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OUTWAR Newsletter No.15 CONTENTS World
Editorial
에디토리얼 1
소설이 쓰고 싶다
CO letters
병역거부자의 편지
노동, 기도, 사랑
3
저는 잘 지내요
5
다시 도시의 공기를 맡으며
7
CO note
병역거부자 활동수기 9
새장과 새
Focus
시선집중
박노자, 문승숙 씨와 함께한 책읽기
11
낸 몸에 각인된 국가주의
15
가톨릭 신학생 설문조사 결과 보고
19
Special
기획기사
굿바이 예비군
21
민방위,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25
군가산점 논의 부활에 부쳐
31
Essay
평화에세이
2007 평화캠프를 다녀와서
37
사회운동포럼 참가후기
40
아프간 피랍사태와 언론보도
44
Series
기획연재 48
채식이야기, 그 두번째
Translation
번역 53
반야심경
Report
활동재정보고
전쟁없는세상 이렇게 살았어요~!
60
Editorial
소설이 쓰고 싶다 나동 | 전쟁없는세상 책임활동가 + peace1@jinbo.net
산업혁명 시대 런던이 이럴까 생각했다.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책을 통해 접한 런던은 일 년 내내 구름이 끼어있는 우중충한 이미지다. 여기에 산업혁명의 어두운 기운이 겹쳐진다. 생각만 해도 뇌에 스모그가 끼는 기 분이다. 21세기 디스토피아. 산업혁명 시대 런던을 오늘 서울에서 만나는 느낌. 연일 예고 없이 내리는 비와 한 번도 밝은 얼굴을 내밀지 않는 하늘과 밤마다 계속되는 열대야로 나는 여 름 내내 악몽 속에서 헤맸다. 꿈을 꾸듯 몽롱한 일상은 현실과 꿈의 경계를 헤맸다. 늘 꿈을 꿨다. 일어나면 지워지는 꿈. 그리고 종일 공사장에서 들리는 굉음으로 정신병에 걸릴 지경이었다. 쇠를 던지고 자르고 두드리 고. 집 밖으로 연결된 구명이란 구멍은 죄 막아놔도 그 소리는 사방에서 들려온다. 내 집은 고대 후문 쪽에 위치한다. 어릴 적 다녔던 초등학교와 인접해 있어 방과 후 자주 놀던 곳이었다. 그때 여기는 공터가 많았다. 지금은 하숙생들을 받으려고 빌라가 줄지어 서 있다. 아파트도 꽤 많이 들어 서 있다. 집값은 오르고 동네는 사시사철 공사 중이다. 지겹다. 지겹다. 나는 여름 내내 이 말만 내뱉었다. 시끄 러운 굉음을 법적으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집을 짓는 것은 합법이다. 소음은 견뎌야 한다. 그래서 그랬나? 아마도 그래서 그랬다. 여름이어서. 파란 하늘이 안 보여서. 밤마다 너무 더워서.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안 가서. 공사장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소리가 짜증이 나서. 밤에 누나 동생이랑 술을 먹는데 조금 신이 났다. 그래서 시끄러웠는지 주인집에서 올라왔다. 거기까진 좋 았는데 정색을 하면서 왜 이렇게 시끄럽냐고 화를 낸다. 공사 중인 건물은 주인집 소유다. 그냥 나오는 대로 질러버렸다. ‘공사장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소리는 안 들리세요?’ 주인집은 2층, 우리 집은 3층이다. 아래층에 울린다고 옥상에 올라가 마늘을 빻는 아빠를 보면 화가 난다. 어차피 또 계약기간이 끝나면 올라간 전세금을 감당하지 못해 이사 가야 할 집. 여름 내내 내 일상에 평화는 없었다. 반성은 하지 않는다. 다만 무엇이 이 악순환을 끝내줄지 생각한다. 현명해져야 한다. 문득, 소설이 쓰고 싶다. ☮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18호
1
노동, 기도, 사랑 고동주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 2007년 9월말 출소 예정.(현재 영등포교도소 수감 중)
구속되기 전에 수감생활을 '수행'이라 생각하고 잘 다녀오라는 이야기를 참 많이 들었다. 나 역시 1년 2개 월 간의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지 말고 무언가 얻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 머릿 속에는 감 옥에서 삶의 지혜를 끌어올린 신영복, 황대권 같은 선생님들이 떠올랐다. 나도 그분들처럼 책도 많이 보고 양 식을 많이 쌓아오자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더욱이 나는 그동안 책을 많이 읽지 않았다는 열등감을 갖고 있었 다. 그러나 열등감에서 시작한 것이라 그런지 이 안에서의 노력이 제대로 이루어지기가 힘들었고 기쁘지도 않 았다. 이곳에서 '독서지도 프로그램'에 참가했는데 선생님 한 분이 신영복 선생님이나 황대권 선생님 같은 분들은 감옥과 같이 열악한 환경에서도 생명을 찾아내고, 지혜를 길어올렸다고 했다. 그러자 같이 이야기를 듣던 재소 자 한 분이 "그 분들은 오랫동안 독거 생활을 하고 책을 많이 보면서 생각을 할 여유가 있지 않았나요? 풀도 기를 수 있고." 내 생각도 꼭 그랬다. 그래서 취장에 처음 출역을 나갈 때는 몸이 힘든 것도 힘든 것이지만, 개인 시간의 부족이 너무나 싫었다. 사람들이 '수행'하라고 넣어준 책은 무지 많은데, 나는 일하고 들어오면 누 워서 티비 좀 보다가 잠들기 바쁘니... 게다가 책을 좀 볼라치면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 내게는 모두 방해꾼 일 뿐이었다. 하지만 황대권 선생님이 책만 파고 풀과 대화하지 않았다면 야생초들의 존재가치를 발견할 수 있었을까? 도형씨도 일과 공부는 분리될 수 없다는 충고를 내게 해 주었다.(정확히는 아니지만 나는 이렇게 이해한다) 그 래도 나는 뭘 좀 알아야하지 않겠나 하며, 공부에 중심을 더 두고 싶었다. 과소로 전업하면서 개인 시간은 더 늘었다. 노동강도도 훨씬 줄어들었다. 그래서 책도 더 많이 볼 수 있게 되었다. ' 그래서 뭐? 뭐가 나아진거지? 평화로운가? 내가 이웃을 더 사랑하고 있는가?' 근본적인 질문들이 매 일 나를 싸고 돌았다. 일이 없는 시간에는 지하 휴게실(이곳에서 책도 보고, 밥도 먹고, 몸도 씻는다)에서 쉬 면서 책을 본다. 그러다가 1층에서 직원이 부르면 즉각 대답 후 올라가야 하는데, 슬슬 눈치를 볼 때가 있다. 책의 노예가 되어있는 것이다! 평화로 가는 길은 없고 평화가 곧 길이라는데, 평화로 가는 길을 찾겠다고 책을 보면서 정작 평화를 살지 않는 느낌이다. 이곳에서 뭔가 얻어가겠다는 마음, 평화를 찾아보겠다는 마음, 일단 내려놓고 이 안에서 즐겁게, 서로 위해 주고 관심 가지며, 평화롭게 지내야겠다. 지금까지는 같이 지내는 사람들에게 관심도 크게 없었다. 이래서는 책을 통해 많은 지식을 쌓은들 뭐가 좋을까 하는 생각이 이제야 조금씩 든다. 노동과 기도와 사랑하기... 그러면서 공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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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식 교수 신간, <평화의 얼굴> 오프모임
2007년 10월 2일(화요일) 저녁 7시, 장소는 추후 공지 www.withoutwar.org/happybook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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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잘 지내요 정재훈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 현재 영등포구치소 수감 중
안녕들 하신가요? 하하하,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밥 얘기를 먼저 하고 싶네요. 크으~! 여기는 밥이 아주 맛있어요. "오늘은 뭐지?" 하면서 눈을 반짝거리면서 아침, 점심, 저녁 메뉴를 보는 게 하루 일과일 정도로요. 깻잎양념무침, 상추쌈, 김자반볶음, 야채샐러드(제길! 7월 식단에는 빠졌습니다..), 여 기서 파는 깐마늘 등등등. 보리밥도 달구요. 거기다가 여기서 파는 얼마 안되는 재료로 만드는 징역 요리들은 또 어찌나 맛있는지.. (훈제닭이랑 소세지는 거의 모든 요리에 들어가지만) 방이나 출역장에서 만들어 먹지요. 하하하. 음식 찬사를 늘어놓다보니 여기 온 지 어느덧 두 달이 가까워졌네요. 여기서의 시간은 일정하고 빠른 리듬으로 햄버거 만들 듯 딱!딱!딱!딱! 갑니다. 딱! 하고 형광등이 켜지면서 하루가 시작해서 딱! 하고 주황색 전구가 켜지고(형광등은 꺼지구요) 하루 일과가 끝나요. 뭐랄까, 지하철 2호선 같은 일과죠. 일정한 리듬. 딱! 딱! 딱! 이런 미친 반복보다 저는 다른 걸 말하고 싶어요. 그러니까 이런 거, 먼지들이 햇빛의 면을 지나면서 반짝반짝 떠다니고, 아! 하고 담담한 미결방 아저씨의 외침, 반찬으로 온 상추에 붙어있던 달팽이의 그 우아하고 경이로운 리듬, 매일 꾸는 꿈들, 나가는 날을 기다 리는 설렘과 짜증, 접견실 들어가기 전 떨리는 마음, 좋아하는 사람으로부터 온 편지에 적힌 그 이름. 감옥에 오기 전엔 술 못먹고 담배 못피는거 힘들 줄 알았는데 하나도 안 힘들어요. 하하, 그러고보면 여긴 참 이상해요. 사람들은 관리 대상이고, 천장에 붙은 흐리멍텅한 눈은 한 곳을 계속 보고, 시간이 되면 누군가 밥을 가져 다주고, 아침 저녁으로 인원체크 받고, 밤에도 불을 끌 수 없고, 온통 플라스틱이고, 혼자 걸어다닐 수 없고. 정신병원이랑 참 비슷해요.(아, 전 한달 정도 일한 적이 있지요) 그런데도 이 이상한 곳에서 저는 잘 지내요. 하하하^^ 어?! 에잇, 이 글을 통해 하고싶었던 얘기는 "감옥 참 지낼만한 곳입니다"였는데.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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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힘든 건 한 가지 뿐이에요. 보고싶은 이에게 달려가고 싶은 마음. 이름을 외치면서 달려가고 싶은 마 음. 움직이지 않는 듯 느으으으으리이게에 우아하게 움직이고 있는 달팽이처럼 저는 달리고 있는지도 모르겠어 요. 그때까지 많이 웃고 맛난거 많이 먹고 있으세요! ☮
가슴이 ‘두근반새근반’ 하신 분들을 위한 ‘평화주의자의 행복한 책읽기’ 접근하기 간단정리? (http://withoutwar.org/happybook)
1. 구성인원 : 수감되어있거나 출소한 병역 거부자, 평화활동가 뿐만 아니라 평화주의를 지지하거나 관심이 있으신 분 누구나 참여 가능.(고로 이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가능합니다!) 2. 참여방법 ① 위의 홈페이지 주소로 들어가거나, 전쟁 없는 세상 홈페이지 메인에 평화주의자의 책읽기 모임 배너를 클릭을 한 다. ② ‘평화주의자의 책읽기’ 게시판에서 다음 책읽기 모임 때 읽을 책을 확인한다 예) 어머. 다음 평화주의자의 행복한 책읽기모임은 ‘페미니즘의 도전이잖아 ’ ?( 6*씨의사례) ③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거나 서점에서 책을 구입하거나, 개인 재량 것 구한다. ④ 책을 읽는다. 시간이 된다면 한번씩 게시판을 들려 수감 중인 병역 거부자가 보낸 서평을 읽어본다. 서평을 다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더 남는다면 서평을 직접 써보는 것도 좋은 방법! (이 모든 것을 다 하시고 오신다면 참 좋지만, 시간관계상 전부 못하셨다고 너무 가슴 아파마시고, 일부분을 하시고 다음단계로 넘어가는 것도 참 좋은 방법.) ⑤ 평화주의자의 책읽기 모임 날짜를 잡는다는 글이 올라오면 가능한 날짜를 남기고 최종적으로 잡힌 날. 당일 ‘아무런’ 부담 없이 온다! ⑥ 함께 ‘즐거운’ 토론을 나눈다.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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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도시의 공기를 맡으며 김영진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 현재 출소 후 복학
다시 도시의 공기를 마시며 교도소를 나오자마자 나를 환영해주던 가족들과 동지들의 모습은 지워지기 쉬운 것이 아니다. 그게 어제 같았는데, 벌써 두 달이 넘었다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뭐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출소 후 며칠 동안 시내를 배회했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그동안 뭐가 달라졌을까. 아니면 내가 달라졌을까.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냥 실컷 배회하고 싶은 내 마음과 달리 몸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안에서 생긴 공황장애 때문인지 사람이 많 은 곳을 가면 호흡이 거칠어졌다. 감옥을 가기 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거리를 피해 다니는 경향이 있었 는데, 이제는 단지 그런 경향 때문이 아니라 내 몸 때문에 그런 곳을 피해 다닌다.
답변되지 못한 물음 안 좋아진 몸을 생각할 때마다, 아니 내가 내 몸을 느낄 때마다 내가 결정한 행동에 대해 다시 곱씹어본 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는지. 그런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질 때 나는 그것에 대한 답변 앞에 망설여진다. 나 의 행동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과는 다른 상황이 벌어진다. 다른 사람들에겐 나의 행동에 대해 설명할 ‘대사’가 준비되어 있는데, 나 스스로에겐 그것이 지금도 물음으로 남아있다. 평화라는 것, 사회주의 라는 것, 지금 내가 있는 곳이 나에게 강제하는 모든 것에 대한 물음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 안에서 기관지에 편지를 썼던 것은 일종의 의무감 때문이었다. 글에 대한 충분한 사유가 전제되지 않은 상황에서 나는 담 밖과의 끈을 유지하고 싶은 욕망에 펜을 들고 편지지에 글을 채웠다. 글의 내용보다는 글을 쓴다는 것에, 그 글쓰기라는 행위에 내가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안의 글들은 일종의 당위성의 글들이 많았다. 나의 실천에 대한 부연이고, ‘변명’이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평화라는 것, 사회주의라는 것, 지금 내가 있는 곳이 나에게 강제하는 모든 것에 대한 진지한 물음은 이제야 시작되는 것이다. 내가 했던 행동 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한 것이다.
나의 병역거부 병역거부는 일종의 부적응적 행위이다. 적응에 대한 거부 행위이다. 동일성에 대한 거부행위이다. 자본주 의가, 혹은 자본주의와 근대성이 극대화시킨 신체에 대한 훈육을 거부한 행위다. 물론 이것은 전지구적 자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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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에 대한 거부라 말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한국적 자본주의에 대 한 적극적 행동이다. 그래서 그것은 부정적인 의미인 ‘아니다’로 해 석되어선 안된다. 오히려 부정적으로 표현된 긍정적인 행위로 해석 되어야 할 것이다. 집단적인 것과의 소통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주 체의 내적 행위로서의 창조적 실천인 것이다. 이것은 여러 표현으로 재등장한다. 법적 영역 안에서 법을 재구성하기 위한 실천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것보다 더 나아간 기존의 법의 권력에 대한 도전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는 실정법에 대한 저항뿐만 아니라 기존의 도 덕에 대한 저항의 모습으로도 등장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여호와의 증인을 제외한 병역거부자들이 지극히 소수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인구에 비추어볼 때 무시해도 좋을 만큼 적은 소수임에 불구하고, 병역거부자들이 법정에서 진술했던 그들의 이유는 그 무엇보다 다 양하다. 이들은 양적으로 소수지만, 이미 질적으로 충분히, 아니 충 만하게 다수이다. 그 중 나의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지체 없이 이런 행동이 이 국가를 진보시키거나 이 사회의 외연을 넓히고자 하는 의미에서 해 석되기를 반대한다. 그런 관점은 언제나 지배층들이 가지는 시혜의 관점이었다. 그들은 그들이 원하지 않았지 만, 저항적 주체들이 만들어 놓은 것들을 늘 자신의 공인 것처럼 떠들곤 한다. 그들은 그들이 ‘경영하는 상 점’이 고객의 고충을 충분히 반영하여 더 양질의 서비스가 제공되는 곳인 것처럼 저항적 주체를 고객으로 만 들어 왔다. 그러기에 우리는 더 이상 고객이길 거부해야 하고, 국민이라는 고객이기를 거부한다. 병역거부는 그런 방식 중에 하나인 것이다. 다른 병역거부자들에게 나의 생각이 공유될지 모르겠지만 나의 병역거부는 그렇게 존재한다. 이는 내가 사회주의를 이해하는 방식과 다르지 않았고, 내가 병역거부를 하면서 사회주의를 내세웠던 이유다.
다시 반복되는 일상 어쨌든 다시 돌아왔다. 안에서 그렇게 찾던 친구들과 동지들이 이제는 옆에 있다. 그런데 이들들은 별로 반가워하지 않는 것 같다. 환영식 한답시고 술집에 들어가면 역시나 자기 이야기 늘어놓기 바쁘다. 감옥에 있 을 때는 통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 포기를 하니 그렇게 실망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좀 상황이 다르지 않은가. 소통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주위에 있다. 그런데 거기까지다. 그냥 주위에 있을 뿐 소통은 하 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구속되기 전에 상황을 기억력이 좋지 않은 내 머릿속에 다시 복원해 보았다. 그런데 그때도 지금과 비슷했던 것 같다. 변한 것 같으면서도 전혀 변하지 않는, 이 동네의 일상 속으로 다시 돌아 왔 다. ☮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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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과 새 김훈태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 2007년 7월말 출소
연일 비가 내리더니 잠깐 그친 듯합니다. 늘 하늘 뒤덮던 구름이 물러난 자리에 말간 하늘이 푸르릅니다. 가을입니다. 작년 이맘때 그 안에서 썼던 일기에 이런 구절이 있더군요. “추워서 이불 뒤집어쓰고 온수통 끌 어안고 있다. 바람이 차다. 수돗물보다 받아놓은 물이 더 차갑다.” 찬물로 샤워하기가 점점 두려워지는 계절 입니다. 열대야의 밤이 지나서 행복하지만 냉방 없는 겨울을 대비해야 하는 마음에 짧은 가을이 마냥 즐겁지만 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징역엔 봄, 가을이 없잖아요. 게다가 추석 연휴가 기다리고 있지요. 긴 연휴가 전혀 반갑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운동을 나가지 못하는 데다 온종일 누워서 TV만 봐야 하기에 곤혹스러웠지요. 잘 이겨내시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출소한 지도 한 달이 훌쩍 넘어갔네요. 그 동안 나는 행복했는가, 하고 자문해 봅니다. 떠오르는 이미 지는 새장 밖으로 나온 새의 모습입니다. 그토록 고대하던 자유를 얻었지만 감히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는 이 유는 무얼까? 한동안 기력이 없어 고생했습니다. 특별히 어디가 아픈 건 아닌데 기운이 없고 무기력해져서 괴 로웠지요. 나름대로 운동을 꾸준히 해서 괜찮을 거라 생각했지만 오산이었습니다. 꽉 짜인 수감 생활에서 벗어 난 몸은 제멋대로 굴었습니다. 그냥 몸의 요구에 순순히 응했다면 괜찮았을 텐데 세상 일이 또 그렇지 않잖아 요. 결국은 이도 저도 아니게 지냈던 것 같습니다. 아직 인사드리지 못한 분도 많고 체력이 충분히 회복되지도 못했습니다. 스스로 바보 같다는 생각을 하다가 그냥 이런 게 적응 과정인가 보다, 하고 여기기로 했습니다. 제 경우엔 하던 일을 계속 할 수 없으니까 더 막막한 듯해요. 그 안에서도 많이 느꼈지만 사람이 일이 없으 면 마음잡기가 더 어렵잖아요. 2학기 개학 후에 다시 학교로 출근하는 친구들을 보며 소외감이 들었습니다. 나 는 뭐 하고 있나, 하는 생각도 들고. 무엇보다 내가 무얼 좋아했고 어떤 열정이 있었는지를 잊었습니다. 지금 은 회복기라고 생각해요. 출소하고 바로 하던 일 계속 열심히 하는 CO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나는 뭔가, 하 는 생각이 더 커지기도 합니다. 안에서 치열하게 했던 생각들은 결국 관념 위에 지은 모래성인가, 하는 회의마 저 듭니다. 다 감안했던 일인데 막상 닥치고 보니까 쉽지가 않네요. 그래서 다시 자유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부닥칩니다. 새장 속에 갇혀 있다가 나왔지만 자유롭다는 생각 이 들지 않기에 행복감도 느낄 수 없습니다. 무엇이 자유인가. 돌아보면 다른 분들의 기대로부터 자유롭지 않 다는 걸 느낍니다. 활기차게 의미 있는 일을 시작하고 돈도 많이 벌고 생활도 잘 꾸려갈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 듯합니다. 어쩌면 그건 제 스스로를 옭아매는 올가미일 거예요.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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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질책하는 강박은 제 자신이 만든 거니까요. 자유自由란 자기自己 이유理由를 갖는 것이 라는데 스스로 존재 이유도 못 찾으면서 버둥대는 게 우스워집니다. 기본에 충실해야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듭니다. 날개에 다시 힘이 생길 때까지 필요한 건 기다림과 밝은 마음 같습니다. 힘을 모으고 조금씩 자신감을 되찾 는다면 언젠가 날아오를 수 있겠죠. 맑게 갠 하늘이 제 가슴에 담겼으면 합니다. 드넓은 하늘을 자유롭게 노니 는 삶을 꿈꿔 봅니다. 이건 그 안이나 밖이나 마찬가지네요. 아무튼 더위가 물러가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니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그래도 가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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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없는세상 소식지 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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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승숙, 박노자 씨와 함께한 책읽기 나동혁 | 전쟁없는세상 책임활동가 + peace1@jinbo.net
평화주의자의 책읽기는 내가 감옥에 있을 때 시작되었다. 김훈태 씨가 서평을 부탁하는 편지를 보내 왔고 얼마 후엔 저자와의 대화 내용을 타이핑한 편지를 받아볼 수 있었다. 그 뒤로 한 동안 중단되었 다고 출소 후에 다시 시작했다. 한홍구 교수님의 권유로 책읽기가 시작되었고 초기에는 수감자와의 소통에 초점을 맞췄다. 수감자에 게 책을 보내고 서평을 기다리는 시간이 꽤 길었다 . 오프모임에서는 10 여명이 참가해서 책 내용을 중 심으로 자유롭게 토론했다. 책읽기가 횟수를 거듭하면서 저자와의 대화가 고정 프로그램처럼 굳었다. 그러다보니 점점 참여하는 사람이 늘었고 저자 강연회가 되는 건 아닌가 고민 중이다. 당분간은 이 정도 규모의 대화방식을 유 지할 생각이다.
