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없는세상 소식지 13호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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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OUTWAR Newsletter No.11 CONTENTS World

Editorial

에디토리얼 1

격월간의 아쉬움과 장점.

CO note

병역거부자 활동수기 2 5 7

욕구, 고귀한 지적운동의 고통 나의 정언명령 내 친구들에게

Focus

폭력대화를 통해 우리는 자신을 표현하고, 다 른 사람의 말을 듣는, 뭔가 다른 방법을 알게 원해서 다른 사람의 삶에 기여했을 때 느끼는

국가인권위, 대체복무도입 권고안 발표 토론회, 한국 종교와 병역거부

10 12

즐거운 마음으로 행동하게 된다. 그렇게 주고 받을 때만이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서로에 게 유익하다.

기획기사 15 18 21

진심을 고백할 때, 평화는 시작된다. 비폭력대화, 패러다임의 전환 기린언어 배워보실래요?

편집팀 뎅

Column

칼럼

번역글, 재정정리

25

부당한 군사명령을 거부하라

Experience

조은 기획기사2, 참가후기

참가후기

까만★

28

어쨌든 결론은 PEACE! 다

Essay

비폭력대화 .. 18

되는 것이다. 우리가 가슴으로 줄 때는 스스로

시선집중

Special

▶ ▶Special

기획연재

날맹

평화에세이

칼럼, 평화에세이 섭외, 시선집중1

31 34

그래도 세상은 변한다 전쟁없는세상 과의 만남

기획기사1, 활동수기 섭외, 2005년 정리

Review

나동

영화평 37

다큐 ‘원폭60년, 그리고...“를 보고

Translation

번역

시선집중2

용석 표지, 에디토리얼, 활동보고, 영화평섭

39

자본주의 vs 비폭력주의

Series

영은

외, 편집

기획연재

소설로 읽는 전쟁, 세 번째, ‘하얀전쟁’

Year2005

2005년 정리 49

전쟁없는세상 2005!!!

Report

43

활동재정보고

전쟁없는세상 이렇게 살았어요~!

발행처 : 전쟁없는세상 발행일 : 2005년 2월 1일 제 호 :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13호 연락처 : 02-3147-1201 주소 : 서울시 서대문구 충정로 2가 190-10 아랫집 2층 (우) 120-012 http://withoutwar.org | peace@withoutwa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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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기획 | 한울타리 130-062 서울동대문구 제기2동 137-69 TEL : 924-9641,2 FAX : 927-5104


Editorial

격월간의 아쉬움과 장점 용석 | 전쟁없는세상 책임활동가 + stego @ jinbo.net

언젠가 평화인권연대를 소식지가 매번 똑같은 말로 시작한다고 놀린 적이 있었다. ‘예정보다 늦게 소식지가 나와서 죄송합니다.’별로 할 말이 없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나마 평화연대는 월간이라서 보름늦게 나오지만, 전쟁없는세상 소식지는 격월간이라서 그런지 한 달을 늦게 나와버린다. 격월간으로 내면서 좀더 심도깊은 이야기들을 담아내고자하는 것이 전쟁없는세상의 의도였다. 허나 소식지 가 거듭될수록 왠지 심도의 깊이가 떨어져가는 것만 같은 아쉬움이 느껴진다. 아쉬움이 커질수록 놓쳐버린 것들 에 대한 아쉬움도 더해간다. 격월간이다 보니 그 때 그 때의 긴박한 이슈들을 재빠르게 다루지 못한 것이 그것 이다. 지금도 마음같아서는 앙상한 모습으로 단식을 하고 있는 지율스님의 이야기를 담고 싶다. 지율스님을 아끼 는 사람들이 이곳 저곳에 기고한 글들이 내 마음을 울린다. 지율스님과 천성산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낼 수 없는 것이 차마 안타까워서 아쉬움이나마 풀어보려고 에디토리얼에 끄적거리고 있다. 또 소식지가 늦어지면서 약간 타이밍을 놓친 것이 있다. 작년 말 경찰들의 과잉진압으로 두 농민이 돌아가 신 사건에 대해서 칼럼을 한편 실었다. 전경들의 부당한 군사명령을 거부할 권리에 대해서 쓴 칼럼이다. 이 소식 지가 예상대로 12월 말에 나왔으면 그 글 또한 더 좋았을 것이다. 허준영 경찰청장이 사퇴하면서 ‘기동단 해체’ 라던지 등등의 구호들이 묻혀버렸다. 이 칼럼의 주장 또한 약간은 뒷북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재빠르게 칼럼을 쓰느라 고생한 날맹에게 미안해졌다. 이번 소식지에서는 ‘비폭력대화법에 ’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고자 했다. 2004년 평화캠프 때 처음 접했던 비폭 력대화에 대해서 그동안 한 번 다뤄보고자 했으나, 그 때 그 때의 이슈를 중심으로 소식지가 구성되다 보니 계 속 밀렸던것이 사실이다. 격월간으로 나오는 소식지의 장점이 여기서 발휘된다. 시기와 큰 상관이 없는 의제들을 다룰 수 있으니 말이다. 비폭력대화에 대해 짧은 지식이 기사를 구성하고 써내려가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게 했 다. 게다가 기획했던 여러기사들이 빵구가 나면서 더욱 힘들어졌었다. 참 무책임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이번 소식지의 메인인 비폭력대화는 사실상 맛보기다. 우리의 무능력과 무 식함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비폭력대화에 대한 더 심도깊은 자료들을 보고싶다면, 바오에서 나온 『비폭력대화』 를 보거나, 월간 평화연대에 연재되었던 기린언어배우기를 참조하면 된다. 미뤄뒀던 비폭력대화를 소개한 것이 아마 전쟁없는세상 소식지의 소임인 듯 하다.

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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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구, 고귀한 지적 운동의 고통 부르뎅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 12월 1일 병역거부 선언

수감을 기다리는 병역거부자들의 고정화된 생활패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건 꽤나 힘든 일입니다. 날이 갈수록 병역거부자들의 개성이 뚜렷해지고 삶의 방식이 다양해져가며, 또 날이 갈수록 고난과 치열함이라는 공통분모가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고난과 치열함이란, 병역거부가 한국 사회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을 무렵, 자신의 인생을 걸고 병역거부를 결심한 분들과 그들의 결심을 운동으로 만들어주신 분들의 경험을 의미합니다. 이 시기에 병역거부를 하셨던 분들은, 확실친 않지만, 어렴풋이 기억하길, 지금 보다는 상대적으로 예상가능한 패턴의 생활과 활동들을 하셨던 분들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제가 서 있는 위치는 앞선 병역거부자들과 새로이 등장하는 병역거부자들 사이의 경계선 근처에 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예전 병역거부자들의 모습과 더욱 흡사해 보이기도 합니다. 앞선 병역거 부자들의 모습을 너무 많이 봐와서일까요. 후원회를 만들고, 후원의밤을 갖고, 언론사에서 요청한 인터뷰와 촬영에 응하고, 병역거부 운동에서 필요로 하는 부분들을 도와주다 보면, 이런 과정들이 하나의 코스처럼 관성이 되어버리는 건 아닌지 진지한 걱정이 앞서기도 합니다. 아직까지는 이런 활동들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지만, 몇 년 후에는 관성적인 모습이 될 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이지요. 평범한 근황 대신에 욕구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는 건 어떨까요? 요즘은 크게 두 가지 욕구에 특별한 무게 를 두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두 가지 욕구는 수감되기 직전이 아니더라도, 인생의 어느 단락에서나 반드시 지닐 수밖에 없는 욕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첫 번째 욕구는, 옛 경험을 함께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욕구입니다. 저처럼 심히 무심한 사람들은 별 일이 없는 한, 지인들에게 친절한 연락을 거의 안 하는 편입니다. 우연 히 만나면 술이라도 한잔 하자고 말을 걸어보거나, 나를 불러주는 곳이 있다면 얼씨구나 하고 달려가곤 하 는 성격이지요. 헌데 수감될 날이 가까워져 오니, 자주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이 보고 싶어집니다. 물론 제 의도와 상관없이 계속 못 만나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와 친했던 분들의 대부분은, 연락하기가 미안 할 정도로 바쁜 생활을 꾸려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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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욕구는, 지식과 지혜를 가득 채우고 싶은 욕구입니다. 한 때는 제 능력을 과신하여, 마음만 먹으면 모든 분야의 지식을 어느 정도까지는 습득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헌데 한번 파고들어 보니, 어느 분야든 한 분야라도 인류가 쌓아놓은 성과들의 반만큼이라도 흡수하기 위해서는, 평생을 바쳐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 사실을 진실하게 깨달은 뒤에 찾 은 서점은, 저에게 너무나 거대하고 낯설어 보여서, 대체 이 진열장에 꽂힌 수많은 책과 그 안의 지식들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얄팍한 이윤추구의 목적이든, 순수한 지적 성과와 즐거 움을 보여 주고 싶은 목적이든, 오만한 설교의 목적이든, 사람들의 의식과 행동에 큰 변화를 줄 목적이든 간에, 인류가 뱉어낸 말과 글들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넘쳐나서 이제는 두렵기까지 할뿐더러, 옥과 석을 가리는 일조차 너무나 힘든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책을 고르고, 고른 책을 펼치는 이유는 이 행위가 자신의 본성과 운명을 탐 구하는데 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특정 분야에서의 깊은 즐거움을 던져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책 속 문장의 참의미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저자가 쓴 의도를 추론하며 읽는 작업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닌 듯합니 다. 오고 가는 지하철 속에서, 심심풀이로 읽는 잡지와 신문은 정신적 부담감 없이도 잘 읽히지만, 단단한 각오로 꺼낸 책일수록 한 페이지를 넘기기가 힘이 듭니다. 현재 제 옆 책장에만 해도 수많은 분야의 책들이 꽂혀있습니다. 물론 이 중에 태반은 읽어보지 못한 책 들입니다. 이 책들 중에는, 오히려 집중하여 보는 것이 손해라고 여겨질 만큼 쓸모없는 것도 있고, 글자 하 나하나에 온 신경을 집중시켜야 할 소중한 것도 있습니다. 밖에서의 하루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항 상 마음의 각오를 다지곤 합니다. 하지만 소중한 책의 한 페이지를 넘기겠다는 결심이 허무하게 무너지고, 그래서 지혜의 열매를 맛보지도 못한 채 다음 날이 시작할 때면 왠지 모를 우울함에 빠지게 됩니다. 엉뚱한 얘기지만, 가끔 그리스인 조르바씨가 상상 속에 나타나, 제발 책 속의 글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네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하라고 호통을 치는 모습이 보이기도 합니다. 조르바씨는 여러모로 매력적인 인물입니다. 조 르바씨 같은 유형의 자유분방한 모습이 나쁘진 않지만, 현재 저에게는 소로우(Henry David Thoreau)씨의 자유분방하고 진지한 모습이 더욱 끌립니다. 소로우씨가 말하길, 독서는 고귀한 지적운동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이 운동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은 저 처럼 고통을 느낍니다. 이는 머리를 둘러싼 공기가 뇌를 꽉 조이고 있다는 고통이면서, 독서를 마친 뒤 그 리 고귀한 독서가 되지 못했다는 평가에서 오는 고통입니다. “자장가를 듣듯이 심심풀이로 하는 독서는 우 리의 지적 기능들을 잠재우는 독서이며 따라서 참다운 독서라고 할 수 없다. 발돋움하고 서듯이 하는 독서, 우리가 가장 또렷또렷하게 깨어 있는 시간들을 바치는 독서만이 참다운 독서인 것이다.”라는 말이, 마치 제 옆에서 속삭이는 듯 할 때면, 제 이불 옆 장식처럼 누워있는 소중한 책들에게 괜시리 미안해집니다.

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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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구속이 되든, 불구속이 되어 밖에서의 애매한 생활이 계속되든, 크게 염려하지 않습니다. 언제 어 디서나, 제 욕구에 충실하며 살아간다면, 어떤 외부적 상황이 닥치더라도 크게 흔들리지 않을 것 같다는 생 각이 들어서입니다. 하지만 감옥에 가는 것은 언제나 두려운 문제입니다. 감옥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너무 나 많은 욕구들을 함께 가두어 두기 때문입니다. 두려울 때면, 앞선 병역거부자들의 수기가 저에게 큰 힘이 되어줍니다. 아마도 두려움을 극복하는 첫 번 째 방법은 모방일지도 모릅니다. 앞선 병역거부자들이 수감되기 직전에 글로써 남겨둔 고민의 흔적들과 활 동의 모습은 같은 입장에 처해있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모범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 코너가 꾸 준히 이어지길 바라며, 새로운 병역거부자들의 멋진 활동들을 기대해봅니다.

부르뎅 2005.11.21 병역거부 2005.12.01 병역거부선언 기자회견 2006.01.23 남부경찰서 경찰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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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언명령 김영진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 12월 1일 병역거부 선언

내가 ‘전쟁과 평화라는 ’ 거창한 단어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대학 교 입학 한두 해 전이었을 것이다. 동갑내기들이 대학생이 됐을 때 나는 몇 번의 낙방을 겪었던 그때 였던 것이다. 수험생의 일상에 치여 지내다 노암 촘스키의 책들을 읽게 되었다. 그 책은 내게 사람들 이 이렇게 잔인한 방법으로 서로를 죽일 수 있구나 라는 것을 알려줬다. 그 후 드디어 대학교를 갔 고, 입학 후 첫 학기 때 나의 생각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을 찾게 되었다. 그 곳이 바로 민주노동당이었다. 물론 들어가자마자 활동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고 일종의 안도감(당비를 내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는 정도랄까)만을 가진고 학교생활을 했다. 내가 활동한 것은 남들이 보기에 아주 특별한 것은 없다. 억압에 저항하는 사람들이라면 했던 일 들이다. 오히려 나는 저항하려고 했던 사유에 집중했다. 혹자는 비판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많은 인 간의 과오들이 이런 사유를 저버린 것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런 사유에 부족함이 전쟁과 착취, 억압을 가져온게 아닐까. 그래서 나의 저항방식은 사유하는 것이었다. 폭력적인 근대가 만들어온 것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 그것이었다. 이것은 인류의 오만을 성찰하는 것이고, 단절된 자연 과의 소통을 재개하는 것이었다. 세계 여러 곳에서 전쟁의 소식들이 들려왔다. 9.11 테러 이후 보복전쟁인 아프카니스탄 침략전쟁 과 이라크 침략전쟁 소식은 나에게 사유하는 것이 현실과 얼마나 더 직접적 연관이 있는지 느끼게 해주었다. 그리고 ‘왜 전쟁을 할까라는 ’ 단순하게 생겼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은 질문이 내 머리 속에 맴돌게 되었다. 누구도 그 질문에 답하기 쉽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그 답을 구하지 못한 체, 전쟁이라는 현상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만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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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삶을 산다고 살아도 나의 고민 자체는 일상적일 수가 없었다. 어쨌든 내가 공부하는 것 도 철학이라 불리는 것이라 그리 단순한 사유를 내게 허락하지 않았다. 철학이라는 것이 누구에게는 좋지 않은 의미의 사변적인 학문이라 불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모르는 철학들을 조금씩 접해갈 때마다 사유라는 것과 삶이라는 것을 따로 띠어놓고 이야기 할 수 없다는 것을 체화했다. 특히 아도 르노를 접했을 때 그러했다. 아도르노가 누구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그를 장황하게 설명할 만큼 나는 그를 알지는 못하지만, 자주 인용되는 그의 글을 보면 ‘아, 이 사람이 한 말이구나라고 ’ 할 것이다. 그 문장은 “아우슈비츠 이후에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적이다”라는 것인데, 많은 사람들이 보았던 것일 게다. 나는 운 좋게도(정말 운이 좋은지 나쁜지는 모르겠다) 아도르노를 계속 접하면서 인간 문 명이 일으킬 수 있는 파멸적인 국면을 계속 철학적으로 접하게 되었다. 나의 행동 정향을 가장 크게 결정한 것들은 바로 이런 것들이었다. 아도르노가 말한 “아우슈비츠가 되풀이되지 않고 그와 유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명제가 나의 행동을 지배하기에 이른 것이다. 아우슈비츠, 그것은 전쟁의 저편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나치의 특수한 기법이 아니라, 전쟁 그 자체인 것이다. 아우슈비츠가 전쟁이고, 전쟁이 아우슈비츠인 것이다. 전쟁은 누구의 승리가 아니라 승자도 패자도 없는 파국인 것이다. 혹자는 정의로운 전쟁을 말하는데 전쟁의 명분은 정의로울 수 있 어도 전쟁이라는 현상 자체는 결코 정의롭거나 정당화되지 않을 것이다. 그 전쟁에는 극단적인 논리, “내가 죽거나 적이 죽거나”라는 매우 극단적인 이분법적 논리가 모든 극단적이고, 사람들을(군인이고 민간인이고 상관없이 모두 다) 죽이는 행동을 정당화한다. 우리는 전쟁에서 민간인들이 학살당했다고 전쟁 당국에게 비판하면, 그들은 항상 “어쩔 수 없었다. 그때는 전쟁이었다”라는 말만 녹음기에서 반 복해서 재생되듯이 말한다. 극단적인 상황에서의 선택을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런 극단 적인 상황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임을 알 것이다. 전쟁의 본질이 무엇이든 간에 전 쟁을 정당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말해야한다. 그것은 전쟁을 체험하지 않은 세대가 더욱더 내면화시 킬 정언명령인 것이다.

