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 엄마의 라이프스타일 저널
Vol. 2
삶의 전환을 꿈꾸는 사람들의 작은 시작에 대한 이야기
Contents 작은 시작에 관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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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주부는 언제 은퇴해요? _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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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와 배움을 새롭게 디자인합니다 - IMI _ 김대영
온전히 나 자신을 만나는 즐거움 - 혼자 여행하기 _ 김주희 작은 시작으로 얻은 공감하는 삶 _ 박현희 세상 속 나의 위치 찾기 _ 이병성
짧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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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새로 시작한 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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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에서 전문가로 트렌스포메이션 _ 유명화
우연히… 그리고 어느덧 배우가 되었다 _ 김경희
발행인의 글 지난해 마을잡지로 처음 선보인 “촌지”에 이어 올해는 마을을 채우고 있는 엄마이자 개인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잡지는 “별별”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이어갑니다.
올 한해 밸류가든에서 가장 많은 생각을 했던 단어는 여성주의와 개인주의입니다.
엄마의 목소리가 여성의 목소리 안에서 고유성과 개별성을 가진 주체의 이야기로 인정받을 때 여성의 목소리가 모두의 목소리 안에서 묻혀버리지 않을 때 여성주의도 개인주의도 자연스럽게 오늘을 사는 사람의 라이프스타일로 여겨지게 되겠지요.
엄마의 라이프스타일 저널 “별별”은 동네에 사는 개인의 이야기, 모두 다른 개인의 특별함으로 개별성을 지닌 온전한 나로서 충분한, 반짝이는 별의 별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이번 호는 삶의 전환을 꿈꾸는 사람들의 작은 시작과 변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금까지와 다른 삶을 누구나 꿈꾸지만 시작하기는 좀처럼 쉽지 않지요. 일, 취미생활, 습관, 태도나 관점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시도, 변화를 시작한 분들의 글과 작은 인터뷰입니다.
이 곳의 이야기를 통해 당신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한다는 꽃말을 지닌 프리지어 한다발과 더불어 여러분이 계획하고 있는 삶의 전환을 위한 새로운 시도에 응원과 지지를 보냅니다. 밸류가든 신은희
엄마의 라이프스타일 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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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주부는 언제 은퇴해요? _ 김정은
한 사람의 인생 결정에 유년기 경험은 얼마나 중요한 걸까. 올해 아
가 난 상태였다고나 할까. 살얼음판을 걷듯이 매사가 조심스러웠
흔 살이 된 우리 엄마는 6·25전쟁 속에서도 학업을 계속하여 대학
다. 그런 어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참 많은 생각을 했
졸업장을 거머쥐었던 극소수 여성이었다. 그렇게 받은 교육을 사
었던 것 같다.
회로 환원해야 한다는 직장 선배들의 강권에 못 이겨 엄마는 다섯 자식을 낳은 종갓집 며느리가 되어서도 교직 생활을 지속하였다.
알게 모르게 직장을 다니며 사회 변화를 감지하고 조금씩 눈높이
지금도 나는 가끔, 밤늦도록 양말에 전구를 끼우고 발뒤꿈치 구멍
를 조정할 수 있었던 친정엄마와 달리 집안일에만 전념해온 시어
을 깁던, 추운 겨울에 국에 만 밥을 마시며 허겁지겁 스타킹을 신
머니의 가정문화는 충격적일 만큼 고리타분했다. 결혼하면서 여
던, 퇴근하자마자 외출복 그대로 부엌으로 뛰어들던 엄마의 옛 시
성들이 흔히 겪게 된다는 사회와 가정의 문화적 괴리감이 나에게
간들을 떠올리곤 한다.
는 몇 배나 더 크게 느껴졌다. 그런 것에 적응할 새도 없이 직장을 때려치운 내게 집안일은 사정없이 쏟아졌다. 그제야 주부들이 왜
그런 영향이었는지 결혼을 앞두었던 나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
‘집안 살림’을 한다고 하는지 의미를 알게 됐다. 집 안에 있는 모든
고 제일 먼저 멀쩡한 직장부터 때려치웠다. 집에만 있는 엄마로 살
것들이 내 앞에서 죽겠다고 아우성이었다. 화분도 시들고, 음식도
고 싶었다. 그렇게 남들보다 사회로 먼저 나간 엄마의 삶을 바라보
상하고, 먼지도 쌓이고, 아이도 징징대고, 이런저런 관계마저 돌
며 거꾸로 나는 온전한 전업주부를 꿈꾸었던 셈이다.
보지 않으면 허물어졌다.
쉽지 않았다. 직장 엄마가 힘든 것은 보고 자라서 알았지만, 전업
치열하고 바쁜 엄마만 보고 자라선지, 애초의 성격이 그랬던 건지,
주부 엄마는 또 어떻게 사는지 미처 헤아려보지 못했다. 여자는 자
나는 가정주부로 살면서도 있는 듯 없는 듯 기다려주고 함께 걱정
고로 살림만 하는 게 최고 팔자라는 시어른의 입김에서인지 대학
하면서 모르는 척 넘어가는 살림 9단의 비법을 알지 못했다. 그저
나온 시누이들도 결혼과 동시에 전업주부 길을 걷고 있었다. 평생
내 앞에서 다가와 시들어가는 그 모든 것들을 내 손으로 살려내려
집안일을 업으로 삼았던 시어머니도 선임하사처럼 며느리를 기다
고 전력을 다했다. 노력만큼 이뤄지는 게 없으니 그것도 불만이었
리고 있었다. 그런 시댁의 대가족 문화를 모르고 덜컥 입성했던 나
다. 문제 상황은 매일 다른 모습으로 끝없는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는 여우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 격이었다. 결혼 전 상상하던 행복 한 전업주부의 삶은 그저 꿈일 뿐이었다.
불만이 쌓여갔다. 매뉴얼도 없고, 참고자료도 없고, 스펙 한 줄 안 남는 집안 살림을 해내느라 당장 나부터 죽을 판이었다. 세상
팔자 좋은 전업주부라던 시어머니도 사실 남들 생각만큼 행복하
도 미웠다. 왜 세상은 이렇게 힘들게 사람을 낳고 키우고 돌보는
진 않으셨다. 남에게 부러움을 살만한 자랑거리는 많았지만 그런
엄마들 편에 서주지 않을까. 왜 뭐든지 팔아먹으려고만 혈안이 되
것을 위해 여기저기 보살피고 돌보느라 정작 자신의 마음을 돌
어있고 죄의식만 심어주고 잘난 척하며 가르치려고만 드는 걸까.
볼 새가 없었다. 자식을 시집장가 보낸 어머니는 늘 혼자만의 시
사회와 유리된 채 그냥 아줌마로만 취급되며 살아가는 것도 억울
간을 견디지 못해 외로워했고 기대보다 미진한 가족들의 감사와
한데 말이다.
인정에 목말라했다. 그런 이유에선지 늘 어딘지 모르게 조금쯤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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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 vol.2
그런 종류의 부글거림이 날마다 끊임없이 솟아올랐다. 여기저기 방법을 찾으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책도 읽어보고, 이웃 이야기 도 들어보고, 전문가 조언도 들어봤지만 딱히 나에게 맞는 답을 얻 지는 못했다. 사실 그 당시에는 폭풍우 치는 바깥 사정이 문제라 기보다는 그 속에서 회오리치던 내 마음이 더 문제였던 것 같다. 하는 수 없이 속이 부대낄 때마다 글을 쓰면서 마음을 가라앉혔 다. 그렇게 글을 노 삼아 마음의 풍랑을 헤쳐오다 보니 어느덧 막 내의 스무 살이 다가오고 있었다.
막내의 스무 살 즈음에는 엄마 노릇도 은퇴하리라 결심하고 있었 다. 나만의 이유가 수북했지만 남들이 흔히 안 하는 일을 벌이려면 나름대로 치밀한 설득 작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틈틈이 블로그 에 올려두었던 글을 모아 <엄마 난중일기>라는 책을 냈다. 엄마 인 생 보고서이자 전업주부 사직서였다. 독립적인 어른으로 살아가 려면 으레 엄마의 일이라고 밀어버렸던 수많은 생활 영역을 자기 들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만한 시점이니까. 출판기념회 이름도 아 예 ‘엄마의 은퇴식’이라고 붙였다. 함께 사는 가족에게 과히 상처 주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러운 분위기로 전업주부 은퇴 선언을 하
서도 엄마라는 역할을 내려놓고 나니 그제야 남편도, 딸도, 아들
기 위해 나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다렸던가. 그랬어도 마냥 좋
도 인생을 함께 걷고 있는 동료처럼 보인다.
았다. 결국엔 왔으니까! 더욱이 2018년에는 엄마를 위한 사회적 미션도 생겼다. <엄마 난 이후부터 내 삶은 훨씬 자유로워졌다. 혼자 생각 여행을 다니며 글
중일기>가 가져온 인연들과 함께 엄마학교협동조합이라는 단체
을 쓰기도 하고, 강의도 하고, 협업도 하면서 세상에 나와 어울리
를 설립하였기 때문이다. 천신만고 끝에 엄마 은퇴를 하고 나서도
는 재미를 새롭게 배우고 있다. 비록 옛날보다 젊은 기운이 쇠하
또다시 엄마라는 이름 안에 서게 되다니 나 스스로도 놀랍긴 하
고, 주름과 흰머리가 늘고, 뱃살이 두둑해진 여자 사람이 되었지
다. 아마도 오랜 세월 엄마 역할에 대한 고민의 시간들이 작용하는
만 가족 관계의 구심점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놓여나니 그 얼
것이리라. 나에겐 지나가 버린 갈등 지점이건만 아직도 수많은 엄
마나 홀가분한지…. 조금씩 ‘나’에게로 돌아오는 기분이다. 만나
마들이 맘충, 경단녀, 취업맘, 전업맘이라는 갖가지 호칭으로 불려
는 사람이 다양해질수록, 그들과 솔직한 대화를 나눌수록 내가 포
가며 힘겹게 각자도생의 사회를 건너고 있다. 이들에게도 선배 엄
용할 수 있는 세상도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 나만의 억울함에 휩
마로서 약간의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기꺼이 손을 내밀어주려고 한
싸여 있을 때는 남들의 입장까지는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집안에
다. 이만하면 그럭저럭 성공적인 엄마 은퇴 프로젝트 아니던가.
