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th Issue.
고양이가 사는 마을
해방촌의 고양이들
14th Issue.
내용과 순서.
CONTENTS
6
빅터를 부탁해!
14
안녕, 나의 작은 이웃
22
집고양이 설기씨
26
일도, 사랑도 단디 해라!
30
리바운드
36
신흥시장 키즈의 전람회
42
해방촌에 산다
46
열네번째 책을 만든 사람들
3
N
4
H
발행인의 한마디 From Publisher’s Desk
발행인의 말 언제부턴가 남산골해방촌 매호 마다 변화, 사라짐이라는 단어가 자꾸 등장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그 단어가 사라진 잡지를 꾸리는 것이 다소 낯설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이번 호는 2012년 부터 기획회의 때 마다 기사 소재로 자주 등장했던 “해방촌 고양이”입니다. 실제로 그땐 길거리에, 텃밭에 길고양이들이 많이 보였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익숙해진 탓일까요? 제 눈엔 길거리 고양이들이 해방촌에선 잘 보이지 않습니다. . 본격적으로 이번 호에 기사를 쓰고 싶다고 생각한 건 후암동 달꽃창작소 맞은편에 고양이집과 고양이들만 사는 쇼윈도의 집이 궁금해서 였습니다. 다른 생명을 건사하는 것에 자신이 없어 회사앞 길고양이들에게 밥주는 것으로 만족하는 나에게 고양이를 보살피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했었습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반려묘와 길고양이를 보살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 보았습니다. 고양이집은 여건이 맞지 않아서 취재를 못했습니다. 저희들이 그리 위험한 애들은 아닌데 취재라는 말에 부담이 되셨나 봅니다. 다음에 꼭 인연이 닿길 기원합니다.
발행인 배영욱
5
COVER STORY
빅터를 부탁해!
글. 배영욱 / 사진. 김지은 6
고양이 보다는 강아지파인 나! 고양이 밥을 주게 된 사연 나는 고양이파라기 보다는 강아지파다. 해 질 녘에 강아지를 데리고 남산 주변을 산책하는 것이 나름 해방촌 살면서 꼭 해보고 싶은 로망 중의 하나인데…. 이런 내가 지난 2년간 매일 아침 제일 먼저 하는 일이 고양이 밥과 물을 챙기는 것이었다. 내가 고양이 밥을 주게 된 것은 너른 공터가 옆에 있고 햇볕 잘 드는 테라스가 있는 주택을 개조한 경리단 길 부근의 사무실로 이사 오면서부터다. 평소에 별일이 없다가, 전날 사무실에서 야식으로 치킨이라도 먹은 다음 날엔 어김없이 테라스에 닭 뼈가 뒹굴고, 쓰레기봉투가 헤집어져 있는 것이다. 그 이후에 길냥이들을 위한 대용량 사료를 주문하고 고양이 밥 그릇을 샀다. 그리고 그 이후에 고양이들이 쓰레기봉투를 헤집는 일은 사라졌다. 그리고 우리 사무실 앞 테라스는 이 일대 고양이들의 성지가 되었다.
너의 이름은.... <덩치> 우리 사무실을 정기적으로 찾는 고양이들에게 이름을 하나씩 붙였다. 특별히 애정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여러 고양이를 구별 짓기 위해서…. 맨 처음 이름이 생긴 고양이는 ‘덩치’. 힘 깨나 쓸 것 같은 이름과 달리 귀는 찢기고, 털은 푸석푸석하다. 언제부턴가 어딘가에서 싸웠는지 상처가 난 다리에 피가 말라붙은 채로 절뚝거리며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양지바른 지붕에 앉아 한참을 있다 간다. 덩치가 며칠 동안 안 보이는 날이면 어딘가에서 죽은 게 아닌지 걱정하게 만들더니 그래도 1년 정도 꾸준히 나타났다. 그리고 올 봄 이후 발길을 끊었다.
7
<목도리> 사무실의 테라스와 연결된 현관문은 유리로 되어 있어 사무실 안에서 테라스를 볼 수 있다. 야근하던 어느 날, 컴컴한 바깥 외부에서 환한 실내를 지켜보는 눈이 두 개 있었다. 현관문 밖에서 얌전히 누군가가 나오길 기다리는 코숏(코리안 숏헤어:한국 고양이) 한 마리. 정작 나가면 부리나케 도망치는 다른 고양이완 다르게, 얌전히 앉아서 갈구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아니나 다를까 밥통이 비어있다. 텅 빈 밥통에 사료를 채워주면 와작와작 사료를 먹는다. 적당히 배가 차면 슬쩍 사무실 안을 다시 응시한다. 그러곤 열어둔 사무실 현관문 안으로 살짝 머리를 들이민다. 사람이 안에 있으면 딱 거기까지, 그러나 거실에 사람이 안 보이면 용감히 사무실 소파 위로 올라간다. 얌전히 앉아서 한참을 앉아 있다가 사무실 방에서 사람이 나오면 사람도, 고양이도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고양인 사무실을 빠져나간다. 사람과 밀당하는 이 녀석, 보통은 ‘목도리’다. 목주변으로 하얀 목도리를 두른 것처럼 흰 무늬가 있다. 우리 사무실 직원들의 가장 사랑을 받은 녀석 중 한마리인데 그나마 사람을 덜 무서워한다. 이 놈의 환심을 사기위해 인터넷에서 고양이 마약이라 불리는 츄르를 사다가 몇 번을 유인했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간식을 손에 뭍혀 먹이면서 까끌까끌한 고양이 혓바닥 감촉을 느끼는 것 뿐, 끝까지 목도리의 털을 어루만지거나 할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 그래도 가장 많은 사진 세례를 받고, 모델이 되어주는 녀석이다. <빅터> 2016년 여름 사무실 앞 공터 구석에 엄마 고양이와 새끼고양이가 놀고 있는 게 발견이 되었다. 그 이후 엄마는 새끼를 데리고 몇 번 은신처를 바꿨지만 번번이 우리 눈에 띄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이 엄마고양이가 우리 급식소의 단골이었던 까닭에 너무 멀리는 안 가는 것 같았다. 우린 일하다 가끔 쉴 때 엄마고양이 꼬리를 가지고 노는 새끼고양이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이 새끼고양이는 엄청 겁이 많았다. 항상 엄마가 앞장서서 밥을 먹고 이 고양이는 항상 멀찌감치 떨어져 경계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어느날 부터 엄마고양이는 이 장소를 떠나 어디론가 사라지고 이 새끼고양이만 남았다. 우린 이 새끼고양이를 ‘빅터’라 불렀다. 코숏에 얼굴이 또렷또렷하게 잘생긴 편인데, 같이 일하는 회사 동료의 외국인 친구인 빅터랑 닮은 탓에 빅터가 되었다. 이 녀석은 약간 작은 체구에 뒷발에 흰 양말을 신은 듯 무늬가 있다. 이외에도 삼색이, 젖소무늬 얼룩이, 새초롬하게 생긴 이쁜이, 그리고 미처 이름짓지 못한 고양이들. 이름을 붙여 주고, 밥을 챙기고, 사진을 찍고 나는 그렇게 고양이맘이 되었다. 8
9
고양이 성지의 조건
기타
우리 사무실 주변 환경만큼 고양이가 살기 재미있는 곳이 있을까?
수시로 채워지는 밥통과 물통, 그리고 인조털이 깔린 단열 집
라는 자부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내가 생각하는 사무실이
밥을 주기 시작하면서 2년간 5kg짜리 사료 12포대를 샀다.
고양이의 성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몇 가지, 나름 분석해
아침 출근하는 인기척이 들리면 어김없이 하나둘 모여들기
봤다.
시작하는 고양이들의 밥통에 사료를 채우고, 맑은 물을 준다. 여름엔 살짝 얼음을 띄우기도 하고, 겨울엔 미지근한 물을 채워 넣는다. 이런 정성을 별로 알아주지 않는다. 비에 젖어 사료가
테라스
불면 입에도 대지 않는다. 한번은 특식으로 야심차게 내놓은 참치캔은 그대로 말라버렸다. (나중에 알고보니 사람이 먹는
주택을 개조한 우리 사무실은 용도변경을 하면서 사무실의
참치캔은 고양이에겐 짜서 좋지 않다고 한다. 영리한 것들) .
입구를 새로 만들었고, 아래층의 옥상과 입구의 높이를 맞추기
보일러가 동파된 혹독한 지난 겨울을 지내며, 우리 고양이들은
위해 40cm가량의 공간을 띄운 후 데크를 깔았다. 햇볕이 뜨겁지
어디서 피신해 있기는 한걸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마침
않은 봄, 가을, 겨울 햇살 속에 늘어지게 누운 고양이와
잡지만드는 친구를 통해 길고양이집을 만들어 파는 해비켓을
게슴츠레한 고양이의 포정을 보고 있자면 고양이의 상팔자가
소개 받고 캣터 하나를 장만했다. 보통 길고양이를 의한 캣터는
부러워지면서 나까지 나른해진다. 양지바른 넓은 테라스가
어두운 색으로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설치한다는데,
고양이를 찾게 만드는 제 1의 원인이지 않을까?
다행히 사유영역인 테라스에 설치한 하얀고양이집은 색도
물론 양지바른 지붕도 훨씬 안전하게 쉴 수 있을지 모르나,
형태도 엄청 눈에 띄었다. ‘너무 튀나?’ ‘이 기하학적으로 생긴
충분한 인간과의 거리를 확보할 수 있는 넓직한 데크, 여차하면
삼각통에 고양이가 들어가기나 할까?’ 반신반의 했지만
테라스 아래 40cm 사이 공간으로 사라졌다가 데크와 바로
신기하게도 그 조그만 집에 ‘빅터’와 ‘목도리’가 둘이 동거를
연결된 옆 건물 지붕으로 도망칠 수 있으니 크게 문제 되지는
하기 시작했다. 원래 길에서 만난 고양이 둘이, 그것도 수컷
않는 구조다.
둘이 저렇게 다정할 수 있을까 싶게도 그들은 형제처럼 뒤엉켜 좁은 고양이 집에서 혹독한 겨울을 무사히 보냈다.
