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호 2019. 11. 27.
인터뷰,마을이음 ㅣ 발행처 시민나루 ㅣ 발행인 심소영 ㅣ 디자인 청년협동조합 몽땅 ㅣ 서울시 동대문구 이문로 40, 4층 ㅣ T. 02-2245-9623 ㅣ cafe.daum.net/ddmplf ㅣ facebook.com/ddmplf ㅣ
01 09-13
02
발간사
모이고 움직이고 달라지다
03-04
회기동 에세이
14
우리동네 돈키호테
당신이 몰랐던 우리동네 소소한 역사
15-16
동네이슈, 있슈~
05-08 17-18
동네에서 놀고, 즐기고, 배울곳 우리동네 인생술집
네번째 이야기,
속사포의 후예들과 골목의 역사가 숨 쉬는 곳, 회기동
2009년 회기동 일대 사진
1958년 회기동 일대 사진
인터뷰,마을이음
4호 2019. 11. 27.
01
속사포의 후배들과 골목의 역사가 숨 쉬는 곳,
회기동 천장산
22만9천 평의 회기동, 그 절반에 가까운 11만2천 평의 경희대. 그 면적의 비중만큼이나 회기동편에서 경희대를 빼놓고 이야기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회기동 사람들은 경희대가 회기동의 모든 것인 양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불만이 있었다. 경희대를 빼놓고 보면, 회기동은 인근 동대문구의 다른 지역에 비교해 현저하게 작아서 전면적으로 보수하고 개발하기가 쉽지 않았고, 그만큼 덜 발달되었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기동은 다른 지역에 비해 오래된 골목이 매우 많았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바로 이런 대규모의 개발 역사가 없었기 때문에, 그 골목의 아기자기함이 잘 보전되어 있었다. 썰렁한 골목의 한구석에 현대적인 인테리어의 카페가 있었고, 곳곳에 알록달록한 벽화가 있었다. 커피전문점 스타벅스와 전통찻집 녹원이 이웃하고 있었고, 모던한 분위기의 칵테일바와 잘 익은 동동주가 맛난 도읍지가 공존한다. 영화 ‘암살’ 경희대학교 경희초
덕분에 재발견한 경희대 또한 대한민국의 역사적
경희여중고
영웅들과 글로벌한 미래를 꿈꾸는 후배들의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동대문구의 회기동은 ‘속사포(영화
경희대치과병원 연화사
카이스트 교수아파트
암살의 조진웅역)’의 후배들과 골목의 역사가 경희의료원
공존하는 그런 곳이었다. 이번 호 「인터뷰, 마을이음 - 회기동편」은 이 골목의 일상에 관한 이야기다.
서울바이오허브
윤덕환
청량초
회기동안녕마을 회기동주민센터
회기힐스테이트아파트 신현대아파트
삼육초
발행처 발행인 디자인 주소 전화 카페 페이스북
문화플랫폼 시민나루 협동조합 심소영 청년협동조합 몽땅 서울시 동대문구 이문로 40, 4층 02-2245-9623 cafe.daum.net/ddmplf facebook.com/ddmplf
인터뷰,마을이음
02
4호 2019. 11. 27.
회기역1번출구 토스트할머니
회기동 에세이
회기역 할머니 토스트
취재 & 글 : 심소영
회기역에서 경희대방향 입구로 나오면 바로 앞에 1,000원 토스트집이 있다. 화려한 색깔의 옷을 입고, 늘 얼굴에 미소를 머금어 미소가 주름이 되어버린 할머니가 사장님이다. “저도 토스트 하나 주세요.” 했더니, “예.” 뒤이어 온 학생들이 주문하니, “예, 공주님, 왕자님” 한다. 공주님, 왕자님들이 있으니 내가 살지 하시며, 연신 미소를 보낸다. 작은 대접에 적당량의 야채와 계란하나를 넣어 부침을 만들고, 구워진 식빵위에 얹는다. 소스를 가르키며 묻는다. “뭐 뿌려줄까. 설탕? 케찹? 머스타드?” “다, 뿌려주세요.” 간단한 한 끼 식사로 부족함이 없다. 이정도가 1,000원이라니. “할머니 너무 싸게 파시는 것 아닌가요?” “괜찮아요. 우리 공주님들 왕자님들 먹으니.” 또 다른 손님이 4개 포장을 주문한다. 한꺼번에 4~5개를 만들어도 계란부침은 하나씩 휘저어 부친다. 대신 빵과 계란을 구워내는 동안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며 그 어느 것도 타지 않게 계속 뒤집는다. 과일좌판에 손님이 기웃거리니 큰소리로 “과일”하고 외친다. 다른 곳에 있던 과일좌판 사장님이 뛰어온다. 이제까지 내가 본 최고의 멀티플레이어다. 회기동 마을잡지 만들고 있다며, 할머니 기사를 실어도 되냐 물었다. “뭐, 좋지.”하신다. 언제부터 토스트하셨냐 물었다 “전통부터 했으니까...” 전통? 내가 갸웃거리니 “전두환” 하신다. 아~ 전통 박통 하던 시절이 있었지. 할머니의 힘든 시대가 단어에서 묻어나는 것 같다. 이런저런 얘기를 더 하고픈데, 사람들이 계속 들어온다. 급하게 성함을 물었더니, “이름없어. 그냥 할머니 토스트라고 하면 돼” 한다. ‘이름 없어~’ 한마디에 더 질문 할 수가 없었다. 다음을 기약하며 돌아왔지만 내내 마음이 아린 이유를 찾아야 했다. 회기동사람들이 제작한 <숨통1> 회기동 마을매거진을 통해 안 사실이지만, 토스트할머니는 오랫동안 간병해오던 남편이 지난해 돌아가시고, 장애가 있는 아들에게 방 한 칸이라도 마련해 삶의 터전을 만들어 주는 것이 할머니 삶의 목표라 했다. 이름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할머니는 ‘나’를 지우고, 남편과 아들의 시간을 지나온 것일까? 할머니의 ‘이름’를 찾고 싶다. 그럴 수 있다면 할머니의 ‘나’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름을 지우고 사는 어머님들께 이름과 나를 함께 찾는 일을 상상한다. 동네의 새로운 일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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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호 2019. 11. 27.
경희대 본관
당신이 몰랐던 우리동네 소소한 역사
회기동 어디까지 가봤니? 취재 & 글 : 심소영
회기동(回基洞).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씨의 묘인 회묘(懷墓)에서 동 이름이 유래하였다. 회기동(回基洞).1만여 명이 6000여 세대를 이뤄 사는 동대문구서 가장 인구가 적은 동네이다. 인구만 보면 정말 소소하다. 그런 소소한 회기동 안에는 초등, 중등, 고등, 대학, 그리고 종합병원까지 있다. 소소한 동네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회기동의 유래를 찾아보니 조선 시대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씨의 묘인 회묘(懷墓 )에서 동 이름이 유래하였다. 회묘는 지금의 경희여자중고교 자리에 있다가, 경희대학교가 옮겨오면서 경기도 고양시 서삼릉으로 이장되었다. 회기동도 휘경동, 청량리동에 이어 왕실의 묘가 있었던 동네였다. 면적으로 보면 경희 남녀 중・고등학교와 종합병원을 포함한 경희대학교가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또 회기동 연령대별 인구를 보면 회기동 10대 인구비율 7.3%, 20대 인구비율 27.9%, 30대 인구비율 15.3%, 40대 인구비율 13.2%, 50대 인구비율 11.4%, 60대 인구비율 9.4%, 70대 인구비율 6.8%, 80대 인구비율 2.8%, 90대 인구비율 0.6% 이다. (출처: https://37start.tistory.com/6040) 인구통계를 보니, 여느 동네와는 달리 20대 인구 비중이 높다. 역시 회기동은 경희대와 뗄 수 없는 과거와 현재를 살고 있다. 두 명의 대통령이 이곳을 거쳐 갔으니, 경희대 터가 좋은 것은 확실해 보인다. 경희대는 회기동에 언제부터 있었을까? 위키백과에서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근간이 된 신흥무관학교가 전신이라고 소개한다. 또 문재인 대통령 내외뿐만 아니라 15대 대통령인 김대중 대통령 또한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1967) 및 일반대학원 경영학과(1970)를 수료하고, 이곳에서 명예 경제학박사(1998) 학위를 받았다. 두 명의 대통령이 이곳을 거쳐 갔으니, 경희대 터가 좋은 것은 확실해 보인다. 거대한 역사는 찾아봤으니 소소한 동네 역사를 찾아봐야 하는데, 소소한 얘기를
찾을 수 없다. 마침 회기동 경희대, 연화사, 안녕마을을 돌아보는 탐방 프로그램을 동대문구에서 지원하기에 참여해 들어보기로 했다. 10.5 토요일 아침 경희대 정문에서 함께 탐방할 사람들을 만났다. 해설사는 윤상숙님(지난 인터뷰, 마을이음 청량리 편에 소개된 서울한바퀴 협동조합 이사장), 참가자는 마포구에서 오신 60대 부부와 영등포구에서 오신 모녀, 그리고 나 이렇게 6명이 탐방을 시작했다. 첫 번째로 둘러본 곳은 경희대 본관 건물이다. “경희대 본관은 1956년에 만들어져서 올해부터 등록문화제로 등록되었어요. 여기는 천장산자락인데, 천장산이 하늘이 감추어놓은 산이라고 해요. 그래서 본관동 쪽에는 경종임금의 무덤이, 여기서 10분만 걸어가면 홍릉 숲이 있는데, 명성황후의 무덤이 있고, 그 앞에는 영휘원・숭인원이 있어요. 고종의 후궁이었던 순헌황귀비 엄씨와 이진 왕자의 묘가 있어요. 풍수지리학자들이 경희대 본관이 굉장한 명당이라고 해요. 본관 보시면 파르테논 신전이 연상 되실 거에요. 많은 서양 건물들이 그 신전을 많이 본떠서 만들었는데, 이것도 그 요소들을 가지고 있어요. 특히 기둥이 쭉 늘어서 있는 건물을 열주식이라고 하는데, 그 위에 신상들이 조각되어있어요. 신전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그래서 장중하고 근엄함, 범접하기 어려운 멋진 모습을 하고 있죠. 그래서 영화나 드라마에 많이 등장했었어요. 요새도 사진을 많이 찍으러 와요. 경희대는 캠퍼스 사진으로 달력을 만드는데, 외국으로 오인당하기도 한다네요. 그리고 본관 앞 양쪽의 사자상을 보면 보통 사자 모습과 다르지 않나요? 입 모양 보시면 약간 웃는 사자상이에요. 경희대의 상징이기도 하죠. 웃는 사자상을 한 이유는 최고의 위치에 가서 온화한 웃음을 간직한 사람이 되라는 뜻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해설사의 말이다. 봄에는 벚꽃으로 여름에는 녹음으로 가을에는 단풍으로 겨울에는 설경까지 너무 아름다운 캠퍼스라서 학생들 실력도 인성도 좋아지는 것 같다는 기분 좋은 허풍에 같이 웃는다.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는 해방 후 1947년 서울특별시 종로구 수송동에 신흥무관학교의 역사와 전통을 계승한 신흥전문학원(新興專門 學院)을 설립하였으며, 1949년에 배영대학관을 합병하여 2년제 신흥초급대학(新興初級大學)으로 설립을 가인가 받았다. 이후 1952년 2 월, 정식 설립 인가를 받았고 그해 12월 4년제 신흥대학(新興大學)으로 전환하였다. 1955년에는 종합대학인 신흥대학교(新興大學校)로 승격되며 교사를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회기동(現 경희대학교 서울캠퍼스)으로 이전한 후 1960년에 ‘신흥대학교’였던 교명을 ‘ 경희대학교’로 바꾸었다. 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경희대학교 [위키백과]
인터뷰,마을이음
4호 2019. 11. 27.
04
'평화의 전당'이라는 정식명칭이 붙여지기 전에는 '비놀리아'관이라는 별명 연이어 중앙도서관과 평화의 전당을 둘러보았다. 주말이라 개방이 안 된다며 겉에서만 볼 수 있어서 아주 안타까웠다. 특히 평화의 전당은 1976년 6월에 착공하여, 1999년 10월 11일에 개관한 종합 문화 예술 공연장이고, 단일 공연장으로는 아시아 최대 규모인 4,500석의 객석을 보유하고 있다. '평화의 전당'이라는 정식명칭이 붙여지기 전에는 '비놀리아'관이라는 별명도 있었다. '비놀리아'는 당시 판매하던 비누 제품명으로서, "어? 아직도 그대로네?"라는 멘트를 CF에 쓸 정도로 오래 쓸 수 있는 제품이라는 마케팅슬로건을 가지고 있었다. 1976년에 착공을 하였는데도 아직도 완성이 안 되었다는 웃픈 에피소드를 안긴 별명이다. 웅장한 외관을 자랑하는 평화의 전당은 중세 고딕 양식 건축양식으로 얼마 전 화재로 전 세계인의 안타까움을 샀던 노트르담의 성당 외형을 본떠 만들었다고 한다.
