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을 잡 지
부정기 마을잡지
부 정 기
2020 11월
성 수 동 쓰 다
vol. 11
vol.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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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들을 때 쓰던 옛 물건들(CD, 카세트테이프, 레코드판)의 매력과 성수동 건물들의 특징을 함께 보여주기 위해 카세트테이프 삽화에 성수동 건축물을 겹쳐놓은 것이 본 이미지입니다.
나는 새 CD의 비닐 포장을 벗기고 그 안에 담긴 예술 작품을 열렬히 살펴본 때를 기억합니다. 더불어 카세트테이프 재생기기에서 시작/멈춤 버튼을 눌렀을 때의 감촉과, 기기에서 꺼냈을 때 나던 덜거덕거리는 소리도 기억합니다. 마치 어떤 건축물의 자재, 위치, 역사가 그 건축물에 매력을 더해주듯이, 다소 불필요해 보이기도 경험이 옛 물건에 매력을 더해줍니다.
번역 : 이서연
집 · 길 · 도 시 1
Editor’s Letter
길마다 집이, 집마다 사람들이 상원길, 연무장길, 성덕정길, 서울숲길에서
상원길은 대략 뚝섬나루터에서 살곶이다리를 잇는다. 최근에 이 길은 ‘뚝섬역 상점가’ 로 불린다. 2호선 뚝섬역 3번과 4번 출구 사잇길서 중랑천 방향. 조선의 태조 이성계를 테마로 벽화와 조형물이 곳곳에 있다. 길을 가면 중앙하이츠, 쌍용, 성수우방1차아파트 가 왼편에, 뚝섬현대와 동아그린 아파트가 우측에 정문을 두고 있다. 뚝섬미술관 신한은행 홈플러스 삼성문구 쥬씨 하이츠김밥 사흘카레 메가커피 땅끝마을 회뜨는집 럭키공인중개사 손박사유황삽겹살 뚝섬우동김밥 가나부동산 금옥당 kim’s 떼 루와 남성커트타임 대박닭꼬치 왕수학교실 용수학전문 연세현치과 상원부동산 화성한 의원 상원청과 삼성장식 바란미용실 유일문구 경북전자 본노엘 하나부동산 새마을금고 가득정육정 광명태권도 이브 등 가게가 빼곡한 이 길들 끝에는 OK자동차공업 남일자 석 성보조각 치코바치킨 합동피혁 성수뚝배기 성동폐차산업 진성빠우 대진모터스 선경 윤활유 동호전기모터 같은 가게들. 연무장길은 논산훈련소 연무대의 그 ‘연무’다. 성수동의 중심 경동초등학교 앞길 5거리 에서 자양동으로 향해 가는 길. 수제화와 가방 관련 공장과 부품 가게들이 많았다가, 카 페거리로 음식점 거리로 변천하고 있다. 해법수학 영어교실 경동분식 경동갈비 경동부 동산 제화기계대광 LE SOULIER 하버드영어학원 호박부동산 수우동 후다닭Q 다인부 동산 스튜디오 벙커 예윤 도치피자 현대목공소 Widht+Depth+Height 모터수리 한양앵 글 ORER 구두수선 contempo 우동가조쿠 애일종합포장 El PATIO 우창레더 건영피혁 SIETE 머리할래 대한피아노 Piaf Nail 이로우 조일조명 한결피혁 공주피혁 조은피혁 원 앤원실크인쇄 성산몰드 단미숍 외갓집 코끼리식당 협신철물 다래함박스텍 우리떡방앗 간 복돼지 보광상사 삼정펌프 샘물약국 수정식당 춘하추우동 영송기계 손맛좋은멜팅가 죽 BS레더 하림공방 지용사 진명사 빠우레더 동광피혁 동광종합제화기계 우창정밀…. 연무장길은 공사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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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덕정길은 구뚝섬길. 지가상승으로 쫓겨온 가게들, 버스차고지를 포함 오래 묵은 교회 들, 헤어샵도 많다. 가로수도 없고, 인도도 없는 찻길 따라 양편의 키 작은 집들은 헐릴 것이다. 제이앤드부동산 갤러리까비넷 하늘부동산 하이클래스부동산 구자현 구동수 아키텍츠 DSK갤러리 123 구트디자인 소프레사 손칼국수 번개노래방 오복떡집 보니네일 우리약 국 쇼팽음악학원 명석학원 홍도식당 천일공인중개사 타곤공인중개사 천일사진관 두꺼 비당구장 파스칼수학 더샤인부동산 신양장여관 헤어짱 미코헤어 세련헤어 브론즈부티 크 알짜부동산 진보부동산 얼큰이왕냉면 좋은집부동산 형제자전거백화점 성수지물포 성수신발 샤인피부샵 희락공방 돈이야 성수부동산 FM당구장 부덕관 초록부동산 성수 은성부동산 르호봇프로젝트 방앗간자리 서울숲부동산 부자부동산 우리들약국 서울숲지 구대 우리들안과 자애산부인과소아과 유일한수학아카데미 로얄공인부동산 행복미용실 센스헤어샵 셀파학원 삼성부동산 굿모닝부동산 뚝도청춘시장…. 이 길들엔 도깨비방망 이와 달마 지역아동센터가 박혀있다. 전형적인 주택가였던 이곳 서울숲에 처음 들어선 식당 이름은 ‘소소’였다. 지금은 신촌 살롱과 카페 진지함이 있던 그 집에 1년이 채 못 되게 있었다. 그저 밥을 먹는 집이 아니 라 만남의 즐거움을 목적으로 감성적 경험을 선사해주었던 공간. 이곳 가게들 간판은 대 개 외국어로 돼 있고, 일요일이면 사람들의 물결이 파도처럼 밀렸다가 밀려온다. 백두산약국 서울숲모텔 다산부동산 페이퍼델메이드 아쿠아델엘바 더소사이어티 성수 베이킹스튜디오 쿠아르토에스파시오 베르게토어쓰 컬리소프트서브아이스크림 오므르 살롱 중화카츠 성수골목 빵의정석 파르코피저리아 마켓온오프 베트남꾸아 여움 오후 5to7 소마이피자 펜듀카스마테리아 살비 엘더버거 신촌살롱 구욱희카페 the양복 제주 메밀전문점모멀 텝하우스숲 어데이 보울리바드 비스트로 제스티살롱 헬로아프리카 사 바이아롬 puum 숲떡 루비박스…. 성수동쓰다 편집장
원동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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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2020. 11월호
하나, 집
발행인 publisher
원동업
편집장 editor in chief 원동업 편집위원 editor 이상국, 서성원, 채수원, 어효은, 권경덕, 이서연 디자이너 designer 강민경 일러스트 illustrator 벤자민, 임소진, 강민경 사진 photographer 서성원 기고 contributing writer 이유상, 조나무, 정윤주, 민선희, 김경록, 허지원, 민경서, 안지우, 이서연, 홍효정
발간 성수동쓰다 편집위원회 마디마디[마을디스커버리 마을디자인] 마을미디어 빅픽처-세 개의 풍경 후원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동네잡지 <성수동쓰다>는 2020 서울마을미디어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08 살고싶던 집을 팔고 떠나야 했던 김현유
14 철거와 재개발! 성수동 쿼바디스!!
18 성수동, 다시 찾고 싶은
21 자연과 예술, 두 세계가 어우러진 성수동
*이 책에 실린 원고의 내용은 <성수동쓰다>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표지 벤자민 마이심툰
24 성수동 이색 공간 2 - 도만사
28 성수동이 Home Sweet Home이 되기까지
둘, 일
32 작은 회사를 다닌다는 것 서울숲 컨서버시 김나연(왼편), 신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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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 성수동
남자 집사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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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의 책방들
벤자민 이야기
72 41
성수동사람들
왼손으로 그린 그림
헌혈의 집에서
76 그랑_그랑2차 이야기
셋, 숲
46 응봉동 산 그리고 집과 정원의 추억
48 사진 에세이
응봉교 사진3
52 숲속을 걸어요
56 <성수연방> 다섯 번 탐방기
60 카페우디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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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집
현관에 들
어서면 ⓒ 강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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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의 계약서 - 성수동<집>이야기
살고싶던 집을 팔고 떠나야 했던 김현유
서성원
김현유 씨는 성수동 사람이다. 고향 장수를 떠나서 성수동에서만 살았다. 성인 이 된 뒤에 그는 성수동 같은 집에서만 살았다. 그런데 그에게 2019년 10월, 일 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집을 비우고 떠나야 했다. 성수동 벨랴듀재개발 그 얘기를 하려 한다. 김현유 씨가 성수동에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마 도 결정적인 역할은 집일 것이다. 현유 씨는 86년에 집을 마련했다. 성수 1가 2동 670번지 57호였다. 2층 주택이었다. 그 당시 많은 사람이 그랬듯이 집을 마련했 지만 그 집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전세를 놓았다. 88년에 매입한 집으로 이사를 했다. 집을 팔지 않는다면 언제까지나 성수동 사람으로 살 가능성이 컸다. 그러다 91년, 그 집을 지하 1층 지상 4층으로 지었다. 지하와 1, 2층은 상가, 3층, 4층은 주택용으로 지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서 지하는 창고 용도로 임대하 고, 1층은 신도리코에 임대했다. 나머지는 주거용으로 썼다. 그렇게 임대료도 받 으면서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데 13년 전, 아니 15년 전인가, 그 무렵부터 이상한 바람이 불었다. 재개발 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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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체가 동네에 와서 이상한 바람을 일으켰다. 재개발한다는 것. 그리고 계약서를 썼다. 집을 팔고 옮겨야 하나보다 생각했다. 하지만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그 이 후에도 비슷한 일은 반복됐다. 그 후에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동네 사람들은 재 개발한다는 업체가 나타나면 믿지 않았다. 어느 해인가, 동네 사람들이 믿지 않으 니까 계약을 해주지 않았다. 그러자 어느 업체는 이행금으로 천만 원씩 지급했다. 그때는 이제 재개발이 되나보다 했다. 그런데 또 일이 어긋나고 말았다. 이행금까 지 줬던 그 업체는 돈만 날리게 됐다. 건설업체 사장은 교도소로 들어갔다. 교도 소에 들어가서는 동네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이행금을 돌려달라고 애원했 다. 이렇게 계약서를 쓰면서 세월이 갔고 재개발한다고 하면, 뉘 집 개 짖는 소리쯤으 로 여겼다. 어떤 계약서를 써도 믿을 수 없는 게 재개발이었다. 그렇게 6번 계약서 를 썼다. 이번엔 뭔가 일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업체가 집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아마도 평 당 3천만 원쯤 보상했다. 지역 땅 시세와 비교하면 나쁘지 않은 금액이었다. 그러 다 5천만 원쯤으로 올라갔던 것 같다. 사람들이 집을 팔기 시작했다. 집을 가진 사 람들은 큰돈이 되었다. 김현유 씨는 다른 집으로 갈 생각이 없었다. 그랬더니 재 개발 업자 쪽에서 서두르기 시작했다. 김현유 씨는 생각했다. 이번에는 재개발이 되나 보다. 그렇다면 집을 떠나야 하나. 마음이 복잡했다. 하는 수 없이 매매계약 을 했다. 다른 사람들보다 썩 괜찮은 금액을 받았다. 그런 후에 여기 저기 이사 가야 할 집을 알아보려 다녔다.
