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잡지] 마을담 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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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구 사람들의 마을 잡지 6호


차례

우리 동네 이야기 1. 바위절마을 호상놀이 - 이명옥 전수조교 문화유산인 호상놀이 통해 인생을 돌아보지요

(글, 사진 박경숙) p.8

2. ‘강동구의회’ 이젠 가까이 다가가자 - 황주영 강동구의회 의장 민간 협치 이루며 중간자 역할을 잘해야죠

(글 박경숙, 사진 유명한) p.14

3. 강동경찰서 여성청소년과 경찰관을 만나다 - 박노라 경위, 박선영 경사 인터넷 시대를 사는 아이들, 관심과 이해로 감싸 안아야

4. 청년, 지역, 출마 그리고 그 후 - 권중도

(글 이춘애, 사진 박성식) p.18

일상 정치이야기 나누는 모임이 꾸준히 이어져야 해요

(글 , 사진 無PD) p.22

우리들의 소소한 이야기 자연이 가르쳐 준 마음 (김근영) p.28 허들링(Huddling) (김명국) p.32 나의 강동 (안문옥) p.34

이 밤의 끝을 잡고 (윤정현) p.37 꼬꼬네 미용실 (음민서) p.39

행복이 뭐 별거야? (이임순) p.42 사람, 사람, 사람 (이춘애) p.46

우연히 만난 우리들의 정원 (전소민)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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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밑줄에 기대어 (정정성) p.52

진주 같은 영롱한 날들이 하나하나 모여 삶이 된다 (조약돌) p.55 계획이여 안녕 새해에 보자 (천해) p.57

내 인생의 한 컷 사라진 장독대 (김영희) p.62

나는 화가, 이중섭 (김영희) p.64 장미 한 송이 (오치세) p.66 사랑 (김영숙) p.68

전태일과 나 (조서혜) p.69 당신의 4분 33초, 그 이후엔<당신의 4분 33초>를 읽고 (김민정) p.71

우리 동네 이모저모 강동구 주민참여 대기오염 관리방안 토론회 후기 (공정호) p.76 時場(시장)을 담다 (이은진) p.79

기울어진 말들 평등하게 (신나는여성자갈자갈) p.84 삶의 흔적 p.87

마을담 활동스케치 p.90

회원 모집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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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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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이야기

바위절마을 호상놀이 - 이명옥 전수조교

문화유산인 호상놀이 통해 인생을 돌아보지요 글 · 사진

박경숙

‘강동구의회’ 이젠 가까이 다가가자 - 황주영 강동구의회 의장 민간 협치 이루며 중간자 역할을 잘해야죠

글 박경숙 · 사진 유명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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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경찰서 여성청소년과 경찰관을 만나다 - 박노라 경위, 박선영 경사 인터넷 시대를 사는 아이들, 관심과 이해로 감싸 안아야

글 이춘애 · 사진 박성식

청년, 지역, 출마 그리고 그 후 - 권중도

일상 정치이야기 나누는 모임이 꾸준히 이어져야 해요 글 · 사진

無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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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절마을 호상놀이 - 이명옥 전수조교

문화유산인 호상놀이 통해 인생을 돌아보지요 글 · 사진 박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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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 암사동, 강동구에서 7대째 터를 잡고 있는 이명옥 전수조교. 그는 강동 선사문화축제의 전통장례문화인 바위절마을 호상(岩寺 洞好喪)놀이에서 오랜 기간 초혼을 담당해왔다. 초혼은 죽음이 확 인되면 고인이 입던 웃옷을 들고 지붕 위에서 높은 하늘을 향해 옷 을 흔들며 망자의 이름을 부르면서 ‘복, 복, 복’ 세 번 부르는 절차이 다.

그는 고교 졸업 후에 장례 보조 일을 거쳐 개인택시 운전 일을 한 후, 18년 간 장의사를 했다. 지역 내 많은 장례를 주관한 이명옥 씨 는 상례 전반에 대해 매우 해박한 지식을 기반으로 장례지도사와 요양보호사를 대상으로 강의도 꾸준히 해왔다. 바위절마을 호상놀 이의 전통계승과 암사동의 상례문화는 그의 손길을 많이 거쳤다.

“예전에는 장례를 치를 때 대부분 초가지붕 위에 올라가 초혼을 했

지요. ‘해동국 서울특별시 강동구 암사동 선사마을 진사 남평 문씨 유인 전주이씨 복, 복, 복’ 이런 방식으로 큰소리를 외쳤습니다. 제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아버지의 친구께서 지붕 위에 올라가 초 혼을 했어요. 하지만 1970년대 들어 새마을운동으로 지붕이 슬레 이트로 바뀌면서 지붕 위에서 초혼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바위절마을 호상놀이는 부부쌍상여(夫婦雙喪輿)가 특징 바위절마을 호상놀이는 남평 문씨(文氏) 집안에서 유래가 되었다. 점말은 남평 문씨 집성촌으로 약 50가구가 터를 잡고 대대로 생 활용기 등 옹기를 만들어 온 마을이다. 이 마을의 문창순(文昌順, 1873년생) 할아버지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에 세상을 떠 났다. 전쟁 중이라 장례를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임시로 매장을 했 다. 이듬해인 1952년에 부인인 이재의(李在義, 광주 이씨, 1875년 생)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두 노부부의 장례식을 한꺼번에 올 리게 되었다. 부부의 장례를 함께 치르기 위해서는 점말에 있는, 양 쪽에 2명씩 도합 16명이 메는 작은 상여와 인근 마을의 36명이 메 는 큰 상여를 빌려오며 쌍상여가 나가게 된 것이다. 과거에는 망자가 최소 60세 이상인 경우에만 수(壽)와 복(福)을 누 렸다고 보았고, 자녀들이 번성해서 잘 살고 있다고 여겨지면 호상 9


(好喪)으로 여겼다. 1950년 초 전쟁 중이긴 했지만 남평 문씨 노부 부가 당시 70대 후반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호상을 치르며 바위 절마을 호상놀이가 시작되었다. “바위절마을 호상놀이는 부부쌍상여 호상놀이로 일반 전통 장례

와 비슷했지만, 오래 살고 복이 있는 사람의 장례였기 때문에 슬프 게 진행된 것이 아니지요. 즐거운 마음으로 진행하며 발동작이 절 도 있고 방아타령과 회심곡 등은 장례의식요이면서 노동요의 성격 을 띠기도 합니다. 선소리꾼과 상여꾼들이 함께 발을 맞추고 만가 를 부르며 망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합니다.”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10호인 바위절마을 호상놀이 바위절마을 호상놀이는 바위절마을(암사동)이 개발되고 강동구가 도시화되면서 차츰 그 모습을 감추었다가 1988년에 이르러서야 복 원이 되었다. 이후 1990년대부터 문씨 집안에서 상주를 맡고 있으 며 1996년에는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10호로 지정이 되었다.

“강동 선사문화축제에서 바위절마을 호상놀이를 선보일 때마다 주

민 150명 정도가 참여합니다. 30년 동안 진행을 해오며 전통방식 그대로, 어르신들로부터 배운 모습을 유지하려고 많이 노력합니다.

죽음의 의식을 통해 허무감을 극복하고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모 습을 보이고 싶은 거지요.”

바위절마을 호상놀이는 예전처럼 상복을 입고 선사유적지 안의 보 존회 사무실 앞에서 지내는 발인제, 쌍상여가 서로 빙글빙글 돌면 서 마주보는 것으로 대신하는 조장놀이(빈상여놀이), 선사유적지 앞길 도로에서 쌍상여를 잠깐 멈추고 올리는 노제의 과정을 거친 다. 또 논두렁 건너기, 징검다리 건너기, 외나무다리 건너기 등을 통 해 여러 가지 운구 형태와 요령을 선보인다. 반원형의 모형 봉분을 만드는 달구질은 덕담과 방아타령을 부르며 고인의 유택을 짓는 것 이다. 달구질이 끝나면 봉분 앞에서 평토제를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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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3~4일 전부터 상여와 의복을 정비하고 연습을 합니다. 참여

자는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80세까지 나이 제한을 두고 있지요. 현 재 저를 비롯한 전수조교 두 명이 6명 정도의 전수생들에게 전문 적인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시대가 바뀌고 생각이 변해가도 바위 절마을 호상놀이의 명맥을 꾸준히 유지해나가는 데 집중하려 합니 다.” 공수래공수거, 인생을 또 배우는 기회입니다 바위절호상놀이는 서울시에서 유일한 죽음의 의례이기 때문에 전 국을 돌며 여러 행사에서 재현되었다. 춘천이나 부여 등에서 열린 전국예술경연대회에서도 재현되었고 다양한 행사를 통해 다른 지 역의 장례 문화를 배우는 기회도 가졌다. “지역마다 특색 있는 장례행렬을 비교해 보며 많은 공부가 되었지

요. 강동구 특유의 장례의식을 더욱 공고히 다지기 위한 노력도 많

이 기울였고요. 그래도 잊을 수 없는 일은 춘천공설운동장에서 호 상놀이를 재현하는데 성수대교가 무너져 긴급뉴스가 나왔었지요. 또 남산한옥마을에서 바위절마을 호상놀이를 선보이던 날은 고 노 무현 대통령의 사망 뉴스가 보도되어 정말 무거운 마음으로 행사를 마쳤었지요. 즐거운 마음으로 치르는 호상(好喪)을 선보이는 자리 였지만 끝없이 마음은 바닥으로 꺼졌습니다.”

오랜 기간 강동구 문화유산인 바위절마을 호상놀이를 주관했고, 장 의사로서 망자를 저승으로 보내는 마지막 의례인 상례를 직접 경험 했던 이명옥 씨. 그가 말하는 상례는 죽은 이에 대한 의례이면서 살 아있는 사람에 대한 의례도 더불어 담겨 있다. 죽음을 통해 살아있 는 사람들이 삶을 재확인하는 과정, 남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보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더욱 겸허하게 갖는 것이다.

“상례를 손수 지도하고, 주민들과 함께 장례문화를 재현하는 일을

하며 결국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공수래공수거 (空手來空手去)라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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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절 장례에서 초혼을 하는 이명옥 전수조교(20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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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구의회’ 이젠 가까이 다가가자 - 황주영 강동구의회 의장

민관 협치 이루며 중간자 역할을 잘해야죠 글 박경숙 · 사진 유명한

1979년에 생겨난 강동구. 최근 들어 강동구 곳곳에 재건축 바람이 불며 구 인구가 많이 늘어나고 있다. 전국 최대 규모인 둔촌주공아 파트 재건축 사업까지 마무리되면 현재 인구 47만에서 55만에 육 박할 예정이다. 이런 강동구에서 지역구 의원들과 협력하며 구민과 의 중간자 역할을 해야 할 강동구의회. 구민의 실생활과 매우 밀접 한 관계를 맺고 있는 곳이지만 대다수 구민들에게는 낯설고도 멀게 느껴지는 곳이다. 각 동별로 18명의 구의원들이 활동하고 있는 강동구의회에 작년 6 월말 여성의장이 당선되었다. 지혜로움의 상징인 부엉이를 유난히 좋아하고 ‘둥글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황주영 강동구의회 의장은 암사동을 기반으로 강동구에서 22년간 거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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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민들이 강동구의회를 친근하게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구민들의

눈높이에 맞춰 함께 움직이는 의장이 되려고 노력중입니다. 사실

전혀 예견하지 못했던 코로나시기를 거치며 주민 여러분을 가까이 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줄었지만 동료의원, 공무원과 함께 합을 맞 추어 앞으로 구민 분들을 더욱 깊이 있게 만나려고 합니다.” 사회문제, 여성학에 눈뜨며 민주화 운동에 참여해

부친으로부터 ‘이대를 가면 시집을 잘 간다’는 말씀을 듣고 대학에 입학한 황주영 의장은 1학년 때 박정희 유신독재정권에 반대하는 시위를 한 친구가 퇴학을 당하고 인생의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 며 점차 사회의식에 눈뜨게 되었다. 또 1970년 말 유신정권 아래서 대학시절을 보내며 전라도(전북 익 산)가 고향인 이유로 차별과 편견을 경험했던 황 의장은 자연스레 유신독재 반대운동에 참여했다. 대학교 3학년 때인 1979년에는 ‘10월 유신 반대와 긴급조치 해제’를 위한 시위를 주도하다가 서대

문 경찰서에 연행되기도 했고 학생회를 이끌며 강력하게 사회문제 에 부딪쳐 나갔다. 여성학을 공부 역시 황 의장이 사회문제에 더욱 관심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유리 천장’의 차별을 깨달으며 한

인간으로서 남성과 동등한 기회에 대한 고민 등을 확장해나가며 민 주화운동에 더욱 집중하게 되었다.

