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라이프스타일 저널_촌지 (Vol.01)

Page 1

촌 지

Vo l . 1

김엄마의 늦둥이 키우기 체험과 경험사이

촌지 합커버CC.indd 1

/

/

일상의 여유, 산책

/

나만을 위한 점심상

프랑스에서 아이를 낳는다는 것

/

/

다시 읽는 그림책

어린이책 작가 이현정 인터뷰

엄마의 라이프스타일 저널 창간호

2017. 11. 30. 오전 12:03


C O N T E N T S

Editor's letter

아름답게 산다는 것은

..... 김 보현

Essay 1

김 엄마의 늦 둥이 키우기

..... 김 문 경

Essay 2

다 시 공 부 한 다 는 것 에 대 해 . . . . . 김 민 경

picture book

엄마 의 그림책 살롱

..... 홍 민 선

Photo Essay

일 상 의 여유, 산 책

..... 김 문 경 , 임민 하

Food

나만을 위한 점심상

fashion

옷을 잘 입는다는 것은

..... 최 은영

Book

다시 읽는 그림책

..... 김 영

Music

음악교육

..... 윤 성 원

interview

어린이책 작가 이현정

..... 홍 민 선

Global

프랑스에서 아이 낳기

..... 박 재 연

Essay 3

체험과 경험 사이

..... 신 은희

발행일

2017년 12월

..... 편 집 부

발행인

신은희

편집장

김보현

기자

김문영

김민경

임민하

최은영

홍민선

기고

김 영

박재연

윤성원

사진

편집부

Our story

마감을 마치며

..... 최 은영 , 김민 경 , 김 문영

촌 지(村紙) 1

디자이너 Authentic Studio 성원애드피아

발행처

밸류가든

후원

서울시마을미디어센터

ⓒ @ 밸류가든

인쇄

밸류가든은 일상의 인문적 체험을 통해 공감능력이 있는 성숙한 시민으로의 성장을 돕는 시민교육센터입니다.

ADDRESS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28길 17-1, 2층 TEL 070-7680-0301 HOMEPAGE www.valuegarden.org 표 지

촌지 합커버CC.indd 2

l

김 문 경 < 첫 눈 >

EMAIL valuegarden@gmail.com

2017. 11. 30. 오전 12:03


큰 목소리, 잘 들리는 목소리, 익숙한 목소리도 있지만 작은 목소리, 귀 기울여야 들리는 목소리, 조금 낯선 그런 목소리도 있지요. 그리고 지금은 작고 다른 목소리에 더 귀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목소리가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상의 우리 이야기가 담겨질 공간, 다른 생각을 자유롭게 나눌 공간으로 엄마의 라이프스타일 저널 “촌지”를 발행하기로 했습니다.

寸 志 촌지는 얼핏 청탁을 위해 전하는 선물로 익숙해져 있지만 원래는 “속으로 품은 작은 뜻. 마음이 담긴 작은 선물”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품고 있는 작은 생각을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마음이 담긴 작은 선물을 전하는 마음으로 서툴지만 온 마음을 담아 즐겁게 만들었습니다.

村 誌 이웃과 마을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를, 골목길을, 가게를 만나고 그 속의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이 시작은 함께 준비하고 계획해 준 박재연, 홍민선 두 선생님 덕분에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대로 저널의 모습을 갖출 수 있도록 도와준 김백보현 선생님과 디자이너 선생님 무엇보다 조금 허황된 계획을 이렇게 가득 가득 채워주신 에디터 김민경, 김문경, 임민하, 최은영 선생님 풍성한 내용이 되도록 도와주신 김영, 윤성원, 이현정 선생님의 글 덕분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재미있고 유연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독자 여러분도 함께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참 고맙습니다.

밸 류 가 든 신 은 희 두 손 모 아

촌 지

촌지 전체내지-CC.indd 1

2017. 11. 29. 오후 11:55


EDITOR'S LETTER

When Designers Dream, 2017, courtesy of D MUSEUM

나는 서울 사람이다. 서래마을에서만 30년 넘게 자라왔고 그 세상이

나 더 필요한 일이다. 워킹맘이 제 아무리 많아져도 아직도 엄마라는

나의 전부인 줄 알고 결혼을 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보

존재는 일방적으로 양육에 대한 희생을 강요당한다. 그리고 그 엄마라

니 서울은 더 이상 내가 알던 서울이 아니었다. 나는 강남이 아닌 강북

는 이름이 주는 행복의 시간들-아이가 자라나며 느끼는 많은 행복감

에 살기 시작했고, 반포대교를 지나 강남에 온다는 것이 점차 어떤 격

들-의 가치가 모든 것을 보상해주는 것처럼 프레임화 되어 있다. 그렇

차로써 내게 다가왔다. 그렇게 나의 초등학교부터 대학교 졸업까지 함

기에 아이가 자라 ‘내 품의 천사’가 떠나갈 때 엄마들은 견딜 수 없이 공

께했던 ‘나의 동네’는 ‘내가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동네’가 되어버렸다.

허해진다.

게다가 나는 졸업 후 학부 전공은 내팽겨치고 잡지 기자를 시작했는데

그렇기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자신의 삶’이 행복해지는지 잘 생각해보

그마저도 나이 서른이 다 되어서 ‘나’를 찾겠다며 연극을 시작한 터라

아야 한다. 우리 모두는 행복을 찾고 행복을 묻지만 사실 어떻게 해야

가난했다. 아이가 커가면서 점차 양육에 대한 부담이 다가왔다. 부모님

‘내가’ 행복해지는 지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가족이

들이 어느 정도 도와주신다고 해도 결국 남편과 나, 그 둘이 실질적인

라는 관계 속에서 행복해질 때가 많기 때문이다. 잠든 아이의 천사 같

‘경제적 능력’이 부족하다는 걸 알고 나자 지옥이

은 모습이나 대체로 원수 같지만 가끔은 날 위

시작되었다. 사는 건, 정말 전쟁이었다.

해 어깨를 내어주는 남편 때문에 말이다. 하지

것’에 관한 것이었다. 좀 다르게 표현하자면, 심미

아름답게 산다 는 것 은

(審美)적인 삶을 살기 위한 몸부림 같은 거였다고

text

그런 속에서도 나는 글을 썼다. 돈이 참 안 되는 연극도 계속 했다. 그냥 계속, 무언가를 썼다. 내 가 그렇게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 과연 무엇이었 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건 ‘아름답게 산다는

나 할까. 개인적으로 사람은-예술을 하는 사람

만 내가 궁금한 건 ‘자신의 삶’이라는 키워드다. 행복을 찾는 일에는 반드시 문화적인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예술이 정착하여할 자리는 화려한 예술의 전시관이나 공연장이 아닌 우리 의 일상이다. 이 잡지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3남 매를 키우는 김엄마의 일상 속에서, 마감 되기

김 백 보현 편 집 장

이라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나- 아름

전에 등록하라는 친구 말에 요리하다 말고 등 록한 또 다른 김엄마의 일상 속에서, 1년 째 마

답게 살고자 하는 본성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먹고 자고 일하

을 오지라퍼로 활동중인 임엄마의 일상 속에서, 나만을 위한 요리를 먹

는 생활만으로는 삶이 어딘가 공허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것 때문이라

고 싶은 최엄마의 일상 속에서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좀 부족할 수 있

고도 본다. 기본적인 욕구들 외에 나는 두 가지 욕구가 삶을 풍요롭게

다. 그래도 그들이 마감을 마치며 ‘행복했다’며 ‘오랫만에 설레였다’고 말

만든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신성, 둘째는 예술성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해주어서 나는 두 배로 행복했다.

오히려 신성을 갖기 위한 접근성은 좋다. 교회나 성당, 절 등에서 새로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돈이 안 되더라도 조금은 자신의 삶이 이들처럼

운 입문자들을 열렬히 환영해주고 있지 않은가. 오히려 문제가 되는 건

아름다워지는 쪽을 택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잡지가 그런 삶을 결심

예술성의 발현이다. 우리는 예술이라고 하면 거창하게 생각하는 경우

하는 데에 조금이나마 도화선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 사람이 숨은 쉬

가 많은데 내 삶으로부터 거리가 생길 수 있는 모든 취미는 예술이라

고 살아야 하지 않는가.

생각한다. 배트민턴, 원예, 독서, 퀼트, 차 마시기, 영화보기, 산책, 나만

추신 제가 양성(姓)을 쓰는 것은 어머니의 많은 희생의 시간들로 자라온 ‘나’라는 사

을 위한 요리하기 등등.

람의 생성에 대한 지분이 아버지 어머니가 동등했으면 하는 이유 때문입니다. 일방

그리고 이러한 ‘숨쉴만한’ 문화적 여유를 갖는 것은 엄마들에게는 특히

적이고 폭력적인 육아의 희생에 대한 암묵적 동의의 시간들에 대해 어머니께 성(姓) 씨로나 그 시간들을 보상하면 좋겠습니다.

디뮤지엄에서는 2018년 3월 4일까지 세계적 디자이너들의 예술적 상상력과 플라스틱의 무한한 가능성이 만나 탄생한 디자인을 소개하는 <PLASTIC FANTASTIC: 빛·컬러·판타지> 전시를 진행한다. 플라스틱의 다채로운 변신을 지켜볼 수 있다. 더불어 이번 전시는 영유아와 어린이를 위한 전시연계 프로그램이 잘 갖추어져 있어 아이들과 함께 하기에도 좋다.

문의 070-5097-0020

0 4 0 5

촌지 전체내지-CC.indd 2

EDITOR'S LETTER

2017. 11. 29. 오후 11:55


사람들이 지나 다니는 아파트 보도블록 틈 사이에 자라난 새싹들, 스스로 자라나는 모습이 길을 찾는 엄마들의 작은 목소리 같습니다.

photo 김 민 경

촌 지

촌지 전체내지-CC.indd 3

2017. 11. 29. 오후 11:55


ES S AY

김(金)엄마의 늦둥이 키우기

대부분의 엄마들이 그렇듯 하루하루의 삶이, 그날이 그날이다. 맨날이라는 말이 영 재미없이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나의 성은 김(金)씨다. 그래서 나는 김엄마다.

내게는 3명의 아이가 있다. 고1과 중3인 딸, 그리고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이다. 대부분 3명을 어떻게 키우냐고 하는데 첫째는 첫 경험이라 매일 긴장하며 어리버리하게 키웠고, 둘째는 어리버리하게 익힌 경험을

editor 김 문 경

바탕으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키웠다. 셋째는 마냥 이쁘고 귀엽다. 그 래서인지 셋째는 지금은 이쁠때만 이쁜 아들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뭘 해도 용납이 되는 자유방임 꼬맹이다.

0 6 0 7

촌지 전체내지-CC.indd 4

ESSAY

2017. 11. 29. 오후 11:55


조양, 이쁜이, 영재. 아이들의 애칭이다. 기분이 좋을 때도 이 호칭이지

운동회의 방식도 많이 변했다. 예전에는 운동회가 저학년은 음악과 율

만 이상하게 화가 났을 때도 애칭으로 부르게 된다. 그래서 내가 화났

동이 섞인 아기자기한 활동으로 구성되었고, 고학년은 박진감 넘치는

을 때는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내 목소리의 톤과 울림으로 자신들의 거

경기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학사일정에 맞춘 형식적 운동회를 한다. 영

취모드를 알아차리고 슬그머니 사라진다. 두 딸은 격렬한 사춘기를 보

재네 학교도 5월에 소규모 운동회가 있었는데 하필 그날 미세먼지가

내고 현재는 다행히 하산중이지만 여전히 엄마 목소리가 큰지 자신들

보통과 위험의 경계에 있었다. 운동회를 할지 말지 엄마들끼리 모여서

의 목소리가 큰지 신경전을 버리는 일이 허다하다. 나도 곧 갱년기가 오

찬반 조사를 하는데 하지 말자고 손을 든 사람이 꽤 많아 결국 취소되

는데 확 돌변해 버려? 그러고 보니 어느 새 마흔 일곱이다.

었다. 아이들은 그냥 교실에서 놀았다. 젊은맘들은 소신 있는 의사표현

사실 두 딸들 키울 때는 여유가 없어 몰랐던 소소한 재미들을 늦둥이

에 민주주의적 성공을 이룬것처럼 의기양양했지만 늦둥이맘 김엄마는

를 키우며 많이 알아간다. 영재는 얼마 전부터 길거리를 지나가다 자기

이정도 날씨면 하는거지, 두루뭉실 사는거지 뭐, 하며 눈치 아닌 눈치

이름이 학원명에 많이 붙어있는걸 보고 뜻을 알게 되었다. ‘엄마, 내 이

를 보며 궁시렁 거렸다.

름이다. 여기도 있네’라고 신기해하기만 하던 아이가 영재가 ‘똑똑하다’

사춘기 두 딸과 수컷의 본성을 으르렁거리는 아드님과 씨름하다 보면

라는 뜻을 알게 된 것이다. 자기 이름값을 한다고 엉뚱하게 노력하는

어느새 하루가 저문다. 잠옷을 갈아입고 화장대 앞에 앉아 주름진 얼

모습이 마냥 귀엽기만 하다.

굴을 보며 새삼 내 나이를 새겨본다. 마흔 일곱. 제3의 사춘기라는 갱년

사실 영재를 초등학교에 보내놓고 일부러 누나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기가 다가온다. 언제 찾아올지는 모르나 나를 나답지 않게 만드는 폭

하지 않았다. 딸 둘에 아들이다 보니 아들 낳기 위해서 늦둥이를 낳았

풍우가 올 시간들이 말이다.

냐는 질문도 싫었고, 아이 둘을 키웠지만 교육에 그닥 열성적이지 않았

어느 날 영재가 그랬다. ‘엄마, 난 ‘오늘’을 처음 살아봐요.’ ‘응? 왜 처음

는데도 어느 학원이 좋은지 물어보는 것도 지겨웠다. 그리고 터울이 8

이지?’ ‘오늘은 항상 또 ‘새롭게’ 시작하는 거잖아요’. 그래, 그러고 보니

년이나 되다보니 내 조언이 그닥 도움이 되지 않을만큼 교육환경이 변

그렇다. 오늘 잠을 자고 보면 또 다른 내일이 오는 것이 당연하고 그 내

하기도 했다. 그리고 늦둥이는 어리광쟁이일거라는 선입견이 아이한테

일은 새롭기 때문에 설레일수도, 불안할 수도, 힘들 수도, 기쁠 수도 있

별로 좋지 않을 것 같아서 늙은 엄마의 외동아들인 척 생활하게 하고

다. 그러고 보니 내게도 내일의 오늘은 ‘새로운 오늘’이며, ‘처음 맞이하

싶었다. 이런 나의 치밀한 계획은 반년도 채 지나지 않아 결국 커밍아웃

는’ 오늘인 셈이다.

하게 되었지만 -누나들 사이에서 부디끼며 자란 탓에 쓰는 단어들이며

조양, 이쁜이, 영재 그리고 김 엄마는 그 처음의 오늘을 시끌벅쩍 잘 살

노래들이 올드(?)하다 보니 예민한 엄마들 사이에서 더 눈에 띠게 되었

아갈테다. 그 매일은 또 매일이 매일이고 그날이 그날이겠지만 언제나

던 탓- 여전히 불편한 시각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떠나 이

‘처음 맞이하는 오늘’이 될테니.

늦둥이 양육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건 엄마들 간의 세대차다. 영재가 초등에 입학한지 2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젊은 엄마들과 만나는 것은 부 담스럽다. 큰 아이 때는 아침마다 문방구에서 준비물을 사야 했었는데 지금은 학교에 가면 다 준비되어 있다. 나는 이것이 참 편하다고 느끼지 만 지금 엄마들에게는 당연한 환경인 것이라 참 세상 편해졌죠? 라고 얘기하는 순간 올드맘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생리학적으로 차이나는 외모, 말투에서 묻어나는 자신감들, 거침없는 행동들, 그리고 대화에

(위) 훌쩍 커버린 아이들. 사진 찍는걸 너무 싫어한다.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의 가족 발도장. (아래) 큰 딸 조양 5학년 때, 여름방학 숙제였던 과학 실험을 3남매가 함께하며 즐기는 모습.

사용하는 단어들까지도 나와는 다른 젊음이 느껴진다. 한번은 알림장 메모에 선생님이 체육복에 관한 이야기를 적어주셨는 데 해석여부에 따라 이틀 연속으로 입혀서 보내는 것인지 아닌지 아리 송했다. 고민하고 있던 차에 친구 엄마가 바로 선생님께 전화를 했다. 다른 엄마는 문자를 보냈다. 결국 체육복을 입히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 는데 이 엄마들은 선생님께 다음부턴 명확하게 알림장에 알려달라고 했다. 아, 나는 두 딸들이 학교 다닐 때 아이가 아파서 학교에 못 간다 는 말도 어려워 몇 번을 생각하고 전화기도 들었다 놓았다 했는데 이 젊은 엄마들의 용기란. 난 정말 구시대 사람이구나. 나이가 든 사람이 구나…. 싶었다.

