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잡지 <성수동쓰다> (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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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기 마을잡지

2020 10월

부정기 마을잡지

성수동쓰다 vol. 10

vol. 10


&quot;여름은 어릴 적 숲에서 놀았던 즐거운 추억을 되살린다. 아침에 밖에 나가서 해질 때까지 놀고 있어. 좋아하는 곳에서 새로운 것을 찾고 있다.&quot; &#39;숲&#39;을 주제로 한 [성수동 쓰다] 10월호에 그림으로 인사드리는 벤자민입니다. 한국에 거주 중인 미국인 아티스트 겸 일러스트레이터입니다. 아티스트로서 재활용가능한 재료들로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인 작품들을 만들고 있으며,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사람, 식물, 동물의 평범한 삶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quot;Summer time brings back the fun memories of playing in the forest as a child. Going outside in the morning and playing until dusk. Looking for new things in favorite places.&quot; This picture was created by Benjamin for the October issue of Sungsoodong Sseuda magazine on the theme of &#39;Forest&#39;. Benjamin, an American artist and illustrator who currently lives in South Korea, creates geometric abstract art, often with reused and repurposed materials. His illustrations show the ordinary life of people, plants and anim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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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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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살아남아 함께 살아갑시다

숲과 집과 일! 올해의 &lt;성수동 쓰다&gt;를 만들 때, 우리 편집위원들은 상의했습니다. 성수동을 가장 성 수동이게 만드는 세 단어는 무엇일까 물었습니다. 여러 이야기 중에, 서로 공통적인 것 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들이 함께 묻고 보고 살펴 이야기하고픈 주제들이었습니다. 숲은 서울숲을 포함한 자연을 말합니다. 특히나 서울숲은 어째서 이렇게나 사랑받고 있 을까? 궁금했습니다. 서울숲은 살아있습니다. 단순히 관리되는 숲이 아니라,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가고 있는 곳입니다. 서울숲은 ‘시민들’이 위탁을 받은 첫 번째 숲이라는 점 에서 그렇습니다. 서울숲 조성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꾸준히 시민들과 기업들의 자발 적 지원과 봉사로 숲이 꾸려집니다. 그 안의 촘촘한 이야기들 담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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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은 큰 변화를 가졌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집들일 것입니다. 오래 비어있던 너른 공장들이 가장 놀랍게 변신을 했습니다. 소박한 모습으로 삶을 영위하던 이웃들이 떠나 고, 그곳을 지식산업센터가 채웠습니다. 딱 10여 년 전만 해도 겨우 서너 개에 지나지 않았을 지식산업 센터가 열배 쯤 늘었을 것입니다. 서울숲이나 한강 같은 곳을 독점해 전망하려는 고급주거들도 늘고 있습니다. 한강변을 낀 구 성수동 지역은 재개발 조합이 속속들이 결성되고 사업을 앞두고 있습니다. 집들과 골목의 풍경을 통하면 우리 삶의 모 습을 살피고 기록할 수 있습니다. 성수동은 오래 전부터 생산의 땅이었습니다. 오랜 동안 이곳은 한강과 중랑천이 감싼 물 의 도시였습니다. 100여 년 전에 이곳엔 농장, 농토가 있었고, 60여 년 전부터는 도시화 되는 서울의 소비를 공급하는 산업의 땅이었습니다. 구두와 인쇄와 차량 정비와 기계 같 은 도시 산업들 시설들이 곳곳에 뿌리박고 있었습니다. 이제 성수동은 서비스 및 정보기 술과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화이트컬러, 골드칼러가 블루칼라를 압도할 것입니다. 성수동 곳곳에 뿌리를 내린 기획자들, 예술가들과 만날 수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쉽게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조금만 주의 를 기울인다면 그들과의 접속도 얼마든 가능합니다. &lt;성수동 쓰다&gt;를 만들어 온 지 어느새 4년여가 되어갑니다. 2012년 &lt;성동아 마실 가자&gt; 로부터 시작되어온 일이니, 마을 안에서, 마을 이야기를 살피고 지어온 지도 9년여입니 다. 요즈음은 ‘성수동’과 ‘비성수동’이라는 말도 듣습니다. 성수동의 변화가 그만큼 크고, 의미가 깊다는 뜻일 것입니다. 성수동에 오롯하게 집중해 보겠습니다. 그를 통해 보다 넓은 마을, 우리 사회, 우리들의 모습을 짚어보겠습니다. 참, 안 물어보셨고, 안 궁금하시겠지만, &lt;성수동 쓰다&gt;는 매해 세 번쯤 만듭니다. 이 책 은 누적 열 번째 책이고, 올해 내는 첫 책입니다. 10월에 첫 책이라니. 우리 스스로도 놀 랍습니다. 봄과 여름과 가을에 계간처럼 내던 &lt;성수동 쓰다&gt;를 올해는 월간 &lt;성수동 쓰 다&gt;로 내게 생겼습니다. 이게 다 그 코로나19 때문 혹은 덕분입니다. 부디 여러분도 늦 고 미약하더라도, 계획했던 일 차근차근 마무리해 가시기 바랍니다. 또 함께 살아남자는 기원도 드립니다. 우리가 먼저 살아야 저들을, 그리고 우리 지구도 구하는 길에도 같이 갈 수 있을 터이니 까요. 성수동쓰다 편집장

원동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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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0월호

Contents

하나, 숲

발행인 publisher

원동업

편집장 editor in chief 원동업 편집위원 editor 이상국, 서성원, 채수원, 어효은, 권경덕 디자이너 designer 강민경 일러스트 illustrator 벤자민, 임소진, 어효은 사진 photographer 서성원 기고 contributing writer 이유상, 서수아, 정윤주, 민선희, 강보선, 고지훈, 노영범, 김도윤, 정수기, 백영화, 이서연, 홍효정

발간 성수동쓰다 편집위원회 마디마디[마을디스커버리 마을디자인] 마을미디어 빅픽처-세 개의 풍경 후원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동네잡지 &lt;성수동쓰다&gt;는 2020 서울마을미디어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08 서울숲 컨서번시 소식지 편집자 김나연-신지은 인터뷰

12 걷기 싫지만, 걷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서울숲

16 냥이와 함께 정원을 산책해요

20 경마장 가는 길

*이 책에 실린 원고의 내용은 &lt;성수동쓰다&gt;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표지 벤자민 마이심툰

23 뚝섬경마장이 서울숲으로 바뀌는 동안, 김현유 씨의 삶의 궤적

둘, 집

28 메가박스 스퀘어 성수 방문기

32 그랑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옛 악동들 다시 어릴 적 동네 성수동을 기록하다 2019 서울숲, 살구나무 아래서 윤정자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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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사진 에세이

서울숲은 그들의 집이다

넷, 코비드시대

66 골목의 생명

38 정수기의 무장애여행

69 흰머리 오목눈이

41 성수동 라이브 음악 공간 게토얼라이브

72 왼손으로 그린 그림

코로나시대, 혼자서 휴일 하루를 보내는 방법

74 UNTACT ART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예술 셋,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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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성수동 사람들

진로를 찾는다는 것

50 숲과 집과 일과

54 발걸음을 붙드는 서울숲 피아니스트의 연주

57 걷고 뛰는 일상이 내게 남긴 것

60 지속가능한 헌책방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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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6

서울숲을 뛰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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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동업


서울숲 컨서번시 소식지 편집자 김나연-신지은 인터뷰

이야기도 싹을 틔우고 줄기 뻗는다. 소통을 위하여… 서울숲 컨서번시가 내는 월간 소식지 &lt;서울숲 지킴이들의 훈훈한 이야기-서울숲 컨서번시&gt; 의 편집자 둘을 만났다. 코비드19의 시대를 통과하고 있는 서울숲 사람들, 동물과 식물들 그리고 ‘월간 서울숲’ 이야기를 들었다. 김나연 신지은 매니저의 이야기는 구분 없이 섞었다.

원동업

- 윤정자 선생님은 안녕하신지 궁금합니다.[이 분은 서울숲의 자원봉사자다. 3~4년 전 서울숲 내 숲속도서관에서 처음 만났다. 지난해도 서울숲 축제에서 열매를 활용한 브러 치, 현수막을 재활용한 앞치마나 가방을 만들며 방문 시민들과 함께 했었다.]

“코비드19로 60세 이상의 자원봉사자 분들과는 못 봬요. 최근까지 모든 외부 자원봉사자 활동도 금지됐었으니까요.” “서울숲엔 아이들이 정말 많았어요. 유치원도 안 가고, 학교도 안 가니까. 어디 갈 데도 없고. 퀵보드랑 자전거 타는 애들이 몰려 다니곤 했어요.” - &lt;서울숲 지킴이들의 훈훈한 이야기-서울숲 컨서번시&gt;가 제호입니다. 간단히 ‘월간 서울숲’이라 부르죠. 창간 때 이야기부터 해주세요.

“처음엔 내부에서 보는 사내지 성격으로 출발했어요. 저희가 내부 스텝들과 기 간제근로자분들도 많으셔서 내부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과제였거든요. 글만 있 고, 인쇄도 우리 사무실 복사기로 돌려서 출력하자 했죠. 교회서 내는 주보 같았 어요. 그러다 중간에 판형이 커졌죠. 두 번 접혔던 걸 펴 달력으로도 쓸 수 있게 되 면서 외부에도 배포했죠. 현재는 중철 형태로 8쪽의 책 모양이에요. 이게 다 버려 질 텐데…, 이렇게 만들어도 되나 하는 갈등은 좀 있어요.” 8


- ‘월간 서울숲’이 주력하시는 내용이 궁금합니다.

“시설이나 녹지나 살림하고 똑같아요. 열심히 하는 건 티가 안 나고, 안 하면 바 로 드러나거든요. 두 팀은 늘 과제가 산적해 있어요. 시설 같은 경우도 전기나 소 방처럼 언제나 중요한 부분도 있고, 노후 문제도 있고 하니까. 내가 왜 이 일을 하 는지 어쩌면 생각해 볼 기회가 없으실 수 있으니까요. 인터뷰를 하면 스스로 정리 의 시간이 되기도 하시는 것 같아요.” “서울숲 관리는 크게 시설과 녹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어요. 때로 긴장이 생 기기도 해요. 예를 들면 시설팀은 씨씨티브이를 설치해서 어떤 지역을 관리하고 자 하죠. 시야를 가리는 나뭇가지는 치고 싶어해요. 녹지팀에서는 그런 일로 나무 를 자를 수 있느냐는 입장이거든요. 소식지는 내부 직원들의 인터뷰를 지속해 왔 고, 직무 영역간의 이러한 간극을 메워요.” - 서울숲은 동물들의 보금자리이기 하잖아요. 때로 유기되는 동물도 있다고 들었습니 다.

“집에서 키우던 햄스터, 기니피그, 토끼, 자라, 거북이 같은 걸 ‘방생’하시는 분도 있으세요. 집이랑 먹이랑 다 챙겨서 고양이나 개를 놓고 가시기도 하구요. 서울숲 에 토끼장이 있으니까, 기르던 토끼를 ‘기증받아 줄 수 없느냐?’ 질의도 있어요. 9


[최미선 사육사는 지난 6월호 소식지에서 이를 ‘엄밀히 말하면 유기’라고 비판했 었다] 그런 요구는 거절해요. 보호해 드리지 않아요. 더 버려질 수 있거든요. 저희 도 수컷 토끼는 사슴방사장에 있어요. 개체수 제한을 위해서요.” “두꺼비들이 물을 좋아하고, 가끔 배수구 밑에도 들어가요. 어떤 분들은 그 소리 를 듣고는 새가 갇혀있다고 전화를 주세요. 오리 소리 같기도 하거든요. 사슴들도 뿔갈이를 할 때 그 부분이 가려우니까 나무에 긁기도 해요. 그럼 피도 나죠. 그런 모습을 보시고는 ‘사슴들이 자해한다’고도 하죠.” - 어떤 소망이 있으신지요?

