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층 지성
B2 #세미나
인문 매거진 저층지성 2021.07 B2 #세미나
우리실험자들의 저층지성 프로젝트 세 번째. 底層之聲 혹은 底層知性. 앎은 그 자체로 앎의 방식을 생산하며, 다른 앎을 낳는다. 스피노자의 말을 따라, 앎은 목소리를 만들고 목소리는 다시 앎을 만든다는 믿음으로 저층지성 프로젝트를 계속한다. 우리를 거쳐 간 텍스트들의 흔적을 여기에 남긴다. 세 번째 저층지성의 주제는 ‘세미나’ 2021년 1월부터 6월까지 상반기 세미나의 기록들이 담긴다. 2021년 현재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바꿨고, 특히 우리의 공부 형태를 가장 많이 바꿨다. 정부의 방역수칙에 따라 우리는 2020년 12월부터 오프라인 세미나를 진행하지 못했다. 그동안 우리가 해온 공부 방식에 대한 위협은 ‘왜 공부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온라인에서 분투했다. 해방촌의 공간과 모임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에서 우리의 생존을 모색하는 새로운 공부에 대한 방향으로, 질문은 계속 확장된다.
목
차
필진소개 &나에게 해방촌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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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리터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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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소재, 주체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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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왜 여자는 과거시험을 볼 수 없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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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원의 금맥’을 돌보듯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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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기에 끌린다, 번역어의 美
40
신조어와 번역어가 만들어내는 세계
46
강령은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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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욱하느냐의 차이
61
짐승은 길들여지지 않는다.
68
서양철학사
76
무지와 오류의 가능성에서 시작하는 철학
77
패러다임 전환과 르네상스 세계관
86
지식의 기원은 개념인가, 경험인가
92
―《Freedom, 어떻게 自由로 번역되었는가》로부터 얻은 교훈
《수호전》을 마음대로 읽어도 되는 이유 - 노지심의 길과 임충의 길
칸트, The Philosopher
98
비판과 변혁의 철학, 헤겔과 맑스
103
20세기 철학의 세계대전과 근대성 비판
109
인간과 좀비의 존재론
116
좀비, 이름 없는 자들의 이름
117
좀비, 노예의 다른 이름
123
좀비, 인간 안에서 태어난 괴물
129
좀비, 새로운 주체의 가능성
135
좀비, 다른 세계에 대한 욕망
138
리딩R&D
142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념은 계속 수정되어 가는 중
143
우리는 우연히 드러난 양자 세상을 산다
149
닥터 스트레인지의 부서진 시계
153
천재가 되고 싶습니까?
159
그 밖에... 조바심과 열등감에서 벗어나
: <새로 쓰는 17세기 조선 유학사>를 읽고
165
필진소개 & 나에게 해방촌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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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레혼 중국문학 연구자. 끌리는 분야를 찾으며 소거법으로 택한 전공이 고전 문학, 그 중에서도 문학 비평이었다. 자기 전공마저도 비평적으로 바라보는 나머 지 비평의 쓸모에 대해 회의를 느끼는 중.
Q : 나에게 해방촌은 어떤 공간인가? "사진도 올려주세요." 최근 우리실험자들 단체 카톡방에서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코로나가 일상화되기 이전만큼은 아니지 만, 실험실 사람들은 종종 소소한 만남을 갖고는 한다. 그 모임을 랜선으로 지켜보는 나는 인증샷 업로드를 요구하며 징징댈 수밖에. 이처럼 우는 소리를 하는 까닭은, 내가 작년 가을부터 중국으로 건 너가 공부를 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기에 ‘해방촌’이라는 단어를 보니 더 애틋한 기분이 든다. 우리실험자들을 알기 전까지만 해도 해방촌은 그저 옆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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였다. 등교를 위해 넘나들던 언덕, 남산 운동을 가려면 지나가야 하 는 곳, 맛집과 예쁜 풍경이 즐비한 동네. 실험실을 알기 이전 해방 촌은 나에게 배경에 불과했다. 2019년 1월, 실험실에서 진행하던 세미나에 처음 참석하게 되면서 해방촌은 나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 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석사 나부랭이'의 삶이 시작되는 즈음, 실험실에 얼굴도장을 찍 기 시작했다. 다시 새로운 대학원 과정을 준비하면서 몸과 마음을 둘 곳이 필요했다. 그때는 중국 관련된 텍스트를 읽는 공부 모임에 참여하려는 열망이 나를 실험실로 이끌었다고 여겼다. 지금 돌이켜 보니 실험실은 내가 기대고 의지할 곳이었다. 여태껏 스터디를 하 겠다며, 세미나에 참여해보고 싶다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하지 만 나는 그런 공간에서 항상 겉돌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해방 촌은, 그리고 실험실 사람들은 나를 단단히 붙잡아 주었다.(내가 뭐 라고.) 우리실험자들 간판을 보러 올라가는 길은 늘 숨이 찼지만━ 해방촌은 정말 가파르다━실험실만큼 안정감을 주는 곳도 드물었 다. 그렇게 나는 아무 소속이 없던 시기를 무사히 보낼 수 있었다. 해방촌 덕이었고, 우리실험자들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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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픈옹달 독립지식인, 고전연구자, 소박한 유튜버. 어린이, 청소년부터 전 연령을 상 대로 고전, 인문학, 글쓰기 등을 강의하며 생활하고 있다. 동양고전, 동양철 학이 주무기지만, 꼰대와는 거리가 멀다. 늘 새로운 것에 관심이 많은 나름 프로 잡식러.
Q : 나에게 해방촌은 어떤 공간인가? 우선 생활 공간. 해방촌에 거주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서울 같은 메트로폴리스에서 10년을 넘게 한 지역에 거주하기란 꽤 어 려운 일이다. 젠트리피케이션 등으로 언제 뿌리 뽑힐지 모르지만 나름 삶의 터전으로 삼아 근근이 버텨왔다. 코로나로 이동이 제한 되면서 더더욱 해방촌을 벗어나는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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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낯선 공간. 10년을 넘게 살았지만 늘 거리감이 있다. 동네 에서 나고 자란 선주민들과는 여전히 거리가 있다. 이웃한 경리단 이 뜨면서 새로 개업하는 카페, 식당들도 낯설다. 종종 호기심에 일 부러 방문해보기도 한다. 이른바 핫한 동네로 찾아오는 사람들을 보면 무엇 하러 이곳까지 올까 궁금하기도 하다. 매스컴에 소개되 는 동네 모습을 보면 내가 알고 있는 동네 모습과 달라 놀라곤 한 다. 콜라주. 나이 든 동네 선주민과 젊은 동네 탐방가. 그 사이를 유랑 하는 나 같은 (임시) 거주민. 한편 피부색, 국적, 종교가 다른 동네 구 성원들까지. 해방촌은 늘 낯선 이들로 붐비는 곳이다. 그 사이에 무 엇이 끼어 있어도 별로 어색하지 않다. 톡톡 튀는 개성들이 건강하 게 빛을 잃는 곳. 그래서 언제 보아도 질리지 않는 동네다. 기묘한 어울림과 색다른 조화. 가능한 한 오래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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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 수년째 공부만 하다 보니 공부가 직업이 되었다. 서양철학과 문학을 비롯한 온갖 잡다한 곳에 관심이 많다. 최근에는 SF와 좀비에 꽂혔다.
Q : 나에게 해방촌은 어떤 공간인가? 해방촌은 내 공부가 시작된 곳이다. 그전에도 공부를 안 했겠느 냐만, 지금 내가 공부라 부르는 일련의 활동들이 시작된 곳은 해방 촌이 맞다. 해방촌은 내게 무질서와 활기로 기억되는 공간이다. 마 을버스 02번이 서는 해방촌오거리만큼 무질서하고 활기찬 곳도 보 기 드물다. 차로 언덕길을 한참이나 올라가 만나는 그렇게 작은 공 간에 다섯 갈래나 되는 길이 있다는 사실부터가 일단 놀랍다. 인도 와 차도의 구분도 없고, 차선과 횡단보도의 구획도 없는 곳을 종일 차와 사람이 지나다닌다. 어쩌면 내 공부는 특정한 책이나 사람이 아니라 해방촌오거리의 무질서와 활기를 맞닥뜨리면서 시작되었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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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하기 시작한 2020년 12월 이후 내가 해 방촌을 방문한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이다. 그전까지 수년 동안 나 는 해방촌에서 공부를 해왔다. 2015년부터는 동료들과 ‘우리실험 자들’이라는 공간을 꾸려 함께 운영하고 있다. 수많은 강의와 세미 나에 참여하면서, 일주일에 적어도 사흘 정도는 해방촌에서 보냈 다. 세미나와 회의를 포함한 모든 활동을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지 금은 과연 해방촌에서 보냈던 과거의 시절이 회복될 수 있을까, 하 는 의문이 생긴다. 꼭 과거의 일상이 회복되어야만 하는가, 라는 질 문도 따라붙는다. 온라인으로도 공부는 가능하니 어디서 하든 무슨 상관이냐는 낙관도 빠지지 않는다. 지난 5월 초에는 일부러 시간을 내어 몇몇이 해방촌에 모였다. 냉면을 먹자는 핑계로 탄생한 모임으로 그마저도 5명을 넘길 수 없 었다. 오랜만에 해방촌오거리에 발을 디뎠을 때 조금 어지러웠다. 집에서는 그렇게 무질서하고 활기찬 생명력을 마주할 수 없었으므 로. 그날 냉면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자리에서 이 잡지를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가 해방촌에 있을 수 없었던 시간을 기록하 자. 해방촌과 우리의 공부 이야기를 책으로 엮자. 함께 세미나를 하 고,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던 공간, 나에게 공부와 해방촌은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세미나가 곧 해방촌이며, 해방촌 의 무질서와 활기가 바로 내 공부의 원동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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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차 ‘아라차’라는 이름으로 글 쓰고 책 읽는 모임을 하고 있다. 모든 순간에 ‘알아 차림’이 있기를 소망하면서. 글쓰기와 책 읽기로 대부분의 시간을 채우고 싶 지만 멍때리는 순간이 많다.
Q : 나에게 해방촌은 어떤 공간인가? 공부에 대한 열망이 해방촌으로 나를 이끌었다. 고병권 선생님이 우리실험자들에서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연속 강의하실 때 처음 실험자들을 찾았다. 2016년이었다. 그간의 공부가 겉멋이 잔뜩 든 허울이었다면 해방촌에서의 공부는 그 질과 양에서 완전히 다른 차 원을 열어주었다. 이후의 나에게 공부와 삶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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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촌은 맛집도 많고 재밋거리도 아주 많은 곳이다. 그러나 나 에게 해방촌은 그 지물과 가게들로 기억되기보다 함께 공부한 동 료들과의 시간으로 기억된다. 열띤 세미나가 끝나면 자연스레 다 시 모여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산책을 했다. 일도 같이 하고 여행 도 같이 갔다. 공부에 기운이 빠지고 시들해질 때면 은근슬쩍 건네 지는 동료들의 위로와 강요와 회유와 응원에 다시 정신을 가다듬었 다. 서로가 서로에게 자유롭게 기대어 공부하고 놀 수 있었다. 해방촌을 꼭짓점으로 움직이던 일상이 지금은 온라인상의 보이 지 않는 방점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해방촌에서의 든든한 공부 체 험이 있었기에 온라인에서도 밀도 높은 세미나가 가능한 것 같다. 공부를 시작하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었던 우리실험자들과 함께 공 부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던 우리실험자들의 공부 동지들, 이렇게 해방촌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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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차이나리터러시
중국에 대해 공부하고픈 사람들은 우리실험자들에 고정적으로 존재했다. 사람들이 원하는 책은 다양했다. 문학, 철학, 역사, 정치 등등. 이왕 중 국에 대해 공부하는 거, 마음껏 광범위한 독서를 해보자고 달려들었다.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을 다루기도 했다. 전방위적으로 공부를 하다 보면, 중국을 읽을 수 있는 시각도 자연스레 생기 리라는 믿음으로 1년 반을 달려왔다. 2021년 6월 기준, 열 권의 책을 읽었 지만 여전히 읽어야 할 이야기들이 많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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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책
[2020년]
1월 8일~1월 29일: 《전통시기 중국의 안과 밖》, 거자오광/소명출판 3월 12일~3월 23일: 《충돌하는 제국》, 리디아 류/글항아리 5월 6일~5월 27일: 《유세명언 1》, 풍몽룡/민음사 6월 10일~7월 22일: 《1587 만력 15년: 아무일도 없었던 해》, 레이 황/새물결 7월 29일~8월 26일: 《하버드 중국사: 청》, 윌리엄. R. 로/너머북스 9월 17일~10월 29일: 《중국철학 강의》, 모종삼/예문서원 11월 5일~12월 8일: 《공자와 노자, 그들은 물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사라 알란/예문서원
[2021년] 1월 5일~1월 26일: 《글쓰는 여자는 잊히지 않는다》, 이지운•신하윤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2월 2일~3월 2일: 《Freedom, 어떻게 自由로 번역되었는가》, 야나부 아키라/AK커뮤니케이션 3월 16일~5월 18일: 《수호전(70회본)》, 시내암/글항아리 6월 1일~7월 6일: 《주권과 순수성: 만주국과 동아시아적 근대》, 프래신짓트 두아라/나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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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소재, 주체의 문학 에레혼 토지신: 옥황상제에게 추천하여 귀비께서 신선의 반열에 오른다 해도, 그녀는 여전히 치정을 품을 것입니다. 선궁에 간다 하여도 혼자 지낼 것이니, 부부로 지내자는 과거의 맹세, 오래도록 증명 되기를 원합니다. 雖則保奏他仙班再居, 他卻還有癡情兒幾許. 只恐到仙宮, 但孤處, 願永證前盟夫婦 직녀: 이는 좋은 치정이군요. 是兒好情癡也. _ 홍승洪昇, 《장생전長生殿》
위의 대사는 청나라 사람 홍승이 1688년에 쓴 희곡작품 《장생 전》의 한 부분이다. 《장생전》은 그 유명한 당나라 현종玄宗과 양귀 비楊貴妃의 사랑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그런데 이 희곡은 정말 전 개가 빠르다. 두 사람은 썸타는(?) 시간도 생략한 채 두 번째 회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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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터 연인관계로 거듭난다. 한술 더 떠서, 전체 50회차 중 절반에 해당하는 25회차에서는 양귀비가 세상을 떠나는 사건이 발생한다. 당나라를 위태하게 만들었던 ‘안사安史의 난亂’1이 현종 시기에 일어났다. 비난의 화살은 군주뿐만 아니라 양귀비에게도 향했다. 두 사람의 관계를 부정적으로 보는 많은 사람들은 당 현종을 국가 의 쇠락을 막지 못한 군주로, 양귀비를 ‘경국지색’으로 비난했다. 홍 승은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재해석했지만, 《장생전》에는 양귀비 에 대한 당시 인식 역시 묘사되고 있다. 작품에서 당 현종은 반란을 피해 수도를 버리고 피난을 가게 된다. 그런데 피난 행렬의 군인들 은 양귀비를 처형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반란군의 불만을 잠재 우기 위해서는 그녀의 목숨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이러한 상황에서 양귀비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 대목이 아까 이야기했던 25회차의 핵심 줄거리이다. 여기까 지 작품을 감상한 사람들은 혼란에 빠지게 된다. 주인공이 이렇게 일찍 죽으면 남은 분량은 무슨 이야기로 채우나? 작가 홍승은 《장 생전》을 절반으로 나누어, 전반부를 이승의 이야기로, 후반부를 양 귀비가 죽은 이후 천상세계의 이야기로 구성하였다. 맨 앞에서 인 1 안록산安祿山과 사사명史思明을 필두로 일어난 반란이라 ‘안사의 난’이라고 부른다. 755년부터 763년까지 일어났다. 중앙에서 세력을 쥐고 있었던 양귀비의 사촌오빠 양국충 과 지방 절도사였던 안록산의 정치적 알력다툼으로 시작되었다. 안록산의 난이 진압된 이 후에 안록산의 부하인 사사명이 연달아 난을 일으킨다. 두 반란 모두 당 조정에서는 초기 진압에 실패했으며, 당을 멸망 직전까지 이끌었던 반란이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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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한 부분도 《장생전》 후반부에 등장하는 에피소드이다. 인용문에 서 토지신과 직녀는 양귀비의 죽음 이후를 어떻게 처리할지 신선 세계에서 논의하고 있다. 양귀비가 천상세계에서 당 현종과 어떻게 재회하는가, 이것이 《장생전》의 또 다른 중요 스토리가 되겠다. 예전부터 중국 문학을 공부하면서 풀리지 않는 궁금증이 하나 있었다. 기존에 경국지색이라는 멸칭으로 불리던 양귀비가 어떻게 문학 작품의 주된 소재가 될 수 있었을까? 지면의 한계상 작품의 내용을 모두 전달할 수는 없지만 홍승은 분명히 《장생전》에서 양 귀비를 측은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장생전》에서 현종과 양귀비가 ‘영원히 살며[長生]’ 사랑을 나눌 수 있도록 고군분투하는 작가 홍 승은 마치 두 사람의 해원의식에 심취한 박수무당처럼 보인다. 물 론 《장생전》 곳곳에는 충신이 당나라의 현실을 비판하는 대목이 나 오고, 부분부분 백성들의 고통을 고발하는 장면들도 등장한다. 하 지만 《장생전》을 다 읽고 난 독자에게는 현실세계를 초월한 사랑이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양귀비에 대한 혐오 섞인 시선이 바뀌기 시작한 때를 거슬러 올 라가려면, 홍승이 살고 있던 청나라로부터 꽤 먼 시간을 거슬러 올 라가야 한다. 홍승이 《장생전》의 저작권료를 지불해야 한다면 아마 도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에게 두둑이 챙겨줘야 한다. 백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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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806년에 《장한가長恨歌》라는 시를 지어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 을 노래했다. 이 작품에서도 두 사람의 만남과 사별, 그리고 환상을 통한 재회 등 《장생전》의 원형을 살펴볼 수 있다. 홍승의 작품이 스 토리가 훨씬 다채로운 측면이 있지만, 백거이가 ‘감히’ 현종과 양귀 비를 비련의 한 쌍으로 그리지 않았다면 《장생전》 역시 탄생할 수 없었다.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길,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길. 하늘과 땅 영원하다 하여도 다할 날이 있겠지만, 이 한은 끊기지 않고서 다 할 기약이 없으리.” 在天願作比翼鳥, 在地願爲連理枝. 天長地久有時盡, 此恨綿綿無絶期.
수컷과 암컷이 눈과 날개가 하나씩밖에 없어 한 쌍으로만 존재 할 수 있다는 전설의 새 비익조, 다른 그루에서 뻗어났으나 하나 의 가지로 합쳐진 나무 연리지. 《장한가》의 탄생은 ‘문제적 한 쌍’이 ‘비운의 남녀주인공’으로 거듭나는 순간이다. 잠시 낭만을 깨는 이야기를 해보자면, 백거이는 양귀비 이야기를 이용한 사람이기도 하다. 백거이는 양귀비가 죽은 지 20년도 지나 지 않은 때에 태어난 사람이다. 백거이가 문단에서 활동한 시점은 양귀비에 대해서 역사적 재평가조차 이뤄지지 않은 시기였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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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백거이가 양귀비에 대한 시상이 떠올랐을 때의 모습도 자연 스레 그려진다. 누구도 손을 대지 않은 소재를 발견하고 기뻐했겠 지. 새로운 소재를 갈구하던 고대 중국의 시인이니 이 정도의 과감 한 재평가를 시에서 먼저 시도하는 게 큰 문제는 아니었으리라. 그 렇게 당나라를 멸망 직전까지 끌고 갔던 원흉은 비련의 여주인공으 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800여 년의 시간이 흘러, 이런 문화적 자양분을 잘 흡수한 홍승 은─비록 본인은 백거이의 《장한가》를 읽을 때마다 ‘번번이 여러 날을 못마땅해 했다[輒作數日惡]’는 코멘트를 남기기도 했지만─ 《장생전》이라는 작품을 만들었고, 중국 전통 희곡의 유명인사 자리 를 꿰차게 되었다. 이렇게 탄생한 《장생전》은 애정고사와 정치 주 제를 잘 배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이 평가를 다른 시각에 서 해석하면, 《장생전》을 어떻게 해석할지 사람들마다 의견이 분분 하다는 의미가 된다. 중국의 근현대사에서 《장생전》의 주제를 보는 시각이 어떻게 변했는지 살펴보자. 1949년 중국이 건립된 이후, 정 치적 문학 해석이 주류를 이룰 때에는 《장생전》의 정치적 비판 메 시지를 강조하는 비평이 주를 이뤘다. 반면 1980년 이후―정치에 매몰된 이전 시기 문학 연구를 비판할 때는 《장생전》을 사랑 이야 기로만 볼 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주류를 형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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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읽으신 분은, 이 글이 책 《글쓰는 여자는 잊히지 않는 다》에 관한 내용 아니냐며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겠다. 긴 분량을 할애하면서 다른 문학 작품을 이야기한 이유는 《장생전》에 관한 일 화들이 중국 문학사 속 여성의 입지를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소개한 《장생전》과 양귀비 에피소드는 여성의 이야기인 가, 여성을 소재로 한 이야기인가. 홍승은 《장생전》을 지은 이유를 소개하면서, 이전 시기 문인들이 양귀비를 다룬 방식이 마음에 들 지 않았고, 역사가들이 두 사람의 일화에만 몰두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즉, 홍승은 ‘답답하니 내가 직접 한다’ 는 마음으로 양귀비 고사 재평가 작업에 착수한 셈이다. 그런데 홍 승과 양귀비의 관계를 남성 문인과 역사 속 여성 인물로 환원하면, 《글쓰는 여자는 잊히지 않는다》 속 여성 문인들이 단순히 글을 썼 기에 역사서나 문집에 남았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중국 문학(혹은 중국 역사)에서 여성은 글 쓰는 누군가가 발견해야만 거론될 수 있 는 존재였으며, 어떤 사람의 재평가를 기다리는 존재였다. 그래서 《글쓰는 여자는 잊히지 않는다(이지운ㆍ신하윤 저, 이화 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2019.)》의 출간 소식을 몇 년 전에 접했을 때, 반갑기도 했지만 새삼스러운 기분도 들었다. 지금껏 한국에 출 간된 중국 문학 도서 가운데 현대 여성 작가를 소재로 한 단편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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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고, 유명한 여성 작가의 일대기를 다루는 책들도 존재했다. 그 런데 이렇게 본격적으로 전통 시기 여성 문인들의 삶을 오롯이 다 루는 시도는 아마도 국내 최초가 아닐까? 목차를 들춰보니 몇몇 문 인을 제외하고는 생경한 이름들이 대부분이다. 첫 시간에 읽게 된 탁문군卓文君, 반소班昭, 채염蔡琰은 그래도 익숙한 이름들이지 만, 이렇게 본격적으로 여성 문인들의 작품을 온전히 감상한 일도 거의 처음이었다. 책에서 다루는 열두 명의 문인들 가운데 탁문군, 반소, 채염은 한 漢나라를 살았던 인물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한나라라는 말만 들어도 주변 공기가 무거워지고 숨이 턱턱 막히 는 느낌이 든다. 유가와 정치가 일치되면서 유가 이외의 모든 사상 이 배척받았다는 시대. 그동안은 ‘한나라에서 유가 지식인들이 아 니면 참 살기 어려운 시대였겠구나’, 하고 말았다. 그러나 《글쓰는 여자는 잊히지 않는다》를 읽고 나니 이 시기 여성들의 삶은 어땠을 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아니, 상상해 본 적도 없었다고 하는 게 더 적합할까. 사회의 규율로부터 자유롭고자 했던 탁문군, 남성 지 식인 못지않은 문인으로 대우받았던 반소, 속절없이 연고도 없는 지역에 포로로 끌려가야 했던 채염까지. 이러한 선택지에 거론조차 되지 못한 삶이 허다할 테지만, 일단은 탁문군, 반소, 채염의 인생 역정 자체가 무척 낯설다. 이 생경함은 어디에서 연유했을지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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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본다. 