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년 일본이 사라진다
지은이:일본경제신문사 2020 년 위원회 옮긴이:부지영 펴낸이:김태헌 펴낸곳:한빛미디어(주) 차례 제 1 장 일본이 사라진다 1. 진행되지 않는 개혁, 가속되는 노화 2. 다이쇼의 비누 방울 3. 쓸모없는 '지하도시' 4. 꿈의 도둑을 맞았다 5. 신기루를 뒤쫓아가는 빅뱅 6. 흔들리는 안전 7. 숨겨진 산성눈 8. 틀리는 재판관 9. 초등학교 5 학년생 10. 데지마의 침몰 11. 헤이세이의 신유민 12. 없어지는 퇴직금 13. 친구가 없다 14.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 15. 영국병보다 무거운 병 "나의 경종" 국가전략 생각하지 않고 정신까지 공동화/이케오 가즈히토 경영자의 기량과 일본어의 장벽이 열쇠/아타미 히로유키 해결책을 뒤로 미뤄 때를 놓칠 우려/이토 모토시게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위기감이 모자란다/키무라 요코 외국인을 포함한 인재를 활용하지 못해/키요노 가즈하루 왜곡 시정을 위해서는 '파국' 가속을/나카마에 타다시 세계질서의 붕괴, 서구형에도 한계/오노 고로 개혁 리스크보다 방치의 폐해가 무섭다/고사이 유타카 폐쇄적인 조직이 재능을 죽인다/코쿠료 지로 기득권이 벽, 소국이 될 숙명/사와 타카미츠 기업 자세에 문제, 부수지 않으면 진행되지 않아/나카타니 이와오 리더 부재로, 예산 이미 파국/혼마 마사아키
'조정형'의 정치 붕괴조짐 보여/이노키 타케노리 한반도에서 위기 우려, 중국 주변에 긴장도/다나카 아키히코 일본통의 일본인이 사라져 정부 쇠퇴/다나카 나오키 채무가 채무를 부르는 제 2 의 영국이 될 위험/야시로 나오히로 꿈만 부풀리고 개혁의 시간 허비/야마구치 지로 시장경시의 풍조, 성장률 낮고 고실업/리차드 쿠 제 2 장 무너지는 동족국가 1. 2. 3. 4. 5. 6. 7. 8. 9. 10
일본 시스템의 패전 메이지시대의 잊었던 일 삐걱거리는 법제도 세금의 격차는 51 배 패배자들의 출현 맡겨버린 자치 보이지 않는 복지 또 하나의 내압 일본어의 탄식 가냘픈 꽃
"인터뷰 1)" 2020 년의 세계와 일본 아시아와 미국, 세계의 중심으로/나카타니 이와오 효율추구의 미국이 모델/리차드 쿠 부의 정리, 정치 책임으로/야마구치 지로 일본의 폐쇄적 제도 불만/퀘크 렌벤 지역통합, 세계에서 확대/칼 합스브르크 문화, 창조로 강국지향을/ 산업경쟁력, 미국이 우위/더그 비라이트 일본, 아시아 대등한 관계/라피드 아지즈 제 3 장 질주하는 자본주의 1. 신세기에는 지구 규모의 경쟁 2. 쌓아 올린 국부 3. 콤파니아 4. 융합하는 '노', '자' 5. 하베이 로드 6. 미학의 경영 7. 백화점의 1 층 8. 토지의 멍에 9. 증대하는 위험 10. 제 3 의 배로
"인터뷰 2)" 2020 년의 일본기업, 일본경제 위험한 식량, 에너지/ 정보화, 창조적 파괴 닥쳐/ 기업경영, 투명성에 중점/ 개혁의 실행, 민간의 손으로/ 제 4 장 표류하는 사상 1. 진보를 향한 '축'은 어디로 "앙케이트 조사에서" 2. 도쿄대학 미타카 클럽 3. 직공의 일기 4. 현실이 두렵다 5. 벌거숭이의 샐러리맨 6. 기술에 곤혹 7. 아버지의 마음 8. 도시가 줄어든다 9. 마르크스를 넘어 10. 남편은 밖에 아내는 안에 "대담 1)" 일본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아오키 타모츠 "대담 2)" 역사로부터의 교훈/다나카 아키히코 "대담 3)" 개인, 조직의 행방/코쿠료 지로 제 5 장 데이터로 본 2020 년 1. 인구감소사회의 구도 2. 걱정되는 노동력 부족 3. IMF 의 예측 제 6 장 시나리오를 읽는다 1. 성장률 저하 "나의 진단" 고사이 유타카 2. 세계인구의 증가, 식량 불안 "나의 진단" 3. 산성비, 일본에도 타격 "나의 진단" 사와 타카미츠 4.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나의 진단" 오노 고로 5. 국내노동력의 대폭 감소 "나의 진단" 야시로 나오히로 6. 커지는 국민부담
"나의 진단" 혼마 마사아키 역자 서문 참으로 이 책을 만나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앞으로 23 년 후, 4 반세기 후의 세계인 2020 년의 일본과 세계--물론 한국을 포함하여--의 모습을 예측해 그려보고, 지금의 경제와 사회 전반의 문제점을 짚은 이 책의 접근 방법은 실로 시공을 초월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중장기적 분석이 없는 단기적인 예측이란 의미가 없다. 당장 내일 하루는 들어맞더라도 그 다음날 틀리고, 잘못된 예측과 분석이라면 그것은 오히려 문제를 더욱 확대시키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앞으로 20 년 이상을 한꺼번에 위에서 살펴보는 넓은 시각으로 '세계와 일본'을 보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찾으려는 일본경제신문사와 취재진의 의도가 돋보인다. 우리는 어떤가. 지금 이 나라는 참으로 일본과 비슷한 길을 걸어왔고 지금도 걷고 있다. 70, 80 년대의 고도성장이 그러했고, OECD 에 들어갈 만큼 선진국형 경제발전을 이룩한 그 과정도 그러했다. 그러나 이런 과정에서 우리는 일본의 나쁜 점까지 그대로 따라왔다. 일본의 전철을 밟지 말고 그 장점만을 따라가면 가장 이상적일텐데, 거리의 표지판 색깔과 글자체부터 일본을 그대로 모방하고, 법체계, 사회체계, 경제체계 그 모든 것을 따라가다 보니, 일본의 단점까지도 그대로 모방하고 있는 것이다. 다나카 전일본총리의 정치 스캔들이 일본 정치에서는 이미 20 년 전의 일이었지만, 우리는 그것을 거울삼지 못하고 아직껏 '정치 자금'문제에서 헤매고 있다. 경제를 보면 반도체 등 첨단기업의 흥망 사이클이나 자동차산업의 구조조정, 증권시장의 움직임 등이 멀게는 5 년 이내, 가깝게는 2, 3 년내로 그대로 일본을 따라 움직이는데도 우리는 '우리의 바로 앞'에서 넘어지는 일본을 모르고 있다. 94, 95 년 일본 자동차산업의 불황으로 일본의 닛산자동차가 사쿠마 공장을 폐쇄하는 등 긴축정책을 취했을 때, 우리는 97 년 기아의 부도사태를 충분히 내다볼 수 있었다. 90 년초 일본의 장기불황의 시작은 바로 일본 첨단산업의 상징인 일본 반도체의 폭락으로부터 이뤄졌고, 우리의 증시도 같은 과정을 겪었다. 따라서 이 책의 내용들은 표면적으로는 '2020 년으로부터의 경종--일본이 사라진다'이지만, 너무도 같은(혹은 그보다 더 심각한)정치, 경제, 사회적 문제점을 일본과 공유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2020 년으로부터의 경종--한국이 사라진다'로 새겨서 들어야 할 이야기들이다.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한국과 일본이 '사라지기 경쟁'을 벌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른 점은 '일본'은 이 '2020 년으로부터 들려오는 경고'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같은 모든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이를 미리 예견하고 준비하는 일본이기에, 일본에게는 어쩌면 '미래'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2020 년으로부터의 경고'를 들을 여유조차 없다. 당장의 정치판이 급하고, 이유도 모른 채 기업이 넘어지고, 그저 오늘 하루만 혹은 조금 여유가 있다 해도 내일 하루만 본다. 세계가 하나가 되는 글로벌의 혁명이 이미 시작되었는데, 우리는 아직도 이 조그만 한반도 남쪽의 동쪽에서 태어났느냐 서쪽에서 태어났느냐를 갖고, 이빨 드러내 놓고 싸우는 봉건영주시대를 살고 있다. 하루살이 같은 좁고 짧은 시야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우리는 '2020 년'이 아니라 '2010 년'의 경고도 듣지 못하고 언제든지 2 류, 3 류 국으로 떨어질 수 있다.
이 책을 여기까지 탈고할 때쯤 '주식회사 한국'이 외환 금융시장의 위기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IMF 구제금융을 요청하면서 '국제적 파산'을 선고했다. 일본은 그래도 7 년 불황을 견디어 낼 정도의 경상흑자를 갖고 있었던데 반해, '주식회사 한국'은 다 2 개월만에 부도를 냈다. 일본보다 먼저 그리고 훨씬 빠른 속도로 한국이 무너져 가고 있는 것이다. 남미와 동남아의 많은 선례들이 우리 앞에 있고, 우리의 바로 옆에는 2020 년쯤 미국과 동일한 국력을 갖게 되는 중국이라는 거인이 몸을 일으키고 있다. '2020 년으로부터 들려오는 경고'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1997. 12. 에서 부지영 서문 한 가지 조사가 있다. 구몬 어린이연구소가 초등학교 4 학년부터 고등학교 3 학년까지의 아동 및 학생과 그 부모에게 '지금 확고하고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는가' 하고 물어보았는데, '가지고 있다'는 대답은 부모가 67.1%에 달한 반면 자녀는 55.3%로 절반을 약간 넘는데 지나지 않았다. 초등학교 4 학년부터 고등학교 3 학년까지라면 연령은 대체로 10 살부터 18 살이다. 21 세기 전반의 일본을 짊어질 세대가 자신들의 부모만큼 낙관하고 있지 않다. 자녀들이 큰 꿈을 가지기 어려운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경기가 완만하게 회복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밝은 햇빛이 비치는 것은 아니다. 외국과의 경제경쟁도 심해지고 있을 뿐이다. 부모의 수입은 별로 늘지 않고 있고, 구조조정(리스트럭처링)의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 21 세기에는 고령화로 세금부담도 무거워진다. 태어나는 자녀의 수가 적어져서 인구도 줄어들게 된다. 지구 전체적으로는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환경이 악화되고 식량위기나 에너지 위기가 다가올 우려도 있다. 우리들의 취재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시작했다. 다음 세대에게 꿈이 있는 사회를 물려주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그것을 찾기 위하여 먼저 2020 년의 일본이나 세계의 모습을 그려보고 , 거기서 거슬러 올라와 지금의 경제나 사회의 모습을 생각해보는 방법을 원칙으로 하였다. 2020 년이라는 해를 제시한 것은 먼저 그 전후에 인구의 4 분의 1 을 65 세 이상의 고령자가 차지하게 되고, 일본이 세계에서 가장 노화된 나라가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자녀수 감소도 더해져 그 때쯤에는 일본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으로 전략할지도 모르는 기로에 서게 된다. 지구 차원의 문제도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2020 년이 21 세기의 일본을 생각하는데 중요한 해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취재를 시작하기 전후하여 일본에서도 21 세기를 지향하는 개혁이 시작되었다. 하시모토 류타로 수상은 행정, 금융 시스템, 경제구조 , 사회보장, 재정구조, 교육의 '6 대 개혁'을 제기했다. 그러나 글로벌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세계 각국이 '공업사회'에서 '지식사회'로, 산업혁명 이래의 격렬한 개혁경쟁을 펼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 사람들의 위기의식은 아직 희미하고, 개혁의 템포도 느리게 느껴진다. 일본의 전후 시스템은 공업화로 구미를 쫓아가는데 큰 힘이 되었지만, 그 성공체험이 있기 때문에 정부도 ,기업도, 개인도 시스템에 필요한 대폭적인 재검토를 주저하는 분위기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개혁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미국 등 앞서가는 나라를 보면 빈부격차의 확대 등 마이너스 면도 눈에 들어온다. 다라서 무엇을 기초로 한 개혁을 추진할 것인가 하는 사상의 축도 정해지지 않는 것 같다. 21 세기를 바라보며 나날이 변화해 가는 세계를 바라보면서도 고민이 많기 때문에 세계의 빠른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일본을 그리며, 일본경제신문 지상에 연재 중인 '2020 년으로부터의 경종' 시리즈는 연재를 시작하자마자 가토 자민당 간사장이 국회에서 인용하는 등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본서는 그 중 제 1 부 '일본이 사라진다'에서 제 4 부 '표류하는 사상'까지를 중심으로 사회인사 인터뷰 등 관련기사도 곁들여 묶어놓은 것이다. 독자들이 일본의 장래를 고찰하는데 일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등장인물의 직함, 연령 등은 원칙적으로 신문게재 당시의 것으로 하였다. 1997 년 6 월 일본경제신문사 제 1 장 일본이 사라진다 1. 진행되지 않는 개혁, 가속되는 노화 --세계에서 고립, 개인은 고독 해외에서 새해를 맞이하려고 젊은이들끼리 혹은 가족동반으로 즐겁게 공항을 떠나는, 여느 해와 다름없이 시작된 1997 년. 그러나 그 발 밑으로 일본은 조용히 파국의 길을 걷기 시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있으며, 산업혁명 이후 다시 전환기에 들어서 있는 세계 각국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전후 50 년을 지탱하여 온 시스템은 기능 정지의 상태에 빠져 있다. 지금 빨리 개혁하지 않으면 나라 전체의 노화가 심화되고, 자녀수의 감소에 따라 인구도 줄어들어, 2020 년에 이르러 다음 세대는 꺼져 가는 일본을 보게 될 것이다. 미래로부터 그러한 '경종'이 울려오고 있다. 6, 7 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의 대형은행들은 런던이나 뉴욕의 금융시장에서 세계 최강이라는 극찬을 받았었다. 같은 금융시장에서 1996 년 가을부터 '일부의 일본 대형 은행 도산'을 전제로 한 거래가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제 3 자에게 미리 수수료를 지불하면서 일본은행에 대한 채권의 리스크를 회피하고자 하는 것으로, 만약 도산하는 경우에도 채권을 회수할 수 있는 말하자면 도산보험이다. '크레디트 더리버티브(Credit Derivative)'라고 불리는 것으로 거래 조건은 평균 1 년부터 5 년이다. 그 사이에 도산하면 수수료의 수십 배에 이르는 보험금을 받게 된다. 이런 상품을 파는 곳은 JP 모건, 크레디 스위스 등 미국 및 유럽의 우량은행들이다. 그들은 불량채권 처리도 하지 못한 채, 다시 추가하락의 위협을 맞고 있는 일본의 은행을 보면서, 드디어 일본의 대형은행이 사라지는 시대에 대한 대비에 들어 간 것이다.
번영이 침체로 반전, 기업은 쇠퇴 중국 상하이시--96 년 11 월, 세계의 유력한 기업 최고경영자들이 매년 한번씩 열리는 상하이시장 주최의 국제기업가 고문회의에 초대되었다. 참석자들에게 나누어 준 명부를 받아 보고, 일본 기업 관계자들은 경악하였다. 상위 10 사에는 AIG, 시티은행 등 미국이나 한국기업들이 대부분을 차지하였고, 일본의 기업명은 하나도 없었다. 서열을 중시하는 중국당국의 기업 랭킹 상위에서 일본은 사라졌다. 위기를 알아차린 일본기업은 경영혁신에 나섰으며, 하시모토 류타로 수상도 001 년을 목표로 하는 행정개혁 등 '6 대 개혁'을 내걸었다. 해외에서는 이러한 간판조차도 의심하고 있다. '일본은 행정개혁이나 규제완화의 페이스가 대단히 느리고, 세계의 스피드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미국 백악관에서 96 년 11 월 작성한 미국정권의 신아시아정책에 관한 내부문서에 이 문구가 있다. 대중국정책에 대부분을 할애한 이 문서는, 일본에 관해서는 단정적으로 '쇠퇴의 길을 걸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는 것으로 끝나고 있다. 세계경제 예측으로 정평이 있는 구제석유자본(메이저)인 셸 그룹은 최근 정리한 '2020 년까지의 장기예측'에서, 향후 20 년간을 '개혁하지 않으면 살아 남을 수 없는 개혁경쟁의 시대'라고 규정하였다. 이 경쟁에서 선두를 달리는 나라는 레이건, 대처 시대의 80 년대 초부터 뛰기 시작한 미국과 영국이라는 것이다. 산업의 공동화나 금융파탄, 재정, 무역의 쌍둥이 적자라는 병을 앓고 있던 미국에서는 국가는 '작은 정부'를, 기업은 철저한 구조조정(리스트럭처링)을 추진하였다. 영국도 증권시장 개혁(빅뱅)이나 국영기업의 민영화를 서둘러, 영국병의 진행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이러한 개혁이 있었기에 미국, 영국은 부활하였으며, 특히 미국은 바야흐로 통신이나 금융에서 세계 표준을 거머쥐었다. 80 년대 중반부터 뉴질랜드 등 다른 영어권 제국이 그 뒤를 이었고, 유럽각국도 복지를 삭감하는 한편 통화 통합에 나섰다. 아시아지역도 2020 년의 무역투자 자유화를 향하여 개혁의 발걸음을 서두르고 있다. 그런데 일본은 '겨우 개혁경쟁의 꼬리를 따라가는 단계'라고 셸은 지적한다. 예측을 담당한 로쟈 레인보 부사장은, 2020 년까지 고령화와 청소년인구 감소가 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나라가 개혁의 맨 뒤를 따라가고 있는 이러한 사태를 의기라고 보았다. 더욱이 개혁원년이라고 이름을 내건 97 년도 예산안에서도 세출을 삭감하지 못한 것을 지적하며 '일본의 지도자들에게 위기감이 없다는 것이야말로 문제'라고 경종을 울린다. 장래를 예언이라도 하는 듯이 96 년 한해 동안 주요 선진국 중에서 일본의 주식시세만이 하락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19 세기 말, 빅토리아 왕조 말기의 영국을 상기하게 한다. 산업혁명에 의해 세계의 공장이 된 당시의 영국은, 일상 생활의 풍요가 오히려 개혁정신을 마비시켜, 구조전환이 늦어졌다. 그리하여 30 년 후에는 뒤쫓아 온 후발의 미국이나 독일에게 철강 생산에서 뒤떨어지고 단숨에 쇠락해 갔다. 그 100 년 후에 세계의 공장이 된 일본은 그 때의 영국처럼 패권도 잡지 못한 상황에서, 개혁경쟁에 뒤처짐으로써 세계로부터 고립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서는 고독감이 떠돈다. 도쿄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떠돈다
새해에 사람들로 들끓는 아사쿠사 신사에서 가까운 도쿄 야나카의 묘지. 나란히 서 있는 무덤들 사이에, 30 석 정도의 묘석에 기묘한 흰 플라스틱판이 붙어 있다. '이 무덤은 무연고 무덤인바, 참배하시는 분이 계시면 절 사무소에 들려주시기 바랍니다.'--자녀수의 감소로 '가족'의 단절이 늘어나, 최근 몇 년 사이에 도쿄에서도 돌볼 사람이 없게 된 쓸쓸한 무연고 묘지가 급증하고 있다. 도내의 주요 묘원에는 방문하는 사람이 없는 묘가 10%에 이른다. '이렇게까지 될 줄이야.'--가타야마 케이코(가명, 66 세)씨는 '2 세대 주택의 오산'을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85 년, 케이코 씨는 1,000 만 엔을 들여 도쿄 도내의 자택을 2 세대 주택으로 개축하여 이들 부부와 동거하게 되었다. 그러나 머지않아 남편과 며느리의 관계가 악화되어, 92 년에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동거는 좌절을 맞게 되었다. 아들 부부가 집을 나가고, 가타야마 부부는 20 년간을 살아온 정든 토지를 떠났다. 지금은 남편과 두 사람이 사이타마현 우라와시의 고령자 맨션에서 남 몰래 살고 있다. '부모와 자식은 동거할 수 없다.' '부부는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 무너져 가는 가족의 풍경은, 국가 시스템이 파탄을 맞을 것으로 예상되는 2020 년을 향해서, 요람에서 무덤까지 쓸쓸히 살아가는 일본인을 암시하고 있다. 96 년 11 월 하순,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사진전이 열렸다. 테마는 '도쿄'. 일본과 구미의 문화교류단체가 유럽의 유명 카메라맨 21 명을 도쿄로 초대하여 자유롭게 촬영하도록 하였다. '전차의 창문 너머로 보이는 무표정한 남자들' '전철 안에서 지쳐 잠든 젊은 여성' '팔짱을 끼고 걷는 남자.'-어떤 사진도, 어떻게 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어둡고, 무표정한 것뿐이었다. 사진전의 기획에 참여했던 평론가 모리모토 데츠로씨는 '도쿄의 죽어 있는 모습을 보았다'고 말한다. 경제는 몰락하고 활력을 잃는다 한 사람의 여성이 일생 동안 낳는 자녀의 수가 1.4 전후인 현재의 낮은 수준이 그대로 계속될 경우, 일본의 총인구는 2008 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한다. 2020 년에는 국민 4 사람 중 한 사람이 65 세 이상의 고령자는 세계 최고령국이 되고, 14 세 이하의 어린이 수는 현재보다 3 백만 명이 줄어 고령자 수의 절반 이하인 나라가 된다. 자녀수의 감소, 고령화의 부담은 샐러리맨의 어깨 위에 놓이게 된다. 현재의 구조를 바꾸지 않고 방치하면 재정, 연금 등 기존 시스템은 물론 붕괴된다. 2020 년의 노동자 1 인당 국민부담액(세금과 의료, 연금 등 사회보장 부담의 합계액)은 680 만 엔으로 95 년(209 만엔)의 약 3 배로 늘어난다.(needs, 일본경제신문사 종합경제데이터뱅크 예측) 산와경제연구소에 의하면 구조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2024 년 이후에는 실질 GDP(국내총생산)의 성장률이 매년 마이너스가 된다. 2025 년에는 경상수지가 적자로 반전되고 재정과 나란히 '쌍둥이 적자'를 끌어안게 된다. 일본의 강력한 국력을 상징해온 경제수치가 하나하나 몰락해 간다. 세계적으로는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식량이나 에너지의 수급이 핍박받게 된다. 지구차원에서 환경문제도 심각하게 된다. 인류 전체가 커다란 기로에 서게 되는 그런 시기에 일본은 활력을 잃는 나라가 된다. 지금 이대로라면 그러한 미래가 일본을 기다리고 있다.
2. 다이쇼의 비누 방울 --개혁은 붕괴, 파국으로 70 년 전의 버블 비누방울 날아간다 지붕까지 날아간다 지붕까지 날아가 터져서 사라진다 노구치가 죽은 어린아이를 그리워하며 작사하였다고 전해지는 동요 '비누 방울'은 다이쇼시대(1912__25)의 작품이다. 다이쇼 데모크라시로 알려진 이 시대는 헤이세이의 지금과 마찬가지로 일본이 자신의 개혁능력을 시험하는 전환기였었다. '지금의 투기 상태는 중앙은행의 금리만으로 억제하기 어렵다.'(이노우에 준노스케 일본은행 총재. 1919 년;다이쇼 8 년) 헤이세이의 거품(버블)보다 약 70 년 전인 제 1 차대전 후의 이 때도 일본은행 총재는 '비누 방울'과 힘든 싸움을 하고 있었다. 상품, 주식시장으로 흘러 들어오는 투기자금을 억누르기 위해서 이노우에는 금융긴축에 나선다. 거품은 다음 해인 1920 년 3 월의 주가폭락을 계기로 붕괴되었다. 상품시세도 폭락하였다. 이노우에는 정책을 바꾸어 산업계, 금융계의 구제에 착수한다. 게다가 1923 년 관동대지진이 발생하여 그 타격은 계속된 쇼와 금융공황과 불황으로 계속 이어진다. 결국, 거품 붕괴의 뒷처리는커녕 '문제를 회피하는 데 급급했다.'(다케다 도쿄대학 교수) '정부로서 가장 힘써야 할 것은, 행정 및 재정의 대대적인 정리긴축을 단행하는 일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하마구치 오유키 대장성 장관, 1924 년;다이쇼 13 년) 제 1 차 세계대전 후인 1920 년대는 세계적으로 군축, 행정개혁의 시대였다. 1924 년에 취임한 하마구치는 행정 및 재정개혁을 국민에게 호소하고 육해군의 예산삭감, 행정기관의 재편을 제안하였지만, 여당이나 군부, 관료의 저항으로 행정의 기본 틀에까지 미치는 개혁은 할 수 없었다. 25 년 후의 패전 '세계의 민심도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선거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심각한 재해를 입을 우려가 있다.'(하라 타카시 수상, 1919 년;다이쇼 8 년) 데모크라시 운동과 함께 참정권 확대 요구가 강해졌다. 하라 내각은 선거자격을 납세액 10 엔 이상에서 3 엔 이상으로 확대하는 개혁안을 제출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쟁으로 날을 지샜고, 보통선거를 도입하는 법 개정이 실현된 것은 하라가 괴한의 칼에 피살되고 나서도 4 년이 지난 1925 년이었다. 그 사이에 5 명의 수상이 교체되었다. 정당정치의 뒤편에서는 '진품 5 개 사건'등 정치가에 대한 부정현금 의혹이나 정부고관이 관여된 뇌물오직 사건도 속출하였다. 1928 년(쇼와 3 년)에 보통선거법에 의한 최초의 선거가 실시되었지만, 정치부패의 영향으로 '국민은 정치에 대한 불신감이 더 커져'(도리우미 주오대학 교수), 정당정치가 목표로 하는 민주국가
일본은 꿈으로 사라졌다. 러시아 혁명으로 인한 사회주의 운동의 고양, 경제발전단계의 차이 등 다이쇼와 헤이세이는 물론 서로 다른 면이 많다. 그러나. 거품경제의 처리, 행정, 재정개혁, 선거, 정치개혁은 모두 70 년이 지난 지금 현재도 긴급한 국가과제이다. 개혁을 게을리하면 지금의 일본도 사라질 운명에 처하게 된다. 메이지유신으로부터 약 50 년이 지나서 메이지 공신, 번벌지배의 시스템이 기능을 멈추고, '서양을 따라잡자는 국가 목표도 희미해진'(도리우미 교수) 다이쇼 시대는 결국, 치안유지법으로 개인의 권리를 억누르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1929 년의 미국 주가 대폭락으로 세계적인 대공황이 불어 닥치면서 정치, 경제의 개혁 무드라는 '비누방울'도 터져서 사라져 버렸다. 대외적으로는 '구미와 싸워, 제멋대로의 아시아주의를 만들어버린'(이노세 구미에. 고우난대학 조교수)군부가 대두하였다. 그리고 다이쇼의 거품 붕괴로부터 약 25 년 뒤인 1945 년, 일본은 패전이라는 파국을 맞이한다. 헤이세이의 거품도 종전으로부터 약 50 년 후, 지금 또 일본은 전후 시스템의 붕괴에 직면하고 있지만, 최근의 투표율 저조가 보여주는 것처럼 많은 개인은 침묵하고 있다. 대담한 개혁을 할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 역사가 되풀이된다고 한다면, 거품 붕괴로부터 약 25 년 뒤인 2020 년경에 일본은 또 한번의 '패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3. 쓸모없는 '지하도시' --시장은 노화, 편안한 장사는 이제 끝 관료와의 합작 가나가와현 사가미하라시. 도큐건설의 관련회사 부지 밑으로 '지하도시'가 있다. 사발을 엎어 놓은 형태의 공간이 지면으로부터 80 미터의 '깊은 지하'에 넓게 만들어져 있다. 지름 20 미터, 높이 12.5 미터. 사업비는 약 80 억 엔. 통산성의 외곽단체인 엔지니어링진흥협회가 96 년, 국가의 전액 보조로 완성시켰다. 대형의 지하 돔을 몇 개 만들어 터널로 연결된 도시를 만든다.--그러한 구상에서 나온 실험돔이다. 반면 도쿄의 오피스는 빈 사무실이 눈에 띄고, 수도기능 이적도 거론되고 있다. '솔직히 말해, 지금 대심도 지하는 아무런 용도가 없다.'(가와가스 통산성 산업시설과장) 음악홀으로라도 쓸 수 있다면, 음향실험이라도 되풀이하겠지만, 예산은 96 년도까지 뿐이다. 용도가 발견되지 않으면 97 년도에 다시 메워질 운명이다. 그래도 종합건설회사들은 지하에 대한 꿈에 매달린다. 도큐건설은 2020 년 완성을 목표로 하여 별도의 장소에서 지하도시의 건설을 진행시키고 있다. 신간선 정비 등, 제 2, 제 3 의 '지하도시'도 추진되고 있다. 80 년대 후반 종합건설회사들은 일찍이 없었던 개발수요로 절정기에 달해 있었다. '이대로 가면 수도권의 토지는 모두 개발되어 버린다. 다음은 지하다.' 이것이 예산을 확보하는 것을 무엇보다 우선시하는 관료기구의 놀이와 맞아 떨어져, 사가미하라시의 돔으로 이어졌다. 공교롭게도 그것이 완성된 지금, 종합건설은 지반이 침하되고 있다. 후쿠오카시의 건설시장에서 한국의 대우가 '시민권'을 얻었다. 복합상업시설 등 대형 민간공사에 연달아 참여하고 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롯데건설이 24 건,
삼성물산이 9 건의 민간공사에 참여하였다. 일본의 종합건설은 민간공사보다 20__30%의 단가가 높은 공공공사 덕택에 성장하였기 때문에, 고비용 체질에 물들어 있다. 한국회사들은 인건비만 보더라도 현장 감독급에서 일본의 4 분의 1 이다. 이것을 무기로 공공공사 단가가 크게 떨어지는 97 년부터, 건설성직할공사의 일반 경쟁입찰에도 참여한다. 해외에서는 손해 후지츠는 96 년 12 월 대기업으로는 처음으로 국제전신전화(KDD) 대신에 미국 AT&T 의 '콜 백 서비스'(call back service)를 이용하기 시작하였다. 규제에 안주하여 온 전화회사도 해외로부터의 공세를 막을 수단이 없다. 국내시장에서 편안한 장사를 해온 종합건설이나 전기통신업계는 자멸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 '편안한 장사'는 아직도 많은 일본기업에 둥지를 틀고 있다. 80 년대에 들어서면서, 전기 등 소비재 제조업체들은 제품의 모델 교체를 되풀이하며 기능을 자꾸자꾸 늘려 왔다. 그 일례가 소니의 '워크맨'. 1979 년 발매 후 17 년간에 카세트 테이프 형식 하나만으로 약 400 기종, 한 해 평균 20 기종 이상을 팔았다. '소비자의 요구보다 이런 것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우리들의 희망에서 태어난 모델도 있다'고 이 회사의 기술자는 인정한다. 워크맨의 국내 평균판매가격은 1 만 8,000 엔 전후. 그래도 일본에서는 팔려 왔지만, 가격중시의 해외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미국에서의 평균가격은 35__40 달러(4,000 엔 정도)로 일본의 4 분의 1 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일본에서 돈을 벌고, 해외에서는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이 실태'라고 말한다. 산업의 공동화가 거론된지는 오래되었지만, 일본기업은 어디에서 생산하든 지금도 영업이익의 약 90%를 국내 판매에서 벌어들인다. 국내 생산만을 고집하고 있는 기업도 있다. 거기에는 '일본에서는 소비자의 동향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만큼 메이커의 힘이 세다.'(니시무라 타이조 도시바 사장)라는 의식, 지하도시로 통하는 의식의 한 단면이 들여다 보인다. 4 명 중 1 명이 고령자가 되는 2020 년의 일본에서는, 재정의 여유도, 모델 교체에 쉽게 끌려오는 젊은이도 줄어든다. 기업이 편안히 장사하던 시장은 사라지고, 해외에서와 같이 국내에서도 진정한 경쟁의 비바람을 맞게 된다. 지금 눈을 뜨면 일본기업은 혹시 자멸을 면할지도 모르지만, 자각이 없는 기업은 거의 확실하게 사라질 것이다. '초고령화사회가 목전에 닥쳐오고 있어, 현상을 방치하면 일본 경제는 파국으로 향할 것이다.' 도요타 경제단체연합회 회장은 97 년 1 월 3 일의 신년 메시지에서 파국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국가에 구조개혁을 호소하였다. 너무 강한 표현에 사무국은 주저하였지만, '현상에 만족하고 있는 국민들에게 의기를 호소하고 싶다'며 회장이 강행하였다. 그러나, 파국의 그림자는 기업에서야말로 더 가까이 있다. 4. 꿈을 도둑 맞았다 --젊은이는 떠나고, 소프트는 침몰 월급 10 만 엔 이하
'터미네이터' 등의 히트작을 계속 발표해 온 미국의 영화감독 제임스 카메론 씨가 일본의 애니메이션 기술자 스카우트에 나섰다. 전잡지편집자로 영화감독인 고미네 씨에게 근미래 애니메이션 'GHOST IN THE SHELL(공각기동대)를 소개받은 것이 애니메이션에 반한 계기가 되었다. 96 년 2 월, 이 히트작을 만든 프로덕션 아이지(도쿄 코크분지시)의 기술자 스카우트를 시도하였다. 결국, 스카우트는 성사되지 못했지만, 카메론 씨는 단념하지 않고 있다. 텔레비전, 극장용 영상 소프트로서, 일제 애니메이션에 대한 해외의 평가는 높다. 미국 월트 디즈니사는 96 년, '이웃의 토토로' 등으로 유명한 스튜디오 지프리(도쿄 고가네이시)의 미야자키 하야모 감독의 작품을 세계에 배급하기 위하여 도쿠마 서점 그룹과 제휴하였다. '일본에는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낳는 감성의 하부구조(infrastructure)가 있다.' 공곡기동대의 오시이 감독은 이렇게 지적한다. 헤이안 시대의 두루마리 그림으로부터 면면이 이어져 오는 표현수법, 그것을 받아들이며 자랄 수 있는 문화적 토양이 '감성의 인프라'이고, 만화나 애니메이션 작가가 거기서 샘솟듯 배출되어 왔다. 인재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소프트 산업에서 구미에 뒤져 온 일본도, 애니메이션만은 세계를 이끌고 갈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가 지금 발 밑에서부터 무너지고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등이 거느리는 미국 영상제작회사 드림웍스 SKG 에서, 애니메이션 디자인을 담당하는 쿠니 토미다(37 세)씨. 그녀의 경험은 애니메이션 업계의 실태를 여실히 말해준다. '미국기업으로 옮기기 전에는 79 년부터 12 년간 일본의 애니메이션 회상에서 일하였습니다. 월수입은 그만두기 직전에 겨우 30 만 엔이었어요. 그 때, 신입사원은 하루 14 시간 전후나 일하고 10 만 엔도 받지 못했습니다. 단칸방 생활을 하는 사람도 많았어요. 제작비 억제로 작품의 질도 떨어지고 있었구요. 희망을 갖고 들어온 젊은이들 대부분은 1 년도 지나지 않아 그만둬 버렸습니다.' '미국에서는 완성도가 높은 일을 할 수 있고, 월수입도 100 만 엔이나 됩니다. 지금은 영주권도 취득했어요.' 제작 현장의 전근대성이 젊은이들을 애니메이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있다. 도쿄내에 있는 디자인 전문학교에는 애니메이션 지원자가 10 년 전에 비하여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적은 인재나마 길러서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추면, 이번에는 해외에서 스카우트가 들어온다. 이것은 게임 소프트나 컴퓨터그래픽(CG)업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일본의 영상 소프트업계에서는 '꿈을 도둑 맞았다고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나, 그것을 묶어 놓을 힘이 일본에는 없다. 광활한 들판의 미국 '실리우드.' 실리콘 밸리와 헐리우드가 제휴하여 새로운 산업을 창조해 내고 있는 것을 이렇게 말한다. 현장감이 있는 삼차원 영상을 만드는 컴퓨터는 미국 실리콘그래픽사의 독무대지만, 이것도 '실리우드'의 성과이다. 극장용 작품을 다시 텔레비전 방영권이나 캐릭터의 상품화권으로 팔아, 흥행수입의 1.5 배를 벌 때도 있다. 미국의 영상산업은 광활한 들판을 더 크게 확대하고 있다. 일본의 영상작품은 상품화권 등의 부수입도 적다. 인기 텔레비전 만화영화 '드래곤 볼'은 아시아의 방송사에 한 편에 1,000 달러 정도로 수출되고 있다. 미국과 같이,
리스크를 감당하면서 파묻혀 있는 작품을 발굴하고 폭 넓게 작품을 판매하는 자유로운 프로듀서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리스크를 회피할 수 있는 영상작품 전문의 보험회사도 일본에는 없다. 감성의 인프라는 있지만 이러한 산업 인프라가 결정적으로 부족한 것이 이 애니메이션 업계이다. 그것이 근대화를 방해하여 인재의 공동화를 초래하고 있다. 2020 년에는 애니메이션 제작 작업의 대부분이 컴퓨터화 된다고 하지만, 그 투자 경쟁도 따라잡을 것 같지 않다. 많든 적든 두뇌집약형의 소프트 산업, 콘덴츠(contents, 정보의 내용) 산업의 전반에 공통되는 고민이기도 하다. 산업구조심의회는 96 년 11 월의 보고에서 '지식창조입국'을 목표로 한다고 명시하였다. 구조개혁을 진행시키면, 컴퓨터 소프트웨어나 콘덴츠 산업의 시장규모는 95 년의 약 8 조 엔에서 21 세기초에는 50 조 엔으로 확대된다고 한다. 그러나, 젊은이의 '저패니즈 드림'이 시들면, 장래의 일본을 지탱해야만 하는 두뇌산업 전체가, 미국을 따라 잡기는커녕, 침몰해 갈 것이다. 5. 신기루를 뒤쫓아가는 빅뱅 --서구에 미치지 못하고, 엔은 쇠퇴 일본인 손님 거절 1996 년 10 월, 노무라 투자고문에 1 명의 펀드 매니저가 이적하여 왔다. 사카모토 씨, 49 세, 26 년 전에 노무라증권에 입사하여 오일 머니의 운용에 종사하였다. 90 년에 퇴사한 후 외국은행 등에서 일관되게 자금 운용을 담당하다가, 다시 스카우트 되어 6 년만에 노무라에 복귀하였다. 일본인 펀드 매니저의 개척자라고도 할 수 있는 사카모토 씨는 노무라에 되돌아오면서 두 가지의 조건을 제시하였다. 하나는 운용성적으로 급료가 결정되는 1 년 계약의 연봉제. 또 하나는 '법인, 개인을 막론하고 일본인의 자금은 운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든 손실의 표면화를 숨기는 풍토, 정해지지 않은 운용성적의 평가제도.... 일본인 상대 거래의 허무함을 통감한 사카모토 씨는 '자금 운용의 프로답게 평생 외국인만 상대한다'며 일본에 있으면서 일본의 돈을 포기하였다. 지금은 미국 연금을 담당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되는 일본, 1,200 조 엔의 금융 자산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가 당면의 과제이지만, 운용할만한 전문담당자가 없다. 실은 그 뒤에,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시장기능의 경쟁 고령화로 저축율이 저하되고, 경제구조의 개혁도 진행되지 않으면 '2020 년이 지나서는 경상수지가 적자로 전략, 재정도 파탄을 맞아 쌍둥이의 적자를 안게 된다'고 산와종합연구소의 모리나가 주임연구원은 말한다. 채권국인 지금도 시장의 폐쇄성과 운용난으로 자금이나 그것을 운용하는 인재가 도망치고 있는 일본. 채무국이 되면 돈은 한층 더 접근하지 않게 된다. 오랫동안 변두리만 더듬던 손을 이제는 털어버릴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정부가 내걸고 있는 '2001 년에는 서구와 같은 보통의 시장'을 만들겠다는 목표의 금융, 증권개혁안(일본판 빅뱅)은 국내적으로는 하나의 개혁과정에 불과하다. 그러나
주식위탁 수수료의 자유화 등 그 내용은 '서구의 70__80 년대형'으로, 21 세기를 향한 개혁이라고는 말하기 어렵다. 서구에서는 이미, 2020 년까지 시장간 경쟁의 열쇠를 쥐고 있는 전자금융과 관련된 줄다리기가 시작되고 있다. 미국정부는 전자화폐의 보급을 위하여 경찰에 부정방지를 위한 암호해독권을 부여할 준비에 들어갔다. 유럽도 이를 뒤쫓아, 법적인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암호기술이나 전자화폐에 관한 논의는 행정기관 사이의 영역다툼 단계에서 거의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일본판 빅뱅이 실현될 때 쯤, 서구는 전자화폐에도 대응하는 '2001 년의 빅뱅'에 나선다. 일본이 목표로 하는 서구와 같은 수준의 개혁은 영원히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도망치고 말 것이다. 은행도 그 시대를 향한 청사진을 만들려 하지 않는다. '21 세기 전반에 우리 은행의 은행원은 지금의 5 분의 1 이면 충분하다.'--어떤 상위의 시중은행이 장기경영계획을 수립할 때 나온 숫자이다. 거액의 기계화나 전자화에 의해서 은행업무가 완전히 모습을 바뀌게 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한 환경에서 신용력이 있는 은행으로 살아 남기 위해서는 불양채권의 대담한 처리는 물론, 인원삭감이나 새로운 투자에 빨리 나서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래도 무리'라며, 이 시중은행은 예측 결과를 장기계획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시장정비나 은행의 경영개혁이 늦어지고, 더구나 쌍둥이의 적자를 안게 되는 2020 년의 일본에 돈은 흘러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계획대로라면 그 시점에서 유통되고 있을 유럽 통일통화 '유로'는 '엔에게 독일 마르크보다도 벅찬 상대가 될 것이다.'(유키아마 국제통화연구소 이사장) 엔이 국제적으로 사용하기 쉽게 되지 않으면 세계는 '달러, 유로 시대'로 접어들고, 엔은 지방색이 강한 통화가 될 것이다. 소니 등 일본의 대기업이 시티은행 등 미국 유력은행의 국제자금 서비스를 이용하기 시작하였다. 일본과 해외지점 사이의 자금 흐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서비스로, 일본의 은행에 맡기는 것보다 결제사고가 적다. 주된 통화는 달러이다. 일부의 거래라고는 해도, 일본의 대형은행을 단념하기 시작한 일본기업의 움직임은, 일본판 빅뱅에 대해서조차 당황하고 있는 일본의 시장이나 엔에 대한 경종인지도 모른다. 6. 흔들리는 안전 --대비 부족, 신뢰 상실 피가 흐르지 않는 위협 --도쿄 나카메구로 이곳의 일본 방위청 방위연구소에서는 '국민을 무엇으로부터 지킬 것인가'라는 장래상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지금 떠오르고 있는 것은 '외국에 의한 무력침략 같은 '피가 흐르는 위협'과 마찬가지로, 대량의 난민 표착이나 불법입국, 정부나 기업의 활동을 혼란시키는 컴퓨터 범죄, 산성비에 의한 자연 파괴 등 '피가 흐르지 않는 위협'에 대한 대비가 중요하다'라는 내용이다. 이 분양에서 앞서가고 있는 미국의 연구를 보면, 전세계의 군대가 모습을 바꾸는 것은 '2020 년경'이라고 방위연구소의 나카무라 일등육좌는 말한다. 그 때쯤에는 대단위 부대보다도, 위성정보를 바탕으로 한 정세분석이나 경찰과의 제휴로, '피가
흐르지 않는 위협'에 효율적으로 대응하는 기구가 중요하게 된다. 2020 년의 방위혁명이다. 그러나 일본은 그 움직임에 너무 늦고 있다. --이시가와현 서부 길게 계속되는 바닷가 여기저기에 간판이 서 있다. 기울어진 간판에는 '수상한 배를 발견하면 곧 110 번으로 신고하여 주십시오.' 이것도 불법입국자나 난민의 표착에 대한 대비이다. '한 해에 수 차례, 불심선 표착에 주의하라는 지시가 온다. 그렇지만 여기는 나 혼자밖에 없다. 특별경계라고는 말하지만...'이라고, 근처의 파출소의 경찰관은 말한다. 이 경찰관이 밤의 해안을 순시하는 것은 며칠에 한번 정도. 대신에 경찰은 어업관계자 등으로 '연안협력회'를 만들어 정보망으로 삼고 있다. 바다는 아직도 어부들에게 의지하고 있다. --나가사키현 오무라시 육상자위대 제 16 보통과연대는 규슈 서쪽 끝의 부대이다. 시나가와 연대장은 '서쪽의 보루라고 말은 하지만, 위기의식은 높지 않다. 장비, 인원도 수 년 전부터 그대로이다'라고 말한다. 일단 유사시, 한반도나 중국 등에서 어느 정도의 난민이 몰려올 것인가? 정보가 적은 연대장은 많은 난민이 일본으로 건너 왔다는 한국전쟁의 예를 들면서도 '앞으로는 잘 모르겠다'고 이야기하는 이외에 대답이 없다. 소련의 붕괴 후, 일본의 방위체제는 한반도나 중국과 대만의 정세 변화를 주시하여, 역점을 북에서 서쪽으로 이동시킨 것처럼 보인다. 일본정부는 95 년 가을에 정한 신방위계획 대강에서 각지의 부대규모를 축소하였지만, 규슈의 주요부대는 온존시켰다. 그러나 서쪽에서의 어떤 위협에 대응할 것인가나. 정보를 어떻게 모을 것인가는 거의 논의되고 있지 않다. 16 연대의 난민에 대한 대응이라고 해봐야, 대형 텐트를 빌려주는 정도밖에 생각하고 있지 않다. 정보 단절의 우려 미국 정부당국자는 '21 세기에 들어가 동아시아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가장 높은 혼란 요인'으로, 남북통일의 가능성을 포함한 한반도에서의 격변이나 중국, 대만관계와 중국 국내의 정세변화를 들었다. 어느 것이나 대량의 난민이 바다로 밀려오는 사태를 생각하고 있다. 그 때에 미일안전보장체제가 어떻게 되어 있든, 일본은 우선 독자적인 힘으로 대응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자위대와 해상보안청, 경찰의 협력 어느 한가지에 대해서도 규칙이 없고, 법적인 대비도 거의 없다. 난민문제는 그저 한가지 예일 뿐이다. 일본 방위의 근간인 미일안보를 둘러싸고서도 일본주변지역에서의 유사협력에 관해서 이제 막 논의가 시작된 단계이다. '비상시태가 일어날 경우에 대비하여 명령계통을 갖출 법적근거가 없다.'--하시모토 류타로 수상은 페루의 일본대사관저 인질사건을 당하고 나서, 다시 한번 위기관리체제의 소홀함을 인정하였다. 일본의 주권이 미치는 치외법권구역에 일본인이 인질로 잡혀 있는데, 파견된 외무장관은 서둘러서
귀국하고, 수상과 매일 지구 뒷편에서의 정보를 기다릴 뿐이다. 도쿄에 주재하는 유럽의 어떤 외교관은 고베의 '한신 대지진 때도 어이 없었지만, 이번 사건도 일본에 위기관리의 발상이 없다는 것을 새삼스레 세계에 가르쳐 주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라에 페루정부는 진지하게 정보를 전달하거나, 상담하려 할 것인가'라고 정보의 단절마저 걱정해 주었다. 그리고 97 년 4 월 23 일 일본의 총리는 대사관저의 강행돌입을 사후에야 알았다. 스스로 자국민의 안전을 지키려고 하지 않는 나라, 그러한 일본에 대한 불만은 오래 전부터 미국의회에 뿌리 깊어, 경우에 따라서는 재일미군의 철수론으로 연결될지도 모른다. 2020 년이 가까워 오면서 미국과 중국이 급속하게 접근하고, 상대적으로 일본의 존재감이 한층 저하되게 되면, 미국이 이 나라를 지킬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더라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당신의 해외에서의 안전확보에 대해, 일본정부는 의지할만 하다고 생각합니까?' 96 년말 나리타 공항에서 해외여행을 떠나는 일본인 100 명에게 물어보았더니, 58 명이 '아니오'라고 대답하였다. 국민은 정부를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일본에 대한 세계의 신뢰는 사라져 가고 있다. 7. 숨겨진 산성눈 --이웃나라에 침묵, 늘어나는 위협 '떠다니는 죽음의 신' 동해 연안의 눈 속에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니가타현 위생공해연구소(니가타시)가 내리는 눈의 채취장치를 현내 각 곳에 설치하고, 강수의 산성화 상황을 조사해 온지가 벌써 10 년 정도 지났다. pH(수소이온농도)는 전국 평균과 같은 4.7 전후를 보이고 있지만,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다른 사실이 있다. 산성화의 한가지 원인인 유황의 함유 상황에 눈과 비는 차이가 있다. 어떤 유황동위체의 함유량이, 눈에서는 여름철 비의 5 배를 기록한다. 눈의 변화는 무엇을 알리고 있는 것일까? 동연구소는 현내의 굴뚝 등 의심이 가는 오염원을 조사한 결과, 중국산 석탄에 이르렀다. 중국 석탄을 태울 때 나오는 배연 중의 유황동위체 함유 상황이, 니가타에 내리는 눈 속에서 발견된 것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초봄의 황사와 같이 오염물질도 대륙에서 날아온다.--대기 오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최근 몇 년간 이러한 견해가 지지를 받아 왔다. 동연구소의 오이즈미 주임연구원은 '니가타현의 강설 중 유황의 약 20%는 대륙에서 날아오고 있다'고 단언한다. 중국 쓰촨성의 공업도시, 충칭. 이 거리는 '떠다니는 죽음의 신'의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 떠다니는 죽음의 신이란 중국어로 산성비를 말한다. 죽음의 신에 습격당한 건물은 노후화가 빨라지고, 교통표식은 녹슬어 식별이 곤란하게 된다. 근처의 산 속에서는 식물이 시들고 있다. 충칭에서는 산성비의 발생빈도가 70% 이상으로, pH 가 강한 산성을 가리키는 3.0 에 달할 때도 있다. 주력 에너지원인 쓰촨탄은 유황 함유율이 높고, 석탄 보일러의 대부분이 배연으로부터 유황분을 제거하는 탈황장치를 구비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시다 해외경제협력기금 기술고문에 의하면, 충칭시민이 호흡기계통 질환에 걸리는 발병율은 37%로 대기오염이 피크를 이루었던 60 년대의 미에현