평화의 전당
관세음보살을 반복하면서 계속 기도하면 중생의 소원을 들어주신다네요. 다음은 연화사. “연화사. 회릉의 원찰이었습니다. 나중에 회묘로 바뀌면서 일반사찰로 되었다가 의릉들어서면서 다시 원찰이 되었습니다. 임오군란 때, 6・25 때 두 번 큰불이 났었고요. 다시 지은 겁니다. 유명한 불화들이 많습니다. 20세기 초에 만들어졌고, 서울 도성 내에 사찰이 없었는데, 1889년에 광화문에서 청량리까지 전차가 연결되었거든요. 왕실전용칸이 있었다고 해요. 그래서 궁녀들이 많이 찾았다고 하고 그래서 그들이 시주한 돈으로 그런 불화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곳에 있는 불화들은 서울시 유형문화재이다.
좌) 극락전 불화 우) 관세음보살 그리고 불교 신자가 아니라 몰랐던 이야기. “관세음보살은 불자들이 어려움이 있을 때 불공을 드리면 해결해주시는 분이에요. 그래서 눈으로 보고 손으로 해결하기 위해 손과 눈이 많은 관세음보살 그림이 있어요. 이 그림을 보면 천 개의 손과 눈이 그려져 있어요. 천태종에서는 계속 관세음보살을 반복하며 계속 기도하면 중생의 소원을 들어주신다네요.” 그냥 기도문인 줄 알았더니 어려움을 겪는 중생의 소원을 들어주는 고마우신 분이었다. 곧 수능인데, 소원 비는 불자 부모님들 소원 들으시느라 아주 바쁘시겠다.
회기동 안녕마을 골목
안녕, 우리 행복하자. 마지막으로 회기동 주민들이 직접 계획하고 꾸미고 관리하는 안녕마을을 둘러보았다. “골목도 좁고 끝나는 부분에 공터가 좀 있는데, 주민들이 거리를 가꾸고 이웃끼리 인사하면서 지내자는 의미로 안녕마을이라는 이름으로 안전한 마을을 만드는 활동을 하셨다고 해요.” 좁은 골목골목을 누비며 보는 벽화, 특히 배수관을 코끼리 코로 표현한 벽화는 마음에 쏙 든다. 또 “안녕, 우리 행복하자.“ ”희망은 언제나 길 끝에서 반짝이지.“ 좋은 글귀도 눈에 띈다. 그러나 무엇보다 더 와 닿는 것은 인사하며 지내자는 취지로 만든 ‘안녕마을’이라는 이름이다. 이런저런 장치보다 더 이웃들이 서로 인사하며 지내는 동네라면 훨씬 더 안심하고 살 수 있을 것이다. 회기동 탐방을 마치니 구청에서 주는 선물이라며 동대문구 지도가 있는 손수건을 주신다. 동행했던 분들께 가장 좋았던 장소와 소감을 물었다. “어휴. 우리가 뭘 알아야죠. 경희대 본관이 가장 멋졌어요. 그냥 시간이 남아서 왔어요. 또 무료라 가볍게 올 수 있고요. 몰랐던 이야기도 듣고 보니 좋네요.“ 좋으셨다며 인터뷰는 한사코 안하신다 하시니 아쉽게 돌아선다. 연산군과 그의 어머니 폐비윤씨의 연화사, 독립운동가를 길러내던 신흥무관학교와 경희대 역사, 그리고 김대중・문재인 전・현직 대통령의 역사, 동네를 안전하게 가꾸려는 동네사람들의 역사까지 크나큰 어려움이 와도 헤치고 나가는 역사가 회기동 곳곳에 서려있다. 이 땅 어디든 어려운 시간을 견디는 이들에게 회기동의 헤쳐 나가는 역사의 기운이 닿아 성공하기를 기원한다.
인터뷰,마을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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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서 놀고, 즐기고, 배울 곳 01
회기동 마을활력소 ‘회기한지붕’ 만난 사람 : 양은영, 김경희, 박경란 (‘회기동한지붕’ 운영진) 취재 & 글 : 오은형
왼쪽부터 양은영 소장, 박경란 님, 김경희 님
경희대학교 앞 옛 회기파출소 자리엔 개관 1주년을 맞이하는 마을활력소 ‘ 회기한지붕’이 있다. 커다란 플라타너스 아름드리나무 아래 비어있던 공간이 책과 커피, 초록식물로 꾸며지고, 사람들이 모여 무언가 일어나는 마을 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다.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던 토요일 오후, ‘회기한지붕’ 운영진 세 분을 만났다. Q. 각자 소개 부탁드립니다. 양은영소장(이하 양): 저는 회기한지붕 마을활력소장 양은영입니다. 전에는 휘경동의 마을공간 ‘책놀이터 작은도서관’를 운영했고, 이 곳은 개관준비부터, 2018년 11월 30일 개관, 그리고 지금까지 동네사람들과 함께 운영책임을 맡고 있습니다. 김경희님(이하 김): 저는 회기한지붕 북카페 지기 김경희입니다. 바느질 업싸이클링, 청소년 모임 활동 지원, 한지붕의 책과 커피, 차를 판매하는 카페 운영까지 맡고 있습니다. 박경란님(이하 박): 저는 회기한지붕 친환경 리더활동가 겸 마을 강사로 활동하는 박경란입니다. 주로 뜨개질, 비누와 화장품, 벌레퇴치제, 향초 등 친환경 천연제품을 만들고, 마을 강사로 활동하며 마을활력소의 내・외부 자원 활동을 합니다. Q. 회기동 마을 활력소에는 어떤 사람들이 모이고, 어떤 활동들이 있는지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양: 회기한지붕은 지역에서 자원봉사와 시민 활동에 관심이 있는 주민들이 모여 주로 환경과 생태복원 활동을 합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더라도 아이를 키우면서 교육에 대한 정보도 나누다 보니, 친환경에 관한 관심과 실천으로 마음이 통한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어요. 활동을 소개해 드리자면, ① 초등학생들과 경희대학교 아동가족학과 자원봉사 동아리 예그리나 학생들이 자아발견과 가족 등 주제가 있는 책을 읽고 서로의 경험과 생각을 나누며 글을 쓰는 활동이 있습니다. ② 배움터 청소년들은 폐현수막으로 에코백과 앞치마를 만들고, 작고 낡아져
못 입는 청바지는 가방을 만들어 재사용합니다. 또 공장에서 버려지는 양말목으로 바구니, 컵 받침, 방석 등 생활용품을 만듭니다. 재봉틀과 손바느질의 수고로움이 너무 크지만, 자원의 재사용으로 우리 주변의 환경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신기하고 감동이 있는 에코랩 활동입니다. ③ 마을가드닝 가족활동은 회기한지붕 사람들이 가꾼 작은 정원을 둘러보며, 꽃을 가꾸는 이웃들의 손길을 함께 느끼려 합니다. 허전한 공간에 작은 정원을 만들어 꽃을 심고 물을 주며, 마을을 아름답게 가꾸고 공기정화 식물나눔으로 회기동 사람들과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과 미세먼지로부터 건강함을 만들고 있습니다. ④ 마을공방은 천연 한방 화장품과 자운고, 노니, 어성초로 만드는 천연비누, EM을 이용한 친환경 세제를 만들어 천연재료의 유용함과 건강과 환경을 생각합니다. ⑤ 에코 코바늘 맘은 버틀커버, 컵 받침, 비닐봉지실 장바구니, 수세미 등 세제를 적게 쓸 수 있는 제품과 1회용품 사용을 줄이기 위한 제품을 코바늘뜨기로 만드는 모임입니다. 이렇게 각각의 주민들의 모임에서 공부하여 물품을 만들고, 집에서 쓰지 않는 물건들을 모아 회기한지붕 앞마당에서 배움터 친구들, 나눔터 맘들, 경희여중 나눔 클럽 친구들이 지구를 살리고 이웃도 살리는 ‘청소년들이 녹색 장터’를 운영합니다. 참여자들이 유용하게 사용 가능한 중고물품을 모으고 직접 만든 친환경 제품들을 판매하고 그 수익금을 모으면 ‘우리 동네 따뜻한 겨울나기 홀몸 어르신 후원’사업에 기증합니다. Q. 마을활력소 활동을 하면서 나의 생활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요? 박: 저는 원래 집에서 뜨개질했는데, 이곳에서 수세미 뜨기를 가르쳐줄 사람이 필요하다 해서 왔어요. 이곳이 친환경 공간이다 보니 사람들과 친환경 제품을 만들기를 준비하고 공부하면서 마을 강사와 친환경 리더가 됐어요. 우리가 20 대에는 환경문제에 관심이 높지는 않았어요. 엄마가 되니까 나의 건강도 중요하지만, 요즘 미세먼지, 미세플라스틱, 지구환경에 대한 문제가 심각하고 매체에서 많이 접하게 되어 우리 가족의 건강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고 우리 식구들이라도 덜 쓰고 덜 접하도록 우리라도 먼저 줄여보자고 생각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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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서 놀고, 즐기고, 배울 곳 02
마을활력소 회기한지붕
회기한지붕 북카페
되었어요.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1인당 비닐봉지 사용량이 제일 많다고 하는데, 장바구니만 잘 들고 다녀도 많이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요. 조금만 고민하고 찾아보면 재사용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어요. 업싸이클링과 직접 만들어 쓰는 일은 혼자 하는 것보다 여럿이 하면 정보도 나누고 쉽게 할 수 있고, 그 수고로움이 재미로 바뀐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Q. 우리가 생각하는 회기동 마을활력소의 컨셉과 마을 공간의 가치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양: 회기한지붕은 비영리단체인 (사)열린사회동대문시민회가 위탁받아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회기동은 대학교와 초・중・고등학교 그리고 대학병원이 있어요. 상당한 수의 상업적 공간 속에서 청소년들이 모임을 할 수 있는 자유롭고 편안한 공간이 부족합니다. 다행히 회기한지붕이 문을 열고 환경에 대한 역량이 있는 분들이 모이셨고, 환경문제에 대해 공감하고 실천하려는 분들이 많아 그 역량들이 이곳의 특별한 자원이 되고 있어요. 상업적 공간들 틈에서 지역주민이 소통하고 공감하며 건강한 지역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자원봉사와 서로 배움으로 이웃들의 움직임이 많은 마을활력소가 되는 것입니다. Q. 마을활력소를 운영하면서 어려운 점이 있다면 어떤 점이 있나요? 김: 저는 봉사자 관점에서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이웃 할머니들이 셔틀을 기다리며 잠깐 앉아 있다 가겠다고 하시는데, 여기는 누구라도 편하게 들어 올 수 있는 곳이라 말씀드려도 꼭 차를 마셔야 하는 곳으로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활력소라는 말 자체도 익숙지 않으시고요. 이 근처에서 주민 공간은 여기가 유일한데 익숙하지 않아서 밖에서 많이 지켜보고 낯설어하세요. 프로그램 홍보 안내문을 보시고 관심 있는 분들이 문의하러 오셨다가 활력소 프로그램에 하나둘씩 참여하면서 오시는 분들이 계신데, 아직은 홍보가 부족해 회기동 주민이용이 적습니다. 마을 장터, 마을박람회 등의 관내 행사에서 우리의 활동 체험과 나눔을 하는데, 주민들이 새 물건을 기증하고, 후원 관련 문의도 하세요. 그런데 저희가 장터가 열릴 때까지 물건을 보관할 장소가 부족하다 보니 어려운 점도 있어요. 사업과 프로그램에 대한 아이템은 많은데 함께 만들어가는 이웃이 더 많아지면 좋겠어요.