우선 문승숙, 박노자 씨가 30분씩 돌아가면서 군사주의를 주제로 각자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시간. 문승숙 씨는 주로 군사주의와 여성성을 주제로 이야기했다. ‘군대가 남성성의 형성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 는데, 남성성이라는 것은 여성성의 상대적 개념이기 때문에 결국 군대가 여성성의 형성에도 엄청난 영향을 주 는 것이다.’는 주장에 십분 공감이 갔다. 남성성, 여성성은 상대적 개념이다. 이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KBS <신고합니다>란 프로그램을 예로 들었다. 군대가 상징화시키는 여성의 이미지란 딱 두 종류, 즉 어머니와 창녀 로 나뉜다. 성적으로 완전히 무성화된 어머니는 국가=가족=지켜야 할 대상이란 등식을 성립시킨다. 어머니를 대할 때 군인은 의젓하고 늠름한 모습이다. 이와는 정반대로 또 다른 여성의 역할을 상징하는 애인이 등장할 때는 극단적으로 성적 이미지를 집중적으로 강조(실루엣 뒤에 숨어 등장하는 여자친구, 몸매를 강조하는 도구) 한다. 이와 같은 상징적인 이미지를 통해 드러나는 것은 군대가 고정적인 여성성의 형성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다. 박노자 씨는 주로 군대가 남성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영향력이 모두에게 동일한 방식으 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장소, 특히 계급에 따라 다르게 작동한다는 주장이었다. 역사학자답게 풍부한 사례들을 들어가면서 설명해서 사람들이 무척 즐거워했다. (박노자 씨 유머 감각이 탁월하다는 사실 처음 알았 네) 한국의 군대는 매우 특수한 위치에 놓여 있는데 일반적으로 자본주의가 발달함에 따라 군사적 역할이 일부 계층(주로 하층계급)에게 몰리는 모병제 같은 구조로 가는데 반해 한국은 형식상으로나마 국민개병제, 즉 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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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관한 한 모두가 평등하다는 관념이 여전히 강하다. 그래서 군사주의의 척도를 단일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단적으로 미국은 군사적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은 극히 일부지만 군사주의가 약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군대가 일상을 지배하는 정도로 볼 때 한국은 서구 자본주의에 비해 상대적으로 군사주의가 일상화된 나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60~70년대 군사독재의 산물로 오히려 군대가 자본의 우위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은 힘의 역학 관계가 정상적인 자본주의 구조로 돌아왔지만 자본가 계급은 절대로 징병제를 포기하지 않 을 것이라는 말에서는 모두 우울. 그 뒤로 둘이 서로 질문을 하나씩 주고 받았는데 비슷한 의견을 공유하고 있는 탓인지 질의 응답 같지 않 았다. 쉬는 시간 없이 곧바로 청중과의 토론에 들어갔다. 사람들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다 적고 싶지 만 여기서부터 필기를 포기했기 때문에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사회자라 적절히 흐름을 잡아줄 필요도 있 었고, 결정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18호 11
아무튼 시종일관 생각이 많았는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개인적으로 고민했던 몇 가지 주제를 요약해 보자.
1. 한국식 자본주의가 시장 질서를 강화하면서 미국식 자본주의처럼 기업정신, 창조성, 도전정신을 강조하면서 경쟁이 격화될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 문화도 위계적인 구조에서 점차 팀제와 같은 수평적인 구조로 바뀌어 갈 텐데 자본주 의의 발전이 징병제에 어떤 영향을 줄 가능성은 없는가? 노무현의 ‘비전 2030’을 통해 구체화된 최근 국방개혁안을 분석한 결과, 개혁 분파 중 노무현 주변세력 은 서구형 모델을 추진하는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군 인력을 단계적으로 축소하다가 모병제로 넘어가고 국방 예산을 대폭 늘려서 군과 무기의 현대화, 전문화를 추진하리라는 예상이다. 이 과정에서 과도기적으로 양 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인정될 가능성이 있다. 또 한 편으로는 박노자 씨처럼 한국 자본주의가 절대 징병제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한국 자본의 구조상 미국, 중국, 일본, 유럽의 자본과 비교했을 때 유일한 강점은 잘 숙련되고 순종적이며 노동중독 이 심한 전문 인력의 존재다. 한국 자본은 절대 이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군 내부 복지 문제를 중심으로 외 형상 변화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려 애쓰겠지만 본질적인 내용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상이한 두 가지 분석을 접했기 때문에 조금 혼란스럽다. 확실한 것은 국방예산이 늘어날 것이고 군현대화가 추진되는 과정에서 방위산업체를 대폭 지원, 군수산업을 주력 산업으로 키우려는 의도는 분명하다는 점이다.
2. 한미관계가 변화할 여지는 없는지?? 이 과정에서 한국 군대 역시 새로운 역할을 모색할 수 없는지?? 국방개혁안 비전 2030을 봤을 때 노무현은 모병제로 가려는 의지가 전혀 없다.(박노자씨 분석) 초기에 동 북아 균형자 이야기가 나왔지만 결국 굴복하고 급격히 한미동맹으로 우선회했다. 한국 자본주의 구조상 죽었다 깨어나도 한국의 보수파가 대미종속적인 관계를 끝내지 못할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도 잠재적인 적은 중국이기 때문에 중국과의 전면전이 불가피할 경우 엄청난 수의 한국 군인은 총알받이로 매우 유용할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서도 한국이 현재와 같은 징병제를 유지하는 것이 크게 나쁠 것이 없다.
3. '그나마 군입대는 계급과 상관없이 모두에게 부여된 임무라 ' 는 평등의 신화가 반군사주의 운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여성운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대체복무제 입법운동에 대해 이런 저런 한계가 지적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어쨌든 국방의 의 무는 모두가 동등하게 져야 한다는 이 원칙 때문에 대체복무제도가 오히려 여성징병제 논의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 쉽게 말해 군제도도 다양해졌으니 어떤 식으로든 여성도 의무를 수행하라는 논리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 은 모병제를 주장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 역시 쉽지 않다. 참가자 중 한 명은 그래서 모병제냐, 대체복무제가 존재하는 징병제냐가 아니라 절대적인 군인수를 줄여나가는 '감군운동' 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서 눈길을 끌었다. 지금 노무현이 주장하는 사회복무제(혼혈인, 장애인 등등도 군복무 가능)는 오히려 군의무를 통해 시민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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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받아야 한다는 관점을 강화시키고 있다. 대체복무제도 주장을 역이용해 군사주의가 강화되는 방향으로 나 아갈 수도 있다. 이런 왜곡된 평등주의가 끊임없이 여성운동에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여성운동 진영에서는 군대 관련 담론에서는 적극적인 주장을 펴지 못하고 매우 조심스러운 상황.
4. 그렇다면 평화운동이 무엇을 해야 할까? 냉정한 현실인식 때문일까. 사회를 보는 내내 가슴이 답답해졌다. 이것 참, 한국사회의 현실이 만만치 않 군. 그래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의 역학을 고려해볼 때 어떤 대안을 내기가 쉽지 않고 다들 조심스럽다. 분명한 것은 정치인들에게 맡겨서는 발전주의-군사주의의 양대 축으로 설정된 한국사회의 진로를 조금도 바꿀 수 없을 것이란 점이다.1) 노무현이 그 한계를 절실히 보여줬다. 결국 피플 파워만이 조금이라도 한국사 회의 진로를 바꿀 수 있다는 말이다. 또 하나는 일상적인 군사주의를 해체해나가는 운동이 전부 평화운동이란 것이다. 한국 자본주의는 강력한 군사주의를 원하고, 그것이 일상 속에 뿌리내려 가족, 직장, 학교 등 모든 공간을 지배하고 있다. 인간관계 역 시 군대식 위계질서에 기초해 이루어지고 있다. 이를 거부하는 모든 운동이 다 평화운동이다. 일상적인 위계질 서를 거부하고 순응을 요구하는 관성에 저항하는 것이 다 평화운동이다. 청소년 인권찾기, 국기경례 거부, 대 안 생리대, 자전거 타기, 채식... 이런 게 모두 평화운동이다. 이 운동이 확산되어 '순응형 인간'에서 창조적이 고 평화적인 소통형 인간으로 거듭나는 사람이 늘어나면 그게 가장 강력한 평화운동이다. 아, 참 할 게 많구 나!! 요즘 내부 세미나를 진행 중인데 <전쟁인가 평화인가(녹색평론, 오다 마코토)>를 읽으며 ‘평화운동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고민을
더 구체화시키고 있는 중이다. 언젠가 이와 관 련해서 좀 더 정돈된 글을 쓰기로 하고 책읽기 후기는 이 정도로 마무리한다. ☮
1) 한겨레 7월 8일자. [세상읽기] ‘성장’ 과 ‘무장’이라는 신화 / 나희덕 한국사회의 작동원리가 경제성장과 군사력 증강, 양대 축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날카롭게 꼬집고 있다.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18호 13
내 몸에 각인된 국가주의 - 국기에 대한 맹세와 경례 날맹 | 전쟁없는세상 책임활동가 + nalm109@hanmail.net
지난 20년간 내 마음을 빼앗아간 국가 학교에서 애국조회를 할 때에도, 국가기관의 행사가 시작될 때에도, 국가대표팀 간의 게임이 시작되기 전에 도, 심지어 국가대항전도 아닌 프로야구 게임이 시작되기 전에도 우리는 태극기를 향해 경례를 한다. 초등학교 에 입학하면 가장 먼저 배우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태극기 그리는 법, 태극기를 보관하는 법, 태극기를 게양 하는 법, 국기에 대한 맹세문 암송이라서, 우리에게 국기에 대한 맹세와 경례는 너무나 익숙한 일상으로 존재 해왔다. 국가가 정해준 교육과정에 충실한 모범생일수록 국가에 대한 충성심은 더 자연스러운 것일 수밖에 없 다. 20년 간 수행되는 국가 공교육의 완벽한 승리?! 익숙함의 반대는 낯섬이다. 낯설게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동일한 현상을 보는 새로운 관점을 가지게 되 었다는 것이고, 그 새로운 관점은 새로운 언어를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국가주의라는 말을 알기 전에는 자신이 일상적으로 행하는 국기에 대한 맹세와 경례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국기에 대한 맹세와 경례가 국가에 순종하고 개인보다 집단의 가치를 더 중요시 여기도록 교화훈육하는 ․ 기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앞서 언급한 ‘낯설게 보기’가 가능해진다. 그 동안 정말로 국가는 절대선인 줄로만 알았는 데. 국가는 국민을 지켜주는 고마운 존재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국가란 것이 결코 중립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버렸다. 내가 그렇게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 할 것’을 맹세했던 국가라는 존재가 사실은 교묘하게 ‘애국심’이라는 이름으로 나의 마음을 빼앗아 간 것이었다니, 이 쯤 되면 아무 것도 모르고 시키는 대로 살기만 했던 내 자신과 맹목적인 가르침을 강요했던 학교에 대한 분노와 억울함이 생겨난다.
법적 지위를 가지게 되는 국기에 대한 맹세경 ․ 례 과거에 국기에 대한 맹세와 경례는 대통령령에 규정돼 시행돼 왔었다. 그런데 지난 1월 대한민국국기법이 제정되었고, 곧 이어 시행령까지 입법예고되면서, 국기에 대한 경례는 국기법에, 국기에 대한 맹세는 시행령에 담겨 법률의 지위를 꿰찰 예정이다. ‘국기에 대한 인식의 제고 및 존엄성의 수호를 통하여 애국정신을 고양함’을 목적으로 2007년 1월에 제 정된 국기법의 내용을 살펴보면, ‘모든 국민에게 국기를 존중하고 애호하여야 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으며 (국기법 5조), 국기에 대한 경례 방법과 절차 등은 시행령에 맡기는 내용이 담겨있다(국기법 6조). 이에 비추 어볼 때, 국민의 국기 존중과 애호 의무에는 국기에 대한 경례를 따라야 할 의무가 포함되어 있다는 법 해석이 가능해진다. 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역시 국기의 존엄성 유지 의무를 이유로 교육현장이나 국기가 사용되는 각종 시민의 생활현장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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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4월 행정자치부(이하 행자부)가 입법예고한 국기법 시행령안은 7월 국무회의에서 상정을 목표로 행 자부에서 검토가 이루어지고 있다. 국기법 시행령안 2조에서는 행정자치부장관과 지방자치단체장에게 국기에 대한 선양사업(교육, 홍보)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각급학교에서의 국기 선양 교육의 경우 교육인적자원부장 관에게 그 권한을 주고 있다. 이어 3조에서는 국기에 대한 경례의 자세한 방법을, 4조에서는 국기에 대한 맹 세 규정을 두어 “국기에 대한 경례 중 애국가를 주악하지 않는 경우에는 맹세문을 낭송”할 것을 규정하고 맹세문의 내용도 포함시키고 있다. 결국 국기법 시행령안까지 통과될 경우, 모든 국민은 ‘국기에 대한 존중과 애호 의무’ 아래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에 따라야 할 법적 의무를 지게 되는 것이다. 행자부는 기존 맹세문의 기본 취지나 골격은 거의 바꾸지 않은 맹세문 수정안 3개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 하여 지난 6월 다음과 같은 맹세문 최종 수정안을 발표한 바 있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이는 기존 맹세문에서 ‘몸 과 마음을 바쳐’와 같은 구절을 뺐다고는 하나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는데다 읽기에 따라서는 현재의 대한민 국이 자유롭고 정의롭다고 암시하는 듯한 내용까지 담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1조의 내용이 “대한민국의 주권 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국기에 대한 맹세와 경례를 더 강화하려는 최근의 움직임은 국민에 대한 기만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헌법 제정을 기념한다는 7월 17일 제헌절, 국회에서는 ‘국기에 대한 맹세와 경례를 반대하는 사람들’ 10여명이 국기에 대한 맹세경례 ․ 폐지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펼치다가 경찰에 연행되기도 하였다. 이들이 내건 구호 중의 하나가 바로 ‘대한민국 헌법 1조는 죽었다’였다.
한국 현대사의 질곡과 함께 한 국기 경례맹 ․ 세 한국에서 국기에 대한 맹세와 경례는 맹목적인 애국, 국가에 대한 복종의 서약을 강제하면서 결과적으로 개 인이 가지는 사상․양심․ 종교의 자유 그리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기제로 작동해왔다. 역사적인 맥락에서 살펴보면 국기에 대한 맹세나 경례는 일제에 대한 충성을 강요했던 황국신민서사와 신 사참배라는 상징의식과 다를 바가 없다. 해방 후 국기에 대한 경례는 1950년부터 문교부(구 교육부) 지시 하에 도입됐고, 국기에 대한 맹세는 1972년에 제정돼 문교부 지시로 전국 학교에 보급되고 거리 국기하강식 등을 통해 전 국민의 일상 속으로 파고들었다. 박정희 군사정권은 자신들이 당면한 정당성 논란의 위기에서 국민들 에 대한 억압을 강화하고 애국주의를 고취하는 방식으로 위기를 모면하고자 한다. 1971년 3월에는 영화관에 애국가 필름이 돌기 시작했고 국기 사랑하기 운동이 펼쳐졌다. 체제에 대한 어떠한 비판도 용납하지 않은 채, 국가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는 파시즘적 사회분위기를 형성하는 데에는 국기에 대한 맹세와 경례의식도 한 몫 을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군사정권을 유지시키는 명분에서 시작된 ‘국기 애국주의’는 그동안 개인의 양심,사상,종교의 자유를 짓밟 으며 피해자를 양산해왔다. 1973년에는 당시 김해여고 학생 6명이 국기에 대한 맹세와 경례를 거부한 이유로 제적당한 사건이 있었고, 2003년에는 종교상의 이유로 경례를 못하겠다고 밝힌 학생이 고등학교 입학을 거부 당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2006년에는 당시 부천 상동고에 재직 중이던 이용석 교사가 국기 맹세와 경례가 가 진 문제점을 학생들에게 이야기했다는 이유로 국가공무원법 위반 판정을 받고 3개월 정직 처분을 당한 적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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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김해여고 사건 당시 학생들 쪽은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당했다고 소송을 제기했지만, 1976년 대법원은 “(학생은) 학교의 학칙을 준수하고 교내 질서를 유지할 임무가 있을진대… 원고들의 종교의 자유 역시 그들이 재학하는 학교의 학칙과 교내 질서를 해치지 아니하는 범위 내에서 보장된다”며 학교 쪽의 손을 들어줬다. 학 칙이 헌법상의 종교와 양심의 자유보다 상위에 있다고 한 놀라운 판결이었다.( 한겨레 제592호)
일본은 안 되고 한국은 된다? 한국사회에 만연한 민족주의 정서는 일본의 우경화 경향에 대해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표출한다. 천황에 대 한 맹목적 충성을 강요하는 ‘황국신민서사’를 비판하고, 1999년 일본에서 법제화된 기미가요(일본의 국가)와 히노마루(일본의 국기)에 대하여 군국주의의 부활이라며 비판을 한다면, 우리 안에 존재하는 국기에 대한 맹세 와 경례에 대해서도 동일한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야말로 일관된 논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국기에 대한 맹세를 강요함으로써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인권을 침해하는 강제적 제도 그 자체인 것이지, 히노마루 에 대한 충성 맹세는 부당하고 반면 태극기에 대한 충성 맹세는 정당한 것이 되는 것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것만을 골라 일본의 군국주의화를 비판하는 한국의 보수세력들은 일본 내에서 국가 주의의 부활에 반대하는 수많은 교사와 시민사회의 목소리에는 귀 기울이지 않는다. 올 해 3월에는 도쿄 도내 중학교 교사인 네쓰 기미코가 졸업식 자리에서 ‘국가제창’이란 방송멘트가 흘러나오자 그에 응하지 앉고 제 자리에 앉았다가 징계를 받게 된 일이 있었다. 네쓰는 “‘기립하세요. 노래하세요’라는 방식은 교육행위가 아니다. 전쟁 기간 교육의 재현이다.”라고 말하면서 “교사로서 이상한 것은 이상하다고 얘기하지 않으면 사 회 전체가 이상하게 된다”는 자신의 신념을 밝혔다. 일본 법원에서는 히노마루와 기미가요 강요에 대해 엇갈 린 판결들을 내린 바 있는데, 2006년 9월 도쿄 법원은 “히노마루와 기미가요를 강제하는 것은 사상·양심의 자유를 침해하고, 교육행정에 의한 교육의 부당한 지배에 해당하는 것으로 위헌·위법이다.” 라는 판결을 내리 기도 하였다. 국가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을 강요하고 이를 거부하는 사람들에 대해 일관적인 처벌만을 내리는 한국의 현실과 대비되는 지점이다. 한편, 미국에서는 이미 1943년에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할 수 있는 것도 헌법적 기본권이라는 판례가 확 립된 바 있다. 미 연방대법원은 ' 월터 바네트 대 웨스트 버지니아 주교육위원회' 사건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한 학생들을 학교에서 내쫓을 수 있도록 한 웨스트 버지니아 국기경례법이 무효라고 선언했다. 잭슨 판사 는 당시 판결문에서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그 어떤 관리도 정치, 조국애, 종교 또는 기타 의견이 갈리는 문 제에 있어서 정통성을 부여할 수 없으며, 시민들에게 그들이 품고 있는 신념을 말이나 행동으로 고백하도록 강 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레이, “일본의 우경화가 걱정이라고?”)
