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
“나는 여성에 대한 모든 폭력에 반대합니다” 2020 총선을 준비하는 우리들의 자세 언니들의 수다회 <82년생 김지영> 노원구 아파트 청소노동자들의 노동환경
Contents
2 01 9· 1 2
창간호
02
발간인사 노원지역에 페미니즘 잡지가 탄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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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성차별 색깔로 보는 젠더감수성
04
축하인사 박지아(서울여성회 부회장) 박영주(서울시동북권NPO지원센터 센터장) 이소민((사)마들같이 이사장) 이혜숙(노원 스쿨미투를 지지하는 시민모임 집행위원장) 주희준(노원구의원·정의당 노원구위원회 위원장) 윤정록(노원마을미디어지원센터 센터장) 백광현(노원신문 기자)
24
인터뷰 철저하게 은폐되어 있는 범죄, 가정 내 여성폭력 최경숙 폭력예방통합교육전문강사
28 30
여성노동 노원구 아파트 청소노동자들의 노동환경 우리가 함께 그리는 그림
06 08 10
초점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 “나는 여성에 대한 모든 폭력에 반대합니다!” 세계여성폭력추방의 날·주간의 의미와 여성폭력실태 여성폭력을 이용하는 미디어, OUT!
32
스쿨미투 스쿨미투의 뜨거운 바람과 찬 바람
36
젠더거버넌스 저출산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빗겨간 ‘2019 노원구 미혼남녀 만남 행사’
14
정치 2020 총선을 준비하는 우리들의 자세
18
언니들의 수다회 <82년생 김지영> movie & book talk
38 40 42
언니들의 이야기 한 부모로 아이와 더불어 살기 나는 지금의 내가 좋다 나는 착한 며느리를 버리기로 했다
44
Never Ending Story
06
초점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 “나는 여성에 대한 모든 폭력에 반대합니다!”
24
인터뷰 최경숙 폭력예방통합교육전문강사
발간인사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하며, 평등하다.” (세계인권선언 제1조) 세계인권선언이 탄생한 12월 10일, 노원여성회가 만드는 페미니즘 잡지 ‘깨다’가 탄생했습니다. 세계인권선언은 1948년 12월 10일 파리에서 열린 제3회 국제연합 총회에서 채택된 인권에 관 한 세계 선언입니다. 인간의 역사상 가장 야만적인 범죄들로 황폐했던 세계대전 당시, 세계인권 선언문은 처음으로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상세하게 밝힙니다. 세계인권선언문은 또한 세계 최 초로 인권과 기본적 자유가 개개인 모두에게 어디에서든 적용되는 것임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제2조는 ‘모든 사람은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등 어떤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으며, 이 선언에 나와 있는 모든 권리와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국가인권위원회법에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로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 분, 출신지역, 출신국가, 출신민족,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또는 가족상황, 인종,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지향, 학력, 병력 등을
노원지역에 페미니즘 잡지가 탄생했습니다
언급하며 이러한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어떤가요? 우리 아이들에게 인권교육을 하러 가서 “우리는 어떤 차별을 받고 있나요?”라고 물으면 가장 먼저 나오는 답이 “성이요”라고 답변합 니다. 그리고 지난 9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성평등에 대한 국민의
글 박미경 편집장
요구를 파악하고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글 분석결과를 발표했 습니다. 그 결과 국민청원 게시글 중 20만 명 이상 동의한 글의 39.8%, 즉 10개 중 4개가 젠더이슈로 나타났습니다. 지난 2년 간 젠더이슈가 한국사회 핵심 현 안이자 국민적 관심사였음이 확인된 것입니다. 또한 젠더 이슈 청원 글의 주요 키워드 추출 결 과, 성매매, 성폭행, 성폭력, 성범죄, 불법촬영 등 여성폭력·안전 관련 단어의 중요도가 매우 높 았고, 다음으로 어린이집, 교사, 아기, 보육 등 돌봄과 일·생활균형 관련 단어의 중요도가 높게 나타났습니다. 노원여성회는 우리 사회에 성차별이 있다는 것을 직시하며, 그 차별은 사회문제이기 때문에 개 인만의 노력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제도나 사회구조를 바꿔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 니다. 그리고 이를 생각으로만 머무르지 않고 행동으로 실천하며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그것이 ‘페미니즘’이라고 정의합니다. 노원여성회가 만드는 페미니즘 잡지 ‘깨다’는 모든 사람이 존엄한 존재 자체로 존중받으며 평등 하기를 바랍니다. ‘깨다’는 이런 세상을 꿈꾸고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말’과 ‘행동’이 공 존하는 지면 공론장이 되고자 합니다. 우리의 이름처럼 차별을 ‘깨고’, 차별을 낳는 구조를 ‘깨는’ 실천하는 ‘깨다’가 되겠습니다.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리며 함께 해 주세요.
I 02
축하인사
의 발간을 축하합니다!
박지아 서울여성회 부회장 성차별을 깨는 작지만 강한 목소리, ‘깨다’의 창간을 축하합니다! 노원여성회가 페미니즘 잡지를 만든다는 이야기에 기쁘게 강의를 하러 갔던 기억이 납니다. 함께 잡지를 만드는 분들이 모여서 페미니즘에 대해서 공부하고 토론하는 자리였습니다. 예상한대로 진지하고 열띤 토론이 이어졌지만, 더 크게 느껴진 것은 ‘페 미니즘 잡지’ 만드는 일에 대한 기대와 설레임이었습니다. 이처럼 글을 통해 말한다는 것은 부담스런 일이기도 하지만, 세상에 꼭 필요한 이야기이기에 가슴 뛰는 일이기도 합니다. 차별의 목소리가 상식처럼 여겨지고, 가해자의 목소리가 그 권력만큼 더 큰 세상입니다. 그렇기에 차별받고 억압받는 집단으로서의 여성의 목소리는 언 제나 필요하고 절실했습니다. 소중한 일을 맡아주신 노원여성회 페미니즘 잡지 ‘깨다’의 시작에 더할나위 없는 감사와 사랑을 전합니다.
박영주 서울시동북권NPO지원센터 센터장 세계인권선언의 날, 노원여성회에서 만드는 페미니즘 잡지 ‘깨다’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나이지리아 페미니스트 작가 치아만다 응고지 아디치에는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책에서 ‘우리가 어떤 일 을 거듭 반복하면 결국 그 일이 정상이 됩니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 동안 여성들이 차린 제사상에 제례를 주관하는 남성들 이 너무 당연했으며, 여전히 초등학교 출석번호의 앞번호는 남학생들이 당연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남성이 주체가 되는 경험들이 계속 쌓여 여전히 기관의 장은 대부분 남성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논리적 근거도 없이 반복되며 만들어져 온 남성 중심의 문화를 과감히 뒤집는 이들이 ‘페미니스트’입니다. 오늘 노원에서 과감한 이 문화혁명을 이끌 또 하나의 페미니스트 저널이 만들어집니다. ‘깨다’의 창간을 축하하며, 노원의 발랄한 변화를 넘어 동북권의 문화 혁신을 위해 승승장구하시길 바랍니다. 뒤집자!
이소민 (사)마들같이 이사장 노원에서 발간되는 페미니즘 잡지 ‘깨다’의 창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최근 젠더이슈가 국민적 관심사로 대두되고, 우리 사회에 여전히 존재하는 차별과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목소리 또 한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노원지역에서 페미니즘 잡지 ‘깨다’의 창간 소식은 무척이나 반가운 소식입니다. ‘깨다’라는 이름 안에는 깨고 나오기 위한 보이지 않는 부단한 노력들이 담겨 있으며, 이러한 노력들은 때로는 힘들고, 외롭고, 힘이 부치기 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노력들이 우리 사회가 평등하고 차별없는 건강한 사회로 성장하는데 버팀목이 될 것임을 믿어 의 심치 않습니다. 문제를 직시하고, 공감하고, 행동하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시민들의 요구를 대변해 주시고, 지역사회의 공감을 이끌어 주는 매체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힘차게 내딛는 발걸음에 응원을 보내 드립니다.
I 04
이혜숙 노원 스쿨미투를 지지하는 시민모임 집행위원장 노원여성회가 만드는 페미니즘 잡지 ‘깨다’의 창간을 축하합니다. 페미니즘은 여성이 차별받지 않고 자기 삶의 주인이자 주체적인 시민으로 살아감을 목적으로 하며, 궁극적으로 모두가 평등하고 존엄하게 살아가는 세계를 지향합니다. 때문에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하며 평 등하다”고 선언한 세계인권선언 기념일에 창간하는 것이 더욱 뜻깊은 것 같습니다. 2018년, 노원을 시작으로 전국의 많은 학교에서 스쿨미투 운동이 뜨거웠습니다. 오랜 세월 만연했던 학교 내 성폭력은 공공연한 비밀로 은폐되어왔습니 다. 그러나 용감한 학생들이 이 침묵의 벽에 균열을 내고자 목소리를 내었고 시민들이 공명을 만들었습니다. 페미니즘의 실천은 목소리에서 출발합니다. ‘깨다’에서 젠더 이슈를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페미니즘에 쉽고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풍부한 기사를 통해 이 목소리들이 더 많이, 더 시끄럽게 울려 퍼지길 기대합니다.
주희준 노원구의원·정의당 노원구위원회 위원장 노원여성회가 만드는 페미니즘 잡지 ‘깨다’의 창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깨다’의 창간으로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폭넓게 이야기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이 생긴 것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앞으로 ‘깨다’가 성차별을 비롯한 우리 사회의 다양한 차별, 그것을 재생산하는 구조를 무너뜨리는 데 이바지하고,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 내는 공감의 매체로 성장해나가길 기원합니다. ‘깨다’의 창간을 위해 애쓰신 노원여성회 박미경 회장님과 회원분들께 감사와 응원의 말씀을 전합니다. ‘깨다’ 창간을 계기로 지역사회에서 성평등 실현 을 위해 교육·캠페인·연대 활동을 꾸준히 만들어온 노원여성회가 한층 더 발전하길 바랍니다.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는 평등한 세상을 함께 꿈꾸면서, ‘깨다’의 멋진 미래를 응원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페미니즘 잡지 ‘깨다’의 창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윤정록 노원마을미디어지원센터 센터장 바야흐로 아픔의 시대입니다. 나 아닌 사람의 마음을 돌봐줄 여유가 남아있지 않은 시대에서 사람들은 애면글면 서로를 할퀴고 한 줌의 자기만족을 얻어갑니다. 어둠 안에서는 오로지 어둠만 보일 뿐입니다. 새 빛이 간절하던 즈음에, 때마침 도착한 소식에 반가움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마을에서 새 빛을 만들어가려는 노원여성회의 페미니즘 매거진 ‘깨다’의 창간을, 이웃한 노원마 을미디어지원센터에서 환한 마음으로 맞습니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인터뷰에서 “중립적이고 보편적으로 사유한다는 것이 환상이라는 것을 절감한다”며, “남자가 자신이 ‘보편적’이라고 느끼는 순간 이 바로 가장 ‘남성적’인 순간”이라고 선언한 것에 깊이 공감합니다. ‘당연한’ 것들에서 소외된 이들을 살피고 그 마음을 돌보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정상이 무엇인지 다시 묻고, 정상을 규정하는 권력을 인식해내어 시선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과정에 치유가 있을 것입니다. 아주 거대하고 거창한 것이 아 니라 외려 가장 작고 사소한 것을 오래도록 바라보는 마음의 소중함을 알고, 멀고 아름다운 말보다 지금 내 곁을 지키는 동료가 내어준 손의 온기에 희망 이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앎과 실천이 씨줄 날줄로 엮어 삶을 자아냅니다. ‘깨다’가 앎의 씨줄과 실천의 날줄을 촘촘히 메워내어 어떤 문양을 만들어낼지 기대됩니다. 그 과정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다시 한 번 개간을 깊은 마음으로 축하드리며 응원과 지지로 연대하겠습니다.
백광현 노원신문 기자 1789년 프랑스 혁명으로 봉건체제를 무너뜨리고 자유와 평등을 기반으로 하는 근대시민국가, 공화정을 세웠던 이념은 “인간 은 자유롭게 또한 평등한 권리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300년 전에는 자유와 평등이 혁명이념이라니, 놀랍죠! 며칠 전 세계적 록밴드 ‘U2’의 내한공연에서는 대형 스크린에 “우리 모두가 평등해질 때까지는 우리 중 누구도 평등하지 않다.”는 글귀 를 띄워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합니다. 아직도 우리는 우울한 세상에 살고 있음을 확인한 것입니다. 다시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을 인용하자면 인민의 권리는 압제에 대한 저항까지를 포함하며, 모든 시민은 자유롭게 말하고 쓰고 출판할 수 있어야 한 다고 했습니다. 당사자의 목소리, 왜곡되지 않은 목소리가 우리를 자유롭고 평등하게 할 것입니다. 저는 페미니스트는 아닙니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다양성을 존중합니 다. ‘깨다’의 빛깔로 세상이 더욱 밝아지기를 응원합니다.
05 I
초점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
“나는 여성에 대한 모든 폭력에 반대합니다!” 서울시 동북권 여성단체 네트워크·서울시동북권NPO지원센터 젠더의제 워킹그룹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 공동행동 전개 글 박미경 편집장
11월 25일부터 12월 10일까지는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이다. ‘세계여성폭력추방의날’은 도미니카공화국의 세 자매가 독재에 항거하다 정권의 폭력으로 숨진 11월 25일을 기념해 1981년 시작됐다. 이후 1991년 세계여성운동가들이 모여 11월 25일부터 세계인권선언일인 12월 10일까지를 ‘여성폭력추방주간’으로 선포했다. 서울시 동북권 지역 젠더의제 활동가들은 서울시동북권NPO지원센터가 정식 개소하기 전인
올해 서울시 동북권 지역 젠더 의제 활동가들이 제작한 배지. 매듭이 풀리거나 통과되는 모습으로 여성폭력추방, 해방, 그러한 흐름을 나타냄. ⓒ 서울시동북권NPO지원센터
2017년 말부터 젠더의제 워킹그룹을 구성하고 공동활동을 해 왔다. 이후에는 서울시 동북 권 여성단체 네트워크로 정체성을 확립하며 교육, 네트워크 파티, 캠페인, 토론회 등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서울시 동북권 여성단체 네트워크·서울시동북권NPO지원센터 젠더의제 워킹그룹은 강북 구, 노원구, 도봉구, 성북구, 중랑구 5개 자치구에서 젠더의제 관련해 활동하는 모임 및 단체 로 구성된 네트워크로 강북구에서는 강북여성주의모임 ‘문’, 강북늘푸른교육센터, 노원구 에서는 노원여성회, 도봉구에서는 서울동북여성민우회, 성북구에서는 여성인권센터 ‘보다’, 나를 돌봄 서로 돌봄 ‘봄봄’, 중랑구에서는 동북여성환경연대 초록상상이 함께 하고 있다. 이들의 첫 공동활동은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에 진행한 공동현수막 게시, 공동 교육 및 캠페 인이었다. 이들은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 공동행동 3회차를 맞이하는 올해도 변함없이 공동 행동을 했다. 이번 호 초점에서는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을 맞아 이들의 공동행동을 담았다. 또한 세계여 성폭력추방의날·주간의 유래 및 의미와 여성폭력실태, 우리가 자주 접하는 영화에서 여성 에 대한 폭력은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지 살펴봤다.
I 06
ⓒ 서울시동북권NPO지원센터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길목에
가는 “혼자하기엔 어렵지만 함께하기
에서는 2차시에 걸쳐 몸훈련까지 진행
갑자기 추워진 11월 25일, 서울시 동
에 즐거운 마음으로 서로에게 힘이 되
했다.
북권 지역 젠더의제 활동가들이 수유
어주었던 여성폭력추방주간행사”라며
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에 참여했
역 근처로 모였다. 강북여성주의모임
“강북구와 동북5구, 나아가 전국에 여
던 김선옥 강북늘푸른교육센터 대표
‘문’과 강북늘푸른교육센터에서 주관
성폭력에 대한 외침를 알리고 공동행
는 “어떤 상황에서도 심리적으로 자신
해 준비한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 캠
동을 해왔던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
을 당당하게 지킬 수 있는 자신감, 그
페인에 함께 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추
다고 생각하며 앞으로도 계속 해나갈
리고 기술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약간
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여성폭력 반대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여
의 테크닉을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를 외치며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을
성폭력과 여성혐오가 이 땅에서 발붙
며 “방어에 실패했을 때 ”네 잘못이 아
열었다.