촌 지

촌지 전체내지-CC.indd 5

2017. 11. 29. 오후 11:55


ES S AY

다시 공부한다는 것에 대하여 마감되기 전에 얼른 등록 해

editor 김 민 경

저녁을 준비하느라 한참 분주할 때 동네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이 추천해주는 책들을 읽는 재미도 좋았다.

다짜고짜 하는 말이 ‘마감되기 전에 얼른 등록해 봐. 같이 공부나 합시다.’

중학교3학년 아들 시험기간에는 공부하는 아들이랑 마주 앉아서 책을 읽고

마감이 임박하다는 말에 홀린 듯 하던 일을 멈추고 알려준 사이트를 찾아서

있으니 참 좋았다. 오랫만에 읽어보는 전문서적(?)이라 읽다가 말다가 시간이

신청을 했다. 신청이 완료되었다는 기쁜 문자를 받고 여유있게 신청한 강좌를

오래 걸리는 나와는 다르게, 아들은 내가 주문한 미술사책 4권을 휘리릭

보니, ‘도슨트 양성과정’이였다. 도슨트네? 순간 이건 아닌데 하는 마음이

읽어냈다. 역시 공부는 어릴 때 하는 건가하고 잠시 좌절하기도 했지만,

들었지만, 수강료도 저렴하고 해서 부담스럽지 않고, 친구랑 일주일에 한번씩

그래도 꾸역꾸역 어떻게든 다 읽어보리라 다짐한다. 혼자 남은 오전시간에

핑계삼아 점심이나 먹자하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독였다.

눕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다시 책을 손에 잡아본다.

사실 도슨트를 좋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전시장에 비싼 돈 주고 들어갔는데

엄마가 공부하는 모습이 아이에겐 가장 좋은 교육이라고 했던가라는 생각이

곳곳에 감시하듯 서 있는 스텝들이 매의 눈으로 관람객을 감시하며, 아이랑

드니 왠지 뿌듯하기까지 했다. 맨 뒷자리 구석에 앉아있던 우리는 어느덧 수업

그림보며 이야기라도 할라치면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주어서 툴툴거리고 있을

시작 30분 전에 도착하여 기다리고, 맨 앞 줄 선생님 코 앞에 앉아서 열심히

때, 어김없이 나타나는 도슨트 무리들. 사람들을 몰고다니며 떠들어대는

듣게 되었다.

모습을 보면서 저들은 돈을 더 내서 떠들어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 강의는 참 재미있었다. 같이 수업 듣는 사람들을 둘러보니 연령대도

왠지 그들에게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내곤 했던 나였기에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다양한 엄마들이였다. 수업 시간에 노트 필기를 가장 열심히 하는 할머니

첫 수업 시간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점심은 뭐 먹을까하는 생각을 하며 갔다.

수강생을 보면서 참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어찌보면 난 늦은게 아니라 다시

오랫만에 공부하는 거라 살짝 떨리는 마음도 있었고, 부담스럽기도 해서 맨 뒷

공부하기 가장 좋은 시기라는 생각도 든다,

자리 구석으로 자리를 잡았다. 무슨 수업인지 어디 들어볼까하는 심사였다.

아이가 어릴적에는 익숙하지 않은 결혼 생활과 결혼으로 인해서 달라진

선생님은 일단 마음에 들었다. ‘젊고 스타일이 좋네’, ‘오! 공부도 많이 하셨네’,

상황에 적응하며 아이를 키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이가 여섯 살에 유치원에

‘박사님이라니 멋지다’, ‘나도 프랑스에서 살아보고 싶다’ 등 그런 저런 딴

다니면서 비로소 나만을 위한 오전 시간이 확보되었다. 너무 좋아서 만세를

생각을 하는 내 머릿속에 딱 들어오는 말이 있었다.

불렀지만, 오랫만에 얻은 자유라서 그런지 우왕좌왕 이도저도 아니게 시간은

‘‘도슨트는 단순하게 작품 제목이나 작가, 제작 연도 같이 검색하면 나오는

흘러갔다. 학교에 입학하고는 학보모 사회라는 새로운 관계들 속에서 또

그런 지식만을 전달하는 게 아니고, 작품과 관객을 연결하는 영매가

헤매이기 시작했다. 아이들 교육에 대해 고민하느라 시간은 계속 휘리릭

되어야합니다. 스토리텔러로서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지나갔다. 아이가 중학생이 되고, 둘째는 늦게 낳아서 그저 이쁘다고만 하며

‘그래 그런거였구나. 영매라니 오! 멋진걸!’ 그렇게 선입견이 깨지면서

키우다보니 내 시간은 더 많아졌지만, 그 시간들을 뭘로 채워야할지는

도슨트라는 영역에 점점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잘 알지도 모르면서 싫다고만

막막했다.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오전에 만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수다를

생각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나누는 시간도 좋았다. 하지만 늘 마음 한 구석은 허전했다. 오십이

선생님이 보여주는 그림들을 보면서 갑자기 생각이 났다.

가까워지니 어느덧 노후도 걱정이고, 아이들 다 자라면 난 무얼 하고

참! 나 미대 나왔는데….

살아야하나가 늘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동안 엄마로만 살아온 시간이 너무 길어서 잊고 있었던 나 자신. 그리고

그러던 차에 우연히 듣게 된 강의가 내 마음을 설레게 했다. 무언가를 해 볼

집에만 있다보니 점점 자신감은 줄어들고, 누가 그림이라도 그려보라고

용기가 생겼다고 해야할까. 그동안 나에게 소홀했던 시간을 만회하고, 나

할까봐 일부러 미대나왔다는 말도 하지 않고 지냈다. 사실 내 자신이

자신을 돌보는 시간을 확보 해야겠다.

생각해도 내게 그런 시절이 있던가 의아할 때도 있었다.

언젠가는 은발을 흩날리며 활동할 날이 오리라.

아련하게 기억나는 그림이 나오면 반갑기도 했다. 어렵다고만 생각했던

어느덧 10회 차의 강의가 끝나고 다가오는 실기 평가가 걱정되고

예술사학을 쉽고 재미있게 강의하시는 선생님이 참 멋있었다. 나도 손 놓지

부담스럽지만, 무언가 다시 공부하는 즐거움을 가르쳐 준 시간이 끝나간다는

않고 계속 일을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왠지 마음이

것이 못내 아쉽다. 그래서 우리는 요즘 심화과정을 열어달라고 졸라대는

아련하면서도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

중이다. 오전에 엄마들과 하는 브런치가 지겨울 때 한번 쯤 우리 동네

오랫만에 하는 공부는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어릴적 하는 공부는 여건은

문화센터에는 어떤 강좌들이 있는지 찾아보자. 친구와 함께라도 좋고

좋지만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면, 나이가 들어하는 공부는 마음으로 하는

혼자라도 좋겠다. 홈쇼핑 쇼호스트가 마감이 임박했다고 하는 말은

공부다. 너무 좋아서 하는 공부가 뭔지를 알게 해 준다. 비록 돌아서면

흘려들어야겠지만, 친구가 같이 공부하게 마감되기 전에 등록하라는 말은

잊어버릴지라도.

놓치지 않아야한다. 기회는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일이니깐.

0 8 0 9

촌지 전체내지-CC.indd 6

ESSAY

2017. 11. 29. 오후 11:55


PICTURE BOOK

그림 책방을 하고 싶던 엄마가 있었다. 팝업 스토어 ‘엄마의 그림책 살롱’

editor photo

홍 민 선

짧지만 즐거웠던 한여름의 그림 책방 이야기

PICTURE BOOK

촌지 전체내지-CC.indd 7

촌 지

2017. 11. 29. 오후 11:55


PICTURE BOOK

은 와주셨다. 세상 엄청 큰 일 한 것처럼 뿌듯했다. 책방을 한다는 게 가만 앉아서 책보고 노는 일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거 1 책상자를 몇

1

개씩 이고 지고 나르고, 책장의 책을 빼고 넣고. 꼬박 하루를 일하고 드디어 오픈!

엄청 ‘노가다’다. 육아로 단련된 팔뚝이지만, 그래도 책 상자는 꽤나 무 거웠다. 또 한 번 생각했다. ‘서점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그렇게 땀 뻘뻘 흘려가며 문을 열었다. 사람들이 책을 과연 살까? 내 친구들 지갑만 털리는 것 아닌가? 그래도 책은 꽤 팔렸다. 숫자로 말하 자면 1백30여 권 중에 90여권을 팔았다. 물론 내 지인들이 책 많이 사

그림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여느 부모들처럼 아이를 키우게 되면서

갔다. 그래도 정말 신기했던 건, 어디선가 홍보물을 보고, SNS를 보고

부터다. 어릴 적에는 요즘처럼 좋은 그림책도 별로 없었고, 어른이 되어

찾아오는 분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일부러 찾아와서 정말 기뻐하고

서는 글이 가득한 책을 보는 게 일이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에는

좋아하며 함게 책 이야기, 아이 이야기를 나눴다. 이 책은 이런 게 재밌

사실 읽을 책이라는 게 그림책이니까, 더 열심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

고, 저 책은 저런 점이 인상적이라고 권하면 그걸 사갔다. 처음엔 너무

런데 세상에, 멋지고 재밌는 그림책이 이렇게나 많다니! 반대로 추천도

나 신기했고 나중엔 좀 책임감이 든다고 해야 할까. 처음 만난 사람한

서라고 읽었는데 별로인 책도 생각보다 많았던 게 사실이다. 그냥 둘이

테는 말을 잘 못 붙이는 성격인데 그렇게 쉽게 이야기를 나눈 게 나 스

서만 읽고 있기가 아까웠다. 언젠가 책방을 하는 게 꿈이었는데, 서점

스로도 놀라웠다. 그리고 자리를 만드니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겼

열풍을 타고 나도 한번 그림 책방을 열어볼까?

다. 연락한지 몇 년이 지난 지인도 SNS를 보며 궁금하다고 찾아오고,

볕 잘 드는 1층에서 아이들이 미끄럼틀도 타고 장난감도 가지고 놀고,

비슷한 취향의 사람을 만난 것 같아 좋다고 하는 분들도 만나서 함께

그러다가 그림책도 보면서 뒹굴 거릴 수 있는 책방을 꿈꿨다. 물론 한쪽

다른 활동을 할 수도 있게 되었다. 꽤 먼 지역 2

엔 어른들이 볼 수 있는 책도 있고 엄마들의 작업공간도 있다. 이런 공

에서 아이와 함께 찾아온 엄마도 있었다. 찾

간이라면 아이도 나도 둘 다 만족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정말 꿈이

아왔던 분들 한 명 한 명 생생히 기억난다. 모

다. 순진하게 동네에 적당한 곳을 알아보던 나는 어마어마한 임대료에

두 다 기억 날 만큼 그렇게 많이 찾아오지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당장 생활비도 겨우 버는 마당에 그렇게 안

않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팔린다고들 하는 책 파는 일을? 내가 건물주가 아니고서야 하고 싶다

참, 애초에 내가 확인하고자 했던 것, ‘책이

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래도 궁금했다. 정말 책이 그렇게 안 팔릴

팔리나?’에 대한 답이 남았다. 책은 예상보다

까도 궁금했다. 실험만 잠깐 해보는 것이라고 자위하는 마음으로 시작

더 잘 팔린다. 그렇지만 그 정도 팔아서는 책방 임대료는커녕 밥값도

했다. 그래서 팝업스토어로 열었다. 딱 정해진 기간만 해보자. 일주일

못 채울 것이다. 밸류가든을 통해서 받은 지원금을 운영비에 보태어도

만. 그리하여 탄생한 것이 그림책 팝업스토어 ‘엄마의 그림책 쌀롱’이었

적자였으니, 오히려 책을 파는 데 돈이 든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

다. 줄여서 ‘엄그쌀’이라고 불렸다.

이다. 그래도 이번 여름, 나는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지금껏 살면

간판이 없으니 포스터를 만들어 붙이고, 사람이 안 올까봐 일자별로

서 누가 시키지 않고 내가 좋아서 한 일이 따져보면 그렇게 많지 않은

프로그램을 빼곡히 짜 넣었다. 프로그램 짜고, 강사 섭외하고, 팜플렛

데, ‘엄그쌀’이 바로 그런 일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또 이런 시간을 만들

만들고, SNS 홍보까지 한꺼번에 몰아치려니 정신이 없었다. 회사라는

수 있을까. 책 팔아서 책방 유지는 어렵다는 걸 확인했으니 어떻게 하

곳에는 발 한 번 걸쳐본 적 없지만, 왜 담당부서가 있고, 담당업무가 있

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먹고 살 수 있는지 열심히 머리 굴려봐야

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내가 이걸 왜 한다고 그랬지 싶었다. 아트 피크

겠다. 미래의 책방 주인은 아직 폐기하지 않은 꿈이다.

닉 대표의 많은 협조와 조언과 섭외가 없었으면 아마 반도 못했을 것이 다. 뒤늦게 강의를 부탁드렸지만 흔쾌히 응해주신 선생님들도 날 살려 주셨다. 알고 보니 인디자인을 다룰 줄 알았던 남편까지 동원해 새벽까 지 홍보물을 만들었다. 정말 오랜만에 남편의 쓸모를 느꼈다. 만들고 보 니 홍보가 문제다. 이렇게 해놨는데 아무도 안 오면 어떡하지? 친구들, 이웃사촌까지 지인 총동원이다. 그 와중에 모르는 분들이 프로그램을 신청하고 문의를 하면 신나고 설레었다. 사람들이 반응하는 게 이런 거 구나, 사실 남들이 보면 대단한 일도 아닌데 참 기분이 좋았다. 강좌에 한 두 명만 오면 어떡하지 했는데 강좌마다 이렇게 저렇게 여섯 분 이상

3 2 강연을 듣고 있는 엄마와 아이들. 아이와 함께해도 눈치보이거나 불편하지 않은 자리를 꼭 만들고 싶었다. 3 어렵게 섭외한 프랑스 인형극 작가 나누슈의 그림자극 공연과 워크샵. 아이들이 그림자놀이를 하며 즐거워했다.

4 4 누구든 오면 그림책 읽어주는 깨알같은 서비스도 제공.

1 0 1 1

촌지 전체내지-CC.indd 8

PICTURE BOOK

2017. 11. 29. 오후 11:55


EXERCISE

일상의 여유, 산책 산책은 말 그대로 휴식을 취하기 위해 느긋하게 걷는 일이다. 그러다 우연히 마주하게 되는 사람과 풍경이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해준다. 즐거운 방황의 시간들을 공유한다.

EXERCISE

촌지 전체내지-CC.indd 9

촌 지

2017. 11. 29. 오후 11:55


EXERCISE

작지만 알찬 ‘칸트의 산책길’ 공원 전경

우리동네 공원 ‘칸트의 산책길’, 내 마음을 톺아보기 editor photo

임 민 하

톺아보다: ‘샅샅이 더듬어 뒤지면서 찾아보다’라는 뜻으로 ‘조금 더 깊이 있게 들여다

진자)라고 부르더라. ‘아! 내가 그랬구나!’ 나도 모르던 나를 알게 된 순

본다’는 의미로 바른말 고운말 사용 장려 후 빈도 있게 쓰이는 단어다.

간이다. 멍한 마음에 몇 년간 바빴던 과거를 돌아보게 되었고 내 몸은

내 마음을 산책하는 즐거운 방황이 시작되다

갱년기의 몸으로 변신해 가는데, 이런 몸을 이끄는 내 마음 구석을 톺

2017년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올 해 가을은 쉴 틈 없이 1년을 달려온 나

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에게 쉬엄쉬엄 살라며 신호를 보내온다. 나는 두 명의 초등학생을 둔 평

내 마음 구석을 산책하기 위해 난 어디론가 휴식할 곳이 필요했다. 그래

범한 엄마로, 10년 남짓 시부모님 집에 함께 사는 며느리로 살고 있다.