“서울숲 반상회가 아니면 여기 성수동 주민분들 만날 기회가 저희도 거의 없는 거예요. 그게 아쉽죠. 함께 할 수 있는 일, 해야하는 일도 있거든요. 일로라도 만 났으면 좋겠어요.” 서울숲은 시민들과 함께 커온 숲이다. 소식지 팀도 서울숲파크 스토리텔러(파스텔)나 서울 숲 대학생기자단을 운영했었다. 생태숲서 자원봉사자들과 함게 채종한 리야트리스 씨앗을 소식지에 붙여 나눈 적도 있다. 씨앗을 퍼뜨리는 숲의 생명들처럼 ‘월간 서울숲’의 이야기들 도 곳곳에 퍼져 씨앗을 틔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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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숲은 2016년 11월 1일, 서울숲 컨서번시가 관리 주체가 되었다. 시민단체가 서울숲처럼 큰 도시공원을 맡아 관리하는 것은 유례가 없는 도전이었다. 올 8월호 로 25호를 낸 ‘잡지’ &lt;서울숲 컨서번시&gt;는 이들의 탄생과 성장을 고스란히 담아왔 다. 단체나 조직은 언제나 두 가지의 과제를 안고 있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분명히 갖는 것, 내부 구성원간의 소통이다. ‘월간 서울숲’은 서울숲 지킴이들의 인터뷰와 이를 나눔으로써 과제에 부응한다. 이들의 5년여간 기록은 서울숲 컨서번시 홈페 이지에서 PDF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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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싫지만, 걷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서울숲 권경덕

1. 탈출 서울숲이 2005년 6월에 개장할 당시, 나는 고3이었고 6월 모의고사의 여파로 교실 안팍 으로 스산해진 분위기를 통과하고 있었다. 입시 준비로 세상물정엔 관심을 두지 못했지만, 어떤 인연으로 수능을 두 번 본 후에 서울숲과 가까운 대학에 입학했다. 얼마간의 자유를 얻은 신입생들은 공부보다는 남는 시간을 어디에서, 누구와 보낼 것인가에 골몰한다. 무리짓기에 성공한 새내기들은 앉을 만한 잔디도 없고, 아스팔트 산 같은 삭막한 학교 밖을 배외하다가 어쩌다 서울숲에 닿고, 서울숲을 걸으며 공강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런 중에도 나는 서울숲에 가지 않았다. 주로 당구를 치거나 낮술을 마셨다. 내가 서울숲에 처음으로 간 것은 10년이 흘러 졸업할 때쯤이었다. 서울숲 근처로 이사하고 나서였다. 생활 권 안으로 서울숲이 들어오자, 일부러 찾아 가기도 하고, 응봉교와 성수대교를 건너 압구정 에 가거나 한강을 보러 갈 때 서울숲을 거쳐 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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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꽃사슴 서울숲 설계공모는 2003년 1월 공고되어 3월 당선작이 발표되었다. 성동구 성수동의 35 만 평에 달하는 대규모 지역으로, 이전에는 경마장과 골프장이었다. 총 사업비는 2510억이며 그 가운데 공사비만도 500억이 넘는 초대형 프로젝트였다고 한다. 살면서 내가 설계, 공사한 평수라고 해봐야 1평에서 3평 남짓한 원룸 DIY 꾸미기 정도였으니, 35만 평의 규모는 상상 이 되지 않는다. 참고로 뉴욕 센트럴 파크는 100만 평이 넘는다. 서울은 산이 많지만 생활 주 변의 녹지 공간이 부족하여 시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공원조성이 필요하다는 설계지침에 따랐다고 한다. 서울숲은 그 지침에 어느 정도 들어맞는 것 같다. 나 역시 등산은 부담스럽고, 피톤치드와 비인간 생명들이 그리울 때 서울숲을 찾았다. 서울숲 근처도 자주 걸었다. 처음 독립해서 살게 된 동네에 대한 애정과 호기심이 어디든 걷 게 했다. 응봉산 팔각정에 올라 중랑천과 한강이 만나는 물길을 보기도 했고, 노을이 질 때쯤 엔 오래된 빌라와 주택이 밀집한 사근동 오르막길을 걸으며 길쭉한 그림자와 동행하기도 했 다. 그러다 녹음을 보고 싶고, 흙길을 걷고 싶고, 꽃사슴을 만나고 싶을 때 서울숲으로 향했 다. ​​ 3. 자동차 의식해서 걷기 시작한 후부터, 내가 사는 도시가 보였다. 서울은 자동차 친화적인 도시다. 지도 어플을 확대하고 축소하며 서울 지리를 둘러보는 취미가 생겼다. 서울은 각종 자동차 도로 - 간선도로, 순환도로, 고속도로, 터널, 자유로, 외곽도로, 전용도로, 강변북로, 올림픽대 로, 한강대교…… - 가 덩굴 식물처럼 뒤엉켜 도시를 점령한 것처럼 보였다. ​리베카 솔닛은 &lt;걷기의 인문학&gt;에서 이렇게 말했다. ​&quot;공공장소는 아스팔트의 바다에 떠 있는 건물이 되고, 도시 설계는 한갓 교통공학이 된다.&quot; ​또 이런 이야기도 했다. ​&quot;육체노동에서 해방되어 감각 차단실과 다름없는 거주공간, 사무공간 안에 집어넣어진 이 몸 뚱이에게 남은 것은 성애적 육체성이라는 잔여물뿐이다. (…) 성애가 이토록 강조되는 것은 많은 사람에게 육체성의 다른 측면들이 마비되어 있기 때문임을 기억하자는 뜻이다.&quot; 움직임의 제한이 초래하는 감각의 불균형이 왜곡된 성애라는 부작용을 초래하기도 한다. 마 비된 감각을 깨우기 위해 솔닛은 걷기를 제안한다. 걷기는 단순히 어디로 가기 위한 수단 이 상을 의미한다. 우리는 목적지 없이 걷기 그 자체를 위해 걷기도 하고, 산책의 역사는 그런 방식의 걷기를 실천한 사람들을 보여준다. &quot;나는 걸을 때만 사색할 수 있다. 내 걸음이 멈추 면 내 생각도 멈춘다. 내 두 발이 움직여야 내 머리가 움직인다&quot;고 말한 루소도 그 중 한 사 람이다. 지금 내 몸의 감각이 불균형하거나 생각이 꽉 막힌 것 한다면, 걸으라는 몸의 신호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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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보행자의 시대 나는 면허는 있지만 차는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내가 차를 사는 날보다 자율 주행 의 시대가 먼저 올 것 같기 때문이고, 언젠가 자동차와 운전자의 시대가 저물고 걷기, 킥보드, 자전거, 휠체어의 시대가 올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아직 충분히 그런 시대는 아니니까, 주변 에 걷기 좋은 길이 없다면 찾아 가는 수밖에 없다. 걷기 좋은 동네를, 걷기 좋은 공원을. ​​ 5. 명상 성수대교 북단 교차로에 있는 서울숲 10번 출입구로 내려가면 오른쪽 편에는 꽃사슴 방 사장이 있고, 왼쪽으로 돌아가면 숲속길로 향하는 내리막길이 나온다. 몇 년 전 아침에 카페 오픈 알바를 할 때, 일을 마치고 성수대교를 건너 집으로 돌아올 때, 서울숲 길을 일부러 통 과하곤 했다. 숲속길을 걷다가 벤치에 앉아 앞 뒤로 빽빽한 은행나무 숲에 둘러싸여 있으면 도시의 산만함을 잠시 잊고 고요해질 수 있다. 가끔씩 꽃사슴 방사장에 들러 먹이를 주기도 했다. 꽃사슴 혓바닥이 내 손등을 쓸고 갈 때의 느낌이 그리울 때가 있다. ​​ 6. 씨앗 걷기 위해 항상 서울숲을 가는 건 아니지만, 서울숲에 가면 걷게 된다. 지금은 다른 지역 으로 이사해서 서울숲까지 걸어서 가진 못하지만, 또 걷고 싶을 때 꼭 서울숲을 가야 되는 건 아니지만, 서울숲에서 만났던 사람들, 생명들, 풍경들이 생각날 때가 있다. ​&quot;한 장소를 파악한다는 것은 그 장소에 기억과 연상이라는 보이지 않는 씨앗을 심는 것이 나 마찬가지다. 그 장소로 돌아가면 그 씨앗의 열매가 기다리고 있다.&quot; (걷기의 인문학 / 리베카 솔닛) ​이런 이유로 가끔씩 서울숲을 생각하고, 서울숲을 걷는다. ​&quot;새로운 장소는 새로운 생각, 새로운 가능성이다. 세상을 두루 살피는 일은 마음을 두루 살피 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세상을 두루 살피려면 걸어 다녀야 하듯, 마음을 두루 살피려면 걸어 다녀야 한다.&quot;​ 또 이런 이유로 새로운 장소들을 찾게 된다. 세상을 두루 살피면서, 오래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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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효은


서울숲 습지생태원 옆 챌린지 가든 조성 이야기

냥이와 함께 정원을 산책해요 민선희 20여년간 대학연구소 및 외국계기업에서 교육전문가 및 강사로 활동하다가 2018년에 서울숲 도시정원사 4기 를 수료하였다. 미혼모시설인 애란원에 공동체정원을 조성하고 있으며, 최근 놀멍쉬멍가드닝클럽 @nolmung_garden을 만들어서 도시생활의 쉼표를 만들기 위해 숲과 정원을 돌보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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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숲 습지생태원은 예전 중랑천의 잦은 범람으 로 인해 물을 가두어두는 공간으로 사용되다가 빗물펌 프장 등이 생겨서 범람의 위험이 없어지면서 서울숲으 로 편입된 공간이었다. 물이 잠기던 공간이라서 그에 맞춰서 자연스럽게 습지가 조성되었고, 예전에 사용되 던 기둥들이 그대로 남아있어서 뭔가 버려진 공간의 느낌도 있고 서울숲의 한쪽 구석에 치우쳐 있어서 사 람들이 자주 가는 곳은 아니었다. 나 또한 서울숲을 자 주 갔어도 주로 중앙 잔디광장과 식물원 주위를 가던 터라 [챌린지가든]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처음 습지생 태원을 방문하였다. 정원사학교 첫걸음과정을 이수한 도시정원사 4기 동 료들과 [챌린지가든]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기둥을 오 브제로 해서 어떤 메시지를 보여줄까 고민을 했다. 정 원이란 단순히 예쁜 꽃과 나무를 심는 것의 의미가 아 닌 정원을 통해 우리의 생각을 돌아보고 우리의 관계 를 새롭게 만들어 가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서울 숲에서 늘 만나던 고양이를 소재로 하여 [냥이의 정원 산책]이란 정원을 조성하게 되었다. 함께 활동하는 최 성윤 작가님의 고양이 그림을 기둥에 설치하고 그 주 변에 향기가 좋은 식물들을 심어서 나비가 찾는 나비 정원의 느낌을 살리고자 했다. 서울숲에는 고양이를 돌보는 자원봉사자들이 있어서 밥자리를 정기적으로 돌보고 있었고, 사람들도 고양이들에게 다정하게 대해 서인지 서울숲 곳곳에서 사람들과 함께 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우리가 조성한 [냥이의 정원산책] 에 설치된 고양이 작품들은 서울숲에서 늘 만나던 고 양이들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처음 설치했던 턱시도 고 양이 그림은 설치 후 2일만에 도난맞아서 아직까지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 가드닝하면서 늘 안타까운 것은 방문객들이 숲과 정원을 즐기는 것에서 만족하지 않고 임의로 꽃이나 나무들, 때로는 설치물까지 가져가는 것이다. 모두를 위한 공간에서 모두를 행복하게 하기 위한 아이템들을 개인적 욕심으로 훔쳐가는 것은 정말 앞으로 없어져야할 일이다. 17


첫번째 챌린지가든 조성이 끝난 후 가족과 친구들을 초청해서 챌린지가든 파티를 진행하였고, 서울숲에 방문한 사람들에게 챌린지가든의 의미와 각 정원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챌린지가든투어도 기획해서 진행하였다. 공교 롭게도 챌린지가든투어가 진행될 때 비가 많이 왔지만 비옷과 우산을 쓰 고 숲속을 돌아다니는 기분은 우리만의 모험 같은 기분을 들게 만들었다. 챌린지가든투어는 우리 정원의 이름처럼 [냥이의 정원산책]이라는 부제로 진행되었는데, 고양이의 시선처럼 낮거나 높은 또는 구석진 곳을 바라보 는 식으로 전개되었다. 익숙하다고 여겨졌던 서울숲이라는 공간을 고양이 의 시선이라는 낯설게 돌아보면서 숲과 정원이라는 공간이 사람만을 위한 공간이 아닌 모든 생명을 위한 공간이며 서로의 관계를 맺는 자리가 된다 는 것을 가든투어를 통해 경험할 수 있었다. 화창하고 편안할 때, 아름다울 때만 찾는 것이 아닌 비가 오거나 흐린 날씨일 때도 늘 숲과 정원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올해도 [챌린지가든]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는데 작년 3팀에서 올해 6팀이 늘어나서 2배의 정원이 조성되었다. 아쉽게도 작년 참가팀 중에서 올해도 참가한 팀은 우리 [냥이의 정원산책]뿐이었다. 그래도 학생팀, 직장인팀, 가족팀 등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참여하여 작년보다 색다른 느낌으로 조성 되었다. 가드닝에 관심을 갖고 있는 초보들이 모여서 각자가 생각하는 정 원에 대한 이미지와 아이디어를 구체화시켰는데, 까치가 그려져 있는 까치 정원, 새 둥지가 있는 정원, 아이를 위한 정원 등 생명과 관계의 이야기가 다양한 방식으로 조성되었다. 18


서울숲 컨서번시가 벌이는 쓰담쓰담(쓰레기를 담아요) 프로젝트에 참여한 청소년 (좌 손미르 윤지환)들이 냥이 정원 주변을 청소하고 있다.