이들 삶과 작품은 중국 문학사에서 다뤄지고 있으나, 이렇 게 전면적으로 여성 문인들의 삶을 접하는 일은 《글쓰는 여자는 잊 히지 않는다》를 통해 처음 겪는다. 그러니 낯설고 충격적이라는 생 각이 들 수밖에. 발제문을 마무리하기에 앞서 다시 《장생전》 이야기를 해보려 한 다. 눈치챈 분들도 있겠지만 서두에 인용한 부분 가운데 조금 특 이한 표현 방식이 존재한다. 바로 ‘치정癡情’이라는 단어이다.2 지 금 이 단어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지만, 홍승은 치정이라는 단어 에 부정적 뉘앙스를 담지는 않은 듯하다. 작품 속에서 양귀비는 미 련하다 싶을 정도로 정에 몰두한 사람이었다. 《장생전》의 양귀비는 사랑에 돌진하는 정의 화신처럼 묘사되고 있다. 《장생전》 국문판의 역자 이지은은 정에 몰두하는 양귀비의 모습에서 치정이라는 단어 의 긍정적 의미를 도출해내고 있다. 미련할[癡] 정도로 정에 치중했 기에, 양귀비는 현실세계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 그러 니 홍승은 현실과 다른 상식이 통하는 공간―곧, 선계仙界에서 양 귀비와 현종의 사랑이 이뤄질 수 있도록 작품을 구상했으리라. 《글쓰는 여자는 잊히지 않는다》을 통해 만난 사람 가운데 탁문군 이 이렇게 양귀비처럼 정에 몰두한 인물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2 ‘치정’에 대한 재해석은 “이지은, 《장생전》의 치정 - 치정인물 양귀비의 형상과 치정의 특징, 고려대학교 중국학논총, 2006, 3-5쪽.”을 참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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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편치 못한 기분이 든다. 문학작품에 서는 작가에 의해 치정의 새로운 상식이 통하는 세계로 이동할 수 있다지만, 자신의 세계에서 떠날 수 없는 현실 속 여성들은 어떤 운 명을 맞이했던가? 여성 문인에 대한 재평가, 여성 중심의 문학사라 는 키워드를 생산하는 주체가 누구였는지 주목하는 것도 《글쓰는 여자는 잊히지 않는다》를 읽는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 세미나 후일담: 여러 여성 작가들의 글을 실컷 읽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중국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은 《글쓰는 여자는 잊히지 않는다》의 미덕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여성 문인들 에 대한 저서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이미지를 상투적으로 묘사한 다든지, 문인들이 왜 그런 작품을 썼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깊이 있 는 분석을 진행하지 못한다는 점이 아쉽다. 세미나에서도 여성을 언급했다는 사실만으로 여성주의적 시각을 견지한 저서라 할 수 있 는가에 대해 많은 논의가 오고 갔다. 서술의 한계에는 몇 가지 원인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자료 수집 의 어려움이다. 저자들이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듯이, 중국의 여성 문인들에 대한 사료나 문학 작품은 풍부하지 않은 편이다. 따라서 책에서 여성 문인들을 깊이 있게 다루기에는 한계가 존재했을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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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사료로 검증이 되지 않는 내용은 인물이 처한 시대 상황을 통해 추론하는 서술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하는 의문도 세미나에서 제기 되었다. 그러나 이 책은 대중서적보다는 전문서적에 가깝기에, 책 에 담긴 내용도 최대한 객관적 정보를 위주로 한다. (책에 등장하는 고대 여성 문인들에 대한 내용 역시 저자들의 연구 논문이 기반이 된 글이다.) 이러한 요소들이 모이니, 이미 다양한 페미니즘 저서를 읽은 사람들에게는 부족한 면이 부각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 연구자들이 여성 문인들을 다루었다는 점을 재차 강조하고 싶다. 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왕단숙王端 淑은 역대 여성 문인들의 글을 모아 《명원시위초편名媛詩緯初編》 이라는 저서를 출간한 인물이다. 《글쓰는 여자는 잊히지 않는다》 의 저자들 역시 왕단숙과 같은 저술 작업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국문학/고전문학 분과가 여전히 보수적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 책이 학계에 던지는 파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이후에도 여성 문인과 그들의 작품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연구서들이 끊임없 이 등장하리라는 기대를 해본다. 머지않은 언젠가 고대 중국의 여 성 문학을 공부할 때 여러 도서 가운데 어떤 책을 골라 봐야 할지, 행복한 고민을 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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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왜 여자는 과거시험을 볼 수 없단 말인가! 삼월 김은희라는 시나리오작가가 있다. 드라마 《시그널》과 넷플릭스 《킹덤》의 작가로 유명하다. 로맨스를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도 썼는데, 사람들의 기억에는 독특한 장르물을 잘 쓰는 작가로 남았 다. 김은희의 남편은 영화감독 장항준이다. 요즘 장항준은 자신을 소개할 때 김은희 작가의 남편이라고 소개한다. 자신의 가장 큰 업 적이 김은희와 결혼한 일이기 때문이란다. 얼마 전 장항준 감독이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다른 여자들이 어린 시절 로맨스소 설 읽을 때 우리 아내는 무협지를 읽으며 컸다”고. 김은희 작가의 작품과 별개로 이 말은 여러모로 논란의 소재가 되었다. 일단 여자들이 로맨스소설을 읽으면서 큰다는 전제부터가 논란이다. 장항준은 아내인 김은희의 성향이 다른 여자들과 다르다 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자신이 여성 일반에게 가지고 있는 선입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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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드러낸다. 그 선입견에는 여성들이 읽는다는 로맨스소설에 대한 비하가 깔려있다. 비교의 대상은 남성들이 주로 읽으리라 장항준이 예상하는 무협지이다. 로맨스소설을 읽으면서 자랐든 아니든 간에 장항준의 인터뷰를 접하고, “지가 뭔데 그런 평가를 해?”라는 반응 을 보이는 여성들이 많았다. 현대에도 여성의 삶을 평가하는 많은 발언의 주체는 남성이 될 때가 많다. 평가나 인정은 시혜적으로 이루어질 때가 많으며, 그 자 체로 권력 행사이다. 그런 시혜적 평가행위 속에서 여성의 삶이 얼 마나 현실과 부합하게 묘사될 수 있을까? 아마도 그런 평가의 발언 들(칭찬의 의도를 담고 있다고 하더라도)을 하는 주체는 자신이 여 성의 삶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며 응원한다 여기고 있으리라. 여성 들이 자신들의 평가와 인정을 원한다고 믿으면서 말이다. 특히 고대 중국 여성들의 삶을 기록한 책 《글쓰는 여자는 잊히지 않는다》를 읽으면서 여성의 삶을 평가하는 일에 대해 고민해보게 된다. 고대에도 여성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이들은 대부분 남성이 었을 테고, 기록하는 이가 여성이라 해도 남성의 시각을 벗어나기 는 어려웠을 테다. 여성이 어떤 시각을 갖는 일 자체가 어려웠던 시 대이다. 그런 기록으로 이 여성들을 접하는 우리 역시 선입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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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어나기 힘들다. 뻔한 문장 속 구태의연한 묘사들로 표현되는 후 궁 좌분, 기녀 설도, 여도사 어현기의 삶을 어떻게 하면 덜 전형적 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먼저 세 사람의 삶을 ‘욕망’이라는 주제로 한 번 묶어보겠다. 세 여성은 모두 강한 욕망을 드러냈던 인물이다. 동시대의 남성만큼, 혹은 타고난 재주 때문에 남성들 이상으로 출세와 생존에 강한 욕 망을 품었던 이들이다. 과거시험 합격자들의 이름이 붙은 방을 보 며 “도대체 왜 여자라고 과거시험을 볼 수 없는 것일까?”(134쪽)라 고 한탄했던 여도사 어현기의 일화에서 그런 욕망이 강하게 드러난 다. 글쓰는 재주로 가족들의 출세길을 열어준 좌분 역시 마찬가지다. 좌분이 받은 후궁이라는 직위는 왕과의 혼인보다는 벼슬의 개념에 가까워 보인다. 여성이기에 벼슬을 줄 수 없어 후궁의 직위를 주었 으리라. 시대에 따라 법도가 달라진다고 주장했던 좌분과 달리 남 성들은 법도를 바꾸려 하지 않았다. 후궁이 되면서 낙양에 입성한 좌분 남매는 황제가 시키는 대로 왕조의 정통성을 증명하고, 황제 가족들의 삶을 찬양하는 데 자기 재능을 아낌없이 이용했다. 쓰임 이 다한 뒤에는 아마도 외롭게 죽었으리라 예상된다. 글재주 때문에 기녀가 되었으나, 실상은 남성 문인들의 글쓰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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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우며 교류했던 설도의 삶은 어떠한가. 설도의 재주와 역할을 알 아본 절도사가 설도에게 관직을 주자고 요청했으나, 요청은 받아들 여지지 않았다. 비공식적으로 여교서 역할을 하던 설도는 작은 실 수로 남성들의 세계에서 추방된다. 남성들의 인정은 한때의 시혜였 으며, 언제든 쉽게 철회될 수 있었다. 기녀의 삶을 접은 설도는 여 도사의 옷을 입고 색이 고운 편지지를 만들면서 여생을 보냈다. 사람들은 설도가 기녀임에도 농염한 사랑 이야기가 아닌 글들을 남겨 의외라 말한다. 여성들의 외로움을 한탄하던 궁원문학에서 벗 어난 후궁 좌분의 글에도 비슷한 평가를 한다. 황제를 사모하고 그 리는 글보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는 글이 많아 독특하다 는 평이다. 여도사 어현기의 글은 또 어떤가. 어현기는 정치적 쟁점 에 관한 문제나, 관리들에게 충고와 당부의 말을 남기는 글을 쓰기 도 한다. 사랑 이야기를 쓴다고 하여도 마지막에 가서는 “세상에 널 린 것이 남자고, 그중에서 송옥처럼 잘생기고 멋진 사람을 찾으면 그만이지, 어찌 날 버린 그 박정한 옛 남자에게만 미련을 둘 필요가 있나?”라고 마무리한다. 장항준 감독이 여성들은 로맨스소설을 읽으며 자란다고 믿듯이, 사람들은 여성들이 사랑 이야기만 되풀이한다고 말한다. 실상은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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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들에게 사랑 이야기 말고 과연 무엇이 허용되어 있을까? 물론 사 랑조차도 제대로 허용된 적은 없었다. 후궁이나 기녀, 여도사라는 특수한 신분이 황제에 대한 사랑 표현이나 비교적 자유로운 연애를 가능하게 했을 뿐이다. 어찌 보면 당시의 여성이 탁문군처럼 자신 을 사랑의 주체로 표현하거나, 어현기처럼 미련 없이 다른 남자를 만나겠다 다짐하는 일 자체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한편으로는 지금도 여성들에게 로맨스는 여전히 환상이고 불가 능한 꿈이다. 여성들이 평생 어울려 살아야 할 남성들은 시대가 바 뀐다고 자연스레 법도를 바꿀 마음을 먹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좌 분이 살았던 시대나,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는 마찬가지다. 만약 로맨스소설을 읽는 여성이 많다면, 그들은 불가능한 꿈을 꾸 는 이들이다. 좌분과 설도, 어현기처럼 그들도 욕망을 앞세워 불가 능한 탈주를 꿈꾸고 있다. 들뢰즈는 욕망을 ‘생성’의 관점에서 다시 바라보았다. 음습한 뒷 골목을 어슬렁거리는 내면의 어두운 그림자가 아닌 새로운 무언가 를 만들어내는 힘, 들뢰즈에게는 이 생성의 힘이 욕망이다. 우리는 이 욕망 덕에 살아왔고, 앞으로의 삶도 꿈꿀 수 있다. 좌분과 설도, 어현기 역시 이 생성의 욕망을 통해 자신의 재능을 활용하고 무언 가를 만들어내면서 살았다. 다만 부단한 욕망이 방향을 잃고 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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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않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 질투에 휩싸여 살인을 저질렀다는 어현기의 마지막 행보가 그런 폭주는 아니었을까. 누군가의 욕망을 억누르는 일은 생성의 힘이 파괴의 힘으로 변모하게 만드는 일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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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원의 금맥’을 돌보듯 하라 ―《Freedom, 어떻게 自由로 번역되었는가》로부터 얻은 교훈
에레혼 1. 《Freedom, 어떻게 自由로 번역되었는가》 1~3장 독서기 번역은 공포를 유발한다. 번역하면 머릿속에는 외국어가 떠올랐 고, 제2언어 습득이 평생 내 발목을 잡아왔다. 전문번역, 통번역학 과, 번역 불가능성─번역이 들어가는 말들은 하나같이 험상궂은 모 습이다. 그러나 반대로 번역만큼 내 주변을 맴돌고 있는 단어도 드 물다. 지난 학기 동안 써냈던 수많은 중국어 레포트들은 파파고와 바이두 번역기가 없었다면 나올 수 없었다. 신작 개봉영화에 박 모 번역가─《어벤저스: 인피니티워》를 번역하신 그 분 맞다─가 참여 했다는 소문이 들리면, 영화를 다 보고 중요한 원어 대사를 찾아보 기도 했다. 칸트 전집 번역을 가지고 대판 싸움이 난 옆 동네 학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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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동향을 보며 ‘팝콘각’을 잰 기억도 난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 번역이란 결국 단어 취사선택의 문 제라는 점. 파파고로 중국어 번역을 할 때도, 순간순간 선택이 불가 피하다. ‘나타나다’라는 한국어를 번역기를 통해 중국어로 바꾼다 고 가정해보자. 번역기가 ‘体现[티씨엔]’이라는 중국어를 제시했다 면, 이 단어를 ‘呈现[청씨엔]’이나 ‘显现[시엔씨엔]’으로 변경할 필 요는 없는지 고민해야 한다. 번역과정에서 비슷한 의미의 다른 단 어를 견주어 보는 일은 아직 인간의 몫으로 남아있다. ‘번역은 인간 이 하는 일’이라는 말이 부정적인 뉘앙스를 담을 수도 있다. 예컨대 “It’s the endgame.”이라는 결정적인 영화 대사를 “이젠 가망이 없 어”라는 문구와 대응시킨 사건은, 번역 역사상 가장 인간미 넘치는 (?) 일로 기록되었다. 《Freedom, 어떻게 自由로 번역되었는가》를 읽어보면 ‘취사선 택 놀음’은 지금이나 19세기 말이나 마찬가지로 번역가의 숙명이 었다. 아니, 19세기 일본의 번역자들은 ‘틀린 말이라도 어쨌든 문장 은 만들어주는 번역기’ 따위에 의존할 수조차 없었다. 심지어 그들 자신이 번역의 선례를 만들어야 하는 무거운 책임을 지고 있었다. ……번역자는 단어의 뜻을 ‘사회’라는 번역어에 떠맡기고는 그 뜻 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 물론 단어를 쓰는 사람이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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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시 자신이 쓰는 단어의 뜻을 깊이 생각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 일단 ‘사회’라는 번역어가 생겨나자, 사람들은 그 단어에 담 긴 뜻에 대한 책임을 면제받기라도 한 것처럼 society와 기계적 인 치환이 가능한 단어로서 ‘사회’를 쓸 수 있게 되었다. (본문 “제1장 사회社會 2절 후쿠카와 유키치의 번역어 ‘인간교 제’” 중에서)
이렇게 번역어가 사회에 정착되고 나면, 최초의 번역자가 고민 했던 흔적은 남지 않는다. 야나부 아키라는 1장 7절 ‘뜻이 명확하 지 않아 오히려 남용되는 번역어’ 부분에서 이 점을 분명하게 지적 한다. 사회가 영단어 society의 번역어로 일본에 정착했을 때, 이 2 음절 어휘에는 ‘사社’의 어감도 ‘회會’의 어감도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번역어는 원어와 1대 1로 대응될 수 없으며, 대응할 필요도 없다. 즉 ‘사회’라는 신조어가 일본 사회에 등장한 일은 society를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언어의 탄생이었다. 글자 하나하나를 뜯어보면서 사회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19세기 말부터 이미 극소수에 불과했다. 번역자의 고충을 대중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섭섭해할 필요는 없다. 번역어가 더 이상 번역가 만의 창조물이 아닌 단계로 접어들면,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이 단어를 힙한 것으로 치부한다. 야나부 아키라는 사람들이 번역어를 ‘작은 보석상자(카세트)’처럼 여긴다고 표현한다. 19세기말~20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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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 일본은, 번역서가 나오면 오역 때문에 알라딘에서 별점 테러 당 하지 않기를 기도해야 하는 2021년 한국과 확실히 다르다. 독자들은 잘은 몰라도 일본의 오랜 전통으로 인해 어려워 보이는 한자어에는 뭔가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하 게 된다. 일본어에서 한자어가 갖는 이런 효과를 나는 ‘카세트 효 과’라고 부른다. 카세트란 작은 보석 상자를 의미하며 내용물이 뭔지 모르는 사람들까지도 매혹하고 끌어당기는 물건이다. (본문 “제2장 개인個人 - 4절 평이한 단어를 사용한 번역의 어려 움” 중에서)
저자는 2장에서 ‘카세트 효과’라는 핵심 개념을 설명한 뒤, 3장에 서 더 골치 아픈 논의를 이어간다. 3장에서 다루는 내용이 유독 까 다롭게 느껴진 이유는, 여기서 야나부 아키라가 근대와 modern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modern이라는 외국어를 둘러싼 번역어 성립 과정을 이야기하면서, <근대의 초극超克>이라 는 좌담회를 소개한다. 1942년 태평양 전쟁이 진행 중이던 시기에 열린 이 좌담회에서 어떤 지식인은 근대를 지옥이라고 지칭한 반면, 또 다른 이는 근대를 훌륭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한국에서는 근대 가 적응해야 할 과제이면서 동시에 극복의 대상이었다’는 백낙청의 말이 절로 떠오른다. 근대에 대한 양가적 평가는 진퇴양난처럼 보이 기도 하지만, 이런 난감한 상황은 한국에서도 다를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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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흥미로웠던 점은 저자의 태도이다. 근대라는 키워드처럼 학자의 지식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키워드도 드물다. 하지만 야나 부 아키라는 그런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 예를 들면, 동양에서 전 통적으로 ‘근近’이라는 단어에 어떤 가치를 담아냈는지 따위의 이 야기는 3장에서 나오지 않는다. 학문적 호기심을 말끔하게 해소해 주지 않는 느낌도 들지만, 여태껏 족보식 서술에 관성처럼 익숙해 져서 찝찝한 기분이 드는 것은 아닐까. “단어의 의미를 생각할 때 어원 문제는 별로 중시하지 않으려 한다. 어원보다 하나의 시대, 하 나의 언어 체계라는 커다란 관점에서의 의미나 역할을 중심으로 생 각하고자 한다.” 3장에서 야나부 아키라가 제시하는 연구 방법론은 쿨해 보이지만, 연구자로서 취하기 어려운 태도이기도 하다. 2. 근원 탐구의 굴레를 벗어나기 《Freedom, 어떻게 自由로 번역되었는가》를 읽으면서 번역어 가 정착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지만, 한편으로는 나 의 학문적 편벽을 반성하기도 했다. 나는 novel이라는 단어가 동양 권으로 들어와 ‘小說’과 접합되는 현상에 줄곧 흥미를 가지고 있었 다. 새롭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nov-’가 포함된 어휘와 ‘자질구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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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말’ 정도로 번역 가능한 단어가 만난 사건은 쓰보우치 쇼요라는 일본인으로부터 촉발되었다. 《Freedom, 어떻게 自由로 번역되었 는가》 4장 ‘미美’ 파트에서도 등장하는 그는 자신의 저서 《소설신 수小說神髓》를 통해 novel을 小說이라는 단어로 풀어서 쓴 최초 의 인물로 기록된다. ‘novel, 곧 小說’ 사건의 파동은 중국에도 영향을 미쳤다. 시가詩 歌 장르와 비교되며 줄곧 격하되던 소설이, 서구 신문물의 모습으 로 나타난 것이다. 당시 중국 지식인들은 당혹스러움을 해소하기도 전에 다음의 질문에 대답해야만 했다. “novel의 번역어인 소설은 중국에서 오래전부터 소설이라 지칭하던 대상과 동일한가?” 급기 야 1919년 이전 중국 소설의 가치를 전면 부정해버리는 학자마저 등장하게 된다. 서구에서 유입된 개념이 동양의 개념과 충돌하게 되면 혼란이 일어나는 일은 흔하다. 새롭지 않은 현상에, 그것도 유독 ‘novel과 小說의 조우’에 내가 관심을 가진 까닭은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서구에서 들어온 novel 개념 에 입각하여 중국 소설의 역사를 재편했다. 이 과정에서 소설적 성 격이 약하다고 문학 체제 밖으로 밀려나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이 전에는 문학 장르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문헌들이 소설의 효시로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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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되기도 했다. 이런 연구 과정에 반기를 든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문헌적 근거를 통해 ‘중국만의 소설사’를 정립하려 노력한다. 고대 문헌에서 소설이라고 이름 붙여진 대상을 찾거나, 소설가라고 불린 이들이 쓴 작품의 흔적을 찾는 ‘문학의 고고학’ 작업에 몰두하는 이 들이 후자의 그룹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양 집단 모두가 원하는 성과를 얻지는 못한다. 두 그룹의 연구 방법 모두 특정 단계에서 논리적 비약을 시 도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단절을 메꾸는 단계에서 스스로의 연구 방식에 대한 인지부조화와 확증 편향이 강화된다. 여기까지 설명하면, ‘그래서 당신은 어느 입장을 지지하는가’ 하 는 질문을 받게 된다. 그때마다 이런 대답을 해왔다. “저는 어느 그 룹의 연구 방법도 지지할 수 없으며, 이런 계보 만들기의 허울을 고 발하는 게 유일한 관심사입니다.” 이렇게 대답하면 스스로가 탈근 대적인 사람처럼 보일까 싶어서, 허세로 가득 찬 문구를 하나 만든 셈이다. 하지만 대답할 때마다 드는 씁쓸한 기분은 어쩔 수 없었는 데, 그 씁쓸함의 원인은 찾지 못했다. 그런데 《Freedom, 어떻게 自由로 번역되었는가》를 읽고 나서 깨닫게 되었다. 뿌리를 찾는 작 업이든, 그것을 모니터하는 일이든 관심을 끊으면 그만 아닌가. 길 티 플레져를 발제문에 너절하게 늘어놓는 일마저 바람직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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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인다. 하지만 이런 악취미를 공공연하게 밝히는 이유는 이제 그 만 두겠다는 공표이기도 하다. 서론이나 도입부에서 밝힌 의도는 좋았으나 그 방법론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하는 책을 여럿 보아왔다. 그래서인지 야나부 아키라의 책을 볼 때 불안한 마음도 들었다. 그가 초반에 천명한 관점이 깨지 는 부분이 나올까 걱정하는 마음으로 세미나에 참여했다. 하지만 《Freedom, 어떻게 自由로 번역되었는가》을 통해 만난 저자는 자 신의 입장을 끝까지 고수하는 연구자였다. 2021년 2월 한 달은, 핵 심 개념어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는 기회이면서 동시에 연구 방법 론의 모범을 발견한 때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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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기에 끌린다, 번역어의 美 삼월 미래세계를 다루는 SF영화에는 종종 자동통역기가 등장한다. 자 동통역기는 귀에 꽂고 있기만 하면 상대방의 언어가 자동으로 통역 되는 기계이다. 이 기계는 과연 서로의 언어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 을까? 이를테면 미묘한 비꼼과 놀림의 뉘앙스라던가, 한 지역의 오 랜 문화가 녹아있는 관용표현이나 다른 문화 사람들은 들어본 적도 없는 욕설이라던가. 이 질문은 어떤 언어의 단어 하나하나마다 일 대일로 조응할 다른 언어의 단어가 있을까, 라는 질문과 닿아있다. 이는 곧 번역이라는 행위 자체의 가능 여부를 묻는 말이다. 그러니 까 한 언어의 단어를 다른 언어의 단어로 바꾸는 식으로 서로의 언 어를 이해하는 일이 과연 가능하기는 한가? 야나부 아키라는 외국어를 일본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일본의 근대화에 주목한다. 근대화는 정치체제나 사회구조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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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메이지유신은 서구의 언어를 번역하는 중 요한 기점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의 언어와 문화 역시 유신 의 바람을 맞는다. 19세기에 일본에서 번역한 한자어가 중국과 한 국에 그대로 전해지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어떤 면에서 이는 동아 시아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격동의 시작이었다. 이 책의 저자가 주 장하는 대로 언어는 자연스럽게 일대일로 조응하지 않는다. 번역은 조응할 단어를 새로 만드는 일에 가까웠다. 한 나라의 언어적·문화 적 격변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 책의 저자는 서구어의 일본어 번역을 서구인과 아프리카 원 주민의 만남에 빗대어 이야기한다. 여기서 일본인은 문자를 사용하 지 않는 아프리카 원주민에 비유된다. 