“경력을 단절시킨 채 ‘가정주부로만 살 수는 없다’는 다짐을 하며

선후배들과 함께 여성민우회, 이화여대민주동문회 활동을 열심히 했지요. 특히 1992년 서울시내 쓰레기 소각장 25개 건설 문제가

심했던 지역인 노원도봉 여성민우회 산하 소각장대책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지역정치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황 의장은 소각장 반대운동을 펼치면서 그 대안으로 소비자생활협 동조합의 지역조직별로 쓰레기 분리수거와 재활용 운동을 엮어나 가기도 했다. 또 소비자운동을 펼치며 김포매립지 위생사업, 팔당상 수원 보호운동 등을 체계적으로 펼쳤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인 식 전화에 대한 발걸음으로 여성민우회 활동을 통해 ‘주부 명함 갖 기 운동’도 이끌었다. ‘주부활동을 잘하는 것도 경제활동이다’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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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널리 알리며 주부의 가사노동에 대한 재평가를 해나갔다. 교통사고가 난 주부의 임금을 도시 일일근로노동자 임금의 80%로 산정하며 주부혁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서서히 가긴 하지만 그래도 30년 사이에 세상이 많이 변하고 있

습니다. 내 삶을 스스로 개척하려는 의지, 친환경과 여성문제 해결 을 위해 주어진 일은 닥치는 대로 하는 근성을 갖다 보니 실천하는 삶을 살게 되더라고요. 여성지방의원이 30%로 늘어나고 있는 것도 바람직한 변화입니다.” 지방자치단체의 업무 한계 극복하며 주민 기대 맞춰야 황주영 의장이 제8대 강동구의회에서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점은 의원 각자가 당을 벗어나는 사고를 갖고 강동구민의 의사를 대변하 는 강동구의회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기반이 마련되어야 강동구 발전을 위한 신·구도심의 균형 발전, 한강수변공원을 활용 하는 생태도시 확장사업을 잘 추진할 수 있다. 또 고덕, 강일, 상일 지역의 고덕비즈밸리를 비롯한 첨단업무단지와 강동일반산업단지 등에 대학과 기업을 유치하여 자족도시로서 거듭날 수 있는 밑거름 을 쌓는 것도 큰 과제이다. “사실 제8대 강동구의회가 11대 7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우위

를 확보하고 있어 안정감이 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감시와 견제

를 소홀히 하면 안돼요. 또 지방자치단체 업무의 80%가 주로 위임 사무이며 비용의 70% 이상을 국고 보조를 받아야 하는 한계가 있 기 때문에 구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 역시 잘 풀 어나가야 합니다.”

특히 성내, 천호, 암사1동 등 구도심의 낙후된 주택가, 사회적 약자 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의 생활편의시설 확충에 많은 관심을 기울 일 예정이다. 이 지역은 문화와 체육 관련 시설이 부족하고 주차난 이 심각한 상황이기 때문에 좀 더 실질적인 문제해결을 하기 위해 16


노력중이다. 구도심 지역주민을 위한 다양한 생활 인프라 구축은 ‘더불어 행복한 강동’을 만들어나가기 위한 기본 바탕인 것이다.

황 의장은 현대 행정의 사안이 매우 복잡, 다양하고 법과 제도 역시 놀랄 만큼 자주 바뀌는 현실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주민의 불편 사항이 더 많이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다. 복잡다단해 지는 사회 현실 속에서 행정의 공백이 자주 드러나는 것을 막기 위 해 민관 협치와 민관 거버넌스가 더욱 활성화되어야 하는 점을 늘 강조한다. “큰 틀에서 민주주의와 지방자치는 이루어졌다고 보이지만 주민

스스로가 주인이 되는 풀뿌리민주주의는 아직 부족한 상황이지요.

구의회 의장이 아무리 관심이 높아도 절대 혼자 할 수 없는 일입니 다. 사회활동과 시민운동을 오랜 기간 펼쳤던 경험을 바탕으로 주 민, 구의회와 집행부의 중간에 있으면서 협치가 잘 이루어지도록 중간자 역할을 충실히 하겠습니다. 구민 여러분들도 구의회를 가까 이, 의장 역시 더불어 사는 평범한 이웃으로 가깝게 생각하며 소통 하셨으면 좋겠어요. 모두가 함께 관심을 갖고 노력해야 주민이 주 인이 되고, 풀뿌리민주주의가 밑거름이 된 지방자치가 실현됩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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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경찰서 여성청소년과 경찰관을 만나다 - 박노라 경위, 박선영 경사

인터넷 시대를 사는 아이들, 관심과 이해로 감싸 안아야

글 이춘애 · 사진 박성식

경찰서 방문은 처음인지라 몸이 먼저 긴장을 했다. 다소 컴컴한 긴 복도에서 부서를 찾느라 두리번거릴 때 '여기요!' 하는 소리가 들렸

다. 가까이서 마주한 박노라 경위의 해맑은 미소는 긴장된 내 몸을 풀어주었다. 안내된 상담실로 들어서며 “여기가 취조실인가요?”라

는 내 말에 모두가 흠뻑 웃었다. 박노라 경위는 올해 4월부터 이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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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경찰서 여성청소년과에 근무했다고 한다. 인터뷰에 도움이 될 거라며 박선영 경사도 함께 자리했다. 먼저 인터뷰 요청을 드리게 된 계기는 마을담에서 지난 호부터 코로나와 관련된 글을 다루는데 이번호에는 코로나 시대에 청소년들은 어떤 변화를 겪고 있으며 어 떻게 극복하고 있는지 등을 알아보려 한다고 말씀드렸다. 마침 마 을담 책 한 권을 전해 드리자 이렇게 내용이 좋은 책인 줄 몰랐다며 감탄사를 연발하셨다. Q. 청소년이라고 지칭할 때 정확한 연령대는 어떻게 되는가?

A.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로 폭넓게 본다. 하지만 소년법에서 는 처벌 중심으로 분류하고 있다. 즉 미성년자, 촉법소년, 범죄소년 으로 분류하고 있고 만 14세 이상에서 만 19세 미만은 죄를 지으면 형사 처벌 대상이 된다. Q. 학교폭력과 청소년 범죄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A. 작년까지는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경찰도 처음부터 학교폭력위 윈회(이하 학폭위)에 참석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법이 바뀌어서 학교에서 일어난 폭력은 1차로 학교에서 처리하도록 되어있다. 다 만 학교폭력이어도 경찰에 고소가 들어오면 수사를 한다. 즉 동일 한 사건으로 학폭위와 경찰서가 이중으로 진행된다는 뜻이다. Q. 코로나 이야기로 넘어가 보겠다. 코로나가 인해 학생들의 등교가 불안정해지고 온라인 수업이 많이 진행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 청소년들의 문제점들을 이야기한다면?

A. 초등학생과 중, 고등학생의 경우가 약간 차이가 있다. 초등학생 의 경우를 보면 학교 공백으로 친구를 맺기 어렵고 친구 관계를 유 지하기도 어렵다. 학교의 돌봄 축소와 방과 후 폐지는 더 큰 문제다. 부모가 맞벌이인 경우는 주중에 아이들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 식사도 불규칙하고 심리적으로도 불안해한다. 온라인 수업 후 자연 스럽게 인터넷에 접속하여 유튜브 등에 빠져들기도 한다. 중, 고등 학생인 경우는 더 많은 문제점이 있다. 혈기왕성한 시기에 신체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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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을 못 하니 답답해하고 우울감을 호소한다. PC방이나 노래방, 도 서관 등 출입제한으로 스트레스를 풀 곳도 없다. 갈 곳 없는 청소년 들이 빈집으로 모여들어 술과 담배를 시도한다. 집단으로 모여 다 니며 절도와 폭행을 하기도 한다. 또 인터넷 이용 시간이 많아지면 서 SNS상 친구를 무분별하게 사귄다. 그로 인해 개인정보를 악용 해 사이버 범죄에 가담하기도 한다. 사이버 도박이나 랜덤채팅, 디 지털 성범죄 등이 대표적인 예다. Q. 올해 접수된 청소년 범죄의 종류를 이야기한다면?

A. 가장 많이 접수된 것이 킥보드 무면허 운전이었다. 마땅히 갈 곳 없는 청소년들이 외부활동으로 킥보드를 선택한 반증이라 본다. 사 이버상의 사기범죄나 특수절도, 공동폭행 등도 있었다. Q. 코로나 시기는 앞으로 더 이어질 예정인데 청소년들의 비행을 막 기 위한 어떤 대안이나 프로그램이 있는지 궁금하다.

A. 우리 부서는 학교폭력 및 청소년 선도 관련 업무를 전담하는 경 찰관이 활동하고 있다. 일명 학교전담경찰관(SPO)이라고 한다. 강 동구에 학교가 많은 편이라 작년까지는 무척 바빴다. 올해는 학교 출입을 못 하는 대신, 학교 밖 현장에서 많이 활동한다. 빅데이터를 활용해 비행 다발 지역을 분석한 뒤 해당 장소를 아웃리치(방문 지 원)한다. 비행성이 있는 청소년들을 모니터링하기도 하고 라포(친 밀감) 형성도 하는 등 예방 차원에서 선도에 주력하고 있다. 위기에 놓인 청소년들을 발굴하여 강동구청 청소년 안전망이라는 전문기 관과도 연계해 활동하고 있다. Q. 지역사회나 마을 주민들이 도울만한 일은 무엇인가?

A. 이전까지 청소년들은 늘 바빴기에 도움을 주려고 해도 만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코로나로 돌봄의 공백이 가장 아쉬운데 마을에서 그런 부분을 해결해주면 좋겠다. 아이들이 좋아서 자발적으로 참여 하는 프로그램이나 쉼터 같은 곳이 가장 절실하다. 부모님들께 특 별히 부탁드린다. 자녀들은 인터넷 시대에 태어났음을 이해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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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제한만이 답이 아니라 자녀들과 대화를 자주 하면서 선택적 으로 사용하는 습관을 기르도록 도와줘야 한다. Q. ‘청소년들’이라는 말 대신 시종일관 ‘우리 친구들’이라고 표현하는

것 보니 청소년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게 느껴진다. 청소년들에게 하 고 싶은 말은?

A. (하하)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 “아이들아, 코로나로 인해

속상하고 힘든 일이 많았을 텐데 그동안 잘 버텨 주어서 고맙다. 온 라인 시대에 인터넷상에서 주의해야 할 몇 가지를 당부한다. 낯선 사람과 채팅하지 않기, 단체 대화방에서 남을 흉보거나 욕하지 않 기, 호기심에서라도 딥페이크(얼굴이나 특정 부위를 합성한 영상 편집물) 등으로 지인 능욕하기 없기, 무분별하게 친구 추가하기 없 기다.”

경찰관이기에 앞서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로서, 우리 지역 부모 님들이 꼭 읽어봤으면 좋을 것 같은 책을 한 권 소개해주었다. ‘내 새끼 때문에 고민입니다만(저자 서민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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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지역, 출마 그리고 그 후 - 권중도

일상 정치이야기 나누는 모임이 꾸준히 이어져야 해 글 · 사진 無PD

다사다난한 2020년이었다. 세계적으로 코로나19라는 판데믹이 벌 어졌고 모든 일상에 변화가 생긴 해였다. 혼란한 와중에도 올해 초, 우리나라에서는 제21대 총선이 진행되었다. 정치 지형 변화는 물론 기존에는 잘 드러나지 않았던 소위 이색 후보들도 나와서 주목받은 선거였다. 강동구에서는 지역 후보로 드물게 청년 후보자가 출마했 다. 연말이 다가온 지금, 한 해를 되짚어보는 마음으로 청년정치가 로 등장한 권중도를 만나 정치권이 바라보는 청년, 청년이 바라보 는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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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 자기소개를 부탁합니다.

권 : 안녕하세요. 21대 총선 강동구 을에서 정의당으로 출마한 권중 도입니다. 강동구에서 15년 정도 거주했고 강동희망나눔센터에서 20대 후반이었던 2013~2014년에 지역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당 시 사무국장으로 2년 정도 있었고 지역 어르신들을 위한 반찬 나눔 과 비용 등의 문제로 병원 진료에 대해 다소 거부감을 갖고 계신 분 들을 위한 의료지원을 했습니다. 무 : 청년으로 출마를 하게 된 심정이 어떠했나요?

권 : 흔히 말하는 거대 양당에서는 청년정치인이 나온다고 하더라 도 대부분 정당에서 소비되어지는 역할로 그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청년정치인이라는 이름을 걸고 나오는 사람들 대부분은 사 회적 지위가 기득권에 부합하거나 엘리트 계층이 많죠. 취약하거 나 사회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없는 경우가 많았기에 어찌 보면 청 년 또한 정치권에서 제대로 입장을 세우는 역할이 미흡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러한 청년의 이야기를 강하게 밀고 나가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무 : 지역 활동 기반이 있는데 국회의원 선거로 출마한 이유가 있나 요?

