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잡지 [닮다] (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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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권 제3호

마을을 닮아가는 잡지 마 을 을 닮 아 가 는 잡 지 닮 다

2017 겨울호 금천 마을 잡지

거기가 어디예요? 마을잡지 닮다 편집모임 + 서울시마을미디어센터

이름의 공간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첫 키스를 나눴던 비둘기공원 제3의 공간 거기엔 사람이 있다 청년, 공간을 이야기하다 2017년 포스터로 보는 우리 동네


마을 이야기를 담아 마을을 닮아가는 잡지

2017 겨울호

겨울호 제호를 써주신 안지성님은 청소년들과 친구 하기에 좋은 공간 ‘자리’를 펴고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교육’에 관한 과제를 풀어내고 있다. 올해는 마을공동체지원센터장으로 자리를 옮겨 더 많은 지역분들과 ‘행복하게 잘 사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나머지 프로필은 네이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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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앞에서 우리가 들려드리는 동네이야기는 큰 가치를 지니기보다는 사소한 걸 담고 있다. 지난여름엔 사소한 밥상머리에서 삶을 나눴다. 이 겨울엔 동네 사람들의 공간을 보며 그 간 지나간 시간도 돌아보려고 한다. 자주 얼굴을 마주한 이웃에게 살며시 물었다. ‘거기가 어디예요?’ 이모에게 위안이 되었던 곳이 있었나요? 할머니,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어르신 어디서 오시는 길이세요? 원석씨, 중학교때 시흥동 은행나무 앞를 지나 이 동네에 들렀다구요? 신기하네요. 디오, 거기서 뭘 만들고 있어요? 마을에서 제3의 공간이라면 거기가 어디예요? 우리는 아낌없이 동네를 샅샅이 알고 싶다. 귀퉁이 찌우퉁한 모호한 땅에도 마음을 담아 풀꽃을 심는 사람들을 만나려고 한다. 드넓은 하늘을 맘껏 들여놓은 창가에 앉아 동네 친구를 기다리는 카페에서 상상하는 그런 공간, 그런 공간을 만나러 문을 연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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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의 공간

당신이라는 공간

어릴 적, 유치원에 입학을 했을 때 나는 처음으로 내 이름이 적힌 공간을 얻었다. 신발장이었다. 신발장의 칸 마다 이름표가 있어서 원생들이 스스로 신발을 넣어두도록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그곳에 내 자리만 이름표가 달랐다. 그곳에는 ‘김환이’라는 이름 대신 ‘김환희’라는 이름이 붙어있었다. 나는 유치원을 졸업할 때까지 ‘김환희’ 자리에 신발을 놓아야했다.

그 이후로 나는 내 이름을 말 할 때 언제나 조심하게 됐다. ‘제 이름은 김환이. 외자가 아니라 이 까지 이름. 그리고 희가 아니라 이’ 라고 언제나 또박또박 말하는 버릇이 생겼다. 누군가에게 계속해서 설명을 해야만 하는 이름이었다. 처음에는 계속해서 내 이름을 이렇게까지 설명을 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 싫었다. 내 이름이 오해되고 있고 그 오해가 쉽게 풀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나는 내 이름을 말하면서 이름에 얽힌 사건을 이야기하게 됐다. ‘외자가 아닌, 희가 아닌 이’로 이루어진 나의 이름. 내 이름에 대해 생각할수록 나는 이름이 나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불러온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내 이름을 말할 때마다 이름 석 자 안에 얽힌 기억, 추억으로 촘촘하게 채워져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때 문득 이름은 공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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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다른 이야기로 내 친구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동네 친구들과 함께 놀 때 모이는 장소가 하나 있다. 고등학생 때부터 우리는 ‘삼빵 사거리’라고 부르며 그곳에 모였다. 그 사거리 안에 빵집에 세 개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삼빵에서 모이자, 라고 말하면 친구들은 그곳에 모였다. 그것은 우리들끼리만 알고 있는 비밀스러운 암호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토록 오랫동안 불렸던 삼빵 사거리는 어느 날 없어졌다. 빵집 중 하나가 문을 닫았다. 이젠 이곳을 더 이상 삼빵 사거리라고 부를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빵 사거리라고 부를까 했더니 뭔가 어색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지금까지도 삼빵 사거리라고 부르고 있다.

우리는 삼빵 사거리라는 이름을 공유했다. 나는 그것이 곧 그 장소 뿐 만 아니라 기억도 모두 공유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삼빵 사거리라는 이름을 말했을 때 각자 그때의 순간을 기억할 것이다. 그때 삼빵 사거리라고 불렸던 그 순간. 세 빵집이 사거리 안에 각각 마주보고 있는 거리. 이 가게 중 어느 곳이 먼저 망할지 내기를 했던 이야기까지. 각자의 추억이라는 이름의 공간이 펼쳐질 것이다. 그렇다면 내 이름은 어떨까. 내 이름을 부르는 그 순간에 펼쳐지는 내 이름의 공간에는 무엇이 있을까. 어쩌면 내가 내 이름을 당신에게 말해줬을 때가 아닐까. 내 이름을 말함으로서 당신은 나를 기억한다. 내 이름을 들었던 많은 사람들은 그때그때 각자의 순간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나와 당신이 함께 있었던 그 순간, 나의 이름, 당신의 이름 안으로 서로 들어설 것이다.

당신의 이름에는 어떤 공간이 있을까. 그 공간은 분명 단순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과 내가 함께한 시간만큼 그 공간은 넓고 다양한 모습일 것이다. 그리고 당신을 더 알아갈수록 이름이라는 공간은 점점 더 넓어질 것이다. 어쩌면 별명을 만들어줄지도 모르고, 애칭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 사람을 표현하는 방법이 많아질수록 점점 더 많은 추억을 쌓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될 것이다. 이름은 공유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이름은’이라는 첫 시작은 무척이나 벅차다. 내가 말하기 전에는 절대로 알 수 없는 이름. 그리고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기까지의 과정. 그 끝에 마침내 부를 수 있게 되는 당신과 나의 이름. 그 순간은 무척이나 경이로운 순간이다. 내 이름과 당신의 이름이 생겨날 때 우리는 더 이상 외롭지 않다. 부른다는 말은 내 안에 당신을 초대한다는 느낌처럼 전해진다. 그것은 곧 우리는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에 머무르고 갈 수 있도록 공간을 가꾸어야하지 않을까.

글. 김환이 — 24살 소설가 지망생. 영화와 문학 말고는 할 이야기가 거의 없는 동네 청년. 그래서 영화와 문학 이야기 할 수 있는 곳에 자주 나타남.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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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

문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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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의 공간 김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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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장 김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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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글와글 놀이터 안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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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쉬어가는 곳, 마레 배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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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을 사색하다 장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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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문화원으로 떠나는 여행 지기옥

28

나는 우리 동네가 참 좋다 김예슬

32

걷기 좋은 길 장인국

36

공간에 저항하는 공간 조윤기

38

도시재생지 사업 위성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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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사랑방 김유선

44

늙은 언니, 할머니학교에 가다 김홍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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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상점에 다녀오다 임선영

50

골목 속의 석탑 진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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뽈레뽈레 315 정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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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지역공간을 말하다 김유선

60

3번지 언덕 엄샛별

70

비둘기 공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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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도 가도 행복한 그 곳 임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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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은행나무 고원석

76

오동통 라디오의 공간 장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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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살자 박새솜

80

삶의 매개로서의 제3의 공간 송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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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이모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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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로 보는 마을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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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겨울호에 붙이는 포스트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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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부의 같은 공간 다른 이야기

현대 시장

사진. 정심초 6학년 하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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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는 격랑의 시대였다. 날마다 땅값이 요동 쳤고, 개발이 회오리 바람처럼 급속도로 진행되었던 시대였다. 그 때 독산동도 개발되어 지금의 주택지가 형성 되었고, 이곳 시흥동도 20m 윗 쪽으로 그 무렵에 새로 들어선 주택단지들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현대 시장과 시흥 초등학교를

그래서 시흥의 대명시장과는 달리 시흥

중심한 지금의 시흥 1동은 오랜 역사를

사거리입구에서부터 20m 도로까지 길게

간직해 온 곳이다. 경기도 시흥시 일부가

골목으로 형성 되어 있다.

우리 동네에 속해 있었으나 인구의 팽창으로 시흥이란 이름을 갖고 경기도로 편입되었고, 우리 시흥동은 서울

이렇게 자연적으로 형성된 곳이기

시흥동으로 그 고유한 이름을 간직 한 채

때문에 가게 주인들이 처음부터 물건을

오늘에 이르렀다.

싸게 팔았다. 그런 이유로 나중에는 현대 시장에 가면 상품이 싸고 좋다는

이러한 역사가 깊은 곳에 당연히

입소문이 주위에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대명시장이 금천구의 대표 시장으로 불릴

그래서 안양, 광명, 독산동과 다른 먼

만큼 버젓이 자리 잡고 있었다.

곳에서 까지 이곳으로 시장을 보러 온다.

그러다가 20m 위로 주택 단지 들이

그렇기에 현대 시장이 비록 골목

들어서면서 현대 시장의 골목에 많은

시장이긴 하지만 활력이 넘치고 언제나

유동 인구가 오가게 되면서 부터 가게가

사람들로 붐빈다.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하여 오늘의 현대 시장이 되었다. 행정 기관에서

일반적으로 계획된 시장들은 4각형으로

공식적으로 시장으로 세운 곳은

되어 있어서 물건을 사려면 이곳 저 곳을

대명시장이고 이 곳 현대 시장은 자연

찾아 다녀야 하는 데 현대시장은 하나의

발생적으로 형성된 곳이다.

골목이어서 입구서 부터 끝까지 골목을 따라 올라가노라면 의류, 채소류,

‘현대’ 라는 이름도 오랫동안의 역사를

과일, 식품 등 없는 게 없을 정도로 다

간직한 대명시장에 비교되는 어감으로

갖추어져 있어서 쇼핑하기에 너무나

새로 형성 되어가니까 ‘현대’라는

좋다.

이름으로 자연스럽게 불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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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장은 쇼핑도 하고 구경도 하면서

1자형 골목시장. 자연적으로 형성 된

시장 특유의 생동감과 사람과 사람이

시장.

부딪치면서 ‘사람 냄새’가 나는 정겨움을

물건 값이 싸고 좋은 시장.

만끽 하게 되는 곳이다. 굳이 쇼핑을 안

사람물결이 출렁이는 시장.

하더라도 퇴근길에는 사람들의 물결

가게 주인들이 친절하고

속에서 삶의 향기를 느낄 수 있고, 다른

정이 많은 시장.

곳의 사람들이 와서도 논스톱으로 한 번 쭉 올라갔다가 내려만 와도 활력을 얻을

이런 특징이 있어 주위에 대형 마트가

수 있다.

들어서고, 상권이 분산 되어가도 현대 시장은 항상 시장특유의 열기로

다른 곳은 쇼핑이 목적이어서 가는

넘쳐난다.

곳이라면 현대 시장은 쇼핑도 하면서 사람 사는 냄새를 맡으러 가기에 좋은

날마다 삶의 뜨거움이 응집되어

곳이다.

솟구치는 이곳의 열기는 도시를 살리는 기폭제다.

잘은 모르겠지만 서울 시내에서 이런 형태의 시장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글. 김산복 — 수필가, 여행가. 글을 잘 써 보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그러나 글은 꾸준히 쓰는 것이 중요 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곳을 여행하면서 ‘여행은 관광에서 벗어나 그 나라 그 곳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여행이 진정한 여행’인 것을 배웠다. 김산복님은 오랫동안 현대시장 근처 교회에서 목회활동을 하시면서 마을과 큰 인연을 갖고 계시다가 은퇴하여 장흥에 살고계십니다. 여전히 주변을 챙기시고 자주 외국 친구들을 만나러 먼 길을 떠나기도 하십니다. 김산복님과 결혼하여 신혼집을 삼림빵 근처에서 시작하신 안성구님은 3녀1남을 키우고 교회를 보살피셨습니다. 지금은 장흥집에 사시면서 작은 생명들을 가꾸고 그 이야기를 사진과 글로 남기는 일에 열중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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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정심초 6학년 장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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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부의 같은 공간 다른 이야기

와글와글 놀이터 ! 새재미 놀이터

샤브작 샤브작 ! 또르륵 또르륵 ~ 노란 은행잎이 하나, 둘 길가에 노랑물로 물들여져 갈 때면 가을이랑 연애하고픈 그곳에 가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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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천구 시흥

유치원 다니던 또래의 이쁜이들은

새재미 놀이터다.

옹기종기 모여앉아 소곤 소곤

예전에는 새재미 놀이터를

은행잎을 주워 와서 모래밭에서

국군놀이터라고 불렀었다.

소꼽놀이 한다고 재잘재잘 거리던 모습들이 눈에

예전에는 놀이터 중심으로 큰 은행나무

선하다

두 그루가 있었던 것 같다. 유달리 은행잎이 참 이뻤다.

그 놀이터는 현대시장을 한바퀴 돌고 돌아

바람 잘 통하고 햇빛 잘 들어서 그런지

시장 옆에 있는 놀이터

은행잎이 참 맑고 이뻤다.

누구나 들려 갈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적에 숙제로 은행잎을 가져가야 되는데

필요한 것 한두 가지만 사가지고

깜박했다고 야단일 때

그곳에 가면

밤에 놀이터에 가서 주워오곤 했던

의자에서 쉬기도 하고

기억이 난다.

오고 가는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 하는 게 좋아 자주 들려갔다.

오다가다 이쁘게 생긴 은행잎

이곳은

주워가지고

중.고 학생들 여자, 남자애들이

차곡차곡 쓰다듬어 집으로 와

교복을 입은 채로 끼리끼리 둘러서서

아이들 책속에 넣어두면 아이들이

깔깔대고 웃고 떠들었고,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앉을 곳이 없어도 서서 떠들고 재미있게 웃음보를 터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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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꼬마들 ,아기들!

이런 수다 소리를 들으면서

그네 타고

난 늘 가만히 들을 때가 많았다.

새악시 같은 엄마들이 나와 아가 등을 밀어주면 까르르 까르르

나도 가끔은

엄마 더요! 더요!

그 대화 속에 끼어들었다가

하며 힘껏 앞뒤로 몸을 내밀고 당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저녁늦겠다 하며 허둥허둥 집으로 오곤 했었다.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미끄럼을 타면서 신나고 즐겁게 뛰어노는 모습만 봐도

어쩌다가

재미있었다.

남자 아저씨들이 한두 명 앉아 담배를 꺼억꺼억 피어대면

또 한편에서는 남자 아이들이

옆 의자에서 아줌마, 할머니들이

이리 저리 공을 굴리고 다니기도 하면

일어선다....

와글대는 시끄러운

하나, 둘 씩 집으로 다 가고 아이들만

공동 놀이터였다.

뛰어놀 때도 있었다.

시장을 가기 전에 둘러보고,

놀이터는

시장 다 보고 또 들려서

모든 사람의 정이 있는 곳 사람들의

놀이터 의자에 앉아 쉬어가다가

소리가 맛이 있고

점심때가 지나게 되면

향기가 있어 좋았다.

동네 어른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그런 날이 있었다는 것을 뒤돌아보며 한쪽 의자와 마루 같은 곳에서는

그리움에 젖어

할머니들이 동네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지나가는 햇살에게

그분들도 시장을 둘러보고

살며시

까만 봉지들을 끌어 앉고 이야기꽃을

말을

피운다.

건 네

무엇 샀어요 ?

동태 두 마리와 무요.

동태찌개 얼큰하게 해먹으려구요.

....

흐으 좋지요 . 그 국군 놀이터 잘 있느냐고 ...... 어느 집은 어떻고 시장 안에 누가 이사 간 것 까지 다 이야기 하고, 고깃간 (정육점)은 어떤 집이 맛있고 , 어떤 고깃간은 더 싸다고,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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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안성구 — 금천구 시흥에서 삼십년 살면서 고향 같은 마을에 너무 정이들었어요. 현대시장을 참 좋아해요. 꽃과 나무 식물을 좋아하구요. 네이버 블로그에 2012년부터 2017년 현재까지 꾸준히 삶의 이야기 등을 사진과 함께 올리며 블로그 운영을 해요. ‘산내음 들내음’ 70이 넘은 할머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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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쉬어가는 곳, 카페 마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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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가부터 은행나무에서 시흥도서관을 잇는 1키로미터가 채 안 되는 도로가에 카페가 생기기 시작하여 하나 둘 늘더니 작은 골목 사이에 들어선 것을 포함해 어느덧 열 개가 넘는 카페가 들어섰다.

언듯 생각나는 EDIYA에서부터 고급진 MONAD(여기 라떼 특이한데 맛남), 이름이 예쁜 커피에 반하다, 진한 커피와 편한 의자를 가진 DROPTOP(많은 카페중 커피가 가장진함) , 빙수가 맛있는 ToPresso(밤에 아이들과 함께 들르기 부담스럽지 않은곳), 커피맛이 유독 풍미가 느껴지는 Coffee is(직접 로스팅해서 풍미가 남다른곳, 얼마전 주인이 바뀜), 주인이 상냥한 MR.Breeze(카페 대열에 가장 늦게 합류함), 토스트가 맛난 토스피아, 생과일주스와 자몽티가 유독 맛난 마레, 그리고 북카페 산책까지(조용한 2층에 자리잡음)..... 모두 나름의 인테리어와 커피맛을 가지고 그 다름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맞이하며 커피향을 내고 있다. 각자의 모습대로 그곳에 자주 들리는 사람도 각각이다. 각각의 얼굴, 각각의 성격, 각각의 취향에 따라 친숙한 카페는 따로 있는 듯하다. 이디아에 가면 민준맘이 보이고, 드롭탑에 가면 은숙이와 진옥이가 정담을 나누고. 토스피아에 가면 세희가 있고, 커피이즈엔 수연이가, 마레에 가면 선아랑 은자가 앉아 있다. 저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끌리는 카페가 따로 있나보다. 이렇게 카페와 내 인연들과 짝짓기가 가능한 것을 보면... 나에게도 즐겨가는 카페가 있다. 혹자는 그곳에 가면 내가 있다고 얘기한다. 거기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만나서 사는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일하는 중간 잠시 시간이 비었을 때도 잠시 들러 혼자 커피를 마시곤 한다. 주변의 많은 카페 중 내가 이 카페를 찾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처음 이곳을 가게 된 이유는 딸들을 케어하기에 좋은 지리적 위치 때문이었다. 도서관과 수련관, 영어 학원이 가깝다 보니 픽업하기 전 시간을 보내기 편리한 곳이었다. 그런데 이곳은 내게 지리적 편리함 뿐 아니라 간단한 주문에서도 웃음을 짓게하는 친절한 아르바이트 언니? 오빠? 가 있고, 아이들이 드나들면서 조금 소란스러울 수 있으나 웃어 넘겨주시는 사장님의 넓은 마음이 있고, 내 큰딸이 좋아하는 맛난 코코아와 작은딸이 좋아하는 와플 그리고 나의 일상의 피로함을 잊게 도와주는 따뜻한 커피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즐겨 만나는 내 지인들이 그곳을 자주 찾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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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드나들다보니 나처럼 이곳에 드나드는 사람들을 마주 하게 된다. 늘 한자리 차지하고 앉아 공부하는 어린 언니, 구석진 자리에서 인강을 듣는 듯 하나 자주 조는 어린오빠, 나처럼 이곳에 매일 들러 편안하게 커피를 마시는 아저씨와 그의 예쁜 애완견, 그리고 내 친한 친구들과 그 지인들~~ 이들 또한 그들은 모르겠지만 그곳에 자리함으로 내가 들를 때 마다 내 맘을 편하게 하여 나의 발걸음을 자꾸 끌게 하는 그 무엇이 아닐까? 자주 가다보니 고즈넉이 커피한잔 하러 갔다가 친한 애기엄마들이 앉아 있어 합석하여 재미난 이야기꽃을 피우며 잠시 행복감을 덤으로 얻어가기도 한다. 집처럼 편안함과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 요즘엔 아이들이 없는 주말에도 난 그곳에 가서 앉아있다. 누군가가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카페가 성행하는 이유는 사람과 소통하던 대청마루가 사라지면서 커피가 목적이 아니라 소소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현대인에게 필요한데 예전처럼 편히 집에 드나드는 것을 어려워하는 시절이니 마음 편히 누군가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고 모여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곳이 예쁜 카페가 대신하다 보니 큰 길가, 유흥가 혹은 마을 속 깊숙이에도 카페가 성업을 하는 것 같다고.... 나도 집이 아닌 다른 사람과 소통하면서 쉴 수 있는 공간을 늘 찾았던게 아닌가 싶다. 어린시절 어른들 눈을 피해 놀던 아지트처럼 지금 난 나만의 새로운 아지트에서 나의 사람들과 함께 소통하고 또 나의 이야기를 하고 잠시 쉬어가는 곳을 찾은 것이 아닐까? 오늘도 나는 그곳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또 나의 여유와 데이트 하고 있다.