김영진 2005.12.01 병역거부선언 기자회견 2005.12.13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2006.01.19 용산경찰서 경찰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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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들에게 용석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 12월 1일 병역거부 선언

이 세상은 참 재미있는 세상이었습니다. 세상에 두려운 것이 없었고,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없다고 생각 했습니다. 아마도 남다른 그 자신감이 병역거부를 결심하는데도 영향을 끼쳤을 것입니다. 지금도 세상을 사 는 것은 여전히 재미있고, 또 여전히도 세상이 두렵지는 않지만, 요새 들어서는 사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과 다른 모습으로 세상에 살아남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운동이라는 것은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대단하지 않은, 하지만 쉽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누리고 있는 편리함과 권력들을 나에게서 떨쳐내는 일은 정말 쉽지 않기 때문입니 다. 이 험한 세상을 잘 버티고 살아남고 있는 내 자신이 가끔은 대견하기도 하고 뿌듯해지기도 합니다. 그러 다 문득 나의 친구들이 떠오릅니다. 내가 아무리 잘났어도, 나의 모든 것은 내 친구들에게 배워온 것들입니 다. 나보다 더 위대하지 않은 친구는 없습니다.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었다는 ’ 서정주는 그래서 대단 하지 않은 사람이고 불쌍한 사람입니다.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나의 친구들입니다. 하지만 감정표현이 서툴 고 성격이 약간 삐닥한지라 친구들에게 감사의 말 한마디도 제대로 건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전쟁없 는세상의 소식지를 통해서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와 감사의 인사를 건네고자 합니다. 우선 아랫집 식구들입니다. 이들은 나에게 친구이자 평화운동을 함께 하는 동료이자 나의 상상력을 키워 주는 스승입니다. 난생처음 정신적인 상처를 입었을 당시 이들을 만난 건 행운이었습니다. 아마도 전생에서 그리 나쁘지 않은 인생을 살았나봅니다. 치명적인 상처는 오히려 성숙의 계기가 되었고, 인생을 즐기며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아랫집 식구들과 함께라서 참 다행입니다. 저 혼자서는 아마 상상도 못하고 엄 두도 못 낼 삶의 방식이 아랫집 식구들과 함께여서 가능했습니다. 아랫집 식구들의 삶을 보면서 인간에 대 한 사랑과 생명에 대한 경외와 자연에 대한 마음을 배웠습니다. 무엇보다도 지치고 아팠던 나의 마음이 다 시 따뜻해졌습니다. 감옥에 갔다와서도 아랫집에서 지내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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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같은 꿈을 꾸었던 친구들도 있습니다. 이제는 어색한 ‘동지라 ’ 는 이름으로 서로를 불렀던 사람 들입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지금은 서로의 길을 가고 있고, 그들 중의 몇몇들과는 상당한 거리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살면서 내가 떠나보낸 사람도 있고, 내가 떠나온 사람도 있습니다. 이들과의 관계는 내 슬픔의 근원입니다. 함께 꾸었던 꿈이 사라지고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났을 때, 예전과는 다른 생각들이지만 여전히 비슷한 꿈을 꾸고 있다는 느낌이 너무 반가웠습니다. 약속이나 한 듯이 나와 비슷한 방식의 삶을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했습니다. 세상에 대한 분노가 치밀었던 그 때, 그 분노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 이 너무 소중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관계라는 것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아버린 후에도 여전히 아름 다운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설사 과거의 어느 때를 부정하고 싶다고 하더라 도 그 부정하고 싶은 시절 속에서도 나의 친구들은 쏙 빼내어야 할 것입니다. 사학과 친구들 또한 나에게는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놀기좋아하는 나로서는 정말 과를 잘 선택해서 간 것 같습니다. 오해하시는 분이 있을까봐 노파심에 하는 이야기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놀기만 한 것은 아니 었습니다. 아쉬움도 참 많이 남는 관계입니다. 지금도 고집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예전에는 나의 주장이 너 무 강해 서로간의 교감과 대화가 안되었습니다. 때문에 항상 후배들에게 나의 정치적 입장을 강요했고, 당 연히 후배들과의 사이는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생각이 약간 바뀌고 나서 만난 후배들과는 지금도 잘 지 내지만 그 전의 후배들에게는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지금도 만나면 언제나 즐거운 사학과 친구들이 나에게 큰 힘이 됩니다. 내가 하는 운동이라는 이유로 전폭적으로 믿어주고 지지해주는(물론 그들이 자신의 주체적 인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고마운 친구들. 싸가지 없게 말하고 마구 놀려대도 나의 진심을 봐주는 친 구들이 고맙습니다. 내가 하는 일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끔 항상 나를 격려해주는 친구들이 있어서 참 행 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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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거부를 하면서 만난 인권운동, 평화운동을 하는 친구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세상은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 투성입니다. 내가 알지 못했던 것들, 특히 내가 얼마나 많은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지, 많은 활 동가 친구들과 그들의 활동을 만나면서 알게되었습니다. 또한 세상이 얼마나 많은 차별과 불평등, 폭력으로 가득차 있는 지 알게되었습니다. 새로운 것을 알아가고 그 속에서 내가 성장하고 있음을 느끼는 것만큼 즐 거운 일은 또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나의 가족. 항상 미안한 마음으로 미안한 행동을 할 뿐입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보자면 나는 함께 사는 가족들에 대한 예의에 있어서는 완전 나쁜 놈입니다. 아마도 내가 편안한 마음으로 병역거 부운동을 할 수 있는 가장 조건이 바로 나의 가족들일 것입니다. 소시민이지만 너무 부담스럽게 당신 것도 챙기지 않고 주기만 하시는 부모님께 난 해 드릴 것이 별로 없습니다. 병역거부를 해서 감옥에 간다고 해도 내 뜻을 꺾지 않으시고, 오히려 여유가 없어서 너 하는 운동 지원못해줘서 미안하다고 하시는 부모님의 마 음에 대못을 밖는 자식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착한 동생이 있어서 정말 좋습니다. 많은 첫째들이 언니 나 형이 있기를 바라지만, 난 동생이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가족주의 같은 건 싫어하지만, 이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내 삶이 영위되고 있다는 것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혈연으로서의 가족이 아니더라도 함께 사는 가족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도 못지키는 것 같아서 너무 죄송합니다. 대단할 것 없는 병역거부지만, 사실은 이렇게 대단한 일입니다. 나 혼자만으로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그 렇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태연하면 좋겠지만, 불확실한 시간들이 지속되고, 구체적이지는 않아도 얼 마 시간이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생활이 어수선합니다. 다만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지 금의 나를 있게 해준 많은 친구들과 함께 그 친구들이 믿어주는 나 자신을 나도 믿어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더 밝게 웃고 더 슬프게 우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것이 나도 보지 못한 나의 슬픔을 울어 주었던 한 소녀에게 그리고 내 소중하고 고마운 친구들에게 또한 나에게 행복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용석 2005.12.01 병역거부선언 기자회견 2005.12.20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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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 대체복무도입 권고안 발표 -국회는 하루빨리 대체복무법안 통과시켜야 날맹 | 전쟁없는세상 책임활동가 + nalm109@hanmail.net

5년만에 나온 인권위 권고안, 국회에 대체 복무제도 입법 촉구

안보상황을 근거로 대체복무제도 도입을 반대하 는 주장에 대해 인권위는 "독일과 대만의 대체복무

지난 12월 26일, 국가인권위는 양심에 따른 병

제도의 도입은 안보위협이 있는 시기에 도입되었

역거부권과 병역의무가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고, 특히 국방부의 병력 감축계획과 감축규모 그리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권고안을 발표했

고 지난해 감축사실을 종합해 보면 안보환경이 대

다. 26일 인권위는 우리 헌법 제19조와 자유권규

체복무제도 도입여부를 판단하는 결정적인 기준이

약 제18조에서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가 "정신적

될 수는 없다"고 꼬집었다.

자유의 모체를 이루는 인간존엄성의 기초로서 정 신적 자유의 근원을 이루는 국가비상상태에서도

다만 인권위는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해서는 △

유보될 수 없는 최상급의 기본권"이라며 양심의 자

대체복무 인정여부를 공정하게 판정할 기구를 설

유에는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강제 당하지 않을

치하고 △기간은 초기 단계에서는 현역복무기간을

자유로 ' 서 양심적 병역거부권이 포함된다고 밝혔다.

초과하더라도 추후 국제적 기준에 따라 단계적으 로 축소하도록 하며 △대체복무의 영역은 사회의

인권위는 현 제도가 '양심적 병역거부 및 그로

평화와 안녕, 질서유지 및 인간보호에 필요한 봉사

인한 형사처벌과 ' '단순한 병역의무의 이행' 사이에

와 희생정신을 필요로 하는 영역 중에서 우리 실

양자택일하는 해결방법뿐이라며 양심의 자유와 국

정에 맞게 채택하여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방의 의무가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은 '병 역이외의 방법으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할 수 있는

인권위 권고안 헌재대법원 ․ 판결과 상충하

대체복무제도라 ' 고 지적했다.

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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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5월 21일 서울남부지방법원(이정렬 판사) 은 “양심적 병역거부는 병역법 제88조 제1항(입영의 기피) 소정의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 해당되므로” 무죄 선고를 하여 병역거부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 다. 같은 해 7월 15일 대법원은 병역거부자에 대해 유 죄판결을 내렸지만, 상호 충돌하고 있는 양심의 자유 와 국방의 의무라고 하는 헌법적 가치와 법익이 동시 에 가장 잘 실현될 수 있는 조화점을 찾아낼 수 있도

12월 27일에 있었던 연대회의 입장표명 기자회견 모습

록 입법부의 대체복무제 논의를 촉구하였다. 또한, 곧

차원에서도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고 " 지적했다. 이

이어 헌법재판소에서는 “양심보호조치 등에 관하여 입

어서 연대회의는 병역거부 문제로 재판이 예정되어 있

법적 권고를 ” 언급하였다. 이렇게 볼 때, 이번 인권위

거나, 이미 구속된 병역거부자들에 대해서도 "입법이

의 권고안은 사회 일각에서 제기하는 것처럼 헌재대 ․

완료될 때까지 재판의 무기한 연기 및 보석 조치가 있

법원 판결과 상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회에 대

어야 한다고 " 밝혔다. 또 이미 형을 마친 병역거부자

체복무입법을 촉구하라는 이전 헌재대 ․ 법원 판결의 맥

들에 대해서는 사면, 복권을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해

락을 이어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야 한다고 덧붙였다.

“인권위 권고, 병역거부 논란에 원칙적 해

이제는 구체적인 대체복무방안 고민할 때

답 제시” 연대회의는 기자회견에서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인권위의 권고안이 나온 직후인 12월 27일, 양심에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고 그 수준을 향상시킴으로써 인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개선을 위한 연

간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대회의이 ( 하 연대회의)는 권고안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국가인권위원회 설립목적을 생각해봤을 때, 인권위의

밝혔다. 연대회의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이번 결정은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고 할 수 있다라 ” 고 밝혔다.

열고 "인권위원회 권고는 최근 몇 년간 계속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둘러싼 논란에 있어 원칙적인 해답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며 " "앞으로 국가

현재 국회에는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과 임종인

안보 등을 이유로 기본권을 제안해왔던 기존 관행을

열린우리당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병역법 개정안이

바로잡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 밝혔다.

1년 넘게 계류 중에 있다. 지난 50여 년간 일만 명이 넘는 병역거부자들이 국가의 부당한 권력에 의해 처벌

연대회의는 "대체복무제는 이미 수많은 나라에서

받은 것을 고려한다면, 국회는 더 이상 망설이지 말고

검증을 거친 가장 합리적인 대안임이 증명되었고, 사

오랜 논란의 종지부를 찍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이제

회복지 차원에서 그 효용성도 크게 인정받고 있다며 "

는 병역거부 찬반 논란을 넘어서 구체적인 대체복무방

"인간안보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대체복무제도는 안보

안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13호

11


토론회, 한국종교와 병역거부 -평화주의에 대한 한국종교의 현주소를 묻다 나동 | 매체편집팀 + peace1 @ jinbo.net

한국종교, 스스로 길을 묻다 서구사회와 반대로, 한국 종교는 여호와의 증인

부>라는 자못 의미심장한 제목을 달고 있었다.

토론회 살짝 맛만 보기

을 제외하고 다소 뒤늦게 병역거부 문제를 인식하 기 시작했다. 병역거부자 오태양과 김도형은 불교신

노회찬, 임종인 의원 축사, 발제자 2인 각각 30

자였으나 사람들은 병역거부와 종교의 관계를 심각

분씩 발제, 지정토론자 4인 15분씩 발제, 질의응답,

하게 묻지 않았다. 병역거부 운동 초기에는 여호와

전체토론까지 4시간 가까이 진행된 토론회. 역시

의 증인이 아닌데도 병역거부를 했다는 사실만이

조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으나 나름대로 의미있는

화제였다. 그렇지만 우리는 한 발 앞서 생각했다.

자리였다고 생각하는데 무엇보다도 발제문이 매우

베트남 전쟁 때처럼 현역군인이 병역거부 하는 일

훌륭했기 때문이다. 발제자들 모두 상당히 준비된

도 가능하겠다고. 천주교나 기독교 신자가 병역거부

모습을 보였다.

를 하게 된다면 종교계 내에서도 병역거부 관련 논 란이 뜨겁게 전개되리라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전

먼저 노회찬 의원의 축사. 군대 문제보다는 인권

자는 강철민의 농성으로 현실이 되었다. 군입대 뿐

문제에 초점을 맞춰서 다양한 가치관이 존중되는

만이 아니라 국가가 개인의 양심에 위배되는 부당

사회를 강조했다. 특히 황우석 교수 논란을 보며

한 행동을 강요했을 때 개별자들은 어떻게 대처할

‘애국주의를 ’ 앞세운 폭력에 공포와 전율을 느낀다

것인가 고민이 깊어졌다. 그리고 후자는 천주교 신

는 말에 십분 동감.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이 사

자 고동주씨 병역거부가 계기가 되었다. 이제 종교

회의 현주소가 아닐까? 40분쯤 늦게 도착한 임종인

계도 오랜 침묵을 깨고 발언하기 시작했다. 흥미로

의원은 축사라기보다는 입법운동 보고대회 같은 분

웠다. 한국 현대사에서 종교는 과연 제 역할을 다

위기를 연출했는데 다소 고무된 듯한 모습이었다.

했는가? 한국 종교는 국가안보와 국민여론이라는

국회 국방위원회 내 분위기를 전달하는 것으로 시

장벽을 넘어 병역거부를 옹호할 수 있을 것인가?

작해 이런 저런 제안을 전달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토론회는 한국 종교 스스로 길을 묻는 자리였다. 그

마무리했다.

래서 열린 토론회는 <한국종교와 양심적 병역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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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발제는 ‘보편적 인권으로서 양심적 병역

의 대응방식(가령 군종장교), 주류 기독교 특히 한

거부, 그리고 종교의 역할이 ’ 라는 주제로 참여연대

기총의 논리 분석으로 이어졌다. 발제문 자체가 워

이대훈 씨가 맡았다. 그 동안 수없이 들어온 내용

낙 길어서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하지 못한 기색이

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모습을 보니 오래 동

역력했으나 발제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참신하고

안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왔음이 분명하다. 두

설득력 있었다. 한국 주류 종교가 그동안 전쟁을

드러진 특징은 선택적 병역거부에 대한 인식이 크

어떻게 이해했는지 궁금했다면 꼭 발제문을 읽어

게 강화되었다는 것. 이것은 병역거부 역사에서도

볼 것. 역사적으로 내부의 배신자를 향한 처벌이

일반적인 특징인데, 구체적 명령에 대한 거부권이

가장 가혹했다는 역사적 진실이 다시 한 번 확인

란 개념이 강철민씨 농성 이후로 크게 진전된 형

된다. 심지어 이단과 배교를 강요하는 상황에서 강

태로 자리잡았음을 보여주었다. 1년이 조금 넘는

력한 국가폭력의 힘을 등에 업기도 했으니, 과거

시간이 새롭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국가와 개인

독재정권 시절 핵심교리를 수정하면서까지 탄압을

간의 문제에 있어 일방적인 강요만을 인정하는 사

피하고자 했던 예수재림교 이야기를 아는 사람이

회에서는 인권이 설 자리가 없다. 인권의 관점에서

얼마나 될까? 90년대 이후 한국 종교는 생명운동

볼 때, 불법무기핵 / 무기 사용, 민간인 학살, 부당한

에 주력해왔는데 여기서 전쟁문제는 분리해서 사

전쟁참여, 전쟁물자 제작운 / 반, 전쟁세금 납부 등

고한 게 문제라는 지적 또한 날카롭다. 풍요로운

구체적인 상황에서 행위 주체로서 개개인은 폭넓

생명 담론이 개인의 문제로 탈정치화 되면서 약자

은 선택권을 보장받아야 한다. 아울러 군인에게도

들로부터 멀어졌으니 이제라도 생명운동을 제자리

시민권이 있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고민해야할 시

로 돌려놓기 위해 전쟁문제를 깊이 고민해야 한다

점이 되었다. 미군의 경우, 신병들에게 부당한 명

는 주장은 옹달샘 샘물처럼 아릿아릿 시원하다!