넓은 공터
넓은 화장실, 그리고 밀림같은 잡초, 놀이터. 우리 사무실 앞에 넓은 맹지가 있다. 맹지, 즉 건축법상 4m 이상 도로에 접하지 않아 신축이 어려운 부지다. 아마도 땅 주인이 잘 모르고 오래된 집을 철거부터 하고 난 후 신축이 어려운 걸 이후에 알았으리라. 그 이후로 4~5년째 저렇게 빈 나대지로 남아있게 되었다. (맹지의 건축물은 신축이 어려워 그냥 리모델링해서 사용해야 한다. 우리 사무실처럼 우리 사무실이 있는 대지도 맹지다), 온갖 건축폐기물과 흙과 잡초가 뒤엉켜진 밀림과 같은 나대지가 고양이에겐 그야말로 드넓은 화장실이자 나비를 쫓고 풀을 뜯으며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이며, 그 주변의 축대벽과 연결된 지붕은 천혜의 캣타워이리라.
10
11
12
#손님과 이웃에 대해 다른 주인의 태도
빅터를 부탁해요 내가 구구절절 우리 사무실을 거쳐간 고양이를 설명하는 까닭! 사무실이 이전하게 됐다. 이 기사 기획때에 우연히 캣맘에 된 사연을 쓰려뎐 나의 기사는 우리 고양이들을 잘 부탁한다는 부탁의 편지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사무실을 떠났다. 이전이 확실해지면서 고양이들의 급식을 끊었다. 이후에 사무실을 쓰실 분들이 어떤 성향을 지닌 분인지 모를 상황에서 고양이가 사람을 쫓아 다니게 하면 안 된다는 친구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이런 우리의 의도를 너무 잘 알았는지, 이사 후에 전기 계량기를 확인하러 간 텅빈 옛 사무실에서 고양이의 자취는 보이지 않아다. 잘됐다 싶으면서도 어쩔 수 없는 섭섭함… 하지만 이 글을 읽고 계신 경리단의 그 어느 분, 우리 빅터를 부탁합니다. 밥을 주고, 간식을 주고, 집을 주고, 놀아 주려고 해도 절대 가까이 오지 않는 길고양이 빅터. 겁이 많아 성가시게 하지 않아요. 주변에 캣맘이나 고양이 밥그릇을 내 놓는 분이 많아서 배곯을 걱정은 하지 않지만, 너무 미워하거나, 해코지 하지 말아주세요 그리고 주변의 길고양이 이름을 지어 구분해 보세요. 아마 곧 물그릇을 내놓는 자신을 발견하실지 모릅니다.
13
안녕, 나의 작은 이웃! -해방촌에서 길고양이 밥을 주는 사람들에게서 들어본, 함께 살기에 대한 생각-
내가 살고 있는 108계단 주변에는 지금은 사라졌지만 계단 가운데
해방촌에는 이분들 보다 훨씬 앞서 캣맘 활동을 하고 계신 분이
있던 화단 때문이었는지 유난히 오가는 고양이들이 많았다.
있다. 가끔 사료봉지를 양손 가득 들고 밥을 주러 다니는 것을
올해 초부터 계단 공사가 시작되고 화단이 없어지면서 거기를
보는데, 고양이들이 기다렸다는 듯 와서 사료를 허겁지겁 받아
오가던 고양이들이 어디로 다닐까, 몸을 숨길 데는 있을까,
먹었다. 그 모습을 볼 때면 캣맘분께 감사한 마음과 밥을 먹는
생각했었다. 그런데 얼마전부터 계단 주변에 있는 가게들 앞에
고양이들 모습에 흐뭇하면서도 안쓰러운 마음이 동시에 들곤 했다.
고양이사료나 물그릇이 놓여진 것이 보인다. 그러면서 가게앞 밥그릇에 코를 박고 사료를 오도독 씹어 먹는 고양이들도 종종 볼
각박한 세상살이에 자신의 생계와는 별 관련이 없는 고양이들의
수 있다. 그 모습은 지나가던 동네 주민의 발걸음을 붙잡기도 한다.
먹이를 꼬박꼬박 챙겨주기란 말처럼 쉽지 않으리란 짐작만 했었다.
배고픈 생명이 허기를 채우는 모습은 굳이 고양이를 좋아하지
이번 인터뷰를 계기로 그들이 어떤 생각으로 고양이와 인연을 맺고
않아도 그리 보기 싫은 풍경은 아닐 것이다. (인터뷰를 하고 보니
어떤 마음으로 이 작은 이웃들을 대하는지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반드시 그렇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인터뷰. 엄진아
14
108계단아래 미용실
처음 밥주기 시작했는데 세마리가 왔어요. 한 마리는 까만애고 한마리는 하얀 애고 한 마리는 삼색이고요. 그게 언제에요? 작년 9월정도요. 최근에 삼색이를 봤어요. 삼색이는 아직 애기에요. 새끼를 낳았어요. 어디다 낳았는지는 모르고 젖먹이면서 여기와서 밥 먹어요. 까만애는 (108계단)공사 시작하면서부터 안 오기 시작했고, 하얀 애는 나이가 있으면서 많이 싸우러 다녔는지 되게 아팠거든요. 콧물도 많이 흘리고 기침도 많이 하고 해서 약을 겨울에 한 세번 먹였는데 잘 다녔어요. 나 출근 하기 전에 와서 기다리고... 근데 저기 위에 올라가는 길에 차 사고 나서 죽었어요. 그걸 어떻게 알게 되셨어요? 동네 분이 저한테 와서 말해주시더라구요. 좀 맘이 안 좋았죠. 지금은 삼색이만 하루에 3번씩 와요. 미용실 문앞에서 기다리는 것 봤어요. 얘는 너무 경계가 심해요 사람에 대해서... 그게 당연한 거긴 해요. 워낙 깨끗하고 예뻐요. 새끼를 낳은건 어떻게 아셨나요? 배가 불렀었거든요, 봄까지. 그러다 한 순간에 배가 홀쭉해서 젖이 나와 있더라구요. 그때는 하루에 3, 4번씩 왔어요. 어쩌다 밥을 주게 되셨어요? 맨 처음에 왔는데 뭐 줄게 없더라구요. 요 앞에 한 마리가 왔어요, 하얀 애가. 줄 게 없어서 편의점 가서 간식을 사다줫죠. 그랬더니 먹더라구요. 근데 또 까만애가, 진짜 멋진 애가 왔어요. 걔를 또 주니까 계속 오더라구요. 안되겠다 싶어서 사료를 사다놨어요. 너희가 와서 먹던 안 먹던 알아서 하라고... 그러다 보니까 이렇게 되었어요. 여기 오기 전에 다른데서도 이렇게 하신적 있으세요? 동네에서 고양이 있으면 가끔 통조림 하나 사다가 주고... 그렇게만 했지 이렇게 정기적으로 준건 처음이죠. 왜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세요? 음...좋으니깐요(웃음) 고양이 이쁘잖아요. 그런데 싫어하는 사람도 있어요. 여기 건물주도 싫어해요. 밥 주지 말라고 하고...애들이 와서 먹으면 지팡이로 치세요. 할아버지들이 그러면 제가 알아서 할테니까 그러지 말라고, 깨끗이 해 놓을테니까.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자기 취향이긴 한데 굳이 나쁜 행동 안하면, 나는 밥 주고 고양이들은 잘 먹고 가서 새끼 잘 키우고 그러면 되죠. (위) 밥을 기다리는 삼색이 (아래) 삼색이의 새끼 중 하나
15
황인숙 시인 / 캣맘
내가 생각하는 고양이의 매력 황홀한 피조물! 생김새나 성정이나 우아하고 섬세하고
고양이와 나의 인연(밥을 주게 된 계기)
다정다감하다. 고귀한 데가 있다. 굶어 죽을 환경만 아니면, 어린냥이와 약한 냥이가 우선으로 먹는 광경을 흔히 본다.
약 12년 전까지 10여 년 세를 살던 집의 뜰에서 고양이들과 만났다. 그들의 존재를 알게 되니까 술자리나 밥자리에서 챙겨온 치킨 등의 음식물을 주게 됐다. 고양이 사료라는 게 따로 있는
해방촌과 고양이에 대한 짧은 단상
줄도 모를 때였다. 고양이는 해방촌의 마스코트다. 남산 비탈에 있는 옛날 동네 그 고양이이웃들과 평화롭고 행복한 관계를 맺어왔는데, 그 집이
해방촌에는 명물이라 할 정도로 고양이가 많다. 어느 집 담장
갑자기 팔리면서 새 집주인의 고양이 소탕이 시작됐다. 그때 한
위에서 한가롭게 자는 고양이 모습은 얼마나 마음을 뿌듯하고
마리 건진 고양이와 결국 이사를 하고 말았는데, 집에 고양이가
흐뭇하게 하는지. 주민들의 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여러 동네
있으니까 길에서 보는 고양이가 더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고, 한두
밥을 주러 다니는데, 우리 동네 해방촌 고양이들이 그 중
마리에게 고양이 사료를 주기 시작하면서 파란만장한 캣케어
편안하고 깔끔해 보인다. 젊은이들이 많이 유입되고 있고, 오래
세계에 발 들이게 됨.
전부터 살던 동네 어르신들이 대개 후덕하신 소치다 그런데. 이상한 사람이 하나 이사오면 이 평화가 순식간 깨진다. 대개 65 세~75세 남자 중에 많은 유형인, 필경 먼저 살던 곳에서도 몹쓸 사람이었을 그가 하필 우리 해방촌에 이사를 왔단 말인가. 더도
밥을 주면서 만난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
말고 덜도 말고 딱 그가 고양이한테 한 그대로만 당하라고 빈다. 아마 그렇게 될 것이다. 다음 생에서라도. 그런 식구들은 제발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12년 새 내가 폭삭 늙었음. 물론 착한 사람이 훨씬 많지만 고양이밥을 주다 부딪치는 사람들은 대개 감성지수나 지능지수가 떨어져서 혐인증이 다 생길 지경. 고양이들은 하나하나 다 옳고 예쁘다. 아름다운 고양이들이 추한 인간에게 악행을 당하는 것에 이토록 속수무책이라니..한 개인이 대항하기에는 무지와 편견이 황소 힘줄처럼 질깃질깃하다. 동물복지와 생태에 바른 가치관을 가진 정치인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러면 행정도 바뀌고, 시민들 의식도 바뀔 테다.