아프리카 원주민 중 가장 먼 저 문자를 사용하는, 아니 사용하는 척 연기하는 이들이 있다. 추장 이나 서구인들과의 친분을 과시하고 싶은 이들이다. 문자를 이해할 수 없지만, 사용하는 척 연기하는 이들의 존재. 야나부 아키라는 일 본에서 초기에 서구어를 번역했던 이들이나 번역어를 자주 사용했 던 이들을 그렇게 본다. 이해하지 못하는 문자를 아는 척하며 종이 에 빗금을 그어대는 이들로. 프랑스 철학자들이 말하는 에크리튀르(글쓰기)는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에크리튀르는 복잡한 글쓰기뿐 아니라 단지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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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선 하나를 긋는 일까지도 포함한다. 글쓰기-문자의 사용-는 그 자체로 권위를 드러내는 행위이다. 누군가가 이 에크리튀르를 본다는 일이 중요하지, 내용이 중요하지는 않다. 그런 의미에서 서 구의 문자를 모르는 원주민 추장의 선 긋기나 일본 학자들의 서구 어 번역은 하나의 에크리튀르이다. 또 번역어를 즐겨 사용하여 유 행하게끔 만든 이들의 행위 역시 마찬가지로 에크리튀르이다. 번역어로 새로이 등장한 미(美)를 즐겨 사용했던 미시마 유키오 의 행위 역시 에크리튀르에 포함된다. 미시마 유키오는 에크리튀 르를 통한 권위를 극대화하기 위해 조금 더 복잡한 트릭을 이용한 다. 이해하지 못해도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불러일으키면서, 이 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끌리게 되는 일본 번역어의 특징을 잘 활용한 트릭이다. ‘미’는 번역어로 쓰이기 이전에는 잘 사용하지 않 는 말이었으므로 일본인들에게 그 의미가 몹시 생소했다. 번역어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의미의 완성이 필요한데, 야나부 아키라는 특히 이 과정에 주목한다. ‘미’가 이해하기 어려운 말인 것은 사실이지만, 사람들이 그 의미 를 이해하기 어려웠던 데는 ‘미’를 사용하는 지식인들의 태도도 한 몫을 했다. 미시마 유키오 같은 인물은 평소의 발언과 소설 안에서 ‘미’를 언급할 때 전혀 상반된 태도를 보였다. 평소에는 ‘미’가 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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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하찮은 존재인 듯 말하다가, 소설에서는 중요하고 무서운 존 재인 듯 표현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다. 이런 트릭을 통해 ‘미’의 의미는 더욱 혼란스러워졌고, ‘미’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 일본인들은 이 단어에 더욱 끌리게 되었다. 이런 혼란과 끌림은 일 본 번역어의 중요한 특징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love의 번역어로 등장한 ‘연애’ 역시 이런 혼란과 끌림 속에서 일본 인들에게 자리 잡았다. 이전까지 일본 사회에서는 love와 lust, 즉 애정 관계에서 영혼과 육체의 문제가 분리되지 않았다. 반면 서구 에서 love와 유사한 뜻으로 쓰이는 romance는 분명히 육체가 아 닌 영혼의 문제를 담고 있다. romance는 기사도문학에서 언급되 는 사랑을 말하며, 육체가 서로 멀리 있을 때 영혼의 사랑을 찬양하 는 개념이다. 육체관계를 배제하면서 진행되는 이런 사랑의 서사 는 성모 숭배나 십자군전쟁 등 기독교문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할 때만 수긍이 가능해진다. 이 특수한 사랑의 서사가 일본에 번역 되면서, ‘정신적 사랑’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나타난다. 말하자면 ‘연 애’는 번역어가 아니라 새로운 애정 관계에 대한 정의인 셈이다. 이후 ‘연애’는 기독교도와 지식인을 중심으로 한 문화가 되었다. 이들은 ‘연애’를 사랑 이상의 무엇으로 포장하려 했다. 곧 ‘연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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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에서 love가 뜻하는 의미보다 훨씬 좁은 의미로 축소되면서 일 종의 상상적 영역으로 관념화되었다. ‘연애’는 한자어 ‘애련’과도 다 르고 서구의 love와도 다른 개념이다. 당시 일본 사회에서는 서구 적 개념의 사랑 자체가 어려웠던 데다가, ‘연애’의 개념이 관념화되 면서 더욱 현실의 연애는 불가능하게 되었다. 불가능한 ‘연애’는 일 본의 현실을 재단하는 규범이 되었고, 더욱 많은 이들이 이 불가능 한 ‘연애’에 감동했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연애에 바치는 수많은 찬사와 동경들도 이 시기에 만들어졌으리라. “어떤 말을 증오하거나 동경하거나 할 때, 사람들은 그 말의 기능 을 충분히 활용하는 것이 아니다. 거꾸로 말이 사람을 지배하고, 사람이 말에 이용당한다. 가치를 부여하며 바라봄으로써 그만큼 사람들은 말에 휘둘리는 것이다.”(62쪽)
야나부 아키라가 이 책의 3장에서 일본 번역어의 특징을 언급하 며, 쓴 문장이다. 우리가 언어를 사용할 때는 언제나 정서와 가치판 단의 문제가 끼어든다. 정서와 가치판단은 우리가 언어를 사용하면 할수록 의미와 멀어지게 만든다. 언어는 권력의 도구인 동시에 도 무지 길들지 않는 도구라고도 볼 수 있다. 누구도 언어라는 도구를 완벽하게 자기 의지대로 다룰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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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미래세계의 SF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대부분의 SF에서 미 래에 국가는 중요하지 않은 문제가 된다. 세계화의 물결 아래 국민 국가라는 낡은 역할이 남아날 리가 없다. 국가가 없다면, 언어 역 시 위기에 봉착한다. 국가가 없는 미래에는 서로의 언어를 통역하 는 문제 역시 필요치 않을 수 있다. 통역이 아니더라도 언어는 사용 그 자체로 이미 변화의 과정에 있다. 에크리튀르는 권력의 도구인 동시에 혁명의 도구로도 기능한다. 종이에 선을 긋는 추장의 행위 는 권력지향적인 동시에 그 권력을 폄하하며 조롱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우리가 미래에 모두 같은 언어를 사용하게 된다고 하여도, 그 언어에는 언제나 정서나 가치판단이 담기기 마련이다. 우리는 언어 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언어도 우리를 완벽하게 지배하지 못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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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조어와 번역어가 만들어내는 세계 아라차 ‘항마력’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다수의 신조어와 줄임말들이 오고 가는 대화의 흐름으로 얼추 파 악이 되는 것과는 달리 ‘항마력’에 대해서는 어리둥절했다. 그게 무 슨 뜻인지 물으며 ‘옛날 사람’임을 인증받고 가는 길에 다시 검색 을 해 보았다. 원래는 악마를 항복하게 한다는 불교 용어이지만, 온 라인 게임에서 ‘마’에 대항할 수 있는 힘으로 사용되면서 유행했고, 또 변형을 거쳐 현재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글이나 사진, 영상 등을 보고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나타내는 신조어’로 쓰이고 있다고 했 다. 한동안 나는 항마력의 마력에 빠져, ‘항마력 딸려’, ‘항마력 부족 해’ 등의 말을 하고 싶어서 안달을 냈다. 그러다 점차 시들해졌고, 지금은 항마력이 달리는 순간에도 이 단어를 잘 사용하지 않고, ‘어 우 닭살~’ 하면서 옛날 사람으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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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조어와 줄임말의 사용은 이너써클이 보내는 유혹과도 같다. 서 양의 학문이나 사상, 제도, 지식 체계 등을 모방하고 흡수하고자 했 던 19세기 일본에서 번역어의 역할이 그랬던 것 같다. 하여 저자 야나부 아키라는 번역어의 성립 법칙으로 ‘카세트 효과’를 강조한 다. 여러 번 등장하지만 또 한 번 상기시켜 보자면, ‘카세트 효과’는 갓 만들어진 번역어가 처음에는 내용이 빈약하고 생소해 보이지만, 생소하기에 오히려 사람들을 매혹함으로써 의미가 풍부해지며 적 절한 번역어로서 정착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자 유’, ‘사회’, ‘개인’과 같은 번역어들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은 것은 가장 적절한 번역어라서가 아니라 카세트 효과가 작용했기 때 문이라는 것이 그의 반복되는 주장이다. 야나부 아키라는 총 열 개의 개념어(사회, 개인, 근대, 미, 연애, 존재, 자연, 권리, 그(그녀))를 대상으로 근대 일본 번역어의 역사를 추적했다. 이 책에는 생소한 개념어들과 전문 용어들을 어떻게 번 역해야 할지 고민했던 당대 지식인들의 고군분투가 남겨져 있다. 때로는 본인이 쓰면서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문장을 남겨둠으 로써 번역의 문제가 지식인들에게도 쉽지 않았음을 보여주기도 한 다. 가장 큰 난관은 번역하고자 하는 개념이나 현상 자체가 일본에 존재하지 않았을 경우였다. 이런 상황에서 번역어는 주로 한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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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해 새로 만들어지거나 기존의 일본어에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 는 방식으로 정착되었다. ‘권리’, ‘자유’, ‘그(그녀)’는 원래 일본어에 서 일상어로 쓰이던 것이 나중에 번역어로서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 경우이다. 이처럼 이미 있는 일본어를 번역어로 사용한 경우에 는 서로 다른 의미들이 혼재하게 되며, 게다가 서로 모순을 일으키 기도 했음을 여러 용례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말이라는 것은 일단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유통되면 독립적인 개체가 되어 독자적으로 활동한다. 처음에 쓴 사람, 단어를 만든 사람의 뜻대로는 되지 않는 법이다.”(227p)
‘권리’는 right의 번역어로 사용됐지만, 그 안에 힘이라는 의미가 있음을 사용하면서 차츰 이해하게 되었으며, ‘자유’는 나쁜 어감 탓 에 번역어로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지만 결국 정착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해당 문자의 의미로 가장 적절한 단어가 살아남는 것 은 아니며, 가장 번역어다운 말이 정착한다고 강조한다. 또 번역어 로는 어딘가 위화감이 느껴지는 말이 오히려 더 바람직하다는 입장 이다. 오랫동안 써온 모국어와는 성격이 다른 말로 사람들이 직관 적으로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는 말이라야 한다는 것이다. 모국어와 잘 어울리지 않는 위화감이나 어긋남이 오히려 카세트 효과를 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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켜 새로운 단어가 되는 원리이다. 게다가 새로운 단어는 새로운 세 계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다야마 가카이는 일본어 문장에서 필요할 것 같으면서도 필요 가 없는 이 말의 매력에 사로잡혔다. 그 결과 이 말에 예전에는 없 던 중요한 역할을 부여하게 되었다. 의도적으로 ‘그彼’라는 말을 쓰자, 아마 생각지도 못했던 세계가 펼쳐졌을 것이다.” (256p)
저자는 다야마 가타이가 ‘그彼’나 ‘그녀彼女’를 의도적으로 사용 했다고 말하면서 작가도 일본어 문맥상에서 주는 위화감을 충분히 알면서도 감수하고 썼다고 했다. 그彼’는 1인칭도 3인칭도 아니었 지만, 그 때문에 때로는 1인칭 같기도 하고 혹은 3인칭 같기도 한, 확정되지 않은 역할을 소설 무대에서 연출해 냈다고 설명한다. 새 로운 세계, 새로운 인물을 창조해내는 역할을 이 번역어가 하고 있 다고 보는 것이다. 번역어가 만든 세계는 원 단어를 사용하는 세계 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일 수밖에 없다. 무엇이 정확한지와는 별개 로 사용자들이 멋을 내며 그 단어를 내뱉을 때 각각의 세계가 펼쳐 지듯이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많이도 어긋났던 대화들이 떠올랐다. 당신이 알고 있는 ‘자유’와 내가 알고 있는 ‘자유’가 왜 그토록 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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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루지 못했는지 알 것 같았다. 우리는 모두가 어긋나 있는 채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었던 셈이다. 무언가 더 정확하게 설 명하려 할 때마다 의미가 더 퇴색해지는 묘한 상황이 펼쳐지는 이 유도 알 것 같다.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 신비주의라는 망토를 쓰고 ‘사회’에 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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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령은 거부한다 《수호전》을 마음대로 읽어도 되는 이유
에레혼 한때 평론에 심취했었다. 중2병보다 더 고치기 힘들다는 고2병 에 걸렸던 시절이었다. 당시 나는 라디오에 ‘과몰입’했었는데, 특히 영화/음악평론가가 나오는 코너에 열광했었다. 평론가들의 설명을 들어야만 영화나 음악을 남들보다 더 제대로 즐길 수 있다는 믿음. 믿음은 동경으로 바뀌었고, 급기야 평론가가 되고 싶다는 꿈도 잠 깐 꿨다. 그때 청취자 중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들이 꽤 있었 나 보다. 모 평론가는 “평론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청취자의 질문에 왜 그런 고민을 하시죠, 라며 이렇게 대답했다. 어떤 사람이 만일 평론가가 되지 않았다면, 그는 신의 축복을 받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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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로 옮겨 적고 보니, 저 사람은 중2병 혹은 고2병이 치료되 지 않은 상태로 어른이 되었나 보다. 그의 말대로라면 나는 신의 가 호를 받는 사람이었다. 평론가 혹은 비평가가 되고 싶다는 고등학 교 때의 꿈은 아주 막연했을 뿐,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 본 일은 없다. 학창시절 내내 줄곧 국문과에 가고자 하는 꿈이 있었 는데, 이는 소설가나 시인이 멋진 직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평론/비평보다는 1차 텍스트를 생산하는 일이 더 우위에 있는 일 이라 굳게 믿었다. 국문학도를 꿈꾸던 고등학생은 돌고 돌아 중국 고전문학을 전공 했고, 대학원을 거쳐 비평가를 꿈꾸던 원점으로 돌아왔다. 내가 지 금 중국에서 공부하는 전공의 이름은 “중국문학비평사”이다. 소속 된 지 꽤 되었지만, 아직도 전공을 소개하는 일은 쉽지 않다. ‘중국 +문학+비평+사’라는, 켜켜이 쌓인 단어들. 그리고 전공 명칭을 듣 고 당황하는 상대방의 모습. 어디서부터 전공에 대한 설명을 해야 하나 복잡해지는 머릿속. “그런 전공이 있어요” 대충 설명하면 어 째 비전공자를 무시하는 태도 같아 보인다. ‘언택트 시대’로 인해 새로운 사람과 만날 일이 예전보다 줄어든 것은 불행 중 다행인 셈 이다. 긴 음절 수만큼이나 실제 중국문학비평사라는 말에는 깊은 뜻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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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겨 있(단)다. 석사나 박사 개론 수업을 들어가면 교수님들은 중국 문학비평사의 의미에 대해 긴 시간을 들여 설명한다. 한 마디로 ‘비 평의 비평’을 다루는 전공이 중국문학비평사이다. 고대 중국에도 시, 소설에 대한 비평이 존재했다. 이런 ‘1차 비평’을 현대인의 시각 으로 다시 검토하는 작업 역시 비평의 일환이다. 차이나 리터러시 세미나에서 이렇게 전공 소개를 했더니 진심 어린 걱정을 해주신 분도 있었다. 그냥 비평도 힘든데 그 비평을 또 비평하려면 얼마나 어렵겠냐는 말씀이었다. 원문과 그 원문에 대한 비평문 모두를 검 토하는 작업은 말 그대로 이중고이다. 그렇다고 중국문학비평사 전공자의 앓는 소리에 심각하게 반응 할 필요는 없다. ‘비평에 대한 비평가’ 역할을 자처하는 사람이 인 문학연구자 아닌가. 인문학의 논문이나 연구서의 연구 방법론을 살 펴보면, 1차 텍스트를 보고 바로 자신의 의견을 즉각 도출하는 경 우는 드물다. 철학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철학은 여타 인문학 분 과 가운데 특히 1차 텍스트 위주의 분석을 최고의 연구 방법론으로 간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철학 전공자들은 곧 철학자 인가?” 하는 질문에는 전공생들도 쉽게 긍정하기 어렵다. 연구 방 법론으로서의 비평은 문학비평 전공만의 전유물일 수 없다. 이렇게까지 논의를 진전시키면, 자연스레 다음 질문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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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비평을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독립 분과가 굳이 필요할까?” 비평 연구의 문제의식, 분석 방법이 여타 학문에서도 통용된다면, 중국문학비평사라는 이름도 결국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문 학비평사 전공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되었을 때, 이름에서 풍기는 포 스트모더니즘적 향기에 ‘쿨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도가 지 나친 쿨함은 내 전공의 존재 이유마저도 비평의 대상으로 삼는다. 고전 연구 방법만이라도 착실하게 배우려던 입학 이전의 목적은 이 미 온데간데없다. 대학원생이 학문적 권태에 빠지는 일은 빈번하게 발생한다. 마 침 내 전공이 비평이다 보니 모든 일에 비평적 태도로 접근이라도 하는 듯 착시 효과가 일어나는 것이다. 번아웃 상태에 빠져있을 때 가 마침 《수호전水滸傳》을 읽어야 하는 3월 초였다. 내 전공과 직 결된 책을 보아야 하니, 권태니 번아웃이니 핑계 댈 수도 없이 바쁘 게 움직여야 했다. 우리실험자들에서는 《수호전》 독해를 돕기 위한 열린강좌를 기획했고, 나는 이 책의 명성을 높인 고대 중국 문인들 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이 가운데 특히 집중적으로 파헤친 인물 은 김성탄金聖嘆이었다. 《수호전》이 사마천司馬遷이 쓴 《사기史記》만큼이나 위대하다고 주장한 사람. 《수호전》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원작 내용에 손을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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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완벽한 이야기 구조를 추구한 사람. 김성탄은 괴이한 인물이면 서, 중국 문학사상 가장 저명한 평론가이기도 하다. 강좌를 위해 김 성탄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은 문학비평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명나라 말엽부터 청나라 중반까지, 중국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소 설에 대한 비평이 ‘힙한 것’으로 치부되었다. 이 비평 방식은 ‘평점 評點’이라고 불린다. 원래는 책의 중요한 부분에 점을 찍는 등 표시 를 하는 간단한 작업이었으나, 이후에는 소설의 주요 구절이나 장 면에 설명을 적는 방식으로 변화한다. 편의상 후자의 작업을 ‘메모 식 평점’이라 한다면, 이 메모로 이름을 가장 널리 알린 인물이 바 로 김성탄이다. 그러나 김성탄의 평점에 한껏 기대를 하고 그의 메모를 들여다 본 사람들은 실망을 금치 못한다. 김성탄이 수호전을 읽으며 적은 내용 대다수가 ‘묘하다![妙]’ 정도의 간단한 평가이기 때문이다.3 소 설 전반에 대한 통찰력이 돋보이는 문장들도 상당 부분을 차지하지 만, 평가의 기준이 중구난방이라는 비판을 듣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성탄이 중국 문학의 역사를 통틀어 중요한 3 이런 평점 스타일을 두고 중국에서는 농담조로 김성탄을 “묘성인‘妙’星人”이라고 부 른다. 이는 중국 네티즌들이 고양이를 부를 때 쓰는 말인 “묘성인喵星人”을 패러디한 말이 다. 참고로 묘성인이라는 인터넷 용어는 ‘고양이 울음 소리 묘喵’자와 외계인을 지칭하는 중국어 단어 ‘외성인外星人’을 합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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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가로 거론되는 이유는 독특한 견해 때문이다. 그의 남다른 안 목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김성탄은 자신이 생각하 기에 중요한 텍스트를 ‘성탄육재자서六才子書’라 이름 붙였다. 그 런데 이 책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심상치 않다. 《장자莊子》, 굴원 이 지은 《이소離騷》, 사마천의 《사기》,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작 품들, 《수호전》과 희곡 《서상기西廂記》까지. 여기에는 그 흔한 《시 경詩經》, 《논어論語》 등의 고전이 포함되지 않아 파격적이다. 두보 의 시 정도를 제외하면 유가 지식인들이 탐탁치 않아 할 책 제목들 이다. 특히 소설과 희곡을 필독서 목록에 집어넣는 일은 통념을 깨 는 일이었다. 중국 사회에서 소설은 줄곧 심심풀이로 읽는 글이라 는 인식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김성탄이 평점을 남기면서 작성한 “《수호전》을 읽는 법”을 보면, 《수호전》에 대한 그의 ‘팬심’이 여실 히 드러난다. “《수호전》의 소설 묘사 기교는 《사기》에서 배운 것이지만 《사기》 보다 뛰어난 곳이 많다. 《사기》에 절묘하고 오묘한 부분들이 있다 면 《수호전》에는 도처가 다 그러하다.” (방영학·송도진 번역, 《수호전 1》, 글항아리, 2012, 55쪽) “각 가정의 자제들이 막 글자를 배울 때 《수호전》을 반복해서 자 세히 보게 하라. 《수호전》의 문장 구조를 이해한다면 거침없이 글 을 쓸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책, 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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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전》은 결국 소설이지만 자제들은 반드시 읽어야 한다. 모두 읽고 나면 내용은 비록 허구라도 가슴속에 많은 문장 기교를 얻 게 될 것이다.” (같은 책, 69-70쪽)
‘시의 왕국’이라고도 불리는 중국 사회에서 소설의 가치를 높이 는 사람은 이단으로 치부된다. 김성탄은 《수호전》을 너무 아낀 나 머지 완성된 이야기에 일부 수정을 가하기도 했다. 그 가운데 가 장 유명한 일화는 《수호전》의 분량을 대폭 축소하고 결말을 바꿔버 린 일이다. 《수호전》은 원래 100회 분량, 혹은 120회 분량으로 구 성된 장편 소설이다. 작품의 줄거리는 양산박梁山泊이라는 아지트 로 108명의 도적들이 모이는 전반부와 이들이 조정으로 귀순한 이 후 민란 토벌과 전쟁에 동원되는 후반부로 나뉜다. 그런데 김성탄 은 후반부 이야기에 나오는 귀순 모티프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 다. 그래서 그의 전면적인 개작을 통해 후반부 이야기를 대폭 삭제 한 ‘70회본 《수호전》’이 등장하기에 이른다. …이 판본은 대담하게도 108명의 호걸이 양산박에 집결한 대목 에서 이야기를 끝내고 있다. 확실히 《수호전》의 서사 세계는 군단 이 조정에 귀순한 후부터 급격하게 흥취가 결여되는 측면이 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김성탄의 70회본은 간행되자마자 압도적인 인기를 누리면서 여타의 판본들을 구축해버린다. (이나미 리쓰코, 장원철 번역, 《중국 5대 소설─수호전·금병매·홍루몽》, AK커뮤니 케이션즈, 2019,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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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김성탄은 《수호전》 독자 가운데 가장 텍스트에 많이 개 입한 사람이다. 이나미 리쓰코가 말한 대로 ‘김성탄본 《수호전》’은 세상에 등장했을 때에도 인기를 끌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가장 많이 보는 《수호전》 판본으로 꼽힌다. 이런 김성탄의 행보를 따라가다 보면, 그가 혁신적인 인물처럼 보인다. 그러나 “《수호전》 읽는 법”에서 나타나듯, 그는 소설이 무 언가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김성탄 이전의 시 대에는 유학 경전과 운문 문학이 본받아야 할 글로 인식되어왔다. 경전과 시에 담긴 경직된 담론에 염증을 느낀 지식인들은 새로운 텍스트를 발굴해내려 했다. 마침 명나라는 도서 시장의 발달로 인 해 민간 계층에서 소설이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소설은 이렇게 지 식인들에게 포착되었다. 그러니 김성탄을 비롯한 지식 계층은 소설 자체의 가치를 인정 한 것이 아니다. 더 직접적으로 말해서 이들은 소설의 파급력에 주 목했다. 딱딱한 경서나 규칙에 대해 많은 학습이 필요한 시와 달리 소설은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텍스트였다. 당시 지식인들은 아 마도 이런 가설을 세웠으리라. ‘소설에 교훈을 담는다면, 혹은 소설 이 좋은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민중들이 더 쉽게 교화되지 않 을까?’ 명청 시기에 급진적이라 분류된 지식인들은 소설에 대한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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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감을 여러 글을 통해 드러냈다. 해당 시기에 활동했던 문인 풍몽 룡馮夢龍의 글을 예로 들어보자. (소설은) 청중으로 하여금 칼을 들게도 만들고, 고개 숙여 절하고 싶게도 만들고, 목을 베고 싶게도 만들고, 기꺼이 돈을 내게도 만 든다. 겁이 많은 자에게 용기를 주고, 음탕한 자를 정숙하게 만들 며, 얄팍한 자를 도탑게 만들고, 우둔한 자에게 부끄러움을 알게 한다. 《효경》, 《논어》가 사람을 감동시킨다 한들 어찌 이런 이야 기처럼 깊고도 빠를 수가 있겠는가. 통속적이지 않고서 어찌 이런 효과를 거둘 수 있겠는가. (풍몽룡, 김진곤 번역, 《유세명언 1》, 민 음사, 2020, 9쪽.)
