분을 토지를 빼앗긴 주민들은 할 수 없이 기지 철조망에 붙어서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기지주변에서는 전투기 폭음이 이른 아침의 엔진 조정 소리로 시작하고 낮, 밤까지 계속되어 학교 수업도 자주 중단되는 상황이다. 오키나와현이 조사한 1999년까지 4년 동안의 폭음

할 수 없도록 잠수복을 입고 조사를 방해함에 따라 조 사가 더디어지게 되었다. 이에 작년부터는 야간조사를 시행함에 따라 24시간 해상에서 시찰을 진행하며 2004 년 12월 이래 하루도 빠짐없이 500여 일 가까운 시위를 진행해오고 있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올해 5월 들어 헤노코 후텐 마 비행장 이전안이 전면 재검토되어지고 있다. 또한 기 노완 시장도 현지를 방문하여 방미계획과 기지이전을 저지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하였다. 물론 이는 아직 확정된 사실이 아니며 주민들의 해상시위도 계속되어지 고 있는게 현실이지만 1년이 넘는 그들의 직접행동이 현지조사와 기초시설 작업조차 시작하지 못하게 한 커 다란 성과를 안겨주었다.

피해조사로는 유아의 신체적, 정신적 요관찰행동을 증가 시키고 있다는 사실, 오랜 소음피해로 청력을 상실, 소 음과 저체중아 출생에 연관관계 등 주변주민 건강에 악 영향을 입증하는 결과가 나와 있다. 폭음 금지 집단소송 으로는 대법원에서 인체에 미치는 영향과 과거 피해에 대한 보상을 인정할 수 있었는데 폭음 금지 즉, 연습중 지 결정은 국익에 관한 것이라고 대법원에서는 결정되 지 않았다.4) [듀공의 모습]

저항의 노력들1 - 듀공을 살려라!! 최근 오키나와 지역에서 가장 활발한 운동으로 헤노 코 바다 해상 위에 계획되고 있는 후텐마 비행장이전 4) 오키나와 지역보고서 (2002년 8월 16일 / 타가사토 스주요 : 기지군대 ․ 를 허용하지 않는 행동하는 여성들의 모임)

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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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평택 상황은 오키나와와 매우 닮아 있다. 주일

저항의 노력들2 - 미군기지 현내 이전을 막아라!!

미군이 오키나와 지역을 거점으로 집중되어 있는 것처 럼, 주한미군은 평택을 거점으로 집중시키려고 하고 있

지난 5월 ‘일본 복귀 33년, 오키나와전 60년을 ’ 맞 아 오키나와현이 일본에 복귀한지 나서 33년이 되는 15 일, 동현 기노완시의 미군 후텐마 비행장 조기 반환을 요구하며 시민들이 「인간 띠잇기」로 동비행장의 주위 11킬로미터를 둘러쌌다. 참가자는 현외 참가자를 포함해 과거 최고인 약2만4천여 명이 함께 했다. 또한 3일 동 안 진행된 평화행진에는 8천여 명의 사람들이 참가하기 도 하였다. 이러한 많은 대중이 참여하는 행진이나 띠잇 기 등의 직접행동은 지금까지 일미 , 양 정부에 실질적 위협이 되기도 하며 국제사회에 오키나와의 현실을 알 려내고 연대의 가능성을 찾는데 큰 기여를 해오고 있다.

평택과 오키나와의 어깨동무

다. 주한미군의 평택으로의 확장이전은 ․ 사실상 평택 주 민들에게 직접적으로 생존권을 위협하는 것이며, 동북아 지역에서의 긴장감 확대의 주요 지점으로 한반도의 중 심부가 놓여지게 되는 것이며 사실상 일상 속에서 전쟁 의 공포와 위협을 느끼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 다. 이런 면에서 오키나와의 경험을 평택에서 적절히 사 용하는 것은 평택 미군기지 반대운동에 많은 부분 기여 할 수 있다. 특히 오키나와의 ‘한평 지주회’5) 운동은 작 년 평택에서도 이용되어 현재 400여 명의 사람들이 기 지 근처 땅을 지켜내고자 함께 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오키나와 기지반대 운동을 활발히 해온 활동가들이 직 접 평택을 찾아 평택의 주민들과 활동가들을 격려하고 지원하고 있다.

[ 2005년 5월 미군기지 확장 반대 투쟁의 한복판에 서 있는 팽성대책위 장도정 간사가, 역시 미군기지 반대 투쟁의 한복판에 서 있는 오키나와현 기노완시의 "이하 요우이치"시장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

5) 오키나와 지역에서 기지 확장에 반대하는 의미로 기지 근처 땅을 매입한 이후 기지 확장에 필요한 땅을 팔지 않았던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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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평택 투쟁의 방향 제시... 시민불복종, 비폭력, 연대, 자주관리의 모습들 명진 | 매체편집팀 + nalm109 @ hanmail.net

우리가 살펴보게 될 라르작 Le Larzac 이란 곳은 프랑스의 아베롱 Aveyron 현에 있는 고원지대로 프랑스

접적인 투쟁이 끝난 이후 지금까지도 반자본주의, 반세 계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중에 하나이다. 1890년 이후로 라 카발리 La Cavalerie 마을과 인접한 고원지대의 가장 자리에 군사기지가 자리잡고 있었는데, 1971년 급작스 럽게 군기지 확장계획이 발표되면서 주민들은 생존권의 위협에 직면하게 되었다. 자신들과의 어떠한 합의과정도 없이 결정된 이 계획 에 맞서서 주민들은 비폭력적이고 독창적인 직접행동들 을 조직하면서 10년에 걸친 투쟁 끝에 기지 확장 계획 을 저지할 수 있었다. 지역에 직접 사는 농민들로 구성

[라르작의 어느 평원의 모습]]

된 풀뿌리 저항조직들은 투쟁 기간 동안 다른 지역의 농민, 노동자들과 연대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직

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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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인의 저항, 직접민주주의의 원칙

법부 선거 거부, 세금 납부 거부(세금고지서의 3%를 공 제해 대신 103인에게 보내기) 등 다양한 행동들을 전개

1970년 10월 국방장관 드브레가 1만 4천 헥타르를

하였다. 그리고 ‘Gardarem lo Larzac'라는 월간 소식지

더 군사 기지로 확장하겠다는 결정을 공식적으로 선언

를 발행함으로써 자신들의 상황을 알려내고 사람들의

하면서 라르작의 농민들은 토지 강제 매입이라는 위협

지지를 얻어나가기 위해 노력했다.

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 맞서서 107명의 농민들 가운데 103명의 농민들이 뒤로 물러서지 않고, 토지를

1972년 10월 25일, 농민들이 에펠탑 아래에다 “라

팔지 않으며, 모든 사안에 대해 서로 의논하기로 약속했

르작을 살립시다라는 ” 슬로건을 덕지덕지 써넣은 양떼

다. 이로써 ‘103인 위원회가 ’ 탄생하게 된 것이다.

60마리를 풀어놓았고, 1973년 1월초에는 26대의 트랙 터와 함께 파리까지 행진을 하였다.

1972년 5월, 란사 델 바스토의 15일간의 단식이 있 었는데 곧이어 103인의 농민들은 군사기지확장을 반대

1973년 8월, 라르작에서는 다른 지역의 농민들까지

하는 데에 비폭력적인 수단을 사용하기로 결정한다. 라

총 10만 여명이 모인 큰 집회가 있었고, 다음 해 8월에

르작의 농민들에게 폭력은 가장 지지를 못 받는 행동방

는 다시 10만 여명이 모여서 “밀은 삶을 가능케 한다.

법이었던 것이다.

무기는 삶을 위협한다”는 구호 아래 제3세계의 민중들을 지지하는 추수축제를 열었다. 그들은 기지 확장과 관련

한편, 당시 프랑스 내의 좌파조직들은 과격한 행동

한 재판이 벌어지는 법원 앞에서 양들과 함께 시위를

들로 지역 주민들의 거부감을 사고 있었다. 103인이 그

가졌고, 1980년의 경우에는 에펠탑 아래에서 양들과 함

들에게 허락한 것 이외의 다른 어떤 주도권도 지니지

께 캠페인을 하다가 경찰들에 의해 쫓겨나자 세느강으

못한 채 결국 좌파 조직들은 라르작에서 떠나게 된다.

로 옮겨가서 캠페인을 계속 하기도 하였다.

농민들은 위에서 내려오는 명령을 수동적으로 수행하기 보다는 직접민주주의의 원칙에 따라 모든 사안은 주민 들 스스로, 모두가 모여서 결정하는 원칙을 고수했다. 다음은 103인의 모임에서 있었던 한 참가자가 전하 는 논쟁의 한 장면이다. “그것은 표결에 부칠 가치가 있 습니다.” 이에 대해 다른 누군가가 대답했다. “안 됩니다, 투표는 안 돼요. 우리는 모두 힘을 합해 결론을 도출해 야 합니다.”

다양한 직접행동들 라르작의 투쟁은 매우 다양한 상상력들이 행동으로 직접 이어진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모든 가능한 행동 들이 제안되었고, 실제로 수행되었던 것이다. 주민들은 단식은 기본이고, 각종 집회와 행진, 병역기록 반납,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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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8월 라르작에서 열린 반세계화 집회 때에 르몽드지에 실린 그림]


주민들의 병역기록 반납

1977년 법정에서 ‘군사기지 확장은 주민들의 이익에 부 합해야 한다라는 ’ 판결에 내려지면서 더욱 힘을 얻게 되

1973년 3월에는 입법부 선거가 있었는데 103인은

었다.

어떤 후보도 지지하지 않고, 정부 당국에 대한 거부를 표명하였다. 곧 이어 4월에는 50명의 농민들이 자신들

기지 확장 정책 철회 이후

의 병역기록을 반납하기로 결정하였다. 라 블라키에르의 작은 마을에 사는 노인 엘리 종케는 장관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1981년, 미테랑이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고 곧이 어 라르작의 군사기지확장에 관한 계획을 철회하기로 발표함에 따라 10년에 걸친 라르작 주민들의 투쟁은 승

“이러한 행동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게 무척이나 마음

리하게 된다.

이 무겁습니다. 그러나 저의 양심은 그렇게 하라고 요구 합니다. 1940년에 내가 싸웠던 그 체제의 전례를 따르 고 체제를 위해 일할 수는 없습니다.”

10년간의 투쟁과정동안 라르작 지역 농민들은 다른 지역의 농민, 노동자들과 연대해 나가는 경험들을 통하 여 군사기지 문제가 단순히 지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

이러한 병역기록 반납운동은 곧 다른 지역으로도 퍼 져서, 3000여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병역기록

님을 인식하고 핵무기 반대라든지 병역거부와 같은 문 제들에도 관심을 갖고 함께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을 반납하였다. 농민들은 그동안 자신들의 문제에 관심을 보여준 사

토지점거를 위한 행동들

람들과 계속해서 연대를 한다는 생각으로 1982년에 “Larzac Foundation"(1999년 "Larzac-Solidarity"로 바

주민들은 군사기지용으로 예정되어 있는 토지를 점

뀜)을 설립하였다. 활동가들은 일본으로 직접 가서 산리

거하기 위하여 법적 조치와 ‘불법적행동 ’ 모두를 택했다.

즈카 공항 확대 반대 투쟁을 함께 하였고, 핵무기 반대

103인은 1973년, 농지 단체를 설립하여 토지를 팔려고

라든지 미국으로부터의 무기 수입 반대 등을 외치며 함

하는 개인들로부터 토지를 (육군보다 먼저) 사들이고

께 투쟁하였다.

그 토지를 다른 농민들에게 파는 작업을 하였다. 곧 1,200 헥타르의 땅이 농민들 손에 쥐어졌다. 안 쓰던 땅 을 개간하고 수로를 연결하며 전화선을 개통하는 등 그 땅에 새로운 농민들이 정착하여 살 수 있도록 하였다. 주민들은 법의 테두리 안에만 머물지 않고 ‘불법적’ 인 행동들도 시도하였는데,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고 울 타리를 치면서 양목장을 만들었고, 군 소유지로 되어있 는 땅을 점거하여 그 땅에서 거주하기도 하였다. 1975 년 3월에는 9번 도로를 9백 마리의 양떼로 뒤덮어서 자

[2003년 8월 라르작에서 열렸던 WTO 반대 집회,

동차는 물론 군용 수송차들까지 통행을 막아버림으로써

경찰들이 사람들을 향해 물대포를 쏘고 있다]

프랑스 전역의 주목을 받았다. 라르작 주민들의 투쟁은

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11호

17


이밖에 제3세계 지역에서의 활동들도 꾸준히 전개 해나갔으며 현재는 조제 보베Jose Bove와 같은 농민운 동가들이 세계무역기구(WTO)에 반대하는 운동을 펼치

<참고한 자료들>

고 있다. ▶‘이브 프레미옹’, 김종원·남기원 역, ‘103인의 자발

나가며 - 라르작, 그리고 2005년 평택

적인 농민 저항 투쟁기 - 라르작’, ‘역사의 격정’, 미토, 2003.