에코랩
많이 했어요. 그 운영 경험은 재정적인 문제를 극복하는 것과 운영 방향과 방법에 대해 감을 알게 된 시간이기도 했고요. 우리가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했지만, 프로그램이 많아서 활력소 운영진 모두가 고생 많았어요. 작년에 많이 도와주시고 활동했던 분들이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 이사, 경제활동 등으로 바빠지면서 부담도 되고 기운이 빠지기도 했어요. 이 곳이 아직 주민공간으로 자리를 못 잡은 점도 있었고요. 하지만 활동만 다 같이 해주셔도 힘이 나더라고요. 결국에는 사람이 많이 모여야 활기가 생기거든요. 집에 계신 엄마들이 재능과 능력이 상당한데 누구나 다 재능이 꺼내 놓지를 못하는 것 같아요. 나오셔서 함께 나누면 마을이 참 재미있을 것 같아요. 부담스럽고 피곤함이 아닌 즐거움과 보람이 있도록 내년에는 함께 활동하시는 분들이 많아져서 피곤함은 줄이고 즐거움은 늘렸으면 좋겠어요. Q. 마을활력소 회기한지붕을 향후 계획과 미래의 바라는 모습을 얘기해 주신다면? 양: 일단, 회기한지붕의 모든 프로그램은 친환경으로 시작합니다. 환경활동을 꾸준하게 하려고요. 생활용품 뜨개질과 친환경 제품 만들기, 원예, 마을가드닝을 마을사람들이 좀 더 즐겁게 참여할 수 있도록이요. 1년의 경험으로 운영에 대해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앞으로 지금 활동하고 있는 일을 계속 발전시켜 나가는 게 바람이고, 주민들의 의견을 받아 차근차근 좋은 특색은 살리고 부족한 것은 채우고 싶어요. 주민들이 해보고 싶은 제안이 많아져서 이제 나, 몇몇이 아닌 많은 사람이 회기한지붕을 함께 가꾸어 가고 싶어요. 우리는 마을 녹색발전소로서 마을가드닝과 에코랩 사업으로 회기한지붕이 지역의 환경개선에 중심이 될 것입니다. 회기한지붕의 주말 오후는 분주했다. 이웃 누구나 거리낌 없이 드나들 수 있고, 자연에 해를 입히지 않고 사는 방법을 공부하고 해보며 함께 나누는 삶의 방식을 공유하느라 바쁘다. 회기한지붕을 지키는 듯 서 있는 멋진 플라타너스처럼 그 뜻이 곧게 자라나고, 널리 널리 퍼지길.
Q. 마을활력소 활동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과 남겨진 과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양: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운영진과 스텝들은 좋았어요. 뭔가 만들어 내고 책임감이 붙다 보니 에너지가 생겼거든요. 바로 제가 여기 이 장소에 있었다는 자부심도 생겼고요. 지난 1년 동안 마을활력소를 실험적으로 여러 가지 사업을
운영기관
운영시간
활동내용
체험 및 판매 물품
(사)열린사회동대문시민회 다음카페 : http://cafe.daum.net/yoo5 서울시 동대문구 회기로 18길 3 T. 02-2135-8151
평일・토요일 카페 10:30~5:30 공간대관 10:00~10:00
이웃과 지역의 주민과 함께하는 책. 배움. 소통. 나눔・참여의 다양한 활동
공정무역 커피 & 허브 TEA 허브・한방 화장품 & 친환경 생활제품 실내공기 정화식물 & 그린플랜테리어 손뜨개 작품 & 업싸이클링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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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서 놀고, 즐기고, 배울 곳 02
녹원 카페 운영진 만난 사람 : 김동주, 황인경 (‘녹원카페’ 운영진) 취재 & 글 : 심소영
왼쪽부터 황인경님, 김동주님
2012년부터 2015년까지 경희대 공공대학원에 다녔다. 그때 동기들과 자주 만난 장소가 ‘녹원’이다. 삼천 원 언저리의 찻값으로 사장님이 직접 담그거나 만든 질 좋은 차를 마실 수 있었고, 떡 튀밥이나 경단을 차와 같이 내주셔서 늘 대접받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2016년 ‘녹원’이 폐업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마도 한 집 건너 하나씩 생기는 수많은 커피전문점과 또 혼자 공부하며 음료를 즐기는 카페문화가 생긴 탓 인듯하다. 옛 ‘녹원’은 없어졌지만, 2018년 새로운 ‘녹원’의 오픈 소식을 들었다. 그것도 경희대 학생들이 운영하는 ‘녹원’ 이라니 오픈 스토리가 궁금했다. 그래서 찾은 ‘녹원’은 들어가는 입구부터 하얀 바탕의 멋스러운 녹원의 새로운 로고가 눈에 띈다. 예전에는 들어가는 입구에 작은 격자무늬 문이 장식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현관문 자체가 검은 격자로 간유리와 투명유리가 끼워져 예스러움과 세련됨이 공존하고 있었다. 문을 밀고 들어가니, 따듯한 주황색 조명이 맞아준다. 오른쪽으로는 아담한 다과상들, 담요와 쿠션들이 군데군데 놓여있는 너른 마루가 있고, 그 위에는 긴 빠형 테이블과 의자, 삼삼오오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몇 개가 더 있다. 그리고 주문할 수 있는 주방 겸 계산대와 작은 테이블까지 널직하고 아늑한 여러 가지 형태의 공간을 갖추고 있어 다양한 모임이 가능할 것 같았다. 공간을 둘러보니 이렇게 꾸미고 운영하는 사람들이 더 궁금해졌다.
현재 녹원의 내부
김: 녹원은 1985년에 생겼어요. 폐업 때 상황은 우리가 입학 전이라 잘 모르지만, 사장님이 직접 만드신 디저트로도 유명했다고 해요. 경희대 앞에 카페가 많지 않았고, 90년대와 00년대 학번의 선배님들이 학교에 다닐 때는 잘됐는데, 2010년대 카페가 많이 생기면서 장사가 잘 안되서 고민하시다가 2016년에 폐업하셨다고 들었어요. Q. 그럼 리뉴얼은 어떤 계기로 시작되었나요? 황: 경희대캠퍼스타운조성사업 ‘녹원 리마인드’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2018년 9 월 재오픈했습니다. 우대식 교수님이 학생들과 함께 초기 모임을 결성했고요. 그 당시에는 조경과, 주거환경과, 시각디자인과 학생들이 많이 참여했어요. 1 기가 오픈 때까지 활동하고, 2기부터는 외식경영, 조리서비스, 경영학과 학생들이 참여해서, 지금은 3기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활동을 시작한 이유는 경희대인들의 공간이라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에 논의를 시작했고, 마침 경희대캠퍼스타운조성사업의 취지에 맞아 ‘녹원리마인드’ 사업을 신청했어요. 다행히 선정되어 올해까지 지원을 받아요. 지금은 내년부터 독립적으로 운영해야 하니까 고민이 많아요. 현재까지는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Q. 카페가 참 아늑합니다. 운영하시는 분들과 공간이 닮은 것 같아요. 소개 부탁드립니다. 김동주(이하 김): 저는 경희대 외식경영학과 김동주입니다. 녹원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제가 2018년 작년 초부터 시작했어요. 조리과 친구를 통해 알게 되고 기획단계를 같이 거치고 9월 오픈했어요. 3학년인데, 지금은 휴학 중입니다. 황인경(이하 황): 저도 외식경영학과에 재학 중이구요. 이름은 황인경입니다. 저는 원래 학교 안에 있는 카페를 운영하다가 동주의 제안을 받고 올해 2월부터 녹원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Q. 사회적협동조합은 수익을 사회에 환원해야 하는 구조로 알고 있는데, 환원계획까지 세우신 건가요? 김: 녹원의 가장 큰 장점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거든요. 다른 여타 시설이나 단체와 다르게, 사람들이 편안하게 모일 수 있고, 거기에 음료나 디저트 등의 외식이 요소가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 생각해요. 또 주민들에게 교육서비스를 만들고 있어요. 회기동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팝업 레스토랑 재능기부를 했는데, 반응이 좋았습니다. 그런 공유공간제공과 주민연계행사나 특히 아이들과 하는 쿠킹클래스 등을 진행하는 사회환원을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저희가 인건비를 받지 않고 운영하고 있어서 활동 자체가 사회환원이라 볼 수 있고, 그에 걸맞은 타이틀을 더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Q. 제가 여기 공공대학원 다닐 때만 해도 전통찻집 녹원이었어요. 여기서 스터디모임도 하고 오면 늘 뻥튀기와 맛있는 차를 먹었던 기억이 있는데, 녹원의 역사에 대해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Q. 인건비를 받지 않고 활동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럼 개인적인 동기부여는 무엇으로 하나요? 김: 아무래도 학생 신분으로 이런 카페경영이라는 것은 어디서도 경험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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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녹원카페 내부
옛 녹원과 현재 녹원 간판
없는 부분이라서 그게 제일 크죠. 그리고 저 개인적으로는 나중에 창업을 꿈꾸고 있어서 실제로 운영해보면 뼈저리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아요. 저희가 가지고 있는 돈으로 해보고 싶은 것은 많은데, 한정되어 있으니까. 그리고 매출이 날마다 다른데, 정말 예측할 수 없는 현실적인 부분을 함께 겪으면서 운영하는 경험 자체가 힘이 돼요. 저희가 매주 회의를 하면서 의견을 공유하고 해결책을 찾기도 하는데, 그런 경험들이 카페 운영 경험뿐 아니라 인생 자체에 도움이 되는 것이 있어요.
친구들과 뜻을 공유할 수 있고 함께 고민하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 서로 의지도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돈을 안 받다 보면 반드시 여기서 다른 가치를 찾아야 하거든요. 시간과 에너지를 희생하면서 이상의 가치를 찾아야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어서, 목적은 다른 것 같지만 저도 2월에 들어온 초기에 비하면 지금 녹원에 바라는 것도 다르거든요. 그래서 다른 친구들도 어떤 마음으로 임하는지 모르겠지만, 여기 속해있는 것만으로도 소속감이 느껴지는 것이 커요.
Q. 여기를 찾는 분들은 대부분 경희대 학생들인가요? 김: 아니요. 이곳을 기억하고 있는 분들이 교수님, 임직원, 의료원분들까지 오세요. 학생들은 대부분은 옛 녹원을 잘 몰라서 진기한 찻집 정도로 여기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학생들도 많이 오지만, 중장년층도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죠. 그리고 특이한 점은 동창회 같은걸 하시면 꼭 녹원에 오셔서 옛 녹원이 아니라서 놀라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럴 때 인테리어는 바뀌었지만. 옛 녹원을 잇고 있다고 말씀드려요.
Q. 녹원이 지역사회에서 어떤 장소로 여겨지면 좋겠어요? 녹원의 이미지 메이킹을 어떻게 하고 싶으신지? 황: 녹원을 리마인드 하면서 방문하시는 분들께 어떤 의미를 남기고 싶나 하는 얘기를 했었거든요. 경희대 학생들에게는 아지트 같은 변하지 않는 추억의 공간으로 남았으면 하고요. 조금 더 확장해보자면 녹원의 스토리 자체가 사람들에게 외면받아 사라졌던 장소를 특별하게 기억하는 사람들로부터 재탄생한 곳이라서, 밖에서 치여 힘들고 지친 사람들이 이곳에 오면 편안해지고 다시 살아나는 공간으로 에너지를 얻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곳에서는 스스로 특별함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는 서비스를 해보자 했습니다. 여기 오면 맘이 편안해지고 좋구나! 그런.
Q. 그럼 운영에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요? 황: 제일 큰 부분이 방학이에요. 사람이 없어서. 옛 녹원 사장님이 ‘녹원 리마인드’ 프로젝트 관련해서 설명해 드리고 취지 말씀드렸더니, 방학을 버틸 수 있으면 하라고 그러셨대요. 사람이 진짜 너무 없어요. 그래서 팝업 레스토랑이나 쿠킹클래스 등의 방학프로그램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Q. 그런 프로그램이 수익이나 운영상에 도움이 되나요? 황: 실질적인 수익은 안 되고요. 지금까지는 주민들과 함께할 기회가 있어서 좋았고요. 지금은 무료로 진행하는데, 지원받지 않고 할 능력이 되면 참가비를 받아서 하면 재정에 도움이 되는 형태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Q. 인건비도 안 받으시고 멤버 간 결합 도를 높이기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앞서서 말씀하신 대로 경영 경험만으로 멤버십이 좋아지나요? 황: 사실 돈으로 하는 활동이 아니라서 가능한 것도 있다고 생각해요. 돈이 주어지기 시작하면 그와 함께 시작되는 갈등도 있을 거라 생각하고요. 사실 지금 어떻게 친해진 것인지 모르겠는데, 학교 다니면서 이만큼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고 몰입할 수 있는 친구들을 만나기 힘들거든요. 그런데 이런
‘녹원리마인드’ 이들의 실험이 성공하기를 바란다. 얼마 전 내가 좋아하는 고영직님의 ‘인문적 인간’<2019.7>에서 이런 문장을 읽었다. “더 이상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닌 내켜서 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녹원에서 만난 두 분도 시켜서가 아니라 내켜서 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내 경우도 회사 다니면서 느끼는 소속감도 있지만 이에 반하는 구속감도 있었다. 소속감보다 구속감이 더 커지면 견디기 힘들었던 일상이었다. 녹원의 운영진은 오롯이 소속감과 운영진들의 관계로 난제를 해결해가며 녹원을 운영한다. 그들의 표현대로 쉽게 얻을 수 없는 경험이다. 인터뷰를 마치며 지역사회가 이렇게 내켜서 지역에서 활동하는 청년들과 함께할 수 있는 접점을 찾아보기로 한다.