풍몽룡은 김성탄보다 앞선 시기의 인물이지만, 더 급진적으로 보 이는 주장을 한다. 바로 통속적인 어투의 소설이 훌륭한 글이라는 것. 위의 글에서는 민간의 언어가 결코 속되지 아니라는 인식이 담 겨 있기도 하지만, 오히려 민중의 언어를 사용해서 교화적 가치관 을 전달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관점이 내포되어 있다. 이제 다시 금 질문할 필요가 있다. 이 시기 문인들의 소설에 대한 열광, 그리 고 소설 비평의 유행은 시나 경서를 강조하던 이전 지식인들의 태 도보다 진일보한 현상인가? 아니면 조금 더 근본적인 질문,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 질문을 해 보자. 통속적인 글로 쓰인 소설들에 왜 비평이 필요할까? 김성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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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전》을 읽는 법”은 마치 강령처럼 구성이 되어있다. 특정한 방 향으로 문학 작품을 읽도록 유도했던 사람들이 외면받던 소설 장 르를 지지했다는 이유만으로 혁신적인 인물로 평가될 수는 없다. 비평의 가치가 철저하게 무화되고 있는 현시점에 김성탄이 편집한 《수호전》을 보게 되다니, 새삼 공교롭게 느껴진다. 그러니 더더욱 누군가의 말에 귀 기울이며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 차이나 리터러 시 세미나 구성원들은 《수호전》을 읽기 전에 암묵적인 다짐을 주고 받았다. 누군가의 의도대로 소설을 읽지 않겠노라고. 그리고 작품 에서 괜히 교훈을 찾는 시도도 하지 않겠노라고. 《수호전》과 같은 ‘날뛰는’ 텍스트를 읽는 과정에 독법이 필요하긴 한 건지, 다시금 의문을 제기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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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욱하느냐의 차이 - 노지심의 길과 임충의 길
기픈옹달 <수호전>은 노지심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노지심은 백정을 때려 죽이고 중이 된다. 오대산 절에 들어가 몸을 숨기지만 괄괄한 그의 성격은 말썽을 일으키고 만다. 이에 오대산을 떠나 동경, 지금의 카 이펑 대상국사에 몸을 의탁한다. 그러나 한눈에 보아도 골칫거리인 그는 그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그렇다고 내칠 수도 없는 일. 결국 노지심에게 채소밭을 관리하는 일을 맡긴다. 채소밭은 파락호 건달들의 영역이었으므로 그들이 노지심을 해치워 주기를 내심 바 랐던 것. 그러나 결과는 예상과 영 딴판이었다. 노지심이 파락호 건달들을 단숨에 제압해버린 것이다. 이들도 힘 좀 쓴다는 어깨들이었겠지만 노지심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노지심은 버드나무를 송두리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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뽑아내는 퍼포먼스까지 보여주며 파락호 건달들을 한 번에 휘어잡 는다. 대체 누가 노지심에게 대들겠는가! 카이펑 대상국사에 가면 버드나무를 뽑는 노지심 상을 볼 수 있 다. 천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이 절에 한낱 소설 속 인물의 동 상을 세워놓다니. 노지심을 봐도 전혀 불심이 깊어질 것 같지 않은 데 말이다. 이것이 이야기의 힘이라 하자. 대상국사 절터는 본디 전국 사공자 가운데 한 사람인 위무기 신릉 군의 집터였단다. 신릉군은 맹상군, 평원군, 춘신군과 함께 당시 널 리 이름을 떨친 세력가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의 이야기를 담은 <위공자열전>은 지금 읽어도 꽤 흥미롭다. 신릉군은 조나라 한단을 공격하는 진나라 군대를 막고자 여러 인물의 도움을 받는다. 후영과 주해는 자신을 알아본 신릉군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다.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초개처럼 목숨을 내던지는 결의. 이를 무엇이라 이름 붙여야 할까. 의리라고 하자니 조금 의미가 바래 버 리는 듯하다. 우정이라 하자니 너무 가볍고. 하튼 이 이야기가 크게 사랑받은 것만은 분명하다. 사마천 당대에도 신릉군을 흠모하든 자 들이 많았다. 한 고조 유방이 신릉군 덕후였다니 더 말할 게 있을까. 하니 노지심의 이야기에서 임충의 이야기로 바뀌는 공간으로 신 릉군의 집터 위에 세운 대상국사는 꽤 그럴싸한 공간인 셈이다. 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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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머로 노지심을 본 임충은 노지심에게 넋을 잃고 그 날로 노지심 과 의형제를 맺는다. 현대인이 보기에는 너무 단순하고 성급하다. 이 급발진은 뭐지? 협俠의 문법이라 치자. <사기열전>에서도 <수 호전>에서도 이들은 서로를 너무도 쉬이 알아본다. 김성탄은 <수호전>의 ‘수호’를 멀다고 풀었다. 동떨어진 곳, 변방 의 이야기라는 뜻이다. 노지심이 위주 경락부에서 출발하여 오대산 을 거쳐 동경, 카이펑에 이르렀다면 이제 임충은 동경을 떠나 창주 를 지나 양산박까지 가야 한다. 임충은 고구의 양아들 고아내의 모함으로 개봉부에 끌려간다. 개 봉부는 대상국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오늘날 카이펑 개 봉부에 가면 포증, 포청천의 거대한 동상이 있다. 그는 송 인종 때 개봉부윤으로 활약한 인물로 유명하다. 작두를 휘두르며 탐관오리 를 처벌하고, 황족도 거리낌 없이 벌을 주었다지. (용작두를 대령하 라!) 그래서 개봉부에 가면 개작두, 범작두, 용작두를 구경할 수도 있다. 포증은 이후 민간의 영웅이 되어 신으로 추앙받기에 이른다. 그 러나 이는 거꾸로 그처럼 공명정대한 인물을 만나기 어려웠다는 역 사적 경험의 반증일 테다. 임충은 억울한 옥사를 겪고, 창주로 유배 를 떠나면서 돈의 힘을 깨닫는다. 돈만 넉넉히 있으면 나름 배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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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먹고 자며 유배지로 갈 수 있다. 아니, 죄인이 돈으로 객점에서 술과 고기를 사고, 자신을 호송하는 관리를 대접한다는 사실 자체 가 좀 낯설다. 돈이 없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굶어 죽기 딱 좋겠지. 돈이 있으면 목에 찬 칼을 벗을 수도 있고, 유배지에서도 적당히 편한 일을 할 수 있다. 그 뿐인가 잘하면 용돈벌이도 할 수 있다. 그 렇다고 황금, 혹은 은전만능사회라 생각하지는 말자. 시진 같이 호 걸을 좋아하여 그들에게 술과 고기를 대접하고 주머니 두둑하게 돈 을 주는 이도 있다. 읽는 내내 임충이 과연 언제 ‘수호’로 굴러 떨어질지 궁금했다. 왜냐하면 임충은 노지심에 비해 꽤 참을성이 많은 사람인 까닭이 다. 진관서 백정 정가를 단번에 때려죽였던 노지심에 비해 임충은 수차례의 고비를 잘 넘긴다. 고아내를 가만 두었으며, 자신을 해하 려 했던 압송관 둘을 무사히 돌려보냈다. <노지심전>을 읽은 후여 서 자연스레 이런 질문이 들었다. 노지심이라면 어땠을까? 모르긴 해도 순순히 개봉부에 끌려가지는 않았을 테다. 아마 끌려가기 전 에 몇 차례 사고를 치고 어디론가 도망가야 했겠지. 원한이 깊으면 복수도 깊다 하던가. 임충은 자신을 죽이려던 육겸 과 부안, 차발 세 사람을 죽인다. 자신이 옥사를 겪도록 한 육겸, 한 때는 친구였으나 자신을 저버린 그를 임충은 매우 잔혹하게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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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겸의 웃옷을 찢고 날카로운 칼로 심장을 도려내니 일곱 개의 구멍으로 피가 터져나왔다. 심장과 간을 손에 들고 고개를 돌려 보니 차발이 일어나 도망가려고 했다. 임충이 차발을 붙잡아 누 르며 말했다. “너 이놈은 원래 그렇게 나쁜 놈이 아니었더냐. 내 칼을 받아라!” 차발의 목을 잘라 창끝에 꽂았다. 돌아와서 부안, 육겸의 목을 모 두 잘랐다. 날카로운 칼을 칼집에 도로 꽂아 넣고 셋의 머리카락 을 하나로 묶어 사당 안으로 들고 들어와 산신상 앞 탁자 위에 올 려 놓았다. (수호전 2권 47쪽)
다진 고기를 흩뿌리며 진관사 백정 정가를 주먹으로 때려 죽인 노지심은 순박한 편이다. 결국 임충도 뭇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갈 수 없게 되었다. 뒷세계로 숨는 수밖에. 시진은 그에게 도적 무리를 소개해주고 임충은 드디어 양산박으로 떠난다. 확실히 <수호전>은 <사기>에서 만났던 자객과 협객의 모습이 겹 쳐 읽힌다. 무협지를 읽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차이가 있 다면 <사기>에 비해 <수호전>은 더 변두리 인간들에 주목하고 있 다. <사기>가 역사이고 <수호전>이 문학인 이유가 여기에 있을 테 다. 한편 무협지와 다른 점은 기술 묘사가 간결하다는 점, 최강자 논쟁이 없다는 점 정도. 다들 나름의 고수지만 우열을 가리는 데는 별 관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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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양산박의 왕륜 생각은 다르다. 그는 임충과 같은 고수를 무리에 받아들일 경우 자신의 지위가 위태롭게 될까 걱정한다. 이 것이 왕륜의 사망플래그일지는 더 지켜보도록 하자. <수호전>을 읽으면서 무엇을 통해 시대를 바라보느냐가 중요하 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다. 철학 전공자에게 송대는 주자의 시대 이다. 북송과 남송으로 나눈다면, 북송에는 주자를 위해 길을 닦는 이들이 존재할 뿐이다. 주자학을 위한 비옥한 토양을 마련하는 시 대라고 할까? 송대의 여러 문인, 관료들도 그 비옥함을 더하는 인 물들에 불과하다. <수호전>은 소설이며 역사는 아니다. 따라서 <수호전>을 통해 송대를 읽는다는 것은 무리일 테다. 그럼에도 <수호전>을 읽으며 수호, 역사에 기입되지 않는 사람의 이야기를 생각해본다. 제법 재 주는 가졌지만 꽃을 피우지 못한 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역사는 당송 변혁기를 사대부의 시대로 이야기한다. 과거제를 통해 관료 지식인 집단이 형성될 수 있었다. 어쩌면 더 안정적인 사회, 더 합 리적인 사회로 변화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럴수록 예외적 삶의 자리는 줄어들기 마련이다. 사마천은 한무제 시기에 <사기열전>을 기술했다. 한무제는 관학 의 시대를 연 인물로 유명하다. 독존유술, 유가독존의 시대,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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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시작을 보며 사마천은 협객과 자객, 문사文士가 아닌 이들 의 이야기를 발굴하여 남겼다. <수호전>이 송대를 배경으로 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가 아닐까. 거대한 시대의 변화에 떨어져 나가는 자리를 ‘수호’라 하자. 변 두리 야만인들의 공간. 오랑캐와 비슷한 인간들. 도적떼 무리. 이 들의 이야기가 매력적인 이유는 오늘날에도 욱하다 보면 비슷한 곳으로 굴러 떨어지는 까닭이다. 양산박 도적떼 소굴이 뭐 그리 멀 리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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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은 길들여지지 않는다. 기픈옹달 어지럽다. 108명의 호한을 일일이 다 생각하는 건 역시 버거운 일이다. 108이라는 숫자가 무리였다,고 하려니 켕기는 구석이 있 다. 예를 들어 <수호전>과 함께 언급되는 <삼국지>를 떠올려보자. 모르긴 해도 등장인물이 100명은 훌쩍 넘을 것 같다. 헤아려보니 위, 촉, 오 셋으로 나누면 나라 별로 36명. 위촉오 세 나라에 들지 않는 한나라 조정의 인물이나, 군벌 세력의 인물, 남만 출신의 이름 까지 헤아리면 100명은 금방 넘겠다. 무관심 때문일까. 애정이 없으면 다 똑같이 보이기 마련이다. 청 소년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헤아릴 수 없는 장벽을 마주하곤 한 다. 아이돌 그룹과 그 구성원의 이름을 줄줄 꿰는데 좀처럼 따라가 기 버겁다. BTS가 몇 명인지도 헷갈리는 것을 보면 내 지각을 아득 히 뛰어넘는 일이 분명하다. 무관심 때문이기도 하고, 관심을 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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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 힘든 감각의 차이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도 꽤 재미있게 읽고 있는데? 느티나무를 뽑은 노지심, 호랑 이를 때려죽인 무송, 게다가 호랑이 4마리를 죽인 흑선풍 이규까 지. 나름 매력적인 인물이 여럿 있다. 헌데도 이야기는 어수선하고, 인물들은 어지럽다. 이른바 ‘백룡묘 소집회’(4권 174쪽)에 이르면 어수선하기 그지없다. 몇 명이 모였는지 세기도 귀찮고, 일일이 그 들의 출신과 등장 장면을 찾아보기도 귀찮다. 사실 몰라도 책을 읽 는데 크게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수호전>의 등장인물은 커다란 공통점을 지닌다. 저마다 사연은 다르지만 사회가 용납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자들이다. 그렇다 고 아주 반사회적인 인물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그작그작 사회 의 귀퉁이에서 살던 인물들인데, 대체로 홧김에 문제를 일으키고는 양산박으로 굴러 떨어지는 이들이다. 사람을 죽여도 곱게 죽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독살 혹은 교살은 이들의 선택지에 존재하지 않는다. 대체로 칼로 살인을 저지르며, 그래서 현장에는 피가 낭자하다. (그런 면에서 사람을 ‘때려죽인’ 노지심의 살해는 가장 소박한 축에 속한다.) 칼로 찌르고 베고 찢는 데 그치지 않는다. 심장과 오장을 드러내며 인육을 먹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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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로 허벅지부터 잘라 좋은 것을 골라 즉시 숯불에 구워 안주로 삼았다. 한 조각을 자르면 바로 구웠다. 황문병의 살점을 잘라냈 고, 어느새 이규는 칼로 가슴을 찔러 심장과 간을 꺼내 두령들과 해장국을 끓였다.”(수호전 4권 190쪽)
이 대목을 읽고는 ‘짐승이다’라는 탄성이 나왔다. <수호전>의 작 가는 무엇하러 이런 잔인한 장면을 곳곳에 배치했을까? 피 맛에 굶 주렸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는 이를 통해 <수호전>이 짐승들의 이야기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수호전>의 인물이 몰려드는 양 산박은 조직도 체계도 없이 느슨하게 구성된다. 양산박은 순전히 짐승들의 공간이다. 절반을 넘게 읽었는데 각 인물의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는 이 유를 알겠다. <수호전>은 사건을 통해 성격이 드러나고 서사 를 통해 역할이 구체화되는 식이 아니다. 인물 간의 관계 역시 모호하다. <수호전>의 주요 인물들은 서로 반목하고 갈등하지 도 않는다. 차라리 노지심파와 송강파가 갈라져 싸운다면 각 인 물의 위치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겠다. 예를 들어 <삼국지>에 서 ‘장비 - 허저 - 전위 - 여포’ 따위를 생각해보자. 저마다 이른 바 ‘무쌍을 찍는’ 호걸들이지만 각각을 구분하기가 어렵지는 않 다. 그러나 <수호전>은? 굳이 비교하면 <서유기>에서 수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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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하는 요괴들과 비슷하다. 그게 그거 같고 저게 저거 같다. 이규가 호랑이 넷을 죽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송강은 이렇게 말한다. “네가 호랑이 네 마리를 죽였으나, 오늘 우리 산채에는 살아 있는 호랑이 두 마리가 늘어났으니 축하해야겠다.”(4권 262쪽)
이규가 어머니를 잃었음에도 송강은 두 호랑이, 청안호 이운과 소면호 주부를 얻은 것만을 즐거워한다. 김성탄은 이렇게 기술한 것을 볼 때 작가가 송강을 심히 미워하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한 다. 그러나 거꾸로 이는 하나의 실상이기도 하다. ‘철우’, 이규 역시 한 마리의 짐승 아닌가. 보통 짐승의 표상은 인간성의 상실로 해석되곤 한다. 이러한 판 단은 인간이 짐승과는 다르다는 자기 인식에서 출발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이러한 인간적인 자기규정은 인간 안에 짐승의 특성이 있음 을 가리는 것이기도 하다. 과연 인간과 짐승은 얼마나 다른가. 실상 은 똑같은 행위인데 거기에 다른 이름을 붙이는 것은 아닐까? 중화라는 문명의 표상은 오랑캐를 타자화하는 것을 통해 성립한 다. 통상적으로는 중화가 ‘아닌 것’이 오랑캐이지만 실상은 오랑캐 가 ‘아닌 것’이 중화이다. ‘중국’이란 거기가 아니라 바로 여기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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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이라는 말 아닌가. 따라서 ‘문명-인간성’이란 공들여 가꿔야 하는 것이다. 오랑캐가 아니기 위해서 애써 노력해야 한다. 이는 거꾸로 어느 순간 툭 떨어져 오랑캐, 나아가 금수禽獸 그러니까 짐승이 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수호전>의 인물들은 ‘인의예지’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 간이 아니다. 그러나 이 짐승의 존재는 인간적인 덕목의 허상을 직 면하게 만든다. 정도는 다르나 이런 인간 군상들의 모습은 조금씩 우리 일상의 주변에 있다. 누구든 마음 한켠에 호랑이든 표범이든 하다못해 살쾡이든 한 마리씩 자리 잡고 있기 마련이다. 게다가 오 늘날처럼 가상공간이 일상이 된 시대에는 어딘가 사이버 양산박이 있기 마련이다. 곳곳에 객잔이 등장하고 연회가 끊이지 않는 까닭을 알겠다. < 수호전>은 먹고 마시는 식욕의 본능에 충실한 짐승들의 이야기이 다. 식욕이란 짐승적인, 가장 짐승적인 욕망이다. 따라서 성욕을 다 루는 부분의 차이에 주목하자.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지만 그렇다고 성욕을 적나라하게 서술하지는 않는다. 성욕이란 국國-가家의 재 생산을 지탱하는 욕망이라는 점에서 은밀히 긍정되어야 하는 욕망 이다. 따라서 적극적으로 성욕을 권장하지는 않지만 욕망의 흐름이 국-가의 재생산을 위협할 경우 가차 없이 처단한다. 간통에 대한 잔혹한 처벌은 이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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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전>의 여인, 염파석, 반금련, 반교운의 죽음을 어떻게 보아 야 할까. 이들은 외간남자와 사통을 하다 발각되어 잔인하게 죽임 을 당한다. 이들의 죽음 역시 국-가의 재생산을 배신한 자에게 내 려진 천벌이라 해야 할까? 그러나 <수호전>은 이들의 모습을 통해 또 다른 욕망을 은근슬쩍 드러낸다. 반금련과 서문경의 은밀한 만 남, 반교운의 일탈을 엿보는 석수의 시선은 은근히 또 다른 욕망을 충동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짐승들의 세계를 이야기하는 가운 데 펼쳐지는 섬세한 서술. 적어도 일탈을 다루는 <수호전>의 방식 은 국-가의 재건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짐승적인, 가장 짐승적인 이규는 문득 이렇게 속내를 밝혔다. “이렇게 많은 사람으로 반란을 일으키면 두려울 게 뭐가 있어? 조 개 형님이 대송 황제가 되고 송강 형이 소송 황제가 되며 오 선생 이 승상이 되고 공손 도사가 국사가 되면 우리 모두가 장군이 되 어 동경으로 쳐들어가 개 같은 황제 자리를 빼앗고 즐기면 좋겠 다. 여기 거지 같은 호숫가에 머무는 것보다 훨씬 좋지 않겠어?” (4권 199쪽) 헛소리를 그만 닥치라는 대종의 꾸짖음에, 쓸데없이 다시 헛소리 를 하면 대가리를 잘라버리겠다는 대종의 엄포에 이규는 이렇게 대꾸할 뿐이었다. “아이고, 만일 내 대가리를 자른다 해도 금방 다시 자랄 거요. 나 는 술만 먹을 수 있으면 그만이야!” (같은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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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의 저 말은 목이 잘린 뒤에도 황제黃帝를 대적했던 형천刑 天을 떠올리게 한다. 문명의 수호자 황제는 형천의 목을 잘랐지만 그는 다시 창과 방패를 들어 황제와 맞섰다. <수호전>이 매력적인 것은 그렇게 목을 잘리고도 사라지지 않는 짐승의 덕목이 있기 때 문이 아닐까. 어딘가 황제의 자손이 있다면 또 어딘가에는 형천의 자손도 생생히 살아있을 테니. 그렇게 짐승들은 죽지도 길들여지지 도 않고 있다. 수호전을 읽으니 형천이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어서 술과 고기 를 가져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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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서양철학사 그동안 했던 서양철학 공부를 정리하고 점검하는 차원에서 시작한 새해의 야심 찬 계획. 《서양철학사》는 노르웨이 철학자 군나르 시르베크와 닐스 길 리에가 함께 쓴 책이다. ‘왜 철학을 공부하는가?’라는 흥미로운 지적으로 시 작한다. 소크라테스부터 20세기 후반까지, 철학사와 과학사 등을 정리해주 는 고마운 책이다. 이 책을 시작으로 철학의 유용성과 삶을 연결하는 철학 공부를 계속하려 한다.
읽은 책
《서양철학사》, 군나르 시르베크, 닐스 길리에/ 이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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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와 오류의 가능성에서 시작하는 철학 삼월 서양철학의 뿌리를 대체로 고대 그리스에서 찾는다. 군나르 시 르베크와 닐스 길리에가 함께 쓴 《서양철학사》 역시 고대 그리스에 서 서양철학 이야기를 시작한다. 다른 책들과 조금 차이점이 있다 면, 단순히 철학자의 이름과 개념을 나열하는 일을 넘어 그들의 철 학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쟁점화하는 스타일을 짚어나가는 데 있다. 《서양철학사》의 저자들은 고대의 철학을 공부하는 방법으로, 당시 의 통찰이 지금도 타당한지를 살펴보자고 제안한다. 철학자들은 각 자 사회적 맥락과 시대적 한계 안에서 세계와 인간을 통찰하려 했 다. 그들의 통찰을 경전처럼 떠받들며 화석화시키거나 반대로 터무 니없다고만 치부해서는 철학사를 생생하고 즐겁게 공부할 수 없다. 군나르 시르베크와 닐스 길리에의 《서양철학사》을 읽으며, 소크라 테스가 주장한 방식대로 각자가 대화 속에서 자기성찰의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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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활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 기원전 400년경 그리스의 도시국가는 소규모의 공동체 형태로 모든 자유민 남성들이 참여하는 직접민주주의가 가능했다. 민주주 의 사회에서 철학은 개인들 간에 조화와 질서를 추구하는 방식으 로 기능했다. 경제와 정치, 철학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민주주의 는 귀족정이나 참주정의 대안으로 등장했다. 혈연으로 세습되는 귀 족정이나 독재의 여지가 많은 참주정에 대한 불만이 민주주의를 발 전시켰다. 민주주의의 이면에는 식민지의 확장과 노예제도 등 사회 계층의 분화도 자리하고 있다. - 1세대: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 그리스의 식민지 확장은 그리스 문화를 여러 곳에 전파하는 역 할도 했다. 특히 그리스의 식민지 밀레토스에서는 항해에 대한 지 식을 바탕으로 자연철학이 싹트고 유행했다. 탈레스는 천문학과 기 하학 등 실용적인 학문을 통해 세계의 근원에 대한 탐구를 시작했 다. 세계가 변화하는 와중에도 변하지 않고 남아 있는 것, 다양성 속에 통일성을 이루는 원천, 즉 원소에 대한 물음이다. 탈레스는 이 원천이 물이라 답했지만, 곧 이를 논박하는 다른 원천에 대한 주장 들이 쏟아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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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에서는 과학과 철학 사이에 구분이 없었다. 근대적 학문 구분이 생기기 전이기도 했지만, 그들은 전혀 경험적이지 않 은 방식으로 과학적 문제를 풀어나가려 시도했다. 달리 말하면 철 학의 방식으로 관찰 가능한 세계를 이해하려 했다. 철학이 과학 탐 구의 길을 열고, 경험과학적 탐구의 토대가 마련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탈레스를 기점으로 인간의 사유는 신화적 사유에서 논리적 사유로 이행하였다. 탈레스는 서양철학사에서 최초의 철학자이며 과학자이다. 아낙시만드로스와 아낙시메네스는 탈레스의 전제를 받아들이 고 비판함으로써 최초의 철학자라는 탈레스의 위치를 확고하게 만 들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원소가 규정되지 않으며, 시간과 공간에 한정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아낙시메네스는 탈레스가 자세히 설 명하지 않은 물질의 변형 문제에 관심을 가졌고, 이 관심은 이행에 관한 물리학 이론으로 나아갔다. 탈레스와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 메네스는 모두 밀레토스의 자연철학자들이며, 1세대 그리스 철학 자들이다. - 2세대: 헤라클레이토스, 파르메니데스 에페소스 출신의 헤라클레이토스는 자신의 주장을 모호하고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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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인 은유적 표현의 글로 남겼고, 다른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언 급하기도 했다. 철학자들의 상호 논쟁과 논평이라는 새로운 전통이 여기서 성립된다. 헤라클레이토스와 함께 2세대 철학자에 속하는 파르메니데스는 변화와 불변이라는 1세대 철학자들의 전제에 의문 을 제기했다. ‘변화는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논의는 로고스 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모든 변화하는 사물의 배 후에 로고스가 있음을 주장한다. 파르메니데스는 논리적으로 변화가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하면서, 이성과 감각 사이에 타협 불가능한 구분을 설정한다. 파르메니데스 는 통찰의 대상에 대한 경험을 불신하며, 논리적 추론만으로 세계를 파악하려 한다. 파르메니데스의 제자 제논 역시 아킬레스와 거북이 의 경주를 묘사한 역설을 통해 감각과 이성의 분리를 강하게 주장한 다. 이들에게 실재는 오직 이성을 통해서만 파악될 수 있었다. - 3세대: 엠페도클레스, 아낙사고라스, 그리고 데모크리토스 2세대 철학자들이 변화를 논쟁거리로 삼았다면, 3세대 철학자들 은 변화와 정지의 상태를 모두 포괄하면서 세계를 이해하려 했다. 엠페도클레스는 4개의 불변적 원소와 함께 이들을 묶거나 나누는 변화의 힘을 가정한다. 이 가정 속에서는 세계의 변화와 불변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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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성들이 모두 설명된다. 아낙사고라스는 셀 수 없이 많은 원소와 변화를 불러오는 단 한 가지 힘을 가정한다. 이 변화의 힘은 정신이 며, 정신은 어떤 목적을 위해 변화를 일으킨다. 여기서 자연은 목적 론적으로 이해된다. 1세대와 2세대의 철학을 포괄하고 묶어낸 3세대의 철학은 플라 톤과 동시대인인 데모크리토스로 이어진다. 플라톤은 위대한 철학 자이지만, 르네상스 이후 고전물리학의 성립에 기여한 이는 플라톤 이 아닌 데모크리토스이다. 데모크리토스는 원자를 상상해내어 우 주를 단순하게 설명했다. 데모크리토스의 우주는 목적이 없으며 기 계적 방식으로 움직인다. 데모크리토스에게 원자는 상상의 영역에 있었고, 이는 세계를 지각하는 방식에 대한 탐구로 이어졌다. 우리 는 사물을 어떻게 감각할 수 있는가? 대상들이 본질적으로 소유하 는 속성들 때문인가, 아니면 우리의 감각이 대상에 부여하는 속성 들 때문인가? 지금 우리에게 원자는 과학의 영역이지만, 데모크리 토스의 철학에서는 이처럼 원자론이 흥미로운 인식론의 문제를 제 기했다. - 피타고라스학파 또 하나 중요한 학파로 이탈리아 남부 그리스 식민도시에 살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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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타고라스학파를 들 수 있다. 피타고라스학파의 기본사상은 구조 와 형식 혹은 수학적 관계들이다. 이들은 수학이 음악과 같은 비물 질적 영역과 물질적 영역에 동시에 적용된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사물이 사라져도 수학적 개념은 사라지지 않으므로, 수학적 지식은 변하지 않는 확실한 지식이라는 믿음도 생겨났다. 믿음은 이성을 넘어서는 신비성을 수학에 부여하기에 이른다. 이원론적 세계관을 정립한 합리적인 신비주의자로서 이들은 플라톤뿐 아니라 자연과 학에도 영감을 주었다. - 소피스트들: 고르기아스, 트라쉬마코스, 프로타고라스 기원전 600년에서 450년까지를 “자연철학적 시기”라고 부른다 면, 그 이후는 “인간중심적 시기”라고 부를 수 있다. 자연에서 인간 과 사유로 관심의 대상이 이동하여 소피스트의 시대가 도래했다. 지식에 대한 회의적 비판과 지식 이론, 인간의 본성과 사유가 철학 의 대상이 되며, 성찰(반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존재론이 인식론 으로 나아가며, 윤리적-철학적 물음들도 제기된다. 그리스의 식민 지 확장은 낯선 세계와의 만남을 증폭시켰고, 그리스인들은 자신들 의 삶과 태도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했다. 민주주의의 도구로 다져 진 합리적 토론 능력이 질문을 철학으로 심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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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와 같은 직접민주주의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교육 수준이 높아야 하는데, 이 교육을 담당했던 이들이 “현명한 사람들”이라 불리던 소피스트들이었다. 