글과 사진. 배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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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1인칭뿐인 공간

마을, 그 공간을 사색하다. 24 사진. 시흥초 김유림


내게 있어 공간의 의미는 물리적 존재의 범위로 국한하지 않는다. 그곳은 나의 사색이 존재하고 그래서 창조가 이뤄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창조라 하여 모두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것만은 아니지만 어떻든 나의 꿈이 의지가 되어 구름처럼 펴는 곳, 그러니까 내 호흡이 있고 그래서 스스로의 삶이 확인되는 곳이다. 25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나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군 복무 등 주거 목적

외의 거주를 제외하고는 대도시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목가적(牧歌的)인 고향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부럽다. 그간에 내가 살았던 공간에 대한 실망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경험하지 않았던 공간에 대한 호기심이랄까 흥미를 가진다는 뜻이다. 이러한 지향, 즉 목가적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은 지금도 가지고 있다. 사실, 내게도 목가적 삶의 기회가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 때 그런 기회가 있었다. 가정사정도 생각하지 않고 대입성적이 좋다하여 서울의 명문대에 지원 합격은 했으나 가정 사정으로 진학을 포기하면서 깊은 산골 마을로 들어갔었다. 당시 젊은이들의 감상적 활동인 농촌계몽을 명분으로 삼았으나 실상은 상심이 지나쳐 자포자기적인 현실도피였다.

아픈 선택이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의외로 희망을 보는 행운을 만났다. 50 여 가구에 주민 수가 약 100여명 정도나 될까 아주 작은 산골마을이었는데 그곳에서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접하였다. 그것은 내재된 내 신념 즉 평소 마음에 두고 있던 내 삶의 지향과도 같았다. 순수한 사람들의 진솔한 삶들이 밀집된, 곧 사람 냄새가 물신 풍기는 공동체를 만난 것이다.

마을의 주민들은 마치 한 가족처럼 음식을 나누고 일을 나누는가 하면 걱정도 나누는 광경은 표현하기 어려운 감동을 일게 하여 현실감조차 잊어버리게 했다. 그것은 마치 초등학생 시절 사회시간에 공부했던 원시 부족사회의 모습을 보는 듯 했다. 군 복무라는 세상적인 일 때문에 2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세상으로 나왔지만 그 곳에서 보냈던 시간은 지금에 이르도록 가슴에 남아 여운을 울리고 있다. 내가 오늘에 이르러 마을 즉 사람들의 공동체에 마음을 쏟고 있는 것은 그 시간으로 비롯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마을공동체를 삶의 목표를 삼아 이에 진력하고 있는 현실이 우연한 진전으로 생각하지 않는 이유다.

사진. 정심초 6학년 이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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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살게 되므로 형성된 도시도 사람들의 집단이므로 공간을 같이하는 사람들은 이웃이라 이야기 한다. 그러나 같은 공간 그러니까 가까이 산다는 이유만으로 이웃이라 다 말할 수 없는 것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동의할 것이다. 같은 현관을 둔 두 집이 서로를 모르는 경우가 흔한 것이 도시의 삶이 아닌가? 비록 같은 공간에서 매일 얼굴을 보는 경우라도 ‘함께’라는 표현이 자연스러울 때 비로소 이웃이고 이들이 다시 ‘함께’ 할 때 공동체라 표현하는 것이 타당하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도시에서는 이웃이나 공동체의 존재를 볼 수 없을까? 그렇지 않다. 도시든 시골이든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면 이웃은 형성되고 그 이웃들이 모이면 공동체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구성을 공동체로 표현할 수 있는가는 살펴야할 과제들이 있다. 사람들에게 이웃이란 공간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함께’하는 곳이고 거기에는 나눔이 자연스러울 때 비로소 공동체라 할 수 있는데 과연 그런 형성인가가 포인트인 것이다.

사람 공동체 그리고 마을 공동체, 내가 청년 시절에 보았던 그 산골 마을이 그런 곳이 아닐까 생각한다, 주고받는 나눔이 자연스러워 모두가 1인칭 존재뿐인 것처럼 보였던 곳, 즉 ‘너’와 ‘그’는 들리지 않고 ‘우리’만 들렸다. 도시든 시골이든 그런 모습이 진정한 공동체가 아닐까?

이러한 공동체는 현재에 이르러서는 아마 시골이라도 쉽게 보기는 어려울 게다. 그러나 공동체를 이야기 하려면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 사람들이 이웃을 형성하고 그 이웃들이 어울려 마을이 되고 그 곳에는 셈이 보이지 않는 나눔이 있는 곳, 오늘 우리가 마을공동체를 논하는 목적은 그런 모습을 그리는데 두어야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게 있다. 이러한 모습들은 같은 공간에서 함께 있을 때 가능하다. 우리 속담에 “멀리 있는 친척보다 가까이 있는 이웃이 더 났다”하는 말을 새겨보면 공간의 필수성이 보일 것이다. 그렇듯이 가족 같은 이웃들로 공동체를 이루려면 같은 공간에서 서로 비비고 붐벼야 한다. 공동체를 말할 때 마을을 앞세우는 이유를 그렇게 이해해보려 한다.(♣2017.10.24.)

글. 장제모 — 스스로 노인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지만 주변이 현실을 들이대니 무시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현실이 어떻게 몰아가던 내가 마련한 꿈을 접을 수는 없다. 나는 꿈꾸는 실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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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절 만에 접하는 지구반대편의 공간

Hola(안녕) 라틴 아메리카! 중남미 문화원을 다녀와서

7년 전 우리가족은 중남미 문화원을 다녀왔다. 그 곳을 찾은 이유는 마야와 잉카 문명이 싹튼 곳, 중남미. 여기 중남미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중남미에서 30여간 외교관을 지내셨던 이복형 대사님과 그의 부인이신 홍갑표 여사님께서 이곳을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중남미 지역의 문화와 예술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만드셨다. 문화원에는 박물관, 미술관, 조각 공원이 있다. 조용한 라틴음악이 흐르는 문화원에 들어서자 붉은 벽돌로 된 건물, 잘 가꾸어진 나무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문화원 곳곳에 있는 브론즈와 돌로 된 조각들이 독특한 문양이 있는 푸른빛의 벤치와 함께 운치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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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은 중남미 문화원 비행시간만 해도 20시간이 넘게 걸리는 지구 반대편 여행지 중남미. 먼 거리만큼 호기심도 커지기 마련. 아시아나 유럽, 미주 지역에 비해 문화마저도 낯선 중남미로의 여행을 멀지 않게 떠날 수 있는 곳이 있다.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중남미문화원이다. 한적한 주택가를 지나 고즈넉한 고양향교 옆에 자리한 중남미문화원은 입구에 있는 커다란 돈키호테 조각상이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국적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붉은 벽돌 건물로 지어진 중남미문화원은 여전히 우리에겐 가장 낯선 여행지 중 하나인 중남미를 살짝이나마 엿볼 수 있는 곳이다. tvN 예능 프로그램인 <꽃보다 청춘>을 통해 중남미가 잘 알려졌으나 그렇다고 해서 쉽게 여행을 떠나기엔 중남미는 너무 멀기만 하다. 게다가 아시아와 유럽, 미국의 문화에 친숙한 우리에게 중남미 문화는 여전히 낯설기만 하다. 잉카, 마추픽추…. 그저 이름으로만 들어본 지구 반대편의 문화가 알차게 압축되어 있는 중남미문화원으로 하루짜리 여행을 떠나본다.

50여 년의 수집품이 한자리에

중남미 미술과 조각

오래된 유물부터 나무와 동물 뼈 등으로 제작된

중남미문화원이 고루한 박물관일 것 같다고

독특한 3백여 점의 가면에 이르기까지 중남미

생각하기 쉽지만, 거대한 정원에는 각종 조각들과

문화원의 컬렉션은 생각했던 것 그 이상이다. 가장

길이 23m, 높이 5m의 도자 벽화 등이 있어 날씨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은 어림짐작으로도 오래되어

좋은 날 산책하며 풍경을 감상하기에도 그만이다.

보이는 토기들이다.

야외정원에는 중남미 14개국의 조각 작품들이 싱그러운 자연과 어우러져 이색적인 정취를 물씬

기원전후의 토기들은 모두 귀한 진품들이다. 다산을

풍겨낸다.

상징하는 배가 통통한 토기부터 인간의 얼굴을 한 재규어, 인신공양을 해온 것을 알 수 있는 손발이

산책하는 발걸음을 잠시 멈춰 종교전시관에

묶인 인질 등을 볼 수 있다.

들러보자. 종교와 상관없이 성당이 주는 특유의 성스럽고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마음을 가다듬기

메따떼(METATE)라 하여 우리나라의 다듬잇돌처럼

좋다. 명상과 휴식을 통해 둘러본 것들을 정리해볼

생긴 것도 볼 수 있다. 이는 옥수수를 주식으로 삼은

수도 있다.

중남미, 특히 코스타리카, 과나까스때 지방에서 옥수수를 비롯한 곡물을 빻는데 사용했던 것이다.

박물관 건너편의 미술관에는 중남미 특유의 화려한

아즈텍 건국 신화가 새겨진 석벽도 있다. 선인장 위

색감과 꽃, 여인들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감상할

뱀을 쪼는 독수리가 있는 곳에 수도를 세우라는

수 있다. 미술관 지하에는 중남미 인디오들의 의상,

전설을 그대로 구현해낸 것이다.

편직물 등이 있는데 놓쳐서는 안 될 컬렉션 중 하나다.

이것들은 정부의 도움을 받거나 기증을 받은 것이 아니라 모두 이복형 중남미문화원 원장이 중남미

중남미 문화의 독창성은 토기와 석기, 건축물

지역의 외교관으로 주재하며 하나둘씩 모아온

외에도 뛰어난 미술적 가치를 지닌 직물도 포함되기

것들이다. 그는 “골동품 수집이 우리 부부의

때문이다. 야생섬유와 동물들의 털을 가공해

취미였다”며 “문화에 있는 소장품들 90% 이상이

만든 형형색색의 색상과 패턴의 직물들은 하나의

직접 모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술작품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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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문화원 안에는?

제 4 전시실(생활공예실) 이곳은 농기구, 다리미,

먼저 들어간 곳은 박물관. 박물관은 1994년에 문을

구리그릇, 악기등 어디선가 본것 같은 물건들이 많이

열었다. 중남미 고대마야문명의 유물부터 현대에

전시되어있다. 이중 새와 나비, 꽃, 심지어 집까지도

이르기까지 다양한 중남미 유물을 전시해 놓았다.

열매처럼 달려있는 생명의 나무, 그리고 아즈텍의

엔틱(antique)문양의 문을 밀치고 자연광이 비치는

달력인 태양의 돌이 가장 인상깊었다. 동양적인

홀에 들어섰다. 가장 먼저 보인것이 중앙홀에

느낌이 묻어나는 따라베라(Talavera)자기와

있는 스페인 양식의 분수대, 그리고 천장에는

화려한 색채의 뜨락스깔라(Tlaxcala)자기도 눈길을

태양신의 모양을 나무로 조각해 놓은 아즈텍

끌었다. 따라베라는 중국 자기의 영향을 받아

태양이, 분수대 뒤에는 스타인웨이 그랜드 피아노,

무늬도 동양적이다. 지구의 반대편에 위치한 곳에서

토기·석기·가면·전통악기·금속공예품이 네 개의

동양의 것을 닮은 자기를 만들었다니 중남미도

전시실을 차지하고 있다.

그렇게 멀지만은 않게 느껴졌다. 박물관 지하에는 인디오들의 모습과 중남미의 풍경을 담은 그림들이

제 1 전시실(토기실)에는 계단 주변과 벽면은 그림과

전시돼 있었다.

도자기들이 장식하고 있었다. 웃는지 우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의 토기와 가면 앞에 한동안 서서

박물관에서 나와 문화원 안쪽으로 들어가니 회화와

토기들의 표정을 살펴봤다. 기자인 내가 보기엔

직물 공예품들을 전시하고 있는 미술관이 보였다.

울고있는 표정인데 토기의 이름은 ‘웃고있는

미술관은 1997년에 문을 열었다. 중남미 작가들의

아이’란다. 요호아와 요초아라는 토우가 있었는데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박물관에서 본

이것은 8세기경‘엘살바도르’라는 나라에 살던

것과 같은 인물화·풍경화뿐만 아니라 추상적인

남자와 여자의 모습을 본떠만든것 이라고 한다.

그림까지 다양한 그림을 감상할 수 있었다.

그밖에 다산의 여신, 무녀, 전사등다양한 토우등 이

기념품점도 함께 있었는데, 가격이 좀 비싼편이라

인상깊다.

기념 엽서만 사가지고 돌아왔다.

제 2 전시실(석기,목기실)에는 4세기부터 19세기끼지

중남미문화원은 자그마한 박물관과 미술관만 있는

마야의 따이노족의 목기와 석기 등이 전시되어

것이 아니다. 박물관 너머에 위치한 조각공원은

있다. 전시물 중에는 코카잎 주머니와 치마띠

조각과 자연이 어우러져 훌륭한 휴식 공간을

앗수,그리고 나무인형인 쎄미, 옥수수를 빻던

제공하고 있었다. 조각공원은 2001년에 문을

메따떼, 두꺼비 비슷하게 생긴 꿰짤꼬아뜰, 제사칼,

열었다. 중남미 작가들의 조각품을 전시해 놓았다.

절구, 비취 테이불, 싼타마리아호, 나이브 유화

그곳에는 역동적인 모습의 브론즈상부터 기하학적

등을 볼 수 있었다. 추위를 이기려고 환각제와 같은

모양의 조각에 이르기까지 중남미 작가들의

성분의 코카잎을 앗수에 넣어 다녔다고 한다.

개성있는 작품들이 전시되어있다.

제 3 전시실에(가면실)로 들어가면 방안에 온통

스페인 음식도 함께 즐기다

가면으로 가득 차 있었다. 참 신기 하였다.

한참 관람을 하고 나니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이 전시실에는 200여 점의 다양한 가면들이

중남미 문화는 이전에 살던 원주민들의 문화를

종교의식이나 축제때 사용 했다고 한다. 가면들은

없애고 대부분 유럽의 문화를 모식된 상태다.

나무, 종이, 돌, 비취, 가죽, 동물 뼈 등 재료도

그래서 중남미 문화는 크게 콜롬비아 이전 시대와

다양했다. 가면의종류에는 큰 가면, 수공예 가면, 비취가면, 입대신 뿔로 되어있는 죽음의 가면, 한

이후 시대로 나뉠 정도다. 문화에 ‘식(食)’문화가 빠질 수 없다.

가면에 세 개의 얼굴이 포함된 인생경로 가면(젊음, 늙음, 죽음의 가면), 새색시가 연지 바른듯 너무나

중남미 문화원에서는 두 개의 식당이 있다. 한

예쁜 작은 여인 가면, 그 밖에 게가면, 물고기,

곳은 ‘빠에야’로 대표적인 스페인 음식인 빠에야와

앵무새, 쌍 가면등 너무나 다양하다. 퍼즐을 맞추듯

스테이크 등을 코스로 먹을 수 있으며 다른 한

가면을 찾아보는것도 관람할 때 재미를 느낄수

곳은 멕시코 전통 요리와 음료를 판매하는 ‘따꼬

있을것 같다.

하우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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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꼬하우스에서는 비교적 간단한 먹을거리에 속하는 ‘께싸디야(Quesadilla)’와 ‘알람브레(Alambre)’를 맛볼 수 있다. 께사디야는 밀가루 전병 속에 치즈와 양념 된 돼지고기를 넣은 것으로 매콤한 양념을 부드럽게 감싸는 치즈의 조화가 짭짤하게 입맛을 돋운다. 알람브레는 밀가루 전병 속에 철판에 볶은 쇠고기와 야채가 들어가 있어 국물 없이 후추 간을 해 볶은 우리나라의 불고기를 전병에 싸먹는 맛과 유사하다. 대표적 음식을 소개하자면 빠에야(Paeya)와 따꼬(Tacos) 이다. 스페인에서 전래된 빠에야 음식은 오늘날 스페인 뿐 아니라 중남미 각국에서 널리 맛 볼 수 있는데, 양철로 만든 큰 후라이팬에 요리하는 빠에야는 주재료가 쌀이며 특유의 노란빛이 난다.요리법도 간단하고 큰 그릇에 서브해 각자 양만큼 한 수저씩 덜어먹는 우리네 문화와도 잘 어울리는 음식이다. 따꼬(Tacos)는 멕시코 전통, 대중음식으로 이미 세계적으로 알려진 음식으로 특히 젊은이와 어린이들에게 각광받고 있다. 중남미 문화원을 다녀온 뒤 나는 중남미 문화와 중남미지역 그리고 인디오들의 문화를 새롭게 느낄수 이었고, 중남미의 의식주 문화를 눈으로, 입으로 다양하게 엿볼 수 있는 곳으로 한나절 훌쩍 여행을 떠나기 좋은 곳이다.

스페인어 인사말을 익혀 보세요 아침 인사: Buenos dias. 오후 인사: Buenas tardes. 저녁 인사: Buenas noches. 감사의 말: Muchas gracias.(정말 고마워요) 사과의 말: Perdon! (미안해요) Info 중남미문화원 관람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 (동절기 오후 5시까지) 관람료 성인 5500원, 청소년 4500원, 12세 이하 3500 원주소 경기 고양시 덕양구 대양로285번길 33-15문의 031-962-7171 www.latina.or.kr

글과 사진. 지기옥 — 아직 철이 덜든 두 아이 엄마.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고 있음. 별명 : 웰시코기(아들램이 지어 줌) 외모는 깐깐해 보이지만 어리숙하고 물건을 잘 잃어버려 챙기는 사람이 옆에 있어야 하는 손 많이 가는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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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압사


우리 구 걷기 좋은 길, 트인 공간

우리는 ‘공간’ 하면 사방이 막힌 공간, 실내공간을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공간에는 ‘트인 공간’도 있다. 그 중 우리 구에서 걷기 좋은 아름다운 길을 트인 공간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안양천

첫 번째로 안양천 길이다. 이 길은 사계절 걷기 좋고 건강생태계 사업으로 진행하기도 하고 시흥 1동 활동가들이 주관하는 걷기 행사도 있다. 천변을 따라 걸으며 상념에 잠기기도 하고 세상사 근심 훌훌 털어 버릴 수 있는 좋은 길이다. 아쉬운 점은 하천법 때문에 개발이 어려워 한강둔치처럼 피크닉 공간으로 잘 활용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요즘은 가족 피크닉을 갈 때 거의 다 차량과 아이스박스를 가지고 이동하므로 차량 진입로와 주차장이 확보되어야 하고 또 안내판이 잘 설치되어 쉽게 접근이 가능해야 한다. 그러면 보다 많은 주민들이 이용하는 공간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33


꽃십리길

두 번째는 벚꽃이 만개한 벚꽃십리길이다. 이 벚꽃십리길을 중심으로 벚꽃 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꽃길의 좋은 점은 이 길이 가을철에는 단풍길로 변한다는 점이다. 봄에는 화사한 꽃이 만개하고 가을에는 단풍길로 변신해 보는 이를 즐겁게 한다. 그런데 한 가지 제안 할 것이 있다.

