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없는세상 소식지 16호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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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

오늘을 살아간다는 것 영은 | 전쟁없는세상 책임활동가 + slow-steady@hanmail.net

얼마 전에 제주도에 다녀왔다. 한라산에 오르기 위해서 떠난 여행이었다. 지난 겨울 지리산에 오르다가 포기했고, 여름엔 유럽에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가 넘어져서 손목뼈에 금이 가는 바람에 혼자 도보여행을 해야만 했었다. 무언가 계속 좌절되는 느낌에 이번 여행을 떠날 때에 는 󰡐휴식󰡑보다는 ‘도전이라는 ’ 생각이 앞섰다. 마음을 단단히 다잡고 여행을 떠났다. 훗~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일까? 제주도에 폭설이 내 려버리는 바람에 한라산 근처에는 가보지도 못하게 되버린 것이다. 그 순간에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아랫집 식구들과 떠나는 여행에서 번 번이 낙오되는 느낌이랄까? 뭘 해도 안 될 것 같은 느낌이랄까? 한라산 백록담에 가서 삼순이처럼 한껏 소리쳐보는게 소원이었는데 말이다. (필자는 현재 개명신청 준비중이다.^^;;;;) ‘나는 이제 오영은이 아니다!!’그러면서 삼식이 생각을 하며 내려오려고 했는데... 어쨌든 한라산 에 오르지 못하고 한참을 패닉상태로 있어야만 했다. 그래도!!!! 여행은 항상 나에게 무언가를 문득 던져주고 사라지곤 한다. 김영갑이라는 사진작가의 갤러리에 가게 되었다. 이 사진작가는 루게릭병으로 제작년에 사망하였다. 제주도의 자연을 주로 찍었던 작가인데 갤러리에는 그의 작품들과 죽기 전 썼던 일기들이 전시되어 있었 다. 죽음 앞에 서있는 사람의 이야기들이라 그랬을까? 한 줄 한 줄 읽어내려가며 마음이 차분해짐을 느꼈다. ‘뜬구름처럼 허망한 세상살이다. 나에게 내일은 없다. 오늘을 살아가야만 한다. 두려움을 잊기 위해서는 어떤 한 가지에 몰두하여 신명나게 해야만 한다.’여행 내내 ‘오늘을 살 아간다는 것이 ’ 무엇일까 생각했다. 어제도 아니고 내일도 아니고 오늘!!을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과거를 붙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잡히지 않는 미래를 움켜쥐고 오늘은 망각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 그 중 어디쯤엔가 나 자신도 있겠지. 서울로 돌아오며 나 는 한결 가벼운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부질없는 과거나 미래를 붙잡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 내가 가진 감정들에 충실하고 내가 맺은 관계들에 충실하는 것!! 내 인생에 던져진 새로운 숙제인 것 같다. 지금 나는 훨씬 가볍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좋으면 좋은대로 표현하고 행동하고, 싫으면 안하고 안본다. (음.. 이건 좀 아닐 수도 있다) 어쨌든 불필요한 조바심도 두려움도 나에겐 없다. 그래서 4달 만에 나오는 격월간!!! 소식지에 대해서도 죄송함도 부끄러움도 안면몰수 하기 로 했다. (자기합리화의 극대화!!) 그래도 너무 걱정하거나 분노하지 마시라!! 편집에 ‘편자도 ’ 모르던, 무슨 일을 하려면 다른 사람들보다 10 배쯤 시간이 더 걸리는 이 필자가 이젠 누구의 도움없이도 소식지 편집을 척척 해내게 되었다. 그러니까 소식지가 또 늦게 나올 일은 없다고 본다. (호언장담!!! ^^;;;) 2007년이다. 새해에는 과거를 붙잡는 어리석음보다,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조바심보다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이 느끼는 생각들에 충실한 ‘오늘을 살아가는 삶을 ’ 한 번 살아보시길 바란다. 세상이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것, 내 자신이 그리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 그래서 삶에 겸손해질 수 있는 ‘긍정적 허무주의에 ’ 빠질 때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볼 수 있게 되지는 않을까? ☮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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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소박한 자유를 만끽하며.. 의민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 2006년 8월 14일 출소.

그냥 무작정 걸어보기 모든 병역거부자가 출소준비를 하면서 하고 싶은 일들도 정리하고, 그간 못한 일을 해보겠다는 마음을 먹죠. 제 경우에는 밀린 영화를 보는 것 이 물론 일 순위였지만 그냥 내가 의지를 가지고 한 걸음 한 걸음 제약 없이 걸어보고 싶었어요. 정해진 공간에서, 정해진 시간 동안 감시를 받 으며 걸어 다니는 것이 아니라, 제약 없이 한 걸음 한 걸음.... 집에서 나와서 외대를 지나서 경희대를 한 바퀴 돌고 돌아오는 산책 코스도 좋 고, 무슨 인공콘크리트호수 같다지만 새로 물길을 연 청계천도 좋고, 서울시청 앞 잔디광장도 좋고, 아니면 서울 숲도 좋고, 아니 그냥 종로나 명동 거리도 좋고.... 출소 이후 하염없이 그냥 걸어 다녀 봤어요. 귀에는 MP3를 꼽고, 한 걸음 한 걸음.... 때론 다소 먼 거리라도 그냥 무작 정 걸어서 찾아다녀보기도 했어요.(뭐 이전보다 길을 찾아다니는데 도통 익숙하지 않다는데 적잖이 당혹스러워하기도 했지만^^) 어찌 보면 아주 사소한 일들, 보통 사람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들, 그러한 것들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고마워 졌어요. 사실 출소하면서 뭐 특별한 것을 바랬던 것은 아니거든요. 작지만 자신이 일상적으로 영위하던 것들을 포기하고 살다가 그걸 다시 할 수 있다는 것, 이런 것이 자유의 한 모습이 겠죠.... 지금 이렇게 전쟁없는 세상 소식지를 통해 출소 인사를 드리지만 이미 출소 이후 시간이 꽤 많이 지났어요. 나름 긴장도 하고 조심도 하던 가 석방 기간도 끝났고, 벌써 해도 바뀌어서 새해를 맞이했어요. 이제 수감되었던 기억에서 다소 벗어나서 일상을 영위할 만도 한데 그렇지만은 못 한 거 같아요. 출소한 후 얼마 뒤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보면서 실감하기 시작한 후유증은 해를 넘겨서도 여전하네요. 전쟁없는 세상 에서 소식지에 출소 인사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는 한 달을 넘게 손도 못 댔어요. 그러다가 써야지 마음먹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출소 전날 기억부터 더듬으며 글을 써내려가다가 갑자기 너무 힘들고 눈물이 나서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하기도 했어요. 지금은 다소 맘을 진정시키고 다 시 글을 쓰고 있는데 조금 맘이 무겁긴 하네요.

출소하는 날 출소하는 날에는 그냥 마냥 좋았어요. 그 전날부터 잠을 거의 못 이루기도 했어요(뭐 내부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바람에 잠을 못 이룬 이유 도 있지만). 그날 아침 출역장에 짐을 들고 나가서 씻고, 9시가 되기를 기다리면서 정말 내가 무엇을 이렇게 간절히 원한 적이 있던가 하는 생 각이 들었어요. 밖에 사람들은 왔을까? 누구누구 왔을까? 간밤에 오느라 피곤하진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가면서 있었어요. 그러다가 내려가서 짐 검사를 하고 그 지긋지긋한 퍼런색 옷을 벗어버리고, 내 옷으로 갈아입으면서, ‘아 정말 나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한 걸음 한 걸음 정문을 향해 걸어 나왔죠. 사람들을 만나서 인사하고, 짐들을 차에 싣고 출발할 때도, ‘드디어’ 하는 생각이 강했어요. 그냥 마냥 좋았던 거 죠^^ 생각 같아서는 소리라도 질러대며 폴짝폴짝 뛰어보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는 못하고, 무덤덤하게 사람들과 인사했어요. 그러고는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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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 L e t t e r s

포항이라고 <네 멋대로 해라>에 나온 손 조각 보러 갔다가 회한 접시 먹고 집으로 향했어요.(그 과정을 같이 한 한 친구가 그 안에서 이 글을 볼 생각을 하니 맘이 편하지 만은 않네요.... 고동 잘 지내지?^^) 돌아오는 길에 다른 사람들은 간밤의 여행에 지쳐서 한 명씩 잠에 빠져드는데 나는 왠지 들떠서 잠도 오지 않고, 출소 이후 집에 돌아와서도 한 3일을 거의 잠을 안 잤어요. 자는 시간도 아까웠거든요^^

물론 그렇게 들떠있는 것도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가라앉았어요. 여전히 사소한 일상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에 기뻐하고 고마워하긴 하지 만 일상 속으로 접어들다 보니 한 가지 제가 착각한 것이 있더라구요. 저는 출소하면 그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하 지만 시간은 이미 흘렀고, 그만큼 사람과 관계와 사회는 변해있었고, 저는 그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더라구요. 그렇게, 나와서도 좌충우돌하면서 하루하루 사람들을 만나고, 인사하고, 출소한 병역거부자로서 필요한 일들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죠. 이제는 새해를 맞이해서 학교로 돌아 갈 준비도 하고, 운동도 조금씩 하면서 하루하루 보내고 있어요.

우울했던 연말을 지나 제가 걷는 것을 너무 하고 싶었다고 했죠. 그런데 얼마 전에는 길거리를 걷다가 사람들이 모여서 사진 찍고 있길래 연예인인가 보다 하고 파고 들어갔는데 이명박이 불쑥 올라오더라구요ㅡ.,ㅡ 면전에서 이명박 얼굴을 보는데 기분이 아주...ㅜㅜ 뭐 우스운 일화이긴 하지만 이정도로 연말 동안 계속 일 꼬이고, 되는 일없이 우울함을 달렸어요. 하지만 계속 이렇게 지낼 수는 없는 일이고 이제 새해 맞아서 다시 맘 추스르고 하고 싶 은 일, 해야 하는 일들을 해야겠어요. 복학하면 정신없어 질 텐데 그렇더라도 수감자들에게 편지도 자주 쓰고, 출소하면서 마음먹었던 일들도 계속 진행하구요. 출소인사가 다소 우울한 이야기로 진행됐는데 그래도 마무리는 희망차게^^ 수감되어 있는 사람들, 출소한 사람들, 그리고 같이 하는 소중한 사람들 모두 건강하고, 주위에 평화가 깃드는 일상이었으면 좋겠어요. 특히 수 감되어 있는 분들은 맘 편히 가지고 하루하루 잘 지내시기를.... 올 한해 빡씨게 데모해서 올해 말에는 대체복무제 도입이 한국사회10대뉴스가 되기를 바라면서...(더불어 내가 얼마 전 얼굴 본 사람이 대통령 이 안 되는 것도^^)☮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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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속의 그 곳. 꿈 속의 그 시간들. 문상현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 1월 15일 충주구치소 출소

자유의 맛이 이처럼 좋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직도 나는 14일 밤 11시 30분, 출소절차를 밟기 위해 기다란 복도를 걸어 보안과로 향하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깊게 들이킨 겨울밤의 찬 공기가 폐부의 깊숙한 곳까지 시리게 닿는 느낌. 1년 6개월 동안의 응어리진 감정들이 모두 씻겨 내려가는 듯한 시원함과 함께 ‘아, 이제 자유구나-. 아, 행복하다-’는 너무도 식상하지만 본능적인 감정이 나를 편안하게 감쌌다. 추운 겨울 하얗게 입김을 뿜어내며 출소하는 것이 썩 달갑지 않았지만 철문이 열리는 순간 나는 그저 행복했다. 아마도 그 순간은 내 삶에서 평생 잊혀지 지 않을 거다. 분에 넘치도록 많은 동지들이 자정이 넘는 시간까지 철문 앞에서 손을 비비며 나를 기다려주었다. 감사했다. 또 미안했다. 풀어도 풀어도 모자 랄 재회의 기쁨을 나누느라 그런 것이었을까. 그날 나는 소주 1병반 정도를 마시고 쓰러져버렸다. 고마운 동지들에게 감사인사 한번 제대로 하 지 못하고 말이다. 태어나서 처음 필름이 끊어졌다. 의식이 든 후에는 급작스런 쇼크로 멈춰버린 腸들이 분에 넘치는 동지들의 사랑만큼 고통을 가져다주었다. 이러다 죽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쇼크 상태의 腸들이 운동기능을 회복하는 데는 짧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의식을 회복하고, 부산으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부루마블에서나 쓸법한 5000원 신권이 낯설었고, 달라진 지역버스 노선들이 어지러웠고, 새 로운 사람들이 건네는 인사가 어색했고, 한순간에 하나의 행동만 하는 단순한 삶에서 갑자기 늘어나버린 넘치는 주변의 풍경이 혼란스럽고 거 추장스러웠다. 하지만 행복했다. 고향으로 향하는 동안 차창으로 보이는 풍경을 실컷 음미하고 싶었지만 다시 만난 자유는 생각보다 고단했고, 기차가 달리는 두어 시간 동안 나는 깊은 잠에 빠졌다. 경상도 가정이라 그런 걸까. 우리 가족들 모두 감정을 드러내는데 익숙하지 못하다. 근 2년 만에 찾아간 고향집.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어머니 는 TV를 보시고 계셨고, 문소리를 듣고 “고생 많았다.”는 한마디와 함께 나를 맞아주셨다. 아무런 일도 없었던 듯이……. 동생은 지난밤의 시험공부로 피곤했던지 잠시 정신을 차리고 나와 “왔나?”하곤 다시 방으로 들어가 잠들어 버렸다. 하고 싶었던 말은 많았지만 나 역시 신파 적 분위기가 연출되는 것이 쑥스럽기도 해서 잠시 쉬며 숨을 골랐다. 어머니가 해주시는 정성어린 저녁식사를 먹고, 차분하게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날 타지에서 일하시던 아버지가 내려오셨다. 역시 멋쩍은 표정을 지으시며 간단한 안부를 물으셨다. 서로의 눈을 마주하는 것이 왜 그리도 어색하고, 힘든지. 아무래도 못난 큰아들 때문에 매일 밤잠을 설치셨을 두 분께 사죄와 감사의 마음으로 큰절을 한번 올리는 것이 도리가 아닐 까 싶었다. 어색함을 잠시 뒤로하고 두 분을 안방으로 모셨고, 큰절을 올렸다. “사랑하는 두 분, 못난 큰 아들 때문에 많이 힘드셨을 텐데 죄 송합니다.”라는 사과의 인사와 함께……. 가슴 깊숙한 곳에 감춰둔 감정이 북받치셨는지 두 분의 눈시울이 붉어졌고, 한동안 우리 모두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식보다 더 고통스럽게 마음의 감옥 속에서 사셔야했던 두 분에게 해드릴 수 있는 것은 꼭 안아드리는 것뿐이었다. 아 버지의 짧은 말씀을 듣고, 우리는 다시 멋쩍은 경상도 가족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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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 L e t t e r s

집에 있는 동안은 어느새 30대 아저씨가 되어버린 중고등학교 친구들과 지역 운동을 하고 있는 선배들을 만났고, 동생과 앞으로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머니와는 계획적이지 못한 가계지출에 대한 이야기와 좀 더 형편이 나아질 수 있는 방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 지만 삶 자체가 무계획적 내가 어머니에게 드린 충고는 처음부터 주제넘은 것이었다. 출소하던 날 와주었던 전쟁 없는 세상 사람들과 약속을 저버렸던 나는 홀로 찜질방을 다녀왔다. 예상했던 만큼 많은 양의 때가 엄청나왔고, 땀을 쪽 빼고 개운한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참 이상했던 것은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 소중하다고 여겼던 인연들이 너무도 아련하게 느껴지는 일이었다. 1년6개월의 시간동안 적지 않은 일들이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기억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누군가의 말처럼 꿈속의 일만 같았고, 꿈속의 사람들 같았고, 그들을 만나려면 만 화 ‘이상한 나라의 폴이 ’ 통과하던 다른 차원으로 가는 관문 같은 것을 통과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꼭 다른 차원의 세계 같은……. 누군가에게 잊혀진 사람이 된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더구나 더 이상의 기억을 만들지 못하는 그곳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믿을 수 없는 것이 사람이기에 새로 얻은 다이어리를 펼쳐놓고, 약속했던 사람들에게 연락을 하고 접견을 갈 날을 적었다. 감옥에서 얻을 수 있었던 가장 큰 깨달음은 이 세상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넓고, 흥미롭다는 점이었다. 돌아보니 나는 아주 작은 우물 안의 아주 작은 한 마리 개구리였다. 하지만 무력감을 느끼진 않았다. 오히려 보물섬을 찾아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로 나가고 픈 소년의 설렘으로 콩 닥거리는 가슴을 안고 밤잠을 설치며 기뻐했다. 세상과 나에게 허락된 미지의 가능성이 많을수록 삶의 희망은 커지는 것이니까. 그래서일까 지 금 내게 허락된 시간이 진심으로 행복하다. 길을 가다 갑자기 멍~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곳에서는 one moment one action이였는데 바깥세상은 one moment multi action이여서 그 런가보다. 벌써 보름이 넘었지만 아직 적응이 잘 안 된다. 시간이 흐르면 적응이 될 거라 여겼지만 마냥 기다리다가는 영원히 적응을 못할 것 같은 불안감도 가끔 들고. 그래서 슬슬 발동을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난 시간동안 새롭게 만났던 사람들과의 소중한 인연과 과분한 사 랑을 잊지 않아야겠다고 마음먹으며, 나에게 허락된 무한한 가능성과 내가 발 딛고 선 곳에서의 나의 역할을 조율하려 한다. 지구가 100년 내에 핵전쟁이나 환경파괴로 멸망할 거라는 스티븐 호킹은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선 또 다른 지구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 고 그 불편한 몸으로 우주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며칠전 신문에는 환경문제로 인한 지구의 재앙을 막기 위해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10년이라 는 기사가 실렸다. 심각한 상황이다. 아주 아주……. 하지만 나는 어차피 우주선에 오를 만큼 여유 있는 처지도 아니고, 불사의 삶을 추구할 만 큼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존재도 아니다. 어쩌면 우주의 순환으로 인해 다시 먼지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모두 함께 공존하며,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인간으로서 인간이 가진 것 이상의 욕심은 버리는 것이 속편할 것 같다. 인간의 보잘 것 없음을 깨닫는 순간, 인간을 초월 하려는 욕심을 버리는 순간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행복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스피노자의 말처럼, 내일 지구가 멸망할 지라 도 세상으로 나가는 푸른 바다에 배를 띄우려고 한다.☮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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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노래 용석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 현재 수원구치소에 수감되어 있습니다.

