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잡지 [서리풀사이로]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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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의 말

를 다시 내면서...

이정숙 편집장

또 12월입니다. 교정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흘러넘치고 이웃들이 얼굴을 마주하며 안부를 묻고, 반가운 이들과 한 끼 식사를 나누던 평범한 일상을 기다리면서 한 해를 보냈습니다. 온라인으로 수업하고, 비 대면으로 회의하고 랜선 파티로 견뎌보았지만, 왠지 모를 허전함과 외로움이 밀려옵니다. 어느 누구나 힘들고 어려운 날들이지만 서로를 위로하는 따스한 손길이 있기에 용기 내어 봅니다. <서리풀 사이로> 창간호를 들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작은 책자가 가져다주는 기쁨을 나누며 두 번째 이야기도 엮어보라는 응원과 격려 속에서 2호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더욱 지치고 아픈 지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양재2동 마을 모습과 우리 이웃들의 진솔하고 소박한 이야기를 다시 묶어봅니다.


contents

02

편집의 말 이정숙

04

/

편집장

서리풀사이로 2호에 부처 우현옥

/

도서출판 책고래 대표

08

옛 추억 소환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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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정겨운 두 번째 고향

17

초등학교를 품은 근린공원

21

꽃힐링 프로젝트

26

자원순환 가게

27

용기 내 캠페인

28

제로 웨이스트를 꿈꾸며

30

양재 작은 마을 축제

36

봉사의 매력

38

당근마켓

40

길마중길 산책

43

체중미달자의 다이어트

46

이상하고 다정한 목소리들

49

이웃집의 양봉

53

사춘기의 슬픈 축복

56

친구들과 함께 하는 둘레길

58

그리운 부모님

60

마스크로 본코로나 세상

64

위령탑과 결혼식

67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

김란

70

사진으로 보는 양재천

/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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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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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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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숙

편집부

편집부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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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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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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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금

박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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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혜은

/

이혜진

/

희음

이순미

/

강지영

/

윤영미

김복실

/

/

김지숙

박지수


서리풀 사이로 2호에 부쳐

2020.12.05

두 번째 이야기에 부처 ‘안녕’ 하다는 말 우현옥 도서출판 책고래 대표

“언니, 잘 지냈어?” 오랜만에 걸려온 후배의 전화에 선뜻 답을 못 한 채 한참 망설였습니다. 잘 지 내냐, 안녕하냐는 말…. 늘 누구를 대하든 편하게 특별한 의미 없이 건넸던 인사가 이토록 사무치게 들려오는 건, 아마도 2021년 한 해가 저에게는 생사를 넘나들며 병마와 싸우느라 매 순간순간, 일 분 일 초가 소중했기 때문일 겁니다.

양재동에 출판 둥지를 튼 지 7년이 지났습니다. 사무실이 골목 안쪽에 위치한 덕분에 자연스레 작은 식당들의 단골이 되었지요. 점심시간이면 딱히 방향을 정하 지 않아도 단골집 중 한 곳으로 데려다 주는 발걸음에 익숙해졌습니다. 하지만 유 래 없는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골목 안 풍경이 하나 둘 바뀌어 갔습니다. 허름 한 빌딩이지만 늘 사람이 붐볐던 김치찌개 집, 아늑했던 커피숍, 칼칼한 바지락 국 물에 콧물이 쑥 들어갔던 칼국수집이 문을 닫았습니다. 곧 떠날 거라 짐작을 하면 서도 어떠시냐고, 괜찮으시냐고 한 마디 건네지 못했습니다.

지난겨울엔 눈이 참 많이 왔습니다. 앙상한 가지에 눈꽃이 하얗게 내린 걸 보면 서 병원에 들어갔는데, 나올 땐 어느새 노란 개나리가 연분홍 벚꽃이 만개해 있었 서 리 풀 사 이 로 4

지요. 유난히 덥던 여름엔 항암치료를 받느라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도 몰랐고요. 그리고 다시 겨울이 왔습니다. 꼬박 1년 동안 나의 시간이 멈춘 듯합니다.

이제 겨우 멈춘 시간을 되돌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니, 거기에 나의 다정한 이웃과 친구와 형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저 습관처럼 건네던 안부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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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라 진심으로 나의 건강과 형편을 걱정하고 염려해주던 따듯한 마음이 다시 나 를 일으켜주었습니다. 사는 게 다 그런 거 아닐까요? 늦은 깨달음에 눈시울이 붉 어집니다.

<우리가 만드는 서리풀 이야기>가 특별하고 귀한 건 그 때문 아닐까요? 예전 처럼 매일 아침 밥 먹었냐고 챙겨 물어보진 못해도 진심으로 서로의 안부를 걱정 하고 염려하며 사정을 살피는 이웃이 있다는 것, 그 이웃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는 것. 뜻을 모아 함께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서로 마음으로 응원한다는 것. 너도나도 참 힘든 시기에 이보다 든든한 언덕이 있을까요?

책을 만드는 일을 30년 가까이 한 사람이기에 잡지 만드는 일의 고통과 힘듦 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창간호를 내는 건 어쩌면 누구나 시도해 봄직한 일 이지요.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두 번째 책을 내는 일은 용기와 신념이 필요하지요. 물론 더 많은 관심과 응원도 필요하고요. 보채지 않아도 저절로 영글어가는 곡식 처럼 두 번째 <우리가 만드는 서리풀 이야기>에서는 더 옹골찬 이야기로 가득하 네요. 원고를 만들고 편집하느라 고생했을 편집부에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합니 다. 보태어 2022년 세 번째 <우리가 만드는 서리풀 이야기>를 기다리며 내 다정한 양재동 이웃에게 진심을 담아 인사를 건넵니다. “다들 잘 지내고 있는 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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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드는 서리풀 이야기


우리가 만드는 서리풀 이야기


양재2동 이야기


옛 추억 소환하기 2019년, 양재2동 골목축제 작성자 이순화

“저요, 저요, 저요!” 늘어진 만국기 아래 여기저기서 골목 가득 울려 퍼지 는 동네 아이들 함성이다. 멋진 모자를 눌러 쓴 키다리 마술사 아저씨를 향한 간절한 외침이다. 옛 시골 장터에 서나 그려질 듯한 그림이 서울 서초구 양재2동 한 골목에 서 펼쳐진다. 2019년 8월 마지막 날 <옛 추억놀이 소환> 이란 제목으로 열렸던 골목축제 이야기이다.

아들이 나중에 결혼해서 자기 아들에게 물려준다며 잘 보관해 둔 추억의 물건들로 축제를 열어보면 어떨까? 그런 마음에서 출발한 서울 서초구 양재2동 마을 골목축 서 리 풀 사 이 로

제 <옛 추억놀이 소환>을 준비했다. 이제는 스물한 살로 훌쩍 커 버린 아들이 어릴 때 구슬치기, 딱지치기 하던 구슬과 둥근 딱지, 네모 딱지, 종이 딱지, 고무 딱지가 다 나왔다. 아들의 손때가 가득 묻은 소중한 장난감이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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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컨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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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시골장터에 마술사의 출현으로 모두가

께 공동의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꿈꾸는 골

하던 일을 멈추고 넋 놓고 즐거움에 흠뻑 빠

목대장’이라는 모임을 갖고 <다 같이 돌자, 동

져 있던 한 컷도 축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

네 한바퀴> 골목사업으로 골목축제를 준비한

요한 장면이다.

것이다. 주민 300~400명이 한자리에 모이는 아름다운 장관이 펼쳐진 멋진 축제 덕분에 많

축제 이야기를 하기 전 잠깐 우리 동네 이

은 주민들이 즐거워한 행복한 시간이었다. 사

야기를 해 볼까 한다. 서울시 서초구 양재2동

람들이 많이 다니는 골목에 마을 골목축제에

은 아파트가 거의 없고 거대한 빌라 촌을 형

<옛 추억놀이 소환> 현수막을 내걸고 경로당

성하고 있다. 가까이에 양재천이 흐르고 근린

이 있는 동산 어린이 놀이터는 만국기가 펄럭

공원을 끼고 있다. 초·중·고등학교가 다 있고

이는 축제의 장소로 탄생했다. 하나 둘 차려

시민의 숲과 크고 작은 여러 공원들을 품은

진 부스 마다 재미있는 놀이가 참가자들을 매

자연 친화적 동네이다. 이러한 입지조건 덕분

혹한다. 찰떡 위에 예쁜 문양을 찍어서 손바

에 동네에 한번 들어오면 아이들이 다자라도

닥만 한 뻥튀기 과자에 올려 먹는 떡 모양 찍

동네를 떠나지 않는 큰 특징이 있다. ‘아이들

기 부스가 인기 절정이었다. 색색의 스칸디아

키우기 좋은 동네’라는 정평이 나 있다. 그러

모스 이끼로 멋진 액자를 꾸미는 부스 역시

나 별다른 커뮤니티 공간이 없어서 공동체를

인기를 다투는 곳이다. 어렸을 적 누구나 한

활성화할 모임이나 단체를 수용하기가 쉽지

번은 해봤다는 뽑기 놀이 부스의 상품은 소라

않았다. 그래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함

과자, 눈깔사탕 등 그야말로 옛날 과자들이

우리가 만드는 서리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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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환되었다. 구슬치기, 딱지치기는 물론 제기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조그만 국자

차기, 투호놀이, 물총놀이, 카드놀이, 젠가 등

에 설탕을 넣고 불 위에서 살살 녹이다 소다

여럿이 함께 어울리기 딱 좋은 놀잇감들이 곳

를 뿌려 황갈색으로 변하면 주저 없이 철판에

곳에 펼쳐졌다. 동네 사람들의 생각과 의견을

탁 붓고 누름이로 눌러 별모양, 비행기 모양

모아 보는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우

을 찍어 주면 완성이다. 줄을 선 시간이 헛되

리 마을에 바란다’는 의견을 모으는 게시판도

지 않도록 축제가 끝난 후 1시간 여 동안 ‘달고

이젤 위에 놓아뒀다.

나’ 부스는 계속 운영되었다. 달콤함을 너머 옛 추억의 한 자락을 느끼게 한 시간이었다.

오늘의 이 풍경을 간직할 수 있도록 즉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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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촬영하여 뽑아 주는 즉석사진관 부스도 마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폐건전지 수거함을

련했는데 옛날 교복을 입은 남·여 학생이 되

나눠 주는 부스였다. 단독주택이나 다세대주

어 보는 촬영도 가능하니 이쯤 되면 손님 맞

택, 빌라에는 폐건전지 공동 수거함이 없는

을 준비 끝! 햇살 좋은 토요일 오후 동네 놀이

경우가 많다. 네모난 플라스틱 우유팩에 예쁘

터에 만국기가 펄럭이고 간단한 식순이 끝나

게 제작한 스티커를 붙여 만든 DIY 수거함은

자 여기저기 부스마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이날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이 수거함에 폐

모두 모여들어 북새통을 이룬다.

건전지를 모아 놓으면 차후 수거해가기로 했 다. 함께 뭉쳐서 동네를 돌아보는 일은 꼭 필

이날 최고의 인기 부스는 어디였을까? 떡

요한 일이지만 개인 혼자서 하기에는 엄두가

문양 찍기를 제치고 기나긴 줄을 달고 있는

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 어울리고

곳은 ‘달고나’ 부스였다. 공원 구석 아름드리

뭉친다면 공동의 문제 해결은 물론 이웃 간의

나무 아래 정자 위에 차려진 ‘달고나’ 부스는

정을 나누는 행복한 우리 동네가 만들어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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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믿는다. 폐건전지 수거함은 주민들 반응이

이’와 특별한 날 옛 장터에서만 볼 수 있는 ‘마

정말 좋아서 축제 날 부스에서 나눠 주는 시

술공연’을 소환하여 모두가 동심의 나라로 떠

간을 다시 가졌던 것이다.

나 보는 소중한 성과를 이뤄냈다.

대박 난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보듯, 옛날에는 골목에 모여 앉아 누가, 언제, 어디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처럼 무슨 일이든 시 작하는 일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

를 가고, 무엇을 하는지? 뉘 집 저녁 메뉴가

급속한 경제성장만을 위해 달려온 21세기

무엇인지? 남의 집 대소사를 알고 챙기는 골

의 서울의 한복판에서 옛 골목의 모습을 소환

목문화가 있었다. 지금은 너무나 각박한 시

하는 일은 용기로 시작했지만 만만치만은 않

대를 살아가고 있어서 골목문화는 감히 상상

은 일이었다. 그래도 남녀노소 모두가 참여하

할 수가 없는 그리운 그림이다. 옛날과 같은

여 하나 되는 그림이 그려져 무척 행복했다.

서 리 풀 사 이 로

골목의 모습은 아니지만 반상회에 주민들이 참여하고 자발적인 축제를 만들어 ‘추억의 놀

전깃줄에 쪼르륵 앉아 있는 참새들 마냥 돌

우리가 만드는 서리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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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리 풀 사 이 로

담에 나란히 앉아 순수한 소녀감성으로 환하

성과이고, ‘깨끗하고 살기 좋은 동네’, ‘쓰레기

게 웃으시던 할머니들, 달고나를 먹기 위해

치우기 편한 동네’, ‘아파트 같은 빌라 동네’,

축제가 끝나도 길게 줄을 서 있는 사람들, 마

살기 좋고 깨끗한 골목을 만든 것 또한 큰 결

술사의 조수가 되어 보겠다고 ‘저요 ,저요!’를

실이다.

외치는 꼬맹이들……. 골목에서 피어나는 옛

그 해에 처음으로 골목축제가 열렸고 코로

정이 그리운 우리네의 향수인 듯 아련한 추억

나 때문에 멈췄던 골목축제가 올해 10월말에

으로 아직도 눈에, 귀에 선하다. 작년 이맘때

아주 조그맣게 열렸는데 이런 축제가 계속 열

의 일인데 지금은 까마득한 옛 일처럼 아련한

렸으면 좋겠다는 주민의 행복한 얼굴 속에서

추억이 지금도 골목을 채우고 있다.

앞으로도 추억이 있는 특색 있는 동네로 양재 2동을 떠오를 수 있도록 이런 골목축제가 계

일상생활이 지속되는 ‘골목’을 중심으로 우

속 지속적으로 열려지기를 기대해 본다. ❖

리 모두는 ‘같은 마을사람’, ‘같은 이웃사촌’이 12

라는 공동체 의식과 관계망이 형성된 것이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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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정겨운 두 번째 고향

작성자 오영숙

고층 아파트로 대표되는 서울 서초구에서 고만고만 한 작은 빌라나 주택들이 즐비하고 아파트가 없는 조용 한 동네. 양재2동 가운데 크게 자리한 근린공원은 이곳 아주 매력적으로 느껴지기 충분했다. 지금은 다세대 빌 라나 높지 않은 빌딩들이 즐비하지만 20여 년 전에는 예 전 시골 풍경에 흔히 볼 수 있는 색색의 슬레이트 단층 주택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양재2동은 줄곧 서울 에서 태어나 자란 그녀가 처음 보는 분위기였다. 양재2동을 처음 다닐 때는 서울이라기보다 성남 가는 길에 있는 동네로 버스노선도 몇 개 없는데다 정류장에 서 있어도 버스가 타려는 사람도 못보고 지나치는 게 다 반사였다. 지금은 시민의 숲(매헌)역에 사통팔달로 버 스노선도 다양하며 대기업 사옥들이 들어서고 유동인 구도 많아져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서 리 풀 사 이 로

어느덧 24년째 살고 있는 양재2동은 그녀에게 수많은 추억이 깃든 제2의 고향이다.

우리가 만드는 서리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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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삭의 배를 이끌고 이사한 첫 둥

로 물이 넘쳐 어쩔 줄 몰랐었다. 그 일을 생각

지는 아이러니 하게도 햇살이 잘 드는 지하

하면 지금은 웃으며 그 때 일을 추억하지만

방이었다. 윗집 언니는 친절하게도 첫아이를

그래도 아찔한 생각이 든다. 한번은 큰 장마

임신해 모든 것이 낮 설고 두려운 그녀에게

와 태풍에 마을버스가 다니던 언남 길이 종

맛난 간식도 가져다주고 남편이 출근한 아침

아리까지 물이 차서 함지박이 둥둥 떠다니던

시간엔 문을 활짝 열고 불러서 따뜻한 차 한

해도 기억이 난다. 뉴스에서 비피해로 물바

잔을 타주기도 했다.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

다가 된 동네가 비춰지면 그 시절 아장아장

웃이 낫다는 말을 직접체험하며 마을 살이

걷기 시작하던 아들과 물길을 헤치고 걷던

는 하루하루가 재미있었다. 아이를 낳고 앞

양재2동 그 언남 길이 오버랩 된다.