권 : 청년 의제는 결국 입법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업정치인 으로 성장하기 위해 단계로 올라가는 것도 있지만 행정과 입법의 영역이 관련은 있어도 엄연히 다르기 때문에 입법 차원에서 영향을 발휘하기 위해 총선에 나섰습니다. 지역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만들 어 가는 것도 의미가 있으나 청년과 관련된 노동, 주거 문제의 경우 지역보다는 전국적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봅니다. 무 : 청년정치인이 보는 청년 문제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권 : 같은 청년이라도 대학생, 20대 청년과 30대 청년 입장이 비슷 하지만, 면밀히 보면 다른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20대의 경우 생존으로서의 노동문제나 취업에 고민이 집중되어있고 30대의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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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주거, 결혼, 출산, 육아 등이 집중되어 있죠. 다만, 세대 문제로 접근하면 문제해결이 되지 않으리라 보고 양극화, 소득 불평등, 사 회적 차별로 접근해야 한다고 봅니다. 무 : 선거 때 느꼈던 점이 있을까요?

권 : 선거 끝난 지 오래되어 잠깐 생각 좀 해보고요. (하하) 우선 지 역 청년들을 만나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선거 기간에 만났던 청년 들을 보면 많이 신기해했던 거 같더라고요. 또래와 비슷한 사람이 출마자로 나와서인지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습 니다. 가장 많이 들었던 것은 취업문제였고 여성들은 N번방 문제 를 많이 거론했습니다. 청년들이 자기 입장이 없는 것이 아니라 목 소리 내서 이야기하거나 경험, 또는 상상을 실현하는 방법을 못 찾 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입장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동 안 장애인, 젠더 등의 문제와 비교해서 청년들이 상대적으로 정치 에 관심이 없는 것도 비슷합니다. 정치에 대한 효능감을 느끼지 못 하기 때문이죠. 정치에 대해 관심을 가졌을 때 자기 권리를 지키거 나 사회 모순을 해결하는 것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부 재하거나 약하기 때문에 정치에 대해 관심이 떨어진다고 보고 있습 니다. 이 부분은 정치권 전체가 반성해야 할 부분이라고 봅니다. 무 : 선거운동 하면서 기억나는 점이 있을까요?

권 : 코로나19로 선거 운동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사람들과 접촉 자 체가 불가능하다는 건 대외적으로 알리는 것도 어렵다는 거죠. 이 렇게 되면 결국 사람들은 대세를 따르게 됩니다. 제가 출마하면서 원했던 것은 당선은 어렵더라도 새로운 정치 담론을 제시하고 다양 성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는 것이었는데 메시지가 잘 드러나지 못한 부분이 아쉬웠습니다. 대면이 어려웠던 것이 단점으로 작용했다면 비대면으로 다양한 시도를 소화할 수 있었던 것은 장점으로 작용했 습니다. 영상홍보도 기억에 남지만, 무엇보다 배달앱과 관련한 경험 이 기억에 많이 남네요. 배달이 몸뿐만 아니라 정신 스트레스가 생 각보다 많다는 것을 그때 알았죠. 당시에 어느 누리꾼이 댓글로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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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질문이 아닌 배달로 벌이가 얼마나 되는지와 전동킥보드 는 어떤 것을 써야 하는지 물었던 경우가 있었는데 지금도 재미있 는 기억으로 남습니다. 무 :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가요?

권 : 청년 문제와 관련해서 선거기간 동안 만난 청년들과 함께 선거 가 끝난 이후에도 한 달에 한 번 정도 모여서 일상이나 정치적인 이 슈를 나누고 있습니다. 지역에서는 주로 청년들로 구성된 모임을 가지고 있고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다양한 영역에서 일상에서 정 치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리고 1인 가구 문제 에 대한 해결방법 모색과 지역 데이터 연구도 해보고 싶습니다.

정치와 청년, 어느 것도 명확하게 결론 지어 이야기하기 어려운 주 제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에서 요구되는 이야기는 많고 반 드시 다루고 가야 하는 사안인 것 또한 분명하다. 어떤 것이 정답이 라고 단정할 수는 없으나 정치와 청년이 어떤 관계를 구축하고 나 아가야 할지 고민해보는 시간이었다. 청년으로, 그리고 정치인으로 뛰어든 권중도의 행보를 앞으로 계속 지켜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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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소소한 이야기

자연이 가르쳐 준 마음 허들링(Huddling) 나의 강동 이 밤의 끝을 잡고 꼬꼬네 미용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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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영

김명국

안문옥

윤정현

음민서


행복이 뭐 별거야? 사람, 사람, 사람 우연히 만난 우리들의 정원 밑줄에 기대어

이임순

이춘애

전소민

정정성

진주 같은 영롱한 날들이 하나하나 모여 삶이 된다 조약돌

계획이여 안녕 새해에 보자

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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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가르쳐 준 마음

김근영

이제는 언급하기조차 진부해졌지만, 올해는 전 세계 누구도 비켜갈 수 없었던 사건이 있었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받아들이는 충격의 정도는 각자 다르겠지만, 우리 집도 예외가 아니어서 일단 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의 등교와 휴교가 일주일 후조차 예측할 수 없게 되 었고, 덩달아 뒷바라지하는 나의 생활도 이것에 얽매일 수밖에 없 게 되었으며, 자동적으로 내 성에 안 차는 아이들의 모습들도 더 많 이 눈에 들어왔다. 몇 년 동안 열심히 다니던 스포츠센터가 갑자기 문을 닫게 되면서 처음에는 운동을 쉴 수 있게 되었다는 달콤하고 꽤 괜찮은 핑곗거리가 생겨 좋았지만, 서너 달을 지나면서부터는 망가져 가고 게을러져 가는 나의 몸과 함께 한탄과 원망이 커져갔 다.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부족한 신체활동을 메우고자 아침마 다 걸어보자는 약속을 하게 되었고, 드디어 6월의 어느 날 드디어 아침 걷기라는 것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처음엔 집에서 가장 가까운 명일 동산을 걸어보는 것으로 시작되었 다. 명일공원은 작고 얕은 산이지만 코스는 아주 다양해서 날마다 갈림길에서 선택해야 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도 되뇌며 날로 푸르러져가는 초록이들과 풍성해져 가는 수국을 함빡 느껴가며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사하는 마음이 커져갔다. 걷기 영역은 점점 더 확대되고 다양해져서 샘터공원, 고덕산, 한강둘레 길, 고덕천, 길동생태공원, 하남 미사까지 확장되었다. 걸어야 할 거 리가 백 미터만 넘으면 차를 끌고 나온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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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중의 한 명에 들어있음을 부인할 수 없던 나였는데, 하루 한 시간을 목표로 하였던 것이 어느새 세 시간 네 시간이 지나도 이 렇게 지나왔나 싶게 오래 걷게 되었다.

걷기를 통해 천천히 살피며 걷다 보니, 많이 보고 빠르게 가는 것만 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나무를 매일 가까 이 보면 겨울의 잎눈, 꽃눈에서 깨어나는 잎과 꽃을 보게 된다. 때가 되면 교향곡이 울려 퍼지듯 만개하는 그들을 보며, 이미 가을날 잎 을 떨어뜨리면서 다음 해 봄을 준비하는 부지런함과 꾸준함을 배운 다. 껍질 속에 웅크러져 추위와 메마름을 견디고, 적당한 온도와 빛 을 느껴 깨어나는 것은 아무리 공부를 해서 이론으로 깨친다고 해 도 신비롭고 신비롭다.

올여름은 유난히 비가 많이 왔었는데, 보슬비 속에서 걷다가 비가 제법 오는 날도 걷기는 계속되었다. 옷이건 신발이건 젖으면 젖는 대로 신경 쓰지 않으니 신경 쓰이지 않더라. 왜 그리도 비 오는 날 보송보송함을 고집했을까 싶을 정도. 새롭게 알게 된 건 빗속을 걷 는 게 꽤나 좋다는 것이다. 비닐우산에 투둑거리는 빗소리가 좋고, 맑고 청량한 공기가 좋고, 비 내릴 때의 향기가 좋다. 햇볕에선 죽은 듯 회색빛으로 어둡게 있다가도 습기를 머금고 싱그런 연둣빛으로 변하는 지의류, 이끼류 들은 내 눈을 정화시키다 못해 심장을 뛰게 한다. 비 온 다음 날 산에 오르면 어디서 있었는지, 예쁘고 똘망똘망 하게 생긴 버섯들이 고개를 내밀고 기다리고 있다. 조금 더 공부해 볼까 하는 호기심에 식물 백과를 펼치면, 스쳐 지나간 그들의 생태 에 신비로움을 느끼고, 하등하다고 무시했던 나의 자만을 반성하게 된다.

사실 생각해 보면 말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인간의 오만방자 함을 깨달으라고 보내신 일종의 경고 메시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을 우리가 얼마나 많이 썼던가. 어느 생 명체도 동의하고 인정하지 않는 말. 스스로 돋보이려고 인간이 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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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별명. 그런 인간이 생명체라고도 인정받지 못하는 고작 바이러 스에게 발목이 잡혀 꼼짝 못 하고 있으니 참으로 웃긴 광경이다. 푸 하하하하하. 그리고 진화단계에서 바이러스와 인간의 중간단계에 있는 생명체들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늘 살던 대로 잘살고 있는 듯하다. 아니, 어쩌면 더 잘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자연과 함께하면서 ‘자연스럽다’라는 말을 되새겨 본다. 그리고 인 간이 정해 놓은 단어인 성공, 모범이란 말도 떠올려 본다. 자연에게

모범이란 무엇일까, 성공이란 무엇일까. 몇 월 며칠에 꽃을 피워야 모범적인 꽃이 되는 걸까. 단풍이 성공적으로 들면 무슨 색이 되어 야 할까. 나무 중에서 가장 성공한 나무는?

아름답게 깊어가는 가을, 페르시안 카펫보다 더 아름답게 수놓아져 진 가을 동산을 내려다보았을 때 드는 생각은 모두 다 다르게 물들 기 때문에 아름답다는 것이다. 만약, 최고의 색깔이 정해져 있어서 그 색으로 물들었으면 지금만큼 이렇게 보고 또 보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자연을 투영해 본다. 무슨 색을 나타내든 너희는 이 사 회가 아름답게 빛나는 데 당당히 한 색깔을 나타낼 것이라고. 엄마 는 이렇게 또 자연이 가르쳐 준 너그러움의 조각으로 마음을 채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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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들링(Huddling) 김명국

겨울이면 생각나는 것이 사회에서 소외된 분들이나, 어려운 환경인 분들에 대한 “보살핌과 감쌈” 아닐까요? 작게는 가족. 조금 넓게는 이웃의 따스함을 느끼는 “허들링”의 의미를 아시죠?

허들링은 알을 품은 황제펭귄들이 한데 모여 서로의 체온으로 혹한 의 겨울 추위를 견디는 방법이지요. 무리 전체가 빙빙 돌면서 바깥 쪽에 있는 펭귄들이 체온이 떨어질 때쯤이면 안쪽의 펭귄들과 서로 의 위치를 바꾸므로 한겨울의 추위를 함께 극복해나가는 의미입니 다. 많은 기업이나 사회에서 공존 공생을 위해 많이 사용합니다. 이 런 펭귄의 생존방식을 통해 이 겨울을 극복할 수 있는 ‘허들링’의 삶 을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지금 우리의 장애물인 코로나19로 걱정이 많지만 이 어려운 고난을 크게는 국가에서, 작게는 지방정부에서 소상공인과 국민들에게 신 뢰를 바탕으로 아픔을 나누는 ‘허들링’ 정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힘든 소상공인들이나 국민이 피해를 덜 보도록 마음으로나 물질적으로 감싸주며 같이 분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추운 바깥 은 국가가, 안쪽은 국민이 있으면서 서로 공존해야 하지 않을까요? IMF 때 같이 국민이 자진해서 국가를 위해 금 모금 운동을 한 것처 럼 위기상황에 서로 도와야 하지요. 작은 개체가 하나씩 모여 전체 를 바꾸는 힘을 보여주는 펭귄의 ‘허들링’ 생존방식을 실제 적용해 어려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공존전략이 필요할 겁니다.

함께하는 사회가 바이러스나 질병 없이 건강한 사회를 만들고 공동 의 이익과 만족감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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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까요? 사회적 공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지금의 환경을 극 복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며 내부를 세심히 체계적으로 들여다보 며 확인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또한 가족의 어려운 점 도 발견하며, 가정과 내가 ‘허들링’을 하는 시간을 준비하기 위해 서

로 부족한 부분을 알려주며 도움을 받이야 합니다. 백신이 개발된 다고 해도 이 코로나19가 언제 종식될지 모르는 상황이라 가족이 나를 언제 필요로 하는지, 내가 가족을 위해 언제 ‘허들링’이 필요한 지 한참 더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2011년 MBC에서 방영된 <남극의 눈물> 시리즈에서 눈보라 속에

서 ‘허들링’하는 펭귄들의 모습이 자꾸 떠오릅니다. 눈보라 치는 영 하 50도 그 겨울에 자이언트 페트롤에 뒷덜미를 물린 새끼 펭귄의 처절한 모습에 안절부절 하는 어미들의 모습이 다시 기억납니다. 그러면서도 체온과 체온을 감싸며 영하 50도를 견디는 모습. 다시 눈물이 납니다. 그러면서 지금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됩니다. 고 립과 공존의 경계를 넘지 못하는 요즘 시대, 마스크와 거리두기에 의지하며, 뒷덜미 아니 폐를 파고드는 바이러스에 침몰되는 우리 지금의 현실이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허들링’의 정신으로 극복합시다.