이지 못하는 그날까지 우리는 여전히
니야“라고 나한테도 타인에게도 말하
더 큰 목소리로 함께 행동할 것”이라
고 위로할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됐다”
고 말했다.
고 말했다.
“여성폭력 OUT!”
홍문정 서울동북여성민우회 회장도
바로 전날 데이트폭력에 시달린 한 연예인의 죽음 때문인지 이날 추위가
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
“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은 여성들의
더욱 싸늘하게 느껴졌다. 서울시 동북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 교육도 진행
몸과 마음을 깨우는 시간으로의 초대”
권 지역 젠더의제 활동가들은 추운 날
됐다.
라며 “‘거절은 새로운 관계로의 초대’ 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씩 속 캠페인이라 서로의 보온에 신경
세계여성폭력추방의날인 11월 25
쓰며 캠페인 준비에 나섰다. 미리 제
일과 12월 2일, 오후 7시, 강북늘푸른
작한 피켓을 확인하고, 시민들의 손을
교육센터 강당에서 문미정 강사의 ‘여
여성폭력에 반대하는
녹여줄 핫팩을 챙겼다. 핫팩에는 ‘모
성주의 자기방어훈련’이 진행됐다.
서울시 동북권 지역의 다양한 실천들
든 여성폭력을 녹이는 핫팩!’, ‘여성혐
‘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은 여성이
교육과 캠페인 외에도 2017년부터
오 불패울 핫팩!’이라고 적힌 스티커
기 때문에 일상에서 받을 수 있는 ‘성
진행하고 있는 서울시 동북권 지역 5
를 부착해 이날 캠페인의 의미를 더욱
적인 공격 행위’가 언제라도 일어날 수
개 자치구에 “나는 여성에 대한 모든
살렸다.
있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것
폭력에 반대합니다”라는 현수막을 동
은 당연히 그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며,
시 게시했다. 더불어 올해 의미있는 작
폭력 상황에 대한 피해자의 대응이 적
업을 진행했는데 바로 서울시 동북권
이날 캠페인은 강북구에서만 진행
절했는지는 심판의 대상이 아니다. 그
지역 젠더의제 활동가들의 ‘여성폭력
되지 않았다. 성북구에서도 나를 돌봄
런데 사람들은 피해자에게 잘못을 따
OUT’ 의지를 보여주고 상징할 수 있
서로 돌봄 ‘봄봄’이 낮 12시, 길음역 일
진다. 이런 정의롭지 못한 사회를 바
는 배지를 제작한 것이다.
대에서 캠페인을 진행했고, 중랑구도
로 잡으려는 것이 페미니즘이며, 여성
또한 각 자치구별로 다양한 실천들
11월 28일, 오후 2시부터 망우역 내에
주의 자기방어훈련은 여성주의 입장
이 진행됐는데, 노원구는 노원여성회
서 캠페인을 진행했다.
에서 성적인 공격에 대응하는 방어훈
가 12월 3일, 오전 9시 30분, 서울시
유경미 나를 돌봄 서로 돌봄 ‘봄봄’
련을 뜻한다. 문미정 강사는 “방어에
동북권NPO지원센터 교육장에서 박
대표는 “성북은 미아리텍사스라는 지
는 훈련이 필요하다. 우리는 방어를 잘
지아 서울여성회 부회장을 모시고 ‘장
역이 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이 상시
할 수 없도록 길들여졌기 때문”이라며
난아님 여성폭력’ 교육을 진행했다. 도
존재하는 곳”이라며 “그들에게 목소리
“몸도 마음도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
봉구는 서울동북여성민우회가 12월
가 전달됐을지 모르겠지만 자그마한
어서 한 번에 바꿀 수 없다. 지속적인
18일, 오후 1시 30분, 북서울신협 4층
응원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함께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성주의
마루에서 ‘도봉구 아동·청소년·여성폭
했다”고 말했다.
자기방어훈련은 마음훈련과 몸훈련으
력, 다시보다’ 도봉구 여성폭력 대응
로 이루어져 있고, 이번에 진행된 교육
활동 공유회를 진행했다.
오후 5시, 모두 모였다. 누군가의 선 창으로 캠페인은 시작됐다.
김화영 강북여성주의모임 ‘문’ 활동
07 I
초점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
11월 25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여
고 변호사가 됐지만, 트루히요의 성추
력을 추방하기 위해 활동하며, 전 세계
성폭력추방의날(International Day
행에 저항한 것 때문에 변호사 자격을
가 이에 동참할 것을 호소했다. 유엔은
for the Elimination of Violence
박탈당했다. 미네르바와 두 자매는 ‘나
1999년 12월 17일, 총회에서 세계여
against Women)이다. 이 날부터 12
비’(Las Mariposas)라고 불렸다. 지하
성폭력추방의날을 공식 인정했다. 이
월 10일까지가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
운동을 하면서 미네르바가 얻은 별명
주간 동안 ‘16일간의 행동’(16days of
이다. 여성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
이다. 이후 미라발 가족은 체포, 고문,
activism)은 세계 각국에서 여성폭력
우고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적극
학대 등 끊임없는 괴롭힘과 고난을 겪
의 실태를 알리고, 여성에 대한 폭력을
적으로 반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주간
었고 전 재산을 몰수당했다. 미네르바
반대하며, 여성인권을 높이고자 하는
이다.
와 마리아 테레사는 여러 차례 수감됐
다양한 행사들을 진행해 오고 있다. 국
세계여성폭력추방의날이 된 1960
고, 구타와 강간을 당했다. 1960년 11
내에서는 한국여성의전화가 처음 기
년 11월 25일은 도미니카공화국의 미
월 25일, 미라발의 세 자매 파트리아,
념행사를 개최했고, 정부는 2011년부
라발 세 자매가 독재에 항거하다 정
미네르바, 마리아 테레사는 수감된 남
터 동참하고 있다.
권의 폭력으로 숨진 날이다. 이들은
편들을 면회하고 돌아오는 길에 트루
우리는 이 날과 주간을 애석하게도
1930년부터 1961년까지 31년 동안
히요의 비밀경찰들에게 끌려가 사탕
아직도, 그리고 오랜 미래까지도 기억
도미니카공화국을 지배한 독재자 라
수수 밭에서 곤봉에 맞아 살해당했다.
해야만 한다. 여성에 대한 폭력이 쉽사
세계여성폭력추방의날·주간의 의미와 여성폭력실태 글 최경숙 기자
파엘 트루히요에 맞서 투쟁했다. 트루
그들의 처참한 죽음은 교통사고로 위
리 없어지지 않을 것 같은 예감 때문이
히요는 1930~1938년과 1942~1952
장됐지만, 세 자매의 죽음은 트루히요
다.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이 시작되
년에는 대통령으로, 그 후에는 선출되
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촉발했고 결국
기 전 날인 2019년 11월 24일 저녁,
지 않은 군사 독재자로 군림했다. 20
6개월 후 독재자는 암살됐다.
불법촬영, 유포 협박 등 사이버성폭력
세기 가장 피비린내 나는 시간으로 기
이 세 자매를 추모하기 위해 1981
을 겪던 한 연예인의 죽음 소식을 듣고
록되고 있다. 세 자매의 이야기는 ‘미
년 라틴아메리카의 여성활동가들은
망연자실했다. 여성폭력피해를 당하
라발의 나비’라는 영화에 잘 소개되어
그들이 살해당한 날을 세계여성폭력
고 있던 또 다른 여성의 사망소식을 들
있다. 이 자매들은 도시에 있는 수녀
추방의날로 정했다. 이후 1991년 미
은 지 40여일 밖에 안 되었다. 두 젊은
학교에 입학하고, 그곳에서 독재자의
국 뉴저지주 ‘여성의 국제 리더십을 위
여성은 ‘여성혐오’에 맞서 싸우며 수많
방탕한 성욕이 나이나 사회계급을 불
한 센터’에 모인 세계각국의 여성 23
은 성차별적 악플에도 꿋꿋하려 애썼
문하고 마수를 뻗치고 있음을 알면서,
명이 ‘성폭력과 인권’에 대해 토론했
지만, 이 사회는 그들을 지켜내지 못했
처음으로 트루히요 독재의 현실과 맞
고, 11월 25일부터 세계인권선언의
다. 우리 사회가 ‘여성에 대한 폭력(여
닥뜨리게 된다. 트루히요의 힘이 강해
날인 12월 10일까지를 ‘세계여성폭력
성폭력)’에 무지하고 관대한 사이, 국
지면서 가족의 운명은 기울기 시작했
추방주간’으로 정했다. 각국의 여성들
가가 뒷짐 지고 있는 사이에 여성들은
다. 셋째 딸인 미네르바는 법을 전공했
은 이 기간 동안 여성에 대한 모든 폭
그렇게 소리 없이 아프게 죽어가고 있
I 08
미라벨 세 자매의 사진 현재 도미니카공화국에서 영웅인 이들은 2007년부터 200페소 지페 앞면에 실렸다 ⓒ banknotenews.com
다. 얼마나 많은 여성이 죽어야 이 사
적으로 보고 있음을 나타낸다.
호와 지원을 해야 하며, 가해자를 규제 하기 위한 다양한 법과 제도를 발전시
회가 성차별 속에 고통 받는 여성의 목
UN은 1993년 총회에서 만장일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변화의 행진에 동
로 ‘여성폭력철폐선언’을 채택했다. 선
참할 것인가? 언제까지 이런 비극이
언문은 제1조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우를
지속되어야 하는가? (동거가족에 의한
이란 여성에게 신체적, 성적, 심리적
범하지 말아야 한다. 전체를 볼 수 있
살인 2017년 180명, 이틀에 한 명, 애
인 피해나 고통을 유발하거나 유발할
어야 근본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 여
인에 의한 살인 2017년 86명, 4일에
가능성이 있는 모든 종류의 ‘젠더기반
성에 대한 폭력은 성차별적인 사회문
한 명 꼴, 검찰)
폭력’이라고 했다. 발생 영역별로 보
화와 조직에서 발생하는 고질병이다.
미라발 세 자매가 가혹한 고문과 폭
면 ‘가족 내에서의 폭력’, ‘공동체 내에
여성폭력의 원인이 성차별이라면 그
력에 의해 살해당한 후 제정되었다고
서의 폭력’, ‘국가에 의해 자행된 폭력’
해결책은 명확하다. 성평등이 답이다.
단지 이 날이 신체적 폭력만을 근절하
으로 공적 또는 사적 생활에서의 협박,
그런 의미에서 유엔이 발표한 2016년
기 위한 기념일은 아니다. 오로지 신체
강압, 또는 임의적인 자유의 박탈 등이
부터 2030년까지 국제 사회가 달성해
적 폭력만이 여성의 인권을 떨어뜨리
포함된다. 이러한 젠더기반폭력은 성
야 할 지속가능발전 목표 17개 중 다
는 것은 아니다. 육체적, 정신적 폭력
불평등한 권력관계에서 발생해 여성
섯 번째 성평등이라는 사실을 기억해
을 포함해 여성의 인권을 짓밟는 모든
의 종속적 지위를 고착하고 여성인권
야 한다. 유엔은 “당신이 어디에 살든,
행동이 폭력의 범주다. 그런 의미에서
과 기본적 자유를 침해한다. 따라서 국
성평등은 기본적인 인권”이라며 “여성
우리 정부의 행사에 대해 유감이다.
가는 폭력을 당한 여성의 피해와 권리
과 소녀들에 대한 모든 차별을 종식하
침해를 조사해 공정하고 효과적인 보
고,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에서 여성과
정부에서는 ‘성폭력·가정폭력 추
켜야 한다.
방주간’이다. 2011년 ‘성폭력방지법’이
소녀들에 대한 모든 종류의 폭력을 종
제정되면서 ‘성폭력 추방주간’으로 시
식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작됐다. 그리고 2016년 ‘가정폭력방지 법’에 ‘가정폭력 추방주간’이 신설되면 서 통합 시행하고 있다. 여성가족부에 서 11월 25일부터 12월 1일까지 여성 폭력 근절을 위한 캠페인을 하고 있다. 이는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이 여성 에 대한 모든 폭력문제를 제기하는 것 에 반해, 우리 정부는 가정폭력, 성폭 력, 성매매, 성희롱 등 여성에 대한 폭 력을 통합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분절
“여성에 대한 폭력은 인권침해다. 그것은 법적 그리고 실제적인 여성차별의 결과며, 남성과 여성 사이의 계속된 불평등의 결과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세계적 유행병이지만 예방할 수 있고, 예방은 매우 중요하다.”
‘세계여성폭력 추방주간’에 모든 여 성폭력에 관심을 가지고, 피해자들을 추모하고 기억하며, 여성에 대한 모든 종류의 폭력이 다시 한 번 드러나고, 그 근절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수립 되길 바란다. 더 이상 여성이라는 이 유로 죽거나 상처받는 이가 없기 위해 이 주간을 통해 우리 사회의 성인지감 수성이 한 눈금 높아지길 기대해 본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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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
여성폭력을 이용하는 미디어, OUT! <암살>, <부산행>, <덕혜옹주>, <아가씨>, <조선명탐정 : 사라진 놉의 딸> 속 여성폭력 정리 박미경 편집장
1.8일에 한 명의 여성이 믿었던 남성에게 죽었다. 지난 12월 10일 한국여성의전화는 ‘분노의 게이지 : 친밀한 관계에 있는 남성에게 살해당한 여성 통계 분석’ 보고서를 발표했다. 2009년부터 2018년까지 지난 10 년간 언론에 보도 된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해 살해된 여성은 최소 887명이었으며 미수 사건 피해자를 포함 하면 1614명에 달했다. 친밀한 관계란 배우자 또는 데 이트 상대를 뜻한다. 이는 단순히 언론에 드러난 피해자 만을 집계한 것이며 보도되지 않은 사건을 포함할 경우 실제 피해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여성폭력이 예방되지 않고 줄어들지 않고 있 는 것이 현재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미디어의 영향은 상 당하다.
T U O
이에 서울여성회는 지난 2017년 反여성폭력 프로젝 트의 일환으로 여성폭력에 대한 미디어 모니터링을 실 시했다. 오늘날 우리 삶은 수많은 미디어에 둘러싸여 있 으며, 그에 따라 미디어가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 은 날로 커지고 있다. 이에 여러 미디어 매체 중 타 매체 에 비해 예술성, 폭력성 등의 특징이 두드러지는 영화를 중심으로 여성폭력 및 성인지 모니터링을 진행했다. 이 지면에서 당시 모니터링 결과를 소개하고자 한다. 모니터링 대상 영화는 2015년부터 2017년까지 박 스오피스에 오른 작품 중 벡델테스트를 통과한 5개 작 품을 선정했다. 백델테스트는 영화산업에 있어서 성차 별, 특히나 여성이 적게 나타나는 현상을 지적하기 위 해 고안된 테스트이다. ▲이름을 가진 여성 캐릭터를 최 소 2명 포함할 것 ▲서로 이야기를 나눌 것 ▲남성에 대 한 것 이외에 다른 대화를 나눌 것 등 세 가지 요건을 기 준으로 한다. 또한 모니터링에서 UN 여성차별철폐협 약(CEDAW;Convention on the Elimination of All Forms of Discrimination against Women)의 여성폭 력 정의를 따랐는데, UN여성차별철폐협약에 따른 여성 폭력은 ‘공적·사적 영역을 막론하고 여성에게 신체적, 성적 또는 정신적 피해나 고통을 유발하거나 유발할 가 능성이 있는 젠더 기반의 폭력을 의미하며, 이러한 행위 에 대한 위협, 강압 또는 임의적인 자유의 박탈을 포함 한다’고 정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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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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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te Fo
정치
2020 총선을 준비하는 우리들의 자세 에밀리 리스트, 여성정치 세력화의 가능성을 말하다 글 김슬기 기자
2019년 10월 27일, 서울여성회는 Vote For Feminism 여성정치 세력화를 주제로 제13회 서울 여성문화축제를 열었다. 축제는 기획 전시와 영화 상영, 관객과의 대화로 4시간 여 진행됐다. 이 날 함께 관람한 영화는 <knock down the house(원제), 세상을 바꾸는 여성들(한국판)>, 미국의 지방 선거에 출마한 여성 정치인을 다룬 다큐멘터리였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기업의 막대한 후원금을 받으며 권력을 유지하는 기성 정치인이 아니다. 웨이 트리스를 하는 노동자와 광부의 딸, 의료보험이 없어 딸을 잃어야 했던 평범한 엄마와 간호사. 정 치의 ‘정’자와도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들이 정치에 나선 이유는 선명하다. 평범한 이들의 손 으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평범한 사람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목소리가 되기 위해서! 계란으로 바위치기보다 더 무모해 보이는 이들의 여정을 따라가는 사이사이, 관객석 곳곳에서 훌 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울컥 솟구치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던 영화를 함께 보고 나눈 대화는 대한 민국 여성 정치의 현실과 미래, 여성정치인이 있지만 여성정치가 없는 우리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 한 고민이었다.