16
이사 오지 말았으면 좋겠다. 해방촌 버린다.
비스트로 세탁소 / 박시나브로
11월이 되어서야 아기들을 데리고 왔더라구요. 하얀 고양이 '마요', 치즈고양이 '겨자' 였어요.
고양이와 나의 인연(밥을 주게 된 계기)
독립할 시기가 되어서 애기들을 데리고 왔던것 같아요. 가게에 몇번 같이 오더니 어느새 깡패는 애기들이 가까이 오면
안쓰러웠어요. 해방촌은 처음인데, 이 동네에는 고양이가
솜방망이를 날리거나 하악질을 했어요.
많았어요. 가게를 열고 어느날 불쑥 나타나 입구에 서 있던 까만
매일 오던 깡패는 드문드문 찾아왔고, 마요와 겨자는 가게앞
고양이. 연달아 사흘을 찾아 오는걸 보고 밥을 주기 시작했어요.
주차된 차 아래에 숨어있다가 제가 출근하면 잽싸게 가게안으로
우리집 강아지는 집안에서 추우면 보일러와 이불속에 들어가고,
들어와 쇼파위에나 바구니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몸을 녹이며
여름엔 24시간 에어컨을 틀어주며 사는데,,
낮잠을 자기 시작했어요.
길에 사는 고양이는 추우면 온몸을 잔뜩 웅크리고 보내고 더우면
그렇게 한달이 지났고, 겨자는 날이 갈수록 통통해져 갔는데
더운대로.., 참아야 하는 아이들이 안쓰러웠어요.
마요가 얼굴이 눈꼽과 콧물로 엉망이 되었고 일주일을 밥을 먹지
그래서 제가 가게를 운영하는 동안만이라도 잘 챙겨주고
않았어요.
싶었어요. 그리고 다행이 이 골목에 항상챙겨주시는 캣맘이
퇴근할때 "나가야지~" 하면 쪼르르 나갔는데 힘없는 마요는
계셨고, 제 의사를 표현했어요. 저도 애들 밥을 챙겨주고 싶은데
나갔다가 찬바람에 다시 가게로 들어왔고 가게에 며칠을
괜찮은지 대해서요. 제가 떠나더라도 캣맘 본인이 있으니
지내다가 호전이 없는 마요는 결국 치료를 위해 병원을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고, 1년이 넘은 지금 서로 힘이 되어가며
가게되었어요.
애기들을 챙기고 있어요.
아픈 마요를 한파의 날씨에 방사시킬 수 없어서 집으로 데리고와서 치료 후에 입양을 보냈어요. (제 지인의 집으로 가서 고양이누나&형아, 엄마아빠와 잘 살고 있어요)
밥을 주면서 만난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겨자는 안타깝게도 고양이를 싫어하는 못된 아저씨가 놓은 쥐약을 먹고 하늘나라에 갔어요.
까만고양이 '다림이'.
그래도 다행인건 마지막 모습을 저와 캣맘이 보낼 수 있어서..
제가 처음으로 고양이에 대한 마음을 열게한 아이에요.
감사했어요.
사흘연속으로 찾아와 제가 고양이사료와 츄르를 사게만든
깡패는 계단아래쪽에 터를 잡았고, 다리미는 요즘도 매일같이
고양이에요. 가게이름이 세탁소이기에, 다리미에서 착안해
찾아와요.
다림이라고 지었어요. 제일 아저씨 같은데 또 제일 바보같고
제가 출근하는 시간보다 먼저와서 가게 앞에 앉아있어서... 동네
마음이 많이 가는 고양이에요. 중성화를 한 탓에 기쎈
주민분들께서 일찍 나오라고 혼나기도 합니다. 고양이가 빈
수컷고양이들한테 맞고 다니거든요. 그치만 제일 능글맞아서
밥그릇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구요 ㅎㅎ
주민분들께 츄르도 얻어먹고 다녀요:) 내가 생각하는 고양이의 매력은? 아이를 지켜야했던 '깡패' 그리고 애기 '마요&겨자'. 17년 8월 퇴근하려고 문을 열었는데 삼색고양이가 저를 보고
고양이는 단짝친구같은 매력이있어요. 마음을 한번 열기
'하악!!!!!!!' 하는 거에요. 아직 고양이에대한 무서움이
시작하면 활-짝 열어요. 그렇게 매일같이 경계하던 녀석도
남았을때라 너무 놀래서 문을닫고 황급히 들어왔어요.
한걸음씩 경계하며 다가오더니 어느날 불쑥 들어와서 드러눕고
조금 진정을하고 얘가 왜 저럴까에 대해서 생각했어요.
하더라구요 :) 정말 사랑스럽고 고마워요. 그렇게 좋은사람이
내가 다른애들 밥을 주는걸 알아서 밥을 달라고 온건지..
아닐수도 있는 나를 덜컥 믿어줘서요.
밥은 항상 밖에 있는데 '더 맛있는걸 원하는걸까?' 싶었어요. 용기내서 캔을 가지고 절반을 덜어서 주니, 잽싸게 물고 폐가
해방촌과 고양이에 대한 짧은 단상
쪽으로 가더라구요. 그때 알았어요. 아 새끼가 있구나!
자유와 불행 사이가 떠올라요. 좋은 이웃을 만난 고양이는 항상
캔과 사료를 담은 봉지를 입구쪽에 놔두었어요.
배도 부르고 마당한켠에 작은 보금자리도 얻고 살게 되요.
그리고 한달을 넘게 저한테 하악질을 하며 캔을 강탈해갔구요..
그렇지 않은 이웃을 만난 아이들은 겨자처럼.. 너무 일찍이 별이
그래서 이름이 깡패가 되었어요.
되어버리는것 같아요. 매일이 행복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괴롭힘을 받지 않고 눈감는 날까지 배부르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17
‘다림이’
18
‘깡패’와 새끼들 ‘겨자’, ‘마요’
19
‘겨자’와 ‘마요’
20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 황인숙 이 다음에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윤기 잘잘 흐르는 까망 얼룩고양이로 태어나리라. 사뿐사뿐 뛸 때면 커다란 까치 같고 공처럼 둥글릴 줄도 아는 작은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나는 뒷마루에서 졸지 않으리라 가시덤불 속을 누벼 누벼 너른 들판으로 나가리라 거기서 들쥐와 뛰어놀리라 배가 고프면 살금살금 참새떼를 덮치리라 그들은 놀라 후다닥 달아나겠지 아하하하 폴짝폴짝 뒤따르리라 푸드득 푸드드득 꼬마 참새는 잡지 않으리라 할딱거리는 고놈을 앞발로 툭 건드려 놀래주기만 하리라 그리고 곧장 내달아 제일 큰 참새를 잡으리라. 이윽고 해는 기울어 바람은 스산해지겠지 들쥐도 참새도 가버리고 어둔 벌판에 홀로 남겠지 나는 돌아가지 않으리라 어둠을 핥으며 낟가리를 찾으리라 그 속은 아늑하고 짚단 냄새 훈훈하겠지 훌쩍 뛰어올라 깊이 웅크리리라 내 잠자리는 달빛을 받아 은근히 빛나겠지 혹은 거센 바람과 함께 찬 비가 빈 벌판을 쏘다닐지도 모르지 그래도 난 털끝 하나 적시지 않을걸. 나는 꿈을 꾸리라 놓친 참새를 쫓아 밝은 들판을 내닫는 꿈을.
21
22
23
24
25
일도, 사랑도 단디 해라! - 어덜트 라이프스타일샵 <피우다>의 대표 강혜영을 만나다. -
요즘 번화가에 성인용품점이 많이 생겼다. 뻘겋고 어두침침하고 무슨 가게인지 알 수 없었던 예전에 성인용품점과는 사뭇 다르다. 쇼윈도에 공공연하게 성인용품을 비치하기도 한다. 젊은이들도 거리낌 없이 구경하고 드나든다. 성(性)을 다루는 태도가 많이 달라진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는 듯하다. 이제 더 이상 성(性)은 숨겨야 하고 비밀스러운 음지의 문화가 아니다. 이 흐름을 따라 해방촌에도 가게가 생겼다. 바로 어덜트 라이프스타일샵(Adult Lifestyle Shop)을 표방하는 ‘피우다’이다. 감각적인 인테리어를 보고 카페인가 싶어 다가가는 행인들이 많다. 외관뿐만 아니라, 이곳은 우후죽순 생겨난 여타의 성인용품점과는 ‘뭔가’가 다른 듯하다. 과연 어떤 것이 다를까?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피우다’의 강혜영 대표를 만나 보았다.
글. 신솔아(sola2220@gmail.com)
26
실제로 동네 사람들이 많이 오는지? 어떤 손님들이 주로 오는지 알고 싶다.
주로 외부 사람들이 ‘이런 게 생겼네!’하고 구경을 많이 오거나 얘기를 듣고 찾아서 온다. 가게 오픈하고 시간이 지나니까 여기서 장사하는 아줌마, 아저씨들도 왔다. 저 위쪽에서 장사한다며 한번 놀러 오라더라. 이렇게 50대 중년의 손님들도 온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홍보를 안 하고 있는데도 젊은 사람들은 찾아서
이태원이나 이 근방에는 특히 성인용품 샵이 많다. 다른
오더라.
가게는 그저 성인용품을 위한 성인용품점인 데에 비해, 피우다는 ‘성 문화 개선’이 주 목적이고 이를 위한 방법으로 성인용품점을 열었다는 느낌을 준다. 이전의
아무래도 성인용품을 다루다 보니, 여러 가지
인터뷰들에서도 그렇게 말해왔던 것으로 알고 있다.