나의 강동 안문옥

내가 강동구에 처음 온 것은 84년 12월로 기억한다. 얼마 후 8살, 입학을 앞두고 눈앞에서 내가 입학할 천일국민학교에 불이 나는 것 을 보았다. 그래서 1학년 1학기는 버스 정거장으로 두 정거장 정도 되는 거리에 있는 천호국민학교로 입학을 하였고, 1학년 2학기가 되어서 집 앞에 있는 천일국민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당시 천호국민학교는 화장실이 흔히 말하는 ‘푸세식’이여서 학교에

서 화장실이 가기 싫어 집에 올 때까지 엄청 참았던 기억도 있다. 핫핫. 매우 힘든 순간들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는 밤새 동네 오빠 동생들과 어울려서 주택가 담 장 사이 구석구석에서 술래잡기를 하기도 하고 아파트 놀이터에서 한없이 놀다가 엄마가 신청한 아파트 단지 방송을 듣고 집으로 갔 던 기억도 있다. 그때 엄청나게 혼났었다. 엄청!

처음으로 만원 버스를 타고 중학교를 다녔던 것, 버스 정류장 앞 서 점에 슬램덩크가 나오는 날에는 작은 종이에 신간 알림이 붙어 있 던 것, 영국도 아닌데 영국빵집에서 먹었던 팥빙수와 소보로빵이 나의 어린 시절로 각인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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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에 한 번씩 이사를 다녔지만 약 15년간 강동에서 살았고 약 10 년 정도 다른 지역에 살다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큰아이가 5 살이 되던 해에 다시 강동으로 돌아왔다. 남편도 강동구에서 오래 살아온 토박이다. 우리 부부는 타지에 살면서도 늘 강동을 그리워 했다. 익숙한 곳 이여서도 그랬겠지만, 어떤 세련되고 모던한 동네 도 강동과 비교하면 만족할 수 없었다. 큰아이가 초등학생일 때 암사동에 살았는데, 광나루 한강공원이 가 까워서 자전거를 타거나, 연을 날리거나, 인라인을 배우거나, 특별 한 놀이터에 가기 위해 가족이 나들이에 나서곤 했다. 여름에 광나 루 수영장이 개장하면, 주말 혹은 평일 오후에 반차를 내고 집에서 수영복(래시가드)을 입고 튜브를 들고 수영장으로 갔다. 다 놀고 나면 옷을 갈아입을 필요도 없고 그저 찬물 샤워기에서 물로 헹구 고 수건으로 얼굴을 닦는 정도면 귀가 준비가 끝났다. 돌아오는 길 에 산책길에서 벌레도 잡고 풀도 보다가 집에 오면 어느새 옷이 말 라 있었다.

암사동에서 오래 살아온 지인은 이곳을 ‘암사리조트’ 라고 불렀다. 수영장, 마트, 시장, 음식점 등 편의 시설, 근린 시설이 모두 가까워 서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우리 가족이 이사한 곳은 명일동이었다. 나는 명일여자고 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명일동, 주양쇼핑, 고덕평생학습관, 이마 트 일대는 나의 ‘바운더리’다. 이곳은 암사동과는 조금 다르다. 도시 계획(?)으로 지어진 아파트 단지 내에 초등학교와 고등학교가 일

정 간격으로 위치하고 상업지역 안에는 공원이 있는 형태다. 이러 한 도시계획이 이렇게 멀리까지 내다보고 설계하였는지 모르겠지 만 거의 20여 년이 흐른 지금, 명일동은 조경이 절정을 이루고 있 다. 오래된 플라타너스 가로수는 2차선 도로 하늘에서 맞닿아 있어 여름에는 초록색 지붕을 이루고 가을에는 세련된 갈색 낙엽 길을 만든다. 이마트에서 한영중고등학교에 이르는 동남로는 봄에는 벚 꽃이, 여름에는 이팝나무가, 가을에는 은행나무가 순서대로 존재감 을 드러낸다. 명일여고에서 배제고로 이어지는 사잇길은 내가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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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드라이브 코스다. 빨간 머리 앤이 초록지붕 집으로 들어 가는 길에 사과나무 터널 속에서 공상에 빠진다면, 나는 이 길에서 플라타너스 터널을 지나면서 묘한 위로를 받는다. 이마트에서 배제 고를 지나 직업훈련원에 이르는 길은 요즘 은행나무들이 절경이다. 낮에도 이쁘지만, 밤에는 노란 가로등과 함께 몽환적인 노랑 벽을 만든다. 사실 강동구에서 벚꽃길이라고 하면 삼익그린 2차 맨션이 되겠다. 단지를 가로지르는 가장 큰길은 벚꽃 터널이 생기는데 봄에는 여러 사람이 찾아와 사진을 찍기도 한다. 올해는 코로나19 덕분에(?) 장 터도 없었지만, 어김없이 사람들이 찾아와 꽃구경을 하고 간다.

강동에 사는 강동 사람들이 가지는 강동 자부심은 무엇일까? 글을 의뢰받은 날부터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다. 왜 나는 강동구에서 살 기를 원할까? 고향 같아서 그런 정서적 이유만으로 그럴까? 우리 부부가 강동구가 좋다고 생각한 것은, 생활 방식은 현대적이 면서도 정서적으로는 인간미(?)를 가지고 있다는 그런 뭐라 딱히 정의하긴 어렵지만 그런 마음에서이다. 교육적으로도 너무 긴장시 키지 않으면서도, 적당한 경쟁과 잘하고자 하는 그런 태도가 실력 을 발휘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이 좋았는데…. 지금 우리 아이들도 그 런 느낌을 받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저 우리 아이들이 내가 강동에서 느끼는 정서적 안정감과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만끽하길, 그런 강동으로 잘 유지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어쨌건 난 강동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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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밤의 끝을 잡고 윤정현

뮤직 큐! 쿵 쿵 따 읏따 읏따! 2020년 가을 어느 날. 밤 10시. 명일동. 컴컴한 주택가 골목 귀퉁 이에서 한줄기 불빛과 함께 살사 리듬이 흘러나온다. 안에는 일곱 명 정도의 여성이 모여 살사 스텝을 밟고 있다. 여기가 뭐하는 곳이 지? 혹시 불법 댄스 교습소? 공교롭게도 맨 끝에서 춤을 추는 자는 나였다. 이날을 위해 나는 코 트 안에 살포시 살사 스타일의 짧은 치마를 입어주었다. 기대 반 설 렘 반, 총총거리는 발걸음으로 책방의 문을 열었다. 그렇다. 이곳은 순정 책방! 책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냐고? 물으신다면... 코로나19사태 이후로 순정 책방에서 처음 열린 북 토크 시간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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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북 토크의 주인공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의 이유연 작가였

다. 작가님도 생애 첫 북 토크라며 기대를 가득 담아 많은 자료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이 책은 이유연 작가 본인이 아르헨티나에 살며 일러스트레이터로서 다양한 현지인들과 교류하는 이야기를 천연색의 그림과 함께 담아낸 작품이다. 덧붙여 작가의 이야기 중, 아르헨티나 국민의 낙천성(남녀노소 밤새 춤을 추고, 축제가 많은 나라)은 아무래도 열일곱 번 이상의 IMF를 맞이한 역사와도 무관 하지 않은 것 같다는 내용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현장에는 총 7명의 인원이 있었고, 사정상 나머지 신청자들은 화상 회의 앱을 이용해 북 토크에 참여하였다. 화상 속 독자들의 반응도 무척 뜨거웠다. 아르헨티나 유명 와인과 체게바라의 주 음료로 알 려진 마테차 시음도 있었다. 마테차를 마시는 방법, 용기 등의 설명 을 현장에서 바로 볼 수 있어서 이해에 도움이 되었다. 아르헨티나는 탱고의 고장. 그러나 남자 파트너를 구할 수도, 수용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작가는 자신의 또 다른 필살기인 ‘살사’를

선보였다. 우리는 음악에 맞추어 웃고 떠들며 신나게 춤을 추었다. 틀리면 좀 어때? 이렇게 신나는 걸? 순정책방은 그 순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였다. 책 속에 나 왔던. 별빛이 흐르는 하늘 아래, 남녀노소 공원에서 춤을 춘다는 부 에노스아이레스의 밤. 우리는 코로나19도 잊고 내일 일터에서 해야 할 일들도 모두 잊은 채 춤을 추었다. 실수하는 서로의 모습을 보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코로나19시대에도 동네 책방은, 이렇게 한 줄기 빛으로 살아남고 있다. 독립 서적의 작가와 독자들을 이어주고, 수많은 상상이 잉태 되는 공간. 우리 동네에 가까이 존재한다는 것에 감사함을 보낸다. 확진자 수가 연일 천 명 가까이 나오는 12월. 나는 그날의 추억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국가적 위기 상황 속에서도 춤을 추는 여유 를 가진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순간의 기쁨과 감사함’ 으로 즐기고 싶다. 그날의 춤은 2020년, 올해의 처음이자 마지막 춤이 될 것 같다. 하지만, 내 기억 속에는 영원히 남아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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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네 미용실 음민서

잘못 봤겠지, 싶었다. 강일리버파크 2단지 상가 2층 미용실 앞을 지 나다 얼핏 발견한 장면, 닭 한 마리가 편안한 자세로 손님용 소파에 앉아있었다. 닭이 머리하러 왔을 리도 없고. 설마 아닐 거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목적지인 강일마을넷 마을공간 ‘다와’에 도착해 나는 정은영 샘에게 물었다.

“옆 미용실에서 닭을 본 거 같은데, 제가 잘못 본 거죠?” 은영 샘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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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맞아, 잘 봤네! 그 미용실에서 키우는 닭이야!”

과거 집에서 기르는 동물을 사람이 즐거움 얻기 위해 기르는 대상 으로 여겨 애완동물이라 하였다. 요즘은 ‘반려동물’이라 한다. 더불

어 함께 살아가며 가족, 친구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꼬꼬도 그랬다. 미용실을 운영하는 김채은 씨, 같이 일하는 딸 김혜민 씨에게 반려 닭 꼬꼬는 마음을 나누는 친구이자 소중한 가족이었다.

“딸이 원래 동물을 좋아했어요. 언젠가 집 베란다로 예쁜 새가 날아

온 적이 있는데 그 뒤로 새를 키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안 된다고, 차라리 닭을 키우라고 했죠. 부화기 병아리를 사와 7개월째 기르고 있어요.”

손님 머리에 파마롤을 말아주던 채은 씨가 말했다. 꼬꼬는 손님용 소파 위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아예 혜민 씨 무릎 위에 자리를 잡 았다. 혜민 씨는 꼬꼬를 꼭 안고 깃털을 쓰다듬었다. 꼬꼬는 마치 순 한 강아지처럼 가만히 있었다. 신기했다. 애정 어린 눈길로 바라봐 주고, 밥을 주고 몸에 똥이 묻으면 미용실에 있는 샴푸로 목욕시켜 주는 혜민 씨를 꼬꼬는 어떻게 생각할까? 분명한 건 혜민 씨와 꼬꼬 는 서로를 신뢰하고 아끼는 사이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다른 사 람이 다가오면 경계하며 쪼으려고 하지만, 혜민 씨가 부르면 언제 든 온다고 했다.

꼬꼬가 온 뒤로 미용실은 주변 아이들에게 인기 최고인 곳이 되었 다. 옆 학원 아이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꼬꼬를 보러 발길을 멈추고, 처음 신기해하던 손님들은 요즘 문 열고 들어서며 꼬꼬부터 찾는다 고 한다. 나는 혜민 씨에게 꼬꼬와 함께여서 가장 좋은 점이 무엇인지 물었 다. “꼬꼬는 제 말을 알아듣고 마음도 알아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같이 있으면 좋아요. 외롭지 않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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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수 적은 혜민 씨는 그 누구보다 꼬꼬와 마음으로 통하지 않을까? 꼬꼬와 혜민 씨 둘을 바라보고 있자니 다정함과 따뜻함, 편안한 기 운이 느껴졌다.

단골손님이 많아 늘 북적북적하긴 해도 미용실에만 있다 보면 꼬꼬 도 세상 밖이 궁금하기도 할 터였다. 요즘 꼬꼬댁 꼬꼬, 짖어대는 통 에 손님 없을 때마다 잠시 데리고 산책을 나간다고 한다. 목줄도 없 이 혜민 씨가 앞서면 뒤뚱뒤뚱 꼬꼬가 뒤서며 일 층 상가 건물 밖 주차장을 돌고 온다고 한다.

나는 얼마 전 읽은 도나 해러웨이의 반려종 선언을 떠올렸다. 여기 서 반려종이란 일차로 인간과 함께 사는 개나 고양이를 말하지만 더 크게는 인간과 ‘공-산’, ‘공-생’의 관계에 있는 모든 종의 생명체

를 가리킨다. 해러웨이는 개나 고양이가 인간에게 반려종이듯, 인간 도 개나 고양이에게는 반려종이므로 서로가 서로에게 대등한 존재 라는 사고로 응답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꼬꼬와 혜민 씨 는 둘만의 존중과 응답을 배워가고 있지 않을까.