썼다 지우고, 썼다 지우고. 벌써 3번째 쓰는 편지. 일기처럼 써왔던 편지에 비해 전쟁없는세상 소식지에 실릴 글은 부담이 가는 것이 사실이다. 또 한 가지 이유는 내 마음의 상태가 수시로 변하기 때문이다. 날씨에 따라 반찬에 따라, 그리고 도착한 편지들을 읽을 때마다, 여름날의 갑작 스런 소나기처럼 정반대의 감정이 솟구치곤 한다. 그리고는 바로 전의 감정상태는 까맣게 잊어버린다. 감정상태만 잊는 것이 아니다. 지나간 시 간들은 잊혀져버린다. 나에게 남아있는 가장 가까운 과거의 기억은, 8월 중순 나의 친구들과 함께 보낸 시간들이다. 인천구치소에서 두달 반, 군산교도소에서의 보름의 기억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스쳐지나갔던 많은 사람들에 대해서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애시당초 좋아하지도 미워하 지도 않았던, 그런 관계였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재미있고 감동적으로 읽었던 책들도 기억에서 사라졌다. 영치품목의 목록에만 남아 있을 뿐이다. 지나간 편지들을 읽으면 잊혀진 감정들을 다시 느낄 수는 있지만 구체적인 사건이나 일들은 여전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직 오지않 은 미래조차도 이미 기억나지 않는 과거로 존재할 뿐이다. 아주 사소한 것까지 기억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친구들은 기억나지 않는 오래 전의 일들에 대해서 나에게 물어오곤 했었다. 지난 3개월은 억 지로 기억하지 않는 과거인 것이다. 지우고 싶은 시절을 사람들은 '상처라고 ' 부른다. 아직 수감기간의 절반도 안지난 시점에서 '상처를 ' 운운하 는 것은 경솔한 일일수도 있다. 앞으로 남은 기간동안 내가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기록은 혹시나 훗날 내가 지금의 기억을 잊어버렸을 경우를 대비한 일종의 타임 캡슐인 것이다. 짧은 수감기간 동안의 느낌은 앞선 병역거부자들의 그것과 놀랍도록 일치하는 것이다. 이전의 병역거부자들이 거쳐가지 않았던 인천구치소, 군 산교도소지만, 징역은 어디서나 징역인가보다. 앞선 사람들이 걸었던 길을 걸으며, 같은 상처를 가지게 되었다는 관찰은 나에게 안도감이 아닌 무력감을 준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구나하는 ' 안도감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피해갈 수 없는 벽 같은 그런 무력감. 영혼이 서로 울리는 사 람들과 육체적으로 떨어져있는 단절감, 온통 비상식적인 환경에 대해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는 무력감, 사람을 사랑하는 감정은 생소해지고 미워 하는 감정 혹은 아예 무관심의 감정이 익숙해져가는 것을 느끼는 피폐함. 귀찮음을 핑계로 눈감고 귀닫고 입막는 비겁함, 나에게 주어지는 조그 만 권력과 기득권조차 포기못하고 오히려 힘껏 움켜쥐는 비참함. 가장 슬픈 것은 위의 감정들이 남은 시간동안 반복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래도 살아남기 위해, 살아가기 위해, 본능적으로- 나는 희망을 찾아본다. 희망의 빛이 한 조각 밝아오면, 지금의 상황도 절망이 아니게 된다. 여유를 가지고 바라보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거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처럼. 기억을 지우는 것과, 희망을 부여잡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똑같은 행위일 것이다. 지나온 시간보다는 남아있는 시간이 훨씬 많기 때문에 희망은 전혀 구체적인 것은 아니다. 하루하루 누구에게서 편지가 올까 기다리는 마음은 작은 한 조각의 희망이다. 도착한 편지들은 지금의 나를 관심, 배려, 애정 등의 긍정적인 감 정들로 채우고, 앞으로 도착할 편지들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살아가는 힘이 될 것이다. 확인할 수 없는, 보다 거대한 희망은 아주 막연한 것이지만, 또한 아주 자신있는 것이다. 이곳에서의 상처가 치유될 것이라는 희망. 어떻게 치 유할 수 있을지 전혀 모르겠다. 다만 나의 좋은 친구들이 있다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지금까지와 같이 앞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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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 L e t t e r s

나의 힘이 되어줄거라는 믿음. 희망은 어젯밤 꿈처럼 흐릿하고 모호하지만 또한 확실히 존재하는 것이다. 지독한 반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결말의 바로 직전은 클라이막스다. 하지만 11월은 전혀 클라이막스의 색깔이 아니다. 가을도 겨울도 될 수 없는 불확실의 계절. 붉은 단풍과 갈색의 낙엽 사이를 떠도는 바람처럼 쓸쓸한 이야기, 11월. 그 11월에 되뇌어 보는 '희망은 ' 그래서 더욱 아름 답다. 세상을 뒤덮은 1월의 새하얀 눈보다 포근하고, 봄을 뚫고 나오는 3월의 연두빛보다 상큼하며, 이글거리는 7월의 태양보다 열정적이고, 높 은 9월의 푸른 하늘보다 깊다. 나와 내 친구들이 부를 희망의 노래는 11월과 같은 쓸쓸한 계절에도 상처를 딛고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낼 것 이다. 어느날 창 밖으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귀기울여보면 여러분도 빗소리에 실려온 희망의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나를 몇 번이나 다시 웃음짓게 만드는 소리를... 2006. 11. 20. 용석

작년 8월에 수감되기 전까지 전쟁없는세상 책임활동가였던 이용석씨가 현재, 2006년 3월 15일과 7월 8일에 평택에서 미군기지확장반대 비폭력직접행동을 펼치다가 연행되어 검찰에 기소된 건으로 3월 건은 벌금형(100만원)을 선고받았고 7월 건은 정식 재판이 진행중입니 다. 3월 15일 건은 정식재판을 청구했다가 수감 중에 계속 해서 재판이 진행 중인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이 좋지 않아서 취하를 한 상태 입니다. 3월 당시에 유치장에서 3일 살았던 걸 빼면 85만원의 벌금을 내야하는 상태이고, 용석이의 수감생활에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서는 이 벌금을 하루 빨리 처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3월 건(100만원)과 7월 건(현재 심리 진행중)을 합쳐서 총 300만원 가량의 벌금이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데, 이 비용마련을 위해서 후원인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조흥은행 342-04-914427 (예금주 : 이용석) 국민은행 404602-01-213526 (이용석) 우리은행 495-077819-02-002 (이용석) 농협 079-12-651420 (문명진) 하나은행 161-910080-65307 (이용석)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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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행운아인가? 뎅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 현재 군산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습니다.

난 행운아일까항소심 판사의 얼굴은 기억나지도 않아. 그런데 1년 8월의 원심판결을 내린 판사의 얼굴은 잊혀지지 않는 걸. 그 때 난 정말 불운하다고 생각했어. 비록 각오했던 일이었더라도.. 이런 사례는 내가 최초지? 방을 옮기고, 심지어 교도소로 옮겨도 내 편은 꼭 있더라. 9상9방의 이 사장님, 2상7방의 모든 형님들, 특히 민호형, 성표형, 그리고... 군산교 도소 미지정방의 재원이형과 홍기, 취장에서 출역할 때 C상7방의 봉사원 아저씨, 성호형... 운이 없다고만 여겼는데, 방을 옮기면서 느낀 건, 내가 사람운은 참 많이 따르는구나 싶은 거였어. 심지어 용석이는 같은 교도소, 같은 방, 같은 출역으로 따라왔잖아. 용석이를 만난 건, 이전과 는 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행운이었어. 밖에서는 '징역로또라고 ' 부르던데 틀린 말은 아니지. 이런 사례도 최초 아냐? 취장으로 옮긴 날, 그날 왜 하필 김장이 시작된 거냐고.. 아니, 왜 김장이 시작될 때 즈음해서 이감이 되고 또 취장출역이 돼가지고 말이야. 정 말 한 달 간 죽다 살아났어. 내게도 빽이란게 있다면 빽이라도 쓰고 싶더라구. '나 좀 여기서 구해줘요~'.. 지금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배운 것 도 많았지만, 다시 돌아가라면 그렇게는 못하겠어. 일 년 열두 달 중 딱 한달 있는 겨울김장. 그리고 그 시기를 딱 맞춘 나의 취장출역. 흐~미. 한 달 만에 취장을 탈출했지 뭐야! 거기다 재소자들이 제일 가고 싶어한다는 외통으로. 가장 꺼려하는 곳에서 가장 선호하는 곳으로의 이동. 이 건 완전 행운이라구. 1점 획득! '뭐?!! 이감되었다구? 뭐야 이게.. 용석이가 따라오길 바랬는데. 딱한 용석이. 니가 떠나니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구나. 군산엔 이제 나 혼자. 결국 다시 1실점. 듀스포인트.' 처음엔 쫄았드랬어. 새까만 기름때로 둘러싸인 공장풍경, 쾅쾅 내리찍는 프레스 소리, 귀를 뚫는 듯한 드릴 소리.. 그리고 뭔가, 왠지 모르게, 바삐 움직여야 할 것 같은 분위기.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이 생각나더라구. '아니, 또 정신없이 굴러가는 육체노동이야?' 두려워졌어... '잘 왔어, 그래 잘 온거야. 괜히 쫄았지 뭐야.. 이 정도 육체노동이라면 괜찮잖아? 그리고 왜 예전엔 공장노동자로 살면서, 뭔가 거창한 일을 도 모해 볼 생각도 했으면서.. 하루 5시간 조금 넘게 노동하면서 이렇게 큰 자문을 얻을 수 있다면, 징역살이로는 괜찮은거야. 거기다 방사람들은 2월이며 다 나간다며? 3월부턴 내가 최고참이야. 편할 것 같지 않아? 그리고 신입인 내가 해야 할 잡일들을 도와주겠다며 선뜻 선뜻 나서는. "형~형 제가 할게요" "형 수고하셨어요. 이불 펴놨어요.", 저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호와의 증인 동생들을 봐. 다른 방 가기 싫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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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 L e t t e r s

우린 손빨래 같은거 안해. 다 옛날 얘기지. 세탁기로 빨래를 돌리거든. 뜨거운 물 샤워도 가능하구.. 담벼락이 없는 개방된 공장에선 점검도 없 어. 우릴 지키는 경교대는,.. 껌벅 껌벅 자리에 앉아 졸기도 하고 간식도 나눠먹고 농담도 나누고.. 그냥 그렇게 지내. 사회인들이 먹는 점심, 무려 1식 8찬이라구! 다 세봤다니까, 도 같이 먹고. 저 멀리 바다와 갯벌, 먼 산과 구름 그리고 넓은 들판을 바라볼 수도 있어. 토비콤은 안 먹 어도 되겠다. 월급이 20만원! 우린 이 세계의 1%야. 군산교도소 최고약 연봉에 해당되지. 이거 모아서 어디다 쓸까? 분명 후보 목록들이 있는데.. 왜 계속 내 머릿 속에는 컴퓨터 한 대가 조립되고 있는 것일까. (PC사랑 잡지를 펼치며) 자 보자.. 쿼드 코어라.. 출근하고 1시간정도 일하다 보면 헷갈려. 내가 징역을 사는 건지, 대성 정밀이라는 회사에 고용된 노동자인지, 그러니까 병역특례 같은 거 말 야. 파이프 조에서 일하는 잘생긴 젊은이 한 명이 있어. 다른 공장에서 2년을 다녔고, 올 11월에 복무가 끝난다 하더라구. 난 8개월 징역 살았 는데 내가 먼저 끝나네. 필리핀 노동자들, 조선족 노동자들, 그리고 누구누구, 이 공장 사람 모두들 아침에 출근해서 열심히 (하는지 아닌지 모를) 노동을 하다 점심을 먹고, 1시간의 휴식을 취한 뒤 또 노동하고 그러다 퇴근하겠지. 우리도 그래. 교도소가 집이긴 하지만, 뭐 그리 다를까. 그들도 집에 가면, TV를 보고, 조금의 취미생활을 즐긴 뒤, 내일의 노동을 위해 몸을 재충전할 목적으로 이불 속을 파고들지 않을까. 그들의 집은 쪽방일까 아닐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더욱 헷갈려.. '우리랑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아니.. 그런 것 같아요..' 양측의 삶이 달라보이지 않는 건 어떻게 해석해야 되지? 그들이 불운한 걸까, 아니면 우리가 운이 좋은 걸까? 그럼, 난 행운아일까? ☮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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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살피고 앞으로 한걸음 유정민석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아버지의 권위가 아직까지는 절대적인 세상에서는 가정 내에서 흔히 모든 경제적, 문화적 우선순위가 아버지의 의사결정을 중심으로 이루어 지기 때문에, TV를 보거나 할 때에도 아버지에게 1차적인 선택권이 있습니다. 다른 가족구성원들은 평등한 관계에 기초한 합의에 의해 서 채널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생선 반찬도 아버지라고 먼저 드시는 분들이 많듯이 리모트 컨트롤러를 일방적으로 독점 당하고는 합니 다. 집안 어른이 남성 연대와 영토 야욕과 전쟁을 미화시키는 고구려 역사물 사극을 선호하시면 온 가족이 둘러앉아 반강제로 종종 봐야 합니다. 그렇게 가정에서도 많은 이들에게 TV 채널에 대한 선택권이 없는 것처럼, 저는 저의 젠더를 스스로 선택할 권리를 국가와 사회적인 편견에 의해 빼앗겨 버렸습니다. 1번 혹은 2번으로 일괄적으로 분류되는 폭력적이기 짝이 없는 ‘주민등록번호의 ’ 분류처럼, 저는 다양한 저의 젠 더 채널의 리모트 컨트롤러를 빼앗기고 강제로 1번 내지는 2번으로만 고정되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채널이 둘 밖에 없는 텔레비전처럼 세상은 재미도 없고 지루하며 잔인하기도 합니다. 분류를 한다는 것은 거기에 따르는 의무를 부과하고 행동을 제약하게 하는 것인데 말 입니다. 전 아르바이트를 할 때조차 여자 직원, 남자 직원을 따로 구하기 때문에 저는 저의 젠더 역할에 맞는 노동을 하기조차 힘이 들고 는 합니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우리의 희로애락과 애환까지도 규제를 합니다. 로맨틱 영화를 보고 싶거나 요리를 하고 싶으면 2번 채널 을 봐야하고, 1번 채널에서는 울지 말아야한다고 방송을 합니다. 44사이즈를 입을 만큼 날씬하고 예쁜데 순종까지 할줄 알아야 ‘여자라 ’ 고 말을 하고, 배짱과 통이 커야 ‘남자라고 ’ 말을 합니다. 전 날씬하지도 않고 배짱도 없는데 말입니다. 노래방에서는 여자의 음색과 남자 의 음색은 따로 있고 키도 다르며 부르는 성별도 정해져 있어야 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엄마 아빠 역할놀이인 소꿉놀이를 통해 여남의 역할이 따로 있는 롤플레잉(Role Playing)에 대해 자연스럽게 체득하 고 교육되어 왔는지 모릅니다. 아빠 역할을 맡은 남자 아이들은 “여보, 회사다녀 올게”라고 하면은 여자 아이들은 풀 같은 것을 뜯어와서 는 밥을 만들거나 하고는 합니다. 그것은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되어서도, 아니 인류역사 이래로 계속되어 왔던 역할극입니다. 엄마와 아빠 사이에는 베를린 장벽보다 높은 투과될 수 없는 빽빽한 벽이 쳐져 있기에 인류에게 그 사이, 혹은 그 이외의 다른 역할들은 용납되거나 이해받지 못해왔습니다. A부터 Z까지의 각양각색의 젠더들의 그라데이션들은 묵살되고는 합니다. 다양한 다채로운 섹슈얼리티와 젠더를 임의로 선택할 주권이 주체적인 개인에게 있는 쌍방향 시스템이 아니라, 국가의 강제와 사회적 통념에 의한 일방향식 시스템이였습니다. 따라서 저는, 또한 우리는 아버지 같은 국가와 사회에 의해 혹은 잘못된 고정관념에 의해 빼앗겨버린, 혹은 잃어버린 우리의 젠더의 리모트 컨트롤러를 돌려달라고(Return) 요구하고자 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1번과 2번에 고정되어있는 우리의 젠더의 채널을 한번쯤은 돌려보라 고(Turn)도 광고할 것입니다. 즉 여자에게는 여자의 굴레가, 남자에게는 남자의 굴레가 작용케하는 별반 의문을 품지않고 당연시하는 재 미없는 일방향식의 채널을 우리의 다양한 섹슈얼리티, 아니마/아니무스를 통해 같이 돌려보지 않겠냐고 전파하려 합니다. 제가 병역거부를 하게 된 까닭은 채널이 두 개 뿐으로만 고정된 TV처럼 진절머리나는 짜증나고 싫증나는 당연시되는 룰과 통념들에 거부 하기 위한 단지 작은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생물학적 성이 1번, 혹은 2번이라고 해서 그에 따른 역할과 의무를 종용하 고 강제하며 씌우고 지우는 것은 오로지 신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제 힘만으로는 바꿀 수 없는 강고한 것일테지만 그러나 바꿔볼 수 있는 것이라면, 앞으로 다른 날들을 통해서라도 실천해나가고 노력하고자 하는 세계관 속에서 계속되는 삶의 방식중 일부분일 따름입니 다. 누구에게든지 TV를 1번이나 2번만 봐야한다는 법은 없는 것처럼 그렇게 말이죠. 저는 그렇게 “아빠, 리모컨좀 돌려주세요.” 라고 말 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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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평화수감자의 날 여옥 | 전쟁없는세상 책임활동가 + yo1004@hanmail.net

2006 평화수감자의날 러시아대사관은 덕수궁돌담길을 따라 걷다보면 나오는 갈림길 옆 12월 1일은 WRI(War Resister's International,전쟁저항자 인터내

쪽에 있다. 사람도 거의 다니지 않지만 항상 전경들이 지키고

셔널)가 정한 평화수감자의 날로, 평화를 위해 활동하다 수감

있는 그 곳 앞에서 일인시위를 시작했다. 경찰들만 관심을 갖

된 사람들의 석방을 촉구하고 아울러 전쟁과 군사주의의 종식

나 싶더니, 대사관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나와서 반말을 하

을 기원하며 함께 행동하는 국제행동의 날이다.

며 ‘체첸이 어디에 있는 줄 아느냐’, ‘미국언론의 정보만 듣고 함부로 생각하지 마라’ 등등의 말을 건네기도 했다.

올해 2006년에는 러시아의 상황에 초점을 맞춰 러시아 내의 만연 한 군사주의와 체첸침공 등 군사적 야욕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 를 모아 전세계적으로 공동행동이 진행되었다. 더불어 현재 한 국에는 900명이 넘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이 감옥에 수감 되어 있고, 평택에서 미군기지확장반대를 위해 싸우다가 수감 되신 분들도 있어서, 이들 평화수감자들의 석방을 촉구하는 행 사도 함께 진행되었다.

특별면회와 일인시위 12월 1일 오전 11시, 영등포구치소와 의정부교도소에서는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고 수감 중인 사람들-고동주김도형 , /김영진 -의 특별면회가 이루어졌다. 이 날은 특별면회투어의 마지막 날로 11월 한 달 동안 전국을 돌며 수감자들을 만나왔다. 아크 릴판과 창살이 가로막고 있는 접견실이 아닌 공간에서 수감된 사람들을 직접(!)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서로에게 큰 힘이 되는 듯하다. 평소 면회시간보다 길었지만 너무나 짧게 느껴졌던 시 간을 뒤로한 채 러시아대사관 앞 일인시위를 하러 이동했다.

평화의 페달을 밟자 5시 정도에 러시아대사관 앞 일인시위를 정리하고 국회 앞으로 향 하였다. 날은 이미 많이 어두워진 상태였고 국회 앞에는 이미 비정규직 관련 대규모 집회가 끝난 후라서 차량통제가 막 해제 되고 전경들은 철수하고 있었다. 국민은행 앞으로 하나둘 모여 든 사람들은 촛불과 평화수감자들의 피켓을 들고 자신이 여기 에 오게된 이유에 대해 나누었다. 잠시 후, 평화의 페달을 밟을 준비를 하고선 영등포교도소를 향해 출발~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16호 11


20명이 조금 넘는 자전거행진단은 처음엔 자동차들 사이에서 아

평화수감자의날 둘째날

주 힘들어 보였다. 차들이 빵빵대며 위협하고, 늦은 속도 때문 인지 신호등에 걸려서 나눠지고, 자꾸 뒤쳐지는 사람들도 있 고.. 이러다 혹시 사고라도 나지 않을지 걱정되었다. 하지만 조 금씩 시간이 지나자 자전거행진에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양 옆 과 뒤에서 차들에게 손짓으로 양해를 구하고 먼저 보내기 시작 했다. 자연스럽게 자전거행진단은 하나의 물결처럼 도로 위를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그들이 달고있던 ‘평화의 페달을 밟자’, ‘평화에게 기회를’ 글씨를 돌아보는 시민들과 운전자들이 점점 많아졌다. 자전거를 보는 사람들도, 지켜보는 사람들도 모두

12월 2일 평화수감자의날 둘째날 행사는 러시아의 인권상황에 대 한 영상물로 시작되었다. 돈암동에 있는 골롬반외방선교회 강 당에는 병역거부와 평화에 대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약 스무 명 정도 모였다. 천주교신자 고동주의 병역거부선언 이후에 꾸 준히 모임을 하고있는 신부님, 수녀님도 함께 했다. 러시아 상 황에 대한 영상, 평화수감자의 날에 대한 소개와 함께 ‘평화 운동으로서 병역거부의 의의라는 ’ 주제로 강의가 진행되었다.

신이난 자전거행진이었다. 도중에 포기하는 사람 단 한 명도

강의를 했던 오리는 ‘과거 반독재민주화운동을 벌여온 한국의

없이 아무 사고도 없이 무사히 도착했다.

청년학생들이 병역거부를 실천하지 못한 것은 한국에서 얼마나 국가주의와 군사주의가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는가를

영등포교도소 앞에 도착하자 이미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면서 ’ ‘병역거부운동은 평화운동 혹은

다. 평화인권연대 ‘아침의 ’ 사회로 영등포교도소 앞 행사가 시

반군사주의 운동의 방법론으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작되었다. 오리는 평화수감자의날에 대해 소개를 해주었고, 재

고 이야기했다.

성은 수감자면회투어와 러시아대사관 앞 일인시위에 대해 이야 기를 해주었다. 최진은 멋들어지게 노래를 불렀고, 평택에서 오신 분들은 평택 상황과 그로 인해 수감되신 분들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멋진 춤 공연과 노래는 계 속 이어졌다. 발언과 공연이 끝날 때마다 사람들은 북을 두드 렸고 환호성을 질렀다. 평화수감자들의 석방을 바라고, 더 이 상 평화를 이유로 수감되지 않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며 수감자 피켓과 촛불을 들고 흔들었다.