영업시간: 정오12시~ 22시까지/ 위치: 동대문구 경희대로 14 지층
현재 녹원의 서비스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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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이고 움직이고 달라지다 01
회기동 ‘안녕마을’ 원조 김상규 회기동 새마을금고 이사장 만난 사람 : 김상규 취재 & 글 : 심소영
김상규 회기동 새마을금고 이사장 회기동 탐방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안녕마을’을 둘러보았다. 많은 사람의 수고로움과 많은 시간이 느껴지는 골목이다. 누가 처음 시작하게 되었는지, 골목골목마다 주민들의 동의를 얻는 것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만드는 것 보다 유지하는 것이 힘들 텐데, 오랫동안 어떻게 유지하고 있을까? 원조를 찾았다. 그는 회기동 자율방범대 고문이자 회기동 새마을금고 김상규 이사장이다. Q. 회기동 토박이이신가요? 이사장님 소개 부탁드립니다. “말띠에요. 67세. 강원도 춘천이 고향이에요. 거기서 아이들 공부시키려고 서울로 올라왔죠. 사실 관악구 신림동으로 가려고 했어요. 근데 관악에서 춘천을 가려면 서울 끝에서 여기까지 와서 또 나가야 하거든요. 근데 여기는 바로 춘천 가는 길을 탈 수 있어서, 또 와보니까 주위에 대학교도 많고 초등학교가 몇 개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애들 공부시키는데, 큰 문제가 없겠다 해서 회기동에 자리 잡은 거예요. 처음에는 춘천으로 출퇴근을 1년 동안 했는데, 힘들어서 내 사업을 해 보자고 집사람이랑 쪼그맣게 회기동에서 장사를 시작했어요. 내가 고향이 춘천인데, 이 동네 춘천 음식이 없어서 춘천 막국수 집을 했어요. 접은 지는 꽤 됐고요. 손님 많았어요, 전부 예약 손님만 받았어요. 경희대나 경희의료원 직원들도 많이 오시고. 그래도 요즘 후회가 남는 게 애들 가르치러 와서 왜 이걸 했을까. 장사하려다 보니 애들한테 신경을 못 쓴 거야. 집사랑 이랑 ‘우리가 애들 키우러 와서 뭐 하는 거냐’ 하면서 딱 접었어요. 애들 엄마가 정말 고생 많이 했죠.” Q. 회기동에 살아보니 어떠세요? “회기동 회자가 돌아올 회자라고 해요. 회기동에서 살다 보니 이사하셨던 분들도 돌아와 사시는 것을 종종 봐요. 회기동 살 때가 좋았다는 분들이
계시거든요. 회기동이 어떻게 생겼냐면 소쿠리 형태에요. 명당이라고 하더라고요. 풍수지리적으로, 내가 봐도 다 잘돼서 나가더라고요. 경희대 상권하면 권리금도 몇천에서 억을 줘야 했는데, 지금은 경기가 안 좋아져서 그런지 별로지만, 최근에 도시재생지역 발표되고 하면서 나한테 전화가 오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회기동 더 좋아질 거야 가지고 있는 거 있으면 팔지 마’ 했어요.” Q. ‘안녕마을’ 시작은 어떻게 하시게 된 것인가요? “처음 사업 시작하면서 굉장히 고심했어요. ‘안녕마을’이라 하다 보니, 주민들에게 오해도 있었어요. 주민들이 그럼 우리 마을이 안 좋은 일이 많았던 동네라는 거냐…. 하는 얘기도 들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그건 아닌데, 여기가 맨 원룸들이다 보니까 젊은 학생들이잖아요. 그래서인지 바바리맨이라던가 창으로 쳐다보는 사람들이 꽤 있었어요. 그래서 서울시에서 안전마을사업을 한다 하길래 우리가 사업을 해 보자 했고, 지금까지 하게 되었네요. 시작은 2013년. 7년 차? 거의 그렇네요. 근데 앞으로가 걱정돼요. 이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라도 잘 관리하고 유지해야 하는데 제가 마을금고 일을 맡게 되면서 계속 관리할 수 있는 여력이 안 되거든요. 그래도 지금도 동네를 돌면서 손봐야 할 곳이나 손이 필요한 일을 하고 있어요. 전화라도 해서 도와달라 하고. 올해는 비가 많이 와서 다행이었어요. 따로 물주는 일을 좀 덜 수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금고일 시작하면서는 동네 일하시는 분들을 위해 사비로 매월 100만 원씩 적립해서 여러 단체를 돕고 있어요. 1년 동안 모아서 돕고 남은 돈은 장학금주고 1년씩 털어가죠 ” Q. ‘안녕마을’ 이름에 어떤 의미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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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것은 이웃들과 서로 알아가면서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서울시에서 제시한 사업명도 ‘안전마을’ 이었는데 제가 ‘안녕마을’로 시작한 이유가 안녕이 인사하는 거잖아요. 이웃들과 서로 지나다니면서 ‘안녕하세요’ 하다 보면 서로 알 수 있고, 우리 동네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잖아요. 아 저분이 우리동네 사람이구나. 인사하는 사람끼리는 욕도 안 하고, 저쪽에서도 서로 받아주면서 알아갈 수 있거든요. 서로 알아가고 사는 동네면 좋겠다 해서 이름을 ‘안녕마을’로 지었어요.” Q. 안녕마을을 하시면서 재미있거나 슬프거나 다양한 에피소드가 있을 것 같아요. “제가 통장 회장 하다가 안녕마을하면서 자율방범대장을 맡았어요. 안전하고 연결되는 것이 자율방범 대장이라서 그 직을 맡았죠. 자율방범대원들에게도 늘 했던 말이 근무서는 것도 좋지만, 안녕마을을 가꾸는 것도 근무하고 연관되는 거니까, 여름철에는 물주기, 어떤 때는 낮에 꽃도 심고, 그렇게 진행하다 보니까 끝이 없어요. 관리가 더 힘들거든요. 주민들도 우리가 만들어 놓으면 주민들이 잘 가꾸면 좋은데, 망가지거나 꽃이 시들면 저희한테 연락이 와요. 그럼 ‘이쁜 꽃도 보고 좋으신데, 관리 좀 해주시지 그러세요.’ 하면,‘ 아니 심어놨으면 끝까지 해줘야지 그러세요.’ 하하 그런 게 있더라고요. 그리고 동대문에 대학이 얼마나 많아요. 학생들하고 연결하면 얼마든지 잘 만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좋은 조건이 있음에도 활용을 못 한다는 것이 아쉬워요. 가장 아쉬운 것은 작은 공간이라도 있으면 주민들 이용하게 운동기구라도 놓고 쉬어가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는데, 있더라도 주차하려하지 운동기구는 못 놓게 해요. 내가 전에도 의자를 가져다가 골목 다니는 어르신들 쉬실 수 있게 벤치를 만들어놨더니 다 부숴놨어요. 거기 사시는 어르신이 우리 집 차대야 한다고. 또 쓰레기를 많이 버려서 화단을 만들어놨더니 그것도 하룻밤 지나고 나니 다 부숴놨어요. 그래서 왜 그러시냐 물었더니 차대야 하는데 길 좁게 뭐해 놓은 거냐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치워야 했죠. 그렇게 하고 싶은 것은 많은데 이해관계로 여의치 않을 때가 힘들었어요.” Q. 회기동은 주민자치 시범 동이기도 하고 도시재생 지역으로 선정되기도 있는데, 어떤 기대가 있으신가요? “주민들 의견이 반영되면 좋죠. 근데 어느 과든 어느 정치인도 사람이 바뀌면 정책까지 다 바꿔버리는 것이 젤로 맘에 안 들어요. 나라에서 발표는 했는데, 이게 계속 갈지 내년 총선까지의 말뿐인지 봐야겠죠. 청량리서 홍릉으로 해서 여기 오는 길이 완전 딴 나라에요. 교통이 딱 끊겼거든. 내가 여기 올 때 청량리에서 홍릉 쪽으로 왔더니 완전 시골인 거야. 요 앞쪽은 번화한데, 그런데 지금까지 똑같아요. 길도 완전 S자로 굽어 있잖아요. 옛날에는 목소리 큰 사람이 있으면 도로 방향도 틀어버리고 했나 봐요. 그래도 마침 도시재생한다고 하니까 이제는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시유지가 많아 매입이 쉬울 테니까요. 우리 주민센터도 너무 열악해요. 작기도 하지만 골목 쑥 들어가 있어요. 사람들이 못 찾고 새마을금고 들어와서 물어본다니까요? 주민들이 잘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논의되고 있는 주민시설도 주민들 의견 많이 수렴해서 꼭 성사되었으면 좋겠고요.” Q. 그럼 회기동의 가장 큰 현안은 무얼까요? “주차공간이 너무 없어서. 아실 거예요. 102번지, 103번지 쪽으로 올라가면 불나면 소방차가 못 들어가요. 불나면 다 탈 수밖에 없어요. 뭐 어떻게 소방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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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올 수 없으니. 예전에 불난 적도 있는데, 소방관들이 호스 들고 뛰더라고요. 그래서 전에 서울시에 주차장 만들어주라고 했더니, 구의원들한테 얘기하래. 구의원들은 주민들 설득을 저더러 하래요. 제가 어떡하겠어요. 그분들이 제가 파란다고 파시겠어요? 안 팔지. 오죽하면 그런 소릴 했겠어요. 그런면에서 회기동이 참 열악해요.” Q. 가장 오래된 추억을 말씀해주신다면? “옛날에는 화염병 맨날 날아왔잖아요. 경찰차가 우리 집 앞에 맨날 서 있는 거야. 우리 집 화장실은 공동화장실이었고. 파출소에 불이 나면 칠하고 또 칠하고 일만 나면 셔터 내리고 딴 데 있고 그랬어요. 기억에 남는 일은 웬만한 단체장은 해봤는데, 오래 사신 분들이 많아서 한 이웃 같고, ‘안녕마을’하면서 그래도 잘했구나 싶어요. 자율방범을 제가 만들었어요. 파출소장님이 오셔서 자율방범이 없으니 만들어봅시다. 해서 그 당시에 의료원 다니시는 분 대장으로 하고, 나하고 이사하신 분하고 돈을 조금씩 내고, 구의원 쫓아다니면서 자율방범대 만들려니까 보태달라고도 하고, 컨테이너 하나 두고 시작을 한 거야. 그때부터 총무를 본 것이 지금까지 그게 한 20년 되네. 총무 하다가 결국 대장을 맡으면서 ‘안녕마을’도 하고, 서울시 경찰청가서 ‘ 베스트방범대’라는 상도 받고요. 몇 년도지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나네. 한 8년 전인 것 같아요. 그리고 서울시에서 주는 ‘아름다운 골목 가꾸기’ 상도 받았어요.” Q. 회기동 살이에서 가장 좋았던 얘기를 들려주신다면? “회기동 와서 살면서 좋은 분들과 하고 싶은 일도 해봤어요. 그래도 아쉬운 거는 애들한테도 해줄 수 있는 게 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래도 남들에게 나쁜 놈 소리는 안 듣고 산 것 같아요. 지금 주민자치회도 나가고 있어요. 통장 일을 오래 해서 오래 사신 분들은 다 알고요. 동네가 작아도 여기는 한번 들어오면 다 오래 사시는 분들이라 서로 다 아니까. 다른 동네는 동이 합쳐지면서 서로 이해관계가 얽혀서 비판하는 것도 있어서 불협화음이 생기고는 하는데, 우리는 잘 뭉치거든요. 회기동이 인구 만 명밖에 안 되는 조그만 동네인데도 뭐든 잘했는데, 요즘은 동별로 다 하다 보니까 힘들어요. 인구 규모가 커야 하는데 면적만 넓어요, 경희대가 반을 차지해서. 옛날에는 회기동도. 이문동이랑 통합하려고 했는데, 한 개동에 대학이 2개 있으면 안 된다. 그래서 통합이 안 됐어. 청량리동은 1, 2동이 합쳐지고, 회기동은 합칠 동이 없어서 회기동을 없애려고 했었어요. 회기동 사람들이 가만있나. 회기동 사람들이 뭉치는 데는 잘 뭉치거든. 그래서 작아도 법정동으로 있게 된 거예요. 인구는 제일 작아도 잘 뭉치니까.” 인터뷰가 마무리되어갈 즈음 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10월 10일 오늘이 결혼기념일이라 부인과 저녁 식사 예정이라 한다. 귀한 시간을 내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인터뷰를 마쳤다. 그는 1부의 삶은 춘천에서 2부의 삶은 회기동에서 살아냈다. 2부의 삶에서 회기동은 그의 삶 자체였다. 그는 있는 사람들이 좀 명예롭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동네에는 많은 손이 필요하다. 많은 손을 얻기 위해서는 재원이 필요하다. 그러니 있는 사람들이 재원을 만들어주면, 명예롭게 되고, 동네에서 손 보태는 일이 훨씬 수월해질 것이라 한다. 그는 이름있는 정치가가 아닌 동네일을 돕고 이웃들의 안녕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수고로움을 더해 물적인 지원까지 아끼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명예로운 삶을 사는 중이다.
