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월드비전 추수감사절 감사챌린지 감사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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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감사노트

Week 3

Week 4

3

4 Day

1 Day 감사메시지

2 Day

2 Day

4 Day

Love Never Fails

부제: 여호와께 돌아가자

작사 김준영

작곡 주민정

예람워십 감사 주제찬양 영상보기

묵상 1

감사, 감사의 역설”

감사메시지 묵상 3 ”오늘을 살다”

간증

감사메시지

묵상 5 ”은혜를 보다”

셀럽 간증

문지인 배우

그림 묵상 1

석용욱 작가

일러스트 그림 묵상 2

감사메시지 묵상 2

”감사를 망치다” 셀럽 간증

석용욱 작가 감사메시지 묵상 4 ”그리스도인에게 우연이란 없다”

배우

셀럽 간증

최강희 배우

활동 2 with 찬양

감사컬러링북 활동 3 with 찬양 플레이리스트

셀럽 간증 차성진 목사 일러스트 그림 묵상 3 석용욱 작가 감사메시지

묵상 6 ”소망을 되찾다”

셀럽 간증 김기리 개그맨 감사컬러링북 활동 4 with 찬양 플레이리스트 3주 · 4주 교회에 대한 회복과 감사

감사메시지 묵상 7 ”밥상의 회복” 셀럽 간증 커피소년 가수

2024 추수감사절 감사챌린지

감사노트에 있는

QR코드를 스캔해 유튜브 구독과 알림 설정을 합니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 감사노트, 유튜브에 올라온

콘텐츠와 함께 묵상을 시작합니다.(11.1~11.30)

봅니다.

나에게 주신 은혜와

오늘의 감사내용을 작성합니다.

나누고 싶은 감사제목이나

컬러링북 묵상이 있다면

유튜브 댓글 혹은 인스타그램

게시글로 남겨주세요.

SNS 감사나눔, 컬러링북

참여 이벤트에 대한 정보는

‘월드비전 크로스‘ SNS 계정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은혜에 반응하다

이음숲교회 손성찬

얼마 전 아내가 하루 휴가를 내고 아이들과 함께 교외로 놀러 다녀왔습

니다. 본인 친구들, 그리고 그들의 아이들과 함께 놀러 갔던 것이지요.

반면 저는 본래 동행할 예정도 없었지만, 그날따라 설교문 작성에 애를

먹어 새벽부터 저녁까지 끙끙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저녁쯤 아내

가 생각나 전화를 걸어 언제쯤 오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마 밤늦 게나 돼서야 도착한다며, 자기랑 애들만 너무 노는 것 같다면서 미안하

다고 합니다. 어이없더군요. 한마디로 일축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

리 하지 말고, 부디 더 열심히 놀다 오세요!” 정말입니다.

드러냅니다. 단어 중간에 포함된 ‘카리스‘라는 말이 바로 ‘은혜‘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 ‘은혜‘라는 단어에 ‘좋다‘라 는 뜻을 붙일 때 ‘감사‘라는 단어가 탄생합니다. 이에 따르면 ‘은혜‘가 ‘ 감사‘를 낳는다고 할 수 있고, 반대로 받은 ‘은혜‘를

려면 최소한 두 가지 확신이 더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정말 대가를 바라

지 않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셨다는 것에 대한 확신, 그리고 자격, 즉

내가 그것을 맘껏 누려도 되는 자라는 것에 대한 확신 말입니다. 그런데

이미 그 확신이 주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

창세기 1:27)으로 만드셨다고 선언하셨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하나

님은 우리를 자신과 사랑을 나눌 연인이자, 가족이자, 자녀로 지으셨다

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런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만드셨으니 맘껏 누리

라고 하십니다. 무엇이 더 필요할까요? 첫 사람들은 바로 이 두 가지 확

신을 가졌기에, 정말로 모든 것을 맘껏 누렸습니다. 그렇게 그들의 입

은 열매로 가득 찼고, 또한 ‘좋다‘와 ‘감사하다‘라는 말로 가득 찼습니다.

그러나 뱀으로 분한 사탄이 그들을 꼬드깁니다. ”하나님은, 너희가 그

나무 열매를 먹으면, 너희의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된다는 것을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창세기 3:5.

새번역 성경) 그 순간 지금까지 맘껏 누리던 모든 열매가 흑백으로 보

입니다. 반면 내가 아직 갖지 못한 저 열매만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오직 저 열매만 총천연색으로 보입니다.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합니

다. 이윽고 의심이 듭니다. ‘나는 저것만 먹으면, 저것만 가지면 지금보

다 더 나아질 게 분명하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것을 막는다고? 그렇다

면 하나님은 은혜로운 분일 리 없다!‘ 그 결과 선악과를 따 먹었고, 안타

깝게 지금껏 누렸던 모든 열매를 더 이상 누릴 수 없게 됩니다. 그렇게

찾아온 결핍 앞에 인간은 가진 것과 상관없이 늘 불만과 불안으로 가득 하게 됩니다. 이러한 구도를 종교 개혁가 마르틴 루터가 아주 단순하게 말합니다. ”감사는 하나님께 속한

감사를 방해하는 것들은 무엇일까요?

그 안에서 나는 어떻게 감사를 쟁취할까요?

감사를 묵상하며 색칠해 보세요.

나에 대한 회복과 감사

Week 1

처음에는 많이 낙심했습니다만,

지금까지

고하였던 것이지요. 너무 역설적입니다. 이와 관련해 수많은 장애를 짊 어졌던 헬렌 켈러의 말이 와닿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 때문에 감사하 는 것이 아니요, 우리의 되어진 바로 인해 감사한다.” 감사는 조건과 환 경의 문제가 아님이 분명합니다.