강의를 들은 후에는 전쟁없는세상 영상팀에서 준비한 영상물을 상영했다. 영상물은 병역거부자들의 수감 전 모습부터 출소 후 살아가는 모습을 인터뷰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 경수의 평화 에 대한 고민부터 병역거부를 결심하게 된 계기, 법정구속되기 직전 송인욱의 인사말, 감옥 안에서 힘들었던 기억들을 떠올리 는 의민, 지금 지역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유호근의 모습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가 ’ 어떤 대단한 영웅이나 세상을 구 원하고자하는 이상주의자가 아니라, 남들과 똑같이 고민하고 아파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그 단순한 깨달음을 얻 고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안타깝게도 인터뷰 촬영 당시 수 감 전이던 경수와 송인욱은 지금 성동구치소와 영등포구치소에 각각 수감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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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자연스럽게 현재 감옥에 있는 평화수감자들에게 엽서를 쓰는 시간이 이어졌다. 수감되어있는 병역거부자들과 김지태 이장님께 격려의 메시지를 담은 엽서를 쓰는 동안 사람들은 수 감자 피켓을 읽어보기도 했고, 누군가에게서 받은 편지를 읽어

전쟁없는세상

주기도 했다. 평화수감자의날 엽서는 마음을 모두 담기에 너무

후원하기

작았지만, 받는 사람은 이미 그 마음을 모두 알고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이 그렇 게 맞닿아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포근한 자리였다.

>> 전쟁없는세상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 지지하는 사람들의 작고 소중한 후원들이 모여서 운영이 됩니 다.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한 각종 활동, 수감중인 병역거부자들을 지원하는 활동, 병역 거부를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한 다양한 활동들을 하 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소중한 정성과 관심을 언제나 기다리고 있습니다. >> CMS 신청방법 1. 전쟁없는세상 홈페이지(withoutwar.org)의 ‘후원하기’ 메뉴에 들어가 개인정보를 입력한다. : 이름, 주민번호, 은행명, 계좌번호, 후원금액, 약정기 간, 출금날짜(5, 20,27일 중 택일), 이메일, 연락처 내년 12월 1일에도 어김없이 평화수감자의날 행사가 진행될 것이 다. 세계 어느 곳에서든 평화를 위해 감옥에 가야하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남아있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이 날을 기념하 게 될 것이니까. 내년 평화수감자의 날에는 더 이상 평화를 위 해 감옥을 택해야 하는 사람들이 없도록, 지금보다는 조금더 평화로운 세상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2.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개인정보를 입력하고싶지 않은 분들은 자동이체도 가능하답니다.^^ : 후원계좌 조흥(342-04-914427) 예금주(이용석) 국민(404602-01-213526) 예금주(이용석) 우리(495-077819-02-002) 예금주(이용석) 농협(053-12-134781) 예금주(이용석) 하나(161-910080-65307) 예금주(이용석)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16호 13


연달아 발표된 유엔의 권고, 궁지에 몰린 한국 정부 날맹 | 전쟁없는세상 책임활동가 + nalm109@hanmail.net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병역거부자들의 인권

취하고 조속한 입법이 이루어질 것을 촉구”하였다.

한국 정부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졌다. 2006년 11월과 12

“한국 정부, 병역거부자 2명에 보상하라”

월에 연달아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UN Human Rights Committee, 이하 자유권 위원회)에서 한국 내 병역거부자들의

자유권규약위원회에서는 한국 정부에 대한 권고안을 채택한 데

인권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했기 때문이다. 2005년 12월 국가

이어서 곧바로 12월에는 병역거부로 징역 1년 6월의 형을

인권위에서 대체복무입법을 추진하라고 권고한 데에 이어서

선고받고 복역한 한국인 두 명에 대해 한국 정부가 보상 등의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에서도 마찬가지로 대체복무입법을 촉

효과적인 구제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하였다.

구함으로써 한국정부의 향후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종교적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했던 윤여범, 최명진씨가 대법원

“한국내 병역거부자들의 인권 우려스러운 상황”

에서 징역 1년 6월의 유죄 확정판결을 받고, 헌법재판소에서 도 현행 병역법이 합헌이라고 결정이 난 후인 2004년 10월,

지난 10월 16일부터 11월 3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제88차

자유권위원회에 각각 개인통보(Individual complaint)를 신청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 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서 한국 정

한 바 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처벌을 받은 것은 B규약 제

부가 제출한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일명 B규

18조 1항에 명시된 양심의 자유 및 이를 표명할 수 있는 자유

약, 이하 자유권 규약) 3차 이행 보고서에 대한 심의가 진행

가 침해받은 것이라고 하여 개인통보를 신청하였다. 이에 대

되었다. 유엔 자유권 규약 위원회에서 다뤄지는 한국 정부에

한 유엔의 조사 과정에서 한국정부는 군복무에 대한 양심적인

대한 이번 심의는 지난 99년 2차 보고서 심의 이후 7년 만에

거부의 금지는 특수한 안보사회적 상황에서 정당화될 수 있으

이뤄진 것이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

며, 현행 개병제도가 붕괴될 수 있는 위험성을 근거로 대체복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는 여러 시민사회단체와

무제도를 시행할 수 없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자유권규약위원

함께 정부의 보고서에 대해 반박 보고서를 제출한 바 있으며,

회에 제출한 바 있다.

한국 정부의 보고서에 대한 심의는 10월 25일, 26일 양일에 걸쳐 진행되었다.

위와 같은 한국 정부의 의견에 대해 자유권위원회는 병역거부자 들에게 대체복무를 제공해주는 것이 국가안보에 구체적으로

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대한 최종 권고안에서 자유권 규약 제18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실증적으로 증명해내지 못했으며, 따라

조와 관련하여 “한국 내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처벌이 최대 3

서 병역거부자들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의 타당성을 입증될 수

년형에 달하고 있고, 정부나 공공기관의 고용에서 배제되고

없다고 역설하였다. 자유권위원회는 이번 결정문에서 개인의

있으며 유죄를 선고받은 병역거부자들은 전과자로 낙인 됨을

양심의 자유가 국가안보에 의해서 제한될 수 없다는 점을 명

감내해야 한다는 점들에 대해 우려한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확히 밝히면서, 한국정부가 B규약의 제18조 1항을 위반하였고

위원회는 이에 덧붙여, “당사국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이

따라서 한국 정부가 개인통보를 신청한 신청자에 대한 실질적

군복무에서 면제되어야 함을 인정하기 위한 모든 필요한 조치

인 보상을 제공해 줄 의무가 있음을 명시하였다. 그리고 한국

를 취해야 한다”라고 밝히면서 “군복무에서 제외된 양심에 따

정부가 앞으로도 이와 같은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이 없

른 병역거부자의 권리를 인정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도록 노력해야 하며, 위와 같은 위원회의 견해를 실행할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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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에 관한 정보를 90일 내로 위원회에 제출할 것을 권고하였다.

의 권고안을 한 귀로 흘려들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국가로써 자국 내에 열악한 인권 현

이제는 유엔 권고 실질적 실천 방안 모색해야

실에 관심이 모아지는 것이 썩 편하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 다.

잇따른 자유권규약위원회의 권고안 발표가 나온 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는 ’ 성

2006년 4월에 출범된 국방부 산하 민관군 합동 대체복무제도 연

명서를 통해 유엔의 결정을 적극적으로 환영하고 한국 정부와

구위원회는 활동기간을 2007년 6월까지로 연장한 상태이며,

국회에 조속적인 문제 해결을 촉구하였다. 그리고 현재 활동

올 1월 초 청와대에서는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대체복무제가

중인 국방부 산하 대체복무제도 연구위원회의 보다 활발한 활

포함되어 있는 ‘독일식 사회복무제를 ’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힌

동을 촉구하고 병역거부자들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긍정적

상태이다. 하루 빨리 조속한 해결책이 마련되어서 더 이상 한

인 방향의 연구결과가 나오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국에서 병역거부로 인해 감옥에 가야하는 젊은이들이 생겨나 지 않기를 바란다.☮

한편, 한국 정부는 지난 제88차 자유권위원회 회기 중에 제출한 답변에서 “자유권규약위원회의 권고에 대한 효력을 부여하기 위해 국내법과 제도를 개정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자유권위원회는 ‘도덕적으로 높은 인격과 인권 분야에서의 능력을 인정받은’ 18명의 위원들로 구성된 준사법 적 기구로서 국제인권법의 해석에서 가장 권위 있는 기구로 인정받아 왔다는 점을 고려할 때에 한국 정부는 더 이상 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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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병역거부자, 언제까지 감옥에 보낼 것인가 -유엔권고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묻는 토론회 열려 여옥 | 전쟁없는세상 책임활동가 + yo1004@hanmail.net

유엔의 잇따른 권고

대체복무제 도입 촉구 토론회

지난 2006년 10월, 유엔 시민적정치적 ․ 권리위원회는 자유권규약

(보다 자세한 토론회 내용을 원하시는 분은 전쟁없는세상 홈페이

에 관한 한국 정부의 3차보고서 심의에 대한 최종견해에서 양

지 자료실에 올라와있는 토론회 자료집을 참고하시길 바란다)

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의 권리를 인정하고 관련 입법 등의 조 치를 취할 것을 권고하였다. 그리고 12월 7일, 병역거부를 이

첫 번째 발제는 ‘유엔 시민적정치적 ․ 권리위원회 보상 권고 및 유

유로 처벌받은 윤여범, 최명진씨가 2004년 제기한 개인통보건

엔 자유권위원회의 양심적 병역거부관련 권고사항에 대한 평

에 대하여 시민적정치적 ․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18조를 침

가와 한국 정부의 책임이라는 ’ 주제로 인하대 이석우 교수님이

해한 것이라고 결정하고 이의구제 및 재발방지를 한국 정부에

맡았다. 두 번째 발제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

요청하였다. 유엔의 잇따른 권고를 계기로 2004년 대법원 유

제 도입의 의의라는 ’ 주제로 홍영일 가족모임대표가 맡았다.

죄판결과 헌법재판소의 합헌결정 이후에 사실상 입법부로 책

수십년동안 소수자로서 병역거부자들이 묵묵히 견뎌온 고통이

임이 넘어간 상태에서 지지부진 했던 논의가 다시 활발해지는

지금의 논의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역사는 처

듯 했다. 특히 토론회가 열린 2006년 12월 22일은 그해 활동

절했던 과정이었다.

했던 국방부 대체복무연구위원회의 임기가 마무리되는 때이기 도 해서 그 결과에 더욱 이목이 집중되는 시점이었다. 국회

이현주 과장(법무부 인권정책과)은 유엔의 권고에 대해 국내 구

본청 귀빈식당을 가득 채운 참여자들로 그 관심도를 가늠해볼

제방안 마련을 위해 팀을 구려서 연구하겠다는 법무부의 입장

수 있었다.

을 밝혔다. 우국석 인사국장 직무대리(국방부 인적관리팀)는 주로 국방부 대체복무연구위원회의 활동을 설명했다. 하지만 병역거부와 관련된 논의가 시작된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 도 불구하고 이 부분에 대해 준비해온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이에 대해 다음의 토론자들은 병역거부에 대한 논란이 성과없 이 되풀이되어오는 동안 병역거부자들이 계속 감옥에 가야하 는 상황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 김인재 본부장(국가인권위 인권정책본부)은 최근 국방부 여론조 사에서 병역거부 반대에 대한 의견이 6:4로 조금 높게 나온 것에 대해 ‘소수자 문제를 여론조사에 의지한다는 것은 정부 인권감수성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 하면서 입법자가 대안을 마련할 수 있으면서도 하지 않는 것은 기본권 최소침 해의 원칙에 반한다고 했다.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님은 국방 부 대체복무연구위원회가 만들어진 배경에 대해 상세하게 설

16


명해주시면서 지금 연구위원회가 성과없이 끝난 것에 대해 '면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피해가고 있었는데, 이에 대한 질책에

피용으로 시간만 때우고 있는 것이라고 ’ 강한 비판을 하셨다.

가까운 질문들이 계속되었다. 토론회에 참여하면서 토론자가

세계에서 가장 다양하고 활발하게 대체복무가 수행되는 한국

제대로 준비를 하지 못한 점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특히 국

에서 4주 군사훈련만 빼준다면 3년 복무하겠다는 사람들을 계

방부 대체복무연구위원회의 임기가 사실상 마무리 되었고 아

속해서 감옥에 보내야 하는 것인지 되물었다. 한신대 강인철

무런 진전사항이 없었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

교수님은 ‘종교적 관점에서 본 양심적 병역거부에 ’ 대해 말씀

고 아직 정리보고서가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모든 대답을

해주시며 현재 일어나고 있는 전쟁은 교리상 정의로운 전쟁이

그 이후로 미루는 국방부의 모습은 토론회 참가자들을 실망시

아닌데, 주류 기독교의 신자들이 교리를 근거로 병역거부를

키기에 충분했다.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사면복권 계획이 있는

해도 지금처럼 미온적으로 대응할 것인지 반문했다. 임재성

지, 국방부 대체복무연구위원회의 결과물이 언제쯤 나올 수

활동가는 병역거부자로서 한국사회에서 병역거부자로 살아가

있을 것이며 그 내용이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등의

는 것의 힘겨움을 이야기하며 유엔의 권고이행을 촉구했다.

질문이 계속 되었지만 대답은 여전히 ‘아니오만 ’ 반복되었다. 몇 년 전부터 끊임없이 문제제기가 되고 알려지면서 시민들의 인식은 많이 달라졌지만, 정작 관련부처 관계자들은 한결같은 (?)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지금까지 계속 그래왔기 때문에 토론회는 여러 차례 있었지만 매번 같은 논의를 해왔는지 모 른다. 그렇게 서로 책임을 회피하며 진전없는 논의를 반복하 는 동안에도 누군가는 총을 들 수 없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가야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현재 병역거부로 인해 수감된 사람이 전 세계적으로 약 1,100명 정도인데 이 가운데 1,000여명이 한국에 있다고 한다.

사진]김인재 국가인권위 정책본부장

잇따른 유엔의 강력한 권고 앞에서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국가 에서는 어떤 대응을 할까. 유엔 시민적정치적 ․ 권리위원회에

이미 충분히 늦었다

90일 이내 대답할 의무를 가진 한국의 정부는 이미 국내외적 으로 모든 입법 근거들이 마련된 지금, 어떤 대답을 할지 기

정부측 관계자들은 유엔의 권고사항을 어떤 식으로 이행할지에

대된다.☮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16호 17


물 오른 쟁점, 병역거부운동 내의 성별분업을 말하다 -평화주의자 책읽기 모임 육구 | 전쟁없는세상 수습활동가 + ogamdo86@jinbo.ent

2006년 12월7일 아랫집, ‘전쟁없는 세상’ 사무실에서는 한국사회

이 노동운동을 하던 80,90년대 노동운동 내에서 여성문제를

의 군사주의문화를 여성학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신랄한 비판

제기할 때 마다 답답함과 거부감을 느꼈던 점. 92년에 유학을

을 한 ‘대한민국은 군대다로 ’ 진행하였습니다. 이번 책읽기 모

갈 때까지 사회운동 안의 가부장성에 대해 아무런 문제제기도

임에서는 특별히 저자 권인숙 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함

없었기에 여성학을 공부를 하였는데, 그러면서 노동운동을 하

께 토론하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던 시절의 개인의 경험을 다시 되돌아보는 축에는 군사주의가 있었다고 하셨고, 병역거부 운동은 ‘컵깨기 행사’1)와 같이 또 다른 맥락에서 새로운 운동이며, 우리사회의 군사주의에 대한 새로운 대안과 저항을 하는 사람들일 뿐만 아니라 우리사회의 국가주의, 그리고 굉장히 국가주의적이고 집단주의적이었던 운동에 새로운 획을 긋는 운동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병역거부 운동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의견이 나왔습니다. 병역거부 운동이 대체복무제도 입법 중심으로 운동을 해왔는데, 과연

잠깐 ‘평화주의자의 책읽기를 ’ 소개하자면, 수감 중인 혹은 출소

평화운동으로써 함께하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부터 시작해서,

한 병역거부자들과 평화활동가, 평화주의에 관심 있는 사람들

배제성을 금하는 징병제와 군사문화에 대체복무라는 것은 신

이 모여, 전쟁과 평화 그리고 우리 주변의 크고 작은 폭력에

념에 따라서 군복무를 거부하는 사람을 시민으로 인정하는 것

관한 책을 읽고, 토론을 하는 모임입니다. 다른 여러 모임의

이기 때문에 혁명적인 운동의 하나라는 의견 등이 나왔습니다.

세미나에서도 평화관련 도서를 읽고 토론을 하지만, 책읽기

반면에 대체복무제 역시 징병제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기에 여

모임의 또 하나의 특징은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님의 후원으로

성, 장애인, 퀴어 등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배제적일 수밖에 없

병역거부로 수감 중인 수감자들에게 책을 보내서, 수감자 분

고,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가 이행되면, 신체적

들 중에서 책읽기 모임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고픈 수

차이로 군복무를 이행하지 않던 여성에게도 국가를 위해서 복

감자분들은 서평을 보내주시는데요. 비록 같은 시공간에 함께

무를 이행해야한다는 여성징병제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는데,

모여 토론을 나누지 못하지만, 수감자들이 보내준 서평을 책

이에 대해서 반대할 근거가 빈약하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읽기 모임에서 함께 읽고, 참가자들이 전쟁과 폭력, 평화에 대

이는 병역거부운동이 우리도 의무를 다하고 싶지만 포기할 수

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입니다.

없는 스스로의 신념이 존중되는 방식으로 하고 싶고, 그럴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면 처벌이라도 받겠다는 논리구조에 대한 지

평화주의자들이 바라본 병역거부운동의 의의

적으로 이어졌습니다. 물론 대체복무제도는 공존의 가능성이 생긴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지만, 평화주의에 대한 지향성

이날의 자리는 권인숙 선생님께서 여성학을 그리고 군사주의 문

이나 징병제가 가지고 있는 군사주의에 대한 저항과는 많은

화에 대해서 탐구하시게 된 상황, 계기 그리고 병역거부운동

괴리가 느껴진다는 의견이 있었고, 이 틀을 깨려면, 보다 급진

에 대해 가지고 계시던 생각으로 시작을 하였습니다. 선생님

적으로 ‘군사화와 ’ ‘국가의 징집제도의 ’ 정당성에 접근하는 것 이 필요하지 않겠냐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1) 1999년 민중궐기대회 행사에서 여성 활동가들이 운동권 내의 성별분업 및 성차별에 반대하여 이뤄진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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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복무제도가 모든 여성들도 대체복무를 해야 된다고 이야 기가 되거나 징병제나 모병제 하에 여성운동의 성과로 여성군

이에 대해 노란신호등이 성찰권력이라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인의 질이 향상되는, 말하자면 총 쏘고 사격하는 훈련까지 여

자신의 삶에 있어서, 사회에 있어서, 성찰하고, 운동을 함으로

성에서 허용이 되고 여성의 비율도 늘어나는 것은 평화주의자

써 얻어지게 되는 타인에 의한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라

들의 입장에서는 받아드리기 힘든 부분이 있는 것 같고, 그래

든지 그런 방식으로 얻어지게 되는 권력에 대해서 끊임없이

서 여성 징병에 대해서 같이 말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부분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에 대해서 그런 성

에 굉장히 공감을 하면서도 무척 말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어

찰권력에 빠져있는 상태에 몰입 했을 때 쉽게 빠지는 감정의

하는 의견도 있었구요.