산기슭길

이곳 주변에 롯데 캐슬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고 기부채납 받은 유물전시관 있다. 현재 많이 알려지지 않아 이용자가 적어 롯데 캐슬 측에서 다른 공간으로 활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마을활동을 하시는 분들이 우리구 탐방 코스를 잡을 때나 벚꽃십리길 걷기를 할 때 또는 안양천변을 걸을 때 이곳을 꼭 포함시켜서 진행 해 줬으면 한다. 그래야 어렵게 확보한 유물전시관도 지키고 그 전시관을 우리구의 명소로 만들어 자랑거리로 삼을 수 있다.

세 번째는 벽산아파트에서 정심초등학교 쪽까지 이어지는 산기슭 길이다. 이 길은 봄에는 벚꽃이 가을에는 단풍이 예쁘게 물드는 아름다운 길이다. 걷는 중간 중간 체육공원이 있어 운동도 하고 쉬면서 갈 수도 있는 길이다. 길가에 꽃도 아름답게 피어 있고 공기도 좋고 순흥 안씨 양도공묘역과 강희맹 집터 등 유적지도 있어 쉬며 구경하며 걸을 수 있는 길이여서 좋다. 조금 개선 할 점이 있다면 곳곳에 보행로가 확보되어 있지 않아 조금 위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만 보완된다면 참으로 걷기 좋은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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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계곡

네 번째는 시흥계곡길이다. 범일운수 종점에서 복합생태공원과 시흥계곡 입구를 지나 백산 초등학교 쪽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범일운수 종점에서 가파른 고개를 오르다 보면 시흥5동 마을계획단에서 설치한 예쁜 의자가 있다. 어르신들이 잠시 안자 쉬어가는 모습을 종종 보는데 고마운 일이다. 이 길은 봄에는 벚꽃, 개나리와 철쭉등이 아름답게 피고 가을에는 단풍이 아름답게 물든다. 중간에 트랙과 잔디밭, 운동기구가 갖추어진 복합생태공원이 있어 운동하기에 특히 좋은 길이다.

호압사

마지막으로 호암산 호압사로 오르는 길이다. 이 길은 여러 코스로 오를 수 있고 주변에 황토 맨발 길과 삼림욕장등이 있어 건강 지키기에 좋은 길이다. 또한 곳곳에 쉼터와 숲속 도서관, 테이블과 의자가 마련되어있어 소풍을 와도 좋다. 호압사로 가는 길은 구립체육센터 쪽에서 가는 길, 벽산 1단지 산복도로변 호압사 일주문에서 오르는길, 벽산 5단지 쪽에서 지하도를 통해 호암 늘솔길로 오르는 길 등이 있다. 물론 시흥 3동 박미마을 회관 쪽에서 둘레 길로 올라도 좋다. 이외에도 시흥계곡에서 갈 수도 있고 관악산에서 넘어 올수도 있다. 이 길은 피톤치드가 나오는 숲 길을 걷는 건강에 좋은 길이다. 건강을 다지고 싶은 분께 권하고 싶다.

우리주변에 떠도는 속설 중 이런 말이 있다. 연주암에서 일주일에 3번 밥을 얻어먹으면 무병장수한다 하는 말이다. 연주암 까지는 너무 멀어서 어렵다면 호압사에 올라가 일주일에 세 번 점심을 한다면 똑같이 무병장수 할 수 있지 않을까? 여러분들에게 꼭 권하고 싶다. 이상은 제가 나름대로 정리해 본 걷기 좋은 길입니다 주관적인 판단이니 너무 책망하지 마시고 참고 삼아 주세요. 걷기가 가장 좋은 운동이라고 하지요 모두가 아름다운 길을 자주 걸어 오래도록 건강을 유지 하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글과 사진. 장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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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 동네가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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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 동네가 참 좋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집 바로 뒤에 삼성산 시민 휴식 공원이 있기 때문이다. 산책을 정말 좋아하는 반려견 덕분에 매일 같이 삼성산 공원에 가서 산책을 했다. 나에게는 늘 똑같은 산책길 이었는데, 생각이 많아 머리가 복잡했던 어느 날, 벤치에 누워 하늘을 보니 초록 초록한 나뭇잎사이로 하늘이 보이는게 참 좋았다. 그 잠깐 사이동안 하늘을 보고 바람소리를 들으니 언제 그랬냐는 듯 기분이 좋아졌다. 그 뒤로 강아지 때문이 아니라 내가 산책하러 공원에 가기 시작 했던 거 같다. 삼성산 공원이 좋은 또다른 이유는, 4계절 내내 다른 옷을 입기 때문이다. 봄에는 벚꽃으로 치장을하고 여름에는 야생화들로 한껏 멋을 낸다. 가을에는 낙엽과 도토리 액세서리를 하고 겨울에는 눈꽃으로 온 몸을 뒤덮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 삼성산 공원의 매력 중 하나는 산길로 올라가면 호압사 까지 숲길을 걸으며 갈 수 있다. 왕복2시간도 걸리지 않아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코스다. 나는 한때 이 코스를 자주 다녔는데 시간 맞춰가면 먹을 수 있는 호압사 절 밥 때문이었다. 땀 흘리고 먹는 밥이 얼마나 맛있던지, 공짜라 더 꿀맛이었던 거 같다. 하루는 오후에 산책을 갔는데 하늘이 빨개지며 해가 지는 모습이 너무 멋있어서 한참을 쳐다 보고 있었다. 다른 하루는 정자에서 담소를 나누시는 아주머니께서 고구마를 주셔서 얻어 먹었다. 또다른 하루는 소풍 나온 유치원생들을 보고있으니 미소가 절로 나왔다. 매일매일 가도 매일매일 다른 소소한 즐거움이 있다. 도심속에서 자연을 느끼고 매일매일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삼성산 시민 휴식 공원이 있어 나는 참 좋다.

글과 사진. 김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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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에 저항하는 공간 공간에 관하여는 할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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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부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는 올해의 작가상을 전시하고 있다. 마침 나는 하나의 전시를 고른 뒤 그걸 수 차례 관람하는 미술 세미나에 참여 중이다. 그래서 올해의 작가상을 끊임없이 관람해보기로 결심했다. 같은 전시에 열 번 가까이 다녀온 일은 처음이었다. 그 과정에서 전시의 주제나 작품의 성격을 더 깊게 이해할 거라 예상했다. 그런데 막상 자주한 생각은 미술관이라는 공간에 관한 성찰이었다. 미술관의 물성은 예술 작품의 아우라 뒤에 교묘하게 숨어있다. 이를 테면 우리는 벽면에 걸린 한 폭 그림에 감탄하면서도 그림의 아름다움에 관여하는 전시장 벽면의 새하얀 색감과 우레탄 바닥을 두드리는 구두굽 소리, 천장에 달려있는 노란색 핀 조명을 발견하지 못한다. 미술관의 물성은 당신의 가늠보다 위력적이다. 당장 머릿속에서 어떤 조각상을 상상한다면 그 조각상의 밑바닥은 어떠한가. 혹시 평평하지는 않은가. 사람은 미술작품을 구상할 때부터 그것을 평평한 미술관 바닥에 국한한다. 우리는 조각상이 울퉁불퉁한 자갈밭이나 흙길 위에 전시될 것을 쉽게 가정하지 못한다. 물론 미술관이 아니고서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무수한 생각은 특정 공간에 지배당한다. 화장실이나 벽장 안, 체육관이나 주차장처럼. 너무 당연해서 대수롭지 않은 곳이 사실 우리 삶에 절대적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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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나만의 법칙이 있다. 시를 쓸 때의 작법이다. 어떤 주제의 시든 간에 나는 시에서 공간을 먼저 만든다. 공간 이후에 국면이 있고 이야기가 있을 것이므로. 당신에 관하여 시를 지을 때 내가 당신을 부르는 공간이 바다이거나, 혹은 다락방일 때마다 이야기는 다를 것이다. 나는 제자리가 없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없다. 물론 이 또한 시가 아니고서도 마찬가지다. 반드시 어느 날 우리는 이야기를 써야 할 순간을 겪는다. 그것은 정의로운 이야기일 수도 있고, 간사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어떤 이야기이든 간에 우린 먼저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내가 당신을 사랑했다는 간단한 이야기에서도 우린 대화를 나눌 골목과 푹신한 소파가 있던 카페 구석자리를 필요로 한다.

공간을 만드는 방법에 관하여는 믿는 바가 있다. 이건 내가 속한 공공미술그룹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의 단체명은 4442다. 이건 사사사이의 숫자표기이고 사사사이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준말이다. 공공미술은 공동의 공간에 설치하는 미술을 뜻한다. 그리고 4442는 공동의 공간이 사람과 사람의 사이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이, 세 사람이, 여러 사람이 마주 서면 얼굴들 사이에는 땅이 있고 눈빛들이 있다. 그 땅 위에서 사람들은 무엇이든 해볼 수 있다. 구체적인 증명을 하지 않고서도 나는 공간의 울타리는 사람들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내 생각이 맞다면 공간이란 복수의 사람이 마주설 때 비로소 생긴다. 그러므로 공간은 늘 공동체가 함께 접어드는 국면이다. 물론 사람 사이와 무관한 공간도 있을 것이다. 난 그런 곳을 폐허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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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의 폭력이 있다. 사람 죽이는 철거가 있다. 강제집행이 있다. 부서진 집이 있다. 무너지는 가게가 있다. 놀랍게도 사람과 사람 사이를 헤집어 놓은 자리에는 누구도 없다. 영원한 폐허가 있을 뿐이다. 도대체 누가 폐허를 만들기 위해 사람을 쫓아낸단 말인가. 따라서 우리는 마땅히 폐허에 저항해야 한다. 그리고 저항의 방식 또한 하나의 공간일 것이다. 어렸을 때 우리가 집안에 텐트를 만들고 놀던 기억처럼. 희한한 일이었다. 커다란 이불로 움막을 짓고 놀던 때에 그 안은 우리 집보다, 내 방보다 훨씬 좁은 곳인데도 난 왜 자꾸 자유로웠을까. 어떤 사람은 다 무너진 폐허 위에 농성장을 짓고 산다. 그곳에는 누구든 찾아들 것이다. 두꺼운 비닐 아래 모여든 머리 하나하나가 기둥처럼 농성장을 지고 선다. 비닐 밑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우린 기도를 하고 노래를 부르고 눈에 보이지 않는 걸 견딘다.

공간에 관하여는 할 말이 있다. 사람의 의무랄 게 있다면 그건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계속해서 우린 공간을 짓고 지켜야 한다. 이를 테면 누군가를 초대해서 마주 서야 한다. 지금 내가 글을 쓰는 일과 같이. 어느 날 난 이 지면에 초대되었다. 그 초대를 기쁘게 받는다. 그리고 이 글을 읽을 당신을 초대한다. 어디든 다양한 초대가 켜켜이 쌓인다. 그 겹들이 푹신할 것만 같다.

글. 조윤기 — 중언부언과 허송세월을 좋아합니다. 시를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자 하지만 시를 쓰지 않고서도 시적인 삶을 꿈꿉니다. 그리고 중언부언과 허송세월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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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산2동에 도시재생 희망지 사업으로 처음 만들어진 ‘주민 사랑방’ 독산2동에 도시재생 희망지 사업으로 처음 만들어진 주민 사랑방(꿈을 이루는 독산2동 사랑방)은 도시재생을 준비하는 주민들에게 행정지원과 이해역량강화교육을 할 수 있도록 활동가들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 공간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꿈꾸는 아이들 방도 아이들이 스스로 꾸미며 아이들만의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사랑방엔 행정 업무를 보는 큰방 외에 아이들방과 공유 부엌, 미싱동아리 방이 있습니다. 미싱동아리방엔 미싱3대와 오버르크가 준비되어 있고 월,목 주 2회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수강이 없는 시간에는 주민들에게 열려있는 공간입니다. 주로 수선들을 하러 오신답니다. 주민들과 함께 만들고 나눠 먹는 마을 밥상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공유 부엌이 주민들과 정이 새록새록 더 들게 하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사랑방 거실과 아이들방, 공유부엌 등 주민들에게 대관도 가능하답니다.

글과 사진. 위성요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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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산2동 사랑방을 다녀와서 도시재생을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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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이라는 공간 사람이 모여살고 도시가 만들어지면서 새로운 길이 만들어진다. 그 길은 모세혈관처럼 사람들 하나하나에게 생명을 준다. 그 길은 사람들에게 밥도 일도 준다. 그 길 어딘가가 막히면 돌아갈 수 있도록 이웃이 손을 잡아준다. 그래서 꼭 필요한 가게, 공원, 쉼터, 일터가 일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그 길로 연결된 사람과 마을을 우리는 공동체라 부른다.

금천엔 오래된 골목이 인체의 혈관처럼 복잡하다.

관계가 사라지면 행정구역별 숫자로 나열된

혈관처럼 복잡해서 불편하고 보기 싫다고 생각하는

개별의 단위만- 독산1동, 시흥 3동, 가산동..- 남기

사람도 있고. 묘하게 어우러진 곡선과 곡선의

때문이다. 각각의 삶이 개별화되면서 서로를 지켜낼

복잡함이 생동감 있고 멋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이제 조금씩 알게 되었다.

있다. 오래된 골목이 있는 동네에선 대게 표출하는

독립적인 1인 가구가 이렇게 소외의 문제를 안고

불만이 비슷하다. 일반적으로 빠르게 산업화와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점자 내 가족이,

현대화를 겪으며 다른 속도로 골목과 골목이

내 친구가, 내 이웃이 1인 가족의 형태로 남아있는

만들어진 까닭이다.

경우가 많아지면서 위기도 드러났다.

시간차를 그대로 드러내는 골목 안 집들의 대문과

설마 내가 고독하게 생을 마무리하게 될 그 1인이 될

담장, 외관의 사소한 장식은 그 시간의 주류

수도 있다는 것 상상하고 싶겠나. 사라진 공동체를

주거문화를 증거 하는 현장이다. 대문의 문고리에서

살려내야 ‘도시재생’이 궁극적으로 완성된다. 있는

이층 난간의 형태에서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대로 예산을 퍼부어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우리는 그 집 사람들의 취향도 느끼지만 그 때의

도시살이에 수두룩하다. 아무리 환경을 정비해도

유행을 가늠할 수 있다. 80년대와 90년대 집을 지은

누구도 참여하지 않으면 쓰레기 문제가 해결되지

사람들이 다르듯이 골목은 그 다름으로 볼거리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풍성해진다. 골목을 정겹고 살만하다고 느끼는 사람보다는 불편하고 지저분하고 괴롭다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지금 말하고 있는 ‘도시재생’일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 동네 뿐 아니라 모든 도시문제의 원흉이 되고 있는 쓰레기, 소음, 주차문제 등등을 해결해나가는 것이 그것이다. 서울시나 금천구에선 ‘도시재생’에 대해 밖으로 드러나는 이런 도시의 문제 뿐 아니라 관계의 회복을 지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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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분리수거를 처음 시작할 때 나를 포함한

이해하는 만큼 자신이 감당해야하는 불편이

많은 사람들이 부정적이었다. 과연 그게 되겠어.

늘어가고 삶의 방식에 새로운 고민이 얹어지고

일주일에 한두 번 쓰레기를 치우면 집안에 쓰레기를

있다. 우리는 누리는 게 많은 세대이다. 기본적으로

쌓아두라는 얘기잖아. 미친 거 아냐. 마치 너무도

형편없는 정치의식과 정치생태계, 불행한 근대화의

쾌적할 수 있는 개인의 공간을 침해당하는 불쾌한

역사를 가진 것에 비해 풍족한 삶을 살고 있다.

행정 편의주의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금

OECD 국가 중 손가락 안에 드는 복지국가는

더 들여다보면 유한한 우리나라 땅에 쓰레기를

아니지만 기본적인 생활이 어느 정도 보장되고

어딘가에 매립해야한다면 맘이 한편 불편하기는

있다. 하지만 삶의 질은 너무너무 낮다. 상대적으로

하지만 외면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 집 근처만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아니면 된다고 살짝 외면하면서....언제가 밖으로 돌리던 폭탄이 내 순서까지 온다는 단순한 논리를

늘 위험하고 늘 불안하고 늘 소외되고 늘 손해

놓친 걸 알게 되는 순간 복잡해진다.

보는 것 같고 늘 염원대로 되는 것이 없다고 느끼는 삶을 살고 있다는 거다. 누군가 부추기는 경쟁과

그러면서 모두 불편함을 감수하고 쓰레기

소유욕이 삶을 공격하고 있다. (이쯤에서 국가나

분리수거를 하며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방법에

시스템이나 회사는 왜 경쟁과 소유를 유도하는 가를

대한 아이디어를 내놓기 시작했다. 한정된 환경에서

냉정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생활권만큼은 이제

이미 쓰고 남을 만한 물건들이 쌓이고 쓰레기로 지구

스스로 지키며 살 필요가 있다.

어딘가를 오염시키며 각각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는 걸....이론만이라도 이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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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했던 가치를 새롭게 돌아볼 때이다. 도시에서

모든 식구가 모이면 준비한 음식 나눠먹고 이야기를

최소한의 자연과 교감하고 관계를 이어가며 삶을

나누고 한때를 공유하는 삶을 사는 곳이 여기이길

서로 지키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할 때이다. 누리는

바란다. 여기는 독산2동 도시재생센터가 있는

게 많아서 모두 고마운 게 아니고. 누리는 것만큼

사랑방이다. 너른 마당에 감나무와 흙이 보이는

감수하고 책임질 것이 뭔가. 내게도 질문을 하게

화단이 있다. 아이들이 미치게 좋아한다고 한다.

된다.

진짜 아이들만 환호할까^^* 우리도 반갑고 보는 것으로 행복하다. 그리고 기대된다. 골목 안

새롭고 편리하고 경이로운 과학의 혜택을 누리는

사랑방이 있는 어느 집에서 시작되는 ‘도시재생’의

만큼 잃고 있는 것에 대해 살며시 챙겨봐야 한다.

첫걸음!

일상을 회복하고 원하는 삶을 살고 싶은 사람들이 찾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것을 뭘까. 도시재생이라는 것, 마땅히 교감해야 하는 사람들과 자연과 수많은 관계를 잇는 것일 거다. 관계의 쓰임새 이전에 본질에 가까운 교감하는 것. 느리게 찾아보자고 얘기하고 싶다. 또 정답을 찾아가듯 뭔가를 해나가면 우리는 또 놓치는 게 생길 거다. 혹시

글과 사진. 김유선

— 마을활동가. 금천에 대한 모든 것이 궁금한 자, 재미난 모임에 끼이길 좋아해서 동네 모임에서 자주 볼 수 있다. 50대 아줌마. 2017년엔 마을기록을 다양한 대상과 다양한 방법으로 펼칠 궁리 중이다. 또 다른 마을에선 ‘생활문화’전반에 대한 공부모임과 활동을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놓치더라도 다시 찾을 수 있을 만큼만 느리게 가자. 관계에 익숙해지고 길들여지며 이웃으로 사는 맛을 동네에서 찾아가려고 ‘도시 재생’을 얘기하고 있다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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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가 어디예요?