라르작에서 10년 동안 진행되었던 독창적인 비폭력 캠페인은 현재까지 기지확장을 멈추게 했다는 것뿐만 아니라 지역 내 생활개선과 대안들을 개발했다는 점에 서도 성공적이었다. 이 비폭력 캠페인은 지역의 생활개 선을 위해 사회적 대안을 개발함과 동시에 군사적 이용 을 위해 토지의 수용에 반대하는 비폭력 저항을 포함하 고 있었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이 다. 그리고 투쟁과정에서 주민들의 직접적인 참여와 이 에 따른 결정들은 아래로부터 시작하는 운동의 중요성 을 시사해주고 있다. 향후 평택에서 기존의 운동 흐름과 는 다른 대안적 풀뿌리 저항운동을 고민하는 데에 라르 작의 성공사례는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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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스 슈펙, ‘비폭력과 반군사주의’, 2005 동 북아시아 평화 국제회의 자료집 中, 2005. ▶“대책 없이 쌀개방 하는 한국에 놀랐다” 오마이뉴 스, 2004년 9월 13일. ▶ http://www.larzac.org


평화권 모임의 박석진씨(인권운동사랑방) 인터뷰 인터뷰 + 기사작성 + 사진 : 이용석 | 전쟁없는세상 책임활동가 + stego @ jinbo.net

평택이 술렁이고 있다. 지금껏 땅에 살고 땅으로 돌

이라크전쟁을 겪으면서 한국사회도 전쟁과 군대에

아간 농민들이 삶과 죽음의 공간을 두고 싸우고 있다.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었

검게 그을린 팔뚝으로 기껏해야 낫과 쟁기정도의 무기

다. 주한미군의 문제도 종속적인 한미관계뿐 아니라 다

밖에 들 수 없는 땅의 자식들은 세계최강의 군대-미군

른 여러 차원의 문제들을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그런 사

과 한국정부라는 거대한 조직을 상대로 싸움을 시작하

람들 중에서 요새 흥미 있는 활동을 펼치고 있는 평화

고 있다.

권 모임의 박석진씨를 만나보았다. 석진씨는 평소처럼 해맑은 모습으로 사진을 찍을 거였으면 준비할 수 있게

지금까지 한국에서 군기지에 대한 반대는 전부 미군

미리 이야기해주지 그랬냐면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기지 반대였다. 군대가 우리의 삶을 지켜준다는 철저한 믿음 속에서 군대에 관련한 어떤 것도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었기 때문에 한국군대의 군기지에 대한 비판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주로 통일운 동을 하는 분들이 미군기지에 대한 반대운동을 주도해 왔었다.

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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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운동과 인권운동의 만남

있어서 평화권, 그리고 평화운동이라는 것을 전반적으로 고민해보는 자리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평화권모임에

용석(이하 용):

안녕하세요. 먼저 석진씨 소개를

가지고 있는 저 나름대로의 바램입니다.

좀 해주세요.

평화운동의 도전 하나, 석진(이하 진): 안녕하세요. 저는 인권운동사랑방

신자유주의의 무장화에 저항하라

에서 상임활동을 하고 있고, 현안대응팀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석진입니다. 현안대응팀의 활동의 하나로 평화권

용:

평화권모임이 평택 미군기지이전 반대운동에

모임, 평화운동을 모색해보고 평택투쟁에 결합하고 있습

어떻게 결합하게 되었고, 어떤 관점으로 평택투쟁을 바

니다. 근데 현안에 대응한다는 의미로 현안대응팀에서

라보고 있는지?

평화권모임에 결합했지만, 하다가 생각해보니 평화운동 은 현안이 될 수 없고 꾸준하게 문제의식을 가지고소

진: 평화권 모임의 활동가들이 각자 나름대로의 이

고민해나가고 호흡을 길게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드네

유가 있었을텐데, 저같은 경우는 이라크 전쟁의 문제와

요.

아프간 전쟁을 보면서 미군의 전세계적인 제국주의의 문제를 인식하게 되었고, 단지 주한미군반대운동으로 그 용:

석진씨가 참여하고 있는 평화권 모임에 대한

러니까 한국사회에서 주한미군이 얼마나 악한 존재인지

간단한 소개를 해주세요. 그리고 석진씨가 어떤 의미를

를 알려내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전세계의 평

가지고 평화권모임에 결합하고 있는지?

화를 위협하고 있고, 직접적으로는 우리의 의지와는 무 관하게 한반도의 평화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으로 기

진: 제가 생각하는 평화권 모임이라고 말씀드려야

능을 하고 있는지. 그러니까 우리가 평화를 선택할 수

할 것 같아요. 인권에서 평화권이 뭐냐, 인권운동과 평

있는 권리가 전혀 보장될 수 없다는 문제가 와닿았어요.

화운동 양자를 어떻게 접목시켜나갈 것인가를 모색하는

이런 것들이 뭐, 아. 전쟁이 책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구

모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인권에서 평화권이 어떻

나. 우리에게 다가올수 있구나 하는 위기감을 느꼈는데

게 규정될 것인가를 규명하고 싶은 활동가들의 모임이

평택문제가 그것에 굉장히 중요한 매개고리로서 생각이

라고 생각해요

되었어요.

원래는 평화운동에 문제의식이 있지는 않았었죠. 평

그래서 알아보니까, 평화의 문제와 맞닿아있는 문제

택에 결합을 해야한다 그래서 제가 맡게 되었고, 이것인

이기도 한데, 신자유주의 체제의 문제와 연결되는 것이

단기적인 모임이나 그런 것으로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

었어요. 결국에는 평화운동이 제국주의 반대투쟁이나 나

래서 평화권모임이라는 안정적인 구조가 있어야하겠다

아가서는 신자유주의 반대운동과 결합할 수밖에 없는

는 판단이 있었어요. 그러면서 고민을 하니까 평화라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더 적극적으로

문제는 단지 평택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에게

하게 된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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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 이라크 전쟁 등을 통해 ‘주한미군만의 ’ 문제가

있을 거 같거든요. 그러니까 어떻게 평화로운 관계를 만

아니라 신자유주의 체제의 문제이고 국제적인 제국주의

들어내고, 삶을 만들어내고, 실제로 그런 삶을 재구성해

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그런 관점에서 평택투쟁을 어떻

내고 일구어나가는 역량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주민들

게 만들어가고 싶은지.

스스로 그리고 운동하는 사람들 스스로가... 그게 또 하 나의 평화운동의 과제인거 같아요.

진: 사실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평화권 모 임에서 더욱 더 논의를 해봤으면 좋겠어요. 사실 나 스

용: 크게 두 가지 차원에서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스로도 잘 모르고 갑갑하고 그렇기 때문에 같이 논의를

세계적인 차원에서 신자유주의의 문제. 또 평택에 살고

하면 뭔가 보이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연하게

있는 당사자들의 삶, 즉 평화롭게 살 권리의 문제.

드는 생각은... 이것을 온전하게 주한미군만의 문제로 보 면 부딪히는 문제가 있을 것 같아요. 전세계에서 미군의

진: 근데 신자유주의 반대에 있어서 , 우리의 과제

주둔지가 훨신 더 넓어지고 있고 911 그리고 이라크 전

라고 생각하는데 굉장히 구체적인 계기를 통해서 우리

쟁이후에 굉장히 넓어지고 있는데, 그 문제를 단지 미군

가 그런 발언들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근데 아직 저

철수의 문제로만 보면 조금 판단하기 힘든 부분이 있을

를 포함해서 평화권모임은 논리라던지 내용 이런 것들

것 같아요. 그러니까 미군 철수는 맞는데 미국이 철수하

이 부족하다고 생각되어요. 그래서 그런 연구하고 논의

면 미 제국주의의 근본적인 문제의식이 끝나는 거고 평

하는 작업들이 됐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대북을 겨냥

화가 올 것이냐에 대해서 대답할 수가 없자나요.

한 미군 재편의 문제점이나 그것이 어떻게 우리를 위협 하고 있는지, 그리고 미일동맹이 강화되면서 우리에게

이 문제가 어쨌든 신자유주의의 문제라면, 그리고

굉장히 큰 위협을 주자나요. 그것을 어떻게 인권적으로

전세계적으로 주둔하고 있는 미군의 문제가 신자유주의

평화적으로 대응하여 발언할 수 있을 것인가. 평화운동

재편이고 신자유주의가 무장화로 드러나는 문제라면, 평

의 영역으로 끌어드리는 것도 우리의 과제라고 생각하

화운동도 체제에 본질적으로 문제제기 하는 운동일 수

고 있어요.

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평택투쟁도 그런식으로 접근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당장 그것을 들이댈 수는 없죠.

평화운동의 도전 둘, 평화롭게 살 권리를 찾기 위한 싸움

평화권모임이 평택과 만나는 방법 용:

평화권모임의 활동에 대해서 이야기해봅시다.

평화권모임이 평택과 관련해서 한 활동들에 대한 소개 와 석진씨가 나름대로 그 활동들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

한 가지 또 강조하고 싶은 것은 평화권 모임에서 많

는지?

이 논의 되고 있기도 한데, 당사들이, 주민들이 스스로 평화로운 삶을 재구성하면서 인권으로서 평화권을 쟁취

진: 매주 화요일마다 평택 주민 촛불집회에 가서

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가 고민이 돼요. 그 투쟁은 정

주민교육을 하고 있어요. 현재까지는 헌법적 권리에 관

말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투쟁만큼이나 장기적이고 어

해서 매주 화요일마다 빠지지 않고 하고 있고, 그리고 6

려울 수밖에 없을 거 같아요. 근데 그런 것들이 평화운

월 11일에 평택 평화캠프를 진행을 했었어요. 그 외에

동에 있어서 굉장히 핵심적인 내용이 되어야 할 것 같

평화난장이나 인권영화제에서 평택지킴이를 모집했었죠.

고 우리가 고민하는 방향에 있어서도 큰 부분이 될 수

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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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주민교육, 촛불집회 주민교육 같은 것을 봤

로서 의미가 있었다는 평가가 있었어요. 한 편으로는 목

을 때, 이 부분이 장기적으로도 그렇고 우리의 운동과제

표와 방향이 불명확했다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준비한

로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이 들어요. 가면 갈수록 그

사람들 사이에서도 명확히 공유되지 않았고 참가한 단

것이 중요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 주민들이 우리에게

체, 개인들 사이에서도 너무 상이해서 혼선이 있었어요.

반응하는 것이나, 팽성대책위분들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들이나, 아니면 우리가 교육을 하면서 느껴지는 것들

용:

촛불집회에서의 주민교육, 평화캠프등은 기존

이나, 그런 것들을 생각해 볼수록 아... 이게 굉장히 중

의 엄숙하고, 피해자입장으로 접근했던 미군기지반대운

요하구나. 투쟁 당사자들이 스스로의 삶을 평화롭게 재

동에서 볼 수 없던 모습이예요. 굉장히 재미있는 시도라

구성하고, 이것을 어떻게 운동으로 다시 재구성하고 기

고 생각하는데...

획할 수 있을 것인가에 있어서 이것은 정말 굉장히 중 요하다고 생각해요.

진: 제 생각인데, 평화캠프는 현재 그 정도까지 밖 에 할 수 없었던 거 같아요. 운동을 해나가면서 전 세계

지금 교육하고 있는 헌법적 권리 같은 것들이 어떻

미군의 본질을 밝히고, 그들이 어떻게 실질적인 한반도

게 주민들의 삶을 바꿀수 있는지. 즉 투쟁해가며 살아가

평화권을 해치는지 , 평화캠프같은 경우는 그 부분에 무

며 느끼는 전반적인 모순에 대항하여 인권적으로 삶을

게가 실려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지금 우리의 운동

재구성해나가고 스스로 바꿔나가기 위해서 노력하고 싸

의 상황이 몇 천 명을 동원하고 몇 만 명에게 더 알려

워나가는 것이 이런 기획을 통해서 가능할 수 있겠다.

내고 이러기는 현재로는 불가능한 조건에서 평화운동의

혹은 이런 기획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겠다는 생각이

주체들을 발굴하고 주체들을 모아서 공유지점을 만들어

들 정도로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내고 더 큰 힘을 낼 수 있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 이 중요한 것 같아요. 또 캠프라는 것을 통해서 짧지않

그리고 평화캠프같은 경우는 괜찮은 시도였다는 것

은 1박2일의 시간들을 채워 나갈 것인가, 집회가 아닌

은 있었어요. 어쨌든 우리와 같이 이야기를 좀 더 적극

형식에서 서로의 생각을 공유해내고 그걸 또 다른 운동

적으로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모였고, 그 사람들이 평

으로 어떻게 발전시켜나갈 것인가 고민하는 계기가 되

택에서의 평화운동의

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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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반이 될 수 있는 그런 모임으


주민교육 같은 경우는 어떻게 평화로운 삶을 살아갈

저러다가 쓰러지는 거 아닌가하고 걱정이 되더라구요.

것인가, 평화권을 쟁취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어요.

굉장히 스스로를 헤치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근데 사실 우리가 주민교육하려 나가는 거지만 주민들

그러면서 더 적극적으로 스스로에게 상처입히는 방식이

에게 배워오는 것이 더 큰 것 같아요. 서로 의사소통하

아니라 서로가 더 자의식을 높여 나갈 수 있고 서로의

는 과정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 과정에서 서로를 온전하

평화로움을 높여나갈 수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지

게 이해할 수 있을 때만 정말 삶을 고민할 수 있고, 삶

를 더 적극화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그래서

을 평화적인 방법으로 재구성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기

비폭력은 이론적인 것을 떠나서 적어도 그런 부분에서

때문에 서로가 정말 운동적 전망을 고민하는데 있어서

고민해야할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정말 중요한 과정인거 같아요. 근데 전쟁없는 세상에 바라는 것이 있어요. 우리가

평택투쟁을 비폭력직접행동으로

평화권모임에서 미처 논의되지 못했던 것들인데 미군기 지반대, 혹은 평택투쟁에 있어서 군사주의에 대항하는

용: 전에 보니까 우리 모두를 위한 비폭력 교과서

투쟁이라든가 군사주의전반에 대항하는 투쟁으로까지

라는 책을 보고 있던데, 비폭력 직접행동에 관심을 가지

아직 논의를 못하고 고민을 못하고 있는데, 그런 고민까

고 있는 것인가요?

지도 같이 할 수 있도록 문제의식을 계속 제기해주었으 면 해요. 미군기지가 아닌 한국군이면 괜찮나? 한국군도

진: 굉장히 많은 관심은 있어요. 하지만 한편에서 는 헤깔리는 부분이 있어서 꼭 그래야한다고 주장할 수

환경문제, 소음문제가 있는데. 군대자체의 문제일수 있 는 그런 부분...