에피소드들이 많을 것 같다. 기억에 남는 손님은 없는지?
어떻게 성 문화를 개선하고 싶은 건지, 많은 방법 중에 성인용품이란 수단을 선택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한번은 어린 친구가 가게에 들어와서는 섹스를 좋아하냐고 물어보더라. 그래서 대답했다. 은행 가서 창구 직원한테 돈
‘섹스 길티(Sex Guilty)’라고, 본인이 가지고 있는 성욕에 대한
좋아하냐고 물어보냐, 여기는 성에 관계된 제품을 파는 곳이지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성욕을 가지는 건 당연한 건데,
성을 파는 곳이 아니다, 그렇게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는 질문은
그 자체만으로도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모든 사람이
삼가고 아니면 그냥 나가시는 게 좋겠다고 했다. 가게가
이걸(성인용품) 써야 하는 것도 아니고 안 써도 충분히 윤택한
도로변이라서 그런지 그냥 나가더라.
성생활을 할 수 있다. 다만 그 선택 때문에 지탄받거나 죄책감을 느끼거나 위험에 노출되면 안 된다. 그런 점들을 바꾸고 싶었다. 부자가 안 되더라도 생활이 유지된다면 흔쾌히 하겠다는
사실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성(性)을 말한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게 굉장히 어렵고 금기시된다. 여성이 성(性)을 말하면
원래 사람이 개인적인 얘기를 하면 부끄럽다. 성(性)은 너무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런
개인적이기 때문에 더 부끄러울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실에서 여성으로서 성인용품점을 운영한다는 게 쉽지
배제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 안전하게 자리 잡을 수 있다.
않은 선택이었을 것 같다.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그래서 성인용품과 연결했다.
궁금하다. 성인용품점이 되었든 뭐가 되었든, 남성이 할 수 있는 일을
다른 장소도 많은데 해방촌에 가게를 낸 이유가 있는지?
여성도 할 수 있다는 걸 믿는 게 중요하다. 내 성격이 편견이 없고, 남과 얘기하고 들어주는 걸 재밌어한다. 성 관련된 얘기를
해방촌에서 하겠다고 10년 전에도 생각했다. 여기 해방촌에 오래 살았다. 동네 자체가 느낌 있고 외국인도 많고 다양하다. 여기서는 언더그라운드 문화가 메인이 된다. 그런 점들이 재밌었다. 또, 내수시장이 강하다는 생각을 했다. 동네 사람들이 많이 올 것 같았다. 생각이 다르고 열려있는 사람들이니까.
하는 데 있어 부끄럽다는 생각을 잘 안 하는 편이다. 그래서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성인용품점을 해보자는 생각을 가졌을 때가 10년 전쯤이다. 그때 처음으로 성인용품점을 가보았다. 문을 여니까 졸려 보이는 아저씨가 있었다. 그땐 성인용품에 대해 잘 몰라서 좀 보고 싶었는데 아무것도 만져볼 수 없었다. 다 박스 안에 싸져 있었다. 여기서 뭘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있었다. 가게 한편에 빨간 커튼이 쳐있었는데 테스트룸이라고 쓰여 있었다. 거기서 한 아저씨가 바지 매무새를 고치면서 나오더라. 그때 ‘아, 여기는 내가 올 곳이 아니구나.’해서 바로 나왔다. 27
28
(그 일을 계기로) 나 같은 사람도 편히 올 수 있는 공간이
관련해서 크게 그리고 있는 그림은?
필요한데 내가 하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엔 여성들도 이쪽 일을 많이 하고 있고, 여러모로 바뀌고 있다.
워크샵을 진행할 예정이고, 저 장소에서 할지, 공간을 빌릴지… 단순한 워크샵 형태로 갈지, 파티형태로 할지 등 고민 중이다. 또 하나는, 제품 생산에도 관심이 있다. 그런 건 공부를 많이 해야 할
성인용품점을 시작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의
것 같다. 사람 몸에 닿는 거니까.
반응은 어땠나? ‘재밌겠다. 너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얘기하는 친구들도
워크샵은 어떤 주제로 진행하려고 하는지?
있었고, ‘그래도 조심해라’라는 친구들도 있었다. 가족들은 ‘결국 하는구나.’ 이런 반응이었다. 개업식 할 때 엄마랑 오빠가 선물도 보내줬다.
‘내 몸’을 주제로 정말 기본적인 것들을 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내 몸이 성관계할 때 어떻게 반응을 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성관계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주고받는 건데 그런 인식이 부족하다.
보통 부모님 세대는 보수적이기 마련인데, 가족들이 오픈마인드 같다.
인식도 부족한 것도 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방법도 모른다. ‘요즘 이런 게(성인용품) 유행이니까 그냥 나도 사서 써볼까?’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내 몸에 맞는
어쩔 수 없는 세대 간의 벽이 있지만, 엄마는 내 딸만큼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생각이 있다. 그냥 잘하라고. ‘ 단디해라’라고. 가게 열기 전에 단디하라고 얘기를 많이 들었다. 나쁜 짓해서 돈 버는 것보다 낫다고 하더라.
가족들이 참 좋으신 분들인 것 같다. 맞다. 다행인 거 같다.
손님들의 성 고민 상담을 한 적도 있다고
안전한 제품을 써야 한다. 그런 성에 대한 정보를 주제로 다양한 워크샵을 하려고 한다. 그러려면 우리도 잘 알아야 한다. 손님들에게 항상 얘기한다. ‘ 우리도 다 알지는 못한다. 같이 얘기하면서 답을 찾아보자.’ 그래서 워크샵은 정보를 주고받으며 소통하는 형식으로 하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피우다 같은 성인용품점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조언이나 한마디 해준다면?
원래 가게 오픈할 때 성(性) 관련 워크샵을 하려고 했다. 사람들이 알고 싶은 게 뭔지 궁금했다. (손님들이) 질문지를 써서 가게 안에 있는 바구니에 넣으면 나중에 우리가 답을 줄 수 있도록 했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질문지를 되게 많이 넣어서, 중간에 멈췄다. 생각보다 많고 다양했다. 우리끼리는 이렇게 얘기한다. ‘So much more than just sex toy.’
‘단디해라.’ (웃음) 어떤 일을 하든지 그 일을 하면서 따라오는 책임감을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당장 돈이 되게 파려면 마진율이 좋고 싼 물건이나 패키징이 엉망인 물건을 팔아도 된다. 근데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돈을 벌 방법은 많이 있다. 남한테 피해를 주지 않고 돈을 벌면 좋지 않나. 모든 일이 그랬으면 좋겠다. ●
제품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가치를 전달하고 싶다. 바이브레이터 팔면서 뭘 그렇게까지 하냐는 얘기도 듣는다. 그치만 우리는 자체적인 성교육 프로그램도 만들고 콘텐츠도 만들려는 계획이 있다. 근데 우리가 거북이 속도다. (웃음) 빨리하려는 걸 싫어한다. 자꾸 확인하려고 한다. 천천히 하나씩 하려고 한다.
29
리바운드 글. 박정현 그림. 이미나
용산구 용산동 2가 XX로 XX호. 그는 눈앞에 펼쳐진 두 갈래 길을 보았다. 왼쪽으로는 벽면에 쌓인 옹기를 따라 쭉 언덕길이 이어졌고, 다른 한쪽은 아파트 빌라를 끼고 육교가 큰 도로와 만나고 있었다. 전선 사이로 남산타워가 손에 잡힐 듯 가까워 보였다. 집으로 향하는 교복차림의 아이들도 있었고, 짧은 치마, 짧은 바지를 입고 짝을 이뤄 언덕길을 오르는 연인들도 많았다.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더플 백을 들고 부대로 복귀하는 미군들도 있었고, 나시티를 입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푸른 눈과 구불구불한 머리카락을 가진 외국인들도 많았다.
녹사평역 2번 출구로 나온 우진은 자신을 채찍처럼 내리치는
그는 자신의 옆에 서서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던 남자에게 대뜸
초여름의 햇살 아래 죄인처럼 섰다. 왼쪽 옆구리에는 어린아이
주소가 적힌 종이를 보여주고, 여기가 어딘지 아냐고 물었다. 그는
머리통보다 조금 큰 수박이 들려있다. 짧은 반팔, 반바지 차림의
시큰둥하게 우진을 보고, 자기 여자친구와 씩 웃더니 자기들도 놀러
젊은 사람들이 검은 양복 차림의 노인을 지나쳐 걸어갔다. 그가
온 거라서 어딘지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우진 역시 큰 미련을 두지
입은 검은 양복은 사계절 용이라 여름에 자켓까지 입기엔 옷감이
않고 고개를 짧게 끄덕이고는 길을 건넜다. 산다는 건 언제나 두
두꺼워 영 답답했고, 누가 죽은 게 아니라면 내내 옷장에 쳐 박혀
갈래 길 앞에 서는 것이다. 물론 옳은 선택을 했는지는 나머지 길을
있는지라 나프탈렌 냄새가 진하게 났다. 그러니까 그는 지금 이
가보지 않았기에 알 수 없다. 우진은 왼쪽 길을 택했다. 수박을 들고
양복을 입고 있고, 그 말인 즉 장례식장에 다녀오는 길이라는
있는 왼손이 배겨서 오른손으로 옮겨 들었다.
것이다. 그제 그의 오랜 친구 조가 죽었다. 조는 젊은 시절 그와 함께 2년 동안 원양어선을 타고 먼 바다에 나가 오징어 따위를 잡았다.
아버지로서 웃기는 말이지만, 우진이 지해를 처음 본 건 배타는 걸
붙임성이 썩 좋았던 친구라 배에서 내린 뒤에도 우진의 집에 가끔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그때 걔는 이미 걸어 다녔다.
놀러 왔고, 거친 일을 한 것 치곤 교양도 있어서 이혼한 우진의
지해는 퉁명스러운 눈으로 그를 노려 보았는데, 그는 피식 웃으며
아내도 그를 싫어하지 않았다. 그래서 식장에 우진의 첫째 아들이
익숙한 눈빛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지 집을 떠날 때
아내 대신 부조금을 내러 온 것일 테고 말이다. 둘째 딸은 우진을
생각이 났다. 우진이 지해를 마지막으로 본 건 둘째 결혼식 때였다.