서, 조용히 떠났다.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는 마지막 날 고속도

그러다, 4년 전부터 마음공부와 아이들의 내적 역량을 키워주는 교육

로를 달리며 오랜 시간 창 밖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내 마음이 건조했

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그리고 이러한 역량은 학원이 아닌 마

던 것일까?’ 가을 단풍에 감탄해보려 표정관리에 들어가는데 ‘아~ 이

을과 지역사회가 함께 도와야 한다는 확신을 갖고 느슨한 배움공동체

런! 하나도 곱지가 않다.’ 올핸 유난히 생생한 빛깔이 없는 듯 했다. 간혹

를 꾸리기 위해 집밖을 나서게 되었다. 최근 1년 동안은 관련 모임, 강

보란 듯이, 빛깔을 뽐내는 나무들이 눈에 띄긴 했지만, 단풍들의 빛깔

연, 사람들을 만나고 크고 작은 활동들에 참여하며 매우 가열차게 달

이 ‘올핸 왜 유난히 칙칙한 것일까?’ 한창 아름다워야 할 절정의 시기에

려왔다. 주부가 아닌, 자원봉사자를 자처하고 다녔다. 그러다가 최근,

한 톤 다운된 느낌은 마치 가뭄에 쩍 갈라진 논바닥을 연상케 했다. 난

가정 밖 사회(마을)에서 나의 존재 값이 매겨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충청도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기사 아저씨께 말을 건네 보았다.

서울시 협치학교라는 곳에서 강의를 듣는 중, 개인 쌈짓돈 써가면서 마

“아저씨, 운전하시면서 가을 되면 단풍 구경 맘껏 하시고 좋으시겠어

을 교육 관련 활동을 하는 나 같은 아줌마를 자발적 오지라퍼(마을촉

요?”

1 2 1 3

촌지 전체내지-CC.indd 10

EXERCISE

2017. 11. 29. 오후 11:55


“어유~ 말마유. 차가 막혀서 답답혀유~.

양재천 북측 길(강남에서 서초로)을 따라 영동 1교를 향해 걸어가다 보

단풍 귀경 간다구 죄덜 차가지고 나와설랑 주말만 되믄 아주 꽉꽉 맥

니, 드디어 공원처럼 꾸며진 작은 섬이 보였다. 천 따라 기다랗게 놓여

혀유. 올핸 가뭄이 심해서 단풍이 뜨뜻 미지근혀유~”

있는 의자들, 운동기구들, 걷는 길들에 싫증날 무렵, 작지만 아담하게

아! 그렇구나. 아저씨도 올해 단풍이 예쁘지가 않다고 한다. 우리는 찌

움푹 들어간 공간이 아늑하게 느껴졌다. 집에서 양재천을 따라 25분

찌뽕이다. 이후로 하던 일들을 잠시 내려놓고 난 내 마음에 쉼표 한잔

을 천천히 걸었더니 도착하였다.

찍기 위해, 동네 카페도 가보았다. 늦은 밤 홀로 책상에 앉아 ‘리딩으로

섬에 들어가려면 묵직한 철제로 만든 ‘사색의 문’을 지나야 한다. 살짝

리드하라’라는 인문 서적을 펼쳐 들고 내 마음을 리드해 보았다. 서초구

흔들거리는 다리가 나를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의 마음으로 바꿔놓는

에서 주최하는 ‘뇌 과학’ 강의도 들어보고 마음 닿는 곳마다 잠시 정착

다. 흔들거리는 다리가 어찌나 재미있던지 연거푸 5번을 왕복했다. 다

해서 표류해 보았다. 아이가 놀 듯 마음이 내키는 대로 하였기에 즐거

리 건너에 사랑스러운 디자인의 블라우스를 입은 독일의 철학자 ‘임마

운 방황이었다.

누엘 칸트’ 동상이 벤치에 앉아 있었다. 블라우스가 참 예뻤다. 저 시대

이런 저런 시도 끝에, 오랜 만에 양재천 산책을 나서고 싶어졌다. 양재

에는 남성들의 미적 센스가 여성만큼이나 민감했었나 보다. 책을 보며

천에 대한 즐거운 추억이 떠올랐다. 올 봄, 가족들과 함께한 휘황찬란

의자에 앉아 있는 칸트 동상의 책 위로 글씨가 빼곡히 적혀있는 나의

한 야간조명 벚꽃축제 구경과 여름 마을학교 때 아이들 보조교사로 산

수첩을 얹어놓고 싶었다. ‘칸트는 도대체 뭘 보고 있는 걸까?’ 칸트의 책

책을 따라 나섰던 즐거운 기억이 선명하다. 계절 따라 양재천을 산책

에는 글씨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없었다면 나는 정말 그렇게 했

나간 추억 속에서 이번엔 홀로 가을을 즐길 차례가 되었나 보다. 때마

을 것이다. 때마침 자전거를 세워두고 칸트 옆에 한 아저씨가 앉지 않았

침 서초구에서 양재천에 ‘칸트의 산책길’을 새로 조성했다는 뉴스 소식

다면 말이다. 아직 철이 덜 들었나 보다. 나의 장난끼는 어릴 때나 지금

을 접했다. 호기롭게 양재천으로 향했다.

이나 똑같다.

우리동네 공원 ‘칸트의 산책길’의 묘미

행복을 찾는 마음의 시간들

‘칸트의 산책길’은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1724~1804)가 날마다

사진기를 들고 이 곳 저곳을 찍던 나는 끊임없이 오고 가는 많은 사람

산책을 하며 몸과 마음을 치유했다’는 점에 착안해 그가 매일 걸었던

들 속에서 책도 요가 매트도 꺼내 놓지 못하고 집을 나설 때 세웠던 계

쾨니히스베르크 산책로를 축소한 것이라고 한다. 예전엔, 하천 퇴적물

획은 상상만으로 끝내야 했다. 그러던 중, 칸트가 남긴 명언이 새겨진

만 쌓여서 수풀만 무성한 채 방치되어 있던 작은 섬이 사색공간으로 거

글 판이 마음에 훅 들어왔다. 명언들을 찾아 읽다 보니 양재천을 바라

듭나 마음산책을 떠나고 싶은 아줌마의 호기심을 붙잡기에 충분했다.

보는 ‘생각 의자’에 잠시 머물러 앉게 된다. ‘행복의 원칙’에 관한 명언이

‘과연 나도 칸트처럼 몸과 마음이 치유가 될 수 있을까?’ 책도 읽을 수

내 생각을 붙잡는다. 칸트는 ‘행복의 원칙’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있고, 명상을 할 수 있는 나무로 된 난간도 있고, 요가도 할 수 있다고

“첫째, 어떤 일을 할 것.

하니 그 섬에 가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볼 참이다. 아이들이 학교에 간

둘째, 어떤 사람을 사랑할 것.

짬 시간을 틈타 배낭에 주섬주섬 책, 요가 매트, 음료수, 카메라 등을

셋째, 어떤 일에 희망을 가질 것.”

챙겨 넣었다. 갑자기 날씨가 추워져 내의에 겨울 외투를 입고 나섰다.

‘아! 이 글을 보기 위해 이곳에 왔나 보다.’

바람이 무척 세차게 불었다. 드라이로 차분히 단장하고 나온 내 머리는

햇빛에 반짝이는 양재천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 의자’에 앉으니, 정리되

순식간에 사자 갈퀴로 바뀌었다. 겨울 바람도 아닌 것이 무척 얄미웠

는 기분이 들었다. ‘아마도, 칸트의 명언이 내 마음을 정리해 주는 것이

다. 우아하게 산책 나오고 싶은 아줌마의 마

1

2

음이 잠시 까칠해졌다. 이내, 세찬 바람에도 우아한 자태를 잃지 않고 바람과 함께 흔들리 는 꽃들을 보면서 한 수 배운다. ‘와, 바람과 함 께 춤을 추면 되는구나!’ 바람에 흩날리는 내 머리카락은 군집을 이루며 뻣뻣하게 흔들렸지 만, 나는 우아하다고 스스로 최면을 걸고 있 었다. 그러면서 마음 한 켠엔 바람이 세차게 불 땐, 드라이로 절대 머리카락에 힘주고 나오 1 잔잔한 양재천을 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바라보며 앉는 ‘생각의자’.

2 나의 시선을 멈추게 한 칸트가 남긴 명언글. 촌 지

촌지 전체내지-CC.indd 11

2017. 11. 29. 오후 11:55


산책하다 만난 사람과 풍경 사랑스러운 디자인의 블라우스를 입은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동상.

editor photo

김 문 경

었을까?’

1 옥수수 아저씨 : 그 여름이 기억날 때

주위의 학부모들로부터 ‘자기 자식 돌보고 교육에 힘쓰기도 힘든 세상

할아버지란 호칭 보단 아저씨라 불러주는 것

인데, 어찌 남의 아이들까지 챙길 수 있겠나?’하는 메시지들을 들을 때

이 좋다고 한다. 일주일에 한번밖에 만날 수

마다 ‘난 잘 살고 있는 것일까?’하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없는 옥수수 파는 아저씨, 비록 버젓한 가게

그리고, 움직일 용기가 나질 않는다. 하지만, ‘칸트의 산책길’은 1. 나 자

가 아니고 손님들이 사장님이라 불러주지

신에 대해 돌아보라(Think about me) 2. 타인에 대해 생각하라(Think

않아도 행복하시다고 하신다. 우리 동네에

about you) 3. 우리와 사회에 대한 생각의 시간을 갖자(Think about

서 옥수수를 파시는지 벌써 13년이나 되었

us) 등 3개의 메시지를 던진다. 이런 메시지는 내 마음 깊은 곳의 심연

다고 한다. 이리도 오래 되셨구나. 깜짝놀랐

을 울려준다.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칸트가 남

다. 참 무심히 지나다녔구나...여름에는 집에

긴 명언 글로 내 마음 굳히기에 들어간다.

서 직접 기른 노란옥수수를 손수 손질해서 삶아 파시고 지금처럼 찬바람이 불땐 알록

“한 가지 뜻을 세우고, 그 길로 가라.

이를 농협에서 사다 파신다고 한다.

잘못도 있으리라, 실패도 있으리라.

쫄깃쫄깃 찰지고 달큰하다. 비결을 물어보니

그러나 다시 일어나서 앞으로 나아가라,

“많이 푹 삶는 것이 비결이에요.” 하시며 그냥 웃으신다. 집은 강원도 횡

반드시 빛이 그대를 맞이할 것이다.”

성인데 오랜 세월 이 동네에 오다보니 정 드신분들도 많다고 한다. 그렇 게 알게 된 분들이 여행차, 놀이차 횡성 동네에 놀러왔다가 아저씨 집

나를 돌아보고 내 마음의 행복을 다독이며 나를 챙기려 이곳에 왔는

에 들려 밥도 먹고 다방커피도 마시며 이야기 나누고 갈때가 뿌듯하고

데 ‘홀로 참 잘 찾아왔구나!’ 머리로 읽어 내려가는 한 권의 책보다 가슴

행복하시다한다. 오늘도 알록이 4개 1봉지 5천원에 알록달록 아저씨의

으로 느끼는 소중한 체험을 한 듯 하다. 이런 공간에 나와서 고요하게

행복을 담아 우그적우그적 일주일을 기대리며 사랑을 먹는다.

내 마음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희망과 용기가 생겨난다. 행복에 대한 사색으로 피로한 몸과 마음을 다시 추스르며 칸트와도 통한 내 마음에

2 기도하는 엄마 : 간절히 원합니다

기쁨 한 가득 채우고 돌아간다. 눈 덮인 겨울 산책은 어디서 어떻게 하

11/26 이날을 위해 1년을 노력하고 한번 더 최선을 다하고 혼신을 다해

게 될지 기대하면서 차가워진 손과 몸을 녹여줄 인근의 우아한 카페를

꿈에 대한 미래에 대한 큰 발도장을 찍는날이다. 바로 대학수능능력시

찾아 나섰다. 이런 날은 역시 따뜻한 음료가 최고다. 이제는 바람에 자

험이다. 아빠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엄마는 온몸으로 기도를 한다. 시험

연스레 흔들리는 내 머리카락이 진심으로 우아하게 느껴진다. 이제 진

을 치루는 수험생보다 우리들 엄마의 정성과 간절한 기도의 마음이 온

심으로 바람과 함께 흔들렸던 아까 그 꽃이 된 듯 하다.

대지에 묻어나는 날이다. 엄마의 표정에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알 수 있다. 자녀의 안부를 묻는 것조차 너무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용 기의 한마디 “예지 건강하죠? 화이팅!” 그랬더니 활짝 웃으신다. 한 번 의 실수가 있었기에 딸은 더 초조하고 다시 도전하는 것이기에 지켜보 는 엄마는 더 애처롭다고, 재수생 딸이 상처받지 않고 낙오자가 아닌 웃을 수 있는 그런 날이 되도록 간절히 간절히

양재천 변 인근의 ‘캐틀앤비’ 카페.

바란다고. 나도 조심히 기도해본다. 예 지, 화이팅!

1 4 1 5

촌지 전체내지-CC.indd 12

EXERCISE

2017. 11. 29. 오후 11:55


EXERCISE

3 동네 거리 : 42방배사이길

다. 이곳 황산(휘주)의 건축문화

집에서 멀지 않은 골목 42방배사이길. 요즘 심심찮게 새로운 가게들이

를 보면 자녀교육에 대한 관심의

많이 생겨나서 오랜만에 산책 겸 구경을 나섰다. 역시나 못보던 간판들

깊이가 바로 보인다. 명·청나라

이 많이 생겼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니 지리를 잘 아는 사람처럼 보였나

때의 건물로써 지붕은 먹물의 검

보다. 어떤 낯선 이가 “여기는 왜 문이 닫혀있어요?” 한다.

정, 벽은 앞뒤좌우 종이를 표현한 흰색이다. 다른 의미론 사람의 머리

잘 모르겠다고 말을 얼버무리자 새로 이사를 왔는데 동네가 궁금하다

를 기와에 비유하고, 흰 벽은 티 없이 깨끗한 정신과 마음을 의미 한다

며 문 닫힌 곳이 반, 문 연 곳이 반이라며 웃는다. 그 말에 동네주민으

고 한다. 아이들은 이런 사조 속에 열심히 열공중인지 거리는 한산하

로서 아는 만큼은 아는 척 해보자 싶어 가이드를 자청했다.

다. 그렇게 걷고 있는데 어디선가 “자기야 조심해, 자기야 천천히 걸어”

문화의 거리 사이길은 말 그대로 건물과 건물사이의 길이다. 시작은 도

소리에 할머니의 까르르 웃음 소리가 들려온다. 이웃 나라에서 만난 정

로명(번지)이 42길이여서 기억하기 좋게 큰 의미의 사이길이 되었다. 함

기호 할아버지다. 한 걸음 한 걸음마다 노부부의 묵은 정이 느껴진다.

지박 사거리와 서래초등학교 사이의 작은 골목이다. 학교가 있다 보니

일 년에 한 번은 꼭 해외여행을 다닌다는 정기호 할아버지가 가이드 못

등굣길 차들로 인해 분주하다 그러나 6시만 넘으면 세상 조용한 골목

지않은 입담이라 더불어 심심찮게 산책 할 수 있었다. 4세대 주석으로

이다. 브런치카페 더페이지를 지나면 넥센 공용주차장이 있고 리빙편

10년 집권한 후진타오가 자신의 고향인 황산(휘주)을 중국 제1풍경 명

집샵 루밍, 사랑방 같은 미용실, 자동차 정비소, 전통 프랑스 빵집 르블

승구로 지정하였고 곧이어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한다.

랑제, 동네 목욕탕 백선탕, 오가닉 유아용품, 퀼트 꽁트 공방, 수제 가

이곳은 중국의 전설적 명의 화타의 고향으로도 유명한데 화타는 조조

방집, CU편의점, 부동산, 42카페, 제일 오래된 세탁소, 향수 공방, 손

를 치료했으나 조조에 의해 죽음을 맞이 했다고 한다. 그러나 후에 조

뜨개 공방, 가죽 공방, 목공예 공방, 베이커리 공방, 피아노 학원, 영어

조의 아들이 크게 아프게 되는데 화타를 죽인 것을 그때 크게 후회 했

학원, 요가 학원, 반찬 가게, 도자기 공방, 자전거 가게, 분식집, 42길의

다고 한다. 역시 인생은 새옹지마다. 이야기를 듣는 데 비가 내린다. 이

원조 갤러리 레스토랑 켈리, 그리고 개인 전시를 할 수 있는 소소한 갤

제 슬슬 들어가서 마감을 마무리해야지. 이야기 감사했습니다. 이웃나

러리들은 모두 2층에 있다. 없는 것 빼고 그럭저럭 아기자기 생활에 필

라에서 만난 반가운 이웃들, 건강하세요!

요한 건 다 있는 거리다. 공방위주의 거리다 보니 깊은 속내는 알 수 없 지만 문이 닫혀 있는 곳들이 최근에 늘면서 조금씩 뒷골목 같은 느낌 이 난다. 게다가 공방이 하나 둘 없어지고 점차 옷가게들이 늘어 난다. 또 다른 문화의 거리로 바 뀌는 과도기의 거리가 되어가고 있어 한편으론 씁쓸해진다.