늙은 언니, 할머니학교에 가다 옛날 3살 되는 아가가 나만 만나면 늙은 언니라 부르면서 쫓아 다녔다. 지금은 어엿한 대학 졸업반이다. 몇일 전에도 만났는데 늙은 언니 잘 계셨어요? 반가운 인사를 하며 다가온다. 그 이름이 이젠 제법 내 이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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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는다는 것은 세월을 먹는 열매인 듯싶다. 가을 들녘을 보면서 나 역시 부자가 된 듯싶다. 열매가 달달함도 쓰라림도 만나야 가을이다. 늙는다는 것은 익는다고 표현하고 싶다. 이 가을 열매 앞에서 나는 어떤 모양으로 익어 가는가 한번쯤 마음을 만져본다. 마음은 생각과 행동의 거울 같다. 늙은 언니들이여 잠깐 멈추고 삶 속에서 건강도 챙기자. 1. 7시간 잠자기, 2. 얼굴 맛사지, 3, 몸 두드리기 4. 힘내운동 5. 똑바른 자세 6. 과일먹기 그리고 여가활동 개발하기도 해보자 방에서 밖으로 나와 하늘을 보세요 한바탕 웃어봅시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도 있잖아요. 일을 만들어서 즐기세요. 밖에는 일들이 즐기자고 손짓하고 있습니다. 찾고 찾으면 만납니다. 널려 있기도 합니다. 어떤 것은 하루 일당도 있답니다. 속도가 늦는다고요. 하다 보면은 달인이 된대요. 오늘, 지금 움직여 보세요. 햇님이 부르세요. 늙는다는 것은 행복이요 감사입니다. 기침이 나면 사탕 한 개 입에 넣고 공원으로 마실 가 봅시다. 할머니 학교로 떠나 봅시다. 늦은 봄날 할머니 학교에 입학을 했다. 수업이 일주일에 3번, 월, 수, 금에 있다. 드로잉이라는 그림 수업이 반전이었다. 마음을 그리는 드로잉(그림) 무엇이든 그려오라고 해서 난 뿌리를 그리게 되었다. 뿌리를 보면 깊이 자세히 살피며 그렸다. 숙제도 꼬박꼬박 했다. 결과는 뿌리작가라는 자칭 작가가 되었다. 구민의 날 생각지 않게 대표로 촬영도 했고 금천도 알리고 할머니 학교도 많이 이야기되었다. 11 월호 구청 회보에도 상상수업 모습이 나왔다. 드로잉을 배우면서 초등 4학년 내가 돌보는 아이에게 수업을 해주었다. 그림을 이 수업에 적용하니 크게 보람되었다. 상상수업으로도 색채를 표현하며 매주 목요일 수업을 하고 있다. 오늘은 숙제를 하고 준비해놓고 내일을 기대해본다. 생각보다 마음이 젊은 언니들과 친구들이 많다. 월요일은 체육수업, 너무 힘들어 신음소리까지 냈다. 학생에게 수업하며서 재미가 쏠쏠합니다. 졸업 하려니 아쉽고 그립고 서운합니다. 몇 일전 우리는 산으로 투어삼아 갔다. 사진을 찍어 와서 드로잉을 하려고 갔다. 낙엽을 밟고 찍고 자리를 펴고 점심 도시락 싸가지고 가서 펴놓고 먹으면서 추억을 쌓았다. 잊을 수 없는 친구들의 목소리, 바람소리와 음식. 11월이니 모두 정이 들어 안보이면 궁금해 한다. 이제 감사를 떠올려 봅시다 무탈하니 감사하다. 옆에 친구들이 있으니 감사하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글. 김홍신 49


「목련상점」에 다녀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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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산동 주택가를 오고 가다 우연히 마음에 쏙 드는 이름을 가진 샵을 발견했다. 「목련상점」 내가 좋아하는 목련을 주인장도 좋아하나 싶어 무지 반갑고 나랑 감성코드가 맞을 것 같은 앞선(?) 감정이 들게 하는 이름...

설렘에 문을 열었더니 아차! 문이 닫혀 있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평소 이 곳 팬이라는 아기엄마는

주인장이 잠시 자리를 비운 거라고 생각해 가게

남편에게 이 그릇이 어떤지 물어보고 잠든 아기를

문에 적힌 전번으로 전화했더니 친절한 목소리의

살포시 안고 있는 남편은 마냥 흐뭇한 눈으로 그런

사장님이 내 전화를 받았다.

아내를 눈으로 쫓는다.

알고 보니 이곳은 쇼룸 매장으로 오픈시간이 정해져

부부의 정다운 모습에 반해서 다음에는 나도

있었다.

남편과 이곳을 방문하겠다고 다짐한다. 가끔 빠르게 흘러가는 일상이 힘들어질 때 이곳에

다음날 오픈시간에 맞춰 목련상점을 방문했더니

들려 자신에게 숨어 있던 아날로그 감성을 누려보길

어제의 그 친절한 목소리의 주인공이 환한 미소로

권한다.

반겨주었다. 주인장이 너무 젊어서 내가 깜짝 놀라자 이곳

목련상점

목련상점은 ‘엄마와 딸이 함께 꾸려가는 우리 그릇

서울 금천구 시흥대로96길 4 1층(독산동)

편집상점‘ 이라고 설명해준다. 글과 사진. 임선영

아하~~그럼 내 앞의 이 분이 따님이구나! 그럼 어머님은 어떻게 생기셨을까? 아마 따님의 미소와 꼭 닮은 표정을 가진, 조금 더 나이 드신 분이 아닐까 쉽게 상상이 되었다. ‘목련상점’ 이라는 상호도 엄마와 딸의 합작품이란다. 목련은 따님이 좋아하는 꽃이고 상점이란 단어는 어머님의 아이디어란다. 두 분의 조화만큼 독특하고 입에 탁 감기는 상호가 만들어졌다. 반지하 주택건물에 그릇상점을 연다는 발상은 정말 신기하다. 특유의 아늑함이 그릇 하나하나를 꼼꼼히 감상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잠시 고개를 들면 창문 넘어 주택가 골목의 햇살이 눈에 들어온다. 따뜻한 햇볕과 정겨운 골목길 풍경이 보이는 목련상점. 때마침 가게 안으로 들어온 젊은 부부의 모습도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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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속의 석탑 52

벌써 35여년전 우리 엄마의 알뜰함으로 첫 집 장만한 곳이 이곳 금천구 시흥이여서 초등학교 1학년 입학 할 즈음 우리 식구들은 시흥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쑥스러움과 부끄러움은 많았지만 특유의 친화력으로 친구들과 전학 온 첫날부터 친해 질 수 있었고 활발한 두 다리 덕에 시흥동 이곳저곳을 공터며 산을 누비고 다녔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시흥동에는 남아있다. 그래서 시흥동은 이곳저곳 기웃댄 덕에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 했는데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 새로운 시흥동의 모습들을 보고는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은행나무에 대한 나와 다른 시각을 가진 이의 이야기에 놀라기도 했고 어린 시절 소풍으로 갔던 시흥계곡의 변화된 모습에 의아해 하기도 하였지만 이곳에 처음 갔을 때의 나의 마음은 어떤 때 보다 큰 파장이 일었다. 이곳은 시흥동 탑골로 탑동 초등학교 위쪽에 있는 골목 속에 있는 곳이다. 처음 이곳에 가게 된 때는 2014년 순정한 마을 프레임이란 프로그램으로 마을을 기록하고 담아보는 프로그램 중 가게 된 곳이다. 어울샘 근처를 돌아다니다 간 곳 이였는데 좁고 가파른 골목을 올라가면 오래된 집들과 함께 모습을 보여 준다.작은 공원 같기도 하고 웬 집들 사이에 이런 곳이? 란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여러 버팀목에 몸을 함께하고 있는 큰 향나무와 그 옆에 조금 모습이 허물어진 삼층 석탑~

삼층석탑은 세월의 흔적을 보여 주듯 모습이 달라져 있고, 옆에 있는 향나무는 세월의 흔적만큼 몸에 나이가 새겨 진 듯 굴곡 있는 세월의 흔적이 나무의 몸통에 새겨져 있다. 햇살 좋은 날씨에도 그리 많은 햇볕을 쬐지 못 하고 조금씩 비춰주는 따스한 햇살을 감사하며 선선한 바람에 몸을 함께 하며 보낸 세월들이 모습에서도 보인다. 처음 삼층석탑을 찍으러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곳은 어떤 곳일지 궁금증과 설레임으로 발걸음을 옮겼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갑자기 이곳이에요~ 란 이야기에 무척 깜짝 놀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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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갑자기 사람이 살고 있는 집들 사이에 있는 모습에 놀랐고 중요한 탑과 보호수가 있는 곳이 조금은 어울리지 않은 곳이란 생각을 잠시 한 거 같다. 그곳에 있는 향나무는 금천구의 다섯개 있는 보호수 중 한 그루라고 한다. 세 그루는 은행나무고 한그루는 호압사에 있고 나머지 한그루가 이 향나무라고 한다. 삼층탑은 아들을 낳지 못하는 여인이 와서 탑을 만지면 아들을 낳는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여인들의 애절함과 간절함이 전해져서 인지 어두운 하늘의 분위기 때문인지 긴 세월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탑과 나무에 더 보호를 해야 하는 게 아닐까란 생각에 마음이 잠시 ....... 정신없이 골목주변과 탑과 나무의 모습을 찍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짧은 생각으로 그곳을 떠났지만 그 공간과의 인연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이어졌다. 아이들과 함께 다시 그곳의 사진을 찍으러 갔다. 아이들의 분주함과 왁자지껄한 소리 속에 그 공간은 다른 느낌을 주었다. 아늑한 느낌도 들고 너무 화려하지 않고 멋드러지지 않아서 골목 안 풍경과 어울리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들의 소리가 공간의 활기를 살려주는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었고, 세월의 숨소리가 느껴졌다. 이곳에 오래 살았어도 이 동네에 이사 온지 얼마 안 된 사람도 이곳을 잘 알지 못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날 길을 가다가 혹은 길을 잘못 들어서 이 공간 속에 들어가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 한번만 이 곳을 쳐다보고 관심과 애정 어린 눈길로 이곳을 한번만 더 둘러봐 주면 좋을 거 같다. 우리의 관심 어린 눈길이 이 공간을 소중하고 멋진 공간으로 바꾸어 줄 것이다.

글과 사진. 진선희

— 산아래문화학교 구성원으로 중학생 아들과 초등5학년 딸의 엄마로 이제는 엄마이자 자신의 모습을 찾으려 마을 속으로 들어와 동분서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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뽈레뽈레 315 뽈레뽈레는 금천구 독산동의 한 지하에 위치해있다. 지상과 315cm 떨어져있는 그 곳은 뽈레뽈레의 연주실이자 악기제작실, 꽃꽂이교실, 사랑방 등 정체를 도무지 알 수 없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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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이 곳은 작은 개척교회였다. 교회와 월세를 반씩 나누며 2달 정도 지냈고 이후 교회가 나가게 되어 뽈레뽈레만의 공간이 되었다. 제작을 하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등의 활동을 하는 뽈레뽈레에게– 비단 뽈레뽈레 뿐 아니라 모든 이에게- 몰두할 수 있는 공간을 가진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공간이 없어서 할 수 없었던 합주, 악기제작 등 다양한 작업들을 하기 시작했다.

당시 집은 금천구 가산동의 원룸이었는데 걸어서 작업장까지는 10여분 걸리는 거리였다. 대부분의 시간을 작업장에서 보냈지만 대부분의 일은 성북구에서 이루어졌다. 성북구는 2014년 뽈레뽈레를 결성한 이후 많은 활동을 했던 지역이었고, 꾸준히 활동이 이어지고 있었다.. 뽈레뽈레는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한 활동을 지향하는데 그런 활동의 기본 작업은 지역과 주민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활동을 하려면 왕복 4시간 정도가 걸렸고, 물리적 거리는 시간이 갈수록 활동의 몰입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2016년부터는 일터와 삶터를 일치시켜보는 실험에 돌입했고, 작업장을 중심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했다. 2016년 6월 동네에 바투카다 멤버 모집 포스터를 붙였는데 2층에 사는 봉제공장 사장님, 세일중학교에 다니는 3학년 현이, 동네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랭니, 마을활동을 하는 베누 등 여럿이 모였다. 꽁꾸라라는 팀이름도 만들었는데, 일주일에 두 번 공간에 모여 함께 연주를 하고 끝나면 식사도 하고 치맥도 했다. 일부러 만드는 관계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관계가 신기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의외의 복병을 마주했다. 그것은 바로 민원이었다. 합주가 저녁에 이루어졌는데 주변 주택가에서 민원을 넣은 것이다. 경찰을 보는 횟수가 점점 늘어나면서 합주를 할 때 위축이 되었고, 마음껏 연주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는 사이 멤버들도 개인적 이유로 점점 불참하게 되었고 그렇게 2016년 10월 꽁꾸라는 사라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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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브라질을 다녀온 후 맞이한 문제는 다시금 ‘방음’이었다. 방음부스를 짜려면 4000만원 정도가 들고 이사를 가려면 돈이 많이 드는데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계속 방음 생각으로 자괴감에 빠지는 현실을 마주하며 이런 일은 비단 우리만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많은 청년들, 예술가들이 돈 때문에 겪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냥 주저앉아 먼 산만 바라볼 것인가? 뽈레뽈레만의 방식으로 이 문제를 풀어보고 해결책을 제시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는 <잇몸강화프로젝트: 이 아니면 잇몸으로>를 시작했다. 이가 자본이라면 잇몸은 뽈레뽈레의 에너지, 생명력, 자존감 등을 나타낸다. 없는 것을 탓하지 말고 가지고 있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자는 말이다. 그렇게 스스로 방음공사에 나섰다. 방법 조사, 재료 선택 등을 스스로 하면서, 많은 친구들의 도움으로 약 열흘에 거처 방음공사를 마쳤다. 방음공사가 끝난 후에는 페인트칠, 재료보관장을 짰다. 약 한달 간 장업장 정비를 끝내니 무엇과 바꿀 수 없는 뿌듯함과 자존감, 공간에 대한 애정이 치솟았다. “방음도 성공적으로 마쳤는데 개장식할까?” 라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8월 15일 3년만에 뽈레뽈레 개장식을 가졌다. 개장식 전에 주변 이웃들에게 떡을 돌리고 정식으로 뽈레뽈레를 소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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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뽈레뽈레는 브라질 음악을 연주하는 활동을 많이 하였고, 작업장도 그런 용도로 쓰였다. 그런데 제대로 된 작업장이 갖춰지고 나니 공간에 대한 상상력이 풍부해졌고, 음악활동 외에 하고 싶었던 활동들을 공간에서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해서 시작한 프로그램이 <두더지예술가>이다. 예술적 재능을 갖고있는 숨은 고수를 찾아내 그들의 능력을 전수받자는 취지인데, 현재 ‘오여사의 비밀정원’이 진행 중이다. 오여사는 뽈레뽈레 멤버의 어머니이시고 20여년 전 플로리스트로 활동하셨던 오경자 여사님의 이야기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다. 얼마 전에는 가산동의 작은 공원에서 독거청년들, 주민들이 모여 <빈티지패션아울렛모아래란마리오>라는 벼룩시장을 열었다. 원룸에 사는 청년들의 주된 문제가 물건적재이다. 4년 전 원룸에 살면서 집앞의 공원에서 같이 물건도 팔고 인사도 나누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는데 이번에 본격적으로 일을 벌였다. 참여자들과 뽈레뽈레 공간에 모여 이야기 나누며 식사도 함께 하면서 관계맺기의 작업을 했다. 이 전에 작업장이었다면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2015년의 뽈레뽈레 공간과 지금의 그 곳은 같은 곳인가 싶을 정도로 다르다. 물론 보여지는 모습도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며 쌓이는 이야기이다. 뽈레뽈레에게 공간은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지상에서 315cm 떨어진 뽈레뽈레는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 그리고 그 이야기를 함께 들여다보아줄 수 있는 곳이 되길 바란다.

글과 사진. 정희수(디오)

— 내일이면 서른으로 넘어가던 시점에 브라질 음악을 마주했다. 생소한 북소리는 마음을 울렸고 삶은 변했다. 하던 일을 그만 두고 브라질 음악 밴드에서 활동하였고, 이후에는 마을 활동을 하는 청년 단체에서 일했다. 일을 하면서 음악은 취미가 되었고, 가장 좋아하는 일을 취미로 두고 싶지 않아 2014년 브라질의 문화를 매개로 사람들을 만나는 ‘뽈레뽈레’를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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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탐탐 동네보기

청년, 지역공간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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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의 변 생활문화권의 등장과 부상, 주민자치의 실현 방안으로 모색되는 지역의 문화공간, 대안공간, 제3의 공간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지역, 마을에서 청년으로 문화공간, 대안공간을 운영하고 있거나, 새롭게 운영하면서 겪은 경험을 나누는 시간을 갖고자합니다. 문화의 힘으로 삶을 가꾸는 공간이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사람답게 하는지 되새김으로 확인하는 자리가 됐으면 합니다. 내친김에 확인된 내용을 통해 지역의 공간 운영에 대해 제안과 대안을 내밀어볼 수 있을까요? 그리고 마을 한 모퉁이 공간과 큰 산자락이 만나는 것처럼 사사로움을 앞세워 지역을 전체를 아우르는 작은 발걸음을 함께하자고 제안합니다.

이런 내용을 지난11월5일 일요일 늦은 오후 단톡방에 던졌다. 단톡방 이름은 ‘청년 공간을 말하다’. 생각만하다.... 운을 띄우고 시간을 잡고 만나기까지 시간이 흘러흘러 11 월 10일 금요일 저녁 8시가 되었다. 청년들이 운영하는 복합문화공간인 ‘무중력지대’에서 역사적인 만남이 이루어졌다. 마치 정상 회담은 아니지만 시간 조율만큼은 그러했다. 청춘들 결혼은 물론 연애도 유보하고 그 밖에 많은 걸 포기하고 산다는 데 시간까지 없다니....내 일도 아닌데 뭔가 억울할 것 같다. 그런 와중에 하나 둘 모여 6명이 되었다. 이들은 마을에서 공간을 만들거나, 공간마다 새로운 실험과 시도를 하고 있는 금천형 지역기반 활동가들 또는 예술가이다. 마을카페 자리 매니저인 조윤기, 공공문화개발센터 유알아트 송하원, 어울샘 매니저 엄샛별, 춤판으로 지역에서 가장 핫한 ‘뽈레뽈레’ 의 정디오, 청춘삘딩 센터장님의 육아휴직을 대행중인 꿈지락네트워트 대표 박석준, 우선 인터뷰와 대담을 핑계 삼아 함께 이야기 나눌 시간을 갖게 되어 무한 행복했다. 서로를 잘 알기도 하고 어설프게 이야기만 듣고 있을 정도의 친분을 가지고 있어 자기가 누구인지 소개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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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살고있는 곳에 작업공간을 얻으면서 독산동에

친구를 새로 맞이한 느낌이었어요.. 가까운 곳에

정착하게 됐어요. 저희는 뽈레뽈레 음악하면서

내가 아는 사람이 산다는 게 참 오랜만이다. 진짜

악기제작, 멤버들끼리 하고 싶은 일 풀어내고

코앞에서 만나게 되었어요.

장르를 따지지 않고 여러 가지 작업을 하고 있어요. 저를 포함해서 작업자들이 부모님 세대에 대한

디오- 4년 전 금천으로 오고 2년 전 그 언덕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고. 이것을 어떻게 작업으로 풀까

가게 됐어요. 함께 작업하는 친구 어머니 지인이

고민 중에 있어요.

부동산을 하셔서 2년마다 집을 알아봐주고 계세요. 지금 작업실 겸 사무실도 그 분이 소개해서 머물게

유선- 그런데 진짜 궁금해요. 디오는 무슨 뜻인가?

됐어요.