나는 혜민 씨에게 꼬꼬한테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혜민 씨는 말했다. “음……. 딱히 없어요. 그냥 건강하게만 자라달라고 하고 싶어요. 오 래오래 같이 살자고요.”

닭의 수명은 7~12년 정도이다. 양계장에서 기르지 않는 닭이라면 15년에서 길게는 20년 정도 살 수 있다고 한다. 그 사이 세상 많은 것이 변해가겠지만 혜민 씨와 꼬꼬가 지금처럼 건강하고 행복한 동 행을 오랫동안 함께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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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뭐 별거야? 이임순

7년 전 나는 마을을 선택했습니다. 내 바느질이 액자 속 예술로 걸 리기보다는 사람들 삶 속으로 먼저 스며들기를 바랬던 마음 하나 가지고 마을로 걸어 들어갔죠. 도자기를 살 때 눈에 먼저 드는 것이 있고, 쓰임새 속에서 서서히 제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 있다면 언제 나 후자를 품었듯 바느질이 소소한 일상에서 발견하는 풀꽃 같기를 바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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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벳이나 겨우 뗐을까 싶은 두 달 반의 준비로 전시를 올리며 첫 걸음을 떼어 한 해 두 해 걸어온 시간이 일곱 해. 그 일곱 해동 안 우리는 집 마당의 잡초를 뽑다 발견했던 봄맞이꽃과 주름잎꽃과 여 뀌를 천에 옮겼고, 내 집 마당의 꽃들을 다시 들여다보며 누구네 집 마당에 무슨 꽃들이 피는지 눈을 열어갔고, 천에 물을 들이기 시작 하면서 마을 어디에 무슨 풀과 무슨 나무가 자라는지 마음 기울였 어요. 그 사이 육십 대 초중반이시던 어른들은 이제 일흔의 고개에 서 계시고, 40대 중반이던 나도 오십 줄의 행렬에 섰습니다.

손녀딸이 전화만 해도 '할머니 이불'부터 먼저 찾는다고 좋아하시는 우 선생님은 첫해 만들었던 자수 커튼을 뜯어 올해 이불로 리폼을 하셨고, 김 선생님은 내년 칠순 잔치에 오신 분들께 드릴 선물로 손 수건을 염색해 모으고 계십니다. 그리고 박 선생님은 오늘 “제가 쪽

조각보를 잇고 있는데, 천이 좀 모자라네요. 조각천 있으면 좀 얻을 수 있을까요?” 하며 전화를 하셨습니다.

그렇게 들고 오신 조각보는 폭이 130에 길이가 185의 홈질 쌈솔로 이으신 이불 조각보였어요. 가리개 만들 때 쓰던 천이 한 조각, 여름 바지 만들던 천이 또 한 조각, 이불을 만들고 마스크를 만들고, 또 더러는 내가 한 줌 집어 드렸던 자투리 조각천들이 세 조각, 네 조 각, 다섯 조각… 천의 염색이 고루 안 든 것은 안 든 것 대로 나름의 조화를 만들었고, 작은 조각들은 작은 대로의 조밀함을, 큰 조각들 은 큰 대로 조각과 조각들 사이의 공간을 만들며 선선한 매무새를 뽐냈습니다. 일부러 낸 조각에선 만날 수 없는 아름다움입니다. 조 각천들 있을 때마다 2년을 틈틈이 요만큼 이어 놓고 또 요만큼 이 어 놓고 하다가 이번 가을에 다 이었다고 하시는데, 일상을 매만질 줄 알았던 아낙의 손길이 순하게 감겨옵니다. 작품이 되는 것들이 일상의 쓰임새로 들어갈 때 더 들어가는 품은 오히려 더 낮은 값으 로 인정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지만 그것은 세상의 값일 것이고, 이것을 누릴 사람들의 일상에 깃든 행복이 이 조각보 이불의 진짜 값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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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 별처럼 돋은 주름잎꽃의 파동과 꽃들이 피고 지는 것을 살 피며 자연의 순환을 마주하는 삶, 그 꽃을 옮겨 담아 다시 손끝에서 피어날 때와 풀과 나무들에서 얻는 마음의 빛깔들, 베개를 만들고 이불을 지었던 마음과 손끝에 묻어나는 잔잔한 미소… 내 공간 안 에서 오가며 언뜻언뜻 내뱉는 그 조용하고도 은근히 감겨오는 마음 자락을 보세요. 첫발을 떼던 그때, “수놓은 컵받침 머리맡에 놓고 매일 잤어요. 꽃 들 보며 잠드는데, 그게 너무 가득 차 오는 거야”

“구순을 넘기신 친정어머니와 몸이 불편한 영감님'에게 맞춰져 있 던 시곗바늘이 이제 나한테로 돌아왔어요. 틈틈이 바늘 잡고 앉아 있자면 이 꽃들이 다 내게로 피어난다니까요.”

“어제 제가 놓으며 ‘내 손끝만 닿으면 예술이야.’ 했네요. 저는 지랄 총량의 법칙만 있는 게 아니라 행복 총량의 법칙도 있다고 생각해

요. 소소한 행복을 느낄 줄 알면 느끼는 그만큼 어긋난 욕망 펼치며 엄한데 힘 쏟고 살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오늘도 우리 자뻑 바느질 해 봐요.” 하며 수업 시작하던 날, 수업 내내 나팔꽃보다 더 긴 덩굴 을 늘어뜨리던 여러 선생님들의 행복론. “행복이 뭐 별거야”

행복 배가의 그 순한 삶을 우리는 이미 값으로 넉넉히 받았지요.

최범은 『공예를 생각한다』에서 이리 말했습니다. ‘공예가 예술로 다가갈수록 생활에서는 멀어진다.’

‘전통을 계승한다는 것은 형태가 아니라 감성과 생각을 계승한다는 것이다. 공예는 그러한 전통계승의 핵심적인 매개물이다.’

‘공예는 직접적인 삶이다. 공예가 세계와의 직접적인 만남, 솜씨, 전

통이라고 할 때 우리 사회에서 공예를 살리는 것은 길바닥의 단정 함, 산과 강과 계곡과 집들의 어울림, 거리와 공공 공간에서 사람들 의 표정과 행동거지의 세련됨 등을 말한다. 무엇 하나라도 반듯하 게 보고, 어울리는지 따져보고 부드럽게 이어 맞추는 것, 이것이 공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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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코로나로 다섯 번 만났고, 그렇게 다섯 번 염색한 것을 무대 에 올렸습니다. 마지막 무대라고 생각하면 쓸쓸하기 그지없는 퇴장 이지요. 영상으로 전시 촬영을 하고 나오며 자존심도 조금 상하고, 서운했어요. 그런데 이만치 걸어 나오니 그게 뭐 대수인가 싶어졌 어요. 어차피 바느질이 일상 속에서 피어나길 바랬던 마음의 가늠 자 때문에 셈이 나오지 않는 작업을 했고, 사람들 삶 안에서 바느질 이 살아 있다면 처음 시작할 때 하고 싶었던 걸 나는 다 이루었구나 싶었습니다.

지금 내 앞에 놓인 건 그런 조각조각의 시간들이고, 누군가에게 가 닿았던 마음들이고, 어울리다가도 틀어지고 그러다가도 또 어느새 조각보처럼 이어졌 던 관계일 것입니다. 지난주에는 여러 선생님들 염색을 마치고 가시며 "가까이 이사 오

셔서 너무 좋아요" 하세요. 이제 우리는 가~끔 동네에서 밥 먹고 차 마시는 사이로, 가끔은 '**꽃 본 주세요' '이거 이렇게 하고 싶은데

도움 좀 주세요' 하시기도 하며 그냥그냥 만나는 사이가 될 것입니 다. 이웃으로 온전히 돌아오는 시간, 이렇게 나는 마지막 계단 앞에 서 사람들과 또 다른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 사람, 사람 이춘애

1. 나의 친구

대학로 예술극장에서 공연하는 <작가> 초대권 두 장이 생겼다. 내 용이 뭘까 궁금해 검색을 해봤다. 여성 희곡작가가 겪는 난관을 소 재로 한 것이었다. 함께 가고픈 친구에게 연락했다. 흔쾌히 갈 수 있 다는 답변이 왔다. 더군다나 친구는 공짜로 연극을 보니 저녁밥을 사겠다며 일찍 나오라고 했다. 저녁을 먹고 남는 시간을 잠시 걷는 데 차가운 바람이 살에 와 닿는다. '가을과 겨울의 갈림길에 선 날씨

가 이런 거였지'라고 소리 없이 말해본다. 무대에 불이 켜지자 나는 배우들의 말이나 행동, 음악 등 모든 것에 초집중했다. 하지만 글이 끝나고 나니 나는 머리가 복잡하고 무거웠다. 친구가 나를 보며 '어 렵지?' 물어왔다. 현역 작가인 친구도 어렵게 느껴졌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우리는 난해한 감정으로 헤어지기 뭐해서 얘기 좀 하기로 했다.

카페 안에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하나같이 마스크를 끼고 있었다. 차를 마시며 어려운 연극 이야기를 나누었다. 난해하게만 여겨져 나는 말로 정리가 안 되었다. 친구는 주인공 작가의 변화와 페미니 즘, 레즈비언 등 극 내용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정리되 지 못하고 있던 나의 말들도 친구의 도움으로 입 밖으로 나왔다. 금 세 나의 연극평으로 자리 잡는다. 역시 글쟁이답게 상대의 마음속 언어를 끄집어내는 기술이 보통이 아니라 여겨졌다. 연극 외의 이 야기도 계속해나갔다. 꽤 시간이 흘렀다고 여겨져 슬쩍 시계를 확 인했다. 헉! 11시 30분이나 되었다. 동네를 벗어나서 혼자서 늦은 밤에 귀가한 적이 없었기에 나는 겁먹은 표정으로 일어났다.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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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덩달아 놀라 일어났다. 우린 서둘러 각자의 방향으로 튀었다. 친 구는 이 근처에 살기에 걱정 없다며 나를 걱정해주었다. 나는 환승 까지 해서 집까지는 거의 한 시간 걸린다. 지하철역으로 내려갔다. 다행히 나가는 마지막 열차가 두 정거장 전에 있었다. 하지만 환승 을 해서 명일역까지 가는 열차는 끊겼고, 군자역까지 가는 마지막 열차가 있었다. 음, 군자역에서 택시라…. 2. 카카오톡

3. 아들의 친구 아들은 출발을 알린 뒤 15분 후에 나타났다. 이미 말한 대로 친구랑 왔다. 내가 예견한 대로 택시가 아닌 친구의 차로. 춥기도 해서 후다닥 차 안으로 뛰어들며 '아이고, 미안하네.'

라고 운을 떼었다. 아들은 바라만 보았고 아들의 친구는 인사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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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다. 초면인데 이렇게 고생시켜 미안하다고 말을 건넸다. ‘저의 어

머니도 밤에는 무섭다며 쓰레기 버릴 때도 저랑 같이 가자고 하십 니다.’라는 답변이 왔다. 게다가 본인은 운전하기를 좋아한다고 했 다. 오늘도 방송국 다니는 친구를 태우러 가기로 했다며, 원래 1시 였는데 갑자기 2시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러니 늘어난 시간 공백을 내가 메꿔줘서 오히려 고맙다는 말까지 했다. 그 녀석은 좀처럼 내 가 미안해할 짬을 주지 않았다. 그러고도 모자라 뒷자리에 앉아서 뻘쭘할 수도 있을 나를 위해 연신 말을 붙여왔다.

내 아들이 이래서 좋다며 주저리주저리 말을 이어갔다. 내가 모르 는 바깥에서의 아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아들을 칭찬하는 말을 들으니 몸이 따뜻해졌다. 또 아들한테 들었다며 내가 즐기는 배드민턴에 관해서도 이런저런 말을 붙여왔다. 내 아들을 생각하면 마냥 어린애 같은데 저 친구는 참으로 어른스러웠다. 이렇게 공감 력이 뛰어나고 배려심이 많은 녀석이 내 아들의 친구라니, 미소가 절로 나온다.

