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문 돈의문 230
지명경쟁 1차 돈의문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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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도시갤러리 프로젝트 지명경쟁 1차 돈의문 프로젝트
보이지 않는문 돈의문
안규철
사이트 분석
서울은 외사산(外四山)으로 북쪽으로 북한산, 남쪽으로 관악산, 동쪽으로 용마산, 서쪽으로 덕양산
사라진 돈의문(서대문)의 존재를 드러내고, 4대문 내 도심의 보행탐방 활성화를 위한 주요 거점으로
및
이 둘러싸고 있고, 내사산(內四山)은 백악산(청와대 뒷산, 북악산이라 현재 부름), 인왕산, 목멱산(현
장소 특성을 제시하였다. 또한 신촌, 서울역, 종로, 무악재를 연결하는 도심의 매듭이고, 덕수궁돌담
프로젝트 방향
재 남산이라고 부름), 낙산(낙타산이라고도 부름)을 잇는 59,500척(약18km)의 서울 성곽으로 이어
길에서 정동길을 통해서 오는 출구로 돈의문의 장소 특성을 제시하였다.
져 있다. 내사산을 연결하는 서울 성곽에는 사대문으로 숭례문(남), 흥인지문(동), 돈의문(서), 숙정
작업 방향으로 첫째, 역사적 기억과 복원의 공론화를 위한 문화적 의미를 부각시키고, 둘째, 철거된
문(북)과 사소문으로 홍화문(동북, 동소문이라 부름), 광희문(동남, 수구문이라 부름), 소덕문(남서,
돈의문에 대한 역사적, 조형적 재해석을 통한 문화, 역사, 관광의 통합적 장소 형성을 하고, 셋째, 서
서소문이라 부름), 창의문(서북)이 있다. 서울 도성의 4대문 중 하나였던 돈의문은 도성의 서쪽 대문
울 도심으로 진입하는 서쪽 관문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작업을 요청하였다.
으로서 태조 5년(1396) 9월 도성 8문이 준공되었을 때에 함께 준공되었다. 지금의 서울특별시 종로 구 세종로동 신문로 2가(정동사거리)에 있었던 조선시대 성문으로 이 문은 조선시대 오백년 간 중국 과 통하는 의주로의 관문으로 지금의 강북삼성병원과 경향신문사가 있는 ‘신문로’ 고개 마루턱에 자 리하고 있었다. 새문안길은 1914년 4월 1일 일제가 경성부제를 실시하면서 서대문정西大門町이 되 었으나, 1946년 10월 1일 일제식 동명을 바꿀 때 서대문로로 바뀌었고 1950년에는 신문로로 바뀌 었다. ‘서대문’, 또는 ‘새문’이라는 속칭은 서대문사거리, 서대문경찰서, 신문로, 새문안교회 등의 이 름으로 잔존하고 있으나, 그 이름은 구체적 실체가 없는 막연한 구역의 개념에 불과하다. 일제강점기 중 돈의문은 1915년 6월 11일 완전히 철거되었다. 돈의문(서대문)을 헐면서 서대문의 목재와 기와 및 석재를 경매하였는데 문루를 헐어 낼 때 그 속에서 불상과 기타 많은 보물이 나와서 이 문을 샀던 사람은 큰 횡재를 하였다는 일화가 있으며, 돈의문의 존재를 알려주는 유일한 표지는 1985년에 서울시가 설치한 강북삼성병원 입구 옹벽 위 경사로에 설치된 소규모 안내표지석 뿐이다.
사이트
돈의문은 물리적으로 사라졌고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도 잊혀진 문이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이 문
이미지
의 흔적은 거의 지워져 돈의문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는 서울 시민은 거의 없다.