령에 대한 거부권은 물론 실제 명령을 거부했을 때 구제절차까지 교육한다는데 아무래도 베트남 전쟁의 여파가 컸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군인을 민간인(?)과 다른 생물로 여기는 사회에서 군인도 시민권이 있다는 과격(?)한 주장은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킬 지 궁금했다. 두 번째 발제는 ‘한국종교와 양심적 병역거부, [정통]과 [이단]을 넘어서란 ’ 주제로 강인철 교수 가 발제를 맡았다. 강인철 교수 발제문은 논문으로 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가치가 있으니 관심있는

한국 종교와 양심적 병역 거부 토론회 전경

사람들은 나중에 꼭 한 번 찾아보기 바란다. 발제 는 ‘정의로운 전쟁에 ’ 대한 종교적 해석, 주요종교

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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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자들이 학문적인 관점에서 일목요연하게 내

내게 강같은 평화

용을 정리한 것에 비해, 지정토론자들은 개인사를 곁들여 자기고백을 하는 분위기였다. 종교인들은

종교는 수천년 동안 평화를 이야기해왔다. 그런

다소간 미안한 감정을 표현했고, 연대회의 집행위

데 그 평화가 기득권이 보장되는 가운데, 다수의

원장 최정민 씨는 수감된 병역거부자들을 향해 애

침묵과 복종으로 유지되는 평화라면 어떻겠는가?

틋함을(?) 토로했다. 종교단체를 대표하는 건 아니

아무튼 종교는 지난 수천 년간 지도적인 역할을

지만 종교인들의 자기고백 속에서 나는 무언가를

수행해왔다. 지난날 전쟁이 가져온 참담한 결과로

읽어내려 노력했다. 그들의 고민은 어디까지 진행

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미 수많은 종교인들이

되었고 병역거부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공식적으로 과거를 반성하고 있다. 거기서부터 출

지를. 대략 느낌은 이러했다. 종교의 사회적 역할

발해야 한다. 자신을 제대로 비판하지 못하면 한

을 감안했을 때 사회통합 이데올로기를 완전히 거

발짝도 더 나가지 못한다.

부할 수가 없다. 그래서 매우 조심스럽고 국가적

여전히 선악 이분법에 근거해 전쟁으로 세상을

이익이나 애국이 여전히 중요하다. 어떻게 조화를

구원하겠다고 떠드는 종교인들도 있다. 그들도 평

이뤄낼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양심에

화를 이야기한다. 어떻게 생각하든 좋다. 그런데

따른 병역거부권보다 대체복무제에 초점을 맞추려

내게 강 같은 평화만이 아니라, 온 세상에 강같이

하는 분위기였다. 그렇다 해도 종교가 생명과 인권

흘러넘치는 평화를 염원해야 하지 않겠는가? 오늘,

에 민감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면 병역거부에 대

종교는 어디에 서 있는가?

해서도 좀 더 분명한 입장을 내는 게 옳다는 생각 이다. 어쨌든 종교계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이상 뭔가를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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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대화법을 소개하기 앞서... 영은 | 매체편집팀 + slow-steady @ hanmail.net

일상에서의 폭력

일으켜야 할 필요가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대개 우리 자신의 폭력성을 인정하지 않는데, 이것은 우리가 폭력

지금까지 우리는 '폭력이 ' 라는 말을 들으면 싸우

그 자체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이것을 더 확실하게 깨우쳐주시기 위해서 내게 폭

고, 죽이고, 전쟁하는 특정한 물리적 폭력을 가장

력의 족보를 나무그림처럼 그리게 하셨다. 매일 저녁 할아버지

먼저 떠올리곤 했다. 물론 거기서 더 나아가 정신

는 그날 하루에 생긴 일들을 분석하도록 도와주셨다. 그리고

적 폭력이나 구조적 폭력까지도 이야기하지만 사

그 분석한 것들을 나무에 달았다. 나무의 한쪽 가지에 단 것들

실 우리 스스로가 얼마나 많은 언어적 폭력에 노

은 "육체적"(그 폭력에 실제적인 힘이 쓰였다면)인 것이고, 다

출되어 있는지는 스스로 실감하지 못한다. 마하트 마 간디의 손자인 아룬 간디(비폭력간디협회 설립

른 쪽 가지에 단 것은 "정신적인 " 것(감정적으로 상처를 입히 는 것)이었다. 두 달 만에 내 방의 한 벽은 전부 이 "정신적" 인 폭력으로 뒤덮혔다. 할아버지는 이 "정신적인 " 폭력이 육체

자)는 자신이 비폭력의 깊이와 폭을 이해하게 되

적인 폭력보다 훨씬 더 해롭고 간악하다고 하셨다. 정신적인

었던 경험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폭력은 피해자들의 내면에 분노를 일으켜서 그 피해자들이 개 인이나 집단으로 결국은 폭력적으로 나오게 만들기 때문이다.

내가 할아버지께 배운 것 중 하나는 우리가 모두 폭력적으로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 우리 마음가짐에 질적인 변화를

다시 말하면, 정신적 폭력이 육체적인 폭력에 불을 치피는 연 료인 셈이다.

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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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한 번쯤 자신의 하루를 가만히 정리해본

법을 알게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즉, 비폭력대화

다면 그 속에서 자신이 주고받았던 대부분의 상처

를 통해 우리는 자신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말

들은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 생각없이 내뱉었던

을 듣는, 뭔가 다른 방법을 알게 되는 것이다. 우

이야기들, 소통없이 자신이 마음대로 만들어낸 자

리가 가슴으로 줄 때는 스스로 원해서 다른 사람

신만의 감정들일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탓하며

의 삶에 기여했을 때 느끼는 즐거운 마음으로 행

혹은 자기 자신을 탓하며 자신의 상처에 아파하고

동하게 된다. 그렇게 주고받을 때만이 주는 사람이

힘들어하곤 한다. 하루하루 자신의 감정노동에 울

나 받는 사람 서로에게 유익하다.

고 웃는 당신이라면 이제 마셜박사가 이야기하는 비폭력대화에 한 번 귀기울여보길 바란다.

마셜박사의 비폭력대화

비폭력대화 모델 서로 마음으로 주고받는 대인관계를 성취하기 위해 다음 네가지 요소에 초점을 둔다.

마셜박사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본성을 즐거운

첫째, 어떤 상황에서나 있는 그대로, 실제로 무

마음으로 서로 주고받는 것을 기뻐하는 것이라고

엇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관찰하는 것이다. 곧 나한

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일상에서 서로 폭력적

테 유익하든 그렇지 않든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이고 공격적으로 행동하게 되는 까닭이 무엇인지,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또한 이런 폭력적 일상 속에서도 연민의 마음을

상대방의 행동을 어떤 판단이나 평가를 내리지 않

유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한

으면서 관찰한 바를 명확하게 그대로 말하는 것이

의문을 항상 가지게 된다.

다.

연민을 느끼는 능력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을

둘째, 그 행동을 보았을 대 어떻게 느끼는가를

연구하면서 마셜박사는 우리가 쓰는 언어와 말이

말한다. 아픔, 무서움, 기쁨, 즐거움, 짜증 등의 느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알게 된다. 이 역할을 깨

낌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로는 자신이 포

닫게 되며 다른 사람들과 자연스레 연민이 우러나

착한 느낌이 내면의 어떤 욕구와 연결되는지를 말

는 유대관계를 맺는 데 도움이 되는 구체적인 대

하는 것이다. 즉, 자신의 내면에 있는 정확하고 솔

화방법을 고안해내게 된다. 바로 이 접근 방식을

직한 욕구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셜박사는 ‘비폭력대화라 ’ 부르기로 했다. 여기에

자신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

서 ‘비폭력은 ’ 간디가 사용한 것과 같은 뜻으로 쓰

이 자신에게 해주길 바라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인다. 이는 우리 마음 안에서 폭력이 가라앉고 자

비폭력대화는 이 네가지 정보를 말이나 다른 방법

연스럽게 본성인 연민으로 돌아간 상태를 가리키

으로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방에

는 것이다.

게서 똑 같은 네가지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같은 방식으로 자기 의사를 표현하고, 다른 사

비폭력대화는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인간성 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소통방식으로 우리 자신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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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들도 그렇게 하도록 도우면서 대화의 흐름을 이 어나간다면 자연스럽게 연민이 생겨날 것이다.


내 자신이 하는 대화의 상당부분은 항상 내 자신

정리하며

을 방어하고자 하는 매우 이기적인 방식이다. 그래 서 너무 쉽게 비폭력대화를 하면 평화가 시작된다

마감날짜를 몇주를 지나 다시 이 기사를 이어서

는 마무리를 쓸 수가 없었다.

쓰기 시작했다. 이 기사의 구성은 세 부분이다. 우 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들이 얼마나 자기 감

이 기사를 준비하면서도 난 수많은 사람들에게

정 중심적이고 가끔은 폭력적이기까지 한지를 지

내 마음대로의 대화방식으로 인해 많은 상처를 주

적하고 마셜박사가 이야기한 비폭력대화의 내용을

고 받았다. 하지만 비폭력대화의 가능성에 대한 확

정리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비폭

신이 없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내 자신

력대화가 사람들간의 소통을 얼마나 평화롭게 해

이 비폭력대화법을 잘 실천하고 있는 사람은 아니

줄 수 있는가를 이야기하며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지만 그 내용으로 조금씩 나의 진심과 상대방의

패러디하여 '진심을 고백할 때, 평화는 시작된다.'

진심에 귀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진

는 말로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아마 이 생각은 한

심을 고백하는 일이, 그리고 감정을 배제하고 상대

달 전부터 했었을 것이다. 궁색한 변명이지만 편집

방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자의 간곡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계속 약속을 어겨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야했던 이유는 내 자신을 속이는 글인듯 하여 자 꾸 손이 가질 않았다.

분명한 것은!! 정말 용기내어 마음을 열고 내 자신의 진심과 상대방의 진심을 듣는다면 당장의

위에서 본 것처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아픔과 고통은 있을 수 있지만 결국 그 소통은 서

감정을 배제하고 관찰하고 그 때 자신의 느낌과

로의 관계에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욕구를 아주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

다. 오늘 하루 당신의 마음에 누군가 자꾸 남는다

부분의 사람이 그러하듯 우리는 어느샌가 자신의

면…. 용기내어 당신의 진심을 전해보길 바란다. 진

진심을 고백하는데 어색함을 느낀다. 상대방의 반

심을 고백할 때, 평화는 시작된다.

응에 두려움을 느껴서이기도하고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 생겨나는 것을 피하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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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새로운, 다른 종류의 인간을 길러내지 않는 한, 우리는 희망이 없어요. -비폭력 대화법 강사 캐서린 한(Katherine, Han) 선생님 조은 | 전쟁없는세상 책임활동가 + innocent_kr@daum.net

'전쟁없는세상에 ’ 서는 이번 소식지 기획기사로 준비한 비폭력 대화법에 대하여 한국에서 비폭력 대화법을 가르치시는 캐서린 한(Katherine, Han) 선생님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소식지 제작기간 내내 외국에 계신 캐서린 선생님과 연 락이 되지 않은 관계로 부득이하게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가람이 2005년 3월, 캐서린 선생님과 인터뷰를 한 내용을 인용하 여 글을 작성하였음을 밝힌다.

비폭력대화란

사람이 공감하는 가치와 욕구에 초점을 두고 친선을 북돋우는 말을 사용하도록 장려하는 대화 방식이다.

비폭력대화(Nonviolent Communication, NVC)는

이러한 대화법을 체계적으로 프로그램화한 사람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갈등을 평화롭게 해결하는

미국의 마셜 로젠버그 박사로, 그가 1984년 설립한

데 필요한 정보를 쉽게 교환할 수 있는 대화 방법이

NVC센터는 20년 동안 180명이 넘는 강사를 보유한

다. 이는 이러한 대화를 순조롭게 이러갈 수 있게끔

국제적 비영리 단체로 성장했으며, 세계 30개국에서

상호관계를 형성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분노를

각계각층의 사람들에게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자아내고 자존심을 떨어뜨리는 말을 피하고, 모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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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 한(Katherine, Han)과 NVC “학생이 선생님 바보야! 그런다면 예전 같으면 한국에서는 캐서린 한(Katherine, Han) 선생님

선생님이 대게 아, 내가 자격이 없구나, 잘못하고 있구나, 다른 직장 찾아보자, 하고 우울 해 질 수

이 비폭력 대화법 평생교육을 하시고 있다. 캐서린 한 선생님은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하

있어요, 그리고 또 한 가지는 학생을 나무랄 수 있

고 1968년에 미국으로 이주한 후, 그곳에서 NVC

어요, 너 버릇없다, 어디다 대고 그렇게 말하느냐

센터 위원과 인증지도자로 활동하며 현재 이화여

하고 땅 땅 때리기도 하고. 그런데 다른 방법은 우

대 평생교육원에서 ‘NVC 지도자 과정을 ’ 강의하고

선 자기 자신을 들어주는 거예요. 속으로 할 수도

있다.

있고. 아, 내가 저 말을 들으니까 정말 실망이다. 왜냐하면 조금 더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싶고, 효

그가 NVC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한 10년 전으

과적으로 아이들 인생에 기여하고 싶은데, 좌절감

B.

을 느낀다. 어떻게 하면 조금 더 기여하는 방법으

Rosenberg) 선생님 강의였다고 한다. 그는 처음에

로 공부를 가르칠 수 있을까. 그러면 여러 가지 방

는 그의 개인생활에 도움이 되고, 행복하게 살기

법을 자기가 생각을 할 수 있어요. 그렇게 함으로

위해서 강의를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흥미를 느끼

써 자기 마음에 평화를 이루고, 그 다음에는 아이

고 더 공부하게 되다보니 자연히 남들도 가르치게

말을 들어주는 거예요. 얘야, 내가 이렇게 가르쳤

되고, 그러다가 인증지도자(Certified Trainer)가

을 때 조금 짜증이 났니? 다른 방법으로 하기를

되고, 센터에 Board Member도 되면서 점점 더 많

원했니? 하고 물어보는 거예요. 대화가 되도록..”

로,

미국에서

마셜

로젠버그(Marshall

이 활동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에 오래 산 한국 사람으로서 한국에 뭔가 기여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NVC를 공 부하면서 NVC가 한국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 이 한국에 NVC를 들여온 이유라고 밝혔다. 그리고 NVC를 들여온 것은 단순한 평화적 대화법을 들여 온 것에만 의미를 둘 수는 없고, NVC의 도입은 우 리 생각을 바꾸는 패러다임 전환(Paradime Shift) 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사람이 누군가 의 공격을 받으면 자책하거나 공격하는 반응을 보 이지만 NVC를 이용해 상대의 말 뒤의 느낌을 들 어주면 평화로운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고, 이러 한 시도자체가 일상적 대화의 패러다임을 전환하 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한다.

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13호

19


그는 NVC 교육의 진행방식은 이론이 적다고 하

고 사는 사람들에게 슬픈 감정을 느낀다며, 그들이

였다. 이론이 아무리 좋아도 쓸 수 없으면 소용이

NVC수업을 통해 자신의 욕구를 듣고, 내 의견의

없으므로 주로 연습, 역할극, 소그룹 실습을 통한

존중, 선택의 자유, 자율성, 자기 구현 등을 찾는데

방식을 택한다고 한다. “각자 실생활에서 일어나는

도움을 주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NVC를 배우는데

상황들을 연습하니까, 내면화를 빨리 하는 것 같아

있어서 미국에서는 국가, 지역사회가 비용을 부담

요. 예를 들어 우리 애가 학원을 간다고 하고 PC

하기에 거의 무료인데 비해, 한국은 강의를 듣기

방에 가서 소리를 질렀다, 뭐 그런. PC방에 가는

위해서는 비용이 상당히 들어가는 점에 아쉬운 생

건 아이들이 충족시키고자 하는 욕구가 있는거예

각이 든다고 하셨다.

요. 그걸 이해해주면 그걸 만족시키기 위한 방법을 같이 연구할 수 있어. 소리를 지르는 방식 등은 대

한편 캐서린 한 선생님은 한국에서 NVC의 관심

화를 막는 것. 그럼 아이들은 자기 보호를 위해 거

이 늘어나면 강의 요청은 계속 늘어나는데 자신

짓말을 하거든. 원래 거짓말을 하는 아이는 없어.

이 전부 갈 수는 없고, 보낼 사람 또한 부족한 것

그렇게 만드는 거지”

이 안타깝다며 앞으로는 지도자를 양성하는 일에 힘을 기울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에서의 NVC 한국에서 NVC를 배우고 싶으면 캐서린 한 선생 그는 한국에서 NVC교육과정을 진행하면서 몇

님이 진행하는 평생교육원을 찾아야한다. 인터넷으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한국 사람

로 http://krnvc.org/ 에 들어가면 NVC에 대한 자

들이 가부장제 하에서 너무 오랫동안 강하게 억눌

세한 소개와 교육 프로그램을 확인할 수 있다. 그

려왔기에 어려움을 그냥 받아들이고 자신을 포기

가 번역한 서적 ‘비폭력대화을 ’ 참고하는 것 또한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라 한다. 젊은 사람들은

NCV를 공부할 수 있는 유효한 방법이다.

조금 덜 하기는 하지만, 너무 자신의 욕구를 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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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나의 모습을 찾는 지도, 비폭력대화 아침 | 평화인권연대 활동가 + achimgirin @ gmail.com

이 글은 월간 평화연대에 아침의 지면특강에 연재되었던 내용의 일부를 요약하였습니다.