역설의 감사, 감사의 역설

따로 격리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께서 사마리아와 갈릴

리의 접경 지역에 위치한 한 마을을 지나가시게 되자, 격리되었던 나환

자 열 명이 예수를 찾아왔습니다. 다만 마주할 수 없기에 그저 멀리서 ”

우리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외칩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말씀하시지요. 율법에 따라 제사장이 완치 판정

을 내려야만 그들이 돌아갈 수 있었던 맥락에 따른다면, 결국 이는 예수

님의 치유 선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 말씀대로 제사장에게

로 갔고, 가는 도중에 깨끗함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 단 한 사람만 되돌아와 예수께 감사를 고합니다. 도대체 어찌 그 사람

만 감사할 수 있었을까요? 아니, 이렇게 묻는 게 좋겠습니다. 도대체 왜

그만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단서는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16 절)라는 누가의 설명에 담겨 있는 듯합니다. 무슨 뜻일까요?

당시 나병은 저지른 죄로 인해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고, 도리어 하나님

이 내리신 심판의 결과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예수의 선언 아래 그들

은 치유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께 돌아가지 않습니다. 왜냐하

면 나머지 아홉 명은 본래 자신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있다

고 믿던 ‘유대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뭔지 모를 자신들의 죄로 인해

은혜를 빼앗겼으나, 본래 자신의 것들을 되돌려받은 것뿐입니다. 예수

께 고맙긴 해도,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당연한 자기 것을 되찾은 것 뿐이니까요.

하지만 ‘사마리아‘인은 달랐습니다. 그는 예수가 수많은 이의 병을 치유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동시에 예수가 ‘유대인‘이라는 사실도 알

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은 사마리아인을 벌레 보듯 본다는 사실

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이었던 예수께서 사마리아인인 자신,

즉 서로 그 어떤 은혜도

것이 아님을 확신하던 이였습니다. 그래서 더 감격하였고,

감사를 고했던 것입니다.

10여 년 전 어느 날 밤 자던 중, 새벽 2시쯤 갑자기 눈이 떠졌습니다.

1. 당신의 삶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떠올려보십시오. 그 순간에도

감사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었나요? 그것은 무엇이었고, 어떻게 그것을

발견할 수 있었나요?

2. 평소에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 중 오늘 특별히 감사하고 싶은 것

한 가지를 나눠주세요.

Week 1

감사의 말을 할 때 벌어지는 일

제게는 특별한 재능이 하나 있습니다. 어떤 재능인지 궁금하시죠? 뛰 어난 암기력? 타고난 목소리? 지치지 않는 체력? 모두 탐나는 재능이 지만 제가 가진 재능은 바로 ‘감사하는 재능‘입니다. 누군가는 웃어넘길 지 모르지만,

이 이렇게 됐을까?‘ ‘나는 절대로 못 할 거야‘ ‘내가 그렇지 뭐‘ 같은

적인 마음과 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도 금세 떨쳐버릴 수 있습니다. 어 떻게 하냐면요, 입으로 소리 내어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달콤한 커피 한 잔, 감사합니다.”

”퇴근길 노을이 너무 아름다워서 감사합니다.”

그 밖에도 아침에 눈떴을 때 즐겁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건강하게 오늘을 살 수 있어서 감사하고,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어서 감

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삶 속에 감사할 일이 정말 많습니다. 감사도 습관이라서 한번 하기

시작하면 저절로 나오더라고요. 그리고 더 놀라운 건 감사하면 할수록 감사한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진다는 겁니다.

혹시 이런

해본 적

기간 각각의

좋은 말과 나쁜 말을 들

려줍니다. 한쪽 양파에는 감사의 말, 긍정적이고 다정한 말을 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해” ”고마워” ”정말 멋지다” ”네가 최고야”. 그리

고 다른 양파에는 부정적인 말을 들려줍니다. ”망했어” ”짜증 나” ”미

워” ”너무 싫어”.

시간이 흘러 두 양파는 어떻게 됐을까요? 다들 짐작하셨겠지만, 매일

긍정적인 말을 들은 양파는 쑥쑥 잘 자라났습니다. 하지만 매일 부정적

인 말을 들은 양파는 마르고 썩어서 죽어버렸습니다. 믿기지 않는 결과

인데요. 실제로 실험해 보면 두 눈으로 그 결과를 직접 볼 수 있습니다.

같았습니다. 이렇듯 늘 불평불만이 가득한 말을 하고, 쉽게 화를

어버립니다. 그러니

2024년 감사합니다♥

팀에 잘 적응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준비했던 프로젝트 좋은 결과로 마무리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 니다.”

”자격증 시험 이번엔 합격하지 못했지만,

얼마 전에 양파가 아니라 고구마로 같은 실험을 해봤는데 결과는 역시

는 마음으로 미리 감사하고 싶은 제목을 역시 100가지 적습니다. 새로

운 한 해를 앞두고 바라고 계획한 일들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가장 선하

고 아름답게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미리 감사의 씨앗을 심

는 과정입니다.

그렇게 한 해가 지나고 열심히 적었던 감사제목들을 다시 돌아보면 우 리의 삶 구석구석 너무나 세밀하게 관여하시고 일하시는 하나님의 사

랑을 깊이 느끼고 누릴 수 있습니다. 이렇듯 감사하는 습관과 감사의 말

은 상황을 반전시키고 우리의 인생을 바꿀 수 있습니다. 감사하는 순간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감사는 챌린지하는 것

그림 묵상 낭독 들으러 가기

감사는 ‘챌린지(challenge, 도전)하는 것’입니다.

감정의 표현이 아닌 의지의 결과이며

기도인 동시에 예배입니다.

능동적인 영적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감사챌린지’라니요!

감사를 이렇게 잘 표현한 단어가 또 있을까요? 맞습니다.