4. 우연히 찾아온 행복 오늘 나는 연극을 봤을 뿐인데 옵션으로 소중한 사람을 셋이나 얻 었다. 첫 번째 친구는 40년 가까이 모임으로 지내온 친구인데 오늘 처음 만난 기분이었다. 둘만 대화를 하다 보니 이전과는 다른 친구 의 재능과 지혜와 훈훈한 마음 등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종종 만 나서 얘기하기로 했는데 벌써 그날이 언제일지 기다려진다. 두 번 째는 내 아들이다. 다 컸지만, 엄마의 눈으로 보면 그저 어린애 같았 다. 하지만 오늘은 달라 보였다. 남편이 출타 중일 때 의지해도 될 만큼 어른스러워져 있었다. 그리고 마음 따뜻한 아들의 친구를 만 난 것도 내겐 큰 기쁨이었다. 겸손한 그 친구는 내 아들을 칭찬하기 바빴지만 나는 두 녀석이 서로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음을 짐짓 알 아챘다. 마음 따뜻한 사람들이 가까이 있음은 행운이고 행복이라고 힘주어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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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만난 우리들의 정원

전소민

결혼과 동시에 나를 위한 미래 설계는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그렇 게 두 달 정도? 하늘에서 내려주는 햇볕이 감사하고 너무나 따뜻한 온기로 다가와 준 어느 날, 그때! 가족이 하나 늘었고 또 가족이 생 기고. 3년 사이에 나는 바빠지고, 또 바빠졌다. 아침에 눈곱 떼고 질 끈 머리를 동여매는 머리끈마저, 씻을 때 쓰는 입용제, 바르는 로션 까지도 이젠 내 것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어느 날. 내게 펄럭이는 길가의 글 몇 자. 동네 플로리스트, ‘동네 정원사 키 워요!!’ 내생에 처음으로 꽃을 자세히 마주하게 된 날이었다. 내 또

래쯤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나타나 꽃 한 송이와 커피의 가치를 이 야기하며 꽃내음의 향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눈으로 보기에도 아까 운 꽃들의 가지를 마구 자르고 쳐내고 잘라가는 수업이 처음엔 내 게 불편하고 어색하기만 했다. 내겐 너무나 멀쩡해 보이는 꽃으로 쉽게 가위질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몇 주의 과정에 참여하며 정말 의미 있는 날에서나 마주하 던 예쁜 꽃들을 많이 만났다. 갖가지 포장지, 리본을 활용한 꽃다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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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바구니, 꽃 화관까지 만들어보는 과정을 배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육아로 지친 내게 꽃꽂이는 스트레스 해소와 에너지 충전이 되었던 것 같다. 꽃을 보는 기쁨과 꽃을 줄 때의 큰 기쁨을 맛보며 삶의 관 계 속에서 치유되는 힘을 느꼈던 것 같다. 향기로 물들어지며 점점 나는 흙과 물과 자연과 가까워져 가고 있었다.

동네 정원사 과정을 마치고, 동네의 후미진 곳의 꽃밭 리모델링 봉 사를 했고, 우리 집도 작은 미니정원으로 베란다가 채워지기 시작 했다. 살아있는 생체를 다룬다는 것은 책임 또한 따르는 것 같다. 그 때 또 한 번 눈에 들어온 글귀 ‘강동 정원문화 포럼 한 평 정원을 분

양합니다. 선착순모집.’ ‘모집’이란 글자를 읽자마자 나도 모르게 신

청 완료했다. 아마도 어린이집 원아 모집 때 세뇌된 것 같다. 각자 삶 속에서의 체취가 있듯이 내가 선택한 생식물과의 방향도 분명 있었던 것 같다. 한해살이 꽃에서 함께 살이 꽃으로, 줄기에서 몫 질 화로, 나무에서 가지치기로 말이다. 그렇게 세 아이의 양육 시간으 로 부족함에도 치열하게 생명을 가꾸는 노력을 놓지 않는 우리 집 작은 정원의 아이들은 늘어만 갔다. 식물을 기르고 보면서 나는 분 명 충분한 에너지를 얻고 많은 배움이 있었다. 원치 않는 지나친 관 심이나, 무관심할 때 받는 시간의 거리 정도라고 할 수 있을까? 그 렇게 작은 1,000원짜리 다육식물을 시작으로 공기정화식물, 전자 파 차단 식물, 심리 안정 허브식물 등 많은 식물을 만났고 나의 작 은 정원은 차츰 좁아졌다!

베란다보다 성장을 더 해주고 싶어 한 평 정원을 선택했고, 이어 가 을을 만났다. 아이들에게 엄마가 힐링하는 작은 정원에서는 매번 자유롭게 마음껏 흙을 만지는 시간을 주지 못했고, 나만의 장소가 되고 싶은 마음이 더 크게 자리한 것 같다. 살아있는 생태 환경 속 에서 느끼는 자유로움과 물질적 욕구로 채워지지 않는 부분을 아 이들에게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생태를 함께 경험하고, 우리 안 에서 관계의 씨앗이 만들어지고, 교감으로 이어져 우리는 주말이면 정원에 가서 호미와 삽을 들어 흙을 가꾸고 돌멩이를 골라내고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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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 정원을 만든다. 식물과 마음껏 친해질 수 있는 시간을 비롯해 어 떤 비싼 장난감보다, 신상품보다도 우리는 주말마다 신비한 놀이시 간을 얻고 있다.

마을 정원에서 아이들과 함께 마음껏 흙을 흩날려보기도, 원 없이 삽질해보기도, 새 식물들을 전세 내고 이사해보기도 했다. 또 한줄 기 믿음으로 식재 심기에 도전해보면서 더 깊이 식물과 교감하고 서로에게 든든하게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 강동 정원문화 포럼에 서 내가 가장 잊지 못할 또 한 가지는 세대를 이은 만남이다. 아이 들을 양육하다 보면 그 또래의 집단과 마주하는 것이 보편적인 것 같다. 하지만 정원문화포럼은 달랐다. 여러 연령대의 이웃이 모여 환한 미소로 마주하며 인사할 수 있는 공간이다. 삶의 고뇌를 내려 놓고 정원을 마주하는 순간, 열심히 즐기는 마음, 식물과 함께 하는 즐거움을 가득 담는다. 글을 쓰며 다시 생각해보니 강동정원문화포 럼, 참 소중하고 감사한 우연이다.


밑줄에 기대어 정정성

오랜만에 책 정리를 했다. 양평에 사는 동생이 집을 짓고 쓰던 책장 을 보내 얼떨결에 시작한 일이었다. 책이 많이 않아 서재라 부르기 도 뭣한 내 방 책장은 아들딸이 쓰던 것으로 색상도 다르고 높이도 들쭉날쭉, 책 무게를 견디느라 휜 곳도 있다. 동생네 책장은 원목으 로 탄탄하게 짠 데다 높이도 일정해 마음에 들었다.

책장이 도착한 건 중복 전날이었다. 땀을 많이 흘려 복더위를 호랑 이만큼이나 무서워하는데 걱정이 앞섰다. 혼자 책장을 들어내고 책 옮길 일이 엄두가 나지 않았으나, 이번 참에 책을 좀 줄이기로 마음 먹었다.

책장 맨 위쪽에는 오래된 시집들이 가로로 누워 있었다. 몇 차례 정 리를 하면서도 떠나보내지 못한 책들이다. 80년대, 나는 시에 기대 살았다. 식구가 많고 손님도 잦아 사는 게 힘에 부칠 때였다. 당연히 마음도 자주 흐트러지던 그때, 시에 다가갔다. 하루 일을 마친 저녁 이면 습관처럼 시집을 펼쳤다. 시를 읽고 밑줄 그은 행간에 마음을 포개면 스르르 피로가 풀렸다. 그 중 위안을 받은 시가 황지우의 ‘신 림동 바닥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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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바닥에 이르려면 아직, 멀었구나 까마득하게 멀었구나

내 짐의 무게가 견딜만하다고 다독여 준 시다. 한 권 두 권 시집이 늘어났고, 나와 함께 나이를 먹었다. 사실 정리할 책 순서는 오래된 시집들이었다. 이제는 컴퓨터를 열면 원하는 시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시들만 오롯이 모아 높은 카페도 있다. 그러니 책머리와 책배가 흑갈색으로 변하고 특유의 냄새를 풍기는 헌책을 끼고 있을 필요가 있는가. 정리의 달인이라 으스대는 딸의 눈총도 따가웠다. “엄마, 제발 책 정리 좀 해요. 저기 저….”

딸내미의 손끌은 누워 있는 시집을 향하곤 했다. 책을 모두 마루로 옮기고 나니 심란했다. 가지런히 책장에 꽂혀 있 을 때와는 달리 헌책 더미에서는 책의 신성한 가치가 소멸된 듯싶 었다. 내 눈에도 그러한데 책과 담을 쌓고 사는 남편에게는 단순한 폐기물로 비칠지 모르니 서두르기로 했다. 그러나 아무리 털어내기로 작정했더라도 책은 헌 옷가지 버리듯 내 보낼 수는 없는 것, 명색이 글공부하는 사람임에랴, 취사선택에 뒤 따를 갈등을 각오하고 선별 작업에 들어갔다. 책 제목과 작가를 확 인하고 표지를 넘겼다. 이내 잔잔한 미소를 짓게 하는 짤막한 사연 들과의 재회. ‘누나, 밥해줘서 고마워요. 1984년 5월, 철민’

대학에 입학한 막냇동생이 생일선물에 마음 한 조각을 얹은 것이 다. 시집은 선물로 받은 게 많아 책을 펼치면 서른 후반, 쉰 혹은 예 순 무렵의 내가 압화(押花)마냥 숨어 있다. 초등학생이던 아들딸의 삐뚤빼뚤한 글씨도 다시 만난다. 첫 딸을 낳고 보니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사무친다던 여동생. 엄마 대신 의지하는 언니라며 챙겨 보 낸 책을 펼쳐보다 눈시울이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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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취사선택은 무의미해진다. 책들을 다시 보듬을 수밖에 없 다. 매번 이런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으며 시집은 내 곁에 머물렀다.

책 갈피갈피, 행간에 그어진 밑줄을 만나면 반갑다. 속마음을 터놓 는 친구를 만난 듯 든든하다. 밑줄은 작가와 독자의 정서가 일치할 때 피어오르는 환희의 표시가 아닌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내 마음 이 오래 머물렀던 흔적, 겉모양은 낡고 누렇게 변했을지라도 책 속 밑줄이 떠받치는 문장들은 변함없이 건재하다. 이 아름다운 문장들 은 거칠어지려는 심성을 다독여 주고, 금강석처럼 단단한 문장들은 내 무른 성정을 담금질하기에 맞춤했다.

밑줄에 발목이 잡혀 책 정리는 열흘이 지나서야 끝났다. 많은 책이 다시 내 방 책장에 어깨를 겯고 나란히 꽂혔다. 아직 나와의 인연이 다하지 않은 걸까. 아니면 앞으로 내 생에도 위로 받아야 할 순간들 이 남아 있어서일까. 그럴 때마다 밑줄이 품은 영롱한 문장들에 기 대어 내 삶을 추스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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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같은 영롱한 날들이 하나하나 모여 삶이 된다 조약돌

최근 어쩌다 보니 몸이 많이 좋지 않아 건강의 역습으로 시달리고 있는 요즘, 고마운 사람들 보고픈 사람들이 불러주는데도 나가지도 못하고, 맞벌이하는 막내네 아이가 아프다는데 하루 흔쾌히 봐준다 말도 못 하고 끙끙 앓고 있는 시간이 있었다.

삶은 그런데도 계속되기에 남매 친구들의 방문은 간간이 계속되고, 예의 있는 아이들은 방문한 내내 마스크를 쓰고 놀기도 한다. 엉뚱하지만 재밌는 아이라며 친구를 데려왔는데, 아이가 계속 아빠 이야기만 하여 참 좋은 아빠를 두었구나 했는데, “난 사실 엄마가 없어.”

“진짜? 어떻게 엄마가 없어?”

“사실은 00 때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어.” “너 너무 슬펐겠다.”

“응 나 그때 진짜 펑펑 울었다. 근데 비밀이야 비밀 지켜줘.” 어쩌면 어른이라면 꺼내 들지 않았을 진실을, 아이니까 정말 아무 렇지 않게 꺼내 보여준 친구의 진실에 내 자녀도 나도 놀라고 순간 많이 먹먹했다. 오래기간 편찮으시다 몇 년 전 가신 엄마도 아직 눈 물 날 것 같은데 얼마나 목 놓아 울었을지 알겠다.

우리는 오래간 그 친구의 말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잠자리에 누 워 둘이 우리 오늘 그 비밀 꼭 지켜주기로 하자 하니, 아이가 정말 그 말은 너무나 슬펐다며 다른 가족이 듣지 못할 귓속말로 받아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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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꺼낸 슬픈 진실에 몸이 아프지만 매일 한결같이 엄마로 사 랑해주는 아이들이 고맙고, 늘상 보던 밝은 햇살 또한 달리 보인다. 어쩌면 나도 누군가처럼 그러할 수도 있는데 살아있다는 안도감과 감사함이 아이들 곁에 있어 줄 수 있는 하루하루가 몹시 귀하고 신 선하다.

아 그래 삶은 원래 하루하루 진주같이 영롱하고 아름다운 날들이었 어. 때로 아프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고 계획은 엉망이 되고 일은 다 틀어지기도 하고 또 오해를 살수도 있지만 그러하더라도 이 아 름답고 소중한 시간을 순간순간 만끽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마지 막일지 모른다는 가정은 순간 모든 것을 아름답게 보이게 했다. 어 쩌면 삶은 늘 마지막이고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유일무이한 순간들 뿐인데….

일상의 권태가 역습해 올 때 진줏빛 아름다운 삶의 빛깔이 반짝하 고 영롱함을 드러내 숨죽이게 되는 순간이다. 그 빛을 다시 발견함 에 감사할 뿐이다.

꼭 비밀 지킬게!!