들어가며

리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게 되었을 때는 엄청난 해방감을 맛보았습니다. 그 이후로 그것

비폭력 대화를 배우고 나누기 시작한지 햇수

이 어떤 것이든 불안도, 기쁨도, 분노도, 행복 진

로 3년이 되어갑니다. 감정에 예민하고 솔직하게

정한 나의 모습을 찾는 지도의 도역할을 하게 되

반응하는 편이라 속상하고 우울하고 화나고 미운

었습니다. 아직도 많은 훈련이 필요하지만 제가

감정들을 못견뎌했었는데 그것들이 저에게 어떤

맛본 그 황홀감을 좀 더 많은 곳에서 나누길 희

중요한 걸 알려준다는 걸 알았습니다. 나의 느낌

망하고 있습니다. 능력이 부족하여 예전의 썼던

들은 아주 솔직하게 내가 무엇을 원하는 지를 알

글로 비폭력 대화의 소개를 대신합니다.

려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13호

21


비폭력 대화의 목적

고 규율에 맞는 행동을 하면 칭찬을 하고 자신의 필요를 주장을 하면 벌을 주는 방식으로 노예들을

비폭력 대화를 하다보면 ① 적대감 없이 상대를

길들여왔다. 가끔은 폭력을 사용하면서 폭력적인

바라보며 긴밀하고 친밀한 유대관계를 맺을 수 있

말하기를 계속해왔다. 다른 사람들에게 겁을 주거

고, ② 나와 상대가 원하는 것을 모두 만족시키며

나 수치심을 느끼도록 만드는 이런 말하는 방식은

③ 즐겁게 만든다. 비폭력 대화는 간단한 모델을

수천 년 동안 피지배계급뿐 아니라 지배계급들 역

따라 말을 하게 되지만 그 형식에 깊은 가치와 성

시 불행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찰을 담고 있다. 외국어를 배울 때처럼 어색하더라 도 꾸준히 연습을 하고 사용을 하다보면 분명 평

도덕주의적 판단(moralistic judgement)

화를 만들어내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비폭

도덕주의적 판단은 자신과 다른 것에 대해서 틀

력 대화 워크샵을 할 때 기린을 상징으로 쓴다. 기

리다거나 나쁘다고 판단하는 것을 말한다. 나아가

린은 초식동물이라 비교적 평화롭게 살고, 큰 키를

벌을 주어야한다는 식의 생각도 한다. 다른 것은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당장 눈 앞의 것만 바라보는

틀린 것이고 틀린 것은 나쁜 것이고 그러니까 벌

것이 아니라 멀리 볼 수 있고, 큰 키를 유지하기

을 받아 마땅하다는 식의 사고방식이다. 우리는 흔

위해 육상동물 중에서 가장 큰 심장을 가지고 있

히 ‘게으름뱅이’, ‘고집쟁이’, ‘마초’ 등의 꼬리표를

다. 그래서 가슴에서 나오는 삶의 언어라고도 불리

단다. 꼬리표는 비폭력 대화의 관찰하기에서 말했

는 비폭력 대화의 상징으로 삼게 되었다. 기린은

듯이 다른 사람의 진정한 모습을 보지 못하도록

사자 등을 뒷발로 차서 나가떨어지게 만든다. 자신

가리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면 피부색이 다른 사

을 보호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기린과 대비

람들을 다른 이유 없이 고용하려들지 않는 행위를

되는 폭력적인 대화를 하는 상징으로 자칼(Jackal)

한 사람을 인종차별주의자라고만 한다면 그 사람

을 쓰는데 문화에 따라 뱀이나 다른 야비하다거나

의 다른 변화가능성과 진정성을 외면하게 된다. 비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상징으로 대체하기도 한다.

폭력 대화에서는 도덕주의적 판단 대신 가치판단

단지 워크샵을 진행할 때 이해를 돕기 위한 상징

(value judgement)을 권하고 있다. 가치판단은 우

에 불과하다.

리 삶에서 우리가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바에 따라 서 판단하는 것이다.

삶을 소외시키는 대화 수렵, 채집의 공동체 사회에서는 아마도 우리의 본성과 맞는 비폭력 대화를 사용해 왔을 것으로 추정이 된다. 그러나 농경사회가 시작이 되는 8천 년 전부터 인류는 계급사회를 이루었고 지배계급 이 피지배계급을 다루기 용이하도록 말을 만들어 냈다. 노예들이 자신들의 욕구를 인식하고 요구하 게 되면 계급사회가 유지되기 힘들다. 규율을 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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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하기 어릴 적 부모님이나 선생님들로부터 가장 듣기 싫었던 말들 중에 하나가 남들과 비교하는 것이었 다. 누구는 전교 1등인데, 누구는 달리기를 잘하는 데 … 등의 말은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 받기보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 속에서만 존재 가치 를 찾도록 한다. 항상 불안하고 자신에 대한 연민 도 상실하게 한다.


책임을 부정하기 책임을 부정하는 것 역시 삶을 소외시키는 대 화의 한 형태이다. 우리는 흔히 ‘~해야만 한다.’거 나 ‘어쩔 수 없다는 ’ 식으로 우리의 느낌과 욕구

비폭력 대화의 모델 ①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구체적인 행동을 관찰하고,

에서 벗어난 행동을 정당화시키려든다. 위계적인

② 관찰한 바에 대한 우리의 느낌을 표현하고,

사회에서는 특히나 스스로 선택해서 행동하는 것

③ 그러한 느낌이 들게 하는 욕구, 가치관, 소

이 아니라 복종하기 때문에 이런 습관은 더 강화 된다. 예를 들어 막연하게 해야만 하니까 사무실 을 청소한다고 말하기보다 사무실을 청소했을 때

망 사항을 찾아내고, ④ 우리 삶을 풍성하게 하기 위해 구체적인 행 동을 부탁한다.

의 충족되는 욕구(need)에 충실하다면 ‘청결한 공

당신이 ~~~ 했을 때, 나는 ~~~을 느낀다. 왜

간을 원하기 때문에 청소를 하기로 선택한다.’고

냐하면 ~~~가 원(필요, 중요)했기 때문이다.