※ 아래 내용은 제13회 서울여성문화축제 카드뉴스와 축제 당일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를 재구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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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Feminism 제13회 서울여성문화축제의 현장 사진. 참가자들은 각자가 바라는 페미니즘 공약을 적어 우리에게 필요한 여성정치의 방향을 구체화했다. ⓒ 서울여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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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여성정치인이 있지만 여성정치가 없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려
“에밀리 리스트의 재정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일정 조건을 갖
요. 여성정치인과 여성정치가 다른 건가요? 어떤 차이가 있는
춰야 한다고 하던데요. 그냥 여성이라는 성별 외에 필요한 것
건가요?”
이 있다고요?”
“대한민국에는 분명 여성정치인이 있고 여성 대통령을
“에밀리 리스트가 되려면 먼저 민주당 여성 후보여야 하
당선시키기도 했지만 국정농단이나 친 재벌 정책은 여성
고 낙태 합법화에 찬성을 해야 합니다. 진보 정당에서 급
을 위한 정치가 아니에요. 이런 정치는 오히려 여성의 삶
진적 여성 정책을 지지하는 후보를 지원한다는 거예요. 미
에 걸림돌이지요. 여전히 부족한 여성정치인의 비율이 늘
국의 경우 공화당과 민주당으로 구성된 양당 체제인 데다
어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단순히 여성정치인이 많아진다고
여성운동의 핵심 사안이 낙태 합법화 문제이다 보니, 이
여성을 위한 정치가 만들어지지는 않습니다. 중요한 건 ‘어
두 가지 조건이 기준점이 되는 것이죠.
떤’ 여성을 대변하는가, ‘무엇’을 위한 정치인가에 있어요.
에밀리 리스트가 민주당 여성 후보를 지원하지만 그렇
오늘 함께 본 영화는 바로 이러한 문제를 일깨워줍니다.
다고 정당에 소속된 단체는 아니에요. 정당으로부터 완전
‘평범한’ 여성의 삶을 대변하는 ‘여성정치’의 가능성을 보
히 독립되어 활동을 하는데, 단순히 돈을 모으는 활동뿐
여준 영화였어요.”
아니라 여성유권자들을 변화시키기 위한 운동에도 적극적 으로 참여합니다. 선거운동을 하는 방법도 돕고 여성 유권
“접해볼 기회가 없었던 ‘에밀리 리스트’의 존재가 흥미로웠어
자들의 선거를 유도하기 위한 프로그램도 진행하죠. 여성
요. 미국에는 여성후보들을 지원하고 후원하는 여성단체가 있
유권자들을 움직이는 것을 큰 축으로 삼고 있어요.”
다는 거요. 에밀리 리스트의 ‘에밀리’는 사람 이름인가요? 이 단체를 처음 만든 설립자?” “에밀리 리스트는 1985년 미국에서 시작돼 영국, 호주,
“우리나라에는 에밀리 리스트가 없는 거죠? 대한민국에 꼭 필 요한 단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탈리아 각지로 확산된 풀뿌리 유권자 조직이에요. ‘에밀
“네, 아직 한국에는 에밀리 리스트와 같은 운동이 존재
리’는 ‘초기 자금은 이스트와 같은 것이다(Early Money Is
하지 않습니다. 안타까운 현실이죠. 지금까지 우리의 여성
Like Yeast)’의 앞글자를 딴 거랍니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정치는 숫자 채우기 식으로 어느 정당이든 상관없이 더 많
거대한 자본과 무관한 여성들이 정치에 입문하기 위해서
은 수의 여성정치인을 만드는 데에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는 정치후원금이 필수인데, 이걸 도와주는 단체죠.
이제는 단순히 여성 정치인의 숫자를 늘리는 차원을 넘어
에밀리 리스트는 단체의 지향과 맞는 후보 리스트를 발
더 깊은 고민을 해봐야 합니다. 유권자들의 참여와 지지를
표하고 후원금을 모아 전달하는데, 이렇게 에밀리 리스트
기반으로 하는 풀뿌리 운동의 조직화도 중요하고요. 평범
에 오른 여성 후보들은 유력한 당선 후보가 돼요. 2006년
한 여성들의 힘을 세력화하기 위해서요, 진짜 우리의 삶을
하원의원에 입후보한 후보 중 단체가 지원한 후보는 63
바꿔줄 정치가 필요하니까요.
명이었는데요. 그 중 46명, 그러니까 전체 리스트의 73%
당장 2020년에는 21대 총선이 열리고, 지금이 바로 대
가 당선됐어요. 상원의원 당선자가 6명, 주지사 당선자는
한민국의 페미니즘 정치를 만들어갈 시점이라고 생각합니
3명. 많은 여성정치인들을 진출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
다. 이번 서울여성문화축제의 주제를 Vote For Feminism
죠. 여성정치인들의 가장 큰 재정적 자원의 역할을 하고
으로 정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 였고요. 미국의 에밀
있어요.“
리 리스트를 한국이라는 현실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서울여성회는 이 고민의 답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앞으로 열릴 공론장과 실천에 많은 관심 가져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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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회 서울여성문화축제 선언문
1900년대 초, 여성들이 여성참정권을 위
우리는 지난 촛불항쟁에서 여성정치가 난
해 돌을 들었을 때, 그것은 여성도 인간이라
도질당하는 모습을 보았다. 민주주의를 위해
는 외침이었다. 국민이 왕을 끌어내리고 스스
촛불을 든 광장에서도 ‘대통령이 여자라서
로 대표를 뽑는 세상을 만들어도, 그곳에 여
나라를 망쳤다’ ‘향후 100년 동안 여성대통
성의 자리는 없었다.
령은 불가능하다’는 여성혐오와 싸워야했다.
여성은 대표가 될 수 없다는 상식을 깨기
그러나 광장의 여성혐오 뒤에 여성정치를
위해 유리창을 깼고, 여성을 가정에 가두는
포장과 핑계로 사용했던 시간과 그 시간동안
세상을 바꾸기 위해 감옥에 갇혔다. 정치는,
침묵했던 우리의 비겁함이 자리하고 있는 건
배제된 교육의 권리를 찾고 직업을 가져 독
아닌지 가슴 아프게 돌아보기도 했다. 친 재
립된 인간이 되기 위한 유일한 길이었다. 그
벌정치를 ‘준비된 여성대통령’으로 가리고,
리고 이제 우리는, 선배들의 투쟁으로 투표에
‘며느리 후보’ ‘엄마의 마음으로’라는 구호
참여하고 정치인이 될 수 있다.
가 성역할 고정관념을 재생산하고, 생물학적
1900년대 말, 여성들이 ‘개인적인 것이 정
여성의 의회진출을 여성정치로 부르는 동안
치적인 것이다’라고 외쳤을 때, 그것은 여성
여성의 삶은 제자리걸음 아니 뒷걸음질 쳤기
이 겪는 모든 차별을 끝장내겠다는 외침이었
때문이다.
다. 선배들의 피와 땀으로 참정권을 얻었지
이제 우리는 선언한다.
만, 여전히 정치에서 여성의 자리는 없었다.
여성정치를 바꾸어야 할 때가 되었다. ‘여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누릴 수 없는 권
성이라면 누구라도’가 아니라 어떤 여성을
리, 폭력을 당하지 않을 권리, 밤길을 걸을 권
대변하는지를 선명하게, 백화점식 공약이 아
리를 위해 여성들은 불을 붙였다. 그들이 개
니라 실제 여성의 삶을 바꾸는 변화를 위해
인의 문제라고 주장하던 것들은 여성들의 투
다시 한 번 새로운 여성정치운동을 시작할 때
쟁으로 비로소 정치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가 되었다.
우리는, 선배들의 투쟁으로 여성의 요구를 담
그래서 우리는 페미니즘 정치를 선언한다.
은 정치를 만날 수 있다.
아직도 곳곳에서 여성의 발목을 잡는 성차
시간이 흐르며 우리는 여성정치인이 생기
별을 끝장 낼 정치, 차별에 맞서는 여성들에
고 늘어나는 것을 보았다. 후보자와 정당들이
게 무기가 되어줄 정치, 성차별을 없애는 것
여성정책을 내놓고 우리의 표를 바라는 모습
을 넘어 성평등을 만들 정치, 어떤 삶을 살던
도 지켜봤다.
안전하고 당당하게 살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정
그러나 이제 선배들의 투쟁으로 만들어 온 여성정치를 다시 바꿔가려 한다.
치, 그리고 이를 실행할 우리의 대표를 진출 시키기 위해 이제 우리는 페미니즘 정치를 만 드는 길에 나설 것이다. 여성의 정치를 만들어온 선배들의 투쟁을 이어받아, 그러나 새로운 여성들의 정치를 다
이제 다시. 페미니즘 정치!
시 함께 만들어갈 것을 선언한다.
2019년 13회 서울여성문화축제 Vote For Feminism - 여성정치, 말이 아닌 행동으로 참가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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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들의 수다회
M OV I E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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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 L TA
< 82년생 김지영 >
m o v i e & b o o k ta l k
사회/글 김슬기 기자
김슬기 _ 안녕하세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화제의 문제작! <82년생 김지영>의 북토크에 자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2016년도에 출간된 <82년생 김지영>과 이 소설을 바탕으로 얼마 전 개봉한 영화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이 야기를 나눠보려고 해요. ※ 이 글은 동명의 소설과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본 뒤 진행한 북토크의 대화를 정리/편집한 것으로, 참가자의 이름은 가명으로 기재했습니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책에 대한 공감과 평가
최혜민 _ 맞아요, 저도 그랬어요. 그런데 워낙 말이 많으니 까 궁금해지더라고요. 아니 대체 이게 뭔데 그래? 뭘 가지
김슬기 _ 먼저 저는 이 소설이 이렇게 뜨거운 논란이 되기
고 그러는 거야? 내가 직접 읽어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으
전에, 그러니까 2016년 출간 직후, 이 작품에 대한 사전
니까. 뭘 가지고 그러는 건지 궁금해서 읽게 되었는데, 저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우연히 도서관 신간 코너에서
는 정말 이상하던데요? 아니 이게 뭐라고 그 난리지? 그냥
발견해 읽었는데요. 2시간 남짓 되었을까? 그냥 앉은 자리
우리 현실의 축소판, 그것도 꽤나 준수한 현실일 뿐인데?
에서 후루루룩, 순식간에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으면서 찔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끔찔끔 눈물을 흘리고 온 사람이라…. 책을 읽게 된 계기 와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 감상평이 궁금해요. 어떠신가
허지애 _ 저는 제가 82년생이기 때문에 읽게 되었는데요,
요?
제가 자라온 환경과 지역의 특수성에 감사하게 되더라고 요. 저는 책 속의 김지영이 경험한 일의 많은 부분을 경험
이진희 _ 저도 똑같아요. 출간 후 회사 내 도서관 책꽂이에
하지 않았거든요.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제가 전혀 몰랐
서 이 책을 보고 읽게 되었는데, 읽는 내내 그냥 내 이야기
던 일들도 많았고, 지인을 통해 들어만 봤던 일도 있었고..
같아 너무 공감하며 읽었어요. 눈 깜짝할 사이에 읽히더라
책을 통해 내가 몰랐던 여성들의 어려움을 알게 되어 좋았
고요.
어요. 내가 직접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는 현실은 극히 일부 일 뿐이니까요.
박소영 _ 저는 이번에 읽게 되었어요. 사실 그동안 이 소설 에 대한 말이 많았잖아요. 어떤 아이돌이랑 연예인은 이
박소영 _ 맞아요. 저는 남자직원이 거의 없는 회사에서 일
책을 읽는다고 사진을 올렸다가 댓글 테러를 당하기도 하
을 해서, 김지영이 직장에서 겪는 어려움을 경험해 본 적
고요. 페미니즘의 대표 상징인양, 워낙 논란도 많고 시끄
이 없어요. 그 부분이 굉장히 놀랍더라고요. 책을 읽고 너
럽다 보니까 좀 꺼려지더라고요. 읽고 나면 기분도 나쁠
무 의아해서 다른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책 속의 일은 약
것 같고, 그냥 과격한 페미니즘 소설인가 싶기도 하고요.
과일 뿐이라며 봇물 터지듯 이야기를 쏟아내는데 정말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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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들의 수다회
마어마했어요. 이 책을 계기로 다른 환경의 직장에서 일을
는 사람들도 많아서요. 그래도 저 정도면 호강하고 사는
하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알게 됐어요.
거다, 저렇게 복 받은 삶을 살면서도 뭐가 그렇게 힘들다 고 유난이냐, 호강에 겨워서 요강에 똥 싸는 소리를 하고
김슬기 _ 우리는 흔히 ‘여성’이라고 하면 하나의 동일한 성
있다, 그런 평도 들었네요. 82년생 김지영이 겪는 고통에
격으로 특정 대푯값을 갖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한 사
대한 상대적 평가? 공감과 이해가 아니라 비교와 질책도
람 한 사람은 전부 다르니까요. 모두의 경험과 상황이 어
많은 것 같아요.
떻게 똑같을 수가 있겠어요. 열이면 열 개의 서사로 존재 하는 거죠. 제 나름대로의 어려움을 가지고요.
김지영(정유미)과 정대현(공유), 영화 속 두 인물에 대한 평가
그런데 정말 놀라운 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경험하는
는?
어려움의 보편성이 일생에 걸쳐 아주 광범위하게 나타난 다는 것인데,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난 날 마음을 추스르기
박소영 _ 저도 아이 둘을 키우지만 그렇다고 하나를 키울
가 힘들었던 것 같아요. 내가 경험했던 부당함을 종합선물
때 힘들지 않았냐 하면 또 그건 아니거든요. 하나를 키우
세트처럼 한 자리에서 좌라락 마주하고, 그게 그냥 개별적
든, 둘을 키우든, 직장을 다니든, 전업을 하든, 아이를 낳고
인 사건으로 존재한 게 아니었다는 것. 그러니까 그냥 그
키우는 엄마들은 다 저마다의 어려움이 있고 각자의 고통
변태가 문제라서, 팀장이 나쁜 놈이라서, 우리 시댁이 이
은 모두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것인데. 우리가 서로의 고통
상해서 그런 게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와 이 사회 구
을 비교하면서 누가 더 힘드냐, 줄 세우기를 하는 게 문제
조의 문제. <ㅇㅇ년생 ㅇㅇㅇ> 모두의 문제라는 자각이 너
인 것 같아요. 인간의 고통은 결코 수치화 할 수 없는 것이
무 충격적이었달까. 앞으로 나는 여기서 대체 어떻게 살아
거든요. 모두가 자기의 세계에서 자기만의 아픔을 갖고 있
야 하지? 너무 암담하더라고요. 소설의 마지막이 진짜 끔
는 거죠.
찍하잖아요. 그 허탈함을 잊을 수가 없어요. 이진희 _ 내가 힘들다고 말하는 게 너는 안 힘들다고, 너보 책 VS 영화, 더 좋았던 작품은?
다 내가 더 힘들다고 너를 무시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냥 나의 어려움을 표현할 뿐이지요. 김지영은 그냥 김지영의
이진희 _ 그래서 저는 영화가 더 좋았어요. 영화는 훨씬 희
어려움을 말했을 뿐인데 그게 마치 김지영 아닌 여자들은
망적이고 대안을 제시하잖아요. 소설 <82년생 김지영> 그
무시하는 것처럼, 김지영 옆의 정대현을 공격하는 것처럼.
다음을 보여주는 느낌이랄까?
소설도 영화도 남자를 적대시하고 혐오하는 건 그 어디에 도 없는데, 싸우자고 드는 구석이 없는데, 마치 이게 남녀
최혜민 _ 저는 그래서 소설이 더 좋았는데요, 영화는 너무
갈등을 유발하는 문제작인양 몰아가는 분위기도 심한 것
착해진 느낌?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 100이라면 영화는 20
같아요. 여성의 말하기와 자기 서사 자체를 금기시하는 거
이나 될까말까랄까. 전체적으로 순딩순딩 현실을 제대로
아닌가요?