는 없는 상황인거 같아요. 어쨌든 많이 관심있고, 고민 하려고 하고 생각이 약간 엎치락뒤치락해요. “그래 비폭

군대 자체의 문제, 군사주의의 문제, 안보의 문제를

력일 수밖에 없자나하다가도 ” 다른 한편에서는 “어우 저

건드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 부분에 대한 대안을

런 재수 없는 것들도 있는데 비폭력으로 과연 될까.”

가지는 것이 중요해요. 그런 부분이 해결돼지 않고는 평 택투쟁도 그렇고 평화운동이 투쟁에서 승리하기는 힘들

용: 비폭력이 절대적인 진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것 같아요.

요. 그런데 평화권모임의 활동들을 보면 비폭력직접행동 적인 요소들이 많은 거 같아요.

용: 평화권모임이나 석진씨의 앞으로의 계획은?

진: 비폭력을 적극적으로 고민하게 된 계기는 이론

진: 이번 인터뷰에서는 평화권모임과 평택투쟁을 중

적인 차원은 아니었어요. 평택집회를 가면서 집회를 하

심으로만 이야기가 된 거 같아요. 평택투쟁이 중요한 계

다가 경찰들과 집회참가자들 사이에서 충돌이 있게 되

기이긴 하지만, 우리가 평화권과 평화운동을 고민할 때,

는 경우가 많았어요그 . 과정에서 의도는 폭력이 아닌데,

평택이 모든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명확하다면, 평화

결과적으로 제 느낌에 폭력적인 상황이 발생하면서 시

권의 고민의 폭이 넓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굳이 말하

위참가자들조차도 폭력성이 드러나는 그런 장면을 목격

자면 평택뿐만 아니라 북핵문제라든지, 우리의 평화를

했는데, 평소에 순박하게 살던 주민들이 그런 폭력적인

위협하는 문제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고민하는 속에서

상황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으면서 굉장히 히스테리

운동이 기획이 되면 좋겠어요. 그래서 세미나도 계속하

컬하게 보일 정도로 정신적 손상을 받는 거 같았어요.

고 주민교육같은 프로그램도 계속하고...

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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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없는세상에게 바란다

문제제기하고 바꿔 나갈 수 있는 운동을 기획하고 펼쳐 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제까지 해 왔다고 생

용: 끝으로 전쟁없는세상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각하는데 좀 더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해주면 좋을 거 같아요.

진: 전쟁없는세상을 병역거부자들이 모이는 단체라 고만 알고 있었어요. 근데 국제회의가서 양심에 따라 거부할 권리를 주는 것뿐만 아니라, 군사주의의 문제가 무엇인지, 우리사회 곳곳에, 심지어 우리에게도 물들어 있는 군사주의 문화를, 사회구조적인 것까지도 포함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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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고 진솔하게 인터뷰에 응해주신 박석진씨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와 한반도 전쟁반대 7·10평화대행진 김훈태 | 평택 군문초교 교사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다. 평택역에서 전교조 지회 사람들

성, 노래를 함께 하며 미군기지반대의 뜻을 뜨겁게 모았다. 운

과 만나 범대위에서 대절한 관광버스를 탔다. 차는 교통통제를

동장 안에 모인 사람들만 4, 5천명이고, 들어오지 못하고 학교

이유로 팽성대교 앞에서 멈추었고, 집결지인 대추분교까지는

밖에 있는 분들까지 합한다면 약 일만 여명이 이곳에 모인 것

걸어 들어가야 했다. 한 20분쯤 숲길을 걸었을까. 대추분교 앞

이다.

에 끝도 없이 늘어선 전경버스일 ( 명 닭장차)와 대오를 맞춰 앉 아 있는 전투경찰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캠프 험프리

평화대행진의 주행사인 인간띠 잇기를 위해 각 단위별로

(K-6)의 바깥쪽 철조망을 따라 우리가 계획했던 인간띠를 이

학교를 벗어났다. 풍물패가 길잡이로 나서 주었고, 논길을 따

미 만들고 있었다. 검은 전투복, 곤봉, 방패로 무장한 그들을

라 깃발을 들고 캠프 험프리의 외곽 철조망에 접근했다. 엄청

지나쳐서 대추분교에 들어섰다.

난 규모의 기지를 둘러싼 철조망은 그 끝이 보이지 않았고, 기 지 밖으로는 푸른 논뿐이었다.

2시에 본행사가 진행될 때쯤에는 작은 운동장에 더 이상 사람이 들어올 수 없을 정도로 인파가 몰렸다. 전국 각지에서

전경들은 우리가 기지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논둑길

모였다. 호남과 영남, 충청, 강원, 수도권의 노동자들, 대학생

의 끝마다 방패로 벽을 만들어 방어했다. 여기저기서 충돌이

들, 평화운동가들 뿐만 아니라 저 멀리 제주에서도 힘을 모으

일어났다. 다가오는 시위대에게 전경들은 방패로 밀치고 곤봉

기 위해 지역주민들이 참여해 주셨다.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

을 내리쳤다. 이쪽에서도 깃대인 대나무를 휘두르고 논흙을 던

는 제주도 화순 지역주민 대표의 발언으로 행사가 시작되었다.

졌다. 격렬한 공방전이 이어지고 전경들은 조금씩 밀리기 시작

팽성읍에 사는 꼬마들의 깜찍한 미군반대 노래를 비롯해 한총

했다.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광경이었다.

련과 여성단체의 힘찬 문선, 화성 매향리 출신의 안치환과 평 택 도두리가 고향인 정태춘의 공연 등이 이어졌다. 구호와 함

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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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대행진의 주행사인 인간띠 잇기를 위해 각 단위별로 학교를 벗어났다. 풍물패가 길잡이로 나서 주었고, 논길을 따

집회가 끝나고 돌아오며 내 바로 앞에 있던 전경의 표정

라 깃발을 들고 캠프 험프리의 외곽 철조망에 접근했다. 엄청

을 생각했다. 겁을 먹고 무섭게 쳐다보는 그의 얼굴은 안쓰러

난 규모의 기지를 둘러싼 철조망은 그 끝이 보이지 않았고, 기

웠다. 나는 잠깐 동안 평화주의자병 ( 역거부자로 ) 서 어떻게 그

지 밖으로는 푸른 논뿐이었다. 전경들은 우리가 기지에 접근하

들을 대해야 할지 고민했다. 방패와 곤봉으로 위협하는 그들

는 것을 막기 위해 논둑길의 끝마다 방패로 벽을 만들어 방어

앞에서 동요되지 않는 게 우선이었다. 전경들을 욕하고 때리는

했다. 여기저기서 충돌이 일어났다. 다가오는 시위대에게 전경

일은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겁에 질려 방패를 휘두르는 그

들은 방패로 밀치고 곤봉을 내리쳤다. 이쪽에서도 깃대인 대나

들을 진정시키고 우리의 입장을 차분하게 설명하는 일은 쉽지

무를 휘두르고 논흙을 던졌다. 격렬한 공방전이 이어지고 전경

않았다. 전경들도 우리 시위대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일을 원

들은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다.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광

치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위에서 시키는 일이고 제대로 하지

경이었다.

못했을 때에 심한 기합과 질책이 있다는 게 두려웠으리라. 전 투경찰에서도 병역거부자가 나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

내가 부딪친 곳은 큰 충돌이 생기진 않았으나 거친 몸싸

은 민족끼리 이렇게 싸울 이유가 어디 있는가.

움이 벌어졌다. 전경들이 미는 바람에 많은 사람이 논바닥에 넘어져 흙투성이가 되었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흡사 로

미군주 둔의 명분은 더 이상 없다는 게 분명하다. 전쟁 억

봇 같았다. 같은 복장에 똑같은 구호, 막무가내로 밀어내는 모

지력의 차원에서 배치되었던 연천과 동두천 일대의 미군이 내

습에서 공권력의 기계적인 폭력성을 느꼈다. 철조망 가까이 다

려오고, 용산을 비롯해 각 지역의 미군부대가 평택에 집결한다

가가기 위해 한발씩 나갈 때 맨 앞에서 방어하는 전경들의 방

는 것은 주한미군의 존재 이유가 달라졌음을 뜻한다. 가장 큰

패에 허리를 맞았다. 자세히 보니 아직 앳되보이는 얼굴이 겁

목적은 중국에 대한 견제일 것이다. 평택은 지리적 특성상 중

에 질려 있었다. 화가 나 보였지만 그것은 겁에 질렸기 때문이

국을 군사적으로 봉쇄하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의 역할을 하게

다. 차분하게 대응했다. “우리는 여기에 정식으로 집회신고를

될 것이다. 중국은 현재 이를 굉장히 예민하게 주시하고 있다.

하고 온 겁니다. 당신들이 막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다른 하나는 북한에 대한 전쟁 수행능력을 높이기 위한

무얼 잘못했다고 때립니까, 때리기를. 비켜 주세요. 같은 나라

것이다. 전쟁 발발에 대비해 비밀리에 한반도 탈출 작전까지

사람들이 왜 이래야 합니까?” 가능하면 감정적 충돌이 없도록

벌이는 한편 기지확장을 통해 전쟁 수행의 준비를 좀더 면밀히

애썼다. 방패로 나를 때린 전경은 잠시 후 곤혹스러운 표정으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 주한미군은 한반도와 동북아

로 “아까 때린 건 죄송합니다하 ” 고 사과했다. 그래도 위의 지침

의 평화를 위협하는 가장 큰 골칫덩이가 된 것이다.

인지 물러서지는 않았다. 주한미군 반대투쟁을 하는데 같은 나라 사람끼리 폭력을 결국 저지선은 뚫리긴 했지만 양쪽 다 부상자가 많았다.

행사해야 하고, 미군들은 망루에 올라가 태연히 바라보고 있는

철조망 가까이 올라왔을 때 다친 동료를 후송하는 전경들을 도

풍경은 비극적이다. 미군기지는 미국땅이라고 한다. 푸른 벼가

왔다. 다리가 부러졌는지 몹시 고통스러워했다. 방패에 올려

자라는 들판 400만평이 또 미국의 땅이 될 판이다. 그들의 동

옮기는 게 불안해 보여 방패를 치우고 여섯 명이 양쪽 어깨와

북아 전략에 따른 기지이전을 정부는 지역주민의 의사 반영도

허리, 다리를 붙잡고 뛰어서 구급차 있는 데까지 후송했다. 가

없이 땅을 내주고, 이전 비용까지 모두 대 주고 있다. 이게 대

방에서 물을 꺼내 흙묻은 얼굴에 붓고 손수건으로 닦아 주었

체 무슨 황당무계한 일이란 말인가? 미군이 더 이상 주둔할 명

다. 흙투성이에 땀이 범벅이었다. 시위대에서도 전경들이 던진

분이 없다면 내보내면 된다. 따라서 우리의 할 일은, (미군기지

돌에 맞아 피를 흘리는 사람들이 후송됐다. 아무래도 비무장

확장반대 구호에 맞춰 보자) 오는 미군 막아내고, 있는 미군

상태인 우리의 피해가 컸다. 우리는 철조망에 미군기지확장반

몰아내자! 평택은 우리의 땅, 기지확장 저지하자!

대의 뜻을 담은 노란천을 묶고 길게 늘어서서 노래를 불렀다. 상징적인 의미로 한쪽의 철조망에 밧줄을 묶어 당겨서 무너트 리기도 했다. 인간띠 잇기가 끝나고 우리는 다시 대추분교로 돌아와 단위별로 정리를 한 뒤 해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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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외세에 의해 무너지기 마련이다.


숲 속에서 나눈 열망, 평화를 그리며..

WRI 국제세미나 참가후기, 우이동 봉도수련원에서.. 철기 | 평화네트워크 + 적극적 평화행동

정화(淨化)

여유

북한산 발치에 자리잡은 봉도 수련원에서 국제 세미

세미나 장소에 들어가 둘러보면 ‘국제’ 세미나라는

나가 열리는 동안, 아침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우이동

사실을 다시금 상기할 수밖에 없다. 한국인들과 외국인

으로 실려 가야 했다. 그러나 버스에서 내리면 오히려

들이 섞여 이야기를 듣고, 나누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

몸은 가벼워진다. 빗물로 불어난 개울 위 다리를 건너다

서는 낯선 모습들이 눈에 띄기도 한다. 나이 지긋한 운

넋 놓고 흙탕물을 바라보곤 했다. 습기를 머금은 숲의

동가들이 바닥에 드러누워 장난을 쳐가며 세미나에 참

향기가 마음을 진정시킨다. 구름 걸린 북한산 봉우리는

여한다. 쉬는 시간은 30분이고, 점심시간은 두 시간이다.

아련한 기대를 부풀린다. 평화 세미나를 하기에는 좋은 장소다. 일종의 통과예식처럼 세미나 장소에 이르기 전 에 한 차례 정화를 받는다.

[자유롭게 발제를 경청하고 있는 모습]

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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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는 정해진 일정이 없다. 꼿꼿한 자세로 몇 시

도 많이 있다. 운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세계 각

간이고 이야기를 나누고, 자정이 지나도록 빈틈없이 짜

지에서는 다양한 운동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고

여진 일정들이 없으면 일종의 죄책감을 느끼곤 하던 나

있다. 그 운동들은 많은 점에서 다르면서도 동시에 많은

로서는 새로운 자극이었다. ‘한 줌의 여유를 ’ 말버릇처럼

면에서 서로 닮아있다.

되뇌이면서도, 그간 함께 활동에 참여했던 이들의 여유 를 짓누르고 있던 건 아닐까라는 반성을 새삼스레 하지

평택에서 우리가 해왔던 일들을 영국에서, 오스트레

않을 수 없었다. 운동을 하면서 종종 시간적 절박함에

일리아에서, 일본에서 여러 운동가들이 하고 있다. 이러

직면하게 된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먼 길을 가고 있는

한 운동들의 동일성과 차이를 분명하게 밝혀내고, 각자

것이다. 때때로, 아니 종종 우리에게는 ‘한 아름의 여유’

가 처한 조건에 맞게 운동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것이

가 필요하다.