정원은 내가 계획해서 조성할 수 있지만 식물은 내가 생각한 형태와 크기 를 구하기도 쉽지 않고 심은데로 자라게 하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식물은 스스로 가장 잘 자랄 수 있는 형태를 알아서 찾아나가기도 한다. 모든 일은 내가 수고한 시간과 노력에 좌우되지만 그래도 시간의 흐 름이 필요하다는 것을 현저하게 알게 되는 것은 가드닝이라고 생각한다. 어른이 되어 가드닝이라는 취미를 갖게 되어서 때로는 몸이 힘들 때도 있지만 잡초를 뽑을 때는 답답한 마음을 뽑아내는 것 같다. 그리고 서울 어디에 나를 기다리는 정원이 있다는 것은 흡사 어린 시절에 읽었던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처럼 나만의 친구가 생긴 느낌이다. 특히 나이가 먹어가면서 취향이 맞는 사람을 만나기 어려운 데, 가드닝을 통해 취향이 맞는 친구들과 소소히 시간을 보내는 것의 의미를 알게 된 것 이 큰 발견이라고 본다. 게다가 [냥이의 정원산책]을 조성하면서 개인적으 로 마당냥이들을 돌보면 현재 2마리 고양이의 집사가 된 것도 정원이 주는 관계와 인연의 의미를 몸소 깨닫게 된 것이라고 본다. 앞으로 서울숲 챌린 지가든 프로젝트가 언제까지 진행될 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만든 [냥이의 정원산책]은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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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 마 장

해나의 몸매를 보고 싶었다. 야외 수영장에 가자고 이리 꼬

가 는

시고 저리 꼬셔도 죽어도 안 간다고 고집을 피웠다. 실은 그

까? 이제는 멋진 접영 폼으로 해나에게 감동을 주기로 했다.

녀에게 제비 같은 내 몸매를 보여주고 싶었다. 봄 학기 동안 시내 유일의 실내수영장인 YMCA에서 열심히 물과 싸웠다. 다른 부분은 제비가 되었지만 배는 아니었다. 임신한 제비랄 그런데 요 앙큼한 것은 아직도…. 청룡기 고교야구선수권대회가 있었다. 연속 노히트노런으 로 유명한 최동원 투수가 승승장구하던 시절이다. 나는 농구

숸 채

를 좋아하지, 땡볕에서 그을러 촌티가 줄줄 나는 야구는 별 로였다. 몇 년 전 고교 철완 투수였던 남우식이 동기라며 응

원 가자는 과 친구에게 끌려 야구장에 가본 게 유일했다.

해나는 야구를 잘 이해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공격에는 홈 런이, 수비에는 삼진이 최고라는 정도를 아는 수준이었다. 최동원이 신문과 TV에서 판을 쓸고 있어 그의 경기를 보지 않으면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꿀린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의 경기를 보고 싶다고 졸랐다. “성도 비슷한데 나를 실컷 보는 게 어때.” 이 말에 발끈했다. “비슷하다니! 최동원이 쓴 안경은 지적으로 보이지만, 네가 쓰면 꺼벙이야.” 재빨리 야구장에 가자는 말로 수습했지만, 나도 집에 가면 귀한 자식인데, 이런 말까지 들으니 자존심이 팍 상한다. 하 지만 그 동안 퍼부은 데이트 비용이 아까워 속으로만 씩씩거 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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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장의 땡볕, 정말 싫었다. 청룡기 대회는 인기가 높아 매표소가 문을 열자마자 동이 난다. 토요일 새벽에 나가 줄 서기는 정말 싫은데…. 그 때 아이디어가 번뜩였다. 해나와 오후에 동 대문 시장에서 만나 안주와 소주를 샀다. 그녀는 새벽부터 대기해야 표를 산다는 것은 꿈에 도 모를 것이다. 매표소로 갔다. 당연히 매진이었다.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아저씨 야매표 있어요.” 나 같은 짠돌이가 비싼 암표를 살 리가 없다. “이런 불법 거래는 사라져야 해. 타락한 꼰대들이나 사는 거야.” 해나가 꿍얼대려다가 이 소리를 듣고는 입을 닫는다. “좋은 곳이 있어. 서울운동장 뒤쪽에 멋진 풀장이 있어. 작년 아시아 선수권대회도 열린 곳으 로 50m 풀과 10m 높이의 다이빙대까지 있어. 여자 하이다이빙 선수들이 물 위로 나는 것은 예술이야. 수영복도 물안경도 다 빌릴 수 있어.” “됐거든!” 삐진 해나에게서 찬바람이 쌩 불었다. ‘암표 대령이 남친의 의무다.’라고 생각하나 보다. 그날 내 주머니는 얄팍했다. 입대를 앞둔 진상에게 술 먹이고 여관에 여자랑 쳐 넣느라고 탈탈 털 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녀에게 표 사라고 구걸하기는 싫었다. 토라져서 휑하니 집에 가 버리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아니었다. 집에서 나올 때 챙 큰 모자며 선글라스까지 걸치고 나왔으니 일찍 집에 가기는 민망했을 거다. 하지만 나는 수영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럼 시원한 뚝섬유원지로 갈까?” “또 수영하자고? 싫다면 포기할 줄도 알아야지. 넌 여자 마음을 몰라!” “아냐! 뚝섬에 가면 보트도 탈 수도 있고… 경마장도 있잖아. 영화에도 많이 나오는 귀족들 의 스포츠 경마!” 이 말을 하고는 바로 후회했다. 나는 귀족이 아닌 빈털털이다. 그 곳에 갔다가 망신만 당할 것 같았다. 해나가 보트를 타러가자고 하기를 바랐다. “그래 좋은 생각이야. 난 한 번도 경마장에 가 본 적이 없어. 네 덕분에 그런 구경까지 할 줄 은 몰랐네. 직접 경마에 돈을 걸어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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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털털이는 고민이 되었다. 주말이라 국립의료원에 가서 피를 팔수도 없고…. 그녀에게 끌려 버스를 탔다. 경마장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지 않으려고 자는 척했다. 해나가 깨워 하 는 수 없이 내렸다. 뚝섬 경마장 입구는 영화에서 보던 푸른 잔디가 깔린 화려한 모습은 아 니었다. 택시들이 줄지어 주차해 있고, 조금 들어가니 말똥 냄새가 코를 찌르는 허름한 마 구간 건물들이 보였다. 바닥도 포장이 잘 되지 않아 울퉁불퉁했다. 경마장 안은 야구장보 다 더 초라했다. 거기에 온 사람도 화려한 정장을 입고 우아하게 쌍안경을 들고 말들을 지 켜보는 사람은 없었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허름한 복장을 한 사람들이나 장바구니를 들고 온 아줌마가 대부분이었다. 그저 그런 사람들이 소주를 마시며 왁자지껄하게 소리치고, 아쉬움의 한탄을 내뱉고 있었다. 복도에는 경마 예상표를 팔았다. 그 중 하나를 샀다. 승리 가능성이 적으면 배팅하는 사람 이 적어 배당금이 많아진다는 것도 알았다. 나이가 꽉찬 호주산 ‘에이원’이라는 말의 우승 을 예상하고 있었다. 리스트 중 ‘똥덩어리’라는 향토적인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6등 하면 잘 하는 거라고 쓰여 있었다. 왠지 동정이 갔다. 더럭 그 말에 돈을 걸었다. “미쳤니? 왜 그 말에 거니?” 해나가 사납게 말을 뱉었다. “수영 못해서 미쳤다. 왜?” 출발 신호가 울렸다. 역시 ‘에이원’이 앞서고 있었다. 똥덩어리는 끝에서 두 번째에서 뒤뚱 거리고 있었다. 체념했다. 두 바퀴째에서 4등으로 올라오고, 마지막 바퀴에 2등으로 들어 왔다. 해나와 얼싸안고 기뻐했다. 이 말에 돈을 건 사람은 거의 없었다. 배당이 많았다. 잘 하는 놈이 우승하는 것보다는 못생긴 놈이 선전하는 것은 몇 배의 기쁨을 주었다. 해나의 몸매는 눈에서 사라졌지만, ‘똥덩어리’ 덕분에 명동 로즈가든에 가서 생맥주로 축배를 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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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섬경마장이 서울숲으로 바뀌는 동안,

김현유 씨의 삶의 궤적 구술:김현유, 정리 서성원

김현유 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전북 장수에서 나고 자랐다. 어쩌다 성수동에서 살게 되었다. 그 후로 성수동을 떠난 적이 없다. 그에게 성수동은 고향과 다르지 않았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게 사람의 앞날이라고 하지. 그에게 큰 사건이 벌어졌 다. 지난해 10월이다. 나는 성수동 주민 김현유 씨를 경일고 체육관에서 만났다. 경일배드민턴 클럽. 그는 배드민 턴만큼 술을 좋아했다. 운동 끝나고 우리는 자주 어울렸다. 그런 연유로 그의 속살을 좀(?) 알 게 되었다. 그의 과거는 성수동의 역사였다. 그의 삶의 궤적을 세 번에 걸쳐서 되짚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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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섬과 인연 나는 79년에 철원에 있었다. 그곳에서 군대 생활을 했다. 사단장 이기백, 나중에 전두환과 함 께 정치판에 뛰어들었던 사람이다. 이렇게 어수선한 시절에 군복을 벗고 민간인이 되었다. 그때 연락이 왔다. 집안사람이 공장을 하는데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그곳이 뚝섬이었다. 양 말 공장이었다. 서울숲 지구대 근처에 있었다. 내가 맡은 일은 판매였다. 뚝섬경마장과 뚝섬유원지 양말 공장에 어떤 사원이 있었다. 그녀의 집은 상원마을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회사와 상 원마을 사이에는 교통편이 불편했다. 게다가 그녀의 집은 시내버스에서 내려서 한참 걸어야 하는 곳에 있었다. 나는 오토바이로 그녀를 태워 주었다. 선녀가 밤길을 걷게 할 수가 없었 다. 나는 오토바이를 탄 흑기사였던 셈이다. 그녀와 나는 뚝섬경마장에 가기도 했다. 경마를 구경했다. 경마장 가운데에는 골프장이 있었 다. 그곳은 일반인들은 들어갈 수 없었다. 또 우리가 찾는 곳은 뚝섬유원지였다. 아름드리나 무가 있고 보트를 탈 수 있는 그곳은 우리의 최고 데이트 장소였다.

성수동 갈비골목은 옛날 경마장 가는 길의 국밥집, 고깃집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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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숲 가족마당 뒤편 살구나무들 아래

뚝섬공원이 서울숲으로 선녀와 나는 결혼은 했다. 성수1가2동 670번지 57호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아이들이 태어났 다. 바쁘고 분주한 세월이었다. 내가 하는 일은 그대로였다. 인생살이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게 마련이다. 나도 한때 잘나 갔던 시절이 있었다. 양말을 가져다 달라고 점포에서 아우성을 치던 시절이 있었다. 아이들 뒷바라지하느라 바쁘게 살았다. 그러는 가운데 동네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뚝 섬경마장이 서울숲으로 바뀌었다. 서울숲에 자주 갔을까. 그러지 못했다. 그 무렵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에 매달려 있었다. 쉬는 날 몇 번인가 김밥과 돗자리를 챙겨서 갔을 뿐이다. 서울 숲을 처음 개장했을 땐 나무 그늘도 적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서 여유가 생겼다. 아니 일부러 시간을 냈다. 서울숲에 가서 산책하곤 했다. 성인이 된 아이들은 함께 하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우리 부부는 서울숲을 자주 찾았다. 곁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고 서울숲이 가까이 있어서 행복했다. 세월이 흘렀다. 사람들이 말했다. 서울의 핫플레이스라고. 성수동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우 리 집이 달라졌다. 집값이 서서히 오르기 시작했다. 행운인가, 내가 복이 많은 사람인가. 어 쨌거나 기분 좋은 일이었다. 기뻤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게 마련이다. &lt;집&gt; 이야기는 다음에 말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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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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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 신도리코 사옥 앞

ⓒ원동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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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박스 스퀘어 성수 방문기