4 중국황산 : 이웃나라의 풍경 마감중에 가족여행이 겹쳐 온 이곳에서도 산책하다 만난 사람 들의 마감이 아른거린다. 그러다 ‘에라 모르겠다. 노세 노세 젊어 서 노세’를 외치며 황산으로 산 책을 나섰다. 이곳의 옛 이름은 휘주, 현재는 황산으로 계명된 작고 한적한 도시다. 황산은 시 내나 외곽이나 검정기와에 흰 벽의 2층집을 흔하게 볼 수 있

촌지 전체내지-CC.indd 13

2017. 11. 29. 오후 11:55


FOOD

나만을 위한 점심상 1. Healthy One-Bowl Meals

editor photo

김 민 경 김 문 경 최 은 영

Tip 1. 퀴노아는 현미로도 대체 가능합니다. 현미를 사용할 경우, 넉넉히 물을 부어 삶되, 밥 정도의 찰기는 생기지 않도록 살짝 설 익혀 준비합니다. 현미를 사용할 경우 드레싱에 간장을 약간 추가하면 풍미가 더 좋아집니다.

2. 썰어 둔 양파와 오이는 소금을 뿌려 약 10분 정도 절였다가 꼭 짜서 사용하면, 시간이 지나서 물기가 생기는 것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재료 퀴노아 1/2 컵, 아보카도 1/2개, 브로콜리, 오이, 양파, 파프리카 1/4개씩,

3. 소개된 재료 외에도 당근, 샐러리, 루꼴라, 올리브 등 각종 자투리 채소와 연어, 두부, 닭가슴살 등 기호에 맞는 단백질 식품을 활용하여 퀴노아볼을 만들 수 있습니다. 모든 재료와 드레싱을 섞어 유리 용기에 냉장 보관하면 2~3일 정도까지 두고 맛있게 먹을 수 있습니다.

방울토마토 한 줌, 계란 2개, 병아리콩

1/2컵, 검은콩 1/4컵 •드레싱 : 올리브오일 1/3컵, 발사믹식초 1/4컵, 바질, 오레가노 등

퀴노아 볼

각종 허브 1t, 레몬즙 (레몬주스) 1T, 소금과 통후추 간 것 약간

만드는 법 1 샐러드에 넣을 병아리콩과 검은 콩은 하룻밤 불렸다가 소금을 넣고 약 1시간 정도 푹 삶아 식힌다.

2 퀴노아를 물에 씻은 후 퀴노아 양의 2배의 물을 붓고 끓인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불을 약불로 줄이고

10~15분 정도 끓이며 중간중간 저어준다. 불을 끄고 뚜껑을 덮은 채 약 10분간 뜸을 들인 후 체에 담아 식힌다.

3 아보카도는 껍질을 벗기고, 길게 반으로 갈라 씨를 빼낸 후, 0.5cm 두께로 길게 썰어준다. 브로콜리는 한입 크기로 잘라 물에 살짝 데친다.

4 방울토마토와 오이는 한입크기로 썰어 준비한다. 양파와 파프리카는 잘게 썰어 2의 퀴노아에 섞어준다.

5 계란은 취향에 따라 삶아서 한입 크기로 자르거나 프라이 한다.

6 퀴노아 위에 취향에 손질한 야채, 계란, 콩 등을 얹고 드레싱을 곁들인다.

1 6 1 7

촌지 전체내지-CC.indd 14

FOOD

2017. 11. 29. 오후 11:55


재료 밥 1공기, 낫토 1팩, 마 80g, 쪽파 1/2대, 계란 1개 •소스 : 간장 3T, 참기름 1T, 겨자 1/4t, 통깨 약간

만드는 법 1 마는 껍질을 벗겨 강판에 간다. 익힌 마를 선호하면 한입 크기로 썰어 참기름에 살짝 볶아 준비해도 좋다.

2 쪽파는 잘게 썰고, 계란은 노른자를

낫토 마 덮밥

분리하여 준비한다.

3 낫토는 끈적임이 생기도록 젓가락으로 살짝 저어 준비한다.

4 밥 위에 1, 2, 3의 재료를 얹어 완성하고 소스를 곁들인다.

2. Open Sandwiches 재료

1 아스파라거스, 베이컨, 올리브, 발사믹소스 2 바나나, 블루베리, 허브 버터 3 오이, 햄, 새싹채소, 양파, 허브 버터 4 달걀스크램블, 베이컨, 양상추, 겨자소스, 후추

5 훈제연어, 마스카포네 치즈, 새싹채소, 후추

6 참치캔, 양파, 파프리카. 올리브, 양상추, 마요네즈

7 아보카도, 방울토마토, 요거트소스 8 딸기, 블루베리(건포도), 리코타치즈 9 키위, 견과류, 누텔라크림 •겨자소스 : 마요네즈 10T, 머스타드 1T, 레몬 즙 1T, 꿀 or 올리고당 2T,

1

2

3

소금, 흰 후춧가루 약간 •요거트소스 : 떠먹는 요거트 5T, 연유1T, 식초1T or 레몬주스 •발사믹소스 : 발사믹식초 1T, 올리브오일

2T, 올리고당 or 꿀 1T 허브 버터 만들기

1. 버터를 상온에 두어 부드럽게 만든다. 2. 바질, 로즈마리, 타임 등의 허브를 씻어 물기를 말린 후 잘게 다진다.

4

5

6

3. 버터, 허브, 후추, 다진 마늘을 넣고 잘 섞는다. 4. 종이호일로 감싸 김밥처럼 동그랗게 말아서 냉장고에 넣어 둔다.

5. 버터가 단단해지면 필요한 양만큼 잘라서 사용한다.

Tip 1. 집에 있는 재료중 아무거나 다 괜찮아요. 2. 몇가지 소스 만드는 방법만 알고 있으면 오픈샌드위치 만들기 쉬워요.

3. 시판되는 다양한 소스를 사용하면 더 간단하고

7

8

9

쉽게 만들 수 있어요.

촌지 전체내지-CC.indd 15

2017. 11. 29. 오후 11:55


FOOD

재료 밥 1공기, 닭가슴살 50g, 새우살 30g, 달걀

4 팬에 기름을 두르고 다진 마늘과 1의

2개, 당근, 양파, 오이 각1/4개, 홍고추 1/2개,

재료를 넣고 볶다가 새우살과 당근, 양파를

숙주 한 줌, 방울토마토 한줌, 쪽파 한대

넣어 볶는다.

다진마늘 1/4큰술

3. Exotic Food with Drinks

•나시고랭 소스 : 굴소스, 스리랏차소스 각 1T 씩, 레몬즙 각 1t 씩

5 4에 숙주와 나시고랭 소스, 홍고추, 쪽파를 넣고 볶다가 밥을 넣어 볶는다.

6 밥이 적당히 볶아지면 팬의 한쪽으로

만드는 법

밥을 몰아두고, 팬의 나머지 절반에 달걀

1 닭가슴살은 한 입 크기로 썰어 소금,

한개 푼 것을 넣고 스크램블하여 천천히

후추로 밑간을 해 둔다.

익히다가 밥과 섞어서 살짝 볶는다.

2 당근, 양파, 홍고추는 적당한 크기로

7 별도의 팬에 계란 프라이를 만들어 밥

다지고, 방울토마토와 오이는 한입 크기로

위에 올리고, 오이와 토마토를 곁들여

썬다.

담는다.

3 나시고랭 소스를 만들어둔다.

나시고랭 (인도네시아식 볶음밥)

1 8 1 9

촌지 전체내지-CC.indd 16

FOOD

2017. 11. 29. 오후 11:55


재료 우동면 1인분, 새우살 50g, 돼지고기 안심

50g, 양파, 당근, 파프리카 각 1/4개, 청경채, 양배추, 숙주 한 줌, 마늘 4개 굴소스 1T, 쯔유 3t, 가쓰오부시 한 줌

만드는 법 1 양배추와 당근, 양파, 파프리카는 채썰어 둔다. 마늘은 편으로 썰고, 청경채는 한입 크기로 썬다.

2 돼지고기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간장,

야끼우동 (일본식 볶음면)

청주 등으로 밑간을 해 둔다. 새우도 소금과 후추로 밑간을 해 둔다.

3 우동 면은 끓는 물에 삶아서 찬물에 헹궈 체에 건져 둔다.

4 달군 팬에 기름을 두르고 양파, 당근, 파프리카, 마늘을 넣고 볶다가 반쯤 익으면 돼지고기, 양배추, 청경채를 넣고 볶는다.

5 4에 우동 면과 굴소스, 쯔유, 후추를 넣고 볶는다.

6 마지막에 숙주를 넣어 볶는다 7 6을 그릇에 담고 가쓰오부시를 올린다.

Tip 낮술 한잔 어때요? 이국적 분위기의 음식과 더불어 가볍게 낮술을 한잔 곁들여 보는 건 어떨까요? 라거류 맥주나 화이트 와인은 부담스럽지 않은 알코올 도수에 깔끔하고 청량한 맛을 갖추고 있어 음식의 맛과 분위기를 한층 업그레이드 시켜줄 수 있습니다.

제작과정...

촌지 전체내지-CC.indd 17

2017. 11. 29. 오후 11:56


2 0 2 1

촌지 전체내지-CC.indd 18

FASHION

2017. 11. 29. 오후 11:56


FA S H I O N

옷을 잘 입는다는 것에 대하여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장을 살펴보며 늘 되뇌는 말이 있다. “입을 옷이 없다.” 옷장에 빽빽이 옷이 걸려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당장 입을 옷은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 옷장에서 정말 필요한 옷들만 선별하고, 나에게 잘 어울리는 옷을 스마트하게 쇼핑하고, 아름답게 보이면서도 편안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스타일링하는 일. 즉, ‘옷을 잘 입는다는 것’에 대한 조언.

editor 최 은 영

1 나를 파악하고, 나의 옷장을 파악하기

피팅룸이 잘 갖춰져 있는 대형 의류 매장을

무슨 옷을 입을 것인지 생각하기 전에 우리는

거울로 나를 관찰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우리의 몸에 대해서 먼저 파악할 필요가 있다.

나에게 어울리는 컬러와 디자인이 무엇인지를

옷을 멋지게 잘 입는 사람은 자신의 신체적

파악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잡지나 기타 매체,

단점과 장점을 잘 파악하고 있으며, 따라서

인터넷 이미지 검색 등을 통해 다양한 스타일링의

단점은 보완하고 장점은 부각시키는 옷을

예를 꾸준히 찾아 보는 것도 안목을 키우는데

적절하게 매치한다. 예컨대, 상체에 비해 하체가

도움이 된다.

뚱뚱한 편이라면 밝은 색 상의에 어두운 하의를

나의 생활 환경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내가

입음으로써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 키가 작은

워킹맘이라면 매일 출근할 때 입을 옷을 다양하게

사람의 경우 하의를 짧게 입거나 상하의 색깔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직장에서 어떤 일을 하느냐에

통일하면 키가 실제보다 커 보이는 느낌을 줄 수

따라 필요한 의상의 스타일도 조금씩 다를 것이다.

있다. 볼록 나온 아랫배는 H라인의 튜닉이나

집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는 전업주부라면 집안과

원피스로 커버 가능하다.

동네의 생활반경 내에서 편안하게 입을 옷이

나의 피부색이나 머리색에 어울리는 컬러는

필요하다. 전업주부도 역시 외출을 하거나 격식을

무엇인지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옷을 입었을

차려야 할 자리에 갈 일도 있으니 외출복도 계절

때, 나의 안색이 어딘지 모르게 칙칙해 보인다면

별로 한 두 벌쯤은 필요할 것이다. 같은

그 옷의 색깔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외출이라도 어린 아이를 동반해야 할 경우에는

굳이 쿨톤이나 웜톤 개념과 같은 전문 지식이

아이를 종종 안아줘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고,

없더라도 옷을 자꾸 입어보고 직접 색깔들을

한창 활동량 많은 아이의 손을 잡고 분주히

매치해보며 거울을 보고 느낌을 살핀다면 나에게

돌아다녀야 하니 좀 더 활동하기 편한 옷을

잘 어울리는 색은 무엇인지 찾아나갈 수 있다.

선호하게 된다.

지금 당장 꼭 구입해야 할 옷이 없더라도

하루의 일과 중 내가 주로 생활하는 장소는 어떤

방문하여 다양한 아이템을 입어보자. 이렇게

촌 지

촌지 전체내지-CC.indd 19

2017. 11. 29. 오후 11:56


FA S H I O N

곳들인지, 그리고 그곳에서 무슨 일을 하면서

Tip

2 스마트한 쇼핑 하기

얼마나 긴 시간을 보내는지를 적어보자. 내가

옷장 관리 및 스타일링 어플

옷장을 정리했으니 이제 나에게 필요한 옷과 잘

하는 일과 나의 동선이 나에게 어떤 종류의 옷이 필요하며 편안하고 적절한 스타일이 무엇인지를

스마트폰의 옷장 관리 어플을 활용하면 내가 어떤 옷들을 가지고 있는지, 가능한 스타일링의 조합은 무엇인지를 언제 어디서나 확인 할 수 있다. 어플을

어울리는 스타일은 무엇인지, 쇼핑을 가면 어떤 옷을 추가로 구입해야할것도 지 선택이 좀 더 용이해진다. 쇼핑 장소는 백화점, 아울렛, SPA 브랜드 매장,

알려주는 단서가 된다.

통해 내가 가지고 있는 옷을 카메라로 찍어 상의, 하의,

나의 몸과 생활 환경에 대해 파악했으면, 이제

아우터 등으로 분류해 저장하고, 이렇게 저장한 각각의

로드샵, 인터넷 쇼핑몰 등 중에 개인의 취향과 예산,

나의 옷장을 열어 현재 가지고 있는 옷들이

아이템들을 조합하여 코디 세트를 만들어 보자. 어플의

생활 방식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무엇인지 파악해 보도록 하자. 옷장 정리를 하다

캘린더 기능을 이용하여 날짜별로 스타일 계획표를

ZARA, H&M, MANGO, UNIQLO와 같은 SPA*

세워두는 것도 가능하니, 아침에 무엇을 입을까

브랜드는 베이직한 아이템과 트렌디한 아이템을

보면 여태까지 내가 선호했던 옷의 스타일 (캐주얼

vs 포멀 , 루즈 vs 타이트, 심플 vs 화려한 디자인), 아이템 (셔츠, 니트, 원피스, 치마, 바지

고민하는 시간을 단축시키고 싶은 사람은 활용해 볼 만 하다. 인터넷이나 잡지에서 마음에 드는 스타일링을 저장하여 열람할 수 있는 자료실 기능도 유용하다.

수 있다.

의류에서부터 가방, 신발 등의 소품까지 다양한 제품 구성을 자랑한다. 또한 대형 매장과 피팅룸을

등), 컬러 (무채색, 원색, 파스텔색 계열 등), 소재 (면, 린넨, 울, 캐시미어 등)이 주로 어떤 것인지 알

골고루 갖추고 있으며 빠른 상품 회전률과

1. StyleBook

갖추고 있어, 윈도우 쇼핑을 하며 트렌드를 살펴보기 좋다. 또한 베이비 키즈 라인이 대부분 같이 있어

이 중에서 나의 체형과 생활 환경과 어울리는 옷,

아이들의 옷도 함께 둘러볼 수 있다. 여름과

유행과 관계 없이 입을 수 있는 기본적인

겨울에는 정기적으로 세일을 하기 때문에 그 시기를

아이템은 간직한다. 그 외에 더 이상 나의 몸에

기다려 쇼핑하는 것도 팁 중 하나이다.

맞지 않거나 어울리지 않는 옷들은 과감하게

로드샵의 경우, 시간과 발품을 투자해야 하는

처분하도록 한다. 오랜 기간 동안 입지 않았던

단점이 있지만 잘 탐색해 보면 흔히 찾아볼 수 없는

옷도 마찬가지로 정리하는 것이 좋다. 언젠가

독특한 디자인의 옷과 가방이나 스카프 등을 발견할

입을지도 모른다며 옷장에 걸어 둔 그 옷을 최근

수 있어 좋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보물 찾기를

1~2년 간 입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입지 않을

하는 기분으로 로드샵이 모여있는 거리를

확률이 크다. 설사 한 두 번 입게 된다고 해도 그

방문해보자. 내 스타일과 잘 맞는 단골 브랜드 또는

옷은 효용보다는 보관 및 세탁을 위해 지출해야 할 비용이 더 큰 존재가 되고 만다.

2. Closet+

인터넷 의류 쇼핑몰을 발굴하는 것도 스마트한 쇼핑 방법 중 하나. 단골 몰을 만들어 두면 굳이 직접

<옷을 사려면 우선 버려라>(도서출판 유나)의

만져보고 입어보지 않더라도, 사이즈에 대한 짐작이

저자 지비키 이쿠코는 그녀의 책에서 “옷이 너무

가능하고 가격에 따른 옷의 퀄러티도 대략적으로

많으면 멋진 옷을 발견하기 어렵고, 옷을

가늠할 수 있어 쇼핑의 실패 확률을 줄일 수 있다.