집, 뒷집 아이와 엄마들이 나와 집 앞 골목에

우리 동네 한가운데 양재근린공원은 양

서 놀던 모습은 이제는 보기 어려운 풍경이

재2동에 살던 모든 주민에게 정말 많은 추억

되었다. 그때 함께 아이를 키우며 친해진 동

의 장소다. 필자에게도 아이 셋의 걸음마 연

네 친구들은 지금까지도 모임 하며 친정 식

습을 시작한 곳이고 아이들이 자전거 연습,

구 같은 이웃이다.

인라인 스케이트 연습을 시키며 엄마 손을 놓고 씽씽 달려가는 모습을 보며 벅찬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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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긴 장마에 그치지 않는 비를 보며

을 느낀 곳이다. 어느 해 인가 정말 눈이 많이

양재2동에 처음 이사와 지하방에 살면서 겪

와서 근린공원의 작은 언덕에서 눈썰매를 타

은 비피해가 떠올랐다. 지금은 양재근린공원

던 일도 입가에 미소 짓게 되는 추억이다. 양

축구장 아래 우수 저류조 공사를 해서 긴 장

재2동으로 처음 이사 왔을 땐 잔디가 깔리지

마도 거뜬히 넘겼지만 공사 전 지대가 낮은

않은 흙바닥이었는데 주말이면 서초구 전역

그녀의 집은 하수구에서 물이 역류해 집안으

의 축구 동아리들의 축구 경기가 열렸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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렇게 경기가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축구공이

아직 생기지 않아서 양재2동 초등학생들이

축구장을 넘어 도로가 아니면 지나가던 행인

서초구가 아닌 강남구의 포이 초등학교를 다

이 맞는 일도 종종 있어 근린공원을 찾는 엄

니고 있었다. 차편도 없어서 저학년 아이들

마들에겐 불만스러운 장소이기도 했다. 밤에

이 걸어 다니기에는 꾀 거리가 있어서 엄마

는 조명이 몇 개 없어 우거진 수풀 사이에서

들이 손잡고 함께 등교하던 일도 이제는 추

누가 나올까 무섭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초

억인거 같다. 첫아이를 낳기 전 이사 왔는데

록 초록한 인공잔디도 깔리고 사람들에게 날

그 아이가 5학년이 되어서야 매헌 초등학교

아갈 수 있는 공을 막아주는 그물망도 설치

가 개교를 하게 되었다. 세 아이 중 막내만

되고 밤에도 불편함 없이 밝혀주는 조명도

매헌 초등학교를 다니게 되었는데 참 좋았

설치되었다. 사람들은 우스겟 소리로 FIFA급

다. 비록 운동장이 없는 학교라지만 양재근

축구장이라고 말하면서 양재2동의 자랑거리

린공원의 축구장을 운동장으로 사용하고 교

가 되었다. 먼지가 폴폴 나던 축구장 모습은

문을 나서면 공원에 둘려 있으니 보통학교의

이젠 사람들의 기억 속이나 빛바랜 사진 속

먼지 나는 운동장보다도 4계절이 다양한 모

에서만 기억 될 듯하다.

습을 보여주는 공원과 놀이터가 아이들이 맘 껏 뛰어 놀게 되는 것 같다. 이런 풍경을 보고

지금은 매헌초등학교, 언남중학교, 언남고 등학교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데 양재2동

이 이곳으로 이사를 결심 했다는 엄마들 이 야기도 들었다.

으로 처음 이사 온 1996년에는 초등학교는

우리가 만드는 서리풀 이야기

서 리 풀 사 이 로 15


양재2동에서 제일 큰 자랑이자 혜택이 시

트도 3군데나 있고 골목골목 편의점들도 많

민의 숲과 매헌 윤봉길 기념관 인듯하다. 봄

아 졌다. 양재2동에 오래 사신 분들은 153마

이 시작하는 4월이면 시민의숲을 둘러 흐르

트, 개미슈퍼 이런 곳들이 기억에 있을 것이

는 양재천변 벚꽃은 해를 거듭할수록 장관이

다. 우리의 삶은 편해지기도 하고 효율성이

펼쳐지고 경남 진해까지 벚꽃여행을 떠나지

높아지기도 했지만 예전 이런 구멍가게는 물

못하는 서울시민들이 벚꽃이 피는 기간 동안

건을 사는 곳 이상의 의미가 있었던 거 같다.

가까운 벚꽃여행지다. 내심 양재2동 주민으

아이들의 안부를 묻고 동네 돌아가는 이야기

로 자부심을 가진다. 또 가을이면 색색의 단

도 나누고 정이 오고가는 공간이었던 거 같

풍 또 한 내장산 단풍 못지 않은 경관으로 점

은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렇게 사라져가는 공

심 먹고 산책하며 우수에 젖어들기 최적의

간은 아쉽기도 하다.

장소이다. 매헌 윤봉길 기념관은 윤봉길의사

지금도 처음 이사 올 때 있던 건물과 골목

의 발자취를 다시금 새길 수 있는 장소로 청

의 모습이 그대로 인 곳들이 많다. 양재2동

소년들의 역사의식을 고취할 수 있는 장소

이 빠르게 달라지지 않기는 하지만 간혹 익

다. 그 맞은편에는 백마부대 충혼탑과 KAL

숙하던 곳이 허물어지고 낮선 건물이 들어서

기 위령탑, 삼풍백화점 위령탑은 모두가 기

는 모습을 볼 때, 늘 익숙하게 인사를 나누던

억해야 할 장소이며 찾아갈 때마다 숙연해

이웃들의 모습이 사라져 갈 때 도시 속에서

지는 장소이다.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 하지

편안함을 주던 동네 모습을 함께 추억을 나

않기 위해 기억하고 찾는 이들이 더 많아졌

누고 싶어진다.

으면 좋겠다.

지금 이글을 쓰면서 같은 양재2동에 살지 만 대부분의 사람들의 기억에는 없는 추억들

필자가 기억하는 양재2동에서의 기억 중

을 되짚어 보며 그날 그 시간에 앉아있는 듯

예전 모 방송에서 양심냉장고를 주는 프로그

새록새록 떠오르는 기억들을 꼭꼭 눌러 담고

램에서 양재2동 주민센터 직원이 받는 방송

있다. 이 시간도 흘러가고 있지만 양재2동에

을 보았는데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진상

서 세 아이를 낳고 키우며 변해가는 동네 모

민원인에게 끝까지 미소로 응대 하는 주민

습을 기억하고 기록하며 또 20여년이 흐르고

센터 공무원을 찾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방송

그 시간에 채워진 이야기들은 지금보다 더

서 리 풀 사 이 로

전 마침 주민 센터 가서 본 적이 있어서 바로

재밌고 따뜻한 이웃들의 이야기가 이어졌으

알아 봤었다. 지금도 가끔 그 직원이 어디에

면 하고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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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멋쩍기도 하다. 지금 양재2동에는 대형마

서 근무하고 있을까 궁금할 때가 있는데 지 금은 그 이야기를 기억하는 사람도 별로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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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를 품은 근린공원

작성자 이정숙

멀리서 초록색 버스가 보인다. 올망졸망 모여 있는 빌 라들 사이로 들어선 18번 마을버스는 양재2동 주민들의 소중한 이동 수단이다. 왁자지껄한 양재역을 벗어나서 영동1교를 지나 한눈에 들어오는 양재천의 멋진 풍경을 선사하고는 어느새 목적지인 매헌 초등학교에 도착한 다. 잠시 한숨 돌릴 사이도 없이 18번 마을 버스는 다시 역으로 다람쥐 쳇바퀴 돌고 있다. 양재2동 주민 센터를 마주하고 있는 매헌 초등학교는 연갈색의 낮은 벽돌담이 알록달록한 담벼락과 어울려 따스함을 자아낸다. 먼저 아치모양의 교문위에 <세계 를 향해 큰 꿈을 펼쳐라>는 슬로건이 인상적이다. 정문 을 들어서면 전시공간인 갤러리가 있고 건너편에는 공 원의 풍경을 고스란히 보면서 점심 식사를 할 수 있는 깨끗하고 세련된 카페테리아가 있다, 그 좌우에는 여학 생의 단정한 가르마처럼 양 갈래로 나뉜 교실 출입구가

서 리 풀 사 이 로

보인다. 교실 입구를 지나쳐 그대로 직진하면 앙증맞은 작은 연못에 꼬물대는 물고기 몇 마리가 보이고 주변에

우리가 만드는 서리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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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고사리 손으로 가꾼 텃밭이 나타난다. 잎

학교 설립 인가가 났다. 하지만 여러 가지 사

사귀가 파릇파릇한 채소들을 조금 지나면 근

정으로 인해 쉽게 준공식을 하지 못하고 있

린공원과 연결된 후문으로 가는 길이 나온

는 터라 신설 학교에 대한 기다림이 더욱 극

다. 몇 발작 걸어 가다보면 왠지 모를 엄숙함

에 달했다. 여러 차례의 주민 공청회가 열려

을 자아내는 윤봉길 의사의 흉상이 교정 한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들이 모여지고 우여

가운데를 지키고 있다. 실물과 거의 비슷한

곡절 속에 드디어 2008년 3월 3일 입학식이

윤 의사의 결의에 찬 얼굴에서 숭고함과 비

거행되었다. 그리고 4월 24일 개교식을 앞두

장함이 흘러 넘쳐 마주하는 이에게 고스란히

고 전날인 23일에는 탄신 100주년 기념사업

전해져온다. 그 숙연함 속에서 기억은 어느

으로 윤봉길 의사의 아호를 딴 매헌 초등학

새 교정을 뛰어다니던 첫아이의 초등시절로

교에 윤 의사의 흉상 제막식이 있어 더욱 뜻

달음박질 치고 있다.

깊은 순간이 되었다. 개교식에는 합창반과 댄스반이 식전 공연

서 리 풀 사 이 로 18

2004년 초등학교에 입학한 큰 아이는 서초

을 준비 하였고, 학교가 들어서기까지 힘이

구 양재2동에 주소지를 두고 있지만 주변에

되어 준 주민들과 여러 기관의 내빈들이 오

학교가 없어 강남구 개포동으로 다녀야 하는

셔셔 자리를 빛내주었다. 댄스 반 친구들의

실정이었다. 차도를 따라가다가 큰 사거리

앙증맞은 춤사위로 축하공연이 시작되었고

를 지나고 다시 걸음을 재촉해서 길을 건너

감동의 축사에 이어 얼마 전 시민의 숲 윤

야 해서 등하굣길이 늘 걱정스러웠다. 이러

봉길 기념관 야외무대에서 탄신100주년 기

한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2001년 11월 1일 근

념 공연을 한 합창반이 순서 마지막을 장식

린공원 안에 있는 주차장 자리에 신설 초등

하였다.

vol.2


“넌 할 수 있어 라고 말해 주세요.” “꿈이 크고 고운 마음이 자라는 따뜻한 말 넌 할 수 있어~”

“큰 꿈이 열리는 나무가 될래요. 더없이 소중한 꿈을

다. 2019년 마을 계획 단 시범 단이 되면서 마 을에 대해 알아보았더니 14개 공원을 보유한 숲세권 동네임이 입증되었다. 먼저 서초구민 뿐 아니라 서울 시민 누구 나 좋아하는 양재 시민의 숲은 더 말할 나위

이룰 거예요~~”

없이 아름다운 공원이다. 꽃과 식물은 물론

“그럼 우리는 무엇이든

야외 결혼식장과 테니스장과 놀이터 등 각

할 수 있지요~~”

종 부대시설까지 갖추고 있어 언제나 인기 만점이다.

한 달여 동안 이른 등교와 늦은 하교도 마

다음으로는 조각공원 뿐 아니라 기획전시

다않고 연습하고 노력한 아이들은 정성껏 노

장과 야외공연장을 갖추고 있어 문화자치구

래를 불렀다.

다운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고 있는 서초 문

용기 있고 의기에 찬 윤봉길 선생의 기상

화 예술 공원도 자랑거리다.

을 닮은 매헌 초등학생이 되길 바라는 마음

어디 그 뿐이랴! 우리 집 대문을 나서면 자

으로 열심히 경청하였다. 단정한 단복 입은

줏빛을 띤 붉은 갈색의 작은 가지에 타원 모

실루엣이,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화음 섞인

양의 잎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밤나무와 푸른

입모양이 첫개교식의 감동으로 고스란히 가

솔잎이 질서정연하게 늘여져있는 소나무가

슴에 남아 있다.

너무나 멋스러운 고인돌 공원이 나온다. 공 원 언저리에 이름에 걸 맞는 고인돌 구조물

양재2동에는 크고 작은 공원들이 많이 있

이 있고 옛 멋을 느끼기에 충분한 정자까지

우리가 만드는 서리풀 이야기

서 리 풀 사 이 로 19


곁들여져 선사시대 유물인 양 한 번 더 돌아

긋한 낙엽을 보며 사색에 잠기게 되고, 눈덮

보게 하는 곳이다. 이렇게 자그마한 공원들

힌 겨울 설경마저 느끼게 되니 계절마다 아

도 빌라 여기저기에 있으니 주거지로 그만

낌없는 선물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인 셈이다.

특별히 주민이 주도하는 마을 축제가 해마

그 중 단연 최고인기를 누리는 곳은 바로

다 열리는데 2019년 가을에는 양재2동뿐 아

<양재 근린공원>이다. 이 안에 초등학교가

니라 내곡동 개포동 인근 주민들까지 500여

생긴 것이니 가까운 거리에 최신기자재는 물

명이 참여하였고 매년 풍성한 볼거리, 먹을

론이고 사시사철 자연의 변화를 한 눈으로

거리, 체험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주변 초등

느낄 수도 있으니 최상의 학교 환경을 가지

학생들과 주민들과 예술인들로 구성한 공연

게 된 것이다.

역시 해마다 즐거움을 더해주고 있다.

이름 그대로 생활권 거주자들의 건강과 휴

근린공원 안 매헌 초등학교에서 큰 아이는

식과 정서안정에 쓸모가 많은 근린공원인데

그 아름다운 교정에서 2년을 보낸 후 제2회

다가 주변에 초중고가 한 자리에 있고 주민

졸업생이 되어 인근 중학교로 진학하였고 10

센터나 우체국 같은 공공장소와도 멀지 않아

년 터울 늦둥이는 12회 졸업생이 되었다. 강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

산이 한 번 변한 세월만큼 행복한 학부모가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대화하며 간식도 나누는 커다란 정자는 사랑방이 되기

되어 공원에서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만들 었다.

도 하고, 어린 아기를 데리고 나온 보호자들

공원을 끼고 정겨운 녹색 버스가 들어온

은 누구든지 육아의 고충을 나누는 상담소

다. 버스를 가득 채운 손님들은 하나둘 씩 종

가 되기도 한다. 직장인에겐 식후 한 바퀴 도

점에서 내리고 학교를 파한 아이들은 놀이

는 산책로가 되기도 하고 학교를 마치고 나

터로 달려 나온다.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도

온 아이들에겐 신나는 놀이터가 되기도 하

란도란 둘러앉는 곳, 주민들이 모여 왁자지

고, 교복 입은 청소년들에겐 아지트가 되기

껄 크고 작은 모임이 이루어지던 곳, 매헌 초

도 한다.

등학교를 품은 근린 공원에서 행복했던 날들

때론 그림그리기 대회장이고, 쓰던 물건이

그 때 그 일상이 지금 너무나도 그리워진다. ❖

지만 함께 나누는 녹색 장터이고 주민들의 서 리 풀 사 이 로

멋진 공연과 체험부스가 있는 축제장으로도

20

겨운 매미소리를 듣게 되고, 가을에 울긋불

손색이 없다. 공원에서 봄에는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싹 을 만나고, 여름에는 푸르른 녹음 속에서 정

vol.2


꽃 힐링 프로젝트 일시 2021.5월~2021.11월 장소 양재 근린공원 내용 도시녹화 지원사업

기획취재 양재 2동

우리가 살고 있는 양재2동은 거대한 빌라 촌을 형 성하고 있으며 아파트가 거의 없는 동네이다. 우리 동 네는 주변에 양재천이 흐르고 근린공원을 끼고 한 자 리에 초·중·고가 자리를 잡고 있으며 시민의 숲과 크 고 작은 작은 여러 공원으로 둘러싸인 자연 친화적 동 네이다. 이 자연 친화적인 입지조건 덕분에 이 동네에 한 번 들어오면 아이들이 나고 자랄 때 까지 동네를 떠나지 않는 큰 특징이 있어 ‘아이들 키우기 좋은 동 네’라는 정평이 나 있다. 그러나 자연친화적인 입지조 건과 아이들 키우기 좋은 동네로 정평이 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재2동은 아파트가 거의 없고 거대한 빌라 촌을 형성하고 있어서 아파트와 같은 커뮤니티 공간 및 아파트단지별 정원과 같은 섬세한 손길이 닿는 꽃 밭은 보기 힘든 실정이다. 우리 동네에는 빌라만이 있 고 아파트와 같은 공동의 정원은 유일하게 양재근린 공원이다. 양재근린공원은 초중고를 끼고 형성되어 있는 양재2동의 2,200만 주민의 허파이자 심장 역할 을 하고 있는 아주 중심적인 공원이다.