엄마의 라이프스타일 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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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와 배움을 새롭게 디자인합니다 – IMI _ 김대영
“다시 한번 이야기해 줘, 잘 안 들려, 뭐라고 했지?”
국으로 출장을 다녔습니다.
직장 생활을 그 누구보다 즐기며 매 순간을 보람과 행복감으로 채
가족끼리 보내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아이의 학년이 올라가자
우던 제가 언젠가부터 마음속에서 속삭이는 소리를 듣고 말았습
다시 걱정이 찾아왔습니다. “이러다가 사춘기가 왔을 때 우리가 저
니다. “내가 왜 이러지? 멀쩡히 잘 다니고 있는 직장인데, 왜? 뭐가
아이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으면 어쩌지?” 가족이 함께 보낼 시
잘못된 거지? 이러면 안 되는데…….”
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 름 휴가를 이용해 아이가 관심 있는 것을 함께 경험해보기 시작했
미국의 전문가들과 한국의 전문가들이 만나 서로의 경험을 나누
습니다. 초등 4학년 때부터 스포츠 캠프를 찾아 싱가포르로, 초 5
고 각자의 커뮤니티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함께 해결할 수 있
에는 영화제작학교를 찾아 미국으로, 초6 때는 드라마 & 글쓰기
는 방법을 고민하고, 향후 동반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공공외교
(writing) 캠프를, 중1 때는 디베이트캠프, 중2 때는 주니어메이커
프로그램을 20년 동안 할 수 있었던 경험은 저에게 행운이었습니
캠프와 연기자 학교를, 중 3에는 인공지능, AI, 암호학 등을 배우
다. 저는 한국사회의 발전을 이끌어 가고 있는 오피니언 리더들을
러 컴퓨터 캠프를 가게 되었습니다. 첫해에는 1주일만 받았던 휴
발굴하여, 국제관계의 현장으로 섭외하기 위해 서울, 부산, 광주,
가가, 해를 거듭하며 2주, 한 달이 되고, 나중에는 두 달씩 휴가를
강릉은 물론이고, 철원, 마라도까지 전국으로 출장을 다녔습니다.
내어 ‘또 다른 삶’을 조금씩 살아 보았습니다. 다른 가정들처럼 등
지역의 문제가 글로벌 이슈이기에, 그 현장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굣길을 챙겨 주고, 하굣길에 마중하러 가고, 그날 있었던 이야기
분들과 만나기 위해 미국의 전문가와 함께 가는 업무는 늘 제 가 슴을 뛰게 했습니다.
엄마가 일을 너무 좋아하는 바람에 아이가 초등학교 때의 배움을 놓칠까 두려웠습니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방과 후 시간을 어 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 너머를 보여 주고 싶어서 책 읽기를, 우리가 살고 있는 너머의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서 영어를 습득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나섰습니다. 하지만, 책 을 읽고, 친구들과 책 이야기를 나누고, 책을 놀이 도구로 할 수 있 는 곳은 찾기 어려웠습니다. 결국 저는 작은 공간을 직접 만들고 아이에게 읽히고 싶은 문학, 사회, 예술, 철학, 과학, 역사 등의 책 들로 골고루 채웠습니다. 영화로 영어를 습득하도록 커리큘럼을 직접 개발했습니다. 책과 영화로 디자인된 배움의 환경을 만들자 이웃들도 등록을 하였습니다. 저희 아이는 이 이웃들과 함께 초등, 그리고 중등의 방과후 시간을 보내게 되었고, 저는 망설임 없이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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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 vol.2
들을 도란도란 나누며 저녁 준비를 같이하는 시간을 1년 중 한 번 은 꼭 확보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이 만든 책&영화 놀 이터에서 함께 크던 어린이들도 5학년, 6학년이 되자, 세상에 대 해 호기심이 커졌고, 자연스레 캠프를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친 구들의 관심사는 매우 다양해서 동물 캠프, 컴퓨터프로그래밍 캠 프, 애니메이션 캠프 등등…. 이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던 자신만의 관심사를, 실은 얼마나 좋아했는지를 발 견하게 되었습니다.
올해 2월에 중학교 졸업을 앞둔 아이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 기 위해서는 정규 학교 일정으로는 시간이 부족하다며 홈스쿨링
사연들. 저는 이 책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리고, 제 마음속에서
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관심 있는 것을 발견해 가고, 시
“어린이 이노베이터, 청소년 이노베이터들을 만나고 싶다! 이 친
도해 보고,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는 힘을 키워주겠다고 초등 중등
구들을 찾아서 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도와주자. 난 이 어린이
시기에 가족 대화를 이어갔었기에 자연스럽게 아이의 선택을 응
청소년들이 우리 사회를 이끌 이노베이터라고 믿어. 맞아. 난 이
원했습니다. 제 아이의 학교생활을 통해 한국 청소년들의 현재, 그
일을 하고 싶어 해, 간절히!”라는 저 자신의 목소리를 또렷이 듣게
리고 미래를 봅니다. “어쩔 수 없잖아,” “대학 못 가면 사람대접을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는 20년간 근무했던 주한미국대사관
못 받아,” “너 한 명이 그런다고 세상이 바뀔 것 같으냐?”의 문화
을 그만두고, 청소년이노베이터들을 발굴하는 ‘IMI’라는 회사를
를 물려주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무엇이라도 시도해 보
창업하게 되었습니다. IMI는 워킹패밀리들을 위한 몰입형 배움,
고,” “누구나 존중받는,” “사회 변화를 시작하고 이어가도록 작동
즉 노는 시간을 디자인하고 있습니다.
되는 방법을 찾을 때까지 실험하는 커뮤니티”를 이제 아이에게 보 여주려 합니다. 세상에 변화를 가져오는 일을 한다는 자긍심으로
오지랖이 넓은 청소년을 찾습니다. 우리 동네의 대소사에, 다른
20년 동안 직장 생활을 했습니다. 결국은 제대로 된 사람 한 명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운한 일을 마치 우리 일인 듯, 아니, 바
키우는 일이 세상을 구하는 일이라 믿고 아이의 성장에 지극정성
로 내 일인 듯 해결 방법을 찾겠다고 열정적으로 다가가는 우리의
을 기울였습니다.
리더들을 찾습니다. 멀쩡히 다니던 직장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은 또 다른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었습니다. 한국에서 학교 밖 청소년을
<이노베이터의 탄생>(토니 와그너 저)이란 책에서 사회의 변화를
자청하는 자녀를 지지하고, OECD 기준 최하위인 한국 청소년들
이끄는 20대들이 어떤 유년 시절을 보냈는지를 읽게 되었습니다.
의 행복지수를 바꾸려고 감히 마음을 먹는 괴짜 어른인 저에게 이
어린 시절에 하던 ‘놀이’를 통해, ‘몰입’을 경험하고, 자기 자신만이
젠 큰 소리로 외칩니다.
소중히 여기는 어떤 ‘목적’을 발견하게 되는 청소년기를 보내게 되 고, 이를 도전하고, 성취해 가면서 자연스럽게 이노베이터가 되는
엄마의 라이프스타일 저널
“자, 이노베이터들을 찾아서 놀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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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히 나 자신을 만나는 즐거움 - 혼자 여행하기 _ 김주희
언제부터인지 정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지만 막연하게 ‘혼자 하는
린아이처럼 몸은 여기저기 다양한 형태로 신호를 보내왔다. 고질
여행’을 꿈꾸고 있었다. 스물여덟 살에 결혼을 하고 서른 살, 서른
병처럼 허리 통증이 반복되어 동네 한의원의 단골 환자가 되었고
두 살에 아이 둘을 낳아 전업주부가 되어 육아와 가사 활동에 전념
약을 먹어도 잘 낫지 않는 두통은 특별한 증상도 아니었다. 더 늦
하면서 혼자만의 시간에 대한 갈망이 있었나 보다. 누군가 하고 싶
기 전에 멈춰야 했다. 무엇보다 더 이상 활동가로 행복하지 않았다.
은 일이 뭐냐고 물을 때면 다른 여러 가지 소망을 말하는 끝에 늘 ‘혼자 하는 여행’을 말하곤 했다. 언제 어디로 간다는 구체적인 계
나는 몸과 마음의 소리를 따르기로 했다. 사무국장을 그만두고
획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다른 사람에게 말하려는 것
50살이 되던 해 나는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오랫동안
이 아니라 그냥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듯 혼자 하는 여행을 말한
말만 했던 ‘혼자만의 여행’을 이제는 정말 해야 할 것 같은, 때가
게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되었다고 알려 주는 내 안의 어떤 목소리를 들으며 아무도 없는 곳
가고 싶다는 말을 입에는 달고 살았지만 혼자 여행을 갈 기회는 좀
에서 혼자 그냥 무작정 걸어보고 싶었다.
처럼 오지 않았다. 아이가 어려서, 시간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제주 올레길을 혼자 걸어보자.’ 이 생각만으로 우선 비행기 표
가지 못하는 핑계는 너무나 많았다. 혼자 가는 여행에 대한 환상
를 예약했다. 비행기 표를 끊고 나니 이렇게 쉬운 걸 왜 여태 못
이 있지만 그만큼 두려움도 있어서 훌훌 다 떨치고 무작정 떠날 용
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다음은 일사천리였다. 지도를 보면
기가 없었던 것은 아닐까?
서 내가 걷고 싶은 올레길 코스를 정하고 그곳과 가까운 곳에 숙 소도 정했다.
40대를 마감하던 해, 내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50살이 되던 해 늦은 봄과 초여름 사이 나는 그렇게 내 생애 첫 혼
40대 초반 지역 풀뿌리 여성단체의 활동가로 다시 사회 활동을 시
자 여행을 시작했다.