철거된 집터를 둘러보는 김현유 씨 ©서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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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원
매매계약서에 얼마에 팔았다는 것을 타인에게 공개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있 었다. 조건을 어기면 재산을 압류하는 등 엄청난 불이익이 따랐다. 그래서 매매 잔금까지 받기 전에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저런 말들을 종합 해보면 대충 평당 얼마에 거래가 되는지 알 수 있었다. 10
현유 씨는 마음이 복잡했다. 신혼 시절부터 살았던 집이었다. 물론 집을 다시 짓기 는 했지만 그 집에서 평생을 살고 싶었다. 사회생활을 성수동에서 시작했다. 그리 고 성수동에 집을 마련했다. 그에게 성수동 집은 인생 전부였다. 아이들을 낳고, 기르고, 학교에 보내는 등, 그 모든 것이 그 집에 있었다. 11
©서성원
그리고 19년 10월에 이사를 했다. 새로 마련한 집은 면목동이다. 성수동은 집이 비싸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면목동이다. 그리고 2020년 언젠가부터 재개발 지역 집을 철거하기 시작했다. 현유 씨는 성수 동에 올 때마다 자기 집을 보았다. 2월, 3월에도 현유 씨의 집은 남아있었다. 현유 씨는 가림막 사이로 들여다보았다. 일 때문에 일주일에 몇 번을 들렀다. 그때마다 집을 보았다. 부셔지지 않아서 다행으로 여겼다. 돈을 받고 팔았지만 마음은 여전 히 그 집에서 살았다. 큰돈을 손에 쥐게 된 것으로 아쉬움을 덮어야 했다. 집을 떠나고 싶지 않았기 때 문에 이웃 사람들보다는 좋은 조건으로 집을 팔았다. 그것 또한 위안이었다. 다행 으로 여겼다. 재개발 바람이 불고 나서 괜찮은 금액이라고 생각해서 초기에 집을 팔았던 사람은 나중에 집을 판 사람들을 보면서 후회했을 것이다. 그리고 느긋하 게 집을 판 사람들을 다르게 보았을 것이다. 약아빠진 사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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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말 알 수 없는 게 사람 마음이었다. 현유 씨보다 나중에 집을 판 사람은 두 배도 넘게 돈을 받았다. 대표적인 사람이 김성근 야구 감독이다. 이 사람 집은 현유 씨 집보다 위치가 좋지 않았다. 그러니까 주택가 가운데 있었다. 그런데 마 지막까지 버티면서 평당 2억 7천으로 135억을 받았다고 했다. 그것도 신문을 통 해서 알았다. 그 집은 50평 정도였다. 어마어마한 돈을 받은 것이다. 현유 씨는 집 을 떠나고 싶지 않은 데다 집을 싸게 팔았다는 생각이 들어 속이 쓰렸다. 주택재개발은 이렇게 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그 지역에 살았던 가족의 역사를 지 워버린다. 그리고 집을 판 사람들을 만족할 수 없게 만든다. 그리고 재개발을 해 서 엄청난 돈을 벌어서 호화롭게 살고자 했던 업자는 오히려 담장 높은 집 교도 소에서 살기도 한다. 이런 일들을 지우고 35층 벨라듀 아파트가 들어서면 아파트 에 입주한 사람들은 서울숲과 중랑천과 한강을 바라보며 행복을 느끼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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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용 건축사 편집장 인터뷰
철거와 재개발! 성수동 쿼바디스!! 지역자산화 추구하고, 도시담론 시작하자!
원동업
홍성용 편집장은 건축사다. 월간지 <건축사>를 낸다. 매월 발간해 지난해 4월달엔 지령 600호 였으니, 50여년을 넘게 이어온 전통의 잡지를 맡고 있다. 3년째 편집장을 맡고있는 그는 성수동 연무장길 뒤편 타워테라스에 사옥도 마련했다. 오래오래 성수동에서 일하고, 친구들과 이웃들과 함께 하는 공간이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성수동에는 흥미로운 건축도 많고, 재미있는 일을 하는 친구들도 꽤 있다. 그들과 지역문화모임 등 했으면 참 좋겠다”는 그를 그의 사무실[NCS lab]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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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용 편집장은 잡지 <성수동쓰다>의 안부를 물어 주었다.
“비용은 어떻게…?” - 공모를 낸다. 성수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시작했고, 지난해부터 마을미디어지원센터와 함께 한 다. 최근 성동지역주민재단을 추진하시던 분들이 해산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5년여 기간 동안 지속돼 오던 성동인권영화제도 중단했다. 꾸준히 지속되고 성장해 가는 일이 쉽지는 않다.
“미국인들이 그런 걸 잘한다. 늘 수익을 만들고, 그걸 기반한다. 그런 시스템, 인식도 돼 있 다. 초등학교에선 2학년부터 프로젝트를 하게 하더라. 너희 뭐하고 싶니? 그러면 서점, 카 페, 뭐뭐 발표를 한다. 어떻게 운영하니? 애기들이 운영을 뭘 아나? 고민을 한다. 이익이 생 겨야겠구나. 사회 전반의 구조에 대한 리포팅을 만들어낸다. 또 하나는 글쓰기 수업. 초1때 는 세 줄을 준다. 서본결. 그리고 이후 계속 늘려간다. 안 하는 애들한테 푸쉬도 전혀 안 하지 만……. 잡지 <건축사>는 회원들 회비가 있어서 비교적 안정적이다.”
- 최근 동네를 돌아보다가 깜짝 놀랐다. 괄목상대란 게 이런 거구나 했다. 번듯하고 밝아졌다. 상 원길도 여기 연무장길도….
“성수동은 현재가 굉장히 중요한 때라고 본다. 강남역이 되느냐 마느냐 터닝포인트다. 아마 15년후 쯤 되면 백퍼센트, 이곳은 빌딩숲이 될 거다. 동서남북으로 강남 강북으로 접점에, 준 공업지대로 건축 여건도 좋다. 용적율이 나오니까. 문화적 공간 대림창고(할아버지공장, 성 수연방, 레이블 갤러리 같은 곳 역시) 같은 데도 개발의 욕구를 끝까지 버티겠나?”
- 한양대서 성동교를 건너오면 오른편에 벨라듀 현장이 있다. 주거지역이었는데, 금방 다 헐리고 지금 개발이 되고 있다. 성덕정길을 따라 양편의 공간들 1,2,3,4 구역도 재개발을 앞두고 있다.
“우리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돈맛을 알아버렸다. 막을 수가 없다. 재개발을 하면 이 전의 집주인들, 거주민들은 대개 자기 동네를 떠나야 한다. 그런데 자본주의 시대에 그 시스 템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본도 없는 이들은 버틸 수 없는 구조다. 구청에서도 관리해야할 영 역이 확 줄어든다. 하지만 재개발은 장소의 고유성, 시간의 연대기 같은 것들은 사라진다. 도 시적으로 보면 이제껏 공유되고 마음껏 걸을 수 있던 길에 담장이 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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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서당 아카데미서 한양대 건축과 교수들의 4차례 강의를 들었었다. 연립주택, 단독주택 사는 친구들과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을 비교했는데, 전자 아이들이 활동반경이 훨씬 넓었다. 공간지각 능력도 더 크다고 하시더라.
“그 정도 담론으로는 부족하다. 어렵지만 도시계획 같은 모법부터 살펴야 한다. 또 아파트 개 방성도 인정해야 한다. 유럽은 격자구조로 다양한 기능을 부여한다. 휴식과 체육과 커뮤니티 공간이 있다. 바로셀로나가 대표적이다. 4차선 도로엔 선택할 길이 많다. 수퍼블럭 만들고 8 차선 만들면 차만 다닌다. 도시활력이 떨어진다. 20세기 도시가 그렇게 기능이 분화된 도시 다. 낮에 회사서 일하고, 밤에 집으로 돌아가는. 코비드 이후 시대는 생활 근거리, 도보로 5분 이내에 이용가능한 모든 것이 있어야 좋은 도시다. 맨하탄 배터리 파크는 단지에 차들이 지 나간다. 주거지라 통행이 많지는 않다. 1층의 수위들은 편지를 직접 주민들에게 전달한다. 대 면하게 만든다. 관계를 만들면, 더 안전해진다는 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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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수동은 둥지내몰림(젠트리피케이션) 현상에 대한 우려도 크다.
“방치해서 도시가 슬럼화 되는 일 혹은 동네를 싹다 밀어버리고 재개발을 해내는 일. 이걸 피 하는 방법으로 순차적 개발이 있다. 이해 당사자가 많아지면 좀 늦어지고, 비용도 더 든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상수동 같은 데서는 ‘돈이 돈을 막았던’ 일도 있다. 재개발예정 지였는데, 주민들이 최초로 반대해 해제시켰다. 작은 집들까지 카페 레스토랑 같은 공간들이 들어가니까 (임대료가 더 낫겠다 싶었던) 집주인들이 반긴 거다. 시카고도 모델이 될 거 같 다. 다운타운이면서도 문화가 존재한다. 개발할 때 구청 등에서 옵션을 주어 공적 공간을 지 속적으로 확보, 지역자산화를 해야한다.”
- 지난해 성대하게 열렸던 건축사 대회 사진을 보았다. 대회장에 발터 벤야민의 구절도 있었다. ‘야만에 대한 기록 없이, 문명은 있을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서울서 나고 자랐다. 대학로 인근. 친구들 집에 갔는데 어떤 친구는 수영장과 분수가 있는 집에서 살고, 어떤 친구네는 단칸방서 살았다. 집이란 게 정말 다양하구나 싶었다. 건축 은 기본적으로 타인과의 관계를 해소하는 직업이다. 내 집을 짓지만, 그건 결국 옆집과 관계 를 맺는다. 집을 넘어 도시를 함께 생각하게 된다. 지역의 잡지, 언론을 통해 우리 사회가 어 떻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논의가 함께 됐으면 한다.”
월간지 <건축사>는 건축사들과 건축계 안 에서 통용된다. 일반인은 홈페이지[http:// kiramonthly.com]를 통해 내용을 볼 수 있다. 홍 성용 편집장이 관심을 두는 건 담론이다. 건축계 와 도시, 동네와 집 등 우리 사회가 함께 논의해야 할 여러 현안과 주제들에 대한 다양하고 심도 깊 은 이야기다. ‘잡지’가 제한적 형태이기는 하지만, 그런 논의 자체가 우리들에게 임팩트를 줄 수 있 다고 믿는다. ‘외곩수’가 많은 건축사들이지만, 다 양한 분야로 전문가가 된 이들도 많다. 그들의 이 야기도 소중하게 싣고 있다. 건축 원로들과 매해 깊은 이야기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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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 다시 찾고 싶은
어효은 lovewill333@naver.com
서울에서 살고 싶은 동네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성수동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성 수동 특유의 독특한 분위기가 좋기 때문이다. 공장이 었던 터에 옛스러운 건물 형태를 그대로 남겨두고 단 순한 카페가 아닌 전시, 공연, 강연 등의 다양한 문화 활동을 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이 들어서면서 독특한 성수동만의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골목 중간중간에 보 이는 그래피티, 벽화가 어우러져 있어 힙한 느낌을 준 다. 청자켓을 입고 한 손에는 맥주를 들고 거리를 돌아 다니고 싶은 충동이 인다. 성수동 거리를 걸을 때면 생 기가 돈다.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보며 상쾌한 공기를 맘껏 들이마실 수 있는 서울숲이 있는 것은 덤이다. 성동구에 살면서 다니던 곳만 다녔다. 주로 집 근처의 동네 카페와 도서관, 일터를 오갔다. 성수동에서 지낸 적도 없는데 이 동네와 여러 인연을 맺게 된 것이 신기 하기도 하다. 3년 전쯤 성수아트홀에서 꿈다락토요문 화학교 연극 놀이 강사로 일하게 되면서 성수동을 자 주 오고 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성수동 하면 서울숲밖 에 모르던 때였다. 일을 마치면 근처 식당에서 식사만 하고 다른 곳은 전혀 알지 못했다. 18
골목 곳곳에 주택을 개조한 식당에 청년들의 얼굴이 눈에 많이 띄었고 건물도 정이 갔다. 그 뒤로 독서, 글쓰기 모임 장소를 성수동 ‘마음과사람’이 란 공간에서 하게 됐다. 따듯하고 편안하고 아늑한 공간 이었다. 이곳은 상담소이자 차를 마시며 쉴 수 있는 공간 이 마련되어 있는데 삼당가이자 공간운영을 하는 김아라 님은 화려하고 깨끗하고 잘 정제된 모습이 아닌 살아가는 모습 그대로 이 공간을 자연스럽게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많은 지역 중 성수동에 공간을 만들게 되었는데 성수동이 지리적인 위치에서 특히 청년들의 접근성이 높 아지고 있고 많이 모이고 있는 것을 유심히 보았다고 한 다. 현실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사람들, 새벽부터 밤늦게 까지 부지런하게 일을 하는 분들을 많아 보면서 삶의 에 너지, 원동력을 많이 느낄 수 있는 곳, 성수동은 삶을 닮 아있다고 말한다. 공감이 갔다. 내가 성수동에서 느낀 매력도 바로 그런 활 마음과 사람 외, 내부 전경 ©어효은
기였다. ‘성수동쓰다’ 잡지과 뚝도채널e이야기기자단에 서 활동을 하게 되면서 성수동에 대한 글을 써왔다. 자연 히 성수동 곳곳을 취재할 기회가 생겼다. ‘성수동쓰다’인 회의 장소 <뚝도작은학교>를 방문하며 뚝도시장을 방문 할 수 있었고 근처 카페도 알게 됐다. 자주 오가다 보니 어느새 성수동이 익숙해졌다. 성수동 주택을 리모델링한 글루텐프리 디저트를 판매하 는 ‘소소하게’라는 카페 또한 인상적이었다. 입구를 발견 한 순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것 같은 설레는 마음 이었다. ‘소소하게’라고 쓰인 아담한 간판을 지나자 아기 자기한 알전구가 반짝이는 주택이 보였다. 화분의 식물들 과 나무 간판이 기분을 산뜻하게 만들었다. 친구 집에 들 어가 맛있는 커피와 차, 디저트를 먹으며 수다를 떠는 편 안한 느낌을 물씬 풍기는 공간이었다. 성수동은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공간이 많았다. 그곳만의 개성을 드러내면 서도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편안한 공간은 자주 생
카페 소소하게 외, 내부 전경 ©어효은
각나고 언젠가 다시 찾게 된다. 19
뚝도작은학교 ©어효은
지역이 개발되면서 특색을 잃어가는 장면을 볼 때가 있 는데 그때마다 너무 안타깝다. 새마음과 꿈을 안고 지역 을 찾아와 공간을 만든 이들에게 저마다의 이야기가 없 을 리 없다. 공간을 직접 리모델링하고 발품을 팔아가며 가구와 소품 하나하나를 들여오면서 심어놓은 저마다의 가치가 있을 것이다. 공간을 찾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 거다. 하나의 공간은 어떤 이의 삶이다. 어떤 곳에 터를 잡는 다는 것은 중요한 결심이 필요한 일이다. 가치를 담고 있는 공간 안에는 공간을 만드는 사람과 이 공간을 즐기 는 사람이 있다. 오랫동안 공간과 사람이 만드는 이야기 를 이어가 주길 바란다.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지는 공간 이 되길 바란다. 선물 같은 곳들이 다시 찾았을 때도 반 겨주길 바란다. 생기있고 편안한 모습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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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성수 마당에서 열린 플리마켓
자연과 예술, 두 세계가 어우러진 성수동
이상국
“같이 살자 같이 살자꾸나” “같이 살자 같이 살자꾸나” “같이 산다는 건 날 덜어내고 너를 채우는 일” “같이 산다는 건 내 우주 너의 우주 만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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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솔가와 이란이 부른 노래 <같이살자>에 나오는 가사말입니다. 같이 산다는 건 어떤 의 미일까요? 우리는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일터에서도 같이 살아갑니다. 새로 사귄 친구와 함께 삶을 배우고, 인생의 배우자를 만나 부부의 인연을 맺습니다. 그리고 때론 동료로 함께 일하며 같이 성장해 나갑니다. 친구, 부부, 동료, 이웃과 함께 울타리에 모여 공동체를 만들 고, 따로 또 같이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갑니다. 성수동은 다양한 사람들이 따로 또 같이 살아가는 동네입니다. 성수동을 일터로 활동하는 문 화예술인들은 붉은 벽돌의 공장과 창고 공간을 활용하여 지역 공동체에서 다양한 소통의 장 을 열어왔고, 사회적기업을 운영하는 젊은 창업가들은 골목의 주택에서 사회적가치를 창출 하는 서비스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젊은 트렌드를 반영한 개성 있는 카페와 음식점 상인들도 성수동 골목 구석구석에 자리 잡았습니다. 이들 모두 누군가의 친구, 동료, 부부, 이웃으로 성수동에서 함께 발걸음 맞추는 사람들이지요.