유급으로 사교육을 담당했던 소피스트 는 교사와 저널리스트로서 지식인의 역할을 해냈다. 소피스트들은 동질적 집단이 아닌 개인으로 활동했고, 인식론적 문제와 윤리적정치적 문제들을 탐구했다. 이들은 서로 다른 주장을 하면서 절대 적인 옳음은 없다는 상대주의적 입장을 취했다. 도덕마저도 상대화 해버린 소피스트들이 사회를 해칠까 염려하는 이들도 나타났다. 절 대적 진리를 불신하는 소피스트의 상대주의는 회의적 입장으로 연 결되었다. 고르기아스는 참과 거짓의 구분에 관심이 없고, 수사학에 관심을 가지는 뛰어난 웅변가였다. 참된 지식의 가능성을 믿지 않는 고르 기아스에게 중요한 지식은 수사학을 통한 설득과 논증의 기술이었 다. 플라톤의 『국가』에 등장하는 트라쉬마코스는 옳음과 정의가 강 자의 이익에 복무한다는 견해를 가지며, 보편타당한 법질서의 존재 를 믿지 않았다. “인간이 만물의 척도다”라고 주장하는 프로타고라 스의 주장은 인식론적 관점주의라 부를 수 있다. 사물에 대한 우리 의 지식은 활동이나 상황에 의해 규정되며, 지식은 상황에 상대적 이다. 프로타고라스의 이런 입장은 개인들의 소통 실패를 예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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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바로 이 실패 때문에 보편적인 사회규범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 다. 이렇게 도출되는 사회규범은 다른 사회에 대해서도 상대적으로 만 유효하다. - 소크라테스 소피스트들의 상대주의는 보편적인 옳음이 존재하고, 우리가 그 옳음을 인식할 수 있는지에 대해 회의적이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은 이에 대항하여 보편적인 윤리적-정치적 질서가 존재할 수 있음 을 증명하려고 노력했다. 저술을 직접 쓰지 않은 소크라테스의 입 장이 플라톤의 입장과 어떻게 명확하게 구분되는지 말하기는 어렵 다. 다만 플라톤처럼 글을 쓰지 않고 사람들을 만나 끊임없이 대화 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소크라테스의 철학과 방법론의 특징을 끌어 낼 수 있다. 소크라테스에게 앎과 덕은 동등하다. 이 앎은 사실에 대한 지식 인 동시에 규범적 통찰이고, 그 자체로 통찰에 대한 책임이다. 개인 의 확고한 지식으로 나타나는 윤리적 규범을 보편적 선과 연결하 려는 소크라테스의 시도는, 신과 같은 신비적 존재를 염두에 두는 듯 보일 수도 있다. 소크라테스에게 대화는 철학적 성찰로 나아가 는 중요한 방법이었고, 질문은 말하는 이가 스스로 자신에 대해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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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하도록 만드는 도구였다. 소크라테스를 소피스트와 구분하는 특 징은 수사에 의한 설득보다 이성에 의한 확신을 강조한다는 점이 다. 이 확신 속에서 인간은 자기 자신과 평화로운 상태에 놓이고 행 복할 수 있다. 이 확신을 점검하는 소크라테스의 질문은 무지를 깨 닫게 하려는 목적에서 이루어진다. 무지를 깨달으면서 앎은 시작된 다. 보편타당한 답을 추구하기 위해 오류의 가능성을 인정하면서 시작하는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이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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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다임 전환과 르네상스 세계관 아라차 현재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는 우리가 배웠던 것과 다른 내용들이 많다고 한다. 시대가 달라졌으니 새로 추가되고 재해석되는 내용들 이 많으리라 짐작은 된다. 이미 선입견이 된 지식들을 재고 없이 그 저 읊조리는 고장 난 라디오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철학 책을 만나는 일이 필요한 것 같다. 불변의 진리처럼 여겼던 철학이 나 물리법칙조차도 뒤집히고 무너지는 시대에 고정된 지식 정보만 을 고집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이번 챕터를 읽으면서도 기억을 수정해야 하는 지점들이 있었다. 고정된 기억과 해석 중 하나가 중세는 암흑의 시대이고, 르네상 스는 빛의 시대라는 이분법이다. 이 책에 의하면 이 또한 선입견이 자 편향된 해석인 것 같다. 저자는 어둠의 시대라 기록됐던 중세에 도 치열하고 촘촘한 지적 흐름이 이어졌으며, 르네상스는 빛이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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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온 시기가 아니라 오히려 꺼져간 시기라고 보았다. 여러 면에서 르네상스 철학은 중세철학보다 지적으로 더 혼란스러웠다고. 물론 통상의 긍정적 견해를 단순히 뒤집어버리는 실수를 해서도 안 된다 고 지적한다. 르네상스 시대에 일어난 자연과학의 발흥은 중세철학 내에서 과 학적 개념들의 발전이 이루어지고 수공업과 농업에서 기술의 발전 이 이루어진 기나긴 과정의 결과물이다. 자연과학은 단순히 이론만 으로나 실천적 관심만으로는 생겨나지 않는다. 두 가지 요인이 동 시에 존재해야 한다. 르네상스 시기에 이것이 가능했다. 과학이 진 리를 다루는 새로운 지적 활동으로 추가되면서 철학에는 과학과의 관계를 정립하는 일이 중요해졌다. 물론 신학을 버리고 자연과학을 택했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대부분의 철학자들에게 신학은 여전히 당연한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실험과학은 17세기를 거치면서 형태를 갖춰나갔다. 과학은 순전 히 연역적이지도, 순전히 귀납적이지도 않고 가설연역적이었다. 르 네상스 시기에 추구되었던 것은 새로운 지식인데, 연역법으로는 새 로운 지식을 찾을 수 없었고, 귀납을 통해 도달한 결론은 결코 완전 히 확증될 수 없었다. 새로운 지식은 가설과 연역적 추론과 귀납적 관찰의 역동적인 결합에 놓여 있었다. 이 새로운 조합이 바로 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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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역법이다. 가설이 유지될 수 있는지 아닌지 시험을 통해 결정하 고, 가설이 참이라면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일들에 관해 일정한 명 제들을 연역한다. 그리고 실제로 일어나는지 시도한다. 이 가설은 이론이 되고 새로운 지식을 낳을 수 있다. 이때의 지식은 절대적으 로 확실한 지식은 아니다. 미래의 관찰을 통해 이 이론이 부정될 가 능성이 항상 있기 때문이다. 가설연역법으로 자연의 과정들을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게 된다. 이 지점에서 이론과 실천적 융합이 일어난다. 가설연역법에 기반을 둔 지식은 자연현상에 대한 통찰과 통제를 가능하게 해준다. 프란 시스 베이컨은 이 같은 새로운 과학과 새로운 과학 덕분에 이루어 질 새로운 사회에 대한 저술을 남겼다. 그는 테크놀로지를 통한 자 연 통제를 꿈꿨다. 기술적 합리성이 인류를 새로운 사회로 이끌어 줄 규율로 작용한다고 믿었다. 좋은 사회를 만들어내기 위해 자연 을 정복하는 수단은 오직 과학뿐이었다. 가설연역적 과학은 생활조 건의 개선을 가능하게 했고, 인류가 자율성을 확보해가는 과정에서 일정한 역할을 수행한다. 베이컨이 서술한 정치적 유토피아에서 진보적인 역사 발전관을 엿볼 수 있다. 그것은 변화되어야만 하는 사회이고 그 목적은 저 세 상이 아니라 바로 이 세상에서 추구되어야 한다. 신성한 구원의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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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더 이상 역사의 핵심이 아니다. 자연을 이용하고 통제하는 인 간의 능력이 핵심이 된다. 역사는 앞으로 전진하며 그 방향타는 인 간이 쥐고 있다. 베이컨은 계몽주의의 선구자였다. 그는 인간의 생 각과 태도가 얼마나 쉽게 왜곡되고 제한될 수 있는지를 말하며, 네 가지 유형의 선입견(종족우상, 동굴우상, 시장우상, 극장우상)에 대 해 논했다. 무지와 편견에 맞서 싸우는 그의 사상은 18세기 계몽주 의 시대를 예비하는 사상이었다. 일반인의 자기 이해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과학적 변혁은 천문 학에서 일어났다. 천동설적 세계관에서 지동설적 세계관으로의 이 행. 천문학자들도 가설연역적 방법과 물체 운동의 개념을 사용하였 다. 지동설은 교회와 아리스토텔레스 전통에 대해서만 혁명적인 것 이 아니었다. 직접적인 생활경험도 혁명적으로 바꿔놓았다. 스스로 중심 밖에 있다고 상상하고 전적으로 새로운 시각에서 우주를 관찰 하도록 부추겼다. 세상이 지금까지 살고 있던 것과 다르기 때문에 그 안에 사는 인간도 다르게 인식할 수밖에 없었다. 이 반성적 거리 두기와 시각의 전복을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라 불렀다. 칸트는 인 간의 인식을 새로운 방식으로 이해하는 데 이 혁명을 이용했다. 어 떤 이들은 이 혁명을 인간 이성에 대한 과도한 믿음과 우주 내에서 의 인간의 위상에 대한 현실적인 비판으로 보았다. 이후에 다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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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과 프로이트의 무의식이론이 등장하면서 인간 이성의 가치 는 점차 축소된다. 이 책의 저자들은 이러한 인간의 자기 인식 변화가 갖는 의미가 이중적이라고 본다. 인간이 우주에서 차지하는 위상의 추락을 뜻하 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새로운 긍정적인 자기의식을 제공 하기도 했다는 것. 인간이 우주를 탐구하면서 성취한 진보 덕분에 새로운 긍정적 자기상을 구축할 잠재력이 있었다고 본 것이다. 그 러나 저자가 제시한 긍정적 자기상에도 막 수긍이 가는 것은 아니 다. 세속적이고 과학에 근거한 진보에 대한 믿음의 뿌리로 나아간 인류의 방향이 그다지 긍정적이지는 않은 것 같으니. 케플러는 코페르니쿠스의 모델을 수정하여 천체들이 원형 궤도 가 아니라 태양을 초점으로 하여 타원궤도를 돌고 있음을 밝혀냈 다. 갈릴레이는 새로운 망원경을 통해 코페르니쿠스와 케플러의 이 론을 강력하게 뒷받침할 수 있었다. 뉴턴은 천문학과 역학 모두에 서 이들의 이론을 강화하였다. 뉴턴과 더불어 물리학은 전통과 편 견에 대한 과학의 승리를 상징하는 모범이 되었다. 신학이 아니라 과학이 진리 문제에 대한 정당한 권위로 부상하였고 자연의 과정을 통제하는 인간의 수단이 되었다. 철학과 종교는 새로운 과학과의 관계 속에서 제 위치를 찾아야 했다. 이것이 수학적이고 실험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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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의 출현이 갖는 사회적 의미이자 지성적 의미이다. 이 책의 논지처럼 르네상스는 확실히 역사의 전환점이었다. 전통 으로부터의 재탄생일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새로운 것의 탄생이 었다. 산업혁명과 초고도 기술발전의 시대를 거쳐 온 지금의 인류 에게도 변화임에는 틀림 없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르네상스는 도 처에서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과학 내에서의 패러다임 전환과 연관되어 인간이 주체로, 자연이 객체(대상)로 배치되는 양상은 심 화되었다. 인간을 주체로, 자연(과 인간)을 객체로 만드는 과정은 동시에 대상에 대한 주체의 이용 관계, 대상에 대한 주체의 지배 관 계를 함축한다. 이 또한 이제는 수명을 다한 세계관이다. 합리적이 라지만 위계적인 세계관을 벗어나려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또 한 번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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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기원은 개념인가, 경험인가 삼월 자연과학의 발전은 진보에 대한 믿음을 불러왔고, 이 믿음이 계 몽주의로 연결된다. 계몽주의에 큰 영향을 끼친 철학적 사조로 크 게 합리주의와 경험주의를 들 수 있다. 합리주의는 데카르트에서 스피노자를 거쳐 라이프니츠로 이어지고, 경험주의는 합리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등장한다. 자연과학의 발전은 지식의 기원에 대해 기존과는 다른 설명을 요구했다. 지식은 과연 어디에서, 어떻게 오 는가? 17세기와 18세기 철학자들에게 중요한 문제는 바로 지식의 기원이었다. 합리주의자들은 개념으로 지식을 획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개 념을 통한 지식 획득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이성적 직관이 필요하 다. 합리주의자들은 이성적 직관의 존재를 긍정하면서도, 이성적 직관을 사용하는 방식에 대한 견해는 조금씩 달랐다. 합리주의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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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대한 경험주의자들의 비판은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바로 이성 적 직관은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만 지식을 획득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경험주의자들의 이런 주장은 경험을 통 해 검증되지 않고 이성적 직관을 통해서만 가능한 주장이므로, 자 신들의 주장과 모순된다. 합리주의자들 -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 스피노자는 이 세계를 하나의 체계로 이해했다. 신과 자연은 오 직 하나의 실체로 세계를 구성한다. 신은 무한하고 단일하며 그 자 체로 자연이므로, 유일신의 개념보다는 범신론에 가까워진다. 스피 노자의 실체는 하나의 체계 속에서 무한한 방식으로 나타나지만, 우리는 연장(신체)과 사유(정신)의 두 속성으로만 실체를 인식할 수 있다. 이 속성들은 동등하며, 개별사물들은 각각의 모디Modi(양상 혹은 양태)로만 나타난다. 스피노자의 세계에서 우리는 모두 하나 의 실체에서 나온 각각의 모디일 뿐이다. 스피노자에게 인식은 이 세계의 체계와 우리가 맺는 관계를 이해하는 문제이다. 스피노자의 윤리학 역시 총체성과 실체에 대한 이해와 같다. 은둔자 스피노자와 달리 라이프니츠는 여러 군주와 교류했다. 라 이프니츠는 자연과학에 심취한 동시에 신의 변호자를 자처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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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 라이프니츠에게 세계는 표면상 기계론적이지만, 궁극적으로 는 목적론적으로 이해된다. 사물의 본질은 힘이며, 개별사물들은 이 힘의 중심이자 분할 불가능한 기본 요소인 모나드(단자)들로 구 성된다. 신은 이 단자들의 움직임을 계획하고 보장하는 보편적 엔 지니어이다. 라이프니츠에게는 신도 관여할 수 없는 필연성의 영 역이 존재하며, 신은 다만 이 세계를 최선의 상태로 조합할 뿐이다. 이 세계에서 인간은 개별화되지만, 이 개인이나 개인의 힘이 가시 화되지는 않으며 개념상의 개인으로 남을 뿐이다. 로크 자연과학의 영향을 받은 로크는 인식비판과 언어분석에 관심을 가진다. 철학자들이 자연과학자들처럼 작업해야 한다고 본 로크는 지식에 대한 비판적 검증이 개념에 대한 검사를 필요로 한다고 주 장한다. 경험주의자들은 개념에 대한 통찰이 반드시 실재에 대한 통찰을 부여하지 않는다고 합리주의자들을 비판한다. 로크의 회의 는 우리가 가진 지식을 점차적이고 비판적으로 개선하는 항구적 회 의의 태도에 가깝다. 모호함이 심오한 지혜로 오해되는 철학적 언 어의 오용을 비판하며, 언어의 명료화를 주장하기도 한다. 한편으 로 로크는 지성적 자유와 관용, 비독단적이고 개방적인 태도의 토 론을 통해 진리 추구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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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크의 사상적 배경에는 자본주의 및 시민계급의 성장과 영국의 명예혁명(입헌군주제)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로크의 철학은 온건한 경험주의와 합리주의의 태도를 모두 취하면서, 모호하게 보 이는 지점이 있다. 이런 모호성은 당시 사회의 모호성과 관련이 깊 다. 로크는 입헌통치를 옹호하면서, 국가를 계약의 산물로 본다. 로 크에게 평등과 자유는 자기 신체와 신체의 노동으로 얻은 재산을 처분할 권리로 직결된다. 국가의 주요한 기능도 이 사유재산의 보 호이다. 통치자의 권력을 제한하면서 절대주의로부터 시민을 방어 한다는 로크의 사상은 이후 프랑스(혁명)와 미국(독립)의 정치 상황 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물론 로크가 부각시킨 ‘계약’의 주체로서 ‘개인’에는 재산을 소유한 성인 남성만 해당한다. 물질적 불평등에 대한 로크의 옹호는 당시 영국의 상황(제국주의)에 대한 옹호로도 이어진다. 버클리와 흄 버클리는 로크의 온건한 경험주의를 비판하면서 상식과 기독교 신앙을 조화시키려 한다. 버클리에게 물질(철학적 물질 개념)은 존 재하지 않으며, 신은 지각을 통해 우리와 소통한다. 우리가 감각을 통해 지각하는 실제 세계가 바로 유일한 세계이다. 우리의 감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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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 규칙적이고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실재의 표상이 가능하다. 존재는 지각된 것과 다르지 않으며, 지각될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 존재는 이미 지각하는 존재(주체)를 함축한다. 버클 리에게 지각은 신과의 소통이므로, 신은 모든 지각의 지각되지 않 은 원인이다. 버클리는 보편관념(인간, 물질, 생명 등)을 지각하는 일이 불가능하기에 이런 관념 언어들의 사용이 우리를 속인다고 주 장한다. 흄은 인상과 관념의 구분에서 지식의 기원을 찾는다. 관념은 인 상에 기초하며, 인상이 없이는 관념도 생길 수 없다. 지식의 경계 도, 인상으로 환원되는 관념과 그렇지 못한 관념 사이에 존재한다. 흄은 형이상학을 거부하며, 인상으로 환원되지 않는 물질적 실체라 는 관념 역시 거부한다. 인상의 배후에서 통일성을 부여한다고 믿 어왔던 자아 역시 물질적 실체처럼 형이상학적 관념이자 환상에 불 과하다. 흄은 필연성에 대한 지식을 갖는 일이 불가능하며, 지식은 논리적 지식과 경험적 지식으로 구분된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경험 적으로 검증할 수 없으면서도 인과성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심리적 기대 때문이다. 우리에게 이성적 직관이 없다고 주 장하는 흄은 ‘원인’과 ‘이성’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자연권을 부인하는 흄에게 가치와 규범은 지식이 아니라 감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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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이다. 감정은 참과 거짓의 영역이 아니다. 어떤 상황에 대한 도 덕적 평가 역시 행위 자체보다는 우리의 감정에서 나온다. 규범적 태도는 경험 불가능하며 참과 거짓의 확정도 불가능하지만, 감정에 는 일정한 공동의 토대(보편적 합의)가 존재한다. 감정이 합리적이 고 적절하다면, 우리는 감정을 통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 사 회계약이론에 반대하는 흄은 이 관습과 문화적 반응패턴에서 사회 의 질서를 유지할 선과 정의를 도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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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 The Philosopher 아라차 1700년대 후반 유럽 문화 안에서 비교적 서로 독립적인 세 가지 가치 체계가 등장했다. 과학과 도덕성/윤리 그리고 예술이다. 이 영역은 칸트의 3대 비판서를 통해 최초로 명시적으로 주제화되었 다. [순수이성비판]은 근대 자연과학의 전제조건을 명확히 밝혔고, [실천이성비판]은 도덕성에 자연과학과 대비되는 독립적인 위상을 부여했다. 그리고 [판단력비판]은 과학과 도덕성과는 구분되는 미 학의 영역을 확정했다. 이런 점에서 칸트는 르네상스와 함께 시작 된 문화적 발전의 정점을 이루었다. 칸트의 철학을 보통 선험철학이라고 한다. 선험철학으로 칸트는 흄과 같은 경험주의적 회의주의와 데카르트와 같은 합리주의적 독 단주의를 모두 거부했다고 일컬어진다. ‘선험적 a priori’이란 경험 이전의, 경험과는 독립된 이라는 뜻이다. 칸트는 인식의 조건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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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인간 안에 내재되어 있다고 보았다.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틀 (형식)이 주체 안에 존재한다고 전제한 것이다. 주체가 대상으로부 터 영향을 받아 인식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그 관계를 역전시켜 대상이 주체의 영향을 받는다고 본 것이다.(사물들은 우리의 인식 형식을 따라서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는 지구중심설에서 태양 중심설로의 전환만큼이나 전제를 바꿔버렸기에 철학에서의 코페르 니쿠스 혁명이라고 불린다. 칸트는 철학에 자연과학과 똑같은 확실한 위상을 부여하고자 했 다. 과학실험에서처럼 일정한 조건들을 체계적으로 분리하고 결합 하고 변화시킴으로써 이 조건들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들을 보자는 것이다. 만약 우주의 기본적 균일성을 전제하지 않는다면 뉴턴의 과학은 성립하지 않는다. 뉴턴의 우주가 시간과 공간이라는 기본 조건 위에 성립하듯이 칸트의 선험적 조건에는 공간과 시간이라는 직관 형식과 인과성과 같은 몇 가지 기본 형식들이 있다. 칸트는 우 리가 이미 형식이 부여된 감각 인상들만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했 다. 따라서 형식이 부여되지 않은 외적 영향들과 물 자체는 파악이 불가능하다. 지식과 신앙을 구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칸트는 “너는 ~해야 한다.”라는 당위 규범이 존재한다는 것을 기 정사실로 받아들였다. 공간, 시간, 인과성 등의 선험적 형식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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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도덕명령이 모든 인간 안에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도 덕명령이 그 유명한 정언명령이다. “너는 오로지 너의 행위의 준칙 이 동시에 보편적 법칙이 되기를 네가 바랄 수 있는 그러한 준칙에 따라서만 행위하라.” 보편적이 될 수 있는 준칙에 따라서 행위하라 는 요구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목적 자체로 대해야 한다는 원칙과 연관되어 있다. 이처럼 칸트의 정언명령은 메타규범, 즉 규범에 대 한 규범이다. 정언명령이 우리 안에 내재한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실제로 도덕적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도덕적 의지를 갖 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를 위해서 인간에게는 반드시 자유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칸트는 인간이 도덕적 존재라는 생각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에 게 이는 기정사실이다. 그렇다면 도덕적 존재의 조건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 모두가 스스로 도덕법칙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지 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의 도덕법칙의 입법자이 다. 우리는 모두 도덕적 자율성을 갖는다. 인간이 원칙적으로 그러 한 법칙들을 만들 자유를 갖고 있으며 충분히 이성적이라고 전제한 것이다. 나아가 자유롭고 이성적인 개인들은 자신들 마음대로 아 무 법이나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다른 개인들도 자신 과 똑같은 존재이며,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인 존재라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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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알고 있다. 따라서 개인의 행위의 자유는 보편적 법칙에 따라 다 른 모든 사람의 자유와 양립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제한되어야 한다. 칸트는 일반적 원칙으로써 인권 문제를 논의한 최초의 정치사상가 중 한 사람이다. 이처럼 그의 정치철학은 평화의 철학이었지만 여 성들, 임시 노동자, 하인, 동성애자들은 입법자로서 인정하지 않았 음도 드러난다. 칸트에게는 인과성을 바탕으로 인식하는 필연성의 세계와 도덕 률로 살아가야 하는 자유의 세계가 있는 공존하는 것처럼 보인다. 칸트는 이 두 세계를 매개하는 능력으로 ‘판단력 이론’을 추가한다. 칸트는 판단력이 목적론과 미학이라는 두 가지 방식으로 나타난다 고 보았다. 이것들은 인식의 판단이 아니라 취향의 판단이다. 좀 말 이 안 되지만 칸트는 미적 판단은 어떤 면에서 주관적이지만 그럼 에도 불구하고 보편타당하다고 본다. 예술 작품을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차분하게 감상하면 동일한 미적 쾌감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정상적인 사람은 동일한 감정을 가질 것이고, 이 공통의 감정이 올 바른 판단의 토대이고, 이 올바른 판단은 보편적이라는 논리다. 칸 트에게 아름다운 것은 참과 선과 연관되어 있다. 칸트는 진리와 도 덕성을 구분했으며, 숭고처럼 아름다운 것이 이 둘을 매개해야 한 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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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연성과 자유를 매개할 수 있는 숭고의 문제를 더 탐색해 보았 다. 칸트에 따르면 대상과 무관한 기쁨이 우리 모두에게 존재한다. 아름다움이나 숭고의 느낌은 우리 안에서 능력들이 자유롭게 활동 함으로써 발생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미적 판단을 내릴 때 우리는 대상에 대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판단 능력을 다룬다. 기쁨은 대상 에서 오는 게 아니라 주체의 능력에서 오는 것이다. 기쁨은 우리가 대상을 인식할 때나 스스로 판단하고 용감히 행위할 때나 언제든 우리와 함께 한다. 기쁨은 능력의 활동 자체에서 오는 것이지 대상 에 매여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로써 필연성과 도덕적 자유, 미학의 세계가 합일에 이르렀다. 노년의 칸트는 마지막으로 “Es ist Gut!(좋다!)”를 외치며 눈을 감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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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과 변혁의 철학, 헤겔과 맑스 삼월 프랑스대혁명 이후 19세기 유럽은 온통 변화의 공간이었다. 헤 겔과 맑스는 모두 이 변화에 주목했던 철학자이다. 두 사람 모두 철 학은 세계의 변화와 밀접하다고 여겼고, 특히 맑스는 세계를 해석 하는 일을 넘어 변혁시키고자 했던 철학자이다. 맑스의 변혁은 헤 겔의 변증법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변증법은 세계의 결점에 대 한 비판과 변화를 기본으로 가정한다. 이 가정에는 19세기 유럽에 만연하던 계몽과 진보의 분위기가 짙게 깔려있다. 헤겔과 맑스는 계몽과 진보를 지지하는 일을 넘어 적극적으로 세계의 변화를 탐구 하고 모색했다. 헤겔이 진보적인가, 보수적인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서양 철학사》의 저자인 군나르 시르베크와 닐스 길리에는 헤겔 철학의 역동성에 집중하면서 ‘좌파 헤겔주의’를 채택한다. 우선 헤겔은 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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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의 선험적 전제들(시간·공간·인과성)을 비판했다. 우리 사유에 선 험적 전제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이 전제는 더 폭넓고 변형 가능하 다는 주장이다. 변화가 가능하다는 전제에서 헤겔은 서로 다른 세 계관들이 역사적으로 구성되는 과정들에 관심을 가졌다. 이 구성의 과정이 역사이며, 역사에서 구성된 것이 바로 우리의 선험적 전제 조건들이다. 칸트가 이원론적 대립의 방법으로 사유했다면, 헤겔의 방식은 변 증법적 종합이다. 헤겔에게 비판과 대립은 존재들 간의 역동적 긴 장이며, 비판과 대립의 원인이 되는 결함이 바로 변화를 추동한다. 정신은 역사를 통해 발전한다. 비판적-역사적 통찰이 다양한 선험 적 전제 조건들의 결점을 지각하며 변화하기 때문이다. 헤겔의 철 학은 ‘비판적 프로젝트’에 가깝고, 부정성의 힘이 드러내는 변증법 적 긴장을 통해 인간의 사유와 지식은 변화한다. 성찰은 역사 발전 을 추동하는 일종의 정치적 수단이다. 헤겔이 이야기하는 해방은 전통과 사회로부터의 해방이 아닌, 사 회의 비합리성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인간은 역사를 통한 자기 인식 과 성찰을 통해 진보한다. 헤겔은 경험을 강조하지만, 경험주의자 들의 탈역사적 태도와는 거리를 유지한다. 헤겔의 경험은 인식론적 문제라기보다 일상의 경험에 가깝다. 변증법 역시 이론을 넘어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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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적 역사 과정에 적용된다. 변증법적 사유는 무엇보다 구체적 사 실 및 상황과 관련된 사유이다. 사실과 상황 그 자체의 결함에 대한 성찰이 우리를 보다 참된 입장을 추구하도록 이끈다. 