싫어했는데, 아들은 먼저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렇다고 물론
그때 그녀는 고등학생이었고, 혼자 축의금을 받으며 앉아 있는 게
그가 우진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손주 놈이 고등학교에 간다고
지겨워 죽겠는지 입이 찢어지게 하품을 했다. 그는 눈꼬리에 눈물이
했던가, 아니면 중학교에 간다고 했던가. 그다지 궁금하지도 않고
맺힌 그녀에게 다가가 축의금 중 5만원을 빼서 그녀의 자켓
모를 일이다. 우진은 아들이 태어났을 때 자기의 인생이 시시해지고
주머니에 넣어줬다.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홀 여자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둘째 딸까지 생겼을 땐 숨이 막혔다.
화장실에서 애 엄마가 나오는 것을 먼저 확인했다. 뭔가를 말하려고
그래서 아내가 셋째를 가졌을 때, 그는 배를 탔다.
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지해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그의 옷깃을 잡았고, 그는 지체 없이 식장을 벗어났다. 우진은 이런저런
우진은 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왼쪽에 펼쳐진 미군 부대 윤형
생각을 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은근한 오르막길이라 천천히
철조망과 가로수 이파리 사이로 져가는 햇살이 여러 갈래로 쪼개져
숨이 차는 데다가, 도로 폭이 좁아 마을 버스를 비롯한 각종 차들이
도보 위로 길게 드리웠다. 주말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았다.
그를 스치듯이 지나갔다. 그는 오른쪽 옆구리에 끼고 있던 수박을
식장에서 우진은 아들에게 셋째 딸 지해의 근황을 물었고, 그는
떨어뜨릴까 불안해 자주 손을 바꿔 들었다. 왜인지 수박이 점점
뭉뚱그려서 ‘자유롭게’ 산다고 대답했다. 우진이 알기로 ‘자유롭게
무거워 지는 것만 같다. 양복 안의 와이셔츠는 땀에 절어 모양이
산다’는 건 젊을 때나 나이 먹고서나 좋은 일은 아니다. 고통스러운
흐물흐물 해진 게 분명했다. 그는 낑낑대며 수박을 들지 않은
일이지. 아들은 핸드폰을 뒤적거리더니 안 쓰는 부조금 봉투에다가
손으로 땀을 닦고 주위를 둘러 보았다. 시끄러운 음악과 한꺼번에
지해의 집 주소를 적어서 우진에게 건네주었다.
여섯 마리의 개를 산책 시키는 남자, 요란한 모양의 스포츠카, 외국인, 그리고 젊은 사람들이 그의 두 눈에 스쳤다. 이 동네는 지금 이 계절처럼 뜨거운 난장이다.
30
그는 공중전화 부스 안에 들어가 수박을 바닥에 내려놓고 넥타이를
시간이 흐르고 음악 소리가 잦아들자 한 여자가 그의 옆에 앉았다.
느슨하게 풀었다. 그리곤 이미 땀에 전 손수건으로 얼굴을 반복해서
머리에 바람이 잔뜩 들어간 채로 귀신처럼 화장을 한 여자였다. 그는
닦아 댔다. 전화 부스는 온실처럼 뜨겁게 달궈진 공기가 가득해서
순순히 그녀가 사 달란 술을 사줬다. 그녀는 잔을 절반쯤 비우고
한시 빨리 나가고 싶었지만, 우진은 유리창에 등을 기댄 채 차분히
그에게 물었다.
밖을 바라보았다. 그는 잠시 왔던 길을 돌아보았다. 언질도 없이
“띠에네스 운 포코 데 띠엠포?”
십여 년 만에 불쑥 찾아가는 데 좋아할 딸이 어디 있겠는가. 첫째
그는 당연히 무슨 말인지 알아 들을 수 없었다. 대신 우진은
아들은 이기적인 구석이 있어 손해를 안보고, 둘째 딸은 셈이 빨라
라디오에서 들었던 노래를 능글맞게 읊조렸다.
돈을 잘 모았다. 그러니까, 둘 다 알아서 잘 살겠거니, 할 수 있었다.
“베사메, 베사메 무초.”
어린 시절 하루가 다르게 크는 모습을 지켜본 건 둘인데, 정작
여자는 씩 웃더니 그의 입술에 진하게 키스를 해주었다. 그가
마음이 쓰이는 건 막내 지해다. 지해는 볼 때마다 앉은 자리에서
나쁘지 않다는 듯이 눈썹을 움직이자 그녀는 한번 더 입을 맞추어
사진앨범을 넘겨보는 것처럼 커갔다. 그런데 지금은 이 아이의 젊은
주었다.
날도 저물어가고 있다. 정작 젊음이 청청하던 그 시기에 우진은 어디에 있었던가? 그는 뒤통수를 천천히 뒷유리창에 반복해서
우진은 멍하니 수박을 들고 엘피가 가득 꽂혀있는 바를
찧었다. 돌아가자니 역시, 오는 길에 사온 수박이 무색하다. 올라
바라보았다. 도로를 향해 나있는 커다란 창을 통해 내부가 다
가야겠다. 그것도 아주 천천히. 우진은 다시 문을 열고 걷기
보였는데, 그는 벽면에 전시된 앨범 자켓을 눈으로 훑으며 그때
시작했다. 밖의 공기가 오히려 더 상쾌하게 느껴졌다.
들었던 노래가 듣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또, 오후 내내 거적 대기 같은 양복을 입고 땀을 뺐더니 머리가 핑핑 도는 게 독한 술도 한잔
공중전화 부스의 유리 문을 열고 나왔을 때, 이전과는 풍경이
마시고 싶었다. 바쁠 것도 없고, 맨 정신에 딸을 만날 자신도 없다.
달라졌다고 느꼈다. 그에게 해방촌 모습은 사뭇 초현실적이기까지
턴테이블을 양쪽에 두고 조심스럽게 판을 올리던 디제이와 눈이
하다. 그렇지만 그도 이와 비슷한 햇살을 경험한 적이 있다.
마주치자 그는 눈썹에 힘을 주며 고집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원양어선을 탄지 1년 쯤 됐을 때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잠시 정박한
성큼성큼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적이 있다. 가고 싶어서 간 건 아니고, 카리브해 근처에서 조업을 하다가 뭍에 닿지 않은지도 6개월이 넘어가고, 그물을 들어올리는
문을 열자 곧바로 서늘한 에어컨 바람이 그의 목덜미를 휘감았고,
크레인의 유압 밸브에도 문제가 생겨 선장은 쓸 돈을 넉넉히
묵직한 베이스 리듬 위로 잘 익은 흑인 싱어의 목소리가 가게 안을
챙겨주며 항구에서 배를 정비할 2주 동안 쉬라고 했다. 그는 조와
수족관 속 넘실대는 물처럼 느긋하게 채우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
택시를 타고 커다란 오벨리스크가 보이는 시내로 갔다. 택시 기사는
있는 몇몇 외국인들과 요상한 머리를 하고 탁자에 비스듬히 기타
뭐가 그리 신나는지 알아듣지도 못할 스페인어를 쉬지 않고
가방 따위를 세워 놓은 젊은이들이 흥미롭다는 듯이 그를
쏘아붙였다. 라디오에선 이름 모를 여자 가수가 ‘베사메 무쵸’란
쳐다보았다. 자리가 거의 다 찬 데다가 그나마 비어있는 탁자 위에도
가사를 반복하며 꽤나 고혹적인 노래를 불렀다. 우진이 입고 있던
예약 팻말이 놓여있어서 그는 턴테이블 바로 앞에 위치한 바에
데님 셔츠에선 정어리 비린내가 났고, 택시기사가 입고 있던 줄무늬
앉았다. 그 다음 그는 내내 들고 있던 수박을 조심스레 바로 옆자리
셔츠에선 소고기 누린내가 났다. 창문을 열면 바람을 타고 땅의
의자 위에다 올려 놓았다. 마치 업고 있던 애라도 잠자리에 눕힌
기운이 마치 파도처럼 밀려 들어왔다. 눈에 보인다고 착각할 정도로
것처럼 어깻죽지가 가볍고 숨이 깊게 쉬어졌다. 바텐더는 그를
강력했다. 그는 창밖에 손을 내민 채 눈을 감고 집에서 얼마나 멀리
흥미롭게 쳐다보며 물었다.
왔는지 음미했다. 집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지구 반대편에 지금
“어르신, 주문 하시겠어요?”
자기가 있다는 것은 요즘 애들 말로 꽤나 ‘쿨’한 일이 아니던가?
“담배 태워도 되나?”
오랜만에 육지로 돌아온 뱃놈들이 그렇듯이 우진과 조는 걸신 들린
“죄송해요, 밖에서 피우셔야 되요. 금연 구역이라서요.”
것처럼 초저녁부터 여자들한테 추파를 던지고, 핏물이 흐르는
우진은 아쉬운 듯 담뱃갑을 다시 안주머니에 넣었다.