카페성수, 우리집에서 우리의 집으로 숲과 공장 사이, 예술과 산업 현장의 삶이 살아 숨 쉬는 서울숲길 골목에 생겨난 카페성수도 성수동의 변화에 발맞춰 생겨난 복합문화공간입니다. 지금의 카페성수가 생기기 전, 그 자리 에는 30년 된 2층 양옥주택이 존재했습니다. 넓은 마당이 있는 양옥주택의 지하에는 각종 기 계 설비들이 즐비한 금형 공장이, 1층에는 주거 공간이, 2층에는 아이들의 공부방이 들어서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카페성수는 아이들의 삶터이자 공장 근로자들의 일터였던 오랜 가정집을 리모델링했습니다. 문화예술 공간으로 새롭게 재탄생된 것은 2015년이었습니다. 양옥주택 건물의 구조적 장점 은 그대로 보존하고 커뮤니티로서 공간을 새롭게 재활용한 것이 카페성수 공간의 특징입니 다. 기계설비로 비좁았던 지하의 금형 공장은 특유의 아늑함이 느껴지는 카페 공간으로, 가 족이 함께 살던 1층 주거 공간은 주말이면 다양한 문화 예술 활동을 체험하는 배움터로 변했 습니다. 아이들의 공부방이었던 2층도 쿠킹클래스 공간이자 문화 프로그램이 열리는 편안한 공간으로 재탄생했습니다. 주말이 되면 카페 야외 마당에서는 성수동 핸드메이드 공방과 청 강문화산업대학교 카페베이커리 전공 학생들을 중심으로 플리마켓도 펼쳐졌습니다. 오래된 양옥주택이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에서 공간은 다양한 변화를 이뤘지만, 커뮤니티 속에서 사람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주택만의 공간적 특징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카페성수 야외 마당에서는 늘 푸른 나무가 자랐고, 카페 곳곳에 놓인 자그마한 화단에는 꽃 이 피었습니다. 내부 공간과 연결된 외부 테라스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따뜻한 햇살 이 비춥니다. 카페성수 건축물의 공간적 특징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우리나라의 오랜 건축 문화를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특히 자연과 연결된 열린 공간은 사람과 사람이 함께 소통하 고 공동체 이웃 간에 자연스럽게 교류하는 장소로서 의미가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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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성수
카페성수 외부 게시판
카페성수에서 직접 만든 빵을 판매하는 푸드스쿨 학생들
어쩌면 같이 산다는 것은 다양한 요소가 따로 또 같이 어우러지는 문화를 의미하는 건 아닐 까요? 카페 테라스에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도, 앞마당에 비추는 따뜻한 햇살도, 골목에서 마 주하는 꽃과 나무도 모두 성수동 공간과 잘 어울리는 것들입니다. 성수동에서 같이 산다는 것은 자연과 예술, 두 세계가 어우러진 성수동을 만난다는 뜻으로 해석해 봅니다. 성수동의 자연과 예술을 만나 소중한 사람과 특별한 순간을 채우기에 참 좋 은 가을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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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 이색 공간 2
도만사; 서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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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만사’는 출판사인가 했었습니다. 도만사를 찾아 나섰습니다. 주택가 골목길에 있었 습니다. 1층인데 그렇게 넓지도 좁지 않은 그런 공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공간을 내어놓은 건축가들의 발상이 매우 신선했습니다. 시민과 소통하기 위해 그 공간을 마련했다고 했습 니다. 누구나 하는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걱정을 듣기도 했답니다. 그렇게 해서 돈은 벌 수 있겠냐고. 도만사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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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만사 내부
도만사 내부
도만사 행사 모습(출처 도마나 페이스북)
공간을 둘러 봤습니다. 구비한 책들은 건축 관련 도서였습니다. 도만사가 특별한 것은 이용 방법입니다. 누구라도 미리 연락하지 않고 가서 비치된 책을 읽어도 된다고 합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열린 공간이었습니다. 상주하는 직원은 없습니다. 도시에 대해 관심이 있거나 건축 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좋아할 공간입니다. 영상 자료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코로나가 있기 전에는 도만사에서 도시문화에 대해 토크 쇼를 열기도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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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에는 특별한 행사도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성수동과 서울의 모습은 이런 건축가들이 바꿔 나갈 것입니다. 아름답고 멋진 성수와 서울이 될 것입니다. 도만사(domansa)가 무슨 뜻인지 얘기하겠습니다. ‘도시를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성수동에 위치한 작은 도시문화 플랫폼을 지향한다고 합니다. 도시가 우리 삶에 터전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도시의 정치, 사회, 환경적 이슈들을 함께 논의하고 담 론들을 통하여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도시문화를 만들어가고자 한답니다.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건축, 예술, 디자인을 통해 소통하며, 도시를 주제로 한 토크와 전시, 연구 및 출판 등 다 양한 매체를 통해 도시를 배우고 이해하는 시작점이 되고자 이런 공간을 마련했다고 합니다. 도만사에서 하는 일을 정리해보았습니다.
TALK
건축가, 예술가, 디자이너와 함께 도시를 바라보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살기좋은 도시를 만들어 나가야 할지 생각해보는 시간입니다.
exhibition
예술가, 디자이너를 포함한 다양한 분야의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도시와 건축 관련 전시를 합니다.
workshop
현재 도시 문제는 무엇이며,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현장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research & publication
프로그램들을 기록하며 도시에 대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개발, 연구합니다.
Book Collection
건축과 도시와 관련된 다양한 분야의 책을 수집하고, 책을 함께 공유합니 다.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 또는 전문가들에게 현재 이슈되고 있는 도시, 건축 담론들을 책으로 만나볼 수 있습니다.
1. 주소 : 성동구 광나루로4길 12 102호 / 성수동2가 299-129 2. 전화 : 050-5055-1226 3. 홈피 : https://www.instagram.com/domansa_ https://www.facebook.com/domansa.seoul https://www.domansaseoul.com 4. 영업시간 : 09:00 ~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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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건축, 성수동
성수동이 Home Sweet Home이 되기까지
서수아
성수동으로 가족이 이사 온건 벌써 10년전쯤 되는 것 같다. 독일과 영국을 거쳐 오랜 유학 생활로 늘 환경이 바뀌는 생활을 장기간 하다 보니 한국에 돌아와서는 익숙하게 살던 동네를 떠나 ‘성수동’이란 낯선 동네에 이사를 온다는 환경의 변화가 여러모로 불편하게 느껴졌고 오랜 시간 정을 주지 않은 채 집과 회사만을 오고 갔다. 공장들이 빽빽하게 들어 서 있는 환경도 처음엔 차갑고 불편하게 느껴졌다. 이 동네에 본격적으로 정을 주기 시작 한 것은 내가 마음의 문을 열고 동네에서 아는 친구들을 만나고 새롭게 알게 된 이웃이 생 기고 부터다. 동네에 마음의 문을 열고나니 그때부턴 장점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실제 환경 도 급속도로 좋아지고 안정화되고 있었다. 사실 성수동은 살기 정말 좋은 동네라는 생각을 한다. 한강, 서울숲, 지하철 2호선, 대형마트가 모두 10분 거리 내에 있다니! 예전엔 이런 장점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어떻게 다른 동네로 이사 갈까 싶다. ‘좋은 집,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생활환경이란?’ 이 질문은 어릴 때부터 줄곧 나를 따라다 니는 가장 근본적이자 중요한 질문이었다. 한결 같은 나의 꿈 중 하나는 ‘좋은 집’에 대한 해석을 내 나름대로 실현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한 첫번째 시도로 난 ‘SPACE OMAE’ 재생 건축 프로젝트를 실행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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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변화가 장점이자 이 도시의 단점이라고 생각한 나는 ‘변화 이제 그만!’을 외쳤고 ‘SPACE OMAE’는 그 외침의 결과물이다. 30년된 연립주택의 가정집의 원형을 거의 그대 로 보존한 채 건물이 가지고 있는 장점들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철거와 함께 동 시대적 감성을 부여하였다. 이 곳은 언제 가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아지트같은 장소가 되었 다. 나의 첫번째 집 프로젝트를 성수동에서 해 볼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라 생각한다. 좋은 집과 ‘*건축은 사람을 생각하고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마을과 도시를 생각하고 역사와 사 회를 생각하게 한다. 형태와 재료, 아름다움을 생각하게 한다. 합리적 비용과 가치를 생각 하게 한다. 내가 생각한 건축의 본질이 나의 삶과 사고 방식을 결정하고 구성한다. 내가 경 험하고 기억하고 감각하고 상상하는 모든 공간과 장소가 나의 세계로 통합된다. (*모든 공 간에는 비밀이 있다 by 최경철)’라는 말처럼 내가 생각하는 세계, 그 집이 놓일 장소의 세 계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연구하는 행위가 곧 좋은 집과 건축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좋은 집과 건축, 그리고 그 건축물이 놓인 장소는 사람의 행복과 직결된다고 믿는 한 난 좋은 집 과 건축에 대한 생각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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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일
나의 일, 너의 일 ⓒ강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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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_진로를 찾는다는 것
작은 회사를 다닌다는 것 ㈜커리어투어 김재홍
‘9988’이라는 숫자를 들어보았을까? 중소기업을 상징하는 숫자다. 중소기업 수 가 전체 기업의 99%를 구성하고 전체 고용 인구의 88%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상징한 다. 물론 통계 수치를 산출할 때 어느 통계기관에서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산출하느냐에 따라 수치가 조금씩 달라지지만 대략적으로 수치는 90%, 80% 정도를 왔다갔다 하는 것 같다. 기업에 다니는 노동자 10명 중 8명은 중소기업에서 근무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알다시피 중소기업의 상황은 열악하다. 제조업 중심의 산업 구조, 납품단가 인 하, 원자재 비용 상승 등 하청업체가 가지는 어려움, 거기다 올해는 코로나까지 겹쳐 정 말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 구직자들이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현상도 시간이 지날 수록 심해지는 것 같다. 통계청에서 조사한 ‘2019년 사회조사’ 결 과에 따르면, 청년(13~29세)들은 가장 근무하고 싶은 직장으로 국가기관(22.8%), 공 기업(21.7%), 대기업(17.4%)을 꼽았다. 상위 3개 직장의 합계는 61.9%에 달한다. 2017년(60.4%)보다 1.5%포인트(P) 상승했다고 한다. 그래프에는 정확히 안 나와 있 지만 기타에 해당하는 12.5%가 아마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에 해당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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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선택의 기준은 무엇일까 중소기업이 다른 직장보다 연봉도 낮고, 복지도 열악하고, 직업 안정성도 떨어지니 당 연한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그게 당연한 것인가? 좋은 직장이란 어 떤 직장을 말할까? 충분한 수입과 안정성을 보장하는 직장이 좋은 직장인가? 