헤겔의 철학은 사유의 발전을 상정하며, 총제적 진리를 추구한 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더 포괄적으로 이해하게 되면 참에 가까워 진다는 논리이다. 진리는 부분들의 문제가 아니라 상호 연관된 총 체성의 문제이다. 성찰은 세계에서 결함을 찾아내고, 이를 통해 결 함을 극복하고자 하는 충동을 창출한다. 헤겔은 변증법적 지양을 강조하는데, 여기서 지양은 부정적 폐기가 아닌 비판적 보존을 의 미한다. 역사는 모든 가능한 선험적 전제 조건에 대한 통찰을 통해 변증법적 지양을 계속한다. 헤겔 철학의 역동성은 주인과 노예에 대한 이론에서 잘 드러난 다. 주인과 노예는 인정투쟁을 통해 서로의 관계를 결정한다. 노예 가 해방되기 위해서는 서로의 관계를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 노예 는 자신이 주인에게 복종했기 때문에 노예임을 깨달아야 하고, 주 인에게 자신이 노예가 아님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이중의 해방 과 정을 거쳐 해방될 수 있다. 주인과 노예 이론은 헤겔 철학의 정치적 구체성을 잘 보여준다. 현대의 페미니즘과 젠더이론, 탈식민이론에 서도 헤겔의 통찰은 여전히 중요하게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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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과 노예 이론에서 보듯 헤겔이 말하는 개인은 사회 안에 존 재하는 개인이다. 우리는 타자에게 인정받는 방식으로 존재하며, 공통된 이해지평 안에서 사유하며 살아간다. 어떤 창조적 행위도 이 전통적인 이해지평 안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다. 헤겔이 말하는 자유도 국가로부터 강제 받지 않을 자유가 아닌, 공동체 안에서 자 기를 실현하는 자유이다. 헤겔에게 국가는 윤리적 공동체이므로, 인간을 강제할 이유가 없다. 소유와 불평등을 인정하는 헤겔은 자 본주의가 자기파괴적 제제임을 파악했지만, 혁명에 의한 전복은 믿 지 않았다. 좌파 헤겔주의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맑스는 세계를 변혁시키고 자 노력했다. 유럽 각국에서 탄압을 받거나 추방되었고, 여러 도시 를 떠돌며 혁명을 조직했다. 엥겔스와 함께 공산주의자동맹을 만들 고 행동강령을 만들기도 했다. 맑스는 세계의 역사가 하나의 변증 법적 과정이라는 헤겔의 견해를 받아들이고, 이 과정에서 근본적인 것은 ‘물질적 생활의 발전’이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을 경제결정론 으로 해석하면, 맑스가 말한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맑스가 중요하게 바라본 물질적 요인은 경제와 역사의 문제였고, 경제는 노동에 기초한 문제였다. 맑스는 포이어바흐의 소외 개념을 받아들여 자본주의 체제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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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를 소외로 이해했다. 포이어바흐는 자신들이 만들어낸 신을 인간 이 자기 외부의 존재로 봄으로써, 자신을 무력한 존재로 여기는 소 외를 경험한다고 주장했다.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체제에서 인간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생산물에 의해 억압받는데, 맑스는 노동을 통해 소외가 만들어진다고 보았다.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을 통해 인간은 자기 생산물의 소유권을 잃고, 경제발전 과정에서도 결정권을 잃어 버린다. 맑스가 이런 소외의 굴욕적 상황을 자본가와 노동자 모두가 겪 는다고 한 점은 흥미롭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자본가와 노동자는 모두 자유롭고 창조적인 존재로 실현될 수 없다. 사물화된 인간은 자기 자신과 동료들을 사물로 바라본다. 맑스가 보는 소외는 헤겔 의 변증법에서 안티테제가 차지하는 역할과 비슷하다. 안티테제는 혁명이라는 종합적 변화의 상황을 추동한다. 소외는 혁명을 통해 철폐되며, 인간은 경제를 통제하면서 자신을 실현할 수 있게 된다. 이 혁명은 자본주의적 생산능력 역시 한 단계 고양시킬 것이다. 맑스는 헤겔의 역사 인식을 확장하여 역사가 노동으로 인해 변 화한다고 주장한다. 역사를 경제의 역사, 노동의 역사로 바라볼 때, 노동은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맑스는 소비의 크기가 아닌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와 계급을 연결했다. 노동을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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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증식한 가치의 일부를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주지 않고 잉여가치 로 축적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생산수단의 소유와 사용 문제가 더 복잡해진 현대에 맑스의 견해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맑스 의 저술에는 이론적 논증과 주장, 예측들이 뒤섞여 있으며, 이미 몇 가지 예측은 빗나갔다. 그럼에도 여전히 맑스의 자본주의 분석은 현대사회를 이해하는 중요한 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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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철학의 세계대전과 근대성 비판 삼월 20세기는 세계대전과 함께 시작되었다. 19세기 말 유럽에서 태 어난 이들은 전쟁을 겪으며 성장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제1차 세계대전(1014~1918)이 끝난 지 불과 20여 년 만에 더 큰 규모로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이 벌어졌다는 점이다. 19세기 말에 태어나 첫 번째 전쟁을 겪은 이들은 인간의 이성을 의심하게 만드 는 전쟁의 야만성에 경악했다. 그런 와중에 독일 나치즘의 등장과 같은 더욱 절망스러운 움직임들이 이어졌다. 당시 철학자를 포함한 지식인들은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다시 고민해야만 했다. 전쟁과 전쟁 사이의 시기를 살았던 이들의 회의와 절망을 조금 이라도 상상해보지 않으면, 서양의 현대 철학을 이해하기는 어렵 다. 영국의 경험주의와 계몽철학에서 영향을 받고 현대물리학과 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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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학의 특징을 받아들인 논리실증주의는, 인간의 삶에서 비이성을 몰아내기 위한 철학자들의 새로운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이들은 낡은 형이상학을 비판하고, 경험으로 검증되지 못하는 이론들이 인 식에서 무의미하다고 주장했다. 논리실증주의자들은 파시즘에 반 대하려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이들의 반대 역시 합리적 논증과는 거리가 멀었다. 칼 포퍼는 논리실증주의의 성찰에 힘을 보태려고 했다. 언어의 논리성에 과학성을 부여하여 비이성을 비판하는 비판적 합리주의 를 완성하려는 노력이었다. 포퍼는 사실과 정당화를 구분하고, 반 증이 가능해야 과학적 진술이 성립함을 주장하였다. 합리적 토론과 이성에 큰 비중을 두는 포퍼의 주장에는 여전히 인간의 이성에 대 한 신뢰가 전제되어 있었다. 정치의 과학화를 지향하는 포퍼는 모 든 것이 동시에 변혁될 수 있다는 믿음을 거부하였다. 이 믿음이 권 위주의와 연결될 수 있음을 경고하는데, 포퍼에게는 독단주의보다 관용과 리버럴리티가 중요했다.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의 전통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언어의 의미가 맥락에서 생긴다고 보는 비트겐슈타인은 일상언어 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맥락을 고려하지 않으면 일상언어는 오용되 는데, 고전적인 철학의 문제들이 이 언어의 오용에서 비롯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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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은 주장한다. 비트겐슈타인의 분석철학은 철학을 치 료활동으로 바라보면서, 일정한 형태의 답을 제공하는 일과 결별한 다. 여기서 철학은 하나의 실천이며, 주장을 내세우지 않은 채 언어 적 매듭을 푸는 활동으로 이해된다. 단일한 학파로 보기는 힘들지만, 현상학도 중요하다. 현상학은 사건과 행위를 현상하는 대로 기술하려고 시도한다. 우주를 완전하 게 포획하여 재구성하기 위해 실천적 활동(곡식 빻기, 편자 만들기) 을 시도하는 현상학은 자연과학의 개념들만이 현실을 포착한다는 주장을 비판한다. 철학의 과학화 경향과 결별하려는 시도이지만, 현상학이 자연과학에 반대하지는 않는다. 현상학의 목적은 인간의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생활세계 내의 조건들을 발견하는 일이다. 현상학은 (신과 같은) 본질적 존재나 진보에 대한 믿음 없이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노력이다. 드디어 서양철학사에 페미니즘이 등장했다. 프랑스 정부는 제1 차 세계대전 이후에야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했다. 전쟁을 통해서 여성은 새로운 잠재적 노동력으로 인정받았다. 보부아르는 ‘제2의 성’으로 규정되었던 여성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평등을 주장했다. 이후 뤼스 이리가레는 차이 중심 페미니즘을 주장하면서, 보부아르 의 평등 중심 페미니즘을 비판한다. 평등하지만 타자를 근본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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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존재로 인식하는 일은 현대 철학에서 점점 중요해졌다. 정체 성이 핵심 주제로 떠오르면서 이제 ‘인간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보편적 답을 기대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후 유럽 지식인들의 회의와 절망은 더욱 깊어졌다. 서양 근대철학의 출발점이었던 인식주체와 그 배경이었 던 과학, 계몽, 진보, 이성이 모두 공격받았다. 앞다투어 근대성에 대한 회의와 비판이 쏟아졌다. 프랑크푸르트학파나 한나 아렌트처 럼 파시즘의 위협을 피해 미국으로 옮겨간 철학자들은 더욱 전면적 으로 근대성을 비판했다. 계몽과 혁명을 믿지 않는 시대가 도래했 고, 비판과 함께 ‘해체’의 움직임도 나타났다. 정치를 새롭게 해석하 려는 시도나 보편적 이성에 여전히 기대를 품는 입장들 역시 존재 했다. 하이데거는 서양의 역사가 승리의 행진이 아니며, 근본적인 몰락 으로 점철되었음을 인정했다. 이 몰락은 비본질적인 것들을 추구하 려다 생긴 몰락이었고, 거기서 벗어나려면 변화가 필요했다. 실존 주의자인 하이데거는 우리의 지식이 변화할 수 있음을 믿었다. 지 식의 변화는 곧 우리 자신의 변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본질을 찾으 려는 하이데거의 시도 역시 더욱 본질이 아닌 듯 보이는 대상을 향 한다. 언어가 존재자의 존재방식을 드러낸다고 보는 하이데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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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열어젖히는 언어를 통해 본질을 찾는다. 하이데거의 근대성 비판은 시적인 것을 통해 나타난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에 미국으로 망명한 한나 아렌 트는 전체주의를 분석한다.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를 통해서 20 세기의 대중정치와 관료체계, ‘인간의 조건’을 탐색한다. 한나 아렌 트가 보기에 근대의 대중적 인간은 새로운 독재 체제에 상응하는 존재이고, 정체성을 상실한 개인들은 자신들에게 새로운 목적과 정 체성을 제공하는 지도자에게 매료된다. 노동으로 인간의 삶을 설명 하려는 맑스를 비판한 아렌트는, 계급혁명보다 고대 그리스식 정치 형태에 관심을 가진다. 이 정치형태는 소수가 활동하는 엘리트주의 적 참여 민주주의에 가깝다. 데리다, 푸코, 로티로 이어지는 철학적 경향의 핵심은 ‘해체’이다. 데리다는 텍스트 내부의 균열을 탐색하는 방식의 독해를 하면서 텍 스트와 글쓰기의 개념을 확대한다. 여기서 글쓰기는 이해의 토대를 허무는 일이며, 세계가 토대를 갖지 않음을 드러내는 일이다. 권력 구조를 폭로하고 주변화된 이들에게 연대감을 보이는 푸코의 저작 은 철학인 동시에 지성사이다. 인간을 사회적 구성물로 보는 푸코 는 자율적인 개인이라는 인간 개념을 비판했다. 철학에 대한 비판 과 해체에 몰두한 로티는 철학과 교수를 그만두었고, 철학적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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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담론을 제안하거나 암시하기만 했다. 하버마스는 ‘무엇이 이성적인가?’라는 문제에 집중하면서, 우리 가 서로에 대해서 취할 수 있는 태도들을 고민했다. 하버마스는 합 리성의 개선이라는 의미에서 체계상 합리화의 여지를 두고, 구성원 들의 의사소통 능력을 향상하면서 합리성을 증대시킬 수 있다고 믿 었다. 하버마스는 윤리적 상대주의와 윤리적 독단주의를 비판하면 서 이성에 새로운 기대를 건다. 우리에게 남은 답은 이성적인 사람 들 간에 이루어지는 ‘오류투성이의’ 토론뿐이다. 이 토론이 미덥지 않다고 다시 형이상학적 진리와 비합리적 결단에 기댈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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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인간과 좀비의 존재론 사람들이 좀비영화에 열광하는 이유가 무얼까? 과도한 경쟁이 사람들에게 서로를 좀비로 여기게 만들고, 고립감과 절망감이 인류의 멸망이라는 상상 으로 나타나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에서 시작된 세미나이다. 좀비라는 존재 에서 죽음에 대한 갈망과 삶에 대한 의지를 동시에 읽어낸 시간이었다. 좀비 만큼이나 질긴 생명력으로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돌아올지 모를 세미 나이다.
읽은 책 《옥상으로 가는 길, 좀비를 만나다》, 황태환 외/ 황금가지 《좀비학》, 김형식/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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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이름 없는 자들의 이름 삼월 1. 좀비는 누구인가 대중문화에는 시대마다 그 시대를 대표하는 괴물들이 등장한다. 사탄이나 귀신, 늑대인간이나 뱀파이어 같은 괴물들 말이다. 이 괴 물의 형상에는 그 시대 사람들의 공포와 혐오가 담겨있게 마련이 다. 괴물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대상인 동시에 타자이다. 두려움 은 내면의 억압에서 비롯된다. 억압은 타자를 낳는다. 어떤 존재가 자신과는 전혀 다르다고 분리하는 과정을 타자화라고 하면, 괴물은 우리 내부에서 억압되고 분리된 존재이다. 그 존재가 기괴한 형상 으로 눈앞에 나타나거나 내 뒤를 쫓아오면 괴물이 된다. 지금 우리 시대의 괴물은 바로 좀비이다. ‘좀비’의 어원에는 여러 기원이 언급되지만, 부두교에서 비롯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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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팔려 온 흑인들의 세 계관이나 노예가 된 그들 자신이 바로 좀비의 기원이다. 부두교에 서는 지옥이 가득 차 자리가 모자라면 죽은 자들이 좀비가 되어 돌 아온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좀비는 지옥에서 귀환한 이들인 셈인 데, 지옥에 자리가 모자라니 살아있는 자들의 땅이 바로 지옥을 대 체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좀비의 귀환은 바로 지옥의 확장을 알리 는 일이다. 그러니 좀비는 이 땅이 이제 지옥이 되었음을 알리는 존 재이다. 이 땅은 왜 지옥이 되었을까? 죽은 자들은 이유 없이 돌아오지 않는다. 인간을 유혹하는 사탄이나 원한을 품은 귀신들에게도 당 연히 목적이 있다. 단지 인간을 공포에 떨게 하거나 죽이는 일이 그 들의 목적은 아니다. 억압되거나 쫓겨난 존재들은 무언가를 되찾거 나 알려주기 위해 우리 앞에 나타난다. 타자의 시선으로 세계를 본 다고 해도 그 중심에는 역시 인간이 있다. 어쩌면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는 한에서만 좀비의 존재는 유효하다. 좀비는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존재이니, 좀비를 가장 필요로 하는 이는 바로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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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좀비와 인간의 경계 2000년대 대중문화의 여러 작품 속에 좀비들이 등장한다. 의지 도 없고 고통도 모르는 채 썩어가는 시체인 좀비는 많은 영화와 소 설, 드라마에서 인간을 공격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이들은 좀비 를 피해 달아나다가 결국에는 좀비가 되거나 어렵게 살아남았다. 그 단순한 이야기가 여러 작품에서 계속 반복되었고, 사람들은 이 런 이야기에 열광했다. 좀비영화의 최초 전성기는 지나갔지만, 새 롭게 도래한 좀비 르네상스를 맞아 다시 좀비매니아들이 모여들었 다. 르네상스의 물결 안에서 20세기의 좀비영화가 보여주었던 메 시지는 조금씩 확장되거나, 21세기에 맞게 변형되었다. 좀비영화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로 좀비와 인간의 경계에 대한 물음을 꼽을 수 있다. 좀비는 되살아난 인간으로 우리가 아는 괴물 중 가장 인간과 유사하다. 인간과 좀비를 나누는 경계 역시 허술할 수밖에 없다. 죽어서 시체가 되었다 해도 인간이기는 마찬가지다. 좀비가 인간과 구분되는 지점은 죽었다 되살아나 움직인다는 점에 있다. 그렇게 되살아나 움직이기 위해 좀비는 살아있을 때 가졌던 능력 중 일부를 잃어버린다. 스스로 사고하는 능력이나 말하는 능 력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기능을 잃어버린 채 살아나 인간을 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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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위해 공격하는 이들이 좀비라 불린다. 과연 사고하는 능력이나 말하는 능력이 인간과 인간 아닌 존재 를 구분하는 기준이 될 수 있을까? 인간은 가끔 질병이나 사고로 사고하는 능력이나 말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갓 태어난 아기도 사고하는 능력이나 말하는 능력이 미약하다. 그렇다고 이들 을 인간이 아니라고 판단하지는 않는다. 좀비의 공격성을 기준으로 본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좀비가 아님에도 인간을 공격하거나, 해 를 끼치려 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처럼 좀비와 인간을 구분 하는 경계는 무척 허술하다. 어떤 좀비영화는 화려한 스펙터클 속 에서도 그런 질문을 놓치지 않는다. 3. 파괴된 일상의 회복 좀비는 우리가 살아있는 이 땅이 지옥이 되었음을 알리러 온 존 재이다. 그들은 너덜너덜하고 삐걱대는 신체로 우리를 쫓아와 무언 가 메시지를 전한다. 갈급한 형태의 메시지는 날카로운 이빨처럼 우리의 신체를 물어뜯는다. 우리가 미처 해독하고 이해하기도 전에 메시지는 바이러스의 형태로 퍼져나간다. 지금처럼 살아가다가는 모두가 죽을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 메시지는 강렬한 공포와 통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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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형태로 각인되어 급기야 우리 역시 좀비로 만들어버린다. 걷는 좀비가 뛰는좀비가 된 시대, 좀비는 이제 우리의 각성과 변화를 기 다리지 않는다. 좀비는 우리 자신인 동시에 우리에게서 버려진 존재들이다. 우 리가 외면하거나, 떨쳐버리려는 무언가가 거기에 담겼다. 일부 영 화나 드라마에서 좀비의 기원을 카니발리즘(식인 혹은 동족을 먹 는 일)에서 찾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에서 는 인육을 먹음으로써 좀비가 전염병처럼 창궐하게 된다. 카니발리 즘은 많은 문화권에서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구분하는 중요한 지 점이었다. 그런데 인간이 인간을 먹음으로써, 문명의 금기를 어김 으로써 인간은 좀비가 되었다. 반면 대부분의 좀비영화에서 좀비는 같은 좀비를 먹지 않고, 인간만을 공격한다. 인간과 경계가 모호했던 좀비는 이 지점에서 인간과 다른 어떤 존재가 된다. 인간을 벗어난 존재, 인간보다 뛰어난 능력을 갖춘 좀 비는 이렇게 탄생한다. 잃어버린 사고능력이나 언어능력은 이제 필 요하지 않다. 인간들이 살아서 지옥을 경험하는 땅에서 좀비는 인 간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드라마 <킹덤>에는 좀비가 된 궁인들과 내시들이 궁 전체를 점령하고 왕족들을 공격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사고능력이나 언어능력으로 하지 못했던 일들이 좀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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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면 가능해진다. 지옥으로 변한 일상은 회복되지 않는다. 사고능 력과 언어능력을 잃은 좀비는 기존의 질서와 위계 구조를 수용하지 않는다. 좀비는 회복이 아니라 일상을 전복하기 위해 온 존재들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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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노예의 다른 이름 삼월 아이티는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사이 서인도제도(카리브해) 에 있는 나라이다. 우리에게는 2010년의 대지진으로 기억되는 나 라이기도 하다. 이 대지진으로 당시 아이티 전체 인구의 1/3인 300만 명이 죽거나 다쳤다. 대지진 이외에도 홍수와 폭풍우 등 여 러 자연재해로 피해가 컸고, 빈곤 문제도 심각하다. 외국에 나가 노 동하는 가족이 보내주는 돈과 국제원조로 생계를 유지하는 이들의 수가 많다. 과거에 에스파냐와 프랑스의 식민지였으며, 20세기에 는 미국의 지배를 받기도 했다. 에스파냐의 식민지가 되기 전에 이 땅에 살던 원주민은 지금 남 아 있지 않다. 유럽인들이 옮겨온 질병과 학살로 전혀 흔적을 찾을 수 없다. 현재 인구의 95%는 아프리카계 흑인이고, 나머지는 흑인 과 백인의 혼혈이다. 원주민들이 사라지자, 사탕수수농장에서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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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시키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들을 데려왔기 때문이다. 현재 아이티의 주민들은 대부분 그 흑인 노예들의 후손이다. 노예 들은 낯선 땅에서 고된 노동을 하며 자신들의 문화를 지키려 했고, 그중 하나가 부두교였다. 아프리카 각지에서 끌려온 노예들은 부두 교를 통해 유대감을 가지며, 결속하게 되었다. 부두교는 여러 텍스트에서 ‘좀비’의 기원으로 언급된다. 부두교 와 함께 좀비는 노예들의 처절한 삶 속에서 태어났다. 부두교에는 독과 주술을 통해 인간을 좀비로 만드는 이야기가 전해왔다. 노예 들에게 좀비는 일종의 형벌이었다. 타인에게 해를 입히거나 공동체 의 질서를 해치는 행위를 한 경우 좀비형에 처했다. 노예들의 삶에 서 죽음은 그 자체로 자유나 안식이었는데, 좀비에게는 휴식도 없 고 죽은 뒤에 올 안식도 없다. 그러니 좀비형은 노예에게 죽음보다 무거운 형벌이었다. 형벌을 통해 좀비가 되면 의식 없이 주인의 말 을 따르며, 쉬지도 않고 노동만 하게 된다. 아이티를 방문하거나 거주한 백인들은 이 좀비 이야기를 듣고 호기심을 보였다. 한편으로는 노예들이 자신들에게도 주술을 걸어 좀비로 만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느꼈다. 이 두려움은 어쩌면 백인들의 분열된 무의식을 반영한 것이기도 했다. 당시 세계 곳곳 을 침략하여 점령한 백인들은 ‘인간’의 범위를 아주 좁게 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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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은 이 ‘인간’에 포함되지 않았고, 사고팔 수 있는 가축과 같이 취급되었다. 그러면서도 백인들은 흑인들이 자신들과 같은 ‘인간’ 일 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한 두려움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다. 인간은 개념상의 ‘인간’을 정의하기 위해 언제나 타자를 끌어온 다. 인간을 설명하려면 먼저 비인간의 모습을 나열하고, 비인간의 속성을 제거하여 인간의 모습으로 규정하는 식이다. 흑인 노예들이 자신들과 같은 인간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백인들에게 노예들은 여전히 인간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언 어를 사용하는 등 인간의 속성을 보이지만, 자신들에게 있다고 여 기는 주체성은 보이지 않았다.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에 있는 무엇, 노예는 그런 존재였다. 인간보다는 좀비가 노예들에게 어울리는 이 름이었다. 고통에 대한 표현이나 저항도 없이 묵묵히 고된 노동을 해내는 모습은 분명 인간의 생존방식은 아니었다. 고된 노동과 환경은 노예를 살아있는 상태 그대로 좀비로 만들 었다. 김형식의 책 《좀비학》(2020)에는 한 영화에서 주술사가 좀비 들을 노예처럼 부리는 장면이 묘사된다. “머더는 수많은 좀비를 만 들어 마치 공장 노동자처럼 이들을 부리는데, 이 노동은 매우 단순 하고 반복적인 기계적 작업으로 별다른 의식 활동이 없어도 가능한 노동이다. 영화 속에서 좀비들은 줄을 맞춰 굼뜬 동작으로 이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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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묵묵히 수행한다. 일부 좀비는 그 과정에서 분쇄기에 빠져 죽어 나가기도 하지만, 주위의 다른 좀비들, 그리고 빠진 좀비 자신조차 도 여기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158쪽) 조금 과장을 보 태면 지금 우리 시대의 노동자는 바로 이 노예좀비의 후손이다. 노예들을 같은 인간으로 보고 싶지 않아 좀비로 여기면서, 한편 으로는 그들이 자기 아내나 약혼녀를 좀비로 만들어 납치할지도 모 른다는 공포. 백인 남성들의 분열된 무의식이 드러나는 지점이 바 로 여기다. 누구나 좀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백인도, 흑인도 같 은 인간임을 보여주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백인들이 만든 영화에서 는 흑인좀비와 백인좀비가 결코 같지 않음을 여러 면에서 강조하 지만, 백인들은 흑인이 자신들에 대항할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견딜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다. 이 영화들이 만들어진 시기가 20세 기 초, 미국에서 링컨이 <노예해방선언>(1863)을 한 지 이미 수십 년이 지난 후임에도 말이다. 미국의 독립전쟁(1775~1783)은 프랑스대혁명에 영향을 미쳤 다. 프랑스대혁명에서는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1789)이라는 인권선언이 등장한다. 이 선언은 당시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아이티 에도 영향을 미쳤다. 프랑스의 인권선언에 감명을 받은 아이티의 혁명가들은 프랑스에 식민지 독립과 노예제 폐지를 요구했다. 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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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을 인간으로 여기지 않던 프랑스의 시민(지식인/자산가)들이 이 요구에 얼마나 당황했을지. ‘이 인권선언에서 인간은 바로 우리 백 인 남성들만을 말하는 거라고!’라며 소리치고 싶은 걸 얼마나 참았 을까. 마지못해 1825년에 프랑스는 아이티의 독립 주권을 인정한 다. 당시 프랑스 전체 GDP의 2%에 달하는 1억5천만 프랑 배상을 약속받고 난 후에. 아이티가 독립 주권을 인정받았을 때는 이미 아이티의 수많은 주민과 혁명가들이 잔인하게 처형된 뒤였다. 아이티는 프랑스에 상환금을 지불하기 위해 20세기 중반까지 채무에 시달려야 했고, 이는 현재까지 아이티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 북아메리카에서 가 장 먼저 노예제를 폐지했으며, 아메리카에서 미국에 이어 두 번째 로 독립한 나라 아이티는 이후 독립국으로 발전하기는커녕 다시 1915년에 미국의 식민지가 된다. 《좀비학》에서 언급된 영화들도 그 식민지 시절 무렵 전후에 만들어진 영화들이다. 아프리카에서 끌려와 강제로 사탕수수와 커피를 재배했던 노예 들,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에 있던 이들의 다른 이름은 좀비였다. 이 들을 좀비로 부르고자 하는 이들은, 이들이 가진 저항의 가능성을 애써 부정했다. 어떤 의지도, 문명의 힘도 가지지 못한 이들이 감히 자신들에게 대적하지 못하리라 여겼다. 그러면서도 일말의 불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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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치지 못했다. 1793년 아이티혁명 당시 프랑스에서 온 행정관은 상황이 너무 다급한 나머지 본국 의회의 승인도 받지 않은 채 노예 제도 폐지를 선언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아이티인들의 저항 에 당시 행정관이 느낀 공포를 프랑스에 있는 이들은 이해하지 못 했다. 