인터뷰,마을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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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호 2019. 11. 27.
신영걸 주민자치회장
모이고 움직이고 달라지다 02
신영걸 회기동 주민자치회장 만난 사람 : 신영걸 취재 & 글 : 심소영, 임정희
회기역을 나와 경희대 방향으로 걷다 보면 회기 시장 입구에 회기어린이집이 있고, 회기동 새마을금고를 지나면 오른편으로 나오는 작은 골목. 그 골목을 들어서야 작고 오래된 회기동 주민센터가 보인다. 다른 동은 주민센터 건물을 새로 짓거나 지으려는 계획이 있는데, 회기동은 주민자치회 활동도 왕성한데, 그런 소식은 아직 없다. 그런데도 마을총회도 마을 축제도 재밌었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그래서 회기동 주민자치회 신영걸 주민자치회장을 만났다. 회기동은 역사적으로 관리가 잘 되어있는 동네에요. “동대문 14개 동 중에 5개 동이 주민자치회 시범 동인데, 우리도 그중 하나에요. 또 회기동이 역사적으로 관리가 잘 되어있는 동네에요. 회기동 사진전도 여러 번 열었어요. 회기동은 산신제를 지내는데, 특이하게 마을에 오래 사신 어르신들이 제를 모셨는데, 3년 전부터 산신제도 주민자치회가 주관합니다. 제는 음력 10월 1 일 경희대 총장 본관 지나서 바로 좌측으로 돌아 들어가는 입구에 다리가 하나 있는데, 거기서 내려다보면 연못이 하나 보여요. 거기가 선동호에요. 거기서 제를 지냅니다.” 사진전에 대해 물었더니 최근은 아니지만, 회기동의 변화상이 들어있는 사진들을 전시했다고 한다. 사진은 주민자치회 창고에서 보관하고 있었다. 창고에는 방역 장비부터 각종 물품이 쌓여있다. 사진 자료는 가장 높은 곳에 있었지만, 소중한 자료들이 훼손될까 걱정되었다. 사진은 50년대부터 90년대까지 회기동 일대 사진들이 있었다. 소중한 자료인데, 창고에 묶혀있다는 점이 아쉽다. 이런 각 동의 이런 자료들을 상시 전시할 수 있는 장소가 있으면 좋겠고, 디지털화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이민을 고민했던 딱 5년만 회기동 밖에서 살았네요. “저는 결혼 전에는 외대 후문 쪽에 살았어요. 그때는 회기 1, 2동으로 나눠 있었거든요. 결혼하고 지금까지 29년 살았어요. 치기공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딱 5년 미국으로 이민 가려고 회기동을 떠나있었던 적은 있는데, 자녀가 있으니 힘들더라고요.” 회기동에 살아본 사람은 돌아오는 사람이 많다더니 회장님도 다르지 않았다.
좌) 70년대 경희대 정문앞 우) 70년대 경희대 앞 새마을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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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기동 어울림한마당
회기동이 다른 동과 잘 이어질 수 있는 버스가 있었으면 해요. 회기동에 오래사시면서 기억에 남는 사건사고를 물으니, 회기동 현안으로 여러 번 들은바 있는 이야기다. “사건이라기보다는 섭섭한 부분인데요. 실질적으로 우리가 봉사하다 보면 나름대로 힘있는 분들의 이권이 개입되는 것입니다. 주민들이 원하는 편의시설이라는 것이 정치인들에 의해 무시가 되기도 하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진행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마을버스는 운행 길이가 4킬로가 넘어야 허가가 났었는데, 1킬로로 줄어들어 합법화를 시켜 회기역에서 경희대만 도는 노선으로 되어버렸어요. 원래 마을버스 노선은 카이스트, 키스트, 떡전교, 청량리역으로 도는 노선이었을 겁니다. 이 마을버스가 전국에서 수익률 1위이고 최단거리 마을버스 노선으로는 2위이에요. 국방연구원, 카이스트, 키스트 등 그쪽 입주자들은 회기역까지 걸어 다녀야 합니다. 이 문제는 서울시에 건의해놓은 상태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법은 친환경 버스가 나오든지 아니면 협동조합을 설립해서 주민이 주주가 되고 전문경영인이 경영해서 현실적으로 주민을 위한 마을버스가 되었으면 합니다. KTX, GTX가 청량리역으로 다 들어오지만,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이어지는 것이 없어요. 제가 아는 분도 성바오로병원이 이전해서, 경희의료원으로 오고 싶지만, 버스가 없어서 버스노선이 있는 건대병원으로 가신다고 하더라고요. 학교나 병원, 행정 운영상으로 변화가 필요한 것 같아요. 주민들이 지역현안에 대해 고민도 하고 나름의 방안을 제시해 보지만, 주민들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경희대 앞 도로가 맹지에요. 몇 년 전 재판을 했어요. 구청에서 경희대에 사용료를 주라고 결정됐죠. 그러니까 구청은 가로등, 화단, 도로관리 등은 주민들 세금으로 관리를 해줬는데, 왜 맹지에 불법건물을 지었냐며 기숙사 허가를 안 해줬어요. 그러다 학생・ 학부모들이 데모하니까 2년 허가 해줬는데, 또 신입생을 받으니 무허가에다 우리 아이들을 넣게 생겼다고 난리가 났어요. 그래서 경희대에서 부랴부랴 상생 협약서를 준비해서 맺고 구청에서 또 1년 허가를 내줬어요. 이런 문제는 구청과 경희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문제인데, 경희대가 아직 총장이 공석이에요. 경희대와 행정이 주민들의 의견도 받고 해서 지역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봐요. 학교나 병원, 행정 모두 운영상으로 변화가 필요한 것 같아요.” 우리는 작지만 강한 동네예요. 인구는 작지만, 원동력이 있어요. 지역봉사활동에서 주민자치활동까지 어떤 계기로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1994년부터 새마을협의회 총무와 동대문구 새마을협의회 회장을 했고 주민자치회 감사로 있다가 주민자치회 추천으로 2년 임기로 회장으로 선출됐습니다. 지금도 마을청소부터 방역, 제설작업까지 같이하고 있어요. 초반부터 여섯 일곱 명이 함께 활동한 자영업 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어느 해에는 새벽에 새마을협의회 제설작업 하는 것을 서울시 직원들이 보고는 추천해서 개인 표창, 시장 표창을 받은 적도 있어요. 우리는 작지만 강한 동네예요. 인구는 작지만, 원동력이 있어요. 이번 마을 축제를 위해 경희대학교 학생들도 많이 참여하고요. 또 청량초등학교 운영위원회가 참여하고, 태권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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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기동주민센터
우리 동네에서 참여하게 되었어요. 실력이 아니라 학생과 학부모들이 함께 참여하는 행사가 되도록 하려고 해요.” 자치센터 관리를 동장님과 책임감 있게 하고 있습니다. 주민자치회는 말 그대로 주민이 운영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 같은데, 신영걸 회장의 얘길 들으니 그 기본을 만들어가는 느낌이다. 주민자치회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까? “처음 새마을협의회 총무일 하다 보니 주민센터하고 공조가 되어야 하고 서로 파악해야 합니다. 이제는 주민자치회가 되면서 동장업무를 같이 하는 거예요. 지금은 주민센터하고 공동으로 시행하고 있죠. 내년까지만 공동관리하고 내후년부터는 개별적으로 하게 되어있어요. 지금도 주민센터 비밀번호나 모든 것을 같이 공유합니다. 자치센터 관리를 동장님과 책임감 있게 하고 있습니다. 일을 하다보면 행정적인 문제가 있어서 서로 풀어야해요. 주민자치회 간사는 회장이 임명하고, 내년에는 주민세도 관리해야하는데 분과별 업무하고, 간사님의 업무량이 너무 많습니다.” 서울 바이오 2층을 협력 동으로 지역주민들을 위한 활용공간으로 만들려고요. 회기동 주민자치센터는 협소하고 너무 깊숙한 곳에 있어 이용하기가 어려운데, 이전이나 설립계획은 없을까? “청사 이전은 지금 알아보고 있죠. 센터 건물이 지금 28년 됐어요. 30년 돼야 자격이 있어요. 2년 더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가 동대문구 주민센터 중 4번째 순위입니다. 주민프로그램은 회기아파트에서 민원이 들어와요. 지하에 방음해도 마찬가지더라고요 그래서 농촌경제연구소 옆에 서울 바이오 2층을 협력동으로 해서 달라고 했어요. 1층은 장애인 시설, 2 층은 회기동 지역주민들을 위한 활용공간으로 이용하려고 해요” 인구는 적어도 협조를 잘해요. 이 동네 불편한 것이나 풀기 어려운 과제가 있다면? “주민자치회로 되니까 모든 민원이 다 자치회로 접수가 돼요. 그래도 회기동 위원들 70%~80% 저를 믿고 따라주시고 끌어주세요. 총회를 해보니까 주민들과 내 생각이 똑같은 것 같아요. 우리가 보고하고 집행하니까 다른 동보다 빠른 것 같습니다. 총회 때는 주민들이 다 참여할 수 있게 하려고 행사일정을 조정하여 모두가 참여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인구는 적어도 협조를 잘해요.” 회기동은 동대문구에서 청년이 가장 많이 사는 동네이다. 그래서 청년과의 교류도 많다. 세대별 소통 채널이 있으니, 동네에서 함께 하며 즐길 거리도 다양하다. 문제라면 동네 사람들에게 좋은 학교와 병원이 자랑거리인데, 주민들의 동네 살이와 충돌하는 사안도 있다. 주민자치회는 행정과 학교, 병원 그리고 주민들 간 상생의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고민하고 방법을 찾는다. 주민자치회는 그렇게 주민에게 부여된 권한을 또 다른 주민들과 나누며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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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마을’ 영화제작팀을 만나다 왼쪽부터 최하림님, 윤선영님 회기동 ‘안녕마을’을 소재로 단편영화를 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수소문해보니 경희대학교 수업 중 나온 기획이었고, 동네를 소재로 단편영화를 만드는 경희대 학생들의 프로젝트였다. 동네를 소재로 영화가 제작된다는 것만으로도 흥미롭다. 제작자들 을 카페‘녹원’에서 만났다. 최하림님(이하 최): 경희대학교 문화관광컨텐츠 학과 4학년 최하림입니다. 올해 초부터 회기동 골목테이블이라는 이름으로 동네프로젝트 기획 하는 활동을 시작했는데, 마을교육을 1학기 동안 받았고, 2학기부터는 그 기획을 구체적으로 추진 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공모를 통해 프로젝터 참여자를 모집했고요. 참여한 이유는 예산을 지원 받아서 구체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는 것과 무엇보다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았어요. 다른 하나는 제가 다니는 학교와 마을을 연결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고 해서 지원했어요. 윤선영님(이하 윤): 경희대학교 국제학과 4학년 윤선영입니다. 저는 영화제작에 관심이 많아서 같이 하게 되었어요. Q. 프로젝트 진행 상황에 대해 알려주세요. 최: 1학기 때는 마을에 대한 이해에 교육을 받고 추진하고 싶은 사업을 기획서를 작성하고 제출을 하면 기획서에 따라 따로따로 진행되는 프로젝트 였어요. 선영씨 경우는 2학기 때 제가 단편영화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고, 거기 필요한 팀을 다시 모집할 때 참여하게 되었어요. Q. ‘안녕마을’이 영화의 소재가 된 이유를 말씀해 주신다면? 최: 제가 경희대학교를 4년 가까이 다니고 있는데, 학교 다니면서 ‘안녕마을’이라는 곳이 동네에 있다는 걸 몰랐어요. 이번에 답사를 가면서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거기에는 학생들보다는 노인분 들이 많이 거주하고 계시더라고요. 유독 이곳에 어르신들이 많이 사시는 이유는? 하는 의문점에서 시작해서 마을에 관심 갖게 되었습니다. 취재해 보니 눈에 띈 문제점들이 있었고, 그 문제점들에 대한 해결방안을 제시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안녕마을’을 소재로 뭘 만들어보자 했습니다. Q. 혹시 스포일러가 될지도 모르지만 주된 내용을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최: 아직 시나리오 작성 중입니다. 그래서 구체적 으로 말씀은 못 드리지만, 전체적인 주제는 노인분 들의 동네살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Q. 설명만 들어서는 노인분들에 대한 문제는 잘 모르겠던데, 어떤게 문제라고 생각하시나요? 최: 솔직히 말씀드리면, 정확히 이 마을의 어떤 노인 문제를 발견해서 노인 문제를 주제로 삼았다기보다 는, ‘안녕마을’이라는 이름에서 소재에 착안했어요. 사회 곳곳에 계시는 주목을 받지 못하는 계층,