함정이란 게 있고, 남녀 간의 관계 속에서 남성들이 여성 속 에서 확인받으려고 하는 욕구의 문제, 여성들이 끊임없이 뒷 바라지 했던 역사의 문제 등이 얽혀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저항폭력담론을 넘어서기 위하여 저항폭력을 넘어 비폭력저항을 말하기 위해서 폭력시위에 대한 미화, 그리고 비폭력 시위를 정의할 때 마다 얘기되는 비겁한 운동 혹은 간디나 마틴 루터 킹과 같은 폭력을 사용하지 않지

남성들의 성찰권력,

만 폭력에 맞서 싸우는 거친 방식의 두 극단에 대해서 이야기

그리고 병역거부 운동 내의 성별분업

를 하였습니다. 폭력시위로 인해 부상당한 친구를 혹은 동지 를 앞세워, 그리고 폭력시위를 영웅화 시키는 것. 그리고 그의

그리고 이후에 병역거부 운동내의 성별분업에 대해서 이야기를

뿌리가 항일무장투쟁 등 민족주의에 기반을 두고 이야기하는

했었는데요. 필자는 책을 읽으면서, 김상인씨의 행위는 좀 과

시위 등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평소에 각자

하긴 했지만 돌봄행위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 않나라는 생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야기 꺼낼 기회가 없어서 야기 못

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에 대해서, 돌봄 노동이 부정적인 행위

했던 책읽기 모임이었습니다. 생각 있으신 분은 다음 책읽기

라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게 성별분업이 이루어져있어서,

모임으로~.(^ㅡ^)☮

잡다한 정리, 컵 씻기, 감정노동 등 소위 말하는 모성애적인 활동이 여성문제를 제기하는 여성에 비해 그러한 일을 하는 여성이 더 부각되게 되는 등 구조와 그 여성이 그 일을 하는 것이 또 다른 하나의 전략적으로 존재했다는 것이란 이야기를 하였구요. 이에 대해서 오리가 병역거부운동 내에서도 성별분 업이 존재하고, 병역거부자의 애인의 후원회장을 맡는 일. 그 리고 그 일이 당연한 일처럼 되고, 애인 역시 그 일을 당연하 게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서 많이 화가 났지만 사회적인 상황 그러니까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감옥에 가야만하는 상황이 안타깝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도 힘들고, 그러한 현상 을 사적인 문제라고 치부를 하기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 렇게 행동하기에 사적이라고만 치부하기에도 힘든 부분이 있 음을 야기하였습니다.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16호 19


그들의 희생은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하는가? -병역거부 무죄판결에서 사회복무제 논의까지.... 영은 | 전쟁없는세상 책임활동가 + slow-steady@hanmail.net

비전없는 ‘비전2030’

병역거부 무죄판결. 그 이후

2월 5일 정부는 인적자원활용방안을 주내용으로 하는 ‘비전2030’

2004년 5월 서울 남부지법에서의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판결 이

을 발표하였다. 이에 앞서 지난 12월에는 △군복무기간 단축

후로 우리 사회에서 많은 변화들이 있었다. 물론 대법원과 헌

△유급지원병제 도입 △전환복무제 폐지 △사회복무제도 도입

법재판소의 병역법 합헌판결로 여전히 병역거부자들은 차가운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한 ‘병역제도 개선안을 ’ 발표하였다. 무엇

감옥을 향해야만 하고, 끊임없이 입법부의 대체복무제 도입과

보다도 전의경 ․ , 경비교도대 등의 전환복무제와 공익근무요원

실행이 제기되었지만 여러 가지 상황적 조건들로 가시적인 성

제가 점차적으로 폐지되며 병역면제자들까지 포함하는(중증

과들을 볼 수는 없었다. 이번 기획기사에서는 사회복무제도가

장애인 제외) 사회복무제를 확대하는 내용이 많은 관심을 끌

논의되기까지의 사회의 여러 과정들을 짚어보고 앞으로의 병

었다. 사회복무제가 확대실시 될 경우 한 해 징병검사 대상자

역거부 운동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부족하게나마 짚어보고

의 2%가량의 병역면제자들(1만 여명)도 공익기관에서 복무하

자 한다.

게 된다. 더불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해서도 감옥 대신 대체복무제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

사법부에서의 일단락

되었다. 2001년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가 사회적으로 제기되면서 가장 먼 하지만 애초 예상과는 달리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구제책으로 사

저 도전을 받은 곳은 사법부이다. 당장에 병역거부자들을 처

회복무제는 전혀 언급이 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이번 병역

벌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50여 년동안 병역거부자들이

제도 개편으로 종교적 병역거부자들의 입지가 더욱 좁아질 것

보여준 양심의 진지함이 열심히 사법부의 문을 두드린 덕분인

이라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정부가 병역제도를 개편하면서

지 사법부는 한동안 놀랄만큼 빠른 변화들을 보여주었다. 3년

'예외없는 병역이행' 원칙을 강조한 것이 그런 관측의 배경이

형이라는 중벌에서 병역거부자들이 다시 군징집을 당하지 않

라는 것이다. 즉 징병검사에서 신체등위 1~3급 판정을 받은

을 수 있는 1년 6월이라는 법정최소형량이 선고되기 시작하였

자는 현역복무를 하고 나머지 신체등위자들은 예외없는 병역

다. 수감시설 내부에서 종교집회를 할 수 없었던 종교들에 대

이행 원칙에 따라 사회복무를 하도록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해서 집회허용을 하기도 하였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서도 전향적인 판결을 내리지는 않았지만 병역거부자들을 구제할

역시나 한국정부는 사람들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다. 인권에 대 한 상식도 원칙도 존재하지 않는 현 정부에게 애초에 너무 많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적극적 의사표명을 하였다.

은 기대를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병역거부자들이 차가운 감 옥으로 향한 시간만도 60여 년이 되어간다. 또한 최근 한국사

용두사미 입법부의 지지부진함

회에서 병역거부 문제가 공론화되고 논의되어온 것도 7년이라 는 긴 시간이 흘렀다.

2004년 헌법재판소까지 결론을 내리며 병역거부문제는 당장에 국회로 넘어가게 되었다. 9월 전(前)열린우리당 임종인 의원,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이 발의한 각각의 병역법 개정법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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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05년. 병역거부 사안으로만 감옥에 수감중인 사람들이 1000명을 넘어섰다. 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례적 현상이었다.” 이 국회에 상정된 것이다. 많은 기대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

의 의무는 조화롭게 공존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병역이외의

들은 병역거부 문제뿐만이 아니라 민생문제에 대해선 시종일

방법으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할 수 있는 대체복무제도를 마련

관 관심이 없었다. 병역법 개정법률안을 검토해야 하는 ‘국방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위원회’ 소위원회 역시 법률안 검토를 계속 미루어왔고 소위원 회 개편이 되며 법률안을 발의하였던 임종인 의원마저 다른

국방부 대체복무제위원회 발족

소위원회로 자리를 옮기게 되며 ‘국방위원회에서 ’ 병역거부 문 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국회의원도 없어 언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안을 받아들여 2006년 국방부에서는 대체

제 또 다시 이 문제가 논의될 수 있을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

복무제위원회를 발족한다. 물론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는 상황에 이르렀다.

대체복무 뿐만 아니라 연예인, 스포츠 선수들에 대한 병역특 례 등과 같은 다양한 내용을 다루며 얼마나 잘 논의될지 기대

2005년 대한민국은 인권사각지대

하기 힘든 부분은 있었다. 현재 위원회의 활동은 끝이 났고 어떤 결론을 내릴지 결과를 두고봐야 할 것이다.

2004년의 굵직굵직한 결정들 덕분에 무작정 연기되었던 병역거 부자들의 재판이 줄줄이 속개되었고, 병역거부자들은 줄줄이

UN의 권고안과 개인통보

감옥으로 향했다. 그리고 2005년. 병역거부 사안으로만 감옥 에 수감중인 사람들이 1000명을 넘어섰다. 그 어느 나라에서

UN의 자유권규약위원회에서도 2006년 다시 한국정부에 대해서

도 찾아볼 수 없는 이례적 현상이었다. 이에 병역거부연대회

병역거부자들을 구제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것을 촉구하였

의에서는 한국의 인권상황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한 달동안

다. 또한 종교적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했던 윤여범, 최명진

빨간신호등 캠페인을 ’ 진행하기도 하였다.

씨가 대법원에서 징역 1년 6월의 유죄 확정판결을 받고, 헌법 재판소에서도 현행 병역법이 합헌이라고 결정이 난 후인 2004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안이 나오기까지

년 10월, 자유권위원회에 각각 개인통보(Individual complaint) 를 신청한 것에 대해서도 적절한 보상을 할 것을 요청한 바

잠잠하던 2005년의 병역거부 이슈는 연말 국가인권위원회의 권

있다.

고안 발표로 다시 한 번 불을 지핀다. 2001년 인권위 설립 이 후,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해 인권위에 접수된 진정은 총 9

이제는 결론을 내려야 할 때

건으로, 그 내용은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하여 수감중인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구제하여 줄 것”, “헌법재판소에서 병역법에 대

병역거부자들이 감옥을 향한 것이 이제 60년이 되어간다. 사법부

한 위헌제청 사건에 대하여 의견표명을 요청하여 줄 것” 등이

에서도 유엔에서도 결론을 내렸다. 이제 남겨진 것은 오로지

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안은 늦은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 만 어쨌든 늦게나마 제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입법의 결정이다. 더 이상 무엇을 더 하길 바라는가? 얼마나 더 많은 병역거부자들이 감옥에 가길 바라는가? 지금까지 살 펴본 일련의 과정들에서 이제 남겨진 것은 오로지 현명한 결

권고안의 골자는 “현재의 제도로는 ‘양심적 병역거부 및 그로 인

정을 내리는 것이다.☮

한 형사처벌과 ’ ‘단순한 병역의무의 이행간에 ’ 양자택일식의 해결방법뿐인데, 헌법 제19조의 양심의 자유와 제39조의 국방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16호 21


독일의 대체 복무제를 살펴보다 -독일식 사회복무제의 실체와 청와대의 기만 2)

날맹 | 전쟁없는세상 책임활동가 + nalm109@hanmail.net

비전2030 발표 독일에서는 제2차 대전 이후 평화주의 물결에 따라 여러 주들이 2월 6일 청와대가`비전 2030 인적자원 활용(이하 비전 2030)`

병역 거부권을 헌법과 법률에 도입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반

계획을 밝혔다. 지난 12월 말에 발표되었던 ‘병역제도 개선안’

전 평화의 분위기는 1949년에 제정된 독일(서독) 헌법에서

에서 ‘독일식 사회복무제’ 도입 얘기가 나온 터라 기대를 많이

양심적 병역 거부권(제4조 제3항)과 침략전쟁금지규정(제26

했지만, 사회복무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병역거부자들에

조)으로 뿌리내렸다.

대한 대체복무제도 도입은 빠져버렸다. ‘독일식 사회복무제가 ’ 도입된다면 가장 핵심이랄 수 있는 병역거부자들의 인권문제

독일에서는 1955년 연방군(Bundeswehr) 창설을 공식화하였고,

가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것이기에 여러 우려지점에도 불구하

1956년 서독에서는 헌법 제7차 개정법(제12조)를 통하여 징

고 기대를 했건만, 한국 정부는 기대를 저버리고 말았다. 한국

병제를 공식화하고 병역법을 도입하였다. 아울러 1960년에는

에서 대체복무도입은 아직도 시기상조인 것일까. 부풀려진 기

대체 복무의 범위와 역할을 상세하게 규정한 대체복무법을 마

대심 때문이었는지 이번 청와대의 발표에 더욱더 맥이 빠진다.

련하였다. 의회는 양심적 병역 거부권을 규정한 병역법 제25 조를 모태로 하여 1983년에 병역거부법을 제정함으로써 병역 거부와 대체 복무에 대한 법제를 완비하였다. 가장 최근에는, 대체복무법과 병역거부법이 2003년도에 일부 개정되었다.

헌법에 보장된 병역거부권, 특정 종교와 무관 <사진 - 비전2030 발표>

독일 헌법 제4조 3항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누구든지 양심에 반하여 전쟁 복무를 강요당하지 않는다.” 이렇게 독일 헌법은

사실 이 기사가 애초에 쓰여졌을 때는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대체

양심적 병역 거부권을 독자적인 기본권으로 규정하고 있다.

복무제도가 도입되는 것을 상정하고, 그 이후의 운동의 방향

그리고 병역거부법 제1조는 거부 대상인 병역을 ‘무기를 휴대

을 잡는데 참고하기 위해서 독일의 사회복무제도를 살펴보는

한 병역으로 ’ 규정하고 있다. 이 표현의 의미는 직접 살상 무

것을 목표로 했었다. 사회복무제가 도입되긴 했지만, 병역거부

기를 휴대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으며, 직접 살상 행위를 목표

자들에 대한 내용은 없이 오히려 군 복무의 대상이 확장되어

로 하지는 않지만 기술적 상태에 따라 살상을 야기하는 무기

버린 지금 시점에서 독일의 사례를 살펴보는 것이 어떤 의미

의 투입에 연결되어 있는 활동도 당연히 병역에 해당한다. 이

를 가질까 회의감도 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사를 통

는 후방의 레이더 부대나 후송 부대, 위생 부대까지 모두 병

해서 한국의 대체복무도입 과정에서 참고할 수 있는 지점들을

역의 일부로 이해하는 것이다. 헌법이나 병역거부법도 대체

남길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복무는 연방 군대 바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규정함으로써 병역을 군대 조직과 연결시키고 있다.

독일 병역거부권 인정의 역사

2) 이 글은 이재승 교수(전남대 법대)가 쓴 “독일에서의 병역거부와 민간봉사”와 “양심적 거부권”을 요약정리한 ‧ 것임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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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는 양심적 병역 거부권을 정당화하는 데 종교는 더 이상

따라 병역을 거부하고자 합니다”는 문구를 담은 신청서가 비

결정적인 의미를 갖지 않는다. 양심적 병역거부가 특정교파를

치되어 있으므로 신청인은 거기에 이름과 생년월일을 기재하

중심으로 시작되었다하더라도 특정 교파의 소속 여부는 병역

고, 서명하면 충분하다. 물론 신청인은 자신의 양심적 결정의

거부권을 인정받기 위한 관문이 아니다. 독일헌법재판소에 따

과정과 동기를 분명하게 밝혀야 하고, 해당 서술이 지나치게

르면, 양심이란 관련된 사람에게 무조건적인 작위 또는 부작

짧거나 상투적일 경우에는 문제가 될 수 있다.

위의 명령을 부과하는 옳고 그름에 대한 인식 또는 의식을 의 미하고, 헌법 제4조 제3항의 양심적 결정이란 특정한 상황에

개별 신청인들의 동기에는 종교적, 윤리적, 정치적, 평화주의적,

서 개인이 자신에 대하여 무조건적 의무로 체험하는 바, 선과

인도적 이유 등이 다양한 이유가 허용되며 또 인정받을 수 있

악의 범주를 지향한, 즉 윤리적으로 진지한 결정을 의미한다.

다. 병역 거부 사유로서 학교교육, 가정교육, 폭력 체험, 친척

따라서 독일에서는 무신론자의 병역거부도 그 개인의 진지한

이나 친구의 사망, 전쟁 체험에 대한 가족의 이야기, 유태인

양심에서 기인한 것이라면 충분히 권리를 인정받을 수가 있다.

강제수용소 방문, 영화 등이 자주 나온다고 한다. 양심적 결정 의 이유들을 별도로 심사하지는 않는데, 이는 개인의 양심적

병역 거부자의 판정 절차, 신청인 90%이상 인정

결정을 실질적으로 심사할 수는 없으며 다만 결정의 ‘진지함’ 과 ‘일관성만을 ’ 확인할 수 있다는 전제가 확립되었기 때문이

병역 거부자에 대한 판정은 연방대체복무청(BaZ)이 담당한다. 연

다.

방대체복무청은 1973년에 병역 거부자 문제를 처리하기 위하 여 발족한 연방행정청으로서 연방가족부 산하 기구이다. 종전

병역 거부 신청에 대해서는 연방대체복무청이 결정한다. 연방대

에는 병역 거부 신청인이 전적으로 민간인 신분인 때에는 연

체복무청은 서면 절차에서 신청서가 완비되고, 제시된 동기가

방대체복무청이 관할하고, 입대를 목전에 둔 자나 군인, 예비

병역 거부권의 근거로 합당하고, 신청인의 전체 상황이나 연

군의 경우에는 국방부 산하의 병역 거부 사건 심사위원회와

방청에 알려진 여타 사실을 고려할 때 신청인의 기재 사항의

심판소가 관할하였다. 그러나 2003년 병역거부법의 개정을 통

진실성에 의문이 없는 경우 또는 청문을 거친 결과 의문이 존

해 연방대체복무청이 모든 병역 거부 신청 사건을 통일적으로

재하지 않는 경우에는 신청인을 병역 거부자로 인정한다. 현

처리하게 되었다. 한국에서의 대체복무는 국방부가 총괄기관

역 군인이 신청하는 경우에는 보다 신속하게 결정하게 된다.

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과 비교될 만 하다.

결과적으로 현재 독일에서는 신청인 중 90% 이상이 병역 거 부자로 인정되고 있다.

연방대체복무청은 병역 거부자의 판정 절차를 서면 심사 위주로 진행한다. 신청인은 연방대체복무청에 병역 거부 신청서, 이유

한편, 사실에 대한 기재 사항에 의문이 있는 경우에는 연방대체

서, 이력서를 제출해야 한다. 신청 서류와 서식 내용에 대한

복무청은 1개월 이내에 신청인에게 이를 보완하게 하거나 자

요구 사항들은 2003년 법 개정을 통해 완화되었다.

료 제출의 기회를 부여한다. 이른바 서면 청문이다. 서면 청문 을 거친 후에도 의문이 있으면 구두 청문의 기회를 부여할 수

병역 거부자로 판정받기 위해서는 신청서를 우선 지방병무청에

있다. 대체복무청은 신청인이 신청서를 완비하지 못하고, 1개

제출해야 한다. 지방병무청은 접수 창구 역할을 하며, 신청서

월 이내에도 신청인이 보완하지 않는 경우, 신청서에 제시된

를 연방대체복무청에 보낸다. 신청서는 헌법의 양심적 병역

동기가 청문을 거친 후에도 병역 거부를 밑받침하지 못하는

거부권을 원용하는 문구를 담고 있어야 한다. 그 형식이 반드

경우, 신청인이 기재한 사항의 진실성에 대한 의문이 청문을

시 확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며 전체적으로 그러한 취지를 담

거친 후에도 해소되지 않는 경우에는 신청을 기각한다. 연방

고 있으면 족하다. 지방병무청에는 “나는 헌법 제4조 제3항에

대체복무청의 기각 결정에 대해서는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 다.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16호 23


“...개인의 양심적 결정을 실질적으로 심사할 수는 없으며 다만 결정의 ‘진지함과 ’ ‘일관성만을 ’ 확인할 수 있다는 전제가 확립....”

독일 대체 복무제 현황,

대안적 복무들은 복무 형태에 따라 차이가 난다. 재해 구호는

주로 사회적 봉사 영역에 집중

6년, 개발 봉사는 2년, 해외 봉사는 대체 복무(9개월) + 2개 월, 자원 봉사는 12개월, 자발 근로는 대체 복무(9개월) + 1

독일 역시 안보 환경이 좋지 않았던 시기에는 병역 거부의 신청 건수나 인정 비율도 매우 낮았다. 그러나 안보 환경이 변화함 에 따라 병역 거부자의 신청 비율이 크게 증가하였고, 병역 거부자의 인정 비율도 매우 높아졌다. 90년대 후반에는 병역

년에 이르러야 한다. 재해 구호는 우리나라의 의용 소방 대원 과 유사한 것이어서 복무 기간이 매우 길다. 병역 거부자가 경찰인 때에는 경찰 근무를 계속함으로써 대체 복무에 소집되 지 않는다.

거부자의 인정 비율이 거의 90%에 이르렀고, 군 복무자 대 대체 복무자의 비율이 각각 50%에 이르렀다. 나아가 2000년 이후에 독일은 군대 정원을 큰 폭으로 감축하여 대략 20만 명

완전거부자를 위한 ‘자발 근로제’

의 군대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대체 복무제나 병역 거부권 의 운용 현실이 크게 변하였다. 대체 복무가 병역 거부자의 의무라는 점 그리고 병역 거부자로 헌법 제12조는 군 복무 의무자에게 군 복무, 대체 복무, 재난 구

인정된 자는 국가가 지정한 곳에서 근무해야 한다는 점은 대

호 업무 중 하나를 이행하도록 예정해 놓고 있다. 대체복무를

체 복무제의 강제적 성격이 드러난다. 그래서 드물지만 병역

선택한 사람의 경우에는 대체복무법 제1조 “대체 복무로 인정

거부자로 인정된 자 중에서 대체 복무를 거부하는 경우가 있

된 병역 거부자는 우선적으로 사회적 영역에서 공익에 기여하

다. 대체복무법은 완전 거부자를 위하여 1969년에 ‘자발 근로’

는 업무를 이행한다”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우선적으

를 도입하여 스스로 적절한 봉사 활동을 선택하여 수행하도록

로 사회적인 영역에서 봉사한다는 규정 때문에 전통적으로 병

하였다. 이 경우 자발적 근로제는 병원이나 요양원 같은 곳에

원이나 요양원에서의 대체 복무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서 대체 복무보다 최소한 1년 이상 추가로 근무할 것을 요구 한다.

대체 복무를 대체하는 다른 업무도 존재한다. 재해 구호(제14조), 개발 봉사(14조의a), 해외 봉사(제14조의b), 자원 봉사(제14

90년대 들어와 매년 15만 명 정도가 대체 복무를 이행하였고,

조의c), 경찰 근무(제15조), 자발 근로제(제15조의a) 등이 대

18만 개 정도의 대체 복무 일자리가 제공되고 있다. 최근에도

안적 대체 복무다. 대체 복무가 군 복무와 똑같은 9개월인데

10만 명 이상이 매년 대체 복무를 수행하고 있다. 대체 복무

비하여 대안적 대체 복무는 군 복무나 대체 복무 기간보다 비

는 사회적 영역에서 상대적으로 저임금의 노동력을 제공하는

교적 길다.