하는 것이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것일 것이

~~~ 해줄 수 있나요?(내 얘기가 어떻게 들려

다.

요?)

강요하기

① 관찰

강요하는 것 역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

여기서 관찰이란 우리의 판단과 평가를 멈추고

해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하게 만들게 된다.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 ‘네

강요를 할 경우 상대방은 두려움이나 죄책감이나

가 나를 무시했을 때가 ’ 아니라 ‘네가 나의 인사

수치심에서 복종을 하거나 반항을 하는 두 가지의

를 받지 않고 그냥 지나쳐갔을 때라 ’ 고 말하는 것

경우만을 얻을 수 있다. 강요에는 거절할 경우 벌

이다. 워크샵을 진행하다보면 꼭 주의를 주어도

을 내릴 것이라는 암시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무시라는 것이 관찰이라고 우기는 경우가 많다.

또한 어떤 행동에 대한 보상과 처벌에 대한 것

‘무시했을 때라 ’ 고 말하는 것은 그 이전에 이미

역시 우리의 삶을 소외시킨다. 우리가 어떤 행동

머릿속으로 ‘저 사람이 나를 무시하고 있다는 ’ 판

을 하는 것은 보상이나 처벌 때문이라면 삶은 더

단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무시하려는

할 나위 없이 각박할 것이다. 진정 변화를 원한다

마음이 상대에게 있었다고 하더라도 상대를 비폭

면 큰 용기가 필요할 것 같지만, 우선은 자기 자

력 대화의 목적에 맞게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자신

신이 지금 어떤 것을 원하는지, 그것이 수단이나

의 판단을 밝히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많

방법인지 정말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need)인

다.

지 찾아보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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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느낌

시키기 위해 말 그대로 상대 혹은 자신에게 부탁을

여기서 느낌이란 자신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정

하는 것이다. 부탁에는 연결부탁과 행동부탁이 있다.

을 말한다. 조심해야하는 것은 자신의 생각인지 아닌

연결부탁은 대화에 상대를 초대하는 것으로 ‘내가 말

지를 구분하는 것이다. 무시 받은 기분, 벌 받은 기

한 것이 어떻게 들려? 내 말을 들으니 너의 느낌은

분 등은 상대의 행동에 대한 자신의 판단일 뿐이다. 느낌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이 되는데 하나는 우

어때?’ 등으로 말할 수 있다. 혹은 바로 구체적으로 상대에게 어떤 행동 등을 부탁할 수 있다.

리의 욕구가 충족이 되었을 때와 충족되지 못했을 때 이다. 예를 들어 친구를 보고 싶었을 때 만나게 되면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기쁘고, 반갑고, 행복하고, 즐거울 수 있다. 하지만

▷ 새로 시작한 수업에서

만나지 못하게 되면 슬프고, 외롭고, 짜증나고, 화날 수 있다. 한국말의 어순에서는 느낌이 먼저 나오는 것이 어 색하기는 하지만 우리의 오랜 습성 상 자신이 진정 원했던 욕구를 찾아내기 힘들기 때문에 느낌을 통해

강의실에 들어서자 나의 별칭을 부르며 인사를 했을 때 나는 기쁘고 고마웠습니다. 왜냐하면 새로 시작한 이 수업의 참가자들로부터 환영받고 싶었거든 요. ▷ 직장에서

알아낸다. 느낌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알려주는 알

나에게 지난 회의 자료에 대한 복사를 부탁했을

람과 같은 존재이다. 우리에게 영양분이 필요할 때

때, 나는 귀찮고 걱정이 되었어요. 나의 휴식시간에

배가 고픈 것처럼, 내가 원하는 것이 충족이 되었거

대한 배려가 필요하거든요. 돌아가면서 복사당번을

나 충족이 되지 않았을 때의 느낌이 그런 역할을 한

정하는 건 어떨까요?

다.

▷ 집에서 가족들에게 똘똘 말린 양말을 화장실 입구에서 발견했을 때

③ 필요, 욕구(Need)

나는 화가 나요. 좀 더 깨끗한 집을 원하거든요. 그

자신이 원했던 바를 표현한다. 이때 원했던 것을

양말을 펴서 세탁기에 넣어주시겠어요?

깊게 생각해야한다. 수단이나 방법과 구분이 되어야 하고,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을 말

마치며

한다. 깨끗한 공기, 충분한 음식 등과 자율성, 미, 재 미, 휴식, 존중, 격려 등이 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느낌의 원인은 바로 자신이 원했던 것, 바로 자신의 욕구(need)에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우리는 자라오면서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 대한 질문을 받아본 일이 드물다. 진정 원했던 것에 연결이 되어있어야 충족시킬 가능성도 커진다. ④ 부탁 부탁은 강요와 구별이 된다. 자신의 욕구를 충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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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엔 쉬워보여도 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가 살 아온 세월만큼 습관을 들인 말하는 법을 바꾸기란 당 연히 어렵겠지요. 하지만 외국어를 모국어처럼 배우 고 익힐 수 있는 것처럼 꾸준히 연습한다면 더 많은 마음의 평화와 관계의 평화를 이루어낼 수 있을 것입 니다. 주변에 함께 하는 친구가 있다면 더 좋겠지요. 좀 더 많은 정보를 원한다면 월간 평화연대의 아침의 지면특강이나 www.krnvc.org 혹은 www.cnvc.org를 참조하세요.


부당한 군사명령을 거부하라 - 경찰폭력을 반대하며 날맹 | 전쟁없는세상 책임활동가 + nalm109 @ hanmail.net

폭력시위와 폭력경찰

적인 집회를 추상적으로 반대를 할 수는 있겠지 만, 과연 내가 정작 농사로 생계를 이어가는 당

뉴스에서 전경, 의경 부모들이 폭력시위 반대

사자라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인권

카페를 만들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노무현 대통

경찰로 다시 태어나겠다는 이들이 “맞을만 하니

령이 경찰폭력과 관련하여 대국민사과를 했고,

까 맞았지”라고 말하며 오히려 자신들의 무자비

경찰청장이 사퇴를 한 마당에 폭력시위 반대카페

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모습에 화가 나면서도, 한

라니, 나는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하는가, 살짝 고

편으론 그렇다고 농민들의 폭력성을 무조건 옹호

민이 든다.

하기에는 무언가 찝찝한 것이 남는다. 나는 ‘남 자답지 못해 ‘ 서 경찰의 폭력도, 농민들의 폭력도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는다는 근거로, 폭력

일단은 두렵다.

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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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의 관점으로, “경찰도 인간이다”

봇처럼 명령에 반드시 복종할 필요가 없다는 원칙 을 도입하였는데, 군인은 모국의 불법적 명령에

마스크를 쓰고, 방패를 들고, 곤봉을 휘두르는

불복하는 것뿐만 아니라 국가 법률의 모든 구조가

저 수많은 경찰 중에도 폭력이 두려운 사람이 있

범죄에 관여되었을 때 국가바깥의 명령에 모순되

지는 않을까. 집회에 나가서 양쪽이 대치를 하게

는 명령은 심지어 무시해야 한다는 개념을 포함하

되면, 보통은 내면의 분노와 일말의 두려움이 합

였다.

쳐지면서 상대방을 하나의 인간이 아니라 무찔러 야할 추상적인 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 같다. 내

2차 세계 대전 후, 뉘른베르크 법정에서 열린

옆집 아저씨가 집회에 나온 것일 수도 있는데, 옆

전범재판은 국제법에 반하는 범죄에서 개인의 책

집 사는 아들 녀석이 군복을 입고 상대편에 서있

임을 묻는 것의 의미를 각인시켜준 중요한 판례였

는 것일 수도 있는데, 일단 분위기가 가열되면 서

다. 뉘른베르크 법정에서 제정된 원칙들은 1950

로가 적으로 돌변하여 폭력을 휘두르게 된다.

년 유엔총회에서 뉘른베르크 원칙으로 성문화되었 다. 전쟁범죄, 평화와 인간성에 반하는 범죄들의

마스크를 쓰고 곤봉을 들고 있는 저 경찰들 속

처벌을 주요 골자로 하는 뉘른베르크 원칙은 상관

에도 부대 내의 억압적인 분위기에 잘 적응하지

의 명령이 범죄에 대한 개인의 책임을 덜어주는

못하고, 집회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것도 불편해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립했으며, 사실상 개인이

는 사람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도덕적 선택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규정하

단지 군인이라는 이유로 국가와 지휘관의 명령을

였다.

따를 수밖에 없는 그들에게 얘기해주자. 당신들이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이 정말 당신의 가치관에 반 하는 것은 아닌지. 당신들에게는 부당한 명령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고.

상관의 명령과 개인의 도덕적 선택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제안된 유엔 집단살 해에 관한 협약(Convention on Genocide)에는 집 단살해가 국제법 하의 범죄라고 나와 있다. 더 나 아가 집단살해, 집단살해 음모뿐만 아니라 집단살

인권단체들은 경찰폭력에 항의하며

해 공범자(하급 군인)도 모두 처벌 가능한 것으로

기동단해체를 요구하였다. 출처-오마이뉴스

규정짓고 있다. 2차 대전 승전국들은 군인들이 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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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한 군사명령에 대한 거부

하게나마 지금 여기에서 생각하고, 또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다.

베트남 전쟁 때에 수많은 미군이 범죄행동에 동참하는 것을 회피하는 방법으로 군사작전의 일

제2의 강철민을 상상하며

부가 되기를 거부했다. 당시 미 해군 대령이었던 도날드 도슨(Donald Dawson)은 1973년 6월 5일

연대(solidarity)라는 것은, 나와 다른 존재를

B-52 폭격기로 캄보디아를 폭격하라는 명령을

타자화하지 않고 그녀것 / / 과 함께 삶을 나누려고

거부해 체포되었다. 그는 양심에 따라 캄보디아에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삶을 나

폭격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말했고, 결국 그는

눈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기에, 여기 나는 농민

1974년 병역거부자로서의 권리가 인정되어 석방

집회에 한 번도 가보지 않고 이렇게 부끄럽게 글

이 되었다. 한편, 같은 전쟁에서 민간인 학살로

만 쓰고 있는 건 아닌지 싶다. 그저 나는 외칠 수

군법재판에 기소된 미군 캘리 중위에 대해서는 종

밖에. 농민들을 거리로 내몰리게 하는 국가도 싫

신형(항소심에서 20년형으로 감형됨)이 내려졌는

고, 경찰들로 하여금 폭력을 휘두르게 하는 국가

데, 담당 판사는 “군법에 대해 완전히 지식이 없

도 역시 싫다고.

는 최하의 지성을 가진 군인이라 하더라도 어린 아이와 비무장의 시민들을 죽인 것은 전쟁법의 가

경찰 개개인들이 농민들의 문제를 모르지만은

장 기초적인 원칙과 반대된다는 사실을 무시할 순

않을텐데, 자신들이 하는 행동이 어떤 의미를 가

없다라고 ” 밝혔다.

지는지 안다면 다른 행동을 취할 수도 있지 않을 까.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며 군복무를 거부했던

엄청난 국가권력이 존재하는 한국 현실에서 전, 의경들이 부당한 명령에 대한 거부를 한다는 것은

강철민씨의 경우처럼, 폭력진압을 요구하는 국가 의 명령에 거부하는 제2의 강철민을 상상해본다.

어려운 일일 것이다. 지금은 국가의 명령에 따라 농민들에게 폭력을 휘두르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들이 12년 동안 국가공교육에서 배우는 가치는 ‘남을 살상하지 마라였다 ’ . 그들이 지금 누구의 명 령을 따르고 있는 것인지, 명령에 따라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 자신들의 인간성에 반하는

참고 한스 괴란 프랑크, ‘베트남 전쟁에서 개인책임에 관한 논점’, 국제평화국(International Peace Bureau, IPB), “군사명령을 거부할 권리(The Right to Refuse Military Orders)".

것은 아닌지 성찰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알려주

이용석, ‘기동단이여,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라’,

자. 그들도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는 군인이기 이

http://blog.jinbo.net/stego

전에 따뜻한 가슴을 가진 한 인간이라는 것을, 부 당한 명령에 거부하는 것이 그들의 권리라는 것을 알려주자. 이것이, 폭력을 두려워하는 내가 미약

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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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결론은 PEACE! 다

12월 1일 평화수감자의 날 행사 참가기 조은 | 전쟁없는세상 책임활동가 + innocent_kr @ daum.net

평화에 대한 세가지 이야기

처음 맞이하는 나로서는 예전의 평화 수감자의 날 행사를 사진과 후기 글로서만 접할 수가 있었는데,

12월 1일 오전. 참여연대 아래층에 있는 느티나

그 글과 사진에서 보여준 즐거운 분위기와는 사뭇

무 카페는 약간은 들뜬 공기로 가득해보였다. 병역

다른 기자회견 자체가 가져다 주는 엄숙함에 적잖

거부 선언을 하기로 한 뎅, 용석, 영진씨. 그리고

이 당황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기자회견이 끝나고

그들을 지지하는 다수의 지인들, 기자 무리가 섞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앞에서 진행된 ‘평화에게 기

그곳은 곳 기자회견이 시작되면서 들떴던 분위기

회를이라 ’ 는 주제의 문화제는 내가 알던 예년의 평

는 삽시간에 정숙해졌고, 영은의 사회로 진행된 기

화 수감자의 날을 재현해보였다. 다음은 문화제 당

자회견은 진행되었다. ‘평화에 대한 세 가지 이야

시의 장면과 단상들이다.

기라는 ’ 주제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세 명의 병역 거부자들은 그들이 왜 병역을 거부하는지 그들 각 자의 평화적 신념에 대한 발언을 하였고, 그들에 대한 지지발언이 이어졌다. 기자회견이 있었던 12월 1일은 평화 수감자의 날. 이 날은 1956년 12월 1일 전쟁저항자인터네셔 널에서 평화 수감자를 지원하는 활동을 하면서 시 작되었다고 한다. 올해 평화 수감자의 날 행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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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거부선언 기자회견, 12월 1일


평화에게 기회를

때문이다. 그렇다. 연인들에게는 흥미로운 대화의 소재를 제공하고, 우리에게는 우리의 입장을 효율

문화제는 고동과 내가 함께 사회를 보았다. 고

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은 우리가 앞으로 유

동은 센스가 넘쳤고, 그의 아이디어로 약장수라는

인물을 전달함에 있어서 가급적 연인들을 공략해

독특한 소재가 사회진행의 주요 컨셉으로 쓰였다.

야하는 주요한 이유가 아닐까한다.(웃음)

“자자, 거기 지나가는 신사숙녀 여러분~ 여기를 집중하시라! 마음의 병에 고생하시는 여러분들을

문화제의 구성은 돕과 별음자리표의 공연, 에리

위해서! 그 병들을 깔끔하게 없애줄 약을 여러분

토리아 병역거부자의 상황을 소개하는 날맹의 발

께 소개드리고자 바로 이곳에 왔습니다!” 한달쯤

언, 오전에 기자회견을 했던 세 명의 병역거부자

지난 후의 후기라 그 당시 썼던 정확한 멘트라 할

들의 인사말, 평화 수감자의 날에 관련된 퀴즈대

수는 없지만 대락 이러한 분위기로 사회가 진행되

잔치 등으로 이루어졌다. 돕과 별음자리표의 노래

었다. 여기에서 마음의 병은 사람들 안에 내재되

는, 가사는 정말이지 하나하나가 다 감격이었다.

어있는 폭력적 국가주의, 민족주의 등을 비유한

요즘 시대에 그러한 ‘생(生)’음악을 들을 수 있는

것이었고, 그에 대해 제시한 약은 평화적 신념을

기회는 흔치않기에 그들의 공연은 더욱 값졌다.

적극적으로 발현하는 병역거부자들을 비유한 것이

그리고 평화 수감자의 날과 관련된 퀴즈 선물잔치

었다. 이러한 특이한 시도가 좋았는지 그곳에 참

에서 ‘평화인권연대에서 발행된 소식지’ 선물이

여한 사람들의 호응이 제법 괜찮았다.(고 생각한

‘평화인권연대 활동가’ 오리에게 당첨된 일 또한

다.)

우리에게 훈훈한 감동을 선사해주었다.

문화제 전에는 평화 수감자의 날 관련 유인물

상당히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는데, 병역거

함께 참여해주셨다. 전쟁없는세상과 관계를 맺고

부에 대한 일반인들의 지지도가 아직은 낮은 편이

있는 분들이 다수 지켜봐주셨는데, 그 사이사이

라 유인물을 제대로 읽지 않고 버릴까 우려가 되

부스 근처에 차려놓은 선전물들을 유심히 봐주시

었다. 그래서 유인물은 추위를 잘 이겨내고 있는

고 문화제 진행에 같이 동참해주신 이름 모를 행

듯한 연인들에게 집중해서 배분하였다. 왜냐하면

인 분들은 참으로 고마웠다. 마로니에 공원 안에

유인물을 건네줄 때 받는 대상은 상대 연인의 이

서 공연을 하시려다가 문화제가 끝날 때까지만 기

목이 있는지라, 웬만하면 거부라는 부정적 의사표

다려달라는 나의 부탁에 기꺼이 30분 이상을 기

현을 하지 않기에 배분의 효율성-받을 가능성-

다려주신 어느 한 가수 분께도 글로나마 다시 한

이 높을뿐더러, 유인물을 받은 연인들은 배분문제

번 고마움을 표한다.

와 마찬가지로 최대한 자신의 긍정적인 모습을 보 이기 위해 상당한 호의성을 띄고 유인물의 텍스트 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을 가능성도 높기

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13호

29


다시, 평화수감자의 날을 기다리며

면 우리가 이번 문화제를 기획하면서 보냈던 모든 시간들 덕분에 문화제의 핵심인 ‘평화에 ’ 대한 지

이번 문화제에서 조금 아쉬웠던 부분은 문화제

속적인 고민과 직접적인 실천을 확인했다는 점 하

를 보여줄 수 있던 사람들, 즉 마로니에 공원 앞을

나만큼은 모든 부차적인 아쉬움을 상쇄할 만한 문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적었던 데다가 날씨가 추워

화제의 수확이 아닐까한다.

서인지, 문화제를 오래 구경하지 못하고 자리를 이 동하는 분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문화제의 주요의

‘평화수감자의 날의 ’ 주제로 하려했는데 글을 쓰

미 중 하나는 많은 사람들의 참여와 관심유발이라

다보니 어느새 그 내용의 중심이 ‘문화제에 ’ 집중

고 생각했는데, 문화제의 대상인 마로니에 공원 앞

해버렸다는 스스로에 대한 안타까움을 뒤로하며

의 유동인구가 줄어들었다는 것은 그만큼 문화제

내년 평화 수감자의 날을 기약해본다. 어찌됐건 결

의 의미가 퇴색해버리는 것은 아닐까하는 일말의

론은 PEACE! 다.

불안감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시금 생각해보

‘평화에게 기회를’ 부스에서 신이난 참가자들

30


그래도 세상은 변한다

평화에 대한 고민속에서 얻은 작은 결론, 그래도 세상은 변한다. 양여옥 | 병역거부자 고동주 후원회장

평화에 대한 고민들

다시 고민을 시작하다

대학교에 들어와서 가톨릭학생회라는 종교동아

처음으로 방학없이 보낸 힘겨운 여름이 지나가

리 활동을 하면서 나는 참 많은 것들을 배웠다. 모

고 있을 무렵이었다. 2년 전부터 병역거부를 고민

두가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만 같던 세상이 다르

하던 고동이 휴학을 하고, 본격적으로 준비에 들어

게 보이기 시작했다. 911테러와 이라크전쟁, 열심

간다고 했다. 그 당시 나는 졸업 후 4월부터 일을

히 일해도 먹고살기 힘들어지는 사람들, 미선이 효

시작한 완전 새내기 사회복지사였고, 취업한지

순이의 안타까운 죽음, 넘치는 음식물쓰레기와 굶

3-4개월이 지나면서 내가 공부하고 꿈꿔왔던 것

는 아이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자연에

과 많이 다른 현장에서 오는 괴리감에 많이 힘들

대한 착취, 빈곤이 대물림되는 사회.. 같은 세상을

어하고 있을 즈음이었다. 마음의 여유가 없어짐으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가톨릭신앙을 가지고

로 인해 그동안 해오던 평화에 대한 고민을 잊고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세상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지내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병역거부라는 것에 대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어디서부터인지 모르게 잔뜩

해서 잘 알지도 못하고 또 그 당사자가 되지도, 될

비뚤어져버린 관계를 올바로 회복하기 위해 ‘생태’

수도 없는 나는, 그래도 나름대로 가까이서 고동을

라는 주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모임을 시작했다.