익숙함을 깨뜨리기 위하여 우리는 보통 자기에게 쉽다고 느끼는 것에는 할 말이 많아진다. 쉽다는 것은 자신에게 그만큼 익숙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지난 6월 초부터 광화문에 있는 정부종합청사 후문에서 진행된 ‘국기에 대한 맹세경례 ․ 폐지 를 촉구하는 릴레이 1인시위’를 하는 시위자들에 대해 옆을 지나다니는 뭇 사람들이 “이런 걸 왜 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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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서 한 마디씩 툭툭 던질 수 있는 것도 결국은 국기에 대한 맹세와 경례가 그들에게 그만큼 익숙한 행위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익숙한 주류적 가치관에 대항하는 대안 언어들은 익숙하지 않기에 ‘어려울’ 수밖에 없다. 애국심이라는 제한된 상상력에 길들여져 온 사람들에게 국가를 부정하고 비판하는 논의는 당연히 낯설 수밖에 없고 심지어 두려움을 주기도 한다. 새로운 언어를 획득하는 것 자체로도 이렇게 어려운데, 그 언어를 체화하는 것은 더욱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국기에 대한 맹세가 부당하다는 것을 갓 접한 사람의 몸이 막상 야 구장에 가서 애국가가 흘러나올 때 ‘뻔뻔하게’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고 타인의 시선에 민감해지는 것도 그 런 이유에서이다. 결국 국가권력은 개인들에게 단지 ‘국가에 대한 충성’이라는 의식만을 주입한 것이 아니 라,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스스로 검열하고 통제하도록 개인의 신체를 훈육해왔던 것이다. 개인들에게 내면화된 ‘나=국가’라고 하는 숭고한(!) 이데올로기는 국가 단위에서 수행되는 어떠한 정책들 에 대해서도 선뜻 비판하기 어렵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이라크 파병에서부터 한미 FTA추진까지, 그것을 정 당화하는 참여정부의 가장 큰 근거는 바로 ‘국익’이었다. 국가에 의해 그 의미가 일방적으로 전유된 월드컵 에 대해 ‘딴지’를 거는 사람은 바로 매국노 취급을 받았다. 국가가 공적 영역의 기억들을 전유할 때에 역사 에 대한 대안적․ 비판적 고찰은 불가능해진다. 1980년 광주의 기억을 국가가 전유하고, 1987년 6월의 기억을 국 가가 전유하는 순간 ‘민주화’는 국가권력의 소유물이 되어버렸고, 따라서 국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말하는 자는 반(反)민주화 세력으로 낙인이 찍히고 모든 정당성을 상실하게 된다. 다양한 층위와 영역의 목소리들을 억누르고 단 하나의 ‘올바른’ 진리를 국가가 독점하는 것이 바로 파시즘이고, 한국 사회에서 이 파시즘을 가 능하도록 만든 기제 중의 하나가 바로 국기에 대한 맹세와 경례였다. 수정된 맹세문의 국가의 모습은 ‘자유롭고 정의로운’ 국가로 묘사되고 있지만, 현실의 국가가 꼭 그래 보 이지만은 않는다. 점거파업농성을 벌이는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경찰을 동원해 해산시키는 국가는, 권력 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에 나오는 국가의 모습이 아니다. 혹은 파업하는 노동자는 국민이 아니라고 여기는 것이다. 자본가들의 불법노동행위에 대해서는 묵인하면서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행사에 대해서는 그 이름도 민망한 ‘공권력’을 사용하는 편향적인 국가에 대해서 나는 절대로 충성을 맹세하고 싶지 않다. 황석영의 소설 “오래된 정원”에서 주인공 한윤희가 민주화운동으로 감옥에 수감된 애인 오현우를 만나러 갔을 때 오현우의 전향을 얘기하는 교도관에게 대꾸한 대사를 인용하며 글을 마칠까 한다. “생각과 표현을 자 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자유민주주의 아닌가요?” ☮
참고한 글들 국기에 대한 맹세와 경례를 반대하는 인권․ 사회단체, 국기에 대한 맹세와 경례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 문 “이제 그만 놔줘!”, 2007년 6월 11일. 레이, “일본의 우경화가 걱정이라고?”, 인권오름 제18호 민중언론 참세상, “국기에 대한 맹세-애국은 국민의 의무?”, 2007년 7월 14일. 한겨레, “일 학교 기미가요 강제 끝나지 않는 거부 파동”, 2007년 3월 22일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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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교회는 언제까지 침묵하고 있을 것인가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에 대한 가톨릭신학생 설문조사 결과보고 워크샵 여옥 | 전쟁없는세상 책임활동가 + @hanmail.net
2005년 10월 19일 서울대교구가톨릭대학생연합회(서가대연)에서 활동하던 고동주 비오가 한국 천주교 신자 로는 처음으로 병역거부를 선언하면서 천주교에서는 새로운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몇 차례의 토론회와 서명운 동, 캠페인, 평화미사,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에 대한 공부모임 등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활동은 병역거부와 관련한 교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모르던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함께 고민을 던져주었다. 하지만 양 심에 따른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에 대한 세계 가톨릭교회의 공식적인 입장이 명확하고, 이 문제가 우리 사회에 서도 이미 쟁점화된 상황에서도 한국 가톨릭교회는 아직까지 공식적인 입장을 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올해 5월 말-6월 초에는 전국의 가톨릭신학생들을 대상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 도입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병역거부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확인하고 사목 대안을 모색하 는 워크샵이 한국남자수도회․ 사도생활단장상협의회 정의평화환경위원회 주관으로 8월 8일 정동 품사랑에서 열 렸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있는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군인 생활로 조국에 대한 봉사에 헌신하는 사람들은 국민의 안전과 자유를 위한 역군”(2310항)이라고 전제하면서도 “양심상의 이유로 무기 사용을 거부하며 다른 방법으로 인간 공동체에 봉사하려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국가가 공정한 방법으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2311항)라고 명시하고 있 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사목헌장> 79항은 “양심의 동기에서 무기 사용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경우를 위한 법률을 인간답게 마련하여, 인간 공동체에 대한 다른 형태의 봉사를 인정하는 것이 마땅하다”며 대체복 무제 도입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가톨릭 교리 잘 알수록 교회의 대체복무제 도입 위한 입장표명 지지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신학생들은 병역의무의 부과 기준에 양심, 신념의 사유가 포함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찬성 46.2%와 반대48.5%로 양쪽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이는 2005년 국방부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비하면 찬성의 비율이 약간 높지만, 대체복무를 허용하게 되면 병역기피 현상이 확산될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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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부정적 전망(74.7%)은 일반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 은 결과를 보였다. 양심적 병역거부권에 대한 가톨릭교 회의 입장을 알고 있는 신학생은 30%에 그쳤고, 한국 천주교 신자로는 처음으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한 고동 주 비오에 대한 인지도(28.1%)나 동의 정도(42.1%)도 낮았다. 하지만 교회의 입장을 알고 있는 신학생일수록 이 문제에 대해 교회가 공식적인 입장표명 등의 노력을 해야한다는 응답이 높게 나타났다. 우리신학연구소 경 동현 실장은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허 용 입장을 알고 있는가 하는 점이 병역거부 문제에 대한 관점과 태도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 다"고 분석했다. 설문조사 결과분석에 대한 발표 후에는 토론이 이어졌다. 국방부 대체복무연구위원회에 참여한 적이 있는 인천교구 김일회 신부는 "소수자 인권, 양심의 자유, 나아가 종교의 자유라는 차원에서 이해하고 접근해야 한 다"고 하며 국가보안법처럼 남북분단이 대체복무의 도입을 막고 있지만 진정한 종교인이라면 신앙의 선택에 의 한 결정이 존중받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할 것을 촉구했다. 콜롬비아에서 온 황 바오로 신부는 신학생과 사제들의 경우 병역의 의무가 없는 경우가 많고, 병역의 의무가 있는 국가도 사회봉사 등 대체복무를 선택할 수 있는 외국의 사례를 소개했다. 한신대 강인철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병역거부 수감자를 배출한 우리나라의 경우 "이들 중 대부분이 그리스도교인이라는 점에서 이 문제를 피해갈 수 없다"고 말했다. 인천가 톨릭대 교수 황창희 신부는 신학생들이 군복무를 통해 내적인 성숙과 사회생활에 훈련을 받기보다는 자신의 신분과 군인 역할에 대한 정체성 혼란, 군생활 동안 겪게 되는 세속적 유혹들이 사제 성소에 걸림돌이 된다며 군대 대신 사회복지나 기타 사회에서 꼭 필요한 공공부분에 복무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램을 밝혔다.
다양성 인정에서 적극적인 평화의 실현으로 군종교구를 ‘선교의 황금어장’으로 인식하고 있는 한국의 상황에서 한국 가톨릭교회가 병역거부를 인정 하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히는 것은 무리가 있지 않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이미 명확한 교리와 가르침이 존재 하는 상황에서 대다수 신자들의 정서와 생각을 고려한다며 입장표명을 미루기보다는 교회의 입장을 밝히고 신 자들에게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신자들 모두에게 병역거부를 강요하는 것도 아니고, 병역의 무 이행과 거부 가운데 어떠한 선택을 하든지 그런 선택을 한 개인의 입장을 존중하고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세계 가톨릭교회의 공식 입장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다양성을 인정하고 소수자의 인권을 존중하는 종교일수록 긍정적인 이미지를 줄 수 있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에 대한 교회의 침묵은 현행 징병제도를 지지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 가톨릭교회가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함으로써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젊은 이들의 감옥행을 막아내고, 더 나아가서 적극적으로 평화를 실현해나가는 역할을 해주길 기대해본다. ☮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18호 19
굿바이 예비군 조은 | 전쟁없는세상 책임활동가 + epilogue@empal.com
한국의 샤머니즘은 숫자의 확장에의 지향으로 귀결된다. 토익 점수, 월급 액수, 주가 지수 등 개인과 사회 를 막론하고 모든 사회적 평가의 기준은 숫자의 무한한 확장에 있다. 숫자의 샤머니즘에 매료된 수많은 한국인 들은 샤머니즘의 조건을 충족시켜 로또가 대박나기를, 월급 액수의 증가가 증가하기를, 대한민국의 국력이 증 가되기를 꿈꾼다. 그들은 어정쩡한 숫자 따위 취급하지 않는다. 오직 숫자의 무한확장이다. 첨단 전쟁 따위 취 급하지 않는다. 오직 인해전술이다. 군인 숫자 많은 나라가 최고다. 그래서 예비군이 300만이다. 그렇다. 현역 군인이 60만에 예비군이 300만. 주기적으로 총을 다루는 연습을 하는 한국 군인의 숫자다. 가히 어마어마한 숫자다. 도대체 이 많은 사람들은 어디에 필요한 것일까. 국방부는 인해전술을 전략으로 세우 고 있는 것일까. 이왕 인해전술을 목표로 삼았으면 전국민을 예비군으로 만드는 것이 훨씬 더 위협적이지 않을 까. “예비군들은 1년에 1~2일 정도만 가서 총 한번 잡는 훈련도 아닌 폼만 잡고 만다.”, “예비군을 해체하 자!” 군대 반대론자의 말이 아니다. 자신의 남편은 ‘국방’이라고 부르짖는 한나라당 송영선 의원의 주장이 다.2) ‘대한민국의 신성한 국방’을 위해 몸이 닿도록 애쓰시는 높으신 분까지 저런 말을 했다는 것은 예비군 에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국방에 대한 종교적 논의는 차치하고 현실적인 얘기를 해보자. 예비군은 정 말 필요한 것일까.
예비군의 역사 예비군의 시작은 반공이데올로기와 함께한다. 1968년 1월, 김신조 등 북한 특수공작원 31명이 청와대 뒷산 까지 접근한 ‘1·21사태’와 뒤이어 터진 ‘푸에블로호 납치사건’은 박정희에게 강경한 대북 제재의 근거를 제공한다. 그 결과, 2월 7일 경전선 개통식에서 250만의 무장을 천명했고, 2월 20일 각의가 향군법 시행령을 의결하면서 향토예비군의 창설로 이어졌다. 전쟁 등 국가비상사태 때 작전수요를 위한 동원에 대비하거나 무장공비 토벌, 주요 시설 경비 등이 주요 임 무라고 정의된 예비군은 임무별로는 동원예비군과 향방예비군으로, 편성 형태별로는 직장예비군과 지역예비군 으로 나뉜다. 부사관·장교는 계급별로 40∼56살까지 소집대상이며 병사·대체복무자 등은 제대한 다음해부터 2) 오마이뉴스 "예비군 해체하고 군복무자 가산점 줘야" 2005년 9월 15일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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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동안이다.
예비군의 환상적인 실적 예비군이 한국의 안보에 얼마만큼 기여를 했을까. 예비군 대상자는 졸업을 앞둔 대학생들과 회사에 갓 들어 간 사회 초년생들이 대부분이다. 한창 학습과 사회적응을 할 시기에, 그들은 시간을 쪼개서 2박 3일간 예비군 훈련에 동원된다. 교관들은 2박 3일을 ‘버텨달라며’ 예비군을 어르며 달래고, 예비군 본인들은 총기를 몇 번 다루고 반공용 비디오 관람 시간에 핸드폰 게임을 하며 시간을 죽인다. 예비군을 ‘야비군’이라 칭하며, 자신이 얼마나 의미없는 시간을 보내고 왔는지를 토로하는 예비군 후기는 인터넷 어디서든 쉽게 찾아볼 수 있 다. 그들은 예비군 훈련이 국가 보안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 본인이 얼마나 무의미한 일에 동원되 고 있는지 알고 있다. 오히려 예비군으로 인해 2년 간 강제되었던 군대에 대한 경험만 되새김질될 뿐이다. 실지로 예비군 창설 이후, 예비군의 성과와 문제점들을 보면 예비군에 대한 비판 의견에 쉽게 동조할 수밖 에 없다.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18호 21
예비군이 무언가의 성과를 위해 조직적으로 동원된 것은 1991년 4월부터 9월까지 ‘범죄와의 전쟁’ 당시 방법활동에의 동원이다. 전국적으로 87만 명의 예비군이 동원되어 37명의 범인을 검거하는 엄청난 전과를 거 둔다. 군지휘관과 밀접하게 연결된 종교행사에 동원되기도 한다. 1990년 4월 26일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 린 ' 민족화합과 통일을 위한 대성회'에 서울 전역의 예비군 5만 명이 동원되었는데, 당시 예비군 당국은 이 행 사에 참석하면 12시간의 산악행군을 면제해주지만 불참하면 1.5배의 벌칙교육을 받게 된다며 당근과 협박을 내밀어 예비군을 동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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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군의 중요성이 가족계획 보다 낮게 평가된 시기도 있었다. 70, 80년대 예비군훈련장에는 정관수술이 유행이었다. 정관수술을 하면 예비군을 면제해주는 지침이 시행되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지원자가 무의미한 2 박 3일을 피하기 위해 정관수술에 지원했고, 그들은 수술 을 받기 위해 곧바로 훈련장을 떠날 수 있었다. 예비 군 훈련이 정말 국가 안보에 크게 기여한다면 어떻게 국방부에서 예비군과 정관수술의 교환을 쉽게 묵인할 수 있었을까.
예비군 거부자 대한 가혹한 처벌 예비군에 대한 문제점은 그 자체의 무의미성과 화려한 실적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수형자 가족모임이 조사한 통계를 보면, 역대 1329명의 예비군 거부자들이 존재한다. 군복무를 마쳤지만, 제대 후에 여호와의 증인이 되는 이유 등으로 예비군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이 다. 2박3일 일정으로 군부대에 입소해서 받는 동원훈련을 거부한 1~4년차 예비군 거부자는 병역법 90조에 의 해서 6개월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에 처해진다. 예비군 5~6년차에 실시되는 향방훈 련을 거부한 사람은 향토예비군설치법 제15조 8항에 따라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해진다.4) 그들은 예비군 소집명령이 나올 때마다 반복적으로 처벌당하고, 누적되어 가는 벌금을 납부해야 한다. 6~7 년 동안 재판과 벌금에 시달리고, 반복 처벌로 전과가 누적되는 일은 일반 사회생활을 어렵게 만든다. 1년 반 정도의 형기를 살고 나오면 예비군이 면제되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에 비해 처벌의 기간과 고통이 적다고 할 수만은 없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예비군의 문제점에 눈을 감고 있다. 지난 2006년 국방부가 발표한 ' 국방 개혁 2020'과 2007년 정부가 내놓은 '비전2030-인적자원 활용전략'에 담긴 병역 제도는 예비군을 규모를 줄이 고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방안일 뿐, 예비군으로 피해 받는 사람들에 대한 언급은 일체 하고 있지 않다.