역할을 하고 있으며, 또한 사회적 협력, 봉사, 연대에 매우 긍 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아울러 대체 복무 효율성을 제고하

대체 복무제의 도입 초기에는 군 복무보다 대체 복무 기간을 비 교적 장기간으로 설정하였다가 그 후 군 복무보다 1개월 정도 길게 복무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최근 법 개정을 통해 군 복 무와 동일하게 9개월로 하였다. 대체 복무를 대체하는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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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자 전국 각지에 대체 복무학교(Zivildienstschule)도 설치, 운영되고 있다.


대체 복무자의 급여는?

은 군사주의와 나치즘을 청산하는 데 주력하였고, 그러한 연 유로 헌법은 평화주의를 선언하고 침략 전쟁을 부인했으며,

대체복무법 제35조 제1항은 별도의 규정이 없는 한 군 복무자에

개인에게 양심적 병역 거부권을 인정하였다. 독일은 냉전이

대한 규정을 대체 복무자에게 동일하게 적용하도록 하고 있다.

한창이던 1960년에 이미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하여 현재에는

대체 복무자에 대한 급료, 비용, 비품은 대체 복무자 고용 기

매우 안정적으로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독일의 사회복무제는

관이 직접 지급한다. 대체 복무자 고용 기관은 지출액 중에서

군복무와 시민적 영역의 대체복무 이외에도 개발봉사, 해외봉

상당 부분을 국가로부터 환급받는다.

사처럼 다양한 복무의 길을 열어주고 있다는 점에서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으로 존중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대체 복무자가 지급받을 수 있는 급료는 복무기한에 따라 차등지

한국에서는 그 이름에서부터도 알 수 있듯이 ‘인적자원을 ’ 어

급되며, 식비와 피복비, 교통비는 물론이고 특별수당과 퇴직금

떻게 ‘활용할 ’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사회복무제를 도 입하

까지 포함되어 있다. 물론 현실의 일반 노동자들의 보수와 비

고 있다. 개인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해야 할

교했을 때에는 적은 액수이지만 한국의 사병들이 지급받는 액

국가의 고민의 흔적은 전혀 찾을 수가 없다. 유엔 사무총장을

수에 비한다면 훨씬 낫다고 할 수 있다.(첫 복무를 시작하는

배출한 국가의 행정부의 발상이 아직도 이 정도밖에 못 미친

사람이 받는 일당은 7.41유로, 월 합계 222.30유로이다. 한국

다는데 심한 유감을 표명한다.

돈으로 26만원 정도.) 군인은 병영 생활을 하기 때문에 당연 히 대체 복무자보다 실제 지급받는 액수는 작다.

작년 말에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에서 한국 정부에 권고한 개인 통보결정에 따르면 한국정부는 90일 이내에 권리를 침해당한 두 사람에 대한 구제조치를 취해야 한다. 하지만 국방부에게

진정한 ‘독일식 사회복무제를 ’ 도입하자

는 대체복무제도 연구위원회의 결과를 기다리겠다는 면피성 발언 이외에 어떠한 움직임도 기대할 수가 없는 실정이다. 17 명의 연구위원 구성원 면모를 보면 대체복무도입을 찬성하는

청와대가 이번에 밝힌 ‘비전 2030’는 앙꼬 없는 찐빵이다. 사회 복무제는 도입되었지만 정작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대체복무제

입장에 있는 위원은 4명 정도인데 과연 연구위원회에서 ‘전향’ 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까? 글쎄, 한국에서 병역거부운동

도는 전혀 논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형평성 운운하

이 시작된 지 7년째를 맞이하는 시점에서 얼마나 더 인내심을

면서 국민의 신체의 자유를 합법적으로 구속하는 국가의 영향

가져야 대체복무가 도입될 수 있을지 회의감마저 들게 한다.

력은 더욱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기존에 있던 대체복

정부와 국회는 하루 빨리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대체복무제도

무마저도 완전히 폐지하여 형평성 논란을 깡그리 잠재우겠다

가 도입될 수 있도록 노력하길, 간곡히 바란다. 더 이상 국민

고 공언하는 것이 한국정부이다. 여성과 귀화인들도 원하면

을 기만하지 말고, 진정한 ‘독일식 사회복무제를 ’ 도입하기를

사회복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마치 선심을 쓰듯 말하고 있지

바란다.

만 이는 실은 개인의 자유를 예전보다 더 심한 강도로 국가에 복속시키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도 있다. *참고한 자료와 사이트 실제로 독일에서 사회복무제가 처음 시행되었을 때의 문제의식은 현재 한국에서 추진되는 그것과 다른 부분이 많다. 전후 독일

이재승, ‘독일에서의 병역거부와 민간봉사’, 민주법학 20호, 2001 http://en.wikipedia.org/wiki/Conscription_in_Germany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16호 25


병역거부운동 7년.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가? 여옥 | 전쟁없는세상 책임활동가 + yo1004@hanmail.net

지난 2006년 12월 말 청와대에서는 ‘병역제도 개선안을 ’ 논의

시정할 것을 요구받았다. 작년 10월에는 유엔의 시민적정치 ·

중에 있다고 밝혔다. 특히 청와대 관계자가 ‘독일식 사회복무

적 권리위원회가 관련 입법 등의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하였

제도를 심도있게 검토하고 있다고 ’ 언급해서 그동안 감옥에 보

고 12월에는 병역거부로 처벌받은 사람들에 대한 이의구제 및

내던 병역거부자들에게도 대체복무의 기회가 마련될 수 있을

재발방지를 한국 정부에 요청하였다. 그리고 2005년 12월에는

것으로 기대했다. 대체복무제라는 것은 세계역사상으로 볼 때

국가인권위원회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과 병역의무가 조화

병역거부자들 때문에 만들어졌고, 특히 독일의 사회복무제도

롭게 공존할 수 있는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권고안

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방지의 법적 수단으로서 병역거

을 발표했다. 이제 더 이상 안보를 핑계삼아 절박한 시대적

부권을 인정하면서 자신의 신념을 근거로 군사행위를 거부하

과제를 미룰 수 있는 시기는 지났다. 지금도 1천명에 가까운

는 병역거부자들을 국가시스템 내에서 그들의 양심을 보장할

수감자가 이 문제로 고통 받고 있으며, 해마다 600명이 넘는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하면서 생겨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젊은이들이 감옥으로 향하고 일생을 전과자 딱지를 달고 살아 야한다. 이제라도 정부는 그동안 모르쇠로 일관했던 병역거부

하지만 정부는 사회복무제 도입을 발표하면서 정작 그 핵심이라 고 할 수 있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문제를 빼놓고야 말았 다. 정부가 연구 성과를 기다린다고 한 국방부 '대체복무제도 연구위원회는 ' ‘종교적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 도입 여부를 비 롯한 대체복무제도 전반에 걸친 원칙과 기준을 설정 하겠다는 ’ 취지로 작년 4월부터 활동을 시작했으나, 처음부터 연구위원 구성의 균형을 잃는 등 병역거부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그리고 지난 12월로 이렇다할 성과없이 연구위 원회 활동이 모두 마무리 되었고 현재는 보고서 작성만을 남 겨둔 상태이다. 장기적으로 병역제도 전반에 대한 개선안을 제시하면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문제를 제외했다는 것은 정부가 오래도록 끌어 온 이 문제에 대해 과연 해결할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게 한다. 자신의 양심에 따라서 병역을 거부한 사람들을 감 옥에 보낼 수밖에 없는 한국의 현행 제도는 이미 여러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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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더 나아가 궁극적인 평화를 위한 정 책수립을 촉구한다.☮


[성명서] 사회복무제, 정부의 책임방기를 강력히 규탄한다! 오늘 오후 한명숙 총리는 정부 중앙청사에서 '비전 2030 인적자원 활용 전략을 ' 발표했다. 저출산·고령화의 급속한 진전으로 2010년 부터 노동력 부족이 현실화될 것이므로 다가올 인력부족 현상에 대처하려면 보유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 해 정부는 실업계 고교 특성화, 학제개편, 군복무기간 단축 등의 조기 취업을 위한 방안들과 기업의 임금체계 개선과 고용형태의 다양 화, 정년연장 장려금 등 정년연장 유도를 위한 제도 확충, 고령자에게 유리한 연금급여제의 도입 등 퇴직 연령 연장을 촉진하기 위한 다양한 계획을 밝혔다. 특히 병역제도 개선과 관련해서는 현역병 복무기간 6개월 단축, ‘유급지원병제’ 도입이 추진되고 인력활용 측면에서는 전의경과 · 경 비교도, 산업기능, 공익행정요원제를 폐지하고 사회복무제를 도입하게 된다. 사회복무제도는 병역의무의 형평성 차원에서 신체등급이 낮은 대상자뿐만 아니라 본인이 희망할 경우 여성이나 혼혈인, 귀화자, 고아도 복무할 수 있도록 하고 내년부터 전면 시행키로 했다. 지난 7년간 병역거부자들의 대체복무를 위해 활동했던 연대회의는 이번 정부의 발표에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인권개선을 위한 어 떠한 계획도 의지도 보여주지 않은 것에 대해 실망을 금할 수 없다. 정부가 참고했다는 독일의 사회복무제도는 역사적으로 평화주의적· 종교적 신념 때문에 군 입영을 거부하는 병역거부자들에게 군 복무 대신에 부과하는 사회 근무로 태동되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군사 주의와 나치즘을 청산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양심적 개인들이 군 복무를 거부하였고 독일 정부는 이를 받아들여 아예 헌법 자체에 병역 거부 규정을 명시한 것이다. 한국의 경우도 지난 60년 동안 자신의 양심상 집총을 할 수 없다는 병역거부자들이 꾸준히 존재해 왔으나 남북분단, 국가안보를 이유로 매년 수백 명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감옥으로 보내고 출소 후에도 전과자의 낙인을 찍어 사회적, 경제 적으로 엄청난 차별을 하여왔다. 군부독재 시절은 그렇다 쳐도 소위 문민정권이 들어섰고 남북 간의 교류가 활발한 요즘까지도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형사처벌 등은 종전과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 지난 연말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Human Rights Committee)가 두 차례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처벌, 차별하는 것은 시민적정치 · 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위반이며 따라서 이들에 대한 손해배상까지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촉구 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정부는 지난 수십 년간 보편적 인권으로서 보호해야 할 의무를 완전히 방기하여 온 것이다. 이번 발표에서도 정부는 여전히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보호대책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연대회의는 정부에 대하여 지금이라도 수십 년 동안 만 명에 이르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 에 대한 차별, 처벌을 깊이 반성하고 사회복무제 도입하면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포함시키지 않은 이유를 즉시 해명하며 국제기구 의 권고에 따라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위한 대체복무제 도입과 이들에 대한 차별시정을 즉각적으로 시행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는 바 이다. 2007. 2. 5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16호 27


| 평화 수필 1 |

P.e.a.c.e.E.s.s.a.y

병역거부자 인터뷰 프로젝트를 편집하며 이정은 | 전쟁없는세상 영상팀 자원활동가 + zealot7df@nate.com

다큐멘터리스트들은,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완성하기위해, 촬영해온 소스들을 편집하면서 보통은 한 컷당 평균200번 정도를 보게 된다고 한다. 찍어온 자료를 검토하고 스크립 하면서 보고, 선택할 영상을 고르느라 비교하면서 보고, 컷 연결이 자연스러운지 내용들의 배치가 적절한지 확 인하기 위해 보고, 효과가 잘 들어갔는지, 사운드는 잘 어울리는지, 음악은 적절한지 등을 보고, 최종 마무리로 맘에 들게 나왔는지 검토에 또 검토를 하며 보고, 보고 또 보고 셀 수도 없이 같은 영상을 반복하여, 되풀이해서 본다고 한다. 비록 훌륭한 다큐멘터리를 만든 것은 아니지만, 평화수감자의 날 두 번째 날 행사를 위해, 영상팀 동료들이 찍어 온, 이제 들어갈 또는 출소한 CO들의 인터뷰 동영상을 편집하게 되었다. 나 또한 반복적으로 그들의 모습을 보고,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할 수밖에 없었다. 화면 속의 그들은 내가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거나 또는 별로 대화를 해 볼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화면 속의 낯선 인 물들이 많이 좋아져 버렸다. 12월 1일 평화수감자의 날, 행사의 일환으로 자전거 행진을 하기위해 국회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 속에서, 지금은 성동구치소에 수감중 인 경수씨를 봤다. 하마터면 반갑게 "경수씨~" 하고 부를 뻔 했다. 그렇지만 조금 이상해 보일까봐 참았다. 나의 눈은 반가워서 경수씨를 똘망 똘망 쳐다보고 있는데 눈이 마주치자 경수씨는 나를 무심히 쳐다보고는 고개를 돌려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했다. 경수씨는 날 그날 첨 봤을 테니 당연한 거였는데 왠지 모를 서운한 마음은 대체 왜 드는 것인지...나도 참..... 그 날 첨 보는데 왜 그렇게 친근했던지... 경수씨의 인터뷰 를 (대략200번) 보면서 어찌나 멋있게 말 잘하는지 "짜~씩~ 멋진걸~~!!" 하면서 혼자 막 대견해 했었던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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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c.e.E.s.s.a.y

그리고 인터뷰 영상속의 또 한 명, 조정의민도 그 자리에 있었다. 여차저차 인사 두어번 한 사이일 뿐, 몇 번 술자리에 같이 있었지만 그다지 대화를 나눠본 적이 별로 없기에 낯설었다. 하지만 그 날은 목도리를 둘러주며 "힘내!!" 라고 말하고 등을 토닥여주고 싶었다. 하지만...또 참았 다. 왠지 혼자 오버하는 듯하여..^^! 하여튼 그날 그 곳에 가기 직전까지 다음 날 행사를 위해 급편집을 하다 왔던터라 ..그래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참.....너~ 무 집중해서 편집 했나보다.^^ 조정의민의 인터뷰를 보면서 병역거부자들의 수감생활 중의 힘들었던 기억들에 대해, 나는 경험해 보지 못해 실감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감옥에 있던 시간들이 너무 아팠어서...."라고 말할 때의 조용조용한 그 말투와 어조, 띄엄띄엄 말하다 천천히 말끝을 흐리는...수차 례 반복해서 본 화면 속, 그의 말들은... 마음을 짠하게 쓸어내렸다. 송인욱과 고동주가 법정으로 들어가기 전 어렵게 미소지으며 마지막 인사말을 남기는 부분을 편집하면서 화면 속 그들 앞에 얼마나 힘겨운 생 활이 기다리고 있을지 걱정이 되었고, 후에 그들의 소식을 전해들을 때마다 편집하면서 보았던 그들의 마지막 미소가 생각나곤 했다. 나는 아직은 독립 다큐멘터리 제작워크샵에 참가하여 공부중인 학도일 뿐이지만, 초보 다큐멘터리스트로써의 나름대로의 정체성을 가지고 꽤 나 신경을 썼던 이번 작업물은 나에게 <전쟁없는세상>의 초보 활동가로써의 감수성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온 것 같다. 비록 결과물이 여러모 로 보아 완성물이라고는 볼 수는 없지만 나에게 이번 작업은 특별했다. 수감 중인 병역거부자들이 대상으로써 보여지던 관찰자 같았던 나는 어 느 순간부터인가 변해 있었다. 이제는.. 이성적인 관찰이 아니라 감성적인 공감을 한다. 그들은 이제 나의 친구들이다. 나의 친구들을 위해 그리고 우리가 옳다고 믿는 신념이 인정받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힘닿는 만큼 노력하리라 다짐해 본다. 나의 방식 으로...☮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16호 29


| 평화 수필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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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방귀 조은 | 전쟁없는세상 책임활동가 + epilogue@empal.com

며칠 전 지하철에서 있었던 일이다. 출근시간대, 사람으로 가득 찬 지하철에 앉아있던 난 어디선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야릇한 냄새를 맡게 되 었다. 장시간 위 속에서 묵혀졌음이 분명한 이 익명의 방귀는, 약간의 자리이동도 허락지 않는 이 밀폐된 공간을 이리저리 배회하였다. 코를 막 는 사람들, 조금이라도 흡입을 줄이려 헛기침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이 소리 없는 아귀규환의 공간에서 나는 묘한 감동을 받았다. 나에게 이 방 귀는 지독한 냄새가 아닌 맡을 만한 향기로 다가왔던 것이다.

경험 타인의 방귀를 견딜 수 있게 된 것의 시초는 갓 대학교에 입학했던 새내기 시절이다. 몇몇 자극적인 환경에 의해 사고방식이 급변했던 그 시 절, 난 사람은 누구나 후천적인 노력에 의해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확신했다. 이타심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가지고 있던 난, 완벽한 성자는 될 수 없을지 몰라도 성자에 가까운 사람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타심을 극대화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 던 것 같다. 감수성이 예민한 시절이었기에 가능했는지 모르겠지만, 약 1년 뒤 결코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했다. 하교 길, 목에 가래가 생긴 나는 길바닥에 침을 뱉었는데, 무심코 뱉은 그 침이 우연히 가로수 밑둥치에 맞게 되었다. 그 순간에는 아무생각 없이 그냥 지나갔으나, 집이 가까워질수록 그렇게 그 나무에게 미안할 수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미안하다고 고의가 아니었다고 사과라 도 하고픈 심정이었다. 그리고 그 미안한 순간순간 스치는 순간순간 불어오는 바람. 얼굴을 스치는 바람 한 결, 한 결 마다 너무나 고맙고 소중 한 감정이 생겨왔다. 가로수와 바람은 도로의 치장을 위한 식물이나 기압의 고저에 의한 공기의 움직임이 아닌, 하나의 존재로서 나에게 다가왔 던 것이다. 그 이후로 나무와 바람만이 아닌 모든 존재에 대해 엄청난 존재감을 느끼고, 그 존재에 대한 소중한 감정이 순간순간 느낄 수 있었다. 지하철 에서 스치는 수많은 사람들은 나에게 하나같이 소중한 존재였고, 길 가에 피어있는 잡초들, 자그마한 돌멩이들까지도 나에게 소중한 감정을 안 겨주었다. 뼛속까지 희열이 느껴지는 이 충만함! 이 시절의 경험은 나의 삶에 획기적인 변화를 주었고, 존재감과 충만함의 유지는 평화에 대한 지향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깨닫고 평화운동, 지금의 병역거부 운동의 원동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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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하지만, 충만함의 순간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사회는 나에게 톱니바퀴로써 이쁘게 살아갈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당장 돈을 벌어야하 는 상황은 나의 충만함을 지속하는 데 큰 장애가 되었다. 일을 하고, 개인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급급하다보니 어느새 충만함을 느끼는 주기 는 짧아져갔고, 급기야는 정말 드문드문 느낄 수 있는 순간적인 감정이 되고 말았다. 안타까웠다. 이건 뭐 당장 출가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나 의 노력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면 들수록 충만함은 추억이 될 것만 같았다. 급기야는 불필요한 욕구가 다른 존재에 대한 존재감을 느끼지 못 하게 한다며 어설픈 노력으로 내 욕구를 감소시켰는데, 이는 삶에서 필요한 욕구까지 없애는 결과를 가져왔다. 나는 무기력해졌고, 주변에 어떤 일이 일어나든 동요하지 않는-심지어 전쟁으로 인해 다친 사람들의 사연이 나오는 뉴스를 접하면서도 연민이 느끼지지 않는-지경에 이르렀다.

확장 상당기간 슬럼프가 지속되어 삶의 원동력을 영원히 상실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느껴진 난 내 충만함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필요성을 느꼈다. 내 충만함은 어디에서 비롯되었고, 수많은 존재에게서 받았던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존재감은 어떻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인가를 이해하고 나면, 어떤 환경에서든 나의 나아감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고민한 끝에 나온 결론은 ‘나의 확장이다 ’ . 다음은 2007년 1월 4일 새벽 5시, 심야알바를 하다가 쉬는 시간에 메모한 기록이다.