계획이여 안녕 새해에 보자

천해

올해는 경자년(庚子年)으로 육십 간지 중 37번째로 경(庚)이 백색, 자(子)가 쥐를 의미하는 ‘하얀 쥐의 해’다. 거기에 20이 반복되는

2020년도 2000년 같진 않지만 나름 0으로 끝나는 것이 의미 부여 를 하자면 할 수 있는 20년의 시작인 것이다. 또한 내가 쥐띠이다. ‘드디어 나의 해가 왔구나!’ 하며 원대한 계획을 많이도 세웠다.

철학을 공부해 보고 싶다는 의지를 다지며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빌렸다. 처음은 나름으로 열심히 읽었다. 나중에 보니 50페이지를 못 넘겼다. 상상마루 작은 도서관에서 빌렸는데 코로나 19로 문을 열지 않게 되자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얼마 전 반납해 달라는 문자를 받고 반납했다. 거의 10달을 집에 있었는데….

여성주의 공부하는 동아리를 하니 마침 집에 꼭 읽어야 하는 책 중 하나인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이 있었다. 침대 헤드에 올 려놓고 몇 달이 지났다. 머리글만 읽었다. 현재는 다시 책꽂이로 들 어갔다. 철학책 5권 이상은 읽어서 나의 뇌를 호강시키리라 했던 참 무모한 계획은 그렇게 끝났다.

또 하나는 드로잉 연습하기였다. 할 수 있으면 색연필로 색칠도 해 볼까 생각했었는데 너무 원대한 계획이었다. 어떻게 한 장을 그리 지 못했을까. 작년부터 그림책 만드는 동아리 그림책스케치를 하고 있다. 나름 연습을 해야 하는 필요를 느껴 세웠던 계획이었다. 2번 째 그림책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그림은 최소화하고 다른 방법을 모 색하고 있다. 또 하나의 원대한 계획은 그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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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계획은 그림책스케치에서 만난 지인분이 포토샵을 알려준 다고 해서 알려달라고 정말 감사하다고까지 했는데 배우지 못했다. 이 원대한 계획은 그나마 시대 상황이 여의치 않다는 합리화가 가 능했다. 코로나 19가 이리 길어질 줄 누가 알았으랴.

아이들과 딱히 뭘 하지 않아도 그냥 집에 같이 있는 것 자체로 나 는 아무것도 못 했다. 처음은 그러려니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혼 자만의 시간을 원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원인을 생각하다 보니 작 년에 아쉬웠던 글쓰기나 그림책 만들기 등에 더 집중하고 싶었는데 집중이 잘 안 되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였다. 어찌어찌 사회적 거리 두기가 1단계가 되어서 큰아이는 일주일에 3번, 둘째는 일주일에 4 번을 가게 되었다. 그동안 못 만났던 동아리 모임이 시작되었고 작 은 도서관에서 해야 하는 미뤄두었던 강좌를 주체하다 보니 시간이 금방 지나가 버렸다.

이제 좀 글 쓰고 그림 그려야지 하니 이런 웬걸 사회적 거리 두기가 2단계가 되어 버렸다. 카페에서 여유롭게 분위기 잡으며 책을 읽으 려고 했는데... 아쉽다. 무언가 계속 타이밍이 맞지 않는다. 내년에 도 코로나 19가 나아질 리 없으므로 그 가운데서 나만의 집중시간 과 여유를 찾아야겠다.

동아리 모임 또는 강의를 들으러 자주 나가던 내가 집에만 있게 되 었을 때 물론 어쩔 수 없는 환경이었지만 아무것도 하기 싫은 무력 감이 갑자기 생기기도 했던 올해였다.

연말에 내년 계획을 세울 필요가 없어졌다. 더 이상의 다른 계획은 계획이 아닌 욕심이고 그러면 내년도 올해와 별만 다르지 않은 나 를 만나며 스트레스 지수가 하늘을 찌를 것이다. 거기에 나는 왜 이 럴까로 시작되는 자책과 반성이 나를 미치게 할지 모른다. 삶이 계 획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인생의 반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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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다음에 하지 뭐’와 30대의 ‘내년에는 꼭 해야지’하는 다짐 을 계속 가지기에는 나는 이제 성숙해졌다고 생각하고 싶다.

2021년은 신축년 소띠의 해이다. 21의 1에 맨 처음 하나의 의미를 부여하며 작년에 못 했던 원대한 계획을 실천하리라. 경자년 계획 이여 cool 하게 안녕 신축년에 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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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한 컷

사라진 장독대 나는 화가, 이중섭 장미 한 송이 사랑 전태일과 나

김영희

김영희

오치세

김영숙

조서혜

당신의 4분 33초, 그 이후엔- <당신의 4분 33초>를 읽고

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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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장독대 김영희

대문 옆 연탄 광 위에서 반짝이던 항아리들

열여섯 계단 올라가 자신의 몸보다 항아리들을 더 자주 닦은 할머니

매일 하는 행주질로 번지르르하던 항아리들 긴 장마에 하얀 꽃을 피웠다

닦고 닦아도 윤기 날 줄 모르는 외할머니 손 닮은 항아리 외할머니가 혈압으로 쓰러지자 잦은 바람 불러 작달비로 제 몸 적시며 울었다

요양병원으로 보내진 외할머니처럼 가족 곁을 떠난 고추장 된장 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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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에서 나온 새빨간, 노란, 달달한, 장들이 출생지 따라 다른 맛을 가지고 있다고 엄마를 유혹한다

새로 산 아파트로 이사하는 엄마

외할머니가 아끼던 항아리 몽땅 새 주인에게 주고 챙겨 온 작은 항아리 하나

벌세우듯 아파트 베란다 구석에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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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화가, 이중섭 김영희

나무 곁가지처럼 매달린 작은 방 하나 나란히 눕지 못해 모로 누워 자는 두 아이는 점점 바닷가 빵게를 닮아간다

서귀포 갯벌 거품으로 지은 밥 먹고, 얼굴에 하얀 꽃 피는 아내 그 꽃 아이들에게 가지 뻗을까 두려워 바다 건너 친정으로 간다

은박지 바다 물결 위에 눈매 고운 아내와 해맑은 웃음 벌거숭이 아이들 녹슨 못으로 꾹꾹 눌러 그린다

화폭에 아이들 가득 채워도 외로움으로 자꾸 성난 황소를 닮아가는 그 가족을 품에 안으려고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바쁘게 돌아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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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버린 설렘은 그를 벽 틈 사이 잡초처럼 박아 놓고 찬바람 드나드는 유리 없는 창가에 기대게 한다

아내와 아이들 바라볼 수 있는 달 가까이 이사 가려고 날개 빌려줄 까마귀를 부른다

까마귀 날아와 창가에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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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한 송이 오치세

모처럼, 정말 모처럼 어제 해질 무렵 아내를 위하여 꽃집을 찾았다. 우연히 그 앞을 지나다 문득 눈에 스친 붉은 장미에 현혹된 탓도 있겠으나 만추(晩秋)에 붉게 물든 단풍잎과 주름져 가는 내 모습이 오버랩(overlap)되면서 나 자신에 대하여 한 가닥 연민(憐愍)의 정이 느껴지는 순간, 갑자기 네 살 아래의 아내가 떠올랐다. 평소 나 자신이 나이 들어 늙어가는 것보다 아내의 나이 드는 모습을 바라보며 아파해 온 터라, 그런 아내를 위하여 가을의 붉은 장미 한 송이를 건네고 싶어서였다.

가장 탐스럽고 그 중 제일 붉은 빛을 띠고 있는 장미 한 송이와 서너 줄기의 안개꽃으로 미니 꽃다발을 만들어 꽃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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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마누라!

이 불타는 듯 붉은 장미처럼 우리의 여생을 정열적으로 사랑하며 살아갑시다 그려. 허허허….”


사랑 김영숙

그이와 나는 취미와 성향이 늘 반대였다. 내가 이것이면 그이는 저것을, 내가 저쪽이면 그이는 이쪽을 원한다. 늘 다르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신기하게도 우리는 하나로 합쳐졌다. 다르면서도 함께 하는 그런 게 어쩌면 사랑이 아닐까? 가끔 드라마를 보면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불타오르는 남녀 간의 사랑이 그려지지만, 내 사랑은 뚝배기처럼 은은한 온기를 품은 바람이다.

- 『인생 ㄱㄴㄷ』 중 ㅅ, 김영숙 그림책 -


전태일과 나 조서혜 ‘전태일’은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힘쓴 재단사 겸 노동운동가입니

다. 주변의 다른 재단사들과 함께 ‘바보회’, ‘삼동회’ 등의 모임을 만 들어 많은 노동자들이 권리를 되찾을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평화시장의 노동환경을 조사하고, 노동청에 찾아가고 했던 것들이 모두 헛된 노력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전태일은 자신 의 몸을 희생해 평화시장 노동환경을 만천하에 알립니다. ‘저는 전태일 50주기 맞이, 2020 연극 ‘네 이름은 무엇이냐’에 ‘어

린 시다’ 역으로 출연하였습니다. 이 연극을 통해 제 또래 어린아이 들이 밥을 먹지 못해 물로 배를 채우는 것을 직접 연기해 보았습니 다. 저는 엄마가 차려준 밥을 때로는 입에 맞지 않아 투정하며 먹지 않는데, 단팥빵에 있는 팥이 너무 달아 그냥 쓰레기통에 버리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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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쑤인데…. 그 당시 시다들에게 미안한 생각뿐이었습니다. 연극 중에 ‘시다의 노래’가 있습니다. ‘새벽에 눈 뜨면 곧장 나와 파 김치 되어 돌아가요. 점심시간 빼면 열 네 시간’ 처음에 노래를 들었

을 때는 가사의 뜻을 생각하지 않고, 멜로디가 좋아서 신나게 불렀 어요. 근데 연극을 연습하면서 가사의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또 래의 친구들이 학교에 가거나, 친구랑 놀거나, 가족과 지내는 것이 아니라 일을 열네 시간을 한다는 것입니다. 절대 좋은 환경에서도 아니고요! 50년 전 평화시장 노동환경의 상태는 정말 심각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 미싱사들은 옷감에서 나오는 먼지를 그냥 먹고 생활하다시피 하 다 보니 신경통, 폐결핵, 류마티스 관절염, 면폐증, 피부병, 눈병 등 의 질병을 한 명당 3가지 이상 앓고 일하고 사장이 그걸 알면 해고 하니까 숨기게 되고. 왜냐하면 이 일을 하지 못하면 살아갈 수가 없 기 때문이죠. 50년 전 평화시장을 연기하는 언니들을 보면서 그 시 대 시다들이 해고당하는 언니들을 보며 어떤 마음이었을지 이해되 었습니다. 악덕 사장을 보면서 저는 손을 자연스레 떨면서 연기를 했습니다. 부모님이 그런 저를 보고 역할에 몰입했다고 하시더라고 요.

50년이 지난 오늘날, 아직 50년 전처럼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 니다. 이제는 그 사람들을 ‘이 시대의 전태일’이라고 부른다고 합니

다. 저는 아직은 노동과 노동자를 잘 알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전태 일 열사의 귀한 희생이 언젠가는 권리를 되찾을 수 있도록 오늘도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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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4분 33초, 그 이후엔- <당신의 4분 33초>를 읽고 김민정

사실 난 소설에서까지 현실과 맞붙어 있는 경험을 원치 않았다. 이 기동과 일등, 김원영 같은 인물이 겪는 실패의 되풀이에 대한 안타 까움 같은 감정으로부터 온 이유는 아니다. 내가 현실에서 마주하 는 동질감에 대한 좌절과 분노 때문이라 보는 게 더 맞을 것이다. 이야기는 주인공이 살아온 시간의 흐름을 거치는 모든 이들이 겪을 만한 소재와 결과를 보였다. 의대 진학을 바라는 어머니 밑에서 자 랐지만 삼수 끝에 입시를 성공한 이기동, 서울대에 진학해 스타강 사로 성공했지만 바람을 피우고 모든 것을 잃은 일등과 같이 책 속 주인공들의 인생은 잘 돌아가지 않는다. 현실 속에서 충분히 이뤄 질 수 있는 일이라서인지 담담하게 받아들이려 했으나 왠지 슬프고 답답한 기분은 지울 수 없었다. 이기동의 아내를 묘사하는 장면 중에 “한 사람의 인생에서 분노는