요가이치시의 12%를 상회한다. 충칭만큼 심각하지는 않더라도, 죽음의 신의 위협은 중국 전국토의 고민이다. 중국의 유황산화물 배출량은 현재 연간 약 2,000 만 톤으로 일본의 20 배에 가깝다. 대책이 불충분한 채로 경제성장이 계속되면, 2020 년에는 두 배인 약 4,000 만 톤이 될 것으로 보여, 벌써 경종이 울리고 있다. 중국에서의 오염물질이 원인이라고 '단정'되는 환경 파괴는 일본에서는 아직 없다. 그러나, 후지타 전력중앙연구소 연구주간은 '국내 요인으로 발생하는 산성비의 영향도 있어, 일본 토양의 산에 대한 내구력은 계속해서 약해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실은 이 문제를 분석한 조사서가 존재한다. 대장성이 96 년, 외곽단체인 국제금융정보센터에 위탁한 조사결과로, 일본의 산성비 중 유황산화물의 발생지와 비율을 '중국', '한국, 북한' 등으로 구체적 국명을 들어 특정하고 있다. 그러나, 보고서는 공개되지 않았다. 발언력은 쇠퇴 추세 조사 결과가 있는데도 정부는 침묵을 지키며, 중국에 대하여 대기오염물질의 문제를 '외교상으로 문제 제기한 적은 없다.'(외무성) 중국정부의 환경당국자도 '일본에 대한 영향은 아직 조사 중'이라고 말하는데 그친다. 겨우 최근에 이르러, 환경청은 2000 년을 목표로 하여 동아시아 산성비 관측 네트워크 구성을 중국 등에 요청하였다. 산성비의 피해가 빠르게 현재화하고 있는 구미에서의 국제적인 감시 시스템을 모델로 하고 있지만, 실현되기까지는 대만문제 등 많은 장애가 남아 있다. 일본이 중국과의 사이에서 결말을 짓지 못하고 뒤로 밀어 놓고 있는 문제는 산성비뿐만이 아니다. 교과서, 센카쿠제도.... 중국과 일본의 국교가 정상화된 25 년 전, 중국에게 일본은 커다란 존재였었다. 그러나, 거액의 원조에 의한 경제외교로도 깔끔하게 대화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일본의 존재감은 점차로 작아지고, 중국은 크게 성장하였다. 그리고 약 25 년 뒤인 2020 년, 중국은 인구가 15 억 명에 달하고 국내총생산으로는 일본을 훨씬 상회하는 거대한 이웃이 된다. 식량, 에너지, 안전보장 어느 것에서나 이번에는 일본이 중국을 크게 느낄 차례이다. 대화는 한층 더 어렵게 된다. 이웃나라와의 관계에서 문제를 애매모호한 채로 남겨놓은 상태가 앞으로도 계속되면, 중국의 성장과 오염물질 등 그 부산물의 위협에 고민하는 시대가 일본을 기다리고 있다. 이웃나라와도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수 없는 나라는 이 지역에서는 물론이고 세계를 상대로 하는 외교 무대에서의 발언력도 왜소해져 갈 것이다. 8. 틀리는 재판관 --변화를 잊고, 세계에 뒤늦어 모방 판결의 의혹 '원 판결은 수치를 잘못 읽은 것으로 추정된다.' 1996 년 11 월말에 도쿄 고등법원에 제출된 피고측의 한 준비서면이 관계자의 눈길을 끌었다. 각지에서 빈발하고 있는 변액보험 소송의 하나. 소송의 쟁점은 거품 경제인 버블의 붕괴로
변액보험의 운용이울이 은행차입 금리를 하회하여, 계약시점에서의 누적이율을 가리키는 운용실적을 연간의 이율(연율)인 것처럼 설명하였다고 주장하였다. 96 년 7 월의 일심판결은 소송을 각하, 피고인 생명보험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런데 판결문의 사실인정에서 재판관 자신이 운용실적과 연율을 혼동하여 비교해 버렸다. 생명보험측은 '확실히 구분하여 설명했다'는 주장을 관철하기 위하여 굳이 판결을 비판한 것이다. 96 년 3 월 별도의 소송에서도 재판관이 똑같이 '오해'하여, 판결에서 누적실적을 '운용이율 연 40%'라고 명기하고 있다. 거기에는 복잡한 금융상품에 대하여 알지 못하는 재판관상이 떠오른다. 원고측은 변액소송이 너무 많아 재판관이 다른 판결을 안일하게 모방하는 '복사 판결'에 빠져있기 때문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행정개혁이나 정치개혁의 구호에 묻혀서, 삼권 중에서 사법만이 잊혀지고 있다. 규제완화로 행정이 작아지면, 시장주도의 경제사회에서 법의 파수꾼 역할은 한층 더 중요해지지만, 사법개혁의 움직임은 지금 같아서는 굉장히 둔하다. 92 년 참의원선거의 의원 1 인당 유권자수의 격차 6.59 배와 관련된 소송에서 96 년 9 월, 최고재판소(대법원)는 위헌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선거자체가 위헌인지에 대해서는 15 명의 재판관 중 8 대 7 로 합헌으로 판결하였다. 당시, '입법부의 눈치를 보는 사법이라는 소리가 나왔다.' 국내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일본기업이 아시아의 기업과 국제거래 계약을 맺을 때, 분쟁처리는 '영미법에 근거한다'고 하는 예가 늘어나고 있다. 영미법이 중립적이라기보다도, 일본의 재판제도에 대한 불신으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한다. 국경을 뛰어넘는 기업이나 자금의 움직임에 충분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견해이다. '삼권분립'의 기반이 흔들린다는 의구심이 깊어지고, 사회나 세계로부터 뒤처지고 있다고도 평가받는 사법, 94 년에 경제동우회의 사법개혁안을 정리한 미야우치 오릭스 사장은 '재판관은 육법전서와 자기의 양심에 따라 판결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최고재판소를 피라미드로 하는 행정조직의 일원이 되어 있다. 재판관이 독립되어 있지 않다.'고 말한다. 21 세기를 바라보며 사법에 대한 경종이 울리고 있다. 국가의 삼권 중 하나가 이러한 문제를 방치한 채 있으면, 국제사회의 신뢰도 사라지게 된다. 적은 법조 인구 구미와 비교하여 적은 재판관수가 그 한가지 원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최고재판소 이하의 재판관수는 현재 2,073 명. 1890 년의 재판제도 발족시 정수는 1,531 명으로, 약 30% 정도밖에 늘지 않았다. 그 사이의 인구증가는 약 30 배 정도이다. 재판관 1 인당 국민인구를 비교하면, 일본의 6 만 1.000 명에 대하여, 미국은 주재 재판관만으로 8,800 명, 독일이 4,400 명, 프랑스가 1 만 2,000 명이다. 법조인구가 적은 것은 검사, 변호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최고 재판소, 법무성, 일본변호사협회의 법조 3 자 협의의 결과, 사법시험 합격자수는 90 년까지의 매년 500 명에서 현재 700 명대로 늘었다. 98 년에는 1,000 명대, 중기적으로는 1 천 5 백 명대로 늘린다는 구상도 있다. 그러나, 1,000 명으로 확대되더라도 2020 년 시점에서 지금의 프랑스에도 미치지 못한다. 재판관이 국민을 바라보지 않고, '위를 보고 심판한다(인사권을 쥐고 있는
최고재판소 사무총국을 의식한다는 의미)'는 소리도 있다. 형사 소송에서도 피의자의 경찰에서의 구류를 장기화시켜, 유엔 인권규약위반을 방치하고 있는 것은 '에도시대 이래의 오카미(주군, 군주)의식이 재판관에게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이가라시 변호사는 발한다. 구미에서는 개개의 재판관의 독립성 유지를 위해, 전근시에는 본인의 동의를 필요로 할 뿐만 아니라, 재판관의 권리확보를 위해 재판관조합도 결정할 수 있다. 국민의 사법참가를 보증하는 배심원제도도 일반적이다. 일본의 재판관은 이러한 제도에는 전혀 관심이 없을 뿐더러, 2020 년에 가서도 인원수 부족의 고민은 남는다. 소송의 국제화에 대응하지 못한 채로, 세계 속에 외로이 홀로 남아있는 일본 법원의 장래가 보인다. 9. 초등학교 5 학년생 --너희들은 행복한가 밑에서 5 번째 대부분의 학생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대학, 단과대학으로의 진학률도 50%에 육박한다.--전후 교육은 양적으로 확대 일로의 길을 걸어왔다. 그러나 질적인 면에서는 어떠한가? 구제비교를 해보면 그 실상이 확실하게 드러난다. "생각해서 쓰는 설문에 대한 일본 어린이의 정답률은 41 개국 지역 중 37 위" 국제교육도달도 평가학회가 96 년 발표한 수학과 과학의 국제적인 학력 비교결과이다. 일본의 중학생은 OX 식 설문에서는 성적이 좋아, 전체적으로 상위 3 위 이내이다. 그러나 지형을 보여주고 '이 토지가 농업에 알맞지 않은 이유를 쓰시오'라는 설문에서는 밑에서 5 번째이다. 국립교육연구소의 미야케 실장은 '사물을 부정적으로 파악하거나 다면적으로 생각하고, 자기의 말로 표현하는 능력은 국제평균을 크게 하회한다'고 말한다. 주입식 교육의 폐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결과를 이렇게 명확하게 보여주는 예는 드물다. 지금의 교육으로는 생각하는 능력이 중요한 차세대의 일본인을 키우기 어렵다. "좋은 직업을 얻기 위한 학력효과는 1 위가 독일로 2.52, 일본은 1.34 로 13 개국, 지역 중 12 위" 이 숫자는 구미를 중심으로 한 13 개 국가와 지역의 사회학자가 협력하여 만든 '학력지수' 이다. 지수가 높을수록 고학력이 좋은 직업으로 이어진다. 1.34 라는 일본의 수치는 '이 나라가 외국과 비교하여 의외로 학력사회가 아니다'(도쿄대학 이시다 히로 조교수)라는 것을 보여준다. 학력사회가 아직 살아 있다고 하더라도 도쿄대학 등의 우수 대학에서 졸업생에게 준비된 은행이나 고급관료 등 종래의 엘리트 코스가 그전과 같이 휘황찬란하지 않다. 올봄 대장성에 들어가기로 결정된 도쿄대학 법학부 학생(21 세)은 '공무원의 미래는 쇠퇴추세'라고 불안해 한다. 물론, 어디에서 배웠는가가 중요하고, 무엇을 배웠는가를 묻지 않는 일본 교육의
국제경쟁력은 낮다. 여러 나라 국적의 학생을 채용하고 있으면서, 일본의 대학은 그냥 제외시켜 버리는 외국기업도 늘어나고 있다. 외국계는 그냥 무시 문부성의 추계로는 96 년 5 월 현재 일본에 있는 외국인 유학생수는 약 5 만 3,000 명으로, 78 년 이래 처음으로 전년보다 감소하였다. 일본은 교육의 글로벌화에서 뒤처지고, 유학생도 멀리하기 시작하였다. 수험교육은 '생각하는 것'을 싫어하는 아이를 만들고, 고생하여 얻은 학력의 효력도 업어지고, 해외에서의 경쟁력도 떨어진다. '무엇 때문에 공부하는가?'하고 묻는 아이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게 된 부모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무척 행복하다'고 답한 초등학교 5 학년생의 비율은 중국 75.1%, 뉴질랜드 42.6%, 미국 39.9%, 일본은 26.3%로 6 개국 중 최하위" 베넷세 연구소가 작년, 세계 6 개국의 대도시에 사는 초등학교 5 학년생 약 4,500 명에게 '당신은 행복합니까?'하고 물어본 조사 결과이다. 장래 꼭 하고 싶은 꿈에 대하여 '일에서 성공한다'는 한국 60.2%, 일본 20.6%, '좋은 부모가 된다'는 미국 63.6%, 일본 21.1%, '부자가 된다'도 뉴질랜드 32.3%, 일본 12.3%로 어느 것이나 일본이 최하위이다. 2020 년에는 그 아이들이 일본의 중추가 된다. 지금 교육을 개혁하지 않으면 시간에 맞출 수 없다. 그러나, 개성이나 창조성의 중시에서 선택 코스의 다양화까지, 제안되고 있는 개혁은 대부분이 1971 년의 중앙교육심의회 답신과 똑같다. 25 년 전의 답신에 관계를 맺었으며, 현재도 중앙교육심의회의 멤버인 도쿄가정학원대학의 가와노 학장은 '교육은 혁명적으로는 바뀌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단지, 한가지만 과거와 다른 요소가 있다. 대형 입시학원인 요요기 제미나르의 예측으로는, 96 년에 태어난 아이가 대학에 진학하는 2014 년의 수험자 총수는 자녀수 감소로 시금보다 30%나 줄어들어, 대학정원의 대폭감소를 고려하더라도 합격률은 90%를 넘게 된다. 더욱 수험생이 줄어드는 2020 년에는 숫자상으로 입시는 의미를 잃는다. 그래도 입시에 집착하는 부모나 사외의 의식이 변하지 않으면, '무엇을' 배웠는가를 묻는 세계에서 통하는 교육이 되지 못한다. 10. 데지마의 침몰 --연구쇄국으로 시드는 두뇌 아직 결실을 맺지 못한 염원 도쿄 시로가네다이--국내 생명과학연구의 거점인 도쿄대학 의과학연구소에서 1997 년 1 월 14 일, 바이오 자료관이 조용히 문을 열었다. 미국 바이오테크놀로지 의약품기업인 암젠(캘리포니아주)의 기부로 겨우 완성한 건물이다. 아라이 1 분자생물학연구부 교수는 '10 년간의 비원이 아직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교수는 암젠의 기부금을 사용하여, 외국인을 다수 불러들인 '줄기세포 시그널
분자제어' 연구동의 건설을 제안하였다. 세포 사이의 정보전달 시스템에 빛을 쏘아, 암 세포의 증식 억제 등 차세대 치료를 연구하는 최첨단 연구소이다. 그 연장선상에서는 2020 년경의 실용화를 목표로 하여 세계적으로 개발 경쟁이 계속되고 있는, 바이오테크놀로지와 통신기술을 융합한 '바이오통신'이라는 혁명적인 세계로 그 폭이 넓어진다. 물론, 이 분야에는 젊고 우수한 일본인 연구자가 있다. 대부분은 선진국인 미국으로 유학을 가지만, 몇 년만에 일본에서의 안정적인 자리에 유혹되어 귀국하고 만다. 그 때부터 학벌 등 국내의 관례가 굴레가 되어, 두뇌는 시들고 국제적인 경쟁력을 잃는다. 약 12 년간 미국에서 연구한 후, 89 년에 의과학년구소로 되돌아 온 아라이 교수는 스스로 이 악순환에 고민하였다. 유학을 가더라도 일본에 돌아오면 레벨이 떨어진다. 그렇다면 '국내에 외국인을 부를 수 있는 연구소를 만들자'고 제안한 것이 바이오테크놀로지 연수에서의 선진국 추격을 목표로 하는 '데지마' 제안이었다. 실현이 되면 도쿄대학 최초의 외자도입 연구동으로서 학내 개방의 상징도 된다. 그러나 의과학연구소라는 국유지의 부지내에 이러한 형태로 외자를 도입하려는 시도에 대하여 국유재산법의 벽은 두터워서, 도쿄대학 본부나 대장성, 문부성이 난색을 표시하였다. 특허사용권의 귀속 등에서도 난관에 부딪쳐, 데지마 계획은 침몰하고 자료관으로 둔갑하였다. 미국 실리콘 밸리--91 년 설립된 미국 츄라릭은 병을 일으키는 유전자가 작용할 때 나오는 세포내 물질을 활용한 치료약의 개발로 선두그룹을 달린다. 장래에는 의약뿐만 아니라, 바이오테크놀로지와 통신의 융합기술도 시야에 두고 있다. 40 명이 넘는 동사의 연구진은 다국적 팀. 가장 많은 것은 중국인이고, 미국인은 의외로 적다. '현대를 중세의 르네상스와 비교한다면 실리콘 밸리는 국경을 넘어 사람을 모으는 피렌체'라고 츄라릭의 가네코 부사장은 다국적의 강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동사 연구진에 일본인은 없다. 일본의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오는 양다리 걸치는 식의 유학생은 전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평가가 정착되기 시작한 것 같다. 기술에서 뒤쳐져 21 세기 초두에 일본은 반도체, 철강에서 한국, 전자에서 대만, 전자기기조립에서 중국, 연구개발 기능에서 싱가포르에게 뒤처질 가능성이 높다. 통산성 공업기술원이 96 년 12 월에 발표한 동아시아의 산업기술에 관한 동향조사는, 생산, 가공기술 분야에서 일본의 우위성이 무너지는 시대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정부는 통신이나 바이오테크놀로지 등 15 개 분야의 차세대 기술연구를 집중지원하는 경제구조 개혁계획을 수립하였다. 그러나 자금을 내주는 관료가 고리타분한 국익과 부서이익에 매달리고, 돈을 받아야 하는 대학이나 연구기관도 세력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연구쇄국' 현상은, 옛날의 피렌체에서처럼 다국적이 상식인 해외의 분위기와 점점 멀어지게 한다. 다시 실리콘 밸리--미국 스탠포드 대학의 하세가와 화학부 조교수는 '이제 일본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결심하였다. 도쿄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끝낸 후 도미한 이래, '국적을 묻지 않고 우수한 사람이 모이는 풍토에 반하여', 일본에서 부르더라도 절대
응하지 않았다. 지금 하세가와 조교수는, 인터넷 상에서 강의를 하고 학위 수여까지 하는 '가상 대학' 조성을 목표로 하는 벤처기업의 사장이라는 또 하나의 직함을 가지고 있다. '일본을 버리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일본인 연구자 사이에 퍼지고 있는 그러한 공통인식은, 많은 차세대 기술이 개화되는 가까운 미래에 일본이 뒤처질 것임을 암시한다. 11. 헤이세이의 신유민 --발견되지 않는 희망 부친의 명예 퇴직 '나는 작년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오늘까지, 아직 취직이라는 문제에 관해서 단 하루도 머리를 쓴 적이 없다.'(나츠메 쇼세키) '저 언덕을 넘는 걸인' 정신의학의 세계에 하나의 가설이 있다. 유에이나 무라히로 히도츠바시대학 교수 등이 주창한 것으로, 지금의 일본 젊은이는 쇼세키가 메이지 시대 말기에 소설로 몇 번이나 그린 '유민' 과 아주 닮았다는 지적이다. '저 언덕을 넘는 걸인'의 스에나가나 마츠모토, '그 다음에'의 다이스케와 같은 유민은 일 때문에 땀 흘리는 것을 자기를 더럽히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취직하려고 하지 않는다. 메이지유신으로부터 40__50 년이 지나, 일본인이 러일전쟁의 전승이라는 '고개 위의 구름'을 잡은 후, 무기력한 도시주민의 한 전형이 된다. 헤이세이의 '신유민'도 전후 50 년이 지나 일본 경제가 고개를 넘어간 지금, 무력감에 사로잡혀 자신의 컬러에 틀어박혀 있다. 메이세이 대학 3 학년인 안도오(22 세)군은 대학이 조금도 즐겁지 않다. 서클도 아르바이트도 공부도, 몰두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렇게 된 계기는 2 년 전에 부친(50 세)이 회사를 명예퇴직한 것 때문이다. 유명한 대기업이었다. '20 년 이상이나 근무한 결과가 이것뿐인가?' 어깨를 떨구는 부친을 보고, 자기까지 같이 쓰러지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대학을 나오면 어디든 제조업체에서 태양전지의 개발을 다뤄 보고 싶었던 꿈도 같이 날아갔다. 재해에서는 '충실' 그 때 한신대지진이 일어났다. 서클 선배의 권유로 고베에 민간봉사자로 참가하였다. 혼자서 거리를 순회하며 구원물자를 나누어 주는 일을 했다.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 난생 처음 그렇게 생각되었다. 도쿄로 돌아오고 나서는 그러한 대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가전양판점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며 퍼스널 컴퓨터를 하루 200 만 엔 어치나 팔았을 때도 있었는데, '아르바이트를 그렇게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닌데'하며, 바보 취급을 받았다. 생각해 보면, 값이 싼 컴퓨터니까 판매 성적이 올랐을 뿐이었다. 노력하였다고 해서 시간급이 늘어날 리도 없다. 민간봉사자로 느낀 충실감과는 아주 동떨어진 일이었다. 그 후 충실히 일할 기분이 나지 않았다. '이대로 기업에 들어가도 잘 할 것 같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니 취직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우울해진다. 한신대지진에서는, 1 년간 연인원으로 140 만 명 가까운 사람이 민간봉사자로 참가하였는데, 그 70% 이상은 30 세 미만의 젊은이들이었다. 그들의 대부분은 지금,
안도오 군과 같은 '후유증'에 괴로워하고 있다. 어떤 거식증이 있는 젊은 여성은 민간봉사자로 활동한 약 1 개월간 구토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는데, 도쿄에 되돌아오자마자 다시 도졌다고 한다. 재해 같은 비일상적인 사건이 아니면, 이 나라의 젊은이들은 '자기'를 발견하지 못한다. 엷어지는 '착실함' 일본 자살예방학회의 사이토 이사는 '자녀수 감소를 배경으로 과보호 속에 자라나고, 반항기도 경험하지 않고 있는 지금이 메이지시대보다 병적이다. 그 증상은 등교거부 등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무력감은 젊은이세대 전체에 펴져 있다. 총무청이 일본, 미국, 유럽, 아시아 11 개국의 18__24 세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사회에 불만을 가졌을 때 '적극적인 행동을 하겠다'고 회답한 사람은 일본에서는 24.1%밖에 되지 않아, 러시아에 이어 밑에서 2 번째였다.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이유도, '개인의 힘으로는 못 미치기 때문이다'가 미국의 두 배인 67.5%에 달하여 11 개국 중에서 가장 많았다. 사회를 바꿔가려고 하는 의욕은 일본이 가장 약하다. 선진국에서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근면하다', '착실하다'라고 하는 가치관이 희미해지고 있다는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나온 이야기이지만, 일본은 그 정도가 가장 심하고 이제 와서는 아예 없어져버린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러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어른 세대가 이 나라의 폐쇄 상황을 어떻게든 극복하려 하지 않고 있다는 것도 젊은이들은 잘 알고 있다. 신유민도 2020 년에는 40 대가 된다. 고령화와 자녀수 감소로 파국의 고빗길 위에 서 있게 될 그 때에, 이 나라는 어디로 향하고 있을 것인가? '정말 무엇인가를 해보고 싶다. 살아있다고 하는 실감을 또 느끼고 싶다.' 안도오 군이 눈물을 삼킨다. 그들은 기다리고 있다. 12. 없어지는 퇴직금 --노년의 부담, '고용' 붕괴 30%가 고령자로 '일본의 기업에서, 고용확보는 품질관리와 같은 중요과제이다.'--1996 년 10 월, 키타오카 타카시 미쓰비시전기 사장이 프랑스에서 한 강연에 회의장이 크게 웅성거렸다. 미국식의 드라이한 경영수법에는 그리 찬성하지 않는 프랑스의 경영자에게도, 이 발언은 의외라고 받아들여졌다. 프랑스에서도 일본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의 고령화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왜, 고용에 집착하고 있는가?'하는 것이 놀라는 이유였다. 일본기업은 '고용책임'을 주창하며, 눈앞에 닥친 위기를 직시하지 않아 왔다. 그러나, 고령화가 피크를 맞이하는 2020 년은 그것이 용서되는 경영환경이 아니게 된다. 일본노동연구기구의 예측으로는 노동력 인구 중 55 세 이상의 비율이 95 년의 20%에서 2020 년에는 30%가 된다. 지금과 같이 인건비가 비싼 고령자가 사원의 3 분의 1 을 차지하게 되면, 기업의 부담은 단숨에 크게 늘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고령자 고용을 더 늘리라고 종용하기 시작하였다. 하시모토 류타로 수상은 96 년 강연에서 '적어도 65 세까지 일할 수 있는 조건을
정비하는 것이 우리들의 일이다'라고 이야기하며 정년연장을 시사하였다. 국가 주도의 정년연장은, 후생연금의 지급개시 시기를 2013 년까지 65 세로 서서히 올리려는 것과 표리일체의 관계에 있다. 60 세 정년을 그대로 두면, 수급자는 이 해부터 5 년분의 수입 공백이 생기기 때문에, 그것을 기업과 종업원의 부담으로 메꾸려는 발상이다. 정년연장의 파장 끼어맞추기 식의 정년연장에 대하여 기업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지금도 정년을 55 세로 그대로 두는 생활잡화 소매판매회사인 고노야마(도쿄 주오)의 도츠카 다케오 사장은 '중소기업에게 중노년층은 55 세까지 고용하는 것도 힘들다. 65 세 정년 따위는 생각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 종업원도 좋은 것만은 아니다. 노동연구기구가 약 1,000 개 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정년을 연장할 경우 임금체계를 수정하여야 한다고 하는 기업이 40%를 넘는다. 미야키 통괄연구원은 '60 세 이후 사원의 임금 대폭 삭감은 물론, 임금곡선의 피크도 빠르게 하여, 젊었을 때 수입이 최고가 되게 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정년연장은 젊은이, 중견사원의 생활도 위협하는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아예 고용유지조차 어렵게 될 수도 있다. 대규모 석유화학제품 상사인 다카무즈상사(도쿄 아라카와)에는, 석유화학 제조업체로부터 연달아 사원을 받아달라는 타진이 오고 있다. 관련 자회사에서는 더 이상 수용하기 어려워, 거래처에까지 사람을 보내는 구도이지만, 다카하시 사장은 '이미 받아 들일 대상이 없어진 회사도 있다'고 말한다. 정년연장은 계열 자회사에 의한 교용의 보장도 붕괴시키는 계기가 된다. 연공서열형 임금체계나 종신고용은 이미 흔들리고 있지만, 고령화는 그것의 붕괴를 더욱 빠르게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거의 손을 대지 않았던 퇴직금제도도 안전하지 않다. 효고현 아마카사키시의 부동산 중개회사 타케쯔 에스테트에는 이미 퇴직금이 없다. 거품 붕괴 후의 실적 악화로 사원을 200 명에서 반으로 줄일 때, 남은 사원의 사기를 높이려고 5 년마다 공로금을 지불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실적 회복이 늦어졌기 때문에 95 년 공로금을 지급하며 부득이 퇴직금제도를 폐지하였다. 동사는 평균연령이 26.5 세. 와시미 부사장은 '중소기업으로 사원도 젊으니까 가능하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앞으로는 사원의 평균연령이 올라가고 있는 대기업이야말로, 퇴직금 부담으로 경영이 압박을 받게 된다. 공멸의 위기 다이와 종합연구소의 예측에 의하면, 퇴직자의 급증으로 연금을 포함한 퇴직금의 총액은 2020 년에 95 년의 5 배, 약 407 조 엔에 달하게 된다. 이것은 그 때의 일본기업의 총자기자본예상액과 거의 필적하는 금액이다. 대장성이 검토하고 있는 퇴직급여준비금의 무세준비율인하가 실현되면, 기업부담은 더욱 늘어난다. 마츠시타 전기산업은 퇴직금을 폐지하고, 매달의 임금에 이를 집어 넣는 임금제도를 검토하고 있다. 노사가 합의하면, 98 년 봄의 신입사원부터 희망자에 한하여 이 제도를 도입한다.
일본의 노동생산성은 최근 몇 년간 선진국 중에서도 침체되고 있고, 고령화는 거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담한 개혁이 단행되지 않으면, 이 나라의 기업은 세계에 대항할 수 없게 되고, 종업원과 공멸하게 된다. 일본적인 고용, 임금관행은, 2020 년에는 없어져 버릴 것이라고 보는 게 자연스럽다. 회사에 매달려 있는 샐러리맨에게는 괴로운 길이 기다리고 있다. 13. 친구가 없다 --'공생'하지 못하고 도독하게 보이지 않는 공통 역사 '동아시아사의 공통교과서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프랑스의 실업가 F. 도루슈트 씨가 일본이나 한국 등에서 집필자나 출판사를 찾고 있다. 그는 역사관이 다른 독일을 비롯한 13 개국의 교사들과 논의, 집필케 하여, 92 년에 우선 불어판의 유럽공통교과서 '유럽의 역사'를 편집하였다. 지금까지 23 개 국어로 출판되어 있다. '같은 시도를 동아시아에서도'라고 생각하여, 일본어판의 출판으로 관계를 맺은 교과서회사인 도쿄서적(도쿄 키타)에 타진하였다. 그러나 동사 국제실은 '우리로서는 어렵다'고 말한다. 양국의 전문가 사이에서는 '한국과 일본은 역사인식의 차가 크고, 본심을 터놓고 논의할 수 있는 관계도 없다. 공통의 동아시아사 작성은 무리'라는 소리가 많다. 패전으로부터 50 여 년, 비슷한 처지의 독일과 일본이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유럽에서는 완성하였는데, 동아시아에서는 말도 꺼내지 못하는 공통교과서에서 그 일단이 나타나고 있다. 유럽의 공통교과서에 대하여도 각국이 거기에 쓰여진 역사인식에 완전히 일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구동독 콧트부스시의 라이햐트고등학교 교사 V. 쿠리스타 씨는 공통교과서를 수업의 참고자료로 쓰고 있지만 '프랑스의 견해에 치우친 기술도 있다'고 약간 불만을 나타낸다. 유럽통합의 성과이기도 한 교과서는 독일인에게는 '마음의 아픔'을 담고 있는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유럽통합은 독일에게는 아픔의 연속이다. 99 년에 유럽연합의 단일통화 '유로'가 탄생하면, 독일은 전후 경제부흥의 상징이었던 마르크를 잃게 된다. 통화통합을 위한 재정기준을 채우는 과정에서, 독일국민은 사회복지수준 삭감이라는 '실질적 피해'도 입는다. 그러나 '통화통합을 실현시키지 못하면, 우리들에게는 죽음을 의미한다'고 독일 기독교민주동맹의 얄젬보우스키 유럽의회의원은 말한다. 나찌스의 과거를 짊어지고 9 개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독일이 가장 피하고 싶은 것은, 이웃나라의 경계심과 국내 민족주의의 고양, 그리고 유럽의 긴장이다. 통화통합에 따른 마르크의 포기는, 다른 유럽제국에 대하여 독일이 참된 친구인지 아닌지를 보여주는 시금석이라는 측면도 있다. 통화통합이 성공하면 유럽의 결속은 확실히 강해진다. 2020 년까지는 폴란드나 체코 등도 EU 에 포함될 것으로 보여, 20 수개국에 이르는 거대한 공동시장이 성립된다. 그 한가운데에 위치한 독일은 쉽게 그 이익을 향유할 수 있다. '유로'가 순조롭게 탄생하여 성장하면, 달러나 미국과 '대등하게 맞설 수 있다'고 독일연방의회의 N. 위쵸레크 의원은 예상한다. 독일이라는 '국가'에 구애되기보다. 아픔을 참고 '유럽인'으로서 살자.--그것이 '공생의 시대'라는 역사의 흐름을 파악한 독일의 2020 년에 대한 선택이다.
'아시아가 아니다' 역시 유럽의 복권과 미국에 대한 대항을 겨냥하고 있는 이웃나라 프랑스는 독일의 태도를 확인하면서, 옛날의 적에 대하여 친구로서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원동력은 독일, 프랑스 수뇌의 결단이다. 콜 독일 수상과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3 주에 한번 이상의 빈도로 만나거나 전화로 직접 이야기하고 있다. 아시아의 시대라고 하면서, 일본의 수상은 이웃나라와 그러한 관계를 아직 만들지 모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는 정상간의 상호방문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지만, 하시모토 류타로 수상의 취임 후, 정상외교에서는 아직 미래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다. 동남아시아 제국도 그들을 방문한 하시모토 수상에게 자금원조 이야기를 아예 꺼내지도 않고,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수상은 '엔 차관은 필요없다'는 자세이다. 겨우 주변국과의 정기협의에 나서기 시작한 일본에 대하여, 미국, 유럽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기 시작한 각국은 냉담하다. 베를린의 비즈니스맨인 N. 프란켄슈타인 씨는 일본의 대학에서 독일어 강사로 일할 때, 학생들이 '우리들은 아시아인이 아니라 일본인'이라고 말해 깜짝 놀란 일이 있다. 학생들과 비슷한 인식이 일본정부에도 떠돌고 있다. 미국정부는 '일본은 자기를 아시아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는가'(B. 카터 전미국대통령보좌관)고 보고,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회의(APEC)를 스스로 이끌며, 2020 년까지의 무역자유화 합의를 실현시켰다. 유럽이나 북미, 동남아시아 등 세계의 블록화는 가속되고 있다. 그 때, 참된 친구가 옆에 없는 일본은 몸 둘 곳이 없게 되어, 아시아에서도 한층 더 고독하게 된다. 14.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 --대경쟁, 부작용을 두려워하여 병든 중산층 오하이오주 데이튼,--소득, 인종별 인구구성 등의 점에서 미국내에서도 평균적인 중산층의 도시이다. 비행기의 라이트 형제를 낳은 '발명의 도시'라고 자랑하는 이 도시가 벌버둥치고 있다. M. 임마뉴엘(38 세) 씨는 최근 몇 년간의 인생을 '제트 코스터 같았다'고 회고한다. NCR 의 인원삭감 여파로 직장에서 쫓겨났다. 처와 아이 2 명의 가족에게 닥친 돌연한 위기. 소매점의 영업직을 거친 후, 지역의 대학에서 컴퓨터를 배워 거기서 재취업 지원스텝의 직장을 얻었다. 연수입은 3 만 달러로, 피크 때의 3 분의 1 이다. 재취업을 할 사는 있더라도 임금은 대폭 내려간다. 그것이 지금의 미국이다. 미국의 중류사회가 병들고 있다. 인플레이션 조정 후의 실질임금은 73 년부터 하강하여, 93 년까지의 20 년 동안에 정식사원으로 일하는 남성의 평균 연수입은 10% 이상 줄었다. 한편, 부유층은 수입이 늘어나 부유층과 빈곤층의 분열이 진행되고 있다. 미국은 기업의 부활과 주가상승에 취하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회에는 일본보다 더한 위기감이 떠돈다. 96 년 11 월, 미국대통령선거와 동시에 실시된 의회선거에서 소정당 '뉴 파티(new
party)'가 처음으로 연방하원에 의원을 내 보냈다. '공평한 경제'를 간판에 내건 D. 데이비스 의원이다. 민주주의는 1 명 1 표의 평등을 기치로, 적자생존이라는 자본주의의 논리가 가지고 있는 불평등의 확대를 중화시켜 왔다. 그러나, 레이건 정권 이래로 규제완화와 복지삭감이 지속되고 공산주의의 붕괴로 자본주의의 천하가 되어, 개인을 지키는 민주주의와의 밸런스는 무너졌다. 기업은 멈추지 않고 세계적으로는 승자인 것처럼 보이는 미국이지만, 지금의 자본주의가 이상적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아, 민주주의의 재생을 촉구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나, 기업은 곁눈질도 하지 않은 채 달려가기만 한다. 미국의 반도체 제조업체인 인텔사의 A. 그로브 사장은 미국 하이테크 산업의 경쟁과열 양상을 '일중독자밖에 살아남을 수 없다'라고 표현한다. 마이크로프로세서(초소형 연산처리장치)로 세계표준을 거머쥔 동사는 사용자인 퍼스널 컴퓨터 제조업체가 비명을 지를 만큼 잇달아서 신제품을 만들어 낸다. '복잡계'로 각광을 받는 산타페연구소의 B. 아서 교수는 하이테크 산업의 경영환경을 '승자만이 거금을 획득하지만, 잠깐 한눈 파는 사이에 다음 번에는 대패한다'고 표현한다. 컴퓨터 네트워크에 흘러다니는 정보량이 지금의 1,000 조 배가 된다는 2020 년대를 생각하면, 지금의 승리에 안주할 수 없다. 그 경종을 듣고 있으므로, 중간층의 생활수준 저하라는 문제를 알면서도, 미국기업은 멈추지 않는다. 세계적인 대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효율화가 필요하다는 것은 일본기업도 알고 있다. 그러나 '미국류의 대담한 리스트럭처링은 할 수 없다'(도시바의 니시무라 타이조 사장)는 것이 경영자의 고민이다. 국내 화학업종의 최대 기업인 미쓰비시화학은 97 년 3 월기에 전기대비 80% 이상의 대폭 이익감소가 예상된다. 주력화학제품의 가격하락이라는 맹렬한 국제경쟁의 비바람을 맞고 있기 때문이지만, 문제는 인건비라는 지적이 많다. 동사는 94 년 10 월에 구미쓰비시화성과 구미쓰비시유화가 합병하여 탄생하였다. 목표는 물론 '글로벌 경쟁에 대한 대응'이다. 그런데 합병 후의 효율화는 여간해서 진행되지 않는다. 종업원수는 합병으로부터 2 년간 약 1,300 명 줄었지만, 아직 1 만 2,000 명대이다. '합병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1 만명 이하가 될 때까지 삭감이 필요하다'는, 많은 증권분석가들이 보는 적정 수준에는 훨씬 못 미친다. 미우라 사장도 '더욱더 합리화가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과격한 리스트럭처링은 단행할 수 없다. 미쓰비시 계열에 뒤이어 97 년 10 월에 합병, '미쓰이화학'이 될 예정인 미츠이도우아츠화학과 미쓰이석유화학도 같은 고민을 안고 있다고 석유화학업계의 전문가는 보고 있다. 화학업계에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합병이 잇따르고 있는 금융계에서도 슬림화의 어려움으로, 국제적인 수익력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합병효과가 생각한 갓처럼 발휘되지 않는다. 일본기업은 80 년대에 일단 패권을 쥐었다고 생각한 순간, 미국 기업의 발 빠른 반격을 받으며 개혁을 재촉받았다. 글로벌한 경쟁으로 '피자가 될 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하면서도, 개혁의 부작용을 두려워하는지 경영자들은 꼼짝 못하고 서 있을 뿐이다.
15. 영국보다 무거운 병 --역사는 되풀이된다. 그러나 번영 속에서 쇠퇴의 싹이 터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비누 방울'을 날린 사람들은, 그 하나의 모델로 19 세기 후반에 절정에 달한 빅토리아 왕조시대의 대영제국을 보았다. 빅토리아 여왕이 군림한 1837 년부터 1920 년까지의 64 년간, 의회제 민주주의가 뿌리내리고 정치개혁도 진행된 영국은 18 세기 후반 산업혁명의 성과로 '세계의 공장'이라는 번영을 구가하였다. 그러나, 번영은 이미 그후의 '영국병'으로 이어지는 쇠퇴의 싹을 낳고 있었다. 제 2 차대전 후의 부흥으로부터 발전을 거쳐, 20 세기 후반의 '세계의 공장'이 된 일본경제. 경제패권을 쥐었는가 하고 자만심을 가진 발 밑에서 거품이 터졌다. 상처가 아물지도 않은 채, 2020 년에는 일본 그 자체가 없어질지도 모르는 '일본병'의 싹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대륙에 인접한 섬나라, 산업혁명 이래의 근면을 중시하는 프로테스탄트(청교도) 정신, 생활개선에 의한 중류가정의 확대, 공무원수의 증가, 교육열, 서민들 사이에서의 패키지 여행 붐. 당시의 영국은 놀랄만큼 지금의 일본과 닮았다. 10 년 전에 빅토리아 왕조의 영국과 일본을 비교한 고이케 시게루 도쿄여자대학 교수는 '점점 더 비슷해져 왔다. 영국은 그 후의 100 년간을 당시의 유산으로 목숨만 이어왔다. 지금은 시대의 흐름이 당시보다 가속화되고 있는데다, 일본이 가진 유산은 적다.'고 지적한다. 빅토리아 왕조시대의 영국은 1873 년부터 20 년 이상에 걸쳐 대불황을 경험하였다. 미국이나 독일 등 후발제국의 공업생산력이 향상되고, 영국의 국제경쟁력이 점차로 저하되었기 때문이다. 그 후 영국은 생활개선에 의한 '생활대국'을 만끽하고, 영국자본은 제국 내외에 대한 금융투자를 주축으로 하면서, '공장'의 자리를 넘겨주었다. 우위 상실의 불안 영국경제의 쇠퇴는 제 1,2 차 세계대전을 지나면서 가속화되어, 해외식민지의 대부분을 잃은 전후에는 국내 산업기반의 취약으로 구조적인 실업문제가 표면화되면서 '유럽의 환자'라고조차 불리게 되었다. 사태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1979 년의 마가렛트 대처 수상의 등장까지 기다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빅토리아 왕조의 미덕을 마음속으로부터 존경한다'고 말하는 그녀는, 산업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 노동조합대책, 국유기업의 민영화노선, 외자의 적극도입 등을 단호하게 실천하였다. 지금의 일본에는 정계에도 경제계에도 '철의 의지'는 발견되지 않는다. 미국학자인 임마뉴엘 오라스테인 교수에 의하면, 생산, 상업, 금융의 모든 차원에서 패권을 확립한 경제도, 언젠가는 하나씩 그 비교우위를 상실하여 간다. 쇠퇴기의 경제는 금융으로 중심이 옮겨간다. 17 세기에 패권을 쥔 네덜란드, 빅토리아 왕조의 영국, 달러 패권의 미국. 어느 나라나 금융력의 비교우위를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전후의 일본은 금융보다 물건의 생산을 중시하여 왔다. 그 산업의 공동화가 외쳐지고 있는
한쪽에서, 방대한 불량채권을 안고 있는 금융도 국제경쟁력을 잃어버릴 위기에 서 있다.' 금융빅뱅의 구호가 주식시세에 큰 파장을 미치는 한가지 원인이 되고 있는 가운데, 생산과 금융의 비교우위를 동시에 상실하는 '일본병'의 불안이 교차한다. 빅토리아 왕조 말기, 나중에 시대의 변화에 뒤처진 젊은이들을 그린 나츠메 쇼세키는 런던에 유학 중이었다. 20 세기로의 세기의 변환기를 이 이국의 땅에서 보낸 쇼세키는 바로 그 빅토리아 여왕의 대장례식을 보았다. 당시의 쇼세키가 일본과 세계의 장래에 대한 생각을 쓴 메모의 일부에 이러한 말이 있다. 중국과 서구의 미래를 생각해 본 후, '일본인도 언젠가 xxxx 시대를 거쳐야 할까?' 하며 포기하듯 말하고 있다. 4 글자가 지워져 빠져 있다. 잃어버린 '쇼세키의 4 자'는 무엇이었을까. 꺼져 가는 일본에 대한 경종이었을까? 나의 경종 산업혁명 이래의 전환기에 서 있는 세계에서, 개혁을 놓쳐버린 일본은 정체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학자, 이코노미스트 등으로 구성된 '닛케이 2020 년 위원회' 각 위원에게, 이 나라에 대한 '나의 경종'을 들었다. 국가전략 생각하지 않고 정신까지 공동화 --이케오 가즈히토 게이오의숙대학 교수 전후의 일본은 국가전략을 생각하는 것을 피해 왔다. 이 사고 정지상태가 일본의 공동화를 부르고 있다. 일본기업과 일본경제는 이제 일심동체가 아니다. 생산기반이 해외로 빠져나가면 남겨지는 것은 정부와 국민뿐이다. 정부부문이 큰 것은 국민의 정부에 대한 의존도가 크다는 측면이 있다. 더욱이, 정부가 할 수 없는 고용 등을 기업이 떠안아 왔다. 기업은 그 부담을 거절하기 시작하고 있다. 공동화는 산업에서만 진행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의 공동화도 진행되고 있다. 일본으로서 지켜야만 하는 가치관이 포함된 국가전략이 없는 것이 최대의 위기이다. 경영자의 기량과 일본어의 장벽이 열쇠 --이타미 히로유키 히도츠바시대학 교수 일본의 산업계에는 굉장한 축적이 있어, 앞으로 5 년 정도는 고갈되지 않는다. 컴퓨터에서 미국에게 뒤떨어져 있다고 하지만, 따라잡는 것을 좋아하는 일본에게는 오히려 안성마춤이다. 단지, 기업경영자의 시야가 지나치게 좀스러운 것은 문제이다. 80 년대 후반 이후에 취임한 사장들에게서 그러한 경향이 눈에 띈다. 일본어는 대단한 마이너스이다. 경영자의 시야가 좁은 것은 영어가 골칫거리인 탓도 있다. 비즈니스에서는 필요에 쫓겨 쓰기는 하지만, 외국인과 접하는 것을 가능하면 피하여 버린다.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는 법을 알아야 한다. 국가 전체의 기본계획을 생각하는 경영자도 정치가도 없다. 해결책을 뒤로 미뤄 때를 놓칠 우려 --이토 모토시게 도쿄대학 교수
일본에는 파국이 오지 않는 것이 거꾸로 문제이다. 문제를 뒤로 미루고 있기 때문에 2__3 년내에는 파국이 보이지 않는다. 신간선 정비, 농업예산, 연금문제 등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서도 손을 대지 않고 있지만, 10__20 년 앞까지 보면 지금 개혁하지 않으면 늦고 만다. 기업도 마찬가지로, 내일 도산하는 것은 아니지만 위기는 안고 있다. 내버려 두면 당뇨병이 되는 것은 알고 있는데, 눈앞의 괴로움이 싫어서 감량할 수 없는 중년과 같다. 그런 의미로 최근의 주가하락은 시장의 경고로 보아야만 하며, 10 년 후에 어려워지고 나서 움직이는 것보다, 일찌감치 파국이 보이면 재생도 가능하게 된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위기감이 모자란다 --키무라 요코 나라여자대 조교수 국민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위기감이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위기의 저류에는 '자녀수 감소, 고령화', '냉전구조의 소실', '제도의 피로', '경제의 글로벌화'라는 네 가지의 물결이 있다. 일본에는 그것이 한꺼번에 몰려들고 있다. 유럽은 굉장한 기세로 구조를 개혁하고 있는데, 개혁에는 스피드가 중요하다. 개인 각각이 가장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삶의 태도를 구하고 있는데, 그것을 지탱하는 제도가 없다. 세대간뿐만 아니라 같은 세대내에서도 불공평이 남아 있다. 삶의 방식의 다양성에 적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재정의 구조개혁, 규제완화, 지방분권이 열쇠이다. 외국인을 포함한 인재를 활용하지 못해 --키요노 가즈하루 와세다대학 교수 이제까지 일본은 외압을 내압으로 잘 바꿔서 국내의 개혁을 추진하여 왔다. 이 내압으로의 전환이 최근에는 잘 기능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재 일본의 위기이다.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포함하여 일본에서는 인재를 어떻게 육성하고 활용하여 갈 것인가 하는 새로운 시스템이 없고, 폐쇄상황이 되어 있다. 에도시대는 쇄국은 했었지만, 상인은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일본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전후의 일본은 자국의 문화에 자신도 없고, 중국이나 한국과의 관계도 새롭게 구축할 수 없었다. 밖으로부터의 자극을 국내 활성화로 연결시키는 시스템이 없다고 하는 폭탄을 안고 있다. 왜곡 시정을 위해서는 '파국' 가속을 --나카마에 타다시 나카마에 국제경제연구소 대표이사 일본경제는 70 년대에 잘못하였다. 석유위기를 에너지 절약이라는 제조업의 논리로 극복해 버려, 경제 서비스화의 논의에서 뒤처졌다. 10%성장의 시대가 끝나고 있는데, 그 여운에 잠긴 채로 진행해 왔다. 토요타 자동차 등 일본 일류기업도 국내시장에서의 점유율을 극대화하여, 해외로 향하려고 하는 언젠가 왔던 길을 더듬고 있는데 지나지 않고, 왜곡을 남기고 있다. 현재는 국토가 불타버린 쇼와 19 년인가 20 년의 패전직전과 닮았지만, 파국을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파국이란 정상화를 의미하기도 하니까, 그리로 가는
길을 재촉해도 좋다. 세계질서의 붕괴, 서구형에도 한계 --오노 고로 사이타마대 교수 자원, 환경문제, 고령화, 재정파탄, 사회질서의 붕괴 등, 2020 년경에 모든 문제가 일제히 분출한다.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 전체가 지금까지의 연장선상에 있는 시스템을 이제는 유지할 수 없게 되고, 소련에 이어, 환경문제나 쌍둥이 적자의 재확대로 미국이 붕괴될 가능성조차 증대하고 있다. 현대문명을 주도하여 온 서구형의 놀리나 가치관은 한계에 도달하고 있고 문제의 해결로는 이어지지 않는다. 서구로부터 빌어 온 발상으로밖에 생각하지 않게 되어버린 일본인의 머리의 공동화야말로 최대의 위기이다. 개혁 리스크보다 방치의 폐해가 무섭다 --고사이 유타카 일본경제연구센터 이사장 고령화에 대응하면서 사회의 활력을 유지하여 간다는 전인미답의 과제가 일본에 제기되고 있다. 지금의 시스템을 방치하면, 재정, 연금, 국제수지도 적자가 되어, 일본의 경제 밸런스는 크게 무너진다. 규제완화나 금융빅뱅 등의 정책과제는, 개혁을 하는 리스크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의 폐해 쪽이 분명히 크다.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 아무도 솔선하여 판단하고 행동할 수 없는 것이 일본이 안고 있는 최대의 문제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제국 정도의 1 인당 국내총생산(GDP)을 유지하기 위해서 과제는 많다. 폐쇄적인 조직이 재능을 죽인다 --코쿠료 지로 게이오의숙대학 조교수 가장 큰 문제는 인간의 창조적인 면이 죽어 버리고 있다는 점이다. 대업의 연구소에 가면,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도 의외로 시시한 일을 하고 있는 예가 많고, 종신고용제로 묶여 있다. 외부에 나가더라도 경영자원을 얻기 어렵고, 성공은 어렵다. 폐쇄적인 조직 속에서 재능이 죽어가고 있다. 정보통신분야에서 'de facto standard'(사실상의 표준)를 잡을 수 있을까? 하면 의문이 남는다. 일본이나 일본기업은 시스템을 외부에서도 알 수 있도록 개방하고, 넓히는 노하우가 모자란다. 한 사람의 인간이 복수의 그룹에 속하는 복속성도 중요하다. 기득권이 벽, 소국이 돌 숙명 --사와 타카미츠 교토대학 경제연구소 소장 일본의 최대 원흉은 규제완화나 경쟁원리의 도입에 의해서 일어나는 기득권의 침해가 터부시되는 것이다. 그 때문에, 미국류의 대담한 개혁을 할 수 없다. 도한 법률이나 행정지도 등, 일본형 경영을 둘러싼 모든 제도는 상호보완의 관계에 있고, 수정이 곤란하다. 패배자를 만들지 않는 제도는 나쁘지는 않지만, 시장경제에서는 공평성이 없다.