<이런 것을 해탈을 지향한다고 일컬을 수 있을까. 휴게실 소파에 누워 충만함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 동안 드문드문 느끼고, 상당부분 잊어버렸던 존재에 대한 존재감(충만감)을 타인이나 물건 등에 충만함에 느끼기 위해서는 몇 단계 의 연상 작용이 효율적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기본적인 존재함을 인식하고 있다. 여기에서 다른 사람에게 존재감을 느끼기 위해서, 그 사 람과 존재감을 느끼고 있는 나와의 공통점을 생각해 본다. 행동의 유무나 성격,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언어를 구사한 다 등 나 외의 다른 사람에게 그 사람이 존재함을 느낄 수 있는 공통점을 느낄 수 있다면 우리는 그 타인을 인식했 다는 것이고 나아가 그 타인에 대하여 나와 비등한 존재감(충만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 외의 대상인 타인에 이어 우리는 이러한 방법을 간단한 예로 동물이나 식물에 적용해볼 수 있다. 움직임, 나아가 생물로서의 동질감은 그 대상에 대한 확고한 인지, 존재감을 느끼는 것이고 이러한 연상적용은 그 대상에 대한 충만함 (소중함-나와 다를 바 없는)을 느끼게 해준다. 계속 이어 나가면 우리는 이 추만함을 주변 사물이나 공기 등에 적용시킬 수 있고, 최종적으 로 우리가 오감으로 느낄 수 없는 ‘그 자체’(우주를 느낀다?) 에 대한 존재감의 인식에 다다를 것이다. 이것은 나 의 존재 자체에 엄청난 충만함, 희열을 가져다 줄 것이다. (지금은 엄청난 정도는 아닌, 묘한 충족감) 이 충만함의 궁극은 모오든 존재자체의 충만함, 감각질을 벗어난 존재감, 삶에의 감각을 벗어나, 죽음 또한 이 추만 함의 연속임을 느끼게 해줄 것이다. ‘나’와 ‘존재’자체의 구분-경계는 투명해질 것이며 죽음 또한 충만함의 연 속, 나의 존재의 연속일 일 뿐, 두려워할 것이 아닌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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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세 줄 요약하면, ‘나라는 ’ 것의 범위를 나의 정신, 나의 육체, 나의 가족, 인간, 생물 등으로 확장해가면 결국 나는 우주이고, 우주는 내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나가 ’ 확장이 되면 궁극적으로 존재감, 충만함은 물론 죽음에도 초월해질 수 있을 것이다. 메모를 쓰면서 다시금 존재감이 회복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메모를 쓰며 앉아있는 소파에 존재감을 느꼈고, 내가 있는 휴게실에도 존재감을 느꼈으며, 그 이상의 공간감에도 희미하게나마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다. 드문드문 느꼈던 충만함을 휴식시간 오래오래 마음 깊이 간직할 수 있 었던 것이다.

나는 당신, 당신은 나 ‘나의 확장을 ’ 화두로 삼은 이후, 나는 이전보다 쉽게 충만함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앞서 언급했던 지하철에서의 방귀도 그런 의미에서, 타 인의 방귀가 아닌 나의 방귀로 인식되었기에 향기로울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부시 같은 사람들에게도 연민을 느낀다. 이것은 조금 다른 방법 이긴 한데, 부시의 갓난아이적 모습을 떠올려본다. ‘응애응애’ 관심을 갖아 달라고, 사랑해달라고 옹알이를 하는 그 아이가 어찌 사랑스럽지 아니하겠는가. 단지 환경이 그를 그 지경으로 만들었을 뿐, 부시 그 자체에 대한 연민을 놓을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아직은 부족한 점이 너무나 많다. 나는 종종 별 것 아닌 사항에 분노할 때가 있고, 존재감은커녕 내 자신을 유지하기에도 급급할 때가 많 다. 나의 소유물을 빼앗기면 아까워할 것이고, 나의 불행이 다른 사람의 행복이 될 경우 쉽게 선택하지 못할 것이며, 운동에 있어 분노의 대상 이 사라짐으로 인해 운동의 원동력이 저하될 것이다. 나나 내 주변 사람들에게 위해를 가하려는 이에게는 분명 연민을 느끼기 어려울 것임을 알고 있다. 또한, 나의 지향하는 바를 위해 제거해야할 대상인지 애매한 것들도 많은 데, 그 중 스타크래프트 같은 전쟁 게임이나 프라이드 같 은 이종격투기가 정말 재밌다는 것이다. 어디서 화재가 나도 안타까운 마음과 동시에 불구경에 재미있어할 것 같다. 이렇게 수많은 애로사항에 고뇌할 것이 확실함에도 분명한 것은, 나는 내가 충만함을 지향하고 나를 확장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에 끊임 없이 성찰할 것이라는 것이다. 알라나, 예수, 부처 이들은 모두 지향하는 바는 같다고 생각한다. 존재감, 충만함, 연민, 평화 등 또한 어느 한 지점으로 수렴하는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이 글은 충만함에 대한 글임인 동시에 평화에 대한 글이고, 나에 대한 글임인 동시에 여러분에 대한 글이다. 나는 진심으로 ‘나일 ’ 것임을 확신하는 여러분들과 평화를 함께 느끼고 싶다. 여러분은 내일 당장이라도 지하철의 방귀냄새에 초연할 수 있다. 흥미롭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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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 수필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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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당개 삼년 드디어 풍월을 읊다... -육구와 여옥에게 보내는 편지 영은 | 전쟁없는세상 책임활동가 + slow-steady@hanmail.net

아직도 생각하면 웃음만 납니다. 엠티를 떠나기 하루 전 사무실에 급하게 나와 책상에 있는 짐들을 다 정리했어요. 제 딴엔 정말 굳은 결심 이었고, 엠티에 가서 꼭 정리한다는 말을 할거라 다짐하고 다짐했었어요. 책상을 정리하면서 참 많은 생각들이 들었어요. 후회하면 안될텐데, 이제 무얼 해볼까 등등. 하지만 끝까지 제 마음 속에 남는 모습이 바로 육구와 여옥의 모습이었어요. 전쟁없는세상에 함께 하겠다고 온 두 사람 에게 겨울 내내 바쁘다는 핑계로 신경도 쓰지 못하고 내내 추운 사무실에서 기다리게만 했는데 함께 무언가를 해보지도 않고 도망치듯 떠나는 제 모습이 두 사람에게 얼마나 서운할까 하는 생각이었지요. 하지만 역시 제가 제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했나 봅니다. 엠티에 가서 밤샘회의를 하며 저 혼자 얼마나 마음 속으로 많은 다짐을 했던지요. ‘무슨 말에도, 무슨 상황에도 절대 흔들리면 안되는거야!!’ 하하~ 아니나 다를까 모든 사람들이 저에게 계속 함께 하자는 말에 저의 펄럭펄 럭 팔랑귀가 날개짓을 마구 하더군요.^^;;;;; 미안함, 책임감, 미련, 아쉬움 등 온갖 감정들에 휘말려 저는 항복했습니다. 푸히히~ 엠티에 돌아 와 다음 날 조용히 사무실에 나와 정말 조용히 짐을 풀었습니다. (제가 짐을 푸는 모습을 사람들이 보면 내내 놀릴 것이 예상되어 정말 쥐도 새 도 모르게 짐을 풀었어요.) 엄청난 쪽팔림에도 불구하고!!!! 태연한척,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냥 원래 제 책상에 턱하니 앉았습니다. 글을 쓰는 지금도 얼굴이 참 화끈거립니다. 돌아와 제가 처음 하는 일이 바로 소식지 편집을 마무리하는 것이었어요. 편집을 하는 내내 눈물이 참 많이 났습니다. 슬픈 눈물이 아니고 제 자신이 너무너무 기특해서, 너무 감격스러워서 흘리는 눈물이었습니다. 자화자찬! 자아도취! 후훗~ 제가 전쟁없는세상 활동을 시작한지 꼬박 3 년이 흘렀어요. 그 사이 제가 소식지를 편집할 기회는 두 번 있었습니다. 처음엔 손도 못대고 나동에게 알아서 하라는 문자 한 통 남기고 도망 갔었구요. 다음엔 밤새도록 닭질을 하다가 뎅에게 넘겨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때마다 제가 느껴야 했던 좌절감은 참 표현하기 힘든 것들이었어 요. 다들 잘 하는데 저 혼자 아무 것도 못하는 것 같은 위기감이라고 하면 될까요? 짜증났고 두려운 것들이 잔뜩이었어요. ‘도대체 내가 할 수 있는게 뭘까?’‘아~ 다른 활동가들이 저런거 하는동안 도대체 난 뭘 하고 산걸까?’ 등등. 이번 소식지를 편집하는동안 저는 아무런 도움을 받지 않았어요. 그동안 딱히 무언가를 배운 것도 아니었어요. 말 그대로 서당개 삼년으로 이 제 혼자 풍월을 읊어대기 시작한 것입니다. 편집하는 내내 저 혼자 심취해서 좋아라고 했습니다. 아직은 따라하는 것들이 많고 부족한 것이 더 많은 상태이지만 제 혼자 힘으로 무언가를 시작하고 마무리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성취감있는 일이지요. 제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두 사람 에게 글을 쓰는 이유입니다. 소식지 기사를 쓰는 내내 힘겨워하는 육구와 여옥이의 모습을 보며 제가 자꾸 조바심이 났었나 봅니다. 옛날 내가 하던 생각들을 이 두 사람이 하는건 아닐까? 그래서 위축되고 힘빠지는건 아닐까? 물론 두 사람은 저처럼 나약한 사람이 아니라 잘 할 것이라 믿지만 그래도 노파심에 제 마음을 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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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엠티 내내 이야기한 것처럼 전쟁없는세상은 업무이월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새로 활동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계속 뜬구름 잡는듯 한 느낌만 가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제가 활동을 시작하던 그 때에도, 그리고 지금도 달라진 것은 없어요. 그래서 내내 책임감과 미안함에 마음 이 무겁습니다. 아무 것도 없이 두 사람에게 그냥 기사를 쓰라고 했고 두 사람이 느꼈을 막막함과 아쉬움이 저에게 그대로 전달되는듯 했어요. 기사 흐름이라도 같이 잡아야 하는데 사실 저도 여전히 가진게 미천하여 명쾌한 길잡이를 해줄 수 없었어요. 미안하다고 하기도 그렇고 도와줄 수도 없고 두 사람이 끙끙대며 글을 쓰는 내내 옆에서 마음이 계속 쓰였습니다. 저 나름대로는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며 운동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여유라는 ’ 생각을 했습니다. 전쟁없는세상이 ‘삼미슈퍼스타즈의 ’ 정신을 좋아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텐데요. 자기 자신을 다그치고 갉아먹기 시작하는 순간 운동은 즐거워질 수 없는 것 같아 요. 그러면 금새 지치고 방향을 잃어버리기가 쉽지요. 알고보면 사람들은 별거 없는 것 같아요. 그냥 존재하는 그 자체로 아름답고, 존재하는 그 자체로 구질구질한 것이 사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그 누구 앞에서도 위축될 필요도 없고 그 누구 앞에서도 강자가 되 지 않으면 되는 것 같아요. 많이 기대할 필요도 많이 실망할 필요도 없는!!! 그런게 사람이지 않을까요? 야심차게 활동을 시작하는 두 사람에게 늦었지만 고마움과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 때론 지치고 때론 허무할 테지만 그리고 때로는 지독히 외로울 때가 있겠지만!!!!! 아픈 다리 서로 기댈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을 언제나 마음 속에 간직하길 바래요. 느려터진 저는 꼬박 3년이 걸려 겨 우 조금씩 감을 잡아가고 있어요. 여전히 앞으로 배워야 할 것들이 더 많지만.... 두 사람은 저보다 열배쯤은 강하고 현명하니 금방금방 배워나 갈 수 있을거예요. 사실 제 몸과 마음이 온전히 전쟁없는세상 활동으로 돌아오지 못한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자리잡을 때까지 언제나 옆에서 힘이 될 수 있는 책임활동가가 될 수 있도록 열심히 돕고 노력할께요. 소식지 편집하는 내내 옆에서 함께 하며 함께 웃고 이야기할 수 있어서 든든했어 요.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별거 없지만 그리고 조금은 월권일 수 있지만 편집 내내 가졌던 저의 정성, 열정 그리고 그 결과물인 이번 소식지를 두 사람에게 바치겠습니다. 히히~~(참 거창하네요.) 인생의 값진 시간들 만들어 나갈 수 있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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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VE PEACE A CHANCE -2006년 12월 1일 평화수감자의 날 번역 _ 평화수감자의 날 준비팀 , 정리 _ 날맹

[‘평화수감자의 날은 ’ ?]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War Resisters' International, WRI)의 '평화

그렇지만 평화수감자 명단은 주로 서구 활동가들과 동유럽의 병역

수감자의 날(Prisoners for Peace Day)'은 1956년 12월 1일에

거부자들로 구성되었고 제 3세계 국가의 수감자들은 부족한 상

처음 시작되었다. 이날 평화수감자들의 명예로운 명부가 발표되

태였다. 1971년에는 또 한번 파키스탄의 평화수감자와 함께 1

었고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의 모든 지부 회원들에게 요청해 수

명의 모잠비크 수감자, 그리고 (믿거나 말거나) 1명의 남베트남

감자들에게 엽서나 편지를 보냈다. 이러한 기본적인 생각은 오

수감자가 있었다. 1973년에는 이스라엘 수감자를 찾아볼 수 있

랫동안 같은 방식으로 지속되고 있다. 다만 그 당시와 오늘날의

으며, 1977년에는 로디지아(Rhodesia, 역자 주 - 현 잠비아)

수감자 목록이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당시 명단은 구금되어 있

수감자가 있었다.

던 병역거부자와 대체복무를 수행하고 있던 병역거부자들로 구 성되었다는 점이다. 오랜 세월을 거치며 목록은 여러 차례 바뀌

우리는 또한 병역거부자들이 고려되는 면에 있어서 흥미로운 변화

어 왔다. 지금은 전쟁 그리고 전쟁 준비에 반대하여 비폭력 행

를 볼 수 있다. 1967년까지는 구금된 병역거부자와 대체복무를

동을 하다 수감된 사람이면 누구라도 명단에 포함된다.

수행하며 대체복무현장에 있는 병역거부자가 분리되어 있었다. 어떤 병역거부자의 경우는 외견상 더 이상 처벌로서의 대체복무

어떻게 평화수감자의 날이 성공할 수 있었으며 오늘날 까지 지속

라고 보기 어려웠다. 아무튼 이 두 경우를 분리할 필요를 느꼈

될 수 있었는지는 1958년 두 명의 수감자가 천 통 이상의 안부

고 언제부터인가 대체복무를 수행하는 병역거부자들은 명단에서

편지를 받았다는 사실로부터 짐작할 수 있다. 1961년에는 처음

제외되었다. 1974년에는 평화수감자의 명예로운 명단의 지속 여

으로 평화수감자의 명예로운 명단(PFP Honour Roll)이 출판되

부에 대한 논쟁이 일어나기도 하였지만 명단의 제작은 오늘날까

었다. 보다 흥미로운 사실은 1963년 처음으로 유고슬라비아의

지도 지속되고 있다.

병역거부자 6명이 명단에 기재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6년에서

-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 홈페이지에서

9년 사이의 구금형을 복역 중이었다. 아마도 이것은 북대서양 지역 밖의 수감자로서는 첫 번째로 기재된 경우일 것이다. 그러

[12·1 평화수감자의 날_러시아]

나 물론 이들 외에도 더 많은 이들이 존재했다. 1년 뒤인 1964 년에는 제 3세계 국가의 평화수감자로서는 처음으로 14년 이상

전통적으로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War Resisters' International,

의 형기를 복역 중인 7명의 파키스탄 수감자들이 기재되었다.

WRI)은 12월 1일 평화수감자의 날(Prisoners' for Peace)을 기

가장 지독했던 냉전 기간 동안에는 처음으로 동독, 알제리, 그리

념했습니다.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의 평화수감자의 날 활동의

스, 스페인, 체코슬로바키아 그리고 소련의 평화수감자들이 기재

역사는 1920년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러나 12월 1일이

되었다. 1983년에는 최초로 헝가리의 병역거부 수감자들에 초점

평화수감자의 날로서 최초로 기념된 것은 1956년의 일입니다.

이 맞춰졌으며 캠페인을 위한 정보들이 함께 제공되었다.

2006년츼평화수감자의 날 초점은 러시아입니다.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16호 35


● 2004년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법률이 도입된 이후 병역거부자들의 상황은 2003년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 보고서와 2005년 QCEA 보고서 ‘유럽의 병역거부권을 ’ 참조해 주세요. ● 러시아 NGO들과 독립적 단체들에 대한 조치는 이러한 그룹들의 활동을 더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 체첸 분쟁은 계속 진행 중이나 언론에서 더 이상 다뤄지지 않고 있다. 우리는 병역거부자들의 상황과 함께 러시아 내부 전쟁과 체첸 자체에 저항하는 활동 또한 살펴볼 것입니다.

♥ 행동들 ● 12월 1일에는 모든 일을 제쳐두고 1시간 동안 적어도 4명의 수감자들에게 엽서를 씁시다. ● 당신이 소속된 평화그룹이나 학급이나 모임에서 수감자들에게 카드 쓰는 시간을 조직해 봅시다. ● 살고 있는 곳 중심가에 가판을 차리거나 거리공연을 하거나 아니면 주목을 받기 좋고 흥미를 끌 수 있는 어떤 행동을 합시다.

♥ 엽서나 편지 보내기 ● 엽서는 항상 봉투에 넣어서 보내세요. ● 봉투에는 답신을 받을 수 있는 이름과 주소를 적어주세요. ● 허물없고 수다스럽게 대해주세요. 사진이나 그림을 보내는 것도 좋습니다. ● 수감자들에게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이 전쟁과 전쟁준비를 중단시킬 것이라 말해주세요. ● 수감자들에게 문제가 될만한 어떤 것도 적어서는 안 됩니다. ● 만약 당신이 수감되어 있는 상황이라면 어떤 것을 받고 싶은지에 대해 생각해 보세요. ● “당신은 정말 용감합니다. 나라면 도저히 그렇게 하지 못했을 거예요.”라는 식으로 편지를 시작하진 마세요. ● 수감자들로부터 답장을 기대하지 마세요. ● 내년엔 당신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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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평화와 인권을 위하여]

다. 그 군 장교가 반드시 그녀에게 복수를 하겠다는 내용으로 그녀가 일하는 회사로 편지를 보냈고, 그녀는 비엔나로 몸을 피

2006년 10월 7일, 러시아의 언론인인 안나 폴리츠코프카야가 모스 크바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 근처에서 살해되었다. 최근 몇 년간 러시아에 있는 언론인들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계속해서 발생하 였는데 이번 안나 폴리츠코프카야 사건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러시아는 지난 15년 동안 언론인들이 전세계를 통틀어 세 번째로 살해를 많이 당한 국가이다. 그나마 극심한 분쟁지역인 이라크

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살해당했을 때, 그녀는 다시금 체첸에서의 인권침해사례들 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었다. 그리고 명백하게도, 푸틴은 바로 이 사건을 “중요하지 않은”(insignificant)것으로 치부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인 뿐만이 아니다

와 알제리를 제외한다면 첫 번째로 언론인의 살해가 많은 나라 가 된다. 언론인 보호 협회(CPJ)의 보고서에 따르면, 1992년부 터 지금까지 42명에 달하는 언론인들이 살해당했다. 대부분의 살인 사건은 청부살인이었으며, 이 사건들 대부분은 러시아 당 국에 의해서 미해결상태로 남아있다.

더 경악스러운 것은 이러한 위협들이 언론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 이 아니라는 점이다. 안나 폴리츠코프카야의 죽음이 있은 지 며 칠이 채 안되어 러시아 당국은 ‘러시아-체첸 친우회라는 ’ 단체 를 폐쇄시켰는데, 그 이유인 즉은, 이 단체가 러시아가 체첸을 상대로 벌이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에 ’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안나 폴리츠코프카야는 러시아 정부에 비판적이긴 했지만-물론 이 사실 자체만으로도 러시아에서는 위험인물로 낙인찍힐만 하다그녀만이 유일한 비판적 언론인은 아니었다. 안나 폴리츠코프카 야는 체첸에서 일어나고 있는 분쟁과 관련하여 러시아 군인들에 의해 자행되는 인권침해사례들, 러시아 내에 있는 체첸인들의 인권침해 사례들을 자신의 작업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를 위해 서 그녀는 푸틴의 양대 핵심권력의 축이라고 할 수 있는 러시아 군대와 보안부대 그리고 체첸에서 벌어지고 있는 ‘테러와의 전 쟁과 ’ 접촉해야만 했다.

내왔기 때문이다. 러시아 당국의 이러한 행위는 자신과 의견을 달리하는 비정부기구들과 시민사회영역의 단체들을 억누르려는 의도로 진행이 되고 있다. 10월 19일자 가디언지의 보도에 따르 면, 몇몇 유명한 세계적 비정부기구들이 러시아에서의 활동을 중단해야만 했는데, 그 이유는 새롭게 개정된 법에 따라 단축된 외국인 등록날짜를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은 그 단체들의 잘못이라기보다는 러시아 관료들의 업무지연이 더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10월 18일 현재 500여개에 달하는 국 제적인 비정부기구들 중에서 91개만이 러시아 정부의 승인을 받았으며 나머지 단체들은 모두 활동을 중지하고 러시아를 떠나

"별로 중요하지 않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안나 폴리츠코프카야가 살해당한 사건에 대해서 침묵하다가 지난 독일 방문 때 기자들의 질문에 못 이겨 말문을 열었다. “그러나, 국가의 정치적 발전에 미치는 그녀의

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들 중 상당수의 비정부기구 들은 잉구셰티아 공화국(옛 소련)에 있는 북부 코카서스 지방에 서 체첸 난민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수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폭력의 시대

영향력은…하찮은 수준이다” 만일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왜 그 녀는 죽임을 당해야만 했는가?