디오- 제가 처음 들어간 단체에선 별명을 이름으로

석준- 음 오랫동안 이 지역에서 살면서 활동하고

사용했어요. 그 시절 제가 빠져 있던 인물이

있네요. 동네 청소년과 청년들과 작업과 활동을

디오게네스였어요. 책을 남기지 않은 철학자이죠.

연결하고 있는 꿈지락네트워크 박석준이라고 해요.

오직 행동으로 철학을 얘기한 사람이죠.

이 자리가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하네요.

모두- 와 와 그런 뜻이.....

하원- 아무런 이유 없이 부모님 덕분에 이 지역으로 왔고 하던 일을 계속 하려니 성북이 너무 멀어

샛별- 저는 금천 마을예술창작소 일하고 있습니다.

회사를 옮겨온 경우가 되겠네요. 얼마 전 동네에서

지금은 공간이 사라졌고 저는 관노비 생활

이전식을 했던 유알아트 송하원입니다.

중입니다. 숨 막히는 관노비 생활에서 사노비를 지향하고 있어요. 지금 막 택시에서 화장을 하고

유선-제 소개가 늦었네요. 저는 동네에서 잡다한

헐레벌떡 왔어요. 그래서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일을 담당하고 있어요. 요즘은 마을잡지를 만들어서

거울을 보는 것입니다. 혹시 불지불식간에 제가

더 잡다한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됐네요.

거울을 보고 있더라도 놀라진 마세요. (모두 웃음)

마을잡지라는 걸 누군가 해줬으면

저는 시흥4동 살고 계속 살아왔어요.

좋겠다...싶었는데....어쩌다 보니 관계자가 됐어요. 지난호 8월에 발행된 잡지 주제가 ‘왜

윤기- 저는 상암동에서 살고 거기서 이 곳 카페로

밥상모임이냐구요?’였어요. 그냥 우연히 정해진

출퇴근하는 생활을 하고 있어요. 알바 겸 매니저로

주제였는데...동네에서 이 얘기를 파헤칠수록

‘카페 자리’에서 이것저것 합니다.

재밌더라구요. 그리고 그렇게 사람들이 모여 밥을 같이 먹는 게 중요한 거 였구나...너무나 당연해서

디오- 성북보다는 상암이 가깝네요. 저는 꽤나 먼

소홀했지요. 지난 여름호를 내면서 뭔가 놓치고

곳에서 금천으로 왔어요. 온지는 4년 정도 됐어요.

있었던 걸 찾아낸 느낌이었어요. 여기 있는 분들이 대부분 그 때 인연으로 만나 동네

윤기- 정확히 59분 걸리는 곳에서 출퇴근 생활하고

사람이네요.(웃음)

있어요.(웃음) 디오- 금천으로 이사 와서 성북까지 일하러 다니는

세 번째 마을잡지 주제가 ‘공간’이예요. 사람사이의

게 점점 힘들어 졌어요. 일하기 위해 너무 많은

공간도 좋고 지역 공간에 대해 해보면 좋겠네요.

시간을 길에서 보내야 했기 때문에 동네 가까이서 일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유선- 우선 청삘. 청춘삘딩이 만들어지는 과정 얘기를 지난번 들을 기회가 있었다. 지역재생의

샛별- 저희 집에서 50걸음가면...디오를 만나요.

새로운 모델이 될 만한 사례가 되지 않을까싶다. 그

제가 시흥4동 천불사 있는 언덕위에 사는 데.

이야기를 들려주셨으면 좋겠다.

고등학교 졸업 후 친구들이 언덕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는데. 디오님을 만나면서 묘하게 언덕에서 62

석준- 대학 다니면서 전 재산을 모아 사무실을


마련하고 돈이 없으니까 셀프인테리어를 해가며 공간을 마련했던 적이 있다. 입주하자마자 상가주인으로부터 퇴거해달라는 요구를 받고....그냥 나와야하는 상황이 있었다. 정말 황당했던 공간에 대한 첫 번째 임팩트 강한 경험이 있었다. 그 후꿈지락네트워크로 청소년들과 작업하면서 많은 청년들과 만나게 됐다. 이들과 일을 하기위해 공간이 절실했다. 지자체 담당분들을 만나 얘기하면서 청년 공간의 절실함을 전달했다. 되돌아온 답이 그렇게 필요하면 직접 찾아보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 때부터 지역의 유휴 공간....빈 공간, 여기저기 찾아다니게 됐다. 그러다가 청소년독서실이 동네 마다있고 쓰임새와 다르게 이용되는 것을

유선-왜 좋은데요? 뭐가 좋다는 것인지요?

목격하게 됐다. 심지어 전혀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공간도 발견하게 되고 지금의 ‘청춘삘딩’이

석준- 기획물이 수준이 다르달까. 기획내용뿐

만들어지게 되었다. 정작 공간을 찾아내고 새롭게

아니라 태도 , 접근방식이 어떤 측면에서 지역이

뭔가 만들어 내는 과정이 참 길고 힘들었다.

담기 어렵다. 왜? 우리 계획서를 쓰면 정형화된

지나왔으니 말이지만. 예산을 확보하고 공간을

내용이 많잖아요. 그런데 ‘자리’청년들의 기획은

설계하며 희망에 부풀었던 순간은 아주 짧았다.

그림이 그려지는 계획서다. 뭔가 다른 게 있다.

턱없이 부족한 예산에 원하는 공간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은 당사자들이 모여 손작업으로 매꿔

유선- 윤기씨 없는 사이...우리 뒷담화를 엄청했어요.

가야하는 일이었다. 어느 정도 공간이 안정이 되니

그런데 그게 다 칭찬이다. 굳이 칭찬을 뒤에 대고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런 친구들의

하게 되다니... 낭독회에 대한 신선한 접근과 태도가

요구를 생산하고 요구를 스스로 해결하거나

사람들을 사로잡았다는 후문이던데요. ‘등돌린

조력자를 구하는 일까지 다양한 역할이

낭독회’....궁금하네요. 이 부분은 다음에 듣기로

만들어졌다.

하고.

공간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요. 문득....이따가

엄- ‘청삘’사업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거기서

세일즈 하나해도 되나요?(박석준씨 뭔가 새로운

‘do it plus’재밌게 하는데...콩나물과 두부의

생각이 떠오른 모양)

견적서내라고 해서 놀랐다. 어떻게 시장에서 산 두부까지 견적서를 내라고 하는지. 시스템에 문제 제기를 했었다.

동전을 모아 무중력지대의 무인카페를 이용해서 커피와 차를 마시며 계속 이야기를 나눈다.

석준- 행정과 결산을 같이 해나가는 입장에서

무중력지대 처음 온다는 조윤기씨가 차를 가지러

이해보다는 시스템에서 해야 된다고 하면

간 사이...뒷담화가 이어졌다.

맞춰야하는 게 기본이다. 사업 진행하면서 최대한 처음 계획대로 작업을 하려고 한다. 그런데 일상에서

유선-자리 카페 매니저들은 외부와 어떻게 접촉을

만나는 사업이 매우 불합리하다고 느끼면 다시

하고 있는지요?

이야기 나누어야 한다고 본다. 그렇게 지적된 이야기들 중에서 바꿀 수 있는 것은 결국 수정해

석준-음...다른 부분은 잘 모르겠지만 청삘에선

나가야한다.

뭔가 접촉이 일어나고 있다. 이분들이 내부적으로 평이 좋다...

유선- 내려 놓는 거. 끌어오는 거? 저 사람과 나는 안맞아. 서로 협치를 얘기하지만 생리적으로 안맞아. 63


업이며 선생님은 무슨 복이신지 모르겠다. (모두 웃음) 하원-서울문화정책연구소에서 우리문화정책에 대한 책을 만들고 준비하면서 이종인 선생님을 알게 되었다. 학생회에서 출판기념 행사준비하면서 뵈었던 게 전부다. 소위 문화정책을 처음 만든 분. 일화가 참 많은 분이다. 박통때 ‘사상계’ 편집국장을 하셨고 그 때 편집국장인 선생님 후배로 유진룡장관(전 문화관광부 장관)을 꿀밤 먹이며 가르쳤다는 전설이 있다. 광고회사에서 처음 카피라이터로 이름을 날리시기도 했다가 문예진흥원을 만들어 상임이사를 하셨다. 우리나라 문화 관련한 일에 이 분이 툭툭 튀어나오는데 정말 끝도 없이 나오더라. 선생님이 가지고 있던 자료와 우리가 주는 예산이니까 이 원칙에 따라야해. 행정과

관련한 책을 유알아트와 처음문화정책연구소에

지역, 행정과 단체는 서로 입장차이가 커서 부딪히는

떡하니 맡기셨다. 그 자료가 어마어마하다. 그중

경우가 많다. 그런데 지난번 청삘이 경험한 행정과

일부만 유알아트 사무실에 있고 나머지는 창고에

지역단체 운영에 대해 이야기 나누면서 반성의

보관중이다. 그렇게 시작된 게 이종인도서관이자

지점이 생겼다. 나는 어차피 어려운 관계니까

사료관이자 전시관이다. 숙제가 참 많다. 많이

자꾸 얽히지 말자는 생각이 많았다면 박대표는

오셔서 즐기고 이야기 나눴으면 한다.

과정 만드는 게 어려워도 지혜롭게 일을 만들면서 마무리가 되더라. 정말 한 수 배웠다. 청삘은 꼬시는 게 잘되는 거 같아.

다음은 공간에서 주로 어떤 활동을 하게 되는지 묻고싶다.

석준- 행정에다 요구하는 거잖아요. 잘 요구하기 위해. 성과라는 걸 행정에서 필요로 하는 용어를

유선-뽈레뽈레 공간에서는 주로 어떤 일이

써주는 게 필요해요. 이런 데이터를 만들었다. 이거

일어나는가?

대단하죠? 더 잘하려면 이런 단계의 일이 필요하다. 이 단계 일은 우리단체에서 단독으로 하기

디오-생산의 공간이지요. 제가 살아가면서 생각하는

어렵다....행정에서 도와달라는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것들, 삶이 반영되는 곳이 뽈레뽈레 작업실이예요.

하는 편이다.

악기를 만들고 있고 사람을 만나는 곳이 저희 공간이예요. 여기를 중심으로 작업을 엮어가고

유선-대단하다. 그건 개척정신에 입각한 순교자와

있어요. 올해 처음 마음으로 엄마랑 화해를 하게

같은 일이다(웃음). 그럼 공간에 대한 본격적인

되는 계기도 저희가 하는 활동가 맞닿아있어요.

얘기를 해보자. 송하원씨는 공간이 넓지 않은데

제가 워낙 바르고 부모님의 뜻을 거스르지 않는

유알아트 공간 안에 전시관을 만들었다. 사무

모범생으로 살았어요. 그런데 30세부터 다른 일을

공간 중 그나마 넓은 곳을 돌아가신 이종인 선생님

하게 됐다. 보수적인 집안에서....엉뚱한 짓을

사료관으로 만들었다. 전시관, 사료관 같은 공간을

하게 되면서 가족과 갈등이 심했다. 특히 엄마랑

작업실 내에 만든 이유가 있을 것 같다.

불편한 사이가 됐다. 4년 전쯤 독립을 계기로 엄마와의 관계를 새롭게 만들기 시작했다. 우리

하원- 활동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어머니아버지 세대에 관심을 가지고 프로그램을

사무실보다...더 넓은 곳이 전시관 겸 기념관이다

생각할 때 처음 떠오른 분이 내 엄마였다. 나는 나의

젊은 기획자들은 독방 같은 곳에서 일하고 넓은

생각이 프로그램으로 일로 다가온다. 우리엄마에

공간을 돌아가신 분이 사용하는 있다. 나는 무슨

대해 생각하다보니 우리엄마 글씨가 어렸을 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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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특이하다고 생각했던 게 떠올랐다. 그래서

재배치’, ‘공간의 새활용’을 만들어내셨다. 어떻게

엄마글씨로 ‘뽈레뽈레’, 우리팀의 로고를 만들게

그렇게 어려운 일을 할 수 있었냐?

되었다. 이 로고가 만들어지기 까지 펜도 5-6개 사용해가며. 종이가 수북히 쌓일 때까지....쓰셨다.

석준-처음부터 이렇게 될 줄은 나도 잘 몰랐다.

스스로 좋아하셨다. 엄마는 너무 어릴 때 특이한

일이 한고비 한고비 넘어 서울시 참여예산으로

이 글씨체가 너무 문제가 되어....어릴 때 숨기려고

‘공간’ 리모델링 사업이 결정되고 보니 내가 너무

했다고 한다. 글씨 쓰면서 엄마는 자신의 얘기를

큰 똥을 쌌다. 그 때 그걸 알게 되었고. 그 후로

들려주셨다. 글씨 때문에 힘들었다는 속내를

연속해서 그 일에 대한 책임을 져야하는 역할이

밝히기도 했다. 어른들에게 꾸중도 참 많이

주어지고 잇다. 내가 싼 큰 똥을 보면서 아차

들었다고 했다. 이제는 글씨 쓰는 걸 좋아하신다.

싶었다(웃음)

그리고 팀원 엄마 중에 꽂꽂이 하신 분이 계시다.

왜 그랬냐고 물으시니 얼마 전에 받았던

20년 전 꽂꽂이를 하셨던 어머니와 작업을

질문이 떠오른다. ‘Let it be에서 be를 뭐라고

같이 하게 되었다. 이것이 ‘엄마의 정원’이라는

해석해야해?’라는 질문이었다. 답한다면 바로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다. 어머니와 5시간을 꼬박

이것이다. (양손을 둥그렇게 말아 올리는 행동을

꽂꽂이로 뭔가를 만들었다. 수술하기 전(병을 알기

보여주며). 이렇게 생각해. 손으로 둥글게

전), 어머님을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어머니가

말아올리면서 이자체가 be야. 우리는 이미 존재하는

행복했던 그 시절에 하셨던 일을 다시 하게 해드리고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증명해야한다. 존재하니

싶어서 시작한 일이었다. 어머니가 꽂꽂이를 할

당연히 누려야하는 것을 왜 굳이 말해야해. 그건 그

때는 배가 고픈 줄도 모르겠다고 하셨다. 우리는 두

자체일 뿐야라고 답했어요. ‘필요’라는 것 이상의

어머니에게서 특별한 그것들을 들여다보고 있다.

절실함이 있었고 그래서 시작한 일이고 시작해서

나의 어머니도 친구의 어머니도 나처럼 ‘삶을 사는

지금 결과물을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고 계속 그

사람이구나.’ 알게 되었다. 이런 활동으로 엄마와

일에 몰두하고 있어요.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졌던 것 같다. 우리 팀의 여러 작업 중 하나가 우리 부모님 세대를 들여다보고 함께 하는 것이다.

공간이 왜 그렇게 절실한 문제였어요?

하원- 오래된 것에 대한 특별한 애착이 있다.

석준-어른으로 독립한다는 거. 집기를 마련하고

일상에서 과거의 시간이 그대로 앉아있는 오래된

일을 하기 위한 공간을 만드는 것의 시행착오를

물건에도 책에도 애착이 많다. 하지만 변화의

겪으면서 공간에 대한 절박함이 있었다.

시점도 필요하다고 본다. 제3의 공간이 뭔가. 독립서점, ‘왜 이런 공간이 발생했나’라는 관점에서

유선-그런데 아직 젊었을 때고 부모님 품안에서

생각하게 되었다. 서점의 지향은 무엇이었나에서 왜

얼마간 더 아늑하고 평안하게 살수 있었는데 왜

‘퇴근 길 책한잔’이라는 공간이 나타났나하는 데

그렇게 고생을 사서하게 되었나?

주목해보았다. 그 제3의 공간성에 대해 규정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공간에 대해 찾아들어가보니

석준- 모든 부모님이 그렇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공간의 공통점이

많은 부모님이 자식을 소유의 개념으로 대한다.

떠올랐다. 그게 공동체성이었다. 현장은 이대앞

나는 일정 시점이 지나면 자식의 독립해야된다고

‘퇴근길책한잔’이라는 공간에 대해 이론적으로

생각한다. 물론 빨리 이 독립에 대해 생각하게 된

‘제3의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보게 되었다.

이유는 전 여자친구의 이야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우연히 삶을 매개하는 공간으로 ‘제3의

‘결혼했든 안했든 일요일 아침에 좋아하는 여자랑

공간’에 대한 화두로 지금의 공간을 열게 되는

같이 있는데 어머님이 연락도 없이 들이닥쳐...’나는

계기가 되었다.

괜찮다, 애들아. 그냥 잠시 들렸어.’라고 했을 때 남자들의 대처방법은 뭐냐?라는 질문을 받았다. ‘아이처럼 구는 남자랑 어떻게 미래를 설계 할

지난한 과정이 예상되는 ‘공간의 재구성’, ‘공간의

수 있겠냐’라는 말에 진짜 독립에 대해 생각하게 65


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싸가지 없고 매정하게

스스로 공간을 만들어 나갈 수 있었다. 물성에

보일정도로 부모님과는 미리 연락하고 만나는

다능한 친구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다. 저희 두명의

사이로 정리됐다. 우리는 모두 독립된 어른이다.

합주. 같이하는 친구는 제작자 베이스라 사람 생산을

제가 이렇게 입장정리가 되니 부모님 두 분 사이가

해야 하는 친구....자신의 공간이 생기자...물을 만난

정말 좋아지셨다.

듯 속도가 생겼다. 실험중 하나는 지원사업하지말자. 인건비를

디오-우리집 경우와 비슷하다. 내가 독립을 하니 두

벌기위한 뭔가를 하지말자. 우리 공간에서 지금

분 사이가 애뜻해지셨다.

할 수 있는 걸 시작하자. 저는 그 당시의 결정들이, 어려운 선택이 있을 때 서로 합의한 내용을 기준으로

유선-어머님들이 자식들의 독립으로 비로소

판단한다. 보완할 것이 있으면 바로 한다. 우리끼리

자유인이 되셨네요. 그거 참 어려운 일인데.

해결한다가 기본원칙이다. 어떤 게 더 즐거운가? 방음할 때 가장 중요한 일....지금 닥친 문제를 자본으로 해결하지 못할 때, 어떤 선택을 하는가?

그런데 공간이 없을 때도 일했잖아요. 왜 공간이

우리의 음악, 우리의 예술을 원하면 우리는

필요한 걸까요?

무엇이든 실험하자!고 합의했다.

디오-공간을 늘 빌리러 다녔다. 단체에 있을

디오- 합의를 해내고 나니 예전과 전제가 달라졌다.

때 주민공간을 만들었던 적 있다. 필요할 때

보증금이 4천인데...어떻게 마련하지. 월세는 어떻게

만들어야한다. 필요할 때 공간을 만들어야한다.

하지?. 방음 안 되니 어쩌지? 그냥 모든 게 실험이다.

신발이 진짜 필요한가? 진짜 필요한가? 라는 질문을

해결해야할 일이 천지다. 수시 과제가 주어진다.

계속하게 된다. 이렇게 필요에 대해 질문하는

과제가 끝나지 않아. 과제를 풀자. 우리끼리 늘

태도가 내 삶의 큰 기준이 되었다. 활동하면서

얘기한다 이거 과제가 너무 많잖아.(웃음) 과제가

완벽하게 저게 너희 공간이야라는 건 없다.

많다구하다가... 야, 풀어. 풀자! 삶과 일이 일치되지

언제든지 공공의 공간은 바뀐다. 그리고 공간을

않잖아! 일반적인 경우 그렇지 않지만 그렇게

소비하면 삶이 소외된다. 그렇게 공간에서 단체는

활동하는 방식이 생활방식이 되면 어렵지만 해결할

소외되더라. 그런 경험 후 ‘할 수 있는 만큼 우리가

과제로 보인다. 포기를 전제로 하는 게 아니라

하면 된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풀어가야 할 과정 중에 하나로 인식된다.