2020 년에 동아시아는 틀림없이 화교경제권에 빨려 들어간다. 일본은 고립하여 동아시아의 홍콩이나, 유럽의 소국인 스위스와 샅은 나라가 될 숙명이다. 작더라도 존경받는 나라가 될 수 있을지 어떨지가 문제이다. 기업 자세에 문제, 부수지 않으면 진행되지 않아 --나카타니 이와오 히도츠바시대학 교수 일보에서는 미국형의 시장경제 모델이 완성된 후, 자유롭고 활발하게 새로운 산업이 일어서는 프로세스로 옮겨가지 못한 채로, 5 년 정도 시간을 헛되이 보냈다. 규제완화 등 정부의 문제는 전체의 20__30%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민간기업에 문제가 있다. 해외에서 보면 일본은 매력이 없어졌다. 일본에 대한 직접투자는 선진제국에 대한 직접투자 중에서 얼마 안되는 비율을 차지하는데 불과하다. 자본의 해외도피도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 재정파탄, 불량채권 처리 등은 일본인의 생활수준을 희생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여 전체가 '우르르' 무너지지 않으면 개혁은 진행되지 않는다. 리더 부재로, 예산 이미 파국 --혼마 마사아키 오사카대학 교수 세출구조를 바꾸지 않고 국민부담만을 늘리는 현재의 국가예산은 이미 파국을 맞고 있다. 공공공사에 돈을 풀어도 경기부양은 기대할 수 없는데, 아무도 고치려 하지 않는다. 1970 년대에 영국에서 대처 수상이 작은 정부를 향한 개혁을 시작하였을 때도, 당초에는 심하게 비난을 받았다. 일본에 그러한 리더가 없는 것이 치명적이다. 글로벌 경제에서 국가예산은 시장의 세례를 받는다. 유럽통화위기 때도 그랬었다. 일본이 이대로 재정적자를 방치하면, 아무리 금리를 올리더라도 아무도 일본국채를 떠맡지 않게 된다. '조정형'의 정치 붕괴조짐 보여 --이노키 다케노리 오사카대학 교수 민주주의가 성숙함에 따라, 대체로 사회전체적으로 권리만 주장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지금의 일본은 그러한 상태에 있어, 그 결과 예산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비용이 든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지만 지금까지의 '조정형' 정치가 붕괴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될 것이다. 다만, 비관론만으로는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데 속박이 될지도 모른다. 일본의 제도나 관행에도 좋은 면과 나쁜 면이 있다. 그 양쪽을 확실하게 파악하면서 개혁을 진행시키지 않으면, 뿔을 고치다가 소를 죽이게 될지도 모른다. 한반도에서 위기 우려, 중국 주변에 긴장도 --다나카 아키히코 도쿄대학 조교수 국제정치학의 관점에서 볼 때, 세계에서는 1 세기에 한번은 대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2020 년까지 한반도에서 위기가 발생할 우려가 있고, 중국이 대국이 되면, 그에 적응할 수 없는 나라와 중국 사이에서 다툼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일본 주변에서의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는, 일본, 미국, 중국이 서로 적대적인 관계가 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미중의 접근으로 '일본 때리기'를 걱정하는 움직임도 있지만, 그것은 지금까지의 미중 교류가 지나치게 적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일본은 미중 양국과 정부 차원 이외에서의 교류를 확대하여야 한다. 일본통의 일본인이 사라져 정부 쇠퇴 --다나카 나오키 경제평론가 민주주의의 본질인 셀프 가버넌스(자기통치)가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일본의 문제이다. 시민측이 그것을 단련해 오지 않았기 때문에, 정부의 통치기술도 단련되지 않았다. 정부 안에는 지금 개혁을 어떻게 진행시킬 것인가 하는 청사진조차 없다. 일본의 정부기능이 쇠퇴하고 있다고도 말할 수가 있다. 이 원인의 하나로 일본에 '일본통'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일본인으로 지금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나라를 움직여 갈 수 있는 인물이 없다. 이웃나라와의 문제도 독일이 영국, 프랑스에 대하여 마음쓰는 것과 일본의 중국, 한국에 대한 대응은 대조적이다. 채무가 채무를 부르는 제 2 의 영국이 될 위험 --야시로 나오히로 죠오지대학 교수 고령화와 경제의 성숙이라는 두 가지 요소로부터 일본의 성장률은 내려간다. 정치도 경제도 전례주의로 이대로는 채무가 채무를 부르고, 그전의 영국과 같이 될 위험성이 있다. 결혼하면 여성이 손해를 보는 사회구조이지만, 여성을 활용할 수 없으면 성장력을 높일 수 없고, 기업 자신의 존망에도 영향을 미친다. 고령자를 단지 약한 존재라고 보는 통념도 문제로, 2020 년에 인구의 4 분의 1 을 차지하는 그들을 보호하는 것은 아무리 강한 경제라도 견딜 수 없다. 연금은 급부도 부금도 분명히 지나치게 높다. 지금의 사회보험은 정부에 의한 피라미드 판매로 반드시 파국이 온다. 꿈만 부풀리고 개혁의 시간 허비 --야마구치 지로 홋카이도대학 교수 개인 차원에서는 위기감이 강해지고 있는데, 정부가 개혁에 손을 대지 않고 있다. 이 갭을 메꾸지 않고 시간만 계속 허비하고 있으면, 재능 있는 사람은 해외로 도망치고, 젊은이들은 사회를 배반해 버린다. 상대적으로 약한 사람이 남아, 사회는 스스로 무너져간다. 정치가는 미래의 꿈을 그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난 백 년간에 파탄을 맞은 정책에 대하여, 비난을 뒤집어 쓰더라도 철퇴의 신호를 내는 것이 일이다. 국민은 정치에 냉담해지고 있다. 이번에는 '신간선 정비이다' 하는 식으로 꿈만 부풀려 가지고는, 정치의 공동화가 점점 더 진행되어, 개인의 생존 전투가 되어 버린다.
시장경시의 풍조, 성장률 낮고 고실업 --리차드 쿠 노무라종합연구소 수석연구원 일본에서는 규제로 경제를 얽매온 결과, 시장이 시민권을 얻지 못하고 있다.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해야 될까, 시장이 많은 정보를 발신하고 있는데, 정계나 학계, 나아가 경제계의 일부에서조차 '젊은 딜러가 하고 있는 투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경시하는 풍조가 강하다. 일본의 장래에 대하여는 비관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같은 경직적인 사회구조가 계속되면, 21 세기를 맞이하더라도 1%전후의 저성장이 계속되어 3% 성장을 전제로 한 연금이나 고용제도는 붕괴될 것이다. 고실업률이 정착되어, 사회 전체의 분위기가 악화되는 것이 걱정이다. 제 2 장 무너지는 동족국가 1. 일본 시스템의 패전 --부담이 무거워 떠나는 국민 일본은 일본인이라는 동료의식을 바탕으로, 마치 동족회사처럼 살아왔다. 정계, 관료, 재계의 상호 의지, 주식 상호보유나 계열 시스템, 회사와 종업원의 가족같은 결합.--전후의 발전을 지탱하여 온 그러나 국가체계는 안으로는 제도의 피로에다가 경제의 국경 파괴가 더해져, 무너질 때를 맞이하고 있는 것 같다. 일본은 2020 년까지 노화가 가속화될 터인데도 불구하고, 국가와 기업, 개인간의 새로운 관계를 찾으려는 개혁의 발걸음은 더디기만 하다. 해외무대에서의 '법인만들기' 2 차대전 종전 직후 일본의 법인수는 약 9 만 사였다. 그것이 지금은 약 260 만 사이다. 50 년간 매일 약 140 사씩 새로운 회사가 태어났다는 계산이 된다. '그 대부분은 개인사업주가 절세를 위해 회사를 만든, 이른바 법인만들기였다.'(공인회계사 아베씨) 이 '법인만들기'를 해외에서도 시도하려는 움직임이 최근 나오고 있다. 96 년 가을 인터넷 상에 묘한 홈 페이지가 등장하였다. '50 만 엔으로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 수 있습니다.' 개인에게 케이만 제도 등 법인세가 부과되지 않는 텍스 헤이븐(조세 회피지역)에 자산운용회사 설립을 조언하는 서비스이다. 홈 페이지를 연 사람은 외자계 기업에 근무하는 마츠무라(38 세)씨. 개인부유층을 상대로 이미 14 건의 계약을 획득하였다. '증권 매매수수료 등이 싸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 절세효과도 있어 주로 대기업만이 이용하던 페이퍼 컴퍼니를 개인도 이용하게 된다. 국민의 4 분의 1 이 고령자가 되는 2020 년, 일본종합연구소의 예측으로는 규제완화나 구조개혁이 진행되지 않으면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95 년도의 4%에서 20%까지 높아진다. 세금 등 국민부담률도 36%에서 64%가 된다. 법인만들기의 옳고 그름은 어쨌든, 세금의 무게나 왜곡이 그와 같은 절세를 유혹하는 면도 부정할 수 없다. 원래는 최고세율 75%라는 누진소득세제가
원인이었다. 해외를 무대로 한 최근의 법인만들기는 신간선 정비 등으로 세출삭감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데다, 부가가치세 증세나 특별감세 중단으로 부담만 늘어나는 것과 관계없지 않다. 대담한 개혁이 단행되지 않은 채로 국가전체가 폐쇄상태를 유지함으로써, 낡은 시스템이 여기저기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국민의 눈에 그러한 일본의 모습이 선명히 비치기 시작하였다. 96 년, 오사카의 세키네 변호사에게 미국에서 한 통의 문서가 왔다. '머플러의 부식에 의한 일산화탄소 중독사고 정보'--세키네 씨는 자가용차의 배기가스에 중독된 피해자가 자동차 제조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를 담당하고 있었다. 제조회사측은 상세한 정보를 내놓지 않았고, 정보공개제도가 없기 때문에 정부도 공개에 응하지 않았다. 그래서 미국에 정보공개를 청구하여 받은 문서를 방패로 제조회사와의 화해를 승리로 이끌었다. 일본의 소비자를 지킨 것은 미국의 제도였다. 이것은 69 년의 결함차 문제와 같은 구도이다. 미국에서 불붙은 문제가 일본에 파급되었을 때, 제조 회사는 일제히 부정하였고, 운수성도 '자동차는 중요한 수출산업이므로 경솔하게 결함차의 공표 등을 해서는 안된다'고 옹호하였다. 업계와 감독관청이 하나가 되어, 친구 사이에서 문제를 처리하는 것 같은 방식은 30 년 전부터 변하지 않고 있다. 사상이나 정책, 번역에 한계 일본은 메이지시대에나 2 차대전 후나 마찬가지로, 해외의 사상, 정책, 기술 중에서 마음에 드는 부분만을 일본식으로 번역하여 도입하여 왔다. 단일민족으로 정계, 관료, 재계가 철의 삼각형을 만들고, 기업은 계열이나 그룹은 물론 동업자와도 경쟁하기보다는 협조하고자 하였다.--그러한 동족성을 부수지 않기 위한 지혜였다. 그러나, 취사선택한 번역으로는 완결된 시스템을 만들 수 없다. 소비자를 보호하고 주주의 권리를 지키는 정보공개는 시장경제에 필수불가결한 하부구조지만, 배기가스 피해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이 나라에서는 그 부분이 쏙 빠져 있다. 그리고 정부는 금융기관의 파산 처리도 밀실에서 자기들끼리 문제해결보다는 문제회피식의 대응을 되풀이한다. 동족성도 처음에는 관과 민이 하나가 되어 성장노선을 달리는 원동력이 되어 일본경제의 강점이 되어 왔다. 그러나, 냉전이 끝나고, 국경을 뛰어넘는 대경쟁시대에 들어서면서 그 강점도 빛을 잃어간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수치가 있다. 특허출원건수는 과거 10 년간 일본이 미국의 두 배 이상인 350 만 건에 이른다. 그러나 반대로 특허료 등의 기술무역은 미국이 총액 15 주 엔의 흑자인데 반해, 일본은 4 조 엔의 적자이다. 일본에서는 돌출된 행동을 싫어하고 남들과 같이 가고자 하는 습성이 있다. 특허출원도 동업자가 내면 자기도 내는 식이다. 연구자도 일본인만을 고집한다. 거기서 혁신기술은 태어나지 않으며, 많은 국가에서 인재가 모이는 미국에게 경쟁력이 훨씬 못 미치게 된다. 개인이 파묻혀 사외는 부패
관과 민, 민과 민의 담합체질, 또한 회사가 사원을 가족과 같이 껴안는 관행, 그것이 사회를 부패시키고 고비용 경제를 낳는다. 무엇보다 거기서는 개인의 능력이 파묻혀 벼린다. 나카마에 국제경제연구소 대표이사는 '일본은 새로운 패전을 맞이하였다는 의식을 가지는 편이 옳다'고 지적한다. 고대의 북아프리카에 무역대국을 건설한 카르타고는 국민이 근면하여, 국방은 외국인과 같은 용병에게 밭기면서 오로지 경제성장에만 매진하였다. 일본과 비슷한 점이 있는 카르타고는 로마라는 외적에게 멸망하였지만, 일본은 내부에서 스스로 붕괴의 길을 걷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홍콩에 사는 아카마(40 세) 씨는 노무라증권에서부터 외자계 증권을 거쳐, 96 년 홍콩에서 일본제 속옷을 파는 사업을 시작하였다. 일본에서는 유통계열의 벽에 막혀 장사를 단념하였지만, 홍콩에서는 성공하여 1 년만에 점포 2 개를 갖추게까지 되었다. 가까운 중국, 필리핀에도 대리점을 낼 예정이다. 아카마 씨는 자녀 3 명도 현지의 학교에 다니게 하는 등 일본에 돌아갈 생각이 없다. 2020 년에는 64 세가 되지만 일본의 연금은 받을 수 없다. 노후에 대한 대비는 자기 스스로 해야만 한다. 그래도 아카마 씨에게 후회는 없다. 이솝우화의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를 보면 일본에서는 우직하게 일한 개미에게 베짱이가 도움을 청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정석이지만, 다양한 가치관을 인정하는 미국에서는 베짱이가 늠름하게 부활하는 모습을 그린 것도 있고, 나라에 따라서 해석도 가지가지다. 마지막에 개미가 과로사로 죽어가는 이야기도 있다. 아카마 씨는 질식할 것 같은 일본을 더나 혼자서 사는 길을 선택한 베짱이의 인생을 걷는다. 그러나, 지금 이대로라면 대부분의 일본인은 무너지는 동족국가와 운명을 한께 하지 않으면 안된다. 2. 메이지시대의 잊었던 일 --되풀이 되는 시민없는 개혁 진단은 40 년 늦어 '유럽의 오늘날과 같은 부유함을 보면 1800 년 이후의 것이므로 뛰어난 저 풍경을 따라가려면 40 년이 필요할 듯'('미구회람실기') 근대국가의 모범을 구미에서 찾은 메이지 초기의 이와쿠라 사절단 기록에서 구메는 이렇게 적었다. 이와쿠라, 오쿠보, 키도, 이토 등 메이지정부의 지도자가 1 년 10 개월이나 일본을 비우고 떠났던 대여행에서 내린 진단은 '일본은 40 년이 늦었다'는 것이었다. '당당한 일본인', '미구회람, 120 년의 여행'의 저자, 이즈미 씨는 '구메 등은 철도나 전신의 보급상황을 조사하면서 영국, 독일의 철이나 기계 공장 등도 방문하여 창업자를 만나, 25 년 전에는 마을 공장이 있었다는 말을 듣고 뜻을 굳혔던 것 같다'고 말한다. 사절단은 정치나 외교, 군사로부터 무역, 산업, 과학기술, 교육 등 모든 문물, 제도를 돌아보고 흡수하였다. 각국이 제국주의의 형상으로 패권을 겨루는 국제사회의 현실을 보고, 메이지정부는 부국강병과 식산흥업을 대의명분으로 내건다. 과학기술과 산업을 모조리 받아들여 산업발전을 통한 국가의 독립을 목표로 하였다. 일본은 청일, 러일 전쟁을 지나 메이지 44 년(1911 년), 불평등 조약을 해소하고
주권국가의 지위를 확립하였다. 사절단 파견으로부터 40 년 후이다. 메이지 국가를 근대국가 건설 게임으로 가정하면, 구미와의 비교분석이나 국가건설의 설계도 실적도 완벽하였다. '일신 독립하고 일국 독립하자.'('학문의 장려') '문명론이란 사람의 정신발달의 논의이다.'('문명론의 개략') 동시대인인 후쿠자와 유키치의 관찰은 달랐다. '국가는 허구이며, 실존하고 있는 것은 개인이라고 주장한 후쿠자와는 문명을 기계, 제도, 인간정신의 세 가지로 분류하여, 굳이 가장 어려운 (인민 독립의) 정신의 문제부터 대응할 것을 주장하였다.'(마츠모토 산노스케 도쿄대학 명예교수) 서양의 성과를 복사할 것이 아니라, 그 방법론을 우리의 것으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후쿠자와는 '독립의 기력이 없는 사람은 남에게 의지하여 나쁜 짓을 하게 될 것'('학문의 장려')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혼이 들어가지 않은 결과 '메이지유신이나 제 2 차 세계대전 후에 이은 제 3 의 변혁을 단숨에 해치우고 싶다.'(하시모토 류타로 수상) 폐허에서 채권대국에까지 오른 일본은 지금 제 3 의 개혁을 과제로 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국민국가가 그 모습을 바꾸기 시작한 20 세기 말의 개혁은 후쿠자와적 명제와 일치한다. 메이지와 전후의 국가조성의 성과 때문에 그 동안 잊어버리고 있던 시민사회 형성의 과제가 새삼스레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헤이세이의 개혁'을 관과 민, 중앙과 지방, 법인과 개인, 각각의 관계 재구축이라고 하면, 자조노력과 자기책임이 키워드가 된다. 주역은 국가가 아니라 시민(개인)이다. 그러나, 민주당의 하토야마 유키오 대표는 '선거에 열심인 사람은 보신이나 의뢰심이 강한 사람들이고, 자립한 사람들은 무관심하다'고 한탄한다. 정책이 확실치 못한 점도 있지만, '시민이 주역'이라는 간판을 내건 정당이 직면한 것은 진짜의 시민이라는 상대방이 없다는 현실이다. E. H. 노만이 '새로운 건물은 정상에서 아래를 향하여 쌓아졌다.'('일본에서의 근대국가의 성립')고 표현한 관료국가의 부의 유산, 불상을 만들면서 혼이 들어가지 않은 결과가 돌아왔다. 일본의 개혁은 그 주역 만들기도 동시에 진행시키지 않으면 실현될 수 없다. 획일적인 집단주의(기업주의)로 변한 동족국가를 자립적인 개인의 공동체로 바꾸는 것이 2020 년까지의 일본의 과제이다. 물질적인 바탕인 개인 금융자산 1,200 조 엔의 축적은, 상호보유 주식이나 신용창조의 도구로 쓰인 토지의 가격이 실체가치가 아니었던 것처럼, 환상일 가능성이 높다. '생명, 자유, 재산'이라는 기본적 인권 확립에 피를 흘린 것이 없는, 서로 의지하는 사회의 약점은 거품의 뒷처리나 개혁에 대한 걸림돌로 나타나고 있다. 경제동우회의 새로운 국가상을 생각하는 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시민사회에 의하여 지탱되는 국가'를 제언한 츠츠미 세이지 세존 코퍼레이션 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일본의 장래를 생각하면, 피를 흘리지 않고서 쇠퇴하여 가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 하더라도, 일본인이 불행한지 어떤지는 건전한 시민사회를 만들 수 있는지 어떤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3. 삐걱거리는 법제도
--재해에 흔들리는 관민의 유대 국가에 책임이 없다 인구감소, 기업유출, 고용상실, 힘겹게 살아가는 고령자, 그리고 개인의 고독,--그러한 2020 년으로부터의 경종이 이미 현실로 나타난 것처럼 보이는 곳이, 한싱대지진으로부터 2 년이 지난 피해지역의 '오늘'이다. 효고현 재해지역의 인구는 지진 때의 약 360 만 명에서 계속 감소하여, 작년 말까지 14 만 명 이상이 타지역으로 떠났다. 주택의 재건은 평균 50% 가까이 이루어졌지만 20% 이하인 지역도 있어, 개인격차, 지역격차가 눈에 띈다. 지금도 가설주택에서 사는 약 3 만 9,000 세대, 7 만 명의 고령화율은 40% 이상이다. 지진재해실업 속에서 고독한 죽음을 맞은 사람은 126 명에 이른다. 사는 보람을 잃고 원래의 거리로 되돌아갈 수 없는 쓸쓸함 속에서 세상을 떠난다. 그만큼 지진의 영향은 광범위하고 깊었다. 생활재건이 느릿느릿 잘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주민들 사이에서는 국가, 자치단체의 법운용에 대한 불만이 쌓여, '관재'라는 의구심이 높아지고 있다. 건축기준법의 용적률규제 등으로, 붕괴된 아파트나 가옥을 원래의 크기로 개축할 수 없다. 행정주도의 구획정리로 건축제한도 장기화되고 있다. '세금을 거두고 있으니까 국가가 도와줄 것'이라는 운명공동체적인 동족국가에 대한 기대는 헛돌고 있다. 정부의 논리는 '국가에 재해의 책임이 없기 때문에, 개인에 대한 재산보상은 할 수 없다.' 가엾지만 생활재건은 자조노력으로 해야 한다는 자세이다. 그러나, 재해자들은 '재산보상이 아니라 생활보장이 문제다. 자조노력으로 일어서기 위해서도 공적지원이 필요하다.'고 호소한다. 국가에 대한 애매한 신뢰가 무너져버린 속에서 자조노력의 기준이 흔들리고 있다. 고베시의 포트 아일랜드 제 3 가설 자치회장인 야스다 아키나리 씨는 '국가가 재해구조법을 탄력적으로 적용하지 않는 것이 생활재건이 늦어지는 원인'이라고 말한다. 동법 23 조에는, 생업에 필요한 자금의 급부 또는 대여를 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 그런데, 후생성차관 통지로 '재해조위금지급법의 자금대여제도 운용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으로 바뀌면서, 사실상 기능이 정지되고 있다. 이가 고우이치 변호사는 '행정이 다른 법 제도를 이유로 명문규정을 사문화시키는 것은, 행정에 의한 법의 개작이다'라고 말한다. 운젠다케 화산폭발 때는 현금 지급 91 년의 운젠다케의 화산 분화시, 그 고장 나가사키현은 독자적으로 피해주민들에게 6 억 엔 정도의 현금을 배분하였다. 국가와 자치단체의 차이는 있지만, 법률의 규정보다도 관의 재량 여하에 따라 돈이 지급되기도 하고 지급되지 않기도 하는 불가사의. 지금까지는 법률이 어떠하였든지간에 국가도 주민도 동족이라는 한 둥지에 의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신대지진으로 국가는 피해자가 많기 때문에 재량의 한계에 직면하였고, 주민도 자조의 채비가 부족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일본보다 훨씬 자조노력을 중요시하는 미국, 그러나 개정 재해 구조법에는 자기의
의사에 의하지 아니하고 자립의 기반을 빼앗긴 재해피해자에게는 재산보전을 포함한 각종 지원을 할 수 있는 틀이 있다. 국민의 위기는 국가의 위기라는 생각으로 최고 2 만 2,500 달러의 개인 원조 등을 할 수 있다. 다나카 교토대학 교수는 '일본의 법 시스템은 개인보다 행정을 위주로 하고 있다. 한신대지진에서는 그 법의 형태가 부흥의 장해가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법 시스템은 국가의 신경계통이다. 그 정비는 원래 입법부의 일이지만, 메이지 이래 관료가 법을 기초하고 그들의 재량에 따라 동족의 감정으로 가감하면서 국민통치에 활용하여 왔다. 지진피해자들 사이에서는 관치의 법 시스템 대신에 시민, 의원 입법으로 공적지원에 의한 생활재건 원조법안을 제창하는 움직임도 나왔다. '문제는 한신뿐만 아니라, 전국민에게 공통된 일이다'라는 생각이다. 관치 시스템에 대한 불만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은 95 년에 7,825 건, 과거 5 년간의 증가추세가 그대로 계속된다면 2020 년에는 2.2 배인 1 만 7,000 건에 이를 것이다. 확실히 국가의 신경마비가 진행되고 있다. '개인 보상은 하지 않는다'고 되풀이 하는 정부와는 반대로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공적지원을 요구하는 결의가 잇따른다. 영국의 저널리스트인 H. 마크레이 씨는 2020 년까지 대지진이 일어날 수 있는 도시의 하나로 도쿄를 꼽고 있다. 도쿄 도의회도 96 년 봄, 개인피해자에 대한 재정원조제도를 만들기 위한 의견서를 정부에 제출하였다. 원조를 위한 부담에 대한 논의는 뒤로 미루고 있지만, 관치의 논리만으로는 이제 동족국가의 단층은 메울 수 없다는 판단이다. 4. 세금의 격차는 51 배 불만을 말하지 않는 납세자들 현민 1 명당 30 만 엔 '신간선을 정상규격으로 아오모리까지 통과시키지 않으면 향후 6 개 마을의 핵연료 재처리사업에는 일체 반대한다.'--1996 년 말에 편성된 97 년도 정부예산안을 보면 신간선 정비의 미착공구간 착공을 위해 100 억 엔의 예산이 계상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자민당 아오모리현 의회 의원단이 당본부에 이러한 강경한 성명문을 들이밀었다. 이에 놀란 전기사업연합회도 자민당에 하치노베--아오모리 사이의 착공을 강하게 밀어붙였다고 전해진다. 신간선 정비에다가 우루과이 라운드 대책비에 의한 농업기반정비도 진행되고 있는 아오모리현. 자치성의 자치단체 결산조사에 의하면 이 현에 국가가 교부하는 지방교부세, 양여세와 보조금 등 국고지출금의 합계는 94 년도에 약 4,476 억 엔으로 현민 1 인당 30 만 2,000 엔이다. 아오모리현민 한 사람이 동년도에 납부한 소득세는 8 만 1,000 엔으로 1 만 엔의 세금에 대하여 국가에서 4 배 가까운 약 3 만 7,000 엔이 돌아온다는 계산이 된다. 이에 비하여, 예컨대 가나가와현에서는 1 만 엔의 소득세를 납부하고 20% 정도밖에 안되는 약 2,400 엔밖에 돌아오지 않았다. 세금의 비용 대 효과는 실로 16 배의 차이가 나고 있다. 96 년 10 월의 중의원 선거에서 투표율은 아오모리현이 63.4%, 가나가와현은 55,5%였다. 납세액은 적지만 부지런히 투표소에 가는 지방주민을 위하여 그 지역 국회의원은 보조금이나 공공사업의 획득에, 때로는 민간도 끌어들이기에 분주하다.
반면 주민이 세금이나 정치에 너무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정치가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것이 격차를 낳는 하나의 원인이 되고 있다. '세금의 격차'가 가장 크게 나타나는 곳은 오키나와현과 도쿄도이다. 도쿄는 교부세 비교부단체라고 하는 특수사정이 있지만, 그 격차는 51 배에 달한다. 법인세 등도 계산하면 차이는 더 커진다. 도시보다 지방의 수익이 많은 것은 어느 정도는 괜찮은 일이다.--그러한 사회적인 암묵적 합의를 배경으로 국가는 세금을 재배분하여 왔지만, 이렇게까지 넓어진 격차는 그 기능이 제도 피로를 일으키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소득세 납세자의 85%를 차지하는 샐러리맨은 이에 대해 불만을 말하지 않는다. 부가세율 12% 일본세무사회 연합회의 미야구치 상무이사는 96 년 가을 간사이의 중견기업경리과장이나 계장들이 모인 연수회에서 샐러리맨의 납세자의식이 희박함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회사의 납세액에 대해서는 꼬치꼬치 다 알고 있지만, 자신의 납세액에 대하여는 약 70 명의 참가자 중 단지 4.5 명밖에 알지 못했다.' 국세불복심판소 등에 대한 이의제기도, 샐러리맨에 의한 것은 거의 없다. 키타노 일본대학 교수는 '원천징수와 연말조정제도야말로 일본인의 정치의식이 낮은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1940 년 전비조달을 위하여 나찌 독일을 흉내내어 도입한 원천징수제도는 효율적인 징세수단으로서 전후에도 온존하게 되었다. 47 년에는 원천 징수한 세금의 과부족을 개인이 아니라 기업으로 하여금 수정케 하는 연말조정제도가 시작되었다. 기업이 종업원의 소득세 납세자가 되어 세금의 면에서도 샐러리맨이 회사에 의존하는 구조가 완성되었다. '자영업자의 눈에는 샐러리맨은 정말로 마음 편해 보인다.'(미야구치 씨) 회사의 교제비로 밤거리를 누비고 주택보조 등 복리후생도 극진하다. 복리후생만 보더라도 종업원 5,000 명 이상의 대기업에서는 연간 1 인당 약 30 만 엔이 넘는다. 이에 대하여는 거의 과세되지 않는다. 샐러리맨은 회사라는 고용의 틀 안에서 세금을 잊고 산다. '(전쟁 전과 같은 간접세 중심의 제도로는) 정부는 이들 국민과 별로 관련이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리고, 국민은 때때로 정부의 은혜를 받는 이외에는 전혀 이와 관계없는 존재가 된다.'(49 년 8 월, 샤우푸 박사 권고) 고령화시대인 지금, 직접세주의에 대한 이론도 많지만, 샤우푸 박사의 진의는 일본에서 근대적인 시민을 키우는 데 있었다. 그러한 박사의 이념은 잊혀지고, 국가에 의지하지 않고 반대로 국가를 뒤돌아 보지도 않으며, 회사에만 의지하는 사람들만 남았다. 부담과 수익의 틀을 만들어내려 해도 그것을 주도하는 시민이 없다. 다이와종합연구소의 예측으로는 공공투자를 계속 명목연평균 3%씩 늘리게 되면 국가의 채무 잔액은 2020 년에 국내총생산(GDP)의 1.2 배를 넘게 되어, '12% 정도까지의 부가가치세율 인상은 피할 수 없다.'(경제조사부) 동족국가 개념이 이완된 국가와 민간의 관계가 계속되면, 세금만 무거워진다. 5. 패배자들의 출현 --국가나 회사에서는 구해줄 수 없어
정부에 매달리는 노사 와카야마시에 있는 한와은행의 본점은 아주 조용하여, 손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1996 년 11 월 21 일, 대장성에서 업무정지 명령을 받았다. 지금은 만기를 맞이한 정기예금의 인출만 응하고 있다. 97 년 4 월 인수은행인 키이 예금관리은행(와카야마시)이 설립되었는데, 청산수속이 끝나고 예금반환이 끝나면 해산된다. 그렇게 되면 계열사를 제외한 본사만도 약 850 명에 이르는 종업원의 고용은 완전히 허공에 뜬다. 어떤 지점장(55 세)은 '은행내에는 아직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한다. 전행장은 대장성 출신이고, 현행장대행은 일본은행 출신이다. 국가에 의지하는 의식을 버릴 수 없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절망감이 남는다. 지점장의 이야기는 이윽고 분노로 변한다. '왜 우리만 망해버리는가?' 한와은행은 업무정지 명령에 불복하여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종업원 조합은 경영진, 관리직 조합과 함께 '인수은행의 영속화'를 대장성에 요구하고 있다. 전종업원의 90%가 찬성하여 신은행설립시 필요한 자본금에 보탬이 되고자, 합계 2 억 4,000 만 엔을 모아 출자도 표명하였다. 노사가 국가에 매달리는 배경에는 복잡한 생각이 숨어 있다. 한와은행은 제 2 지방은행 64 행 중 하나로, 먼저 경영파탄을 맞은 구 효고은행에서 업무를 이어받아 탄생한 미도리은행에 5,000 만 엔을 출자하였었다. 대장성 훼밀리의 말단 일원으로 따라 왔는데, 왜 저버리느냐 하는 생각이다. 규칙은 변하였다. 일본의 경제 시스템은 지금까지 감독관청을 중심으로 업계가 서로 협조하면서 웬만하면 '패배자'를 내지 않고서 함께 성장하는 것을 지향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은행 행정이 그 전형이었지만 그 앞길이 막혔다. 간신히 살아난 미도리은행도 장래는 밝지 않다. 은행원수는 구 효고은행 시절의 약 2,600 명에서 20% 줄었고(자연감소 포함), 1 인당의 임금도 20% 가까이 내려갔다. 지금대로라면, 2000 년까지 국내에서 20__30 개의 은행이 한와은행이나 미도리은행같은 궤도를 밟게 될 것이라는 외자계증권의 비공식인 예측조차 있다. 금융계의 '패배자' 대부분은 대장성에 의한 보호행정에 의지하여 연명하여 온 만큼 실제로는 그 전에도 자립적인 경영을 하지 못했었다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은행원들에게 그러한 의식은 거의 없다. 실업률은 13% 정, 관, 업의 유착구조가 뿌리깊어, 업계의 담합체질이 남아 있는 건설업도 지금대로라면 같은 운명을 겪을지도 모른다. 동족성이 강한 이 업계는 거품붕괴 후에도 취업자를 계속 늘려왔고, 96 년 12 월에는 취업인구의 10%이상에 해당하는 692 만 명(전년동월 대비 3.4%증가)이 되었다. 패배자가 나오지 않도록 공공사업이라는 캠플 주사를 확대하여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정난 등으로 공공사업의 신장률이 둔화되고 사업내용도 변하여 건설업 취업자는 2020 년에 500 만 명 이하가 될 것이라는 것이 공통인식이다. 여기서도 200 만 명쯤의 패배자가 발생한다는 계산이 된다. 경쟁력을 잃은 기업이나 산업도 껴안으면서 패배자를 만들지 않는 것이 일본의 특징이었다. 그러나 그 구조가 지금은 일본의 회복을 저해하는 속박요인이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개인이 패자부활을 목표로 새로운 산업에 전출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 경제의 활력도 꺾어 왔다. 그러한 구조로부터의 전환이 가장 큰 테마겠지만, 기업 이상으로도 많은 개인은 그런 각오가 되어 있지 않다. 개인별 가맹의 노동조합의 도쿄 관리직 조합에 샐러리맨이 제기한 고용문제의 수는 과거 3 년간 약 3 배나 늘어났다. 그러나, 조합의 서기장은 '리스트럭처링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샐러리맨의 의식개혁은 늦다'고 말한다. 회사나 국가에 의지할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는 개인이 아직 많다. 그러한 잠재적인 패배자가 이제까지와 같이 계속 정치에 매달리면 개혁은 대폭 늦어진다. 그 경우 통산성의 예측대로라면 2025 년에는 근로자 1 인당 실수입 소득은 감소로 바뀐다. 일본종합연구소의 예측에 의하면 2020 년에 실업률은 13%까지 높아져, 오히려 패배자가 급증하게 된다. 유연한 노동시장 등 패자부활을 위한 시스템 조성이 빨리 이루어지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러한 전망을 하기 어렵다. 기업이나 국가에 의지하는 과거의 일본형 시스템에 대한 비련을, 개인은 버리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6. 맡겨버린 자치 --정치가 때문에 안된다 6 억 엔짜리 그림 우쓰노미야 시의회는 96 년에 시승격 백 주년을 기념하여 의회의 방청석을 꽉 차게 만들려는 계획을 세웠다. 방청객을 모으는 방법은 회의장에서 3 일 연속 콘서트를 여는 것이었다. 첫날에는 평소 기껏 30 명밖에 들어오지 않던 방청석에 160 명이 모였다. 생각대로 되었다고 누구나 생각하였다. 그런데, 오전 중에 콘서트가 끝나자 시민들은 썰물이 빠져나가듯이 갑자기 돌아가 버렸다. 마침 본회의가 개회 중이었는데, 오후의 심의는 방청객이 거의 없는 채로 진행되었다. 시민의 의회에 대한 무관심을 반영하여 심의도 저조하다. 의안의 표결 전에 의원들이 찬성, 반대의 의견을 말하는 이른바 토론이라는 것을 3 년 시상이나 한 적이 없다. 우쓰노미야시의 채무는 96 년 3 월말 1,000 억 엔 가까이 되었다. 시승격 백 주년 사업에 400 억 엔 이상을 지출하였기 때문이다. 시민 1 인당 22 만 엔이나 빚을 진 꼴이 된다. 97 년 3 월에 완성된 우쓰노미야 미술관에는 6 억 2,000 만 엔을 들여 시가 구입한 루네 마르릿트의 '대가족'이라는 그림이 내걸렸다. 훗카이도, 아키타, 미야기, 군마, 도쿄, 미에, 후쿠오카, 가고시마--95 년 가을 이후, 거짓 접대나 거짓 출장 등 부정경리가 발견된 자치 단체이다. 공표를 하지 않은 아오모리도 포함시키면, 부정지출은 최근 3 년분만으로도 총액 160 억 엔에 이른다. '시민의 "맡겨버린 민주주의"가 지방정치를 이상하게 만들었다.' 정보공개청구를 무기로, 자치단체 등의 부정을 추궁하여 온 전국시민 옴부즈맨 연락회의 대표간사인 다카하시 변호사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자기가 하지 않더라도 누군가가 해준다', '누가 하더라도 똑같다'는 일본인의 동족의식이 정치를 감시하는 눈을 흐리게 한다. 닿지 않는 목소리
정치와 시민 사이를 중매하는 사회조직은 일본에도 적지 않다. 츠쿠바대학의 츠지나카 조교수의 조사에 의하면, 인구 10 만 명당으로 본 각종 이익단체의 수는 일본이 29, 미국은 35 로 그리 큰 차이는 없다. 그러나, 내용은 전혀 다르다. 일본은 업계단체 등 경제 단체가 38%로 많은 데 비하여, 미국은 시민단체가 45%로 반수에 가깝다. 츠지나카 조교수는 '미국에서는 강고한 주민자치의식을 출발점으로, 시민, 관료, 기업 중에서 시민이 정치를 만들어 온 역사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인에게는 이러한 의식이 희박하여 관과 기업의 비중이 커졌다. 기업이나 관과 시민은 원래 대립할 때도 많지만, 일본에서는 시민이 스스로 정치에 관여하려 하지 않고, 그것을 기업이나 관에게 맡긴다. 정치가에게는 시민의 목소리가 닿지 않아 전후의 이 나라는 '생활자보다 공급자'의 역사를 만들어 왔다. 그 노선의 한계가 확실해진 지금은 정, 관, 업의 유착이나 관료의 재량행정이라는 부정적인 측면만이 눈에 띄고 있다. 96 년 10 월의 중의원 선거 투표율은 60% 이하로, 전후 최저였다. 게이오의숙대학의 고바야시 교수는 '자민당 비판에서 기성정당 비판, 나아가 정당 전부에 대한 비판을 지나, 국민은 지금 투표해야 할 대상을 잃었다'고 말한다. 낮은 투표율은 정치의 책임이라는 지적이지만, 정치의 한계를 정치가 탓만 할 수는 없다. 2020 년에는 퍼스널 컴퓨터의 전용단말기로 자하철역이나 병원에서 투표를 할 수 있는 '전자투표'가 실현될 공산이 크다. '이미 시험기기는 완성되어 있어, 2, 3 년내에 실용화할 수 있다.' 개발을 담당하고 있는 NTT 데이터통신의 공공시스템 사업본부장은 말한다. 그러나, 그 때에 사회의 중심축이 되어 있을 지금의 젊은이들도 자기의 힘으로 정치를 바꿔 가려는 자치의식은 희박하다. 베넷세 코퍼레이션이 96 년, 1,387 명의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 세가 되면 국정선거에 '반드시 참여하겠다'고 대답한 사람은 14.7 %에 머물렀다. '아마 참여할 것이다'를 포함해서도 55.1%이다. 도쿄 메구로구의 96 년말 앙케이트 조사에서도, 주민의 76%가 주민자치조직에는 '참가하고 싶지 않다'고 대답하였다. 특히 20 대에서 이 회답이 많았다고 한다. 전자투표로 거리의 여기저기에 투표소가 있더라도 투표하지 않는 유권자만으로는 이 나라의 정치가 변할 수 없다. 7. 보이지 않는 복지 --자조의 뿌리는 내리지 못하고 부담만 늘어 서류상의 이혼 도쿄 치요다구에 사는 노무라(49 세)씨는 남편이 쓰러지면 자기의 호적을 빼내기로 하였다. 남편을 돌보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다. 독신 생활을 하는 노인이면 우선적으로 특별부양 양로원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5 년전, 동거하고 있던 시아버지와 친정의 양부모님 3 명이 연달아 쓰러졌다. 침대 대여, 입욕 서비스, 종이 기저귀의 지급.--그래서 행정 서비스에 의지하려고 하였더니 필요한 서류가 산더미 같았다. '거동 불능'에 대한 해석도 담당자에 따라 가지각색이고, 신청한 서비스를 받게 되기까지 1 년 이상 걸렸다. 친정의 양부모님을 특별부양 양로원으로 보시려고 생각하여 입소를 신청하였지만,
대기자가 많고 언제 입소할 수 있을지 예상하기도 어려웠다. 국가나 자치단체의 재정난도 있어, 양로원의 건설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복지행정은 정말로 필요할 대에 자기에게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 경험에서 배운 선택이 장래의 '서류상의 이혼'이다. 노조연합이 55 세 이상의 간호필요자가 있는 가족에게 조사한 바에 의하면, 간호의 부담 때문에 회답자의 악 35%가 자기의 부모 등 간호필요자에 대한 미움을 '언제나' 또는 '때때로' 느끼고 있다고 대답하였다. 국가가 어떻게든 해줄 것이다'라는 동족국가에 대한 기대는 이제 통하지 않는다. 동족의 핵인 '가족'도 이미 무너지고 있어 가족에게도 의지할 수 없다. 국립사회보장, 인구문제연구소의 예측으로는 2020 년에 생산연령인구(15__64 세) 2.2 명이 65 세 이상 1 명을 먹여 살리지 않으면 안된다. 타카야마 히도츠바시대학 교수 등의 추계로는 같은 해에 65 세 이상의 고령자 중 14.6%가 거동불능자 등으로 간호가 필요하게 된다. 간호비용은 총계로 2025 년에 30 조 엔을 넘는다는 예측도 있다. 일본의 복지는 고개 위에 서 있다. 시에는 의지할 수 없어 구소련 붕괴 후, 러시아는 연금지급의 지체나 임금체불 등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국가에 의한 복지가 파탄을 맞은 사회에서 자활의 길을 찾아가는 시민의 모습이 있다. 모스크바 시내의 한적한 주택가에서 사는 K. 콜키나(60 세) 씨는 20 대의 젊은이와 어떤 계약을 맺었다. 생활비와 의료비의 일부를 대주는 대신에, 그녀가 죽으면 살고 있는 아파트를 양도한다. 12 년 전에 이혼하고, 최근 몇 년간의 인플레이션으로 연금만으로는 살 수 없게 되어, 빈병을 주워 모아서 팔고 있었다. 시의 복지창구도 의지가 되지 않는다. '혼자서 해결책을 찾을 수밖에 없어서' 카페에서 알게 된 젊은이와 계약하기로 하였다. 무엇이든 모두 국가가 돌보아 주는 이미지가 강한 스웨덴에서도 고령자는 자력으로 생활하는 것이 기본이다. 노후에 대비하여 이제까지 익숙지 않던 민간보험에 가입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공적 서비스도 간호를 받는 본인, 가족, 전문가 등이 상의하여 내용을 정한다. 간호사가 24 시간 상주하는 양로원에 들어갈 것인가, 전용주택에서 집단생활을 할 것인가, 재택간호의 경우 일일간호는 주 몇 회로 할 것인가 등등을 자기마다의 기준에 따라 선을 그음으로써 지나친 지원을 피한다. 자조를 기본으로, 정말로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한다.--이것이 재정적자 확대로 복지국가의 막다른 길을 경험한 스웨덴의 지금의 복지이념이다. 한편 일본에서는, 첫머리의 노무라 씨가 경험한 독신노인 우선의 특별부양 양로원 제도와 같이 이용자가 자기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이 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개개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요컨대 '얼굴을 보지 않는 복지'의 폭을 확대하게 되면, 개인에게 자조노력이 뿌리내리지 못하고, '전부 같은 것'을 요구하는 의식이 사라지지 않는 반대 측면이 있다. 간호보험법안은 이용자에게 선택의 폭을 확대한다고 하지만, 동족국가의식 때문에 복지에서도 획일성이 남는 한 개인의 부담은 확실히 늘어나게 된다. '주민등록만 자택으로 되돌릴 수 없습니까?' 기후현 이케다마치의 특별부양