3) 오마이뉴스 “예비군은 개긴다, 고로 존재한다: 2002년 9월 26일 기사 4) 한겨레21 “예비군 거부자, 그 후도 오랫동안의 고통” 2007년 4월 17일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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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예비군 예비군 폐지에 대한 주장은 예비군이 창설된 시 점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김영삼은 1968년 예비군이 창설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예비군 폐지에 관한 법률 안을 제안했고, 김대중은 1971년 대통령 선거 당시 예비군 폐지 공약을 내걸었다. 비록 부결되고, 실행 이 되지는 못했지만 예비군의 존재는 그 시작부터 위태위태했던 것이다. 물론 실질적으로 예비군이 폐지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국가안보를 테제로 삼고 있는 기득권 세력의 반발과 예비군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존재 이가 바로 그것이다. 양심적 병역거부가 인정받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국가안보의 이데 올로기로 기득권을 유지하는 세력 때문이라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 지적해왔다. 이들이 예비군 폐지에 큰 장애물이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이들 외에도 당 장 예비군이 폐지되고 나면 5천여 명의 예비역 장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고, 예비군 훈련장 인근의 가게나 수송업체 등 예비군과 관련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의 생계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사실 또한 문제가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비군 폐지에 대한 논의를 중단할 수 없다. 지금껏 살펴봤듯이 예비군의 비효율성, 예비군 거부자에 대한 가혹한 처벌, 군사주의에 대한 재훈육 기능 등의 문제점은 더 이상 방관할 수 있는 수준의 것들이 아니다. 예비군의 필요성과 문제점을 인식하면 할수록 예비군 제도에 안녕을 고할 때가 왔 음은 분명해진다. 우리가 당연시 여기던 사실들의 대부분은 교육과 세뇌의 결과물인 경우가 많다. 양심적 병역거부나 국기의 대한 경례 등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써 마땅히 따라야 할 성역들에 대한 비판과 회의적인 논의가 조금씩 확 장되고 있다. 이것은 실존의 문제다. 살아지는 것에서 살아가는 것으로의 나아감이다. 이러한 나아감의 공감과 확산은 그동안 억압되고 비틀어진 채 꾸역꾸역 유지되고 있는 한국 사회의 죽음의 공간을 삶의 공간으로 회복 할 수 있는 기회이다. 예비군 폐지에 대한 논의의 확장이 이러한 기회에 일조할 수 있길 기대해본다. ☮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18호 23
민방위, 뭐에 쓰는 물건인고?? 나동 | 전쟁없는세상 책임활동가 + peace1@jinbo.net
✔ 민방위 훈련의 추억 재작년 9월 말에 가석방으로 출소하고 난 직후에 집으로 민방위 교육 통지서가 날라왔다. 이런 XX같은 경 우가~~ 가석방 기간이라고 혼자 쫄면서 아무 것도 못하고 지내야 되는 처지에 민방위 통지서가 온 거다. 엄마, 아빠는 '자라보고 놀란 가슴에 솥뚜껑보고 놀란다' 고 언능 갔다 오라하는데.. 나는 하도 어이가 없어 동사무소에 연락을 했다. 나: "전 병역거부 해서 감옥 갔다 왔는데 지금 가석방 기간이라고 다른 건 다 안된다고 하는데 민방위 훈련 은 받아야 하나요?' 동사무소 직원: "국가가 원래 권리는 잘 보장 안 해도 의무는 꼬박꼬박 부여 합니다." 나:(속으로) 뭐야 이 새끼. 국가 공무원 맞아?? 너무 솔직하잖아. 은근히 냉소적인데....(직원에게) 아니 그 럼 가석방 안돼서 감옥 있음 그래도 민방위 통지서가 날라 오나요?? 감옥에 있는 사람더러 훈련 오라는 거네 요.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요?? 동사무소 직원: 아무튼 지금은 밖에 나와 있지 않습니까? 저는 잘 모르겠고 아무튼 나오세요. 나: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다 있데. 전 안 갑니다. 뭐 잡아 가려면 잡아가고 맘대로 하세요. 동사무소 직원: 뭐 꼭 나오셔야 되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알아보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출소해서 대학에 복학했다. 꾸역꾸역 민방위 통지서가 날아왔다. 병역거부자는 예비군까지 그 냥 통과 된다는 건 알았지만 민방위는 잘 몰랐다. 대한민국 동원 시스템에 아직도 내가 모르는 부분이 있다 니!! 암튼 난 또 국가를 느끼고, 생각은 복잡해졌다. 학생이라 못 간다고 했다. 가기도 싫었다. 그런데 연말에 통장이 한 번 부르더라. 통장: ' 민방위 훈련 왜 안가세요??' 나: '아, 저 학생인데요...지금 복학해서 학교 다니고 있습니다.' 통장: '학생일 때는 훈련에 참석 안 해도 됩니다. 학생이라는 걸 증명할 수 있는 서류 하나 떼서 좀 주시 죠?' 나: '아 네...조만간 떼서 드리죠.' 그리고 역시 안 드/렸/다/. 근데 별 탈은 없었다. 뭐 어쩔 것이여. 나는 참말 학생이었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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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바뀌고 다시 민방위 2년차 교육 통지서가 날아왔다. 엄마, 아빠는 보일 때마다 물어본다. 민방위 교육 언제 가냐고? 알아봤더니 훈련 안가면 과태료 나오더라. 대략 10만원쯤. 흐미... 걍 10만원 주고 말기엔 조금 비싸다. 결국 미루고 미루다가 다녀왔다. (흐미...이게 본론인디....) 일단 시작을 국기에 대한 경례로 시작하더라. 사람들은 쭈뼛쭈뼛 하면서도 결국 다 일어서고 결국 다 가슴 에 손을 얹고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는데 나는 끝까지 가만있었다. 요즘 한참 국기에 대한 경례 문제가 부각되 고 있는데다 애초에 국가를 사랑하는 맘이 없고 국가주의는 세뇌된 거라고 맨날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막상 사람들이 이빠이 모인 자리에서 그걸 안하려니 신념이고 나발이고 다른 사람들 눈치가 살짝 보였는데... 결국 끝까지 앉아 있었다. 끝내 뭐라는 사람은 없었다. 국기에 대한 경례로 끝인 줄 알았더니 애국가 부르고, 그것도 모자라 손들고 민방위대 임무를 낭독하는데 살짝 웃음이 나올라 하다가 괜히 긴장하는 내 모습에 조금 웃기기도 했다. 교육이 시작되었다. 4시간 교육 일정인데 처음 가니까 공무원이 나와서 한 20분 이상 설명하다가 영상물 두 개를 틀어준다. 나는 아주 어릴 적에 봤던 대한뉴스 뭐 이런 거 생각했는데... 그건 좀 오바였고 그래도 한 국은 미디어 산업은 무지 발달해서 그런 지 영상물 나름대로 편집도 잘 했고 음악도 거의 영화음악 수준으로 ' 둥둥두두둥'거렸다. 그리고 변화된 동북아 정세 이런 것도 참 많이 나왔다. 보는 내내 어이없게도 ' 어 저거 정 세분석은 운동권이랑 비슷하네' 뭐 이런 생각을 참 많이 하면서...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정말 자는 사람 많았 고 근데 나는 왜 잠이 안 올까 생각해보니 그새 또 그걸 분석하고 있는 내 모습에 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 지. 시시 때때로 들리는 교육 담당 공무원의 그 말 '여러분도 군대 갔다 와서 알겠지만...' 이 나올 때마다 기분 이 찝찝했다. 아무튼 영상물은 완전 뒤죽박죽이었다. 평화도 좋고 화해도 좋은데 전쟁의 위협은 가시지 않았고 국토방위 는 중요한데 전쟁은 절대 안되고....뭐 이래저래 심란한 내용이 많이 나오더라. 그 와중에도 내내 생각이 복잡 했다. 이 사람들은 다들 소극적이다. 대부분 억지로 잠을 청하려고 애를 쓸만큼 무미건조하고 무의미하고 지겨 운 시간이다. 그런데 아무튼 다들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노래를 부르고(적어도 그런 척 하고) 선서를 한다. 이런 식으로 4시간이 흘러갔다. 마냥 지루한 시간이었지만 나름 복잡한 하루였다. 국가의 존재가, 내 옆으 로 성큼 다가와 말을 건다. 너 한국인이잖아. 국가안보를 위해 너는 최소한의 의무를 다해야 해. 좋건 싫건 국 가는 최소한의 버팀목이야. 이마저 없으면 넌 어떻게 살래?? 훈련장을 나오는데 잠시 다른 세상을 다녀온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 몇 시간에 왜 그렇게 지겹고 짜증스러 운지. 나는 잠시 내가 평균적인 세상을 어느 정도 벗어나 있는 게 마냥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18호 25
✔ 민방위 탄생과 변화 박정희 독재 정부는 75년 7월 25일 민방위기본법(법률 제2776호)을 제정5)했다. 곧바로 8월 22일 민방위기본법시 행령(대통령령 제7753호)이 제정되었다. 이유인 즉, ‘역사 상 931회나 되는 외세의 침입 속에 국난을 슬기롭게 극복 한 역사와 전통 속에 이념을 두고 월남전 결과와 북한의 노동 적위대를 의식하여 당시 국. 내외적인 환경변화에 대 응하기 위하여 창설’하였다. 2007년 현재 민방위 비상소집 훈련 대상 연령이 만 45세에서 40세로, 민방위 1∼4년차 대원의 교육시간 연 8시간에서 4시간으로 축소(전쟁 등 유 사시에 대비한 민방위대 편성 연령은 만 50세로 동일)되기 까지 징병제-예비군-민방위로 이어지는 골격은 크게 변하 지 않고 이어져왔다. 국제적으로 민방위의 탄생은 ‘총력전’과 연관이 깊 다. 국각가 인식하고 있는 민방위의 시대적 필요성을 살펴 보자.
근대전쟁의 성격이 국가총력전으로 확대되면서 군사력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등의 전국가적 요소와 국 민의 저항의지까지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도시 ·교통시설 ·통신시설 ·공업시설 등의 비군사 시설 역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세계대전 이후 화 ·생 ·방(화학 ·생물학 ·방사선) 무기로 인하여 피해의 성격과 양상은 더욱 복잡해졌고 항공기와 미사일의 성능향상은 전국토가 공격사정권에 포함되면서 이와 같은 공격으로 인한 혼란 과 피해를 최소한으로 막기 위한 민방위는 군사력에 의한 방위와 더불어 국가방위의 기본조건이 되었다. 민방위조직은 중앙과 지방의 지휘 ·통제 기구와 경보전파기관, 구호기관, 소방기관 및 전기 ·수도 ·가스의 복 구기관들을 유기적으로 조직화하고, 일정한 연령층의 청 ·장년과 특수기술소지자로 된 직장 및 지역단위 민방 위대의 편성이 포함된다. 또 대피시설과 방어장구는, 국가 주요시설과 인구분산을 위한 도시계획을 비롯해서 공동대피시설의 설치와 각 건물마다 지하층과 우물시설 ·방화기구 설치의 의무화 및 방독면 ·구호약품 등의 개인 휴대장구의 준비가 포함. 각국의 민방위기구와 운영방법은 국가의 지리적 위치 ·행정조직 ·국민성 ·문화 ·관습 등에 따라 형태와 방식의 차이는 있으나, 정부의 강력한 지원과 지도가 없이는 효과적으로 운영될 수 없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민방위제도의 확립에 대한 법령은 1950년을 전후하여 제정되었는데, 미국의 ‘The Federal Civil Deference Act’(1951), 영국의 ‘Civil Deference Act’(1948), 프랑스 ·독일 ·스위스 ·이스라엘 등에서 그 예를 볼 수 있 다. 한국에서도 1975년에 민방위기본법(법률 2776호)이 제정되었다.
5) 주관 기관 : 소방방재청 홈페이지 http://www.nema.go.kr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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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민방위의 사회적 역할 70년대와 안보상황이 달라지고 남북문제에 대한 평화적인 해법(동시에 자본주의적인 해법)이 주류가 되면서 예비군과 민방위에 대한 불쾌지수 역시 높아졌다. 요컨대 더 이상 이런 비효율적인 제도는 필요 없다는 것이 다. 이에 대해 정부는 여전히 민방위가 필요한 이유를 설득하려 애쓰고 있다. 정부가 내세우는 민방위의 존립 이유는 다음과 같다. - 총력전 시대에는 전 국민이 비상사태에 대비해야 함. - 일상적인 교육과 훈련으로 국가안보관 확립. - 화생방 교육, 방재 교육은 일상에도 도움. - 안보개념이 총체적 재난 대비로 확대. - 체험, 실기교육, 영상물 활용 등 교육 방식 혁식 - 민방위 제도는 스위스 같은 선진국에서도 운용. - 보완, 혁신으로 거듭날 것. 이에 대해 나는 다음과 같은 반대 논리를 준비했다. - 민방위 제도는 독재정권의 국민 동원과 통제/훈육의 수단. - 시대착오적인 안보교육은 냉전시대 유물. 안보 환경 변화로 존재 이유 상실. - 형식적인 교육으로 시간 낭비, 막대한 경제적 손실. - 재난 대비 교육 효과 전혀 없음. - 형식적인 교육 방식 혁신. 대다수 민방위 교육 참가 의의 부정. - 국가 예산 낭비. 조직 보신주의. 이해관계에 얽힌 세력들이 조직을 지키려는 노력. - 전국민의 병사화는 시대착오적 발상. 국민 인권 무시. 군사주의 잔재. - 시장논리로 보더라도 지극히 비효율적이고 소모적인 제도 - 예비역들의 피해심리, 여성 차별의식 확산 민방위 폐지의 필요성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자. 첫째, 전쟁대비와 안보라는 것은 현실이라기보다 지향의 문제다. 즉 전쟁을 비전으로 갖고 있는 자들은 전 쟁을 준비하는 것이고 평화를 비전으로 갖고 있는 자들은 평화를 준비하는 것이다. 물론 힘의 논리가 좌우하는 국제사회의 작동 매커니즘을 모르는 바 아니다. 이 현실적인 불안감 때문에 대부분은 평화외교를 지향하면서도 동시에 무력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나친 무장 노선은 주변국가에 영향을 미치고 무한군비경쟁의 악순환 을 낳는다. 게다가 예비군이나 민방위는 군사적 효율성도 제로에 가깝다. 이건 사실 무장 노선도 아니다. 둘째, 총력전에 기반한 전쟁준비라는 인식 자체는 지독히 반도덕적이다. 하루 빨리 폐기해야할 사고방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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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셋째, 재난대비 효과도 미지수다. 형식적인 교육 과정을 경험해본 사람은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재난대비효 과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넷째, 시장논리로 봐도 예비군-민방위는 백해무익하다. 다섯째, 예비군-민방위 제도는 남성들의 피해의식을 더욱 강화시킨다. 여섯째, 결국 민방위가 필요한 이유는 1. 낡은 냉전 유물의 존속을 바라는 구시대적 사고방식 2. 그 사고방 식에 기대서 먹고 사는 사람들 3. 지속적인 안보 이데올로기가 유포하는 국민 통제 효과 따위다.
[임상옥作 우리시대의 초상]
4. 예비군-민방위 제도를 없애자. ≪ 2절 ≫ 겨레의 부름 받아 일어선 우리, 민방위 있는 곳에 재난은 없다. 안정과 번영위해 몸을 바치려, 민방위 깃발아래 굳게굳게 뭉쳤다. 내 마을 내 직장은 내가 지키고, 내 조국 내 민족은 내가 지킨다. 민방위 노래의 일부다. 정말 촌티가 곳곳에 묻어나고 주체할 수 없는 국가주의적 맹목성이 혀를 차게 만든 다. 민방위 제도 폐지를 반군사주의-반국가주의 맥락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군사주의와 국가주의가 굳건히 결합된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어떤 사회를 군사주의의 관점에서 이해할 때, ‘군사주의가 심하다 아니다’를 판정하는 기준은 제각각일 수 있다. 가령 미국사회는 징병제가 없고 일상적인 동원 시스템이 한국보다 훨씬 약하지만 미국사회가 덜 군사화 되었다고 말할 이유는 없다. 마찬가지로 일본, 중국, 한국, 북한, 러시아, 인도, 이스라엘, 영국, 프랑스 등등 군사화된 양상이 저마다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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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국가가 살려면 군사주의적 질서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매우 강해서 학교, 직장, 군대, 감옥 등 조직 이 있는 곳은 가리지 않고 위계적 질서가 판치고 있다. 거꾸로 누구나 자신이 살고 있는 터전에기반한 평화운 동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일단 ‘국민에서 시민으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6)는 주장에 동의한다. 평화주 의는 민주주의 확대 없이 불가능하다. 전쟁은 국가권력을 강화시키고 시민권력을 통제한다. 언론의 자유가 제 한되고 집회, 결사, 표현, 종교, 사상의 자유와 같은 기본권에 단계적으로 제약을 강화한다. 이와 같은 일상적 파시즘과 전쟁 강화 체제를 거부해야 한다. 일상 속에서 국가주의적, 집단주의적 질서를 거부하고 개인의 생 명, 인권, 자유를 옹호하는 운동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일상적으로 강요되는 위계적 질서와 관계맺음 방식을 상호존중과 인권중심의 관계로 바꿔야 한다. 민주주의 확장과 더불어 시민들이 직접 군대를 통제하고 전쟁거부 의사를 명확한 입장으로 갖게 될 때 평화주의가 현실적인 힘을 얻게 될 것이다. ☮
6) <전쟁인가 평화인가>, 오다 마코토(녹색평론)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18호 29
가산점 받고 싶으면 군대 가게 해 주마? -2007 병역제도 개선안에 따른 군가산점제도 부활 논의에 부쳐 가람 | 전쟁없는세상 자원활동가 + kazkada0305@gmail.com
올해 초 발표된 노무현 정부의 군복무기간 단축과 사회복무제도 도입을 골자로 한 병역제도 개선안이 ‘희 망하는 여성에게 사회복무를 허용 한다’는 내용을 포함함으로써 군가산점제도의 망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미 국방부를 주축으로 국방위원회 의원 일부가 함께 군필자 가산점 부활을 추진하고 있으며, 국방위원회에서 지난 6월 25일 전체회의를 통해 제안한 ‘필기시험 과목별 득점의 2% 범위 내 가산점’에 대한 공청회가 9월 정기국회 이전에 열릴 예정이라는 사실을 보았을 때, 현 개정법안이 실질적으로 군가산점제의 점진적 부활을 위한 초석일 수 있다는 여성계 및 일부 시각의 우려가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닌 듯싶다. 실제로 국방부 관계자 의 “과거 여성부가 여성들에게 가산점을 받을 수 있는 길이 막혀 있는 상태에서 군복무 가산점제를 실시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해 여성들에게도 가산점을 받을 수 있는 길을 튼 것”이라는 발언을 볼 때도 현 개 정법안의 의도에 대한 의심을 할 여지가 충분하다. 현 병역제도 개선안에는 단지 여성 뿐 만이 아니라 이제껏 병역 의무가 부과되지 않거나 면제 처분을 받았 던 ‘신체 일부 결손, 신체활동 일부제약, 약물로 조절 가능한 질환, 중학 중퇴, 귀화자, 외관상 명백한 혼혈 인, 1년6개월 이상 수형자, 고아’7 ) 등도 포함되어 있으며, 정부는 이들에의 의무 부과, 혹은 자원 허용을 통 해 병역의무의 형평성 강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이렇게 누구나 ‘갈 수 있는’ 형평성이 주어졌으므로 여 성들도 사회복무를 통해 자발적으로 병역을 이행할 수 있으므로 가산점 제도를 시행해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 거나 여성에게도 선택권이 생긴 만큼 군필자에 대한 가산점 부여에 반대할 명분이 약해졌을 것이라는 주장까 지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군가산점제를 지극히 편협한 ‘여남 대결 구도' 로 왜곡하여 판단한 결과 에 불과하다. 군가산점제는 단순히 여성과 남성의 이익 여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병역 의무로 인해 피해를 받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며 그들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면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정의로 운가를 따지는 문제로 접근되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접근을 위해서는 ‘병역 의무’의 정당성 여부에 대한 논 의를 이 글에서는 고려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어쨌든 ‘군가산점’문제라는 것은 군대와 병역의무가 존재한다는 현실적 상황에서만 출발할 수 있는 논의이기 때문이다. 군가산점제도는 ‘7급 및 9급 공무원 시험과 기능직 공무원 시험 응시자 중 2년 이상 군 복무를 한 사람에 게는 공무원 채용 시험에서 5%, 2년 이하 군 복무를 한 사람에게는 3%의 가산점을 주는’ 병역 의무에 대한
7) 개정안의 내용을 객관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국방부 발표 자료에서 그대로 인용한 문구로써,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 고 생각하는 용어가 포함되어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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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 제도로서, 지난 3월 강광석 병무청장도 제도 부활의 가능성을 명백히 부정하며 언급한 바 있듯이 이미 99년 헌법상 보장된 평등권, 공무담임권,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음이 인정되어 헌법재판소 재판관 전 원 일치로 위헌 판결이 난 바 있는 제도이다. 이전처럼 군필자에 한해 공무원 시험에 가산점을 준다는 것은, 군대에 가지 못하거나 가지 않는 여성 및 非병역 복무자뿐만 아니라 군필자가 모두 공무원 시험을 보지는 않 는다는 현실을 보았을 때 시험을 보지 않는 군필자에게도 적절한 보상이 될 수 없다. 또한 기존에 주어지지 않 았던 병역 복무의 선택권이 여성을 비롯한 조금 더 많은 집단에게 주어졌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선택조차 할 수 없는 소수자들이 우리 사회에는 존재한다. 형평성과 정의의 문제는 상대적으로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보상 을 받을 수 있는가가 아니라 모두에게 공정하고 정의로운가를 판단하는 절대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 것이다. 이미 위헌 판결을 받음으로서 그 형평성과 정당성의 불합리함을 인정받은 바 있는 공무원 시험 가산점 제도를 2%로 퍼센트만 바꾸어 다시 들먹이는 것은, 보다 복잡한 병역 의무 부과의 정당성에 대한 논의를 단순 한 여-남 대결 구도로 몰아가 초점을 흐리고자 하는 정치적 제스처로 밖에 해석할 수 없다. 그 ‘보상’의 범 위가 5%이든, 3%이든, 2%이든, 0.001%이든 군가산점제가 타인의 헌법적 권리를 침해한다는 사실은 이미 명 백하게 밝혀졌으며, 이 제도 자체가 여성과 남성을 가리지 않고 군대에 간 사람이나 가지 않은, 혹은 못한 사 람 모두에게 차별적이라는 사실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만약 정부가 병역 의무 복무자들에 대한 진정한 보상을 고민하고 있다면, 복무자들 중에서도 극소수에게만 적용되는 군가산점제도가 아니라 군 복무 급여 증진이나 군 대 내 환경 및 인권 문제 개선과 해결 등에 보다 노력을 기울이는 태도를 보이는 편이 훨씬 현실적이고 진지 하게 보일 것이다. 따라서 병역의 문제를 여성-남성의 이익 다툼 문제가 아닌 보다 본질적인 국가에 의한 개 인의 통제에 관한 문제나 군사주의 확장의 문제, 혹은 최소한 조금 더 현실적인 문제로써 파악하고자 하는 사 람들 및 여성계의 군가산점 부활 가능성에 대한 우려와 비판의 근거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번 정부의 개선 안에서 여성을 비롯하여 이제까지 군 복무 의무 대상에서 제외되었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편입시키는 행위는 ‘형평성을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군사주의적 조직문화를 통한 개인의 ‘자유 억압’과 국가의 개인에 대한 ‘통제를 확장’시키려는 시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18호 31