반영하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최혜민 _ 책에서도 나오지만 유독 가사노동과 육아에 대 허지애 _ 영화 속에서 김지영은 딸아이 한 명을 키우고, 베
한 인식과 평가가 심각해요. “빨래는 세탁기가 해주고 밥
란다가 있는 넓은 아파트, 남편은 심지어 공유!에 공유가
은 전기밥솥이 해주는 데 뭐가 그렇게 힘들다고 유난이
다니는 직장도 괜찮은 곳이잖아요. 퇴근하고 돌아와서 아
냐? 집에서 놀고먹지 않냐?”하는 말이 너무 쉽게 나온다
이 목욕시키는 걸 도와줄 수 있을 정도로요. 제 주변에서
니까요? 여성이 아이를 키우며 경험하는 어려움을 인정하
는 그만한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도 참 드물고, 잠깐 고개
지 않으려는 분위기, 그런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조차 금기
만 돌려도 집안이 난장판! 아이 둘, 셋을 진짜 어렵게 키우
시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그러니 말을 꺼내기도 전에 지레
I 20
자기검열을 하며 나를 몰아치는 거예요. ‘아, 내가 능력이
최혜민 _ 맞아요! 그런 거 너무 심해요. 우리 남편은 어쩌
없어서 그렇구나. 내가 모자라서 그런 거구나, 내가 문제
다 설거지 한 번 해주면서도 얼마나 생색을 내는 데요. 이
구나.’ 영화에서도 김지영이 상담 선생님 앞에서 그렇게 말
만큼 하는 남자도 없다, 고마운 줄 알아라 하면서요. 남자
하는 장면이 있잖아요. 내가 모자라서, 내 능력이 부족해
들이 생각하는 ‘이만큼’이 대체 얼마큼인지 이해할 수가 없
서, 나만 이렇게 헤매고 추락하는 것 같다고. 나만 뒤처지
을 뿐더러, 일에 대한 인식의 차이도 황당해요. 아빠가 된
는 것 같다고요. 저는 그 장면이 참 아팠어요. 요즘 내 모습
남자가 일을 열심히 하면 ‘책임감이 있다’고 칭찬을 받는
이랑 너무 똑같아서요.
반면 엄마가 된 여자가 일을 열심히 하면 ‘욕심이 많다’고 손가락질을 받거든요. 독한 여자라고 혀를 내두르면서요.
허지애 _ 그런 점에서 저는 영화 속 남편의 캐릭터가 좋았 어요. 어쨌든 육아의 무게에 공감하는 사람. 아내가 힘들
<82년생 김지영> 그다음, 나는 우리는? 책과 영화를 보고 결심
어하는 걸 이해하는 남자잖아요. 세상엔 그렇지 않은 남자
한 다짐과 계획
들도 아주 많다고요. 허지애 _ 그래서 저는 내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대 이진희 _ 그래서 저는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는데.
한 고민을 더 하게 됐어요. 우리 아이들이 우리랑 똑 같은
대한민국의 평균 남성상은 아니지 않나요? 결말에 암시된
어려움을 겪게 할 수는 없으니까요.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내용도 그렇고, 육아를 분담하기 위해 육아휴직을 할 수 있
세상은 지금과 다른 모습이어야 하잖아요. 이런 현실을 그
는 남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 너무 이상적이지 않나요?
대로 대물림할 수는 없죠!
박소영 _ 제 주변에도 육아휴직을 낸 남편들이 꽤 있어요.
박소영 _ 오오! 저도 비슷해요. 이 영화 보고 나오면서 결
회사에서 최초로 육아휴직을 쓴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그
심했어요. 앞으로는 “애 때문에 안 될 것 같아.” 하지 말고
지역에서 1호인 경우도 있으셨대요.
어떻게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자! 어차피 안 된다고 포기 하는 대신 지금 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볼
최혜민 _ 제 남동생도 육아휴직 중이예요. 한 다리 건너면
거예요.
한 두 집은 있더라고요. 확실히 분위기가 달라지는 거 같 긴 해요. 이렇게 첫 걸음을 내딛는 게 중요하겠죠.
최혜민 _ 음. 저는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침묵하지 않고 표현하기! 아주 작은 실천이라도 행동해 보고 싶어요. “그
박소영 _ 사실 저희 남편은 가사노동의 70%? 저보다 더 많
냥 막 나대!!”라는 지영이의 친정 엄마 말처럼요~
은 집안일을 하고, 육아도 적극적으로 동참하면서 ‘도와줄 게’ 같은 말도 안 하는 사람이라 영화를 보면서 좀 답답한
김슬기 _ 말하기, 표현하기의 힘은 정말 중요하죠. 미국의
느낌. 정대현이 그렇게 멋있고 대단한 남편상이라는 생각
여권운동가 리베카 솔닛은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은 안 했는데요, 제 주변에서 저희 남편을 두고 하는 말이
받는다>는 책에서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우리 여자들이
불편할 때가 많아요. 세상에 저런 남자 없다, 넌 진짜 결혼
우리의 경험을 우리의 진실로, 인간의 진실로 내놓으면 모
잘 한 줄 알아라, 끝없이 남편을 칭찬하고 치켜세우는 데,
든 지도가 바뀐다. 새로운 산맥들이 생긴다.” 오늘 우리가
제가 하는 건 그냥 당연한 거거든요. 조금이라도 모자라면
내어 놓는 말들도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의 지도를 바
손가락질을 받는 분위기요. 나는 100%를 하는 게 기본값
꾸는 한 마디가 되지 않을까요? 오늘 이렇게 시간 내어 함
에서 가차없이 마이너스를 당하는 구조라면, 남편은 아무
께 해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다음에 또 다
것도 안 하는 게 기본값에서 마구마구 플러스가 되는 방식
른 책으로 만나요!
이라고나 할까?
21 I
일상 속 성차별
색깔로 보는 젠더감수성 글 김영미 기자
나는 노원구에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방과 후 돌봄서
황이 벌어질까?’ 등 여러 가지 생각이 순간을 스쳐지나갔
비스를 하는 아이휴센터 오픈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였다.
다. 알파문구에서는 내가 필요한 물건을 사려고 하는 것들
만6세부터 초등학교 4학년까지 우선으로 이용할 수 있는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의 문구류의 많은 것들이 분홍색과
곳으로 남녀의 성비율이 없고 학년의 비율도 없고 누구나
파랑색으로 이분화 되어있는 것이 많았다.
필요한 서비스를 받고 싶으면 이용할 수 있는 곳이다. 다
실내화 코너에 간 선생님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만 이곳은 맞벌이·다자녀·한부모 가정이 우선적으로 이용
“센터장님! 실내화를 민트색으로 통일해서 사면 좋을 것
할 수 있는 곳이다.
같은데 작은 사이즈에는 민트색이 없고 분홍색과 파랑색
선생님들과 나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기
만 있어요. 어떻게 할까요?” 역시 이곳도 색상이 이분화 되
위해 알파문구에 갔다. 크레파스를 사고 가위도 사고 실내
어 있었다.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은 사이즈가 작기
화도 사야 했기에 선생님들과 각자 맡은 구역에 가서 물건
때문에 더욱 두드러져 있었다. 다만 큰 사이즈에는 오히려
을 가져오기로 했다.
검은색, 회색, 흰색, 민트색 등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것은
“센터장님! 사이즈가 없어요.”, “센터장님, 색상이 분홍
뭘까 생각해 보게 된다.
색과 파랑색만 있어요!” 여기저기서 선생님들의 큰소리가
우리는 알파문구에서 한참을 고민하다 크레파스와 실내
들려왔다. 크레파스 코너로 가보니 분홍색과 파랑색으로
화를 제외하고 다른 것만 사가지고 나왔다. 센터에 돌아온
나뉘어져 있고 캐릭터도 분홍색에는 공주가 있고 파랑색
후 인터넷을 검색해 색상을 이분화 하지 않고 다양한 색으
에는 자동차나 만화캐릭터로 구분되어 있는 것들이 대부
로 주문해 구비해 놓았다.
분이었다. 크레파스를 사려면 ‘분홍색과 파랑색을 각각 몇
우리는 알게 모르게 어른이 먼저 아이들에게 색상을 이
개씩 사야할까?’ 고민스러웠다. ‘만약 분홍색을 더 많이 산
분법화 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 보게 된다. 태어날 때 남녀
다면?’, ‘파랑색을 더 많이 산다면?’, ‘아니면 똑같은 갯수로
성별에 따라 육아용품의 색상으로 구분해 준비하는 것에
나누어 산다면?’, ‘똑같은 갯수로 샀는데 남자 아이들이 더
서부터 여자아이는 머리가 길어야 예쁘고 남자아이는 짧
많이 들어오거나 여자아이가 더 많이 들어오다면?’, ‘이 아
아야 남자답다고 규정짓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
이들은 크레파스 사용할 때 어떠한 말을 할까?’, ‘어떠한 상
이러한 생각을 나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생각했을 것이
I 22
독·자·참·여·코·너
우리 함께 성평등한 사회 만들어가요! 노원여성회는 일상 속 성차별을 성평등하게 만들어 나가려 합니다. 일상 속에서 색깔로 성차별한 사례가 있으면 사진을 찍어 노원여성회 블로그 (https://blog.naver.com/nowonwomen) ‘깨다’ 게시판 중 창간호 <우리 함께 성평등한 사회 만들어가요!> 게시글 댓글로 달아주세요. 보내 주신 분들 중 다섯 분을 추첨해 작은 선물을 보내드립니다.
라고 본다. 하지만 아직도 그 생각은 여전히 많이 남아있
락이 길어서 짧게 컷트를 해 주었는데 한동안 남자같다는
는 것 같다. 설령 부모가 색상으로 남녀의 성구분을 하지
소리를 듣고 다녔다고 한다. 그때 마음이 매우 속상했다고
않는다 하더라고 물건을 생산해 내는 기업에서 디자인과
말하며 그 이후 항상 긴 단발머리를 유지하며 초등학교를
색상, 캐릭터 설정들에 대한 발상이 아직도 진부하게 남아
지냈다.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각
오랫동안 아이들과 함께 하는 직업을 갖고 있던 나는 분
인되어 있는 색상으로의 성구분은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
홍색과 파랑색으로써 남녀의 성을 구분하는 것이 조금은
들에게는 이미 각인되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는 생
불편하다. 우린 아이들에게 왜 그러냐고 할 수 없을 것이
각을 하게 된다.
다. 이미 아이들은 태어났을 때 부터 색상으로 남녀를 구
지금은 스무 살이 훌쩍 넘은 큰딸이 초등학교 1학년 어
분 짓는 것을 자연스럽게 일상에서 접할 수밖에 없었으니
느날 나에게 다가와 울먹이며 하는 말이 친구들이 “너 남
까 말이다. 하지만 요즘은 일에도 남녀구분이 없듯이 누구
자 같아”라며 놀렸다는 것이다. 왜 그러느냐 물었더니 “애
나 할 수 있고 누구나 거부 할 수 있듯이 일상의 자연스러
들이 파랑색은 남자애들이 입는 건데 너가 남자냐?” 하더
움에서 남녀의 성을 색상으로 구분하는 것은 지양해야 될
라는 것이었다. 그날 입고 간 옷이 파랑색이 많이 들어있
필요가 있다. 누구나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고 자유의사를
는 바지와 티셔츠 한 벌이었다. “왜 나에게 파랑색 옷을 사
표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분법으로 나누어지고
줬느냐?”고 하는데 아무리 이야기를 해줘도 큰 딸아이는
있는 아주 작은 것들을 일상에서 부터의 변화가 필요하다
이미 친구들의 말에 상처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이후
고 생각한다. 기업은 크레파스와 실내화 등의 다양한 용품
우리 딸은 그 옷을 입지 않았다. 나는 우리 딸이 태어났을
에 있어 다양한 색을 통한 선택의 폭을 넓혀줄 필요가 있
때부터 분홍색 옷과 신발을 사기보다는 파랑색도 사고 노
으며, 가정에서는 아이들의 육아용품부터 일상생활에 필
랑색도 사고 색상에 그리 예민하지 않게 다양하게 입혔던
요한 것들을 골고루 접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것 같다. 하지만 이미 많은 아이들이 색깔로 남자, 여자로
고 본다. 이렇게 해야 아이들이 세상을 접할 때 선입견과
구분하며 각인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편견이 없게 될 것이다.
고등학교 3학년인 둘째 딸은 초등학교 3학년 때 머리카
23 I
인터뷰
철저하게 은폐되어 있는 범죄, 가정 내 여성폭력 글 조은나 기자
여성가족부의 여성폭력 지원시설 상담건수는 매년 증 가하는 추세입니다. 신고되지 않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 는 여성폭력도 분명 존재할 것입니다. 세계여성폭력추 방주간에, 세계인권선언이 선언된 날에 창립하는 노원 여성회가 만드는 페미니즘 잡지 ‘깨다’의 첫 인터뷰는 여성폭력 관련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는 최경숙 활동가
최경숙
폭력예방통합교육전문강사
를 만나봤습니다.
현재 주요하게 하고 있는 활동을 소개해 주세요.
할 당시 친구의 권유로 사회복지사 공부를 했어요.
상담과 폭력예방강의, 그리고 청소년쉼터에서 근
그때 실습하면서 가정폭력피해자를 위한 쉼터가 있
무하고 있어요. 상담은 총 3군데인데 하나는 한국여
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고, 가정폭력의 현실에 충
성의전화(이하 ‘한여전’) 인권상담소에서 주1회 3시
격을 받아 관련 공부를 더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
간씩 가정폭력, 성폭력 등 여성폭력에 대한 전화상
요. 학교에서 상담하고 있었기에 여성폭력 상담도
담을 하고 있어요. 곧 면접상담을 시작할 예정이에
다르지 않을 거라 착각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공부
요. 또 구로구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타에서는
를 조금한 상태에서 처음으로 가정폭력 상담 슈퍼
2019년 8월부터 상담을 시작했는데 가족문제를 가
비전을 참관하고 소감을 얘기할 때 “심리상담과 별
지고 오시는 내담자를 직접 만나요. 그리고 강북구
다른 차이가 없네요”라고 말했어요. 그런데 아니더
의 통합예방지원센타에서 가정폭력사건에 대한 상
라고요. 지금은 그렇게 말을 못하죠.(웃음) 공부를
담을 하고 있어요. 피해자의 안전과 사건 이후의 상
할수록 여성폭력상담과 심리상담의 차이가 나오는
황에 대해 모니터링을 하고 있어요.
데 그때는 몰랐어요. 이런 활동들이 내 인생 후반부 삶의 시작점, 전환점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참 잘
지금 하시는 상담 중 제일 주력하는 건 어떤 활동인
갔다 싶어요.
가요? 한여전 상담활동이에요. 2014년부터 시작했어요. 2014년 3월에 가정폭력전문상담원교육, 5월에 성 폭력전문상담원교육을 받고 활동을 시작했어요.
한여전 상담에 좀 더 적극적으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100시간씩 교육이 끝나면서 동기들과 바로 ‘통깨’ 라는 스터디모임을 만들었어요. 그때까지 인식하지
I 24
한여전에서 활동하게 된 계기는 어떻게 되나요?
못했던 가정폭력과 성폭력 세계를 알게 되면서 여
2012년 한천중학교에서 위클래스전문상담사를
성들이 이런 피해를 당하고 살고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 충격으로 다가왔고, 그래서 열심히 책도 읽고
한여전의 역사와 상담 절차가 궁금해요.
이야기도 나눴어요.
한여전은 1983년에 창립했어요. 그때 전화로 가
이론뿐 아니라 현장을 보기 위해 여성폭력 관련
정폭력상담을 시작했는데 올까 싶었던 상담전화가
재판을 방청하고 관련 기자회견과 시위 등에 참석
폭주를 했다고 해요. 그리고 1987년에 가정폭력피
해 현장을 만나면서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해자들이 있을 곳이 필요해 사무실 한켠에 쉼터를
좀 더 폭넓게 여성문제를 인식하면서 ‘개인적인 것
만들었고요. 선생님들이나 활동가들에게 들었는데
은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의미도 알게 됐어요. 특별
가정폭력방지법을 만들어 내기 위해 참 많은 애를
한 계기는 지역에서 25년 동안 가정폭력을 당하다
썼더군요. 이런 노력들이 있어 그 혜택을 내가 누리
가 남편을 살해한 사건을 방청 갔었는데, 가정폭력
고, 또 우리나라의 여성인권이 발전하고 있는 것 같
을 당한 그 분의 실상이 주는 충격이 정말 컸어요.