양로원 '선 빌리지 신생원'의 이시하라 이사장은 종종 입소자의 가족으로부터 이러한 상담을 받는다. 거동불능의 고령자가 있으면 자치단체로부터 주택개조의 보조금이 주어진다. 그래서 서류상 '동거'로 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이시하라 이사장은 '장차, 떠맡을 작정도 아니면서 왜 개축을 서두르는 것일까, 국가나 자치단체의 돈이면 무조건 탐낸다.'고 한탄한다. 자조노력을 촉구하는 시스템이어야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동족에 대한 무조건적인 의존을 불러 버린다. 이 나라의 복지조성은 용이하지 않다. 8. 또 하나의 내압 --남과 다르면 공포감, 다양성을 상실 외국인과 삼자 간담회 '일본의 브라질'로 유명하게 된 군마현 오이즈미마치가 최근 새로운 실험을 시작하였다. 외국인 대표와 시, 그리고 33 개의 행정구 구청장들이 모인 '3 자 간담회'의 설치이다. 마을에 입지하고 있는 공장의 일손부족 해고라는 필요에 쫓겨 일본계 브라질인 등 남미의 노동자들이 돈벌이를 위해 일본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80 년대 후반부터였다. 바야흐로 일본에서 외국국적의 주민이 1 할을 넘는 유일한 자치단체가 되었다. '쓰레기 분리수거의 요일도 지키지 않고 제멋대로 내놓는다.' '밤이 되면 밖에 모여 떠들어 댄다.' 그러한 문제점도 있었고, 조용히 사는 외국인도 적지 않았지만, 그 동안 시에서는 무리하게 일본인들의 생활 속에 그들을 섞으려 하지 않았었다. 포르투갈어의 회람판을 통하여 일본인의 습관을 알려주는 한편, 여름의 축제에는 전통을 바꿔 삼바 퍼레이드를 추가하였다. '차이점을 인정하고 공존한다면 좋은 일'이라며, 주민들도 이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3 자 간담회에서 참정권이 없는 외국국적자의 소리도 행정에 참조하여야 한다는 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일본계 외국인 중에는 일본국적도 가진 2 중 국적자도 있었다. 대부분은 일본어를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없지만, 시에서는 '외국인의 입장에서 의견을 표명할 수 있는 귀중한 존재'라고 보고 국정선거, 지방선거를 막론하고 포르투갈어로 투표를 호소하였다. 투표소에는 통역인을 대기시켰고, 로마자로 쓰인 투표용지도 준비하였다.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활기는 뛰고 있다'고 시의 시마야마 국제교류과장은 말한다. 89 년에 16 억 엔이던 개인주민세 세수는 95 년에 17 억 4,000 만 엔이 되었다. 시당국의 시도가 외국인을 중심으로 새로운 거주자를 불러 들여, 세수를 끄러 올린 것이다. 인구 4 만 명의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축제 때는 16 만 명이나 관광객이 모인다. 법무성에 의하면 일본에 사는 외국인등록자는 96 년 6 월말 현재 138 만 명으로 10 년 전에 비하여 악 60%가 늘어났다. 일본계 외국인 등 브라질에서의 입국자는 요사이 19 만 명 가까이나 늘어났다. 일본계 교포나 외국인을 불러 온 것은 국내에서 저비용의 조업을 계속하고 싶어하는 일본기업측의 사정 때문이다. 국립사회보장, 인구문제연구소는 자녀수 감소가 진행되는 2020 년에는 청년 노동력이 약 500 만 명 줄어들 것으로 예측한다. 그 일부라도 보충하기 위해서 기업들이 외국인 고용을 늘리면, 제 2, 제 3 의 오이즈미마치가 태어나게 되고 집안의 일본인뿐만 아니라, 외국인의 소리를 무시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또 하나의 내압'이다. 개인의 소리는 닿지 않아 키요노 와세다대학교수는 '세계적으로 다양한 민족이 융합하며 새로운 활력을 만들어 내고 있을 때, 일본만이 동족국가를 전제로 한 장래상을 그리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나, 오이즈미마치와 인접한 오타시의 주민으로부터는 '밤에 전차를 타면 외국인이 가득하기 때문에 무서울 때가 있다'고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한편으로는 그러한 현실도 있다. 외국인뿐만이 아니다. 같은 일본인이라도 일본의 전통적인 의식에 반하는 상대에 대해서, 이 국가는 따뜻하지 않다. 고대 아테네에서는 도편에 시민들이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인물의 이름을 쓰게 하여 추방하였는데, 그 도편 추방을 생각하게 하는 분위기도 있다. '일본에 세금을 내지 않는 당신에게는 융자할 수 없다.' 해외로 거점을 옮긴 중견 슈퍼경영자는 최근 시중은행 경영자의 그러한 말에 할 말을 잊었다. 동족성을 다시 생각해 보려는 움직임은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가와사키시는 96 년, 외국인의 공무원 채용을 저해하는 국적조항을 조건부로 폐지하였다. 재일 외국인들의 오랜 세월에 걸친 요구가 행정을 바꾸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개인'을 중시하지 않는 일보에서 개인의 호소는 아직 닿기 어렵다. 중국 잔류 일본인 고아로 인정된 도쿠나가(중국명) 씨가 일본정부로부터 국비로 가족과 함께 도항, 영주할 수 있는 허가가 나온 것을 알게 된 것은 95 년 10 월이었는데, 와병 중이던 도쿠나가 씨는 그 직후에 심장발작으로 숨을 거두었다. '뼈만이라도 조국에.' 그것이 유언이었지만, 기다리고 있는 것은 허가를 취소한다는 통지뿐이었다. 귀국이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시점에서 '본인 생존'이라는 조건을 채우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재산을 처분하여 귀국 분비에 써 버린 유족들은 유골의 귀국조차 이루지 못하였다. 일본에 살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벽은 두텁고, 살기 힘들어 나가는 사람에게는 집안사람들도 관용을 베풀지 않는다. 다양성의 활력은 이 나라에서는 아직도 바다 건너 머나먼 나라의 일이다. 9. 일본어의 탄식 --신념을 담지 않고, 멀어지는 세계 '위반'의 낭독 하시모토 류타로 수상도, 오자와 이치로 신진당 당수도 모두 국회에서 '규칙위반'을 범하고 있다. '회의에서는 문서를 낭독할 수가 없다.'(참의원 규칙 103 조) 엄밀히 말하면, 국회에서의 발언은 준비한 원고를 단조롭게 읽어서는 안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수상 등이 빠져나갈 수 있는 규칙이 '단, 인증, 보고를 위한 간단한 문서는 이에 한하지 않는다'는 예외 규정이다. 요컨대 간단한 메모를 가져와 자기의 말로 답변하고 있다고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대표질문 광경이 질문하는 쪽도 답변하는 쪽도 정치가로서의 개성이 보이지 않는 원고의 '낭독' 그 자체라는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일본어의 에너지가 쇠퇴하고 있다. 인터넷의 보급에 의해서 '영어 공간'이 넓어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신념을 담아 상대를 설득하지 않고, 친구 사이의 공허한 말의 나열로 끝내버리는 사회. 애매한 외래어의 이미지로 속이고자 하는 풍조, 국내에서의 설득력, 국외에서의 발신력 등 일본어는 함께 저하되고 있는 것 같다. '그가 히비야의 연단에 서서 사자후를 토할 때, 청중은 마치 명배우의 연기에 반한 것처럼 그와 같이 흥분하며, 구와 같이 격분하고, 그와 같이 기뻐하며, 그와 같이 슬퍼하는, 단상단하가 완전히 일체가 되어...'('인간 나카노') 쇼와 18 년, 도조 히데키 내각과의 대결 결과, 결국 자결하고 만 나카노를 생각하며, 서방죽호는 이렇게 써서 만기고 있다. 친한 친구에 대한 추도문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특정한 정치가의 언론으로 '단상단하가 일체가 되어' 정부를 두려워 하게 하였다고 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다. 물론 지금은 사자후 같은 절규조가 시대착오인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 해도 언론이 자유롭지 못하던 시대에 '명연설'이 많고, 언론의 자유를 구가하게 되고 나서 국회의 논전이 점점 더 유명무실해지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떨어지는 발신력 최근, 국제회의에서 일본 각료의 연설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일본어이기 대문이 아니다. 통역의 제일인자는 '피가 통하는 말이라면...'이라며 번역 때문이 아니라고 분개한다. 동족국가 밖에서도, 마찬가지로 원고를 낭독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래서는 '나야말로 아시아의 대표'라는 포부에도 불구하고, 점점 영어로 연설하는 아시아의 '도상국' 지도자에게도 이길 수 없고, 세계는 멀어진다. 옛날에는 일본어로라도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상대에게 설득하려고 열심히 노력하였다. '경제대국'이 된 순간 사치를 부렸는지, 상대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열의가 정치가부터 엷어졌다. 해외에서도 집안에서의 대화처럼 이야기하고, 상대가 난처한 표정을 보이면 일본어를 이해하라는 듯한 발언까지 하게 되었다. 메이지 선현은 구미어의 번역에 있어 그 정신을 어떻게 나타낼 것인가에 지혜를 짰다. 원래, 자산을 낳는다는 말로 '자생'이라고 해야 할 economy 를 굳이 '경세제민'이라는 말에서 '경제'라고 하는 등, 원어의 뜻보다 그 이상이 살린 것도 많다. 그리하여 한자의 본고장인 중국도 이러한 일본어의 번역어를 많이 수입하였다. 지금, 외래어는 번역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원래의 의미나 사상이 오히려 애매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정계에는 우익도 좌익도 리버럴이 섞여 있다. 구미의 역사를 보면 리버럴은 사람들에게 좋은 말이 아닌데, 일본에서는 인상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쓰이고 있는 것 같다. 일본어가 컴퓨터 네트워크의 세계에서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은 오래 전부터 이야기되었다. 미국주도로 이루어진 공통문자코드로 한자의 대부분이 버려진다 해서 '일본어를 지켜라'라는 외도 들린다. 영어채용론이나 로마자표기론이 나오던 메이지 초기나 태평양전쟁 직후에 이어, 2020 년부터 되돌아 보면 지금은 일본어의 제 3 의 전환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보 인프라 속에서 일본어가 변하든 변하지 않든 그 쓰는 사람의 의식이 변하지 않는 한, 이 동족 국가는 언어의 붕괴시대를 맞이할 것이다. 10. 가냘픈 꽃
--군집에 의지하며 접목 계속 70 년대의 전환 1970 년대 초 미국의 많은 도시공장들은 쇠퇴의 입구에 서 있었다. 후에 미국 제조업이 직면하게 되는 공동화의 시작이었다. 후에 미국 제조업이 직면하게 되는 공동화의 시작이었다. 미국 유학 중이었던 나미키 효지 씨는 그것을 목격하고 '우리도 안되겠다'고 느꼈다. 우리란 아버지인 가즈 씨가 경영하는 나미키 정밀보석(도교 아다찌구). 당시 레코드 바늘용 보석을 대기업인 나가오카 등에 납품하는 톱 메이커였다. 72 년에 미국에서 귀국한 쇼지 씨는 곧 대담한 도전을 아버지에게 제안하였다. '레코드 바늘도 언젠가는 끝난다. 다음은 모터이다.' 당시는 용도가 별로 없어 경시되고 있던 초소형 모터의 개발에 들어가 76 년에 세계 최소의 모터 양산에 성공하였다. 82 년의 컴팩트 디스크(CD) 등장으로 레코드 바늘업계에 도태의 물결이 밀어 닥쳤다. 그 때, 나미키 모터의 기술에 주목한 미국 모토롤라가 무선호출기(삐삐)용 진동장치 제조를 의뢰하여 왔다. 나미키는 지금 세계의 이동통신(mobile communication) 시장에서 점유율 60%를 차지하고 있다. 레코드 바늘의 동업자 대부분은 사라지고, 나가오카도 90 년에 해산되었다. 70 년대에 전에 놀던 무리를 떠나, 전혀 다른 분야에 발을 내디딘 것이 그들과 명암을 달리하게 만들었다. 나미키가 도전을 시작한 72 년, 한 미국인이 일본에 경종을 울렸었다. '민족적 의식과 프라이드가 폐쇄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대외 자세를 직접 지탱하는 정치적 지주가 되고 있다.' '대외의존도가 높은데 실제로는 폐쇄적인 내부지향형의 엘리트들이 지도하고 있다.' 이후에 미국 카터 정권의 대통령 보좌관을 지낸 Z. 브레진스키 씨였다. 저서 '가냘픈 꽃 일본'에서 고도 성장으로 선진국의 한 일원이 된 일본에 대해서 동족적인 폐쇄성, 자기개혁능력의 결여 등 가냘픈 면을 지적하였다. 그 1 년 후, 제 1 차 석유위기로 인플레이션이 불어닥쳐 일본은 경상적자로 전락하였다. 위기에 직면하자 일본은 또다시 정계, 관계, 업계가 일체가 되어 반격에 나섰다. 행동불능의 예언 '가냘픈 꽃'의 지적 같은 것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고도 성장기의 방식인 접목하는 대중요법으로 '동족국가적으로 위기를 극복하였다.'(혼마 오사카대학 교수) 일본은 79 년의 제 2 차 석유위기에서도 구미보다 일찍 원상 복귀하여 경제대국이라고 불리게까지 되었다.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인 E. 보겔 씨가 '저팬 이즈 넘버 원(Japan is No.1)'을 저술한 것은 마침 그 때쯤이다. 많은 사람이 일본예찬론으로 받아들인 동서이지만, 마지막 장에 미국이 일본을 배울 때의 '위험'을 들고 있다. 개성이나 창조성의 압박, 이단자에 대한 냉대.... 보겔 씨도 동족성을 일본의 약점이라고 보고 있었다. 엔화 상승이 진행될 때마다 어려움이 전해지고 있는 니이가타현 쓰바메시.--쓰바메중공업도 전형적인 양식기업체였다. 동사가 양식기의 수출을 단념한 것은 85 년의 프라자 합의보다 훨씬 전인 70 년대 초이다. 양식기에 매달려온
많은 동업자에게는 '모험'이라고 보였을 것이다. 스테인레스 제품의 도로용 카브밀러 개발에 착수하였다. 지금은 대기업의 일원이다. 동업자가 쓰러지는 속에서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쇠퇴를 재빠르게 인식, 아무도 다루지 않던 분야에서 처음부터 시장을 개척하고 개성 노선으로 전환하였기 때문이다. 거품 붕괴 후의 불황과 제도 피로에 괴로워 하는 일본, 정부는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2020 년대에 파탄을 맞을 것이라고 스스로 경종을 울리며 '개혁'을 간판으로 내걸고 있지만, 누군가가 만능의 처방전을 써 주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끼리끼리 몰려서 틀어 박혀 있다. '가냘픈 꽃 일본'에는 이러한 지적도 있다. '집단내부의 조화확보를 지나치게 중시하여 집단은 마비되고, 어려운 선택이나 예기치 않은 선택에 직면하면 행동불능에 빠진다.' 동족국가가 무너지는 것은 25 년 전에 이미 예언되어 있었다. "인터뷰 1)" 2020 년의 세계와 일본 아시아와 미국, 세계의 중심으로 --나카타니 이와오 씨(히도츠바시대학 교수, 닛케이 2020 년 위원회 위원) --세계는 지금 어떤 시기에 있는가? '정보혁명과 글로벌화로 큰 변혁의 물결이 일어나고 있고, 변혁을 이끌어 가는 나라와 따라가지 못하는 나라가 양국으로 분화되고 있다.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속도로, 정보혁명 속에서 느린 의사결정 시스템은 안된다. 그 점에서 미국이 앞서 나가고 있다. 일본은 컨센서스나 사전 교섭과 같은 종래의 시스템으로는 대응할 수 없으며, 뒤떨어지고 있다. '일본도 겨우 메이지유신 이래 계속해서 온 체제의 변혁기에 들어갔지만, 더 바르게 개혁을 진행시키고 있는 나라에서 보면, 상대적으로 움직이고 있지 않다고 할까, 후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쓴 루이스 캐롤은 앨리스가 거울의 나라에 들어가서 자신은 앞으로 가고 있는데 주위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게 되는 우화를 썼는데, 마치 지금 일본이 이러한 상황에 빠져 있다.' --일본이 변혁의 물결에 따라갈 수 없다면? '이 나라의 저력을 믿고 있고, 위기의 용수철만 움직이면 이러한 상황은 2020 년까지는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려면 일본 전체가 사태의 심각함을 깨닫지 않으면 안되는데, 그 위기감은 아직 희박한 것 같다.' '변혁이 느리기 때문에 그 폐해가 나오고 있다. 특히 마켓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97 년초부터의 주가하락은 어떤 의미에서는 '일본 매도'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주가가 내려가고 있는 것은 불량채권 대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일본이 문제의 해결을 미루어 왔기 때문이다. 해외의 투자가는 냉정하게 판단하고 있어, 앞으로도 시장이 폭력적으로 반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대형 은행을 포함하여 은행의 재편성이 가속도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왜 미국이 앞서 나가고 있는 것인가? '세계에 앞서서 사회 시스템을 변혁하고, 그 위에 블랙 홀과 같이 전세계에서 인재, 지식을 흡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의 성장에는 한계도 있는데. '미국 스탠포드 대학의 쿨그맨 교수는 '아시아의 경제성장은 단순한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단정을 내렸지만, 이 지적은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도입하지 않은 이노베이션은 많다. 마하티르 수상이 이끄는 말레이시아는 재빠르게 멀티미디어에 의한 사이버 공간을 의식한 실험도시를 만드는 등 지도자에게 리더쉽이 있다. 화교 네트워크도 매력적이다. 정보혁명과 글로벌화 속에서 빠른 결단의 구조가 유리해진다. 2020 년에 아시아는 미국과 같이 세계의 큰 중심으로 되어 있을 것이다.' --변혁이 늦어지면 일본이 안고 있는 문제는 커지는데. '두려운 것은 일본에서 자금이 없어지는 것이다. 경상수지도 적자가 될 것이고, 노령인구의 증가로 저축률이 급속히 저하되어 갈 것이다. 일본의 가계저축률은 85 년의 약 16%에서 2020 년에는 10% 정도까지 떨어질 것이다. 이것은 일본의 잠재성장력을 크게 끌어내리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다.' --시민의 생활도 크게 변할 것인가? '대폭적인 엔화하락이라는 상황도 있어 종래 형태의 수출은 흑자가 되겠지만, 여러 가지 분야에서 수입에 의지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하는 사정을 생각하면 (수입물가의 상승으로) 생활수준도 떨어질 우려가 있다.' 효율추구의 미국이 모델 --리차드 쿠 씨(노무라종합연구소 수석연구원, 닛케이 2020 년 위원회 위원 --선진각국의 구조개혁이 진행되는 방향을 어떻게 보는가? '일본은 규제완화나 시장개방에 대한 대응에서 미국보다 10 년, 부분적으로는 20 년이나 늦고 있다. 독일이나 프랑스도 미국에 15 년 정도 늦게 변화의 필요성을 알아차리고 최근 1__2 년간에 상당히 변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은 80 년대에 철저한 규제완화와 시장개방을 진행시켜 노동시장의 구조도 일단 백지로 되돌려 재구축하였다. 당시, 미국의 '레이거너믹스'나 영국의 '대처리즘'도 비판을 받았지만, 지금은 나쁜 인상이 없다.' '미국에서는 재정적자를 오히려 압력으로 삼아 정부를 바꾸었다. 결과적으로 실업률은 내려가고, 통화가 강세를 보여도 경제성장을 계속할 수 있었다. 잔지 자산을 가진 사람은 풍부해지고 있지만, 국민의 80%는 변혁의 과정에서 벗어나 생활수준이 향상되지 않았다.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는 일본의 2020 년을 생각하는 데 있어 주목하여야만 할 점이다.' --미국, 영국은 앞으로도 계속 일본의 본보기가 될 것인가? '아메리칸 스타일이라는 것이 전세계에서 보편적이 되고 있다. 2020 년에 이르러서도 효율을 추구하는 (미국식의) 방향으로 전부가 계속 움직일 것이므로 일찍 보조를 맞추는 편이 좋을 것이다.' '일본의 바로 뒤에는 아시아가 뒤쫓아 오고 있다. 특히 대만의 하이테크 기업은 미국에서 유학한 사람들이 대략으로 되돌아오고 있고, 완전히 미국 스타일이 되어 있다. 기술자뿐만이 아니라 미국인의 재무담당자도 있어, 전세계에서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그에 비하면, 일본기업은 아직도 지역적(local)이다.' --세계인구의 급증이라고 하는 제약요인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선진국의 경제성장은 상대적으로 둔화되는 것은 아닌가? '단순히 현재의 연장선상에서 2020 년을 보아서는 안된다. 시장경제가 계속되는 한, 문제가 생기더라도 기본적으로는 시장이 해결해 준다. 예컨대 식량난이 되면 음식물 값이 오른다. 그렇게 되면 자동차 공장보다도 식량 공장의 건설이 우선되고,
바이오테크놀로지 등 신기술의 응용도 이루어지게 된다.' '일본은 (구조개혁이 단행되면) 2 자리수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할 가능성이 어느 나라보다도 남아 있다. 미국 등은 이미 규제완화나 시장개방이 진행되어 있기 때문에 어지간한 기술혁신이 없으면 큰 변화는 일어나기 어렵다. 그러나 규제를 남겨 온 일본은 반대로 개량의 여지도 크다. 덧붙여 소비자가 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요환기도 하기 쉽다.' '일본의 성장은 국제적으로도 전면적으로 환영받을 것이다. 내수확대에 의해 타국도 일본시장에 상품을 판매하기 쉽게 되어 시샘을 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일본의 구조개혁은 해외에도 영향을 줄 것인가? '일본이 정말로 시장을 개방하여 일본에서도 미국과 같은 가격으로 물건을 팔 수 있게 되면, 세계의 경제지도는 변할 것이다. 지금은 일본도 아시아도 미국시장에서 벌고 있고, 미국시장 없이는 하루도 살아가기 힘들다. 그러나 일본이 미국적이 되어, 코스트 다운에 성공한다면, 아시아에서의 발언권도 단숨에 높아질 것이다.' '2020 년이 되어서도 일본기업이 진실된 의미에서 글로벌화되지 않았을 때에는 대만의 기업과 연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나쁘게 말하면 하청이다. 일본은 기술은 가지고 있으니까, 무엇을 만들면 좋을지, 마켓은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글로벌화한 대만기업에게서 배워야 한다. 그 시점에서의 일본의 힘에 맞는 선택지를 생각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부의 정리, 정치 책임으로 --야마구치 지로 씨(홋카이도대학 교수, 닛케이 2020 년 위원회 위원) --일본의 구조개혁을 정치가 주도 할 수 있는가? '일본이 이대로 개혁에 손을 대지 않고 있으면, 사회가 스스로 붕괴될 우려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기저기 돈 부리기 형태의 예산 편성에도 국민은 크게는 반응하지 않고, 선거의 투표율도 낮다. 이것은 국민의 의식에 대응하는 정치가나 정당이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이대로는 2020 년을 기다릴 것도 없이, 정당정치, 의회정치의 지반이 점점 침하되어, 국정선거의 투표율도 지방선거와 같이 30%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게 될지도 모른다.' --애당초 국민들 사이에 불안이 강하지 않기 때문은 아닌가? '장래에 대한 불안감이나 공포심이 국민들 사이에 퍼지면, 종래의 정치, 경제 시스템을 수정하는 방향의 움직임이 나올 가능성은 있다. 단지 은행이 파탄을 맞아 (예금자가)손해를 이는 것과 같은, 실제로 큰 벽에 부딪쳐 쇼크를 받지 않으면 변화의 길을 쫓아가지 않을지도 모른다. '연금의 문제에서도 젊은 세대는 '보험료를 지불하더라도 연금을 받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보험료를 지불하지 않는 운동이 일어날 것 같지도 않고, 어떻게 하면 좋은가 하는 논의도 여간해서 진행되지 않는다. 이것은 정의감은 있더라도 당면의 생활에 어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행정에서도 위기를 의식하고 있는 관료는 있지만, 지금까지의 '큰 정부'라는 부의 유산을 정리하는 개혁은 행정 자신의 손으로는 할 수 없다. 정리하여야 하는 방향을 행정에게 제시하는 것은 원래 정치의 사명으로, 그 선택지를 보여주지 않으면 정당정치는 살아 남을 수 없을 것이다.' --변화의 조짐은 보이는가?
'구미에서는 정체기라는 위기를 기반으로 하여 권력의 자리에 앉아 개혁에 나선 레이건 전미국대통령이나 대처 전영국수상의 예가 있다. 그러나, 일본의 정치가는 위기를 자신의 비즈니스 기회로 삼을 뿐, 지도력이 없다.' '행정이나 재정을 개혁이 필요한 상태까지 악화시킨 책임을 생각하면, 어떤 정장도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없다. 개혁을 부르짖고 있는 현재도, 정당이 내거는 간판과 선거구의 구래의 시스템이 엇갈린다. 요컨대 총론에 있어서의 개혁추진과 각론에 있어서의 지방 서비스라는 모순된 패키지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행정개혁이나 외교라는 당면의 최대과제를 둘러싸고 정당이 이합집산하면 정치도 변하겠지만, 그 템포는 느리지 않은가? 또 선거의 (당선의) 허들이 높아 진실된 의미의 개혁을 목표로 하고 있는 사람이 정치의 세계에 참여하기 어려운 면도 있다.' --2020 년을 바라보며 사회의식은 변하겠는가? '지금부터의 고령화사회에서는 약자의 연대의식이 필요하게 된다고 생각하지만, 연대의식을 높이는 것은 점점 어려워지는 것은 아닐까? 사회환경이 나빠지면 나쁜 자기중심주의가 만연될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교육문제도 심각하다. 교육개혁은 민주주의를 짊어질 시민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하는 문제와도 이어진다. 지금의 학교교육은 사외의 현상이 이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전제에 서 있고, 그것이 사회를 고정화시켜 버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지금까지 놓쳐버린 교육문제는 향후 커다란 정책과제가 될 것이다.' 일본의 폐쇄적 제도 불만 --퀘크 렌벤 씨(싱가포르 홍륭그룹 회장) 퀘크 렌벤 씨:싱가포르의 대화교재벌인 홍륭그룹 회장, 1941 년생. 런던대학 법학부 졸. 창업자인 아버지 홍풍 씨(고인)로부터 84 년에 회장직을 이어받음. 홍풍 씨 시대의 홍륭은 미쓰이물산 등 일본계 기업과의 제휴로 일본에 알려졌다. 렌벤 씨는 호텔사업에 적극적으로 뉴욕의 프라자 호텔 매수로 화제를 모았다. 일본경제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어쨌든 해결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하시모토 수상은 리더쉽을 서서히 보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업이나 개인 자산의 방대함은 세계에 그 예가 없다. 하이테크의 개발이 계속되면 생산성도 향상된다. 전기, 자동차 등의 선진성도 큰 사업기회를 만들어 낼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일본의 시스템으로는 당국이 대책을 내는 데 시간이 걸린다. 기업의 경우도 working executive(실무를 하는 관리직)가 지나치게 많다. 기업내의 계층도 많아 그 속을 보고서가 돌아다닌다. 구미기업은 상급관리직에게 결정권이 주어져 있고 의사결정은 훨씬 빠르다. 우리들이 본 일본의 시스템이나 세법은 대단히 구식이고 불확실하다. 우리들이 본 일본의 시스템이나 세법은 대단히 구식이고 불확실하다. 우리들이 일본에 진출하는 경우와 일본기업이 싱가포르에 진출하는 경우를 비교하면, 후자 쪽이 훨씬 용이하다. 일본에서는 많은 경우 폐쇄적인 비즈니스 서클 안에서 일이 진행되어 우리들이 파트너로 참가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 일본의 현행의 캐피탈 게인(자산양도차익) 과세도 우리들에 있어 타당하다고는 할 수 없다. 아시아의 부유한 실업가는 이미 구미로는 진출을 마쳤다. 세법이 개정되면 대일투자의 매력은 크게 늘어난다. 우리들은 일본의 제조업에 투자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필요한 것은
5,000 만__1 억 달러 정도를 투자할 수 있는 적당하고 좋은 회사이다. 뛰어난 기술을 얻어 그것을 중국이나 싱가포르에서 쓸 수 있다. 그러나 지금 구체적으로 매수를 생각하고 있는 기업은 없다. 일본의 시스템이나 전통적인 기업경영방침을 생각하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지금 가장 용이한 것은 부동산 취득일 것이다. 단지, 일본의 주식시장이 아시아 기업의 상장에 문호를 연 것은 환영하고 있다. 더욱이 시장이 열려 인수에서 일본 증권회사의 완전한 협력을 얻을 수 있으면, 해외기업에게는 상장의 호기가 된다. 우리들은 물론 장래 일본에서의 상장도 생각하고 있지만, 지금은 아직 그 시기가 아니다. 불만인 것은 일본의 기업 수뇌와 만날 기회가 불충분한 것이다. 미국 톱 비즈니스맨은 아주 빈번히 싱가포르를 방문한다. 최근에는 유럽기업도 대표단을 구성하여 방문하였고, 이 지역의 잠재성을 인식하고 간다. 그러나 일본의 수뇌는 빈번히 오지도 안고, 상대가 사업 파트너가 아닌 이상 그 고장의 톱 비즈니스맨과 만나는데 소극적이다. 일본기업이 아시아 사업을 진행시키는 방법도 변하여 왔다. 10__20 년 전에는 많은 기업이 현지기업과 조인트 벤처(Joint Venture)를 세워 진출하였었다. 지금은 단독사업 쪽을 좋아한다. 물론 이미 해외에서 긴 역사를 가지고 발판을 굳힌 일본기업도 있다. 그러나 미얀마나 중국 등에 진출하는 경우, 리스크를 분산시키기 위해서 싱가포르나 홍콩기업과 합작하는 편이 도리에 맞는다고 생각한다. 화교실업가는 자금력을 축적하여 왔지만, 여전히 기술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 2020 년을 바라보면, 화교와 일본기업이 합작하여 제 3 국으로 진출하는 3 자간 제휴가 유효할 것이다. --지역통합, 세계에서 확대 칼 합스브르크 씨(유럽의회 의원) 칼 합스브르크 씨:오스트리아 선출 유럽의회 의원. 1961 년 독일생. 합스브르크 제국 최후의 황제 칼 1 세의 직계 손. 68 년부터 오스트리아에 거주. 잘스브르크 대학, 미국 미시간 대학 졸업. 96 년 가을 오스트리아의 연립여당인 국민당(보수당)으로 입후보하여 당선, 부친 오토 씨도 독일 선출의 유럽의회 의원. 동생 게오르그 씨는 헝가리의 유럽통합 문제 담당의 특명전권대사. 2020 년을 향하여 유럽통합의 흐름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통합의 확대는 후퇴도, 포기도, 멈추어 서기도 있을 수 없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이고, 그리고 철학적이기도 한 과정인 것이다. 지역통합의 움직임은 세계의 다른 지역으로도 퍼져간다. 아시아, 특히 동아시아에서 일본은 지역간의 협력관계를 발전시키는 데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짊어지고 있다. 이 지역에서 유럽과 각국간의 상호협력이 발전하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생각된다. 중국이나 북한 같은 사회주의국가를 보더라도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의 원인이 전망이 있다. 확실히, 현재의 일본은 이 지역에서 지역통합을 향한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일본은 반세기 전에 군사적 영향이 강한 나라와 결별하고, 경제적 영향력이 강한 나라로 발을 내디뎌 그것을 실현하였다. 단지, 이러한 경제적 영향력은 그것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지역 협력을 촉진하는
정치적 파워가 될 대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일본에 지금 그러한 역할을 담당할 강한 정치적 의사가 없더라도 아시아에서는 일본 이외에 지역협력을 추진할 능력이 있는 나라는 없다. 일본이 축이 되는 것은 필연이다. 한반도는 2020 년까지는 통일될 것이다. 분단국가는 불가피하게 통일된다. 독일 통일의 경우는 평화적이고 적극적인 방법이었다. 북한에는 강력한 군사력이 있다. 그러나 나는 낙관론이다. 전체주의국가는 시대에 뒤떨어져 있고, 장기적으로 지속되지 않는다. 통일의 과정은 벌써 시작되고 있다고 하여도 좋다. 일본에는 한국과의 사이에서 여러 가지 곤란한 면이 있다는 것도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이웃나라와의 문제는 유럽에도 있다. 독일과 프랑스가 역사적인 관계가 그랬었다. 유럽통합은 이 독일, 프랑스의 화해가 기본적인 힘이 되어 추진되어 왔다. 오랫동안 알려져 온 국가의 주권개념은 크게 변화하고 있다. 국가는 2020 년에도 존재하지만, 종래의 의미로서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이웃나라와 관계없이 생존하고 활동할 수 있는 완전한 독립국은 지구상 어디에도 없다. 일본이 직면하고 있는 고령화사외의 문제는 유럽에도 공통된 문제이다. 과거 20__30 년의 사회구조가 앞으로도 똑같이 계속될 수는 없다. 우리들은 장래를 다시 보지 않으면 안되는 단계에 이르러 있다. 그러나, 올바른 처방전은 아무도 가지고 있지 않다. 유럽에서는 현재 만연하고 있는 중절 등의 조치에 대하여 재검토하고 있는 종교적인 가치관이 가정이나 사회에서 높아질지도 모른다. 일찍이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을 통치한 합스브르크 제국이 부활하는 것인가 하는 질문을 많이 받지만, 전혀 불가능할 것이다. 단지, 군주제에는 여러 가지 아치에 들어맞는 아이디어도 있다. 인권이나 소수민족 등의 문제는 다른 민족을 다양하게 끌어안아 온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에서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예컨대, 지금도 구제국이 있었던 대도나우 지역은 문화적으로는 통합된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화의 분야에서의 구제국의 '재건'을 근대적인 방법으로 생각하면 어떨까? 반드시 부정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문화, 창조로 강국지향을 --이인제 씨(한국 경기도 지사) 이인제 씨:1948 년 충청남도생. 72 년 서울대학교 법학부 졸. 판사, 인권변호사를 거쳐 88 년 국회의원에 처음 당선. 노동부장관 등을 역임하고 95 년 통일지방선거에서 민선의 경기도 지사에 당선. 김영삼 대통령과는 구통일민주당 시대부터의 측근으로 97 년 12 월의 대통령선거에서는 여당인 신한국당의 후보자 중 한 사람으로 거론되고 있다. 2020 년의 미래상이라고 하는 것은 세계정세가 어떤 방향으로 변하여 가는가? 그 속에서 정부와 국민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물론 일본이 세계에서 가장 고령화되어 경제의 활력이 떨어질 것이라며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과 같은 산업사회가 계속된다고 하는 전제에서 예상되는 결론일 것이다. 향후에는 지식과 정보, 창조력이 중요하게 되어, 결국은 일본이 국민의 창조력을 어느 만큼 활성화하고, 그를 위한 사회 시스템을 만드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메이지 유신으로 봉건 사회에서 근대국가로 변한 경험을 가진 나라니까, 큰 변혁기에 어울리는 개혁을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일본은 지금 높은 기술력과 산업경쟁력, 자본력을 가지고 있지만, 문화나 창조력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말하자면 경제대국이지만, 문화대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적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일본은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싫어하는 폐쇄적인 정책을 추구하여 왔다. 일본이 개방을 통하여 세계의 가치와 사상을 받아들여 문화강국을 지향하여 간다면 일본의 미래는 비관적인 것이 아니다. 2020 년에는 아시아도 크게 변해 있을 것이다. 나는 한국통일은 2020 년보다 일찍 실현된다고 생각한다. 중국이나 말레이시아, 타이, 베트남을 비롯한 인도차이나 반도, 인도네시아나 필리핀 등은 활기에 넘치는 경제성장을 하고 있을 것이다. 특히 중국은 상당히 다원적인 변화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유럽연합(EU)이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보조를 맞추어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회의(APEC) 등도 더 강한 공동체로 발전한 모습을 보일 것이다. 일본이나 통일된 한국, 중국, 동남아시아가 그 속에서 서로 협력하면서 번영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일본은 거기서 주도적인 역할을 다 할 것이다. 단지, 거기에는 전제조건이 있다. 아시아의 나라들로부터 일본이 신임을 받지 않으면 안된다. 멀지 않은 과거에 일본이 침략한 어두운 그림자를 지우지 않으면 안된다. 또 하나는 경제력에 어울리는 국제적인 기여를, 특히 아시아의 빈곤한 국가에 대하여 하지 않는다는 불만을 해소하지 않으면 안된다. 한일관계가 나빠질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한국도 무조건 과거의 어두운 역사에 집착하거나, 식민지시대에 대한 열등감 때문에 일본과 협력할 수 없다고 하면 안된다. 일본이 더 중요한 역할을 다 하여 주면, 미래의 큼 발전을 위한 협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이 통일하는 고정에서 일본이 대국적인 입장에서 협력해 주면 좋다. 나는 일본 전문가가 아니다. 그러나 편견없이 일본을 보려고 노력하여 왔다. 일본과는 역사적으로도 뗄레야 뗄 수 없는 긴밀한 관계가 있다. 몇 번이나 일본을 방문하였는데, 왜 그런지 고립적이고 폐쇄적인 것을 느낀다. 어떻게 된 일인지 잘 모르겠다. 일본은 이제 세계 초일류의 경제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자신을 가지고 세계에 문호를 열고 수준이 높은 문화를 창조하여 세계에서의 지위에 맞는 역할을 아시아의 국가들에 다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산업경쟁력, 미국이 우위 --더그 비라이트 씨(미국 하원 아시아태평양 소위원회 위원장) 더그 비라이트 씨:미 의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공화당 의원의 한 사람. 네브라스카주 요크 출신. 1939 년생. 61 년 네브라스카대학 졸업 후 병역,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연구, 네브라스카주정부 근무 등을 거쳐 79 년부터 하원의원, 94 년 아시아태평양 소위원장에 취임. 공화당 안에서는 온건파에 속한다. 열심히 연구하는 의원으로 유명하며, 금융개혁 문제나 오키나와 문제, 아시아의 안전보장 문제 등에 대하여 수많은 공청회를 주최하였다.
자기가 태어나 자라지 않은 나라의 장래를 예측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다만, 고령화사회의 도래를 생각하면 일본에 관해서 한 가지 분명히 말할 수 있을 것이 있다. 그것은 국민, 특히 고령자를 대하는 사회보장서비스를 유지할 수 있는지 어떤지에 대해서 엄격하게 자기분석(soul searching)하여 의사 결정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고령화는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미국의 경우, 여전히 대량의 이민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들은 사회에 새로운 에너지를 가져오고, 물론 세금을 낸다. 그들에 의해서 인구 피라미드는 보다 정상에 가까운 형태가 유지된다. 고령화사회의 도래를 생각하면, 일본에도 이민을 더 받아들이는 것 같은 압력이 있어야 한다.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하지만, 만일 일본이 사람의 면에서도 개방하면 그전의 전통을 타파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보장 서비스가 유지될 수 있을지 어떤지는 일본경제의 우위가 계속 될 수 있는지 어떤지에 달려 있다. 일본은 자원이 없는 대신, 사람들의 기술이나 교육수준의 높이에 의해서 세계가 요구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여 왔다. 그러한 기술이나 교육수준이 이제부터 저하하여 일본경제의 활력이 약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시아지역 각국으로부터의 경제적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경제의 활력과 경쟁력을 유지하기 의해서는 일본은 이제부터 무엇을 하여야 하는 것일까? 그런 의미에서도 엄격한 자기분석이 필요한 것이다. 정보화의 흐름 속에서 미국의 산업은 경쟁력을 회복하여 유럽이나 예산삭감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기초연구에 대량의 물적, 인적자원을 투하하여 왔다. 일본경제가 2020 년에 가서 경쟁력을 유지하고자 하면, 지금까지의 미국과 같이 기초연구에 주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한 연구야말로 장래의 경제를 지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역할에 대해서도 다시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특히, 관료와 정치가의 힘의 균형을 잡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일본의 대해서 언제나 놀라게 되는 것은 관료의 강대함이다. 일류대학의 우수한 인재를 모았기 때문에 관료의 세계는 높은 질을 유지하여 왔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강대한 관료가 개혁에 저항하여 국회나 수상이 목표로 하는 방향에 따르지 않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일본이 이제부터 개혁을 진행시키려면, 관과 정의 균형을 취하지 않으면 안된다. 아마, 관료가 강대하다는 문제와 관련되어 있을 것이지만, 얼마 전의 다이와은행 사건 대, 정보의 공유 등에 대한 대장성의 자세에는 의문이 생긴다. 일본의 금융자산은 거대하고, 그런 만큼 당국의 자세고 세계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일본, 아시아 대등한 관계 라피드 아지즈 씨(말레이지아 상공부 장관) 라피드 아지즈 씨:1943 년생. 말라야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 동대학의 강사를 거쳐 정치활동을 시작. 31 세에 최연소 주의회의원. 78 년에 국회의원에 당선. 80 년에는 공공기업 장관, 87 년부터 통상부 장관. 여당인 통일말레국민조직(UMNO) 부녀부장 등을 역임하였다. 마하티르 수상의 숨겨진 딸이라는 소문도 있으며, 국제회의에서는 '발전도상국의 대변자'로 활약하고 있다.