Before
돈의문 터는 현재 남북/동서 두 방향의 축선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돈의문 주변 성곽이 형성하고 있
image
던 남북 축선으로는 2차선 도로가 형성되어 있고, 이를 8차선 도로가 동서로 관통하고 있다. 이곳은 도로를 뒤덮는 차량의 끊임없는 흐름과 보행자의 이동으로 상시적인 혼잡이 지배하는 동적인 공간이 다. 이 일대의 도로는 지형에 따라 크고 작은 경사로로 이루어져 있고, 주변 건축물들과 가로시설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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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표지판 등이 뒤섞여 대단히 혼잡하고 불안정한 경관을 형성하고 있다. 시민들은 이곳을 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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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있는 장소가 아니라 빨리 지나쳐가야 할 장소로 인식한다. 따라서 광화문 사거리-역사박물관-경 희궁-정동극장-덕수궁돌담길-덕수궁-시청으로 이어지는 서울 도심의 보행자, 관광객 동선에서 이 구역은 사각 지대로 배제된다. 강북삼성병원 진입로 옹벽 윗면에 설치된 표지석은 이 장소가 돈의문 서울시 도시갤러리 프로젝트 지명경쟁 1차 돈의문 프로젝트
터였음을 알리는 유일한 시설물이다. 그러나 그것은 차량 이용자의 시야 밖에 놓여있고, 보행자에게 도 혼잡한 도로 여건과 각종 도로시설물, 간판들 속에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문화에 대한 기억이 상실된 곳에서 “문화가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기억하게 하는 것이 예술 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기억의 공간, 알라이다 아스만, 변학수 백설자 채현숙 옮김, 경북대출판부 p485) 돈의문 공공예술 기획은 돈의문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장소를 만드는 데 목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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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진행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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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경쟁1차 대상지별 추천소위 위원 작가 추천
김춘옥(석종수), 박일호(조덕현), 노준의(김동연), 양진석(조민석), 신종식(유근상), 추진단(안규철)
0528
지명경쟁1차 공공미술위원회 추천소위 개최 (돈의문 지명작가 3인 확정)
김동연(경희대 미술대 교수) 안규철(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원장) 조민석(massstudies 건축사 대표)
0525
0605-0614 지명경쟁1차 지명작가 대상 설명회 및 현장 답사 0725
지명경쟁1차 최종작품안 제출 완료
0730
지명경쟁1차 작품안 심사
심사위원(강희덕,유희영,권영걸,준초이,진양교,최영민,이종빈)
0803
지명경쟁1차 결과 발표
최종당선작 : 안규철, “보이지 않는문-돈의문”
0812
돈의문 행정협의 1차 (설치 관련 행정 협의, 종로구청)
1001
돈의문 계약 (최종계약액 : 197,349,000원)
1005-1115 돈의문 행정협의 2차 (설치 관련 행정 협의, 종로구청)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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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문 설치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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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문 - 돈의문
안규철 Ahn, Kyu-Chul ─ 철프레임, 방부목, 강화유리, LED조명, 화강석 표석, 23.8(가로)X3.95(높이) X0.4m(두께),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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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안규철 작가는 기념비 없는 기념비, 네거티브 기념비의 방향으로 컨셉을 잡았다. 차량 통행이 밀집
작가
평가
되는 지점에 돈의문을 상징하는 새로운 조형적인 기념물을 제작하는 접근방식은 현재의 대상지역의
소개
및 설명