서울숲 데이트 끝나고 영화 볼래? 첩첩산중 쌓인 숙제 홍효정

성수동에서 영화를 보려면 어디를 가야할까? 가깝게는 왕십리 CGV가 제일 무난하고, 건 대입구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강남대로(씨티) 등의 선택지도 있을 것이다. 작년 11월에 새로 운 선택지가 나왔다. 바로 서울숲 앞에 메가박스 성수점이 오픈한 것이다. 나는 왕십리를 기점으로 분당선과 2호선을 이용해 출퇴근하는 직장인이라 메가박스 성수점 이 서울숲역에 오픈했다는 소문을 듣고 가깝게 즐길 새로운 영화관 소식에 기뻤다. 어디 있 을까 궁금해 하다가 올해 6월부터 주말 아침마다 서울숲 산책을 하면서 서울숲 입구와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자리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메가박스 건물 외관은 서울숲에서 바라볼 땐 회 색 건물로 보이지만 입구로 돌아가면 층고와 바탕 벽돌색이 다른 건물 세 개를 이어붙인 듯 한 독특한 마감 구조를 가진 빌딩이라 재미있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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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어느 오후에 성수동에 볼 일이 있고 때마침 짝꿍이 보고 싶어하던 [반도]가 개봉한 시기, 메가박스 성수점을 경험하게 되었다. 금요일 오후 5시의 3층 메가박스는 고급스럽고 깔끔한 분위기로 맞아 주었고 잠시 쉬어가는 공간도 요즘 트렌드에 맞게 푸릇푸릇한 식물과 공기청 정기, 편한 소파에서 여유를 느꼈다. 같은 층의 웨일즈 커피는 혼자 와도, 여럿이 와도 각자 편하게 앉을 만한 다양한 좌석들이 배치되어 있었고 B:MEAL 레스토랑도 재미있는 컨셉의 인테리어로 블로그에 올라와 있었다. &#39;영화는 아쉬웠지만 영화관은 훌륭하네, 다음 번엔 부티크관 카페도 구경가야겠다&#39;라고 생각 하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1층까지 내려갔다. 2층은 식당가인데 5개의 식당이 에스컬레이터 를 빙 둘러싸고 있고 1층은 식당 1개와 와인샵, 올리브영, 스타벅스가 있었다. 식사를 할 생 각이 없었기에 짧은 감상으로 &#39;다른 쇼핑몰에서도 반응이 좋았던 식당들인데 손님이 별로 없 네?&#39;라고 스치듯 감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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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경험은 한 달 뒤, [오케이 마담]을 일요일 조조영화로 감상하기로 하면서였다. 서울숲 을 산책하고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의 휴식 후 8시 50분에 영화를 보러 올라갔다. 일요일 오전의 영화관은 매우 조용하고 홀에 나와 있는 손님은 우리 외에 3명 정도였다. 카운터에는 여직원이 한 분 있고 매니저가 여기저기 다니면서 청소 중이었다. B:MEAL은 그 사이 영업종 료 안내문과 함께 영화 입간판으로 입구를 가려놓았다. 서울숲 뷰가 정말 좋은 곳인데… 코 로나로 여기도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구나. 가뜩이나 코로나로 2~5월은 개점휴업, 사람들이 좀 나오려고만 하면 재확산 위험으로 어디 든 가지말라고 하고 영화관에 꼭 보고 싶은 영화도 없으니 영화관이 문을 닫는 경우가 많다 고 하던데, 여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가 끝나고 7층 부티크 까페에 가니 너무나 멋있는 곳인데 아무도 없었다. 우리가 사진 찍고 다니니 직원 한 분이 잠시 카운터에 나왔다 가 도로 들어갔고, 영화 보러오는 사람도 없었다. 이렇게 잘 준비되어 있는데, 이용할 사람이 없다니 너무 아쉬웠다. 그러나 이미 넷플릭스 같 은 구독서비스에서 영화 자체를 즐기는 것이 쉬워졌는데 1인당 3만원 짜리 티켓을 사서 부티 크관에 올 정도라면 그들만의 개인적 니즈를 어떻게 충족시켜줘야 할까. 내려오는 길에 점심을 2층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모모야(돈까스), 맨도롱국수(제주식 고기국 수&amp;국밥&amp;순대), 탄탄면 공방(대만음식) 등을 둘러보다가 맨도롱 국수를 먹었다. 정부에서 외 식쿠폰을 주겠다고 한 날이라 2만원 넘게 주문하고 맛있게 식사했으나, 외식 쿠폰은 그날 저 녁에 취소되어 아쉬웠다. 12시가 되도록 식당들에 손님이 많지 않아 안타까웠다. 유명 프랜 차이즈라 기본 이상은 하는 맛이지만 서울숲에 놀러온 사람들은 성수동 골목 사이사이에 형 성된 맛집들을 하나하나 음미하고 인증하러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텐데 프랜차이즈 음식 을 사먹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또한 위치 상 메가박스 건물 위치가 식당들이 즐비한 거 리가 아니다보니 처음부터 여기에서 먹겠다고 오는 손님만 오고 성수동 맛집에 가봤다가 줄 이 길어서 여기에 올 확률은 매우 적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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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숲역에 지하철 타려고 내려오는데, 메가박스 반대편 출구 광고판에서 메가박스를 소개 하는 광고판을 보니 [서울숲에서 즐기는 쇼핑&amp;맛집 &#39;멋진 만남&#39;] 이라고 한다. 영화관 자체로 는 스몰 럭셔리한 느낌이 가득했지만, 쇼핑할만한 건 올리브 영과 와인샵 정도이고, 식당가 는 자동차를 타고 온 가족고객이 즐기면 좋겠지만 주차장이 협소하다니 한계가 있을 것이다. 쇼핑&amp;맛집을 외칠 때 지하철로는 왕십리, 자동차로는 한양대 엔터식스가 훨씬 선택의 폭이 넓은 편이라 스퀘어 성수만의 정체성을 빨리 가지길 고대한다. 메가박스 성수점이 지역사회와 협업해서 시너지효과를 내는 성수동의 멋진 문화공간이 되 고, 식당가를 찾는 손님이 많아져서 모두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미래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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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랑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옛 악동들 다시 어릴 적 동네

성수동을 기록하다 글 강보선

성수동에서 나고 자란 동네 친구들이 봉사활동을 위해서 모였 다. 2015년부터 ‘그랑’이라는 이름으로 청소년 봉사동아리 활동을 하다가 대학생이 된 이후 청년 봉사동아리로 다시 활동을 시작하였 다. 중고등학생이었던 우리에게 사회봉사는 심적으로 크게 다가왔 고 학교를 졸업하기 위해 해치워야 하는 관문이었다. 시간을 채우 기 위한 봉사가 아닌, 같은 시간을 보내더라도 더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 싶었다. 고등학생이 된 이후 각각 흩어진 우리는 연합동아리로 다시 뭉쳤다. 우리는 성수동의 골목길에서 술래잡기를 했고 성수동에서 초중학교 를 졸업했으며 여름에는 서울숲의 바닥분수에서 더위를 식히며 자 랐다. 한 동네에 추억이 많은 만큼 애정도 많다. 철공소와 인쇄소 등 공장들을 개조하여 만든 카페들은 성수동만의 특별한 느낌을 준다. 새로 생겨난 장소를 소개하는 ‘ 우동소 (우리 동네를 소개합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가이드맵을 만들어 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한 달도 채 되지않아 새로운 가게들이 생겨나고 기존에 있던 것들은 사 라졌다. 대학생이 된 우리는 각자의 전공을 살려 빠르게 변화하는 성수동을 기록하는 작업을 하기로 기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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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글 고지훈, 사진 강보선

넝쿨식물이 더욱 우거지고, 건물에 흠집, 틈은 하나둘씩 짙어져가고, 이곳은 벌써 재개발을 할 거라고 건물을 허물고 있다. 이 곳은 우리 어렸을 때 삶의 터전 이자, 놀이터였다. 초등학교 ~ 중학교 때는 우리의 놀이터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천방지축으로 뛰어 다니며 노는 게 우리의 일상이었다. 근래의 성수동을 보면 엄청난 개발이 되어서 옛날의 성수동은 완전히 지워진 모습도 있지만, 또 10분만 걸어가서 다른 곳을 가면 향수가 짙어지는 성수동도 있다. 이번 활동을 계기로 어쩌면 나, 같이 있었 던 친구들은 어렸을 적 얘기를 하며 입가에 미소를 띄었다. 코로나의 여파인지 5g시대 도래의 이유인지 초, 중학교 운동장에는 공을 차며 뛰 어 노는 학생들을 보기가 어려워졌다. 배낭같은 가방을 메고 학원을 가는, 혹은 얼굴만한 핸드폰 스크린에 푹 빠져있는, 피시방에서 시끄럽게 게임하는 학생들 을 훨씬 더 많이 보는 것 같다. 이런 요즘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나의 성수동과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졌고, 가슴 한편에는 쓸쓸함이 느껴진다. 물론 이런 상황이 나 쁘다고만 볼 순 없지만, 가끔 내가 5g 시대의 느림보가 된 것인지 헷갈리게 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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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 골목 악동들의 옛날 이야기 글, 사진 노영범

사람들은 어렸을 때 자신만의 추억이 담긴 자그만 동네가 있을 것이다. 나에 게 있어서 추억이 담긴 곳은 성수동이다. 현재는 여러 가지 변화를 맞이하여 개성 있는 성수동이 되었지만 내 눈에 담긴 성수동의 모습은 위 사진과 같다. 이 사진에 담긴 골목길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면 나는 어릴 적 흔히 악동이라 불리는 무리 지어 다니는 말썽쟁이 꼬맹이였다. 술래잡기, 꼼꼼이, 경찰과 도둑 등 우리에게 있어서 긴장감 넘치게 여러 장애물과 숨을 곳 달릴 수 있는 골목길은 놀이터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정해진 구조물이 있는 놀이터와 다르게 골목길 악동들에게 있어서 공포의 대상이 존재했다. 위험한 구조물도 아니고 좋지 않은 위생도 아니었다. 바로 골목 길 터줏대감 할아버지였다. 그 시절 놀이를 하면서 장애물로 담을 넘거나 숨을 곳 은 남의 집 마당이었다. 그럼 항상 시끄럽다고 꾸짖던 할아버지, 위험하다고 내려 오라는 아주머니들, 지금 생각해보면 확실히 민폐를 끼친 거 같아 죄송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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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툭튀 같지만, 생각보다 조화를 잘 이룬 글, 사진 김도윤

이 골목길은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부터 중학교를 졸업하기 전까 지 정말 많이 다닌 길이다. 생각해보면 이 골목길에는 많은 추억이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이 골목길에서 ‘꼼꼼이’나 ‘경찰과 도둑’ 같은 게임들을 많이 했 다. 내가 이렇게 운동을 좋아하고 건강하게 클 수 있었던 것은 골목길에서 친구들과 뛰어놀았던 것들이 많이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 중학교를 졸업하고는 이쪽으로 갈 일이 없었는데 오랜만에 봉사활동을 하며 가게 되었다. 오랜만에 간 골목길은 내가 기억하는 모습보다는 조금 더 작고 낡아진 느낌이었다. 바뀌지 않은 골목들도 있었지만, 갑자기 툭 튀어나온 듯 이 거리에 어울리지 않는 새로운 가게들도 많이 생겼다. 새로 생긴 어여쁜 가게들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옛날 거리에 생각보다 조화를 잘 이루고 있었다. 또한, 이 골목길은 걸으며 새로 생긴 높은 건물들을 보면 우리 동네 가 많이 발전하고 많이 변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나중에 10년, 20년 뒤에도 다시 이 골목길을 걸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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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숲은 그들의 집이다 글, 사진 이유상

서울숲 가족들은 무사하다. 계절 따라 색을 바꾸며 피는 꽃, 그들의 벗 나비, 그리고 숲 속 빛과 그늘도 여전하다. 서울 도심 최적의 위치에 있는 공공의 정원을 가까이 사는 성동구민들은 너무 쉽게 접근하며 안락하게 누리는 것 같아 늘 고맙고 미안하다. 사슴 가족들이 오늘도 반갑게 맞이하는 서울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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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 사람 정수기의 휠체어 서울숲여행 나는 우리동네 여행에서 충분히 자유로운가?

글 정수기, 사진 이재성(사계절공정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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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수기입니다. 물을 걸러 마시는 그 정수기 할 때, 그 정수기입니다. [나를 자주 찾아주세요.] 나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닙니다. 스물 세 살 한창 혈 기 왕성한 때, 큰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열흘 쯤 코마 상태였고, 한 달쯤 중환 자실에 있었고, 1년여간 병원에 있었습니다. 재활을 오래 했습니다. ‘와츠’라는 이름의 재활 훈련은 꽤 효과가 있었습니다. 1년간 했는데, 다음 순서가 있다며 중단하더군요. 그때 꾸준히 재활에 집중했더라면 지금 조금 달라졌을까요? 사실은 두 가지 길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꾸준히 집중적으로 재활을 하는 길이 었습니다. 하지만 온전히 걷는다는 보장은 없었습니다. 다른 하나가 휠체어에 의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건 오히려 제게 자유를 주었습니다. 나는 후자를 선 택했습니다. 그때로 다시 돌아가면 어떤 선택을 할까요? 나는 오늘 휠체어를 타고 성수동 여행을 떠납니다. 나는 충분히 자유로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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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작은 영동대교. 뚝섬나루터 표지석이 있다. &#39;성수동&#39;이 시작된 곳이 여기일 것이다.

2. 한강여행을 떠난다. 휠체어는 2

전동이지만 보행길로 이동한다.

3. 휠체어를 타면 진입로는 제한된다. 연결될 수 있는 길까지 돌아가야 한다.

4. 서울숲은 우리가 구름다리라고 부르는 고공엘리베이터가 있다. 고맙고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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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시늉만 장애인화장실도 있다. 휠체어를 돌릴 수 없을 만큼 좁게 설계된 통로와 화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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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횡단보도를 이용해 길을 건넌다. 안 전이 언제나 최우선이다. 7. 횡단보도를 막고 있는 차량. 어떨 때는 위험을 무릅쓰고, 멀리 돌 6

아가야 한다. 아마도 부주의함 때문이 겠는데, 나는 대개 어김없는 신고로 응징한다. 8. 식당에는 대개 턱이 있다. 2층도 우리는 걸어가지 못한다. 이처럼 삼각 받침대를 대준 곳은 그 배려가 마음 에 깊이 와 닿는다. 여기는 성수동 소 녀방앗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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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서울숲은 무장애 공원이라 할 만하 다. 화장실도 넓고 사용하기에도 편하 다. 방문자센터엔 충전을 할 수 있는 시설도 마련되어 있다. 10. 언더스탠드에비뉴에서 우리의 여 행을 마무리! 수고해준 사계절공정여 행 이재성 님에게도 깊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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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선 : 성악전공(소프라노), 음악방송 음악 감독, 홍대 라이브 공연장 가수, CM송 가수, 드라마 OST감독, BTS를 키운 방시혁과도 함께 일한 적 있음.