고기를 먹고, 독한 술을 마셨다. 정신을 차리니 이미 조는 어딘가로 사라지고 우진은 홀로 라보카 근처 뒷골목의 밀롱가 바에 앉아 있었다. 31
32
“독한 거 아무거나 줘. 여긴 음악도 틀어주는 곳인가? 요새는 젊은 애들도 빽판으로 음악을 듣나 보구먼. 우리 때나 그런 줄 알았는데.” 바텐더는 잠시 고민하다가 럼을 샷잔에 스트레이트로 따라서 밀어 주었다. “세상은 돌고 도니까요. 요새는 다시 엘피로 듣는 게 유행이에요.” 우진은 그의 말을 대충 흘려 듣고 한 호흡에 술잔을 털어 넣었다. 제법 썼지만 소매로 입을 슥 닦고는 한 잔 더 달란 손짓을 했다. “듣고 싶은 노래가 한 곡 있는데.” “네, 말씀하세요. 있으면 틀어드릴게요.” “베사메, 베사메 무초.” 바텐더는 디제이에게 눈짓을 했고, 디제이는 난처 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죄송해요, 그 앨범은 없어요.” 우진은 아쉬웠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고 다시 술잔을 비웠다. “됐어, 그러면.” 바텐더는 그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한 게 미안한지 디제이와 대화를 나누다가 자기들 딴엔 비슷한 분위기를 가진 노래라고 생각해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앨범을 턴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자신만만한 기타 리프와 무두질이 잘 된 타악기 소리가 멋드러지게 흘러나오자, 가게 안의 사람들이 우진을 향해서 휘파람을 불고 박수를 쳤다. 그는 자기가 신청한 노래도 아니라서 이들의 환호가 어리둥절 했지만 고개를 돌려 가볍게 손을 들고 술을 짧게 끊어 마셨다. 처음 듣는 노래였지만 낯설지 않았다. 땀이 마르고, 술이 몸을 한 바퀴쯤 휘감자 그는 마음이 무뎌져 꼿꼿이 세웠던 허리를 바 앞쪽으로 굽혔다. 그는 별 말없이 디제이가 판을 갈 때까지 눈을 감고 노래를 두 세곡 정도 이어서 들었다. 다시 요즘 애들이 들을 법한 노래가 나오자 바텐더는 일이 한가해 졌는지 그의 앞 쪽에 서서 행주로 손을 닦으며 웃었다. “어르신, 해방촌은 어쩐 일이세요?" “딸에게 수박을 건네주려고. 여기 종이에 적힌 주소, 어디로 가야 되는 지 아나?” 바텐더는 주소를 쳐다보더니 얼굴을 찡그렸다. “한참 더 올라가셔야 되요. 오거리가 나오면 회색 교회가 보이는 방향으로 꺾으세요. 수박을 들고 올라가기엔 조금 힘드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디서 오시는 길이세요?” “장례식장에서. 친구가 죽었거든.” “어머, 죄송해요. 슬프시겠어요.” “생각보다 슬프진 않네. 그 정도면 충분히 버텼어. 만나면 잘 싸웠다는 말을 해주고 싶네. 그런데, 자네는 자유롭게 살고 있는가?”
33
그녀는 맥주잔을 닦다 말고 눈동자를 위로 천천히 굴리며 우진의
중간 중간에 웃음소리와 숨소리가 섞이고 박자도 조금 왔다 갔다
질문을 곱씹었다.
했지만 그녀는 그 노래를 끝까지 불렀다. 그리고 우진에게 선물로
“글쎄요… 자유로운 건 잘 모르겠고, 맘은 편해요. 그다지 큰 걸
주었다. 그는 그녀와 헤어지는 날 테이프 값으로 남은 돈을 다
바라면서 사는 게 아니니까요. 근데 왜요?”
줬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그 땐 속에서 부글거리기만 하고
“내 딸은 자유롭게 살고 있대.”
말하지 못하는 상황이 미칠 것 같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말하지
“멋진 걸요. 요즘엔 그렇게 사는 게 유행이에요. 한번뿐인 인생,
않아서 다행이다. 그는 다시 대양 위에서 조용히 그녀의 노래를
미련 없이 살아야죠. 욜로.”
들었다. 누군가 옮긴 사면발이 때문에 배 위의 사내들은 서로를
“그렇게 살지 말라고 말하러 가는 길이야. 이미 늦었지만.
욕했다. 우진은 이어폰을 꽂고 조용히 노래를 읊조렸다.
자유로운 건 미련이 안 남는 거랑은 크게 상관없어.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하네.”
그는 한참을 비틀거리며 올라가다가 수박을 쥐고 있던 오른
그는 바텐더를 쳐다보다가 술잔을 비웠다. 그리곤 살짝 들어 한 잔
어깨에 짜르르한 고통을 느꼈다. 근육이 있는 힘껏 뼈를 움켜쥐는
더 달란 손짓을 했다. 그녀는 곧바로 그 잔에다 넘칠 듯
그런 느낌. 그는 그대로 수박을 놓치고 왼손으로 아픈 어깨를 감싸
아슬아슬하게 술을 채웠고, 우진은 잔을 비우지 않고 그녀 앞으로
쥐었는데, 아파할 틈도 없이 수박은 천천히 왔던 길을 향해
술잔을 밀었다.
굴러가기 시작했다. 그는 겁이 났다. 그치만 수박은 도로 위
“말상대 해줘서 고맙네. 음악도.”
흩뿌려진 모래에 겉 껍질이 벗겨지며 점차 속도를 더했다. 그는
우진은 조금 비틀거리다가 다시 왼쪽 옆구리에 수박을 들고
써금써금한 어깨와 후끈하게 끓어오른 무릎을 잊으려고 노력하며
밖으로 나갔다. 조금은 습하고 가라앉은 여름 저녁 공기가 다시
수박을 향해 뛰었다. 수박이 박살 나면, 지해를 만나지 못할
그를 반겼다. 아까보다 하늘은 완연히 푸른빛을 띄었고, 가로등이
것이다. 그렇지만 비탈길을 굴러가는 수박은 너무 빨랐고, 그는
언덕길을 따라 하나 둘씩 켜졌다. 발목에 납이라도 단 것처럼
너무 늙었다. 수박이 높게 솟은 전봇대에 부딪히기 직전, 그는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그는 수박을 들고 있는 쪽으로 쏠리는 몸을
끔찍한 공포에 고개를 돌렸다. 그렇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느끼면서, 높은 곳에서 수박을 있는 힘껏 집어 던지고 싶은 충동을
않았다.
느꼈다. 하고 많은 과일 중에 왜 수박을 샀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여름이니까. 살 때는 나쁘지 않은 선택처럼
그가 다시 눈을 뜨자, 전봇대처럼 키가 큰 흑인이 방금 거기서
보였다. 편의점을 두어 개 지나고 어느 시점부터 길이 더욱
솟아난 것처럼 수박을 든 채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페인트
가파르게 변했다. 무릎은 끓는 듯 뜨겁고 머리는 어질어질 하다.
찌꺼기가 지저분하게 튄 카고 바지에 기름때가 묻은 흰색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저녁이라 그런지 그의 검은색 피부는 은은한
하폰. 메 랴모 하폰.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그에게 술을
푸른빛을 내뿜었다. 마치 새벽에 잔물결 하나 일지 않는 거대한
얻어먹은 여자는 자기의 이름을 하폰이라고 했다. 그는 하폰의
호수를 보는 것만 같았다. 우진은 이상하리 마치 잦아든 오른
집에서 일주일 정도 먹고 자고 푹 쉬었다. 머리도 풀고, 화장도
어깨의 고통을 되짚어가며 천천히 내려갔고, 그는 방금
지우니까 너무 어려 보여 그는 김이 팍 샜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리바운드를 딴 농구 선수처럼 수박을 양손으로 들고 올라왔다.
바람에 천천히 나풀거렸고, 퍼렇게 물든 저녁 하늘을 배경으로
“안녕하세요. 워터 멜론, 아저씨 물건입니까?”
도로를 채운 자동차의 불빛이 아득히 들려오는 경적소리와 함께
말투는 이상했지만, 다행히 그는 한국말을 할 줄 알았다.
강처럼 흘러갔다. 둘은 메모지에 그림을 그리고 손짓 발짓을
“아… 예, 아니… 응. 내 물건일세.”
해가며 대화를 했다. 그러다가 그녀는 우진이 한국에서 왔다는
“제 이름은 칼 입니다. 아저씨는 어디 가시는 길인가요? 제가
것을 알았고, 세계지도 한반도 아래 일본을 가리키며 자기의
들겠습니다.”
이름을 일본에서 따온 것이라고 혼자 신나서 설명을 했다. 그 뒤
그는 대뜸 통성명을 하더니 손을 내밀었다. 우진은 칼이라는
자기 아버지가 어쩌니 저쩌니 했지만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사내의 손을 맞잡고 흔들었다. 우진은 수박을 자기가 직접 들고
다만, 행복한 기억인 듯싶었다. 하폰은 우진이 다른 가사는 하나도
올라가고 싶었지만, 조금 어깨가 걸렸다. 그는 지해의 주소가 적힌
모른 채 ‘베사메 무초’ 라는 가사만 흥얼거리자 녹음기에 공
종이를 꺼내려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렇지만 잡히는 것은
테이프를 넣고 자기 입술 앞에 대고 녹음 버튼을 눌렀다.
아무것도 없었다. 아마, 아까 그 엘피 바에 두고 온 모양이다.
34
그는 당혹스러운 마음을 뒤로하고 손가락으로 남산타워가 보이는
그건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는지, 지나가는 사람들 역시
쪽을 슬쩍 가리키고는 칼과 함께 다시 오르막길을 오르기
검은 양복 차림의 노인과 수박을 든 흑인의 조합을 신기하다는
시작했다. 수박이 없으니, 한결 몸이 가벼웠고, 주위 풍경도 눈에
듯이 돌아보곤 했다.
들어왔다. 칼은 손에 쏙 들어오는 참외를 든 것처럼 가볍게 수박을
“한국은 어떤가?”
옆구리에 끼고 우진의 걸음 속도에 맞춰 올라갔다.
“좋습니다. 처음에 가족들은 아프가니스탄 같은 곳인 줄 알고
“한국어가 제법일세.” “친구가 어학당에서 공부합니다. 저는 일을 합니다. 술 냄새가 납니다. 술 마셨나요?” “응. 마셨지. 가만있자… 외국인들은 한국에서 외국 술을 마시나, 아니면 소주를 마시나?” “상관하지 않습니다. 소주도 좋고, 보드카도 좋아요. 지금 집에 가서도 마실 겁니다. 취하면 상관없어요.” “그건 그렇지.” “워터 멜론은 아저씨가 먹을 겁니까?” “아니. 딸한테 선물하려고 산 걸 세.” 칼은 새삼스레 수박을 이리저리 돌려 보며, 껍질에 박힌 모래를 손바닥으로 부드럽게 긁어 떨어뜨렸다.