서 리 풀 사 이 로 21

우리가 만드는 서리풀 이야기


양재마을넷(대표 이순화)은 2016년에 주민

성되어 있다.

이 모여 더 나은 마을을 만들어 보자는 취지

양재근린공원에 관내 주민뿐 아니라 FIFA

로 설립되어 마을의 작고 불편한 문제들을

가 인정하는 공식축구장이 있어 타지에서 찾

주민스스로 찾아 마을과 주민, 민과 관을 잇

아오는 유동인구가 엄청 많은 동네이다. 하

는 징검다리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단체

지만 빌라가 밀접하게 이루어져 있어서 공

이다.

원 말고는 녹색공간이나 꽃밭을 구경하기는 어려운 주거 환경이다. 코로나로 지쳐서 힘

2015년~2019년까지 보조금을 지원받아 해

들어하는 주민들이 연합하여 양재2동의 허

마다 10월에 양재근린공원에서 주민들을 위

파이며 심장인 양재 근린공원에 꽃밭을 만들

한 마을 축제와 녹색 장터를 5년간 연속으로

어 공원을 통한 힐링의 공간을 조성해 보고

주최한 단체이고 회원 대부분이 마을을 위해

자 하였다.

이모저모 봉사에 앞장서고 있는 주민들로 구

서 리 풀 사 이 로 22

vol.2


2019년 양재2동은 서초구에서 시범으로 마을 계획단을 운영하였는데 주민들이 꽃구

민. 관이 서로 협력하고 하나 되는 양재2동 의 중요한 원동력이 될 것이라 확신하였다.

경하기 힘든 동네에 꽃밭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러한 뜻을 모아 마을에서 다양하게 활

는 의견이 있었다. 또 주민 센터 앞에 꽃 화분

동하고 있는 양재마을넷에서 도시녹화 지원

큰 것 2개가 놓인 것을 보고 주민들의 발걸

사업을 신청하였고 보조금 형태로 서초구에

음을 멈추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반응이 무

서 유일하게 지원받게 되어 양재근린공원을

척 좋았던 기억이 난다. 그러므로 요즘 코로

중심으로 하는 “꽃 힐링 프로젝트”가 시작되

나로 지쳐 있는 사람들에게 꽃가꾸기를 통해

었다. 주민들과 협력단체들의 협조 뿐 만 아

예쁜 마을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즐거움과 함

니라 남다른 열정과 부지런함으로 손수 발로

께 협력하고, 소통하는 활동이 되며, 앞으로

뛰시는 동장님의 아주 적극적인 참여로 힐

도 지속 가능한 공동체 활동이라는 점에 매

링 프로젝트의 순항이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우 필요한 사업이라 여겨졌다. 특히 양재2동 근린공원은 생활권의 중심

먼저 6월에는 옆 동네인 양재1동에서 6년

지로 빌라만 있고 아파트 공동체와 같은 녹

동안 마을사업으로 출발하여 아파트 지원 사

지공간이 없는 상황이라 자주 지나다니는 공

업을 거쳐 끝으로 도시녹화 지원 사업까지

원에서라도 예쁜 꽃들을 매일 볼 수 있다면

확장하여 엄청나게 예쁜 아파트로 변신시킨

엄청난 힐링이 되고 활력소가 될 것이다. 작

서초 호반 써밋 아파트의 자생단체인 꽃누리

년에 이어 올해까지 코로나로 일상이 무너지

회 전상학 회장님을 초대하여 경험담을 들

고 지치고 힘들어 하는 주민들 모두가 도시

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신생 아파트임에도

녹화 지원 사업을 통해서 꽃도 심고 물도 주

불구하고 주민들이 솔선수범하고 협력하여

고 꽃구경도 하고 동 주민 센터와 협조하여

2019년 서울시 공동주택 공동체 활성화 사업

우리가 만드는 서리풀 이야기

서 리 풀 사 이 로 23


서 리 풀 사 이 로 24

우수사례 발표회에서 275개 아파트 중 대상

나 지나가는 길목에 커다란 화분 10개가 예쁜

을 차지한 저력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이

꽃과 함께 자태를 뽐내며 진열되었고 그 사

어 작은 꽃 화분 만들기로 꽃과 친해지는 작

이에 포토 존 의자를 두어 누구든 꽃으로 멈

업을 시작하였다.

추는 발걸음 끝에 예쁜 사진하나 찍고 가도

다음으로 동장님과 주민들이 함께 꽃 농원

록 꾸며두었다. 그러자 마을에 행복한 진풍

에 가서 꽃 이름부터 배우고 예쁜 꽃을 주문

경이 펼쳐졌다. 남녀노소 상관없이 길 가다

하고 함께 심는 작업을 하였다. 물을 주는 당

가 의자에 앉아 핸드폰으로 사진을 촬영하는

번도 정하여 꽃을 가꾸는 모든 작업들을 주

모습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물을 많이 머금

민 스스로 하게 되었다. 오래도록 보관하고

고 있는 수국의 특징상 물을 자주 줘야하는

잘 키우기 위한 방안으로 큰 화분에 꽃을 심

힘든 일임에도 이러한 진풍경 덕분에 미소가

게 되었다. 봄, 여름 꽃으로 수국, 미국수국,

저절로 생겨나 뜨거운 여름날에도 물주는 수

천일홍, 백일홍, 메리골드, 사루비아를 색깔

고스러움에 동참했던 손길들에게 감사한 마

별로 아름답게 심었다.

음이 우러났다.

힐링꽃프로젝트의 취지가 담긴 멋진 표지

한 여름을 불태우고 수국이 질 때쯤 가을

판도 세워 사업의 취지와 목적을 공유하며

국화로 화분의 옷을 갈아입혔다. 주민들이

주민 모두가 함께 하는 공간임을 알렸다.

모여 수국이 겨울에도 잘살아 남도록 공원

축구장 앞 주민들이 제일 많이 다니고 누구

바닥에 옮겨 심고 커다란 화분에 다시 예쁘

vol.2


고 화려한 국화를 알록달록 심어 새로운 변

양재2동의 다정한 이웃들이 더욱 건강하

신을 하였다. 코로나로 더욱 지쳐가는 주민

고 행복한 나날을 살아가길 소망하며 긴 취

들에게 활력소가 되는 국화 화분이 즐비한

재의 끝을 맺고자 한다. ❖

공원을 배경으로 멋진 인생 샷 하나 찍을 수 있게 되길 기대해본다.

모든 사업을 마무리하고 주민들과 평가회 를 가지면서 올 한해 누군가의 수고스러운 손길들이 모여 잠시나마 힐링의 시간을 가지 게 된 것에 감사하고 항상 변함없이 순환하 는 자연의 섭리앞에 더욱 겸허한 자세로 살 아가길 다짐한다.

서 리 풀 사 이 로 25

우리가 만드는 서리풀 이야기


탄소제로 서초

편집부

자원순환 가게 누구나 한번쯤은 고민했던 생각을 실천할

있다며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수 있는 반가운 가게가 생겨났다.

참여가게는 세탁소, 음식점, 정육점 등 총

자원을 아끼고 환경을 보호하려는 노력이

100곳이며 조사결과 가게에서 가장 많이 필

절실히 요구되는 요즘에 탄소제로 서초가 추

요로 하는 물품은 종이백(50%), 비닐봉투

진하는 자원순환 가게이다.

(17%), 아이스팩(16%), 옷걸이(14%) 순으로

자연 순환 가게란 폐기물 발생을 최대한 억

나타났다. 100여곳의 자원순환가게는 지역

제하고 사용가능 물품을 재활용하는 가게인

주민들이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지도로 제

데, 재사용 가능한 아이스팩, 옷걸이, 종이 및

작되었다.

비닐 봉투 등 깨끗하고 형태가 변형되지 않

우리 양재2동에서도 주민 모니터 단이 구

은 것만 모아서 인증 스티커가 부착된 자연

성되어 가게를 일일이 다니면서 취지를 설

순환 가게에 기부하면 된다. (단, 커피 테이

명하고 참여의사를 밝힌 25곳의 자원순환가

크아웃용 포장 박스는 잘 접어서 구매한 상

게가 발굴되었는데 자원순환 가게임을 알리

점에 전달하면 다시 쓸 수 있다.)

는 스티커가 입구에 붙어있다. 주민들이 마

서초구는 올해 6월 서초4동, 방배4동, 양

을 소상공인과 함께 재활용품을 주고받으며

재2동 3개동을 중심으로 주민 모니터 단을

자원을 아끼고 환경을 지킬 뿐만 아니라 서

구성하여 지역 내 상점의 자원재사용 실태,

로 인사 나누며 친목을 다지면서 마을 상권

재사용 가능 물품 등을 조사하여 자원순환

에도 활력소가 되기를 기대한다. ❖

가게들을 발굴하였다. 많은 가게들이 자원재 사용에 대해 공감하고 참 여하고자 하나 그 방법을 서 리 풀 사 이 로 26

알지 못해 어려움을 겪어 왔는데, 이번 자원 순환가 게 발굴을 통해 재사용 물 품을 전달받아 비용을 절 감하고 쓰레기도 줄일 수

vol.2


탄소제로 서초

용기 내 캠페인 마을에서 지구를 지키기 위한 작은 노력들 이 이어지고 있다.

경 실천 단원 10명이 모여 조금씩 내리는 빗 줄기에도 아랑곳 않고 애써 찾아온 주민들

플라스틱 페트병을 모아오면 유리 용기로

을 반갑게 맞아주고 유리용기로 교환해 주

바꾸는 캠페인이 양재2동 푸른 환경 실천 단

었다. 아울러 에코 마일리지 가입도 신청 받

원들과 함께 근린공원에서 실시되었다.

았다. 에코마일리지는 전기, 수도, 도시가스

주민들이 생수병처럼 투명 플라스틱 페트

를 절약하면 마일리지로 적립할 수 있다. 일

병 5개를 가져오면 1000ml 유리 용기와 교환

회용품 사용 자제 등 이러한 작은 노력들이

해 준다. 내용물을 버리고 라벨을 떼어내고

모여 지구를 위한 자연 환경이 생활화되길

납작하게 압축하여 모아오면 된다.

바란다. ❖

이 날 행사에는 주민센터 담당자와 푸른 환

오늘의 분리수거

투명 페트병을 모아 적립된 포인트로 필요한 물품이나 간식 등 보상품을 구입할 수 있는 오늘의 분리수거 배출함이 양재2동 주민센터 앞에 생겼다. 수거해 온 투명 페트병을 라벨과 이물질을 제거하고 비틀어서 압착하여 바코드를 찍고 투입하면 핸드폰에 있는 오늘의 분리수거 앱에 포인트가 쌓인다. 이제 쓰레기도 자원이다.

우리가 만드는 서리풀 이야기

서 리 풀 사 이 로 27


제로 웨이스트를 꿈꾸며 편집부

서 리 풀 사 이 로

십여 년 전만 해도 일상을 지내면서 기후위

구가 앓고 있는 환경오염을 막고 회복시키

기에 대해 직접적으로 체감하고 경각심을 가

기 위한 행동을 해야겠구나”하는 생각을 하

지지 못하고 생활을 했었다. 무심히 쓰레기

던 중 서초구에서 푸른 환경 실천 단 모임이

를 버리고 생각 없이 소비를 하는 것에 죄책

생겨났고 양재2동 푸른 환경 실천 단장으로

감도 느끼지 못했다.

활동하기 시작 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기후위기로 비상행

처음에는 우리끼리 이런 활동이 큰 의미가

동을 한다는 뉴스와 10대 환경 운동가 튠베

있을까? 무엇을 해야 하지? 과연 우리 이웃

리가 ‘기후를 위한 등교 거부’ 1인 시위를 시

들은 환경 회복을 위한 일에 동참을 해 줄까?

작하고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분노를

하고 확신 없이 시작을 헸었다. 버려지는 청

드러내며 울부짖듯이 연설하며 세계 정상들

바지로 업 사이클 소품 만들기, 커피찌꺼기

을 향해 “당신들은 우리를 실망시켰다. 여러

를 활용한 주방비누 만들기, 폐식용유를 활

분이 우리를 저버린다면 용서하지 않을 것”

용한 빨래비누 만들기, 녹색장터 운영, 폐건

이라며 전 세계인들에게 기후위기 운동을 각

전지 수거함 설치 등 몇 해에 걸쳐 활동이 누

인시키는 모습을 보며 부끄러웠다.

적되어 갈수록 우리가 실천하고 이웃에게 알 리며 함께 동참을 원하는 주민들도 늘어가며

“아!! 우리도 이렇게 하면 안 되겠구나. 나

활동의 보람을 느낀다.

부터 더 나아가 우리 마을부터 급 격히 지 28

vol.2


지금은 이순화 단장이 바통을 이어 받아

참여하는 모습을 보니 어릴 때부터 자원 절

더 다양한 활동을 하며 새로 합류된 젊은 단

약과 환경 보호에 대한 교육은 아무리 강조

원들과 더불어 푸른 환경 실천을 위한 수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 듯하다.

를 아끼지 않고 있다. 또한 어른들은 건강한 지구를 기대하며 제 해를 넘기고도 사라지지 않는 코로나바이

로웨이스트 16가지 중 실천 가능한 것을 다

러스 또한 인간들의 무분별한 환경 파괴로

짐하는 인증 샷을 남겨보기도 하였다. 응원

인한 산물이지 않은가 싶은 생각이 든다. 기

의 마음으로 나무로 만든 친환경 칫솔과 고

후위기 대응을 위한 우리들의 활동이 미비한

체 치약를 나눠 주었다. 일회성으로 끝나지

역할이겠지만 경각심을 일깨우고 일상생활

않고 생활 속에서 꾸준히 이어져 우리의 아

에서 적극적으로 환경회복을 위한 실천에 앞

이들에게 깨끗하고 건강한 지구를 물러줄 수

장 서야 한다.

있기를 ...... ❖

최근 소소한 바자회를 통해 아나바다 실 천과 제로웨이스트 캠페인을 가졌다. 행사장 주변 어린이집 아이들이 방문하여 쓰레기 분 리 배출에 도전해보았다. 재활용품을 골라보

서 리 풀 사 이 로

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29

우리가 만드는 서리풀 이야기


양재 작은 마을 축제 편집부

위드 코로나로 마을에 활기가 조금씩 불어

족 단위의 사람들은 뜻밖의 행사에 동참하

올 즈음 양재2동 작은 마을축제가 열렸다. 도

게 되었는데 2,000원으로 마을화폐를 구매

시녹화 사업단 뿐 아니라 양재2동을 중심으

하여 공원 한 바퀴를 돌아보면 재미난 일이

로 활동하고 있는 마을미디어 지원 사업팀인

시작된다.

<미디어 프렌즈>와 <양재 꿈이 익어가는 마 을 예술 창작소> 팀과 마을 공동체 지원 사업

우선 방역을 준수하고 체온을 체크하고

팀인 <골목대장>과 <맘 편한 돌봄 마을 사람

서 2,000원을 마을화폐로 바꾸면 쫀득한 절

들>, <푸른 환경 실천 단> 등 여러 모임들과

편 떡 봉지와 뻥튀기과자 한 봉지를 받게 된

함께 준비한 마을 축제는 2019년 500여명 주

다. 코로나 시국으로 그 자리에서 먹을 수는

민들이 참가한 화려한 축제에 견줄 수는 없

없지만 집으로 돌아가 맛있는 간식거리가 되

지만 코로나 시국 2년 만에 작고 소박한 축제

길 바라는 마음이다. 다음으로 꽃힐링프로젝

서 리 풀 사 이 로

로 2021년의 멋진 가을 모습을 추억으로 담

트에서 주민들이 정성껏 가꾼 화려한 국화와

게 되었다.