감사는 ‘저절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도전하는 것’입니다. 감정의 발현이 아닌 의지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매 순간 감사할 일이 가득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감사하지 못할 일이 더 많은 곳입니다.

때론 겨우 불평불만을 내뱉지 않는 게 최선일 때도 있지요. 그래서 감사는 ‘도전하는 것’입니다.

감사하지 못하게 만드는 자의적, 타의적 모든 요소에 저항하며

오늘도 내 마음의 초점을 하나님의 마음에 맞추는 것.

하나님을 향한 시선을 놓치지 않으려는 능동적인 자세.

매 순간 ‘챌린지(challenge)’하는 것입니다.

10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1데나리온씩

11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12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13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1데나리온의

사실 그런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설교‘만이 아닙니다. 때로는 ‘교

회 크기‘나 ‘사역의 많음‘ 따위가 비교 대상이 됩니다. 역시 저와 비슷한

분들과 말입니다. 이상합니다. 교회도 하나님의 것이요, 설교도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기 위해서 하는 일들인데, 그 결과물에 주목하

고, 그것으로 자신의 가치를 투영하며 일희일비하는 짓이 얼마나 헛된

가요? 다행히 치기 어린 시절에 비하면 많이 성숙해졌으나, 솔직히 이런

비교 의식이 다 사라졌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저만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

하는 것들, 바라는 것들을 항상 남과 비교하길 즐기니까요. 그런데 과연

곱스는 묵직한 발언을 남깁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자를 벌하는

때문이다.”

여기, 예수께서 남기신 ‘포도원 품꾼‘의 비유가 있습니다. 한 포도원 주

인이 철이 되어 포도를 수확하기 위해 아침 9시에 인력시장으로 나가

서 품삯으로 ‘1데나리온‘을 제시한 뒤 이에 응하는 일꾼을 고용합니다.

당대는 일용직 노동자가 매우 많았기 때문에 고용된 이들은 급여와 상

관없이 사실 일할 기회가 주어진 그 자체로 감사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포도원 주인은 12시에도 3시에도, 심지어 1시간 뒤면 노동이 그칠

오후 5시에도 품꾼을 고용합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저 그날 벌이

가 없으면 굶을 수밖에 없는 이들에 대한 ‘긍휼‘, 즉 은혜를 베풀 목적이

었습니다. 날이 저물자 주인은 일꾼들을 모두 불러 모읍니다. 그러고선

혼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렇다면 어찌해야

은 행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을 소유하지 않은 적이 단 한순간도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당신이 지금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이미 당신한테 있

는 것은 보지 않고 당신한테 없고, 얻기도 힘든 것을 보며 결핍을 느끼거

나 부러움을 느끼고 있기 때문임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해야 할 것은 없

습니다. 단,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비교를 멈

추는 일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미 자기가 받은 것을 확인할 겨를이 생기

고, 비로소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감사한 일들, 감사한 분들이 많겠지

만, 무엇보다 하나님께 말입니다. 그분은 손해 볼 걸 아시면서도 우리에

게 계속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심지어 우리가 왜 이것밖에 안 주냐고 아

우성칠 때조차 말입니다.

G. K. 체스터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으뜸가는 인생관은 모든 것 을 감사함으로 받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도록 연습하는 것이다.” 더

이상 비교를 그치고 그저 받은 것, 특별히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에 주목

하십시오. 그렇다면 감사는 회복될 것입니다.

1. 최근에 당신은 어떤 사람과 무엇을 비교하고 계십니까?

2. 처음에는 감사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당연하게 여기게 된 것들은 무엇인가요?

3. 당신에게 주어진 일상을 당연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요?

Week 1

생각하니 감사, 그 또한 감사합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도 하루를 주심에 감사합니다. 침을 삼켜 목

”하나님 이렇게 오늘도 소오대산을

‘너무나 맑고 화창한 날, 사방에 피어 있는 꽃들과 초록들 날마다 깊이가 다르게 느껴지는 노을 진 하늘이 너무나 이쁘다. 하나님이 애리 보여주시려고 또 이렇게 만드셨구나.‘

감사와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 나님의 뜻이니라.”(데살로니가전서 5:18)

그런데

그런데요, 그거 아세요?

정말 신기하게도 불안과 두려움이 가득한 순간에도

기도를 하든지 묵상을 하든지 글을 쓰든지… .

생각해 보면 제 몸이 온통 다 입이라고 해도 감사 외에는 할 말이 없다

는 사실을요.

하나님을 알지 못해 기도한 적도 없는 저를 연기자 만드셔서 45년이 넘

도록 여전히 방송을 할 수 있도록 해주시고,

살리게 하는 주님의 도구 로

주변에 많은 사랑하는 이들을 붙여주셔서 풍성한 사랑을 누리게 하시

고, 무엇보다 주님의 딸로 삼아주셔서

모든것이 은혜임을 깨닫게 해주시니

그저 감사입니다.

항상 은혜가 넘쳐 자동 반사적으로 감사로만 살면 참 좋을 텐데 그럴 수

없으니 어쩌겠어요. 이 또한 나의 나약함인걸.

제 경험으로만 봐도 기록한다는 것은 한 템포 쉬며 감사를 느끼게 하

는 일 같아요. 그러니 감사노트를 적는 일은 얼마나 많은 감사를 누리 는 일일까요. 이미 넘치게 흩뿌려 있는 감사를 많은 분이 함께 누리셨 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 글을 적게 하셔서 감사를 생각나게 하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컬러링북 활동 2

대한

환이 없어 보입니다.

내일을 살고, 또한 어제를 사는 것은 사실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 드러

나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감사를 막아버립니다. 사실입니다. 진

정한 감사는 지금 주어진 이 순간에 주목하고 찬양하는 사람들에게나

일어나는 것이니까요. 네, 바로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그 자리에서부

터 말입니다.