자신의 적 성에 맞고 보람있게 일할 수 있지만 대신 수입이 작고 불안정하다면 그곳은 나쁜 직장일 까? ‘2019년 사회조사’ 결과를 다시보면 청년들은 직업선택요인으로 수입(38.8%), 안정 성 (25.6%), 적성/흥미 (16.1%), 장래성(5.8%), 자아실현(4.2%)을 선택했다. 1~2위 인 수입과 안정성을 합하면 전체 64.4%에 달한다. 청년 대부분의 직장 선호도가 대기 업, 공기업, 국가기관인 이유를 여기서 알 수 있다. 청년들만 그러는 것일까? 30세 이상 의 통계자료를 보아도 똑같다. 수입과 안정성을 중요시하는 비율의 합계는 30~39세는 61.4%, 40~49세는 66.6%, 50~59세는 69.4%에 달한다. 수입과 안정성을 중요시 하 는 성향은 사실상 사회 전반적인 성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작은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을 선택한 사람들이 있다. 어쩌면 중소기업보다 더 힘들고 더 열악할지도 모르는 작은 회사에 들어온 팀원들이 있다. (중소기업 중에서도 근로자 수가 10명 미만의 회사를 작은 회사라 부르려고 한다.) 성동안심상가 주변을 보아도 다 양한 작은 기업의 근로자들이 오늘도 열심히 회사를 다니고 있다. 이들은 어떤 사람인 가? 치열한 취업 경쟁에서 패배한 사람들인가? 아니면 자신의 적성과 보람을 찾아서 온 사람들인가? 이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일을 하고 있을까? 모든 근로자들을 알지는 못하지만 글을 준비하면서 우리 팀원분들을 포함한 몇몇 분들 과 해당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작은 회사에 들어온 이유는 무엇 인가? 작은 회사에 다니면서 좋은 점은 무엇인가? 어려운 점, 힘든 점은 무엇인가? 주 변에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없는가? 등을 물어보았다. 다양한 대답들이 있었지만 공통된 부분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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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들어온 동기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일을 하기 보단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 을 하고 싶어서인 경우가 많았다. (참고로 성수동에는 ‘소셜벤처’가 많다. 소셜벤처란 사 회적 목표 달성을 위해 혁신적이고 체계적인 해결책을 제공하고자 하는 기업 또는 조직 이다.) 대표나 기존 근로자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거나, 활동하다 생긴 인연에 의해서 온 경우도 있었다. 작은 회사를 다니면서 좋은 점은 대표나 경영진과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을 꼽 은 사람이 많았다. 회사의 방향성이나 프로젝트에 대해서 여러 단계를 거쳐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대표나 경영진의 생각을 직접 소통하면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회사 를 구성하는 수많은 부품 중 하나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구성원으로 존중받고 인정받는다는 것이 좋다는 사람도 있었다. 회사에서 진행하는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았다. 장점만 있으면 참 좋겠지만! 작은 회사를 다니는 것에는 어려운 점이 참 많다. 체계가 없 고 업무 매뉴얼이 잘 갖춰지지 않아 스스로 만들면서 해야 한다. 사람이 적은 만큼 한 사 람이 여러 분야의 업무를 걸쳐서 하는 경우가 많다. 흔히 하는 얘기로 회사가 작다고 일 이 작지는 않기 때문이다. 업무 사수가 없는 경우가 많기에 그 과정은 더 힘들다. 연봉이 낮고 복지제도가 잘 갖춰져 있지 않다는 점도 근로자 분들에겐 아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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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기준을 서로 존중하는 사회 그러나 무엇보다 작은 회사를 다니는 현직자들의 어려움 중 가장 큰 것은 ‘주변의 시선’ 이다. 부모님이나 친구 또는 가까운 사람이 회사에 다니는 것에 공감을 못해줄 때, 일하 다 혹 힘든 점이 있어 이야기를 하면 ‘그래서 작은 회사는 다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을 할 때, 아직도 불안한 시선으로 자신을 쳐다볼 때, 더 나아가 실패한 사람으로 취급할 때 제일 힘들다고 했다. 사회의 65%의 시선으로 본다면 작은 회사를 다닌 다는 것은 경쟁 에서 실패한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자신의 직업 선택의 기준이 적성과 흥미, 보람, 자 아성취에 있다고 바보같은 선택이라며 손가락질 받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직업 선택 의 기준은 다양할 수 있다. 아니, 다양해야 한다. 모두 다른 환경에서 자라고, 다른 성격 과 다른 재능을 가진 독특한 개인이라는 존재가 왜 똑같은 기준과 생각으로 직업을 선택 해야 한단 말인가? 작은 기업을 운영하는 대표로서 소망이 있다면 당신의 자녀가, 친구가 혹은 연인이 작은 회사에 다닌다고 불안해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편견을 가진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 았으면 좋겠다. 그들은 남들의 기준이 아닌 자신만의 기준으로 인생을 적극적으로 개척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패배자가 아닌 그 누구보다 다양한 능력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 는 사람들이다. 지금 당장의 상황을 보고 불안해하기 보다는 5년, 10년 후를 보고 격려 를 해주셨으면 한다. 일을 하다보면 팀원들에게 미안할 때가 참 많다. 그럼에도 오늘도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 서 열심히 일을 해주는 팀원들이 정말 고맙다. 또 다양한 회사에서 힘들지만 자신의 일 을 열심히 하는 다른 근로자 분들도 정말 존경스럽다. 힘들지만 열심히 일하는 당신들이 있어 우리나라의 중소기업이 운영되고 있는 것이기 에.
※ 중소기업, 작은 회사를 다니는 현직자 분들 중 어려움이 있거나 고민을 상담하고 싶 은 독자분들께서는 ceo@careertour.co.kr 로 연락주시면 답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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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집사람 이야기
권경덕
남자가 사는 집은 지어진 지 2년 정도 된 신축빌라다. 청년들을 지원하는 한 주거 단체 에서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하는 공동 주택 입주자를 모집했다. 남자는 9개나 되 는 서류를 제출하고 몇 달 걸리는 심사 결과를 기다린 끝에 합격 통보를 받았다. 법적 연령 이 청년에 속하고, 소유하는 집이 없고, 돈을 적당히 잘 못 벌고, 범죄 이력이 없는 덕분에 살만한 집을 얻었다. 집은 방 세개에 세 명이 같이 사는 셰어하우스다. 제일 먼저 입주한 남자는 신발 자국과 먼지로 무성한 집안 구석구석을 쓸고 닦았다. 봉이 긴 밀대 하나와 손 바닥만한 손걸레 하나로 방 세 개와 거실 바닥, 화장실, 주방, 수납장을 닦았다. 땀을 뻘뻘 흘리고, 무릎과 허리의 뻐근함을 기꺼이 감수하면서 뒤늦게 들어올 다른 입주자들 몫까지 해치웠다. 남자는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 프리랜서 독서, 글쓰기 강사 일을 하고 있지만 온,오프라인 수업을 병행하고 있어 일주일에 하루 이틀 강의를 하러 나가거나, 하루 이틀 약속이 있어 나가는 경우를 제외하곤 거의 집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게으르게 일하고도 생활이 가능 할까 싶지만, 저렴한 집세와 적은 수입으로 살아가는 나름의 노하우 덕분에 그럭저럭 살아 가고 있다. 펑펑 쓸 돈이 없으니 집에만 있는 거 아니냐고 누군가 비아냥거려도, 수입이 적 어서 집에 오래 있는 건지, 집에 오래 있고 싶어서 일을 적게 하는 건지 남자 스스로도 확 신할 수 없어 딱히 대꾸할 말이 없다. 후자라고 믿고 있긴 하다. 세 글자 헤시태그로 자기 소개를 하는 어떤 자리에서 남자는 '#집사람'이라고 적기도 했다. 이사온 지 3주정도 되었을 때 남자의 생활에 변화가 생겼다. 물론 집사람으로 지내는 건 여전하고, 이전까지 올빼미형 인간이었던 남자의 생체 리듬이 극적으로 바뀐 거다. 남자 의 방은 동쪽으로 창이 나있어서 일출과 동시에 태양빛이 남자의 얼굴을 때린다. 노골적으 로 들이대는 광명에 남자는 굴복하지 않을 수 없다. 대낮에도 불을 끄면 어둑어둑 했던 이 전 집과는 달리, 해가 뜬 이후부터 빛이 마구 침범하는 집이었기 때문이다. 암막 커튼을 살 까도 생각했지만 자명종 없이 이른 아침을 맞이하는 기분이 나쁘지 않아 커튼 없이 지내고 있다. 바깥 일정이 없는 오늘도 해는 조용히 떠올랐다. 남자는 이불로 얼굴을 덮으며 한동 안 저항해보지만 별 소용이 없다. 침대 맡에 손을 뻗어 더듬더듬 휴대폰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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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 50분. 덜 떠진 눈으로 집안을 어슬렁거리는데, 어제의 집사람이 남겨 놓은 흔적들이 보인다. 침 대 맡에는 보다 만 책들이 아무렇게나 흐트러져 있고, 싱크대 위에는 어제 야식 메뉴를 짐 작케 하는 설거지 거리들이 쌓여 있다. 거실 테이블 위엔 커피 자국이 남아 있는 머그잔과 노트북이 올려져 있고, 건조대 위엔 세탁하고 널은 젖은 빨래들이 빼곡하다. 집안을 한 바 퀴 둘러보고 나서 물을 마시려다가 아침에 양치를 먼저 하는 것이 좋다고 했던 기사가 떠 올라 화장실부터 간다. 양치를 하며 잠을 깨고 물을 한 잔 마신다. 그리고 거실 창을 활짝 열고 청소기를 돌린다. 씩씩한 청소기 소리와 바깥에서 들어오는 서늘한 공기로 남아 있던 옅은 잠마저 달아난다.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을 틀고 밥 할 준비를 한다. 쌀을 씻고 밥솥 취사 버튼을 누르면 얼 마 후에 꾸루룩 꾸루룩 소리가 들린다. 김이 모락모락 나면서 밥냄새가 솔솔 풍긴다. 그 쯤 되면 어제 먹다 남은 된장찌개를 데우고, 팬 위에 기름을 넉넉히 둘러 계란 후라이를 한다. 밥솥 알람이 울리면 밥공기에 밥을 푸고, 냉장고에서 밑반찬 몇 개를 꺼내 조촐한 1인 밥 상을 차린다. 이후의 일정은 이렇다. 아침 먹기. 커피 마시기. 내일 있을 글쓰기 강의 준비하기. 점심 해 먹기. 시장에 가서 장보 기. 낮잠 자기. 주말까지 마감인 글 좀 끄적이기. 누워서 휴대폰 만지기. 마른 빨래 개기. 저 녁 해 먹기. 이불 털기. 누워서 책보기. 씻으면서 내일 아침은 뭐 먹을까, 생각하기. 스탠드 조명만 켜고 눕기. 침대 맡에 잡히는 아무 책이나 들춰보기. 그러다 잠들기. 아예 '집사람'이라고 적힌 명함을 파볼까 생각한 적도 있다. 스스로를 집사람으로 생각한 이후부터 '집사람다움'에 대해 자못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좀 더 매력적 인 집사람이 되고 싶어진 거다. 직업에 직업정신과 직업윤리가 있듯이, 집사람도 집사람만 의 사명감과 윤리의식이 있어야할 것 같았다. 존경받는 집사람 모델이 많아져서 어린 남 자 아이가 장래희망 란에 '집사람' 이라고 떳떳하게 적을 수 있으면 좋겠는 거다. 아니 우 리 누구 누구가 집사람이 되고 싶단 말이야? 아니 글쎄 우리 애가 집사람이 된다지 뭐예 요. (웃음)(웃음)(웃음). 남자 아이가 집사람을 꿈꾸는 것만으로 한 가정에 환희와 감격을 가 져다 주었으면 하는 거다. 집사람이에요. 이렇게 소개해도 듣는 사람의 고개가 갸우뚱해지지 않는 세상을, 남자는 한번씩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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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과의 대화
원동업
벤자민의 작품은 우리 2019년 <성수동쓰다>의 잡지에 실렸다. 일년에 겨우 세 번 쯤 내는 잡지였으므로, 첫 작품은 5월쯤의 봄호였다. 그는 매호마다 정성이 담뿍 담긴 일러스트를 보내주 었다. 가을호에 그는 ‘NEW WORK XIV’란 작품을 보내주었다. ‘열네 번째’로 그린 작품이란 뜻이 었다. 우리는 그 작품을 <성수동쓰다>의 표지로 실었다. 우리로선 처음 표지에 싣는 일러스트였 다. 벤자민을 처음 만난 것은 2018년 가을에서 겨울으로 넘어가는 무렵 성수동의 스페이스 오매에 서였다. 오매는 다양한 주제와 형식으로 정기적인 전시를 하는 곳이었으므로, 외국인 작가가 특 별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주된 작업은 일러스트레이션이었고, 잡지는 일러스트 즉 삽화와 일정 하게 연관돼 있었다. 잡지 편집자와 일러스트 작가는 의기투합할 일이 있었다. 즉 함께 잡지를 만 드는 것. 벤자민을 지난 9월 성수동의 할아버지 공장에서 만났다. 대전에서 살며 활동하는 그를 만난 건 전시 이후 처음이었다. 우리들의 11월호 주제가 (성수동의) 집, 그러니까 성수동이란 동네의 건 축과 마을풍경 같은 따위였는데, 그 ‘취재’차 마을탐방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좋은 작품만 받는 다면 그게 어떤 방식으로 나오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작품이 저런 태도에 서 나온 줄 알게 되면 그 작품을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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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에도 우린 당신의 작품을 표지로 삼기로 했다. 편집위원들 회의를 통해서……. 우리 들 모두는 당신의 작품을 좋아한다. “기쁘고 감사한 일이다.” - 당신을 소개해 달라. “벤자민 모피트가 내 이름이다. 이삼백 여년 전에 스코틀랜드에서 미국으로 이주했던 조상들 에게 물려받은 성을 갖고 있다.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은 미시건주 플린트, 캐나다에 가까운, 오 대호가 둘러싼 곳이다. 나는 일러스트레이션 작가다.” 성수동처럼 미시간은 평편한 땅이다. 땅에 위스키를 부어도 어디로 흘러가지 않는 땅. 성수동이 한강과 중랑천이 감싸고 도는 땅이라면 미시간은 미시간호와 휴런 그리고 이리호가 둘렀다. 그는 미시건 플린트에서 자주 부처를 모신 절을 찾곤 했다. 그는 현재 콘크리트가 보여주는 기하학적 문양과 매력에 이끌린 포토그래퍼이기도 하다.