작한 나는 사무국장이 되면서 단체의 모든 일을 책임져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으로 늘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모든 결정의 중심에
첫날이랄 것도 없이 서울에서 오는 것으로 시간을 보낸 첫날, 잘 모
내가 있었고 결정에 대한 책임도 문제 해결도 내가 해야 한다고 생
르는 여행지에 너무 늦은 시간에 도착하지 않아야 한다는 교훈을
각해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스스로를 몰아세웠다.
얻었다. 모든 곳이 서울 같지 않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공항에
단체를 대표해 외부 활동이 많아지고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기
서 버스를 타고 내려서 숙소까지 오는 길이 생각보다 멀었는데 엄
보다 단체를 운영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사무적인 일들이 많
청 어둡고 한적한 길을 걸어야 했다. 서울 같았으면 대낮같이 환한
아지면서 함께 하는 동료들과 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긴
빛에 사람들로 북적였을 텐데 ‘내가 너무 바쁘고 정신없는 속에서
느낌이었다. 너무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만나면 반가우면서도
살고 있구나.’ 깨닫게 된 시간이었다. 걷는 내내 ‘무섭다고 생각하
사무적인 이야기만 나누는 서먹서먹한 사이가 되었다. 나만 혼자
지 말아야지. 어디나 사람 사는 곳이다.’ 혼잣말을 하느라 주변을
외딴 섬이 된 느낌이 나를 힘들게 했다. 나는 열심히 활동하고 있
돌아볼 여유도 없었다. 처음으로 혼자 여행 일정을 짜고 예약하고
는데 동료들에게 충분히 이해받지 못하는 듯한 느낌이 반복되면
비행기를 타고 숙소를 찾아온 경험이 엄청나게 신나고 뭔가 남다
서 내 감정은 고사 직전의 고목처럼 메말라 갔다.
른 기분이 느껴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그냥 그렇게 덤덤했다.
마지못해 앞으로 앞으로 가다 보니 마치 자기를 봐 달라 보채는 어
다음날 올레길 시작 지점을 찾느라 한참 헤맸다. 지도를 보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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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 vol.2
못 찾는 길치라니. 몇 번을 검색하고 외돌개에서 출발해 돔베낭길,
소리에 생각을 흘려보내기도 하고 숲과 나무들에 내 마음속 상처
법환포구, 서간도, 강정마을, 월평항, 송이슈퍼까지 7코스를 완주
를 드러내 보이기도 하고 힘들게 걷는 내 걸음걸음에 소망을 담
하는 게 목표였다. 7코스는 바다를 옆에 두고 파도 소리를 들으며
기도 했다.
걷는 길이 많아서 걷는 내내 파도 소리와 바다 냄새를 맡을 수 있 었다. 중간중간 이게 올레길인가 싶은 동네 길을 걷기도 하고 숲
그 여행 이후로 나는 해마다 혼자 여행을 가고 있다. 기꺼이 혼자
속으로 깊이 들어가 걷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코스가 무난하고 자
라서 외로운 시간과 두려움을 이겨내고, 있는 그대로 나 자신을 마
연과 함께 걷는 길이라 마음에 들었다.
주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자연과 만난다. 특별한 이벤트도 없고 여 행지의 맛있는 먹거리를 마음 놓고 먹을 수 없는 등 불편한 경험
내 거친 숨소리와 파도 소리, 새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
도 많은 혼자 여행이지만 오롯이 나 자신과 마주하는 즐거움은 그
리, 내 걸음에 밟히는 돌멩이 소리를 들으며 걷고 또 걸었다. 땀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이다.
로 몸은 끈적끈적하고 오랜만에 운동을 하는 다리는 더 걸을 수 없다고 아우성치듯 자꾸만 땅속으로 가라앉았다. 처음부터 친구 처럼 나를 계속 따라오는 하얀 나비가 있었다. 마치 길을 안내하 듯 앞에서 나타나기도 하고 내 뒤를 따라오기도 하고 같이 걷듯 옆 을 날기도 했다. 내 팔에 살포시 앉을 듯 가까이 다가오기도 했다. 장장 6시간에 걸친 나의 첫 올레길 걷기는 마지막 장소인 송이슈 퍼를 바라보며 눈물로 마무리되었다. 그냥 살짝 눈물이 났다. 여행 이 끝나고 나서 그날을 다시 떠올려 봐도 왜 눈물이 났는지 잘 모 르겠다. 혼자서 해냈다는 성취감과 그동안 나를 짓눌렀던 가슴 속 응어리들이 뒤섞여 마음이 울컥했나 보다.
그날의 걷기는 지금까지도 아주 생생하게 내 기억에 남아있다. 때 때로 내가 다시 그곳을 걷는 것처럼 그날의 바람, 새소리, 나를 따 라오던 나비의 날갯짓, 길가에 피어있던 꽃들, 숲에서 나던 냄새, 파도 소리, 내 숨소리가 느껴진다. 나와 자연이 온전하게 마주했 던 그 시간. 그 기억을 떠올리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다시 그 길을 걷고 싶어진다. 아마 그날 이후로 나는 내 상처들과 온전히 마주할 힘이 조금 생 겼던 것 같다. 걷는 내내 그동안 나를 힘들게 한 것이 정말 무엇이 었는지 생각하고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파도
엄마의 라이프스타일 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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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에서 전문가로 트렌스포메이션 _ 유명화
“너 뭐 하니?”
숨겨 보상 없는 노동을 숭고한 도덕으로 만들었다.
삼십 년 만에 만난 친구가 나를 빤히 보더니 묻는다. 가방에서 주
이러한 사회구조는 나처럼 생존에 책임지지 않는 남편을 둔 여자
섬주섬 명함을 찾아 주었더니 명함을 봤다 나를 봤다한다.
에게 불행이다. 나는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할만한 자원이 없었다.
“너 옷 장사하니?” “이런 옷은 어디에서 파는 거야!”
더구나 스트레스로 인해 몸과 마음이 심각한 지경이어서 일은 고
다른 친구 두 명이 내 옷을 이리저리 살핀다.
사하고 대인관계를 할 만한 상황도 아니었다.
“야! 명화가 네이버 인물검색에 떠. 신기하군.” 명함을 받은 친구가 옷 타령하는 친구들의 말을 끊는다.
내가 선택한 것은 나를 먼저 돌보는 것이다. 정신적으로 신체적으 로 경제적으로 의존하지 않을 수 있을 만큼 건강을 회복하는 것을
친한 친구가 시어머니 된다며 청첩장을 보내왔다. 결혼식장에 옛
우선으로 삼았다. 꾸준히 걷고 대체의학과 소마틱스 등 몸에 관한
친구들이 모여들었다. 피로연장은 마치 여고 동창 모임 같았다. 친
것들을 배우고 훈련했다. 몸이 회복되면서 마음에 얽힘이 많다는
구들은 주로 전업주부인 듯 보였고 오랫동안 정기 모임을 했는지
것을 발견했다. 명상과 영적 성장을 위한 교육을 받으면서 내가 얼
친밀해 보였다. 친구들은 독특한 디자인의 천연염색 옷을 입고 나
마나 저항하면서 살았는지를 직면했다.
타나 명함을 돌리는 내 모습을 흥미롭게 보았다.
그 와중에 막내아들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떴다. 나는 아들을 통해
이번에 시어머니가 되는 친구는 나의 평탄치 않았던 결혼 생활 중
죽음을 배우게 된 것이다. 어떤 고통이 일어나도 삶은 우리를 앞으
에도 간간이 안부를 물었던 여고 동창이다. 친구들과의 인연조차
로 가게 한다. 나는 내게 일어난 고통 속에 숨겨진 선물을 보았다.
이어가기 힘들었던 시절 동창들 소식을 전하던 유일한 벗이었다.
내면의 집착과 흥분들이 점점 사라져갔다.
마음이 따뜻한 친구 덕에 소녀 시절을 함께 보냈던 친구들을 중년
갱년기의 허열이 잦아질 무렵 나는 결단을 했다. 이십여 년간 공부
에 다시 보게 되니 반갑고 기뻤다.
했던 것들이 몸에 녹아 세상으로 나가길 원했기 때문이다. 2017
친구들의 이야깃거리는 퇴직한 남편과 노후를 어떻게 보낼 것인
년 뜨거운 여름 사람들이 피서를 위해 바다로 떠날 때 나는 연구
지에 대한 것들이었다. 해외여행을 다니기 위해 영어 공부를 하는
소를 대전에서 서울로 옮겼다. 그동안 연구했던 ‘영적 성장 프로그
친구도 있었고 손주는 절대 봐주지 않을 거라고 다짐하는 친구도
램’을 정리하여 출간과 교육 콘텐츠로 만드는 데 집중하기 위해서
있었다. 친구들은 대부분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알뜰살뜰 살
다. 일 년이면 충분할 줄 알았다. 그러나 여러 조직체와 함께 하는
림하며 산 것처럼 보였다.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안정돼 보였
작업은 생각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영혼의 속도는 에
으며 심지어 할 일이 없어 사는 것이 심심하고 지루해 보이는 친
고의 상상보다 훨씬 느리다.’라는 말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구도 있었다.
다행히 2018년에 교재 3권을 완성하여 가족 세우기 촉진자 6기 교육과정을 새롭게 정비된 방식으로 시작했다. 5기까지 체험 중
요즘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내가 사회에 진출하던 당시만 해
심의 세션 교육이었다면 6기부터는 교재와 집중 기술 훈련과 문
도 직장에 입사할 때 결혼하면 퇴직하겠다는 각서를 썼다. 사회구
자화된 개념까지 더 들어가는 바람에 훨씬 체계적이고 교육시간
조는 여성이 결혼하여 생존을 남편에게 의존하고 가정에서 일어
이 길어졌다. 2018년 1년간 교육을 받았던 졸업생들은 많은 변화
나는 여성의 재생산 활동은 신비화되어 헌신, 희생 등의 이름 속에
속에서 매달 자조 모임을 통해 자발적인 자기 성장 공부를 지속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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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 vol.2
고 있어 보람 있다.