얼마나

얻은 경이로움을 표 현하셨지요. 그분의 언어는 결국 그가 철저히 인간으로 오셔서, 철저히 인간들 사이

라는 ‘공간‘ 속에서 사셨다는 방증이자, 동시에 그가 철저히 오늘이라는 ‘시간‘속에 사셨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정말로 그분은 철저히 ‘지금 여

기‘에 사셨습니다. 레너드 스윗은 <관계의 영성>에서 이렇게 표현합니

다. ”하나님을 만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세상을 만난다. 하나님은 우리

에게 얼마나 놀라운 세상을 주셨던가!”

타들어 가는 붉은 노을 앞에 부끄러움을 느낀 후로 시행한 게 있습니다.

1. 최근 ‘지금 여기‘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과거나 미래에 사로잡혀

현재의 소중한 순간을 놓친 경험이 있나요?

어떻게 대처했나요?

2. 여러분의 일상에서 감사를

있을까요?

Week 2

안녕하세요, 배우 문지인입니다.

먼저 이렇게 제 감사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함으로 시작해 야 할 것 같습니다.

먼저 얼마 남지 않은

았습니다.

만약 ‘왜?‘ ‘나에게 왜?‘라는 원망이 생길 때에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

시 생각해 봅니다. ‘내가 많이 힘들구나. 너무 힘들어서 하나님을 신뢰

하는 마음이 약해졌구나‘ 하고요. 힘들어하는 저를 이해하면서 동시에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아무리 힘들어도, 너무

힘들어서 목사님의 설교가 1초도 귀에 안 들어와도 ‘주일 성수는 꼭 하

자!‘ 같은 결심을 되뇌었습니다. 여태껏 이러한 최소한의 노력이 있었기

에 지금의 저로서 끝까지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렇

지만 이것 또한 내 힘이 아님을 알기에 붙잡아주시는 하나님께 정말 감

사합니다.

이제 곧 추수감사절을 맞이하게 되는데, 이 시대의 우리에게 추수의 의

미는 무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먹고사는 데 도움이 되는 물질일까, 명 예일까, 건강일까.

‘하나님의 자녀인 나라는 사람은 지금 무엇을 추수했음에 감사해야 하

는지 고민해 보았습니다. 생각해 보니 저는 아무래도 ‘영혼‘인 것 같습니

다. 하나님께서는 이웃 사랑을 두 번째로 정해 주실 만큼 너무나 강력한

명령과도 같은 이 계명을 나는 얼마나 행하며 살았나, 내가 믿는 예수님

의 사랑을 얼마나 나눠주었고 얼마나 그분의 사랑을 전했는가.‘

‘나‘가 아닌 ‘우리‘를 얼마나 생각했는가를 되돌아보며 나에게 추수란 그

러한 행함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이런 마음이 일기 시작한 몇 년 전부터 조금씩 조금씩 시간과 마음과 물

질을 나누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너무 작아서 말씀드리기 부

끄럽지만 평생을 걸쳐 오늘보다 내일, 올해보다 내년에 더욱더 커져가

게 되길 기도하며 노력하려고 합니다. 글을 마치며, 저 또한 또 저 스스로에게 다짐하게 됩니다. 이렇게 감사 한 하나님께 보답하는

일러스트 그림 묵상 2

비행을 사랑하는 한 형제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져 억울하게 조종석을

떠나야 했고,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백기를

버텨야 했습니다.

제법 긴 시간이 지나 새로운 기회를 얻어

다시 조종석으로 돌아왔을 때

석용욱 작가

그는 이전보다 더 성숙한 조종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인생의 기장 자리에 예수님을, 부기장 자리에 자신을 앉히는

영혼이 비행(飛行)하는 조종사가 된 것입니다.

“My Lord, My Captain.”

마침내 그 자리에 감사를 열매 맺는 사람들. 그림 묵상 낭독

자의든 타의든,

우리 삶이 원치 않는 상황으로 내몰릴 때가 있습니다.

내 의지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도움의 손길도 전혀 느껴지지 않을 때….

하지만 그 속에서 재발견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내가 가지고 누려온 것들에 대한 감사.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더 깊이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런 사람들 아닐까요?

무언가를 잃었을 때 상실감에 젖어 세상을 비관만 하는 것이

아닌, 상실의 깊이만큼이나 감사를 뿌리내리는 사람들.

없는 인생이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아하수에로‘ 왕의 왕후로 간택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자리를 누릴 새도 없이 큰 위기가 찾아옵니다. 유대

인들과 원수 관계였던 아말렉 출신의 ‘하만‘이라는 권력자가 에스더의

삼촌이었던 ‘모르드개‘에 대한 개인적 분노를 유대 민족의 전멸로 앙갚

음하려 했던 것이지요. 그러고 보면 참 억울합니다. 그녀가 유대 유민이

된 것도, 고아가 된 것도, 왕후가 된 것도, 갑자기 영문도 모르고 유대인

이라는 이유로 죽게 된 것도 모두 자신이 주도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

여정을 돌아봅니다. 그리고 자 신이

자리에 있게 된 것이 그저 우연이 아니라 민족적 구원을 위한

필연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르지요. 그래서 그녀는 “죽으면 죽으리이

다“(16절)라고 자신의 결의를 드러냅니다. 수동적인 삶에 머물던 그녀

가 처음으로 능동성을 발현한 것입니다.

재미있게도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말씀도 없습니다. 그러나 에스더서는 우리는 주목하지 못하지

만, 아무 의미 없이 넘어갈 평범한 조건들, 심지어 왜 나에게 이런 조건 을 허락했느냐고 따져 묻는 근거가 되기도 하는 수많은 결핍의 조각들

1. 현재 당신이 마주하고 있는 우연은 무엇이고, 거기에는 어떤 하나님의

섭리가 담겨 있는지 묵상해 봅시다.