우리의 과제이다. 또한 이러한 운동들이 서로 어떻게 연 대하여 합력을 산출할까를 고민해야 한다.

비폭력 국제연대를 이야기하면서 많이들 2003년 2월 15일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가는 중에 공통되는 가장 큰

을 예로 든다. 그러나 2년여 전의 예를 바라보며 전쟁과

화두는 ‘비폭력이었다 ’ . 이미 오래도록 비폭력 운동을 지

같이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사태만을 기다려서는

향해온 <전쟁 저항자 인터내셔널>에서는 다양한 비폭

안 된다. 현재 맞닥뜨린 문제들이 다른 지역의 문제와

력 운동의 원칙과 사례들을 소개했다.

어떻게 관련되고, 이에 대한 저항을 어떻게 연대시킬지 계속해서 고민하고 현실화해나가야 할 것이다.

화염병과 쇠파이프에 익숙한 한국의 집회문화에서 비폭력 운동의 활성화는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나

외출

름으로 비폭력에 관련된 책자를 이것저것 뒤적여 보았 지만 여전히도 급박한 상황에서 비폭력 운동이 어떻게

세미나 두 번째 날 먼 곳에서 온 참가자들과 함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에 대해 판단이 서지 않는 경

시내로 외출을 나갔다. 평택미군기지 확장 반대 300일

우가 많이 있다.

째 촛불집회가 광화문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지하철을 나누어 타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광화문에

사실 유혈 폭력이 눈앞에서 가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도착했을 때는 이미 집회가 진행 중이었다.

비폭력으로 대응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 도 세미나에 참여한 운동가들의 경험은 비폭력 운동의

비록 구호와 발언들을 다 알아듣지는 못했을 테지

유효성을 보여준다. 법복을 몰래 ‘빌려’ 입고 재판장에

만, 집회에 참여한 외국인 운동가들이 해 준 말들이 인

입장하고, 담을 뛰어넘어 교도소 ‘안으로 들어간’ 사례,

사치레만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들에게 유익한 경험이었

생명이 위협받는 팔레스타인 땅에서의 비폭력 운동의

을 것이다. 물론 평택 싸움을 계속 이어온 한국의 집회

전개 사례 등은 우리가 전개해온 운동 방식들을 재고할

참가자들에게도 나름의 힘을 더해주었으리라 믿는다. 집

것을 요구한다.

회 도중에 어느 민족주의자의 망언으로 안타까운 일이 생기기도 했지만 여기서는 그 문제를 굳이 거론하지는

다양성, 상동성 정말이지 세상에는 아직 접하지 못한 경이가 너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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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으련다.


부분 중의 하나는 많은 논의가 추상적인 수준에 머물렀

헤어짐, 남겨진 문제들

다는 점이다. ‘동북아’ 지역의 문제에 대한 집중적인 고 결국 4일은 빠르게 흘러갔다. 저녁 식사를 준비해

찰과 공동의 대응 모색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소규

놓은 식당에서 빨리 내려와 달라는 부탁이 들려오고 나

모 토론에서 일본과 한국의 연대에 대한 구체적인 안을

서도 사람들은 아쉬운 작별 인사를 하느라 쉽게 자리를

제출한 것은 그 중에 남겨진 성과라 할 수 있겠다. 물론

뜨지 못했다. 많은 경우에 헤어짐은 아쉽다.

추상적인 논의들도 각자의 운동에 적용시키면서 현실화 해내는 것은 운동가와 운동 단체 각자의 몫일 것이다.

그러나 운동하는 사람들이 ‘국제연대를 ’ 위해 만났

길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나에게도 이번 4일은 강한 기

다면 헤어짐에서 남는 것이 아쉬움일 수만은 없다. 지속

억으로 남겨졌다. 이 기억이 단지 아름다운 추억만이 아

적인 연대에 의한 실정적 효과의 산출을 현실화시킬 수

니라, 운동과 삶의 실질적인 동력과 원칙으로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시작이라는 ’ 말로써 이를 유예시킬

있도록 힘쓰겠다는 다짐과 함께 짧은 글을 맺는다.

수만은 없다. 이번 세미나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던

[국제회의 참가자들과의 뒤풀이 모습 ]

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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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사교육 거부..

학벌주의를 재생산하는, 우리 삶 속의 사교육에 대한 성찰을 위해 임재성 | 前전쟁없는세상 책임활동가 + 병역거부 수감자

뭐해서 먹고 살까하는 고민을 하다가.. 얼마간의 고민 속에 역시 사교육은 내가 할 짓이 아 징역살이가 익숙해진 얼마전부터 '출소 이후에 ' 대한

니다라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러면서 문득 이런 나

계획을 조금씩 짜보기 시작했다. 닫힌 공간에서 생각만

의 마음을 '양심적 사교육 거부라고 ' 할 수 있을까하는

으로 짜는 계획이기에 나가서 거의 다 바뀔 것을 알고

생각을 했다. 학벌주의를 적극적으로 조장하는 사교육을

있지만 그럼에도 자유의 시간을 상상하며 빈 종이 위에

내 삶에서 다시는 돈벌이로 선택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차근차근 정리하는 맛이란! 그 계획 중에서 주된 하나는

말이다. 계속 이어지는 두 가지 생각. 그렇다면 이 사회

역시 '돈벌이엿다 ' . 지금까지야 대학생 신분이었고, 졸업

속에서 사교육은 무엇이고 그 사교육을 내 삶 속에서

직후에도 병역거부로 신변이 불안했기에 이것저것하며

거부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용돈 정도를 해결하는 것으로 버틸 수 있었지만 이후에 는 상황이 달라지리라.

입시전쟁도 전쟁인 이유, 전쟁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피해자가 되기에..

이후 전쟁없는세상 활동과 공부를 계속 하려고 맘 먹고 있기에 돈벌이에 대한 선택의 폭이 좁은 상황에서

모든 것이 소수의 기득권층에 집중된 한국 사회에서

자연스레 생각이 간 곳은 사교육. 수감되기 전 10개월

학벌은 또 하나의 배타적인 특권으로 존재한다. 그 속에

정도 '열심히' 학원강사 노릇을 한 이후 얻은 '사교육은

서 '학벌주의는 ' 사회구성원들에게 '학벌특권의 ' '입장권'

운동하는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라는 생각에 변함은

에 대한 욕망을 주입하여 그 독점과 차별을 정당화시키

없었지만 내 상황에서는 여러모로 매력적인 돈벌이기도

고 문제에 대한 근본적 비판을 가로막는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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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것을 차치하더라도 이젠 더 이상 '입장권의 ' 경

입시전쟁이 치열하면 할수록, 보다 많은 폭력이 학생과

쟁 자체도 모든 계층에게 공정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학부모 위에 가해지면 질수록 사교육은 신이 난다. 그렇

서울대 신입생 중 강남 학생의 비상식적인 비율을 보더

기에 사교육은 학벌주의를 점점 더 능동적으로 조장하

라도 이미 학벌은 부세습의 전형적인 '예이며 ' 그 세습

고 강화한다. 마치 전쟁 속에서 군수산업체의 그것처럼

을 정당화시키고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사교육이다.

말이다. 전쟁으로 돈벌이가 잘되니 이제는 전쟁 자체를 만들어내는 군수산업체의 모습과 지금 우리 사회 속의

학벌주의는 우리 사회에서 수 많은 이들에게 폭력을

사교육은 섬뜩할 만큼 유사하다.

가한다. 명문대라는 학벌을 얻지 못한 이들에게 평생 가 해지는 열등감의 폭력이야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입

'강사전원 서울대 · 명문대 출신' , '명문대를 위한

시 전쟁이란 ' 표현처럼 모든 학생과 학부모는 '학벌이라 '

최상의 선택' 입시가 끝나면 전리품처럼 내세워지는 '어

는 강요된 승리를 위해서 입시제도에 따라 일사분란하

느 대학 몇 명의 진학의 ' 홍보물. 사교육은 교육이 아니

게 서로를 짓밟는 전쟁을 치룬다. 그 전쟁의 동인이 학

라 팔려야 하는 서비스기에 소비자들의 구매 욕구를 철

벌주의이며, '학벌이라는 ' 승리가 허구이기에 그 속의 모

저히 자극해야 한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학벌주의를

든 이들은 피해자일 수 밖에 없다. 학부모는 자신이 당

강화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실상 본고사 부활이라

한 수모를 겪지 말라며 모든 것을 희생하며 사교육에

는 2008년 입시안에 모든 시민단체외 교육계가 반대 투

매달리지만 결국 자신의 무능력에 한탄할 뿐이다. 학생

쟁을 준비하는 이 때에 쾌재를 부르는 사교육, 발빠르게

역시 자신의 개성과 꿈을 거세당한 채 숨막히는 경쟁

움직인 강남 한 학원에서 '이제는 논술이다! 서울대 법

속에서 그 나이에 누려할 것들을 희생당한다. 견디다 못

대 · 의대 대비 초등학교 논술반에 ' 경쟁률이 200:1이었

해서 자살까지 선택한 학생들의 비극은 이 전쟁과 폭력

다는 이야기를 보며 암담함까지 느꼈다.

이 멈추어져야 함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교육의 공공성, 입시 경쟁 철폐, 대학 평준화, 공교 그렇다면 이 전쟁에서 승리자는 누구일까? 명문대에

육 정상화라는 가치와 가장 반대되는 학벌주의와 운명

가서 고급 노동력이 되고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게 된

을 함께하는 사교육, 학벌주의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

학생이 승리자라고 볼 수는 없다. 그 역시 자신의 삶과

향을, 그리고 사교육과의 관계를 깨달은 이상 사교육을

꿈에 대한 모색의 기회를 박탈당한 채 단지 주어진 목

돈벌이의 선택항으로 고민할 수는 없었다.

표를 얻은 것이기 때문이다. 전쟁에서 수 많은 적군을 죽여서, 승리한 군대의 일원이 된 군인 개인을 '승리한 군인으로 ' 볼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이 사회는 그들을 승리자라고 말하고 있지만 말이다.

사교육과 군수산업체의 유사성

공공연한 비밀, '운동권 나중에 다 사교육 하더라.' 앞의 긴 서술이 무색할만큼 학벌주의와 사교육의 문 제점은 운동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다고 생 각한다. 그럼에도 운동하는 이들 중 상당수는 사교육에

고급노동력을 자신의 수고 없이 얻어낸 기업과 자 본, 이 기업과 자본에겐 분명 이 전쟁은 큰 이익이다.

임하고 있다. (이는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학 시절 내내 고액과외의 최선두에 있었다.)

그리고 이익을 보는 또 한군데가 있다. 바로 사교육이다.

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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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으로 인해서 다른 직장에 근무하는 것이 힘들기

심적 거부는 ' 무엇인가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에 생계를 위해서 과외나 학원강사를 하는 것을 넘어서

의 그것을 거부하는 삶을 살아감으로써, 대안적인 행위

서 과외방이나 학원을 차리기까지 한다. 꽤 유명한 논술

로서 이야기한다. 또한 '거부라는 ' 행위로서 외화되지만

학원들이 대부분 운동하는 사람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

그와 함께 '왜' 그 거부를 하는가에 대해서 다른 이들에

다는 것 역시 공공연한 사실이다. 여러 이유야 있겠지만

게 공감을 구하고 함께 성찰하기를 제안한다. 채식주의

이 정도까지 적극적인 것에 대한 설명이 되지는 못할

자(양심적 육식거부자)는 육식을 하는 이들을 비판하지

것 같다. 어쩌면 '거대 담론이나 ' '구조에 ' 대한 분석과

않는다. 대신 이 사회 속에서 지금의 육식 문화가 어떻

비판에는 능하지만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이 부족한 것

게 유지되는지를 함께 분석하며 스스로 '채식을 ' 하면서

은 아닐까. 페미니스트 건 파시스트건 집에서 설거지 안

도 잘 살 수 있음을 보여준다. 양심적 병역거부 역시 마

하는 것은 똑같다라는 이야기를 진보건 보수건 사교육

찬가지다. 병역거부자는 군대에 가는 이들에게 '당신은

시장에서 학벌주의 조장하는것은 똑같다고 대유하면 비

살인행위를 연습하는거야라고 ' 비난하지 않는다. 군대와

약일까. 페미니스트 남성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기득

군사훈련에 대한 자신의 성찰을 이야기하고 그 성찰을

권을 버리고 가사노동을 해야하는 것처럼 '진보가 ' 되기

바탕으로 그 '폭력을 ' 거부하는 삶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위해서는 자신의 학벌을 팔이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유

병역거부자의 수나 대체복무제 입법 여부로 판단할 수

혹을 거부해야 하는 것이 맞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없는, 다른 차원에서의 울림을 병역거부자가 만들고 있 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런 비판은 또 다른 폭력이 될 수도 있다. ' 운동이나 ' '진보에 ' 대한 선험적이고 총체적인 기준을 정

그런 맥락에서 '사교육은 내가 할 짓이 못 되라는 '

해놓고 '운동하는 사람이라면, 진보라면' 이렇게 살아야

생각에서 더 나아가 '양심적 사교육 거부라는 ' 또 하나

한다고 틀에 맞투는 것은 이 체제가 개인을 규격화하는

의 거부를 삶의 원칙으로 삼고자 결심했다. 아직도 너무

방식과 맥락적으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에코 페미니

열심히 사교육에 종사하는 '진보에 ' 대한 비판의 마음이

스트들 사이에서의 '채식논쟁도 ' 이렇게 결론난 것으로

있기는 하지만 비판보다 더 큰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에

기억한다. 채식을 하지 않는 에코 페미니스트들을 설득

사교육 없이도 어떻게 즐겁고 멋지게 운동하며 살 수

할 수 있지만 비판하는 것은 옮지 않다고.)