사실 영적 성장이란 말은 추상적이다. 무엇이 영적이란 말인가? 나는 영적 성장을 ‘불행의 대물림 치유와 관계의 인식 변형’을 통 해 체험학습하도록 한다. 버트헬링거 방식 가족 세우기 프로그램 에 내가 이십여 년간 수련했던 의식성장 콘텐츠와 명상 노하우를 녹여서 교육모델을 개발한 것이다. 세우기 촉진의 핵심은 ‘명상 적 자각력’이기 때문에 깊은 차원에서의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
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부모의 가부장의식과 큰 트라우마가 내 삶
가족관계에서 부모의 운명과 삶을 판단평가하는 사람들은 부모
전체에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내가 꾸준히 수련을 한 이유는 더
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남녀관계, 자녀 관계의 어려움을 겪는다. 불
이상 우리 아이들에게 비극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행한 관계 패턴과 부모의 정서 패턴이 대물림되기 때문이다. 관계
적어도 내 트라우마는 내가 정화하고 싶었다. 생명은 아주 멀리에
에서 영적 성장을 체험하는 사람들은 ‘존재하는 그대로 존재해도
서 우리 부모를 통해 내게 왔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생명의 통
됨’을 통찰한다. 이때 우리는 존재에 대한 경외심과 말할 수 없는
로로서 온전히 존재하길 원한다.
평온함을 체험한다. 경험자들은 대부분 ‘부모나 다른 사람이 다르
출간 예정인 책은 30~60대 여성을 타겟으로 만들고 있다. 아직
게 살아야 한다.’라는 판단평가에서 물러서 그 속에 숨겨진 사랑
제목이 없으며 가족 세우기에서 발견한 관계의 지혜와 사례를 다
을 발견한다. 또 부모에게 귀속되고자 하는 본능과 충성심을 직면
룰 예정이다. 작년에 시작할 때는 지금쯤 서점에 쫙 깔리길 기대했
하고 ‘관계 질서’를 통찰하고 배운다. 이 교육은 가족 조직뿐만 아
었다. 그러나 출판사 담당 편집자가 건강상 이유로 바뀌는 등 출간
니라 기업조직 등 어떤 조직에도 적용할 수 있다.
속도가 내 생각 같지 않다. 그 와중에 조직 세우기 코칭 콘텐츠 개
나는 이십여 년간 아주 다양하고 훌륭한 치유 프로그램을 접했다.
발에 대한 담론이 일어났다. 가족 세우기 원고가 출판사에서 설왕
물론 나의 트라우마 치유와 내적 성장을 위한 공부였다. 그 많은
설래하는 동안 현재 코치협회에 인증받을 조직 세우기 코칭 프로
공부 중에 가족 세우기를 사업모델로 개발한 것은 우리들의 조부
그램과 책을 쓰느라 바쁘다. 가족 세우기와 조직 세우기가 쌍둥이
모와 부모가 살았던 근현대사의 비극이 어떻게 우리의 불행과 연
처럼 이 세상에 태어나기를 기대한다.
결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생생한 관찰은 새로운 인식작용을 불러일으킨다.
언젠가 택시를 타고 내릴 때 스카프를 떨어뜨렸었다. 운전사는 스
내 부모는 “아들이 잘돼야지. 딸이 잘되는 꼴은 볼 수 없다.”라고
카프를 주기 위해 뒤에서 나를 불렀다.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
했다. 그러면서 딸이라는 이유로 모든 것들을 남동생과 차별했다.
다. 그가 ‘아줌마’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그가 만약 ‘선생님’이라
나는 부모의 행동이나 가치관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특히 엄마의
고 불렀다면 나는 얼른 뒤돌아봤을 것이다. 운전사가 뛰어와 전
열거할 수 없는 차별 행동과 투사를 당하면서 엄마가 정상이 아니
해 주는 스카프를 받으며 나의 정체성에 ‘아줌마’를 포함하지 않
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가족 세우기에서 내 부모가 겪었던 6.25
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내 정신과 몸은 이미 전문가로 반응하
전쟁의 공포와 비극의 큰 트라우마가 내게 발달 트라우마로 작용
고 있었다.
엄마의 라이프스타일 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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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시작으로 얻은 공감하는 삶 _ 박현희
새로운 변화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원하지 않아도 어김
주고받게 되지 않을까 두려웠다. 그러나 우려와 달리 참여자들은
없이 찾아오는 계절처럼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인생의 겨울을 만났
그 상처에 깊이 공감했고 비슷한 상처들을 꺼내놓으며 연대했다.
다. 동생이 허망하게 죽자 동생에게 마음 써왔던 내 삶이 크게 휘
상처가 공감을 통해 치유되는 느낌은 놀라웠다. 나는 이 프로그램
청였다. 오십여 년의 시간 동안 가장 크게 매달린 일이 그 동생 걱
을 진행하는 활동가가 되기로 했다.
정이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억울한 죽음은 돌이킬 수 없었다. 눈을 뜨고 있어도, 못 견뎌 눈을 감아도 어떻
우리가 살면서 겪는 상처의 모습은 제각각이다. 오로지 나만이 이
게 살아야 할지 막막할 뿐이었다. 그때 나는 살기 위해 발버둥 치
런 상처를 겪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상처를 꺼내놓으니 비슷
고 있었다.
비슷한 상처들이 줄을 이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하는 깨 달음은 내 생의 억울 지수를 낮춰주었다. 또 상처가 달라도 그 상
지는 꽃잎만 봐도 몸서리가 나던 2013년 늦봄, 나는 선배와 이야
처로 인해 품게 되는 속마음은 죄책감, 수치심, 억울함 등등 사람
기 모임을 만들기로 했다. 누구에게나 말 못 할 상처는 있는 법이
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그런 감정들이었다. 각기 다른 상
니까 상처를 나누며 서로 지지해주는 모임이 우리 삶에 필요하다
처에도 불구하고 아픈 마음에 집중하며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
고 생각한 것이었다. 마음 기댈 곳 없는 세상살이에서 드디어 내
그렇게 상처에 공감받은 사람들은 신기하게도 오래 품어온 상처
편이 생기겠구나 하는 기대가 차올랐다. 7명이 모여 모임을 시작
가 치유된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활동을 하며 사람들의 속마음
했다. 각자 자신의 삶에서 어려운 것들을 꺼내놓고 그 문제를 풀
을 알아가는 것이 좋았다. 사람 마음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고자 머리를 맞대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문제를 해결해주고
주변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과의 관계
자 하는 충고와 조언들은 아주 쉽게 비난으로 변해버렸다. 상처
가 점점 편해져 갔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품은 상처가 아파서
들이 헤집어 지면서 몇몇은 대놓고 다른 사람을 공격하기 시작했
울기도 하지만 함께 하는 울음 속에서 같이 나누고 연대하는 힘
다. 선의로 시작한 모임에서 더 깊은 상처를 주고받았다. 결국 모
을 얻게도 되었다.
임은 끝이 났다. 그러나 내가 가장 잘 이해하고 싶은 가족과의 관계는 쉽게 변하지 그즈음 나는 서울시 힐링 프로젝트 ‘누구에게나 엄마가 필요하다’
않았다. 특히 나와 성격이 비슷하다고 여겨지는 둘째와의 관계는
에 참여하고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20명의 참여자가 내 평생 가 장 추웠던 날, 잊을 수 없는 밥상 등의 주제를 가지고 6주간 이야 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큰 기대는 없었지만 지난 삶을 돌아보고 싶 어 신청하게 되었다. 가장 추웠던 날을 이야기할 때는 나도 몰랐던 내 마음을 만나며 많이 울었다. 프로그램의 지침대로 충고나 조언 없이 대화하는 과정에서 뜻밖의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마지막 시 간, 한 번도 말해보지 못한 상처를 주제로 집단 상담 같은 것이 이 루어졌다. 나는 모임에서의 경험이 떠올라 사람들이 서로 상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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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 vol.2
자주 삐걱대었다. 왜 제일 잘 지내고 싶은 둘째와는 마음이 빗나가
더 잘 공감하는 사람이 되고 싶고, 더 따스한 공감을 나누는 삶을
기만 하는지 이러고도 내가 치유활동가가 될 수 있는지 자괴감이
살고 싶다.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며 서로를 위하고 지지하고 싶어
들기도 했다. 공감에 대한 공부를 좀 더 하면서 내가 늘 걸려 넘어
서 시작했던 이야기 모임. 비록 그 모임은 실패했지만 그런 첫발이
지는 걸림돌을 알게 되었다. 그건 바로 나 자신이었다. 둘째가 나
있었기에 힐링 프로그램 활동가로 나아갈 수 있었다. 앞으로 다가
와 비슷하다는 판단 아래 자꾸만 충고와 조언을 하고 있었던 것이
올 또 다른 작은 시작이 기다려진다.
다. 둘째를 걱정하는 마음이 곧 어린 시절의 나 자신을 걱정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의 나부터 충분히 공감하 기로 했다. 걱정하는 나를 인정하고 다독여주자 둘째 걱정도 옅어 져갔고 둘째와의 관계도 편해졌다. 무엇보다 먼저 돌봐야 하는 것 이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이 자신을 사랑하는 첫걸음 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2018년 겨울 요양보호사 선생님들과 한 번도 말해보지 못한 상 처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예순이 넘은 한 참여자가 자신은 상 처를 절대 말하지 않을 거라고 하셨다. 그러나 한 시간가량 이야기 가 진행되었을 때 “이건 실제 상황입니다. 이건 진실입니다.”라며 벌벌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상처를 말하기 시작하셨다. 그 자리 에 함께한 우리 모두는 온 힘을 다해 그분의 상처 곁으로 다가갔 다. 그리고 진심에서 우러난 마음으로 그 상처에 동참했다. “이 일 은 무덤까지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말하고 나니 후련하네 요. 이런 걸 내일도 하면 좋겠어요.” 그분의 얼굴이 환해졌다. 돌덩 이 같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삶에서 돌멩이 하나쯤 내려놓게 할 수 있다면 그건 기적이다.