다는 생각도 해요.
25년 동안 사람이라면 있을 수 없는 폭력을 당했는
가정폭력에 대한 상담이 많은 이유는 다른 사람
데도 정당방위로 인정을 안 해주더라고요. 그래서
들에게 받지 못하는 공감과 지지를 받으면서 역량
제 삶과 주위를 돌아보기 시작했어요. 여성폭력은
이 강화되는 느낌을 받기 때문인 거 같아요. 많은 사
개인의 문제가 아닌 성차별적인 사회가 문제라는
람들이 여성폭력에 대해 누구한테 말을 해도 공감
걸 발견하면서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니
이 부족한 상황이었던 거죠. “여자가 참아야지, 여
힘이 생기고 그러면서 성장하는 것을 느끼게 된 거
자가 맞을 짓을 했겠지, 술만 안 먹으면 얼마나 좋은
죠. 이런 점들 때문에 더 애정을 갖고 열심히 활동하
사람이냐” 등 이런 얘기들이 아직도 나오잖아요. 심
게 된 거 같아요. 그런 생각들이 지금까지 이어져 계
리상담으로 어느 정도 해소는 되어도 진짜 해소는
속 공부하고 있어요. 성공회대학교 시민사회복지대
안 되었던 부분이 있었던 거죠. 절차는 전화로 먼저
학원 사회복지학과에서 사회복지상담을 전공하고
상담을 받고 필요하면 대면(면접)상담을 할 수 있어
내년 2월에 졸업해요.
요. 필요에 따라서는 변호사의 법률상담도 받을 수
25 I
인터뷰
있어요. 무료에요. 지방이면 한여전 지부를 안내 해주기도
얼마 전에, 성희롱·성매매·통합예방교육전문강사로도 위
하고요. 사건 지원도 하는데 피해자 경우에는 재판이나 공
촉 받았어요. 학생, 교직원 등을 주로 하고 그밖에 일반인
론의 필요성이 있으면 재판지원을 하고, 재판에 함께 동행
들 대상으로도 해요.
도 하는데, 피해자들이 많이 힘이 된다고 해요.
제 직장은 의정부시여자단기청소년쉼터에요. 사회복지 사로 야간근무를 하는데 저녁에 쉼터입소생들과 함께 생
하루에 전화는 얼마나 받나요?
활해요. 보호자 역할을 하는 거죠. 월수금은 근무하고 화
날마다 다른 거 같아요. 명절이 지나고 나면 끊고 나면
목은 학교에 가요. 그래서 다른 저녁 약속은 못해요.
바로 올 정도로 많고, 긴급전화기 때문에 상담시간이 건당 50분 정도예요. 그래도 보통은 세 시간 동안 3~4통 정도
노원스쿨미투는 여성폭력과 관련이 있어 시작된 건가요?
받아요. 폭력이 아직도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얘기죠.
제가 한여전에서 공부하고 상담하느라 주로 불광동에서 지내고 노원을 떠났죠. 2016년 강남역살인사건 이후 미
상담을 하면서 안타까운 상황은 언제일까요?
투 열기가 뜨거울 때, 지역에서는 그런 열기를 잘 못 느끼
장기 내담자에요. 전화를 주기적으로 계속하시는 분들
겠더라고요. 미투가 동네 골목골목에서도 느껴져야 한다
이 계세요. 몇 년째 띄엄띄엄 전화를 하시는데 그건 폭력
고 생각해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마들주민회
이 계속 된다는 말이잖아요. 그런데도 하소연 하듯 본인
(현 (사)마들같이)’와 함께 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제안했
얘기만 풀어놓고는 상담사의 질문에는 답 없이 일방적으
어요.
로 끊어버리세요. 도움이 필요한 분들에게 도움을 줄 수
저는 마들주민회 부설 마들여성학교에서 문해교사로 6
없는 상황일 때가 가장 안타까운 거 같아요. 그리고 경제
년 동안 봉사활동을 했어요. 그래서 마들주민회에 ‘미투집
적인 문제와 사회가 심어준 ‘여자니까’라는 성역할고정관
담회’를 3월 정도에 제안해서 4월 16일에 하자고 결정이
념 때문에 가정폭력을 참아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을
됐는데 4월 13일에 용화여고 ‘창문미투’가 발생한 거에요.
만나면 안타깝죠. 성폭력의 경우에는 부모나 형제들이 피
그때부터 노원스쿨미투를지지하는시민모임(이하 ‘시민모
해자를 오히려 비난하거나, 친족성폭력의 경우 너만 입 다
임’)의 시민이 됐어요.
물면 된다는 말을 들어서 평생 가슴에 피멍이 들었다는 말 을 들으면 정말 안타까워요.
스쿨미투 이야기를 조금 하자면, 지금은 노원의 스쿨미 투 열기가 조금 가라앉았지만 그땐 참 강력했어요. 시민모 임은 전국적인 수준의 미투보다는 노원의 스쿨미투에 집
노원구에도 한여전처럼 상담할 곳이 있나요?
중했고 서울시교육청의 징계가 다 받아들여진 전국 최초
월계종합사회복지관 2층에 월계우리가족상담소가 있는
케이스로 만들어냈는데, 우리는 강력한 징계를 기대했지
데, 가보지 못해서 잘 몰라요. 좀 더 적극적으로 구민들에
만 그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의
게 홍보가 돼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해요. 경
힘을 잘 몰랐던 거 같아요. 해당학교는 스쿨미투가 발생하
찰에게 신고할 수도 있어요. 경찰들이 잘 받아줬으면 좋
면 감추기보다는 변화의 기회로 삼아서 인권상담소라던
겠어요. 요즘은 많이 도움 되는 말씀들을 하신다는데, 그
가 인권위위원회 등 관련 조직이라도 생기고 그렇게 하는
렇지 못한 반응이 있기도 하다는 말을 들어요. 노원구에도
척이라도 해야 하는데 그런 소식은 잘 안 들려서 아쉬웠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여성폭력긴급전화나 상담소가 생기
부분이에요.
면 좋겠어요.
가해자 처벌에 있어서도 아직 끝이 안 난 것 같아요. 진 행상황을 알 수 없는 위치에 있어서 간간히 소식만 듣고
상담 말고 다른 활동은 어떤 걸 하시나요?
있어요. 서울북부지방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 후 재조사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하 ‘양평원’)에서 2017년부
가 시작됐는데 지금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잘 몰라요. 스쿨
터 가정폭력과 성폭력 예방 위촉강사로 활동하고 있어요.
미투 가해자에 대한 고소에서 시민모임은 지지대, 후원자
I 26
역할이라 안타깝지만 지켜볼 수밖에 없게 되더라고요. 하
이 많다면 본인이 한 짓이 다 드러나거든요. 폭력을 하기
지만 앞으로도 지역 내의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성폭력에
쉽게 만드는 거죠. 고립된 사람은 달아나도 삶을 유지하기
대해서만은 절대 안전하도록 계속 노력할 생각입니다.
어렵다 판단하고 가해자에 더 의존하게 되기도 하죠. 가정 폭력은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이라 누구에게 말
페미니즘이란?
하기도 어렵고 그래서 은폐되고, 오래 지속적으로 반복되
음…. 저에게 페미니즘은 ‘사람은 사람이다’로 말씀 드리
는, 그러면서 신체적, 정서적, 경제적, 성적 폭력과 통제 등
고 싶네요. 남자도 사람이고 여자도 사람인데 지금은 남자
이 중첩되어 발생해요. 때리는 사람이 때리기만 하겠어요?
는 사람이지만 여자는 덜(?) 사람이잖아요. 0.5명의 사람
욕도 하고 비하도 하고, 그러면서 자기는 풀렸다고 잠자리
이 아니라 똑같이 1대1의 사람이 되자가 저의 페미니즘이
요구하고…. 그래서 문밖의 사람들은 잘 몰라요. 법 없이도
에요.
살 사람들처럼 보이는 거죠. 그래서 교육이 필요해요. 그런데 지자체는 그런 중요한
앞으로 활동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교육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에 엉뚱한 얘기만 해요. 가정
노원구의 가정폭력문제에 관심을 기울여보고 싶어요.
폭력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안타까운 건
노원구의 가정폭력실태조사를 해보고 싶은 거죠. 거창하
‘여성의 날’, ‘양성평등주간’ 등에 많은 여성들이 모일 때 성
죠. 국가에서도 가정폭력 통계를 제대로 안 내고 있는데.
인지 교육을 통해 가정폭력 등 여성폭력예방교육을 하기
통계가 있어야 정책을 제대로 낼 거란 생각인데 노원구에
딱 좋은 기회인데 전달되는 메시지는 안타까워요.
는 그런 통계가 있는지 알아보고 싶고 없으면 만들어 내고
만약에 우리집이나 이웃에서 가정폭력이 발생한다면 전
싶어요. 노원경찰서에 요구하면 가정에서 일어나는 폭력
화를 하세요. 112나 여성긴급전화 1366은 24시간 통화
은 어떻게 얼마나 일어나는지 알려줄지 모르지만, 전국 신
가능해요. 한여전은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전 10시부터 오
고중심으로 공개된 접수 통계가 3.4일에 한 명이 사망한
후 5시까지 상담 가능해요. 오후 1시부터 2시까지는 점심
다는 거에요. 가정폭력은 암수범죄라 신고나 접수가 안 된
시간이고요, 02-2263-6464, 6465로 전화하면 돼요. 만
사건도 많을 거에요.
약에 폭력피해로 집을 나오면 경찰에서 제공하는 임시숙
통계는 정책의 수단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통계로
소가 있고 가정폭력피해자를 위한 쉼터도 있어요. 둘 다
지자체의 의무사항 위반을 얘기할 수도 있어요. 노원의 인
비공개 시설입니다. 가해자들 진짜 지독하게 찾아다니거
구가 약 60만이에요. 여성비율이 남성보다 높아요. 고령의
든요.
여성노인, 노원구의 임대주택에 있는 1인 가구가 많기 때
데이트폭력으로 전화 온 적도 많아요. 우리가 생각할 때
문에 거기서 발생하는 폭력도 궁금해요. 꼭 통계를 만들어
데이트폭력은 보통 20~30대만 있을 거 같지만 50~60대
보고 싶어요. 파악이 되면 연구 보고서로 내보고 싶어요.
도 있어요. 웃긴 건 상대도 약점이 될 수 있는데 꼭 여성에 게만 약점인양 협박하는 경우가 있어요. 협박 받으면 절대
가정폭력에 통제가 들어가 있는지 몰랐는데 인터뷰를 통해
응하면 안 됩니다. 협박에 넘어가서 상대의 요구를 들어주
새롭게 알게 됐어요.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가정폭력에 대한
는 순간, 더 큰 협박이 들어옵니다. 난감하시면 꼭 상담소
강의를 듣고 싶네요.
에 전화해보시길 권합니다.
이 기회에 가정폭력에 대해 좀 이야기해도 될까요? 아직
최경숙 활동가를 만나 한여전 상담활동을 통한 가정폭
도 많은 분들이 가정폭력하면 맞는 것만 생각하시는 분도
력의 실태와 노원구 여성폭력실태조사의 필요성을 알게
있어요. 가정폭력은 경제적 폭력, 성적폭력과 더불어 정서
됐습니다. 역시 너무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우리
적 폭력인 외도, 방임, 통제도 있어요. 통제는 아직도 인식
가 해야할 일들이 조금씩 정리가 된 듯 합니다.
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아요. 주위 사람들을 못 만나게 고 립시키는데 친구나 친정식구들을 못 만나게 해요. 연결망
앞으로도 최경숙 활동가의 활발한 활동 기대하겠습니 다.
27 I
여성노동
노원구 아파트 청소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글 임득균 노원노동복지센터 법규팀장
우리 아파트에는 많은 노동자들이 있다. 아파트를 청결
며, 60~70대 이상이 91%를 차지했다.
하게 유지해주시는 청소노동자들과 아파트를 안전하게 경
이렇듯 아파트 청소노동자들의 대부분은 만 55세 이상
비해주는 경비노동자들이 그들이다. 노원노동복지센터에
의 고령으로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
서는 2012년부터 경비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집중
률(기간제법)상 2년 초과 근무 시 기간의 정함이 없는 노
했고, 2014년부터 현재까지 5년 넘게 경비노동자모임을
동자로 전환된다는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운영하면서 경비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을 바꾸고 있다. 모 임을 통해 노동환경을 바꾸고 있는 경비노동자들과는 달
따라서 아무리 오래 근무하더라도 기간제로 근무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리 아파트 청소노동자들의 경우 그들을 대표할 수 있는 단 체가 없어 열악한 노동환경에 처해있다.
간접·기간제 고용형태
2019년 8월 노원노동복지센터와 노원여성회는 노원지
아파트 청소노동자들의 대부분은 아파트에 직접 고용되
역 아파트에서 근무하고 있는 아파트 청소노동자들의 노
어 있지 않고 아파트에서 용역을 준 청소업체에 소속되어
동환경을 파악하기 위해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실태조사
있으며, 계약기간 또한 1년 또는 1년 미만으로 정해져 있
결과 아파트 청소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은 다음과 같다.
는 경우가 많았다. 실태조사 결과 노원지역 아파트 청소노동자 중 169명
대부분 고령의 여성
(응답자의 85%)이 용역회사 소속 계약직으로 근무하고 있
노원지역에서 근무하고 있는 대부분의 아파트 청소노동
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간접·기간제 고용형태로 인해
자들의 경우 고령의 여성이었다. 실태조사 결과 노원지역
본인의 권리를 주장하기 쉽지 않으며, 권리를 주장하면 계
아파트에서 근무하는 청소노동자 중 96%가 여성이었으
약 만료로 퇴사 처리되거나 청소용역회사가 변경되는 과
I 28
정에서 근로계약이 종료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자들이 연차휴가를 사용하기 어렵다.
노원노동복지센터를 찾아온 한 청소노동자는 계단에서
휴가를 요구하면 청소용역회사에서 노동자 본인 돈으로
넘어져 다쳤는데도 불구하고 산업재해보상보험(산재)을
대체 인력을 투입하라고 지시하거나 일당에서 공제하는
신청할 수 없었다고 한다. 산재에 대해 회사에 문의하니
경우도 발생한다.
산재를 신청하면 계약기간 후 계약만료 처리하겠다는 말
특히, 사용하지 못한 연차휴가에 대해서 미사용 연차휴
을 듣고 어쩔 수 없이 본인 돈으로 치료를 하고 복귀했다
가 수당을 지급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노원지역 아파트 청
고 한다. 이렇듯 간접·기간제라는 불안한 고용상태로 인해
소노동자 중 66%가 연차휴가 수당을 지급받지 못한다고
아파트 청소노동자들은 법이 정하는 권리도 주장하기 쉽
응답했다.
지 않다.
아파트 경비노동자모임을 진행하면서 가장 울림이 있던 슬로건은 ‘마지막 일자리를 지켜주세요’이다. 아파트 청소
짧아지는 근로시간, 늘어나는 휴게시간
노동자 역시 고령의 노동자들로 현재 일하고 있는 아파트
아파트 청소노동자들의 근로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
를 마지막 일터로 여기면서 근무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다. 아파트 청소노동자들은 1주 6일, 하루 6~7시간 근무
그럼에도 그들이 고령이라는 이유로 간접, 기간제 등의 불
한다. 근무시간이 길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최근 아파트
안정한 고용 구조에 처해 있고 근로기준법 상 권리들도 보
들이 휴게시간을 늘려 1일 휴게시간이 2~3시간에 달해
장받지 못하고 있다.
실제 임금을 받는 근로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어쩌면 마지막 일자리일 수 있는 아파트 청소노동이 아
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원지역 아파트 청소노동
름답게 마무리 될 수 있도록 아파트의 노동환경 개선이 필
자들의 60%가 월 100만원 이하의 임금을 받 고 있을 정도로 아파트 청소노동자들은 저임 금을 받고 일하고 있다.
요하다. 이를 위해 아파트 청소노동자들이 함께 모 이는 단체도 필요하지만, 그들의 노동환 경을 결정할 수 있는 아파트 입주민들의 따뜻한 관
사용하기 어려운 연차휴가
심 또한 중요하다.