있을까를 더욱 열심히 고민한다.

비판의 아닌 성찰의 나눔, 그것이 '양심적 거부가 ' 아닐지.

사소한 것에 목숨거는 이유, 사소한 것 하 나에도 용기가 필요하기에

그렇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결론을 강제하

얼마전 한 친구가 보내준 편지에서 요즘 운전면허를

고, 그 결론과 다른 모습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삶 속

배우고 있는데 자기가 석유에너지 소모와 환경오염에

에서 스스로의 선택과 행위를 성찰해보고 그것이 체제

일조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죄책감이 들었다는 글을 읽

속에서 가지는 맥락을 살피는 방법을 나누는 것이 아닐

었다. 비록 그 친구가 그 죄책감으로 인해서 운전면허를

까.

따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런 모습이 '가능성이라고 ' 느껴졌다. '양심적 거부가 ' 바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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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회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자본과 체제에

만 가능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 삶의 성찰과 긴장

타협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 타협은 어디까지나 끊

에서 위에서 이루어진 '사소한' 선택들이 결국 세상을

임없는 성찰과 반성을 통해 팽팽한 긴장관계 속에서 이

바꾸는 울림의 시작일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사소한선 '

루어져야 한다. 그래야만 그 타협이 포기로 귀결되지 않

택을 위해서는 자본과 체제가 주는 달콤함을 '거부하는 '

고 저항의 가능성이 되는 것이다. 핵폐기장 반대를 외침

신념과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과 세상을

과 함께 조금 덥지만 에어콘 대신 선풍기를 쓰는 것, 입

바꿀 수 있는 신념과 용기가 말이다.

시지옥 반대를 외치며 조금 덜 벌고 힘든 일이지만 사 교육 말고 다른 일을 하는 것, 그리고 운전면허는 땄지

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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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난 모니터, 그 안에 ‘나는 ’ 없다..

사이버 폭력은 더 이상, 작고 네모난 모니터 안의 폭력만은 아닌 거에요. 그렇죠? 가람 | 전쟁없는세상 책임활동가 + kazkada0305 @ hanmail.net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습니다. 모니터 화면을 들

들 떨리는 몸을 어찌할 바를 몰라 그저 눈을 질끈 감고

여다보는 것이 힘겨워서, 하루가 멀다 하고 앉았던 컴퓨

양 팔로 몸을 감싸 부여잡은 채 한참이나 진정시키려

터 앞을 오랫동안 비웠더랬습니다. 게시물 제목을 훑어

애썼습니다.

내려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겨우, 정말 겨우 상처가 아물어가고 있었는데. 두근, 두근, 두근, 옆 사람에게 들리지는 않을까 심

또다시, 채 아물지 못한 상처가 벌어져 기어이 피를

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하고, 호흡이 가빠졌거든요. 간혹,

흘리고 맙니다. 모니터 앞에 얌전히 앉아만 있는데도 머

내용을 한번 읽어볼까.. 용기를 내어 마음을 다잡고 후~

리가 어질, 하며 눈앞이 아득해 지는 이 느낌을, 혹시

깊게.. 깊게 심호흡을 합니다. 제목을 클릭하면 곧 밀려

아시나요?

오는 주체할 수 없는 떨림과 나도 모르게 흘러내리는 눈물에 보지말걸.. 하고 뒤늦은 후회를 했습니다. 모니터

언제나 끝이 날까요. 아주 오래 전, 군 가산점 폐지

를 꺼버려도 그 기억과 느낌은 고스란히 남아 나를 괴

문제6)에서부터 불거지기 시작하여 월장사태7), 이대총

롭혔고, 옆 사람이 보고 왜 그러냐고 물을 만큼 부들부

학 테러8), 서해교전 관련 글 사건을 거쳐 지금의 전쟁 없는세상에까지 이어지는 사이버 폭력이 말이에요.

6) 1999년, 이화여대 졸업생 5명과 장애남성 1명이 ‘공무원시험 시 군필자 가산제도 위헌에 ‘ 관한 헌법소원을 주도했다는 소문에 근거하여 이화여대 학생들에 대한 일부 남성 네티즌들의 집단적 사이버 성폭력이 가해졌다. 7) 2001년, 부산대 학생들이 만든 여성주의 웹진 『월장』에 게재된 대학 내 군사주의문화에 대한 글에 대하여 예비역을 비롯한 일부 남성들이 집단으 로 폭력을 가한 사건. On-line 게시판과 메일, 쪽지를 통한 사이버 성폭력은 물론 몇몇 관계자의 개인 신상까지 공개하여 성인사이트에 게재하고 협박 과 폰섹스를 요구하는 전화를 거는 등 Off-line까지 그 폭력이 지속되었다. 8) 2002년, 징병제와 군사주의에 반대하며 여성의 이름으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지지하는 입장을 발표한 이화여대 총학 게시판에 ‘이대생들 ’ 에 대한 집단적 사이버 성폭력이 일어났고, 이를 주도한 몇몇 남성 네티즌들은 형사 처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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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 도배, 공갈/협박, 여과되지 않은 욕설, 개인

습니다.

신상 공개, 사이버 성폭력... 목적의식을 잃은 채 익명성 을 무기로 오로지 감정에 의지하여 게시판을 떠도는 폭

목이.. 메입니다.

력적인 글들은 권위와 권력을 뛰어넘어 모두가 함께 호 흡할 수 있기를 바라며 정성스레 만들어진 공간을 순식

익명, 이라는 말은 얼마나 안전한지. 그리고 그 뒤

간에 어두운 나락으로 밀어뜨립니다. 그 공간을 만든 사

에서의 비난, 이라는 말은 얼마나 편안한지. 하지만 이

람들, 그리고 그 공간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까지 함께

단어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사용하느냐에 따라 사이버

말이지요.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

공간은 현실을 억압하는 공간이 될 수도 있고 현실과

습니다. 다양한 생김새만큼이나 다채로운 생각들이 존재

호흡하는 공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나의 말을 숨김없이

하고, 가끔은 다른 생각 때문에 분쟁이 일어나기도 하지

자유롭게 하기 위한 익명이 아니라 나의 감정을 여과

만 서로를 존중하며 공존의 방향을 모색하는 방법을 선

없이 퍼붓기 위한 익명은 어떠한 소통의 구실도 하지

택하도록 우리는 배워왔습니다. 때로는 나의 논리로 상

못한 채 끊임없는 폭력만을 재생할 뿐입니다.

대방을 설득시키기도 하고, 가끔은 상대방의 논리에 공 감하여 자신을 설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어

제가 애써 글로 묘사하는 아픔들이, 현실 같지 않은

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나의 말은 이 사람에게

가요? 아무렴, ‘진짜로’ 폭력을 당한 것도, ‘진짜로’ 성폭

어떻게 전해질 수 있을까, 진지하게 서로의 생각을 공유

력을 당한 것도 아닌데, 그만큼이나 할까.. 싶은가요?

하고 토론하고 싶어 하는 글들조차 익명성이라는 훌륭

아무 이유 없이 또 바르르 떨리는 몸을 부여잡고 입

한 유리벽 뒤에서 난무하는 감정적 욕설들에 묻혀버리

술을 깨물면서,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은 채 가슴

고 마는 현실에,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한구석에 선명히 새겨진 아픔과 두려움은 오늘도 거짓 말처럼 생생합니다.

미지의 ‘그들에 ’ 대한 두려움에, 그리고 그 기분을

..아세요? 이 글은 원래 ‘칼럼란에 ’ 실리기로 하고

또다시 되새김질 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가능하면 특정

쓰기 시작한 거였어요. 하지만, 지금까지 읽으신대로 이

정보나 구체적 사건 등은 깊이 거론하지 않고 조심스럽

글은 칼럼이 아니예요. 칼럼은 자신의 주장을 마음껏 펼

게 뭉뚱그려진 글을 쓰려고 했지만, 아주 살짝만 제 마

치는 글이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기억을

음을 드러낼까요. 양심적 병역거부를 지지하는 여성으로

샅샅이 더듬어 비판할 부분들을 찾아내야만 했어요. 그

서, 그리고 한국 사회에 만연한 군사주의와 군대에 반대

과정이, 저에게는 다시 돌이키고 싶지 않은 부분이었거

하는 개인으로서 저는 군복무자들이 느끼는 억울한 심

든요. 더불어, ‘칼럼을 ’ 쓸 경우 칼럼란에 이 글이 실리

정과 상대적 박탈감을 조금일지라도 알고 있다고 감히

게 되겠죠. 하지만 그건, 저한테는 너무 큰 두려움인걸

말씀드립니다. 군대 경험은 없지만, 그 마음들을 들으려

요. 소식지란에는 어쩔 수 없이 실리겠지만, 홈페이지

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리고 ‘사회라는 ’ 군대 안에서의

메인을 장식하고 있는 칼럼란에 제 이름과 함께 이 글

군사주의라면, 기쁘진 않지만 경험이 많거든요. 하지만

이 노출되는 상상만으로도 머리가 지끈, 가슴속 저 깊은

그 아픔과 분노를 억압적인 군대제도, 징병제, 보장되지

곳에서부터 뜨거운 무언가가 치밀어 올라와요.

않는 군대 내 인권, 혹은 사회에 만연한 군사주의 문화, 이를 유지하고자 하는 특권층에 투사하지 않고 왜 익명 이라는 유리문 뒤에 숨어 자신이 받은 것과 다를 것 없

사이버 폭력은 더 이상, 작고 네모난 모니터 안의 폭력만은 아닌거예요. 그렇죠?

는 폭력을 또 다른 피해자에게 가하는 행동을 되풀이하 는지는 아무리 이해하려고 노력해 봐도 이해할 수가 없

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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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다하르를 보길 권하는 나의 이유..

우린 모두 살아갈 이유가 필요합니다. 힘든 순간마다 희망은 그 이유가 됩니다. 진흙 | 전쟁없는세상과 친한 친구

지난 봄, 전쟁없는 세상 사무실에 들러 모모씨와 서로의 안부 를 묻다가, 당시 내가 벼르고 벼르던 영화동아리에 드디어 가입해 서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만날 영화만 본다는(하하) 이야기가 나 왔던 적이 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가 모모씨가 나에게 이런 말 을 했던 것이 기억난다 - 영화를 만든다는 건 할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고, 이야기는 남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하는 것인데,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영화를 만드는 것은 자신의 눈에는 별로 좋 게 보이지 않는다고. 나 개인적으로는 영화를 이야기/줄거리의 전 달도구로 여기는 시각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지금까지도 모모 씨의 그 의견에는 별로 찬성하지 않는 편인데, 그런 나도 종종 ‘이 야기를 전하기 위한 운명을 ’ 타고 태어난 영화들이 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이런 영화들은 또한, 널리 퍼뜨려지고 가능한 한 많 은 사람들에게 선보여야 할 일종의 사명 같은 것을 지니고 있는 듯 도 하다. 나는 그런 영화들을 조금 알고 있고, 그런 영화들을 이미 본 이상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붙잡고 ‘이 영화를 보세요’, 혹은 ‘우리 이 영화를 함께 보아요’ 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이상 한 느낌까지 지고 있다. 그 중 한 영화가 바로 <칸다하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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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제목 ‘칸다하르는 ’ 아프가니스탄의 한 지

고, 심지어는 시체의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 와서는 그걸

명이다. 영화는 캐나다에서 칸다하르로 향하는 한 여성

돈 받고 팔기도 한다. 미국에서 온 한 가짜 의사는 ‘빈

의 발길을 쫓아가는 식으로 진행된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곤은 사람들로 하여금 무슨 짓이든 할 수 있게 만든다’

캐나다로 탈출한 후 그 곳에서 아프가니스탄의 여성 인

고 말한다. 칸다하르로 가는 길에는 지뢰가 매우 많이

권 등에 대해 글을 쓰는 저널리스트인 그녀는 자신의

묻혀 있어서, 지뢰 폭발 때문에 다리가 하나 혹은 둘 다

여동생이 20세기의 마지막 개기일식이 있는 날 자살을

없어져 의족을 구하려고 적십자 캠프에서 1년을 기다리

하리라는 편지를 받고 여동생이 있는 칸다하르로 간다.

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편지를 받은 것은 편지가 부쳐진 지 두 달 후, 그녀가 아프가니스탄으로 출발한 것은 편지를 받자마자, 그리고

결혼한 여자들은 자신의 남편을 제외한 남자들에게

온갖 검열과 단속의 관문을 거쳐 아프가니스탄 국경에

얼굴을 보여서는 안 되기 때문에 항상 머리부터 발끝까

도착한 것은 편지를 받은 지 25일 후이다. 개기일식을 3

지 부르카를 쓴다. 결혼한 여자들은 또한 의사에게 얼굴

일 앞둔 시점이다. 급박한 상황.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에

이나 배를 내놓고 진료 받을 수 없는 것은 물론, 남자인

도착했다고 해서 칸다하르로 곧장 갈 수 있는 것은 아

의사와 직접 이야기를 하지도 못하고 대리인을 통해 말

니다. 그녀, 카메라, 그리고 이 영화를 보는 우리는 내전

을 주고받는다(뻔히 서로의 이야기를 다 들을 수 있음

이 한창인 아프가니스탄의 참혹한 실상들을 두 눈으로

에도 불구하고). 여자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이제 여자

똑똑히 보며 길을 헤쳐가야만 칸다하르에 겨우 도착할

학교들이 모두 문을 닫기 때문에 더 이상 수업을 받을

까 말까 하는 실정이다.