나는 자주 기적 같은 순간을 만난다. 이것은 혼자 할 수 있는 일 이 아니다. 그 순간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마음을 모아 공감하기 에 가능한 일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그대로 인정해주고 다 받아주 는 공감은 힘이 세다. 활동을 하며 어떤 큰 상처라도 공감을 당할 수는 없다는 것을 확인한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사람은 상처보다 더 크다. 그리고 사람이 나누는 공감은 기적을 만들어낸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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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그리고 어느덧 배우가 되었다 _ 김경희
그때는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다.
락거리며 피아노과 부전공 수업을 들었던 기억이 나면서 그저 나
여섯 살 딸내미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근처에 월수금 오전 10시 방
에게는 몇 년 주기로 새로운 배움신이 내려와 뭔가 하고 싶게 만드
송 댄스 하러 다니는 것. 죄다 아줌마들만 있는 케이팝 방송 댄스
나 보다 생각하면서 시작했다.
주부반에서 나 말고 유난히 열의를 갖고 수업에 임하는 내 또래로 보이는 아줌마에게 어느 날 심심해서 말을 걸어 보았다. 생각보다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단역 조연 가리지 않고 2년 정도 독립
성격이 활발하고 적극적인 아줌마를 만나니 반가워 내친김에 차
단편 배우 일을 하다 보니 아무래도 한계에 부딪혔고 나도 어디에
나 한잔하자고 하고 댄스 학원 1층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소속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었다. 그래서 정규 학위 과정을
이야기를 하다 보니 놀랍게도 배우가 되려고 연기공부를 하고 있
찾다 한예종 전문사를 3개월 정도 준비하고 도전했는데 보기 좋
다는 거였다. 나는 서슴지 않고 “아! 나도 그렇다.”라고 이야기하
게 낙방. ‘그래, 이렇게 쉬울 리가 없지’ 하며 이왕 준비한 것이 아
며, 며칠 전부터 연기학원 알아보던 중이라 했더니 갑자기 그 자리
까워서 마음에도 없는 다른 대학원도 시험 볼까 알아봤는데 이미
에서 자기 연기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어 연기를 하고 싶어하는 언
다 끝난 후였다. 그러고 나서 한동안 울적한 마음에 허우적대다가
니가 있다며 대충 나를 설명했다. 결국 그 선생님이 내일 레슨 올
나는 입시는 아닌가 보다 하며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프로필을 열
때 나를 데리고 같이 오라고 하게 되었다. 그렇게 느닷없이 연기공
심히 돌리고 할 수 있는 역(거의 100% 엄마역이다)을 서울 지방
부를 시작하게 됐고 연기를 1~2년 배우다 독립 단편 단역부터 시
가리지 않고 하다 보니 작년에는 독립 단편 영화지만 주연도 몇 편
작해 지금까지 5년 차 독립 단편 배우 생활을 하고 있다.
하게 되는 운도 있었고, 전주 국제 영화제 장편 부분 경쟁작 출품 (MBC 출발 비디오 여행에 내 얼굴과 함께 소개되었다), 제천 국
전공인 그림을 손에서 놓은 지는 오래되었다. 딸아이를 낳고부터
제 음악 영화제 독립 단편 출품, 2018 인디포럼 신작 소개 상영작
10년은 그림 그리기를 못 할 것 같다는 예감은 있었다. 나에게 그
등 독립 단편 관련 중요한 이벤트에 올라가고 “관객과의 대화” 같
림 작업은 꽤 이기적인 작업이라 아이 키우며 시간 쪼개서 할 수
은 경험도 하게 되었다.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물리적으로도 그림을 그리기 위한 환 경은 어린이에게 유해하기도 해서 멀리할 수밖에 없었다.
연기는 끊임없이 배역에 대해 연구하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나를
그렇게 그림 그리기를 멀리하고 살다가 갑자기 40 초반에 왜 연기
통해 매번 다양한 배역을 완성하고 영상에 올리는 재미가 있는 작
를 시작했을까. 그건 정확히 꼭 짚어 말하기는 어렵다. 그냥 남의
업이다. 현실적으로 중년 여성 배우에게 주어지는 역에는 한계가
연기를 ‘보는’ 것 말고 내가 직접 연기의 생산자가 되고 싶다는 생
있겠지만, 이왕이면 똑같은 어머니역 아내역을 하더라도 다양하
각을 했고 정말 우연히 기회가 맞아떨어져서 그것을 시작했다고
게 연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독립 단편 영
밖에 설명이 안 되는 것 같다.
화 배우지만 언젠가는 TV 드라
학부 2학년 때쯤 갑자기 피아
마나 극장에 걸리는 작품을 할
노를 치고 싶어져서 피아노 부
수 있으리라는 상상도 가끔 해
전공을 어렵사리 신청해 2년
보곤 한다.
동안 미대와 음대를 열심히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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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 나의 위치 찾기 _ 이병성
나의 일, 나의 정체성
무 속에서 느껴지는 한 해 한 해는 점점 더 비슷해져 갔다. 그러다
‘부모들이 교육에 대한 고민을 나누며 함께 책을 읽고 배워가는 모
가 어느 날 나는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위치에 놓이게 되
임은 없을까?’ 이런 질문으로 시작한 ‘미래를 만드는 교육 읽기(약
는 두 가지 사건을 겪게 되었다.
칭 미교독)’는 올해로 4년째 운영하고 있는 독서 모임이다. 매달 교
육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선정해 관련된 책을 읽고 오프라인으
첫 번째 사건은 자녀가 태어난 것이다.
로 만나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태어난 아이는 사랑스러웠고,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아이의 모
2015년 10월 작은 스터디룸에서 몇 명의 청년들과 함께 시작한
습을 지켜보는 것은 경이로웠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나는 아이
미교독 모임은 해가 갈수록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의 연결점을
가 잘 자라도록 도울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육아와 교
만들고 있다. 사람들과의 새로운 연결은 새로운 시도에 대한 가능
육에 대한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독서를 통해 알게 된 미래를 위
성으로 이어지고 모임은 계속해서 변화해 왔다. 최근에는 독서 모
한 바람직한 교육의 방향은 내가 받은 교육, 내가 자란 교육 환경
임을 넘어 다양한 교육적 시도를 함께 할 동료들이 생겼고 배움의
과 매우 달랐다.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있다.
아이들은 마음껏 놀고, 스스로 흥미와 호기심에 따라 다양한 관심 사를 찾고, 시도하고 몰입하며, 성공과 실패를 경험하는 것이 필요
나는 ‘교육’이라는 주제만 다루는 특별한 독서 모임의 리더로서 역
하다고 한다. 주체적이면서도 풍부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넓고 깊
할을 맡고 있지만, 원래 공부한 전공과 생계를 위한 직업은 교육 분
은 독서가 필요하고, 토론과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적절히 표현하
야와 관계가 없다.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기계 분야 설계 엔지니어
며 타인을 설득하거나 협업하는 능력도 필요하다. 많은 선진국들
로 10년을 일했다. 모임은 직장 생활과 병행하여 업무 외 시간에
이 획일화된 주입식 교육의 한계를 극복하고 이러한 기회를 만들
진행하고 있다. 가정에서는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
어 주기 위해 계속 교육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한다.
의 아빠이기도 하다. 지금은 잠시 육아휴직을 하고 아이들을 돌보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웠다. 나는 자라면서 이런 것들을 배우고 경
며, 동시에 독서 모임을 확대할 수 있는 활동들을 진행하고 있다.
험한 적이 있었던가? 내 주위의 부모들은 아이에게 이런 교육을
올해 복직이 다가오지만 이후에도 꾸준히 활동하여 교육 분야에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과거에 내가 받은 교육은 오직 시험을
서의 일을 나의 본업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잘 보기 위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아직도 주입
어떻게 전공이나 직업과 관계없는 새로운 분야에서 모임을 이끌
식 교육과 입시경쟁의 구도는 건재하며, 오히려 과도한 사교육으
며 삶의 전환을 꿈꿀 수 있게 되었을까? 미교독 모임을 시작하고
로 교육 기회에 빈부 격차가 심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는
진행해온 과정을 소개하고, 삶의 전환을 위한 작은 시작에 대한 생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아는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
각을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었다. 고민은 깊어져 갔다. 점점 더 교육에 대한 책 읽기에 빠져들 었다. 나는 교육 문제 앞에 선 부모였다.
나의 새로운 위치 많은 사람들에게 그렇듯 회사에서의 일은 힘들고 바쁘면서도 지
두 번째 사건은 회사 밖 독서 모임과의 만남이다.
루하고 답답했다.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리듯 반복되는 일상과 업
성인이 되어 뒤늦게 책을 좋아하게 된 나는 많은 책을 읽는 독서
엄마의 라이프스타일 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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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들과 교류하며 배움을 얻고 싶었다. 페이스북에서 ‘독사모’라
임에서 교육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몇 분과 고민을 나누었
는 독서 그룹에 가입했고 오프라인 모임에 나가게 되었다. 비슷
다. 새로운 모임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어떤 모임으로 만들어갈
한 생각을 하는 동료들과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이야기들만 나누
지 의견을 나누며 6개월 정도 구상하는 시간을 가진 후 3명의 운
던 내게 회사 밖의 독서 모임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다양한 분야
영진으로 교육 분야 독서 모임 ‘미교독’을 시작했다. 고민하던 교
와 다양한 나이, 다양한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
육 문제에 대해 무언가 행동할 수 있는 위치로 한 걸음 다가섰다.
기를 한 번에 들을 수 있었다. 책을 매개로 서로 다른 생각을 나누 는 데서 얻을 수 있는 배움, 그리고 그 배움의 기쁨. 그것은 느껴
새로운 위치에서의 새로운 역할 실험
보지 못한 즐거움이었다. 오프라인 모임을 다녀온 날은 지적 흥분
그렇게 부모가 되어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끼게 되었고, 교육
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독서 모임의 운영진이 되었다. 회사에
회사 밖의 독서 모임에서는 내가 가진 생각과 고민들을 편하게 나
서의 업무는 달라진 것이 없었다. 다만 회사 밖에서의 시간에는
눌 수 있었다. 서로 이해관계가 없는 느슨한 연결 덕분이다. 꾸준
내가 가진 문제의식에 더욱 집중했다.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히 교육에 관한 책들을 읽고 있었던 나는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
사람들 사이로 나의 위치를 옮겼다.