지켜봐왔고 고동의 뜻을 지지하는 사람으로서 내

나와 나를 둘러싼 모든 것과의 관계에 대해 진지

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하게 성찰하고, 끊임없는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행

되었다. 물론 고동과 나의 관계에 대한 오해의 시

동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것이 바로 평화라고 생

선을 엄청나게 의식하면서..

각했다.

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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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원영오빠와 학교후배인 은진이, 서가대연 선후 ․

고동주 후원모임 ‘고동울림의 ’ 시작

배들, 아랫집 친구들, 관심을 보여주신 신부님수 ․ 녀 10월 19일 기자회견을 나흘 앞두고 첫 후원모 임을 하기로 하였다. 해본적도 없고, 하는걸 본 적

님들.. 모두 고동의 평화를 바라는 마음을 각자의 자리에서 계속 울려내고 있는 사람들이다.

도 없는 후원모임을 준비하면서, 걱정이 팔자일 정 도로 많은 나는 모임을 앞두고 아무것도 할 수가

계속 가야할 이 길 앞에서

없었다. 첫 후원모임 행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뭘 해야하는지, 사람은 얼마나 올지.. 다행이도 주변에

고동의 경찰조사 날짜가 나왔다. 고동과 함께 병

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해주어서 무사히 마칠 수

역거부 기자회견을 했던 오정록씨가 불구속수사를

있었다. 후원모임을 시작으로 10월 19일 기자회견,

받고있기 때문에 고동도 불구속수사를 받게 될거

토론회, 평화미사 등 계속되는 여러 가지 일들에

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지만, 그

나는 하는 일 없이도 계속 어리버리 정신이 없었

동안의 구속수사관행을 생각하면 이것 역시 먼저

다. 가톨릭 최초의 병역거부자라는 수식어가 앞에

걸어간 사람들의 발자취일 것이다. 수사기간 이후

붙으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점점 더

남아있는 1년 6개월의 수감생활 때문에 마냥 좋아

커지고 있었다. 천주교인권위원회와 우리신학연구

할 수만은 없긴 하지만. 조만간 국가인권위원회의

소에서 주최한 토론회도 열리고, 언론과의 인터뷰

입장발표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관련 법률안이

도 있었고, 가톨릭 내부에 알리기 위한 홍보서 ․ 명전

국회에 상정되기까지, 또 사람들이 인권에 대해 예

도 벌였다. 병역거부가 다양한 사람들에게 더 많이

민해지고 다양성에 대해 인정하며 양심에 따른 병

알려지고 공론화되는 것은 너무 좋은 일이였지만

역거부를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

난 직장에서의 일도 바빴기 때문에 제대로 하지

러야 할까. 그리고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감옥

못해서 아쉬운 부분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그래

에서 시간을 보내고 전과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

도 함께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운영위원회로 결합

아야할까.

해주면서 큰 힘이 되었다. ‘평화를여는가톨릭청년’

사진 출처 고동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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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지금 하는 활

을 이루어내시는 ‘그분의 ’ 존재를 믿게 되는 것이

동들이 ‘고동 때문에’ 하는 것은 아니어야 한다고.

다. 그것이 내가 종교를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이유

내가 병역거부와 연대회의 식구들을 알게 되고 병

이다.

역거부 활동에 조금이나마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은

지금 준비하고 있는 1월 7일 후원행사 역시 많

고동을 통해서이지만, 내 스스로 평화에 대한 고민

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고동은 곧

을 하지 않으면 지금의 활동도 오래가지 못할지도

감옥에 가게 되겠지만 고동울림의 활동은 미약하

모른다. 고동주 후원모임 ‘고동울림의 ’ 활동을 하면

더라도 계속될 것이다. 고동을 비롯한 양심에 따른

서 내가 해낼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들이

병역거부자들이 감내해야하는 고통의 몫은 참 크

이루어지기도 하고, 필요한 시기에 도움을 주는 사

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변화와 울림이 우리 주

람들이 적절히 나타나기도 하는 것을 보면 절망적

변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렇게 조

인 상황 속에서도 끝내 희망은 다시 살아난다는

금씩 세상은 좀더 살기좋은 곳으로 변화해나갈 것

것을 체험하게 된다. 그래서 결국 사람을 통해 뜻

이라고 믿는다.

1월7일 여옥씨와 고동울림이들이 준비했던 ‘일파만파’ 티켓

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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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없는세상’ 과의 만남 ‘전쟁없는세상을 ’ 만나서 알게된 점과 느낀 점 장대환 | 이우고등학교 학생

이 글은 장대환씨가 학교에 보고서로 낸 내용을 토대로 쓰여진 글입니다.

중학교 때, 미술학원에서였다. 그림을 그리다 쉬

최근 평화 운동가들의 양심적 병역거부 선언이

고 있는데 화실 탁자에 있는 신문에 ‘양심적 병역

늘고 있다. 12월 1일에는 김태훈, 이용석, 김영진

거부자를 ’ 다룬 기사를 에 대한 기사를 봤다. 그

씨가 사회를 향해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전부터 여호와의 증인의 양심적 병역거부는 근근

‘양심적

이 있어왔던 일이었고 나는 그 소식을 가끔씩 들

2005-12-01] 이 중 김태훈, 이용석 씨는 전쟁

으면서 그들이 왜 군대를 가지 않을까, 하는 고민

없는 세상에서 만났던 활동가분들이고 특히 김태

을 어렴풋이 하고 있던 때였다. 미술선생님이 다가

훈씨(‘뎅’)는 저번 상영회때 패널로 참가하셔서 앞

오시며 뭘 보냐고 물으셨다. 선생님이 그 기사를

으로 병역거부 선언 예정자로서의 심정을 이야기

보시고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셨다. 순간 나는 나

해주시기도 하셨다. 또 기독교 신자 최초의 병역거

도 모르게 “미친놈들이 ” 라고 내뱉었다. 방금 한 말

부 선언자로 알려진 고동주 씨 또한 내가 처음에

이 내 진심과 같을까 생각하던 중에 선생님은 “그

전쟁 없는 세상 사무실에 방문했을 때 만난 분이

래, 역시 대환이야라 ” 고, 내가 뭐라 말할 틈도 없이

었다. 한국 가톨릭 최초의 병역거부! [한겨레21

내 말을 막았다. ‘과연 이 사람들이 정말로 미친놈

2005-11-08] 그의 선한 눈망울이 특히 기억에

들일까?’ 그것이 내가 처음으로 이 문제를 내 안에

남았었다.

서 고민하게 된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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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거부’

논란

[문화일보


나는 전쟁 없는 세상에서 활동하며 몇 명의 병

아니면 병역의 의무를 지겠다는 사람, 대체복무제

역거부자 혹은 병역거부 예정자를 만났다. 활동을

도 안된다며 징병제를 완전히 반대하는 사람, 국토

하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던 분들도 있었고, 안면만

방어를 위한 전쟁이라면 참여하겠다는 사람(강철

텄던 사람들도 있었다. 언론을 통해 듣기만 하던

민씨의 예) 등 ‘양심적 병역거부를 ’ 하는걸. 같지만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실제 만난다는 게 처음엔

그 이유는 다 제각기였다. 이건 어쩌면 당연한 일

신기했고 낯설었다. 하지만 곧 익숙해졌고 나는 그

일진데, 흔히 그들을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 모두

들을 알면서 몇 가지를 알게 되었다.

‘나쁜 놈들로 ’ 치부해버려 잘 드러나지 않았기에 우리는 그동안 잘 몰랐던 것이었다. 개인의 사상과

첫째는 바로 병역거부자라 불리는 사람들이었다.

의견을 존중하는 사회, 그리고 그를 직접 실현하는

나는 지금껏 ‘양심적 병역거부자라 ’ 는 딱지가 붙은

사회……. 비록 방법은 ‘병역거부로 ’ 동일하다 해도

사람들은 무언가 대단한 사람들인 줄 알았다. 진정

그 개인의 생각을 모두 무시하지 않기에 NGO는

으로 평화 주의적 신념을 가지고 삶속에서 평화만

더욱 어렵고 힘든, 그러나 옳은 길이기에 포기할

을 행하는, 마치 성인과도 같은 사람들일 거라 지

수 없는 길을 간다.

레 짐작한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지금껏 만난 사 람들 중에서는 -그런 사람을 내가 못만난것일지도

하지만 때론 헷갈린다. 그렇다면 나는 어떠한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그토록 평화 주의적

‘평화 주의적 신념을 ’ 가져야 하는가. 이상에서, 혹

신념을 가지고 생활을 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은 현실에서? 나는 요즘 그 둘을 왔다 갔다 하고

물론 그들은 육식도 하지 않고 삶속에서 작은 평

있다. 나는 어떤 평화를 갖게 될지, 좀 더 고민해

화들을 실천하지만, 내가 상상한 것 같은 완전하고

봐야겠다.

완벽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내가 왜 그렇게 상상했 을까. 그건 나의 강박이 아니었을까. 진정으로 평

하지만 병역거부를 선언한 모든 사람들의 공통

화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었다. 병역거부 소견

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그들의 작고 소박하지만

서를 보거나 그들이 병역거부에 대해 말하는 것을

솔직한 용기였다. 그들의 신념은 아직 소수이고 대

들어보면 무거운 책임을 져야할 선택을 스스로 하

다수의 사회 구성원들에 의해 무시 받지만 그들은

는 것이기에 더욱 조심스럽고 자신에게 쏟아질 비

그를 아랑곳 않고 그들의 신념과 사상을 자유롭고

난에 두려워도 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갖고 있었다.

솔직하게 사회에 내뱉는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

마치 형같고 아저씨 같은, 친근한 사람들 그리고

있었던 건 자신의 신념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그

무엇보다 선한사람들, 그들이 바로 내가 만나본 양

뜻을 함께 해주는 작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

심적 병역거부자들이었다.

다고 나는 생각한다. 자신의 신념을 믿는 것도 어 렵지만 그 뜻을 함께 해 주는 것은 더욱 어렵다고

또 하나, 내가 알게 된 건 그들은 모두 ‘개인이 ’

생각한다. 내가 만일 다른 이의 신념을 위해 헌신

라는 사실이었다. 여호와의 증인으로 병역거부한

을 바친다면……. 나는 잘 할 수 있을까? 불안한 의

사람들 뿐 아니라 그를 제외한 20여명의 사람들

문이 든다.

모두 제각기 다른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집총만

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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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이번 엔지오 활동을 통해서 안 가장

쳐있다. ‘회의에 대한 회의주의’ 인 셈인데, 나는

큰 수확은 엔지오 활동가들의 생활이다. 내가 만나

그들의 회의 방법을 보면서 그 이유를 깨달았다.

본 활동가 분들은 매우 바쁘게 사셨다. 대부분 대

회의에서 ▷보고안건 ▷논의안건 및 결정사항 ▷

학생이거나 휴학 상태에서, 아르바이트와 활동을

일정정리 등 그 회의에서 이야기할 것들을 딱딱

병행하는데 월수금은 아르바이트, 화목토는 NGO

정해서 1시간이 채 안되는 회의가 끝날 때 쯤 이

활동 등 여기에 공부까지 매우 바쁜 삶을 사셨다.

미 회의에 대한 결과들이 나온다. 1학기 때 임시

흔히 NGO 활동가들이 돈을 벌어 살기가 힘들다고

대의원의장을 맡으며 ‘우리 꼭 회의 기술을 배우자’

하는데, 이들이 바로 그러한 것처럼 보였다. 아르

고 했었는데 그게 바로 이것이었다. 앞으로 꼭 써

바이트라면 비정규직 - 언제든 다른 일을 알아볼

먹어보고 싶다.

때가 올수 있다는 이야기일터. 생계유지가 불안한 가운데에서도 흔들림 없이 그들의 활동을 이어나

이것으로 올 한해 NGO활동은 마무리되었다. 내

가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 주도로 해서 세 명의 친구들과 함께 한 건데,

나라면 쉽게 포기했을 수도 있을 그런 생활을 그

잘 된 선택이었고 재미있고 보람찼었다. 덕분에 많

들은 그를 선택에 대한 책임으로 받아들여 열심히

은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자리를 빌려 우리를 정말

삶을 사는 모습을 보여주어 나를 놀라게끔 했다.

많이 도와주신 날맹씨와 영은씨, 그리고 여러 활동 가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내년엔

또 하나 배운 게 있다면, 우습지만 바로 회의 방

다른 활동을 해보고 싶다. 하지만 논문을 ‘양심적

식이다. 나는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지금껏 많은 회

병역거부로 ’ 잡았기 때문에 앞으로 더 신세를 져야

의를 해왔다. 회의를 이끌었고 또 참여했다. 하지

할 듯싶다.

만 1년이 지난 지금 나를 포함해 우리는 모두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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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원폭 60년, 그 리고...’을 보고

해방 60주년.. 그러나 아직 해방되지 못한 그들 오세은 | 고동울림 울림이

2005년.. 전 세계적으로는 종전 60주년의 해이

배워왔다. 그러나 ‘광복 60주년이 ’ 라는 빛에 가려

다. 그리고 우리나라, 중국 등 일본 제국주의의 식

져 무시되고 소외당한 수많은 원폭 피해자들..그동

민지였던 국가들에게는 광복 60주년의 해라는 의

안 일본정부에 침략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기에 앞

미가 더 크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올 1년 내내

서 한국 정부와 언론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한걸

‘광복60주년과 ’ 관련된 행사의 수는 정말 엄청났

까.

다. 그러나 정말로 1945년에 우리는 광복(光復). 빛을 회복했을까? 일제에게 해방되었다는 기쁨도 잠시, 강대국끼 리의 이데올로기에 휩쓸려 나라를 반으로 가르고, 서로 죽이기에 바빴던 60년. 그리고 선진국을 쫓 아가기에 바빠 주위의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기가 너무나 힘들었던 우리나라 사람들.. 그런 의미에서 지난 수요일(12/14) 독립 영화제에서 본 ‘원폭 60 년.. ’ 이라는 다큐멘터리는 그동안 내가 미처 생 각지 못했던 나의 이웃, 원폭피해자의 고통을 깨 닫도록 해주었다초 . . 중. 고등학교의 역사시간에서

‘원폭60년, 그리고...’의 한 장면. 출처 서울독립영화제 홈페이지 http://www.siff.or.kr/

는 오로지 1945년 8월 15일의 ‘해방의 기쁨’ 만

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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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그들은 미국이 전쟁의 조기종결이라는 명

보이는지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차이의 ’ 결과는 언

분아래 투하한 원자폭탄의 피해자가 되었다. 그 후

제나 ‘차별이 ’ 었다. 부모님 중 누군가가 원폭피해자라

그들은 고통스런 몸으로 60년을 살았다. 어떤 사람은

는 것이 알려지는 것만으로도 유전적으로 문제가 있

곧바로 후유증이 나타났고 어떤 사람은 몇 년 후에

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고 차별과 멸시를 견뎌야했다.

몸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증상은 다양했지만 그들에 대한 무시는 언제나 일관됐다. 일본은 1957년부터

다큐가 진행되는 내내 ‘사다코’ 라는 소녀의 얘기

‘원자폭탄 피폭자 의료법’ 과 ‘피폭자 보호법’ 등을

가 조금씩 나오다가 다큐가 끝날 쯤에 그 소녀의 이

제정해 자국의 원폭피해자에게는 의료 및 생활을 지

야기도 완결이 되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달리기 선

원해 왔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으로 끌려갔다가 원폭

수를 꿈꿨던 사다코는 천 마리의 종이학을 접으며 살

피해자가 된 한국인은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한국정

수 있기를 바랐지만 채 접지 못하고 죽는다. 나중에

부 역시 그들을 외면했다. 지난 60년 동안 수많은 한

대신 그녀의 친구들이 천 마리 종이학을 다 접어 사

국원폭피해자들이 병고와 빈곤의 악순환에 시달리다

다코의 소원을 이루어 준다. 실제로 일본 히로시마

가 생을 마감했다. 원폭의 피해가 1세대들로 끝나리

평화기념공원에 가면 금빛 종이학을 높이 든 원폭 어

라 믿으면서, 혹은 그러길 바라면서 60년을 보낸 한

린이상이 있다고 한다. 두 살 때 원폭피해를 당해서

국, 원폭투하국인 미국, 그리고 태평양전쟁의 전범국

10년 후에 숨진 ‘사사키 사다코를 ’ 기리기 위해 세운

가인 일본... 그런데 그 사이에 덩달아 외면당한 피해

동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얼마 전 지난 60년 동안

자들이 또 있다. 바로 원폭2세들이다.

한국 정부와 우리의 무관심 속에서 병과 가난에 시달 려온 한국인 원폭피해자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평화

故 김형률씨가 “자신이 원폭2세이고 원폭후유증을 앓고 있다며 ” “원폭2세 문제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

의 종이학 30만 마리 접기를 시작하여 지난여름 일 본 히로시마에 전달한 바 있다.

구하라고 ” 주장한 후에도 한국 정부는 대책이 없다. 2003년 7월, 김형률씨는 이제 돌아오지 않는 길을

해방 60주년을 맞는 2005년, 광복과 해방을 마냥

떠났다. 그리고 현재도 죽음이 코앞에 닿은 수많은

즐기기엔 아직도 해방되지 못한 한국인 원폭피해자,

원폭 피해자들은 정부의 대책 마련을 강력히 요구하

나아가 위안부 및 모든 일제강점기의 피해자들의 해

고 있다. 그러나 아직 한국 원폭피해자들을 위한 한

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너무나도 많은 것 같다. 나 역

국 정부는 없는 듯 하다. 물론 원폭2세라고 해서 모

시도 그동안 빛의 그늘에 가려진 그들을 모르고 지나

두 병을 앓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게다가 문제는,

쳤었으나, 이제는 그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함께

원폭2세라고 해서 모두 같은 입장을 갖고 있지 않다

가야 하겠다. 모두가 함께 사는 행복한 세상이 오길..

는 것이다. 원폭2세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이슈화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원폭2세들도 있다. 사회적 차 별이 두려운 것이다. 한 여성은 결혼 후에 원폭2세라 는 것이 밝혀지면서 이혼을 했다고 얘기하던 중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껴 울었다. 원폭2세들은 우리 사회가 원폭피해자 혹은 장애인에 대해 어떤 태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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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vs 비폭력주의 저자 _ 브라이언 마틴 | 오스트레일리아 울런공 대학 과학기술학부 교수 번역 _ 전쟁없는세상 번역팀 , 정리 _ 뎅

이 부분의 전체 책의 내용 중에서 4장의 내용을 발췌한 부분입니다. 이 부분의 번역담당은 뎅 이었습니다. 이 앞부분의 번역은 소 식지에 나뉘어져 실려있으며, 전쟁없는세상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Ch 10. 사회적 방어(Social defence)

다. 아마도 군사력에 버금가는 자원과 훈련이 수반 될 지도 모른다. 준비과정에는 에너지를 설계하고,

3장에서 설명한 것처럼 군대와 경찰의 권력은

수송하고, 경작하고, 소통하는 것을 비롯하여 공격

자본주의의 기저에 깔려있다. 사적인 감독권을 보

에 대항하여 회복할 수 있는 다양한 기술적 시스

호하고 노동자와 공동체에 의한 도전을 저지하기

템들을 포함한다. 또 외국어 훈련과 문화 간의 이

위한 조직된 폭력 없이는 자본주의가 살아남을 수

해, 공동체간의 연대를 촉진하는 것, 타국가의 함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비폭

께할 수 있는 그룹들과의 연락망 구축(특히 잠재

력적인 도전을 시험함에 있어 군대와 경찰 권력에

적인 침략국가), 비폭력 행동에 관한 일관된 교육

비폭력적으로 도전해 보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과 훈련, 시뮬레이션(군사훈련연습과 유사한), 그 리고 의사결정 체계의 구축과 잠재적인 위협을 가