수 없게 되고, 문 닫힌 학교를 떠나 집으로 안전하게 돌 아가기 위해 선생님으로부터 지뢰를 피하는 방법을 배

<칸다하르>는 실제 이야기에 기반을 둔 영화이

운다. 지뢰 위에는 예쁜 인형이 놓여 있는 경우가 종종

다. 극영화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거의 다큐멘터리나

있어서, 어린이들은 그 인형을 잡으러 가다가 지뢰를 밟

다름없는 영화라고 해도 될 것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곤 한다고 한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5분에 한 명씩 사

저널리스트 나파스 역을 맡은 닐로우파 파지라는 실제

람이 죽어나간다. 나파스 역시 자신이 언제 죽을지 모르

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캐나다로 탈출해 인권과 관련된

므로 항상 녹음기를 가지고 다니며 자신의 여정을 녹음

글을 쓰고 있는 저널리스트인데다, 이 영화 자체가 그녀

한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자신을 발견한 사람들

가 그녀의 친구에게서 이젠 희망이 없으니 자살하겠다

이 그 녹음테이프를 비행기의 블랙박스처럼 사용할 수

는 편지를 받고 아프가니스탄에 돌아가려 하다가 파키

있으리라는 생각에서다.

스탄 국경에서 길이 막혀버리자 이란의 영화감독 모흐 센 마흐말바프에게 자신의 여정을 영화로 남겨달라고

닐로우파 파지라는 인터뷰와 강연을 통해 ‘우리의

부탁해 만들어진 영화이기도 하다. 파지라의 청이 있자

실상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방법으로 영화를 택

마자 영화가 곧장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그녀가 그녀의

했다고 ’ 말하곤 한다. 그녀는 CNN이나 BBC의 카메라가

친구를 구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에 들어가는 것도 실

아닌 그녀 자신의 언어를 통해 자신의 고향이 겪고 있

패했기 때문에 100%의 ‘사실을 ’ 담은 영화는 아니지만,

는 상황을 보여준다. 이것이 바로 이 영화가 중요한 이

이 영화에 나오는 아프가니스탄의 모습은 실제라고 생

유 중 하나이다. 백인의 눈을 통해 걸러내어지지 않은

각해도 좋을 것이라고 닐로우파 파지라는 여러 인터뷰

아프가니스탄의 이야기를 접하는 것은 우리가 사는 세

에서 말한다.

상에서는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말을 할

카메라에 담긴 아프가니스탄은 오랜 내전으로 매 우 황폐해져 있다. 남자들은 사람들을 속이고 돈을 떼어

수 있는 그녀가 말을 했으니, 영화를 볼 수 있는 우리가 영화를 보는 것이 우리의 몫이 아닐까 한다.

먹거나 물건을 훔치고, 칼을 빼어들고 노상강도짓을 하

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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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말 그대로 ‘보여지기 위한’, ‘보여져야만

보아달라고 외치는 이 영화를 보자. 자신의 여동생에게

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나파스가 칸다하르에 도착했

희망의 말을 남겨달라는 나파스의 말에 의사가 녹음기

는지 어떤지를 영화 속에서 확인할 수는 없다. 우리는

에 남겼던 대사를 따오는 것으로 이 글을 마친다.

다만 영화의 맨 처음에 나온 개기일식과 똑같은 장면을 영화의 맨 마지막에서 다시 한 번 볼 수 있을 따름이다.

“우린 모두 살아갈 이유가 필요합니다. 힘든 순간

여동생의 구출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그와는 관계없이

마다 희망은 그 이유가 됩니다. 물론 그건 아주 추상적

아프가니스탄의 처참함은 일식이 되풀이되듯 되풀이되

이죠. 그러나 목마른 자들에게 그건 물이고, 배고픈 자

고 있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여러 번 말하지만, <칸다하

들에게 그건 빵이고, 외로운 자들에게 그건 사랑이고,

르>는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이다. 개기

철저히 가려진 여자들에게 희망은 언젠가 자신의 존재

일식 장면의 비장미, 헬기에서 의족 꾸러미가 우두두 떨

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어질 때 목발 짚은 수십 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뒤뚱거 리며 그 곳으로 달려가는 장면에서의 눈물겨움과 아름

덧붙임) 이미 간판을 내린 지 몇 년이 지나 구하기

다움, 막막한 사막의 멋진 풍경 같은 것들까지도 모두,

가 꽤 어려워진 영화에 대해 부러 글을 쓴다는 데에서

‘이 사실을 보라는 ’ 영화의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

좀 찜찜함이 느껴진다. 이 영화를 보고 싶은데 구하지

로 여겨질 정도이다. 이 영화를 이미 본 나는 ‘우리 함

못하겠다는 분들은 진흙에게 연락하시면 된다는 말을

께 이 영화를 보아요’ 라고 말하는 몫을 떠안은 셈이다.

남기는 것으로 찜찜한 마음을 대신 덜어보고자 한다..

[영화 칸다하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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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vs 비폭력주의 저자 _ 브라이언 마틴 | 오스트레일리아 울런공 대학 과학기술학부 교수 번역 _ 전쟁없는세상 번역팀 , 정리 _ 가람

새로운 기술로 인해 빚어진 -자본주의 하에서 채택되고 소개된- 광범위한 충격과 환경에의 악영향을 말한다.

Ch.9 Environmental campaigns - 환경 캠페인

기술의 발전은 이익에 기반하며, 이러한 시각이 환경 파 괴의 본질을 자본주의로 귀착시키게 한다. 또 다른 관점 은 자본주의와 산업주의의 관계적 역할을 말한다. 건강 한 환경에 대한 관점은 자본주의와 양립한다. 이를테면,

자본주의와 환경보호, 양립할 수 없는 관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환경 의 보존이 가능한 것인가의 문제이다.

계 자본주의로 인한 환경파괴는 잘 알려져 있다. 그 중

비폭력과 환경 보호

에는 공기오염 , 수질오염, 채굴로 인한 토양오염, 환금 성 작물 재배를 위한 착취, 상업적 개발을 위한 종

환경적인 목표를 염두에 두는 캠페인은 종종 자본주

(species) 파괴 및 서식지 파괴, 방사능 물질과 위험한

의 발전에 도전하고 강요한다. 실제로, 환경보호(생태주

화학 약품의 사용, 에어로졸 스프레이(aerosol spray)와

의)는 지난 수십 년간 자본가의 특권에 대한 도전의 주

여타 물질에 의한 성층권 감소, 화학 연료 사용에 의한

요한 기제 중의 하나였다.

기후 변화 등이 포함된다. 시장 경제는 환경 문제를 해 결하기 위해 작동하지 않으며, 기업은 생산 비용에서

이들은 Concorde사의 초음속 항공기의 대량 생산을

환경적 측면을 고려한 비용을 지불하려 하지 않는다. 이

제한했다. 캠페인은 세계 대부분의 포경 산업 조업을 중

러한 비용들은 시민들과 환경에 의해서 치러지게 마련

단시켰다. 임업 캠페인 참여자들은 지구 반대편의 지속

이다.

불가능하고 파괴적인 임업 가동에 반대했다. 이들은 또 한 도로망 확장에 반대했다. 반핵 운동가는 세계의 핵산

(이러한 가운데)환경 문제의 원인에 대한 논쟁이 이

업을 중지시켰다. 캠페인 참여자들은 세계적인 기온 상

루어져 왔다. Paul Ehrilich 는 인구과잉이 환경파괴에

승을 막기 위해 이산화탄소 방출에 대한 압력을 행사

가장 큰 원인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Barry Commoner는

했다. 지역 주민들은 무수한 상업적 개발을 중단시켰다.

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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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보호 운동”은 활동가, 기업들의 참여 및 다양

다. 비폭력적 관점으로부터 환경 캠페인을 추진하기 위

한 캠페인과 아이디어로, “환경보호 운동”으로써 불리는

해서는 특수한 환경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필요하

것들 이상의 다양한 활동가들로 이루어져 있다.

다. 여기, 세 가지 부분의 예가 있다. 농약사용과 핵발

Greenpeace와 같은 왕성한 국제 단체와 수많은 국내적

전, 지역 차원의 발전 반대 캠페인(이 그것이다.)

차원의 관련단체들이 있으며 상근자, 부분 참여자, 재정 후원자, 열정적인 활동가 등 환경오염에 반대하는 사람

농약 사용 반대

들이 모여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개별적 혹은 단체로 환경의 파괴를 줄이기 위한 생활양식을 시도하고 있다. 환경 캠페인 참여자들은 광범위한 관점을 유지한다.

Rachel

Carson의

유명한

저서

‘Silent

Spring'(1962)에서 농약의 위험성을 다루고 있으며 이 것은 환경 운동의 형성에 도움이 되었다. 농약은 곤충,

(이들)환경보호주의자들에 의해 비폭력 행동이 널리

식물, 균사체 등을 죽이기 위한 화학약품으로, 특히 농

사용되고 있다. (여기에는) 시위, 거리 행동, 제조 단계

업과 공공의 건강을 위한 부문에서 인간의 목적에 방해

에서 재생 불가능한 용기 배격, 열대우림의 목재 수송

가 되는 것들을 없애기 위해 고안되었다. 농약 사용에

봉쇄, 불도저 앞에 앉아 좌중 점거 등과 같은 상징적인

찬성하는 사람들은 농약이 불필요하며 환경과 인류 건

행위들을 포함한다. 환경보호주의자들에 의해 이전까지

강에 위험하다는 반대의 주장에 대해 농약은 필요 불가

의 활동 외에도 제안서 작성, 소통하기(협의의 과정),

결한 것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은 인류 건

관련 자료 준비, 시민운동, 광고, 법안 상정, 오염 주범

강의 위험으로서의 비용과 대안의 측면을 은폐한 것이

규명 등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 중 몇 몇은 벌채의 표

다.

적인 나무를 내리치는 등 파괴 행위를 사용하기도 하지 만 항상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피하는 것이 일반 적이다.

농약의 제조와 판매는 매우 거대한 산업이다. Monsanto 등과 같은 대규모의 화학 약품 제조업체가 범 세계적으로 농약을 생산한다. 농약 생산의 감소는 이익

환경 운동의 내부에 존재하는 광범위한 다양성은 반 자본주의적 성향, 부분적 동의자, 자본주의 지지자 등을

의 감소를 의미한다. 따라서 농약 사용에 반대하는 캠페 인은 자본에 대한 도전이다.

포함한다. 현대 운동의 시초 단계에서 환경에 대한 관심 은 가업 중단 및 도로 점거, 교외 거주생활 등의 방법으

- 반대하는 사람들의 관점 -

로 나타나 중산층의 전유물로 생각해왔다. 처음에 좌익 사상가와 정당들은 노동자 계급의 관심과는 대조적으로

1. 캠페인의 효과

환경보호주의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 공업과 산업을 산 업 개발의 부작용보다 중요하게 여겼다. 굴뚝 산업은 발 전의 신호였다. 시간이 흐른 뒤, 좌파 그룹은 자본주의

자본주의의 폭력적 기반과 합법성을 문제 삼거나, 자본주의에서 비폭력적 대안의 형성할 수 있는가?

에 대항하는 흐름으로서 환경 문제와 관련한 시류에 동 참했다. 그러나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사회주의자의 산 업주의도 환경에 유익하지는 않았다.

이러한 물음에 대하여 농약사용에 반대하는 사람들 은 아닐 것이라고 말한다. 캠페인은 농약 제조의 합법성 에 대한 도전이지만 이것이 일반적인 자본주의의 합법

전통적인 좌파적 접근과는 상이하게, 비폭력의 전략

성을 훼손시킬 것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물론, 자본가

은 국가 자본에 도전하는 권력에 의존할 수 없으며 환

체계에 대한 도전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농약 사

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 권력에 의존할 수도 없

용에 대한 도전은 의미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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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캠페인 참여와 동원의 문제 (이것은) 캠페인의 성격에 의해 결정된다. 농약 사

핵발전(원자력)

용 반대 캠페인에는 대체로 농약을 사용하는 지역 사회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참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외 에는 저조한 참여율을 보인다.

핵발전은 그 연료로 우라늄을 사용하며 핵분열을 통 해 전기를 생산한다. 원자력의 주창자는 그것이 발전 단 가가 싸고 청결한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한편, 원자력

3. 캠페인의 목적과 방법 설정의 문제

사용 반대자는 핵폐기물의 긴 수명 및 원자로 사고의 위험, 더 많은 정부들에 의한 핵무기 제조(원자력 기술

농약 사용 반대자들의 목표는 농약을 쓰지 않고. 농

발전과 전문성은 핵무기 생산과 연관되기 때문에), 고비

사를 지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활동가들은 농

용, 토착민 주거 지역에서의 우라늄 채굴, 핵연료의 범

약을 사용하지 않는 것 외의 방법을 설정하는데 어려움

죄에의 악용 등을 포함해 많은 근거를 제시한다.

을 느낀다. (그러나) 유기농법의 활용, 생태학적 작물 생산 방법의 사용으로 인한 수확량 감소를 감수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은 결국 거대한 잠재성을 의미한다.

원자력 발전소는 1950년대에 최초로 건립되었다. 1960년대와 70년대, 원자력이 주요 전력원으로 등장하 면서 특히 미국과 소비에트 연방에 대규모의 발전소가

4. 저항의 캠페인에 함께하겠습니까?

증원되었다. 농약은 기업 등에서 제조되지만 핵은 국가 에 의해 개발된다. 영국과 소련에서 최초로 탄생한 원자

농약 사용 지역에서의 가장 큰 영향력은 정부의 규

력은 는 주로 무기 제조를 위해 고안되었으며 부차적으

제이다. 그러나 농약의 독성에 대한 규제에서 사용과 분

로 전기에 이용하였다. 군에서의 연구와 발전, 정부의

배에서 느슨한 제한, 위반을 가벼운 형벌로써 다스리는

원조가 원자력 발생의 중요한 요소였다.

것은 문제가 된다. 게다가 규제는 대안 마련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규제 방법을 개선하는 것에서부

대부분의 국가에서 원자력은 국가에 의해 통제되며,

터 시작된 캠페인이 (결국)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관료

관례적으로 기업을 포함시키기도 한다. 부분이나마 핵연

제에 타격을 입히는 것이다.