지금의 공간과 빌려 쓰던 그 공간은 어떻게 다른가?

그런데 디오가 이 얘기에 앞서 전제 한 부분이 있다. 같이 일하는 친구는 다른 생각이 있을 수 있지만

디오-제가 사는 집과 일하는 공간을 잘 아는 부동산

어떤 부분에 합의하면 큰 문제없이 진행된다. 어느

사장님이 소개해준다. 멤버 어머님의 친구분이

정도 동의해야 같이 그 공간에서 일할 수 있나?

부동산을 하신다. 그 분 소개로 처음 소개받은 공간은 교회였다. 신도 없는 개척교회였다. 운영이

디오-우리는 합을 맞추기 위해 매주 월요일

어려운 교회였다. 임대료와 공간을 반반 쉐어했다.

주례회의를 한다. 싸우기도 하고 맥주마시다가 또

반은 교회물품 반은 우리 악기류 두달 정도 같이

토론을 한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은 깊은 대화,

있었는데....상상해보시라 두 공간이 공존했던

깊은 놀이를 한다. 상호학습의 시간이다.

그림이 어떠했을지(웃음). 그러다가 우리가 공간 전체를 사용하게 됐다. 주인이 참 좋다. “너네가

석준- 저희도 그렇게 한다. 회의가 일상적이다.

알아서해. ”라는 말 속에 어떤 내용이 들어가 있는지

주례회의 나름 월요일에 한다. 오후2시 시작해서

그 때는 잘 몰랐던 것 같다. 방음도 알아서...비새는

저녁8시에 끝날 때도 있다. 온갖 대화를 나누는데

것도 알아서, 이것저것 수리도 알아서...정말 간섭이

‘드립은 드림의 어머니다’와 같은 실천을 하면서

없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절실하게 느끼게 됐다(모두

회의에 임한다.

웃음). 다행히 저희팀 친구가 기구를 잘 다뤄서

회의 중에 어떨 땐 이우정은 막 춤추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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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진다. 밥 시켜’를 외치는 센터장님이 있다.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부분에서 세분의 매니저가 함께 운영하는 카페 자리의 경우는 어떠한가. 카페 자리의 공간 운영의 철학을 듣고 싶다.‘ 청소년을 대상화 하지 않는다’ 정도를 알고 있다. 운영원칙 등이 어떻게 서로 동의 된 것인지요? 윤기-새터 교회에서 처음 카페를 구상할 때 ‘카페베네 같은 일반적인 카페를 만들자’. ‘특정 대상을 목표로 하지말자’는 공감대가 형성됐어요. 청년허브처럼 내가 원하는 걸 하기 위해 그곳을 찾을 때처럼. 청소년들도 필요로 하는 공간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필요 이전의 단계랄까. 사전에 뭔가 막 시작되기 전의 공간, 술집이나 카페에서 뭔가 목적 없이 떠들다가 필요에 의해서 찾아가는 공간이 있을 거고 .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왔다가 가는 공간이 있을 것 같다. 우리는 그런 단계의 카페를 원한다. 대상화되지 않은 청소년들이 편히 놀다가 뭔가 동기를 찾을 수도 있는 공간. 하자센터를 예를 들면 뭔가 자신의 욕구가 분명해서 뭔가를 찾아다니는 청년, 청소년들이 가는 공간이다....알아서 뭐든 잘

청소년들이 이 공간을 청소년스럽게 느끼지

할 친구들. 운동의 첫 스텝으로 볼 때 뭔가 하고

말았으면 좋게다. 청소년들보다 부모님들이

싶은 것이 있을 때 처음 돌입하는 단계?. 뭔가 하고

이 공간을 좋아한다. 공부하러 가는 공간으로

싶은 일을 하는 빡센 공간이 아니다. 우리는 어떤

안심하고 보내신다. 와서 보드게임하고

스텝으로 말하자면 딱히 하고 싶은 게 없을 때 하고

놀더라도...부모들은 착한 자리 공간에서

싶은 게 있게 되는 단계에서 머물 수 있는 공간을

공부한다고 믿고 싶은 거다.

생각하고 있다. 샛별-교회에서 운영하는 곳이 아니라...1층은 카페 자리와 공간 자리가 있는데 어떻게 다른가요?

비싼 세를 받는 곳으로 생각했다. 청소년카페인줄 몰랐다. 청소년 카페라고 하면 아마 시시하게

윤기-공간‘자리’에선 청소년 센터의 역할 한다.

느껴질 것 같다.

카페자리에 온 청소년들이 공간자리의 활동에 자연스럽게 노출되길 바란다. 카페‘자리’에 오는

윤기-그래서 우리는 인테리어에 대해 고민하고

청소년들은 늘 자유롭게 공간을 차지했으면 하는

있다. 카페 자리는 비청소년과 청소년을 아우르는

바램이다. 그러기엔 공간에 대한 아쉬움이 살짝

프로그램을 준비하려고 한다. 하고 싶은 건

있다. 예를 들면 아주 상업적이거나 세련 되서

많은데 예산이 문제된다. 책이 진짜 많으니 책

카페를 매력적으로 느꼈으면 좋겠다. 그런데 카페

관련 행사, ‘문학동네’ 카페처럼 작가초청, 낭독회

자리는 너무 인테리어가 착하다. 반듯하다...이런

등도 하고 싶다. 광장성 있는 공간이라....많은

느낌이 아이들에겐 반갑지 않을 수도 있다고

계획을 하고 있었지만....대관해서...새로운 시도가

생각한다. 비용 문제이긴 하지만 뭔가 있어 보이는

있었지만....민원의 온상이 됐다. 카페에서 차

더 비밀스러운 자리, 카페가 됐으면 좋겠다. 2층

마시고 떠드는 공간보다 조금 더 나아가...새로운

자리의 공간도 너무너무 너무 착하다. 장사를

문화를 접할 수 있기를 바란다. 대상화 없는

잘해서...이 곳만의 비밀스러운 공간이길 바란다.

곳이라 생각하고 청소년이 자유롭게 상상하길 67


원한다. 그런데 잘 안 된다. 저기 스크린을 내리고

결과와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니라...뭔가 시작하거나

영화상영회를 한 적 있다. 영화상영회를 하는데

목적 없이 머무는 공간도 필요하다도 생각한다.

바로 앞집에서 민원이 들어온다. 결혼피로연 하는데 경찰차가 출동한다. 작은 소리에도 주택가는

샛별- 새로 건축될 ‘어울샘’은 공공장소에 1층

예민하다. 자리에 광장성이 있을 거라고 보이는

공간은 주차장, 위로 매우 큰 건물이 들어선다.

테라스가 사실은 매우 아까운 공간이다. 광장은

사람들 접근이 쉽지 않다. 그나마 오던 아이들이

없더라. 우리의 모토는 ‘되어지는 걸 한다.’이다.

있지만 사람들에게 처음처럼 낯선 공간이 될까봐

해지는 걸, ‘되어지는 대로 한다.‘이다.

걱정이다. 어울샘 처음 시작할 때 마음의 거리를 없애는 시간이 필요했는데 새롭게 어울샘이 조성되니...모든 상황이 0에서 다시 시작되는 것

세분은 경험이 다르다. 매니저의 역할을 어떻게

같다. 재건축이 아니라서 새롭게 조성되는 건물에

나누나?

대한 주변의 기대가 크다

윤기-전도사분은 아이들과 인문학강좌를 진행한다. 미대 나온 분은 인테리어 등을 담당한다. 최근엔

진행과정 얘기해 달라.

그림이 채워진 공간을 동네 소식을 전하는 곳으로 설정했다. 동네 게시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샛별- 제가 뭔가 오래된 걸 좋아한다고 주변에

동네사람들이 생각보다 홍보물 많이 가지고

소문났어요....옛날 걸 좋아하는 아이로

오신다. 김다미샘은 청소년과 여행프로그램 진행

낙인됐지요(웃음). 어울샘 설계단계에 이런저런

중이다. 공간자리와 카페자리 관리자는 전방위

의견을 내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기

플레이어다. 관심 있어서 홍보는 제가 담당한다.

좋은 공간이었으면 한다. 인도가 없는 건물들이

기분 좋은 사람이 각자 하고 싶은 부분을 진행한다.

늘어선 어울샘 근처의 환경으로 볼 때...따뜻한

능력되는 사람이 한다. 한사람에게 올인 안해도

느낌의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 손잡이 하나도

된다. 능력되는 사람보다 그냥 할 만한 사람이

사람들이 쉽게 만지고 문을 쉽게 열수 있게 하는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베테랑 두 분이 공간자리에

그런 것에 대해 신중하게 반영되기를 바란다. 이런

계시다. 디테일이나 깊이, 초연함이 대단하신

이야기하면서 소재와 디자인에 대해서 좀 나서서

분을 보며 많이 배운다. 내년학교 졸업하고 바로

이야기 했더니 옛날 것 좋아하는 애로 됐어요.

군대 가려고 한다. 그때까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생각중이다.

공간 건축에 시어머니 역할 할 사람이 누구냐? 박석준이 했던 역할이 필요하다. 누구든 책임지는

다음 어울샘 이야기로 넘어가서 어울샘이 어떻게

걸 두려워하는데...잔소리도 하니 누가 듣겠냐마는

되어가고 있나

그래도 말리는 시누이와 싸움 잘하는 시어머니가 필요하다.

윤기-어울샘의 이야기를 동네 청년입장에서 운영하고 지금까지의 과정을 기록하길 바란다.

샛별-감리역할, 장인국샘이 하시고 있다. 어울샘

제가 포스터 붙이러 어울샘에 갔다.. 사람들이

운영위원장의 역할이 크다고 본다. 얼마큼 진행될지

많은데 놀고 뭔가 막 하는데 매니저가 없더라.

모르겠지만...어려울 것 같다. 마을활력소가 주체가

그게 좋아보였다. 사람들이 알아서 뭔가 하는

없으면 모두가 주체 돼야 하는데 정작 누구도

게 신기했다. 지하가 멋진 어울샘은 착하지 않아

나서지 않는 공간이 무슨 소용인가싶다.

좋았다. 1층은 착한데 지하는 착하지 않아서 좋았어요. 내려가는 계단이 거칠고 문화센터 같지

유선- 운영지기가 필요하다. 어울샘이 같이

않아 좋았다. 자유롭게 작업해도 좋은 공간처럼

연동하는 사업을 찾았으면 좋겠다. 마을활력소와

느꼈다. 공간이 충돌하지 않으면 뭘 해도 좋은 공간,

마을예술창작소의 적절한 독립과 연대, 어울림이

사랑방처럼 오가며 뭔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공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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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별-주민주도의 건물이....왜 커져야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있다. 주민 주체는 조직적 일 수 없는데. 건물이 거대화되면서 주민이 주체 나설 수 없게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거대한 건물에 사람들이 주인 의식을 갖기는 어려운 것 같다. 행정에서는 때때로 그런 거대한 좋은 공간을 사람들이 주체적으로 운영하고 사업을 할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다. 주민들이 공공성을 앞세워 왜 봉사해야하는 가. 자신의 삶과 가까운 공간에서 작게작게 역할을 할 수는 있다고 본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는데도 우리에게 남겨진 이야기는 너무나 많았다. 저녁에 만나 부랴부랴 ‘공간은 마을에서 무엇인가’를 쭉 헤아리다가 끝이 나지 않는 공간의 공공성에 대한 이야기를 남겨두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삶을 어떻게 살게 될 것인가. 각자 자신을 어떻게 돌보게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나누고 싶었다. 아무래도 한 번에 이야기를 끝낼 수 없었다. 간단하지 않은 그동안의 사연을 들어보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마을에 안착하는가를 두고 다음으로 이야기를 넘긴다. 그것보다는 수제 맥주에 끌려 저녁을 대신하게 되었고. 남은 이야기를 계속 할 수 있을 만큼 친교의 새벽을 맞이하였다. ㆍㆍㆍ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 글. 김유선 | 사진. 안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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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4동 3번지 언덕 “아, 그 산꼭대기?” 금천구 사람에게 우리 집을 이야기하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금천구에서 가장 높고 가파른 언덕이라 자부하는 시흥4동 3번지 언덕은 금천구에서 눈이 오는 날이면 제설작업이 먼저 진행되는 곳 중 하나이다. 나는 그 산꼭대기에서 23년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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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해질 만도 한데 23년을 한결같이 오고 다녀도 익숙해지지 않는 이 거대한 녀석에게 미운 정과 고운 정이 들었다. 여름이면 땀이 범벅되어 하교를 하게 만들었고, 눈이 오는 겨울이면 종종걸음으로 언덕을 내려가야 해서 평소보다 20~30분을 일찍 집에 나서야 했다. 20대 초반 멋 부림을 한창 좋아할 시절에는 12cm 킬힐을 신고 기어가듯 언덕을 내려가서 뻐근한 발목을 어루만지며 시내를 돌아다니게 만든 애증의 언덕은 이제 우리 집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언덕 위 함께 놀던 친구들이 한둘씩 떠나고 뻔질나게 드나들던 작은 구멍가게들도 모두 문을 닫았다. 이제는 라면 하나를 사더라도 언덕 아래 편의점을 가야하는 대장정을 떠나야 한다. 23년 전 집 앞 작은 텃밭들과 앵두나무가 주렁주렁 열리던 집들이 사라지고 비슷하게 생긴 빌라들이 가득 들어선 낯선 언덕이 되었다. 빌라의 수만큼 사는 사람이 몇 배나 늘었을 텐데 어릴 적 골목 가득 떠들던 아이들과 아주머니분들의 모습이 사라져 조용해진 3번지는 참 많이 변했다. 그리고 여전히 23년째 언덕을 오르는 나도 언덕 주변 풍경과 함께 변해갔다. 학창시절 혼자 언덕을 올라가기가 싫어 매번 싫다는 친구를 강제로 집에 끌고 오듯 초대했었다. 그 마지못해 우리 집에 가장 자주 오던 친구가 이제는 단짝이 되어 종종 술에 취해 자발적으로 언덕을 오른다. 20대에는 언덕을 올라가는 시간을 잊어버리기 위해 늘 친구들과 전화통화를 하며 시시콜콜한 일상들을 주절주절 늘어놓던 장소가 되었다. 언덕 위 우리 집은 ‘서울여관’이라 불릴 정도로 지방에 사는 대학 동기들을 데리고 와서 ‘여기가 금천구에서 야경 끝내는 주는 곳’이라며 우리 집 옥상에서 금천구의 야경을 보며 종종 맥주를 즐기며 언덕 아래 풍경을 감상하곤 했다. 30대를 시작하고 있는 나에게 언덕은 이런저런 생각이 깊어지는 장소가 되었다. 귀가 시간이 늦어지며 늦은 밤 오르는 언덕은 나에게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을 주고 있다. ‘오늘 하루도 잘 보냈나?’ 혼자 질문하고 대답하며 차오르는 숨을 고른다. 나의 일상을 물리적으로 가장 괴롭히는 언덕을 미워하기 무색하게 늘 커다란 언덕에게 정서적으로 많은 위안과 위로를 받고 있다. 언덕 위의 풍경들은 달라졌지만 매일 같은 모습으로 우직한 언덕은 오늘도 3번지 사람들의 귀가를 기다린다. 언덕을 생각하며 글을 쓰는 오늘 밤, 많은 3번지 사람들은 언덕을 오르며 ‘무슨 생각을 할까?’ 문득 궁금해졌다.

글과 사진. 베누 금천구 산꼭대기 사는 사람 요즘 성과와 효율 없는 삶을 살고 싶어 몸이 간질간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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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놀이터 모든 동네에는 놀이터 하나쯤은 있다. 하지만 우리 동네 놀이터는 매우 특별한 곳이다. 나는 그곳에서 첫 키스를 했다. 스물한 살 어느 더운 여름날이었다. 매미소리가 유난히 시끄러웠고 살랑살랑 부는 여름바람은 이상하리만큼 유난히 간지러웠다. 그런 여름 저녁 날에 주홍빛 가로등 아래서 입맞춤을 했다.

나는 금천구에서 태어나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모두 시흥동에서 다녔다. 심지어 나는 그 흔한 이사조차 한 번도 가본 적 없다. 시흥에서 쭉 살아왔고 살고 있다. 그리고 이젠 시흥시에서 일을 하는 것을 보면 이래나 저래나 나는 늘 시흥 안에 있는 셈이다. 금천구 시흥동에는 정말 특별한 곳이 있는데 바로 우리 집 뒤에 있는 비둘기공원이라는 놀이터이다. 놀이터가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 어린 시절 대부분의 기억 속에 늘 그곳이 있었다. 무더운 여름날 언니와 아이스크림 입에 물고 그네를 타던 곳이고 추운 겨울날 친구와 슈퍼에서 산 단팥 호빵을 손난로처럼 손에 쥐고 있다 온기가 가시면 반 나눠 먹던 곳이었다. 초등학교 수요일 4교시가 끝나면 그곳에서 피구를 하고 놀았다. 휴대폰도 없던 시절이라 서로 연락도 한 것도 아닌데 항상 그 시간에 놀이터에 가면 친구들이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는 키우던 병아리가 죽어서 펑펑 울며 놀이터 나무아래 무덤을 만들어주었다. 내 인생에 첫 이별이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장소에 가장 사랑했던 병아리를 묻었다. 중고등학교 사춘기시절에는 부모님과 다투고 집을 나오면 비둘기공원에서 그네를 탔다. 그네를 타고나면 손에서 쇠 냄새가 강하게 났다. 그것마저 좋았다. 놀이터의 모든 것이 너무 좋았다. 그 순간만큼은 놀이터는 온전히 나의 것이었다. 내게 놀이터는 만남의 장소이자 내 기억이 담긴 공간이었으며 나의 사계절과 365일이 그곳에서 흘렀고 내 유년시절이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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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진학에 실패했을 때 나는 불안했다. 재수생활은 힘들었고 실기 준비는 맘처럼 잘 되지 않았으며, 날이 추워질수록 맘이 초조했다. 분명 시작은 같이했는데 친구들은 저만치 앞서가고 있었고 나는 그저 제자리에서 발만 동동 구르는 것 같았다. 편의점에서 술을 살 수 있는 스무 살 성인이지만 일곱 살 어린애일 때보다 더 두려웠다. 초조함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10월에 친구들이 수능 응원선물을 준비했다며 비둘기공원으로 불렀다. 그곳에는 작은 모닥불이 있었다. 입시와 실기 준비에 심신이 지친 내게 친구들이 준비한 서프라이즈 이벤트였다.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멋졌던 캠프파이어였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다보니 모든 내 부담감과 촉박함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렇게 훈훈한 마음으로 모닥불을 감상한지 30초 만에 경찰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인근 주민이 놀이터에 방화범이 있다고 신고를 했다고 했다. 나는 놀이터에서 생애 처음이자 아직까진 마지막으로 현행범으로 경찰조사를 받았다. 공원 내 위험한 불씨 사용은 경범죄라고 했다. 그 자리에서 겁먹은 우리는 서둘러 모래를 덮어 불을 끄고 경찰관 아저씨께 싹싹 빌었다. 생일이 지나지 않아 미성년자였던 친구도 있었고 방화목적이 아닌 불씨 사용임을 감안해서 다행히 훈방조치 되었다. 공원에서 불을 피우면 안 된다는 당연하고 새삼스런 교훈을 얻었다. 그렇게 불장난의 대가를 혹독히 치룬 나는 한동안 놀이터 근처에도 얼씬도 하지 않았다. 길고 긴 겨울이 지나고 나는 그 다음 해 봄에 대학생이 되었다. 대학생이 된 나는 여전히 놀이터에 갔다. 데이트를 마치고 남자친구가 집에 데려다 줄 때 헤어짐이 못내 아쉬워 항상 놀이터 가로등아래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하다 헤어졌다. 그곳에서 늘 첫 키스를 했다. 첫 번째 남자친구와 첫 키스, 두 번째 남자친구와의 첫 키스, 그리고 세 번째 남자친구와의 첫 키스도. 그리고 언젠가 네 번째 남자친구가 생긴다면 헤어짐이 아쉬워 또 이곳에 머물겠지. 어떻게 보면 비둘기공원은 나의 입맞춤의 역사가 있는 곳이다. 내가 자라는 동안 공원도 변했다. 모래였던 곳이 우레탄으로 메꿔졌고, 쇠 그네는 플라스틱으로 바뀌었다. 이젠 그네를 오래 타도 더 이상 손에서 쇠 냄새가 나지 않는다. 주홍빛 가로등 아래서 첫 남자친구와 첫 키스를 했지만 마지막 남자친구와의 첫 키스는 LED가로등 아래서 했다. 놀이터의 모래는 사라졌고 내가 추억하고 있는 놀이기구와 나무들도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비둘기공원은 우리 집 뒤에 있다. 창문을 열고 보면 항상 그 자리에 있다. 모든 동네에는 놀이터가 하나쯤은 있다. 하지만 우리 동네 놀이터는 제일 특별한 곳이다. 왜냐면 그곳은 내 일부를 담고 있으니까. 이곳에서 만나고 이별하고 입을 맞추고 눈물도 흘렸다. 이곳에서 나는 수많은 추억과 비밀을 쌓았다. 공간은 내 역사를 담고 있는 추억의 파노라마이다.