| 평화 수필 1 |
P.e.a.c.e.E.s.s.a.y
2007 평화 캠프를 다녀와서 마몸 | stagehan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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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새로운 경험 평화캠프 끝나고 2주만에 찾아본 아랫집... 아랫집은 어떤 곳일까? 2층 가정집의 어스름한 복도를 따라 방 문마다 사무실 이름표가 보인다. 왠지 하숙집 분위기가 느껴지고, ' 전쟁없는 사무실' 안은 동아리방 분위기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자료집과 치우지 않은 여러 흔적들을 보니 긴장이 풀린다. 오후에 일정에 맞춰 사람들 하나둘 모여들고 기쁜 마음이 다시 내 안을 채웠다. 우선 나를 소개하면? 평화인권연대나 전쟁없는 세상과는 딱히 연관이 없다. 비폭력 대화 수업을 듣고 연습 모임을 나가던 중 우연히 듣게된 평화캠프 이야기... 여행이나 갈까하던 참에 캠프가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즐겁게 놀수 있을 것 같아서 캠프에 참가하게 되었다. 지난 캠프 사진들을 보니 분위기가 굉장히 좋아 보였다. 올해 신청한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지난 캠프에서의 느낌을 잊지 못해 다시 찾은 사람이 꽤 많았다. 도대체 어 떤 캠프야? 호기심과 기대가 마구 발동했다. 평화캠프는 오산의 한 폐교를 살려 만든 생명의 학교에서 진행되었다. 교무실을 포함해서 교실이 4개 정 도... 참 작은 학교다. 어떻게 여기서 6학년까지 수업을 받았을까? 교실하나는 화장실과 부엌으로 쓰고, 나머 지 교실 두개를 터서 넓게 쓰고 있었다. 운동장으로 보이는 잡초로 무성한 앞마당에는 거인 나무랑 평상이 있 다. 아직 8월이라 더웠지만 평상에 누우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서 낮잠 즐기기 아주 좋았다. 덕분에 마지막 전체 워크샾은 평상에서 수박을 먹으며 진행했다 내년에 가면 어떻게 되어 있을지 모르지만, 강아지 두마리가 맞아준다. 검둥이 혹은 흑염소로 불리는 리베 로. 별칭 그대로 까만털에 까만눈에 마른 몸을 가지고 있어 흑염소처럼 생겼다. 이보다 조금 작은 귀염둥이 엠 마가 있다. 얘도 역시 이름보다는 별칭으로 흰둥이, 잠팅이, 깐돌이로 불렸다. 애정결핍인지 리베로에게 너무 안길려고 애쓰는데, 리베로는 그 마음을 잘 받아주지 않는다. 흰둥이가 어려서 그렇지 실제로는 몸집이 더 큰 종이라고 하던데, 내년에 가면 상황이 또 어떻게 되어 있을지 궁금하다. 학교 뒤편에는 환경친화적으로 만든 화장실이 하나 있다. 볼일을 보고 난 후에 퇴비를 한 삽 퍼서 놓는 방식으로 되어 있어, 냄새도 그리 많이 나 지 않는다. 작은 오두막처럼 되어 있고 밤중에 볼일을 보러 가면 오롯히 혼자 앉아있는게 아늑하고 기분이 좋 다. 이게 자연과 연결되며 세상의 중심에 내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캠프 일정은 워크샵 중심으로 진행되었는데, 시간표가 특이했다. 시간표에는 시간이 나와있지 않고, "오전 - 오후 - 저녁" 으로만 되어 있었다. 그냥 그런가보다 했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 일정표에 사람들을 맞추는게 아니라, 사람들의 리듬에 맞춰서 일정을 진행하는거~ 그래서 일정만을 소화해서는 얻을 수 없는 '여유와 열림' 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덕분에 생명의 학교라서 느낄 수 있는 것들을 충분히 얻을 수 있었다. 거인 나무 아래에서 시간을 보내고, 자전거 타고 동네 구경도 나가고... 검둥이랑 흰둥이랑도 놀고... 열림을 통해 사람들 과 가까워지고... 사람들이 편안함에 너무 잘 적응한 탓일까, '염효과'라는 말이 나왔다. 꼼꼼히 준비해온 긴 발제문을 읽는 동안 사람들은 ' 염효과' 에 조용히 꿈나라로 빠져들었다. 밤이 되면 밤마다 밤펜의 요리와 함께 피스바가 열렸다. 편안하게 마시는 맥주 한 두캔과 함께 같이 부르는 노래. 한켠에선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보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18호 33
는 경달이의 타로카드 점. 사람들을 위해 안주꺼리로 음식을 만들어주던 밤펜, 심지 어 간식으로 국수를 넣어 라면을 끓여주기 도 했다. 처음 나오는 사람들의 이름에 적응이 잘 안 될 수도 있겠다. 이번캠프에서는 불 리고 싶은 이름을 인디언식으로 짓기로 했 다. 경달이는 '경쾌하게 달리는 아침', 밤펜 은 ' 이밤에 펜을 잡고... 낮에는 뭐하지', 염은 ' 조금있다 할께염' 을 줄여서 부르는 별칭이다. 다 적어보면, 줄임말 없는 '우리 는 속았다', '변태와 훈태 사이', '처음이지 만 괜찮아', '기타걸'. 무를고는 '무지개를 사랑하고', 마몸은 ' 마음으로 몸을 치유해', 웨시는 ' 웨이크업 시스', 빡가는 '바닷속을 날으는 활기찬 빡가', 몽골바람은 '몽골 사막의 바람과 같이', 이야는 ' 말이 통해야 ?' 시린은 '?'. 꽁유현지는 ' 공유랑 딱 한번만 연애하고픈 현지', 돌물아(?)는 '돌에 물주는 아이' 와 같이... 짬날때마다 혹은 염효과가 발동될 때 뜨는 팔찌는 참 예쁘다. 만들진 못했지만(^^), 만드는 재미, 선물해 주는 기쁨, 선물받는 기쁨이 있다. 정성스레 만들어준 팔찌를 받는 기분이 참 좋다. 주는 사람도 이런 기쁨이 있겠지? 몽골바람은 '날맹' 이라고 귀엽게 이름이 새겨진 팥주머니를 선물받았다. 배탈이 자주나니 팥주머니를 용도에 맞게 쓸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팥주머니의 원래 용도가 아니더라도 마몸이 팥주머니를 만들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이 담겨있는 것 같다. 머리로 하는 워크샵이 아닌 손으로 하는 '채식쿠키' 만들기. 마음대로 모양 을 만드는 채식쿠기는 재미있었다. 똑같이 반죽을 만들더라도 다들 개성있게 어설펐다. 역시 이런 꾸미지 않은 어설픈 모습에 사람들은 서로 끌리는 것일까? 반죽이 숙성되는 동안 밤펜이 주최한 시 창작대회의 발표가 있 었다. 심사위원들의 작품평과 함께 시 1등을 발표했다. 1등 당선을 위해 물밑작업을 열심히 펼치는 경달이를 보면서, 처음이지만 괜찮아와의 동거도 혹시하는 생각을 갖게된 건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변태와 훈태사이와 공동 1등을 차지했다. 그렇다고 경달이 시를 못쓴다는 건 아니다. 밤펜은 보석찾기에서 사람들에게 각기 시를 써 주었는데, 경달에게 다음과 같이 써주었다. "혀를 내밀며 달려오는 강아지에게 돌멩이를 던지지 말고 채식쿠키를 던지라!" 경달은 이 시를 온전히 해석하며 뛰어난 자질을 뽐냈다. 캠프마무리는 보석찾기로 마무리 했지만, 시 낭독을 하면서도 캠프 동안의 마음이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낭독할 때는 시를 읽을 때와 는 다른 울림이 있었다. 다른 사람의 시를 들으면 내 안의 다른 고리들이 활성화되고 차분한 분위기에서 지난 시간을 돌아볼 수 있었다. 술마시고 노래부르며 진행한 노래만들기 워크샵에서 서로의 고민을 마주볼 수 있었 고, 저녁에 불끄고 영화를 보면서 캠프에서 또다른 느낌을 얻을 수 있었다. 돌이켜보니 여유로우면서도 많은 워크샵들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보석찾기 게임을 하며 캠프를 마무리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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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다. 3박 4일간 서로에 대해 찾은 보석을 적어주었다. 잡학다식한 염은 실제 보석 이름을 써주고 보석의 뜻 을 설명해주며 우리를 즐겁게 해 주었다. 캠프를 마치고 우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겠지... 캠프 다녀온 후 경 달이가 쓴 시가 맘에 와 닿는다.
사랑이 끝나다. - 경달 -
사랑이 끝나다. 다정함, 믿음과 신뢰, 의지, 도움, 보살핌, 지지, 공감 시간은 흐르고 사랑이 끝나다. 열정은 천천히 식으며 그림움을 만들어낸다. 함께 한 시간 속에서 우리는 정말로 다르고 정말로 같았다. 우리의 꿈이 연결되어 다시 만날 때 우리의 사랑은 다시 시작된다. 끝이 나더라도 끝이 아닌 사랑 2. 포기 캠프를 가게 된 건 당시 여행을 하며 마음 속을 비워내고 싶은 욕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여행을 하면 훌훌 털어내버릴 수 있을까 하는 기대와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을 기대하며 캠프에 함께했다. 지나친 열정이었을 까, 오산까지 자전거로 같이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나름 체력도 된다고 생각했으나, 경험이 부족했던 것 같다. 자전거를 탈때는 그렇게 많은 짐을 등에 지면 안되는 건데... 변태와 훈태사이는 예전에 짐을 가볍게 하기 위 해 심지어 지도의 동쪽 부분만 남기고 서쪽 부분을 잘라서 버렸다고 한다. 등짐을 많이 지니 평소보다 체력 소 모가 많았고, 경계물을 비껴넘을 때 미끄러지기도 했다. 다행히 일행들과 짐을 나누어 질 수 있어서 훨씬 나았 다. 도로를 타고 신나게 달리며, 자동차가 씽씽 달리는데도 정신을 집중하여 지지대 고개도 넘을 수 있었다.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18호 35
오산을 지나 거의 목표지점에 다 왔을 무렵 마지막 고개 몇개를 남기고 체력이 완전히 떨어졌다. 자전거를 타고 앞으로 나가기는 커녕, 다리를 위 아래로 움직일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여기서 포기인가? 이럴 순 없 는데... 돌아갈 생각을 하니 더 캄캄해져서, 일단 바닥에 주저앉고 가방을 뒤져보았다. 일단 스킨로션을 버리 고, 가방 깊숙한 곳의 팥 500 g 봉지는 손에 잡히자 마자 버렸다. 스킨 안바르면 뭐 어때, 며칠만 있으면 되 는데... 팥주머니에 넣을 팥은 각자 알아서 넣으라고 해야지... 팥은 500 g 이었고, 스킨도 유리병으로 된 거 라 다 합하면 거의 1 kg 쯤 된다. 내가 왜 그랬을까 싶었다. 감당할 수도 없으면서 왜 그리 많이 넣어왔는지, 왜 오면서 버릴 생각을 못했는지... 버리고 나서 가방을 다시 들어보니, 이런... 훨씬 가벼웠다. 일단 이번 언 덕은 걸어서 넘고, 내리막부터 힘을 내면 금방 일행을 따라잡을 수 있겠다. 정말 조금만 더 가니 생명의 학교로 들어가는 진입로였다. 생명의 학교 운동장에 들어서며 "땡땡땡" 신나게 자전거 종을 치며 들어갔다. 오면서 있었던 힘든 것들이 싹 잊혀지면서 같이 어려움과 기쁨을 나누며 온 일행 들에게 고맙고 뿌듯했다. 게다가 다음날 무를고는 내가 짐을 버린 곳이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며 짐을 찾으러 가자고 했다. 괜히 부담주는것 같았지만 한편 짐이 아직 있을까 궁금하기도 해서 둘이 짐을 찾아 나섰다. 생명 의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고, 내가 버린 그 자리에 그대로 짐들은 누워있었다. 이곳에서 하룻밤을 고스란 히 지샌 것이다. 그렇게 돕과 함께 짐을 찾아올 수 있었다. 내 마음속에 지고 있는 짐이 떠올랐다. 감당도 하지 못하면서 모든 걸 다 부여잡고 아무것도 버리지 못하는 내 마음... 지금 너무 힘들면 포기해도 된다고, 포기한다고 해서 다 끝나는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희망. 친구 들이 있으면 다시 찾아올 수도 있을 꺼라고 믿으면서 시를 하나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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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
이루고 싶고, 또 이루어야 하는, 저 목표...
- 마몸 끝이 보이지 않는 목표... 이제 다 왔을까?
바닥에 주저앉아 그동안 내려놓지 못하던 짐들을 하나하나 내려놓는다.
목표를 이룰 때까지 조금만 더 참아야지... 이번 고개가 내가 넘을 수 있는 마지막 고개라고 생각하며 다시 힘을 내어 페달을 밟는다.
이제 이걸 내려 놓으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버리기엔 너무나 소중하고, 포기하기엔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 한켠에 꼭 움켜쥐고 있는 사랑...
하지만 고개를 넘고 나면 다시 나타나는 고개.
짐을 버리고 한결 가벼워져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젠 더이상 못 가겠어. 바닥에 풀썩 주저 앉는다.
하지만 친구들이 있어 다시 짐을 찾아올 수 있었다.
3. 반대하는 것보다 원하는 것 그렇게 힘들고 재미있고 신났던 자전거 여행을 끝내고, 이틀 뒤 가벼운 차림으로 무를고, 웨시와 함께 동네 자전거 타기에 나섰다. 편안한 마음, 한가로운 시골길... 구름을 보고, 강아지 풀을 보고, 향기를 맡고 조잘거 리는 웨시. 어쩜 여행을 다니면서 주변을 느끼는 것도 자기 마음에 따라 달라지는게 아닌가 싶다. 내가 밝은 마음으로 열려 있어야 주변의 아름다움, 새로움이 들어오는 것처럼... 캠프에서 비워내고 싶은 것들이 많았는데, 막상 털어내려니 뭘 버려야 할지 모르겠다. 비폭력 대화에서 말 하듯이 이걸 털어내면 나의 어떤 욕구가 충족되는 것일까? 편안함? 난 무얼 위해서 털어버리려고 하는 걸까? 자전거를 타면서 답이 무엇인지 알게 된 듯했다. 즐거움, 다양한 느낌, 행복으로 내 마음을 채우고 싶어한다는 것을... 집착이나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내 욕구가 아니라, 행복하고 풍요롭고 싶은거였다. 캠프에서 자전거를 타고 내려가면서 본 몽골바람의 모습에서, 캠프에서와 캠프 후의 아랫집에서 본 우리는 속았다의 모습에서 이 둘은 참 멋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한다는 점에서, 자 신의 생각이 밖으로 배어나온다는 점에서, 배려가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멋있다는 점에서...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18호 37
'철콘 근크리트' 에서 마음을 나사에 비유한 것처럼, 많은 사람들은 '밝은 마음의 나사' 나 '멋있는 나사' 를 가지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각기 자기에게 없는 나사를 찾아 모이는게 아닌가 싶다.
시로 : 시로 나사가 많이 없어 형사 : 나사라니..? 시로 : 마음의 . . .나사 . .. 실패한거야 하느님이 많이 형사 : 실패? 시로 : 그래서 말야 쿠로도 말야. 많이 나사 없어. 마음의 나사가. 형사 : 쿠로도 실패한거야? 하느님이. 시로 : 그래. 그래도 쿠로가 없는 나사 시로가 갖고 있어. 시로가 전부 갖고 있어.
내가 그토록 포기에 목말라하면서 집착을 털어버리려고 했지만 실은 행복으로 채우고 싶어했던 것처럼, 전 쟁에 반대하는 것 너머엔 우리가 원하는 평화라는 추상적인 상태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 평화로운 상 태에선 '웨시', ' 몽골바람', ' 우리는 속았다' 와 같이 밝고 멋진 나사를 가진 사람들이 넘쳐나지 않을까 상상해본 다. 모팔모는 철기방에서 강철검을 만드는데 온 생애를 바치지만 정작 모팔모는 튼튼한 농기구를 만들고 싶어 한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에서 데미언은 아래와 같은 말을 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언젠가 댄이 한 말로 계속 고민해 왔었어 '무엇에 반대하는지 아는 건 쉽지만 뭘 원하는지 아는 건 어렵다' 고 했지 Dan once told me something I've struggled with all this time. He said, "It's easy to know what you're against, quite another to know what you are for. "
위해 보고, 효과가 잘 들어갔는지, 사운드는 잘 어울리는지, 음악은 적절한지 등을 보고, 최종 마무리로 맘에 들게 나왔는지 검토에 또 검토를 하며 보고, 보고 또 보고 셀 수도 없이 같은 영상을 반복하여, 되풀이해 서 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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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훌륭한 다큐멘터리를 만든 것은 아니지만, 평화수감자의 날 두 번째 날 행사를 위해, 영상팀 동료들이 찍어 온, 이제 들어갈 또는 출소한 CO들의 인터뷰 동영상을 편집하게 되었다. 나 또한 반복적으로 그들의 모 습을 보고,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할 수밖에 없었다. 화면 속의 그들은 내가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거나 또는 별로 대화를 해 볼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화면 속의 낯선 인물들이 많 이 좋아져 버렸다. 12월 1일 평화수감자의 날, 행사의 일환으로 자전거 행진을 하기위해 국회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 속에서, 지금은 성동구치소에 수감중인 경수씨를 봤다. 하마터면 반갑게 "경수씨~" 하고 부를 뻔 했다. 그렇지 만 조금 이상해 보일까봐 참았다. 나의 눈은 반가워서 경수씨를 똘망똘망 쳐다보고 있는데 눈이 마주치자 경수 씨는 나를 무심히 쳐다보고는 고개를 돌려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했다. 경수씨는 날 그날 첨 봤을 테니 당연 한 거였는데 왠지 모를 서운한 마음은 대체 왜 드는 것인지...나도 참..... 그 날 첨 보는데 왜 그렇게 친근했 던지... 경수씨의 인터뷰를 (대략200번) 보면서 어찌나 멋있게 말 잘하는지 "짜~씩~ 멋진걸~~!!" 하면서 혼 자 막 대견해 했었던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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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 수필 2|
P.e.a.c.e.E.s.s.a.y 사회운동포럼 참가후기 자족적 운동과 확산적 운동의 경계에 서서 가람 | 전쟁없는세상 자원활동가 + kazkada0305@gmail.com
1. 다른 세상을 위한 소통과 연대에 목마르다 다른 사회가 가능하다는 믿음으로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여기저기서 움트고, 자라고 있는 풀씨들이 있다. 각자의 자리에 서 있는 그 다양한 풀씨들이 서로 소통하고 공유하고 연대하여 이루게 될 더 나은 활동, 더 많 은 영향력, 더 큰 변화를 꿈꾸며 사회운동포럼이 개최되었다. 사회운동전략과제 워크숍 중 한 꼭지였던 ‘2003년 이후 반전평화운동을 이야기하다’에 참여해서, 이제까지 한국의 반전평화운동 방식과 성과를 돌아 보고 아쉬웠던 지점들, 앞으로의 반전평화운동에 투영되었으면 하는 모습들을 세 시간여에 걸쳐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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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003년 이후 반전평화운동을 이야기하다 2003년 이후 진행되어 왔던 반전평화운동은 엄청난 인파의 물결로 종로 거리를 가득 메웠던 초기 형태와 달리 ‘다양한 모습’으로 분화되어왔다. 혹은, 다르게 표현하자면 그 폭발성을 잃고 간신히 이곳저곳에서 ‘맥만 유지’하고 있다. 평화바닥, 피스몹, 캠페인, 이라크피스팀(IPT), 지역풀뿌리운동, 전범재판 등. 초기 대중 집회와 참여 인원을 놓고 본다면 비교가 안 될 만큼 소수에 의한 운동의 모습으로 변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운동의 성과를 판단하는 기준이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머릿수’가 되어야 하는가? 참여 인원을 늘리기 위해 무차별 ‘대중’을 독려하려는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은, 혹은 다른 단체들의 참여를 촉구하지 않은 반전평화운동은 자족적인 운동이라고 평가해야 하는 것일까. 대중 집회의 사회적 가시성에 의한 파장효과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반전 그리고 평화를 위해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분화된 지점들에서 다양한 활동들이 필요하다. 각 분야에서 조용하게, 하지만 꾸준히 이어나가고 있는 활동의 성과를 가시성, 혹은 폭발성 여부로 판단할 수는 없다. 또한 같은 반전평화운동이라는 큰 맥락 속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단체들이라 할지라도 활동의 내용이 다르고 당장의 목표가 다르며 무엇보다 방식이 다르다. 서로의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 단체들이 만나서 실질적으로 어떤 활동을 만들어 갈 수 있을까? 소위 ‘마음이 맞는’ 단체, 즉 활동의 목표와 방식에 서로 동의하는, ‘코드가 맞는’ 단체끼리 모여서 쿵짝쿵짝 판을 짜고, 행사를 하고, 활동들을 만들어 나가는 방식이 운동의 영향력은 고려하지 않은 채 자기 만족만을 충족시키는 자족적 운동이라고 말 하는 평가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제껏 활동 단체들 간의 소통과 연대 를 이루기 위한 시도들이 다양하게 있어 왔고, 그 시도는 분명히 가치가 있다. 한 명보다는 두 명, 두 명보다 는 세 명이 꿈꾸는 세상이 보다 빨리 다가올 테니 말이다.