협소한 공간 내에서 또 하나의 시각적 물리적 장애물로 작용할 우려가 있고, 원형 재현적 접근은 동
2004년 ‘49개의 방’(로댕갤러리, 서울)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주요 단체전으로는 1985년 ‘현실과 발언’(그림마당 민, 서울), 1993년 ‘태평양을 건너서’(퀸즈미술관, 뉴욕), 1995년 ‘싹전’(선재미술관,서울), 1998년 ‘미디어와 사이
니라, 사라진 돈의문을 생각하게 만드는 기억의 공간을 조성하는데 초점을 두었다. 정동사거리의 강
트전’(부산시립미술관, 부산), 2000년 ‘디자인 혹은 예술전’(디자인미술관, 서울), 2002년 광주비엔날레 프로젝트 4
북삼성병원 옹벽 지점을 돈의문의 기억의 공간으로 조성하여 ‘보이지 않는 문’을 관람자의 머리 속
등이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아트선재미술관, 신도리코 칭타오 공장 등에서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단재 신채호선 생상, 이수건설 사옥 조형물, LG백화점 옥상정원 조형물, 인천대공원 내 조각공원, 안동조각공원 야외조각 프로젝트
에서 떠올리게 하는 상상과 기억의 장소성을 만듦으로서 집합적 망각의 공간 속에 조성되는 기념비
를 진행하였다. 현재 조각가이자 미술원 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없는 기념비를 구상하였다. “보이지 않는 문(Invisible Monument)”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첫째, 기억의 벽으로 가로 23.8m, 높이 3.75m, 두께 40cm 규모의 벽은 방부목재와 강화유리로 조 성하고, 방부목에 돌출을 주어 성벽의 단면을 암시한다. 유리벽은 1.2m 높이의 난간으로 기능하며 관람객을 차도의 혼잡으로부터 분리하여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한다. 도로측 벽면에는 LED 매입조 명을 규칙적으로 배열하여 야간에 돈의문의 위치를 인식할 수 있게 하는 조명 효과를 갖게 하였다. 불규칙한 경사면들과 혼잡한 주변 경관 속에서 강력한 수평선과 수직면으로 구성된 미니멀한 형태감 과 재료의 물질감을 통해 장소적 차별성과 안정성을 확보하는 효과를 얻는다. 둘째, 돈의문과 성벽이 있던 지점을 도로 상에 화강석과 오석의 포석으로 표현했다. 정동 사거리의 돈의문 터 중심지점에 가로 세로 3.3m의 사각형 형태 석재 포석을 설치하여 요철부분을 통과할 때 미세한 진동으 로도 전달된다. 셋째, 기억의 공간인 플랫폼은 옹벽 윗부분의 경사면 현재 안내판 설치 위치에 정동사거리의 돈의문 터를 조망할 수 있는 평면을 조성하고, 돈의문에 관한 정보를 보여주는 설명판을 설치했다. 평면 바 닥은 방부목 데크로 처리하여 아스콘으로 포장된 주변도로와 차별화했고, 이 난간의 상단부에 돈의 문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설명판(동판, 유리판 부식)을 부착했다. 넷째, 정동사거리 북측의 강북삼성병원 앞에서 현대제철로 이어지는 보행자 경사로 일부에 계단 시 설을 설치하여 보행자의 편의와 안전을 제공하고 경관 디자인상 일관성과 안정성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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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철거 된 후 92년이 지난 2007년 동시대에, 돈의문에 대한 집합 기억은 존재하지 않는다. 역 사적 텍스트에서, 옛 신문의 조각을 통해서 돈의문의 존재를 인식할 뿐이다. 공동의 기억으로 존재하 고, 대상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 섞인 돈의문은 없다. 숭례문이나 흥인지문처럼 문화적 기억으로서 남 서울시 도시갤러리 프로젝트 지명경쟁 1차 돈의문 프로젝트
대문 시장과 동대문 시장과 더불어 존재하지 않는다. 콘트리트와 아스팔트의 진공 상태의 공간에 기 억의 공간을 형성한 안규철 작가의 “보이지 않는문-돈의문”은 예술을 통해서 문화적 기억을 만드는 공공미술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작품 구상 과정에서 계단을 설치하고, 심리적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유리 난간을 설치하여 보행자를 고려하고, 작품과 어울리게 주변 경관을 바꿔간 구상과 노력은 공공미술적 작가의 태도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작가 안규철은 서울대 조소과와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미술학교 연구과정을 졸업했다. 1992년 개인전(스페이스샘 터,서울) 1996년 ‘사물들의 사이전’(아트스페이스서울/학고재, 서울), 1999년 ‘사소한사건’(아트선재센터, 서울)
시대적 임의성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고 판단하여, 가시적인 형상을 갖는 기념물을 만드는 것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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