조직된 비폭력 행동은 군사적 방어에 대한 대안

늠해보기 위한 대중적이고 지성적인 조력활동들

으로서 이용될 수 있다. 방어용 군대와 무기 대신

역시 이에 포함된다. 비폭력 행동을 사용하는 방어

에, 공동체는 비협력과 집회, 파업과 보이콧, 점거

시스템들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어졌다. 비폭력

와 같은 형태의 비폭력 행동을 통해 스스로를 방

방어, 사회적 방어, 시민에 기반한 방어 또는 시민

어하려 할 것이다. 이것은 싸고 쉬운 선택이 아니

저항에 의한 방어 등등..

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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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사회적 방어를 위해 체계적으로 준비

몇 핵심적 장소, 예를 들면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한 사회는 이제껏 존재하지 않았다. 이 점에서, 비

작동케 하는 핵심 장소들을 타격함으로써 소통을

폭력은 초기단계에 있고, 군대와 조직된 무기생산

폐쇄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전 시기의 폭력과 동등한 단계에 있다. 따라서, 군대를 대신한 전면적인 비폭력적 대안들은 아직 시도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만약 공동체 스스로 자원과 식량을 조달할 수 있고 상호협력의 기술을 가지고 있다면, 일용품 문 화로의 편입에 저항하는데 훨씬 더 강력한 위치에

침략국에 대항한 비폭력 행동 능력을 발전시킴

있게 된다. 따라서, 사회의 비폭력 방어 능력을 쌓

으로써 얻을 수 있는 중대한 결과 중에 하나는, 비

아나가기 위한 실질적인 모든 수단들은, 자본가의

폭력행동이 지역적 목표에 대항하는 기술과 발상

사회적 관계에 저항하고 자본주의를 뒷받침하는

들을 공동체를 위해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

국가권력에 도전하는 능력을 쌓아나가는데 있어서

회적 방어 시스템에서는, 장치의 피해없이, 노동자

동등한 중요성을 가진다.

들이 빠르게 그리고 완벽하게 공장을 폐쇄시키는 법을 배우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컴퓨터칲과 같

사회적 방어라는 발상은 비교적 새로운 것이다.

은 장치의 핵심적 부품은 제거되었을 때, 생산의

간디는 사회적 변화를 위한 체계적인 전략으로서

빠른 회복이 힘들도록 설계되었을지도 모른다. 대

비폭력 행동을 개척했지만, 비폭력 행동에 기반한

체장치가 타국가의 안전한 장소에 보관되어 있을

방어 시스템의 일관적인 모델을 공식화하진 못했

수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한 대비를 가다듬으면, 생

다. 1950년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일군의 작가와

산이 재개되도록 하기 위한 고문조차도 쓸모없어

연구자들이 훌륭한 대안으로서의 사회적 방어를

질 것이다.

제안하기 시작했다. 사회적 방어를 위한 개인적 지 지와 더불어, 네덜란드,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미

만약 노동자들이 생산을 중단시킬 능력을 가지

국, 호주 등의 몇 몇 국가 내부의 단체들이 사회적

고 있다면, 고용주들에 대항하는데 이 능력이 사용

방어를 진전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독일의 Grunen

될 수 있다. 생산에 관한 노동자들의 제어권은 억

정당은 사회적 방어를 자신의 강령으로 삼고 있다.

압에 대항한 최고의 방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

지지자들에 힘입어, 사회적 방어는 슬로베니아, 리

면 상층부의 인물들이 침략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투아니아 등의 신생 독립국가에서 -비록 결국에는

대체되거나, 설득당할 수 있는 명령의 속박 없이

군사적 방어체계를 선택했지만- 진지하게 고려되

집단적으로 움직이는 작업장은 침략자들이 제어하

고 있다. 결론적으로, 사회적 방어는 실제적인 정

기 더욱 힘들기 때문이다.

치적 선택으로서 아주 조금씩의 진전이 있어 왔다. 군대는 여전히 강력하게 자리잡고 있고, 지배와 독

전화기, 팩스, 전자메일을 포함한 네트워크 소통

재권력, 자본주의, 국가사회주의 같은 체제의 전복

시스템은 침략자들에 대항한 비폭력 저항에 아주

을 방지하는 최후의 방어수단으로서 인식되고 있

이상적으로 설계되어 있다. 왜냐하면 전통적으로

다.

군사적 타격의 첫 번째 타격이 되는 대상들인 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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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정치적 선택으로서의 사회적 방어가 낮은 인식 -일반적인 공공의 영역에서 좀처럼 알려져

나, 자본주의에서 비폭력적 대안을 형성할 수 있는 가?

있지 않은- 을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폭력 행동가들은 그 기반들을 다져놓고 있다. 정

군사적 방어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사회적 방어

부에 청원을 보내는 것을 비롯한 비폭력 행동의

는 자본주의의 폭력적 기반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

방법들은 사회적 방어 체제를 위해 쓰일 수 있다.

이다. 사회적 방어를 강화시킬 수 있는 몇 몇 명백

그래서 노동자들은 매번 파업을 하고, 소비자들은

한 수단들, 즉 식량, 물, 건강, 주거, 수송에 대한

보이콧에 참여하며, 환경보호론자들은 오염물을 배

자립은 자본주의에 대한 비폭력적 대안으로서 아

출시키는 공장을 봉쇄시키고 있다. 이들은 사회적

주 적합하다. 이와 반대로, 사회적 방어는 자본주

방어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방법들로 연결되는

의의 합법성에 아주 약한 충격만을 준다.

기술을 연마하고 통찰력을 습득하고 있다. 2. 캠페인에서의 동참의 문제 사회적 방어란 비폭력적으로 행동하는 것 이상 의 개념이다. 사회적 방어를 위해서는 계획과 준비,

사회적 방어는 아주 높은 수준의 참여가 있을

훈련, 사회의 기간시설, 네트워크 구축 등이 필요

때만이 성공할 수 있다. 이는 군사적 방어를 선택

하다. 만일 군대가 아무런 계획도 없고, 신병모집

했을 경우와는 다른데, 군사적 방어는 많은 인구를

에 대한 방법도 없이, 그리고 소통체계도 없이, 단

통제하거나 방어하기 위해 적은 수의 군인에 의존

지 얼떨결에 습득한 무기들만 가지고 있다면, 군대

한다.

는 정치적 선택으로서 지지받지 못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비폭력 행동의 자발적 힘에 의존하는

사회적 방어가 정부에게는 꽤 큰 위협이 되기

사회적 방어 체제 역시 준비작업 없이는 더 큰 지

때문에, 아마도 활발한 참여로 이루어지는 캠페인

지를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사회적 방어 시스템

만이 사회적 방어를 소개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비폭력 행동의 경험을 가지

하지만 명확한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한 사회적 방

고 있는 더 많은 사람들을 필요로 하며, 문화 간의

어 캠페인의 경험은 충분치 않은 편이다.

협력기술에서부터 긴급 상황에서의 반복연습까지 모든 면에서 공동체를 준비시켜야 한다. 사회적 방어를 촉진시키는 방법은 쉽지 않다. 왜 냐하면 바로 그 발상이 폭력에는 폭력으로 대응한 다는 뿌리 깊은 가정들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1. 캠페인의 효과 자본주의의 폭력적 기반과 합법성을 문제 삼거

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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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캠페인의 방법과 목적의 설정

가지 방법은, 정부가 군사적 방어에 대한 보완으로 서 사회적 방어의 일부 요소들을 소개하는 것이다.

사회적 방어를 위한 캠페인에는 두 가지의 기본

스웨덴의 경우, 일차적으로는 군사적이지만 경제적

적 방식이 있다. 하나는 사회적 방어가 국가를 방

방어, 시민 방어, 심리학적 방어와 사회적 방어의

어하는데 있어서 논리적이고 우월한 선택이라는

요소를 가지고 있는 총체적 방어를 소개하기도 하

것을 정치적, 군사적 지도자들에게 확신시려고 노

였다. 하지만 사회적 방어의 급진적 요소들은 정부

력하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법은 엘리트를 겨냥한

관료와 아마 외주받은 기업들에 의해 관리되는 위

합리적인 논증을 이용하는데, 이는 대중적인 비폭

계적으로 구조화된 비폭력 방어 체계에 의해 가로

력 행동이라는 목적과는 거리가 있다.

막힐 수 있다.

사회적 방어를 위한 캠페인의 두 번째 방법은

자본주의에 의한 반대소 / 수파의 흡수는 어떠한

공동체의 조직과 비폭력 행동을 통한 것이다. 이는

가? 지역사회에 사회적 방어 서비스를 판매하는

사회적 방어 시뮬레이션, 봉쇄와 공격에서 살아남

회사를 상상하기는 힘들다. 사회적 방어에 대한 자

기 위한 분산 에너지 시스템을 구축, 공격에 대한

본가의 전면적인 흡수는 자본주의가 대중적인 적

협력적 저항의 연대 소통 체계의 증진을 포함한다.

법성을 획득할 때만이 가능하다. 이 적법성이란 사

핵심적인 면에 있어 이 접근법은, 목표로서의 사회

람들이 그것을 방어하기 위해 비폭력적 행동의 책

적 방어를 위해 사회적 방어라는 수단을 사용하는

임을 질 의사가 있다는 것이다.

것이다. 겉보기에는, 사회적 방어가 자본주의에 대한 도 4. 그 운동이 반대소 / 수파를 흡수하는 데에 저항 하는가?

전으로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2장에서 설명된 것처럼, 자본주의를 진지하게 언급했던 비폭력 이 론가는 거의 없었다. 그들의 주요 관심사는 독재와

사회적 방어는 국가권력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

같은 명백한 억압의 체제였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이기 때문에, 강한 저항적 성격을 띈다. 사회적 방

그 근본에서부터 폭력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사

어에 대한 연구를 지원한 정부는 극히 드물지만,

회적 방어는 근본적인 도전이다. 이것은 어떤 종류

몇 몇 정부가 사회적 방어를 소개하는데 실질적인

의 부정의한 사회체제와 직면하고 대체할 수 있는

단계를 밟고 있다.

도구를 준다. 풀뿌리가 참여하는 캠페인은 더욱 강 력한 도전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참여를 최대화하

만일 사회적 방어를 위한 국가차원의 캠페인이 좀 더 강력했다면, 반대소수 / 파를 흡수하는 일이 훨씬 더 큰 가능성을 띄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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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수단과 부합하는 목적을 구축하고, 반대소 / 수파 에 대한 흡수에 좀 더 저항적이기 때문이다.


소설로 전쟁읽기 _ 세 번째 이야기 하얀전쟁 까만★ | 매체편집팀 + ebonystar82 @ hanmail.net

있는 그대로의 전쟁, 이야기하기. 나는 대학에 들어오기 전까지 베트남 전쟁을 몰랐다. 아 니, 그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고, 그 이름에 따르는 낱말들―영웅, 무적의 맹호부대, 람보(^^;) 등―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와서, 나는 내가 알고 있던 것이 모르는 것보다 못한 앎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깨달음에 생생한 체험을 제공해 준 책이 바로 「하얀 전 쟁」이었다.

기획연재에서 다루어지는 소설들.. 태평양전쟁 - 권정생, ‘슬픈 나막신’ 제주 4.3 항쟁 - 현기영, ‘순이 삼촌’

베트남 전쟁 - 안정효, ‘하얀 전쟁’ 광주 민중항쟁 - 이순원, ‘얼굴’ 현대의 군사문화 - 위기철, ‘무기를 팔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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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쟁을 자원하는 군인들

터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오만이다. 그러나 그 들의 선택이 어떤 선택이었는지는, 그 선택 자체가

「하얀 전쟁」은 베트남 전쟁을 너무나도 사실적

이미 말해주고 있었다.

으로 그린 책이다. 장편 소설이다보니, 베트남 전 쟁을 둘러싼 여러 인물들과 다양한 사건들이 나오

그러나 전쟁이란 신나게 총을 쏘고, 씩씩하게 뛰어다니고,

고, 그 속에서 인물들은 전쟁을 다양하게 경험한다.

기계체조를 하듯 잽싸게 땅바닥에서 구르는 것이 전부가

군인들이 전쟁을 찾아온 이유부터 조금씩 다르다. 어떤 사람은 남국의 아름다움을 느껴보기 위해 왔 다. 어떤 사람은 사나이답게 전쟁 영웅이 되어보고

아니었다. … 나는 전쟁을 구경하러 갔지 싸우러 간 것이 아니었다.

2. 한심한 전쟁

자 왔다. 또다른 사람은 처가와의 불화에서 도피하 기 위해 떠나왔다. 더 많은 사람들은 어차피 갈 군

“전쟁은 정말로 한심했다.” 그러나 그 ‘한심하다라 ’

대 월급이나 많이 받자고 왔다. 그리고 한기주는,

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있다. 전쟁에서의

자신이 베트남에 온 이유를 잘 설명하지 못했다.

삶은 정말 한심했다. 그들은 정의의 십자군도, 영 웅적인 구원군도 아니었다. 그들이 베트남에 도착

나는 왜 내가 전쟁의 터전을 내 발로 스스로 찾아갔었는지 조차도 설명하기가 힘들다. 영화와 문학작품에서 잘못 납득 한 전쟁에 대한 영웅의 개념(英雄觀) 탓일지도 모른다. 예

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날마다 땅만 파는” 것이 었다. 그들이 벌인 최초의 교전은, ‘최초라 ’ 는 말과

술은 전쟁을 환상과 낭만으로 그린다. 죽음까지도 찬란하게

‘전투라 ’ 는 말이 결합해서 일으키는 긴장감과 불안

아름다운 행위로 묘사된다.

감, 흥분을 충분히 상쇄시킬 수 있을 정도로 허무 했다. 군인들이 베트콩으로 생각하고 무차별 사격

2003년,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이 추진될 때, 나는

하여 완전히 몰살시키는 전과를 올린 대상은, 주민

그 파병이 자원 입대라는 것이 신기했다. 도대체

들이 기르는 물소떼였다. 한국군은 지역 주민들에

왜 그런 죽음의 지역으로 간다는 말인가? 스스로

게 사과하고 소 값을 물어내야 했다. 게다가 부상

전쟁을 원해서 찾아가는 사람들이 있을까? 「하얀

당한 소를 제대로 보상해주지 않았다고, 지역 주민

전쟁」은 전쟁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심리를 보여

들은 “따이한 고 홈! 따이한 고 홈!”이라고 반한

준다. 그들은 자원해서 베트남에 갔지만, 실제로

시위를 했다. 한국군은 자신들이 왜 파병되었는지

그것은 ‘자발적으로 원해서’ 간 것이 아니었다. 가

알 수 없었다.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지도 혼란

정, 돈, 태극기, 전쟁에 대한 환상, 남성다움, … 이

스러웠다. 베트남 주민들조차 그들의 존재 이유를

런 것들이 그들을 전쟁으로 내몰았다. 전 사회가

부정했다.

하나의 선택지를 ‘사나이들 ’ 에게 강요하고 있는 상 황에서, 그들의 파병 지원을 자원(自願)이라고 이 름붙일 수 있을까? 그러나 최소한 형식적으로는, 그들은 전쟁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선택 을 부정할 수는 없다. 어떤 사람의 선택이 처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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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가난하고 돈이 없어요. 우린 전쟁에서 누가 이기 느냐 따위에는 이젠 별로 관심이 없다는 걸 솔직하게 얘기 하고 싶어요. 20년이나 시달리다 보니 이념이니 사상이니 하는 허황된 얘기는 다 헛 기만일 뿐이고, 생존이라는 기본 적인 문제만 남았어요.


군인들은 ‘지키기 위해’ 전쟁을 한다고 생각한다.

살아 돌아온, 사람이었다.

자유를, 생명을, 평화를 지킨다는 명분은 그들이 선택하는 살인적인 수단을 정당화해준다. 그러나

3. 끝나지 않는 전쟁

전쟁의 근본적인 모순은, 명분을 지키기 위한 수단 이 도리어 명분을 파괴해 버린다는 것이다.

인간의 생명이 존귀한 이유는 어쩌면, 그 죽음이 존귀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차갑도록 한

전쟁에서의 삶은 한심하다. 그리고 전쟁에서의 죽

심한 죽음을 겪고 온 사람들은, 생명에 대한 최소

음 역시, 한심하다.

한의 존엄성을 잃어버렸다. 그들은 살아 돌아왔지 만, 살아갈 힘을 상실한 채 돌아왔다.

잘 죽는다는 것은 잘 산다는 것보다 더 많은 정신력이 요 구된다고 몽떼뉴는 말했다. 하지만 나는 멋진 죽음은커녕

“이상하게도 그 무렵에 난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이 베트콩

유언 한 마디라도 제대로 하며 죽은 자를 단 한 명도 보지

이고, 집안이나 극장 창고에 있는 모든 물건에 베트콩의 부

못했다. 모두가 갑작스럽고, 납득이 안 가고, 설명도 되지를

비 트랩이 장치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꼈어

않는 죽음들뿐이었다.

요.”

「하얀 전쟁」에서는 군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변진수에게 베트남 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

사적인 이야기를 어떤 때는 지루하다고 느낄 정도

는 여전히 전시 상태처럼, 두려워하고, 사주 경계

까지 찬찬히 서술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서술

를 하며, 도망치고 있었다. 그러나 변진수의 적은

은 툭, 하고 끊어진다. 베트남에서의 마지막 전투

그의 내면에 있었기에, 그는 도망칠 수도 없었다.

에서, 중대원 전체 중 7명만이 살아남는다. 마지막

변진수는 전쟁의 후유증을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점호를 하며 불리는 수많은 이름들. 너무 많은 이

있다. 그렇지만 과연 한기주는 전쟁의 상처를 아무

름들이라서 가끔은 헷갈리기도 하고, 그래서 앞에

렇지 않게 극복했을까? 아니다. 한기주 역시 전쟁

서 읽은 부분 다시 찾아보면서 이런 사람이었구나,

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고 확인한다. 그러나 누구인지 확인하고 그 이름 을 다시 불러보아도, 대답은 없다. 단지 “전사라는 ” 무미건조한 단어에 마침표 하나가, 정말 사소하다 는 듯이 찍혀 있을 뿐. 전쟁 영화에서 보이는 위대 하고 영웅적이고 희생적인 죽음은 없었다. 치열하 게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한다는 것은 환상이었 다. 한 사람의 삶의 무게감이 그토록 어이없이 부 정되다니. 그토록 한심한 죽음이라니. 그러나 그토록 한심한 전쟁 속에서, 한심하게 살다 가 한심하게 죽어간 군인들, 그들 역시 사람이었고,

영화 ‘하얀전쟁’ 중에서

그 한심한 전쟁의 모순과 상처를 고스란히 안고

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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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들이 자꾸만 좁혀져 들어온다. … 모든 동작과 위치가 레이

이 진정으로 전쟁을 거부하는 것이다.

다의 그물눈에 포착되어 추적당하는 인간. 변진수 이외에도 누군가 나를 감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전쟁을 살다가 막상 귀국한 나는 소외된 이질감을 느꼈 다. 와서는 안되는 곳으로 돌아왔다는 두려움. 씩씩하고 즐겁 게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외토리가 된 느낌이었다.

4. 전쟁에서의 여성에 대한 환상화 그러나 「하얀 전쟁」은 점령군 소설이다. 소설은 군 인이고, 남성이고, 점령자인 사람의 시각에서 쓰여졌

전쟁은 군인들의 신체에 각인되어 버렸다. 그들은 타

다. 그리고 이 점은 소설의 장점이기도 하지만, 한계

인과 소통하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자신을 사랑하고

이기도 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을 상실해 버렸다. 그래서 한기

한계는, 「하얀 전쟁」에서 묘사되는 여성의 모습이

주는 아내와도 소통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가 아이

다.

를 갖지 못한 이유는, 또다른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생명력(生命力)이 없기 때문이었다.

「하얀 전쟁」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여성상은,

그리고 나는 한기주의 삶을 보면서, 전쟁은 우리의

‘기다리는 한국 여성과 ’ ‘몸 파는 꽁가이다 ’ . 한국군들

일상에서도 이미 벌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

은 자신의 애인, 아내, 어머니와 같이 한국에서 자신

론 나는 지금 전쟁이 없는 상태에서 살고 있다. 그러

을 기다리고 자신을 걱정하는 여성들에게 정서적으로

나 한기주가 겪은 두려움, 이질감, 공허함, 상실감,

의지한다. 자신이 전쟁에서 살아남으려고 하는 까닭

……. 그것이 한기주만의 것이라고, 참전 군인들만의

은,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자신을 따뜻하게 맞아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가 사회에서 맺고 있

여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다리는 한국 여성’

는 관계는 과연 어떠한가? 출근 시간 사당역 환승통

을 미화하는 한편으로, 그들은 자신들의 남성적 욕망

로에서 앞만 보고 무뚝뚝하게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