2020 년에는 어떤 나라가 세계, 아시아를 이끌고 있을까?--아무도 리더의 등장 따위는 바라고 있지 않다. 그 때까지는 많은 나라가 충분히 발전하여 대등한 파트너로서의 자각을 가지게 될 것이다. 2020 년의 시점에서 사람들이 '당신이 리더'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래도 생각할 수 없다. 또한, 지역의 독자성이 강해져 말레이지아는 단순한 말레이지아가 아니라, 동남아시아 제국연합(ASEAN), 동남아시아의 말레이시아가 된다. 일본도 그 시점에서는 (아시아에서의) 유일한 경제대국이 아니게 된다. 예컨대 ASEAN 은 경제실체로서의 존재가 되어 일본은 동아시아라는 경제실체 중의 일국이라는 위치를 부여 받게 된다. 중국도 지역과의 경제의존도가 늘어남에 따라 지역을 의식한 움직임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일본은 선행하는 많은 분야에서 계속 (아시아에서의)지도자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지도력이라는 의미에서는 2020 년에는 일본과 다른 아시아제국 사이에는 '대등하다'는 사고방식이 태어난다고 생각한다. 일본이 노령화 등에 따른 사회문제, 노동력이나 구매력의 활력결여 등 곤란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은 알고 있다. 단지, 일본은 아시아의 일본으로 우리들과 같은 나라와의 의존관계를 강화하는 것은 일본의 역동성 창출에 크게 도움이 될 거 이다. 청년노동력이 부족하면 국외로 눈을 돌리면 된다. 해외로 나간 일본기업이 수익을 일본에 환류시키면 정부자금에 일조가 될 것이다. 그 때는 일본의 무역의 구조도 크게 변한다. 일본기업의 해외이전이 진행되어 말레이시아, 베트남, 캄보디아 등 해외로부터의 수출이, 일본으로부터의 직접수출을 상회한다. 통상면에서도 (일본을 둘러싼) 시나리오가 변할 것이다. 일본에서는 정치가가 관료를 제켜두고 의사결정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수법이 정치안정의 한 원인이 되고 있지만, 만일 관료가 세계의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없으면, 일본은 위기적인 상황이 된다. 일당지배체제로부터 크게 변화하고 있지만, 일본 정치가의 본연의 자세는 변하지 않고 정치가와 관료의 관계도 변하고 있지 않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집권당의 정부가 기본정책을 경정하고, 관료는 그것을 실행한다는 구별이 명확하다. 물론, 관료는 보다 좋은 정책이 되도록 조언은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여당 정치가가 최종책임을 진다. 일본의 정치가는 가엾다고 생각한다. 나는 각종의 국제회의에 출석하지만, 일본의 각료는 (임기가 짧아) 그 때마다 멤버가 바뀐다. 회의에서는 듣는 것만으로 끝나 버린다. 상공부 장관을 10 년간 종사하고 있는 나에게는 타국의 각료와 개인적인 관계를 쌓는 것은 간단하지만, 일본의 각료의 임기는 충분하지 않다. 다른 사람이나 관계자가 나오는 회의에 항상 출석하는 것은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관료가 정치가 대신에 일을 떠맡는 것도 이러한 배경이 있다. 일본에서는 정치가가 관료에게 종속되어 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이것은 (일본이) 선택한 시스템이다. 우리들은 일본의 문화 위에 선 정치체제를 평가할 입장은 아니다. 제 3 장 질주하는 자본주의 1. 신세기에는 지구 규모의 경쟁 --부를 낳는 '지식'이 주역으로 냉전에서 승리한 자본주의가 새로운 진화를 위하여 질주하기 시작하였다. 자본이
국경을 자유자재로 넘나들고, '공장' 대신에 '지식'이 경제의 주역이 되어 부를 창출한다.--2020 년에는 확실히 그러한 자본주의시대가 된다. 일본은 공업화시대의 성공체험 때문에 오히려 낡은 껍데기를 벗어 던지지 못하고 있지만, 세계각국은 21 세기를 바라보며 시행착오를 거치면서도 개혁을 서두르고 있다. 지구 규모의 성장게임 시대가 막을 올렸다. 국경을 넘는 거대한 자본 도쿄 가부토초의 도쿄증권거래소. 1 층 견학자 로비에 남녀 4 사람 모습의 청동상이 서 있다. 쇼와 공황이 한창이던 1931 년, 도쿄증권거래소는 농업, 공업, 상업, 통신 등 4 가지 산업의 재건, 발전을 기원하며 콘크리트로 동상을 만들어, 구본관의 현관돔을 삥 둘러싸도록 만들었다. 88 년 개축할 때, 거래소는 이것을 청동상으로 다시 만들어 로비에 설치하였다. 60 년 이상 일본의 자본주의와 나라의 성쇠를 지켜 본 4 체상. 지금 그들은 모습을 크게 바꾸고 있는 자본주의를 목격하고 있다. 영미를 대표하는 전화회사 브리티시 텔레콤(BT)과 MIC communications 의 합병이 결정된 96 년 11 월, 통신업계에서는 한 가지 소문이 퍼졌었다. 'BT 의 황금주식에 대하여 미국정부가 조건을 붙여 합병이 늦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황금주식이란 '여왕의 주식'이라고 불리며, 영국정부가 가지고 있다. 단 한 주에 불과하지만 외국자본의 매수를 거부할 수 있는 등 강력한 권한이 주어져 있다. 미국측에서 보면, 매수되는 MCI 도 '영국의 회사'가 될지 모른다. 미국정부가 가만히 이를 인정할 리가 없다.--이것이 소문의 근거였다. 지금까지 세계 각국은 안전보장이라는 관점에서 통신기업에 대한 외국자본의 출자를 제한하여 왔다. 미국과 영국은 이 규제를 연달아 철폐하였기 때문에 이번의 합병이 가능하게 되었지만, 그 두 나라도 새로운 합병회사의 '국적'에는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미국과 유럽을 뛰어넘는 거대한 국제자본이 국익을 무시하고 기업의 이익만을 추구하기 시작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한 자본의 논리에 대한 경계심이 서서히 떠오르고 있는 것 같다.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세계의 자본이 국가라는 멍에를 벗어 던지고 자유자재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국민국가를 전제로 한 19 세기, 20 세기형의 자본주의는 성립되지 않는다. '라인형 자본주의'라고 불리는 노사협조노선의 독일도, 정부주도로 개발자본주의를 진행시켜온 아시아도, 그리고 일본도 예외가 아니다. 이러한 움직임을 리드하는 것은 지식산업이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의 Window 95 와 같이 하루 밥 사이에 세계시장을 제패하는 예도 나오고 있다. 탈공업화로 효율 추구 선진 각국은 2020 년에 이르면 본격적인 지식사회를 맞이하게 된다. 공업은 하이테크를 중심으로 계속해서 큰 비중을 차지하겠지만, 제품의 판매는 소프트가 좌우한다. 닌텐도가 96 년 여름 발매한 게임기 'NINTENDO 64'는 삼차원 화상 등 기술의 진수를 모은 최첨단제품이라고 하지만, 소프트 부족으로 인기는 별로 높지 않다. 지식사회에서는 대량생산의 시대와 달리 공장의 설비나 기계보다 '인간자본'이
부를 창출한다. 우수한 인재를 얼마나 확보하고 있는가가 기업의 우열을 결정한다. 네트워크용 프로그래밍 언어를 개발한 미국 썬 마이크로 시스템즈. 95 년 후반부터의 주가상승으로 라이벌 기업으로부터도 인재가 모이기 시작하였다. 주가가 오르면 자사주를 팔아 큰 수입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스톡옵션(stock option)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수익력을 높이고 자본의 효율을 올려야만 인재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일본에서 이러한 자본의 논리를 실천하고 있는 회사로 소프트뱅크가 있다. 94 년 7 월의 장외시장 공개 이래, 약 5,000 억 엔을 공모증자나 사채로 조달하여 정보기업의 매수 등에 투입하여 왔다. '미국에서 기채하면 조달금리가 7__10%'(손정의 사장)에 이르는 보통사채는, 일본에서는 1__3%대의 저이율로 발행할 수 있다. 그것을 고수익의 미국기업 매수에 투자하여 운용수익을 올려 왔다. 국제적인 재정거래(arbitrage)가 가능한 것은 일본의 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내려와 있기 때문이다. 지나친 고용과 투자의 부재로 허덕이는 일본기업. 수익력을 경시하는 전후 일본형 모델의 왜곡이 초저금리를 낳았다. 그것을 간파한 소프트뱅크의 전략은 일본이 2020 년의 자본주의로부터 벌리 떨어져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일본 모델도 공업화시대에는 적중하였다. 집단주의나 시장점유율 중시는 제품의 품질을 높이고 가격경쟁력을 가질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후기공업화시대의 입구에 서 있는 지금, 이 모델은 경쟁력을 잃었다. 95 년, 게임을 제외한 소프트웨어의 무역수지는 수입액이 3,926 억 엔으로 수출의 약 100 배에 달하였다. 성공체험 때문에 망설이게 된다 21 세기의 자본주의에 대하여 지나친 두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거대한 국제자본이 출현하면 경쟁이 제한될 가능성이 있고, 주주에 비하여 종업원에 대한 이익분배가 경시되면, 실업이나 소득격차의 확대로 이어진다. 지식사회에서는 정보수집력의 차이로 순식간에 우열이 결정되어 새로운 빈부의 격차를 낳게 될 것이라는 지적도 많다. 후기공업화의 선두를 달리는 미국의 방황도 거기에서 비롯되고 있다. 97 년 1 월, 스위스의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 경제포럼에서 서머스 미 재무부장관은 '많은 아이들과 젊은이들이 번영으로부터 소외되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새로운 자본주의의 마이너스 부분을 인정하였다. '2020 년에 선진국의 일원이 된다'는 국가 비전을 내걸고 있는 말레이시아는 미국 등 선진국의 경험을 보고 국가발전계획에 사회적 공정의 실현도 추가하였다. 전세계가 고민하면서 새로운 자본주의를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이토 모토시게 도쿄대학 교수는 '기업활동이 국가의 틀을 뛰어넘어 활동하고 있는 이상, 유럽에서와 같은 지역통합의 움직임이 나올지도 모른다. 시장의 마이너스 부분을 보충하기 위한 규칙(rule)을 만드는 것도 과제이다.'라고 말한다. 자본주의가 나날이 그 모습을 바꿔가고 있는데, 일본은 공업화로 정점에 섰던 체험이 있기 때문에 전후 모델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 나라는 언제까지 그냥 서 있을 것인가?' 자본주의 진화의 역사를 목격하여 온 도쿄증권거래소의 4 체상은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2. 쌓아 올린 국부
--'이자'를 찾아 해외로 절반 이상이 예금으로 글로벌 시장을 돌아다니는 자금(money). 외환시장에서는 하루에 약 1 조 6,000 억 달러가 거래되고, 주식, 채권, 금리 등 다양한 시장이 서로 연동되는 재정(arbitrage)의 네트워크로 맺어져 있다. 방대한 자본의 흐름이 '질주하는 자본주의'를 지탱하고 있다. 그 흐름을 낳은 자본축적의 한 기둥이 1,200 조 엔에 이르는 일본의 개인 금융자산이다. 전후의 페허 속에서 쌓아 올린 이 국부를 배경으로 일본은 금융대국을 지향하였지만, 거품의 붕괴로 꿈은 사라졌다. 2020 년의 고령화사회를 짊어질 재원이기도 한 이 금융자산은, 역사적인 초저금리 속에서 절반 이상이 '이자'를 거의 받지 못하는 예금에 틀어 박혀 있다. 영국 런던에서 철도로 1 시간 반 걸리는 글로스타샤주의 작은 비즈니스 센터에서 나가다 씨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는 채권선물이나 금리 스왑을 축으로 하는 헤지펀드(hedge fund)인 Cambridge Financial Products(CFP)를 관리하는 펀드 매니저이다. '때대로 착각에 빠진다. 지금도 메이지 초기와 같지 않은가 하고, 당시 실질적인 은본위제도였던 일본과 금본위제도인 구미 사이에서 현저한 부등가교환이 일어나고 있었다.' 일본기업은 매년도말에 결산대책으로 보유주식을 매각하기 때문에 외자계 금융기관은 그보다 먼저 주식을 팔아버려 시세를 떨어뜨리고, 일본기업이 매각할 때 다시 싸게 사서 쉽게 돈을 번다. 나가다 씨의 우려는 '이익내기' 등 세계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방식이 태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도쿄시장의 구조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수준과 동떨어진 금은교환비율을 고집하여 일본으로부터의 대량의 금 유출을 초래한 메이지 초기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자본시장을 경원하는 개인자산과는 대조적으로, 외국자본은 용이하게 일본의 부를 국경 밖으로 꺼내간다. 한편 그 외자는 투자자금을 저코스트의 도쿄시장에서 조달하여 손쉽게 돈을 번다. 개인투자가가 무지한 탓만이 아니다. 징세 우선으로 규제를 늦추기 않는 당국, 매력있는 금융상품을 개발할 수 없는 금융기관, 주주보다 노사간의 이익배분을 우선하는 경영자--이것이 초저금리를 지속시켜 외자의 조들을 우리하게 한다. 마루산증권의 가네코 회장은 98 년 봄에 외환법이 개정되어 개인도 원칙적으로 자유롭게 해외투자를 할 수 있게 되면 일본에서 대규모의 자본도피가 일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예금에 틀어 박혀 있는 개인 금융자산이 생각을 바꿔 이율이 높은 해외시장으로 흘러 나갈 것이라는 예측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도 '최악의 시나리오로는 자본도피로 엔이 하락하여 1 달러=160 엔 정도가 되는 것이다. 급격한 엔화하락의 결과 인플레이션이 일어나, 금리가 상승하고 주식시장에서의 외국인 매도를 불러 닛케이 평균은 1 만 엔대가 된다.'(가네코 씨) 일본경제연구센터의 예측으로는 2020 년의 개인금융자산은 2,500 조 엔으로 늘어난다. 예금의 비율은 34%로 저하되고, 주식이나 투신에 대한 투자가 33%(현행 12%)로 상승한다. 그러나, 도쿄 시장의 매력을 높이지 않으면 유가증권투자의 증가분은 해외투자로 향하게 되어 2020 년을 짊어질 국내의 벤처기업 등에는 자금이
돌아가지 않게 될 것으로도 생각된다. 해외로부터의 자본유입증가는 처음부터 기대할 수 없다. 이미 일본주식거래 자체가 비용이 싼 런던시장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당국, 금융기관, 기업경영자들이 모두 투자가 부재의 내부지향 '쇄국사상'을 불식함과 동시에 일본의 재생을 위하여 국부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하는 비전을 제시할 수 없는 한, 개혁으로 앞서가는 미국, 영국 등으로 금융자산이 흘러나가 장기적으로는 국가의 성장력을 꺾어버릴 우려가 있다. 2001 년을 목표로 한 일본판 금융빅뱅(금융개혁)에 대한 기대는 크지만 개혁의 내용이나 방향은 애매하다. '빅뱅은 금융기관만의 문제가 아니다. 경영자가 투자가의 기대에 부응하는 리턴을 내놓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경영자는 자산운용자이기도 하다.'(노무라증권의 다카나시 전무) 이 나라 자본과 경영의 본연의 자세가 문제되고 있다. 국부론을 쓴 아담 스미스의 고향인 영국의 스코틀랜드에는 전통적으로 국제투자에 강한 자산운용회사들이 많다. 대표격인 스코티시 위도우즈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의 R 갈로우 씨는 '일본형 자본주의는 있어도 좋다. 단지, 자산의 효율적 운용을 위해 기업실적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자본시장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세계에서 자본이 집중되고 있는 미국시장은 질주의 스피드가 지나쳐 과열 기미도 있다. 글로벌화가 불가피하다면, 국내 자본시장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임으로써 안정된 자본이 양방향으로 흐르도록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2020 년의 '국부론'은 아직 쓰여지지 않고 있다. 3. 콤파니아 --'지식'으로 향하는 자본 갑자기 없어지는 회사 꽃이 피면 언젠가 갑자기 떨어진다. 그러한 회사가 있다. 도쿄 조후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을 하는 유한회사 파스텔. 경영자인 마츠키 씨는 언제나 사원들에게 '10 년 후에 우리 회사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4 년 전의 창업 이래, 매년 2 억 엔 전후에 이르는 매출은 세금과 경비를 제외하고 전부 11 명의 사원에게 분배하여 왔다. 회사에 쌓이는 잉여금은 없다. 본사 사무실도 없어 언제라도 해산할 수 있을 홀가분한 상태이다. '인재가 자산인 소프트웨어 회사는 한명 한명에게 번 만큼을 환원하여야 하는데, 곰곰히 생각해서 지금의 방법에 이르렀다.' 마츠키 씨는 아무것도 새로운 것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와이 도쿄대학 교수에 의하면, 회사(company)의 어원은 지중해 무역으로 번영을 누리던 중세 이탈리아의 '콤파니아'이다. 빵(파냐)을 함께 먹는다(콘)는 의미이다. 항해할 때마다 회사는 해산되며, 번 돈은 구성원들이 나누어 가진다. 구미에서는 이러한 의식이 남아 있다. 아니 21 세기를 바라보며 오히려 강해지고 있는데, '사업을 매각하여 회사를 해체하더라도, 주주는 축적된 부를 분배하여 되찾고자 한다.'(이와이 교수) 미국의 96 년 M&A(합병, 매수) 금액은 과거 최고치인 6,590 억 달러에 달하였다. 해체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주주는 성숙기업의 주식은 과감히 팔아 버리고 장래성이 있는 기업에 재투자한다. 거기서는 '자본은 부를 보다 많이 낳는
회사로'라는 시장의 자원 재배분 기능이 확실하게 발휘된다. 미국의 신흥기업이 주식의 신규공개로 조달한 자금은 95 년 300 억 달러, 96 년 500 억 달러로 과거 최고 수준에 있다. 주역은 인터넷용 소프트웨어 회사인 넷스케이프 커뮤니케이션즈, 야후 등 지식산업이다. 2020 년을 바라보며 '콤파니아(나눠먹기) 자본주의'가 공업사회에서 지식사회로 경제를 젊어지게 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일찍이 콤파니아시대가 있었다. 다이쇼시대에는 이코노미스트인 다카하시 씨가 '(이익을 상회하는) 부정배당으로 주가를 유지하는 기만 공작'이라고 혹평할 정도의 높은 배당을 하는 기업도 많았다. 전후에는 자금이 부족하기도 하여 기업은 배당을 뒤로 미루게 되었고, 이익을 보유자금으로 남기게 된다. 그것을 배경으로, 주식의 상호보유, 가족같은 고용관행이라는 상호부조 시스템도 만들어졌다. 고도성장기에는 그런 방식도 괜찮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는 86 년의 주식공개 이래 무배당을 계속하고 있지만, 성장을 지속하고 있으므로 사내에 재투자하더라도 부를 창출해 갈 수 있다. 일본 기업도 이와 같은 조건에 있었다. 그러나 탈공업화로 많은 기업이 성숙한 지금, 자본은 잠자고 있다. 빈 껍데기의 미실현 평가이익 토지를 예로 들면, 95 년의 토지보유이익이 많은 상위 10 개사(지가세의 신고액 기준, 금융기관 제외)의 미평가 보유이익을 합계하면 7 조, 6,000 억 엔이었다. 95 년도에 평가이익을 계상하여 이익을 실현하고, 그 기의 배당성향에 따라 배당하였다고 하면, 주주는 10 개사를 합쳐서 3 조 2,000 억 엔을 더 받아야 한다. 이 10 개사는 92 년에 16 조 엔의 미실현 평가이익이 있었다. 같은 방법으로 92 년도에 배당하였을 경우 그 총액은 5 조 6,000 억 엔. 주주가 받았어야만 했던 배당은 땅값 하락으로 1 사당 2,400 억 엔씩이나 사라져 버렸다. 주주에게 언젠가 돌려 주어야 하는 미실현 평가이익은 빈 껍데기와 같다. 매년의 이익환원도 과거보다 많이는 기대할 수 없다. 버블기에는 일본기업의 최강신화를 믿고 증자 러쉬에 응하였지만 성장의 과실은 영영 환원되지 않는다. 이대로 가면 일본의 회사는 결과적으로 '피라미드 판매'와 같이 배당을 기대할 수 없게 되어 버린다. '피라미드 판매 자본주의'로는 자본이 잘 순환되지 않고, 2020 년의 일본을 짊어질 지식산업은 그 싹부터 잘려버릴 우려도 있다. 그렇게 되면 이 나라는 늙어 갈 수밖에 없지만, 기업은 대담한 개혁에 나서기를 주저한다. 건설기계 제조업체인 코마츠는 약 8,000 억 엔의 총자산 중 2000 년까지 10%를 삭감하여 차입금을 반제함과 동시에 주주에게 환원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전주식의 15%를 쥐고 있는 외국인 주주는 '분배가 불충분하다'고 조건을 붙인다. 일본과 같이 주주환원에 무관심하던 독일은 기업이 대담한 리스트럭처링에 착수하여 주가는 최고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1 월 실업률은 12.2%로 고용환경은 전후 최악의 상태이다. 자본의 논리를 방치하였기 때문에 생긴 아픔이지만, 그래도 독일은 달리기 시작하였다. 반면 일본은 실업률이 높더라도 3%정도이다. 그 대신 주가는 주요 선진국에서 유일하게 저조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4. 융합하는 '노', '자' --주식으로 보수, 땀의 의미를 잊어 주식 보유자 2 배로 미국 노동조합의 총본산인 노동총동맹 산별회의(AFL CIO)의 존 스니 회장은 96 년 4 월, 일본에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단체로부터 강사로 초대되었다. 미국 전체의 주요연금 등으로 구성된 기관투자가평의회, 말하자면 자본가의 단체이다. '인원정리나 임금억제는 언제까지나 계속되지 않는다. 그러한 전제로 주가가 오르고 있다면, 그것은 거품이고, 언젠가는 붕괴한다.' 스니 씨는 이렇게 '노'와 '자'가 함께 풍요하게 되는 길을 목표로 하라고 호소하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각할 수 없는 광경이지만, 이것은 자본의 힘이 강해지고 있는 미국의 다른 이면을 보여준다. 주식을 가진 노동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현실이다. 투자신탁을 포함시키면 미국의 주식보유자는 성인의 43%에 달한다. 이 비율은 90 년의 두 배이다. 어디에 투자할까를 종업원이 자기의 책임으로 정하는 기업연금 '401K'도 2,000 만 명 이상이 이용하고 있는데, 그 대부분은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노동자이면서 자본가이기도 하다.--한 사람이 두 가지 얼굴을 가지는 시대이다. '노동자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반영할 뿐만 아니라, 이익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하는 새로운 규칙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AFL CIO 의 상급간부인 린더 샤웨톰슨 씨는 지적한다. 종업원과 주주의 연계 플레이도 볼 수 있게 되었다. 미국 전체에서 백화점을 운영하는 페더레이데트. 고액의 임원보수가 문제가 된 96 년, 어떤 연금기금이 경영진에게 종업원의 소리를 대변하는 형태로 보수를 재검토하라는 요구를 제기하였다. '지식'이 주역이 되는 2020 년의 자본주의에서는, '노'와 '자'는 더 융합되어 간다. 지식산업은 주가 여하에 따라 큰 수입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스톡옵션(stock option, 자사주 구입권)을 종업원에게도 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주가가 오르면 주주도 종업원도 돈을 벌게 된다. 분배상의 이해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느린 걸음의 일본 21 세기를 바라보며 노와 자가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고 있는 미국과 비교할 때 일본의 발걸음은 느리기만 하다. 95 년 4 월, 일본의 노동계를 놀라게 하는 판결이 도쿄지방법원에서 나왔다. 스칸디나비아 항공의 일본지사는 인건비 삭감을 위해 종업원을 일단 해고하고 임금이 싼 덴마크 기준으로 재고용할 방침을 정하고, 이에 응하지 않는 종업원은 해고하겠다고 예고하였다. 그래서 종업원측이 해고금지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지방법원은 '경영이 악화된 회사가 인원정리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판단을 보이며, 순서만 밟으면 사실상의 임금인하도 할 수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판결을 내렸다. 노동문제에 정통한 타카이 변호사는 '임금인하나 인원정리를 거의 인정하지 않는 일본의 경직된 시스템이 세계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법원도 의식하기 시작하였다'고 해설한다.
노동계에서도 '산업구조가 변하고 있는 이상, 일본형의 임금, 인사제도는 개혁하지 않을 수 없다'(노조연합 사무국장)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종업원은 종신고용이나 연공서열이 계속된다고 하는 암묵의 양해를 기초로 입사하였다. 그러므로 노조는 '젊은이들은 어쩐지 모르겠지만, 새로운 제도를 중노년층에도 도입한다고 하면 약속위반'(자동차총연 회장)이라는 자세를 취한다. 경영측도 높은 근로의욕을 지탱하여 온 고용관행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여 새로운 분배의 규칙(rule)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원래 미국의 '신자본가' 분배 모델도 행복을 보증한다고는 할 수 없다. 주가가 오르면 연금의 자산은 불어나고, 스톡옵션으로 큰 수입을 손에 넣을 수도 있게 된다. 그러나, 기업은 주가를 올리기 위해서 다운사이징(downsizing)이라 불리우는 인원정리를 진행시킨다. 자기가 그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원래 이해가 대립하게 되어있는 두 얼굴을 동시에 사지기 때문에 생기는 역설이다. '노'라는 유력한 대항세력을 손아귀 안에 넣고, 자본이 독주할 우려도 있다. '어릴 때 겪은 대공황의 기억이 남아 있는 나에게는 스톡옵션이나 주식시장이 인생을 보증한다고 하는 것은 정말로 들떠서 만들어낸 생각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로스앤젤로스에서 은퇴생활을 보내고 있는 독일계 미국인 톰 헬무 씨(72 세)는 401K 를 이용하는 45 세의 장남이 주가에 일희일비하는 것을 보고 이렇게 한탄하였다. '모두 땀을 흘려 열심히 일하는 것을 잊고 있다.' 미국의 신분배 모델은 위태로운 점이 있으면서도 국경을 넘어 퍼지고 있다. 일본식 모델도 한번은 세계적으로 칭찬 받으며 보편성이 있다고 평가되었었다. 승자가 된 과거가 있는 만큼 이 나라는 깊은 고뇌 속에 빠져 낙담하고 있다. 5. 하베이 로드 --정부의 실패는 시장이 단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케인즈학파의 현인이 "하베이 로드의 전제"에 따라 움직이는 사회와는 달리, 민주정치의 사회에서는 적자예산에 비해 흑자예산이 살아남을 전망이 훨씬 적다.'(제이스 M. 부캐넌 '케인즈 재정의 파탄') 케인즈 탄생의 땅에서 이름을 빌린 '하베이 로드의 전제'. 시장이 만능이라고 하는 자유방임의 자본주의에는 동의하지 않고, 정부 개입의 필요성을 역설한 케인즈는 경제정책은 공공의 이익을 생각하는 지적 엘리트가 틀림없이 실시한다라는 전제에 서 있었다. 그러나 정치가는 '적자예산'으로 이어지는 예산쟁탈에 분주하고, 지적 엘리트의 정책지배는 실현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케인즈의 전제는 잘못되었다.--96 년말의 신간선 정비 소동도 그것을 실증하는 일막이었다. '신간선은 가만히 있어도 진행된다. 그러나 채무문제는 손을 대지 않으면....'(도요타 사무차관) 96 년 8 월, 운수성은 신간선 정비의 신규착공과 28 조 엔에 이르는 구국철 채무문제의 동시해결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특히 채무문제는 정치가들이 일부러 외면하는 경향이 있는 만큼, 두 가지 문제를 함께 묶어서 처리하려는 것이 운수관료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전략은 맞아 떨어지지 않았다. 중의원 선거가 결정되자 자민당은 처리책의 검토를 중단하였고, 야마자키 정조회장으로부터는 '전면해결은 어렵다'는 소리가 나왔다. 그러자 '(채무와 신간선의 관계를) 운수성이 콘트롤할 수 없다'(도요타
차관)라고 맥 빠지게 후퇴하였다. 결국, 신간선의 신규착공은 길이 열리고, 채무는 금리부담 증가를 막는 '응급처치'를 베풀었을 뿐이었다. 운수성은 '여당이 정하면 우리들은 내각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있으면 정치의 그림자 속으로 도망쳐 숨어버리고 책임은 지지 않는다. 신간선도 예외가 아니다. 정부주도의 경제운영은 전후 일본자본주의의 기둥이었지만, 그것은 언제나 '이익유도형'의 대중영합형 정치와 표리관계를 이루었다. 나라의 성장력이 떨어지고, 주택전문회사나 국철채무와 같은 '부'의 배분도 하지 않으면 안되자 기능마비가 나타났다. 하베이 로드의 전제가 성립되지 않는 것은 제도 자체가 가지는 함정이기도 한다. --'사회를 컨트롤할 수 있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르는 위험성이 극히 큰 노력에 대하여, 공범자가 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지키지 않으면 안된다.'(74 년,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의 노벨상 수상 기념강연) 하이에크는 정부가 시장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잘라버렸다. 그것은 '작은 정부'를 기치로 70 년대 말에 출발한 영국의 대처 정권, 미국의 레이건 정권으로 이어지지만, 일본은 흐름을 탈 수 없었다. 내부 지향 시스템 무대는 다시 우수성. 96 년 12 월, 택시나 항공 등의 수급조정을 단계적으로 폐지할 방침을 경정하였다. 택시는 특정지역에 차가 집중되지 않도록 신규참여를 인정하거나 증차 대수를 규제하기도 하는 수급조정 때문에 비싼 운임을 초래하여, '정부의 실패'는 '시장의 실패'보다 커지고 있었다. 그러나 운수성은 지금도 '시장에 맡기는 것은 불안하다'고 하며, '보이지 않은 손'에 대한 불신을 숨기지 않는다. --'선진국의 정부는 시장의 평가를 시시각각 받고 있다. 예산은 케인즈적인 수요자극형이 아닌 공급면에서의 효율추구형이 되지 않으면, 시장은 마이너스 평가밖에 내리지 않는다.'(혼마 마사키 오사카대학 교수) 일본에서는 정부자신이 시장의 물결에 부딪친 경험이 부족하다. 그러나 국경에 구애받지 않는 자금은 정부의 실패를 놓치지 않고, 국채를 팔아 퍼붓는다. 21 세기에는 정부도 날마다 시장에 의하여 심판된다. 일본이 지금의 재정구조를 그대로 둔 채, 노화가 진행되는 2020 년에 돌입하여 국채의 인수가 불안하게 되면, 장기금리가 상승하고 정부의 금리부담이 늘어날 뿐만 아니라 민간의 투자를 방해하는 존재가 되다. 시장의 두려움을 아는 구미에서는 재정재건으로 앞서가며, 어쨌든 달리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정치의 요청으로 공공사업의 순서가 바뀌는 수는 있어도 쓸데 없는 일은 하지 않는다'(건설사무차관)며 관은 '하베이 로드'에 대한 향수를 버리지 않는다. 자기 고장 이익우선의 내부지향 시스템을 끌고 가면, 국제적인 금융시장에서의 평가가 용서하지 않는다. 민간의 개혁도 늦어지고, 시장의 배분기능도 생각한 것만큼 작동하지 않는다. '작은 정부'로의 전환에서 뒤떨어진 이 나라와 질주하는 자본주의와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져 간다. 6. 미학의 경영
--실리의 시대, 존재가 흔들린다 정신적인 만족감 '기업은 사회의 자산이고 일본의 재산이다. 이익은 기업에서 제 1 목표가 아니다.' 닛산자동차의 하나와 사장이 이야기하는 기업관은 대기업경영자의 그것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국제적인 거센 경쟁 속에서도 이익을 넘어 사회적 사명을 중시한다. 미학에 가깝다. '금전적인 보수는 대단하지 않고, 많이도 바라지 않는다. 조직에 대한 책임감으로 사장을 하고 있다'고 정신적 만족감을 강조한다. 97 년, 동사의 츠지 회장은 경제단체연합 부회장에, 하나와 사장은 경제동우회 부대표간사에 취임하는 것이 결정되었다. '회장도 나도 (이런 역할은) 좋아하지 않지만'이라고 말하면서도 그 역할은 돌아온다. 역대 수뇌도 경제단체의 수뇌 역할을 수행하여 경영자이자 동시에 '재계인'이다. 또 한 가지 '사원'이라는 의식도 밑바닥에 있다. 기린 맥주의 oooo 회장은 '종신고용으로 회사와 일체감이 있으므로, 나 자신, 고용되어 있다는 의식은 없다'고 이야기한다. 이사는 주주총회에서 선출되지만, 기업에 대한 귀속의식이 일반적으로 강하다. '나라 전체를 생각하면 기업에는 교용을 지킬 책임이 있다.' 신일본제철의 이마이 사장은 점차로 강해지는 자본의 논리에 이의를 제기한다. '철은 국가'라고 하던 시대에 '종업원이 제일'이라는 가치관이 위화감 없이 몸에 배게 된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용서없다. 동사의 총발행주식은 약 68 억 9,000 만 주로 너무 많다. 액면의 10%, 1 주당 5 엔을 배당한다고 해도, 세금을 포함해서 800 억 엔의 이익을 올려야만 한다. 현재 2.5 엔을 배당하고 있는 동사로서는 어려운 일이다. '지금의 수익상태로는 자사주 매수로 주식수를 줄이려 해도 절반으로 하는데 30 년은 걸린다.' 정신이 아찔해지는 순간이다. 이마이 사장은 '지금까지 우리 회사가 자본의 비용을 계산하여 왔던가?'라고 생각하며 한숨 짓는다. 전직처를 알아봐 주며 특별퇴직금을 지급하기도 해서 3 년간에 1 만 1,700 명을 전직시켰다. 미학을 이야기할 여유는 사라지고 있다. 이토 일본생명보험 사장은 기관투자가의 입장에서 2020 년까지를 전망하며 이렇게 단언한다. '자본의 논리를 관철하는 자본주의가 세계 표준이 된다. 이익을 올리지 않는 기업경영자는 일찍 그만두는 게 좋다.' 이토요카도에서는 외국인주주의 주식소유비율이 21.9%(96 년 8 월말)로 높다. 이런 현실 앞에서 스즈키 도시후미 사장은 '외국인의 눈이 있으면 이상한 경영은 할 수는 없다. 불편하더라도 그 쪽이 플러스'라며 긴장감을 보이고 있다. 일본에도 새로운 물결 21 세기를 선도하는 지식산업의 주변에서는 '미학보다도 실리'의 경영자가 나타나고 있다. 미국대형 반도체 회사인 인텔의 일본법인 니시오카 사장은 '퍼스널 컴퓨터의 전도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퍼스널 컴퓨터를 편안히 쓸 수 있도록 고안하여 보급시키는 일을 '작품으로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그 뜻과 퍼스널 컴퓨터의 용도 확대를 통해서 심장 부품인 반도체의 판매 증가를 목표로 하는 인텔의 지향과 일치한다.
미국 본사의 A. 글로브 사장 등은 스스로를 '패러노이어(편집병) 집단'이라고 부를 만큼 맹렬하게 일하는데, 주가 여하에 따라 큰 수입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스톡옵션(stock option) 등 그에 대한 보답도 크다. 일본에도 새로운 시대를 예감케 하는 경영자는 있다. AV(음향영상) 렌탈이나 서적판매의 컬처 컴비니언스 클럽(CCC)의 마스다 회장이 그 한 사람이다. 맹렬한 스피드로 변화하는 시장에 맞추어 소프트 유통, 전자출판 등 35 개의 관련회사에 우수한 기획맨을 잇달아 보내준다. '개인이 만들어낸 기획에 대한 배분으로 보수를 주다'고 말하며, 스스로 기획맨으로서 연봉 1 억 엔 전후를 벌어들인다. 95 년, 미국 휴즈 엘렉트로닉스 그룹 등과 디지털 위성방송인 디레크 텔레비전 저팬을 설립하여 사장에 취임하였다. '자기를 상회하는 기획맨이 나타나면 사장을 그만두더라도 좋다. 새로운 일을 시할 자신도 있다'고 말한다. 시장경제가 더욱 침투하면, 마스다 씨와 같이 경쾌하게 움직이는 프로듀서형 경영자가 시대를 이끌고 가게 될지도 모른다. 네트워크상에서 사원과 투자가를 맺어주는 버츄얼 회사도 새로운 기업형태로서 정착할 것이다. 21 세기는 가속되는 변화 속에서 '인간자본'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경영인지 아닌지가 크게 문제된다. 경영자의 도태는 이미 시작되고 있다. 7. 백화점의 1 층 --전시품 바꿔 욕망 자극) 매장의 절반 도쿄 니혼바시의 미츠코시 본점. 1921 년(다이쇼 10 년)부터 4 분의 3 세기 동안, 백화점의 얼굴이라고도 할 수 있는 1 층에 판매장을 확보하고 있는 상품이 있다. 여성용 화장품이다. 다이쇼시대에 화장품 이외에 1 층에 있었던 것은 양식기, 차, 식료품 등이다. 쇼와에 들어오면 우산, 구두, 사방 등이 추가되고, 전후의 고도 성장기에는 브티끄가 등장하고, 여행안내소가 넓은 공간을 차지하게 되었다. 지금 1 층에서 눈에 띄는 것은 화장품과 여성용 고급 수입 브랜드용품으로 이 두 가지가 매장의 절반을 차지한다. 필수품으로부터 사치품으로, 물건뿐만 아니라 서비스도--백화점의 1 층은 소비자 욕망의 변천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욕망을 '향기'로 자극하여 온 것이 화장품이다. 미츠코시의 마쓰모토 상무 본점장은 '내점객의 70% 가까이는 여성이다. 화장품이나 브랜드용품은 그녀들을 잡아당기기 위하여 1 층에 두고 있다.'고 말한다. '소비자는 자립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다. 소비자는 광고와 시각에 의해서 영향을 받고 있다. 그에 의해서 생산은 그 사진의 수요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J.K. 갈브레이스가 '풍부한 사회'에서 해부하였던 대중소비 대량생산 사회의 하나의 축소판이 여기 있다. 일본에서도 광고나 시각에 좌우되지 않는 '슬기로운 소비자'가 나오고 있다. 한 벌에 수십만 엔 하는 이탈리아제 고급브랜드 '아르마니'에서 2__3,000 엔의 '초특가' 양복으로, 그리고 거품 이전과 같은 7__8 만 엔 하는 양복으로, 지난 10 년간 신사복은 상품가격이 하늘과 땅만큼 움직여 왔다. '지금은 가격뿐만 아니라 소재나 봉재, 입은 기분을 하나씩 음미하면서 사간다.' 다카시마야 도쿄점의 오타 차장은
이야기한다. '한두 가지 상품만 사치' 자동차나 옷은 사치를 하지만, 그 밖에는 검소한 생활을 한다. 그러한 '한두 가지 상품만 사치'하는 경향도 두드러진다. 생활종합연구소의 세키자와 소장은 '버블 때처럼, 무엇이든지 빠지지 않고 소비하는 경향은 줄었다'고 말한다. 인구의 4 명 중 1 명이 65 세 이상이 되는 2020 년, 고령화의 부담이 늘어나 가처분소득이 늘어나지 않게 되면, 브랜드 상품에 몰려드는 젊은이도 줄어든다. 산와종합연구소의 예측으로는 소비지출의 증가는 90 년대 후반의 2%대에서 1% 정도까지 저하된다. 소비자의 상품을 보는 눈은 지금보다 엄격해진다. 종신고용 등 고용관행의 재검토로 소득격차가 커지면 소비의 계급화도 이루어진다. 대형 슈퍼체인인 서미트의 아라이 사장은 '파는 측도 고객을 고르는 전량을 추구 할 수밖에 없고, 소비의 양상도 변한다'고 본다. 모두 평등하게, 오늘보다 내일은 더 풍요롭게 된다. 그러한 일본의 대중소비사회의 전제는 서서히 무너져 간다. 그래도, 파는 측은 소비자의 욕망을 계속 자극한다. 96 년 12 월 초순, 후쿠오카현의 쌀도매업자가 1 년 이상이나 구마모토산 등의 코시히카리를 인기브랜드 '니가타산 코시히카리'라고 속여 판매하고 있는 것이 발각되었다. '니가타산'의 수확량은 기껏해야 연간 7__8 만 톤이다. 그러나, 그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는 쌀은 그 2__3 배에 이른다고 한다. 이 경우는 지나친 것이지만, 소비자의 브랜드 지향을 선동하여 매출을 늘리려는 경향은 '이제 사고 싶은 것이 없다'는 포식의 시대가 되어 오히려 강해지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물론, 21 세기에는 소비자가 욕망하는 대상이 물건에서 서비스나 소프트로 옮겨가기 때문에 파는 측도 전략을 바꿔간다. 아름다운 얼굴, 날씬한 몸매 등을 내걸고 있는 에스테티크(전신미용) 산업이 '아름다워지고 싶다'는 여성의 심리를 이용하여 급성장하여 3__4,000 억 엔의 시장 규모가 되었다. 21 세기에는 1 조 엔을 넘어 지금의 화장품 정도의 산업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통산성의 예측으로는 교육, 패선, 여가 등 생활문화산업 시장은 2010 년에 지금의 두 배 이상인 43 조 엔이 된다. 21 세기의 네트워크 사회에서는 소비의 과정도 다양화되어 지구 규모의 넓이를 가지게 된다. 미국에서는 인터넷상의 '전자상가'에 가게를 연 회사가 이미 25 만 사에 이르러 세계의 소비자를 유혹하기 시작하였다. 계속 뒤를 이어, 손을 바꾸고 물건을 바꿔 소비자의 욕망을 끌어내고 경제를 성장시켜 간다.--그러한 자본주의의 천성은 대중소비사회의 한계에 도전하듯이 2020 년에는 더 크게 나타날 것이다. 8. 토지의 멍에 --'시장'의 경쟁에 참가하지 못해 '창조적인 패배' '토지 및 일체의 천연자원의 궁극적인 소유권은 인민의 집단적 대표자로서의 국가에 귀속한다.'('맥아더 초안 28 조') 신헌법 제정에 앞선 GHQ(연합군
총사령부)의 제안은 일본측의 저항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일본국 헌법 29 조에는 '재산권은 이를 침범해서는 안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일본의 자본주의--창조적 패배와 그 이후'(93 년)에서 쓰루시게토 히도츠바시대학 명예교수는 종전 직후의 비화를 소개하며, 사유권을 한없이 인정한 것이 땅값신화를 낳아 일본의 '패배'를 초래하였다고 진단하였다. 저널리스트인 가사노부 씨가 '"화견주"의 경제--삐딱하게 보는 경제성장'에서 토지를 이용한 은행대출의 팽창과 부채에 의한 기업의 지나친 설비투자에 경고를 발한 것은 61 년이다. 그는 중앙은행과 은행과 기업가가 신용을 관리하는 데 있어 절도와 규율을 결여한 일본자본주의의 결함을 지적하였다. 46__66 년의 20 년간 명목 국민총생산은 66 배, 도매물가는 23 배, 은행예금은 164 배, 시가지 땅값은 725 배가 되었다. 작가인 시바 료타로 씨는 76 년에 마쓰시다 고로스케 씨를 상대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자본주의라고 하는 것은 인간에게 합리주의와 개인의 자유라는 것을 주었다는 점에서 인류에게 큰 공헌을 하였다. ... 그 자본주의가 토지문제 때문에 피둥피둥 물먹은 자본주의로, 대단히 불합리한 자본주의--자본주의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이상한 것--이 되어, 우리들에게 혼란과 불안을 갖게 하고 있는 것이 일본의 현실이라고 생각한다.'('토지와 일본인') 촌스러운 자본주의의 근원은 '자본주의 게임'이 시작될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메이지정부가 지조개정으로 납세의무 대신에 토지의 소유권을 인정하고, 메이지헌법이 수입사상(재산권의 불가침)을 토지에도 적용하여 세계에서 예가 없는 사유권 우선의 토지제도가 확립되었다. 구사족(사무라이)에게 나누어 준 질록공채를 원자금으로 발족한 메이지의 은행은 위험이 큰 산업금융을 피하고 높은 소작료 때문에 이윤 기회가 많은 농촌으로 내려갔다. 그러므로, 메이지정부는 스스로 관영사업을 일으키지 않으면 안되었다. 쇼와 공황 때 지방은행의 불량채권 대부분은 토지담보융자였다고 한다. '다이쇼 말의 금융제도조사회에서 은행국장은 "보통은행은 흡사 부동산은행"이라고 발언하였다. 정부는 토지담보융자를 금지하려고 하였지만, 토지에 대신할 담보가 없는 지방은행의 반대로 실현되지 못했다.'(아사쿠라 동양영화학원 대학장) 전에는 지방문제였지만 지금은 도시은행을 포함한 전국적인 문제가 되어 헤이세이의 금융 시스템을 흔들고 있다. 불안정성의 원천 일본경제의 폐쇄성의 근원은 은행의 불량채권 문제와 주식시장의 기능부재에 있다. 적정한 이윤을 얻을 수 없는 과대한 투융자, 금융, 증권시장의 자원배분의 실패이다. 최고조일 때의 평가액이 2,400 조 엔에 달하여 연간 국내총생산의 4 분의 3(약 300 조 엔)에 해당하는 평가액의 팽창을 가져온 땅값의 변동이 원인이고 결과이기도 하다. 마쓰모토 아이치학원대 교수는 '일본의 주가는 실질 일주당 순자산과 같았다'고 말한다. 주식회사의 장부상의 주주자본은 명목에 지나지 않고, 토지의 미평가 이익을 감안한 실질로 보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 것이다. 가진 사람과 가지지 않은 사람의 소득분배의 불공평, 담보가치의 증감에 따른 은행대출의 신축, 게다가 주식회사의 자본조차 땅값 여하에 다라 심하게 움직인다면 경제계산이 성립되지 않는다. 토지문제는 주식시장을 비롯하여 국가재정이나 기업과 금융기관의 경영,
가계행동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고, 채권대국 경제의 불안정정의 원천이 되어 세계경제를 혼란시키고 있다. '토지는 공공재--번영을 위한 토지공유화'의 저자이자 전대장성 관료였던 야마구치 미쓰이신탁은행 고문은 '지금 이 세계에서 가장 늦어지고 있는 토지제도를 개혁(소유권으로부터 사용권으로의 전환)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말한다. 2020 년을 향하여 소득이나 자원의 분배를 왜곡시키는 불순물을 남긴 채로는, 일본은 구미나 아시아의 신흥세력과 시장의 우열을 다투는 자본주의의 대경쟁에 참가할 수 없다. 토지문제의 해결 없이는 참된 자본주의를 확립할 수 없고, 10__20 년 주기로 빛과 어둠을 되풀이하는 경제의 '정서 불안'으로부터의 해방도 없다. 자조노력과 자기책임의 '시장경제 게임'은 불건전하고 불안정한 무정부 상태에 빠진다. 국가가 국가다운가 어떤가의 존재 증명.--그것이 일본을 토지본위제의 멍에로부터 풀어놓는 개혁인 것이다. 9. 증대하는 위험 --어느 날, 갑자기 도산 지불에 한계 맹렬한 회오리의 피해로부터 인공위성 발사 실패까지 모든 보험을 떠맡는 영국의 보험조직, 로이드가 1997 년 4 월 1 일 일본법인의 영업을 개시하였다. 일본의 손해보험업계에서는 '로이드가 만드는 보험의 인수단에 일본의 손해보험을 법인회원으로 끌어들이려는 목적'이라고 쑥덕이고 있다. 로이드는 개인회원으로 구성되어 회원의 재력을 배경으로 보험금의 지불의무를 무한히 짊어져 왔다. 그러나 제조물 책임에 따른 기업의 손해배상 등이 급증하여 88 년부터 92 년까지 합계 95 억 파운드의 적자가 발생하였다. 파산하여 자살하는 회원도 나오고, 출자액 이상의 책임을 문제 삼지 않는 유한책임의 법인회원을 추가할 수밖에 없어졌다. 300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로이드는 산업혁명 이후 전세계 산업자본의 리스크를 부담하여 왔지만, 리스크의 증대에 따른 대전환을 단행하였다. 마찬가지로 무한의 책임을 짊어져 온 공인회계사도 변하고 있다. 일본의 감사법인이 경리의 부정을 간파하지 못해서 재판에 패하여 배상금의 지불을 해야만 하게 되면 마지막에는 회계사들이 연대하여 배상책임을 진다. 회계사가 사망하면 책임은 상속인에게까지 미친다. 미국에서는 80 년대 중반부터 주주 등이 회계사무소를 제소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6 대 사무소의 소송비용이 수입의 약 10%에 달하여 KPMG 는 95 년 10 월, 영국사무소를 출자금 이상의 책임을 문제 삼지 않는 회사조직으로 바꾸었다. 금융분야에서의 리스크 증대 양상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95 년 11 월 3 일, 대장성의 사카키바라 국제금융국장은 미국 재무성 고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뉴욕지점에서 거액손실사건을 일으킨 다이와은행에 대해 미국연방준비이사회 등이 미국으로부터의 '철퇴'를 명령한 다음날이었다. 재무성이 두려워한 것은 '다이와은행이 자금융통에 어려움을 느껴 미국채권을 대량매각한다'는 관측이 퍼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장기금리가 상승하면 주가하락의 방아쇠를 당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즉시 스미토모 은행이 합병을 포함한 다이와은행
지원책을 발표하였고, 대장성은 핫 라인으로 미국측에 불안의 진화를 전달하였다. 무방비 상태를 드러내 리스크가 파열 직전까지 간 '사건'은 그 9 개월 전에도 있었다. '빌려준 채권을 거래소가 차압하여 되찾을 수 없는 것은 아닐까?' 95 년 2 월, 거액손실로 영국 증권회사 베어링의 파산이 표면화되자 사쿠라은행 등에 충격이 닥쳐왔다. 베어링은 닛케이평균선물을 거래할 때, 사꾸라 등으로부터 국채를 무담보로 빌려 오사카 증권거래소에 증거금으로서 넣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내 금융기관은 베어링의 도쿄지점에 670 억 엔 정도의 채권이 있었다. 마지막에는 네덜란드의 금융기관이 베어링을 매수하여 무사히 끝났다. 그러나 회계사의 세계에서는 베어링의 감사를 담당하고 있는 사무소를 재산관리인이 된 다른 사무소가 제소하였다. 제소된 사무소는 베어링 전간부를 제소하는 등 소송전쟁의 양상이었다. 시장과 시장의 관련이 커져서, 리스크는 국경을 넘어 연쇄적으로 퍼진다. 더욱이 다이와은행이나 베어링 모두, 주식이나 채권, 외환의 장래의 매매권리 등을 거래하는 '더리버티브(derivative)'가 관계된 것으로, 손실이 굉장히 커졌다. 국제결제은행에 의하면, 더리버티브의 원본이 되는 계산상의 자금규모(상정원본)는 95 년 3 월말에 47 조 5,000 억 달러에 이른다. 국내총생산(GDP)의 세계합계 28 조 3,000 억 달러(95 년)를 크게 상회한다. 원래 환차손의 방지가 목적이었지만, 적은 보유자금으로 거액의 돈을 운용하고 있기 때문에 투기자금이 유입된다. 자금은 실체경제로부터 유리되고, 그만큼 리스크는 팽창하였다. 도카이대학 조교수인 oooo 씨는 '개개의 계약자는 리스크를 헤지(회피)할 수 있더라도 경제전체로 보면, 리스크가 증대하였다'고 지적한다. 2020 년에는 리스크가 큰 발전도상국에도 기업의 토지가 확대되고, 자금(money)이 더리버티브를 경유하여 세계의 누가 자금의 공급자이고 누가 수요자인지도 모르게 된다. 지금까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나라의 환경 급변이, 돌연히 리스크가 되어 나타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 송곳니는 기업이나 주주는 물론, 국가의 대응이 필요하게 되면 세금의 부담이라는 형태로 널리 국민에 미칠지도 모른다. 잇따르는 일본기업의 불상사는 이 나라의 리스크에 대한 무방비 상태를 나타냈다. 그뿐만 아니라 노무라증권의 부정거래와 같이 리스크 관리 이전의 단계에 있다. 그러나, 세계를 질주하는 자본주의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10. 제 3 의 배로 --산업을 흔드는 지구자본 지식으로 무장 96 년, 탄생 백주년을 맞이한 미국의 대표적 주가지수, 다우 30 종 평균. 12 종 평균으로 탄생한 당시의 채용종목으로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은 제너럴 일렉트릭(GE)뿐이다. 일직이 대표적 종목이었던 철강의 USX 는 91 년에 사라졌다. 대신에 월트 디즈니나 맥도널드가 추가되었다. 다우평균의 채용종목은 미국이 지난 한 세기 동안에 공업사회에서 서비스사회로 크게 변하여 온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더구나 그 산업구조는 21 세기를 향하여 더욱
큰 변화를 보이고 있다. 클린턴 제 1 기 정권에서 노동장관을 지낸 R. 라이슈 씨는 '국가의 일'에서 전에는 같은 배에 타고 있던 미국인이 지금은 각각의 배에 분승하고 있다고 분석하였다. 대량생산의 단순노동자 등이 탄 제 1 선은 급속히 가라앉았으며, 소매점 종업원 등 대인서비스 노동자의 제 2 선도 서서히 가라앉고 있다. 어느 쪽도 자본이 국경을 넘어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시대가 되어 공동화나 경쟁의 격화라는 물결을 뒤집어 쓰고 있기 때문이다. 부상하고 있는 것은 전문지식, 기능을 가진 법률가, 기술자 등의 제 3 선뿐이라고 한다. 여기서는 제 1 차(농업, 광업), 제 2 차(공업), 제 3 차(서비스업)라는 낡은 산업분류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농업이나 공업이더라도 유전자조직 전환 야채나 반도체 관련산업과 같이 지식으로 무장하면 제 3 선에 탈 수 있다. 일본도 제조업에서는 하이테크 분야를 중심으로 제 3 선으로 갈아타는 움직임이 있다. 반도체 제조장치와 같이 지식이나 노하우를 축적하여 채워 넣은 제품은 높은 경쟁력을 유지한다. 갈아타지 못하고 있는 것은 국내에 틀어 박혀 온 산업이지만, 거기에도 변화의 물결은 밀려들고 있다. 유통업계에서는 금융보다 먼저 빅뱅(대폭발)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땅값의 하락이나 규제완화를 계기로 외자계가 일본시장에 쇄도, 96 년에는 잡화, 통신판매 등 16 사가 진출하였다. 97 년에도 대형 문구염가판매회사인 미국 오피스막스 등이 점포를 낼 예정으로, 문구업계에서는 벌써 도매업자의 재편이 시작되었다. 외자계는 참신한 상품을 기획하여 세계에서 가장 싼 생산국에 제조를 위탁하거나, 물류 시스템을 기반으로 도매상을 사이에 세우지 않는 직접거래로 비용을 내리는, 일본업계에는 없는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미국 토이자라스는 이를 무기로 일본상륙 후 5 년만에 암기구시장의 점유율 10% 가까이를 차지하였다. 2000 년에는 20%가 된다고도 한다. 일본의 유통도 지식무장을 진행시키지 않을 수가 없다. 분승 재촉 받는다 국경을 넘어서 움직이는 지구자본은 각국의 산업구조를 일변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어느 나라에서도 그 흐름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우리들은 국가나 주정부의 기업에 대한 지나친 지원은 결코 인정하지 안는다.' 유럽위원회는 가맹각국의 산업정책에 종종 경고를 발한다. 최근에도 프랑스정부의 대형은행 크레디리요네에 대한 추가지원, 독일의 구동독지역에서의 기업보조금 지급뿐만 아니라, 대형의 기업합병, 제휴에는 언제나 참견을 하여 왔다. 역내의 경쟁이 제한되어 통합의 의미가 없어진다고 하는 것이 유럽위원회가 하는 말이지만, 각국은 자국의 기업경쟁력이나 고용 등 국익을 우선하기가 쉽다. 20 세기형의 국익 논리로부터 빠져나오지 않으면 지식산업에 대한 전환이 늦어져 21 세기에는 성장력을 잃게 된다. 제 1 차로부터 제 2 차 산업으로의 전환기에 경제가 크게 성장하였듯이 산업구조의 변혁이 발전의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제 3 선의 선두에서는 국제투자자금이 실체경제를 떠나 비대화되고, 정부의 조정이 듣지 않게 된다고 하는 지적도 있다. 국가의 규제나 보호 밑에서 지금까지 한 배를 타고 온 일본인도 2020 년에는 몇 개의 배로 분승할 수밖에 없다. 제조업은 물론, 지금까지 국제경쟁과는 무관하였던 농업도 서비스업도, 좋든 싫든 '질주하는 자본주의'에 빨려들어 간다.