들을 공유했다. 그리고 그 문제의식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하나둘
새로운 위치에서 새로운 역할을 찾아 행동하는 일은 새로운 관계
만나게 되었다. 교육 분야에 특별한 관심이나 목표를 가진 분들과
속에서 새로운 실험을 함께 하는 즐거움이었다. 모임에 참여 해주
는 따로 소통하거나 만나기도 했다. 독서 모임에 익숙해지고 같은
시는 분들 중 기획력과 실행력이 강한 분들이 계셨다. 이런 분들과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는 독서 모임과 별도로 더 적극적인 행동들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교육 분야만 다루는 독서 모임을 만들고 싶었다. 부모들이 교육
시간이 흐르며 우리 모임은 새로운 교육을 직접 시도하고 있는 교
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민을 나누고 배울 수 있는 독서 모임이 없
육 혁신가분들과 인연이 닿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많은 부모님들에
을까?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았지만 찾기 쉽지 않았다. 독사모 모
게는 아직도 새로운 교육들이 익숙하지 않고 정보도 부족하다. 우 리는 부모님들과 교육 혁신가분들을 직접 연결하는 역할을 하기 로 했다. 몇 개월 동안 준비를 한 끝에 ‘부모와 함께 하는 미래 교 육’이라는 이름으로 컨퍼런스를 진행했다. 네 명의 연사와 서른 명 의 부모님을 모시고 진행한 컨퍼런스는 성공적이었다. 혼자서는 엄두도 내지 못했을 일이 팀으로 함께 하기에 가능했다. 사람뿐만 아니라 교육을 위해 좋은 취지로 운영되고 있는 새로운 공간들과도 연결점이 생겼다. 그 공간을 운영하시는 분들과 논의 를 통해 새로운 독서 모임 몇 개를 시작하고 진행했다. 새로운 공 간은 새로운 네트워크를 의미한다. 모임에 함께 해주시는 분들의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모임이 많아지다 보니 앞으로 혼자서 모든 모임을 진행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았다. 독서 모임을 직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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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 vol.2
진행하고자 하는 분들을 모시고 진행자로서 역량을 갖출 수 있도 록 돕는 모임도 운영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역할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즐거움의 연속이었지만 힘든 부분도 있었다. 그것은 새로운 위치에서의 ‘나’(자아)와 원래 일하 고 있는 직장에서의 ‘나’ 사이의 갈등이었다. 새로운 것들을 배우
세상에서 꼭 필요한 나의 위치는 어디일까?
고 흡수하며 달라지고 있는 나의 생각과 태도는 회사 생활의 역
이제 곧 1년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회사로 돌아가게 된다. 많은 분
할과 다른 부분이 많았다. 생각의 차이가 발생하며 회사 동료들
들이 물으신다. 진짜 복직할 거냐고, 퇴사할 계획이 없냐고. 나는
에게 회사 밖의 활동들을 이야기하기는 것이 불편해지기도 했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분명한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누구와
회사 밖에서의 관계가 강해지고 새로운 역할이 즐거울수록 회사
함께, 무엇을 해야 행복한 사람인지를 점점 알아가고 있다는 사실
안에서의 생활과 차이가 크게 느껴져 답답하기도 괴롭기도 했다.
이다. 회사에 다니든 다니지 않든 내가 만들어가는 나의 위치와 역
이런 괴로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 책이 있다. 삶의 변화와 새
할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내가 행복하고 또 나를 진짜로 필요
로운 정체성 형성의 과정을 소개하는 책 <마침내 내 일을 찾았다>
로 하는 곳으로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갈 예정이다. 나의 위치와 역
(허미니아 아이바라 저)이다. 이 책에서는 기존의 정체성과 새로
할 찾기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운 정체성 사이에서 방황하는 ‘과도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떠
최근 읽은 책 중 <내리막 세상을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
남’과 ‘머무름’ 사이에서 방황하는 과도기는 새로운 대안이 충분
(제현주 저)라는 책이 있다. 저자는 독서 모임으로 시작해 뜻 맞는
히 탐색 될 때까지 도약을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또한 이 과
동료들과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출판을 포함한 다양한 활동을 했
정에서 기존의 사회와 심리적 결별이 발생하기도 한다. 새로운 인
다. 그리고 협동조합 활동 이후에도 계속해서 삶의 변화를 만들어
간관계에 몰입하며 새로운 공동체로 서서히 이동하게 된다. 점차
가고 있다고 한다. 나와 우리 모임에서 닮고 싶은 하나의 롤모델이
나는 이러한 과정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여전
다. 이 책에서 기억에 남는 문장이 있다.
히 괴로움은 있었지만 한결 편한 마음으로 새로운 역할에 집중
‘자신이 바라는 세상을 향해 행동에 나서는 것 역시
할 수 있었다.
개인이 내려야 할 선택이요, 일상의 한 부분이다.’ 그렇게 미교독 모임을 시작한 지 3년이 흘렀다. 세상에서 나의 위 치는 더 나은 교육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분들 사이로 옮겨지고 있
삶의 변화를 위해서는 행동이 필요하다. 무엇부터 해야 할지 막막
다. 모임을 찾아주시는 새로운 분들 덕분에 자연스러운 변화가 생
하다면 나에게 닥친 문제들이 해결되는 세상을 상상하면 된다. 그
기기도 했지만, 도움을 얻고 싶은 분들을 직접 찾아 나서기도 했
리고 나의 위치를 문제의식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 문제 해결을
다. 새로운 사람들 사이로 나의 위치가 옮겨지면서 내가 해야 하
위해 한발 더 나아간 사람들 사이로 옮기면 된다. 그 사이에서 내
는, 내가 할 수 있는 새로운 역할들이 만들어져 갔다.
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찾고 선택해 보자. 세상에서 꼭 필요한 나의 위치를 찾을 때까지.
엄마의 라이프스타일 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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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인터뷰
당신이 새로 시작한 일은 무엇인가요? 새롭게 시작한 일이나 취미, 새로 갖게 된 습관 또는 버리게 된 습관, 용기를 내어 시도한 작은 일탈과 모험, 그로 인해 경험하게 된 내 생활의 변화, 나와 타인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와 새로운 시선들.
일상에서의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와 시작을 묻는 일곱 가지 질문에 대한 열일곱 명의 목소리
1. 올해 새로 시작한 일이나 새로 경험한 일들이 있나요? 2. 그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3. 시작하신 일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인가요? 그렇다면 그 일을 위해 하루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쓰고 있나요?
과거형이라면 그 ‘작은 시작’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투여했나요? 4.
그 일은 시작하고 나서 나의 일상에 생긴 변화들이 있나요?
5. 그 일을 하는 데에 어려움이나 장애물은 없었나요? 6. 들려주신 ‘작은 시작’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또는 어떤 의미가 되기를 바라나요? 7.
16
다가오는 2019년에도 시작하신 그 일을 계속 이어나가실 생각인가요? 관련된 계획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별별 vol.2
1. 부모님의 건강 악화. 2. 본의 아니게 시작되었다. 1. 서초 FM 진행자.
3. 네. 하루에 한 시간 정도.
2. 라디오 진행이 꿈이었고, 복지관에서 서초 FM
4. 삶이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자원봉사자 진행자를 모집한다를 봤기 때문입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소중하기도 하고.
3. 현재진행형입니다.
5. 매 순간순간이 어려움이자 장애물.
매주 목요일에 교육을 받았고, 지금은 격주로
6. 기대하신 작은 시작이기보다는 타의에 의해서
일어난 변화는 감당하기가 더 힘들었던 것 같았다. 7. 타의에 의한 계획이 아닌 자발적인 계획을
인터뷰를 따고 원고를 써서 다른 두 명의 진행자와 호흡을 맞추어 녹음을 하고 있습니다. 4. 일상에 활력이 생겼습니다.
하고 있습니다. 물론 꼭 실행될 수 있게 해야겠죠.
- 당근
이번에는 친구 결혼식에 사회를 보게 되기도 했습니다. 5. 아이를 키우다 보니 아이 일정과 겹치면
시간상의 장애가 있었습니다. 6. 앞으로 더 많은 도전을 해보고,
아이와 함께 커나가고 싶습니다. 1. 영어 고전 읽기.
7. 계속 진행할 예정입니다.
2.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다 하고 산 것 같은데
지금은 서초 FM의 ‘부아성 프로젝트’에서
영어는 못하기도 하고 안 하기도 한 것 같다.
다른 두 분의 진행자와 함께 진행하고 있는데,
항상 머릿속 한구석에서 문득문득 삐죽거리는
이 작은 시작으로 내년에는 보이는 라디오도
영어를 이제라도 소환해서 대면하고 싶었다.
아들과 함께 진행해보고 싶다는 꿈도 생겼습니다.
3. 현재진행형, 하루 2~3시간.
- 서초 FM 진행자 김신애
4. 매일 밤 2~3시간 온전히 나의 일(영어 고전 읽기)을
위한 시간과 공간을 마련하고 그에 몰두한다. 요즘은 아이들도 함께한다. 5. 글쎄요…. 6. 나에게 매일매일 꼭 해야 하는 일이 있고,
나는 그 일을 기꺼이 하며, 그것은 매일 매일 성장하여 확실한 행복감을 준다. 7. 예, 내년에도 매일 영어원서를 읽을 것이다.
- 나의 영어 자아 Zasmine
엄마의 라이프스타일 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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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회복지사 자격증 딴 것.
1. 뉴질랜드 한 달 살이.
2.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 때
2. 일상에서의 탈출, 경쟁에서 벗어나 여유 만끽,
뭔가 준비해놓으면 좋을 것 같아서.
새로운 세상 마주하기.
3. 자격증은 땄고, 약 10개월가량 공부하고,
시험, 리포트, 실습….
3. 여행 준비는 부끄럽지만 1주일 정도. 그런데 아이와의
해외 배낭여행 공부를 틈틈이 많이 했어요.
4. 아직 변화는 없음.
4. 대한민국이란 나라를 더 사랑하게 되었어요.
5. 아이 어린이집 보육 시간 동안 해야 하다 보니
시간적인 제약이 어려웠음.