함께 즉석에서 감성 담긴 <플라로이드 사진

30

원에서 주말 가을 한 때를 보내고 있던 가

촬영>이 이어진다. 멋지게 촬영된 사진은 공 알록달록 단풍이 물든 아름다운 근린공

원나무들 사이게 걸린 빨랫줄에 걸어놓고 다 음 코스로 이동한다.

vol.2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수세

다음코스는 앙증맞은 선인장과 다육이 화

미 열매로 친환경 수세미를 직접 만들어서

분을 멋지게 장식해 보는 <반려 식물 꾸미기>

가지고 가는 체험은 환경 문제가 더욱 대두

에서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고 예쁘게 잘 자

되는 시점에서 <천연 수세미 만들기>는 많은

라기를 바라며 다육이 화분을 하나씩 가졌

호응을 받았다. 그 다음은 <슬기로운 쓰레기

다. 그리고 현장에서 마실 수는 없지만 커피

배출> 체험인데 다양한 쓰레기 실물을 가지

드립 백 나눔으로 인해 단풍 곱게 물든 근린

고 직접 재활용 품목을 찾아 분류해 봄으로

공원에 커피 향이 진동하면서 더욱 가을 분

자원 절약을 피부로 느껴보는 시간이다. 아

위기를 자아냈다. 이러한 전 코스를 돌고나

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도 잘못 알고 있던 상

면 특별히 아이들을 위한 <상상 그리기 대

식이 많았다면서 즐겁게 동참하였다. 다음으

회> 공간이 나온다. 남자아이들은 아빠와 함

로 <우리 동네 상점 업그레이드>는 앞으로

께 비행기를 접어 날리기도 하고 여자아이들

생겼으면 하는 가게를 그림으로 그리고 이

은 대회에 푹 빠져 저마다의 솜씨들을 뽐내

름을 지어 내가 원하는 위치에 세우는 작업

고 있다. 심사위원 선생님께서 그리는 과정

을 해보았는데 놀이공원이나 워터파크를 희

을 지켜보고 아이들과 그림 평을 함께 나누

망하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희망사항에 웃

며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중에 백

음을 자아냈다.

미는 대회 후 양재마을넷에서 발행한 상장

우리가 만드는 서리풀 이야기

서 리 풀 사 이 로 31


수여식이 있었는데 아이들 뿐 아니라 부모들

아빠와 엄마, 아이들 셋과 함께 나들이 나

도 좋은 추억이 생겼다고 좋아하였다. 상장

온 가족, 손주들과 함께 나온 3대(代), 길지나

과 부상과 격려를 받은 아이들의 행복한 얼

가던 네 명의 친구들, 제각기 다른 발걸음으

굴을 잊을 수가 없다.

로 공원에 들렀다가 아이들 마냥 행복한 시 간을 보냈다고 인사하는 모습에서 준비한 힘

이렇게 공원 한 바퀴 투어가 끝나면 아까

든 시간들이 보람으로 바뀌었다.

찍어 빨랫줄에 걸어 두었던 사진이 예쁘게 완성되어 있다. 걸어 둔 사진을 찾아서 손 가 득한 체험 물을 가지고 귀가하면 된다.

주민 모두가 즐기고 주인공이 되어보는 이 모든 풍경이 그려질 수 있었던 것은 도시녹화 지원사업 <양재근린공원 꽃힐링프로젝트>

소소하지만 아주 행복한 마을 축제는 꽃

덕분이다. 그리고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다

과 함께 열리게 되었고 코로나로 일상에 지

시 정겹고 활기찬 마을 분위기를 찾고 싶은

친 주민들에게 한줄기 빛과 같은 즐거운 시

주민들의 마음 때문이다. ❖

간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너무 재밌는 시간이었어요.”

“너무너무 행복해요.”

“다음에도 이런 축제가 열리면 좋겠어요.”

서 리 풀 사 이 로 32

vol.2


서 리 풀 사 이 로 33

우리가 만드는 서리풀 이야기


우리가 만드는 서리풀 이야기


우리들의 이야기


봉사의 매력

음식쓰레기를 줄이란 이야기만 나오면 한마디로 누군 가 그 일에 미치지 않으면 이 일은 누구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입주 때 광경 이 기억난다. 이곳저곳에 쓰레기가 산적해 있고 정리된 곳이 하나도 없었고, 나 하나 편하면 된다는 식의 사고방 식을 갖고 있는 분들도 많았다. 쓰레기봉투를 증거물로 발견하고 누가 버렸는지 확인해서 가정 방문을 하여 도

작성자 김순금 (서초구 푸른환경실천단 단장)

와 달라고 애원하기도 했다. 감정을 앞세우기보다는 설 득하는 방향으로 이끌었다. 아파트 전체호수별로 당번 을 짜서 당번제를 실시하여 아침 8시30분부터 10시30분 까지 두 시간씩 주민 전체를 대상으로 분리수거 방법을 가르쳐 주고 쓰레기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해갔다. 직장 인은 토요일과 일요일 주말 배정을 짜서 동참하도록 하 여 전세대가 32일간 이런 당번제를 운영하였다. 지금도 그 일을 회상해보면 눈물겨운 사연도 많았다. 자가용을 타고 가면서 창밖으로 다 먹은 피자 상자를 건 네는 주민, 사람을 사서 하지 왜 이렇게 추운 날 주민들 을 고생 시키느냐 투덜대는 사람, 쓰레기 하나 버리는 데 이렇게 힘들어서야... 불평하는 사람 등 제일 가슴 아팠 던 순간은 우리 가족들이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 힘든 걸 그만하라는 걱정스런 핀잔이었다. 하지만 내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하랴? 단단한 각오 앞

서 리 풀 사 이 로

에 허리의 심한 통증을 참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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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 분량의 쓰레기들이 한 달 뒤 1개로 줄어들었고 재활

한 달 내내 치료를 받으면서도 32일간 현장에 섰더니 봉사자들도 생겨나고 주위사람들이의문을 갖고 바라보 던 문제들도 하나씩 풀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컨테이너

vol.2


용 판매수익도 상당히 비축이 되었다는 소식

비닐 등 많은 생활쓰레기에 충격을 받고 이물

에 주민들은 “그동안 우리들이 돈을 버렸군

질로 인해 반입 거부하면 대란이 올 수도 있

요” 하며 더욱 동참하였다. 주민들 간 친밀감

어 음식쓰레기 처리장 견학을 통해 심각성을

은 더해가고 행동도 말씨도 여유를 보이며 뿌

알리기도 했다.

리를 내릴 때까지 계속 하자는 의견이 나왔

지금은 서초구 푸른 환경 실천 단으로 많

을 때는 더러운 음식쓰레기를 만졌던 내 손

은 활동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할 일이 많다.

이 자랑스러웠고, 쓰레기를 만지느라 깨끗한

친환경 세제 만들기, 커피 찌꺼기 거름 만

내 옷에 악취냄새가 나도 아랑곳 않고 힘이

들기 등 18개동 모두 1동 특화사업에 전념하

솟아났다.

는 일들이 각양각색으로 추진 중인데 작은 일

주위 아파트에서 견학을 오고 KBS 방송국

들이 크게 만들어져 혁신을 일으키고 있다.

에서 촬영 나오고 조선일보에서 취재하는 등

백화점에서 재활용 봉투활용하자는 것도

좋은 소문이 났다. 조그마한 일도 나라를 애

서울시에 가서 몇 번의 건의 끝에 만들어졌지

국하는 일이라 생각하고 서초구 주부 환경 봉

만 백화점 홍보부장과 서초구청 회의실에서

사단에 가입하였다. 한강 물을 맑게 하자는

건의한 바 있었던 백화점만은 안 된다고 정책

차원에서 폐식용유를 수집하여 무공해 비누

적으로 해야 하는 사업이라 했던 일이 성사

를 제작하는데 자격증을 딸만큼 익숙해졌다.

된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모른다. KBS 환

환경오염 방지에 동참하면서 공해 없는 아름

경스페셜 대상과 서울 시민 상 수상 등 지난

다운 강산을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생

날 이런 격려들이 지금도 환경을 붙잡고 몸

각 끝에 서초구 분리수거를 정착시키는 선두

부림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남을 위해 봉

주자가 된 것이다. 서울 25개 구청에서 하는

사한 줄 알았던 내가 지금은 사람다운 모습

강의도 들어오고 여성단체에서 사례담을 청

으로 변해가는 훈련 과정이구나 하는 교훈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음식쓰레기에 이물질을

받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봉사의 매력이 아니

넣지 말라는 홍보도 끊임없이 했다. 옷가지

고 무엇이랴. ❖

우리가 만드는 서리풀 이야기

서 리 풀 사 이 로 37


당근마켓

어린 시절 나는 1년에 한두번씩 미국의 큰어머니께 서 내 키보다 더 큰 박스에 담아 보내주는 옷을 받아 입 었다. 미국에 사는 나보다 5살 많은 사촌언니의 옷이였 다. 덕분에 어린시절 난 따로 새 옷을 산 기억은 없다. 지금은 우리나라 옷을 외국에 수출할 정도이지만 당시 엔 미국에서 온 옷이라 그런지 색감도 그렇고 디자인 도 세련되어 보였고 사촌언니의 옷 취향도 나랑 잘 맞 았다. 그래서 난 미국에서 옷이 배달되어 온 날이 일년

작성자 박선영

중 가장 즐거웠다. 옷박스를 풀고 처음 받아든 옷에서 는 섬유유연제 향인지 향수인지는 알수 없지만 한번 도 맡아본적 없는 향긋한 향기가 어찌나 좋았던지, 지 금도 그 향기가 코끝에서 생생하다. 항상 넉넉히 옷 을 보내주셔서 매번 다른 옷을 갈아 입는 재미도 쏠 쏠했다. 나의 옷 쇼핑 중독은 그렇게 시작된 듯하다. 성인이 된 나는 새로운 옷을 사서 입는 것을 너무 좋아 하는 옷 쇼핑 중독자가 되었다. 어린시절 매일 다른 옷 을 갈아입고 다양한 디자인을 입었던 경험이 습관이 되 어,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디자인의 옷을 구경하고 사 오기 시작했다. 너무 자주 옷을 구매해서 어머니께 꾸중 을 들으니 가방에 몰래 숨겨 들어오곤 했다. 거리를 걷 다가도 새로운 옷만 보면 눈이 반짝 거렸고, 자연스럽 게 매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젊은 시

서 리 풀 사 이 로

절의 3분의 1은 옷을 구경하고 사는데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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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사라져 감을 깨닫고, 처음으로 내가 옷이 좀 많다고

그러다 혼자 자취를 하게 되면서 좁은 집에 쌓인 옷이 500~600벌이 넘어가고 옷은 그야말로 한 방을 가득 채 우는 거대한 산이 되어갔다. 집안에서 내가 누울 공간이

vol.2


느꼈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잘 입지 않는 옷

물려줄 사람이 없어 몹시 아쉬웠는데, 요즘

은 동네 성당 바자회때 몇 박스씩 기부를 하

에는 ‘당근마켓’에서 헐값에 사고 또 깨끗하

고 10벌 살 것을 3번 사는 정도로 쇼핑 빈도

게 입고 난 옷은 되팔수 있어서 물려줄 사람

도 줄였다. 그래도 내 옷은 항상 다양하게 입

이 없어도 물려 받는 시늉을 할 수 있다. 하

을 수 있는 디자인으로 일정량을 유지했다.

지만 좀 괜찮고 가성비 좋은 옷은 금새 팔려

그렇게 좋아하던 옷이였는데, 결혼하고 임신

나가고 없기 때문에 수시로 모니터링을 해야

하여 애를 낳은 후, 살이 많이쪄서 그 많던 옷

한다. 예전에 내 옷을 사러 돌아다니듯이 요

들이 하나도 맞질 않는다. 모두 다 버리고 새

즘엔 당근마켓에 수시로 접속해서 확인한다.

로 사야하는데, 지금 현재 내가 새로산 옷은

그리고 나는 구매할 때 보통 직접가서 받아

박스티 몇벌에 편안한 바지 몇 벌이 다다. 아

오는데, 그렇게 하면 왠지 동네 지인이 아이

이가 태어난 이후, 옷에 대한 나의 사랑은 내

에게 물려준 느낌이 든다. 급기야 살쪄서 작

옷이 아닌 아이옷으로 옮겨갔다. 하지만 육아

아진 내 옷도 팔려고 올려보기도 한다. 이제

를 해야하니 예전처럼 밖에 다니며 쇼핑을 할

옷 외에도 필요한 용품은 왠만하면 다 당근

시간이 부족하여 짬 날때마다 인터넷으로 아

마켓에서 구매한다. 운이 좋으면 무료나눔으

기옷을 서핑한다. 그렇게 아이옷을 사다보니

로 괜찮은 필요한 물건을 득템하기도 한다.

한철 몇번 입고 내년에 입지 못할 옷인데 돈

얼마전에 미국에서 내 옷을 보내주시던 큰

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또 내 어린시절 사

아버지 내외가 한국에 오셔서 하시는 말씀

촌언니 처럼 깨끗하게 입었던 옷을 아이에게

이 옛날에는 한국이 참 못살았는데 지금은

물려줄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한국에 더 좋은 물건들이 많다고 하신다.

그래서 사용하게 된 어플이 동네안에서 공유

이렇게 옷을 물려줄 사촌은 없지만 물려받을

할 수 있는 플랫폼인 ‘당근마켓’이다. 늦은 나

수 있는 옷은 풍요로운 세상에 현재 내가 살

이에 아이를 출산하여 주변에 아이에게 옷을

고 있음에 새삼 감사함을 느낀다. ❖

우리가 만드는 서리풀 이야기

서 리 풀 사 이 로 39


길마중길 산책

길마중길 산책은 연중 재미지다. 우선 요즘 도심에서 보기 힘든 흙을 밟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매력이라 하 겠다. 내 어릴 때는 어디서나 흙을 보고 만지고 살았다. 살기 편하고 일도 줄어 단독 주택보다 아파트를 선호해 서 나도 그리 살고 있지만, 달리 농부의 자식이 아니라 도 흙에 얽힌 추억쯤이야 우리 세대는 꽤 가지고 있을 것이다. 흙을 밟으며 멍 때리는 산책은 물론이요, 그도 싫증나면 향나무, 잣나무, 전나무, 소나무 등나무 이름 을 알아 맞춰가며 걷기도 재미나다. 만일 억지로 운동

작성자 황혜은

하느라 나온 날이라면 마음속으로 좋아, 서초1교까지는 뛰고, 2교부터 3교까지는 걷자 라고 작정하기도 한다. 적당한 시점에 다리가 나오니 변화가 있어 그 또한 좋 은 점이다. 보통은 반포 IC에서 서초구청이 보이는 곳 까지 가서 맨손 체조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운동 기구 있는 곳에서 10여분 운동을 하면 왕복 50분정도 걸린다.

사진 찍기로야 가을 낙엽이 내려앉은, 오솔길과 명 화를 재연해 놓은 포토존이 으뜸이지만, 누가 내게 언제 가 가장 좋으냐고 묻는다면, 4월의 길마중길이라 하겠 다. 나이 먹은 나무들도 연초록빛 싹으로 눈을 시원하게 해주지만, 나의 관심은 4월 초부터 머리를 내밀기 시작 한, 땅에서 올라오는 새싹들이다. 산책길 양 옆에 쪼란 히 비집고 올라오는 새싹이 제 모습을 잡기까지는 두어 서 리 풀 사 이 로

주가 걸린다. 그 과정을 하루하루 지켜보노라면 신비함 에 전율마저 느껴진다. 연한 줄무늬가 있는 새싹, 비슷하게 생겼지만 줄무 늬가 없는 새싹이 어릴 때는 구분이 안 된다. 매일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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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선을 산책하며 한 동안 지켜보노라면, 어느 순간 아

vol.2


하..쟤(저 아이)로구나 하는 구분이 되어 진

그루 서 있음을 안 것은 겨울이 한참일 때였

다. 이름은 알지 못하지만, 서로를 달리 부를

다. 누구나 남이섬에 가면 단체 사진을 찍는

수 있는 차이가 보여 지려면 기다림의 시간

바로 그 나무, 줄지어 서 있는 멋진 나무가

이 필요하구나. 이렇게 한 달 동안 새싹에게

메타세쿼이아라고 들었을 때는, 이름이 길

서 에너지를 얻노라면, 키 큰 나무들은 진초

고 까다롭다고만 생각했는데..바로 그 나무

록으로 무장하고 바람에도 끄떡없는 튼튼한

를 길마중길에서 보았을 때는 어찌나 멋지게

몸을 과시하며 가을을 기다린다.