언론인들에 대한 살인사건, 비정부기구 및 시민단체들에 대한 탄압 과 추방은 러시아 내에서 소수자들과 정치적 활동을 하는 사람

안나 폴리츠코프카야는 그녀의 작업 때문에 수 차례에 걸친 협박 과 위협을 받아왔다. 2001년 2월, 러시아의 안보요원들이 그녀

들에 대한 배타적인 폭력이 증가하는 추세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2005년 11월에는 생 페테르부르그에서 파시스트들에 의

를 허가장 없이 체첸에 출입했다는 이유만으로 체첸의 베데노

해 한 명의 아나키스트가 살해당하고 또 한 명의 아나키스트는

거리에서 감금을 시킨 적이 있다. 그녀는 3일동안 구덩이 안에

큰 부상을 당한 일도 있었다. 그리고 러시아 정부가 조지아 시

서 군인들의 사격위협 앞에서 어떠한 음식과 물도 공급받지 못 한 채로 있어야만 했다. 그로부터 7개월 후에는, 민간인 학살죄

에 있는 수백명의 주민들을 강제추방하면서 빚어진 최근의 긴장 들 역시 러시아 내의 폭력의 위협을 높이고 있는 상황이다.

로 기소당한 전적이 있는 군 장교로부터 살해위협을 받기도 했 안드레아스 스펙(Andreas Speck)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16호 37


[러시아의 양심적 병역 거부 : 지난 3년간 실행된 양심적 병역거부법에 대한 소고(溯考)] 군복무기간보다 1.75배가 더 긴 대체복무기간을 포함해서, 국제적

러시아 군 복무 의향이 40% 이하로 떨어졌다고 한다.[3] 그러나

인 기준에는 부합하지 않지만, 양심적 병역거부의 “권리”를 담은

대다수의 젊은이들에게, 병역기피는 양심적 병역거부 같은 법적

법이 러시아에서 2004년 1월 1일 실시되었다.[1]

으로 제공되는 형식이 아니라, 의학적 이유로 면제받기 위해 뇌 물을 사용하거나 혹은 입영연기에 의한 선택의 방법이다. 이는

긴 대체복무기간을 제외하고서, 실제 문제들은 주로 관료적인 신청 과정 때문에 일어난다. 양심적 병역 거부 신청은 소집되기 6개

양심적 병역 거부자의 수치가 러시아군대에 대한 만연한 불만을 반영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월 이전에 제출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많은 잠재적 양심 병역 거부자들은 이러한 기한에 대해서 모르고 있고, 징병위원회는

안드레아스 스펙(Andreas Speck)

종종 잘못되거나 혹은 불충분한 정보를 제공한다. 민주대체시민 복무제를 위한 총 러시아 NGO연합의 사무관인, Sergey

Notes:

Krivenko에 따르면, 양심적 병역 거부의 권리가 종교적 신념에

[1]양심적 병역 거부에 관한 러시아법에 대한 자세한 비평을 원하

따른 병역거부에만 해당된다는 식의 잘못된 혹은 불충분한 정보

시는 분은 [전쟁 저항자 인터내셔널: 러시아 연방: 인권과 군대;

를 고의적으로 제공하는 징집위원회의 관리로부터 잘못된 정보

UN인권위원회 보고서, 2003년 9월]을 참조하세요.

를 받은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징집위원회들

[2] Information provided by Sergey Krivenko, email to WRI, 19

은 양심적 병역거부의 권리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October 2006 [3] A-Infos, 7 March 2006

현재, 양심적 병역 거부 신청이 기한을 넘겼다는 이유로 기각된 사 례가 여러 번 있다. 그 결과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은 강제적으

[학대하는 사람, 학대받는 사람]

로 군복무를 하게된다. 양심적 병역 거부 법의 이러한 부분을 현재 러시아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한 상태다. 또한 징 병위원회(draft board)가 양심적 병역거부 신청자들을 양심적

인권과 러시아 군대

병역 거부 신청자들에 대한 결정권을 부여 받은 유일한 기관인 징병위원회(conscription board)로 양도하지 않고 있는 경우도 있다.

러시아 군대는 적어도 두 가지 인권문제에 직면해 있다. 데도브시 나(dedovshchina)라 불리는 러시아 군대의 신참 병사 곯려주기 와 체첸 혹은 다른 분쟁 지역에서 러시아 군대가 저지른 인권침

종합적으로 양심적 병역 거부에 관한 법이 실시된 이래로, 약

해가 그것이다.

3,500명이 양심적 병역 거부를 신청하고 있다. 현재 몇 명의 신 청자가 받아들여지고, 기각되는지에 대한 통계는 나와 있지 않

데도브시나

지만, 관료주의와 관련한 문제로 러시아의 인권단체에 도움을 요청한 약 100명의 신청자들이 양심적 병역 거부에 관한 그들 의 권리를 대개 인정받고 있다.[2]

1988년 『꼼쏘몰스까야 쁘라브다(Komsomol'skaia Pravda)』의 기 사는 한 신참 병사가 병영 안에서 계속되는 학대를 견디다 못해 우발적으로 본인의 무기를 동료 병사들에게 겨눠 8명을 사망케

러시아의 양심적 병역 거부는 군대 내부의 비참한 상황 그리고 널

한 사건에 대해 묘하사고 있다. 이 사건은 사회적으로 데도브시

리 퍼진 병역기피의 견지에서 보여진다. Levada center(러시아

나에 대한 논쟁을 촉발시켰다. 이러한 데도브시나 관행으로 인

여론조사센터: VCIOM)의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2006년 초,

해 구 소비에트 러시아에는 다소 독특한 현상이 생겨났는데 바 로 군인들의 어머니 운동이 그것이다.

38


“..이 운동은 반군사주의나 평화주의로 구분할 수 없는 것이었다. ...주요한 관심사는 자신의 자식을 보호하는 것이다.” 이 운동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는 많은 반군사주의자들

요구와 증가하는 직업군인화 요구에 고민을 하고 있는 중이다.

에게 쉽지 않은 과제였다. 이 운동은 반군사주의나 평화주의로

그러나 이러한 단계들은 구조적인 변화를 수반하지 않고서는 위

구분할 수 없는 것이었다. 군인어머니회의 많은 활동가들에게

에서 언급했던 문제들을 제거할 수 없을 것이다.

주요한 관심사는 데도브시나로부터 자신의 자식을 보호하는 것 이다. 대부분의 군인어머니회는 데도브시나 문제에 대한 대답으

체첸

로 러시아 군대의 직업군인화를 지지하고 있었다. 체첸은 러시아 군대와 관련된 인권 문제의 또 다른 측면을 보여준 그러나 군인어머니회는 데도브시나에 대한 두려움과 군대 내 많은

다. 군대가 체첸 시민들의 인권을 조직적으로 파괴하고 있는 것

인권침해 때문에 군에 입대하기를 원치 않는 젊은이들에게 실질

이 그것이다. 그리고 점점 이러한 관행들은 이웃나라인 잉구세

적인 지원을 제공하고 데도브시나 문제를 러시아 사회의 의제로

티아(republic Ingushetia)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국제앰네스티

끌어내고 러시아 징병 시스템의 몰락과 군 기피의 만연에 기여

(Amnesty International)는 “체첸에서는 전쟁범죄를 포함한 심

하는 것에 관한 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각한 인권침해가 체첸군과 연방군 모두에 의해 계속적으로 발생 하고 있다. 체첸보안군들은 점점 자의적 구금이나 고문, 그리고

올해 초 잔인한 러시아 징병 현실의 상징이 된 병사 시쵸프

‘실종되고 ’ 있다. 여성들은 체첸보안군과 연방군 모두에게서 강

(Sychyov)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20여 년간의 군인어머니회

간 혹은 강간의 위협을 포함한 성에 근거한 폭력에 고통 받고

의 활동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별로 나아진 것은 없다. 어머

있다. 또한 체첸무력저항그룹들이 시민들에 대한 직접공격을 포

니권리재단(Mothers' Rights Foundation)의 보고서에 의하면

함한 전쟁범죄를 계속적으로 저지르고 있다는 보고도 되고 있다.

“평균적으로 매년 3,000명가량의 군인들이 러시아 군대에서 죽

국제앰네스티는 체첸에서 2005년에 심각한 인권침해로 유죄판

어가고 있다. [...] 군대 내에서 죽은 사람들 중 23%가 사고로

결을 받은 것이 오직 두 개의 사건이라고 알고 있다. 폭력이라

죽었고 16%는 명령에 의해, 15%는 다른 병사들의 공격적인 행

고 주장되는 대부분의 수사는 효과가 없고 매우 적은 케이스만

동으로, 그리고 11%는 병으로 죽었다. 한편 비명횡사한 군인들

이 검찰당국에서 문제가 있다고 여겨져 법정으로 가고 있는 실

중 17%는 무남독녀 외아들이며 군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 중

정이다.”

14%는 장애인이다. 비명횡사한 군인의 부모는 매달 70 달러의 연금을 받을 수 있으나 그 죽음이 자살이나 병에 의한 것이 아

“학대를 포함한 폭력과 불안은 다른 북코카서스공화국(North

니라 판명되더라도 그 정도밖에 받지 못한다. 더욱이 수사를 할

Caucasus republic)들에서도 계속적으로 보고 되어 왔다. 예를

때 종종 이것에 관해 조사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들면 자의적 구금과 고문, “실종”, 그리고 유괴와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2005년 10월 13일 무장한 300명의 사람들이 적어도

대부분의 사건에서 이러한 것들을 고려해야 하는 이유는 비록 병

12명의 시민들의 포함에 1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있던 카바르디

사가 자살을 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매일 매일의 모욕과 끔찍한

노발카르공화국(Kabardino-Balkaria)의 수도인 날칙(Nalchik)과

고문, 희롱을 견디다 못해 자살로 향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

근교 정부 군사시설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죽임을 당했다고 보도

문이다. 베로니카 마르첸코(Veronica Marchenko)에 따르면 작

되었다. 보도에 따르면 기습은 법집행관들에 의한 자의적 구금

년은 보기 드물게 비참한 살인과 수없이 많은 범죄로 특징지을

과 고문, 이슬람 사원의 폐쇄 등 수개월에 걸친 지역 내 이슬람

수 있는 해였다.”

교도에 대한 박해에 대한 대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습 이후에 법집행관들은 다수의 사람들을 감금했다. 보도에 따르면 감금자

러시아 군대는 현재 2008년부터 1년으로 복무기간을 단축하자는

들 중 많은 수가 고문을 당했다고 한다.”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16호 39


2006년 2월과 10월 12일 체첸 시민들의 실종과 죽음에 대해 러시

얼(Memorial), 그리고 몇몇 다른 그룹들)만이 서로서로 단절된 채

아를 상대로 유럽인권위원회(European Court of Human Rights

러시아가 체첸에서 벌이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에 저항하는 약간

ECHR)가 결정을 내리는 동안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 유럽인권

의 활동을 벌이고 있다. 많은 러시아 활동가들이 유럽과 국제기구

위원회 2월 결정에서 위원회는 체첸에서 벌어진 심각한 인권침해

에 희망을 걸고 있으며 체첸에서의 전쟁을 중단할 것을 호소하고

에 관해 최초로 러시아에 책임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러시아가 군

있다. 그러나 이것은 특히 러시아 시민사회에서 전쟁에 관한 대중

사작전에 있어서 불균형한 힘을 사용해왔고 무차별적으로 시민들

적 반대가 존재하지 않는 한 실현될 것 같지 않다.

을 목표로 설정하였으며 시민들의 죽음에 대해 충분하게 수사하는 데 실패 했다는 것이다.

안드레아스 스펙(Andreas Speck)

반전운동?

보다 많은 정보는 - 자율행동 : www.avtonom.org

데도브시나와 체첸에서의 전쟁이 확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러

- 메모리얼 : www.memo.ru

시아에는 반전운동이라 부를만한 흐름이 존재하지 않는다. 몇몇 소

- 군인어머니회 : http://www.ucsmr.ru

그룹들(몇몇 군인어머니회, 자율행동(Autonomous Action), 메모리

<자원활동가 모집광고> 전쟁없는세상과 함께 하고 싶으십니까?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매체편집팀 - 격월간으로 발행되는 소식지 기획에서 편집까지! ☮번역팀 - 여전히 한글자료가 부족한 것이 한국 평화운동의 현실입니다. 넘쳐나는 영어자료들! 당신의 번역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영상팀 - 병역거부 운동과 관련한 영상촬영과 편집활동입니다. 촬영기술, 편집기술 공부도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연락처 peace@withoutwar.org / 02)3147-1201

40


냉소와 트라우마 나동 | 전쟁없는세상 책임활동가 + peace1@jinbo.net

1.

2.

잊을 만하면 다시 쓰는 수감일기다. ‘사람이 그저 도구에 불과한 취급을 받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 요즘 사람들이 하도 ‘재밌다, 재밌다.’ 해서 드라마 <하얀거탑>을

을 때가 많지만 어느 조직이건 그 자체적으로는 자기완결적인

다운 받아 보고 있다. 봤더니 재밌다. 2회까지 봤는데 하루 두

논리를 가지고 있어서 그 느낌까지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만

편씩 다운 받아 볼 작정이다. 재밌는 걸 보면 나는 가만있지

할 때가 있다. 사회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한 항상 도구적

않고 ‘왜 재밌나?’ 분석한다. 병이다.

으로 존재하는 측면이 있다. 문제는 도구적 관계가 일상을 압 도할 때 생긴다. 정치는 그래서 야박하다. 일상이 온통 정치적

드라마에서 보면 캐릭터마다 정치하는 방식이 그대로 들어난다.

인 관계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해보자.

젊고 패기 넘치는 김명민은 무엇이든 거침이 없다. 그러나 점 점 권력관계의 속성을 이해하면서 행동도 노련해진다. 외과 과

정치적이라는 건 기본 권력관계를 생각한다는 이야기다. 내 이야

장으로 퇴직을 앞둔 이정길은 매사 조심스럽게 행동하지만 뒤

기가 힘을 얻을까? 입지를 강화하려면 무슨 행동을 취해야 할

로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인물이다. 끊

까? 윗선에 찍히지 않고 살아남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 관계를

임없이 권력자들에게 줄을 대서 김명민을 몰아내려 한다. 역시

견뎌야 하는 걸까? 어디까지 저항해야 할까, 저항하면 성공할

가장 노회한 인물은 김창완이다. 부원장이라는 권력을 쥐고 있

수 있을까? 구치소 생활 초반에는 항상 이런 생각들을 했었다.

으면서도 절대 드러내놓고 자신의 입장을 강요하지 않는다. 이

그래서 참 피곤했다. 사람들을 대하는 게 괴로웠다. 더러 착한

런 저런 입장을 다 들어주는 척, 자신은 인간적이고 털털한 척

사람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 환경은 끊임없이 사람들을 동화시

하면서 결정적인 순간에 상대방의 결점을 잡아 빠져나가지 못

킨다. 외로움도 즐길 수 있다는 게 불행 중 다행이었다.

하게 해놓은 다음 결정타를 날린다. 여기에 비중이 다른 캐릭 터들이 여럿 가세해서 세상사 돌아가는 복잡 미묘한 이치를 실 감나게 그려낸다.

그렇지만 외면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마음을 주지 않다 뿐이지 일상적으로 너무나 많은 갈등이 존재한다. 병역거부자들이 보 내는 편지를 읽어보면 대개가 그런 이야기다. 사람들 이야기.

‘재밌다는 ’ 건 결국 공감대가 크다는 이야기니까 ‘왜 공감대가 클 까’ 하는 문제로 고민이 이어진다. 왜 크긴. 아주 단순하다. 세

그 가운데 적응하고 견뎌내는 자신의 이야기. 그리고 그 속에 서 자신도 모르게 쌓여가는 세상과 사람에 대한 냉소.

상이 온통 크고 작은 정치판이다. 인간 세상에서 순진하다는 말은 멍청하다는 말과 동의어다. 착하다는 말도 다분히 모욕적 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그 만큼 영리하지 못하면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다.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16호 41


3.

4.

가장 무서운 것은 냉소다.

근래 들어 우울증, 정서불안, 욕구불만, 심리적 내상 등 여러 가지 정신적 질환으로 고통받는 사람을 자주 보게 된다. 이제는 더

얼마 전 책읽기를 함께했던 권인숙 씨가 해준 이야기다. 심리학

이상 특별한 사람 이야기가 아닌 거 같다. 물질적 풍요 속에서

관련 강의를 맡고 있는데 마지막 시간에 트라우마(내상)에 대

도 분명히 심각한 정서적 결핍이 계속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

한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자신의 내면에 남아 있는 가장 커다

런 문제들은 결국 인간관계 속에서 해결책을 모색할 수밖에 없

란 트라우마가 무엇인지 써내는 것으로 마지막을 마무리했다.

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남들과 관계를 맺는 일이 점점 피

그나마 학생들이 속내를 털어놓게 된 것도 한 학기 수업의 결

곤하게만 느껴지고 인간관계에 대해 냉소적이 되기 때문이다.

과라고 했다.

상대가 나를 이해할 수 없을거라 생각하고 반대로 나 역시 상 대를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방어심리는 하루아침에 만들어 진 게 아니라 서서히 누적된 결과물이다. 이걸 벗어던지기 위해

결론이 어떻게 되었을까? 남학생들은 80% 이상이 군대 관련 경험

서는 고통스런 자기 성찰 과정이 필요하다. 우월감, 열등감, 피

을 이야기 했다고 한다. 여학생들은 군대와 같은 압도적 경험이

해의식, 분노, 공포, 자기모멸감 등등. 이런 감정들에 솔직해지

없기 때문에 다소 분산되는 경향은 있었지만 30% 정도가 성폭

고 아파하고 공감하지 못한다면 회복이 힘들다.

력 내지는 유사 성폭력1)의 경험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두 가지 로 놀랍다. 하나, 여성들에게 성폭력의 위협이란 일상적인 공포

요즘 들어 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하는 게 다행

구나. 둘, 남성들에게 군대는 엄청난 상처로 남아 있는데 대다

스럽게 느껴진다. 물론 힘든 이야기를 주고받는 와중에 서로 상

수 남성은 자신의 심리 상태를 반대로 표현하고 있구나. 가령

처받거나 예민해지기도 한다. 가끔은 쉽게 답이 나오지 않고 자

영광으로.

기감정이 앞서다보면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래도 역시 방법은 지난한 대화와 소통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된

안타깝게 나 역시 감옥 관련 경험을 빼놓고는 상처를 이야기할 수

전문적인 연구나 상담 과정이 생긴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

가 없다. 그래서 군대 다녀온 사람들과 쉽게 말은 못하지만 비

다. 80% 이상이 가지고 있는 내상을 사람들이 마음속에 꼭꼭

슷한 종류의 상처를 안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남는 건

감춰두고 있으니 이것도 참 대단한 일이다. 국가라는 괴물이 답

냉소. 그걸 극복할 방법이 별로 없는 현실이다.

을 주지 않는다면 자신들 스스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책읽 기에서 이런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개인적인 치유가 아니라 운동으로서 공론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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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장사 마돈나

젠더 이분법이라는 거대한 상대 선수를 향해 시원한 뒤집기 한판 유정민석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천하장사와 마돈나는 각각 남성과 여성으로 양분된 흑백논리의 젠더 이분법의 사회에서 남성됨, 남성임과 여성됨, 여성임으로

인식하고 인지하는 자에게 반대의 성으로 살것을 요구하며 외 면하는 모습들이 바로 그것이다.