깨끗하게 관리하기도 힘들다. 기억에 없는 옷은

또한 내가 원하는 스타일을 찾기 위해 여러

가지고 있지 않는 것과 똑같다.”고 말한다. 나에게

쇼핑몰을 서핑하는데 드는 시간을 단축시키고,

잘 어울리지 않거나 유행이 지나서 입지 않았던

포인트도 한 데 적립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옷을 혹시 입을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합리적인 가격대의 제품을 알뜰하게 쇼핑하는 것도

그대로 뒀다가 나중에 무심코 꺼내 입었다면 그것

좋지만, 몇몇 아이템은 가격을 좀 더 지불하더라도

자체가 멋진 옷을 입을 횟수를 줄이는

좋은 소재와 디자인의 제품으로 구입하는 것이

원인이므로 처분하는 것이 오히려 현명하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좋다. 예컨대, 겨울 내내 활용도가 높은 코트류나 3. Smart Closet

니트, 유행과 상관 없는 디자인의 가죽백과 부츠

이렇게 옷장을 정리하고 나면 나에게 꼭 필요하고

등은 좋은 소재로 구입해두면 스타일을 한 단계 더

잘 어울리는 옷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 옷들을

업그레이드 시켜준다. 또한 관리만 잘 하면 오랫동안

거울 앞에서 다시 입어보고 매치하다 보면 나에게

두고 두고 입을 수 있으므로 지불한 가격만큼의

추가로 필요한 옷이 어떤 것인지, 지금 가지고

가치를 충분히 누릴 수 있다. 조금 더 투자해도

있는 옷과 잘 어울릴만한 옷은 무엇인지 파악할

아깝지 않을 아이템들은 백화점의 세일 코너나

수 있다. 이제 필요한 아이템들을 쇼핑리스트에

아울렛 등에서 구입하면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메모해두고 구입하면 된다.

구입할 수 있는데, 백화점 인터넷 사이트를 잘 이용해보자. 이월상품 중에서도 좋은 아이템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2 2 2 3

촌지 전체내지-CC.indd 20

FASHION

2017. 11. 29. 오후 11:56


* SPA(Specialty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 브랜드: 자가상표부착제 유통방식. 다른 말로 패스트 패션(Fast Fashion)이라고도 한다. 다품종 소량 생산하며 기획부터 생산, 유통까지 한 회사가 직접 맡아서 판매하는 의류 브랜드. 백화점 등의 유통 업체를 이용하지 않고 대형 직영 매장을 운영해 유통 판매 비용을 절감시켜 저렴한 가격에 제품을 공급하며 1~2주 간격의 상품 회전율로 소비자의 욕구와 트렌드를 빠르게 반영하는 특징이 있다.

Tip 누구나 십분 활용 가능한 필수 아이템들 나에게 잘 어울리는 옷이란 나의 체형과 스타일, 생활방식에 어울리는 옷이지만, 이런 조건을 초월하여 연령대나 상황, 유행을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스테디 셀러들도 있다. 예를 들어 나의 체형에 잘 맞는 핏의 청바지와 티셔츠, 옷을 사려면 우선 버려라 (2016) 지비키 이쿠코 저 / 권효정 역 도서출판 유나

심플한 디자인의 블라우스, 니트 스웨터와 카디건 등은 한 두 개씩 갖춰놓고 있으면, 기타 다른 옷들과 신발 등의 소품만 상황에 따라 변경해주면서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베이직한 디자인의 검정 원피스는 외출을 하거나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에 두루두루 활용할 수 있다. 심플한 디자인의 울코트와 가죽 앵클부츠도 매년 겨울

200% 활용할 수 있는 아이템. 이 외에도 가죽 재킷이나 트렌치 코트는 유행과 상관 없이 봄 가을에 늘 사랑 받는 아우터이다.

3 멋지게 스타일링 하기

스타일도 시도해 볼만하다. 예를 들어 눈썹이 짙고

이렇게 쇼핑을 마치고 나에게 어울리는 옷들을

눈매가 깊은 고전적인 이목구비를 가진 사람이

제대로 갖춘다면, 옷장에서 어떤 아이템을 꺼내서

시크한 가죽 재킷을 입는다든지, 동안의 얼굴을

매치해도 사실 어색함이 없다. 무난한 스타일링에

가진 사람이 우아한 니트 드레스를 입었을 때,

좀 더 개성을 더하고 싶다면 스카프나 모자, 가방,

자유분방한 이미지로 보이는 사람이 클래식한

주얼리와 같은 액세서리 활용해보자. 머리부터

정장을 입었을 때 우리는 그 사람에게서 의외의

발끝까지 소위 트렌디한 옷과 소품으로 꾸미기

매력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보다는 핵심 아이템 한 가지만 강조하는 것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옷을 입었을 때 느끼는

멋스럽게 스타일링을 하는 하나의 방법.

스스로에 대한 만족도이다. 옷을 통해 내가

컬러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나의 피부색과 잘

표현하고 싶은 나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생각한 후,

맞는 색, 내가 좋아하는 색을 기본으로 상의, 하의,

나에게 잘 어울리는 옷, 내가 입었을 때 편안하고

아우터, 신발까지 다양한 아이템을 매치해 보면서

기분 좋은 옷을 선택하고 스타일링하자. 패션은

그 기본색을 돋보이게 하는 조화로운 컬러 조합을

단지 상업적이고 소비적인 영역의 것, 우리의 손에

찾아 보자. 블루, 핑크, 브라운, 카키 등의 각각

닿지 않는 허황된 개념이 아니다. 패션은 나의

다른 컬러라도 톤(tone), 즉 명도와 채도를

정체성과 라이프스타일을 표현하는 하나의 미적

비슷하게 맞춰 매치하면 한가지 색으로만 소위

수단이자 태도이며, 우리의 일상에서 추구할 수

‘깔맞춤’을 한 것보다 오히려 더 세련된 스타일링이

있는 하나의 유희이다.

완성된다. 같은 브라운 계열이라도 베이지(밝은

모든 감각이 그렇듯 옷에 대한 감각을 키우는 데도

브라운)에서 초콜렛 컬러(어두운 브라운)까지 그

연습이 필요하다. 여러 가지 스타일의 옷을 많이

안에서 명도 차를 두어 코디하면 차분하고 안정된

보고 많이 입어보면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느낌을 준다. 원 포인트 스타일링은 컬러에도

옷에 대한 감각을 키우며 우리는 실용성과

적용된다. 검정, 흰색, 회색 등 무채색 착장의

아름다움 사이에서, 유행과 개성 사이에서 적절한

심심하고 평범한 느낌을 탈피하고 싶다면 한

균형점을 찾아나간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아이템 정도는 경쾌하고 화사한 색으로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고 나 스스로를 만족시키는

선택해보자.

옷 입기, 나만의 고유한 스타일을 찾아가는 여정을

내가 풍기는 이미지나 분위기에 반전을 꾀하는

놀이처럼 즐겨보자.

촌 지

촌지 전체내지-CC.indd 21

2017. 11. 29. 오후 11:56


BOOK

다시 읽는 그림책 프로젝트 text

아이가 그림을 내밀었다. 왕비와 왕, 한 쌍의 부부. 왕족과 귀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그림책이다. 왕비는 분홍으로 화사했고 왕은 푸른색 일색인 그림을 내밀었다. 화려한 복장의 로얄패밀리를 그려대던 시기라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다음 대사가 덜컥, 걸렸다. “애들이 왜 안 올까요?” “기다려 봐.” “왜 왕비는 존댓말을 쓰고 왕은 반말을 하고 있는 거야?”

김 영 (유스엠연구소)

아이가 겁을 먹을까 싶어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려 애쓰며 물었다. 아이가 우물쭈물한다.

2 4 2 5

촌지 전체내지-CC.indd 22

BOOK

2017. 11. 29. 오후 11:56


“음... 아니... 글씨 쓸 자리가 모라자서 그랬어요,”

하나의 그림책에서 아내가 존댓말을 쓰고 남편이 반말을 하는 것을 문제라

급하게 만들어 낸 이유를 말하는 목소리가 작았다. 그간 아이에게 권하는

할 수는 없다. 하나의 애니메이션에서 날씬하고 어여쁜 여자들만

책과 영상들을 나름 선별하려 애써왔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일곱 살

주인공이거나 장애인이 한 명도 등장하지 않은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아이에게 이러한 성별의 위계는 자연스레 스며들 만큼 선명한 것이었을까.

그러나 이 세계의 다양함에 대해, 이해와 배려에 대해 배워 나가야 할

“네 그림이 잘못됐다는 게 아니야, 천천히 이야기해보자,” 하고 그림을

아이들이, 거의 모든 매체에서 고정된 성역할과 문화인식을 접하게 된다면

접었다.

그들이 타인을,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성인으로 자라기는 어려워진다.

생각이 많아졌다.

여성이나 동성애자, 장애인에 대한 비하를 두려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노인,

서가의 그림책을 먼저 들춰 보았다. 아이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매체니까.

가난한 자, 이주노동자를 쉽게 소외시키고 부자와 권력자와 미남미녀만이

일단 책장에는 부부의 대화가 그려진 책 자체가 적었다. 아이과 함께 하는

주인공인 ‘동화’같은 세상을 동경하는 어른들과 아이들이 이미 현실에 드물지

사람은 주로 자애로운 엄마였고,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삼은 몇 안 되는 책은

않다.

가정을 보살피는 아빠의 능력을 도드라지게 그렸다. 20세기부터 수십 년간

그래서 다시, 그림책부터 넘겨 보기로 했다. 흔한 왕자공주 이야기에, 제대로

고전으로 읽혀 온 미국과 유럽의 옛 그림책 속에선 앞치마를 두른 엄마나

낱권을 살펴보지 않았던 전집 속에, 익숙한 전래동화책에 스며있는

할머니는 ‘해요’체를 썼고 바깥일에 바쁜 아빠와 할아버지는 현대의

고정관념과 차별의 씨앗을 꺼내 보려 한다. 더 많은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해

구어에서는 거의 쓰지않는 ‘하오’체로 무게를 잡았다. 전래동화는 뭐 말할

아이들에게 책을 건네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좁은 틀 안으로 들어오게

것도 없고.

만든 것은 아닌지 따져 보자는 것이다. 물론 ‘프로 불편러’의 삶은 피곤하다.

아이를 재우려 토닥이면서 오래 잊었던 나의 유년기를 떠올렸다. <빨강머리

하지만 과거의 ‘불편러’들 덕분에 그나마 세상이 좋아졌듯이, 우리의 아이들은

앤>의 열렬한 독자였던 시절. 흔히 알려진 앤 이야기는 앤의 십대 시절을

성별과 계급과 출신지역과 기타 등등 타고난 어떤 것 때문에 삶을 제한받는

다룬 <그린게이블즈의 앤> 이지만, 그 후 앤이 사랑을 하고 대학에 가고

일이 줄어든 세상에 살기를 바란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며 인생의 희노애락을 겪는 긴시리즈가 전집으로

물론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책장을 뒤져 이야기를 나누고,

출판된 적 있다. 그 책들을 닳도록 읽으며 사랑했지만, 풀리지 않는 의문도

좀 더 다양한 책들을 채우면서 기대를 품어 본다. 나의 어린 아이가 언젠가

있었다. 동네 친구였던 앤과 길버트는 학창 시절 늘 서로에게 편한 반말을

세상에 나아갔을 때, 너답지 않다고, 학생답지 않다고, 여자답지 않다고, 또는

써오며 자랐는데, 훗날 두 사람이 약혼을 하고 결혼을 하자 갑자기 말투가

그 무엇이 아니라고 손가락질하는 이들을 여전히 만나겠지만, 그 때 좀 더

바뀌었던 것. 아내 앤은 길버트에게 ‘그래요’ ‘이래요’라고 했고 남편 길버트는

가슴을 펴고 고개를 꼿꼿이 들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도록 응원하는

앤에게 ‘그렇소’ ‘하오’라는 낯선 화법을 썼다. 어렸지만, 영어 원문에 그

마음으로 책을 고른다. 혼자서, 또는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더 나아가서는

정도의 높낮이 차이가 있지 않다는 건 짐작할 수 있었다. 친구로 자라며

유치원과 학교, 도서관을 향해, 우리 아이들을 위해 골라낼 것과 이야기할 것,

언제나 같은 눈높이로 서로를 바라보았던 두 사람, 더구나 앤처럼 제 삶을

권할 것을 가려 보았으면 한다.

스스로 개척하는 데 두려움 없던 사람에게 왜 ‘결혼’과 동시에 이런 변화가

혼자서는 한없이 부족하다. 그림책만으로 끝날 일도 아니다. 다만 뭐라도 해

생긴 걸까, 이 변화는 누가 만든 걸까, 궁금했다. 거의 30년 전이다.

보자는 마음으로, 일단 시작해 본다. 우리집, 다른 집의 상황은 어떤지 먼저

흔히 세상이 변했다고 한다. 요즘 차별 같은 게 어디 있냐고들 한다. 적어도

질문을 던지기로 했다. 우리는 어떤 그림책을 보고 있나요?

성별과 인종과 장애 유무에 우열이 있다고 내놓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작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특정한 성별이나 인종이 열등하다, 고 말하는 대신 그 성격과 위치와 태도가 어떠해야 한다고 규정하는 관습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여자애가 그러면 되나, 남자애라 역시 다르다, 는 말들은 일상적이다. 영어교육이 유아 대상으로 내려간 지 한참이지만, 원어민 교사 중 흑인은 찾기 어렵다. 일반 학교보다도 당연히 접근성이 좋은 지역에 세워져야 할 장애아학교는 설립 전부터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히는 일이 흔하다. 아이들의 그림책과, 요즘의 아이들이 책보다 더욱 쉽게 접하는 유아용 영상들은 이 현재의 축소판이다. ‘헬로 카봇’의 거의 모든 여성 인물은 상대에게 존대말을 쓰고 있으며 ‘뽀롱뽀롱 뽀로로’의 루피는 의존적인 민폐 캐릭터로 그려진다. 유아·청소년용 애니메이션의 거의 모든 주인공은 백인에 가까운 피부와 밝은 머리카락을 휘날리고 있으며 마르고 키가 크다.(간혹 등장하는, 작고 뚱뚱하고 피부색이 다른 인물은 감초 역할의 조연이다) 백인남성 중심주의로 지탄을 받곤 했던 디즈니 채널의 프로그램들이 차라리 변화하는 시청자들의 요구에 맞추어 모험심 넘치는 소녀와 이혼·재혼 가정, 흑인·히스패닉 주인공들을 등장시키고 있다.

다시 읽는 그림책에서는 여러분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주세요.

http://naver.me/FmrmklzW

촌 지

촌지 전체내지-CC.indd 23

2017. 11. 29. 오후 11:56


E D U C AT I O N E S S AY

음악을 즐기는 아이를 만드는 법, 부모부터 음악을 즐기기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음악을 듣고 자란 사람

매번 하는 질문임에도 불구하고 부모들의 반응

이자, 그보다 조금 덜 어릴 때부터 아주 어른이

은 가지각색이다. 음악을 딱히 좋아하지는 않지

될 때까지 음악을 직접 연주하고 지내온 사람

만 요즘 세상에는 왠지 해야만 하는 것 같다는

이다. 지금은 연주생활에서는 벗어나 여러가지

사람, 자신이 음악을 좋아해서 아이도 꼭 시키

다른 일을 하고 가정도 꾸리며 살고 있지만, 여

고 싶다는 사람, 음악 1도 모르고 살아온 인생

전히 내 일의 많은 부분이 음악가들과 교집합

이 아쉬워서 아이는 꼭 잘 알게 해주었으면 좋겠

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내게는 아이 친구 부모

다는 사람, 학교에서 이미 친구들이 다 배우고

들이 자주 묻는 세 가지 공통된 질문이 있다.

오는 터라 우리 아이만 안 시킬 수 없다는 사람,

“몇 살부터 악기를 시키면 좋을까요?” “아이가

고학년 때 학과 공부로 아이가 더 바빠지기 전에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 아니 음악적 재능이 있

미리 배울 시간을 주고 싶다는 사람…. 가만히

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전공은 꿈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해 보았다. 그 많은 이유들

도 꾸지 않지만, 아이가 커서 음악 좀 즐기고

중에 ‘즐거움’은 대체 어디에 있지? 과연 아이는

살면 좋겠네요. 대체 뭘 해주면 좋을까요?”

‘음악의 즐거움’은 어떻게 얻을 수 있지?