글을 주신 주민 000님은 기억 저편의 이야기를 공유해주시면서 이름은 살짝 다음 호에 밝혀 달라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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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도 가도 행복한 그 곳, 호암산 늘솔길과 호압사 경내

이번 마을잡지의 주제를 공간으로 정했을 때 내 머리에 바로 떠오른 곳이 있었다. ‘호암 늘솔길’ 과 ‘호압사 경내’. 이 두 곳은 나의 힐링 장소이자 평소에도 지인들에게 강추하는 보물 같은 곳이다. 기쁨은 나눌수록 배가 된다고 한다. 이 지면을 통해 더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평화로움과 작은 행복을 얻어 가기를 꿈꾸며 소개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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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천구 시흥동 벽산5단지 산책길로 걸으면

신기하게도 나는 기분이 좋을 때보다는 마음이

호암산으로 연결되는 작은 터널이 보인다.

답답하거나 걱정거리가 있을 때 이 늘솔길을 오르게

터널 안 계단을 힘차게 올라가다 보면 맞은편

된다. 늘솔길의 새소리와 까마득히 작게 보이는

호암산으로 바로 연결이 되고 터널 밖을

서울의 모습이 나에게 말을 건넨다.

나오자마자 호천 약수터가 보인다.

“너의 걱정은 그다지 큰 게 아니야. 충분히 감당할

이 약수터에서 시작되는 돌계단을 오르면

수 있어. 힘내! “ 라고 마구 소리친다.

나무데크로 지어진 ‘호암늘솔길’ 이 시작된다. 그런 응원을 받으며 앞으로 나아가면 금방 호암늘솔길.

호압사에 다다른다.

따라 읽다보면 왠지 휘파람 소리가 날 것 같은 이

호압사에 초 하나 켜두고 부처님께 잠시 절을 하고

정겨운 이름은 어떤 의미일까?

나오면 그 자체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진다.

‘언제나 솔바람이 부는 길’이라는 뜻을 가졌단다. 정말 그럴까? 궁금함을 가득 안고 걷다보면 어느새

호압사 경내에 작은 테이크아웃 카페가 생겼을 때는

잣나무 삼림욕장을 지나 호압사에 도착해 있다.

이 장소가 절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나무데크 늘솔길 중간 중간에는 원래 나있던

그러나 이제는 이곳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맛에

산길로도 나갈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흠뻑 반해 버렸고 카페 옆 나무 정자에 앉아 복잡한

때론 산에 왔으니 ‘흙을 밟아보자’ 생각이 들면 나는

생각들과 감정들을 정리하기도 한다. 어쩔 땐 책 한

이 늘솔길에서 잠시 벗어나 산길로

권 챙겨가 이곳에 앉아 읽기도 한다.

방향을 틀기도 한다. 당신이 사춘기 자녀를 둔 엄마라면 더더욱 이곳을 늘솔길을 나무데크로 만들어서 좋은 점은 나같이

권하고 싶다. 호암늘솔길을 걷고 이곳에 들려

무릎이 불편한 이들도 쉽게 산에 오를 수 있다는

좋아하는 차나 커피를 마시며 잠시 쉬어가라고...

점이다. 그래서 이 늘솔길에서는 다정하게 손을

종교에 상관없이 이곳에 들린다면 분명 밖의

잡고 오는 노부부를 만날 수 있고,

세상에서 얻지 못한 편안함이 있다고 자신한다.

어린 자녀와 산행에 나선 젊은 부부들과 목인사도

한가지 고백하면 나는 사춘기 자녀들과 엄청 투쟁

나눌 수 있다.

(?)하는 날 호암산 늘솔길에 자주 오른다. 산에 오르기 전 무지 뿔나있던 내가 내려갈 즈음엔 다시 순한 양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다. 효과 짱이다!! 내 말을 믿고 한번 도전해보길 바란다. 사춘기 자녀를 둔 우리 엄마들 모두 화이팅!! 글과 사진. 임선영 글을 잘 쓰고 싶은데 마음만큼 잘 안되어 좌절중인 마을활동가 격려에 목마른 40대 끝자락 동네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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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은행나무

서울에서 태어나 50여 년을 서울에서만 살아왔으면서도 서울이란 공간 속에 아직도 낯선 곳이 많다. 그 중에 시흥 역시 가까운 기억을 되짚어 보아도 발걸음을 한 적이 쉬 떠오르지 않는 낯 설은 동네 중 한 곳이었다. 그런 시흥에 내가 일자리를 찾아서 오게 되었고, 평생의 동반자를 만나 삶의 터전까지 마련하게 되었으니 이제는 제2의 고향이라 할 만큼 내 삶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곳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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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이란 곳의 낯섦 속에서도 무언가 익숙한 향수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소싯적의 어느 날로 이끌어주었던 은행나무 덕분일 것이다. 서울에서는 흔하게 볼 수 없는 아름드리 나무가 도로 한복판에 자리잡은 모습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쉽게 지워지지 않는 기억의 편린처럼 내게 자리잡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청소년시절 나는 불교학생회 활동을 하였고, 성인이 될 때까지 이어진 불교학생회 활동 중에 기억나는 것은 하계 동계 방학기간 동안 전국의 크고 작은 사찰에서 수련회를 가지며 심신을 수양한 것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 중에서 내가 중학교에 입학한 첫 번째 여름방학의 수련회로 기억되는 한 장의 사진에서 시흥이란 곳이 내게 생명부지의 낯 선 곳이 아닌 내 삶의 한 시점에 큰 영향을 준 곳이었다는 걸 알아차린 후 빙긋 미소 짓게 되었다. 그 해 여름방학 수련회는 다른 수련회 때와는 달리 우리 사찰 학생회만이 아니라 혜명보육원이란 곳의 고등학생 형 누나들과 시간을 함께 했다. 처음 만난 어색함도 잠시 우리들은 금새 오래된 친구 형 동생처럼 어울려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새벽 3시에 기상하여 이른(?) 저녁 9시에 취침에 들어야 하는 수련회의 규칙은 일상의 틀에 맞지 않아 소등이 된 후에도 늦은 시간까지 소곤소곤 사담들이 이어졌다. 물론 중학교 1학년생인 나는 대화에 참여하진 못했지만,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이다 잠이 들곤 했다. 그런 어느 밤, 고등학교를 마치면 보육원을 나와 독립해야 하는 심경을 얘기하며 서로 격려하는 형들의 대화를 듣고는 그 밤 늦은 시간까지 잠자리를 뒤척였다. 3박4일의 짧은 기간 동안 얼마나 깊이 있는 얘기들이 오갔겠나 싶지만, 그럼에도 내가 또렷이 기억하는 것은 내가 자라나며 겪지 못 했던 것을 혜명보육원 형들의 이야기를 통해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 후 우리 사찰 학생회와 혜명보육원은 자매결연을 맺고 체육대회나 야유회도 함께 하게 되었는데, 사찰이 있던 곳에서 104번 버스를 타고 오랜 시간을 달려 그 버스 종점 가까이 가면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었고 그 은행나무 가까운 곳에 혜명보육원이 있었다. 그 곳이 시흥이란 동네였던 것이다. 학창시절 짧은 시간 동안이지만 내 추억에 오롯이 남아 있는 은행나무. 다시 만나 반갑다! 은행나무야~ 글과 사진. 고원석 77


공간 분투기

마을라디오는 여기서 방송중입니다.

공간을 옮겨 다니며 고군분투하는 시흥5동 마을라디오 오동통 라디오 방송을 소개합니다. 2015년 10월부터 시작된 시흥5동 마을계획단이 12월에 발대식을 가지면서 마을 사업 준비를 하게 되었습니다. 마을 미디어는 찾동 사업의 필수적인 부분이기도 하고 주민의 자발적 참여로 마을신문과 마을 라디오가 시작 되었습니다. 방종태선생의 제안으로 라디오 금천을 하고 있는 이성호 등 주민들이 모여 마을 라디오가 시작 되게 되었습니다. 2월 내 첫 방송을 하게 되었으며 장소는 금천 마을예술창작소 어울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 마을 마을라디오 오동통의 첫 방송 공간은 지금은 공사 중인 어울샘이었던 것이지요. 이후 2017년 8월까지 어울샘에서 쭉 방송을 하다가 어울샘이 마을 활력소로 재건축 되게 되어 자율방범대 컨테이너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즉 두 번째 방송 공간은 암탉 광장에 있는 방범초소였습니다. 작지만 아늑한 공간에서 두 번의 방송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주변 분의 민원으로 더 이상 방송을 할 수 없게 되어 다시 한 번 방송할 장소를 찾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제 3 의 장소로 방송을 하게 되는 곳은 바로 라디오 금천 사무실입니다. 문제는 독산 4 동에 있는 라디오 금천 사무실까지 가서 녹음을 하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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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방송에 대한 열정으로 우리 오동통 라디오 메인 DJ 분들은 원거리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찾아가 방송을 하고 있습니다. 빨리 라디오 방송을 가까이서 할 수 있게 어울샘이 완공 되었으면 합니다. 내년 5월 19일 경에 개관 예정이라니 그때까진 멀어도 독산동에 있는 라디오 금천 사무실을 이용해야 합니다. 이제 곧 추워질 텐데 사실 좀 걱정이긴 합니다. 그리고 라디오 방송 포맷이 올해부터는 좀 변화가 있었습니다. 2016년 첫 해를 거치면서 멤버들도 한미옥, 김복선, 이현주, 박원희, 이성호, 장인국 등 주축을 이루던 핵심 멤버들만 남게 되었고 각자 메인DJ로서 자신의 특기를 살린 주제를 정해 돌아가며 방송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각 메인 DJ가 자기가 담당한 날짜에 자신의 고유주제로 방송을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한미옥님과 김복선님은 초대석, 이현주님은 안전, 저는 시흥행궁과 교육 이런 식으로 담당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변화라고 하면 오동통방송의 새끼 방송이 생겼습니다. 오초맘이라는 팀인데 5동 초딩맘의 약자이며 시흥5동초등학교를 다니는 엄마들이 모여 학교 소식과 교육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방송을 하며 이제 오동통 내의 방송으로 정착되어 가고 있습니다. 물론 메인 오동통방송은 매주 일요일 오후 8시에 녹음 되며 스마트폰 어플 팟빵과 라디오 금천 밴드를 통해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방송을 하면서 느낀 점은 아마 방송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끝까지 듣고 그 사람이 말하는 내용을 잘 파악한 후에 적절한 답을 주는 형식의 방송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청과 인내, 소통과 협력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조화로운 좋은 방송을 만들 수 있습니다. 자기 말만 앞세우며 다른 사람의 말을 끊고 들어가면 말이 서로 엉기게 되어 말이 아닌 소리가 되어버립니다. 따라서 상호협력은 필수적이고 경청과 협력이 하모니를 이룰 때 좋은 방송이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이것은 비단 여러 마을사업 뿐만 아니라 세상사 모두가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지금은 춥고 먼 거리를 가서 방송을 해야 하지만 금천 마을예술창작소 어울샘이 금천 마을활력소공간으로 다시 완공되어 오동통라디오가 자기둥지를 찾으면 보다 발전된 모습의 방송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시흥5동 마을라디오 오동통 방송 화이띵입니다. 글과 사진. 장인국 요즘 마을활동에 열심이다. 시흥 행궁도 복원해 야하고 마을 사진관도 만들고 싶고 마을 소식도 계속 전해야 한다. 무엇보다 함께하며 사람 사는 마을로 만들고 싶다. 주민 커뮤니티, 마을계획단, 주민자치회, 구 협치 등으로 활동중이며 금천마을예술창작소 어울샘 운영위원위 대표 79


내가 ‘적당’하는 이유

적당히 살자

저에게 ‘적당’은 아무 보호막 없는 경쟁 사회에서 내가 속한 공동체를 스스로 만들어 가는 방법을 고민하고 시도해보는 곳이에요.

때까지 자기 길, 자기 방향, 자기 위치를 스스로

저는 생애 20~30년을 거의 대학(과 연계되는 사회적

‘청년’이라고 불려지는 사람들이 대부분 경험하고

위치와 직업)과 결혼이 삶의 뿌리를 형성하(도록

있다고 생각해요.

결정하고 받아들이고 움직여야 되죠. 말하자면 필수교육만 받고 세상에 내버려진 거랑 비슷하다고 봐요. 이런 막막함, 황당함, 어이없고 당황스러움, 충공깽에 흠좀무같은 상황을 저는 지금

권장하)는 사회에 살았어요. 그리고 그래도 괜찮도록, 그게 딱히 별 무리가 없이 ‘상식선’이도록

문제를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저는 각자 자기

조성된 환경에서 살았죠. 자라면서도 대학을 가면

길, 자기 방향, 자기 위치를 스스로 결정하라는 건

혹은 시집을 가면 거기서 생긴 관계들을 중심으로

각자가 서로를 모두 경쟁자로 인식하게 만든다고

사회생활이 시작되고 그 구조를 기준으로 사회 속에

보는데요. 물론 원래 경쟁이란 게 삶의 활력을

스스로 내 위치를 결정하게 된다고 생각하고 그걸

주고 어쩌면 늘 당연하게 있는 건지도 모르지만요,

제일 중요한 삶의 과업으로 여겼으니까요.

현재의 문제는 사회적 안전망이든 복지든 명칭이 뭐든 전 세대에 걸쳐 개개인에게 매 경쟁이 유지될

근데 제 의지도 아니고 제가 한 적도 없는 여러

수 있는 안정적일 수 있는 토대 자체가 거의 없다고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기술적 변화 ㅡ IMF,

봅니다. 그리고 패배에 대한 대책이 1도 없는

권위주의 해체, 갑을병정 줄세우기, 청년실업,

사회는 사람들을 점점 더 심각하게 파편화시키고

인터넷의 발전 등등 ㅡ 로 어쩔 수 없이 대학이나

고립시킨다고 보구요. 심지어 어떨 때는 내가

결혼을 통해 속하게 될 사회적 관계가 더 이상 제

누구랑 싸우고 전쟁하는지조차 모르고 이기는 게

미래를 한정짓지 않아도 되는(혹은 그럴 수 없는)

뭘 얻는 건지도 확실하지 않죠. 그 경쟁을 위해 뭘

상황에 직면했다고 생각해요. 결국은 다들 죽을

준비해야할지, 뭐가 나에게 할 만한 경쟁인지조차 알려지지 않고 그래도 뭐든 해보래서 (저는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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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출산으로 연결될 수 있는 연애도 포함된다고

그리고 ‘적당’을 지역에서 시작하는 이유는 이런

생각해요.) 하다가 망하면 사회에서 아예 밀려나

보호막 없는 경쟁 사회에서 시스템 밖의 시도와

버리거나 집구석과 사회의 먼지가 되는 거죠.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내가 현재 가진 자원을 최대한

당연하지만 여기에 나이주의까지 덧불여지면

절약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게 필수적이기

재출발을 위한 경쟁 기회는 거의 없어집니다. 새로

때문입니다. 파랑새가 옆에 있듯 언제 어디서나

경쟁에 진입한 사람들과 밥그릇 싸움만 될 뿐

시대를 막론하고 가장 좋은 친구를 찾는 길은 내

인거죠.

옆 사람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상대적으로 소통을 위한 교통비와 시간이 크게 들지

결국 기성세대와 기득권들이 만들어놓았던

않을 수 있는, 근처에 사는 같은 세대의 친구들을

사회재생산 시스템은 패배자를 위한 자리를 만들지

만나는 게 제가 선택한 방법이었구요.

않음으로써 위에서 말한 수많은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기술적 변화를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고

‘불편을 삽니다’는 내가 사는 공간의 다른 사람들은

있습니다. 변화에 준비했어야 했고 발생하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 동네가 불편한 게 뭔지

제대로 대처라도 했어야 되고 안되겠다 싶으면

몰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을지 알고 싶었습니다.

갈아엎기라도 했어야 되는데 명백하게 계속

불편데이즈는 그렇게 귀찮고 불편한데도 굳이

발생하는 문제들을 폭탄 돌리기처럼 미루다가 그게

동네 전통시장에서 재료 하나하나 파는 분들과

지금 펑펑 터지고 있는 거구요. 그래서 예전엔 진짜

직접 대면을 하면서 구매를 했는데요, 저는

특이한, 전국에 몇 명 있을까 말까한 사람들이

전통시장 역시 대형마트에서 보호막 없이 밀려나고

고민하던 ‘새로운 시스템’에 관한 문제가 이제는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불편데이즈를 하는

동네에 수 명, 수십 명이 생각안할 수 없는 일이

과정에서는 적어도 음식이 내가 손가락 몇 번

되었다고 봐요.

놀리면 뿅 하고 나타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 재료를 가져오는 사람과 만드는 과정이 반드시 있다는

이게 엄청 새로운 일은 아니에요. 어차피 누군가는

걸 짚어보고 싶었어요. 그게 느리고 불편하더라도

해왔고 하던 일이며 살면서 해볼 수 있는 일이죠.

음식의 과정이 망각하도록 강제되는 경쟁은

사실은 운동이나 활동 같은 일도 아닌 게 살면서

제가 만들어가고 원하는 공동체에선 없었으면

자신이 속한 사회 시스템을 판단하고 재평가하고

좋겠으니까요.

거기서 살 궁리를 계산하고 선택하는 건 원래도 대부분 합니다. 다만 지금이 더 힘든 건 이미 터지고

‘적당’이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있는 시스템의 밑바닥 없는 경쟁에서 운이 좋기만을

그리고 저 조차도 그냥 결국은 현 시스템에

기대할건지 아님 그냥 현재 상태에서 재빨리 또

생존자(로 보이지만 결국은 구속자)로 남을지도

다른 방법을 찾아볼 건지 강제로 선택할 수밖에

모르죠. 다만 저는 또 새로운 방식의 공동체의

없게 된 거죠. 후자로 결정하면, 실패든 성공이든

모습을 구상해보고 시도하고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길을 모색하고 선택하고 시도하는 일이 훨씬 더

일은 계속 하고 싶고 그 과정에서 같이 할 사람을

현명한 방법이라고 봐요.

만나기 위해 ‘적당’을 합니다. 이상입니다.

‘적당’ 이란 단어가 저에게 주었던 의미는 그래요. 경쟁도

+ 샛별인 저의 이 모든 긴긴 생각을 ‘충남가자’ 라는

‘적당’히 좀 하자고, 지든 이기든 우리가 또 다른 경쟁을

말로 요약하고 실천을 강요합니다.아 무서워...ㅠ ㅠ

다시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잃어버리진 않도록 경쟁 전에 ‘적당’한 환경 더 넓게는 ‘적당’한 시스템이 어떤 건지 고민하는 것부터 하자는 거죠. 그게 현재 사회의 관점에선 느리고 무의미해보이고 비효율적인데다가 돈 한 푼 안 나오는 쓸데없는 일이라도요.