즐거움처럼 할당량이 이미 정해져 있어 십 대와 이십 대 시절에 그 것을 모두 채운 그녀는 더 이상 분노를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자 신이 변했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지나온 것이다.”라 는 구절이 있었다. 아내의 변화처럼 이기동도 역시 지나쳐왔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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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뒤로는 그의 아내가, 자신의 사상을 늘어놓던 대학 선배가, 지하 서점 주인이 소음처럼 지나갔다. 존 케이지가 말하듯 이 모든 소음 이 모여 음악이 되고, 또다시 이기동의 인생의 일부분을 차지했다. 주름진 그의 삶에 드문드문 덧붙인 존 케이지의 일생은 엇비슷하게 도 보인다. 하지만 명성을 떨친 존 케이지와는 달리 이기동은 평범 하다. 음악이라 불릴 수는 있지만 대단한 걸작은 되지 못하는 이기 동의 평범한 인생. 하지만 바람이 불어 휘청거리는 풍선 같던 그의 기운 빠진 모습도 차츰 바람을 넣고 어깨를 펴 다시 일어설 준비를 한다. 극적으로 복권에 당첨된다거나 그가 발표한 소설이 베스트셀 러가 된다는 행운이 일어난 건 아니다. 그저 자신의 처지를 더 이상 불쌍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다. 그는 그 삶에 스며들었다. 익숙해진 다는 것은 우리네 삶에 있어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상처 난 자리 가 아닌 다른 곳에 연고를 바르고 무시했던 작은 돌에 걸려 넘어지 곤 하는 실수라 칭해지는 청춘의 아픔이 내게 반가운 소식은 아니 지만 이 책을 읽고 대비할 수 있던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존 케이지의 4분 33초는 연주할 채비를 마친 연주자가 악보를 가지 고 들어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악보를 펼친 후에는 말이 달 라진다. 텅 빈 악보에 연주자는 피아노 뚜껑을 닫았다 열뿐 건반에 손끝 하나 스치지 않는다. 그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악장을 지나가 는 순간에 악보를 한 장씩 넘긴다. 두 귀를 기울이고 저마다 연주를 들을 의식을 치른 청중들은 피아노의 서정적이거나 또는 경쾌하거 나 등의 예상하던 소리 없이 계속해서 시간이 흐르자 웅성웅성 대 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는 곧 존 케이지의 목적에 정확히 도달한 것이었다. 존 케이지는 소리의 계급을 나누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청중들이 떠드는 소리, 손톱을 뜯는 소리, 앞 좌석을 툭툭 건드리는 소리, 괜히 헛기침하는 소리같이 소음으로 여겨지는 것도 모두 다 음악이라 칭했다. 우리의 삶 또한 그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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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일정한 속도를 맞출 필요는 없다. 일상을 파고드는 불협화 음도 미미한 소음도 결국은 같이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속도에 맞 추기보다 자신이 원하는 방향에 이르기 위해 노력하는 하루를 보내 는 중이라면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이라 생각이 든다. 우리는 소음 과 함께 살아가며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지나치거나 돌아오며 삶을 살아갈 것이다. 이기동의 삶 역시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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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이모저모

강동구 주민참여 대기오염 관리방안 토론회 후기 時場(시장)을 담다 기울어진 말들 평등하게

공정호 이은진

신나는여성자갈자갈

삶의 흔적 마을담 활동스케치 마을담 회원(원고) 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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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구 주민참여 대기오염 관리방안 토론회 후기

공정호

약 2개월 전인 10월 29일에 ‘강동구 주민참여 대기오염 관리방안'

이라는 주제로 온라인 토론회가 진행되었습니다. 저는 토론회를 위 한 자료를 준비하면서 강동구민의 한사람으로 많은 깨달음이 있었 습니다. 이전까지 내가 알고 있던 강동구는 녹지가 많고 공기도 맑 다고 여겨왔었는데 현실을 알고 적잖이 놀랐습니다. 이번 토론은 서울시의 ‘주민참여 생활권 대기오염 관리 도입방안 연

구’의 일환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대기오염 관리는 중앙정부나 서 울시 주도의 광역적 대기오염 관리 정책 외에 생활권 단위에서 해 당 지역의 특성을 고려한다는 취지였습니다. 그리고 주민참여가 필 수적이기 때문에 관 주도의 하향식 접근이 아니라 주민이 참여하는 상향식 정책 사업의 발굴과 관리 감독이 필요성에서 매우 좋은 기 회였다고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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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에 따르면 강동구는 서울시의 도로 다시날림에서 강동구 상일 로와 올림픽로가 각각 1위, 3위로 나타났습니다. 많은 강동구민이 산책하는 고덕천을 따라 이어지는 상일로가 도로 다시날림 먼지 농 도 순위가 1위라니! 정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료 준비 단계에서 상일동역 등의 공사장 비산먼지와 많은 흡연자로 인한 대 기오염 현장을 주민들이 사진 촬영자료를 보내주시기도 하셨습니 다.

강동구는 서울시의 어느 자치구보다 녹지 비율이 높아서 공기가 깨 끗할 것이라는 저의 생각과 달리 실제 데이터는 이러했습니다. 정 확한 진단은 면밀한 연구를 통해 규명해야 하겠지만, 대략적으로 보면 강동구에 대규모 건설 현장이 많은 것과 강동구 인근 지역의 개발로 인한 인구 증가로 강동구를 지나는 교통량 증가가 가장 큰 원인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강동구에서도 다양한 사업을 시행하고 있었습 니다. 그 중 '미세먼지 소음 저감을 위한 그린커튼 설치’나 '공사장 비산먼지 소음 특별관리'는 토론자들이 잘했다 칭찬을 받는 사업이 었습니다.

토론을 통해 제안된 다양한 주민참여 방안은 저에게도 시사하는 바 가 컸고 적극 참여하고 또 주변에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 니다. 그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첫째 건설 현장 비산먼지를 관리하기 위해 ‘대기오염 감시단'을 만든다. 둘째는 도로의 차량 매연과 다시

날림 먼지를 줄이기 위해 차량 이용을 자제하고 걷기와 자전거 이 용을 실천하고 나눔카를 확대 시행한다. 셋째는 배달용 오토바이의 매연을 줄이기 위해서는 전기 오토바이를 갖춘 친환경 업체를 우대 하고 배달음식을 자제한다. 넷째로 길거리 흡연을 줄인다. 그 외로 작은 숲 만들기를 한다 등 다양한 주민참여 방안이 제안되었습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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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인 주민참여뿐 아니라 지속성을 가진 일자리 창출까지 이어 지기 위한 일자리 창출 방안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나와서 구 청 담당 부서에 전달이 되었습니다. 이번 토론회의 결과로 저는

첫째, 강동구의 대기 상태가 서울시 평균과 비교하여 좋은 편이 아 니라는 것 둘째, 강동구가 대기오염 관리를 위해 다양한 사업을 진행해 왔다 는것 셋째, 대기오염 관리를 위해서는 구청뿐 아니라 주민의 적극적 참 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주민들이 생활 속 대기오염에 많은 관심이 있고 참여하고는 싶으나 그 방법이 준비되지 않았다고 느꼈습니다.

구청에서 주민의 적극적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쉽고 효과적인 방법을 많이 적용해서 민·관이 하나되어 대기오염을 관리할 수 있 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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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場(시장)을 담다 이은진

천호마을 활력소를 들어서니 사방이 어수선하다. 먼저 온 김수현 선생님이 이전 전시를 정리하는 중이다. 유리문 앞에는 전시설치에 필요한 자제가, 한가운데는 큰 현수막이 말려있다. 전시될 작품들도 한자리를 차지하니 작은 전시실 한쪽에 엉거주춤 서 있게 된다.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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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함은 눈에 보이는데 그 주인 박종찬 선생님은 보이지 않는다. 무 엇을 먼저 해야 할까 싶은 사이 안으로 밖으로 부산히 움직이는 선 생님이 보인다. 마음이 바쁘시다.

작품 설치는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노란 벽을 완전히 감춰 야 하고, 사무실과 전시실 사이 유리 벽을 흰 벽으로 막고, 설치작품 인 모빌을 걸어 둘 망을 천장에 고정할 방법도 생각해야 한다. 시가 적힌 캔버스를 둘 위치도 아직 정하지 못했다. 다른 작품은 선반에 배치만 하면 되니 그나마 단순하다. 공사장 같은 어수선함 속에 전 시가 시작되는 설렘이 나에게 기운을 준다. 그동안 아팠던 허리도 오늘은 별 탈 없이 움직여주는 날이다. ‘시장時場을 담다’는 시장을 모티브로 기획된 전시이다. 사라진 고 덕시장에 대한 아쉬움과 새로 단장한 명일시장의 새로운 분위기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시장을 떠오르게 했다. 시장은 사 람과 물자의 흐름이 빈번하게 오가고, 삶의 공간 가까이에 자리 잡 아 왔다. 그러나 요즘 불편하다는 이유로, 새로운 문화의 흐름 속에 서 시장이 외면되는 면도 있다. 하지만 아직 나에게는, 또 우리에게 는 아직 시장이 가진 장소성과 그곳에서의 추억이 남아있다. 시장 을 時場(시장)으로 풀어내어 시간과 장소의 이야기를 담고자 했다. 한 공간에 담긴 과거와 현재, 그곳에서 삶을 일구는 사람들과 그곳 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따뜻하고 정겨운 이야기, 그 안에 차곡차곡 담긴 시간을 기억하고 싶었다.

전시를 기획하고 전시할 작품을 만드는 일은 새로웠다. 작가의 작 품을 모으는 것이 아닌, 기획된 작품을 만들어 내는 일은 처음이었 다. 캘리그라피, 회화, 사진, 글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도록 구성 하는 것은 흥미로웠다. 어제의 생각이 오늘은 바뀌기도 하고, 막상 작품을 만들다 보니 재미가 없어 다시 구상하기도 하고…. 팀원들 과 의견을 나누고 수정하고 다시 구상해 보는 과정에서 의견 충돌 로 힘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 고민이 고스란히 작품 안에 남아 時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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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다. 설치작품을 만드는 것은 하나의 도전이었다. 여러 이야기를 다양 한 화풍과 장면으로 재미있게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다. 동아리 「…그리고」의 회원인 비옷, 상림, 소영 작가와 함께 하나의 작품 에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시장을 거닐며 들어오는 이미지들. 그 안에서 기억되는 삶의 한 모 습, 그 모습에서 나에게 다가오는 의미를 투명한 필름 위에 담아낸 작품. 한 장소에 쌓이는 시간이 세월이 흐른 후, 추억으로 남긴 이야 기들, 작품들이 서로 투영되고 겹쳐지는 형태 속에 서로 연결된 우 리의 삶을, 공유되는 기억을 담아낸 작품 時場(시장)은 네 명의 작 가의 협업으로 완성되었다. 각자의 그림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경험, 이 새로운 경험이 우리의 삶을 더 끈끈한 정으로 묶이게 하는 시간이었다.

2020 생활문화페스티벌의 시작과 함께 11월 23일부터 12월 5일 까지 ‘시장時場을 담다’가 사람들에게 선보였다. 함께 추억을, 지금

의 시간을 나누고 싶은 작가의 마음이 전시를 보는 사람들에게 따 스함으로 전달되었기를 바란다.

QR코드를 입력하시면, 작품 <時場>의 메이킹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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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말들 평등하게

- 단어 하나가 생각을 바꿉니다.

신나는여성자갈자갈 평등단어 캠페인!

신나는여성자갈자갈이 강동구 양성평등기금을 지원받아 성평등 언 어 사전 『기울어진 말들 평등하게』를 제작, 배포했다. 코로나19 로 만남이 어려운 시기, 마을 사람을 한 분 한 분 만나 책자를 전달 하고 일상 속에서 무심코 사용하던 성차별 언어를 바꿔보자는 다짐 을 함께 했다. 조그만 움직임이지만 변화를 끌어내는, 평등한 마을 문화를 만드는 흐름이 되길 바란다.

평소에 자주 쓰는 말이지만 약간 불편하게 여겨지는 단어가 있나요?

그런 불편함은 어떤 마음에서 오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일상생활 속에 자연스레 자리 잡은 말들 속에도 성 역할 고정 관념이나 성차별적 요소들이 많이 담겨 있답니다.

무심코 쓰고 있는 성차별 언어들, 우리 함께 바꿔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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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R코드를 인식하면 『기울어진말들 평등하게』 전체내용을 신나는여성자갈자갈 블로그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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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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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담 활동 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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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형식 인물 인터뷰 자유 에세이 시(동시), 독후감

원고 분량 A4 1매~1.5매 글자크기 10포인트 줄 간격 160%

참여 대상 강동구 주민 누구나 어린이, 청소년의 작품도 환영합니다 연락처

마 원 을 고 담 모 집

010-6240-2079 kitayama47@naver.com

* 마을담은 강동구 주민들이 함께 만드는 마을잡지로 4년 동안 꾸준히 활동하고 있습니 다. 강동구 주민이면 누구나 마을담 회원으로 참가 가능합니다. 함께 글쓰기와 합평 이 후, 정리된 원고를 잡지에 싣습니다. 마을담은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지원으로 발행됩 95 니다. 2021년에도 마을담 7호와 8호가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강동구 사람들의 마을 잡지 6호

마을담 6호 펴낸곳

마을담

기획

강동 마을담 편집위원회

디자인

윤재선

발행일 편집장

2020년 12월 25일 박경숙

일러스트 이은진 후원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장소제공 성내어울터, 함께크는우리 작은도서관 마을미디어 6호와 함께 한 이들

공정호 김근영 김명국 김민정 김영숙 김영희 나성재 박경숙 박성식 안문옥

오치세 유명한 윤정현 음민서 이미옥 이은진 이임순 이춘애 전소민 정정성 조서혜 조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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