료가 실제 혹은 잠재적으로 군의 사용과 관련되었기 때 문이다. 실제로, 많은 국가에서 전력 분야는 정부에 의

비록 많은 이익이 주어진 것은 아니나, 대안에 대한 장려는 조합(단위 행동)을 형성시켰다. 유기농법의 시행

해 관리되고 있다. 고비용과 비극적인 사고는 민영 투자 를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은 농약의 사용을 배제시켰다. 유기농법은 농부 자신에 의해 결정되므로, 신념을 기반으로 하며 (이것이) 나눔

반핵 운동은 196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어서 70년대

과 공동체 결속에도 중요한 요소가 된다. 결론적으로 농

에 급상승되었다. 그것은 일본의 농부, 미국의 교외 거

약의 과도한 사용 억제 캠페인이 자본주의에 대항한 큰

주자, 호주의 노동조합원등 대중에 기반한 운동이었다.

도전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 자체만으로도 아주 큰

종종 초점은 지역 공동체로부터 시작된 원자력 발전소

가치를 지닌다. 특히 유기농운동의 비영리적인 양상은

건설 저지가 되었다. 또한 어떠한 즉각적인 위험보다 장

농약 사용 반대를 위한 캠페인에서 대안의 확장 이상의

기적인 문제에 대해 반대가 있어왔다.

의미로 반자본주의자들에게 중요한 방향을 제시한다.

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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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서 일어났던 주요 반핵 운동의 목표인 우라늄

능했다. 반핵 운동은 건설적인 프로그램으로서 에너지

채굴 중단으로부터 그 밖의 어느 지역에서나 강력하게

효율에 기초한 에너지의 미래에 착안, 재생 가능한 에너

작용했었다. 반핵 운동은(/도) 협의와 시위, 철야, 봉쇄,

지(태양력과 풍력 등)와 에너지 소비량을 줄이기 위한

파업과 점거 등을 포함한 다양한 비폭력 운동으로 전개

생활양식의 변화와 지역 공동체의 노력 등을 연구해오

되었다. 비폭력 활동 이론 및 훈련은 운동 내부에서 큰

고 있다.

역할을 담당했는데, 비폭력 운동의 경험과 이해는 운동 내부의 발전과 전파 등으로 변화를 가져왔다. 비폭력은

2. 캠페인에의 동참의 문제

특히 미국과 서유럽의 사례로서, 신중한 준비에 의한 비 폭력 활동 훈련, 합의된 정책 입안과 비폭력 규율의 조 성 등은 캠페인 내부에 편성된 핵심적 원리였다.

반핵 캠페인에서 대부분의 민중들은 많은 다양한 방 식으로 동참하였다. 비폭력 원리로 형성된 캠페인에 참 가자 우선권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Green peace와 같은

(그렇다면) 반핵 운동은 비폭력 활동을 기반으로 하

전문적인 몇 몇 활동가들의 참여는 제한되었다.

여 반자본주의로 확대되었는가? 3. 캠페인의 방법과 목적의 설정 1. 캠페인의 효과 몇 몇 참가자는 목표가 재설정 되는 동안 안전한 핵 자본주의의 폭력적 기반과 합법성을 문제 삼거나, 자본주의에서 비폭력적 대안의 형성할 수 있는가?

발전소의 건설과 같은, 대부분 핵의 사용에 반대했다. 많은 활동가들에 의해 발견되고 추가된 목표는 ((에너 지 체계는 환경에 무해하고 신념을 기반으로 해야 하며

원자력은 국가의 주도 아래 추진되어왔으며 반핵 운

분산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세계에서 핵의 소

동은(또한) 자본주의의 합법성을 크게 손상시키지는 못

멸을 위해, 원자력에 의존하지 않고 목표를 획득할 수

한다. 그러나 이것은 국가의 폭력성과 관계가 있다. 원

있는 방법을 사용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캠페인이 핵발

자력의 비중 있는 사용으로 형성된 사회는- “플루토늄

전에 대항해 긍정적인 대안의 방법을 형성하는데 어려

경제”라 불리는 -핵물질의 남용으로 인한 안보가 요구

움을 겪는 것이 사실이다. 몇 몇 “soft energy path" (대

된다. 많은 원자력 프로그램은 비폭력 반핵 운동가의 감

안에너지의 나아갈 길) 캠페인에서 소개된 대표적인 방

시와 특수력 동원 등의 강력한 법체계에 의해 수행되어

법이다. : 태양열과 바이오가스 조리법, 건축물에서의 태

왔다. 핵보유국의 국교 거부는 범죄가 된다. 플루토늄

양 에너지 이용의 장려, 과대 포장 제거, 자전거 이용,

경제에서는 핵연료의 상품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이론적

그 자신의 솔선수범. 이러한 캠페인의 종류는 석탄, 석

으로 설명할 수 있으며, 강력한 국가가 되었음을 상상할

유와 천연가스 등을 포함한 주요 재생 불가능한 에너지

수 있다. 원자력이 보급된 결과 자본주의 하의 국력은

뿐만 아니라 핵에도 반대하는 방법이다.

극히 증대했다. 반핵 캠페인은 이러한 발전을 저지할 수 있으며, 장차 핵 자본주의의 폭력적인 기반을 무너뜨릴

4. 저항에 동참하겠습니까?

수 있다. 이러한 사례는 자본주의가 더 극악한 상황으로 진행되는 것에 경각심을 갖게 한다. 그 결과 반핵 캠페

반핵 운동가들이 지하에 핵발전소를 매설하는 것,

인은 국가 권력에 대항한 반자본주의의 중요성, 환경의

더 깊은 곳에의 핵폐기물 매장하는 것 등, 정부 측에서

충격으로부터 예견된 위험과 핵전쟁, 시민의 자유에 대

안전을 생각하고 감시의 측면으로서만 만족했다면 캠페

한 공격 등 즉, 더욱 위험한 자본주의의 예방으로서 기

인은 일찍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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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발전이 우라늄의 채굴과 농축, 폐기 등을 포함하

반핵 캠페인 내부에서 비폭력 활동의 중요한 역할의

여 핵연료주기에서 원소들에 따라 중요한 위치를 선점

하나는, 핵발전을 장려하기 위한 국가의 진압에 대해 숙

하게 된 이래로 대부분의 캠페인 참여자들은 발전소 건

고하는 것이다. 국가는 대규모, 고비용 등에 의해 참여

설 포기의 입장을 요구하기 시작했고 저항의 움직임을

하게 된 핵발전에 잠재된 위험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

형성했다대안에너지의 . 미래를 위한 캠페인은 아직 나아

다. 핵발전은 소규모의 사용자 친화적인 기술이 아니며

갈 길이 멀다. 자동차 제조자들은 - 중소기업은 태양

지역 경제의 구매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2장에서 서술

온수 난방기를 설치하고, 전기의 실용성은 이용해 재생

한 바와 같이 비폭력 활동의 이론은 “통치자에 ” 의한 제

가능한 에너지를 장려하며 계획한 “green energy"를 제

지에 맞섬으로써 용이하고 명백하게 적용될 수 있다.

공함으로써- 에너지(연비가 좋은)를 생산해낼 수 있어 야 한다.

핵발전은 대부분의 기술(분야에서)보다도 더 적합한 모델이다. 플루토늄이 강화된 시계와 차량과 같은, 크기

요약하자면, 이상적인 미래는 자본가 경로에서 최대

로 변환이 가능하여 핵기술의 소비가 가능하다면 수백

수익성 창출은 아닐지라도 자본주의와 양립 가능하(다

만 명의 인명이 살상된다 할지라도 더 쉽게 받아들여

는 것이)다. (그래서)많은 사람들이 에너지 효용을 이용

졌을지 모른다. (유사한 상품은 담배이다) 규모가 크고,

해 자본주의의 중대한 개선이 이루어지는데 관심을 갖

응집성이 있고, 가능성이 희박하고, 국가 권력 등의 거

는다. 이것은 (구성원간의 합력이) 강력한 가능성이 있

대한 기관에 의해 운영되는 핵발전은 비폭력 활동의

음을 시사한다.

(중심)이 된다. 이러한 제안은 분산된 힘만큼 다시 한 번 직면한 자본주의의 난관이다. 신중한 분석은 특히 중

핵발전 반대 운동에의 참여가 국가 주도의 핵발전

요하다. 공격의 다양한 지점(설정)은 문제의 근원이 아

과 반자본주의 운동에 동의하는지의 여부까지는 차치하

닐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정부 측에 달렸다. 반대하는

고서라도 강력한 산업의 불가항력을 중단시키는데 매우

측이 아무리 반대해도 결국 선택권은 정부에 걸려있(기

성공적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확장된)핵 산업은 “플

때문이)다.

루토늄 경제”의 이점으로 민영화될 수도 있으며 (이 점 에서 또한)반핵 운동은 반자본주의의 상징이(라는 것이)

지역 사회 운동

다. 새로운 확장개발에 반대하는 집단의 구성원들은, 소 이 운동(반핵운동)은 참여율을 높이고 비폭력 활동

음 공해나 대기 오염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고 주변

의 의식을 고무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기술

경관 유지시키기 위해, 예를 들어 공장, 대규모 주택단

발전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이 운동은 비폭력의 방식을

지, 고속도로, 공항, 벌채 등의 개발 사업이 인근에서 이

통해 목표를 통합하는데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비폭

루어지게 하는 등 종종 이기심을 드러내기도 한다.

력 운동의 전개가 에너지의 대안 마련을 위한 단계에서

NIMBY 라고도 불리는데 이것은

수단과 목적을 일치시키고 신념을 지키는 길이 될 것이

Yard의 줄임말이다.

Not In My Back

다. 이러한 낮은 단계부터의 협력은 그리 어렵지 않다. (결과적으로) 반핵운동은 핵자본주의를 중단시킬 수 있

NIMBY 시위자들은 어느 곳에서 발달이 이루어지는

을 것이고 비폭력의 경제체제를 이끌어내기까지 대안은

가에 대한 문제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그들

비핵자본주의일 것이다.

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발생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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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캠페인의 효과

4. 저항의 캠페인에 동참하겠습니까?

자본주의의 폭력적 기반과 합법성을 문제 삼거나,

연대는 항상 지역적인 발전 반대 캠페인에 심각한

자본주의에서 비폭력적 대안의 형성할 수 있는가?

위험 요소가 된다. 때로는 건물의 높이를 줄인다든가 공 장의 유해 가스는 통제 시설을 도입하는 등의 타협이

대부분의 NIMBY 캠페인(을 부정적으로 인식해야

발생하기도 한다. 또한 재개발을 위해 고가를 지불하기

할 것인가)에 대해 그 대답은 ‘아니오다 ’ . 물론 발달에

도 한다. 개발자와 정부는 공원을 조성하거나, 더 많은

조력을 다한, 개별적인 자본가들의 합리성을 손상시킬

세금을 부과시키며 학교에 기부금을 조성하는 등으로

수도 있지만 전체의 체계로서 NIMBY에 대해서는 생각

방법을 모색한다.

해봐야 한다.

(이러한 반대 운동에 대한 연대 혹은) 동조는 어느 곳에서나 발생한다. (그러나) 때때로 (이러한) 지역 공

2. 캠페인에의 동참

동체의 효과적이지 못한 저항에 의해 개발은 중지되지 않으며 다만 새로운 장소를 모색할 뿐이다. 그 결과, 빈

사람들의 참여가 많을수록 캠페인은 성공적이다.

민가에서 원치 않는 개발이 이루어진다. (물론 몇 몇 빈 민가에서는 호과적인 저항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지역

3. 캠페인의 목적과 방법의 설정

적인 발전 반대 캠페인은 기본적인 도전의 수준에 머무 르기 때문에 자본주의에의 저항에는 미약하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 그 목적은 합의와 서한 발송, 시위, 단

대부분의 지역 캠페인의 사실들에서 공동의 협의가 발

체 행동 등을 포함해 개발을 중지시키는 것이다. 지역

휘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때때로 NIMBY에의 결합은

주민들은 지역 발전에 대해 공동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

발전 저항으로서 강한 도전이 된다. 좋은 예로 고도 방

지역 사회의 구성원들이 그들 자신의 참여 계획 설정을

사능 폐기물의 처리를 들 수 있다. 사회는 특별한 “개발”

통해 설정한 계획에 맞게 합의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

을 원치 않으며 (‘합심의 ’ ) 전략은 성공하지 못했다. (그

러한 대안은 원치 않는 개발에 도전하는 한 가지 방법

러나) 이 사례에서, 반핵 운동에 의해 지역적인 차원으

이다.

로 광범위하게 반핵에 대한 인식을 지지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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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전쟁읽기 _ ‘슬픈 나막신’ 까만★ | 매체편집팀 + ebonystar82 @ hanmail.net

< 소설로 전쟁 읽기 >를 시작하며

보아야 하지 않을지.

나는 집에 TV가 없다. 그래서 9·11 테러가 일어난

영화에서, 광고에서, 일상 생활 곳곳에서 대량으로

그 다음날에서야, 도서관의 TV를 통해 두 대의 비행기

유통되는 ‘이미지화된’ 전쟁과 군대. 우리는 어느 새 전

가 쌍둥이 빌딩에 충돌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사람

쟁을 소비하면서, 전쟁에 무감각해지고 있는 것은 아닐

들은 ‘액션 영화같다고 ’ 말했고, 나도 솔직히 멋있다는

까? 아니, 심지어 전쟁을 보고 한 편의 스펙터클한 영화

생각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무서운 일이다.

로만 느끼고 있지는 않을까?

이라크 전쟁이 막 일어났을 때, 친구 한 명이 “뉴스

역설적이게도, 평화적 감수성은 전쟁을 온몸으로 느

를 보다 보면 정신병에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미사일

끼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나는 ‘전쟁 소설이 ’ 전쟁

이 명중하는 장면을 마치 불꽃놀이처럼 묘사하고, 게임

을 긴 호흡을 가지고 총체적으로 느끼는 데 매우 적합

에서 전투력을 비교하듯 최첨단 무기들의 성능을 그래

한 매체라고 생각한다. 소설이 재현(再現)한 전쟁의 세

픽으로 보여주는 작태를 보면서 미치지 않는 사람이 있

계 속에서, 우리는 어떤 삶을 느끼게 될까?