보이던지, 이것도 팔이 안으로 굽고 제 식구 감싸기인지는 모르겠다. 활엽수가 헐벗은 후

한 여름의 길마중길에서 난 감사를 배운다.

산책길이 온통 회갈색 일 때가 되어야, 오히

잠시지만 복잡한 서울살이를 잊게 해주기 때

려 색 바랜 초록을 오랫동안 과시하는 길마

문이다. 마치 시골 한적한 숲을 거니는 느낌이

중길의 메타세쿼이아는 그 존재감을 잘 드러

랄까.. 멀리가지 않아도 머리를 식힐 수 있는

낸다. 겨울 길마중길에서 처음 갈변하는 메

길마중길의 50분 산책으로 난 하루의 스트레

타세쿼이아 그룹을 발견하고, 왜 고전 명작

스를 내려놓는다. 참 고마운 길이다.

키다리 아저씨를 떠 올렸는지 모르겠다. 위 로 쭉 뻗은 메타세쿼이아 모습과 주인공 주

길마중길의 한 곁에 메타세쿼이아가 여러

디가 후원자의 뒷모습을 보고 팔 다리가 길

우리가 만드는 서리풀 이야기

서 리 풀 사 이 로 41


으니 키다리 아저씨라 표현한 것에서 비슷함 을 느꼈을까.

운동이 모자란다 싶은 날이면, 아파트 9층 까지 계단을 걸어 올라가곤 한다. 그 날도 계 단으로 올라와 집 현관문 앞에서 숨을 고르

혹자는 겨울 산책길이 뭔 재미가 있을까 하

고 있을 때였다. 얼마 전 이사 온 앞집 아주

겠지만, 그 사람은 필시 눈이 온 다음날 길마

머니가 운동할만한 곳이 근처에 있는가 하고

중길을 가보지 않은 사람임이 분명하다. 산

물으신다. 길마중길을 얘기해 주었더니 매우

책길 흙길 위에 깔려있던 야자매트가 사라지

기뻐하며 감사해한다. 내 옆에 늘 있지만, 관

고 온 천지 하얀 눈밭에, 순간 어디가 길인지

심을 주지 않는다면 남이섬에 있는 메타세쿼

몰라 잠시 이방인처럼 멍해지는 경험이 없었

이아일 테고, 연중 지켜본다면 언제 초록에

을 테니. 사철 다니던 그 길을 눈 위로 더듬

서 갈색으로 변신할지 아는 특별한 나무가

어가며 첫 발자국을 찍는 재미 또한 알지 못

되겠다. 난 누구에게 어떤 특별한 나무일까?

할 테니 말이다.

하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메타세쿼이아를 보 러 나간다. ❖

서 리 풀 사 이 로 42

vol.2


체중미달자의 다이어트

작성자 이혜진

내가 나의 모습을 기억할 수 있었던 가장 어린 나이, 그러니까 아마도 대여섯 살쯤의 기억부터 더듬어 보면 나는 항상 저체중의 몸이었다. 어린 시절의 사진을 보 거나 부모님의 말씀을 듣기로도 아기 때조차 통통한 모 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모태 마 름’이라고 표현한다.

초등학교 시절 통지표에는 ‘신체충실지수’라는 것이 있었는데 항상 ‘가’(체중 미달이라는 뜻)에 체크되어 있 었다. 그 시절의 일기장을 보면 보통 체형이 받는 ‘다’를 받아보고 싶다고 적혀 있기도 하다. 당시의 기분이 구체 적으로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린 마음에도 지겹도록 들 어 온 ‘살 좀 쪄라’, ‘왜 이리 말랐니?’와 같은 유의 이야 기가 적잖이 스트레스였던 모양이다.

서 리 풀 사 이 로 43

우리가 만드는 서리풀 이야기


체형에 별다른 변화 없이 20대를 맞이한

환 속에 사는 인생이었다.

나는 대학이 주는 해방감 때문인지 약간은 살이 올라 뼈 마름을 벗어난 대학 시절을 보

건강함과는 먼 식습관으로 지내면서 출산

냈다. 신년계획 첫 번째 목표가 매해 체중 감

을 하고, 쌍둥이 육아 전쟁을 치르느라 원래

량인 친구들 사이에서 부러움을 사며 지내는

체중보다 5kg 정도 빠진 뼈 마름의 모습으로

동안은 ‘모태 마름’의 체질로 만들어 주신 부

되돌아가게 되었고 이를 안타까워하던 남편

모님께 참으로 감사한 마음이었다. 마른 체

은 맛있고 간편한 빵과 떡 등, 본인의 사랑만

형을 추구하는 당시의 분위기에 편승하여 나

큼 당과 탄수화물이 가득 담긴 간식을 사나

는 마른 체형에 대한 자부심으로 콧대가 꽤

르기 바빴다. 덕분에 어느 정도 체중을 회복

올라가 있었다. 야식을 먹고 자도 붓지 않았

하기는 했으나 건강하게 찌운 살이 아니기

고, 살찔까 식탐을 참는 수고도 필요하지 않

때문에 혈당 변화가 필수 옵션으로 따라붙게

았으며, 오히려 어떻게 하면 살찌울 수 있을

되었다. 혈당이 정상 범주의 가장 끝 지점, 정

까 방법이 궁금한 나였다.

상과 당뇨 전 단계의 경계 어딘가쯤에 위태 롭게 걸려있게 된 것이다.

반백 년 가까이 살아온 현재도 변함없이 저체중, 체중 미달인 상태다. 아마도 평생 그

건강에 빨간불이 들어왔음을 인지한 순간

렇지 않을까 싶다. 이런 내가 다이어트를 시

부터 단호하게 밥, 빵, 면, 설탕 등을 식단에

작한 지 만 3년이 넘었다. 다이어트의 원래

서 도려내었다. 가공식품과 식품 첨가물 등

의미는 체중 감량이 아닌 식습관, 식단 관리

누구에게나 좋지 않을 것들은 최대한 멀리

다. 나의 다이어트는 바로 식단 관리를 말하

하게 되었다.

는 것이다. 탄수화물의 빈자리를 건강한 지방과 단백 우리는 탄수화물과 정제당의 과잉시대에

질로 채우니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니던 구내

살고 있다. 나는 최신 유행 식문화와 트렌드

염, 비염 등 만성 염증과 피로감이 신기하게

에 뒤처질세라 디저트 맛집 투어를 즐기며

사라졌고 건강 검진표의 수치들도 아름다

입맛은 더 많은 자극을 원하고 빵순이, 떡순

운 변화를 보여주었다. 눈으로 보이는 일련

서 리 풀 사 이 로

이의 삶을 살았었다. 그 중심에는 말라보이

의 이로운 변화들이 가져다주는 기쁨은 나

기 싫다는 의식, 살이 빠지면 안 된다는 의식

의 루틴이 되었다. 그렇게 사랑하던 빵, 떡

이 짙게 깔려있었다. 체중에 대한 경각심이

들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절대 흔들리지 않

없었던 인생, 보다 정확히 말하면 체중을 불

을 정도로 의연한 태도를 장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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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기 위해 공격적으로 먹고 먹고 먹고의 순

식단 관리는 이제 나의 운명과도 같은 것이

vol.2


다. 좋은 것을 챙겨 먹는 것보다 나쁜 것을 가

고 건강에도 좋은 두부. 크게 싫어하는 사람

까이하지 않는 것이 건강에 이롭다는 생각

없이 대다수의 지지를 받으며 어느 요리에나

으로 ‘비움과 채움’의 줄타기에서 중심 잡기

잘 어울리는 두부. 요리의 주제에 따라 휙휙

를 평생 이어나가게 될 것 같다. 이런저런 제

변신하는 두부. 이런 매력을 가진 두부 같은

약이 많은 나의 식단에서 밥의 자리를 대신

사람이 된다면 좀 멋지지 않나? (웃음)

해 주는 고마운 식재료는 단연 두부다. 오늘 도 식사를 위해 두부를 준비하다 뜬금없이 ‘

체형에 대한 어릴 적 기억으로부터 시작된

두부처럼 살고 싶다’라고 까지 생각이 이르

이야기가, 식단 관리를 하게 된 계기를 거쳐

게 되었다.

지향하는 삶의 모습까지 꽤 점프를 해버렸 지만, 건강한 몸으로 담백하고 부드러운 성

두부는 담백하고 부담 없고 부드럽다. 모

격을 지니며 주변을 질리지 않게 하는 괜찮

양은 네모로 모가 나 보이지만, 만져보면 딱

은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고 싶다는 것 정도

딱한 구석 없이 아주 부드럽다. 하지만, 팬

로 정리할 수 있겠다. 수습되지 않는 글의 어

에 굽는 간단한 과정을 통해 조금은 단단하

설픈 마무리가 어색하지만, 이렇게 글을 놓

게 변신할 수도 있다. 많이 먹어도 물리지 않

아두고 두 눈 질끈 감는다. ❖

서 리 풀 사 이 로 45

우리가 만드는 서리풀 이야기


이상하고 다정한 목소리들

그림책 『이럴 수 있는 거야??!』를 읽고

2008년에 둘째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그해에, 6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아이 둘을 맡기면서까지 직장 을 다닌다는 건 수지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경제적 계산에 의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에는. 남편 월급 이 내 월급보다 많았으니까. 지금은 그게 아니라는 걸 안 다. 엄마니까, 여자니까 내가 그만뒀어야 하는 거였다.

서 리 풀 사 이 로 46

한 가족 단위에서 누군가 하나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상 작성자 희음 (시인)

황이라면, 당연히 여자가 집에 ‘들어앉아야’ 했다. 가장 인 남성이 ‘가족임금’을 수령하고, 일개 아내일 뿐인 나 는 그에 종속되어 무임금으로 돌봄노동과 육아를 맡는 게 당연했다.

vol.2


첫 아이 출산 때는 몸과 마음 모두 회복이

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표지 그림을 한참 들

빨랐다. 돌아갈 직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

여다봤던 게 생각난다. 잔뜩 화가 난 듯한 한

론 직장에서도 하루 한 번 후미진 공간을 찾

아이가 가방을 끄는 모습에 조금 웃음이 났고

아 모유 유축을 해야 했지만, 나머지 시간에

그 아이를 화나게 한 게 뭔지 아주 조금 궁금

는 아이를 조금 잊을 수 있었다. 아이를 잊은

해 했다. 네가 화나 봤자 뭐 별 거 있겠어, 하

딱 그만큼, 잃었던 나를 되찾아오는 기분이

는 마음도 있었다. 네가 인생의 쓴맛을 아니?

었다.

너 뭔가 잃어본 적은 있니? 첫 페이지를 넘기자 아이를 바라보는 ‘우리’

둘째 때는 되찾을 시간과 힘 모두를 잃어버

가 있었다. 그들은 아이를 ‘여자애’라고 칭했

린 듯했다. 아니, 나를 통째로 분실한 것만 같

다. 그들 중 “냄새를 가장 잘 맡는” 개가 여자

았다. 그런 내가 믿기지 않았다. 모성애 따위

애를 바짝 따라갔다. 나머지도 그 뒤를 따랐

는 없는 듯한 내가 부끄러웠다. 그러므로 더

다. 그러다 한순간 여자애가 소리쳤다.

많이 웃었다. 나와 아이 이외의 타자 앞에서

“이럴 수 있는 거야??!”

는. 가족임금을 벌러 나갔다가 저녁이면 돌아 오는 타자의 저녁식사를 꼬박꼬박 챙겼고, 꼬 박꼬박 웃었다.

물론 목소리는 그들 쪽이 아니라 공중을 향 했다. 목소리는 아주 높고 길었다. 그러기를

밤에도 두 시간마다 깨어 수유를 해야 했

여러 번. 목소리 뒤에서 걷거나 멈춰 서서 기

다. 날이 밝아올 때마다 햇빛을 노려봤다. 햇

다리던 그들 중에 “키다리 친구”가 조심스레

빛이 내 하루의 첫 번째 미움의 대상이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여자애는 가방을 열어

수유 시기가 끝나도 산후우울증이라 치부했

자신이 키우던 노랗고 작은 새를 보여주었다.

던 어떤 기분은 끝내 사라지지 않았다. 나를

엘비스라는 이름의 그 새는 죽어있었다. 그들

잃어버린 기분. 되찾아올 내가 있긴 한 건지

은 더듬더듬, 하지만 빠짐없이 여자애를 향해

모르겠는 기분. 그럼에도, 그럴수록 해야 할

조그맣게 한마디씩 했다.

일들은 꾸역꾸역 해냈다.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일, 그 역시 내가 해야 할 일, 놓치지 말아야 할 일 중 하나였다.

“안됐다. 정말 안됐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 “정말 슬프다.”

“불쌍한 엘비스······.”

“이럴 수 있는 거야??!”

“멍멍.”

이 그림책이 어쩌다 내 손에 들어오게 된 건

우리가 만드는 서리풀 이야기

서 리 풀 사 이 로 47


“이럴 수 있는 거야??!”

목소리 중에는 책 위에 쓰이지 않은 ‘침묵’ 도 있었을 것이다. 침묵 속에 든 따뜻하고 무 거운 마음. 그럴 만하다고, 충분히 그럴 만하

자신을 설명할 언어가 없을 때, 자신이 옳

다고 끄덕이는 마음. 잔뜩 화난 얼굴에, 허공

다고 느끼는 생각과 행동이 ‘비정상’ 취급을

을 향해 질러대는 고함을 이해한다고, 잃어버

받을 때 사람들은 운다. 울거나 소리치거나

린 마음의 바닥까지 알 수는 없다 해도, 그럼

숨는다. 더 깊은 곳으로 숨기 위해 죽음을 택

에도 불구하고 끄덕여주는 마음. 한 마음의

하기도 한다. 더 깊은 곳으로 숨고 싶다는 생

길을 따라 가보려는 이웃의 마음들.

각을 나 역시 했었다. 그럴 때 들려오는 목소 리 중 하나가 이것이었다.

이 그림책을 매일같이 읽었다. 빨간 가방을

“이럴 수 있는 거야??!”

든 여자애의 표정을, 이럴 수 있는 거냐고 소

“아, 그래서 그랬구나.”

리치는 길 잃은 목소리를, 축 늘어진 작고 노

“멍멍.”

란 새를, 노란 새를 데리고 가는 여자애를 뒤 따르는 마음의 행렬을 만지고 또 만졌다. 이

멍멍이라니, 멍멍이라니. 다른 언어로, 내

책을 읽고 나서야 아이에게 선택권을 줬다.

가 알아듣지 못하는 무엇으로 나를 이해하고

이제 너 읽고 싶은 거 뭐든 마음껏 골라 와.

다독이는 목소리가 하나쯤은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나의 일부가 죽었다고 생각했나 보다.

지금은 내가 찾지 못해, 듣지 못할 뿐. 내가 잃

이러려고 태어난 게 아니고, 이러려고 공부한

어버린 게 무엇이든, 그 무엇을 잃은 내가 어

게 아니고, 이러려고 꿈꾼 것도 아닌데, 내가

떻게 아파하든 나 곁에서 내 감정을 뒤따르는

왜 여기에 있지, 하는 마음. 아이의 밥과 잠과

이가 있을 것만 같았다.

유희와 목숨 전부를 내가 책임지면서 바깥세

서 리 풀 사 이 로

상과 단절된 채로 지내야 하는 상황이 너무도

둘째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게 된 이후로

비현실적이었다. 실로 조금 죽은 채로 살아

는 이 책을 집어 드는 게 뜸해졌지만, 이따금

있어야 했다. 하지만 세상은, 이게 당연하다

어딘가에 내던져진 기분이 들 때, 내가 처한

고 했다. 여성의 책무라 했고, 그게 모성이라

상황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아 막막할 때면 이

했다. 어딘가에 던져졌는데, 스스로 뛰어내렸

책을 펴서 소리 내어 읽곤 한다. “이럴 수 있

다고 했다. 어딘가 잘못됐다 느끼면, 그 마음

는 거야??!” 그러면 곧장 희미한 형상들이 그

이 잘못된 거라고 했다. 나는 소리치고 싶었

뒤를 잇는 게 보인다. 분명 어딘가에는 있는

다, 세상을 향해.