"인터뷰 2)" 2020 년의 일본기업, 일본경제 위험한 식량, 에너지 --oooo 씨 (NEC 회장) 일본경제는 지금 폐쇄감으로 가득차 있다. 그러나, 96 년의 성장률은 3.6%로 숫자상으로는 결코 낙담할 필요는 없다. 당면한 문제는 아시아의 NIES(신흥공업경제군)의 추격에 대응하기 위해서 일본의 제조업이 더욱 활력을 갖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산업도 멀티미디어로 무장하여 2 차산업이면 2.7 차산업으로, 유통이나 서비스 등 3 차산업은 3.7 차산업으로, 농업도 바이오테크놀로지 등으로 고도화하여야 한다. 아시아의 추격을 저지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에 새로운 특징을 부가하는 방향이다. 보다 장기적인 2020 년을 살펴보면, 우선 식량문제가 있다. 일본의 현재 칼로리 베이스 자급률은 42%(95 년). 미국은 100%를 넘고, 영국(73%)이나 독일(94%)등과 비교하더라도 특히 낮다. 해외에서 사오면 되지만, 수출할 힘이 없어지면 살 돈도 없어진다. 식량을 해외에 전면적으로 의존하고 있으면, 무슨 일이 있을 때는 생사여탈권을 빼앗기게 된다. 따라서, 최저한의 칼로리 자급률로서 적어도 유럽 정도의 70% 전후는 유지할 필요가 있다. 요컨대 식량안보의 시점이 중요하다. 두 번째는 에너지이다. 에너지가 없으면 경제는 성장할 수 없다. 일본은 원유의 99.7%를 수입하고 있고, 천연가스나 석탄 등도 대부분을 수입에 의지하고 있다. 장래의 수요증가를 생각하면, 이제 화석연료에만 의존하여서는 안된다. 화석연료는 환경문제도 크다. 클린 에너지에 대한 전환이 필요하다. 다만, 수력발전은 이미 다 개발되어 한계에 도달하였다. 대신에 신장되고 있는 것이 원자력 발전이다. 이미 전력소비량의 30% 대를 조달하고 있다. 동연사고 같은 문제는 있지만, 21 세기를 생각하면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성을 착실히 확보하여 주민을 포함한 전원참가 속에서 정보의 투명도를 높여가지 않으면 안된다. 2010 년에 시작되는 신수도의 경우도 거기서 사용하는 전력은 전부 원자력발전소에서 조달할 수 있는 장소의 선정을 주민의 참가 속에 생각하면 어떨까? 또 2030 년, 2040 년인지도 모르지만, 안전한 에너지를 무한히 공급할 수 있는 핵융합발전의 개발 실용화 등에도 주력해야 한다. 세 번째는 환경문제이다. 이대로 환경파괴를 진행시켜 가면 2020 년의 지구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는다. 과학기술과 사회 시스템의 양면에서 지혜를 내어 지속적인 경제발전과 환경문제의 양립을 꾀하지 않으면 안된다. 나아가 네 번째가 고령화, 자녀수 감소 대책이다. 이들 과제에 대처하기 위해서도 기본이 되는 것이 과학기술이다. 이 힘이 없으면 일본은 '사라지고' 만다. 왜냐하면 일본이 가진 자원은 교육받은 질높은 1 억 2,000 만의 국민이라는 인적자원이기 때문이다. 인적자원의 활성화란 즉 교육개혁이다. 지금까지는 전체의 수준을 올리고 뒤떨어지는 것을 방지하는 교육이었지만, 장래를 생각하면 영재교육을 포함한 적재적소의 인재교육으로 바꾸는 것이 급선무이다. 소질을 찾아 내어 기회를 주고 엄격히 단련한다. 이것이 2020 년으로 이어지는 교육의 요체이다.
정보화, 창조적 파괴 닥쳐 --ooo 씨(미쓰비시상사 사장) 세계의 환경이 대단한 속도로 변하고 있다. 동서냉전의 종언, 대경쟁,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이 정보혁명이다. 정보화는 발전도상국이 중진국, 선진국을 뛰어넘어 진행될 가능성도 가지고 있다. 일본도 조급히 체질을 바꿔가지 않으면 뒤떨어진다. 정계, 관계, 재계의 모든 수준에서 담담하게 사고를 바꾸는 '창조적 파괴'의 시대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일본경제는 겉보기로는 회복하기 시작하였다. 개인도 과거와 비교하면 저축도 있고 풍요롭다. 그 속에서 위기감을 가지고 변혁하여 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시모토 수상이 '큰일났다'고 하더라도 메시지는 잘 전해지지 않는다. 내가 사원들에게 '큰일났다'고 하더라도 잘 전해지고 이는지 자신이 없다. 그러나 고령화, 자녀수 감소의 문제를 인식하여 지금부터 해결하지 않으면 정말 큰일난다. 중국도 시장경제에 들어가 있어, 시장경제에서 자유경쟁을 하는 것이 세계의 향후 큰 씨름판이 될 것이다. 그 속에서 미국적, 중국적, 일본적인 것은 가가 다르다. 일본기업의 의사경정은 top--down 아니라 조직에 의존한 쌓아올리기 방식이다. 개성보다도 집단의 힘에 의지한다. 조직이 강고하게 되어 그 속에 있는 개인은 자기의 책임을 조직에 전가하고 만다. 조직에 전력을 다하고 있으면 된다고 하는 생각으로 자기의 일에 대한 긍지는 없어진다. top--down 도 중요하지만, 각 개인이 자신의 일에 개성을 살리는 것이 필요하다. 일본에서는 벤처기업이 자라지 못한다고 많이 이야기하는데, 미국에는 리스크를 감수하고 파산한 사람도 인정하는 사회 풍토가 있다. 일본에서는 파산한 사람은 퇴장할 수밖에 없다. 패자 부활을 할 수 없는 토양에 문제가 있다. 지금까지는 '열심히 공부하여 도쿄대학에 들어가 대장성이나 외무성에 들어간다'는 것이 일본에서 가장 부러워하는 코스였다. 이제부터는 그렇지 않다. 일본은 생활수준이 올라와 있으므로 어쨌든 대기업시대도 아니다. 실제로는 변화할 수 있는 토양인데도 그것이 되지 않는 것은 안이한 상태에 있어 위기감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상사의 간부는 사실상 100% 일본인이지만 아마 2020 년경에는 80__90%가 일본인이고, 나머지 10__20%는 그 이외의 나라의 사람이 될 것이다. 10__20%라도 이질적인 사람이 들어오면 기업풍토도 변한다. 그 때는 이사회도 영어로 열리게 된다. 아무리해도 모르는 사람은 일본어의 동시통역을 붙이게 된다. 내가 영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영어가 세계 비즈니스의 공용어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상사와 같이 국제적인 일본기업이 서투른 말씨의 영어라도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지 않으면 안된다. 규제완화 등의 논의에서 일본과 미국사회의 차이를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나는 양국은 공통점도 많다고 생각한다. 일본인은 기독교의 배경은 없지만 현실주의로 합리적인 생각을 하는 국민이다. 미국도 현실주의의 나라이다. 일본은 계급국가가 아니고 미국도 빈부의 차는 있지만 계급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미일은 공통된 것이 많고, 특히 경제의 면에서는 미국에 접근하여 가는 것은 아닐까? 국민성의 차이를 과도하게 강조하는 것은 의미 있는 논의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기업경영, 투명성에 중점 --oooo 씨(사쿠라은행 회장) 일본기업은 지금까지 주주에게 보답하는 방법으로 배당을 올리는 것보다 내부유보를 늘려 기업체력을 높이는 것이 장기적으로 주주를 위하는 것이라고 하는 사고방식이었다. (기업과 주주의) 상호 신뢰관계가 성립되어있어 기업끼리의 주식상호보유로 이른바 '의리의 세계'가 생겨났다. 은행과 기업의 관계도 출자비율이나 융자비율로 주거래 은행이 있어 그 장기적인 교제가 모든 것을 말하는 세계였다. 그러나, 기업활동의 경계 허물기가 진행되는 속에서 기업경영의 투명성이 보다 요청된다. 여러 가지 정보를 주주에게 알리고 비판을 받아 그것을 표로 설명하면서 진행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일본만이면 '의리의 세계'도 좋지만, 국제적인 경쟁 속에서는 그것만으로는 통용되지 않는다. 2020 년이 되면 주식의 상호보유, 기업과 은행의 관계도 크게 변화해 갈 것이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금까지 일본기업, 특히 금융계는 새로운 상품이나 제도를 도입할 때 모두가 대응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다가 모두 준비가 되면 시작하는 방법을 택해왔다. 세계의 스피드는 빨라지고 있고, 어제 만든 물건이 내일은 팔리지 않는 시대가 되고 있다. 경영에서 스피드라는 개념이 중요해진다. 일본판 빅뱅(금융개혁)도 이러한 환경 속에서 나온 것이지만 문제는 단순히 금융제도에 머물지 않는다. 일본의 높은 생활비, 세제, 고용제도, 변호사, 회계사 등 해외에서 투자하기 쉬운 인프라를 깔끔하게 갖추지 않고, 금융제도만 개혁해서는 도쿄시장은 재생되지 않는다. 세계의 국가가 시장경쟁하는 속에서 투자를 불러들이는 매력적인 나라 조성이라는 관점이 필요하다. 또한, 빅뱅과 동시에 진행되는 금융기관의 정리도 앞길이 아직 명확하지 않은 것이 걱정이다. 금융당국은 개별 금융기관의 경영상황에 따라 정리를 진행시킨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예금자를 지키면서 파탄 금융기관을 어떻게 시장에서 퇴출시킬 것인가 하는 전체적인 구도가 보이지 않는다. 우편저금 등 공적금융의 재검토문제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청사진이 필요하다. 2020 년에 금융업은 자금운용의 능력이 문제가 될 것이다. 결제업무는 은행 고유의 것이었지만, 자유화가 진행되면 대기업이 그룹내에서 결제를 추진하여 한없이 은행에 가까운 존재가 될 지도 모른다. 은행의 경쟁상대가 늘어나는 속에서 어떻게 개성을 살릴 수 있을까가 열쇠를 쥐고 있다. 금융 등의 구조개혁과 동시에 교육은 지금부터 손을 대지 않으면 제시간에 대지 못한다. 최대의 문제는 다양한 가치관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미국과 같이 토론 훈련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인지, 논의를 끝까지 하다 보면 싸움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거의 본심을 발하지 않고 무심히 하나의 방향으로 합치고 나서야 모두 이야기하게 되어버린다. 자유롭게 불만을 말하고, 이론의 존재도 인정하는 사회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개혁의 실행, 민간의 손으로 --ooooo 씨(경단련 회장) 일본은 변화하고 있다. 메이지유신으로 일본은 변혁하였었다. 종전 후, 구미를
따라잡아 앞지르기 위해서 열심히 달려와 50 년이 지났다. 지금까지는 그것으로 좋았지만, 이제부터는 캐치 업 형태의 윤내는 통하지 않는다. 혼자서 생각하고 혼자서 개척해 가지 않으면 안된다. 그를 위해서 교육개혁이 필요하다. 창조성이 있고 개성이 있는 사람을 키워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까지는 학교 교육을 통하여 기업측에서도 획일적인 사람 만들기를 요구하여 온 측면이 있다. 거의 불평을 말하지 않고, 지시하면 차근차근 해 나가는 유형의 인재를 환영하여 왔다. 그러나, 향후에는 이래서는 대응할 수 없다. 95 년의 국민만족도조사를 보면, 과거 최고인 70%이상이 만족하고 있다. 95 년이라고 한다면 오움진리교 문제가 있었고, 한신대지진도 일어난 해이다. 2007 년에 인구는 최고를 기록한 후 감소하지만, 고령자는 증가한다. 한편으로 재정적자도 확대되어 부채청산으로 나라는 가난하게 된다. 가난하게 되는 것이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국민은 대단히 만족하고 있다. 이래서는 안되고, 그 사이에 일본국으로서의 비전을 세우고, 개혁을 진행시켜 가지 않으면 안된다. 97 년 연두담화에서 '파국'이라고 말한 것은 경기가 나쁠 때에 '파국'이라고 말하면 망해 버리지만, 상당히 좋아져 여유가 있기 때문에 이 시점에서 죄어 주지 않으면 큰일나다라고 경고하였다. 일본은 지금 가난하게 되어가고 있다. 가난할 때는 사람들이 일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이 가장 기본이다. 그런데 미국과 비교하더라도 휴가가 많고, 그만큼 일하고 있지 않다. 미국은 대단히 융성하게 되었다. 자신만만하다. 지금의 일본은 자신감 상실이 아닐까? 정부, 여당의 재정구조회의 장소에서 경제단체연합은 재정재건이라고 하면서 법인세의 경감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하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우리들은 국제화시대에 맞추어, 하다 못해 미국과 같은 수준으로라도 정합성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재정적자도 지나치게 늘어나면 큰일이지만, 갑자기 적자 국채의 발행을 그만두면 아무것도 안된다. 일시적으로 적자국채가 늘어나더라도 좋은 해결 방법을 찾으면 장래에는 줄어든다는 이해가 필요하다. 이 나라의 개혁은 지금, 전체적으로 추진하지 않으면 시기를 놓치게 된다고 하는 공통인식을 할 수 있다. 그 실행은 결국, 우리들 자신에게 돌아온다. 민간이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고통이 따른다. 그러나, 고통이 따르더라도 총론 찬성, 각론 반대여서는 안된다. 지금까지 규제로 보호되어 온, 국제경쟁력이 없는 부분은 스스로 힘을 길러가지 않으면 안된다. 간단히 말하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형편이 좋은 제도는 나오지 않는다. 국제사회에서, 일본은 결코 리더가 되려고 생각하여서는 안된다. 모두 서로 도와 간다고 하는 생각이 중요하다. 특히 아시아에서는 어지간히 겸손하지 않으면 안된다. 최근에는 동남아시아로부터도 일본에 의지하지 않아도 좋다는 발언이 때때로 나온다. 미국도 일본을 그냥 제쳐두려고 한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역시 일본은 의지가 되는 나라로, 부탁하면 해주는 관계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를 위해서는 다른 나라에게 스스로를 이해시키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아직도 노력부족이다. 물론, 일본도 주장해야만 한다. 물론, 일본도 주장해야만 한다. 상대편의 말을 듣기만 해서는 미덥지 못한 나라가 된다. 신뢰받기 위해서는 상호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 자신을 가지고, 나아가 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계에서 존경받지 못한다. 일본은 그러한 나라가 될 수 있는 소질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우리들은 비전을 세우고, 그것을 향해서 발을 내디디자고 호소하고 있다.
제 4 장 표류하는 사상 1. 진보를 향한 '축'은 어디로 --확신 흔들려 자문자답 oooo(경제학자) '사상이란 결국 사물을 가능한 한 조리있게 생각하는 것으로 누구나가 가능한 평범한 것이다. (중략) 사상이란 현실적인 삶의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할 때, 개개의 인간들이 택하는 '자세'이고 그 자세에 대한 부단한 재검토이다.'('반고전의 정치경제학' 중앙공론사, 1992 년) 그때는 꿈이 있었다 사람들은 '오늘보다 내일은 반드시 좋아진다'고 하는 진보의 사상을 정신의 지주로 삼아 왔다. 특히 일본인은 밝은 미래를 오로지 믿고, 나라 전체가 경제성장을 추구하여 왔다. 그러나, 고령화나 지구환경문제 등으로 인하여 21 세기도 착실히 진보를 계속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정직함이라든가 근면이라고 하는, 진보를 지탱해 온 일본인의 가치관도 풍족함을 실현하였다는 바로 그 이유로 빛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기 위해서는 어떤 자세로 나아가야 하나, 그 축은 아직 정해져 있지 않다. '결국, 인구는 그렇게 진보만 하는 것은 아니군요.' 와타나베(51 세) 씨는 중얼거렸다. '그때는 끔이 넘치고 있었다.' '인류의 진보와 조화'를 테마로 열린 1970 년의 오사카 만국박람회에서 와타나베 씨는 파빌리온 유치나 본 행사에서 각국 요인의 안내를 담당하였다. 움직이는 보도, 월석, 초음속여객기.--보는 것 모두가 충격적이었다. 만국박람회 후에는 천황가에도 상품을 납품하는 고베의 모자점 2 대 사장과 결혼, 아이도 얻는 축복을 받으며 행복한 생활을 보냈다. 그러나, 5 년 전, 남편이 51 세로 급서하였고, 그 후 친정 어머니도 잃었다. 더욱이 95 년의 한신대지진으로 자택이 크게 파괴되었다. 27 년 전에 장미빛 미래를 그렸던 과학기술도 대지진 앞에서는 무력하였다. '도박을 계속하면 회사가 무너진다.'--이쿠타 정밀연마공업(도쿄 오타구) 대표이사인 이쿠타(58 세) 씨는 거래처로부터 몇 번이나 충고를 들었다. 한 장으로 빛을 한 점에 모으는 특수한 렌즈를 개발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노력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 그 신념으로 2 년이 걸려 완성시켜 지금은 주력제품으로 성장하였다. 개발을 시작한 것은 병으로 입원하거나 주문이 없어 밑바닥 생활을 하고 있던 90 년, 우연히 읽은 전문서가 계기가 되었다. 아무도 만든 적이 없는 어려운 렌즈였지만, 이쿠타 씨는 대학에서 배운 자기의 수학지식과 정밀연마기술의 능력을 믿고 있었다. 앞만 보며 힘차게 나아간 이쿠타 씨, 그와 같은 사람들이 폐허가 된 일본의 전후 부흥을 이룩하였고 앞으로도 진보를 목표로 하지 않으면 살림은 잘 될 수 없다. 고베의 와타나베 씨도 그것을 알고 있지만, 인간은 그렇게 진보만 할 수 있을까 하고도 느낀다. 2020 년에는 지구환경이나 고령화의 문제가 심각해진다. 지구 규모의 대경쟁도 심화되고, 애당초 높은 성장 자체가 어렵게 된다. 그러한 딜레마가 선명하게 보이고 잇는데도 일본인은 지금 삶의 축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회사와 종업원은 일체라고 생각하여 모든 사람이 전부 풍족하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온 사람들일수록 고민은 깊다. '철은 국가'라고 믿고 달렸다 '"철은 국가이다"라고 가르치고, 나라를 위해 일하면 회사를 위한 것이고, 나아가서는 자기를 위한 것이 된다고 믿어 왔다.'--가미야(55 세) 씨는 일본경제의 전후 성장과 함께 달려온 자기의 반생을 되돌아본다. 65 년 봄, 도쿄대학을 졸업하고 구 후지제철(현 신일본제철)에 입사하여 비서과에서 3 대의 사장을 모시는 등 엘리트 가도를 달려왔지만, 나고야 공정업무부장이던 91 년 1 월, 고혈압인데도 불구하고 무리를 하여 뇌경색을 일으켰다. 48 세 때였다. 조금이라도 빨리 회사에 되돌아가고 싶어, 필사적으로 리허빌리테이션(사회복귀훈련, rihabilitation)을 하여 9 월에 복직하였다. 다음해에는 본사로 되돌아왔다. 몸에 장애가 남아 있기도 하고 출세하고 싶다는 기분도 희미해지고 있지만, 일이 없는 것이 괴로웠다. 해외의 철강수급을 조사하여 새로운 일을 제안하더라도 기각된다. 언제나 '회사와 함께'라고 생각해 온 가미야 씨는 방향을 놓쳐 버렸다. '회사는 친절하지만, 이대로는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94 년 4 월, 회사에 부탁하여 고령자 복지재단으로 옮겨 재단 설립을 도왔다. 그러나 97 년 3 월에 전근기한이 다 되어 회사에서는 '본사에 되돌아오라'고 한다. '리스트럭처링이 한창인 때 언제까지나 전근을 시킬 수 없다는 것일 것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재단에 남는 수도 있지만, 수입이 대폭 줄어드는 것이 걱정이다. 고민한 끝에, 결국 회사로 되돌아가기로 정하였다. 오다큐 백화점은 작년, 40 세 이상의 사원을 대상으로 명예퇴직을 모집하였다. 이에 전사원의 약 8% 210 명이 응하여 회사를 떠났다. 시미즈(64 세) 사장은 3 월, 책임을 지고 사장을 그만둘 생각을 표명했다. '회사에 매진해 온 사람들에게 그만두라고 했으니, 내가 211 명 째인 것입니다.' 시미즈 사장은 어깨를 떨군다. 21 세기에 일본의 중핵을 짊어질 사람들의 의식은 변하고 있다. 일본경제신문사가 실시한 앙케이트 조사(18__39 세의 남녀 597 명)에서 '정년 이전에 스스로 직장을 바꾸려 한다'고 대답한 사람이 48%에 달하였다. '같은 연령, 학력이라도 급여에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는 사람도 52%를 차지하였다. 모두 함께 진보를 목표로 하여 달리는 단선형의 사회에서 여러 가지 삶의 태도를 인정하는 복선형 사회로 전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21 세기의 일본은 다양한 '개성'의 활력을 살리는 사회로 바뀌지 않으면, 오히려 진보가 어렵게 된다. 많은 사람들의 축이 흔들리고 있는 것은 그러한 새로운 시대로 가는 과도기에 있기 때문이다. '모레츠로부터 뷰티플로'는 오사카 만국박람회와 같은 70 년의 광고이다. 덴츠에서 이것을 만든 후지오카(69 세) 씨는 '경제지상주의에 대한 자문자답이 출발점이었다'고 말한다. 이 때는 'beautiful'이라는 말에 모두가 달려 들었지만, '지금은 그러한 말이 없다.' 메이지유신이나 전후와 마찬가지로 역사의 한 고비에 서 있는 일본, 만국박람회 당시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자세를 자문자답하고 있다. 그들은 마침내
무엇을 발견하게 될 것인가? 앙케이트 조사에서 미래를 짊어질 젊은 세대는 2020 년의 일본의 모습을 어떻게 그리고 있는 것일까? 기획연재 '2020 년으로부터의 경종'에 즈음하여 일본경제신문사는 전화에 의한 앙케이트 조사를 실시하였다. 일본은 정체 또는 쇠퇴한다는 견해가 많아 미래에 대한 불안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다만, 세대에 따라 다른 점은 있지만 일본을 좋아한다고 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알았다. 조사는 전국의 18__39 세의 남녀, 즉 2020 년에 40 대에서 60 대 전반이 되는 세대를 대상으로 하였다. 97 년 3 월 하순에 실시하였고, 회답수는 597 명이었다. 내역은 성별로는 남성 48.4%, 여성 51.6%, 연령별로는 18__29 세 53.1%, 30__39 세 46.9%, 지역별로는 3 대 도시권 44.1%, 기타 55.9%였다. '일본은 정체, 쇠퇴'가 많아 지금의 일본이 번영하고 있는지 어떤지에 대해서는, '정체되어 있다'가 41.4%로 가장 많았다. '쇠퇴하고 있다'도 37.4%에 달하였다. '번영하고 있다'라는 대답은 18.1%에 머물렀다. 2020 년의 일보에 대해서도 '정체되어 있다'와 '쇠퇴하고 있다'를 합쳐서 70%를 넘었다. 재정적자의 확대나 금융기관의 파탄으로 일본경제의 안개가 개지 않는데다가 21 세기에 걸쳐서 가속되는 고령화나 자녀수 감소, 세계의 환경, 자원문제의 심각화가 이러한 견해의 배경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앙케이트는 21 세기의 문제에 대응하려면 생활을 어느 정도 희생하는 것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보여주고 있다. 예컨대 고령화에 의한 부담증가에 대해서는 '장래, 세금이나 사회보험료의 부담이 늘어나더라도 할 수 없다'(21.1%), '어느 정도의 부담증가는 어쩔 수 없다'(60.0%)로 부담 용인파가 80%를 넘었다. 환경, 자원문제에 있어서는 '환경이나 자원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생활이 불편하게 되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가?' 하고 물었다. 그 결과, '난처하지만 할 수 없다'(67.7%), '불편하게 되어도 좋다'(28.0%)로 생활희생 용인파가 압도적 다수였다. 2020 년에 세계를 리드하는 경제대국은 어느 나라인가? 하는 질문에 대하여도 미국(78.1%)에 이어 중국(54.3%)을 든 사람이 많고, 일본(48.4%)은 3 번째였다. '지금의 일본을 좋아하는가?' 라는 질문에는 '좋다'고 대답한 사람이 24.1%, '어느쪽인가 한다면 좋아한다'는 50.8%였다. '싫다'라는 회답은 젊은 세대 쪽이 많다. 20 세 미만에서는 '어느쪽인가 한다면 싫어한다'를 합치면 28.9%에 이르러, 30 대후반(15.4%)의 배에 가깝다. 싫어하는 이유로는 '일본 정치가의 질이 지나치게 낮다'(10 대, 남성, 학생). '생활자의 목소리가 국가의 정책에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20 대 여성, 회사원) 등, 정치, 정책불신이 압도적으로 많다. 좋아하는 이유로는 '해외와 비교하여 안전하다'(30 대 주부) 등이 눈에 띈다. 경제적 풍요 기대할 수 없어
2020 년의 생활은 지금보다 어려워질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행복한 살림은 할 수 있다.--앙케이트 조사로 장래의 생활을 예상해 보니 이러한 결과가 나왔다. 삶의 보람이나 편안함을 가족에게서 구하는 사람도 많아 금전보다도 정신적인 것에서 충족감을 찾으려 하는 경향도 떠오르고 있다. '2020 년에 당신의 생활은 지금보다 풍요로워질 것으로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는 전체의 과반수가 '변함이 없을 것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지금보다 가난해질 것이다'라는 회답은 전체로 27.6%, 여성은 30%를 넘어, 어느쪽이나 '지금보다 풍요로워질 것이다'는 낙관파를 상회하였다. 일본이라는 나라의 장래에 대해서 '정체', '쇠퇴'의 견해가 많은 것을 반영하여 생활의 경제적인 풍요로움은 거의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쪽이 많다. 다만, 남성의 63.3%, 여성의 53.6%가 '경제적으로 가난하게 되더라도 행복한 생활을 보낼 수 있다'고 회답하였다. 그 이유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돈만으로 행복한 것은 아니다'라고 대답하고 있다. 한편, '행복한 생활을 보낼 수 없다'고 답한 사람 중에는 20 대 전반에서 그 이하의 젊은 여성을 중심으로 '돈이 없으면 정신적으로도 가난하게 된다', '일본은 돈 중심이기 때문에' 등의 의견이 많았다.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것은 어느 때인가?'라는 질문에는 여성의 60%가 '가족과 지낼 때'라고 회답하였다. 남성도 '가족'이 반수에 달하였고, '회사의 동료와 어울릴 때', '환자 있을 때' 등과 비교하여 압도적으로 많았다. 가족 의지의 경향은 '일단 유사시 가장 의지할 수 있는 것은?'이라는 질문에서도 거의 같았다. 연령별로 보면, 20 대보다 30 대 쪽이 가족과 있을 때가 편안해진다고 답하고 있고, 35 세 이상에서는 전체의 4 분의 3 에 달하였다. 20 세 미만에서는 의지할 수 있는 상대로 '친구'라는 회답이 비교적 많았다. 이러한 가족지향은 2020 년에도 계속할 것 같다. '2020 년에는 무엇이 자신이 사는 보람이 될까?'라는 질문에는 전체의 70% 이상이 '가족'이라고 답하였다. '회사(일)'라고 대답한 사람의 비율은 35__39 세에서는 5.8%였지만, 20__24 세에서는 13.7%였다. 연령이 높을수록 일본기업의 리스트럭처링을 절실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2020 년 또는 정년까지 지금과 같은 회사에 근무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는 남성의 37.1%, 여성의 61.4%가 '스스로 직장을 바꾸려고 생각한다'고 대답하였다. 이 '자주적 전직'을 생각하는 사람의 비율을 연령별로 보면 35 세 이상에서는 3 분의 1 인데 비하여 20 세 미만에서는 3 분의 2 에 달하였다. 종신고용에 별로 집착하지 않는 젊은이의 직업관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2. 도쿄대학 미타카 클럽 --백년 계획 '공'은 그릴 수 없고 ooooo(교육자, 농정학자) '과거의 일본은 무사의 하사품이었다. 그들은 국민의 꽃봉오리였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 뿌리였다. 천황으로부터의 모든 하사품은 그들을 통하여 흘러갔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민중보다 초연하게 살아갔음에도 불구하고 민중에 대한 도의의 표준을 세우고 스스로의 규범에 의하여 그들을 지도하였다.'('무사도' 1899 년 (이와나미문고, 1974 년))
어딘가 잘못됐다 '친구들의 모임이지 않습니까? 결정되어버린 이야기만 하지 마세요.' 97 년 1 월 22 일 도쿄에서 열린 '미타카 클럽' 친목회의 이차모임에서 건설사무차관인 반 유타카(57 세) 씨에게 외자계기업 간부로부터 질문이 잇따랐다. '공공사업으로 언제까지 흥청망청 돈을 끌 작정인가? 본심은 무엇인가?' 미타카 클럽은 1950 년에 개설된 도쿄대학 미타카 기숙사에서 학생 시절을 보낸 사람들의 모임으로 회원은 약 830 명이다. '우리들이 어딘가 잘못한 것은 아닐까?'--기업체에 근무하는 회원들로부터의 날카로운 추궁에 관료나 전직 관료들로부터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기숙사는 뜻을 품은 젊은이들의 새로운 열기로 충만하였다.' 51 년 기숙사에 들어왔던 클럽대표인 히가라(64 세) 씨는 되돌아본다. 노동성에서 주 40 시간 노동의 실현에 애썼고, 노동기준국장을 지냈다. 일본의 성공에 공헌하였다는 자부는 있다. 그러나 8 명이 한방에서 지내는 기숙사에서 밤을 지새며 서로 이야기하던 '이상적인 일본'과는 역시 어딘가 다르다. 57 년에 기숙사에 들어간 타무라(58 세) 씨는 95 년 말부터 몇 번이나 가슴이 아프다는 생각을 하였다. 일본은행의 이사 시절 주택금융전문회사 문제에 직면, 재정자금을 투입하는 처리대책 작성에 관계하였다. 96 년 2 월에 이사직에서 퇴임하였는데, 처리대책은 그 후 민간금융기관이 추가자금 부담이 더해져 재정자금의 색깔을 묽게 하는 화장이 이루어졌다. 타무라 씨가 보면 최종처리책은 미봉책이었다. '정치가 여론의 반발에 얼마나 약한가? 서민 감각에 의한 국회가 불량채권을 공적 자금의 지원 없이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은 환상을 국민에게 심어 버렸다.' 정치를 방패막이로 미타카 기숙사에서 7 개월간 지낸 일본담배산업 사장인 미즈노(64 세) 씨는 대장성에서 정치와 맞서 왔다. 주세 전문으로, 주세국장, 국세청 장관을 지냈지만, 부가세 도입의 필요성을 느낀 것은 75 년이었다. 안정된 세수원으로서의 매력이 높다는 것 등이 계기였지만, 실제로 도입이 결정될 때까지는 13 년이 걸렸다. '왜냐고 물으면, 정치라고 할까, 국민의 힘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정책을 저지할 수도 잇는 정치와 대중에 대한 불만이고 불신인 동시에 정치를 방패막이로 하면 마음이 편하다는 점도 마음 한 수석에 있다. 그러나 미타카 클럽에서 기업인 회원이 비판한 것은 그러한 무책임뿐만이 아니다. 공공사업에서도 사외자본 전체를 어떻게 정비할 것인가 하는 철학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전후의 일본은 '구미를 따라잡고 앞지르자'라는 메이지 이래의 기치를 다시 세우고 행정주도로 성장을 이루었다. 관료에게는 '공공'의 역할을 중시하는 케인즈주의의 기치도 있었다. 그리고 다시 대변혁기를 맞이하여, 21 세기의 '국가 100 년 대계'를 어떻게 수립할 것인가가 문제이다. 100 년의 대계를 정하는 것은 정치지만, 관료에게는 그 선택지를 보여주어야 하는 역할이 있다. 건설성 출신으로 지역진흥정비공단 부총재인 야나기(61 세) 씨는 '미타카 기숙사에서는 모두가 마르크스를 읽었다'고 말한다. 공산주의의 옳고 그름은 어쨌든,
문명이라는 큰 세계를 제시한 마르크스의 웅대함에 반할 수 있었던 옛날의 학생들이었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기치도, 케인즈의 기치도 지금은 없고, 관료는 비판이 소용돌이 치는 속에서 나라의 장래를 구상하는 열의조차 잃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일찍이 성공한 '캐치 업 형'의 발상을 언제까지나 끌고 가고 있다. 97 년 여름에 발표되는 2010 년을 향한 국토조성의 지침 '차기 전국종합개발계획'은 공공사업에 의한 전국의 획일적인 개발의 빛깔이 남아 지방의 개성을 살리는 발상은 아직 의미하다. 국경을 넘는 대경쟁시대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시장에는 규제가 남아 있고, 고령화시대가 닥치더라도 국민부담에 대한 논의를 정면에서는 꺼내지 않는다. 미타카 기숙사는 93 년 5 월에 철거되고, 그곳에는 유학생도 들어갈 수 있는 근대적인 미타카 국제학생숙사가 들어섰다. 방은 독실로 바뀌었고, 토론의 꽃을 피우는 경우도 적다. 기숙사의 도쿄대학 2 학년생에게 말을 걸어 보았다. '돈을 버는 것은 싫으니까, 대학에 남거나 관료가 되려고 합니다. 관료가 되어도 나라를 위한다기보다는 자신의 생활이 우선입니다.' '공공'의 사람들이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만으로는 새로운 싹도 자라지 않는다. 직공의 일기 --다음 세대에 무엇을 전할 것인가? ooooo(혼다기켄공업 창업자) '오른손은 일을 하는 손이고, 왼손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손이다. 그러므로, 왼손은 언제나 당한다. 손톱을 몇 번이나 쪼개도, 그 때마다 털갈이를 하는 것일까? 잘도 또 돋아 나와준다. (중략) 나의 손은 그러한 내가 걸어온 전부를 알고 있고, 또한 이야기하여 준다.'('나의 손이 이야기한다') 1982 년(ooooo, 1985 년) 울음을 참고 사이타마현 도코로자와시에서 정밀판금, 용접공장을 경영하는 나미키(55 세) 씨는 때때로 누덕누덕한 일기장을 다시 읽는다. 1963 년, 21 세로 혼다기켄공업에 입사하고 나서 쓰기 시작한 것이다. 64 년 3 월 1 일 '손이 떨려 아크의 불꽃이 지루박 춤을 춘다. 나는 다른 사람보다 손재주가 없다고 생각될 때가 있다.' 65 년 정월 초하루 '결과를 보고 말하면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있다. 그러나, 언제나 성심전력을 다한다면 성공이라는 항구에 도착할 것이다.' 66 년 10 월 '아이라도 할 수 있는 일밖에 할 수 없는 상태로는 나의 존재의의를 의심하게 된다. (중략) 울음을 참아야 한다. 내일이 있다.' 농가의 9 형제 중 7 번째로, 일하면서 야간고등학교와 직업훈련소에 다녀 혼다에 들어갔다. 고민하면서도 일에는 일편단심이었다. 선배가 경영하는 공장을 거쳐 71 년에 독립하였다. 지금은 난방기구에 들어가는 정밀한 특수부품 등을 만든다. '철판의 기분까지도 안다. 도면이 없더라도 10 년 전과 똑같은 것을 만들 수 있다.' 일본경제의 발전은 그 뿌리에 직공이나 숙련공의 긍지가 지탱하였다. 소프트나 정보라고 하는 '지식'이 부를 낳는 2020 년에도 제품의 생산은 계속 일본의 중심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토대가 되는 직공의 마음자세가 지금 흔들리고 있다.
효고현 류노시에 사는 이토 씨는 80 세인 지금도 나무통을 만드는 현역의 직공이다. 때는 60 년대 말, 류노시 간장회사에서의 일을 상기한다. 어느 날, 작업관리 담당자가 창고로 와서 이토 씨의 작업을 스톱워치로 재기 시작하였다. 통 1 개의 수리에 걸리는 시간을 재어 정해진 시간에 몇 개나 마무리하나, 목표량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런 것을 재 가지고 잘 될까? 나무통은 감이 귀중한데', '그 감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든다', '감을 쉽게 생각하지 마라. 꼭 하려면 같은 치수의 재료를 갖추어 놓아라' 나무통은 재료도, 만들기도 가지각색이다. 수리 시간은 일률적으로는 정해지지 않는다. 결국, 목표량 작성은 포기하였지만, 그렇게까지 하여 지킨 기술도 폴리에틸렌 용기가 보급되어 불필요하게 되었다. 이토 씨의 일도 간장병을 담는 나무상자의 수리도 늘어났다. '5 반의 가독' '직공은 논 5 반(넓이의 단위)의 가독이다.' 이토 씨가 16 세에 일하기 시작할 때는 그렇게 말했었다. 기능에 경의를 표하던 시대였다. 그러나 효율 우선의 대량생산이나 기계화가 진전되어 직공이 살아갈 수 있는 여지는 점차로 좁아졌다. 직공이 만든 물건이 '전문가의 일'이라 하녀 소중히 여겨졌던 우리는 아직 괜찮았지만, 그것도 위태롭게 되었다. '딴 곳으로 가 주십시오, 맡을 수 없습니다.' 요코하마시에서 인감을 새기는 인장직공 쿠나미네(60 세) 씨는 발끈하며 말했다. 96 년 은행도장을 잃어버려 새로운 인감을 만들고 싶다는 손님이 왔을 때의 일이다. '사고가 없도록, 인정도장과 인감도장은 따로 나눠 쓰는 편이 좋습니다.' '삼문판이라도 인감등록하면 같지 않습니까? 도장따위는 아무거나 괜찮아요.' 쿠나미네 씨는 말한다. '지금까지 새긴 인장은 전부 기억하고 있다. 같은 이름을 새기는 것이라도 같은 인장은 절대 만들지 않는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이제까지 쌓아 올려 온 것은 무엇인가?' 주변사람들은 풍족하게 되었는데, 자기는 오랜 세월 고생하였지만 보답을 받지 못한다. 그 속에서 정직함이라든가 성실하게 일한다고 하는 정신이 의미해져 간다. 많은 공장이 거품기에 사업장의 문을 닫고 맨션을 세운 것도 이와 관계없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일본인의 기술은 말라버렸다. 70 년의 기능올림픽에서는 17 개나 땄던 금메달이 95 년에는 4 개에 머물렀다. 젊은이들도 제품생산으로부터 멀어진다. 문부성에 의하면, 고등학교에서 공업을 배우는 학생은 10 년 전보다 20% 가까이 줄어 겨우 40 만 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판금공 나미키 씨의 일기는 최근 거의 사무적인 말이 되었다. '방황이 없어졌기 때문에' 일에 대한 긍지는 있지만, 그래도 '이 길은 내가 마지막이다. 아들에게는 계승시키지 않겠다'고 말한다. 직공들은 다음 세대에 전해야 되는 물건 만들기의 마음을 찾아 헤매다 지쳐버린다. 바로 그래서 일기는 많은 것을 이야기하지 않게 된 것은 아닐까? 4. 현실이 두렵다 --망설임이 괴로움을 초래
ooooo(심리학자) '어떤 사회적 국면이라도 당사자 의식이 없거나, 당사자가 되는 것을 싫어하고, 각각의 장소에서 될 수 있는 한 고객적 존재로 있기를 바란다. (중략) 에너지위기 문제든가, 식량위기 대책이든간에 본래는 그 최종 당사자인 국민에게 그 자각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다.'('모라토륨 인간의 시대' 1978 년 (oooo, 1981 년)) 장래를 생각하지 낳은 반동 1996 년 8 월, 원자력발전소의 건설을 둘러싼 전국 최초의 주민투표에서 반대파가 승리한 니이가타현 마키마치. 투표의 계기를 만든 전자치단체장 사토(49 세) 씨는 지금, 조용히 농업을 경영하고 있다. '인류가 다음의 에너지를 찾아 낼 때까지는 아직 원자력발전소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다.' 94 년, 사토 씨는 원자력발전소 추진을 내걸고 자치단체장 3 선을 달성하고, 의회에 호소하였다. 지구온난화의 문제도 설득하였지만, 돌아온 것은 '그러한 일은 국회에 가서 하라'는 비난뿐이었다. 원자력발전소 반대운동에 불이 붙었다. 원자력발전소 유치는 도로나 자치단체 시설의 건설로도 이어지는 것이지만, 95 년 연말에는 자치단체장 소환의 서명운동이 시작되었다. '그만두어야 될까?' 병상의 모친이 수긍하는 것을 보고, 소환을 기다리지 않고 사임하였다. '언제까지나 화석연료를 쓸 수는 없는데' 지금도 생각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사토 씨가 원자력발전소 추진을 공약으로 한 것은 3 선 출마 때가 처음으로, 처음 출마 했을 때는 큰 쟁점이 되지 않았고, 2 선 때는 '원자력발전소 동결'을 공약으로 하였다. 대립후보가 동결을 내걸었기 때문에 선거전술상 신조를 굽혔다. 그리고, 원자력 발전소 추진으로 바꾼 3 선 때는 결국 사임으로 몰렸다. '모두 현상에 만족하여 장래의 일을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사토 씨도 마키마치 주민들도 원자력발전소가 언젠가는 쟁점이 될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절박하지 않았으므로 원자력발전소 문제를 직시하는 것을 계속 피해 온 것은 아닐까? 그 반동이 사토 씨의 사임과 주민들을 분열시킨 주민투표였다. 죽음의 현실에 직면 어느 날, '전장' 에 투입되어 마음의 균형이 무너지고 만 자위대원도 있다. 이등육좌인 고모리(42 세) 씨는 93 년 4 월, 유엔평화유지활동(PKO)의 시설대대 부대대장으로서 캄보디아에 갔다.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일본인 유엔 민간봉사자가 피력, 사망하였다'는 보고였다. 소총으로 무장한 순회팀이나 습격에 대비하는 팀의 편성을 명령받자, 부대의 공기는 얼어 붙었다. '팀은 만일의 사태가 일어날지 모른다. 그래도 참가할 것인가?' 고모리 씨는 고민 끝에 1 명씩 대원들에게 물었다. '가족이 있다'고 침묵하는 사람, '의사를 묻지 않고, 명령한다면 하겠다'고 따지고 드는 사람, 어느쪽의 기분도 이해할 수 있었다. 국회에서는 '무장순회활동은 PKO 협력법에 위반한다'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하였다. 그러한 분위기라면 정당방위라도 소총을 사용하면 비판에 휩싸이게 된다. 나가다쵸와의 온도차를 느꼈다. '어려운 문제는 전부 현장에 맡겨버리는가?' 고모리 씨의 마음 속에도 온도차가 있었다. PKO 도 처음에는 다리를 가설하는 정도가 아닌가 하고 생각하였고, 78 년에 입대하고 나서 죽음에 대하여 현실감을 가진 적도 없다. 그러나 현지에는 '죽음'이 있었다. 부하들에게 의사를 물은 것은 그
낙차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대원들을 동요시키기도 하였다. 옳았는지 모르겠다.'라고 지금도 고민한다. 일본인은 경제성장의 덕택으로 날카로운 쟁점은 뒤로 미루어 왔다. 사이가 나빠지지 않으려고 친구 사이에서의 논의도 피하는 경향이 있는데다가, 풍요롭게 된 만족감에서 '어떻게든 된다'는 묘한 낙관론도 퍼졌다. 그것은 PKO 와 같이 한 걸음 밖으로 나가면 파탄을 맞고, 글로벌화가 선행되는 비즈니스의 세계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본심을 말하고 싸움을 해라.'--95 년 6 월까지 구도쿄은행(도쿄 미쓰비시은행)의 한국총지배인을 지낸 오쿠마(56 세) 씨는 싸움을 권고하는 설득을 하고 있다. 일본기업은 이전의 식민지 지배라는 부채 때문에 한국측과의 논의를 피하고, 교섭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의 이유도 '전쟁의 영향'이라는 과거에서 구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일본계 기업이 한국인 종업원과 임금인상과 관련하여 부딪치는 장면도 늘어났다. '전쟁의 책임만큼 더 올려라.' '지금의 비즈니스와 관계없다.' 격론이 벌어지더라도 다음 날에는 태연하다. '과거로 도망쳐 숨는 사람도 줄어들고 있다'고 본다. 21 세기가 되면 지구차원의 문제도 많아져 도망갈 길은 없어진다. 미루는 것이 오히려 자기를 괴롭힐 것이라는 예감도 있다. 그래도 '임계점'까지 현실을 계속 외면할 것인가? 5. 벌거숭이의 샐러리맨 --'가'가 흔들려 고뇌 후쿠자와유키치(사상가, 교육자) '독립이란, 자신이 자신의 몸을 지배하고,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으려는 마음가짐을 말한다. 스스로 사물의 원리를 변별하여 잘못된 처리를 하지 않는 사람은, 타인의 지혜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할 수 있다. 스스로 심신을 닦아 스스로의 생활계획을 수립하는 사람은, 타인의 재산에 의거하지 않고 독립할 수 있다.'('학문의 장려' 1873 년 (이와나미 문고, 1978 년) 과격한 감사역 요코가와 엔지니어링 서비스(다치가와시)의 상임감사역인 시마무라(63 세) 씨는 스스로 '과격한 감사역'을 자처한다. '나는 이사직무의 수행에 있어 부정한 행위 또는 법령이나 정관을 위반하는 중대한 행위는 하지 않는다.' '나는 선관(선량한 관리자) 주의의무 및 충실의무를 이행하고 있다.' 사마무라 씨는 이러한 확인서를 매년도말에 임원 전원에게 서명하여 제출토록 한다. 90 년까지 전무를 지낸 요코가와 메디칼 시스템(당시)이 나중에 수뢰사건으로 구속자를 낸 데 대한 반성으로 시작하였다. 한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감사역으로부터 요구받은 '종이 조각'에 불만을 말하는 임원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알아주고 있다고 한다. 회사나 업계에서는 당연하게 생각하는 관행이 때로는 사회의 상식이나 규범으로부터 벗어나는 적이 있다. 그것을 어떻게든 막고 싶다는 것이 시마무라 씨의 생각이다. 그러한 시마무라 씨도 40 대까지는 회사에 불만을 말한 적이 한번도 없는 보통의
샐러리맨이었다. '출세'라는 두 글자도 머리에 있었다. 사건을 가까이서 보지 않았다면, '과격'하게 되었을지 어떨지는 모른다. 일본에서는 전후, 회사는 '가'이고, 사원은 '가족'이었다. 한사람 한사람은 상식있는 사회인이라도 '가'속에서는 조직의 논리로 흘러 파묻혀 버린다. 시마무라 씨의 종이 조작은 '파묻히지 말라'는 메시지라고도 할 수 있지만, '가 제일'이라는 회사인간을 만드는 구조는 뿌리 깊다. 화학품회사에서 깨끗하지 못한 역할로 경원받는 경향이 있는 주주총회담당을 5 년간 지내고 있는 사원(48 세)은 '또 한번 부탁한다면 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총회담당이 체질에 맞는 것은 아니다. 마음이 약한 것을 숨기려고 수염을 기르거나 선글라스를 꼈다. 총회꾼이 '아는 사람에게 불행한 일이 있을 수 있다'고 넌지시 위협하기도 하였다. '자기의 잘못으로 사장을 부끄러운 일에 빠뜨릴 수는 없다'고 언제나 생각하고, 그렇게 되면 회사를 그만둔다는 각오를 하고 있었다. 스트레스는 크지만 '주위에서는 오히려 생생하게 보였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타사의 총회담당도 그렇다. 수뇌부와 가까운 장소에 있다고 하는 기분, 사장도 슬며시 마음을 써 준다. 고생은 하였지만 보람을 느끼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명함에 의지하지 않는다 종신고용이나 연공서열에다가 '윗사람에게 평가받고 싶다'는 기분을 잘 자극한다. 그 구조가 회사인간을 만들어 일본의 회사를 강하게 만들기도 하였지만, 2020 년에는 이러한 고용관행은 흔들리고, 반드시 회사와 함께 행복해질 수 있다고는 말할 구 없다. '집을 위해'라고 말하면서 회사라는 '일가'에 인생을 맡겨 의지해 온 사람들은 마음의 근거를 잃는다. 아사히맥주부동산의 상근감사역, 하시모토(62 세) 씨에게는 가슴 아픈 추억이 있다. 약 20 년 전의 일이다. 어느 날, 딸에게 가족여행을 제안하였다. 그랬더니, 남자친구와 여행을 갈 예정이 있는지, '어릴 때부터 학교의 참관일에 온 적도 없고, 가족여행도 한번도 없었는데, 왜 이번에는 방해하느냐?'며 울기 시작하였다. 가슴이 뜨끔했다. 그래도 하시모토 씨는 얼마동안 '맹렬 샐러리맨'을 계속하였다. '이대로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취미인 궁도에 정력을 다하게 된 것은 최근 3,4 년이다. 우쓰노미야시에 사는 마쓰시타전기산업 네트워크센터 영업부의 야마다(42 세) 씨는 회사의 명함에 의지하지 않는 '영업'을 체험하였다. 인기극단인 '고향 캬라반'의 티켓을 판매하였다. 야마다 씨도 소속되어 있는 극단의 응원단이 리스트럭처링을 제재로 한 '벌거숭이가 된 샐러리맨의 공연 일회분을 샀기 때문에, 50 장을 떠맡았다. 팔 자신은 있었다. 그러나, 마쓰시다의 일이 아니라 개인의 부탁이라고 하면 사주지 않는다. 평상시의 교제도 소용없었다. 결국 팔린 것은 26 장이었다. '지금까지는 'national' 브랜드니까 팔렸었다는 것이다. '야마다' 개인의 힘이 아니었다.' 쓸쓸하였다. 알몸이 되어도 살아갈 수 있을까? 새로운 마음의 자세를 구하는 질문에 회사인간들은 고뇌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6. 기술에 곤혹
--사람과의 거리를 재어 재검토 oooo(물리학자) '물리학은 (중략) 인간에게 가까이 있는 모습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중략) 20 세기 전반의 물리학에서는 연구를 위한 연구, 진리를 위한 진리의 탐구가 주목적이 되어 그것이 인간에게 어떻게 관계되는지 (중략) 별로 문제삼지 않았다.'('물리의 세계' ooo, 1964 년) 로보트에 한계 '로보트의 재도입은 아직 어렵구나' 시세이도의 생산 자회사 시세이도화공(도쿄)의 공장장인 요코보리(56 세) 씨는 최근 이러한 결론을 내렸다. 이 공장에서는 94 년에 용기의 공급에서부터 라벨 붙이기까지의 공정에서 사용하고 있는 로보트 4 대를 철거하고 수작업으로 변경하였다. 생산품목이 800 종에 이르러 로보트 팔의 교환이 빈번해지는 등 효율이 좋지 않았다. 사람의 손으로 되돌리자 생산량은 1 일 1 만 6,000__2 만 개로 로보트를 이용할 때의 1 만 개보다 늘어났다. 요코보리 씨는 80 년경에 로보트 상품전시회에 가서는 '무인공장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고 꿈꾼 적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다품종 소량생산의 현장에서 생산효율을 올리는 것은 접착 테이프나 철사로 라인을 조정하는 미세한 연구와 노력의 축적이었다. 이번에 재도입을 생각한 것은 로보트의 발달을 인정하기 때문이지만, 그래도 '극단적인 다품종은 소화시킬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기술은 착실히 진보하고 있지만, 한 걸음 뛰어넘지는 못한다. 그러한 생각이 든다. 20 세기에는 자동차, 컴퓨터, 우주개발 등 많은 기술이 꽃피었다. 특히 일본은 탐욕스럽게 기술을 받아들인 것이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지만, 이제 와서는 기술의 발달에 대한 방황이 보인다.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발달하는 최첨단 분야에서는 기술에 대한 불안도 엿보인다. 가정용 게임소프트 개발회사인 와프(도쿄) 대표인 이노(26 세) 씨는 화면에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신작소프트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 있다. 여자 아이와 연애를 하는 게임인데, 음악이나 대화 같은 소리만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노 씨의 소프트는 치밀한 줄거리와 고도의 화상처리기술을 사용한 리얼한 영상 편성으로 인기가 높지만, 신작은 그 영상을 쓰지 않는다. 이노 씨는 타사의 게임도 마찬가지로 등장인물의 획일적인 성격설정이 마음에 걸렸다. 연애게임이면 머리가 좋은 여성은 콘서트에 유혹하면 잘 되고, 운동을 좋아하면 드라이브하는 식으로 마치 매뉴얼 같다. '게임을 하는 사람의 상상력은 시들도, 감성을 둔하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개발경쟁은 어떻게 하면 인물의 움직임을 리얼하게 할까에만 편중되고 화상처리가 조금 진행되면 '전에 본 것과 별로 다른 게 없다'는 단계까지 왔다. 그렇다면 다른 곳에 힘을 쏟아 보자는 시도가 소리만으로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프트이다. 21 세기를 지탱하는 기술의 선두그룹을 달리는데, 굳이 한 걸음 내려가 본다. 사회와의 의미한 거리감을 느끼는 것은 이노 씨뿐만이 아니다. 윤리면에서 불안 츠쿠바시에 있는 공업기술원 전자기술종합연구소의 연구실장인 츠카모토(47 세)
씨는 최근 이러한 체험을 하였다. 연구소의 복도에서 누군가 자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사람의 모습은 없다. 잘 보니 어떤 연구실의 문 저쪽에서 로보트 카메라가 이쪽을 향하면서, 지인인 연구자의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지인은 카메라를 통하여 도쿄의 회의실에서 츠카모토 씨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다. 가만히 그것을 엿보던 츠카모토 씨는 불끈하였다. 그러나 자기가 연구하고 있는 프로그램에도 닮은 면은 있다. 누구나 인터넷 등으로 자유롭게 다운받아서 사용할 수 있지만, 제공자가 살짝 장치를 해 놓으면, 누가 어떤 형태로 사용하고 있는가 하는 '비밀'을 알 수 있다. '기술자가 보수적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윤리면에서 불안도 있다. 츠카모토 씨는 97 년 4 월부터 옆방의 동료 연구자와 실험을 시작하였다. 모든 의사교환을 전자 메일이나 텔레비전 전화로 끝내고, 얼굴은 직접 마주치지 않는다. 의사소통은 충분할까, 그 밖에 문제가 생기는가를 조사한다. 정보기술이 낳을지도 모르는 왜곡에 대하여 스스로 경험해 본다.--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21 세기도 기술에 대한 요청이 약해지지는 않겠지만, 직선적으로 진행되는 기술에 대하여 지금까지 일체감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미묘한 갈등도 느끼고 있다. 기술의 진보는 믿고 잇지만 만능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 약간 지나치다는 점에 불안을 가지고 문득 멈추어서는 사람, 사람들은 기술과의 거리를 재고하고 있다. 7. 아버지의 마음 --전해지지 않는 마음, 계속 방법을 찾아서 oooo(작가) '나의 일생이 아무리 실패했다 하더라도, 또 내가 아무리 유혹에 빠졌다해도 너희들은 나의 삶 속에서 불순한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없는 것만은 사실이다. 확실하다. 너희들은 내가 넘어진 곳에서 새로 걷기 시작하여야만 한다.'('ooooo' 1918 년, (이와나미 문고, 1962 년)) 힘의 관계가 역전 ''아이를 구할 수 있는 것은 부모의 사랑뿐'이라는 책의 일절이 뇌리에 붙어 있었다.' 97 년 3 월 18 일, 동경지방법원에서의 모두 진술에서 카가와(52 세) 피고는 심경을 밝혔다. 카가와 피고는 96 년 11 월, 가정내 폭력을 휘두르는 중학교 3 학년의 장남을 금속배트로 살해하였다. 2 년간에 걸친 장남의 폭력으로 아내는 집을 떠나고, 카가와 피고가 일과 가사를 소화시키며 혼자 폭력에 견뎌 나갔다. '아들이 부모에게 심한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자신의 기르는 방법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들이 가장 괴로웠을 것이다.' 그러나, 고뇌와 고통의 극한에 이르러 피로에 지친 동피고의 손은 배트를 잡아버렸다. 구치 중의 피고는 '왜 아들을 죽였나, 왜 아들이 폭력을 휘둘렀나, 어떻게 하면 좋았을까?' 하고 자책의 나날을 보냈다. 이 사건에서 또 다른 연상을 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80 년대에 당시 20 세의 차남이 취침 중의 양부모님을 금속배트로 죽인 사건이다. 일류대학을 졸업하고 일류기업에 근무하는 아버지, 그 존재의 무게가 삼수 중이던 차남의 마음을
비뚤어지게 하였다고, 당시의 신문은 해설하였다. 두 가지 모두 특이한 경우로 단순히 동렬에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아버지와 아들의 힘의 관계는 역전되어 가정의 고민은 깊어졌다. '아버지의 무게'를 무겁게 느낀 아들의 폭발에서 '아버지의 마음'을 열심히 보여주더라도 전해지지 않는 회한으로.-만들어진 '표준' 카가와 피고가 중학생이던 50 년대 후반, 텔레비전에서는 '아빠는 무엇이든지 알고 있다.' '우리 엄마는 세계 제일' 등의 미국제 홈 드라마가 인기였다. 풍부하고, 따스한 가정을 사람들은 동경하였다. 이윽고 시작된 고도성장으로, 힘내어 일하면 이러한 가정이 약속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아버지는 기업전사가 되고 전업주부의 어머니는 후방을 지켰다. 기업이 활동하기 쉽게 가정의 역할분담이 진행되어 '부부와 아이 2 명'을 표준세대로 하는 핵가족화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텔레비전과 달랐다. 겉보기는 풍부하게 되었지만, 수험전쟁, 부친의 가정 부재, 과도한 모자근접 등의 모순이 언젠가부터 가정내에서 커지고 있었다. 도쿄의 회사원 오자와(40 세) 씨는 5 년 전에 부모역할 트레이닝에 참가하였다. 부모역할 훈련협회(도쿄 미나미아오야마)가 실시하는 부모와 아이의 커뮤니케이션 방법 강좌였다. 계기는 장남이 유치원에 들어갔을 때였다. '아내가 아이와 접하는 방법은 밀도가 너무 진하다. 그런데 자기가 해보아도 거의 같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였다.' 가정의 불안이 사회문제가 되어가는 상황에서 오자와 씨는 가정에서 자기의 역할을 다 하고 싶다는 생각이 커지고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서 비로소 부모가 된다. 그럼에도 부모로서의 기술은 훈련받지 않아도 좋은 것일까? 하는 의문도 있다. 강좌의 수강자 총수는 7 만 5,000 명이다. 처음에 남성은 205 정도였지만, 최근에는 30% 정도로 늘어났다. 오자와 씨는 강좌에서 만난 친구와 지금도 정기적으로 부모와 아이의 문제를 서로 이야기한다. 자기의 마음을 어떻게 전할까? 아이의 마음을 어떻게 파악할까? 방법을 찾는 부친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제네바대학의 쿠라멜 교수에 의하면, 자녀수 감소 사회의 독자는 '아기 업'을 연기한다. 어른의 마음 세계에서 자란 아기는 어떻게 하든 부모의 마음에 들고 싶어 오로지 마음을 쓴다고 한다. 자기의 감정은 뒤로 돌리고 부모의 기분에 맞추는 아기 업은 점차로 아이 업으로 발전한다. 한편으로 아이 본래의 기분은 자라지 않아, 그 동안의 자기모순으로 가정내 폭력으로도 이어진다. 가정내에서 있을 곳이 정해지지 않은 부모와 아이가 함께 방황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가족에 대한 애정이 도중에 끊겨 버릴 수는 없다. 본지 앙케이트(18__39 세, 597 명)에서는 '2020 년에 무엇이 자신의 사는 보람이 될까?'라는 질문에 대하여, 70% 이상이 '가족'이라고 대답하였다. '가장 편안함을 느낄 때'에 대하여도, 50% 이상이 '가족과 지낼 때'였다. 그래도 가족은 변하려 한다. 후생성에 의하면 2010 년에는 세대수가 5,000 만을 넘는다. 1 인 세대와 부부만의 세대를 합친 아이가 없는 세대는 50%를 넘는다. 자녀수 감소는 '부모수 감소'이기도 하다.