대상에 관한 관심을 끌어내고 싶었거든요. 그곳에 노인분들이 많이 계셔서 노인 문제를 주제로 다루자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Q. 계층간 소통의 이야기라고 이해하면 될까요? 최: 노인과 소통의 문제, 분리되어있는 계층 간의 소통 그것도 포함되겠지만, 그분들이 가지고 있는 현재의 애로사항과 불편함을 담고 싶었어요. Q. 이 영화를 주로 보게 될 사람은 누구인가요? 최: 당연히 안녕마을 사시는 주민이라고 생각하고 요. 저희가 동네 문제를 영화로 만들어, 실제적인 해결을 추구한다기보다는 그 불편함을 끄집어내서 실제로 보여주고, 일단 사람들이 그 불편함을 먼저 아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해요. 지금 그분들이 저희가 알지 못하는 어려움이나 불편한 것들이 상당히 많이 있을 텐데, 사실 젊은 사람들은 잘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 것 같아요. 그 불편함을 공감할 수 있게 전달하는 것이 저희 영화 목표입니다. Q. 이 영화제작을 위해서 주로 만나시는 분이 있나요? 최: 지금은 시나리오를 작성 단계이기 때문에 지금 상태로는 섭외할 수 있는 분들을 많이 만나고 있습니다. 장소를 대여해주시는 분이라든지 음악 을 제작해 주실 수 있는 분, 출연해주실 수 있는 분들로 제작에 참여해주실 수 있는 분들을 많이 만나고 있어요. 저희가 소재를 얻기 위해 인터뷰 하거나 답사를 했던 단계에서는 마을주민과 단체장님을 많이 만났습니다. Q. 실제 마을주민이 배우가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을 분들을 취재하고, 그 대역 배우가 섭외되는 건가요? 최: 예, 실제 출연하시는 분들은 실제 연기 생활을 하시는 분들입니다. Q. 제작 기간은? 최: 총 제작 기간은 8월 말부터 11월까지 예정되어 있었는데 좀 더 길어질 수도 있겠다 싶어요. 시나 리오 제작이 마무리가 안 돼서. 시나리오 제작과 동시에 배우섭외와 장소를 확정하고 있어요. 그래서 저희 팀 전문역할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어요. Q. 제작 인원은? 최: 총 7명이요. 좀 적죠. 촬영할 때는 1인 3역 이렇게 해야 할 것 같아요. 저는 팀장이고, 팀원들 관리와 섭외팀을 맡고 있습니다. 제작자로 보시면 되고. 연출과 시나리오를 주로 쓰는 팀원은 따로 있습니다. Q. 윤선영님은 어떤 분야에 참여하시나요? 윤: 저는 시나리오를 쓰고 있어요. 모두 3명이 담당하는데, 작성하는 것은 한 명이 해요. 영화제작 은 처음이라 시나리오를 어떤 식으로 어떤 소재를 가지고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 써본 경험이 있는 다른 친구에게 도움을 얻어가며 하고 있어요.
만난 사람 : 최하림, 윤선영 취재 & 글 : 심소영, 임정희
Q. 보통 영화 보면 제작 후기를 따로 찍으셔서 만드시잖아요. 그런 작업도 하시나요. 윤: 저도 처음에는 재미있겠다 해보고 싶었는데, 지금 하는 것도 워낙 빠듯하다 보니, 못하고 있어요. 주로 학교에서 만나 회의하면서 진행 중입니다. Q. 제작이 끝난 단편영화는 어떻게 만날 수 있나요? 최: 세 가지 정도 생각하고 있어요. 하나는 주요 관객은 안녕마을 주민들이니까 그분들에게 가장 잘 전달되는 게 중요해서, 회기동안에 있는 장소를 대여해서 주민이 볼 수 있는 상영회를 하고 싶습니다. 두 번째로는 유튜브에 올려서 공유하고 요. 세 번째로는 내년 초부터 열리는 영상제에 출품해서 상을 탈 수 있다면, 저희에게도 의미 있지 않을까 합니다. 노인영화제도 많이 있는데 지금은 크게 고려하지 않고, 제작에 집중하고 있어요. Q. 상영 소식을 알려면? 어디서 볼 수 있나요? 최: 지원을 받는 학교 캠퍼스타운조성 사업단 등에 홍보할 생각입니다. 영상이 제작되면 동네 사람들 이 알 수 있게 홍보하려고요. Q. 이 영화로 인해 지역적으로 회기동에서 일어났으면 하는 것들이 있을까요? 최: 마을에 변화가 생기고 좋은 것들이 생기려면 제일 중요한 게 그 곳에 대해 아는 것으로 생각해요. 그 장소가 영화로 제작되면, 몇 명이라도 궁금해 하고, 조금이라도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어 나지 않을까 합니다. 그렇게 되면 마을을 더 좋게 만들려는 시도도 늘어나지 않을까요? Q. 그럼 이 프로젝트가 끝나고 구상하는 것이 있나요? 최: 영상제에 출품하는 것이고요. 제가 영화라는 장르를 구상한 이유는 마을분들이 이렇게 프로젝트 성 학생들의 사업에 상당한 거부감을 느꼈어요. 잠깐 와서 관심을 두고 그것으로 끝나 버리고 다시는 찾지 않아 학생들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동네분들을 이용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죠. 그래서 저는 애초 에 그런 방향으로는 가기 싫었어요. 그래서 영화를 택했어요. 영화는 일회성 이지만 만들어 놓으면 영상 자체는 계속 존재하고, 사람들이 보려면 유튜 브 등을 통해서 찾아볼 수 있고요.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영화제 에 출품한다든지 마을회의 때 상영한다든지 활용 할 수 있는 방법이 많아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해요. 우리도 동네를 취재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동네 곳곳의 소소한 일상을 취재하여 많은 사람들과 공감하고 함께하려 한다. ‘안녕마을’ 단편영화 제작팀이랑 일맥상통하는 목표이다. 이 영화가 동네 사람들에게 살아간 시간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또 시간과 장소를 공유하며 사는 이들에게 특별한 공감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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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돈키호테
‘회기동 사람들’ 이웃으로 느끼고, 만나고 즐길 수 있는 동네 문화를 만든다 만난 사람 : 김대현 취재 & 글 : 심소영, 임정희
김대현 활동가 청년들이라면 영어 이름이나 요즘 유행하는 약어로 이름을 지을법한데, ‘ 회기동 사람들’ 이라는 매우 직접적인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을 만났다. 만난 곳은 동대문구 마을자치 박랍회. 마을활동하는 청년그룹이고, 회기동 주민들과 회기동을 주제로 다양한 이벤트를 기획하고 운영한다. 만난 사람은 ‘ 회기동 사람들’ 활동가 김대현님. 두 번째 만남이다. ‘인터뷰, 마을이음’ 창간호 제작 때 함께 ‘동네 인생술집’ 파전거리를 동행취재 했었던 인연이 있다. 작년에 함께 취재하며 마을이야기를 담는 활동에 공감했던 기억이 있어 이런 기회를 얼른 만들고 싶었다. 동행취재 당시 나는 작은 녹음기와 스마트폰이 취재도구의 전부였는데, 회기동사람들은 두 대의 카메라와 녹음기로 직접 촬영하고 녹음을 했었다. 만나서 얘기나누다 보니 그때 그 사람이 김대현씨였다. 축제 같은 것을 한다기에 재밌겠다 생각하고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시작했어요. “회기동에서 살지 않고, 회기동에 있는 학교도 다니지 않았어요. 연고는 거의 없죠. 상계동 토박이거든요. 상계동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고 있어요. 근무 끝나면 회기동으로 와서 활동하고, 주말에도 회기동에서 있는 날이 많아요. 시작은 2016년 SNS에서 모집공고를 보고 제가 직접 지원했습니다. 처음에는 동네 축제 같은 것을 한다기에 재밌겠다 싶고, 호기심으로 시작했어요. 벌써 4년 차네요” 회기동사람들은 회기동 주민과 상인, 청년들의 즐거운 네트워크로 재미난 동네를 만들기 위해서라는데, 노원구에서 여기까지 4년째 오고 있다는 김대현씨 얘길 들으니 재미가 뭘까 더 궁금해진다. 제가 만든 축제를 사람들이 즐겁게 참여하고 즐기는 모습을 보는 것이 즐거워요. 23살의 4년 차 지역활동가는 기존 동네 축제라고 하면 어르신들을 위한 잔치 정도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직접 기획하는 동네 축제라면 다 같이 어울릴 수 있는 축제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았고, 누가 만든 축제에 참여하는 것이 아닌 직접 만들어보면 더 재미있을 것 같았다고 한다. “되게 재미있었어요. 실제 뭔가 주민들과 직접 소통하면서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도 그렇고요. 제가 만든 축제를 사람들이 즐겁게 참여하고 즐기는 모습을 보는 것이 제가 느낀 즐거움 같아요.” 즐거움을 찾아 다른 이도 즐길 수 있게 만들어 선물하는 일.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즐거운 상상에 들썩거려진다. ‘월간 회기’는 마을 축제와 마을 탐험 등 회기동에서 주민들과 할 수 있는 이벤트에요. 밥 모임, 고요한 영화제, 소소한 사진전도 했어요. 즐거운 상상을 가능하게 한 구체적인 활동을 알아보기 위해 먼저 ‘숨통’이라는 회기동 마을잡지에 관해 물었다. “축제는 일단 오시는 분들만 참여하시잖아요. 안 오시는 분들은 모르잖아요. 그래서 이런 활동들을 그런 분들과도 공유해보자 했어요. 공유의 방식은 영상도 있지만, 많은 분이 다양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모두가 볼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좋겠다 해서 잡지를 만들게 된 것
같아요. 저는 거기서 사진도 찍고, 기사도 썼는데, 숨통은 1, 2호를 만들고 향후 계획은 아직 없어요. 숨통에 나오는 과거와 현재 회기동을 비교한 사진들은 제가 찍었어요. 사진을 특별히 배운 것은 아닌데요. 고등학교 때부터 좋아해서 돈을 모아 샀어요.” 지난번 촬영 시 사용했던 카메라들도 고등학교 때 좋아해서 돈을 모아 샀다. 그 카메라로 동네를 누비며 골목골목을 기록하는 그의 얘기를 들어보니, 그에게 활동이 즐거움이 되고 그 즐거움이 전달되는 것 같다. ‘월간 회기’라는 이름으로 매월 동네 이벤트를 만든다. 월간 회기라 해서 좀 더 잡지 같은 활자 매체인 줄 알았으나, 매월 동네 이벤트를 만드는 활동이라 한다. “월간 회기는 마을 축제와 마을 탐험 등 회기동에서 주민들과 할 수 있는 이벤트에요. 회기동 청년 밥 모임, 고요한 영화제, 소소한 사진전도 했어요. 밥 모임에서는 연초에 떡국을 함께 나눠 먹었고요. 고요한 영화제는 루프탑에서 영화를 봤는데, 헤드셋을 이용해 주파수를 잡아 조용하게 영화를 봤어요. 마을 탐험은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진행했는데, 마을 곳곳에 장소를 정해놓고 그곳들에서 큐알코드를 찍으면 퀴즈를 풀 수 있고 마지막 문제까지 풀면 카페 목원의 음료 쿠폰을 선물하는 마을 투어 프로그램입니다. 그런데 스마트폰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참여가 어려워 다른 방식을 기획하고 있어요. 소소한 사진전은 말씀드린 회기동 옛 사진과 현재의 골목 사진들을 동네 카페를 돌아다니면서 전시하는 이벤트였어요. 엽서에 있는 사진들이 전시한 사진들이네요. 그리고 회기동 주민자치회와 함께 기획한 동네 축제도 곧 진행할 예정이고요” 행정기관이나 여타의 기관에서 만드는 행사와는 다르게 느껴진다. 일로 기획하고 만드는 행사가 아니라 주민들과 직접 만들고 즐기는 문화행사라서 그런 것 같다. 동네살이의 즐거움을 주민들과 만드는 과정 자체가 흥이라서. 마을 활동을 하면서 이 활동을 업으로 삼을 수도 있겠다 싶어요. 이런 그들의 활동이 무척 반갑고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생겼다. 활동하는 이들의 생계문제이다. 청년들은 어떠한 자원으로 활동하지? 활동이 생업과 연결되기도 하나? 등. 그래서 생업과는 관계가 있는지 물었다. “회기동 사람들은 학생도 있고, 저 같은 사회복무요원도 있고, 직장인들도 있어요. 중심을 잡아주는 윤식이 형 또 다른 형 같은 분이 있으니, 지속해서 운영되고 있어요. 그리고 다들 이 일이 좋아 자발적으로 하는 사람들이에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람들은 계속 바뀌지만 다른 분들이 계속 이어가며 하고 있어요. 저는 아직 미래를 결정하지 않았지만 마을 활동을 하면서 이 활동을 업으로 삼을 수도 있겠다 싶어요.” 아직 생업은 어렵다. 그래도 마을 활동을 업으로 삼을 수도 있겠다는 그를 만나니, 지역 활동을 먹고 살 걱정 덜하고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빨리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지역주민들의 어울림과 즐길 수 있는 문화는 다른 누군가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닌 주민들 스스로 만들 때 더 흥이 나고, 또 이런 지역의 문화기획자가 다른 생업을 가지지 않아도 지역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만 동네 문화가 살아나는 필수조건임이 회기동 사람들의 활동으로 확인되기 때문이다. 마을지도를 공동제작해보면 좋겠어요. 동네 붕어빵가게지도, 비건 식당지도, 도서관지도, 카페 지도 그런 다양함과 특별함이 있는 마을지도 마지막으로 주민들과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나 ‘인터뷰, 마을이음’ 같은 동네 잡지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물었다. “음…. 저희 활동을 계속 관심 있게 지켜봐 주시고 함께 해주시면 좋겠고요. ‘인터뷰, 마을이음’ 잡지는 좋은 것 같아요. 인터넷이나 SNS로 이런 활동 소식을 접하지 못하시는 분들도 계시니 이런 활동 소식을 계속 공유해주시면 좋겠어요. 그리고 함께했으면 하는 것도 있는데, 다양한 주제로 마을지도를 공동제작해보면 좋겠어요. 동네 붕어빵 가게지도, 비건 식당지도 도서관지도, 카페 지도 그런 다양함과 특별함이 있는 마을지도” 역시 재미있겠다. 꼭 함께 해보면 좋겠다. 회기동 사람들과 동네 사람들이 함께 마을지도를 기획하고 만들 날을 기약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회기동 사람들이 계속 우리의 이웃으로 동네 살이 즐거움을 함께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땡큐~회기동사람들!