2. 기도에 대한 응답이 예상과 달랐지만 나중에 보니 더 좋았던 경험이

있다면 정리해 보고, 현재 기도하고 있는 제목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봅시다.

Week 2

와버렸답니다. ‘이겨내야 해! 아까워! 얼마나 소중한 예배인데, 끝까지

일이야!‘ ‘아직 예배는 끝나지 않았어!‘

이렇듯 내 속에 포기하지 않고 울리는 희망의 외침 속에 문득

것이 있었습니다.

상대를 향한 불쾌감은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이죠. 내 마음이 도리어 상대를 비판하고 악의를 가지고 바라봤다는 것을 순 간 깨닫게 해주신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했어요. 형제의 눈 속 티는 보고 자기 눈의 들보를 보지 못한 것은 바로 나였습니다. 내 마음에 기쁨 없는 들보로 가득한 소리들이 그것을 증명하는 듯했습니다.

누군가를 내 마음대로 선하다, 악하다 판단하고 내 마음의 잣대로 재단 한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순히 ‘화가 안 나는 나는 선하고, 화가 나는 누군가는 나쁘다‘라고 생각

했던 것 같아요.

”하나님은 사랑이 너무 많으셔서”라는 메시지를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

다. 지금 생각하면 어쩌면 내 마음을 하나님이 터치하신 거구나 싶어요.

그 말이 너무 맑고 깨끗한 거울 같아서, 그 거울에 나를 비추었습니다.

‘형제의 목소리를 듣는 내 마음에 사랑이 없구나.‘

하나님은 제게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형제를 통해 내 마음을 열어 마음속 깊이 자리했던 나쁜 냄새를 들어내

게 하시고, 사랑 많으신 하나님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 너무 많으셔서 우리를 사랑으로 바라보신다는 것을

기억하여 타인을 선의로 바라볼 수 있는 깨달음을 얻게 해주셔서 감사

합니다.”

”그래, 사랑은 배우는 거야! 사랑을 배우게 해주세요.”

”마음에 꽃향기가 나는 것 같습니다. 어쩐지 이 일이 있기 전보다 훨씬

더 행복합니다. 참 신비롭습니다.”

복된 주의 날을 안식하게 하시고, ‘사랑이 너무 많으신 하나님‘ 안에

거하게 해주시니 그 구원의 손길에 참으로 감사합니다.

광야는 감사를 재발견하는 곳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척박한 광야에서도 감사의 텃밭을 일궈냅니다.

감사를 묵상하며 색칠해 보세요.

Week 3 Day 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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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그 군대로 인도하겠느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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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3

영접하러

나오는지라 다윗이 그 백성에게 이르러

불량배들이 다 이르되 그들이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은즉

주지 말고 각자의 처자만 데리고 떠나가게 하라 하는지라

23 다윗이 이르되 나의 형제들아 여호와께서

그런데 승리가 또 다른 문제의 도화선이 됩니다. 이기고 돌아오는 길에

조우한 낙오자들. 그 가운데 ‘전리품을 그들에게까지 분배해 주어야 하

는가‘라는 문제 제기가 이루어진 것이지요. 타당합니다. 끝까지 추격하

여 목숨을 잃을 위험을 무릅쓰고 전투에 참여한 이들과 낙오한 이들의

기여도는 천양지차였으니까요. 혹시 당신이 다윗이었다면 어떻게 판단

했을 것 같습니까? 혹은 세상은, 혹은 세상 법정은 어떻게 판단할 것 같

나요? 그런데 다윗은 너무도 단호히 말합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에 내 것도, 네 것도 아니라고 말이지요. 그런데 어찌 독점

할 수 있겠냐는 말입니다. 나아가 하나님이 은혜로 우리를 대하셨듯 우 리도 은혜로 대하는 게 맞기에, 저들 역시 하나님의 승리 약속을 믿고

출전한 이들이고 나름 최선을 다한 것이 맞기에 모두가 함께 나눠 가져 야 한다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25절을 보면, 이것이 이스라엘의 통치 방침이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세상은 언제나 보상의 원리를 중요시합니다. 잘한 만큼 받고, 못

하면 벌받는 그런 구도랄까요? 그래서 ‘공정성‘을 중요시합니다. 명분

은 좋습니다만, 한 꺼풀만 벗기면 그 실체가 드러납니다. 사실은 모두

가 공정하게 살기를 원하는 게 아니라, 내가 손해 봐서는 안 된다는 공

정입니다. 소위 ‘내로남불‘이지요. 이를 위해 타협하고, 안 되면 다투고,

다툼이 안되는 대상이면 분노하거나 불만으로 일관합니다. 그래서 우

리는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세상을 보며 늘 불만으로 일관하는 것

아닐까요? 그런데 이처럼 보상의 원리에 젖어 사는 이들을 가리켜 성

경은 “악하고 야비한 사람들“(22절)이라고 합니다. 네, 자기 힘으로만

살 수 있다고 믿는 그는 하나님 앞에 악합니다. 그들은 자신이 이미 받

은 은혜는 삼켜버리고 은혜 없는 자처럼 살기 때문입니다.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인생은 없습니다. 단지 자기 힘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착각하 는 인생만 있을 뿐입니다.

2.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다윗의 고백을 묵상해 봅시다. 내 삶에서 내 노력의 결과라고 여겼던 것들 중 사실은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깨달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3

모든 과정이 참 행복하다 느꼈습니다.

뉴스를 켜면, 이제는 한숨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과

턱턱 막힐 지경입니다.

30대 광인이

서 통제를 잃은 차량으로 인해 9명이 사망하는 일도 벌어졌죠.