성수동 이색 음악 공간 ① 게토얼라이브 (GhettoAlive) 도시에 동네가 있는가. 있다면 어떤 동네가 살기 좋은 동네일까. 유현준은 말한다. 걷기 좋은 동네가 살기 좋은 동네라고.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곳이라고. 그럼 예술 가들은 어떤 동네를 원할까. 작업 공간과 거주공간 임대료가 싼 곳, 작업에 영감을 줄 수 있는 환경, 대중교통이 편한 곳일 것이다. 성수동은 그런 동네였다. 저렴한 임대료와 편리한 교통, 소읍의 풍경과 산업 시설이 혼재된 동네 풍경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기에 적합했다. 하지만 지금의 성수동은 옛날 그 성수동 이 아니다. 예술가들이 버티기 어려운 동네로 바뀌었다. 현재 성수동에서 라이브 음악을 제공 하는 공간이 있다. 그곳을 소개하려 한다. 글 서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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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토얼라이브 성동구 왕십리로 104 영화빌딩 B1 / 전화 02)461-1125

첫 번째 소개할 곳은 GhettoAlive(게토얼라이브)다. 공장들이 많았던 시절에 설렁탕을 팔던 지하 식당이 있었다. 성수공단이 쇠퇴하면서 17년간 이나 공실로 있었다. 그곳에 생명을 불어넣은 이가 있었다. 정지선 씨다. GhettoAlive의 시작 이었다. 2016년이다. 성수공단의 배고픈 일꾼들에게 배를 채워주던 설렁탕집이 정지선 씨의 손에서 사람들의 귀 와 눈을 즐겁게 만드는 예술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게토는 복합문화공간이다. 뮤지션들의 공연장이다. 공연 프로그램은 인스타그램이나 페이 스북 등을 통해 매월 홍보한다. 지금까지 300회 이상 열렸다. 게토의 음악은 다양하다. 재즈, 국악, 현대음악, 전자음악 등등.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이 무대에 선다. 그런데 원칙 아닌 원칙 이 하나 있다. 즉흥 음악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즉흥 연주는 어느 정도 경지에 올라야 할 수 있 다. 그리고 연주자이면서 작곡(창작)을 해야 한다. 그만의 색깔이 있고 창의적인 창작물을 가 진 뮤지션. 그리고 앨범을 냈어야 한다. 이런 뮤지션은 게토에 서고 싶어 한다. 음악 하는 사 람들은 게토 모르는 이가 없다. 외국 뮤지션도 게토를 찾아온다. 그래서일까. 게토 홈피에는 영문이 있다. 공연 날에는 세종이나 분당 같은 데서 오는 매니아가 있다. 정지선 씨는 그게 보 람이라고 했다. 그런데 동네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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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공연 외에도 다른 공연도 가능하다. 연극 공연이나 연습실. 게토는 전시공간이기 도 하다. 그리고 미술 워크숍을 열기도 했었다. 성수동에 문을 연 블루 보틀과도 작업을 같이하기도 했었다. 정지선 씨는 말했다. 게토는 단순한 공연장은 아니다. 음악과 미술과 무용과 문학 등등 모든 분야의 예술이 융합되고 창조되는 실험실이다. 게토가 걸어온 길을 아는 전문가들 이 말했다. 게토는 한국에 없는 특별한 공간이라고. 그래서일까. 2019년부터 서울문화 재단이 지원해준다. 그리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도. &lt;jazzpeople&gt; 같은 잡지 에 소개되었다. 지원받기 전에 정작 본인은 게토 임대료와 운영비를 대느라 집도 줄였 다. 그렇다고 아직은 그만둘 생각이 없다. 정지선 씨 같은 예술가가 성수동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성수동은 서울의 핫플레이스다. 성수동처럼 한창 잘나가던 동네가 조용하게 가라앉은 곳이 있다. 방문객들이 늘어났고 점포 임대료가 오르니 예술가 없는 상업 지역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사람들은 그 동네를 찾을 필요가 없었다. 성수동은 그 전철을 밟지 말아 야 한다. 매력적인 동네로 남아야 한다. 그러려면 게토얼라이브 같은 예술 공간이 버텨 야 할 텐데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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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성수책마루에서의 무용공연

ⓒ서성원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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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_진로를 찾는다는 것

인생의 의미 찾는 일과 함께 할 진로 탐색 창업? 막상 걸어가면 함께 갈 수 있는 길! ㈜커리어투어 김재홍

진로를 찾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떻게 찾아가야 하는가? 진로는 왜 찾기 어려울 까? 왜 자신만의 진로를 찾아 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드물까? 진로는 꼭 진지하게 생각해야 하는가? 각자마다 정말 자신만의 길이 있을까? 얼만큼 잘해야 무엇을 잘한다 고 할 수 있는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면 인생이 힘들어지는가? 대체, 진로란 무엇이 란 말인가? 진로 문제는 왜 복잡할까? 우선 사람마다 생각하는 ‘진로’의 정의부터가 다양하다. 진로 를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일정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아 커리어패스를 형성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필자의 견해로는 진로란 단순이 어떻게 먹고 사는 것을 넘어 넓은 의미에서 ‘일생을 통하여 살아가는 방향을 정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정하 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진로고민이란 어떻게 인생을 살아갈지, 인생을 통하여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해보는 것이기도 하다. 먹고 사는 것을 고민하는 것 도 머리 아픈데 인생의 방향성까지 정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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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은 사실 필자도 모른다. 인생의 의미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은 사실 진로의 영역을 넘 은 종교와 철학의 영역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은 질문에 의미가 정 확한 답을 얻는 데에 있지 않고 질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과정’에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가치관에 대해서 알게 되고 점점 생각을 거듭하다보면 남들이 심어준 생각이 아 닌 본래 자신의 생각에 다다르게 된다. 그것이 바로 &#39;내면의 소리&#39;인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면의 소리를 따르며 자신만의 기준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사회가, 부모님이, 주변 사람들이 정해준 기준에 맞춰 살아간다. 자신의 인생의 성공과 행복의 기준을 남들이 정해주는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것이 남들이 정해준 기준인 지도 모르는 채 무조건 쫓고 있다는 것이다. 인생의 의미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바로 그 러한 자신만의 기준을 찾고 내면의 소리를 듣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 내가 창업을 진지하게 결심한 것은 2015년 하반기 즈음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다음 진로를 고민하며 약 7-8개월의 시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생각은 계속 해왔고, 정말 해보고 싶었지만 실제로 선택하는 것은 참 두려운 일이었다. 나의 분야도 아니었다. 나 의 원래 전공은 수학이었고, 진로/일자리 분야에서는 일해본 적도 없었다. 당연히 부모 님도 반대했었다. 주변에서도 모두 부정적으로 이야기했었다. 하지만 난 일단 내가 결심 한 것을 밀어붙였다. 2016년에 창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이제 5년이 다 되어 간다. 엄청난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지만 성동구 지역에 정착하여 나름 안정적으로 사업을 꾸려나가고 있다. 실리 콘밸리에서 보는 사무실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성동안심상가* 6층에 입주하여 아기자 기한 사무실을 가지고 있다. 수백 명의 직원들과 함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지만 나와 마음이 맞는 팀원들과 함께 즐겁게 일하고 있다. 무엇보다 감사한 일은 5년이 되는 시간 동안 망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고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며 나의 생계를 해결하 며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 기간 동안 느낀 것들이 있다. 당연히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처음에 겁먹었던 것만큼 그렇게 무자비한 길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 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오는 두려움이 컸 지, 막상 걸어가 보면 울퉁불퉁 하긴 해도 사람이 걸어갈 수 있는 길이었다. 처음 들어갈 때는 나 혼자만 있는 것같이 느껴졌는데, 막상 그 길을 걸어가니 나와 같은 고민을 하면 서 걸어가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생각보다 주변에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 과 친구가 되었고 같은 고민을 나누며 서로를 위로하고 때로는 도와주며 함께 길을 걸어 갔다. 용기 있게 계속 길을 걸어가니 도와주는 사람도 생겨났다.

*성동구가 둥지내몰림(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대응책으로 운영하고 있는 상인 및 소셜벤처 지원공간. 이 정책은 2019 행정안전부 주재 사회혁신분야 최우수상에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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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미래가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경제 환경의 변화를 온몸으로 오롯이 느껴야 한다는 것 은 아직도 힘들다. 매년 초 사업계획을 세우지만 그 계획대로 진행되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 다. 올해만 해도 2월에 코로나가 발생하면서 1월에 세웠던 모든 계획들을 한 달 만에 바꿔야 했다. 하지만 그 불안이 나를 타성에 젖지 않고 더욱 삶에 깨어있게 만든다. 매일 나에게 주 어져 있는 작은 것들에 감사할 수 있게 한다. 함께하는 사람들이, 믿어주는 사람들이 고맙다. 10년 뒤의 미래를 알 수 없기에 오늘 하루에 충실하게 사는 것으로 그 불안을 달랜다. 평범한 사람들이 걷는 자신만의 길은 화려하지 않지만 그 나름의 보람과 맛이 있는 것 같다. 이곳에서 느낀 사회는 생각보다 따뜻하고, 정이 있는 곳이었다. 세상은 생각보다 살만한 곳 이었다. 오히려 남들처럼 회사를 다니며 평탄한 길을 걸어갔을 때가 더 치열했고, 거기에서 본 사회는 냉정하고 무자비했다. 이것이 내가 나만의 길을 걸어가면서 느낀 점들이다. 나 개 인의 경험이기도 하지만 주변의 자신만의 길을 걷는 많은 분들은 공감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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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에서 가장 짧은 길은 출발점과 도착점을 직선으로 잇는 길이라 말한다. 그러나 현실에 있어 가장 짧은 길은 그렇지 않다. -니체

목표에 도달하는 가장 빠른 길은 무엇인가? 지금은 알 수 없다.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뒤를 돌아보게 되면 알게 된다. 그때는 실패처럼 보이고 돌아가는 것 처럼 보였지만, 남들처럼 계산적인 선택을 하지 않고 누가 봐도 바보같이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지금 보면 그것이 나에게 가장 적합한 길이었다는 것을. 가장 짧고 빠른 길이었다는 것을. 그러니 고민하는 당신, 용기를 가지시라! 조금만 더 앞으로 걸어가도 된다. 그 길이 결국 당신에게 가장 적합한 길이었음을 언젠간 알게 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 모두가, 언젠가 자신만의 길을 찾아 당당하게 걸을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 로 소망한다.

※ 질문이 있거나 고민을 상담하고 싶은 독자분들께서는 ceo@careertour.co.kr 로 연락 주시면 답변드리겠습니다.^^ 다음 호는 &lt;소셜벤처에서 일한다는 것&gt; 편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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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 집에서 양평 정배리까지

숲과 집과 일과 사계절공정여행 백영화

나의 일터는 성동세무서 건너편 아인 빌딩 8층 소셜캠퍼스온이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복권 기금으로 운영하는 이곳은 사회적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사무공간과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원 해 준다. 현재 8, 9층을 운영하는데 35개 입주기업과 15개의 비상주 업체가 모여 있다. 예를 들면 반 려견을 인식개선을 해주는 업체도 있고, 소방관들이 더는 사용하지 못하는 소방복을 이용, 새활용을 하는 기업, 치매 등 뇌 질환 환자 가족들에게 도움을 주는 기업 등 다양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사 업모델로 열심히 애쓰고 있다 20대~40대 대다수 청년과 50~60대 중년들이 종종 보이는 이곳의 장점은 서로에게 긍정적인 자극 을 주는 것이다. 어느 기업이 새로운 사업을 준비해서 홍보하거나, 투자를 유치했다고 하면 단톡방 을 통해 응원의 문구가 물결친다. 공용 공간을 사용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기업 간 협업도 일어난다. 이런 장점으로 성수동에는 협업가능한 기업 공간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8층 라운지에서 보면 건너편 중랑천이 보이고 아름드리 길게 늘어선 큰 나무들이 보인다. 그 사이로 꼬리를 물고 차들이 쉴 새 없이 지나가고 있다. 2020년 올해는 코로나 19로 내가 일하는 사계절공 정여행은 90% 이상 일이 줄었다. 여행자와 함께 성동지역의 맛난 음식을 먹고 재미와 의미가 담긴 사회적 경제를 경험하는 마을여행을 더 진행하기가 몹시 어려워졌다. 7명 이하로 팀을 꾸려 무선송수신기를 사용해서 사회적 거리 두기와 방역을 잘 준비해서 운영했던 프로그램도 늘어나는 감염자 확산으로 마치 꽁꽁 얼어버린 냉동창고에 갇혀 버린 것처럼 멈춰졌다. 비대면으로 변화되는 이 상황을 어떻게든 적극적으로 배우려고 온라인 강의도 준비해서 해보고, 영 상교육도 몇 차례 받다가 거리 두기가 강화되면서 현재는 중단된 상태이다. 일거리가 들어오지 않으 니, 공모사업으로 마중물을 만들 수 있도록 중소기업벤처부 로컬크리에이터사업으로 선정되어 성동 구 이야기를 담은 뚝도채널e를 지역 이야기기자단들과 함께 준비해 책자와 팟캐스트로 제작할 예 정이다. 지역에 애정을 품고 있는 좋은 이야기기자단과 같이 성수동의 역사, 환경, 골목, 노포/맛집, 지역 소상공인, 사람, 체험 등 다양한 자원들을 발굴 활용하여 주민들이 만든 여행책으로 성동구에 관심 있는 시민, 단체, 기관 등에 반가운 선물 같은 책이 되기를 바라며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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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양평 정배리이다. 정이 두 배 되는 동네라고 소개하고 다니는 데 최근 5~6개월 동안 동네 사람들을 못 보고 있다. 일을 만들어서 하느라 바쁘기도 하고 코로나 19로 예전처럼 이웃집에 마실 가지도 못하니 어영부영 그리 돼버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경의중앙선에는 퇴근 시간에 많은 사람이 마스크를 쓴 채 자신에게 오늘 하루를 토닥이며 지친 몸을 의자에 기대여 가고 있다. 농촌 마을은 주민들이 함께 모여 하는 공동부역이 있다. 매달 첫 번째 토요일 마을청소, 대보름 놀이, 3차례 맞이하는 복날, 6번 열리는 마을회의 등……. 올해는 모든 것이 멈춰 버렸다 양수역에서 집으로 가는 길은 길게 한 길로 쭉 이어져 있는데 종종 느껴지는 불안감, 초조함, 우울감 이 끝없이 계속 이어질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이런 부정적인 감정은 날씨와도 연관이 있나 보다. 올여름은 계속 비가 내렸다. 뉴스에 의하면 54일 넘게 장마가 이어졌다는데 그래서인지 꿋꿋했던 국화밭도 바닥에 쓰러져있다. 서둘러 고춧대와 줄로 쓰러진 국화들을 세우고 쓰러지지 않게 지켜주 겠다고 마음속으로 국화들이 들을 수 있게 이야기한다.