인터뷰,마을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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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이슈, 있슈~
속사포의 후예, 경희대이야기 김재운(경희대�총민주동문회�회장) 인터뷰 만난 사람 : 김재운(경희대 총민주동문회 회장) 취재 & 글 : 윤덕환(문화플랫폼시민나루 시민기자) / 문화심리학박사
경희대 총민주동문회 김재운 회장
외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은 어딜까. 이태원이나 한남동이 있는 용산구? 땡. 통계상으로는 영등포구(34,076명), 구로구(33,102명), 금천구(19,497명) 순이다. 그런데, 여기서 통계의 수치를 살짝 보정하면 좀 다른게 보인다. 각 지역별로 ‘한국계 중국인’의 숫자를 빼면 외국인의 수치는 우리의 상식에 맞게 재배열된다. 한국계 중국인의 수를 뺀 외국인 거주지역 1순위는 용산구가 맞다(14,899명). 그런데, 2순위가 의외의 지역이다. 바로 동대문구다(14,533 명). 2019년 9월30일 기준 동대문구에 거주하는 외국인 수는 17,228명으로 용산구 전체 외국인 수 16,159명 보다 1,069명 많다.1) 이유는 바로 이곳에 위치한 대학들 때문이다. 동대문구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은 용산구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20대’가 많았다(동대문구에 거주하는 외국인 중 20대 비율은 61.4% vs 용산구에 거주하는 외국인 중 20대 비율은 20.1%). 그리고 그 이유는 콕 집어 외대 때문이라기보다는 ‘경희대’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2019년 외국인 유학생 수 기준 경희대는 한국외대(2,666명)보다 외국인 유학생 수가 2,000여명이나 더 많은 학교였기 때문이다(4,727명).
그래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전방위적인 사료를 정리하고 분석한다. 이 위원회에 참여하게 되면서 김재운회장은 자연스럽게 기존에 가지고 있는 역사문제에 대한 관심을 더 구체적이고 깊이 있게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역사적인 문제의식과 지식의 확장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모교 경희대학교 의 역사에 대한 관심으로도 이어졌다. 2019년은 경희대학교가 개교 70주년(1949년 5월18일 개교)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하지만, 김재운회장은 실제 경희대학교의 개교는 훨씬 더 오래되었다고 말한다. “실제로는 경희대의 정신적 뿌리인 신흥대학, 신흥무관학교까지를 생각하면 108주년이 되는 것이 맞거든요.” 사실일까. 비슷한 궁금증을 가진 언론사 이미 있었다. 2016년 6월3일자 한겨레신문2)을 보면, 경희대가 신흥무관학교를 이어받은 것은 명백한 팩트(fact)인 것으로 보인다. 경희대학교 홈페이지에 보면, ‘경희대학교’라는 명칭은 1960년 3월에 등장한다. 반면, 1949년 5월에 신흥초급대학(2년제)설립을 인가받은 것으로 나오는데, 이때를 경희대학교의 개교로 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학교 스스로도 ‘신흥’의 정신을 물려받은 것으로 밝히고 있는 것이다(당시 재단은 독립운동가 이시영선생이 이사장으로 있었던 성재학원이었고, 이시영 선생은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 독립운동가 이회영선생의 5번째 형제다). 신흥무관학교는 1911년 6월10일, 독립군양성을 목표로 해서 우당 이회영 선생과 그 형제들이 만주 서간도에 설립한 학교다. 독립운동가들의 요람이자 민족교육의 산실로 3,500여명의 기라성같은 독립운동가와 애국지사를 배출한 엄청난 명문학교. 창학연도를 기준으로 하면 올해 108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학교다. 이 엄청난 명문학교는 2015년 1,200만명이 관람한 ‘암살’이라는 영화 덕분에 더욱 유명해졌다.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 조진웅(속사포)이 자신을 이른바 엘리트라고 우쭐대는 차원에서 ‘신흥무관학교 출신’이라며 강조해서 소개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경희대 출신들은 ‘속사포의 후배들’인 셈이다. 이쯤에서 자연스럽게 궁금증이 생긴다. 왜 경희대학교는 그동안 이 훌륭한 역사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있었을까. ‘신흥’이라는 이름을 지우고 싶었던 이유 그 비밀의 단서는 김재운회장과의 인터뷰에서 찾을 수 있었다. “해방정국에서
동대문구의 외국인 수 증가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주는 학교, 회기동 면적(약23 만평)의 절반(약 11만2천평)을 차지하는 회기동의 랜드마크, 경희대가 궁금했다. 회기동은 경희대를 빼면 앙꼬없는 찐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희대의 과거, 현재, 미래를 다 알고 있을 만한 사람을 만났다. 경희대 총민주동문회 김재운회장이다. 경희대는 70년 된 학교가 아니라, 108년 된 학교다 경희대 총민주동문회(이하, ‘민동’)의 김재운회장의 일상은 바빴다. 그 바쁨의 핵심에 3.1위원회(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에서의 활동이 있었다. 2019년은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다. 김재운회장은 이 기념사업회에 참여해서 일을 하고 있다. 3.1 위원회는 1919년의 3.1운동이 하나의 역사적 사건으로의 차원을 넘어, 임시정부 이후의 민주공화정이 만들어지는 결정적 계기가 되는 사건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그 이후 대한민국 100년을 전반적으로 다루는 일을 한다.
1970년대 경희대 정문
인터뷰,마을이음
4호 2019.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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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경희대 정문 앞
교육기관을 갖는다는 거는 의지만 갖고는 안되는 것이거든요. 돈도 필요한거고 행정에서 적극적인 지원도 필요한거고 근데 독립운동한 사람들이 돈있는 사람들이 없어요. ...(중략)... 이런 과정에서 자유당의 유력정치인 이런 사람들을 영입했단 말이예요. 그런데 이런분들이 어떤 분들이냐면 권력도 있고 돈도 있는 분들이었죠. 그때까지 권력을 갖고 있고, 돈을 갖고 있다는 거는 친일을 해서 살 수 밖에 없었던 거죠...(중략)... 그러다보니까 친일한 부끄러움을 갖고 있을텐데, ‘신흥’은 자기를 몰아내기 위해서했던 (싸웠던) 이름이라... 신흥이라는 이름을 지우고 싶었겠죠. 경희대의 전신이 신흥이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는 없어요. 사실이 아닌 건 아니니까.” 실제로 학교의 초기에 조영식 이사장에 의해 이사로 영입된 이익흥과 조경규는 당시 자유당의 유력한 정치인이었다. 이익흥은 일본큐슈제국대학에서 공부 하고 경찰청장과 서울시경국장, 경기도지사, 내무부장관 등을 거친 자유당의 거물급 정치인이었고, 조경규는 교토대학에서 공부하고, 3,4대 국회의원과 원내총무를 거친 자유당의 유력정치인이었다.3) 초기 경희대학교 이사진의 ‘ 출신성분’과 ‘신흥’이라는 이름은 공존하기에 너무 큰 역사적 경험의 괴리가 있었던 것이다. 조영식이사장(총장)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상당히 유능한 사람은 맞는거 같아요. 그 젊었을 때 그 판에 뛰어들어서 학교를 맡겠다고 한거 자체도 대단히 추진력은 있었던 사람인거로 보여지고, 현재 경희대까지 발전시키는데 조영식총장의 능력과 리더십은 결정적이라고 보거든요.” 그렇다면, 왜 처음 부터 신흥이라는 이름을 바꾸지 않았을까. 김재운회장에 따르면 학교 설립초기 부터 내적갈등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초기에도 인수하면서 아예 이름을 바꿀 수 있었을 텐데, 신흥이라는 가치, 이거는 쉽게 놓지도 못하고... 초기에 결정적으로 친일관계자의 돈만으로 발전시킬수 있냐 아니면 이름으로다가 발전시킬수 있냐... 양면이 다 있지 않았을까라고 보는 거죠.” 이런 70년의 내적갈등은 이제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 ‘신흥’의 연혁복원, 그리고 동대문구와 경희대가 함께 하는 미래 김재운회장은 지금이 신흥의 역사를 경희대의 연혁에 복원할 수 있을 절묘한 기회라고 판단하는 듯하다. “우리학교 출신 문재인대통령이 중요한 계기에 연설에서 신흥무관학교의 가치에 대해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중략).. 학교 중요한 자리에 신흥무관학교 출신의 동상을 세우기도 하고... 학교에서도 연혁을 복원하는 것에 부담을 많이 줄였기 때문에, 또 대중적으로 인식이 확장이 되고 했기 때문에 조만간에 계기점을 마련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는 신흥무관학교 설립된지 110주년이 2021년이 되는데, 그때 쯤이면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까(싶습니다).” 2년 뒤, 2021년의 경희대가 궁금해진다. 경희대 내에는 이런 흥미로운 역사 이외에도 독특한 교육과정이 있다. 2011년 3월, 기존의 교양학부를 인문학 중심교육과정으로 전면적으로 개편한 ‘ 후마니타스 칼리지’라는 교육과정이다. 올해 초 기존의 인문학 교육 커리큘럼을 구조조정하면서 현재까지도 논란이 진행 중이지만,4) 지난 7년의 교육과정은 다른 대학과 완벽히 차별화된 교육과정이었다. 왜냐하면, 2011년에 다른 대학들은 ‘기업형 인간’을 만드는 데 더 열중하고 있었던 시기이었기 때문이다.5)
경희대의 전신 신흥대학교 표지판
김재운회장은 이 후마니타스 칼리지가 지역사회와 연결고리가 있는 커리큘럼 을 운영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 후마니타스 수업을 들으면 실천을 해야되요. 실제로 학생들이 지역에 관심을 두고 연결된 프로그램을 하는 것도 있고, 또 경희대 출신들이 모여서 지역경제 창업프로그램들을 하거든요.” 여기서 더 나아가 김재운회장은 경희대가 장기적으로 지역사회의 평생교육의 플랫폼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예를 들면, 경희대가 가지고 있는 핵심자원은 ‘공간’과 ‘교수역량’이고, 이 두 가지 자원을 지역사회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개방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주민들은 약간의 이용료를 내고, 경희대의 공간을 이용해서 자기개발과 토론, 학습하고, 인근의 인문학 강좌가 필요한 곳에는 경희대가 충분히 제공하는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재운회장의 이 주장은, 대학 입학생의 절대 지원자수가 현저하게 줄어드는 2021년 이후 대학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는 측면에서 보면, 훌륭한 대안이 될 수 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이 ‘어린 입학생’들만을 위한 입학생장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주민들의 배움과 토론이 있는 평생학습의 장’으로 재탄생하자는 것이다. 김재운회장의 상상은 여기서 더 나아가, 앞서 언급한 ‘외국의 유학생 수’가 가장 많은 지역적 특성을 살려서 이국적인 골목, 광장문화가 있는 회기동을 꿈꾸고 있었다. “외국에는 대표적인 게 광장문화라는 게 있어요. 근데 이쪽에는 그런게 없어요. 광장을 만들어 놓고 그 주변으로 쭈욱.. 이집은 이태리음식, 프랑스음식, 중국음식.. 이런 것들이 되면 손님들이 일부러라도 찾아올거다.. 그리고 여기에도 영화관 같은게 하나 생기면은 여기는 외국영화를 틀어줘도 자막없는.. 그래서, 경희대 앞쪽 가면은 영어만 해보고도 이렇게 지내볼 수 있어. 이런 것(인식)들이 점진적으로 조성될 필요가 있는 거죠.”. 내가 알고 있던 경희대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경희대는 대한민국의 중요한 역사를 품고 있는 학교였고, 대학의 본질을 인문학적 가치로 찾아보려 애쓰는 학교였고, 지역사회와 함께 뭔가 해보려는 구성원들이 많은 학교였다. 그리고, 이 모든 인식은 2015년 7월 ‘암살’이라는 영화가 개봉된 이후 급격하게 확산된 것 같다. 2015년, 이 강렬한 영화를 1천2백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보며, ‘신흥무관학교’를 검색했고 그 결과 사람들은 경희대를 ‘다시 찾아낸’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두 가지 교훈을 얻었다. 역사는 ‘현재의 유력자’가 감추고 싶은 방향대로 감춰질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역사는 현재 대중들의 관심에 의해 재구성되고, 재발견된다는 사실이다.