우리에게 주어진 복음을 묵상하며, 그 묵상한 자들이 연대하여 신앙의

삶을 꾸리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악함과 죽음에 대한 승리를 날마다 경험하는 것.

한 많은 세상을 사는 인간이 이보다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이 저

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를 허락해 주신 삼위 하나님의 사역에 감사를 드 립니다. 그리고

그 나라를 알게 하시고, 동참하게 하신 값없이

주어진 은혜에 대해서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 감사에 맞게 이 나라를 더 알리고, 많은 사람을 동참시키는 데 제 삶

을 소진하길 원합니다.

발버둥이 감사가 될 때 일러스트 그림 묵상 3 석용욱 작가

코로나19로 모든 공연이 막혔을 때

Week 3 Day WED

그림 묵상 낭독

심각한 무기력증으로 인해 죽음까지 묵상하게 되었어요.

말씀도 읽기 싫고 찬양도 부를 수 없었을 때,

목사님 설교와 작가님 책이 유일한 하나님의 위로였습니다.

말로 다 표현 못 할 만큼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이들을 살리는 글과 그림,

더 쓰고 그려주세요.

-애독자로부터

한 독자가 보낸 메시지입니다.

독자님은 공연 예술계에 계신 분인데

코로나19로 모든 공연이 무산되었을 때 저의 책으로

위안을 삼았다며 메시지를 보내주셨습니다.

자랑하는 거냐고요? 그럴 리가요.

민망해서 쓴 글입니다.

저 역시 살려고 발버둥 친 것뿐이니까요.

그때는 저도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일이 끊기니 하염없이 불안만 밀려왔지요.

결코 의연해질 수 없었습니다.

이대로 가면 스스로 무너져 버릴 것 같아 결국 펜을 들었어요.

쓰고 그리는 것만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발버둥이 누군가를 위로하고, 감사로 돌아올 줄이야…. 나의 몸부림이 누군가에게는 수신호가 됩니다.

이쪽으로 피하라고, 같이 살자고.

이런 감사는 오히려 저를 민망하게 하네요.

하늘에 감사를 돌릴 수밖에 없게 만듭니다.

28

29

33

죽지

35

36 이에

37 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하며

38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최근 이슈가 된 미디어 콘텐츠들에 공통점이 엿보입니다. ‘회귀물‘이라

는 점입니다. 주인공이 죽음의 순간, 과거로 돌아가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미래를 바꿔나가는 설정의 작품이 유행했습니다. 그런데 이 현상

이 좀 슬픕니다. 콘텐츠의 주소비층인 MZ세대가 삶을 바라보는 시각,

즉 다시 태어나는 것 아니면 내 생에 복은 없다고 믿는 시각이 반영된 것 같기 때문입니다. 정말 열심히 노력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이전 세대를 넘을 수 없고, 혹시나 경험하는 실패에 대해서는 잔인하리

만치 개인의 탓으로 돌립니다. 심지어 SNS는 남과의 비교를 종용합니

다. 그러다 보니 현시점을 근거로 미래를 바라볼 때 떠오르는 것은 부정

적 감정뿐입니다. 소망이 없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깨어진 소망이 오늘

을 더 불안하게 만드는 악순환입니다.

요한복음 11장에는 사랑하는 오라비 ‘나사로‘의 죽음 앞에 울고 있는 마

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자매는 오라비가 죽게 생기자

친분이 있던 예수님께 연락을 넣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그가 죽

은 지 나흘째에, 즉 나사로가 완전히 죽었음이 증명되어 모두의 슬픔이

극에 달한 날에 도착하십니다. 그래서 자매는 슬피 울며 도대체 어디 계

셨냐고 타박합니다. 사실 이 원망과 항의는 악과 고통의 문제 앞에 선 모

든 이의 질문입니다. ‘하나님은 도대체 무엇을 하시는가?‘

그런데 자매의 울음 앞에,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모두의 울음 앞에 예 수께서 이렇게 반응하십니다. “눈물을

Week 3

역으로 오늘을 전혀 다르게 살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이 어떤 것인지 예수께서 이미 보여주셨습니다. 아직 나사로가 부활하지 않았으나, 예수께서는

고백하십니다. 현재의 슬픔에 젖어 소망을 품지

도 잘했고, 자신감도 넘치기에, 그는 언제나 하고 싶은 것 하면서 그렇

게 삽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이지요. 다만 신앙이 없기에 종종 만나

전도하려 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큰 전환이 있었습니다. 그 친구

가 어느 날부터인가 ‘명리학‘, 즉 사주팔자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진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기 확신으로만 살던 친구가 운의 흐름에 자신

을 맡기는 것도, 또한 그렇게 운을 읽어내서라도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든 주관하려는 열망이 서로 모순으로 보였습니다. 불안했던 것이었지

요. 네, 그에게는 확실한 답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그런 모습을 보

며 의도치 않게 감사했습니다. 제게는 확고한 답이 있고, 그 덕분에 그

분이 그려나가실 생명을 기대하는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죽

음조차 그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세상은 ‘죽음‘의 문화가 가득합니다. 물론 의학의 발달로 죽음의 시점을

뒤로 미루는 중이지만, 사실 육체의 호흡이 멈추는 것은 마지막 단계일

뿐, 많은 이의 사고와 정서와 감정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관계도 점차

끊겨가고 있습니다. 죽음의 그늘이자, 유예된 장례식의 장송곡들이 들

려오는 것이지요. 사람들은 번영을 바라본다고 하지만, 실제는 점차 소

망이 사라져갑니다. 그리고 이처럼 눈에 보이는 현상들이 제게 틈입합

니다. 그래서 종종 불안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아무리 답이 있은들 죽음

과 죽음의 그림자들이 전하는 메시지에 자유롭기란 어렵습니다. 그러

나 매 주일 예배하는 가운데 확인합니다. 내게는 세상과 달리 답이 있다

는 것을 말입니다. 그가 죽음으로부터 우리를 일으키시고, 새 소망을 주

시기 위해 하셨던 놀라운 은혜의 소식, 그 복된 소식들을 마주하는 가운

데 그 답을 확신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믿는 이들과 함께 예배하며 그것

이 나만의 답이 아닌, 우리의 답임을 확인하며 안도합니다. 그렇게

1. ”하나님께서 앞으로 하실 미래의 일을 끌고 와

무엇인가요?