- 실례지만 전공이 일러스트나 예술 쪽인가? “미시간에서는 영문학을 전공했다. 처음 한국에 올 때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했다. IT업계에 서 웹사이트 만드는 작업을 했다. 웹디자인과 프로그래밍에도 종사했다. - 영어 선생님이나 프로그래머라면 수익도 훨씬 더 좋았겠다.(웃음) 예술가로 사는 일은 험난 한 일이다. 어떤 ‘불운한(웃음) 계기’로 예술 쪽에 발을 디뎠나? “내가 사는 곳은 디트로이트에서 좀 떨어진 교외지역이었다. 우리 지역에 자연 환경이 풍부 했다. 나 역시도 마블의 만화 영화를 좋아했다. 그런 것들을 따라 그렸던 기억이 있다. 그 모 든 게 나의 예술적 자양이 되었다. 특히나 자연은 언제나 나의 스승이었다. (그는 가방에서 작 은 소형 녹음기를 꺼내 보여주었다) 지금도 새소리, 개구리, 곤충들이 울 때는 녹음기 꺼내 거 기 놓은 채 물러서 있곤 한다. 아티스트는 언제나 자신 작업의 즐거움과 돈이라는 필요 사이 에서 줄타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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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쓰다에 실린 벤자민의 일러스트들
- 대전에서 살고 있다. 한국에서 가본 곳은 어디인지? 요즘 하고 있는 일은? “많이 움직이는 편은 아니다. 광주 공주 부산 전주 제주에도 갔었다. 공주는 밤이 유명한 곳 인데, 그쪽과 캐릭터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부산이나 광주 등에서 벌어진 일러스트 페 스티벌 등에도 참여했다. 10월 31일은 할로윈인데, 캐릭터들도 만들었다. 헝그리 고스트같 은….” 우리는 영어로 대화했다. 내가 영어에 능통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의 한국어가 아마 훨씬 더 서툴러서였을 것이다. 그는 부인 다영과도 영어로 말한다 했다. 생면부지의 관계였지만, 그래도 그의 삶과 예술은 내게로 순조롭게 전달돼 왔다. 우리들은 서로 다른 곳서 나고 자랐지만, 사람 사는 현대인들의 모습이란 그다지 다를 것이 없었다. 그가 열네 번이나 거듭 그렸던 2019년 가 을호의 그림은 고향에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예술가 친구를 생각하면서 작업한 것이다. 우리가 그 작품에 그토록 끌린 이유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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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으로 그린 그림
헌혈의 집에서
조나무
2014년 한양대역에 있는 헌혈의 집에 갔다가 철분 수치가 낮아 헌혈을 못한다 하기에 ‘나는 빈혈이 있어서 헌혈을 못하는 사람이구나, 건강하지 않구나’하고 조금 놀랐던 기억이 있다. 최 근에 죽음과 죽어감에 관한 설명이 있는 책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를 읽고 나서 죽어도 헌 혈은 한번 하고 죽어야 겠다 뭐 이런 생각을 하게 되면서 헌혈의 집을 다시 찾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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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3월17일. 한양대역 헌혈의 집을 방문했다. 검사를 했는데 헌혈을 할 수 있단다. 빈혈이 었던 것이 아니라 남에게 주는 혈액이어서 높게 설정된 수치에 도달하지 못해 헌혈을 하지 못 했던 것 뿐이었다고. 첫 헌혈이니 320ml만 하고 가라고, 전혈은 두 달에 한 번 할 수 있다고 했다. 문진표를 작성하다 보면 헌혈할 수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정말 몇 안 될 것 같다. 여성 은 체중 45kg 이상이어야 하고, 외국을 여행한 경우는 귀국 후 1개월이 경과 해야 가능하다. 지병이 있어도 안 되고 암 환자도 안 되고 약 복용자도 안되고. 마치 헌혈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만이 계속할 수 있다고 거듭 말하고 있는 것 같은 조건들뿐이다. 게다가 만69 세라는 나이 제한도 있다. 20년5월18일. 두 달이 지나 두 번째 헌혈할 수 있는 날이 되었다. 헌혈 3일 전 예약 문자가 왔 다. 오늘은 혈장 헌혈만 할 수 있다고 했다. 혈장헌혈은 혈장만 빼내고 나머지는 다시 내 몸속 으로 넣는 거라 헌혈시간은 전혈 할 때보다 두 배가 넘게 걸렸다. 혈장 헌혈은 2주에 한 번 할 수 있다고 한다. 20년6월1일. 세 번째 헌혈. 역시 철분 수치 0.5가 모자라 혈장 헌혈. 지금 난 전혈을 목표로 매일 삶은 달걀 2개와 치즈를 먹으며 철분 수치를 올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헌혈을 하게 되니 헌혈을 할 욕심에 매일 만보를 걷고 술을 멀리 하고 12시 전에는 취침하는 모범생의 생활을 3개월째 하고 있다. 누가 감시하는 것도 아닌데. 42
20년6월15일. 네 번째 헌혈. 전혈 가능. 노력이 보람이 있었다. 400ml를 담아내는 투명한 비닐 봉투 속으로 나의 뜨끈한 피가 흘 러 들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검붉게 가득 차오르는 피를 보며 나눌 수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20년9월12일. 마지막 혈장 헌혈. 20년 3월에 시작된 나의 헌혈은 9월, 5회로 끝이 났다. 다리가 골절 되어 더이상 헌혈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헌혈, 할 수 있을 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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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강민경
셋,
숲 45
응봉동 산 그리고 집과 정원의 추억
태어나서 현재까지 한 동네에서 살다보니 익숙했던 동네가 낯설어졌다가 다시 익숙해지는 과정을 반복적으 로 겪고 있다. 아주 어렸을 때 추억을 돌이켜 보면 응봉동 산동네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던 계단을 한참이나 올라가 던 기억이 난다. 산자락을 따라서 집들이 지어져서 우리집 앞마당이 아랫집 옥상이 되기도 했고, 동네 한구석에 있 던 공터의 한쪽은 절벽이라서 꼬맹이들의 담력 시험장이 기도 했다. 집들이 빼곡하게 들어찬 동네에서 각 집마다 마당이 따 로 있기보다는 계단으로 이어진 골목들이 우리의 마당이 자 놀이터였고, 가을 김장과 겨울 연탄 나르기를 위한 작 업장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고달픈 기억이지만 그때는 놀이처럼 여겨졌던 물양동이 나르기가 이어지던 곳도 그 골목과 계단이었다. 여름 단수 또는 겨울 동파로 인해 물 이 끊겼을 때는 동네 사람들이 양재기와 양동이 등을 들 고 나와 아랫길에 주차된 물탱크차에서 물을 이어 나르 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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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선희 @sunhee_min91
이런 골목은 어른들에게도 힘들었지만 특히 어린이들에게는 한번 집에 오면 동네를 벗어나기 어렵게 만들었다. 늘 평지에 살고 있던 아랫동네 의 친구들을 부러워했고, 우리 동네보다 높은 위치에 살고 있는 친구 들은 우리를 부러워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언젠가 여름 비가 많이 오 던 날 응봉교 아래에 구명보트가 떠다니고 학교를 못가게 되었던 날에 평지가 아닌 산동네에 살고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여겼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 재개발이 되어 행당동에서 2년간 살다가 다시 응봉동으로 이 사오게 되었을 때도 우리 집은 아파트가 아닌 이층집주택이었다. 처음 이층집으로 이사오던 날에는 맞은편 아파트 담벼락에 붉게 타오 르듯이 피던 장미들이 기억에 선명하다. 그리고 대문을 열면 작은 마당 정원이 길 양옆으로 있고 한쪽에는 연못도 있었다. 마당에 대추나무와 감나무가 있어서 가을이 되면 수확해서 제사상에 올리기도 했다. 옥상 에서는 여름밤이면 모깃불을 피우고 잠도 자고 한쪽에는 고추와 상추 들을 심어두기도 했다. 그렇지만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집보다는 일에 집중하다보니 집은 그저 잠만 자는 곳으로 바뀌고 말았다. 계절이 바뀌는 동안 옥상에 한 번도 올라가지 않은 적도 많았다. 마당에 피던 꽃과 과일들도 그저 익 숙한 풍경으로만 여겨졌다. 그런 익숙함에 물들어 살던 어느날 직장을 그만두게 되면서 아침과 밤 풍경만 익숙하던 내게 낮에 보는 집은 낯 선 공간이 되고 말았다. 다시 일을 하면서 평일에는 아침과 저녁때만 집에 머무는 예전 생활로 돌아가 버리기는 했지만 주말이나 공휴일에 그저 집에서 쉬기만 하기 보다는 마당과 옥상을 둘러보게 되었다. 이제는 대추나무도 오래되어 서 없어지고 연못도 모기들이 많아서 화단으로 바꿔버렸다. 대신 마당 에서 돌보고 있는 냥이들이 옥잠화와 비비추 사이를 깡총거리면서 숨 바꼭질을 하기도 하고 옥상에서 늘어지게 일광욕을 즐기기도 한다. 처 음 이사왔을 때 다양한 과실수와 연못이 있던 마당정원이 냥이들이 뛰 어놀며 자라는 냥이정원으로 바뀌고 말았다. 요즘은 그림 그리는 것이 취미라서 가끔 옥상이나 마당에 의자를 펴놓 고 냥이들 사진을 찍기도 하고 스케치를 하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집 은 [재산]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쉴 곳]일 수 있겠지만, 내게는 우 리 집은 [고향]이기도 하고 [창작의 공간]이기도 하다. 주변 동네들이 빠르게 변화하는데도 응봉산 아래 주택가는 시간이 느 리게 흘러서 처음 이사왔던 80년대 중반과 비슷해서 그런 느림이 불편 하기도 하지만 이제 익숙해진 공간과 지역이 낯설게 변화할 것에 대한 기대보다는 아쉬움이 더 크다. 도시의 변화와 성장도 중요하지만 오래 된 동네의 여유로움도 지켜지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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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봉교 글, 사진 이유상
강남 강북을 잇는 교량 중 가장 최근에 건설된 응봉교 확장 건설기간은 장장 7년(2008~2015)의 오랜 시간이 투자되었지만 이제 없어서는 안 될 우리의 다리가 되고 있다. 건축은 길게는 100년을 내다보고 지어지나 고속도로나 교량의 토목공사는 천년을 보고 건설된다. 상처를 안고 재 개통된 성수대교와 바로 연결되는 응봉교 강남구 압구정동과 성동구 성수동 응봉동을 통하며 오래동안 사랑받는 교량으로 남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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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라노건축가의사진여행 http://blog.naver.com/uslee3232. 이유상 / 성동여행SNS서포터즈로 활동하는 사진가 겸 건축가