근로기준법에서 연차휴가를 보장하 고 있음에도 많은 아파트 청소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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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노동
노원구 아파트 청소노동자 실태조사 참여 후기
우리가 함께 그리는 그림 글 조은나
지난 여름 박미경 노원여성회 회장님이 노원노동복지 센터와 함께 새로운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고 전해 들었다. 바로 노원구 아파트 청소노동자 실태조사였다. 친정엄마 가 성남에서 아파트 청소노동을 하고 계셨기에 객관적으 로 들여다 보고 싶은 호기심과 관심이 생겨 흔쾌히 같이 시작하게 됐다. 실태조사원 10명이 2인 1조로 팀을 짜서 아파트 청소노 동자분들을 찾아 뵙기로 했다. 아파트 곳곳에 가면 뵐 수 있겠지 하며 무작정 발품을 팔며 노원구 아파트 구석구석 을 다녔다. 사전에 근무시간과 조건파악이 안 돼 1층 경비 실에서 청소하시는 분 어디가야 뵐 수 있는지 여쭤보고 청 소하러 올라갔다 하시면 아파트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 복 도와 계단을 둘러보며 한층씩 한층씩 찾아 내려왔다. 몇 층 내려오지 않아서 청소하시는 분을 뵙게 되었는데 용역 직원임을 알려주는 조끼가 아니였다면 지역주민으로 알았 을 것이다. 왜냐하면 반 깁스를 발목에서 종아리까지 하고 절뚝거리며 청소를 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 모습에 화가 나면서 코가 찡했다. 조심히 다가가 신분을 밝힌 후 대화를 시작했다. 더운 여름이라 이마와 콧망울에는 굵은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 혀있고 붉게 상기된 얼굴로 괜찮다는 말만 계속하시는 청 소노동자분. 분명 일하다 다치신 건데 산재보상은커녕 치료비 지원 도 없고 동료가 내 몫의 일까지 하게 되는 피해가 가지는 않을까, 혹시나 그만 나오라하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시 며 아파도 꾹 참아가며 일하시는 모습에 내가 왜 이리 죄 송한 마음이 드는지 모르겠다. ‘내 나이가 70이 넘어 어디 갈 데도 없는데 이렇게 일하
I 30
는 게 어디냐’는 말씀이 참 가슴이 아펐다.
리수거 재활용 하는 날 주어온 거라 말씀해 주셨다. 정해 진 인원만 준비된 점심은 설문하는 우리의 몫이 없어 다른
“조금 더 좋은 환경과 조건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요깃거리는 없는지 찾아보려는 식사당번 청소노동자분의
저희가 힘을 보태드릴 거에요”
손이 분주해졌다. 한 분 한 분 만나며 속 이야기를 들어보니 무언가 잘못
고맙다는 말씀과 두 손 꼭 잡아주시는 거친 손을 맞잡으
돼도 한참 잘못됐구나를 많이 느꼈다. 이제야 왔냐면서 야
며 마음속으로 ‘내가 정말 필요하고 중요한 일을 하는 거
속해 하시는 분도 계셨고 이런 거 한다고 모가 달라지냐는
구나’ 생각을 하고 반드시 좋은 결과를 이루어 보답해야겠
분도 계셨다.
다 다짐을 하게 되었다. 청소노동자분들도 이 사업이 왜 필요한지 충분히 납득 이 되셨는지 적극적으로 설문에 응해주셨고 설문이 다 끝 난 후에는 한분씩 찾아다니지 말고 휴게시간에 휴게시설 로 오라고 말씀을 해 주셨다.
한 번에 모든 게 개선되기는 힘들어도 우리의 목소리를 모아보면 분명 조금씩은 달라지고 귀를 기울이게 될 거라 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더운 여름을 보내고 한계절이 지나 청소노동자 분들께 실태조사 결과도 알려드리고, 실태조사 결과 청소
어느 아파트 한 동에 위치한 청소노동자 휴게실.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이 심각해 모임도 진행하기로 해서
내려갔다 너무 깜깜해 다시 올라와 경비노동자분께 여
안부전화를 드리니 다시 연락줘 고맙다는 말에 무언가 뭉
쭤보니 여기 지하가 맞다고 하신다. ‘입구부터 불빛 하나
클했다. 지난 12월 4일 첫모임으로 영화 <감쪽같은 그녀>
없는데 어떻게 다니시지?’ 휴대폰 후레쉬로 앞을 비췄다.
를 함께 보고 저녁식사를 했다. 오랜만에 보는 영화라고
머리 위로는 붉은색 비닐이 감싸있는 배관이 있었는데 머
무척 설레여 하셨고 식사자리에서는 그동안 억울하고 부
리를 부딪치지 않게 허리를 깊게 숙이고 들어갔다. 너무
당한 일들, 특히 산재 관련 질문이 계속 이어졌다.
어두침침하고 들어가가기 쉽지 않아 계속 ‘여기맞나?’라는
첫 모임에 많은 분들이 모인 건 아니지만 조금씩 움직임
불안한 생각에 오전에 만났던 청소노동자분께 전화를 하
이 있을 거라 기대해본다. 아파트 경비노동자모임도 처음
니 휴대폰은 터지지도 않는다. 어둠속에서 나말고 무엇인
은 미비했을거다. 지금은 경비노동자들이 적극적으로 모
가 움직이고 있는 거 같은데 ‘쥐? 으... 무서워. 나가는 길은
임에 참여하며 꾸준히 모임을 갖고 경비노동자들의 노동
어떻게 찾아야하지?’ 그러다 희미하게 들리는 웃음소리에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고 계신다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들었다.
4평 남짓한 비좁은 공간에 열 댓 명이 삼삼오오 모여 점
2020년에는 아파트 청소노동자에게도 그런 움직임과
심을 준비하고 계셨다. 짝이 맞지 않는 부엌세간들이 눈에
활동의 바람이 불어 좀 더 좋은 근무조건과 환경에서 당당
들어온다. 그런 눈길을 알아채시고 한 청소노동자분은 분
히 일하시는 모습을 함께 그려보고 싶다.
31 I
스쿨미투
스쿨미투의 뜨거운 바람과 찬 바람 위계 위력에 의한 성폭력 없는 성평등한 학교가 되기를 바라며 글 최경숙 기자
성차별 사회구조문제
처벌
학내성폭력
스쿨미투 성평등을배우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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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미투는 가히 우리나라 학교의 일상적인 문화로 보아도 손색이
2018년, 노원에서 활화산처럼 터진 학생들의 스쿨미투 함
없을 것이다. 우리의 윗세대들이 당했고 우리가 경험했으며
성이 전국으로 퍼져 올해도 식지 않고 흘러내리는 용암처럼
지금도 학생들이 겪고 있는 교사에 의한 성폭력은 부끄러움과
우리 마음을 뜨겁게 했다. 그런데 한 해를 마감하는 12월, 수
미안함을 품은 우리의 유구한 문화적 전통(?)이다.
락산에 올라 마들 벌판을 내려다보니 울컥하게 했던 그 목소
이 문화가 긴 세월동안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아무도 소리
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한데 왠지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 온다.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리내지 못한 이유는 그 누구도 쉽게
그렇게 외쳤건만 아직도 학생들이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하게
스쿨미투를 고발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살아
지내고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스쿨미투가 다 해결되었
있는 권력(교사)과 매일 마주해야 하는 권력관계에서 약자인
다는 말이나 학교에 성평등 문화가 조성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학생이 어떻게 그들의 잘못을 외칠 수 있을까? 더구나 우리나
듣지 못했다. 반면 다른 곳에서 스쿨미투가 발생하고 있다는
라 입시체제에서 혹여라도 교사에게 밉보이면 진학에 불이익
소식은 간간히 듣는다. 북풍 찬바람에 마음까지 싸늘해진다.
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인데 감히(?) 어떻게 그들의 잘못을 고
학내 위계·위력에 의한 성폭력을 없애겠다는 스쿨미투 운동
발할 수 있을까?
이 이대로 얼어붙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안타깝다.
그렇기에 스쿨미투를 외친 학생들의 용기와 정의로움에 고
다 타서 없어져야 할 성폭력 문화가 아직 남아있기에 스쿨
개가 숙여진다. 무서워서, 불이익을 당할까봐, 또는 그것이 성
미투 열기가 이대로 사그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이에 학생들
폭력인 줄 모르고 관심받고 사랑받는 것이라 여겼던 ‘알지 못
의 목소리로 시작된 학내 성평등 문화가 새로운 세상을 만들
함’ 때문에 잘못을 잘못이라 말하지 못하고 성폭력 문화를 이
어 내기 바라며 한해의 끝에서 스쿨미투를 뒤돌아본다. 학생
어온 우리이기에 학생들의 외침에 부끄러움이 몰려온다. 지금
과 시민이 만들어낸 스쿨미투의 열매는 새로운 출발의 힘이
의 스쿨미투는 용기있는 학생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 누
될 것 같다.
구도 생각하지 못하고 용기내지 못한 일을 용기내어 외쳤다. 스쿨미투(교사에 의한 성폭력)를 멈추어 달라고. 과거에 못한
스쿨미투 현황
일을 이제 학생들이 시작했으니, 사회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
2018년, 새학기를 맞으며 시작된 스쿨미투는 2019년 상반
을 하라고 말하는 것 같다.
기까지만해도 백여 개 학교에 달한다. 하지만 방송과 SNS 등
그래서 노원스쿨미투를지지하는시민모임의 일원으로 처음
매체를 통해 밝혀진 학교 외에, 드러나지 않았지만 교내에서
부터 함께 하겠노라고 나섰다. 지지한다고, ‘with you’라고
터졌다 사그라진 스쿨미투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학교 차원
말했다. 그런데 스쿨미투가 시작되고 해가 바뀌고 또 바뀌어
에서 또는 교육청 차원에서 조사가 된 스쿨미투는 ‘사생활 보
가려는 지금 드는 생각은 거짓말쟁이가 된 것 같다. 전국적으
호’라는 미명 아래 외부로 알려지지 않는다.
로 대대적으로 언론에 노출된 스쿨미투 발생학교의 조직 문화
우리나라 방방곡곡의 학교에서 발생한, 발생하고 있는 스쿨
가 성평등 문화로 변모해 가고 있다는 기쁜 소식이 들려오고
33 I
스쿨미투
있지 않기 때문이다. 허탈하다. 변화되지 않는 문화에 무력감 을 느낀다. 자괴감마저 든다. 뒤따르기만 했던 자로서의 느낌 이 이러한데, 목소리 내어 앞장섰던 학생들은 얼마나 화가 날 까? 피해자들은 잘못된 행동을 고소하고 고발하면 나머지는 사 회에서 알아서 처리해줄 것이라고 믿었을 거다. 잘못한 사람 은 반성하고 죗값을 받을 것으로 믿었을 거다. 사필귀정과 개 과천선을 배웠으니까. 하지만 잘못한 사람은 속속들이 학교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돌아가 다시 학생 앞에 서고 있다. 교 사로서 학생들에게 신뢰를 잃어 더 이상 교육의 효과를 바라 기 힘든 상황임에도 말이다. 심지어는 학생들의 행동에 대해 나무라기까지 하고 있으니 한 학교에서 그 교사들을 마주하는 마음이 얼마나 두렵고 낭패스러울까? 학생들의 스쿨미투 목소리가 잦아들고 있는 것 같다. 근 이
으로부터 안전지대가 아님을 알리고, 교사에 의한 성폭력 피
년 동안 목소리 내어도 변함없는 현실을 보면서 침묵을 택한
해학생들이 얼마나 힘들어하는가를 알게 했다. 그리하여 학내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조용함이 두렵다. 사회가 어
성폭력 문화에 관심을 갖도록 만들었다.
떻게 하고 있는지 지켜보고 있을 것 같다. 정의롭지 못한 사회
넷, 스쿨미투 매뉴얼을 만들어냈다. 스쿨미투가 발생하면
를 배울까 두렵다. 그래서 더욱 스쿨미투를 되돌아보고 지난
매뉴얼에 따라 상급기관에 보고하고, 가해교사를 즉시 분리
시간에서 얻은 열매(성과)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조치해야 한다는 절차가 생겼다. 아직은 불완전해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기도 하지만 스쿨미투를 지지하는 학생과 공동체
스쿨미투로 얻은 열매
가 함께한 결과라고 본다.
하나, 학생들은 말하기 시작했다. 스쿨미투는 말하기다. 침
그리고 교사에게 스쿨미투에 해당하는 성폭력, 성희롱, 성
묵하던 관행을 깨고 세상에다 대고 큰소리로 외쳤다. 더 이상
추행, 성차별적 발언, 혐오발언 등 학생들에게 하면 안 되는 언
참지 않고 자신들이 당하고 있는 성차별과 성폭력을 알렸다.
행이 있다는 것을 알게 했다. 아직도 교사인 자신의 말이나 행
학내에서 일어나는 성범죄에 조명을 비추도록 안내했다. 그
동이 스쿨미투에 해당한다는 것을 모르는 교사도 있겠지만,
결과 밝은 빛 아래 추한 범죄 행위가 드러나고 있다.
조금은 조심하는 분위기라는 말을 들었다. 이것이 학생들이
둘, 학교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비록 아직도 위계·위력에
외친 스쿨미투의 열매다.
의한 성폭력이 없는 성평등한 학교가 되기에는 한참 멀어 보 이지만, 그래도 변화의 조짐이 조금은 보인다. 학교가 학생의
스쿨미투가 해결해야할 과제
말에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비록 미미한 반응, 어쩌
하나, 가해교사에 대한 철저한 징계가 내려져야 한다. 서울
면 미동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조금은 들어주
노원에서 스쿨미투 발생 학교의 사법절차가 진행 중에 있다.
는 시늉이라도 하는 것 같다. 스쿨미투가 발생했을 때, 그냥 모
재판이 끝났거나 진행 중인 학교도 있고, 재판을 위한 조사 과
르는 척하면 안 되고 교육지원청이나 교육청에 알려야 한다는
정을 밟고 있는 학교도 있다. A여고의 경우, 사립학교에서 사
것을 알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변화로 말미암아 목소리를 내
상 처음으로 교육청의 징계권고가 받아들여졌다고 기뻐했던
면 책임자들이 아무리 귀를 닫고 안 들리는 척 해도 조금은 변
시간은 일 년이 지난 지금은 아주 오래 전 이야기처럼 기억에
화 시킬 수 있다는 경험을 하게 됐다.
서 날아가고 있다. 경찰과 검찰에서 제대로 대응을 해주지 못
셋, 교사에 의한 성폭력이 결코 학생에 대한 격려나 지지가
한 결과 취업과 학업을 병행해야 하는 진술인들은 지쳐가고
아닌 권력에 의한 폭력임을 세상이 알게 했다. 학교가 성폭력
있다. 타학교 스쿨미투 재판정에서 본 가해교사는 변호사와
I 34
문에 어쩔 수 없이 끼워 넣는 형식적인 성평등 교육은 그만 해 야 한다. 그리고 학생회와 학부모회에 대한 성평등 교육이 이루어져 야 한다. 학생들의 의견을 받아 학교에 전달하는 역할과 학내 문화를 앞장서서 만들어나가는 단체가 학생회라고 한다면, 학 생회 구성원들은 무엇이 성평등이고 학생들이 성폭력으로부 터 안전한 학교문화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배우 고 생각하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또 이 학생들에게 영향을 끼 치는 학부모와 보호자들에게도 성평등교육이 실시되어 그들 이 경험했던 성폭력이 후대에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당 장 자식의 진학을 염두에 두고 불이익을 염려해 눈앞의 성폭 력 문화를 모른 척하는 보호자가 되지 않도록 교육해야 한다. 학교에서 학부모의 목소리가 학교를 움직이는 힘이 크다고 한 함께 당당하게 나와 별일 아니라는 듯, 마치 자신의 무죄가 재
다. 그 목소리를 올바로 낼 수 있는 교육이 있어야 한다.
판에서 결정 날 것을 미리 아는 사람처럼 여유로워 보였다. 사 람이 미운 건 아니지만 잘못된 행위에 대해서는 타당한 죗값
나오며
을 받는 결과를 보고 싶다. 그래야 다른 교사들의 타산지석이
교사의 권력에 의한 성폭력을 학생들이 말하기 시작한 것이
될 것이다.