8. 도시가 줄어든다 --자생으로 자치의식 회복 ooo(철학자) '조금 더 나아가서 이 '양복'을 입고 '양옥'에 사는 사람을 찾아 연구해 보자. 그는 그 양옥의 정원에 잔디를 심고 화단을 만들고 있다. 그것은 그와 그 가족이 거기서 즐거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마을의 공원에 대하여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 공원은 '집'의 밖에 있으며 누군가 다른 사람의 것이다.'('풍토' 1935 년 (이와나미 문고, 1979 년)) 기업과 시를 움직여 18 만 명에서 11 만 명으로 인구감소를 경험한 홋카이도 무로란시의 과제는 도시의 리스트럭처링이다. 상공회의소의 상업근대화계획으로 시내에 둘로 나뉘어져 있는 중핵적인 상가를 하나로 집중시킨 것은 95 년 3 월이었다. 시청 출장소 등의 통폐합도 시작되었다. 철의 합리화로 2 만 5,000 명에서 6 만으로 가장 심한 변화를 겪은 제철소 마을 와니시에서 재생을 위한 시가조성이 시작되었다. 상가에 인접한 유휴지를 가지고 있는 신일본제철을 설득하여 중핵상업시설을 집약시킨다는 구상을 한 것은 와니시 상가진흥조합 부이사장 이라이(49 세) 씨이다. 이라이 씨는 도쿄의 대학을 나와 가업인 주점을 이어받아 편의점을 경영하고 있다. 친구들 대부분은 신일본제철의 기미츠(치바현)나 오이타에 멀리 떨어져 있다. 일찍이 200 만 엔이었던 상가의 협찬금이 지금은 10 만 엔으로 줄어들었다. '순간적으로 이벤트를 내세웠다.' 아라이 씨가 나서게 된 것은 '남겨진 시간이 별로 없다'는 절박한 위기감 때문이다. '우리들이 이렇게 하고 싶다고 그림을 그려서 기업과 시를 끌어들이지 않으면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노조연합 시지회가 시가조성에 참가를 표명하는 등 반응을 느끼면서도 아라이 씨의 자문은 계속된다. '구가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확실하지 않은데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후계자 문제가 남아 있고 보증이 없는 투자는 모두 불안해 한다. 그러나, 지금 하지 않으면 도시는 사라져 버린다. 아라이 씨의 중소학교의 후배로 식품슈퍼를 8 점포까지 늘린 시가(45 세) 씨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적자인 무로란점에 투자를 계속하는 것은 출신지이기 때문이다. 고령화가 진행된 이 도시에서 장사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장래의 생존전략으로 이어진다. 누구나 나이를 먹으면 태어나 자란 도시에서 살고 싶어한다.' 시가 씨는 '무로란의 시가조성은 이제부터'라고 말한다. '지금까지는 기업(신일본제철)을 의식하여 불만을 말하는 것이 꺼려졌기' 때문이다. 축소균형을 제창 일본의 도시는 개성이 없고 난잡하고 추악하다. 그 이유를 평론가인 가토 씨는 인구증가의 속도가 끊임없는 변화를 낳았고, 중앙집권관료제가 획일적 행정을 추진하여 주민에게 자신들의 도시의식이 자라지 않았다고 설명한다.('이와나미강좌 현대도시정책' 1972 년)
기업입지 도시의 동요는 기업의 존의 성장이나 국가를 정점으로 하는 장미빛 행정의 전제조건이 무너지면서 시민의식이 싹튼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치의 사상은 주민과 행정의 부단한 노력으로 단련된다. 경관중시의 엄격한 규제로 난잡한 개발로부터 도시를 지키려는 '거리조성 조례(미의 조례)'를 94 년에 시행한 가나가와현 마나쓰루마치의 미키(56 세) 시장은 90 년, 개발과 관련하여 도시를 양분시킨 선거에서 처음 당선되었다. 시민의 지지를 믿는 '주민의 대표'는 지금도 후원회를 가지고 있진 않다. 사유권 제한에 대한 반발이나 도시계획법 등과의 정합성이 문제가 된 조례는 전부를 공개하여 주민의 의견을 듣는 민주주의의 룰에 따라서 실현되었다. '논의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살기 좋은 아름다운 도시를 만드는 것이라는 의식이 키워진다'고 미키 씨는 말한다. 인구 1 만 명의 어업과 관광의 도시가 하고 있는 시도에 대해 '발전이 뒤떨어진다'고 하는 시민의 불안이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미키 씨는 '자기들의 조례는 자기들의 의사로 변경할 수 있다.'고 유연한 자세를 보인다. 무로란의 상업근대화계획을 정리한 오사카 무로란공업대학 조교수(46 세)는 '축소균형형 거리조성'을 제창한다. 2020 년을 향하여 지방도시가 급격한 인구감소와 고령화를 피할 수 없는 이상, 지금 있는 인프라를 살리며 거주밀도를 높이는 것이 도시 기능을 유지하는 데에 있어 불가결하다. 주민참가가 성패의 열쇠를 쥔다고 한다. '집'에서 편안을 구하는 일본인은 공공관념이 희박하여 그것이 일본의 도시를 특징짓고 있다. 일본인은 집이 귀중하고 도시에는 무관심하지만, 그 집(가족)도 바야흐로 분열기색을 보이고 있다. 인구가 계속 줄어드는 무로란의 세대수는 늘어나고 있다. 시민의식을 가질 필요를 느끼지 않는 일본인은 지금, 자기들의 도시에 정면으로 맞서도록 요구 받고 있다. 9. 마르크스를 넘어 --새로운 경영의 이상을 쫓아 ooooo(사회사상가) '초기의 마르크스주의자는 스스로 알지 못한 이상주의자였다. 그러므로 입으로는 그것을 거부하면서, 실은 이상주의의 도의심이 그들을 지배하였다. 걱정은 그 다음의 마르크스주의자이다. 거기에 이르러 도덕의 황폐가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마르크스에서 나온 마르크스를 극복하는 것' 1929 년, oooo '근대일본사상대계 35 쇼와사상집 1 수록') 불편한 기업사회 전후, 일본을 경제대국에 밀어 올린 숨은 공로자는 실은 자본주의를 비판한 '마르크스'였다. 공직추방 후에 등장하여 고도성장기에 걸쳐 활약한 경제인 중에는 청년기에 마르크스주의의 세례를 받은 사람도 많다. 그것이 경제 패러다임(좌표축)의 변화를 잘 극복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예를 들면, 자본과 경영의 분리 등 수정자본주의의 논자로 유명한 고 오츠카 일본특수강관 사장은 리켄 그룹의 임원일 때, 거기에 모인 전좌익운동가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전전의 경영자가 노동조합을 죄악시하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전후파의 대부분은 노조와 정면으로 마주 앉아서 안정된 노사관계를 쌓았다. '그들은 결국 휴머니스트로서 노동자를 인간으로 보고 있었다'고, 경제동우회의 활동에 1946 년의 설립시부터 관계한 야마시타(88 세) 씨는 이야기한다. 마르크스주의 그 자체보다도 그에 공명하여 뿌리내린 이상주의가 추진력이었다. '멍청하게 있지 마라. 안주하면 잡힌다. 지금이 빈둥거릴 때인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산토리의 사치(77 세) 회장은 옹졸한 기업사회에 대한 반항을 시도하여 왔다. 위스키 최대기업의 자리에 안주하여서는 안된다는 스스로의 경계심으로 진출한 맥주사업이 상징적이다. 34 년을 지나서 시장점유율은 5.5%(97 년 1__3)에 머물러 있다. 그래도 '과점의 업계는 본래 있어서는 안된다. 개인의 다양한 기호가 살지 않으면 이상하다'고 말한다. 주판계산만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경쟁이 치열한 맥주사업에 도전하는 삶의 태도가 나에게 맞다. 사원들에게도 가치가 있는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자유'를 목표로 삶의 용수철이 된 것은 마르크스, 엥겔스 전집을 읽고, 게다가 자유주의사상에 감동하였던 청년기의 지적 체험이다. 소비자에게 선택의 자유를 제공함과 동시에 자기는 물론 사원에게도 자유로운 삶의 태도를 가르치고 싶다고 생각하여 왔다. 이것이 '줄곧 품어온 생각이다'라고 자기 분석하는 사치 씨의 이상이다. 결과적으로 버블 경영으로 달린 예도 있다. 세존그룹을 키운 츠츠미 세이지 세존코포레이션 회장(70 세)이 그 사람이다. '몽상가로, 끊임없이 꿈을 따라가지 않으면 불안하여 어쩔줄 모르는 사람이다'라고, 세이유의 전임원이 지적한다. 대학시절 공산당에 들어간 것도 로맨티즘에 의한 것일 것이다. 시인이라는 또 하나의 얼굴을 가지고, 유통서비스 사업에 특이한 감각을 불어 넣었지만, 관리면에 소홀함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마르크스주의를 통과한 경영자는 단괴(아파트 단지)의 세대까지이다. 대형 포목소매점 체인 야마토(도쿄)의 야지마(47 세) 사장은 학생운동에 참가하여 동경대학 야스다 강당의 공방전에도 참가하였다. 지금의 경영에 직접 관계 없지만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회사'를 목표로 한다. '경영자뿐만 아니라 종업원도 기업이라는 변압기를 통해서 사회와 관계를 가지고, 자기실현을 꾀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정치에서 기업으로 장소를 옮겨 이상을 쫓고 있다. 그러나 많이 관료화된 기존의 경영자는 시장경제의 침투에 쫓겨 좁은 현실주의로 도망쳐 숨어 있다. '지금은 단층의 시대'라고 동우회의 야마시타 씨는 본다. 일찍이 '마르크스'가 공통의 화제가 된 것은 견해를 바꾸면 사상의 집단주의이다. 이상을 쫓은 자세도 국가나 사회를 의식하여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2020 년의 경영자는 이것과는 다르다. 새로운 이상을 가지는 것이 요청된다. 21 세기 초두에 40 대가 되어 경영층에 들어가게 되는 지금의 20 대에서 30 대의 인재에게는 실제 그러한 주술같은 신념은 없다. 개인 개인이 자립하여 몸에 배인 기업가 정신을 개성적으로 발휘하게 될 것이다. 10. 남편은 밖에 아내는 안에 --무너지는 '역할', 선택의 폭을 넓게
시오노 나나미(작가) '세상이라고 하는 것은 사회상, 법률상의 문제만으로 끝나는 흑백 선택이 아닌 것도 사실이다. 특히 남녀 사이가 되면, 그것이 개인차원에 머물면 그만이고, 법률문구로는 따라갈 수 없는 분야가 증가되고 있다'.('남자들에게' oooo, 1989 년) 여성에게 험한 눈 통산성의 캐리어 관료로 두 아이의 어머니인 아라키(36 세) 씨는 고만한 끝에 결단을 내렸다. '아이에게는 일생에 한번인데, 양친과 함께 있지 않으면 불쌍하다.' 1997 년 봄, 아라키 씨에게 해외출장의 이야기가 나왔다. 마침 일정이 장남의 초등학교 입학식과 겹친다. 같은 통산관료인 남편은 해외로 단신부임 중이었다. 아라키 씨는 일보다 아이를 우선하였다. 차남의 출산 때는 1 년의 육아휴가도 얻었다. '어설픈 기분으로는 일할 수 없다. 생활이 있어야 비로소 일이 아닐까?' 마음은 흔들리지만, 현실을 보며 그것은 어리광이라고 느낄 때도 있다. '다른 사람들과 캐리어에서 차이가 나게 된다'라고도 생각한다. 86 년의 남녀고용기회균등법의 시행 이래 일하는 기혼여성이 늘어났다. 그러나, 그녀들에게는 '출산이나 육아문제가 있는 여성은 일에서는 비효율', '남편은 밖에, 아내는 안에'라는 기업의 논리나 사회의 눈이 무겁게 덮친다. 96 년, 15__64 세의 생산연령인구가 전후 처음으로 감소로 바뀌었다. 국가의 예측으로는 2020 년에는 자녀수 감소로 그 위에 1,300 만 명이나 줄어든다. 가계는 물론 국가의 성장을 지탱하기 위해서도 일하는 여성의 역할은 한층 더 무겁게 된다. 남편과 아내가 획일적으로 역할분담하는 발상이나 제도는 무너질 수밖에 없지만, 사회도 많은 남편들의 의식도 아직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런 만큼, 일인가 집인가, 선택을 강요받는 여성의 마음은 흔들린다. '어떻게든 되겠지.' '간단히 말하지 말라. 일을 그만둘지 어떨지 선택하지 않으면 안된다면 어떻게 할거야.' '나는 남자니까 모르겠어.' 리쿠르트에 근무하는 겐모츠(35 세) 씨는 그만 남편에게 화가나 버렸다. 결혼으로부터 3 년 정도 지나 아이를 낳자고 생각하였을 대의 일이다. 남편은 이해하는 편이지만 일과 아이 키우기를 어떻게 양립시킬 것인가 하는 점을 진지하게 생각하여 준다하더라도 무리라고 느꼈다. 받아들임과 도량 외자계 보험회사를 그만두고 세 아이의 어머니가 된 가타기리(38 세) 씨에게는 '아이 키우기는 당신의 일일 것이다'라고 말하는 남편의 태도가 오히려 똑똑하다고 생각한다.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하면 '육아를 소홀하게 하지 말라'고 말할 것이다. 남편이 대학교수로서 잘 나가고 있을 때이기도 하여 '참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남편이나 주위의 협력 없이 여성이 풀 타임으로 일하고자 하면, 일과 가사의 이중노동으로 피로해져 버린다. 파트 타임이나 파견회사도 노동조건 등에서 문제가 남는다. 시설도 갖추어져 있지 않다. 어떤 선택도 어려워 많은 여성은 일을 단념한다. 요코하마에 사는 가사하라(34 세) 씨는 근무하던 광고회사의 일을 집에서 한 적이
있다. 가사와 일을 어떻게든 양립시키고 싶었기 때문이지만, 그래도 일하는 도중에는 어디엔가 아이를 맡길 필요가 있다. 그것이 잘 되지 않아 결국, 2 개월만에 그만두었다. 물론, 자진하여 주부의 길을 선택하는 사람도 많다. 대형 리스회사의 종합직을 그만둔 야마모토(29 세) 씨는 '회사의 일은 누군가 다른 사람이라도 할 수 있지만, 집안의 일은 나밖에 할 수 없다'고 말한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가지고 닮은 인생을 보내는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21 세기에는 많은 여성이 이미 그렇게 하고 있듯이 가가 혼자서 인생을 골라 가지게 된다. 사회에 다양한 선택을 받아들이는 도량이 없으면, 이 나라의 장래에는 그림자가 드리운다. 사회를 만들어 가는 한사람 한사람이 유연한 마음의 자세를 가질 수 있을지 어떨지. 일하는 여성의 문제는 그러한 무거운 과제를 제기하고 있다. "대담 1)" 일본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야마우치 마사유키 씨와 아오키 타모츠 씨 야마우치 마사유키:도쿄대학 대학원 종합문화연구과 교수. 현대 이슬람과 민족문제를 중심으로 지역문화와 국제관계사 연구. 비교문명론의 관점에서 현대일본사회의 동향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학술박사(도쿄대학). 49 세 아오키 타모츠:도쿄대학 첨단과학기술연구센터 교수, 문화인류학의 입장에서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가 형성하는 새로운 문화, 문화와 개발, 국제관계 등에 관심. 오사카대학에서 박사학위(인간과학). 닛케이 2020 년위원회 위원. 58 세. 2020 년을 바라보며 세계가 크게 변화하고 있는데, 일본인이 그리는 '국가'의 모습이 흔들리고 있다. 자본과 정보가 모습을 바꿔가며 자유자재로 국경을 넘나들고 있는데, 일본은 전후 시스템의 붕괴에 직면하고 있다. 애매한 상태로 남아 있는 일본이라는 '국가'에 대하여 서로 이야기하여 보았다. 자율심 미숙한 일본 아오키:일본은 전전에 너무나 국가의식이 강했기 때문에, 전후에는 비교적 국가, 국가라고 말하지 않게 되었다. 섬나라이기도 하여 국가는 자연발생적이라고 할까, 국경에 의해서 둘러싸인 강렬한 국가 테두리를 느끼지 않는다는 점도 있었다. 그러나 일본을 둘러싸고 있는 동아시아, 동북아시아 각국은 지금, 국가의식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고, 미국도 미일관계에서는 대국으로 다가온다. 일본이 동아시아의 다른 나라들과는 다른 형태의 새로운 국가상을 보여줄 수 있는지 어떤지, 이것이 지금 제기되고 있는 국민적 과제라고 생각한다. 야마우치:전후의 일본인이 국가를 너무 의식하지 않아 온 배경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전후의 교육 내지 가치관은 종교문제에 성실하게 대응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어떤 국가에게도 본래부터 요구되는 안전보장이라든가 국민적 이익이 어떻게 시민생활을 지탱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관심이 대단히 희박하였다. 경제면에서도 전후 일본이 선택한 경제지상주의는 국가를 의식시키는 일은 없었다. 두 번째는 민주주의가 어쨌든 정착하였다는 것이다. 전후의 일본은 어떤 의미에서 민주주의의 성숙과정을 훌륭할 정도로 달성하였다. 그 결과로, 국민은 개인적
차원에서 공공서비스, 이익을 받는데 익숙해져 버렸다. 자신들의 법인이나 개인의 이해가 국가적 차원의 이익에 어떻게 연결되는가 하는 발상이 대단히 모자랐다. 세금도 얼마나 유효하게 쓰이는가 하는 보편적 차원에서의 검토도 없이, 각 부처의 나눠먹기 시스템, 압력단체, 이익유도형의 정치과정에 의해서 민주주의가 성장하여, 결국 '개인은 있지만 구가가 없는' 상태가 되었다. 아오키:동서냉전이 끝나고, 양재 초강대국간의 긴장이 없어진 결과 나온 것이 종교나 민족의 차이에 의한 충돌, 분쟁으로, 21 세기의 문제로 남아버렸다. 경제는 글로벌화, 월드 링키지(연결, linkage)가 명확히 되어 왔는데, 아직까지도 이들의 차이로 인간들은 서로 목숨을 걸고 싸운다. 이러한 문제에 일본은 전후 50 년,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다.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그러한 문제에 소극적으로 넘어온 것이 현실로, 그것이 또 국가의식의 희박함이라는 문제와도 관계되어 있다. 민족, 지역에 관심을 야마우치:자본주의의 기본적인 가치로서 '차이'라는 사고방식이 있다. 간단히 말하면, 자본주의는 통상무역 등을 통해서 먼 곳에서 가까운 곳으로 상품을 이동시키고, 그 차이에 의해서 그 틈 사이로 이윤을 찾아내 왔다. 그런데, 인간관계나 민족 사이에서의 서로 다름, 즉 '차이'는 반드시 적극적인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종종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다. 그것이 단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민족차별, 인종문제이다. 종교는 문명을 지탱하는 큰 요소로, 예컨대 이슬람의 경우, 이슬람에 크게 의거한 세계관이나 정신구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유럽은 유럽문명 속에 통합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오히려 어떤 점에서 통합할 수 없는가를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는 방법도 있다. 그렇지만, 원칙과 본심이라고 할까, 실제의 정책이나 그 근저에 있는 차별, 차이에 대한 강한 감정의 문제 등 표면에 나타나는 세속적 이데올로기와 본심 사이를 평화적으로 조정할 수 없었다. 문명의 역사에서 특히 20 세기는 그에 성공하지 못하였다. 아오키:개인이 가족을 너무나 희생하면서 기업을 위해 봉사하여 개인생활의 공동화를 낳았다는 것이 최근 10 년 정도 일본의 기업사회에 대한 비판이다. 일본이라는 국가가 있어서 기업도 거기에 속하고, 그 기업에 대한 충성이라든가, 생애의 활동 장소로서 기업에서 가치를 찾아내는 형태를 지녀왔다. 그러므로 개인 그리고 가족이 있어서, 가족이 속하는 민족, 종교, 지역이 있고, 다음에 국가가 온다고 하는 중간항이 없었다. 기업주의 관철되어 성공하였지만, 국제화시대가 되어 일본을 넘어 국제사회라는 점에서 이해관계를 일치시키는 발상은 전혀 나오지 않고, 이것이 여러 곳에서 어긋나고 있다. 야마우치:개인과 국가 사이에 무엇이 존재하는가, 기본적으로 국가는 그 자신이 개인간, 조직간의 경쟁 밖에 서서 공정하고 또한 중립적인 조정자로서의 기능을 다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국가자체도 마찬가지로 사익을 추구하는 대상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개인과 국가를 중개하는 요소를 생각할 때, 곧 기업에 대신하여 가족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있는 현상에서, 더구나 일본 같은 선진자본주의국에서 문제되는 것은 오히려 민간봉사자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케네스 애로(Kenneth Arrow)와 같이 빈곤자에 대한 배려는 자유경쟁을 인정하는 경제학자도 부정하지 않고 있다. 애로는 효율뿐만 아니라 '성실함'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유산 등 자기의 실력에 의하지 않고 부자가 되는 것에 그는 대단히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사람을 보고 자기의 눈높이를 맞추는 것으로 자유경쟁 속에서도 타인에 대한 배려, 존경심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들이 개인과 국가를, 나아가 경제활동의 자유경쟁의 의의를 어디에선가 의식할 경우, 타인을 존중하는 태도가 민간봉사자의 원리를 통해서 조직과 개인, 조직과 국가라는 형태로 이어가는 단서가 될 것이다. 공공성 의식의 결여 아오키:일본과 같이 민주주의적인 정치체제를 기초로 한 대중사회, 더구나 생활 양식, 생활 태도의 평균성이 대단히 높은 사회에서는 일상생활을 뛰어넘는 문제를 설정하는 것은 어렵다. 또 하나 문제인 것은 대중사회의 특징은 대중문화가 대단히 큰 영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문화라고 하더라도 백년간에 완전히 변해 버렸다. 매일같이 심한 변화를 경험하면, 그것이 지속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지 못한다. 대중화된 평균적인 사회의 국민에게는 차이를 강조하면서 살고 있는 국가나 지역의 문제는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국가를 말하는 경우에도 여간해서 핀트가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 야마우치:본래 인간에게는 국가, 국민, 지역 등 여러 가지 수준에서 귀속의식이 있다. 이슬람에서도 마호메트에 의하면, 향토에 대한 사람은 가장 중요한 신앙의 요소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전후 일본의 인식은 대단히 약한 면이 있다. 예컨대 학교에서 안전보장과 애향심의 의미는 거의 가르치지 않는다. 반드시 논의되었어야만 하는 안전보장이나 정교분리의 문제가 전후 계속 무시되어 온 결과는 대단히 크다. 아오키:아직도 개인이 약한 일본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의 존엄, 개인의 권리, 개인의 안전보장을 근거로 한 국가의 창조이다. 단지 그것이 단순한 개인의 에고이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개인을 넘어 사회를 위해 무엇인가를 한다고 하는 공공성의 의식이 필요하다. 그 의식을 함양하기 위해서는 윤리교육이 필요하다. 또한 전세계에서 종교가 큰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일본에서는 종교에 대한 지식을 올바르게 가르치는 장소가 없다. 민족분쟁문제도 각각의 민족의 종교를 포함한 역사적인 배경을 똑바로 가르치지 않으면 안된다. 종교와 민족의 교육을 공공성이라는 관점에서 어떻게 논의하고, 그 지식을 넓혀갈 것인가 하는 점에 대응하지 않으면 인간으로서 대단히 왜곡되어 버릴 것이다. 야마우치:우리들은 자유라고 하면 추상적 가치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는데, 자유는 구체적인 경제활동과 일상생활 속에서 명시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된다. 예컨대, 어떤 종교법인이 거꾸로 사람을 억압하는 활동을 하였다고 한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억압한 것일까? 그에 대한 원칙적인 인식이나 기초적인 대응을 할 수 있는 지식을 가지지 않으면 안된다. 현재, 기업의 논리 또는 관료 본연의 자세에 대한 비판을 통하여 국가비판이 행해지고 있다. 국가는 비판되어야 하는 존재이고 끊임없이 다시 보아야 하는 대상이니까, 그것은 좋지만, 비판하는 주체, 요컨대 우리들 자신의 문제도 있다. 공공적인 서비스를 받으니까 세금을 지불하고 있다. 그러나, 공공서비스가 이미 한계를 넘고 있는 경우, 그 나름의 부담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되는데, 이 불균형을 국민은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국가 본연의 자세에 대한 비판은 그야말로 자기의 의무, 부담을 통해서 하고, 자기자신이 무엇을 하여야만 하는가, 무엇을 하여서는 안되는가--국민의 측면에서도 그 논의를
견뎌낼 수 있는 각오를 21 세기를 바라보며 가져야 될 것이다. "대담 2)" 역사로부터의 교훈 --우메하라 다케시 씨와 다나카 아키히코 씨 우메하라 다케시: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고문. 철학자. '숨겨진 십자가--호류사론'등을 토하여 문학, 역사, 종교에 대한 대담한 가설을 제기한 독자적인 일본문화연구는 '우메하라 일본학'이라고 불린다. 92 년 문화공로자. 72 세. 다나카 아키히꼬:도쿄대학 동양문화연구소 조교수. 77 년 도쿄대학졸. 메사츄세츠 공과대학에서 박사학위(정치학). 전공은 국제관계이론. 96 년, '새로운 '중세''로 산토리 학예상 수상. 닛케이 2020 년 위원회 위원. 42 세. 민주주의를 비롯하여 근대사회의 뼈대를 완성시킨 일본사회. 그 한쪽에서 정치불신으로부터 환경파괴까지 과제가 산적하여 21 세기에 대한 조감도를 그리기 어렵다. 그렇다면, 되돌아보아 미래를 우회하여 역사로부터의 탐색이 불가결하게 된다. 지금의 시대를 종횡으로 살펴 보았다. 중세적인 가치가 필요 우메하라:인류 그 자체가 지금 대단히 앞길이 막혀 어쩌면 좋을지 모른다면, 또 한번 역사를 되돌아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나는 근대주의라는 것이 한계에 도달할 것이라고 20 대부터 예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 예감이 차차 심각하게 되기 시작하였다. 다나카:근대는 여러 가지를 만들어 내었다. 개인주의, 개성의 확립, 시장경제를 중심으로 한 경제운영, 주권국가라는 틀, 에너지 다소비형의 생산도 있으며 핵병기도 있다. 우메하라:그렇다. 민주주의라는 것은 아무리 부패하더라도 그 이상으로 좋은 제도는 여간해서 발견되지 않는다. 개인의 존엄과 자유라는 문제도 그것을 확립한 것은 근대의 큰 공적이기는 하다. 다나카:그 자체는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이 어떤 단계에 도달하면 근대가 낳은 다른 것과 정합하지 않게 되는 부분이 나온다. 예컨대 근대의 주권국가라는 틀 자체도 어쩐지 이상한 느낌이 든다. 자유주의적인 개인의 확립이 진행되어 가면 국가도 민주주의적이 되지만, 그러면 과연 인간의 존재 전부를 국가에 맡겨 놓아도 좋을지 하는 위문이 든다. 이것은 바로 개인의 인권의식이 진전되기 때문이다. 우메하라:현대를 '새로운 증세'라고 말하고 있는데. 다나카:근대의 국제정치를 특징 지우는 주권국가의 절대 우위성, 모든 존재는 국적을 가지고 주권국가 밑으로 정비되어 있으며, 그 주권국가와 주권국가의 사이의 교섭이 외교로 이것이 국제관계를 구축한다.--라는 것이 의미를 가지지 않게 된다. 요컨대, 국가는 물론 있지만 국가와 다른 존재--대기업, 도시, 경우에 따라서는 NGO, 그러한 것이 복잡하게 뒤얽힌 세계가 되어 있다. 이것은 서구 중세의 국제사회와 오히려 가까운 면이 있는 것은 아닐까? 봉건관계는 대단히 복잡한 가신과 영주 사이의 관계로 성립되어 있고, 도시도 그 연합이 있으며, 수도회도 있었다. 거기서는 어디까지가 국제정치이고 어디부터가 국내인가 잘 모르는 형태이다.
진보의 사상에 한계 우메하라:확실히, 근대국가, 주권국가라는 형태로는 현대정치는 풀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근대는 계승해야 할 가치가 아직 많이 있더라도, 기본적으로는 그 체계가 무너져 가고 있는 점이 많다. 예컨대, 근대는 진보의 사상으로 쌓아 올려졌지만, 이것은 분명히 잘못되고 있다. 근대철학은 과학기술 플러스 인간의 자연지배의 철학이다. 이러한 무조건적인 자연지배는 이미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 다나카:지금까지의 근대의 방식 그대로 가면, 최종적으로 자연 환경도 지구도 갖지 못하게 된다. 이것을 고치는 기술을 만들 수 있을지 어떨지가 21 세기의 과제가 된다. 18 세기, 19 세기에 인구나 에너지 소비 등 돌연히 나타난 것들이 가득하다. 지구 환경을 파괴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것들을 어느 단계에서 억제하고, 또한 어떤 종류의 정상 상태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구도 그다지 극단적으로 늘어나지 않고, 자원도 대체로 재활용해 가 수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중세적인 자연과의 조화의 재현이 아닐까? 우메하라:그렇다. 인류는 농업혁명과 공업혁명의 두 가지 큰 혁명을 맞이하였다. 이 문명은 풍부한 부를 증식한 반면, 자연파괴도 굉장한 기세로 진행시켰다. 그러므로 환경문제를 통하여, 또 한번 역사의식을 생각하여 볼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말하면, 일본에서 민주주의는 메이지 이후에 도입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예컨대 죠몬시대는 수렵채집을 하며 살았지만, 집의 규모는 모두 같고 마을의 한가운데에 광장이 있어 거기서 모두가 상담하고 일을 정하였다. 잡은 것을 평등하게 나누었다. 벼농사 농업이 들어와 야요이 사회가 되면, 종적사회, 계급사회가 형성된다. 그런데, 불교가 들어오면서 다시 평등화의 방향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그 다음 시대에는 또한 종적사회가 온다. 그러한 반복의 하나로서, 메이지의 데모크라시가 있었다. 다나카:지금, 비판되고 있는 일본형 시스템은 그 나름의 달성인 것은 틀림없다. 요컨대 어떤 공산주의사회보다도 실질적인 평등과 정치적인 자유를 확보하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반드시 전부 외부에서 수입된 것이 아린, 일본의 긴 역사와 근대와의 접촉이 이런 '브랜드'를 만들어 내었다. 우메하라:일본인이 원래 가지고 있는 평등에 대한 욕구가 강하기 때문이다. 다나카:그 자체가 세계사적인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새로운 중세'라는, 근대와 다른 양상을 보여온 세계 속에서 어느 정도 잘 기능하여 갈 것인가? '브랜드'를 조금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 그 경우, 전통 속에서 얼마나 좋은 것을 꺼낼 수 있는가? 하고 생각한다. 우메하라:단순히 평등화되고 있지만 한쪽에서 고정화되고 있다. 예컨대 정치가도 2 세, 3 세만으로, 차차 옛날의 영주같이 되고 있다.(웃음) 기업사회에서도 세습이 있지만, 그래도 경쟁이 있으니까 어느 정도 능력이 없으면 해 나갈 수 없다. 정치가의 일세는 불쾌한 점도 있지만, 그 나름대로 매력도 있어 고개 위에는 구름이 있다고 하는 '청운의 뜻'이 있었다. 그러한 매력이 없어졌다.(웃음) 다나카:정치가 일종의 '가업'이 되고 있다. 주권국가의 의미가 쇠퇴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가는 지켜지고 있다고 할까, 세계적인 정치와 경쟁하지 않아도 좋은 면이 있다. 기인에게 더 관용을
우메하라:학자로 2 세, 3 세 이어지는 것은 어려운데, 정치가만이 그렇게도 거뜬히 계승할 수 있는 것은 이상하다.(웃음) 메이지시대에는 자유민권운동이 들끓어 올라, 그것이 새로운 정치에너지가 되었다. 가업이기 때문에 창조성을 많이 잃어가고 있다. 지금은 편차치 교육으로, 지가 존재하고 있는지 아닌지--거기에 기본적으로 위기를 느낀다. 다나카:이제부터 국가뿐만 아니라 개인, 기업, 도시 혹은 학자도 세계의 학회에서 경쟁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려면 일본 안에서만 페이퍼 테스트로 재는 교육으로는 여간해서 해 나갈 수 없다. 우메하라:일본사회는 기인에 대하여 보다 관용적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뛰어난 학자는 어딘가 이상하다. 밸런스가 나쁘다고 하는 것이 나의 신념으로.... 이상한 것이 전부 우수한 것은 아니지만.(웃음) 재능을 가진 사람도, 아무래도 일본사회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러한 사람이 미국의 적자생존 사회에 가서 노벨상을 탄다. 다나카:그것은 일본사회가 '화로서 귀하여...'라는 데서 시작되었기 때문일까? 우메하라:'화'라는 것은 쇼토쿠 태자의 말로 말하면 '화가 있으면 논이 있고, 논이 있으므로 반드시 이가 있다. 이가 있으므로 이익이 있다'는 구조이다. 그러므로, 화가 있는 사외에서 논의하고, 그리고 좋은 의견을 채용하라는 것인데, 도중에서 변해버려 화는 '의견을 너무 말하지 말라'는 것이 되어버렸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잘못이다. 다나카:동양이 모두 '의견을 말하지 말라'는 것은 아닌데. 우메하라:그렇다. 내가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를 만들 때 '나한의 화'라고 말했다. 나한은 한 사람씩 모두 틀려, 이상한 것이 모여 화를 유지한다. 일본사회도 기본적으로 그렇게 되지 않으면, 학문도 정치도 창조적이 되지 않는다. 화라고 말하면, 다음 시대의 세계는 도처에 부분적으로도 분쟁이 일어날 것이다. 그것을 해결하는 것은 무엇인가. 헌팅통의 '문화의 충돌'은 서양의 심리적 불안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문명의 대립이 아니라, 진실된 의미의 문명의 대화가 21 세기에는 시작된다. 그 점에서 나는 낙관주의자다. 다나카:대문명이 되는 문명은 그 소질부터가 그렇게 배타적이어서는... 우메하라:안된다. 다나카:긴장을 부르거나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문명 그 자체보다도, 거기에 존재하는 극단주의로 경제적인 평등이 널리 퍼지면 그 만큼 극단적이 되지 않고 끝나는 면이 있다. 애당초 상당히 광대한 지역에서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는 문명이라면, 공존은 어렵지 않은 것은 아닐까? 우메하라:그리고, 우리들은 지금까지 과학을 믿고, 종료, 철학을 소홀히 하여 왔지만, 이제부터 큰 문제가 된다. 그러므로 2020 년에는 어떠한 형태로든 정신혁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대담 3)" 개인, 조직의 행방 --아츠오카 세이고 씨와 코쿠료 지로 씨 마츠오카 세이고:편집공학 연구소 소장. 지식세계와 정보기술을 통합하는 편집공학을 구사하여 다방면에 걸친 연구, 저작, 프로젝트를 전개. 저서로는 '지식의 편집공학', '이미지와 관리' 외. 53 세.