을 채워줄 성적 대상을 필요로 한다. 그것이 바로 베

물결을 볼 때, 나는 아찔해진다. 현관을 나서다가

트남 현지 여성들이다. 한국군에게 베트남 여성은 성

CCTV의 메마른 렌즈를 마주칠 때, 나는 누군가 내

매매의 대상, 혹은 손쉬운 연애의 대상물이다. 군인

몸을 절단하고 있는 것 같은 섬뜩한 기분을 느낀다.

들은 그런 식으로 여성상을 나누어놓고, 그 두 범주

독서실의 칸막이 책상에 갇혀서 한 평도 안되는 자기

안에 여성들을 가두어 버린다.

공간에만 파묻혀 있는, 우리들의 군상. 우리는 이미 전쟁같은 삶에 익숙해지고, 지쳐버린 것이 아닐까? 「하얀 전쟁」은 전쟁에 대한 감수성을 길러주었다. 전쟁은 비단 전쟁터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 리의 일상 속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전쟁을 거부한다는 것은 일상에서의 전쟁 관계, 죽음과 단절 에 기반한 관계를 거부하는 것이다. 서로 살리고 돌 보는 관계, 생명과 소통에 기반한 관계를 만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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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하얀전쟁’ 중에서


그런데 「하얀 전쟁」 안에서는 그렇게 구획된 여

치스러운 짓을 ’ 하고 있는 것은 그들의 전쟁 행위의

성상에 균열을 내는 몇몇 사건들이 발생한다. 그 중

정당성과 자부심을 깡그리 짓밟는 행동이 되는 것

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사건은, ‘기다리는 한국 여

이다.

성의 ’ 배신이다. ‘기다리는 여성이 ’ 숭고하고 순결하 게 미화되었던 만큼, ‘배신한 여성은 ’ 타락하고 욕정

마지막으로 군인들의 여성상에 균열을 내는 것은,

에 빠진, 혹은 매우 차가운 여성으로 전락된다. 군

바로 ‘베트콩 여전사들 ’ 이다. 앞서 살펴본 여성상들

인들은 그런 ‘배신한 여성들 ’ 을 욕하고, 동시에 자신

은 모두 전쟁의 주변부에 머물러 있는 모습이었다.

이 의지할 곳을 잃어버린 채 방황하게 된다. 애인의

미화된 여성이든 성매매당하는 여성이든, 그들은 직

배신을 겪은 전병장은 정체성을 상실한 채 방황하

접적으로 전쟁에 참여한다기 보다는 남성 군인들과

다가 자살에 가까운 죽음을 맞게 된다.1)

의 관계를 통해 전쟁에서 수동적으로 위치지워지는 존재들이다. 심지어 한국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여성

또하나의 균열 지점은 한국에서 베트남으로 온 성

들조차, “전쟁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

매매 여성들이다.

로 치부된다. 그래서 군인들은 은연 중에 여성에 대 한 우월 의식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베트콩 여전사

전쟁터는 남자들의 성역이라고 생각해서였는지는 몰라도 나

들은 그런 관념을 정면으로 깨어버린다. 자신이 전

는 월남에서 한국 여자들을 볼 때마다 수음을 하다가 들킨

쟁에서 주체로서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던 여성이

아이처럼 창피해졌다. 이곳에서 만난 이런 부류의 한국 여자 들이 항상 나로 하여금 수치심을 느끼게 했기 때문인지도

어느 순간 그들의 ‘적으 ’ 로 나타난다. 비록 반대편에

모른다. …

서 있긴 하지만, 적은 자신과 동등한 전투 주체이다.

“저런 년들이 와서 돈 벌어먹게 해주려고 우리들이 목숨을

그래서 한국군들은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그 혼란

걸고 싸운다고 생각하면 당장 총대를 분질러버리고 싶구나.”

을 다시 자신의 관념 체계 안에서 안정시키기 위해, 베트콩 여전사들을 남자 전사들보다 더욱 끈질기고

한국 여성들을 기다림의 여신으로 미화시켜놓은 한

독한 ‘악녀로 ’ 치환해 버린다. 그런데 실제로 여자

국군들에게, 한국 성매매 여성은 자신의 우상에 먹

베트콩 판 띠 답을 체포했을 때, 그들은 판 띠 답을

칠을 하는 존재이다. 그들은 ‘한국’ 여성들이 자신들

악녀로 생각하지 못했다.

이 경멸하면서 동시에 우월 의식을 느끼는 베트남 성매매 여성들과 같은 일을 한다는 것에 수치심을

하지만 판 띠 답은 그런 여자가 아니라고 우리들은 믿었다.

느낀다. 그들은 성매매하는 한국 여성들의 현실에

숲속에서 베트콩들에게 ‘돌림빵을 ’ 당하거나 우리들에게 총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여성들로 인해 무너진 자

을 겨누기에는 판 띠 답이 너무나 어렸고, 너무나 아름다왔

신들의 자존심 때문에 분노한다. 한국군들은 한국

고, 너무나 가냘펐다.

여성들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들이 지킨다고 생각했던 한국 여성들이 저런 ‘수

1) 자신이 의지하던 여성의 배신으로 인해 정체성을 상실해 버리는 남성 군인의 모습은 매우 넓게 나타난다.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도 허일병의 자살에 애인의 배신이 강한 동기로 작용하며, 그 외에도 흔히 탈영의 가장 큰 이유가 애인의 배신때문인 것으로 그려진다.

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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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들은 여자 베트콩조차 다시 한번 환상화시켜 버린

물적인 생존의 의식만 남은 ” 베트남 사람들을 위해 죽

다. 실제로 그녀가 어떤 인물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어라고 전쟁을 해야 하는 점령군. 그래서 한국군들은

들 자신의 성적 욕망을 판 띠 답에게 투영하고, 그녀

베트남 사람들에게 일말의 증오감까지 드러내기도 한

가 그 투영된 환상에 걸맞게 행동하기만을 바랄 뿐이

다.

다. 그래서 나중에 판 띠 답이 그들에게 수류탄 공격 을 시도하다가 발각되었을 때, 한국군들은 혼란과 좌

여자들과 노인들이 싱글싱글 웃으면서 지나가는 군인들을 구경

절에 빠져 버리는 것이다.

했는데, 그들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 “당신들 이 논바닥을 기어다니며 우리 대신 고생을 잔뜩 해준 덕택에

이처럼 여자 베트콩은 한국군의 여성에 대한 환상에 거대한 균열을 내었다. 그러나 그것을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주체로 인정받는 과정이라고 볼 수는 없다. 여 자 베트콩은 한국군들에게 동등한 전투 주체이지만, 베트콩 군대 안에서는 또다시 성적 대상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아군의 사기를 올린다는 미명 하에 행해지 는 여자 베트콩에 대한 성적 착취는, 여자 베트콩들에 게 과연 아군(我軍)이 누구인지를 다시 한번 질문하게 한다. 「하얀 전쟁」은 남성 점령군의 시각에서 쓰여진 소설 이다. 그래서 그 안에서의 여성들의 모습은 왜곡되고, 환상화된다. 물론 전쟁에서의 여러 경험들이 그 환상 을 일그러뜨리고 균열을 내기도 하지만, 군인들은 그 균열까지도 다시 자신들의 환상 안으로 포섭한다. 「하얀 전쟁」 안에는 전쟁 속의 여성에 대한 남성들 의 시각이 너무나도 잘 녹아있다. 5. 점령군이 바라보는 무기력한 현지인 「하얀 전쟁」의 또다른 한계점은 베트남 사람들에 대 한 잘못된 인식이다. 비록 낫 띠엔 촌장이 베트남의 역사적 진실을 알려주는 인물로 나오고 있기는 하지만, 그 외의 베트남 사람들은 무기력하고 의지 없는 노인 과 전쟁에 수동적으로 피해받기만 하는 여성으로만 그 려진다. “전쟁으로 지칠 대로 지쳐 의욕도, 희망도, 추 진력도 잃었고, 이제는 아집과 독선과 이기주의와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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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날마다 시에스터 잘 했다우.”

6. 전쟁 경험, 이야기하기 그러나 이런 한계들에도 불구하고, 「하얀 전쟁」은 참전 군인 스스로 자신의 전쟁 경험을 드러내고 그 상 처를 토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베트남 전쟁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하나의 금기였다. 아니, 지금도 군대와 전쟁에 대해 미화되지 않은 ‘사실 그 자체를 ’ 이야기한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 가 필요한 일이다. 그런 현실 속에서 전쟁에서 겪은 그대로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비록 그 안에 점령군의 왜곡된 시각이 개입되어 있다 할지라도, 우선-긍정되 어야 한다. 그리고 그 긍정을 바탕으로 더 많은 이야 기들이 터져나오기를 바란다. 지금도 한국은 이라크에 서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렇지만 3년째를 넘기고 있 는 전쟁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전쟁에서의 경험들은 공론화되지 못하고 있다. 아니, 사람들은 한국이 이라 크에서 전쟁 중이라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한 채 살아 간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라크에서 직접 전쟁을 겪고 있는 군인들의 느낌은, 상처는, 기억은, 아직 완고하게 재갈이 물려 있다. 이제 함께 말해야 할 시간이다. 더 이상 국익을 위한 전쟁이 명분을 가지지 못하도록, 더 이상 전쟁으로 상처받는 사람이 없도록, 더이상 전쟁과 같은 삶이 우리 일상에서 재현되지 않도록.


1. 국회 국방위원회 공청회 (3월 17일) 지난 3월 국방위원회 공청회가 있었다. 한홍구, 김병렬, 홍영일, 정창인, 오태양, 제성호씨가 진술인으로 나와 한국의 병역거부 현황과 대체복무제 도입과 관련하여 논의하였다. 물론 이 당시 많은 국방위원회 국 회의원들이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국회에서의 본격적인 논의의 시발점의 역할을 해주었다. 물론 워낙에 길 고 느린 레이스이기에 아직 주목할만한 전환점을 만들어내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시작이 반이라 하니 국방 위원회 공청회는 국회에서의 본격적 논의를 조금이나마 앞당겨 주었다고 볼 수 있다.

2. 빨간신호등 캠페인(3월 내내) 작년 헌법재판소 판결 이후 미루어졌던 병역거부자들의 잇따른 구속으로 병역거부수감자의 수가 1000명을 넘어섰다. 이에 한국사회의 인권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음을 경고하는 빨간신호등 캠패인을 3월 한달동안 혜화역 앞에서 신호등 퍼포먼스와 말풍선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진행하였다. 다양한 말풍선들과 캠페인 참 여자들의 발언으로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한국의 병역거부 현황과 대체복무제의 필요성을 전할 수 있는 계 기가 되었다. 빨간신호등만 계속 켜져있으면 모든 도로가 마비가 되듯, 그리고 빨간신호등은 언젠가 녹색신 호등이 되듯 이제 한국의 인권거리에도 녹색신호등이 켜질 수 있지 않을까?

3. 전쟁없는 세상 새 사무실 이사 (5월 5일) 지난 5월 5일에 전쟁없는 세상이 서대문에 평화인권연대, 피자매연대와 함께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였다. 그리하여 새로운 보금자리를 ‘아랫집이 ’ 라 부르고 함께 자전거도 타고 채식도 하며 서로서로 위로하고 감싸주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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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5월 15일 병역거부자의 날 매년 5월 15일은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로 한국에서는 3년전부터 매년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로 세번 째를 맞은 한국의 병역거부자의 날 행사는 5월 14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평화를 위한 난장를 ” 벌였다. 올해는 특히 대체복무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형벌적 수준에 가까운 그리스의 병역거부자들과 감 히 병역거부는 엄두도 못낼만큼 사막의 컨테이너 박스에 내던져진 에리트리아의 병역거부자들 이야기를 준 비하고 표현하며 한국사회의 인권 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 감쳐줘 쉽게 알지 못했던 인권의 현실을 다시 한 번 절감하며 인권의 소중함을 느끼고 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그리스 대사관에 ‘양심에 따 른 병역거부권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 명의로 항의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5. 병역거부 전시회 (5/26~6/4) 지난 5월~6월 10여 일에 걸쳐 홍대 앞 대안공간 ‘휴에 ’ 서 병역거부 관련 전시회가 열렸다. 한국에서 병 역거부는 일제시대때부터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000년대 이후 겨우 사회의 관심을 얻게 된 것이 사실 이고 이전의 사회가 소수자들에게 가한 잔혹한 역사는 여전히 숨겨져 있었다. 이에 한국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가 시작된 일제시대 때부터 최근의 병역거부까지의 역사를 총종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번 전시회는 전시공간을 찾은 많은 이들에게 병역거부의 역사와 함께 더 이상 시기상조라는 명 목으로 병역거부권 인정을 미룰 수 없음을 느끼게 해준 계기가 되었다.

6. WRI국제회의 (6/26~6/29) 6월 26일부터 나흘 간 국제 평화운동 네트워크 조직인 WRI(War Resisters' International)와 국내 평화단 체인 전쟁없는세상, 평화네트워크, 평화인권연대, 평화를만드는여성회 등이 공동으로 개최 2005 동북아시 아평화국제회의가 서울에서 진행하였다. 사실상 한국에서는 낯설게 느껴지거나 왜곡되어 전해지던 ‘평 화와 ’ ‘비폭력이 ’ 라는 담론에 대해 좀 더 명확하고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마련할 수 있는 자리가 되었다. 특히나 유럽의 오랜 활동경험을 가진 평화활동가들이 직접 전해주고 함께 ‘비폭력 직접행동’ 트레이닝들 을 진행하는 속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제공해주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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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평택미군기지반대 평화캠프 매년 여름 진행되는 평화캠프가 올해는 평택에서 미군기지에 반대하는 직접행동 전략수립과 직접행동을 중 심으로 진행되었다. 4일동안 비폭력 직접행동에 대한 트레이닝들을 진행하고 마지막 날 국방부의 일방적인 주민설명회를 방해(?)하는 직접행동을 진행하였다.

8. 병역거부 수감자 특별면회투어(9월중) 지난 9월 서울구치소를 시작으로 전국에 흩어져있는 병역거부 수감자들 특별면회가 있었다. 10월까지 대구, 부산, 충주, 수원, 의정부, 대전 등 12명의 병역거부 수감자가 있는 9곳의 교도소와 구치소의 특별면회투어 를 마쳤다. 많은 병역거부자들을 유리벽이 없는 탁 트인 공간에서 볼 수 있어서 좋았고, 부둥켜 얼싸안고 좋아하는 최진씨와 아름씨(최진씨의 부인)을 보면서 정말 뿌듯함과 따뜻함을 느꼈다.

9. 12월 1일 평화수감자의 날 (12/1) 매년 12월 1일은 5월 15일 병역거부자의 날과 더불어 연중행사로 진행되는 ‘평화수감자의 날이 ’ 다. 이번 12월 1일 평화수감자의 날은 에리트리아의 평화수감자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한국에서는 <평 화에게 기회를, Give Peace a Chance>라는 제목으로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앞에서 평화수감자의 날 맞이 거리문화제가 아담하게 치러졌다.

10. 국가인권위원회 권고 (12/26)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조영황)는 12월 26일에 열린 제26차 전원위원회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권은 헌법 제 19조와 <시민적정 · 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18조의 양심의 자유의 보호 범위 내에 있음과 병역의 의 무가 국가의 안전보장을 위한 국민의 필요적 의무임을 확인하였으며, 국회의장과 국방부 장관에게 양심적 병역거부권과 병역의무가 조화롭게 공존하게 할 수 있는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하도록 권고하였다. 이에 국 방부에서는 2006년 민관군 , , 공동으로 연구를 하고 신중히 검토하겠다는 입장 발표를 하였다. 섣부른 희망 이나 낙관을 가질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는 볼 수 없었던 국방부의 입장 변화를 가져온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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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체편집팀은 소식지를 편집회의를 통해 기획/제작하고 있습니다. 13호 소식지 제작을 함께할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 세미나팀에 커리주제를 제안해주세요. 커리주제가 정해지면 참가희망자들이 준비모임

전쟁없는세상 소식정리와 굵직한 활동보고입니다.

을 가지고 본격적인 토론모임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 해외자료번역팀은 날맹이 책임을 맡고 있습니다. 함께 하시고 싶으신 분, 제안거리가

활동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지면관계상 안타깝게도 생락 하도록 하겠습니다. 나열식인 점 사과드립니다.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 운영실에서 확인하세요~ ^ ^

있으신 분들은 홈페이지 운영실 -> 팁별게시판 -> 해외자료번역팀 게시판을 참고하시 거나 날맹에게 연락주세요~ : 수감자지원팀은 수감된 병역거부자들이 감옥 안에서도 밖과 소통할 수 있도록 개인요 청물과 회의록 및 편지를 담은 우편물을 정기적으로 발송하고 있습니다. 수감자지원팀에 관심이 있으신 분은 홈페이지 운영실->팀별게시판->수감자지원팀 게시판을 참고하시 기 바랍니다. 또는 날맹에게 연락주세요~

12.1 12.3 1.3 1.12~14

평화에 대한 세가지 이야기 - 김태훈, 김영진, 이용석 병역거부 평화에게 기회를! - 평화수감자의 날 행사 평화인권열린대화마당 - 출소자들의 이야기 「나는 폭력의 세기를 고발한다」세미나 정리, 박노자선생님과 함께 인권활동가대회 참가

>>전쟁없는세상 11,12월 재정보고 (11월 6일 ~ 12월 27일) 수입 개인후원금 계 지출 평화수감자의 날 준비 사무실운영월 ( 세전 , 기전 , 화수 , 도생 , 수) 대화마당준비 소식지발송 월동준비(가스히터가 , 스) 기타(팩스, 수수료)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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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044 815,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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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태양, 임성환 : 가석방으로 출소 오태양씨와 임성환씨가 11월 30일 각각 충주구치소와 영등포구치소에서 출소했습니다.

:: 이원표, 염창근 : 가석방으로 출소 이원표씨와 염창근씨가 1월 27일 각각 대전교도소와 충주구치소에서 출소했습니다.

:: 이승규 : 지문날인거부 승규씨가 김천교도소에서 지문날인 거부를 하고 있습니다. 많은 지지와 격려를 보내주세요.

:: 고동주 : 1월 24일 구속, 영등포구치소 수감 고동주씨가 1월 24일 영장실질심사를 거쳐 구속되었습니다. 현재 영등포구치소에 수감중입니다.

:: 김도형 : 1월 25일 구속, 영등포구치소 수감 김도형씨가 1월 25일 구속되었습니다. 현재 영등포구치소에 수감중입니다.

:: 오정록 : 1월 18일 1심 재판, 2월 7일 선고(구속예정) 오정록씨가 1월 18일에 1심 1차 공판이 있었습니다. 선고공판은 2월 7일이고 이날 법정구속이 예상됩니다.

:: 김태훈(부르뎅) : 1월 23일 경찰조사 1월 23일 남부경찰서에서 경찰조사를 받았고, 2차조사 없이 바로 영장실질심사를 받을 예정입니다.

:: 김영진 : 1월 19일 경찰조사 1월 19일 용산경찰서에서 경찰조사를 받았고, 2차조사 없이 바로 영장실질심사를 받을 예정입니다.

:: 이용석 경찰조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 수감된 병역거부자들의 주소 임재성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엄정우체국 사서함1호 충주구치소 865번 (우: 380-840) 유호근 경기도 의정부시 고산동 813번지 의정부교도소 1550번 (우: 480-700) 조정의민 경기도 군포시 군포우체국 사서함 20호 서울구치소 수감번호 2322번 (우 : 435-600) 최진 경북 청송군 진보면 진보우체국 사서함5호 청송교도소 수감번호 1329번 (우 : 763-710) 문상현 충북 서 청주 우체국 사서함 100 청주교도소 수감번호 844번 (우 361-600) 이승규 경상북도 김천시 김천우체국 사서함 12호 김천교도소 수감번호 569번 (우:740-600) 고동주 서울시 구로구 고척1동 102 영등포구치소 수감번호 2305번 (우)152-707 김도형 서울시 구로구 고척1동 102 서울금천우체국 사서함 164호 수감번호 2876번 (우:152-707)

※ 12월 1일 김태훈(부르뎅,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김영진(민주노동당원), 이용석(전쟁없는세상 활동가)씨가 병역거부 선어을 했습니다.

서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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