전쟁 중인 땅에 왜 가냐고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이대로 흘러가면 평화가 올 것 같습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자네한테 어떻냐는 얘기지. 음식은 입에 맞는지, 사람들은 친절한지, 그 따위 것들 말이야.” “아, 그런 질문이었습니까. 그런 게 궁금합니까? 그럼, 아저씨한테 해방촌은 어떻습니까?” “이 자식이 대답은 안하고… 난장판에 야단법석, 엉망진창이야.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 노인네들이 살만 한 땅은 아니야.” 칼은 우진의 대답을 듣고 수박을 들지 않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쿡쿡 거리며 웃었다. 아까 바텐더가 말한 교회를 지나고 맞은편에 위치한 공영주차장을 지날 무렵, 저 멀리서 이제 슬슬 불이
“딸이 어디 삽니까?”
들어오기 시작한 높은 건물들과 피가 돌 듯 도로마다 빛으로 가득
“모르겠어. 주소를 받았는데, 잃어 버렸네.”
찬 도시의 전경을 바라보며 칼이 입을 열었다.
“잊은 겁니까?”“아니, 잊은 게 아니라 잃어 버린 거야.” “전화하면 되지 않습니까?” “전화할 수 없는 딸도 있어. 자네도 살다 보면 알게 될 거야.” 둘 앞에 네 갈래의 길이 펼쳐졌다. 이제 언덕길은 끝난 듯싶었다. 우진은 땀을 닦으며 숨을 몰아 쉬었고, 칼은 그를 흥미롭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우진은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보다가 저 멀리
“아름답지 않습니까? 전 집에 들어가기 전에 여기서 서서 저 화면을 바라보며 담배를 태웁니다.” “여긴 뻥 뚫려 있어 속은 시원하네. 막상 저 한복판은 정신 없을 거야. 물고, 뜯고, 빨고… 진흙탕이지.” “여긴 시끄럽지 않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요. 아저씨, 집에서 밥 먹을 겁니까?”
회색 빛 교회를 확인하고는 자켓 안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한
“무슨 말인가?”
개피 입에 물었다.
“워터 멜론을 달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건 아저씨의 딸을 위한
“담배?”
것이니 까요.”
“아주 좋습니다.”
“저녁 식사에 초대하는 건가?”
칼 역시 그에게 한 개피 건네 받고는 불을 나눠 피웠다. 우진은
“네, 그렇습니다. 제 친구 알이 맛있는 요리를 해 줄 겁니다. 어제
담뱃불 끝으로 교회 쪽으로 난 도로를 가리키며 말했다. “난 저쪽으로 갈 건데.” “저 쪽에 딸이 있습니까? 저희 집도 저쪽입니다.” 우진은 그를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다가 연기를 내뱉고 먼저
싱싱한 송어를 가져왔어요. 정말 싱싱합니다.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우진은 피던 담배를 바닥에 버리고 구두로 비벼 불씨를 죽였다. 잠시 고민했다. 딸의 주소가 적힌 부조금 봉투를 잃어 버린 건지,
걸어가기 시작했다. 칼은 씩 웃으며 수박을 들고 그를 뒤따라
버린 건지 마음이 불편했다. 그렇지만, 이 동네 집의 초인종을
갔다. 이 윗동네는 우진처럼 늙은 노인들도 집 앞에 의자를 내놓고
우편 배달부처럼 일일이 눌러가며 지해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 구경을 하고 있었고, 또 동시에 칼 같은 외국인들도 개와
그는 썩 배가 고프지 않았지만, 지금의 묘한 분위기에 설득이 되어
함께 산책하거나 손가락 끝에 장본 짐을 걸고 터벅터벅 걸어
고개를 끄덕였다. 딸을 보는 것을 포기한 것 같아 슬픈 마음도
다녔다. 뭐가 더 어울리고 어울리지 않는지 판단하긴 쉽지 않았다.
약간 들었다. - (하)편으로 계속
35
신흥시장 키즈의 전람회 - ‘숍 유어 실루엣(Shop Your Silhouette) 展’ 취재기
지난 7월 27일부터 29일까지 3일 간 아이브 가죽공방에서 해방촌과 신흥시장의 색깔을 함빡 머금은 전시 ‘숍 유어 실루엣(Shop Your Silhouette)’이 열렸다. 신흥시장 내에서 공방을 운영 중인 작가 박기동(아이브 가죽공방), 황준환(24/7 캔들), 최태임(로스터리 카페 나무 커피요정)과 사진가 넥주(조준혁)가 함께한 전시다. 이번 행사는 아이브 가죽공방이 주최하고 해방촌 도시재생지원센터가 후원했다.
전시는 크게 셋으로 나뉜다. 우선 박기동 작가가 자신의 가죽공예품과 그의 부모님이 쓰시던 작업도구를 모아 일련의 주제로 구성한 개인전이다. 둘째로는 사진가 넥주가 해방촌 곳곳을 배경으로 촬영한 사진 전시다(모델: 강의진, 김윤선, 노유진). 마지막으로는 해방촌의 여름을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한 커피, 향수, 귀걸이 작품인데, 일명 해방촌
전시장 곳곳에 해방촌의 색깔이 묻어났다.
에디션 ‘우리는 해방을 맞았다’라 이름 붙였다. “나는 해방촌에서 나고 자랐다. 이 마을은 내게 많은 기억의 색들을 남겼다.”- 남산당 블루 (Namsandang Blue)
“내가 태어난 지 31년 만에 바깥세상의 빛을 막고 있던 시장의 지붕이 치워졌다. 시장 안에는 햇볕이 들어오고 그날의 날씨를 바로 알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너무 오래 익숙해진 것일까? 그때는 그렇게 싫었던 어두웠던 시장 안이 그렇게 만들었던 슬레이트 지붕이 그리울 때가 종종 있다.”- 신흥시장 슬레이트 그레이 (Shinheung Market Slate Grey)
취재. 이한솔 / 사진. 이한솔
36
‘압지, 엄니’에서 아들에 이르기까지 40여 년의 시간을 담은 전시
“1972년부터 해방촌에서 시작하여 46년, 16790일의 시간이 흘렀다. 부모님의 가위는 도금이 벗겨지고 본래의 색 그대로를 드러내고 있다. 이가 나가고 색이 변한 지금의 모습은 흘러간 세월의 실루엣을 품었다.”- 16790일의 실루엣
37
박기동 작가의 가죽공예품
가방에 대해 물으니 작가는 너스레를 떨며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죽은 대부분의 천연재료들과 마찬가지로 서로 다른 주름과 모공, 상처 등의 흔적이 있으며 이들만의 시간과 이야기를 간직한다. 그런 점에서 가죽은 저마다 이야기와 삶의 실루엣이 아닐까!” - 가죽이라는 실루엣 (the Silhouettes of Leather)
38
커피요정이 해방촌을 담은 커피 '해방촌의 여름(the Summer of Haebangchon)'
24/7 캔들의 특별한 향수 '해방촌의 여름'
“해방촌은 과거와 현재, 여러 세대와 여러 인종, 상업과 문화가 어떠한 규칙없이 공존하는 곳이다. 그로 인해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해방촌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가지게 된다. 그 독특함은 남산 아래 첫 마을 해방촌의 여름 풍경과 만나 남산, 흙, 과일, 오래된 건물 등의 냄새들로 어우러져 배가 되는 경험을 만든다.”향수 ‘해방촌의 여름’
39
(왼쪽)재봉사인 어머니가 30년 이상 사용하신 '직각자'
“가위와 관련된 재미있는 기억이 있다. 친가와 외가의 모든
(오른쪽)손을 보호하고 미끄러짐을 막기 위해 원단을
어른들이 옷과 가죽을 만들었는데 각자의 특기가 있었다. 가위를
가위 손잡이에 감으셨다고.
갈고 다듬는 것은 작은아버지의 굉장한 주특기였기에 가족끼리 만날 때마다 가위를 갈았다. 그래서 내가 기억하는 작은 아버지의 모습 중 8할은 가위 가는 모습이었다.”- 도구들의 이야기 (The Stories of Tools) : 가위 (사용기간 46년)
40
이번 행사를 기획하고 만들어낸 아이브 가죽공방의 박기동 씨는 신흥시장에서 나고 자랐다. 그의 부모님은 가족이 평생을 살아온 시장 안 건물에서 40여 년간 니트를 만들어온 장인이다. 기동 씨는 부모님의 솜씨를 닮았는지 같은 장소에서 가죽 공예를 하고 있다. 또한 그는 광고홍보학을 전공하여 해방촌만의 브랜드 상품을 개발하려는 포부도 밝힌 바 있는데, 이번 전시가 그 출발이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해방촌의 변화를 생각하면 오랜 시간을 이곳에서 호흡해왔고, 앞으로도 신흥시장의 이웃과 함께 살아가고 싶다는 박기동 씨의 존재가 참 소중하다.● 41
해방촌에 산다
‘해방촌에 산다’는 한 개인의 일상을 하루라는 제한 된 시간
글쓴이 소개
안에서 본인 스스로 이야기하는 관찰 예능 같은 글이다. 그 글은 나의 하루라는 평범한 주제에 특별할 것 없는 개인의 일상을 담고
슈즈디자이너 이화진과 그림을 그리고 그림책을 만드는 이화연은
있다. 하지만 눈높이만 달라져도 세상이 달라 보이는 것처럼,
자매이다. 둘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작업실 겸 수제화구두을
누군가는 해방촌의 이웃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평범한
판매하는 장소가 필요했고, 2017년 여름 해방촌 보성여고 근처에
하루 대해 쓴 글을 읽고, 각기 다른 재미와 의미를 발견하게
스튜디오를 오픈했다. ‘흰’스튜디오라고 부르는 이곳은 화진의
될지도 모르겠다. 아니, 나처럼 본인만의 재미를 발견하고
구두브랜드’흰’의 디자인작업과 화연의 그림책 작업이 이루어지는
소소하게 즐겨주면 좋겠다.
공동작업실이다. 특히, ‘흰’에서 제작된 구두를 직접 보고 주문할 수 있는 쇼룸이기도 하다.