2. 최근 함께 드리는 예배를 통해 소망과 이를 통한 감사를 회복했던 경험이 있습니까?

Week 3

안녕하세요, 코미디언이자 한 여자의 남편이 된 김기리입니다. 형식 없이 살아온 제가 ‘감사‘라는 주제로 간증문을 어떻게 써야 할지, 어떻게 써야 이 글을 함께 보시는 분들과 하나님께도 제 마음이 잘 전달 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조금은 유치하지만 제 스타일대로 감사목록 과 함께 감사일기를 써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글을 쓸 수 있게 해주심에

감사합니다,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세상의 수천 수만 가지 종교 중에 기독교를 만나게 해주심에

감사합니다, 만물의 주인이신 분께서 제 아버지가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지전능하고 무소불위한 분께서 저를 아들이라고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 특권인 기도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 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밖에 모르는 제가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루하루 오르락내리락, 하지만 잠시 잠깐이라도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람의 외모만 보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느낄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영혼들을 긍휼히 여길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영혼의 나무들이 주님이라는 시냇가 옆에 심겨졌을 때

새롭게 살아나는 모습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 품에 영혼들이 안기게 되는 일에 저희를 사용하여 주실 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감동을, 진짜 삶의 가치를 느끼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분명 혼자 하실 수 있는 그 구원 사역에 저희를 동참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의심이 드는 제 길들의 끝에, 고민의 끝에, 걱정의 끝에

늘 저를 지켜주고 계신다는 결론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과할 수 있는 용기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전엔 몰랐던 하나님의 창조물에 대한 아름다움을

감사합니다, 믿음이 흐려질 때 저를 끝없이 설득하시고 다시 하나님을 믿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이적들을 궁금해하다가도 하나님께서 베푸신 가장 크고

이해하기 쉬운 이적은 바로 나 자신임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걸어온 길이, 지금까지와 앞으로의 삶이

누군가의 기도로 이루어졌다는 걸 일깨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또한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라는 걸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할 때 내 존재가 온전해진다는 것을

날마다 느끼게 해주셔서

하나님, 그리고

평생 사랑하겠습니다!!! 성령의 힘으로!!!!!!!!

결혼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 다시금 묵상하게 되는 요즘입니

다. 그리고 저희가 다른 신을 바라보는 것이 하나님 입장에서 얼마나 마

음 아프신 일인지, 그리고 얼마나 질투 나는 일인지 이해시켜 주셔서 감

사합니다. 조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결혼시켜 주셔서! 결혼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좀 더 깊

이 있게 해주셔서! 그리고 하나님과의 언약을 통해 더욱더 이 결혼 생활

을 단단하게 해주셔서! 무엇보다 가장 감사한 일은 하나님께서 저를 구

원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솔직히 다 아시죠? 제가 겉보기에는 신실하고 믿음 좋아 보

[요한일서 4:9~12]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이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교회 대한 회복과 감사

마가복음 3:20~35 혹시 ‘성찬‘이라는 단어의 유래를 아시나요?

그런데 주로 우리의 밥상 공동체를 차지하는 가족들은 그 역할을 잘 수

행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제게도 ‘가족‘이란 그리 따뜻하기만 한 것

은 아닙니다. 지난 글에서도 언급했듯, 경제적 어려움과 율법적 삶이 너

무 무거웠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가족끼리 유대를 가질 만한 시간 자체

가 거의 없었기에 제게 가족은 어색한 단어였고, 거의 언급하지 않는 단

어였으며, 기회가 되면 빨리 벗어나고 싶은 단어였습니다. 사실 밥만 같

이 먹을 뿐이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이는 저만의 이야기는 아닌 듯합니

다. 저처럼 가족 간 유대가 그리 깊지 않거나, 심지어 깨진 가족이나 역

기능 가정에서 성장한 이도 많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삶을 짓누

르는 가족에게서 벗어나고 싶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특이점 시대가 도래한 듯합니다. 문명사 내내 한 번도 의심받은

이 혈연 가족 개념이 해체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1인 가족‘, 혹

은 ‘핵개인‘이라는 말이 성행합니다. 하지만 급격한 변화 앞에 부작용이

큽니다. 돌아갈 곳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제 자신이 홀로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합니다. 가족을 해체하며 자유를 얻은 줄 알았으나 대신

불안도 함께 얻은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이들은 가족을 다시 구

성합니다. 여러 예가 있을 수 있지만, 법적 의무는 없으나 유대감을 누

릴 수 있는 ‘동거‘ 같은 형태가 그렇고, 사람이 아닌 반려동물을 가족으

로 여기고 대하는 것이 그러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방식은 충분하지도

않을뿐더러 또 다른 사회문제를 야기함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가족이

라는 게 꼭 이렇게만 규정되어야 할까요? 사실 가족을 정의하는 데 유

일하게 필요한 조건은 다름 아닌, ‘나‘라는 구성원을 받아주고 보호하고

사랑받음을 누리게 하는 것 아니던가요?