1) 2019년 3/4분기 서울특별시 주민등록인구통계(2019년 9월 30일 기준) 통계자료. 서울특별시 2) 경희대는 왜 신흥무관학교 흔적과 뿌리를 없앴을까 (2016.06.03.) 한겨레신문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 4)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강의 구조조정...‘인문학 실험’좌초하나(2019.01.08.), 한겨레신문 5) 회계학 이수해야 졸업? “두산, 대학이 뭔지 몰라” (2011.03.19.), 오마이뉴스
인터뷰,마을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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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호 2019. 11. 27.
우리동네 인생술집
회기동 인생술집 ‘도읍지’ 취재 & 글 : 심소영
요즘 찾아보기 어려운, 산속에 있을 만도 한 주점이 회기동에 있다. 이름은 ‘도읍지’ 내 20대 기억에 경희대 ‘도읍지’가 있는 것을 보면 오래된 곳임은 분명하다. 더욱이 경희대 정문 앞 상권은 길만 그대로지 계속 바뀌는 상점들 틈에서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것 자체가 신기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꼭 인터뷰해보리라 마음먹고 도읍지를 찾았다. 사장님은 “뭐 달리 할 말이 없을 것 같은데, 그럼 다음 주 목요일 2시 반 이후에 오세요.” 그렇게 성사된 인터뷰. 최소 20년은 되었을 묶은 주점 이야기를 듣는다고 생각하니 상상만으로도 좋았다. 흙벽 그리고 세월의 흐름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휘어진 탁자와 의자 도읍지 입구에 들어서면 왼쪽으로는 주인장의 손길이 느껴지는 나무와 꽃, 석물이 조화로운 작은 정원이 오른쪽에는 장작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안에 장작을 피울 곳이 있을지 궁금해하며 마당을 지나 도읍지 내부 현관에 들어서면 묶은 장 향인 것 같기도 하고, 나무 향 같기도 한 오래된 향이 먼저 들어온다. 그리고 주황색 조명과 흙벽 그리고 세월의 흐름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휘어진 나무탁자와 의자이다. 그리고 조금 더 들어가면 손님들 사이로 밥 냄새가 허기를 부른다. 계란찜과 제육볶음은 세트메뉴 같아요 두 시 반. 점심때가 지났는데도 1층은 빈자리가 한두 자리뿐이다. 저녁에는 올 때마다 사람이 별로 없어서 사람이 줄었나보다 했는데,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인데도 빈자리가 드문 걸 보면 주점보다는 식당에 가까운 주점인 것 같다. 낮에 사람이 많다며, 주메뉴는 계란찜 백반과 제육볶음이 세트메뉴처럼 늘 동시에 그리고 잘 나간다고 한다. 이집은 동동주가 맛있는데, 낮 손님은 잘 모르겠구나. 도읍지를 운영한지는 23년 됐어요. 도읍지와 사장님을 소개해 달라 얘기하니, 단답형 답이 돌아왔다. “제 이름은 안완영이구요. 65세. 도읍지를 운영한지는 23년 됐네요.” 이래저래 다시 물으니, 사장님은 “아는 사람과 동업으로 시작했다가 중간에 제가 인수 받아 운영하고 있어요. 경희대 학생, 교직원, 경희의료원 환자나 가족, 직원분들이 주로 오시고, 지역주민들도 가끔은 오시는데 많지는 않아요.” 도읍지는 1,2층으로 이뤄진 주점이라, 위아래 꽉 채우면 백 여명은 들어올 수 있겠다 싶은데, 50세 같아보이지만, 65 세인 사장님은 힘들어서 2층은 과모임이나 동아리 모임 등의 큰 규모 단체손님만 받는다 한다. 1층에는 사람들이 둘러앉을 수 있는 큰 화덕(?)이 있는데, 지금은 쓰지 않는다. 나무계단을 밟고 2층으로 가면 왜 단체만 받으시려는지 이해가 된다. 확 펼쳐진 너른 홀인데 50명 이상의 과모임도 너끈해 보인다. 2층 창문으로 보이는 담쟁이 넝쿨은 옛날 영화에서 봄직한 아름다운 가을풍광을 선사한다. 일본강점기 때 지어진 집이에요 독특한 내・외관 인테리어에 의미를 물었다. “뭐 특별하게 생각한 건 아니고, 예스럽게 만들자 하다 보니. 원래 일본 강점기에 만들어진 집이래요. 시멘트로 된 집인데, 겉에 흙만 발랐어요. 그리고 지금 있는 탁자나 의자들이 모두 처음부터 그대로예요. 모두 23년짜리네요.”
도읍지 입구
계란찜과 제육볶음
인터뷰,마을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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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완영 도읍지 사장님
4호 2019. 11. 27.
도읍지 2층
저희는 피고용인이 5인 이상이라고 보험료 지원도 안 된다네요 23년간 운영하면서 힘든 것과 즐거운 것을 물었다. “힘든 것밖에 생각 안 나네요. 시작했을 때는 힘든 것도 몰랐는데, 지금은 세금 내느라 너무 힘들어요. 특히 여기는 방학 때 사람이 없어서 5개월 장사한다고 보면 되거든요. 카드매출이 대부분이고, 오전 오후 아르바이트를 따로 써서 8명이 일하는데, 아르바이트도 주 16시간 이상이면 4대 보험 다 들고 주휴수당이랑 나가야 해서 지출도 커요. 영세기업에 보험료 지원해주는 제도가 있는데, 저희는 피고용인이 5인 이상이라고 지원도 안 된다네요. 7천 원짜리 밥 팔아서 8명 고용하고, 그에 따른 세금으로 다 내고 나면. 저는 무수리처럼 일하는데, 인건비도 못 건져요. 점심때 와보면 2층까지 꽉 차있을 때도 있으니까 그 돈 벌어서 다 뭐하냐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냥 관두고 나도 월급 받는 일 해볼까도 생각했어요. 또 얼마 전에 지역 상인대출 해준다고 청운관에 모이라 해서 갔더니 그것도 5인 이상 고용하면 안 된다 하더래요.” 영세 자영업자를 위한 대책도 시급하다 법상으로 주 16시간 이상 일하면 아르바이트도 4대보험 필수다. 노동자 처지에서 보면 당연한 일인데, 사장으로서는 너무 힘들어 사업 포기하고 싶다는 얘기를 들으니 영세자영업자를 위한 대책도 시급하다. 고용인수로만 보험료를 지원하기보다는 매출과 수익에 따라 지원하는 정책도 필요하겠다.
그래도 할 수 있을 때 까지는 해 보겠다. 그렇게 힘든데, 계속하시는 이유도 물었다. “집이 원래 송파구였는데, 여기로 이사 온 지 한 2년 됐거든요. 집이 멀어서 늦게 끝나면 새벽 한 두시니까. 아이들 학교도 다 나오고, 신랑도 퇴직하고 했으니까. 남편이 퇴직하고, 아이들이 와서 도와주니 버티고 있어요.” 65세 은퇴할 나이라 몸도 힘들고 벌이도 힘들어서 그만두고, 쉬면서 여행다니며 살았으면 좋겠다 하면서도, 그럼 그만둘 계획이 있으신지 물으니 할 수 있을 때까지는 해보겠다 한다. 사장님 인생의 후반기를 함께한 ‘도읍지’가 그냥 돈벌이의 수단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내가 나쁘게 산 건 아니구나 “내가 여기를 43세인가 그때쯤 시작했는데, 재미있었어요. 도읍지 잘되라고 풍물패들 와서 놀기도 하고, 아이들 단체로 와서 왁자지껄 놀다 가면 저도 즐거워요. 또 지금까지도 아르바이트했던 아이들이 찾아오고는 해요. 그냥 궁금해서 와봤다고 하기도 하고, 결혼했다고 배우자랑 같이 오는 사람도 있고, 얼마 전에는 아이를 낳았다고 하는 아이도 있었어요. 그렇게 지나간 사람들이 찾아오고, 사는 이야기 들려주고 하면 내가 나쁘게 산 건 아니구나 싶더라고요.” 사장님의 눈빛에 도읍지 23년의 세월이 스쳐 가는듯하다. 23년간 오르지 않은 임대료 마지막으로 도읍지가 어떤 장소로 기억되고 싶은지 물었다. “사람들이 맘껏 즐길 수 있는 신나는 장소였으면 좋겠어요. 23년간 임대료 안 올라 장사할 수 있었으니, 나도 건물을 새로 짓는다거나 하지 않으면 계속할 것 같아요.” 23년간 오르지 않은 임대료 덕분에 도읍지가 지금까지 있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내 인생술집이 지금까지 있게 해 준 건물주와 사장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바쁜 사장님을 놓아드렸다. 그냥 가기 섭섭하여 이른 오후지만 감자전과 동동주 한 동이를 주문한다. 넉넉하신 사장님 폭탄 계란찜을 덤으로 주신다. 동료와 함께 한 낮술에 덕분에 마음이 넉넉해 진줄 알았는데, 오는 길 내내 마음이 무겁다. 건물주가 누구냐에 따라 23년간 사업을 운영할 수도 있고, 쫓겨날 수도 있고, 이쯤 되면 정말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진실인건가. 영업시간 - 10:00 ~ 22시까지 / 위치 - 동대문구 회기동 2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