어떤 의지도, 문명의 힘도 가지지 못한 좀비의 파괴력을 얕잡 아 본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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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인간 안에서 태어난 괴물 삼월 우리가 어릴 때부터 지긋지긋하게 들어온 말 중에 ‘인간은 만물 의 영장’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로 오랫동안 지구에 대한 인간의 지배가 정당화되어 왔다. 인간이 그만한 능력을 갖추었으니, 지구 를 지배하고 지구에 사는 온갖 생명체들을 다스려도 된다는 말. 어 딘가 좀 꺼림칙하지 않은가. 능력이 곧 지배의 이유라니. 아무리 들 어봐도 지배 정당화의 이유가 참 구차하다. 물론 2020년부터는 그 구차한 이유가 더욱 왜소하게 느껴진다. 평소에는 생명체로 취급하 지도 않던 바이러스에게 손과 발이 묶이고, 강제로 입까지 봉한 상 태로 살고 있으니 말이다. 근대의 서구인들만큼이나 현대의 우리에게도 ‘인간’은 중요한 개 념이다, 인간으로서의 존엄, 인간의 도리는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덕목이다. 우리는 스스로 ‘인간’임을 증명하기 위해 살고, ‘인간’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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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서 죽기를 원한다. 분명하게 인간이라는 종으로 태어났다고 말하 면서도, 스스로가 인간임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상황. 이런 상 황은 어쩌면 우리가 인간이 아닐까 봐 누군가 의심하고 있기에 초 래되는지도 모른다. 누가 도대체 우리가 인간이 아니라고 의심한단 말인가? 정말 맥 빠지는 일이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범인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스스로가 인간이 아닐까 봐 의심하는 이들은 누구도 아닌 바로 인간 자신이다. 인간이 지구의 만물을 지배할 수 있는지에 대한 능 력은 한 번도 제대로 검증된 적이 없다. 누구보다 인간 자신이 잘 안다. ‘인간’이라는 범주 자체도 제멋대로 변해왔다. 오직 유럽의 백 인 남성들만이 ‘인간’으로 취급되던 시절도 있었고, 유색인종이나 여성은 꽤 늦게 이 ‘인간’ 범주에 합류했다. 앞으로도 이 ‘인간’ 범주 는 계속해서 변화하고 확장될 전망이다. 안드로이드나 동물이 ‘인 간’ 범주에 합류하지 못하리라는 보장 역시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는 범주는 확정될 수 없고, 기준도 제멋대로다. 자신이 인간임을 증명하는 일도 대부분 누군가가 ‘인간이 아님’을 주장하 면서 나타난다. 유색인종의 혈통, 이교도의 신앙, 광기, 장애는 오 래도록 인간이 거부해왔던 타자성에 포함되었다. 특히 서구의 백인 들은 자신들이 이런 타자성에 오염되지 않았음을 주장하여 정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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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함께 ‘인간’임을 증명받았다. 물론 유색인종의 혈통과 이교도의 신앙, 광기, 장애는 언제나 인간 안에서 분리되지 않고 함께 존재해 왔다. 아이티섬에서 백인들이 발견한 좀비는 바로 이 타자의 형상 그 자체였다. 좀비는 인간을 죽인다. 인간을 죽이고 증식한다. 책 《좀비학》의 저자는 아이티섬을 벗어나 미국에서 되살아난 좀비에게서 인간의 죽음을 목격한다. 1968년 발표된 조지 로메로 감독의 영화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이 그 예이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프랑스 철학 자 미셸 푸코는 《말과 사물》(1966)이라는 책에서 ‘인간의 죽음’을 선언한다. 공교롭게도 두 텍스트는 1966년과 1968년에 각각 발표 되었다. 철학자 미셸 푸코는 왜 생물학자도 아니면서 ‘인간의 죽음’ 을 선언했을까? 인간은 정말 죽어야만 하는 존재들일까? ‘인간의 죽음’이라는 푸코의 표현은 많은 비난과 오해를 받았지 만, 이는 개별 인간들의 죽음이나 인류의 멸종을 의미하는 말이 아 니다. 오히려 철학적 의미에서 ‘인간’이라는 개념, 주체의 죽음을 의 미한다고 볼 수 있다. 데카르트의 사유하는 주체는 근대 철학을 열 었지만, 이 주체는 여전히 신에게 자신의 존재를 보증받는다. 니체 가 ‘신의 죽음’을 선언할 때까지 이 보증은 그럭저럭 유효했다. 푸 코는 니체가 ‘신의 죽음’을 통해 신 자체보다, 신의 보증을 받는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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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 사유하는 주체를 없애려 한다고 보았다. 인간을 죽이기 위해 선 신을 먼저 죽여야 한다. 신의 죽음 이후에 니체가 말하는 ‘위버멘쉬’는 초인이나 더 강한 인간이 아니다. 푸코가 선언한 ‘인간의 죽음’을 실행한 인간, 그러 니까 인간을 벗어난 인간이다. 인간을 벗어난 인간은 누구이며, 어 떤 존재일까? 조지 로메로 감독의 첫 좀비영화가 나온 1968년, 세 계는 곳곳에서 충돌을 경험한다. 프랑스의 68혁명, 마틴 루터 킹과 로버트 케네디 암살,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 반대, 인종차별 반대, 학생들의 대학 점거 시위, 그리고 아폴로 8호 발사로 촉발된 과학 기술문명에 대한 공포 등. 세계는 진보와 보수, 구세대와 신세대로 나뉘어 격렬하게 대립했다. 인간이 인간을 벗어나는 일은 단계적 발전이나 평화로운 협상으 로 나타나지 않았다. 인간은 자신의 타자를 마주하고 인정하면서 전쟁 같은 혼란을 겪는다. 보수주의자들의 눈에는 자신들의 가치관 을 전복하려는 폭도들이 마치 좀비처럼 보였다. 인간의 형상을 닮 았지만,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고 물어뜯으려는 식욕만 남은 좀비 들. 진보나 젊은 세대에게는 반성하는 의식 없이 관성대로만 살아 가는 보수나 기성세대가 좀비들처럼 보였다. 삐걱대는 몸으로 누가 뭐래도 제 갈 길을 가면서 욕심껏 인간의 살만을 탐하는 좀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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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인간을 좀비로 보는 시대는 그렇게 도래했다. 아직 위버 멘쉬를 말할 단계는 아니어도, 인간과 주체의 동일성과 자명함은 사라졌다. 흥미롭게도 로메로의 영화에는 위에서 말한 두 가지 형 태의 좀비가 모두 등장한다. 각각 기성세대의 시각에서 보는 좀비 와 젊은 세대의 시각에서 보는 좀비이다. 아버지의 무덤에서 불경 스럽게 행동하는 젊은이를 응징하는 보수적 좀비와 가족도 알아보 지 못하고 기존의 가치들을 모두 전복해버리는 괴물 같은 신세대 좀비. 인간과 대결하며 증식하는 좀비는 이제 ‘휴머니즘’에 대항하 는 ‘안티-휴머니즘’의 대표 괴물이 된다. 좀비는 사유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근대의 주체를 벗어난다. 재미 있는 점은 많은 영화에서 좀비 확산의 이유로 과학기술의 위험성을 꼽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이 좀비가 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대부 분은 문명의 위험으로 설명된다. 사유하는 주체의 가장 위대한 결 과물인 과학기술문명이 인간의 사유 능력을 파괴하여 더 이상 주체 가 되지 못하도록 만든다. 한때는 인간에 속했던 가해자는 좀비가 됨으로써 피해자가 되고, 다시 좀비라는 새로운 주체(혹은 비체)가 되어 문명과 인간을 파괴한다. 인간과 구분되는 좀비의 가장 큰 특징은 식인이다. 식인은 오래 도록 인간에게 금기였다. 자신이 인간임을 증명하려면 인간을 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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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 이 금기는 인간의 오랜 카니발리즘 역사를 감춘다. 인간의 역 사 속에는 가족을 죽이고, 죽여서 신에게 바치고, 바친 고기를 먹었 던 이야기가 끊임없이 등장한다. 그러니 지금 우리의 살을 물어뜯 으러 온 이는 누구인가. 내 가족의 얼굴을 하고 있을 수도 있는 그 를 우리가 좀비라 부른다면, 그는 우리 인간 안에서 태어났다. 언제 나 우리 안에 있었던 그를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가 불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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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새로운 주체의 가능성 삼월 영화를 통해 여러 존재가 좀비로 불리게 된 이후에도 좀비는 변 화를 거듭해왔다. 더 빠르고 강하게 변한 좀비는 점점 더 강력한 파 국을 몰고 왔다. 강력한 좀비의 위협은 애초에 그들이 어디에서 왔 는가를 잊게 했다. 좀비는 노예였고, 이민자였으며, 병든 자들이었 다. 어떤 면에서 파국은 지배의 다른 이름이다. 지배를 원하는 자가 파국을 원한다. 아무리 해도 세계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지 못하 는 이들은 좀비가 되어야만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 어느새 좀비는 새로운 주체의 탄생을 예고하는 존재가 되었다. 좀비는 어떻게 주체가 될 것인가? 그 전에 좀비는 과연 주체가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고민해보아야겠다. 이 문 제를 적극적으로 고민하기 위해 ‘주체=인간’이라는 도식에서 벗어 날 필요가 있다. 근대적 주체는 흔하게 ‘코기토’(사유하는 주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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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되기 때문에, 스스로가 사유하는 능력을 가졌다고 여기는 인간 만을 주체로 상정하였다. 이런 주체 개념은 다시 20세기에 주체를 부정하는 ‘탈주체’의 사유를 이끌어낸다. 니체가 선언한 ‘신의 죽음’ 에 이어 푸코가 선언한 ‘인간의 죽음’은 이런 식으로 주체의 공백을 불러왔다. 주체가 사라진 자리의 공백. 현대의 철학자들은 주체의 공백을 넘어서기 위해 다시 주체성에 초점을 맞춘다. 로지 브라이도티는 ‘주체=인간’이라는 공식을 깨고 ‘포스트휴먼’이라는 개념을 내세운 다. 이제 인간 이후의 새로운 주체가 필요하다. 인간과 주체가 분리 되면 식물과 동물의 주체성도 발견될 수 있으며, 인간과 비인간을 가르는 경계도 희미해진다. 이런 배경에서 안드로이드와 사이보그 를 비롯하여 우리에게 괴물 타자로 인식되었던 모든 존재와 좀비 역시 우리와 공존할 또 다른 주체로 등장한다. 어떤 면에서 기계 문명과 함께, 과학 기술에 의존하면서 살아가 야 하는 우리는 이미 포스트휴먼이다. 우리 안에는 과학기술에 대 한 애호와 기대, 공포와 증오가 공존한다. 우리의 삶은 이미 과학기 술과 분리 불가능한 관계에 있으므로, 막연한 기대나 공포만으로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과학기술은 이미 우리 삶의 일부가 되었고, 포스트휴먼의 입장에서 인간은 세계에 대해 특권을 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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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가 아니다. 휴머니즘은 이미 낡았고, 세계는 더 이상 인간을 중 심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코로나19 상황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스피노자의 세계에서 만물은 신의 양태(양상)이며, 각기 다른 속 성으로 나타날 뿐이다. 존재는 하나의 신에게서 나왔으므로, 모두 동등하다. 식물, 동물, 무생물을 가리지 않고 모두. 들뢰즈는 스피 노자의 존재론이 모든 존재자를 위계질서 없이 평등한 관계로 ‘내 재성의 공통평면’ 위에 놓는다고 표현한다. 이 공통평면 위에서 우 리는 ‘코나투스’라는 생존력으로 살아간다. 삶을 가능하게 하고, 존 재를 변화시키는 역량만이 우리를 주체로 만든다. 세계를 파국으로 몰고 갔던 좀비의 파괴적 힘에서도 물론 우리는 새로운 주체의 역 량을 감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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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다른 세계에 대한 욕망 삼월 현실에서 ‘좀비’라는 명칭에 담긴 의미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 나는 조롱이고, 다른 하나는 두려움. 시위에 나선 군중들을 일컫는 ‘촛불좀비’나 ‘좌좀’, 활기와 의지를 보이지 않는 청년들을 부르는 단어인 ‘청년좀비’. 이런 단어들은 대상을 부두교의 노예좀비처럼 의식 없는 존재로 비하하는 듯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의식 없는 존 재들이 가진 파괴력에 대한 두려움 역시 드러낸다. 어떤 면에서 누 군가를 좀비라 부르는 일은 그들이 가진 파괴적인 힘을 알아보는 일이기도 하다. 파국으로 치닫는 좀비 장르를 누가 선호하는지도 흥미롭다. 세계 의 파멸, 이웃과의 단절, 나의 죽음을 기꺼이 감당할 자만이 아포칼 립스의 세계를 오락거리로 소비할 수 있다. 세계가 파멸되고 내가 죽더라도 두렵지 않은 이들은 과연 누구일까? 아마도 이 세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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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버려진 자들이 아닐까? 자기 몫을 박탈당하고 인간 안에 서 배제당하며, 벽 바깥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들이 아닐까? 좀비는 피로하고 더럽고 망가진 신체로 인간의 세계에 침입하여 일상을 파 괴하고 목숨을 빼앗는다. 목숨을 빼앗는 일보다 더한 충격은 좀비 가 인간을 그들의 동료로 만들어버린다는 사실에서 온다. 인간은 끊임없이 누군가를 타자로 부르며, 타자들이 자신들의 눈 에 띄지 않기를 바란다. 더럽고 추한 몰골, 비굴하면서도 원망에 가 득 찬 눈빛과 마주치지 않기를 바란다. 안락한 일상은 이 세계에 폭 력과 착취, 질병과 오염이 없다는 환상 속에서만 유지된다. 좀비는 그런 환상을 파괴하러 온 존재이다. 세계가 온통 질병과 분노로 술 렁거리고, 우리가 서로를 폭력적으로 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좀비가 일깨워준다. 인간이 인간을 타자화한다면, 좀비는 자신들과 인간이 같은 존재임을 주장한다. 좀비에게 물린 인간이 예외 없이 아주 쉽 게 좀비가 된다는 사실을 통해서 그 주장은 증명된다. 좀비는 의식 없는 존재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욕망으로 들끓 는 존재이다. 좀비의 무차별한 식욕은 절대로 해소되지 않는다. 자 신이 먹으려던 인간이 곧 자신의 동료인 좀비가 되어버려 먹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좀비는 인간과 달리 동료를 먹거나, 해치지 않 는다. 결코 해소되지 못하고 끊임없이 샘솟는 좀비의 욕망은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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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왔고, 어디로 가게 될까? 인류를 절멸하고 문명을 멈춰버린 후 좀비들은 무엇을 할까? 프랑스의 철학자 들뢰즈는 욕망을 음습한 충동이나 무의식보다 생성 혹은 가능성으로 이해한다. 세계를 파괴 하고 끊임없이 인간을 먹으려 하는 좀비의 욕망도 생성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인간을 먹으려는 좀비의 식욕은 인간을 감염시켜 자신의 동료로 만들어버린다. 파국의 세계에는 좀비들만이 우글거리고, 이제 세계 는 온전히 좀비들의 몫이 된다. 인간이 좀비가 되었다면, 좀비는 다 시 무엇이 될까? 좀비는 현실의 존재가 아니라 우리의 상상이 만들 어낸 존재이다. 우리는 좀비라는 대리자를 통해 세계의 파국을 상 상하고, 그 파국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어 한다. 생각하 고, 사랑하고, 소통하는 존재인 포스트좀비는 그렇게 태어났다. 포 스트좀비와 인간의 욕망은 다르지 않다. 다른 세계를 만들고 싶다 는 욕망, 삶을 다르게 살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욕망이다. 우리는 좀비를 통해 어떤 세계를 욕망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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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 세미나
<리딩 R&D>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읽기를 계기로 물리학을 비롯한 과학책 읽기 세미 나를 열었다. 주로 철학 텍스트만 읽다가 물리학, 뇌과학, 과학사 같은 다른 재질의 텍스트를 만나니 앎의 체감이 확실히 다르다. 정답만을 다룬다고 생 각했던 과학이 수많은 오류와 합의를 바탕으로 이뤄져 있다는 것을 알았고, 매번 새롭게 정의되는 세계와 대면해야 하는 인류의 고단함도 함께 알게 되 었다. 반복적인 일상을 벗어나 다른 차원, 다른 세계로의 변화를 꿈꾸는 이 들에게 과학 공부를 추천하고 싶다.
읽은 책 《코스모스》 칼 세이건 《가능한 세계들》 앤 드류얀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카를로 로벨리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카를로 로벨리 《마음의 미래》 미치오 카쿠 《열역학》 스티븐 베리 《엔드오브타임》 브라이언 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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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념은 계속 수정되어 가는 중 아라차 앎은 유한하다. 지금 맞는 것은 언제든 틀릴 가능성을 품고 있다. 더구나 인간은 육체를 뒤집어쓴 상태에서 세상과 대면하는 존재. 아무리 이성적이고 유물론적인 근거가 있다 하더라도 감각 이상의 것은 알 수 없다. 초감각, 초차원의 세계 중 극히 일부만을, 잘 아는 것도 아닌, 안다고 착각하면서 지금을 사는 존재가 인간이다. 세상 이 무엇인지, 인간(나)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일은 매번 갱신되는 진 리를 쫓아가는 일이다. 이론물리학자인 카를로 로벨리는 “시간과 공간이 없는 세계”를 설명하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아예 처음으로 돌아가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고 제안한다. 데모크리토스에서부터 시작해 쭉 거쳐서 공간의 양자들까지 나아가보는 것이다. 카를로 로벨리를 따라 인류가 해온 가장 눈부신 여행 가운데 하 나를 따라가 본다. 시작은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이다. 우주 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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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끝없는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속에서 무수한 원자들이 돌아다닌다. 공간은 한계가 없다. 위도 아래도, 중심도 경계도 없 다. 실상은 원자와 진공뿐이다. 이것이 세계의 짜임이라는 것. 플라 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데모크리토스의 자연주의적 설명을 거부했 고 목적론적으로 세계를 이해했다. 특히 플라톤은 ‘자연학자들’이 지구가 둥글다고 설명했을 때, 지구가 둥근 것이 뭐가 ‘좋은’ 건지, 무슨 유익이 있는지 알고 싶어 했다고 한다. 저자는 이를 “위대한 플라톤의 헛다리 짚기”라고 표현한다. 데모크리토스의 위대한 서적들은 전부 유실되었지만, 루크레티 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라는 시를 통해 살아남았다. 루크레 티우스의 문헌도 수 세기 동안 잊혀졌다가 1427년 교황의 비서인 포조 브라치올리니에 의해 발견된다.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는 유 럽의 르네상스에 깊은 영향을 미쳤고, 뉴턴과 스피노자, 다윈에게 까지, 나아가 아인슈타인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아인슈타인은 데 모크리토스의 생각을 수학으로 옮겨 원자의 크기까지 계산해 낸다. 플라톤은 헛다리를 짚기도 했지만, 미래의 과학 발전에 중요한 역할도 했다. 바로 피타고라스의 직관과 가치를 이해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밀레토스의 자연과학이 이집트와 바빌론까지 갈 수 있었 던 열쇠는 수학이었고, 그 수학의 이론적 유용성을 발견한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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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타고라스이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자신이 세운 학교의 입구에 이 런 구절을 새겨놓았다고 한다.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이곳에 들어 올 수 없다.” 플라톤의 이러한 확신은 긴 우회로를 돌아 근대 과학 의 출현으로 이어진다. 플라톤의 제자들은 천체들의 움직임을 지배 하는 수학적 법칙을 발견하였고 고대 천문학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 올렸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알마게스트>에서 수학적인 천문학 체 계를 제시했다. 인간의 시력이라는 한계가 있었음에도 예측이 거의 완벽할 정도로 정확했다고 한다. 수학을 통해 세계를 기술하고 미 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것. 거의 천 년 동안 의미 있는 진보를 할 수 없었던 천문학이 코페르니쿠스에 의해 다시 도약할 수 있었던 것도 수학적 방식 덕분이었다. 코페르니쿠스는 <알마게스트>의 수정 개정판을 썼다. 이 개정판 에서 태양이 중심에 있고 지구는 다른 행성들과 더불어 태양 주위 를 돈다고 기록한다. 다음 세대인 케플러는 한 단계 더 나아간다. 그리고 갈릴레오는 망원경이라는 새로운 발명품을 통해 인류사를 바꿔놓는다. 과학적 도구들은 인류의 근시안적인 눈을 열어 상상할 수 있었던 것보다 더 광대하고 다채로운 세계를 보여준다. 갈릴레 오를 통해 최초의 실험 과학이 시작된다. 그의 실험은 간단했다. 물 체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이 실험의 결과는 중대했다. 사람들은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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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가 항상 같은 속도로 떨어진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 았다. 가속도의 발견이었다. 인류는 이제 천체뿐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물체에 대해 똑같은 수학적 법칙을 적용하게 되었다. 실험과 연구와 상상을 통해 다음 스텝을 이어간 사람은 뉴턴이 다. 뉴턴은 작은 달 상상을 통해 달의 공전 주기를 계산하고, 물체 가 떨어지도록 만드는 힘, ‘중력’을 생각해낸다. 우주는 물체들이 서 로 ‘힘’으로 끌어당기고 있는 넓은 공간인 것이다. 모든 물체가 다 른 모든 물체를 끌어당기고 있다. 뉴턴 역학이 바로 데모크리토스 의 세계이다. 광대하고 균질하며 언제나 동일한 공간으로 이루어진 세계, 그 속에서 입자들이 영원히 움직이며 상호 작용하는 세계이 다. 19세기 사람들은 뉴턴이 가장 영리하고 통찰력 있는 사람일 뿐 아니라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자연의 근본 법칙들의 체계는 오직 하나밖에 없는데 그가 그것을 발견하는 행운을 누렸기 때문에.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었다. 자신이 한 발견의 한계를 아는 것이 천재들의 특징이라고 했던 가. 뉴턴은 자신의 수학이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힘을 기술하지 않 는다는 것을 알았다. 중력 말고도 물체에 작용하는 다른 힘들이 있 다. 또 다른 힘, 바로 전자기력이다. 물질을 뭉치게 하여 고체가 되 게 하는 것이 바로 이 힘이다. 이 힘을 이해하려면 뉴턴의 역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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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되어야 한다. 이 수정으로부터 근대 물리학이 태어났고 이 책 의 나머지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개념인 ‘장場, field’이라는 개념이 필요하다. 마이클 패러데이와 제임스 맥스웰은 추론과 실 험을 통해 ‘장’을 발견한다. 뉴턴이 가정했던 것처럼 힘들이 떨어져 있는 물체들 사이에 직접 작용하지 않고 공간에 퍼져 있는 어떤 실 체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전기와 자기를 띤 물체에 의해 변형되 고 밀거나 당기면서 작용하고 있다. ‘장’이라는 새로운 존재자를 도입하면서 우리는 뉴턴의 우아하고 단순한 존재론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나게 된다. 세계는 더 이상 시 간의 흐름에 따라 공간 속에서 움직이는 입자들만으로 이루어져 있 는 것이 아니다. 맥스웰은 패러데이가 말로만 설명했던 통찰을 방 정식으로 옮겨낸다. 맥스웰 방정식은 모든 전기 현상과 자기 현상 을 기술하고 안테나와 라디오, 전기 엔진, 컴퓨터 등을 설계하는 데 에 일상적으로 상용된다. 맥스웰은 페러데이 역선들의 파동이 움직 이는 속도를 계산하고, 그것이 빛의 속도와 정확히 같다는 것까지 알아낸다. 빛이 페러데이 역선들의 빠른 진동과 다름없음을 발견한 것이다. 무언가가 옮겨주지 않고서는 그 어떤 것도 공간 속의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넘어갈 수 없다. 이 진동하는 선들이 우리에게 영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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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겨주기 때문에 우리가 뭔가를 볼 수 있다. 맥스웰은 이 선들이 빛 보다 느린 주파수로 진동할 수 있다고 예측한다. 전하들의 운동에 의해 발생하여 다른 전하들의 운동을 유도하는, 다른 파동들이 존 재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전하를 흔들면 파동이 발생해 저기에서 전류를 흐르게 할 수도 있다는 것. 이 이론의 실체를 밝힌 사람은 독일의 물리학자인 하인리히 헤르츠이다. 그리고 몇 년 뒤 굴리엘 모 마르코니가 최초의 무선 전신을 발명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전 송하면 저기에서 받는 세계를 눈으로 목격하고 있다. 세계에 대한 이해는 또 달라졌다. 세계는 더 이상 공간 속의 입 자들만이 아니라 공간 속의 입자들과 장들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 서 끝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의 세계를 그 바닥까지 뒤흔 들어놓는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으로 발걸음을 옮겨놓아야 한 다. 물질의 본성적 자리나 보편법칙 같은 것이 설 자리는 사라진 지 오래이다. 우리의 앎은 유한한 가운데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를 부 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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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연히 드러난 양자 세상을 산다 아라차 “시간은 변화의 척도일 뿐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아무 변화가 없을 때도 흐르는 시간이 있다.” - 뉴턴