한 때는 모든 사람들에게 일정한 기준을 알려

대부분의 부모는 자신의 흥미 여부와 관계없이

주고, 보편적인 정의도 짓고, 마치 지침서처럼

아이에게 음악을 접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문

단계별로 다양한 방법들을 설명해주려 애쓰기

제는 부모 자신도 함께 음악을 즐기거나, 악기

도 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고 삶의 여러 스펙

를 다루거나, 음악적 지식을 습득하기 위한 노

트럼을 통과하며 시야의 폭이 넓어진 지금은

력을 해보는 대신 아이에게 이것저것 주문하거

일단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질문하는 부모

나 기대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물론 어른들의

의 막연한 답답함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기

삶이 바쁜 것도 이유가 되고 음악활동을 그다

‘클래식 음악’을 지칭하는

때문이다. 그리고 답변보다는 질문을 던진다.

지 선호하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말임을 미리 밝힌다.

“부모님께서는 음악을 좋아하세요?”

바로 그 지점이다. 부모의 말과 행동, 감정과 표

text

윤 성 원 ( 리 틀 챔 버 앤 코

대 표 )

글에서 통상적으로 쓰는 ‘음악’이라는 단어는 주로

2 6 2 7

촌지 전체내지-CC.indd 24

EDUCATION ESSAY

2017. 11. 29. 오후 11:56


현을 가장 빨리 흡수하며 답습하는 아이들이,

지고, 맞고 틀림의 여부와 상관없이 부모가 자

통해 재현해내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인 일인지

‘누구’를 통해 음악은 ‘즐기는 것’이라는 사실

신 있게 아이에게 영어로 말을 걸거나 서툰 발

알게 될 것이다. 한 발짝 더 나아가 다른 이의

을 배울 수 있냐하는 것이다. 어떤 부모는 ‘저

음으로라도 그림책을 읽어주는 것을 추천하고

연주와 노래가 그 사람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

는 음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하며 갈등

있다. 적절한 수준의 영상물 노출 역시 필수적

게 되고, 귀를 기울여 다른 이의 ‘마음을 듣는’

하기도 하고, ‘음악활동이라고는 전혀 해본 적

이다. 이 방법은 그대로 음악활동에 대입할 수

태도를 가지게 될 것이다. 백날 피아노 연습을

이 없는데’라며 당황하기도 한다. 그 때마다

있다. 집중해서 음악을 듣는 시간과 일상의 배

시키고 학원을 보내는 것보다 어느 날 일에 지

나는 더욱 힘주어 말하곤 한다. “아이가 정말

경음악으로 흘려듣는 시간, 악기를 연주하는

친 아빠가 열정적으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야

음악활동을 좋아하도록 돕고 싶다면, 부모님

영상이나 음악회를 함께 가서 보고 듣고, ‘부모

말로 아이에게는 ‘음악이 어떻게 나의 일상으로

부터 도전하거나 시도해보세요. 특정한 결과

가 자신있게 노래하거나 연주하는’ 모습을 자

들어오는지’ 또렷하게 각인되는 기회가 되는 것

를 목표로 삼지 말고, 어려움과 즐거움을 아이

주 보여주자. 긴 시간 ‘귀’가 다양한 소리에 노

이다.

와 같이 공유하면서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출되고 선율과 리듬의 표현 방식에 충분히 익

부디 이 멋진 활동을 아이가 기관이나 학원 또

아이는 자연스럽게 음악을 일상으로 받아들

숙해지고 나면 아이 스스로 목소리 또는 악기

는 선생님을 통해 배우는 것이 좋다는 생각은

일 수 있게 되고, 그렇게 해서 아이가 좋아하

연주를 통해 자기 표현을 하게 된다. 이것은 단

버렸으면 좋겠다. 아이는 가장 가까운 보호자

게 되면 감사한 일, 그렇지 않아도 어쩔 수 없

순히 기악적 기술을 연습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의 언어표현을 보고 들으며 자신의 목소리를

는 일이랍니다.” 이쯤 되면 나와 대화를 나누

것이 아니다. 영어 문법을 달달 외운다고 해서

내어 말하는 방법을 배운다. 음악도 마찬가지

던 분들은 내가 이 사람에게 왜 이런 질문을

자유자재로 회화를 구사하게 되는 것이 아닌

다. 부모와 노래로, 리듬으로 소통하고 표현하

했는가,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음악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오늘부터는 아이와

는 놀이를 반복하면서 아이는 모방본능을 십

은, 정확히 말하면 음악활동은 우리 삶에 왜

음악 그리고 부모인 나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

분 발휘하여 비슷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

필요한 걸까? 그 막막한 질문에 내가 가진 답

을 바꾸어 보자.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피아

를 가지게 되고 음악을 자연스럽게 자신의 감정

을 먼저 제시하자면, 인생을 좀 더 풍성하게

노를 좀 칠 줄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과 연결할 것이다. 부모는 거창한 준비도 필요

만들 수 있는, 말하기-읽기-쓰기로 구조화되

면 부모가 먼저 피아노를 배우거나 다른 악기

없이 그저 일상의 언어에 음악을 더하면 된다.

는 언어가 아닌 전혀 다른 종류의 표현 언어를

를 연주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자. 이 때 많은

“이리 와서 밥 먹어”라는 멘트에도 엉뚱한 선율

하나 더 얻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언

분들이 ‘쇼팽을 쇼팽처럼’ 쳐야 하는가 하는 걱

을 넣어 불러보자. 아이와 끝말잇기를 할 때에

어와 마찬가지로 일상과 완전히 결합해야 함

정에 덜컥 사로잡힌다. 하지만 부모가 아이에

도 주거니 받거니 리듬 타기를 해보자. 아이를

과 동시에 언어와 유사한 메커니즘으로 체득

게 보여줘야 하는 것은 ‘얼마나 실수 없이 멋진

씻기며 혹은 내가 씻으며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

하는 과정과 세분화된 표현 방식을 익히는 과

연주를 하는가’가 혹은 ‘얼마나 열심히 반복연

거나, 노래에 맞추어 몸을 덩실덩실 흔들어보

정이 꼭 필요하다. 그리고 이렇게 음악언어를

습을 집중해서 하는가’가 아니다. 피아노라는

자. 음악은 그렇게 일상적이고 즐거운 순간으로

배우는 과정은 외국어를 배우는 그것과 많이

악기를 통해 기쁘고 즐겁거나 슬프고 힘든 부

들어오는 것이 맞다. 악기를 배우는 것은 그 다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피아노를 시

모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 보여주

음의 일이다. 기술을 배우는 것도 그 다음의 일

킬 것인가 바이올린을 시킬 것인가’ 혹은 ‘다섯

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아이가 엄마를

이다. 귀가 열리고 마음 속 여러 감정을 구분할

살에 처음 악기를 가르칠 것인가 초등학교에

속상하게 하는 일을 했을 때, 훈육의 폭풍우가

수 있는 아이는 스스로 원하는 악기 소리를 찾

올라가서 배우게 할 것인가’ 하는 고민보다는

지나간 후 말없이 피아노에 앉아 구슬픈 선율

아내고 제대로 자신이 표현하고 있는지 들을

‘우리가 말을 처음 배울 때 어떻게 배우지? 음

을 마구마구 연주해본다고 치자. (정확히 말하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그리고 깊은 감정

악이라는 ‘말’은 어떻게 배워야 좋을까?’ 하는

자면 마구마구 건반을 두드린다는 것이 맞겠

을 음악 언어로 말했을 때의 기쁨도 짜릿하게

고민이 꼭 필요한 것이다.

다) ‘엄마가 마음이 힘들어서 피아노를 치는 거

느낄 수 있다. 우리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음

많은 엄마들이 잘 알고 있는 영어교육의 단계

야’ 하면서 말이다. 처음에는 ‘엄마 왜 저래?’ 하

악 좀 즐기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부모의 바람

를 음악에도 한번 적용해보자. 유명한 아동 영

는 시선으로 바라보던 아이는 차츰 이 경험이

은 바로 그 때 이루어질 것이다. 오늘부터는 아

어교육 서적들의 핵심은 ‘귀’가 먼저 영어에 적

반복되면서 음악이 내 감정을 표현하는 하나의

이가 기관에서 배우고 돌아온 춤과 노래를 어

응하면 입이 열린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집중

‘언어적 도구’라는 사실을 저절로 이해하게 될

디 한번 보여달라며 박수만 쳐주지 말고, 엄마

해서 영어를 듣는 시간도 가지고, 생활 속에서

것이다. 더불어 말로 일일이 설명할 수 없는 어

의 오늘 하루 있었던 이야기에 흥을 넣어 들려

배경음악처럼 흘려 듣도록 놔두는 시간도 가

떤 감상의 덩어리를 음악이라는 추상적 소리를

줘 보는 것은 어떨까.

촌 지

촌지 전체내지-CC.indd 25

2017. 11. 29. 오후 11:56


INTERVIEW

뭔가를 하기보다는 우리가 변두리라고 부르는 곳에서 사람들과 어울리 며 나누고 공유하는 삶을 살고자 합니다. 세상이 나에게 허락하는 만큼 만족할 줄 알면서 적더라도 가진 것을 사 람들과 나누는 삶을 살게 된 것은, 아무래도 아파트 한 채를 팔아먹은 실패의 경험 덕이 커요. 믿지 않으시겠지만, 그 전까지는 돈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했고 ‘내가 돈을 어디까지 벌 수 있나 한번 보겠어!’ 하는 심보 를 가졌어요. 그런 마음보가 있었으니, 사람들에게 상처도 많이 줬지 요. 어려서 몹시 어렵게 살았는데, 어렵게 사는 동안에 참 많은 선생님 들이 잘 살라고 문제집도 보시해 주시고 책도 챙겨 주시고 기회도 주셨 던 것 같아요. 그렇게 사람들의 힘으로 컸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제가 잘난 줄 알았어요. 어떤 일에 대해 상세하게 기억하는 편이고 호기심이 많은 게 유일한 자산인데, 그 덕에 글을 쓰거나 공부하는 데 꽤 도움을 받았어요. 인간관계도 그렇고요. 그러니까 사실은 그게 전부인데, 스스 로 엄청 잘난 줄 알고 세상 겁 없이 살았죠. 요즘은 ‘살아있는 것만으로 다행이다. 오늘도 움직일 수 있어 다행이다’ 이러면서 일어나요. 그러니 까 대략 오늘은 나에게 다시 오지 않을 오늘이니까, 그대로 특별하다고 생각하고 의미있게 잘 살려고 애써요. 미래를 어찌하겠다는 마음은 자 연스럽게 놓게 되고 오늘에 충실하게 되더라고요. 그래 놓고 약속을 자 꾸 까먹고 몸이 아파서 아무 것도 못하는 날도 있어요. 전날 무리를 해

어린이책 작가 이현정 editor

서. 그날, 그날에 충실한 삶은 가끔 다음날을 못 챙기는 단점이 있는 거 죠. 이 또한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내일은 좀 나아지겠지요? 선생님의 경험과 이야기가 무궁무진 할 것 같아서, 어디에 포인트를 두어야 할지 고민인데요, 일단 선생님 그림책 작가를 하시게 된 계기와 일련의 과정들을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그림책 작가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어린이책 작가, 기획자라고 하 면 좀 가까울 것 같아요. 안데르센을 읽으면서 ‘작가가 되겠어!’, <꽃들

홍 민 선

에게 희망을>을 읽으면서 ‘이런 이야기를 쓰겠어!’ 라고 조금 더 구체적 이 되었고, <꽃들에게 희망을>에서는 작가가 되더라도 어떤 작가가 되

선생님에 대한 저의 단편적인 정보는, 그림책 작가이자 편집자, 기획자이시고, 강연도 하시고, 세 아이의 엄마이시기도 하고, 도서관도 만들어보셨고, 그림책과 관련된 다양한 재밌는 활동을 하시는 분인데요, (물론 글자로 다 표현 못하는 제 마음은 다 아시리라 믿고!) 스스로 본인 소개를 해주시면 좋겠어요. 가볍게

겠다라고 조금 더 생각이 선명해진 거예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 을 살겠어라는 다짐은, 그만큼 받은 게 많았기 때문에 빚진 마음에서 시작된 것 같아요. 그렇지만 빚은 쌓여만 가고 갚아지지 않더라고요.

선생님의 일상을 소개해주세요.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얼마나 빚이 많은 사람인지를 잊고 내가 이룬 나

특별할 것 없는 아줌마예요. 한 때 편집자였고 운 좋게 출판기획사 대표

름의 업적에 정신을 잃고 자만하기 시작했고요. 그렇게 자만한 동안에

를 했고, 디자인하우스에서 아이들 책을 만드는 일을 시작해서 10년 쯤

정말 엄청나게 많은 일을 했어요. 하루에도 몇 편의 책을 쓰고 책으로

편집자로 생활했어요. 그 후 2년 정도는 작가로, 5년 남짓은 보시는 것

만드는 일을 공장 돌리듯이 했으니까요. 그러다 보니까 한국 작가 선생

처럼 아이들 책도 쓰고 기획도 하고 번역도 하고 그랬어요. 또 종종 아

님들의 글을 마음대로 고쳐 쓰는 오만한 일도 했었죠. 그때 책을 많이

이들에게 책도 읽어주고 부모 교육도 하고 필요하면 팟캐스트도 했죠.

쓴 게, 이름 없는 무명작가로 돈벌이만 길게 하게 됐죠.

그러면서 인문 활동가로도 일했지만 실제적으로는 무직, 즉, 프리(랜서)

이름을 조금 알리게 해 준 작품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말>이에요.

맘입니다. 참여하고 있는 팟캐스트에서는 변두리에서 아이들 생활을

이 책은 2005년 즈음 타임지에서 ‘엄마’라는 존재가 세상에서 가장 힘

탐구하며 변죽을 울리는 글을 쓰는 변작, 혹은 변두리에서 아이들과

이 센 말로 엄마가 뽑혔다는 뉴스 기사에서 힌트를 얻었어요. 하지만

탐구생활 중인 변(똥)맘이라는 별명을 쓰고 있어요. 그대로 주류에서

엄마로 책을 쓰기는 어려워, 기획 노트에 제목만 있다가 아이들을 키우

2 8 2 9

촌지 전체내지-CC.indd 26

INTERVIEW

2017. 11. 29. 오후 11:56


면서 하나의 말놀이 노래로 만들어 부르던 걸 모아 적어 만든 거예요.

머니들의 욕망일 뿐만 아니라 사랑이라는 것을 서서히 깨닫게 되면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그런 ‘진정성’의 힘이 있더라고요. 누구나 쓸 수

진정한 처방은 어머니들이 행복해지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다시 돌아갔

있을 것 같은 쉽고 아무렇지 않은, 단순한 구성이 아이들을 키우며 함

어요. 그러면 어떻게 엄마들이 행복해질까?

께 한 시간을 보여주었던 점이 꽤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은 비결인 것

그렇게 부모 교육 수업을 강원도 원주에 있는 그림책 센터 ‘이담’에서 하

같아요. 어쩌면 제가 어려서 썼던 잘 구성된 어떤 글보다도 이런 글이,

게 되었고 부모 교육 수업을 기본 틀로 하여 영국의 스토리텔링 클럽,

이런 작품이 더 힘이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해 준 책이 바로 이 책이에

그리고 교육연극 등을 접목시켰어요. ‘이담’의 부모 교육 특강을 들었던

요. 그 뒤에 비슷한 작품들을 쓰고 있지만, 지금은 아이들과 좀 더 놀

어머니들이 용기를 내어 ‘그림책을 닮다 아이를 담다(그닮아담)’ 팟캐스

아야 할 때라고 생각하고 묵혀두고 있어요. 때가 되면 번데기에서 나와

트를 하게 된 것처럼 ‘수다로 그림책’에서 만난 어머니들이 스스로 크고

나비가 되어 하나둘 제 몫을 하게 될 날이 오겠지요?

작은 성과를 만들어 자신들만의 무언가를 삶에서 행동으로 옮겨가실

제가 예전부터 궁금하고 흥미로웠던 게, 선생님 세부에 가셔서 도서관 만들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흡족합니다. 내가 만난 어머니들은 모두 아름답

활동하셨던 일이에요. 세 아이를 키우시면서 어떻게 그렇게 또 엄청난 일을

고 재주가 많아요. 그 많은 어머니들 사이에 앉아있으면 제가 그렇게 초

하셨는지, 그 이야기 풀어주실 수 있을까요?