스쿨미투다. 학생이라서 불리한 입장에 놓인 피해자들이 어렵
둘, 스쿨미투가 발생한 학교에 대한 후속 조치가 마련되어
게 말을 꺼냈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는 지금까지 용기 낸 학생
야 한다. 스쿨미투가 대대적으로 발생했던 학교가 조직 문화
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정의가 살아있는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
를 개선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점검할 수 있어야
어야 한다. 교육당국과 학교 구성원과 학부모뿐만 아니라 스
한다. 교육당국은 변화를 점검하기 위해 어떤 매뉴얼을 마련
쿨미투를 지지하는 모든 사람들은 학생들의 용기를 무위로 돌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혹시 ‘학교 당국이 잘 하고 있습니다’
리지 않도록 다시 한 번 학교를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공간
라는 말만 믿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간혹 스쿨미투 발
을 만드는 법을 마련하고, 학교를 변화시킬 문화를 만들어내
생 학교 구성원의 말을 들으면 실망과 안타까움이 크게 일어
기 위해 지혜와 힘을 모아야한다. 그런 의미에서 제언을 하며
난다. 교사들은 재발방지를 위한 토론 한 번 없고 그저 스쿨미
마치겠다.
투가 금기어처럼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는다고 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신들이 한 행동에 대해, 징계를 받은 많은 교사
하나, 교사에 의한 성폭력피해자의 사법절차는 학교관리 책 임이 있는 학교장과 교육당국이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가 복귀한 마당에 어찌 한번도 자성을 위한 토론회가 없을 수
둘, 학교 성폭력 문화를 살필 수 있는 전수조사를 실시해야
있다는 건지. 마치 징계를 면죄부로 오해하지는 않는지 걱정
한다. 전수조사를 통해 학교문화를 개선할 책임은 학교의 책
스럽다.
임자에게 있다.
셋, 학내 구성원에 대한 실효성 있고 실질적인 성평등 교육 이 이루어져야 한다. 방송수업이나 강당의 집체교육으로 이루 어지는 형식적인 성평등 교육이 아니라 학내 문화를 바꾸어나 갈 토론식 수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수업에서 불편한 말이 나 온다면 그 자리에서 토론으로 서로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러기 위해서는 수업에 한 시간(1교시)을 배정하는 것이 아니
셋, 학교 성평등 문화 조성을 위해 성폭력예방교육을 내실 있게 실시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넷, 학교 성평등 문화 조성을 위해 학내외 인사와 전문가로 구성된 성평등위원회가 꾸려져야 한다. 그리고 교육당국은 스쿨미투 발생학교에 대한 사후 점검 매 뉴얼을 만들고 사후 모니터링을 철저하게 해야 한다.
라 적어도 2교시 이상의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 이제 의무 때
35 I
젠더거버넌스
저출산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빗겨간
‘2019 노원구 미혼남녀 만남 행사’ 글 이지희 노원여성회 젠더거버넌스 현장정책제안활동 활동가
올해 초, 서울의 타 지자체에서 구청 공무원 간의 만남
저출산의 이유에는 근본적으로 성역할 고정관념과 여
사업을 주관해 출산을 장려하고자 했던 일이 있었다. 당시
성의 이중노동이 있다. 일과 가정을 양립하는 것은 여전히
그 소식을 접한 많은 사람들은 분노하며 엄청난 비판을 했
여성의 몫이다. 그래서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다. 더불어
고, 해당 게시글은 삭제되었다. 그런데 몇 달 전, 노원구에
돌봄비용의 증가로 인한 양육에 따른 재정적인 어려움도
서 대상만 다르게 했을 뿐, <2019 노원구 미혼남녀 만남
큰 이유이다. 육아휴직은 어떤가. 여성이 육아휴직을 사용
행사 ‘노원에서 만나 결혼까지’> 사업을 진행한다는 것을
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실제 영유아를 키우는 기혼 남성
알게 되었다. 놀라움을 금치 못하던 순간이었다.
사이에서도 육아휴직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와 같다.
노원구에서 진행한 미혼남녀 만남주선 사업의 참가대상
육아휴직을 하는 순간 직장에서 눈치를 보고, 생계비 하락
은 노원구 거주 또는 노원구 소재 기업체 재직 중인 미혼
을 경험하는데 그 누가 경쟁사회에서 퇴출당할 일을 하겠
남녀 직장인 남녀 각 20명씩 총 40명으로 정해져 있다.
는가.
우선 성은 남과 여, 이렇게 양성만 있지 않음에도 이성
웹 홍보물도 문제다. 관련 웹 홍보물을 보면 여성은 긴
애를 정상적인 연애로 전제하고 동성애 등은 배제하고 있
머리에 치마를 입고 청순한 이미지를 담고 있고, 남성은
다. 이성애적 만남이 이뤄지면 자연스럽게 결혼하고 출산
앞에서 여성을 이끌고, 여성은 이끌려가는 모습이 담겨 있
을 하는 것인가? 저출산은 결혼한 남녀커플이 자녀를 적
어 여성을 비주체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게 낳거나 낳지 않아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점점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 청년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런 사업은 비단 서울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국적으로 시도, 시군구뿐만 아니라 교육청에서도 이와 같은 사업을
결혼은 필수가 아니라 할지 말지 선택하는 것이다. 이런
추진해왔다. 그만큼 저출산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인지하
입장에서 미혼이라는 표현은 결혼을 비주체적으로 대하는
지 못한 현재 사회의 단면을 잘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겠
의미이기에 비혼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옳으며, 결혼에
다. 설령 이 사업을 통해 연애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연인
대한 선택권은 무시된 채 반드시 해야 하는 것으로 강제하
관계에서 디지털성범죄, 불법촬영 등으로 피해가 속출하
는 문화를 조장하는 사업은 문제가 있다. 결국, 이성애 중
고 있는 가운데 청년 여성은 ‘과연 안전한 연애가 가능한
심의 결혼제도에 갇힌 문화를 강요할 뿐, 출산과 직결되지
가’에 대한 의문도 제기하고 있다.
않는 사업인 것이다. 더불어 참가신청서와 함께 최근 1개
유럽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직접적인
월 이내의 혼인관계증명서와 재직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
보육서비스를 국가가 적극적으로 제공했기 때문이다. 다
혼인관계증명서를 받는 이유는 이혼, 사별 등의 경험이
양한 가족 형태를 수용하고 해당 국가에서 태어난 모든 아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함인 것인가? 그런 경험을 한 남녀
이에 대한 보편적인 보육, 복지를 제공함으로써 누구나 아
는 참여를 제한할 것인가? 왜 그러한 차별을 두는가? 또
이를 낳을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따라서 지
재직증명서를 제출하게 하고 참가대상도 직장인이어야만
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평등 교육과 노동시간 단축,
한다거나 이후 평균연령이나 직업 등을 고려해 선정한다
실질임금 증가, 양육과 돌봄에 대한 국가의 역할 강화, 양
는 것은 곧 만남 전에 사회가 정한 능력, 재정 등 필요조건
육에 대한 기업의 인식개선 등이다.
을 우선시하는 결혼정보회사와 같은 행태가 아닐 수 없다.
I 36
언니들의 이야기 Sister's story
언니들의 이야기
아이를 키우며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본다는 것은 마치 꽃봉오리를 맺어가는 모 습과 같다. 어느 계절에 따라, 온도에 따라 성장은 다르다. 매서운 겨울 같던 날들 에도 꽃은 매일 피고 졌다. 몇 해 전, 이맘때 즘 아이의 꽃봉오리도, 나도 짓밟히는 순간이 있었다. 꽃잎이 떨 어지는 날은 무수히 많았지만 분명 그날은 어느 때와 같은 날이 아니었다. 무작정 가방을 쌌다. 몇 개 의 기저귀, 공갈 젖꼭지, 아이 여벌 옷, 아기 띠를 하고 도망치 듯 기차역으로 떠났다. 몇 번이고 눈물 훔치며 달려왔던 기차역은 낯설지 않았다. 나를 맞이해 줄 곳도, 갈 곳도, 돈도 없었다. 서성거리고 있자니 아기 띠에 매달린 아이가 공갈 젖꼭지를 물고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까만 아이의 눈망울에 내가 보였다. 기차역 안을 맴돌던 발걸음으로 서울역의 표를 끊었다. 그렇게 마지막 기차역을 서둘러 떠났 다. 답 없는 이혼 서류의 소장은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였다. 10개월이었던 아이가 걸음마를 떼고, ‘엄마’라고 말을 하고, 생일을 지나며 ‘첫’이 란 글자가 얼마나 벅차고 가슴 아렸는지 모른다. 그리고 1년이 지나니 ‘첫’과 ‘끝’ 이란 글자가 가슴 뛰는 출발이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네 살 아이를 키우는 스물 여섯 살의 한 부모 가족이 되었다. 새로운 출발의 설렘을 안고 아이와 함께 걷는 길이 그리 즐겁지 만은 않았다. 우 린에겐 없는 다른 가족구성원에 대한 당연한 물음에 옛 기억이 떠올랐다. 나 또한 한 부모 자녀였던 때가 있었다. 녹색 어머니날과 급식당번에 눈물 닦던 날들이, 엄 마의 빈자리는 입 밖으로 꺼내면 안 되는 일들이 있었다. 남들과 다른 가족은 부 끄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다문화, 한 부모, 다양성 가족과 성 역할 고정관념을 이 야기하는 우리아이 시대는 달라진 줄 알았다. 요즘 이혼이 흠이냐는 이야기들이 정말인 줄 알았다. 그러나 17년이나 지난 지금에도 달라진 건 없었다. 우리가족이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임을 나는 일상에서 만난다. 아이의 가정통신문 에는 가족이 ‘가족’이라고 표현되지 않았다. 1학기는 ‘엄마와 함께하는 활동’ 으로 양육자와 애착형성이 잘 된 양육자는 대부분 ‘엄마’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어린이 집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 먼저 활동이 이뤄지고, 2학기는 ‘아빠와 함께하는 활동’ 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각자의 주말에서도 우리는 수많은 물음을 듣는다. 아빠가 기다린다거나, 아빠한 테 사달라고 하라거나, 아빠 말은 잘 들어야한다거나, 아빠는 어디 있냐고 하거나, 당연히 아빠가 어딘가에 함께 있을 거라는 전제가 있다. 돌아온 월요일, 모두가 나 누는 일상 이야기에도 주말동안 어린이집에서 진행 되었던 ‘아빠의 날’에도 우리 아이와 나는 없다. 우리아이와 나는 그 시간을 함께 할 수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혹시 아이가 대부분의 친구들은 갖고 있는 가족의 그림을 부 러워할까 싶기도 했고, 내가 도리어 그림을 부러워하고 있는 내 딸이 된 것처럼 마음이 미어지면서 갑자기 왕따가 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렇게 종종 아이와 나 에 대한 감정은 머리와 하나가 되어 이성을 덮어버린다. 계속 부딪쳐 나갈 아이의 마음도, 나의 마음도 걱정되고, 계속 당면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 가까운 어린이
I 38
집에서부터 말해보기로 결심했다. 먼저, 가정통신문에 가족의 개념을 배우는 활동
한 부모로 아이와 더불어 살기
을 하겠다며 한 주는 엄마, 한 주는 아빠의 프로 그램으로 이루어진 내용을 보고 다양성 가족의 이야기도 함께 해 줄 것을 이야기했다. 아직은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일일이 교육할 수준이 아 니어서 만3세에 아이들에게는 가족의 개념만을 교육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다음으로 ‘엄마, 아 빠의 날’ 두 양육자로만 함께하는 활동을 ‘가족
글 강은지
의 날’로 변경해 줄 것을 요청했다. 어린이집은 운영위원회와 논의해보겠다며 한 번도 이런 이 야기를 한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가족의 개념에서도, 함께 하는 활동에서도, 애 착형성이 잘 된 양육자도, 오직 ‘엄마. 아빠’ 뿐
국을 보고 ‘울라프도 엘사의 가족’이라고 말했
이었다. 어떤 가족이 있다는 것을 설명해 달라
다. 아이는, 그리고 우리는 함께 건강하게 잘 성
는 것 이 아니다. 가족의 구성원이 ‘엄마. 아빠’
장해 나아가고 있다는 믿음으로 안심해본다.
말고 ‘할머니. 할아버지’ 도 있어야 한다는 것,
물론 앞으로 우리가 부딪쳐 나가야 할 문제들은
내가 ‘같이 살고 있는 사람이 가족’이라는 것을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서로가 즐겁게 저항할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수 있도록 면연력을 길러 대비해야한다. 그러기
래야 생각의 환경이 만들어져 서로의 다른 가족
위해서는 이 문제가 단순히 ‘너’와 ‘나’의 것이 아
형태를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니라 ‘우리’의 것임을 알려야 한다. ‘우리’의 문제
아직 만3세의 수준이 아니라지만 이미 아이는
로 함께 나아갈 수 있어야한다. 어딘가 함께 하
인식한다. ‘가족은 엄마. 아빠가 있어야 하는 것’
고 있을 이웃들이 ‘혼자’가 아님을 알리고 싶다.
이라는 태도를 보면 수준의 접근이 아닌 것이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우리’로 당당
다. 그래서 나는 다양한 가족을 만날 수 있도록
하게 목소리 낼 수 있었으면 한다.
노력한다. 강아지와 산책을 하는 사람, 할머니. 할아버지랑 하원하는 친구, 아빠랑 둘이 걸어가 는 친구들.. 나는 아이에게 ‘모두가 다 다른 가 족‘이라고 말하지만 아이는 느닷없이 이야기한 다. ‘난 아빠 없어’, ‘우리가족은 엄마 혼자’ 라고. 단적인 아이의 말은 여전히 준비되지 않은 나의 마음을 마주하게 하지만 나는 우리의 아빠는 없 는 것이 아니라 같이 살지 않아서 가족이라고 소개하지 않는 것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서로에 게 어려운 이야기지만 그럼에도 나름 우리 가족 의 조화를 찾아 ‘악어라구(본인이 지어준 구피 물고기), 꽃님이(꽃이 피는 식물)’를 키우며 가족 으로 맞이하고 함께한다. 언젠가 아이는 겨울왕
39 I
언니들의 이야기
어제부터 학교는 단기방학을 했다. 오늘은 아이 와 함께 복지관으로 가야할 거 같다. 곧 있을 전 시회를 앞두고 그동안 작업했던 그릇들과 작품 들을 모아서 가져가야 하는데, 아이랑 함께 움 직이는 거라, 갈까 어쩔까 고민하다가 설거지 를 하면서 마음을 굳히고 가기로 한다. 조금 어 렵겠지만 망설이고 안 가는 것 보다는 다녀오는 쪽이 더 나을 거 같다는 생각이 마음 한구석을 긍정 모드로 바꾸고 있다. 수업시간은 10시인데 벌써 10시다. 조금 늦겠 구나! 너무 실력이 없다는 핑계를 대며 전시회 에 낼 생각도 없었는데 막상 꺼내고 보니 그릇
나는 지금의 내가 좋다
들이 꽤 많다. 쇼핑백 한가득 안고서 아이를 앞 세우고 가는데 비가 제법 내린다. 도자기 그릇
글 하명란
들을 한아름 안고 택시를 타니 비로소 안심이 된다. 비도 오고 짐은 무거운데 아이랑 함께하 는 게 버거웠던 걸음이 택시로 인해 가뿐해 진 것이다. 가져온 그릇들을 풀고, 선생님께서 우선 두 점
도우미가 되면서, 나는 나의 작업을 하게 되었
을 사진 찍기 위해 따로 챙기시는데 나머지 그
다. 첫 작품은 정말 지금 생각해도 많이 창피하
릇들도 전시를 하실 거라고 한다. 마지막 가마
다. 콜링이라는 것도 잘 모르고, 밖은 밀어 올리
작업까지 마친 그릇들은 완성도에 따라 엄청난
고, 안은 내리고 조금씩 흙을 이어 붙여 가며 커
희열로 다가온다. 화덕에서 완성된 작품을 꺼내
피 잔을 만들었는데, 내가 만든 첫 작품이 완성
는 도공의 모습이 담긴 옛 드라마의 장면에서
되어 나왔을 땐 가슴이 뜨거워 미칠 것 같았다.
꿈을 꾸었었다. 거기서 시작된 도예에 대한 로
그 작품을 집으로 가져가서 한참을 보며 기뻐했
망을 이루게 된 건 모두 아이 덕분이다.
었다. 그렇게 아이와 함께 수업을 만들어 가는
‘아이랑 보내는 즐거운 토요일’이라는 주제로,
동안 봉사자 선생님은 아이에게 없어서는 안 될
아이랑 함께 하는 수업이 있다며 아이의 선생님
지원군이 되었고, 나에겐 행복한 시간이었다.