솔직히 가끔 이 모임이 버거울 때가 있습니다. 분주한 사역 스케 줄이 피곤해서, 또 관계의 과잉으로 사실

기도

회복하고, 그로 인한 감사를 고백하며

그렇게 회복된 이분은 가장 앞장서서 사람들을 먼저 도우려 하고 품으

려 하며, 기도해 주려고 하십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세상과 전혀 다른

하나님 나라를 마주합니다. 이처럼 감사를 넘어 존재마저 잃어버릴 수

밖에 없는 이 땅에, 하나님께서는 밥상 공동체를 남기셨습니다. 육체의

힘만이 아니라 영혼의 힘을 얻을 수 있는 사랑으로 엮인 새로운 가족을

말입니다. 세상은 어떻게든 우리네

합니다.

1. 최근 교회 공동체 안에서 경험한 감사의 순간은 언제였나요?

2.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로 이루어진 새로운 가족 개념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그들과의

신앙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요?

Week 4

안녕하세요. 대중음악 하고 있는 커피소년이라고 하고요, 본명은 노아 람입니다. 아브라함의 준말이고요,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원하셔서 아버지께서 그렇게 지어주셨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한국에서 가장 먼저 찬양 사역을 시작하신 분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렇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제가 음악으로 하나님을 세 상에 전하고 싶은데, 하나님 가요 싫어하시죠?‘라고 기도드렸더니 제 마

음 가운데 이런 응답을 주셨습니다.

“나는 거짓을 싫어해.“ 너무 당연한 얘기인가요?

그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진짜를 노래하면 되겠구나! 요한복음 15장 5

절 말씀처럼 예수님이 내 안에, 내가 예수님 안에 있으니 크리스천이 사 랑하고 이별하고 살아가는 모든 소재들이 노래가

도 곡을 쓰고 있습니다.

“너는 검다 하지만 나에겐 아름답단다

너는 멀리 왔다 하지만 널 따라 나도 왔단다

너는 나의 전부란다 널 위해 날 주었단다

그런 너는 나의 눈에 검으나 아름답다“

- ‘검으나 아름답다‘ 중

내 안의 공허함을 해결하지 못하고 늘 주변인으로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 - ‘내가 니 편이 되어줄게‘ 중

저는 일어날 수 있었고 삶의 목적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그 긍휼하신 마음을 전하는 것, 다 포기해 버린 그 사람에게 이제 끝이라 생각한

그 사람에게 들려지게 하는 것.

그것이 저의 정체성이었습니다.

“내가 니 편이 되어줄게

Oh hear my voice

Lean on my shoulder

Focus on me

Oh here I am

I will always be your side

작은 내 소리 들린다면

더 큰 걸음으로 나아가“ - ‘Focus on me‘ 중

나는 가장 연약하지만

내 주님 내 주님

주가 내 아버지시라네

일러스트 그림 묵상 4

나를 위해 기도하는 공동체가

석용욱 작가

”딸아이가 곧 대학생이 되는데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그려주세요.”

고3 수험생 딸을 둔 어머님의 그림 의뢰였습니다.

그 어머님의 하나뿐인 딸을 위해 그림을 그렸지요.

마음이 참 귀하셨어요.

자녀가 높은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거나

좋은 직장에 취업하기보다,

하나님과의 동행을 최우선 목표로 삼기 바라는

어머님의 간절한 기도 제목이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기도 제목을 가진 부모님이 계시다는 것,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물론 꼭 부모님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누가복음 16:19~31 ‘개척교회 목사 아들‘. 이 짧은 표현에 제 성장기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참 가난했습니다. 제가 유치원 때, 아버지는 시장 상가 건물 24평 공간 에 개척교회를 세우셨습니다. 20평은 예배당으로 꾸미고, 나머지

로 남습니다. 이유는 주일이 껴서 못 보내준다는 것이었지만, 사실 돈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저는 압니다. 물론 아버지께서는 설교 때마다

때에 따라 돕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간증하십니다. 실제 그런 일들이

있었던 것 같지만, 그것은 그분의 간증일 뿐 제 간증은 아니었습니다.

제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러 이유에서 하나님을

부정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내 삶에 아무 관심도, 관여도

안 하는 분으로만 보였습니다.

누가복음 16장에는 일명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가 등장합니다. 비유

는 ‘부자‘에 대한 묘사로 시작하는데, 그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

합니다. 당대에 가장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소비로 지탱되고, 소비로 증명되는

정체성을 추구하는 우리 시대의 인간상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반면 정반대의 인물인 ‘나사로‘가 등장합니다. 상해로 인해 거동을 못

하는 상태에 이르렀으나, 거지였기에 치료는커녕 굶어 죽을 수밖에 없

는 신세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사문화된 율법을 신뢰하며

부잣집 문 앞에 자리합니다. 율법이 공동체적 구호를 촉구하기 때문입

니다. 하지만 부자는 그를 외면합니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부정하다고 여기는 개마

저 아픈 자의 상처를 핥는데, 사람인 이 부자는 그러한 개만도 못했다는

점을 저격하는 듯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알던 부자는 은혜이신 하나

없는 분 들이 참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저는 하나님 나라를 엿볼 수 있었습니

다. 그리고 샘솟는 감사를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폴 트루니에는 <강자와 약자>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남깁니다. ”세상

이 생각하는 것처럼 한편에는 약자가, 다른 한편에는 강자가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한편에는 자신의 약점을 인식하고 심리적 보상은 모두 무

익하다는 사실을 알며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만 의지하는 약자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자신의

그러나 그리스도로

한 몸 이루어 강해진 약자입니다.

1. ”당신도 이 부자처럼 소비나 물질적인 것들로 자신의 가치를

있나요?

2. 당신이 지금처럼 살 수 있게끔 조력했던 이들은 누구입니까?

그분들께 감사의 말을 전합시다.

가장 감사했던 일을 돌아보고

일을 상징하는 그림을 하나님 손에

한 달 감사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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