이상하고 다정한 목소리들. ❖

48

vol.2


이웃집의 양봉

작성자 이순미

전원생활을 꿈꾸는 우리 부부는 남편의 고향에 농가 주택을 마련하여 서울집과 시골집을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 며칠 전 시골집의 옆집 아주머니가 나와 뒷집 할 머니에게 아카시아 꿀이 섞인 잡 꿀이니 먹어 보라며 묵 직한 꿀단지 하나를 주었다. “아니, 이렇게 귀한 걸 주셔서… 힘들게 하신 건데 파 셔야지요?”하는 뒷집 할머니의 말에 “올 해는 이렇게 나 눠 먹고 내년부터 팔면 되지요” 하고 옆집 아주머니 곁 에 서 있던 옆집 아저씨가 웃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지금은 벌통이 몇 개인데 그걸 몇 개로 늘릴 예정이고, 내년에는 어디로 옮겨서 어떻게 수익을 낼 것인지, 또 작년에는 어떤 피해로 벌통수가 왜 줄었는지, 운수업과 농사를 병행하며 양봉을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등등… 평상시에는 말을 할 때마다 발음이 짧아서 귀를

서 리 풀 사 이 로

바짝 세우고 들어야 하는 아저씨의 말솜씨였다. 부담 49

우리가 만드는 서리풀 이야기


스러워서 대충 듬성듬성 듣고 말았는데, 오

면서, 그렇게 순응 하면서 이웃과 무탈하게

늘 아저씨의 이야기 하는 모습은 사뭇 달랐

지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다. 오랜 양봉 경험에서 경험치가 쌓여 자신 만의 노하우를 갖고 있으며 자신은 양봉 우

올 해 정월, 아저씨는 양봉 사업자 등록을

등생으로 본인의 양봉사업은 성공하고 있다

내고 본격적으로 집중해서 양봉사업을 하고

고 말했다. 그 모습은 내게 승자의 환호성처

싶다면서 자신에게 땅을 빌려줄 수 있겠냐는

럼 들렸다.

엄청난 질문을 해 왔다. 억지로 참고 견디는 나는 예스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아니 하고

옆집 아저씨의 벌통은 시골 집 담벼락 바로

싶지 않았다. 그러나 남편은 달랐다. 주말이

밑에 있다. 벌통 몇 개는 우리가 집을 구입 할

면 옆집 아저씨와 술잔을 기울이며 한 주간

때부터 있었다. ‘저기에 저것이 있어도 괜찮을

의 피로를 푸는 처지였기에 난감 해 했다. 남

까?’ 왠지 모르게 은근히 신경이 쓰였지만, 그

편이 내 눈치를 살피는 날이 많아졌고 두 집

때는 양봉작업이 끝나는 가을이라서 별 고충

의 어색한 기류가 한 달 정도 흘러 갈 즈음

도 못 느꼈고 새로 오자마자 잘 알지도 못하면

옆집 아저씨는 사업자등록 마감일이 임박했

서 뭐라고 말하기가 멋쩍었다. 그렇게 그냥 지

다고 남편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반사적으로

나갔다. 일주일에 1박2일로 잠깐 드나드는 처

남편은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지였기 때문이다.

“작년에 당신도 그 벌에 쏘여서 퉁퉁 부어

그러나 시골생활 2년차가 되니 봄의 유혹

서 병원 다니며 고생했잖아? 아니 그리고 그

을 뿌리칠 수 없었다. 예쁜 돌이 많은 집의

건 내 땅도 아닌데 왜 날더러 해 달라고 해?

특성을 이용해 꽃밭을 만들었고, 서울 집 근

여름이면 애들도 벌이 싫다고 안 오고, 여기

처에 있는 꽃 시장에서 꽃과 나무를 사다 심

오는 사람들도 불편한데…왜 안 된다는 말을

기 바빴다. 당연히 색색이 피는 꽃을 보는 재

못해서 이 사단을 만들고 있냐고?”

미가 쏠쏠했다. 커가는 나무를 보면서 미래

“우리한테 아무 피해도 없어. 무료임대로

의 정원을 상상하는 기쁨도 컸다. 그러나 그

하면 되니까 좀 해줘라? 그 땅 주인이 도망

것도 잠깐이었다. 기온이 오르는 여름이 되

다닌다잖아. 우리 것도 좀 들어가 있어. 내가

니 집안으로 날아 들어오는 벌들의 수가 점

아저씨 볼 때마다 민망하다.”

서 리 풀 사 이 로

점 늘어만 갔다. 초반에는 매일 여기에 사는

그렇게 입씨름으로 얼마간의 시간을 보낸

것도 아니고 여름만 지나가면 그럭저럭 지낼

뒤, 마지막이라며 임대사업법 조항을 들이미

수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윙~”하는 소

는 남편에게 일이 생기면 당신이 책임지라고

리가 들리면 집안으로 몸을 피하기도 하고,

한 소리를 하고는 옆집 아저씨가 내미는 서

50

때론 꿀벌에 물을 끼얹어 압사시키기도 하

류에 그러자고 승낙을 했다. 그 후로 아저씨

vol.2


는 직장에 다니는 아들들을 불러들여 일손

자라는 두려움도 서서히 사라졌다. 이곳 아

을 더해 가면서 양봉사업에 몰입을 했다. 농

낙의 시간 속으로 내 마음과 행동이 사뿐사

촌생활 3년차가 되는 지금은 꿀벌 통은 수십

뿐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통으로 늘어났으며, 가끔은 아주머니까지 합 하여 4명이 망사가 달린 모자를 쓰고 벌통에

간장 달이는 냄새와 함께 마당의 수돗가에

서 꿀을 내리는 작업을 하는 모습도 보게 되

서 가을에 김장김치를 담글 때에 쓸 김치 통

었다.

과 항아리를 부지런히 씻었다. 통에 밴 냄새 도 제거하고 햇볕에 소독도 하려는 의도에서

얼마 전에는 주말 새벽에 시골집을 가던

십여 개의 김치 통을 씻어서 햇볕이 내리쬐

일상과 달리 월요일 새벽에 시골집을 가게

는 마당의 비닐포장위에 펼쳐 널었다. 혼자

되었다. 아침을 대충 먹은 우리는 이른 점심

서도 잘 해내고 있다고 스스로를 토닥이던

을 먹고 부지런히 이런저런 일들을 해 나갔

그때 갑자기 “윙~” 하며 꿀벌 떼거지들이 날

다. 그 와중에 전화를 받은 남편은 서울을 다

아 와서 내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녀와야겠다고 말하고는 하던 일을 던져두고

“엄마야, 이게 뭐야?” 고개를 숙여 손으로

훌쩍 가 버렸다.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나는

머리를 흔들며 털어내면서 놀란 마음을 쓸어

맘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경험하지

담으며 집 안으로 들어와 문을 꽁꽁 잠갔으

못했던 한적한 시골동네의 민낯에 대한 낯

나 이미 당하고 말았다. 오른쪽 머리가 따끔

선 두려움이 밀물처럼 밀려 와 머릿속을 어

거리고 아프며 가운데 손가락이 한 방 보기

지럽혔다. 일단 저녁시간의 서울행 고속버스

좋게 쏘여서 부풀어 올랐다. 뭔 일인가 싶어

를 예약 하고 먼저 지난주에 못한 간장을 달

벌통이 있는 쪽을 쳐다보니까 옆집 아저씨가

이려고 광에 있는 부르스타와 부탄가스, 커

완전 무장을 하고 꿀을 뜨고 있었다. 참 야속

다란 들통을 간장항아리 옆의 봉당으로 꺼

했다. 얼른 이 동네를 빠져나가 병원에 갈 생

냈다. 햇볕도 따스하니 좋고 바람도 선선하

각뿐이었다. 이웃동네에서 요양보호사로 일

고 무엇보다 구부리지 않고 서서 일할 수 있

하고 있는 옆집 아줌마를 불러 1키로 정도 거

는 봉당에서 간장을 달이는 것이 제격이었

리의 초등학교옆 내과로 달려갔다.

다. 항아리에 있는 간장을 들통에 붓고 부르 스타의 가스불로 이십 여분을 끓이기 시작

이화의원이라 쓴 문을 열고 들어서니 병

하니 달달한 간장 달이는 냄새가 마당가득

원 안은 조용했다. 잠시 후 허리가 굽고 깡

퍼지기 시작했다. 서울의 아파트에서는 냄새

마른 체격이 안쓰럽게 느껴지는 남자 노인

때문에 감히 엄두도 못 내는 일이었지만 여

이 진료실의 문을 열고 나왔다. 슬리퍼를 질

기서는 할 수 있다는 자부심으로 어느새 혼

질 끌며 그를 뒤따라 나온 간호사가 들어오

우리가 만드는 서리풀 이야기

서 리 풀 사 이 로 51


라고 말하는 소리와 함께 열린 문을 잡고 들

라앉았으며 머리의 따끔거리는 통증의 강도

어갔다. 의사는 늙수그레하고 흰머리가 희끗

도 훨씬 덜했다.

희끗 보이며 툭툭 던지는 말투가 전문성을 갖춘 의사 보다는 평범한 이웃집 아줌마 같

평생을 농촌에서 살아 온 86세의 뒷집 할

았다. 그녀는 꿀벌에 쏘이는 것쯤은 일도 아

머니에게 꿀벌에 쏘였다고 말하면 “돈 주고

니라는 듯이, 뭐 이런 일로 병원에 오냐는 투

벌침도 맞는데 뭐” 한다.

의 말투로, 대충 얼버무려 진료를 마무리했

그러나 어슬핏하게 농촌생활을 꾸려 가는

다. 서울의 병원에 갈 것을 괜히 왔다는 생

나에게는 꿀벌은 두려움의 존재이며 꿀벌에

각을 담고 ‘시골의사가 뭘 알겠어!’라는 오만

쏘이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행동을

방자한 마음을 품고서 처방받은 약을 먹었

이해하는 것은 넘어야 할 크나큰 산으로 자

다. 그러나 서울행 고속버스에 몸을 싣고 한

리하고 있다. ❖

숨 자고 일어나니 손가락의 부기는 많이 가

서 리 풀 사 이 로 52

vol.2


사춘기의 슬픈 축복

작성자 강지영

우리는 신체적으로는 이차 성징이 나타나며 정신적으 로는 자아의식이 높아지는 사춘기라는 발달의 시기를 거 친다. 사람에 따라서 쉽게 지나기도 하고 심하게 힘겨운 사춘기를 지나기도 한다. 몇 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 시 기를 떠 올려 보면 왠지 가슴 한쪽이 짠해 온다. 나는 육 남매의 딱 중간 넷째 딸이다. 오빠, 언니, 남동 생 여동생 모두 있어서 좋겠다고 말들을 하지만 자랄 때 는 가장 나쁜 위치로 형제들에게 치이기도 한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열심히 하면서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 려고 무척 노력을 했던 것 같다. 엄마는 어쩌다 보니 5남매가 모두 다닌 유치원을 나 만 못 보냈다고 하셨다. 모두 다닌 유치원을 나만 안 보 냈다고 원망할까 봐 피아노를 가르쳐 주셨다. 아버지 가 퇴근해서 오시면 베개를 피아노 삼아 노래를 부르

서 리 풀 사 이 로

며 치기도 했다. 그런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측은해 보 였는지 피아노를 사 주셨다. 피아노 못 치는 사람이 치

우리가 만드는 서리풀 이야기

53


면 피아노가 고장 난다고 피아노를 열쇠로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떠나 버렸다.

잠그고 열쇠를 감추고는 했다. 당시에는 나

자존심에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평

에게 사주신 피아노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했

온해 보였지만 내면은 많이 위축되어 자신감

지만 피아노 열쇠를 내놓으라고 윽박지른 사

도 없어지고 말 수도 적어졌다. 우리 집을 자

람도 없고 열쇠를 주라고 야단을 치지도 않

기네 집처럼 살면서 신발이 달도록 드나들던

으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런 말씀을 하

친척들은 얼굴도 보이지를 않았다.

지 않으신 것은 아마도 유치원을 못 보낸 미

우리 집 사정이 바뀐 것을 모르는 친구들

안함이셨던 것 같다. 오빠나 언니는 피아노

이 함께하자고 하는 그룹과외나 학원은커녕

가 치고 싶어서 나한테 먹을 것을 주거나 심

참고서도 사달라고 말을 못 하고 선배들에게

부름을 대신해 주기도 했다. 피아노 덕분에

물려받았다. 차츰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과는

오빠들이 특별한 잘못 없이 벌을 주던 엎드

멀어졌고 그동안 별로 관심도 없었고 가깝게

려뻗쳐 기압은 끝이 났고 언니만 기압을 받

지내지 않았던 표정이 밝아 보이지 않는 고

게 되었다. 그 덕분인지 언니는 체력장 만점

민이 많은 아이들과 가깝게 지내게 됐다. 새

을 받았다.

로 사귄 친구들의 힘든 가정사와 고민을 들 으며 몰랐던 세상을 알게 되었고 이해하고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아버지 회사가 부

공감하게 되었다.

도가 났고 천식과 심장이 안 좋아서 병원에 입원하셨던 아버지는 검사 결과를 기다리시

그 와중에 집안 사정을 모르는 선생님은 3

던 중 심장 마비로 돌아가시고 말았다. 아버

박 4일 ‘재일교포 한국 체험 가정’을 부탁하

지의 죽음으로 우리 가족은 지금까지 겪어

셨고 엄마와 오빠는 나의 상처받은 자존심을

보지 못한 극과 극의 세상을 살아야 했다. 피

조금이라도 위로해 주시려는 마음에 허락을

아니스트의 꿈은 사라지고 그렇게 애지중지

해 주셨다. 오빠는 서울 시내가 보이는 남산

하던 피아노는 주인을 떠나고 말았다. 피아

타워와 고궁, 야구장 등 데리고 다니며 한국

노 연습을 하라고 할 때는 지겹더니 마지막

체험을 도와주었다. 드러나지 않았던 가정환

이란 생각이 들어서인지 마지막 배우고 오던

경의 변화는 고2 수업 중간 목청이 큰 가정

날에는 달을 보며 엉엉 울면서 집에 갔다. 나

선생님이 교무실로 부르며 담임 선생님과 많

서 리 풀 사 이 로

는 지금도 피아노 연주를 들으면 왠지 애잔

은 선생님이 알게 되었다. “너희 집이 망했으

한 생각이 든다.

니 빨리 집에 가 보라는...” 가면 쓴 얼굴이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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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춘기는 지금까지의 모든 것들을 버

겨지며 기가 죽어 버린 학교생활이 시작되는

리게 하고 새로운 것을 요구했다. 마음만 먹

순간이었다. 집이 망했다는 소식보다는 비웃

으면 무엇이던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세상은

듯 아무렇지도 않게 충격적 광고를 하신 선

vol.2


생님에게 실망과 깊은 상처를 받았다. 나에 게만 조용히 말할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안타 까움이 남는다.

하고 잘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세상에 무서운 것 없이 이기적이고 오만했 던 내가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알고 이해하 며 공감한다는 것은 굉장한 변화이다. 급격

꿈 많은 사춘기 소녀가 아버지라는 한쪽 날

한 가정환경의 변화와 겹쳐진 사춘기로 적

개를 잃고 추락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눈을

응이 힘들었고 마음을 많이 다쳤었지만 모난

무시하고 날아가기에는 감당하기 힘든 버거

돌은 다듬어지며 생각은 깊어지고 철이 들면

운 시간이었다. 나라고 하는 존재의 생각이

서 사람이 되어 갔다.

나 꿈은 무시되었고 ‘어려운 너희 집 형편’이 우선되었고 자격지심인지 모르겠지만 어떤

죽을 만큼 힘들었던 그 시간은 남의 고통을

선생님은 불우한 아이 취급을 하기도 했다.

이해하고 겸손함을 배웠던 축복받은 시간이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느낌이었지만 부모

었다. 그런 시간이 아니었다면 마리 앙투아

님이 자랄 때 특별한 것들을 경험하게 하며

네트처럼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어”라고

심어주신 자긍심 덕분에 그런 태도들을 무시

했을지도 모르겠다. ❖

서 리 풀 사 이 로 55

우리가 만드는 서리풀 이야기


친구들과 함께 하는 둘레길

작성자 윤영미

해외를 돌아 다니다 퇴직해서 서울에 살면서 그동안 친구도 별로 없었고 퇴직한 남편과 하루종일 보내는 시 간이 지루할것 같아서 걱정이 많았는데 60세가 되면서 회갑기념으로 여고 동창들과 홍콩여행에 합류 하면서 여고 동창들의 모임이 시작 되었다. 매주 목요일 마다 서울 근교의 산들을 걸었는데 곳곳 에 사는 친구들이 자기 지역을 잘 설명 하면서 안내를 해 주어서 너무나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북한산에 갈 때는 은평구에 사는 금해가 자세한 설명 과 계절마다 달라지는 모습과 그곳의 맛집을 안내하고 서 리 풀 사 이 로

가끔은 사우나에서 시원스레 몸의 때까지 씻고 오는 하 루 일과에 친구들 모두 행복해 했다.