세 아이를 키웠기 때문에 세부에 갈 수 있었어요. 저는 멈추지 않은 고 속철 같이 앞으로만 달렸거든요. 남편에게 셋째를 낳고 안식년을 달라 고 했고 그렇게 1년을 약속하고 세부에 갈 수 있었어요. 남편 없이 아이 셋을 업고 안고 손잡고 갔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아찔해요. 그래도 타 국에서 집을 구하고 일자리를 구하고 또 그렇게 생활을 하며 꿈꾸었던 가정식 도서관을 운영하며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가 축복이고 행 복이었죠. 작은 가정식 도서관을 운영하며 가져간 책을 다 잃어버렸을 때는 좌절 아닌 좌절을 했지만, 그 이야기를 사람들과 나누었더니 교 민분들이 공간도 내어주시고 책도 가져올 수 있게 도와주셨어요. 마 침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말>로 인세를 받아 도서관을 운영할 자금 도 남편에게 손 내밀지 않고 마련할 수 있었지요. 그 돈을 다 날렸을 때, 남편이 ‘아이들 국제 학교 보냈다고 생각하라’고 해 주었던 말이 잊 혀지지 않아요. 첫 사업이 망했을 때는 ‘오십에 겪지 않아 다행이다. 서 른 중반이면 우리는 다시 시작하기에 충분하다’고 말해주었죠. 이런 남

라할 수가 없어요. 가장 볼품없는 제가 무슨 이야기를 떠들겠어요. 저 는 이야기를 잘 담아 정리해서 어머니들께 돌려드리는 역할만으로 충 분히 즐겁고 행복해요. 이 일이 쌓이면 어느 순간 엄마들이 행복하고 아이들이 행복해지겠지요. <행복이 행복해지기 위해>라는 채은선 작 가의 글에서처럼 말이에요. 사소한 일상으로, 우리들의 행복이 우리를 떠나는 일이 없게! 어머니들의 손을 꽉 잡아드리고 싶어요. 제 남편이 제 손을 꽉 잡아주었던 것처럼요. 저희 아이들이 제 손을 꽉 잡아주고 안아주었던 것처럼요. 욕심이 과한가요? 마지막으로 엄마들의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촌지’에 한 말씀 부탁드려요.

촌지 창간호에 제 이야기가 실린다니까. 저 같은 사람까지 찾아내 주시 는 따뜻한 시선을 가진 잡지라는 생각이 들고요. 그냥 고맙다는 생각 이 듭니다. 우리가 하는 행위들은 각각 다른 모습으로 다른 장소 다른 어머니들과 이뤄진다고 해도 방향은 하나가 아닐까 막연하게 생각해 봅니다. 세상의 모든 엄마, 힘내요!

편의 지지와 응원이 아니었다면 지금 저는 아무 것도 아니었을 거예요. 엄청난 좌절을 겪고 헤어 나오지 못할 때마다 남편은 꼭 손을 붙잡고 힘을 주었어요. 2년 남짓 운영했던 ‘콩세알 도서관’은 결국 올해 초 제가 직접 들어가서 지역 분들에게 모두 책을 나눠주는 것으로 정리를 해야 했지만 -운영하실 분이 없어서- 그 기간 동안에 함께 했던 모든 분들 이 아직도 저를 잊지 않고 연락을 해주시고 귀하게 대해주셔서, 평생 잊지 못할 일로 기억합니다. <꽃들에게 희망을>의 번데기로의 삶이 그 때가 아니었을까요? 여전히 번데기일지도 모르지만요. 지금 하고 계시는 활동에 대한 이야기 부탁드려요. 어떤 계기로 이런 기획을 하시게 되었는지, 어떤 기대, 혹은 예상을 하고 계신지요. 그리고 오늘 활동 말고도 다른 활동을 많이 하실 테니, 소개도 부탁드려요.

시작은 ‘아이들에게 책장을 돌려줘!’ 프로젝트였지요. 아이들이 스스로

첫째 아이가 두돌이 되도록 말을 잘 하지 못하자 ‘어떻게 하면 아이가 말을 잘 할 수

책을 골라 읽을 권리를 ‘책가도’ 이야기를 빌어서 생각해 보실 기회를

있을까’하는 고민에서 시작해 만들게 된 책이라고 한다.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 괜찮아 등

갖게만 하자는 게 제 목표였어요. 그런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고 어머니

소중하고 중요한 말, 하지만 어떤 때에는 너무 쉽게 내뱉고, 어떤 때에는 정말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 그런 말들이 이 책의 주인공이다. 그 말을 둘러싼 감정과 행동에 대한

들이 기쁘게 들어주셨어요. 제가 운이 좋아요. 그렇게 시작해서 ‘책장

이야기를 귀여운 동물 그림으로 풀어나간다. 아이와 하나씩 함께 소리내어 읽으며,

처방전’으로 선생님도 뵈었지요. 어머니들을 통해 책장에 담긴 것이 어

서로에게 말해보며 그 뜻을 다시 새겨보기에 좋다.

촌 지

촌지 전체내지-CC.indd 27

2017. 11. 29. 오후 11:56


GLOBAL

프랑스에서 아이 낳기, 그것도 두 번 ! text

박 재 연 ( 아 트 피 크 닉 대 표 )

y b a b y m ! oh

2011년 8월 28일은 프랑스 여름 방학의 마지막 일요일이었고, 한국 결

‘저 임신했어요 !’ 라는 나의 수줍지만 당당한 고백에 의사는 대뜸

혼식장의 ‘비수기 가격’이 적용 가능한 마지막 일요일이었다. 그래서 나

낳을 건가요 ? 라고 물었다.

는 이 날 결혼을 하고, 그 다음 수요일에 법적 남편이 된 사람과 파리행

축하나 격려까지 바란 건 아니었지만 눈이라도 좀 맞춰주시지… 혼자

비행기에 올랐다. 신혼여행이었으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우리는 파리에

만의 민망함도 잠시, 여기서 지퍼백까지 꺼냈다가는 우스워지겠구나,

서 지지고 볶고 튀기고 삶으며 사는 유학생 부부였다. 박사 준비 과정

하는 생각에 어버버 하고 동안 의사가 내게 무언가를 건넸다. 병원 리

에 막 들어갔던 터라 아이를 낳으려면 다음 여름 방학까지 기다려야 했

스트가 쭉 나와있는 한장의 종이였다.

고. 그러려면 늦어도10월 초에는 임신이 되어야 했다. 그런데, 세상에,

프랑스에는 개인 병원인 클리닉clinique과 종합병원인 오삐딸hÔpital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9월 말에 민기(태명 미라보)가 짠 ! 하고 와주었

이 있는데, 오삐딸은 전국에 국립병원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분야를 막

다. 두 줄이 뜬 임신 테스트기를 신주단지 모시듯 지퍼백에 넣고, ‘보호

론하고 프랑스에서 국립이라는 건 최소한의 비용으로 누릴 수 있는 일

자인 남편’과 함께 부인과 문을 두드렸다. 진료실에 들어가자마자 던진

정 수준 이상의 서비스를 의미한다. 의료의 경우 사설 클리닉에서 커버

3 0 3 1

촌지 전체내지-CC.indd 28

GLOBAL

2017. 11. 29. 오후 11:56


할 수 없는 케이스들은 오삐딸로 넘겨진다. 클리닉에서 진료와 출산을

에 살면서 출산을 경험하게 되는 외국인 여성들끼리 하는 말 중에, ‘진

할 수 있는 비싼 사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던(못했던, 할 필요가 없었던)

짜 프랑스를 맛보고 싶으면 아이를 낳아보라’는 말이 있다. 큰 아이 임

나는 학생용 국가보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오삐딸 중에 집에서 가장 가

신 시기에 외국인 학생으로 살짝 더 불편할 뿐 적어도 행정적으로는 아

까운 곳들을 골랐다. 두 줄을 확인한 순간부터 왜인지 속이 좋지 않고

무런 차별없는 생활을 하고 임신과 출산을 겪으면서 프랑스의 세심한

피로가 마구 몰려오는 것 같았건만, 당장 급하게 해야할 일은 첫째, 내

복지 정책과 프랑스 인들의 단단한 연대의식에 대해 온 몸으로 느낄 수

가 고른 병원들에 전화를 돌려 내 예정일에 남는 침상이 있는지를 확인

있었다. 6년차 중견 유학생이었던 나였지만, 그래서 나의 프랑스 체류

하고 예약을 진행하는 것과 둘째, 사회보장센터에 임신확인서를 보내

기는 첫 아이 임신 전과 후로 나눌 수 있다.

임신 보조금을 신청하는 것이었다.

특별히 이상이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프랑스 오삐딸에서 초음파는

다행히 집에서 가장 가까운 오삐딸에 자리가 있다고 했다. (1인실일지 2

초·중·말기에 각 한 번씩, 총 세 번만 찍는다. 삐까뻔쩍한 장비를 갖추

인실일지 다인실일지는 그 날이 되어봐야 알 수 있다고해서, 혹시 추가

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한국 초음파 사진처럼 5개월 태아가 아빠의 인중

금액을 지불하면 1인실을 쓸 수 있을까요라고 물으니 바로 ‘얘 뭐래니’

을 빼다 박았는지 엄마의 눈매를 가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중기에 찍

모드로 딱 잘라 안된다고 했다. 미라보야, 상황 파악 잘 하고 나오렴.)

은 건 아무리 마음을 다잡고 뚫어져라 봐도 어디가 어디인지 도통 알

그 때부터 시작된 임신 출산 관련 종이 뭉치들과의 싸움. 매년 체류증

수 없다), 초음파만 보는 의료진의 태도와 설명은 참으로 믿음직스러웠

갱신을 해야하는 유학생 신분이라 프랑스식 행정에는 어느 정도 단련

다. <출산기> 임신 8개월에는 병원에서 심리 상담가와의 약속을 잡아

이 되어 있었지만, 임신과 출산, 보육과 관련된 의료 복지 시스템은 엄

주었는데 출산에 대해 느끼는 두려움과 기대감에 대해 털어놓고 객관

청나게 세분화되어 있어서, 임신 초기는 이걸 파악하고 뭔지 모르겠지

적인 조언을 받을 수 있었다. 임신 9개월이 되자 무통주사요법만을 담

만 일단 신청하고 재신청하고 하는 것의 반복이었다.

당하는 마취과 의사와의 약속이 잡혔다. 그는 나의 과거 병력, 가족력

그러던 임신 4개월의 어느날, 내게 한 통의 편지가 왔다. 파리 시장님

등을 세심하게 체크하며 어떤 방식으로 무통 분만이 이루어 질 건지 설

으로부터였다.

명해주었다.

전형적인 공문서 포맷의 의례적인 편지였으나, 마지막 문단을 보고 주

산모의 알 권리 뿐만 아니라, 모를 권리와 결정할 권리 역시 확실히 보

책맞게도 눈물이 핑 돌았다. (임신 호르몬의 영향이었을지도 모르나)

장되었다. 임신 기간 동안 산모들 대부분은 혼자와서 검사와 진료를 받

« 당신이 6개월 뒤에 만날 아이는 우리 모두가 함께 기다리고 있는 아

는다. 그런데 하루는 남편도 (정확한 워딩으로는 아기 아빠도) 시간을

이입니다. 임신 기간 동안 도움이 필요하거나 궁금한 것이 있다면 다음

내어 꼭 와야한다는 거다. 한날 한시에 약속을 잡은 우리는 각자 다른

장을 읽고 도움을 요청하세요 ». 다음 장에는 임신 출산 육아와 관련

방으로 안내되었고, ‘몇 퍼센트부터 높은 확률이라고 생각하는가?’라

된 다양한 센터들과 기관들에 대한 정보가 매우 세세하게 나와있었다.

는 질문을 중심으로 일종의 심리테스트를 받게 되었다. 소위 말하는

프랑스에서는 다양한 의료, 복지 기관들이 임신과 출산 관련 업무를

‘기형아 검사’를 앞두고 엄마와 아빠가 각각 확률에 대해 가지고 있는

담당하는데, 실질적으로 임신 출산 과정에서 가장 직접적이고 중요한

생각을 정리하게 한 후, 기형아 검사를 할 것인지, 한다면 그 결과를 통

역할을 맡은 이들이 바로 ‘사쥬 팜므sage femme’다. ‘현명한 여인’이라

보받을 것인지를 ‘각자’ 결정하라고 한 거다.

는 다소 문학적인 뉘앙스의 이 직업은 조산사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문화 충격과 감명을 번갈아 받으며 학교를 다니고, 논문을 쓰다보니 어

데, 번역어가 가지는 소극적인 의미와는 달리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산

느덧 그 날이 왔고, 예정일 전날 밤 11시에 시작된 진통과 함께 시작된

모가 절대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전문직업군이다. 이들은 종합 병원에

분만은 새벽 3시에 미라보가 쓱-나옴으로써 아주 심플하게 끝이 났

소속되어 임신 관련 검사를 진행하고 결과를 분석하며 출산 준비를 돕

다. 분만실에는 두 명의 사쥬 팜므가 상주했고, 간호사 한 명과 무통 분

거나, 개별적으로 개원을 해서 다양한 산전 준비 –심리 상담, 출산 자

만 담당 의사가 필요 할 때마다 왔다갔다 했다. 별 일없이 진행되는 분

세 연습, 호흡법 지도, 수유를 비롯한 신생아 케어 교육– 를 담당한다.

만에는 의료진이 출동하지 않는데, 내가 열이 두어번 오르락 내리락 하

프랑스 보건복지부는 임산부들에게 10회의 산전교육을 권고하며, 이 비용은 국가 보험에서 커버해준다. 바게뜨 집 만큼은 아니라도 동네에 제법 흔하게 있는 개인 사쥬 팜므 진료소 중 이름이 마음에 들어 고른 사쥬 팜므는 젊고 야무진 여성으로, 나는 짐볼 위에 앉아 신생아 인형 을 안은 채로 프랑스 조산사 양성 시스템과 직업 윤리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해외에서 일하거나 유학 등의 이유로 프랑스

1

2

1 둘째 아이 임신 초기에 받은 모자보건센터의 안내문. ‘가족이 커진다는 것’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개별 세미나로, 엄마와 아빠, 7세 이하의 형제자매를 위해 마련된 자리다. 아, 당연 무료. 2 4.090kg의 민기를 물고 온 황새. 야간 당직이 지루했을 간호사의 색칠 솜씨가 돋보인다.

촌 지

촌지 전체내지-CC.indd 29

2017. 11. 29. 오후 11:56


GLOBAL 3 출산 후 이어지는 각종

3

AS. 유축기 대여, 회음부 재교육, 심리상담 등 산모를 위해 세심하게 준비된 것들이 참 많았다.

4

삐딸로 향했다. ‘아기를 낳으려하니 내년 7월에 빈 방 있는지 봐주시오. 두번째 아이라오’하는데 의사는 챠트에서 눈도 떼지 않고 방백모드로 물었다. 아빠는 같나요 ? 내 남편이라 하는 소리지만 참 차분하고 신중한 사람인데… 그렇게 대 놓고 당황하는 표정은 처음봤다. 아, 난 아직 멀었구나.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는 논문과 씨름하느라 태교는 물론 큰 아이 케어도 크게 신경 쓸 수 없었지만, ‘가족이 커진 다는 것’에 대해 써주신 파리 시장님의 편 지를 필두로 임신 7개월째부터 다달이 통장에 꽂히는 다자녀보조금과

4 집에 돌아온 민재를 안고

곧 동생을 맞이할 큰 아이와 읽으면 좋은 책 목록을 건네주는 모자보

있는 세 돌 형아 민기. 프랑스에 더 살았으면 동생 미라봉과 미라뱅도 만나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건센터의 복지사의 배려까지 다시 생각해도 참 편안한 열 달이었다. 2015년 7월 1일, 에펠탑이 녹아 줄줄 흐를 것처럼 뜨겁던 그 날 밤, 양 수가 터졌다. 그 상황에서도 예약한 방이 아직 안빠졌으면 어쩌나,를 더

는 바람에 10개월 동안 한 번도 못만났던 산부인과 의사 얼굴을 볼 수

염려하며 병원으로 갔다. 프랑스에서는 양수가 터졌어도 24시간까지는

있었다. 분만 도중 오른 열이 혹시 아이에게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다

지켜보며 자연분만을 기다리기 때문에, 귀한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

하여 4.090키로로 태어난 미라보는 인큐베이터실로 가게 되었고, 나는

는 분만 대기실에서 시원하게 꿀잠을 잘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의사

의도치 않은 일주일 간의 특급 산후 조리를 받을 수 있었다. 일주일 내

의 판단에 따라 유도분만이 결정되었고, 노련해보이는 사쥬 팜므 두 명

내 계속 입원비 걱정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는데, 퇴원 날 받은 고지서

과 유머러스한 남성 간호사 한 명, 견습 사쥬 팜므와 함께 나의 두번째

의 숫자 8000은 수납 직원의 클릭 몇 번에 0으로 바뀌었다. Olé!