추천이 있으셨고, 그렇게 나의 도예수업은 시작
아이로 인해 하게 된 것은 도예뿐 만이 아니다.
되었다. 나름 원대한 기대와 소망으로 도예 수
아이랑 다니면서 계절의 변화를 보았고, 대로변
업을 듣게 되었는데 처음엔 어려웠다. 아이는
의 가을 단풍이 봄 벚꽃만큼이나 예쁘다는 것도
선생님의 지시를 따르기도 어려웠고, 관심도 별
아이를 통해 알게 되었다. 꽃이 예쁜데 꽃을 보
로 없어 보였다. 나의 아이는 자폐를 앓고 있는
고 예쁘다고 말할 수 없는 기분을 아는가? 나는
중증장애인에 속한다. 항상 신경은 아이에게로
이제야 주변을 편히 바라보며 나의 이해에 이른
가 있고, 아이가 보이는 행동에 온 몸의 세포가
기분이다. 한 해의 끝자락이, 11월이, 아쉬움이
반응한다. 도예 수업에서도 나는 늘 긴장해 있
아니라 마무리이며 추수 같다는 느낌을 받는 지
었다.
금의 내가 좋다.
운 좋게 자원봉사자 선생님이 매칭 되어 아이의
나는 오랫동안 사춘기의 성장통인 상상의 청중
I 40
을 버리지 못했다. 지금도 버스나 대로변을 걸으면 불편하
다가온 것이다. 오래 바라보고 작업하면 완성도가 높듯이,
다. 시선이 의식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 항
이제는 비교를 빼고 나의 인생을 시작하련다.
상 멋진 모습에만 눈이 갔다. 그의 멋진 모습을 보며 질투
내가 어느 정도의 수준에 오르지 못해도, 내안에는 아이
는 나의 힘이라며, 너무 부러워했다. 내 안의 수많은 나로
때문에 생겨난 엄마라는 커다란 응원군이 있다. 그 힘은
인해 나는 힘들었다. 그랬던 내가 서서히 바뀌어 갔다.
나를 항상 붙들어 준다. 그래서 아이와 나는 떼어 놓을 수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내가 나의 아이를 다른 아이와 비교
없다. 스러지다가도 일어날 힘을 얻는다. 엄마는 ‘엄마는
하면서 나도 모르게 키워온 나의 부정적 마음을 깨닫게 되
널 결코 포기하지 않을께’라고 말하는 걸 넘어서, ‘엄마는
면서 부터다. 비교가 무어라고 ‘우리 아이는 이것도 못해
널 꼭 지켜줄게’ 이런 마음을 먹기까지 나에겐 참 많은 시
요, 할 수 없어요’ 이렇게 말하면서 내 안에 커다란 나쁜 감
간이 필요했다.
정이 생겨나는 줄 몰랐다. 내가 나를 부정하는 마음을 당
아이는 아직 미술에 관심이 없다. 오래 걸릴 수 있다고 치
연하게 여겼던 것처럼, 아이도 그렇게 보고 있었다. 아이
료사 선생님이 말씀하실 정도다. 아이와 함께 미술관을 방
가 못하는 건 아이의 잘못이 아닌데 엄마는 그것을 볼 줄
문할 때도 수많은 눈총을 받지만 아이와 함께 하기에 나
몰랐다. 미움을 인정하니 비로소 편안해졌다. ‘내가 그랬었
는 좋다. 비 그친 뒤의 햇살이 눈부시게 아름다워 보이고,
구나! 너를 사랑하는 줄 알았는데 미워하고 있었구나!’ 아
노란 은행잎과 새빨간 단풍잎이 예전의 그것보다 더 예쁘
이에 대한 미움이 뽑히니 세상이 달라졌다. 엄마가 미워해
다고 느껴지는 지금의 나이가 되었다. 지금은 참으로 쉽게
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다시는 그런 비교 따위 하지 않겠
말하고 바라는 것이 없어졌다고 할까, 위대한 사람이나 위
다고 아이 앞에서 다짐했다.
인은 될 수 없지만 나의 지나간 소망, 나의 꿈을 찾는 작업
도예수업을 하다 보니 미술과 친해졌는지, 미술관 관람을
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모든 시간이 아이와 함께 하기
하면서 조금 여유롭게 바라보는 나를 발견한다. 한없이 멀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내가 좋다.
고 높은 세계를 바라보는 느낌이, 이제는 친근한 작품으로
41 I
언니들의 이야기
쪽 반찬이 부족한 것이 있어서 주방에 몇 번 다 녀오셨다. 상을 치우고 과일을 먹던 중 친척 할 머니 한 분이 말씀하셨다. “요즘 세상이 변해도 너무 변했네. 어디 감히 시어머니가 밥도 못 먹
나는 착한 며느리를 버리기로 했다
는데, 며느리가 한자리 차지해서 척하니 밥을 먹다니. 아주 말세야 말세.” 순간 분위기가 썰렁해졌다. 내 이야기인 게 뻔 하다. 그 자리에 있었던 며느리는 나 하나였다. 순간 수치스러워서 자리를 피했다. 시아버님이 따라오더니 너가 잘못 한 것이니 빨리 죄송하 다고 말씀을 드리라고 했다. 눈물이 났다. 난 죄 송하다고 말씀드렸다. 분위기를 망칠 수가 없었
글 강혜미
다. 명절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었 다. 내가 잘못을 말하면 끝나는 것이다. 집에 돌아와 울었다. 분노가 치밀었다. ‘내가 이 따위 대접을 받으려고 갓난아기 데리고 가서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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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딸이 없잖아. 널 딸이라 생각할거야. 너도
식하고 상을 차렸나? 자기들은 가만히 앉아서
날 시어머니 말고 엄마라고 생각하렴. 우리 행
주는 음식 먹으며 얘기할 때 빨리 밥 먹고 아기
복하게 살자.” 결혼식 날 내 손을 잡으면서 하신
분유 먹이려는 내 행동이 그리 잘못인가?’ 그 자
시어머니 말씀이 참 따뜻했다. 시부모님과는 연
리에서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남편도 싫었고, 나
애 초기부터 만났다. 집이 가까워 자주 만나다
에게 용서를 구하라는 시아버지도 싫었다. 쌤통
보니 명절 때나 생일 때도 만나는 사이가 되었
이라는 듯 날 쳐다보는 시어머니도 싫었다. 제
다. 그때마다 반겨 주시고 예뻐해 주셨다. 그저
일 싫은 건 그 자리에서 말 한마디 못하고 사과
보통의 예비 시부모님이셨다. 시댁이 별거인가?
를 구하고 있는 나 자신이었다. 분노가 일었지
고부갈등에 대해선 걱정조차 하지 않았다.
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고
어렸을 적 꿈꿨던 미래의 나는 이렇다. 사랑스
작 할 수 있는 건 남편을 붙잡고 싸우거나 지인
러운 아내, 친구 같은 엄마, 그리고 예쁨 받는 며
들에게 하소연을 하는 것뿐이었다.
느리. 시아버지는 며느리가 예뻐서 입이 귀에
그런데 어느 날 내 하소연을 듣던 친정어머니가
걸린 채 용돈을 주고, 시어머니와 팔짱 끼고 쇼
말씀하셨다. “넌 왜 자꾸 남편 뒤에 숨어서 말을
핑을 다니는 며느리. 그 자리는 내가 노력을 해
하니? 너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너가 이야기
서 얻어 내는 게 아니라 그렇게 되는 게 당연한
해야지.”
것으로 생각했다.
그 말이 마음에 남았다. 생각해보니 나는 시부
착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이를 낳고 처음 맞
모님에게 예쁨을 받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는 명절이었다. 시부모님이 큰집이라 친척들이
시부모님이 원하는 며느리가 되려고 했다. 순종
모인다. 명절 아침 시어머니를 따라서 아침상을
적이며 친척들에게 싹싹한, 남들에게 자랑하고
차리기 바빴다. 상을 차리고 식구들이 식사를
싶어하는 며느리. 하지만 내가 그런 사람이 아
마칠 때쯤 한구석 자리를 차지해 밥을 먹기 시
니니 힘들었다. 난 낯을 많이 가린다. 친하지 않
작했다. 시어머니와는 다른 상에 앉았는데, 그
는 사람에게 살갑게 대하지 못해 나의 친척과도
면 님... “어머 만 하셨으 그 이제 니다” 좋겠습
용기! 는 있 수 말할 ! 있는 용기 내 생각을 수 할 내가 는 용기! 주 내 얘기는 여 보 그대로 나를 있는 친하지 않다. 순종적인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 부모님께도
그렇게 본인의 감정을 한바탕 쏟아 부우시고 전화를 끊으
할 말을 다 하는 막내딸이다. 그런 내가 전형적인 며느리
셨다. ‘뭐. 싸가지 없는 며느리? 까칠한 아이?’ 불쾌했다. 하
를 하려고 하니 탈이 날수 밖에 없었다.
지만 시어머니가 생각하는 내 모습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
벗어나기로 했다. ‘더 이상 착한 며느리는 안할거야. 그냥
았다. 내가 나를 보여주기로 한 이상 판단은 그들의 몫이
나 자신을 보여줄 거야. 이게 싫으시면 어쩔 수 없지. 이게
었다. 미움 받을 용기를 가지자.
나인걸.’
산후조리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날이었다. 저녁쯤 시어머
둘째 아이를 낳고 병원에 입원 중의 일이다. 시어머님이
니에게 전화가 왔다. 시어머니는 멋쩍은 목소리로 아이와
우리 부부 몰래 우리집에 가셔서 집안일을 해 놓으셨다.
나의 안부를 물었다. 그러다 마지막에 미안하다며 사과를
난 단호하게 어머님께 전화를 했다. “어머님, 저희 집에 가
하셨다. 시어머님이 나에게 사과를 하기까지 여러 번 망설
셔서 집안일 해 놓으셨다면서요. 감사한데, 저희 몰래 집
였을 모습이 눈에 그려졌다. 그 진심이 느껴져 마음을 받
에 들어가신 거 불쾌합니다. 엄밀히 따지면 남의 집입니
아들이기로 했다.
다. 말씀도 안하시고 집에 오시는 거 이제 그만 하셨으면
그날 이후 시부모님께 포장된 내가 아닌 진짜 나를 보여주
좋겠습니다.”
기 시작했다. 싫은 것을 참아가며 좋다고 하지 않는다. 싫
시어머님은 며느리의 돌변에 당황해 하셨다. 너희에게 도
은 것은 싫다고 내 목소리로 말한다. 이제 우린 일방통보
움을 주고 싶어서 한 일인데 불쾌했다면 미안하다며 전화
가 아니라 대화를 한다. 그러니 서로를 오해하는 일이 없
를 끊으셨다. 휴. 드디어 말했다. 누군가와 대화를 한 것뿐
다. 더 이상 남편 뒤에 숨지 않고 내 얘기는 내가 한다. 그
인데 통쾌했다. 9회말 역전만루 홈런을 친 것 같았다. 그런
러자 남편과 싸울 일이 80% 줄었다.
감정도 잠시, 시어머니가 전화를 걸어왔다. 아까는 당황스
이제 나는 착한 며느리가 아니다. 할 말은 하고, 하기 싫은
러워서 끊었지만 생각해보니 화가 나셨는지 격양된 목소
것은 하지 않는 까칠한 며느리다. 착한 며느리를 버리니
리로 말씀을 하셨다.
시부모님과의 관계가 불편하거나 싫지 않다. 시부모님을
“너희가 그렇게 남이라고 생각하는 줄 몰랐다. 난 자식집
뵈면 진심으로 반갑다. 혹시 시가와의 관계가 힘들다면 용
이라고 생각해서 조금이라도 도와주려고 했다. 요즘 시어
기를 내라고 말해주고 싶다. 내 생각을 말 할 수 있는 용기,
머니가 집에 오는 걸 싫어하는 싸가지 없는 며느리가 많은
내 얘기는 내가 할 수 있는 용기,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
줄은 알았는데, 내 며느리가 그런 줄은 생각도 못했다. 너
는 용기. 서로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고 생각과 감정을 공
가 그렇게 까칠한 아이인 줄 몰랐다. 앞으로는 서로 할 도
유해야 보다 친밀한 관계가 될 수 있다. 서로에게 솔직해
리만 하고 살자.”
지기. 이게 나의 갈등을 해결해준 첫걸음이었다.
43 I
편집후기
노원여성회가 만드는 페미니즘 잡지 ‘깨다’를 만드는 과정이 무척
노원의 첫 패미니즘 잡지 ‘깨다’의 탄생을 위해 글 쓰는 법과 사진촬
설레였습니다. 페미니즘에 대해 생각하고 토론하고 말할 수 있는 공
영법을 배우고 다른 동네 마을잡지 선배들의 만남을 통해 조언을 듣
간을 만든다는 것이 참으로 필요하고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고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비롯해 정치•사회면까지! 이제 시작이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 안에 사회로부터 길들여져 여전히 인권
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성장하게 될 ‘깨다’와 우리들의 모습을 기대
적이지 못하거나 성평등하지 못한 요소가 있지는 않을까 긴장됐습니
하며 미소를 지어봅니다.
다. 어쨌든 ‘깨다’가 나왔습니다.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과정
- 조은나
에 사회구조를 깨는 작지만 역사적인 발걸음이라 생각합니다. 무거 운 책임감이지만 나와 우리, 사회를 성장시키는 걸음이라 생각하며
생각의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허겁지겁...
즐겁게 걸어가고 싶습니다.
글이 될까 걱정하며 원고는 넘겼지만 안절부절...
- 박미경
멋진 편집으로 재탄생한 글에 눈을 씻고 다시 읽고... 확성기로 외치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멀리 퍼져갈 것을 생각하니 두
다양한 한 부모 삶에서 부딪치는 문제들 중 우리 집의 대안과 일상을
근두근...
공유하며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을 만드는데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다음에는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 피멍을 가슴에 묻고 산 여성들의 이
노원여성회의 새로운 도전과 출발을 응원하며 어딘가 숨어있을 또는
야기로 한풀이를...
발걸음을 같이 할 이야기 주머니를 기다리며 환영합니다!
- 최경숙
- 강은지
일 잘하시는 선생님들 덕분에 저는 정말 숟가락만 올려 놓았어요. 스 ‘이게 정말 될까?’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일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
스로가 페미니스트라고 할 수는 없지만 잡지에 참여하면서 저의 여
습니다. 우리가 함께 모여 무언가를 시도했을 때, 우리의 꿈은 더 이
성성이 많이 업 된 거 같습니다. 벌써 다음 호의 원고를 생각하고 있
상 뜬구름으로 존재할 수 없음을 배웠습니다. ‘창간호’라는 세글자를
습니다. 감사합니다.
품에 안고 또 다른 꿈을 꾸고 싶습니다. 그 꿈을 이뤄줄 내 곁의 언니
- 하명란
들이 있으니까요. - 김슬기
페미니즘 잡지를 만들기 위해 참여하던 중 아이휴센터장으로 근무를 시작하게 되었고 개소식을 한창 준비중이다보니 글을 쓰는데 집중을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준비 중에 초등저학년 아이들의 물품을 준 비하면서 아직도 일상의 많은 것들이 젠더차별이 느껴짐을 몸소 느 낄 수 있었습니다. 일상의 변화를 꿈꾸며 집중하여 글을 써 보았습니 다. 우리 아이들이 일상에서부터 차별없는 세상에서 살기 위해 어른 이 그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늦게 보낸 글을 잘 편집해 주고 끝까지 기다려 준 박미경 편집장님 고맙습니다. - 김영미
I 44
차별을 깨고 차별을 낳는 구조를 깨고 함께 실천하고 싶은
기자를 모집합니다! 문의 및 신청 010-2888-6196
창간호 이달의 표지 외롭고 어두운 소외와 차별의 침묵의 벽을 깨고 세상에 당당히 목소리를 내기 위한 첫 출발
- 노원여성회가 만드는 페미니즘 잡지 ‘깨다’가 그 벽을 뚫고 세상으로 나온다.
발행인
박미경
편집장
박미경
기자
강은지 김슬기 김영미 조은나 최경숙 하명란
디자인
박미영
표지그림
박수정
제호 디자인
김경진
블로그 https://blog.naver.com/nowonwomen 이메일 nowonwomen@naver.com 문의 010-2888-6196 창간 2019.12.10. 발행
서울특별시 노원구 상계로23다길 18 5층
※ 노원여성회가 만드는 페미니즘 잡지 ‘깨다’ 창간호는 서울특별시와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지원으로 제작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