재작년 한여름에 직접 만들기 시작해 가을에 완성한 다람쥐 쉼터에서 창문을 열고 숲을 보고 있다. 잣나무 가지에 올라타 길게 뻗어간 칡넝쿨들이 보이고 다른 덩굴도 보인다. 숲은 평화로워 보인다. 그 안에서도 치열한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있을 텐데 지금은 잘 보이지 않는다. 서로서로 의지하며 이 시간을 버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칡넝쿨 잎에 현란한 색의 노린재가 전사처럼 자리를 잡고 있 다. 잣나무 꼭대기에선 청설모가 잣송이를 먹는 소리와 동시에 잣 껍데기가 떨어진다. 다람쥐 쉼터 옆 작은 계곡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우렁차다. 멍하니 보고 있다 보니 어느새 밤이 되었다. 초록색 불빛이 날아다닌다. 여기에 하나!, 저 위에 하 나! 늦반딧불이들이 빛을 내고 있다. 지금 나도 숨 쉬며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다. 자연 속 오롯이 전해지는 몰입감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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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걸음을 붙드는 서울숲 피아니스트의 연주 서성원

나는 가요를 좋아한다. 피아노 연주 음악은 들어도 느낌이 없다. 그런데 서울숲 피아니스트는 내 발길을 멈추게 하곤 했다. 무슨 마술을 부리듯이 말이다. 나는 서울숲에서 산책한다. 우리 집에서 도로 하나 건너면 서울숲이어서 그렇기도 하다. 자주 간 다고 좋은 건 아니었다. 잃는 것이 있었다. 눈맛. 익숙해서 볼만한 게 없어졌다. 그런데 최근에는 천만다행으로 볼거리가 생겨났다. 꽃이다. 예전에 없었던 꽃들을 공원 측에서 심어놓았다. 철 따 라 피고 지는 꽃은 내 눈을 즐겁게 했다. 서울숲컨서번시에 감사할 뿐이다. 자주 가서 얻은 것이 있었다. 서울숲에 동물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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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봄, 벚꽃길 쪽에서 오리 한 쌍을 보았다. 그리고 한동안 잊었다. 5월이던가. 여섯 마리 새끼를 데리고 호수에서 헤엄을 치는 오리 가족을 보았다. 어미를 졸졸 따라다니며 헤엄치는 모습은 꽤 볼만했다. 어린 오리들은 사람들이 보든 말든 신나게 헤엄치고 다녔다. 어미는 꾹꾹 경계음을 냈 다. 그 가족들은 지금은 어디로 갔을까. 서울숲에 자주 들러서 얻는 것이 하나 더 있었다. 귀로 느끼는 즐거움이다. 자동차 소음 같은 거 말고 여러 종류의 새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까치는 요란했고, 참새는 재잘거렸다. 새소리 말고 들리는 소리가 있었다. 피아노 소리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피아노 음악을 좋아 하지 않는다. 어쨌든 서울숲에는 피아노가 두 곳에 있다. 누구라도 칠 수 있다. 언제였던가. 제법 듣기 좋은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나는 걸어가면서 누군지 보았다. 대학생쯤으 로 보이는 남자였다. 남자는 악보도 없이 신나게 건반을 두드렸다. 무슨 곡인지 모르지만 빠르고 현란했다. 멀어서 보이지 않았지만 건반 위에서 움직이는 손가락이 그려졌다. 내 발길을 붙들어 세우는 피아니스트는 따로 있었다. 그 피아니스트는 방문자 안내 센터 근처 캐 노피에 있는 피아노를 연주했다. 동요거나 우리 귀에 익숙한 곡이었다. 남자처럼 손이 빠르기는커 녕 느릿느릿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귀를 기울이게 했었다. 나는 피아니스트가 궁금했다. 하루는 그를 보기 위해 피아노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여자였다. 나지막한 키에 몸이 왜소했다. 칠십 대쯤으로 보였다. 내가 다가서는 줄도 모르고 할머니는 피아 노 연주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 나는 악보를 보았다. 피아노집 책자나 낱장 악보가 아니었다. 손 바닥 크기 정도의 종이 쪼가리였다. 도 솔레미 파라도 ……. 싸인펜 같은 것으로 꾹꾹 눌러쓴 한글 악보였다. 오선지 같은 건 없었다. 그 이후에 나는 할머니 연주를 더 들었다. 방문자 센터 근처 피아노는 바쁘다. 오다가다 피아노 건 반을 두들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런저런 피아노 소리 속에서 나는 할머니의 피아노 연주를 골라 낼 수 있었다. 그러면 나는 걸음을 멈추고 감상하곤 했었다. 그래서 나는 또 알게 되었다. 서울숲 피아노와 함께 하는 시간의 양으로 따지자면 할머니는 누가 뭐래도 서울숲 최고의 피아니스트였 다. 보아하니 할머니는 사람들 발길이 잦아드는 시간에 그곳을 찾았다. 일을 마치고 오면 그 시간 인지 모른다. 늦은 여름이면 저녁 8시 30분 이후에 할머니는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다. 뒤에는 언 제나 그렇듯 장바구니가 달린 자전거가 세워져 있었다. 그러다 나는 그 피아니스트를 성수동 골목에서 만났다. 할머니는 나를 몰랐겠지만 나는 단번에 알 아보았다. 장바구니 자전거와 자그마한 키 그리고 수더분하고 주름진 얼굴, 그 피아니스트는 성 수동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된 골목 속으로 사라졌다. 재개발을 앞두고 있어 집들이 낡은 어수선한 골목이었다. 나는 서울숲컨서번시에 요청한다. 더 많은 악기를 비치해 두라고. 그러면 사람의 마음을 위무하는 연주자가 더 많이 나올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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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뛰는 일상이 내게 남긴 것 이상국

성수동에 살면서 서울숲 공원을 자주 걷고 뛰었다. 특히 비온 뒤 저녁에 서 울숲 공원을 자주 찾았는데, 공원을 뛰면서 숲의 나무와 하늘의 구름이 어우러진 풍경을 바라보는 걸 좋아했다. 걷고 뛰는 일상이 내게 처음 찾아온 건 2년 동안 규칙적으로 출근하던 회사 생활이 끝나면서다. 출근이 사라지자 아침 일정한 시 간에 맞춰 회사 나가듯 서울숲 공원을 목적지로 움직였다. 서울숲 공원 한 바퀴를 크게 걷는 거리는 약 2km 가량. 걸음으로는 약 3,000보가 걸렸다. 맑은 날의 아침에는 걷기 위주로 계절 변화를 느끼며 천천히 서울숲 공원을 걸 었다. 공원을 걷기 시작했을 때 꽃망울 터트리며 나 홀로 봄을 알렸던 목련 꽃은 어느덧 만개한 벚꽃에게 사랑을 빼앗겨 버리고 쓸쓸히 서울숲 공원을 지키고 있 었다. 아침 이른 시간이었지만, 서울숲 공원은 다양한 사람들로 분주했다. 나처럼 여유롭게 산책 나온 시민부터, 겨우내 떨어져 수북이 쌓인 낙엽을 청소하는 공원 스태프들, 공원의 잔디밭에서 아침 일찍 영화 촬영을 하는 사람들까지. 지하철을 타고 다시 버스로 갈아타며 출근하던 2년 동안 보지 못했던 서울숲 공원의 다양 한 풍경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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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어느 날 아침에 다시 비가 내렸고, 비가 그친 저녁에 뛰다가 힘들면 걸어 야지라는 생각으로 다시 서울숲 공원에 나갔다. 서울숲 공원 스케이트 파크에서 가볍게 몸을 풀고 지난 저녁의 달리기 코스대로 천천히 한발 한발 내딛기 시작했 다. 출발하고 몇 분이 지났을까? 지난번에 멈췄던 은행나무 숲길을 지났는데 이 상하게 숨이 차지 않고 호흡이 자연스러웠다. 어라? 이 상태로 계속 더 뛸 수 있 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달리기 호흡 방법도 전혀 몰랐지만 내 맘대로 코와 입 의 들숨 날숨 호흡을 규칙적으로 신경 쓰며 뛰기 시작했다. 일정한 속도로 조금 더 뛰고 있는데 앞에서 먼저 달리고 있던 아저씨가 보였다. 회색 옷을 입은 아저 씨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속도를 맞춰 뒤따라 뛰었다. 그런데 어째 오늘은 몸이 좀 이상했다. 이미 뛸 만큼 많이 뛰었는데 마치 구름 위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처럼 발이 너무 가벼웠다. 그때였다. 속도를 내면 아저씨를 추월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금세 몸에 힘을 내어 보폭을 늘려 아저씨 를 지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속 앞으로 전진했다. 여전히 달리는 속도는 일정 하게 유지했고 어느덧 가시권에 출발지 스케이트 파크가 보였다. 출발지 스케이 트 파크에 다시 도착하며 서울 생활 난생처음으로 서울숲 공원 한 바퀴를 뛰었 다. 한 번도 쉬지 않고 서울숲 공원 한 바퀴를 돌았을 때 나도 모르게 ‘해냈다’는 쾌감을 느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멈춘 상태에서야 가쁜 숨이 몰려왔다. 그 날 나는 원래 서울숲 공원을 한 바퀴 달릴 것이라고 목표도 세우지 않았다. 그냥 뛰었다. 물론 꾸준히 걷기를 생활화하려 노력했지만, 2주 만에 체력이 금세 좋아 졌다고 보기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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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처음에 200미터밖에 못 달렸던 것은 끝을 모르는 상태에서 조금 뛰다가 힘들어 지레 포기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정말 2주 걷기의 효과 일까? 그럴 리가 없다. 지난 번보다 뛰면서 호흡을 잘했나? 아니면 어느 순간 히 어로처럼 나타나 앞에서 나를 이끌어주던 회색 옷을 입은 아저씨 영향일까? 솔 직히 어떻게 서울숲 공원 한 바퀴를 끝까지 뛸 힘이 생겨났는지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서울숲 공원 한 바퀴를 걷지 않고 뛰게 되자, 그다음에도 오래 달릴 수 있는 끈기가 생겼다는 사실이다. 서울숲 공원 3,000보를 꾸준히 걷고 뛰었던 일상이 그해 가을에 참여한 10km 달리기 대회에서 끝까지 걷지 않고 14,000보 를 계속 뛰게 만들었다. 서울숲 공원 한 바퀴를 걷고 뛰는 일상을 통해 나는 나만 의 속도로 끝까지 멈추지 않는 끈기를 경험했다. 앞으로도 어떤 일이든 끝까지 완 주할 수 있는 끈기가 서울숲 공원 2km를 걷고 뛰는 일상이 반복되면서 생겨났다. 작가이자 러너로도 잘 알려진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수필집 &lt;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gt;에서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라고 자신의 묘비명 을 미리 정해 두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묘비명처럼, 나도 글 쓰는 작가이자 걷 고 뛰는 러너로서 인생이란 달리기 대회를 끝마쳤을 때, 최소한 이럴게 말을 내 뱉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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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숲 방문자센터 옆엔 능소화 다섯 기둥과 달려라 피아노가 있다. 그 옆엔 작은 간판에 서울숲의 달리기 코스 소개가 되어있다. 작은 코스는 1.2km이고, 넓게 도는 코스는 2.4km이다. 많은 서울숲 러너들이 이 코스를 따라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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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헌책방을 위하여 이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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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숲역과 뚝섬역을 잇는 성동구의 광나루로를 걷다보면 북쪽 끝자락에는 신식 건물이 있습 니다. 일반 중소기업 사무실 용도로 쓰이는 건물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건물 1층에는 건물 겉모 습과는 사뭇 대조되어 보이는 ‘공씨책방’이라는 헌책방이 있습니다. 헌책방 안으로 들어서면 다양한 서적이 놓여있습니다. 법전, 사전, 인물평전뿐만 아니라 영어로 쓰 인 원서도 있습니다. 한때 베스트셀러였던 서적들과 더불어 LP판들도 빼곡히 자리잡혀 있습니다. 공씨책방에 있는 상당수의 도서, LP판들은 다른 곳에서는 구하기 힘든 진귀한 물건들이며, 몇몇 도서들은 현대사의 문물이기도 합니다. 사실 공씨책방은 100년 후 미래 세대에게 전달할만한 가치가 있는 보물로 인정되어 ‘서울미래유 산’으로 지정된 책방입니다.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책방인 만큼, 서울 시내 그 어느 서점보다 사 람이 많이 있어야 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서점을 찾는 이들의 발길은 줄고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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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씨책방 지킴이 왕복균입니다.” 왕복균 선생님은 공씨책방 성수점의 주인입니다. 그는 스스로를 ‘공씨책방 지킴이’라고 칭했습니다. “공씨책방은 사실 신촌에서 시작되었으며, 신촌에서 영업할 때 책들이 정말 많아져서 서점 분할이 필요했어요. 성동구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을 막기 위해 ‘안심상가 이용 공모 사업’을 실시했는데 저희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신청했지요. 정말 운 좋게 공씨책방이 선정되어서 성동구의 안심상가에 자리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 점포 자리가 바로 성동구 의 안심상가 중 한 곳이고요.” 그러나 그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예전에는 정보를 얻기 위해 출판된 책을 살펴보았습니다. 허나 요즘엔 스마트폰, 태블 릿과 같은 기기를 이용하여 실시간으로 필요한 정보를 알아냅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단 편적인 정보만 알아내려 하여 활자가 담긴 서적을 찾지 않으니, 국민들의 지식이 점차 메말라져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헌책방은 정말 힘이 없어요.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공씨책방이 신촌에서 운영되던 초창기에는 주로 책이나 글을 아는 이들이 찾아와주었 기에 뿌듯함이 컸지만, 지금은 자존심이 바닥이라고 합니다. 전세계적으로 스마트 기기, 인터넷 보급률이 높아지고 있기에 헌책방 운영에 위기가 도래한 것은 서울에서만 겪는 현상은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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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씨책방은 신촌서 1972년 ‘대학서점’으로 시작했다.