분만이 시작되었다. 분만 촉진제를 맞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진통이

보통 출산 후2박 3일 정도 있다가 퇴원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때

걸리고, allez allez allez(gogogo)라는 간호사의 구호에 맞춰 민재가 세

부터 또 다시 감격적인 출산 애프터 서비스들이 이어진다. 퇴원 후 이주

상에 나왔다. 큰 이상이 없는 평범한 분만일 경우 출산 후 2박 3일 동

일 내에 집으로 방문하는 사쥬 팜므는 산후 몸조리와 수유, 신생아 돌

안 아기는 엄마와 같은 방에서 지낸다. 첫 출산보다3년 더 늙은 몸은 젖

보기와 관련된 조언을 해주고, 각 구에 위치한 PMI (모자보건센터)에서

을 물리면서도 까무룩, 잠이 들 정도로 더 쉽게 피곤을 느끼긴 했지만,

는 영아를 위한 모든 의료, 복지 서비스를 제공한다. 아기를 돌보느라

벨을 누르면 기본적인 치료, 식사, 케어를 담당하는 간호사가 바로 와

지치기도 하지만, 이렇게 콧바람도 쐬고 다른 엄마들도 만나고, 무엇보

주었고, 사쥬 팜므가 규칙적으로 진료와 상담을 위해 들러주므로 크게

다 불안하고 겁나는 초보 엄마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다양한 이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지극히 동물적인 행위를 통해

야기들을 믿음직한 전문가들에게 들을 수 있어서, 즐겁고 편한 마음으

만난 이 작은 (물론 얘도 가볍게4키로를 넘었지만) 생명체와 내가 본능

로 육아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출산 후 AS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적으로 합을 맞출 시간을 제공받았다고 생각한다. 혼자서 안달복달 하

것은 그 이름도 생소한 ‘회음부 재교육’이었다. 나름 가방끈이 길다면

다 막상 그냥저냥 하고 말았을 프랑스에서의 임신과 출산이 즐겁고 좋

긴 내가 회음부까지 교육을 받아야 하는건가? 회음부 재교육은 필수

은 기억으로 남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내가 혼자하는 게 아니구나’라는

는 아니지만 매우 강력하게 권고되는 것으로, 출산 후의 성생활을 비롯

느낌을 들게 해주었던 구체적인 제도와 정책 덕분이다. 그럴싸한 말들

한 다음 출산을 위해 늘어난 회음부 근육을 강화하는 프로그램이다.

은 차고 넘치지만 실질적인 조언이나 구체적인 로드맵, 정서적인 지원

우리나라에서도 의사들이 케겔 운동 이야기를 해주지만, 어디까지나

은 받기 힘들었던 내게, 따뜻하지만 부담스럽지 않은 도움을 주었던 이

이야기에 그치는 반면, 프랑스에서는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이 부분

들에게도 심심한 고마움을 표한다. Allez Allez Allez !

에 대한 재활 훈련(?)이 이루어진다. 영상으로 보는 듯한 자세한 설명은

SPECIAL THANKS TO

파멜라 드러커멘이 쓴 <프랑스 아이처럼>에 잘 나와있으니 참고하시길.

•둘째를 낳으면서 골반이 틀어졌는지 조금만 움직여도 찌릿찌릿하던 내 치골을 침대보로

거짓말처럼, 2014년 7월 큰 아이 두 돌이 지나자 아기 생각이 났다. 남

야무지게 싸매준 사쥬 팜므 이녜스. 예술에 조예가 깊었던 그녀와 ‘밀로의 비너스’ 어쩌고

편과 의논을 했고, 박사 과정 스케줄 등을 고려해서 이듬해 여름 방학

•이녜스의 추천으로 찾아간 기적의 여인 쎄씰. 오스떼오빠뜨(osthéopathe,

때 출산을 해야하니 9,10월에는 임신을 해야한다는 결론. 재교육을 열 심히 받은 덕분일까, 또 짠 !하고 9월 초에 민재(태명 미라벨)가 찾아왔 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한 번 해봤답시고 두 줄을 보자마자 바로 오

하며 깔깔대던 기억.

정골요법의사)인 그녀의 진료실에 분명 기어서 들어갔는데 걸어서 나왔다. 아멘.

•출생 신고서를 들고 직접 병실을 찾아온 15구 구청 직원 티보. 출생 전부터 이름이 있는 프랑스 아기들과는 달리 ‘작명가 할아버지’의 콜을 기다려야 했던 ‘밍키와 밍쟤’ 때문에 두번 걸음을 했다.

3 2 3 3

촌지 전체내지-CC.indd 30

GLOBAL

2017. 11. 29. 오후 11:56


ES S AY

체험과 경험 사이에서 던지는 질문 text 신 은 희

초등 1학년인 아이가 방과 후 교실을 하고 싶 다고 했다. 학기 초 다른 친구들의 활동이 재

은 게 아닐까? 우리는 체험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특히, 체

미 있었나 보다. 그런데 꼭 하고 싶은 교실이 네

갔다. 이어서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즐겁게 사

험학습이라는 명목으로 아이들에게는 더 다

개나 된다고 했다. 잠시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과를 따기 시작했다. 저녁 식사 후에 다시 사

양하고, 더 새롭고, 더 특별한 체험의 기회로

다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마술, 토탈 공예, 생

과 농부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사과 키우기 좋

만들고자 호기심과 촉각을 곤두세우곤 한다.

태과학, 요리’를 신청하고 참여하다 보니 결과

은 환경과, 농사를 짓는 사람들, 연중 사과농

미각기행을 통해 온몸으로 느끼고 체험했던

물도 다양하다. ‘요리’는 생활 기술이기도 하고

장에서 하는 일, 사과나무의 일생 등등 선생

방식은 내가 그 동안 놓치고 있었던 사고 과정

그때 그때 먹는 것이라 그렇다치고, ‘마술’은 매

님이나 책을 통에서 얻기 어려운 소중한 이야

을 경험하고 새로운 질문을 품게 했다. 아이들

번 하나씩 새로운 것들을 배워 와서 엄마를 놀

기들을 한 시간 남짓 들었다.

은 교실에 앉아서 눈으로 보고, 머리로 생각하

래킨다. 사실, 착각을 일으키게 만드는 마술도

다음날은 인근 신월마을에서 마을 이장님의

고, 앉아서 꼼지락거리는, 한마디로 축소된 활

구의 창작품에 놀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생태

소개로 마을 곳곳의 특별한 장소와 이야기들

동을 한다. 도대체 이 활동으로 어떤 새로운

과학'은 살아있는 생명체들을 지속적으로 가

을 들으며 마을 사람들의 일상을 들여다보았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일까?

져 오는데, 벌써 명(命)을 달리한 식물과 곤충

다. 마지막으로 생강을 키우고 있던 비닐하우

이 과정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도 있어서 그 과정을 경험하는 마음이 여간 괴

스에 도착했다. 온전한 생강은 처음 봐서 그

것’, ‘내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 ‘내가 중요

로운 게 아니다. ‘토탈 공예’도 두 달쯤 지나고

모습이 낯설었다. 이 곳에서 우리는 생강을 뿌

하게 생각하는 것과 아닌 것'은 무엇인지 아이

보니, 매주 새롭게 갖고 오는 작품을 마땅히

리째 뽑고 옮기고, 다듬고, 잎과 줄기를 분리

가 분별하려면 그 경험을 둘러싸고 있는 이야

놔둘 곳이 없다. 한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이

하는 등 자연스럽게 역할 분담하여 일을 시작

기와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짧은 시

루어진 수업치고 그 결과물은 정말 그럴듯해

했다. 도시에서는 체험하기 어려운 즐겁고 생

간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 부모에게 뭔가 보여

보인다. 하지만 아이가 이 모든 작품의 결과물

산적인 경험이었다. 농장에서 열 평쯤 생강을

줘야 하는 것 때문에 뚝딱뚝딱 만들어 내야

이 본인의 능력이라 믿기 시작한 것과 달리 나

수확하고, 이장님은 수확한 생강을 가져갈 수

하는 체험활동이 그래도 의미가 있으려면 그

에게는 다 준비된 재료를 붙이거나 색칠하는

있도록 나눠 주셨다.

경험을 둘러싸고 있는 이야기와 그 이야기를

정도의 액티비티(Activity)로만 보인다. 이 과

장수에서의 일정은 가벼운 마음으로 왔는데,

다른 사람과 충분히 나누는 시간, 그 이야기

정에서 아이가 체험했을 경험치가 너무 뻔해

한 분 한 분 만나고, 체험이 한 가지씩 늘어날

들을 자신의 일상과 연결하고 상상할 수 있도

보이지만, 아이에게는 “참 잘 만들었네~. 정말

때 마다 생각은 많아지고 마음도 무거워지는

록 돕는 좋은 질문, 자신의 호기심이나 문제점

멋져~”라는 기계적인 멘트를 날리고 있다. 지

듯 했다.

을 좀 더 나은 대안으로 연결 지을 수 있도록

난 가을 밸류가든에서 “슬로푸드 미각기행, 전

“참여자들이 체험을 통해 어떤 경험이 일어나

자극하는 활동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

북 장수의 논과 과수원에서”라는 프로그램을

게 돕고자 한다면 바로 이런 이야기와 과정(절

다. 설령, 앞으로 또 다른 체험과 경험 사이에

소개하고 참여한 적이 있다. 아이의 방과 후 교

대적인시간을 포함한)이 필요한 것은 아닐

서 다른 결론을 얻게 되는 상황이 생긴다 하더

실을 보며 느꼈던 부분들, 즉, 체험과 경험 사

까?”

라도 말이다.

이의 간극을 메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슬로푸드 미각기행 이후, 자신을 좀 더 성장시

나만의 용어사전 정리

전북 장수에서의 일정은 사과 농장에서부터

키고 좀 더 나은 대안을 찾으려 노력하는 지인

•체험(體驗)을 통해 얻는 상상

시작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심은 사과나무

들과 어울리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이 질문

개인적인 지성ㆍ언어ㆍ습관에 의한 구성이 섞이지 않은

옆에서 대를 이어 농장을 운영하는 아들이 사

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과정이 사라진 짧고

과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참가자들은 좋은 사

가벼운 체험을 수없이 많이 경험하는 것보다,

과 고르는 법, 사과의 품종과 특징, 농장 지형

길고 굵직한 사유를 일으키게 하는 맥락이 있

에 따른 사과의 특징 등 계속해서 질문을 이어

는 한 번의 체험학습을 경험하는 것이 더 나

감각작용으로 자신의 느낌(氣)영역 속에서 직접적인 상(像)으로 볼 수 있는 생생한 의식과 정의 내용.

•경험(經驗)을 통해 얻는 지혜 자신이 실제로 해 보거나 겪어 본 것으로 객관적 대상에 대한 감각이나 지각 작용에 의해 사고영역에서 깨닫게 되는 지식의 내용.

ESSAY

촌지 전체내지-CC.indd 31

촌 지

2017. 11. 29. 오후 11:56


이번 잡지를 만드는데에는 예전에 디자인하우스에서 함께 일했던 선배들 도움이 컸다. 여러 자료들을 바쁜 마감에도 공유해준 전도연 리미선배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러블 리한 은지선배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함을 전한다. 선배님들 사랑해요! 하하하 김백보현 편집장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깊어지는 팔자주 름만큼 두려움도 한 겹 두 겹 늘어난다.

마 감 을 마 치 며

늘 연말이 다가오면 느꼈던 ‘그래, 올해도 그럭저럭 별 탈 없이 보냈군.’이라는 다소 공허한 안도감 대신, 올 연말에는 ‘뭔가 해냈어!’라는 성취감 내지는 ‘재미있는 일 을 새로 시작했어!’라는 설레임을 오랜만 에 느낀 것 같다. 먹고 사는 일과 무관해 보이는 것들이 사실은 삶을 풍요롭게 하

마지막 요리컷을 찍고 난 후에 느끼는

는데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지에 대해

홀가분함은 마치 애를 낳고 난 후의 그

가끔 생각해본다.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

것과 흡사하다. 이렇게 이야기하니 마

을 탐색하고, 글을 통해 타인의 생각에

치 요리스타일리스트를 오래 한 거 같

공감하고 나를 표현하며, 좋은 사람들을

지만, 이번이 처음이였다. 막연했던 처

만나고, 신나게 수다 떠는 일이 나에겐

음 시작과 하다보니 할 수 있겠다는 자

그렇다. 잡지를 만들면서 이 모든 것들을

신감, 에디터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재

다 해볼 수 있어서 참 행복했다.

미, 마침내 끝냈다는 기쁨이 어우러진

최은영 에디터

요리 사진을 만들어냈다. 비록 오늘 저 녁은 다시 먹던데로 있는 밥과 반찬에 대충 먹을지라도. 함께한 모든 분들 고

창간호 '촌지'기사 글을 기획할 때 나는 우리 지역에서 산책가기 좋은 4곳을 선정

마워요~^^ 김 민 경 에 디 터

해서 정보를 담는 글을 맡았었다. 산책하기 좋은 4곳도 선정하였다. 그런데, 발걸 음이 옮겨지지 않았다. ‘왜 일까?’ 내 마음의 산책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알파고와 같은 정보가 아닌, 사람 냄새 풀풀나는 따뜻한 시선을 담고 싶었던 게다. 이젠 마 음이 움직인다. 기다려주고 배려해 주신 함께한 분들께 감사하다. 역시, '촌지'라서 가능했으리라! 앞으로도 계속 창간되길 두 손 모아 빌어본다. 임 민 하 에 디 터

‘내가 잡지를 어떻게 만들어?’라고 생각 했는데, 능력자들을 만나 숟가락 스윽 얹어본다. 이런 일을 해보게 될 줄은 상 상도 못했다. 참 예측할 수 없는 삶이다. 어디로 흘러가는 건지, 사는 게 아주 흥 미진진하다. 그나저나 마감을 넘기고 아 서래마을에 터를 잡은지 20년. 세월의 주름이 알려주듯 마을의 모습

직도 한참 쓰는 중이다. 잘 하지도 못할

도 다양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홀림과 유혹 속에서 주민에게 알리는 일

거 마감이나 빨리 할 것이지...... 이번엔

이라 생각하니 즐거웠다. 웃음과 수다 속에서 주민에게 동거동락 가족

꼭 제때 해야지 마음 먹었지만, 평소 하

같은 기자의 모습이었다면 좋겠다. 촌지가 강남·서초맘들의 사랑방이

던 대로 또 넘겼다. 이번 생엔 마감 지키

되길바라며 창간호, 촌지받으러 많이 오세요^^

는 일, 틀려먹었다. 홍 민 선 에 디 터

김문경 에디터

3 4 3 5

촌지 전체내지-CC.indd 32

2017. 11. 29. 오후 11:56


C O N T E N T S

Editor's letter

아름답게 산다는 것은

..... 김 보현

Essay 1

김 엄마의 늦 둥이 키우기

..... 김 문 경

Essay 2

다 시 공 부 한 다 는 것 에 대 해 . . . . . 김 민 경

picture book

엄마 의 그림책 살롱

..... 홍 민 선

Photo Essay

일 상 의 여유, 산 책

..... 김 문 경 , 임민 하

Food

나만을 위한 점심상

fashion

옷을 잘 입는다는 것은

..... 최 은영

Book

다시 읽는 그림책

..... 김 영

Music

음악교육

..... 윤 성 원

interview

어린이책 작가 이현정

..... 홍 민 선

Global

프랑스에서 아이 낳기

..... 박 재 연

Essay 3

체험과 경험 사이

..... 신 은희

발행일

2017년 12월

..... 편 집 부

발행인

신은희

편집장

김보현

기자

김문영

김민경

임민하

최은영

홍민선

기고

김 영

박재연

윤성원

사진

편집부

Our story

마감을 마치며

..... 최 은영 , 김민 경 , 김 문영

촌 지(村紙) 1

디자이너 Authentic Studio 성원애드피아

발행처

밸류가든

후원

서울시마을미디어센터

ⓒ @ 밸류가든

인쇄

밸류가든은 일상의 인문적 체험을 통해 공감능력이 있는 성숙한 시민으로의 성장을 돕는 시민교육센터입니다.

ADDRESS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28길 17-1, 2층 TEL 070-7680-0301 HOMEPAGE www.valuegarden.org 표 지

촌지 합커버CC.indd 2

l

김 문 경 < 첫 눈 >

EMAIL valuegarden@gmail.com

2017. 11. 30. 오전 12:03


촌 지

Vo l . 1

김엄마의 늦둥이 키우기 체험과 경험사이

촌지 합커버CC.indd 1

/

/

일상의 여유, 산책

/

나만을 위한 점심상

프랑스에서 아이를 낳는다는 것

/

/

다시 읽는 그림책

어린이책 작가 이현정 인터뷰

엄마의 라이프스타일 저널 창간호

2017. 11. 30. 오전 12:03


Turn static files into dynamic content formats.

Create a flipbook
Issuu converts static files into: digital portfolios, online yearbooks, online catalogs, digital photo albums and more. Sign up and create your flip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