응봉교를 걸어가는 두사람
숲속을 걸어요
옛날 옛적 성수동에 있는 어느 아파트 단지에 고양이가 살았다. 그 고양이는 털이 검고 희고 노랬는데 그것 때문인지 아파트 주민들은 삼색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삼색이는 오 랜 시간 동안 아파트에서 살며 거의 아파트의 상징이 되었다. 마을 아이들은 삼색이를 보면 미리 준비한 멸치를 주며 쓰다 듬어 주고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항상 밥과 담요를 주 며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그럼 삼색이는 보답으로 자신의 보
정윤주
드라운 털을 만지게 해주거나 예쁜 꽃을 꺾어서 고마운 사람 들의 발밑에 놔주기도 했다. 그러나 밤하늘의 별도 평생 빛날 수는 없는 것처럼 삼색이의 행복도 계속 이어지지는 못했다. 언제 부턴가 자신을 애정 가득한 눈으로 봐주던 이들이 하나 둘 씩 사라지고 그와 반대로 경멸하고 더러워하는 듯한 눈빛 을 띄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고양이들은 더럽고 병 을 옮겨 다닌다고, 아파트의 위생에 해를 끼친 다며 삼색이 가 보일 때마다 혀를 차며 욕을 했다. 아이들도 전처럼 반갑 게 인사하는 대신에 갖고 놀던 공을 삼색이를 향해 던지거나 손가락질을 하며 얼굴을 찌푸렸다. ‘우리 엄마 아빠가 그랬는 데 고양이들은 음식물 쓰레기나 훔쳐 먹는 더러운 동물이래!’ ‘너무 배고프면 비둘기도 잡아서 먹는다는데?’ ‘그럼 비둘기 를 먹어도 배가 안 부르면 우리를 먹는 거 아니야? 으아 더러 워! 저런 더러운 애들한테 먹히기 싫어!’ 삼색이는 더 이상 예 전 처럼 낮에 햇빛이 잘 비치는 곳에 누워있을 수 없었다. 사 람들이 계속 더럽다고, 가라고 소리를 질렀기 때문에 귀가 아 파 사라질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낮에는 인적이 드문 수 풀 속에서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나와 먹이를 찾기 시작했 다. 전보다는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정해진 시간마다 나와서 밥을 주는, 예전과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삼색이도 어떻게든 고마움과 애정을 표현하려고 노력을 했 다. 그렇게 전전긍긍하면서 살아가려고 했지만 어느새 아파 트 벽에는 삼색이가 먹는 밥에 빨간색으로 표시가 돼있는 그 림과 함께 어떤 꼬부랑거리는 검은 무언가가 같이 쓰여 있는 종이가 붙어 있었다. 그 이후로 사람들이 밥을 주는 수가 더 줄어드는 걸 봐서 삼색이는 그 그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대 충 유추할 수 있었으며 더 이상 이 아파트 안에서 살 수 없겠 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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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하루 정도 잠을 자려고 들르는 고양이들이 있었는데 하나같이 동네에 있는 큰 숲에 가면 추위와 배고픔에 대한 걱 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며 자기도 그곳에 가는 중이라고 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삼색이에게는 이곳이 자기의 집과도 같은 곳이어서 그런 말을 들어도 숲에 대한 호기심이 일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곳이라도 가지 않으면 자기 가 언제 저 사람들에게 습격을 당할지, 아니면 굶어 죽을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하루 빨리 떠나야 했다. 밤이 되자 삼색이 는 아파트에서 자기에게 계속 밥을 주던 사람들에게 찾아가 머리를 부비며 작별 인사를 했다. ‘마지막까지 나에게 밥을 줘서 고마워, 내가 떠나도 날 기억해줘‘.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지 않는 밤이 되자 삼색이는 신속하 게 자기의 보금자리를 떠나 여행을 시작했다. 사실 그렇게 거 창한 여행이라고 부를 것도 없었다. 고양이들이 말해주길 아 파트에서 나와서 흉측한 짐승들이 지나는 검은 강을 지나 작 은 섬을 건너 또 강을 건너면 온통 초록빛이 나는 곳이 나올 건데, 그곳이 숲이라고 애기를 해줬다. 그리고 삼색이가 살 았던 아파트의 바로 옆에 그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낮이고 밤이고 그 강에서 짐승들이 우는 소리를 질리도록 들은 삼색 이는 일단 그곳부터 지나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묻지 않았는 데도 만일의 경우에 알면 좋으니 기억하고 있으라고 말해준 고양이들에게 삼색이는 고마움을 느꼈다. 아마 그들도 전에 는 삼색이와 비슷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자기 와 같은 일을 저 어린 고양이가 당할 수도 있으니 미리 알려 줬을 수도 있다. 갖은 생각을 하며 아파트의 출구에서 나오자 그동안 거대한 벽에 막혀 잘 들어오지 않던 바람이 삼색이를 강타했다. 날씨가 점점 추워져서 그런지 근처에 강이 있어서 그런지 바람이 매서웠다. 시야를 확보할 만큼 눈을 뜨며 삼색 이는 힘겹게 발걸음을 내딛었다. 다행히 바람은 상점가로 향 하자 약해져 걷기가 훨씬 더 수월해졌다. 주변 여기저기에는 사람들이 버린 담배꽁초와 플라스틱 컵이 나뒹굴고 있었다. 아파트 안에도 가끔 이런 것들을 버리는 사람들이 있어 꼬리 를 탱탱 치며 싫어했지만 지금의 풍경을 보니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생각하며 삼색이는 눈살을 찌푸렸다. 얼른 걸음 을 재촉해 어두컴컴한 거리를 지나 다른 아파트를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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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점가 주변의 울타리를 감싸는 덤불에 곧 있으면 시들 것 같 은 장미가 갈색이 도는 분홍빛 꽃잎을 떨어뜨리며 달콤한 냄 새를 내뿜고 있었다. 아파트를 거의 다 지나갈 때 익숙한 야 옹거리는 소리를 듣자 삼색이는 휙 하고 아파트 단지를 향해 눈을 돌렸다. 늦은 시간이라서 그런지 아파트의 공기는 숨이 막힐 정도로 조용했다. 매일 밤만 되면 하나 둘씩 켜지던 노 란색 불빛들도 지금은 모두 꺼진 채 암회색 밤하늘에 잠겨 있 었다. 가끔씩 검은 강의 괴물들이 내는 굉음을 빼면 숨 막히 게 조용한 그곳에는 아파트의 분위기와는 너무나 대조되는 하얀 털을 가진 고양이가 앉아있었다. 아직 갈 길이 멀었지 만, 먹이를 찾으러 돌아다니는 것도 아니면서 왜 이런 늦은 시간에 자기와 같은 고양이가 미동도 없이 가만히 있는지 궁 금해진 삼색이는 아파트에 들어가서 하얀 털의 고양이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 삼색이가 인사하자 흰 고양이도 미심 쩍어하는 기색 없이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풀숲 같은 더 편 한 곳에서 쉬어도 되는데 왜 여기에 있는 거야?” “난 지금 밥 을 기다리고 있어 쉬고 있는게 아니야” “밥? 이렇게 늦은 시 간에 밥을 먹는다고?” “응, 이렇게 허공에 노란 불빛이 안 비 추고 하늘이 어두우면 항상 검은 거적때기를 두른 사람이 와 서 나한테 밥을 주고 내가 다 먹을 때까지 있다 가거든.” “부 럽다. 나도 예전에는 사람들이 먹을 거도 주고 좋아해줬는데 지금은 다들 날 미워해!” “그럼 넌 지금 저 앞에 있는 숲에 갈 려는 거야?” “응, 거기 가면 굶을 일도 없고 낮에 햇살 속에 서 잠도 마음대로 잘 수 있대. 너도 같이 갈래?” “아니, 난 지 금도 괜찮아. 그리고 조만간 나한테 밥을 주는 사람이 날 자 기 집에 데려갈 거 같아.” “진짜? 그걸 어떻게 알아?” “그 사 람 눈을 보면 알게 돼있어” “와 그럼 너도 배고플 일이 없겠 네! 축하해! 그래서 그렇게 열심히 그 사람을 기다리는구나.” “응, 저기 온다. 만나서 반가웠어.” “응 너도 잘 지내!” 하얀 고양이가 있던 아파트에서 어느 정도 멀어졌을때 진짜로 검 은 옷을 입은 사람이 아파트로 걸어가 하얀 고양이에게 다가 갔다. 그 사람은 하얀 고양이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리 더니 번쩍 들어 올려 하얀 고양이를 데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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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진짜로 데려가는구나. 부럽다, 이제 따뜻한 곳에서 잘 지내겠지.’ 하얀 고양이의 미래를 생각하며 검은 강에 거의 다다랐을 때, 똑같이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허겁지겁 강을 건너 하얀 고양이가 있던 아파트로 뛰어 갔다. 아파트에 도착 하자 그 사람은 여기저기 고개를 돌려 무언가를 찾더니 누군 가를 부르고 있었다. ‘설마 아까 그 하얀 고양이를 부르는 건 가? 이상하다 그 고양이한테 밥을 주는 사람은 한 명 밖에 없 을 텐데. 다른 애가 또 있나?’ 괴물들을 지나쳐 섬으로 가며 삼색이는 생각했다. 괴물들의 굉음이 잦아들자 주위에는 귀 뚜라미의 울음소리와 하얀 고양이를 찾는 사람의 절박한 목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와, 여기가 숲이구나’ 무사히 섬을 건너 온갖 풀내음으로 가 득한 숲을 보며 삼색이는 감탄했다. 아파트에도 나무들이 있 었지만 여기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새벽빛의 어스름 때문 에 밝지는 않았지만 나무들의 윤곽이 보일 정도로 밝아졌다. 아침이 되어 햇빛이 숲을 비친다면 정말 아름다울 것 같았다. 숲에는 나무들만 있는 게 아니라 아파트에서 자주 보던, 사람 들이 앉을 때 쓰이던 물건들이 여러 군데 놓여 있었다. 그리 고 여기 저기 다른 고양이들의 냄새가 났다. ‘여기에 나한테 숲에 대해 얘기해준 고양이들도 있을까, 만날 수 있으면 좋겠 다’ 자신의 새 보금자리가 될 곳을 보며 삼색이는 숲을 향해 걸어갔다.
-소감문: 작년 까지만 해도 아파트에 고양이들이 살고 있어서 밥을 조금이나마 챙겨줬는데 더 이상 아파트에 오지 않는 것 이 평소에 고양이들이 많이 살고 있는 서울숲에 간 것이 아닐 까 하는 생각과 합쳐져 이 글을 쓰게 됐습니다. 길에서 살며 많은 어려움을 겪는 고양이들이 아프지 않고 안전한 삶을 살 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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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연방> 다섯 번 탐방기
집들의 숲이 있다면 이런 곳일 테다 홍효정
2020년 9월 15일 촬영한 전경 56
성수연방을 5번째 방문하면서, 천상가옥 맞은편의 숨은 사무실과 이 건물의 원 래 모습이 궁금해졌다. 성수연방의 어제와 오늘은 얼마나 다른 걸까? 화학공장이었던 과거를 한 번 되돌아 보자.