나라가 멋있어져야, 국민이 멋있게 살 수 있더라고요. 지나친 경쟁 속의 우리나라를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을 통해
6. 뭔가를 배우고 시도하고 있는 것에 살아있음을 느낌.
우리나라도 멋진 곳으로 되었으면… 그리고 일상의 소중함을 배웠네요.
7. 복지, 교육 분야에 좀 더 배워볼 예정.
화려한 관광지가 아니라 시골의 한적한
- 케세라세라!
뉴질랜드의 마을이 주는 평안함. 작지만 소중한 것들에 대한 감사함을 배웠습니다. 5. ①경제적인 비용부담.
② 새로운 시도를 위한 용기. (두 아이와 20시간+2번 경유의 저가 항공 타보기, 배낭여행 앱을 통해 숙박하기 등) ③ 언어적 장벽. 1. 장 보러 갈 때 시장바구니 따로 챙기기.
6. 우선 10여 년 육아의 보상으로 쉼과 휴식이었네요.
2. 비닐봉지에 물건 담아오는 것을 줄여보려고요.
이제 아이가 내 삶의 중심이 아니라 나 자신이 삶의 중심에 둘 수 있었던 전환점이었어요.
3. 지금도 하고 있고,
나갈 때마다 꼭 시장바구니를 챙깁니다.
7. 2019년에는 아이들과 함께 여행지를 선정하고
4. 집에 비닐봉지가 상대적으로 줄었습니다.
같이 준비해 볼 생각입니다. 세계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생각의 폭이 넓어지고
5. 잊어버리거나 계획 없이 장을 볼 때 어쩔 수 없이
비닐봉지에 물건을 담아올 때가 있습니다.
깊어질 수 있는 여행을 해보렵니다.
- 물처럼
6. ‘사는 대로 생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기’ 위한 가치에 있어 제가 해볼 수 있는 작은 실천을 하는 것이 우선인 것 같습니다. 7. 계획성 있게 장 보는 것을 추가로 실천할 예정입니다.
- Una Lu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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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 vol.2
1. 지방선거에 출마해 ‘후보자님’ 역할을 경험해보았습니다. 아쉽게 낙선해서 ‘낙선자님’도 해봤고요. ^^ 2. 아이들 키우는 일이 동네 정치와 관련되어 있다는 깨달음을 준 경험이 있었어요.
그때 같이 열 받았던 이웃들이 지역 정치와 선거에 참여해 보자는 얘기를 계속했고, 어쩌다 보니 제가 후보자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3. 낙선으로 후보자 혹은 준 정치인의 지위에서는 벗어나게 된 것 같아요. 다행히…^^
하지만 선거라는 과정을 통해 굉장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이야기들을 듣게 되어서 제 삶의 반경은 훅 넓어진 게 사실입니다. ‘선거’로 놓고 보자면 과거형. 약 100일에 가까운 시간을 100% 쓴 거나 다름없고요. ‘삶의 변화’라는 측면에서는 일상에서 이웃과 지역 정치에 대한 관심, 혹은 소통과 공동체의 문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더 많은 새로운 분들을 만나게 되었어요. 지역의 각종 위원회 등에도 들어가게 되었고요. 들쭉날쭉하긴 해도 평균 하루에 1~2시간은 쓴다고 볼 수 있겠네요. 4. 주변의 일에 관심이 생길 때, ‘에구 어쩌나….’하고 마는 게 아니라, 나서서 말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런 일이 있대요. 어떻게 하죠? 작더라도 뭐 도울 방법이 없을까요?’ 5. 능력을 넘어서는, 뜻하지 않은 일에 휘말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살짝 들기도 하지요.
그리고 알아야 하고 공부해야 할 것이 많아져서 부담도 되고요. 아이들도 돌보고 살림도 해야 하는데, 그 일들이 뒷전이 되는 것 같아 자괴감이 들 때도 있고요. 6. ‘나’의 틀을 넘어 ‘우리’를 위해 공개적인 활동을 해본 셈이에요. 제가 그런 용기를 냈다는 것이 대견하지요.
직접 선거라는 과정을 겪으며 우리 정치의 문제점을 겪고 문제의식을 가지게 된 것도 중요하고, 선거 과정이나 공인의 삶을 감내하는 것이 내게는 버겁다는 걸 알게 된 것도 큰 성과고요. 직접적 정치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생활 속에서 좀 더 깨어있는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데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7. 소통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어요. 공동체를 이루면서 살 수밖에 없는 게 인간인데,
그 과정을 매끄럽게 하는 게 정말 어렵고 도움이 필요한 일이란 걸 절실히 느낍니다. 공동체의 소통을 돕는 일을 좀 더 깊이 있게 할 수 있도록 공부하고, 관련된 일들을 경험하며 배우고 싶어요. 퍼실리테이션 공부를 하고 있고, 지역의 교육 관련 위원회 등에 참여할 예정입니다.
- 과천의 슈퐁크, 동현태현 엄마
엄마의 라이프스타일 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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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둘째가 이번에 초등학교를 졸업했답니다.
작년 큰딸 졸업식 이후 두 번째인데 이런 ‘식’에 참석할 때마다 느끼는 게 있답니다. ‘박수, 응원, 격려… 참 인색하구나….’ 백칠십여 명의 졸업생들이 한명 한명 단상에 올라가 졸업장과 상을 받는데 손뼉 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답니다. 단상에 올라서는 아이들은 기쁘면서도 한편으론 설레고 긴장될 텐데…. 큰 박수 소리를 같이 받으면 그 걸음이 더 씩씩해지고 뿌듯함도 클 텐데…. 처음 몇몇 아이들만 박수를 받다가 나머지는 아예 없이…. 그래서 너무 안타까워 혼자라도 손뼉을 쳤답니다. ㅎㅎ 처음엔 저도 쑥스러워 손뼉을 치다가 말다가 몇 번 반복하다 이건 아니다 싶어 계속 쳤답니다. 중간중간 몇 분이 같이 치다가 또 혼자 치다가 사회 보시는 선생님께서 박수로 격려해달라고 말씀하시니 또 잠시 큰 박수 소리…. 아이들의 상기된 표정을 보니 제 가슴이 뭉클…. 둘째가 쑥스러워하며 단상에 올라섰을 때는 박수도 쳐야 하고 사진도 찍어야 하고, 분주하게 움직인 손. 백칠십 명 아이들 마칠 때까지 계속 이어진 박수. 손이 퉁퉁 부어 쥐가 나려고 하는 느낌이…. 그래도 아이들 보니 맘이 왜 이리 찡한지…. 여기 아이들 모두하나하나 소중한 딸 아들일 텐데 왜 축하와 응원을 해주지 않을까. 적어도 내 자식에겐 할법할 텐데…. 돌아오는 길에 딸에게 “단상에 올라가기 전, 올라갔을 때 어땠어?”라고 물으니 너무나 떨리고 긴장되었다며 잠시였지만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네가 올라갈때 큰 박수소리 들렸다면 어떨 것 같아?” 라고 물으니 덜 긴장될 것 같고 혹시나 단상서 실수해도 모를 것 같아 좋을 것 같다고 살짝 웃으며 대답하네요. 그날 저녁 어깨가 빠질듯 아팠지만 맘은 뿌듯했답니다. 아이들에게 제 박수소리가 들렸을지는 모르겠지만요. 2. 아이들 하나하나 모두 소중하다고 말만 하지 말고
따뜻함과 관심을 사회에서 느꼈으면 하고 작은 시도나마 해보았습니다. 3. 재작년까지 유치원에서 몇 년간 근무하며 졸업식을 여러 번 보냈는데
갈수록 축하해주는 문화(?)가 소극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답니다. 개인적이기도 하구요. 타인에게서 축하받는다는 것이 이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꼬마에게 학생에겐 어쩌면 힘이 될 수 있고 사회의 관심을 느끼는 일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가족이 아니어도 축하와 격려, 응원 그리고 관심을 주고 적극적으로 행동하자고 늘 생각합니다. 4. 주변의 상황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되고 민감해 지게 되는 것 같아요. 5. ‘내가 오버하는걸까?'하는 나 스스로의 반성과 자신감 결여. 6. 주변 사람에게 내가 줄 수있는 작은 관심의 하나. 뿌듯함. 7.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하려고 합니다. 혹시나 싫어할까요?
앞으로의 사람들이 남에게서 축하받는 걸 부담스러워하고 어색해한다면 그만해야겠지요.^^
- 넉넉할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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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 vol.2
1. 45 살에 늦둥이를 낳아 처음처럼 키우고 있었습니다. 2. 늦게 결혼하여 첫째와 둘째 아이를 낳고, 돌이 지나서 셋째 아이를 1. 하는 일과 전혀 다른 분이야 자격증 도전.
계획하였는데 이제서야 귀여운 늦둥이가 태어났습니다. 물론 아이도 예뻤지만 오 남매 중에 넷째였지만
2. 지금 생활에 대한 외도.
아이가 많은 게 좋았습니다.
3. 주 이틀 꼬박 3시간 공부. 주말 공부.
3. 벌써 3살이 되었습니다.
두 아이가 방학이라 학원과 방과후 교실을 다녀오는 동안
4. 체력적으로 힘들었지만
시간을 쪼개고 촘촘한 일과를 보내게 됨.
막둥이랑 함께 놀아주며 따스한 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4. 기다리고 기다리던 중에 다섯 번의 유산 후
5. 회사야근.
6번째에 태어난 아이라 처음처럼 설레고 늦둥이라 그런지 6. 그동안의 편협한 생각들 속에서
생활에 매일 매일 축복입니다.
다른 생각의 그릇을 만들어 줌. 5. 현재는 육아휴직 중이고 직장을 다니면서
어려운 환경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여러 번의 유산을 경험하고 병원 검진을 받는 동안
나 자신에게 토닥토닥.
약간의 눈총을 받았네요. 우울증도 찾아와 직장 생활에서 7. 네. 아직 더 해야 하는 공부들이 있어서요.
동료들과의 관계도 많이 안 좋아졌습니다.