다면 도리어 그 사람이 감성쇠퇴증후군으로 병원에 가

기획연재에서 다루어지는 소설들.. 태평양전쟁 - 권정생, ‘슬픈 나막신’ 제주 4.3 항쟁 - 현기영, ‘순이 삼촌’ 베트남 전쟁 - 안정효, ‘하얀 전쟁’ 광주 민중항쟁 - 이순원, ‘얼굴’ 현대의 군사문화 - 위기철, ‘무기를 팔지 마세요’

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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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필수품마저도 매우 적은 배급에 의존해야 하고, 제 대로 된 일자리도 구할 수 없는 형편. 젊은 남성들은 군 대로 가야하고, 그나마 남아있는 사람들도 수시로 방공 훈련에 동원되고, 아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 고철(이것은 대포알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을 주우러 다녀야 하는 현실. 물론 소설이 전쟁과 가난의 고리를 명확히 드러내 지는 않지만, 전쟁으로 인해 국가 총동원 체제가 확립된 상황에서 가난과 전쟁은 뗄 수 없는 것이다. ‘엄마하고 언니하고는 지금도 공장에서 힘든 일을 하고 있을 거야. 오빠는 전쟁터에서 적과 싸우고 있고. 비행기가 날아와서 폭탄을

「슬픈 나막신」의 첫 장을 넘겼을 때, 나는 당황해

떨어뜨리면 어쩌나?’(63쪽)

서 내가 책을 제대로 고른 것이 맞는지 다시 살펴 보았 소설이 중반으로 치달을수록, 전쟁은 구체적으로 아

다. 갑자기 ‘하나꼬라는 ’ 일본 이름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들의 일상을 파괴하기 시작한다. 준이의 형 걸이도 결 물론 지금은 민족주의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지만, 한

국 입대를 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걸이는 일본을 위해

때 김진명의 소설이라면 몇 번을 반복해서 읽을 정도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싸우겠다면서 입대를

민족주의에 빠져 있던 나였다. 아직 그런 감수성이 완전

하지만, 준이는 “작은언니도, 그렇게 착하고 어진 작은언

히 없어지지는 않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니도, 과연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193쪽)라며 되묻는

조금은 어색한 거리를 두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다. 특히 걸이가 입대하는 장면에서 눈여겨 볼만한 것

「슬픈 나막신」은 태평양 전쟁의 막바지에 와 있는 일본의 어느 가난한 동네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의 모습

은, 걸이가 입대를 스스로 정당화하는 과정이다.

을 담고 있다. 가난의 무게로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버 린 에이꼬, 돈많은 양부모 밑에서 외로이 지내는 하나꼬, 가난에 지친 엄마에게 늘상 맞고 지내면서도 동생들까 지 챙겨야 하는 분이, 그리고 준이, 용이, 미쯔꼬. 소설 은 아이들의 소박하고 순진한, 그렇지만 순간순간 옅은 상처가 묻어나는 일상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내가 만약 군대에 나가면 누구를 위해 싸운담?”/ 걸이는 싱겁다는 듯 피식 웃었다. “오빠를 위해서 싸우죠. 군인은 사나이 최고의 영광이래요.” 남이가 생글생글 웃으며 아는 척 말했다. “그럴까? 그럼, 나를 위해서 싸워 준다.” 걸이는 팔뚝을 오그렸다가 힘껏 펼치며

사실 「슬픈 나막신」의 중반부까지는, 전쟁 그 자

돌격하는 흉내를 낸다.

체가 부각되지 않는다. 도리어 아이들에게 가장 힘겨운

“싸우면서 무섭지 않어?”/ 준이는 알 수 없다는 듯 조그맣게 물었

현실은 가난이다. 가난은 아이들 사이에도 미묘한 갈등

다.

을 불러 일으키고, 아이들에게서 부모와 친구들을 빼앗

“무서워도 용기를 내는 거야. 준이도

아간다.

군인이 되고 싶지 않니?” 준이는 망설이다가, “나도 군인이 되겠어.” / 하고 말하면서 얼굴을 붉혔다.(151쪽)

그러나 아이들의 가난한 일상이 전쟁과 무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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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이의 마을에 폭격이 시작되면서, 아이들은 전쟁에

간인 사망자만 2500만 명이었다. 일본의 경우 민간인을

직접적으로 노출된다. 폭격으로 동네가 완전히 불타버리

포함한 사망자는 250만 명으로, 전 인구의 약 1/40이라

고, 이제는 움집에서 하루하루 연명해야 하는 신세가 된

고 한다. 과연 전쟁은 누구를 지키기 위해 진행되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준이의 어머니와 같은 어른들은

가?

“미국이 전쟁에서 이기면, 조선을 금방 되찾을 수 있다 고”(234쪽) 주장한다. 그러나 준이는 ‘이리와 아기양들’

물론 「슬픈 나막신」은 아이들의 시각에서 서술되

이라는 연극놀이를 하면서, “무서운 폭탄으로 집을 부수

다 보니, 너무 상황을 단순화하고 순진하게만 바라본 한

고 사람들을 죽이는 미국도 일본도, 모두가 서로서로 잡

계가 있다. 그러나 가끔은 정말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

아먹으려는 이리들만 같았다.”(234쪽)는 생각을 한다.

으로 현실을 보아야 할 때도 있다. 어린 아이들이었기에

아이들이 보는 전쟁과 어른들이 보는 전쟁은 이렇게 달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의 민족적 벽을 넘어설 수 있었고,

랐다. 무엇이 더 진실에 가까울까?

어린 아이들이었기에 전쟁에서의 상실감과 분노를 국가 에 대한 충성, 남성적 분노와 용기 따위로 왜곡하지 않

‘히로시 형하고 걸이 형이 잘 싸워 줘서 우리는 무사히 잘 살고

을 수 있었다.

있는 거야.’ 무사히 잘 살고 있다니? 그건 아무래도 거짓말이다.

아니, 굳이 어린아이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전쟁의

준이는 방 안을 둘러보았다. 잘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아픔과 상처를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처량했다.(239쪽)

누구나 그러하지 않을까? 전쟁을 바라보는 데 굳이 깊

결국 전쟁은, 군대는 아무것도 지켜주지 못했다. 이 미 전쟁은 군인끼리의 싸움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미국 은 ‘전략적으로’ 일본 시가지에 융단폭격을 감행했다. 2

이있는 관점이 있어야만 하는가? 평화적 감수성은 단지 누군가 아파하고 죽어가는 것, 그리고 죽이는 것이 싫다 는, 그 단순한 마음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차 세계대전을 통틀어 군인 전사자가 2700만 명에, 민

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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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동+재정보고 | 전쟁없는세상 팀별활동: 팀별활동은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 가능합니다.

전쟁없는세상 이렇게 살았어요~

: 매체편집팀은 소식지를 편집회의를 통해 기획/제작하고 있습니다. 12호 소식지 제작을 함께할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 세미나팀에 커리주제를 제안해주세요. 커리주제가 정해지면 참가희망자들이 준비모임

전쟁없는세상 소식정리와 굵직한 활동보고입니다.

을 가지고 본격적인 토론모임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 해외자료번역팀은 'Terror, Counter-Terror. Women Speak Out‘이라는 책을 함께 번

활동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지면관계상 안타깝게도 생락 하도록 하겠습니다. 나열식인 점 사과드립니다.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 운영실에서 확인하세요~ ^ ^

역해나가고 있습니다. 함께 하시고 싶으신 분들은 홈페이지 운영실->팀별게시판->해 외자료번역팀 게시판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또는 가람에게 연락해주세요~ : 수감자지원팀은 수감된 병역거부자들이 감옥 안에서도 밖과 소통할 수 있도록 개인요 청물과 회의록 및 편지를 담은 우편물을 정기적으로 발송하고 있습니다. 수감자지원팀에 관심이 있으신 분은 홈페이지 운영실->팀별게시판->수감자지원팀 게시판을 참고하시 기 바랍니다. 또는 뎅에게 연락주세요~

5.26~6.4 5.31 6.21 6.26~29 7.9~10

병역거부 자료 전시회 2005 평화캠프 준비시작~! 인권활동가대회 준비포럼 ‘수다’ WRI 국제세미나 평택 평화대행진

>>전쟁없는세상 6,7월 재정보고 (이월과정에서, 오차가 많이 생겨 ^ ^;; 6월 20일부터 7월 13일까지의 재정회계를 정리했습니다.)

수입 개인후원금 계

525.098 525,098

지출 빚상환 전화세(설치가 / 입, 한달사용료) 복사 및 제본 선풍기값 사무실월세 계

144,000 69,350 20,000 20,000 250,000 503,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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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무관계 받을 돈 줄돈

901,800 706,000

받을 돈 : 195,800 총계

이월금 잔액 (이월금 + 수입 -지출)

351,807 373,555


소식지 수신인을 조정하기로 하였으니, 꼭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현재 전쟁없는세상에서는 약 300여분단 ( 체포함)에게 소식지를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헌데 이번 7월부터 보내게 될 소식 지가 정기간행물의 조건인 월간발행을 만족시키지 못한다하여 뜻하지 않게 발송비용 할인을 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 과, 앞으로의 소식지 발행이 전쟁없는세상의 재정에 큰 부담을 안길 거라는 판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와 더불어 읽히지 않 는 소식지들이 수신인분들의 우편함을 복잡하게 할 뿐만 아니라 소중한 종이를 낭비하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서 다음과 같이 수신인 조정을 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는 소식지를 받을 의사가 있는 분들에게만 발송 해드리기로 하였습니다. 월회비를 내시지 않는 비회원분의 경우, 예전처럼 소식지를 받기 위해서는 메일로 소식지 수신의사 를 꼭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1) 회원(월회비를 내는 분)인 경우 : 기존처럼 소식지를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단, 회원임에도 불구하고 소식지를 받지 못하셨던 분들은, 현재 주소지 정보 와 이름을 전쟁없는세상 메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2) 비회원(월회비를 내시지 않는 분)인 경우 : 재신청 과정을 거치시면 이전처럼 소식지를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주소지 정보의 변경이 없더라도, 소식지를 받아보 시기 위해서는 다음의 정보들을 메일로 보내주셔야 합니다.(소식지를 받는다고 해서 돈을 받지는 않습니다 ^ ^ ) 비회원분의 주소지와 이름, 그리고 전쟁없는세상과 연을 맺게 된 계기(어떤 분인지 저희가 잘 몰라서요.. ^ ^;;)에 대 해 간략하게 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재신청과정을 거치지 못하신 분들의 경우, 안타깝지만 다음 호부터 소식지를 받아보 실 수 없습니다.

전쟁없는세상 메일 : peace@withoutwar.org

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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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정의민 : 5월 18일 구속확정, 19일 성동구치소로 이감. 5월 17일 청량리 경찰서에서 영장실질심사 진행되어 18일 구속수사가 확정되고 오늘인 19일 성동구치소로 이 감되었다고 합니다.

:: 임재성 : 5월 19일, 2심 심리재판 5월 19일 오전 10:30 서울지방법원(형사) 418호에서 통고 지연으로 연기되었던 재성의 2심 심리가 속개되었 습니다. 어쩌면 남은 수감 기간 중에 사이에 창살이 없이 재성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 각 때문이었는지 20여분의 지인들이 함께 해 주셨습니다.

:: 임재성 : 5월 31일, 2심 선고공판 5월 31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방법원(형사) 418호에서 재성씨의 2심(항소심) 선고 공판이 있었습니다. 판결 결과, 항고가 기각되었습니다.

:: 조정의민 : 6월 15일 1심 심리공판 6월 15일 10시 북부지법 102호실오늘 의민이 1차 심리가 있었습니다. 모두 바쁘신지 많이 참석하지 못했습니 다. 검사가 징역 2년을 선고해줄 것을 요청했고, 힘든 길을 택한 점에 대해 숙고해달라는 변호사의 간단한 변론이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의민씨가 진술문을 읽었습니다.

:: 최진 : 6월 28일 구속확정, 대구교도소로 수감됨 지난 6월 28일 최진씨가 1년 6월을 선고받고 구속되었습니다.

:: 임태훈 : 6월 30일, 서울구치소에서 출소 6월 40일 임태훈씨가 출소하였습니다. 출소하자마자 전쟁없는세상 게시판에 인사글을 남겨주셨네요..

:: 수감된 병역거부자들의 주소 오태양 충청북도 충주시 산척면 송강리 1151-1 충주구치소 894번 (우 : 380-830) 나동혁 경기도 군포시 군포우체국 사서함 20호 서울구치소 수감번호 2360번 (우 : 435-600) 임성환 서울 금천우체국 사서함 164호 영등포구치소 수감번호 2579번 (우 : 153-600) 임치윤 부산시 강서구 강서우체국 사서함 50호 부산교도소 수감번호 1655 (우 : 618-600) 염창근 충청북도 충주시 산척면 송강리 1151-1 충주구치소 654번 (우 : 380-830) 이원표 대전광역시 유성구 유성우체국 사서함 136호 대전교도소 800번 (우: 305-600) 임재성 경기도 군포우체국 사서함20 서울구치소 1560번 (우: 435-050) 유호근 경기도 군포우체국 사서함 20 서울구치소 2576번 (우 : 435-600) 조정의민 서울 송파구 송파우체국 사서함 177호 성동구치소 수감번호 596번 정의민 (우 : 138-600) 최진 대구시 달서구 달서우체국 사서함 7호 대구교도소 1557번 (우 : 704-600)

※ 6월 7일과 20일, 문상현씨(사회당당원) 승규씨(다산인권센터)가 병역거부를 선언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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