2017년 6월 네이버 거리뷰
2017년 또는 2012년 거리뷰로 확인해보니 기존 공장과 외부 골격은 동일하다. 3층 건 물이 좌우로 서고 중앙은 하늘이 맞닿아있는 주차장이다. 성수연방의 입구 뼈대와 중 앙 통로를 보면서 중앙에 지붕이 있는 창고형 공장을 상상했는데, 의외로 이전 모습이 유지되고 있음에 놀라웠다. 다른 점은 도로 쪽 창문을 막은 점, 동질성을 가진 3층 성 채로 보이기 위한 추가벽돌 시공, 건물을 둥글게 에워싸는 기둥과 복도에서 나타났다. 먼저 바깥쪽을 향한 창문은 모두 벽돌로 막아 사람들의 시선이 분산되는 걸 막고 2층 넓이 그대로 3층까지 외벽을 쌓아 기존보다 더 건물이 크고 웅장해진 느낌을 준다. 그 리고 A동 3층 옥상에는 루프탑까페를 유리온실로 만들어 사계절 언제나, 실내에 있지 만 야외에 나온 것 같은 상쾌함을 주는 공간으로 꾸몄다. B동 3층은 업무공간의 프라 이버시를 지키고 성수연방의 느낌을 한껏 살려주는 붉은 벽돌 외벽으로 사람들의 시 선을 차단하고 있다. 그렇다, 천상가옥 맞은편 숨은 공간의 정체는 기존 사무실이었 던 것이다. 붉은 벽돌 사이, 아무리 바라봐도 사람들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나의 궁금 증을 유발시켰지만 근무하시는 분들에게는 관찰당하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는 쉼터 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띄엄띄엄 뚫린 구멍으로 그곳에서 키우는 나무들 도 보고 햇빛도 비춰서 쾌적한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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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가옥
기존의 실내 복도는 상상이 막힌다. 일하는 공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는 데 리모델링으로 외부와 소통하게 된 현재의 복도는 현재 나의 위치를 끊임없이 확인하게 했다. 2층 어딘가에서, 3층 귀퉁이에서 인증샷을 부르는 셀카질. 1층 파 라솔 아래 앉은 사람들을 보며 여유로움을 가지고 호기심을 가지고 여러 가게를 여행할 수 있었다. 3층 까페에 가는 발걸음이 지겹지 않았던 것도 복도마다 장치 되어 있는 재미요소 덕분일 테다. A동 입구에서 네온조명이 색을 변하는 계단을 바로 올라가든지, 1층을 쭉 들어와서 외부계단을 올라오든지 각각의 색다른 맛 이 성수연방을 걸을 맛나게 한다. 다섯 번 왔는데도 질리지 않았던 이유가 공간 의 다양한 변주 덕분이었구나. ‘도시재생사업’이라는 딱딱한 표현은 잘 모르지만 잘 지어진 성과 같은 성수연방 은 평소 다니던 쇼핑몰(코엑스, 여의도 IFC몰, 하남스타필드 등)과는 다른 차별 점을 갖고 매력을 보여주었다. 특히 가게를 나서면 자연이 바로 연결되는 느낌을 서울 한가운데에서 느낄 수 있는 건 기존의 성수동 거리와도 연결되는 느낌이다. 이 곳에서 생산해서 바로 판매하는 수제햄, 수제맥주, 카라멜과 더불어 이야기가 있고 개성 강한 강소브랜드를 골라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치하 였고, 자체브랜드인 띵굴스토어와 아크앤북 서점을 통해 요즘 세대들이 열광하 는 가치와 문화를 전달함으로써 가까이에 사는 사람들, 또는 가볍게 골목여행 하 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쇼핑과 휴식처로 다가온다. 특히 내게 매력적인 곳은 아 크앤북 성수점이었는데 책을 큐레이션하는 방식이 남달라서 독립서점 분위기가 강하고 책이 눈에 쏙쏙 들어온다. 대형서점에 가면 읽어보지도 않을 수필집, 여 행서적, 다양한 이야기들이 전면에 펼쳐져 있는데 제목만 봐야지하고 천천히 보 다가 어느새 1권 쓱 구매하게 된다. 텀블벅에서 펀딩으로 구매했던 여행책이 놓 여있어 미소지을 때도 있었다. 58
그러니 성수동에서 딱 한 군데만 가볼 곳을 추천하라면 나는 성수연방을 1순위 로 꼽는다. 이 곳에서 당신이 여행에서 하고 싶은 모든 것_독특한 매뉴가 눈길을 끄는 식당에서 먹고(쿠시범, 창화당, 피자시즌, 자파브루어리·인디카) 환경을 생 각하며 쇼핑하고(띵굴스토어) 일상을 벗어나는 주제의 책을 읽고(아크앤북) 직접 만들어보고(팜프레시팩토리-수제햄 만들기, 수제햄 구매 및 식사도 오케이) 당분 채우고(인덱스카라멜) 빵과 커피, 차로 휴식하는(천상가옥)_을 할 수 있다. 나도 이번 주말에 그 곳으로 여섯 번째 여행을 떠나야겠다.
성수연방 전경
존쿡델리미트팜프레시
창화당
인덱스카라멜 성수연방 전경 성수연방 서울 성동구 성수이로14길 14 전화 0507-1336-0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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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 카페 우디집에서
‘재탄생’이라는 가치를 이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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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사는 곳, 모여서 일하는 곳에는 건물이 있게 마련입니다. 성수동 지역 건물들을 처음 보았 을 때 느낌은 ‘수제화의 메카답게 공장 같은 건물이 많다’, ‘재개발이 진행되는 내가 사는 동네와 다르게 옛날 주택 건물이 비교적 많다’였습니다. 만약 누군가 저에게 ‘성수동’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고 묻는다면, ‘재탄생’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재탄생되 는 옛 공장과 창고 건물들을 보면 낡고 보기 흉한 것들이 꼭 버려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성수동 성원중학교 안 골목으로 들어서면 다소 오래된 기계 정밀 업체, 원룸 건물들, 옛날 주택들이 들어 서 있습니다. 이 건물들 사이로, 둘레9길에 작은 공장처럼 보이는 17번 건물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곳 엔 ‘재탄생’의 가치를 대변하는 카페 ‘우디집’이 있습니다. 우디집이 있는 건물은 옛날 주택으로, 1층에는 꽃집, 2층에 카페가 들어서 있습니다. 주변에는 소규모 공 장들이 있는데, 이 카페 건물은 예전 일하시던 분들의 숙소로 사용되었던 곳이라고 합니다. 현재도 우디 집 주변에는 소규모 공장들이 가동하고 있으며, 바로 옆 건물은 시계 부품을 만드는 공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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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카페에는 연인, 친구, 홀로 오기에 좋지만, 우디집은 부모님과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기에 제격입니 다. 카페의 입구부터 옛 할머니 댁을 연상케 합니다. 우디집이라는 이름이 ‘Woody(나무로 된) 집’이라는 뜻인데, 이곳의 공간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나무로 되어 있습니다. 1층 입구에서 나무로 된 계단을 올라가 면 옛 할머니 댁에서 볼 수 있었던 탁자, 화장대, 자개로 된 서랍장이 있습니다. 한 때 누군가가 앉아서 밥 을 먹었을 의자, 물품을 보관했을 서랍장을 보면 낡고 촌스럽다는 느낌보다는 정겹고 오랫동안 보지 못한 무언가를 다시 마주한 느낌마저 듭니다. 카페에서는 재즈 음악이 내내 흘러나옵니다. 피아노 소리가 섞인 재즈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소리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 도리어 상대방이 하는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우디집에서 판매하 는 메뉴 또한 부모님과 함께 즐기기에 좋습니다. 이곳에는 커피와 더불어 홍차를 판매하는데 차마다 독특 한 향이 있으며, 모나카와 앙버터를 합한 메뉴는 단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어르신들도 맛있게 드실 수 있습니다. 우디집이라는 건물, 공간, 공간에 자리잡은 소품들을 보면 ‘재탄생’이라는 가치를 곱씹게 됩니다. 현재 서 울 곳곳에서는 낡은 건물을 부수고 있으며, 부술 수 없다면 아예 예전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게 리모델링 하고 최신식 인테리어로 탈바꿈시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수동의 우디집은 옛 세대 때부터 전해져온 가 치를 보존하면서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제공합니다. 우디집은 이제 2년을 좀 넘긴 카페입니다. 사장님께서 카페를 운영하기 위해 공간을 알아보시던 중, 둘레 9길에 위치한 지금 공간이 쏙 마음에 들어 직원 한 명, 목수 한 분과 함께 이 공간을 직접 디자인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남녀노소 편하게 쉬다 갈 수 있도록 메뉴를 직접 개발하셨다고 합니다. 부모님과 함께 우디집을 방문한다면 그간 말하지 못한 것들도 조심스레 말할 수 있는 힘을 얻으며, 얼어 붙어 있던 관계도 녹을 것 같습니다. 추워지는 올 가을, 부모님과 함께 우디집에 방문하여 재탄생이라는 가치를 누려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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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안지우
밝게 빛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 한 줄기의 따스한 햇살 되지요
즐겁게 하는 마음 나눠 주려는 마음 고운 흙과 물이 됩니다.
기쁜 마음 감사하는 마음이 사람들을 만들어 고운 동네가 됩니다.
작가소개 안녕하세요.~ 초등학교에 다니는 안지우입니다. 저는 카페에서 달콤한 스트로베리 주스를 마시며 책 읽는것을 좋아합니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재밌는 영감들이 톡톡 떠오릅니다. 제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의 시간이 특별해 졌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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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 성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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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에서 책과 함께 하는 특별한 공간 찾기
서울숲길
서성원
서울은 변화하는 도시입니다. 그중에서도 성수동의 변화는 도 드라집니다. 이렇듯 성수동에 위 치한 서점은 책만 팔지 않습니 다. 책 외에 다른 것을 같이 팝니 다. 그리고 책을 매개로 해서 서 점 주인의 고유한 체험과 인생 노하우를 팝니다. 그리고 책을 매개로 하는 휴식 공간이 늘어났 습니다. 시민들을 위한 공간입니 다.
ARBY(알비) - 책방, 북카페 서울숲 카페거리에 있습니다. 루비박스출판사가 운 영하는 책방과 북카페입니다. 루비박스출판사 책이 많습니다. 1층 유럽피안 감성 셀렉샵, 쇼룸, 2층 빈 티지 포스터와 책, 3층 일러스트 전시, 굿즈 마켓입 니다. 이 책방은 유럽 여행 중에 동네 책방을 들른 느낌이 나게 꾸몄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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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숲 카페거리는 7,80년대에 유행했던 붉은벽돌 건물이 많은 골목입니다. 친구들과 도란도란 얘기하며 걷 기에 그만입니다. 이 외에도 서울숲 카페 골목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책방과 북카페 도 한몫합니다. 그곳에 책방 한 곳, 책방과 북카페를 겸하는 곳도 있습니다.
산책아이- 책방
장세이 작가의 책들
<산책아이>는 우리 숲과 우리말 책을 쓰는 장
오롯한글 (글맛,글씨맛 나는 한 글자의 세계),
세이 작가(@sayjangsay)가 낸 책방입니다.
후 불어 꿀떡 먹고 꺽! (처음 맛보는 의성의태
서울숲은 자연을 품은 공원입니다. 그래서 생태
어 이야기), 엄마는 숲해설가 (손 쉬운 생태놀
책방이 지역과 잘 어울립니다. 그리고 주인장
이 60개, 가까운 생태공원 12곳), 서울 사는
장세이 씨는 작가입니다. 책을 꽤 여러 권 냈습
나무, 제주에서 행복해졌다 (차로 두 발로 자
니다. 마침 내가 갔을 때는 작가가 가게에 있었
유로움으로 세 가지 스타일 30개의 해피 루
습니다. 책을 구입하고 싸인도 받았습니다. 장
트) , 느린 여행자를 위한 산보길, 나는 한다
세이 작가는 책방 외에도 다른 일도 겸하고 있
(연봉 1억 버는 에듀플래너들), 크게 키우는
다고 합니다. 매일 책방에 나오는 건 아니랍니
사람들 (아이와 함께 자라는 씽크빅 선생님들
다.
의 성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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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무장길 연무장 길에 있는 책방입니다. 연무장길에는 스튜디오, 편집샵, 카페, 구두 관련 가게들이 많습니다. 오래 된 주택을 개조해서 개성 넘치는 가게들이 많아졌습니다. 금요일 밤에는 연무장길엔 사람이 넘쳐납니다.
아크앤북스- 책방, 북카페 연무장길에서 힙플레이스로 부상한 곳이 성수연방입니다. 그곳 2층에 아크앤북스가 있습니다. 공간이 꽤 넓고 직원 2명이 상주하고 책 종류 도 다양합니다. 성수연방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아서 책방을 찾 는 사람도 많은 편입니다. 요즘은 어딜 가면 인증샷 남기려 합니다. 아 크앤북은 인증샷을 남기기 좋게 꾸며 놨습니다. 아크앤북 홈피에 이렇 게 소개해놨습니다. <사람을 위한 책, 사람과 책을 위한 공간 : 문화적인 콘텐츠와 소비를 창출하는 서점과 라이프스타일 샵이 결합된 복합 문화 공간입니다. 생 기를 잃어버린 도시에 새로운 활력을 제공하고 또한 이곳을 찾는 사람 들에게는 책을 통해 얻게 되는 다양한 장르의 지식과 경험을 공간적으 로 풀어내어 체험하게 하고자 합니다. 아크앤북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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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플래닛 상상서가 -북카페 KT&G가 운영하는 청년창업 전용 공간입니다. 스타트업 지원센터입니 다. 1층이 시민이 이용하기 좋은 카페가 있습니다. '커넥트 홀'이랍니 다. 서가가 있어서 북카페처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공간이 넓고 층고 가 높아서 시원하고 쾌적합니다. 건물도 개성이 넘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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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의 길들과 새촌 새촌은 성수1가에 1동에 있고 그곳에 있는 서점입니다. 일제강점기에는 백석 시인이 이곳에서 살았다는 동네입니다. 새촌 골목 안에 낫저스트북스가 있습니다. 인터넷을 검색해본 분이라면 책방 주인님이 개성 이 강한 것도 알겠지요. 홈피에 올린 글을 한번 볼까요.