3. '자족과 ' '대중' 사이 한 달 쯤 전이었을까. 오랜만이라 더 반갑고 편안했던 술자리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 받다가 나의 운 동이 자족적 운동으로 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단순히 내가 신뢰하는 사람의 이야기여서가 아니라, 나름 정 곡을 찔렸다고 생각했다. 소위 말하는 '운동'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거창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나에게 있어서 운동이란 나의 삶에 서 시작되는 것, 나의 소소한 삶의 방식 하나하나에서 드러나는 생활양식이다. 내가 군사주의에 반대하는 것, 병역거부를 지지하는 것, 여성주의를 나의 삶으로 만드는 것, 그런 활동을 하는 것, 내가 채식을 하는 것, 내 가 맥도날드나 스타벅스, 홈에버 등을 보이콧하는 것, 내가 화석 연료를 소비하는 대신 자전거를 타는 것. 별 것 아닌 그저 나의 삶이지만, 나의 실천으로 '다른 방식'의 삶이 가능하다는 것, 그것이 더 아름답고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실제로 보여줄 수 있으면 그것이 진정한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삶에 꼭 구분된 이름을 붙여 야 한다면 말이다. 밖에 나가서 '대중(그들이 ‘대중’이면 나는?)'을 상대로 유인물을 돌리고 캠페인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나의 실천을 통해 나를 믿는 한명 한명의 사람들의 삶의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것 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 자족' 이라는 그 사람의 한마디가 나에게 그토록 날카롭게 다가왔던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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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를 뛰어 넘을 필요성도 분명이 있다는 사실을 내가 모르지 않고 있었다는 걸 일깨워줬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래, 실제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나의 방식은 자족적으로 비쳐질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걸 나 혼자 실천하고, 언젠가는 누군가 나의 생각을 알아줄 것이라고 믿는 방식. 결국 바뀌는 것은 없고, 혹은 바뀐다고 해도 변화를 인지하지 못할 만큼 그 속도가 느리고, 자기만족에 그치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나의 삶의 방식을 더 많이 알려내고 확산시키기 위해 실질적으로 어떤 노력을 해 왔는가.
4. 나의 운동을 정치화하기 ‘새로운 방식의 운동’을 원한다면, ‘새로운 방식의 평가’에서부터 출발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이제까지 익숙한 ' 운동가', 혹은 '활동가'의 개념은 직업적 활동가, 반(反)정부 제 3 섹터로서의 자기 정체성이다. '나'는 ' 대중' 과 분리되어 있으며 ' 대중'에게 무언가를 ' 알려내고' '이끌어야'하는 존재이다. 감히 말하건대, 지극히 오만 하고 엘리트주의적인 발상이다. 내가 곧 대중이고, 나의 변화가 곧 대중의 변화일 뿐. 포럼 토론 중간에, 한 활동가의 이야기가 가슴을 울렸다. “나의 운동은 자족적 운동이다. 그러나 남이 보 는 '자족' 보다 나의 자족은 훨씬 큰 의미를 갖는다. 나에게 운동은 곧 일상이고, 끊임없는 자기만족을 위한 노 력 속에서 나의 평화가 내 안에서 커지고 성장한다. 그렇기에 나에게 '자족적 운동'은 곧 '운동가'로서의 나의 발전을 의미한다.” 결국 모든 것은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다- 라고 말하면 지나친 일반화일까. 내가 '다른 방식'의 삶을 선택한 것도, 나를 통해 언젠가는 너도 그런 삶을 살기를 바라는 것도 결국은 내가 원하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의 충족을 위해서이다. 단지, 개인의 경험이 ‘개인의 경험으로’ 갇히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 다. 예전에 했었던, '익숙한' 방식의 스피치, 선전전, 캠페인, 대중 동원 집회만이 그러한 실천의 유일한 방식 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방식의 절대적 유효성은 더 이상 강요될 수 없고, 성과를 내지도 못한다. 나의 일상이 운동이라면, 개인의 운동을 정치화할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 개인의 운동을, 정치 화하기. '자족'적 운동과 '확산'적 운동 사이에서, 그 정치화의 경계는 어디이며, 방식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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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 수필 3|
P.e.a.c.e.E.s.s.a.y
아프가니스탄 피랍사태와 관련한 언론보도를 보면서 여옥 | 전쟁없는세상 책임활동가 + @hanmail.net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인이 납치되었다가 40여일만에 풀려난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크나큰 파장을 불러일으 켰다. 7월 말, 협상시한이 주어지면서 어떻게든 금방 끝날 것만 같았던 피랍사태는 쉽게 풀리지 않았고 티비, 라디오, 인터넷 등 온갖 매체들은 쉴새없이 아프가니스탄과 탈레반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납치된 사람들이 하루라도 빨리 풀려나기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걱정 때문이라는 것을 모르는건 아니지만, 이 문제가 어떤 상황과 배경에서 생겨난 것인지, 왜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해없이 그저 ‘테러 집단에 의한 납치’에만 초점을 맞추는 언론의 보도에 또다른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그동안 아프가니스탄은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언론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어떻게 보도하는가에 따라 생각하고 기억하며 그들을 판단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테러의 나라 아프가니스탄?
납치사건에 대해 보도하던 긴 시간 내내 자료화면으로 보여준 것은 사막에서 총을 들고 훈련을 하는 무슬 림 남성들의 모습이 대부분이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나라에 대해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들 은 모두 뉴스나 신문, 인터넷 기사를 통해서 접했을 것이다.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던 9월 11일, 쌍둥이 빌 딩이 무너져 내리는 장면,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의 모습, 빈 라덴과 무장단체의 훈련모습, 자살폭탄테러, ‘부르카’를 쓴 억압받는 여성들.. 언론매체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는 이런 이미지들과 기사들의 반복은 아 프가니스탄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 또는 관심없는 사람들에게 ‘아프가니스탄=테러’라는 생각을 주입시 켰다. 이런 생각들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정당화시키는 근거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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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에서 자주 일어나고 또 언론을 통해서 자주, 때로는 자세히 보도되는 자살폭탄테러의 현장을 떠올려보자. 혼잡한 상점가 로 돌진한 차량의 폭탄, 무너진 건물의 잔해와 뒤엉킨 시체들, 피흘 리며 울고 있는 아이, 죽은 사람을 붙들고 통곡하는 사람, 충격에 휩싸여 어쩔줄 몰라하는 사람들.. 상상만으로도 너무 끔찍하고 소름 끼치는 일이다. 그런 사건을 자세히 보여주는 것은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그런 일을 저지른 사람이 얼마나 나쁜지 판단하게 한다. 그리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런 일을 저지른 잔인한 놈들을 막아야한다는 여론을 형성하게 한다. 아프가니스탄과 함께 떠오르던 ‘자살폭탄테러’는 미국에게 아주 유리한 뉴스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미국과 나토군의 폭격으로 수많은 어린이와 민간인들이 사망하고 있지만 그런 기사는 잘 보도되지도 않을 뿐더러 그들의 공격은 ‘테 러’가 아닌 ‘공격’이나 ‘군사작전’으로 표현되고 보도된다. 아프가니 스탄에서 7년째 점령전쟁을 벌이며 수천, 수만 명의 무고한 사람들
▲ 아프가니스탄 지도. 아프가니스탄은 지리적 위치상 침략과 분쟁이 끊이지 않 았다. 하지만 언론 보도는 그런 역사적 맥락보다 ‘테러’ 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 다.
을 죽이고 국민의 3분의 1을 난민으로 내몰고 있는 미국의 행동은 ‘테러’와 다른 점이 무엇일까? 하지만 언론의 눈에는 미국의 공격으로 죽은 사람들보다 자살폭탄테러로 죽은 사람들이 더 잘 보이나보다. 그런 언론을 통해 정보를 접하는 일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보도에서 본 것을 믿 게 되고, 그렇게 생각하게 되고, 그런 태도를 갖게 되고,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인다. 한 쪽으로 치우쳐진 ‘사실’에 대하여
2001년 9월 11일, 수많은 사람들이 안타깝게 목숨을 빼앗아간 911테러는 전 세계에 엄청난 충격과 공포로 남아 테러와 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테러 때문에 무고한 사람들이 죽음으로 내몰린 것은 이루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슬픈 일이었지만 그에 대한 보복공격으로 인해 또다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으로 내몰린 것 또한 똑같이 가슴 아프고 슬픈 일이다. 특히 911테러와 같은 극단적인 절망과 분노에 뿌리 내린 행동의 배 경에는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한 또다른 수 없는 많은 무고한 사람들의 죽음이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미국과 나토군의 침공 이후 계속되는 전쟁으로 사망한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수는 집계하기조차 어려 울 정도이고, 2006년 한 해 동안 적어도 4천명 이상의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사망한 것에 대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모르거나 기억하지 못한다. 혹시나 언론을 통해 보도가 되더라도 테러리스트를 소탕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언론의 보도내용을 보면 주로 사건 위주로만 보도할 뿐, 그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이나 의도에 대해서는 제 대로 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똑같은 사건이 벌어져도 좀더 자주 보도되는 사건이 있는가하면 거의 보도되지 않는 사건이 있다. 실제로 어떤 사건이 생겼을 때, 그 현장이 어떻게 되었는가도 중요하지만 그 사건 이 왜 벌어졌는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사건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어떤 세력인지도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그 사건을 해석하고 보도하는 사람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서 보도의 내용은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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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라지게 된다. 아프가니스탄에 선교하러 간 기독교단체가 문 제의 핵심인지, 미국이 벌이는 ‘테러와의 전쟁’에 파병으로 동참해 서 테러의 대상이 된 것이 문제인지는 분명 다른 지점과 다른 시 각에서의 해석과 보도가 가능하다. 기독교의 해외선교에 대한 비 판 역시 충분히 가능한 것이고 성찰과 반성이 필요한 부분이라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911 이후 미국이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한 빈 라덴이 아프가니스탄에 있다는 이유로 그곳에 ▲자살폭탄테러의 흔적(연합)
폭탄을 퍼부어 지금처럼 삶의 터전을 엉망으로 만들어놓은 것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테러와의 전쟁' 이었고, 이 전쟁의 동맹국으로써 국익을 위해 파병 중인 한국의 모습을 돌아 보고 반성하는 시선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은 언론이 중립적이고 공정한 입장을 가지고있지 못하다는 것을 그대로 드러낸다.
▲미국과 나토군의 폭격(연합)
이번 납치사건 발생 이후 한국 정부에서는 아프가니스탄을 여 행금지국으로 지정하여 입국을 금지시키고, 정부 허락없이 입국하
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해서 기자들의 출입마저 단절된 상황이었다. 그렇 게 한국의 언론들이 외신보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 는 대부분의 정보는 미국, 영국 등 강대국들의 보수적인 메이저 언론사를 통해서 들어온다. 많은 언론들은 미 국의 입장을 지지하거나 미국과 함께 행동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의 시선을 통해 사건을 바라보게 되고, 외신의 내용을 판단할만한 역량이 부족한 국내 언론들은 무분별하게 인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그것을 보는 독자는 그 해석을 ‘사실’이라고 믿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눈에는 무고한 민간인들을 인질로 잡아들여 협박하는 비인간적인 탈레반만 보일 뿐 이지, 이미 오랜 세월동안 전쟁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고 대부분의 사회기반시설이 파괴되어 일상 을 살아가기조차 힘들만큼 처참하게 고통받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미국의 아프간 침 공은 천연가스와 석유에 대한 송유관 사업과 관련이 깊다는 것도 보이지 않는다. 미국과 나토군이 저지르는 온 갖 살인과 폭력, 그리고 미국이 세운 현 정권의 부정부패가 ․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적대감을 키웠고, 그 결과 로 탈레반이 성장해왔다는 배경도 보이지 않는다. 생명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며 납치된 사람들의 무사귀환을 바 라는 한국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생명은 관심대상이 아니다. 아프가니스탄과 미국의 관계에 대해 알게 될수록 고민은 깊어진다. 911테러를 핑계 삼아 원했던 석유․가스 송수관 건설을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폭격했고 아직까지도 점령을 위해 내전을 계속해온 미국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라고 인정하자. 그렇다면 나쁜 미국에 저항하기 위해 자살폭탄테러를 일삼는 탈레반의 입장을 지지할 것 인가? 아니면 인질들의 목숨을 담보로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을 요구하는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탈레반의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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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쁜 것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그런 나쁜 놈들을 처치하기 위한 미국의 침략전쟁은 정당화될 수 있을까? 이렇게 둘로 나누어진 이분법적 사고방식은 평화운동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첨예한 입장 차이를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이 진짜 어느 한 쪽을 선택해야하는 문제일까? 그런 생각으로는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뿐더러 어떤 행동을 할 수도,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 오히려 상황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그 동안 언론에 갇혀있던 시각에서 탈피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미국의 거대한 패권전략과 전쟁에 고통받아온 아프 가니스탄 사람들이 안정적인 삶을 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야말로 문제 해결에 한발 더 다가서는 길이 아닐까? 개인보다는 정부를, 책임보다는 성찰을
탈레반 무장 세력에게 납치되었던 사람들이 피랍 41일 만에 석방되었다. 무사히 돌아오시게 된 것을 다행 스럽게 여기지만,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두 분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애도의 뜻을 표한다. 이제 언론의 관심 은 구상권과 기독교의 책임론에 맞춰져 있다. 침략이 테러를 부르고 테러가 또다시 전쟁을 부르는 폭력의 악순 환 속에서 그 원인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고민 없이, 오늘날까지 전쟁에 시달리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고통과 아픔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고 우리 정부는 오로지 국익과 평화재건만을 운운하며 미국의 대태러전에 동참했다는 것이 납치사건의 원인 중 하나였다는 사실은 벌써 잊어버린 걸까? 그리고 중동이나 아프가니스탄 에 대한 이해없이 경쟁적으로 외신을 인용하는 언론들의 정보왜곡에 대한 책임도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 그 런 것들을 빼놓고 교회나 개인의 잘못으로 -물론 보수기독교의 문제도 심각하지만- 그 책임을 모두 전가하고 자 한다면 지금의 파병정책이 지속되고 제국주의의 침략과 점령이 지속되는 한 이와 같은 일은 또 벌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피랍사태가 파병에 대해 다시한번 진지하게 검토하고 고민해보는 기회가 되고, 만약 파병이 평화가 아닌 분쟁과 갈등을 확산시키고 있다면 과감하게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늘 그래왔듯이, 시간이 지나면 지금의 이런 논의마저도 서서히 잊혀질 것이다. 그리고 가끔 아프가니스탄과 관련된 뉴스를 접할 때마다 그동안 떠올리던 911테러와 빈 라덴, 테러와의 전쟁, 자살폭탄테러, 무슬림 등등의 이미지에 ‘한국인 납치’라는 좀더 구체적이고 강력한 기억이 추가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우리가 잊지 말아 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은 전쟁과 점령으로 고통받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그곳에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 사람의 목숨만큼 소중한 아프가니스탄 사람의 목숨이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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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이야기 두 번째, 나에게 채식은 용석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 현재 청주교도소 수감 중
☮ 채식의 시작 신기하게도 아주 자연스러운 시작이었다. 마치 병역거부가 나에게 그러했듯이 채식을 받아들이는 데도 어떤 특별한 계 기나 사건은 존재하지 않았다. 군대 갔던 친구들이 제대하면서 채식주의자가 되어 왔고 (이제는 이 미스테리를 조금 이해 할 것도 같다) 그 조음부터 관계를 맺은 평화운동가들을 통해서 채식의 의미를 알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샌가 나도 채식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쉽진 않았다. 세상을 바꾸는 거 보다 습관을 바꾸는 것이 더 어려울지도… 머리가 아니라 몸이 채식을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리라는 친구의 조언에 정말 넉 놓고 기다렸고 몸이 받아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채식을 시작하게 되었다. 채식은 놀라운 경험이었다. 나에게는 세상사는 데 커다란 두 가지 즐거움이 있는데 하나는 새로운 것을 알게 되어가는 즐거움이고 나머지는 나의 존재가 사람의 관계 속에 충만함을 느끼는 즐거움이다. 채식은 나에게 완전히 다른 세상을 보 여주었고 난 새로운 지식에 행복하며, 또 전혀 새로운 앎의 형태에 감사했다. 그 동안 가려져 있던 불편하고 추악한 진실 들-거대한 자본집적의 육식산업이 어떻게 환경을 파괴하는지, 동물을 어떻게 학대하는지, 사람들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제3세계 농민들을 어떻게 착취하는지, 생물졸의 다양성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을 알게 되었고, 또 그 지식들 이 머리가 아닌 몸에 아로새겨지는 앎을 경험하게 해주었다.
▲ 평화캠프에서 해먹은 채식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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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익숙해지면 편해지고 항상 긴장하지 않으면 성찰하지 않게 되는 법. 나의 채식도 어느덧 습관으로 굳어지고 귀 찮은 마음에 의미 찾는 것을 게을리 했다. 정말 귀찮았다. 채식이 귀찮았던 것이 아니라 채식을 설명하는 것이 귀찮았다. 이상하게도 유난히 채식에 적대적인 사람들(내 경험상 병역거부보다도 채식에 대한 적대감이 더 컸다. 특히 운동권들에게 서 그런 적대감(?)을 많이 느꼈다)과 논쟁하거나 하는 것도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정말 별 소리 다 들었다. 채식하는 사 람들이 평화 운운하는 거 역겹다. 채식은 고기 먹는 사람들 불편하게 하기 때문에 폭력적인 방식이다. 채식 때문에 GMO (유전자조작식품) 문제가 생긴다 등등. 때로는 이런 가시돋힌 말보다 이해를 가장한 일종의 무시(‘그러든지 말든지’하는 태도들)가 더 가슴 아팠다. 몇몇 친구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채식을 중단(그들이 그렇다고 태도를 돌변한 것은 아니고, 여 전히 고기를 지양하는, 잠재적인 베지테리언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일시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 중단’이라는 단어를 썼 다)했다. 나 역시 위기라면 위기일 수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고기를 먹어야 할 이유도 없었고, 더 큰 이유는 내 주위엔 그 래도 몰이해보다는 나보다 더 나를 이해하고 존중해 주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감 후 경험들-저번에 밝 혔던-이 나에게 새로운 의미를 위한 즐거운 상상의 계기를 던져 주었다.