누구의 말이 맞을까? 인류의 역사상 다시 없으리만치 예리하고 심오한 두 연구자가 시간에 대해 정반대의 사고 방법을 제시했다. 두 거장이 우리를 서로 반대 방향으로 끌어당기고 있다. 뉴턴의 시 대가 오기 전까지 시간은 사물이 어떻게 변하는지 헤아리는 방식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후 몇 세기 동안 뉴턴 쪽이 줄곧 우세한 듯했 다. 사물과 상관없는 시간에 대한 개념을 바탕으로 한 뉴턴의 모델 은 현대 물리학을 수립했고 매우 잘 맞아떨어졌다. 뉴턴은 문자 t로 표현된 이 ‘시간 속에서’ 사물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설명하는 방정 식을 썼다. t는 ‘무엇이 변화하거나 움직이는 것과 상관없이’ 흐르는 ‘참된 수학적 절대 시간’이다. 뉴턴의 시간은 우리 감각의 증거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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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라 우아한 지적 산물인 것이다. 시간에 대한 두 거장의 해석은 공간에도 적용될 수 있다. 뉴턴은 공간을 “그 물체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라고 정의한 아리스토텔레 스의 생각이 “상대적이고 겉보기이며 통속적”이라고 주장했다. 뉴 턴에게 공간은 그 자체, 아무것도 없는 곳에도 존재하는 절대적이 고 참되며 수학적이어야 했다. 뉴턴은 사물이 어느 한 ‘공간’에 위 치해 있고, 이 공간은 사물을 치워도 빈 상태로 여전히 계속 존재하 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빈 공간’은 난센스였 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로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는 있을 수 없 다. 두 사람은 각자 통찰력 있고 천재적인 방식으로 주변 세상을 바 라보기는 했지만, 공기의 존재는 헤아리지 않고 자신들의 믿음대로 공간을 정의해버렸다. 과연 절대적이고 수학적인 공간과 시간이 존 재할까? 존재한다면 이 세상의 사물과 전혀 다른 어떤 것일까? 그 래서 사물과 관계가 없는 것일까? 아리스토텔레스의 시간과 뉴턴의 시간은 또 다른 거장(아인슈타 인)의 연구로 통합되었다. 현재까지 우리가 아는 최선의 지식에 따 르면, 이 세상의 물리적 현실에서 씨실을 구성하는 물질들을 물리 학자들은 ‘장 field’이라고 부른다. 중력장이라 부르기도 한다. 시계 는 중력장의 외연 크기를 측정하는 메커니즘이다. 길이 측정에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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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되는 미터는 중력장 외연의 다른 측면을 측정하는 물질의 일부 다. 시공간이 중력장이고, 중력장이 시공간이다. 뉴턴이 예상한 것 처럼 물질이 없어도 자체적으로 존재하는 무엇인가가 있다. 하지만 이 세상의 여타 사물들과 다른 존재자는 아니고, 다른 장들과 같은 장이다. 중력장 역시 절대적이지도 균일하지도 고정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구부러지기도 펴지기도 하고, 다른 것들과 서로 밀고 당기 기도 한다. 아인슈타인은 이런 시공간의 구조를 흔들리는 ‘광원뿔’ 로 설명했다. 아인슈타인은 1915년에 중력장 방정식을 썼는데, 1년이 채 지 나지 않는 1916년, 이 방정식이 공간과 시간의 본성에 대한 최종 적인 설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양자역학이 남아 있었기 때 문이다. 중력장도 다른 모든 사물들처럼 양자적 특성을 가져야 한 다. 미시 세계의 현상은 거시 세계에서도 나타나야 한다. 양자역학 은 입자성, 미결정성, 관계적 양상이라는 세 가지 물리적 변수와 만 난다. 우리가 만나는 중력장 시공간은 이 세 가지 변수들이 우연히 드러난 세상이다. 양자역학은 ‘양자’를 기본적인 입자로 보고, 모든 현상의 최소 규 모인 플랑크 규모로 현상을 설명한다. ‘양자화’된다는 것은 특정한 값만 취하고 다른 값들은 측정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양자는 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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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루처럼 한 값에서 다른 값으로 껑충 뛰어넘는, 불연속적인 운동 을 한다. 최소 시간인 플랑크 시간도 마찬가지로 연속적이지 않고 불연속적인 양상을 보인다. 이것이 양자역학의 가장 특징적인 성질 인 입자성이다. 미결정성은 양자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고 확률 구름으로만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물리학자들은 위치의 ‘중첩’이라고 한다. 시공간도 파동처럼 흔들리며 다양한 형 태로 ‘중첩’될 수 있다. 시공간이 중첩되면 한 입자가 공간에서 널 리 퍼질 수 있듯이, 과거와 미래의 차이도 흔들릴 수 있다. 한 사건 이 다른 사건의 전과 후 모두에서 발생할 수도 있다. 중첩 상태가 붕괴되는 것은 다른 입자들과 상호 작용이 일어날 때다. 상호 작용 이 일어나면 확률구름은 구체적인 특별한 형태를 띄게 된다. 이것 이 양자의 세 번째 특성인 관계적 양상이다. 중력장은 무엇인가와 상호 작용할 때까지는 결정된 값을 가지지 않는 양자적 상태인 것 이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 양자 세상이다. 시간의 간격을 결정하는 토대는 세상을 이루는 실체들과 다른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역동적인 장의 한 양상이다. 이 역 동적인 장은 도약하고 요동치며 상호작용할 때만 구체화되며, 최소 크기 아래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이제 시간이 없는 세상을 관찰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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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스트레인지의 부서진 시계 삼월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의 저자 카를로 로벨리는 시간이 존재하 지 않는다고 말한다. 물리적 세계에서는 우리가 아는 시간이 하나 의 특수한 변수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시간은 다른 변수 들에 앞서 존재하지 않으며, 다른 변수들과 동등하다. 시간과 공간 이 과거의 물리학에서 세계를 이해하는 기본 변수들이었다면, 이제 시간은 그 특권적 지위를 상실한다. 절대적 시간의 개념은 이렇게 부정된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감각한다. 시계가 없어도 우리는 자신이 늙어간다는 사실과,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과 거의 기억이 점점 희미해짐을 느낀다. 무엇이 우리에게 시간이 흐 르는 것처럼 느끼게 할까? 로벨리의 시간 이야기를 읽으며, 마블유니버스의 《닥터 스트레 인지》가 떠올랐다. 교통사고를 겪은 스트레인지는 현대의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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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칠 수 없는 자신의 몸을 치료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네팔을 찾는다. 스트레인지가 찾아간 곳은 비밀스러운 시간의 힘을 지키는 조직이다. 평생을 외과 의사로 살아온 스트레인지에게 이들의 수행 은 납득하기 힘든 방식이었고, 비밀조직 또한 스트레인지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조직을 찾기 직전 스트레인지는 강도를 당하 고, 이때 그가 가진 시계가 부서진다. 사고를 당해 제 기능을 못 하 는 그의 신경처럼 부서진 채 작동을 멈춘 시계. 이후 조직에 들어간 스트레인지는 현실의 시간과는 전혀 다른 시간을 살게 된다. 로벨리가 이 책의 3부에서 말하는 시간은, 지금껏 우리가 살아온 시간이 아니다. 로벨리는 우리가 시간을 어떻게 감각하게 되는지, 무엇을 시간이라고 느끼는지를 보여준다. 시간은 세계와 우리의 관 계 속에서 재구성된다. 시간은 그 자체로 존재한다기보다 우리의 독특한 관점 때문에 존재한다. 우리는 이런 관점으로 세계의 아주 일부분과만 관계를 맺는다. 시간의 핵심은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의 희미함에서 비롯된다. 세계의 세부 사항들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 에 우리는 세계를 희미하게 보게 되고, 그 무지에서 시간이 나온다. 우리가 지구에 살기 때문에, 지구가 아닌 태양과 우주가 움직이는 듯 보이는 현상과 마찬가지로. 세부 사항에 대한 정보의 부족은 곧 엔트로피의 증가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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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는 열과 함께 시간을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개념이다. 엔 트로피는 배열의 복잡성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내가 알아채지 못한 것’에 영향을 받는다. 배열은 최초의 상태에서부터 계속해서 무질서한 방향으로 나아가므로 엔트로피는 점점 증가한다. 이 배열 은 세계의 상태뿐 아니라 우리가 세계를 보는 관점에 의해서도 영 향을 받는다. 우리는 이 배열 안에서도 나름의 인과관계나 법칙을 발견하려 애쓴다. 혼동된 인과관계 안에서 세계는 점점 희미해진 채 엔트로피는 계속 증가하고, 시간의 흐름이라는 우리 나름의 결 과가 도출된다. 내 눈에 태양이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니까, 태 양은 분명히 움직인다는 결론과 비슷하다. 이 세계에 대해 말할 때 우리가 세계 밖에 있다고 인식하면 중요 한 점들을 놓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세계를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본다. 지도를 이용하려면 외부에서 보는 관점과 나의 현 위치를 동 시에 파악해야 한다. 세계를 보는 일도 이런 지표성의 문제와 분리 될 수 없다. 우리는 우주에서 우주 전체가 아닌 우리와 관련된 세계 만을 측정한다. 시간은 우주 전체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내부의 문 제일 수 있다. 엔트로피는 세계 전체보다 우리와 관련되기 때문이 다. 점차 증가하며 줄어들지는 않는 엔트로피의 방향성, 우리는 엔 트로피의 증가를 통해 시간의 흐름을 경험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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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러니까 시간은 우리의 관점이 가져오는 일종의 혼동과 같다. 시간은 두려움과 함께 온다. 시간에는 우리의 혼란과 근심, 고통 과 소멸에 대한 두려움은 물론 그리움과 애틋함도 담겨있다. 시간 이 단지 우리의 문제라면, 시간의 정체를 알기 위해 우리 자신에게 로 돌아와야 한다. 우리의 삶은 태어남에서 시작하여 죽음으로 끝 나는 선상에 있는 과정이고, 사건이며, 구성물이다. 우리는 태어남 과 죽음이라는 두 지점에 점을 찍고, 두 점을 연결하는 삶을 시간적 으로 구성한다. 이 선은 우리 자신을 일관된 정체성으로 묶어준다. 과거의 기억을 통해 세계를 성찰하고 설명하며 현재를 살아간다. 현재의 삶을 바탕으로 미래를 예비하기도 한다. 시간을 통해 일관 된 의식을 가진 하나의 개체로 자신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이 재구 성에 실패하면 사회부적응자나 광인으로 취급된다. 알츠하이머나 뇌졸중 등 뇌 손상을 겪은 이들은 시간을 인지하 지 못한다. 밤과 낮의 변화나 시간의 간격 등을 감각할 수 없으면, 신체나 언어활동이 가능하다고 해도 다른 이들과 일상을 함께 나누 며 살아가기 힘들다. 시간에 대한 감각은 언어 이상으로 고차원적 인 의식의 활동에서 비롯된다. 시간이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라, 진화과정에서 우리가 세계에 부여한 인위적 규칙임을 확인하게 하 는 부분이다. 우리의 인지는 시간을 지지대 삼아 과거를 기억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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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예측한다. 시간에 대한 감각이 사라지면 기억이 남아있어 도, 우리는 미래를 예측하며 현재를 살아갈 힘을 쉽게 잃어버린다. 문제는 시간이 존재하는가, 아닌가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시 간이 무엇인지를 보는 일이 중요하다. 시간은 우리에게 유용한 하나의 도구였다. 그 도구가 너무나 유 용한 나머지 우리는 시간이 없는 세계를 상상하기 어렵게 되었다. 시간을 통해 우리를 재구성하지 못하게 되면, 우리 존재 자체가 위 태로워진다고 느낄 수도 있다. 지금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범위 안에서 세계에 일어나는 변화를 설명할 도구로 시간 이상의 개념을 만들어내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시간에 묶여있을 수만은 없다. 시 간의 망상에 사로잡혀 세계에 대한 이해가 확실하다고 믿어서도 안 된다. 존재를 증명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다. 17세기에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말했다면, 18세기 철학자 피히테 는 이렇게 받아쳤다. ‘나는 활동한다, 고로 존재한다’ 영화에서 우리의 영웅 닥터 스트레인지는 지구를 삼키려는 영원 의 괴물과 맞서게 된다. 영원의 괴물 도루마무는 시간이 없는 세계 에서 왔다. 도루마무의 추종자들은 시간이 없는 세계에서 영생을 누리기를 원한다. 흥미롭게도 스트레인지는 도루마무를 물리치는 방법으로 시간을 활용한다. 시간이 없는 세계에서 온 괴물 도루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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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를 지구의 시간에 가둬버리자, 도루마무는 견디지 못하고 항복을 외친다. 영원의 지배자는 시간의 지배를 견디지 못한다. 괴물을 물 리친 뒤 지구인들은 다시 시간을 회복한다. 도루마무가 지구의 시 간을 견디지 못하듯, 우리도 영원을 견디지는 못할 것이다. 시간은 세계를 구성하는 근본적인 요소가 아니지만, 여전히 우리의 생존을 위해 활용 가능한 도구이다. 그 도구를 주인으로 섬기지만 않는다 면 말이다. 영화는 스트레인지의 부서진 시계를 비추며 끝난다. 시 간을 무기로 삼게 된 닥터 스트레인지에게 이제 현실의 시간은 중 요하지 않다. 문제는 그 시계를 선물한 사람과 나누는 소통과 교감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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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가 되고 싶습니까? 삼월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는 뇌를 탓하며 누구나 한 번씩은 천재가 되기를 꿈꿔본다. 물론 천재가 된다고 해서 삶이 꼭 지금보다 긍정 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리라는 법은 없다. 영화나 TV에 등장하는 천 재들은 어딘가 이상한 데가 있거나, 아니면 그들도 나름의 고충이 나 비극적 상황을 겪으며 살아가니까. 그렇게 천재의 삶을 이야기 하다 보면 문득 궁금해진다. 천재는 과연 누구인가? 천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도 천재가 될 수 있을까? 미치오 가쿠는 대용량의 지식을 뇌에 저장할 방법과 지능 자체 를 높이는 방법들을 하나씩, 차근차근 설명한다. 물론 영화 속 설정 이나 우리의 상상과 현실은 크게 다르다. 인간의 기억은 단순하게 뇌의 한 공간에 저장되는 게 아니라 여러 곳에 분할 저장된다. 해마 는 기억을 분할하여 피질에 전송하고, 다시 기억을 불러올 때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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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파가 공명하면서 분할된 기억을 하나로 합친다. 기억은 경험과 관련되기 때문에 아주 개인적이며, 뇌에서 기억이 분류되는 방식도 개인마다 다르리라 예상된다. 현재 뇌과학은 인공해마를 뇌에 삽입하고, 쥐의 기억을 디지털 데 이터로 변환하여 컴퓨터에 저장하는 데까지 성공했다. 앞으로 인간 에게 디지털 데이터화된 인공기억이나 지식을 이식하지 못하리라는 법도 없다. 그렇다고 인간이 기억을 저장하는 방식을 기계장치에 정 보를 저장하는 방식과 단순히 비교할 수는 없다. 인간이 기억을 떠 올리는 목적은 미래에 대한 시뮬레이션과 연결된다. 기억은 과거가 아닌 미래를 위한 것이며, 어떤 면에서 인간은 과거가 아닌 미래를 기억한다. 인간의 지능 역시 이 시뮬레이션 능력과 관련된다. 우리는 흔히 지능이 기억력에 좌우된다고 여긴다. 더 많은 기억을 가지는 일은 정말 축복일까? ‘영혼도서관’을 만들어 죽은 이들의 기 억을 기록으로 보존하려는 연구도 있다. 타인의 기억을 유산으로 가 지고 시작하는 삶을 상상해본다. 죽은 이가 남긴 모든 이야기가 교 훈은 아니다. 교훈은 삶 속에서 타인의 말이 가진 의미를 우리가 이 해하고 공명할 때만 교훈이 된다. 어떤 면에서 삶은 교훈 자체를 기 억하는 일보다, 그 말이 왜 교훈인지를 직접 깨우치는 일이다. 미치 오 가쿠가 강조하듯 기억은 경험과 밀접한 관계를 맺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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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보조적인 기억저장장치를 흔하 게 사용할 미래는 충분히 예상된다. 한편으로 기억저장장치의 윤리 적 측면과는 별개로 ‘망각은 머릿속에서 진행되는 가장 유익한 과 정’이라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기억을 저장하는 기술이 아무리 늘 어도 이 기억을 처리하는 능력이 같이 늘어나지 않으면 소용이 없 다. 너무 많은 정보와 데이터는 오히려 판단에 혼란을 불러오기 때 문이다. ‘지적 능력’이란 바로 이 기억을 처리하는 능력이라 볼 수 있다. 인간의 지적 능력, 지능은 얼마나 향상될 수 있을까? 아인슈타인 은 동시대 사람들에게 천재로 각인되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아 인슈타인의 뇌를 연구하고 싶어 했다. 도난당해서 수십 년간 냉장 고에 처박혀 있다가 다시 잘게 썰린 아인슈타인의 뇌는 현재 미국 국립의료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아인슈타인의 뇌에서는 다른 이 들의 뇌와 비교할 때 오차범위를 넘어설 만한 뚜렷한 특징이 발견 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아인슈타인이 “저는 특별한 재능이 없는 사 람입니다… 단지 호기심이 강할 뿐이지요.”라고 말해도 아무도 귀 담아듣지 않았다. 아인슈타인은 어떻게 아인슈타인이 되었을까에 대한 미치오 가 쿠의 설명은 몹시 명쾌하고 쉽게 공감이 된다. 아인슈타인은 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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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사고실험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고, 한 문제에 적어도 10년 이상 을 골몰했다. 특수상대성이론이나 일반상대성이론 등이 모두 10년 이상의 사고실험 끝에 만들어졌다. 아인슈타인의 집중력도 놀랍지 만, 그가 수학에 소질이 없었다는 점도 분명히 기억해 두어야 한다. 아인슈타인은 수학에 소질이 없었기에 대학원 진학을 하지 못했고, 그렇기에 이미 정립된 물리학 이론에 반기를 드는 일도 주저하지 않았다. 아인슈타인의 예에서 알 수 있듯 뇌는 타고난 능력보다 꾸준한 활용을 통해 진가를 발휘한다. 성인의 뇌세포는 추가되지 않지만, 새로운 내용을 배울 때마다 뉴런의 연결 상태가 달라진다. 고된 훈 련과 거듭된 도전으로 뇌는 뉴런의 연결이 강화되면서 스스로 진화 한다. 인간의 지능을 측정하고 향상하려는 여러 노력이 있었지만, 연구 결과는 IQ가 삶의 성공 여부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오히려 사회적 성공 여부는 타인과 협동하고 감정을 통제하는 능력, 쾌락을 미루고 집중하는 능력과 관계가 있 었다. 서번트증후군이나 과잉기억증후군처럼 다른 인간들이 갖지 못 한 능력을 보이는 이들이 있다. 이들을 천재라고 부를 수 있을까? 서번트증후군은 자폐증이나 아스퍼거증후군, 후천성 장애 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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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측두엽에 손상을 입은 이들의 특징으로 여겨진다. 이들의 능 력은 바로 이 손상에서 비롯된다. 좌뇌의 손상으로 우뇌가 좌뇌의 역할을 떠맡게 되면서 의외의 빠른 계산능력이나 예술적 재능 등을 보인다. 학자들은 이들의 기억력이 잊는 능력의 결핍에서 온다고 말한다. 망각은 뇌의 능동적 활동인데, 도파민 효과로 뇌의 망각 활 동이 결핍된 상황이라는 말이다. 천재적 능력의 원인이 특정 부위의 손상이나 특정 능력의 결핍에 서 비롯된다는 점은 무척 흥미롭다. 인간의 지능은 유전적 진화로 도, 물리적으로도 거의 한계에 도달했다. 지능을 높일 수 있는가, 하 는 물음만큼이나 지능을 높이는 일이 과연 바람직한가, 하는 물음도 많다. 인위적으로 지능을 높이는 일은 인간의 삶과 사회 전체를 바 꿀 것이다. 높아진 지능으로 더 많은 미래의 가능성을 시뮬레이션하 면 어떤 결과를 얻게 될까? 그 이전에 나는 과연 천재가 되고 싶은 가, 하고 자문한다. 사실 나는 물리적으로 더 많은 정보만을 추구하 며 책을 읽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망각의 능동적 활동에서 오는 기 쁨을 느낄 때도 많다. 어쩌면 그저 오늘의 책 읽기가 나의 뉴런 연결 상태를 조금이라도 바꾸어주길 바라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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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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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바심과 열등감에서 벗어나 : <새로 쓰는 17세기 조선 유학사>를 읽고
기픈옹달 펑유란(1894~1990)은 19세기말에 태어나 20세기 말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청 말에 태어나 전통 학문을 배웠다. 그러나 1905년, 중국은 과거제를 폐지한다. 결국 그는 대학에 입학하여 신식학문 을 배운다. 1912년에는 신해혁명이 일어나 황제제도가 폐지되었 다. 1919년 그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을 때 중국은 신문화운동이 한창이었다. 낡은 전통문화를 폐기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드높았다. 그의 <중국철학사>는 중국에도 철학이 있음을 증명하고자 애쓴 노력의 산물이었다. 전통 사상이 용도폐기 당하는 상황에서 그는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전통 사상을 구제해 내고자 하였다. 그런 노 력으로 전통사상은 철학의 시민권을 따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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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간의 변화를 강요당하는 것이기도 했다. 과연 전통사상, 유가 도가 불가 등등을 '철학'이라 할 수 있을까? 커다란 질문에서 시작하는 것은 이 책이 제목에서 말하고 있는 한정적이면서도 명확한 주제 때문이다. <새로 쓰는 17세기 조선 유 학사>라는 제목은 철학이라는 거창한 이야기에서 벗어나 유학 내 부로 눈을 돌리게 만든다. 그러나 문제의식은 공명하고 있다. 과거 전통사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저자가 17세기에 주목하는 이유는 동아시아의 질서가 새롭게 구 축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일본은 전국시대가 끝나고 에도 막부가 시작되는 상황이었으며, 중국은 이른바 명청교체기였다. 새로운 체 제의 등장과 새로운 국가의 출현. 이 가운에 조선은 임진왜란과 병 자호란으로 대표되는, 흔히 양란兩亂이라 불리는 혼란기를 겪는 다. 이 혼란기를 맞이하여 조선은 어떤 변화를 모색하였을까? 요컨대 조선은 17세기에 이르러 건국 이래 최대의 위기에 봉착 하였다. 험난한 상황 속에서 조선의 지식인 계층인 유학자들은 새 로운 활로를 모색해야만 했다. 그래서 체제교학인 주자학에 대한 문제의식이 싹터 '사상사적 전환'이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가설 하 에 17세기의 학술이 주목받게 된 것이다. (30쪽) 한편 이는 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친 위기 상황에 어떻게 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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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는가 하는 점과도 관련 있다. 시대는 조금씩 다르지만 청과 조선 은 모두 제국주의의 침탈을 경험했다. 아편전쟁은 천하의 중심을 자처하던 제국의 몰락을 예고하고 있었다. 조선 역시 안정적인 상 황은 아니었다. 서양과의 만남은 적잖은 상처를 남겼고, 결국엔 일 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른바 '망국'이라는 당혹스러운 상황에서 누구, 혹은 무엇에게 그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대두되었다. 이 '낡은' 사회 의 원흉은 누구인가? '망국'에 이른 까닭은 무엇인가? 20세기 초반 식민지화되고 있던 한국에서는 자국의 유학사에 대 한 엄격한 비판이 행해져, 조선왕조의 체제교학(국가의 학문)이었 던 주자학과 유학자가 망국의 위기를 초래한 주범으로 간주되었 다. (19쪽)
비판의 최전선에는 일본 학자들이 있었다. 이노우에 데츠지로, 마루야마 마사오 등은 자국이 어떻게 주자학을 극복하였고 근대에 편입될 수 있었는지를 이야기하였다. 이를 거꾸로 말하면 이웃 나 라들이 어떻게 낡은 사회에 머물러 있는가를 고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나아가 이는 낡은 조선을 식민지로 삼아 계몽시킬 수 있다 는 논리로 흐르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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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학의 나라 조선은 그렇게 식민지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 었을까? 조선에게 다른 운명은 없었을까?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반 주자학적 전통에 주목하게 된다. 나아가 이는 '실학', 이른바 내재 적 근대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노력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이 관 점에서 보면 식민지 조선은 제국주의 국가의 폭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근대의 싹은 이렇게 짓밟히고 유린당했다. 즉, 식민지 조 선의 현실은 근대의 맹아, '실학'의 '좌절'로 볼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것이 역사적 사실에 입각한 것인지를 되묻는다. "조선 유학사에 대한 연구는 '식민'이라는 배경에 의해 외부로부터 주어진 주제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연구시점이 굴절될 수밖에 없었 던 것"(13쪽)은 아닐까? 결론을 이야기하자. 저자는 윤휴, 박세당 등 반주자학자로 분류 되었던 이들 역시 주자학적 세계 안에 있었던 이들이라 평가한다. 나아가 이들 반대편에 있었던 송시열 등도 보수적인 주자학 원리주 의자는 아니라고 평가한다. 윤휴와 박세당은 주자의 언어로 주자학 내부의 모순을 드러내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조선의 유학자들 이 주자 개인의 학술 변화양상을 꼼꼼하게 연구했기 때문이다. <주 자언론동이고>와 같은 저술은 그 연구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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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사실로부터 교훈을 얻었다기보다 지금 필요한 교훈에 적 합하도록 역사를 다시 읽은 것은 아니었을까?"(97쪽)
따라서 17세기 조선 유학사에 대한 서술은 새롭게 재고되어야 한다. 주자학 대 반주자학의 대립으로 읽을 것이 아니라 주자학 내 부의 전개로 읽어야 한다. 잘 알려져 있듯, 17세기 조선 유학자들 은 오랑캐의 나라 청을 대신해 중화의 도통道統을 계승하고자 했 다. 주자학에 대한 비판, 혹은 극복이 아닌 엄밀하고도 체계적인 연 구가 17세기 조선 유학의 본 모습이다. 그렇다고 저자가 20세기 연구의 성과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이 역시 시대의 산물이라 본다. "… 식민사관으로부터 탈피하려는 노력은 양날의 검이었다. 주자 학에 도전한 인물이나 저작이 과도하게 주목받은 반면, 조선에서 가장 융성했던 주자학 방면에 대한 고찰이나 평가가 충분히 이루 어지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39쪽)
"조선 유학사에 대한 '오해'는 시대의 산물입니다. 단순히 '잘못'으 로 치부하고 망각해 버릴 대상이 아니라 연구하여 연원을 밝혀야 하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이러한 '오해'를 빚어 낸 시대적 필연성을 명확히 인식하고 한 시대 조류의 역사적 단계를 마무리해야 합니 다. '식민사관'에 저항하며 분투했던 한 시대를 이제는 역사속에서 편히 쉬게 하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관점이 필요합니다." (316쪽, 한국어판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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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연구는 21세기의 문제 설정 위에 서술되어야 한다. 당 연한 말이지만, 과제는 말처럼 쉽지 않다. 무엇보다 21세기를 사는 우리 역시 20세기의 자장 안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20세기의 성과를 치밀하게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비판 없 는 새로움이란 없기 때문이다. 20세기의 연구를 보면 대체로 조바심과 열등감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볼 수 있다. 근대라는 시대적 과제를 달성하기 위한 노력들, 여기에는 왜 우리는 여전히 낡은 세계에 머물러 있는가 하는 자기 부정의 관점이 실리기 마련이다. 그 노력의 결과 근대를 달성하였 는가? 그러나 또 하나 포스트모더니즘과 같은 문제 의식에서 근대 는 극복되어야 할 대상이기도 했다. 이 두 가지 숙제의 어려움. 이 중과제의 실타래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열등감의 해소에는 승리의 기억이 필요한 법이다. 20세기 사람 들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면 21세기는 다를 테다. BTS, 기생 충, 오스카 수상 따위가 그냥 스쳐지나가는 사건이 아닌 이유가 여 기에 있다. 한편 20세기적 과제에 매몰되어 정당하게 평가하고 뿌 리뽑지 못한 낡은 습속을 버려야 할 때도 되었다. 내가 종종 방문 하는 유튜브 채널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아빠 성 쓸 래 엄마 성 쓸래, 당신의 선택은?" 해묵은 질문을 붙잡고 있어야 하는 현재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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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매거진 저층지성 2021.07 B2 #세미나
글 에레혼, 기픈옹달, 아라차, 삼월(이소연) 편집 및 디자인 기픈옹달 발행일 2021년 7월 기획 우리실험자들 experimentor.net 제작 온지곤지 지원 서울특별시,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값 5,000원 본문에 실린 글의 무단 전재 및 복사를 금합니다. Designed by Freepik
우리실험자들의 저층지성 프로젝트 세 번째. 底層之聲 혹은 底層知性. 앎은 그 자체로 앎의 방식을 생산하며, 다른 앎을 낳는다. 스피노자의 말을 따라, 앎은 목소리를 만들고 목소리는 다시 앎을 만든다는 믿음으로 저층지성 프로젝트를 계속한다. 우리를 거쳐 간 텍스트들의 흔적을 여기에 남긴다. 세 번째 저층지성의 주제는 ‘세미나’ 2021년 1월부터 6월까지 상반기 세미나의 기록들이 담긴다. 2021년 현재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바꿨고, 특히 우리의 공부 형태를 가장 많이 바꿨다. 정부의 방역수칙에 따라 우리는 2020년 12월부터 오프라인 세미나를 진행하지 못했다. 그동안 우리가 해온 공부 방식에 대한 위협은 ‘왜 공부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온라인에서 분투했다. 해방촌의 공간과 모임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에서 우리의 생존을 모색하는 새로운 공부에 대한 방향으로, 질문은 계속 확장된다.
인문 매거진 저층지성 2021.07 B2 정가: 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