“벤자민 북스처럼 우리 함께” 해외에서도 수많은 헌책방이 위기를 맞았지만, 캐나다 오타와 시에 위치한 Benjamin Books는 이 위기를 지혜롭게 타파해 나가고 있는 책방입니다.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기 전 Benjamin Books엔 수백 명의 손님들이 드나들곤 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하루에 열 ~ 열다섯 명의 손님들이 방문합니다. Benjamin Books는 인근 학교, 공공기관(지방 자치단체), 지역 주민들과의 소통을 시도했습니다. 그래서 오타와 지역 지방자치단체와 주민들은 인근 대학의 학생회와 서점을 연결하여 학생들이 헌책방에서 책을 사고 팔 수 있도록 했습니다. 책을 구매하는 데 일정 수수료를 헌책방에 납부하여 책방이 수입을 벌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공씨책방 성수점에서 1.1km 떨어진 곳에는 한양대학교가, 역시 비슷한 거리에 건국대 학교가 있습니다. 사실 반드시 대학 서적을 거래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인근 초·중·고등 학생들의 참고서, 문제집, 문학서적도 좋습니다. 인근 학교, 지역 주민, 헌책방을 연결하 여 서울미래유산으로 손꼽힌 서점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지역사회와 공존할 수 있도 록 지자체, 주민들의 노력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더불어, 한 사회가 보유한 서적과 그 서 적의 역사가 그 사회의 지식수준을 반영하는 만큼, 시민들을 대상으로 인식을 제고하는 노력 또한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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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 코비드시대 성수동 구민체육센터앞, 약국에 줄선 풍경 ⓒ원동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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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와 두려움의 시대를 지나며

골목의 생명 어효은

이 골목 저 골목 걷다 보면 유난히 눈에 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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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들의 모습이 서울에서 어떻게든 돈을

는 것이 있다. 골목을 조금 더 친근하고 편안하

벌며 방값과 식비, 교통비를 마련하고 살아내는

게 만드는 초록 생명이다. 어떻게 싹을 틔워낸

나의 모습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더 높이

건지 모를 좁은 돌 틈 사이에서 자라난 모습을

크게 자라나고 싶은데 충분한 영양을 공급받지

보며 그 생명력에 감탄한다. 제법 싱싱한 잎을

못한다. 저도 모르게 한계를 짓는다. 계속해서

자랑하고 허리춤까지 자랄 정도가 되어도 뽑히

닿을 수 있는 곳까지 뻗어 나가는 골목의 나무가

지 않았다. 운이 좋은 경우일까? 은색 철문을 여

애잔하다.

닫았던 이는 이 친구의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이

힘이 들수록 좋은 점을 찾고 긍정적으로 생각해

있었을 테다. 어쩌면 그 반대인 무관심이었을 수

왔던 나였다. 그 시기에 글을 썼으면 골목의 나

도 있고. 무엇이든 간에 초록이는 살아남았고 그

무를 보며 용기를 느꼈을지 모른다. 적어도 나는

자리에서 숨을 쉬고 있다.

내가 밝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한 번도 무언가

이런 친구들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주로 마음에

를 포기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쉽게 절망

위로를 느낀다. 내 마음이 힘들 때는 나 역시 그

하지 않았다. ‘어떤 위기가 와도 나는 할 수 있어,

냥 지나치곤 한다. 이들의 존재를 알고 있지만,

극복할 수 있어. 좋은 일이 올 거야. 지금에 감사

삶이 아주 바쁘게 돌아갈 때는 눈에 잘 보이지

해.’라는 말로 나를 위로했고 격려했다.

않는다. 나무와 풀들이 주인공인 숲과 다르게 골

진짜 위기는 예상하지 못할 때 찾아왔다. 코로나

목에서는 세 들어 사는 신세가 된다. 오래된 집

19라는 바이러스로 3, 4월에는 공포와 두려움으

과 콘크리트 도로, 차, 오토바이, 담벼락, 높고 낮

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코로

은 건물이 주를 이루고 이들은 그 틈을 비집고

나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 안에 억눌려온 감정이

애써서 살아내는 존재들 같다.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촛농처럼 흘러내린 것


이었다. 마치 댐을 막고 있던 둑이 계속해서 밀

로 큰 나무이기 때문에 희생당한 존재는 운이 나

려오는 어마 무시한 양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

쁜 걸까?

듯이. 상담 선생님을 찾아갔고 임시로 방편을 마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삶은 쭉정이 같다. 인정하

련했다. 어느 정도 상황은 나아지는 것 같았다.

고 싶지 않지만, 사실이 그렇다. 인정받기 위해

그런데 최근 하루가 다르게 점점 더 거대해지는

살아온 삶을 마침내 깨달은 마음은 수치심과 부

코로나를 마주하며 다시금 두려움이 덮쳐오기

끄러움으로 범벅이 된다. 다만 그 사실을 인정하

시작했다. 하고 있는 여러 일들이 앞으로 도무지

고 다시 살아내야 한다. 한 걸음을 가더라도 진

어찌 될지 알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실한 마음으로. 더욱 더딘 걸음이 되겠지. 하지

사람을 만날 수는 있을까? 지금보다 걷잡을 수

만 가장 빠른 걸음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이제

없이 커지면 어떻게 될까. 전전긍긍하며 애써온

&#39;하루를 살더라도 후회 없이 잘 살았다.&#39; 라고 말

활동들을 등에 이고 살아온 나였다. 보호받지 못

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어떻게 그런 삶을 살

할까 봐 두렵고 최악의 상황이 일어날까 봐 걱정

수 있을까? 답하기 막막하지만, 희망은 있다. 이

된다. 내가 살아온 방식이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러한 질문을 이제라도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쩌

느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느냐고 물어도 대답

면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는지 모른다. 지금이

을 들을 수 없었다. 실은 그 이유를 짐작한다. 그

라도 골목의 생명과 함께하기로 마음먹고 행동

이유에 나 또한 동조했음을 알기에 물을 수조차

한다면 다짐한 삶과 가까워지리라 믿는다. 화려

없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미리 알았더라면 인

한 가짜 꽃보다 작지만 기쁨과 희망을 선물하는

류는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명심

골목에 핀 꽃을 닮고 싶다.

하고 지켜나갔을 거다. 잘린 밑동만 보더라도 제 법 거대했을 나무를 상상하며 전선과 닿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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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머리 오목눈이 정윤주

옛날 옛날에, 어느 숲 속에 흰머리 오목눈이가 살았어요. 오목이는 숲 이곳 저곳을 날아다니며 겨울에 먹을 열매를 바삐 모으다가, 한가해지면 다른 새들과 얘기를 나눴어요. 용맹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오목이는 자기가 매우 멋지다고 생 각했어요. 그러나 오목이의 친구들은 반대로 오목이를 너무나도 귀엽다고 생각 했어요. 목화솜처럼 하얀 몸과 조약돌처럼 작고 반짝이는 눈은 제 아무리 감정이 메마른 새가 봐도 부리로 콕 쪼아주고 싶을 정도로 깜찍했거든요. 이런 생김새 때문인지, 친구들은 오목이와 가끔 말다툼을 벌이다가도, 그 조그맣고 하얀 얼 굴이 화를 내는 모습을 보면 곧 잘 ‘아, 너무 귀엽다.’라고 생각하며 오목이가 뭐 라고 짹짹거리든지 그저 애정이 담긴 표정으로 쳐다만 볼 뿐이었어요. 오목이는 계속해서 자기가 얼마나 날쌔게 날 수 있는지 자신의 용맹함을 강조했지만, 다른 새들에게는 먹히지 않았어요. 여느 날과 다름없이 자신의 강함을 어떻게 보여줄지 고민하던 오목이는 근처에 서 사냥을 하는 솔개를 보았어요. 사냥감을 향해 무자비하게 공격하는 날카로운 부리와 먹이에만 집중되어 있는 매서운 두 눈은 다른 새들도 기겁하게 만들었어 요. 그러나 오목이는 그 모습이 너무나도 용감해 보였어요. 그리고 자기도 솔개 처럼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러다 오목이는 한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어 요. 독수리나 매 같이 크고 용감해 보이는 새들은 다들 하나같이 검거나 진한 갈 색의 깃털을 가지고 있었어요. 만약 자기에게도 그런 색의 깃털이 있다면 용감해 보이는 것은 시간문제였죠. 그 이후로 오목이는 자신의 눈처럼 흰 깃털을 어떻게 해야 검게 물들일 수 있을지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맨 처음 생각해낸 것은 숲에 널려 있는 검은 열매의 즙을 자신의 깃털에 물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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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소진