글과 사진. 박새솜 만들기 좋아하고 말하기 좋아하고 글쓰기 좋아하는 범성애자 페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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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의 공간을 찾아서

삶의 매개로서의 ‘제3의 공간’

슬며시 가슴에 들어 온 공간, <퇴근길 책한잔>이다. 마포구 염리동에 자리 잡은 서점이다. 상품으로서의 서적을 쭉 진열해놓고 판매하는 통념 속 서점과는 그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책을 판다는 본연의 기능이 되레 부수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서점 벽면에 걸린 서점의 이야기들은 공간의 의미를 다시 읽게 한다. ‘낭독콘서트’, ‘명절 대피소’, ‘자발적 거지모임’ 등의 활동상에서 사람들이 드나드는 발자국이 보이는 듯하다.

늘어만 가는 편의점, 부동산, 빵집, 미용실의 간판들로 도시의 사계절은 시들지 않는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시계의 발이 보이지 않는 하루를 살아내는 동안 우리들은 자꾸 병들어 가고, 시들어 갈 뿐이다. 너와 나 사이의 간극이 멀어지고, 우리보다는 나로 후퇴되는 어찌하지 못하는 감정 속에서 그런 것들을 회복시켜 줄 공간에 대한 갈증이 상대적으로 짙어졌다. <퇴근길 책한잔>과 같은, ‘제3의 공간(The third space)’이 바로 그러한 공간이다. 주거공간으로서의 ‘제1의 공간’은 19세기 무렵 개념화 되었다. 이후 1960년대에 이르러 산업화 도시화가 진행되며 직장 즉 생산을 위한 공간으로서 ‘제2의 공간’이 출현하게 되었다. 그리고 주거공간과 업무 공간 그 너머를 담아내려는 욕구가 모여들었고, 여가 혹은 자유를 염원하는 ‘제3의 공간’에 대한 개념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제3의 공간’에 대한 해석은 많은 이들에 의해 다양하게 제시되어 왔다. 도시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는 ‘제3의 공간’을 ‘집과는 또 다른 집’으로 정의했다. 이는 혼자 혹은 다수가 고유의 의지로 정기적으로 점유하며 휴식과 재충전을 할 수 있는 쾌적하고 편안한 ‘비공식적 공공장소’를 의미한다. 동네의 까페, 서점, 바, 헤어 살롱 등이 해당된다. 이 장소들은 다양한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지역사회에서의 장소성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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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장소들은 개인과 공동체 사이를 연결하며 이웃 간 친목 도모를 통해 지역사회에 활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중립적인 위치에 있으며, 사회적 평등을 지향하는 ‘제3의 공간’에서는 대화가 주요한 행위로서 이루어진다. 또한 ‘제3의 공간’은 고급스럽지 않은 일상의 평범한 공간으로, 놀이터로서의 특성 또한 지니게 된다. 집과 차별화된 공간에서 심리적 편안함과 지지를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올든버그의 ‘제3의 공간’은 사회적 소통과 공유 등 상호작용의 개념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앙리 르페브르는 ‘서술적인 공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그는 자본주의와 산업화가 추동한 근대사회의 발전이 오히려 사회를 문화가 결핍된 일개 영역으로 만들고, 일상의 소외를 야기한다고 비판하였는데, 개인이 영위하던 삶으로부터 멀어지는 폐단을 극복하기 위해, 일상의 문화적 회복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여러 주체들의 삶의 모습들이 다양하게 구현되는 공간으로서 ‘서술적 공간’은 창조적·자발적인 재생산을 통해 탈소외가 가능한 공간, 일상의 리얼리티가 만들어내는 충돌과 긴장에 대한 완화와 휴식의 어울림이 있는 공간이다. 다시 말해 ‘문화를 통한 일상의 회복’을 지향하는 공간이다. 르페브르의 ‘서술적인 공간’의 이 같은 특징들은 올든버그의 ‘제3의 공간’과 일정한 부분에서 겹쳐진다. 지리학자인 에드워드 소자는 인간생활의 공간성에 대해 강조하며, 인간이 본질적으로 공간적인 존재로서 집합적 행동을 통해 사회의 공간성을 구성해 왔음을 주장하였다. ‘실재적이고 상상된 공간’으로서 소자가 말하는 ‘제3의 공간’은 공동체의 관심사를 토론하고 해결의 방안을 모색하는 공간으로서 역할 한다는 점에서 올든버그의 ‘제3의 공간’과 그 의미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는 삶과 직결된 사회적 관계로서 ‘공통적인 것’을 만들어내는 투쟁에 의해서만 대안적인 공간의 창조가 가능하다는 하비의 주장과도 비슷한 맥락에서 연관 지어 볼 수 있다.

금천구청 광장은 만남의 장소이자 놀이터이다 83


‘제3의 공간’, ‘서술적인 공간’에 대한 세 학자의 이론 사이에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세 이론 모두 공통적으로 공동체성을 주요한 속성으로 지니고 있는데, 소자의 ‘제3의 공간’이 보이는 운동성과 르페브르의 ‘서술적인 공간’에서 나타나는 탈소외, 일상의 회복 가능성은 운동성과 지향의 측면에서 올든버그의 ‘제3의 공간’이 갖는 공동체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를 앞서 언급한 하비의 주장과 연관 지어 본다면, ‘제3의 공간’을 상호의존을 통해 자기실현을 이루고자 하는 공동체적 특성을 바탕으로 직면하고 있는 현실 문제의 해결을 시도하려는 대항적, 대안적인 공간으로 재개념화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자본주의가 고도화되면서 계량적 지표에 근거한 효율성이 강조되고 물질적 번영만이 중시되고 있다. ‘제1의 공간’인 가정과 ‘제2의 공간’인 직장이 점차 폐쇄적이고 독립적인 성향을 갖게 되었고, 르페브르의 주장처럼 사회에서는 문화의 결핍과 일상의 소외가 야기되며, 개인화, 객체화, 주변화의 문제 또한 발생하고 있다. 사회적 공간이 불평등하고 부정의하게 구성되는 가운데, 본래의 공공적, 비상업적 공간들마저도 상업적인 공간으로 대체되며, 상업주의에 의한 인간소외가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로 인해 마음 편하게 체류하고 싶은 공간에 대한 갈구로서, 일과 생활 영역에서의 균형을 회복하고, 타인과의 친밀감, 신뢰를 바탕으로 삶의 여유를 누리며 인간적인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유정(有情)한 장소로서의 ‘제3의 공간’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제3의 공간’에 대한 열망이 번지수도 없이 예서제서 피어나고 있는 까닭이다. 폭폭한 삶이 쉬어가며, 내일을 그릴 수 있는, ‘제3의 공간’이 골목 모퉁이 빈자리에 시나브로 다가오는 상상을 가만가만 읊조려본다. 일상에 겨운 마음들이 머물며, 서로를 다독일 수 있는 그런 공간을 말이다.

글. 송하원 덥수룩하다. 코끼리와 초록색을 좋아한다. 관계의 구성물로서의 공간에 대해 관심이 많다. ‘변두리’로 향하는 마음을 좇아 ‘지역’과 ‘문화’ 그리고 미시(微示)의 변방을 돌아다닌다. 공공문화개발센터 유알아트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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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오래된 금복상회재봉과 바느질재료를 살 수 있다.

우리동네 작은 공원

여기는 마을예술창작소 어울샘 옥상 85


짧고 굵은 마을소식

우리 동네 이모저모 1월 23일

독산1동 마을 활력소 개장

2월 2일 ~ 28일

산아래문화학교 손수 만들기 ‘궁리’워크샵 진행

2월 4일

꿈씨 어린이 도서관 5주년 행사

2월 6일 ~ 12일

정월 대 보름맞이 전통 시장들 풍성한 이벤트 개최

2월 17일

은행나무 어린이 도서관에서 만든 우리가 만든 그림책 전시회 진행

2월 17일까지

금천 청소년 별밭 두레단 중1~고3 대상 모집

2월 24일 ~ 25일

금천구 청소년 뮤지컬 레미제라블 금나래 아트홀에서 공연

2월 21일

마을인교육의 창립 보고 대회를 자리에서 진행

3월 2일

금나래 초등학교 개교

3월 4일

더불어 민주당 금천지역위원회 산하 청년위원회 발대식

3월 9일

금천경찰서 청사 기공식

3월부터 10월까지

금천구에서 마을 건축 학교 개교

3월 18일

지혜의 숲 11주년 맞이 ‘소소한 기념회’

4월 8일 ~ 9일

제 13회 금천 하모니 벚꽃축제 금천 구청 광장 일대 개최

4월 14일

가산 생활 문화 센터 개관

4월 14일 ~ 16일

세월호 3주기 추모 행사, 시민 분향소 운영 및 추모 문화제

4월 20일

금천 장애인 자립 생활센터가 제1회 한울타리 전시회를 금천 구청 로비에서 개최

4월 21일 제8회 금천하모니 벚꽃 축제 전국 사생대회 작품전시회를 21일부터 27일까지 금나래 갤러리에서 열림 4월 22일

장애인의날 기념 눈부신 복지 세상 그리기 진행

4월 22일

금천 장애인 핸디 마라톤 대회

4월 25일 ~ 12월 15일 G밸리 근로자를 위한 음악교실 개설 5월 5일

제10회 금천 어린이 큰잔치 ‘친구야 놀자’ 어린이날 행사 개최

5월 15일

금천구 문성글로벌 인재학당 개소식

5월 16일

금나래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 해오름식(개교식)

5월 20일

제7회 금천구 도서관 북 페스티발 개최

5월 23일

고 노무현 대통령 제8기 추도식이 금천구청 앞에서 열림

5월 24일 5월 마지막 주부터 11월까지 열정 있는 왕. 왕 언니들 할머니 학교 개교 5월 24일 독산 4동 꿈씨 어린이 작은 도서관과 동일여고 학생들이 ‘마을과 학교가 함께 엮는 마을 이야기’ 진행 5월 25일

산아래문화학교 마을잡지 닮다 준비위원 네트워크 모임

5월 27일

금천구 청년 커뮤니티 교류회 ‘모두 잇다’개최

5월 27일 금천 도시 농업 네트워크와 도시 농업 시민 협의회가 마련한 꿈틀 어린이 학교입학식 5월 27일

은행나무 어린이도서관 리모델링 기금 마련 바자회

5월 31일

서울시 생활권 계획(안) 주민 설명회 개최

6월 9일

시흥5동 시흥 계곡 입구에서 금천 문화원의 주체로 제 16회 금천 단오 축제 열림

6월 9일

(구)한울 중학교 자리에 금천 문화 예술 정보 학교 개교

6월 17일

원테이블 스무 살 청년에게 성년식 및 소소한 골목 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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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24일

꿈씨어린이도서관 크리킨디 놀이학교

7월7일

시흥3동 박미사랑마을회관에서 금천 평화의소녀상 건립 후원의날 열림

7월10일

벽산아파트 1단지 변전실 화재 사고

7월13일

공정무역시민대사 양성과정 교육

7월14일

G –밸리 진로체험 페스티벌 금천구청일대

7월14일

제7대 금천구의회 개원3주년 기념행사 개최

7월15일

2017 우리마을 라디오스타 공개방송 개최

7월17일

주민자치센터 여름방학 체험 및 프로그램 모집

8월1일

내 마음의 문화발자국 금천문화재단 출범식 개최

8월15일

민들레워커협동조합 베틀수공예강좌

8월18일

산아래문화학교 닮다 잡지 창간 기념회

8월29일

자치분권대학 금천캠퍼스 개강

9월2일

금천레인보우 다문화 축제

9월4일

금천마을공동체센터 첫 출발 비긴어게인

9월9일

은행나무 어린이도서관 15번째 생일잔치

9월14일

크리킨디 골목축제 함께 꿈꾸다

9월16일

가산동백일장 우리마을 상상하기

9월22일

정조능행차 재현행사

9월23일

나눔으로 행복한 가산동 마을잔치 ‘마을이 좋다’

9월23일

독산2동 집들이 마을 대축제

9월30일

산아래문화학교 놀자축제

10월14일

금천 다문화 축제

10월14일

작은 도서관과 함께하는 동화 속 책 잔치

10월20일

시흥4동 새재미 마을 한마당

10월20일

금천예술공장 다빈치 크리에이티브 2017’ 전시

10월21일

가을걷이 축제 한마당

10월23일

주민자치회 위원 모집(10월23일~11월20일)

10월27일

금천사회적 경제기업 해노리장

10월28일

모두의 학교 개관식

10월30일

금천구 주민 인권배움터(10월30일~12월18일)

11월2일

마을기록 네트워킹 파티

11월2일,9일

마을교과서 따라가는 마을여행 여기 사는 내가 좋아

11월4일

유쾌상쾌 명랑운동회

11월6일

모드니에 초록커튼 프로젝트

11월7일

서울금천구 사진작가회 전시

11월9일

주민과 함께하는 도시학교

11월11일

독산4동 크리킨디 재밌는 골목 운동회

12월7일

산아래문화학교 ‘마스타’ 어린이사진작가전시회 -금나래아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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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로 보는 마을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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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겨울호에 붙이는 포스트잇

인국- 앗 겨울호다.

아리- ‘거기가 어디예요’를 자꾸 묻고

음 벌써 겨울호가 나왔군.

싶어진다. 사람들이 있는 그 곳이 궁금해진다.

그럼 내년은 더 기대되는군.

여행하는 삶....일상을 여행처럼 가볍게 공간을 가르고 사람들과 맛난 거 먹고

기옥- 좋은 공간이란 찾는 사람들이 원하는

작게작게 수다를 나누며 사는 게 최고지!

가치를 담고, 그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

그러다가 내가 지금 앉아있는 책상머리와

그저 화려하기만 해서 훌륭한 것은 아닐

방꼬라지를 보면서 누군가 했던 말이

것이며 소박하지만 특별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떠올랐다. ‘공간이 인간을 규정한다.’

잡지 ‘닮다’의 한 귀퉁이 마음의 공간을 허락

그러면서 점점 슬럼화되고 있는 나의

해 주심에 감사하다. Taxi!! 내가 행복했던

책상머리와 방과 사무실이 연결되면서

곳으로 가주세요~~

마구마구 불편해지고 있다. 에헤라 디야~ ‘씨이, 그러든가 말든가’....계속 뭔가

샛별-나는 글솜씨가 없어서 글쓰기가 무섭다.

씩씩거리게 된다. 무사히 잘가거라, 2017년

주워 담지 못하는 말과 다르게 글을 쓴다는

겨울호.

것은 오랜 시간 새겨지고, 남겨진다는 생각에 두렵기까지 하다. 하지만 묘하게도 ‘닮다’는

윤기- 마을잡지라니! 일전에 동네 친구가

자꾸 생각나게 만드는 주제 때문인지,

<닮다>에 글을 싣는 걸 보며 정말 멋있는

페이지마다 정겨움이 담긴 잡지 때문인지,

기획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을사람들이

편집장님이 매력적인 것인지 알 수 없게 오래

모여서 하고픈 이야기를 글로 쓴다는 것

알고 지낸 친구처럼 부담 없이 글을 쓸 수 있어

말이에요. 제게도 그 기회가 와서 열심히

즐겁다. 반가운 친구를 만날 기회를 계절마다

써봤습니다만 제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기다리게 된다. 서툴고 투박하지만, 더 오래

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좀 더 내 생활 같은

닮다와 함께하고 싶다. 이번 호는 글을 쓰기

글을 써볼 걸, 하고 자주 아쉬웠네요. 그래도

전, ‘어떤 곳을 담아 볼까’ 동네를 누비며

제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기회여서 기뻤답니다.

여행을 했다. 매일 오가던 골목길과 익숙한

<닮다>에서 만난 인연과 또 만날 인연들이

공간들이 오래전 추억이 담긴 여행지에 온 듯

자꾸 자꾸 넓어져서 소중한 사건들이

잊고 있던 기억들을 던져주며 눈에 익어

쌓여나가는 상상을 해봅니다. 제게 가슴 뛰는

무심했던 풍경들이 알알이 눈에 박히는 귀한

상상을 열어줘서 고마워요.

시간을 선물 받아 ‘닮다’가 더욱 고맙다. 선영-내가 좋아하는 장소를 같이 공유하면서 마음이 뜨거워졌어요. 내 삶에 또 하나 기분 좋은 의무가 추가 되었네요. 앞으로도 열심히 찾아볼까 해요. 아자아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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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희-우리는 항상 어떤 공간속에서 생활하고

디오-공간과 장소는 차이점이 있다고 한다.

있지만 그 공간에서 느끼는 편안함과

공간은 “아무 것도 없는 빈자리”이고 장소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지나갈 때가 많이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 특정한 곳”이다.

있다.

공간과 장소의 차이는 관계성에서 시작된다고

그 공간에 있었다는 것도 생각지 못할 때도

본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관계와 장소를

있다.

만들 것인가?

하지만 우리는 항상 여러 공간에서 생활을 하고 그곳에서 울고 웃는 일들이 일어난다.

하원-부족한 글을 써내려가다 공간에 대한

그곳이 의도하고 꾸며진 곳이든 사람의 손이

고민이 마을에 닿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지나간 곳이 아니든~

‘제3의 공간’은 ‘살이’의 유정함이 있는

이제 나만의 여유와 편안함을 주는 곳이

공간입니다. 삶이 소외되지 않는 마을에서의

어디였는지 한번쯤 생각해서 그곳에서 나를

따듯한 겨울나기를 생각해봅니다. 마을잡지

위한 시간을 보냈으면 한다~

‘닮다’ 겨울호가 훈김이 되어주길 바랍니다.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충분한 열정과

호~

노력으로 삶을 살고 있으니...

짱이-공간이 사람과 사물을 담는 곳이 아니라 내 삶을 내 의지를 그리고 내 가치를 함께 담고 있다라는 깨달음에 흠짓 놀랐다. 내가 머무르고 내가 스쳐지나가는 많은 공간들은 그냥 공간이 아니라 나의 지난 추억이고 역사이며 지금 나의 현재의 가치이고 머지않은 내 미래를 만들어가는 힘이라는 걸 이번 잡지를 편집하며 알게 되었다. 지금의 내가 궁금할 때는 내가 자주 혹은 가끔 들르는 공간들을 더 자세히 들여다봐야겠다. 잼 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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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겨울호 표지모델 동네에서 문화공간, 대안공간, 제3의 공간을 운영하고 있거나 그 속에서 활동 중인 박석준님, 송하원님, 엄샛별님, 정디오님, 조윤기님

마을을 닮아가는 마을잡지 ‘닮다’ 통권 제3호 — 발행일 2017년 12월 6일 마을잡지 닮다 2017‘ 겨울호와 함께 하신 분들 김환이, 김산복, 안성구, 장제모, 지기옥, 김예슬, 장인국, 조윤기, 위성요, 김홍신, 정디오, 고원석, 박새솜, 송하원, 김은아, 진선희, 임선영, 배진희, 김유선 그리고 익명의 필자 1인 편집 김유선 디자인 알로하 스튜디오 후원 산아래문화학교 지원 서울시마을미디어지원센터


통권 제3호

마을을 닮아가는 잡지 마 을 을 닮 아 가 는 잡 지 닮 다

2017 겨울호 금천 마을 잡지

거기가 어디예요? 마을잡지 닮다 편집모임 + 서울시마을미디어센터

이름의 공간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첫 키스를 나눴던 비둘기공원 제3의 공간 거기엔 사람이 있다 청년, 공간을 이야기하다 2017년 포스터로 보는 우리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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