시간 할애하는 것은 적더라도 6. 저에게는 늘 도전이었습니다.
(작년에 많은 걸 해놔서요) 꾸준히.
도전이 이루어 주었고 저에게는 세상을 바라보는 생각과 관점이
자격증 손에 넣는 그 날까지.
- 나는 그냥 있는 사람이 아니다
아이를 통해 많이 너그러워졌습니다. 7. 내년에는 자리가 없어 올해 3월에 어린이집에 입소하게 되었습니다.
임신 중에 머물러 있던 청소년지도사 공부를 할 것이며 아이는 사랑을 무럭무럭 줘야겠죠.
- 국민의 딸 보영 ♡ 보민 ♡ 보은맘 대화 1. 홈트레이닝. 2. 건강 상태가 안 좋아진다고 느껴서. 3. 네. 40분. 4. 몸 컨디션이 예전보다는 좋아졌다.
1. 네. 2.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5. 귀찮아서 하기 싫을 때. 6. 나 자신을 좀 더 소중히 여기게 되는 의미.
3. 네~~ 5시간. 4. 좀 더 긍정적으로 사고하게 됨.
7. 네. 홈트레이닝 뿐 아니라
야외에서 산책을 시작하고 싶다.
5. 상담 과정에서 어려움.
- 최미화
6. 내 삶을 좀 더 적극적으로 영위할 수 있게 됨. 7. 네. 상담 관련 일을 다양하게 지속시켜 나갈 계획.
- 도전은 늘 아름답다
엄마의 라이프스타일 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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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반려묘를 입양하게 되었습니다. 2. 막연하게 반려동물과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저의 상황이나 생활패턴을 고려해 볼 때 좀 더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1. 짬짬이 시간을 내어 독서와 인문학 강좌를 듣는 일.
고양이와 함께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요. 그러던 차에 지인이 새끼 고양이들이
2. 내가 전혀 의도한 바가 아닌 하늘의 뜻에 의한
태어난 가정을 소개해 주어 그 아이들 중 한 마리를
육아가 시작되었다. 근근이 하던 일도 멈추고
집으로 데려오게 되었습니다.
오롯이 아이와 함께해주었다. 그러다 보니 ‘나’란 존재는 없고 ‘엄마’라는 존재만 남더라.
3. 네. 현재진행형이지요.
점점 바보가 되어 가는 기분, 쫄보 느낌.
고양이에게 이름도 지어주고,
이런 기분이 지속되면 난 계속
온전하게 우리 가족이 되어 함께 지내고 있지요. 집에 있는 시간에는 틈틈이 옆에 함께 있어 주려고 합니다.
‘누군가를 원망하면서 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 스스로를 위로하고 다독이며
4. 매일매일 관심을 주고, 돌봐주고 사랑해줘야 할 존재가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나 더 늘어났어요. 동시에 나를 사랑해주는 존재, 3. 육아맘에게 자유 시간이란 참 애매모호 하다.
나에게 위로가 되는 존재도 하나 더 늘어났지요. 그리고 고양이와 한집에 살면서 곁에서 늘 관찰하다 보니 인간 중심의 세상에서 동물은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에 대해
유일한 자유 시간이 ‘아이의 낮잠 시간 2시간’이 전부이다. 황금 같은 2시간 동안에 해야 할 일 많지만
종종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다 제쳐놓고 읽고 싶은 책을 읽었다. 지금까지도~ ^^ 5. 반려동물과 함께 살다 보면 감내해야 할 불편함도 있는데, 4. 복잡했던 생각과 마음이 잔잔해지는 것을 느낀다.
이러한 불편함에 대해 다른 식구들의 양해와 이해를
큰 변화는 아니지만 누군가가 나에게
구해야 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이대로도 괜찮아~’라고 용기를 6. “사랑”
북돋아 주는 것 같아 행복해졌다.
7. 반려묘가 건강하고 편안하게 우리와 함께
5. 아이의 낮잠 시간을 활용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지낼 수 있도록 앞으로도 노력할게요.
밀려있던 집안일과 우선순위를 앞다투는
- 크크크
이것저것 해야 할 일들로 독서가 밀리기도 한다.^^; 6. ‘별 볼 일 없는 인생’이 아닌
‘괜찮은 인생’으로 변해가고 있음을 조금씩 느낀다. 인생 생각하기 나름 ^^ 7. 2019년에는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다.
더불어 나의 자유 시간도 보장된다. 그래서 독서량을 늘려볼 계획이다.
- 예시스터즈 볼런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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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 vol.2
1. 방탄소년단을 좋아하기 시작했어요. 2. 유튜브를 보다가 공연영상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1. 놀잇감과 생활소품을 만드는
마음이 두근두근하더라고요.
정기적인 엄마의 손작업 모임이요.
3. 네. 지금도 좋아하고 있어요.
2. 좋은 계기가 되어 배운 경험을 나누고 싶었어요.
아이가 자면 블루투스 헤드셋으로 음악을 들어요.
3. 아이가 자신의 놀이에 혼자 몰입하고 있는 시간 틈틈이,
그리고 육퇴 후 혼자만의 시간에
하루 중 제일 행복한 시간이에요. 4. 콘서트나 영화는 ‘티켓팅’해서 보러 가요.
매일 1~2시간 내외를 쓰고 있어요.
즐거움이 생겼어요. 기다리는 게 생기기도 하고요. 파이널 공연은 언제 할까? 이번 컴백은 어떨까? 이런 거요.
4. 아이 친구들의 생일 선물, 놀잇감이나 뜨개 소품,
생활용품 등을 직접 만들어 주게 되었어요.
5. 특별히 없어요. 남들에게 말하기 조금 쑥스러운 건 있어요.
자연에 가까운 재료를 찾고 만드는 과정에서
유튜브를 보고 있으면 입꼬리가 올라가는데
자연스럽게 플라스틱 장난감을 비롯한
남편이 지적하면 민망해요.
일회용품 덜 쓰기에 더 신경 쓰게 되었고요.
6. 삼십 대 중반이 되면 플레이리스트가
5. 빠르게 대량 생산되는 물건보다 시간과 노력이
바뀌지 않는다는 조사결과가 있더라고요.
많이 들어가서 결과물이 나온다는 당연한 일에
저 역시 실제로 듣던 음악을 계속 들어왔고요.
마음이 급해질 때가 있었어요.
BTS를 좋아하면서 다시 음악을 찾아 듣기 시작했어요.
조급해서 과정을 즐기지 못하는 경우이지요.
차트에 새로 뜨는 음악도 듣고요. 애들이 추천하는 곡들도
6. 아주 작은 것이라도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는
의미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요. 더 예쁘고 세련되게, 실용적으로! 등만을
들어요. 계속 내 플레이리스트가 업데이트되길 원해요. TOP100 정도는 들어주는 할머니로 늙고 싶어요. 7. 여행 안 좋아하는데 국내 티켓팅이 너무 힘들어서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느끼고
새로운 세계순회경기가 시작되면
의미를 담는 경험을 해볼 수 있었습니다.
딸아이와 스타디움공연에 가보고 싶어요.
- 레지나
7. 꾸준히, 지치지 않고 재미있게를 모토로
계속 모임과 활동을 해나갈 예정입니다. (매주 목요일 오전 ‘에코맘 손작업 모임’이란 이름으로 모입니다)
- 잔잔
엄마의 라이프스타일 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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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림책 만들기.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지만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글을 쓰고 싶은데 좀 쉽고 가볍게 시작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그래서 그림책 만들기 수업을 들었지요. 2. 나를 위한 시간과 활동을 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뭔가 이야기를 정리하고 기록하고 싶기도 했고요. 책을 만들어보고 싶기도 하고…. 이유는 너무 많네요^^ 3. 일주일에 한 번 수업은 가볍고 재미있게 들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릴 생각을 하니 나름대로 부담이 되기도 했어요. 언제나 뭔가 그릴 수 있는 도구를 잔뜩 들고 다녔지만 정작 지도해주신 작가님의 원주에 있는 작업실에 가서야 비로소 조금씩 진도가 나가기도 한 거 같아요. 그렇게 5개월쯤 지나고 그림책이 완성되었지요. 4.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어요.
아무래도 그림책을 만들면서 가장 어려웠던 그림을 좀 더 편하게 그리고 싶어서였어요. 하루에 한 장 그림을 그리는 <걍그리세>에 참가하며 그림 그리기 시작했어요. 잘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림 그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좀 버린 거 같아요. 뻔뻔해졌다고나 할까요^^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데에 집중하고 누군가의 평가에는 관심이 없어졌어요. 평가받을 수준도 아니지만 그런다 하더라도 하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하는 일이니 그다지 부끄러울 일도 없더라고요. 5. 자기만의 방이 생각났어요. 절대적인 시간과 여유가 있음 좋을 텐데 아쉬웠지요.
집중해서 뭔가 할 시간 몰입할 시간이 너무 없고 사용할 수 있는 시간들이 너무 나누어져 있어서 어디론가 떠나고 싶기도 하더라구요. 6. 오랜시간 막연히 생각해오던 일을 시작하는데 다른 것이 필요한 건 아니었어요. 그냥 마음을 먹으면 되는 일이더라고요.
그동안은 못 하는 이유를 백 가지도 넘게 쓸 수 있을 거 같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시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도 그만큼 쓰겠더라고요. 그 다음 잘하든 못하든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하기로 마음먹고 있어요. 못하면 그만두고 다시 또 할만할 때 시작하면 되니까요. 7. 그림책 만들기와 그림 그리기는 계속 해보고 싶어요. 꼭 책을 만들겠다는 건 아니지만….
그리고 내년에 시작할 일은 몸 살림이에요. 오랫동안 썼으니 중간 점검 및 관리 이런 게 필요할 거 같아요.
- 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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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 vol.2
별별 엄마의 라이프스타일 저널
Vol. 2
발행일
2018년 12월
발행인
신은희
편집장
최은영
디자인
성지선
발행처
밸류가든
후원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밸류가든은 일상의 인문적 체험을 통해 공감능력이 있는 성숙한 시민으로의 성장을 돕는 시민교육센터입니다.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28길 17-1 2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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