관악산에 갈 때는 신림동에 사는 옥자가 항상 우리를 56

반갑게 맞이 하면서 안내해주었다. vol.2


일단 약속을 하면 비가 와도 강행을 해서 갈

2019년 겨울에 남한산성에 갔는데 높지 않

때마다 비를 맞고 가는 해프닝이 있었지만 비

은 둘레길을 걷고 있는데 길에 낙엽이 쌓여

가 오면 오는대로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데는

있어서 그곳을 걸어 가는데 그 밑에 얼음이

별로 방해가 되지 않았다.

얼려 있어서 주루룩 미끄러지면서 낙상을 하

잣나무가 있는 데크 길을 걸으면 피톤치드 가 나와서 항암에 좋은지 시트를 깔고 누워

는 친구가 생기면서 손목이 부러져 수술을 하 는 친구가 생기기도 하였다.

있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이제 2년이상 쉬고 다시 시작 하더라도 우 그 뒤로도 청계산, 대모산, 우면산등등 3년 에 걸쳐서 100회가 넘게 걸었지만 지금 2년간 못가고 있으니 코로나가 마냥 우리의 발목을

리는 더 조심을 하고 다녀야겠다. 모두들 기다리고 있는데 언제 다시 올지 기 대가 된다. ❖

잡고 있어서 아쉽기 그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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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드는 서리풀 이야기


그리운 부모님

내 고향 정읍 신태인에서 태어난 나는 6남매 중 다섯 째 딸로 우리 부모님의 외아들인 남동생을 아래로 둔 딸 막내다. 어릴 때부터 몸이 건강하지 못하여 응급 상황 이 종종 발생 하는데 밤낮을 가리지 않은지라 한 밤중 에도 읍내 약방으로 뛰어가야 했다. 언니들의 발품 수고 와 정확한 진단으로 지극정성 노심초사로 자식을 보살 펴 주신 부모님 덕분으로 장해 없이 자랄 수 있었단다. 청소년 시기 까지도 기초체력이 약한 여식이 어떻게 될까봐 농번기로 바쁜데도 도시락을 못 가져 간 날에는

작성자 김복실

따뜻한 밥을 지어 학교까지 가지고 오신다. 이런 부모 님의 정성을 먹고 성인이 된 이 딸이 결혼하기 1년 전에 어머님은 고혈압으로 쓰러지셨다. 아버님과 우리 형제 들은 팀으로 나누어 돌아가며 정성껏 간호에 매진했다. 나를 포함한 형제들이 모두 서울에서 보금자리를 갖고 있는 터였기에 아버님께서 어머님 곁을 가장 많이 지켜 주셨다. 그 결과로 믿기지 않을 정도로 어머님은 겉으 로는 아무 장해 없이 일어 나셨고, 평소에 그렇게 원하 셨던 막내 딸 결혼식에도 참석하게 되었다. 이제부터는 효도 받으실 날만 있을 줄 알았는데 어머 님은 1년 후에 천국 가시고, 비둘기처럼 두 분만 사시던 아버님은 아내 잃은 슬픔과 스트레스에 위암이 찾아 왔 다. 서울로 모시고 치료를 시작 했으나 38년 전의 의술

서 리 풀 사 이 로

로는 쉽지가 않아서 고생만 하시다가 아내 잃고 3년 만 에 생을 마감 하셨다. 부모는 자식들의 효도를 기다려 주시지 않는다는 말이 가슴에 절절 하였다. 난 아들과 딸을 낳고 남편과 미래의 멋진 생의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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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하며 스위트 홈을 꿈꾸며 지냈다. vol.2


동네 소문날 정도로 사랑 표현과 웃음이 떠

도도 못해 드렸는데 그 죄 값으로 나에게 이

나지 않는 우리 아이들과의 생활은 부러움

런 시련이 다가왔을까? 그 당시는 왜 나에게

없는 행복 이었다.

만 이런 일이 찾아왔을까? 무슨 죄를 많이 지

한 돌 되자마자 말문이 터진 딸아이는 2살

어서일까? 아니면 전생에 빚이 많아서 일까?

위 오빠도 누나처럼 잘 챙겼다. 말문이 늦게

스스로에게 질문도 많이 하고도 정답을 몰

터지는 또래 친구들에게는 언니라고 부르라

랐었는데 이제야 깨달았다. 5년 동안이나 투

며 큰 그릇 언니처럼 배려하며 놀이하는 골

병하며 고생 하다가 결국엔 사랑하는 엄마

목대장이었다.

를 더 힘들게 하기 싫어서 하늘나라로 여행

어느 날 골목대장 딸아이가 다섯 살 되던

떠난 딸아이는 해답을 알고 간 것 같다. 유난

해에 그토록 다니고 싶다던 유아원에 입학

히도 효심이 강한 울 아기는 세상에서 엄마

하고 석 달 만에 영특하고 천재적인 딸아이

를 가장 좋아했던 똑똑하고 지혜로운 딸이

는 뇌종양 이라는 병을 얻었다. 하늘이 무너

라서...

지고 살이 다 떨어져 나가는 어미 맘 이었다. 나 어릴 때 병마와 싸울 때에 우리 부모님의

가슴에 묻고 우리 딸 몫까지 살라는 남편의

심정도 똑 같았었을 텐데 이제야 부모님 심

위로와 생전에 늘 말씀 하셨던 부모님의 유

정을 헤아리게 된다. 얼마나 아프셨을까? 아

지를 받들어 하나인 아들의 적극적인 팬으로

버님 위암으로 고생하실 때도 이처럼 가슴이

열심히 뒷바라지 해 주며 내 생활도 게으르

아리고 아프지 않았던 것 같은데 자식이 사

지 않게 살고 있다. 사회 활동도 적극 참여하

경을 헤매다보니 앞이 안 보이고 정신을 차

며, 노노 케어 활동으로 노인 복지관에서 봉

릴 수 없을 만큼 아프다.

사 활동도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더불어 사 는 지역사회 공동체 발전을 위한 프로그램과

자식들은 결혼하고 자식을 낳아봐야 부모 맘을 헤아린다는 옛 어르신들의 말씀이 생 각난다. 우리 부모님 고생만 시켜 드리고 효

청소년 선도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모두 천국에 계신 부모님과 우리 천사 딸의 응원의 힘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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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드는 서리풀 이야기


마스크로 본 코로나 세상

작성자 김지숙

아침 7시 반. “마스크를 착용하셔요!”~ “마스크를 착용하셔요!” 전철역 개찰구에서 교통카드를 삑삑 찍을 때 마다 매 일 듣는 상냥하면서도 단호한 단골 멘트를 뒤로 하고 발을 동동동 구르면서 지하 승 강장으로 달려간다.

“열차 출입문 닫습니다! ”~ “출입문 닫습니다!” 전철역 승강장은 전철을 놓치지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올라타는 직장인 승객들로 닫혔다. 열렸다를 반복하는 출입문과, 콩나물 시루처럼 발디 서 리 풀 사 이 로

딜 틈도 없이 열차안에 꽉꽉 들어찬 사람들이 한데 어울 려져 한바탕 씨름을 하고 있었다.

간신히 정신을 가다듬은 열차는 이리저리 몸을 흔들 60

어 사람들을 중심으로 한테 모아 공간을 확보한 후에 다 vol.2


음 목적지 역으로 출발하였다. 그 와중에 코

구입하다보니, 폭발적인 수요에 비해서 공급

와 입을 가리고 이마에서 눈까지만 보이도록

이 부족하여 시중에 마스크 품귀현상이 일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이 용케도 좁은 틈을

어났다. 시중상점에서는 마스크를 구할 수가

비집고 서서 스마트폰을 열심히 두드리고 있

없었고 인터넷 쇼핑몰에서도 마스크가 품절

다. 거의 대부분이 하얀색 마스크를 쓰고 있

되었으며, 그나마 바이러스 차단에 효과가

지만 그 중에는 연분홍색, 하늘색, 검정색 마

있다는 KF94 마스크는 한 장에 5천원에서 7

스크도 보인다.

천원으로 판매되기도 했다. 그마저 구할 수 없는 사람들은 궁여지책으로 천마스크를 만

연예인 마스크. 마스크하면 예전에 공항 에서 검정색 마스크를 쓴 연예인이 경호원들

들어서 쓰거나 심지어 부직포나 키친타월로 만들어서 쓰는 사람들도 있었다.

의 보호를 받으면서 지나가던 이미지가 떠오 른다. 그러나 요즘은 연예인도 아닌데 전국 민이 마스크를 쓰고

이때를 틈타서 평소 2천원에 30장씩 하던 일회용 마스크 한 장에 1만원, KF94 마스크

살아간다. 우리는 언제부터 전국민이 마 스크를 쓰고 살게 되었을까?

는 한 장에 5만원을 호가하는 어처구니없이 폭리를 취하는 판매상들도 나타나서 지탄을 받기도 했다.

2019년 12월.

이런 마스크대란은 2020년 3월 9일. 정부

지구촌에 뜻하지않게 초대하지도 않은 손 님이 찾아왔다.

에서 출생연도 끝자리에 따라 지정된 날짜 에 약국에서 일인당 2장씩 3천원에 공적마스

중국 우환에서 처음 발생한 새로운 유형의

크를 구입할 수 있도록한 마스크 5부제를 실

코로나 바이러스인 코비드19가 우리나라에

시하면서 한풀 진정되었다. 그러자 공적마스

도 상륙하여, 2020년 1월 20일에 첫 번째 코

크를 사기 위해서 우체국이나 농협 하나로마

로나 확진자가 나오면서 코로나 시대의 막을

트에서 몇시간씩 줄을 섰던 사람들의 발길이

열었다. 그해 2월에는 대구 신천지교회를 중

약국으로 몰리다보니 처음에는 공적마스크

심으로 확진자가 급증하였고, 학원은 휴강하

구입또한 쉽지않았다.

고, 유치원, 초중고 개학도 연기되고 위기단 계는 경계에서 심각단계로 격상되었다.

약국에서는 하루에 정해진 수량만큼 지정 된 시간에만 판매했는데, 마스크를 사려고 달려갔으나 벌써 매진되기가 일쑤였다. 출생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사회적 거

연도인 목요일에 2시간동안 9군데의 약국을

리두기와 더불어 감염차단을 위한 마스크 착

방문하고도 마스크를 못사고 발길을 돌려야

용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너도나도 마스크를

했던 날은 정말 속이 상했었다. 그러자 공적

우리가 만드는 서리풀 이야기

서 리 풀 사 이 로 61


마스크 판매처와 남은 마스크 재고수량을 파

이 트이는 것 같았다.

악할 수 있도록 해주는 어플도 개발되었는 데, 앱덕분에 잔여분 마스크 수량을 보고 약

수그러들지않는 코로나19의 심각한 확산

국에 방문하여 품절되기 전에 마스크를 구입

으로 인한 1~4 단계별 사회적거리두기와 더

할 수 있었다.

불어 2020년 11월 13일 부터는 실외에서 마 스크를 쓰지 않으면 벌금 10만원을 내야하는

약국에서 공적마스크를 살때는 신분증과 주민등록등본등올 제시하고 본인이나 가족

‘전국민 마스크쓰기 의무화’ 제도가 시행되 었다.

임을 증명해야했다. 그즈음 동사무소에 인감 증명서를 발급받으러 갔을 때의 일이다.

무조건 얼굴만 가린다고 마스크가 되는 것 은 아니었다. KF94나 KF80 마스크, 덴탈마

민원실 입구에는 “마스크 미착용자는 입장

스크나 면마스크는 허용되지만, 목폴라를 올

을 금지한다.”는 안내판에 세워져있었다. 마

려서 코와 입을 가린다거나 스카프로 임시변

스크를 착용하지 못한 사람들은 민원실에 들

통을 하는 것, 코와 입을 완전히 가려야 하는

어가지못하고 난감함을 표시했다. 마스크를

데 코에 마스크를 걸친 ‘코스크’와 턱 아래에

구입하지

걸친 ‘턱스크’를 쓰다 적발되면 마스크 미착

못했으니까 마스크 없이 서류를 발급받으

용으로 과태료를 내야한다. “마스크가 최고

러 왔을텐데, 마스크 착용한 사람들만 입장

의 백신이다.”라는 슬로건처럼 이제 마스크

이 가능하다는 표지판이 아이러니하게 느껴

는 과태료 이전에 생명을 지키려면 반드시

졌다. 그러나 역쉬~ 센스있는 동사무소에서

착용해야하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우리들의

는 마스크없이

필수품이 되었다.

방문한 민원인들에게 마스크 한 장씩 배부 해주고 마스크를 쓰고 민원실에 입장할 수

2015년 6월.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인터넷에서 "메르스 세태 풍자 ㅡ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그런데 웃음이 난다 "라

약국에서만 구입할 수 있었던 공적마스크

는 부연설명과 함께 주례와 신랑. 신부를 비

는 생산량 증가로 수급이 안정되면서 7월 12

롯한 모든 하객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는 사

서 리 풀 사 이 로

일 공적마스크 제도가 페지되면서 약국은 물

진을 보았을 때만 해도, 메르스 결혼식 사진

론 마트, 편의점, 인터넷 쇼핑몰등에서 자유

은 실현 가능성이 없는 그저 한낱 세태 풍자

롭게 구입할 수 있게되었다. 더 이상 마스크

라고 생각했었는데 코로나바이러스 시대에

를 구입하려고 줄을 서지않아도 되니까 마스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마스크 결혼식이 현

62

크때문에 받았던 스트레스에서 조금은 숨통

실이 되었다.

vol.2


사회적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되었을 때 큰딸 결혼식을 앞둔 친한 형님의 전화를

리고 눈만 빼꼼하게 보이는 축하객들 사진 속에서 옷색깔로 나를 찾을 수 있었다.

받았다. 결혼식을 예약하러 예식장에 갔더 니 하객수를 50명으로 제한하면서도 기존의

어제 토요일.

기본 인원 200명 분의 예식 비를 내라고 한

신원동 225에 위치한 청룡텃밭에서 배추

다는 것이었다. 결혼식에 올 하객도 많은데

와 열무를 가꾸며 도시농부일을 하는 지인을

코로나 감염 위험 때문에 친구들도 지인들도

도와드리러 가는 길이었다. 텃밭 근처에 가

못부르고, 가족끼리만 모여서 조촐하게 하면

깝게 자리한 하우스웨딩 결혼식장에서 웨딩

서도 200명분의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 것도

마치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신랑. 신부와 하

억울한데, 게다가 결혼식 사진도 신랑. 신부

객들의 모습이 보였다

를 제외한 모든 하객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사진을 찍어야 한단다.

마스크는 잘 쓰고 있는가? 궁금해서 보았 더니 신랑신부를 제외한 모든 하객들이 마스 크를 잘 쓰고 축하해주고 있었다. 푸른 하늘

“평생 추억할 결혼식 사진인데 하객들이

과 흰 구름. 초록색 나무들이 있는 결혼식장

온통 마스크를 뒤집어쓰고 사진을 찍으면,

마당에서 그들은 웃으면서 행복하게 백년가

얼굴이 안 보이는데 누가 결혼식에 왔는지

약을 맺고 있었다.

어떻게 알겠느냐? 뭐 이런 세상이 다 있는 지? 속상해서 미치겠다." 는 형님의 하소연

코로나 시대에도 우리의 삶은 계속된다.

은 계속 되었다. 그저 그런 형님의 안타까운

이제 2021년 10월 23일 기준으로 전국민의

마음을 위로하고 다독여주는 일 밖에는 별다

70% 이상이 코로나백신 접종을 마쳤으므로

른 방도가 없었다.