낫저스트북스(NOT JUST BOOKS) - 책방 『낫저스트북스는 성수동 새촌마을 골목 안에 자리한 작은 동네서 점입니다. 헌책과 새책, 독립출판물을 구분하지 않고, 서점주의 지 극히 개인적인 철학과 관심사에 기반한 책으로 가득한 공간입니 다. 모든 책을 직접 고르고 시간을 들여 읽어본 뒤에 추천합니다. 책방지기가 좋아하는 음료도 마실 수 있습니다. 음료를 사도 책을 무료로 볼 수 없습니다. 』 그리고 이걸 알고 가셔야 합니다. 서점에는 반려견 순돌이가 항상 상주해 있습니다. 반려견 데리고 가는 분은 참고하세요. 순돌이 사진 촬영하지 마세요. 주차공간이 없습니다. 내외부 사진 촬영을 금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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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어57 - 책방, 북카페 레이어57에 북카페와 북스토어가 있습니다. 아 트&디자인, 사진, 패션, 건축 서적을 판매합니 다. 북카페도 운영합니다. 책방과 카페는 별도 공간입니다. 레이어57이 유명한 것은 대형 스튜 디오를 대여하기 때문입니다. 스튜디오는 공장 건물을 리모델링했고 규모가 큽니다. 여기서 유 명 가수들의 행사가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아람북스 씨앗책방- 어린이 책방, 독서체험 공간 어린이 전문 아람출판사에서 만든 갤러리 형태의 서점(키즈올), 체험형 브랜드숍 ‘씨앗책방’입니다. 서점에는 전문 상담사가 상주합니다. 지금은 코로 나로 인해 1시간에 1팀 예약해야 이용할 수 있다 고 합니다. 전집 상담과 구매 상담을 합니다. 비즈 타워 2층에 있는데 아이와 엄마들이 책을 볼 수 있 는 넓고 쾌적한 공간인데 무료로 제공합니다. 출판 사에서 운영하는 것은 알고 가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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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 사람들
성수동쓰다
연무장길, 성수동 변화의 리트머스 종이 거의 모든 집과 건축 물품 필요할 때 60여년 한 자리, 한 종목 연무장길 협신철물
남편 최정배 님과 부인 김경남 님이 여기 성수동에 온 것은 1994년 7월. PVC 자재상을 했던 남편의 거래처였다. 협신철물은 그 당시에도 이미 30여년쯤, 그 이름을 단 집 관련 자재상. 그곳을 인수해왔다. 그러니 협신철물은 두 세대쯤의 성수동을, 더 정확히 는 연무장길의 변화를 지켜본 증인이다. 김경남 님과 대화했다. -당시 이곳 연무장길의 풍경을 이야기해 주세요. “옛날엔 슈퍼들이 주변에 많았어요. 엄마슈퍼, 대우슈퍼, 은혜슈 퍼가 여기서 한 오십여 발자국 되는 곳에 전부 모여 있었어요. 현 재 샘물약국 근처엔 사거리슈퍼가 있었어요. 당시엔 작은 공장들 도 많았고 집들이 있었으니까. 그 사람들이 라면에 콩나물도 사가 고, 막걸리도 마시고 그랬어요. 당구장도 많았던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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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중에 손님이 왔다. “아사 있어요?” 주인장은 잠시 짬을 내어 제품을 가져온다. 천원쯤 돈을 냈다. 잠시 후엔 작업인부들도 방 문. 빨간 고무코팅 장갑 한 뭉치와 나사 등이 그들이 사간 제품. 계 산해보니 장갑 한 켤레 값은 대략 250원 정도, 볼트는 4원씩이다. - 아사가 뭐죠? “테프론이죠. 야마에 감는 테이프. 예전에는 면사를 썼는데…. 지 금은 많이 바뀌었죠.” 나이가 좀 든 분들이 주 고객이다. 젊은 사람들은 대개는 인터넷서 주문한다. 가격은 별 상관이 없고, 찾는 제품만 있다면 얼마든 오 케이다. 협신철물은 우선 좋은 물건을 가져다 놓는다. 손님들과 물 건 하자로 실갱이를 하는 일은 피곤한 일이다. 가격도 선택의 기준 이 되기 때문에 그리 높지 않다. 이곳은 단골 장사다. “식당들도 많았어요. 고양식당, 호남식당. 꼬꼬치킨집. 중국집도 있고요.” - 어떤 제품군이 가장 많이 나갑니까? “실리콘이요. 초산은 빨리 마르고, 유성도 있었는데 요즘은 비초 산을 많이 쓰죠. 수성은 빨리 굳어 집도배하거너 페인트칠 할 때 땜빵용으로 쓰고요. 방수용으로 우레탄 실리콘, 외장용 실리콘, 곰 팡이 피는 곳에 바이오 실리콘, 내열 실리콘도 있어요. 추석이나 설같은 명절이면 공장을 잠그고 가니까. 예전에는 자물쇠도 많이 나갔어요. 청소도구도 많이 나가고.” 연무장길은 지하철2호선 노선과 나란히 달리는 이면도로다. 아직 까지 연무장길은 수제화, 가죽, 기계, 자동차 등 옛 성수동의 흔적 이 남아있다.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성수동 카페, 샵, 식당으로 빠 르게 변모하고 있다. 주변에 우뚝우뚝 솟는 지식산업센터들로 어 떤 공장은 들고, 밖에서도 오고, 또 빠진다. 성수동의 변화? 눈을 들어 연무장길을 보게 하라. 전화 : 02-464-8747 주소 : 서울 성동구 연무장길 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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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 사람들 건물을 가리는 광고는 도시를 죽인다 성수동 옥외 광고업체 대광에이디 우종구 님
대광에이디는 광고회사다. 현수막, 아크릴, 명함, 봉투 등등 을 다 만들지만, 그중 옥외광고판 제작과 설치가 주업무다. 성수동 집들의 변화, 거리의 변화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이들중 하나다. 변천이 심한 동네 성수동에서 대광에이디는 어땠을까? 대광은 최근 4년여 기간 동안 두 번의 이사를 했다. 뚝섬역 5번 출구 앞 건물이 신축을 하면서 성동교 남단으로 옮겨갔다. 그곳이 최근 벨라듀 재개발지로 공사를 시작하면서 다시 옮겨야 했다. 철 거는 성수동의 전반적 지가 상승과 맞물려, 재개발 역시 성수동 개 발의 광풍과 맞물려있다. 첫 이사 때는 직원들이 나섰는데, 두 번 째 이사는 사람들을 불렀다. 거대한 기계들과 설비들이 함께 이동 하는 일이라 큰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성수역 1-2번출구 인근 이면도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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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광에이디의 첫 시작은, 1990년 네온공장에서 시작했다. 93년 대광에이디로 광고기획과 제작, 설치 작업으로 변경했다. 대방동 ‘ 광고학원’서 ‘네온제작’을 배웠다. 우종구 대표는 전기과 전공이라 전기를 다룰 줄 알았던 것이 배경이 됐다. 엑스레이 회사에서 근무 한 뒤, 병원 사무장으로 일한 대표라서일까? [그는 상원길 서울의 원서 일했다 했다] 대광의 작업실(공장)과 사무실은 깔끔하고 체 계적으로 정비돼있다. 공간은 사람을 닮기 마련이다. - 간판은 도심의 풍경과 깊이 연관돼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88올림픽 하면서 도시를 한번 정비를 했어요. 2002년 월 드컵 때도 그랬죠. 간판뿐 아니라 도로 등도 함께 손을 보죠. 1990 년 이라크전 발발하면서 네온광고 등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어요. 에너지 절약한다고. LED등이 나오면서 많이 바뀌었죠.” - 어떤 방향으로 간판 정비는 진행된 거죠? “당시엔 큰 간판이 많았어요. 건물을 가리면 도시 풍경이 함께 죽 어요. 입간판하고 물건들이 나와 있으면 도심통행도 불편하고. 판 간판은 채널(글자)로 바꾸고요. 개성 있는 광고로 만들고, 지역에 맞는 특성을 좀 찾아서 바꿔주는 거죠. 서울시 종로에서 먼저 시작 돼는데, 그걸 성동구가 가장 먼저 받아서 사업을 했던 거 같아요. 왕십리로를 우선 하고, 차츰차츰 동네로 확장해 갔어요. 지금은 인 터넷으로 사업을 하는 데도 많고, 건물속으로 들어간 데도 많죠.” - 하고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성수동 쌍용아파트 자리엔 상공물산 있었고, 대우아파트 자리 는 한일약품 자리다. 지구화학, 한라스포츠 등도 있었고. 성수동을 새 변화를 맞고 있다. 상업지로 활성돼 골목골목마다 다양한 공간 으로 활성화되었으면 한다. 또하나 코로나로 개인주의 심해지고 있는데, 여전히 사람이 그립다. 친구들과 맘 폄히 막걸리 한잔 할 때가 얼른 왔으면 한다.” 전화 : 02)498-1075 / 서울 성동구 성수일로8길 42(삼원빌딩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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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랑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옛 악동들 다시 어릴 적 동네
성수동을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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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숲
민경서
나는 항상 서울숲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 곤 한다. ‘변함없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한 가지 항상 서울숲 에 가면 마음이 치유되기 때문이다. 서울숲은 어릴 때부터 항상 갔던 곳이다. 집 근 처에 친구들과 놀기도 하고, 학교도 서울숲에 붙어있는 학교를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때부터 10년 넘게 지난 지금도 항상 서울숲에 가면 그때 향수를 느끼곤 한다. 왜냐하면 서울숲은 아직도 나에게 숲이기 때문 이다. 서울숲 근처에는 빌딩들이 생겨 가장 부자들이 많이 살기로 유명한 빌딩들이 되어가고, 맛집 들 이 생기면서 먹자 골목들이 생기기 시작했 다. 그렇게 다른 곳들은 먹자골목 빌딩 이름 들 로 불릴 때 서울숲은 아직도 그냥 서울숲이다. 물론 서울숲 안에도 여러 시설들도 생기고 했 지만 여전히 여러 가지 꽃, 풀, 나무, 그리고 여 러 가지 동물들 개구리, 토끼, 사슴 등등 많은 곤충들과 동물들이 있는 숲 그렇기 때문에 10 년이 지난 지금도 이렇게 나에게 어릴 때의 향 수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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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숲
허지원
2020년은 공백기이다. 의문의 바이러스로 전국의 활동이 멈춤과 동시에 대한민국은 생 기를 잃었다. 집안에 발이 묶여 계절의 변화를 스마트폰의 달력으로 알아차리는 자신의 모습 을 발견하곤 할 것이다. 이따금씩 외출을 하게 되어도 마스크로 덮인 사람들의 표정은 알 수 가 없다. 코로나가 휩쓸고 간 자리는 마치 화산재가 내려앉는듯 빛을 잃고 만다. 하지만 서울 숲은 다르다. 아파트 창밖으로 보이는 서울숲은 잿빛 세상에서 유일하게 색깔을 가진 것만 같다. 그 따위 바이러스가 무슨 상관이냐는 듯 생동감이 넘쳐흐른다. 향기로운 꽃잎과 돌 틈 사이로 흐르는 개울,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는 숲이 살아있음을 보여준다. 한해가 갈수록 바뀌는 사회와는 다르게 8년전 나의 등교길이었던 서울숲은 그때와 변함없이 그 본연의 아 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동시에 묵묵히 그 자리에서 주민들의 삶에 활력을 불어주고 있음을 전염병이 퍼지고 난 후에야 다시금 깨닫게 된다.밤이 깊어야 별이 빛나듯 서울숲은 어려운 시기일수록 더욱 빛을 발하는 성동의 자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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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무장길
김건록
나는 대구에서 태어나서 대구에서 자라왔다. 대학생이 되고 대학교를 천안으로, 그리고 서울 친구들을 많이 접하면서 서울 환경에 적응하게 되었다. 나에게 성수동은 새로운 도시처 럼 보였다. 어느 한쪽에는 개발이 잘 되어서 많은 가게들과 음식점들이 있었고 또 어느 한쪽 에는 아직 개발되지 않은 곳도 있었다. 또한 그 중간 어느 지점의 공간 또한 존재 했다. 연무 장길은 나에게 그 중간 지점과도 같은 느낌을 주었다. 오래되 보이는 건물들에 아직 개발이 부족하다고 느낄 뻔 했지만 그 형태를 자세히 보면 많은 발전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래된 건물들을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면서 그곳에 카페를 만들고 공장을 변형하여 오히려 공장의 투박함을 이용한 아름다운 상점들이 많이 보였다. 카페 뿐만이 아니라 음식점 옷 가게 편집 샵 소품 샵 등등 많은 것들이 보여졌고 중간 중간에 왠지 안어울릴것만 같은 오 래된 세탁소 또한 눈에 띄었다. 하지만 그것들이 전혀 어색하지 않고 굉장히 조화롭다 라는 생각을 했다. 성수동을 조사하면서, 연무장길을 바라보면서 이 변화에 집중하고 내가 관찰 할 수 있다는 것에 굉장한 감동을 느꼈다. 나는 물론 성수동에서 생활한 주민이 아니지만 이 변 화를 관찰하면서 함께 성장해나가는 그런 이주민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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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기 동네잡지
성수동쓰다 성수동쓰다 10호 10월호를, 발품을 팔며 돌렸습니다. 처음 보는 잡지지만, 우리 동네 이야기라니 반갑습니다. 성수동쓰다는 성수책마루, 서울숲컨서번시, 주민자치회관, 기타 이웃의 카페에도 있습니다. 숨은보물찾기를 하듯, 성수동쓰다를 찾아주세요.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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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을 잡 지
부정기 마을잡지
부 정 기
2020 11월
성 수 동 쓰 다
vol. 11
vol. 10