코쿠료 지로:게이오의숙대학 조교수. 82 년 도쿄대학졸. 92 년 경영학박사(하바드 대학). 전공은 경영정보 시스템. 네트워크의 개방화가 기업경영이나 산업구조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 닛케이 2020 년 위원회 위원. 37 세. 정보화와 글로벌화--안과 밖에서 몰려드는 이중의 물결 속에서 개인도 조직도 좌표축을 잃어버리고 있다. 일본사회를 지탱하여 온 여러 가지 룰이나 시스템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서로 이야기하였다. '나는 누구인가' 확립을 코쿠료:'조직 속의 나'라는 형태로 자신의 위치를 부여하고, 자기를 희생하면서 조직목적을 위하여 매진하여 온 사람들이 유동화 속에서 좌표축을 잃어버리고, 어떻게 하면 좋은지 잘 모르고 있다. 지금, 이것이 가장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마츠오카:그렇게 된 이유로서 보통 종신고용제의 해체라든가, 조직 속에서 가족주의 같은 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이것은 정보지식사회에서는 필연적인 일이다. 인간, 물건, 돈에 플러스 정보라고 할 때, 정보는 반드시 내부축적형은 아니다. 외부에서 가져오면 된다. 요컨대, 일본적으로 지금까지는 옳다고 생각해 온 조직의 유대라든가 관계성이라든가 아이덴티티 같은 것은 외부와의 자유로운 교신 속에서 재편성되어야 한다. 지금 다중인격이 문제가 되고 있다. '24 인의 빌리 밀리건'이라는 책이 미국에서도 일본에서도 베스트 셀러가 되었는데, 그것은 요컨대, 외부의 다양성이라든가 복잡성이 개인적에게도 내부화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회사나 관청에서 롤 플레이(role play)를 하고 있는 역할이 하나나 두 가지가 아니라, 자기 속에 있는 역할이 몇 겹이나 된다. 코쿠료:그러한 힘은 어떤 의미에서 어느 나라 사회에서도 같을 것이지만, 그 속에서 일본인은 특히 다중성 같은 것에 부적합 증상을 보이고 있다. 마츠오카:단일민족형으로 교육받고 통제되어 왔다고 하는 역사 말고도 언어의 문제가 있다. 일본어는 원래 주어를 다양하게 가진 말이다. 예컨대 '나'라는 말에 o(oo), o(oooo), oo, ooo, ooo,.... 이렇게 많이 있는 것은 신기하다. 더구나, 그것을 문맥, 상황에 맞춰서 구별하여 쓴다. 다양성이 있더라도 그 선택은 문맥으로 한다는 식으로 무의식 속에 자라왔다. 다양성을 선택하여 하나씩 그 때마다 상황에 다라 대응하여야 한다고 지나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코쿠료:애장초 자기를 상대화하는 구조가 말 속에 들어가 있다. 그러한 사회가 지금 진실된 의미의 다양성이라는 바도 속에 빠져버렸다. 나 자신은 컴퓨터에 네트워크상에서 상거래를 성립시키려고 노력하는 속에서 굉장히 민감하게 그 주변의 모순을 느낀다. 나라별이나 지역별, 기업 그룹별 상습관의 차이가 표면화되고 있다. 일본에서도 앵글로 색슨식의 상습관 같은 것이 거리낌 없이 들어온다고 하는 시나리오도 있다. 마츠오카:말은 역사적으로 전부 만들어져 왔다. 이탈리아인이 이탈리아라는 것을 자각한 것은 로만 이탤릭체가 만들어지고부터이다. 일본인이 일본을 어쨌든 의식하기 시작한 것은 가나가 보급되고 나서부터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현재도 언어는 생산되고 있으므로 대단히 전략적으로 잘 편집되면서, 그 나라, 민족, 풍토, 문화를 만들고 있다. 네트워크 사회나 전자거래 사회조차, 어떤 언어나 어떤 국어를 쓸 것인가가 전략적으로 선행되고 있다. 이런 것에 민감한 것은 프랑스인이지만,
일본인은 다양한 민족의 바다 속에 빠진 적이 없기 때문에 언제나 '인터넷도 좋지만 전부 영어다. 어떻게 하지?' 하고 뒤늦게 깨닫곤 한다. 코쿠료:지금, 일본형 시스템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특히 기업사회를 이야기할 때에 일본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어느 정도 원래 일본적인 것일까? 그것은 19 세기 말에서 20 세기 초에 태어난 미국모델에 오히려 가까운 것이 아닐까? 원래의 일본인은 더 자유롭던 것이 아닐까? 더구나, 네트워크 모델이라는 의미에서는 일본은 선행하고 있었다. 예컨대, 미국의 자동차산업은 일본의 그것보다는 훨씬 수직통합의 정도가 높았다. 내부에 기능 전체를 전부 가지는 경향은 예전의 미국 쪽이 오히려 강하였다. 일본의 자동차업계 내부 제작률이 상대적으로 낮고, 협력회사에 의뢰한다. 다른 회사도 함께 협력관계를 가지면서 살아간다고 하는 의미에서의 네트워크 모델은 일본 쪽이 앞서 있고, 노하우도 있었다. 단지, 거기서 문제가 되는 것이 인터페이스에서 일을 주고받을 때 쓰이는 말이라든가 문법이라든가 규범이라든가, 짜여진 것이 있지만, 이런 것이 친구 사이처럼 고정화되어 버렸다. 우리들의 룰 재점검 마츠오카:일본은 그것들을 직시할 수 있는 힘을 잃고 있다. 지금은 아직 조금 시간이 남아 있으므로, 국제사회의 룰을 학습할 뿐만 아니라, 일본이 가꿔온 룰은 도대체 무엇이었는가, 시간이 있는 범위 내에서 총점검하는 편이 좋다. 이런 예가 있다. 유도는 일본독자의 스포츠였다. 그러나, 유도연맹은 이것을 국제화하고 싶었기 때문에, 중량제라든가 점수제 등의 글로벌 룰을 채용하여 그에 대하여 전세계로 퍼졌다. 그래 놓고 보니 네덜란드의 헤신크 등이 나오고, 96 년의 애틀랜타에서도 야와라 선수가 무명의 선수에게 져 버렸다. 그렇다면, 도대체 유도에 맡겨 온 일본이란 무엇인가 하고 생각해 본다. 국제 룰로 잘 되고 있다고 생각되지만, 반대로 아이덴티티를 잃었다. 한편, 쓰모는 어떤가? 여성장관이 쓰모판에 올라가는 것을 절대적으로 안된다고 했다. 구태의연한 인습을 가진 사회가 되어 있다. 그런데, 아케보노라는 외국인이 요코즈나가 되었고, 몽골출신 쓰모선수가 활약하고 있다. 그렇다면, 쓰모 쪽이 국제적인가, 유도 쪽이 국제적인가?라는 문제이다. 요컨대, 유도형으로 해 보려는 생각과 쓰모와 같이 해 보려는 생각이 혼재하고 있다. 이러한 룰과 특성을 교묘하게 나누는 능력을 가진 리더가 지금의 일본에는 지나치게 적다. 그 징후가, 우선 스포츠에서 나타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간해서 경제사회, 조직사회에서는 잘 발휘되지 않는다. 코쿠료:서 있는 곳을 자신이 거의 자각하지 않고 있으니까 모르게 되어버린다. 마츠오카:일본의 지식인과 지도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일본적인 것에 대하여 정말 모른다. 예컨대 내가 최근 느끼는 것은 돈을 번다는 것과 일한다는 것의 차이이다. 옛날에 두 가지는 달랐다. 돈을 버는 것은 아직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의 일이 아니라, 어떻게 벌든 상관없다. 그러나, 일하는 것에 정성을 다하지 않으면, 아무도 어른이 된다고 하지 않았다. 적어도 에도의 사회까지는 그러한 것이 각 마을에 얼마든지 남아 있었다. 그리고 제방이 붕괴하든지, 아이가 태어나든지, 화재가 있거나 유행병이 유행하면, 발벗고 나가 열심히 일했다. 이로서 한사람의 어른이라고 한다. 돈을 번다고 어른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디서 근무하십니까?' 하면, 회사명이나 관청명을 대답한다. 일하는 것과 돈버는 것이
일치하여 버렸다. 그러나, 돈버는 것과 일하는 것은 원래 따로따로였던 것을 지금의 일본인은 모른다. 일본이 지녀 온 여러 가지 룰이나 방법이나 아이템이나 아이디어, 이런 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논외로 하고, 우선 서로 논의할 수 있는 정도도 모르면 안된다. 코쿠료:일본이 좋은 것은 전부 외국인이 해석해 주고, 보급하고, 일본에 역류하여 오기도 한다는 것이 경영의 국면에서 몇 번인가 있었다. 다른 영역에도 그러한 현상은 많다. 예컨대 현장과 문맥을 공유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상, 이러한 것은 세계의 비즈니스 사회에 굉장히 영향을 주었다. 슬픈 것은 그 사고방식을 말로 표현하여 보편화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을 외국인에게 맡겨 버렸다는 점이다. 일본인은 그러한 훈련을 전혀 받지 않았다. 대인관계에서도 여간해서 자기표현이 되지 않는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포켓벨 커뮤니케이션이 유행하는 것은 조금 거리감이 있고, 얼굴을 맞대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가 상처받지 않는 곳으로 곧 도망쳐 숨을 수 있다. 자기는 누구다라는 것을 분명히 확립시킨 뒤에 자기는 이것을 말하고 싶다고 얼굴을 맞대고 말할 수 있는 데까지 도달한 사람이 적다. 마츠오카:우선 아는 것이다. 우리들은 무엇이었는가를, 시바 료타로 씨가 아니더라도 다시 한번 응시하는 것이다. 지난 50 년간 달려 왔으니까, 일단 기다리며 응시하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예컨대 구소련이 해체되었을 때 발레라든가 우크라이나라든가 킬기스 등이 떠올랐듯이 이제부터 일본에서 떠오르는 것이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닐까? 제 5 장 데이터로 본 2020 년 1. 인구감소사회의 구도 연금, 의료는 파탄 직전 후생성의 사회보장, 인구문제연구소가 97 년 1 월 21 일 공표한 장래 추계인구는 일본의 총인구가 2007 년을 최고조로 감소하기 시작하여, 2050 년에는 약 1 억 명까지 줄어든다고 하는 '인구감소사회'의 도래를 예고하였다. 예상을 상회하는 출생률의 저하는 경제의 활력을 저해하고, 사회보장제도나 고용, 임금체계 등을 뒤흔든다. 고령화에 따른 경제성장률의 저하, 국민부담의 증대 등도 구조개혁이 늦어지는 가운데 피할 수 없게 되어, 일본경제의 활력을 어떻게 유지해 갈 것인가 하는 어려운 문제가 떠오르고 있다. 지금 활동하고 있는 40 대의 샐러리맨들이 60 대를 맞이하는 고령화사회에서는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이 연금제도이다. 민간기업의 샐러리맨이 가입하는 후생연금의 경우, 현행의 보험료율은 종업원 월급의 17.3%(노사가 절반씩 부담)이다. 94 년의 연금제도 개혁에서는 2025 이후 보험료율은 29.8%로 일정하게 유지된다고 하였지만, 새로운 추계에서 다시 계산한 최종 보험료율은 '34% 전후로 상승'(후생성)할 우려가 있다. 원인은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65 세 이상의 노인인구비율의 상승이다. 노년인구는 97 년 중에 14 세 이하의 연소인구를 역전한다. 95 년에는 한 사람의 고령자를 65 세 미만의 국민 5.8 명이 지탱하였는데, 2050 년에는 겨우 2 사람이 지탱하는 사회가 도래한다. 92 년 9 월의 추계에서는 2.5 명이 한 사람을 지탱한다는 계산이었는데
커다란 오산이 되었다. 후생성은 '이 이상 부담을 늘리지 않기 위해서는 연금급부액의 인하는 피할 수 없다'(연금국장)고 보고 있으며, 이것은 99 년의 차기 연금제도 개혁에서 커다란 초점이 될 것이다. 연금제도의 자금을 육아세대에 대한 지원에 활용하여 연금제도 속에서 자녀수 감소 대책을 찾는 방안도 검토과제이다. 의료보험의 보험료율도 더욱 높아진다. 95 년도의 국민의료비는 27 조 엔 정도로, 그 중 노인의료비가 30% 이상이다. 이전의 추계를 기초로 후생성은 2025 년도 국민의료비가 141 조 엔으로 늘어나고, 그 중 71 조 엔을 노인의료비가 차지하게 된다고 예측하였는데, 고령화의 가속으로 전망을 상회할 것이 확실하다. 연금이나 의료에 추가하여 2000 년도에는 공적부양보험제도의 도입으로 부담은 더욱 무거워진다. 급속하게 진행되는 고령화사회 속에서 연금, 의료, 복지의 각 제도를 효율적으로 재설계할 수 있는 시간은 별로 남아있지 않다. 늦어지는 자녀수 감소 대책 선진국의 합계 특수출생률은 60 년대부터 일제히 저하되기 시작하였다. 적극적인 양육비 지원책 등에 의하여 80 년대 후반부터 상승으로 반전된 나라도 있다. 이에 비하여 일본에서는 자녀수 감소 대책이 본격적으로 논의된 적이 없고, 전에는 선진국 중에서도 높은 편이었던 합계 특수출생률도 스페인, 이탈리아 등과 함께 가장 낮은 그룹으로까지 떨어졌다. 적극적인 양육비 지원책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는 70 년대 후반부터 육아휴업제도의 창설, 보육소의 정비 등을 추진하여온 스웨덴이다. 특히 육아휴직제도는 선진국 중에서도 가장 충실하다. 450 일의 육아휴가 중 처음 360 일은 급여의 90%(95 년 이후 순차적으로 75%로 인하)가 보장된다. 그 결과 83 년에는 1.61 이었던 합계 특수 출생률은 90 년에는 2.14 까지 회복되었다. 프랑스에서는 첫째 아이에게는 가족 수당이 지급되지 않는 반면, 셋째 아이 이후를 대상으로 한 수당이 복수로 있어, '3 자 우대'라고 불린다. 세금제도면에서도 아이가 많은 가족이 우대되어 있어, 이러한 시스템이 출생률 저하를 막고 있다. 일본에서는 90 년대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육아지원이 거론되게 되었다. 그 후에 실현된 정책도 92 년의 '육아휴직법' 시행, 95 년의 '긴급보육 5 개년 계획' 시작, '육아휴직급부' 신설 등에 머물고 있다. 대책으로는, 탁아소의 정비나 육아휴직제도의 확충을 진전시킬 필요가 있지만 '육아비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교육이나 주택문제에 대해서도 해결해야 할 과제는 많다.'(미야지마 도쿄대학 교수)는 견해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강하다. 다카야마 씨(히도츠바시대학 교수 공공경제학) 인구가 줄어드는데 풍요를 계속 유지한 나라는 일찍이 없다. 일본은 역사상의 이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된다. 젊은 사람이 없고, 아이들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과소'가 일본국토 전체로 퍼지고 있다. '고령화 대책'이라는 이름의 고령자에 대한 우대책에만 중점을 두어 온 것을 반성하고, 육아지원으로 정책목표를 크게 전환시켜야 한다. 아침부터 밤까지 가정을 뒤돌아보지 않는 노동관행을 고쳐, 사회전체적으로 육아를 지원해야 한다. 연금이나 의료에 대해서는 제도의 유지를 위해 현역세대나 기업의 부담을 무겁게 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급부수준을 내려야 한다. 구미에서 같은 문제가
일어났을 때, '아이나 손자의 세대를 위해서'라고 고령자 세대를 설득하였다. 정치적 결단을 피해서는 안된다. 격변하는 고용, 임금 고령화의 급속한 진전으로, 고용, 임금체계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노동력인구의 감소로 임금의 신장은 총체적으로 둔화되는 한편, 구조개혁이 진행되지 않을 경우에는 고령자의 취업이 어렵게 되는 등 완전실업률이 대폭 악화된다는 예측도 있다. 노동부 고용정책연구회의 예측에 의하면, 노동력인구는 2000 년에 94 년 대비 3.3% 증가한다. 그러나, 2010 년에는 감소로 바뀌어, 동 1.7% 증가에 머물 전망이다. 특히 20 대가 줄기 때문에, 노동력 인구의 고령화가 진행되고 고용체계의 격변은 피할 수 없다. 한편, 임금의 신장도 '단괴(아파트 잔지)의 세대'가 노동시장에서 물러서면서 둔화된다. 경제기획청의 예측으로는 임금전체로 2000 년에 94 년 대비 3.1% 증가하지만, 2010 년에는 동 1.7% 증가에 머문다. 96 년의 경제백서는 '청년노동자의 부족으로 젊은층의 임금이 상대적으로 올라가, 연공임금커브가 무너져 간다'고 보고 있다. 게이오의숙대학의 시마다 하레오 교수는 '노동력인구의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서, 고령자나 기혼여성의 취로를 촉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일하는 여성에게 불리한 급여소득자의 배우자공제나 노동기준법의 여자보호규정의 조기철폐 등이 필요하다. 이것도 고용, 임금체계를 크게 바꾼다. 노동부는 '고용환경이 격변하는 속에서, 실업률 악화는 피하지 않으면 안된다'(직업안정국)고 강조하고 있다. 성장분야로의 노동 이동이 잘 되지 않고, 중노년층을 중심으로 한 고용의 잘못된 짝짓기(mismatch)가 확대되면, 2025 년에는 실업률이 15%를 넘는다는 예측(일본종합연구소)도 있다. 공공직업안정소의 기능강화 등으로 대응할 방침이지만, 대응은 늦어지고 있다. 국민부담--수입의 4 분의 3 사라져 후생성의 인구추계가 나타내고 있는 젊은층의 감소나 고령자의 급증이 일본경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까? 이번 추계결과를 전제로 한 분석은 아직 나와 있지 않지만, 중앙부처나 민간 싱크탱크 등이 유사한 예측을 바탕으로 정리한 장래추계는 어느 것이나 높은 부담이나 재정적자 확대의 뒷편으로 경제성장이 급속히 한계점에 다다른다는 시나리오를 보이고 있다. 국민소득 중 사회보장부담과 세금부담으로 어느 정도 사라지는가를 가리키는 '국민부담률'에 대해서, 경제기획청의 연구회가 제시한 예측결과를 일례로 보자. 재정이나 사회보장의 개혁을 하지 않고 현상을 유지한 경우, 국민부담률은 30 년 후인 2025 년의 현재의 35.8%에서 51.5%로 상승한다. 대장성등은, 여기에 재정적자의 대폭적인 확대가 장래의 '국민부담'이 되어 돌아온다고 지적하고 있다. 기획청의 예측을 바탕으로 2025 년에 시점에서의 잠재적인 국민부담률을 계산하면, 73%의 고율이 된다. 뼈를 깎아 일했는데, 품에 들어오는 수입의 4 분의 3 이 세금이나 사회보장부담 등 어떤 형태든 공적인 부담으로 사라져간다는 계산이 된다.
성장률--2000 년을 최고조로 둔화 높은 부담에 노동력의 감소가 겹쳐, 경제성장률도 감소경향을 보인다. 기획청의 예측으로는 실질국내총생산(GDP)의 성장률은 2000 년에 2.8%가 되지만, 그 후는 감소하여 2025 년에는 1.1%로, 거의 3 분의 1 로 둔화된다는 계산이다. 실질적인 소득이 감소하는 사태도 예상된다. 기획청이나 통산성, 민간조사기관도 어려운 상황을 지적하고 있다. 어떤 예측에서도 대폭적인 재정이나 사회보장의 개혁으로 호전되는 시나리오를 그릴 수 있다는 전제도 서 있지만, 거기에는 일시적인 혼란을 초래하는 '고통'이 뒤따른다. 다만 개혁을 뒤로 미루면 미룰수록, 국민에게는 더욱 어려운 선택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경상수지--2009 년에는 적자로 전락 산와종합연구소의 예측에 의하면, 일본이 구조개혁을 게을리 하면, 경상수지는 2009 년도에 적자로 전락, 2025 년도에는 12 조 8000 억 엔의 적자가 되다. 현재의 고비용체질로는, 생산거점을 해외로 옮기는 기업의 움직임이 멈추지 않는다. 고부가가치 제품의 제조부문은 구내에 남는다고 해도, 일반용품의 생산이 줄면 수출로 돈을 벌 수 없고, 수출액도 서서히 감소한다. 반면, 수입액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고령화가 진전되어도 소비성향에 큰 변화는 일어나지 않고, 수입품이 더욱 침투하여 온다. 일본종합연구소도 구조개혁을 진행시키지 않으면, 경상수지가 2003 년에 적자로 전락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저축률도 국민부담률의 상승에 따라 저하되어 갈 것으로 보고 있다. 2. 걱정되는 노동력 부족 생산연령인구의 감소 노동력을 좌우하는 일본의 생산연령인구(15__64 세)가 감소로 바뀐 것이, 총무청이 1997 년 3 월 27 일 발표한 96 년 10 월 1 일 현재의 추계 인구로 분명해졌다. 일본의 생산연령인구가 96 년, 전후 처음으로 감소로 바뀐 것은 일본이 지금의 경제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어떨지 기로에 서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21 세기 초에는 자녀수 감소로 전체의 인구가 감소로 바뀌어, 장기적으로는 노동력 부족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일본이 21 세기에도 성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여성이나 고령자를 노동력으로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인가가 열쇠이다. 생산연령인구는 15 세로부터 64 세까지의 전인구를 말한다. 국가의 생산력을 직접 좌우하는 것은 여기에서 주부나 학생 등을 제외하고, 일할 의사가 있는 사람만을 집계한 노동력인구이다. 국립사회보장, 인구문제연구소의 추계(중위 추계)에 의하면, 일본의 총인구는 2008 년부터 감소로 바뀐다. 그 중에서 생산연령인구는 2020 년에는 7,3000 만 명으로, 96 년 8,700 만 명과 비교하여 1,400 만 명이나 줄어든다. 2050 년에는 5,400 만 명으로, 지금의 60% 정도가 된다. 이에 따라, 노동력인구도 줄어든다. 일본노동연구기구의 예측으로는, 노동력인구는 2000 년을 최고조로 감소로 바뀌어, 2020 년까지의 20 년간 약 450 만 명이나
감소한다. 21 세기에 들어가면, 단괴의 세대가 정년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노동력인구가 줄더라도 '생산성이 향상되면 어느 정도는 성장률 저하를 막을 수 있다.'(고사이 일본경제연구센터 이사장) 그러나, 생산성의 향상에는 한계가 있다. 일본경제연구센터의 예측으로는, 생산성의 향상을 기대하더라도, 2010__20 년 일본의 성장률은 연평균 0.5%로 제로(zero)성장에 접근한다. 장기적으로는 어느 정도의 노동력인구를 확보하지 않으면 일본 경제는 성장의 벽에 맞부딪친다. 야시로 죠오지 대학 교수는 '성장률의 저하가 기업의 투자의욕을 감퇴시켜, 더욱 성장률을 저하시키는 악순환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여성, 고령자의 활용 과제 노동력을 확보하는 선택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여성, 고령자, 외국인노동자의 활용이다. 생산연령인구에서 차지하는 노동력인구의 비율을 가리키는 노동력률은 남성은 80% 가까이 달하고 있는데, 여성은 50% 정도에 머물러 있다. 여성을 지금 이상으로 노동력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육아휴직을 충실히 하거나 결혼, 출산후의 재취업이 쉽도록 고용제도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고령자의 활용도 나이를 먹더라도 일할 수 있는 직장의 확보나 임금체계의 재검토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의 재검토는 일반적으로 기업의 부담을 늘린다. 정년연장에 대해서도 경제계는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기술혁신이 빠른 생산현장에서는 고령자는 변화에 대응할 수 없다고 하는 문제도 있다. 외국인노동자를 받아들이는 논의도 버블기의 일손부족시대가 끝나고 나서는, 불이 꺼진 것 같다. 노동력인구의 감소에 제동을 거는 것은 용이하지 않다. IMF 의 예측 --공적연금, 2010 년 채무초과 자녀수 감소, 고령화의 진전으로 수지악화 국제통화기금(IMF)은 '일본의 공적연금이 2010 년에 채무초과 상태에 빠진다'고 예측한 리포트를 정리하였다. 이 전망은 연율 1%의 저성장을 기초로 하면서 현재의 보험료나 급여를 전제로 한 것이다. 후생성은 일본의 제도는 보험료를 단계적으로 인상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채무초과 등은 피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다만 경제성장의 둔화나 예상 이상의 자녀수 감소, 고령화의 진전으로 종래의 연금재정의 전제조건이 흔들리고 있어, IMF 의 전망은 제도개혁논의에 일석을 던지고 있는 것 같다. IMF 가 정리한 주요국의 공적연금 수지전망에 의하면, 일본의 공적연금은 2010 년에 채무초과에 빠져, 2050 년에는 누적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4 배에 달하게 되리라는 전망이다. 현행 보험료나 급부수준을 전제로 한 예측인데, 급속한 고령화, 자녀수 감소를 배경으로 독일, 프랑스에 뒤지지 않는 속도로 수지악화가 진행된다. 위기를 회피하기 위해서는 '빠른 개혁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주요국의 고령화가 공적연금에 미치는 영향을 각국별로 비교한 것인데, 현행제도가 장래에도 유지된다는 전제로, 실질경제성장률은 일본은 1995__2050 년 평균 1.1%, 물가상승률은 동 3% 등으로 전망하고 있다. 예측에 의하면 일본의 공적연금은 2000 년에 당해년도수지가 적자로 전락, 2010 년에는 적립금이 최저로 떨어지고, GDP 의 약 400%로 주요 7 개국에서는
독일에 이어 파탄 상태가 된다. 95 년을 100 으로 한 총인구가 91.6 까지 감소하는 것이 크게 영향을 미친다. 독일의 연금위기는 인구감소폭이 주요국에서 가장 크고, 2020 년 이후, 고령자비율이 일본과 같은 수준으로 높아지는 것이 원인이다. 프랑스, 이탈리아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같은 '선진국병'에 빠진다. 미국은 예측기간 중, 이민도 포함하여 인구증가가 계속되고, 연평균 성장률은 1.7%로 예상되기 때문에, 수지의 약화가 비교적 완만하게 나타난다. 후생성, 연금급부 수준인하 등 검토 후생성은 IMF 의 공적연금에 대한 예측에 대해서, '장래에도 현행의 보험료율이나 연금급부 수준이 유지된다고 가정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적이지 않다'고 설명하고 있다. 다만, 급속한 자녀수 감소, 고령화에 의해, '장래의 연금채무는 IMF 가 지적하는 대로 '보이지 않는 재정적자'로서 중대한 문제가 된다.'는 염려가 커지고 있어, 급부수준의 인하를 포함한 제도개혁을 위해 97 년 여름부터 검토를 시작하려 하고 있다. 민간기업의 샐러리맨이 가입하는 후생연금의 보험료율은 현재, 월수입의 17.35%(이것을 노사가 절반씩 부담), 자영업자 등의 국민연금 보험료는 월 1 만 2,300 엔이다. 94 년에 실시한 연금재정 재계산으로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연 2,0%, 현역세대의 임금상승률을 연 4.0%, 적립금의 운용이율을 연 5.5%로 가정하고 후생연금보험료를 5 년마다 2.5%씩, 국민연금보험료는 매년 500 엔씩 인상하면, 연금재정은 장래에도 적자는 되지 않는다는 계산이다. 2010 년에 262 조 엔의 적립금을 유지하고, 그 후에도 바닥나는 일은 없게 된다. 다만, 94 년 재정 재계산의 전제조건은 이미 틀려지고 있다. 적립금의 운용이율은 금리저하 등 운용환경의 악화로 인하여 예정했던 만큼 늘어나고 있지 않다. 94 년도의 이율은 5.34%로 이미 5.5%를 하회하고 있다. 연금복지사업단은 자금운용부에 맡긴 약 120 조 엔의 연금적립금 중 일부(95 년도말 현재 23 조 엔)를 재정투자금리로 차입하여, 금융기관에 운용을 위탁하고 있지만, 95 년도의 운용이율은 연 4.0%이다. 차입금리인 평균 5.44%와 역금리가 발생하여, 누적적자는 1 조 엔을 넘는다. 또 97 년 1 월에 발표된 신인구추계에서는 94 년 계산에서 사용된 추계보다도 대폭적인 인구의 고령화, 자녀수 감소가 진행되고 있다. 이대로는 보험료를 부담하는 층이 예상 이상으로 줄어들어 연금재정을 압박한다. 이러한 '오산'에 대응하여, 후생성은 다음 번 재정 재계산을 하는 99 년에는, 현재 급여에서만 징수하고 있는 후생연금보험료를 보너스에서도 징수하는 등 부담면도 재검토할 생각이다. 한편, 자녀수의 감소 속에서 현역세대에게 지나친 부담을 지우지 않기 위하여, 고령자에 대한 연금급부 수준을 인하하는 것도 과제가 되는 것 같다. 5 년마다 현역세대의 평균임금 신장에 맞추어 연금액을 늘리는 제도를 폐지하는 것 등이 검토될 전망이다. 제 6 장 시나리오를 읽는다. 1. 성장률 저하
--희미해지는 일본의 존재감 2020 년의 시나리오로서는 고령화가 심화되고, 재정은 파탄을 맞아 일본경제가 막다른 골목으로 몰릴 우려가 있다. 냉전이 끝나고 글로벌 경쟁시대에 들어간 세계에서도 인구, 식량, 환경, 에너지 문제가 심각하게 된다. 조사기관 등의 예측이나 '닛케이 2020 년 위원회' 위원 등의 진단을 바탕으로, 그 때의 세계와 일본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일본경제연구센터의 예측으로는, 2020 년의 세계 실질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일본의 비율은 90 년의 13%에서 9%로 저하된다. 한편,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는 90 년의 5%에서 2020 년에는 15%로 일본을 추월한다. 26%에서 18%가 되는 미국, 24%에서 19%로 저하되는 유럽과 함께, 일본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아진다. 일본의 존재감이 희미해지는 원인은 아시아 등 신흥국의 급성장과 함께, 고령화, 재정파탄이라는 일본의 내부요인도 크다. 대부분의 민, 관 예측에서는 2020 년에 이르러 일본의 실질성장률 저하를 예상하고 있다. 산와종합연구소는 2024 년에 0.1%의 마이너스 성장으로 전락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으며, 일본종합연구소는 0.6%의 저성장을, 통산성도 개혁이 없으면 2025 년에 0.8% 성장에 머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 숫자를 읽을 때의 키워드는 '고비용'과 '고령화'이다. 일본에서의 높은 인건비, 운수, 통신 코스트 등을 피하여 기업이 생산거점을 해외로 옮기는 공동화는 이미 진행되고 있다. 아시아, 중남미, 동구 등 코스트가 싼 나라가 경쟁에 참여하는 가운데, '일본의 고비용 구조를 개선하지 않으면, 장기적인 성장률 저하는 피할 수 없다.'(산와종합연구소) 고령화로 늘어나는 사회보장비를 조달하기 위해서는, 세출을 깎지 않는 한, 증세 등을 통하여 국민부담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 정부의 자금 흡수는 민간의 경제활동을 압박한다. 재정악화로 금리상승 -> 투자정체 -> 기술혁신 지연의 악순환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예측에서는 어느 것이나 구조개혁이 진행되지 않고 현상을 방치한 경우를 상정하고 있다. 일본종합연구소는 규제완화 등을 빠른 시기에 실시하면, 2011__25 년의 성장률은 2.4%가 된다고 전망한다. 2020 년에 일본이 세계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을 가지게 될 것인가는 개혁의 향방에 걸려 있다. "나의 진단" 고사이 유타카 씨(일본경제연구센터 이사장) 2020 년경에는 아시아, 특히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는 큰 경제력을 가진 나라가 되어 있을 것이다. 일본은 유럽에서의 영국과 같은 입장이 된다. 영국도 예전에는 경제대국이었지만, 지금은 통합하는 유럽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일본은 향후 아시아와 네트워크를 잘 만들 수 있을지 어떨지가 중요하다. 일본의 장기적인 성장률을 점치는 데에 있어 하나의 포인트는 노동력인구의 감소를 어떻게 볼 것인가이다. 노동력이 줄어들더라도 자본축적이 진행되어 노동력절감 투자로 효율화되면 그만큼 성장률은 떨어지지 않는다. 자본이 있더라도 자본의 이동이 국제화되고 있는 시대에는, 기업은 반드시 국내에서 투자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인구감소를 보충하여 어느 정도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술진보가 중요한데, 그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이 연금제도 등을 포함한 국내의 구조개혁이다. 또한, GDP 의 성장률이 떨어지더라도, 인구가 줄어들면 1 인당 GDP 의 신장률은 그만큼 떨어지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인구감소가 나쁜 것만은 아니라, 작은 섬나라인 일본의 혼잡을 완화한다고 하는 플러스 측면도 있다. 1 인당 GDP 에서 선진국의 평균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지 어떨지가 과제이다. 2. 세계인구의 증가, 식량 불안 세계의 인구는 21 세기에 들어가서도 계속해서 증가한다. 유엔에 의하면, 제 2 차 세계대전 후인 1950 년에 25 억 1,900 만 명이던 세계인구는 1990 년에 52 억 8,400 만 명으로 거의 두 배로 증가하였다. 2020 년까지는 78 억 8,700 만 명으로 현재의 1.5 배로 늘어날 전망이다. 선진국의 인구는 그렇게 늘어나지 않는다. 일본은 국립사회보장, 인구문제연구소에 의하면 95 년에 1 억 2,557 만 명이던 인구가 2007 년을 정점으로 오히려 감소하여, 2020 년에는 1 억 2,413 만 명이 된다. 증가속도가 빠른 곳은 발전도상국으로, 유엔의 예측으로는, 1990 년부터 2020 년까지 아프리카, 중남미 등 발전도상국의 인구는 60.7%나 늘어난다. 일본은 안으로는 인구의 감소, 밖으로는 세계인구의 폭발적 증가라는 사태에 직면하게 된다. 세계는 한정된 자원으로, 계속 늘어나는 인구를 먹여살려야 한다. 식량수급에 대해서 미국 월드워치연구소의 레스터 브라운 소장은 '계속 늘어나는 식량수요가 지구 자연의 한계에 부딪치고 있다.'고 비관적으로 보고 있어, 수급핍박의 상황이 되면 식량자급률이 낮은 일본은 식량가격이 상승할 우려도 있다. 한편, 국제식량정책연구소(IFPRI)는 단위수량 증가로 2020 년에 가서도 공급량 그 자체는 충분하다고 보고 있어, 식량수급에 대한 견해는 엇갈리고 있다. 다만, 아프리카 등 일부의 발전도상국이 기아에 허덕이는 구도는 변함없을 것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예측으로는, 1988__90 년에 7 억 8,000 만 명이던 발전도상국의 만성 영양불량인구는 현재대로라면 2010 년이 되어서도 1 억 5,000 만 명 정도밖에 줄지 않는다. 96 년, '2015 년까지 영양불량인구를 반감시킨다'는 목표를 내걸고 세계식량 정상회담이 열렸지만, 향후에도 발전도상국의 빈곤해소, 농촌개발을 위한 세계적인 협력이 한층 더 필요하게 된다. "나의 진단" ooooo 씨(아오야마학원대학 교수) 80 년대에 들어오면서부터 곡물가격은 내려가는 경향이 계속되고 있는데, 이것이 오히려 장래 식량수급 핍박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지금까지의 곡물가격 안정은 73 년의 가격급등을 계기로 활발해진 농업연구개발 투자의 성과였다. 이것이 목전의 안심감으로 작용하여, 식량문제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을 떨어뜨렸다. 선진국의 발전도상국 대상 농업원조는 최근 5__6 년간 줄어들고 있다. 일본의 원조도 내용이 발전도상국의 요구(needs)에 반드시 맞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예컨대, 돈을 들여 콘크리트제의 관개설비를 만들었기 때문에, 원조가 끊긴 후의 유지보수비가 커져 버린 경우가 많다. 경지면적 확대는 1960 년대부터 한계에 이르러, 다수확 품종에 의한 공급증가도
최고 수준에 도달해 있다. 지금까지의 기술개발 축적도 벌써 다 써버렸다. 한편, 세계의 인구는 2025 년경까지는 연간 약 9,000 만 명씩 늘어난다. 특히, 영양불량인구 대부분이 사는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인구증가율이 높다. 세계적인 식량위기는 언제 일어나더라도 불가사의한 일이 아니며, 그 경우 식량수입국은 가격상승에 직면한다. 3. 산성비, 일본에도 타격 2020 년을 향하며, 세계는 심각한 환경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그 하나가 산성비로, 하천이나 호수, 늪이 산성화되어 물고기가 자라지 못하게 될 뿐만 아니라, 토양의 산성화로 삼림도 쇠퇴한다. 원인은 화석연료의 연소에서 생기는 유황산화물이나 질소산화물로, 이러한 오염물질의 배출은 경제발전이 계속되고 있는 아시아지역에서 늘어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유황분이 높은 석탄의 이용이 대부분으로, 국립환경연구소의 예상에 의하면, 대표적 오염물질인 이산화유황의 아시아에서의 배출량은 1995 년의 4,2000 만 톤에서 2020 년에는 7,300 만 톤으로 늘어난다. 미국 버지니아대학의 갸로웨 교수는 '2020 년 아시아에서의 이산화유황 배출량은 80 년 세계 전체의 배출량에 필적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한다. 80 년대에 이미 구미에서는 삼림소실이나 호수에서의 생물사멸 등 심각한 상황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는데, 아시아에서는 이것을 상회하는 피해가 나올 우려도 있다. 일본에서는 삼목 등의 쇠퇴와 국내를 오염원으로 하는 산성비의 관계가 거론되고 있지만, 나아가 대륙에서 강한 북서풍이 부는 겨울철에는 동해측에서 비의 산성도가 강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성비는 오염물질의 발생원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지역에도 미치기 때문에, 일본의 자연이 영향을 받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지구의 온난화도 진행된다. 원인은 역시 화석연료의 소비확대로, 이산화탄소 등 온실효과 가스가 늘어나면 지구의 기온이 상승한다. 116 개국으로 이루어진 '기후변동에 관한 정부간 패널'(IPPC)은 대책을 취하지 않으면 중위 예측으로 2100 년까지 지구의 평균기온이 현재보다 약 2 도, 해면수위가 50 센티미터 상승한다고 보고 있다. 일본정부는 2000 년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1990 년의 수준으로 억제한다고 하는 목표를 내걸고 있다. 그러나 환경청의 전망으로는, 종래 형태의 생활이나 생산을 유지하면 2000 년의 배출량은 최대 90 년 대비 5.7%, 2020 년에는 동 12% 증가한다. 지금대로라면 지형이나 생태계의 파괴는 꾸준히 진행된다. "나의 진단" 사와 타카미츠 씨(교토대학 경제연구소 소장) 지구환경의 앞날은 공업문명의 행태와 밀접하게 얽혀있다. 현재의 '대량생산, 대량소비형' 문명은 20 세기 초의 미국을 기원으로 하고 잇지만, 여기에 '대량폐기'의 측면을 더한 것은 전후의 일본이다. '만들어서 부수는' 일을 되풀이 하는 것이 일본경제의 발전을 지탱하여 왔다. 이 문명이 2020 년까지 이어진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일본은 석유가격의 상승으로 경제의 구조전환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국면에 있고, 중국이 같은 형태로 경제발전을 이루면, 일본은 심각한 대기오염에 부딪칠 가능성이 높다. 현재, 2000 년 이후의 이산화탄소의 배출삭감목표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가
세계적으로 중요 테마이다. 배출억제를 위한 탄소세 도입에 대하여, 산업계에서는 '경제성장을 저해한다'고 반대하는 소리가 많다. 그러나, 환경을 파괴하면서 고성장을 실현하기보다, 저성장이라도 생활수준을 유지하면 괜찮다는 방향으로 발상을 전환하여야 할 것이다. 에너지나 자원을 순환시켜 폐기에 의한 환경 파괴를 최소한으로 억제하는, 말하자면 신진대사형 공업문명을 일본은 구축하지 않을 수 없다. 4.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2020 년을 바라보며, 에너지 가격이 상승하는 것은 피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브리티시 페트롤리움(BP) 등의 추계에 의하면, 95 년말 시점에서의 원유 채굴가능 매장량은 약 43 년간분이다. 석탄이나 천연가스는 더 큰 공급력이 있다. 에너지가 고갈될 걱정은 없는 것 같지만, 수요의 증가가 계속되는 것은 변함없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성장과 인구의 증가가 계속되는 아시아에서는 수요의 대폭 증가가 예상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에너지 소비의 효율화가 진행되지 않을 경우, 2010 년의 전세계 에너지 수요는 석유환산으로 약 118 억 톤(93 년 81 억 톤)이 되며, 그 중 26%(동 18%)를 아시아가 차지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일본에너지경제연구소는 중국이 2010 년에 지금 일본 정도의 소비수준이 되면, 원유는 1 바렐=50 달러 이상으로 앙등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석유의 중동의존도가 2010 년에는 50% 이상(IEA 예측, 현재는 40%)으로 높아지는 것도 가격상승 요인이 되는 것 같다. 일본의 에너지 수요도 2020 년까지 계속 증가한다. 에너지연구소의 예측으로는 연율 2% 전후의 경제성장이 계속되면, 2020 년의 일본의 에너지 수요는 석유환산으로 약 7 억 8,000 만 킬로리터로, 94 년도 실적에 비교하여 약 35% 증가한다. 단지 이 예측은 원유가격이 1 바렐=26 달러, 엔시세가 1 달러=90 엔 정도에 머무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에너지연구소의 oooo 상무이사는 '원유가격 상승, 엔화하락이 되면, 2020 년에는 가솔린이나 등유의 가격이 현재의 1.5__2 배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한다. 수급핍박에 더하여, 21 세기 초에는 석유 등의 화석연료에는 이산화탄소 배출량 억제라는 환경면에서의 제약이 표면화된다. 태양열 발전 등 환경부하가 적은 신에너지원의 보급이 없으면, 일본도 원자력발전소의 대규모 증설이라는 심각한 선택을 강요당할 가능성이 있다. "나의 진단" 오노 고로 씨(사이타마대학 교수) 에너지 문제는 자원제약설에서 보는가, 환경제약설에서 보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얻게 된다. 우선 자원제약설에서는, 매장자원은 근간 없어지게 된다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해 왔지만, 그럭저럭 없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 원유가격이 지금의 10 배가 되어도 석유위기를 극복하였으므로 일본은 꾸려갈 수 있다. 또한, 가령 원유가격이 5 배가 되면, 해수로부터 추출할 수 있는 우라늄의 이용 등이 채산에 맞게 되어, 자원제약설에서와 같은 에너지의 한계를 이야기할 수 없다. 그러나, 환경제약설에서 보면 사태는 심각하다. 국가나 지역에는 역내의 에너지 순환이나 생태계의 균형을 잡는 '정상 상태'가 있어, 이 한계를 넘어 에너지를
가지고 들어가면, 환경문제나 쓰레기문제가 발생한다. 세계가 현재의 에너지 소비행동을 계속하면, 2020__30 년경에 지구 전체의 정상 상태가 파탄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온난화방지를 위해 화석연료의 사용에 따른 이산화탄소의 배출량을 1990 년과 같은 수준으로 억제한다는 목표도, 제안한 선진국 자체가 지킬 수 없을 가능성이 높아 에너지 소비의 억제는 어려워지고 있다. 5. 국내노동력의 대폭 감소 노동력인구(생산연령인구 중 일할 의사가 있는 사람)는 경제의 재건에 성공한 미국에서는 향후 더욱 증가하고, 유럽에서는 보합을 유지할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그러나, 일본의 고용에 대한 장기예측은 두 가지 견해로 나뉘어져 있다. 하나는 고령화나 경직적인 고용관행으로 노동력인구의 감소가 심각할 것이다는 시나리오이다. 일본노동연구기구의 예측으로는 일본의 노동력인구는 2000 년을 정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하여, 2020 년까지의 20 년간 약 450 만 명이나 감소한다. 신규고용의 창출이나 여성을 활용하기 위한 제도 개혁이 진행되지 않고, 가정주부 등도 필요에 쫓기지 않는 한, 활동에는 나가려 하지 않는다는 전망에 서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2020 년에 이르기까지 55 세 이상의 노동력인구는 약 2000 만 명이나 증가하고, 2020 년에는 약 1,770 만 명으로 전체의 28%만 명이나 증가하고, 고령화도 진행된다. 이 경우 노동력 특히 청장년의 일손부족이 심각하게 되어, 생산현장 등에서는 지금 이상으로 노동력을 해외에서 구하여야 할 필요가 생길 공산이 있다. 한편, 일본종합연구소는 노동력은 그다지 줄지 않고, 오히려 저성장을 배경으로 실업이 늘어날 우려가 있다고 보고 있다. '생활의 질을 떨어뜨리고 싶지 않은 주부나 고령자가 연달아서 노동시장에 복귀하여 노동공급 압력은 높아진다'(oooo 주임연구원)고 분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0 년의 노동력인구는 6,605 만 명으로, 95 년과 거의 같은 수준을 유지한다는 전망이다. 여성이나 고령자를 활용하는 구조개혁이 실패하면 동년의 실업률은 13% 이상으로 유럽과 같은 수준이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동연구소는 1990__95 년에 걸쳐 미국에서 엔지니어나 회계사 등 전문적 직업의 고용이 400 만 명 정도 증가한 것에 주목하고 잇다. '규제완화에 의한 고용확대가 미국경제의 재생에 기여하였다'고 분석하며, 일본에서도 구조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나의 진단" 야시로 나오히로 씨(죠오지대학 교수) 일본의 실업률이 유럽과 같은 수준의 2 자리수가 되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그것보다도 중, 장기적인 노동력인구의 감소와 그에 따른 여러 가지 악영향쪽이 훨씬 심각하다. 노동력부족은 성장률의 저하로 직접 연결된다. 재정적자의 확대에 따른 세부담의 증가가 더욱 취업의욕의 감퇴를 초래하는 악순환에 빠지기 쉽다. 기업도 투자를 삭감한다. 여성의 고용이 확대되지 않으면 안심하고 아이를 낳을 수 없어, 자녀수 감소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노동력부족을 초래하는 원인은 여성이나 고령자를 활용할 수 없는 고정적인
고용관행에 있다. 이것은 청장년 남성에게 있어서는 상당히 유리한 시스템이지만, 여성이나 고령자에 있어서는 지극히 불리해진다. 또한, 사회보험료 부담 등, 기업에서 고용의 비용이 점점 더 상승하고 있는 것도 문제이다. 규제완화의 지연이 노동력을 낮은 생산성에 가두어 놓고 있다. 현재의 실업률이 3% 정도에 머물러 있는 것은 노동력의 공급제약이 이미 시작되고 있기 때문으로, 향후에는 노동력의 낭비에도 메스를 들이대지 않으면 안된다. 6. 커지는 국민부담 재정재건은 모든 선진국에 공통된 중요과제의 하나이다. 미국은 2002 년도의 재정균형을 목표로 하고 있고, 유럽에서는 1999 년의 통화통합 실현을 위해 긴축형 예산을 짜고 있다. 각국이 고통이 따르는 세출삭감을 진행시키고 있는 속에서, 일본의 뒤처짐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국민경제계산통계를 기초로 한 국가, 지방, 사회보장기금 합계의 채무잔액(공채잔액과 차입금)은 95 년도말 현재 448 조 엔이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선진 7 개국 중 나쁜 편에서 3 번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예측으로는 98 년까지는 가장 빠른 속도로 부채가 늘어난다. 산와종합연구소는 세출삭감을 진행시키지 않으면 채무잔액이 2020 년에 1,400 조 엔을 넘는다고 본다. 일본종합연구소는 더욱 비관적으로 2,200 조 엔대에 달할 것으로 예측한다. 공채발행의 증가가 계속되면 금리상승, 투자의 감퇴라는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채무잔액이 1,400 조 엔이더라도, 국민 1 인당 부채는 1,000 만 엔 이상이다. 장래의 부채가 커지는 한쪽에서 고령화사회를 지탱하는 국민의 부담도 점점 더 무겁게 된다. 총연간수입 526 만 엔에 대하여 실수입액은 250 만엔 미만.--산와종합연구소의 예측에 의하면, 2020 년도에 평균적인 샐러리맨은 급료의 절반 이상이 국가와 지방에 징수되어 버린다. 앞으로 23 년간 1 인당 고용자소득은 6.4%밖에 늘어나지 않지만, 가계의 직접세와 사회보장부담을 합친 금액은 2 배 가까이 커지기 때문이다. 나라 전체로 본 국민부담률(국민소득에 대한 세부담과 사회보장 부담의 합계액의 비율)은 96 년도에 36.9%이다. 많은 장기예측에서는 2020 년에는 이것이 50%를 넘어, 현재의 독일이나 프랑스와 같은 수준이 된다고 본다. 경제성장의 둔화와 부담증가로 풍요를 실감할 수 없는 사회가 되면, 일하는 의욕이 감퇴하거나, 우수한 인재가 해외로 유출되기도 하는 부작용을 피할 수 없다. "나의 진단" 혼마 마사유키 씨(오사까대학 교수) 일본의 재정위기를 후지산 등산에 비유하면, 이미 8 부 능선이나 9 부 능선에 도달하고 있다. 사회구조가 변하고 있는데, 부처별 배분비율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 공공사업 등 각각의 지출의 경제효과를 평가하는 기구도 없이 예산 편성이 되풀이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위기감은 아직 5 부 능선 근처에 있는 정도이다. 오랫동안 폐쇄적인 경제구조에 온존하여 왔기 때문에, 정부활동이 국제금융시장의 평가를
한번도 받지 않았다는 점이 큰 요인이다. 구미 각국은 70 년대부터 시장의 메시지를 정책판단의 재료로 삼아 왔다. 예컨대 90 년대 전반, 재정적자확대를 방치한 영국에서는 파운드 시세가 하락하여, 당시의 라몬트 재정장관이 93 년에 경질되는 쓰라림을 겪었다. 시장경제화가 진행되고 있는 일본도 시장의 눈을 경시할 수 없게 된다. 96 년말에 편성된 97 년도 예산안의 발표로 주가와 엔이 하락한 것은 그 조짐이다. 각각의 공적부분이 어느 만큼의 생산성을 발휘하고 있는가를 진지하게 재검토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