☮ ‘음식을 ’ 생각하다. 보다 넓게 ‘음식’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우리에게 음식은 무엇일까? 5,000원 짜리 설렁탕, 3,000원 짜리 짜 장면, 10,000원에 두 마리 통닭, 15,000원에 피자 투 판, 콜라는 서비스. 돈을 주고 구입하는 상품, 자동차나, 컴퓨터, 시계 등과 다를 바 없는 상품에 불과하다. 그보다 조금 높은 가치를 부여해도 우리의 미각을 즐겁게 해주는 기호품에 불 과하다. 근데 인간과 음식의 이러한 관계는 사실 그리 오래된 관계가 아니다. 그렇다면 본디 인간에게 음식은 무엇이었을 까? 환대권 씨의 글을 읽다가 ‘밥모심’ 이라는 재미있는 표현을 보았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아무 의미도 느끼지 못하고 습관처럼 불렀던 “ 밥은 하늘입니다~”로 시작하는 농활에서의 밥가도 생각이 났다. 지금의 비록 돈 주고 사는 상품, 혹 은 좀 더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는 도구에 불과하지만, 음식은 본래 우리의 생명활동을 유지시켜주는 것이었다. 뭇 생명만 큼 예술적이고 혁명적인 것은 없다. 음식은 비단 우리 몸에 생명의 에너지를 채워줄 뿐 아니라 다른 생명들과 우리를 이 어주었다. 자연에서 식재료를 얻고, 음식을 만들고, 음식을 먹고, 다시 배설하여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행위는 그 과정에 관련하는 모든 생명체를 서로 관계 맺어 주고 또한 그 순환을 통하여 그들을 영속적으로 존재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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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 대해서 새롭게 깨달아가면서 나는 보잘것 없는 교도소의 밥과 반찬도 천천히 꼭꼭 씹어 보시기 쇼ㅣ작했다. 내 가 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거룩한 이 생명활동 ‘ 음식모심’은 음식을 통해서 내 몸과 대화하고, 음식을 통해서 다른 생 명과 만나며, 음식을 통해서 지구의 생명공동체와 관계를 느끼게 해 주었다. 어떤 음식을 먹느냐는 결국 내 몸을 어떻게 바라보며, 지구와의 관계를 어떻게 먹느냐인 것이다.
☮ ‘관계를 ’ 회복하라. 오랫동안 우리 인간은 삶의 여러 측면에서 지구 생명공동체와 현명한 관계를 맺어왔다. 특히 인간의 가장 중요한 생명 활동인 색생활에 있어서. 우리가 쌀을 주식으로 삼는 것, 섬나라 일본이 다양한 해산물 음식문화가 발달한 것, 유럽의 사 람들은 쌀보다 밀에 의존하는 것, 알래스카의 에스키모들이 육류 위주의 식생활을 하는 것 모두 사실은 같은 모습이다. 자기가 딛고 사는 지구와의 관계를 지속시켜 가는 가장 현명한 방식으로 우리는 음식을 조달했던 것이다. 물론 인간이 지 나친 욕심을 부리곤 했지만 우리의 위대한 어머니 지구는 신비로운 그 자정능력으로 우리의 허물까지 깨끗이 씻어주었다. 하지만 이제 인간의 지나친 오만함이 모든 면에서 허용치를 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 다른 생 명들과의 관계, 대자연인 지구와의 관계 모두 그 파국이 멀지 않았음을 많은 사람들이 예측하고 있다. 물론 다양한 원인 과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얽혀있겠지만 난 ‘음식’ 에서 새로운 세계가 출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음식’이야말로 태 초부터 맺어온 생명관계망이고 우리 인간의 삶에서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창조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지나친 육식산업-그리고 거기에 길들여지고, 그것을 유지시켜주는 우리의 식생활-이 우리의 건강을 해치고,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가난하게 만들며, 지구를 회복불가능으로 몰아가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에 대 한 정보는 책이나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나는 채식이이 총체적으로 어긋난 관계를 회복하는 첫걸음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상품으로 전락해버린 음식을 넘어서 생명창조와 영속과 지속의 매개체로서 음식을 다시 인식하는 것은 현재 음 식산업의 가장 추악하고 거대한 음모, 거대축산업과 육류업계에 대한 거부부터 시작할 수 있다. 우리는 더 이상 더 많은 고기를 먹기 위해서 제3세계의 농민을 굶주리게 하고, 유전자 변형 작물을 만들고, 가축에게 끔찍한 고통을 가하고, 지구 를 병들게 하는 것을 거부할 수 있다. 음식에서 출발된 악몽은 곳곳으로 퍼져나간다. 좀 더 많은 고기를 싸게 생산하기 위해서 파괴되는 열대우림은 환경문제를 야기하고, 효율적인 사료생산을 위해서 점차 단일화 되어가는 농작물은 문화다양 성(인간의 많은 문화는 기본적으로 농사일과 연관되어 발전해 왔음을 기억하자)과 연관이 있다. 음식에서 발생한 문제들 은 음식으로 풀 수 있다. 채식은 육식거부를 넘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다양한 실천의 불발이 될 수 있다. 때문에 난 채식이 좀 더 풍성 해져야 한다고 느낀다. 우리는 여러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 고기보다는 야채나 곡류를 먹고, 가능하면 유기농을 먹고, 대형마트보다는 재래시장을 이용하고, 음식을 사먹기보다는 만들어 먹고, 더욱 노력하여 간단한 채소는 직접 재배해 먹는 것, 이 모든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이다. 채식을 통해서 나는 내 몸을 더욱 사랑하게 되고, 다른 생명들과 공생하는 방법을 찾고, 지구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나의 역할을 자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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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즐거운 채식을 위하여. 왜 하필 음식이냐고? 밥 안 먹고 사는 사람은 없다. 때문에 모두의 문제이면서, 모두가 새로운 세상을 창조해나갈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도 익숙한 오해들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그 오해들을 풀어가면서 정리 하고자 한다. 채식을 극단적인 행동으로 바라보거나, 반대로 극단성을 요구하는 시선들이 있다. 채식하는 사람은 뭘 먹고 사냐는 인 식이 전자요, 고기만 안 먹는 사람에게 생선은 왜 먹느냐고 하고 생선도 안 먹는 사람에게 식물은 생명이 아니냐는 반응 이 후자다. 이 두 가지 오해는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채식을 극단으로 몰아가려는 시각이라는 점에서 같은 행동이다. 하지 만 채식은 극단적이기보다는 가장 조화를 중요시하는 음식문화이다. 채식주의자는 우리의 모든 먹거리가 생태계의 순환에 가장 조화롭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때문에 히말라야 고산지대의 라다크 사람들이 야크를 먹고, 훗카이도의 아이누족이 물 고기를 주식으로 삼고, 알래스카의 에스키모가 육식을 주로 하는 것을 비난하지 않고 비난할 수도 없다. 그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자연의 시스템과 가장 조화를 이루고 있는 진정한 베지테리언이다. 가능한 한 상육하지 않으려고 덩치가 큰 야 크로 여러 사람이 먹으며 야크를 위해 기도하고, 저장을 위한 필요 이상의 물고기를 잡지 않는 모습은 오히려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준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보더라도 채식은 높은 도덕적 수준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성찰과 꾸 준한 노력을 요구할 뿐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안 먹는 게 아니라 내가 먹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반문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실천해가는 것이다. 또 다른 오해는 채식 한다고 세상이 바뀌냐는 것이다. 즉 채식은 취향일 뿐이며(존중받아야 할 취향이라며 선심을 쓰 기도 한다), 운동이라고 해도 그런 나이브(?)한 방식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여호와의 증인들의 병역거부는 어떻게 보면 그들의 종교적 취향(?)이었을 뿐이지만 그들의 희생을 밀알삼아 지금의 병역거부운동이 가능한 것이다. 운동 은 정치적인 행위이고 결국 어떤 정치성을 부여하느냐가 관건이다. 그리고 채식이 나이브한 방식이라는 데는 동의하지 않 는다. 거대자본-국가-거대권력은 이미 우리의 가장 사적이고 일상적인 영역에 깊숙이 뿌리내려 있다. 잘 보이지 않는 것 들을 항상 눈 크게 뜨고 찾아내서 그것들과 결별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국가권력을 진보세력이 획득하는 것보 다, 자본가의 권력을 노동자들이 접수하는 것보다, 우리의 삶을 권력이 주는 안락함과 기득권에서 분리시키는 것이 더 어 렵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채식은 그 자체로 완결적인 운동이 아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채 식만하면 된다고 하지 않았다. 인간이 얼마나 복잡한 동물인가. 인간과 인간이 만나는 사회는 더더욱 한 가지의 잣대만 가지고는 그 치수를 어림잡을 수도 없다. 그 세상을 바꾸려는데 한 영역에서 한 가지 방식으로만 가능하다고 여기는 것은 지나친 오만 아니면 무식이다. 채식은 인간이 완벽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다른 생명과 부족한 부분을 서로 메꾸며 공 존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때문에 부족한 인간의 모든 행위 또한 완전할 수 없음을 안다. 채식은 우리가 세상을 바꾸기 위해 해야 하는 수많은 노력 중의 하나일 뿐이고, 다만 상상력을 발휘하기에 따라서 중요한 키워드가 될 가능성을 내표했을 뿐이다. 비록 감옥에 갇혀서 주는 밥 먹고 있을 뿐이지만 난 나의 채식으로 무수한 세상이 만들어질 것을 기대하며 즐거워한 다. 하지만 지금가지처럼 누구에게도 채식을 강요할 생각은 없다. 권유하는 것조차도 조심스러울 뿐이다. 다만 이렇게 글 을 쓴다든지 캠페인 등을 통해서 육식의 문제점을 고발하거나 채식의 좋은 점을 선전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이것은 애시당초 논리적인 설득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채식이 결국은 ‘무엇을 먹을 것인가’, ‘음식에 대한 의미를 어떻게 할 것인가’ 라면 그것은 우리의 존엄한 생명창조활동과 깊은 관계를 가지는 셈인데 이것이 인간의 부족한 논리와 이성으로 인식될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처럼 고기를 먹지 않고도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보여줄 것이다. 느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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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디게 보일지는 몰라도 이것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 내가 변했듯이 다른 사람들도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믿는 것이 다. 채식은 비폭력시민불복종의 가장 중요하고 흥미로운 삶의 방식인 것이다. 내 주위에 점점 많은 사람들이 채식을 고민 하고 가능한 한 육식을 지양하려고 노력하고, 하다못해 나와 있을 때는 고기를 안 먹게 되는 변화를 이미 보이고 있다. 죽기 전까지 세상을 뚝딱 바꿔 놓을 것이 아니면-그렇게 빨리 바뀌면 세상 망한다. 사람도 빨리 변하면 죽을 때가 된 거 라고 하지 않나 zz- 이 지긋한 변화의 가능성을 즐기는 것이 어떨까? 상추쌈에 풋고추 한 입 물고 천천히 씹어가며 한 번 즐겨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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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 해석 번역 : 김훈태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 2007년 7월말 출소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김훈태 씨가 감옥에서 번역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연재 내용을 보시려면 김훈태 후원까페 http://cafe.daum.net/edunpeace 를 방문해 주세요.
행복한 지속 “들으라, 사리푸트라여. 모든 다르마는 비어 있으므로 생겨나는 것도 사라지는 것도 없느니라.” 여기서 말하는 다르마는 ‘것(thing : 물勿)’을 뜻합니다. 사람이 곧 다르마입니다. 나무 역시 다르마이 며, 구름도 곧 다르마입니다. 햇빛 또한 다르마지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다 다르마예요. 그래서 “모든 다르마가 비어있다”는 말은 곧 “모든 것의 본질은 빔이다” 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 것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해요. 거기엔 큰 기쁨이 담겨 있지요. 태어남도 죽음도 불가능하다는 걸 뜻합니다. 아발로 키타는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신 거예요. 날마다의 삶 속에서 우리는 태어남과 죽음을 목격하곤 합니다. 누군가 태어나면 그를 위해 출생증명서가 출력되어집니다. 나중에 그가 죽을 때는 사망증명서가 만들어지고요. 이러한 증명서들은 태어남과 죽음의 존재 를 분명하게 증거하지요. 그러나 아발로키타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니다. 태어남도 죽음도 존재하지 않 는다.” 우리는 그 말씀이 어떻게 해서 참인지 알기 위해 좀더 깊이 들여다봐야 합니다. 당신의 생일, 즉 당신이 태어난 날이란 무엇을 뜻하는 걸까요? 그날 전에도 당신은 이미 존재했을까요? 태어나기 전에도 당신은 이미 거기에 있었을까요? 제가 당신을 도울 수 있게 해 주세요. 태어난다는 것은 당 신이 무(無)로부터 어떤 것이 된다는 뜻이예요. 제 질문은, 태어나기 전에도 당신은 이미 거기에 있었는지입니 다. 암탉이 알을 낳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세요. 암탉이 알을 낳기 전에도 알은 이미 거기에 있었을까요? 예, 물론 그렇지요. 암탉의 뱃속에 있었겠지요. 당신 역시 세상 밖으로 나오기 전에는 속에 있었습니다. 무슨 말이 냐면, 당신도 태어나기 전에 이미 어머니 뱃속에 존재했다는 뜻이예요. 사실 어떤 것이 이미 거기에 있다면 태 어나는 것은 굳이 필요 없는 일이지요. 태어난다는 것은 무로부터 어떤 것이 된다는 뜻이니까요. 당신이 이미 어떤 존재로 거기 있다면, 태어난다는 게 무슨 필요가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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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른바 ‘생일’이라 하는 날은 사실 ‘지속일’입니다. 다음 번에는 “생일 축하합니다” 대신 “지속일 축하합니다”로 바꿔 말해도 좋겠지요. 저는 그게 더 나은 말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잉태될 때인 열 달 전으로 돌아가 본다면, 우리는 출생증명서에 더 좋은 날짜를 적어넣을 수 있을거예요. 중국이나 베트남 에서는 당신이 태어났을 때 이미 한 살이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머니 자궁 안에 잉태되었을 때부터 존재하기 시작했다고 말하며, 그 날을 출생증명서에도 기록합니다. 하지만 “그 날 전에도 당신은 있었을까요, 없었을까요?”라는 질문이 남지요. 만약 당신이 “있었습니 다”라고 한다면 제 생각에 당신은 옳게 말한 것입니다. 당신이 잉태되기 전에 이미 당신은 반은 아버지, 반은 어머니로 거기에 있었을 거예요. 왜냐하면 무로부터는 그 어떤 것도 생겨날 수 없으니까요. 무로부터 생긴 것 을 당신은 단 하나라도 말 할 수 있습니까? 구름이요? 구름이 무로부터 생겨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구름이 되기 전 그것은 물이었지요. 흐르는 강이었을 수도 있고요. 무는 아니예요. 동의하십니까? 우리는 무언가의 탄생을 상상할 수 없어요. 오로지 지속이 있을 뿐이지요. 좀 더 멀리 돌아보세요. 그러 면 당신은 아버지와 어머니뿐만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더 윗대의 선조들이 있기에 당신이 존재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을 거예요. 깊이 들여다봄으로써 저는 전생에 제가 구름이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건 시 가 아니라 과학이예요. 제가 왜 구름이었던 전생을 말씀드렸는지 아세요? 그건 제가 아직도 구름이기 때문입 니다. 구름이 없다면 저는 여기에 있을 수 없지요. 지금 이 순간 저는 구름이며 강이고 바람입니다. 따라서 저 는 과거에도 구름이고 강이며 바람이었음을 압니다. 또한 저는 바위였어요. 물 속의 미네랄이기도 했고요. 이 것은 윤회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구 생명체의 역사지요. 우리는 공기, 햇빛, 물, 진균류, 풀과 나무였으며, 단 세포 생물이었습니다. 부처님은 당신이 전생에 한 그루 나무였다고 말씀하셨지요. 그분은 한 마리 물고기였고 사슴이기도 했습니다. 이건 미신적인 얘기가 아니예요. 우리 모두는 구름이며 사슴이었고, 새이자 물고기였습 니다. 그리고 그것은 전생뿐 아니라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일입니다. 탄생만 그런 건 아니예요. 그 어떤 것도 태어날 수 없으며 죽을 수도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발로키타 가 하신 말씀이예요. 당신은 구름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죽음이란 어떤 것이 완전한 무로 돌아감 을 뜻하지요. 당신은 우리가 어떤 것을 무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전에 나눴던 종이 이야기로 돌아 가 봅시다. 우리는 종이를 성냥불로 태워없앨 수 있다고 착각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종이를 태웠다 해도 그것 중 일부는 연기가 될 테고, 연기는 피어오를 뿐 사라지지 않지요. 종이가 타면서 나온 열은 우주 속으로 퍼져 다른 존재들에 스며들 것이므로, 그 열은 종이의 다음 생이 됩니다. 재는 흙과 다른 종이의 일부가 될 거예요. 그것의 내생은 동시에 구름과 장마가 될지도 모르지요. 종이는 결코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 기 위해 우리는 아주 신중하고 주의 깊어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다른 존재들의 실상을 깨우칠 수는 있지만 우 리가 종이를 무로 돌릴 수 있는 것은 아니예요. 세상 모든 것이 그러하며 당신과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태어남과 죽음 따위에 영향을 받지 않 아요. 한 선사는 제자에게 이런 화두를 던졌다고 해요. “부모로부터 태어나기 전의 네 얼굴은 무엇이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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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은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여행으로의 초대입니다. 당신이 잘 해낸다면 아마 전생뿐 아니라 내생도 알 수 있 을 거예요. 우리는 지금 철학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 주세요. 사실을 얘기하고 있을 뿐이지 요. 당신의 손을 보면서 이렇게 자문해 보세요. “내 손은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을까?” 저는 제 손을 깊이 들 여다봄으로써 아주 오래 전, 30만년보다 더 오래 전부터 여기에 있어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오직 지속 할 뿐이예요. 죽은 적이 결코 없지요. 만약 제가 죽은 적이 있다면, 제 손이 어떻게 여기에 있을 수 있겠어요? 프랑스의 과학자 라부아지에는 “그 어떤 것도 생성되거나 소멸되지 않는다”라고 하였어요. 이 말은 반 야심경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동시대 최고의 과학자라 해도 작디작은 먼지 한 점, 또는 전자 하나조차 없애 버릴 수 없지요. 오로지 한 에너지 형태에서 다른 에너지 형태로 바뀔 수 있을 뿐이예요. 어떤 것도 절대 무가 될 수 없으며, 그것은 먼지 한 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흔히 사람은 먼지로부터 와서 먼지로 돌아간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그리 듣기 좋은 말이 아니예요. 아무도 먼지로 도아가고 싶어하지 않지요. 거기엔 사람은 매우 가치있는 존재인 반면 먼지는 아무런 가치도 없 다는 차별이 담겨 있어요. 하지만 과학자들도 정작 먼지 한 점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겁니다! 그것은 여전히 신 비예요. 