두번째로 <흰 스튜디오>에서 각자의 시간을 채워나가는 자매, 화진과 화연의 글을 소개한다.
글 화진, 화연 / 그림 김정희 42
화진_아침
점심
성수역에 도착했다. 주문용 가죽을 구입하고 구두공장에
매장에 도착해 음악을 크게 틀고, 쇼윈도 앞 화단에 물을 주는
주문서를 전달하는 것이 오늘의 오전 스케쥴이다.
것으로 오후 일과를 시작한다. 옆집 카페 ’솔 언니’도
구두회사를 퇴사하고 그토록 바라던 브랜드를 런칭했지만,
물조리개를 들고 나왔다. 우리는 각자의 가게 앞 화단에 물을
신입디자이너의 고된 업무로 알려진 현장 핸들링업무는 모두
주며 수다를 시작한다. 친한 이웃과 자연스럽고 소소한
내 몫이다. 그늘 없는 성수동 부자재거리는 오늘도 너무 덥다.
대화시간은 너무 좋다. 이미 화단에는 물이 흥건한데 우리는
성수동 3대 업종은 인쇄소, 카센터, 수제화 공장이었지만, 이젠
계속 물을 주며 이야기한다.
카페가 추가된 것 같다. 오랜만에 지나가는 골목에는 새로운
오늘은 ‘반찬계’를 하는 날이다. ‘반찬계’는 일주일에 한번,
카페가 또 생겼다. 오래된 건물사이에 고층빌딩을 세우는
옆집 카페 ‘콩밭님(콩밭커피로스터 사장님)’과 ‘흰 자매’가 각자
공사도 한창이다. 이 동네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공사하는
만든 반찬의 반을 교환해 먹는 약속의 날이다. 이 것은 몇 달 전
저 자리가 원래 어떤 곳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하나 둘
콩밭님과 집밥에 대한 대화를 나누다가 콩밭님의 아이디어로
바뀔 때는 좋거나 서운하거나 했지만, 지금은 변한 곳이 너무
시작하게 되었다. 요리솜씨 좋기로 소문난 콩밭님과 하는
많아 낯설 때가 많다.
반찬계라니, 우리야 감사했다. 아주 가끔 “이번 건 조금 망했어”
자주가는 가죽집에서 검정색 소가죽 한 장을 구입했다.
라며 반찬을 주시지만, 먹어보면 맛만 좋았다…
카운터에서 주신 시원한 야쿠르트를 원 샷 하고, 돌돌 말아
큰 배낭을 멘 콩밭님이 흰에 오셨다. 우리는 말없이 각자의
포장해주신 가죽을 번쩍 들어 수제화 공장으로 향한다. 비좁은
가방에서 반찬통을 꺼냈다. 마치 밀거래 현장 같다. 서로의
부자재거리는 차도 많고 스쿠터도 많다. 더운 날씨, 복잡한
반찬 이름을 소개하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레시피를
거리, 온갖 소음 속에 나의 짜증이 살짝 올라오다가 어느새 이
공유하며 이번 반찬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은근한 자랑이
분위기에 적응을 한다. 내 키 만한 가죽을 세워 들어 차들을
시작된다. 그리고 교환한 반찬을 품에 안고 “잘 먹겠습니다”
요리조리 피해 빠르게 걷고 있다.
꾸벅 인사하며 교환의식을 마친다. 이번 일주일도 냉장고는
오래된 건물들의 창가에서 구두를 만드는 미싱소리,
풍성해졌고 뭘 먹을지 고민하지 않아도 돼서 마음이 편해졌다.
망치소리가 들려온다. 목적지에 가까이 오니 마음이 한결
근데 다음주엔 뭘 만들지…?
편해졌다. 후다닥 성수동 일을 마치고 해방촌에서 아이스라떼를 마실 생각을 했다. 이 소박한 계획에 힘이 솟는다. 시계를 다시 보고 힘차게 공장계단을 올라간다.
43
저녁
화연_아침
오늘까지 마쳐야 할 포토샵 작업으로 퇴근시간이 훌쩍
아침은 꼭 챙겨 먹어야 한다. 1년 전 동생은 해방촌에
넘어갔다. 매장 문을 잠그고 위를 올려보니 2층, 3층에도 불이
수제화가게 겸 작업실을 오픈했고 나도 그 한 쪽에 그림을 그릴
켜 있다. 옆집 콩밭커피도 환하게 불이 켜 있다.
수 있는 작업공간으로 사용해왔다. 그 이후 우리 자매는
소월로20길 67, 비슷한 또래의 사람들이 각자 다른 분야의
함께하는 시간이 더욱 많아졌다. 그래서인지, 서로를
사업으로 이 건물 안에서 일하고 있다. 늦은 밤, 골목은
간섭한다며 다투는 날도 잦았다. 하지만, 좋은 점 하나를
조용했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해야 할 일들에 열중하고 있었다.
꼽자면, 혼자 밥 먹기가 아닌 함께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길게 이야기를 나눠본 적은 없지만 이런 순간에는 그들에게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 자매가 가장
에너지를 받는 것 같기도 하고, 동지 같다고 느끼기도 한다.
대화를 많이 하는 시간은 아침일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녹사평 역까지 가는 길은 마을버스가 아닌, 걸어서 가는 것을 택했다. 몸은 피곤하지만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하루에 한 끼는 꼭 집밥을 먹기로 했다. 해방촌으로 출근을
가파른 골목길을 내려간다.
하는 동생과 나는 든든한 아침밥을 챙겨 먹어야 건강을 챙기고 외식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눈을 뜨자마자, 아침은 뭘 먹을지 고민한다. 생각해 보니, 어제 옆집 콩밭 커피 아낙네(사장님)가 반찬 계로 만들어주신 반찬들이 생각난다. ‘화진아. 밥 먹자.‘ 냉장고에는 어젯밤 만들어놓은 반찬과 반찬 계로 받은 반찬들 몇 가지를 꺼내니 아침이 풍성해 진듯하다. ‘이웃이 좋구먼.... 후훗’ “오늘은 성수동 업무가 몇 시쯤 끝나? 해방촌에는 몇 시쯤에 도착할 거 같아?” “조금 늦을 수도 있어서, 언니가 대신 가게 오픈좀 해줘” “그래, 아. 오늘은 해방촌에서 좀 집중해서 작업을 해얄텐데...아직도 난 익숙치가 않은가 봐. 그 전엔 늘 집에서만 혼자 작업해 와서 그런지. 시간이 지나면 좀 익숙해지겠지?” …
44
점심
저녁
가끔은 이전처럼 혼자 방에 남겨져 작업하던 시간이 필요할
동생의 수제화 가게의 오픈 시간은 저녁 8시까지라고
때가 있다. 그래서 일주일 중 며칠은 집에 남아서 그림 작업을
쇼윈도에 적혀있지만, 해가 길어져서 9시까지는 열어두어야
하기로 했다. 동생도 홀로 작업하는 시간이 필요할테다. 오늘은
할 것 같은 마음으로 손님을 기다려본다.
집에서 작업하기로 했다.
밤공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거리를 걷다 들어오고 싶어질 수 있지 않을까?
창밖을 보니 비가 많이 내린다. 창문을 살며시 열어두니,
배고프다. 내일을 꼭 도시락을 챙겨야지.
빗소리가 좋아 작업을 방해한다. 감상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기 시작하면, 집중력이 끊임없이 떨어진다. 다시 마음을
손님이 들어왔다. 난 그림을 그리다 말고, 동생을 바라본다.
가다듬고, 스케치북에 낙서해나간다.
동생과 손님들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린다. 점점 더 크게 들리는 것만 같다. 음성을 엿듣기만 하더라도 어떠한
5시쯤, 출출한지 몸이 부엌을 향한다. 냉장고를 여닫기를
상황인지 짐작할 수 있다.
반복하다. 밀크티를 끓이기로 마음먹었다.
이러면 안되는데 마치 내가 감시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후다닥, 동네 편의점에 가서 우유 하나를 사 들고 뛰어 들어와 밀크티 만들기에 집중을 하고 있다.
‘오늘도 수고했어. 피곤하지?’
티를 우리고 향기를 맡고 따뜻한 우유가 데워지는 모습들을 지켜본다. 완성된 밀크티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방에 들어와
우리는 해방촌에서 걸어 내려와 이태원을 향해 걷는다.
그동안 그려온 그림들을 빤히 바라보니. 마치 낯선 그림을 보는
특별한 이유 없이 좀 더 걷고 싶다는 마음에 사람들이 많은
것만 같이 새롭다.
이태원안으로 들어가 본다.
‘오늘 해방촌은 어떨까? 옆집 콩밭 커피가 마시고 싶다.
버스킹을 하는 사람들. 아직도 문을 닫지 않은 상가들. 밤
화진이에게 전화를 걸어볼까?’
문화의 시작을 알리는 반짝이는 네온사인. 나와 다른 사람들. 또는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할 것만 같은 사람들.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살며시 엿보다가 그들에게도 수고했다고. 그리고 수고하라고 인사하듯 밤거리를 걷는다. Good Night
45
남산골 해방촌 열네번째 책을 만든 사람들
발행인
배영욱 Bae, Young-uk wookybiny@hanmail.net
참여기자
디자인
김정희
배영욱
Kim, Joung-hui huii@naver.com
Bae, Young-uk wookybiny@hanmail.net
박정현
엄진아
Bae, Sun-hye fancy1024@hanmail.net
Eom, Jin-a jinaoem@gmail.com
이한솔
임솔아
Eom, Jin-a jinaoem@gmail.com
Lee, Jeong-saeng repent728@gmail.com
엄진아 Eom, Jina jinaeom@gmail.com
그림
김정희 Kim, Joung-hui huii@naver.com
46
이미나 Lee, Mi-na minaleec@gmail.com
남산골 해방촌 제 14호 Namsangol Haebangchon 14th Issue. 발행일. 2018년 8월 31일 발행인. 배영욱 취재/기사. 김정희, 박정현. 배영욱, 엄진아, 이한솔, 임솔아 디자인. 엄진아 그림. 김정희, 이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