는 것이었어요. 열매즙을 모아 몸에 묻히자 하얀 깃털이 점점 어둡게 물들기 시 작했어요. 비록 보라색이 약간 섞인 검은색이었지만 오목이는 충분히 만족했지 요. 자신의 친구들에게 새로운 모습을 자랑하기 위해 날아가던 오목이는 중간에 비가 오자 근처의 나무에 가서 비를 피했어요. 몸이 전부 젖는 걸 막은 것에 안심 하던 것도 찰나, 촘촘한 나뭇잎도 모든 빗방울을 다 막아주진 못했어요. 빗방울 이 오목이의 몸에 하나씩 똑 똑 떨어질 때마다 새까만 깃털이 점점 옅어졌어요. 보랏빛의 검은색에서 점점 연보라색으로 변해갔죠. 이윽고 비가 다 그치자, 오 목이의 깃털 색은 보라색 얼룩이 묻어있는 하얀색이 되었어요. 멋진 깃털은커녕 끈적거리고 달큰한 냄새만 나자 오목이는 분하고 슬퍼 친구들에게 가지 않고 바 로 집으로 돌아갔어요. 오목이는 지난날의 실패에 좌절하기 보다는 다른 방법을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몇 년 전 까마귀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패션을 떠올렸어요. 자신의 검은 깃털을 가리기 위해 다른 새들의 깃털들을 모아 꽂기 시작한 한 까마귀의 모습을 계기로 까마귀들 사이에서 유명해지며 한동안 숲속에는 무지개 색깔의 깃털을 가진 새들이 날아다녔어요. 지금은 그 유행도 다 지나가서 더 이상 따라하는 까 마귀들은 없지만 오목이는 자기가 다시 그 패션을 되살려보자고 생각했어요. 갖 은 고생으로 자기가 원하던 색의 깃털들을 찾은 오목이는 그것들을 곧장 자기 몸 에 꽂기 시작했어요. 결과는 매우 만족스러웠지만, 몸집이 커 웬만한 깃털의 무 게를 견딜 수 있는 까마귀와 달리 오목이의 몸은 너무 작아 상대적으로 힘들었 어요. 이 상태로는 하늘을 날아다닐 수 없다고 생각해 오목이는 어쩔 수 없이 이 번 계획도 접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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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잘 풀리지 않자 오목이는 새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찾아가 조언 을 구한다는 숲에서 가장 지혜롭다고 알려진 부엉이의 둥지로 날아갔어 요. 우울한 얼굴로 부엉이에게 자신의 사연을 다 털어놓자, 부엉이는 커 다란 두 눈으로 오목이를 보며 말했어요. “네가 그렇게 원한다면 오늘 밤 가장 높은 나무로 올라가 달님에게 빌어보렴. 어쩌면 달님이 네 소원을 들 어 줄 수 있을지 모르잖니.” 부엉이의 말을 들은 오목이는 고맙다는 인사 를 하며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라고, 이 방법도 통하지 않는다면 이제 더 이 상 헛된 희망을 품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숲에서 가장 높은 나무를 향해 날 갯짓을 했어요. 얼마나 날았을까, 드디어 오목이는 가장 높은 나무의 꼭대기에 도착했어 요. 나뭇가지에 앉아 있으니 차가운 공기가 오목이를 떨게 했고 위에는 조 약돌 같은 별들이 밝게 빛났어요. 그리고 그 가운데 송골매의 눈보다 더 크 고 노란 달님이 떠 있었어요. 오목이는 달님을 보며 소원을 빌었어요. “달 님, 달님 부디 제 소원을 들어 주세요. 한낮의 밝은 햇살 같은 날개 말고 용 맹한 독수리의 날개 같은 어두운 깃털을 가지고 싶어요. 그런 깃털을 가진 다면 다른 새들이 저를 더 이상 귀엽게 보지 않을 거예요. 저도 용감해 보 이고 싶어요. 달님 부디 제 소원을 들어주세요!” 달님은 오목이의 간절한 목소리를 듣고 답했어요. “ 작은 새야, 내가 너의 모든 깃털을 다 검게 물 들여줄 수는 없어. 그렇지만 네 그 날개와 꼬리까지는 해줄 수 있겠구나.” 말을 끝마친 달님은 주위에 있는 밤하늘에게 부탁해 오목이에게 밤하늘의 무수한 일부를 나눠줬어요. 오목이의 꼬리와 날갯죽지에 진짜 밤하늘이 담 겨있는 것처럼 검푸른 깃털이 달빛에 비치며 반짝였어요. 그렇게 오목이는 자기가 그렇게 바라던 검은 깃털이 생겼어요. 달님에게 고맙다고 거듭 인 사를 하며, 오목이는 행복한 마음으로 자신의 둥지로 날아갔어요. 다음날 자신의 달라진 모습을 친구들에게 보여줄 생각을 하며 오목이는 매우 설 레했어요. 이렇게 해서 종이처럼 새하얀 흰머리 오목눈이의 몸에 먹물과 같은 검은 깃털이 생기게 됐답니다.

글을 쓴 이유: 평소에 작고 귀여운 흰머리 오목눈이라는 새를 좋아했는데 어느 날 뜬금없이 ‘왜 오목눈이의 날갯죽지와 꼬리 부분은 검은 걸까?’라는 의문이 들어 그 이유를 상상하며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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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숲 중랑천서도 오목눈이 볼 수 있다. 겨울이면 잎새가 떨어지고 철새들이 온다. 새를 보는 탐조여행의 시기다. 밀화부리는 튤립 나무(백합나무)에 남은 겨울열매를 좋아한다. 서울숲 숲속 공연장 뒤편, 겨울정원과 향 기정원 사이에 튤립나무 길이 있다. 여기 자주 밀화부리가 나타난다. 직박구리는 자주 산 수유 나무에도 앉는다. 발갛게 익은 산수유가 오래 남아있기 때문이다. 오색딱따구리는 수변공원에서 만났다. 한강과 중랑천, 청계천에는 셀 수 없이 많은 가마우지와 원앙, 백 로와 왜가리, 논병아리와 물닭을 만날 수 있다. 아래 사진은 2018년 12월 31일 중랑천서 만난 붉은머리오목눈이. ©백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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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으로 그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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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시대, 혼자서 휴일 하루를 보내는 방법 조나무

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읽는다. 맘에 드는 기사가 있으면 오려서 스크랩한다. 베란다 다육이들이 잘 살아 있는지 확인한다. 물은 한 달에 한 번만 준다. 잘 말려진 빨래만 걷어 갠다. 각방 장롱에 넣는다. 텃밭에 간다. 잘 익은 토마토와 가지와 상추와 깻잎을 딴다. 잡초를 적당히 뽑아 주고 물은 흠뻑 준다. 텃밭 채소로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하고, 오후 간식을 위해 스콘 반죽을 해둔다. 식기세척기를 돌리고 세탁기도 돌린다. 미리 신청한 책, 빌리러 도서관에 간다. 커피 한 잔 하며 빌려온 책을 읽는다. 마음에 와 닿는 문장은 노트에 옮겨 적는다. 세탁이 끝난 빨래, 탈탈 털어 각 잡아 건조대에 넌다. 생크림과 호두와 시나몬이 들어간 스콘을 굽는다. 가끔 얼그레이와 초코 칩, 코코아가루가 들어간 스콘도 굽는다. 스콘을 먹으며 넷플릭스를 본다. 코로나 시대 이전이었다면 혼자, 얼른, 극장을 다녀왔을 것이다 비가 오는 날이면 빗소리를 녹음한다. 천둥소리도 함께. 녹음된 빗소리는 가끔 밤에 잠이 안 올 때 듣거나, 선물한다. 그래도 오후 시간이 남으면, 왼손그림을 그린다. 주변 사물을, 펜과 색연필로. 서울숲을 걸으러 나간다. 평소의 보폭보다 10cm 더 넓게 4km를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풀코스는 내 생애 한 번이면 족하므로 뛰지 않는다. 샤워 후 만원에 4캔 맥주를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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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ACT ART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예술 서수아 스페이스오매 대표 (www.omae.co, Insta: omae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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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언제까지 이어질 지 단정 지을 수 없는 이 코로나 시대에 예술가의 역할과 관련 업을 비즈니스로 하고 있는 곳의 노력 도 대단하다. 처음엔 잠시 문을 닫고 예정되었던 전시 이벤트 등을 연기하거나 예약제로 운영했지만 이제는 그 것을 넘어 전시 또한 온라인화 되고 있다. KIAF ART SEOUL 2020 에서는 자체 사이트를 통해 ‘온라인 뷰잉룸’을 오픈하여 온 라인으로 미술작품을 한 눈에 감상하고 현대 미술에 대한 정보를 온라인 플랫폼 에서 즐길 수 있도록 준비하였다. 성수동 이웃 오르에르에서는 브랜드 ‘투까타’ 가 COVID BLUE에 맞서 새로운 BLUE를 이야기라는 TUKATA BLUE를 소개 함으로 다시 한번 일상을 활기차고 신선한 BLUE로 채울 수 있길 소망하는 전시 를 선보이기도 했다. 스페이스 오매에서는 8월 ‘ALOHA SEOUL 알로하 서울’이 라고 해서 한창 휴가 시즌이었지만 멀리 해외 휴양지를 떠날 수 없는 시기를 위 로하는 의미의 전시를 개최하였다. 하와이의 와이키키 해변과 서핑이 주는 신 선한 자극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고스란히 옮겨 놓는 작업을 하는 헤더브라운과 매튜알렌의 전시는 많은 방문자들에게 전시 작품을 통해 여행을 대신하고 여행 의 추억을 상기시켜주는 귀한 시간이 되었다. 코로나 시대에 겪고 있는 어려움 을 함께 극복하자는 의미에서 전시 기간 작품 할인과 대관 할인 행사도 함께 진 행하고 있다. 당초 KCDF에서 주관한여 문화역서울 284에서 &lt;공예주간&gt; 기간 동안 마련되려고 전시 또한 코로나19 예방 차원의 정부 지침에 따라 모든 오프 라인 전시 및 다양한 프로그램을 온라인 전시관으로 대체하여 진행하게 되었다. UNTACT 전시가 주는 혼란은 많은 사람들에게 실제로 함께 하거나 보지 못하 는 아쉬움으로 크게 다가오지만 온라인의 컨텐츠 개발 및 활성화와 새로운 가능 성을 향한 도전으로 이어지기도 하는 것 같아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기도 한다. 또한 코로나 사태로 인해 환경에 대한 생각을 더욱 깊이 고찰해 보고 일상에서 환경을 위해 실천할 수 있는 습관들을 생각해 보게 될 수 있는 것도 또 다른 장 점이지 않나 싶다. 이에 따라 맑은 하늘을 자주 볼 수 있는 것도. 아무쪼록 이 시 간이 많은 이들에게 고통이기 보다는 새로운 일상에 대한 도전과 진짜 소중한 것에 대한 열정으로 채워지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이 시기를 우리가 잘 기억하고 극복하여 더 나은 일상을 모두가 함께 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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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 사람들

성수동쓰다

“성수동엔 꽃집, 농원들이 많았어요.” 예아네 꽃집 홍종혁 님

예아네 꽃집은 예아 아빠가 운영하는 곳이다. 많은 이 땅의 소박하고 정직한 가게들처럼, 아이 이름이 상호가 되었다. 예아 아빠 홍종혁 님은 성수동 토박이다. 성수동 옛동네인 성덕정길 지 구대 앞 435번지가 그의 집이었다. 100여 평에 이르렀던 큰 기와 집. 그가 기억하는 성수동은 꽃집과 농원들이 많아, 비닐하우스가 즐비하던 땅이었다. 우리나라서 열 손가락 안에 들었던 상록원도 그는 기억하고 있다. 그가 지금의 꽃집을 하는 연유도 아마 어릴 적 기억에서 올 것이다. “가지, 오이, 고추, 배추, 무 같은 채소도 엄청 자랐지. 미나리꽝은 여기 성수동보다는 행당동, 지금 성동소 방서 있는 데서 많이 자랐고.” 이래저래 물 가까이 성수동은 나무 와 꽃들이 살기에도 좋은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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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숭이들, 한강으로 강수욕 갔지!” 뚝섬향우회 창립

지난 8월 8일 토요일. 뚝도시장서 한강으로 향하는 갑문 근 처서 ‘뚝섬향우회 창립식’이 열렸다. 서울사람들의 향우회란 보통 고향을 떠난 이들이 외지서 모이는 것이지만, 이곳 향우회는 토박 이들이, 자기가 어릴 적 살던 곳서 모였다. 여럿이 돈과 품을 추렴 해 마련된 이날 오랜만에 모인 이들은 돼지머리를 놓고, 명주실로 감은 북어포 앞에서 돈을 놓고 절을 했다. 1913년 10월 1일 창립 해, 졸업한 해를 알면 태어난 해를 바로 맞출 수 있는 경동국민(초 등)학교 ‘애들’이 주축이다. 향우회장 이철민 님은 어릴 적 한강이 “방 두어 개 폭밖에는 되지 않았었다.” 기억한다. 해마다 여름이면 집에 옷 벗어두고 벌거숭이로 갔던 기억이 어제지만, 이들은 어느 덧 옛 친구들이 그리울, 그윽한 나이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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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로 기록한 성수동의 사계절 ©서성원 서울숲 벚꽃길에 갔습니다. 꽃은 스스로 바람을 일으켜 물에 집니다. 개울가의 꼬맹이들, 나도 사이에 껴서 앉아 조잘조잘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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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을 올릴 때, 높은 차단벽부터 치더군요. 차단벽이 높으니까 괜히 안쪽이 궁금해지곤 합니다. “별거 아냐.” 기린처럼 목을 뺀 기중기가 말해주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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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 성당, 불 밝힌 사람들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몇 해 전, 스페인 성당에 불을 켰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주님, 코로나19를 언제 끝내려 하시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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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기 동네잡지

성수동쓰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하래불사하(夏來不似夏)?! 추래불사추(秋來不似秋)?! 집콕 하느라 계절을 잊으셨습니까? 세상을 잊어 계절을 찾으셨습니까? 우리들 곁에 부정기 잡지 &lt;성수동 쓰다&gt;가 있습니다. 성수동에 관한 이야기, 사진, 그림 그리고 활동 등을 알려주세요. 잡지로, 만남으로 함께 하실 수 있습니다. 80


&quot;여름은 어릴 적 숲에서 놀았던 즐거운 추억을 되살린다. 아침에 밖에 나가서 해질 때까지 놀고 있어. 좋아하는 곳에서 새로운 것을 찾고 있다.&quot; &#39;숲&#39;을 주제로 한 [성수동 쓰다] 10월호에 그림으로 인사드리는 벤자민입니다. 한국에 거주 중인 미국인 아티스트 겸 일러스트레이터입니다. 아티스트로서 재활용가능한 재료들로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인 작품들을 만들고 있으며,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사람, 식물, 동물의 평범한 삶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quot;Summer time brings back the fun memories of playing in the forest as a child. Going outside in the morning and playing until dusk. Looking for new things in favorite places.&quot; This picture was created by Benjamin for the October issue of Sungsoodong Sseuda magazine on the theme of &#39;Forest&#39;. Benjamin, an American artist and illustrator who currently lives in South Korea, creates geometric abstract art, often with reused and repurposed materials. His illustrations show the ordinary life of people, plants and anim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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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기 마을잡지

2020 10월

부정기 마을잡지

성수동쓰다 vol. 10

vol.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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