표상되는 대표적 아이콘이다. 영화 속에서 오동구는 전혀 어울 리지 않는 이 둘의 경계를 횡단하며 가로지른다. 즉 자신이 오

동구의 트라우마 내지는 복선으로 설정된 아빠의 포크레인은 동

버랩한 마돈나같은 여성으로 살고 싶은 목적을 위해 씨름부라

구가 맞딱드리게될, 혹은 동구를 억누르게 될 거대한 적을 눈

는 수단을 택하는 그/녀는 MTF(Male-to-Female)트랜스젠더

앞에 두고 있음을 암시한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같기만 하지

라 일컬어지는 젠더의 험난한 바다를 횡단하는 자이다. 수술비

만 그럼에도 우리의 동구는 절망하지 않고 유머감각을 잃지 않

를 마련하기 위해 겁도 없이 씨름판에 들어가는 다소 코믹하고

는다. 당랑거철(螳螂拒轍), 즉 사마귀가 수레를 막는다고 그/녀

비현실적인 설정이기는 하지만 쨌던 동구의 욕망은 때론 좌절

는 이성애자와 남성들이 지배하는 샅바로 목을 조이는 숨막힌

되고 때론 역경에 부딪히지만 차근차근 자신이 생각한 모습을

세상에서 참으로 발칙하고 맹랑하게도 혼자서 그런 포크레인을

향해 질끈 샅바를 동여매고는 한발 한발 발걸음을 내딛는다.

몸으로 막고 서려 하고 있다. 나를 넘어서려면 넘어서봐, 하는 배짱으로 말이다. 유일한 동구의 무기인 몸으로 동구는 우리에

그 과정에서 동구가 싸워야할 상대 선수들은 한둘이 아니다. 자신

게 말하고 있다.

을 배아파 나아준 부모나 괴롭힘을 가하는 친구들, 짝사랑했지 만 ‘헨타이라는 ’ 소리를 들어야했던 담임 교사, 자신의 몸에 대

동구의 생존과 실존에 대한 순수하고 치열한 욕망은 태어난 여남

한 해석과 타인의 해석에 대한 갈등 등등 대부분의 트랜스젠더

만이 고귀한 세상에서는 ‘헨타이가 ’ 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들이 겪어야 하는 수많은 풍파와 난제들이 기다리고 있다. 즉

더러움과 놀림과 조롱과 폭력과 경멸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남성중심주의, 이성애중심주의, 성인중심주의, 가부장제 등 다

마초들이 득실거리는 씨름판을 지나 동구는 안전하게 자신이

른 부류의 사람들에 대해서 체질적으로 싫어하는 이땅의 모든

그리던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마법이 풀린걸까. 그러나 그

사회적 편견과 차별에 대해 그녀는 / 홀로 외로이 씨름판에서

댓가로 인해 무수히 많은 시련과 상실을 겪어야 했다. 젠더의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만 자신을 받아들이고 현

흩날리는 모래판에서 홀로 외로이 지난한 싸움을 해야 하지만

실을 직시해달라는, 이게 진정한 자신의 모습이라고 말하는 메

동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편 선수들을 시원한 뒤집기 한

이크 업을 한 동구의 실존에 대한 요구는 한때 잘나가던 권투

판으로 날려버릴 것이다. 이처럼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는 트랜

선수였으나 지금은 지극히 보잘것없는 락자없는 마초 아빠의

스젠더의 욕망과 대리만족을 잘 대변해주고 있다. ‘뭐가 되고싶

잽, 훅, 어퍼컷 펀치로 되돌아온다. 이 참혹한 장면은 트랜스젠

은게 아니라 그냥 살고싶을 뿐이라고라는 ’ 삶에 대한 단순한

더의 현실을 덧없이 보여준다. 삶에 대한 요구가 어처구니없는

요구를 통해, 동구는 젠더 이분법이라는 거대한 상대 선수를

폭력에 대한 요구로 되돌아오는 현실과 자신을 여성/남성으로

향해 시원한 뒤집기 한판을 해내었다.☮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16호 43


전쟁없는세 상

2006 10대 뉴스

WORLD WITHOUT WAR 1. 국방부 산하 대체복무제도 연구위원회 발족(2006년 4월) 2005년 12월, 국가인권위에서 국회와 국방부에 대체복무도입을 촉구하는 권고안을 발표한 후, 국방부에서는 민관군 합동 대체복무제도 연구 위원회(이하 위원회)를 만들겠다는 발표하였다. 위원회 구성원에 재향군인회 소속 교수가 사민단체 범주로 분류되어 있는가 하면, 병역거 부를 적극적으로 반대해왔던 종교인사가 위원으로 포함되어 있는 등 출발부터 활동의 목표가 미심쩍었던 위원회는 2006년 12월을 기한으 로 하여 대체복무제도 도입의 실효성에 대한 검토를 하겠다고 하였으나, 실제 논의는 지지부진한 것으로 평가된다. 심지어, 지난 10월 제 네바에서 있었던 제88차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 회기에서 한국 정부 대표로 출석한 국방부 관계자가 위원회 활동기간을 2007년 6월이라 고 허위보고를 하기도 했다. 잇달아 나온 유엔 권고안으로 인해 압력을 더욱더 받고 있는 국방부 대체복무연구위원회의 시추가 주목된다.

2. 평택 대추리에 대한 강제집행과 이에 맞선 활동들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던 평택 대추리도두리 ․ 미군기지이전예정부지에, 지난 5월 4일 한국 정부와 국방부가 역사에 오명으로 남을 행정대 집행을 감행하였다. 국가안보를 지킨다는 군인과 경찰들이 국민을 적으로 삼아 작전명령을 수행하였다. 2만 여명이라는 어마어마한 공권 력 앞에서 마을 주민들과 평화활동가들은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공권력의 폭력뿐만 아니라 시위대의 폭력이 한참 이슈화 되면서 비폭력 직접행동의 의의에 대해서 다시 한번 고민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수감자들을 지원해주는 역할을 넘어서는 평화운동단체로서 정체 성을 고민하던 전쟁없는세상 활동가들에게 평택 투쟁은 많은 경험과 고민해볼 여지를 던져주었다. 이후 서울에서 지속적인 촛불문화제와 대책회의에 함께 하면서, 군인과 경찰들이 국가와 상관의 부당한 명령에 거부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해 적극적으로 말할 수 있는 포지션을 만들 수 있었던 것 같다.

3. 기존 병역거부자들의 출소와 새로운 병역거부자들의 잇따른 구속 2006년 한 해에도 자신의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 젊은이들이 계속해서 생겨났고, 감옥에 수감이 되는 안타까운 일이 계속되었다. 김영 진, 오정록, 최재영, 김훈태, 김태훈(뎅), 이용석, 고동주, 김도형, 송인욱, 박철(타랑), 박경수를 비롯하여 수많은 여호와의 증인들이 감옥 에 자발적으로 걸어 들어갔다.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불구속 수사가 이루어지는 경향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김태훈씨가 1심에서 이례적으로 1년 8월을 선고받고 2심에서 원심이 확정되는 유감스러운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문상현씨의 경우에는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 는 옥중단식을 하였다는 이유만으로 가석방 심사에서 의도적으로 배제되기도 하였다. 어쨌든 시간은 흐르고 흘러서 1년 3개월여의 수감생 활을 끝낸 기존의 병역거부자들은 줄줄이 출소를 하기도 했다. 수감생활을 잘 마치고(혹은 견디고)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온 이원표, 염창 근, 임재성, 유호근, 조정의민, 이승규, 최진에게 격려와 위로와 축하의 인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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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WRI 세미나(7/23~27) 지난 여름, 병역거부운동의 꾸준한 국제연대단체인 WRI가 주관하는 국제회의가 독일에서 열렸다. 4년에 한 번씩 열리는 큰 회의여서 작년 한국에서 열린 국제회의보다 많은 활동가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였다. 회의 주제는 “비폭력의 세계화”이었고, 이를 주제로 많은 세부적 인 세션이 마련이 되었다. 당시에 여건이 가능했던 활동가 6명이 함께 그 회의에 참석하여 각각 “살상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 세션과 “전쟁수혜자들” 세션에 참여하였다. 한국의 병역거부운동 경과를 보고하고 이에 대한 조언을 듣기도 하였고, 해외에서 전쟁수혜자 기업 들을 상대로 어떻게 투쟁을 전개하는 지에 대한 생생한 경험담도 들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국제회의를 전후하여 근 두 달에 걸쳐 자전거 를 타고 여행하면서 평화의 감수성을 듬뿍 만끽하고 돌아올 수 있었다.

5. 영상팀 활동시작! 전쟁없는세상 책임활동가 6명 중 2명은 수감되고 나머지 3명은 WRI 국제회의 참석을 핑계로 사무실을 비워버린 절박한(!) 상황에서 정은, 여옥, 육구가 전쟁없는세상에서 새롭게 활동을 시작하여 사무실의 분위기를 쇄신하는 데에 큰 몫을 하였다. 이 세 명에 조은과 겸, 효웅이 함께 영상팀 활동을 이끌어 나가면서 영상 스터디, 병역거부자 인터뷰, 수사 및 재판 과정 취재 등을 수행하였다. 영상팀의 활발한 활동 덕분에 사람들에게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는 방식이 개발될 수 있었고, 12월 2일 있었던 평화수감자의 날 후속 행사에서 병역거부 자들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 상영되기도 하였다. 지금까지 전쟁없는세상 활동의 모범을 보여준 영상팀이 2007년에도 꾸준히 활동하여서 좋은 성과가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6. 평화주의자 책읽기 활동 시작! 한 동안 주춤했던 “평화주의자들의 행복한 책읽기 모임”(이하 책읽기 모임)이 나동과 여타 활동가들의 노력으로 부활하였다. 책읽기 모임은 수감중이거나 출소한 병역거부자, 평화활동가 이외에도 평화를 화두로 고민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여 전쟁과 평화 그리고 폭력 등에 대한 생각과 수다를 나누는 자리이다. 2006년에는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2”로 시작하여 김재명의 “나는 평화를 기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권인숙의 “대한민국은 군대다”까지 함께 읽고 수감된 병역거부자들이 보내온 서평과 바깥에 있는 사람들의 서평들을 가지고 자유 롭게 수다를 떠는 자리가 되었다. 특히나 책읽기 모임에는 한홍구 교수가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주어서 수감된 병역거부자들에게 책읽기 모임에서 정해진 책들을 넣어주고 서평을 통해 이들과 소통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책읽기 모임이 기사화 되고 외부에 더 알려지게 되면서 앞으로 꾸준히 예정된 책읽기 모임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지고 있다. 책읽기 모임에 관심있는 분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를 찾아가보시길 바란다. (http://www.withoutwar.org/happybook)

7. 대체복무 입법 활동과 국회소위 재편성 2006년 4월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법률안심사소위원회에서 2004년에 발의된 대체복무법안에 대한 심사가 있었다. 이에 맞추어 연대회의에서 는 3월부터 한 달여에 걸쳐서 인사동에 나가서 국회의원들에게 엽서보내기 캠페인을 진행하였다. 국방부의 대체복무제도 연구위원회의 발족 에 맞추어 조속한 대체복무도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국회에서 진행하기도 하였지만, 많은 사람들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대체복무법안 은 흐지부지 다음 회기로 넘어가게 되었다. 한편, 그 동안 대체복무법안을 발의하고 이를 지원해주던 국회 국방위 소속의 임종인 의원과 노 회찬 의원이 9월부터 시작된 하반기 국회에서 소속 상임위원회를 법제사법위원회로 옮김에 따라 남은 17대 국회에서 대체복무입법안이 통과 될 가능성은 더 줄어든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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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자유권규약 위원회 대한민국정부에 권고안 제출 2006년 11월 2일,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UN Human Rights Committee, 이하 자유권위원회)에서 “한국정부에 대한 유엔 자유권 규약 위원 회의 최종견해 및 권고”를 발표하였다. 10월 말에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자유권위원회 회기 동안에 한국 정부가 제출한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이하 자유권 규약) 이행 보고서에 대한 심의가 진행되었고, 각 부문에 대한 최종견해와 권고를 발표하게 되었다. 이 중 한국의 병역거부와 관련하여 자유권위원회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이 개인이 갖는 천부적인 인권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였고, 계속해서 병역거부자들이 처벌을 받고 출소 이후에도 불이익을 받으며 살아가야만 하는 현실에 대해 한국정부가 적극적으로 시정을 할 것을 지적하였 다.

9. 개인통보 보상결정 한국 정부가 제출한 자유권 규약 이행에 관한 3차 보고서에 대한 심의 및 권고가 이루어진 자유권규약위원회 제88차 회기에서 2004년 10월에 연대회의와 민변이 함께 제출한 개인청원에 대한 심사가 함께 이루어져서 한국정부는 병역거부로 수감생활을 마친 윤여범, 최명진씨에 대한 보상을 할 것을 권고 받았다. 11월 초에 병역거부권을 포함하여 한국 내 전반적인 자유권에 관한 권고가 나온 데에 이어서, 12월 초에 개인 통보를 신청한 병역거부자(여호와의 증인)들에 대한 구제조치가 내려짐으로써 한국 정부와 국방부, 그리고 국회는 더 이상 대체복무도입을 거부할 수 있는 입지가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개인통보 결정을 계기로 언론에서는 다시금 병역거부문제에 대해서 다루었으며, 12월 22일에 는 국회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 언제까지 감옥으로 보낼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회가 열리기도 했다. 연대회의에서는 이번 결정을 계기로 한때 중단되었던 작업을 재개하여, 그동안 대법원까지 다녀온 병역거부자들의 케이스들을 유엔으로 보내고 개인통보를 계속해서 신청할 예정 이다. 한국정부와 국회가 하루빨리 대체복무제에 대한 결단을 내려서 ‘한국인 최초 UN 사무총장 배출에 ’ 걸맞은 인권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해본다.

10. 2006년 평화수감자의 날 & 면회 투어 2003년부터 한국에서 시작한 평화수감자의 날 행사가 2006년 12월 1일에도 어김없이 열렸다. 평화수감자의 날은 WRI(전쟁저항자 인터내셔널) 에서 해마다 특정 지역의 이슈를 선정하고 평화를 위해 비폭력직접행동을 벌이다가 수감된 사람들을 기념하는 날로써, 2006년 평화수감자의 날 초점은 러시아의 병역거부자들이었다. 평화수감자의 날을 맞추어 11월 한 달 동안 전국에 수감된 병역거부자들을 만나는 면회투어를 진행 했으며, 당일 오전에는 의정부교도소와 영등포구치소를 방문하여 그 곳에 수감된 병역거부자들을 만났다. 오후에는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체 첸에 대한 인권탄압과 병역거부자들의 권리를 보장해 줄 것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펼치기도 하였다. 이 날 저녁에는 여의도 국회 앞에서 간 단한 촛불집회를 가진 다음 영등포 교도소까지 자전거를 타고 행진을 진행하였다. 선전물과 함께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영등포 교도소에 도착 한 참가자들은 교도소 정문 앞에서 양심수가 석방되기를 기원하면서 흥겹게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면서 즐거운 축제의 자리를 가졌다. 내년 평화수감자의 날 즈음에는 더 이상 한국에서 수감되는 병역거부자들이 없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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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두근반새근반’ 하신 분 들을 위한 ‘평화주의자의 행복한 책읽기’ 접근하기 간단정리? (http://withoutwar.org/happybook) 1. 구성인원 : 수감되어있거나 출소한 병역 거부자, 평화활동가 뿐만 아니라 평화주의를 지지하거나 관심이 있으신 분 누구나 참여 가능.(고 로 이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가능합니다!) 2. 참여방법 ① 위의 홈페이지 주소로 들어가거나, 전쟁 없는 세상 홈페이지 메인에 평화주의자의 책읽기 모임 배너를 클릭을 한다. ② ‘평화주의자의 책읽기’ 게시판에서 다음 책읽기 모임 때 읽을 책을 확인한다 예) 어머. 다음 평화주의자의 행복한 책읽기모임은 ‘페미니즘의 도전이잖아 ’ ?( 6*씨의사례) ③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거나 서점에서 책을 구입하거나, 개인 재량 것 구한다. ④ 책을 읽는다. 시간이 된다면 한번씩 게시판을 들려 수감 중인 병역 거부자가 보낸 서평을 읽어본다. 서평을 다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더 남는다면 서평을 직접 써보는 것도 좋은 방법! (이 모든 것을 다 하시고 오신다면 참 좋지만, 시간관계상 전부 못하셨다고 너무 가슴 아파마시고, 일부분을 하시고 다음단계로 넘어가는 것도 참 좋은 방법.) ⑤ 평화주의자의 책읽기 모임 날짜를 잡는다는 글이 올라오면 가능한 날짜를 남기고 최종적으로 잡힌 날. 당일 ‘아무런’ 부담 없이 온다! ⑥ 함께 ‘즐거운’ 토론을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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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동+재정보고 | 전쟁없는세상 팀별활동: 팀별활동은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 가능합니다.

전쟁없는세상 이렇게 살았어요~

: 매체편집팀은 소식지를 편집회의를 통해 기획/제작하고 있습니다. 17호 소식지 제작을 함께할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 평화주의자들의 책읽기 다음 책은 정희진 씨의 ‘페미니즘의 도전입니다 ’ .

전쟁없는세상 소식정리와 굵직한 활동보고입니다. 활동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지면관계상 안타깝게도 생락 하도록 하겠습니다. 나열식인 점 사과드립니다.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 운영실에서 확인하세요~ ^ ^

: 해외자료번역팀 함께 하시고 싶으신 분, 제안거리가 있으신 분들은 홈페이지 운영실 -> 팁별게시판 -> 해외자료번역팀 게시판을 참고하시거나 사무실로 연락주세요~ : 수감자지원팀은 수감된 병역거부자들이 감옥 안에서도 밖과 소통할 수 있도록 개인요 청물과 회의록 및 편지를 담은 우편물을 정기적으로 발송하고 있습니다. 수감자지원팀에 관심이 있으신 분은 홈페이지 운영실->팀별게시판->수감자지원팀 게시판을 참고하시 기 바랍니다. 또는 날맹에게 연락주세요~

>>전쟁없는세상 재정보고 (2006년 9월 24일 ~ 2007년 2월 5일) <총괄> 총 수입 합계 : 6,763,413 총 지출 합계 : 3,660,300 사무실 재정 잔액 : 4,833,910

<특이사항> 1.CGA로부터 네차례에 걸쳐 총 700,000원 채권 상환 받았음. 2.평화연대와 피자매연대에 각각 350,000원씩 채무 상환했음.

<CMS 후원 수입 월별 현황> 9월 CMS 후원금 수입 : 212,900 10월 CMS 후원금 수입 : 261,800 11월 CMS 후원금 수입 : 276,690 12월 CMS 후원금 수입 : 320,700 1월 CMS 후원금 수입 : 389,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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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고동울림에서 2,000,000원 후원받음. 4. 전쟁없는세상 책임활동가 이용석(현재 수원구치소 수감 중의 ) 벌금 납부를 위 한 후원금 수입 1,235,000원 들어옴.(2월 5일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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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진 : 가석방으로 출소 최진씨가 2006년 9월 29일 청송교도소에서 출소했습니다.

:: 이승규 : 가석방으로 출소 이승규씨가 9월 29일 김천교도에서 출소했습니다.

:: 문상현 : 만기 출소 문상현씨가 1월 15일 청주교도소에서 만기출소했습니다.

:: 송인욱 : 11월 23일 구속, 영등포구치소 수감 2006.11.14 1심 재판(서울서부지법 407호) 2006.11.23 1심 선고공판, 1년6월 선고, 법정구속 현재 영등포구치소에 수감 중입니다.

:: 경수 : 12월 14일 구속, 성동구치소 수감 2006.09.27 1차 검찰조사 / 2006.09.29 2차 검찰조사 / 2006.11.20 1심 재판(동부지방법원, 2시), 1년6월 선고 2006.12.14 법원에 나가서 구속 후 성동구치소로 이송

:: 타랑 : 11월 7일 구속, 영등포 구치소 수감 2006.10.26 1심 재판(서부지법 304호) / 2006.11.07 1심 선고공판, 법정구속 현재 영등포구치소에 수감중입니다.

:: 이용석 평택관련 재판진행중. 2월 23일 재판 예정.(수원법원) 현재 수원구치소에 수감중입니다.

:: 수감된 병역거부자들의 주소 김훈태 : 충남 논산시 성동우체국 사서함 1호 370번 (320-940) - 논산구치지소 이용석 :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동수원우체국 사서함 17호 316번 (442-600) - 수원구치소 김영진 :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우체국 사서함 99호 1723번(480-700) - 의정부교도소 김태훈 : 전북 군산우체국 사서함 10호 1215번 (573-600) - 군산교도소 고동주 : 서울시 금천우체국 사서함 164호 2437번 (153-600) - 영등포구치소 오정록 : 충남 서산시 성연우체국 사서함 1호 103번 (356-851) - 서산구치지소 김도형 : 서울시 금천우체국 사서함 164호 2479번 (153-600) - 영등포구치소 최재영 : 경상남도 진주시 진주우체국 사서함 68호 1204번(660-600) - 진주교도소 박철(타랑): 서울시 금천우체국 사서함 164호 2426번 (153-600) - 영등포구치소 송인욱 : 서울시 금천우체국 사서함 164호 2616번 (153-600) - 영등포구치소 박경수 : 서울시 송파우체국 사서함 177호 1974번 (138-709) - 성동구치소

서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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