11월에는 단계적 일상회복- 위드 코로나로

그리고 2021년 4월에는 마스크 결혼식을 하소연했던 형님의 큰딸 결혼식,

방역체계를 전환한다고 한다. 위드 코로나 시대로 전환되어도 지구상에서 코로나가 완

6월에는 친구 작은딸 결혼식에 마스크를 쓰고 참석하였다. 마스크로 잔뜩 얼굴을 가

전히 사라지기 전까지는 건강을 위해서 외출 시에 마스크 쓰기를 계속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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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드는 서리풀 이야기


위령탑과 결혼식

작성자 박지수

“신부 입장”

이 깃들길 빌어 본다. 야외에서 진행되는 결

사회자의 우렁찬 목소리에 하얀 드레스를

혼식엔 지인이 아닌 사람도 많다. 낯선 이들

입은 신부가 신중한 발걸음으로 반려자에게

은 그저 흐뭇하게 바라보며, 행복을 빌어주

로 향한다.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날, 신부

는 마음을 축의금 대신으로 보낸다. 그러나

를 비추는 햇볕은 따스하고 신랑을 맞이하는

한 가지 금기사항, 흔적을 남기지 말아야 한

바람은 포근하다. 맞잡은 두 사람의 손이 싱

다. 그냥 조용히 축복해주고 바람처럼 사라

그럽다. 잔잔한 선율이 깔리고 모두의 시선

져 주는 것이 야외 결혼식의 묵인된 예의다.

이 한 곳으로 모인다. 드디어 시작되는 경건 한 예식. 각자 살아 온 시간보다 많은 세월을

산책 나온 날 가끔 마주하는 결혼식은 마치

서 리 풀 사 이 로

견디겠노라, 커다란 나무 앞에서 맹세한다.

짧은 공연을 관람하는 기분이 들게 한다. 환

곳곳에 무리 지어 있는 이들 얼굴에는 흐뭇

호하는 친구들의 즐거움, 새로운 출발을 하

함과 부러움의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알진

는 이의 다부짐, 품에서 떠나보내는 부모의

못하지만, 나 또한 속으로 그들이 나란히 걸

기쁨과 슬픔의 교차의 표정을 보고 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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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가는 푸른 잔디 밭길에 부디 행복과 평온

면, 혼자 엉뚱하게 울컥하기도 한다. 그렇게

vol.2


일요일 오후 이곳 숲을 찾는 이들의 얼굴엔

매연을 가득 채운 사차선 도로를 지나, 새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넘어질 듯 넘어지지

롭게 마주한 숲의 입구. 방금까지 푸름을 만

않는 신기한 재주를 부리며 자전거를 타는

끽한 얼굴의 미소가 아스라이 사라진다. 먼

아이를 바라보는 아빠의 흐뭇한 미소가 행복

저 반기는 기름 냄새 가득한 매연에 인상이

해 보인다. 반평생을 같이 한 노부부가 두 손

찌푸려진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마음이 묵직

을 잡고 서로 발을 맞추며 걸어가는 뒷모습

해진다. 입구엔 커다란 나무들이 멋지게 버

에 설레기도 한다.

티며 도심 속 자연을 한껏 느껴보라지만, 여 유로움 따윈 스며들지 않는다. 같은 나무라

오솔길에 작은 풀들조차 즐거운 듯 하늘거

도 좀 더 정갈하고 예의 바른 자세로 우직하

리는 이곳의 생명들은, 언제나 청초하며 산

게 서 있는 자태가, 마치 외부로부터 무언가

뜻하고 싱그러움으로 기억 속에 남겨진다.

를 보호하고 있는 것 같다. 반대쪽과는 다른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자연의 푸름은, 언제

엄숙함이 느껴지는 숲의 공기는 느린 걸음을

나 원하는 것이 많은 이들에게 자신을 내어

더 느리게 만든다.

주고 있다. 흙이 닿는 발끝엔 건강함이 전해 지고, 시원한 나무 그늘아래서는 여유로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름 모를 영웅

을, 테이블이 놓인 저곳은 내게 배부름과 추

들이 편하게 잠들어 있고, 테러로 억울하게

억을 선물해 주기도 했다. 그래서 가끔 찾았

희생된 이들은 아직도 하늘을 날고 있다. 누

던 그곳의 시간은 언제나 미소 짓게 한다.

군가의 욕심과 이기심으로 싸늘히 식어간 사

삭막한 빌딩 틈 사이 찬란하게 빛나는 도

람들이 갈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 수

심 속 숲은,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과 1988

많은 이들이 잠들어 있는 숲을 돌아 산책하

년 서울에서 열리는 올림픽을 위해 서울의

는 것은 여전히 먹먹하고 답답하다. 이곳에

관문인 양재 톨게이트 근처, 하루에도 수백

도 늘 햇살이 감싸고 기분 좋은 바람이 머문

대의 버스가 들고 나는 큰길가에 자리하고

다. 사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고, 반대쪽 숲

있다. 도심 속 숲이란 슬로건에 맞춘 이곳의

보다 더 푸른빛을 띠고, 더 튼튼할 것만 같은

밝은 숲에 어울리자 않다는 이유인지, 아님

나무들이 지켜주지만, 그런 것들이 과연 그

전혀 다른 두 숲의 성격이 맞지 않은 건지, 한

들에게 위로가 될까. 차가운 그늘 속에 숨지

이름으로 이어졌지만 반대편으로 갈라져 있

말라고 해와 가깝게 우뚝 솟은 탑의 높이만

는 또 다른 숲. 언제나 웃음이 끝이지 않는 이

큼 슬픔 또한 높다.

곳과, 웃고 싶어도 웃음이 나지 않는 저곳에 있는 숲의 분위기는 무겁다.

결혼식 앞에서 멈춰선 걸음은 이곳 위령탑 앞에서도 여지없이 멈춘다. 산책하는 사람들

우리가 만드는 서리풀 이야기

서 리 풀 사 이 로 65


이 가끔 관심을 보이고, 학교 과제를 위해 들

을 하고 있었던 그때, 무너진 건물에서 마지

리는 학생들 외에는 특별히 이곳에 관심을

막을 맞을 거라고 꿈엔들 생각했을까.

가지는 이들은 많지 않다. 여기도 분명 사람

반대쪽 숲에선 여전히 시끌벅적하겠지. 새

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때가 있었을 것이

로운 시작을 하는 두 남녀를 요란하게 축복

다. 뭐든 그 시작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온통

하고 있을 것이다. 그만큼 주위에 꽃들도 화

관심을 두는 것이 사람이니까. 지나치던 누

사하고 나무도 더 푸르겠지. 심지어 날아다

군가는 생경한 풍경에 관심을 갖던 시절이

니는 벌레도 예쁘게 곡선을 그리며 춤을 추

있었을 것이다. 건너편 결혼식처럼.

겠지. 서른 발자국도 안 되는 도로를 사이에

그러나 이제 나에게도 가물가물한 그때의

둔 숲의 온도 차는 깊다. 그러나 이곳도 한창

시간이 누구에겐들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을

푸를 6월과 추위에 잎이 떨궈질 11월에는 그

까. 언제부터 쓸쓸하게 자리만 지키고 있는

나마 기억을 간직한 이들의 발길이 한동안은

세 탑은, 그들을 잊을 수 없는 가족과 언제나

머물지 않을까. 건너편 숲의 요란함이 여기

이곳에서 계절을 맞이하는 나무와 꽃, 풀과

까지 들리는 것 같아 괜히 미안하고 더 숙연

바람. 그리고 따뜻하게 덮인 흙만이 지켜내

해진다. 잠시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아본다.

고 있을 뿐이다.

이제까지 지나치며 애써 하지 않았던 위로를 해 보려 한다.

6.25때 한 나라의 국민이란 이유로, 계급도

지금 세상이 이름 모를 영웅들이 목숨을 걸

군번도 없이 처절했던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

고 지켜낸 만큼의 가치를 다하지 못해 미안

던 젊은 그들이 있었다는 걸 기억하고, 그 분

합니다. 하늘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분들

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이는 몇이나

이 그곳에서 별이 되어 행복하길…. 큰 굉음

될까. 어떤 이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 또 누

속에서 당신들이 속절없이 놓쳐버린 삶을 소

군가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즐거움으

중히 여기겠습니다. 소중한 분들의 끝이 시

로 하늘을 나는 설렘에 오른 여행길에서, 마

작된 이곳 숲에서 그간 못한 일, 못 이룬 사랑

지막 인사도 전하지 못하고 흔적도 없이 사

이루며 부디 평안하시길….

라질 거란 상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정말 그들은 예상하지 못했다. 사람들의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는 누구에게나 시작

서 리 풀 사 이 로

욕심과 이기심으로, 영문도 모른 채 비명조

을 열어주고 끝에 머물게 한다. 양재시민의

차 지를 시간도 허락하지 않은, 그 짧은 시간

숲은 시작을 축복해주고 끝난 삶을 위로하

에 어둠이 자신들을 덮쳐버릴 거란 걸. 여유

며, 지켜낸 이들에게 감사하라는 마음으로

로움을 즐기다, 혹은 사랑하는 이의 선물을

살아가라며 바람에 흩어지는 잎의 싱그러움

66

고르다가, 어떤 이들은 열심히 자신의 할 일

이 내게 속삭인다. ❖

vol.2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어느 날 세상이 멈췄어, 아무런 예고도 하나 없이…’ 한 글노래로 미국 빌보드 음악 차트 핫 100 1위에 당당히 오 른 BTS의 노래 ‘라이프 고즈 온’의 가사처럼 코로나라는 바이러스는 정말 예고도 없이 세상을 멈추게 했다.

작년 1월 말 내가 관여하던 것들이 하나씩 문을 닫을 때만 해도 강제로 주어지는 휴식을 즐겁게 받아들였다. 퇴직 후 마음 끌리는 대로 여기저기 고개를 디밀다가 꽉 찬 스케줄에 치여 한숨이 더러 나왔기 때문이다. 불경스 럽게도 생애 최고의 휴식을 취한다고 생각하니 웬 떡이 작성자 김란

냐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맨 처음 한 달간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최 대한 누리기로 했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에너 지만 사용하는 게으름뱅이가 되자. 삼시 세끼만 겨우 이 어가며 멍을 때린 초기에는 남의 옷을 빌려 입은 것처럼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열흘쯤 지나자 관성처럼 달라붙 던 활동 에너지가 소멸되고 게으름이 맞춤옷이 되었다. 한 달쯤 되니 맞춤옷도 슬슬 갑갑해진다. 무위도식의 시 간을 이제 끝내자.

집안 정리를 시작했다. 옷장을 열었다. 가끔 정리를 해도 여전히 꽉 찬 옷들을 들었다 놨다 했다. 사연이 있어 남겨진 옷들을 만지작거 렸다. 직장 다닐 때 입던 세미 정장들을 과감히 끄집어냈 다. 찬장을 열고, 신발장을 털고, 집안 구석구석 묵혀 있 던 세월과 시름했다. 책장 정리에 시간이 많이 들었다. 읽다가 만 책, 언젠가 볼 것 같은 책들이 서로 한 번 더 봐

우리가 만드는 서리풀 이야기

서 리 풀 사 이 로 67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쓸데 있는 욕심이지만

한숨이 밖으로 새어 나왔다. 내가 잘못한 것

버리자. 며칠 고민 끝에 책장 하나를 덜어냈

도 아닌데 괜히 미안해졌다.

다. 어영부영 또 한 달이 가고 코로나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들어선 한라산 둘레길은 막 피어나는 청춘의 기운으로 가득했다. 왕관 을 쓴 바이러스가 날뛰는 세상과 단절된 숲은

대체 언제 끝날 건데?

사람의 흔적이 드물었다. 청정한 숲의 주인인

이번에는 미드다. 뭔가에 빠지면 제어가 잘

냥 두 팔을 벌리며 마음껏 숨을 쉬었다. 맑고

안 되는 편이라 시작하지 않았던 드라마를 몰

도 고운 숲에서 즐긴 ‘숲멍’은 시들어가던 세

아보기 시작했다. 한 시즌에 스무몇 편, 시즌

포에 생기를 주었다.

10회짜리부터 그보다는 좀 짧지만 그럼에도 헌신적인 시간을 요구하는 몇 개의 드라마를

축 늘어져 갔다가 통통 튀며 집으로 온 뒤 2

섭렵했다. 텔레비전도 잘 안 보다가 자극적인

주 동안 셀프 자가격리를 했다. 아무 일 없이

서사가 가득한 드라마에 머리끄덩이가 잡혀

2주가 지났다. 주의하면서 조금씩 움직이면

밤낮의 개념이 모호해졌다. 언젠가 중드에 빠

되겠구나. 두려움으로 방 안에 갇히는 대신

져 날밤을 세우다가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조심하면서 움직이는 쪽을 택했다. 보이지 않

했는데 이번엔 더 중증이 되었다. 가상의 세

는 적에게 휘둘리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다음

계와 현실의 세계가 뒤죽박죽, 미드 폐인에서

행선지를 찾았다.

벗어나기로 했다. 이번에는 섬이었다. 텅 비다시피 한 여객선

서 리 풀 사 이 로 68

밖으로 나가야겠다.

을 타고 인천 앞바다의 섬을 시작으로 보령,

항공권을 구입하고 TGV와 파리의 숙소, 산

군산, 신안, 통영 등으로 섬 나들이를 했다.

티아고 순례길의 알베르게를 예약했던 일정

섬에 가려면 수시로 변하는 바다 날씨를 살

들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예정대로라면 4월

펴야 한다. ‘내일 맑음’에서 당일‘기상 이변’이

중순에 출국하여 6월 초에 산티아고 순례길

나, 해무로 한두 시간 이후가 어떻게 될지 모

을 마무리했을 것이다. 오랫동안 마음에 둔

르는 불확실성으로 조바심을 내기도 하지만

일정이 재가 되어 흩날렸다.

섬은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산을 타면서 푸른 바다를 즐기고 백사장에 놀면서 숲을 바

제주도에 가기로 했다. 긴장과 두려움을 안

라본다. 비슷하면서 다르고 섬마다 각기 다른

고 집을 나섰다. 숙소가 있는 서귀포 시가는

매력이 넘친다. ‘물멍’과 ‘숲멍’을 동시에 할 수

휑한 기운이 스멀거렸다. 제법 많은 식당이

있는 곳, 아름다운 섬이 있어서 숨통이 트였

문을 닫았다. 문 닫은 상가에서 자영업자의

다. 전국의 섬을 다니는 동안 해가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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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현재 우리나라 백신 접종자

주 보며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웃고 떠들던

는 3천 명이 넘었다. 그런데 감염자도 늘어

기억, 좁은 공간에서 어깨를 부딪치거나 가볍

만 간다. 두 달 뒤면 코로나가 발생한 지 만 2

게 얼싸안으며 서로를 반기던 시간들이 돌아

년이 된다. 이 미로는 언제 끝날 것인가. 아직

오는 날까지 모두 지치고 말고 잘 버텼으면

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누구도 상상할 수 없

좋겠다. 시작이 있었으니 끝도 있을 것. 삶은

었던 일들을 전 세계가 다 같이 겪으면서 우

여전히 계속된다. 할 수 없는 것에 미련을 두

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이 미로 속을 헤쳐나

지 말고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따뜻한 삶의

가는 중이다.

온기를 이어가면서 이 미로를 잘 통과하고 싶 다. 나도, 당신도. 우리 모두. ❖

마스크가 필수품이 되면서 우리가 놓아야 했던 귀중한 일상들이 자꾸 그립다. 서로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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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드는 서리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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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


별편지

오재원

사랑할 이 어디 없나 메아리쳐 돌아오네 꿈꾸는 이 어디 없나 조용히 빛나네 높이높이 올라서

메아리조차 돌아가고

별을 닦아서

추억같은 게 빛난다

따다 줄 님 어디 있나

사랑하는 이 어디 있나

따다 줄 님 어디 없나

돌아갈 곳 어디 없나 꿈꾸던 날 어디 있나 빛나던 님 어디 갔나 높이높이 올라서 별에 묶어서 오늘도 하늘만 바라본다. 서 리 풀 사 이 로 71

우리가 만드는 서리풀 이야기


사진으로 보는 양재천 편집부

서 리 풀 사 이 로 72

vol.2


서 리 풀 사 이 로 73

우리가 만드는 서리풀 이야기


서리풀사이로 vol.2 발간일

2021년 12월 10일

편집장

이정숙

편집부

이순화 김진아 오영숙 이창미 김주현 이태숙 윤희경 지창화 오재원 최오순

기 고

우현옥 김순금 박선영 황혜은 이혜진 희 음 이순미 강지영 윤영미 김복실 김지숙 박지수 김 란

발 간

후 원 디자인

베스트기획 02-581-5061

문 의

jungsugi69@naver.com 010-8239-3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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