먼지 한 점 속의 원자 하나, 그 원자 속의 전자들이 원자핵 주위를 초당 18만 마일(1mile=1.690km)의 속도로 돌고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정말 흥미진진하지 않습니까? 먼지 한 점으로 돌아간다면 정말 흥미진진 한 모험이 펼쳐질 거예요. 때때로 우리는 먼지 한 점이 무엇인지 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인간의 생이란 먼지로 돌아가는 과정이 라 말하며 인간 존재를 이해했다고 착각하기도 하지요. 왜냐하면 우리는 어떤 사람과 고작 2,30년을 지내놓고 그에 대해 모든 걸 안다고 여기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옆에 앉히고 운전하면서도 딴 생각 을 하는 거예요. 그에 대해 더 이상 관심이 없지요. 이 얼마나 오만불손한 짓입니까! 우리 곁에 앉아 있는 이 는 신비 그 자체입니다! 우리는 그를 안다고 생각하지만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있어요. 우리가 만일 아발로키 타의 눈으로 볼 수 있다면, 그의 머리카락하나를 통해서도 온우주를 알 수 있을 거예요. 그의 머리에 난 머리 카락 하나가 바로 궁극의 진실을 여는 문이 될 수 있지요. 먼지 한 점이 곧 하늘왕국이자 정토세계인 셈입니 다. 당신이 당신 자신과 먼지 한 점, 그리고 삼라만상이 더불어 있음(inter-being)을 알아차릴 때, 당신은 이 것 역시 그러함을 깨달을 수 있어요. 우리는 오직 겸손해야 합니다.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바로 앎의 시작이 다”라는 중국 속담이 있지요. 어느 가을날 한 공원에서 저는 하트 모양의 아주 작고 아름다운 나뭇잎 하나를 고요히 마음 모아 바라본 적이 있어요. 나뭇잎은 붉은 색에 가까웠고, 곧 떨어질 듯 나뭇가지에 간신히 매달려 있었지요. 저는 오랫동안 나뭇잎 곁에 서서 많은 걸 물어봤어요. 그리고 나뭇잎이 그 나무의 어머니였음을 깨달았어요. 우리는 보통 나 무가 어머니이고 나뭇잎들은 그 자식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그 나뭇잎을 보았을 때 그는 나무의 어머니이기도 하다는 걸 알았어요. 수액(樹液)은 뿌리에서 빨아들인 물과 미네랄이지만 나무를 먹여 살 리기엔 충분하지 못해요. 그래서 나무는 잎들에게도 역할을 나누었지요. 나뭇잎들은 미완의 수액을 완성하는 데에 책임을 지고 햇빛과 공기의 도움을 받아 나무에게 영양분을 공급해 줍니다. 그렇기에 나뭇잎들 역시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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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는 어머니인 거예요. 그리고 나뭇잎과 나무가 줄기로 이어져 있는 동안은 둘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기 쉽지요. 우리에겐 더 이상 어머니와 이어진 줄기가 없지만, 우리가 어머니 뱃속에 있었을 때에는 아주 긴 줄기, 즉 탯줄이 있었어요. 우리가 필요로 하는 산소와 영양분이 탯줄을 통해서 주어졌지요. 불행히도 우리가 생일이 라고 부르는 날, 탯줄은 잘리고 우리는 따로 떨어져 나왔다는 환상을 갖게 되었어요. 하지만 그것은 오해예요. 우리는 아주 오랜 시간 우리들 어머니에게 의지하고 있으며, 다른 여러 어머니들과도 그렇습니다. 지구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예요. 우리는 어머니 대지와 엄청나게 많은 줄기로 이어져 있지요. 구름과도 줄기가 이어져 있어 요. 구름이 없다면 우리가 마실 물 역시 없을 테지요. 우리 몸은 적어도 70%가 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구름 과 우리 사이에는 실제로 줄기가 있는 겁니다. 강과 숲과 벌목꾼과 농부의 경우도 마찬가지예요. 우주만물과 이어진 줄기가 있기에 우리는 존재할 수 있어요. 당신과 내가 이어져 있는 게 보이십니까? 당신이 거기 없다 면 저 또한 여기에 있을 수 없어요. 이건 확실합니다. 아직 보이지 않는다 해도 더 깊이 들여다본다면 보실 수 있을 거라 확신해요. 다시 말씀 드리지만, 이건 철학이 아니예요. 당신은 진실로 봐야만 합니다. 저는 나뭇잎에게 두렵지 않냐고 물었어요. 왜냐면 가을이었고 다른 나뭇잎들은 이미 다 떨어져 있었거든 요. 나뭇잎이 말했어요. “아니, 난 봄과 여름 동안 정말 열심히 살았어. 나무를 먹여 살리는 걸 돕느라 고되 게 일했거든. 그리고 내 많은 것들은 이 나무 안에 있지. 그러니 지금 모습이 내 전부라고는 말하지마. 잎으로 서의 모습은 오로지 내 작은 일부니까. 나는 나무 전체야. 난 이미 나무 안에 있음을 알고 있거든. 흙으로 돌 아가서도 난 나무를 먹여 살리는 일을 계속 할 거야. 그게 바로 내가 걱정하지 않는 이유야. 이 나뭇가지를 떠 나 땅으로 떨어지면 나무에게 손 흔들며 이렇게 말할래. ‘난 이제 곧 너에게 돌아갈거야.’’” 불현듯 그러한 지혜가 반야심경의 그것과 아주 비슷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당신은 삶 그 자체를 봐야만 합니다. 나뭇잎만의 삶을 말해서는 안 되요. 오로지 나뭇잎과 나무의 속 삶을 말 할 수 있지요. 제 삶은 다만 삶 그 자체예요. 당신은 그것을 제 속에서, 그리고 나무 속에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날 바람이 한 차례 분 뒤, 나뭇잎이 나뭇가지를 떠나 즐겁게 춤추며 땅에 떨어지는 것을 저는 보았어요. 나뭇잎은 자기가 이미 나무 속에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예요. 그건 정말 행복한 일입니다. 저는 고개를 숙였어요. 나뭇잎엑 많은 가 르침을 받았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나뭇잎은 태어남도 죽음도 있을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두려워하지 않았습니 다. 하늘에 떠가는 구름 역시 두려워하지 않을 거예요. 때가 되면 구름은 비가 되지요. 비가 되어 내려 노래 부르며 미시시피강이나 아마존강, 또는 메콩강의 일부가 되거나 채소위로 떨어져 나중에 사람의 일부가 되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정말 흥미진진한 모험이지요. 구름은 땅에 떨어진 뒤에 큰 바다로 흘러들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래서 구름은 두려워하지 않아요. 오로지 사람들만 두려워하지요. 바다 위의 파도도 시작과 끝, 즉 태어남과 죽음이 있어요. 그러나 아발로키타는 우리에게 파도가 비어있 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파도는 바닷물로 가득 차 있지만 개별적 속성이 비어있다는 거예요. 바람과 바다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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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에 파도라는 꼴이 만들어질 수 있지요. 시작과 끝이라는 자기만의 꼴을 알고 있다면 파도는 태어남과 죽음을 두려워할 거예요. 하지만 파도가 만일 자기가 바로 바다이며 바다의 일부임을 알게 된다면 태어남과 죽음으로 부터 해방될 겁니다. 각각의 파도는 태어나고 죽어간다고도 할 수 있지만 바다는 그것들로부터 자유롭지요. 어린 시절 저는 만화경 갖고 놀기를 좋아했어요. 만화경을 살짝 돌리면 멋진 광경을 많이 볼 수 있었지 요. 매순간 손가락을 조금만 움직여도 한 모습이 사라지고 다른 모습이 생겨났어요. 처음 본 모습이 사라졌을 때 저는 울음을 터뜨리지 않았어요. 왜냐면 아무것도 잃지 않았단 걸 알고 있었거든요. 또다른 멋진 모습이 항 상 뒤따랐지요. 당신이 만일 바다의 일부인 파도가 되어 세상을 바다의 눈으로 보게 된다면, 당신은 출렁출렁 오르고 내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그게 생각만으로 그쳐서는 안 되요. 그러한 관념의 만족 을 위해 제 말을 받아들이지는 마세요. 당신은 직접 참여하고 맛보고 하나가 되어야 해요. 명상으로도 가능하 겠지만 명상실에서보다는 날마다의 삶 속에서 그리해야 합니다. 음식을 만드는 동안, 집을 청소하는 동안, 산 책을 하는 동안 눈에 띄는 모든 것들의 본바탕이 비어있음을 보도록 노력하세요. 빔은 밝고 희망찬 낱말이에 요. 결코 비관적이지 않아요. 아발로키타는, 완벽한 깨달음을 얻은 깊은 선정 속에서 빔의 본성을 깨닫고 마침 내 모든 두려움과 괴로움을 뛰어넘으셨지요. 저는 웃음을 머금은 채 아주 평화롭게 죽어간 사람들을 보았어요. 그들은 태어남과 죽음이 큰 바다의 표면에 일렁이는 파도에 지나지 않음을, 만화경 속 광경들에 지나지 않음을 알고 있었거든요. 그러므로 당신 역시 구름과 바다와 파도와 나뭇잎과 만화경-즉 우주만물로부터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게 수없이 많다는 걸 알아야 해요. 어떤 것이든 주의를 기울여 깊이 살펴본다면 더불어 있음의 신비를 발견하게 될 거에요. 그리고 더 이상 태어남과 죽음의 두려움에 붙잡히지 않을 겁니다. 태어남과 죽음은 우리 머릿속 관 념에 지나지 않지요. 진실이 아니예요. 그건 위, 아래에 대한 관념과 아주 똑같아요. 우리는 손을 들어 가리킨 곳이 위이고, 그 반대쪽이 아래라고 철썩같이 믿잖아요. 하지만 지금 지구의 반대편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는 그게 맞지 않지요. 위와 아래라는 관념은 우주 전체로 볼 때 적합하지 않아요. 태어남과 죽음도 마찬가지입니 다. 그러니 계속 돌이켜 보세요. 당신은 늘 여기에 있었음을 깨닫게 될 거예요. 나뭇잎의 삶을 꿰뚫어보세요. 나뭇잎과 하나가 될 수 있을 겁니다. 구름 또는 파도를 꿰뚫어 보고 그와 하나가 되세요. 바다로서의 본성을 깨우치세요. 그리하여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지세요. 아주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면, 우리는 태어남과 죽음 을 극복하게 될 거예요. 내일 저는 여전히 여기에 있을 거예요. 하지만 당신은 아주 주의 깊어야만 저를 알아볼 수 있을 거예요. 제가 꽃이나 나뭇잎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저는 그러한 모습으로 당신에게 인사할 거예요. 충분히 주의 를 기울인다면 당신은 저를 알아보고 반길 수 있겠지요. 그러면 저는 정말 행복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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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와 썩정이8) “더러움도 없고 깨끗함도 없느니라” 더럽거나 깨끗하거나, 불결하거나 순결하거나, 이러한 것들은 우리가 마음으로 지어낸 관념에 지나지 않 아요. 갓 꺾어 꽃병에 담은 아름다운 장미는 깨끗합니다. 그 향기는 무척 싱그럽고 산뜻하지요. 그것은 깨끗함 이라는 관념을 뒷받침해 줍니다. 그 반대편에 썩정이가 있어요. 지독한 냄새를 풍기며 썩어가는 것이 바로 썩 정이입니다. 하지만 그건 겉모습을 보는 것에 지나지 않아요. 만일 당신이 그저 오륙일 동안 장미를 더 자세히 살핀다 면 그 장미가 썩정이의 일부가 된다는 걸 알 거예요. 닷새 동안 기다릴 필요도 없지요. 좀더 깊이 들여다보기 만 해도 지금 즉시 알 수 있어요. 그리고 당신이 만일 썩정이를 들여다본다면 그것의 내용물이 몇 달 안 돼 먹 음직스러운 채소나 아름다운 장미로 바뀔 수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이 타고난 정원사인데다 보살의 눈을 갖고 있다면, 당신은 장미를 보면서 썩정이를 볼 수 있고, 썩정이를 보면서 장미를 볼 수 있을 거예요. 장미와 썩정이는 더불어 있습니다. 장미가 없으면 썩정이를 얻을 수 없고, 썩정이 없이는 장미를 얻을 수 없지 요. 그 둘은 서로를 아주 많이 필요로 해요. 그러므로 장미와 썩정이는 똑같아요. 썩정이는 장미만큼 귀한 존 재지요. 더러움과 깨끗함이라는 관념을 깊이 들여다볼수록 더불어 있음에 대한 개념으로 우리는 돌아가게 됩니 다. 마쯔히마 니카야 경을 보면 세상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에 대해 아주 짧게 쓰여진 부분이 있어요. 매 우 단순하고, 이해하기도 아주 쉬우며, 또한 굉장히 깊습니다. “이것이 있기에 저것이 있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 이것이 이러하므로 저것은 저러하다.” 이것이 바로 불교 사상의 본디샘입니다. 필리핀의 마닐라 시에는 어린 창녀들이 많아요. 열너댓 살밖에 안 되는 경우도 있지요. 몹시 불행한 소녀 들이예요. 그들은 창녀가 되길 원치 않았어요. 가난한 가족의 생계를 위해 어린 여성들은 행상과 같은 일자리 를 찾아 도시로 몰립니다. 돈을 벌어 가족들에게 다시 보내야 하지요. 물론 이런 일이 마닐라에만 있는 건 아 니예요. 베트남의 호치민 시와 뉴욕 시, 파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시골보다 도시에서 돈을 벌기 더 쉽다는 건 사실이예요.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나이 어린 여성들이 가족을 돕기 위해 도시로 가야겠다고 마음먹는지 상 상할 수 있지요. 하지만 고작 몇 주가 지나면, 교활한 자가 나타나 돈을 백배는 더 벌 수 있다고 꾀입니다. 소 녀는 너무 어리고 또 삶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하기에 그걸 받아들여 창녀가 됩니다. 그날 이후로 그는 자신이 더럽고 불결하다고 느끼며 이 때문에 커다란 괴로움에 빠지고 말아요. 예쁜 옷을 입고 좋은 가정이 있는 다른 여자애들을 볼 때 그는 비참한 감정에 빠지게 되고, 그러한 불결한 느낌이 그를 마음의 지옥으로 이끌게 되지 요. 하지만 만일 그가 아발로키타를 만날 수 있었다면, 아발로키타는 그에게 자기 자신과 전체 상황을 깊이
8) 썩정이 : 썩은 물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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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여다보라고 했을 거예요. 그가 이러한 건 다른 이들이 저러하기 때문이란 걸 보라고요. “이것이 이러하므로 저것은 저러하다.” 따라서 좋은 가정이 있기에 괜찮은 여자애로 불리는 것은 자랑할 게 못 됩니다. 왜냐면 그 들의 삶이 그러하기에 다른 여자애들은 이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예요. 우리들 중 깨끗한 손을 가진 이는 아 무도 없어요. 누구도 그것이 우리의 책임이 아니라고 할 수 없지요. 마닐라의 소녀들이 그러한 것은 우리들 삶 의 방식 때문이예요. 어린 창녀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면 창녀 아닌 이들의 삶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그리고 창녀 아닌 이들과 우리가 사는 삶의 방식을 보고 있으면 창녀의 삶이 보이지요. 이것으로 인해 저것이 생기고, 저것으로 인해 이것이 생겨나는 법입니다. 자, 이제 부와 빈곤을 살펴봅시다. 부유한 사회는 더불어 있는 모든 것을 착취합니다. 한 사회의 부는 다 른 사회 집단의 빈곤을 바탕으로 이루어지지요. “이것이 이러하므로 저것은 저러하다.” 부는 부 아닌 것들로 이루어지고, 빈곤은 빈곤 아닌 것들로 이루어집니다. 이전에 살펴본 종이와 다르지 않아요. 따라서 우리는 신 중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관념에 갇혀서는 안 되요.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입니다. 그게 참이예요. 우리는 그냥 있는 게 아니라 더불어 있는 거지요. 그리고 우리는 주위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 책임이 있어요. 아발로키 타는 어린 창녀에게 이렇게 말 할 거예요. “내 딸아, 네 자신을 들여다보렴. 그러면 모든 게 보일 거야. 다른 사람들이 저렇기 때문에 네가 이러한 거란다. 너에게만 책임이 있는 게 아니야. 그러니 부디 괴로워하지 말아 다오.” 오직 더불어 있음의 눈으로 볼 때 그 소녀는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거예요. 다른 무엇이 그의 해방을 도울 수 있겠어요? 우리는 선과 악이라는 한 생각으로 우리 자신을 구속시킵니다. 오로지 선만을 원하고, 악은 모조리 사라 지길 바라지요. 하지만 그건 선이 선 아닌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잊었기 때문이에요. 제가 예쁜 나뭇가지 하나를 들고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분별심 없이 바라볼 때 비로소 우리는 이 멋진 나뭇가지를 제대로 볼 수 있어요. 하지만 한 쪽 끝을 왼쪽으로, 다른 쪽 끝을 오른쪽으로 구별하는 순간 말썽이 생기지요. 우리가 왼쪽 만을 원하고 오른쪽은 원치 않는다면(열린 마음으로 들어주세요), 오른쪽은 말썽거리가 됩니다. 우파가 없다면 어떻게 당신이 좌파일 수 있겠어요? 제가 이 나뭇가지의 오른쪽을 원치 않고 오직 왼쪽만을 원한다고 칩시다. 그래서 반으로 부러트려 오른쪽을 던져버린다면요. 하지만 원치 않는 반쪽을 던지자마자 남아 있는 한 쪽 끝이 또 다른(새로운) 오른쪽이 될 거예요. 왼쪽이 있는 한 오른쪽도 늘 거기에 있어야 하지요. 다시 부러트린다 해 도 저는 실패하게 될 거예요. 반 토막이 된 나뭇가지를 또 부러트린다 해도 오른쪽은 여전히 남아 있지요. 선과 악도 똑같이 여기면 됩니다. 당신은 오직 선일 수만은 없어요. 악을 없애버릴 수도 없고요. 악이 있 기에 선이 있는 거니까요. 그 반대도 마찬가지지요. 당신이 영웅에 관한 연극을 만들려 한다면, 그 영웅을 영 웅답게 하기 위해 악당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붓다는 악역을 맡아 줄 마라(Mara)가 필요했고, 그래서 붓다가 될 수 있었어요. 붓다는 종이만큼이나 텅 비어있지요. 붓다는 붓다 아닌 것들로 이루어져 있어요. 만일 우리처럼 붓다 아닌 이들이 없다면 어떻게 붓다가 있을 수 있겠어요? 우파가 없다면 어떻게 우리가 누군가를 좌파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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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동+재정보고 | 전쟁없는세상 팀별활동: 팀별활동은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 가능합니다.
전쟁없는세상 이렇게 살았어요~
: 매체편집팀은 소식지를 편집회의를 통해 기획/제작하고 있습니다. 19호 소식지 제작을 함께할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 평화주의자들의 책읽기 다음 책은 김두식 씨의 ‘평화의 얼굴입니다 ’ . 오프라인 모임은
전쟁없는세상 소식정리와 굵직한 활동보고입니다.
10월 2일(화) 오후 7시에 진행됩니다. : 수감자지원팀은 수감된 병역거부자들이 감옥 안에서도 밖과 소통할 수 있도록 개인요 청물과 회의록 및 편지를 담은 우편물을 정기적으로 발송하고 있습니다. 수감자지원팀에
활동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지면관계상 안타깝게도 생락 하도록 하겠습니다. 나열식인 점 사과드립니다.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 운영실에서 확인하세요~ ^ ^
관심이 있으신 분은 홈페이지 운영실->팀별게시판->수감자지원팀 게시판을 참고하시 기 바랍니다. 또는 날맹에게 연락주세요~
그 외에도 항상 많은 일정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홈페이지를 참고해 주세요.
>>전쟁없는세상 재정보고 (2007년 4월 13일 ~ 2007년 8월 27일) 자세한 수입과 지출 내역은 전쟁없는세상 홈페이지 운영실 ‘재정보고’ 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후원인 여러분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 부탁드립니다. <총괄> 총 수입 합계 : 3,743,664 총 지출 합계 : 6,525,994 사무실 재정 잔액 : 2,277,788 <CMS 후원 수입 월별 현황> 5월 CMS 후원금 수입 : 495,310 6월 CMS 후원금 수입 : 538,495 7월 CMS 후원금 수입 : 573,495 8월 CMS 후원금 수입 : 661,900 <특이사항> 이용석 벌금후원금으로 들어온 후원액 중 850,000원을 벌금으로 납부하고, 나머지 1,515,000을 용석의 의사에 따라 서울대책위 후원금으로 보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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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정민석 : 8월 17일 구속 유정민석씨가 성동구치소에 수감되었습니다. 1년 6개월 선고.
:: 최재영 : 9월 4일 만기 출소 1년 6개월형을 선고 받고 수감되었던 최재영 씨가 9월 4일 아침 6시 진주교도소에서 만기 출소했습니다.
:: 김치수 : 8월 14일 1심 심리공판 오는 9월 13일 1심 선고공판이 진행됩니다.
:: 김훈태 : 7월말 가석방 출소 :: 김도형, 송인욱 : 영등포 교도소 이감 :: 이용석 : 청주교도소 이감 :: 정재훈 법정구속 :: 김영진, 오정록 : 4월말 가석방 출소
:: 수감된 병역거부자들의 주소 정재훈 :서울시 금천우체국 사서함 164호 2542번 (153-600) - 영등포구치소 유정민석 : 서울시 송파우체국 사서함 177호 909번 (138-709) - 성동구치소 이용석 : 충북 서청주 우체국 청주교도소 487번 이용석 (우: 361-600) - 청주교도소 김태훈 : 전북 군산우체국 사서함 10호 1215번 (573-600) - 군산교도소 고동주 : 서울시 금천우체국 사서함 164호 2437번 (153-600) - 영등포구치소 김도형 : 서울시 금천우체국 사서함 165호 906번 김도형 (우:153-600) - 영등포교도소 박철(타랑): 서울시 금천우체국 사서함 164호 2426번 (153-600) - 영등포구치소 송인욱 : 서울시 구로구 금천우체국 사서함 165호 907번 (우:153-600) - 영등포교도소 박경수 : 서울시 송파우체국 사서함 177호 1974번 (138-709) - 성동구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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